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나

2015-04-19 11.46.30-1

집 앞에 내리는 봄비, 그 소리와 모습을 Tobey도 너무 좋아하나..

봄비, 그것도 4월에 촉촉히, 싸늘하게 내리는 비를 나는 ‘아직도’ 좋아한다. 다시 찾아온 4.19 학생 혁명기념일도 거의 잊은 채, 나는 하루 종일 잔잔히 내리는 봄비를, 가라앉지만 포근한 심정으로 바라보며 일요일 오후 시간을 보냈다.  잔잔하지만 쉬지 않고 relentless 내리는 비, weather person들은 분명히 귀찮은 annoying, nuisance 것으로, 미안한 표정으로 비를 예보 하지만 나는 그러한 그들이 이상하기만 하다. 나는 너무나 반갑기 때문이다. 나도 안다. 나 같은 사람들은 역시 ‘소수 minority일 것이란 것을.

내가 언제부터 이 ‘비’를 좋아했던가 생각을 해 본다. 분명한 것은 최소한 나의 사춘기, 황금시절 10~20대에는 ‘절대로’ 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을 귀찮아 했었다는 사실이다. 특히 밖으로 나가는 일이 있을 때, 등산 같은 것을 갈 때.. 이 내리는 비는 사람을 귀찮게 하는 것이었다. 특히 머리 style에 신경을 쓰던 철없던 그 나이에 머리카락에 떨어지는 물은 절대 사절이었다. 그 당시에 자가용은 꿈도 못 꾸었고, taxi를 탈 처지도 아니고 분명히 콩나물 시루 같은 시내버스를 타야 했던 시절.. 비 오는 날은 분명히 구질구질하기만 했다. 물에 떨어지는 우산을 접은 사람들로 꽉 차고 담배연기 자욱한 ‘시내’ 버스 안을 상상하면 쉽게 이해가 간다.

세월은 흐르고 머리 스타일에 신경을 쓸 나이가 훨씬 지난 후에, 그것도 공간적으로도 공해로 가득 찬 서울에서 초록색이 감도는 미국으로 완전히 바뀌어서 시내버스를 탈 기회는 완전히 사라지고 ‘자가용’이 필수가 된 곳에서 잔잔히 내리는 비에 대한 생각은 서서히 바뀌었다. 넓은 하늘, 대지에 내리는 비와, 우중충한 urban 도심지의 그것은 분명히 다르다. 귀찮기만 하던 비가 나에게는 이제 ‘진정제’로 서서히 변했고.. 그것이 조금은 지나치게.. 너무나 좋아하게 되었다. 그런 나를 연숙은 이해를 잘 못하는 것 같아서 더 이상 비에 대한 말을 안 하게 되었다.

비를 사랑하게 된 것이 정확히 감상적이거나 지리적인 환경에 의한 것일까? 이런 생각도 해 본다. 혹시 나의 성격이나 성질이 조금씩 어둡게 변하고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걱정을 해 본적도 있었다. 어둡다기 보다는 나이에 따른 ‘내면적 삶’을 더 중요시하는 경향 때문이 아니었을까? 비가 ‘멋지게’ 내리는 것을 보는 것은 아름다운 꽃을 보거나, 각가지 종류의 새들을 멀리서 보는 것 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그 것들이 가진 독특함으로 위안을 받기도 하고, 더 깊은 생각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시기적으로 40대 이후부터 현재까지 이런 ‘취미’를 가지고 살았고 아마도 ‘그 날’까지도 나는 밖에 오는 비 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 같다.

2015년, 4월의 딱 절반..

4월 15일.. 4월의 딱 절반에 도달했다는 것 이외에 다른 뜻이 있을까?  물론 있다.. (income) tax return day 마지막 날이다. 이곳에서 오래 살다 보니 이제는 이런 미국적인 날도 나의 것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아니.. 이제야 이날의 진정한 의미를 알 것 같은 후회감도 없지 않다. 나는 인생을 남들보다 조금씩 더 늦게 깨닫고 늦게 행하는 그런 삶을 살았다. 어릴 적부터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신체적인 ‘발육’도 남들보다 항상 늦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마도 죽는 것도 남들보다 조금 더 늦게 죽을 것이라고 미소를 지었던 기억이다. 하지만, 하지만 나는 인생의 막바지에서 얼마나 많은 ‘손해’를 보았던가.. 주위에 얼마나 본의 아닌 ‘게으름에 의한’ 피해를 주었던가? 할말이 없다.

올해의 부활 주일.. 참 만족스럽게 보람 있게 보냈다고 느낀다. 목요일 부터 일요일 부활까지 우리는 ‘고향’ 순교자 성당엘 갔다. 작년부터 시작된 우리의 새로운 전통이다. 평일미사는 거의 Holy Family엘 가지만 레지오는 물론이고, 가급적 주일미사와 큰 행사는 순교자 성당엘 가려고 하는데.. 이런 format을 성모님은 어떻게 보실까? 큰 이의가 있을까? 현재 우리의 사정에 가정 적합한 방식이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심야 수난 감실 성체조배.. 올해도 나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특히 성체가 빠져나간 깜깜한 본당에서 기다리는 그 시간이 나는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참… 나도 많이 많이 변한 것이다.. 이렇게까지 될 수가 있을까?

나는 현재 어떠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얼마 전부터 나는 책, Rediscover Catholicism을 읽으며 조금 더 ‘조직적’인 신앙생활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 중에 첫 번째가 내가 얼마나 이곳 영성, 신앙적인 곳에 ‘투자’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었다. 이것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일 중의 하나다. 계획에 의한 일은 체질적으로 싫어하는 나에게 이것은 고역 중의 고역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제는 느낀다. 이것도 나의 인생에서 풀어야 할, 고쳐야 할 고질적인 습관이기에.. 고쳐야 한다고. 2007년 묵주기도와 성모님으로 근본적으로 바뀐 ‘버릇’이 얼마나 많은가? 하나 하나씩 좀 더 나은 (better version) 이경우 빈첸시오를 향해서 노력을 하는 그런 시간, 세월도 그리 길지 않을 듯 하다. 레지오를 중심으로 매일/평일 미사에 ‘쓰이는 시간’.. 이제는 계산을 할 때가 되었다. 시간 상 문제가 없다면 이제는 quality에 신경을 더 쓰면 어떨까?

 

요새 우리 부부의 레지오 활동은 주로 배해숙(베로니카) 자매를 돌 보아주는 일에서 머물고 있다. 지난 11월에 시작된 ‘묘한’ 인연의 배 자매님.. 결국은 3월 15일 ‘극적’으로 병원 침대에서 영세/세례를 하태수 신부님으로부터 받았다. 거의 사경을 헤매는 모습으로 지내던 그 병원.. 당시는 느낄 수 없었어도 참 큰 일이었다. 특히 가족들이 그렇게 바라던 일, 한마디로 연숙이 아니었으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 나도 인정을 한다. 나는 옆에서 ‘견습생’으로 함께 하며 이런 과정을 보고 배웠다. 이제는 배해숙 자매가 ‘안심하고’ 하느님께 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나도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조금은 짜증스러운 행동을 보이는 것에 나도 짜증이 나곤 했지만.. 이것도 견습생으로 나는 배우고 있다. 내가 모르는 연숙의 프로같은 환자간호 솜씨에 모두들 놀라곤 한다. 특히 까다로운 배 자매가 연숙에게는 큰 무리 없이 순종하는 것을 보면 나도 놀라곤 한다. 비록 병원에 입원하면서 더 할 것이 없다고 퇴원을 해서 조금 두려운 생각이 들었지만 이제는 기도의 순리, 하늘에 맡기는 심정이 되니 다른 기분도 들고 실제로 그녀는 퇴원 후에 더 밝은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 나도 놀란다. 최악의 경우야 모두 생각하겠지만.. one day at a time이란 말처럼 조금씩 조금씩.. 살면 되지 않을까?

Longfellow Serenade

Longfellow Serenade – Neil Diamond – 1974

 

롱펠로우 세레나데.. 롱휄로우 세레네이드.. 무척 오랜만에 불러보는 단어들이다. 이 두 단어를 합치면 곧바로 떠오르는 것은 물론 1974년 Neil Diamond의 hit song 일 것이다. 나의 ‘전성기’였던 그 당시는 뇌리에서도 아직도 가장 활발한 부분에 모여있는지 생생하고 흥미롭기도 하지만 사실은 이런 주제의 제목에 도달한 생각의 과정이 더욱 흥미로운 것이다.

‘늙은 두뇌’에는 사실 잡동사니 같은 많은 ‘정보’들이 쌓여있을 것인데, 그런 많은 것들이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결이 되면 가끔 기발한 추억을 찾기도 한다. 나이 먹는 ‘즐거움’ 중에는 이런 흥미로운 혜택이 있음을 어떤 사람들이 알까 궁금하기도 하다.

Longfellow Serenade에 도달한 과정은 우습게도 최근 edX online course중에 하나인 MyDante (my Dante)를 ‘청강, audit’ 하는 과정에서였다. 이 MOOC(Massive Open Online Course)  style course 는 Georgetown University (Washington DC) 교수들이 가르치는 것인데 Dante의 classic인  Divine Comedy (신곡, 神曲)를 완전히 digital 형식으로 바꾸어 제공해서 ‘초보자’들도 아주 쉽게 이 ‘거창한 고전’을 접할 수 있다.

내가 이 course에 흥미를 가진 이유는 물론 신학적인 호기심도 있었지만, 사실은 그 course technology가 cutting edge digital (Internet) technology를 적절히 이용한 것에 매료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13세기 무렵에 쓰여진 ‘대 서사시’ 그것도 Italian으로 쓰여진 ‘고물’을 본래 식으로 읽는 것은 아마도 박사학위가 필요할 것처럼 어려울 것이지만, 이 course는 21세기 초현대식으로 접근방법을 바꾸어 놓아서, Dante를 전혀 모르는 나 같은 사람도 감상을 할 수가 있었다.

연옥, 7층산을 바라보는 단테
연옥, 7층산을 바라보는 단테

Dante Alighieri, 단테 앨리기에리.. 단테..라면 사실 중고등학교 다닐 때 배웠던 것이다. 단테의 신곡.. 아마도 세계사 시간이 아니었을까? 그 당시의 기억으로는 중세가 끝날 무렵의 이탈리아의 단테가 지었던 거창한 서사시 정도였다. 나아가서 ‘지옥, 연옥, 천국’을 그린 것이라는 기억 정도였다.

나중에 신곡이 Divine Comedy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Divine은 이해가 가는데 왜 하필 Comedy인가 하는 의문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comedy의 뜻이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최소한 ‘웃기는’ comedy가 아님을 알고 웃기도 했다. 그렇게 접하게 된 단테와 신곡.. 추억도 곁들였지만 지금은 그런 감상적인 느낌보다는 나에게는 조금 절실한 현실로 받아들여졌다. 과연 ‘지옥, 연옥, 천국’이 나에게 지금 어느 정도로 심각한 relevancy가 있는가? 그것도 이제는 ‘소수 종교’로 쳐지는 듯한 천주교의 중심교리, 개신교에서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 연옥 purgatory, purgatorio.. 그것이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일까?

토마스 머튼, 7층산
토마스 머튼, 7층산

얼마 전에 내가 속한 ‘레지오’의 주 회합 ‘훈화’에서 단테의 이야기가 나왔었다. 바로 연옥에 관한 이야기 그러니까 7층산으로 묘사된 ‘일곱 가지의 죄’.. 그 중에서 pride에 관한 이야기였다. pride의 죄를 범한 사람들이 세상에서 목에 힘을 주며 살았기에 그들의 ‘보속’은 ‘돌이나 납덩어리’ 같은 무거운 짐을 목에 걸고 걷는 형벌이었다. 이것은 나에게 우연이 아닌 듯 싶은 것이 그 전에 Thomas MertonThe Seven Storey Mountain을 알게 될 무렵.. 사실 그 7층산이 단테의 신곡 연옥에서 보여주는 Seven deadly sins임을 알게 되었기에 이제 확실히 ‘점’들이 연결이 된 것이다.  이 일곱 죄는: wrath(분노), greed(탐욕), sloth(게으름), pride(자랑), lust(음욕), envy(시기), gluttony(게걸스러움) 인데 단테는 이것을 연옥의 7 terrace mountain으로 그린 것이다.

