햇살이 도타와 보이건만 놀이터는 비어 있다. 집집마다 일제히 베고니아 화분을 창문 밖 화분대로 내놓아 화사한 봄기분을 내고 있었다. 경제성을 띤 것은 아니었지만 관리실의 권고로 일괄구입한 장방형의 화분은 소복소복 다복솔만큼씩 한 걸 세 포기씩 심은 거여서 공장에서 막 출하한 제품 같았다. 앞으로 한 달 안에 가꾸기에 따라서 말라 죽기도 하고, 썩어 시들기도 하고, 이파리만 웃자라기도 하고, 예쁘게 꽃을 피우기도 할 것을 생각하면 나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작년까지 살던 아파트에선 해마다 페튜니아 화분을 공동구입했는데 늦가을까지 꽃을 보는 건 우리집밖에 없었다. 찬바람 난 후의 페튜니아는 빛깔과 자태가 특히 애잔해서 이웃의 젊은 여자들은 저희들이 잘못해서 죽인 화초가 아닌 줄 아는지 꽃 이름을 물으며 신기해 하기도 했다. 화초뿐 아니라 개나 고양이 새 등 집에서 기르는 짐승들도 내 손만 가면 기승스럽게 번성해 어려서부터 손이 걸다는 말을 들어왔다.
나에게는 생명을 건강하게 하는 특별한 힘이 있다는 맹신과 그 힘을 정작 쓰고 싶은 데다는 쓸 수 없는 아타까움이 타는 듯한 느낌으로 가슴에 와 닿았다. 나는 속에서 활활 열불이 날 것 같은 예감을 지레 괴로워하면서 베란다 창문을 열었다. 유리창으로 보기보다는 차가운 날씨였다. 블라우스 소맷부리로 힘쎈 날짐승처럼 휘몰아친 바람이 소매를 럭비공처럼 부풀렸다. 노인정 너머로 마주 보이는 동희 옥상에 꽂힌 태극기와 새마을기와 시 市 마크가 들어있는 청색기도 어찌나 세차게 펄럭이는지 무자비한 채찍질을 연상시켰다.
요양원은 남으로 강을 굽어보는 언덕 위에 있었지만 국도하고 연결되는 찻길로 난 정문은 북향이었다. 따라서 정문에서 바라다본 요양원은 암울한 회색빛 등을 보이고 돌아앉아 있었다. 정문에서 요양원까지 상당히 길고 꼬불꼬불한 오르막길이어서 그 동안을 줄창 그 밉상의 등만 쳐다보며 기어올라 가노라면 가뜩이나 마음고생이 많은 방문객들은 너나없이 불길한 예감에 짓눌리곤 했다. 그렇게 허위단심 당도하면 요양원 내부는 눈이 부시게 밝아서 딴 세상 같았다. 그런 비현실감 때문인지 방문객은 방금까지의 흉흉한 예감을 몸서리를 쳐 떨어내면서 모든 것이 다 잘돼 있을 것 같은 새로운 환상에 부풀곤 했다.
아들은 자유로와 보였고 흰 가운을 입은 동년배의 의사와 서로 어깨를 툭툭 치며 나타나서 환자가 아니라 의사하고 동격으로 보였다. 모든 것이 다 잘돼 있어! 나는 터질듯한 마음으로 아들을 얼싸안으며 속으로 그렇게 부르짖었다. 잠깐이었지만 아들이 나를 들었다 놓았고 나는 황홀했다.
“좋아졌구나. 정말 좋아졌어. 근데 그 분은 누구냐? 처음 보는 선생님이더라.”
아들과 같이 나온 의사가 미처 인사할 새도 없이 어디로 가버린 게 아쉬워서 나는 이렇게 물었다.
“아까 그 친구요? 한 달에 한두 번씩 자원봉사 나오는 친구예요.”
“얘야, 친구라니, 의사 선생님한테.”
나는 또 가슴이 내려앉아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아들이 부드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고등학교 선배거든요. 친구처럼 흉허물 없니 지내던 사이예요.”
“그래? 이런 데서 만나서 언짢았쟈?”
나는 아들을 바로 보지 못하고 손등만 어루만지며 말했다.
그 조그만 사건을 빼면 그 날도 면회도 딴 때와 다르지 않았다. 셀프 서비스의 식당에서 아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으며, 내 아들의 건강한 식욕과 혈색 좋은 두툼한 볼과 명랑한 표정은 나를 먹지 않아도 배부르게 해 거의 먹는 시늉만 했으며, 딴 환자들 역시 아들처럼 정상적으로 보여 이곳이 정신을 위한 요양원이라는 걸 믿을 수 없음에 문득 문득 절망하곤 했다. 점심을 먹고 나서도 아들과 손을 잡고 이곳저곳을 자유롭게 거닐었으며, 아직도 내 아들과 같은 자유가 허락되지 않은 환자들이 병동으로 통하는 복도를 차단하고 있는 창살문은 먼발치고 바라만 봐도 뭔가 옮아붙을 것만 같아 얼른 외면하고 못 본 척하기도 했다.
아들은 또 국민학교에 입학하던 때의 순결한 표정으로 나를 정원으로 이끌고 나갔다. 며칠 전에 자목련나무의 맨 윗가지에 달린 꽃봉우리가 아기 주먹만큼 부푼 걸 보았으며 그 동안에 얼마나 더 커졌다 같이 보자고 했다.
“보셔요. 그 동안에 어머니 주먹만해졌네요.”
아들이 내 손가락을 하나하나 꺾어 주먹을 만들면서 목련나무 꼭대기를 가리켰다. 성기게 뻗은 가장귀마다 뾰죽뾰죽 꽃몽우리가 부풀고 있어 어떤 몽우리가 긴지 알 수 없었다. 대낮의 하늘이 현기증이 나게 밝았다.
