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의 마지막 해,마지막 달…

2000년대의 마지막 해, 마지막 달이 성큼 나에게 다가왔다. 별로 생각 없이 그저 또 ‘부담스러운’ 성탄의 달이 왔구나 생각을 하다가.. 생각해보니 2009년이 지나가려고 하고 있음을 알고 조금 더 부담을 느낀다. 그리고 2000년대가 그러니까 decade가 저물고 있음을 생각하고.. 2000년대가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또 생각을 한다.

올해 Thanksgiving도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우리 사랑하는 작은 가족이 같이 turkey를 먹을 수 있었다. 새로니가 큰 언니답게 부지런히 움직여 주어서 10시간 넘게 drive를 해서 모이게 되었다. 덕분에 우리가 구해 주었던 Izzie[kitten, cat] 와 다시 만나게 되었다. 아마도 이런 게 ‘인연’, ‘운명’, 아니면 ‘숙명’이 아닐까. Tobey & Izzie는 아마도 우리와 운명을 같이 하는 하느님의 선물인지도 모른다. 부디 행복한 삶을 우리와 살기를 기원한다. 나에게는 나의 오래 전의 끔찍한 ‘죄’를 보속 받을 수 있을 지도 모르는 그런 하느님의 배려라고 나는 믿고 싶다.

나의 수중에는 Cash $450의 ‘거금’이 있다. 아마도 연숙도 짐작은 할지도 모르지만 그 액수는 확실히 모를지도. 그것은 상관이 없다. 유혹이 너무나 많다. 그렇게 갖고 싶어 하던 VT-enabled CPU/PC를 살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인가..도 생각했지만 거의 포기를 한 상태이다. 그것도 아주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게 훨씬 더 많음을 실감한다. 내가 지금 이 세상을 떠난다면 제일 아쉬워할 것이 무엇일까? 가족이겠지. 그 다음은 … 아마도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 그 중 에서도 우리 보다 덜 행복한 사람들.. 그것이 지금은 더 중요하게 느껴지고 아니 그렇게 느끼고 싶다. 그렇다. 그 돈은 이번에 오는 성탄을 생각하면 써야 한다. 가족들의 선물과, 자선단체, 조금이라도 우리와 연관된 친지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으로 쓰리라.. 다짐을 하는데 문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써야 하는지.. 그러니까 역시 devils in the detail이 아닐까..

 

지금 이 entry는 사실 조금 ‘과장’된 system environment에서 씌어지고 있는 것이다. 조금 나에게 자만심을 줄 만큼 사실 convoluted 된 remote access 인 것이다.  지금 나는 Cobb Central Library에서 우리 집에 있는 VM-WINXP-EN-2라는 virtual machine 을 remote desktop으로 access하면서 거기에 있는 OneNote로 이 entry를 edit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사실 조금 과장하면 거의 ‘기적’에 가까운 technique 이 아닐까? 최소한 10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하던 그런 쾌거이다. 정말 it’s a wonderful life가 아닐까?  물론 이것은 Hamachi VPN의 덕분에 가능한 것이지만 역시remote desktop mode는 정말 필요할 때만 쓸 것이, speed penalty가 너무 심하기 때문이다. 생각을 한다. 이 speed bottleneck이 어디에 있는 것일까? Hamachi VPN 자체에 있는 것일까.. 아니면 Cobb Central wireless에 있는 것일까.. 이것은 다른 곳에서 test해 보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언젠가 Panera에 laptop을 가지고 가서 test를 해 보면 조금 더 idea를 얻을 수 있겠지.

오늘도 비가 많이 온다. 예보처럼 ‘폭우’는 아니고 그냥 잔잔하게 꾸준히 내린다. 경우야, 너는 언젠가부터 rain person이었지 않니? 그냥 비가 좋았지. 환경 탓으로 눈은 포기한지 오래지만 비만은 언제나 나를 즐겁게 해 주었지. 하지만 올해는 조금 신경이 쓰인다. 아늑한 실내가 있어야만 비를 즐길 수 있는 것인데, 그게 gutter가 주룩주룩 새는 바람에 꿈이 깨어졌고, 설상가상으로   이제는 나의 차 Voyager가 비가 새고 있으니..조금 ‘아늑한’ 꿈은 깨어지고 말았다. 해결책은 모두 손을 쓰면 된다. 불가능한 것이 아니니까.. $$도 크게 필요하지 않으리라 희망을 한다. 다만 그 놈의 사다리를 타는 게 겁도 나고, 따라서 일을 하는데 신이 나지를 않는다.

 

그런대로 싸늘하지만

그런대로 싸늘하지만 바람도 없고 햇빛이 가득한 오전.. 다시 피곤한 몸을 이끌고 Cobb Central에서 가방을 풀었다. 온몸이 어제 하루 종일 대청소를 한 탓으로 그야말로 뻑적지근~~하다.  운동으로 그 힘든 bench press해도 이렇지 않았는데.. 역시 이건 ‘운동’이 아니고 ‘노동’이라서 그런가 보다. 며칠간 머릿속에 맴돌던 마리에타2구역의 모임이 어젯밤에 있었고 식구 셋이서 열심히 노력을 한 덕분에 무사히 잘 끝을 맺었다. 거의 2년 만에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였던 family room을 청소한 셈이다. 여름 내내 거기서 밤잠을 잤건만 참 생소하게 느껴짐은 역시 나의 하루 일과가 거의 100% 그 좁고 덥고 밝기만한 나의 study에서 이루어져서 그럴 것이다. 벽에 걸려있는 엄마의 1980년도 사진을 다시 보았다. 얼마나 젊어 보였을까? 내가 연숙과 결혼할 당시의 사진이다. 가슴이 뭉클하고.. 또 말을 잊는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내가 Cobb Central로 ‘출근’을 시작한 것이 10월 19일 이었구나.. 그러니까 거의 한 달이 되어간다는 말인데.. 이건 조금 나도 놀랐다. 벌써 그렇게 되었나 하는 우려가 깃든 (그러니까 세월이 더 빨리 간다는 걱정?) 생각에 싸인다. 하지만 시간감각에 상관이 없이 나는 이 ‘쾌거’를 단행을 했다는 사실에 더 주목을 해야 한다. 경우야.. 너는 아직 그렇게 늙지도 않았고 죽지도 않았다.  현재 까지는 사실 이곳 Cobb Central(CC)에 오면 새로운 환경의 분위기를 만끽하느라 특별히 계획을 세워서 하는 것이 아직 없다. 이제 한 달 동안 ‘즐거움’만 맛보았으니 이제부터는 무언가 ‘이루어야’ 한다.

 

Halloween, Cobb Central

11월 들어서 처음의 entry인가…… Halloween eve에 쓰고 처음이다. 올해의 Halloween은 아마도 처음으로 비가 주룩 주룩 내리는 그런 날이었다. 바람도 불고 땅도 완전히 젖어서 아무도 오지 않으리라는 예상은 조금 틀려서 그런대로 아이들이 다녀갔다. 하지만 예년 같이 날씨가 협조를 했으면 옆의 Rhodes네 식구들 특히 David같은 친구는 집 앞에 앉아서 treat를 했겠지만.. 올해는 그런 모습조차 보이질 않았다. 조금 쓸쓸한 기분인데.. 이게 사실 우리 집도 몇 년 전부터 느끼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그런 것들이 확실히 느껴져서.. 쓸쓸하게 느껴진다.

그날 밤부터 Summer Time (Daylight Saving Time)이 풀어지면서 standard time으로 돌아왔다. 한 시간 아침에 버는 것인데, 나에게는 아침에 깜깜한 방을 헤매는 것이 조금 나아졌다. 7시경에 조금은 밝으니까.. 대신 저녁이 무섭게 빨리 깜깜해 졌다. 세월은 어김 없이도 정직하게 흐른다.