이렇게 단테의 신곡을 공부하며 신곡의 역사를 알게 되는데, 신곡은 대 서사시이기도 하지만 이탈리아의 ‘표준어’를 만드는 역할도 했다고 한다. 아마도 영국의 Shakespeare 정도 위치를 이탈리아의 단테가 차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신곡은 이태리 어로 읽어야 단테 문학의 정수를 맛본다고 하지만 그에 맞먹는 영어 번역본들도 있다. 그 중에는 19세기 미국의 대표적 시인 Longfellow가 번역한 것도 있는데, 그 번역본이 나올 당시 (19세기 중엽) 미국에서 이 책을 ‘들고 다니는 것’이 지식인들에게는 유행이었다고 한다. 비교적 간추린 것이지만 나는 이렇게 해서 Merton에서 시작해서 Dante로, 거기서 다시 Longfellow까지 갔고 종착역은 역시 우리 시대의 idol이었던 Neil Diamond가 맡아 주게 되었다. 참.. 연상퀴즈의 묘미는 이런 것인가?

Henry Wadsworth Longfellow
Henry Wadsworth Longfellow

그런 과정에서 다시 Longfellow의 대표적인 시를 ‘구경’하게 되었다. 미국 19세기 시문학을 대표하는 그는 미국 Northeast의 정서를 잘 묘사를 하였고 당시에는 꽤나 ‘유행적’인 시인이었다. 요즘 들어서 매일 내리는 4월 느낌의 비를 보며 유심히 그의 시에서 이런 느낌을 150% 느끼게 하는 시를 찾아 내었다.  The Rainy Day.. 글자 그대로 비 오는 날.. 비교적 직설적인 표현의 이 시를 자세히 읽으며 생각했다. 오늘 오는 비의 느낌과 비슷하기도 했지만, 무언가 기억이 나는 시라는 생각이 번뜩 든다. 5분도 걸리지 않았다. 1967-8년 경의 기억이 남아있는 뇌세포에 자극이 갔는데, 아하… 즉시 ‘유영’이라는 단어가 떠 오른다.

영문학과 유영 교수님
영문학과 유영 교수님

유영.. 유영 교수, 연세대 영문과 유영 교수님… 교양학부 과정의 마지막 영어독해 강의에서 유영교수가 가르쳐준 시였다. 그것이 바로 이 시였던 것이다. 이 시의 시작부분이 이 의문의 key였다. The day is cold, and dark, and dreary .. 바로 이 dreary란 단어, 이것이 거의 반세기 동안 나의 깊은 뇌세포에 잠재해 있었다. 유영교수의 이 dreary란 단어의 발음이 너무나 독특해서 우리들 모두 웃었던 기억.. 당시에 이 시를 읽으며 정말 ‘음산한 4월’을 몸이 오싹할 정도로 움츠린 기억.. 그것이 바로 요새 이곳 4월 비의 느낌과 비슷하니.. 참.. 이렇게 해서 오랜만에 따뜻한 ‘아랫목’에서 ‘추억의 백일몽’을 즐긴 날이 되었다.

 

The Rainy Day

by Henry Wadsworth Longfellow

 

The day is cold, and dark, and dreary;

It rains, and the wind is never weary;

The vine still clings to the mouldering wall,

But at every gust the dead leaves fall,

And the day is dark and dreary.

My life is cold, and dark, and dreary;

It rains, and the wind is never weary;

My thoughts still cling to the mouldering Past,

But the hopes of youth fall thick in the blast,

And the days are dark and dreary.

Be still, sad heart! and cease repining;

Behind the clouds is the sun still shining;

Thy fate is the common fate of all,

Into each life some rain must fall,

Some days must be dark and dreary.

 

봉성체 奉聖體, 1년 후

봉성체 봉사자를 구하는 Holy Family 성당의 brochure
봉성체 봉사자를 구하는 마리에타 Holy Family Catholic Church 의 brochure

봉성체 奉聖體, home Eucharistic communion service, ministry 성체를 집으로 모시고 가서 영성체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을 일반적으로 봉성체 라고 하는데 이것은 Extraordinary Minister of the Holy Communion 라는 평신도 중에서 특별히 선발되고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서류상으로도 본당, 교구, 대교구에 등록을 하여야 하고 대강 3년 정도 유효하다고 한다. 이만큼 사제가 아닌 평신도가 성체를 성당 밖으로 모시고 나가서 영성체 봉사service를 하는 것은 조심스럽고 신중하다고 할까.

4년 전쯤, 말기 암으로 투병을 하던 우리 레지오 단원 은 요안나 자매님이 거동이 불편해져 집에만 있게 되었을 때, 그 자매님에게 성체를 모시게 해 주고 싶다는 일념 으로 연숙이 ‘두말없이’ 봉성체 교육을 받고 교구청에 등록을 했는데.. 좀 늦었던가.. 안타깝게도 한번도 봉성체를 해 주지 못하고 그 자매님은 운명을 하게 되었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그 이후로는 ‘가능하면’ 늑장을 부리지 않고 성체를 원하는 거동이 불편한 신자들을 찾게 되었고 필요한 곳은 찾아가게 되었다.

5년 전쯤만 해도 나는 ‘성체의 심각한 의미’를 잘 몰랐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성체와 성혈은 100% 예수님의 몸과 피라는 교리상식은 물론 ‘머리’에서는 알지만.. 그래서..어쨌다는 말인가 라는 선에서 멈추곤 하였다. 미사에서 성체, 성혈을 받을(모실) 때에도 ‘의미 있는 묵상’이 별로 쉽지 않았다. 그것은 물론 내가 별로 깊이 생각과 묵상을 안 해서 그런 것이다. 최후의 만찬에서 비롯된 성체,성혈의 신학적, 역사적 의미를 조금 더 겸손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다가, 한 순간 ‘점들이 연결되는 순간부터’ 나는 거의 무조건 성체의 신비를 믿게 되었다. 의외로 간단한 과정이었을까?

그런 배경으로 봉성체 봉사자인 연숙을 따라다니며 ‘봉성체 동행’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레지오 활동의 일환으로 봉성체 봉사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집이나 병원에서 성체를 모시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되었다. 일년이 넘은,  작년 2월경 부터 우리는 정기적인 ‘화요일 봉성체’ routine을 시작하게 되었다. 실제적으로 우리는 레지오 주회합이 있는 화요일에 정기적인 봉성체 활동을 하고 가끔 비정기적인, 예외적인 봉사를 한다.

이 봉성체 활동을 하며 느끼는 것은 한마디로 가톨릭 신앙에서 얼마나 성체신심이 중요한 가 하는 때늦은 놀라움이다. 1982년 영세를 받고 나서 수십 년이 흐른 인생의 황혼기에 나는 이것을 정말 늦게 깨달아가고 있는 것이다. 성당의 미사를 못 보며 느끼는 이들 봉성체 대상 교우들의 성체에 대한 갈증, 갈망을 느끼고 보며 나는 너무나 많은 은총을 받는 듯 하다. 이 우리의 봉사는 사실 우리가 봉사를 받는 다는 쪽이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 정도다. 고령의 봉성체 대상 자매님, 기억력과 씨름을 하시지만 우리들이 가면 ‘일제 시대(요새는 일제 강점기라고 하던가)’에 남편 형제님을 만나게 된 경위를 일본말을 섞어가며 설명하시던 모습을 보며, 이 분들에게 성체 이외에 ‘인간적 대화’가 필요함도 절실히 느낀다. 성체의 ‘기적’까지는 기대 못하더라도 이런 활동이 외로울 수도 있는 그분들에게 다른 기적을 가져다 줄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우리는 ‘자동차와 다리가 성한 한’ 이 활동을 계속할 것이다.

사순절 판공성사, 2015

또 ‘그것’을 할 때가 다가왔다. 그것.. 판공성사, 고백성사, 고해성사.. 어떻게 표현해도 다 마찬가지다. 결코 쉽지 않은 ‘의무’, 가톨릭 신자의 의무다. 이것도 의무지만 자유로운 의무고 다른 쪽으로는 우리 교회만의 권리, 특권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 성사의 의미와 특징 (좋은 쪽으로)은 열거하면 한이 없이 많다. Matthew KellyRediscovering Catholicism 책을 요새 다시 읽으며(aka typing) timing 좋게 confession 에 대해서 복습을 하였다. 시간이 갈수록 쓰레기로 쌓이는 집이나 차에 비유해서 정기적으로 청소를 하는 것과 비교한다. 많이 쌓이면 그런 사실자체에 둔감해져서 더 많이 쓰레기가 쌓인다고. 자주 하면 할 수록 좋은 것이라고.. 누가 모르나? ‘괴롭게 들어갔다가 날라가는 기분으로 나오는 곳’ , 그곳이 바로 고백성사란 것만 기억해도 좋은 것, 이것 하나, 나는 분명히 기억한다.

올해는, 아니 내일로 다가온 이 ‘것’을 어떻게 해야 하나? 무엇을 고백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 10중 8/9는 하태수 신부님께 하게 될 듯 한데.. 그것이 상관이 있을까? 모두들 어렵다고 하는 이것, 나에게도 어려운 것인가, 아니면 귀찮은 것인가?

이제는 ‘양심성찰’을 해야 할 때가 온 듯하다. 지난 해 6월이었던가, Conyers의 수도원에서 가진 레지오 피정 때 내가 이것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알쏭달쏭하다. 한 듯하기도 하고, 안 한 듯 하기도 하고.. 하지만 작년 사순절 때는 100% 확실히 했다. 비록 ‘사소한’ 것을 고백한 기억이지만.

 

그 동안 나의 ‘죄’는 무엇이 있을까? 대죄는 물론 없다. 소죄는 있을 듯 하다. 확실히 기억은 안 나지만. 십계명으로 출발하면, 어떤 주일을 거룩하게 안 보낸 것은 확실할 것이다. 제일 쉬운 것이 이것인가? 하지만 이런 것을 하면 내가 만족할 수가 없다. “고백성사 101″을 다시 한번 볼까나..

아마도 십계명에 ‘정면으로 거역’ 된 일을 없을 것이다. 나에게 우상이란 것은, 분명히 없다. 하느님의 이름을 마구 함부로 ‘팔아 넘기듯’ 부른 적도 없다. 주일이나 종교적 축일들을 소홀히 보냈는가.. 다행히 지난 해에 우리는 ‘부지런히’ 주일, 축일을 보냈을 것이다. 부모님을 공경하는가.. 이것은 비교적 쉬운 듯 하지만, 실제적으로 우리는 죽어도 부모님을 잘 모셨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영원히 죄로 고백해야 할 것 중에 하나다. 살인한 적도 없고, 간음한 적도 없다. 훔친 적도 없고, 요상한 소문을 낸 적도 없고 거짓말 증언을 한 적도 없다. 남의 아내를 엿보거나 흠모하거나 사랑한 적도 없다. 남이 잘 사는 것에 질투심을 느꼈을까? 이것은 100% 부인할 수가 있을까? 나는 ‘지나치게 사치하게 잘 사는’ 사람을 가끔 ‘경멸’한 적은 있지만 그 정도로 부러워한 적은 거의 없었다.

 

죄를 안 짓는다는 소극적인 것에서, 과연 적극적으로 ‘선행’을 하고 살았던가? 이것은 자신이 없다. 죄를 피하며 살았을지언정 적극적으로 남을 인간으로 사랑하거나 물질적으로 도와 주었다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나의 ‘재주, 재능’을 하느님을 위해서 효과적으로 사용했을까? 이것도 자신이 없다. 비록 레지오라는 단체에서 ‘봉사’를 한다고 하지만 언제까지나 만족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할 수가 없다.

 

예수님의 사랑의 2계명:

‘You shall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mind. This is the greatest and the first commandment. The second is like it: You shall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The whole law and the prophets depend on these two commandments’(Mt 22:37-40).

“Love is patient, love is kind. It is not jealous, [love] is not pompous, it is not inflated, it is not rude, it does not seek its own interests, it is not quick-tempered, it does not brood over injury, it does not rejoice over wrongdoing but rejoices with the truth. It bears all things, believes all things, hopes all things, endures all things. Love never fails” (1 Cor 13:4-8).

