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비, 마르쎌리나, 이시도르

rainy-leaves

I’m dreaming of rainy Autumn foliage..

 

¶ 지난 주부터 갑자기 건조한 가을날씨 선을 며칠 보이더니 그것도 며칠을 못 가서 다시 올 여름의 골칫거리인 습기로 가득 찬 하늘이 찾아왔다. 하지만 이런 ‘열대성 하늘’도 수명이 길지는 않으리라.. 이제부터 기대해 볼 것은 무엇일까? 건조하고 따가운 가을 햇살아래 무르익은 사과 밭의 풍경들, Holy Family성당 제단 옆의 전면유리에서 영화 장면처럼 변화하는 낙엽 떨어지는 고목들, 파~아란 하늘을 배경으로 지옥의 악마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던 9/11의 슬픈 기억들.. 하지만 최소한 한번 정도는 보여주는 ‘싸늘한 가을비‘의 포근한 느낌을 미리 그려보게 되는 2015년 9월의 시작이다.

 

¶ Marcellina, St. Marcellina  4세기 경 이태리의 성녀이름이다. 성녀 마르쎌리나.. 같은 이름을 ‘세례 명’으로 가진 자매님과 우리 부부가 같이 Fujihana 에서 점심을 했다. 마리에타 2구역에서 10 여년을 넘게 알듯 모르듯 낯을 익히며 지내던 같은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소속 교우 자매님이 아틀란타를 ‘완전히’ 떠나는, 이별을 아쉬워하는 뜻 깊은 오찬 시간이 되었다. 솔직히 섭섭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이런 타향살이에서 무언가 조금 통하는 영혼을 만나는 것 쉽지 않기에 더욱 섭섭하였다.

긴 세월 혼자서 자녀들을 다 키우며 근래에는 신앙적으로도 많이 활발해진 듯 보였기에 한때는 레지오 입단을 은근히 희망했지만 성당 성물방 봉사 등 다른 쪽으로 활동했는데 캘리포니아 주에서 공부하는 아드님의 뒷바라지를 위해서 완전히 이사를 가시는 모양이었다. 이별하는 자리에서 레지오 협조단원으로 가입을 하시는 선물과 함께 허심탄회한 인생살이를 솔직히 나누어준 자매님.. 기도 중에 서로를 기억하며 건강한 미래가 되기를 빕니다.

 

¶ Isidore, St. Isidore.. 이시도르, 이시도로, 이시돌.. 남자 성인의 이름을 가진 다른 교우 형제님의 이름, 조 이시도르 형제님. 지난 2개월 동안 시름시름 아프시다가 급기야 신부님으로부터 ‘병자 성사’를 받게 되었다. 옛날에는 ‘종부 성사’라고 불리던 이 의식은 사실은 ‘죽음이 임박한’ 가톨릭 신자에게 주는 ‘마지막 성사’다. 한때는 신부님은 물론이고 봉성체를 거부하던 이 형제님이 얼마 전부터 적극적으로 신부님과 영성체를 원하셨다. 우리가 볼 때 하나의 작은 기적이라고 할까.

사연이 간단치 않은 인생을 보내신 것을 알기에 우리는 더욱 하느님을 조금 더 알고 궁극적인 임종을 맞이하기를 희망했다. 비록 고통스럽게 투병을 하는 하루하루지만 그래도 자기가 가는 곳을 조금 더 알고 가는 것이 얼마나 위로가 될 것인가. 어제 너무나 급작스럽게 선종하신 황 어거스티나 자매님의 소식과 오늘의 병자성사는 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진실, 죽음을 더 생각하는 하루가 되었다. 

Car Connex, Inc.

Scan1몇 달을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은 60,000 mile이 70,000 mile 이 되었다. 우리의 ‘대중교통수단’ workhorse,  2009 Hyundai Sonata.. 세월을 어찌 따라가랴 이것을 산 것이 벌써 6년이 되어간다. Mileage로 보면 이제는 ‘고물’, ‘중고차’가 되었지만 이상하게도 우리들에게는 항상 새 차 같은 느낌을 줄 정도로 ‘조용하게, 기운차게’ 달려주고 있다. 이것이 바로 ‘차와의 인연’이란 것일까? 차도 “인연이 있고 없고” 에 따라서 고생을 하고 안 하고 하니까. 정말 이 차는 우리에게 best service를 주었고 주고 있다. 이차가 그 옛날 이승만 대통령 시절, 미군 군용차를 뚜드려서 만든 ‘시발’ 택시를 만들었던 조국 대한민국에서 만든 차라는 사실, 그것도 주먹구구식으로 ‘불가능’을 밀어 제치며 ‘박정희 수출정책’을 주도했던 현대 ‘건설’의 차라는 사실.. 간간히 내가 살아온 짧지 않은 국가적인 역사를 생각하게 하기도 한다.

비록 이곳 Georgia에서 ‘조립’된 것이라지만 design은 역시 ‘국산’이 아닌가.. 너무 문제가 없어서 mileage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이렇게 60,000 mile을 놓치게 된다. 한 번 ‘손을 볼’ 때가 10,000 mile이나 지났지만 우리의 ‘등대, 정직한 자동차박사’ Car Connex에 맡겼는데, 검사 결과는 아주 좋은 것이었다. ‘아무런 문제 없음’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Car Connex는 우리가 사는 곳에서 아주 멀지 않은 Atlanta suburb , Smyrna에 있는 한인 pro mechanic,  Mr. Won이 운영하는 car repair shop인데 이곳과 다른 인연을 맺은 것도 이제 수 년째가 되어간다.

처음 이 ‘정비소 car repair shop’를 알게 된 것은 몇 년 전 작은 딸 나라니가 Smyrna에 살 당시, 자기가 가는 car repair shop이  ‘한국사람’ mechanic 이 하는 것이고 ‘너무 정직하고 잘 고친다’ 는 말을 듣고서였다. 처음에는 그저 그런가 보다 했는데.. 자세히 듣고 보니 과장된 칭찬이 아닌 것을 알게 되었다.

나라니가 살고 있던 Smyrna Condo의 이웃 ‘미국사람’들이 그곳의 loyal customer란 사실과 그들이 한결같이 그곳을 recommend했다는 사실이 나의 귀를 솔깃하게 한 것이다.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Mr. Won (애들은 그저 first name, Chang이라고 불렀다), 우리 차를 맡기고 얘기를 해 보니 역시 소문 그대로였다. 완전한 ‘차 박사’였다. 아니 차를 사랑하는 남자였다. 거기다가 차의 문제와 그 해결책을 ‘기계적, 과학적’으로 잘도 설명을 했다. 그런 상황에서 수리비는 큰 issue가 되지를 않는다. 정확하게 진단을 하고 알맞게 수리를 하니까..

내가 진짜로 혀를 찾던 case는 우리 Sonata의 ‘이상한 버릇’에 대해서 설명하고 부탁을 했던 것이었다. 거의 새 차였을 당시 transmission에 이상한 느낌이 있었는데, 차가 2단 기어에서 1단 기어로 감속을 할 때 99% ‘쿵!’ 하는 충격이 느껴진 것이다. 처음에는 그저 잠깐 그러려니 했지만 점점 심해지는 느낌이었는데 Mr. Won을 만났고, 그가 ‘멋지게’ 고친 것이다. 고친 과정을 설명하는데.. 실로 대단한 추리로 Sonata를 control하는 computer가 우리의 운전습관을 잘 못 판단한 case로, mechanical problem이 아니었던 것이다. computer를 완전히 reset을 하고 나서 그런 문제는 완전히 사라졌다. 이런 문제를 가지고 dealer한테 갔으면 ‘아마도’ 시간을 계속 끌며 시간을 허비하고 (결국은 고칠 테지만..) 엄청난 charge를 했을 듯 하다.

그 이후로 우리 집은 완전히 그를 믿게 되었고 문제가 있건 없건 간에 차에 관한 것이면 그에게 상담을 받게 되었다. Tire를 바꿀 때에도 그의 advice를 꼭 받았다. 그의 의견은 거의 틀림없이 정확하고 현명한 것이었다. 차에 문제가 생기면 99% 꼼짝달싹을 못하는 Atlanta Metro에 사는 한 우리는 ‘차의 노예’가 된 기분이지만 우리는 Mr. WonCar Connex 가 가까운 곳에 있는 한 다리를 쭉 뻗고 살 것 같다.

Mr. Won과의 인연이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난 번 60,000 mile service를 받으러 갔을 때, 그가 우리 부부를 유심히 보더니.. 한다는 이야기가.. 우리를 오래 전에 본 것 같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를 전혀 기억을 못하는데. 듣고 보니.. 1998~9년 경에 서울에서 연숙의 조카 딸 수경이가 어학연수차 Georgia Tech에 왔을 때, 그들 group과 어울려서 우리 집엘 왔었다는 사연이었다. 우리 집의 모습을 정확히 그려낸 그의 기억력도 놀라웠지만.. 이런 인연이 세상에 또 있을까? 너무나 즐겁고 유쾌한 해후가 되었고 그가 제발 이곳에 오래 오래 성공적인 car (repair) business를 계속하게 되기를 기원했다.

Corpus Christi 2015

Scan10143-1¶  Corpus Christi 오늘은 가톨릭 전례력으로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이다. The Most Holy Body and Blood of Christ.. 그러니까 Corpus Christi 주일이었다. 성체성사, 그러니까 예수의 몸과 피가 성찬례에서 빵과 피로 형상화 되는 Eucharist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는 날인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예수교, 특히 천주교에서 이 ‘교리’는 진정한 핵심 중의 핵심일 듯 하다. 매일미사를 몇 년간 경험하며 느끼는 것은 ‘아직도’ 이 교리는 가슴으로 느껴질 듯 말듯 한 그야말로 신비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100% 확신하며 영성체를 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사실 우리는 이 축일을 지난 4년 동안 한번도 제 날짜에 지켜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아틀란타 대교구 주관 성체대회에 참가하면서 그날 그러니까 토요일 저녁의 마감미사 때문이었다. 그것이 그러니까 특전미사여서 일요일을 편히 쉬었기 때문이었다. 올해는 4년 만에 처음으로 성체대회를 불참하게 되었는데.. 이유가 조금은 부끄럽기도 하다. keynote speaker로 예정되어 있던 Father Robert Barron이 갑자기 불참하게 되어서 조금 화가 난 상태로 일종의 protest로 불참하고 말았다. 도대체 무슨 일들을 그 모양을 했을까? 성체대회도 이제 조금은 ‘늙었나’ 하는 실망감도 들고.. 그래도 참가했어야 했던 것이 조금은 미안하기도 하다.

 

¶  지난 목요일과 금요일 이틀은 예정에 없었던 일들로 도라빌 순교자 성당엘 가게 되었다. 물론 매주 화요일에는 레지오 주회합, 정오 미사, 그리고 봉성체 등으로 그곳엘 가지만 이번 주에는 무려 사흘 이나 그곳엘 가게 된 것이다. 목요일은 ‘물론’ 예정에 없었던 장례미사 때문이었고 금요일은 신임 이재욱 요한 신부님을 모시고 우리가 하는 봉성체 환자 방문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목요일의 연도, 장례미사.. 노 데레사 89세 천수를 하신 교우 할머님의 연도와 장례미사를 우리는 갈 것인가 말 것인가 조금은 주저하기도 했다. 사실 우리는 그 분을 ‘전혀’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한 조문객들이 많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느낌’에 아마도 별로 많지 않을 것이라고 의견을 모았다. 사실 우리에게 ‘평상’ 목요일은 YMCA에 가서 workout을 하는 날이고 집안의 밀린 일도 하는 reserved day라서 망 서린 것이다.

하지만 레지오를 하면서 성모님께 약속을 한 것이 그곳으로 가게 하였다. 교우 장례식에 가는 것을 rule로 약속을 한 것이다. 가끔 exception이 있다면, 아플 때나 우리가 못 가더라도 조문객이 많다고 생각 될 때다. 그래서 이제는 연도와 장례미사에 아주 익숙해졌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곳을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배우는 곳으로 생각하며 참석을 한다. 인간의 숙명인 죽음은 배우고 배워도 알 수 없는 신비이기 때문이다.

다음날 금요일에는 새로 부임하신 이재욱 세례자 요한 신부님을 모시고 우리들의 봉성체 교우들 (환자) 3명을 찾는 ‘레지오 활동’으로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미국본당의 평일미사를 거르고 대신 순교자 성당 정오 미사를 참례하고 곧 바로 신부님을 3군데 교우님들이 계신 곳을 모두 찾아갔다. 이것도 전형적인 레지오 활동에 속하기에 우리는 기꺼이 일을 하였지만, 우리들이 조금 놀란 것은 신부님의 일반적인 태도, 행동이었다. 사실 이번 활동은 신부님이 먼저 요청을 하신 것이었기 때문에 조금은 ‘감명’을 받기도 했던 것이다. 여독도 별로 풀지 못하고 이렇게 사목에 나선 신부님이 조금 존경스럽게 보인 것이다. 교우 환자를 일일이 찾으며 성체를 영해 주시고, 참으로 자상스럽게 대화도 나누시는 모습이 ‘연세’에 걸맞지 않게 너무나 성숙해 보였기에 비록 예정에 없었던 하루를 밖에서 보냈지만 우리는 너무나 기쁘고 보람이 있었다.