10월 19일 월요일부터 시작된 나의 out-of-closet to Cobb Central (library)은 기대보다 더 잘 진행되고 있다. 최소한 일주일에 3번은 그런 식으로 집을 벗어나고 있다. 초점은 우선 집을 나온다는 사실에 있다. Library에서 하는 일은 아직 심각한 것은 별로 없다. 그게 지금은 중요한 게 아니다. 나의 life style을 조금이라도 바꾸는데 우선 목적이 있지 않은가?  Laptop을 가지고 ‘나의 차’를 타고 거의 private office같은 곳에서 거의 무한정의 책들을 접하는 몇 시간은 정말로 황홀하기만 하다. 그래서 그런지 시간이 더 빨리 간다. 하루 종일 있고 싶은데 그게 아직은 조금 무리일까? Remote Access setup도 많이 진척이 되어서 거의 완벽한 단계에 온듯하다. 덕분에 Hamachi VPN도 다시 찾았고.. 이제는 VoiP 만 연결이 되면 완전하다.

며칠 전에는 속을 끓이던 Sonata windshield crack을 고쳤다. Internet 으로 찾아서 Cobb Galleria근처의 Office Park parking garage에 있는 곳으로 가서 손을 보았는데 그 고친 친구가 참 독특한 친구였다. 중년의 black man이었는데.. 참 stereotyping의 무서움을 다시 느끼고 반성을 하게 되었다. 이런 black도 있구나.. 하는 생각.. 나는 정말 이런 것을 반성을 해야 한다.

나라니가 며칠 전에 드디어 Starbucks를 그만 두었다. 아주 지친 듯한 느낌이다. 하기야 비록 part-time이라고는 하나 2 jobs를 뛰는 것은 힘들다. 하지만 그것보다 그 주변 사람들에게 더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어찌 그것을 모르랴…… 나라니야.. 앞으로 그런 일들이 더 있을 것이다. 어떻게 그것을 handle하느냐 하는 것 그것이 인생을 사는 지혜인 것을 알게 될 것이다.

 

9월을 보내면서…

Come September……란 미국노래가 있었지. 멜로디는 금방 생각이 안 난다. 그리고 Try to Remember란 노래에도 9월이 나온다.  Try to remember the kind of September…… 아…… 또 지나가는 9월.. 이렇게 또 세월은 지나가는 건가.  별로 한 일도 없으면서 말이다.  아마도 이것저것 연결이 잘 안 되는 그런 잡스러운 것들을 조금씩은 했을 꺼다.  하지만 그것들이 제대로 서로 연결되는 것이 없는 게 내가 하는 일들의 특징이고 내 인생의 특징이고.. 나의 최대의 문제점이다. 이걸 나는 이렇게 애도하지만 사실은 잠재적으로 즐기고 있다고 생각도 한다.

 이번 이 blog은 처음으로 OneNote로 부터 출발을 시도한다. 그러니까 Word Press의 조잡한 editor를 쓰지 않고 이 powerful OneNote를 base camp로 쓴다는 말이다. 오래 전부터 생각은 했지만 나의 특유의 ‘생각만 하고 실행을 안 하는’ 그 골칫거리 덕분에 이제야 시도를 한다. 하지만 이렇게 늦게나마 하는 것이 또한 나의 특징이라고 할까.  참 나란 놈은 내가 생각해도 우습 기만하다.   이것은 나의 home server의 My Little Corner(MLC) 의 blog에 Diary tag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9월 15일이 최근 것인데 제목이 “한 줄 이라도 쓰자” 이었다…… 후후후.. 보름 동안 한 줄은커녕 한자도 못썼지 않은가? 왜 이렇게 쓰는 것이 힘 드는 것일까? 나의 매일 routine이 나를 이렇게 만드는 것일까?  하지만 그 동안에 serony.com blog의 new entry를 썼는데 아직 upload는 못했다. 제목은 “아…재동학교” 이다. 오랫동안 머릿속에서만 맴돌던 것들을 정말 두서없이 썼다. 조금은 속이 후련했다.

 그 이후로는 사실 나의 머릿속은 이곳의 날씨로 가득했다. 작년의 정말 ‘즐겁던’ 가을 날씨만 그리며 기대를 했는데 정반대의 현실을 보게 되었다. 밤까지 계속되는 끈적거리는 날씨를 보내더니 결국에는 ‘장마 형’ 홍수까지 보게 되었다. 6월부터 시작되던 나의 날씨혐오증의 거의 터지기 일보직전 이었다. 그런 게 결국은 Mother Nature의 도움으로 그제부터 하루아침에 가을이 와버렸다. 조금은 어리둥절할 정도로 변화가 심했지.  나의 지금 사는 방식이 나를 이렇게 한 가지, 그것도 쓰잘 것 없고, 소용없는 것에 매달리게 하는 것일까?  한 마디로 내가 바쁘지 않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내가 직장생활을 할 때 이런 것들을 경험한 기억.. 거의 없으니까.

 연숙의 2009 Sonata의 license tag은 결국은 tag office에 가서야 받을 수 있었다. 예전의 기억만 의지해서 우편으로 오는 것만 기다리던 내가 조금 우습기도 했다. 이제 Sonata는 100% 연숙의 차가 되었다. 내 이름은 그것에 아무데도 없다. 조금 섭섭할까 우려했지만 반대로 기분이 좋다. 왜 그럴까?  또한 번개처럼 떠오르는 것..을 사고야 말았다. Arduino라는 Made In Italy embedded board인데 $30정도 이었다. 물론 작은 돈은 아니지만 이 정도로 나를 위로할 수 있는 것도 드물다. 언젠가는 깊게 가지고 놀 그런 고급 toy가 아닐까?

 그 동안 또 한 가지 routine이 된 것이 있다. 아침마다 Tobey walk을 할 때 cell phone으로 나의 Google Voice phone #로 전화를 거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나의 PIAF-GV  home pbx를 test하려는 것으로 시작이 되었다. 이것으로 전화를 하면 Ext 104 (@DADPC)의 voice mail로 연결이 된다. 그러면 maximum 3분 가량 이야기를 record할 수 있다. 이것을 거의 매일 하다 보니까.. 이게 일기처럼 느껴진다. 나의 목소리도 생각보다 초라하게 들린다. 조금 실망을 했다. 그리고 참 내가 말을 정말 안 하고 사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이렇게도 말하는 게 힘이 든단 말 인가. 하지만 거꾸로 생각을 해 보면 이것을 매일 하면 ‘연습’이 되어서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지난 8월초에 구역교우 엄 형제가 귀국하면서 송별 구역모임에서 뜻밖에 guitar로 우리부부가 노래를 불렀는데.. 그걸 계기로 다시 guitar를 잡게 되었다. 물론 거의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조금씩 생각이 나는 걸 보고 조금 놀랐다. 하지만 나의 목소리는 완전히 갔다는 것을 알았다. 목소리를 거의 죽이고 살았지 않은가. 조금은 겁도 나고 해서 의도적으로 목소리를 돋운다. 밤마다 하는 묵주기도에서도 일부러 목소리를 높이게도 되었다.