 

지난 해 판공성사 (사순절부터) 이후 나는 어떻게 살았는가? 남이 보기에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았던가? 고정적인 일상생활의 pattern으로 두드러진 것은 생각이 안 난다. 가깝게 나를 ‘괴롭히는’ 것이라면 ‘겸손하지 않다고 보이는’ 연숙의 행동들에 대한 나의 짜증 정도? 이것도 죄가 될까? 마찬 가지로 두 딸들에 대한 나의 실망감..

하지만 조금 밖으로 눈을 돌리면, 미안한 것들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작년 여름 레지오 회합에서 큰 생각 없이 한 나의 ‘솔직한’ 말 때문에 장 실비아 자매가 퇴단까지 한 것은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는 뜻밖의 일이었고, 나의 말을 너무나 심각하게 받아들인 상대방만 탓하기도 했다. 하지만 원인은 무조건 나에게 있기에 나의 잘못이고 미안해 해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나 뒤 늦게 들었다. 같은 여름 미국성당에서 ‘사소한 고정석’을 빼앗긴 것이 발단으로 ‘터진’ 나의 ‘분노’도 마찬가지로 전적으로 나의 ‘문제’에 의한 것이었다. 상대방이었던 필리핀 자매에게는 너무나도 잘못을 하였다. 기분이 쳐지거나 나의 ‘운전 불능’신세를 한탄하며 연숙의 운전 실력을 100% 매도하는 나날들 또한 어떨까.. 나의 일방적인 잘 못이 아닐까? 이런 것들을 떠나서 나는 언급하기 싫은 ‘잘못’을 했고 현재도 하고 있다. 가슴 속 깊이 잠자고 있는 나의 ‘깊은 상처, 수치’를 건들이거나 하고 싶지 않다. 그만큼 이것이 무서운 것이다.

근래에 너무나 가까워진 수 많은 ‘자매님들’.. 인간의 한 부류로 신선하게 다가온 수 많은 자매님들을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 것일까? 신앙적 동지일 수 밖에 없는 그녀들을 나는 가끔 어떤 생각까지 하며 ‘즐기고’ 있는 것일까? 아직도 나는 여성에게 여자의 미련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은근히 나는 이성들이 많은 곳에서 어떠한 환상적인 생각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생물적’인 충동이 아직도 있다는 사실은 나를 진정 놀라게 한다. 그것 때문이 예전의 ‘환상적 잘못’의 세계로 조금이라도 다가 갈까 봐 조바심도 나는 것이다. 성모님에 의지하는 내가 왜 다시 성모님께 의지하지 않는 것일까? 너무나 수치감을 느껴서 그런지도 모른다. 나는 이런 상태를 초월하는 다음의 단계로 성숙해야 한다. 이것을 나는 어떻게 신부님께 고백을 해야 하는 것일까? 이것이 오늘 저녁에 예정된 성사에서 풀어야 할 과제가 되었다.

Spring came forever..

Early Spring Bradford Pear

Early Spring Bradford Pear

 

오랜만에 가랑비가 싸늘하게 느껴지는 조용한 점심 식사 전, 오후를 맞이한다. 그렇게 추웠던 올 겨울도 결국은 나와 같이 나이를 느껴는 듯 조용히 물러가고 있다. 이곳 이른 봄의 상징인 Bradford Pear tree의 하얀 꽃이 부끄럽게 피어나는가 싶더니 갑자기 무덥게 느껴지는 봄 기운을 맞이 했는지 갑자기 만발을 했다. 뒤뜰을 조심스럽게 보니 거기에는 일년 전에 보았던 노란 개나리가 피기 시작한 모습이 있었다. 내일이 춘분, ‘사철과 책력’의 기억에 봄의 시작인 춘분, 달력에는 그저 Spring begins라고 쓰여있지만 유식한 (천문학적) 표현은 역시.. Spring Equinox일 것이다. 그러니까.. 봄의 계절에 밤과 낮의 길이가 거의 같이 되는 날..

2015-03-19 15.08.49-1올해의 겨울도 작년과 버금갈 정도로 끈질기게 길었던 추위를 느끼게 했다. 20년 동안 ‘동복’이라는 말을 잊은 채 살다가, 태고적에 입었던 ‘진짜 겨울 옷’들이 대거 등장해서 톡톡히 본전을 뽑았다. 아닌게아니라 그런 옷들은 반 세기 전에 고국에서 입었던 ‘골동품’도 있었고 Midwest에서 살 때 (Illinois, Ohio, Wisconsin) 겨울에 입었던 그런 종류였다. 사반세기 전에 이곳에 이사온 이후 거의 한번도 입어본 적이 없었던 것들.. 다행히 대부분 이곳의 더운 공기 피해를 입지 않고 잘도 보존이 되어 있었던 고마운 역사적인 옷들이 올해는 차가운 공기를 맡으며 생기를 찾았다. 이런 연이은 추운 겨울을 보내며 global warming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기도 했다. 느끼는 것은 global cooling같았지만 역시 이것은 지역적인 현상에 불과한 것일 것이다. 겨울을 완전히 보내며, 작년과 같은 추위와 눈에 의한 ‘대형사고’가 올해는 하나도 없었던 것을 감사 드린다. 눈이 올 때 느끼는, thrill과 dramatic 한 짜릿한 suspense 는 조금 아쉽기도 하지만, never mind, who cares?

초조한 사순절 4주째..

차분하고 경건해야 할 것만 같은 사순절의 한 가운데를 지나면 왜 이렇게 ‘우리’는 초조함을 느끼는 것일까? 평화가 줄어들고 수심과 걱정이 휩싸이는 느낌.. 이번 사순시기는 무엇인가 이런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지만 대부분 나의 탓이기에 할 말이 없다. 내가 그렇게 만든 것.. 이라고 생각한다. 해야 할 ‘중요한’ 것은 계속 뒤로 미루며 사는 것, 왜 나는 진정한 proactive한 인간이 못 되는 것일까? Matthew KelleyThe Four Signs of a Dynamic Catholic에게 오랜 만에 자극을 받는가 싶었지만 다시 주저앉는 나의 모습.. 절제된 자기훈련이 된 하루하루를 살고 싶었고 그렇게 할 희망은 충분히 아직도 있다. 비록 치통에 모든 잘못을 탓하고, 비실비실 잠열에 뒤척이는 모습이었지만.. 훌훌 털고 일어나자! 작년에 비한 우리의 ‘위상’은 하늘과 땅이 아니던가? 최소한 무언가 변하게 될 ‘희망’이 있지 않은가?

진정으로 우리를 초조하게 하는 것은 배해숙 자매의 병세 때문일 것이다. 생각보다 더 약한 모습으로 변하는 자매님, 돼지띠 동갑 자매님.. 놓칠 수가 없다. 우리 부부는 그런 심정으로 지금 싸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얼마 더 오래 살지는 하느님만 아시겠지만 우리의 ‘요구’는 최소한 이 자매님이 짧지 않은 ‘진정 행복한 나날’을 아드님들과 즐길 수 있는 ‘건강한 나날’을 주시라는 것이다. 수 십 년도 아니고 아니 몇 년이라도 좋다. 진정한 행복한 인생이 무엇인지 되돌아 볼 수 있는 건강한 기간, 시간을 주시라는 우리의 기도가 그렇게 무리일까? 아니지요.. 성모님.. 어머님.. 인자하신 성모님, 기도해 주세요.

오늘 예정대로 ‘병원’에서 배 자매님의 세례식이 ‘거행’될 것이다. 분명히 그녀는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나실 것이다. 그것과 더불어 더 건강한 새 생명이 함께 하시게 되시기를 우리는 기도한다. 하신부님의 배려로 성사되는 이번의 세례식.. 조금 있으면 떠나게 되는 하 신부님, 지금부터 서운하기만 하다. 어쩌면 나와 그렇게 모든 ‘코드’가 잘 맞았는지 아무도 모들 것이다. 이런 신부님 앞으로 나는 다시 못 만날 것이다. 개인적으로 친해지고 싶었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다 지나지 않았던가..

afternoon delight, Krispy Kream..

perfect combo: donuts, coffee & banana

perfect combo: donuts, coffee & banana

 

요즈음 우리가 가는 supermarket: KrogerPublix같은 곳엘 가면 나의 눈에 아주 편안하게 들어오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Krispy Kream donut box 들이다. 단맛 때문일까.. 아니면 부드럽게 느껴지는 혀끝의 맛 때문일까, 아니면 이것과 곁들여 떠오르는 향기 가득한 ‘새카만’ dark black coffee ‘맛의 모습’ 때문일까? 몇 년 전에 donuts을 먹고 배탈로 며칠을 고생한 이후 이것만은 피하며 살았지만 그런 기억도 희미해 진 요즈음 다시 이 ‘단맛과 coffee’의 유혹은 피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이곳에서는 전통적으로 도넛은 거의 이른 아침에 먹지만, 그런 ‘직장 생활’ 시절이 다 지나간 요새, 나는 이것을 거의 혼자 먹는 ‘점심 후 간식’으로 즐긴다. 특히 hazelnut coffee 같은 것을 곁들이면 이것은 나에게 진정한  afternoon delight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가 afternoon delight이란 말이 귀에 익은 말이고.. 이 말은 오랜 전의 hit  pop song, 노래 제목 임까지도 기억을 해냈다.

태고(太古) 적.. 이런 말이 아직도 쓰이는지.. 그러니까 까마득히 오래 전 이런 제목의 popular tune이 있었고 사실은 그 tune의 일부분은 생생히 기억한다. 누구의 노래였던가.. 이런 것으로 기억력 test하기 좋은가? 우선, 1970년대라는 것은 분명하다. vocalist도 분명히 ‘남자’ 였고… Sebastian이란 이름도 연관된 이 group은 누구인가? 아하! John Sebastian이었던가?  그 다음은 아주 깜깜해진다. googling, youtube’ing time 이 되었다. 결과는 .. 실망적인 나의 기억력. 1970년대는 맞았지만 vocal group이 완전히 틀렸다. vocalist는 남자와 여자가 반반이 섞인 4인조 Starland Vocal Band였다. 내가 왜 John Sebastian과 혼동을 했는지 분명치 않다. 이 두 artists들은 모두 1976년 경에 활동을 했는데 그 당시의 추억이 이제는 까물거리는 ‘태고’가 되어가나 보다. 더 추억을 더듬어 보니.. Afternoon Delight란 노래는 주로 radio를 통해서 들었고, John Sebastian의 귀에 익숙한 노래였던 Welcome back 은 같은 때, TV sitcom ‘Welcome back Kotter‘의 주제곡으로 들었음이 밝혀진다. 이 추억들은 모두 1976년 경.. West Virginia 에서 학교 다니던, 비교적 미성숙한 총각이었던 꿈같은 시절이었다. 나이가 많아지니까 머릿속이 온통 ‘추억거리’로 가득 차면서 가끔 조금 한가한 오후에는 이렇게 ‘유치한, 말도 안 되는’ daydreaming을 즐기기도 한다. 이런 것이 나이 먹음의 즐거움 중에 하나일지도 모른다.

 

 
Afternoon Delight – Starland Vocal Band – 1976

 

 
Welcome Back – John Sebastian -1976

고즈넉한 2015년 1월은..

고즈넉하다:

1. 고요하고 아늑하다.
2. 말없이 다소곳하거나 잠잠하다.

 

이 ‘귀한’ 한글 단어는 분명히 속어나 유행어는 아니다. 조금은 희귀한 말인 것이다. 어디서 이 말을 들었나 암만 생각해 보아도 확실치 않다. 분명히 ‘문어체’인 이 단어는 어떤 ‘고상’한 책에서 보았을 듯 하다. 아니면 고상하고 가슴을 울리는 어떤 ‘서정시’ 에서 였을지도..

한반도에서 태어난 이상, 모르는 한글단어를 들으면 분명히 무슨 느낌을 받는다. 짐작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짐작에도 분명히 ‘고즈넉한’ 것은 ‘잔잔히 조용한, 다소곳한 조용함, 아늑한 조용함’ 그런 느낌을 준다. 나는 올해 2015년 1월을 지내며 계속 이런 ‘고즈넉한 1월’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의 일월은 추운 겨울과 겹치는 무언가 쫓기듯 바쁜 달이다. 정월 초하루, 새로니 생일, 크리스마스 12일이 서서히 저물고 나도 저물어 가는 듯한 나의 생일의 느낌, 와~~ 오래 살았다는 느낌을 더해주는 결혼 35주년 기념일.. 등등이 조금은 생각을 하게 만들기에 더 부담을 받는가..  그런 일월을 참 많이 보냈지만 올해는 뜻밖에도 ‘고즈넉한’ 느낌을 받을 정도로 잔잔하고 평화스럽게 보낸 듯 하다. 누구에게 감사를 할 것인가.. 나는 안다.

