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cky 2 Dog Walk, Colbert to the Rescue

오늘도 6시30분 아래층 불[scheduled room lights] 이 들어올 즈음,  2 犬公들이 짖는 것에 맞추어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었다. 하늘이 온통 습기로 가득 찬 텁텁한 공기를 느낀다. 세찬 빗소리는 안 들리지만 가랑비는 계속 뿌리는 모양. 나를 본 두 ‘아이’ 들이 어찌나 나를 환영하고 반기는지 눈물이 날 정도였다. 아~ 이 녀석들과 또 정이 들어가고 있구나~  nearly cosmic, 동물적 사랑의 힘인가?

두 견공, dog boarding하는 것 예정이 조금 바뀌어서 Senate만 내일  밤까지 자기로 했다. Ozzie는 내일 예정대로 새로니 집으로 돌아가지만… 새로니의 [뜻밖의]호의로 나라니네 식구들이[현재 임시로 묵고 있었던 Airbnb home이 너무 지저분하다고]  Tucker의 어느 hotel suite로 옮겨서 진행중인 집 공사 기간을 보낸다고… 새로니가 모처럼 동생을 생각하는 사랑의 마음이 느껴져서 너무나 흐뭇하였다. 그렇게 둘이서 도우며 살면 앞으로 큰 문제는 없을 거다.

 

오늘 아침은 예외적으로 desk 정면 멀찌감치 홀로 외로이 잠자는 듯 졸고 있는 [2nd Gen] flat-screen TV[on ROKU stick]를 켰다. Kitchen dinette table에서 아침 식사 때 가끔 보던 [Youtube version] NBC TV Colbert late show를 지금 시간에 보는 것도 이른 아침의 느낌을 상쾌하게 한다. 작년 선거 이후의 목불인견의 ‘6살짜리 머리의 소유자’의 최후발악에 이어 1월 6일 Congress 난입사건 이후 나의 정신건강을 아슬아슬하게 지켜 준 이 Stephen Colbert 를 너무나 좋아하게 되었고 심지어 나의 구세주처럼 느끼게 되었다. 정치관이 절대로 모호하지 않고, 상식적 수준 no-nonsense 의 이성적인 이 가톨릭 교우, 그의 가족 배경도 마음에 들고[특히 그의 유머러스하고 사랑스런 wife] … 사실 매일 밤 이late show를 생방송으로 보고 싶을 정도다. 문제는 그 시간이면 나는 ‘절대로’ 잠자리에 누워있는 시간이라는 사실이다. 그래 다음 날 아침 조금 늦게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비구름이 아직도 2시간 안전 거리에서 서서히 올라오고 있다

하루 종일 thunderstorm에다가 flash flood watch까지 예보된 오늘, 어제 두 견공을 데리고 산책을 할 수가 있을까? 하늘을 유심히 보면서 우선 현재 비가 오는가, 오면 어느 정도인가, 걸을 수 있을 정도인가? 우산이 필요할까, 느낌에 폭우나 거센 비가 올 듯한가.. 예보[과학]와 순전히 감 感[거의 영적인] 에 의지를 하지만 불안함을 떨칠 수 없이 그렇게 즐겁지 못한 산책이 될 수도 있다. 전에 한번 그런 일[폭우를 만난]도 있었기에… 하지만 오늘은 머릿속에서 한가지 묘안이 나왔다. 바로 현재 local weather radar[near real-time] 를 보는 것이다. 현재 비구름의 위치와 움직임이 나오지 않는가? 그것에 의하면 최소한 2시간 이상 Atlanta Metro에는 비구름이 없는 것으로 나온다. 아하! 왜 이 생각을 못했던 것인가? 이것으로 오늘은 거의 안심을 하고 편하게 우산 없이 산책을 끝마칠 수 있었다. 왜 전에는 이 생각을 못했을까?

2시간 가까운 산책,  OzzieSenate 어쩌면 이렇게 다정하게…

First Day of October, 2021

“이천 이십 일년 시월 일”일이 되었다. 색다른 날인가, 아니다. 소싯적에는 ‘국군의 날’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저 하루일 뿐인가? 아니고 싶다. 특별한, 보람 있는 날로 만들고 싶다. 어떻게? 잘 모른다. 일단 맡긴다, 자생적, 유기적으로 굴러가는 듯하지만 은근히  ‘안 보이지만 느낄 수도 있는’ 성령의 도우심을 기대하며…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 이 요안나 자매님에게 선종하는 은혜를 주시어 죽음을 맞는 순간에도 영원한 천상 행복을 생각하고 주님을 그리며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이게 하소서… 아멘

이제는 아주 멀게 느껴지는 ‘레지오 수첩’, 그곳에 나와 있는 이 기도문,  언제까지 이 기도를 바칠 것인가,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조시몬 형제 어머님의 선종순간까지라는 사실 하나 뿐이다. 96세로 천수를 준비하시는 분, 최근에 잠깐 사귄 형제님의 어머님인데 왜 이렇게까지… 우리가 그 형제로부터 받는 ‘의외적인 은혜’를 잊고 싶지 않고, 한편으로 홀로 외롭게 선종하신 나의 사랑하는 어머님을 다시 생각하며 사죄의 고통을 계속 느끼고 싶기도 한… 복잡한 심정으로 바치는 선종기도가 되고 있다.

 

‘성자처럼 즐겨라!’ 필사/독서, 현재 4장을 거의 다 끝내고 있다. 그러니까 217쪽이니까… 거의 절반 정도인가?  James Martin 신부의 글은 거의 대화식이고 무겁지 않은 것, 게다가 읽는 것 자체가 즐거움인 것이 많다. 그래서 속도도 다른 글에 비하면 아주 빠른 편이다.

이 책, ‘유머, 웃음, 기쁨’… 솔직히 진부한 화제라고 미리부터 discount하고 있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역시 또 나에게는 후회와 심지어 괴로운 경험들을 들추어내는 것인가. 또 다른 ‘내 탓이요..’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나는 기본적으로 기쁨과 즐거움을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결국은’웃고 싶지 않는’ 사람으로 딱지가 붙었음을 안다. 내가 나를 왜 바꾸지 못하는 것인가?

총각 시절, 특히 20대 초, 특히 대학시절 나는 그런대로 많이 웃었던 기억들이 많이 남는다. 비록 가끔 우울한 때도 있었고 웃음을 잊고 살 때도 있었지만 그런 것들은 사실 잠깐 잠깐 찾아오는 불청객 정도로 느끼고 살았다. 하지만 역시 가정이 생기면서 나는 스트레스를 필요 이상으로 느끼며 살았기에 웃음을 많이 잃었으니, 유머 같은 것은 생각조차 못하고 살았던 것, 나에게는 다른 ‘원죄의 짐’을 지고 가는 남다른 고민까지 있어서 이런 것들을 나는 정당화하며 살았다. 한편으로는 항상 심각한 모습이 나에게는 더 열심히 사는 자세라고 생각했지.

나중에 아이들이 보는 나의 모습과 평가는 한마디로 놀라움과 노여움, 슬픔까지 느끼는 처참한 것들이었다. 어쩔 것인가? 유머가 먼저인가 아니면 그런 것을 찾을 수 있는 여유가 먼저인가? 정말 죽을 때까지 그 해답을 나는 못 찾을 것만 같다.

 

1999 Plymouth Voyager mini-van 의 운명이 조금씩 윤곽이 잡혀간다. 오늘 나가서 다시 살펴보았다. Towing이 가능한지, 아니면… 최소한 car key가 있으면 P(parking)에서 N(Neutral)로 gear를 바꿀 수 있음을 알았다. Engine start의 상태와 상관이 없는 것, 그러니까 battery jumping도 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이제는 donation할 곳과 car title만 찾으면 된다. 10월 15일까지 auto insurance renewal을 해야 되니까, 가급적 그 전에 처리가 되면 될 것이다. 이제는 우리의 ’20년 지기 知己, 효자’와의 이별을 심리적으로 준비하면 되는가? 아~ 1999년 늦여름, 이차를 사러 Cobb Parkway를 어슬렁거리던 추억이…

 

고추 김밥: 가끔 먹는 점심 김밥, 한번 내가 일주일에 2번씩 점심 김밥을 먹자고 제안한 것을 기억한 덕분에, 새로니까지 합세해서 감사하게 먹는다. 오늘 것은 고추가 가미된 것, 이것은 식욕과 거의 상관 없이 우리 집 텃밭의 풍년 고추가 즉석에서 소비가 되는 희한한 매력이 있구나…

 

완전히 잊고 사는 것들, 두 가지가 가끔 아니 자주 나를 조금은 슬프게 한다. 나의 사랑하는, 40년 역사의 야마하 통기타가 나의 곁을 떠나 living room으로 ‘쫓겨난’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손으로 만져본 지가 기억조차 나지 않는 uC [microcontrollers] stuffs들, 그것들은 숫제 위층 현재는 거의 비어있다 싶은 lab room [어울리지 않는 이름] 으로 불쌍하게도 방치되어 있으니…  이 두 가지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게다가 왼손가락 끝의 굳은 살은 자꾸만 엷어지고… 기타 코드조차 많이 잊어버리는 것은 아닐지? 이제는 계절상으로 보아도 멋진 추억의 folk song들이 통기타와 잘 어울리는데 어찌할 것인가? 문제는 현재 나의 desk주변을 정리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완전히 어지럽고 혼란스럽게 보이는 나의 주위를 서서히 청소를 해야 하는데… 미루고, 미루고, 언제까지…

Bye Echinopsis, see you next year..

작년 여름 Pandemic 치하에서도 역경을 이기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던 이 선인장,  오늘 피어난 것은 아마도 올해의 마지막 난산 難産의 모습이 아닐까… 생명의 신비는 이곳에도 역력하다. 달포 전에 며칠간 ‘다산 多産’을 자랑한 후 조용하더니 이렇게 마지막 꽃봉오리를 힘들게 보여준 친구, 내년 여름을 다시 기대한다.

 

15분을 벌었다. 아침 radio clock시계는 분명히 59분 비슷한 것을 보았는데 일어나서 일어나 나와 보니 6시 45분도 채 되지 않은 것이다. 나의 시력이 떨어졌나… 하지만 횡재다, 15분이 어디냐?

모처럼 어젯밤에는 HF[Harbor Freight] cheapo ear plug을 끼고 잤는데, 역쉬~ 이것이 나에게는 최고다. 편한 잠을 잔 것이다. 이제는 noise machine도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이것이 맞는다. 알맞고 편하게 소리를 차단 하고,  ‘비싼 것’과 다르게 후유증이 하나도 없다.

어젯밤에는 망각의 선상에서 오고 가는 꿈에 시달렸다. 고통과는 거리가 먼 것이 분명하지만 심리적으로 괴롭힌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그 실체가 무엇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잡히지 않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많지만 이것이야말로 ‘확실하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그런 case다. 왜 이럴까? 하루 종일 나의 기억력을 동원해서… 이것도 나의 다른 꿈 ‘악몽류’ [나의 시험걱정, 집이 수해로 무너지는.. 등등]중의 한 종류로 생각된다.

 

어제부터 뉴스에 보이는 ‘개XX [a.k.a Donald]’에 관한 것, 현역 합참의장 정도되는 사람의 주장에 관한 것, 우리 모두의 추측과 비슷하다. ‘천하역적’ 개XX가 선거패배 이후 쿠데타를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나는 은근히 놀란다. 이것,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고 미국의 최고위 군장성의 우려였다는 것은 정말 놀랄만한 일이 아닌가?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 개XX 가 그 정도로 미친XX는 못 된다는 것이다. 그 정도의 위인도 못 되는… 그저 ‘세기의 SOB, 개XX’ 정도나 되는 쓰레기 급의 인간 정도가 아닐까?

 

쉴 수 있는 편한 금요일이 오늘은 다시 일을 하루 더 하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상관없다. 사실 마음껏 쉴 수 있는 시간이 없어진 것 뿐 힘들지 않기 때문이다. 점점 귀여워지는 ‘노랑머리’ 손자녀석과 있는 것이 왜 힘만 든단 말인가? 읽고 싶은 책을 편하게 읽을 짬이 없는 것, 그것 하나가 문제일 뿐이다.

새로니의 condo가 드디어 팔렸다고 한다. 참, 어렵게 노력해서 장만한 그 애의 ‘노력의 결정’이 바로 그 물건이었기에 결과적으로 그 노력에 보상을 보게 된 셈이다. 그 애의 financial eye는 상당한 것이라는 것을 이번에도 확인하게 된 셈이다. 이제 결혼으로 더욱 안정적인 ‘재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은 가상하지만 그와 더불어 다른 쪽[higher perspectives] 의 눈도 서서히 뜨게 되기만 기도한다.

나라니 카톡, 아침은 McDonald’s 를 사 온다고, 산이 것만 준비하라고… 어제 Publix에서 우리 grocery를 한 보따리를 사다 주었는데… 가끔 낮에 75도로 맞추어 놓은 위층 thermostat가 생소하기도 하고 했지만 그래, 그것은 나의 오랜 세월의 습관이란다. 나의 이 traumatic habit은 역시 ‘원죄’로부터 비롯된 것이라서, 정당화할 자신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래, 그렇게 생각하면 된다.

