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나는

2월의 매화, 그리고 수선화, 또 피었구나 올해도… 반갑다…

 

¶  2월로 달력이 넘어가면서부터 나의 머릿속 깊은 곳에서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2월 초면 거의 시계처럼 피어나는 ‘청초하고 노오란 것’,  늦겨울 황량한 우리 집 뒷마당 먼 쪽으로 오롯이 피어나는 수선화의 모습이 떠올랐다. 매년 이 꽃이 피는 것을 보며 봄이 아주 멀지는 않았음을 느끼곤 하는데, 올해는 왜 유난히도 이 모습이 또렷하게 떠오르는 것일까? 이런 모습을 앞으로 얼마나 더 보게 될 것인가.. 하는 아주 sentimental 한 느낌도 없지 않다.

올해는 bonus로 그 옆에 가느다란 나뭇가지에 매화꽃이 같이 피어 올랐다. 전에 못 보았던 것인데 아마도 연숙이 언젠가 이곳에 심어 놓은 모양인가 보다. 매화꽃, 연숙이 문인화에서 즐겨 그렸던 것, 나는 사실 처음으로 가까이 실물을 보는 셈이다. 그러면서 일본애들의 전통적 ‘화투’의 2월에 이것, 매화가 있었음을 알고 실소 失笑를 금치 못한다. 어떻게 이 나이에야 이런 사실을 깨달았단 말인가?

올 겨울은 나에게는 정말 재미없는 계절이 되고 있다. 비록 12월은 겨울답게 춥고 싸늘하긴 했지만 겨울의 꽃, 눈이나 진눈깨비 같은 것이 전혀 없었다. 특히 이 지역에서는 평균적으로 한두 번씩 찾아오는 snow day같은 ‘괴롭지만 즐거운’ 그런 긴장감의 기회가 현재까지 전혀 없었다.  올 겨울에 만약 ‘첫눈’이 온다면 위험을 무릅쓰고 Conyers1 의 수도원을 방문하리라 던 나의 소년 같은 희망도 이제는 포기할 때가 된 듯하다.

 

¶  봄이 오면 나는…  비록 2월 초이긴 하지만 경험상 2~3월은 겨울답지 않아도 겨울이다. 언제고 ‘날씨의 놀람’은 찾아온다. 특히 이때에 느끼는 ‘추위’는 한 겨울의 그것과 질적으로 종류가 다르다. 한마디로 더 ‘심한 싸늘함’이 있는 것이다. 그래도 이때가 되면 각가지 ‘봄의 기대’ 에 대한 추억과 생각이 떠오른다. 또한 가톨릭 전례로 이때는 사순절을 시작하는 ‘재의 수요일 Ash Wednesday‘가 있어서 올해의 부활절을 떠올린다. 이제는 이때가 나의 일년을 돌아보는 시기가 되고 있다.

요새 즐겨보는 이해인 수녀님의 오래된 1990년대 수필집 ‘꽃삽‘, 이곳에서 수녀님이 생각하는 봄의 모습을 본다.

역시 수녀님, 시인답게 ‘봄은 꽃’이라는 서두로 시작한 단상이다.  이 서문을 읽으며 나도 어린 시절의 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나와 나이차이가 그렇게 나지도 않고 그 무렵 서울 가회동에도 인연이 있기에 더욱 그 시절 봄의 정경이 떠오른다.

난방시설이 초라했던 그 1950년대 그 시절, 겨울을 서서히 벗어나던 때는 정말 황홀한 느낌뿐이었다. 수녀님의 묘사, 포근한 흙 내음새, 어김없이 피어나던 각종 꽃들,  어디 있다가 다들 모여왔는지 그 각종 새들, 그 중에서도 나에게 ‘즐거운 추억의 눈물’을 자아내게 하는 것은 역시 ‘이슬비’가 아닐까? 꽃이 피어나는 앞마당으로 잔잔히 내리는 이슬비를 바라보며 내가 하늘로 떠오르는 착각 속에 빠지던 시절이었다. 당시의 동요들은 어쩌면 그렇게도 단순하면서도 즐겁고 멋지던가.

추위에서 해방이 된 아이들, 갑자기 밖에서 노는 시간이 배로 불어난 즐거움 속에서 얼마나 흙과 나뭇가지를 가지고 놀았던가. 그 시절의 코흘리개 ‘남자’ 친구아이들, 이제는 모두들 할아버지가 되었을 것이다. 세월의 흐름이 가져다 준 각종 ‘편리함’이 앗아간 것들을 아쉬워하면 다음 세대와 그 다음세대를 본다.

 

***************

 

봄이 오면 나는 – <꽃삽>, 이해인

 

봄이 오면 나는 활짝 피어나기 전에 조금씩 고운 기침을 하는 꽃나무들 옆에서 덩달아 봄앓이를 하고 싶다. 살아 있음의 향기를 온몸으로 피워 올리는 꽃나무와 함께 나도 기쁨의 잔기침을 하며 조용히 깨어나고 싶다.