지난 해 11월에 겨울 맛을 단단히 예고하더니 올해의 이곳 겨울.. 하루가 멀다 하고 빙점을 맴돈다. 암만 생각해도 우리가 이곳으로 온 이후 이곳은 분명히 추워졌다. 지구 온난화와 반대인 것이다. 어찌된 일인가? 다행인 것은 그렇게 기승을 부리던 energy cost가 엄청 떨어졌다는 사실.. 세상은 오래 살고 볼 것인가? 이것은 뜻 밖의 ‘하늘의 선물’ 처럼 느껴지기만 한다. 원인은 확실하지 않지만 그것은 큰 상관이 없다. 없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공짜 선물’도 없을 것 같다.

지난 12월에는 번갯불에 콩 구어 먹는듯한 빠른 속도로 family room flooring 을 비롯해서 그 방을 ‘새 방’으로 꾸며 놓았다. 아마도 현재 우리 집에서 제일 ‘깨끗하고 멋진’ 방일 것이다. 문제는 그곳을 별로 사용할 일이 없다는 사실.. 나의 서재를 그곳으로 옮기려는 계획도 해 보았지만 그렇게 되면 그 방의 멋을 사라질 것이라서 망설이게 된다. 임시 서재로 쓰는 방법도 있어서 생각 중이지만.. 어떨지 모르겠다.

 

family room or my study

family room or my study

 

올해의 성탄은 12 days of Christmas의 정신을 150% 살려서 ‘교회의 권고’를 충실히 받아 드리고 실천을 하였다. 과연 성탄의 의미가 무엇일까.. 아마도 처음으로 생각을 하였을 것이다. 선물을 주고받고 눈을 기다리는 세속 성탄의 유혹에서 나는 과연 얼마나 벗어 났을까? 내년을 다시 기대해 본다. 더 나은 season이 되기를..

너무나 고즈넉한 1월을 지내면 깜빡 한 것 중에는 나의 연례적인 즐거움인 Davos Economic Forum (DEF)을 ‘관망, 감상’하는 것. Forum이 시작되기 며칠 전에 preview를 하긴 했는데 그만 정작 Forum 3일간을 완전히 놓친 것이다. Archive된 video를 보면 되겠지만 어떨까.. 완전히 거품 빠진 맥주 맛이 아닐까?

1월 중에 또 놓친 것은.. Our Winter Classic Dinner란 친지들의 저녁 모임인데.. 그런대로 역사를 자랑한 것이었지만 이것도 너무나 나이를 먹었는지 올해는 별로 큰 관심이 없는 듯하였다. scheduling상에 문제가 있었고 모두들 그렇게나 바쁜지. 하지만 이것도 세월이 흐르고 있다는 표시인지도 모른다. 세월이 지나면 안 변하는 것을 찾을 수가 없으니까.. 아마도 올해부터 이 모임이 없어지지 않을까 하는 잔잔한 우려를 느낀다.

2014 Atlanta SnowJam
2014 Atlanta SnowJam

며칠 전 1월 28일을 지나며 작년 1월 28일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날 낮부터 갑자기 쏟아진 얼어붙는 함박눈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freeway에서 완전히 모든 차들이 ‘얼어 붙어서’ 영하 10도의 밤을 차 속에서 지낸 일.. 그 유명한 2014 Atlanta Snowmageddon, SnowJam 이였다. 그때 하도 고생을 해서 그 이후로는 ‘눈’자만 일기예보에서 들으면 집 밖으로 안 나가기로 생각을 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이 지역에는 한번도 눈이 내리지를 않는다. 앞으로는 어떨까. 2월과 3월도 만만치 않은 snow day들이 있었으니까.

Gas Price: 오래 살다 보니..

2015-01-14 09.41.49-1

 

이것을 보고 이런 말이 ‘즐거운’ 한숨처럼 흘러 나온다. 집 앞의 BP gas station의 현재 gas price을 보니 조금은 익숙지 않은 숫자.. $1.99란 숫자다. 자동차 기름값.. gas price, regular gas 값 (갤론)이 2불 이하로 떨어진 것이다. 그것도 서서히 내려간 것이 아니고 갑자기 떨어진 것을 보며 느낀다. ‘조금 살겠다..’ 하는 즐거운 모습들을 이곳 저곳에서 볼 수 있다. 드디어 news에도 이것이 등장할 정도다. 언젠가 gas price가 $5을 넘으리라는 예측도 보았다. fixed income에 익숙한 우리로써는 이것은 정말 ‘신나는 달밤’일 수밖에 없다. 근래 몇 년에 걸쳐서 우리는 차를 탈 일이 자꾸만 늘어가고 있어서 ‘기름값’에 신경을 쓰고 있었는데 이렇게 값이 떨어지는 것을 보는 것 그 자체가 즐겁기만 하다. 그러면 왜 이렇게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인가? 1970-80년대만 해도 수십 년 안에 석유가 고갈 될 것이라는 암울한 예측도 있었는데 어떻게 석유 공급이 늘어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중동이나 외국의 석유에 덜 의존하려는 미국의 발버둥이 효과를 보아가고 있는지 미국내의 석유 생산이 생각보다 많은지도 모른다. 아니면… Why.. why not, why now?  New York Times의 분석기사를 보니 이제 조금 그림이 그려진다.

결론은… 역시.. It’s simple economics.. stupid! 이라고 할까? 간단한 경제원리가 이곳에서도 역시 작용을 하는가? 2009년 이후 최저로 떨어진 원유값, $50/barrel 밑으로 떨어져다. 무려 55% 가 급속도로 떨어진 것이다. 경제적인 이유는 역시 수요와 공급의 기본원칙일 것이다.

공급은.. 미국내의 자체원유 생산량이 지난 6년 동안 거의 2배로 늘어났다. 그 만큼의 국외 원유 (특히 사우디, 나이제리아, 알제리아 등)는 서로들의 경쟁으로 값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수요는.. 유럽과 developing countries들의 불경기로 에너지 수요가 줄었고, 자동차의 energy-efficiency가 크게 좋아진 것으로 예전 같은 gasoline-guzzler (덩치가 큰 고철 같은 차들)를 보기가 힘든 것 같은..

100% 다 믿기가 힘들지만, 사실은 지금 gas값이 내려가고 있는 것은, 이렇게 간단한 수요 공급의 법칙 때문인 것이다. 그러면 결과는? 내가 생각하는 것은 물론 ‘주머니 사정’에 큰 여유가 생길 것이다. $4을 넘던 것이 $2 이하로, 반이 떨어지면 나머지 돈은 분명히 다른 곳에 쓰이거나 저축이 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소비’가 될 것이다. 이런 것에 민감한 ‘정치지도자’들은 이런 것을 절대적으로 환영할 듯.. 특히 지역적으로 예외적으로 추운 겨울을 예상하는 Northeast (특히 Boston같은) 지역은 난방비 걱정이 훨씬 덜 해질 것 아닐까?

국제정치 쪽을 보면: 원유값에 거의 모든 경제를 의존하는 산유국들은 정치적인 위기를 맞을지도 모른다. 결과는 확실치 않지만 러시아 같은 나라가 제일 큰 피해자가 아닐까. 미국 내의 사정도 비슷해서, 알라스카, 텍사스, 오클라호마, 루이지애나 같은 주도 재정적인 고통을 받지 않을까?

한때 세계경제, 정치까지 영향을 주던 그 유명한 OPEC은 어떨까? 예전 같으면 이런 상황에서 분명히 원유생산을 줄여서 값을 올릴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그런 power가 없는 듯 하다. 예전 같지 않은 것이다.

여기에도 conspiracy theory (음모 론)이 있을까? 예를 들면, 사우디 아라비아나 미국이 ‘공모’를 해서 그들의  ‘적국’ 러시아, 이란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서 원유값을 내렸다는 음모론.. 사실 1980년대에 급락한 원유값은 ‘소련’을 붕괴시키는데 한 몫을 했으니까. 하지만 이런 가능성은 거의 희박한 것이다. 미국과 사우디가 그런 ‘공모’를 한 예가 없었으니까.

언제 다시 원유값이 예전의 수준으로 오를 것인가? 당장 오를 것 같지는 않지만 올해가 지나가면서 다시 조금씩 오를 것이라는 Wall Street의 전망이다. 예전의 역사를 보면 이것은 오르고 내림을 반복하는 그 과정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이런 분석을 보며 생각을 한다. 오래 전 처음 미국에 왔을 때 1불도 채 되지 않는 휘발유 값을 기억하며 자동차의 나라 미국에서 이 휘발유 값이 미치는 영향력을 다시 실감을 한다. $4까지 치오르는 것을 보며, 이제 ‘자가용’의 시대가 끝이 나는가도 생각을 했다. 다른 나라처럼 대중교통수단의 시대가 올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무섭게 갑자기 늘어나는 원유생산을 보며, 이것이야말로 not so fast..란 말이 어울리는 착각이 아니었을까?

조용한, 너무 차분한 그것..

성탄 씨즌이 고요히 우리에게서 떠나갔다. 나의 결사적인 노력으로 성탄의 느낌을 하루라도 더 느끼려 노력을 하며 살았다. 성탄절 며칠 전부터 시작해서 12일을 더 넘기고 ‘연중시기’가 시작되는 때가지 굳세게 견디었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 ‘성공’한 것이다. 이제는 죽는 날 까지 이런 나의 ‘새로운 성탄절’ 풍습이 계속될 것이다. 왜 성탄절이 있었으며 그것이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계속 생각하는 그런 축제기간이 될 것이다.

요새는 많은 시간을 reading by typing으로 보내고 있다. 두세 권으로 시작한 것이 이제는 거의 10권의 책으로 늘어나고 있고 아마도 계속 늘어날 것이다. 덕분에 그 동안 녹슬어가던 typing도 놀랍게 발전함을 느낀다. 이런 typing의 느낌, 기분이 너무나 좋다. 목표는 역시 typing을 하며 reading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생각보다 쉽지를 않다. 조금만 한눈을 팔면 .. reading도 typing도 망치는 것이다. 물론 typing에 더 신경을 쓰는 단계이지만 언젠가는 reading에 더 신경을 쓸 그런 날이 올 것이다. 이 ‘습관’의 최대 이점은 어떡해서든지 책 한 권을 그런대로 읽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냥 책을 읽는다는 것.. 요새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너무나 중단이 많이 되는 것이다. 이 노력의 결실로 오늘 드디어 Crossing the Threshold of Hope의 reading by typing이 끝났다. 2개월 정도 걸렸나.. website에 수시로 update를 하던 것이지만 이제는 ‘완전한’ update가 될 것이다.

양양이의 승리 勝利

Tobey의 보금자리 앞에서 시위하는 Izzie, 옆에서 보고만 있는 불쌍한..

Tobey의 보금자리 앞에서 시위하는 Izzie, 옆에서 보고만 있는 불쌍한..

결국은 보금자리를 완전히 빼앗기고.. 그나마도 이불에 누운 것만도 다행..

결국은 보금자리를 완전히 빼앗기고.. 그나마도 이불에 누운 것만도 다행..

 

엊그제 찍은 몇 장의 snap 사진을 보고 한참 웃었다. 꽁꽁 얼어붙는 듯한 추위에 이렇게 웃기는 광경은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이 모습은 ‘고양이 Izzie가 강아지 Tobey의 보금자리를 멀쩡하게 차지한 것’이다. 우리 집 ‘터줏대감’ 10살이 넘은 강아지 Tobey와 지독히도 lucky한 ‘집 앞에서 데려온’ 고양이 Izzie 가 추운 겨울을 보내는 이 광경에는 많은 뒤 이야기들이 있기에 내가 만에 일이라도 이들 보다 먼저 세상을 뜬다면 인간 가족 못지않게 이들에게도 반드시 의미 있는 작별인사를 할 것 같다.