 한 가지 good news라면 정말 우연히.. 조금은 계획적이기도 했지만.. 현재 쓰고 있는 Actiontec internet modem을 오래 전에 쓰던 Alcatel SpeedTouch Home과 거의 버리기 직전의 Dlink router로 바꾸어 보았는데…… 이게 그때부터 Internet speed가 눈에 뜨이게 빨라졌다는 것 인데… 이게 우연인지.. 정말 모르겠다. 그래서 요새는 web browsing이 조금은 즐거운 일이 되었다. 동기는 물론 router에 있다. QoS 가 VoiP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는데.. 그러려면 QoS router가 필요했다. 그래서 또 거의 돌발적으로 Linksys WRT54GL router를 사고 말았다. 이것은 embedded LINUX firmware를 쓰는데 open source QoS router firmware가 이곳 저곳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계획은 이것을 router로 쓰려는 것이다. 그러면 VoiP을 쓸 때 outgoing voice quality가 많이 나아질 수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래저래 조금 $$을 쓰고 말았는데…… 나도 excuse가 있다. 그 동안 allowance로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올해는 yard work도 별로 없어서.. 더 그렇다.

 

First thing, Last

매일 한 줄이라도 쓰자.. 라고 얼마 전부터 생각을 했다. 그저 또 ‘실행’을 ‘안’ 할 뿐이다. 나의 자유라고.. 안 하는 것도 나만의 자유요 특권이라고 생각을 했겠지.  이제 이곳이 나의 세계, 나의 우주에서 정말 유일한 마음의 낙서장, 휴식처, 상담자가 되었다. 내가 유일하게 가식이 아닌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곳, 그게 유일한 위로다.

가을 같지도 않은 ‘엉터리 가을’로 접어든다. 정말 올해 여름으로 시작되는 ‘개 같은’ 이곳 날씨 이렇게 싫어 해본 적이 있을까? 날씨 가지고 불평하는 게 과연 올바른 것인지 모르지만 내가 탓할 수 있는 것 몇 가지 중에 가장 인기가 많은 곳일 게다. 한마디로 ‘개 같은’ 날씨다. 나를 괴롭힌다고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 짜증이 난다. 요새는 그 발악이 최악에 달해서 간밤에는 70도의 끈끈한 밤 같지 않은 밤이 되었다. 하지만 9월도 중순으로.. 생각에.. 첫 ‘추위’도 며칠 안 남았을지도.

정말 결과를 추적할 수 없는 ‘일’ 같지도 않은 것으로 몇 달을 보냈다. 내가 사랑하고 그런대로 정열이 남아있는 이 ‘일’들.. 나는 또 세월을 허송하고 있는 것이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일주일이라도 잊고 마음 편하게 지내는 게 더 현명할지도 모른다. 나는 그것을 못한다. 왜냐하면 너무나 무언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Steven Covey의 말 대로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에 거의 모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도.

하지만 조금 위안을 삼는다면, 지난달 새차를 구입했다는 것, 이건 암만 생각해도 참 큰일을 한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졸이며 연숙이 minivan에 낑낑거리며 오르는 것을 보며 괴로워했는데 그게 순간에 없어졌다. 이건 참 기분이 흐뭇하고 좋은 일이다. 그래 이것만은 나의 initiative로 시작된 ‘거사’인 것이다. 나에게 축하를 해 주어야 할 일인 것이다.

 

2009 Hyundai Sonata GLS

나의 사랑하는 일기야.. 미안하다. 이렇게 또 늦게 너를 찾아왔구나. 찾기는 늦었지만 생각은 거의 매일 하였단다. 찾아 오려고 생각을 할 수록 더 너를 피하게 되는 나의 이 요상한 습관은 또 무엇일까? 조금이라도 무언가에 늦는다고 생각만 하면 포기해 버리고 그것도 모자라 아주 잊으려고 발버둥 치는 나의 이 아주 요상하고 이상한 습관과 생각들… 죽기 전에 다 고치고 싶은 그런  것들이다.

나의 머릿속에 있던 중요한 project들은 비록 요리조기 피하며 꾀는 부렸지만 예상외의 ‘과제’ 를 한 것은 그래도 조금은 흐뭇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새 차를 사게 된 것이다. 8월중의 반 이상은 아마도 이것을 생각하며 살았다고 해도 될는지.  이상하게도 견디기 싫은 이번 여름을 조금이라도 잊게 하여 주었던 것… 거의 10년만에 있는 ‘새 차 사기’ 행사.. 그 동안 생각만 하면 나의 가슴이 저며오던 새 차 사기.. 왜 그럴까.. 연숙이 해가 갈수록 이제는 그렇게 어울리지 않는 suburban style (soccer mom’s) minivan과 싸우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저며 왔고.. 사실 나의 신세가 괴롭게 느껴지기 까지 하였다. 경제적인 사정이 이렇게 사람을 위축시킬 줄이야.. 물론 연숙이 새 차를 사 달라고 조른 적은커녕.. 불평한마디 없이 잘 타 주었다. 문제가 생겼을 때도 그런대로 잘 너머가 주었다. 다만 길거리에서 strand가 되었을 때는 정말 panic상태로 괴롭히지만  그것도 그때 뿐.. 하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문제가 생기만 다른 차가 있어야 하고.. 그 점점 높게만 느껴지는 차를 타려고 ‘애를 쓰는’ 모습은 꿈에서도 나타날 지경이 아닌가..

조금씩 ‘주가’가 오르는 rollover IRA를 보면서 바보스러운 제안을 하게 되고.. 연숙이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그것에 나는 용기를 얻게 되었다. 이번만은 서로가 무언가 맞았다. 그래서 거의 10년만에 조금은 걱정 없이 탈수 있는 새 차를 사게 되었다. 비록 IRA 의 balance는 떨어 졌어도 사실 그게 큰 문제는 아니다. 그것은 이제부터 우리가 필요하게 쓸 자원이 아닌가. 언제까지 살지는 모르지만 지금 이렇게 쓰는 것은 확실히 아주 잘 했다고 생각해 본다. 더 비싼 차도 조금 아쉽지만 다행히 나와 연숙은 그런 것에는 그렇게 연연하지 않지 않는가? 2009 Hyundai Sonata GLS… leather 가죽시트를 하였고 gas mileage도 거의 32마일이 넘는 4기통 앞으로 유지하기도 무리가 없는 .. 사실 우리에게 과분한 차 인지도 모른다.  이것은 100% 연숙의 차로 하였다. 법적으로도 연숙의 차다. 나는 그저 옆에서 유지하는 것을 도와주면 된다. 아.. 하느님 감사합니다. 이 어려운 시절에 이렇게 저희에게 ‘사치’를 허락해 주셔서 조금 저의 마음을 위로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지난 두 달은 더위를 핑계로 ‘해야 할 일’에서 거의 손을 떼었다. 조금씩 진척을 보이던 정기적인 blogging도 이제야 처음으로 붓을 들게 되었고.. php/mysql쪽도 그렇게 손을 놓고 말았다. textpattern도 그렇고.. wordpress/joomla도 그렇다. 맥없이 손을 놓고 말았다. 물론 매일 매일 머릿속을 떠난 적은 없었다. 그게 나의 특유한 병신 같은 습관/고질이 아니던가? 나라니 가 새 laptop을 사게 되어서 나에게 ‘고물’ laptop이 굴러 들었다. 생각처럼 active하게 쓰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많은 역할을 기대한다.

같은 날 밤에 다시 쓴다. 역시 Kristie건 다른 곳이건 밖에 나가서 (뒷마당이 아닌) ‘일’을 끝내고 들어 오면 정말 기분이 날라간다. 이래서 그렇게 지겹게도 느껴지던 ‘회사생활’을 했나 보다. 긴장감을 조금이라도 느낀 후에 무슨 결과를 내고 ‘살아있는 진짜 인간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후에 왔으니 이런 결과를 보는 것은 사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예측하기 어렵지 않은가? 나는 이것을 진짜 잘 알고 있다.  거의 똑같은 pattern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내일은 슬프게만 느껴지는 9/11 8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날과 나의 그 동안의 커다란 생활의 변화, 나의 이러한 좋던 나쁘던 간의 기억과 추억들.. 무엇인가 혼동이 온다.

