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hargeable Keyboard & Mouse Combo

어제 도착한 keyboard & mouse combo, 아무리 대량생산을 한 것이라도 손끝으로 느껴지는 촉감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 정도로 인간의 감각은 특별한 것인가? 이 다른 감각, 불편하기도 한 것인데 역시 ‘이것도 지나가리라’의 하나다. 부지런히 쓰면 또 서서히 나도 모르게 적응이 될 것…  왜 사치를 부리며 이것을 $30이나 주고 샀는가, 후회를 안 할 수가 없구나. 유일한 이유는 지금 쓰고 있는 wireless mouse의 short battery life였는데. AA size battery 한 개의 값이 얼마나 하길래… 나의 한심한 우려, battery를 ‘자주 교체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제는 후회를 안 할 수가 없다. 조금만 더 생각을 했어도… 유일한 위로는, ‘이것을 연숙에게 주고 싶어서’ 라는 것 밖에 없지만 그것도 큰 기대는 안 한다. 분명히 ‘안 쓸 거야!’ 하는 대답이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예측은 100% 틀린 것이었다. ‘고마워’하는 표정으로 받아 편하게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래 살아도 아직 서로 모르는 구석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지난 밤에도 첫잠이 드는데 그렇게 고생을 한 기억, 왜 그럴까?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언제부터 잠이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새벽 6시 반의 heating소리가 날 때까지 계속 꿈꾸듯이 잤으니 말이다. ‘살았다’ 하는 안도감이 어둠 속을 걸어 나오는 나를 기쁘게 한다. 오늘은 또 어떤 날인가… 아하~ 연숙의 치과, deep cleaning 하는 날이구나. 그리고 나는 어느새 다가온 요한복음 공부하는 화요일, 일주일을 쉬었기에 조금 서먹서먹하기도 하지만 이번에는 어떤 공부와 깨달음을 얻을까 기대를 한다. 가능하면 오늘 내로 ‘독후감’ 을 비롯한 글을 ‘순식간에 쓸 수 있는’ 기적을 바라기도 하지만… 솔직히 자신은 없다. 결국, 이런 것은 내 머리와 의지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서서히 나도 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 오랜만에 ‘commercial’ TV 를 켠다. 아무래도 현재의 사태들에 조금은 둔감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2월 초 ‘짱깨 올림픽’을 피하려고 시작된 TV blackout이 Putin으로 이어지며, 그 기간이 거의 3주 이상이 되었으니… 나도 조금 지독한 인간인가? 이것은 솔직히 나도 괴롭다. 어떤 news를 피하며 사는 것이 현명하고 건강한 것인가… 이런 노력, ‘특정한 사건이나 인간’을 ‘안 보려는’ 노력은 비교적 근래에 생긴 정말 나도 싫은 해괴한 노력, 일이 되었는데… 이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된다. 내가 변한 것인가, 세상이 변한 것인가?

내일 요한복음 공부에 대비한 독서를 ‘간신히’ 마쳤다. 이것 읽은 것 내용 자체는 큰 어려움은 없다. 문제는 역시 나의 맹점, 책의 저자에 대한 반감,반발이라고나 할까? 나는 왜 이럴까? 그의 문체인가 그의 과감하지만 오만한 필체일까? 간단히 말하면 겸손하지 못한 듯, 지나치게 선교를 하려는 듯한 말투가 정말 거슬리는 것이다. 1권도 그랬고 2권도 그랬다. 이제는 나의 마음을 추스를 때가 온 것은 아닐까? 이제는 그가 말하는 의도에 더 신경을 쓰고 주목을 하면 어떨까?

매일미사, 미사도 못하고 걷지도 못한 하루가 조금은 허무하기도 하지만, 어때 그런 날도 있는 거지. 덕분에 편하게 간섭을 안 받고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할 수 있었던 것, 좋았다. 지나치게 많은 듯 나의 옆에 쌓여있는 ‘사랑하는’ 책들, 그 중에 손이 가는 것을 잡아 좋아하는 부분을 읽는 것, 누가 그 즐거움을 짐작을 할 것인가?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이런 나의 삶이 과연 올바른 것일까?  나는 무엇에 관심을 갖고 사는 것이 좋을까? 현재의 ‘과학+신앙’ 이외에 무엇이 더 있을까?

아~ 거의 잊고 있었다! 내일이 3월 1일, 삼일운동, 유관순 누나도 생각해야겠지만 나, 우리에게는 특별한 날이 아닌가? 나로서는 1980년 3월 1일은 연숙과 다른 특별한 날이다. 그날 나는 사랑하는 대한민국을 마지막으로 떠난 날이다. 우선 ‘슬프다’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아무에게도 나는 이날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하고 살았다. 부끄럽다는 생각밖에… 어찌 나는 그렇게 살았는가? 마지막으로 가족의 배웅을 받으며 김포공항을 떠나던 날.. 그리고 다시는 돌아갈 수가 없었던 날이 3월 1일, 1980년… 이것은 나에게는 인생의 드라마 중에 하나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해석할 수는 없을까? 그날 이후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지 않았을까? 나름대로, 나름대로… 하지만 아직도 절대로 나는 미안한 날, 부끄러운 날로 남는다.

다음 3월 1일은… 1992년 3월 1일 즈음, 우리의 집, 현재의 집으로 이사를 온 날, 30년 전! 어떻게 이 집에서 우리는 30년을 살았는가? 30년! 코흘리개 아이들이 다 커서 손주들을 남기고… 우리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나는 직장생활은 비록 지속했지만 만족스러운 결말을 내지 못했던 어렵고 고통스런 암흑의 시절을 보낸 어두운 그림자들…

그 이후 3월 1일은… 2012년… 아~ Holy Family CC에서 매일미사를 시작 했던 날이었다. 이때부터는 비교적 은총의 세월이 시작된 것으로 보면 된다. 현재까지.. 현재까지… 은총으로 살아왔다.

이런 연유의 3월 1일, 유관순 누나와 성모님 엄마의 도움과 은총을 기억하는 날이 되었고 가급적 이날 우리는 ‘때려먹자’라는 말로 기분을 돋군다. 내일도 마찬가지가 아닐지… 만천홍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으니까… 다른 때는 주로 동네의 Lemon Grass였었지… 그것도 기억하고 싶은 추억으로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