가끔 사람을 bite하는 고약한 성미를 가진 Tobey는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런 ‘사고’는 더 이상 없지만 ‘전과’의 기억으로 인해서 나를 제외한 나머지 가족에게는 아직도 ‘찬밥’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Tobey는 나에게 거의 ‘맹목적’으로 의지하는데, 나는 그것이 참 훈훈한 느낌이라서 하나도 귀찮지 않다. 솔직히 말하면 찬밥 취급하는 나머지 가족들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사랑이 결여’된 것 같은 싸늘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그런 중에 갑자기 2006년 경에 우리 집에 고양이가 나타났고 어찌어찌 해서 2009년 부터 우리 집 고정 식구가 되었다. 2006년 6월 경.. 잊지도 못한다. 6월 가랑비가 내리던 날 집 앞에서 아기 고양이 소리가 구성지게 들렸고.. 그런 것은 귀신처럼 신경을 쓰는 연숙이 배고픈 애기 고양이를 집 안으로 불려 들여서 먹을 것을 준 것이 인연의 시작.. 보통 집 고양이인 그 baby는 분명히 누가 버린 듯 했다. 너무나 가슴이 쓰린 것을 어찌할까.. 그래도 혹시나 해서 사진을 찍어 동네에 붙여 놓았지만 아무도 claim을 하지 않았다. 고양이 기를 생각은 전혀 못했지만 이제는 choice가 없어서 기르기로 했는데, 때마침 큰 딸 새로니가 Washington DC job 으로 그곳으로 데리고 가서 살았는데 이곳으로 다시 이사를 오면서 우리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런 ‘비 오는 날의 구출’ 특별한 인연이 있어서 기르게 되었지만 제일 골치 아픈 것이 개와 같이 살아야 하는 기구한 운명이었다. 개와 고양이는 옛부터 유명한 관계가 아닌가? 무척 신경이 쓰였고 accidental bite 전과가 있는 Tobey가 제일 문제로 여겨져서 촉각을 세우고 감시를 하기도 했다. 결국은 몇 번 대형사고 직전까지 갔고 우리는 당연히 ‘전과범’ Tobey만 벌을 주곤 했다. 상대적으로 고양이 Izzie는 더욱 보호와 대접을 받기도 했다.

시간이 가며 Tobey의 attack 회수는 줄어들고 서로의 turf만 침범하지 않으며 ‘평화공존’의 상태를 유지하는데 큰 문제가 없게 되었다. 그러면서 서서히 ‘사태의 진실’이 밝혀지게 되었는데.. 모든 accident 의 원인은 Tobey가 아니고 Izzie 였다는 사실. 그러니까 고양이가 강아지를 ‘먼저’ 괴롭히고 심지어는 attack한다는 놀라운 사실.. 그것을 참다 참다 강아지가 defensive하게 된 것을 우리는 반대로 본 것이다.

다른 집에서는 어떨지 모르지만.. 우리 집은 이런 상태에 있다. 한마디로 고양이의 승리인 것이다. 참.. 우리 집에서는 오랜 전부터 고양이란 말을 쓰지 않고 ‘양양이’라는 말을 쓰는데.. 이것이 연구 대상이다. 어떻게 해서 (누가 먼저) 이런 말을 쓰게 되었는가.. 양양이.. 참 재미 있지 않은가?

Skip..what? Annual Physical!

Skip your annual physical.. what?  Annual physical  checkup 을 줄여서 보통 annual physical이라고 하는데, 이것의 한글표기는 무엇인가? 옛날에는 그저 ‘일년에 한번씩 하는 신체검사’ 라고 했을 것이지만 반생에 걸쳐서 자주 듣지 못한 이 용어가 생소하기만 하다. 그저 짐작에 ‘연례 신체검사’ 정도가 아닐까? 그러니까 위의 말은 연례신체검사를 하지 말라는 소리다. 이런 기사는 New York TimesOp-Editorial 란에 실린 것이다. 이 글의 배경은 무엇일까? 조금은 비상식적으로 들리지 않은가? 수많은 사람들이 일년에 한번씩 이 과정을 거치며 자기의 건강에 자신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팔팔하던 나이에 이런 말은 조금 이상하게는 들리지만 관심조차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요새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건강’ 자체에 조금씩 관심이 가는 것이다. 나이 때문이다. 사람들, 비슷한 또래를 만나면 거의 이 ‘건강’에 대한 화제가 빈번하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런 화제는 재미 있지도 않고 심지어 듣기가 싫다. 내가 무한정으로 건강하게 산다고 내가 착각하는지도 모르지만 사실 나의 생각은 ‘알맞게, 정도껏’ 관심을 가지라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insurance (특히 medical)와  physical (checkup)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들의 얘기를 듣고 있으면 나는 거의 현실을 초월한 무슨 도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하나도 모르는 소리만 하고 있으니까. 해를 거듭하며 한번도 건강진단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하면 그들은 완전히 나를 ‘외계인’ 처럼 바라보는 것이다. 숫제 적지 않은 사람들은 신체검사를 ‘싸게’ 받으러 고국행 비행기를 타기도 한다. 나는 그런 것이 너무나 생소하고 의아하고, 별나게 보이겠지만 그들에게 나는 같은 생각으로 보여질 것이다.

내가 체질적으로 제일 싫어하는 부류는, insurance claim도사라고 자처하는 인간들이다. 간단히 말해서 그런 인간들이 원래 insurance 의 의도와 목적을 철저히 악용하고 있다가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과연 ‘진정으로’ 그런 insurance를 ‘찾아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그 자체가 거의 fraud에 가까운 case가 허다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Christian이라고 자처하는 사람 중에 이런 사람들이 발견된다는 사실이다. 내가 아는 어떤 ‘인간’도 이런 부류이다. 자기 집의 불필요한 ‘수리’는 거의 fraud에 가까운 insurance claim 을 악용해서 했을 것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런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 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여기서 말하는 annual physical checkup 도 이런 부류의 인간들이 ‘철저히 찾아 먹는다’. 한마디로 ‘꾀 병’, ‘엄살 장이’, 아니면 사기꾼에 가까운 인간들이 부지런히도 병원, 의사를 찾으며 자기 ‘옥체’를 관리하기도 한다. 분명히 자기들은 ‘합법적’이라고 자신을 할 것이지만 이것은 ‘법적’에서 보는 것이 아니고 ‘양심적, 도덕적’인 각도로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본론으로 들어가서..위에 말한 ‘연례 신체검사 무용론’의 논설은 무명 인사가 쓴 것이 아니고 저명한 U Penn (University of Pennsylvania, an Ivy League)  oncologist (cancer), vice provost인 Ezekiel Emanuel교수가 쓴 것이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과학적, 통계적, 경험적’으로 보아서,  흔히들 하는 annual checkup은 거의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이것이다. 그런 ‘간단한’ 검사로는 ‘깊은 병’을 찾아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만약에 찾아 냈다고 해고 그것은 이미 치료 효과가 거의 없을 정도로 ‘늦었다’는 것이다. 그것에 비해서 그 비용을 생각하면 거의 ‘투자 효과’가 없다는 주장이다.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닐까? 병원이나 의료기관은 쉽게 돈을 벌고, 검사를 받는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일년 간의 평화’를 얻는 것.. 여하튼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annual checkup은 끄떡없이 건재하고 있고, 거의 불필요한 경비만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북쪽의 이웃 Canada는 오랜 전에 이미 이런 낭비적인 ‘전통’을 없앴다고 한다.

Emanuel교수의 ‘결언’이 인상적이다. 독감주사나 매 10년마다 정기적인 colon checkup, balanced diet, 그리고 적당한 운동.. 이것이 제일 좋은 건강의 비결이라고. 이것은 과학적으로 ‘증명’이 된 방법이라는 것이다. 

My New Year’s resolution does not mean I won’t get my annual flu shot or a colonoscopy every 10 years — or eat a balanced diet and get regular exercise. These are proven to reduce morbidity and mortality. Those who preach the gospel of the routine physical have to produce the data to show why these physician visits are beneficial. If they cannot, join me and make a new resolution: My medical routine won’t include an annual exam. That will free up countless hours of doctors’ time for patients who really do have a medical problem, helping to ensure there is no doctor shortage as more Americans get health insurance.  — Ezekiel Emanuel

2015년 을미년은..

2015년.. 을미년 이란다. 양의 해.. 우리 어머님이 양띠 셨다. 1919년은 기미년, 그 때 어머님이 태어나셨다. 12×8 = 96 .. 96년 전에 어머님은 태어나셨고 살아 계셨으면 96세.. 엄마, 어머니 우리들은 이제 완전한 ‘역사적’인 사람들의 나이를 말하게 되었습니다. 조금 있으면 저는 67세가 됩니다. 67세면 별로 크게 인상적인 나이는 아니겠지만 아마도 70세에 더욱 다가간다는 의미만 크게 느껴집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보고 싶습니다. 당신과 같이 옆에서 살았던 시절이 미치도록 그립습니다..

성탄주일을 작년에 이어서 12 days of Christmas의 정신을 살려서 올해도 결사적으로 탈세속적으로 보내려 안간힘을 쓰며 보냈다. 조금은 미흡한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성공했다고 보고 싶다. 내년 (만약 내년이 있다면)은 더 단단하기 자리를 잡으리라 희망을 해 본다. 최소한 12월 25일 날 느끼는 ‘공허와 허무, 외로움’ 같은 잡상들은 많이 자제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작년에 ‘마련했던’ 그 주옥 같은 성탄 video들.. 올해 다시 ‘그대로’ 다시 본다. 어쩌면 그렇게 같은 느낌들이 오는 것일까? 어떤 것은 작년에 못 느꼈던 것들, 사실들을 알게 되는 것도 있었다. 아마도 내년에도 같은 것을 그대로 보게 되지 않을까? 특히 Christmas Box는 그 중에서도 으뜸이다.

올해는 비록 성탄절 ‘인사’를 제대로 못한 듯 하지만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는다. 하지만 ‘고향’과의 연락이 이렇게 뜸해진 것을 생각하면 항상 가슴이 쓰리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하는 한탄만 나온다. 나보다 더 신경을 안 쓰는 연숙을 보면 어떨 때는 한심하기도 하다. 어쩌자고 저렇게 사는가.. 나를 끌고라도 그 극성스런 모습을 이곳에서는 발휘하지 못하는가.. 모순 투성이..를 생각하면 조금 우울해진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나는 어떤가.. 크게 다를 것은 없다. 다르다면 나는 그렇게 큰소리를 치며 살지는 않는다는 것 뿐이다.

비교적 조용하게 지나간 성탄절 앞뒤.. 100% 조촐한 가족의 며칠인가.. 하지만 교회를 ‘완전히’ 떠난 듯한 두 딸을 보면 신경이 쓰이기만 한다. 내가 그런 꼴이었던 사실 때문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야멸차게 말하는 나라니에게는 연민과 안쓰러움까지 느껴진다. 나라니야.. 조금만 엄마, 아빠 말을 들으면 얼마나 좋겠니? 그래도 이제는 고정 행사가 된 가족들의 성탄 전야 미사는 빠지지 않고 가족 전통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우선 만족을 해야 하지 않을까?

성탄절과 새해벽두는 완전한 가족들이 모이는 기회가 되었지만 그래도 그래도 나는 어쩔 수 없이 가슴 속 깊은 곳에 고여있는 외로움의 고통에 시달렸다. 어머님, 누나와 같이 살던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 어떻게 그것을 숨길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예년에 비하면 조금은 ‘건강하게’ 그런 감정을 처리한다는 차이는 있다. 이것은 아마도 내가 ‘매일미사, 묵주기도’ 같은 ‘밖으로 나가고 사람을 만나고’ 하는 노력에 의한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하지만 그것은 역시 성모님과 성령님이 주님께로 나를 인도하시는 덕택일 것이다. 이제는 그렇게 나의 ‘이론’이 정립이 되어간다. 성모님께 느끼는 개인적인 유대감정.. 이것도 올해 조금씩 알게 되는 것 중에 하나다. 영상적으로도 나는 어머님과 성모님이 나를 흙탕 개울가에서 안전한 곳으로 이끄시는 모습을 상상, 보기도 한다. 그것이 사실이라고 점점 믿고 싶다.