“참 그렇구나.”
나는 건성으로 대답하고 완만한 언덕을 휘감고 흐르는 강줄기를 내려다 보았다. 요양원 땅은 그 강까지인지 남향으로는 울타리도 문도 없었고, 그 밖의 경계표시가 될 만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건물도 북쪽에서 볼 때와는 딴판이었다. 밝고 깨끗한 크림색이 주조를 이루고 넓은 창문마다 붉은 벽돌로 테를 두른 게 요양원이라기보다는 콘도 같은 인상이었다.
잔디와 관상목이 조화롭게 배치된 정원은 차츰 야산으로 변하고 새들이 인기척에 놀라 푸드덕대며 날아가곤 했다. 나는 조금도 춥지 않은데 아들이 어머니 감기 드시겠어요, 하면서 되돌아섰다. 쫓기듯이 빠르게 걷는 아들을 뒤쫒으며 나는 숨찬 소리로 물었다.
“언제쯤이나 여기서 나갈 수 있을 것 같냐?”
“잘 모르겠어요.”
“모르다니?”
“관심이 없으니까요.”
조리로 물을 떠올릴 때처럼 쭈욱 기운이 빠졌다. 아들은 더는 나를 부축해 주지 않았다. 요양원 안으로 돌아와서도 아무 말도 붙여 볼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나는 단념을 못하고 의사한테 같은 소리를 하고 말았다.
“너무 조급하게 굴지 마세요.”
처음 듣는 대답이 아니었다. 전에도 그 전에도 같은 대답을 들었으니, 전에도 그 전에도 같은 소리로 졸랐었나 보다. 나는 실망과 창피함을 무릅쓰고 이번엔 한마디 더 하고 말았다.
“서른이 내일 모렙니다. 사회에 복귀해서 제 몫의 일을 찾게 하고 싶습니다.”
“여기도 사회고 윤군은 여기서 제 몫의 일을 찾아내서 훌륭히 해내고 있습니다.”
“환자 노릇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닙니다. 이 안에선 윤군은 결코 환자가 아닌걸요. 환자를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윤군이 각본을 쓰고 연출까지 맡은 연극이 아주 좋았었습니다. 윤군도 보람을 느꼈겠지만 환자들이 그렇게 즐거워하는 건 처음 봤습니다.”
“그런 일이나 시키시려고 멀쩡한 아이를 이 안에 마냥 붙들어 두겠다는 말씀이신가요?”
나는 나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지만 곧 고개를 떨구었다. 그렇게 떼를 써서 데리고 나갔다가 다시 데리고 돌아온 쓰라린 경험 때문이었다.
돌아올 적에 아들은 마냥 나를 배웅해 주려고 했다. 가뜩이나 음산한 뒤쪽 비탈길은 해질녘이라 바람이 세찼다. 솔솔 품속으로 파고들던 바람이 느닷없이 모진 채찍처럼 온몸을 후려칠 적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뒤따라오는 아들한테 어여 돌아가라고 손짓을 했다. 아들은 씩 웃기만 하고 여전히 뒤따라왔다. 아들은 세찬 바람을 즐기고 있는지도 몰랐다. 약간 긴 듯한 머리가 풀풀 날리는 게 보기 좋았다. 나는 뒤돌아보며 요양원의 암울한 뒷모습에 어울리지 않는 아들의 싱그러운 젊음에 에미의 욕심이 헛되게 꿈틀대는 걸 느꼈다. 나는 연방 돌아가라고 헛손질을 하면서 실은 마냥 데리고 갈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가슴을 졸이고 있었다.
아들은 정확하게 정문까지 따라나와서 딱 멈춰서더니 작별인사를 했다. 아들의 작별인사는 좀 길었다. 안녕히 가시라는 말 말고도 조석 거르지 말란 얘기, 아침 산책 거리지 말란 얘기, 아버지 건강에 대한 염려, 누나들 매형들의 안부 등 갑자기 수다스러워지기 일쑤였다. 나는 뭔가 참을 수 없는 심정으로 아들의 말의 중턱을 잘랐다.
“얘야, 조금만 더 바래다 주지 않겠니? 조오기 버스 정류장까지만 말이다.”
아들은 고개를 저으며 외면을 했다. 나는 내 얼굴이 필사적인 아부로 얼마나 보기 싫게 일그러져 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외면이 차라리 다행스러웠다. 누가 강제로 잡아끌 것도 아닌데 아들은 굳게 닫힌 정문 옆에 달린 작은 출입문의 쇠빗장을 움켜쥐고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아들이 건강하고 자유스러운 건 요양원의 울타리 안에서만이었다. 그가 다 나은 건 아니었다. 한때 아들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이상 理想에 목숨을 걸고 싶어했고 그때 그의 젊음은 얼마나 아름답게 빛났던가. 이상 대신 공포가 차지한 아들의 초라한 모습이 내 마음을 무두질했다.
“어여 들어가거라. 감기 들라, 어여.”
마침 세찬 바람이 불어 내 목소리가 갈갈이 찢기는 걸 뒤로 하고 나는 정거장 쪽으로 종종걸음을 쳤다. 그 동안도 봄바람은 및니 듯이 날쳐 버스에 올라타자 한바탕 얻어맞은 것처럼 뺨은 물론 온몸이 얼얼했다.