$13 toothpaste

supherb

 

몇 주전에 Duluth Korea Town 어떤 supermarket에 갔을 때 그곳에서 ‘요란하게 진열된’ 한국계 신문들을 보게 되었다. 나는 거의 이 신문들을 볼 기회가 없이 살았기에 아직도 이런 것들을 보면 신기하기만 하다. 새까만 옛날에 미국에서 ‘고향 신문’을 보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고 모두 여행자들이 직접 들고 온 것들을 두고두고 본 기억도 있다. 뉴스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한글로 된 신문이기에 신기해서 보는 것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그것도 급팽창한 아틀란타 지역에서는 고국의 굵직한 대 신문들이 모두 ‘지사’형태로 생겨서 고국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볼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지역성을 살려 현지 광고들과 지역뉴스들이 가미되는 차이는 있다. 참 세상이 많이 변했다.

가끔 보게 되는 이 신문들.. 솔직히 고국사정에 어두운 탓인지.. 과장된 표현으로.. ‘하나도 읽을 것이 없다’는 한숨만 나온다. 모조리 광고에다가.. 고국 뉴스는 나에게 relevant한 것은 거의 없고, 현지 지역 뉴스는 original한 것은 거의 없고 그저 출처도 불분명한 곳에서 ‘기계적’으로 번역을 한 것들이고, opinion, editorial이란  것도 거의 마찬가지 수준으로 보인다. 그저 제일 practical한 것은 ‘광고’ 들 뿐인가.

그 광고 중에서 나의 눈길을 끈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SupHerb 란 상표의 ‘치약 toothpaste’ 였다. 언뜻 보기에 ‘사기성 과대광고’의 모습을 띄어서 지나쳤지만 이번에는 조금 자세히 보게 되었다. 그 치약의 용도가 ‘약용’이란 것이고, 증상들이 내가 가끔 겪는 것들이었다. 나는 traumatic 한 ‘치과’ 경험들이 있어서 그곳에 가는 것은 최후의 방법으로 여기기에 이 광고가 나의 눈에 들어온 것이었다. 통상적인 chemical toothpaste가 아니고 natural한 toothgel이란 것인데, 바로 약초 herb와 aloe란 진통제가 가미된 것이라 만약 이런 성분이 진짜 광고대로 라면 속는 셈치고 try해 볼만 한 것이었다. $13의 가격이 일생일대 썼던 치약 중에 제일 비싼 것이긴 하지만, 일반 치약과 어찌 비교를 하랴.

자꾸 약해져 가는 잇몸에는 외과적인 방법보다 자연적인, 부드러운 방법이 필요하다는데 공감이 간다. 광고를 보면 사용한 사람들의 testimonial들이 있는데 한결같이 잇몸이 건강해 졌다는 것이지만 그것을 어찌 다 믿으랴. 하지만 10%만 믿어도 한번 써 볼만 하다고 생각이 되어서 나답지 않게 $13 거금을 주고 이것을 사서 현재 쓰고 있는데, 아직은 큰 변화는 없지만 잇몸 신경이 조금은 둔화되는 느낌도 들기도 한다. 이것을 전부 다 쓰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지 모르지만 다 쓰게 되면 무언가를 알게 될 듯 하다.

Rainy Night in Georgia

 
Rainy Night in GeorgiaBrook Benton –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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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 front over Georgia

¶ Rainy Night in Georgia: California의 기록적인 가뭄을 생각하면 이곳 지역 특히 Georgia는 정말 lucky하다고 할까.. ‘진짜’ 여름이 한 달이나 남은 5월 말에 이곳은 거의 매일 ‘장마’ 같은 비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내린다. 중년이 넘으며 비를 ‘기본적으로’ 좋아하게 된 나는 물론 대환영이다. 기온까지 시원해서 밤에 창문을 열고 잘 때 들리는 빗소리는 흡사 Brook Benton의 1970 hit oldie, Rainy Night in Georgia를 연상케 하는 짜릿하고, 아련한 감정까지 일게 한다. 이 oldie는 옛날부터 들을 때마다 ‘밤에 내리는 비에 젖은 한과 서글픔’ 같은 것을 연상시킨다. 어머니, 성모님의 5월, 촉촉한 비에 젖어 다음날의 싱그러움을 예고하며 서서히 사라진다.

이곳도 사실은 얼마 전까지 가뭄으로 식수제한 까지는 아니어도 잔디나 garden등에 물을 주는 것을 격일제로 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그 이후로 갑자기 거짓말처럼 ‘하루아침’에 가뭄을 사라지게 하는 충분한 비가 내려 주었다. 주로 겨울과 봄에 많이 내렸고 특히 봄비는 꽃가루 pollen를 적당히 control해 주어서 앨러지 문제도 자연스레 해결해 주었다. 지금 이곳의 weather system은 사실 Texas 지역 에서 오는 것인데, 그곳은 완전히 홍수가 되어 많은 피해를 보고 있지만, 이곳은 이런 ‘기분 좋고, 혜택이 많은’ 늦봄 비를 누가 마다하랴..

 

Our 'master', Tobey cookie

Our ‘master’, Tobey cookie

 

¶ 어제는 Tobey의 annual ‘medical’ checkup 으로 5 mile 떨어진 animal medical clinic 에 일년 만에 다녀왔다. 일년에 한번씩 맞는 vaccine shot (rabbi 같은) 은 의무적이지만 그것과 더불어 다른 문제가 있는지 general checkup을 받는다. 우리가 가는 곳은.. Tobey가 태어나고 몇 달 후부터 그러니까 2005년부터 다녔던 East Cobb Animal Medical Center인데 그러니까 10년째 다니고 있는 곳이다. 그곳의 Dr. Heard는 구수한 인상의 중년이 넘은 ‘전통적인 수의사’ 모습으로 참 pet 들을 잘 다룬다. 특히 Tobey는 이 수의사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 모두들 웃는다. 그러니까 Tobey는 주로 여자보다는 남자를 좋아한다는 결론이다. 한번 visit에서 대강 $250 정도 charge를 예상하지만 가끔 예외가 발생하기도 했다. 올해가 그런 예외로.. 무려 2배 이상을 예상하게 되었다.

대부분 Tobey는 건강하다고 진단을 받았는데, 피부의 이상과 귀의 이상.. 모두 bacterial skin & ear  infection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귀 속에 염증과 피부의 가려움, 염증.. 어쩐지 근래에 지독히도 scratch를 하더라니.. 나는 그저 flea때문일 것이라고만 생각하였다. 현미경으로 귀의 액체 fluid sample을 보니.. bacteria가 우글우글.. 셀 수 없을 정도였다. 귀를 청소, 소독하고 항생제를 맞고.. 그러니까 vaccine shot은 하나도 못하고 급한 이것부터 치료해야 하게 된 것이다. 일주일 후에 recheck을 할 때 annual vaccine shot을 맞게 되었다.

이런 저런 것을 보며 생각한다. 주위 pet을 가진 사람들에서 정들었던 식구 같은 pet들이 ‘늙거나 병들어’ 죽을 때의 모습들이다. Pet들을 거의 사람 식구들처럼 간호를 하고 슬퍼한다. 옛날에 내가 그런 사람들을 비웃었던 것 기억을 한다. 지금은 물론 그런 내가 부끄럽게 느껴진다. 말 못하는 이런 pet들의 고통을 누가 알랴? 같이 오래 살았던 pet.. 사실 식구나 다를 것 하나도 없다, 아니 어떨 때는 사람보다 더 민감하고 자상하다. 10살을 넘은 우리 Tobey도 언젠가는 이별을 해야 하는데 (누가 먼저 갈지는 모르지만..) 생각만 해도 코가 찡~ 해진다.

30 seconds with Pope Francis

Pope Francis coming to America?

Pope Francis coming to America?

우연히 미국 예수회 America magazine website에서 ‘교황 프란치스코를 30초간 볼 기회가 있다면..’ 이라는 주제의 Youtube 비디오를 보게 되었다. 무슨 일이 있기에 이런 street interview를 한 것인가 의아 했지만 곧 의문이 풀렸다. 올해 9월 미국을 방문하는 교황에 대한 것이었다.

 

America Media asks:
“If you had 30 seconds with Pope Francis, what would you say?”

May 13 2015 – 10:19am

 

가톨릭 신자로서 교황의 위치와 의미는 잘 알려진 것이지만, 교황도 ‘겸손한’ 인간이기에 각 재위 교황마다 한결같이 다른 굴곡1 있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내가 관심 있게 보고 있는 교황들은 주로 John Paul II (요한 바오로 2세) 로 부터 시작이 되었고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오랜 냉담 시절에는 교황의 위치를 하찮게 보기도 했었는데 나는 그 이후 그런 나의 ‘바보 같은’ 경솔함을 정말 후회하고 있다.

2년 전인가.. 당시 교황 Pope Benedict XI (베네딕트 16세) 이 갑자기 은퇴를 선언하며 퇴임하고 급작스레 선출 된 분이 현 교황 Francis (프란치스코)인데 최초로 남미출신(Argentina)인데다가 교황청과는 outsider 에 속해서 어떻게 재위를 할지 미지수였다. 전임 교황들, 요한 바오로 2세 같은 분의 뒤를 이으며 그분들이 닦아 놓은 업적을 유지, 계승, 향상 시키려면 그분의 어깨는 정말 무거웠으리라. 그 후의 경과, 결과는 어떤가?

너무나 놀라운 일이었다. 요한 바오로 2세를 능가하는 인기와 명성을 구가하게 된 것이다. 전임 같은 ‘두뇌’ 보다는 ‘인정, 솔직’함으로 거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은 의심 많은 초현대의 가톨릭 신자뿐만 아니라 비 신자들을 매료한다. 그러한 인기를 잘 활용해서 드디어 세계 정치에도 서서히 관여하여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누가 뭐래도 변화 무쌍한 인류 가치관에 그는 변함없는 진리, 그리스도 가치관을 너무나 부드럽게 포용시킨다.

용감하게 유럽을 no longer fertile and vibrant, weary and becoming irrelevant 라고 가차없이 질타하고, 의혹 많기로 유명한 바티칸의 ‘재정비밀’을 투명하게 만드는 노력을 하는가 하면, 가톨릭 교리를 ‘요지부동’의 인상 보다는 ‘자비’를 강조하는 묘기도 보인다. 예수님의 기본 철학, ‘부자보다는 가난함을 사랑하는’ 실천적으로 가르치기도 하는데, 이런 모든 것들 소위 말하는 populism으로 보일 정도가 되었다. ‘부자 사제’는 척결하고 본인은 ‘소형차, 시민 아파트’를 택했다. 이런 배경으로 그의 agenda를 밀어 부치는 교황, 어떨까.. 퇴임 시에는 아마도 요한 바오로 2세의 인기를 능가하지 않을까?

이런 배경으로, 작년에 아틀란타 대주교에도 불똥이 튀겨, ‘공짜로 받은’ 주교관 mansion을 반납해야 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일반 신도들이 대담하게 교황의 모범을 무기로 항의를 했던 것이다. 어떨까.. 이런 와중에 한국출신 교포사목 동남부 사제단인가 (아틀란타 순교자성당, 김대건 성당도 포함) 하는 곳에서는 작년에 멕시코의 칸쿤 Cancun 에서 사제단 회의를 하였다. 그것도 자랑스럽게 말씀하던 신부님.. 속으로 ‘정신이 나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왜 하필 세속사회의 상징인 멕시코 관광도시 칸쿤에서 비싸게 모여야 했을까? 누군가 설명을 해 주면 어떨까? 그들의 최고 통수권자 교황님의 행적을 그들은 전혀 몰랐던가, 무시했던가?

이 교황을 보려면 제일 직접적인 방법인 바티칸을 가야하고 그곳에서도 사실 가까이 보는 것은 운이 좋아야 한다고 했다. 그런 중에 이번 9월에 미국을 방문한다는 소식에 혹시.. 우리도 그곳에 가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 실험’을 하게 되었다. 크게 무리는 아닐 듯..  World Meeting of Families convention을 계기로 Philadelphia 대회에 참석하고, Washington DC, White House, Congress, New York을 방문 하다고 하니 교황을 비교적 가까이 보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내가 교황과 30초간 함께 있다면 무슨 말을 할까.. 이런 질문이 이제 100% 공상이 아닌 것이다.

  1. 현대 한국어에서 이런 말을 아직도 쓰는지..

