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15년 여름의 시작인 하지 summer solstice 와 아버지 날 Father’s Day가 겹친 날이었다. 일주일 전부터 시작된 여름의 위용을 과시하려는 듯 찌는듯한 습기와 열기가 함께한 전형적인 lazy but comforting Summer day였다. 이 ‘아버지 날’이라는 것, 수십 년 전 미국에 처음 오며 느낀 것 아직도 기억한다. ‘어머니 날’을 제외한 364일이 아버지 날이었던, 당시의 대한민국의 정서를 생각하니 왜 이런 날이 필요한 것일까 했던 것.. 하지만 역시 ‘드센 여자들이 많은 미국’ 사람들 선견지명이 있었나 보다. 세월이 갈수록 여자들, 특히 ‘엄마’들의 power가 하늘로 치솟게 되며, 이 Father’s Day의 중요함이 더 돋보이고 필요하게 된 것을 실감하게 된 것이다.
성당이건 교회건, 학교건 어디건 간에.. 상대적으로 늘어진 ‘주문진 오징어’ 같이 쳐지고, 피곤한 아빠들을 위로하는 ‘미사여구 美辭麗句’를 듣느라 바쁘다. 이런 ‘세속적인 흐름’에 겹쳐서 수세에 몰리는 듯한 종교계 특히 천주교의 사제, 그들도 Father, 영적인 아버지인데 이 Father’s Day에 그들도 같이 축하를 받게 되었다. 역시 선견지명 先見之明 있는 미국인들이었다.
이날이 되면 물론 나도 아버지이니까 나를 아버지로 부르는 ‘아이들’ 과의 관계를 다시 생각, 점검해 보는 기회도 되지만 나는 사실 나의 아버지를 더 생각하는 편이다. 문제는.. 나는 아버지를 본 ‘기억’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내가 2살 때 6.25 사변이 시작되면서 납북, 행방불명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식인이었던 관계로 살아서 북으로 갔을 확률이 거의 제로에 가까워서 우리는 ‘돌아가신 아버지’로 생각하며 자랐다. 아버지 없는 설움은 피부로 못 느끼며 자랐지만 남들의 눈에 그렇게 보였을까. 우리 아버지는 2살짜리 아들을 두고 어떻게 가셨을까? 3살 위였던 누나는 아버지를 어렴풋이 기억한다고 하지만 나에게는 거의 nobody가 되었다. 아버지.. 어떻게 그런 불운한 세월을 사셨습니까? 누구의 책임입니까? 나는 딱 한 인간.. 김일성 개XX (그리고 그 자식XX들)를 증오한다.
올해의 Father’s Day, 그래도 아이들이 나를 잊지 않고 찾아주어서 단출한 우리 4식구 집에서 grilled hamburger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아이들, 같은 town에서 살기에 이런 ‘행운’을 가지는 것이다. 그리고 멋진 casual shoes와 gym bag을 선물로 받기도 했는데, 특히 신발이 나의 발 size에 기가 막히게도 잘 맞아서 다행이었고, 15년 가까이 써서 거의 ‘가루가 묻어 나오는’ old YMCA gym bag를 대신 할 것이 생겨서 아주 practical 한 선물이 되었다.
나는 어떤 아버지일까.. 가끔 생각한다. 십대가 지나가며 완전히 놓친듯한 두 딸들.. 아직도 그 후유증이 없는 것이 아니지만, 30살이 넘어가는 완전히 커 버린 ‘애 들’.. 10대처럼 아직도 나는 거북스럽기만 하다. 그런 아빠는 그 애들에게 어떻게 비쳐지는 것일까? 얼마 남지 않은 인생, 어떠한 아버지 legacy를 남기고 갈 것인가.. 아버지를 겪어 보지 못한 나로써는 그렇게 쉬운 일처럼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