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번째 블로그, 지금 쓰고 있는 blog이 200번째 post가 되었다. 작년 말쯤에 100번째를 지났는데 일년이 되기 전에 다시 다음의 이백이란 숫자를 지나게 되는 것이다. 처음에 이것을 시작할 무렵에는 일주일은커녕 한 달에 한번 쓰기도 힘들었다. 거의 수십 년 동안 쉬어온 ‘한글쓰기’가 그렇게 쉬울 리가 없다. 특히 인터넷 출현 전에는 한글로 쓴 글을 보는 것도 쉽지 않았다. 가끔 보는 신문이 전부랄까..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인터넷의 출현이 나에게는 그렇게 늦은 것은 아니다. 다시 한글을 볼 수 있게 되었고, 이제는 쓰게도 되었으니까. 사실 이 blog으로 나는 다시금 한글을 배우고 있는 셈이다. 정말 많은 ‘섬세하고, 아름다운’ 수식어들을 잊어 버렸다. 어쩔 수가 없다. 그런 것은 문화적이기 때문에 한글의 중심지에서 살지 않으면 아무리 잘 쓰려고 해도 어색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00% 영어권 직장생활을 오래 한 여파로 솔직히 영어를 쓰는 것이 편하고 쉬울 때가 참 많았다. 그런 배경에서 다시 한글과 한국말을 쓰려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치 않아서 나도 적지 않게 놀랐다. 세월의 횡포여..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쓰는 한국말은 아무래도 너무나 직선적이고 직설적이다. 그러니 그것을 한글로 쓰게 되면 정말 다시 읽기도 싫을 정도로 메마른 느낌인 것이다. 나의 blog은 그런 배경에서 쓰여진 것이지만, 나로써는 정말 기를 쓰고 최선을 다한 것이다. 다음의 단계인 300번째 쯤 되면 조금은 더 ‘세련’된 문장이 되지 않을까..하는 희망을 해본다.
힐러리 클린턴, 이번 주 타임 매거진의 표지 기사가 힐러리 클린턴에 관한 것이다. 아마도 이번에 리비아의 내전이 카다피의 피살로 끝나게 되면서 미국이 취한 신중한 개입의 성공이 힐러리 클린턴의 ‘빛나는’ 외교에 의한 것으로 보는 듯하다. 이번 리비아의 쾌거는 사실 유럽연합(EU), NATO와 미국의 신중하지만 무서운 파괴력을 가진 개입의 성과인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까 지상군이 전혀 개입을 하지 않고 ‘기술적’인 지원으로 일관을 한 것이고 그것이 완전히 성공을 했다. 어떻게 힐러리는 어려울 수도 있는 이런 공동전선을 구축했을까? 첨단기술을 완전히 이해를 하는 대표적인 신여성인 그녀는 그런 능력이 충분히 있다고 보는 것이다. 여기서 첨단기술이란 대부분 social networking tools들, 대표적인 것이 twitter, facebook같은 것 들이다. 어떻게 보면 별것 아닌 듯 하지만, ‘고리 타분할’ 수도 있는 덩치 큰 국무성의 최고 관리가 그런 것을 자유자재로 쓴다는 것은 별것이 아닌 것이 아니다. 더 나아가서 해외의 모든 미국대사관들에게 그런 social networking tools을 적극적으로 쓰게 했다는 것은 사실 놀라운 성과일 것이다. 예를 들어 국무성에는 현재 192 Twitter feeds, 288 Facebookaccounts가 쉴새 없이 쓰이고 있다는 것인데, 옛날 생각에 ‘늙게만’ 보이던 ‘할아버지’ 국무장관들이 그런 것들을 쓴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나와 나이가 거의 비슷해서 항상 관심 있게 주시하고 있는 그녀, 참 매력적일 수도 있다. 이렇게 ‘머리 좋은 여자’ 힐러리, 과연 그녀는 장차 대통령이 되려는 생각을 어떻게 머리 속으로 조정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지난 10월에 C Programming Language의 ‘창시자’ 인 Dennis Ritchie가 타계를 하였다. 그리고 그는 computer operating system의 할아버지 격인 Unix를 Ken Thompson과 같이 ‘발명’을 한 장본인 이기도 하다. 그것들이 만들어질 당시는 personal computer란 것은 아예 이름조차 없었고 대부분 IBM mainframe아니면 PDP minicomputer가 전부였던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었다. 나도 그 시대를 모두 거치며 컴퓨터를 배워서 그들을 생생히 기억한다. Fortran과 Cobol, Assembler 등이 programmer들의 전부였던 그 시절에 ‘대담하게도’ 거의 혼자서 C language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후에 완전히 컴퓨터의 ‘표준 언어’가 될 줄은 그들은 상상을 못했을 것이다. 나는 software engineer로 일 하던 내내 이것 한 가지로 ‘밥을’ 먹은 셈이 되었다. 거의 만능적인 ‘간결함’과 ‘적응성’을 가진 언어여서 business application서 부터 embedded system에 이르기까지 이것이 안 쓰인 곳이 거의 없었다. 그뿐이랴.. Unix는 어떠한가? 이것은 C language보다 더 큰 파급효과를 남겼다. 지금의 Linux는 완전히 이것을 ‘베낀’ 것이고, Apple/Mac/OS도 이것을 조금 바꾼 것이다. 심지어 Microsoft쪽의 MS-DOS, Windows 같은 것도 기본적인 idea는 모두 이곳에서 나왔다. 이렇게 보면 이것을 ‘만든’ Dennis Ritchie의 업적을 조금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올해의 Japan Award를 받아서 뒤 늦게 그들을 인정했지만, 아깝게도 ‘겨우’ 70세에 타계를 한 것이다. 내가 존경할 만한 한 computer pioneer가 사라진 것이다.
지난 주말에 보스턴에서 열렸던 이화여대 북미주 총동창회, 연숙이 그곳에 다녀와서 날씨와 연관된 일화를 듣게 되었다. 거의 기록적인 10월의 폭설로 인해서 동창회가 열렸던 호텔이 정전이 되었다고 한다. 그것도 동창회의 주 행사가 시작될 무렵에 정전이 되어서 끝날 무렵에 다시 복구가 되었다니.. 조금 타이밍이 기묘하지 않았을까? 완전히 비상등만 켜진 상태에서 그 커다란 행사를 한다고 상상을 해 보라.. 특히 식사준비도 완전히 혼란에 빠져서 많은 참가자는 main dish를 못 먹었다고 한다. 하기야 어찌하랴.. 이것은 완전히 Mother Nature의 자연적인 act of God인데..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너무나 추억에 남는 행사가 되었다고.. 한 사람도 빠짐이 없이 ‘즐기고’, 사회를 보는 동창은 너무나 감정과 감격에 겨워서 ‘울었다’ 고.. 내가 들어도 가슴이 뭉클하였다. 특히 연숙은 너무나 오랜만에 총장 친구, 김선욱씨와 해후를 해서 사적인 시간을 즐겼다고 해서 나도 기분이 흐뭇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