Mother’s Day at the Garden

어제는 모처럼 우리 4식구가 함께 일주일 늦은 Mother’s Day를 조금은 특별한 곳에서 보냈다. 이제는 머리들이 다 커 질대로 커진 두 딸, 생각보다 바쁜 생활 일정에 정신 없이 ‘삶’을 사는 그 애들.. 어릴 때 퇴근 후에 집에 오면 그 애들을 침대 위에서 번쩍 들어서 ‘flying!’을 외치며 내 던지던 때가 조금 과장해서 엊그제 같은데.. 어릴 때부터 holiday나 Mother, Father day를 귀찮을 정도로 챙기던 애들.. 이제는 그런 good ole days 순진하고 포근했던 시절은 다 간 모양이다. 그런 애들.. 너무나 바빠서 올해는 제대로 제 날짜에 Mother’s Day 를 못 챙기고 지냈지만 그래도 일주일 연기해서 모인 것이다.

pretty but moderate home-made lunch
pretty but moderate home-made lunch

몇 년 전부터는 집에 모여서 특별한 음식을 자기들끼리 준비, 요리해서 먹곤 feast 했는데, 올해는 먹는 것만은 재미가 없다고 해서 나라니의 idea로 Atlanta Botanical Garden: the Garden 을 구경하고 Garden근처에 있는 새로니 midtown condo에 가서 음식을 준비해서 먹게 되었다. 2009년 경에 우리는 그곳 the Garden 에 갈 기회가 있어서 사실 그곳은 생소한 곳은 아니었지만 그 때는 저녁때 잠깐 본 정도라 기억할 만한 것이 별로 없었지만 이번에는 낮에 제대로 보게 되었고 시간이 충분해서 아주 찬찬히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볼 것은 많지만 제일 기억에 남는 것 중에는: Canopy Walk, Earth Goddess statue, Fuqua Conservatory & Orchid Center, 그리고 특별 전시 중인 Bruce Munro의 cool light show 가 있다. Canopy Walk, 이것은 Garden forest의 skywalk 라고나 할까.. 숲 위의 고가 보행로인데 이곳을 걸으며 Garden 숲 전체를 ‘하늘에서’ 감상할 수 있다. 이 Canopy Walk는 몇 년 전 공사 중에 대형사고(structure collapsing)가 나서 수 명이 사망했던 뉴스로 본 기억이 있었다. 그만큼 이것은 Garden전체에서 중요한 attraction이 되었는데, 사실 느낌은 전체 거리가 짧다는 것이고 ‘고가 도로’라고 하지만 그렇게 ‘고가’의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것.. 그것에 비해서 structure 자체는 아주 정교하고 세련된 것이었다

비록 일주일 늦은 것이었지만 그래도 바쁜 와중에 이렇게 저희들끼리 경제적으로 기억에 남는 날을 만들어 준 것 우리는 감사하게 느꼈고, 이런 날들이 앞으로 얼마나 우리들에게 남았을까를 생각하니 한시 한시가 귀중하고 기억과 추억에 남기고 싶은 순간들임을 절감하게 되기도 한 멋진 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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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ce Munro light art

아틀란타 성모의 밤 2015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2015년 성모의 밤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2015년 성모의 밤

 

Scan10139-15월의 절반이 지나가며, 나를 낳아준 조국,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원조’ 박정희 대통령을 생각하게 하는 오일육 군사혁명 기념일, 5.16 도 지나가는 이 시점에서 나는 다시 예수님의 어머니 Jesus’ Mother, ‘하느님의 어머니 Mother of God‘,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Immaculate Mary를 생각하는 날들을 맞는다. 5월 달 전체가 사실 성모 마리아를 기리는 달이고 그 중에서도 성모의 밤은 그 절정에 해당한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나의 ‘한국어’ 본당 도라빌 소재 순교자 성당에서 2015년 성모의 밤이 ‘신선하고, 뜻 깊게’ 열렸고, 우리도 참가를 하여 ‘humanity’s 어머니 마리아’를 기렸다.

이 행사에 내가 참가하기 시작한 것은 레지오 입단 다음 해인 2012년 부터 였으니까.. 4년 째 가 되어가나.. 처음에는 익숙지 않아서 약간의 거부감도 없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가면서 나는 이 행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성모 마리아의 가톨릭에서의 위치를 알려면 가톨릭 ‘마리아 4대 교의’를 상기하기도 하지만 그런 ‘무거운’ 것이 이날에 그렇게 중요할까.. ‘어머니의 자애’.. 하나만 생각하며 모든 생각이 필요가 없지 않을까?

올해 ‘성모의 밤’ 행사 자체도 예년과 ‘아주’ 다르게 ‘정중함’이 풍기는 완전한 절차 임도 알 수 있었다. 알고 보니 이제까지 내가 겪었던 것들은 모두 레지오 마리애 주최의 ‘약식’ 행사였었다. 하지만, 올해는 새로 부임한 ‘신입 보좌신부’ (정말 ‘어리게 보이는’) 와 전례부가 합작을 해서 ‘정식’으로 승격을 시켰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도 되었다. 왜 갑자기 ‘약식 전통’을 바꾸었을까?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주임신부의 이임과 상관이 있었을지 않았을까.. 나의 추측에 불과하지만.. 이임 신부님의 ‘마리아 신심’은 우리들의 기대에 ‘항상’ 못 미치기에 새로 부임한 ‘이 요한’ 주임신부의 그것은 어떨까 궁금하기만 하다.

 

 

언제나 웃으시는 마리아

 

제 사랑이 풍요로워 지도록

당신의 웃음을 곁들여 주십시오.

 

당신의 웃음을 닮아

저도 맑은 웃음을 웃게 해주십시오.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려는 저를 도와주시어

당신처럼 웃음 띤 얼굴로

기쁘게 주님을 전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걱정과 고뇌를 잊고

이웃과 기쁨을 함께 나누게 해주십시오.

 

밝게 웃는 얼굴로 이웃에게 다가가

친절과 위로를 나눠주게 해주십시오.

 

제 웃음에 비웃음이 섞이지 않고

언제나 성실하고도 참된 호의로

가득 채워 주시고

괴로울 때에도

웃음 짓은 것을 잃지 않게 해주십시오.

 

이웃을 사랑하는 기쁨을

마음 깊이 보존하게 해주시고

이 기쁨이 언제나 웃음으로 피어나게 해주십시오.

 

생각과 감정이 다를 지라도

언제나 웃음 띤 얼굴로 대하게 해주십시오.

 

호의를 가득 담은 얼굴로

이웃을 하느님께 이끄는데

저도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게 해주십시오.

 

< J. 갈로 >

아틀란타 성체대회: a p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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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behold, I am with you always, until the end of the age.” (Matthew 28:20)

 

“(보라, 세상이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오 28:20) 위와 같은 올해의 thematic verse를 배경으로, 아틀란타 대교구 주관 2015년 미국 동남부 성체대회 Eucharistic Congress 가 6월 초(6월 5일, 6일)로 다가왔다. 나에게 일년이란 세월이 67마일의 속도로 느껴짐은 작년 성체대회의 기억을 더듬으면 알 수 있다. ‘엊그제’ 같은 느낌이니까..

올해 성체대회의 theme은 ‘I will be with you always‘.. 마태오 Matthew 복음의 마지막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until the end of age.. ‘세상이 끝날 때가지’ 가 생략된 비교적 귀에 익은 표현이다. 하지만 조금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은 나에게는 이번이 처음이 아닐까? 예수님이 항상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실 것이라는 ‘하느님의 의지’.. 이 말씀이야 말로 ‘복음 중의 복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올해로 어느덧 20주년을 맞게 되어서 누가 보아도 이제 이 연례 대회는 완전히 자리를 굳건히 잡은 듯 하다. 아틀란타가 1996년 올림픽을 주최하며 호경기와 급성장을 예상하던 때, 당시의 선견지명을 가진 Francis Donohue 대주교님의 용단으로 조촐하게 시작 되었지만, 급팽창하는 대교구를 함께 모이게 하고 ‘성소 난’에 봉착한 교회에 돌파구를 제시하는 뚜렷한 목적을 유지하며 건실하게 자리를 잡았다.  한때 재정난 (eg. subprime mortgage crisis, housing bubble)으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대교구 여론의 도움이었던가, 난관을 극복하고 예전의 열기를 그대로 간직한 모습으로 건강한 장래를 내다 보게 되었다.

우리가 이곳에 참가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5년 밖에 되지 않지만, 이것도 우리에게는 ‘금자탑’에 속한다. 예상 밖으로 우리에게 이 행사는 큰 은총을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거의 3만 명이 ‘운집’하는 이곳엘 가면 ‘천주교’가 절대로 ‘소수 종교, 방어적 종교’라는 의심을 말끔히 씻어 버릴 수 있다. 성체 신심이라는 말조차 생소하게 들리던 나에게 이런 대회는 ‘모조리 배울 것 투성이’ 인 기회라서 ‘절대로 참가하자’라는 결심을 하였기에 ‘죽을 정도로 아프지’ 않은 한 이 날을 달력에서 비워 두고 산다.

작년까지는 ‘두말 없이’ 우리의 한국본당 순교자 성당에 ‘묻어서’ 참가하는 것이 ‘규칙’이었지만, 올해부터는 ‘예외’로 바꾸어서.. 단체 행동에서 벗어나 우리들 만의 ‘개인 참가’ 하기로 하였다. 교통편 때문에 가급적 성당 car-pooling이나 bus를 타면 좋겠지만 그것이 실제로 문제가 없지 않았다. 아침에 가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올 때가 문제임을 작년에 bus가 ‘예고도 없이’ 끊어진 바람에 당황한 기억으로 Never Again! 을 되 뇌이며 ‘우리 차’로 자유롭게 가기로 한 것이다. 대부분 교우들이 성체대회의 절정인 closing vigil mass를 기다리지 않고 ‘점심을 먹은 후’ 일찌감치 돌아가는 것이 문제였다. 올해부터는 우리에게 그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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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congress program을 언뜻 들여다 보니.. 작년과 같은 Hollywood celebrity 급 keynote speaker는 보이질 않는다. 생각하면 이것이 ‘정상’일 듯 하다. 성체대회가 무슨 show나 entertainment는 아니니까.. 하지만.. Not so fast! 다른 의미의 celebrity급 speaker의 모습과 이름이 보였다. 바로.. Father Robert ‘Bob’ Barron!  우아~~ 솔직히 말하면 나에게 Hollywood star급 보다 brainy하고, 현재 미국 가톨릭 계의  ‘급상승’하는 56세 신부님, 바로 Father Barron이 오는 것이다.

월남 신자들은 규모가 커서 자기들 만의 모임이 있지만 우리들은 어차피 English Track에 속한다. 그러니까.. 언어에 상관없이 ‘영어권’의 인물들에 익숙해야 하는데.. 얼마나 많은 한국어 신자들이 이 keynote speaker들을 알고 있을까? 결국은 부지런히 ‘예습’을 하는 수 밖에 없다. 다른 speaker 중에는 Teresa Tomeo, Kerri Caviesel이 포함되어 있는데 ‘아마도’ 많은 사람들에게 Father Barron처럼 익숙한 이름은 아닐 듯 하다. 그래서 올해는 집중적으로 Father Robert Barron에게 관심을 두고 지켜보기로 했다.

Robert ‘Bob’ Barron, 1959 년 시카고 출생 (56세), 시카고 대교구 신부님, Mundelein 신학교 총장, author, scholar and Catholic evangelist.. 나이에 비해서 화려한 직함을 가지고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가톨릭 신학대가 Thomas Aquinas 토마스 아퀴나스 에 매료되었고 결국 1986년에 신부 서품을 받았다.  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 (Washington DC)에서 Master 학위를 받았고, 1992년에는 프랑스 파리의 Institut Catholique de Paris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외국어로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 라틴어에 능통하다고 한다. 얼마 전에 암으로 서거한 시카고 프란시스 조지 추기경은 그를 one of the Church’s best messengers라고 했듯이 그는  초현대 디지탈 미디어를 이용한 많은 저서, video, website, blog, newsletter, podcasts등을 발행하고 있고, 전 세계를 순회하며 인기 있는 강연, 강의를 하고 세속적인 media를 적극적으로 포용하여 가톨릭 교리, 핵심을 전파하고 있다. 그 중에서 2011년에 출시된 10 편 documentary series:  The Catholicism Project 는 미국을 위시한 16 개국 대중적 TV를 통해서 방영이 되었다. 그의 TV program은 1950년대의 Fulton Sheen 대주교 이후에 처음으로 ‘상업적 TV’에서 방영이 된 case가 된다고 한다.

이런 그의 resume를 떠나서, 나는 이 ‘젊고 handsome’하고 머리 좋은 신부님을 언제쯤 알았던가? 아마도 위에 언급된 TV program, Catholicism을 통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program을 본 적이 없다. 얘기만 들었을 뿐이다. DVD를 사기에는 비싼 것들이기도 했고, 그 것이 나올 당시만 해도 나는 별로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Keynote Speaker: Father Robert Barron

Keynote Speaker: Father Robert Barron

그러다가 그의 website: Word On Fire 를 정기적으로 subscribe하면서 그를 거의 정기적으로 접하게 되었고 크리스마스나 사순절 쯤이면 그의 newsletter를 받아 보기도 했다. 그러니까.. 최소한 그의 style은 조금 익숙한 편이다. 하지만 그를 ‘가까이서’ 본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다.