봄이 오면 나는 햇볕이 잘 드는 안뜰에 작은 꽃밭을 일구어 꽃씨를 뿌리고 싶다. 손에 쥐면 금방 날아갈 듯한 가벼운 꽃씨들을 조심스레 다루면서 흙냄새 가득한 꽃밭에 고운 마음으로 고운 꽃씨를 뿌리고 싶다.

 

 ‘조금 답답하겠지

그렇지만 꾹 참아야 해

땅은 엄마니까

꼬옥 품어줄거야

한잠 푹 자고 나면

우리 또 만나게 될거야’

 

언제 읽어도 정겨운 김교현 시인의 동시를 외우면 흙을 덮어주면 꽃씨들은 조금쯤 엄살을 부리다가도 말 잘 듣는 아이처럼 ‘알았어요’ 라고 대답할 것만 같다.

봄이 오면 나는 매일 새소리를 듣고 싶다. 산에서, 바다에서, 정원에서 고운 목청 돋우는 새들의 지저귐으로 봄을 제일 먼저 느끼게 되는 나는 새들의 이야기를 해독해서 밝고 맑은 시를 쓰는 새의 시인이 되고 싶다. 바쁘고 힘든 살의 무게에도 짓눌리지 않고 가볍게 날아다닐 수 잇는 자유의 은빛 날개 하나를 내 영혼에 달아주고 싶다. 봄이 오면 조금은 들뜨게 되는 마음도 너무 걱정하지 말고 더욱 기쁘고 명랑하게 노래하는 새가 되고 싶다.

봄이 오면 나는 이슬비를 맞고 싶다. 어릴 적에 항상 우산을 함께 쓰고 다니던 소꿉동무를 불러내어 나란히 봄비를 맞으며 봄비 같은 이야기를 속삭이고 싶다. 꽃과 나무에 생기를 더해 주고 아기의 미소처럼 사랑스럽게 내 마음에 내리는 봄비. 누가 내게 봄에 낳은 여자 아기의 이름을 지어 달라고 하면 서슴없이 ‘봄비’ ‘단비’라고 하고 싶다.

봄이 오면 나는 풀 향기 가득한 잔디밭에서 어린시절 즐겨 부르던 동요를 부르며 흰 구름과 나비를 바라보는 아이가 되고 싶다. 함께 산나물을 캐러 다니던 동무의 이름을 불러보고 싶고, 친하면서도 가끔은 꽃샘바람 같은 질투의 눈길을 보내오던 소녀시절의 친구들도 보고 싶다.

봄이 오면 나는 우체국에 가서 새우표를 사고, 문방구에 가서 색연필, 크레용, 피스텔, 그리고 마음에 드는 편지지와 그림엽서를 사고 싶다. 답장을 미루어둔 친지에게 다만 몇 줄이라도 진달랫빛 사연을 적어 보내고 싶다. 동시를 잘 쓰는 어느 시인으로부터 맑고 고운 무리 말을 다시 배워서 아름다운 동심의 시를 쓰고 싶다. 시를 외우다가 잠이 들고, 꿈에서도 시의 말을 찾고 싶다.

봄이 오면 나는 모양이 예쁜 바구니를 모으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솔방울, 도토리, 조가비, 리본, 바느질 거리, 읽다가 만 책, 우편물 등을 크고 작은 바구니에 분류해 놓고 오며 가며 보노라면 내 마음도 바구니가 되는 듯 무엇인가를 오밀조밀 채우고 싶어진다. 바구니에 담을 꽃과 사탕과 부활달걀,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선물들을 정성껏 준비하며 바쁘고도 바쁜 새봄을 맞고 싶다

사계절이 다 좋지만 가을엔 ‘달맞이 마음’, 봄에는 ‘해맞이 마음’이 된다고 할까? 꽃들이 너무 많아 어지럼증이 나고, 마음이 모아지지 않아 봄은 힘들다고 말했던 나도 이젠 갈수록 봄이 좋아지고 나이를 많이 먹고서도 첫사랑에 눈뜬 소녀처럼 가슴이 설레인다.

봄이 오면 나는 물방울 무늬의 앞치마를 입고 싶다. 유리창을 맑게 닦아 하늘과 나무와 연못이 잘 보이게 하고 또 하나의 창문을 마음에 달고 싶다. 먼지를 털어낸 나의 방 하얀 벽에는 내가 좋아하는 화가 사제가 그려준 십자가와 클로드 모네가 그린 꽃밭, 구름, 연못을 걸어두고, 구석진 자리 한곳에는 앙증스런 꽃삽도 한개 걸어두었다가 꽃밭을 손질할 때 들고 나가야겠다. 조그만 꽃삽을 들고 꽃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그 아름다운 음성에 귀를 기울이노라면 나는 멀리 봄 나들이를 떠나지 않고서도 행복한 꽃마음의 여인, 부드럽고 따뜻한 봄 마음의 여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1994>

  1. Atlanta, Georgia의 subur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