 

찌는듯한 더위는 분명히 아는데, 조금만 움직이면 온몸이 물기로 휩싸인다. 그래 이것이 바로 습도의 역할일 것이다. 땀이 증발을 잘 못하기 때문이다. 과학이다. 작열하는 태양의 복사열이 거의 양반인 요즈음, 아예 땀으로 젖는 것 나쁘지 않다. 이것은 fan으로 충분히 조절을 할 수 있으니까…

오늘도 걸었다. 같은 코스로… 로난과 많은 시간을 보낸다. 특별히 힘든 것이 있다면, 이 녀석 조금 자라서 그런지 말을 듣지를 않는 것이다. 대부분이 이것 저것 마구 만지는 것, 이것은 NO란 말로 잘 안 통하고 녀석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이 제일 좋다고 한다. 그것이 나는 잘 안 되는 것이다. 이런 것이 육아 기술이 아닐까? 새로니, 나라니 시절에 물론 나는 전혀 모르고 지냈기에 생소한 기술이다. 아이들 키웠던 엄마들의 노고,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아빠들, 돈은 번다고 하지만 사실 공짜로 아이들을 키운 것이다.

오늘 처음으로 swimming pool key card 를 사용할 때가 왔는데, 역쉬~ 모든 일에는 이렇게 hiccup의 가능성이 도사리고 있구나.. 이 card 를 지난 6월 초에 동네 home association 의 ‘봉사자’에게 받았는데 그 동안 쓸 기회가 없었다. 요새는 확실하게 믿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것조차 문제가 될 줄이야. 나라니, 로난, 연숙이 갔더니 ‘빨간 불’만 들어오더라고… 허~ 무슨 일을 이렇게 한단 말인가? 부리나케 연락을 했더니 몇몇 사람들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고… 곧 해결하겠다는 text가 왔으니… 이번에는 가서 test를 해보는 것이 안전할 듯하다. 수영장에 들어갔던 소감은 아주 좋았다고… 그렇다면 나도 한번…. 하는 생각이 든다. 서늘한 때 가서 책이라도 볼 수 있다면…

 

오늘 밤에도 나에게는 드문 일, Ozzie와 같이 couch 에 누워서 ‘big screen TV’를 보았다. 어쩌면 이것이 그렇게도 생소한 느낌이 드는 것일까? 한가지 … 이런 것은 정말 시간이 우습게도 빨리 흐른다는 것 같다. 이렇게 되면 아마도 소위 말하는 couch potato가 되는 것이다. 게으름의 상징… 최소한 나는 그런 것은 피하며 산 것, 하지만 대신 relax는 잘 못하며 산 것은 아닐까? 일장일단이 있는 것, 관건은 어떻게 중용지덕을 지키는가 하는 것이겠지. 이런 식으로 나가면 PC에서도 Youtube에 빠질 수도 있다. 오늘 밤에도 거의 한 시간을 이것으로 시간을 허비한 것, 정말 소용없는 쓸데없는 시간 낭비였다. 조심, 조심…

 

After Humanity, Art of Ignoring, VHS drama, James Martin

어젯밤에 일기예보를 못 본 탓에 침실 ceiling fan 을 켜고 잔 탓에 밤새 추위에 떨었던 불편한 기억이었다. 왜 이렇게 춥지… 하며 몸을 온통 오그리고 잔 것이다. 급기야 긴 팔, 긴 바지, 양말까지 신고 내려오는 나의 꼴이…. 죄값을 받은 셈인가? 어제 저녁 잠깐 office에서 눈을 붙인 것이 기도도 팽개치고 그대로 밤잠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것은 정말 오랜만에 저지른 나의 ‘작은 쾌감’ 같은 것, 아주 후회는 안 한다. 하고 싶었기에…  덕분에 싸늘한 6월 말 아침의 ‘습격’을 받은 셈이다. 연숙에게 조금 미안한 심정을 금할 수가 없다. 어제는 저녁기도를 했어야 했는데….

 

AFTER HUMANITY: A Guide to C.S. Lewis’s  The Abolition of Man,  $30 well spent? I hope so!

아침에 온 WOF (Word on Fire, a catholic ministry) email, Bishop Barron의 promotional video를 보고 ‘그대로’ order를 해 버렸다. 이 책은 사실 Lewis의 ‘어렵게 보이는’ 책, The Abolition of Man의 깊고 자세한 주해서 격에 해당하는 듯 보인다. 보너스로 원저 The Abolition of Man도 포함되었다니… 너무나 매력적인 deal이 아닌가? 나의 Lewis에 대한 늦은 관심과 사랑을 떠나서 이 책의 외형적인 조건들이 이 책을 사게 만들었다. 현재의 Post-Truth 현실과, 미학적 관점을 가미한 Barron의 영향을 느끼고 싶기도 했다. 이 책을 내가 깊이 이해하게 되리라는 막연하지만 멋진 희망도 빼놓을 수 없다. 희망을 걸어보자!

 

Art of Ignoring: 내가 필요한 ‘사회적 기술’이 바로 이것임을 왜 이렇게 인생의 후반부에 깨달아야만 했을까? 하지만 지금이라도 안 것을 다행으로 여기자. 큰 것, 작은 것, 개인적인 것, 세계, 사회, 정치 상황 모두에 해당하는 ‘기술, 예술’이다. 무시하는 지혜,…  집에서부터 무한한 우주영역에까지… 해당이 안 되는 곳이 없다. 연숙의 ‘앙앙거리는’ 의미 없는 듯 들리는 잔소리부터 시작해서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우주의 기하학적 구조까지… 어떤 것들은 거의 무시하는 것이 안전하고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이다. 하지만 어떻게 촉감을 초월해서 무시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할 것인가? 불교의 냄새를 풍겨야 할 것인가? 요새를 사는 나의 화두 중에 하나가 되었다.

 

80년대 VHS era, KBS [청소년 문학관] 시리즈: 비록 10편도 안 되는 것이지만 더운 초여름에 나를 너무나 아련~하고, 편하게 하는 영상과 이야기들이다.  어떤 것들은 아련한 사랑의 감정을 추억하게 해 주는 것이어서 정말 오랜만에 10대 당시 나의 모습을 그린다.  겁 많고 지나치게 수줍어 했지만 나만의 낭만적인 상상도 적지 않았던 시절들.  이 드라마들 중에는 ‘입시지옥’에 연관된 이야기들이 꽤 있는데, 우리 때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심각한 것들이라서 현실감이 떨어지기도 하지만, 충분히 이해는 하고도 남는다.  지금은 ‘산사에서’ 라는 것을 보는데… 아늑한 산사, 절의 풍경과 입시지옥을 겪는 고교생, 재수생들의 이야기…  대학입시의 중요성이 극한으로 치솟은 고국의 10대들이 불쌍하기도 하다. 이것이 거의 반세기 후에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것을 보고 나는 정말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다.

요새 80년대의 여러 가지 종류의 고국의 TV 프로, 주로 드라마, 이것들을 보며 간혹 나는 고민에 빠진다. 좋아하는 것보다 거슬리는 것, 특히 연기자들과 그의 역할, 성품 등에 연관된 것이다.  역할이 악역이거나 내가 싫어하는 전형적인 역할은 물론 연기에 따라서 싫고 혐오하기까지 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지만, 문제는 그 연기자 자신에 관한 것이다. ‘악역’을 너무나 실감나게 연기해서 그런 것이지만 그 사람자체에서 흘러나오는 그 연기자의 ‘화학적’ 성품이다. 최근의 예로, 미안하지만 남자 연기자 둘 ‘주X’과 ‘백일X’ case다. 이들의 사생활을 알기 전부터도 별로 호감이 안 가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싫은 것이다. 연기 속의 그들이 아닌 실생활에서도 보일 듯한 그들의 모습이다. 특히 주X이라는 사람, 정말 기름기가 줄줄 흐르는 정도로 그 ‘느글, 느물거리는 자태’는 물론이고, 그가 실제로 그런 인물일까 하는 의심까지 든다. 백일X, 그도 역시 ‘기름기가 밴 폭력성’이 나를 도망가게 만든다. 그의 사생활도 나중에 연숙을 통해서 들었기에 나의 유감은 맞은 셈이다. 이 두 사람의 ‘냄새’ 를 나는 정말 싫어하지만 그렇다고 어쩔 것인가? 우문[현답]인가?

고국의 VHS급의 영상물을 보다가 서서히 90년대 혹은 2000년대로 옮아오며 나는 주저하고 주저한다. 우선 배경 scene들이 너무나 나에게 생소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거북한데… 사실 웃기는 것 아닌가? 나는 그 당시에 가끔 그런 것들에 이미 익숙해졌던 것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왜… 그렇구나, 내가 우리 고향의 변화, 변천하던 모습을 거의 고의적으로 잊으며 살았던 것에 대한 죗값이라고 할까? 내가 너무나 이런 것에 민감한 것일까? 왜 남들처럼 무덤덤하게 못 받아들이는 것일까?  그래도 나는 노력할 것이다. 서서히 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로 올라오며 공부하고 익숙해질 것이다.

 

Reese’s, 얼마나 달콤한 유혹인가? 나를 유혹하는 것이 점점 줄어드는 나이에 이것은 예외가 아닐지? 어제 이것을 무려 6개나 입에 넣고 나서 계속해서 죄책감을 느낀다. 나이의 신호인 ‘당뇨병’이란 말이 귀에서 맴돌고 있기 때문이다. 당뇨의 원인이 Reese’s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영양적인 것은 아닐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시간당 적당한 개수는 몇 개일까? 웃기는 생각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요즈음은 솔직히 말해서 사치적인 순간들이다. 즐기고 감사하면 된다. 아~ Reese’s야, 지금도 거의 손이 그곳으로 가며 2개를 먹을 준비가 되어있다.

 

‘나의 멘토 나의 성인’ 중 루르드의 베르나데트 라고 쓰인 벨라뎃다 편을 신들리듯 읽고 쓴다. 내용은 거의 이미 아는 것들이지만 이 신부님의 묘사, 글은 정말 engaging한 것이어서 실감이 100 % 난다. 특히 마지막 부분은 그가 했던 성지순례일기였다. 아~ 이제 우리도 이곳을 가볼 수 있을 것인가? 솔직히 실감은 아직 가지를 않지만 그래도 꿈과 희망은 나를 정말 행복하게 한다. 건강할 때, 걸을 수 있을 때, 여행을 갈 수 있을 때…

신명 들린 듯, 마술에 빠진 듯 읽으며 필사를 ‘즐긴다’. James Martin신부의 문장, 글의 스타일 때문일까, 아니면 내용에 무엇이 있는가? 지금 루르드의 벨라뎃따, 순례기를 읽고 있는데, 생각한다. 이곳을 가게 되면서 혹시 우리들… 앞으로 꼭 봐야 할 유명한 곳 보다는 세계에 널려 있는 성지를 가급적 많이 가보고 싶다는 어린애 같은 소망이 떠오른다. 나답지 않은 것이, 예전에 나는 그렇게 성지에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Martin신부의 글을 읽으며 서서히 그런 생각이,  ‘꼭 가보고 싶다’ 라는 희망적인 염원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러려면 어떻게 앞으로 살아가야 할 것인가? 목표가 서서히 안개 속에서 나타나는 듯 느껴지는 날이 되었다.

기록적인 속도로 베르나데트 성녀 편을 끝냈다. 그러니까 하루 만에 거의 30 페이지를 질주한 것이다. 역시 내용이 큰 관건이다. 너무나 몰입하며 즐겁게 읽게 되니까 이렇게 빠르게 독파한 것이다. 다음 편은 여러 선택의 여지가 있었지만… 토마스 아퀴나스를 택했다. 이것은 Word on Fire Bishop Barron의 영향에 의한 것이다. ‘신학대전 Summa…’, 신학의 정수를 정리한 분이니… 이것으로 나는  apologetic의 한 곳을 또 건드린다.

 

이슬비도 안 되는 물기가 가득 찬 하늘을 보며 로난을 데리고 걸었다. 햇살은 없지만 대신 습기가 땀을 배게 한다. 아직도 나는 로난과 가는 것이 힘들지 않다. 숨도 고르고 다리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언제까지? 연숙은 요새 걷는 것조차 부담이 되는 듯 보인다. 나와 보조를 맞추며 살아가야 할 텐데…  Toddler, 아이를 보는 것 baby-sitting, 힘든 것인가 아니면 할만한 것인가? 지금은 새로 찾은 Dave&Ava [3D animation, 최근의 video technology의 위력을 보여주는 예] 라는 아이들 video를 Youtube에서 보게 하는 것이 무척 많이 도와주고 있지만 그것 이외는 diaper 갈아주는 것, 많을 때는 3번씩이나 하고 나면 정말 나도 늘어진다. 책이나 장난감을 가지고 놀 정도가 되면 조금 더 쉬워지지 않을까… 힘은 들어도 이러면서 서로 skinship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은 좋은 것 경험이 아닐까. 아직도 손주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이런 일들’, 그래 기왕 하게 된 것 편하고 즐겁게 하도록 노력하자… 그것이 노년에 최선을 다해 사는  한 방법이다.