 

Postscript: May 30, 2015

Never Mind!  오늘 성체대회 website를 우연히 보니.. 이것이 웬일인가? Keynote Speakers 명단에서 Father Robert Barron 이름이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바뀐 것이다.. 이것은 나에게 완전한 disaster.. 하도 실망을 해서 이곳엘 갈까 말까 생각을 할 정도다. 하기는.. 올해의 여러 가지 느낌이.. 20년 주년 기념적인 이 성체대회에 김이 빠진 듯 한 그런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실망.. 실망..

Mother’s Day 2015

창고처럼 겨울을 난 back porch, 청소 뒤, 때 빼고 광낸 모습..

창고처럼 겨울을 난 back porch, 청소 뒤, 때 빼고 광낸 모습..

 

¶  뜨겁고, 피곤한 big cleanup:  이틀 간 집안 대 청소를 하며 먼지를 꽤나 많이 먹었다. 아마도 몇 년 동안 쌓였던 먼지일 것이다. 또한 무겁기만 한 stuff들을 옮기며 생긴 심한 근육통과 육체적, 정신적인 피로감이, 느닷없이 갑자기 찾아온 early heat-wave와 겹쳐서 나를 더 쳐지게 만든다. Mother’s Day 아침, 며칠 째, 거의 90도에 가까운 ‘고열’로 모든 것들이 따끈하게 달구어 진 느낌이고 이번의 더위는 5월 특유의 dry heat가 아니고 조금은 습한 더위라서 밤에도 더웠다. 처음에는 창문을 그냥 열어놓고 견딜까 했지만 그것이 아니다. 낮에 너무나 근육을 쓰는 일을 했던지 나의 몸이 빨리 식지를 않는 것이다.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이렇게 일찍 a/c(air conditioner)를 가동했는지.. 우리의 ‘고물, clunker’ 수명을 넘긴 듯한 a/c, 올해도 수고를 많이 해 주어야 하는데.. 과연 올해를 넘길지 궁금하다. 이것은 capital spending에 가까운 ‘거액’을 요구할 터인데.. 이래 저래 ‘피곤하다…’

 

¶  어버이날과 어머니날:  어머니 날.. 나는 어떤 어머니를 생각해야 하나… 나의 어머니, 우리 집 아이들의 어머니, 주변에서 돌아가신 어머니.. 살아계신 어머니.. 오늘 어머니 날 주일 미사에서 ‘이태리 유학’ 하 신부님, 몇 년째 미국사목에도 불구하고 heavy accent로 ‘머더스 데이’를 말하신다. 한국식 ‘어버이’날에 익숙하신지 아버지까지 함께 언급을 하시지만 이곳에는 따로 아버지 날이 있는지 알고 계신지 궁금하다. 비록 부모님을 함께 기리는 ‘어버이 날’의 의도는 좋았을지는 몰라도 어머니와 아버지의 고유한 차이를 무시한 것 같은 ‘어버이 날’ 은 아직까지 생각해도 별로 좋은 idea가 아닌 듯 싶다. 항상 머리 속에 있는 것 같은 우리 어머님을 다시 깊이 생각해 보니, 불현듯 다시 보고 싶다. 비록 하늘나라엘 가면 볼 수는 있을 터이지만 그래도 지금 당장 옆에서 보고 싶은 것이다. 어머님을 제대로 떠나 보내지 못한 후회와 슬픔은 분명히 나의 남은 여생에서 십자가일진대 어떻게 그런 사치스런 바램을 논할 수 있을까. 그저 그저 사랑합니다, 어머니 우리 어머니, 저를 용서하세요.. 라는 넋두리만 내 입가에서 맴돈다.

 

우리시절의 ‘어머님 은혜‘, 1950년대 동요

 

¶ P 베로니카 아드님들:  오늘 여름 같은 Mother’s Day에 지난 주에 돌아가시고 장례미사를 치른 P 베로니카 자매.. 그 자매님의 두 ‘미혼’ 아들이 ‘감사와 인사’를 하러 난생 처음 순교자 성당에서 미사에 우리와 같이 ‘참여’를 하였다. 분명히 우리 옆에서 미사에 동참을 했지만, 어리둥절하고 확실히 무슨 뜻의 미사인지는 잘 몰랐을 것이다. 그래도 열심히 주위를 따라 일어났다 앉았다.. 심지어는 무릎을 꿇는 등 최선을 보여 주었다. 아마도 아무도 그들이 성당에 처음 나온 사람들인 것을 몰랐을 것이다. 작년 이즈음에는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며칠 전에는 어머니까지 떠나 보낸 후, 처음 어머니 날을 맞는 그들 두 형제를 보니 가슴이 메이지는 슬픔을 참을 수가 없었다. 미사가 끝나고 나서 마침 우리가 속한 마리에타 2구역이 마련한 ‘맛 있는’ 미역국 점심을 하며 생소한 사람들 사이에서 그런대로 사람들과 인사도 나누는 등 coming out같은 느낌의 시간을 보냈는데, 우리의 바램은 큰 형이 언젠가 우리 가톨릭 공동체에 합류해서 신앙의 눈을 뜨는 것인데, 쉽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레지오의 정신, 성모님의 도움으로 불가능한 것은 없을 것이다.

장례미사, 자랑스런 ‘레지오’

가볍지만, 몇 개월 동안 쳐졌던 나와 연숙의 어깨가 조금은 올라간 날이 되었다. 안도의 큰 숨을 쉴 수도 있었고, 말로 표현하기 힘든 보람과 은총을 느끼는 하루도 되었다. 몇 개월 동안 우리와 인연을 맺으며 삶을 위한 고통스런 투쟁을 하였던 P 베로니카 자매님, 오늘 조촐한 가족들과 적지 않은 레지오 단원들의 전송을 받으며 하늘나라로 완전히 떠났다. 이번 일을 통해서 ‘달릴 곳은 끝까지 달려야 한다.’라는 레지오 교본의 구절을 굳게 상기하고, 성모님을 의지한 레지오의 막강한 힘을 절실히 느끼는 기회도 되었다.

연도와 장례 미사.. 공식적이고 전통적이며 사랑이 가득한, 정성된 신부님의 자상한 미사집전,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 없었다. P 베로니카 자매님은 물론이고 두 아들, 동생 자매님, 가까운 친척들도 같은 느낌이었으리라 생각을 한다. 장지 동행에 각별한 신경을 쓰셨던 Lee’s Funeral Home 이 사장님.. 이번에 처음 가까이 대하는 기회가 되었는데 참으로 자상한 분이셨다. 성당 연령회 분들도 정성을 다 해서 준비해 주셨고, 특히 눈이 시려오는 것은 생소하기만 한 ‘신 영세자’ 베로니카 자매님을 위해서 각별한 사랑으로 참석해 준 자랑스런 우리 본당 레지오 단원님들.. 어느 것 하나 ‘사랑’을 느끼게 하는 하루였다

자매님, 비록 고달픈 인생여정을 보냈어도, 가는 길은 너무나 희망적이고 자상한 여정이 될 것이라 우리들 모두 생각한다. 내가 제일 감동을 받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100% 확신 여부를 떠나서 ‘나는 하느님을 알고 간다’ 라는 천상의 선물을, 그 형언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세례를 받음으로써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주고 갔다는 사실이다. 특히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헌신적으로 어머니를 간호했던 큰 아들에게 주고 간 선물도 그것이 아닐까. 우리는 하느님의 섭리와도 같이 느껴지는 ‘묘한 인연’을 음미하며 우선 안도의 큰 숨을 내려 쉴 수 있게 되었고, 남은 유족, 특히 큰 아드님이 하루 빨리 안정이 되고 어머니의 간 길을 거울 삼아 ‘평화’를 찾는 긴 여정을 시작하기를 기도하기로 했다.

R.I.P. 2 ‘Sisters’: 두 자매님을 보내며..

André RieuNearer, My God, to Thee (live in Amsterdam)  

 

지나가는 2주 동안 2명의 ‘자매님’들이 일주일 간격으로 하느님의 품으로 갔다. 한 자매님은 지난 주 일요일에 2시간 drive해서 간, 어떤 funeral home의 chapel에서 ‘개신교’의식으로 치러진 예배에 그 자매님의 ‘고이 잠든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었다. 25년 전 이곳으로 이사했을 당시부터 연숙이 알고 지내던 K 자매님.. 나와는 직접 상관이 없다곤 해도 간접적으로 그녀의 삶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연숙보다 몇 살 밑인 나이에 어떻게 벌써 귀천 歸天을 했을까? 우리가 알기에 지난 몇 년 동안 앓아온 당뇨병과 신장  kidney의 기능악화로 투석 dialysis 을 받았지만 근래에는 포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투석을 받는 것은 일시적인 방편이고 결국은 신장 이식을 해야만 살 수 있는데 그녀는 그 투석조차 못 받았던 모양이었다. 나의 어머님도 이런 처지였지만 신장이식을 하기에 너무나 고령이어서 결국은 운명을 하셔서 이런 처지를 뼈저리게 나는 실감한다. 하지만 이 K 자매님은 충분히 나아질 여지가 있었을 텐데.. 장례예배에서 목사님의 말씀이 그녀는 아마도 투석을 제대로 못 받았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번지르르한’ 목사의 조사에서 밝히지 못하는 사정을 더 많이 알고 있기에 관에 누워있는 그녀를 보며 깊은 슬픔에 잠겼다. 형제, 자매가 그렇게 많은 그녀가 ‘시골’에 묻혀서 별로 도움을 주지 않는 남편과 살려고 노력을 했던 것을 알기에.. 아마도 주위의 도움은 거의 받지 못했을 것이고 결국은 모든 것을 포기했던 것은 아닐까.. 우리의 우려는 아마도 맞을 것이다. 이럴 때 다시 생각한다. 과연 가족이란 무엇인가? 문제가 없는 가족, 가정은 없겠지만 그래도 위기에 처했을 때 도움을 주는 것이 가족들이 아닐까? 사랑하는 방식이 달랐다고 ‘사탕발림’같은 조사 弔詞 eulogy가 우리에게는 너무나 우습게 들렸고 2시간 집으로 오는 drive길이 너무나 우리에게는 무거운 시간이 되었다. K 자매님, 아마도 이제는 그런 모든 고통을 훨훨 벗고 저 세상에서 힘차게 비상하는 새, 유유히 춤추는 나비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또 다른 자매님, 돼지띠 동갑 P 자매님.. 지난해 11월에 우리와 ‘묘한’ 인연이 되어 알게 된 분.  어제아침, ‘격심한’ 고통에서 벗어나 근래에 새로 ‘사귄’ 성모님의 품에 안겼다. 병 간호에 지친 두 아들, 특히 큰 아들을 두고 어떻게 눈을 감았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저려온다. 우리 부부는 이 자매님을 천주교로 인도하면서, ‘기적’까지는 안 바랐어도 그래도 평화를 충분히 맛 보시는 충분한 시간을 바랬는데.. 그것이 아무래도 부족한 시간이 되었다. 지난 5개월 우리는 이 분이 하느님을 알게 하려고 레지오의 조직을 통해서 지속적인 노력을 해 왔다. 비록 육체적인 죽음은 맞았어도 영혼은 건강하게 살아 가시리라 우리는 굳게 믿는다. 이 자매님도 알고 보면 참으로 ‘사연’이 많은 인생이 아니었을까.. 오래 전, 소설가 박경리 여사의 대하소설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의 복잡하고 운명적인 인생, 결국 운명은 바꿀 수가 없었던가? 나도 운명이란 것을 어느 정도 믿긴 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결말이 더 나아지는 노력은 어땠을까? 더욱 더 슬픈 것은 작년 이맘때 남편이 거의 ‘같은 병’으로 운명하신 사실..남아 있는 두 아들에게 이런 가혹한 고통이 어디 또 있을까? 그래도, 세상 모든 것을 등지고 마음의 문을 걸어 닫았던 P 자매님, 3월에 하느님께 모든 것을 열고 병원에서 세례를 받았고, ‘베로니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형언할 수 없는 극심한 고통 중에서도 새로 알게 된 천주교 기도문을 열심히 읽고, 평화스러운 모습으로 천천히 귀천을 하였다.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시작” 이라는 위령기도문을 믿으며 우리는 이 자매님 먼저 가신 부모님들과 재회를 했으리라 굳게 믿는다.

