創業의 麗花

暴君 彌勒菩薩

  고려(高麗) 오백년의 역사를 더듬어 볼 때, 표면에서 호령하던 군주(君主)나 권신(權臣)들보다도 그 이면에서 오히려 놀랄 만한 힘을 발휘하고, 군주나 권신들을 허수아비처럼 조종한 여성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후삼국(後三國)을 통일하고 새나라 고려를 창건하기에 이르는 동안에도 그를 싸고 도는 숱한 여성들이 때로는 찬란한 빛을 비치기도 하고 때로는 심한 그늘을 드리우기도 했던 것이다.

  왕건은 원래 송악군(松嶽郡=지금의 開城) 사람인 왕융(王隆)의 맏아들로서 모친은 한씨(韓氏).  신라 헌강왕(憲康王) 삼년(西紀 八七七) 정월에 남제(南第)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남달리 총명하고, 용모가 준수하고, 힘이 강하고, 도량이 넓고, 사려가 심원했다고 하니, 여사(麗史)에서 찬양하듯이 가히 <세상을 제도(濟度)할 자질>을 갖추었다고 볼수 있을 것이다. 왕건의 나이 스무살 되던 해인 신라 진성여왕(眞聖女王) 십년(西紀 八九六) 그는 부친 왕융과 함께 궁예의 휘하로 들어갔다.

  그 당시, 신라의 국운이 날로 기울어 가자 전국 각지에 군웅(群雄)이 활거하게 되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세력이 강했던 자는, 남주(南州=지금의 全州)에 웅거했던 견훤(甄萱)과 강원도 철원(鐵圓=鐵原) 일대서 세력을 떨치고 있던 궁예였다.

  왕건 부자가 궁예를 따르자 궁예는 대단히 반기고 후대하였다. 특히 왕융이 곧 세상을 떠나자(西紀 八九七) 궁예의 신임은 젊은 왕건에게로 쏠리었다. 왕건이 군공을 세울 적마다 거침없이 벼슬을 높여 주었다. 정기 병감(精騎兵監), 아찬(阿粲), 알찬(閼粲), 한찬해군대장군(韓粲海軍大將軍),  파진찬겸시중(波珍粲兼侍中) 등 내외의 중요한 관직은 모두 역임하게 되었다.

  왕건 등 고굉지신(股肱之臣)의 충성과 절호의 시운을 탄 궁예의 세력은 요원의 불길처럼 강성해 갔다. 이렇게 되니, 원래 인간적 바탕이 천박한 궁예는 차츰 교만하고 방자해 갔다.  차츰 궁예는 함부로 신하들과 백성들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추호라도 자기 뜻을 거슬리는 자가 있으면 그 죄상 몇 배 이상으로 가혹한 처벌을 가했다.

  <그 당시 궁예는 하찮은 죄를 트집잡아 날마다 백 여명을 죽였고, 비록 장상(將相)이라 할지라도 십중팔구(十中八九)는 참살했다> 고 전한다.

  궁예의 허세와 탄압은 그의 위세를 높이기는 고사하고 인심의 이탈을 가져왔을 뿐이었다. 그의 수하 장졸들과 치하(治下) 백성들간에는 원성이 날로 높아갔다.

  무슨 죄로 우리는 저렇듯 포악한 자를 임금으로 섬겨야 하느냐?

  언제나 우리 머리 위에 검은 구름이 걷히고 밝은 햇빛이 비치겠느냐?

  제일인자가 인망을 잃었을 때 그 인망은 바로 제이인자에게로 쏠리기 마련이다. 왕건은 원래가 너그럽고, 부드러우면서도 의젓한 통솔력을 갖춘 인물이었으므로 은연중에 민심이 왕건에게로 쏠리게 되었다.

  차라리 바꿔 됐으면 얼마나 좋을까?

  왕시중 같은 분이 그 자리에 대신 앉는다면 모든 장졸은 지극한 충성을 바칠 게고, 백성들은 그야말로 격양가를 부르게 될 것이 아닌가.

  몇몇 사람이 모이면 곧잘 이런 말이 오고 갔다. 이렇게 되니 간사한 무리들은 덮어놓고 폭군에게 아첨을 하게 되었고 뜻있는 사람은 보신을 위하여 입을 다물고 몸만 사리었다.

  왕건 역시 되도록 조심하였다. 이미 관직이 백관의 으뜸에 이르렀을 뿐 아니라 중망(衆望)이 한몸에 집중된 처지이므로 언제 간신의 혀 끝에 올라 참소를 당할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는 화를 두려워한 나머지 마침내 변경의 방어를 빙자하여, 자청해서 멀리 몸을 피하였다.

  말하자면, 궁예의 신변에는 간사한 무리의 아첨이 있을 뿐, 진심으로 그를 아끼고, 그에게 바른 말을 하려는 충신은 이미 자취를 감추고 만셈이었다.

  이러한 정세하에서 어디까지나 궁예를 아끼고 그의 앞날을 염려하여 애를 태운 이는 왕비 강씨(康氏) 뿐이었다.

  대왕께 여쭐 말씀이 있사와요.

  하루는 조용한 틈을 타서 강씨가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이요? 어서 말해 보오.

  때마침 왕건으로부터 금성(錦城=羅州)도 정벌하였다는 첩보를 접한 터이므로 궁예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던 참이었다. 그러므로 아녀자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생각까지 들게 되었다.

  거침없이 말씀 드리겠사와요.

  강씨의 얼굴에는 강한 결의가 나타나 있었다.

  어찌하여 대왕께서는 신하들이나 백성들을 그렇듯 가혹하게 다스리옵니까?

  난 또 무슨 소리라구!

  궁예는 호방하게 웃었다.

  아니, 국모의 몸으로 그런 것 하나 모른단 말이요?

  모르겠사옵니다. 가르쳐 주시어요.

  그러자 궁예는 자못 위세를 보이려는 듯 자리를 고쳐 앉고 엄숙한 표정을 짓더니 부인은 아녀자이므로 비근한 예를 들어 가르치겠소. 잘 들어보오.

  예

  비근한 예를 들자면 개를 길들일 때, 뭐니 뭐니 해도 매가 제일이요. 호된 매를 들어야 꼬리를 말고 고분고분 복종한단 말이요.

  그래서요?

  강씨의 목소리는 약간 떨리었다.

  말하자면 임금에겐 백성들이란 개와 마찬가지로 호된 매를 들면 고분고분하지만 매를 잠깐 늦추기만 하면 제세상 만났다고 날뛴단 말이요. 그러니, 임금이 엄하고 무서울수록 백성들은 임금을 우러러 받드는 법이요.

  궁예의 말을 듣고 강씨는 한참 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더니 얼마 후, 다소곳이 얼굴을 들고

  대왕, 백성들은 개가 아니옵니다. 사람이옵니다.

  이 말을 듣자 궁예는 그만 실소(失笑)를 터뜨렸다.

  개가 아니라고 누가 그걸 모른다오? 다만 개처럼 비천하다는 뜻이지.

  그러나 백성들은 결코 개처럼 비천하지도 않사옵니다. 개는 그 주인이 죽이려고 하면 고분고분 죽어가오나, 사람은 경우에 따라서는 그 주인의 발 등을 물기도 하옵니다.

  그렇지만 매를 들지 않으면 더욱 얕보고 기어오를 게 아닌가?

  가혹한 힘만이 백성을 다스리는 길이 아니옵니다. 저 미륵보살을 보시어요. 항상 인자한 미소만 띠우실 뿐이오나 만인이 우러러 받들지 않사옵니까?

  미륵보살이라?

  궁예의 눈에는 야릇한 광채가 번득 했다.

  과연 그래. 미륵보살은 창검도 휘두르지 않고, 노하는 일조차 없지만 모든 사람이 우러러 보는 것만은 사실야.

  궁예는 벌떡 일어섰다.

  오냐, 미륵보살이다. 나는 이제부터 미륵보살이 되는 거다.

  그로부터 궁예는 스스로 부처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머리에는 금책(金 )을 쓰고, 몸에는 방포(方袍)를 입고밖에 나갈 때는 비단으로 머리와 꼬리를 장식한 백마를 타고, 동남동녀(童男童女)로 하여금 번개향화(幡蓋香花)를 받들어 앞을 인도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 뒤에는 비구승 이백여 명이 염불을 외우며 따랐다.

  부처가 된 것처럼 날뛰는 궁예는 자기 혼자만 부처행세를 하는 게 아니었다. 부처의 자식도 응당 부처 대접을 받아야 옳을 것이라 생각하고, 맏아들은 청광보살(靑光菩薩), 작은 아들은 신광보살(神光菩薩)이라 칭하게 하였다. 그뿐이 아니었다.

  내 부처가 된 이상 스스로 지어낸 경서가 없을 수 없다.

  하고, 경서 이십여 권을 스스로 지어냈다. 그리고는 때로는 여러 신하들을 모아놓고 정좌(正坐)하여 설교까지 하는 것이었으나 그 내용은 황당무계(荒唐無稽)하여 차마 들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이쯤 되면 이미 정상적인 정신상태라고 볼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러기에 여러 신하들은

  주상(主上)께서 부처가 되신 게 아니라 실성하신 게 아닐까?

하고 뒷공론을 하였지만, 감히 맞대놓고 간하는 자는 없었으나 오직 중 석총(釋聰)만은 정색을 하고 그 부당함을 간했다.

  대왕께 아뢰오.

  무슨 일인고?

  대왕께서 지으셨다는 경서에 대해서 아뢸 말씀이 있사옵니다.

  그 말에 궁예는 입이 딱 벌어진다.

  내가 지은 경서에 대해서라? 어떤가 고금에 보기 드문 훌륭한 경서지?

  지극히 강직한 성품을 지닌 석총은 똑바로 궁예를 쏘아보더니 거침없이 내 뱉았다.

  고금에 다시없이 훌륭한 것이 아니라, 고금에 다시 없는 고약한 것으로 아뢰오.

  뭐라고?

  궁예는 벌떡 일어섰다. 병적(病的)으로 혼탁한 눈에는 핏발이 잔뜩 서 있었다. 그러나 석총은 이미 진정한 불도(佛道)를 위해서 죽음을 각오하고 있는 터였다.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끝내 소신을 밝혔다.

  대왕께서 경서라고 내세우시는 말들은 억설과 괴담일 뿐, 부처의 가르침의 거룩하심을 오히려 욕되게 하는 것으로 아옵니다.

  궁예가 발을 구르며 노발대발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맨발로 뛰어 내려가더니 손수 쇠망치를 집어가지고 석총의 머리를 때려 죽였다.

  이러한 망발과 폭행이 거듭되자 강씨는 더욱 애를 태우게 되었다. 사람을 함부로 죽일 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큰 뜻인 부처님까지 욕되게 하니 날로 높아가는 원성은 마침내 어떤 화를 초래할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누구보다도 궁예를 아끼는 강씨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사태가 최악의 경우에 이르기 전에 수습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믿을 만한 신하들은 모두 몸을 사리어 발길을 멀리 하고 있으며, 가까이 도는 자라고는 아첨만 일삼는 간신배들 뿐이었다.

  이 일을 위해서는 나설 사람은 자기 혼자 뿐이라고 강씨는 생각했다. 물론, 거의 실성하다시피 한 궁예에게 바른 말을 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예로 보아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강씨는 방관할 수는 없었다.

  그날 강씨는 특히 몸을 단장하고 궁예의 거실을 찾아 들어갔다.

  부인, 어서 들어오오.

  궁예에게는 여러 후궁들도 없지 않았지만 누구보다도 왕비 강씨를 사랑했다. 사랑했다기보다도 강씨에겐 모정(母情)에 가까운 다정함을 느꼈다고 보는 것이 옳을는지 모른다.

  궁예는 어려서부터 한쪽 눈을 못 보는 애꾸눈이었다. 그가 애꾸가 된 연휴는 다음과 같이 전해지고 있다.

  그의 부친은 신라 제사십칠대 헌안왕(憲安王)이라고 한다. 궁예는 바로 오월 오일날, 외가에서 출생했는데, 그때 지붕 위에는 서기가 무지개처럼 뻗치었다고 한다. 이것을 보자 일관(一官)은 왕에게 고하기를

  이 아기는 중오일(重午日)에 탄생하셨을 뿐 아니라, 나면서부터 이가 돋아 있으며, 또한 이상한 빛이 나타났으니 장차 나라에 해롭지 않을까 두렵사옵니다.

 이 말을 들은 부왕은 사람을 외가로 보내어 아기를 죽이도록 하였다.

  왕의 명령을 받은 사람은 아기를 유모의 품에서 빼앗아 높은 다락에 올라가 내려 던졌다.

그러나 유모는 어디까지나 아기의 목숨을 구하고자 다락 밑에 숨어 있다가 떨어지는 아기를 두 손으로 받았다. 그 순간 손가락이 아기의 한쪽 눈에 들어가서 애꾸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어려서부터 애꾸가 된 궁예는 그 애꾸라는 사실에 늘 비굴함을 품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성을 대할 때면 한층 더 심했을 것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다른 후궁들을 대할 때, 궁예는 그 비굴감의 반동으로 강압적이거나 위악적(僞惡的)인 태도를 취했다 한다. 그러나 강씨에게만은 그렇지 않았다. 단순한 이성이라기보다 도 모성을 대하 듯 비교적 온건하고 인자하게 하였다. 그러기에 강씨의 충고에만은 가끔 귀를 기울였던 것이다.

  마침 적적하던 참인데 부인, 잘 들어왔소.

  궁예는 강씨의 손을 잡고 끌어당기려 했다. 그러자 강씨는 그 손을 가볍게 물리치고 근엄한 표정으로

  오늘은 대왕께 또 귀에 거슬리는 말씀을 드리러 왔사와요.

  귀에 거슬리는 말이라? 부인의 말은 간혹 도움이 되는 수가 있으니 어서 말해 보오.

  그때까지만 해도 궁예의 태도는 자못 부드러웠다.

  지난번에는 사람들을 함부로 해치지 마십사고 사뢰었는데 그 말은 들은 척도 아니하시고 이제는 부처의 흉내까지 내시어 불도를 욕되게 하시니 이러다가는 백성의 원한과 멸시를 사서 장차 어떠한 화를 입을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사옵니다.

  백성들의 멸시를 산다?

  궁예의 눈꼬리는 이내 샐룩해졌다.

  오직 백성들의 멸시를 사지 않기 위해서라도 부처와 같이 높이 굴어야 하지 않겠소?

  그것이 대왕께서 그릇 생각하시는 점이옵니다. 누누히 말씀 드렸사오나 힘이나 허세만으로는 백성들은 심복하지 않사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백성들이 심복한다는 거요?

  무엇보다도 덕으로 다스리시어야 하옵니다.

  그 말을 듣자 궁예는 허리를 잡고 웃음을 터뜨렸다.

  덕이라고? 도대체 덕이라는 게 뭐요… 어떠한 자가 덕이 있는 자란 말이요? 예로부터 천하를 손아귀에 넣은 자들은 만백성을 꼼짝 못하게 하는 강한 자들이었소. 그리고 그런 강한 자의 발 밑에 짓밟히는 걸 백성들은 은근히 바랐고 그것이 바로 심복이라 여기었는데.

  아니옵니다.

  강씨는 야무지게 말을 막았다.

  먼 예를 들 것도 없이 가까운 곳에 있는 왕시중을 보시어요. 비록 지위는 대왕의 신하이오나 힘을 과시하는 일도 없고, 누구에게나 너그럽게 대하니 많은 사람들의 인망을 사고 있지 않사옵니까?

  닥쳐라.

  왕건의 말이 나오자 궁예는 미친 사람처럼 악을 썼다.

  그 놈이 누구라고 감히 나와 비기어 추켜 세우다니…

  궁예는 두 주먹을 움켜쥐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자기에게서 이탈해 가는 민심이 날로 왕건에게 집중되고 있다는 것을 궁예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남달리 사납고 편협한 그는, 왕건을 시기하는 마음 치열하기도 했다. 트집만 잡으면 속 시원히 처단할 생각까지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신중하게 몸을 사리는 왕건이 좀처럼 트집을 잡히지 않아 왔기에 오늘날까지 그에 대한 시기와 증오를 나타내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던 터에 그를 찬양하는 강씨의 말을 듣자 눌러 오던 감정은 폭발되고 말았다.

  이년! 네 무슨 까닭에 왕건이 놈을 그렇듯 두둔하지?

  왕건에 대한 분노는 폭발의 계기를 만든 강씨에게로 쏠렸다.

  계집이 제 남편을 내려 깎고 남의 남자를 추켜세우는 것은 어떠한 경우이지?

  궁예의 감정은 야릇한 방향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강씨는 당황했다. 어떻게 변명을 해야 좋을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내 이제 알았다. 네가 왕건과 밀통을 하였구나.

  그러더니 궁예의 음성은 갑자기 낮아지고, 유들유들해졌다. 그가 가장 잔인한 행동을 취하려고 할 때는 이렇게 변하는 것이다.

  너 그 놈하고 언제 밀통했지?

  강씨는 기가 막혔다. 뿐만 아니라 분하기까지 했다.

  어쩌면 그런 말씀을 다 하시어요?

  왜 내 말이 틀렸는가?

  궁예는 히죽히죽 웃더니 갑자기 웃음을 거두고 부처처럼 결가부좌(結跏趺坐)한다. 그리고는 일부러 목소리를 지어내며

  나는 곧 미륵보살이라. 내 이미 관심법(觀心法)을 터득하였은 즉 나를 속이지는 못하리라.

네 마음을 들여다보니 다른 남자와 밀통했다는 것을 스스로 자백하고 있단 말이야.

  강씨는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떠한 말을 한들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 그러니 바른대로 대면 용서하겠거니와 끝내 나를 속이려 한다면 혹독한 벌을 받을 줄로 알아라.

  궁예의 성격으로 보아 그의 비위를 맞추자면 없는 죄도 있다고 맞장구를 치는 편이 오히려 살아나는 길이었다. 그러나 결백한 강씨로는 죽으면 죽었지 남의 남자와 밀통했다는 말까지 지어서 할 수는 없었다.

  네가 끝내 나를 속이러 드는구나. 오냐! 미륵보살이 얼마나 자비 하신가를 보여 주리라.

  궁예는 곧 사람을 불렀다.

  당장에 쇠방망이를 시뻘겋게 달궈 오너라.

  시신은 까닭도 모르고 쇠방망이를 시뻘겋게 달구어 왔다.

  궁예는 그것을 강씨의 코 끝에 갖다 대었다.

  자, 이래도 바른대로 대지 않겠느냐?

  강씨는 모든 것을 단념하고 있었다. 눈을 딱 감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걸로 지지겠단말야! 그래도 똑바로 못 대겠느냐?

  역시 강씨의 태도는 마찬가지였다. 궁예의 안색은 새빨갛게 상기하더니 나중에는 새파랗게 질렸다. 노기가 극도에 달한 증거였다.

  미륵보살같이 거룩한 남편을 배반하고 외간 남자와 밀통한 계집은 이렇게 형벌을 내리신다.

  외치고는 석자나 되는 쇠방망이로 음부(陰部)를 찔러 강씨를 죽였다.

  이것은 신라 신덕왕(神德王) 사년(西紀 九一五)의 일이었다.

  그러나 궁예가 강씨를 죽인 것은 강씨가 꼭 밀통했으리라고 믿은 때문이 아니었던 것 같다.  은근히 질시하던 왕건을 추켜 세우므로 병적인 노기가 극도에 달해서 그런 결과를 빚어 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러 시신들이 보는 앞에서 그런 죄목으로 참살한 이상 그 명분을 그대로 밀고 나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밀통한 계집의 자식은 누구의 씨냐?

  궁예는 좌우를 향해 물어보았다. 시신들은 그저 고개만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물을 것도 없이 간부의 씨에 틀림없으렷다. 그렇다면 간부의 씨를 애지중지 키우고 나중에 왕위까지 물려 준다면 얼마나 우스운 일이겠느냐?

  궁예는 허공을 향해 소리 없이 웃었다.

  청광보살과 신광보살을 당장에 모셔 오너라.

  강씨의 몸에서 난 두 아들을 불러오게 했다.

  보살님네들, 극락세계로 모시겠사옵니다.

  궁예는 두 아들 앞에서 합장 예배하는 듯 허리를 굽히더니 아직도 발 아래 굴러 있던 쇠방망이를  집어 번개처럼 휘둘렀다. 어린 두 아들은 머리가 쪼개지며 먼저 간 모친 강씨 곁에 숨져 쓰러졌다.

  강씨와 두 아들의 참살은 궁예의 정신에 결정적인 광증을 가져왔다. 그리고 이 광증은 궁예의 몰락을 급속히 초래하는 한편 왕건의 혁명을 크게 뒷받침하는 고비가 되었다.

  궁예가 강씨를 죽인 것은 강씨가 미운 때문이 아니라, 왕건에 대한 질시가 변형되어 폭발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므로 제정신이 들자 궁예는 아내의 살해를 뼈져리게 뉘우쳤다.  깊은 밤 이불을 뒤집어 쓰고 오래오래 호곡(號哭)하기도 했다.

  아내의 죽음을 뉘우치고 괴로워지자 이미 제정신이 아닌 그의 눈에는 다른 여자들이 무사히 살아 있는 게 이상하게 여겨졌다. 후궁이건 궁녀이건 그 밖의 어떤 여자이건 만나기만 하면 결가부좌하고 앞에 꿇어 앉히고

  내 관심법으로 그대의 마음 속을 샅샅이 살펴보리라.

  그리고는 웅얼웅얼 염불을 외우다가

  이년! 너 외간 남자와 간통을 했겠다?

  소리치는 것이었다. 이때, 영리한 여자는 그 자리에 엎드려 벌벌 떠는 체하며

  대왕께서는 과연 미륵보살과 같으신 분입니다. 죽을 죄를 졌사오니 너그러운 자비를 베풀어 주옵소서.

  이렇게 빌면 간혹 목숨을 건지는 것이지만 끝까지 자기 결백을 주장할 것 같으면

  에이, 발칙한 계집! 내가 누구라고 감히 속이러 드느냐?

  호통을 치고는 석자나 되는 쇠방망이를 뻘겋게 달구어 그 여자의 음부를 찌른다. 불에 달군 쇠방망이에 내장은 지글지글 타고, 그로 말미암아 그 여자의 입과 코에서는 연기가 나오는 수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 궁예는 미친 듯이 손뼉을 치며

  저걸 봐라! 저 연기야말로 내 관심법이 바로 맞았다는 걸 하늘이 밝혀 주는 것이로다.

 하고 좋아했다고도 한다.

  궁예의 소위 관심법은 병적인 점이 다분히 있기는 하지만, 궁예로서는 전혀 계산이 없는 것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첫째로는 신하들의 충성심을 시험하는 것이다.

  나는 네 속을 다 들여다본다.

  이렇게 내세우고 꼬치꼬치 캐어 물으면 마음속 깊이 숨겨 두었던 반감을 자기도 모르게 드러 내게 되는 것이다. 둘째로는 뚜렷한 죄상(罪狀)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없애버리고 싶은 자가 있을 때, 죽일 수 있는 방법을 만든다는 점이다.

  자기를 젖혀놓고 날로 인망이 높아가는 그 무렵의 왕건은, 궁예로선, 충성심을 시험해 보고 싶기도 하고, 핑계만 있다면 아주 없애버리고 싶기도 한 존재였다. 그래서 궁예는 은근히 기회를 노리다가 하루는 왕건을 불러들였다.

  왕건은 지난해 수군(水軍)을 거느리고 나주(羅州)에서 후백제군을 크게 격파한 일이 있으므로 수군의 유리함을 진언하려 상경해 있었던 참이었다. 그러므로 궁예의 부름을 받자, 수군에 관한 의논을 하려는 것으로만 알고 급히 입궐했다. 그러나 왕건이 들어가 꿇어 앉으니 궁예는 결가부좌, 눈을 반쯤 내려 깔고 응시하다가, 벌떡 일어서며 다른 말 젖혀놓고

  경은 어제 저녁에 무슨 짓을 했지?

하고 호통을 친다. 왕건은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어서 어리벙벙할 뿐이었다. 그러니까 궁예는 다시

  경은 어젯밤에 무리들을 모아놓고 역적모의를 하지 않았는고?

한다.  왕건은 하도 어처구니없는 소리라 입가에 오히려 미소를 띠우면서

  어찌 그런한 일이 있었겠사옵니까?

한즉,  궁예는 오히려 노기가 등등해진다.

  경은 감히 나를 속이러 드는고?

  어찌 대왕을 속이겠사옵니까? 신의 말은 진정이올시다.

  에이, 닥쳐라! 경이 끝내 나를 속이려 든다면 내 관심법으로 이를 밝히리라.

궁예는 곧 결가부좌하더니 눈을 감고 손을 모으고 입 속으로 무엇인지를 중얼거린다. 사태는 심히 위급하게 되었다. 이대로 버려 둔다면 왕건은 임금을 속였다는 죄목으로 어떠한 화를 당할는지 알수 없는 일이었다. 왕건을 아끼는 여러 신하들은 조바심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때였다.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최응(崔凝)이란 젊은 신하가 일부러 손에 들었던 붓을 뜰 아래로 떨구더니 그것을 집으러 내려간다.

  좌중이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긴장된 공기에 싸여 있었던 만큼 여러 사람의 시선은 최응에게로 쏠리었다. 왕건도 심상치 않게 여기고 최응을 봐라보았다. 다만 눈을 감은 궁예만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모양이었다. 여전히 입속으로 무엇인지 중얼거리고만 있었다.

뜰아래내려가서 붓을 주운 최응은 자기 자리로 돌아가려고 왕건의 곁으로 지날 때 재빠르게 속삭였다.

  덮어놓고 사과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생명이 위헙합니다.

  그 말을 듣자, 왕건은 많은 부녀자들이 결백함을 주장하다가 죽어간 일을 생각했다.

  대왕께 아뢰오!

  왕건은 소리쳤다. 궁예는 눈을 번쩍 떴다.

  이제 와서 또 무슨 변병을 하려는고?

  변명이 아니오라, 사실을 아뢰오.

  사실을 고하겠다?

  대왕께서 통찰하신바와 같이 신은 역모를 했사오니, 그 죄 죽어 마땅한 줄로 아옵니다.

  궁예는 이윽고 왕건을 내려다보았다.

  왕건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모양을 본 궁예는 갑자기 요란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됐어! 됐어! 경은 과연 정직한 사람이로다. 한때 그릇 생각하고 역모를 했을 지언정, 끝내 나를 속이지 않고 그렇듯 실토했으니 이번만은 특히 용서해 주리라.

이렇게 말하는 궁예의 얼굴에는 오히려 안도의 빛이 어리었다. 애당초 궁예는 왕건이 복죄(服罪)하지 않으면 임금을 속이려 한다는 죄목을 씌워 처단하려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없는 죄를 고백하니 오히려 당황했다. 왕건의 말대로 역모했다는 죄를 추궁한다면 하는 수 없이 공모자를 자백시켜 처단해야 했지만 그렇게 한다면 어떤 불온한 사태가 벌어질지도 알수 없는 일이었다.

  심중으로는 몹시 유감스러웠으나 겉으로는 자못 너그러운 체 궁예는 왕건에게 금은으로 장식한 안장과 말을 내어주며 그가 진언한 대로 수군을 정비하여 후백제를 치도록 명령했다.  이렇게 해서, 겨우 목숨을 건진 왕건은 기지(機智)로써 자기를 구해준 최응의 은혜를 잊을 수가 없었다.

  후에 왕건이 등극(登極)하자 그는 최응에게 광평랑중(廣評郞中)을 거쳐, 광평시랑(廣評侍郞)등 높은 벼슬을 주었으나, 그보다도 끝내 인간적인 대접을 극진히 하였다.

  한 번은 최응이 병을 앓아 눕게 되었다. 그 소식을 듣고 크게 놀란 왕건은 즉시 동궁(東宮)으로 하여금 문병케 하였다. 그리고 최응의 병에는 무엇보다도 몸을 보할 필요가 있다는 말을 듣고 기름진 고기를 보내어 먹도록 권했다.

  저는 원해 살생을 않기로 맹세한 몸이므로 고기는 입에 댈 수가 없소이다.

  그러나 동궁은 부왕의 분부도 있고 해서

  글세, 살생을 아니하겠다면 산 짐승을 죽이지 않으면 되는 것이지, 이미 남이 잡아 놓은 고기까지 먹지 않을 건 없지 않소?

하고 거듭 권했으나 끝내 사양하고 먹지를 않았다.

  동궁이 돌아와서 전하는 말을 듣자 왕건은 이미 지존한 몸이면서도 몸소 최응의 집을 찾아갔다.  그리고는 그 야윈 손을 꼭 주어 주며 간곡히 권했다.

  경이 고기를 끝내 먹지 않는다면 두 가지 큰 죄를 저지르는 셈이요.

  최응은 그 뜻을 얼핏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묵묵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만일 몸을 보하지 않아서 불행한 일을 당한다면 그대의 모친을 끝내 봉양하지 못하는 것이니,  곧 불효가 되는 것이며, 짐에게는 좋은 보필지신을 잃게 하는 것이니 곧 불충이 되는 것이 아닌고?

  이 말에 최응은 크게 감격하여 곧 고기를 먹고 원기를 회복했다고 한다.

 

 

 

  사랑은 버드나무 아래에

  궁예가 왕건을 시기하고 미워한다는 사실이 표면화하자 은근히 궁예를 원망하고 왕건을 지지하던 장상(將相)들은 마침내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추대할 움직임을 보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적극적인 이는 홍유(洪儒), 배현경(裵玄慶), 신숭겸(申崇謙), 복지겸(卜智謙) 네사람이었다.

  홍유는 궁예의 휘하에서는 왕건을 제외하고 가장 인망이 높은 인물이었으며, 배현경은 담력이 과인하여 가히 대사를 주름잡을 수 있는 인물이었고, 신숭겸은 무용이 절륜하여 당대에 으뜸가는 명궁이었다. 또 복지겸은 신숭겸의 동모이부제(同母異父弟)일 뿐만 아니라,은밀한 일을 탐지해 내는데 남다른 재질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인물들이 주동이 되어 있으므로 왕건만 일어선다면 혁명이 성공할 것은 의심할 나위도 없었다.

  시기는 마침내 무르익었다. 신라 경명왕(景明王) 이년, 한참 무더운 육월 어느날 밤, 홍,  배, 신, 복 네 장상은 왕건의 집을 찾아갔다.

  마침 부인 유씨(柳氏)와 더불어 방문을 열어 젖히고 바람을 쏘이고 있던 왕건은 반가이 네사람을 맞아들였다.

  어서들 오시오. 밤이 이슥한데 어쩐 일들이시오.

  그런즉 배현경이 흘금흘금 유씨를 바라보며

  상공께 은밀히 여쭐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만…

하고 말끝을 흐린다. 유씨가 자리를 피해 주었으면 하는 눈치였다. 그 눈치를 알아차리자 왕건은 유씨를 향해 말했다.

  부인, 손님들이 먼 곳을 오시느라고 목이 마르실 테니 뒷밭에 가서 참외나 좀 따오시구려.

  부인은 곧 왕건의 말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참외를 따러가지는 않고 방문 뒤에 숨어서 안에서 하는 이야기를 엿듣고 있었다.

  왕건의 부인 유씨는 보통 여성이 아니었다. 일찍이 왕건이 남정(南征)을 하러 가는 길에 정주(貞州)땅을 지날 때였다. 마침 무더운 여름철이라 갈증이 심하므로 말을 멈추고 우물을 찾고 있었다. 그러자니까 한 처녀가 물동이를 이고 가므로 그 뒤를 따라갔다. 물동이를 인 처녀의 뒤를 따라가면 물을 얻어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그보다도 유달리 시원스럽게 생긴 처녀의 용모에 호한(好漢)의 춘정(春情)이 동했던 것이다.

  처녀는 한 버드나무 밑에 이르더니 물동이를 내려 놓는다. 바로 그 아래 우물이 있었다. 처녀가 물을 긷는 것을 유심히 바라보던 왕건은 불쑥 그 앞에 나타나서

  대단히 미안하오만 물 한 모금 먹을 수 없겠소?

하고 청했다. 그런즉, 처녀는 늠름한 젊은 장군을 힐끔 쳐다보고는 수줍은 웃음을 띠우며 물 한 바가지를 떠서 바치는데 어쩐 까닭인지 그 물에 버들잎 한 잎을 따서 띄운다.

  왕건은 이상한 생각이 들기는 하였지만 목이 하도 마르므로 후후 불면서 물 한 바가지를 다 마시고 나서 그 연유를 물어보았다.

  물에 버들잎을 띄어 주었는데 혹시 이 고장의 풍습이 그렇소?

  그런즉 처녀는 한층 더 수줍어하여 귀뿌리까지 붉히면서도 또렷이 대답하는 것이다.

  그런 것이 아니어요. 제가 뵙기에 장군께선 이런 더위에 먼 곳을 달려오신 모양이므로 급하게 물을 잡수시면 혹시 해로울까 염려되어 일부러 버들잎을 띄운 것이어요.

  옳지! 버들잎을 띄우면 그것을 불면서 먹기 때문에 급히 먹지 못하게 되겠구먼.

  왕건은 이렇게 말하며 그 처녀의 고마운 마음씨와 총명함에 대단히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재차 묻기를

  처녀의 집은 어디며 부모님은 어떠한 분이시오?

  저의 부친은 유천궁(柳天弓)이라 하오며 저의 집은 바로 저 언덕 아래 있사와요.

  처녀에게 마음이 끌린 왕건은 그대로 헤어지기가 섭섭했다. 그래서

  내 먼 길을 오느라고 심히 피로한데 잠시 쉬어 갈 곳은 없겠소?

한즉,  처녀는 서슴지 않고 그의 집으로 인도하였다. 집은 비록 초가일망정 그 살림살이가 풍요하며 가히 이 고장의 갑부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처녀의 부친 되는 유천궁도 왕건을 반가이 맞아 주었다.

  그날 밤 왕건은 그 처녀와 아름다운 인연을 맺고 이튿날 다시 싸움터로 향했다. 그 후 왕건은 군무에 쫓기는 몸이 되어 좀처럼 처녀를 다시 찾아갈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러나 처녀는 왕건의 정을 굳게 믿고 다시 찾아 줄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 한 해가 지나고 두 해가 지났다.

  이러다간 저 애가 처녀로 늙겠어요.

  글세, 나도 그게 걱정이요. 기약 없는 사람을 무작정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처녀의 부모는 여러 가지로 마음을 태운 끝에 마침내 다른 곳으로 시집을 보내려 했다. 그러나 처녀는 펄쩍 뛰었다.

  여자란 한 번 인연을 맺은 낭군에게 평생토록 정절을 지켜야 한다고 저는 배웠어요.

  그렇지만 그 낭군이 끝내 너를 찾아 주지 않는다면 어쩌겠느냐?

  그렇다면 머리를 깎고 중이 되더라도 정절을 지킬 생각이어요.

  그래도 부모가 끝내 시집을 보내려는 눈치를 보이자, 처녀는 몰래 머리를 깎고 절에 들어가 중이 되었다.

  이 소문이 왕건의 귀에 들어갔다.

  내가 큰 죄를 저질렀구나!

  왕건은 즉시 사람을 보내어 맞아다가 아내를 삼았으니 그 처녀가 바로 유씨였다.

  한편 슬기로운 부인이 엿듣는 것도 모르고 네 사람은 마침내 밀담을 시작했다.

  오늘 상공을 찾아온 것은 다른 일이 아니외다.

  담이 큰 배현경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일찌기 삼한이 분열하고 도적의 무리가 벌떼처럼 일어났을 때 우리 주상이 나라의 태반을 평정하였으므로 그 치하의 백성들도 마음을 놓고 생업에 전념하는가 싶었는데 주상의 거동이 날로 교만 방자해 져서, 죄 없는 사람을 함부로 죽이고 나중에는 당신의 처자까지 참살하니 이대로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자 밀이 적은 홍유가 그 뒤를 이어 말한다.

  지금의 나라 형편을 보면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 주상을 원망하기 지난날의 걸주(桀紂)보다더하니 이와 같은 암흑을 거두어 버리고, 광명한 천지를 가져오게 함은 천하의 대의로 아오.  바라건대 공은 은주(殷周)의 예를 따라 궐기하시오.

  이 말을 듣자 왕건은 자못 노기조차 띠우며 준절히 거절한다.

  내 충의를 위하여 심신을 바치고자 맹세한 몸이요. 주상께서 한때 어지로운 처사 있으시다고 어찌 감히 다른 뜻을 품겠소? 신하 된 몸으로서 어찌 감히 그런 짓을 하겠소.

  그러나 네 사람은 왕건의 말이 진심이 아니라고 믿었던지 또는 끝내 강권하면 자기네들 뜻을 따를 것이라고 짐작했던지 거듭 권한다.

  시기란 만나기는 어려우면서도 잃기는 쉬운 법이외다. 하늘이 내리시는바를 취하지 않는 다면 오히려 허물이 될 수도 있는 것이요. 이제 나라 안 백성들은 폭군의 학정을 견딜 수 없어 새 어른이 나타나기만 고대하고 있소. 또 몇몇 뜻있는 신하들도 폭군의 손에 학살

되어 씨가 마르려 하오. 만인의 촉망이 상공에게 쏠리어 있는데 만일 상공께서 끝내 거절하신다면 우리가 멀지 않아 참살될 것은 말할 나위도 없고 가련한 백성들이 어떠한 지경에 이를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터이외다.

  그래도 왕건은 입을 다물고 선뜻 응하러 들지 않는다. 이 밀담을 엿듣고 있던 부인은 왕건이 끝내 망설이는 걸 보자 갑자기 방안에 들어섰다.

  상공께서는 무엇을 주저하시어요? 예로부터 옳은 일을 위해서는 악한 자를 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지 않습니까? 지금 여러 장군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으니 저와 같이 연약하고 무식한 여자라도 용기가 치솟아 분발하고 싶은 마음인데, 대장부로서 어찌 그렇듯 망설이신단 말씀이어요.

  그리고는 갑옷을 가져다가 억지로 입히며

  인심이 돌아가는 곳은 천심이 돌아가는 곳입니다. 자 어서 앞장을 서시어요.

  이 말을 듣자 왕건도 저으기 마음이 동하는 것같았으며, 특히 네 사람은 용기 백배하였다.  즉시 그 자리에 엎드려 신하의 예를 취한 다음 왕건을 부축하여 밖으로 나가기를 청하니 왕건도 마침내 뜻을 정하고 대문을 나섰다.

  왕건을 앞세우고 밖에 나간 네 사람은 미리 대기하고 있던 장졸들을 시켜 거리 거리를 다니며 이렇게 외치게 했다.

  왕공(王公)께서 의기(義旗)를 들고 궐기하셨다!

  그리고는 갑사들로 전후 좌우를 호위케 하고 왕궁으로 향하니, 백성들은 환성을 지르며 궁중으로 모여 들었다. 창검을 든 자, 활과 화살을 든 자, 심지어 농기구를 무기 삼아 든 자가 무려 일만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한편 궁중에서 이 소식을 접한 궁예는 대경실색했다. 원래 득세했을 때 포악한 자는 형세가 기울면 남달리 비겁해지는 법이다.

  왕건이가 모반을 했다구?

  궁예는 허둥지둥 궁중을 뛰어다녔다. 누구보다도 두려워한 왕건이었다. 그에게 만백성의 인망이 쏠리고 있는 이상 그가 궐기한다면 장졸이고 신하들이고 남김없이 자기를 배반하고 왕건의 휘하로 달려갈 것은 뻔한 일이었다.

  나는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궁예는 좌우를 향해 물어보았다. 그러나 이미 궁중의 신하들이나 궁녀들까지도 앞날의 화를 염려하고 앞을 다투어 도망치는 판국이었다. 궁성을 에워싼 장졸들과 백성들의 함성은 시시각각(時時刻刻)으로 높아만 간다.

  도망을 해야겠다. 어떻게 해서든지 도망쳐서 목숨을 보존해야겠다.  그리고는 도망할 길을 찾았으나 부축하는 사람 하나 없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대왕, 저를 따르십시오.

  이렇게 말하며 나서는 사람이 있었다. 청궁(淸宮)이라고 하는 궁인이었다. 청궁은 간신히 포위망을 뚫고 궁예를 산 속 깊이 인도하였다. 그러나 반란군의 추적은 가혹하여 잠잘 곳도 먹을 것도 마련할 수가 없었다. 농가에라도 잠시 몸을 의탁하고 싶었지만, 만인이 증오하던 폭군을 달가이 맞아 줄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궁예는 밤이면 바위틈에서 잠을 자고, 배가 고프면 풀뿌리를 뽑아 요기를 했으나 그래도 굶주림을 견딜 수가 없었다. 천신만고 부양(斧壤) 땅 어느 산등성이에 이르렀을 때였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밭에 보리 이삭을 쌓아놓은 곳이 있었다. 궁예는 몰래 그리로 내려가서 보리 한단을 훔치려 했다. 그러다가 그 밭 임자에게 들키고 말았다.

  이놈! 어느 도둑놈이 남의 곡식을 훔치러 드느냐?

  밭 임자는 몽둥이로 궁예를 무수히 구타했다. 처음에는 참고 맞기만 하다가, 아픔과 굴욕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한 마디 소리쳤다.

  이 천한 놈들아! 내가 누구라고 함부로 매질을 하느냐? 나는 바로 너희들의 임금 궁예다.

  뭐, 궁예라구?

  밭 주인과 동네 사람들은 더욱 노하였다.

  이놈! 우리를 그토록 못살게 굴었으니 너도 맛 좀 봐야겠다.

  모두 모여들어 함부로 매질을 하니 궁예는 마침내 그 자리에서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궁예를 몰아낸 왕건은 그해 육월 병진(丙辰), 포정전(布政殿)에서 즉위하고 국호를 고려(高麗)라 정하고는 연호를 천수(天授)로 개원(改元)하였다. 그리고 유씨를 왕후로 삼는 한편, 홍유(洪儒),  배현경(裵玄慶), 신숭겸(申崇謙), 복지겸(卜智謙) 등 유공자를 제일등 공신으로 삼아 벼슬을 높이고 금은기(金銀器)와 능라포백(綾羅布帛) 등의 후한 상을 내리고 공훈을 치하하였다.

 

 

 

  별을 찾는 女心

  왕건이 새나라를 세우고 등극하였을 때에는 그의 나이 사십이세였다. 한참 정력을 쏟아 건국의 대업을 이룩하기에 알맞은 나이였다. 그는 등극한 즉시로 조서(調書)를 내리었다.

  < 지난날의 궁예는 각 고을이 어지러워진 틈을 타서 일어나 도적의 무리들 토평(討平)하고, 강역(彊域)을 넓히었으나, 아직 해내(海內)를 병합하기도 전에 혹독한 폭정으로 백성을 다스리고 간악한 거동으로 왕도(王道)를 그르치고, 허황한 위세로써 술책을 삼고 번거롭고 과중한 공부(貢賦)로서 만민을 도탄에 빠지게 하였으며 굉거란 궁궐을 짓느라고 노역(勞役)을 일으킨 탓으로 백성들의 원한이 하늘에 사무치기에 이르렀느니라, 뿐만아니라, 존호(尊號)를 절칭( 稱)하고 처자를 참살하였으니 이는 천지신명이 용납지 않을 바라 어찌 경계하지 않으리오. 짐은 제공(諸公)의 추대하는 뜻을 받아 등극하였으므로 이제 백성들과 더불어 순풍양속(醇風良俗)을 기르고 청신한 정사(政事)를 베풀고자하여 군신(君臣)이 뜻을 합하여 고기가 물과 더불어 노는 듯, 강물과 바닷물이 서로 어울리는 듯 함께 즐기기를 바라노니 내외의 여러 신하들은 모두 짐의 뜻을 헤아릴 지어다. >

  이에 여러 신하들은 사례하여 아뢴다.

  신등(臣等)은 지난날, 궁예 치하에 혹독한 박해를 받았사오며, 무고한 백성들은 포악한 정사로 도탄에 빠져 있었사오나 이제 천행으로 영명하신 성군을 모시게 되었사오니 어찌 힘을 다하여 성은을 보답치 아니하겠사옵니까.

  그 후 왕건은 관서(官署)를 설치하고 직책을 나누어 맡겨 나라를 잘 다스리는 것이 급선무라 하고 여러 신하들에게 관직을 내리었다.

  한찬 김행도(韓粲金行濤)를 광평시중(廣評侍中)으로, 한찬 금강(黔剛)을 내봉령(內奉令)으로, 한찬 임명필(林明弼)을 순군부령(徇軍部令)으로, 파진찬 임희(波珍粲林曦)를 병부령(兵部令)으로,  소판 진원(蘇判陣原)을 창부령(倉部令)으로, 한찬 염장(閻 )을 의형대령(義形臺令)으로,  한찬 귀평(歸評)을 도항사령(都航司令)으로, 한찬 손향(孫향)을 물장성령(物藏省令)으로,  소판 진경(秦勁)을 내천부령(內泉部令)으로, 파진찬 진정(秦靖)을 진각성령(珍閣省令)으로 삼았는데, 이들은 모두 품성이 단정하고, 만사를 공평하게 처리하여 창업 시초에 많은 공훈을 세운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밖에 사무에 숙달하고 청렴 결백하며 근면 민첩한 인재들을 가려 뽑아 정사를담당하게 하였다.

  등극한 이듬해인 태조 이년(西紀 九一九) 정월, 도읍을 송악(松嶽=開城)에 정하여 궁궐을 짓고 삼성(三省), 육상서관(六尙書官), 구사(九寺)를 설치하였다. 또한 시장(市場)을 마련하고 왕성을 오부로 나누어 육아(六衙)를 설치하였으니, 바로 자기가 태어난 고향을 새나라의 서울로 정한 셈이다.

  흔히 왕건의 개국은 포악한 궁예를 대신하고 만민의 지지를 받았으므로 일사천리 아무 장해도 받지 않고 이루어진 것처럼 말하고 있다. 그러나 결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왕건이 등극한 후 육개월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일 안에 모반하는 사건이 네 차례나 일어났던 것이다.

  첫 번으로 등극한 육월에 마군장군 환선길(馬軍將軍桓宣吉)이 역모한 사건이 있었다.

  처음에 선길은 그 아우 향식(香寔)과 더불어 개국에 공이 있었으므로 태조는 그를 심복으로 삼고 정병을 맡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막상 왕건이 등극하여 위세를 떨치는 것을 보자 심중에 질시의 감정이 동하는 것을 금하기 어려웠다. 그러던 차에 하루는 그의 처가 뒤숭숭한 그의 마음을 부채질했다.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어요.

  무엇이 알 수 없다는 거요, 부인?

  저는 상공의 힘과 재주가 누구보다도 뛰어났다고 생각해요. 아니 저뿐 아니라 상공이 거느리시는 여러 장졸들도 다 그렇게 말하고 있어요.

  그래서?

  그런데 어째서 남의 신하가 될 뿐 아니라, 조정의 중요한 자리도 차지하지 못하시고 몇몇 군사들만 거느리시는 것이어요?

  그렇지 않아도 마음이 동하던 선길이었다. 아내의 말을 듣자 마침내 뜻을 정했다. 어쩌면 왕건이 거사할 때 유씨부인의 권고를 따른 전례를 흉내냈는지도 모른다. 모반의 뜻을 정한 선길은 은밀히 휘하 장졸들과 결탁하고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태조가 전상에서 학사(學士) 몇몇과 정사를 의논하고 있는 데 경비가 그다지 삼엄하지 않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때는 왔다!

  선길은 곧 휘하 장졸 오십명을 거느리고 내정으로 돌입하여 불문곡직 태조의 목을 취하려고 했다. 그러나 태조는 조금도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벌떡 일어나서 짚고 있던 지팡이를 들어 선길의 얼굴을 가리키더니 조용한 음성으로 꾸짖었다.

  여봐라, 선길아! 내 비록 너희 힘을 빌어 임금이 된 것만은 사실이지만, 이는 다 천명이 아니면 이룰 수 없는 일이거늘 너는 감히 천명을 어기려 하느냐? 어디 까지나 태연자약한 임금의 태도를 보고 선길은 몹시 당황했다.

  제물에 겁을 먹은 선길 형제는 곧 군사들을 거느리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제서야 태조는 급히 군사를 모아 추격을 시키니, 선길, 향식 두 형제는 마침내 잡히어 처형되고 말았다.

  그달 안에 또 한건의 모반 사건이 있었다. 마군대장군 이흔암(馬軍大將軍伊昕巖)이 모반한 것이다. 이흔암은 원래 궁술과 마술에는 능하지만 별다른 식견은 없고, 유리한 일을 찾기에 바쁜자였다고 한다. 일찍이 궁예의 신하로 있다가 웅주)熊州) 싸움에 공을 세워 그 곳에 주둔하고 있었다.

  그 후 왕건이 등극하자, 무슨 생각을 품었던지 군사를 버리고 상경했다. 이흔암이 들고 있던 집은 의형대령 염장(義形臺令閻 )의 이웃집이었다. 염장이 보자니까 흔암의 집에는 밤이 되면 장정들이 드나들며 웅성거렸다.

  개국 초이니 조그만 일에도 남의 의심을 사기 쉬운 법이라 염장도 흔암의 거동을 몹시 수상히 여겼다. 그래서 은밀히 태조를 뵙고 아뢰었다.

  흔암의 거동이 아무래도 수상하옵니다.

  그렇다면 일찌감치 처치해 버리는게 좋지 않을까? 진(鎭)을 버리고 상경한 것만 해도 따지자면 큰 죄가 아니겠소?

  그러하오나 죄상이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 이상 함부로 죽인다면 민심에 끼치는바 적지 않을까 하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고?

  그의 거동을 좀 더 엿보는 것이 가할까 하옵니다.

  경이 그 일을 맡아 주겠소?

  신이나 신의 가족은 흔암의 가족들이 잘 아는 터이므로 경계해서 본심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옵니다.  차라리 궁인 한 사람을 신의 집에 숨겨두어 엿보게 하는 것이 상책일까 하옵니다.

  경의 의견대로 해봅시다.

  태조는 곧 궁인 한사람을 염장의 집에 보내어 숨게 했다. 그리고는 밤이면 흔암의 집을 배회하며 거동을 살피게 했다. 어느날 밤 여전히 흔암의 집에는 몇몇 장정이 모여서 수군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무슨 모의를 하는지 알 길이 없어서 답답해 하고 있는데 한 여자가 나왔다.  흔암의 처 환씨(桓氏)였다.

  궁인이 행인을 가장하고 그 앞을 지나서 나무그늘에 숨어 엿보고 있자니까 환씨는 변소로 들어갔다.  궁인은 나무 그늘에서 나와 변소 뒤로 다가갔다.

  (환씨는 원래 말이 많다고 들었는데 혼잣소리라도 할는지 모를 거야.)

  이렇게 생각한 궁인은 숨을 죽이고 기다리고 있는데, 얼마 후, 변소에서 나온 환씨가 하늘을 우러러보더니 과연 혼잣소리를 한다.

  어머나! 하늘엔 별도 많기도 해. 그렇지만 우리 남편의 일이 실패로 돌아간다면 나도 저 하늘의 별을 볼 수 없게 되겠지.

  이 말을 들은 궁인은 즉시 궁궐로 달려가서 태조에게 고해 바쳤다.

  일이 실패로 돌아간다면 하늘의 별을 우러러 볼 수 없다? 그렇다면 그 일이란 어떠한 일일고?

  죽음을 각오한 일이니 필시 역모가 아니고 무엇이겠사옵니까?

  이에 태조는 즉시 이흔암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게 했다. 그리고는 백관(百官)을 모아 의논을 해보았다.

  경들은 이흔암을 어떻게 다스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오?

  그러자 한 신하가 나서며

  못된 풀은 떡잎부터 뽑아 버려야 한다고 하옵니다. 이흔암이 아직 거사는 하지 않았사오나 역적 모의를 한 것만은 의심할 바 없사오니 일찌감치 죽여 화근을 없애는 것이 좋을 줄로 아뢰오.

  그리고 만조 백관 모두다 이 말에 찬동하니 태조는 친히 흔암을 불러내어 다스렸다.

  네 원래 흉칙한 마음을 품었기에 이 지경에 이른 것으로 안다. 인정으로는 너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 없지 않으나 천하의 법은 사사로이 어길 수 없는 것이야.

  이 말에 이흔암은 아무런 항변도 하지 않고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그것을 태조와 여러 신하들은 복죄(服罪)한 것으로 간주하고 거리에 끌어내어 만백성이 보는 앞에서 목을 베었다.

  태조는 이흔암 한 사람만 사형에 처했을 뿐 그 가족과 무리들의 죄는 묻지 않았으니, 하늘의 별을 우러러보지 못할 것이라고 염려하던 환씨에게만은 묘하게도 그 염려가 기우로 돌아간셈이다.

  이밖에 그 해 구월 순군리 임춘길(徇軍吏林春吉)이 그의 고향인 청주 사람 배총규(裵悤規)등과 더불어 모반하였다가 잡혀 죽었다. 또 시월에는 파진찬 진선(陣瑄)이 그 아우 선장(宣長)과 더불어 역모를 꾸미다가 역시 죽음을 당하였다.

  이와같이 개국 초부터 모반하는 자들이 속출하였으니 태조의 근심은 끊일 날이 없었으나 왕성한 의욕과 넓은 도량으로 어려운 고비를 잘 극복하고 나라의 기틀을 잡아갔다.

 

 

 

  浣紗川 情事

  태조 사년 십이월, 왕은 왕자 무(武)를 정윤(正胤=임금의 嫡子를 말함)으로 삼았는데 곧 태자(太子)가 되었다. 장자인 무는 장화왕후 오씨(莊和王后吳氏)와의 소생이다.

  그는 신라 신덕왕(新德王) 원년(西紀 九一二)에 출생하였는데, 그의 출생에는 기구한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왕건은 일찍이 금성군(錦城=지금의 羅州)에 웅거한 후백제의 군사를 정벌한 일이 있었다.

그때, 태자 무의 모친 오씨는 그 관내 목포(木浦)에 살고 있었다. 비록 가난한 집안에 태어났으나 어려서부터 재색이 절등하고 남달리 총명하여, 자기 부모는 말할 것도 없고 이웃사람들까지도 칭찬해 마지 않았다. 오씨는 집안이 가난한 때문에 항상 길쌈을하여 가계를 도왔다.

  어느날 오씨는 집 앞 우물에서 자기 손으로 뽑은 실을 빨고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하늘로부터 오색 구름이 내려오더니 그 우물 위를 빙빙 돈다.

  저게 웬일일까?

  무슨 변이 일어날 징조가 아닐까?

  사람들이 놀라 수근거리니까, 해박한 한 노인이  그런 것이 아니라, 큰 경사가 일어날 징조야. 예로부터 큰 경사가 일어나려면 저렇게 오색 구름이 떠돌게 마련이니까.

  그렇다면 누구에게 그런 경사가 일어날까요?

  말할 것도 없이 그 구름 아래 있는 오씨 집안이지. 그리고 그 집 딸이 실을 빨 때 생긴 일이니까 아마 그 색시한테 세상에 깜짝 놀랄 만한 좋은 일이 일어날는지도 모르지.

  이때부터 마을 사람들은 그 우물을 완사천(浣紗泉)이라 부르고, 오씨집 규수를 더욱 각별히 대하게 되었다.

  그 후 얼마 가서 오처녀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목포 바다에서 큰 용이 나오더니 자기의 뱃속으로 들어가는 꿈이었다.

  (참 이상한 꿈도 다 있네.)

  오처녀는 그 꿈이 어떠한 꿈인지 부모들에게 물어보았다. 그러나 부모들도, 그리고 유식하다는 동네 노인들도 제대로 해몽을 하지는 못했다. 다만 그 꿈이 상서로운 꿈이라는 결론만은 내리게 되었다.

  오색 구름의 사건과 용꿈을 꾼 사건은 오처녀에게 야릇한 자존심을 갖게 했다.

  (나는 보통 여자가 아니다. 나에게는 반드시 큰 행운이 닥쳐올 거야.)

  이렇게 생각하고 모든 언동을 신중히 하게 되었다.

  비록 살림은 구차했으나 재색이 절등한 처녀라 나이가 들자 혼담이 빗발치듯 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럴 적마다 모두 한 마디에 거절했다. 어떠한 큰 행운이 닥쳐올는지 모르는데 보잘 것 없는 시골 총각에게 시집 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오처녀는 뜻깊은 완사천에서 빨래를 하며 멀리 목포 바다를 바라보는 것이 버릇처럼 되었다. 

  (나를 데려갈 분은 저 바다에서 오실는지도 몰라. 찬란한 갑옷을 입고 금으로 장식한 용마를 빗겨탄 대 장군이나 왕자님일는지도 몰라.)

  이러한 공상을 하며 그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오처녀가 기다리던 행운은 드디어 찾아왔다.

  그날도 오처녀는 완사천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데, 포구쪽으로부터 몇몇 장졸을 거느린 늠름한 장군이 달려오고 있었다. 그 장군의 모습을 바라보자 오처녀는 어쩐지 가슴이 설레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때가 이제 임박하였다는 예감이 들었다.

  과연 그 장군은 오처녀의 곁에 오더니 말을 멈추고 유심히 바라보았다.

  이런 시골에도 저렇듯 어여쁜 처녀가 있을까?

  장군은 부하를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그 말이 처녀의 귀에까지 들려왔다. 처녀는 귀뿌리까지 물들이며, 그러나 못들은 체 빨래만 하고 있었다. 그러자 장군이 한 병졸에게 무엇인지 속삭인다. 얼마 후 병졸은 오처녀의 곁으로 다가오더니  우리 장군께서 피곤하시어 잠시 쉬어 가시고자 하는데 처녀의 집은 어디요?

하고 물어 보았다.

  소녀의 집은 바로 이곳이온데 너무 누추해서요..

하고 우물 앞 초가집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그 장군이 직접 말을 건네왔다.

  전진 속을 왕래하는 몸인데 어찌 반드시 고대 광실을 바라겠소? 비바람만 가릴 수 있는 곳이라면 족하니 좀 쉬어 가게 해 주오.

  그러나 남달리 큰 꿈을 품고 있는 처녀는 호락호락하게 응하지 않았다.

  저, 죄송하오나 장군은 어떠한 분이시온 지요?

  나는 바로 태봉국(泰封國) 한찬 해군대장군(韓粲海軍大將軍)으로 있는 왕건이란 사람이요.

  그 말을 듣자 처녀의 두 눈이 샛별처럼 빛났다. 이제야 자기의 꿈이 이루어지는구나 생각한 것이다.

  태봉국의 왕건 장군이라 하면 장차 천하를 호령할 대 인물이라는 소문을 처녀도 듣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시오면 누추한 곳이지만 어서 드시어요.

  처녀는 왕건을 자기 집으로 인도했다. 뜻하지 않은 귀빈을 맞아 처녀의 부모들도 크게 기뻐하였다.  가난한 살림이나마 정성을 다하여 술과 음식을 대접하였다.

  왕건이 처녀의 집에 묵기로 한 것은 물론 딴 마음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때 왕건의 나이 서른 다섯 살, 이미 유씨부인까지 있는 터였지만 여색(女色)에는 결코 담담치 않았다. 처녀가 음식상을 가지고 들어가자 그 온화한 얼굴에 미소를 띠우며 점잖게 물어 보았다.

  면전에서 이렇게 말하는 건 뭣하지만 규수는 보기 드문 가인이니 물론 혼처도 이미 정해진 몸이겠구료.

  이 말을 듣자 처녀는 고개를 푹 숙이다가 좌우로 흔든다.

  그건 놀라운 일인데. 이렇듯 아리따운 규수를 그냥 버려두다니… 옳지, 좋은 자리를 지나치게 고르시는 모양이구료.

  그제서야 처녀는 겨우 입을 떼었다.

  집안이 너무 가난하고 보잘 것 없어서요.

  그게 무슨 소리! 자고로 혼인이란 사람과 사람이 맺어지는 것이지, 집안과 집안이 맺어지는 것이겠소? 나 같으면 처녀의 신분이 지금보다 더 미천하고 보잘 것 없어도 기꺼이 청혼하겠소.

  이 말에 처녀는

  진정이시어요? 장군님.

하고 왕건을 똑바로 응시했다. 왕건도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 받았다.

  장부 일언은 중천금이라고 하오. 진정이 아니고 어찌 이런 말을 입에 담겠소?

  그러하오나 소녀는 믿어지지 아니하옵니다.

  다소곳이 숙이는 모습이 오히려 장부의 간장을 녹이는 듯하였다.

  믿어지지 않는다면 그 증거를…

  그리하여 오씨와 왕건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왕건의 숨결이 거칠어지더니 처녀의 가는 허리를 휘감아 안았다. 그리고는 금침도 아닌 돗자리 바닥에 덮쳐 눕혔다. 처녀는 잠깐 항거하는 듯했지만 그것은 시늉 뿐, 이내 사나이의 억센 품에 몸을 맡겼다.

  두 사람의 몸은 불덩이처럼 달아올랐다. 특히 왕건의 욕정은 절정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처녀의 몸에서 자기 몸을 떼어 돗자리 위에다 사정(射精)을 하고 말았다. 의식적인 피임(避妊)을 한 것이다.

  이런 마당에도 이성을 잃지 않는 왕건다운 신중한 처사라고 하겠다.