성 베드로 광장에서 거행된 교황님 집전의 성탄미사를 보며.. 생각한다. 다음 성탄 때에 우리 부부가 로마에 갈 수 있다면.. 불가능일까.. 예전 같았으면 생각조차 못했겠지만 지금은 최소한 머리 속으로 즐길 수 있는 시나리오가 되었다. 이것이 요새 우리 부부의 즐거움 중에 하나다. 생각하는 것은 자유가 아닌가? 그것도 가능성이 제로가 아닌 것들은.. 과달루페와 메주고리예, 로마, 루르드, 파티마.. 성모님.. 저희를 당신이 계신 곳으로 인도해 주소서!

나의 2014년은..

2014년, 나에게 2014년은 어떤 세월들이었을까? 어떤 일들이 있었고, 무슨 생각을 했고, 궁극적으로 나의 인생에 어떤 의미를 줄 것인가? 조금은 심각하고 철학적으로 들리지만, 사실은 한번 정리하고 넘어가는 것이 나의 ‘정신건강’에도 좋을 듯 하다.

요새는 일기를 특별히 쓰지 않아도 최소한 ‘일지’같은 것은 거의 ‘자동적’으로 남는다. 제일 좋은 source가 email이나 blog같은 것이 아닐까? 별로 쓰지 않는 사람들도 최소한 email 같은 것을 통해서 무슨 일을 했는지 기억을 할 수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많은 일들이 거의 모두 social media를 통해서 Internet (cloud)에 archive가 되는 세상이라.. 숨길 수 없이 거의 반영구적으로 남기도 한다.

나는 조금 집착적으로 ‘인생 기록’을 남기려는 부류에 속해서 큰 어려움 없이 나의 개인역사를 들추어 볼 수 있다. 1년 정도는 어제 일을 보듯이 기억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고 결과가 있으며 숨은 의미가 있기에 그것을 모두 남기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치 않은 것이다. 특히 글을 pro처럼 쓰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너무나 힘든 작업이다. 하지만 초보적인 수준으로 남길 수는 있고 그것이 없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을까? 나중에 누가 보건 안 보건 상관이 없다. 그것을 남긴다는 그 행위자체가 나에게 중요한 것이니까.

2014년, 내 나이 66세를 보내던 일년.. 66세면 어떨까, 한 세대 전 같으면 벌써 사회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사라졌을 것 같고, 예전의 언론인 이진섭씨의 65세 만세론(萬歲論)에 의하면 이제는 덤으로 사는 나이긴 하지만, ‘과학적 세상’이라는 요즈음에는 그런대로 움직이고 말할 수 있는 나이 일지도 모른다. 작년에 비해서 내가 얼마나 ‘느려’졌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2014년.. 무엇을 기억하고 싶고 잊고 싶은 것일까.. 생각을 해 본다.

  1. Atlanta Snowmageddon, Snowcalypse, SnowJam: frozen on highway:
  2. 봉성체 (동행) 시작, home extraordinary ministry helper
  3. “33일  봉헌” 갱신
  4. Traffic ticket
  5. 교우 데레사 모츠 자매님 선종
  6. 교리반 봉사 결실: 파견식, 선발식, 세례식
  7. 4월초 지독한 독감 감기 몸살 치통
  8. 성삼일 심야 성체조배 부활절: 모두 도라빌 순교자 성당에서
  9. 레지오 피정: Coyners retreat center
  10. My WordPress blog site crashed, reinstalled
  11. Big Summer reset
  12. A small step toward the biggest task in my life
  13. November Polar Vortex
  14. Family Room re-flooring
  15. 어떤 예비신자와 그의 가족들과의 만남

전요셉, 황프란치스코

전 요셉, 황 프란치스코 형제님들.. 모두 듣기만 해도 가슴이 편안히, 따뜻하게 느껴지는 이름들이 되었다. 특히, 전 요셉 형제님의 이름은 요새같이 추운 날씨에는 따뜻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전 요셉 형제님, 나와 같은 돼지띠 동갑으로 친구, 형제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분명히 나보다 생일이 위였으니까, 형 뻘이 되겠지만 그런 것 서로 따지지 않고 지냈다. 하지만 가깝게 알고 지낸 것이 불과 1~2년도 채 되지를 않았다. 채 깊이 알게 되기도 전에 전 요셉 형제님은 ‘갑자기’ 조상의 땅, 대한민국으로 ‘영구’ 귀국을 해 버렸다.

그때 느낀 기습적인 쌀쌀한 가을바람과 같은 공허감은 나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것이 벌써 1개월 도 지났나? 귀국 후 잠깐 온 소식에 시차 적응으로 매일 잠만 잔다고 하더니 드디어 카톡(카카오톡)으로 잇달아 소식이 날아왔다. 계속 시차 적응 중이고 눈이 내린 고국의 모습이 멋있다며 사진도 보내왔다. 온양으로 간다고 했으니 아마도 온양 교외의 어느 곳인가 짐작을 한다. 처음에는 사업을 시작하려고 ‘땅’을 보러 갔다가 찍은 곳이 아닌가 했던 나의 상상이 너무나 우습기만 했다.

전요셉, 황프란치스코
전요셉, 황프란치스코

그리고 며칠 전에는 드디어 ‘사람의 사진’이 왔다. 전요셉 형제님의 모습이 ‘대한민국화’가 되었는지.. 완전히 ‘때 빼고 광 낸’ 모습이어서 놀라고 반갑기도 했다. 역시 평생을 살아온 고향 물이 좋긴 좋은 모양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탁한 공기를 걱정하며 귀국을 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  그런데 이 사진을 누구와 같이 찍었는데.. 처음에는, 귀국하면 꼭 보아야 할 사람이 있다고 말한 것으로 미루어  아마 그분을 만나서 같이 찍은 것으로 생각을 했는데, 곧 이어서 사연인즉.. 그 분은 나도 이미 알고 있던 사람이 아닌가? 그 모습을 보고 너무나 우리부부는 반가웠다. 황 형제..

우리 부부가 봉사자로 수녀님을 보조했던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교리 반에 2014년 부활절 영세를 목표로 가족 4명, 전원이 등록했던  황 형제였던 것이다. 그 사진은 황 형제가 대전 노은동 성당에서 영세를 받고 전 형제와 같이 찍은 것이라고 했다. 영세명은 교황님과 같은 프란치스코.. 너무나 반가웠다. 황 형제님 부부 가족은 작년 가을 교리반에 등록 후에 사정이 생겨서 교리반 공부 도중에 올해 초에 ‘영구’ 귀국을 했는데.. 아마도 귀국 후에 교리공부를 계속해서 부부가 같이 영세를 받은 모양이었다. 이곳에서 알고 지내던 두 사람이 모두 영구 귀국을 했고 이렇게 다시 재회를 하며 찍은 사진.. 이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는 다시 생각에 잠긴다….

 4년여 전 레지오 활동단원을 갓 시작하며 나에게는 생소한 ‘병자기도’ 란  것이 있었고 그 대상 중에 레지오 단원이며 중병환자였던 전요셉 형제가 있었다. 멋도 모르고 나는 열심히 기도를 했다. 생전 처음 ‘남을 위한 기도’를 하게 된 것이다. 속으로는 회의도 많이 있었지만 ‘성모님의 군단’의 규율을 따라 어린아이처럼 열심히 열심히.. 1~2년 후에 우리는 기적과도 같은 소식에 놀라기만 했다. 그 ‘중병’이 ‘완치’가 된 것이다. 본인도 놀라고 레지오 단원들도 놀라기만 했다. 겨우 신앙을 찾아가고 있었던 레지오 햇병아리였던 나에게 그것은 너무나 커다란 ‘살아있는’ 신앙공부가 됐다. 그 이후 전 형제는 가끔 보는 정도였지만 만나면 최소한 얼굴을 익힌 정도가 되고 건강에 대한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러다가 작년 말 우연히 인사를 하다가 나와 돼지띠 동갑임을 알게 되었고 우리 사이에는 무언가 near-perfect chemistry가 있음도 느끼게 되었다. 서로 가끔 식사를 같이 하며 서서히 조금씩 상대방을 알게 되어갔지만, 역시 나이 들어서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됨은 생각보다 어려운 것도 사실이었다. 나는 이곳에 오래 산 이유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부자연스러울 때가 많았지만 전요셉씨는 내가 오랜 전에 알았던 ‘그 옛날’ 기분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것이 나는 너무나 그립고 신선하게 느껴지기만 했다.

우리는 무언가 너무나 다른 인생을 살았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오히려 더 가깝게 하는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너무나 서로 다른 개인 역사가 너무나 흥미롭지 않을까? 작년 말에는 레지오 연차 총친목회를 준비하며 난타와 중창에서 가깝게 어울리기도 했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점심식사를 같이 하기도 했고, 봉성체, 교구 성체대회 같은 곳에도 같이 참가를 하는 등 오랜 만에 고향 친구를 만난 느낌도 들었다. 전 형제님은 어르신들과 참 잘도 어울렸는데, 그때 받는 느낌은 한마디로 ‘사람이 좋다’라는 그런 것이었다. 순진하기도 하고, 우직하기도 한 세상을 약삭빠르게 사는 스타일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런 성품으로 이곳에서 살아가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았는지 결국은 귀향을 결심하고 홀연히 사라졌다. 한마디로 조금은 더 쓸쓸한 기분을 남기고 사라진 돼지띠 사나이.. 언젠가 다시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우선 섭섭함을 달래는 수 밖에 없나.. 전 형, 그곳에서 하시는 일 순조로이 풀리기를 바랍니다!

4th Candle, family room redux, ‘Legio’ fatigue

¶  4th Advent candle:  Scan10124-1대림절 넷째 주.. 촛불이 켜졌다. 역시 ‘벌써’ 이렇게 시간이 흘렀나 하는 반복되는 탄성과 탄식이 귓가에서 속삭인다. 예년 같으면 제발 시간이 천천히 흐르며 ‘성탄의 기분’을 마음껏 느끼고 싶었을 것이지만 올해는 ‘기억나는 인생’을 통해서 처음으로 비교적, ‘그래.. 조금 빨리 가도 좋다’ 하는 자신감을 유지하였다. 그것이 멋지게 성공을 한 것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Christmas Past에 완전히 묻히고 빠지고 즐기던 예전과는 조금 다른, Christmas Present 를 사는 느낌.. 바로 이것이 나에게 처음같이 느껴진다. 올해 성탄의 제일 큰 선물이라면 바로 이 느낌이다.

과연 Christmas가 무엇인가.. 어렴풋이, 가늘게 그 ‘진짜’ 의미가 느껴지는 올해 성탄시즌.. 몇 주간 굳세게 hold했던 carol, movie, decors, tree등이 쏟아져 나오고 일년 전의 반가운 모습들, 특히 나의 favorite ‘YouTube‘ holiday movies들을 나는 반긴다. 그 중에 일년 만에 다시 보는  movie, Christmas Wishes,  작년 이맘때 이런 류의 영화를 ‘계속’ 보던 그때가 그리워진다. 작년과 같이 올해도 12 days of Christmas를 보낼 준비가 되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희망, 그 희망은 하늘만이 알 것’인 성탄절에 시작되는 멋지고 값진 시간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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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 3일 전에 첫 모습을 보이는 작고 귀여운 Christmas tree

¶  family room Redux:  우리 집 family room은 dark wood panel 벽으로 둘러싸인 중후하고 무거운 느낌의 방이지만 우리 가족에게, 아이들이 집을 떠나기 전까지, 저녁 식사 후에 모여서 가족적 시간을 보내던 보금자리 역할을 충분히 했다. 그러니까 가족 모두에게 추억의 방이 된 것이다. 그곳에서 주로 Chinese food를 takeout 해서 ‘퍼지고 누워서’ family video (VHS  movie)를 즐기곤 했다. 그 시간이 그렇게 편하고 즐거울 수가 없었고 어른이 된 아이들에게도 ‘가족의 추억’으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아이들이 모두 떠난 후 그 방은 완전히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먼지가 쌓이는 ‘빈 방’으로 방치가 되었다.

