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Glenn, the Right Stuff

John-Glenn-1962

1962년 2월 22일자 동아일보의 1면 기사, 존 글렌의 미국 첫 지구궤도비행 성공뉴스

 

The Right Stuff.. 책과 영화의 제목.. 미국의 우주개발 초창기 때에 관한 얘기들, 특히 첫 프로그램이었던 머큐리의 7인 우주비행사 (우주비행사를 미국에서는 astronaut, 당시의 소련에서는 cosmonaut라고 했다) 들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바로 50년 전, 그러니까 반세기 전, 오늘이 이 프로그램의 절정에 해당하는 기념일이라고 할 수 있다.

1962년 2월 20일은 소련에게 완전히 선두를 빼앗겼던 미국의 첫 완전 지구궤도 비행이 성공한 날이다. 그 우주인이 아직도 90세로 건재한 한국전에도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했던, 해병대 중령출신인 존 글렌, John Glenn, 그는 1969년에 달에 사상 최초로 착륙한 Neil Armstrong과 같이 Ohio주 사람으로, 나중에는 오랫동안 연방 상원의원으로 정치를 했고, 한때는 미국 대통령으로 출마를 하기도 했다.

The Right Stuff의 영화를 보면 짐작이 가듯이 그는 7인의 astronaut중에서도 유별나게 ‘도덕적, 신앙적’인 사람이었고, 그런 곧디 곧은 성품으로 전 인생을 보낸 셈이고 90세인 지금의 나이에도 전혀 나이에 의한 장애를 느끼지 않는 듯한 그야말로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보인다. 나는 이 미국의 첫 지구 궤도비행 성공 소식을 서울에서 중앙중학교 3학년이 시작되기 전 2월에 신문과 라디오 방송으로 들었다.

미국, 소련의 심각한 냉전의 공포 속에서 두 초강국은 우주경쟁을 전쟁의 연장으로 보았다. 하지만 초창기부터 이것은 미국의 절대 열세였다. 1957년의 Sputnik 소련 인공위성을 필두로 Yuri Gargarin의 사상 첫 소련 우주인 탄생 등등 계속 소련의 연전 연승이었다. 그럴 때, 미국은 로켓을 쏘아 올릴 때마다, 거대한 화염에 싸여 곧 추락을 하곤 했다. 한마디로 미국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젊고도 젊었던 40대의 케네디가 대통령이 되고, NASA가 본격적으로 가동을 하면서, 이렇게 John Glenn의 성공적인 첫 궤도비행이 탄생한 것이다.

소련의 입장에서 보면 사실 이것은 별 것이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미국과 미국인들에게 끼친 심리적인 효과는 정말 상상을 초월한 것으로 보인다. 조금 자신감이 생긴 것이고, 케네디 대통령의 “1970년 전까지 인간의 달 착륙과 귀환” 공약까지 나오게 되고, 결국은 이것을 출발점 으로 1969년 여름에 달에 착륙을 함으로써 미국의 승리로 끝나게 된 것이다.

1962년부터 시작된 미국의 space program은 정말 흥미진진한 것이었다. 나는 곧이어 중앙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 같은 반에 있던 윤태석이 수시로 가져다가 교실 뒤의 벽에 붙여놓은 우주 프로그램의 총천연색 화보 (아마도 미국 공보관을 통해서 나온 것)를 보면서 비교적 자세히 알 수 있게 되기도 했다.

그 당시의 신문을 다시 보게 되면서, 그때의 우리들을 생각한다. 그전 해(1961년)에 5.16군사혁명으로 박정희 의장시절이었다. 그러니까 민정으로 이양이 되기 전, 군사혁명 국가재건최고회의에 의해서 모든 것이 통치되던 시절이었다. 경제는 말도 아니었고, 미국 원조 수준은 떨어지고, 휴전선 너머에는 살이 더 찐 김일성 개XX가 침을 질질 흘리고 있고.. 철전지 원수 일본은 우리 동족간의 전쟁 덕분으로 날로 부강해지고, 급기야 올림픽을 눈앞에 두었고, 우리는 구차스럽지만, 일본에게 돈을 꾸어달라는 외교를 해야만 했던 그런 시절.. 하지만 박정희는 ‘한가지를 향해서’ 뒤도 안 보고 달리기 시작하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럴 때, 우리에게는 ‘평화의 십자군’ 으로 보이던 미국에서 이런 신나는 소식이 온 것이고, 따라서 우리는 박수 갈채를 보내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리고 우리도, 무언가 앞으로 ‘잘 풀릴’ 것이라는 그런 희망들이 조금씩 싹트기 시작한 시절이기도 했다.

 

 Bert Kaempfert – “Wonderland By Night”
‘밤하늘의 트럼펫’, 그 당시의 hit instrumental melo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