  왕건에게는 이미 그때, 정실 부인으로 유씨가 있었다. 아직 유씨의 소생은 없었지만 젊음이 다 간 것이 아니니 언제 득남할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왕건이 별다른 야심을 품지 않았다면 유씨부인의 소생이 생기더라도 오씨가 임신하는 걸 꺼릴 까닭이 없다. 그러나 이때 이미 천하를 호령하려는 뜻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정실 부인이 아닌 여자의 몸에서 장자(長子)가 출생한다면 장차 왕통을 계승시킬 때 큰 화근이 되리라 여겼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오씨의 가문이 너무나 미천하므로 그 피를 받은 자가 왕위에 오르게 된다는 것은 그 시대의 사상으로는 지극히 달갑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오씨는 원래 총명한 여자였다. 보통 여자 같으면 그런 꼴을 당했을 때 수치와 분노로 바들바들 떨기가 일쑤였겠지만 오씨는 재빠르게 실질적인 대책을 강구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때 오씨는 왕건이 자리 위에 쏟아놓은 정액을 얼른 삼켜서 왕건의 씨를 잉태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전설은 너무나 상식 밖이므로 정액을 삼킨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자기 음부(陰部)에 넣었을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그래야만 다소 과학적으로 수긍이 갈는지 모른다.

  또는, 피임하려는 왕건에게 아양을 떨어 다시 정욕을 불태우게 함으로써 정상적인 정교를 맺었을 것이라고 보는 수도 있다.

  그 달부터 오씨에겐 태기가 있어 십삭만에 아들을 낳았다.

  이 아이가 곧 무(武)다. 무는 비록 미천한 모친의 소생이며, 잉태할 때부터 기구한 시련을 겪었으나, 어려서부터 성품이 출중하고 용력이 남달리 뛰어났다. 그러므로 왕건은 그를 극진히 사랑하고 또 장자이기도 해서 꼭 태자를 삼고 싶었다.

  그러나 외가가 미천하다는 허물을 내세워 여러 신하들이 반대할까 염려되었다. 그래서 곰곰 궁리한 끝에 왕자가 입는 자황포( 黃抱)를 허름한 상자에 넣어 오씨에게 주었다.

  즉 네가 낳은 무에게 그 옷을 입히라는 뜻이니, 다시 말하면 무를 태자로 삼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것이다.

  오씨는 왕의 뜻을 이내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러나 만사를 신하들의 의견에 따라 처리해야 했으므로 무엇보다 먼저 무를 태자로 삼도록 상주하는 신하가 있어야 한다. 오씨는 몇 달 생각한 끝에 대광 박술희(大匡朴述希)를 은밀히 불러들였다.

  박술희는 혜성군(慧城郡) 사람으로 대승 득의(大乘得宜)의 아들이다. 성품으로 용맹하고 호방하여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은 어떤 일이든지 거리낌없이 해치우는 인물이었다. 그러므로 그 당시 사람들은 흔히 꺼려 하는 육류(肉類)를 즐겨 먹었을 뿐 아니라, 두꺼비, 개구리,  개미같이 징그러운 것까지 서슴지 않고 잡아먹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궁예의 신하였으나 후에 왕건을 섬기고 군공을 거듭 세워 벼슬이 대광에까지 이르렀다.

  오씨와 박술희가 어떠한 관계에 있었는지는 알수 없지만, 특히 그를 부른 것으로 보아 그의 성품이 큰일을 당부하기에 믿음직한바가 있었던 것만은 사실일 것이다. 박술희를 부른 오씨는 임금이 준 자황포를 보였다.

  알겠소이다. 상감의 뜻이 그러하시다면 일을 곧 그렇게 추진 할 뿐이외다.

  박술희는 곧 왕을 뵙고 왕자 무로 태자를 삼을 것을 상주하니, 여러 신하들 중에는 불만을 품는 자도 없지 않았지만 그 호협한 기상에 눌리어 감히 내놓고 반대하지는 못하였다. 그리하여 태조도 중의(衆議)를 따르는 형식 아래 무를 태자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이다.

 

 

 

  三國의 統一

  왕건의 고려와 견훤의 후백제가 발흥하자 신라의 국운은 나날이 기울어 갔다. 신흥 양국 사이에 끼어 항상 위협을 당하는 터인데, 왕과 여러 신하들은 국방에 전념하지 아니하고 사치와 유흥을 일삼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고려 태조 십년(西紀 九二七) 구월 후백제의 견훤이 신라를 향해 대거 진격해 온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그리고 뒤이어 후백제군은 근품성(近品城=尙州)을 쳐서 불태우고,  고울부(高鬱府=氷川)를 함몰하고, 신라의 서울 근처까지 진격해 왔다는 것이다.

  신라의 경애왕(景哀王)은 곧 사람을 고려로 보내어 원군을 청했다.

  고려 태조는 즉시 시중 공훤(公萱), 대상 손행(大相孫幸), 정조 연주(正朝聯珠) 등의 중신을 불러 말하기를

  신라는 우리와 화호(和好)한지 오래이거늘 이렇듯 위급함을 알리니 어찌 구원치 않겠는고.

하였다.  그런 즉, 공훤도

  견훤이 신라를 짓밟는 대로 내버려 둔다면 곧 견훤의 세력을 키워 주는 폭이 되므로 하루 바삐 진격하여 견제해야 될 줄로 압니다.

이렇게 아뢰었다.

  그리하여 태조는 공훤 등에게 일만 대군을 주어 신라를 구원하도록 하였다.

  신라 서울 근교에 포진한 후백제군은 신라측의 동정을 엿보기 위하여 잠시 공격을 멈추고 있었다.  어리석은 경애왕은 이에 마음을 놓고 비빈(妃嬪), 종척(宗戚)들과 더불어 포석정(鮑石亭)에 나아가 주연을 베풀고 질탕하게 놀고만 있었다.

  이 소식에 접한 전군에 영(令)히거 노도처럼 진격해 들어갔다.

  경애왕은 대경실색하여 왕비와 함께 서울 남쪽에 있는 이궁(離宮)으로 도망하여 숨었다. 그리고 그의 시신과 궁녀들은 모두 적병에게 잡히고 말았다. 삽시간에 경주는 후백제군의 천지가 되어버렸다. 견훤은 장졸들을 시켜 마음껏 약탈을 감행케 하였으며, 나중에는 이궁에 숨은 경애왕까지 수색하여 앞에 꿇어 앉히고 스스로 목숨을 끊게 했다. 그뿐 아니라, 스스로 신라 왕비를 능욕하고 수하 장졸들로 하여금 왕의 빈첩(嬪妾)들을 범하게 하였다.

  경애왕을 죽인 견훤은 왕의 아우 김부(金傅)를 세워 대신 왕으로 삼았으니 이가 곧 경순왕(敬順王)이다.

  한편 태조는 고려군이 당도하기도 전에 신라 서울이 후백제군에게 짓밟혔다는 보고를 받자 크게 노했다. 곧 사신을 신라로 파견하여 조제케 하는 한편 친히 정기(精騎) 오천을 거느리고 공산(公山=大邱부근)에서 후백제군과 격전을 벌였으나 오히려 적군에게 포위되어 겨우 목숨만 건졌다.

  이렇게 되니 신라는 이제 명목만의 국가이고 반도(半島)는 고려와 후백제 양대 세력으로 갈라진 셈이었다.

  그 후 고려는 후백제를 상대로 여러 해를 두고 전투를 벌이기도 하고 혹은 화친을 맺기도 했다.  그러나 시운은 드디어 고려 태조 앞에 찾아 들었다. 후백제의 왕실에서는 부자(父子)간에 권력 다툼이 벌어진 것이다. 원래 견훤은 많은 처첩(妻妾)을 얻어 아들 십여명을 두었었는데,  넷째 아들 금강(金剛)이 특히 용력(甬力)이 뛰어나고 지략(智略)이 많으므로 그에게 자기 자리를 물려 주려고 하였다. 그러니 금강의 형이 되는 신검(神劒), 양검(良劒), 용검(龍劒)등이 불만을 품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리하여 신검과 양검 등은 은밀히 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고려 태조 십팔년 삼월 견훤의 경비가 허술한 틈을 타서 견훤을 금산사(金山寺)에 유폐하였다. 그리고는 사람을 파견하여 금강을 죽인 다음 신검이 스스로 대왕(大王)이라 칭하게 되었다.

  그 후 견훤은 유폐된 금산사에서 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그 해 육월, 그곳을 탈출하여 나주(羅州)로 간 다음 고려에 망명할 것을 청했다. 이에 고려 태조 왕건은 장군 유금필(庾金弼) 등을 파견하여 견훤을 맞게 하였는데 구선(軍船) 사십척이나 동원하는 대영접이었다.

  견훤이 서울에 당도하자 태조는 견훤을 상부(尙父)로 존칭하고, 남궁(南宮)에 거처하게 하였으며,  그의 벼슬은 백관(百官)의 위에 있게 하였다. 그리고 그의 식읍)食邑)으로 양주(楊州)를 주는 한편, 노비(奴婢) 사십명과 말 열필을 딸리게 하였다. 망명객으로서는 지극히 융숭한 대접이었으니 이런 점이 또한 왕건이 중심(衆心)을 얻는 장점의 하나일 것이다.

  견훤의 망명은 결국 후백제의 힘을 크게 꺽는 결과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장차 후백제를 정벌할 대의 명분을 얻게 된 셈이었다.

  왕건의 최종 목표는 삼국의 통일이다. 그러나 그는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만사(萬事)를 강행(强行)하지 않았다. 일찍이 그가 혁명을 일으켜 자기 주인을 내쫓고 그 자리를 차지할 때에도 여러 사람의 추대를 받는 형식을 취한 것과 마찬가지로 삼국의 통일도 그러한 방법으로 추진시켰다.

  그 해 십일월, 신라 경순왕은 백관을 거느리고 경주를 출발하여 고려 서울인 개경(開京)으로 향했다. 신라의 사직을 고려에 넘겨 주기 위해서였다. 개경에 당도한 경순왕은 고려 태조에게 글을 올렸다.

  < 본국은 오랫동안 전란에 시달렸을 뿐만 아니라, 천운(天運)이 이미 다하여 사직을 보존하기 어려움으로 차라리 대왕께 나라를 바치고 한 신하가 되기를 원하옵니다. >

  이러한 내용의 글이었다. 물론 경순왕이 이런 글을 바치기에 이르기까지는 가지가지 비극도 있었을 것이며, 보이지 않는 압력도 가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왕건은 어디까지나 고려왕이 신라국을 강탈하는 것이 아니라 신라왕이 고려왕에게 나라를 바치는 형식을 취하게 하였다.

  이제는 다 익은 음식과 마찬가지가 되었다. 그래도 왕건은 쉽게 수저를 대지 않았다. 천부당 만부당한 소리라고 딱 잘라 거절했다. 그러나 왕건의 진의를 잘 알고 있는 여러 신하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그 해 십이월, 여러 신하들은 왕에게 상주하였다.

  하늘에 두 해가 없고 땅에 두 임금이 없사온 즉 어찌 신라왕의 간청을 물리칠 수 있겠사옵니까?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더 꺼릴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왕은 마침내 천덕전(天德殿)으로 나와서 백관들을 모아 놓고 말하였다.

  짐은 신라와 더불어 동맹하여 장차 두 나라가 영원토록 화목하게 사직을 보전하려 하였는데 지금 신라왕이 굳이 신례(臣禮)할 것을 청하고, 경들 또한 그를 옳다 하므로 짐의 마음 비록 부끄러운바 없지 않으나 중심(衆心)을 어길 수 없어 이를 좇겠노라.

  그리고는 곧 신라왕으로부터 정견(庭見)의 예를 받으니, 모든 신하들의 이를 경하하는 소리 궁성을 뒤흔들 지경이었다.

  이에 왕은 신라왕을 정승공(政丞公)으로 삼아 태자의 윗자리에 앉히고, 세록(歲祿) 천석을 주고 궁을 새로 지어 주고 신라 서울이었던 경주를 식읍으로 주었다. 그리고는 유씨부인 소생인 안정숙의공주(安貞淑儀公主)를 그에게 출가 시켰다.

  김부는 이미 나이 중년에 이르렀으나 나라를 들어 강자(强者)에게 바칠 만한 뱃심 없는 위인이었으며 또 그의 처지가 의욕적인 소망을 품을 아무것도 못되므로 젊고 아름다운 아내를 맞이하자 거기 빠져버렸다. 이것 또한 그러한 미인계로 김부의 마음을 묶어 놓자는 왕건의 고등술책이기도 했다. 이제 남은 것은 아비를 내몰은 후백제 신검 등의 잔당들 뿐이었다.

  태조 십구년(西紀 九三六) 육월, 견훤이 태조에게

  노신(老臣)이 멀리 내투(內投)하여 성화(聖化)를 입었사오나 도적 같은 자식을 그대로 버려둘 수 없사온즉 이를 멸망할 군사를 나누어 주시오.

하고 간청했다. 이에 왕은 태자 무(武)와 장군 박술희(朴述希)로 하여금 일만 대군을 거느리고 먼저 천안부(天安府)로 진격시켰으며, 그해 구월에는 왕이 친히 삼군을 거느리고 일선군(一善群=善山)으로 진격하니 신검 또한 군사를 거느리고 나와 마주 싸우려고 했다.

  그러나 신검 등은 마침내 고려군에게 대패하고 신검은 아우 양검, 용검과 함께 항복하고 말았다.  이리하여 왕건은 그의 숙망이던 삼국의 통일을 성취한 것이다.

 

 

 

  슬픈 꽃잎들

  왕의 후비는 유씨와 오씨만이 아니었다. 충주(忠州) 사람 유긍달(劉兢達)의 딸 유씨부인(劉氏夫人),  동족인 왕제공(王悌恭)의 딸 명복궁부인(明福宮夫人), 김부의 백부가 되는 김억렴(金億廉)의 딸 김씨부인(金氏夫人), 박영규(朴英規)의 딸 동사원부인(東山院夫人), 공신 유금필(庾劒弼)의 딸 동양원부인(東陽院夫人), 왕규(王規)의 딸 광주원부인(廣州院夫人), 소광주원부인(小廣州院夫人),  왕유(王柔)의 딸 예화부인(禮和夫人), 강기주(康起珠)의 딸 신주원

부인(信州院夫人) 등등 스물 두명의 부인을 두었다.

  이중에는 본시 여색을 좋아하는 왕건의 욕심으로 말미암아 알어들인 부인도 있었지만 애부분은 각 방면으로 영향력이 강한 중신(重臣)들의 딸이었으미 결국 그들과 혈연을 맺어 배반하는 일을 방지하자는 점이 더 중요한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이 많은 후비들 중에서 가장 애절한 일화를 남긴 것은 김행파(金行波)의 딸이었던 대서원부인(大西院夫人)과 소서원부인(小西院夫人) 형제이다.

  행파는 동주(洞州)사람이다. 동주는 서흥군(瑞興郡)을 말하는 것으로 지금의 황해도 중앙에서 북쪽에 위치한 곳이다.

  행파는 원래 활을 잘 쏘기로 이름난 무인이었는데 그 무술로 여러 차례 전공을 세웠을 뿐 아니라 성품이 강직하고 식견이 넓어 태조의 총애를 받았다. 그리하여 태조는 그에게 김(金)이라는 성을 하사하기까지 했다.

  태조는 원래 서경(西京)을 중요시하여 가끔 그리로 행차하였으며 그 근처 산야에서 사냥하기를 즐겼다. 그날도 태조는 몇몇 장졸을 거느리고 온 종일 산야를 달리다가 어느덧 동주땅에 이르렀다.

  그날따라 짐승은 별로 잡지 못하고 날은 저물어 왕은 몹시 피로를 느끼었다. 그러나 첩첩산중이라 가까운 곳에 인가조차 보이지 않아 난처한 터였는데 갑자기 말발굽 소리가 들리더니 한무인이 산등성이를 내려오고 있었다.

  어떤 사람일꼬? 내가 데리고 온 자는 아닌 것 같은데…

  왕은 이렇게 중얼거리며 그 무인을 바라보니 등에는 십여마리 산새를 꿰어 지고 말 안장에는 큰 범을 줄에 묶어 질질 끌고 있었다.

  그 무인은 왕의 일행 앞을 무심코 지나치려 한다. 그러자 왕의 종자 한사람이 소리 높이 꾸짖었다.

  네 어떠한 자이기에 지존하신 어른 앞을 함부로 지나가려 드느냐?

  그리고는 활시울에 살을 당겨 쏘았다. 보통사람 같으면 그 화살에 가슴이 꿰어 거꾸로 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 무인은 가슴에 날아온 화살을 공중에서 잡아버렸다. 그리고는 말에서 내려뛰어 태조 앞에 꿇어 엎드렸다.

  대왕폐하의 행차이신 줄도 모르고 죽을 죄를 졌사옵니다.

  원래 너그러운 왕은 그의 무례를 탓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범상치 않은 지금의 솜씨와 호락호락하지 않은 그 인품에 오히려 마음이 끌린 모양이었다.

  이러한 산골에 그대와 같은 무인이 묻혀 있다니… 그 범과 새는 그대 혼자 잡은 것인가?

  그러 하옵니다. 폐하.

  굉장한 솜씨로다. 우리 일행 십여명은 진종일 돌아다녀도 노루 한 마리 잡지 못하였거늘 혼자서 그렇게 많이 잡다니… 그래 이름은 무엇인고?

  행파라고 하옵니다.

  내 좋은 사람을 만났도다. 이 고장에 사는가?

  저 아래 골짜기에 누추한 초옥을 엮고 사옵니다.

  그러면 이 근처 지리에는 밝으렷다? 그렇다면 내일이라도 그대를 앞장 세워 이곳에서 다시 사냥을 하겠거니와 오늘은 날도 저물었으니 어디 묵어 갈 곳은 없을까?

  이곳은 깊은 산중이오라 신의 집을 제외하고는 인가라곤 별로 없사옵니다.

  그렇다면 그대 집에서 하룻밤을 묵어 가는 것이 어떠할고?

  황공하기 그지없사오나 워낙 누추한 곳이라 대왕께서 묵으실 곳은 못 되옵니다.

  행파는 일단 이렇게 말했으나 그렇다고 달리 방법도 없고 하여 결국 왕의 일행을 자기집으로 안내했다. 행파의 집은 어느 은사(隱士)의 거처같은 초려(草廬)였지만 터도 집도 제법 깨끗했다.

  행파가 앞장 서 가서 집 앞에 당도하자 두 처녀가 뛰쳐나왔다. 그 처녀들을 보자 태조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비록 입은 옷은 산골 처녀라 소박했지만 달덩이 같은 용모와 젊은 사슴같이 날씬한 몸매는 후궁의 어느 미녀들보다도 마음을 동하게 했다.

  얘들아, 대왕폐하시다.

  행파가 말하자 두 처녀는 공손히 절을 하는데 예의범절도 제법 까듯했다.

  그대 사냥 솜씨도 비범하지만 딸들도 잘 두었는걸.

  태조는 이렇게 말하고 껄걸 웃었다. 그 웃음은 호색한 임금의 뜻을 짐작케 하는 웃음이었다.  그날밤 행파는 두 딸 중, 우선 맏딸을 왕의 침소로 들여보냈다. 첫눈에 마음이 동했던 왕은 처녀의 손목을 잡고 은근히 물어보았다.

  그대는 이런 산골에서 평생을 보내기를 원하는가?

  그 처녀는 몹시 수줍어하는 성격이었던지 얼른 대답을 하지 못한다.

  서울로 올라가서 호강스러운 생활을 할 마음은 없는가?

  왕은 재차 물었다.

  여자의 몸으로 어찌 거칠은 무명옷에 산짐승의 소리를 벗으로 삼는 걸 원하겠사옵니까?

  들릴락말락한 음성이었지만 처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내 그대를 왕성으로 데려가리라.

  진정이시옵니까? 대왕폐하.

  진정이구말구, 한 나라의 임금이 어찌 식언을 하겠는고? 그러니 그대는 내 뜻을 물리치지 말라.

  그리고는 왕이 처녀를 품에 안으니 처녀는 순한 양처럼 순종할 뿐이었다.

  그 이튿날은 행파를 앞세우고 그 근처 산야를 달리며 많은 사냥을 하다가 날이 저물어 왕의 일행은 다시 행파의 집에서 묵게 되었다. 그날밤도 행파가 큰 딸을 왕의 침소로 들여보내려 하니까 왕은 멋적은 웃음을 띠우며 말하는 것이었다.

  그대의 큰 딸도 과연 좋은 처녀였지만 작은 딸도 그에 못지 않게 아리따운걸.

  말하자면 오늘 저녁엔 작은 딸을 들여보내라는 눈치였다. 행파는 왕의 뜻을 좇아 작은 딸을 기꺼이 들여보낼 수밖에 없었다. 딸 하나가 왕의 총애를 받아도 큰 벼슬은 보장된 셈인데 두 딸을 다 바친다면 누구보다도 강한 권세를 부릴 수 있는 일이었다.

  큰 딸이 탐스러운 연꽃이라면 작은 눈부신 해당화였다.

  왕이 품에 안으려 하자 작은 딸은 형처럼 호락호락하게 응하지 않았다.

  대왕폐하, 신첩을 어찌하려 하시옵니까?

  새삼스럽게 무슨 소리를 하는고? 내 그대가 하도 사랑스럽기에 아름다운 인연을 맺으려 하는 게 아닌고?

  아름다운 인연이라니요? 산골에 핀 꽃을 한 번 꺽어 보시다가 환궁하실 적엔 길가에 던져 버리시려는 그러한 인연이옵니까?

  따끔한 말이었다. 그런 태도가 이미 오십고개를 바라보는 왕에게는 오히려 사랑스러웠다.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그렇다면 장차 어찌해야 좋겠는고?

  왕성으로 데리고 가시어 평생토록 폐하를 모실 수 있게 해주시어야만 순종하겠사옵니다.

  허허허, 그렇지 못한다면?

  비록 혀를 깨물고 자결하는 한이 있더라도 폐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없사옵니다.

  말만 떨어지면 한 마디도 거역하는 일 없는 뭇여인들을 대해 온 왕에게는 오히려 가시 돋힌 태도가 매혹적이었다.

  암, 데려가고 말고. 내 환궁하는 즉시로 사람을 보내어 데려가도록 하지.

  그러하오나, 신첩 혼자는 싫사와요.

  그건 또 무슨 소리지?

  어젯밤엔 저의 형이 폐하를 모시었으니 형도 함께 데려가 주시어야 하옵니다.

  그야 이를 말인가? 데려갈 바에야 둘 다 데려 가도록 하지.

  그리하여 왕은 해당화 같은 작은 딸과도 그날 밤을 지내었다.

  왕은 행파의 집을 떠날 때 환궁하는 즉시로 두처녀를 데려갈 것을 굳게 다짐했다.

  그날부터 두 처녀는 몸을 단장하고 행실을 삼가며 왕성에서 사람이 오기만 고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달이 가고 해가 바뀌어도 왕에게서는 아무 기별이 없었다.

  언니, 상감께서 어쩐 일이실까?

  성미 급한 아우는 형을 붙들고 짜증을 냈다. 그러면 성미가 유한 형은 쓸쓸한 미소를 띠우며

  글세, 어쩐 일이실까? 우리를 영영 잊어버리리지는 않으셨을 텐데…

  잊어버리구 뭐구 있수? 처음부터 색다른 산골 계집애한테 잠깐 마음이 동했을 뿐, 데려가실 생각은 아예 없으셨을 거야.

  그렇지만 그렇게 철석같이 맹세하신걸?

  언니두 참, 남자들의 맹세를 어떻게 맏어?

  투덜거리다가 아우는 홀짝홀짝 울기까지 한다. 그러면 형은 아우의 등을 어루 만지며  그러지 말고 좀도 기다려 보자. 우리 상감님은 그렇게 신의가 없으신 분은 아닐거야.

  그러나 다시 여러 달이 지나도 감감소식이었다. 성미 급한 아우는 말할 것도 없고 그렇듯 마음이 유하던 형도 왕의 기별을 더 기다랄 수 없었다.

  얘, 상감께서 영영 우리를 저버리신 모양이구나?

  글세 내가 뭐라고 그럽디까!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좋지?

  나도 어떻게 해야 좋을는지 모르겠어.

  인적이 드문 산골 외딴 집에서 두 처녀는 눈물로 세월을 보내다가 왕성으로부터 끝내 기별이 없자, 마침내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

  그 무렵에야 왕은 문뜩 두 자매의 일이 생각났다. 그래서 급히 행파를 불러 하문하였다.

  내 일찍이 경의 두 딸과 언약한바가 있었으나 국사에 분망하여 아직껏 그 언약을 이행하지 못했거니와 지금 어찌하고 있는고?

  그런즉 행파는 두 눈에 눈물을 흘리며

  신의 딸들이 대왕의 분부만 고대하다가 마침내 단념하고 중이 되었사옵니다.

  이 말에 왕은 크게 놀랐다.

  뭐라고? 그 탐스러운 머리채를 깎고 중이 되었다? 오! 짐이 큰 죄를 지었노라.

  왕은 고개를 숙이고 한참 말이 없다가

  좌우간 그들을 다시 보고자 하니 속히 불러올리도록 하라.

  얼마 후 두 자매가 상경하여 입궐하였다. 꽃같은 나이에 승니의 복장을 하고 나타난 자매를 보자 왕은 가슴이 메었다.

  내 그대들에게 진 죄를 갚고자 하거니와 그대들의 소망이 무엇인고? 머리를 기르고 후궁에 있겠다 하면 그렇게 조치할 것이요, 다른 소망이 있다면 무엇이나 들어주마.

  그런즉 두 자매는 조용히 눈을 들었다. 거울처럼 맑은 눈이었다.

  이미 부처께 바친 몸, 속세에 바랄것이 무엇이겠사옵니까?

  그럴 법한 말이로다. 그대를 소망대로 하라.

  그리고는 서경(西京)에 대소서원(大小西院) 두절을 지어주고, 자매에게 대서원부인, 소서원부인이란 칭호를 내리었다. 그리고는 그들의 부친 행파에게는 벼슬을 차츰 높이어 나중에는 대광(大匡)을 삼았으니 문무관 중의 최고의 관직이었다.

 

 

 

  訓要十條

  태조가 등극한지도 어느덧 스무여섯해가 되었다. 그리고 그의 나이 육십칠세, 한낱 무장(武將)의 아들로 태어나 삼국을 통일하고 나라의 기틀을 바로 잡아 놓았을 뿐만 아니라 사적(私的)으로도 많은 후비를 거느리고 호화로운 생활을 하였으니 유감없는 평생이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세출(不世出)의 영웅도 가차없이 다가오는 하늘이 내린 수명만은 어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 나이 예순일곱이라.

  만물이 소생하는 삼월의 산과 들과 초목을 바라보다가 태조는 주름잡힌 손으로 백설 같은 수염을 어루만져 본다.

 그의 성품이 원래 순후(醇厚)한 터이므로 다른 제왕들처럼, 노쇠에 항거해 보려는 발악 같은 것은 꾀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말의 아쉬움, 서운함, 쓸쓸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후(死後)에 대한 불안은 어찌할 수 없었다.

  ( 내가 이 세상을 하직하더라도 이 강토와 백성들은 대대로 복되고 평화스러워야 할 텐데 과연 내 뒤를 이을 자들이 그 일을 족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

  물론 태자 무는 용력이 뛰어나고 총명한 편이기는 하다. 그리고 이제 나이 삼십삼세이니 기력과 근력도 한창 왕성하여 자기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의 위업을 이어가기에 부족한 편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태자 무에게는 과단성이 부족한 허물이 있다. 용서할 자는 너그러이 용서하고 처단할 자는 준엄히 처단하는 점이 결여되어 있다. 이러한 성격이 혹시 어떤 화를 가져오지 않을는지?  또 한가지 염려되는 것은 지나치게 많은 후비들을 두어 그들의 소생이 왕권을 탐내어 암투를 벌이지나 않을까 하는 점이다.

  물론 후비를 많이 둔 것은 단순히 색을 탐한 때문만이 아니었다. 말썽을 일으킬 朗?거물들을 혈연이란 굴레 속에 얽어 넣어 한데 뭉치게 하려는 계략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생각하니 그것이 오히려 분쟁의 씨가 될 염려도 된다.

  이때부터 왕은 깊은 밤이면 잠을 이루지 않고 친히 붓을 들어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즉 대대로 군신들이 지켜 나가야 할 훈요(訓要)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태조 이십육년 사월, 무장인 태조로서는 심혈을 기울인 훈요십조(訓要十條)가 완성되었다.  다듬고 다듬어서 이제는 더 보태고 빼고 할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을 정도라 느껴졌다.

  태조는 피곤한 얼굴에 회심의 미소를 띠우며 붓을 던지더니 대광 박술희(大匡朴述希)를내전으로 불러 들였다.

  내 경에게 단단히 전해 줄 것이 있소.

  무엇이옵니까? 폐하.

  바로 이것이요.

하면서 왕은 두루마리 한 뭉치를 내주었다. 그리고는

  짐이 듣건대 순(舜)임금은 역산(歷山)에서 농사를 짓다가 요(堯)임금의 선위(禪位)를 받았다 하며, 한고조(漢高祖)는 패택(沛澤)에서 일어나 나라를 세웠다고 하지 않는가? 짐도 또한 미미한 백성의 몸으로 일어나 만민의 추대를 받아 나라를 세우고 초심노사( 心勞思) 십구년,  마침내 삼한을 통일하였으나, 나라를 세운지 스무다서해, 몸은 이미 늙어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터이구료. 다만 염려되는 바는 후사(後嗣)들이 처신을 방종히 하고 강기(綱紀)를 문란시킬까 하는 점이요. 그러기에 훈요를 지어 후사들에게 전하니 앞으로는 조석으로 펴보며 오래오래 귀감(龜鑑)으로 삼도록 하오.

  그리고 이때 태조가 친히 써준 훈요십조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一, 이 나라의 대업(大業)은 제불(諸佛)이 호위(護衛)하는 힘이 바탕이 되는 까닭으로 선교(禪敎) 사원(寺院)을 창건하고 주지(住持), 분수사(焚修使)를 두어 그들로 하여금 각각 그 업을 다스리게 하였더니라. 그러나 후세에 간신(姦臣)이 정권을 잡아 중들과 결탁하고 각 사사(寺社)가 서로 다투게 될 염려가 있으니 마땅히 이를 경계할 지어다.

  二, 여러 사원은 모두 도선(道詵)이 산수(山水)의 순역(順逆)을 점쳐서 개창(開創)한 바라. 도선이 말하기를 [내가 점정(占定)한 곳 아닌 땅에 망령되어 창건하면 지덕(知德)이 손박되어 조업(祖業)이 오래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짐은 후세에 국왕(國王), 공후(公候), 후비(后妃), 조신(朝臣)들이 각각 원당(願當)이라 칭하여 함부로 창건할까 염려하는 바이다. 신라 말엽에도 부도(浮屠)들이 사원을 다투어 세워 지덕을 손상한 나머지 망하였으니 어찌 경계치 않으리오.

  三, 전국(傳國)은 적자손(嫡子孫)으로 함이 비록 상례이나, 단주(丹朱)가 불초하자 요(堯)는 순(舜)에게 선위(禪位)하였으니 이는 바로 공심(公心)이라. 만약 원자(元子)가 불초하면 그 차자(次子)에게,  그도 불초하면 그 형제 중에서 중심(衆心)이 받드는 자로 하여금 대통(大統)을 계승토록 하라.

  四, 우리 동방은 오직 옛 당풍(唐風)을 본받아 문물예악(文物禮樂)이 모두 그 제도를 따랐더니라.  그러나 본시 고장이 다르면 사람들의 성품 또한 반드시 같지 않으니라. 글안(契丹)은 금수의 나라로 그 풍속도, 말도 같지 않고 의관제도(衣冠制度)도 다르니 이를 본받지 말지어다. 

  五, 짐은 삼한산천(三韓山川)의 음우(陰佑)를 힘 입어 대업을 이룩하였느니라. 서경(西京)은 수덕(水德)이 순조롭고 이 나라지맥(地脈)의 근본으로 대업만대의 곳이니 마땅히 사중(四仲)을 당하면 순주(巡駐)하고 백일이 지나도록 머물러 있으면 안녕을 이룰 수 있으리라.

  六, 짐이 원하는 바는 연등(燃燈)과 팔관(八關)에 있었으니 연등은 부처를 섬기는 까닭이요,  팔관은 천령(天靈)과 오악(五嶽), 명산대천(名山大川) 용신(龍神)을 섬기는 까닭이었느리라.  후세에 간신들이 이를 가감(加減)하고자 건백(建白)하더라도 마땅히 물리칠지어다. 내 또한 당초에 맹세하기를 회일(會日)아 국기(國忌)를 범하지 않고 군신동락(君臣同樂)하리라 하였으니 마땅히 공경하여 이를 행할 지어다.

  七, 인군(人君)으로서 신민의 마음을 얻기란 심히 어려운 일인즉 마땅히 간언(諫言)을 따르고, 참언(讒言)을 멀리 할 지어다. 간언을 따르면 성군이 될 것이요, 참언이 비록 꿀과 같으나 이를 뱉지 않으면 스스로 스러지는 법이니라. 또한 백성을 부리되 때를 가리고, 요

부(妖婦)를 가볍게 하고, 농사의 어려움을 알아 주면 스스로 민심을 얻고 국부민안(國富民安)하리라.  옛 사람의 말에도 [좋은 미끼를 주면 반드시 고기가 걸리고 후한 상을 내리면 반드시 뛰어난 장수를 얻게 되고, 활을 쏘면 반드시 새들이 피하게 되고 어진 정사를 하면 좋은 백성들이 모이고 상벌을 알맞게 하면 음양(陰陽)이 순조롭다.] 하였느니라.

  八, 차현(車峴) 이남 공주강(公州江) 밖은 산형지세(山形地勢)가 모두 배역으로 향하고, 인심 또한 그러하니라. 그 하주군인(下州郡人)으로 조정에 참여하여 왕후국척(王侯國戚)과 혼인하여 국정을 잡으면 혹은 나라에 변란을 일으키고 혹은 통합을 어지럽게 하고, 필로( 路)를 범하는 난이 생기리라. 또한 일찍이 그 관사(官寺)의 노비와 진역(津驛)의 잡부(雜夫)에 속하였던 자로서 혹은 권세가에 위탁하여 죽음을 면하고 혹은 왕후궁원(王侯宮院)에 접근하여 간교한 말로 국권을 농락하고 정사를 어지럽혀 재변(災變)을 일으킬 자가 반드시 있으리라.  그런즉 그 고장 양민이라도 높은 자리에 두어 쓰는 일이 없도록 할지어라.

  九, 백벽군료(百壁郡僚)들의 녹은 나라의 대소(大小)를 보아 지정하였은 즉 증감하는 일은 불가하리라.  또 옛말에 이르기를 [용로(庸勞)로서 녹을 제정하고 벼슬은 사사로이 하지 말 일이라.  만약 공이 없는 자나, 친척 친지들이 헛되이 천록(天祿)을 받으면 백성들의 원망과 비방이 그치지 않아 그 사람 또한 오래 복록을 누리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마땅히 경계 할지어다.  또 강하되 악한 나라와 이웃을 삼으면 일시 편안하더라도 위태로움이 따를 것을 명심할 것이며 군사들은 마땅히 호휼(護恤)을 더하고 요역( 役)을 덜고 해마다 가을에는 용예(勇銳)가 뛰어난 자를 가리어 그에 따라 벼슬을 높일지어다.

  十, 국가를 맡은 자는 항상 경계하면 근심할 바 없을 것인 즉, 널리 경사(經史)를 보아 옛적에 경계하던 바를 거울삼을 지어다.

 

  훈요십조를 완성하자, 태조는 오랜 긴장이 풀렸던지 일시에 심신이 쇠약해져서 정사를 돌볼수 없게 되었다.

  (내 이제 모든 것을 버리고 조용히 쉬게 될 날이 온 모양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한 태조는 재신 염상(廉相), 왕? 이런 인간이었으므로 이 기회를 타서 단단히 한 몫 보겠다는 마음이 굴뚝 같았다.

  장군의 말씀, 지당한 줄로 아오. 즉시 입경하여 간신을 몰아내고 공을 세웁시다.

  이리하여 강조는 이현운 이하 여러 부장(部長)들과 정병 오천을 거느리고 위풍당당(威風堂堂) 서울로 진격했다.

  강조의 군대가 황해도 평주(平州)땅에 이르렀을 때, 뜻하지 않은 정보를 입수했다. 아무래도 서울의 형세가 궁금해서 미리 보낸 척후병이 돌아와 보고를 한 것이다.

  상감께서 승하하셨다는 소문은 헛소문이옵니다. 김치양 일당이 판을 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상감께서도 아직 궁중에 건재하심이 사실이옵니다.

  이 보고를 받자 강조는 한편으로는 크게 놀라고, 한편으로는 크게 낙담했다. 우둔하면서도 엉뚱한 야심을 품고 있던 강조는 왕이 살아 있다는 말을 들으니 어찌해야 좋을는지 알 수 없었다.

  (상감이 승하하셨단 말을 들었기에 치양 일당을 소탕하고 국권을 잡아볼 생각이었는데, 그 상감이 살아 계시다니 치양 일당을 소탕한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 말야. 상감이 살아 계시니 다른 임금을 세울 수도 없고 그렇게 되면 내 마음대로 국권을 좌우할 수도 없고,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강조는 좀처럼 마음을 정할 수가 없었다. 왕이 신혈사로 황보유의 등을 보내어 대량원군을 맞아들여 선위하려고 한다는 것을 강조는 미처 몰랐다. 또 왕이 자기를 부른 것은 치양의 역모를 물리치기 위한 것이라는 것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왕이 살아 있는 한 자기가 국권을 좌우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승산이 넉넉하게 대군을 거느리고 여기까지 왔는데 치양 일당을 소탕하지 않고 돌아간다

는 것은 참으로 억울한 일이다. 평주서 서울까지는 하룻길도 못되는 곳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대로 진격한다면 마침내는 왕과 맞서게 되어 역적의 누명을 쓸는지도 모른다.

  이대로 진격할 것이냐? 군사를 돌려 물러갈 것이냐?

  강조는 머리를 얼싸안고 같은 말만 중얼거렸다. 강조가 망설이는 것을 보자 야심만만한 이현운은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장군! 무엇을 망설이시오? 대장부가 한 번 뜻을 정했으면 끝까지 관철할 일이지 일을 당할 때마다 뜻을 굽히면 어찌하겠소?

  그렇지만 상감이 살아 계시다니 치양 일당을 소탕한들 우리 뜻을 펼 수 없지 않겠소?

  그러니 답답하시단 말씀이요. 상감이 방해가 된다면 폐립(廢立)하면 되지 않소? 원래 조정이 어지럽게 된 것도 상감이 너무 나약한 때문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터이외다.

  상감을 폐립한다?

  강조의 얼굴에 비로소 생기가 돌았다.

  그렇다면 새 임금으로 누구를 모실까?

  이현운은 잠시 생각해 보더니 강조의 귀에 입을 대고 속삭인다.

  대량원군이 가장 적합한 분으로 압니다.

  대량원군? …음 그분은 태조대왕의 손이 되시는 분이니 대토을 계승하시기에 부족할게가 없지. 그런데 그분이 지금 어디 계시지?

  삼각산 신혈사에 계시다는 말을 들었소이다.

  그렇다면 우선 그 분을 모셔 들이는 것이 급한 일이요. 누구를 보내서 모셔 들이면 될까?

  서경분사감찰(西京分司監察)로 있는 김응인(金應仁)이 가장 믿을 만하니 그를 보내도록 합시다.

이리하여 강조는 김응인에게 군사를 주어 신혈사로 보냈다.

 

 

 

  狂亂하는 後宮

  孝誠 九萬里

  서울에 입경한 강조는 무엇보다 먼저 왕을 폐하고자 도모했다. 김치양 일당을 소탕하고 대량원군을 새 임금으로 세우려는 목적은 왕이나 강조나 매한가지였지만, 왕의 진의를 모르는 강조는 오직 왕의 존재가 국권을 좌우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고 이 같은 처사를 취하게 된 것이다.

  강조가 좀 더 침착한 인물이었다면 왕의 뜻을 확인한 후에 일을 처리했겠지만 워낙 우락부락한 성미에다 살기에 찬 부하들의 선동도 있고 해서 과격한 행동을 취하기에 이른 것이다.

  때는 목종 십이년 이월 무자(戊子), 강조는 먼저 궁중으로 사람을 보내어 왕에게 청했다.

  일을 처리하자면 폐하께서 우선 용흥 귀법사(龍興歸法寺)로 나오심이 좋을까 하옵니다.

  강조의 청을 받은 왕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신하된 자로서 임금을 불러낸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아마 그 자가 딴 뜻을 품은 게 아닐지 모르겠사옵니다.

곁에 있던 최항이 말했다.

  딴 뜻을 품었다? 그렇다면 강조를 불러들인 것이 큰 잘못이었군.

  왕은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쉬었다.

  이 일을 장차 어찌하면 좋겠는고? 강조의 말대로 귀법사로 가야 할 것인가?

  좀 더 기다리며 사태가 돌아가는 걸 관망하는 것이 좋을 듯하옵니다. 지금 궁궐을 나가면 살기등등한 장졸들이 무슨 일을 저지를는지 알 수 없사옵니다.

  그래서 왕은 불안한 가슴을 안고 궁궐 안에 머물러 있었다.

  왕이 궁궐을 나오지 않으니 성미 급한 강조는 더 기다리고 있을 수 없었다. 대군을 거느리고 궁궐로 진격했다. 때마침 하늘빛은 붉은 말을 친 것같아 불길한 징조가 완연한 속에 강조가 거느리는 군사들의 함성은 천지를 진동하더니 겁이 많은 왕은 안절부절 못했다.

  폐하! 일이 아무래도 그른 모양이옵니다. 속히 이곳을 피하도록 하십시오.

  곁에 모시고 있던 최항이 마침내 이렇게 권했다.

  이곳을 피한다고 갈 곳이 있어야 할 것이 아니요?

  우선 법왕사로 피신하셨다가 대책을 강구하심이 좋을까 하옵니다.

  그러나 나 혼자만 피해서 되겠소? 모후께서도 아직 궁중에 계신데 같이 피신해야 될 게 아니요?

  이런 지경에 이르러서도 왕은 어머니를 염려하였다.

  태후께서도 피신하시도록 조처하겠사오니 어서 폐하께서 먼저 이곳을 뜨십시오.

  아니요. 모후께서 무사히 피신하시는 것을 내눈으로 보아야 하겠소.

  최항과 채충순 등은 급히 궁녀를 보내어 태후를 모셔오게 했다. 그제서야 왕은 태후의 손목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선인문(宣仁門)을 지나 궁궐을 빠져 나갔다. 궁궐 밖에는 마침 말 몇 필이 대기하고 있었다. 우선 왕과 태후가 먼저 타고, 최항, 채충순 그밖의 시신들이 뒤를 탭玖?대할 때에는 마음에 들고 아니들고 간에 부드러운 태도를 취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상감께 긴히 사뢸 말씀이 있어서 왔사옵니다. 밤늦게 황공하옵니다.

  무슨 말이요? 나라를 위한 일이라면 어찌 밤낮을 가리겠소? 그래 어떠한 일이요?

  사뢰기 심히 거북하오만…

  하고 왕규는 일부러 말끝을 흐렸다.

  경과 나 사이에 거리낄 것이 무엇이요? 어서 말해 보오.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과연 모르겠사옵니다.

  …

  왕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어서 왕규의 얼굴만 바라 보았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도 있사옵니다.

  …

  그리고 나서 왕의 눈치를 힐끔 살펴 보았으나 왕의 표정은 여전히 담담했다. 왕규는 약간 초조해졌다. 그래서 마침내 유씨부인 소생의 요와 소 두 형제가 역모를 하는 눈치라고 잘라 말했다.

  내 아우들이? 그럴 리야 없겠지?

  왕은 일소에 붙였다.

  폐하! 믿는 나무에 곰이 핀다는 말이 있습니다.

  왕규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도 믿어지지 않는 걸… 그러나 경의 말은 잘 알아 들었소. 짐이 더 생각해 보고 처리 하겠소.

  왕의 침소를 나오면서 왕규는 이 계교가 실패로 돌아간 것을 느꼈다.

  (무엇보다도 내가 왕을 만만히 본 것이 잘못이야. 듣는둥 마는둥 거슴츠레한 눈을 하고 있었지만 내 마음 속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았으니…)

  왕규는 가슴이 떨리었다. 왕이 두 아우를 불러 진부를 가린 다음 자기 말이 거짓이라는게 드러난다면 자기의 신세가 어찌될 것인가 생각하니 앞일이 막막했다.

  한편 왕은 왕대로 왕규의 말을 듣고 나니 마음이 뒤숭숭했다. 요와 소 두 아우가 역모를 한다는 건 물론 믿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소문이 떠돌면 왕제들 사이에 부질없는 의혹과 질시가 싹틀 것이고 그것은 또 어떠한 화를 불러 일으킬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왕규에게는 벌을 주느니보다 차라리 후한 대접을 해서 입을 봉하고, 아우들에게는 아우 들대로 아떤 대책을 강구해야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사천공봉 최지몽(司天供俸崔知夢)이 입궐하였다. 최지몽은 처음에 이름을 총진(聰進)이라 하였는데 남해 영암군(靈巖郡) 사람이다. 성품이 청렴하고, 검소한데다 온화할 뿐 아니라, 어려서부터 총민하여 신동(神童)이란 찬사를 받았다. 특히 학문을 즐기어 대광(大匡) 현일(玄一) 문하에서 수학하고 널리 경사(經史)를 섬렵하였는데 천문복서(天文卜筮)에 가장 정통하였다.

  그의 나이 열여덟살 되던 해였다. 일찍이 왕건이 길몽을 꾸었으나 해몽하는 자가 없어서 널리 사람을 구하다가 최소년의 소문을 듣고 불러서 해몽을 시켰다. 그러니까 지몽은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홍안을 들어 말하기를  대왕께서 멀지 않아 삼한을 통합하실 길몽이옵니다.

  그 말을 듣고 왕건이 뛸 듯이 기뻐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그렇듯 아는 것이 많으니 내 곁에서 나를 도와라.

  그리고는 웃음을 띠우며

  가만 있자. 내가 이름을 하나 자어 줄까. 네 오늘 해몽을 잘했으니 지몽(知夢)이라 부르도록 하라.

  그리고는 비단 여러 필을 하사하는 한편 공봉(供俸)이란 관직을 주었다. 그 후부터는 수많은 전투에도 곁을 떠나지 않게 하였으며 삼한을 통합한 후에는 고문으로 삼았다. 그러한 지몽이니만치 부르지도 않았는데 입궐하였다는 것은 심상치 않은 일이었다.

  경이 이렇듯 입궐하였으니 빈드시 짐에게서 진언할 말이 있을 것인즉 서슴지 말고 말하도록 하오.

  그런즉 지몽은 이마 위에 굳은 결의를 나타내며

  신이 천문을 본즉 유성(流星)이 자미(紫微)를 범하였은즉 반드시 나라에 도적이 일어날 징조이옵니다.

  이 말에 왕은 집히는 바가 있었다.

  (음, 바로 왕규가 내 아우들을 치려고 하더니 그 징조가 이렇게 나타난 모양이로구나.)

  생각한 왕은 그 말은 하지 않고 다시 물어보았다.

  그렇다면 장차 어떠한 대책을 강구해야겠는고?

  최지몽은 잠시 궁리해 보더니

  한 나라의 안태(安泰)는 왕실의 결속에 있을까 하옵니다. 그러하온즉 왕족간의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가장 긴요한 일로 아뢰오.

  이리하여 왕은 왕족의 결속을 도모하는 뜻에서 의화왕후 임씨(義和王后林氏) 소생의 공주를 소(昭)의 아내로 출가 시켰다. 말하자면 소는 임금의 아우인 동시에 사위가 된 셈이니 혈연으로 보아도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를 맺은 셈이다.

  왕이 왕실의 결속을 꾀하는 것을 보자 표면으로는 아무런 탄압도 받지 않았지만 왕규는 몹시 불안했다.

  상감에게 뜻하지 않은 일이 생긴다면 요나 소가 왕통을 계승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지난날 내가 이간하던 일에 앙심을 품고 어떠한 보복을 할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소광주부인을 대하면 왕규는 그렇게 말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러니까 공연히 긁어 부스럼을 만든 셈이군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왕 일이 이렇게 되었을 바에야 끝장을 내야지.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오히려 해를 입겠소이다.

  왕규는 다시 흉계를 꾸미더니 자기 도당 중에서 칼 잘쓰는 자객을 넌지시 불렀다. 그 자객은 칼만 잘 쓸 뿐 아니라 왕규가 항상 은혜를 베풀어 수족같이 부리는 젊은이였다.

  네가 아무래도 큰일을 해야겠다.

  왕규는 자객의 귀에 입을 대고 속삭였다.

  어른신네 분부시라면 어찌 물불을 가리겠습니까?

  왕규는 품에서 비수 한 자루를 꺼내 주었다.

  이것으로 목을 베야 할 사람이 있다.

  누구이옵니까? 그 자가?

  왕규가 자객의 귀에 대고 무엇인지 속삭이자 자객의 눈은 휘둥그래졌다.

  어찌 감히 그런 짓을…

  망설이는 자객을 왕규는 매서운 눈초리로 쏘아 보았다.

  내 뜻을 거역하겠단 말이냐?

  그런 것이 아니오라, 너무 엄청난 일이어서…

  똑바로 듣거라. 내 이미 너에게 비밀을 말한 이상 이 일을 중단한다면 네 입에서 장차 어떤 말이 샐는지 알 수 없단 말야. 그렇게 되면 내 몸은 이미 죽은 몸이니 그럴 바에야 너와 너의 가족을 몰살하여 화근을 끊을 수밖에 없다.

  왕규가 이렇게 잘라 말하자 그제서야 자객은

  분부대로 하오리라. 염려 마십시오.

하고 비수를 품은 채 밖으로 나갔다. 그날 밤이었다. 왕이 고히 잠들어 있는 침전에 장막을 헤치고 검은 그림자가 잠입했다. 그러나 왕은 그것도 모르는지 코만 골고 있었다.

  검은 그림자는 한 걸음 두 걸음 왕에게로 다가갔다. 왕은 역시 모르는 것 같았다. 검은 그림자는 마침내 왕의 머리맡까지 다가가서 비수를 뽑아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높이 들고 한숨에 왕의 목줄기를 향해 내리치려 했다.

  바로 그때였다. 왕의 코고는 소리가 뚝 그치더니 손을 들어 괴한의 팔을 꽉 움켜잡았다.

그리고는 벽력같이 호통을 쳤다.

  어떤 놈이냐?

  괴한은 그래도 끝내 왕을 해치려고 발악을 했다. 왕은 한 손으로는 괴한의 손목을 잡고 한 손으로는 괴한의 가슴을 힘껏 쥐어 질렀다. 일찍이 전쟁터에서 용맹을 떨치던 솜씨였다.

괴한은 저만큼 굴러 떨어졌다.

  이날 초저녁, 왕은 꿈을 꾸었는데 꿈 속에 부왕이 나타나더니

  무야, 네 신변에 위태로운 일이 일어날 것이니 각별히 조심하도록 하라.

하고 이르는 것이었다.

  그 꿈을 꾸자 즉시 잠이 깬 왕은 그날 밤에라도 어떠한 변이 일어날까 염려되어 일부러 코만 골아 괴한의 칼날을 무디게 하였다.

  침전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난 후에야 밖에서 경비하던 시신들이 뛰어 들어왔다.

  폐하! 어쩐 일이시옵니까?

  아무것도 아니야. 도적이 들어왔기에 때려눕혔으니 멀리 내다가 목을 베도록 하라.

하고 왕은 호방하게 웃었다.

  도적의 정체도 밝히지 않으시고 죽여버리란 말씀이옵니까?

한 시신이 물었다.

  조그만 도적의 정체는 밝혀 무엇 하느냐? 공연한 연루자만 만들어 오히려 화근이 될 것인 즉 아무 말 말고 시행하라.

  왕은 그 자객이 왕규의 도당이라는 것은 대강 짐작은 하고 있었으나 이번에도 그 허물을 밝히지 않고 지내버렸다. 어디까지나 왕규의 반성을 촉구하기 위한 너그러운 처사였지만 그것이 오히려 다음 화근을 불러 일으켰다.

  에이, 바보 같은 놈.

자객이 실패하였다는 소식을 듣자 왕규는 낯을 붉히고 주먹을 휘둘렀다.

  인제 별 수 없어. 내 직접 무리들을 거느리고 단번에 결판을 내고 말리라.

  그리고는 은밀히 심복을 모아 일을 꾸미는 한편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왕규의 흉계는 은밀히 진행되었으나 이미 두 번이나 왕을 해치려 한 전과가 있으므로 자연히 뜻 있는 사람들의 주목을 끌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왕규의 동정을 주시한 것은 최지몽이었다. 왕규의 문하에 드나드는 무인 중에는 지난날 지몽의 은혜를 입은 젊은이가 있었다. 하루는 지몽이 그 젊은이를 조용히 불렀다.

  자네 요즈음 끔찍한 일에 가담하고 있는 모양이더군.

  왕규가 반드시 무슨 일을 꾸미고 있으리라 짐작하고 넘겨짚고 한 말이었다. 그랬더니 젊은이는 이내 안색이 창백해지며 물었다.

  어르신네께서는 어떻게 그걸 아십니까?

지몽은 껄걸 웃으며 되물었다.

  이 사람아. 내가 천문지리에 통달할 뿐 아니라, 복술에도 정통해서 앞일을 알아 맞추기 귀신 같다는 것을 모르나? 내 자네 얼굴만 보아도 자네가 어떤 일을 하고 있다는 것쯤 환히 알수 있단 말야. 자네 요즈음 왕대광댁에 자주 드나들지?

  예, 그렇습니다.

  젊은이의 목소리는 후들후들 떨었다.

  그리고 천추만대에 역적의 누명을 쓸 흉계를 꾸미고 있지?

  젊은이는 이젠 아무 말도 못했다.

  내 자네의 사람됨을 아껴서 하는 말이지만 이제라도 늦지 않으니 모든 일을 나에게 털어놓게.  그러면 자네는 나라의 큰 화를 막게 한 공로로 오히려 후한 상을 받게 될 걸세.

  그런즉 고지식한 젊은이는 마침내 사실을 술술 풀었다.

  왕공께서 지난날의 실수를 분히 여기시고 무인 수십명을 거느리고 직접 대왕 폐하의 침전을 습격할 모양이옵니다.

  그래 거사는 언제쯤 한다지?

  오늘밤 자시(子時)를 기해서 일제히 침전으로 돌입할 계획입니다.

  오늘밤 자시라? 그렇다면 벌써 날이 저물었으니 일이 몹시 위급하구나!

  최지몽은 즉시 말을 달려 왕궁으로 향했다. 이때 왕은 우연히 병을 얻어 신덕전(神德殿)에 누워 있었다. 그 자리에 뛰어든 최지몽은 숨가쁘게 아뢰다.

  폐하! 급히 이 자리를 옮기도록 하십시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인고?

  병고에 시달려 수척한 얼굴을 들며 왕이 물었다.

  장차 이 신덕전에 큰 변이 일어날 모양이옵니다.

  큰 변이 일어난다? 그대 점괘에 그렇게 나타났는고?

  그렇사옵니다.

  최지몽의 점을 무엇보다도 잘 믿는 왕이기에 지몽은 이렇게 대답해 두었다. 사실을 밝히면 만약에 왕규가 거사를 중지하였을 경우 오히려 되잡힐 우려가 있을 뿐 아니라, 병고에 시달리는 왕의 마음을 너무 놀라게 하는 것이 걱정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내일 아침이라도 일찍 옮기도록 할까?

  아니옵니다. 지금 당장에 옮기셔야 합니다. 변란은 오늘밤 자시에 일어날 모양입니다.

  점괘에 그렇게 나왔는고?

  예 그러하옵니다.

  한밤중에 병든 왕이 침실을 옮긴다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지만 어디까지나 지몽의 말을 믿는 왕은 즉시 중광전(重光殿)으로 자리를 옮기었다. 왕이 자리를 옮긴 후에도 지몽은 신덕전에 남아 있었다. 왕규의 거동을 살피어 움직일 수 없는 증거를 잡기 위해서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신덕전 주변이 수런수런해지더니 한쪽 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벽에 큰 구멍이 뚫리며 그 곳으로 창검을 든 무인들이 뛰어 들어왔다.

그 중에는 왕규 자신도 섞여 있었다.

  왕규는 침전 안을 샅샅이 뒤져 보다가 임금은 이미 그 곳에 없고 최지몽이 홀로 서 있는 것을 보자 칼을 뽑아 들고 소리소리 질렀다.

  폐하는 어디로 옮기셨느냐?

  최지몽은 잠자코 서 있기만 했다.

  네가 바로 폐하의 침실을 옮기게 한 모양이구나.

  그제서야 최지몽은 태연자약한게 왕규를 건너다보며 말했다.

  그렇소. 오늘밤 신덕전에 큰변이 있으리란 점괘가 나왔기에 폐하께서 이곳을 뜨시도록 상주한 거요.

  오늘밤에 이곳에서 변란이 있으리란 괘가 나왔다?

  왕규는 매섭게 지몽을 노려보았다. 그러다가 파안일소(破顔一笑), 시침을 뚝 따고 딴청을 부렸다.

  나도 마침 꿈자리가 사납기에 이곳에 무슨 일이 일어났나 싶어 무리를 거느리고 폐하를 호위하러 달려온거요. 그러나 아무 일도 없었던 걸 보니 공의 점괘나 내 꿈이나 다 들어맞지 않은 모양이구료.

  그리고는 천연스럽게 무리들을 모아가지고 돌아가 버렸다. 이때 왕규의 본심은 지몽을 한칼에 베어 죽이고 싶었다. 그러나 일이 이미 실패로 돌아간 이상 지몽을 죽인다면 오히려 죽인다면 자기의 흉계를 백일하에 드러내는 셈이 되므로 분함을 누르고 그런 연극을 했던 것이다.

 

 

 

  흔들리는 王座

  중광전으로 거처를 옮긴 왕은 지난날과는 딴 사람이 되었다. 그렇듯 용력이 뛰어나고 기력이 왕성하던 임금이었지만 심한 병고에 시달리는 터에 여러 차례에 걸친 왕규 등의 흉계로 심신이 극히 쇠약해졌다. 말하자면 심한 신병에다 노이로제를 겸한 셈이었다.

  한밤중에 사람의 그림자만 어른거려도

  여봐라! 누구 없느냐? 자객이 짐을 해치려 어른거리고 있다.

하고 소리치는 것이었다. 때는 가을이라고 하지만 노염(老炎)이 아직 심하였다. 그러나 왕은 대낮에도 문을 꽉꽉 닫아 걸고 무사들로 하여금 침전을 겹겹이 호위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부쩍 의심이 늘은 왕은 호위하는 무사조차도 믿을 수가 없었다. 어짜다가 거동이 약간 이상한 자만 보아도

  이놈! 네가 나를 죽이려고 했지?

하고는 목을 베거나 귀양을 보내기가 일쑤였다. 이렇게 되자 왕을 호위하던 무사들은 전전긍긍 그저 제목숨 보존하기에만 바빴고 지난날 왕규를 세 번이나 용서하던 왕의 도량은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형편을 보자 누구보다도 나라와 임금의 앞날을 염려한 것은 대광 박술희(朴述希)였다.  박술희는 일찍이 왕이 태자가 될 때, 오씨부인의 청을 받고 진력한 공적이 있을 뿐만 아니라 태조가 세상을 떠날 때에 친히 훈요십조(訓要十條)를 주며

  경은 태자를 보필하여 사직을 보존토록 하라.

는 유명을 받은 처지였다. 그러니 왕의 신변이 위태로운 것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곧 무사 백여명을 거느리고 왕의 침전을 호위하도록 하였다.

  왕규의 장난이 있은 후로는 왕족들과 조신들 사이에 의혹과 질시와 암투는 한층 더 심해졌다.  누가 조금만 색다른 거동을 해도 이내 반란을 일으키지나 않나 하는 눈으로 보게 되었다.  따라서 박술희가 백여명이나 무사를 거느리고 왕의 침전을 에워싸고 있으니 심상치 않은 눈으로 보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다음 왕위를 이를 왕자로 지목되는 요와 소의 생모 유씨부인이 가장 불안을 느꼈다.  유시부인은 요를 불러 말하기를

  너 박술희의 거동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글쎄요. 그 사람이 원래 청렴강직하긴 하지만 세상이 어지러우면 사람의 마음도 변하기 쉬우니까요.

  그러게도 말이다. 그러니 각별히 조심해야지.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마침 소광주부인이 찾아왔다.

  왕규는 그 후 재차 거사를 하고 싶었으나 강력한 박술희의 군사가 왕의 침전을 호위하고 있으므로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박술희를 쫓아내려고 궁리한 끝에 곰곰이 생각하다 요를 충동해서 박술희를 쫓아낼 계교를 꾸민 다음 딸을 보낸 것이다.

  세상이 어지러우니까 별것들이 다 날뛰는 모양이지요?

