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촉촉한 단비를..
아~~ 4월도 20일이 되었는가.. 어제가 4.19 사일구 아~~ 내가 너무도 똑똑히 기억하는 그 때.. 가 이제 56년 전이었다니.. 너무하다 너무하다.
요새 습관이 된 듯한 ‘작년의 desk calendar’를 쉽게 보는 것.. Holy Family 성당 에서 준 조금은 ‘조잡하고 간단한’ 달력, 그러나 이곳에서는 이것이 정상적인 달력이고, 한반도에서 나온 달력이 오히려 이상하게 복잡하고 비싼 것이다. 좌우지간 그것을 나의 daily journal로 쓰기 시작한 것이 3년 째.. 몇 년 전에 일어난 중요한 일들은 레지오 수첩과 더불어 이것이 생명선이다.
‘고물’ Android Samsung smartphone의 camera record도 다른 중요한 나의 인생 기록을 남기고 있어서 calendar와 더불어 나는 근래 몇 년간의 삶의 모습은 그런대로 기억을 하며 살게 되었지만.. 과연 이것이 좋은 것인지.. 내가 조금은 ‘작은 것들’에 집착하는 쪼잔한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모른다.
작년의 camera picture에서 나를 즐겁게 하는 것은 비가 쏟아지는 날 front door에서 찍은 것.. Tobey가 밖을 보며 평화스럽게 누어있는 그 모습이 어쩌면 나를 그렇게 ‘천국’에 있게 하는 것인가. 4월의 모습이, 이상적인 4월의 모습이 바로 이것이다.. 제발 잔잔한 비여.. 나를 다시금 즐겁게 만들어주라!
찐한 extreme peace를 가끔 경험하는 요새.. 비록 식사시간이 괴롭긴 하지만 (my tooth, my tooth!) 이것도 보속하는 마음으로 받아드리며 살게 되었다. 언제까지 견딜지 모르겠지만.. 그날까지 평화를 지키고 싶다. 왜 평화가 우리 집에 왔을까? 우연일까? 물론 이제 생각에는 ‘아니다!’ 절대로 우연이 아니다. 모든 곳에 내리는 절대자 주님, 하느님의 자비의 비를 나는 조금씩 맞으며 느끼게 된 것이다. 바로 그것이다. 내가 가슴을 열고 마음을 열고 머리를 그곳으로 돌리니까 보이며 그 단비를 맞게 된 것이다.
3월 달의 보나 자매님을 보내던 과정은 참 역사적인 것이다. 주위의 ‘귀여운’ 자매님 천사들과 같이 기도하며 정성을 들여서 보나 자매님을 천국으로 보내는 그 과정.. 당시에는 바쁘고 슬프고 정신이 없었지만 이제 잔잔해진 시간에 생각을 한다. 비록 하느님을 맞는다는 자세로 가진 않았지만 그것이 큰 상관이 있을까? 그 자매님 우리를 고마운 심정으로 받아들였고 우리도 정성을 다 했으니까.. 여한이 없는 것이다
이것과 더불어 작년 이맘때의 ‘사건’들.. 배 자매님을 보내던 과정들이 달력에 생생하게 기록되어있다. 참 슬프고 기가 막힌 사연의 불쌍한 영혼들을 보았지만 그것도 최선을 다했다는 뿌듯한 심정을 억제할 수가 없다. 나와 연숙이는 최선을 다 했다는 것.. 어떨까.. 지나친 자부심일까?
그제, 새로니가 school break에 우리 집에 왔었다. 예상치 못한 일들을 나는 항상 걱정을 하는가.. 조금은 불안한 심정을 피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나가 소심한 탓일 것이다. 어찌 우리 딸이 오는데 신경을 써야 하는가? 조금은 성숙한 새로니.. 아직도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기도를 계속하지만.. 그래도 그날 새로니는 나의 99점을 받는 시간을 보내 주었다. 우리 차도 ‘정성스레’ 닦아 주었고, Einstein Bros의 lunch 와 wine과 함께.. 그것만이 아니었다. 우리의 ‘경제사정’을 신중하게 들어주고 조언을 하려고 하고.. 심지어는 엄마와 같이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아주 ‘이성적이고, 솔직하게’ 했다는 사실이 나는 믿어지질 않는 것이다. 우리의 기도가 .. 아니면.. 성모님.. 우리 어머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