사순절 판공성사, 2015

또 ‘그것’을 할 때가 다가왔다. 그것.. 판공성사, 고백성사, 고해성사.. 어떻게 표현해도 다 마찬가지다. 결코 쉽지 않은 ‘의무’, 가톨릭 신자의 의무다. 이것도 의무지만 자유로운 의무고 다른 쪽으로는 우리 교회만의 권리, 특권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 성사의 의미와 특징 (좋은 쪽으로)은 열거하면 한이 없이 많다. Matthew KellyRediscovering Catholicism 책을 요새 다시 읽으며(aka typing) timing 좋게 confession 에 대해서 복습을 하였다. 시간이 갈수록 쓰레기로 쌓이는 집이나 차에 비유해서 정기적으로 청소를 하는 것과 비교한다. 많이 쌓이면 그런 사실자체에 둔감해져서 더 많이 쓰레기가 쌓인다고. 자주 하면 할 수록 좋은 것이라고.. 누가 모르나? ‘괴롭게 들어갔다가 날라가는 기분으로 나오는 곳’ , 그곳이 바로 고백성사란 것만 기억해도 좋은 것, 이것 하나, 나는 분명히 기억한다.

올해는, 아니 내일로 다가온 이 ‘것’을 어떻게 해야 하나? 무엇을 고백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 10중 8/9는 하태수 신부님께 하게 될 듯 한데.. 그것이 상관이 있을까? 모두들 어렵다고 하는 이것, 나에게도 어려운 것인가, 아니면 귀찮은 것인가?

이제는 ‘양심성찰’을 해야 할 때가 온 듯하다. 지난 해 6월이었던가, Conyers의 수도원에서 가진 레지오 피정 때 내가 이것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알쏭달쏭하다. 한 듯하기도 하고, 안 한 듯 하기도 하고.. 하지만 작년 사순절 때는 100% 확실히 했다. 비록 ‘사소한’ 것을 고백한 기억이지만.

 

그 동안 나의 ‘죄’는 무엇이 있을까? 대죄는 물론 없다. 소죄는 있을 듯 하다. 확실히 기억은 안 나지만. 십계명으로 출발하면, 어떤 주일을 거룩하게 안 보낸 것은 확실할 것이다. 제일 쉬운 것이 이것인가? 하지만 이런 것을 하면 내가 만족할 수가 없다. “고백성사 101″을 다시 한번 볼까나..

아마도 십계명에 ‘정면으로 거역’ 된 일을 없을 것이다. 나에게 우상이란 것은, 분명히 없다. 하느님의 이름을 마구 함부로 ‘팔아 넘기듯’ 부른 적도 없다. 주일이나 종교적 축일들을 소홀히 보냈는가.. 다행히 지난 해에 우리는 ‘부지런히’ 주일, 축일을 보냈을 것이다. 부모님을 공경하는가.. 이것은 비교적 쉬운 듯 하지만, 실제적으로 우리는 죽어도 부모님을 잘 모셨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영원히 죄로 고백해야 할 것 중에 하나다. 살인한 적도 없고, 간음한 적도 없다. 훔친 적도 없고, 요상한 소문을 낸 적도 없고 거짓말 증언을 한 적도 없다. 남의 아내를 엿보거나 흠모하거나 사랑한 적도 없다. 남이 잘 사는 것에 질투심을 느꼈을까? 이것은 100% 부인할 수가 있을까? 나는 ‘지나치게 사치하게 잘 사는’ 사람을 가끔 ‘경멸’한 적은 있지만 그 정도로 부러워한 적은 거의 없었다.

 

죄를 안 짓는다는 소극적인 것에서, 과연 적극적으로 ‘선행’을 하고 살았던가? 이것은 자신이 없다. 죄를 피하며 살았을지언정 적극적으로 남을 인간으로 사랑하거나 물질적으로 도와 주었다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나의 ‘재주, 재능’을 하느님을 위해서 효과적으로 사용했을까? 이것도 자신이 없다. 비록 레지오라는 단체에서 ‘봉사’를 한다고 하지만 언제까지나 만족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할 수가 없다.

 

예수님의 사랑의 2계명:

‘You shall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mind. This is the greatest and the first commandment. The second is like it: You shall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The whole law and the prophets depend on these two commandments’(Mt 22:37-40).

“Love is patient, love is kind. It is not jealous, [love] is not pompous, it is not inflated, it is not rude, it does not seek its own interests, it is not quick-tempered, it does not brood over injury, it does not rejoice over wrongdoing but rejoices with the truth. It bears all things, believes all things, hopes all things, endures all things. Love never fails” (1 Cor 13:4-8).

 

지난 해 판공성사 (사순절부터) 이후 나는 어떻게 살았는가? 남이 보기에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았던가? 고정적인 일상생활의 pattern으로 두드러진 것은 생각이 안 난다. 가깝게 나를 ‘괴롭히는’ 것이라면 ‘겸손하지 않다고 보이는’ 연숙의 행동들에 대한 나의 짜증 정도? 이것도 죄가 될까? 마찬 가지로 두 딸들에 대한 나의 실망감..

하지만 조금 밖으로 눈을 돌리면, 미안한 것들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작년 여름 레지오 회합에서 큰 생각 없이 한 나의 ‘솔직한’ 말 때문에 장 실비아 자매가 퇴단까지 한 것은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는 뜻밖의 일이었고, 나의 말을 너무나 심각하게 받아들인 상대방만 탓하기도 했다. 하지만 원인은 무조건 나에게 있기에 나의 잘못이고 미안해 해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나 뒤 늦게 들었다. 같은 여름 미국성당에서 ‘사소한 고정석’을 빼앗긴 것이 발단으로 ‘터진’ 나의 ‘분노’도 마찬가지로 전적으로 나의 ‘문제’에 의한 것이었다. 상대방이었던 필리핀 자매에게는 너무나도 잘못을 하였다. 기분이 쳐지거나 나의 ‘운전 불능’신세를 한탄하며 연숙의 운전 실력을 100% 매도하는 나날들 또한 어떨까.. 나의 일방적인 잘 못이 아닐까? 이런 것들을 떠나서 나는 언급하기 싫은 ‘잘못’을 했고 현재도 하고 있다. 가슴 속 깊이 잠자고 있는 나의 ‘깊은 상처, 수치’를 건들이거나 하고 싶지 않다. 그만큼 이것이 무서운 것이다.

근래에 너무나 가까워진 수 많은 ‘자매님들’.. 인간의 한 부류로 신선하게 다가온 수 많은 자매님들을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 것일까? 신앙적 동지일 수 밖에 없는 그녀들을 나는 가끔 어떤 생각까지 하며 ‘즐기고’ 있는 것일까? 아직도 나는 여성에게 여자의 미련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은근히 나는 이성들이 많은 곳에서 어떠한 환상적인 생각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생물적’인 충동이 아직도 있다는 사실은 나를 진정 놀라게 한다. 그것 때문이 예전의 ‘환상적 잘못’의 세계로 조금이라도 다가 갈까 봐 조바심도 나는 것이다. 성모님에 의지하는 내가 왜 다시 성모님께 의지하지 않는 것일까? 너무나 수치감을 느껴서 그런지도 모른다. 나는 이런 상태를 초월하는 다음의 단계로 성숙해야 한다. 이것을 나는 어떻게 신부님께 고백을 해야 하는 것일까? 이것이 오늘 저녁에 예정된 성사에서 풀어야 할 과제가 되었다.

초조한 사순절 4주째..

차분하고 경건해야 할 것만 같은 사순절의 한 가운데를 지나면 왜 이렇게 ‘우리’는 초조함을 느끼는 것일까? 평화가 줄어들고 수심과 걱정이 휩싸이는 느낌.. 이번 사순시기는 무엇인가 이런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지만 대부분 나의 탓이기에 할 말이 없다. 내가 그렇게 만든 것.. 이라고 생각한다. 해야 할 ‘중요한’ 것은 계속 뒤로 미루며 사는 것, 왜 나는 진정한 proactive한 인간이 못 되는 것일까? Matthew KelleyThe Four Signs of a Dynamic Catholic에게 오랜 만에 자극을 받는가 싶었지만 다시 주저앉는 나의 모습.. 절제된 자기훈련이 된 하루하루를 살고 싶었고 그렇게 할 희망은 충분히 아직도 있다. 비록 치통에 모든 잘못을 탓하고, 비실비실 잠열에 뒤척이는 모습이었지만.. 훌훌 털고 일어나자! 작년에 비한 우리의 ‘위상’은 하늘과 땅이 아니던가? 최소한 무언가 변하게 될 ‘희망’이 있지 않은가?

진정으로 우리를 초조하게 하는 것은 배해숙 자매의 병세 때문일 것이다. 생각보다 더 약한 모습으로 변하는 자매님, 돼지띠 동갑 자매님.. 놓칠 수가 없다. 우리 부부는 그런 심정으로 지금 싸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얼마 더 오래 살지는 하느님만 아시겠지만 우리의 ‘요구’는 최소한 이 자매님이 짧지 않은 ‘진정 행복한 나날’을 아드님들과 즐길 수 있는 ‘건강한 나날’을 주시라는 것이다. 수 십 년도 아니고 아니 몇 년이라도 좋다. 진정한 행복한 인생이 무엇인지 되돌아 볼 수 있는 건강한 기간, 시간을 주시라는 우리의 기도가 그렇게 무리일까? 아니지요.. 성모님.. 어머님.. 인자하신 성모님, 기도해 주세요.

오늘 예정대로 ‘병원’에서 배 자매님의 세례식이 ‘거행’될 것이다. 분명히 그녀는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나실 것이다. 그것과 더불어 더 건강한 새 생명이 함께 하시게 되시기를 우리는 기도한다. 하신부님의 배려로 성사되는 이번의 세례식.. 조금 있으면 떠나게 되는 하 신부님, 지금부터 서운하기만 하다. 어쩌면 나와 그렇게 모든 ‘코드’가 잘 맞았는지 아무도 모들 것이다. 이런 신부님 앞으로 나는 다시 못 만날 것이다. 개인적으로 친해지고 싶었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다 지나지 않았던가..

Gas Price: 오래 살다 보니..

2015-01-14 09.41.49-1

 

이것을 보고 이런 말이 ‘즐거운’ 한숨처럼 흘러 나온다. 집 앞의 BP gas station의 현재 gas price을 보니 조금은 익숙지 않은 숫자.. $1.99란 숫자다. 자동차 기름값.. gas price, regular gas 값 (갤론)이 2불 이하로 떨어진 것이다. 그것도 서서히 내려간 것이 아니고 갑자기 떨어진 것을 보며 느낀다. ‘조금 살겠다..’ 하는 즐거운 모습들을 이곳 저곳에서 볼 수 있다. 드디어 news에도 이것이 등장할 정도다. 언젠가 gas price가 $5을 넘으리라는 예측도 보았다. fixed income에 익숙한 우리로써는 이것은 정말 ‘신나는 달밤’일 수밖에 없다. 근래 몇 년에 걸쳐서 우리는 차를 탈 일이 자꾸만 늘어가고 있어서 ‘기름값’에 신경을 쓰고 있었는데 이렇게 값이 떨어지는 것을 보는 것 그 자체가 즐겁기만 하다. 그러면 왜 이렇게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인가? 1970-80년대만 해도 수십 년 안에 석유가 고갈 될 것이라는 암울한 예측도 있었는데 어떻게 석유 공급이 늘어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중동이나 외국의 석유에 덜 의존하려는 미국의 발버둥이 효과를 보아가고 있는지 미국내의 석유 생산이 생각보다 많은지도 모른다. 아니면… Why.. why not, why now?  New York Times의 분석기사를 보니 이제 조금 그림이 그려진다.

결론은… 역시.. It’s simple economics.. stupid! 이라고 할까? 간단한 경제원리가 이곳에서도 역시 작용을 하는가? 2009년 이후 최저로 떨어진 원유값, $50/barrel 밑으로 떨어져다. 무려 55% 가 급속도로 떨어진 것이다. 경제적인 이유는 역시 수요와 공급의 기본원칙일 것이다.

공급은.. 미국내의 자체원유 생산량이 지난 6년 동안 거의 2배로 늘어났다. 그 만큼의 국외 원유 (특히 사우디, 나이제리아, 알제리아 등)는 서로들의 경쟁으로 값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수요는.. 유럽과 developing countries들의 불경기로 에너지 수요가 줄었고, 자동차의 energy-efficiency가 크게 좋아진 것으로 예전 같은 gasoline-guzzler (덩치가 큰 고철 같은 차들)를 보기가 힘든 것 같은..

100% 다 믿기가 힘들지만, 사실은 지금 gas값이 내려가고 있는 것은, 이렇게 간단한 수요 공급의 법칙 때문인 것이다. 그러면 결과는? 내가 생각하는 것은 물론 ‘주머니 사정’에 큰 여유가 생길 것이다. $4을 넘던 것이 $2 이하로, 반이 떨어지면 나머지 돈은 분명히 다른 곳에 쓰이거나 저축이 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소비’가 될 것이다. 이런 것에 민감한 ‘정치지도자’들은 이런 것을 절대적으로 환영할 듯.. 특히 지역적으로 예외적으로 추운 겨울을 예상하는 Northeast (특히 Boston같은) 지역은 난방비 걱정이 훨씬 덜 해질 것 아닐까?