유리창을 닫으려다 말고 나는 고개를 내밀고 바로 위층 베란다를 올려다 보았다. 아들과 함께 자목련나무 꼭대기를 쳐다볼 때처럼 하늘 빛이 너무 밝아 눈이 아렸다. 위층 화분대는 비어 있었다. 베고니아 화분은 꼭 사야 하는 것도 아닐 뿐더러 샀어도 밖으로 안 내놓을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위층 가연 佳然 이네 화분대만 비어 있는 걸 예사롭게 보아 넘기지 못하고 이런저런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경제적 궁핍으로부터 내외간의 불화, 생활에 대한 자포자기의 과시, 정서적 황폐 등등 타고난 팔자인 걱정은 어느 것 하나도 확실한 건 아니었지만 전혀 터무니없는 것도 아니었다.
가연이는 내가 20년 가까이나 모교에서 국어교사로 봉직하는 동안 거쳐간 수많은 제자 중에서 그닥 인상에 남는 애는 아니었다. 그녀가 우리 바로 위층에 산다는 걸 알고 나서도 그녀의 여학교 때 모습을 떠올릴 순 없었다.
작년에 이사하고 나서 며칠 안 돼서였다. 초인종 소리에 문을 열기 전에 누구냐고 물었고 문밖에선 여리디 여린 소리로 위층에서 왔다고 대답했다.
“으응, 애기엄마유?”
내가 문을 열자 여자는 눈이 휘둥그래서 두어 발짝 뒤로 물러서면서 비명을 삼키듯이 말했다.
“어머, 김창희 선생님 아니세요? 여기 사시는 줄 몰랐어요.”
“누구더라? 아무튼 반가와요.”
흔히 당하는 일이라 나는 여유 있게 말했다.
“29회 민가연이에요.”
“그래, 그래, 생각나. 들어와요. 참, 무슨 볼일이더라?”
예, 저어 저희 집 물건이, 아니 빨래가 선생님댁 호분대에 걸린 것 같아서요.”
“그래? 들어와 봐요. 언제 그랬는지 아직도 그냥 있으려나 몰라. 바람받이라서 말야.”
“방금 내려다보고 왔으니까 있을 거예요.”
마침 여름이어서 가연이는 소매 없는 헐렁한 내리닫이를 입고 있었는데 드러난 팔다리가 유난히 희고 매끄러워 보였다. 그런대로 토실해서 불건강해 보일 정도는 아니었지만 개구장이들한테 시달리기엔 역부족해 보여 애처로웠다. 그런 느낌 역시 그만한 딸을 가진 에미다운, 걱정도 팔자였다. 아니나다를까. 가연이가 베란다 화분걸이에서 주섬주섬 챙겨 가지고 나오는 걸 보니 빨래가 아니라 시시시한 잡동사니들이었다. 아이들 짓이 분명했다. 양말짝, 양념통, 남비잗침, 머리빗, 구두솔 등을 가연이는 감추듯이 두 팔 안에 얼싸안고 앉지도 않고 가려고 했다.
“찬 것 한 잔 하고 가. 마침 나도 혼자 있는데.”
“아녜요. 선생님.”
“아니긴 뭐가 아냐, 여자 제자 소용 없다더니 쌀쌀맞긴…. 그래도 먼저 아는 체를 해줘서 기특하다 했더니 모르는 체하는 년이나 조금도 나을 게 없네그려.”
이러면서 손수 콜라 한 병과 컵 두 개를 다탁 위에 갖다 놓았건만 가연이는 엉거주춤 도망갈 낌새만 엿보는 것처럼 불안한 자세로 서 있었다.
“아이들 때문에 그래? 어련히 찾아올까 봐서. 여간내기들이 아닌가 보던데. 홀앗이가 애들 기르기 힘들다는 거 나도 다 알아. 핵가족들 좋아하다가 맛좀 봐야지 뭐. 외출할 때는 더러 갖다 맡기고 그러렴.”
나는 출가한 내 딸들 생각을 해서 이렇게 친숙하게 굴었다.
“선생님, 저 아직 애기 없어요.”
가연이는 이 한마디를 남기고 도망치듯 가 버렸다. 나는 혼자서 좀 머쓱했다. 왜 그런 실수를 했을까. 그녀가 가연이라는 걸 알기 전에 위층에서 왔다는 소리만 듣고도 담박 애기엄마 취급을 했으니, 아들이냐 딸이냐 몃 살이냐를 물을 것도 없이 연년생쯤 되는 개구장이 형제를 두었거니 단정을 해버리고 말았으니 만약 아이를 기다리는 입장이라면 마음이 상했을지도 모른다.
이사 온 첫날이던가 다음날이던가 위층에서 온종일 쿵쾅거렸다. 아이들이 높은 데서 연속적으로 뛰어내리는 소리 같기도 하고 쫓고 쫓기고 숨바꼭질을 하는 소리 같기도 했다. 심할 때는 우리집 천정의 전등갓이 다 출렁댔다. 그럴 때는 어른이 참다 못해 고함을 치는 소리도 들렸다. 저음이지만 멀리 퍼지는 남자의 목소리였다. 개구장이들 등쌀에 두 손을 든 얌전한 엄마가 별수없이 남편에게 응원을 청한 모양이었다. 이런 나의 추측은 의심할 여지가 거의 없었다. 그렇다면 층 수를 잘못 짚은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전에 살던 아파트로 이사했을 때도 그와 비슷한 실수를 한 생각인 났다. 그때는 오밤중에 단단한 나무에 못을 박는 소리에 잠을 설치곤 했다. 안방에 누워 있으면 바로 천정 위에서 들리곤 했다. 하루 이틀이 아니고 매일밤 같은 소리에 잠을 개는 것도 못할 노릇이었다. 처음에 목수가 사나 도 싶었지만 목공일이 법에 걸리는 일이 아닌 바에야 밤중에 할 까닭이 없었다.
