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t Si Bon.. 세시봉..시봉..시봉.. C’est Si Bon은 물론 French jazzy classic.. 1947년에 발표된 이것은 우리에게는 루이 암스트롱과 이브 몽땅 Yves Montand 이 같이 불렀던 것이 익숙한가? 어렸을 때 참 많이도 들었던 이 노래의 멜로디는 아직도 생생하다.1 세시봉의 뜻은 불어101 학생도 알듯이 영어로 하면 It’s so good 정도가 될 것이다. 이 곡을 들으면 나중에 ‘시봉 시봉..’을 계속하는데.. 그것도 so good so good 정도일 것이다. 예전에 나는 이 뜻을 ‘전혀’ 눈치도 못 채고 살다가 요새야 깨닫게 되었다. 참 오랜 세월이 걸린 French를 모르고, 무시하고 살았던 curse 라고나 할까.
Louis Armstrong – C’est si bon (1962)
하지만 여기 제목의 세시봉은 이미 한글의 ‘고유명사‘가 된 말로서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1960년대에 서울에 있었던 어떤 ‘음악감상실‘의 이름인 것이다. 반세기 전이면 사실 ‘골동품’ 냄새가 나겠지만 나에게는 과장을 하면 ‘엊그제’ 같은 느낌의 시절이다. 당시 서울은 99% ‘미국 류’를 따랐겠지만 간혹 이렇게 색다르게 ‘불 류’를 더 ‘멋지게’ 보던 ‘지식층’들도 상당했다. 특히 유행에 민감한 것들이 그랬다. 그래서 이 말이 음악감상실 이름이 이것이 되었는지는 그때의 사정을 잘 모르니 알 길이 없다. 희미한 기억으로 내가 ‘아직도’ 고등학생이었을 당시 대학생이었던 누나가 그곳을 다녔고 그때 나는 ‘세시봉’의 이름을 들었을 듯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당시 서울 장안의 ’20세 안팎 특별히 할일 없었던 아이들’2이 이곳에 모여서 한창 유행을 타던 ‘기타’를 치고 배우며 시간을 소일하던 것이 작은 역사가 되었고 그 중에 상당 수는 ‘프로’로 전향.. 반세기 뒤에는 ‘완전한 역사’가 된 것이 바로 여기서 말하는 ‘세시봉’이다. 나중에는 여기에 70/80이란 것이 붙는데.. 글쎄, 왜 70/80인지.. 아마도 1970~80년대를 말하는 모양.. 하지만 세시봉에는 60/70이 붙어야 더 잘 어울릴 것이다. 아직도 서울의 세시봉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이름의 ‘가게’는 전 세계에 수도 없이 많이 있다. 주로 식당의 이름에 제일 많은 것 같다. 그 중에는 아틀란타에 있는 세시봉 을 빼어 놓을 수 없다. 이 blog의 제목이기도 하니까. 이곳이 바로 얼마 전에 개업한 ‘김철환’씨의 60/70/80 style 세시봉 음악 경양식 집이다.
며칠 전, 아틀란타 세시봉 70/80-style music cafe.. 두 번째로 가 보았다. 지난 년 말에 진희네 그룹3과 처음 가보았고 2개월 만에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이번에는 첫 번째 왔을 때보다 분위기가 익숙해져서 그런지 더 여유 있게 몇 시간을 즐긴 셈이다. 처음에 왔을 때 없었던 새로운 음식 메뉴들이 있어서 모두들 그 중에서 골라 식사를 하였다. 이채로웠던 것은 1970년대 우리들에게 익숙했던 ‘경양식’ 메뉴, 특히 큰 접시에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담아내는 수프 (아마도 portage soup이라고 했을 것이다), 함박스테이크 hamburger steak, 돈카츠 don katzu.. 등등 모두 서울 장안 60/80 style로 추억에 어린 것들이었다. 주인 겸 singer는 ‘김철환‘ 씨인데.. ‘소싯적’에 pan flute 프로였고 우리는 그곳에서 그의 연주 record album이 걸린 것도 보았다. 이채롭고 놀라운 것은 그는 ‘못하는 악기가 없을’ 정도로 수 많은 악기를 연주 ‘했고’, one-man band의 경지가 digital technology를 총동원 한 효과만점의 연기 실력이었다. 그의 vocal도 세월이나 나이에 비해 놀라울 정도의 가창력을 보여 주었다.
처음 가 보았을 때보다 더 가열된 관심이 생기고 같이 갔던 그룹의 모든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이 가게.. 조금 오래 갔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요새 한인 business의 수명이 1~2년이 보통이라는데.. 어떨까? 이런 곳이 ‘명소’로 자리를 잡으려면 우선 ‘경제성 사업성’이 절대적인데, 어떨까.. 암만 연기가 좋아도 그것이 전부가 아니니까.. 나의 생각에는 1) 이곳은 ‘우리 또래를 위해서도’ 오래 지속해야 하고, 2)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또래들이 ‘단골’이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선전함이 필요하다.. 는 것이었다. 경제성이 맞으려면 기본적인 정기고객이 ‘절대로’ 필요한데.. 아틀란타의 고객덩치가 그것을 가능케 할지는 전혀 idea가 없다. 음식이 약간 pricey하지만 그것이 이곳의 특징이라는 인상을 심어주면 문제가 없고.. 70/80 style 을 이곳에 정착시키고 우리 또래의 연령층 이외의 세대들 에게도 이곳의 ‘역사적 의미’를 알리는 곳으로 만들게 되면, ‘명소’의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Owner/Performer인 김철환씨의 ‘약력’은 자세히 모르지만 ‘조영남’씨와 관계가 있는 듯 했고, vocal보다는 instrument쪽으로 경력을 쌓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vocal실력은 예상외로 ‘열창’에 가깝다고 할까.. 인상적이었다. 가끔 ‘신청 곡’도 받는데 4 가끔 ‘이것은 잘 모르겠는데..’ 하는 솔직함도 있었지만 대부분 큰 차질 없는 그는 그 신청을 받아 주었다.
경제/영업성은 아직 개업한지 1년도 안 되었으니 확실치 않지만.. 현재까지 주위의 ‘여론’을 들어본 바에 의하면 생각보다 빨리 ‘소문’이 퍼지는 것을 알았고, 대부분의 ‘잠정고객’들도 이런 곳을 아틀란타의 ‘명소’로 승격을 시켜가는데 관심을 보였다. 그 정도로 우리 세대들이 갈 곳이 없는 것일까? 하지만 들어보면 ‘서울에 가도’ 그런 곳이 ‘별로’ 없다는 말도 있어서.. 어떨까.. 부활절도 끝났으니, 또 한번 그곳을 찾을 때가 다가오지 않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