  소광주부인은 슬며시 이렇게 던져 보았다.

  글세 말예요. 궐내가 너무 시끄러운 것 같군요.

  박술희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많은 무사를 거느리고 궐내에서 행패를 부리는 건가요?

  우리도 그것을 염려하고 있어요.

  뭐니 뭐니해도 왕족들은 핏줄이나 같지만 다른 사람들은 믿을 수 없으니까요.

  왕규 부녀의 소문이 좋지 않다는 것은 유씨부인 모자도 모르는바 아니었지만, 당장 강력한 경쟁자는 박술희로 여겨진 때문에 그 말조차도 솔깃하게 들렸다. 그래서 그 이튿날로 요는 중광전을 찾아갔다.

  대왕께 긴히 사뢸 말씀이 있으니 좀 들어갑시다.

  침전을 지키고 있는 박술희에게 말했으나 누구부다도 왕족들을 경계하고 있던 박술희는

  폐하의 환후가 위중하시므로 아무도 들어갈수 없소이다.

하고 딱 잘라 거절했다. 박술희로서는 딴 뜻이 있어서 취한 조처는 아니었지만 요로서는 그것이 매우 못마땅했다.

  (어디 두고보자.)

  요는 단단히 벼르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 해 구월, 만산이 붉게 단풍질 무렵, 왕의 병은 한층 위독하더니 마침내 세상을 떠났다.  임금으로 있은지 겨우 이년, 나이도 삼십사 세란 한창 좋은 시절이었다.

  왕이 돌아가자 시호를 의공(義恭), 묘호를 혜종(惠宗)이라 하고 송악 동쪽 기슭에 장사를 지냈다.  혜종이 세상을 떠나자 유씨부인 소생의 맏아들 요(堯)가 왕위를 이었으니 곧 제 삼대 정종(定宗)이었다.

  혜종이 세상을 떠나자 왕규는 물론 자기 외손자인 광주원군으로 왕위를 계승켸 하려고 갖은 책동을 다하였으나 여러 왕족과 중신들은 왕규의 음모를 분쇄하고 요를 추대하여 왕위에 오르게 한 것이다.

  그래 이럴 수가 있나? 내가 그렇게 공을 들였는데 단물은 딴 사람이 빨아먹다니!

  왕규는 딸과 함께 분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러나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급히 손을 쓰지 않으면 어떤 화를 입을는지 알 수 없음을 생각했다.

  아버님, 우리는 괜찮을까요? 새 임금은 전왕과 달라서 도량이 좁고 사람을 잘 미워한다지 않아요?

  그러니 말야. 어떻게 수를 써야 할 텐데.

  그리고 박술희 같은 벽창호가 궐내에서 행세를하여 언제 어떻게 우리를 모함할는지 알 수 없단 말예요.

  그러니 독으로 독을 제한단 말이야.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박술희란 놈을 없애버리고 그 일로 새임금의 신임을 받는 거지.

  어쩌면 아버님의 지모는 그렇게 샘솟듯 하실까요?

  소광주부인도 좋아라고 그 계교에 찬동했다. 왕규는 곧 입궐하여 새 임금께 상주하였다.

  대왕폐하! 일개 무장이 궐내에서 행패를 하오니 장차 어떤 변이 일어날는지 심히 염려

되옵니다.

  일개 무장이라니, 그건 누굴 말하는 거요?

  의심많은 왕은 이내 두 눈이 휘둥그래져서 물었다.

  다름이 아니오라 박술희의 거동이 심히 수상하단 풍문이 있사옵니다.

  어떠한 풍문인고?

  박술희로 말할 것 같으면 전왕께서 등극하실 때 공을 세웠으므로 전왕의 총애는 한몸에 받았으나 폐하께서는 처지가 다르시니 자기의 앞날이 어찌 될는지 근심스럽다 하옵니다.

  그래서?

  그러므로 선수를 써서 거사하겠다고 무리들을 한층 강화하고 때를 노리고 있다 하옵니다.

  그래? 고이한 놈이로다! 그놈을 당장 멀리 쫓아버려야 하겠다.

  왕은 벌써 핏대를 올리며 야단이었다. 그리고는 곧 사람을 불러 박술희를 멀리 귀향 보내라고 명하였다.

  왕규의 계교는 이렇게 해서 일단 성공한 셈이었다. 그는 곧 소광주부인의 처소로 달려가서 이 일을 알렸다.

  어떻소? 내 계교가 과연 놀랍지 않으냐 말이요.

  왕규는 딸 앞에서 자랑을 한참 했다. 그러나 딸은 새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별로 신통히 여기는 눈치가 아니었다.

  겨우 귀양을 보내요?

  암, 그만하면 됐지. 궐내에서 날뛰던 눈의 가시를 멀리 뽑아버린 셈인데 더 바랄게 있을라구?

  그렇지만 그자의 죄가 풀려서 돌아오는 날이면 우리는 어떻게 되죠? 그 사나운 자가 가만히 있을까요?

  그런 염려도 없지야 않지만 좀처럼 죄가 풀릴라구.

  모르는 것은 사람의 일이어요. 아주 죽여버리면 몰라도 살아 있는 동안은 마음이 놓이지 않는단 말예요.

  그 말에 왕균의 눈이 번득했다.

  죽여버리면 몰라도? 옳지, 죽기 전엔 마음이 안 놓이지.

  왕규는 한참 궁리에 잠기더니 심복 하나를 불러들였다.

  무슨 일이시오니까? 대광 어른.

  심복은 잘 길들인 개처럼 왕규의 얼굴을 쳐다보며 명령만 기다렸다.

  너, 박술희가 귀양가는 뒤를 밟았다가 으슥한 곳을 지날 때 해치우도록 하라.

  분부대로 하오리라.

  심복은 곧 물러갔다.

  자, 이만하면 안심이지? 눈에 가시는 없앴겠다. 왕의 신임은 받게 되었겠다. 또 박술희란 놈이 궐내에 없게 되었으니 왕의 좌우가 허술해졌겠다. 내게 또 운이 트일 것은 환한 일이란 말야.

  그러나 왕규는 큰 오산을 하고 있었다. 새 임금이 박술희를 귀양보낸 것은 왕규의 참언 뿐만 아니라 지난날 앙심을 품은바가 있었기 때문에 취한 처사였다. 그리고 왕규의 사람됨은 전부터 경계하고 있었으므로 박술희에 관한 일 이외에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왕이 은근히 신뢰하고 있는 사람은 지금 서경에 주둔하고 있는 왕식렴(王式廉)이었던 것이다.  왕식렴은 태조의 종제(從弟)이니 왕족 중의 어른일 뿐 아니라 인품이 충직하여 오직 나라와 백성만을 생각하는 인물이었다. 흔히 왕족들이 그 신분을 빙자해서 높은 관직을 바라는 것과는 딴판으로 어떠한 직책이건 그것이 나라를 위한 일이라면 자진해서 감당하였다.

  처음에는 군부서사(軍部書史)로 있다가 남들이 마다 하는 여러 직책을 전전한 끝에 서경(西京)을 지키는 일을 맡고 있는 터였다. 그것은 서경의 방위야말로 사직을 보존하는데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한 때문이었다.

  박술희를 몰아내고 궁궐의 호위가 허술해지자 왕은 가장 신임하는 왕식렴에게 사람을 보내어 궁성을 호위하도록 하였고 왕식렴은 즉시 정기(精騎)를 거느리고 상경하였다.

  폐하, 왕성의 호위가 어찌 이렇듯 허술하옵니까? 전에는 박술희가 호위하던 것으로 알고 있었사온데 그는 어찌 되었사옵니까?

  식렴은 입궐하는 즉시로 이렇게 물어 보았다.

  글세, 그놈이 역모를 한다기에 멀리 귀양을 보냈소.

  박공이 역모를 했다고요?

  식렴은 양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누가 그런 말을?

  왕대공이 그렇게 말하더구먼.

  왕규가요?

  식렴은 다시 상을 찡그렸다.

  여우 새끼같이 간사한 놈.

  식렴은 내뱉듯 중얼거리다가 정색을 하고 임금을 똑바로 건너다보며 말했다.

  박공은 청렴결백한 충의지사 입니다. 그러한 박공이 역모를 하다니, 왕규란 놈의 간악한 모략임에 틀림없습니다.

  이 말을 듣자 원래 줏대가 없는 임금은 왕규의 말을 들은 것을 뉘우치기 시작했다. 실상은 왕규의 참언만으로 박술희를 유배시킨 것이 아니라 지난날에 품은 앙심이 더 큰 작용을 했던 것이었지만, 자기 책임에 속하는 부분은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이 임금의 성격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왕규라는 놈이 바로 죽일 놈이 아니요?

  이를 말씀이오니까? 그놈이 다 뜻한바가 있어서 박공 같은 충의지사를 몰아낸 것입니다.

  뜻한바가 있다니?

  박공이 정병을 거느리고 대궐을 호위하면 불측한 마음을 품고 있더라도 뜻을 이루기 어렵지 않습니까?

  불측한 마음을 품는다?

  대왕, 왕규란 놈의 지난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전왕 때 몇 차례나 역모를 하던 사실을 잊으셨사옵니까?

  오, 참 그렇지. 그놈이 몇 번이나 역모를 했었지.

  임금은 새삼스러운 듯이 무릎을 쳤다.

  대왕, 하루 속히 충의지사의 죄를 사하시고 그 대신 간신을 물리치시어 나라의 화근을 끊어 버리도록 하십시오.

  그렇다면 박술희를 불러 올리고 왕규를 대신 귀양 보내야 하겠군.

  임금은 곧 갑곶(甲串=江華 동쪽십리쯤 되는 곳)으로 사람을 보내어 박술희를 불러 올리는 한편 그 대신 그곳으로 왕규를 귀양 보내도록 명했다. 그러나 얼마 후 갑곶으로 갔던 사람이 돌아와 보고하기를 박술희는 유배가는 도중에 살해 되었다는 것이었다.

  아니, 어느 놈이 죽였단 말이냐?

  왕규가 보낸 자객의 소행으로 아뢰오.

  왕규의 수하라? 에이, 어디까지나 고얀 놈! 그렇다면 왕규도 즉시 죽이도록 하라! 아니 왕규 한 놈 뿐만 아니라, 그 무리들도 모조리 잡아 죽이도록 하라.

  이리하여 유배 간 왕규의 목을 베는 한편 그 무리들을 색출하니 삼백여명이나 달했는데 그들도 모조리 잡아 죽였다. 이리하여 가지가지로 음모와 술책을 농하여 정권을 노리던 왕규 일당은 마침내 멸하고 만 것이다.

  임금 요는, 원래 마음이 약하고 겁이 많은 인물이었다. 그런데다가 왕규 등의 농간으로 등극하기 전부터 신경이 몹시 시달렸으므로 모든 사람을 의심하고 조그만 일에도 대경실색 하는 수가 많았다.

  왕이 등극한지 삼년째 되는 해 구월, 동여진(東女眞)의 대광 소무개(蘇無蓋)등이 와서 말 칠백필과 방물(方物)을 바친 일이 있었다.

  동여진에서 말을 보내왔다? 그 곳의 말은 특히 준마가 많다 하니 짐이 친히 보고 가리어 내리라.

  경망한 왕은 천덕전(天德殿)에 친히 나가 칠백필 말들을 일일이 살펴보고 가려내기 시작하였다.

  자, 이렇게 세 등급으로 나누어서 값을 정하면 가장 공평하지 않느냐 말야.

  신하들은 왕의 처사가 너무 잔 것이 못마땅하게 여겨졌지만, 그런 말을 입밖에 낼 수도 없고해서 잠자코 보고만 있었다. 그러나 왕은 어디까지나 의기양양해서 세 등급으로 나눈 말의 값을 정해 준다.

  일등 가는 말은 은주자(銀注子) 일사(一事)와 비단 한필로 값을 치를 것이며, 이등 가는 말은 은발(銀鉢) 일사와 비단 한필로 하고 삼등 가는 말은 비단 한필로 하리라. 어떻소? 불만이 있소?

  동여진의 소무개는 그저 고개만 깊이 숙이며

  지당하신 처사로 아뢰오.

할 뿐이었다. 그러니 왕은 더 신이 났다. 그래서 일등 가는 말 값을 손수 지불하려고 일어섰을 때였다. 그때까지 맑게 개였던 하늘이 갑자기 어두어지더니 천둥이 울리고, 번개가 번쩍이고,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말들은 소리치며 이리저리 날뛰고, 사람들은 당황항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남달리 겁이 많은 왕이었다. 우왕좌왕하며 몸둘 곳을 모르는데 이번에는 천덕전 서쪽 한 모퉁이에 천지를 진동시키는 소리와 함께 벼락이 떨어졌다.

  어이구, 천지개벽이다. 나 좀 살려라.

  엉덩방아를 찧은 왕은 왕의 체통도 잊어버리고 소리소리 지른다.

  이에 근신들이 부축하여 중광전(重光殿)으로 모셔 들였으나 그 후부터는 거의 실성한 사람처럼 되어버렸다. 바람이 불고 천둥만 울려도 벌벌 떨며 야단이었다.

  이것 봐! 벼락이 떨어지지 않을까? 바로 내 머리 위에 떨어지지 않을까?

하면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부들부들 떨기가 일쑤였다.

 이 무렵, 개경은 도읍할 곳이 못되니 마땅히 서경으로 천도해야 한다는 설이 떠돌기 시작했다.  천덕전에 벼락이 떨어진 이후 불안에 떨고 있던 왕에게는 무엇보다도 솔깃한 말이었다. 

  오냐, 서경으로 천도를 하자, 그렇게 하면 짐의 병도 나을 것이고 하늘의 노여움을 풀어 천둥벽력의 화를 입는 일도 없으리라.

  그리고는 시중 권직(權直)으로 하여금 서경에가서 궁궐 짓는 역사를 감독하게 하였다. 원래 경망하고 성미 급한 왕이었다. 일단 새 궁궐을 짓게 되자 재촉이 성화 같았다. 그러므로 자연히 백성들에게 무리한 노역을 강요하게 되었고 그렇게 되니 백성들의 원성은 날로 높아갔다.

  아니 개경에 도읍한지 삼십 년도 못됐는데 또 옮긴단 말야?

  그리고 개경으로 말할 것 같으면 태조대왕께서 일어나신 뜻깊은 곳인데 함부로 옮기다니

그야말로 불효막심한 소행이란 말야.

  글세 천도하는 것도 좋고 궁궐을 짓는 것도 좋지만 백성들이 견딜 수 있어야 말이지. 백성이 잘 살아야 나라도 태평하고 임금 자리도 튼튼하지, 백성을 이렇게 고생을 시키며 무슨 임금이냐 말야.

  백성들의 원성은 구구 했다. 그리고 그 중에 입빠른 자는

  이렇게 백성을 괴롭히는 임금이라면 오래 가지 못하지. 두고 보게. 예로부터 다 그랬으니까

  이렇게 저주하는 말까지 던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말은 차츰 사실로 나타났다. 서경에 궁궐을 짓기 시작했어도 왕의 병세에는 차도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 위중해 가기만 했던 것이다. 정종 사년 삼월, 왕의 병세는 거의 절망상태에 이르렀다. 이 점을 왕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내 아우 소(昭)를 부르도록 하라.

  왕은 시신에게 분부했다. 소가 황급히 들어오자, 왕은 아우의 손목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내 목숨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니 네가 나를 대신해서 대통을 계승하도록 하라.

  이리하여 왕은 아우에게 선위(禪位)하고 제석원(帝釋院)으로 옮겼으나 얼마 아니하여 숨을 거두었으니 등극한지 사년, 나이 겨우 이십칠세란 젊은 몸이었다.

  그 후 소가 등극하여 이십육년을 다스렸으니 곧 제사대 광종(光宗)어며, 그 장자가 계승하여 육년을 다스렸으니 이가 곧 제오대 경종(景宗)이다. 그리고 제육대 성종(成宗)이 계승하여 십육년을 다스린 후 제칠대 목종(穆宗)이 등극하였는데 목종은 곧 제 오대 경종의 장자이다.

 

 

 

  千秋太后의 艶事

  이 동안 나라의 기틀은 제법 공고해직 성종의 치적은 볼 만한 바도 있었으나 목종이 등극하자,  겨우 십팔 세란 어린 나이였으므로 그의 생모 헌애태후 황보씨(獻哀太后皇甫氏)가 천추전(千秋殿)에서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흔히 부르기를천추태후하고 하였다.

  천추태후는 태조의 아들 욱(旭)의 딸로서 제오대 경종의 왕후였다. 일찍이 경종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소생 송(誦=즉 후의 穆宗)은 아직 두 살밖에 안 되는 갓난아이였으므로 왕위를 계승하지 못하고 숙부되는 성종이 등극하였다가 성종 또한 십육년 만에 세상을 떠나자 비로소 대통을 잇게 된 것이다.

  태후가 정권을 잡게 되자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심복이 되어 보필해 줄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인물을 물색하자니 우선 생각나는 것이 김치양(金致陽)이었다.

  김치양은 동주(洞州)사람인데 태후와는 외척(外戚)이 될 뿐 아니라 경종이 세상을 떠나자 독수공방(獨守空房)의 외로움에 애태우던 태후와 은밀히 정을 통하던 옛 애인이기도 했다.

  그때 치양은 속세의 몸으로는 태후가 거처하는 천추전에 드나들 수 없었으므로 머리를 깎고 중의 차림으로 드나들며 갖은 음탕한 짓을 다하였다. 비록 중의 행색을 하기는 하였지만 어엿한 남자였다. 추문은 자자하게 돌아 성종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뭐하고? 김치양이 천추전에서 추잡한 짓을 한다?

  근엄한 성종은 진노하였다.

  고이얀 놈이로다. 김치양을 멀리 귀양 보내도록 하라.

  김치양이 멀리 귀양을 가자 태후는 밤마다 그리움에 몸부림쳤다. 그러나 임금의 엄명이니 태후로서도 어찌 하는 수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뜻밖에도 성종이 세상을 떠나고 자기가 정권을 잡게 되었으니 무엇보다 먼저 김치양을 불러 올리려 한 것은 있을 법한 일이었다.

  태후의 극진하신 정으로 이렇듯 다시 모시게 되었으니 이 기쁨 무어라 말할 수 없소이다.

  김치양은 천추전에 들어오자 태후 앞에 굻어 엎드려 이렇게 치하했다. 그러니까 태후는 눈짓으로 시녀들을 물러가게 한 후 은근한 목소리로

  여보시오. 우리 사이기 어떤 사이라고 새삼스럽게 그런 말을 하오.

  이렇게 말하는데 태후의 두눈은 축적된 욕정에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그러하오나 오늘의 태후는 지난날의 태후가 아니시라, 생살지권(生殺之權)을 한손에 쥐신 어른이신데 어찌 감히 불칙한 생각을 먹겠사옵니까?

  김치양은 유들유들하게 지껄였다. 치양이 상경하면 이렇게도 하리라, 저렇게도 하리라,

가지가지 공상을 하며 무르익은 육체를 달래온 태후였다. 인사 제쳐놓고 뜨거운 포옹만이 아쉬운 몸이었다. 그러기에 체모를 차린답시고 유들거리는 꼴이 오히려 짜증이 났다.

  김공, 그대는 나를 놀리는 거요?

  태후는 일부러 매서운 눈초리를 지어 보였다. 그러나 물기 있는 그 눈에 추파가 너울거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익크! 황공하옵니다.

  치양은 일부러 자라목을 하고 머리를 극적거렸다.

  잔말 말고 내 뒤를 따라와요.

  태후는 앞장을 서서 침실로 들어갔다. 그 뒤를 치양은 일부러 허리를 굽신거리며 따랐다. 침실에는 이미 향기가 그윽하고 두 사람의 향락을 위한 온갖 준비가 갖추어 있었다.

  김공, 어서…

  먼저 침상에 올라가 누운 태후는 손을 허우적 거리고 발을 구르면서 재촉을 했다.

  예, 예… 이거, 황공해서…

  치양은 자꾸 굽신거리면서 태후 품으로 기어들어갔다.

  태후는 자기 정부인 김치양에게 높은 벼슬을 주고 싶었지만 남의 이목도 있고하여 우선 합문통사사인(閤門通事舍人)이란 관직을 주었다.

 즉 임금이 평시에 거처하는 편전(便殿)의 앞문을 관리하는 직책이니 궁궐 안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권한을 공적으로 부여한 셈이었다.

  그러나 김치양은 원래 야심이 강한 사나이였다. 그가 태후에게 접근한 것도 단순히 애정이나 정욕만이 아니라, 보다 더 큰 목적은 권세를 잡는데 있었다. 그러므로 궁궐 안에 세력을 부식하자, 보다 높은 관직을 탐냈을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태후 폐하.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폐하의 체통이 서실 것 같지 않사옵니다.

  갑자기 왜 또 그런 소리를 하오.

  나라의 어른이신 상감의 모후이실뿐더러, 수렴청정하시며 나라의 대소사를 주름잡으시는 어른이 일개 합문통사사인과 정을 나누신다면 될 말이옵니까?

  그말에 태후는 요염히 웃으며

  알겠소. 벼슬을 올려 달라는 말아구료. 어떤 벼슬이 좋겠소?

  위인이 워낙 불민해서 큰 벼슬이야 바랄 수 있겠사옵니까마는 우복야(右僕射)나 삼사사(三司事)쯤이면 이 사람에게도 과하지 않을 것 같사옵니다.

하고 치양은 능청스럽게 말했다.

  우복야는 상서성(尙書省)에 소속된 정이품(正二品) 벼슬인데, 상서성으로 말할 것 같으면 고려 때 삼성의 하나로서 백관을 모두 관할하던 관청이었다.

  이(吏), 호(戶), 예(禮), 병(兵), 형(刑), 공(工)의 육부가 이에 소속되었으니 행정의 모든 일을 다 장악하는 요직이었다. 그리고 삼사사(三司事)는 종일품의 관직으로서 최고의 직위일뿐더러, 국가의 전곡(錢穀)의 출납 회계를 맡아보고 있었으므로 결국 재정의 최고 책임자였다.

  그렇다면 어느 한 가지만 할 것이 아니라 두가지를 다 겸해 버리구료.

  이리하여 치양은 마침내 우복야겸 삼사사가 되었다.

  권세를 잡으면 반드시 아첨하는 무리가 생기는 법이다. 치양의 세력이 강대해지자 그의 집문전은 그에게 아첨하는 무리로 저자를 이룰 지경이었다. 그러나 김치양은 원래 자기 욕망을 적절히 억제할 줄 모르는 인물에 속한 모양이었다. 세도를 잡자 우선 시작한 것이 궁궐 같은 저택을 건축하는 일이었다. 고대광실에 넓고 호화로운 정원을 꾸미고 거기서 아첨하는 간신들과 질탕치듯 노는 것으로 일을 삼았다. 뿐만 아니라 왕이 어리고 태후가 정욕에 눈이 뒤집힌 틈을 타서 나라일을 함부로 주물렀다.

  뇌물을 많이 바치는 자, 아첨을 잘하는 자는 하루 아침에 높은 관직을 따게 될 수 있는 반면 청렴고결한 인사는 가차없이 몰아냈다. 따라서 조야의 원성이 자자했지만 그의 위세를 두려워하여 누구 하나 반기를 드는 자가 없었다.

  그러던 중에 치양의 야망을 더욱 부채질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은 천추태후가 치양의 씨를 잉태한 사실이었다. 이때, 태후는 이미 사십을 바라다보는 중년이었다.

  여보, 어떡하면 좋지?

  임신한 사실을 치양에게 알리며 태후는 수심이 가득했다.

  어떡하시다니요? 귀하신 아긴데 순산하시어야죠.

  치양은 뻔뻔스럽게 말했다.

  이 나이에 아이를 낳다니…

  태후는 쓴웃음을 지었다.

  연치가 문제이옵니까? 한 나라의 사직이 좌우될 수도 있는 문제이옵니다.

  그건 또 무슨 뜻이요?

  그 아기가 남아라면 장차 대통을 계승할 수도 있는 일이 아니요?

  대통을 계승하다니? 상감이 아직 새파랗게 젊은신데 꿈 같은 소리 마오.

  어찌 꿈 같은 소리라 하시오? 수(壽)는 반드시 연치와 관계 있는 것이 아니외다. 태조대왕을 제외하고는 역대로 모두 수하지 못하신편이 아니오? 혜종은 삼십칠세에 승하하셨고 정종은 이십칠세, 경종은 이십육세에 승하하셨으니 상감인들 장수한다고 누가 장담하겠소?  그러니 만일의 경우를 생각해서라도 순산하시어야 하오.

  일리 있는 말이었다.

  그렇지만 홀몸으로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조야(朝野)의 이목도 있고 하니…

  그러니까 은밀히 일을 치르면 될 거 아니겠소. 마침 시왕사(十王寺)가 가장 조용하니 그곳에 행차하시어 순산할 때를 기다리시는 게 좋을 듯하외다.

  시왕사는 궁성 서북쪽에 세운 절인데 김치양은 그 곳에 자기가 일찍이 중 노릇을 할 때 사귀던 심복들을 두었다. 그러므로 그 곳에서 순산을 하게 된다면 태후의 추문도 누설될 염려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 후 만삭이 되어 태후는 순산을 했는데 김치양이 바라던대로 옥동자였다. 태후는 물론이고 김치양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제야말로 내 세상이 오려나보다)

  김치양은 태후가 임신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은근히 딴 뜻을 품고 있었다. 태후가 낳는 아기가 남아라면 지금 임금을 폐하고 그 아기를 대신 왕위에 올릴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정말로 남아를 낳았다. 그러니 음모를 구체적으로 실행할 단계가 된 것이다. 왕을 없애는 일중에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왕이 자연스럽게 병이 들어 세상을 떠나게 하는 방법이었다.

  김치양은 원래 미신을 숭상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착수한 방법이 주술(呪術)을  쓰는 방법이었다. 치양은 나무에 왕의 형상을 조각한 다음, 그 가슴을 비수로 찌르면서 주문을 외어 보았다. 그 목상(木像)과 같이 왕의 가슴에 칼 끝이 들어가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때마침 그 곳에 들어온 태후에게 들키고 말았다.

  여보, 그게 무슨 짓이요?

  아무리 치양에게 정신을 빼앗긴 태후였지만 자기가 낳은 왕을 주살(呪殺)시키고자 하는 것을보고는 불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노할 건 없지 않소? 이 자가 빨리 없어져야 우리 귀여운 아기가 대통을 이을 게아니요?

  치양은 유들유들하게 말하며 태후를 건너다보았다.

  태후는 더욱 불쾌했다. 그러나 치양의 흉계를 꺾기에는 이미 너무나 깊이 그의 술책에 말려들어간 몸이었다. 그래서 슬며시 이렇게 말해 보았다.

  영감도 참 우둔하시구료. 상감의 형상을 새겨놓고 그 짓을 하다가 누가 보면 큰 일이 아니요?  상감을 주살하려고 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물을 남기는 셈이니 그런 어리석은 짓이 어디 있겠소? 무슨 딴 방법을 강구해 보도록 하시오.

  치양은 아직도 태후가 왕을 두둔하는 것이 못마땅했지만, 태후의 말에도 일리가 있으므로 방법을 바꾸었다. 김치양은 어디서인지 검은 고양이 한 마리를 잡아왔다. 그리고는 그 고양이를 시왕전 대들보에 길게 매달아 놓고 밤이 이슥하자 그 앞에 나타났다.

  요놈아! 네가 바로 상감이다.

  그러니까 고양이는

  냐웅….

  하는 소리를 냈다. 끈에 묶여 매달렸기 때문에 몸이 불편해서 지른 소리겠지만 그 소리를 듣자 김치양은 입이 딱 벌어졌다.

  옳지, 옳지! 잘 알아듣는군. 너는 바로 지금 임금 자리에 앉은 송이란 놈이야.

  그러더니 이번에는 품에서 굵은 바늘 한 개를 꺼내었다. 그리고는 그 바늘로 고양이의 가슴을 콕콕 찔렀다. 고양이는 괴로워서 몸부림을 치며 냥냥 거렸다.

  어떠냐, 송아? 아파 죽겠지?

  고양이의 몸에서는 피가 나기 시작했다.

  옳지, 옳지! 피가 나야지. 네 몸의 피가 다 빠져서 말러 죽어야지. 그래야만 한단 말이

야.  그래야만 우리 귀여운 아기가 네 자리를 대신 차지하지.

  음산한 불전 속에서 치양은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잔인한 주술을 쓰며 밤이 새는 줄도 몰랐다.

  주살하려는 대상이 있을 때, 짐승을 그 대상으로 간주하고 괴롭히면 대상이 된 본인도 따라서 괴로워한다는 것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미신이다. 그러나 적어도 한 나라를 뒤엎겠다는 모사가 그것을 정말로 믿고 실행에 옮긴 것을 보니 김치양은 결코 악한 일이나마 큰 일을 할 인물이 못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김치양의 주술은 아무런 성공도 거두지 못하였다. 고양이는 김치양이 바라던 재로 대들보에 매달린 채 피를 흘리고 말라 죽었지만, 왕은 그와 반대로 잔병 하나 앓는 일 없이 산야를 달리며 사냥을 일삼을 정도였다.

 

 

 

  獻貞王后의 悲戀

  김치양의 음모는 가장 은밀히 진행되었으나 워낙 치밀한 점이 부족했던 탓으로 어느새 누설되어 왕의 귀에 들어갔다.

  김우복야가 제 자식을 왕위에 오르게 하려고 음모를 꾸민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왕은 진노하였다. 그러나 그 노여움은 이내 수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모후께서 그 자를 총애하시니…

  왕은 머리를 싸안고 번민했다. 천추태후가 김치양과 정을 통하고 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어서 왕도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므로 김치양을 벌하자면 태후와의 사이를 백일하에 드러내게 되고, 그렇게 되면 누를 태후에게까지 끼치게 된다.

  남달리 효성이 지극한 왕으로서는 차마 못할일이었다. 그래서 여러 가지로 궁리한 끝에 김치양이 자기 자식을 세우려고 거사하기 전에 선수를 쓰리라 마음먹었다.

  (왕위를 대량원군에게 물려 주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하면 치양도 제 자식을 세우려는 뜻을 단념할는지도 모른다.)

  대량원군 순(大良院君 詢)은 태조의 여덟째 아들 욱의 아들이며 모친은 헌정왕후 황보씨(獻貞王后皇甫氏)다.  황보씨는 바로 천추태후의 여동생이었는데 형과 함께 경종의 비가 되었으나 경종이 세상을 떠나자 독수공방의 외로움을 한탄하고 있었다.

  헌정왕후의 사제(私第)는 마침 욱(郁)의 집과 가까웠다. 지금은 몰락한 왕족에 속하지만 어쨌든 욱은 죽은 남편인 경종의 숙부뻘이 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자연히 왕래가 잦을 수밖에 없었다. 가까이 접촉하면 정이 통하는 것이 남녀간의 상례이다. 욱과 헌정왕후 사이에도 접촉이 자주 있는 동안에 어느덧 정이 통하게 되었고 왕후는 마침내 임신까지 하게되었다.

  태기가 있음을 알게 되자 왕후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한 나라의 임금을 모시던 몸으로서 홀로 되었다하여 다른 남자와 정을 맺는다는 것만도 그 당시로서는 큰 망신인데 그 상대가 또한 왕족이고 보니 일이 드러나면 이중 삼중의 추문이 되는 셈이었다.

  헌정왕후는 형 천추태후와는 달라서 마음이 약한 여인이었다.

  어찌하면 좋아요? 차라리 죽고만 싶어요.

  왕후는 욱의 가슴에 매달려 몸부림치며 울었다. 그러나 욱으서도 무슨 신통한 대책이 생각나지 않았다.

  글세, 이 일이 모두 내 잘못에서 일어난 일이니 내가 모든 허물을 쓰기로 하겠소. 좀 더 참고 기다려 봅시다.

  그러는 동안에도 죄의 씨는 무럭무럭 자라 어느덧 만삭이 다 되었다. 번민이 극도에 달한 왕후는 거의 미친 사람같이 되었다.

  애를 낳으면 어떡하나? 내가 애를 낳으면 어떡하나?

라는 말만 헛소리처럼 외우고 있었다. 그러기에 순산할 때가 다 되어 진통이 엄습하자 다른 사람과는 정 반대인 힘을 쓰고 있었다.

  애를 낳으면 안돼! 애를 낳으면 안돼!

  주문처럼 외우면서 안간힘을 썼다. 그러한 모습을 곁에서 보며 아기 아버지되는 욱은 입술만 깨물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부자연한 노력이 자연의 섭리를 이겨낼 까닭이 없었다.

  왕후의 안색은 창백하게 질리고 이마에서는 식은 땀이 비오듯 하더니

  이젠 더 참을 수 없구료!

한마디 하고는 야릇한 비명을 지르자

  으아!

  소리와 함께 해산을 하고야 말았다. 아이는 남아였다. 바라지도 않던 옥동자였다. 그 아기가 바로 대량원군이었던 것이었다.

  해산을 하자 왕후는 그 자리에 실신하였다. 그리고 다시는 소생하지 못하였다. 아이를 낳지 낳으려고 한 부자연한 노력이 모체를 극도로 상하게 했던 모양이었다.

  여보, 마마!

  욱은 슬피 죽어간 헌정왕후를 얼싸 안고 더운 눈물을 뿌릴 뿐이었다. 일이 이렇게 되니, 비밀은 백일하에 드러났고 그 당시의 임금 성종도 사태를 방임할 수 없게 되었다.

  왕실의 풍기가 문란해지면 곧 나라의 강기를 어지럽히는 법이라, 숙(叔)을 사수현(泗水縣)으로 귀양 보내니 과히 섭섭히 여기지 마오.

  왕은 욱을 불러 이렇게 분부하였다.

  노염(老炎)이 아직도 맹위를 숙이지 낳는 칠월 일일, 정배의 길을 가는 비련의 공자 욱의 감회는 자못 착잡하였다. 사랑하는 사람은 영영 사별하고 자기 몸은 낯선 고장으로 떠나게 되니 다감한 그의 가슴 속은 눈물 뿐이었다.

 

  與君同日出皇畿

  그대와 더불어 황성을 떠났건만

  君己先歸我未歸

  그대 이미 먼저 가고 나는 아직 못가누나

  旅檻自嗟猿似

  나그네 외로운 몸 우리에 갇힌 잔나비 같아

  離亭還羨馬如飛

  떠나간 그대만 나는 말처럼 부러워라

  帝城春色魂交夢

  황성의 봄빛은 꿈 속에나 보려나

  海國風光淚滿衣

  바다를 바라보니 눈물만 옷깃을 적시도다

  聖主一言應不改

  상감의 한 말씀 고칠 길 없으니

  可能終使老漁磯

  고기잡이 신세로나 몸을 마치리라

 

  이것은 욱이 그때의 자기 심정을 읊은 시다.

  그 후 성종은 욱의 소생을 궁중에 데려다 유모로 하여금 기르게 하였으나 나중에는 다시 부친의 곁으로 내려 보냈다. 타향에서 외로운 세월을 보내는 욱의 심사를 딱하게 여긴 때문인지,  또는 혈친을 찾는 아기의 처지를 불쌍히 생각한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근엄한 성종으로서는 관대한 처사라 하겠다.

  이렇게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대량원군이었지만 차차 성장하여 목종 때에 이르자 유력한 왕위 계승자로 물망에 오르게 되었다. 목종에겐 원래 소생이 없는데 가까운 혈족을 찾아보니 결국 대량원군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이러한 경쟁자를 야심만만한 김치양이 그대로 둘까닭이 없었다.

  태후! 우리 아이에게 대통을 계승케 하려면 눈의 가시가 바로 대량원군이구료.

  치양은 천추태후를 꼬였다. 천추태후는 대량원군에겐 곧 이모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자기 소생보다 더 살뜰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좋겠소?

  중을 만들어 산 속으로 쫓아버리든지 아주 없애버리든지 하는 길밖에 없겠죠.

  죽여버리기는 불쌍하고 하니 절로 보내어 중이나 만듭시다.

  이리하여 대량원군은 마침내 숭교사(崇敎寺)로 들어가 중이 되었다. 숭교사는 김치양 일파가 장악하고 있는 절이었다. 그러므로 그에게 왕위를 물려 줄 생각이 있는 목종으로서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러던 참에 대량원군이 사람을 시켜 밀서(密書)를 바쳤는데 그 내용은 이러하다.

  어느 날 치양이 별식이라하여 음식을 보냈다.

  <산중에서 기름진 음식을 드실 기회가 없으실터이니 이것을 자시고 몸을 보하시오.> 라는 전달이었다.

  원래 자기가 중이 된 것도 김치양의 농간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대량원군이었다.

  (그런 자가 무슨 정성이 뻗쳤다고 이제 와서 보할 음식을 보내겠는가? 필시 이것도 어떤 무서운 흉계일 게다.)

  이렇게 생각하고 수저를 들지 못하고 있는데 마침 마당에서 임자 없는 개 두어 마리가 놀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대량원군은 음식 한술을 떠서 개들에게 던져 주어 보았다. 그랬더니 개들은 그 음식을 받아먹고 그 자리에 쓰러져 죽었다. 대량원군은 새파랗게 질렸다.

  (그 자가 이젠 나를 죽이러 드는구나.)

  그는 여러 가지로 궁리한 끝에 임금께 밀서를 써서 그 사실을 알린 것이었다. 밀서를 읽어 보고 임금은 크게 놀랐다. 즉시 사람을 보내어 대량원군을 삼각산 신혈사(神穴寺)로 옮기게 했다. 목종 구년의 일이었다. 나중에 이 일을 안 김치양은 더욱 대량원군을 해칠 마음을 굳게 했다.

  (임금이 이렇게 두둔하는 걸 보니 어디까지나 그 자에게 왕위를 물려 줄 생각인 모양인데 그렇다면 그 자를 더욱 살려 둘 수는 없어.)

  치양은, 이번에는 신혈사로 자객을 보냈다. 그때 대량원군은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그 절의 늙은 중이 허둥지둥 달려 들어왔다. 그 노승은 왕의 밀지를 받고 대량원군을 보호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급히 이곳을 피하시오.

  노승은 숨가쁘게 말했다.

  왜 그러오? 무슨 일이 일어났소?

  지금 보니 산문에 험상궂은 무사들이 들어섰는데 필시 김치양이 보낸 자객일 거요.

  그 말을 듣자 대량원군은 부들부들 떨면서

  그렇지만 이제 와서 어디 가서 숨는단 말이요.

하고 어찌할 바를 몰라 하니

  소승만 따라오시오.

  노승은 대량원군을 인도하여 앞장 서 가더니 절 한 구석 마루 밑창을 들었다. 대량원군이 이것에 몸을 의탁하게 될 때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짐작하고 미리 파둔 비밀 장소였다.

대량원군은 곧 그 지하실 속에 몸을 숨겼다.

  과연 잠시 후, 무사들이 들이 닥쳤다. 그리고 대량원군의 거처를 묻는다.

  지금 이 절엔 계시지 않소.

  노승은 시침 뚝 떼고 말했다.

  허튼 수작 말어! 이 절에 계시다는 걸 자세히 듣고 왔는데 우리를 속이려 든다면 네 신상에도 좋지 않단 말야.

  한 무사가 눈을 부라리며 얼러댔다. 그러나 노승은 태연했다.

  부처를 모시는 몸이 어찌 거짓말을 하겠소? 그분은 원래 산수를 좋아하시는 터라, 때를 가리지 않고 산야를 배회하신다오. 그러니 지금쯤 어디 계신지 내가 어찌 안단 말이요?

  그래? 그럼 우리가 이 절을 샅샅이 뒤져도 군소리는 없겠다?

  마음대로 하구료.

  무사들은 절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끝내 지하실에 숨은 대량원군을 찾아 내지는 못하고 투덜거리며 돌아갔다. 이런 일이 있은 후부터는 대량원군은 절에도 마음놓고 있을 수가 없었다. 밤낮 지하실 속에 숨어 있기도 괴롭고 해서 낮이면 이른 새벽부터 근처 산골을 배회했다.  그러나 그렇게 불안한 속에서도 등극할 날의 꿈만은 버리지 않고 있었다.

  그날도 대량원군은 맑은 계곡을 지나다가 시한수를 얻었다.

 

  一條流出白雲峯

  한 줄기 물이 백운봉에서 흘러 나와

  萬里滄溟去路通

  만리 푸른 바다로 길을 잡아 통하도다

  英道潺(?)岩下在

  길잃고 바위 밑에 잔잔하게 감돌아도

  不多時日到龍宮

  멀지 않은 날에 용궁에 이르리라

 

  말할 것도 없이 지금 자기의 처지를 한 줄기 시냇물에 비긴 것으로서 용궁에 도달할 날이 있으리라는 것은 곧 등극할 날이 있으리란 뜻일 것이다.

  또 이런 시를 읊은 적도 있었다.

 

  小小蛇兒 藥欄

  조그만 뱀 한 마리 난간에 도사리니

  滿身紅銀自斑

  온 몸에 붉은 무늬 비단처럼 곱도다

  莫言長在花林下

  오래도록 꽃숲 아래 있음을 말하지 말라

  一旦成龍也不難

  하루 아침에 용이 됨도 어지럽지 않으리라

 

  이 시 역시 자기를 조그만 뱀에 비겨 용이 될 날, 즉 등극할 날을 꿈꾸고 있는 것이었으니 대량원군은 과연 김치양이 두려워할 만한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竹杖에 넣은 密書

  왕을 주살하려다가 실패를 보고, 대량원군을 암살하려다가 역시 뜻을 이루지 못한 김치양은 조바심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하루 하루 끌어다가 왕이 대량원군에게 선위한다면 만사가 수포로 돌아가고 말 것이었다.

  목종 십이년 정월, 김치양은 자기 집에 심복들을 불러 모았다.

  이제는 별 수 없게 됐네. 비상수단을 쓸 수밖에 없어.

  심복들은 숨을 죽이고 상전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자 김치양은 한층 목소리를 낮추어 밀계를 내렸다.

  그 날은 바로 십육일, 마침 동편에서 떠오르는 밝은 달빛을 받으며 치양의 심복 무사들은 어디론지 흩어져 갔다. 이때 궁중에선 왕이 상정전(祥政殿)에 나와 관등(觀燈)을 하고 있었다. 

  이해 들어 처음 보는 만월이라 곱기도 하구먼. 금년도 나라 일이 저 만월처럼 둥글고, 밝고, 부족한 데 없기를 바랄 뿐이요.

  왕이 곁에 시립한 한 신하를 보고 이렇게 말했을 때였다. 갑자기 대부유고(大府油庫) 쪽에서 불길이 솟아 오르더니 궁녀들이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린다.

  이 어찌된 일인고?

  왕은 크게 놀라서 시신에게 물어보았으나 누구 하나 진상을 알려 주는 자는 없었다. 기름 창고에서 일어난 불길은 삽시간에 퍼져서 태후가 거처하는 천주전까지 연소되었다.

  아니, 모후가 계신 천주전까지..

  효성이 지극한 왕은 김치양에게 농락되어 자기를 해치려는 모친을 그래도 누구보다 염려했던 것이다.

  태후께서는 급히 피신하시었다고 하옵니다.

  한 궁녀가 알려 준다. 그제서야 겨우 마음을 놓은 왕은 곧 호부시랑 최사위(崔士威)를 부르도록 했다.

  아무래도 이번 화재의 원인이 심상치 않으니 군사를 통독하여 수상한 자가 있으면 잡도록 하라.

  왕의 명령을 받은 최사위는 즉시 군사를 거느리고 왕의 신변을 호위하는 한편 궁중을 수색했다.  이번 불은 김치양이 심복을 시켜 지르게 한 것이었다. 그러나 최사위의 재빠른 조처로 왕의 신변이 철통같이 호위되는 것을 보니 더 일을 벌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일단 단념하고 궁성밖에 숨겨 두었던 무사들을 급히 철수시켰다.

  이렇게 해서 왕은 위기를 모면했으나 이번 일로 말미암아 받은 마음의 충격은 여간 큰 것이 아니었다.

  궁성에 불을 지르고 짐의 목숨까지 엿보는 역도가 있으니 내 무엇을 믿고 살아가겠는고.

  왕은 매사에 전전긍긍하게 되었다. 큰소리만 나도 역도들이 쳐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하고 시신들을 불렀다.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헛소리를 하기가 일쑤였고, 정사는 돌보지 않고 자기 신변의 안전만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국사 이승(國師二僧)과 대의 기정업(大醫奇貞業), 대복진사조(大卜晋舍祚), 대사 반희악(大史潘希渥), 참지정사 유진(參知政事劉瑨), 중추원사 최항(中樞院使崔抗), 부사 채충순(副使蔡忠順) 등을 은대(銀臺)에서 숙직시켰으니 은대는 곳 승정원(承政院)의 별칭이다. 그리고 지은대사 이주정(知銀臺事李周禎), 우승선 이작인(右承宣李作

仁), 좌사낭중 유충정(左司郎中劉忠正), 합문사인 유행간(閤門舍人庾行簡)등은 안에서 숙직하게 하고 친종장군 유방(親從將軍庾方), 중랑장 유종(中郞將柳琮), 탁사정(卓思政), 하공진(河拱辰)은 근전문(近殿門)을 지키게 하고, 호부시랑 최사위를 대정문별감(大定門別監)을 삼아 모든 궁문을 닫고 엄중히 경계하게 하였다.

  말하자면 문무의 중요한 신하들과 중과 의사와 점장이까지 곁에 두어 신변을 보호하였으니 목종이 얼마나 겁을 집어 먹게 되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항상 삼엄한 경비 속에 거처하면서도 왕의 마음은 놓이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의 불안은 신병을 만들어 항상 병석에 눕게 되었다. 왕이 병석에 눕게 되니 대신들이 염려하여 문병하려 할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왕은 그런 것조차 한사코 마다 했다.

  뭐라고? 문병을 하겠다? 아마 그 놈이 문병을 빙자해서 짐을 해치고자 하는 것일 게다.

절대로 들여보내면 안 된다.

  이렇게 펄펄 뛰는 형편이었다. 다만 좌사랑중 유충정과 합문사인 유행간 두 사람만 곁에 두고 모든 일을 대행시키게 했다.

  유충정은 원래 발해 사람으로 별 재주는 없었으나 성품이 착실한 탓으로 왕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

  이와 반대로 유행간은 풍채가 미려하여 마치 어여쁜 여인과 같았고, 구변과 재치 또한 남달리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의 부친 품렴(稟廉)은 위위소경(衛尉小卿)이었으나 행간은 왕의총애를 한몸에 받아 마침내 벼슬이 합문사인에 이르렀다.

  왕은 또 선지(宣旨)를 내릴 때엔 반드시 먼저 행간에게 묻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었다. 이렇게 되자 행간은 점점 교만방자해져서 백관을 수족처럼 부려 먹었으며 근시들은 행간을 대할 때 마치 왕을 대하듯 했다.

  그러므로 왕을 해치려면 먼저 이 두 폐신(嬖臣)을 자기 패에 끌어들이는 것이 무엇보다도 긴요한 일이라고 김치양은 생각했다. 어느 날, 치양은 행간과 충정을 따로 따로 불러서 그 마음을 떠 보았다.

  우복야께서 분부하신다면 어찌 물불을 가리겠습니까?

  약삭 빠른 유행간은 김치양의 소생이 등극했을 때의 일을 계산에 넣고 그 자리에서 충성을 맹세했다. 그러나 유충정은 달랐다.

  글쎄올시다. 아시는바와 같이 아는 것도 없고 별 재주도 없으니 아무런 도움도 될 것 같지 않습니다.

  이렇게 완곡히 거절했다. 뿐만 아니라 한통의 밀서를 써서 행간이 없는 사이에 임금께 바쳤다.  김치양이 야망을 품고 심복을 모으며 거사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충정이 올린 글을 읽자 가뜩이나 불안에 떨고 있던 왕은 대경실색했다. 급히 대책을 강구해야 할 텐데 가장 좋아하던 유행간마저 치양 일당에 가담했다 하니 믿을 만한 자가 없었다.  그래서 여러 가지로 궁리한 끝에 은대에서 숙직하고 있는 중추원부사 채충순을 침전으로 불러들였다.

  채충순은 왕이 즉위한 후 특별한 총애를 받아 급사중(給事中)을 거쳐 중추원부사까지 된 인물이니 중추원부사는 곧 정삼품(正三品)의 고관이다. 이렇게 특별한 총애를 받았으면서도 언동이 겸허하고 심지가 강직하여 가히 믿을 만한 인물이었다.

  채충순이 침전에 들어왔을 때 마침 유행간이 시립하고 있었다. 왕은 행간에게 물러가라는 뜻으로 눈짓을 했다. 그러나 방자한 행간은 모른척했다. 왕이 어째서 채충순을 불러들였나 알고 싶기 때문이었다.

  다른 때 같으면 마음이 약한 왕은 그 이상 뭐라고 하지 않고 눌러 두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이 중대할 뿐만 아니라 유행간이 이미 김치양의 일당이 되었다는 정보를 들은 이상 그냥 둘 수가 없었다.

  너는 잠깐 이 자리를 피하도록 해.

  그래도 유행간이 멈칫멈칫 하니까 왕은 마침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는 짐의 명을 어기러 드느냐?

  그제서야 행간은 깜짝 놀라 허둥지둥 밖으로 나갔다. 유행간의 발소리가 멀어진 것을 확인한 후 왕은 채충순에게 손짓을 하며 말했다.

  가까이 오오. 채부사.

  채충순은 왕의 침상 두어자까지 가까이 가서 부복했다. 그러나 왕은 다시 손짓을 하며

  더 가까이 오오.

  충순은 침상 곁에 바싹 다가가서 엎드렸다.

  고개를 드오.

  고개를 드니 충순의 얼굴과 왕의 얼굴은 거의 마주 닿을 지경이었다. 그제서야 왕은 소리를 죽여 말했다.

  짐의 병이 심한 것을 기화로 왕위를 엿보는 자가 있다고 하는데 경은 알고 있소?

  충순은 잠시 망설이다가 왕의 귀에 입을 갖다 대고 속삭였다.

  신도 그런 풍문을 듣기는 했사오나 확실한 증거는 잡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그래? 그렇다면 내 이제 증거를 보이지.

  왕은 이렇게 말하고 배개 밑에서 두 통의 봉서를 꺼내 보였다. 한통은 대량원군이 보낸 것이며,  한통은 유충정이 올린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김치양의 역모를 폭로한 글이다.

  두 통의 글을 다 읽고 나자 충순은 안색이 변하며 떨리는 소리로 말했다.

  일이 심히 급하옵니다. 속히 대책을 강구하셔야 할 줄로 아뢰오.

  짐의 병이 날로 우중하여 언제 무슨 일이 있을는지 알 수 없은즉 무엇보다도 급한 일은 후사를 정하고 대통을 물려 주는 일이오.

  이 말에 충순은 눈물을 뿌리며

  슬픈 일이오나 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사옵니다. 하온데 어느 분을 후사로 삼으시겠습니까?

  대량원군 순이 가장 마땅할까 하오. 혈통이로 보아 태조대왕의 손자가 될 뿐 아니라 그 인품이 족히 왕자의 풍모를 갖추고 있으니 말이요.

  그 점도 신이 생각하던 바와 같사옵니다.

  짐이 보기에 궁중에 사람은 많지만 믿을 만한 신하는 경과 최항 뿐이요. 최항과 의논해서 태조께서 창업하신 사직이 다른 성 가진 자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힘써 주오.

이렇게 말하는 왕의 눈에서도 눈물이 비오듯 했다.

  채충순은 즉시 최항을 만나 왕의 뜻을 전했다. 최항은 평장사 언휘(平章事彦 )의 손(孫)이니, 성종 때, 나이 이십으로 갑과(甲科)에 급제한 수재이다.

  성종은 그 재주를 아끼어 우습유지제고(右拾遺知制 )란 벼슬을 주었으며, 후에 내사사인(內史舍人)을 시켰다. 그리고 목종 또한 그 인품과 재주를 사랑하여, 나라 일의 대소사를 일일이 의논하였으며, 이부시랑(吏部侍郞)을 거쳐 중추원사를 명하였으니 중추원사는 종이품의 고관일 뿐만 아니라, 중추원의 최고 책임자였다. 즉 채충순의 상관이 되는 셈이다.

  최항은 총명이 과인하고, 말이 적고, 과단성이 있고, 청렴결백한 인물이었다. 그가 요직에 참여하게 되자 간혹 뇌물을 바치는 자가 있었으나 꾸짖어 물리치고 정당히 입수된 물건이더라도 사치스런 물건이라면 손에 대지 않았다고 한다. 또 전하는바에 의하면 자기 집안 부녀자들에게는 화장과 옷치장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나라의 녹(祿)도 일년치를 한꺼번에 받는 것이 아니라 다달이 최저 한도로 필요한 것만 청했으므로 집에는 쌀 한섬 남아 돌아가는 것이 없었다고 하니 그의 인품이 어떠했는가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최항은 채충순의 말을 듣자 한참 동안 묵묵히 생각에 잠기더니

  그렇다면 신혈사에 사람을 보내어 대량원군을 모셔오는 수밖에 없구료.

했다.  그러자 채충순이 물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누구를 보내야 할는지요? 워낙 치양의 무리가 도처에 침투해서 섣부른 자를 보냈다간 오히려 큰 화를 당할지도 알 수 없습니다그려.

  그럴 염려도 없지는 않소만 선휘판관 황보유의(宣徽判官皇甫兪義)를 보내면 어떨는지?

  황보유의 말씀입니까? 그 사람 좋겠습니다. 원래 성품이 강직할 뿐 아니라 그의 선친이 창업에 공훈을 세운바도 있으니 가문을 더럽히지 않으려는 뜻에서도 정성을 다할 것입니다.

  그러나 황보유의는 문관이니 만일 치양이 자객이라도 보내어 일을 방해하면 어찌 하겠소?

  그렇다면 무반랑장 문연(武班郞將 文演)에게 군교 십여명을 주어 따르도록 합시다. 문연도 또한 충직한 사람이니까요.

  이렇게 해서 대량원군을 모셔올 준비는 갖추어졌다.

  그러나 비록 대량원군을 모셔다가 선위를 한다 하더라도 무력을 장악하고 있는 김치양이 최후의 발악을 한다면 어떤 변이 일어날는지 저으기 염려되었다.

  김치양 일당을 누를 만한 힘이 없을까?

  최항은 채충순을 돌아보며 묻는다.

  글쎄올시다. 서울 안의 무변은 어느새 그 놈이 구슬러서 심복을 만들어 놓았으니까요.

  그렇다면 강조(康兆)를 불러오는 것이 어떨까?

  서북면도순검사(西北面都巡檢使)로 있는 강조 말씀입니까?

  그렇소. 그 사람이 좀 사나운 데는 있지만, 잘 달래서 쓰면 못 쓸 바도 아닐뿐더러, 무엇보다도 김치양을 누를 만한 무력을 장악하고 있는 인물은 그 사람 뿐이니 말이요.

  그렇다면 폐하께 아뢰어 강조를 불러오도록 합시다.

  채충순도 최항의 말에 찬동하고 즉시 그 뜻을 왕에게 아뢰었다.

  강조는 미미한 무변의 출신이었으나 용력이 과인하여 차츰 관직이 올라 중추사우상시를 거쳐 서북면도순검사로 북녘 땅에 가 있으니, 그가 거느리는 장졸은 국경을 지키는 장병이다.  만일 입경한다면 김치양의 오합지졸들을 일소할 힘은 넉넉했다. 왕은 곧 밀서를 써서 강조에게로 보냈다.

  강조가 펴 보더니

  < 즉시 군사를 대동하고 입경하도록 하라. >

라는 간단한 사연이었다.

  (조정에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입경하라는 것일까?)

  의심은 되었지만 왕의 명이니 어길 수 없어 곧 휘하 장졸을 거느리고 서울로 향했다.

  강조가 대군을 거느리고 쳐들어 온다는 소식을 듣자 누구보다도 당황한 것은 김치양이었다.  그래서 그를 막을 대책을 강구하느라고 마음을 조리고 있는데 자청해서 그 일을 맡겠다고 나선자가 있었다. 내사주서 위종정(內史主書魏從正)과 안북도호장서기 최창회(安北都護掌書記崔昌會)였다.  이 두 사람은 원래 부정한 짓을 하다가 탄로되어 좌천된 탓으로 왕을 몹시 원망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 기회에 왕에 대한 앙심도 풀고 일이 성사된 후엔 김치양에게서 상도 받을 생각으로 이렇게 나선 것이었다.

  두 사람은 즉시 서울을 떠나 북행하다가 동주 용천역(洞州龍川驛)에서 강조의 일행과 만났다. 

  장군께 여쭐 말씀 있소이다.

  위, 최 두 사람이 비장에게 청하니 강조는 곧 두 사람을 만나보았다.

  장군, 서울로 올라가시는 것은 중지 하심이 가할 줄 압니다.

  위종정이 이렇게 말하자 강조는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왜 그런 소리를 하지?

  장군의 신변이 심히 위태하실 것 같아서 알려 드리는 것이외다.

  내 신변이 위태하다고?

  고지식한 강조는 두 사람의 혀 끝에 이내 농락이 되고 말았다.

  좀 더 자세히 말해 보오.

  상감께서 병환이 위중하시단 것은 알고 계시겠죠?

  그건 알고 있소.

  그런데 상감이 마침내 승하하시고 그 틈을 킹서 김치양이 자기의 소생을 왕위에 올려 앉히려고 획책하고 있소이다.

  그게 정말이오?

  강조는 눈이 휘둥그래진다.

  그러니 장군의 신변이 위험하단 말이올시다.

  그건 또 어째서?

  우둔하 강조는 입을 딱 벌리고서 고개짓만 한다.

  야심만만한 김치양에게 가장 두려운 분이 누구겠습니까? 바로 정병을 거느리고 계신 장군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만일 거사를 했다가 장군이 복종하지 않으면 큰일이기에 상감의 밀지를 위조해서 장군을 불러올린 것이외다.

  그제서야 강조는 눈을 꿈벅꿈벅하며

  이제 알겠군. 내가 무심코 입경하는 도중에 자객을 매복시켰다가 나를 없애버리려는 계책이로군.

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간교한 위종정은 손을 휘두르면서

  자객 정도가 아니옵니다. 서울로 들어가는 요소 요소에 수만대군이 집결항 장군을 기다리고 있으니 장군께서 아무리 용력이 과인하시더라도 일천여명 장졸로는 도저히 당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무서운 계교였다. 단순한 강조는 감쪽같이 속아 넘어갔다.

  거 참 잘 알려 주었소. 그렇지 않으면 큰일날 뻔했구료. 자, 그러면 어떻게 해야 좋다?

  그러니까 위종정은 다시

  장군, 이렇게 하시지요. 일단 본영으로 돌아가셔서 생명이나 보존하시고 때를 기다리시는게 상책일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군.

  이리하여 강조는 즉시 군사를 거두어 되돌아 갔다.

  강조가 되돌아 갔다는 기별을 듣자 치양은 크게 기뻐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앞일이 걱정되었다.

  만일 그놈이 군사를 더 모아 가지고 쳐들어 온다면 어떻게 하지?

  그때엔 실력으로 대항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강조는 세상이 아주 바뀐 줄 알고 주춤하고 있으니 서울로 들어오는 관문을 굳게 경비해서 사람의 내왕을 끊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놈에게 서울 소식이 못 들어거는 것 아닙니까.

  한 심복이 이렇게 진언하자 치양은 곧 그렇게 조처를 했다.

  조정이 한참 어지럽게 되자 서울의 민심은 흉흉해졌다. 이 틈을 타서 김치양은 유언비어(流言蜚語)를 유포시켰다.

  상감이 승하하셨다.

  다음 임금은 김치양 어른의 아드님이 되신다나?

  그렇다면 김씨 세상이 되는 셈이군.

  그렇고 말고. 왕씨는 이제 다 망해 버렸으니 김씨에게 곱게 보여야지.

  이러한 유언비어에 현혹된 사람 중에 강조의 부친이 있었다. 그러나 강노인은 충직한 인사였다.  김씨 세상이 되었다고 김치양에게 아첨할 의사는 추호도 없었다.

  태조께서 창업하신 사직을 추잡한 정을 통해서 낳은 김가 놈에게 뺏기다니…

  강노인은 주먹을 휘두르며 비분강개(悲憤慷慨)하다가 밀서 한통을 썼다. 아들 강조에게 보내는 밀서으니 그 내용은

  < 상감이 승하하신 틈을 타서 간신 김치양이 왕권을 노리니 급히 군사를 거느리고 입경하여 간신들을 소탕하고 사직을 공고히 하도록 하라. >

  이런 밀서였다. 그러나 그것을 아들에게 보내는 것이 큰 문제였다. 서울에 들어오는 관문을 굳게 지키고 사람들의 왕래를 금하고 있으니 무슨 방법으로 서울을 빠져나가 밀서를 아들에게 전할 것인가?

  곰곰 생각한 끝에 자기가 항상 집고 다니는 죽장(竹杖)속에 밀서를 돌돌 말아넣고 진흙으로 봉했다. 그리고는 가장 신임하는 하인 하나를 불렀다.

  이것 보아라. 너, 나를 위해서, 아니 나라를 위해서, 어려운 일을 해야겠어.