 

하지가 지났다는 것이 조금 실감이 안 간다. 날씨 때문에 해의 동향이 분명하지 않았기 때문인가, 아니면 관심이 덜 했던 것인가? 설상가상으로 나의 방에 있는 wifi light controller에 문제가 생겨서 ‘일년 중 제일 늦게 저녁불이 들어오는’ 것을 목격을 못 했기 때문이다. 좌우지간, 이제부터는… 저녁때의 불이 조금씩 빨리 들어올 것만 알면 되고… 아~ 진짜 여름의 시작이고… 4개월만 지나면 ‘황금색’의 세상이 올 것을 기대하며…

6월의 하순, 24일의 요한세례자 ‘영명축일’과 메주고리예 성모님 발현이 머리에 떠오른다. 6월 25일은 나의 아버님이 빨갱이들에 의해서 끌려가신 모습이 떠오르고… 이렇게 하면 6월도 저문다. 그리고… 그리고… 기다리는 것, 계속 기다리는 것…

요사이 너무나 시원한 초여름의 날씨, 특히 뒤뜰의 초록색의 향연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감사합니다~  소리가 나온다. 연숙이 참으로 애를 쓰며 만들고 있는 이것, 아마도 우리 집의 보물이 될 지도 모른다. 그래, 열심히 사는 날까지 가꾸고 보살피고 사랑하자.

 

 President Biden의 사랑하는 pet dog Champ가 집에서 편하게 영원한 잠을 자게 되었다는 소식. 날짜가 6월 19일, 우리Tobey가 3년 전에 저 세상으로 간  같은 날? 아~ 우연인가? 게다가 나이가 13살? 이것도 거의 비슷한가?  그렇구나… 비슷하다. 그래 우리 Tobey도 집에서 나의 손에 안겨서 떠났으니까… 거의 비슷한 상황이다. 이 뉴스가 national news에 날 정도니까, 얼마나 미국인들의 pet dog, cat 에 대한 사랑이 깊은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래서 그런지.. 바이든이 더 좋아진다 [모르긴 몰라도 Donald 개XX 는 pet dog이 있어다면 수시로 발로 걷어차며 열을 내고, 화를 풀었을 듯하다].

 

오랜 세월 동안 손에 들어온 고국의 시사 월간지들, 특히 신동아, 월간 조선, 중앙 등… 이제는 추억의 잡지로 곰팡이가 쓸고 있지만, 나에게는 기나긴 고향을 잊고 살았던 기간을 회복할 수 있는 귀중한 역사적 유물이 될 수도 있다. 1970년대 2권, 1980년대 21권, 1990년대 7권, 2000년대 1권… 이것으로 얼마나 나는 과거의 대한민국을 공부할 수 있을까? 노력을 한번 해 보자!

 

올해 Father’s Day, 받는 것만큼  나도 협조를 한 셈인가?  조그만 가족들이 모였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으로 이날의 의미는 살렸으니까… 하지만 조금은 피곤하기도 하다. 나는 사실 이런 날, 기념일, 방학, 휴가, 명절, 휴일 등등,  혼자 있고 싶은 때도 있지만 나만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고, 나의 속마음을 이해해 주는 사람은 이세상에 아마도 나의 볼래야 볼 수도 없는 어머님밖에는 없을 듯하다.  하지만 나의 생각만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사회적 인간이 아닌가? 머리로는 알지만 그래도 나는 속으로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고 좋아하는 존재가 한 명이라도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Father’s Day 모임 자체는 솔직히 말하면 모이는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피곤한 행사이기도 했다. 나는 별로 즐겁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의 문제가 거의 전부일 수도 있지만 별 수가 없었다. 별로 즐겁지 않았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 그런 때도 있는 거지…

Father’s Day grill out by Father

 

이영석 신부와의 카톡 대화로 8월 경에 이임, 귀국을 하신다는 것은 짐작했다. 6월 말까지 떠난다는 소문으로 아마도 새로 오시는 주임신부님이 그날까지 못 오시는 듯하고 아마도 8월 경쯤 visa가 된 것은 아닐까? 좌우지간, 8월 전까지는 새로운 신부가? 와~ 아찔해진다. 물론 좋은 사제가 올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윗동네’ 주임신부 같은 ‘피하고 싶은’ 사제가 오는 날이면? 와~ 이것도 조금은 도전이고 시련일 수도 있다. 이임 소식을 아직도 생각하고 정리를 하고 있다. 물론 나에게,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것이고 그것은 우리 성당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내년까지는 이런 생각을 안 하고 살려고 했는데 어떻게 이런 부담을 주는 것인지? 어떤 목자가 출현하느냐 그것이 우리의 눈 앞에 있는 생의 마지막 순례길을 크게 결정, 좌우할 듯하기 때문이다. 나의 너무 지나친 생각일까, 두고 보면 알게 될 것이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혹시 신부님,  ‘몸이 아프신가..’ 하는 추측 성 말들을 하게 되었다. 아니면 가족 사정, 특히 그들의 건강상태.. 등으로 관심이 넘어가면서,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닐 듯 보인다. 그러면 나쁜 것 아닌가?  문제는 timing이다. 왜 지금인가? 시간이 지나면 알려질 터이지만 궁금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더 좋은 신부님이 오신다는 hint를 주셨지만 그것이 전부다.

Georgia on my Mind, Blue Ridge

 

Georgia on my mind.. 라는 phrase가 문득 귀에서 울린다. 특히 어제의 정치적 주제가 ‘미국 전역’, 아니 ‘세계적’으로 울릴 듯하다. Crazy & Bizarre라는 말도 그리 충분하지 않는 지난 11월 이후의 이 세기적 현상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듯 나를 슬프게, 괴롭게 하는 데… 내가 정상인가, 아닌가?  그 트럼프 개XX & 떨거지들, 모조리 없애 버리고 싶은’ 범죄적인 충동’을 상상하는 등, 나를 괴롭힌다. 어떻게 이런 해괴한 세상이 나의 바로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일까? 어제의 조지아 선거의 결과도 중요하지만 앞으로가 정말 문제가 아닐까? 나의 희망은 나의 생일 1월 21일 이후로 모든 이 극적인 정치적 show는 서서히 막을 내리기 시작하는 바로 그것이다. 미국 200여년의 민주주의 역사와 전통은 어디로 간 것인가?

 

Georgia on My Mind – Ray Charles on Midnight Special  

 

어젯밤부터 나의 신경을 곤두서게 했던 것은 물론 조지아 주의 트럼프 개XX  떨거지들의 운명이었다. 과연 모두의 희망대로 그 쓰레기들이 쫓겨나게 될 것인가? 희망인가, 현실인가? 둘 다 사실이다. 캐나다의 친구 교성이까지 나와 합세를 해서 성토를 했기에 더 힘을 얻었지만… 그래도 누가 알랴? 그런데 아침에 보니… 와~  두 명의 억만장자 트럼프 ‘떨거지’들, 우선 그 ‘요부 妖婦처럼 기분 나쁜 여자’ Kelly Loeffler는 확실히 사라지는 것 같고, 나머지 ‘별볼일 없고 줏대 없는’ David Perdue도 역시 떨어질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 둘은 1월 달 코로나 바이러스 소식을 미리 알고 그들의 주식을 미리 다 해치운 억만장자 들이었다. 이제 연방상원은 50/50에다가 부통령의 합세로 simple majority는 보장이 된 셈이다. 트럼프 개XX야, 정말, 진심으로 감사한다, 너의 덕분임을 잘 알고 있다!

역시 더 많은 사람들이 투표를 하면 이런 기적이 일어난다. 바로 이런 이유로 그들이 그렇게 minority들이 투표를 못하도록 갖가지 방해공작을 했던 것, 정말 야비하고 원시적인 그들의 발상이 가관일 수 밖에 없다.

결과는, 와~ 바이든의 정책이 더욱 커다란 힘을 얻게 되고… 거의 기적 같은 사실이다. 나의 관심사는 이제 바이든이 어떻게 온건파를 주도해 나가는 가 하는 것이다. 그것만 잘하면 그는 오랜 경험의 도움으로 Pandemic과 경제파탄을 극복하여 제2의 Roosevelt가 될 수도 있다. 온건, 중도, 친 교회적인 입장만 정치적으로 달성하면 그는 모든 사람들의 영웅이 될 것이다. Go Biden & Help Church!

 

드디어 1월 6일, 수요일… 오늘 오후에는 집을 떠나야 한다. 4박5일? 와~ 이렇게 집을 비운다는 사실이 계속 신경을 쓰게 한다. 목적지는 North Georgia Mountain, Blue Ridge에 있는 cabin인데, 집을 이렇게 떠나본 지 꽤 오래 전이라는 것, 이것은 우선 나에게는 불편한 것이다. 날씨도 춥고 눈이 올 가능성까지 있는 때라 더욱 그렇다. 역시 우리들 이제는 예전같이 않게 늙은이 행세를 하고 있다. 하지만,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지. 아이들이 ‘거액’을 투자하며 세운 가족 여행의 모임이니까… 그래, 편하게, 즐겁게 쉬다 오자. 그 동안은 모든 daily, monthly, yearly routine을 모두 잊도록 노력해보자. 머리를 모조리 비우며, 최선을 다 하자!

집을 떠날 준비가 착착 끝나고 있다. 거의 끝났다고 할 수 있다. 양양이[kitten] Izzie가 먹을  5일 이상의 meal을 준비하며 조금 미안한 것이, 얼마나 얘가 놀랄까? 혹시 자기를 버린 것은 아닐까 생각하는 것은 아닐지… 아니야, 그럴 리가 있겠니? 먹이는 충분히 준 것이니까, 알맞게 조금씩 먹어라. 미리 littler box를 며칠간은 안심하고 일을 볼 수 있도록 미리 청소를 다 해놓았다, 이것으로 너의 기분이 조금 안심이 된다면… 갑자기 혼자가 된 것을 알면 house pet들은 어떻게 생각하며 행동을 할까… ‘나는 이것이 알고 싶다’…

Father & Esperanto Friends

50년만에 다시 보는 아버지, 평창이씨 이정모. 제일 아랫줄 오른 쪽 끝에서 세 번째의 ‘작은 체구’

 

아버님, 아버지, 아빠 그리고 대한민국 에스페란토 친구들,   Esperanto Esperanto Esperanto friends..  감사합니다!

아마도 50년도 넘었을까, 마지막으로  내가 이 사진, 우리 아버님의 모습을 이 사진에서 보았을  때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집에서 보던 ‘조선 에스페란토 학회 단체사진’  한 장이 digital format으로 오늘 나의 Email InBox에 들어와 있었다. 그 한 장의 사진에 분명히,  나의 뇌리 속에서 ‘우리 아버지’라고 알고 살았던,  ‘앞 줄에 앉는 사람 중 제일 작은 남자’ 가 있었다.

이 사진은 연락이 두절된 우리 누님 집에는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었지만 세월이 이렇게 깊어지면서 아마도 나는 생전에 다시는 아버지 사진을 못 볼 듯이 살아왔다.  하지만 에스페란토가 인연이 되어서 이렇게 다시 ‘죽기 전에’ 볼 수 있게 되었다. 감사합니다, 하느님, 대한민국 에스페란토 친구들…

올해 2020년은 대한민국 에스페란토 창립 100주년이 되어서 대대적으로 기념행사를 준비한다고 작년부터 관계자 분들이 연락을 주셨었다. 6.25 전까지 에스페란토 운동에 깊이 관여했던 아버지, 내가 알고, 기억하고 있는 나의 아버지 ‘이정모’ 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사연이었다.

나와 개인적으로 연락이 된 것은 나의 2011년 8월,  ‘회상’ 블로그 ‘아버지와 에스페란토’가 계기가 되었다. 그 블로그는 생전 한 번도 못 보았던 아버님의 그림자를 찾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나의 사그라져가는 기억력과 싸우며 개인, 가족, 특히 아버지의 역사를 남기고 싶었지만 6.25 발발 후에 홀연히 납북이 되신 아버님은 어디까지나 나에게는 가상적인 존재였다.

그러다가 어렸을 적부터 많이 들어오던,  ‘에스페란토’라는 이름이 떠오르고, 그 당시 집에서 보았던 각종 자료 (주로 학회지)등과 어머님의 말씀 등을 시작으로 인터넷을 뒤지고 해서 아주 기본적인 사실들을 찾을 수 있었다. 최소한 아버지의 이름이 이기 저기서 보인 것이다. 그곳에서 6.25때 납북 되신 분들의 이름들이 보였지만 아버지의 이름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것을 나는 에스페란토 역사에 남기고 싶었지만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 지가 막막했는데, 하늘이 도와서 나의 블로그 가 인연이 되어서 연락이 되어 이렇게 아버님의 사진을 다시 ‘찾게’ 되는 행운을 얻은 것이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사진에 앉아 계신 아버지, 그 당시는 서울 경기고등학교 영어 교사였을 것이다. 이 사진은 에스페란토 정사에도  있듯이 ‘8월에 KEI 제5회 강습회가 개최되었는데 약 30명이 참가하고 서병택, 석주명, 이정모가 지도하였다‘ 라는 구절의 바로 그 역사적 사진이었다. 1949년 8월이니까 일년 뒤에는 민족반역자 김일성 무리들에게 납북되실 운명을 짐작이나 했을 수가 있을까? 한 개인과 가족의 역사는 이렇게 산산이 조각이 났는데, 아직도 그 반역자 세습무리 들이 북녘에서 설쳐대고 있으니 이것이야 말로 ‘부조리의 극치’ 가 아닌가?

