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 상도동 종점의 고뇌
올해 겨울은 정말 춥다. 아~~ 고뇌.. 이 지독히도 오래된, 아득히 먼 옛날에 내가 자주 되뇌던 표현이 문득 되살아난다. 이유는 간단히 말해서.. 아주 쓸쓸하고 황량한 시베리아 같은 그 때와 같은 느낌의, 뼈 속 깊숙이 스며드는 추위를 느꼈기 때문이다.
정말 이런 느낌은 그 ‘때’ 이후 처음으로 느낀 것이다. 그것이 반갑기도 하고 춥고 쓸쓸하기도 하다. 여기서 말하는 ‘그때’는 거의 45년 전인 1960년대 후반이었고 그 ‘시베리아’는 연세대 재학 시 살았던 상도동 종점 부근이었다.
지금 내가 아틀란타 지역에서 느끼는 ‘연일 계속되는 지독한’ 추위는1 뉴스가 될 정도로 의외적인 기후현상이고 거의 25년간 이곳의 ‘전형적’인 ‘더운 겨울’에 적응이 된 탓에 지금의 지독히 추운 겨울은 바로 ‘그때’ 느꼈던 ‘고뇌’와 비슷한 느낌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 해에 발표되었던 북미주 장기 일기 예보가 정말 ‘까무라칠’ 정도로 적중한 것에 나는 놀라기만 한다. 일기예보과학이 참으로 발전을 한 모양이다. 그 예보에 의하면 서부를 제외한 전체 북미주 전체가 ‘더 춥고, 더 습한’ 그런 것이었는데 현재까지 거의 모두 맞고 있다. 이것으로 global warming 같은 ‘정치적’인 것과 연관을 시키는 것은 무리겠지만.. 과연 어떨까?
옛날 ‘그때’는 20세 전후의 팔팔한 젊음을 자랑하던 때였지만 우리세대들.. 6.25이후 잘 못 먹고 자랐는지 신체적으로 별로 건강한 편은 아니었고, 박정희 정부의 요란한 경제발전 소음은 요란했지만 그것에 비해서 ‘따뜻하고 편한’ 환경은 절대로 아니어서 지독한 서울의 매서운 바람은 정말 ‘고뇌’로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요새 그 흔한 storm parka같은 것도 없었고 overcoat도 너무나 비싸던 시절..시베리아 성 서울의 1월 맹 추위는 정말 겨울중의 겨울이었다.
특히 데이트 같은 것이 늦어져서 시내버스 막차로 상도동 종점 (숭실대학 입구) 에 내려서 집까지 가는 골목의 맞바람 추위는 정말 대단해서.. ‘그때’ 내가 ‘즐겨 되뇌던’ 말이 바로 ‘아~ 고뇌’였다. 이 말을 ‘계속’ 해서 내 뱉으며 어둠 속의 골목길을 걸으며 집으로 향했던 ‘그때’였다. 그 집이란 것도 당시에는 중류층 수준이었겠지만.. 글쎄.. 연탄이 거의 전부였던 시절, 온돌방과 연탄난로의 난방은 사람을 거의 꼼짝 못하게 만들고, 따라서 이불을 깔고 백일몽을 즐기며 아름다움 추억의 씨를 뿌린 기억들 뿐이다. 하지만 그 느낌들은 지금 ‘절대로’ 재현할 수 없는 정말 아름다운 그런 것들이었다.
같은 추위에도 같은 느낌이 꼭 들까? 아닌 것 같다. 이곳 아틀란타 지역으로 이사오기 전까지 나는 거의 Midwest 지방2에서 살았기에 그곳의 진짜 무서운 눈과 추위를 고스란히 경험하였지만 그곳 추위의 느낌은 ‘절대로’ 서울 1월의 느낌과 달랐고, 지금 느끼는 아틀란타 지역의 느낌과도 다르다.
그 ‘북쪽’의 추위는 심리적으로 너무나 추운 겨울을 예상해서 그런지 느낌이 ‘고뇌’성 같이 괴롭지 않았다. 그런 추위에서 거의 ‘걷는’ 일이 거의 없고 지독히 절연된 난방 된 집과 차에 의지하며 겨울을 나면 별로 추운 느낌을 기억하지 못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현재 이곳의 ‘겨울 환경’이 아마도 1960년대 말 서울과 거의 비슷한 것은 아닐까..하는 재미있는 추리를 해 본다.
Bridge over Troubled Water – Simon & Garfunkel, 1970
이 classic oldie가 나의 당시 고뇌를 말해 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