  무슨 일인지 모릅니다마는, 나으리댁에서 잔뼈가 굵고 극진한 은총을 입은 몸이오니 나으리의 분부시라면 못할 일이 무엇이겠사옵니까?

  강노인은 하인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조금도 꾸밈없이 지성이 가득해 보였다.

  그렇다면 이리 가까이 오너라

하인은 앞으로 다가갔다.

  거기 앉아라.

무릎을 꿇고 앉았다.

  강노인은 갑자기 품에서 비수 한 자루를 꺼내들었다. 새로 갈아 날이 시퍼렇게 선 비수

였다.  강노인은 그 비수를 하인의 목줄기레 갖다 대었다. 그러나 하인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무섭지 않으냐?

  나으리께서 하시는 일이 어찌 두렵겠사옵니까?

  그만하면 됐다!

 강노인의 입가에는 흡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러면 네 머리를 깎겠다. 괜찮으냐?

  처분대로 하십시오.

  그 당시의 사람에겐 머리털은 남녀를 막론하고 목숨 다음으로 소중한 것이었다. 그러나 하인은 선선히 고개를 내밀었다.

  고맙다.

  한마디 하고 강노인은 하인의 머리를 그 비수로 빡빡 깎아 주었다. 그리고 나서 비로소 하인의 사명을 일러 주었다.

  너는 이제부터 중의 행색을 하고 서울을 빠져나가 이 밀서를 내 아들에게 전해 다오.

그리고 누가 묻거든 묘향산 중이라고 말해라.

  분부대로 하겠사옵니다.

  하인은 즉시 중의 행색을 하고 곧 집을 나섰다.

  서울을 빠져 나가는 관문에 이르러, 과연 듣더바와 같이 행인의 감시가 심했다. 관문을 지키던 한 병졸이 강씨네 하인을 보더니

  어디로 가는 길이요?

하고 막아 선다.

  소승은 묘향산 중인데 잠시 서울에 왔다가 돌아가는 길이외다.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하인은 제법 중의 태를 내며 태연히 말했다.

  어떠한 사람을 막론하고 서울을 빠져 나가려면 몸 수색을 단단히 하라는 명을 받았으니 스님 언짢아 마시오.

  병졸은 하인을 진짜 중으로 알았던지 말만은 공손했지만 그 태도는 조금도 녹록치 않았다.

  나라에서 하시는 일인데 어찌 마다 하겠소이까? 자 법대로 하시오.

  병졸은 하인의 몸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바랑이나 옷 속은 말할 것도 없고, 신까지 벗겨서 뒤져볼 판이었다.

  (만일에 죽장 속에 넣은 밀서가 탄로된다면?)

  자기 목숨은 말할 것도 없고 상전인 강씨 부자에게도 어떤 화가 미칠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다 뒤지고 난 병졸은 이번에는 죽장을 잡아 보았다. 하인은 가슴이 철렁했다. 병졸은 죽장을 손에 들고 무게를 달아본다. 그 속에 이상한 것이 들어 있으면 무게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겠지만 종이 한 장쯤으로는 무게가 다를 리 없었다. 마침내 병졸은 하인에게 죽장을 도로 내주었다.

  좋소이다. 어서 가시오.

  그제서야 하인이 마음을 놓고 보니 어느새 등골이 흥건히 젖어 있었다. 이러한 고비를 몇 차례 넘기고는 겨우 강조가 있는 진영에 당도했다.

  강조는 낯익은 하인을 보고 깜짝 놀랐다.

  너, 어쩐 일이냐?

  하인은 잠자코 밀서를 내보였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 쓰러져 피를 토했다. 먼길을 쉬지 않고 달려온 때문에 기진맥진한 모양이었다. 밀서를 읽고 나자 강조의 두 눈은 무섭게 빛났다.

  간신을 소탕하고 사직을 공고히 한다? 상감이 이미 승하하셨으니 치양 일파만 소탕 한다면?

  그렇게 되면 나라의 일은 자기 마음대로 좌우 될 것이라 여겨졌다.

  (문무 백관은 모두 내 앞에 꿇어 엎드릴 것이며 임금도 내 마음대로 세울 수 있을 것이아닌가?)

  강조는 서울로 가다가 돌아온 후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서 오천 대군을 모아두었다. 그러므로 치양 일당과 정면으로 충돌하더라도 이제는 승산이 넉넉했다.

  때는 왔소. 서울로 곧 진격해야겠소.

  우선 부사령관격인 도순검부사 이현운(都巡檢副使李鉉雲)에게 자기 뜻을 밝혔다. 이현운은 무인이라기보다 눈치 빠르고 약삭빠른 소인이었다. 그러므로 일의 옳고 그름을 가리기보다  자기에게 이로우냐 해로우냐를 따라 행동하는 인간이었다.

  훗날의 이야기가 되지만, 글안주가 사십만 대군을 거느리고 쳐들어 왔을 때 이현운은 강조와 더불어 싸우다가 포로가 되었다. 이때 재삼 항복하라고 권고하는 글안의 말을 강조는 끝내 물리 쳤지만 이현운만이

  두 눈이 이미 새 일월을 우러러 보게 되었으니 어찌 옛 산천을 생각만 하겠습니까?

  (兩眼己瞻新日月 一心何億舊山川).

라는 말로 적왕(敵王)에게 아첨하는 말을 한 인간이었다.

  이런 인간이었으므로 이 기회를 타서 단단히 한 몫 보겠다는 마음이 굴뚝 같았다.

  장군의 말씀, 지당한 줄로 아오. 즉시 입경하여 간신을 몰아내고 공을 세웁시다.

  이리하여 강조는 이현운 이하 여러 부장(部長)들과 정병 오천을 거느리고 위풍당당(威風堂堂) 서울로 진격했다.

  강조의 군대가 황해도 평주(平州)땅에 이르렀을 때, 뜻하지 않은 정보를 입수했다. 아무래도 서울의 형세가 궁금해서 미리 보낸 척후병이 돌아와 보고를 한 것이다.

  상감께서 승하하셨다는 소문은 헛소문이옵니다. 김치양 일당이 판을 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상감께서도 아직 궁중에 건재하심이 사실이옵니다.

  이 보고를 받자 강조는 한편으로는 크게 놀라고, 한편으로는 크게 낙담했다. 우둔하면서도 엉뚱한 야심을 품고 있던 강조는 왕이 살아 있다는 말을 들으니 어찌해야 좋을는지 알 수 없었다.

  (상감이 승하하셨단 말을 들었기에 치양 일당을 소탕하고 국권을 잡아볼 생각이었는데,그 상감이 살아 계시다니 치양 일당을 소탕한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 말야. 상감이 살아 계시니 다른 임금을 세울 수도 없고 그렇게 되면 내 마음대로 국권을 좌우할 수도 없고,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강조는 좀처럼 마음을 정할 수가 없었다. 왕이 신혈사로 황보유의 등을 보내어 대량원군을 맞아들여 선위하려고 한다는 것을 강조는 미처 몰랐다. 또 왕이 자기를 부른 것은 치양의 역모를 물리치기 위한 것이라는 것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왕이 살아 있는 한자기가 국권을 좌우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승산이 넉넉하게 대군을 거느리고 여기까지 왔는데 치양 일당을 소탕하지 않고 돌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억울한 일이다. 평주서 서울까지는 하룻길도 못되는 곳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대로 진격한다면 마침내는 왕과 맞서게 되어 역적의 누명을 쓸는지도 모른다.

  이대로 진격할 것이냐? 군사를 돌려 물러갈 것이냐?

  강조는 머리를 얼싸안고 같은 말만 중얼거렸다. 강조가 망설이는 것을 보자 야심만만한 이현운은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장군! 무엇을 망설이시오? 대장부가 한 번 뜻을 정했으면 끝까지 관철할 일이지 일을 당할 때마다 뜻을 굽히면 어찌하겠소?

  그렇지만 상감이 살아 계시다니 치양 일당을 소탕한들 우리 뜻을 펼 수 없지 않겠소?

  그러니 답답하시단 말씀이요. 상감이 방해가 된다면 폐립(廢立)하면 되지 않소? 원래 조정이 어지럽게 된 것도 상감이 너무 나약한 때문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터이외다.

  상감을 폐립한다?

  강조의 얼굴에 비로소 생기가 돌았다.

  그렇다면 새 임금으로 누구를 모실까?

  이현운은 잠시 생각해 보더니 강조의 귀에 입을 대고 속삭인다.

  대량원군이 가장 적합한 분으로 압니다.

  대량원군? …음 그분은 태조대왕의 손이 되시는 분이니 대토을 계승하시기에 부족할게 없지. 그런데 그분이 지금 어디 계시지?

  삼각산 신혈사에 계시다는 말을 들었소이다.

  그렇다면 우선 그 분을 모셔 들이는 것이 급한 일이요. 누구를 보내서 모셔 들이면 될까?

  서경분사감찰(西京分司監察)로 있는 김응인(金應仁)이 가장 믿을 만하니 그를 보내도록 합시다.

이리하여 강조는 김응인에게 군사를 주어 신혈사로 보냈다.

 

 

 

 

  孝誠 九萬里

  서울에 입경한 강조는 무엇보다 먼저 왕을 폐하고자 도모했다. 김치양 일당을 소탕하고 대량원군을 새 임금으로 세우려는 목적은 왕이나 강조나 매한가지였지만, 왕의 진의를 모르는 강조는 오직 왕의 존재가 국권을 좌우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고 이 같은 처사를 취하게 된 것이다.

  강조가 좀 더 침착한 인물이었다면 왕의 뜻을 확인한 후에 일을 처리했겠지만 워낙 우락부락한 성미에다 살기에 찬 부하들의 선동도 있고 해서 과격한 행동을 취하기에 이른 것이다.

  때는 목종 십이년 이월 무자(戊子), 강조는 먼저 궁중으로 사람을 보내어 왕에게 청했다.

  일을 처리하자면 폐하께서 우선 용흥 귀법사(龍興歸法寺)로 나오심이 좋을까 하옵니다.

  강조의 청을 받은 왕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신하된 자로서 임금을 불러낸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아마 그 자가 딴 뜻을 품은 게 아닐지 모르겠사옵니다.

곁에 있던 최항이 말했다.

  딴 뜻을 품었다? 그렇다면 강조를 불러들인 것이 큰 잘못이었군.

  왕은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쉬었다.

  이 일을 장차 어찌하면 좋겠는고? 강조의 말대로 귀법사로 가야 할 것인가?

  좀 더 기다리며 사태가 돌아가는 걸 관망하는 것이 좋을 듯하옵니다. 지금 궁궐을 나가면 살기등등한 장졸들이 무슨 일을 저지를는지 알 수 없사옵니다.

  그래서 왕은 불안한 가슴을 안고 궁궐 안에 머물러 있었다.

  왕이 궁궐을 나오지 않으니 성미 급한 강조는 더 기다리고 있을 수 없었다. 대군을 거느리고 궁궐로 진격했다. 때마침 하늘빛은 붉은 말을 친 것같아 불길한 징조가 완연한 속에 강조가 거느리는 군사들의 함성은 천지를 진동하더니 겁이 많은 왕은 안절부절 못했다.

  폐하! 일이 아무래도 그른 모양이옵니다. 속히 이곳을 피하도록 하십시오.

  곁에 모시고 있던 최항이 마침내 이렇게 권했다.

  이곳을 피한다고 갈 곳이 있어야 할 것이 아니요?

  우선 법왕사로 피신하셨다가 대책을 강구하심이 좋을까 하옵니다.

  그러나 나 혼자만 피해서 되겠소? 모후께서도 아직 궁중에 계신데 같이 피신해야 될 게 아니요?

  이런 지경에 이르러서도 왕은 어머니를 염려하였다.

  태후께서도 피신하시도록 조처하겠사오니 어서 폐하께서 먼저 이곳을 뜨십시오.

  아니요. 모후께서 무사히 피신하시는 것을 내눈으로 보아야 하겠소.

  최항과 채충순 등은 급히 궁녀를 보내어 태후를 모셔오게 했다. 그제서야 왕은 태후의 손목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선인문(宣仁門)을 지나 궁궐을 빠져 나갔다. 궁궐 밖에는 마침 말 몇 필이 대기하고 있었다. 우선 왕과 태후가 먼저 타고, 최항, 채충순 그밖의 시신들이 뒤를 따랐다.

  왕과 태후의 일행은 다행이도 강조의 군사들에게 들키는 일도 없이 무사히 법왕사에 당도하여 숨을 돌렸다.

  정병 오천이 입경하니 김치양 일당은 적수가 아니었다. 이권(利權)을 탐내어 모여든 무리라 대군을 대하자 싸울 생각도 하지 않고 뿔뿔이 도망쳐 버렸다. 이에 강조는 김치양 유행간 등 중심 인물 일곱명을 잡어 죽이고 나머지 무리 삼십여명은 먼 섬으로 귀향을 보냈다.

그리고 대량원군이 입경하기만 기다리며 궁궐을 지키고 있었는데, 이동안 강조가 거느리고 들어온 군사들은 재물을 약탈하고 궁녀들을 범하는 등 갖은 만행을 다 저질렀다.

  뜻있는 신하들이 이것을 못마땅히 여기어 누차 충고도 해보았지만 장졸들의 지지로 국권을 좌우해야 할 강조로서는 그들의 반감을 살 아무런 조처도 취할 처지가 못되었다. 그저 보면서 못 보는 체할 뿐이었다.

  한편 왕의 밀지를 받고 대량원군을 모시러 간 황보유의와 문연 등이 신혈사에 당도하자 처음에 그 절 노승은 딱 잡아 떼었다.

  그런 분은 이 절에 계시지 않습니다.

  김치양 일파가 또 대량원군을 해치려고 자객을 보낸 것으로 알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를 의심 마시오. 상감께서 보내신 사람 이외다. 자, 이걸 보시오.

  황보유의는 이렇게 말하면서 왕의 밀서를 내보였다. 그제서야 노승도 의심을 풀고 지하실에 숨어 있는 대량원군을 모시고 나왔다.

  바로 이때였다. 산문이 떠들썩하더니 일대의 군마가 달려 들어왔다.

  큰일났구나! 김치양이 눈치를 채고 저렇게 사람을 보낸 모양이다.

  대량원군은 겁에 질렸고, 문연 등은 군교를 모아 창검을 뽑아들고 대량원군을 호위할 태세를 갖추었다.

  새로 달려온 장졸들은 말할 것도 없이 강조의 명을 받고 대량원군을 모시러 온 김응인 일행이었다.

  모두들 그 자리에 멈추오! 이분이 누구시라고 이렇게 무엄하게 가까이 오는 거요?

  황보유의가 이렇게 호통을 쳐보았다. 그러니까 김응인이 말에서 뛰어내려 대량원군 앞에 부복하더니

  강조 장군의 명을 받들어 이렇게 모시러 왔사옵니다. 서경부사 감찰 김응인이옵니다.

  황보유의도 왕이 강조에게 밀서를 보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터였다. 그러므로 강조가 보낸 사람이라면 자기네와 목적이 같을 것이다. 두패는 마침내 합세하여 대량원군을 모시고 서울로 갔다. 왕이 법왕사로 피신하자 황보유의 김응인등은 대량원군을 모시고 궁궐로 들어갔다.  강조는 곧 대량원군을 영접하여 연총전(延寵殿)에서 즉위케 하였으니 그가 곧 제팔대 현종(顯宗)이다.

  현종이 즉위하자 국권이 강조의 손에서 놀게 된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강조는 곧 전왕을 폐하여 양국공(讓國公)으로 삼았으나 아직도 전왕아게 충성을 바치는 최항, 채충순 등의 세력이 두려웠다. 그러나 두드러진 죄목이 있는 것도 아니므로 함부로 죽일 수도 없고 해서 법왕사로 사람을 보내어 우선 최항을 회유할 공작을 벌였다. 최항은 목종을 모시는 신하들 중에 가장 관직이 높을 뿐만 아니라 가장 유능한 인물이기도 했다. 따라서 그를 자기편에 끌어들인다면 다른 신하들도 저절로 따를 것이라는 계산에서였다.

  최항을 찾아온 사람은 법당 뒤 으슥한 곳으로 그를 데리고 가서 말을 전했다.

  강장군의 말씀이, 지난일은 묻지 말고 함께 일하자고 하십니다.

  그 말에 최항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또 최공께서도 원래 새 임금을 모시자고 일을 꾸미시던 분이고 강장군을 입경하게 하시는데에 도움도 많으셨으니 말하자면 모든 일이 최공의 뜻대로 된 셈인데, 새 임금을 받드시기를 어째서 주저하시느냐 하시더군요.

  이제는 강조도 지난 경위를 다 알게 되었음으로 이런 말을 전한 것이었다.

  그제서야 최항은 겨우 입을 열였다.

  그렇지만 전왕의 신변이 너무나 적적하시니 어찌 떠날 수 있겠소?

  이때였다.

  최원사, 내 염려는 너무 하지 마오.

하면서 목종이 불쑥 나타났다. 그 근처를 산책하다가 강조가 보낸 사람의 말을 엿들었던것이다.

  요즈음 모든 재앙과 변란은 오직 내가 부덕하고 소홀했던 탓으로 일어난 것이니 누구를 원망하겠소?  나는 장차 시골로 내려가서 여생을 조용히 보내고자 하니 경은 이 뜻을 신왕에게 알리고 앞으로는 신왕을 보필하여 사직의 안태를 도모하도록 하오.

  비록 조용한 말씨였으나 피를 토하듯 비통한 말이었다.

  최항은 무어라 할 말이 없어서 고개를 숙이고 눈물만 흘리다가 마침내 강조가 보낸 사람을 따라 궁중으로 향했다.

  이에 강조는 왕에게 상주하여 최항에게 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라는 관직을 주게 했다.

좌산기상시는 정삼품의 벼슬로 중추원사보다는 한층 낮은 벼슬이 되는 셈이다. 그리고 그 직책도 간관(諫官)이라는 일종의 한직이었다. 결국 강조는 이때까지도 최항의 진의를 알 수가 없어서 요직을 맡기지는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후 현종은 최항의 사람됨과 능력을 사랑하여 계속 벼슬을 올려 주어 현종 삼년에는 이부상서(吏部尙書) 및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삼았으며 칠년에는 내사시랑 평장사(內史侍郞平章事), 십일년에는 충신(忠臣)의 호를 내리기에 이르렀다.

  한편 시골로 내려가서 여생을 마치겠다는 전왕의 말을 전해 들은 강조는

  (그것 마침 잘 됐군. 그러지 않아도 그 분이 서울 가까이 있으면 여러 가지로 시끄럽단말이야.)

  이렇게 생각하고 즉시 목종과 태후를 충청도 충주(忠州)로 내려가게 했다.

  목종 모자의 낙향길은 참으로 비참했다. 곁에서 모시는 시신 하나 없이 겨우 얻은 말 한 필에 태후를 태우고, 목종 자신은 그 고삐를 잡고 걷는 형편이었다.

  이런 형편에서도 목종의 효성은 지극했으며 태후의 교만한 태도는 고쳐지지 않았다. 전하는 얘기로는 길을 가다가 끼니때가 되면 목종이 친히 주막에 들어가 밥상을 차려가지고 바치면 태후는 말을 탄 채 넙죽넙죽 받아 먹었다고 한다.

  목종의 비극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적성현(積城縣)에 이르렀을 때였다. 갑자기 뒤에서 말을 달려 쫓아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일단 목종 모자를 앞질러 가다가 돌아서더니 길을 막았다.

  너희들은 어떤 사람이기에 남의 길을 막는고? 우리가 누구인지 알고 이러느냐?

  목종이 꾸짖자 그 중에 한 자가 나서며

  알다 뿐이옵니까? 한 분은 얼마 전까지 상감으로 계시던 양국공이시며, 한분은 모후되시는 헌애태후이심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렇듯 무엄한 짓을 하는고?

  강장군의 명으로 이렇듯 따라오느라고 죽을 고생을 다 했으니 그 노고나 치사해 주시오. 저는 상약직장 김광보(尙藥直長金光甫)라 하옵니다.

  유들유들 말하는 품이 조롱에 가까웠다. 그러나 목종은 그 말을 노하기에 앞서서 강조의 명령이라는 말에 겁이 더럭 났다.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강조는 나에게서 더 바랄 것이 있다더냐?

  겨우 이렇게 물었다.

  먼 길을 가시느라고 고생이 되실 터이니 이 약을 잡수시고 옥체를 보중하시랍니다.

하면서 약그릇을 내밀었다.

  강조가 일부러 보약을 보냈다? 믿을 수 없는 소린걸…

  목종은 약 그릇을 받아 들고 냄새를 맡아 보고는 새파랗게 질렸다.

  아니, 이것은 보약이 아니라 사약이로구나.

  무슨 약이든지 어서 드시오.

  그자들은 이렇게 소리치더니 시퍼런 칼을 뽑아들고 휘휘 돌렸다. 약을 먹지 않으면 그 칼로 목을 베겠다는 위협이었다.

  오냐, 먹자. 이왕 죽어야 할 목숨이라면 피라도 흘리지 말고 죽어가자.

  목종은 태후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어머님, 소자는 스스로 뿌린 씨를 거두기 위해서 먼저 이 세상을 하직하겠습니다만 어머님은 부디 옥체 보중하시어 오래도록 수를 누리십시오.

  이렇게 말하고는 약사발을 마시고 숨을 거두었다. 목종의 나이 삼십, 재위한 지 십이년 만이었다.  이때 태후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고 하니 그 가슴 속에 어떠한 생각을 품고 있었는지 알 길이 없지만 그 후 황주(黃州) 땅에서 이십일년 동안이나 더 살고 육십육 세까지 수를 누렸다고 하니 모든 재앙의 장본인으로서는 지독히 모진 목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고기는 물에서

  새로 등극한 현종은, 자기가 대통을 계승하는데 가장 공이 큰 강조를 중대사(中臺使)로 삼았다.  중대사는 중대성의 최고 책임자로서 왕명의 전달, 궁궐의 호위, 군사에 관한 모든 일을 장악하는 직책이었다. 다시 말하면 국정을 좌우하는 자리였다.

  이러한 직책을 가졌을 뿐 아니라 실질적인 세력을 장악하고 있었으므로 임금은 이름 뿐이고 나라 일은 모두 강조의 손을 거쳐 요리되는 형편이었다.

  따라서 일부러 사람을 보내어 전왕을 죽이고도 새 임금 앞에서는 자살이라 가장했으며, 능호(陵號)를 공릉(恭陵), 시호를 선령(宣靈), 묘호를 민종(愍宗)이라 칭하게 한 것도 강조가 다 제멋대로 처리한 일이었다. 그러하여 뜻있는 신하들은 강조의 독재를 은근히 미워하고 있었는데 뜻하지 않은 일로 그는 집권한 바로 그 이듬해에 몰락하게 되고 말았다.

  현종 원년(西紀1010), 상서좌사랑중 하공진(尙書左司郞中河拱辰)과 화주방어랑중 유종(和州防禦郞中柳宗) 등이 왕명도 없이 공을 서둘러 군사를 일으키어 동여진을 친 일이 있었다.

그러나 하공진 등은 오히려 여진군에게 참패를 당하고 말았다. 그래서 여진 사람에게 잔뜩 앙심을 품고 있었는데 마침 여진 사람 구십오명이 내속하러 화주관(和州館)에 이르렀다. 이것을 보자 하공진과 유종은 이를 갈았다. 특히 성미 급한 유종은  네놈들 때문에 저번에는 내 부하들이 많이 죽음을 당했다. 그러니 네놈들을 죽여 부하들의 원수를 갚아야 하겠다.

하고는 여진 사람 구십오명을 모조리 참살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여진족들은 펄펄 뛰었다. 당장에라도 군사를 몰아 고려 땅을 치고 원수를 갚고 싶었으나 여진의 군력으로는 도저히 승산이 없었다. 그래서 그 당시 북방대륙을 호령하고 있던 글안주를 찾아가서 호소했다.

  고려의 강조는 임금을 죽이고 국권을 함부로 행사할 뿐 아니라 이웃나라까지 괴롭히니징계해 주시기 바랍니다.

  글안주 성종은 그러지 않아도 핑계만 있으면 고려를 쳐서 굴복시키고자 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러므로 여진족이 호소하는 말을 듣자 좋은 기회라고 마음 속으로 기뻐했다. 그러나 함부로 군사를 낼 수도 없고 해서 급사중 양병(給事中梁炳)과 대장군 나율윤(那律允)을 파견하여 전왕을 쫓아내게 된 경위를 따졌다.

  고려 조정은 발칵 뒤집혔다. 즉시 내사시랑평장사 진유(內史侍郞平長事陳 )와 직중대상서우승 윤여(直中臺尙書右丞尹餘)를 보내어 폐립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경위를 밤혔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트집을 잡아 고려를 침공하고자 하는 글안주는 그러한 변명에 귀를 기울일리가 없었다.

  이에 고려측에서도 글안과의 일전을 피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때 이미 참지정사(參知政事)가 되어 있던 강조의 강경한 주장으로 글안과의 군사적 충돌을 맞게 되었다. 즉 강조는 스스로 행영도통사검교상서가 되어 안소광(安紹光), 최현민(崔賢敏), 이방(李昉), 박충숙(朴忠淑), 최사위(崔士威) 등을 부장으로 삼아 군사 삼십만을 거느리고 통주(通州=지금의 宣川)로 가서 적의 침공에 대비하고 있었다.

  그 해 겨울 십일월, 글안주 성종은 친히 정병 사십만을 거느리고 의군천병(義軍天兵)이라 칭하며 압록강(鴨綠江)을 건너 흥화진(興化鎭)을 포위했다. 한편 강조는 휘하 장졸을 거느리고 통주성 남쪽으로 나아가 군사를 셋으로 나누어 강을 격하고 진을 쳤다.

  한 부대는 통주 서쪽에 진을 쳤는데 그 곳은 세줄기 강물이 합치는 곳이었으며 강조 자신은 바로 이 부대를 지휘했다. 다른 한 부대는 통주 근처 산중에 매복시키고, 또 한 부대는 성을 지키게 했다.

  이때 강조는 검차(劍車)라는 진기한 무기를 만들어 냈는데 글안군이 공격해 오면 칼날이 수레처럼 돌아서 한 걸음도 적을 접근시키지 않으므로 적병은 여러 차례 퇴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글안의 오랑캐들, 제법 강한 줄 알았더니 허수아비 같은 것들이구먼.

  강조는 마침내 자만하여 적을 몹시 깔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진중에서 주연을 베풀고 음률을 탄주하며 질탕하게 놀기만 했다. 이 정보를 접하자 글안주 성종은 선봉 야율분노(耶律盆奴) 등으로 결사대를 조직케하여 으슥한 밤에 통주성을 기습시켜 마침내 점거했다.

  통주성을 수비하고 있던 장수는 대경실색하여 강조의 진중으로 달려와서 글안군의 침공을 보고했다.  그러나 잔뜩 거만해진 강조는 그 말을 곧이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장군은 그만 일에 그토록 놀라서야 어찌 대군을 거느린단 말이요?

  오히려 꾸짖고는 술상에 놓인 고기 한점을 집어 입에 넣더니

  싸움터의 적병이란 것은 마치 입 속에 든 음식과 같은 거요. 적으면 못쓰고 많으면 많을수록 좋단 말이요.

  취기가 몽롱한 강조는 이렇게 큰소리만 치며 다시 술잔을 기울이는데 이번에는 그 진중에 있던 한 장수가 급히 달려 들어와서 보고한다.

  장군 큰일났습니다. 적병이 바로 우리 진영까지 돌파했습니다.

  그 장수가 보고를 하기 바쁘게 적군의 함성이 천지를 진동했다. 그 소리를 듣자 강조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일어나 칼을 뽑아 들고 장졸을 독려하려 했다. 그러나 그는 이내 칼을 떨구고 와들와들 떨면서 뒷걸음질을 쳤다. 그 순간 취기로 몽롱한 그의 눈에 자기가 죽인 목종의 환상이 떠오른 것이었다.

  대역 무도한 강조야! 너도 이제 죽을 날이 왔다. 어찌 천벌을 면할쏘냐?

  목종의 환상은 이렇게 외치는 것 같았다. 강조는 비록 목종을 죽이게 했으나 항상 거기에 대한 죄의식으로 괴로움을 받아오던 중에 취기와 놀라움이 한데 겹쳐서 그런 환상을 보게 된 것이다.

  강조는 투구를 벗어 던지더니 목종 환상 앞에 꿇어 엎드렸다.

  폐하!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이렇게 외치고 있는데 마침 장막 안으로 글안의 병사들이 뛰어 들어왔다. 그들은 실성한 사람처럼 엎드려 외치고 있는 강조를 보자 즉시 달려들어 그를 결박해 가지고 성종에게로 끌고 갔다. 성종은 비록 강조의 죄를 들어 고려를 침공하기는 했으나 강조 그 사람을 미워 할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 오히려 그 호방한 인품과 뛰어난 무술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그의 결박을 풀어 주고 좋은 말로 달래보았다.

  여봐라. 대국의 군주는 소국과는 달라서 도량이 넓은 법이다. 내 너의 재주를 아끼어 차마 죽일 수 없으니 오늘부터는 나의 휘하에 들어 충성을 다할 생각은 없느냐?

  물고기는 물에서 살아야 하고, 산 짐승은 산에서 살아야 하오. 내 이미 고려 땅에 태어났으니 고려 땅에서 살다 죽을 것이지 어찌 남의 나라에 가서 남의 임금을 섬기겠소?

하고는 끝끝내 항복하기를 거부했으므로 성종은 마침내 그를 죽여버렸다.

  고려사에는 강조를 역적으로 몰고 있다. 사실 그가 목종에게 행한 태도에는 도의적인 지탄을 받을 만한 점도 없지 않지만 김치양의 난을 평정하고 외적의 침공에 꿋꿋이 대항한 점 만은 사주어야 할 것이다.

 

 

 

  亂中佳緣

  강조가 죽은 후에도 고려의 여러 장군들은 선전 분투했고 여러 번 적군을 물리치기도 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사람을 보내어 강화를 꾀하기도 했으나 적군은 집요하게 남으로 남으로 진격해 내려왔다. 이렇게 되자 왕성조차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

  현종은 여러 신하들의 권유도 있고 해서 적의 예봉을 피하여 왕성을 버리고 남쪽으로 피난 길을 떠났다.

  도중에 왕을 원망하고 있던 김치양의 잔당들의 장난으로 여러 차례 위험한 고비를 겪다가 공주(公州)땅에 이르러서야 겨우 공주절도사 김은부(金殷傅)의 영접을 받게 되었다.

  김은부는 영주 안산현(永州安山縣) 사람으로 성품이 몹시 근검했다. 성종 때엔 견관승(甄官丞)이란 벼슬을 지냈으며, 현종 때에 이르러서는 공주절도사가 되어 그 곳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전진 속에 시달린 왕을 대하자 김은부는 눈물을 흘리며 애석히 여겼다. 그는동분서주(東奔西走)하여 예의를 갖추고 왕을 영접했다.

  은부는 왕의 모습을 보고 무엇보다도 피난길에 조석조차 변변히 취하지 못한 것을 짐작했다.  그는 곧 왕을 자기 거처로 인도하고, 산해진미(山海珍味)를 갖추어 대접하니 실로 오랜만에 대하는 별식이었다. 이때 음식 시중을 드는 여자들 틈에 끼어 한층 아리땁고 품위있는 처녀가 왕의 눈에 띄었다.

  특히 피난길에 여인을 멀리한 왕의 눈에는 그 처녀의 모습이 실물 이상으로 아름답게 보였다.

  김절도사, 저기 저 처녀는 어떠한 처녀요?

  왕은 앞에 끓어 앉아서 대접하는 은부에게 물어 보았다.

  예, 바로 신의 장녀이옵니다.

  왕은 다시 곁눈질로 그 처녀를 바라보며

  경은 좋은 딸을 두었구료. 이런 시골에서 보기 드문 가인인걸.

하고 껄걸 웃었다.

  그 이튿날 아침이었다. 은부가 장녀를 데리고 왕의 침실로 들어왔다. 처녀는 비단옷 한 벌을 들고 있었다.

  폐하 변변치 못한 것이오나 갈아입으시도록 준비했사옵니다.

  은부가 이렇게 말하자 처녀는 그 옷을 왕의 앞에 공손히 놓았다. 그러자

  그럼 너는 폐하가 갈아입으시는 걸 도와 드리도록 해라.

  이렇게 일러놓고 은부는 밖으로 나갔다.

  처녀와 단 둘만이 되자 왕은 처녀의 얼굴과 비단옷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보면 볼수록 탐스럽고 그윽한 정이 느껴지는 처녀였다. 왕은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몹시 끌렸지만 처음 대하는 처녀일뿐더러 왕이라는 지위를 생각해서라도 경한 말을 꺼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겨우 이런 말을 던질 뿐이었다.

  어느 틈에 이렇게 옷 한벌을 다 지었는고?

  어젯밤에 지었사와요.

  어젯밤에… 혼자서?

  예.

  그렇다면 밤을 꼬박 새웠겠구먼.

  처녀는 아무 대답도 못하고 고개를 푹 떨구었다.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지 가냘픈 눈두덩이 약간 분 것 같기도 했다.

  왕은 더욱 고맙고 살뜰한 정이 끓어 올랐다. 왕은 잠자코 전진에 헐고 낡은 옷을 벗어 버리고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기장이며 품이며 몸에 대고 잰 듯이 꼭 맞았다.

  어떻게 짐의 체격을 알고 이렇게 잘 맞는 옷을 지었을고?

  눈짐작으로 지었사온대 맞으신다 하시니 다행이옵니다.

  눈짐작으로? 그대는 아리땁고 마음씨가 고울 뿐 아니라, 대단히 슬기로운 처녀로군.

왕은 칭찬해 마지 않았다.

  옷을 갈아입었으니 이제 떠나야 한다. 언제 무슨 일을 당할는지 모르니 길이 몹시 바쁘다.  욕심 같아서는 그 자리에서 깊은 정을 맺거나 데리고 가고 싶었지만 지금의 처지로서는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일이었다. 왕은 처녀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내 오늘 일은 결코 잊지 않으리라.

라는 한 마디 말 속에 모든 정을 표시하고는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떼었다.

  왕에게는 이미 두 왕후가 있었다. 원정왕후(元貞王后)와 원화왕후(元和王后)로 피난길에도 왕을 따라오기는 했다. 그러나 두 왕후는 모두 혈족 결혼으로서 정책적인 이유로 맺어진 것인만큼 살뜰한 정을 느끼지는 못했다.

  또 등극하기 전에는 정적의 독수(毒手)를 피해서 중이 되어 산중에 파묻혀 있었기 때문에 여인과의 접촉을 가질 기회가 없었다. 그러므로 나이 이십팔세나 되어 김은부의 딸에게 첫 사랑을 느끼게 된 셈이었다.

  김처녀의 모습을 가슴에 안고 다시 남으로 내려간 왕은 그 해 정월 십삼일에 나주땅에 당도했다.  여기서 왕은 글안 진영에 가서 적군의 철병을 요구하도록 보낸 하공진의 하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공진은 지난날 여진인을 친 때문에 글안군의 침공을 초래케 한 장본인인만큼 이렇게 왕이 황성을 버리고 피난길을 떠나게까지 된데 대해서 통렬히 책임감을 느꼈던 모양이었다.

  왕이 남쪽으로 행차한다는 소식을 듣자 이보다 앞서 죄가 풀려 원직을 복구했던 하공진은 왕의 앞에 꿇어 엎드려 진언했다.

  글안은 원래 딴 뜻이 있어서 신이 여진인을 친 것을 기화로 침공하였사오나, 겉에 내 세운 명분은 어디까지나 전왕을 내몰은 강조의 죄를 따진다는 것이었사옵니다. 그러하온데 이미 강조가 그들 손에 잡혔사오니 더 이상 전화를 확대시킬 명분이 없을 것이온즉 사람을 보내어 철병을 청하면 응할 수도 있을 줄로 아뢰오.

  글안군의 철병은 왕도 간절히 원하던 바였다. 일이 뜻대로 될는지 아니 될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공진의 진언을 받아들여 고영기(高英起)와 함께 글안 진영으로 보냈다.

  창화현에 당도한 공진 등은 낭장 장민(張旻)과 별장 정열(丁悅)에게 왕의 친서를 주러 먼저 글안 진영에 들어가서 할 말을 일러 주었다. 즉

  우리 국왕께서 친히 오시기를 원합니다만 귀군의 군세가 두려울 뿐 아니라, 내란을 만나 남쪽으로 피신하셨습니다. 그런 까닭에 배신 공진 등을 보내어 왕의 뜻을 전하려 합니다만 공진 등도 역시 겁을 먹고 진영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으니 바라건대 군대를 물려 주셨으면 합니다.

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장민 등이 적진에 당도하기도 전에 적의 선봉이 이미 창화에 쳐들어 왔다.

  공진은 하는 수 없이 직접 적진으로 들어가서 글안주를 만나서 장민 등을 시켜 하려던 말을 얘기했다.

  공진의 말을 들은 글안주는 날카로운 눈초리로 공진을 쏘아보며

  네 말이 사실이라면 너의 왕은 지금 어디 있는고?

하고 물어 보았다. 그러나 공진은 시침을 뚝 따고

  남쪽으로 행차하신 것까지는 알고 있사오나 어디 계신지는 알 수 없사옵니다.

  그래? 그렇다면 너희 국왕이 갔음직한 남쪽 땅이 얼마나 먼 곳인고?

  글안주는 다시 이렇게 물어보았다. 하공진은 글안주가 고려 남쪽 땅의 지리에 밝지 못함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천연스럽게 얘기했다.

  우리 땅이 대국과 비길 바는 못됩니다마는 그래도 남쪽 끝까지 가자면 몇 만리나 될는지 짐작도 가지 않을 정도이옵니다.

  몇 만리나 된다? 그렇다면 속히 불러올 수도 없는 일이로군.

하고는 일단 회군하기로 했다. 이것은 물론 하공진의 청을 들어 주었다기보다 전선이 몇 만리나 연장된다면 보급에 큰 고생을 해야 할 것이며, 장졸들의 사기에도 적지 않은 영향이 있을 것이므로 일단 그런 조치를 취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하공진 등을 볼모로 끌고 갔다.

  어쨌든 적군이 철수했다는 보고를 받자 왕은 그 달 이십일일 나주를 떠나 황성으로 향했다.  그러나 왕의 마음은 황성 궁중으로 향하기보다 공주 땅에 있을 김처녀에게로 곧장 달렸다.  그러기에 두 왕후만 사람을 달려 먼저 보내고 왕 자신은 다시 공주땅으로 발길을 옮겼다.

  왕이 행차한다는 기별을 받자 김은부는 멀리 마중을 나와 지난날보다도 한층 더 융숭히 영접했다.  김은부가 정성을 다해서 대접하는 산해진미도 물론 달가운 것이었지만, 그보다도 아쉬운 것은 한시도 잊지 못하던 김처녀의 모습이었다.

  이곳에 오니 마치 오래 비어 두었던 자기 집에 돌아온 것 같구료. 모든 것이 반갑고 모든 사람이 정답고.

  나이 젊고 수줍은 왕은 자기 심중을 직접 드러내지 못하고 겨우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산전수전(山戰水戰) 다 겪은 김은부는 왕의 뜻을 재빠르게 짐작했다.

  이곳에도 폐하의 성덕을 사모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사옵니다. 특히…

하고 잠깐 말을 끊다가

  밤이나 낮이나 폐하를 사모하고 한숨으로 세월을 보낸 한 처녀가 있사옵니다.

  그리고는 슬쩍 눈웃음을 쳤다.

  그 말에 단순한 왕은 낯이 붉어지며 다급히 묻는다.

  그 처녀가 누구요?

  이제 대령하겠사옵니다.

  김은부가 눈짓을 하니 시종을 들던 자들이 일제히 물러가고 그 대신 꿈에도 잊지 못하던 김처녀가 들어왔다. 전보다 어딘지 초췌해 보이는 김처녀는 그래도 정성껏 단장한 얼굴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다소곳이 절을 하더니 꿇어 엎드렸다. 그리고 손에 들었던 고운 보따리 하나를 앞으로 내밀었다.

  어느덧 방문은 굳게 닫혀지고 방장마저 내려진 속에 처녀와 단둘이만 대하자 왕의 가슴은 그저 뛰기만 했다.

  고개를 드오. 무엇이 그리 부끄럽다고?

  왕은 자기 자신의 수줍음을 꾸짖기라고 하듯이 이렇게 말했다. 처녀는 겨우 고개를 들었다.  가물거리는 촛불 아래 반짝이는 처녀의 두 눈은 억만가지 정을 담고 호소하는 듯 왕에게는 느껴졌다. 처녀를 만나면 이런 말도 하리라, 저런 말도 하리라, 벼르고 벼르던 왕이었다.  그러나 막상 대하고 보니 말문이 막혀 그저 망설일 뿐이었다.

  방안 공기가 어색해졌다. 그러자 처녀가 앞에 밀어 놓았던 보자기를 펴기 시작했다. 수줍은 왕은 그것을 보자 겨우 말할 거리를 찾았다.

  그건 또 무엇인고?

하고 보따리 속을 들여다보았다. 왕의 이마가 처녀의 이마와 거의 마주 닿게 되자 성숙한 여인의 향기가 코를 찔렀다. 왕은 무엇에 놀란 사람처럼 찔끔해서 물러 앉았다. 수줍어 보이고 연약해 보이는 처녀가 오히려 왕보다 대담했다.

  폐하, 이것을 갈아입으시어요.

  처녀는 왕을 똑바로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 말에 왕은 다시 용기를 얻었다.

  오, 또 옷을 지었구먼. 그대가 손수 지은 건가?

  예.

  솜씨도 참 곱구먼. 감도 좋고…

  왕은 손으로 부드러운 비단옷을 어루만졌다.

  이옷을 짓느라고 얼마나 수고를 했을고?

  별로 그렇게 느껴서 한 말은 아니었다. 말꼬리가 끊어질까 보아 그저 한 말이었다. 그러나 이미 수줍음을 거둔 처녀는 정이 넘치는 눈으로 왕을 응시하면서  한올 한올 바늘을 뜨면서 폐하의 용안을 그리어 보았사옵니다…한다.  그 말에

  오, 그렇듯 짐을…

  왕은 떨리는 소리로 이렇게 외치다가 말끝을 맺지 못하고 또 머뭇거린다. 다른 일에는 상상히 슬기롭고 과단성도 있는 왕이었지만 이런 일에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좋을는지 막막할 뿐이었다.

  폐하, 어서 갈아입으시어요.

  처녀는 먼저 하의를 펴든다.

  오, 갈아입어야지. 누가 지어 준 옷이라고..

  왕은 헌 옷을 훌훌 벗고 처녀가 들고 있는 옷을 받으려 했다. 그러나 처녀는 그 옷을 내어주지 않고 들고만 있었다. 입는 것을 돕겠다는 시늉이었다. 왕은 하의에 한쪽 다리를 꿰다가 너무 당황한 나머지 기우뚱하고 몸이 기울어졌다.

  폐하

  처녀는 육중한 왕의 상반신을 풍만한 자기 가슴으로 안아 받들었다. 아무리 수줍은 왕이었지만 이미 두 왕후를 맞은 몸이었다. 그러나 처녀는 왕의 두 팔이 허리에 감리려 하자 재빠르게 빠져나가 두어 걸음 물러섰다.

  폐하, 아니 되옵니다.

하면서 여전히 눈으로는 웃고 있었다.

  안 되다니… 이제 와서…

  왕은 가뿐 숨을 몰아 쉬며 다가 갔다.

  수줍었던 왕이지만 한 번 불길이 당겨지자 자제 할 줄 모르는 짐승처럼 변해 벼렸다. 그러나 처녀는 요리조리 피하며 지껄였다.

  폐하, 그러시면 아니 되옵니다. 그러시면 소녀는 혼사길이 막히옵니다.

  혼사가 무슨 상관인고? 궁중으로 데려가면 될 것 아닌고?

  궁중으로 데려가시면 소녀를 후궁으로 삼으시려는 뜻이옵니까? 소녀는 그런 자리는 싫사옵니다.  그런 뜻에서 소녀를 가까이 하신다면 혀를 끊는 한이 있더라도 폐하의 뜻을 쫓지 못하겠사옵니다.

  누가 후궁을 삼는다고 했는고? 어엿한 왕후를 삼겠다는 거지.

  왕은 앞뒤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렇게 말했다.

  왕후를 봉하시다니요? 지금 폐하께는 왕후가 두 분이나 계시지 않사옵니까?

  왕후는 몇 사람이든지 봉할 수 있는 거야. 둘이면 어떻고 셋이면 어떻담.

  셋 중에 하나란 말씀이어요? 그런 건 싫사옵니다. 소녀는 소녀만을 사랑하는 분에게 몸을 맡기고 싶사옵니다.

  아따! 왕후가 셋이라고 다 한결같이 사랑하겠소? 사랑이 가는 곳은 오직 한 곳 뿐이지.

  연정이 제법 왕의 입을 미끄럽게 했다. 처녀는 왕의 두 눈을 말끄러미 응시했다. 그리고는 왕이 식언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했는지 비로소 품에 안기었다.

  그 후 왕은 김은부의 집에서 엿새를 묵은 다음 황성으로 돌아갔는데 왕은 과연 환도 즉시로 처녀를 왕후로 삼았으니 곧 원성왕후(元城王后)이다.

  원성왕후는 왕에 제구대 덕종(德宗)과 제십대 정종(靖宗)을 낳았으니 깜찍한 시골 처녀의 야망은 최고로 이루어진 셈이다. 장녀를 왕후로 미는데 성공한 김은부의 세력은 갑자기 강대해졌다.  그리고 세력이 강해지면 그것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인정이다. 김은부는 장녀와 의논해서 자기 세력을 공고히 하는 뜻에서 두 딸을 다시 왕후로 들여보냈으니 곧 원혜(元惠)왕후, 원평(元平)왕후가 그렇다.

  이렇게 되니 왕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다던 처녀의 속삭임도 결국 왕의 마음을 낚으려는 술책이 아니었다면 부친의 정략결혼에 순정을 희생시킨 셈이다.

  그 후 김은부는 형부시랑(刑部侍郞), 호부상서(戶部尙書), 중추사(中樞使) 등을 역임하다가 현종 팔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딸들의 덕을 단단히 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骨肉의 愛憎

  女體開眼

  현종이 환도한지 팔년후인 현종 십년(西紀1,019) 십이월, 글안주는 고려 침공의 야심을 끝내 버리지 못하고 십만 대병으로 다시 내침했다. 이때 서북행영도통사 강감찬(西北行營都統使姜邯贊)은 이를 맞아 흥화진(興化鎭)과 자주 내구산(慈州來口山)과 마탄(馬灘) 등 여러 곳에서 여지없이 적을 격파했다. 뿐만 아니라, 그 이듬해에 적의 한 부대가 서울을 치려다가 실패하고 구주(龜州)를 지나 물러갈 때에는 추격전을 벌이어 치명상을 입히니 적이 입은 손해는 실로 막대했다. 적의 전사자의 시체가 들을 덮었고 고려군이 노획한 인마, 무기 등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으며 이 전투로 말미암아 적군 십만 중에서 살아간 자가 겨우 수천명에 불과했다고 하니 이 전투가 고려군에게는 얼마나 큰 승리였으며 적군에게는 얼마나 큰 타격이었는지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글안의 침공은 고려의 조야에 심한 고통을 주기는 했으나 그 대신 고려의 군력은 나날이 강성해지고 영토 또한 서북쪽으로 날로 늘어 갔다.

  이리하여 현종(顯宗), 덕종(德宗), 정종(靖宗), 문종(文宗), 순종(順宗), 선종(宣宗), 헌종(獻宗), 숙종(肅宗) 등을 거쳐 예종(睿宗)에 이르는 약 백년간은 외국의 침략도 잠잠해지고 국내 정세도 안정되어 고려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 반면 귀족들은 사치를 일삼고 권신들은 정권다툼에 눈이 어두어 고려 조정은 속으로부터 썩기 시작했다.

  이때 정계의 중심 인물이 되어 조야를 어지럽힌 자는 이자겸(李資謙)이었다. 이자겸은 중서령 자연(中書令子淵)의 손자로서 문벌을 배경으로 관계에 나아가 마침내 합문지후(閤門祗侯)라는 벼슬을 하게 되었다.

  자겸은 원래 문벌만 좋을 뿐 아니라 사람됨이 권모술수에 능하고, 야심이 만만했다. 그러므로 제십이대 순종(順宗)이 즉위하자 여러 가지로 운동을 한 끝에 자기 누이동생을 왕비로 들여보냈다.  이가 곧 장경궁주 이씨(長慶宮主李氏)이다. 물론 누이동생 덕으로 왕을 움직여 권세를 잡아보려는 것이었으며 요행히 누이동생 몸에서 왕자라도 탄생하면 국권을 한손에 좌우할 생각까지도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철석같이 믿던 순종은 즉위한지 불과 석달 만에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순종의 아우 운(運)이 왕위를 계승하니 곧 선종(宣宗)이다.

  순종이 세상을 떠남으로써 이자겸의 야심은 우선 시초부터 꺾인 셈이 되었다. 그런데 엎친데 덮치기로 뜻하지 않은 불상사가 일어났다.

  순종의 왕비로 들어갔던 장경궁주 이씨는 궁궐에서 나와 밖에서 거처하고 있었는데 얼마 아니해서 이상한 풍문이 돌기 시작했다.

  세상 일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야. 그렇게 귀한 몸이 관노(官奴) 따위와 정을 통하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큰 소리로 했다가는 큰일날 말이지만, 글세 장경궁주가 밤마다 자기 방에 천한 관노를 불러들여 갖은 추잡한 짓을 다 한다지 뭔가?

  그게 정말인가?

  장경궁주를 모시는 시녀의 입에서 난 말이니 틀림없을 걸세.

  그거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인데… 한 나라의 왕비가 되었던 분이 그래 사내가 없어서 관노 따위와 정을 통해?

  사람들은 이렇게 수근거리며 혀를 찼다. 이 소문이 마침내 자겸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자겸은 대경실색했다. 이 일이 사실이면 누이 동생의 처지는 말할 것도 없고, 거기 연루되어 자기 신변에까지 어떠한 화가 닥칠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자겸은 곧 장경궁주의 처소로 달려갔다.

  궁주, 요즈음 이상한 소문이 도는데 사실이요?

  무슨 소문인데요, 오라버니?

  궁주는 시침 뚝따고 이렇게 되물었다. 자겸은 누이동생의 모습을 이윽히 뜯어보았다. 독수공방의 처지를 감수하기에는 너무나 젊고 요염했다. 뿐만 아니라 윤기가 잔뜩 도는 눈매와 입술은 이미 사나이의 사랑을 흡족히 받은 흔적이 역력했다. 그것을 확인하자 자겸은 딱 잘라 말했다.

  궁주 방에 요즈음 외간 남자가 출입한다는 소문이 자자한데 그게 사실이냐 말이요?

  자겸은 이렇게 말하면 궁주가 당황해서 구구한 변명을 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궁주의 대답은 너무나 대담하고 뜻밖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남녀간의 정을 즐기고 사는데 나만 어째서 그것을 모르고 지내란 말씀이요?

  자겸은 기가 막혔다.

  그러니까 밤마다 남자를 불러들인다는 소문이 사실이란 말이구료?

  사실이요. 사실이니 어쩌겠다는 거요?

  궁주의 눈에는 독기와 함께 원한의 눈물까지 맺혀 있었다.

  나는 오라버님 권세욕의 제물이 돼서 허약한 임금에게 시집을 갔었소. 하루도 그 자리에 머물러 있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도 오라버님과 집안을 생각해서 상감이 살아 계신 동안은 젊은 불꽃을 끄고 죽은 듯이 살아왔소. 그렇지만 이제 상감이 승하하신 터에 무엇을 꺼리어 더 참고 지내라는 거요?

  장경궁주의 말은 한 인간의 절절한 부르짓음 이기도 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자기 가족들조차도 권세를 위한 이용물로 생각하고 있는 자겸에게는 천부당 만부당한 말이었다.

  그걸 말이라고 하오? 한 나라의 왕비였던 몸으로서 체통을 생각해 보오.

  체통이라구요?

  궁주는 자지러지게 웃었다.

  그 체통이란 말에 묶여 오늘까지 산송장의 신세를 면치 못한 거요. 나는 왕비이기 전에 한 여자로서 사나이의 사랑을 받고 싶소.

  이렇게 말하는 궁주의 말끝은 눈물로 흐려졌다. 그러나 자겸은 노발대발할 뿐이었다. 두 주먹을 부르르 떨고 당장에라도 누이동생을 때려 눕힐 기세였으나 그야말로 체면을 생각해서 겨우 그것을 참고 소리만 질렀다.

  에이 집안 망할 계집 같으니… 모처럼 왕비란 귀한 몸을 만들어 주었더니 고작 한다는 짓이 천한 관노와 정을 통하는 거야?

  천한 관노라구요?

  금방 울먹이던 궁주의 목소리는 싸늘한 비웃음으로 변했다.

  천한 관노밖에 누가 있어요? 그야말로 체면만 생각하는 사나이들 속에 나 같은 여자의 정을 풀어 줄 자가 천한 종 이외에 어디 있는 말이예요?

  이렇게 말하며 궁주는 이번엔 소리를 내어 통곡을 했다.

  에이, 더러운 것 같으니..

  자겸은 누이동생의 등에 침을 칵 뱉고 그 방을 뛰쳐나왔지만 그렇다고 감정에만 흐를 그가 아니었다. 자겸은 즉시 궁주의 시녀들을 불러 엄중히 다짐을 했다.

  앞으로 이곳에 외간 남자가 절대로 드나들지 못하도록 하라. 그리고 자난날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도 절대로 입밖에 내지 말도록 해. 만약에 그것을 어기는 자가 있으면 죽음을 면치 못할 줄 알어.

  자겸이 무엇보다도 염려한 것은 궁주의 추문이 임금의 귀에 들어가 자기 지위가 위태로워질 것을 걱정한 점이었다.

  그러나 자겸의 엄한 함구령에도 불구하고 비밀은 마침내 탄로되어 사실이 왕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왕비의 몸으로 관노와 통하다니… 전무후무한 추행이로다! 당장에 장경궁주를 폐출할 것이며,  그의 오라비 이자겸도 파직하도록 하라.

하고 엄한 분부를 내렸다.

  이리하여 야심만만하던 이자겸도 완전히 실각하고 만 셈이었다.

 

 

 

  濁流 奔流

  선종은 일찍이 널리 경사(經史)를 읽고 문장이 뛰어나서 즉위하기 전부터 국정에 참여했으니 문종 십년에는 국원후(國原侯)가 되었으며, 다시 상서령(尙書令)이 되었다. 그러니 만큼 정계의 내막에도 정통해서 이자겸의 사람됨도 대강 짐작하고 꺼리던 터였다. 게다가 그 누이 장경궁주의 추행까지 있고 보니 이자겸을 파직시킨 후 가까이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야심만만한 이자겸이 초야에 파묻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자기가 직접 나설 수 없는 처지라면 제삼자를 내세우고, 자기는 그 배경이 될 수도 있었다. 이자겸이 점을 찍은 사람은 역시 이자연(李子淵)의 손자이며 시중 정(侍中 )의 아들이며 자겸과는 사촌간

이 되는 이자의(李資義)였다.

  이때 이자의의 누이동생은 선종의 비로 원신궁주(元信宮主)가 되어 있었다. 그 뿐 아니라 원신궁주는 한산후 균(漢山侯 )을 낳았으니 비록 사숙(思肅)왕후의 소생 욱(昱)이 있기는 하지만 유력한 왕위 계승자였다. 그러므로 균이 왕위를 계승하는 날이면 이자의의 세도는 당대에 비길자가 없을 것이었다.

  또 이자의로 말할 것 같으면 항상 무뢰한을 모아가지고 활쏘기를 일삼는 건달이었다. 그런만치 잘 이용만 하면 실권은 자기가 쥘 수도 있는 일이다. 그래서 이자겸은 은근히 이자의와 왕래하고 있었다.

  선종 십일년(西紀 1,094) 오월, 이자겸을 멀리 하던 선종이 마침내 세상을 떠났다. 때가 왔다고 이자겸은 생각했다.

  물론 원자인 욱이 왕위를 계승하였지만 나이가 어릴 뿐 아니라 원래 몸이 약해서 언제 어떻게 될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므로 왕이 세상을 떠나는 날이면 한산후 균이 왕위를 이어받을 공산이 컸다.

  자겸이 그때를 기다리며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는데 성미 급한 이자의가 그만 일을 저질렀다.  이자의는 전부터 사귀어 온 건달들을 집에 모아놓고 큰 소리를 탕탕 쳤다.

  내 말 좀 들어들 봐, 상감께서 원래 허약하시니 오늘 내일 무슨 일이 있을는지 알 수 없단 말야. 그렇게 되면 대통을 엿보는 자가 많겠지만 우리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내 누이동생 소생인 한산후를 받들어야 해. 그렇게 되면 나는 조정의 정사를 마음대로 주름잡을 수 있을 거고, 너희들은 공신이 되어 한 자리 톡톡이 할 수 있단 말야.

이 말에 단순한 건달들은 좋다고 날뛰었다.

  건달들 뿐만이 아니었다. 이자의의 휘하에는 이미 합문지후 장중(閤文祗侯張仲), 중추원당후관 최충백(中樞院堂後官崔忠伯), 흥왕사대사 지소(興王寺大師智炤), 장군 숭렬(將軍崇列), 택춘(澤春), 중랑장 곽희(中郞將郭希), 별장 성보(別將成甫), 성국(成國), 교위 노점(校尉盧占),대정 배신(隊正裵信), 평장사 이자위(平章事李子威) 등이 가담하고 있었다.

  이자의는 자기 휘하에 문무요직에 있는 권신들까지 모아놓게 되자 제법 자신이 생겼다.

그리하여 궁중에 군사를 모우고 헌종에게 무슨 일이 있기만 하면 곧 무력으로 경쟁자를 물리치고 한산후를 왕위에 올려 앉히려는 일을 진행시키고 있었다.

  아 위태해. 위태한 짓이란 말야.

  이자겸은 이자의의 거동을 보고 이렇게 중얼거렸다. 지금은 비록 의기양양하지만 이자의의 처사에는 너무나 빈틈이 많았다. 강력한 경쟁자가 나서서 모함을 하면 오히려 되잡힐 구석이 너무나 많았다.

  교활한 이자겸은 공연히 이자의를 이용하려고 접근하다가는 자기도 큰 화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는 반대로 이때부터 이자의와 발을 끊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자의의 거사는 그보다 훨씬 능란하고 배경도 강한 경쟁자로 말미암아 꺾이고 말았다.

  그는 다름 아닌 문종의 제삼자이며, 순종의 아우이고, 헌종의 숙부뻘이 되는 계림공희( 林公熙)였다. 계림공은 어려서부터 남달리 총명하고 성품이 웅의과단(雄毅果斷)하였으며 경사를 널리 읽어 학싱 또한 일세에 뛰어났다. 그러므로 일찍 부왕 문종은 그를 극진히 사랑하여 칭찬해 말하기를

  후에 왕실이 기울어졌을 때 다시 일으킬 자는 바로 너밖에 없으니 자중하도록 하라.

했다고 전한다.

  선종 구년, 왕이 서경에 행차했을 때 계림공도 따라간 적이 있었다. 그때 계림공이 거처하는 막사 위에는 영롱한 보라색 구름이 자욱이 서리어 있었다. 이것을 보자 사람들은 서로 수근 거렸다.

  계림공 막사 위에 자운이 자욱하니 보통 일이 아닌걸!

  자운이란 임금이 될 분이 거처하는 곳에만 어리는 것이니까 아마 저분이 장차 상감이 되실는지도 알 수 없지.

  그러나 그런 징조보다도 선종의 원자가 아직 나이 어린데 왕의 건강이 좋지 않았으므로 왕이 세상을 떠나는 날이면 야심만만한 계림공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그렇게 수근거렸을 것이다.

  이자의가 한참 거사를 하려고 설치고 있을 때 계림공이 나이 사십이세, 사나이로서 대사를 치르기에 알맞은 때였다. 이때 계림공은 수태사겸 상서령(守太師兼尙書令)으로 있었는데 이자의들이 설치는 것을 보자 때는 왔다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아도 어린 조카 헌종을 물리치고 그 자리를 차지할 생각이 없지 않았지만, 그럴 만한 대의명분이 서지 않아서 망설이고 있던 참인데 이자의 등이 설치고 다니니 핑계는 아주 좋았다.

  그러나 신중한 계림공은 직접 표면에 나서지는 않았다. 전부터 뜻이 잘 통하는 평장사소대보(平章事邵台輔)를 은밀히 불렀다. 소대보는 일찍이 문종 말년에 호부시랑(戶部侍郞)을 지냈으며 선종 때에는 참지정사(參知政事), 중서시랑(中書侍郞) 등을 거쳐 헌종이 즉위하자 문하시랑 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가 된 역대의 중신이었다.

  소공, 근자에 궁중이 심히 소란스러운 듯한데 공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이렇게 물어보았다. 그러니까 소대보도 한숨을 쉬며

  글쎄올시다. 이자의 등이 무리를 모아들이며 설치고 있으니 무슨 일을 저질를지 알 수 없소이다.