반상회 날 넌지시 806호 집에 누가 사나 알아보았더니 시어머니를 모신 맞벌이 교사 부부였다. 반상회에 나온 시어머니 된다는 부인은 허구헌날 생으로 벙어리 노릇을 해야 하는 팔자를 한탄했다. 낮엔 둘다 출근을 하니 그러려니 하거니와 밤에도 고단하단 핑계로 초저녁부터 저희 방으로 들어가면 다음날 아침까지 코빼기도 볼 수 없으니 이 세상에 서러운 것 중에 말 붙일 데 없는 서러움이 제일이더라는 하소연이 먹혀들 만큼 나이든 이는 나밖에 없었으나, 나 역시 맞장구를 치는 대신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목박는 소리는 도대체 어디서 들여 오는 걸까. 그날 밤에도 그 소리는 어김없이 들렸고 풀 길 없는 수수께끼는 어둑시근하고 괴기한 망상으로 이어졌다. 스스로의 방향감각을 믿지 못하게 된 소리는 위층에서 베개 밑으로 잦아들었다가 감미롭고 옅은 수면을 누비며 먼먼 미래의 시간까지 길게 여운을 끌었다.
나는 꼼짝도 할 수 없는 가사상태에서 내 관 棺에 못박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나는 아직 죽지 않았건만 내 피를 받고 뼛골을 빼 간 자식들은 하나도 약초를 구하러 떠나지 않고 못박는 소리에 장단을 맞추어 악머구리 끓듯 곡만 해서 내 죽음을 기정사실로 만들려 하고 있었다. 악몽이었다.
어떤 공예전에 출품할 거라는 괴목 삼층장이 실려 나가는 걸 본 건 그 후 며칠 안 되어서였다. 못박는 소리도 그 악몽의 밤을 고비로 들리지 않게 됐다. 공예가네 집은 우리집과 대각선으로 위층에 있었다. 소리에 대한 나의 방향감각에도 문제가 있었겠지만 아파트의 벽은 방음장치 대신 소리의 방향을 종잡을 수 없게 하는 야릇한 트릭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까지 의심한 바 있거늘 어쩌자고 그런 실수를 또 하고 말았을까.
가연이가 곧 정식으로 인사를 와야 마땅할 듯하여 기다렸으나 감감 무소식이었다. 젊은 것들 그저 그러려니 접어두고 마침 딸네 농장에서 보내온 참외가 싱싱하고 달길래 한소쿠리 담아 가지고 내가 먼저 방문을 했다. 아직 아이가 없다니 얼마나 오밀조밀 예쁘게 꾸며 놓고 살까 구경하고픈 호기심도 없지 않았다. 벌써 몇 년째 아파트에 산다곤 하나 구닥다리 세간을 못 버리고 끌고 다니다 보니 새록새록 예쁜 걸로만 구며 놓고 사는 집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즐거운 눈요기도 되었다. 그러나 가연이네는 썰렁하고 어수선하기가 이삿짐을 풀지 않은 집 같기도 하고 이삿짐을 싸다 만 집 같기도 했다. 액자 하나 거울 하나 번듯하게 걸린 게 없었고, 부엌 세간은 더군다나 극도로 단순하고 검약한 것이어서 도리어 새롭고 낯설었다. 요새도 양은 냄비에 밥을 짓고 양은 국대접을 쓰는 집이 있다니, 딸네도 그렇지만 이웃의 젊은 새댁들 사이에서도 그릇 사치는 유행이었다. 나도 그것만은 귀엽게 보여 더러는 흉내도 내고 눈여겨 봐 두고 벼르기만 하는 것도 있었다.
“아아, 벌써 참외가 났군요. 몰랐어요.”
가연이는 엉뚱하게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으나 표정에는 전혀 생기가 없었다. 1년 내내 있는 참외였지만 요새 특히 지천이었다. 아파트 정문 앞에도 차량의 통행에 불편을 줄 정도로 과일 노점상들이 한여름의 대목을 보고 있었다. 그런 참외를 처음 보다니. 가연이는 지금도 참외를 보고 있지 않았다. 나는 손수 참외를 부엌 싱크대 위에다 쏟아 놓으면서 숟갈이 꽂힌 채인 찌그러진 양은 냄비를 곁눈질 했다. 넘쳐서 줄줄이 말라붙은 밥물자국이 안주인의 분노 권태 그런 것들의 더께처럼 완강했다. 그 다음 나는 어쩔 줄을 몰랐다.
“참외 드시고 가셔야지 그냥 가시면 어떡해요. 단 걸로 골라 드릴까요. 참외를 잘 골라야 신랑을 잘 고른다는 소리는 괜한 소린가 봐요.”
가연이의 목소리는 말뜻과는 상관없이 생생하고 절박했다. 어떡하든지 나의 탐색을 교란시켜 보려는 안간힘인 듯 싶었다.
“참외를 잘 고르냐, 너는?”
“아뇨. 형편없어요.”
“그럼 신랑을 괜찮게 만났다는 소리구나.”
“아아, 모르겠어요 선생님. 전 복잡한 건 질색이에요.”
“그 정도가 그렇게 복잡해 가지고 현대생활에 어떻게 적응을 하누?”
나는 별것도 아닌 일을 상담실까지 가져와 비죽비죽 울기부터 하는 여학생을 우선 안심부터 시켜 놓고 봐야 할 때 쓰던 왕년의 대범하고 소탈한 말투로 말했다. 그러나 가연이는 사랑받지 못한 아이가 일찍부터 터득한 것처럼 교활한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았다.
“선생님은 제 남편이 뭐 해먹고 사는 작자일까 그게 궁금하신 거죠? 그걸 못 알아내고 가시면 아마 몸살이 나실 거예요. 다 알아요.”