그렇다, 2000년 이후 나는 정말 커다란 ‘관’의 변화를 겪어 오고 있다. 2001년의 9/11, virtual retirement, 2002년의 장모님 타계, 2003년의 어머님 타계, 2004년의 새로니졸업, 나라니 대학입학, 2005년에 있었던 너무나 많았던 또래들의 장례식, .. 나의 우울증.. 2007년부터 시작된 나의 묵주기도생활.. 고질적이던 악습의 청산.. 정말 나의 인생에서 파란만장한 10년을 보내고 있다. 특히 죽음에 대한 나의 생각은 너무나 많은 변화를 보였다… 한마디로 죽음이 두렵지 않다. 너무나 두렵지 않은 사실이 오히려 두렵게 느껴질 때도 있다. 주위의 친지들의 말을 들으면 너무나 생에 애착을 보여준다. 그게 나는 그렇지 않아서 그들에게 나의 그러한 의견을 보여 주는 게 오히려 이상하게 보일까 걱정일 뿐이다. 그저 그들은 반 농담으로 들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 나는 참 비관적인 인생관을 지금 가지고 있는 지도 모른다.

 

희망이 없는 자..

일본 TV 드라마에 ‘희망이 없는 자’라는 게 있었다. 결국은 computer에서 지워 버리고 만 그런 종류였다. 하지만 여러 가지 장면들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 조금은 강렬한 그런 것이었다.  사람이 희망이 없다는 것은 정확히 무슨 뜻일까?Financial problem도 있을 것이고, 무슨 불치병도 있을 것이고.. 정말로 많은 이유로 희망이 없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중에서 제일 심각하고 무서운 게 별로 위에 말한 물리적인 이유가 없이 희망을 못 찾는 것일 것이다. 나는 내가 무섭다. 바로 내가 바로 그런 종류의 ‘희망이 없는 자’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사실 현재 별로 희망이 없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마음의 여유를 찾을 듯 해서 그런 게 아닌가 했지만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 앞으로 살아야 별로 즐거울 것이 별로 없을 듯 느껴져서 그럴까. 그래 별로 없을 것 같다. 나이는 자꾸 들어서 ‘병신’으로 변할 것이고, 가족관계도 여기서 더 나아 질 수 있는 그런 것도 아닐 것 같다. 삶에 대한 ‘재미’가 없다. 누군가 재미로 인생을 삽니까 하는 개새끼들이 있지만 그래 재미가 있으면 더 살아야 하는 이유가 되지 않는가?나는 사랑했던 내가 거의 본의 아니게 떨어져 산 엄마가 현재 이 세상을 떠나셨다. 그것이 아주 큰 ‘희망이 없는’ 이유 중에 있다. 나의 유일한 혈육인 누나도 만날 수도 없고 만난들 알아 보지도 못할 것이다. 이게 무슨 ‘비극은 없다’인가? 나는 정말 비극의 남주인공인 듯 하다. 내가 왜 이렇게 까지 흘러 왔을까? 언제부터 이렇게 모든 게 꼬였고 망가지기 시작 했을까?누구도 남을 탓을 할 수는 없다. 핑계를 대자 치면 한도 없고 끝도 없겠지만 다 핑계일 것이다. 모든 것이 나에게 책임이 있다. 능력, 용기의 부족과 바보스러운 성숙하지 못한 나의 판단, 선택에 있을 것이다. 그것을 돌릴 용기도 없고, 현명한 선택을 다시 하기에 모든 것이 다~~~ 나를 지나쳐 버렸다. 한마디로 늦은 듯 하다.

이런 고통을 덜 느끼려고 그렇게 마약과 자살을 했을까?  절대로 찬성은 못 하겠지만 지금은 지금은 조금 이해는 한다.  결국은 종교적으로 갈 수 밖에 없다. 인간은 왜 태어났으며 이렇게 유한한 생명을 가지고 있고, 무엇을 희망으로 보고 살아가는 것일까. 교리대로 하느님 나라가 영생이라면 그곳으로 더 빨리 가면 더 낫지 않을까.  하지만 이것도 교리다. 인간의 생명은 나의 것, 개개인의 것이 아니라는 것. 다른 말로 내 마음대로 못하는 것.. 그러니 자살이란 것은 내가 신앙인이라면 상상도 못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요새 들어 많이 상상도 하고 심지어는 즐기어 상상을 한다. 이게 참 나쁜 것이 아닐까?  하늘에 먼저가신 엄마가 이런 나를 보시면 무엇이라고 하실까? 빨리 고통에서 벗어나 그곳으로 오라고 하실까, 아니면 고통스러워도 그곳의 행복을 추구하라고 하실까?

이런 꿈도 꾸어본다. 빨리 누나와 엄마와 같이 그곳에서 만나게 되는 그런 꿈이다. 하느님 나라를 정말로 믿는 다면 우리는 100% 분명히 다시 만날 것이다. 생전에 보지도 못하던 아버님도 만나게 될 것이다. 언젠가 분명히 만나게 될 테니 그렇게 빨리 갈 필요는 없지 않을까?  나는 지금 현재 아주 depress된 그런 상태이다. 그러나 위에 있는 글들과 생각은 내 나름 대로 논리적으로 나온 것 들이다. 절대로 망언들은 아닌 것이다.

 

Life Journal

나의 Life Journal이 이렇게 조그맣게 시작된다. 소리 없이 조용히 죽어 버릴지도 모르고.. 빛도 없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작이 반이다.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 이런 믿음으로 오늘을 기억하자.  사실은 지금 이곳은, 그러니까.. http://vm-xampp/wordpress/는 나의 private life journal이다. 제일 중요한 목적은 나에 관한 모든 life-long data를 이곳에다 옮기고, 매일 매일 필요할 때 마다 참고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현재 내가 매일 쓰는 weblink도 이곳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Daily journal도 좋지만 life-archiver, daily reference로도 쓴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비교적 자주 쓰던 More Icon, Sticky.txt, Journal.rtf, Blog.rtf란 것이 있다. 이것은 역사가 조금은 축적된 편이라서 아주 유용하게 쓰고 있다. 이것들을 이 wordpress web으로 옮겨올 것이다.

 

하루에 한 줄이라도..

하루에 ‘한 줄’이라도 이곳에 쓸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특별한 일이 있어야 하거나 꼭 나의 ‘괴로운’ 마음만 이곳에 늘어 놓는 것이 조금 부끄럽게 느껴져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슬픔과 기쁨의 비율이 거의 균형이 맞게 쓰면 더 좋을 듯 하다.

사실 겉보기에 세월이 이렇게 날라가는 듯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도 아니다. 자세히 기억을 해 보면 순간 순간 많은 생각과 내 나름대로 ‘일’을 안하고 무위도식한 기억은 거의 없다. 육체적인 일이 아니면 최소한 생각과 ‘공부’는 계속하고.. ‘배운다’는 자세는 예전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이것만은 자부하고 싶다. 나에게 있어서 최고의 가치는 무언가 모두에게 유익한 것을 ‘배우는’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불쌍하게 여기거나 심지어는 싫어할 정도로 느낀다. 어떻게 그렇게 살까 하는 의아심 이다.