100주년 기념을 준비했던 관계자 분들, 역시 다른 ‘부조리’인 코로나바이러스로 실제적 기념대회는 무산이 되고 10월에 Online Conference로 대치하는 모양이다.  세계 전체가 불안하게 보이는 이 때에, 세계 평화를 갈망하던 에스페란토 창시자의 꿈의 실현은 아직도 요원한가…

Miss you Tobey, Marathon Man

계속되는 60도 이하, 싸늘한 아침들,  거의 가을 같은 느낌인가…

며칠 만에 다시 산책길을 걷는다. 싸늘해진 날씨 덕분에 오랜만에 모두 긴 팔/바지로 입고 걸었는데 하나도 덥지를 않았다. 그래 6월 중에 이렇게 가을 같은 날씨가 꼭 있었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 된다.

 

주마등 같이 지나가는 Tobey의 모습들…

 

Tobey’s Memorial Day,  6월 19일. 2018년 6월 19일 나의 사랑하는 ‘아들, 개’ Tobey가 나의 손에 안겨서 마지막 숨을 쉬던 그때,  그래 나의 사랑하는 Tobey가 昇天한 날이다.  Tobey야 그립고, 그립고 사랑한다. 너와 같이 살았던 14년, 우리도 즐거웠고, 너도 그 동안 행복하게 살았지?  특히 우리 둘은 너무 가까워서 탈이었던, 명 ‘콤비’  였지?  뒤뜰  우리 집에서 제일 아담하고, 양지바른 곳에서 잠드는 너의 안식처에는 요새 한 여름의 각종 꽃들이 시원하고 넉넉한 덕분에 더욱 만발하고 있구나. 그곳에서 너를 매일 지켜 본단다. 다음 세상에서 다시 만나자, Tobey야!

 

Tobey 동산에 핀 올여름의 꽃은…

thermostat controlled ‘box fan’ at hot garage

Air Condition이 안 된 곳, 우리 집 two-car garage, 여름에는 무섭게 뜨거워질 때가 있다. 커다란 냉장고 refrigerator 와 냉동고 freezer 는 물론,  유서, 역사 깊은 각종 책들이 무수히 쌓여 있는데, 너무 습하고 더우면 분명히 그들도 stress를 받을 것이다. 궁여지책으로 ‘지독히도 싼’ box fan을 창문에 달아서 환기를 시키니까 훨씬 나아졌다. 문제는 이것을 여름 내내 24시간 가동하는 것, 조금은 에너지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생각한 것이 ‘남아도는’ room thermostat (pre-smart one) 으로 이것을 control하자는 것이었다. 우선은 air conditioner처럼 on/off control로 시작해서 궁극적으로는 speed control까지 겸하는 linear control을 구상하였다.

첫 단계인 on/off control은 기존의 thermostat로 비교적 간단하게 design을 하였다. 하지만 speed control은 microcontroller가 필요한 것이고, 따라서 software가 필요한 것, 시간이 조금 걸릴 듯하다.

‘Box Fan’ speed control, 의외로 쉬운 곳에 해답이 있었다. 바로 light/heat dimmer였다. 어제 잠깐 soldering iron heat controller 로 시험을 해 보니 큰 문제가 없었다. Triac-based light dimmer도 비슷하지 않을까? 관건은 이 potentiometer를 digital format으로 바꾸는 것이고 그것은 이미 product로 Amazon에도 있었다.

 

Agony & Ecstasy, electronics project

 

Rotting Deck, 이것들 에서 이미 썩어 들어간 부분은 띄어내고 비교적 새것으로 갈았다. 훨씬 보기가 좋다. 이제는 pressure wash를 한 후, sanding/grinding을 한 후에 전에 사온 exterior ‘dark’ brown paint를 칠 할까… 쉽지는 않을 듯 한데… 그래도 해야겠지? 한 김에 screened porch도 pressure wash를 하면 더욱 나을 듯…  정말 왜 이렇게 ‘남자’들은 할 일이 많은 것일까?

 

불쌍한 우리집의 neglected deck… I’m so sorry…

 

Marathon Man, 어제 아틀란타 지역에서 유서가 깊은, 역사를 자랑하는 토니 김 치과 Tony Kim Dentistry를 찾았다. 아이들 어렸을 때부터 다니던 곳, 토니 치과의사는 오래 전, Ohio State [University]를 다닌 인연이 있어서 그렇게 생소한 느낌이 들지 않던 곳이다. 물론 나이도 훨씬 밑이고 학교 다니던 때도 달랐지만 생소한 이곳에서 그곳은 반가운 치과였다. 당시에는 교민인구가 정말 적을 때여서 아마도 치과가 요새처럼 ‘지천으로 늘어진’ 때와는 다른 때여서 ‘모국어가 통하는’  토니 치과는 정감적으로도 편한 곳이었다.

치과를 본능적, 체질적, 역사적, 생애적으로 유별나게 무서워 하던 내가 결국은 어쩔 수 없이 그곳을 ‘끌려가게’ 되었다. 코로나 사태로 계속 미루어오던 것이지만 가급적 안 가려고 발버둥을 치고 살았다. 하지만 참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이번은 ‘나이가 원인일 수 있는’ 탓으로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아주 대 작업이 필요한 case였고, 나도 이제는 별 수 없이 완전히 백기를 들고 치과를 찾은 셈이다.

나는 대학시절부터 시작된 치과와의 악연으로 ‘치과’라는 말만 들으면 몸이 움츠려 들고 가급적 안 가려고 노력하며 살았다. 특히 1976년경의 Dustin Hoffman, Laurence Olivier 주연의 Marathon Man 이란 영화를 본 후에는 나의 생각은 더욱 완고해졌다.  고문 중에 생 이빨을 drilling하는 장면… 하지만 언제나 이런 유별난 치과공포증의 결과는 나의 ‘우둔한 패배’로 끝이 나곤 했었다. 이번에도 나이에 의한 ‘잇몸’의 퇴화는 나도 어쩔 수가 없는 상황. 결국은 100% 백기를 들고 만 것이다.

 

Dustin Hoffman, Marathon Man, 1976
Olivier torturing Hoffman, drilling a ‘good’ tooth without anesthesia!

 

거의 15년 만에 ‘돌아온’ 그곳, 토니 치과, 왜 이렇게 늦게 왔느냐는 ‘냉소적인 눈길’을 따갑게 느끼기도 했다.  한마디로 가족들에게도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만 중얼거릴 수 밖에..  나의 변명은 간단하게 이것도 일종의 불치의 phobia라고 단정을 짓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런 내가 좀 이상하다고 보는 듯했다.

정말 오랜만에 나를 끈질기게  괴롭히던 괴물들이 입 속에서 사라진 후 나는 정말 천상의 자유를 느꼈다. 코 밑에서의 야릇한 고통으로부터 자유… 나는 분명히 그 동안 그런 고통에 ‘편하게’  적응이 되어 살려고 했지만 그것의 부작용은 얼마나 컸나? 나도 고통, 주변도 고통… 하지만 역시 그런 나의 본성은 자진해서 변할 수가 없음도 안다. 이제는 새로운 장이 펼쳐졌고 비록 거의 한달 정도는 이곳을 드나들어야 하지만, 코로나 사태로 모든 것이 변한 세상에 이런 변화는  결국 모두에게 좋은 것이라고 위로를 한다.

 

Ronan’s 백일

우리 집 첫 손자 Ronan [Irish name] 의 백일 ‘잔치’에 다녀왔다. ‘백일잔치’의 전통적 느낌이라기 보다는 그야말로 국제적 느낌의 ‘백일축하모임’ 이란 표현이 맞을 듯.  첫 돌잔치도 아니고 겨우 백일의 삶을 위해 이렇게 모인 것은 완전히 아기 엄마가 push한 결과인 듯..  이렇게 우리 작은 딸, 애기 엄마가 우리들, 대한민국의 혈통을 강조하는 것이 흐뭇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아기 옷까지 online으로 특별주문을 해서 입히고, 잔치상의 모습을 재현하려고 노력하고, 특별히 아기 아빠 쪽 부모와 우리 둘만 부른 것 등, 이런 일을 성사시킨 작은 딸 나라니 가 이제는 완전한 책임감 있는 성숙한 어른이 된 듯 보였다.

아기가 워낙 건강하고 실實 해서 엄마의 어렸을 적의 모습을 연상시켰지만 그래도 아빠의 모습과 겹치는 부분들이 골고루 있어서, 이 애는 이중적 복합 문화를 다 배워야 하는 운명임을 실감한다. 요새 인종문제로 시끄러운 때에 이렇게 백인 사돈댁을 만나게 된 것이 우연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모두 열린 마음으로 서로의 전통과 문화를 존중하는 것이 이 아기에게는 커다란 축복이 될 것이다.

사돈 댁 [Chuck & Judy]은 북 독일계 이민의 후손들인데 초기 이민은 대부분 Midwest쪽 Indiana, Ohio 등지 에서 farmer로 살았고, 애 아빠 쪽 집안은 military family로 Georgia로 이주해서 살고 있었다.  이날 조금 더 서로의 ‘조상과 문화’등에 대한 애기를 나누었는데 독일계 이민이 겪은 ‘차별대우’에 대해서도 언급을 했다. 유럽 쪽 이민도 흑인들과는 정도는 아주 다르지만 문화적, 종교적, 언어적 차이, 나중에는 정치적 차이 [2번에 걸친 세계대전] 로 겪은 다른 의미의 ‘인종차별’을 경험하였다고 한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개신교, 공화당에 속한 보수 집안이지만 Trump라면 고개를 설레설레 할 정도였고, 그 반대쪽인 Biden도 마찬가지… 그래서 우리의 결론은 역시 제3당,  ‘구세주 인물’의 출현인데… 그것이 쉬울까 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현재의 정치구조를 완전히 뒤집어 놓는 ‘혁명’의 발상까지 거론하기도 했다. 아마도 이 과제는 우리 세대가 다 사라진 후에야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괴로운 생각을 하기도 했다.

 

 

Ronan San이 오던 날

¶  태어난 지 거의 100일에 가까워 오는,  우리의 첫 손주 사내  ‘Ronan, 산’ 을 데리고 나라니 부부가 첫 외할아버지, 할머니 집을 찾아왔다. 물론 그 동안 우리들은 손주의 집을 가기도 했지만 COVID-19 Pandemic 탓으로 나는 자주 못 갔고 연숙이 애를 보아주러 가곤 했었다. 오랜 세월 주위의 사람들이 ‘애 보아 주는 것’에 대해 경고를 하곤 했었는데 결국은 우리들이 그 주인공이 된 듯하다.

거의 3개월 만에 손주 아기가 우리 집에 처음 온 것은 그 동안 코로나 사태로 나가는 것을 자제한 것이 큰 이유였다. 아기가 평균치보다 훨씬 무겁고 커서 오랫동안 안아주는 것 쉽지는 않지만 비교적 순해서 아주 편하게 안아주며 즐긴 시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남들 할아버지들처럼 그렇게 흥분되거나, 기쁘거나 한 것이 아니어서 나도 이상할 지경이다. 어떨 때는 내가 거의 ‘연극’을 하는 듯 느껴지는데, 아마도 조금 더 시간이 가면 나아지지 않을까? 나는 정말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애기의 얼굴을 보면서, Caucasian과 Asian의 인종 사이에서 어떤 부분이 어떤 쪽인지 그것에 큰 관심이 간다. 눈은 분명히 brown쪽이지만 나머지는 거의 Caucasian으로 보인다. 이럴 때, 나는 다시 깊은 생각에 빠지곤 한다.  비록 white중의 white guy 인 사위지만 이제는 서로 익숙해져서 피상적인 대화에 큰 문제는 없다. 특히 그가 gourmet , local beer를 좋아해서 그것도 도움이 되고, 화제도 협조적이어서 세대 차를 넘어서 나와 같은 ‘꼰대’들의 주장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은 보기가 좋았다.

다음 주말에는 나라니가 push를 해서 조금이라도 외가 쪽 나라의 문화를 심어주기 위해서,  100일 잔치를 하기로 결정을 하고 양가 부모들과 함께 모이기로 했는데, 글쎄 그들이 우리들의 100일 잔치의 의미나 알 것인지…  Racism이 hot button issue인 요새, 참 나는 흥미롭고 재미있는 세상을 살고 있다.