국제정치 쪽을 보면: 원유값에 거의 모든 경제를 의존하는 산유국들은 정치적인 위기를 맞을지도 모른다. 결과는 확실치 않지만 러시아 같은 나라가 제일 큰 피해자가 아닐까. 미국 내의 사정도 비슷해서, 알라스카, 텍사스, 오클라호마, 루이지애나 같은 주도 재정적인 고통을 받지 않을까?

한때 세계경제, 정치까지 영향을 주던 그 유명한 OPEC은 어떨까? 예전 같으면 이런 상황에서 분명히 원유생산을 줄여서 값을 올릴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그런 power가 없는 듯 하다. 예전 같지 않은 것이다.

여기에도 conspiracy theory (음모 론)이 있을까? 예를 들면, 사우디 아라비아나 미국이 ‘공모’를 해서 그들의  ‘적국’ 러시아, 이란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서 원유값을 내렸다는 음모론.. 사실 1980년대에 급락한 원유값은 ‘소련’을 붕괴시키는데 한 몫을 했으니까. 하지만 이런 가능성은 거의 희박한 것이다. 미국과 사우디가 그런 ‘공모’를 한 예가 없었으니까.

언제 다시 원유값이 예전의 수준으로 오를 것인가? 당장 오를 것 같지는 않지만 올해가 지나가면서 다시 조금씩 오를 것이라는 Wall Street의 전망이다. 예전의 역사를 보면 이것은 오르고 내림을 반복하는 그 과정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이런 분석을 보며 생각을 한다. 오래 전 처음 미국에 왔을 때 1불도 채 되지 않는 휘발유 값을 기억하며 자동차의 나라 미국에서 이 휘발유 값이 미치는 영향력을 다시 실감을 한다. $4까지 치오르는 것을 보며, 이제 ‘자가용’의 시대가 끝이 나는가도 생각을 했다. 다른 나라처럼 대중교통수단의 시대가 올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무섭게 갑자기 늘어나는 원유생산을 보며, 이것이야말로 not so fast..란 말이 어울리는 착각이 아니었을까?

전요셉, 황프란치스코

전 요셉, 황 프란치스코 형제님들.. 모두 듣기만 해도 가슴이 편안히, 따뜻하게 느껴지는 이름들이 되었다. 특히, 전 요셉 형제님의 이름은 요새같이 추운 날씨에는 따뜻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전 요셉 형제님, 나와 같은 돼지띠 동갑으로 친구, 형제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분명히 나보다 생일이 위였으니까, 형 뻘이 되겠지만 그런 것 서로 따지지 않고 지냈다. 하지만 가깝게 알고 지낸 것이 불과 1~2년도 채 되지를 않았다. 채 깊이 알게 되기도 전에 전 요셉 형제님은 ‘갑자기’ 조상의 땅, 대한민국으로 ‘영구’ 귀국을 해 버렸다.

그때 느낀 기습적인 쌀쌀한 가을바람과 같은 공허감은 나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것이 벌써 1개월 도 지났나? 귀국 후 잠깐 온 소식에 시차 적응으로 매일 잠만 잔다고 하더니 드디어 카톡(카카오톡)으로 잇달아 소식이 날아왔다. 계속 시차 적응 중이고 눈이 내린 고국의 모습이 멋있다며 사진도 보내왔다. 온양으로 간다고 했으니 아마도 온양 교외의 어느 곳인가 짐작을 한다. 처음에는 사업을 시작하려고 ‘땅’을 보러 갔다가 찍은 곳이 아닌가 했던 나의 상상이 너무나 우습기만 했다.

전요셉, 황프란치스코
전요셉, 황프란치스코

그리고 며칠 전에는 드디어 ‘사람의 사진’이 왔다. 전요셉 형제님의 모습이 ‘대한민국화’가 되었는지.. 완전히 ‘때 빼고 광 낸’ 모습이어서 놀라고 반갑기도 했다. 역시 평생을 살아온 고향 물이 좋긴 좋은 모양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탁한 공기를 걱정하며 귀국을 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  그런데 이 사진을 누구와 같이 찍었는데.. 처음에는, 귀국하면 꼭 보아야 할 사람이 있다고 말한 것으로 미루어  아마 그분을 만나서 같이 찍은 것으로 생각을 했는데, 곧 이어서 사연인즉.. 그 분은 나도 이미 알고 있던 사람이 아닌가? 그 모습을 보고 너무나 우리부부는 반가웠다. 황 형제..

우리 부부가 봉사자로 수녀님을 보조했던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교리 반에 2014년 부활절 영세를 목표로 가족 4명, 전원이 등록했던  황 형제였던 것이다. 그 사진은 황 형제가 대전 노은동 성당에서 영세를 받고 전 형제와 같이 찍은 것이라고 했다. 영세명은 교황님과 같은 프란치스코.. 너무나 반가웠다. 황 형제님 부부 가족은 작년 가을 교리반에 등록 후에 사정이 생겨서 교리반 공부 도중에 올해 초에 ‘영구’ 귀국을 했는데.. 아마도 귀국 후에 교리공부를 계속해서 부부가 같이 영세를 받은 모양이었다. 이곳에서 알고 지내던 두 사람이 모두 영구 귀국을 했고 이렇게 다시 재회를 하며 찍은 사진.. 이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는 다시 생각에 잠긴다….

 4년여 전 레지오 활동단원을 갓 시작하며 나에게는 생소한 ‘병자기도’ 란  것이 있었고 그 대상 중에 레지오 단원이며 중병환자였던 전요셉 형제가 있었다. 멋도 모르고 나는 열심히 기도를 했다. 생전 처음 ‘남을 위한 기도’를 하게 된 것이다. 속으로는 회의도 많이 있었지만 ‘성모님의 군단’의 규율을 따라 어린아이처럼 열심히 열심히.. 1~2년 후에 우리는 기적과도 같은 소식에 놀라기만 했다. 그 ‘중병’이 ‘완치’가 된 것이다. 본인도 놀라고 레지오 단원들도 놀라기만 했다. 겨우 신앙을 찾아가고 있었던 레지오 햇병아리였던 나에게 그것은 너무나 커다란 ‘살아있는’ 신앙공부가 됐다. 그 이후 전 형제는 가끔 보는 정도였지만 만나면 최소한 얼굴을 익힌 정도가 되고 건강에 대한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러다가 작년 말 우연히 인사를 하다가 나와 돼지띠 동갑임을 알게 되었고 우리 사이에는 무언가 near-perfect chemistry가 있음도 느끼게 되었다. 서로 가끔 식사를 같이 하며 서서히 조금씩 상대방을 알게 되어갔지만, 역시 나이 들어서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됨은 생각보다 어려운 것도 사실이었다. 나는 이곳에 오래 산 이유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부자연스러울 때가 많았지만 전요셉씨는 내가 오랜 전에 알았던 ‘그 옛날’ 기분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것이 나는 너무나 그립고 신선하게 느껴지기만 했다.

우리는 무언가 너무나 다른 인생을 살았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오히려 더 가깝게 하는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너무나 서로 다른 개인 역사가 너무나 흥미롭지 않을까? 작년 말에는 레지오 연차 총친목회를 준비하며 난타와 중창에서 가깝게 어울리기도 했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점심식사를 같이 하기도 했고, 봉성체, 교구 성체대회 같은 곳에도 같이 참가를 하는 등 오랜 만에 고향 친구를 만난 느낌도 들었다. 전 형제님은 어르신들과 참 잘도 어울렸는데, 그때 받는 느낌은 한마디로 ‘사람이 좋다’라는 그런 것이었다. 순진하기도 하고, 우직하기도 한 세상을 약삭빠르게 사는 스타일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런 성품으로 이곳에서 살아가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았는지 결국은 귀향을 결심하고 홀연히 사라졌다. 한마디로 조금은 더 쓸쓸한 기분을 남기고 사라진 돼지띠 사나이.. 언젠가 다시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우선 섭섭함을 달래는 수 밖에 없나.. 전 형, 그곳에서 하시는 일 순조로이 풀리기를 바랍니다!

Kicker time, crab feast e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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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liday LIFE Kickers:   12월 들어서 처음, 우리들이 정기적으로 찾는 YMCA gym을 갔었다.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던 ’12월’의 냄새와 모습이 그대로 우리들에게 쏟아지는 듯 했다. TV같은 곳에서 그런 ‘너무 이른 요란함’을 일부러 피하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별 수 없이 미국 최대의 휴일의 공기를 안 마실 수가 없었다. decoration, light 각종 ‘최신’의 것들이 선을 보였지만 그저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데 성공은 했지만 basketball court에 있는 indoor running track에서는 완전히 굴복하고 말았다.

그곳에서 나의 gym routine이 30분 걷는 것으로 시작이 되는데, 오늘 그곳에 가 보니.. 무언가 ‘공연’을 준비하는 것이 보였다. 아~~~ 하는 한숨이 나오고.. 이것을 오랜 세월 잊고 살았구나 하는 탄식이 나왔다. 오랜 전에는 ‘재수가 좋아서’ 이것을 보게 되었고 12월의 멋진 holiday 기분을 만끽하곤 했는데 근래에 들어와서 어쩐 일인지 이 공연을 놓치고 살았던 것이다.

이것은 YMCA member중에서 대강 60대부터 80대까지의 ‘아줌마’들, 30명 정도가 모여서 이맘때면 공연을 하는 Kicker club인데, 주로 Christmas에 맞는 곡들에 맞추어서 30분 정도 dance를 하곤 한다. 물론 몇 개월 전부터 ‘맹연습’을 하는 것은 가끔 목격하곤 했다. 순전히 ‘재미와 사교’를 하려고 하는 것이니까, 춤 솜씨 같은 것은 큰 문제가 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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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나 혼자 track을 걷기에 (연숙은 이제 100% 수영만 하게 되었다) 아깝게도 연숙은 못 보았지만 나는 이 ‘100% 백인 아줌마 (사실은 할머니지만)’들의 performance 전체를 running track에 서서 볼 수 있었다. Dancer들 숫자나 관객들 숫자가 거의 비슷했지만 어쩌면 그렇게 신나게 즐기며 춤을 추는지.. 보기만 해도 즐거웠다.

이들 공연 모습을 보면서 생각을 한다. 이들의 주 연령대가 70대 정도니까 나보다 그렇게 많은 나이도 아니었다. Irish처럼 생긴 파란 눈의 white ladies.. 오랜 전의 미국의 모습과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고나 할까.. 그러니까 이들이 몇 십 년 전에 이 땅의 ‘주인’들의 모습이었다고 할 것이다. 생각나는 것이 오랜 전에 없어진 화보잡지 LIFE magazine이었는데, 아마도 이들이 바로 LIFE generation이 아닐까? 이들만 해도 지금은 완전히 normal이 된 ‘깡패 같은‘ feminism같은 것에 ‘물들지’ 않았던 세대였을 것이고, 99% 가정주부들이 아니었을까? 이들은 분명히 white power를 만끽하며 살았을 것인데.. 지금은 어떨까? 앞을 보고 뒤를 보아도 UN 총회를 방불케 하는 각종 인종이 득실거리는 YMCA gym에서 옛날을 얼마나 그리며 살고 있을까? 40년 전부터 미국을 보아왔던 것을 생각해도.. 참 이곳 미국, 많이 변했고, 그것도 지금은 더 무섭게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놀라움까지 느낀다.

 

¶  Crabby Feast plus:   Thanksgiving Holiday가 끝나자 마자 마리에타 Y형 댁에서 우리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세시봉’ 그룹이 다시 모였다. Y형 댁은 작년에 큰 ‘喪상’을 당했던 관계로 2년 만에 방문을 하는 셈인가.. 그 동안 그 바쁜 중에도 수만 불짜리 kitchen remodeling 이 끝나고 pikapikagranite island가 위용을 자랑하고, custom made cabinetry가 초현대식 편리함을 뽐내고 있었다. 우리 집의 old clucky 한 것들을 비교하면 조금 기분이 쳐지긴 하지만 다시 생각을 고쳐 먹는다. 우리의 현재 더 중요한  value는 이런 것들 보다는 다른 곳에 있다고.. 하지만 속으로는 역시.. 우리도 저런 것들을 가지고 싶은 바람이 없다고 하면 솔직하지 못할 것이다..고 속삭이고 있었다.

2014-11-29 18.25.54-1이날 정말 과장을 해서 ‘수십 년’ 만에 배가 터지도록 humongous Alaskan king crab을 포식을 하게 되었다. ‘옛날’ cash가 풍성하던 시절에는 가끔 이것을 사다가 집에서 즐긴 기억이 있었고, 심심치 않게 seafood restaurant에서 온 가족들이 먹기도 했다. 이날의 king crab은 정말로 king다운 큰 놈들이었는데 seafood wholesaler에서 직접 사온 것이라고 했다. 이것들과 맛있는 wine이 곁들이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덕분에 오랜만에 취한 기분을 느끼는 저녁이 되었다.