이 말에 계림공은 비로소 가슴을 털어놓았다.

  상감이 어리신 틈을 타서 외척들이 저렇듯 날뛰니 이대로 두었다간 왕족끼리 왕위를 둘러싸고 서로 피를 흘리는 참사가 벌어질 것은 뻔한 일이 아니겠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일을 바로잡을 사람은 소공 뿐으로 아오. 여러 무장들 중에는 소공의 인덕을 흠모하고 소공의 분부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도 많으니 한 번 나라를 위해서 발벗고 나서시오.

  소대보는 일이 너무 중대하므로 얼핏 대답을 못했다. 그러자 계림공은 한층 음성을 높이어

  국가의 안위가 오직 공에게 달려 있고 일이 심히 시급한데 무엇을 주저하시오? 어서 마음을 정하시오.

하고 독려했다.

  이에 소대보도 마침내 마음을 정하고 거사할 것을 약속한 후 물러갔다.

  소대보는 가장 친하게 지내는 상장군 왕국모(王國 )를 만나서 의논해 보았다.

  왕국모는 선종 때 상장군이 되었으며, 헌종이 즉위하자 권상서 병부사(權尙書兵部事)가 된 군의 실력자의 한 사람이었다.

  왕국모도 이자의가 설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므로 즉시 수하장졸을 거느리고 이자의 일당이 방심한 틈을 타서 궁궐로 쳐들어 갔다.

  왕국모의 휘하에는 고의화(高義和)라는 장사가 있었다. 그는 전주 고산현(全州高山縣) 사람으로 성깔이 사납고 힘이 장사였다. 일찍이 무(武)에 뜻을 두어 그 용력으로 군보대정(軍補隊正)이 된 인물이었다.

  고의화는 여러 장졸에게 앞서서 궁중으로 달려 들어가다가 선정문(宣政門) 안에서 몇몇 부하의 호위를 받고 항전하는 이자의를 발견했다.

  이놈! 역적 이자의! 내 칼을 받아라.

  고의화는 이렇게 한 마디 외치더니 한 손으로는 상전을 호위하려던 자의의 부하들을 집어 던지고 한 손에 든 칼로 자의의 목을 베어버렸다.

  이렇게 되어 이자의의 야망도 덧없이 수포로 돌아가고 결국 계림공의 야망만 채워 주는 셈이 되었다. 괴수 이자의가 죽고 나니 그 도당들은 우왕자왕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러다가 장중, 최충백들은 선정문 밖에서 잡혀 죽고 말았다.

  이 기회에 역적들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

  왕국모는 이렇게 외치고 군사들을 나누어 이자의의 아들 작(綽)과 숭열, 택준, 곽희, 성보,성숙, 노점, 배신 등 십칠명을 잡아 죽이게 했으며 평장사 이자위 등 오십명을 사로잡았다가 나중에 멀리 귀양 보냈다.

  이자의의 난이 평정되자 헌종은 그 공으로 소대보로 판리부사(判吏部事)를 삼고 왕국모로 병부사(兵部事)를 삼고 고의화는 산원(散員)으로 승진시켰다. 그리고 이 세 사람을 다시 계속해서 관직을 올려 주는 한편 소를 내리어 이렇게 말했다.

  < 지난번 간신들이 반란을 도모하였다가 평정되었는데 이것은 오직 장상(將相)들의 공이라 하겠다. 비록 이미 난을 평정하였으나 앞으로도 힘껏 나라일에 이바지하도록 하라. >

  그러나 공신들의 관직을 올려 주고 칭찬을 하는 것만으로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원래 이자의 일당을 평정한 것은 계림공의 뜻에서 나온 것이며 계림공이 거사를 한 목적은 스스로 왕위에 오르기 위한 것이었다. 계림공은 심복인 공신들로 하여금 어린 왕을 은근히 강박하도록 했다.

  간신이 날뛰고 역적들이 날뛰는 것은 나라의 어른이신 상감이 유약하신 때문으로 아오.

  어지러운 국정을 바로 잡으려면 우으로 강한 상감이 계셔야 할 줄로 아뢰오.

  내놓고 말은 못하지만 어린 임금으로선 어지러운 정국을 감당하기 어려우니 강하고 능력 있는 계림공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것이 옳다는 말이었다.

  왕과 모후 사국태후(思肅太后)는 번민했다. 물론 왕위에 대한 애착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보다도 불안과 두려움이 앞섰다.

  실권을 쥐고 있는 것은 계림공과 그의 심복들이다. 그리고 계림공은 야심이 만만하다.

만약 끝까지 왕위를 물려주지 않는다면 무력하고 어린 왕은 생명조차 보존하지 못할는지 모른다.  여러 가지로 궁리한 끝에 왕은 눈물을 머금고 선위(禪位)할 것을 작정했다.

  짐은 선고(先考)의 유업을 계승하여 대위에 올랐으나 나이 어리고 몸도 약하여 국권을 능히 감당하지 못하고 백성들의 뜻을 펴지 못한바 많았느니라. 그리하여 권신들은 서로 음모와 파쟁을 일삼게 되고 간신과 역적들은 궁중에까지 침입하여 갖은 만행을 자행하였으니 이는 모두 짐의 덕이 부족한 탓이라. 써, 임금됨의 어려움을 통절히 느낀 나머지 왕위를 물려 줄 사람을 은밀히 가려 본 결과 숙부되는 계림공이야말로 왕자(王者)의 자질을 충분히 갖춘 분이라. 이에 그분에게 선위할 것인즉 신민들은 마땅히 그분을 받들어 모시도록 하라. 짐은 퇴위한 후 후궁에 거처하여 남은 목숨이나 보존할까 하노라.

  왕은 이렇게 말한 다음 곧 근신 김덕균(金德均) 등에게 명하여 계림공 희를 맞게 하고 뒤이어 선위한 다음 후궁으로 물러갔으니 때는 헌종 원년 초겨울 십월, 어린 왕이 등극한지 만 일년 사개월만이었다.

  그리고 애절히 바라던 남은 목숨도 제대로 보존하지 못했다. 그후 이년도 못 된 숙종 이년(西紀 1,097) 윤이월, 봄소식이 겨우 들리는 흥성궁(興盛宮)에서 나이 십사세로 헌종은 세상을 떠났다.

  헌종이 이렇게 일찍 세상을 떠난 원인이 원래 몸이 약했기 때문인지 또는 그를 눈에 가시로 안 새임금이 어떤 손을 썼는지 분명치 않지만 어쨌든 헌종의 운명은 이조 때의 비극의 소년왕 단종(端宗)의 운명을 방불케 하는바가 있다.

  헌종이 선위의 분부를 내리자 계림공은 목마르도록 재삼 사양하는 체하다가 마침내 중광전(重光殿)에서 즉위하였으니 곧 제십오대 숙종(肅宗)이다. 숙종은 즉위하는 날로 이자의 난의 불씨가 된 한산후(漢山侯) 형제 두 사람과 그들의 생모 원신궁주 이씨(元信宮主李氏)를 경원군(慶源郡=지금의 仁川)으로 귀양 보냈다.

  숙종은 능력 있는 임금이었으니 이 점도 이조 때의 세조(世祖)와 비슷한 점이 많다.

  그는 즉위한 이듬해에 주전관(鑄錢官)을 두어 주화(鑄貨)를 만들어 통용케 했으며 다시 숙종 칠년에는 해동통보(海東通寶)를 주조하여 통용케 하였다. 또 불교를 숭상하여 많은 불회(佛會)를 열고 민심을 종교의 힘으로 묶어 놓았다.

  한편 여진족의 침입에 대비하여 윤관(尹瓘)의 진언을 받아들여 군비 확충에도 힘을 기울였다.  이런 임금인 만큼 간교한 이자겸이 파고 들어갈 구석이 없을뿐더러 나이 이미 노경에 접어든 탓도 있고 해서 여색(女色)으로 꼬일 수도 없었다. 그러나 은인자중(隱忍自重), 이자겸은 끈덕지게도 때가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이자겸이 바라던 때는 마침내 오고야 말았다. 숙종 십년 구월 경부터 왕은 신병으로 앓기 시작 하더니 그 다음달 십월, 신병을 무릅쓰고 서경(西京)으로 행차했다가 도중에서 승하하고 말았다.

 

 

 

  姨母를 王妃로

  숙종이 승하하자 숙종의 장자 오( )가 대위를 계승했으니 곧 제십육대 예종(睿宗)이다.

예종은 어려서부터 유학(儒學)을 즐겼으며 숙종 오년에 태자가 되었다.

  예종은 즉위할 때 나이 이미 이십칠세였으나 좀처럼 왕비를 정하지 않았다. 예종은 원년 이월,  재상이 상서하여 납비(納妃)를 청하였으나 아직 탈상(脫喪)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허락치 않았다. 그것은 유학을 숭상하던 왕의 성품으로 보아 있음직한 일이었다.

  그 달 말경 다시 재상은 글을 올려 납비를 청했으나 역시 허락치 않다가 예종 삼년 정월에 이르러서야 비를 맞아들였는데 바로 이자겸의 둘째 딸이었다.

  이때 이자겸의 벼슬은 급사중(給事中)에 이르렀으니 왕이 즉위한 후 삼년 동안 얼마나 은밀히 활약했는지 가히 짐작할 수 있다.

  딸을 왕비로 들인 후 이자겸은 물을 만난 고기와 같았다. 날로 관직이 높아지더니 중서시랑(中書侍郞), 중서평장사(中書平章事), 문하평장사(門下平章事) 등을 거쳐 소성국 개국백(邵城國開國伯)에 책봉되었다.

  그러나 이자겸의 행운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예종 십칠년 삼월경부터 왕은 우연히 얻은 신병으로 고생하더니 사월에 이르러 병세가 몹시 위중했다. 이때 이자겸의 딸인 순덕왕후(順德王后)는 이미 예종의 장차 해(楷)를 낳아 열네살이 되었으며 이에 앞서 예종 십년에 왕태자로 책립까지 된 터이므로 예종이 승하하면 응당 자기 외손자인 태자가 왕위를 계승할 것이었다.  그러니 왕의 병이 심하면 심할수록 자겸의 기쁨은 컸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간교한 자겸은 그런 감정을 추호도 겉에 나타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순복전(純福殿)에 꿇어 엎드려 거짓 눈물을 흘리며 병든 왕을 위해서 빌기까지 했다.

  옛날 주무왕(周武王)이 병들었을 때에 주공(周公)은 지성으로 하늘에 기도하여 왕의 병이 회복한 일이 있사옵니다. 신 등은 모두 어리석고 변변치 못한 인간들로서 벼슬자리만 채우고 있었던 탓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힘이 모자라 백성들을 편안케 하지 못하였사오며, 덕이 없어 그릇된 짓을 많이 저질렀으므로 하늘이 진노하시어 그 화가 군부(君不)께까지 미친 줄로 아옵니다. 하오나 이는 오직 신 등의 허물이오니 바라건대 하늘은 밝히 살피시어 허물을 신 등의 몸에 내리게 하시고 군부로 하여금 병환으로 괴로움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옵소서.

  병든 왕은 자겸이 이렇듯 기도했다는 말을 듣고 감격해 마지 않았다. 그러나 왕의 병은 날로 위중해 갈 뿐이었다. 마침내 왕은 근신의 부축을 받아 일어나 앉은 다음 재상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했다.

  짐이 부덕한 탓으로 하늘이 벌을 내리어 병이 낫지 않으니 어찌 백성들을 다스리고 군국(軍國)의 대사를 통어(統御)하겠는가? 태자는 비록 나이 어리지만 덕행이 숙성하니 제공은 마음을 합해서 보필하고 선조들이 이룩하신 사직을 지키도록 하라.

  왕이 말을 마치자 여러 신하들은 엎드려 눈물만 흘릴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왕은 다시 태자를 불러 말하기를

  내 병이 날로 더해서 나을 가망이 없으니 나라의 무거운 짐을 너에게 물려 주마. 내 평생에 한 일을 돌이켜 보면 잘한 것은 적고 잘못한 것은 많구나. 그러니 아비를 본받지 말고 마땅히 옛 성현의 가르침과 우리 태조의 교훈을 받들어 오래도록 백성들을 편안케 하

라.

  이 말에 태자 역시 고개를 숙이고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그러자 왕은 근신 한안인(韓安仁)에게 명하여 국새를 가져다가 태자에게 주었다. 그리고는 며칠 후에 선정전에서 승하하였으니 이때 왕의 나이 사십오세였다.

  이제 모든 일이 이자겸의 뜻대로 된 셈이다. 그래도 왕이 승하하자 여러 왕제(王弟)들은 태자가 나이 어린 것을 기화로 대통을 엿보고 있었다. 그러나 이자겸이 그 기회를 놓칠 까닭이 없었다. 선수를 써서 즉시 태자를 받들어 중광전에서 즉위하도록 했으니 곧 제십칠대 인종(仁宗)이다.

  인종은 즉위하자 모후 순덕왕후 이씨 즉 이자겸의 둘째 딸을 문경왕태후(文敬王太后)로 추존(追尊)하고, 이자겸을 수태사 중서령 소성후(守太師中書令邵城侯)로 삼았다. 누이동생 원신궁주로 말미암아 실각한지 실로 근 삼십년 만에 명실공히 국권을 손아귀에 쥔 셈이었다.

  이자겸은 이제 국권을 자기 마음대로 하게 되자 관직도 제멋대로 올렸다. 인종 이년 칠월,  그는 왕에게 자기 자신을 조선국공(朝鮮國公)으로 책봉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이자겸은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 해 팔월 자기의 셋째 딸을 왕비로 삼게 했다. 그러니 말하자면 인종은 어머니의 여동생인 이모를 아내로 삼은 셈이었다.

  이자겸이 이런 부자연한 혼사를 강행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정권을 독점하기 위한 욕심에서였다.  다른 가문에서 왕비를 맞아들였다가 왕의 총애가 그리 쏠린다면 자기 일문의 권세에 금이 갈는지도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다.

  왕의 외조부인 동시에 장인이 된 이자겸의 권세가 얼마나 도도했는지 다음과 같은 일로도 짐작할 수 있다.

  왕은 백관으로 하여금 이자겸을 대할 때 태자를 대하듯 예를 갖추게 했으며, 그 생일을 인수절(仁壽節)이라 해서 만백서이 하례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되니 자겸의 일가 친척은 모두 조종의 요직을 차지했으며, 그 자손들의 저택은 왕성의 요지에 즐비하여 마침내 왕의 권세를 능가하는 형편이었다. 자겸 일문이 세도의 극에 달하자 그에게 아첨하는 무리, 뇌물을 바치는 무리들은 벼슬을 받게 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공이 있고 유능한 인사라도 실각을 하게 마련이었다. 그러기에 이자겸의 집에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바치는 뇌물이 산처럼 쌓였으며 먹다 남아서 썩는 고기가 항상 수만근이나 되었다고 한다.

  이자겸은 셋째 딸이 왕비가 된 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지 인종 삼년 정월, 다시 넷째 딸을 왕비로 밀었다.

  셋째 딸을 왕비로 들이밀 때에는 그래도 이모와 결혼하는 것을 간하는 신하도 있었지만 넷째 딸까지 왕비가 되자 너무 기가 막혔던지 혹은 그 권세에 눌리어 입을 못 떼었던지 아무도 간하는자조차 없었다.

  이자겸의 행동은 나날이 방자해지고 국정은 문란해 갔다. 인종 사년 정월, 왕도 어느덧 나이 십팔세가 되었다. 비록 성숙한 성년은 못되지만 그래도 세상 물정을 대강 짐작할 나이는 되었다. 그러니 상식에 벗어나 거의 광인에 가까운 이자겸의 처사가 마음에 거슬리지 않을 리 없었다. 그날도 이자겸의 행패를 전해 듣자 왕은 혼자 소리처럼 중얼거렸다.

  그 사람이 만일 외조부만 아니라도 가만두지 않을 텐데…

  이렇게 왕이 중얼거리는 것을 재빠르게 들은 것은 내시지후 김찬(內侍祗侯金粲)과 내시녹사 안보린(內侍錄事安甫鱗)이었다. 김찬과 안보린은 전부터 이자겸의 횡포를 은근히 미워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문득 입밖에 낸 왕의 말을 듣자 심중으로 크게 반가와했다.

  여보시오, 안공. 상감께선 자겸의 외손자가 되시므로 자겸이 하는 일은 옳게만 보시는 줄알았더니 그렇지도 않으신 모양이구료.

  그러게 말이요. 그러니 만일 뜻있는 사람이 있어서 자겸을 잡아다가 귀양을 보내든지 한다면 상감께서도 기꺼워 하실 게고 나라 일도 바로 잡힐 게 아니요?

안보린도 즉시 맞장구를 쳤다.

  그러나 우리에게 무슨 힘이 있어야지. 그자를 꺾자면 무력이 필요한데 무신들과 통 접촉이 없는 자리에 있으니 답답하구료.

  김찬이 이렇게 한탄하자, 안보린은 무릎을 탁치며 말했다.

  김공, 염려마오. 좋은 사람이 하나 있소.

  좋은 사람이라니?

김찬은 두 눈을 번뜩이며 다가 앉았다.

  추밀원사 지녹연(樞密院事智錄延) 공과 의논하면 무슨 수가 날 거요. 그 분도 자겸의 행패를 항상 미워할 뿐만 아니라 군부와도 잘 통하는 분이거든.

  지녹연은 상장군좌복야 지채문(上將軍左僕射智蔡文)의 증손이로서 일찍이 동북면 병마판관(東北面兵馬判官)이 되어 재간을 발휘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숙종 구년에는 여진을 정벌해서 큰공을 세워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가 되었으며, 인종조에 이르러 다시 추밀원사가 되었다.  그러니 군부에 동지와 후배들이 많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지녹연은 원래 성격이 사납고 학문을 즐기지 않았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간혹 학문의 필요성을 논하는 것을 들으면 코웃음을 치기가 일쑤였다.

  켸켸묵은 책장만 뒤적이며 글을 읽어 무얼 하자는 거야? 사람이 크게 되자면 글보다도 세상 일을 바로 볼 줄 아는 지혜와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만 있으면 충분하단 말야.

  이런 성격의 소유자이므로 김찬과 안보린이 의논을 하자 주먹을 휘두르며 즉시 찬동했다.

  상감의 뜻이 그러시다면 응당 궐기해야지, 조금도 염려들 마시오. 상장군 최탁(崔卓), 오탁(吳卓),  대장군 권수(權秀) 등과는 막연한 사이이니 내가 말만 하면 당장에 궐기할 것이요.  그러나 상감의 참 뜻을 직접 들어야 거사할 수 있으니 나하고 같이 입궐합시다.

  지녹연은 이렇게 말하고 즉시 입궐하여 인종을 뵈었다.

  상감, 자겸 등의 횡포를 미워하시고 기를 멀리 쫓아보릴 뜻이 계시단 말씀을 들었사온데 사실이옵니까?

  지녹연은 이렇게 탁 터놓고 말했다. 무의식중에 중얼거린 일은 있지만 왕은 아직 거기까지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또 신하들이 막상들고 일어나니 슬며시 겁도 났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확실한 대답을 하지 않고 내시 김안(金安)을 보내어 가장 믿을 수 있는 공신 김인존(金仁存)과 이수(李壽) 등의 의향을 물어 오도록 했다.

 

 

 

 

  이미 때는 늦고

  김인존은 선종조의 공신 시랑평장사 문정공 상기(文貞公上琦)의 아들이다. 천성이 명민하여 소년에 등과하고 한림학사, 수태부, 문하시중, 판리부사 등을 역임했으며, 선종, 헌종, 숙종, 예종을 거쳐 인종에 이르는 동안 조정의 중요한 정사에는 다 참여한 공신이었다.

  또 문장이 뛰어나 숙종 칠년 요나라 사신 맹초(孟初)가 왔을 때 접빈관으로 시를 주고 받아 천재라는 찬사를 들은 일도 있었다.

  이리하여 역대 임금의 신임을 두텁게 받고 극진한 예대를 받다가 예종이 승하하고 어린 인종이 대통을 계승하자 외조부 이자겸의 행패로 말미암아 화가 미칠 것을 미리 짐작했다.

그래서 사전에 화를 모면할 생각으로 관직을 사할 것을 상주하였으나 워낙 인망이 두터운 공신이라 허락되지 않았다.

  그래도 김인존은 요직에 앉아 있는 것이 불안스러웠다. 그래서 하루는 입궐하는 길에 빙자해서 관직을 면해 줄 것을 간청했다. 이리하여 마침내 재상 자리를 떠나 판비서성사 감수국사(判秘書省事監修國史)라는 실직으로 물러 앉았다. 말하자면 선견지명이 있고 처신이 신중한 현인(賢人)이었다.

  인종의 분부를 받고 김안이 찾아와서 이자겸을 제거하기 위한 거사 여부를 문의하자 김인존은 잠시 묵묵히 생각에 잠기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원래 상감께서는 성장하셨으니 정으로 보아도 외가를 배신할 수 없지 않소?

  그야 그렇습죠. 그렇지만 그 양반(李資謙)의 처사가 너무 지나쳐서..

하고 김안이 거사하는 이유를 설명하자 김인존은 그 말문을 막아버리며

  뿐만 아니라, 그 일당이 조야에 가득해서 도저히 그 힘을 꺾을 수 없는 터이니 경거망동 하지 말고 때가 오기를 기다리도록 하시오.

  김안은 돌아가서 김인존의 뜻을 왕에게 보고했다. 그러나 그 말을 듣고 있던 지녹연이펄쩍 뛰었다.

  이러니까 소위 학자님들과는 답답해서 일을 같이 할 수 없단 말야. 이럭저럭 따지기만 한다면 세상 일 쳐놓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란 말이요? 폐하! 화살은 이미 활시울을 떠났소이다.  우리가 거사하리라는 것은 이자겸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는 모양이니 거사를 하다 실패하건 그대로 주추물러 앉건 죽기는 매한가지입니다. 부질없이 개 죽음을 하지 말고 대의를 위해서 궐기해야 합니다.

  마음 약한 왕은 지녹연이 강경히 주장하자 이번에는 그 편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그래서 마침내

  그렇다면 경들에게 만사를 맡길 터이니 좋도록 하시오.

이렇게 승낙하고 말았다.

  지녹연, 김찬, 안보린 등은 곧 상장군 최탁, 오탁, 대장군 권수 등을 불러 이자겸을 거꾸러뜨릴 계책을 강구했다.

  그러자 무신들은

  이자겸이 힘을 쓰는 것은 척준경(拓俊京) 형제의 무력을 믿는 때문이요. 그러니 이 기회에 그놈들도 없애버려야 합니다.

이렇게 주장했다.

  척준경은 곡주(谷州)사람으로 집안이 가난해서 글을 배우지 못하고 무뢰한들 속에 끼어 세월을 보내다가 숙종이 계림공으로 있을 때 그 문중에 드나들며 종자가 되었다.

  그 후 숙종이 등극하자 추밀원별가(樞密院別駕)가 되었으니 이 별가란 직책은 종구품도 못되는 한낱 이속(吏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자리가 척준경에게는 입신의 발판이 되었다. 숙종 구년 평장사 임간(林幹)을 따라 동여진 정벌에 출정하여 공을 세우고 천우위녹사(千牛衛錄事)가 되었다. 즉 천우위는 육위(六衛)의 하나로서 상령(常領) 一령, 해령(海領) 一령, 상장군 一명, 대장군 一명, 장군 二명 등 一천명으로 구성된 정규군이다. 그러므로 척준경은 추밀원에서 전직되어 무관이 된 셈이며 군부에 세력을 부식하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그 후 다시 예종 이년에는 중군병마 녹사(中軍兵馬錄事)로서 윤관(尹瓘)을 따라 동여진 정벌에 출정하여 석성 영주(石城英州)싸움에 대승한 공으로 합문지후(閤門祗候)가 되었다. 그리고 인종 초에는 이부상서 참지정사(吏部尙書參知政事)를 거쳐 문하시랑 평장사가 되었으니 실로 관직이 정이품에 이르렀다.

  이와같이 미천한 집에서 태어나 자기 실력으로 입신한 자들에게서 흔히 보듯이, 척준경은 무엇보다도 문벌에 대해서 선망과 비굴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자겸이 그의 군부에 대한 영향력을 이용하려고 가까이 하자, 척준경은 오히려 감격하여 견마지로(犬馬之勞)를 아끼지 않게 된 것이다.

  이리하여 왕의 밀지를 받은 지녹연 등은 무신들과 함께 만반태세를 갖추고 때를 기다리다가 인종 사년 이월, 마침내 거사를 하게 되었다. 그날 궁중에는 척중경의 동생 준신(俊臣)과 준경의 아들로서 왕의 내시가 된 순(純)이 있었다. 무신들은 궁중에 들어가자 우선 이 두사람을 죽이고 시체를 궁문 밖으로 내던졌다.

  자, 이제는 괴수 이자겸과 척준경만 죽이면 된다.

  무신들은 이렇게 외치며 두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이때 이자겸은 척준경과 함께 자기 집에 있었는데 궁중에 배치해 두었던 심복으로부터 변이 일어났다는 급보를 받았다.

  이자겸은 권모술수에는 능하지만 한편 겁이 많은 인간이었다.

  뭐라구? 무신들이 들구 일어났다구? 이거 큰일 났구나! 아무 준비도 없는데 이런 일을 당했으니 인젠 꼭 죽었구나!

  새파랗게 질려서 와들와들 떨기만 하는 이자겸에 비해 척준경은 일찍이 전진속을 왕래한 터이라 겁만 먹고 있지 않았다. 더욱이 아우와 아들까지 피살된데 대한 분노가 그를 용감하게 한 것이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요. 죽든 살든 싸울 때까지 싸워 봅시다.

  그리고는 가까운 곳에 있는 부하 장졸을 모아보니 겨우 삼십명도 못 되었다.

  아니 이걸 가지고 어떻게 수 많은 병력을 당해 낸다는 건가? 차라리 그러지 말고 피신이나 하세.

  겁 많은 이자겸이 다시 이렇게 말하니까 척준경은 무섭게 눈을 부라리며

  달아나긴 어디로 달아난단 말이요? 결국은 잡혀서 죽긴 매 한가지니까 시원히 싸워 보고나 죽겠소.

  그리고는 삼십명 미만의 병력을 이끌고 궁중으로 향했다. 궐문밖에 당도하자 준경은 부하들을 모아 계책을 내렸다.

  궁중 안에 얼마 만한 병력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 병력이 많은 것처럼 알게 하는 것이 싸움에는 유리하니 사방에 흩어져서 되도록 야단스럽게 함성을 지르도록 해라. 그런 다음,  여기 저기 불을 지르고 쳐들어 가도록 하자.

  준경의 부하들은 즉시 궁궐을 에워싸고 요란하게 함성을 질렀다. 이때 지녹연의 지시를 받은 상장군 최탁 등은 아직도 이자겸과 척준경을 찾느라고 궁중을 수색하고 있다가 뜻밖에도 궁궐밖에서 함성이 일어나자 대경실색했다.

  이크 ! 큰일 났구나!

  적의 도당이 어느새 대군을 모아 가지고 궁궐을 에워싼 모양이다.

  불과 삼십명 미만의 병력일 줄을 꿈에도 모르는 그들은 그저 우왕좌왕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이번에는 여기저기서 불길이 오르기 시작했다.

  저것 봐라! 저 불길만 봐도 적의 병력은 대단한 모양이야.

  최탁의 무리들은 여기 저기서 줏어 모은 오합지졸이었다. 그러므로 한 번 겁을 먹자 도무지 명령이 서지 않았다.

  그저 싸울 생각은 하지 않고 제 목숨 살기에만 바빴다.

  담 너머로 이러한 광경을 엿본 척준경은 용기 백배하여 부하들을 이끌고 담을 뛰어넘어 들어가 닥치는 대로 불을 질렀다.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불길은 삽시간에 퍼져 임금이 거처하는 내전까지 연소되었다. 그리하여 임금은 하는 수 없이 근신들의 호위를 받으며 산호정(山呼亭)으로 몸을 피했다.

  타오르는 화염, 우왕좌왕하는 무신들, 울부짖는 궁녀들! 궁중은 완전히 수라장으로 화했다.  그리고 이러한 혼란이야말로 이자겸, 척준경들에게는 유리했다. 비록 삼십명 미만의 병력이지만 그들은 오래 길러온 심복이므로 명령만 떨어지면 수족같이 움직여 주었다.

  이리하여 최탁, 오탁, 권수 등 왕당파(王黨派)무신들을 차례로 참살하고 그날 궁중에 숙직하고 있던 신하들까지 모조리 죽여버렸다.

  이때 궁궐 밖에서 충천하는 화염을 바라보자, 왕의 신변을 염려하여 비분강개한 충신들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척준경 등의 무력을 두려워하여 아무 손도 쓰지 못하고 있는데 단 한사람 홍관(洪灌)이란 노신만은 즉시 자기 집을 뛰어나왔다.

  홍관은 당선군 사람으로 과거에 급제하여 학사가 되었으며 예종의 명을 받아 삼한(三韓) 이래의 사적을 편찬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인종조에 이르러서는 조수사공상서 좌복야(朝守司公尙書左僕射)에 임명되었다.

  이자겸 일당이 궁중에 불을 지르고 상감을 해치려 하는데 내 어찌 가만히 있겠는가?

  가족들이 말리는 손을 뿌리치고 홍관은 부르짖었다.

  임금이 욕을 당하면 신하는 마땅히 죽어야 하건만 내 어찌 편안히 보고만 있겠는가?

  늙고 병든 몸이라 몇 차례나 고꾸라지며 궁궐 서화문(西華門)에 당도했다. 그때 서화문은 굳게 닫혀 있어서 아무리 두드려도 열리질 않았다. 홍관은 사람들의 손을 빌려 담을 기어 올라 궁중으로 내려뛰니 다리 뼈는 부러지고 온 몸은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래도 겨우 기어서 왕의 곁에까지 다가갈 수 있었다.

  이 난리로 궁중은 잿더미가 되고 남은 건물은 겨우 산호정, 상춘정(賞春亭), 상화정(賞花亭), 세 정자와 내제석원(內帝釋院)의 회랑(回廊) 수십간만 남길 정도였다고 한다.

  왕당파에게 요행히도 승리를 거둔 이자겸 등은 김찬 등 살아 남은 왕당파를 혹은 죽이고 혹은 귀양 보내어 일소한 다음 왕이 궁중에 있으면 또 어떤 계교를 꾸밀는지 알 수 없다 해서 강제로 멀리 떨어진 연경궁(延慶宮)으로 쫓아 버렸다.

  이때 홍관은 늙고 병든 몸이나마 억지로 왕을 따라 길을 떠났는데 워낙 몸은 쇠약하고 다리까지 다쳐서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이것을 보자 무지막지한 척준경은

  이 늙은 것이 왜 이리 추군추군하게 굴까?

  소리치고는 한 칼에 늙은 충신의 목을 베어 버렸다.

  연경궁에 유폐된 왕은 이제 완전히 자유를 잃은 몸이 되고 말았다. 국사를 직접 처결할 수 없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조차도 자겸 일당의 감시와 극도의 제한을 받기에 이르렀다.

  내 이럴 줄 알았으면 거사를 말리던 김인존의 말을 들을 것을…

  줏대 없는 왕은 일이 실패로 돌아가자 이렇게 뉘우쳤지만 결국 부질없는 넋두리일 뿐이었다.

 

 

 

 

  王妃의 妙計

  마음 약하고 겁 많은 왕은 거사에 실패하자 만사를 체념하게 되었다.

  (이 이상 왕위에 앉아서 버티다간 장차 목숨조차 보존하기 어려울 게다. 차라리 자겸에게 왕위를 물려 주는 편이 좋지 않을까? 그렇게 하면 설마 죽이기까지는 않겠지.)

  이런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그 뜻을 자겸에게 전해 보았다.

  왕위를 내게 물려 주시겠다구?

  그 말을 들은 자겸은 마음 속으로는 뛸 듯이 기뻤지만 그렇다고 당장 받아들이다면 뜻있는 신하들이 들고 일어날 염려도 없지 않았다. 그래서 좋은 기회가 오기만 기다리리며 망설이고 있는데 이 일을 재빠르게 알아차리고 애를 태운 사람은 중서시랑 평장사 이수(李壽)란 중신이었다.

  이수는 평장사 이예(李預)의 아들로서 어려서부터 자질이 뛰어나 많은 촉망을 받았다. 일찍이 외조부되는 시중 최유선(崔惟善)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 애는 장차 큰 인물이 될 테니 잘 기르도록 하라.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말과 같이 과연 성장함을 따라 역학등제(力學登第)하여 서경유수, 병부시랑, 공부상서 등을 거쳐 인종 때에 이르러서는 중서시랑 평장사가 된 것이다. 지난번 왕이 거사하기 전에 김인존과 함께 이수에게도 문의를 한 일이 있었는데 이수 역시 그 일을 만류했다.

  왕은 그 말을 듣지 않고 일을 저질러 이 지경이 되었으니 이수는 답답하고 분통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자겸에게 왕위를 물려 주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어느날 왕은 이자겸, 이수 등 여러 신하들이 모여 앉은 자리에서 다시 왕위를 물려 줄 뜻을 비쳤다. 그러니 이자겸이 염치불구하고 그 뜻을 받아들인다면 이 나라의 사직은 마침내 왕씨의 손에서 이씨의 손으로 넘어가고 말게 된다.

  이때 이수는 재빠르게 이자겸의 곁으로 다가 가더니 그 손을 잡고 이렇게 선수를 써서 말했다.

  공은 원래 충성이 지극하신 분이니 상감께서 그런 말씀을 하신다고 받아들이시진 않으실거요,  그렇지 않소?

  그리고는 이자겸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렇게 되니 이자겸도 뻔뻔스럽게 왕의 뜻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이를 말씀이요? 아직 연강역부하신 상감이 계신데 늙은 신하의 몸으로 감히 그런 무엄한 일을 생각조차 할 수 있겠소?

  그런 다음 왕의 앞에 부복하여 억지로 눈물을 짜내어 아뢰었다.

  폐하! 그런 말씀 아예 마시고 나라와 백성을 위해서 정사에 힘쓰시기만 바라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자겸의 야망은 자라가기만 했다. 뿐만 아니라 이대로 가다가 만일 왕당파가 다시 결속해서 일을 일으킨다면 언제 어떻게 될는지 불안스럽기도 했다.

  (왕이 살아 있는데 왕위를 물려 받는다면 말썽도 일어나겠지만 만일 왕이 죽어버린다면 일은 제물에 익어버릴 게 아닌가?)

  이자겸은 이렇게 생각학 되자, 이번에는 왕의 목숨을 빼앗으려는 계획을 꾸몄다. 이자겸은 일찍이 자기 세력을 부식하기 위해서 셋째 딸과 넷째 딸을 인종의 비로 만들었는데 넷째 딸은 나이도 어려 왕과 걸맞을 뿐만 아니라 원래 성품이 다정해서 비록 이모이지만 어느 정도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왕을 죽이자면 그 애를 이용하는 게 좋겠다. 왕도 그 애 말은 어느 정도 믿으니까.)

  이자겸은 은밀히 떡 속에 독약을 넣고 넷째 딸에게 주면서 신신당부를 했다.

  이 떡은 상감을 위해서 특별히 만든 것이니까 다른 사람은 손대지 말고 상감께만 바치도록 해라.

  그리고는 같은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그것이 오히려 비의 의심을 샀다.

  (아버님은 원래 상감을 해치려고까지 생각하는 분인데 무슨 정성이 뻗쳐서 상감께 떡을 만들어 바칠까?)

  곰곰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가

  (혹시 이 떡 속에 해로운 약이라도 넣었다면?

  왕비는 등골이 오싹해 졌다.

  비록 정략결혼이긴 하지만 왕에게 애정을 품고 있는 비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왕의 목숨을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떡이 해로운 것인지 어쩐지 시험해 봐야겠다.)

  마침 뜰 아래 새들이 모여서 놀고 있었다. 비는 떡 한 개를 던져 보았다. 새들은 그 떡을 쪼아먹더니 이내 전신을 떨며 죽어갔다. 떡 속에 독약을 넣은 것이 분명했다.

  비는 즉시 그 떡을 땅 속 깊이 묻어 버렸다. 그리고 빈 그릇을 가지고 왕의 거처로 들어 갔다가 도로 나왔다. 얼마 후 비가 나오자 자겸은 다급하게 물어보았다.

  상감께 그 떡을 드렸느냐?

  그럼요.

  비는 잔인무도한 부친의 얼굴을 쏘아보며 대답했다.

  그래 상감께서 그 떡을 드시더냐?

  아니요.

  드시지 않았단 말이냐?

  먼저 냄새를 맡아 보시더니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하시면서 창밖에 던져 버리시던데요.

  창밖에 던져 버리셨다?

  자겸은 독한 눈초리로 딸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설마 네가 무슨 수작을 한 건 아니겠지?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그까짓 떡쯤 상감께서 잡수시지 않았다고 그리 야단하실 건 없으시지 않아요? 그렇지 않으면 그 떡을 꼭 잡수시게 해야 할 이유라도 있나요?

  날카롭게 반문하는 딸의 말에 자겸은 오히려 뜨끔해서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년이 아무래도 이 애비보다 왕을 더 생각하는 모양인데…)

  자겸은 여러 가지로 생각한 끝에 이번에는 국을 끓여서 그 속에 독약을 탄 다음 다시 딸에게  들려 보냈다. 그러나 지난 일도 있고 하므로 이번에는 먼발치로 따라가면서 감시하고 있었다. 비는 그 국도 의심스러웠지만 자겸이 감시하고 있으니 버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어떡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좋은 꾀를 생각해냈다.

  왕의 앞에까지 국그릇을 가지고 들어가다가 일부러 비틀거리며 국을 엎질러 버렸다. 이렇게 해서 비는 두 번이나 왕의 목숨을 구해 주었다.

  이런 일이 거듭되니 자겸은 왕을 독살할 계획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일을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의심만 더 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 후 자겸이 왕실의 무기를 자기 사제로 옮겨 가려고 한다는 보고를 한 신하가 있었다.

  그는 바로 군시소감(軍器少監)으로 있는 최사전(崔思全)이었다. 최서전은 탐진(耽津)사람으로 처음에 내의(內醫)로 있다가 여러 관직을 거쳐 군기소감이 된 사람인데 눈치 빠르고 권모술수(權謀術數)에 능한 모사였다.

  무기를 제 집으로 날라가려고 한다? 그렇다면 그놈이 인제 난을 일으켜 짐을 죽이려 하는구나.  어찌하면 좋겠는고?

  왕은 최사전의 소매를 잡고 애걸하듯 말했다. 그러니까 최사전은 눈을 깜박깜박하고 무엇을 생각하더니

  폐하, 자겸을 물리치시려면 단 한가지 방법이 있사옵니다.

  왕은 귀가 번쩍 띄었다.

  그 방법이란 어떤 것인고?

  자겸이 갖은 행패를 다 하는 것도 오직 군부를 장악하고 있는 척준경과 결탁한 때문이옵니다.  하오니, 만약 준경을 이자겸과 떼어 놓고 폐하의 편으로 속하게 한다면 이자겸의 세력을 꺾기란 아주 쉬운 줄로 아옵니다.

  그렇지만 준경은 자겸의 심복일 뿐 아니라 서로 혼사를 맺은 인척이기도 하고 또 준경의 아우 준신과 아들 순은 지난번 거사 때 관병의 손에 피살되었으니 어찌 우리 편이 될 것을 응낙하겠소?

  왕이 이렇게 말하자 사전은

  폐하, 과히 심려 맙시오. 신이 한 번 준경을 설복해 보겠사옵니다.

  그리고는 곧 준경의 집으로 향했다.

  준경은 사전이 왕의 편인 줄을 모르는 터이므로 선선히 자기 방으로 맞아들였다. 그런데 자리를 정하자마자 사전은 뜻하지 않은 말을 한다.

  장군, 오늘은 장군께 신하로서 옳고 그름을 말씀 드리로 왔소.

  준경은 원래 무식한 자이므로 선비를 대하면 되도록 자기 무식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 입을 열지 않는 버릇이 있었다. 그러므로 잠자코 사전이 하는 말만 듣고 있었다.

  우리 신하된 자는 태조대왕을 비롯해서 열성(列聖)의 신령이 하늘에서 굽어 보심을 알아야 하오. 그러하거늘 요즈음 이자겸은 불측한 생각을 먹고 무엄한 흉계를 꾸미는 모양이니 어찌 하늘이 벌을 내리지 않으시겠소?

  단순한 준경은 차츰 사전의 변설에 말려 들어갔다.

  이자겸 뿐만이 아니요. 이자겸과 한패가 되어 역모를 하는 사람도 죄는 마찬가지가 아니겠소?  또 이자겸은 원래 신의가 없는 자이니 일이 성사되는 날에는 저 자신의 부귀영화만 생각했지 동지들에게 보답할 줄은 전혀 모를 거요. 그렇지 않소 장군?

  최사전은 일단 말을 끊고 준경의 얼굴을 이윽히 바라보았다. 준경은 역시 말이 없었다.

그러나 마음이 많이 동한 모양이었다.

  준경의 마음이 동한 데에는 또 다른 까닭이 있었다. 그보다 얼마 전에 자겸과 준경의 하인들이 서로 다투다가 준경의 하인이 자겸의 아들에게 매를 맞은 일이 있었다. 성미가 괄괄한 준경은 즉시 사람을 보내어 자겸에게 항의를 했다. 그러나 자겸의 가족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배짱을 부렸다.

  (자겸이 권세를 유지하는 것은 나 때문인데 이제 세력을 잡았다고 저렇게 배짱을 부리니 정말 괘씸한걸!)

  이렇게 원망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므로 사전의 말을 듣자 귀가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상감께서도 장군의 충성심을 항상 믿고 칭찬하고 계시오. 다만 장군이 자겸과 손을 끊지 못하시는 것은 지난날의 정의를 생각하시는 때문이라는 것도 잘 알고 계시오. 그러니 이제 곧 역적과 손을 끊고 진충보국하시면 나라의 큰 공신이 될 뿐 아니라 후세까지도 높은 이름이 길이 남을 거요.

  준경의 마음은 마침내 완전히 돌았다.

  공의 말씀은 하나 하나 다 지당하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어떤 일이요?

  이렇게 물어보았다.

  장군이 하실 일은 먼저 상감의 신변을 보호하시는 일이요. 우선 군졸을 인솔하고 입궐 하시오.  한시라도 지체하면 자겸이 또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겠으니 말이요.

  이에 준경은 자기 집에 머물러 있던 이십명 가량의 부하를 거느리고 연경궁으로 달려갔다.  그러다가 도중에서 자기 심복이 거느리는 백수십명의 군졸을 만나 합세하여 궁중으로 들어갔다.

  준경은 군졸들을 둘로 나누어 한패는 군기감으로 가서 무기를 지키게 하고, 한패는 자기가 직접 지휘하여 연경궁에 있는 왕을 호위하고 군기감으로 모셔왔다.

  이렇게 되니 군부의 무신들은 원래 준경의 편이라 군졸들을 거느리고 뒤를 이어 군기감으로 모여들었다. 자겸의 주위에는 쓸 만한 무인이라곤 단 한 사람도 없게 되었다.

  폐하, 이제는 오직 자겸을 처단하시는 일만 남아 있사옵니다. 어찌 하시겠사옵니까?

  준경의 말에 왕은 한숨을 쉬더니

  자겸의 소행이 괘씸하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짐의 외조부가 아니요? 목숨만은 살려서 멀리 귀양이나 보내야지.

  그리고는 사람을 보내어 자겸을 불렀다. 그렇듯 집요하게 권세를 탐내던 자겸이었지만 이제 모든 사람이 자기에게서 떨어져 가고 나니 더 버틸 기력이 없었으므로 만사를 단념하고 소복으로 입궐해서 마침내 멀리 영광(靈光)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그리고 자겸의 도당과 일가 친척도 모조리 형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 후 자겸 자신도 귀양 간 영광 땅에서 죽고 말았으니 이로써 자겸 일당은 종지부를 찍은 셈이었다.

 

 

 

 

 

  幸運이 오는 길

  이자겸 일당을 소탕하고 나니 이제 남은 문제는 이자겸의 딸인 두 왕비를 어떻게 하느냐 하는 점이었다. 공적으로 볼 때 역적의 딸을 왕비로 모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강경한 신하들은 두 왕비를 폐출할 것을 진언했다.

  그러나 사적으로 따진다면 두 왕비는 이모가 될 뿐만 아니라 이자겸의 독수에서 생명까지 보호해준 은인이기도 했다. 가혹하게 처리하기에는 너무나 애처로왔다.

  그러나 결국 강경파의 주장이 관철되어 마침내 이자겸의 두 딸을 폐출시키게 되었다. 그렇다고 실질적인 어떤 형을 가한 것은 아니었다. 왕비란 명칭만 박탈했을 뿐 물심양면으로 전과 다름없는 후한 대접을 해주었으며 신하들도 거기에 대해서는 더 무어라고 하지 않았다.

  두 왕비를 폐출했으니 새로 왕비를 간택해야 한다. 그래서 마땅한 후보자를 물색하고 있을 무렵 왕은 한 꿈을 얻었다.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와 왕에게 깨 닷되와 아욱씨 석되를 주고 간 꿈이었다.

  왕은 하도 이상해서 그 꿈의 해몽을 최사전에게 분부 했다.

  최사전은 즉시 척준경을 찾아 왕의 꿈 이야기를 하고 그 의견을 물었다. 워낙 무식한 척준경에게 물어보았자 별로 신통한 의견이 있을 리 없지만 꾀가 많은 최사전은 그렇게 함으로써 무력을 장악하고 있는 척준경의 환심을 사려는 뜻에서였다.

  척준경이 지껄이는 소리를 대강 듣고 난 최사전은 임금 앞에 나아가 해몽을 했다.

  깨는 곧 임자(荏子)이오니 임자를 얻으셨음은 임씨 성을 가진 사람을 왕비로 맞으실 징조이오며,  다섯 되를 얻으신 것은 왕자 다섯분을 낳으실 징조이옵니다. 또 아욱은 황규(黃葵)이오니 황규는 황규(皇揆)와 통하므로 황왕도규(皇王道揆), 즉 세상을 다스린다는 뜻이옵니다.  이로써 보건대 임씨성을 가진 분을 왕후로 모시게 되오면 왕자 다섯 분을 낳으시고 그 중 세분이 임금이 되신다는 뜻도 되옵니다.

  그래? 그러면 임씨를 반드시 왕비로 간택해야 하겠구먼.

  왕은 이렇게 말하며 흡족한 웃음을 띠었다.

  그 후 여러 왕비 후보자 중에 임원후(任元厚)라는 사람의 딸이 물망에 올랐다.

  임원후는 일찍이 등제하여 인종 초에는 전중내급사(殿中內給事)로 있다가 이자겸과 뜻이 맞지 않아서 불우한 나날을 보냈으나 이자겸이 실각하자 다시 조정의 요직으로 돌아온 사람이었다.  그런데 왕비 후보자로 물망에 오른 임원후의 딸에 대해서는 재미나는 일화가 있다.

  임처녀는 일찍이 평장사 김인규(金仁揆)의 아들 김지효(金之孝)와 정혼을 한 일이 있었다. 김지효는 소년등과하여 벼슬이 종사랑(從仕郞)에 이른 전도 유망한 청년이었다.

  마침내 혼인날이 되었다. 한낮이 지나자 신랑 김지효는 친영할 수레와 납폐할 물건을 가지고 하인들의 호위를 받으며 신부인 임처녀의 집에 들어섰다. 그런데 신랑이 들어서자 갑자기 신부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아침까지도 아무 일 없이 신부차림을 하느라고 바쁜던 임처녀가 오정 때부터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호소하더니 신랑이 들어서기 조금전부터는 배를 부등켜 안고 몸부림을 치다가 마침내 실신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에 당황한 신부의 아버지 임원후는 직접 신랑측 어른들과 만나서 혼사를 며칠 연기하자고 제의했다. 그러나 신랑측은 여러 가지 준비도 했고, 귀한 손님들도 초청해 놓았으니 웬만하면 그냥 식을 올리자고 맞서게 되었다. 그리하여 한참 동안 옥신각신 하다가 신랑되는김지효는

  (도대체 신부으 병이 얼마나 심하기에 이렇게들 야단일까?)

  생각하고 직접 안에 들어가서 신부의 모습을 살펴보기로 했다.

  기막힌 일이었다. 신부의 병은 심할 정도를 지나서 정신을 잃고 인사불성이었다. 혼사는 고사하고 이러다가는 당장 숨이 넘어갈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신랑은 더럭 겁이 났다.

  (이런 처녀와 억지로 혼인을 했다가 혼인하자마자 송장치르기 꼭 알맞겠군!)

  그리고 정이 떨어졌다. 그는 집안 어른들과 의논한 다음 오늘 혼사를 올리지 못하게 된 것을 트집 삼아 마침내 파혼을 하고 말았다.

  이때 신부 집에는 신부의 외조부되는 이위(李瑋)라는 노인이 와 있었다. 이위는 수주(樹州)사람으로 문하시중 정공(靖恭)의 아들이었다. 일찍이 등제하여 호부원외랑(戶部員外郞)이 되었으며, 예조 때는 형부상서 문하시랑 평장사를 거쳐 좌리공신( 理功臣)이란 칭호를 받았다.  그리고 예종 십일년에는 문하시중이 된 역대의 공신이다.

  이 때 이위는 나이 이미 팔십이었지만 그 탁월한 식견만은 여전했으므로 임원후는 딸의 파혼이란 뜻밖의 불상사를 당하자 누구보다도 먼저 장인되는 이위에게 의논해 보았다.

  과히 염려 말게. 실은 그 애가 처음 났을 때 내가 좋은 꿈을 꾼 일이 있네.

  어떤 꿈이십니까?

  그러니까 바로 그 애를 순산하기 조금 전이었네, 내가 잠깐 잠이 들어 있었는데 꿈 속에 웬 초라한 사나이가 나타나더니 글세 그 애를 데리고 가려고 덤벼드는 게 아닌가? 그러자 그 애는 무엇을 느꼈던지 막 죽어가는 소리를 지르고 발버둥을 치더군.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임원후는 장인의 꿈 얘기에 당장 흥미가 쏠렸다.

  아 그래서 내가 호통을 치며 그 사나이를 쫓아 내려고 하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오색 구믈이 자욱이 내려오더니 그 구름 속에서 큰 용이 나타나 감싸주는 게 아닌가. 그런즉 그 초라한 사나이는 혼비백산해서 도망쳐 보리고 그렇게 울부짖던 어린애도 이내 잠잠해지더군.  바로 그런 꿈이었네.

  그러면 그 꿈은 무슨 징조인가요?

  나도 잘 알 수가 없었지. 그렇지만 아무래도 그 뜻을 알고 싶어서 남문밖에 사는 한 도사를 찾아가서 해몽을 부탁해 보았다네.

  그 도사가 무어라고 해몽을 합디까?

  그 도사의 말이 실로 보기 드문 길몽이지만 그애가 성장해서 좋은 일을 당하기에 앞서서 한 번 반드시 괴상한 일이 일어날 테니 그때 다시 찾아와서 의논해 보라고 하더군. 그러니 자네가 찾아가서 다시 한 번 물어보게.

  임원후는 장인의 말을 듣자 대단히 신기하게 여겼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신기한 일은 신랑이 물러가자마자 그때까지 그렇게 괴로워하며 실신까지 했던 신부가 다시 소생했을 뿐만 아니라,  아픔도 말짱히 가시었다는 점이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상한 일인걸.

  그 날은 이미 날이 저물었으므로 임원후는 이튿날 일찍 장인이 말한 도사를 찾아갔다.

임원후는 도사에게 자기 성명을 밝히고 장인이 하던 꿈얘기와 딸에게 일어난 변을 이야기한 다음 그 까닭을 물어보았다.

  예, 문하시중의 외손녀 되시는 분 말씀이군요.

  얼핏 보기에도 높은 도를 쌓은 듯한 그 도사는 빛나는 두 눈을 지그시 감고 한참 생각을 더듬더니

  그러니 벌써 십칠년 전 일인데, 그 때 문하시중께서 친히 찾아오셔서 해몽을 청한 일이 있으셨죠.  그런데 따님의 병세가 아떠십니까?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몹시 괴로워하다가 실신까지 했었는데 신랑이 돌아가자 씻은 듯이 나아서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으니 그야말로 파혼하기 위해 생긴 병 같아 몹시 유감이외다.

  웬걸! 조금도 유감스러워 하실 건 없소이다.

  아니 유감스럽지 않다니요? 문벌 좋은 댁 외아들이겠다. 장래 유망한 청년과 정혼을 했다가 파혼을 했는데 어찌 유감스럽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유망한 청년이라도 장차 임금이 되지는 못할 게 아닙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요?

  임원후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내 말 좀 들어 보시오.

  도사는 임원후의 귀에 입을 갖다 대더니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이건 입밖에 내면 큰 일날 소리지만 댁의 따님은 장차 국모가 될 분이요.

  임원후는 더욱 놀랐다.

  지금 이자겸이 득세하고 한참 판을 치지만 그가 실각하는 날에는 댁의 따님은 틀림없이 왕비로 간택될 거요. 부디 거동을 삼가시고 때를 기다리시오.

  그 도사의 말대로 인종 역시 이상한 꿈을 꾸고 마침내 임원후의 딸을 왕비로 간택하여 연덕궁주(延德宮主)를 봉했으니 그 분이 후에 공예태후(恭睿太后)가 된 분이다. 그리고 최사전이 해몽한 바와 같이 왕자 오형제를 낳았으며 그중 삼형제는 모두 왕위에 올랐으니 곧 제 십팔대 의종(毅宗), 십구대 명종(明宗), 이십대 신종(神宗)이다.

 

 

  血風에 지는 꽃들

  普賢院의 칼바람

  인종 때는 실로 다사다난(多事多難)하던 시절이었다. 이자겸의 난이 평정되자 다시 묘청(妙淸)의 난이 일어나는 등 재위 이십사년동안 어지러운 풍진(風塵)속에서 날을 보내다가 인종이 등극한지 이십사년 이월, 삼십팔세란 한창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이에 원자되는 현(晛)이 왕위를 이었으니 곧 제십팔대 의종(毅宗)이다.

  의종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글도 잘 읽었으나 성격이 경박하고 유흥을 즐기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부왕 인종과 모후 임씨는 그 앞날을 염려해서 왕위를 둘째 왕자 대녕후 경(大寧侯暻)에게 물려 주려고 한 일이 있었다. 이때 태자시독으로 있던 정습명(鄭襲明)이 한사코 두호해서 겨우 왕위 계승자의 위치를 상실하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정습명은 영일현(迎日縣) 사람으로 성품이 강직하고 학문을 즐겼다. 일찍이 등제하여 내시가 되었다가 인종조에 태자시독으로, 태자 즉 의종의 교육에 전력을 다한 노신이었다.

그리고 인종이 세상을 떠날 때에는 특히 태자를 불러

  네가 장차 대통을 계승하여 나라를 다스릴 때 반드시 습명과 의논하여 처결하도록 하라.

  이런 분부까지 했다. 말하자면 정습명은 의종에겐 은인인 동시에 엄한 스승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왕위에 오르게 되자 습명을 한림학사를 삼았다가 추밀원 지주사(樞密院知奏事)로 승진 시켰으며 처음 얼마동안은 그의 충고를 곧잘 들었다.

  그러나 차차 날이 감을 따라 놀기 좋아하는 왕에게는 말많은 노신이 귀찮게만 여겨졌다.

그리고 김존중(金存中), 정함(鄭 ) 등 간사한 무리가 부채질을 하기도 하므로 왕은 정습명을 멀리 할 일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정습명이 마침 병으로 눕게 되었다.

  뭐라구? 그 늙은이가 병이 들었단 말이지? 그거 마침 잘 됐군!

  왕은 즉시 습명의 직책을 김존중으로 하여금 대행케 했다.

  김존중은 용궁군(龍宮郡) 사람으로 몹시 약삭빠른 인물이었으며 인종 때에는 춘방시학(春坊侍學)이 되었으니, 춘방이란 곧 태자의 교육을 맡아 하는 곳이었다.

  이때 김존중은 정습명과 같이 딱딱하게 굴지않고 태자의 비위를 맞추어 유흥에도 잘 어울려 다녔으므로 왕이 즉위하자 대단히 그를 사랑하여 형부낭중(刑部郎中) 등의 요직을 맡기었다. 

  병석에 누운 정습명은 김존중이 자기 관직을 대신하게 되었다는 말을 전해 듣자 땅을 치고 통곡했다.

  상감께서 옳은 말을 물리치시고 김존중 같은 간사한 무리를 가까이 하시니 결국 모두 다 올바르게 보필하지 못한 내 죄라, 장차 무슨 낯으로 선왕의 영을 대하리오.

  그리고는 마침내 독약을 먹고 자결해 버렸다. 그러나 왕은 이런 은인의 죽음을 조금도 슬퍼하지는 않았다. 그뿐 아니라 귀찮은 존재가 없어지니 이제는 마음놓고 유흥에만 빠질 뿐이었다.  왕의 곁에서는 날로 충신이 멀어가고 간신들만 모여들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심한 자는 정함이란 자였다.

  정함은 원래 환관이었는데 의종의 유모가 그의 아내였던 관계도 있고 해서 왕의 총애를 독차지하고 있었다. 왕이 즉위하자 갑제일구(甲第一區)를 받았으며, 벼슬도 권지 합문지후(權知閤門祗侯)에 이르렀으니, 환관으로서 조관(朝官)에 열석하기는 예로부터 없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대관은 그 부당성을 강경히 항의했지만 왕은 듣지 않고 더욱 총애할 뿐이었다.

  정함의 권세는 날로 강해져서 요직에는 자기 친지들만 들여 앉히고 강직한 신하들은 모조리 쫓아냈다. 그리고 날이면 날마다 놀기 좋아하는 왕의 마음을 선동해서 산수 좋은 곳을 찾아다니며 술과 노래와 춤으로 날을 보내게만 했다.

  때마침 마라 안에는 한발과 악역(惡疫)이 뒤를 이어 일어나 백성들의 고통은 말이 아니었으나 간신들에게 둘러싸인 왕은 그것에는 조금도 마음을 쓰지 않고 자기 향략을 추구하기에만 바빴다.

  산수 좋은 곳이 있단 말만 들으면 즉시 그 곳에 정자를 짓게 하고 주연을 베풀었다. 그러나 향락을 추구하는 자들에게서 흔히 보듯이 왕도 한 가지를 오래 즐기지를 못했다. 또 다른 데 경치 좋은 곳이 있단 말만 들으면 곧 그 곳에 새로 정자를 지어 옮겨가고 해서 정사는 어지러울 대로 어지러워지고 국가의 재정은 탕진될 대로 탕진되었다.

  왕은 얼마나 사치를 좋아했던지, 건물을 지으면 기둥은 황금으로 온통 씌우고 벽은 값진 비단으로 발랐다고 한다. 또 강물에 띄우고 노는 조그만 유람선에도 돛을 비단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왕의 취미는 유흥과 함께 사원에 많은 금품을 기부하는 일이었다. 여기에도 수많은 국가 재정이 탕진되었다. 그러니 백성들은 나날이 올라가는 세금에 허덕이고, 쉴 새 없는 부역에 피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 암흑정책이 오래 갈 까닭이 없었다. 어디서 터지든지 곪은 종기는 터질 날이 오고야 마는 것이다.

  고려 태조 왕건은 원래 무관 출신이어서 무관을 존중하여 요직에 앉혔었지만 세월이 흘러,  나라 안이 평화스러워지자, 차츰 무관은 세력을 잃고 문관들이 득세하게 되었다. 진정한 실력은 무관들이 갖고 있으면서도 항상 문관들의 멸시를 받고 있었다.

  특히 의종을 둘러싼 문관들은 앞날을 내다볼줄 모르는 소인들이었으므로 당장 잡고 있는 권세만 믿고 무관들을 한층 학대했다. 왕도 또한 유흥에 관계되는 시라든가 음률에 능한 문관들만 총애하고 무관들은 매우 소홀히 다루었다. 무관들의 불평은 쌓일대로 쌓여갔다. 언젠가 기회만 있으면 실력을 행사하리라 엿보고 있었다.

  의종 이십사년, 이때 여러 무관들에게 둘러싸인 왕은 흥왕사에서 보현원(普賢院)으로 가는 도중에 잠시 쉬는 틈을 타서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무관들에게도 관심을 보이는 뜻에서 수박희(手搏戱)라는 무술시합을 하도록 명했다.

  이때 무장 이소용(李紹庸)이란 사람도 그 수박희에 참가하게 됐다. 이소용은 무장으로서는 비교적 높은 대장군이란 지위에 있었지만, 몸이 허약해서 수박희 같은 무슬에는 능하지 못했다.  잠깐 상대되는 무관과 어울려 보다가 보기 좋게 나둥그러졌다. 이 꼴을 보자 한뢰(韓賴)라는 자가 문관 자리에서 뛰쳐 나왔다.

  한뢰는 이복기(李復基), 임종식(林宗植) 등 문관들과 함께 왕의 총애를 받던 인물이었는데 성품이 교만한데다가 시기심이 대단했다. 그래서 왕의 관심이 무관들에게로 쏠린 것을 보자 대단히 불쾌하게 여겼다.