 

¶  며칠 전에 겪은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다. 기쁜 놀라움이다. 화장실에서 그런대로 오래 앉아 있다가 일어날 때 허리를 ‘삐끗’하며 다쳤다. 이런 것은 흔히 있는 일이지만, 한번 일어나면 때에 따라서 며칠 동안 고생을 할 적도 있었다. 심한 case (눈을 치우다가)에는 일주일을 누워서 고생한 적도 있었다.  이런 때는 주로 massage를 하며 기다리는데 나는 그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워 그냥 꼼짝 안 하며 기다리는 참을성으로 지내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생각이 조금 달랐다. 거의 직감적으로 산책을 나간 것이다. 물론 허리를 꾸부리고 고통스러운 자세로 남들이 볼까 봐 둘러보면 조심조심 걸었던 것이다.

직감에, 이렇게 하면 빨리 나을 듯 했던 것이다. 결과는 정말 놀라운 것이었다. 동네 산책길 30분이 끝나고 나는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되었을까? 이것은 아마도  Chiropractor 만이 의학적, 과학적으로 설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기면 나는 기필코 산책을 하러 기어나갈 것이다. 처음의 ‘잠깐 고통’이,  두고 두고 편안함의 기쁨을 주는 비결, 방법 이것을 누가 이것을 마다하랴?

 

Mother’s Day, 오월 둘째 일요일

 

¶  나는 5월 달이  ‘성모성월’ 임을 올해 거의 잊고 살고 있다.  내 탓이지만, ‘빨갱이 짱깨’들의 ‘선물’인 일명 ‘우한바이러스’ 탓도 없지 않다. 온통 그곳에 신경이 쓰였으니 아무리 날짜가 5월 중순을 향하고 있지만 어머니의 냄새가 안 나는 것이다. 게다가, 어머니의 냄새와 함께 5월 13일은 Fatima, Portugal에서 1917년 성모님께서 3명의 목동들에게 발현하신 날이기도 하다. 어떻게 머리 속에서 그런 것들이 희미해 졌단 말인가?

새로니와 Richard 그리고 정든 개 Ozzie가 Mother’s Day날 집으로 찾아왔다. 아마도 어머니 날 이라 일부러 온 것일 듯하다. 오랜만에 Ozzie를 만났다. 이 녀석을 보는 것은 좋은데, 2년 전에 저 세상으로 간 나의 개, Tobey생각이 나곤 해서 우울해지기도 한다. Ozzie가 새로니에게 너무나 가깝게 붙어 산다고 Richard가 불평 비슷한 언급하니…  불현듯, 또, 나중에 일어날 그날, Ozzie가 떠나는 날, 을 생각하니 미리 슬퍼진다. 그래 그것이 우리 모두, 피조물들의 운명이 아닌가? 그런 것 미리 걱정하는 것, 별로 안 좋다.  가지고 온, 오랜만에 보는 doughnut을 보니 군침이 흘렀다.  Backyard lawn mowing을 오랜만에 했더니 너무나 멋진 모습을 드러낸다. 다음엔 front yard를 할 차례이다.

올해는 사실 외식도 못하고, 선물도 없고, 그야말로 완전히 다른 모습의 Mother’s Day가 되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신경을 써서 이렇게 어려운 방문도 하고 나라니는 특별히 주문한 ‘팻말’을 선물로 주었다.  하도 garden을 좋아해서 아예 ‘Yonsook’s Garden‘이라는 글자를 새겨 놓았다.

 

¶  지난 밤에는 Tylenol PM 두 알 먹은 탓인지 잠에 쫓겨서 10시도 되지 않아서 잠자리에 쫓겨 들어갔다. 반갑지 않은 치통으로 기분도 저하되고 무언가 손에 잡히지 않았고, 오랜만에 backyard mowing이 생각보다 힘이 들었나 보다. 모든 것이 서로 합쳐져서 그랬던 것, 묵주기도도 모두 생략하고… 별로 자랑스러운 것이 없다. 개인묵주기도와 가족저녁기도는 필수적으로 해야 전체적으로 하루를 보냈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래, 정신력, 성령의 도움으로 다시 일어나보자.

 

¶  Tax Return을 시작하였다. SSA income은 작년과 거의 같을 것인데, 문제의 Fidelity IRA는 사실 조금 걱정이었는데… 의외로 stock market이 작년보다 꽤 오른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것으로 또라이 트럼프가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생색을 내곤 했구나… 피식 비웃음이 나온다. Tax Return, 끝냈다. $300+ refund 란 것, 빛깔 좋은 개살구인가… 이것은 IRA withhold 된 것이라 사실 원래가 우리의 돈이 1년 동안 무이자로 돌아온 것이다.

모든 것이 끝나고 기분 좋게 tax form의 hardcopy print를 하려고 보니…. 어~~ HP Laser Printer가 죽어버렸다. 전혀 깜깜… 추측에 어젯밤이 power가 나간 모양이었던데 그때 power surge, spike로 무엇이 타버린 것 아닐까? 이것 시간을 두고 고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 피곤하다. 이번 기회에 새것을 하나 사는 좋은 구실이 될지도..  생각난 김에 곧바로 printer하나를 찾아 order 하였다. 물론 기준은 good enough, just barely good… 찾은 것은:

Brother HLL2370DW  Black & White Laser, Automatic Duplexer, Wireless: 내가 원하는 모든 기능이 있다. 제일 싸기도 한 것, 죽어버린 printer와 비슷하지만 이것은 종이 양면을 자동적으로 printer하는 automatic duplexer가 있다.

 

¶  부활 제6주일 미사, 이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온라인 미사는 이제 벌써 2개월에 가까운 new normal 중의 하나가 되었다. 일요일 아침이면 9시 반이면 Doraville로 drive를 하곤 했던 것이 이제는 까마득한 옛날처럼 느껴진다. 집에 갇히게 된 이후 처음에는 이상하긴 했지만 편한 점도 없지는 않았다. 나이 탓도 있었겠지만, 어떨 때는 정말 일요일 아침을 한가하게 보내고 싶었던 적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가톨릭 미사의 정점 頂点인 ‘물리적’ 영성체가 빠진 것은 ‘ 천주교 교리적 결함’이 있음도 인정을 하지만, 어쩔 수가 없지 않은가? 그것 빼놓고 긍정적인 점 중에는, 미사와 강론 등에 예전보다 더 정신을 집중할 수 있다는 것,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안 보아도 되는 것 등도 있다. 

오늘 미사 강론을 들으며, 신부님의 어머니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다.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나 어머니로 부르나 똑 같다는 생각. 어떨 때는 하느님을 어머니의 이미지로 투영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 어머님의 사랑은 하느님의 사랑이고, 하느님은 전능한 것이 아니고 무한한 사랑이란 것 등등…  사랑에는 고통이 필연적으로 따른다는 사실, 고통이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라는 생각. 어머니도 고통이 따른 사랑을 한다. 모든 사랑의 행위에는 고통이 필연적으로 따른 다는 사실, 고통과 괴로움은 다르다는 사실을 주지시키는 명강론이었다.  

 

이영석 세례자 요한 주임 신부님

미사 강론,  19분

April’s Fools…

 

¶  Psalmy Morning:  4월이 시작되는 이른 아침은 밝지만 겨울처럼 싸늘한 느낌을 준다.  지나간 3개월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계속되어온 순교자 성당의 야심에 찬 yearly project, 성경통독, 이제는 거의 자동적으로 어둠 속에서 성경을 펼친다.

거침없이 정직하게 흐르는 세월은 결국 우리 모두 신약성경을 모두 읽게 만들었다. 이것을 계기로 조금 신약의 전체 흐름과 느낌을 새롭게 하였다. 매일 복음과 더불어 이것은 다른 각도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준 것, 너무나 감사한 것이다.

오늘 아침에 펼친 시편, 91편… 어쩌면 timing이 이렇게도 맞아 떨어지던가… 어둠과 두려움은 한마디로 악, 악의 표현, 구현이니까… 궁극적인 피난처를 우리는 믿는다.

 

나는 무서워하지 않으리라, 밤의 공포도

낮에 날아드는 화살도

어둠 속에 돌아다니는 흑사병도

한낮에 창궐하는 괴질도.

네 곁에 천 명이,

네 오른쪽에서 만 명이 쓰러져도

너에게는 닥쳐오지 않으리라.

오히려 네 눈으로 바라보리라.

악인들이 벌받음을 너는 보리라.

이는 네가 주님을 너의 피신처로,

지극히 높으신 분을 너의 안식처로 삼았기 때문이다.

너에게는 불행이 닥치지 않고

재앙도 네 천막에는 다가오지 않으리라.

 

<시편 91편 중에서>

 

¶  April’s Fools:  H 자매로부터 S 형제의 소식을 잠깐 들었다. 다시 비관적인 평가를 시작하는 것이, 옛날이나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것.  Counselor 상담사를 만나기 시작한 이후 일말의 희망을 건 것이 사실이었는데… 근본적인 변화는 전혀 없었던 것인 듯하다. 그렇다면 그 나름대로 ‘꾀’를 부리며 주변 사람들을 오도 誤導한다는 느낌도 없지 않으니… 어떻게 이런 인간이 있단 말인가? 본인이 전혀 문제가 없다는 병적인 집착이 모든 비극의 원인일 듯하다. 나의 말대로 이것은 한마디로 ‘하느님의 영역’이다. 어쩔 수가, 기도 외에는, 없다.

 

3월을 결산하며 가능한 한 많은 ‘묵상, 단상, 기록, 일기’를 블로그에 남기려고 ‘이를 갈고’ 있지만 솔직히 자신은 없다. 내가 나 자신을 sabotage 하며 지낸 것이 거의2주가 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노력할 것이다. 의미 있는 나의 깊은 생각을 만들어 놓고 싶은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는 나 자신이나 우리가족에게 어떤 후유증을 남겨놓을 것인가? 내가 걸리면, 우리 가족이 걸리면, 아니 주변사람들이 걸리면, 심지어 죽으면… 가슴 깊은 곳에서는 ‘설마, 설마, 설마’하고 외치지만 자신이 만만한 것은 아니다. 나이를 의식하며 걱정해야 될 운명이지만 아직도 큰 걱정은 안 하고 있다. 경제적인 것이 더 관심이 가고 있지만, 더 이상 어떻게 최선을 다 한단 말인가?

차를 타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 가끔 그립고, 차에서 내리지 않으면 문제가 없으니까 성당도 가고 하고 싶지만 마지막 순간에 자제를 한다. 이렇게까지 까다롭게 내가 나를 막는 것, 큰 자신은 없지만 이것이 모든 것을 돕는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래… 참자.. 연숙이가 손자를 보러 나라니에게 가는 것도 사실 조금 걱정이 되지만 그것까지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나라니가 그렇게 엄마를 찾는다는 것은 흐뭇하기도 하고, 아직도 나이는 들었어도 변함없는 막내라는 느낌도 든다.

 

근래에 우연히 성당에서 만나 알고 지내던 시몬형제, 나이는 10년 아래이지만 ‘교회적, 성사적 신심’은 놀랄 정도로 투철한 형제다. 특히 성사, 미사참례를 절대적으로 여기는,  요즘 주변에서 보기 드문 남자라고 할까. 알 수 없는 면이 더 많은 듯한데 우선 친근감을 주며 우리와 가까워지게 되었다. 느낌에 ‘알 부자’인 듯 하기에 조금은 우리와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그런 면도 없지는 않다.

이 형제가 어제 밤에 할아버지가 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기대했던 것이라 놀라진 않았다. 하지만 나 같으면 말하지 않아도 될 말을 아주 자연스럽게 하는 것을 보고 조금은 실망을 금치 못한다. ‘부자임’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듯한 것, 왜 나는 그런 것들에 그렇게 거부감을 느끼는 것일까? 그냥 받아들이면 되지 않는가?

 

이것과 연관되어서 나를 우울하게 하는 것도 곁들여 반성을 하고 싶다. 대한민국, 대한민국, South Korea는 과연 현재 나에게 어떤 나라인가 하는 절대적 명제다. 나는 이것을 가지고 왜 그렇게 씨름을 하는 것일까?

오늘 이런 나의 어려움과 씨름하며 문득 깨우치는 것이 있었다. 왜 나는 현재 나의 조국 대한민국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결국 내가 대한민국 사람이 아닐 수가 없지 않은가? 미국의 좋은 점, 조국의 좋은 점 모두 나에게 기쁜 일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 아닌가? 왜 나는 그런 생각을 못하며 산 것일까?

이제는 아무래도 더 늦기 전에 조국과 더 친하게 되어야 하는 것인 아닌가? 어떻게? 연숙의 수준 정도로 조국의 참 실상을 서서히 알아 보면 된다.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쁘고, 우선 실상을 알아야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더 늦기 전에… 더 늦기 전에…

 

한 세대가 흘러갔을 때…

Welcome, It’s a Boy balloon, at Tucker mailbox post

 

우리의 첫 손자, 새 생명이 태어나는 작은 드라마의 순간들이 며칠 만에 지나가고,  10 파운드짜리  ‘건강한 남자아기’를 안고 아기의 부모가 자기 집으로 돌아왔다. 친정 쪽인 우리 부부는 미리 집에 가서 그들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It’s a Boy!‘ 를 외치는 풍선을 그들의 mailbox post에 달아 놓고서야, 큰 일이 끝났다~ 는 편안한 안도의 심정을 느꼈다. 갓난 아기가 신기하고 예쁘면서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몰라서 쩔쩔매는 엄마, 아빠를 보며 우리도 저랬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연숙은 비교적 침착하게 첫 애를 다루었지만 나는 ‘어벙벙’ 그 자체였던 희미한 기억이 있다.