오랜 만에 간 이곳에서 kitchen remodeling만이 아닌 다른 것도 보게 되었는데, 그것은 home music studio라고나 할까.. 최신 digital technology를 총 동원한 amateur music production system 이었다. 모든 것들이 excess로 치닫는 근래의 사회풍조인가.. 모자람 없이 모든 것들이 ‘사치’쪽으로 흐르는가? 돈과 시간이 넘쳐흐르는 ‘적지 않은’ 60대들은 보기에도 행복하게 보인다. 젊은 시절보다 더 짜릿한 ‘자극’을 원하는지도 모른다. 이런 것들을 만족시키는 것으로 새로 악기를 배우는 것이 있는데 이 집주인은 saxophone에 심취되어서 배운지 불과 몇 년 만에 이제는 거의 수준급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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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주 없이 불던 saxophone은 조금 dry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새로 장만한 이 home studio는 우선 값이 $1500에 달하는 ‘준’ 프로 급’으로 거의 완전한 background sound  (karaoke sound)를 갖추고 있다. 10000여 곡을 저장하고 있는 software와 4 channel audio mixer, usb amplifier, Bose portable speaker.. 이것을 써서 ‘live’ saxophone연주를 ‘눈 감고’ 들으면 어느 full-sound Cafe에 온 느낌을 준다. 나에게는 ‘그림의 떡‘ 으로 보이지만, 생각한다.. 조금 더 머리를 쓰면 1/3정도의 가격으로 비슷한 성능의 gear를 장만할 수 있지 않을까.. 백일몽일지도 모르지만.. 생각하는 것은 cash가 필요 없으니까..

 

my first Kindle book
my first Kindle book

¶ My first ever ‘Kindle book   Kindle.. Kindle book..  이 말도 꽤 오랜 전부터 들었고 Amazon.com에 가보면 항상 눈에 뜨이는 것이다. electronic book의 ‘한 종류’라고 하지만 지금은 한 종류가 아니라 그것 electronic book을 지칭하는 ‘대명사’가 된 느낌이다. 며칠 전 처음으로 kindle book title하나를 $5 정도에 구매를 하였다. 종이 책은 $12 정도니까.. $7 save한 것인가? Kindle은 순전히 software format이지만 Amazon.com의 hardware Kindle tablet 과 짝을 이루면서 이렇게 electronic book의 champion format이 되었다.

여기의 ‘교훈 lesson’은 역시 Apple Company, Steve Jobs의 철학.. software/hardware의 ‘완전한 지배, 장악, control’ 이라고 할 것이다. Microsoft의 모든 ‘문제’는 hardware를 ‘지배’하지 못한 것을 보면 이것이 납득이 간다. ‘옛날’에는 사실 software와 hardware는 완전히 ‘다른 장사’의 영역이었고.. 그것은 거의 gentlemen’s agreement 같은 불문율이었는데.. 완전한 profit, control crazy monster Apple company (사실은 Steve Jobs’)가 모든 것을 부수어 버렸다. 이후로, 그들, Steve Jobs’ Apple의 폭포와 같이 쏟아지는 profit을 보고 침을 흘리며 모든 사람들을 그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듯 하다. 이제 떼돈을 벌려면 software/hardware가 완전히 ‘붙어버린’ whole system을 만들어 팔아야 한다. 그 중에 하나가 kindle book인 것이다.

인류의 역사와 버금가는 ‘책’의 역사는 ‘변함 없는’ 종이역사였지만 그 오랜 역사가 ‘느리지만 무섭게’ 변하고 있다. 종이가 없어지는 역사인 것이다. 종이 책과 ‘전자’ 책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일까? analog와 digital의 차이라고 한다면 너무나 간단하고, 성의가 없는 대답일까?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대답이 정답이다. ‘부드러운 느낌의 analog’와 ‘명암이 뚜렷한 차가운 digital’의 차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한 부드러운 analog 촉감의 종이 책의 느낌을 조금이라도 제공하려는 노력을 한 것이 바로 Amazon.com의 Kindle book이다. 근래 수많은 ‘종이 책’들이 Kindle option을 주고 있고, 종이 책보다 항상 싼 값이다. 구매 즉시 download를 받을 수 있고 이제는 PC나 Smartphone에서도 읽을 수 있다. 나의 경우에는 Kindle hardware tablet 이 없어서 PC에서나 읽을 수 있지만 대부분 시간을 desktop PC에서 보내고 있는 관계로 이것이 나에게는 최적의 solution이다. 하지만 ‘화장실’ 에서 이 ‘책’을 볼 수가 없는 것은 분명히 아쉽고, 따뜻한 아랫목 (전기장판)에 누워서 볼 수 없기에 역시 digital은 차게만 느껴진다.

 

¶  Candle Reflections:   Candle, 초, 양초, 촛불.. 우연히 나의 주변에서 ‘초, 촛불’이 눈에 뜨임을 느끼게 되었다. 눈에 보았다고 해서 그것을 정말 ‘가슴으로 보는’ 것이 아님은 누구나 알기에 이렇게 초와 촛불이 ‘나의 눈에 보였다’ 는 사실이 나에게는 대견하기까지 하다. 그만큼 촛불이 보이는 ‘여유’가 생겼다는 사실일까. 아니면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자연적’인 현상인가? 나는 이것이 나에게 전보다 가슴이 조금 더 열렸다고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하나 둘씩 초와 촛불이 주변에 늘어나고, 날씨가 싸늘해지면서 그것들의 느낌이 그렇게 포근할 수가 없다. 성당에 가도 제일먼저 하는 일도 촛불을 켜는 것이고, 요새같이 대림절이 되면 4개의 초가 하나 둘씩 켜져 가는 것을 보게 되며 그 의미도 생각하게 되고, 나의 서재에도 초의 숫자가 더욱 늘어난 것을 알게 되기도 한다.

soothing candles' light & aroma

soothing candles’ light & aroma, my desk

이와 더불어 반세기 전의 추억을 더듬기도 한다. 6.25 (a.k.a. Korean War)가 끝난 후에 대한민국에서 산 사람들이면 서울이나 지방, 시골이나 거의 예외 없이 겪었어야 했던 ‘전기부족’.. 제한 송전 등으로 ‘초’는 100% 필수품이었음을 알 것이다. 낮은 물론이고 저녁, 밤에도 정기적으로 전기가 나갔다. 낮에 전기가 나가는 것은 가정집에서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가전제품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라디오’ 나 전기 다리미가 있었지만 낮에 하는 방송은 거의 없었고 당시에는 battery radio가 흔해서 (군수품) 전기가 필요 없었다. 문제는 밤인데.. 가족이 모두 모인 때 전기불이 없으면 초를 켜야 하고 그것으로 제대로 모든 것을 볼 수가 없다.  아이들은 어두울 때에도 밖에 나가서 놀거나, 대부분 일찍 자는 수 밖에 없었다.

조그만 방에 초를 한 개 켜놓으면 그 주변에 모두 모여서 이야기도 나누고 숙제도 하곤 했는데.. 생각하면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오손도손’한 가족의 따뜻함을 촛불과 함께 나누던 시절이었다. 특히 겨울에는 방 한가운데 ‘화로’를 놓고 무언가 ‘구어 먹으면’ 그 정취는 지금 도저히 재현할 수 없을 것이다. 1960년대가 되어서 전기사정이 좋아져 ‘촛불’은 추억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고.. 이곳에서 살 때는 아주 가끔 날씨관계로 정전이 되면 ‘혹시’ 초가 필요할 수도 있지만 이것도 ‘너무나 편리한’ flash light들이 있어서 역시 초를 볼 기회가 거의 없게 되었다. 그러다가, 희한하게도 ‘신앙, 종교’적 연계로 촛불이 포근하게 나에게 다가온 것.. 별것 아닐 수도 있지만 과연 그럴까? 올 겨울에는 유별나게 촛불을 키고 촛불을 바라보며 ‘회상, 명상’을 하고 싶어 진다.

C’est Si Bon Redux

둘루스 명소, 아틀란타 쎄시봉 70/80 Live!
둘루스 명소, 아틀란타 쎄시봉 70/80 Live!

나의 눈앞에 다시 ‘다가온’ 아틀란타 ’70/80 style’ Live music restaurant 세시봉.. 거의 6개월 만에 다시 찾은, 추억의 음악과 추억의 경양식의 멋진 곳, 세시봉.. 어제의 일이었다. 자기 집안 식구 ‘전부, 아내와 딸’이 사업상 해외 여행을 떠난 renaissance guy 최형이 갑자기 전화를 걸어와서 다음 날 저녁 7시까지 세시봉으로 나오라고 해서 예의 모이던 그룹이 다시 모였다.

이번이 나에게는 세 번째인가.. 하지만 항상 머리 속에 잔잔한 흥분의 여운을 남기던 그런 곳이라 하나도 생소하지 않았다. Owner이며 performer인 Mr. 김도 예전과 같은 수수한 옷차림으로 같은 미소를 간직하며 우리 그룹을 기억하는 듯 했다. ‘사업’이 잘 되시느냐 물었더니 ‘우리들이 이렇게 너무 가끔 찾아주니 잘될 리가 있겠습니까’ 하는 농담 섞인 응답이었다. 실제로 지난 7월 8월은 ‘너무나 slow’ 했다고 한다. 하기야 그렇게 더운 때 대부분 vacation을 떠나니까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이곳에 들어갈 때 입구에 조그만 종이글씨가 붙어 있었는데 잠깐 보니 ‘오늘은 나도 가수 왕‘ 이란 글이었다. 언뜻 아하.. 이곳에서도 손님이나 아마추어 들이 노래라 연주를 하는 program을 마련했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나도 주인에게 그런 comment를 한 기억이 있었다. 이런 곳을 아틀란타의 ‘명소’로 만들려면 고정적인 fan group을 형성하고, 그들 중에 재능이 있는 사람들에게 무대에 올라가게 하면 어떤가 하는 idea였다. 쉽게 말하면 amateur night 같은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것을 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하는 대답을 들었다. 잘못하면 분위기 찾으러 온 손님들을 쫓는 결과도 나올 수 있다고 한다.

그날 가서 음식 menu를 보니.. 전에 비해서 음식 가지 수가 너무나 많이 늘었다. 전통적인 ‘일본식 경양식, donkatsu‘에서 출발해서 나는 알지도 못하는 것들이 많았다. 그리고 전에는 owner의 부인이 chef라고 알았는데 이번에 들으니 chef가 따로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아주 전문적인 chef를 포함해서 추억의 음악, 연주,분위기..등등을 조금은 고급스럽고 exclusive한 전통을 만들려는 것이 아닌가 생각도 해 보았다. 이렇게 다른 곳과는 ‘아주 다른’ 분위기를 계속 유지시키면 ‘아틀란타 명소’가 될 가능성이 꽤 높을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Owner는 Smartphone으로 손님들이 찾아와 남기 여러 가지 ‘논평, comment’ 들이 Yelp에 나온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 대부분 음식에 대한 사진과 평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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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시봉 돈까스, 생각보다 큰..(credit Yelp)

 멋 모르고 소문이나 겉 모습을 보고 찾아온 ‘젊은 세대’들의 평이 대부분인데 그들이 좋아하는 것은 대부분 contemporary favorite 예를 들면 ‘빙수‘, 오늘 처음 알게 된 New York strip steak 같은 것들이지만 우리 세대는 예외 없이 서울거리에서 60~70년대 맛을 보았던 ‘일본식 경양식’들, 예를 들면 ‘함박스테이크, 돈까쓰‘ 를 찾는다. 기억에 희미해졌지만 당시에 느꼈던 음식의 분위기를 너무나도 잘 ‘재현’해 놓았다. 특히 portage cream soup은 그 중에 제일 추억을 되 새기게 하는 것이다. 비교적 경제적인 wine과 추억의 생음악, 자유자재로 각종 악기를 연주하는 owner performer, 깨끗한 환경들.. 이곳은 확실히 두고두고 아틀란타의 명소가 될 potential이 있다.

그 동안 performer들, 특히 거의 pro에 가까운 ‘인재’들이 이곳을 찾았고 연주, 노래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가 찾았던 금요일 저녁에는 ‘자칭 아마추어’ 들이 나온다고 했다. 물론 미리 audition 받고 무대에 올라갈 듯 했다. 우리가 간 날에는 retire한 남자 분이 saxophone을 들고 출연을 해서 기대보다 수준 있는 연주를 들려 주었다. 내가 보기에 이런 case가 바로 ‘좋아서 하는’ 진정한 amateur’ 정신의 발로가 아닐까 생각도 했다. 그저 좋으니까.. 사랑하니까.. 다른 이유는 없는 것이다.