“이런 못된 걸 봤나. 어떻게 그렇게 남의 속에 들어갔다 나온 체를 할 수가 있나? 딴 사람도 아닌 스승에게 무안을 줘도 분수가 있지.”
나는 나이 값도 못하고 목소리가 떨렸다. 그러나 가연의 눈빛은 점점 더 심술궂어졌다.
“아무리 겉으로 젊잖은 사람도 남에 대한 호기심까지 점잖지 않다는 것쯤 알고 있으니까요. 그뿐인 줄 아세요. 만일 제 남편이 돈을 잘 버는 데 살림 꼴이 요 모양이라면 저를 나무라시고, 제 남편이 땡전 한푼 못 버는 무능력자면 저를 불쌍해 하실 준비까지 속으로 하고 계시다는 것도 알고 있는걸요. 그렇지만 둘 아 아녜요.”
지글대는 심술궂음 때문인지 가연이는 처음 볼 때와는 딴판으로 기운이 넘쳐 보였다. 과도도 없는지 수퉁맞게 생긴 식칼로 참외 껍질을 두껍고 빠르게 벗겨 두 쪽으로 내더니 한 쪽은 내 앞으로 밀어놓고 한 쪽은 제 입으로 가져갔다. 국물을 뚝뚝 떨구며 왁살스럽게 참외를 먹는 가연이를 망연히 바라보며 나는 메마른 입맛을 다셨다. 가연이 넘겨짚은 대로 이 집 남자는 뭐해먹고 사는 사람일까 하는 천박한 호기심이 독기 서린 갈등이 되어 입안을 말리고 있었다. 이런 나를 흘긋 쳐다본 가연이의 입가에 미미한 비웃음이 어렸다. 그렇게밖에 웃을 줄 모르는 것처럼 그 웃음은 그녀에게 잘 어울렸다. 그 순간 왠지 나는 그녀가 그런 비웃음을 견디고 목격해야 했던 온갖 삶의 신산 辛酸 을 떠올리고 가슴이 뭉클했다.
“둘 다 아니면 뭐란 말이냐?”
나는 가연이에게 나의 호기심을 숨기기를 단념하고 순순히 물었다. “돈은 못 벌지만 무능력자는 아녜요. 월급장이들이 경제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고 말하는 식으로 하면 그 사람은 역사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고 말해도 될 거예요. 보통남자들이 가족이 굶주리는 걸 못 견디듯이, 그 남자는 열심히 일하고도 사람답게 못 사는 사람이 이 사회에 있다는 걸 못 견디고 들입다 역성을 드는 거예요. 그는 아주 예쁜 꿈을 꾸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의 꿈을 그냥 안 놔둘려고 그래요. 쫓겨다닐 때도 있고고 언제고 흙 묵은 구둣발이 마루고 안방이고 마구 휘젓고 다닐 수 있도록 집을 내줘야 하고, 산골 오막살이에도 있는 그 흔한 전화통도 아예 없이 사는 게 편하고…”
가연이의 비웃음이 한결 명료해졌다. 그러나 눈길은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녀 내부로 향한 향 허공에 멍청히 고정돼 있었다.
“혹시 네 남편도 운동하는 사람 아니냐? 스포츠 말고….”
“왜, 네 남편’도’ 라고 하시나요? 운동하는 사람이 그렇게 흔해 빠진 것도 아닌데.”
“내 아들도 그랬으니까?”
“지금 현재는 아닌가요?”
“그래, 다 지난 일이 되고 말았단다.”
“평범한 직업인으로 돌아갔나 보죠?”
“아니, 그 애는 운동을 못하게 되자 삶도 멎어 버렸단다.”
“그럼, 죽었단 말인가요?”
가연이가 성급하고 신경질적인 소리를 냈다.
“아니다. 그 애는 지금 정신병원에 있다. 한번은 연행되어 몹시 처참하게 망가져 갖고 풀려났길래 몸만 그렇게 된 줄 알았더니 정작 못쓰게 된 건 정신이었단다.”
“그만 하세요, 그만. 아아, 끔찍한 일이에요.”
가연이는 참혹한 환상을 지우려는 듯 도리질을 하면서 날카롭게 부르짖었다. 나 역시 더는 할 말이 없었다.
작년 여름 그렇게 해서 가연이와 그녀의 남편에 대해 알게 된 후부터 내 생활엔 갑자기 생기가 돌게 되었다. 나는 김치만 알맞게 익어도 한 보시기 퍼 가지고 쪼르르 위층으로 올라갔고, 어떤 때는 단지 위층에 가는 구실을 만들기 위해 괘 손이 가는 별식을 만들기도 했다. 맛난 음식이나 몸에 좋다는 영양가 높은 음식을 만들 때일수록 나는 가연이 보다는 그녀의 신랑 생각을 더 극진히 하느라 괜히 가슴속이 따뜻해지곤 했다. 그 후의 나의 살맛은 거의가 위층과 상관이 있었다. 가연이 신랑과 인사를 나눌 기회도 자연스럽게 생겼는데 약간 무뚝뚝해 보이긴 해도 천진한 인상이었다. 그는 좀 섭섭할 정도로 나에게 의례적인 인사 이상의 관심을 두는 법이 없었지만 나는 신뢰감 가득한 눈길을 그에게 보내곤 했다.
어떤 때는 나의 신뢰감을 그에게 나타내 보이고 싶다는 무작정의 갈망으로 가슴을 조이며 일부러 그가 들고날 때를 현관 근처에서 기다리기도 했다. 그가 들고나는 시간은 불규칙해서 거의 들어맞지 않았다. 그 대신 우연히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고 나의 마음으로부터의 신뢰감을 가가 알아차렸을까를 마치 사춘기 때 던진 최초의 추파의 효험을 헤아려 보듯이 잔뜩 촉각을 세운 감수성으로 헤아려 보곤 했다.