그래.. 이 나이에는 쉬면서 즐긴다는 것이 대부분 사람의 바램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사람들의 쉬거나 즐긴다는 게 정말 뻔하다.. 크루즈..여행..골프..식물 가꾸기..그래 그것도 좋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즐거울까. 나는 동조하기가 좀 그렇다. 이해는 가지만 동의는 못한다. 나는 절대로 그렇게 살지 않을 것이다. 무언가 ‘창조’적이고.. 무언가 ‘인류’에게 유익한 것을 남기고 싶다. 이게 그렇게 거대한 것은 아닐 것이다.

어젯밤에도 가끔 보는 서울의 거리로 꿈의 여행을 해 보았다. 이 꿈의 특징은 정말 기억하고 싶은걸 잠에서 깨면서 빠른 속도로 잊어버린다. 하지만 그 여운은 잔잔하게 나를 생각게 하고 심지어 즐겁게 한다. 왜 그렇게 나에게 좋은 느낌의 여운을 남기는 것일까. 그것은 사실이 아니고 꿈이라 그렇겠지. 사실을 이제는 내가 그곳에 가게될 처지가 되더라도 겁이 나는 게 사실이다. 즐거움보다 실망이 더 클 거라는 우려 때문일까. 이것은 내가 생각해도 지나친 걱정이다. 이게 나의 문제이다. 너무 미리 생각을 하고 걱정을 하는 나.. 나도 안다. 아… 이 좋은 꿈을 거의 잊어가고 있다. 더 또렷하게 생각이 나면 얼마나 좋을까.

2009년도 거의 5개월이 지나가고 있다. 무엇을 했으며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계획적으로 한 것은 또 부끄럽게 거의 없다. 즉흥적인 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한 것도 사실이다. Asterisk/PIAF home pbx는 조금은 나의 자랑 꺼리다. 작년에 처참하게 실패했던 기억의 project가 아닌가. 그런대로 거의 실용화 시켰다. 지금 매일 쓰고 있지 않는가. 나의 자랑 꺼리다. 이것이 10년전에만 가능했다면 우리식구에게 최고의 home pbx service가 가능했을 터인데.. 지금은 연숙과 나만 쓰고 있으니 조금 아깝다.  하지만 진짜 나에게 아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professional-grade web-application이다. 이게 나의 장래의 꿈이고 목표다. 이게 나의 말년을 지탱시켜줄 인생의 해답일까. 나의 모든 것을 이곳에 집중을 시키면 내가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할지 해답이 나올 듯 하다. 나는 이곳에서 해답을 찾고 싶다.

가끔 나의 반생을 아니 더 그 이상을 차지해온 결혼/가정생활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왜 이 당연한 ‘생활’을 생각하려는 것일까. 가끔 꿈을 꾸는 듯 하기도 해서 내가 조금 놀란다. 연숙과 아이들로 된 이 가정의 존재가 가끔 그렇게 생소하게 느껴지니 말이다.. 결혼전의 인생이 더욱 더 나의 머릿속을 맴돌고 있으니.. 이게 문제일까..

 

횡설수설, 넋두리

이제는 이곳의 날씨를 거의 달 별로 짐작할 정도가 되었다. 그만큼 세월이 지나야 그런 것도 느끼게 되나. 며칠 전부터 또 축 쳐지는 듯한 기분이지만 별로 놀랠 일도 못 된다. 이게 거의 나의 정상적인 ‘기분’이었지 않을까.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이경우의 최악과 최저를 느끼며 산 게 이제 얼마나 되어가나.  10년이 되어가나. 놀라지 않는다. 10년은 결코 이제 예전과 같이 길지 않으니까.  그리고 죽음을 느끼며 살게 된것도 얼마나 되었나.  아마도 이것도 조금 과장해서 10년이 되어가지 않을까. 만성적인 불안과 초조를 나는 조금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가. 그래서 만성인가. 나는 희망이 거의 전혀 느껴지지 않는 그러면서도 불안과 초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거의 허송세월을 아니 죽을 날 만을 기다리며 사는지도 모른다.

하느님과 성모님도 여기서는 나를 못 도와 주신다. 내가 바뀌어야 하는 것도 알지만 나는 그것을 ‘절대로’ 못하고 있다. 그렇게 거의 사반세기를 살아 온지도 모른다. 절대로 의도와는 반대로 주위의 사람들에게 절대적 피해를 주어가며 살았는지도.  엄마도 그렇게 잃었다.. 누나도 그렇게 잃어가고 있다.. 친척들도 그렇게 하나씩 잃어가고 아니 잃고.. 친구들도 다 잊어갔다.  이제는 아마도 나와 같이 살고 있는 사랑하는 식구들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재미없는 남편이고 재미없는 아빠로 산다.  왜 이렇게 까지 내가 되었을까.. 나는 절대로 이렇게 살아가려고 생각한 적인 순간도 없었다. 나는 재미있는 남편,.. 더 유머러스 한 아빠가 되리라고 절대적으로 장담한 그런 사람이다.  남에게 절대로 피해를 주며 살기 싫고 그런 사람을 제일 싫어하는 사람중의 하나라고 자부를 해 왔는데..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니… 어쩌다 내가 이렇게 되었을까. 

Hitching a Ride…

내가 싫어하는 muggy summer pattern이 며칠째 계속된다. 밤에도 덥게 느껴진다. 물론 추위의 ‘조금 귀찮은 느낌’은 없지만 이건 내가 사실 아주 싫어하는 그런 날씨다.  가끔 이렇게 봄/여름의 맛을 미리 ‘강’하게 보여주는 게 이곳 날씨의 특징임을 이제는 확실히 배워 느낀다. 오래 살게 되면 다들 이렇게 배워 느끼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지나치게 ‘한가’해서 느끼게 되는 것일까.. 둘 다 조금씩 진실이 있을거다.

지금 내가 무슨 ‘일’ 을 해야 제일 좋을까? 제일 내가 좋아하고 실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내가 잘 알고 있는 것을 활용 해야 한다. 그게 win-win전략이 아닐까. 10+ 여전 전에 시작 된 Internet의 출현은 처음에 나에게 많은 ‘희망’을 주었다. 무슨 secret treasure같은 그런 것… technology자체도 매력의 우선 이었지만.. 그게 나의 senior year를 해방시킬 수도 있다고 정말 정말 믿었다. 나만 그런 것이 물론 아니었지만 나는 그런대로 그 흐름의 중심에 서서 일을 한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정말 chance가 많았지 않았을까.. 결과적으로는 1%도 나는 살리질 못했다.  drive를 못한 탓일까.. 아니면 내가 나의 technical skill-set 을 너무 과신 했을까..

지금 이 시점에서 과거를 보며 분석하는 게 그렇게 도움이 될 듯 하지 않다. 지금을 시작점으로 다시 시작하면 어찌 될까.. 과거의 좋은 것만 ‘만끽’하고 실수나 아쉬움은 정말 잊는 것이다. 노력을 하면 힘들지도 않을지도.. 시도도 않해 보았다. 나에게 그런대로 실현 가능성이 있는 것들 중에..Internet를 빼고는 많지 않다. 항상 머릿속은 그런 idea로 꽉 차있었다…  아하… 또 듣는다… Hitching a Ride  (Vanity Fair)!…. 용현아.. 오늘은 너의 날이다!