 

크지는 않지만 격조있는 분위기의 performing stage

크지는 않지만 격조있는 분위기의 performing stage (credit Yelp)

 

Music Live! 왼쪽에 owner Mr김이 보인다(credit Yelp)
Music Live! 왼쪽에 owner Mr김이 보인다 (credit Yelp)

이런 분위기에서 우리그룹에서도 언제 한번 아마추어로 무대에 올라가 보자는 제안도 나왔다. 언뜻 윤형의 saxophone이 생각나고 그의 ‘연주 수준’이면 큰 무리가 없을 듯 해 보였다. 문제는 그 동안 얼마나 연습을 했는가 하는 것이고 작년 이맘때부터 부부가 완전히 full-time 으로 일을 하게 되어서 그 전과 같은 여유가 없어 보인 것도 있었다. 그러다가 화살이 우리에 오더니.. 순식간에 언젠가 한번 올라가라는 ‘강요’까지 나왔다. 속으로 it’s now or never라는 말도 있는데.. 못할 것도 없다는 오기를 달랬지만, 과연 그럴까? 최형의 idea는 우리 둘이 Everly Brothers의 classic oldie  (All I have to do is) Dream dream 과 ‘젊은 연인들‘을 부르라는 것이었다. 하기야 이 두 곡은 눈을 감아도 언제라도 할 수는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무대에 올라?’.. 허.. 그런 ‘장난스러운 생각’과 놀아 보는 것도 너무나 즐겁고 재미있는 것이고 그곳의 분위기와 너무나 어울려서.. 역시 다른 세시봉 추억을 만들고 금요일 저녁을 보냈다.

고온 다습한 늦여름에..

¶  고온 다습 高溫多濕.. 요사이 이 지역의 날씨를 보면 가관이다. 한 여름 중에는 가을 같이 이상하게 싸늘하더니 9월도 넘어선 늦여름은 그야말로 ‘hot and muggy, 고온 다습한’ 한 여름이 되었으니 말이다. 최근 들어서 날씨에 둔감해지려고 안간힘을 쓴 결과 많이 침착해 졌지만 요새의 기후만은 언급을 피하기가 힘이 들었다. 올해는 조금 a/c(air conditioning) 에서 $$을 절약하는가 은근히 쾌재를 불렀지만 mother nature는 역시 그런 ‘공짜’가 없나 보다.

‘고온 다습’이란 귀에 익은 말이 딱 들어 맞았지만 이 말을 쓰고 보니 그 옛날 고국의 한창 여름에 많이도 듣던 기상용어가 아닌가? 고온 다습한 태평양 고기압.. 바람이 남쪽, 그러니까 멀리 있는 태평양에서 부는 바람.. 그것이 서울에서 겪었던 한증막 같은 더위의 원인이었다. 장마도 마찬가지로 그 ‘고온 다습’ 한 것.. 그것이 지금은 Gulf of Mexico 멕시코 만灣의 고온 다습한 바람으로 바뀐 것이다. 요새의 공기는 그야말로 에어컨이 없으면 괴로운 그런 것.. 그 옛날 서울에서 어떻게 에어컨이 없이 살았던가?

 

  Crumbling infrastructure.. 이런 표현 근래에 national 뉴스에서 많이 접하곤 했다. 그런 뉴스에서는 주로 bridge같은 것이 너무나 낡아서 위험하다는 것들이었는데.. 요새 나는 우리가 사는 집이 그런 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의 겉모습은 물론 페인트가 벗겨지고 siding같은 것은 숫제 새들과 ‘기후’의 공격으로 구멍이 생기는 것도 목격이 되었다. 하지만 제일 충격적인 것은 집의 얼굴인 front door 쪽의 brick, concrete들, 그리고 front door threshold(문지방)등의 모습이 정말 목불인견이라는 사실..

집의 구조상 garage(차고)로 출입을 하니.. 앞문 쪽은 거의 사용을 안 하니 자주 볼 수도 없다. 손님들이 가끔 그곳을 쓰지만 대부분 어두울 때에 사용을 하니 자세히 볼 기회도 없다. 설상가상으로 앞 문 쪽으로 gutter물이 떨어져서 water damage를 예상은 했었다. 이번에 자세히 보게 되니.. 정말 ‘뚱뚱한 사람’이라도 그곳을 쓰게 되면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생길 정도다. 썩어버린 문지방은 wood filler를 쓰면 고칠 수 있을 듯하고 떨어져나가는 벽돌도 큰 비용은 들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concrete slab도 조금 노력을 하면 내가 모두 고칠 수 있다는 결론이 내리고 대대적 수리의 준비에 돌입을 하였다. 오랜 만에 집 앞쪽이 대대적 face-lifting service를 기다리고 있다.

 

 

¶  앓던 이(이빨)가 빠질 때.. 지난 4월부터  앓았던 독감 중에 지독한 치통이 나를 괴롭혔고 독감이 나은 이후에도 통증의 차이는 있었어도  계속되고 있었다. 치과를 가면 분명히 ‘고쳐줄’ 것이다. 문제는…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피하고 싶은 곳이 바로 그 치과이기에 ‘가급적’ 나는 참는 것이 오히려 덜 고통스럽다. 하지만 이번에 느끼는 치통,구강 통증은 보통을 훨씬 넘게 나를 ‘매일’ 괴롭혔다. 분명히 이것은 ‘민간 요법’도 없을 듯 하고 ‘자가 요법’도 없을 것이었다. 내가 고작 하는 것은 ‘소금물 양치’가 전부였다. 보통 때는 그런대로 잊고 지낼 수가 있었지만 식사시간이 문제였다.

무언가 닿은 듯 하면 통증이 온다. 나의 나이에 내 치아의 상태는 보통 정도.. 일 듯한데.. 그것이 아닌 모양이다. 대학 2학년 때 ‘병신 같은 사고’로 앞니에 ‘큰 문제’가 생긴 이후 나는 사실 항상 ‘치과’에 가게 되는 사태를 피하려 전전긍긍하며 살았던가.. 마지막으로 치과에 갔던 것이 거의 8년 전.. 이후 나는 그곳을 피하며 산다. 이번의 통증은 물론 윗니 중의 하나 (사랑니 근처)가 빠지려고 발버둥치는 결과였는데.. 보통 사람 같았으면 그날로 치과에 가서 그것을 뽑았을 것이다. 그러다가 며칠 전 ‘저절로’ 그것이 얌전하게 빠졌다. 거의 순식간에 그 지독한 통증이 100% 사라졌다. 비록 이빨 하나를 잃었지만.. 지금 현재로서는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날라 갈듯한 기분.. 이래서 ‘앓던 이가 빠진 기분’이라는 표현을 너무나도 절감, 실감, 만끽하게 되었다. 물론 앞으로 나는 치과의사를 보아야 할 것이지만.. 그것은 ‘우선’ 지금엔 문제가 전혀 되지를 않는다.

 

¶  Show Stopper.. 며칠 전에 처음으로 성령대회란 것을 가 보았다. 오랜 전, 1988년과 1989년에 우리는 인디애나 주에 있는 노틀담 대학, University of Notre Dame (South Bend, Indiana) 에서 열렸던 미국 성령쇄신대회 (Charismatic Renewal Convention)에 참석을 한 경험이 있긴 하지만 이번 것은 순전히 한인들이 주관하는 미국 동남부지역의 것, ‘제5차 미 동남부 성령대회‘였다.

성령에 관한 경험과 기억이 그렇게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었지만 올해는 그 옛날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서 알게 된 최 데레사 양이 음악 지도자로 와서 정말 오랜만에 재회를 하게 되어서 한번 가 보자.. 하는 다분히 즉흥적은 결정을 하게 되었다. 매년 Labor Day에 맞추어서 열리는 비교적 큰 대회라 많이 알려지고 듣곤 해서 사실은 기대보다 생소하지는 않았다. 최 데레사의 12 string guitar 연주도 멋졌고 음악, 율동 팀들, 조직적으로 일사분란 하게 움직이던 red shirts의 봉사자들.. 모두 좋았다. 심지어 부산 교구에서 초빙된 주관 신부님의 ‘통성기도, 심령기도’ 소개,실습까지도 나는 거의 거부감을 느끼지 못해서.. 이제 나도 많이 ‘마음과 가슴’이 열렸구나 하고 만족한 심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복병이 나의 다리를 잡았는데.. 결과적으로 한마디로 최소한 나에게는 show stopper, disaster가 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2일 간의 행사였지만 우리 부부는 이틀 째날 행사는 모조리 포기하고 말았다. 이유는? 나의 한 구석에 도사리고 있던 작은 Satan이었을까? 이유는 우습게도 첫날 두 번째로 ‘등단’했던 신부의 ‘지겨운 performance’ 에 있었다. 한마디로 나는 이 ‘사람’이 어떻게 ‘신부’가 되었을까 할 정도로 혼란한 시간과 싸우게 된 것이다. How did he ever become a priest? 저 사람이 신부인가?

절대로 용납될 수 없는 ‘음담패설’과 해외교민만이 겪는 아픈 곳들만을 철저하게, ‘밥맛 없고 저질적으로’ 찌르던 그의 강론은 다시 생각하기도 싫다. 뒤늦게 나온 지독히도 짧은, 본론이라고 나온 것은 전혀 무게가 없고 깊이가 없던.. I’m Joseph..you’re.. 어쩌구 하는 전혀 새로울 것 하나도 없던 넋두리들.. 옆자리에 앉아있던 자매님들만 없었으면 자리를 박차고 자리를 떠날 생각도 있었지만.. 참고 참고 또 참았다. 그의 얼굴에서 풍기는 인상.. 김영훈 스테파노 신부님과 같은 맑은 영혼의 느낌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올해의 성령대회는, 결과적으로 거의 완전히 실패한 나의 ‘첫 성령대회 체험’이 되었다.

이것이 평화인가..아니면?

지나가는 달들, 나날들에서 가끔 분명히 느끼는 것.. 이것이 혹시 그렇게 흔한 단어인.. ‘평화’인가? 너무나 조심스럽지만 아마도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럴 때 나는 곧바로 이런 말을 붙인다. 내일 아침까지 만불 빚쟁이들이 들이 닥쳐도 같은 심정일까.. 바로 이것이 신앙적인 평화의 뜻이 아닐까? 이것 저것 나를 잡는 괴로움이 산재하고 남아있고 계속 생겨도 그래도 평화로운 시간의 흐름을 느낀다면 이상한 것인가? 아하! 바로 이것이 미사 때 마다 귀 딱지 앉도록 듣는 peace be with you.. 가 아닐까? 이제야 나는 이것을 알아 차리고 있는 것일까? 이것도 나의 ‘신앙, 믿음’의 진화의 과정인가? 어떨 때는 이것도 ‘무서울 정도로 느껴지는 잔잔한 평화’ 로 받아 들여진다. 하지만 현재 연숙과 나는 그런 ‘놀라운 평화’를 느끼며 한 여름을 보내고 있다.

4년이 다가오는 레지오.. 현재 나는 이곳이 거의 피난처 구실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 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살아오지나 않았을까? 할 것이 없으니까.. 아니면? 아니다.. 이런 기회가 나의 세계관을 얼마나 많이 바꾸어 놓았는지 잊었는가? 나는 분명히 변했고, 변하고 있고 계속 변하고 싶다. 과거의 ‘고립된’ 세계관에서 벗어나야 나는 산다. 진리를 향해서 나는 계속 나아가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뒤를 돌아보지 않고 그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최선일까? 요새 들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뒤를 돌아보면 거의 99% 현재와 미래를 망침을 알기에 그런 것이지만 이제는 4년의 ‘실적과 전적’을 조금은 분석하고 비평하는 것은 어떨까? 요새 레지오 간부 선출 문제로 신경이 쓰여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고, 조금은 ‘레지오 fatigue‘란 것을 느끼게 되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에게 남은 인생에서 ‘레지오’를 빼놓음은 아직 ‘상상’을 못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성모님께 깊이 의탁하고 있고 그렇게 살고 싶다. 개인적으로도 나는 성모님과의 관계를 느끼고 싶고, 아니 관계를 쌓아간다고 조심스러운 희망도 하고 있으니까.. 어떨까? 죽기 전에 나는 과연 ‘레지오 마리애’와 나의 관계를 어떻게 회상하게 될 것인가?

 

작년 정도는 아직 아니지만 그런대로 ‘보통 여름’같은 올해.. 참 이것이 자연의 조화일까.. 모든 것이 ‘평균치’를 유지하는 자연계.. 얼마나 이것이 ‘기적’처럼 느껴지는지.. 모든 것들이 extreme으로 치닫고 유행이 되어가는 요즈음 ‘평균’이란 말만 들어도 신선한 것이다. 이제 푸근하게만 느껴지는 여름에도 적응이 되어가고, 그렇게 손에 안 잡히던 ‘일손’에 조금 힘이 생겼다. 몇 년간 방치되었던 집안의 크고 작은 ‘고치는 일’들이 이제는 자신이 생겨가고, 최근 다시 힘이 생긴 YMCA에서의 bench press로 어깨와 허리에 힘도 느끼고.. 이때가 그야말로 chance가 아닌가.. 올 여름에는 무언가 우리집도 변한 모습을 모여 주어야 할 때가 아닐까? 벼랑 끝에서 창으로 무장한  monster들이 나를 기다려도 나는 평화를 ‘죽기 전까지’ 느끼고 살고 싶다. 아니 그렇게 될 것이다. 성모님이 바로 나의 어깨를 잡아주고 계시지 않은가? 그렇지요..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