  (아무리 일시적이며 장난삼아 하시는 일이라도 이 일을 계기로 왕께서 무관들을 가까이 하시게 되면 어쩌나? 그리고 무관들이 건방지게 문관과 같은 행세를 하게 되면 큰일이다.)

  이렇게 혼자 신경을 쓰면 조바심을 하고 있는데 마침 이소용이 수박희를 하다가 너무나 꼴사납게 지고 말았다.

  (옳지! 잘됐다, 저걸 핑계삼아 무관 놈들의 기를 꺾어 줘야 하겠다.)

  한뢰는 이렇게 생각하고 이소용의 곁으로 다가가서 불문곡직하고 뺨을 때렸다.

  이놈아! 그 꼴이 뭐야? 무관이면 무관답게 무술을 닦아야지 수박희 하나 제대로 못하면서 장군입네 행세를 한단 말야? 그러니까 요즈음 무관 놈들은 등신이란 소리를 듣는단 말야!

  한뢰의 행동은 너무나 방자할 뿐 아니라, 보기에 따라서는 무관 전체에 대한 모욕이기도 했다.  그 점이 문관들에게는 오히려 통쾌했다. 이복기, 임종식 등 한뢰의 패거리들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그렇지! 그거 잘했소! 한공, 등신 같은 무관 놈들은 혼 좀 내줘야 해.

  이 소리를 듣자 무관들은 치를 떨었다. 그 중에서도 무관들 중에 가장 지위가 높은 상장군 정중부(鄭仲夫)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게 무슨 짓이요? 비록 무관이지만 이공은 종삼품의 고귀한 몸이 아니요? 어디다 함부로 손을 대는 거요?

  정중부가 소리치는 바람에 한뢰를 비롯한 문관들은 약간 겁이 났던지 웃음을 거두고 잠잠해 졌다.

  정중부는 해주(海州) 사람으로 용모가 우위하고, 얼굴은 백옥같이 희며 키는 칠척이나 되고 특히 수염이 잘나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두려움을 품게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주(州)의 군적(軍籍)에 올랐다가 후에 상경하여 그 용력과 풍채가 재상 최홍재(崔弘宰)의 눈에 들어 금군(禁軍)에 배속되었으며 인종조에는 마침내 견룡대정(牽龍隊正)이 되었다.

  이소용이 모욕을 당하는 걸 보고 정중부가 격분한 데에는 공적인 의분도 있었지만 개인적인 이유도 있었다.

  인종 때의 일이었다. 묘청(妙淸)의 난을 평정해서 한참 득세하기 시작한 재상 김부식(金富軾)엑 돈중(敦中)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돈중은 혈기왕성한 젊은 몸일 뿐 아니라, 성품이 또한 교만하고 경망해서 자기 부친의 세도를 믿고 촛불로 정중부가 자랑하는 수염을 태운 적이 있었다.

  성미가 남달리 괄괄한 정중부가 가만히 있을리 없다.

  이 고약한 젊은 놈! 감히 뉘게가 이런 짓을 하는 거지?

하고는 돈중을 묶어서 흠뻑 때려 주었다. 돈중은 울며불며 자기 부친에게 호소했다.

  아들의 말을 듣자 김부식은 그 경망한 행동을 책하려고는 하지 않고 오히려 정중부의 행동만 괘씸하다고 날뛰었다. 그래서 왕에게 상소하여 정중부를 죽이고자 했으나 겉으로는 김부식의 청을 허락하는 체하면서 뒤로는 정중부를 몰래 도망치게 했다. 그의 사람됨을 아낀 때문이었다. 이런 일이 있은 후부터 정중부는 문관들을 뼈골에 사무치도록 미워했다. 기회만 있으면 단단 보복하리라 벼르고 있었다.

  왕의 일행은 다시 보현원으로 향했다.

  어떻게 저 문관놈들을 모조리 죽여버릴 수는 없을까 정중부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견룡 행수산원 이의방(牽龍行首散員李義方)과 이고(李高) 두 사람이 다가 오더니

  장군! 궐기합시다. 아무 힘도 없는 문관 놈들만 배불리 먹고 갖은 사치를 다하는데 우리 무관들은 굶주림에 떨고 멸시만 당하는 이런 세상을 어찌 가만히 둘 수 있소?

  정중부에게는 바라던 말이었다.

  좋아! 해치웁시다.

  그는 곧 심복 하나를 보내어 그 고장 순검군(巡檢軍)을 오게 했다.

  드디어 왕의 일행이 보현원에 당도하여 안으로 들어갔다. 그것을 보자 중부는 무관들을 지휘하여 먼저 이소용을 비웃은 일이 있는 이복기, 임종식 등의 목을 베고 보현원 안으로 뛰쳐 들어 갔다.

  이것을 보자 이소용을 모욕한 장본인 한뢰는 대경실색(大驚失色)했다. 미처 도망칠 길이 없어 왕이 앉아 있던 의자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그러나 이미 피를 보아 살기등등(殺氣騰騰)해진 무관들은 왕의 처소라고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즉시 한뢰의 목덜미를 잡아내어 한 칼에 베었다.

  이제 무관들은 완전히 피에 주린 이리떼로 화했다. 문관만 보면 관직의 고하를 막론하고 닥치는 대로 참살했으니 보현원 안팎은 문관들의 시체로 발들여 놓을 틈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보현원에 갔던 문신들을 참살한 정중부는 곧 이소용, 이의방 등에게 군사를 나누어 주고 서울로 들어가서 궁중의 문관들을 급습하도록 했다. 이때 문관들은 아무 예측도 못하고 있었으므로 눈 깜짝할 사이에 무관들의 칼날에 쓰러져갔다.

  문관들을 참살한 정중부는 마침내 정권을 한손에 쥐게 되었다. 그러자

  썩은 세상을 바로 잡으려면 썩은 뿌리를 뽑아버려야 한다.

  이렇게 말하고 그는 의종을 폐하여 거제도(巨濟島)로 쫓아보내고 태자는 진도(珍島)로 쫓아 보낸 다음, 의종의 아우인 익양공 호(翼陽公胡)를 맞아 대통을 계승케 했으니 그가 곧 제십구대 명종(明宗)이며 때는 의종 이십사년(西紀1,170) 시월이었다.

  이에 새 임금은 정변에 공을 세운 정중부를 참지정사로 삼았다가 다시 중서시랑, 문하평장사 등으로 승진시커어 일등공신을 삼았다. 그리고 그밖의 무관들에게도 각각 높은 관직을 내렸다. 이렇게 정중부 등의 무관 일파가 정권을 좌우하게 되자 무신들 중에서도 거기 불만을 품는 자가 없지 않았다.

  명종 삼년 팔월, 동북면 병마사 김보당(金甫當) 등은 정중부 일당을 치고 전왕(毅宗)을 복위하려고 군사를 일으켰다. 그리고 남도병마사로 있던 장순양(張純陽)등도 남쪽에서 호응하여 거제도에 있던 폐왕 의종을 받들고 계림(지금의 慶州)으로 쳐올라 갔다. 이에 정중부는 곧 장군 이의민(李義旼)을 시켜 장순양 등을 치게 하는 한편 동북방면으로 군사를 보내어 김보당 등과 싸우게 했다.

  이때 계림으로 향한 이의민은 정중부의 부하중에서 가장 강하고 사나운 자였다.

  그는 경주 사람으로 그 부친은 소금장수였으며 모친은 옥령사(玉靈寺)란 절의 종이었다.

그러나 원래 키가 팔척이나 되고 용력이 남달리 뛰어나서 두 형과 함께 고향에서 갖은 행패를 다부렸다. 그 죄로 안렴사 김자양(按廉寺金子陽)이 잡아다가 옥에 가두고 갖은 형벌을 가했는데 두 형은 옥고를 이기지 못하고 죽어갔지만 이의민만은 끝까지 살아 남았다.

  김자양은 그것을 장하게 여기어 관군에 편입시켰다. 이로부터 그는 실력을 나타내서 차츰 승진하여 의종 때에는 대정(隊正)까지 되었는데 정중부가 난을 일으키자 재빠르게 거기 가담했다.  그리고 그때 문관을 가장 많이 벤 것도 이의민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공으로 장군이 되었다. 계림은 곧 이의민의 고향일 뿐만 아니라 아직도 지난날 이의민과 어울려 행패를 부리던 파락호(破落戶)들이 남아서 한 세력을 이루고 있었다.

  그들은 이의민이 쳐내려 온다는 기별을 받자, 옛정도 있고 또 이 기회에 공을 세워 한몫 단단히 볼 생각도 있고 해서 갑자기 기습으로 장순양 등을 죽여버렸다.

  이렇게 되니 이의민은 힘들이지 않고 장순양 일파를 제거했지만 의종이 살아 있는 한 다시 거사할 무관들이 속출할 것을 염려하여 마침내 의종마저 죽이고 말았다.

  한편 동북방면으로 보낸 군대는 마침내 김보당 등을 사로잡았으므로 한달 남짓해서 복위하려던 거사도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 후 그 이듬해 정월에는 승병(僧兵) 이천여명이 들고 일어나 정중부 일파를 치려 했으나 역시 실패로 돌아가고 구월에는 서경유수 조위총(西京留守趙位寵)이 군사를 일으켰으나 역시 패배하고 말았다.

  이렇게 되니 정중부의 권세는 날로 강성해져서 나이 칠십이 넘은 후에까지도 정권을 잡고 물러나지 않았으며 그의 아들 균(筠)이라든가 사위 되는 송유인(宋有仁) 등까지도 중부의 권세를 믿고 갖은 만행을 다하였다.

  특히 송유인의 행패와 사치는 가장 심했다. 송유인은 인종 때엔 보잘 것 없는 관직에 있었으나 그의 아내 덕으로 좋은 벼슬 자리를 딴 인물이었다. 그 아내는 원래 송나라 장사치 서덕언(徐德彦)의 아내였는데 유인은 그 여인을 꼬여 자기 아내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서덕언의 재물까지 가로챘다. 그리고 그 막대한 재산 중에서 백금 사십근을 환관에게 뇌물로 써서 의종 말기에는 대장군까지 되었다.

  그러다가 정중부가 난을 일으키자 중부의 총애를 받기 위해서 아내를 먼 섬으로 쫓아버리고 중부의 딸을 다시 아내로 삼은 것이다. 그 후부터 그의 관직은 날로 승진하여 마침내 문하시중이 되고 그 사치한 생활은 왕실을 능가할 정도 였다고 한다.

 

 

 

  靑年將軍 慶大升

  정중부 일파의 행패가 날로 심해지자 간사한 소인들은 그 밑에 기어들어가 아첨하기를 일삼았지만 무관이라도 기개 있는 사람들은 몹시 분개하고 때가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한 무관들 중에 경대승(慶大升)이란 장군이 있었다. 경대승은 청주 사람으로 중서시랑평장사 진(珍)의 아들이다. 이런 명문의 자제일 뿐 아니라 용력이 남달리 뛰어나서 어려서부터 큰 뜻을 품고 집안 일 같은 것은 돌보려고 하지 않았다.

  나이 열다섯에 교위(校尉)에 임명되고 다시 장군으로 승진 되었다. 그의 부친 진은 원래 물욕이 많고 지극히 인색해서 자기 권세를 믿고 남의 재물이나 전답을 빼앗는 일이 많았다.

대승은 항상 그것을 못마땅히 여기다가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그 재물들을 모두 국고에 바치고 하나도 남기지 않았으므로 세상 사람들은 청렴결백한 그의 심지에 탄복해 마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청렴한데다가 성미가 몹시 괄괄한 대승은 당장에라도 군사를 일으키고 싶었으나 그때 군부의 실권은 정중부의 사위 송유인이 한손에 장악하고 있었으므로 섣불리 손을 댈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송유인이 차츰 부하들의 신망을 잃고 군부에 틈이 생겼을 뿐만 아니라 젊은 무관들은 견룡(牽龍)으로 있는 허승(許升)이란 장수의 휘하로 모여들게 되었다.

  허승은 원래 경대승를 존경하는 심복이었다. 명종 구년 대승은 은밀히 허승을 불렀다.

  아무래도 일을 일으켜야 하겠네.

  그렇구 말구요. 이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하세. 궁중에서 대장경회(大藏經會)가 있는데 그것이 끝나는 날 밤은 숙야하는 장졸들이 곤해서 깊이 잠들 걸세. 그틈을 타서 자네는 이렇게 하게.

  어떻게 말입니까?

  자네는 우선 정중부의 아들 균이란 놈을 때려 죽이게. 그러면 나는 직접 사생을 맹세한 부하들을 거느리고 의화문(義和門)밖에 숨어 있을 테니 균이란 놈을 죽이고 나거든 휘파람을 불게. 그것을 신호로 궁중에 뛰어들어 가겠네.

  마침내 그날이 왔다. 밤도 사경이 되어서 허승은 궁중으로 잠입하여 정균을 때려 죽였다.

  그리고는 밤하늘 높이 휘파람을 불었다.

  됐다! 정균이 놈을 죽인 모양이다. 모두 담을 뛰어 넘어라.

  소리치고 경대승이 먼저 궁궐 담을 뛰어넘으니 부하들도 그 뒤를 따랐다.

  경대승 일당이 궁중에서 숙야하던 장졸들을 닥치는 대로 참살하자 궁중은 일시에 소란해졌다.  이에 잠이 깬 왕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대승이 침전밖에 이르러 큰소리로 외쳤다.

  폐하께 아뢰오. 신 등의 거사는 정중부 등의 행패를 없이 하고 사직을 지키는데 있사오니 조금도 놀라지 마시기 바라오.

  이 말을 듣자 왕은 침전 밖으로 나와 손수 술을 따라 경대승에게 주며 그 공을 치하했다.

  왕으로 말할 것 같으면 원래 정중부의 힘으로 등극한 몸이었다. 그러므로 정중부에게는 크게 은혜를 입은 셈이지만 그 일당의 행패가 날로 심해지자 은근히 미워하던 차이기 때문에 경대승의 거사를 이렇게 반가와 했는지도 모른다. 또는 경대승의 거사가 그다지 반갑지는 않았지만 이미 이렇게 일을 일으켰고, 그 일이 성공할 공산이 많으므로 환심을 사기 위해서 술까지 따라 주었는지도 모른다.

  경대승은 다시 왕에게 간청해서 왕을 호위하던 금군을 빌려 정중부와 송유인 등의 집을 급습하고 모조리 잡아 죽였다. 그러니 정중부는 결국 무력으로 일어났다가 무력으로 멸망한 셈이다. 그러나 무신들 중에는 경대승의 거사 역시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이 없지 않았다.

  정시중은 원래 우리 무관을 멸시하고 학대하던 문관들을 소탕하고 우리 무관들이 햇빛을 보게 했으니 말하자면 우리에겐 큰 은인인데, 대승이 이제 그 분을 죽였으니 제 목숨인들 편할 줄 아느냐?

이런 말을 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경대승은 원래 대담한 청년 장군이었지만 한 번 권세를 쥐고 보니 지난날의 성격은 많이 약해지고 자기 생명과 지위를 보존하기에만 급급하게 되었다.

  그래서 정중부의 잔당이 자기를 해칠까 두려워한 나머지 자기 집안에 장사 백수십명을 모아놓고 항상 신변을 호위하게 했다. 이것을 가르켜 그 당시 사람들은 도방(都房)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경대승은 정권을 잡자 관기를 숙청하는데 힘을 기울였으며 아무리 자기에게 아첨하는 자라도 학식과 용력이 뛰어난 자가 아니면 관직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자기 심복이라도 방자한 행동을 하는 자는 가차없이 엄벌에 처했다. 그러기에 지난번 거사 때 큰 공을을 세운 허승의 목까지도 벤 일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편 정중부의 잔당과 일부 무관들에 대한 두려움은 가시지 않았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그에게 신경쇠약 같은 질병을 가져오게 했다. 그는 밤만 되면 혹시 자기를 해치려는 자가 잠입하지난 않나 하고 제대로 잠도 못 자는 형편이었는데 어느 날 밤 문득 졸다가 고개를 들어 보니 뜻밖에도 정중부가 칼을 들고 머리맡에 서있지 않은가?

  이놈, 대승아. 네 놈이 나를 죽였으니 내 이제 그 원수를 갚아야겠다.

  정중부는 이렇게 소리치더니 큰 칼을 내리친다. 경대승은 그만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서 실신해 버렸다.

  정중부가 머리맡에 나타난 것은 한낱 꿈이었다. 그러나 신경이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경대승은 이미 꿈과 현실을 구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꿈을 꾸고 실신한 그는 그 후 며칠을 더 앓다가 세상을 떠났으니 나이 겨우 삼십세였다.

 

 

 

  勢道無限

  경대승이 세상을 떠나자 그 뒤를 이어 득세한 자는 지난날 정중부의 심복이었던 이의민이었다.  경대승이 살아 있을 동안에는 그 위세에 눌려 산골로 내려가 숨어 살았지만 경대승이 죽고 나니 별로 두려워할 자가 없었다.

  그는 곧 궁중으로 들어가 뇌물과 권모술수로 권세를 잡고 포악무도한 행패를 자행하기 시작했다.  관직의 고하는 뇌물을 많이 바치느냐 적게 바치느냥 달렸으며, 남의 재산을 함부로 빼앗았고, 양가의 처녀라도 얼굴만 반반하면 마음대로 첩을 삼고 나중에는 궁녀들에게까지 손을 대게끔 되었다.

  처음에는 이의민의 간사한 언동에 속아서 그를 총애하던 왕도 행패가 심해지니 마음 속으로 차츰 못마땅하게 여기게 되었지만 이미 조정에 뿌리 깊이 세력을 부식한 그를 어찌할 수 없었다.

  특히 의민의 아들 지영(至榮), 지광(至光)은 아비 이상으로 횡포한 자였다. 그러므로 그들이 길을 지나가기만 하면 백성들은

  익크 저기 쌍도자(雙刀子)가 오는군.

하고 수군거리며 길을 피해 숨어버릴 정도였다고 한다.

  무력으로 정권을 잡고 권세를 누리면 반드시 같은 무력을 지난 자가 그를 시기하고 그 자리를 대신하려는 야망을 품기 쉽다.

  이의민 부자가 한창 행패를 부리게 되자

  이놈들, 어디 두고 보자. 며칠이나 가나.

  이렇게 은근히 벼르는 사람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최충헌(崔忠獻)과 그의 아우 최충수(崔忠粹)였다.

  최충헌은 우봉(牛峯) 사람으로 그의 부친 원호(元浩)는 상장군이었다. 말하자면 무관으로서는 명문의 출신이다. 원래 성품이 사납고 용맹할 뿐 아니라 권모술수에도 능한 인물이었다.

  일찍이 조위총이 난을 일으켰을 때 공을 세워 별초도령(別抄都令)이 되었으며 다시 섭장군(攝將軍)이 되었다. 그리고 그의 아우 충수는 동부녹사(東部錄事)가 되었다.

  명종 이십육년 어느날, 이의민의 아들 지영의 집에 최충수가 기르던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 들어갔다. 그 비둘기는 충수가 특히 사랑하는 비둘기였다. 충수는 즉시 지영의 집을 찾아갔다.

  우리 집 비둘기가 이 댁에 날아 들어왔으니 속히 내주시오.

하고 충수는 문전에서 소리소리 질렀다.

  이지영이라고 하면 당대 세도가의 아들이다. 비둘기 하나쯤으로 큰 소리를 칠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러므로 지영은 괘씸하게 생각하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충수는 다시 소리를 지른다.

  여보시오! 내 비둘기 못내 주겠소? 남의 물건을 가로채고 내주지 않는 걸 뭐라고 하는 줄 아오? 도적이란 말이요. 도둑놈이란 말이야.

  가뜩이나 괘씸하게 여기고 있던 이지영, 이말을 듣자 노발대발했다.

  뭐라구? 도둑놈이라? 그 놈이 눈에 뵈는 것도 없나? 이 집이 누구 집인 줄 알고 그 따위 욕설을 퍼붓는 거야.

  지영은 곧 하인을 불러 충수를 묶어 들이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호락호락하게 묶일 충수가 아니었다.

  이놈, 썩 물러가라 내 이래 뵈두 동부녹사로 있는 몸인데 너같이 천한 하인 놈한테 결박을 당할 줄 아느냐? 나를 묶으려거든 이장군이 직접 나서서 묶든지 어쩌든지 하라고 해라.

  이 말을 듣자 이지영은 쓴 웃음을 지으며

  그 놈이 뭘 믿고 저리 큰 소리를 치누?

하고 그 배짱에 놀라기도 했지만 한편 그대로 두었다가는 자기 위신이 떨어질 것 같기도 해서 직접 나가 매를 몇 대 때리고 돌려보냈다.

  충수는 전부터 형과 함께 이의민의 일당을 미워하고 있었지만 이런 모욕을 당하자 더욱 격분했다.  그날로 형의 집에 달려가 낯을 붉히고 외쳤다.

  형님, 이의민 부자는 모두 다 고금에 다시 없는 역적이요. 내 그놈들을 한칼에 베어 버리겠는데 형님 의향이 어떠시오?

  그러니까 최충헌은 잠시 묵묵히 있더니

  나도 생각은 같지만 때가 아직 이르지 않을까?

하고 망설인다. 그러나 한 번 격분한 충수는 주먹을 휘두르고 씨근덕거리며 좀처럼 누구러지지 않는다.

  형님이 못하시겠다면 나 혼자라도 하겠소. 말리지 마시오.

  아우가 설치는 것을 보자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가는 무슨 일을 저지를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충헌은 아우를 달래는 한편 마침내 거사할 것을 다짐했다.

  그 해 사월, 왕이 보제사(普濟寺)로 행차하게 되었는데 의민이 몸이 편치 않다고 사양하고 자기 별장이 있는 미타산(彌陀山)으로 갔다.

  이 정보를 듣자 최충헌은 뛸 듯이 기뻐했다. 그는 곧 아우 충수를 비롯해서 생질 박진재(朴晉材),  인척되는 노석숭(盧碩崇), 그밖의 여러 부하들을 거느리고 의민의 별장 문밖에서 대기 하고 있었다.

  얼마 후 별장에서 몸을 쉬던 의민이 자기의 집으로 돌아갈 생각인지 다시 나와 말을 타려한다.

  이것을 보자 최충수는

  역적 의민아! 대의를 위해서 너를 기다린지 오래다.

  소리치고는 소매 속에 감추어 두었던 칼을 뽑아 내리쳤다.

  그러나 의민도 원래 녹록치 않은 자였다. 몸을 날려 칼을 피한다. 이것을 보자 이번에는 충헌이 소리 없이 다가가서 역시 소매 속에 감추었던 칼로 의민의 옆구리를 깊이 찔렀다.

그러자 의민은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그 자리에 고꾸라졌다.

  이와 동시에 의민을 호위하던 종자 수십인도 최충헌 일당의 칼 아래 모조리 쓰러졌다.

의민을 죽이자 충헌은 곧 노석숭에게 명했다.

  역적을 처치했으니 이날이 오기를 고대하던 백성들에게 속히 이것을 알려야 한다. 이의민의 목을 즉시 서울로 가져가서 큰 거리에 매달아 구경시키도록 하라.

  이의민의 목이 사람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네거리에 내다 걸리자 서울바닥은 발칵 뒤집혔다.

  저게 바로 이의민의 목가지래.

  권세란 참 덧없는 것이로군!

  그런데 그렇듯 세도가 당당하던 자를 누가 죽였지?

  최장군 형제라더군.

  거 또 무서운 사람이 나타났군.

  행인들은 서로 수군거렸다.

  한편 일이 이렇게 되자 왕을 따라 보제사로 갔던 이의민의 나머지 일당은 겁에 질려 모조리 숨어 버렸으며 왕도 급히 궁중으로 돌아갔다.

  이의민 일당의 풀이 꺾인 것을 보자 충헌과 충수는 칼을 뽑아들고 말을 몰아 서울 거리를 질주했다.  말하자면 자기네들의 무력을 과시하느라고 시위를 한 셈이었다. 그러다가 마침 백존유(白存儒)라는 장군을 만났다. 충헌은 그에게 이의민을 죽인 연유를 설명하니 백존유는 대단히 기뻐하며

  장군, 대의를 위해서 잘하셨소. 내 즉시 군사를 더 모아 드리리다.

  이렇게 말하고는 곧 장졸을 소집해 주었다. 충헌과 충수는 그 군사를 이끌고 궁궐로 향했다.  그리고 궁문 앞에 이르러 왕에게 상주했다.

  역적 이의민은 지난날 전왕을 시역한 대죄인일 뿐 아니라 갖은 부정한 짓을 다해서 권세를 잡고 백성들은 박해하고 마침내는 보위(寶位)를 엿보기에 이르렀던 자옵니다. 신등은 이 일을 차마 볼 수 없어 폐하와 나라를 위해서 역적을 주살했사옵니다만 비밀이 탄로될까 염려되어 폐하의 윤허를 받지 않고 거사하였음은 백번 죽어 마땅한 죄로 압니다.

  다른 왕도 다 그러했지만 명종 역시 무력을 장악한 그들에겐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의 죄를 나무라기는 고사하고 전전긍긍(戰戰兢兢)하며 그 공로를 치하할 뿐이었다.

  이것은 최충헌이 미리 계산한 바였다. 왕의 태도가 고분고분한 것을 보자 벌써 최충헌 일당에 가담한 대장군 이경유(李景儒), 최문청(崔文淸) 등이 최충헌의 뜻을 대신 상주한다.

  최장군의 충성으로 역적의 괴수 이의민은 비록 처치했사오나 아직도 그 잔당들이 숨어서 난을 일으킬 것은 분명한 일이오니 잔당들 마저 일소할 것을 윤허하시기 바랍니다.

  왕이 즉시 그것을 허락하니 충헌은 즉시 이, 최, 두 장군과 함께 거리에 나서서 의병을 모집 했다.

  이의민 일당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장졸들과 장사들이 구름처럼 그 휘하에 모여들었다.

충헌 형제는 그들을 거느리고 의민 일파 삼십육명을 모조리 찾아내어 목을 베었다. 이렇게 해서 고려의 정권은 마침내 최충헌의 손에 들어가고 말았다.

 

 

 

  妖花 紫雲仙

  무신이 정권을 잡으면 거사한 대의명분(大義名分)이 어떻든간에 곧 권세를 부리고 사치한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 상례이거니와 최충헌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높은 관직이란 모조리 독차지하다시피 했으며 궁궐을 무색케 하는 대저택을 장만하고 많은 처첩을 거느리게 되었다.

  최충헌이 거느리는 여러 첩 중에 자운선이란 여인이 있었다. 자운선은 원래 이의민의 아들 이지영의 계집이었다.

  이의민이 아직 조야를 주름잡고 있을 때 아비의 세도를 믿고 이지영은 전국 각처를 돌아다니며 갖은 행패를 다 부렸다. 한 번은 그가 삭방도(朔方道) 국경지대를 돌아다닐 때였다.

압록강변 조그만 마을을 지나가자니까 한 집으로 젊은 처녀가 들어갔다. 그 처녀를 보자 지영은 눈이 번쩍했다. 서울서도 보기 드물게 어여쁜 처녀였기 때문이다. 원래 색을 좋아하는 지영이었다. 그냥 보아넘길 까닭이 없었다.

  저 집에 잠깐 들려가자.

이렇게 말하고 그 집으로 다가가서 문을 두드렸다. 그러니까 아까 그 처녀가 다시 나오며

  어디서 오시는 손님들이서어요?

하고 묻는다. 백설같이 흰 살결, 검게 빛나는 두눈, 붉게 물들인 듯한 입술, 삼단같이 늘어뜨린 머리채, 보면 볼수록 아리따운 처녀였다.

  지영은 넋을 잃고 멍하니 그 처녀를 바라보다가 은근히 딴 생각도 있고 해서

  지나가는 나그넨데 잠시 쉬어 갈까 해서 그러오.

이렇게 말했다.

  그러시다면 누추한 곳이지만 어서 들어오시어요.

  처녀는 입가에 상냥한 미소를 띠우며 지영 일행을 기꺼이 맞아 들였다. 자리를 잡고 앉자 지영은 벌써 슬며시 수작을 건다.

  네 이름이 무엇이지?

  자운선이라고 하옵니다.

  자운선이라? 좋은 이름인데 그래 넌 어떠한 재주가 있지?

  이런 시골 구석에서 자란 몸인데 무슨 재주가 있겠어요?

  자운선은 고개를 외로 꼬며 수줍어 한다. 그러면서도 이따금 흘려 모내는 추파에는 요염한 기운이 가득했다.

  아무리 그러기로 한 가지 재주쯤 있을 게 아니냐?

  그제서야 자운선은 겨우 고개를 들며

  재주라고 할 것까지는 없사오나 어려서부터 춤과 노래를 조금 배워 흉내는 낼 줄 아옵니다.

  뭐라구? 춤과 노래를 할 줄 안다? 어디 구경 좀 해보자.

  지영이 이렇게 재촉하자 자운선은 영리한 눈초리를 살짝 보내며

  그런 구경은 언제라고 하실 수 있지 않아요. 먼길에 시장하실 텐데 저녁이나 먼저 드셔야지요.

  그리고는 부엌으로 나가서 부모들과 분주히 움직이더니 저녁상을 정갈하게 차려 들어왔다.  서울서 고량진미에 식상(食傷)이던 이지영이었지만 산나물과 민물고기로 정성껏 차린 음식에는 그런대로 별다른 구미가 동했다. 이 고장 특산이라는 술도 좋았다.

  술이 거나해지자 이지영의 마음은 다시 자운선에게로 쏠렸다.

  아까 노래와 춤을 구경시켜 준다고 약속하지 않았는가? 어서 보여 주어야지.

  그러니까 자운선은 공손히 절을 하더니 사뿐이 일어나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은반에 옥을 굴리는 듯한 소리라는 말이 있지만 자운선의 노랫소리가 꼭 그러했다. 그리고 춤은 그대로 꽃밭에 너울거리는 호접이었다.

  이지영은 완전히 넋을 잃었다. 그날밤 여러 가지 말로 자운선과 그의 부모를 달래어 하룻밤의 아름다운 인연을 맺었다.

  얼마 후 서울로 돌아올 때 이지영은 자운선을 데리고 돌아왔다. 비록 시골 구석에서 생장한 몸이지만 자운선은 천성이 요염한 가인이었던 모양이다. 며칠이 안가서 여러 처첩을 물리치고 이지영의 사랑을 독차지 했다.

  이지영은 자운선을 위해선 어떤 일도 아끼지 않았다. 으리으리한 별장을 짓고 그곳에서 날마다 유흥으로 날을 보낼 뿐만 아니라 기회 있을 때마다 문무백관들을 불러모아 자운선의 자태와 가무를 자랑했다.

  한 번은 여러 무관들을 모아놓고 술과 음식을 질탕히 대접한 다음 자랑거리인 자운선의 춤과 노래를 구경시켜 준 일이 있었다. 이때 최충헌도 그 자리에 참석했다. 풍악소리와 함께 자운선이 나타나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기 시작하자 최충헌은 눈이 번쩍 띄었다.

  (세상에 저렇게 요염한 여자가 다시 있을까? 저런 여자를 차지할 수만 있다면 그야말로 부귀영화도 헌신짝 같이 버리겠다.)

  이렇게 속으로 생각했지만 이내 부질없는 욕심이라고 스스로 비웃을 수밖에 없었다. 일개 미미한 무관의 몸으로 당대 세도가의 애첩을 마음에 둔다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려고 하는 것처럼 어리석고 허황된 꿈이었다.

  그러나 그 허황된 꿈이 뜻밖에도 이루어질 날이 왔다. 그가 이의민을 죽이고 마침내 이지영까지 죽이게 되자 자운선은 저절로 그의 손에 굴러들어왔던 것이다.

  너는 나를 알겠느냐?

  처음에는 이지영의 거처에서 자운선을 잡았을 때 최충헌은 가슴을 두군거리며 이렇게 물어보았다.

  어찌 장군을 못 알아 뵙겠어요.

  처음에는 피비린내 나는 난투극에 제 신세가 어찌 될는지 알수 없어 오들오들 떨기만 하던 자운선이었지만 최충헌이 묻는 말을 듣자 이내 그 심중을 간파했다. 그래서 별로 기억에 남지도 않았지만 어림치고 이렇게 대답해 두었다. 다음에 최충헌이 하는 말을 따라 적당히 응수할 생각이었다.

  최충헌은 그 그물에 제물로 걸려들었다.

  빈말을 하면 못써. 이지영의 집에서 술잔치를 했을 때 내가 갔던 것을 기억하고 있단 말이지?

  이를 말씀이어요? 그때부터장군을 사모하는 마음에 춤을 추면서도 장군께 눈길을 보내지 않았사와요?

  실상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고 최충헌은 생각했다.

  자운선은 원래 누구에게나 교태를 부리는 여자였다. 집에 찾아오는 손님이면 누구를 막론하고 한두번씩 추파를 던져 두는 것이 버릇이었다. 그렇게 하면 어리석은 남자들은 자기에게 마음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좋아할 것이며 그렇게 환심을 사두면 만일의 경우 요긴하게 이용할 수 있으리라는 계산에서였다.

  (첫눈에 나를 사모하게 됐다? 그야말로 천생연분(天生緣分)이로군.)

  한낱 무부(武夫)로 여자와의 접촉이 별로 없던 최충헌은 자운선의 교태에 완전히 농락되었다.  벌써 오십을 바라보는 초로의 몸인 것도 잊어버리고 젊은이 같은 정열을 불태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리하여 자기 집 깊숙이 자운선을 들여 앉히고 애첩이 하자는 일이면 무슨 일이든지 다 들어 주었다. 최충헌이 사상에 유래가 드물게 극도의 사치를 한 이면에는 자운선의 힘이 크게 작용했으리라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臨津江에 지는 꿈

  최충헌 형제는 나라의 실권을 완전히 장악했으나 그래도 왕의 존재가 눈에 거슬렸다. 대개 권신들이 난을 일으켜 정권을 잡으면 허수아비 임금을 세우고 국사를 자기 마음대로 요리하는 것이 상례인데 최충헌 형제만은 처음엔 달랐다.

  명종을 그대로 왕위에 눌러 두었다. 물론 그 것이 갑작스러운 변동으로 민심의 이탈을 염려한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권을 잡은지도 일년쯤 지나고 보니 왕을 쫓아내도 큰 소동이 없을 것 같이 생각되었다.

  그래도 충헌 형제는 마음에 꺼리는 바가 있었던지 단을 모아 하늘에 제사를 드리고 왕의 폐립을 고했다. 그랬더니 그날 밤 크게 천둥이 울리고 우박이 쏟아지고 모친 광풍이 일어났다.  그로 말미암아 흥국사(興國寺) 남쪽 길에 서 있던 큰 고목이 뿌리째 뽑아지고 그 바람이 다시 옥중(獄中)으로 몰아 닥쳐 담과 벽을 모두 무너뜨렸다고 한다.

  이러한 천변을 보자 최충헌은 약간 겁이 난 모양이었다.

  하늘이 아직 상감을 폐립할 뜻이 없으신 모양인걸.

  이렇게 말하고 더 때를 기다리자고 했다. 그러나 성미가 표독한 충수는 천변 같은 것은 두려워하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형님!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상감으로 말할 것 같으면 왕위에 오른지 이십칠년이나 되고,  또 몹시 연로해서 국정에 싫증이 난 모양일 뿐 아니라, 여러 소군(小君)들이 항상 싸고 돌며 나라의 정사를 어지럽히고 있으니 이대로 두었다간 나라꼴도 말이 아니고 우리의

신변까지 위태롭게 될 염려가 없지 않소?

  충수가 이렇게 말하자 생질되는 박진재도 충수의 말을 거들어 폐립을 주장한다.

  두사람이 하도 주장하니 충헌도 마침내 마음을 정하고 일을 일으켰다. 즉 군사를 풀어 시가 요소에 배치한 다음 정문을 닫고 왕의 측근자들을 모조리 잡아 가두었다. 그런 다음 추밀부사 유득의(柳得義) 장군, 고안우(高安祐) 대장군, 백부공(白富公) 등 이십명과 십여명의 중을 영남으로 귀양 보냈으며 홍기(洪機) 등 소군 십여명을 외딴 섬으로 유배시켰다. 그런 다음 왕을 창낙궁(昌樂宮)에 유폐시키고 태자 도( )는 강화도로 추방했다.

  뒤이어 그들은 평량공 민(平凉公旼)을 맞아 왕위에 올려 놓았다. 이 왕이 바로 제이십대 신종(神宗)이니 인종의 다섯째 아들이며 명종의 아우이다.

  때는 명종 이십칠년 구월이었다.

  창낙궁 안에 유페된 왕은 그 후 오년간을 실의와 분통 속에서 세월을 보냈다. 그러다가 신종 오년 구월, 이질을 앓아 눕게 되었는데 신종은 사람을 보내어 문병하였다.

  의원을 보내 약을 올리고자 하는데 누가 좋겠습니까?

  그러나 명종은

  내게 의약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임금노릇도 이십칠년 동안이나 했고, 나이도 이제 일흔두살이나 되었는데 더 살아서 무얼 하겠는가?

  이렇게 말하고 일체 의약을 입에 대지 않은 채 신음하다가 그 해 십일월에 마침내 세상을 떠났다.

  이러한 언동으로 미루어 볼 때 명종이 얼마나 최충헌 일당과 새임금 신종을 원망했는지 넉넉히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돼서 최충헌 형제는 명실공히 국정을 완전히 장악하고 왕의 폐립조차도 마음대로 할 처지에 이르렀지만 아우 충수는 그것만으로는 흡족하지 않았다. 일을 꾸미고 실천에 옮긴 것은 주로 자기 자신이었는데 단지 형이 된다는 점만으로 충헌의 밑에 드는 것이 못마땅하게 생각되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형을 누르고 자기 마음 대로 할 수는 없을까 곰곰 생각한 끝에 그렇게 하자면 왕실과 결탁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왕실과 결탁하자면 자기 딸을 왕비로 들이미는 것이 첩경이다. 그러나 왕은 이미 나이 오십이 훨씬 넘었으니 언제 어떻게 될는지 알 수 없다.

  (그 보다도 다음 왕위를 이을 태자의 비로 들이미는 편이 앞 일을 위해서 더 든든하겠구먼.)

  충수는 성미 급한 사나이였다. 생각이 나자 참지 못하고 즉시 딸 하나를 불렀다.

  얘야, 너도 이제 과년했으니 시집을 가야지.

  최처녀는 낯을 붉히고 고개만 숙일 뿐이었다.

  그렇지만 적어도 최충수의 딸인데 아무데나 갈 수 있나, 장차 왕후가 될 태자비쯤으로 들어가야지.  어떠냐? 네 의향이?

  최처녀는 잠시 그대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겨우 모기만한 소리로  그렇지만 태자께서는 벌써 비가 계신걸요.

  그까짓게 무슨 걱정이냐? 당장 내쫓고 대신 들어앉는 거지.

  그렇게 할 수 있어요, 아버님?

  아따! 네 아비가 이 세상에 못하는 일이 있다더냐?

  그 말을 듣자 최처녀의 두 볼은 복사꽃처럼 활짝 피었다. 태자비가 되는 것이 대단히 기쁜 모양이었다.

  딸의 눈치를 살피자 최충수는 즉시 궁궐로 들어갔다.

  폐하, 신이 간청할 일이 있사옵니다.

  최충수는 왕을 대하자 우선 이렇게 말을 꺼냈다.

  왕도 최충수 앞에서는 맥을 쓰지 못하는 처지였다. 그러므로 딱딱거리듯 하는 언사에도 불쾌한 빛을 보이지 않고,

  무슨 청이요, 최장군?

  부드럽게 물어본다.

  다름 아니오라 신에게 과년한 딸이 하나 있사옵니다. 아비의 입으로 말하기는 무엇합니다만 용모도 남에게 떨어지지 않겠고, 마음씨도 나물랄데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 그러니 짐에게 중매를 들라는 거요?

  아, 아니옵니다.

  충수는 당황히 손을 가로저었다.

  쉽게 말하자면 폐하께서 신의 딸을 며느리로 삼아 주십소사 하는 겁니다.

  경의 딸을 며느리로 삼는다?

  왕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더 쉽게 말하자면 신의 딸을 태자비로 삼아 주십소사 하는 말씀이옵니다.

  그 말에 왕은 어이가 없어서 한참 동안 묵묵히 충수의 얼굴만 건너다 보다가

  태자에게는 이미 비가 있거늘 어찌 또 비를 맞는단 말이요?

  조금도 어려워하실 것 없사옵니다. 지금의 태자비를 내보내면 되지 않사옵니까?

  태자비를 내보낸다? 아무 허물도 없는데?

  허물이야 사람인 이상 들추자면 얼마쯤이라도 들출 수 있는 것이옵죠.

  여기까지 말하다가 최충수는 독살스러운 눈초리로 왕을 쏘아보며

  그렇지 않으면 폐하, 폐하께선 모처럼의 신의 소청을 물리치려 하시옵니까?

  분명한 협박이었다. 왕은 기가 눌려 말문이 막혔다.

  폐하가 지금 이 자리에 앉아 계신 건 누구의 힘이죠? 신의 공을 생각하시더라도 그만한 청을 못 들어 주실 처지는 아닐 텐데요. 만일 폐하께서 끝내 신의 청을 물리치신다면 신도 따로 취할 방도가 있사옵니다.

하고는 눈을 부라리고 주먹을 움켜쥔다.

  왕은 불쾌하기 이를데 없었으나 워낙 사나운자이므로 무슨 일을 저지를는지 대단히 두려웠다.  그래서 하는 수없이 충수의 청을 들어주마고 약속하고 마침내 아무 죄도 없는 태자비를 내보냈다.

  충수는 기뻐 어쩔 줄 몰랐다.

  얘야, 기뻐해라. 이제 너는 태자비가 되는 거다. 그리고 상감이 승하하면 왕비가 되는 거고 부디 달덩이 같은 아들 하나만 낳아라. 그 애가 장차 왕위를 계승하면 너는 태후가 되고 나는 왕의 외조부가 되는 거지.

  이렇게 떠들어 대고는 천금을 아끼지 않고 혼사준비에 바빴다.

  충수가 왕을 협박해서 태자비를 몰아내고 자기 딸을 대신 들여보내려 한다는 말을 듣자 형 충헌은 한편 놀라고 한편 분개했다.

  (그 놈이 기어코 권세를 독점하려고 그런 짓을 꾀하는구나. 이대로 두었다간 장차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알 수 없겠는걸.)

  충헌은 즉시 아우의 집으로 달려갔다.

  네가 태자비를 내쫓고 네 딸을 대신 들여보내려 한다고 소문이 자자한데 사실이냐?

  충헌은 정색을 하고 따졌다.

  예, 일이 그렇게 됐죠. 형님께도 기별 드리려 하던 참인데 잘 오셨습니다.

  충수는 뱃심 좋게 이렇게 대답한다.

  그게 사실이라면 큰 잘못을 저질렀는걸.

  무엇을 잘못했단 말씀입니까?

  충헌은 뻔뻔스러운 아우의 말에 울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꾹 참고 좋은 말로 달래본다.

  이것 보아. 우리가 이의민을 주살하고 정권을 잡은 것은 우리 가문의 영화도 영화지만 나라꼴을 바로 잡겠다는 명분 때문이 아닌가? 백성들이 모두 그렇게 믿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권세를 누릴 수 있는 거지,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어 상감까지 협박하고 태자비까지 내쫓았다는 걸 알면 우리의 위신은 하루 아침에 땅에 떨어질 거야. 뿐만 아니라 뜻있는 자가 궐기해서 우리 신세가 바로 이의민 일당과 같은 신세가 되지 않으리라고 누가 보장한겠나?

  형의 말을 듣자 충수도 약간 누그러졌다. 과연 그 말대로 백성의 신망을 잃고 왕실의 미움을 산다면 결국은 자기 지위를 든든히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위태로운 구덩으로 빠뜨리는 것이 될 수도 있다.

  형님 말씀 잘 알았습니다.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충수는 이렇게 말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 말을 듣자 충헌은 겨우 마음이 풀려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충헌이 돌아가자 충수는 속이 부글부글 끓는 것을 진정하느라고 애를 쓰고 있었다. 충헌을 대할 때엔 그 위세와 변설에 말려서 그 말에 순종할 뜻을 비쳤지만 막상 돌아가고 나니 딸을 태자비로 삼을 야망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때 내실에서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뜩이나 울화가 치밀어서 견딜 수 없었던 충수는 그만 소리를 버럭 질렀다.

  누구냐? 요사스럽게 울음소리를 내는 게?

  그러나 울음소리는 그치지 않을 뿐 아니라 더욱 높아 가기만 한다.

  성미 급한 충수는 내실 방문을 드륵 열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소리를 지르려다가 멈칫했다.  목놓아 슬피 우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태자비로 삼으려고 하던 딸이었다.

  아, 너냐? 난 또 누구라고.

  충수는 멋적은 듯이 중얼거리고 외면을 할 수밖에 없었다. 형의 꾸짖음을 듣고 혼사를 중단 하려고 한 자기 말을 엿듣고 저렇게 우는구나 생각하니 오히려 딸이 측은하기만 했다.

  울 것까지는 없어. 시집갈 데가 꼭 태자 뿐이더냐? 내, 이제 더 좋은 자리를 골라 보내주마.

  충수가 이렇게 말하자, 최처녀는 눈물에 젖은 얼굴을 곧장 들었다. 그리고 한참 부친을 쏘아 보더니

  아버님, 제 몸이 사람이 아니라, 어떤 물건으로 아시어요.

하고 외친다.

  그게 무슨 소리냐?

  그렇지 뭐예요? 태자비로 삼겠다고 온 세상이 다 알게 소문을 내놓고 나서, 백부님이 한 번 꾸짖으시니까 딴 데로 시집 보내겠다고 하시니, 아버님께선 형님만은 소중하게 아셔도 딸은 헌신짝같이 아시는 게 아니고 뭐예요?

  이렇게 말한 다음 최처녀는 다시 엎드려 목놓아 운다.

  최충수가 딸을 태자비로 삼으려고 한 것은 물론 정략적인 이유가 가장 크기는 하다. 그렇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무뚝뚝한대로 딸을 귀여워했던만치 딸에게 영화와 호강을 누리게 하고 싶은 마음도 간절했다. 그러므로 딸이 이렇게 원망하는 말을 들을니 다시 마음이 뒤숭숭해졌다.

  (도대체 그게 틀렸단 말야. 만사를 내 맘대로 처결하지 못하고 형님의 말만 들어서 이러쿵 저러쿵 하니 일이 제대로 되지 않지.)

  충수는 한참 들먹이는 딸의 어깨를 내려다보다가 주먹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인제 고만 울어! 내 마음을 정했다.

  딸은 울음을 그치고 고개를 들었다.

  어떻게 정하셨다는 거예요?

  나두 사내 대장부이니 형님 말만 듣지 않겠단 말야. 내 마음대로 하겠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너를 태자비로 삼고야 말겠다.

  정말이겠죠, 아버님? 그렇지 않으면 전 혀를 깨물고 죽으려고 했어요. 부끄러워서 어떻게 살겠어요?

  최처녀는 이렇게 말하고 어느새 눈물이 마른 얼굴에 상글상글 웃음까지 띠웠다.

  자, 일이 바쁘다. 어서 혼사 준비나 해!

  충수는 다시 집안 식구들을 독려하기 시작했다. 이 꼴을 보고 화를 낸 것은 충수의 모친이었다.

  모친은 원래 충수가 왕을 협박하고 태자비를 내쫓게 한 다음 그 자리에 자기 딸을 들이밀려고 한 처사를 사람의 도리에 어긋난 처사라고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일단 일이 작정되고 나자 손녀딸의 혼사에 무심할 수도 없어서 마침 큰아들 집에서 찾아오기는 했지만 혼사 준비에는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형의 충고를 듣고 일단 혼사를 중단한 것을 다행으로 여겼는데 다시 마음이 변해서 부당한 일을 강행하려고 하니 그만 격분하게 된 것이다.

  얘, 내 말 좀 들어라.

  모친은 충수를 불렀다.

  무슨 말씀이세요? 한창 바빠서 눈 코 뜰 새없는데.

  충수는 모친이 부르는데도 가까이 가지 않고 먼 발치에서 퉁명스럽게 핀잔만 준다.

  내 긴히 할 말이 있어서 그런다. 잠깐 내 말 좀 들어 봐라.

  모친은 몸소 충수 곁으로 다가가더니

  너는 어째서 그렇게 큰 일을 함부로 하는 거냐?

하고 나무랐다. 그 말을 듣자 불끈하기 쉬운 충수는 당장 두 눈을 부라리며

  내가 무슨 일을 함부로 한다는 거예요?

  그렇지 뭐냐? 네가 이번 혼사를 서두르다가 형의 말을 듣고 중단하기에 그래도 사람의 도리는 차릴 줄 아는가 싶어 기뻐했는데, 형이 돌아가자마자 다시 이렇게 야단을 떠니 첫째로는 사람의 도리에 어긋난 짓을 어디까지나 밀고 나가려는 그 심보가 괘씸하고 둘째로는 아우로서 형의 옳은 말을 어기는 것이 괘씸하단 말이다.

  뭐라구요?

  충수는 씨근거리며 모친을 노려보더니

  아무것도 모르시면 가만히 계세요.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하지 않아요?

  뭐라구? 너는 에미의 말을 고작 암탉이 우는 것에 비유하기냐?

  모친은 치를 떨며 아들에게 다가가더니 삿대질을 하며 다시 뭐라고 꾸짖으려 한다. 그것을 보자 성미 급한 충수는 그만 울화통이 터졌다.

  이 늙은이가 왜 이렇게 극성을 떠는 거야! 저리 가지 못해요?

하더니 모친의 가슴을 와락 떠밀었다. 그 서슬에 노부인은 저만치 나가 떨어지더니 뒷통수를 깨고 말았다. 백발이 성성한 머리에선 붉은 피가 흐른다.

  아니 네 놈이… 인젠 에미까지 치기냐?

  피를 뿌리며 발악하는 모친을 버려 두고 충수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 사건은 즉시 충헌의 귀에 들어갔다.

  아니, 그 놈이 어머님께 손찌검을 해서 피까지 흘리게 했다구?

  충헌은 발을 구르며 호통을 했다.

  원래, 부모께 불효한 짓을 하는 것보다 더 큰 죄는 없거늘, 그 놈이 감히 어머님께 손찌검을 하는 걸 보니 장차 형에게야 오죽하겠느냐 말야.

  충헌은 분에 못 이겨 한참 씨근거리다가

  오냐! 그 놈은 말로 타일러서 알아들을 놈이 못된다. 그 놈이 끝내 혼사를 강행한다면 내 무리를 끌고 광화문(光化門)에 지켜섰다가 그 놈의 딸이 입궐하지 못하도록 막고야 말겠다.

  충헌의 부하 중에 간사한 자가 하나 있었다. 그 부하는 충헌의 앞에서는 충헌이 듣기 좋아하는 말만 하고, 충수의 앞에 가서는 충수가 듣기 좋아하는 말을 하는 그런 인간이었다.

  충헌이 광화문에서 실력행사를 하겠다는 말을 듣자 즉시 충수의 집으로 달려가서 그대로 고해 바쳤다.

  그 말을 듣자 충수는 길길이 뛰며 야단이다.

  뭐라구? 형님이 그래 조카딸 혼사에 도움은 못 줄망정 입궐하는 걸 힘으로 막겠다? 어림도 없는 소리지.

  충수는 곧 자기 부하들을 불러 모았다.

  너희들, 내 말 똑똑히 듣거라. 세상 천지에 내 행동거지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자가 없는 터인데, 다만 형님만이 내가 하는 일에 간섭하는 것은 뭐 형님이 잘나서 그러는 게 아니란 말이다. 결국 부하들의 힘을 믿고 그러는 게지.

  그런 다음 부하들에게 술잔을 돌려 주며

  그러니 말이다. 내 그 형님의 부하 놈들을 모조리 없애버릴 작정이다. 너희들은 나를 위해서 힘을 쓰도록 해.

  이 말을 듣자 간사한 충헌의 부하는 다시 충헌의 집으로 돌아가서 충수가 하는 말을 고해바쳤다.

  이런 기가 막힐 데가 있나?

  충헌은 부들부들 떨면서 눈물까지 흘린다.

  형의 수하들을 없애버리겠다고 하니 그 놈이 결국 형을 없애버리는 거나 마찬가지구나!

부모도 모르고 형제도 모르고 임금도 모르는 놈을 내 아우로 두었으니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충헌은 혼자 한탄하다가 생질 되는 박진재를 불러서 의논해 보았다.

  두 분이 다 저에게는 외숙이 되는 분이니 어느 분이 가깝고 어느 분이 멀다고 할 수야 없겠지요.  그렇지만 작은 외숙의 처사를 보면 나라를 망치려는 처사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니 작은 외숙을 도와서 역적이 되느니보다 큰 외숙을 도와 나라를 구하는 일을 어찌 택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 자리에 같이 있던 김약진(金躍珍), 노석숭 등도 적극적인 협조를 다짐했다.

  충헌이 크게 기뻐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일은 한시를 다투게 되었다. 충헌은 곧 박진재 등을 시켜 무리를 모아보았다. 장졸 천여명이 모여들었다. 충헌은 곧 그들을 거느리고 광화문으로 가서 문을 지키던 수문장을 향하여 외쳤다.

  내 아우 충수가 전부터 역적모의를 하더니 내일 아침 난을 일으키려 한다. 그러므로 내 형제의 정의를 끊고 사직을 지키기 위해서 달려 왔으니 이 뜻을 즉시 상감께 전하도록 하라.

  그 말을 듣자 수문장은 대경실색하고 침전으로 달려가서 임금께 고했다.

  그렇다면 어서 문을 열고 충헌 장군을 모셔 들이도록 해라.

  이리하여 충헌은 군사들을 끌고 궁궐 안으로 들어가서 구정(毬庭)에 주둔시켰다. 구정이란 격구(擊毬)를 하는 넓은 마당이다.

  그리고 한편으로 사람을 놓아 각처의 장졸들을 소집하니 여러 장군은 군사를 거느리고 뒤를 이어 모여들었다.

  이튿날 새벽, 미리 군사 천여명을 모아놓고 충헌의 집을 습격하려고 나선 충수는 충헌이 이미 장졸을 거느리고 궁중에 들어가 주둔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충수는 새파랗게 질렸다.

  이젠 다 글렀구나! 형이 선수를 써서 궁중에 대군을 모아 놓았다니 섣불리 일을 일으켰다간 뼈다귀도 못 추리겠다.

  충수는 원래 격하기 쉬운 대신 뒤가 무른 성격이라 사태가 자기에게 불리하게 되자 이내 겁을 집을 먹었다.

  마침 우리 집에 어머님이 계시니 어머님을 앞장 세우고 형님께 항복해서 목숨이나 건져야겠다.

  이런 뻔뻔스런 소리까지 한다.

  이 말을 듣자 충수의 심복으로 있던 오숙비(吳叔庇)란 장수가 낯을 붉히며 대들었다.

  사내 대장부 한 번 마음을 정했으면 끝까지 관철해야지, 이만일로 굴복해서야 무슨 일을 하시겠소? 그리고 장군께선 노부인을 앞세우고 항복을 하시겠다 하시지만 어젯 일을 생각해 보시오? 노부인께 손을 대서 피까지 흘리게 하셨는데 그 분을 앞장 새운다고 형님이 용서 하실 줄 아십니까?

  뿐만 아니라 최처녀까지 오숙비의 말꼬리를 이어 한마디 한다.

  오장군의 말씀이 옳아요. 아버님은 어째서 그렇게 마음이 잘 변하시어요? 한 번 정하신 일이면 죽든 살든 해보실 거지 계집애처럼 이랬다 저랬다 줏대가 없으시면 되겠어요?

  그 말에

  뭐라구? 내가 계집애처럼 줏대가 없다?

  격하기 쉬운 충수는 그 말에 또 불끈한다.

  오냐! 내 그런 말을 듣고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진격이다 ! 광화문으로 가는 거야.

  충수는 미친 사람처럼 외쳤다.

  이리하여 충수가 거느리는 장졸들은 광화문을 향해서 진군했지만 그 도중에 장졸들은 흘

금흘금 서로 돌아보며 수군거린다.

  이거 안 되겠는걸.

  그러게 말이야. 저편은 벌써 여러 장군들이 군사를 끌고 모여들어서 수만 대군이라는데 그걸 어떻게 당해 내나?

  공연히 개죽음만 할 뿐이지.

  그리구 후세엔 역적이란 욕을 먹을 거구…

  일찌감치 속이나 차리세.

  이렇게 장졸들은 수군거리며 하나 둘 꽁무니를 뺀다. 그러자 충수의 군대는 광화문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흥국사(興國寺) 남쪽에 당도했을 때에는 불과 몇 백명밖에 남지 않았다.

  이런 판이라, 더욱 전전긍긍하며 전군하고 있는데 갑자기 이현(泥峴)으로부터 일대의 인마가 함성을 지르며 달려 내려온다. 박진재가 거느린 장졸들이었다.

  이크! 나왔구나!

  충수의 군대들은 벌써 겁부터 집어먹고 있는데 이번에는 사현(沙峴)에서 함성이 오르며 김약진이 거느리는 장졸들이 달려 내려오고 다시 골달 언덕에서도 노석숭이 거느리는 장졸들이 달려 내려와 철통같이 에워싼 다음 활을 쏘아대니 충수 등은 어떻게 당해낼 수가 없었다.

  큰 소리를 하던 오숙비가 먼저 칼을 거두며 꽁무니를 빼려 한다.

  어떻게 이 자리를 피해서 목숨만이라도 보존 해야지.

  충수도 이렇게 말하며 도망칠 길을 찾는다.

  그러나 관병은 뒤를 이어 달려들므로 충수와 오숙비는 마지막 힘을 내어 싸우다가 보정문(保定門)에 이르러 겨우 혈로를 뚫고 파평현 금강사(坡平縣金剛寺)로 도망쳤다.

  충수가 싸움에 패해서 도망쳤다는 기별은 곧 그의 딸 최처녀의 귀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 뒤를 최충헌의 심복 노석숭 등이 추적 중이라는 말도 겸해서 전해졌다.

  아버지가 나 때문에…

  최처녀는 애처롭게 부르짖었다.

  최처녀에게는 충수가 자기를 태자비로 들이밀려고 한 것이 순전히 정략적이라기보다 딸을 호강시키려는 어버이의 사랑 때문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그러므로 충수가 거사를 망설일 때 심한 말을 한 것이 새삼스러이 뉘우쳐졌다.

  나 때문이야! 모두 나 때문이야!

  최처녀는 정신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리다가 집을 뛰쳐나갔다.

  아버지의 목숨을 구해야 한다. 내가 큰 아버님께 애걸한다면, 모든 일이 나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사정을 한다면, 큰 아버님도 아버지를 죽이지는 않을 거야.

  이렇게 중얼거리면 최처녀가 거리로 달려나가자

  아가씨, 저도 가겠어요.

  평소에 귀여워하던 몸종 하나가 뒤를 따랐다. 궁궐 같은 저택에서 갖은 호강을 다하며 자라온 최처녀에게 그 길은 결코 편한 길이 못되었다. 십리도 못 가서 발은 부르트고 파평으로 건너가는 임진강 나루터에 이르렀을 때에는 거의 초죽음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부친을 생각하는 충정만은 더욱 치열하게 타오를 뿐이었다. 나룻배에 몸을 싣고도 배가 느린 것만이 조바심이 날 뿐이었다.

  나룻배가 겨우 강을 건너 저편 강가에 닿았다. 최처녀는 누구보다도 먼저 배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다시 몸종의 부축을 받으며 걸음을 재촉하려고 하는데 저편에서 노석숭 등이 장졸을 거느리고 의기양양(意氣揚揚)하게 들어오는 것이 눈에 뛰었다.

  저 사람들이 아버님을 쫓아갔을 텐데 어째서 벌써 돌아올까?

  불길한 예감에 떨면서 최처녀는 몸종을 돌아 본다.

  글쎄요. 어르신네께서 무사히 피신하신 때문에 찾지 못하고 그냥 돌아가는게 아닐까요?

  그렇게만 됐다면 얼마나 좋겠냐? 그렇지만 어쩐지 마음이 놓이지 않는구나.

  그럼 제가 알아 볼까요?

  그래라. 여기서 기다릴 테니 속히 다녀 오너라.

  몸종은 곧 장졸들이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한참 만에 되돌아 오는데 두 볼에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웬일이냐? 어떻게 됐다는 거냐?

  저.. 어르신네께서…

하다가 몸종은 말을 맺지 못하고 최처녀의 손목을 잡고 오열할 뿐이었다. 그것을 보자 최처녀는 이미 일이 글렀다는 것을 짐작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한가닥 희망을 걸고 재쳐 물었다.

  어서 말해 봐라. 울기만 하면 알 수가 있느냐?

  저… 어르신네께서… 돌아가셨대요.

  뭐라구… 아버님께서?.. 뜬 소문이 아니냐?

  저 사람들이 지금 어르신네의 목을 베어가지고 서울로 가는 중이래요.

  그 말을 듣자 최처녀는 입술을 부르르 떨며 말도 못하더니

  아버님!