드디어 ‘더운 밤’을 느낀다. electric fan이 벌써 필요한가. 짜증이 난다. 체질적으로 나는 더운 것은 싫다. 추운 게 더운 것 보다 낫다. 물론 ‘이상’ 기온은 분명하지만 이건 싫다. 지난 여름에 감사하게 썼던 tall tower fan이 다시 등장 했다. 이게 연숙이 Costco에서 사온 것인데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연숙의 office에 다시 켜 놓았다. 조금 시원해 진 듯…

fence, Tobey fence

어제는 드디어 dog fence의  post에 concrete를 붓고 고정을 시켰다. 이런 일이 사실 몇 년만인가. 10년도 넘은 듯.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dog fence가 아니고 ‘바깥 일, yard work’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제는 David 네 쪽으로 24’짜리 privacy fence를 시작 해도 될 듯하지 않은가. 하지만 진짜 문제는 lumber hauling이다. 2년전 (벌써?) 연숙과 같이 lattice board를 차 위에 실고 오다가 길거리 한 가운데서 떨어졌던 생각만 하면 아직도 아찔해서.. 더 그 이후로 그런 비슷한 일을 피하게 된다. 하지만 더 이상 피할 필요가 있을까. 잘 계획을 세워서 privacy fence를 만들어 볼까.  그러니까 8′ post 가 6개와 2×4 10개 정도 그리고 30+ pickets.. 얼마나 들까?

새로 보는, 이미 3번이상을 보고 지금도 보는 jTVDrama “무리한 연애”는 소재도 그렇고 뒤끝 맛도 그렇고 또 하나 나의 best classic이 되지 않을까.. 남자 60세가 뜻하는 것을 ‘연애적’ 감정과 배경에서 아주 코믹하지만 심각하게.. 그리고 중요한 기분 좋게 그려낸 걸작이다. 주인공은 아마도 왕년에 rock band (유명한) 의 member인 듯 하고.. 일본에서 1947년부터 1949년까지 세대를 ‘단까이’ 세대라고 이름을 부친 모양이다. 아마도 여기의 baby boomer정도가 아닐까.  그 짧은 때 태어난 세대에게 무슨 확실한 특징이 있었던 것은 ‘어른이 되기를 거부한’ 그런 처음 세대가 아닌가 .. 여기서도 마찬 가지겠지만.. 그래서 한국은 그런 면에서 어떠한지 모르겠다.  우리세대에 그런 확실한 획기적인 특징이 있을까?  모르겠다.

daily journal은 사실 자기 전에 써서 그날을 되돌아 보아야 하는 것인데.. 어쩌자고 꼭 제일 기분이 좋은 아침에 써서 쓰기는 좋은데 어제를 되돌아 보게 되는 결과가 되었다. 하지만 어찌하랴.. 요새는 잠자는 시간이 거의 11시 전으로 내려오고 그때가 되면 사실 잠 때문에 정신도 없고,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연숙에게 미안하고 면목도 없다. 목표는 12시쯤 자서 6시쯤 일어나는 것 같은데.  다시 노력을 해 볼까.

 

CCR night

지난 금요일 저녁에는 예정대로 (갈 마음은 예전대로 별로였지만) 백형 네 부부와 Mable House Amphitheater에서 Creedence ClearwaterRevisited concert에 갔었다.  알고 보니 2명이 original member였고 나머지는 다 그런대로 젊은 사람들이었다. 100%가 다 즐겨 듣던 대 히트곡이라 그거 하나는 정말 감회가 새로웠다. 청중들은 예상대로 거의가 우리 또래의 baby boomer들~~~~~~  CCR concert는 결과적으로 만족했다. 거의 모든 히트곡이 원래가 시끄러운 것이라 더 새로웠다. 하지만 진짜 original에는 못 미친 곡도 많았다. 조금씩 variation (tempo etc)을 주었으면 다 낫지 않았을까. 거의가 같은 시끄러운, 빠른 템포라서 나중에는 조금 지루한 그런 느낌

머릿속은 계속 1969/70년도로 돌아가서 용현이와 어울리던 곳에 머물러 있었다. 확실히 생각나는 것은 1970년 4월초 지리산 등산을 마치고 어느 다방 (우리가 좋아하던 곳.. 이름을 잊었다.. 하느님) 어두운 곳에 앉았는데 용현이의 얼굴이 어둠 속에 묻혀 하얀 와이셔츠만 보였다.. 얼굴이 없는 사람? ㅎㅎ 그때 정말 그 녀석 Who’s stop the rain을 좋아했지.. 나도 그 이후부터 .. 그러니까 그 그룹의 시작은 1969년경이 아니었던가.. 까물거린다.

 

무엇이 문제일까?

나는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내가 정말로 ‘우울증’일까?  요새는 거의 1초라도 반짝 ‘즐거운’ 순간을 느끼질 못한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처지와 상황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걸까?  정말로 나는 혹시라도 ‘의학적’인 우울증, 치료가 필요한 그런 정도가 아닐까?  암울하게만 느껴지는 일초일초는 괴롭기만 하다. 흔히들 말하는 ‘배가 불러서’ 하는 어리광 정도의 유치한 수준은 아닐까? 정말 나도 모르겠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정말로 하루 하루가 괴롭다는 것이다.

그런 어리광을 받아줄 사람이 나의 주변에 한 사람만 있어도.. 하는 불가능하게 보이는 희망도 있다만 그건 정말 힘들 거야. 나는 정말 잘못 살고 있다. 그것만은 확실하다. 나는 현재 그것을 뚫고 나올 힘이 부족하다. 이럴 때 나의 유치한 신세타령을 들어줄 엄마라도 전화 넘어 있었다면 하고 생각하고 또 눈물이 쏟아진다. 어찌하랴.  모두가 다 나로부터 가버렸다. 나는 정말 몸도 마음도 다 무섭게 늙어가고 있다. 희망과 젊음은 은하계가 우리로부터 멀어져 가는 듯한 무서운 속도로 나를 떠나고 있다. 유일한 나의 희망은 묵주기도의 성모님이다. 하지만 이게 그야말로 ‘악마’의 농간으로 몇 달째 나를 괴롭히고 있다. 내가 내린 결론이다. 이 ‘악’의 공격을 나는 어떻게 물리치고 이길 것인가. 더욱 더 ‘심각한’ 기도 밖에 없겠지.

이번 주 초부터는 마당뒷집에서 무단으로 들어와 자른 나무 사건으로 더욱더 나를 ‘분노’의 괴로움에 남게 하였다. 부글부글 끓어 오르는 듯한 용광로 같은 나의 이 ‘분노’와 ‘화’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나오는 것일까. 하느님으로부터 다 용서를 받았다고 생각했던 지난날의 나의 죄와 거기에 따른 분노가 그대로 남아서 나를 괴롭히고 있다. 하느님, 저를 부디 이 분노로부터 해방을 시켜 주시옵소서.

오늘은 백형 부부의 호의로 oldies Rock Vocal Group CCR (Creedence Clearwater Revival) concert에 가게 되었다. 우선은 고맙지만 기쁘지는 않다. 그저 밖에 나가는 게 싫을 뿐이다. 호의는 정말 고맙지만. 왜 이럴까 나는 왜 이럴까. Get a Life!란 말이 나에게 필요하다. 나는 모든 것으로부터 ‘피하고’ 있다. 이건 위험하다. 정말 이런 식으로 살면 오래 못간다. near-term goal을 먼저 성취하고… 나는 조금씩 나올 것이다. 그것만이 나의 유일한 희망이다.  용현아.. 이 개새끼야.. 너는 어디에 쳐 박혀 숨어 살고 있다는 말이냐.. 우리는 정말 1969년으로 가고 싶지 않니.. CCRWho’ll stop the rain을 어두운 다방에 앉아서 열광하던 그때를 우리가 어찌 잊겠니?

