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t & Milder, Foggy & Misting…
요란하게 예보되었던 ‘비, 가을비, 초겨울 비’ 대신에 이슬비가 포근한 땅으로 잔잔히 내리는 아침이다. 잠시 앞문을 열고 눈에 익숙한 모습을 남기고, ‘수경이네’ 단톡방에 올려 놓았다. 수경이네가 이곳에 왔던 것이 거의 20년에 가까워온다는 사실을 믿을 수는 없지만 이것으로 우리 집 주변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기억해 보라는 뜻도 있었다. 수경아~ 벌써 보고 싶다.. 하루 속히 이곳으로 날라 올 수 있기를 기도한다!
새벽 6시 central heating 잔잔한 소음, 불과 20분 만에 꺼진다. 기온이 많이 올랐다는 뜻이다. 별로 가볍지 않은 머릿속, 아~ 또 왜 이러는 것일까? 보기 싫은 ‘쓰레기’ 급 단상斷想들이 분명히 나를 괴롭힌 것이다. 오늘은 참을 성을 가지고 아래층 전깃불이 켜지는 시간을 기다렸다가 일어난다.
분명히 일기예보는 온통 비와 천둥이 치는 밤, 새벽을 예상하게 했는데~ 또 속은 느낌. 바깥을 보니 온통 어두운 안개.. 속을 자세히 보니 역시 땅은 젖어있었다. 나의 속마음을 조금이라도 씻어주는 세찬 비바람을 원했지만, 어찌 세상이 나의 뜻대로 돌아갈까?
오늘은 정말 이상하게도 기분이 그렇게 가라앉을 수가 없었다. 어제 ‘마포 종수 후배’와의 45분 간의 긴 통화 이후부터 그런 것을 보면 분명히 지난 10월 콜럼버스 중앙 후배들과의 ‘서울역 재회’로 느끼게 된 새로운 깨달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11명의 ‘잘나가는’ 후배들, 모두 그곳에서 꾸준히 만나며 사는 모습이 그렇게 부러운 것, 반대로 나의 모습은 상대적으로 그렇게 외로운 기러기처럼 보이는 것, 지극히 ‘정상적’, 자연스러운 반응이 아닐지,
진정한 행복의 길, 원칙에 ‘남과 비교하는 삶의 폐해’에 대한 것이 제일 중요한 것, 모를 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이런 삶은 단계가 낮은 거의 인간 본능에 가까운 것이어서 한눈만 잠깐 팔면 이 비교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이 문제다. 이런 ‘잡념, 유혹, 고민’에 대한 나의 돌파구 중에는 예수님의 진복팔단 眞福八端 Beatitudes , 행복의 대헌장이라고 할까, 그것을 묵상하는 것이 있는데… 이것 역시 얼마나 진지하게 복음말씀을 이해하는가에 달려있다. 오늘 내가 이것을 통해서 효과를 보았는지는 솔직히 말해서 아직 잘 모른다.
올해 성탄 lighting은 왜 이렇게 문제가 많은가? 문제는 작년에 쓰던 것의 일부분이 ‘망가져’서 그런 것이고, 새로 한쪽만 산 것의 색깔이 글쎄 전의 그것과 다른 cool color가 아닌가? 섞어도 될 것이라 희망을 했지만 실제로 켜보니 솔직히 별로인 것이다. 어쩔 것인가? 고장 난 것을 고치면 되는데 솔직히 말해서 열의가 없다. 기를 쓰고 노력하지 않는 것이다. 일단 lighting은 켜졌으니까 조금 시간을 두고 고치는 시도를 계속하면~~ 연숙이 몇 년 전부터 이 장식에 유난히 신경을 쓰고 있음을 아는데 나는 어찌 이렇게 항상 뒤쳐지고 시큰둥한 하고 있단 말이냐? 그래 조금이라도 신나게 할 수 있는 모습을 보이면 얼마나 좋을지…
내일 주일미사는 ‘순간적 기지’를 발휘해서 조금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듯하다. 아~ 우리 동네 Holy Family 성당 주일미사! 이것 도대체 얼마만인가? 마지막으로 그곳으로 주일미사를 보러 갔던 때가~~ 달력을 찾으면 알 수 있을 듯한데 지금으로서는 전혀 idea가 없다. 그만큼 오래된 것 같으니까.. 처음엔 내일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엘 가기가 싫어서 미사를 빼먹을 생각까지 하다가, 순간적으로 이렇게 마음을 고쳐 먹은 것이다. 감히 대림절 첫날을 어떻게 빠질 수 있단 말인가? 왜 순교자 성당엘 가기 싫었는지, 간단하다. 갑자기 monster처럼 출현한 그 ‘제3의 미친X’ (이제는 부부), 영성체 하러 줄 서서 나가는 뒷모습조차 보기 싫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