  한마디 외치고는 절벽에서 강물로 뛰어내렸다. 깜짝 놀란 몸종이 근처 뱃사람들을 불러 구해 달라고 발을 굴렀지만 뱃사람들이 강에 들어가 처녀를 건져 냈을 때는 이미 싸늘한 시체로 변한 후였다.

  형의 손에 목숨을 잃고 그로 말미암아 죄 없는 딸까지 죽게 한 피비린내 나는 결말은 바로 충수의 걷잡지 못하는 권세욕이 원인이 되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權力의 술래잡기

  충수의 난을 평정하자 충헌의 세력은 한층 더 공고해졌다.

  그 후, 만적(萬積) 등의 노예반란(奴隸叛亂)이 있었으나 그것 역시 무사히 탄압해서 그 무리 백여 명을 강물에 던졌다.

  그러나 이때부터 충헌의 독재에 대해서 상하의 원성이 자자하게 되자, 충헌은 불의의 습격을 염려하여 문무관, 한량, 군졸들 중에서 용력있는 자들을 모조리 모아들여 여섯 패로 나누고 교대로 자기 집을 자키게 하는 한편 그 무리들을 도방(都房)이라고 불렀다. 최충헌이 밖에 나갈때에는 도방의 무리들이 물샐틈 없이 호위했는데 그 광경은 마치 싸움터에 나가는 군열(軍列)과 같았다고 한다.

  최충헌의 독재정치는 날로 심해졌다. 왕은 이름만이 왕이지 완전한 허수아비였으며 국사는 크고 작고간에 충헌의 뜻대로 좌우되었다.

  신종은 원래 충헌의 힘을 입어 왕위에 올랐으나 충헌의 권세가 자기를 누를 지경에 이르자 마음 속으로는 몹시 불쾌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충헌과 맞설 실력은 없었다.

  그리고 나이 벌써 육십이 넘은데다 병으로 신음하게까지 되었다.

  (허수아비 임금 노릇을 하느니보다 차라리 다 내놓고 마음 편히 물러 앉는 게 낫겠다.)

  이렇게 생각하게끔 되었다. 그래서 신종 칠 년 정월, 최충헌이 문병하러 입궐하자 왕은 한 번 충헌의 아래 위를 훑어보더니

  내 공에게 의논할 말이 있소.

한다.

  무슨 말씀이옵니까?

  내가 이렇게 왕위에 오른 것은 오직 공의 힘이 아니겠소? 그러니 거기 보답하기 위해서도 나라 일을 힘껏 보살펴야 할 텐데 워낙 무능한데다가 늙고 병들었으니 태자에게 전위할까 하오.

  듣기에 따라서는 네가 마음대로 정사를 농락하니 나는 있으나마나 마찬가지다, 차리리 깨끗이 물러갈 테니 네 맘대로 해봐라, 이렇게 비꼬는 소리 같기도 하다.

  그러나 능란한 충헌은 그 뜻을 알아들으면서도 시침 뚝 따고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부디 옥체보중하시길 바랄 뿐이오며 선위하신다는 분부 도저히 좇을 수 없겠사옵니다.

  이렇게 그 자리에서는 말해 두었다. 그러나 자기 집으로 돌아가자 최선(崔詵), 기홍수(奇洪壽) 등을 불러 선위에 관한 일을 은밀히 의논했다.

  허수아비 같은 임금이 불평을 품기 시작한다면 그대로 두니니보다 차리리 갈아치우는 편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후 며칠이 지나서 최충헌이 다시 입궐하여 문병을 하자 왕은 선위할 뜻을 밝히므로 충헌은 그제서야 못이긴 체 물러나와 태자를 만나고 의향을 떠보았다.

  그러나 태자는 울면서 굳이 사양한다. 충헌은 하는 수 없이 왕의 힘을 빌어 태자를 설복하기로 했다. 왕은 마침내 태자를 불렀다.

  짐은 원래 부덕한 몸으로 보위를 잘못 이어 받았을 뿐 아니라, 이미 늙고 병들어 정사를 돌볼 수 없게 되었는데 생각해 보니 그대는 학업을 높이 닦고 인망이 두터우므로 대보를 너에게 넘기려고 한다.

  이 말에 태자가 다시 사양할 뜻을 표하려 하지 충헌은 재빠르게 그 말을 가로채어  어떠한 경우라도 군부(君父)의 분부를 끝까지 사양한다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옵니다.

하고는 억지로 태자를 강안전(康安殿)으로 끌고가서 임금의 옷을 입히고 절을 한 다음 대관전(大觀殿)으로 나아가 백관의 조하(朝賀)를 받게 했다.

  이렇게 해서 왕위에 오르게 된 것이 바로 제이십일대 희종(熙宗)이다.

  충헌이 이렇게 태자에게 왕위를 넘겨 주는데 힘을 쓴 것은 그럴 만한 계산이 있기 때문이다.  늙고 병든 왕이 멀지 않아 세상을 떠날 것은 확실한 일이었지만 왕이 죽은 다음에 태자가 대통을 계승한다면 그것은 당연한 일이므로 새 왕이 충헌에게 고마워 할 이유가 못 된다.  그렇지만 억지로 미리 왕위를 계승하게 한다면 그만치 충헌의 후의를 고맙게 알고 보답하려 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희종도 처음에는 충헌의 덕을 고맙게 안 모양이었다. 그러기에 그 후 충헌이 새로 집을 짓고 왕을 초청하자 왕은 몸소 그 초청에 응했으니 예로부터 신하의 집을 왕이 찾아간 일은 이때가 처음이었다고 한다.

  충헌의 생활은 날로 호사스럽고 방자해 갔다. 입궐할 때에도 예복을 갖추지 않고 평복으로 드나들 정도였으며 자기 집을 지을 적마다 백성의 집을 수백 채씩이나 함부로 헐어버리고 수많은 백성들을 그 부역에 동원했다.

  이렇게 되니 원성은 더욱 자자했으나 충헌은 조금도 개의치 않고 자기에게 반대하는 자는 가차없이 숙청했으므로 모두들 입을 다물고 그의 허물을 나무라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표면 뿐이고 마음 속으로는 그를 원망하고 없애버리려고 벼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리고 왕도 차츰 충헌의 독재와 방약무인(傍若無人)한 태도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희종 칠년 십이월, 충헌이 수창궁(壽昌宮)에 들어가 왕을 만난 일이 있었다. 이때도 충헌은 물론 여러 종자를 거느리고 들어갔다. 불의의 습격을 경계한 때문이었다.

  그러나 충헌이 왕과 만나고 있는 동안 방문밖에 대기하고 있던 종자들에게 한 시신이 나와서 말한다.

  상감께서 특별하신 배려를 하시어 여러분들께 술 한잔 대접하라고 하시니 따라들 오시오.

  충헌의 종자들은 대단히 기뻐했다.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느라고 지루하던 참이라 의심할 여유도 없이 그 시신의 뒤를 따라갔다.

  시신은 종자들에게 술과 음식을 흠뻑 먹였다. 그래서 충헌이 왕의 처소에서 나왔을 때엔 종자들은 술에 흠뻑 취해 있었다.

  이때였다. 갑자기 중의 복색을 한 괴한 십여명이 군졸들을 거니리고 나타나더니  역적 최충헌 꼼짝 말고 게 있거라!

  종자들은 크게 놀라 칼을 빼고 응전해 보았지만 워낙 술에 취해서 마음대로 몸을 놀리지들 못하므로 당장에 괴한들의 칼날에 쓰러져 갔다. 충헌은 하는 수 없이 왕이 거처하는 방문을 두드리며

  폐하! 신을 구해 주소서. 신의 목숨이 위태롭사옵니다.

  이렇게 외쳤다. 그러나 충헌을 미워하는 왕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오히려 방문을 안으로 걸어버린다.

  이제는 정말 피할 곳이 없다. 충헌은 이리저리 도망치다가 문득 지주사(知奏事)의 방 장지문 사이가 몸을 감추기에 꼭 알맞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이야말로 하늘의 도우심이다.)

  충헌은 그 곳에 들어가서 숨을 죽이고 있었다.

  충헌이놈! 어디 갔느냐? 역적의 괴수 충헌 이놈, 어디 갔어?

  승복을 한 어느 괴한이 이렇게 외치면서 그 앞을 왔다 갔다 한다.

  충헌은 간이 콩알만 했다. 이제는 그만 죽고 마는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그 괴한은 끝내 충헌을 발견하지 못하고 딴 데로 가버렸다. 그리고 조금 있자

  진강후(晋康候), 어디 계시오?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진강후란 최충헌의 관작이며 그렇게 외치는 사람은 바로 심복 김약진(金躍珍)이었다.

  그제서야 충헌이 장지문 사이에서 나오는데 마침 급보를 듣고 신선주(申宣胄), 기윤위(奇允偉) 등 심복이 달려와 승병들과 싸우고, 또 뒤를 이어 도방의 여섯 패들이 몰려들어 괴한들을 물리쳤으므로 충헌은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충헌이 위기를 모면하자 충헌의 심복 김약진은

  어르신네께서 이런 화를 당하신 것은 궁중에 고약한 놈들이 많은 때문이니 제가 군사를 끌고 궁중에 들어가 모조리 죽여버리겠습니다.

  이렇게 날뛴다. 그러나 신중한 충헌은 혈기에 날뛰는 약진을 말리며

  안 돼. 일이란 그렇게 과격하게 처리해선 못써. 우선 주모자를 색출해서 처단하는 게 상책이지.

  그리고는 상장군 정방보(鄭邦輔) 등을 시켜 내시들을 국문하게 했다. 그 결과 주모자는

내시랑중 왕준명(王濬明)이었으며 그밖에 참정 우승경(于承慶), 추밀사 홍적(弘績) 장군 왕후(王珝)등이 가담했다는 것이 탄로되었다.

  충헌은 곧 왕준명을 비롯해서 음모에 가담한 사람들을 모두 귀양보내는 한편 희종을 폐하고 강화도로 쫓아 보냈다. 그리고 태자는 인천으로 추방했으니 이것은 바로 지난날 위기를 당했을 때 왕이 냉담하게 군 것을 원망한 때문이었다.

  희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사람은 한남공 정(漢南公貞)이었으니 곧 이십이대 강종(康宗)이다.  그는 명종의 장자였는데 일찍이 그의 부친 명종이 최충헌에게 쫓겨날 때 강화도로 추방되었던 태자 도( )가 바로 그이다. 그 후 희종 육년에 서울에 소환되었고 그 다음 해 정월에 한남공으로 책봉되어 정(貞)이라 개명하였다. 그는 실로 십오년 만에 자기 자리를 도로 찾은 셈인데 이런 왕자(王者)의 인사조차도 모두 신하인 충헌의 손에서 농락된 셈이다.

  그러나 모처럼 왕위에 오른 강종(康宗)도 그 자리에 오래 있지 못하고 이년 만인 팔월에 병으로 세상을 따나게 되었다. 그때 나이 육십이세 였다.

  강종의 뒤를 이은 것은 그의 원자 철( )이니 곧 이십삼대 고종(高宗)이다.

  고종 삼년 팔월, 글안군이 수만 대군을 거느리고 침공한 적이 있었다. 이때 충헌은 참지 정사 정숙섬(鄭叔贍)을 원수로 삼고 추밀부사 조충(趙沖)을 부원수로 삼아 대군을 이끌고 맞아 싸우게 했다. 그리고 서울에 사는 신민들은 문무(文武)를 가리지 않고, 직업의 유무를 논하지 않고, 또 비록 승려라 할지라도 징집하여 종군케 했다.

  이것이 승려들의 반란의 불씨가 되었다. 승려들로 구성된 군대는 최충헌을 죽일 생각으로 일부러 적국에게 패배한 것처럼 가장하고 선의문(宣義門)으로 돌아와 소리 외쳤다.

  글안군이 추격하오. 어서 문을 여시오.

  그러나 수문장은 그 말을 의심하고 한편으로 충헌에게 급히 보고했다.

  그 보고를 접한 충헌은 미리부터 자기 신변을 호위하느라고 남겨둔 군사들을 모아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는데 승병들은 마침내 선의문을 부수고 성내로 몰려 들었다. 그러나 충헌은 다시 한편으로 순검군에게 명령해서 자기 집을 호위하던 군사와 호응하여 승병을 협격하게 했다. 이렇게 되니 승병들은 오히려 당황하여 이리저리 도망치다가 신창관에 이르러 마침내 섬멸 되었는데, 이때 승병으로서 목숨을 잃은 자가 팔백명이나 되었으며 그 시체는 거리에 산같이 쌓였고 흘린 피는 내를 이루었다고 한다.

  승병의 난의 주모자를 추구해 보니 뜻밖에도 글안군을 막으러 출정했던 원수 정숙섬이 관여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최충헌은 즉시 정숙섬을 소환하여 하동(河東)으로 귀양 보내는 한편 자기의 심복인 정방보(鄭邦輔)를 대신 원수로 삼아 출정시켰다.

  고종 육년 정월, 조충 등은 때마침 원군으로 당도한 몽고의 합진(哈眞), 자연(子淵)등과 함께 글안군이 집결한 강동성(江東城)을 포위하자 글안군은 마침내 성문을 열고 항복했다.

  이리하여 조충 등은 구국의 영웅이 되어 개선 했으나 최충헌은 그 공을 시기하여 응당 있어야 할 영접의 예조차도 일부러 중지시켰다. 그리고 논공행상(論功行賞)을 하는데도 공이 있는 자들을 물리치고 공은 없지만 자기에게 아첨하던 무리들에게만 후한 상을 베풀었다.

  그 해 구월, 충헌은 우연히 병을 얻더니 날로 위중해 갔다. 그의 심복과 가족들은 그의 임종이 가까웠음을 깨닫고 모두들 슬퍼했으나 충헌만은 혼자 태연했다.

  아니 어째서 이리들 홀짝거리고 있는 거야? 내가 죽을 줄 알고 그러나? 어림도 없는 소리 말어. 나는 죽지 않는단 말야. 내가 죽을 날은 아직 멀었단 말야!

  이렇게 소리치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이것을 보자 그의 아들 이(怡)가 당황히 부축하며

  아버님, 병환이 위중하신데 그렇게 움직이시면 어쩌시렵니까?

하고 근심한다. 그러자 충헌은 이윽히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너는 내 걱정 말고 네 몸이나 근심해라. 잘 못하다간 나보다 네가 먼저 죽겠다.

  이렇게 말한다. 최이는 부친의 말이 하도 이상해서

  아버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렇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충헌은 좌우를 둘러보며 가까이 오라는 뜻으로 손짓을 한다.

 

  가시 돋힌 노리개

  최이가 부친 곁으로 다가가니 충헌은 한층 음성을 낮추어

  실은 내 병이 회복될 가망은 없다. 그렇지만 내가 죽게 되는 걸 알면 네가 내 뒤를 잇기 전에 아마 소동을 일으킬 놈이 있을 게다. 그러니 네가 여기 있다가 내 임종이 다가오면 어떤 화를 당할는지 모른다. 어서 네 집에 돌아가서 네 신변이나 단단히 호위하도록 해

라.

  최이는 충헌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다가

  아버님 생각에 누가 난을 일으킬 것 같습니까?

물어보았다.

  다른 놈은 모르지만 준문(俊文)이란 놈이 아무래도 수상해. 그 놈이 요즈음 지윤심(池允深), 유송절(柳松節) 등과 몰려 다니며 무슨 일을 꼭 꾸미는 것 같거든.

  준문이 놈이요?

  최이는 휘둥그래졌다가 한참 만에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니

  아버님 말씀이 그러시다면 아들 된 도리로서 병환에 시중을 들지 못하는 것은 슬픈 일이오나 우리 최씨 가문을 위해서 우선 이곳을 피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 심복들과 군졸들을 모아놓고 불의의 난에 대비하고 있었다.

  충헌이 경계한 최준문은 원래 흥해(興海)의 한낱 공생이었다. 공생은 곧 교생이니 향교(鄕校)의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는 천한 몸이었다. 그러던 준문이 당대의 세도가 최충헌의 문전에 들어와 총애를 받고 마침내 대장군이란 무관으로서는 최고의 관직을 얻게 된 데에는 미묘한 까닭이 있었다.

  일찍이 충헌에겐 동화(桐花)라는 여종이 있었다. 워낙 용모가 요염하고 성격이 교활한 여자인데다가 몹시 음탕했으므로 웬만한 남자하고는 모두 정을 통하고 있었다.

  권세를 잡은 후부터 유달리 색을 좋아하게 된 충헌은 마침내 동화에게도 손을 댔다. 그러나 그 방면에는 약간 어리석은 구석이 없지 않은 충헌은 동화가 항상 자기 하나만 섬기는 줄 알고 좋아하고 있었다. 교활한 동화에게는 최충헌으로 하여금 그렇게 믿게 할 연기력까지도 갖추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얘, 동화야. 네 젊고 어여쁜 몸을 이렇게 품에 안으니 나는 그저 우화등선(羽化登仙) 극락에라도 가는 것 같다마는 젊은 너의 앞날을 생각하면 이러고 있을 수만은 없구나.

  어쩌다가 점잖은 마음이 들면 충헌은 이렇게 말하는 수가 있었다. 그러면 동화는 일부러 성을 내는 척하며

  어르신네! 어째서 그런 말씀을 하시어요? 아마 어르신네께서는 제가 싫어지신 거죠?

요즈음 다른 여자를 가까이 하시더니 그년에게 정이 쏠리신 거죠?

하고 홀짝홀짝 울기까지 하는 것이다. 그러면 충헌은 당황해서

  아니다. 네가 싫어지긴? 이 세상에서 우리 동화가 제일 귀엽고 사랑스럽지. 진정으로 사랑스럽고 귀여우니까 한때 노리개감으로 삼지 않고 앞날을 염려해 주는 거지.

  진정이시어요? 어르신네. 진정이시라면 저는 죽어도 한이 없사와요. 어르신네 품에서 지금 곧 죽어도 한이 없사와요.

하고 충헌의 넓은 가슴을 파고 들며 아양을 떠는 것이었다.

  그날도 또 충헌은 동화를 애무하다가 같은 말을 꺼냈다.

  동화야. 아무래도 안 되겠다. 이렇게 젊은 너를 독차지 한다는 건 늙은 사람으로서 죄송그러운 일이야. 마땅한 사람이 있거든 시집을 가거라.

  싫사와요, 어르신네. 저는 어르신네 곁에서 죽을 몸이어요.

  그런 소리 말어. 내 벌써 늙고 요즈음은 기력도 많이 쇠퇴한 것 같은데 만일 내가 죽거나 하면 누가 너를 돌봐 주겠니?

  어르신네께서 만일 세상을 떠나신다면 저도 따라 죽겠어요. 다시는 그런 말씀 마시어요.

  아니다. 젊고 아름다운 네가 늙은이의 뒤를 따른다는 것은 하늘의 뜻을 어기는 거야. 네가 시집을 가지 않겠다면 내가 억지로 짝을 지어 줄까.

  이 말을 듣자, 동화는 마음 속으로 혓바닥을 내밀며 좋아했지만, 충헌의 앞에서는 추호도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굳이 시집을 보내겠다는데 너무 고집을 부리면 일이 아주 틀어질는지도 모른다. 동화는 벌써 이때 흥해에서 서울로 올라와 건들거리고 있던 최준문과 정을 통하고 있었던 터였다.

  동화는 사람을 보는 눈도 지닌 여자였다. 준문이 비록 천한 몸이지만 대담한 배짱과 명민한 지혜와 남달리 억센 용력으로 미루어 장차 큰 인물이 되리라고 간주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시집을 간다면 꼭 준문에게 가고 싶은데 그런 말을 제 입으로 할 수는 없었다.

  늙은 남자가 젊은 여자에게 정을 주었을 때, 입으로는 점잖은 소리를 하면서도 막상 그 말을 따라 떠나려고 하면 갑자기 마음이 변해서 질투와 증오의 불덩어리가 되는 것을 여러 남자들과 접한 결과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양반도 같은 남잔데 다를 까닭이 없지.)

  그래서 무슨 묘한 수는 없나. 곰곰히 궁리한 끝에 최충헌의 집에 함께 있는 성춘(成春)이란 여종을 불러 의논해 보았다.

  성춘은 용모가 동화만 못한 때문에 충헌의 사랑을 받지는 못했지만 간교한 꾀는 동화 뺨 칠 정도였다. 같은 종이지만 충헌의 사랑을 받느냐 못받느냥 따라서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충헌의 사랑을 받는 여종은 물질적인 호사를 극진히 할 뿐만 아니라, 그 문중에서의 세력도 여간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성춘은 동화에게 잔뜩 달라 붙어서 죽으라고 하면 죽는 시늉까지 내는 처지였다.

  동화 언니, 뭐 그런 일을 가지고 그렇게까지 걱정을 하시어요?

  글세 무슨 뾰족한 수가 있어야지?

  사람의 머리라는 건 그런데 써먹으라고 있는게 아니어요? 제가 언니라면 아주 쉽게 일이 되게 할 꾀가 있는데요.

  성춘의 꾀는 전부터 잘 알고 있는 동화였다.

  동화는 자기 머리에 꽂았던 패물중에서 제일 값진 것을 뽑아 성춘의 머리에 꽂아 주며  얘, 무슨 꾄지 어서 말 좀 해봐라.

하고 재촉한다. 그러니까 성춘은 새까만 두 눈을 반짝반짝하더니

  우선 언니가 좋아하시는 그 분 말예요. 그분을 이집에 불러들이도록 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분은 워낙 눈치가 빠르니까 어르신네 마음에 꼭 맞게 굴 게 아네요?

  그야 그렇지. 그 분이라면 어르신네의 으뜸가는 심복이 될 수 있지. 그리고 그 담엔 어떻게 하니?

  그러면 일이 다 된 거죠, 뭐. 우리 어르신네는 배포가 유한 분이시니까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를 짝지어 주려고 하실 게 아니어요?

  그것도 그렇겠구나. 역시 네 꾀는 귀신도 곡할 지경이야!

  그렇지만 한 가지 명심해야 하실 일이 있어요.

  그건 또 뭔데?

  그 분이 여기 들어온 후에는 절대로 가까운체하지 마셔야 해요. 일부러 쌀쌀한 체하셔요. 그렇지 않으면 의심을 살는지 모르니까요

  알았다. 그런건 조금도 염려 말어.

  동화는 그날밤 충헌과 한자리에 들어 단꿈을 꿀 때 어리광처럼 속삭였다.

  어르신네, 한가지 청이 있사와요.

  무슨 청인데? 우리 동화의 청이라면 내 무엇이든지 들어주지.

  진정이시죠, 어르신네?

  동화는 요염한 추파를 보내며 다짐한다.

  암 진정이고 말고.

  충헌의 대답을 듣자 동화는 늙은 권력자의 두눈을 말끄러미 들여다보더니 정색을 하고 비로소 입을 연다.

  저의 집안에서 크게 신세를 진 은인이 한분 계세요.

  무슨 신세를 졌는데?

  저의 아버지가 부량배들에게 폭행을 당한 일이 있는데, 그때 저의 아버지 목숨을 구해준 분이 한분 계셔요.

  음 그래서?

  그러니 어떻게 해서든지 그 분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가 아니겠어요?

  그야 말할 것도 없지.

  그렇지만 저희같이 천한 사람들이 무슨 힘이 있어서 그 은혜에 보답하겠어요? 그래서 하루 이틀 미루어 오고 있는데 그 분이 요새 일자리를 구하려고 서울에 올라왔지만 통 일자리를 못 구하고 고생을 하시는 모양이어요.

  그러니까 일자리 하나만 구해 주면 그 사람의 신세를 갚는 꼴이 된다는 말인가?

  예, 그렇지만 어디 저희 힘으로 남의 일자리를 구해 줄 수가 있어야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데?

  흥해 사람인데 거기서 공생 노릇을 하고 있었대요.

  사람은 어떤고?

  전, 보지 못해서 알 수 없지만요, 아버지 말을 들으니까 퍽 똑똑하고 힘도 장사라나요.

  충헌은 잠시 눈을 감고 궁리해 보았다. 충헌은 원래 자기를 호위하는 장정들이 아쉬운 사람이라,  힘깨나 쓴다는 사람이면 마음이 동했다. 그리고 귀여워하는 동화의 청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네 아비에게 통지해서 불러 오도록 해라.

  이렇게 돼서 동화의 계교의 첫단계는 성공한 셈이었다.

  고맙사와요, 어르신네. 정말 고압사와요.

  그날 밤은 유달리 아양을 떨어 충헌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들었다. 동화는 그 이튿날로 최준문을 불러들였다. 충헌이 만나보니 비록 공생이란 천한 일을 하던 자였지만 도저히 그렇게 보이지 않을 만치 풍채도 좋았고 행동까지 모두 다 민첩하고 점잖았다.

  (음, 거 쓸만한 놈이로군. 동화 때문에 사람 하나 얻었는걸!)

  충헌은 그날부터 준문을 자기 곁에 두고 잔심부름을 시켜보았다. 과연 모르는 일이 없었으며 막히는 일이 없었다. 그리하여 충헌은 차츰 준문을 신임하게 되었다. 비록 출신은 천했지만 상하의 인사를 마음대로 요리하는 충헌에겐 그런것쯤은 문제가 아니었다. 즉시 종구품의 군과인 대정(隊正)을 삼았다가, 얼마 후에는 대장군으로 승진시켰다.

  대장군은 종삼품의 고관으로 정삼품인 상장군과 같이 중방(重房)에 참여하는 요직이었다.

중방이란,  군사에 관한 모든 일을 의논하는 최고 참모회의다.

  그 후에도 준문에 대한 신임은 더욱 두터워져서 준문이 진언하는 말이면 무슨 말이나 충헌에겐 다 통할 정도가 되었다. 이렇게 되니 충헌은 가장 총애하는 심복인 준문과 가장 아끼는 여종인 동화를 짝지어 줄 생각을 갖게끔 되었다.

  그런 생각을 갖게 된 까닭은 두 사람을 사랑하는 인정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두 사람을 결합시킴으로써 자기의 신변을 공고히 하려는 정치적인 배려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네가 아무래도 준문에게 시집을 가야겠다.

  충헌이 이런 말을 꺼내자 동화는 계교가 들어 맞는 것을 기뻐했지만 겉으로는 물론 펄펄 뛰었다.

  또 그런 말씀을 하시어요? 원망스럽사와요. 저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어르신네 곁에서 죽겠사와요.

  이렇게 되느 충헌은 오히려 동화를 달랠 지경이었다.

  아니야. 너무 고집을 부리면 못써. 준문은 수족 같은 사람이니 준문에게 시집을 간다는 건 내 아우나 내 아들에게 시집을 가는 거나 다름없단 말야. 그러니 아뭇소리 말고 내 말대로 해라.

  동화는 그래도 한참 거짓 앙탈을 떨다가 마침내 충헌의 위압에 눌리는 시늉을 하며

  어르신네 분부가 정 그러하시면 죽는 셈치고 분부를 따르겠사와요. 그렇지만 제 몸은 비록 그 분에게 가더라도 제 마음은 언제까지나 어르신네 곁에 있을 것이어요.

  그리고는 충헌의 품에서 밤이 새도록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희대의 모사와 요부는 미리 계획한 대로 결합하게 되었으며, 그렇게 되자 그들은 차츰 본성을 드러냈다.

  여보, 인제 우리도 차차 속을 채려야죠.

  먼저 말을 꺼낸 것은 동화였다.

  암, 언제까지나 남의 수족 노릇만을 할 수는 없지.

  최충헌의 심복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그럼 손을 싸야 하지 않아요?

  이를 말인가? 그렇지만 서서히 해야지 급히 먹는 밥은 체하는 법이니까?

  이때부터 그들은 최씨네 세력과는 따로 자기들의 세력을 키우기에 골몰했다. 먼저 최충헌에게 청탁할 일은 반드시 준문을 통해서 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충헌은 이미 준문이 하는 말이면 무엇이나 다듣게 되어 있었으므로 준문을 통해서 청하는 일이면 순조롭게 이루어졌지만 준문을 통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통해서 한다면 준문이 방해를 놀아 일을 그르치게 했다.

  이렇게 되니 충헌에게 청탁을 하려는 사람들은 먼저 준문에게 모여들기 마련이었다. 준문은 최충헌의 집 곁에 새로 사제를 크게 지었다. 명목은 최충헌의 신변을 호위하기 위한 것이라곤 했지만, 실상은 청탁하러 오는 사람들을 모아들이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자연 규모도 크고 호화스러운 대 저택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최충헌의 집과 비교해도 과히 떨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최준문의 집 문전은 문자 그대로 저자를 이루었다. 수많은 금품과 값지고 귀한 물품을 갖다 바치려는 사람들이 줄을 짓고 늘어설 지경이었다.

  준문은 뇌물의 다과에 따라서 적당히 벼슬도 얻게 했으며 이권(利權)도 부여했다. 그러나 그뿐이 아니었다. 그렇게 해서 사귄 사람들은 훗날을 위해서 모두 다 자기의 심복을 만들었다.  준문이 특히 신경을 쓰고 손을 뻗친 곳은 군부였다. 힘깨나 쓰는 자, 무술에 능한 자,  군부의 요직에 있는 자들은 그편에서 뇌물을 쓰지 않더라도 오히려 이편에서 이권과 대접을 베풀어 가면서 사귀었다. 그러므로 최준문의 집은 밤이나 낮이나 모모한 무인들로 들끓었다.

 특히 준문이 지목하고 깊이 사귄 것은 상장군 지원심, 장군 유송절, 낭장 김덕명(金德明) 등이었다.

  아무리 신임하는 심복이었지만 자기 세력을 부식하려고 무관들과 결탁하기 시작한 것을 보자 충헌은 차츰 준문을 경계하게 되었다. 겉으로는 전과 다름없이 대했지만 속으로는 잔뜩 못마땅히 여기며 일거일동을 하나하나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충헌의 의심은 적중되었다.

  충헌의 병이 날로 심해지는 것을 보자 준문은 지윤심, 유송절, 김덕명 세 사람을 몰래 자기 집으로 불렀다.

  장군들, 그 분의 병환이 저렇게 위중한 걸 보니 아무래도 오래 가지 못할 것 같은데 그 분이 만일 세상을 떠나는 일이 있으면 우리는 어떻게 되겠소?

하고 우선 이렇게 떠 보았다. 그러니까 지윤심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볼장 다보는 거죠. 그 분이 돌아가시면 이(怡)란 사람이 뒤를 이을 거구 그 사람은 어쩐 일인지 우리를 좋아하지 않는 터이니까 필경 우리를 멀리 할 거요.

  그 뿐이 아니죠.

  이번에는 유송절이 한 마디 한다.

  이란 사람은 원래 자기 어르신네 하시는 일을 못마땅히 여기는 점이 없지 않았으니까 그 허물을 우리에게 뒤집어 씌우고 멀리 귀양을 보내거나 죽이려 할는지도 모르죠.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게 좋겠소?

  준문은 다시 물어 본다.

  글세… 어떻게 하는 게 좋을는지….

  세 사람은 묘한 대책이 생각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고개만 외로 꼬고 있을 뿐이었다.

  이때 동화가 여종들에게 술상을 들려 가지고 들어왔다. 지난날과는 딴판으로 귀부인태를 부리느라고 다른 남자들에게는 얼굴도 잘 보이지 않았지만 이 세 사람과는 생사를 같이 할 처지이므로 허물없이 굴었다.

  어머나! 사내 대장부들이 무슨 일이 있으시기에 그렇게 수심에 싸여 계시어요?

  동화는 간드러지게 웃으며 자리를 잡는다.

  부인, 마침 잘 들어오셨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난처한 일이 있어서 그러는데요. 부인의 지혜를 좀 빌려야겠습니다.

  유송절이 아첨겸, 진담겸 이렇게 말하며 지금까지 자기들이 해결 못한 문제를 제시해 보았다.  그 말을 듣자 동화는 다시 한 번 간드러진 웃음을 터뜨리더니

  남자분들이란 너무 깊이 생각하시니까 좋은 꾀가 나지 않는 것이어요. 그까진 일이 뭐가 그리 어렵다고 그러셔요?

  그렇다면 부인께선 무슨 좋은 대책이 생각나셨나요?

  이번에는 지윤심도 한몫 낀다.

  꾀구 뭐구 없죠. 일은 간단하죠. 장군님들이 적과 싸우실 때 칼을 들고 덤비는 자를 어떻게 처치하십니까?

  그야 이편에서도 칼을 뽑아 먼저 죽일 뿐이죠.

  그렇죠? 이치는 어느 경우나 다 마찬가지란 말씀이예요.

하면서 의미심장한 눈웃음을 친다.

  음.. 칼을 들고 덤비는 자에겐 칼로 대한다?

  지유심은 이렇게 중얼거리더니 한층 음성을 낮추면서

  그럼 이렇게 합시다. 부인 말씀대로 그 자를 일찌감치 없애버립시다.

  최이를 살해하자는 말이었다.

  그렇지만 그 자를 없애버리면 최씨 일문과는 원수가 될 게 아니요? 아직 우리 힘이 최씨 일문과 맞설 정도는 못된단 말이요.

  유송절이 이렇게 말하니까 모두들 다시 궁리가 막혀 잠잠해진다. 그러자 동화가 다시 조소를 잔뜩 띠우며

  정말 꾀도 없는 양반들이야. 최씨 일문과 원수가 되고 싶지 않으면 그런 대책을 세우는게  좋지 않아요?

  글세 그 대책이 서지 않는단 말씀이에요. 부인.

  동화는 잠싯동안 말 없이 상글상글 웃고만 있다가

  장군님들, 향(珦)이란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시와요?

하고 묻는다.

  최향은 바로 최이의 동생이다.

  그 말을 듣자 지윤심이 무릎을 치며 좋아한다.

  오! 그 사람 생각을 미처 못했군! 그 사람은 원래 용력이 과잉하고 뱃심도 대단하지만, 자기 위에 형이 있으므로 자기가 세도를 이어 받지 못할 거라고 평소부터 불만이 심하던데, 그 사람을 부채질 하면 형을 죽이는데 앞장 설거요.

  그거 좋은 말씀입니다. 그 사람이 용력은 있지만 성미가 거칠기 때문에 일이 잘된 후라도 우리가 묘하게 구슬리기만 하면 무슨 일이나 다 우리 마음대로 될 겁니다.

  이번에는 유승절이 이렇게 말한다.

  의논이 되고 나자 준문은 곧 최향을 자기 집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동화가 솜씨를 부려 차린 음식으로 극진히 대접한 다음, 그의 의향을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최향은 곰처럼 시커멓게 털이 난 주먹을 휘두르며 투덜거린다.

  이 세상에 아우로 태어나는 것처럼 억울한 일은 없단 말야. 바로 그 충수 숙부님도 모든 일을 다 자기 손으로 꾸몄지만, 아우가 된다는 그 점 하나 때문에 형님 되시는 우리 아버님께 눌려 지내시다가 마침내 목숨까지 잃으셨단 말야. 내 신세도 조금도 다름없지. 형님 밑에서 굽신거리면 겨우 목숨은 부지할는지 모르지만 내 성미에 그건 싫구.

  그러니까 결심하시어요. 권세라는 건 정말로 힘이 있고 슬기로운 분이 누리셔야지. 그러지 못한 분이 누리신다면 자기도 망하고 집안 사람들까지 덩달아 해를 입게 되는 법이거든요.

  동화가 최향의 곁에 바싹 다가앉아 술을 권하며 부채질을 한다. 그러니까 최향은 이내 입이 딱 벌어지며

  그럼 내가 용기두 있구 지혜도 많단 말인가?

하면서 마침내 그들의 술책에 넘어갔다.

  남은 문제는 최이를 제거하는 방법 뿐이었다. 그러나 그 문제는 그다지 대단하게 생각치 않았다.  최이는 충헌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니 임종 때까지 곁을 떠나지 않고 시중할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자기들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으므로 충헌이 임종하자 잠복시킨 갑사들로 하여금 최이를 죽이게 한다. 그런 다음에 충헌이 아우를 후계자로 지명하고 죽은 데 불평을 품고 난을 일으키려 했기 때문에 주살했다고 변명하면 모든 사람들이 곧이 들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한 것과 같이 충헌의 예견으로 최이는 자기 집에 들어앉아 있으면서 강력한 군사들의 호위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이거 일이 묘하게 되는데. 그 자가 어떻게 눈치를 챘을까?

  이 일은 우리 다섯 사람만 알고 있는데 그 비밀이 어떻게 누설됐을까?

  지윤심과 유송절이 이렇게 말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니까 뱃심 좋은 최향이 껄껄 웃으며  일이 누설된 게 아닐거요. 우리 형이란 작자는 원래 의심이 많은 사람이니까 미리 겁을 먹고 몸을 사리는 거겠지.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겠소? 그 집을 습격하자니 난리가 너무 크게 벌어져서 어떤 일이 일어날는지도 모르구.

  그들이 이렇게 난처해 하고 있는 것을 보자 동화가 또 한마다 한다.

  사냥할 때 숲속에 숨은 짐승은 꼬여내어 잡는 다고 들었는데.

  그야 그렇죠.

  그러니까 강병들의 호위를 받고 있는 사람은 호위가 허술한 데로 꼬여내어 죽이면 되지 않아요?

  그것두 좋은 꾀로군요. 그렇지만, 그렇게 겁을 먹고 숨어 있는 사람을 어떻게 꼬여 냅니까?

  어르신네께서 임종하실 때가 가까와 왔다고 하면 아무리 겁이 많은 분이라도 그 자리에 참석만은 할 게 아니예요.

  그렇지만 그 말을 곧이 들을는지요?

  염려 마시어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어르신네 댁 종을 보내면 될 거 아닙니까?

  그렇지만 그 댁 종중에 믿고 일을 부탁할 만한 사람이 있나요?

  네. 제가 그 전에 은혜를 베푼 종중에 영리하고 믿을 만한 애가 하나 있으니 염려들 마시어요.

  그리고는 즉시 성문을 불러서 은밀히 그 일을 부탁했다.

  성춘은 한 마디에 응낙하고 뛰쳐나갔다.

  우리집 어르신네께서 병환이 위독하십니다. 누구보다도 이댁 어른을 보시겠다고 하시니 어서 오시어요.

  최이의 집에 당도한 성춘은 일부러 눈물까지 흘려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최이는 성춘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네 말도 그럴싸하지만 이런 중대한 일을 너같은 종을 시켜 보낸다면 누가 곧이 듣겠느냐? 빨리 돌아가서 알 만한 사람을 다시 보내도록 해라.

  최이는 성춘이 동화의 심복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성춘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듣자 이내 동화와 준문이 꾸민 연극이라는 걸 간파하고 만 것이다.

  성춘의 보고를 듣고도 준문 등은 최이가 자기들을 의심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사람 저사람 보내지 말고 우리가 직접 갑시다. 공연히 이사람 저사람 보냈다가 일이 누설되면 큰일이니까요.

  지윤심이 이렇게 말하자 모두들 찬동했다. 그리고 최준문을 비롯해서 지윤심, 유송절, 김덕명 네 사람은 즉시 최이의 집으로 가려고 했다.

  그러자 이때까지 모의를 하는 동안 아무 발언도 하지 않고 있던 김덕명이 먼저 일어서더니

  평소에 그 사람은 우리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 터인데 우리가 한꺼번에 몰려가면 오히려 의심을 살는지 모릅니다. 제가 먼저 가서 그 사람의 마음을 떠보다가 의심하는 눈치가 없으면 장군들을 부르겠습니다. 그 때까지 장군들은 밖에 숨어 계시다가 제가 부른 다음에 들어 오십시오.

  그것도 한 꾀야 그럼 그렇게 합시다.

  모두들 김덕명의 말에 찬동하고 그를 한 걸음 앞서 보냈다. 그러나 한 걸음 앞서 최이의 집에 당도한 김덕명은 들어서자마자

  부사어른.

하고 헐레벌떡거리며 불렀다. 이때 최이의 관직은 추밀원 부사였던 것이다.

  최이가 방문을 열고 내다본다.

  부사 어른을 해치려는 무리가 있습니다. 누가 부르더라도 댁에서 한 걸음도 나가지 마십시오.

  나를 해치려는 자가 있다? 그건 누구지?

  최이는 시침 뚝 따고 물어본다.

  바로 최준문, 지윤심, 유송절 이 세 사람이 부사 어른의 계씨 되는 최향공을 업고 난을 일으키려 하고 있습니다.

  그래? 그런 중대한 기밀을 자넨 어떻게 아누?

  부사 어른도 아시다시피 저는 원래 그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오던 터이므로 처음엔 이번 음모에 가담하고 있었습죠.

  그런데 어째서 그들을 배반하고 내게 알려 주는 거지?

  제가 아무리 막된 놈이지만 아우가 형님되는 분을 해치고 신하가 상전되는 분을 죽이려 하는 일에 어떻게 가담하겠습니까? 그래서 처음부터 마지 못해 합석은 했지만 이 이상 그 패들 속에 끼고 싶지 않아 이렇게 부사 어른께 알려 드리는 거죠.

  최이는 김덕명의 얼굴을 뚫어지게 살펴보다가

  그렇다면 그 자들의 계교를 자세히 이야기 해 봐라.

  이렇게 추궁한다.

  계교란 다른 게 아닙니다. 부사 어른댁엔 호위가 심하니까 밖으로 유인해서 해치려는 겁니다.  조금 전에 성춘이란 계집종이 다녀간 것도 다 그런 수작의 일단입죠.

  음… 그렇다면 자네 생각에 장차 어떤 대책을 세우는 게 좋겠는가?

  일은 마침 잘 됐습니다. 부사 어른을 꼬여내려고 네 사람이 다같이 이리 오다가 저만 한 걸음 앞서 왔습니다. 아마 지금쯤은 문밖에 숨어서 제가 부르는 걸 기다리고 있을 테니 제가 그 자들을 불러 들이거든 적절히 처단하십시오.

  최이는 즉시 집안을 호위하던 장졸들 중에서 특히 힘이 세고 무술에 능한 자들을 방 뒤에 숨겨둔 다음 김덕명에게 눈짓을 했다.

  김덕명은 곧 밖으로 나가더니

  일이 잘 돼 갑니다. 장군들께서 직접 들어가 말씀하시면 아마 곧이 듣고 따라나올 겁니다.

  시침 뚝 따고 말한다.

  준문 등 세 사람은 감쪽같이 속는 줄도 모르고 덕명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김낭장의 말씀을 들으셔서 잘 아시겠지만 어르신네께서 병환이 한층 위중하시어 상공을

부르시니 어서 가십시다.

  최준문이 이렇게 말하자, 최이는 두 눈을 부라리고 세 사람을 둘러보더니  뭐라구? 아버님이 위중하시다? 이놈들! 누굴 속이러 드느냐? 내 여기 앉아 있어도 아버님의 동정은 잘 알고 있다. 아버님께선 지금 악공을 모아놓고 음률를 즐기고 계실거다.

  이렇게 호통을 쳤다. 실상 이때 최충헌은 자기 임종이 임박했다는 것을 은폐하기 위해서 악공 수십명을 불러들여 아침부터 요란하게 풍악을 잡히고 있었던 것이다. 최이는 자기 부친과 은밀한 연락을 취하고 있었으므로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리라고는 꿈에도 모르고 있던 최준문 등은 그 말을 듣자 새파랗게 질렸다.

  어떠냐? 이놈들! 더 할 말이 있으냐?

  그리고는 곧 숨겨두었던 장졸들을 불러 세 사람을 결박케 했다.

  이때 충헌의 집에 보낸 심복이 달려오더니 정말로 충헌이 임종하게 됐다는 것을 알린다.

그제서야 최이는 심복 장졸들을 거느리고 충헌의 집으로 달려 갔다.

  충헌은 여전히 자리에 눕지도 않고 기대앉아 있었지만 얼굴에는 이미 사색이 완연했다.

최이가 들어오는 것을 보자 억지로 미소를 띠우며

  도적놈들은 처치했느냐?

물어보았다.

  예, 제발로 걸어 들어왔기에 잡아 가두었습니다.

  잘했다. 그럼 잘 됐어!

  충헌은 이렇게 말하더니 고개를 떨구며 숨을 거두었다.

  이때 충헌의 나이 칠십일세, 한낱 무인으로 일어나서 국정을 마음대로 주름잡고 여러 왕들을 허수아비처럼 주무르고 놀던 거인다운 최후였다.

  충헌의 장사를 치르자 최이는 즉시 최준문, 지윤심, 유송절 등과 아우 최향까지도 멀리 귀양 보냈으며 특히 주모자인 최준문은 귀양 보내는 도중에 죽여 버렸다. 그리고 비록 여자의 몸이지만 그 음모에 중요한 역을 한 동화와 성춘도 먼 섬으로 귀양 보냈다.

  이렇게 되니 동화는 최충헌을 농락해서 부귀를 누리고 마침내 그 권세까지 탈취하려고 했지만 죽어가던 충헌의 꾀에 빠져 오히려 비참한 말로를 당하게 된 셈이다.

 

 

 

 

  저무는 松京

  충헌의 권세를 물려받은 이는 처음에는 정사를 일신하고 민심을 얻을 생각으로 많은 노력을 했다. 우선 충헌이 권력을 이용해서 모아 들인 값진 보물들을 모조리 왕에게 바쳤다.

왕이 기뻐했을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리고 그 이듬해엔 충헌이 수탈한 공사(公私)의 전민(田民=논밭과 奴婢)을 각각 주인을 찾아 돌려주었으며 충헌에게 아부하여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던 탐관오리들을 숙청했다.

  이렇게 왕과 백성들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한만치 처음에는 허황한 관직 같은 것은 탐내지 않았다.  그러기에 고종 팔년, 왕이 그를 진양후(晋陽候)로 봉하려 하자 굳이 사양하고 받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란 실권만으로 끝내 만족할 수 없는 것이 상례이고 최이도 그 상례에서 벗아나지는 못했다. 얼마 아니 가서 참지정사, 이부상서, 판어사대사(判御史臺事) 등을 겸임함으로써 명실공히 실력자가 되었다.

  이 무렵 몽고에서 사신을 보내어 도호부(都護府) 성밖에 이르렀다는 보고를 동북면 병마사로부터 받았다.

  최이는 전부터 고려 조정이 몽고에게 지나치게 저자세로 대하는 것을 불쾌하게 여기고 있었던 참이었다.

  그까짓 것들, 왔으면 왔지 뭘 그리 떠드는가? 병마사가 적절이 대접해서 돌려보내도록하오.

  이렇게 명령했다. 뿐만 아니라, 북면 여러 곳에 성을 쌓고 몽고 침공에 대비하도록 했다.

  이런 처사를 보자 강력히 반대하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특히 지주사 김중구(金仲龜) 같은 사람은

  북면 여러 고을이 글안병의 침공으로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 있지 않소? 그러니 그 백성들이 마음 놓고 생업에 종사하도록 돌보아 주는 것이 위정자 된 도리이건만 아직 적의 침공도 있기 전에 성을 쌓고 백성을 징발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몽고측의 반감만 사서 벌집을 쑤시는 격이 될 것이며, 한편으로는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더욱 괴롭히는 결과가 될 게 아니요?

하고 통렬히 공격했다.

  그러나 최이는

  쓸데없는 소리 마오! 이렇게 하는 것이 바로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처사요.

  이렇게 말하며 자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최이의 권세는 날로 강력해 갔다. 고종 십이년 경부터는 모든 정사를 궁중에서 처리하지 않고 자기 사제에 정방(政房)을 두고 처결했다.

  그러므로 백관은 모든 문서를 최이의 사제로 들고 와서 재가를 받았으며, 그럴 때 육품 이하의 미관(微官)은 당(堂)아래 꿇어 엎드려 우러러 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마치 왕을 배알하는 격이었다.

  최이는 그 권세를 이용해서 자기 자신의 영화만 누렸을 뿐 아니라, 국사에도 힘을 기울인 바가 적지 않았다.

  크게 격구장을 만들고 격구를 장려함으로써 장정들로 하여금 호협한 기상을 기르게 했으며,  문중에 학자들을 모아 학문도 크게 장려했다. 그러나 몽고에 대한 강경책은 마침내 큰 화를 불러들이고야 말았다.

  고종 십팔년 팔월 경부터 침공하기 시작한 몽고군은 그 해 십이월 경이 되자 서울 성문 밖까지 쳐들어 와 사문(四門)밖에 분둔(分屯)하고 갖은 위협을 다 가했다.

  이 동안 고려측에서는 군력(軍力)으로 맞서보기도 하고 외교적 절충으로 달래보기도 했으나 별로 신통한 효과를 거두지 못하게 되자 그 이듬해 육월, 최이는 강화도(江華島)로 천도하여 끝까지 항전할 것을 주장했다.

  여러 신하들은 속으로는 거기에 대해서 반대 할 뜻도 없지 않았으나, 최이의 권세에 위압되어 아무 말도 못했다. 이때, 갑자기 방문을 박차고 뛰어든 사람이 있었다. 야별초지유(夜別秒指諭)로 있는 김세충(金世 )이었다.

  김세충은 좌우를 한 번 노려보더니, 최이를 똑바로 쏘아보더니 소리쳤다.

  송경(松京)으로 말할 것 같으면 태조대왕 때부터 이백 여년 동안이나 지켜오던 유서 깊은 왕도(王都)요. 성지는 견고하고, 병력과 군량도 충분한 것으로 아오. 그러니 상하가 힘을 합해 사수하면 사직을 보전할 수 있을 것이거늘 이곳을 버리고 어디로 천도하겠다는 거요?

  비분강개(悲憤慷慨)해서 외치는 김세충의 말을 다 듣고 나더니 최이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우리도 왕도로서 부족한 점이 있어서 천도하자는 것이 아니요. 적군이 성안으로 쳐들어 온다면 워낙 사납고 무지막지한 놈들이라 상감을 위해서 수많은 백성들이 비참하게 욕을 당하는 게 두려워서 미리 그런 화를 막자는 거요.

  여기서 잠깐 말을 끊은 최이는 한 번 날카로운 눈초리를 김세충에게 보내더니

  그렇지 않으면 적군이 절대로 성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할 수 있는 묘책이라도 있단 말이요?

하고 따져들어 갔다. 김세충으로 말할 것 같으면 무슨 확고한 대책이 있어서 그런 주장을 한 것이 아니었다. 한 나라의 구구도를 함부로 옮기는데 대한 명분과 감정에 입각한 주장이었다.  그러므로 어떤 대책이 있느냐고 따져 묻는 말에는 대답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김세충이 대답을 못하는 걸 보자, 최이의 태도는 갑자기 준렬해졌다.

  아무 대책도 없이 함부로 반대를 한다는 건 반대를 위한 반대일 뿐이요. 삼가도록 하오.

  이렇게 꾸짖은 다음 곧 강화도로 천도할 것을 결정하고 왕에게 진언했다. 그러나 왕도 역시 정든 송경을 떠나 낯선 강화도로 가는데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망설이고 있으려니까,  최이는 관리에게 녹을 실어다 주는 녹전차(祿轉車) 백여대를 빼앗아 자기 가재를 싣고 강화도로 날랐다. 그리고는 서울 거리 거리에 방을 내붙였다.

  < 기일까지 서울을 떠나지 않는 자는 군법으로 다스릴 것이니 명심하도록 하라.>

  그러나 백성들 역시 정든 송경을 버리고 외딴섬으로 이사가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겼다.

그래서 모두들 최이의 처사를 원망하며 차일피일(此日彼日)하고 있었지만 최이 자신이 먼저 이사를 하고, 군사를 보내어 강화에 궁궐을 짓게 한 다음, 왕을 독촉해서 마침내 강화로 옮겨가게 하니 백성들도 하는 수 없이 그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강화천도에 반대하던 왕도 자리가 잡히고 나자 천도의 공으로 최이를 진양후(晋陽候)로 봉했다. 이것은 왕이 진심으로 최이의 공을 가상히 여긴 것이 아니라, 그의 과감한 행동력과 강한 압력에 굴복한 증거일 것이다.

  최이를 진양후로 봉하자 백관들은 모두 그 일을 축하하게 되었고 이렇게 되니 최이는 한층더 위의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므로 출입할 때는 마치 왕과 다름없는 위풍을 떨쳤으며 좌우에는 용력있고 풍채 좋은 장정을 거느려 호위케 했다.

 

 

 

 

  잔잔한 秋波

  최이가 거느리는 장정 중에 가장 총애를 받던 사람은 김준(金俊)이란 젊은이였다. 김준은 김윤성(金允成)이란 사람의 아들이다.

  윤성은 원래 천한 종이었는데 기회를 보아 자기 옛 주인을 배반하고 한창 세도를 부리던 최충헌의 종이 되었던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의 아들이었던 만치 김준의 사람됨도 고운 편은 아니었지만 겉에 나타나는 용모와 태도는 지극히 부드럽고 겸손했다. 뿐만 아니라 힘이 강하고 활을 잘 쏘았기 때문에 그의 주변에는 유협자제(遊俠子弟)들이 항상 모여들었다.

  비록 종의 아들로 태어난 몸이었지만 김준은 어려서부터 남모르게 큰 야망을 품고 있었다.  그러므로 제물 같은 것은 조금도 탐내지 않고 있는 대로 친구들에게 베풀어 인심을 샀다.

  그날도 유협자제들과 어울려 활쏘기와 음주로 날을 보내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한 노승이 지나치다가 걸음을 멈추더니 김준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본다.

  스님, 사람의 얼굴을 어째서 그렇게 유심히 들여다보시오?

  김준은 얼굴에 담뿍 미소를 띠우며 부드럽게 물어보았다. 그러나 노승은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김준의 얼굴을 응시할 뿐이었다.

  스님께서는 관상을 잘하시는 모양입니다그려.

  김준은 다시 말머리를 돌려 물어보았다.

  예, 상을 좀 보기 하오만…

  노승은 비로소 입을 열었다.

  당신 같은 상을 보기는 생전 처음이요.

  제 상이 그렇게 흉합니까?

  이렇게 말하면서도 김준의 음성은 한층 부드러워질 뿐이었다.

  그런 것이 아니외다. 하도 귀한 상이기에 그러는 거죠.

  귀한 상이라구요? 내 얼굴이요?

  김준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크게 웃었다.

  내 말을 못 믿으시는 모양이구료. 그야 나 자신도 지금 내 눈을 의심하고 있으니까요?

  그때 김준의 곁에는 박송비(朴松庇), 송길유(宋吉儒) 두 사람이 서 있었다. 둘이 다 하급 관리이지만 야심만만한 젊은이들이다. 그 중에서도 송길유는 성미가 강박하고 잔인한 인간이었다.  노승이 김준의 상을 보고 의미심장한 말을 비치자 그만 발끈 성을 낸다.

  이 늙은이야! 할 말이 있으면 속 시원히 빨리 할 거지 뭘 그렇게 꾸물거리고 있는거야.

  그러나 박송비는 송길유와 반대로 성격이 대단히 유하고 너그러운 인물이었다.

  그러지 말게. 모처럼 관상을 보아 주신다는 스님 보구 그게 무슨 말인가?

  이렇게 길유를 점잖게 나무란 다음 노승을 향해서

  스님, 우리 친구의 상이 그렇듯 귀한 상이라면 그 까닭을 일러 주실 수는 없을까요?

  공손히 허리까지 굽히며 물었다.

  송길유의 말을 듣고 불쾌한 빛이 완연하던 노승도 박송비의 말을 듣자 노여움을 거두고

  세 분은 절친하신 사입니까?

묻는다.

  비록 세상에 태어난 날은 다르오만 죽는 날은 한날 한시에 죽기로 맹서한 벗들이요.

  그러시다면 큰일난 소리지만 내가 본대로 얘기해 두겠소. 이분으로 말할 것 같으면 훗날 나라의 정사를 한손에 잡을 대 인재시오. 십분 보중하도록 하시오.

  노승은 말을 마치자 더 자세히 캐어 물으려고 하는 세 사람을 남겨 놓고 표표히 사라졌다.

  세 사람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송길유가 김준의 어깨를 툭 치며

  자네가 국권을 잡게 된다? 그 늙은이 별 소릴 다 하는 군!

하고 껄껄 웃었다.

  사람 일은 알 수 없지. 사나이라는 건 때를 만나면 얼마나 귀하게 될는지 아무도 예측 할 수는 없는 거야. 우리 태조대왕도 그러하셨고 가까운 예로 진양후의 어르신네도 그렇지 않았느냐 말야. 우리 김한량두 때만 만난다면 그분들에게 지지 않을 만한 자질이 넉넉하지. 

  그야 이를 말이겠소. 두 친구는 으뜸가는 공신으로 최고의 벼슬을 내리도록 하겠소.

  김준은 입을 크게 벌리고 호협하게 웃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뛰어난 인재라도 기댈 언덕이 있어야 힘을 쓰는 법이니 김한량의 뒤를 보아줄 든든한 세력이 있어야 할 텐데.

  박송비가 혼잣소리처럼 근심을 하니까 송길유는 새카만 두 눈을 빤짝빤짝하더니

  염려 마오. 내 진양후댁에는 줄이 좀 닿으니 어떻게 손을 써 봄세. 진양후는 늘 신변을 보호할 장정을 구하고 있는 터인데 김한량으로 말할 것 같으면 어르신네가 진양후의 어르신네를 모신 일도 있고 하니 어느 모로 보나 적임자가 아니겠소?

  그 후 박송비와 송길유는 여러 가지로 손을 써서 김준을 최이의 수하로 들여보내는데 성공했으며 최이는 김준의 사람됨을 보자 곧 마음에 들어 전전승지(殿前承旨)를 삼고 항상 곁을 지키게 했던 것이다.

  김준이 최이의 좌우를 떠나지 않게 되니 자연히 집안 어느 곳에나 수시로 출입하게 되었으며 그렇게 되니 남녀를 가리지 않고 접촉이 잦을 수밖에 없었다. 심중에 딴 뜻을 품고 있던 김준은 누구에게나 공손하고 부드럽게 대했다. 그러므로 상하가 다 김준에게 호감을 갖게 되었으며 그 중에서도 많은 여종들과 몇몇 첩들은 젊고 준수한 김준에게 은근한 추파를 보내기까지 했다.

  최이가 거느리는 첩들 중에 안심(安心)이란 여자가 있었다. 평소부터 다른 첩들보다 한층 더 김준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그 양반 나이는 젊지만 녹록치 않은 분야. 지금은 저렇게 아무에게나 굽신거리지만 때만 오면 크게 될 분일 거야.)

  이렇게 생각한 안심은 김준과 접촉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하루는 절에서 크게 불공을 드리는 일이 있어서 집안이 거의 비다시피 되었다. 그런 참에 김준이 마침 안심의 방 앞을 지나간다.

  절호의 기회였다. 이 기회를 안심이 놓칠 까닭이 없었다.

  저, 잠깐 나 좀 보시어요.

  안심은 나지막이 불렀다.

  예? 무슨 일이십니까?

  김준은 누구에게나 하듯이 부드러운 미소를 잊지 않고 육중한 체구를 굽신거리며 안심에게로 다가갔다.

  하도 심심해서 그래요. 항상 떠들썩하던 집안이 조용해지니까 몹시 하루 해가 지루한데요. 잠깐 들어오셔서 재미나는 얘기나 들려 주세요.

  김준은 성큼성큼 안심의 방으로 들어갔다. 비록 젊은 남자와 젊은 여자가 호젓이 한방에 앉게 되었지만 평소에 어디나 수시로 드나드는 버릇이 있는 김준이므로 별로 어색할 것도 없었다.

  무슨 얘길 하란 말씀입니까?

하면서 안심을 건너다 보던 김준은 안심의 표정에 심상치 않은 것을 발견하고 입을 다물었다.  유달리 긴 속눈썹을 내려 깔고 잔잔한 추파를 보내고 있는 폼은 여느 때나 별로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그 눈초리 깊숙한 곳에 물결치고 있는 것은 좀 더 쉽게 잡아낼 수 없이 아득한 것이며 지극히 벅찬 것인 것처럼 느껴진다.

  김준은 자기 얼굴에서 미소가 걷히려는 것을 느끼고 안심의 눈 속에 물결치고 있는 것의 의미를 포기하려고 계산하고 있는데, 안심이 살포시 일어나더니

  술이나 한잔 드시겠어요?

한다.

  글쎄요…

  김준은 가타부타 분명한 의사를 표시를 하지 않고 안심의 눈치만 살핀다.

  왜 겁이 나시어요?

하면서 안심은 소리 없이 웃는다. 그 말에 김준은 비로소 안심의 진의를 포착할 수 있었다.

  (이 여자가 나를 유인하러 드는구나.)

  그러나 뒤이어 또 하나의 의문이 고개를 든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나를 유인해서 어쩌자는 걸까?)

망설이고 있었다.

  워낙 담이 크신 분이니까, 겁나지 않으시겠죠?

  안심은 이런 말을 한다.

  담이 크지 않아도 겁날 거야 없죠. 나쁜 짓을 하지 않을 바에야.

  이쯤 응수하고 또 눈치를 살펴 보았다.

  그럼 나쁜 짓이라면 겁이 난단 말씀이어요.

  안심의 말은 차츰 정통으로 접근하는 듯싶다.

  나쁜 짓도 나쁜 짓 나름이죠.

  김준은 약간 대담한 말을 던지며 안심의 촉촉한 두 눈을 이윽히 들여다보았다.

  어떤 나쁜 짓이면 겁이 안 나시어요.