요새 새로 보기 시작한 일본 tv drama가 바로 ‘무리한 연애’라는 것이 있다. 환갑에 된 왕년의 rock group member가 이 환갑 된 나이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조금은 코믹하게 그린 것이다. 그래서 나이가 그래서 더 유심히 보게 된다. 그것도 그렇지만 거기의 여자 상대가 ‘나쯔가와 유이’라는 배우라서 그런지도.  작년에 본 ‘파랑새’라는 drama에서 그러니까 거의 10년전의 드라마에 나온 여자주인공..’인상적’이었던 인상.. 그 뒤에 ‘87% 생존율’에서 아주 나의 머리에 남았던 그 배우가 환갑이 된 왕년의 rocker와 아마도 ‘연애’를 하는 모양인데.. 글쎄.. 

이것과 더불어 이틀 전에는 드디어 묵주기도 덕분에 거의 사라졌던 sexual fantasy가 꿈에 나타났다.  그런데 거기에 등장한 여자는 바로 ‘히로스에 교코?”.. 라는 아주 어리지만 성숙한 여배우가 나온 것이다. 이 배우는 ‘사랑과 죽음을 응시하며’라는 실화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으로 아주 열연을 한 사람이다. 청순하지만 다른 쪽으로는 관능적일 수도 있는 그런 타입인데.. 바로 그녀가 꿈에서 나를 ‘시험’한 것이다. … 이게 아마도 우리의 묵주기도를 시기한 ‘악’의 공격일수도 있다는 생각.. 모르지만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나이 60은 정말로 이런 sexual 한 것은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을까.. 나의 생각은 그렇지 않다. 하지만 그건 옳은 생각은 아니겠지.

 

정말 오랜만일세

일기야, 정말 오랜만일세… 미안하이.  정말 쓰고 싶었다. 그러나 무서워서 못쓰고 2달을 보냈다.  그저 두 달이 훌쩍 흘러 버린 것이다.  폭풍과도 같던 마음 속속 깊이 고여있던 모든 나도 모르던 분노의 물길이 용솟음치며 한동안 나를 지배하였다.  1년이 넘게 나를 보호하여 준다고 믿었던 묵주기도도 이것에는 속수무책이었다.  나 자신도 놀랐다  내가 그렇게 분노를 많이 가지고 살았던가.  한마디로 나는 아직도 멀었다는 느낌뿐이다.  그래도 나의 하느님께로 향하는 노력이 헛것이 아니라고 나는 믿고 싶다.  그것의 덕분에 이 정도로 끝났다고 생각하는 게 더 논리적이 아닐까.

하지만 많이 자신이 없어진 게 사실이다.  2달을 그런 생각으로 주눅이 늘어 살았다.  하지만 아주 허송세월을 한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런대로 무언가는 했다.  폭발싯점까지 진행되어 오던 여러가지 mini projects들은 즉시 중단 되었지만 그 대신 다른 것들이 시작이 되었다.  나에게는 처음으로 ‘super-pc’가 생겼다. dual-core Intel mobo 를 ‘홧김’에 구입하였다. 이제는 4GB 를 가지고 11개의 virtual machines이 그 안에서 ‘활개’를 치게 되었다.  이것만이 요새 나를 유일하게 기쁘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아주 virtual machine의 신봉자가 되었다.  그 위력에 완전히 매료되었다고 할까.  이것으로 할 수 있는 project는 사실 나의 상상력에 달린 것이다.

작년 봄부터 시작된 일본 드라마 시청은 예상을 뒤엎고 올해도 반을 지내고 결말을 눈에 못보고 있다.  사실 한국 것을 보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고.. 겁이 나게 그곳으로 가기가 싫으니.. 나 자신도 조금은 겁이 난다.  내가 왜 이렇게 되어가고 있을까.  나이가 들면 다 이렇게 외골수로 빠지게 되나.  그건 아니겠지.  내가 이상한 것이리라.  어떻게 하면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어떻게 하면.

 

썰물이 빠져 나가는 느낌

썰물이 빠져 나가는 느낌의 조용한 아침.. 아이들은 다 늦잠을 즐기고 나는 평상시와 같이 일어나서 아침 ‘일과’ 를 ‘즐기고’ 있다. 언젠가부터 아침 routine 이 자리를 꽉 잡았다. 어두움 속에서 조용히 일어나 부엌의 dishwasher에서 거의 마른 접시들을 제자리에 넣고, 1인분 커피를 끓이고, 어떨 때는 맨손체조도 하고, window blinds를 다 열고, Tobey 밥그릇을 채워주고.. 나의 보금자리 서재로 와서 아침’공상’을 즐긴다. 사순절 때는 거의 ‘성경’에 관련된 일과가 아침 시간을 채웠는데 요새는 그것은 뜸– 해졌다. 그래도 ‘송봉모’ 테이프를 듣기도 하는데.. 이게 정말…

 

성가신 아침 햇살

오랜만에 ‘성가신 아침 햇살’ 이 없는 아침을 맞는다. 왜 그렇게 나는 많은 때에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사랑하는 햇살을 성가셔 하는 것일까.  생각해 보면 나의 인생의 후반부 (언제부터 인지는.. 확실치..않지만 아마도 40대 이후가 아닐까) 리고 비가 오는 그런 것을 아주 많이 좋아하였다. 이유를 따지면 사실 이해 못할 것도 없다. 나의 ‘세계관’이 그랬을 것이다. 확실히 나는 어둡고 우울한 그런 인생후반을 보내고 있다.  밝음에 노출된 나의 못생긴 모습도 그렇고 아틀란타에 와서 느끼는 한마디로 지겨운 밝음에 의한 피곤도 한몫을 한 걸까. 그래 지겨운 그런 것이다. 반면, 어두움에 깔린 을씨년스러움에서 나는 안락 함을 느낀다. 어릴 때 그 추운 날 따뜻한 이불 속을 연상케 하는 걸까.

어제는 결국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몇 주 동안 눈독을 들이던 그런대로 최신판 Mobo/cpu를 mwave.com에 order를 한 ‘사건’이다. 이게 사건이나 될까.. 이 의미는 ‘돈’을 이만큼 지출했다는 뜻에서 사건이다. 변명은 있다. 이것은 ‘오락’적인 것이 결코 아니고 ‘투자’라는 변명 아닌 변명일까…

 

First of May, 1970

며칠 동안 Bee Gee의 oldie, First of May 머릿속을 맴 돌았다. 몇 년 전부터 이것을 ‘기록’해둔 덕에 아주 이제는 머릿속에 자리를 잡은 듯 하다.  왜 아닐까?  거의 신화적인 기억이 되어버린 그 아름다운 시절을 왜 아니 잊으랴. 용현아, 너는 어디에서 이 시절을 보내고 있냐. 창희야, 너는 어찌하여 그렇게 그 아름다운 시절을 잊은 다른 사람이 되었단 말이냐.  친구야, 지금이 어쨌건 상관이 없지 않은가. 중요한 것은 우리에겐 그 아름다운 추억이 아니더냐.. 부디 어디에서 살건 잘 행복한 나날이 되어랴, 하느님의 도움이 조금 있다면 언젠가 살아서 다시 만나서 그 아름다운 추억을 이야기 해 볼 수도..있지 않을까. 그래 그것도 조그만 소망중의 하나로 만들자.  그래 1977, 1988, 1999, 2000, 2011, 2022… 그 다음의 수열은?