우리 아파트 엘리베이터는 3개월에 한 번씩 짝수에 섰다 홀수에 섰다, 서는 층을 바꾸기로 돼 있는데 우리 층에 서는 동안 나는 그의 신중하여 마치 스며드는 듯한 발짝소리까지 알아듣게 되었다. 그가 돌아왔구나! 나는 은은한 미소를 띠고 그가 우리 층에서 내려 위층으로 통하는 계단을 느리게 밟는 소리에 귀 기울이곤 했다. 아들이 집에서 들고날 때처럼 나는 그의 발짝소리를 기다리고 반가워하고 그가 어느만큼 피곤한가, 기분이 좋은가 처져 있나까지를 읽어 내려고 했다. 그에 대해 날로 고조되는 나의 관심이 나도 모르게 가연이네 생활을 조금씩 간섭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런 나의 침투에 가연이는 조금도 방어적이지 못했다. 어쩌면 내가 나타나기 전부터 그녀는 이미 생활을 방기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무리 넉넉지 못하기로서니 그렇게 황폐를 도처에 처바르고 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가연이의 그 점이 가장 마뜩하지가 않았다. 마치 아들 수발을 제대로 못 드는 며느리가 곱지 않듯이 가연이가 곱지 않을 때는 으레 그가 안스러웠다. 계집 잘못 만나 큰 뜻을 펴 보기는 애저녁에 글렀지 싶은 탄식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가연이한테 대놓고 할 수 있는 말을 못 되었다.
그가 한푼도 벌어들이는 게 없이 5, 6년째 소위 운동만 하면서도 밥을 굶지 않았을 뿐 아니라 툭하면 동지들 모아들여 숙식을 제공하고 제 속옷까지 벗어 입히면서도 살 수 있었던 건 순전히 가연이네 친정 덕분이었다. 사는 꼴로 봐서 도저히 지닐 수 없는 평수의 아파트에 살고 있는 것 또한 친정 덕이었다. 그렇다고 사위에게 아주 사준 건 아니고, 아주 사줄 만큼 넉넉한 편도 아닌데 맏아들 세간 낼 요량으로 사놓은 걸 거저로 빌려 주고 관리비까지 내 주니 딸 가진 죄인 노릇을 과분하게 치르고 있는 셈이었다.
“그래도 그이는 조금도 감사할 줄 모른다니까요.”
가연이가 이렇게 하소연할 때마다 나는 그의 역성을 들곤 했다.
“그럴 리가 있나. 비굴해지지 않으려고 오기 부리는 것도 모르고, 쯧쯧.”
“아녜요. 잠자코 만 있어도 저는 그런 줄 알았을 거예요. 그이는 툭하면 우리 친정 욕을 하는걸요. 쩨쩨하다고요. 이만큼이라도 대주는 게 친정으로선 얼마나 큰 출혈이라는 걸 통 모르는 척해요. 아버지가 하시는 전자용품 대리점 수입이 그저 그렇거든요. 요샌 사원들한테 강제로 배당되는 전자용품이 워낙 많아 그런 걸 덤핑으로 사기 때문에 대리점 매상은 쭉 내리막이래요. 당신네는 생활비 줄이려고 아들 내외 눈치 봐 가며 분가를 미루면서까지 딸네 먹여 살리시는 심정이 오죽하시겠어요?”
“그래도 느이 신랑은 복이 많은 사람이다. 남아도는 돈을 적선하는 셈 치고 선선히 집어 주는 것보다 하는 일을 뜻 있게 보고 당신들이 잡술 거 입을 걸 아껴 보태 주는 돈이니 얼마나 값있는 돈이냐?”
“우리 친정에서 그가 하는 일을 이해한다구요? 아유, 아녜요. 그이를 얼마나 미워한다구요. 처음부터 친정에선 우리 결혼 반대였어요. 여편네 고생시킬 게 뻔한 남자도 미웠겠지만 그런 남자를 좋다고 시집가겠다는 딸은 또 얼마나 증오스러웠겠어요. 그렇게 꼭 보기 실은 것들한테 생활비를 대주는 관계가 얼마나 힘들다는 걸 짐작이나 하시겠어요? 주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서로 말예요.”
“알 만하다. 보통 사람한테 느이 신랑이 하는 일을 이해해 주기 바라는 건 무리지. 무리구말구. 그렇지만 그분들이 너를 사랑하는 한 주어서 기쁠 테고 너희들도 넙죽넙죽 받아도 상관없어. 신랑한테 너무 감사를 강요하지 마. 알았지?”
“우리 친정에서 생활비를 못 끊는 게 딸을 사랑해선 줄 아세요?” 아니라니까요. 화염병 때문이에요.”
“화염병 때문이라니?”
“우리 친정에서 운동권에 대해서 알고 있는 상식은 화염병이 다예요. 운동권은 누구나 신분증처럼 화염병을 하나씩 품속에 품고 다니다가 수틀리면 아무데나 내던지는 줄 안다니까요. 여북해야 우리 생활비 때문에 어머니나 올케가 불평을 하면 아버지가 한마디로 틀어막는 구호가 ‘별수있소?’ 우리 집안이 한꺼번에 불구덩이에 들지 않고 제명에 죽으려니….’ 하고 땅이 꺼지게 휴우 한숨을 쉬는 거래요.”
그건 처음 듣는 끔찍한 사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놀랍진 않았다. 나 또한 화염병 때문에 그를 좋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내 아들을 그 꼴로 만든 무자비한 힘을 화염병을 가슴 깊이 품고 살고 있고 같은 것을 품고 있다고 믿을 만한 그에게 그렇게 이끌렸던 게 아닐까. 물론 그 사실은 전혀 끔찍하지 않았고 보람 있기조차 했다.
