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연시를 모두 놓친 느낌..
나는 요사이 느낀다. 깊은 곳, 속에서 우러나오는 그 ‘평화의 샘, 평정의 샘’이 예전에 비해서 덜 하다는 것을.. 그것은 어떨 때는 거의 고통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왜 그럴까? 나이가 들어가는 것과 상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 비록 내가 앞으로 어떻게 ‘죽어갈 것인가’ 하는 것에 큰 공포는 없을지라도 어찌 그것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인가? 나는 이제 분명히 하느님을 믿게 되었고, 인간이 되신 하느님의 존재와 역사도 믿게 되었지만 성인이나 현자는 분명히 아닌 것이다. 문제투성이의 이경우 ‘시라소니’ 란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 않은가?
현재 나를 가까이서 괴롭히는 것은 점점 심해지는 치통일 것이고 이것이 거의 정기적으로 나를 우울하게 하는 것은 틀림이 없다. 그렇다면… 어찌 나는 이렇게 속수무책일까? 고통은 고통으로 다른 뜻으로 받을 수도 있지 않은가? 그렇게 호들갑을 떨며 고통을 호소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이렇게 고통의 순간을 나에게 다른 쪽을 바라보고 깨달을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는 없을까… 모두 나의 궤변일까?
예년과 조금 다른 성탄, 새해를 보내며, 조금은 아쉬운 감이 없지는 않으나 그래도 ‘가족적’인 의무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간신히 가부장의 위치를 고수하고 있지 않는가? 주위의 가부장들은 여행도 가고 즐겁게 사는 것, 모르지 않고 부럽기도 하고 은근한 부러움을 넘어 시기심이 일기도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그것이 나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 아님을 직감적으로, 피부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2020년 이후에 확실하게 다가오는 ‘그 큰 놀라운 순간들’을 기다리며, 모든 것을 미루며 지내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 않은 전략이 라고 생각하니까… 그때까지 모든 것을 미루어 보자…
하얀 눈을 노래하다시피 기다렸던 올 겨울, 비록 12월은 겨울처럼 추위는 느끼게 해 주었을지언정 그 ‘하얀 가루’ 는 하늘에서 안 내려오고 있다. 게다가 현재 1월은 거의 늦은 봄같이 따뜻하고 비의 연속으로, 연숙의 ‘수선화가 피게 생겼다!’ 고 외치는 ‘지겨운’ 언급을 나는 매일 들어야 하게 되었다. 그래… 이런 것들 우리가 어찌할 것인가? 천상 어머니의 소관이 아니던가? 하지만 첫 눈이 올 무렵 Conyers, Monastery 로 drive를 하자.. 는 거의 바보같이 감상적인 느낌들, 올 겨울의 기다림으로 살아가는 나의 모습도 가관일 듯하다.
1월의 달력도 반 이상이 깨알 같은 글씨로 가득하다. 그래도 매일매일 열심히 살았기에 그렇지 않을까? ‘무거운 1월’의 느낌은 주로 새로와 나의 생일’, 그리고 결혼기념들이 몰려 있어서 그런 것이라 나는 이번에 용감하게 ‘생일모임 사절’을 선언했고 새로니도 마찬가지.. 잘 했다.. 생일이 왜 그렇게 힘들어야 하느냐 말이다!
레지오, 자비의 모후, 생각만 해도 우울해지는 것, 어찌하나? 3명의 실질적 단원이면 위기중의 위기지만 이제는 거의 잘 적응이 되었는지 예전처럼 우울하지는 않다. 하지만 솔직이 체면은 말이 아니다. 특히 월례보고를 할 무렵이면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 된다. 의연금 $30.. 도 그렇지만 진짜 문제는 더 나아질 가능성이 안 보인다는 슬픈 현실에 있다. 나는 속수무책이고 연숙이 동동 뛰는 모습도 그렇고,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 모든 문제의 시발점인 그들 2명의 거의 미친X들에게 모든 불똥이 튈 수밖에 없는 바람직하지 않는 상태까지 되고… 야~~~ 이 병신 같은 미친X들아.. 너는 미쳤다.. 모든 것을 망쳤다… 소리소리 지르고 싶은 심정밖에 들지 않는다… 그 중 한 명의 미친X이 최근에 슬금슬금 비굴한 느낌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고 측은하기 전에 분통을 감추기도 힘들다.
큰 일이 기대되지 않던 1월에 나와 연숙은 역시 ‘하늘에서 내려 온 과제’라고 생각하여야만 하는 일들을 맞는다. 3명 단원의 우리 자비의 모후에서 2명이 ‘차출’되어 ‘토론대회의 주역’을 맡게 된 것… 생각을 해 본다. 못할 것 없지만 이런 timing에 혹시 무슨 뜻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이것이 우리의 레지오 과정에 어떤 영향이 있는 것은 아닐까? 조금 귀찮은 심정은 떨칠 수는 없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늦었다. 2월 26일 까지 부담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나아가는 수 밖에는..
그래… 나는 아직도 제일 큰 가족사의 변화를 의식적으로 피하고 있다. 그것이 나를 가슴 속 깊이 비수로 찌르고 있다. 나는 아직도 작은 딸에 대한 그 무언가를 간직하고 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내가 할아버지가 된다는 그 사실을 나는 거의 무조건 ‘척’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나도 놀란다. 나는 아직도 방관자의 입장에 서 있는 것이다. 나는 할 수가 없다. 어찌할 수가 없다. 모든 것은 시간과 세월이 해결할 것이라는 사실만 기대고 있다… 아, 하느님이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