우리 집의 main home server ‘FS’가 아주 큰 수술을 받았다. 이것보다 더 큰 수술은 없다  아주 MoBo(Mother Board)를 바꾸어 버렸다.  그것도 아주 down-graded쪽으로.  Athlon 2400+ 에서 Intel 600로 강등이 된 것이다. 이상한 것은 이게 더 마음이 놓인다는 사실. 그 만큼 경험으로 이 Intel 600가 더 문제가 없었다. 현재의 느낌으로는 비록 느려지긴 해도 훨씬 덜 말썽을 부릴 듯 하다. 문제가 있던 Mobo 는 우선 Ubuntu-server 를 올려 놓았다. 재수가 좋아서 그대로 Linux는 쓰게 해 주실지.  문제는 Intel600가 실제적으로 512MB max라는 사실. 그러니 무제한의 VM을 쓸 수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런대로 2 VMs가 간신히 돌게 해 놓았다. 그래서 또 잠시 ‘몽상’에 빠졌다. 최신의 Mobo/CPU의 값이 얼마나 하는지 eye-shopping을 즐긴 셈이다. 물론 priority game에서 지긴 했지만. 계산에 $250정도면 아주 그런대로 ‘최신’의 것으로 장만할 수는 있는데.. 이게 또 걸린다. 제일 슬픈 현실중의 하나다.

올해는 ‘축복의 봄’을 보내는 느낌이다. 그렇게 적절한 때에 비가 내려준 것이다. 예상 밖이다. 현재까진 그랬다. 이건 정말 정말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다. 끈끈한 밤은 지독히도 싫지만 그래도 이런 축복의 날도 곁들이니 이게 하느님의 ‘은총’이 아니고 무엇인가. 나도 이렇게 감사할 일을 찾으면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그저 내가 나 자신에게 거는 기대감에 너무나 동떨어진 인생을 살고 있어서 나는 감사를 못하는 것이다. 그 비현실적인 기대도 버리기 싫다. 나의 능력의 문제인데, 하느님이 나에게 그만큼은 능력을 주셨다고 생각을 했는데 나이 60이 지나가는 시점에서 내가 잘못 생각을 했는지도.

요새는 자주 송봉모 신부의 강론 테이프를 듣는다. 시작은 모든 home analog media의 digitize의 일환이었지만 아직도 digitize는 시작은 못하고 있지만 사실 기술적인 문제는 거의 해결이 되었다. 그런 와중에 조금씩 듣게 되었다. 오래 전에 YS (이게, 영삼이도 YS구나)가 그렇게 좋다고 권했던 게 생각은 나지만 그때는 때가 아니었다. 지금은 그런대로 잘 들린다. 그 중에서 제일 공감이 갔던게… 꿈에 대한 의견이었다. 그는 아주 꿈의 중요성과 심각성을 강조했다. 나도 언젠가부터 그랬다. 꿈은 아주 random한 현상이 아니라는 것.. 성서에도 근거가 있지 않은가. 나도 조금 더 ‘조직적’으로 꿈을 꾸려고 노력을 하고 더 심각하게 해석을 하려고 한다. 그저 그리운 사람들이 많이 많이 나와주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은 나라니 의 마지막 학기가 끝나가면서 이사를 하는 날이다. 정말 나라니의 대학생활이 나에게는 몇 달 정도처럼 느껴진다. 정말 빨랐다. 다른 한 편으로는 그래도 우리 부부 모든 자식에게 의무를 우선 했다는 안도감을 느낀다. 하느님의 도우심일 거다. 나라니도 그런대로 수고를 했다.

 

묵주기도, 재개

묵주기도는 다시 조용히 재개 되었고.. 정말이지 하고 나면 무언가 기분이 다르다. 무언가 있다. 무언가 있다. 나의 하느님으로 향한 마음의 문은 확실히 최고로 열려있다.  이런 기회를 놓치면 다음 기회는 사실 언제일지 모른다.  모든 힘을 다하여 한번 하느님께 가보자.  성모님, 예수님, 하느님.. 저에게 이런 기회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나를 위해 오랫동안 기도해 주신 분들 특히 연숙이.. 어떻게 나의 고마움을 표현을 할까.

진희아빠가 전화를 했는데.. 이것은 완전히 shocker가 아닌가.  이동수목사가 위암에 걸려서 수술을 했다는 것인데.. 알고 보니 사실이 아닌가. 왜 이렇게 되는 것일까. 이번에는 정말 죽음이 나의 근처까지 온 기분이 들었다. 내가 여기서 아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를 않은데도 그 중에 몇 명이나 벌써 갔던가.  만수아빠는 교통사고, 백명순씨(연숙의 친구), 김예순씨, 박만용씨, 최진착씨(자살), 박창우씨, 그리고 이동수씨는 위암?  벌써 그런 나이가 되었구나.  이 목사는 고생을 많이 한 편인데 이렇게 되고 보니.. 정말 하느님이 그 목자를 시험을 하시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위암은 그렇게 까지 치명적인 것이 아니니까.. 완치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항상 수술 후 5년까지.. 정말 아찔하다.

 

일찍 온 사순절에..

올해는 최고로 일찍이 사순절이 시작이 되었다.  2월이 가기 전까지  Acts of Apostles, 사도행전을 다 typing을 하였다. 그것도 영어와 한글로 다 같이.  쓰는 것에 비하면 뭐 하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20년 만에 다시 읽는 ‘사도행전’.. 마음을 열고 눈을 뜨는가… 느낌이 그렇게나 달라질까?  정말 놀랐다.  3월부터는 요한복음을 영어로 읽기 시작했다.  정말 처음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항상 공관복음만 들었는데.. 처음으로 읽는 기분이다.  사실 일고 보니.. 그 ‘유명한’ 구절들은 거의 모두 이곳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았다.  특히 John 3:16같은 것..

3월 3일에는 그렇게 ‘걸리던’ 고백성사를 보았다. 미국성당이라 거의 형식적인 것이겠지만 나에게는 그런 게 아니다.  마음의 준비가 거의 99%라고 느끼니까.  그래서 너무나 홀가분 하였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매년 하기로 ‘결심’을 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시간이 갈수록 나의 하느님으로 향한 ‘마음의 문’이 조금씩 조금씩 열리는 것을 느낀다.  이것도 작년부터 시작한 묵주기도의 ‘은사’일까.. 아니면 은총일까.  모른다.. 모른다.. 하지만 나는 느낀다.. 내가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것도 하느님을 향해서 말이다.  그렇게 안 믿어 지던 것들도 이제는 믿어지는 쪽으로 향하는 나를 보고 나도 사실 놀란다.  이 모든 것이 그렇게 듣던 말과 같이 사실이란 말이다.  이게 모두 정말일까.  이게 다 사실이라면 앞으로는 어떨까.  나도 다시 어머니를 볼 수 있을까.  모두가 영생을 누릴 수 있고  육신을 떠난 더 높은 영혼의 세계가 앞으로 있을까.. 모든 게 신비롭게만 느껴 지지만 조금씩 조금씩 나의 마음을 열고 있다.

아주 오랜만에 Stephen CoveyFirst Thing First를 읽기 시작하였다.  아마도 성경 다음으로 이게 나의 ‘다음성경’이 아닐까 생각도 해 보았다. 이 책은 아마도 성경을 배경에 두고 씌어진 기분도 드니까 (이 저자는 사실 유타주 출신의 Mormon교도)  결국은 spiritual direction/goal이 없으면 결국은 ‘허무’하다는 뜻일까.  이제는 그게 이해가 간다.  무한대와 유한공간, 영원과 현세의 찰라.. 영혼과 육신.. 이런 게 이런 게 모두 나의 살에 와서 느껴진다. 아마도 나도 죽음에 대해서 많이 실감을 하며 살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 사람(Covey)말 대로 이제는 Leave a Legacy가 제일 중요한 관심이 되고 있다. 나의 존재의 의미를 느끼며 남겨야 하지 않을까.  이게 거의 본능처럼 느껴진다.  무엇을 남겨야 하나.  어떻게 남겨야 하나.  누구에게 남겨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