산모의 부모로서 우리가 할 일을 제대로 했을까? 우리가 할 일이란 무엇인가?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서 위로와 용기를 주는 것 외에 어떤 것들이 있을까? 시댁은 전형적인 Caucasian 이어서 돕는 방식도 그들의 전통을 따르겠지만, 우리는 그것이 아니다. 주위에서 듣는 소문에 의한 ‘한국식 도움 방식’은 암만 생각해도 너무 지나친 것이었다. 숫제 시설의 도움을 받는가 하면 아예 full-time으로 professional helper 흉내를 내는 case도 보았다. 다행히 산모와 애기 아빠가 충분한 출산휴가를 받았기에 큰 문제는 없을 듯하지만, 연숙은 언제라도 20 mile (car) drive를 할 준비가 되어있는 모양이다. 

이번에 산모의 부부가 병원에 머물 때 그 집의 강아지 Senate 는 우리와 함께 큰 딸의 개 Ozzie와 함께 있게 되었는데, 둘의 사이가 아주 좋은 편이어서 우리가 크게 보살 필 부담은 적었고 거꾸로 나는 그 둘과 동네를 걷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이런 것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도움이 아니었을까 희망해본다.

 

good friends, Senate & Ozzie at Saybrook Home

 

아득한 세월 전 우리들의 첫 생명이 태어났을 때의 모습이 엇갈리는 기분을 느꼈다. 특히  1983년 1월초, 새로니, 그 갓난 ‘어설픈’ 생명체를 꼭 가슴에 품어 안고  제왕절개 수술, 1주일 만에 병원을 나와 집으로 돌아왔을 때의 추억이 안 떠오를 수가 없는 것이다.

이번 딸애의 출산 드라마를 겪으며 우리 둘이 100% 공감한 것이 있다. ‘모조리 잊어 버렸다!’ 라는 탄성. 도대체 어떻게 우리가 ‘둘이서’ 그 생명의 드라마 느낌과 경험을 모조리 잊어 버린 것일까? 진화론자들이 즐겨 주장하는 바로 그  ‘세월의 횡포’일지도 모른다. 사실적 기억은 물론이고, 느낌조차 그렇게 희미해졌단 말인가? 유일하게 도움이 되는 것이 있다며 물리적 기억인 ‘사진들’ 밖에 없다.  당시의 사진들 몇 장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렇다. 조금은 그 신비로운 느낌들과 ‘어벙벙’ 하고 초라했던 나의 자화상들이 조금씩 떠 오른다.

모르는 것이 약이라더니, 정말 그 당시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모르고’ 경험한 인생중대사였다. 그러니까 별로 큰 고통과 고민과 고생을 느끼지 않았던 것이다. 바로 그 젊음이었다. 젊음이 주는 ‘무식의 용기’를 마음껏 가지고 있었던 그 시절들이었다.

 

첫 애 새로니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생후 11일 째, Buckeye Village Mahoning Court.

아무 것도 모르고 주위 도움 없이 키우기 시작했던 때, 1983년 2월 초

 

세대는 이렇게 흐르며 현 세대가 때를 마치고 떠나면 다음 세대가 등장, 역사의 주인공으로 살아간다. 지극히 순리적인 진리인 것을 잊고 살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새 생명이 태어나는 ‘출산 드라마’를 가까이서 보고 느끼면, 다시금 모든 생명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를  생각 안 할 수가 없다.

Grandfather, Yellow Perils…

¶  Grandparents at last:   드디어 우리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다.  지난 해 어느 날 갑자기  할아버지, 할머니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느낌을 생생히 기억하기에 이번에 결국 손자가 태어났을 때는 당연한 것으로 느낄 것으로 예상을 했지만 세상사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닌 모양이다. 또 다른 느낌들을 정리하고 처리하느라 사실은 꼭 기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이런 일들이 작은 딸애의 급작스런 ‘속도위반’성 결혼의 결과임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도 정리를 못하는 정말 ‘모든 것이 늦은’ 인생을 사는 한심한 늙은이라는 생각 뿐이다. 주위의 대강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이 인생의 마지막 시기에 찾아오는 ‘손주들의 즐거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지도 잘 알고 있다. 어느 분들은 지나칠 정도로 흥분을 하는데 나는 그때마다 미안할 정도로 묵묵히 응답을 했던 기억이다.

우리 부부의 출산경험은 사실 거의 40년 전에 가까운 태고 太古 적 때의 일이었고, 이번에 다시 가까이 이 출산과정을 지켜보면서, 거의 새로운 것을 보는 듯했다. 오래 전, 두 애 모두 (제왕절개)수술 경험이 있어서 이번의 예정된 수술은 크게 생소한 것은 아니었지만,모든 기억이 사라진 후여서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나이 탓인지 정말 필요 없는 것들이 걱정거리로 둔갑을 하는 모양이다.

그 긴 세대차를 통해서 의학도 발전을 했을 것이지만 세상에 완벽한 것이 있을까? 걱정을 일부러 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경험을 통한 나름대로의 근심은 떨쳐 버릴 수가 없어서 주위에 기도를 청하기도 했다.  한가지 다른 것은 그 옛날 우리아이들이 태어났을 때는 사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는 기억, 그래서 충분히 즐길 수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처럼 한 발짝 떨어져서 보는 것은 비교적 생각을 할 여유가 있어서 그렇게들 즐겁고 기쁜 것이라 내 나름대로 해석을 하기도 했다.

아기엄마(작은 딸) 는 이미 내가 할아버지가 되었음을 강조하느라 지난 성탄 때에는 MY GRANDFATHER’S BLESSINGS이란  DR. RACHEL REMEN의 Bestseller 책까지 선물로 주었으니, 별다른 거창한 생각을 안 하며 기다렸던 나도 이제는 조금 ‘책임감’을 느끼게 되기도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역할은 무엇일까? 나에게 할아버지, 할머니 상은 거의 제로에 가까울 정도로 없다. 한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연숙에게는 그런대로 기억에 남는 분들이 있는 모양이었지만… 6.25 발발초기 때 납북되셔서 기억에 남는 아버지가 없었기에 내가 아빠 노릇 하는 것도 그렇게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는데 이번에는 할아버지 노릇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난감하기만 하다.

태어난 파란 눈을 가진 건강한 남자아기를 계속해서 보니 시간이 가면서 나의 마음에도 평화와 기쁨이 찾아온다.  또한 주위의 친지들에게 태어난 아기의 사진을 보내주니 그렇게 함께 기뻐할 수가 없었다. 특히 반세기 떨어져 살아왔던 고국의 친구들도 제일 마지막으로 할아버지가 된 것을 축하해 주었다. 그들은 ‘정상적, 모범적 인생’을 살았는지 벌써 중학생까지 된 손주들이 몇 명이나 있었다.

이번에 겪는 ‘인생사’는 지나간 오랜 세월 동안 내가 예상하며 살았던,  ‘인생에서 거쳐야 할 큰 사건들’ 중에서 거의 마지막에 속할 것이라 생각이 되어서 조금은 의미를 두고 싶지만, 완전히 ‘세계화’된 여건에서 파란눈의 손자, 사돈들과 어울리는 새로운 모험이 시작됨은 우리 평창이씨 족보에 어떤 의미를 주는 것일지 궁금하기만 하다.

 

¶  Yellow Perils:  Corona Virus, 코로나 바이러스로 주위가 시끄럽다. 이것이 시끄럽게 된 지가 얼마나 되었을까? 우리야 별로 많은 사람들과 접촉할 기회는 많지 않지만 시간이 갈수록 우리도 피할 수 없게 관심을 안 둘 수가 없게 되었다. 당면 문제는 우리가 일 주일에 한두 번은 가야만 하는 ‘도라빌 한국 순교자 성당’이 ‘한국인들의 공동체’라는 사실에 있다.  그러니까… 우리도 다른 한국사람들과 잠시나마 어울리지 않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암만 생각해도 조금 overacting이 아닌가. 본당에서 공식적으로 ‘자발적 모임 자제’는 물론이고 봉사활동의 첨단위치에 있는 레지오 (마리애)의 활동모임도 단장재량으로 취소, 연기한다고.. 꾸리아 월례회의, 사순특강 취소… 사순절인데 어쩔 것인가?  이곳 아틀란타에 위치한 CDC에서도 별로 크게 공포감을 주는 발언이 없고, 다른 미국본당들은 전혀 개의치 않음을 알기에 성급한 한국인의 성질이 이곳에서도 역시.. 하는 생각이 든다.

제일 웃기는 것은 역시 그 문제의 다른 쪽 한국인사제, 미사 때 신자들에게 ‘대꾸도 하지’ 말고, ‘기도도 말로 하지 말고’, ‘성가도 부르지 말고’.. 등등 예의 일장 훈시를 한 모양이다. 역시 그 신부의 해괴한 인상 그대로인 듯.

이번 ‘사건’을 통해서 생각나는 것이 있다. Yellow Peril이란 말을 정말 오랜 만에 떠올렸다. 서양문화가 보는 황화론 黃禍論, 아마도 영국의 역사학 거장 universal historian,  Arnold J. Toynbee가 언급했던 것으로 기억을 한다.1 황화론의 현대적 해석은 다음 세계전쟁은 서방과 중국의 종말전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20세기 중반의 일이었고 당시의 중국은 정말 전 인민이 굶어 죽어가는 한심한 공산독재의 표본이어서 쉽게 이해가 가지를 않았다. 배가 고픈 상태에서 서방에 도전을 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50여 년 후에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이제는 이 말이 장난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어떻게 기본 도덕관념(서구적인)이 거의 ‘의도적’으로 결여된 ‘비정상적 공산주의자’들이 억수로 돈을 벌어서 어떻게 쓰고 있는가. 이런 배경에서 이번의 코로나 전염병을 결과적으로, ‘비밀리에’ 퍼뜨리게 한 짱깨(정부 주도로)들의 행태를 다시 보면서 그들과 함께 춤추는 대한민국을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1. 1960년대 말 한국 시사영어주해 잡지, 월간 ‘시사영어연구’에서 읽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칠십이 년과 마흔 번째..

Ruby Anniversary, 연숙아, 우리들 오래 살았다…

 

¶  지나가는 일주일 동안 나는 칠십이 년을 살아온 ‘태어난 날’ 과, 배우자와 같이 가정을 이루며 산 세월 40년의 기념일을 연속으로 맞게 되었다. 쉽게 말해서 72세 생일, 결혼 40주년 기념일을 4일 간격으로 맞은 것이다.

항상 ‘기념일’로 바쁜 느낌을 받는 1월이어서 솔직히 근래에 들어서는 은근히 스트레스까지 느끼곤 하였다. 그래서 올해는 ‘아이들’에게 모든 기념일 축하는 사절한다고 충고를 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확실히 마음이 조금 편한 듯함을 느낀다.

생일이 그렇게 즐겁지 않다는 것을 애써 부정하는 것도 우습지만, 이렇게 ‘축하 거부’하는 나 자신도 웃긴다. 다행히도 ‘아이들’이 모두 올해는 바쁜 모양이어서 나의 전략은 성공했고 비교적 조용히 ‘미역국만 먹는 하루’를 즐기게 되었다.  진짜 옛날 ‘어렵던 시절’의 생일이 되살아난 듯 해서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이 일흔둘… 허.. 어쩌다가 이렇게 오래 살았는가? 100세 시대라는 말도 웃기지만, 70세면 어떻고 100세면 어떤가? 무조건 오래 사는 것이 그렇게 좋은가? ‘적당한 세월을 적당한 건강으로 적당한 모습으로’ 살다 가는 것, 나는 그것을 바란다. 제발 주위에 큰 부담 안 주고 가면 더욱 더 좋고. 이 세상에 있는 기간과 저 세상의 무한한 세월을 어떻게 비교를 할 수 있을까? 이런 사실을 잊고 사는 우리들이 바보가 아닌가?

가정을 이루고 산 세월이 40년, 이것은 조금은 자랑스럽다. 이유는 자명하다. 그렇게 못 살고 있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어쩌다 이렇게 세상이 변하고 있는가?  결혼 초에 40년 뒤를 내다본 적이 있었을까? 없다. 절대로. 그저 미래는 안개 속에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 안개 속을 헤치며 나아간 우리의 인생,  이제는 조금 피곤을 느끼기도 한다. 무언가 쉬고 싶은 그런 것, 이것이 칠십 년 세월의 느낌일까?

생물학적, 육체적 죽음이 진정한 끝이 아님을 안 이후 이제는 마음만은 편하다. 궁극적 희망이라는 것을 찾았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런 높은 진리를 늦게나마 알게 된 것을 감사하며 일흔두 살의 생일과 마흔 번째 결혼기념일을 조용히 지낸다.

 

연호 친구들, 1968년 9월, 관악산에서..