중간에 두어 번 잠깐씩 들락거린 적이 있긴 해도 아들이 요양원 생활을 한 지 만 4년이 넘었다. 그런 작은 위안도 없이 어찌 그 서리서리 길고, 피를 말리게 가혹한 시간을 견딜 수 있었으랴. 남편과 나는 아들이 그렇게 된 후 한번도 살을 섞은 일이 없었다. 나이와 함께 쇠잔해진 기역이긴 하나 쾌락이라 이름 붙은 걸 탐한다는 게 아들의 고난 앞에 차마 못할 부끄러움이라는 것에 우리는 말 안 하고도 합의했던 것이다. 그래도 남편은 가끔 슬프디슬픈 얼굴로 시든 성기를 어루만진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이제 남은 수는 하나밖에 없다. 네가 벌면 되잖니. 아이도 아직 없겠다. 교직과목도 이수했겠다. 내가 알아봐 주련? 당장 정식 교사로 발령받긴 힘들어도 시간강사 자리 얻기는 어렵지 않을 거데. 첫술에 배불릴 생각 말고 그렇게 시작하는 게야. 진작 그럴 일이지. 이 맹초야.”
나는 큰 수가 난 것처럼 수선을 떨었지만 가연이의 생기 없음은 그대로였다.
“전들 그 동안 왜 그런 생각을 안 해 봤겠어요. 실제로 친정을 통해 취직 자리가 생긴 적도 서너 번 됐구요. 그이가 질색이에요. 제가 도 버는 꼴도 보기 싫지만, 자기나 자기 동지들 시중은 누가 드냐는 거예요. 실상 그것도 수월찮거든요.”
“아무리, 그 정도의 불편을 못 참아서 마냥 처갓집 신세를 지겠대? 그 사람 배짱 한번 두둑하네.”
나는 어이가 없어 언성을 높였다.
“그 사람은 본디 그런 사람이니까 선생님 말끝마다 역성 들지 마세요.”
“얘 좀 봐. 내가 언제 역성을 들었다고 그러냐? 그래도 네가 참아야지 어떡하니. 그만한 배짱이라도 있으니까 운동을 할 수 있지. 지금이 웬만한 사람이 운동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잖냐?”
“운동이라는 게 꼭 있어야 할까요?”
“있어야 하구말구. 수많은 사람이 품고 있는 화영병이 운동으로 바뀌어야 해. 그래서 제 곬을 찾지 않으면 미친 불이 돼. 미친 불을 두려워하는 건 비단 너의 친정식구뿐이 아니란다.”
“역시 역성이시군요. 그이 배짱이 어느 정도냐 하면요, 판검사나 의사가 당연하게 받는 처가 덕을 왜 운동권 인사는 감지덕지 비굴하게 받느냐는 거예요. 더 큰일을 하니까 그들보다 더 떳떳하게 받아야 한다는 거죠.”
“글쎄다. 그런 배짱까지 역성을 들어야 할지 모르겠구나. 그 사람 혹시 여자를 통틀어 넘보는 사람 아니냐?”
“넘본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건 아니지만 그이는 여자 다루는 방법에 대한 확고한 일가견을 가지고 있어요. 사실은 그게 그 사람의 처가 멸시나 생활고보다 훨씬 더 힘들어요.”
“어떤 일가견인데?”
“저도 느낌으로 받아들인 거라 조목조목 설명할 수는 없어요. 강력하게 지배할수록 좋다는 식의 사고방식일 거예요. 그가 저항하는 부패한 권력의 지배논리를 그대로 여자에게 적용하고 쾌재를 부를 정도니까요.”
가연이하고 처음 알게 된 것도 나중에 알고 보니 그가 집어던진 물건 때문이었듯이 그는 자주 밖에서 생긴 울화를 집안의 얼마 안 되는 물건을 부수고 던지는 걸로 푼다고 했다. 가연이네 집안 골이 썰렁한 것은 그런 때문도 있었다. 그래도 그저 가연이더러 참으라고 해온 나였건만 이번에만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내 신뢰감을 보낼 대상을 잃고 싶지가 않았다.
그러나 거짓 관계는 언젠가 파탄이 나게 마련이었다. 먼저 친정과의 관계가 끝장나려 하고 있었다. 더는 미움과 두려움 때문에 사위에게 돈을 빼앗기지 않아도 되게끔 가연이 아버지 사업이 망해 버린 것이었다. 부도를 냈기 때문에 아버지 명의로 된 아파트도 불원간 내쫓기게 되리라고 했다. 약간 핼쑥해지긴 했어도 비교적 차분하고 담담하게 가연이가 그 얘기를 나에게 해준 게 바로 엊그저께였다. 화분대가 비어 있는 것도 예사롭게 보아 넘기지 못하고 마음이 아픈 것은 걱정도 팔자인 성미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얘기를 하고 나서 가연이는 심란하게 웃으면서 이렇게 덧붙였었다.
“글쎄 우리 그이가 처갓집 망했단 소리 듣고 첫마디가 뭐랜 줄 아세요? 새장가 들게 생겼군. 이러지 뭐예요. 자기의 생활 대책이니까 당당하대요. 원망할 것도 없구요. 그 사람 농담도 잘하죠?”
“듣자듣자하니 그 사람 참 개새끼로구나.”
나는 버럭 역정을 냈다.
“농담이래두요.”
이번에 어째 가연이가 그 사람 역성을 들려고 했다.