4 년 전쯤 아래 층 전체를 IKEA Tundra laminate flooring으로 바꾸었는데.. 우리 집 수준에 알맞은 선택이었지만 내가 직접 install을 한 관계로 ‘문제’가 많았다. Flooring 에는 완전히 ‘시로도, amateur’ 였던 나는 그 당시 몇 개월 많은 고생을 하였다. $$$을 얼마나 save 했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다시는 안 하겠다고 다짐을 할 정도였다. 남들은 그렇게 쉽다고 했던가.. 나는 무언가 ‘운이 나빴는지’ 고생을 한 것이다.

그러다가, 올해 초부터 우리 가족 추억의 보금자리, family room의  floor에 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습한 관계인지.. 마루 자체가 ‘울렁울렁’ 일어나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floor은 습하면 ‘팽창, 확대’가 되어서 wall edge (가장자리)에 1/2″ (반 인치) 정도 여유를 두게 되어있고 나는 그런 instruction을 충실히 따랐는데.. 그래도 문제가 있는가? 자세히 살펴보니.. 역시 나의 불찰임이 들어났다. 실수로 ‘벽돌 벽’ 쪽에 여유를 두지 않았던 것이고 그곳으로 마루가 팽창, 밀리면서 마루가 뜨는 것이다. 다른 방은 문제가 없는데 왜 유독 family room은 그랬을까.. 역시 그곳에 제일 습한 방이었고, 나의 실수로 벽돌 벽 쪽에 더 여유간격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분명히 Pro들은 이런 문제가 전혀 없었을 것이다.

해결책은 무엇인가.. tongue & groove 방식의 flooring은 ‘원칙적’으로 설치 하는 것은 비교적 쉽지만 고치는 것은 장난이 아니다. 게다가 우리가 산 IKEA Tundra 는 설치가 제일 쉬운 종류도 아니다. 생각 끝에 새것으로 갈기로 하고 지난 여름에 Home Depot에서 dark tone 색으로 골라서 구입을 했지만, 설치하는 것은 미루고 미루고 하다가.. 무려 4개월 뒤에 끝을 보게 된 것이다. 이번에 산 것은 Hampton Bay laminate floor (from Home Depot) 인데, review가 아주 좋았고, 값도 우리에게 맞는(경제적), 색깔도 family room에 걸 맞는, walnut tone, 밤색 계통으로 방에 편안하게 잘 맞았다. 설치를 하며 놀란 것은 그 동안 제조 기술이 발전을 했는지.. 설치하는데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4 년 전 IKEA에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쉬웠던 것이다. 이런 정도면 2 층의 방들도 이것으로 모조리 해 볼까 하는 꿈같은 상상을 즐기기도 했다. 하지만 80/20 rule (마지막 20% job에 80%의 시간과 노력이 드는) 을 깜빡 잊어서 ‘마무리 작업’을 하는데 거의 며칠 일이 걸렸다.

아이들이 떠난 이곳 family room을 어떻게 ‘재활용’할 것인가.. 새로 단장이 된 이곳은 절대로 방치해서는 안 될 것인데.. 역시 ‘사람이 머무는’ 방으로 만들려면 내가 그곳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라서 이번 기회에 아예 ‘다목적 multi-purpose’ 인 곳으로 쓰기로 하고 일단 나의 ‘낮 서재’로 만들기로 했다. 나의 ‘day work’ desk를 이곳으로 옮기고 guest (아이들 포함) 가 오면 desk를 한 쪽으로 옮기면 ‘멋지게’ guest room역할을 할 것이다. 손님이 거의 없는 요즈음 이지만.. 그래도 누가 알랴? 이렇게 해서 추억의 보금자리가 다시 ‘살아있는’ 보금자리로 탈바꿈을 하게 되는데.. 새해에는 생산적, 창조적인 보금자리의 추억이 만들어지는 곳으로 탈바꿈하기를 기대해 본다.

¶  ‘Legio’ fatigue:  조금 피곤한가.. 그것도, 왜 레지오 ‘Legio‘, (레지오’는 Legio Mariae, Legion of Mary의 한국식 표현) 가 피곤한가.. 요새 부쩍 그런 느낌을 받고 있어서 그런 나 자신도 싫고, 애써 이런 생각을 피하려고 한다. 하기야 60중반이 넘은 나에게 ‘나이와 때가 늦은 레지오 활동 단원 4년’이면 아주 짧은 기간도 아니고, 그 동안 정말 ‘뒤를 안 보고’ 쉬지 않고 열심히 달리기만 했기에 이 나이에 피곤을 안 느낀다면 그것도 이상할 것이다.

하지만 지난 ‘그 4년간’ 나는 정말 많은 것을 깨닫고, 느끼고, 배우고, 새로운  차원의 세계를 보았고, 별로 피곤하게 느끼지도 않았다. 그것이 암만 생각해도 나에게는 별난 현상이었고 예외적인 세월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서서히 조금씩 느끼는 것은 나는 분명히 ‘성모님과의 개인적인 친근감‘ 이다. 그냥 친근감이 아니고 ‘개인적’인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 지난 ‘4년간 노력’의 보람이라고 할까..

그것은 좋은데.. 내가 속한 ‘성모님의 군대’에 조금씩 싫증을 느끼기 시작하는 것은 그야말로 bad news인데..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지 현재 좋은 idea가 없다. 그것이 2014년이 지나가며 나를 우울하게 하는 것 중에 하나가 되었다.

그렇게 오랜 기간 ‘문제없던’ 우리 쁘레시디움(레지오의 기본적 활동 단체).. 나를 그 동안 편안하게 감싸 주던.. 것도 결국은 ‘평균적인, 아니면 평균 이하인 인간의 집단’으로 변하고 있는지, 실망의 연속을 맛 보고 있으니.. 레지오 교본을 암만 읽어도 단기적인 전술적인 해답이 안 보인다. 그 위에 ‘고목처럼’ 버티고 있는 상급 평의회 역시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 구태의연한 모습들, visionless conventional wisdom만을 자랑하는 자세가 답답하기만 하다. 짧지 않은 역사와 ‘덩치’를 갖추게 된 현재, 왜 ‘영웅적’인 도전을 못하는 것일까? 현재 가지고 있는 potential 은 생각보다 훨씬 큰데.. 제대로 크지를 못하고 있다.  비싼 시간을 할애한 ‘영웅적’인 단원들의 시간들, 아깝지도 않은가? ‘그들’이 바뀌는 것은 초자연적인 기적을 바라기 전에는 내가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 결국 내가 입장을 바꾸어야 하는 것인가? 참 어렵다. 이것이 fatigue.. 권태기라면 일시적이기를 성모님께 빌어보는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이런 문제들은 성모님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case임을 이제야 깨닫는다.

이것이 진정 성탄절의 평화..

2014년 성탄절이 3일 남았다. 올해의 성탄과 새해는 무언가 확실히 다르고.. 아니 달라야 한다. 그 다른 것은 바로 수 십 년 만에 처음 느낀다고 확신하는 진정한 평화일까? 평화, 진정한 평화가 바로 이것인가? 비록 근래 특히 2010년 이후는 그 전보다 더 평화를 느꼈다고 할 수 있지만 올해는 그 차원이 다르다. 바로 성모님께서 나를 개인적으로 밀어주신다는 확신이 섰기 때문일 것이다. 나를 벼랑으로 밀어주시긴 했지만.. 죽이시지는 않고 비교적 안전한 곳으로 밀어 주셨다. 하늘에 계신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와 성모님께서 나를 친히 돌보아 주신다는 ‘기발한 생각’이 언제부터 들었을까? 처음에는 그렇다고 우격다짐으로 믿으려 노력을 했지만 현재는 비교적 자연스럽게 믿어진다. 아마도 이런 나의 변화가 올해 내가 받은 최고의 천상의 선물일 것이다. 성모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어머니!

가정의 평화는 나의 머릿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보인다. TobeyIzzie가 뛰고 달리고 자는 모습들.. 최고의 평화스런 선물이다. 연숙과 ‘매일’ 가까운 본당에서 미사에 참가하는 것 어떻게 표현을 하랴? 그렇게 으르렁대던 새로니 나라니도 이제는 여엿한 숙녀처럼 행동을 하고 가족을 돌본다. 이것이 올해 현재 우리가 받고 있는 은총의 선물 들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생각하고, 뛰고 미사를 갈 수 있는 건강을 가지고 있다. 이것보다 낳은 선물이 어디에 있을까?

비록 우리는 불안한 심정을 떨칠 수 없는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이것도 솔직히 성모님의 보살핌을 느끼고, 기대하며 산다. 그런 평화를 느끼는 것이다. 비록 고향의 가족들과의 관계를 해결 해야 하는 거대한 숙제가 있지만 그것도 크게 걱정을 하고 싶지 않다. 노력을 하면 될 것이다.

비록 나의 신앙적인 ‘본부’인 레지오에서 많은 문제점을 보고 있지만 이것도 역시 천상적인 도움을 기대하고 싶다. 인간적인 노력으로 안 되는 것들 투성이인 이곳.. 어떻게 문제들을 헤쳐나갈까? 하지만 최소한 현재 우리들은 그곳에서 벗어나 평화를 즐기고 싶다. 특히 이런 성탄과 새해를 맞이하며 우리는 더욱 평화를 느끼고 싶다.

Guadalupe, Tobey, Bernadette ..

Juan Diego의 망토에 새겨진 과달루페 성모님 상
Juan Diego의 망토에 새겨진 과달루페 성모님 상

¶  Our Lady of Guadalupe:  과달루페의 성모님! 처음 이 성모님 발현에 대한 것을 듣게 된 것은  ‘아마도’ 무척 오래 전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그 당시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서 그저 ‘마음 약한 영혼들’이 애타게 찾는 천상의 예수님의 어머니 정도로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1989년 쯤 위스컨신 매디슨에 살 적에 한국에서 University of Wisconsin, Madison 위스컨신 주립대로 ‘연수 차’ 오셨던 김희선 신부님 (본명을 잊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께서 멕시코에 다녀 오시면서 과달루페 성모님 상 사진을 선물로 사가지고 오셔서 우리집도 한 장을 받았고 기회가 있으면 벽에 붙여놓기도 했었다. 그 당시 과달루페 성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신부님으로부터 분명히 들었을 터이지만 역시 ‘관심 밖’이어서 전혀 기억이 안 난다. 그것이 과달루페 성모님에 대한 나의 기억의 전부였다.

25년을 fast forward한 현재는 어떠한가? 오늘이 바로 천주교 전례력으로 ‘과달루페 성모님 축일 feast’로 나는 처음으로 특별히 신경을 써서 뜻 깊게 축일 미사를 맞았다. 그렇게 바뀐 나 자신이 나도 놀랍기만 하다. 세월의 장난일까.. 아니면? 이제는 이 특별한 발현의 배경, 역사, 뜻, 그리고 인류 구원사, 세계사에서의 의미까지도 깊이 생각하게 되었는데, 이 ‘발현 사건’은 알면 알게 될수록 신비롭고 특히 ‘과학과 신앙’의 각도로 깊이 연구한 결과는 가히 놀랍기만 하다. 물론 이 ‘발현’을 ‘믿는다면’ 그렇다는 것인데 지금 나 자신은 100% 이 발현 ‘역사’를 믿는다. 그래서 더욱 놀라운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 시대 이후 “예수님의 어머니’ 성모님이 ‘계속’ 인간들에게 발현하시는 첫 번째 이유라고 나는 확신한다. 나같이 자신이 없는 신앙인들을 ‘응원’하시는 그것이 첫 번째 발현 이유가 아닐까?

1531 12 9 지금의 Mexico City 에 발현하신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과달루페 성모님이라고 하는데 이 과달루페라는 이름은 성모님 자신이 발현 당시 자신을 지칭하는 ‘단어’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특별한 뜻은 없는 것 같다. 16세기 초 멕시코 지역은, 물론 Aztec 아즈텍 원주민들이 살던 땅이었지만 Spain 에게 ‘정복, 개척’되기 시작했던 때였고, 따라서 가톨릭 신앙이 전해지던 때이기도 했다. 그 당시 Aztec ‘나라’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원시,태양숭배 종교로 통치되던 때였고 살아있는 사람들이 ‘살인적 희생물’로 바쳐지던 공포의 시대이기도 했다.