 

¶  ‘연호 延護’ 옛 친구들:  1월 중순 즈음이 되면 불현듯 떠오르는 옛 친구의 생일 1월 15일이 나를 반세기 전으로 되돌아가, 생일의 주인공인, 잊고 싶지 않은 친구 양건주와 당시 연세대 캠퍼스주위를 중심으로 같이 어울렸던 ‘연호’ 클럽 친구의 모습들이  함께 삼삼하게 떠오른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어서 정확히 1월 14일 저녁, 그러니까 대한민국 시간으로 1월 15일 오전 즈음에 근래에 우리들이 가끔 이용하는 카카오톡으로 생일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솔직히 주인공인 건주의 반응 메시지는 기대했지만 의외로 ‘모두들’이 즉각적으로 생일축하 인사를 보냈고 정말 오랜만에 모두 한마디씩 신년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이런 뜻밖의 ‘모임’은 정말 즐겁지 않을 수가 없다.

반세기를 뛰어넘는 ‘늙은 우정’을 다시 확인한 것으로 나는 만족한다. 모두 어떻게 사는지, 어떤 모습으로 70대를 맞이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모두의 정확한 생일날짜도 서로 확인을 하고 최소한 생일날에는 서로 이렇게 축하를 하자고 하였다.

그 옛날의 철없던 시절의 사진을 다시 보며 나는 숙연한 기분에 빠진다. 전보다는 이런 때의 기분을 잘 조절을 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이유 없이 즐겁게만 느껴지는’ 옛날의 추억을 나는 어찌할 수가 없다. 그저 포근하고 아름답게만 느껴지니…

 

 

¶  오늘은 신년 들어서 첫 ‘등대회’ 월례모임엘 참석을 하게 되었다.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유일한 ‘장년층’ 친목단체인데, 사실 옛날 같으면 ‘노인들 단체’로 분류될 법도 한 연령층인 60~70대가 주 멤버들이지만, 80대 이상의 그룹이 별도로 있기에 ‘노인’이란 말은 피하게 되었다. 우리는 1년 전에 다른 친목단체인 ‘구역모임’을 안 나가게 되었기에 이제는 이곳이 유일한 social group이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 더 정성 쏟으며 이 단체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을 한다. 오늘은 미리 알고 있었지만 1월 달 생일을 맞는 멤버를 축하하는 모임이기도 해서 내가 혼자서 축하를 받게 되었다. 생일을 미역국으로 때우려고 했던 원래의 의도와는 달리 뜻밖으로 이곳에서 정식으로 케이크와 ‘생일축하’ 노래까지 받게 되었다. 멤버의 숫자가 갑자기 늘어나는 듯한 이 모임, 앞으로 어떻게 변화, 발전이 될 것인지 모르지만 제발 ‘분열과 갈등’이 없이 건강하게 지속되기를 우리는 기도하고 있다.

다시 성탄이 지나가며..

¶  공식적 겨울이 시작된 동지 직후의 며칠은 올 겨울의 추위를 예고하듯이 뼈까지 저려오는 싸늘하고 을씨년스럽기만 한 그런 것이었다. 모든 것이 깜깜하게만 느껴지는 초저녁은 과연 일년 중 제일 밤이 길었음을 실감하게 했다. 올 겨울을 맞으며 나는 작은 꿈을 꾸고 있었다. 하얀 눈이 ‘적당히’ 내리는 날 아틀란타 교외 Conyers 에 있는 Holy Spirit Monastery,  Trappists 수도원으로 연숙과 멋진 드라이브를 하는 그런 것이었다.  그곳의 gift shop의 coffee또한 일품이어서, 눈 나리는 수도원의 풍경과 함께 멋진 우리들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역시 그것은 역시 올해도 꿈으로 끝나는 듯하다.  아직까지도 전혀 눈이 올 기미가 안 보이는 것이다.

작년에 비해서 성탄 트리, 장식은 조금 일찍이 끝났고 올해도 이것들은 새로니 생일 early January 즈음까지 성탄씨즌 동안 밤과 낮을 밝힐 것이다. 예년에 비해서 Hallmark holiday movie들을 훨씬 덜 보고 있다. 지난 2~3 년 동안 나는 이것을 정말 즐겨 보았지만 올해는 그렇게 마음의 한가함이 없었던 듯 하다. 갑자기 ‘망가진’ garage door opener  때문에, 성탄 바로 직전까지 tool time (replacing garage door opener) 으로 머리가 복잡했던 것도, 편하게 느긋하게 video를 볼 여유를 갖지 못하게 했다.

그런 와중에서도 성탄 전야에 우리 extended family members 들이 모두 모일 수 있었다. 보통 4명이 모이던 가족행사가 올해는 6명으로 늘었다. 3월 초 출산예정인 작은 딸 부부,  내년 6월 결혼예정인 큰딸 새로니와 그의 약혼자까지 남녀의 비율이 1:1 이 되었다. 세월의 횡포인지 혜택인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세월은 이렇게도 정직하게 흐른다는 것을 절감한다.

 

올해의 트리 장식은 연숙이 모두 했고, 가족들로부터 책을 포함한 선물도 받았다

 

¶  Smart Garage Door,   일년도 훨씬 지나간 작은 악몽의 추억이 아직도 머리 속에 삼삼하다. 2018년 새해 즈음에 갑자기 garage door가 오르내리는 모습이 이상하여 보니 extension spring 하나가 피곤한지 축 늘어져 있었다. 하나의 door 무게가 150 파운드가 넘는데, 2개의 door의 balance는 물론이고 그것이 오르는데 너무나 힘에 겨운 것이었다.  물론  늘어진 extension spring 탓이었음은 알았지만 다행히 opener motor자체는 아니어서 그대로 넘어갔지만 그때의 ‘작은 사고’는 악몽으로 남아있었다.

그러던 것이, 최근에 점점 opener motor의 소리가 요란해지는 것을 알았고, 결국은 이번에 내가 보는 앞에서 door opener motor 에서 연기가 치솟으며 갑자기 모든 것이 조용해졌다. 30여 년의 힘겨운 service를 마치고 ‘영면’한 것이다.  실망 전에 나는 이’놈’에게 감사를 드렸다. 참 오랫동안 정직하게 임무를 수행한 것이다.

이것이 망가지면 불편함이 이만저만 아니다.  이 무거운 차고문을 차에서 내려서 손으로 열고 닫는 것, 못할 것은 없지만 비라도 오거나 하면 낭패지만 새것으로 바꿀 때까지 며칠은 피할 도리가 없었다.

급하게 Home Depot에 가서 opener model을 살펴보고 Internet을 뒤지고 해서 찾은 것이 Chamberlain B750란 놈인데, Belt Drive라서 아주 조용하고 게다가 소위 말해서 Smart Model로 Smart Phone App으로 control이 되는 것인데 나는 이 사실 보다는, 전에 쓰던 screw drive보다 훨씬 ‘조용한’ belt drive라서 이것을 골랐다.

 이것을 고르고 산 것은 쉬운 일에 속하고, 이것을 손수  install해야 하는 골치 아픈 일이 나의 온 신경을 곤두세우게 했다.  Pro의 service도 있지만, $100이상임은 둘째치고 나에게 이런 option은 한마디로 ‘최후의 선택’에 속한다.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이것은 나의 몫인 것이다.

나이의 영향인지 tool을 다루는 감촉도 예전과 같지 않아서 사실 특별히 조심해야 하는 부담도 있다. 전에 garage door spring 사고를 당한 경험도 별로 즐겁지 않아서 일을 선뜻 시작하기가 싫었지만 일단 시작이 되면서 거의 ‘자동적’으로 나의 머리는 ‘공돌이’의 그것으로 서서히 바뀌고 결과적으로 며칠 만에 우리는 최신형 smart garage door opener의 혜택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설치 후 첫 번 가동시에 놀란 것이.. 너무도 조용하다는 사실이었다.  전에는 ‘열차’가 지나가는 소리처럼 시끄러웠는데 지금은 그것이 가냘픈 소음 정도로 변한 것이다. 또한 smart phone으로 control이 되면서 문이 열린 상태를 real-time으로 알 수가 있다는 것, 이것도 아주 편한 점이다. 가끔 집을 떠난 후에  ‘내가 문을 닫았는가..’ 하는 의심이 들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 공정을 되돌아 정리하면 사실 괴로운 순간 순간들이 도처에 매복해 있었다는 사실을 숨길 수가 없다. 또한 각가지 크고 작은 ‘문제’들에 접해서 시간이 pro에 비해서 훨씬 오래 걸렸지만 이것은 나에겐 큰 문제가 안 된다. 시간이 넉~넉 하기 때문이다.

 

Off Day Muses..

¶  제일 따뜻한 양말도 별로 따뜻하게 느껴지지 않는, 겨울느낌의 늦가을이 서서히 계절상의 겨울로 향해 서서히 흘러간다. 더위보다는 추위가 낫다.. 라는 깊숙한 추억으로, 이런 쓸쓸한 싸늘함의 일초 일초를 즐기고 있다. 비교적 유순한 날씨의 차례가 끝나고 매서운 바람에 실려온 시베리아[이곳은 캐나다] 성 냉랭함은 달력의 넘김과 더불어 세월의 움직임을 다시 느낀다.

오늘은 예기치 못한 off day가 되었다. 얼마 전 나를 ‘가볍게 [flu-shot덕분인지..]’  스쳐간 감기가 이번에는 드디어 연숙에게 닥친 것. 이럴 때마다 우리가 공감하는 것 하나가 있다. ‘이른 아침에 (돈 벌러) 나가지 않고, 편하게 쉴 수 있다…’ 라는 안도감. 언제까지 우리가 현재의 pace로 뛸지는 모르지만 어느 정도 살 날이 그런대로 남았다면 이럴 때는 조금 쉬면서, 천천히 가면 됨을 경험을 통해서 익히 알게 되었다.  그래… 하루 푹~ 쉬면 되는 것 아닌가?

근래에 자주 성당 공동체 주변에서 알게 된 나이가 엇비슷한  ‘친구’들을 통해서 그 동안 익숙지 않았던 ‘다른 삶’들을 알게 되면서, 아직도 꾸준히 매일 매일 일하는 형제, 자매님들에게 미안함을 느끼게 되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는 최소한 육체적으로는 편안한 것이라는 사실. 특히 가까이 알고 지내는 사람들 중에도 ‘새벽같이 집을 나간다는’ 사실을 자꾸 잊고, 실없고, 무심한듯한 comment를 하던 내가 부끄럽기도 하다.

 일년 열두 달, 매주 ‘레지오 마리애 화요일’이 우리에게는 主日과 더불어  laborious week 의 절정이기에 수요일 아침에는 언제나 조금 늦게 일어나고 싶은 유혹이 오고 ‘감기’와 같은 사유가 생기게 되면 다음날을 ‘반가운’  off-day로 결정을 한다.  그래도 daily morning mass는 우리에게 변함없는 7년 째 전통과  rule 이기에 이것을 거르게 되면 무언가 허전함을 느낀다.  하지만 매일 아침 보는 정다운 regular들의 얼굴이 떠오르고,  이것이 우리가 ‘우연히 시작한’ best ever life habit 임을 상기하면 절로 무한한 보람과 행복을 느낀다.

 

¶  거의 두 달 만에 Ozzie[새로니 pet dog]가 우리 집으로 ‘휴가’를 와서 열흘 넘게 머물게 되었다. 거의 14년 동안 우리 가족이었던 가족, Tobey가 작년 여름에 영원히 잠을 든 이후로는 다행히 Ozzie가 가끔씩이지만 거의 정기적으로 나의 공허함을 채워주고 있다. 가을이 되면서 동네를 개와 천천히 걸으며 단풍, 낙엽 등을 감상할 기회가 그리워지곤 했기에 은근히 Ozzie가 오는 것을 기다리기도 했다. 이렇게 우리 집에 pet sitting을 하게 되면서 새로니 는 조금 자유스럽게 되니 얼마서 좋은 일인가?

 

¶  Topless Natalie : 요새 심심할 때면 소일거리로 75+년 전의 LIFE magazine을 본다. 내가 태어나기 전 것이지만 20세기 최대의 사건인 세계 2차 대전을 전후로 한 ‘미국의 눈’에 비친 세계상을 화보 중심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사하고 신기하기에 즐겁고 보람된 소일거리로 삼게 되었다. 오늘 우연히 본 것 중에는 topless Natalie (Wood)가 있었다. 비록 6살 짜리 아이의 천진스러운 모습이지만 사진의 주인공이 우리시절의 잘 나가던 여배우 Natalie Wood 인 것, 그것도 상체가 모두 드러난 모습… 이런 사진 배경을 전혀 모르고 인터넷으로 이 모습만을 유포를 하면 요사이 태어난 젊은 아이들 아마도 pedophile로 FBI에 고발이라도 하지 않을까.. 웃음이 난다. 그녀의 부모가 Russia출신이라는 것과 그녀가 매력적인 것 뿐만 아니라 ‘머리가 아주 우수한’ 여배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창 시절에 사고로 익사한 것 등등으로, 역시 일찍 세상을 떠난 The CarpentersKaren Carpenter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했다. 아~~ 모두 옛 이야기들…

Thanksgiving, no turkey

Thanksgiving SongMary Chapin Carpenter

 

2010년대 마지막 해 2019년의 Thanksgiving season 를 한가하게 보낸다. 오랜 만에 진정한 의미의 휴일 같은 기분이 든다. 거의 해야 할 것이 없기 때문인가…  가족의 진화(아니면 퇴화?) 란 것이 이런 것인가? 자식들이 집을 다 떠나고 둘 만 남은 처지에 하루 종일 아침부터 부엌 근처에서  ‘궁상맞게 지지고 볶고’ 하는 모습이 이제는 조금 피곤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는 거의 ‘의무적, 신앙적’으로 이곳 대다수가 하는 대로 생소하게만 보이는 터키를 굽고 거의 정해진 side dish들을 ‘만들고 먹고, 아이들이 생기면서부터는 그것의 규모도 점점 커지며 조금씩 이곳이 고향이 될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생각으로 이날을 맞곤 했다.