그 날은 그러고 말았지만 그 동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좀이 쑤셔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이 아직 안 나갔을 것 같은 시간이니 그냥 가기는 염탐 온 걸로 오해를 받을 듯해 꺼려지고 가지고 갈 만한 것도 마땅치 않아 서성거리고 있는데 전화 벨이 울렸다. 기업체의 부설고등학교 책임자로 가 있는 친구로부터의 전화였는데 가정과 선생을 한 사람 구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이럴 수가. 가연이가 가정과 출신이고 자격증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들뜨려는 목소리를 어금니에 억누르고 어떤 대우를 해줄 것인지 조목조목 따져 보았다. 공사립의 중고등학교보다 오히려 나은 대우를 보장해 주겠다고 했다. 그만하면 만족할 만했다. 뜻밖의 행운이었다. 궁하면 통한다더니,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다더니, 나는 별안간 굴러들어온 가연이의 행운을 이렇게 대견해 하면서 겅중겅중 으스대며 위층으로 올라갔다. 가연이 혼자 있었다. 눈가가 질척했다.
“울고 있었구나? 바보같이….”
“네, 자꾸만 눈물이 나오는 걸 어떡해요.”
“울지 말아. 내가 기쁜 소식을 가져왔다.”
내 얘기를 다 듣고 가연이는 고맙다고 말했지만 내가 기대한 것처럼 기뻐하진 않았다.
“그이가 승낙할지 모르겠어요. 저한테는 더 바랄 수 없는 자리이긴 하지만…”
“제가 승낙 안하고 배겨? 나라도 승낙을 받아낼 테니 걱정 말아.”
“그이 보기보다는 심약한 사람이에요.”
“심약하면 승낙받기 더 쉽겠구나.”
“아녜요. 이것 보세요.”
가연이가 스커트 자락을 걷어올리면서 꿇어앉았다. 유난히 흰 넓적다리 두 개가 어여쁘게 둥근 무릎을 앞으로 가지런히 붙어 있는데, 그 흰 살결 위로 매화꽃잎이 한꺼번에 낙화가 진 것처럼 점점이 선연하게 부풀려 있었다.
“그이가 담뱃불로 지졌어요. 가끔 잘 그래요. 이번엔 특히 심했지만…. 저더러 날치지 말라는 표시래요. 제 내조가 필요하는 제발 날치지 말고 국으로 있으라면서 글쎄 거이꺼이 울지 뭐예요.”
“개새끼, 눈물도 흔해.”
나는 가연이 눈치 볼 것 없이 이렇게 씹어뱉고는 가연이 눈물까지 꼴도 보기 싫어서 그 집을 뛰쳐나왔다. 그러나 가연이 넙적다리의 호상은 쉬 지워지지 않고 내 살점에 점점이 와 박히는 듯했다. 가연이가 불쌍해서 내 살점이 아팠다. 처음 느껴 보는 느낌이었다. 그 새로운 느낌이야말로 우정 友情 인지도 몰랐다. 여지껏 나는 그녀를 사랑하기 보다는 길들이고자 했고 결과적으로 그녀 남편의 편이었지 그녀 편은 아니었다. 그녀 말짝으로 그 남자의 역성을 들 때도 ㅁ루론 그러했지만 역성을 안 들 때도 그러했다. 시어머니가 본질적으로 아들 편이듯이.
가연이에게 우정을 느끼자 가연이는 물론 그 남편과, 그들의 관계까지가 비로소 바로 보이기 시작했다. 직시해야 할 시간을 불가피하게 왔고 직시해야 할 것은 고통스럽더라도 직시하는 게 수였다. 나는 가정선생을 부탁한 친구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내일 당사자를 데리고 가겠노라고 말하고 나서 다시 위층으로 올라갔다.
“아까 말한 취직 자리 내일 가기로 했으니, 그렇게 알아라. 이력서랑 몇 가지 갖춰야 할 서류도 준비하고.”
“그이 허락도 받기 전에 그러시면 어떡해요? 야단날 거예요.”
“우선 네 의식이 자립하고 나서 자립 의사를 밝혀 봐. 그럼 다 잘될 거야. 자립할 수 있는 자유인을 누가 함부로 때려.”
“그이는 저의 내조가 필요하댔는데…. 울면서 그랬는데…”
“제가 무슨 큰 일을 한다고 내조씩이나 필요하누?”
나는 구태여 경멸을 감추지 않고 속시원히 말했다.
“어머, 선생님. 그이 하는 일을 그렇게 두둔하시더니 그까짓 취직 자리하나 대문에 어쩌면 그렇게 쉽게 전향을 하세요?”
“전향을 하긴. 그 사람이 가짜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지. 생각해 봐. 소위 민중을 위한다는 친구가 여성처럼 오랜 세월 교묘하게 억압받고 수탈당한 큰 집단이 민중으로 안 보인다면 그를 어떻게 믿냐? 저는 남자의 기득권을 안 놓으려 들면서 권력자의 기득권은 내놓으라고 외치는 것도 가짜답고, 도대체 제 계집을 종처럼 다루면서 일말의 연민도 없는 자가 민중을 사랑한다는 소리를 어떻게 믿냐. 내조도 좋지만 가짜를 내조한다는 건 너무 자존심 상하쟎냐?”
“선생님, 너무해요. 그를 가짜로 몰지 마세요. 고약한 쪽을 몰리기만 하고 이날 이때까지 살아온 사람이에요.”
“그래 그가 가짜인가 아닌가는 네가 정하렴. 바로 보고, 바로 보기 위해선 우선 자립을 해. 그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네가 그를 대등한 입장에서 바로 보기 위해 자립을 하란 말야. 그 후에 그가 진짜인가 가짜인가를 알아 봐도 늦지는 않아. 그렇지만 자립은 더 늦으면 안 된다.”
나는 내 우정이 가연이에게 통하길 바라며 간곡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