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h Wednesday, 재의 수요일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고~ 조금 비 정상적인 수면시간이 되었구나. 어제는 연숙이 ‘잠이 쏟아지는 것, 못살겠다’ 며 저녁 묵주기도까지 마다하고, 거의 2시간 일찍 침실로 갔는데, 그것의 영향을 피하기 싫고, 나도 일찍 ‘파했는데’, 그것도 모자라서 6시 반, 평소보다 30분 늦게 일어난 것. 하지만 OK, 무겁던 머리가 훨씬 가볍게 된 것 감사해야지~
‘난생 처음’, 재의 수요일 미사를 한국어 미사, 순교자 성당에서? 재의 예식도 이곳에서~~ 처음, 처음.. 미국성당이나 한국성당이나 의식 자체는 다를 것이 없지만 분위기는 같을 수는 없다. 고향으로 온 것은 반갑지만 다른 고향 Holy Family 성당 아침 미사, 정말 장구한 세월의 추억이 남은 곳을 일단 떠났다는 사실은 아련한 아쉬움, 아픔으로 느껴지는 것, 어쩔 수 없다.
나도, 우리도 변하고 변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아니 변해야 ‘산다’라는 당위성까지 느끼는 2026년의 사순절 시작을 맞고 싶기도 하고… 그래서, 서로의 합의로 ‘난생 처음’ 순교자 성당 정오 ‘재의 수요일’ 미사엘 가게 된 것…
재의 십자가를 구 주임신부님으로부터 받은 것, 새롭고 조금은 감회에 젖기도.. 이제 이 주임 신부님도 서서히 이임을 준비하는 해를 맞고 있으니 올해가 마지막 인지도..
이제 사순절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수요일을 맞으며 올해는 약간의 시상詩想까지 느끼게 되었으니~ 세월과 나이의 은총인가? 읽는 시, 시상은 수없이 보아왔지만 내가 쓰는 것은 완벽한 제로다. 하지만 팔십이라는 숫자가 지긋하게 누르기 시작하며 조금 용기가 생긴다. 나의 것, 나의 시상은 도대체 무엇인가? 구질구질하게 긴, 횡설수설 산문체에서 떠날 수 없는가? 100 단어의 표현보다 5단어의 시의 위력은, 아마도 이것이 아닐까? 개인적, ‘개별적 상상의 혜택, 은총’ 같은 것.. 구체적인 것이 추상적으로 승화하는 것, 결과는~~
오늘 아침의 몇 단어는 ‘불에 탄 유해, 재로 변한 인생, 가까워지는 생의 종말..’ 등등..
재를 이마에 찍고
거울을 본다
지워지는 것은
젊음이 아니라
내가 붙들고 있던 이름들
나는 아직
부서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