아이들이 다 떠난 후부터는 아이들이 모두 모일 때와 안 모일 때가 아주 다르게 지나치곤 했다. 신앙심이 대거로 나에게 돌아오면서 이 ‘감사의 날’을 나는 조금 더 겸손하게 지나간 일년을 되돌아 보며 감사할 것들의 list를 만들고자 했는데, 그것이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다.

그것이 나의 불찰인가… 심각하게 생각을 해보니 감사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 것이 문제였다. 어쩌면 그렇게 큰 것, 작은 것들 고맙다는 생각 없이 살았는가.. 물론 후회거리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고마운 것에 비하면 사실 ‘새 발의 피’ 격이라고 할까… 그렇다면 나, 우리의 삶이 그렇게 변한 것인가, 아니다… 생각하는 관점, 눈의 높이, 삶의 의미에 따라서 이렇게 변한 것이다. 그것을 나는 칠십여의 나이에서 조금씩 알게 된 것이다.

‘그리운 친구’ 양건주의 말대로 ‘세상만사, 생각하기 나름이다’, 그것은 과연 명언중의 명언이었다. 무엇이 나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었나?  나의 인생은 나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 보다는 훨씬 높고 먼 곳에 있는 것이다. 나의 인생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다…

올해의 추수 감사절은 11월의 마지막 날에 ‘거의 다 모인 가족들’과 같이 저녁을 나누는 것과 새로니가 정식으로 propose를  받은 것으로 나에게는 충분한 감사절이 되었다. 또한 오늘은 가톨릭 전례력으로 올해의 마지막 날, 내일은 대림절 Advent의 시작으로 4개의 대림초가 성탄까지 주일마다 하나씩 더 켜지는 희망의 시즌을 기다리게 되었다.

한 해 뒤의 여름

2019년 6월 30일 이른 아침,  갑자기 맑아진 머리와 ‘뱃속사정’을 기뻐하며 지난 한 달을 서서히 회고하기 시작한다. 우선 머리 속에는 작년 이즈음의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얼마나 큰 변화인가? 당시에는 새로운 마음과 각오로 ‘구역장’ 직을 시작했지만 결과는 참담한 후퇴로 끝났던 그 경험, 그것이 시작될 무렵이 바로 작년 이때였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저려오는 나의 ‘작은 친구’ Tobey를 나의 손에 앉고 보냈던 그 때였다. 그래서 6월의 느낌을 나는 자꾸 피하려고만 했던가… 하지만 부질없는 일이 아닌가? 대담하게 ‘세월의 평범한 진리’를 받아들이고 싶다.

어제는 ‘늦은 father’s day’를 받으러 나라니 집으로 갔다. 오랜만에 ‘과음과 과식’의 잘못을 저질렀지만… 후회는 안 한다. 기분이 그런대로 좋았으니까… 하지만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토하고 싶은’ 그런 것, 새롭기까지 했다. 이런 거북한 느낌을 경험한 것이 도대체 얼마나 오래 되었던가? 우선은 괴로운 느낌이었지만 새로운 느낌을 안 느낄 수가 없었다. 결국은 조금 조용히 ‘토하는 것’으로 간단히 끝났다. 아침에 일어나니 100% 정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하기야 맥주를 ‘끝 없이’ 받아 마시며 나의 몸이 이렇게 ‘건강해졌나’ 할 정도로 문제가 없었지만 아마도 음식물의 양이 꽤 많았던 모양이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우리 생활은 현저히 변하고 있다. 우선 ‘모든 일에 전력 투구할 수밖에 없는’ 연숙에게 여가시간이 나기 시작하면서 더욱 그렇다. 오랜 세월 우리에게 부족하게만 느껴졌던 여유시간, 그것이 주는 평화로움은 정말 편함.. 바로 그것이었다.

오늘부터 며칠간은 6월 한달 동안에 내가 쌓은 ‘업적’을 남기려 발버둥 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나의 남은 세월의 한 부분이다. 그것을 나는 남기고 갈 것이다. 누가 보던 안 보던 상관이 없다. 성모님, 나의 어머니는 항상 보실 테니까..

Mother’s Day, soggy..

Soggy backyard, Mother’s Day

 

2019년 5월 12일 오월의 둘째 일요일, 어머니 날의 ‘원조’격인 미국의 Mother’s Day를 맞는다. 2010년대 마지막 5월의 이날은 정확한 일기예보대로 아침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올 봄은 자연의 어머니 손길인가.. 그렇게 때에 맞게 비가 내리곤 했다. 그 덕분에 주변은 눈이 따가울 정도로 온통 초록색으로 덥혔다. 사방이 온통 초록색..  정녕 은혜롭게 느껴진다.

 

대한민국의  ‘어버이날’이란 것이 생기기 전에 그곳을 떠났기에 나의 기억은 어린 시절의 5월 5일 ‘어린이 날’과 5월 8일의 ‘어머니 날’ 밖에 남지 않았다.  어머니 날은 우선 나에게 이 인생을 갖게 해 준 나의 어머니를 생각한다. 어머님과의 영원한 이별을, 이제는 슬프고 아련한 감정을 뒤로하고 어머니의 인생을 ‘기리는’ 쪽으로 살려고 한다.

어머니가 어찌 나를 낳아준 어머님 뿐이랴… 우리 아이들의 어머니를 비롯, ‘법적으로 이어진’ 어머니, 신앙적인 어머님인 성모 마리아.. 모두들 생각만 해도 포근하고 편안하고, 가슴 속 깊이 기쁨이 스며든다.

 

아틀란타 도라빌 순교자 성당의 주보편집 15년, 예비신자 교리반 director 직 5년을 ‘미련 없이’ 뒤로하고  완전은퇴를 선언, 그것을 감행한 연숙, 올 봄은 완전한 자유인으로써 ‘뒤뜰 농원’을 편하게 가꾸는 꿈으로 어찌할 바를 모른다.  아직도 레지오 서기, 매일복음묵상글 e-newsletter를 하긴 하지만 전에 비하면 그것은 시간적으로 자유인을 뜻하기에 지긋지긋한 기억밖에 남지 않는 나의 6여 개월 ‘구역장직’ 경험을 완전히 뒤로한 나도 100% 공감을 하며 조금은 편해진 둘만의 세월을 기다린다.

 

계속되는 비로 grill은 back porch로 옮겨야 했다

 

오늘은 원래 도라빌 한국 순교자 성당이 야외미사를 할 예정이어서 가까운 모처럼 동네본당 Holy Family 성당엘 가려고 했는데, 우천관계로 야외미사가 취소된 것을 핑계로 오랜만에 아예 주일 미사를 쉬기로 했다. 덕분에 진짜 안식일을 맞이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조금은 께름칙한 기분은 떨칠 수가 없었다. 올해의 Mother’s Day는 예년과 완전히 반대로 ‘기운과 신이 난’ 엄마가 손수 가족들을 대접한다고 해서 4명의  ‘식구와 친구들’ 을 집으로 불러서 grill dinner를 나누었다. 모두들 조금은 이상한 느낌은 들었지만 사연을 알고 나서는 고맙게 저녁식사를 즐겼다.

 

나라니가 가지고 온 Mother’s Day bouquet

단상 斷想, Roswell Nursing..

 

Roswell Nursing Center, 비록 review는 별로지만 나름대로,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의 service를 주는 곳

 

Roswell Nursing (& Rehabilitation Center), 우리는 줄여서 Roswell nursing home, 아니면 그저 Roswell 양로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제 레지오 주회합 후,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곳에 들렸다. 이것은 이번 주에 우리 ‘조’ 에게 배당된 최소한 2 시간의 레지오 활동이기도 했다. 몇 년째 되는 이곳에서의  우리의 레지오 ‘봉사’ 활동은, 보통 몇 분의 ‘장기 체류, 중증 치매 환자’인  형제 자매님들을 뵙고, 의사 소통이 가능한 분과는 얘기를 나누고, 그렇지 않은 분들과는 그저 무언의 대화를 하다가 돌아오는 정도다.

처음 이곳을 방문하기 시작했을 때 ‘아래층’ 에 있는 ‘치매환자 병동’을 보고 적지 않은 충격을 느꼈던 것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적은 숫자의 치매증 환자를 이제까지 못 본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많은 환자들을 한꺼번에 목격한 것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환경적으로 이곳은 큰 병원 같은 ‘시설’의 느낌으로 긴 복도에 무질서하게 방황하거나 심지어 엎드려서 기어 다니는 광경은 비록 ‘봉사’하는 마음을 갖고 갔지만 충격적이 아닐 수가 없었다. 이들의 비교적 어두운 ‘아래 층, 거의 지하’에 집단적으로 모여있는 것은 분명히 ‘안전’을 위한 것이지만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금할 수 없었다.

방문회수가 늘어나면서 물론 이런 광경들은 차츰 익숙해지긴 했고, 어떤 때의 광경은 비교적 안정되고 깨끗하게 보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느낌을 떠나서 일단 치매환자들을 개인적으로 만나게 되면 각종 혼란한 생각이 나의 머리를 스친다. 가벼운 망각증부터 심한 중증 치매환자들, 그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어떤  ‘봉사’한단 말인가?

 

 

완전히 자기를 잊고 산다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 내가 아무리 상상력을 동원해 보아도 ‘실감’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들은 어떤 것들을 보고, 어떤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인가? 조금이라도 실감이 되면 무슨 가능한 시늉과 통화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치매의 ‘진행 정도’에 따라서 어떤 분은 우선 대화가 가능하고, 심한 분들은 전혀 통하지 않는다.

내가 이런 분들의 머리 속으로 들어가면 어떤 것들이 보일까, 각종 추측을 해 보지만 사실 아무도 모른다. 오직 그 고통중의 환자만 아는 것이다. 가족들도 전혀 모른다고 하니 그 가족들의 심정은 어떨까?  가끔 가족들이 온다고 하지만 그들도 우리와 별 차이 없을 것 같다. 저 분들이 나의 어머니, 삼촌 같은 분들이었다면… 솔직히 이런 ‘시설’에 놓아두고 싶지 않을 것 같은 ‘사치스런’ 생각까지 든다. 그들도 오죽하면 사랑하는 사람들을 이런 곳에 맡기셨을까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이런 치매 환자들과 다른 분들 즉, 거동이 불편한 분들은 그래도 대화가 되기에 좀 낫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거동의 불편함도 정도가 있어서 ‘말기성 치료 terminal care’ 환자처럼,  나을 가능성이 거의 없는 분들은 정말 이곳이 지옥같이 느껴질 듯하다.  정신은 말짱한데  불편한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하거나, 다시 퇴원할 가능성이 없음을 알고 이곳에 머무는 것, 그것은 다른 종류의 고통이요 형벌이 아닌가? 게다가 말도 거의 통하지 않는 환경에서 어떻게 오랜 세월을 보낼 수 있을까? 가족들도 그런 사정을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방문하는 한 ‘개신교 자매님’도 그런 분이다. 처음 이곳에서 알게 된지 1년도 훨씬 넘는 이 자매님, Parkinson’s 병 환자라 거동이 아주 불편하다. 문제는 이 병이 ‘퇴행성 degenerative’이라 점점 나빠지는 것이고 치료방법이 현재로는 없다고 한다. 그 동안은 그런대로 움직이며 단체활동 (bingo나 auction game같은) 도 언어소통에 상관없이 열심히 하셨는데 이날 보니 아주 상태가 좋지 않았다. 병세 (근육마비)가 점점 중요 장기들에 영향을 미치는 듯 싶었다.  불길한 느낌에 오래 가실 수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시설을 나왔다.

이곳에 왔다가 집으로 돌아갈 때는 반드시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우리가 더 나이가 들거나 건강이 나빠지면 어떤 모습으로 살 것인가.. 하는 ‘당연하지만 방정맞은’ 그런 생각, 안 할 수가 없다. 우리의 나이를 의식하고, 세월의 빠름을 감안하면 거의 실감이 안 날 수가 없다. 하지만, 재빨리 ‘내일 일은 내일이 알아서 한다’라는 말씀을 상기하며 부지런히 차를 Roswell 에서 Marietta쪽으로, 집으로 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