이 당시 이들의 태양숭배 인간제물에 대한 기록을 보면 오래 전 Indiana Jones (Temple of Doomed) 영화에 나온 그런 장면이다. 살아있는 사람의 심장을 손으로 꺼내는 끔찍한 장면.. 그런 ‘공포 정치’속에서 살던 원주민들.. 그들에게 스페인 정복자들이 ‘사랑과 자비’를 기치로 가톨릭 신앙을 전하던 때에 ‘과달루페 성모님’이 발현하신 것이다. 발현은 그래서 어떤 원주민 ‘아저씨’ Juan Diego (후안 디에고?) 에게 나타나셨는데 이 이야기는 너무나 잘 알려지고 유명해서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듯 하다. 12월의 추운 날씨에 ‘아저씨’에게 나타나신 성모님은 지역이 피지 않는 장미를 ‘증거’로 Juan Diego에게 주시고 그것을 의심 많은 주교에게 전하게 되었는데.. 그 ‘아저씨’가 그 장미를 tilma(망토) 에 담아 왔고 그것을 주교에게 보여주려 펼치자.. 장미를 쏟아지고.. 그 tilma에는 ‘찬란한’ 성모님의 상이 ‘각인’이 되어 있었다. 선인장으로 만든 그 tilma에 그 유명한 과달루페 성모님의 모습이 그대로 새겨진 것이다.

그것을 보고 어떻게 더 ‘의심’을 할 수 있겠는가? 그 주교님은 그대로 땅으로 쓰러지면 경배를 하고.. 성모님의 요청인 ‘성모님 성당’을 그곳에 짓기 시작하였고.. 그것이 ‘과달루페의 역사’가 되었다. 이후 그 ‘성모님 상’에 많은 피해와 위기가 있었지만 모두 ‘기적적’으로 극복이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발현 자체도 기적이고 그 ‘상본’이 하나도 변질되지 않고 지속되는 것도 기적이고.. 발현 이후 수많은 원주민이 가톨릭으로 개종하게 된 것도 기적이고… 기적의 집합체인 것이 바로 과달루페 발현이다. 신학적으로도 신세계인 America대륙에 복음을 전파하려는 성모님 사랑의 배려로 충분히 설명이 되기도 한다.

이런 ‘흔한’ 배경 이야기 보다 나는 그 유명한 성모님 상본이 ‘과학적’으로 분석되고 있는 것, 그리고 그 결과에 더 관심이 많이 간다. 과학적 분석만으로는 기적을 증명할 수는 없지만 할 수 있는 만큼은 설명을 할 수 있다. 그것이 종교적 믿음과 ‘수학적’ 과학의 차이이니까 당연한 것이다. 특히 무신론적인 일본인 과학자가 digital image analysis를 통해서 분석한 성모님의 눈동자 속에 반사된 Juan Diego(목격자)와 주교의 모습들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놀라울 뿐이다. 나에게 정말 분명한 것은 이것이다: 인류역사에서 성모님 발현의 목적은 분명하고 뚜렷하다는 것.. 특히 초 현대를 살아가는 요새의 인간들에게… 절대로 희망은 있다!

 

¶  Tobey, 10!  12월 9일.. 은 우리 집 수컷 강아지Tobey 생일이다. 그런데 올해는 조금 특별한 생일인 10 생일을 맞았다. 이런 중요한 날을 완전히 잊고 넘어갈 했는데 Tobey 오랜 역사를 같이 해온 East Cobb Animal Medical Center에서축하 카드 email 와서 알게 되었고 아하.. 올해가 10 생일이구나..하는 탄식이 나왔다. 10살이면 이제 인간나이로 나와 맞먹는 것이기에 더욱 감회가 새로웠다.

Tobey와 100% 닮은 크리스마스 카드
Tobey와 100% 닮은 크리스마스 카드

우리 집에는 Tobey 대한 크고 작은일화들이 많아서 그것을 기억하려면 한이 없을 정도다. 괴로운 것은 잊으려 하고 나머지 대부분은 snap 사진을 통해 즐기려 한다. 근래에 들어 많은 사람들이 pet 데리고 사는 것을 감안하면 특히 식구가 적은 우리 같은 곳에서 이런 pet 존재는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 어떨 때는 진짜 사람 식구와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해서 이런 pet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보면한심한 듯한눈총을 받는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속으로당신도 한번 길러 보고 말해!’ 라고 하고 싶을 때도 있다.

 

현재까지 Tobey 건강이 좋은 편이다. 하지만 10살이라는 느낌이 그리 좋은 것은 아니다. 한마디로 본격적인 노년으로 접어 것인데, 주변에서 듣고 보고 것으로 앞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문제들을 생각하며 우울해지기도 한다. 진희네 집의 , ‘공주 하루아침에 눈이 멀었고, 다른 쪽에서는 개가 제대로 걷지를 못한다. 사람은 아프면 말이라도 하지만 애들은 어떨까? 사회적, 문화적으로 이제 개나 고양이 들은 거의사람 같은 식구대접을 받게 되어가고 우리도 차이가 없다. Tobey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다면 사람 못지않게 정말 슬플 같다. 살을 맞이한 Tobey.. 우리와 사는 동안 건강하게 살아다오!

 

Bernadette & Nathan
Bernadette & Nathan

Bernadette.. 버나뎃, 벨라뎃따,  흔히들 프랑스의 루르드 성모님 발현의 목격자 소녀의 이름을 떠올린다. 하지만 여기의 Bernadette는 캐나다에 사는 나의 중앙고 동창 정교성 딸의 이름이다. 인 친구는 매년 꼬박꼬박 크리스마스 카드를 12월 초만 되면 보내준다. 요새 우표를 붙여서 카드를 보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련만  이 친구는 고집불통으로 ‘인터넷’을 외면하고 이렇게 고전적인 방식을 고집해 왔다. 오랜 전에는 나도 우편 카드로 답을 하려고 무척 애를 썼지만 나중에는 포기하고 말았다.

나의 작은 친 형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언제나 성숙한 친구, 전통적인 천주교인’ 정교성.. Wife를 병으로 잃은 후  재혼한지도 꽤 오래 전인데 이제는 딸 (큰 딸인지 작은 딸인지 확실치 않지만) Bernadette이 결혼을 한다고 결혼 안내장을 동봉해 주었다. 청첩장이 아니고 청첩장을 예고하는 card였는데.. 신부와 신랑감에 대한 아주 자세한 설명이 그곳에 있었다.

신랑감은 테네시주 내쉬빌 출생의 미국인, 그리고 evolutionary biology (진화생물학) 박사학위 소지자 로서 캐나다 시민인 Bernadette을 Toronto의 Royal Ontario Museum에서 post-doctoral research하면서 만났다고 한다. 교성이는 딸이 두 명이 있는데 Bernadette이 장녀인지 차녀인지.. 확실치 않다. 오래 전에 보내준 가족사진이 어디로 갔는지.. 우리 집도 두 딸이고 해서 ‘동지’같이 느꼈는데 이렇게 결혼을 하게 되는 것을 보니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집 두 딸은 요새의 풍조대로 결혼 생각이 별로 없는 것 같아서 더욱 부러운 것이다.

신랑이 우리가 사는 인접한 테네시 주 출신이라서 혹시 결혼식을 그곳에서 하게 된다면 이 친구가 미국을 방문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수십 년 만에 다시 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아마 우리 둘은 서로 몰라볼 정도로 변해 있을 것 같은데.. 교성이는 옛날 부터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별로 변하지 않았을 것에 비하면 나는 ‘완전히 변한’ 모습이라서 더욱 그렇다. 하기야 내년에는 더 늦기 전에 캐나다 쪽으로 여행을 할 계획도 있어서 딸의 결혼과 상관없이 한번 보게 될지도 모른다.

친구야.. 정말 축하한다. 정든 딸을 보내는 아비의 심정 나는 현재 상상이 잘 안 가지만.. 어찌 섭섭하지 않겠니? 하지만 그것이 인생의 순리가 아니겠니.. 덤덤하게 행복을 빌어주며 보내렴.. 인자하신 성모님과 주님의 가호가 딸 부부에게 함께하기를 빌어본다.

레지오 연차 총 친목회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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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다섯 번째 맞는 레지오 연차 총 친목회 2014.. 나의 레지오 단원으로서의 올해 마지막 ‘의무’ 행사가 오늘 있었고 ‘무사히’ 막을 내리면서 2014년 ‘beginning of end‘ 를 장식하게 되었다. 진정 2014년이 우리에게서 떠나게 되는가.. 아직도 실감은 안 가지만 아마도 그런가 보다. 66년 동안 보낸 12월이 그렇게 대수인가.. 그저 지나가는 세월의 한 부분인걸..

레지오 단원의 생활은 일년 열두 달 그렇게 ‘재미 만’있는 것이 아니라서, 이렇게 레지오 마리애의 창시자이신 Irish, Frank Duff는 ‘절묘하게도’ 년 말에 조금은 긴장을 풀고 ‘신나게 놀라고’ 공식적으로, ‘의무적인’ 여흥 시간을 마련했던가. 여흥을 곁들여야 한다는 ‘조건’을 가진 annual member reunion 의 이 시간은 평소에는 잘 못 보던 Curia 동료 단원들이 한자리에 모이기에 아주 느낌이 색다른 행사다.

요새 세상이 그러하듯이 이곳도 대다수의 단원들이 ‘자매님, 여성’들이어서 남자들만이 갖는 ‘형제 의식’은 기대할 수 없지만, 사실 이제는 그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제 이런 환경에 아주 익숙해진 것일까? 하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하다. 평생 못 느끼던 여성들에 대한 새로운 느낌이란 것이 너무나 신선한 것이다. 통상적인 ‘이성’이 아닌 그들도 ‘나와 같은 human being, 인간’이었구나 하는 글로 설명할 수 없는 묘한 느낌.. 이것도 레지오가 아니었으면 모르고 갈 뻔했다.

올해의 총 친목회는 이제까지와 다른 입장으로 맞게 되었다. 지난 몇 년 동안은 연숙이 Curia간부인 관계로 나도 ‘말려들게’ 된.. 그러니까 남들 보다는 조금 더 행사자체에 깊이 개입했었지만 올해는 오랜 만에 ‘홀가분하게’ 둘이서 조금 더 쉽게, 여유 있게 맞게 되었다. 그런 다른 쪽에는 조금 아쉬움도 없지 않았다. 특히 작년에 극소수의 ‘희귀동물’ 남성단원 몇 명이 ‘의기투합’, 모여서 중창을 했던 것.. 올해는 ‘상전벽해’ 같은 느낌으로, 조금은 황량한 기분이 되었다. 특히 돼지띠 동갑으로 나와 chemistry가 잘 맞았던 전요셉 형제가 영구귀국을 한 바람에 나는 더욱 외롭게 되어서, 작년의 ‘신나던 총친목회’가 이제는 나에게는 그리운 과거가 되었다.

올해는 우리 쁘레시디움 자비의 모후, 그리고 ‘옆 동네’, 평화의 모후가 함께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오승근의 hit곡으로 ‘장기자랑’을 했는데, 4번의 연습을 거쳐서 그런대로 즐기며 공연을 끝냈다. 예전 같으면 이런 곡을 합창으로 하려면 ‘반주’가 골치겠지만 이제는 완전히 karaoke문화가 성숙이 되어서 웬만한 pro들 같이 공연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떤 다른 team은 숫제 미리 vocal, 노래까지 recording으로 가져와 lip singing만 할 정도였다. 하기야 출연해서 즐기고, 관람해서 즐거우면 목적은 달성된 것이니까, 어떻게 해도 상관이 없지 않을까?

친목회를 하면서 새로운 단원을 알게 되면 친목회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인데 올해는 의외적으로 연세대 ‘대선배님’을 알게 되었다. 같이 노래 연습을 하면 자연적으로 사람을 알게 되는데 이 선배님도 나의 노래 partner로 인사를 하게 되었고 연세대 11년 선배님임을 알게 된 것이다. 올해 친목회에서 느낀 두드러진 것 중에는 Curia전체가 ‘젊어진’ 느낌을 받은 것인데 물론 이것은 반가운 현상이지만 다른 쪽으로는 우리들 세대, 그룹은 이제 ‘밀려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서 조금은 편치 않았지만.. 그것이 무슨 문제일까.. 할 수 있는 그 때까지 뒤를 안 보고 ‘성모님의 지시’를 받으며 뛰면 그것이 전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