  그야 뻔하죠. 아무도 모르게 하는 일…

  그렇구요?

  둘이 뉘우치지 않을 일…

  또요?

  장차 크게 이로울 일…

  그것 뿐이어요?

  그것 뿐이죠.

  그렇다면 나쁜 일 좀 할까요?

  좋소이다.

  한마디 하고 김준은 안심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안심은 손목을 잡힌 채 여전히 눈웃음만 치더니

  내가 생각하던 대로 대단한 분이군요.

  어째서 그런 말씀을 하시죠?

  김준의 입가에는 이제 자신이 만만한 미소가 감돌기 시작했다.

  진양후께서 가장 총애하는 첩의 손목을 잡으셨다가 그 첩이 소리라도 지르면 당신은 어떻게 되실 줄 알고 계시겠죠?

  그야 당장에 모가지가 달아나겠지만 아마 소리를 지르진 않으실 겁니다.

  그러세요? 그렇지만 천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고 하지 않아요? 내가 당장에라도 소리를 지른다면…

하면서 안심은 별안간 한쪽 손으로 방문을 열어 젖히려 한다. 정말로 소리를 지르겠다는 시늉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할 뿐이지.

  김준은 안심의 손목을 잡았던 손에 힘을 주어 나꾸어 들이더니 한편 손으로 가는 목을 휘어감아 끌어 당기고는 수염이 무성한 입으로 안심의 붉은 입술을 막아버렸다.

  그렇게 되자 금방 소리를 지를 것 같던 안심은 오히려 가는 팔을 김준의 목에 감고 쌔근거린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뜻하지 않게 맺어졌다.

  그러나 이것은 일시적인 불장난이거나 욕정에 못이겨 취한 행동이 아니었다. 두 사람은 각각 계산이 있어서 한 행동이었다.

  안심이 김준을 유인한 것은 다른 종이나 첩들처럼 김준의 준수한 풍채에 마음이 동한 때문은 아니었다. 겉으로는 부드럽고 겸손한 체하면서 마음 속 깊이 감추고 있는 야망에 마음이 끌린 것이었다. 물론, 지금 최이의 총애를 받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첩

은 첩이다. 어엿한 세도가의 본부인으로서 행세하고 싶은 것이 안심의 소망이었다.

  이미 권력이 극에 달하고 모든 제도가 완비된 최이의 첩으로서는 비록 최이가 원하더라도 첩을 본부인으로 고쳐 앉힐 가망은 없다. 그렇지만 이제부터 고개를 드는 강자(强者)와 결합한다면 문제는 다르다. 아직 주위 사람들에게 얽히지도 않고 그다지 체면도 중요시할 필요가 없는 젊은이와 결합한다면 그 젊은이에게 본부인이 있더라도 비켜놓고 그 자리에 앉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다가 그 젊은이가 권세를 잡는다면 떳떳한 세도가의 본부인이 될 수도 있는 게 아닌가? 안심은 늘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점을 찍은 것이 바로 김준이었던 것이다.

  김준이 안심의 유인에 스스로 말려 들어간 것은 역시 엉뚱한 계산하에서였다.

  자기의 힘을 기르려면 무엇보다도 배경이 되는 최이의 마음을 완전히 장악해야 한다.

  물론, 지금도 최이의 총애를 받고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나이와 사나이 사이에 오고 가는 이해관계와 정분에 지나지 않는다. 좀 더 밀접학 접근하려면 인간적인 약점까지도 남김없이 드러내는 여자의 힘이 필요하다.

  다른 권신들의 예로 보면 자기 혈친을 권세가에게 들여보내어 그러한 길을 트기도 하지만 김준에게는 마땅한 혈친이 없다. 그러므로 이미 최이의 총애를 받는 자들 중에서 가장 목적을 달성하기 적합한 여자와 접근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던 참인데 안심의 유인을 받았으니 응하지 않을 까닭이 없었다.

  이해관계가 서로 들어맞은 김준과 안심은 있는 꾀를 다 짜서 최이의 마음을 사려고 노력했다. 기회 있을 적마다 안심은 김준의 인품과 재주와 충성심을 최이의 귀에 속삭였다. 그러나 두 사람의 계산대로 일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원래부터 남을 믿지 않던 최이는 안심이 갑자기 김준을 칭찬하기 시작하자 그 의도를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계집이 이렇게 야단하는 걸 보니 혹시 김준하고 내통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일찍이 최이는 동화(桐花)와 최준문(崔俊文)으로 말미암아 그와 비슷한 일로 더운 물을 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생각해 보니 안심이란 계집은 동화란 계집과 비슷한 데가 있고 김준이란 놈은 최준문이란 놈과 비슷한 데가 있단 말야.)

  최이는 은밀히 사람을 놓아 두 사람의 비밀을 탐지하게 했다. 아무리 은밀히 하는 일이라도 남녀의 정사란 캐어내려고 하면 감추기 어려운 법이다. 그날도 집안이 조용한 틈을 타서 김준과 안심이 밀회하고 있는데 최이가 보낸 여종이 현장을 발견했다.

  현장이 발각되자 김준은 독특한 웃음을 웃으며

  얘, 뭐 그렇게 놀랄 것 없지 않니? 세상에 흔히 있는 일인데…

하고는 많은 금품으로 매수하려 했다. 그러나 여종에겐 최이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대꾸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달려가 최이에게 고해 바쳤다.

  과연 그 년놈들이 내통하고 있었단 말이지? 그렇듯 은혜를 베풀었는데 주인을 배반했단 말이지?

  길길이 뛰며 노한 최이는 처음엔 남녀를 때려 죽일 생각까지 했다. 그러나 그의 몸은 일국의 정사를 장악하고 있는 처지이며 인신(人臣)의 극에 이른 지위에 있었다. 공연히 떠들어대면 자기 집안의 수치를 드러내는 셈이 되고 가혹한 형벌을 주면 도량이 좁다는 비난을 받기도 쉽다. 곰곰 생각한 끝에 김준을 멀리 귀양을 보내고 안심은 집에서 쫓아냈다.

  이렇게 되니 김준과 안심의 계교는 완전히 실패로 돌아간 셈이다. 그러나 그만 일로 자기의 야망을 포기할 김준이 아니었다. 일단 귀양살이를 하기는 했지만 박송비, 송길유 등 심복의 힘을 빌어 몇 해 아니 가서 풀려 돌아올 수 있게 되자 다시 암약을 하기 시작했다.

  최이에게는 원래 본처 소생의 자식이 없었다. 다만 서련방(瑞蓮房)이란 첩의 몸에서 난 만종(萬宗), 만전(萬全) 두 아들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첩들의 자식을 후사로 삼는다는 것을 최이는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그것은 지난날 동화나 안심에게 덴 때문도 있을 것이다.

  (첩의 자식을 후사로 삼느니 차라리 사위에게 내 권세를 물려 주는 편이 낫겠지.)

  이렇게 생각하고는 사위 김약선(金若先)을 은밀히 불러 자기 뜻을 전했다.

  김약선은 평장사 김태서(金台瑞)의 아들로 최이의 사위가 되자 최이의 총애를 극진히 받았으며,  벼슬이 중추원 부사에 이르렀다. 그리고 고종 이십이년에는 자기 딸을 태자비로 삼았으니 명실공히 최이의 후계자로서 부끄러울 데가 없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사위를 후계자로 삼는다면 비록 첩의 자식이지만 엄연한 두 아들이 있는 이상 불평을 품고 어떤 난동을 일으킬는지 알수 없다. 그래서 두 첩의 자식을 절로 보내어 중을 만들어 버렸다.

  김준은 이런 후계자들간의 알력에 착안한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비록 중이 되었지만 만종과 만전이 가만히 있지 않을걸.

  귀양살이에서 풀려나와 집 한간을 장만하고 안심과도 동거하게 된 김준은 어느날 안심의 방을 찾아가서 이런 말을 꺼냈다.

  말할 것도 없죠. 특히 만전이란 사람은 보통내기가 아니니까요.

  만일 약선을 쫓아내고 만전을 후계자로 삼게하는게 공을 세운다면 우리도 셈이 펼 게 아닌가?

  이를 말씀예요? 그렇게 된다면 우리가 오래전부터 바라던 일이 모두 풀리게 될걸요.

  그것 참 그렇겠군!

  김준은 한참 무엇을 생각하더니

  이것 봐. 너는 원래 만전의 에미 서련방과 잘아는 처지지?

  그럼요. 내가 진양후의 총애를 받았을 때엔 같은 첩이지만 서련방은 샘을 내지 않고 나 한테 잘 굴었구 나도 그 사람이 진양후의 아들을 낳은 걸 보고 잘 봐줬으니까요.

  그렇다면 잘 됐군. 우선 서련방을 만나서, 자기 아들을 진양후의 후사로 삼는데 우리가 힘을 쓰면 단단히 보답하겠느냐고 따져 보도록 해.

  안심은 즉시 서련방을 찾아갔다.

  서련방은 뜻하지 않은 제의에 눈물을 흘리며 고마워한 다음 안심의 손목을 잡고  그렇게만 된다면 그 은혜는 죽어도 잊지 않겠지만, 그런 어려운 일이 쉽게 성사할 수 있겠수?  일을 잘못 저질렀다가 약선이놈의 노여움을 사서 큰 화를 당하지나 않을까?

  마음 약한 서련방은 이렇게 걱정하기도 한다.

  아이참 형님두 별 걱정 다하시는구료. 이런 일을 누가 내놓고 한답디까? 형님네나 우리나 겉에 나타나지 않고 하는 수가 다 있단 말예요. 일이 탄로나도 화는 다른 사람이 입게 할테니 조금도 염려 말아요.

  안심이 서련방의 마음을 떠보고 나자 한편 김준은 따로 쌍봉사(雙峰寺)로 만전을 찾아가서 그 의향을 떠보았다. 만전도 역시 두 말 없이 찬동했다. 그리고는 그런데 약선이놈을 없앨 계교란 어떤 계교요?

묻는다.  그러나 김준은 야릇한 미소를 띠우며

  그런건 모르시는 편이 나을 겁니다. 아시면 일이 누설되기 쉽고 오히려 해가 되실는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자기 계책을 끝내 밝히지 않았다. 자기 집으로 돌아간 김준은 다시 안심의 방을 찾아 들어갔다.

  어떠세요? 만전이란 사람 좋아하죠?

  좋아하구 말구… 그런데 이것봐. 이번엔 네가 또 좀 수고해야겠어.

  김준이 이렇게 말하니까 안심은 곁눈질로 남자를 흘겨보며

  또 내가 움직여야 해요? 남들과 달라서 아무 보답두 받지두 못할 텐데.

  앙탈을 부려본다.

  그게 무슨 소리야? 제일 크게 보답을 받을 사람은 바로 안심일 텐데.

  정말이지?

  암, 정말이지.

  그 말 잊으면 안 돼요.

  잊을 까닭이 없지. 그러니 수고 좀 해요.

  이번엔 또 누굴 구슬리라는 거예요?

  약선이 처를 좀 만나 줘.

  하필 또 왜 그 사람을 만나라구 그러슈?

  안심은 약간 상을 찡그렸다.

  김약선의 처, 그러니까 최이의 딸은 대단히 거만하고 사나운 여자였다. 타고난 성품이 그런데다가 자기 딸이 태자비가 된 후부터는 그 태도가 한층 더 심했다. 당대의 세도가인 최이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딸인데다가, 한 나라의 왕태자의 장모란 귀한 몸이니 그럴 싸한 일이기도 하지만 그런 지위를 계산에 넣고도 만사가 지나칠 정도였다.

  어느해 연등날 저녁, 약선의 처가 입궐한 적이 있었다. 이때 그 행렬을 보고 세상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견룡행수(牽龍行首), 중금도지(中禁都知) 및 장군들로 하여금 그 행렬을 호위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타고 가는 덩이라는지, 복식 같은 것이 마치 왕비와 다름이 없었다.

  이제 세상은 다 됐군! 한낱 신하의 계집년으로 저렇게 위세를 부리다니.

  이게 다 상감이 약한 때문이요. 저런 걸 버려두니 신하의 행패를 상감이 자초하는 셈이지.

  뜻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고 입맛을 다셨다. 그렇듯 거만하고 주제넘은 김약선의 처를 만나야 할 것을 생각하니 안심의 자존심은 약간 상했다. 그렇지만 영리한 안심은 그런 기분에 좌우될 여자가 아니었다. 김준에게서 밀계를 받자 김약선의 처가 좋아함직한 선물을 장만해 가지고 찾아갔다.

  안심이 너 웬일이냐?

  김약선의 처는 안심을 보자 거만한 눈초리로 아래위를 흙어보며 말했다. 비록 지난날 자기 부친의 첩으로 있던 여자이지만, 세상에 높이 보이는 게 없는 약선의 처에게는 안심쯤 한낱 천한 계집종으로 밖에 안 보였다.

  안심은 비위가 거슬리는 것을 꾹 참고 공손히 절까지 한 다음 그 곁으로 다가갔다.

  긴히 여쭐 말씀이 있어서 이렇게 찾아왔죠.

하고 좌우를 둘러봤다.

  긴히 할 말이라니?

  조용히 여쭤야 할 일인데요.

  안심은 다시 좌우를 둘러본다. 곁에 사람들이 없어야 얘기를 꺼내겠다는 눈치였다.

  김약선의 처는 원래 남이 밀고하는 걸 즐겨 듣는 성미였다. 곧 눈짓으로 좌우에서 시중 들던 여자들을 물러가게 했다.

  자, 어서 얘기해 봐.

  이건 좀 여쭙기 거북한 일이지만요 들으시고 역정을 내시지는 마세요.

  안심은 우선 이렇게 운을 띠었다.

  무슨 일인데 네가 내게 잘못한 일이라도 있단 말이냐?

  원, 별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게 아니구요. 바로 부사 어른에 관한 일인데요.

  부사란 곧 추밀원 부사로 있는 김약선을 가리키는 말이다.

  아니, 우리 집 양반이 또 무슨 일을 저질렀단 말야?

  김약선의 처의 눈치는 당장 달라진다.

  김약선은 그 처지로 미루어 세도가의 딸인 자기 아내에게 쥐여 지내는 몸이다. 그런만치 아내에 대한 반발을 오직 여색(女色)으로 풀기라도 하려는 듯 여자라면 닥치는 대로 범하기가 일쑤였다. 그래서 그의 처는 항상 투기에 마음을 놓을 겨를이 없었으므로 남편에 관한 일이라는 말을 들으니 먼저 머리에 떠오른 것은 여자들에 관한 일이었다.

  그 양반이 또 어떤 계집년하구?

  김약선의 처는 벌써 새파랗게 질린 입술을 바르르 떤다.

  아니 너무 역정을 내지 마시래두요.

  안심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지만, 실은 그것은 김약선의 처의 투기심을 한층 더 부채질하는 계산에서 나온 말이었다.

  화는 누가 낸다구 그래? 잔소리 말구 어서 자세한 이야기나 좀 해봐.

  김약선의 처는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무릎을 마주 댄다. 안심의 입가에는 회심의 미소가 떠올랐다.  처음에는 상대편의 위세에 눌려 굽실거렸지만 이제 상대편의 마음은 완전히 자기 수중에 잡힌 셈이다.

  안심은 일부러 상대편의 조바심을 더하게 하느라고 서서히 말을 꺼낸다.

  부사 어른께선 어쩌자고 그러시는 지요?

  여기서 또 말을 끊는다.

  글세, 그 양반이 어느 년 하구 놀아났는지 속 시원히 말 좀 하라니까.

  김약선의 처는 안심의 옷자락까지 움켜잡고 야단이다.

  이건 남이 들으면 정말 큰일날 일이어요.

  여기서 또다시 말을 끊었다가 김약선의 처의 투기심이 절정에 달하는 것을 보자, 그 귓전에 입을 바싹 대고 속삭였다.

  다름이 아니라, 부사 어른께서 요 며칠 전에 망월루(望月樓) 모란방(牧丹房)에서 여러 계집애들과 한바탕 노셨다는 걸 아시는 지요?

  모란방에서 금시 초문인데… 그래 어떤 계집애들이지?

  바로 어르신네 댁에서 일보는 사람들의 딸들이라나요. 숫배기 처녀들만 일곱명을 모아놓고 칠선녀라 부르시면서 흥청거리셨다는군요.

  처녀들만 일곱이나? 음… 이제 내가 늙었다구 젊은년들 하구만 놀아난단 말이지?

  김약선의 처는 치를 떨었다.

  그런데 노셔두 예사롭게 노시지 않구 해괴망측한 놀음을 하시더래요.

  해괴망측한 놀음이라구?

  글세, 일곱 처녀를 한방에 모아 놓구선 모조리 발가벗긴 다음 춤을 추게 하셨대요.

  그래서?

  그 뒤는 알죠 뭐. 그 분 솜씨를 잘 아시면서…

  이렇게 말하고 안심은 간드러지게 웃었다. 김약선의 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이구 분해. 아이구 분해. 이 원수를 어떻게 갚아야 속이 풀리지?

  발을 동동 구르더니 밖으로 뛰어나가려고 한다. 그 소매를 안심은 슬며시 잡아 당겼다.

  고정하시어요. 섣불리 떠드시면 오히려 되잡히십니다.

  되잡히긴 뭘 되잡혀? 그 일곱년을 당장에 때려 죽이고 남편인지 뭔지 그 작자, 다시는 그런 짓 못하게 혼을 좀 내줘야지.

  글세 참으시래두요. 부사 어른의 놀이가 너무 심하신 걸 보구 곁에 있던 사람이 충고를 했대요.  그랬더니 부사 어른은 이런 말을 하시더래요.

  그래두 입은 째졌다구 무슨 소릴 지껄이더라는 거야?

 그러니까 안심은 비로소 김약선의 처의 얼굴을 뚫어지게 쏘아보더니

  내 처가 친정의 세도를 믿고 종놈과 밀통을 한 걸 알고 있는데, 사내 자식으로 태어나서 이만한 오입쯤 못할 게 뭐냐, 그러시더래요.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이때까지 길길이 뛰던 김약선의 처는 그 말에 기가 질린 모양이었다.

  아니 나중엔 별소릴 다 듣겠네.

하면서도 얼굴에 두려움이 가득해졌다.

  김약선의 처가 남몰래 종과 관계를 했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김준에게서 그 사실을 들은 안심은 마지막으로 그 말을 꺼내어 은근히 김약선의 처를 협박한 것이다.

  그러니 너무 떠들지 말고 잘 생각해서 처리 하도록 해요.

 안심은 어느덧 말씨까지 소홀해지며 이렇게 못을 박고는 그 집을 물러 나왔다. 안심이 돌아가자 김약선의 처는 한편으론 분하고 한편으론 겁이 나서 어쩔 줄을 몰랐다.

  (세상 사람 아무도 모르게 저지른 일인데 그걸 어떻게 눈치챘을까? 가만 있다간 큰일 나겠는걸.  젊은년들하구 놀아나기 위해서 나를 내대느라고 그 소문을 퍼뜨리기라두 한다면 나는 마지막이란 말야.)

  김약선의 처는 곰곰 생각한 끝에 자기 부친인 최이의 집으로 달려갔다.

  아버님, 전 이제 세상이 싫어졌어요.

  부친 앞에 몸을 던지고 통곡을 했다. 최이는 어리둥절 했다.

  아니 별안간 그게 무슨 소리냐?

  차라리 중이 되어서 산중에 묻혀 살고 싶어요.

  글세 왜 그런 소릴 자꾸 하는 거지?

  김약선의 처는 다시 한차례 통곡을 하고 나서

  하늘같이 믿었던 남편이 제가 인제 나이를 먹었다고 내대니 무슨 살맛이 있겠어요?

  약선이가 또 바람을 피었다는 거냐?

  웬만한 바람이면 전 투기도 하지 않아요. 그런데 글세 허구 많은 계집중에 아버님댁 사람들의 딸들만 일곱이나 골라다가 모란방에서 가진 추태를 다 부렸다는군요?

  우리 집안 계집애들을?

  최이의 얼굴에는 비로소 노기가 가득해졌다. 최이 역시 색을 좋아하는 처지라 자기 집에서 부리는 사람들의 처나 딸들은 비록 손은 대지 않더라도 자기 소유물로 아껴 오던 터였다. 마음이 동하면 한송이 한송이 꺾어볼 꽃송이들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김약선이 한꺼번에 일곱씩이나 꺾었다고 하니 분통이 터졌다. 뿐만 아니라 김약선은 자기 아들을 젖혀놓고 후사를 삼으려고 기대를 걸던 인물이었다. 분노와 실망이 한데 겹쳐서 그는 치를 떨었다.

  내 그래두 그 놈이 쓸만한 데가 있는 줄 알았더니 아주 형편 없는 놈이로군.

  부친이 노하는 것을 보자 딸은 없는 말까지 보태어 그 노기를 돋구었다.

  너무 추태가 심하기에 곁에 있던 사람들이 말리니까 글세 이런 소리까지 하더래요. 아버님.

  무슨 소릴?

  이 세상에 무엇이 두려울게 있다구 하구 싶은 일을 못하느냐는 거예요. 다 늙은 장인은 멀지 않아 죽어갈 거구, 그렇게 되면 최씨 집안이 누리던 권세를 김씨 집안이 누릴 판인데 어느 놈이 무서워서 몸을 사리겠느냐구 탕탕 큰소리를 치더래요.

  아니 그 놈이 그런 소리까지? 제놈이 오늘과 같은 처지가 된 것도 최씨 집안에 은혜를 입은 때문인데 최씨 대신 저의 집안이 권세를 잡아보겠다?

  최이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었다.

  그것 보세요. 그러니까 남이라는 건 소용없다니까요.

  이럴 줄 알았으면 그 놈에게 내 뒤를 잇게 할게 아니라, 첩의 자식이구 뭐구 만종이나 만전을 후사로 삼을 걸 그랬다.

  그럼 이제부터라도 그렇게 하시면 되지 않아요.

  이미 정해논 일을 뒤엎으면 그 놈이 가만 있겠느냐? 그러지 않아도 엉뚱한 생각을 품은 놈인데.

  말썽을 부리기 전에 없애버리죠, 뭐.

  투기심과 자기의 부정한 행실에 대한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이 경망한 여자는 마침내 남편을 죽이라고 권하게까지 되었다.

  음, 말썽을 부리기 전에 없애버린다? 그럴 수밖에 없군.

  최이는 과단성 있는 인물이었다. 즉시 사람을 보내어 김약선을 죽이게 한 다음 김약선과 정을 통했다는 처녀들을 먼 섬으로 귀양 보내고 모란방을 허물어 버렸다.

  이 소식을 듣자 김준과 안심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어떠냐 말야, 내 계교가?

  내 꾀는 어떻구요?

  이제 남은 문제는 만전이를 후사로 삼게 하는 일 뿐야.

  만전의 누이동생에 송서(宋 )란 사람의 아내가 된 여인이 있었다. 김준은 안심에게 그여인을 선동하도록 시켰다.

  송서의 처는 곧 최이를 찾아갔다.

  온통 눈물을 흘리며 최이의 방에 들어가더니

  아버님! 아버님이 살아 계신 동안에도 우리 오라버님들이 산중으로 쫓겨가서 저렇게 고생을 하시는데 아버님이 만일 세상을 떠나시면 간악한 사람들이 얼마나 오라버님들을 괴롭히겠어요?  제발 마음을 돌리시고 오라버님들을 서울로 부르시어요.

  그리고는 또 한바탕 울음을 터뜨린다.

  알겠다. 나도 생각이 있으니 염려말고 물러 가라.

  김약선을 죽이고 난 후, 자기 아들들을 후계자로 삼으려고 마음먹고 있던 최이였다. 그러므로 딸의 말을 듣자 즉시 두 아들 중에서 만전을 불러 환속시킨 다음 이름도 항(沆)이라고 고치고 후계자를 삼았다.

  고종 삼십육년 십일월, 최이가 세상을 떠나자 최항은 추밀원 부사가 되었다. 김약선의 관직을 대신하 셈이었다. 그리고 모든 실권을 자기 수중에 장악했다. 그러는 한편 자기가 권력을 계승하는데 절대적인 역할을 한 김준에게 크게 보답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김준의 출신이 워낙 천하므로 높은 벼슬을 줄 수 없어 겨우 별장(別將)이란 관직을 주었지만 최항의 으뜸가는 심복으로 그의 세력은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항은 집권하자 김준 등의 진언을 들어 제법 볼만한 정사를 했다. 대장경(大藏經)을 만들어 후세까지 찬란한 문화유산(文化遺産)을 남겼으며 몽고의 침입에 끝까지 항거하여 민족의의기를 과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집권한지 십년 만인 고종 사십오년에 세상을 떠나자 본부인에게는 마침 소생이 없었으므로 중으로 있을 때 매부되는 송소의 종과 통해서 낳은 의( )를 후사로 삼았다.

 

 

 

  武力의 末路

  최의가 집권하게 되자 나이도 어리고 성품도 그다지 현명하지 못했으므로 어질고 유능한 부하들을 멀리하고 유능(柳能), 최양백(崔良伯) 등 간사한 무리들만 가까이 했다.

  특히 최이는 김준을 꺼리었다. 부친 때부터 그의 심복이 되어 권력을 잡고 있던 김준이므로 자기 말을 고분고분 듣지 않을 뿐 아니라 모든 일을 오히려 지휘하는 경향이 있어서 최의에게는 누구보다도 귀찮은 존재였다.

  최의가 차츰 자기를 멀리 하자 김준이 그 태도에 불평을 품게 된 것은 응당 있을 법한 일이었다.

  이때 김준의 심복 송길유는 수로방호별감(水路防護別監)으로 경상도에 가 있었다. 워낙 욕심이 많고 잔인한 송길유는 백성들의 토지와 재물을 함부로 빼앗았으며 거기 항거하는 자가 있으면 이루 말할 수 없을 만치 가혹한 형벌을 내렸다. 그가 백성들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 가한 혹형의 방법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데 참으로 끔찍한 방법이었다. 두 손의 엄지 손가락을 묶어서 천장에 매달아 놓는다. 그런 다음 두 발의 엄지 발가락도 역시 묶어서 거기 큰 돌을 매달고 그 발 밑에는 숯불을 활활 피워 놓는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견디기 어려운 혹형인데 다시 장정 두 사람을 양 옆에 세워 차례로 쉴 새 없이 볼기를 치게 한다.

  이런 형벌을 받으면 처음에는 억울하게 재산을 빼앗긴데 항거하던 백성들도 고통을 못 이겨 그 재산을 자진해서 기부하는 형식을 추할 수밖에 없었다. 그 뿐이 아니었다. 백성들이 무리를 지어 항거할 때에는 모조리 잡아다가 밧줄로 목을 묶어 연결시킨 다음 물 속에 던져버린다.  한참 있으면 물에 빠진 사람들은 허우적거리다가 거의 죽게 된다. 그러면 다시 꺼내어 숨을 돌리게 한 다음 또 물속에 집어 넣는다.

  이와 같은 잔악한 처사가 마침내 안찰사 송언상(按察使宋彦庠)에게 발각되었다. 송언상은 즉시 그 사실을 도병마사에게 보고하고 도병마사는 다시 조정에 상주했다.

  에이, 바보 같은 놈!

  이런 사실을 최의의 귀에 들어가기 전에 알게 된 김준은 입맛을 다시며 화를 냈다.

  그러나 송길유로 말할 것 같으면 생사를 같이 하기로 맹세한 심복일 뿐 아리나 송길유의 악행이 최의의 귀에 들어가 벌을 받게 된다면 자기의 정치적인 세력에도 큰 영향을 받게 된다.

  김준은 전부터 가깝게 지내던 대사성 유경(大司成柳璥)을 불러 의논했다.

  그렇다면 이 보고를 뭉개버릴 수밖에 없죠.

이렇게 돼서 송길유의 죄상은 일단 은폐해 버렸지만, 김준을 실각시키려는 유능, 최양백 등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즉시 이 일을 최의에게 고해 바쳤다.

  뭐라구? 김준이가 잔악무도한 죄인을 감싸고 내게 알리는 것까지 막게 한다?

  최의는 노발대발했다. 즉시 송길유를 추자도(楸子島)로 귀양 보내는 한편 김준 등을 불러

  네가 아무리 우리 선친의 총애를 받던 몸이라 하더라도 분수를 알아야지. 내가 알아야 할 극악무도한 죄인의 죄상까지 은폐하러 들다니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앞으로 내 앞에 얼씬거리지도 말라.

이렇게 면박을 주었다. 이쯤되니 김준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제놈이 뭐가 잘났다고 저렇게 꺼떡대는 거야. 나만 아니었더라면 지금쯤 국사는 김약선의 손에서 좌우될 것이고, 제놈의 신세는 한낱 종의 자식으로 형편없이 됐을 텐데 나를 푸대접 한다? 어디 두고 보자!)

  벼르고 있는 참인데 신의군도령 박희실(神義軍都領朴希實)과 지유낭장 이연소(指諭郎將李延紹) 등이 은밀히 찾아와서 이런 말을 한다.

  아무래도 그 최의라는 놈을 없애버려야겠소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 어떤 화가 미칠는지 알 수 없구료.

  그들의 말을 듣자 김준도 자기 생각을 탁 털어 놓았다.

  나도 그런 생각을 가진지는 오래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게 좋겠소?

  일이 급하니 거사가 빠르면 빠를수록 좋을 겁니다.

  이리하여 사월 팔일 관등날 저녁에 거사하기로 작정을 했다.

  김준에게는 대재(大材)라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대재의 아내는 바로 김준의 정적인 최양백의 딸이었다. 그러므로 김준이 거사를 한다면 필연적으로 장인이 되는 최양백도 죽음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대재는 차마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하고 최양백에게 밀계를 누설했다.

  우리 일이 성공하면 장인 어른도 큰 화를 입을 테니 일찌감치 우리편을 들도록 하십시오.

  최양백은 워낙 능란한 사람이라 대재의 말을 듣자 시침 뚝 따고

  일이 그렇게 됐다면 물론 그 편을 들어야지. 나는 원래 자네와의 관계로 보나 자네 어르신 네 편에 가담할 사람이었지만 유능이란 자에게 말려들어가서 몸을 빼지 못하고 있던 참이니 이 기회에 내 태도를 명백히 하겠네.

 이런 말로 대재를 구슬려 돌려 보냈다. 그리고는 즉시 대재의 처인 자기 딸을 불렀다.

  너는 아무래도 대재와 이혼을 해야겠다.

  대재의 처는 무슨 영문인 줄 알 수 없어서 부친의 다음 말만 기다리고 있었다.

  대재는 날더러 자기 편을 들라고 하지만 아무래도 실권을 쥐고 있는 건 최공이고 또 이때까지의 인연으로 보아도 최공을 돕는 게 여러 가지로 유리하단 말야. 그러니 이제부턴 김준의 집안과 아주 손을 끊겠단 말이다.

  최양백은 다시 사람을 시켜 유능을 불러왔다. 그리고 김준이 난을 일으키려 한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내 전부터 그럴 것으로 짐작은 했지만 기어코 일을 저지르는 군.

  유능은 입맛을 다신다.

  그 자들의 난을 막으려면 우리가 먼저 손을 써야 하지 않겠소?

  최양백이 말하니까 유능은

  그야 그렇지만 벌써 이렇게 날이 저물었으니 어쩌겠소. 우선 야별초지유 한종궤(夜別抄指諭韓宗軌)에게 글을 보내서 날이 밝는 대로 군졸을 거느리고 김준을 치도록 지시합시다. 그래도 아마 늦지 않을 거요.

  두 사람은 이렇게 의논하고 최의에게 그 뜻을 알렸더니 최의도 두 사람의 계교대로 할 것에 응낙했다.

  최양백 등의 계교를 대재의 처는 낱낱이 다 엿듣고 있었다. 먼젓번엔 부친의 목숨이 위태로운걸 염려해서 비밀을 누설했는데 부친이 이런 태도를 취하니 어찌하면 좋을는지 알 수 없었다.  몰래 친정을 빠져나와 시집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남편에게 사태가 변한 것을 알려 주었다.

  간사한 늙은이 같으니!

  대재는 급히 김준에게로 달려가서 이 일을 알렸다.

  그렇다면 오늘밤으로 거사할 수밖에 없구나.

  김준은 곧 집안에 있던 장졸들을 거느리고 신의군으로 달려가서 박희실과 이연소를 만났다.

  비밀이 누설됐으니 한시도 지체할 수 없소.

  이 말을 듣자 박희실과 이연소도 급히 서둘지 않을 수 없었다. 급히 자기네들에게 소속한 장졸들을 소집하는 한편 지유 서균한(指諭徐均漢) 등을 불러 삼별초(三別抄)를 사청(射廳)에 모이게 했다. 그리고 사람들을 거리로 내보내어

  영공(令公)께서 돌아가셨다.

고 외치게 했다. 영공이란 곧 최의를 말하는 것이다.

  최의가 죽었다는 말을 듣자 서울거리는 어수선해졌으며 김준의 심복은 말할 것도 없고 이때까지 어느편으로 가담할까 망설이고 있던 자들까지 모두 다 김준의 앞으로 모여들었다. 그러나 정변을 일으키고 정권을 잡기에는 김준의 신분이 너무나 미약했다. 김준 자신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렇게 큰일을 하자면 지도자가 필요하오. 대신의 자리에 있으면서 신망이 두터운 분을 추대합시다.

  그리하여 추밀원사 최온(崔 )을 추대하여 지도자로 삼았다. 그리고는 군졸들을 이끌고 최의의 집으로 향했다. 그날밤은 마침 안개가 심해서 최의의 집을 지키는 군졸들은 김준의 군사가 겹겹이 집을 에워싸는걸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첫닭이 울 무렵, 김준의 명령이 떨어졌다. 김준의 군졸들은 일제히 최의의 집 벽을 헐고 안으로 들어갔다.

  뜻하지 않은 기습에 최의의 군졸들은 어찌할바를 몰랐다. 우왕좌왕하다가 혹은 참살되고 혹은 도망하여 최의는 마침내 김준 도당의 손에 죽고 말았다. 이것으로 최씨 일문이 사대를 누린 육십여년 동안의 영화는 끝나고 만 셈이다.

  최의를 죽인 김준 등은 곧 궁궐로 들어가서 나라의 실권을 왕에게 돌려보냈다.

  때는 고종 사십오년 삼월이었으니, 왕은 등극한지 실로 사십오년 만에 친히 정사를 돌보게 된 셈이다. 그러므로 왕은 크게 기뻐하여 김준을 장군으로 삼고 위사공신(衛社功臣)의 호를 하사했다.

  이로부터 김준의 권세는 나날이 뿌리를 박기 시작했다. 곧 이어 우부승선(右副承宣)으로 승진했고,  그 이듬해 육월, 왕이 유경의 집에 갔다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이십사대 원종(元宗)이 즉위하자 추밀원부사를 거쳐 참지정사가 되었다. 그리고 원종 오년에는 시중(侍中)이 되고 다시 해양후(海陽侯)로 봉해졌으니 지난날 최충헌이 누리던 관작과 비슷하게 되었다.

  이로부터 김준은 그의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정변 초에는 자기 가문이 한미한 때문도 있고 해서 민심을 무마하느라고 정권을 왕께 바쳤지만, 이제 그 지위가 신하로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자 차츰 왕을 누르고 국권을 자기 한 손에 장악하려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원종 구년, 몽고에서 사신을 보내어 김준 부자와 아우 충(沖)을 입조시키라는 명령을 내린 일이 있었다. 김준은 비록 최씨에게서 정권을 탈취했지만 대몽고 정책만은 최씨 일문을 닮아 강경책을 고집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몽고에 입조해서 굽실거리기는 죽기보다 싫었다.

  그런 참인데 이때 장군 차송우(車松佑)가 곁에 있다가 권한다.

  몽고에 입조하시어 고생을 하시느니 차라리 사신의 목을 베고 몽고와 관계를 끊는 편이 낫지 않습니까?

  김준의 마음에 꼭 맞는 말이었다.

  이때, 원종은 오랜 강화도 생활을 청산하고 개성으로 환도해 있었으나 김준은 강화도로 다시 천도하는 한이 있더라도 몽고와 맞서 보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김준은 즉시 왕을 뵙고 그 뜻을 상주했으나 몽고와의 관계가 험악해질 것을 원치 않는 왕은 이를 허락치 않았다.

  김준은 하는 수 없이 물러나와 다시 차송우와 의논해 보았다.

  상감께서 굳이 허락치 않으시니 어찌하면 좋을까?

  그러니까 차송우는 음성을 낮추어

  왕손은 상감 한분 뿐이 아니외다. 왕손들이 얼마라도 있으니 갈면 그만 아닙니까?

  그 말을 듣자 김준은 마침내 왕을 없애고 몽고와 대항할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그래서 우선 몽고의 사신을 죽일 생각으로 도병마녹사 엄수안(都兵馬錄事嚴守安)을 시켜 자기 아우 충에게 이 일을 전하도록 했다. 충은 마침 병으로 자기 집에 누워 있었다. 수안은 충을 찾아가자 김준의 뜻을 전한 다음, 그 일이 옳지 못함을 극력 강조했다. 원래 엄수안의 사람 됨을 존중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말이 사리에 어긋남이 없으므로 곧 김준에게로 달려가서 이번 계교의 부당성을 말하고 중단하도록 충고했다.

  김준에겐 충이 오른팔과 같은 존재였다. 그러므로 아우가 강경히 반대하는데 일을 강행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 계획은 일단 중단했지만 몽고에 입조하는 일만은 끝내 이행하지 않았다.  이 일은 여러 사람의 입을 거쳐 왕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처음에는 김준의 공로를 가상히 여기던 왕이었지만 그권세가 날로 강성해 가는 것을 보자 두려움을 품기 시작하던 참이었는데 이제 왕을 해칠 생각까지 가졌다고 하니 그를 미워하지 않을리 없었다. 기회만 있으면 김준을 없애버려야 하겠다고 근신들에게 비쳤다.

  왕의 의향도 김준에게 전해졌다. 그러나 김준은 적어도 겉으로는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아니 누가 나를 건드린단 말야? 자난날 국권을 한손에 쥐고 위세를 부리던 최의도 내 손에 죽었구, 또 최의의 재산을 풀어 굶주린 백성들에게 나누어 준 일까지 있는데 내 비록 네거리에 나가 누워 있더라도 나를 해칠 사람은 없을 거야.

  집안 사람들이 신변의 호위를 강화하라는 말을 할 것 같으면 김준은 이렇게 호언장담하기가 일쑤였다. 그리고는 더욱 위세를 보일 생각으로 자기 집을 크게 개축했는데 그때 이웃에 있는 민가를 모조리 헐어버리고 집터를 넓혔다. 집의 높이가 수십척이 되었으며 마당의 넓이는 백보나 되었다. 그러나 그의 첩 안심은 오히려 그 규모를 비웃었다.

  겨우 넓힌다는 게 백보예요? 대장부가 어찌그리 안목이 적으실까?

  그 말에 김준은 낯을 붉히고 아무 말도 못했다. 이 하찮은 일화는 그런대로 김준의 성격을 잘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로서는 굉장히 넓혔다는 마당이 겨우 백보 밖에 안 되었다는 것은 어려서부터 가난하게 자란 때문도 있을 것이고 또 겉으로는 호방한 척하면서도 의외로 소심한 구석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기에 왕을 폐하려고 거사하려다가 주주물러 앉았던 것이며, 그로 말미암아 후에 큰 화를 초래했는지도 모른다.

  김준의 수하에 임연(林衍)이란 사람이 있었다. 용모가 괴상하여 두 눈은 벌의 눈같이 튀어나오고 음성은 이리의 목소리 같았다고 한다. 그러나 몸이 가볍고 힘이 강하여 거꾸로 서서 두 손으로 땅을 짚고 기어가기를 두 발로 가듯했다고 한다.

  그가 대정(隊正)으로 있을 때의 일이었다. 임효후(林孝侯)란 자가 임연의 처와 밀통을 했다.  임연은 이일을 알자 크게 노했다.

  네놈이 그런다면 내게도 생각이 있다.

  임연은 임효후의 아내를 유인하고 관계를 했다. 말하자면 임효후에게 복수를 한 셈이었다.  그러나 임효후는 자기 허물은 젖혀놓고 임연의 처사만 괘씸하다하여 유사(有司)에게 고해 바쳤다. 그래서 임연이 죄를 받게 될 때 김준이 이일을 알았다.

  음, 그 사람 힘도 강하고 재주도 쓸 만한데 함부로 벌을 주긴 아까운걸!

  그리고는 여러 가지로 힘을 써서 임연의 죄를 사하게 하고 오히려 벼슬을 올려 낭장(郎將)을 삼았다.

  임연은 눈물을 흘리며 고마워했다. 그 후부터 김준을 아버지라 부르며 그의 명령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게 되었다. 그러므로 김준이 최의를 죽일 때엔 가장 앞장 서서 활약을 했으며 그공으로 추밀원 부사가 된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후 우연히 임연은 김준의 아들과 토지관계로 다투게 되었다.

  아니, 그 놈이 지난날의 은혜는 잊고 사소한 밭 한뙈기를 가지고 내 아들과 다툰단 말야?  내가 눈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 동안에도 그 지경이니 내가 죽은 다음엔 그놈이 얼마나 행패를 할까? 그런 놈은 앞으론 우리 집에 얼씬도 못하게 해라.

이 말이 임연의 귀에 들어갔다.

  큰일을 한다는 양반이 그렇게 공사를 분별하지 못한다면 어쩐담! 자기 아들 귀한 줄만 알고 자기를 도와 생사를 아까지 않던 부하를 소홀이 한다면 나도 생각이 있지.

  그런 일이 있은지 얼마 후 임연의 처가 종을 때려 죽인 일이 있었다. 그 당시로서는 그다지 문제 삼을 일이 못되었지만 임연을 미워하게 된 김준은 펄펄 뛰었다.

  남편이란 놈이 그 지경이니 여편네라는 것도 그 꼴이지. 그런 악독한 계집은 멀리 귀양이라도 보내서 혼 좀 내줘야겠다.

이 말이 또 임연의 귀에 들어갔다. 임연은 더욱 김준을 원망하게 되었다.

  어디 두고 보자. 네가 먼저 죽나 내가 먼저 죽나 두고 보란 말야.

이렇게 벼르고 있는데 하루는 강윤소(康允紹)라는 낭장이 찾아왔다. 강윤소는 원래 신안공(新安公)의 종이었는데 몽고말에 능통하고 간사한 꾀를 잘 부린 때문에 원종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  윤소는 항상 왕을 가까이 모시고 있었으므로 왕이 김준을 미워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내 손으로 김준이란 놈을 없애버린다면 상감께선 나를 더욱 총애하실거구 그 공으로 어떤 권세라도 누릴 수 있을 텐데.)

  늘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일을 일으키자니 자기에게는 김준을 제거할 만한 힘이없다. 자기보다 훨씬 권세 있는 자를 업고 일을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여러 가지로 물색하던 끝에 지난날 김준의 총애를 받았다가 틈이 벌어진 임연을 지목하고 찾아온 것이다.  여러 가지 잡담 끝에 강윤소는 슬며시 말을 꺼냈다.

  요즈음 부사께선 해양후와 사이가 좋지 못하시다는 소문을 들었는데요.

  그 말에 임연은 묵묵히 대답이 없었다. 강윤소가 어떤 생각으로 그런 말을 꺼냈는지 알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눈치를 재빠르게 알아차린 강윤소는 바싹다가 앉으며

  실은 그 소문을 상감께서도 듣게 되셨답니다.

  상감께서/

  예, 그리고 이건 입밖에 내선 안 될 말씀이지만 상감 말씀이 임부사 같은 사람이 어째서 극악무도한 자를 내버려 두고 있나 하시던데요.

  임연의 두 눈은 빛났다.

  그럼 상감께서도 김준이를 미워하고 계시단 말이요?

  미워하시다 뿐이겠소? 그 자를 제거하는 용사가 있다면 일등공신을 삼겠다고 늘 말씀하시는 터이지요.

  음 그래? 그렇다면 내게도 생각이 없는바는 아니지만. 강낭장, 다시 한 번 상감의 뜻을 확인해 오시오.

  임연이 이렇게 말하자 강윤소는 즉시 입궐하여 왕에게 임연의 뜻을 전했다.

  임부사가 그런 생각을 가졌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진실로 충신이라 할 수 있다.

  왕은 기뻐하며 이렇게 말했다. 강윤소는 다시 왕의 뜻을 임연에게 전했다. 그러나 신중한 임연은 강윤소의 말만으로 거사하기엔 어딘지 불안스러웠다. 그래서 전부터 안면이 있는 환관 최은(崔은)과 김경(金鏡) 등을 시켜 다시 왕에게 상주하도록 했다. 최은과 김경의 말을 들은 왕은 다시

  진실로 김준을 죽일 수는 있다면 그보다 더 다행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이런 말을 했다. 그 말을 전해 듣자 임연은 마침내 최후의 결심을 했다. 그는 큰 꼬챙이를 많이 만들어 궤짝 속에 넣고 미리 궁중에 감춰 둔 다음 김준이 궁중에 입궐할 때만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후 왕은 몽고의 사신을 대접한단 핑계로 김준을 궁중에 불렀다. 그러나 김준 일당은 신변에 위험을 느꼈던지 입궐하지 않았다.

  김준의 무리가 입궐하지 않는 걸 보니 일이 누설된 것이나 아닐까?

  왕은 몹시 근심한 나머지 밤잠도 이루지 못할 지경이었다. 이것을 보자 김경이 왕에게 아뢰기를

  비밀이 누설됐다면 더욱 일을 서둘러야 하겠습니다. 급히 의논할 일이 있으니 입궐하라고 상감께서 직접 분부를 내리십시오.

  이리하여 왕은 정식으로 김준을 부르도록 하고 그 명을 김경이 전했다.

  이때까지도 김준은 신변에 위험을 막연히 느꼈을 뿐이고 임연 등의 계교를 알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왕의 분부를 전해 듣자 급히 궁중으로 달려갔다. 그래도 만일의 경우를 염려해서 아우 충과 몇몇 종자를 거느리고 들어갔다.

  김준이 입궐하자 미리 임연의 명령을 받고 있던 최은이 좋은 말로 유인하여 편전 앞에 이르렀다.  이때였다. 그 곳에 숨어 있던 임연과 그 부하들이 일제히 쇠꼬챙이를 들고 달려들어 김준을 찔렀다.

  김준도 원래 녹록치 않은 장수였으나 불의의 습격을 받고 비틀거렸다. 이것을 보자 임연이 칼을 뽑고 달려든다.

  아니 네놈이 감히 애비라고 부르는 나를 해치려 하느냐?

  김준은 눈을 부릅떴다. 그러나 임연은 조소를 띠우고

  나를 살려 줄 때는 부친도 될 수 있지만 당신이 나를 죽이려 하니 원수가 될 수밖에 없지 않소.

  이렇게 내뱉듯 말하고 한칼로 김준의 목을 베었다. 그러자 김준의 아우 김충이 달려 왔으나 역시 형과 같은 운명이 되고 말았다.

  이때 김준의 종자들은 궁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김준 형제가 피살되었다는 말을 듣자 궁중에 들어가 원수를 갚겠다고 문을 두드렸다. 이 소리를 듣자 김자정(金子挺)이란 환관이 달려가서 소리쳐 꾸짖었다.

  조용히들 못할까? 상감의 분부를 받잡고 김준 형제를 주살했거늘 너희들이 이제 궁중에 들어가서 무슨 짓을 하려느냐?

  이 말에 김준의 종자들은 기가 죽어 슬금슬금 물러가 버렸다.

  김준 형제를 죽인 임연은 즉시 야별초(夜別抄)를 보내어 김준의 아들과 그 무리들을 모조리 죽여버렸으니 자기 상전을 죽이고 득세한 김준도 역시 상전과 같은 최후를 마친 셈이다.

  김준이 죽게 되자 이번에는 임연이 득세하게 되었다. 임연은 처음 김준을 죽일 때 명분이 정권을 왕에게 돌리기 위함이라고 했지만 그가 득세하자 그 야망은 김준이나 최씨 일문과 다를바가 없었다. 마침내 녹록치 않은 왕을 폐하고 안경공 창(安慶公 )을 세워 새왕으로 삼았다. 자기 마음대로 정사를 주무르기 위해서였다.

  때마침 세자는 몽고에 가 있다가 귀국하였는데 사바부(娑婆府)에 이르러 임연이 함부로 왕을 폐립했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다시 몽고로 돌아갔다.

  세자의 호소를 듣자 몽고 조정에서는 사신을 보내어 함부로 왕을 폐립한 사실을 크게 꾸짖었다.  그리고 전왕을 복위시키도록 압력을 가했다. 이렇게 되니 임연도 압력에 눌려 안경공을 폐하고 전왕을 복위시켰다. 그 후 몽고에서는 임연의 죄를 문책할 뜻으로 그를 불렀으나 그는 가지 않고 자기 아들 유간(惟幹)을 대신 보내어 변명을 하게 했다. 그러나 몽고 천자는 이미 세자의 호소를 들은 바도 있고 하여 유간의 말을 믿지 않고 목을 졸라 죽인 다음 다시 임연을 불렀다.

  임연은 마침내 몽고 조정의 압력을 제거할 길이 없음을 깨닫고 야별초를 각도에 보내어 백성들을 독려하고 몽고와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지나친 심려 끝에 울화병이 나서 원종 십이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임연이 죽자 그의 아들 유무(惟茂)가 그 뜻을 계승하여 끝까지 몽고에 항거하려 했다. 그러나 몽고에 갔던 세자도 돌아오고 왕과 세자의 신변을 몽고병이 호위하게끔 되었으니 임유무는 완전히 고립된 셈이었다. 그러한 터에 매부되는 홍문계(洪文系) 등에게 잡히어 버렸으므로 임씨의 세력은 완전히 꺾이어 버렸다.

  이와 같이 되어 왕을 누르는 신하의 세력이 없어졌으나 그 대신 고려 조정에 압력을 가하고 정사를 간섭하게 된 것은 몽고의 세력이었다. 고려는 이제 떳떳한 독립국이라기 보다도 몽고의 한 제후국으로 자처하게 되었다.

 

 

 

 

  女 人 天 下

  女傑 薺國公主

  고려가 원(元=蒙古)나라의 속국이 되자 원나라에서는 황실의 공주를 고려왕의 왕비로 삼을 것을 강요했다. 이와 같은 정략결혼은 두 가지 뜻에서 고려 왕실을 속박하는 결과가 되었다.  즉 왕비로 간 공주가 고려 조정의 정사를 감시해서 수상한 동태가 있으면 즉시 본국으로 연락한다. 그리고 고려왕은 원나라 황제의 사위가 되는 것이므로 함부로 반기를 들 수 없고 또 공주에게 소생이 있어서 왕위를 잇는다면 그 왕에게는 원나라 사람의 피가 반반 섞일 것이므로 더욱 반원(反元)적인 태도를 취할 수 없게 된다.

  이와 같은 정략결혼은 오랜 시일을 분쟁해 온 고려와 원나라 사이에 외교적 조정과 평화를 가져 왔다.

  원나라에서 공주가 오는 대신 고려에서는 아름다운 처녀들이 많이 원나라로 끌려 갔다.

소위 공녀(貢女)라는 것이 그것이다. 공녀로 먼 이국땅에 끌려간다는 것은 확실히 큰 비극이었다.  그러나 그 공녀들 중에는 원나라 황실이나 고관들의 집안에 들어가 세력을 갖게 되고 고려 조정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자도 적지 않다.

  원나라의 공주로서 처음으로 고려왕의 비가 된 것은 제이십오대 충렬왕(忠烈王)의 비인 제국대장공주(薺國大長公主)이다.  공주는 원나라 세조(世祖)의 딸로서 홀도로게리미실공주(忽都魯揭里迷失公主)라고도 한다.

  원종 십오년, 충렬왕은 세자로 있을 때 정략적으로 결혼을 하였다. 이때 충렬왕은 삼십구세란 중년을 바라보는 장정이었으므로 이미 결혼한바가 있었지만 대국의 위세에 눌려 본처를 궁주(宮主)로 강격(降格)시키고 후처인 제국대장공주를 정실로 맞아들인 것이다. 공주는 친정이 바로 대국의 황실이므로 그것을 믿고 거만한 거동이 적지 않았다.

  충렬왕 원년 구월, 공주가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곧 제이십육대 충선왕(忠宣王)이다.

  공주의 몸에서 원자 탄생을 보자 백관들은 모두 다 그것을 경하해 마지 않았으며 충렬왕의 전 왕비인 정화궁주(貞和宮主)도 잔치를 베풀어 득남을 축하하였다.

  이때 정화궁주를 모시는 궁인들이 동상방(東廂房)에 잔치자리를 베풀려고 하니까 때마침 왕이 지나가다 보고

  어째서 동상방에 그런 자릴 베풀려 하느냐? 정침(正寢)에 꾸미도록 하라.

  이렇게 간섭을 했다. 좀 더 좋은 곳에다가 연석을 꾸미라는 말이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왕이 얼마나 공주를 어려워했는가 짐작할 수 있다.

  왕의 말대로 궁인들은 다시 정침에 평상을 놓고 연석을 베풀었다. 그런 다음 공주를 청했다.  공주가 들어와 자리에 앉으려 할 때였다. 공주를 모시던 한 시녀가 좌석을 바라보더니 공주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공주마마, 잠깐 기다리시어요.

  왜 그러느냐?

  이 자리를 자세히 보시어요. 이렇게 평상을 놓고 그 위에 잔치자리를 꾸몄으니 여기서 잔치를 하시면 별 수 없이 공주마마와 정화궁주가 같은 자리에서 앉게 되지 않겠사와요?

  이 연석에서 웃자리와 아랫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충렬왕의 뜻과는 반대되는 결과가 된 셈이다.  거만한 공주는 발끈 성을 냈다.

  뭐라구? 나를 궁주와 똑같이 대접한단 말이지? 그게 될 말이냐? 지난날엔 정화궁주도 왕비였는진 모르지만 지금은 엄연히 공주보다 훨씬 낮은 신분으로서 어찌 감히 한 자리에 앉으러 드느냐?

  그리고는 잔치자리를 서상방(西廂房)으로 옮기게 했다. 서상방에는 한층 높은 자리가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옥신각신 하다가 모두들 자리를 잡고 앉자, 정화궁주가 꿇어 앉으며 왕에게 술잔을 올렸다. 그러자 왕은 슬쩍 공주를 돌아 보았다. 공주에게도 한잔 따르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공주는 왕의 그런 눈짓을 오해하고는 매섭게 왕을 쏘아보며 앙칼지게 소리쳤다.

  어째서 나를 흘겨보는 거예요?

  공주가 소리치는 바람에 좌중이 일시에 조용해졌다. 왕도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어서 어리둥절할 뿐이다.

  아마 전에 왕비로 있던 궁주가 내 앞에 꿇어 앉아서 술을 따르는 게 못마땅해서 그러시는게죠?

그리고는 발딱 일어서서

  이따위 축하라면 차라리 받지 않는 게 더 나아요.

  악을 쓰고 그 자리에서 뛰쳐 나갔다. 주빈인 공주가 뛰쳐 나가자 주빈을 잃은 좌석은 파 할 수밖에 없다. 난처한 일이었다. 전각 아래로 뛰쳐나간 공주는 어린애처럼 엉엉 소리내어 울며

  다 귀찮다! 모두 다 보기 싫어! 빨리 내 아이 있는 곁에나 가고 싶다. 어서 데려다 다오.

하고 발을 굴렸다.

  그래서 시녀와 마침 공주 곁에 모시고 있던 공주의 유모는 하는 수 없이 공주를 태울 더을 불러 오려고 하는데

  잠깐만… 잠깐만 기다리시오. 공주.

  왕이 지팡이를 짚고 헐레벌떡거리며 달려 왔다.

  공주, 모든 것이 과인의 불찰이니 허물하지 말고, 마음을 진정하오.

  왕이 아무리 달래 보아도 공주는 들은체 만체 발을 구르며 덩을 재촉하기만 했다. 늙은 왕은 딱하기 이를데 없었다. 공주를 아무리 달래도 소용이 없으니까 이번에는 공주가 누구보다도 아끼는 유모를 협박했다.

  여봐라. 공주께서 기어이 이 자리를 뜨게 하신다면 반드시 네년은 죽을 줄 알아라. 내 손으로 네년의 목을 졸라 숨이 끊어지는 걸 보고야 말겠다.

  왕이 지팡이를 휘두르며 이렇게 소리지르는 것을 보니까 그 꼴이 몹시 웃으웠던 모양이다.  이때껏 울부짖던 공주는 이번엔 웃음을 터뜨리며

  상감께선 딱하시기두 해. 나한테 할 말이 있으면 직접하시지 죄없는 유모를 어째서 괴롭히시어요?

  그러니까 왕은 이내 입이 벌어져서

  유모를 죽이고 싶지 않거든 공주의 노여움을 어서 푸시오.

  공주는 발끈하기 잘하는 대신 성미가 싹싹한 여자였다.

  유모를 죽이신다면 할 수 없이 그 자리에 참석해야죠. 유모는 나를 키워 준 은인이니까요.  그렇지만 똑똑히 알아두세요. 상감의 말씀이 무서워서 다시 참석하는 건 아니예요.

  이런 말을 던지고는 가슴을 쫙 펴고 의기양양하게 잔치자리로 다시 들어갔다.

  잔치가 파하자 왕은 은근히 겁이났다. 은밀히 시신 하나를 불러 대장군 인공수(印公秀)에게 보내어 오늘 잔치에서 공주의 노여움을 산 일을 알린 다음

  공주가 만일 정화궁주의 일로 노여움을 품고 대국에 이 일을 통기한다면 우리나라에 적지 않이 불리할 텐데 어찌하면 좋겠소?

하고 문의 했다.

  인공수는 여러 차례 원에 사신으로 간 일이 있기 때문에 그 곳 조정의 일과 왕실의 동태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시신의 말을 듣자 인공수는 껄걸 웃었다.

  별 걱정을 다 하시는구료. 여자들의 투기에서 나온 사소한 일을 어찌 천자께 상주할 것이며 설혹 상주했다손치더라도 대국의 천자께서 그런 일에까지 간섭하시지는 않을 거요.

  이 말을 전해 듣고 왕은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 왕이 얼마나 공주의 배경을 두려워했는지 이런 일로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 일이 있은 후부터 공주는 정화궁주를 은근히 미워하고 있었는데 그 이듬해 괴상한 사건이 일어났다. 어떤 사람이 달로화적(達魯花赤)에게 투서를 한 것이다. 달로화적이란 원나라의 관직의 하나이지만 고려가 원나라에 항복한 후 원나라에서는 일종의 고문관겸 감시관을 고려로 보냈으므로 이것을 고려 사람들은 달로화적이라고 불렀다.

  달로화적은 고려 임금의 잘못을 충고도 했고 고려에 나와 있는 원나라 관원과 고려인 사이에 일어나는 분쟁을 해결하기도 했으며 원나라에 죄를 지은 고려 사람을 처단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고려 백성은 말할 것도 없고 왕족들까지도 달로화적을 지극히 두려워했다. 달로화적에게 보낸 익명의 투서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옷이 있어야 입을 것이며, 음식이 있어야 먹을 것이니 남을 위해서 그것을 얻지말라.>

  이것을 보자 달로화적은 곰곰 생각해 보았다.

  옷이 있어야 입을 것이며… 음식이 있어야 먹을 것이라… 이것은 바로 고려 사람들이 우리 원나라를 원망하는 소릴 게다. 특히 자기 자리를 쫓겨난 정화궁주가 우리 공주님을 미워하고 이런 소릴 퍼뜨린 것인지도 몰라… 남을 위해서 그것을 얻지 말라… 공주님을 위해서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 그런 뜻으로 해석되거든.

  달로화적은 즉시 공주에게 글을 올렸다.

  정화궁주가 왕의 총애를 잃은 것을 원통히 여겨 무당들로 하여금 공주를 저주하도록 시키고 있사오니 급히 조처 있으시기 바랍니다.

 이 글을 받자 공주는 팔딱팔딱 뛰면서 어쩔줄을 몰랐다.

  내가 그래도 제 처지를 불쌍히 여겨 그대로 두었더니 이제는 나를 저주한다? 어디 두고 보자.

  공주는 즉시 왕에게 졸라서 정화궁주를 유폐하도록 했다. 이런 소식을 듣자 분연히 공주의 처사를 비난한 사람이 있었다. 첨의시랑(僉議侍郞) 유경(柳璥)이었다.

  유경은 천품이 명민하고 기도(器度)가 웅심(雄深)하고 대사를 당했을 때 과단성 있게 처리 하는 인물이었다. 고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치다가 김준이 최씨 정권을 무너뜨릴 때에는 거기 가담해서 무신의 독재를 무너뜨리고 정권을 왕에게 돌려 준 역대의 공신이었다.

  한낱 떠도는 소리를 믿고 지난날 국모였던 분을 가두다니 천부당 만부당한 일로 아뢰오.

정화궁주께서 이미 스스로의 처지를 깨달으시고 근신중이거늘 이 이상 그 분을 괴롭힌다면 그것은 인간의 도리에 어긋난 처사이며 나아가서는 민심에 끼치는 영향도 적지 않을 줄로 아뢰오.

  이와같이 상서했다. 그 글을 보자 영리한 공주는 즉시 정화궁주를 석방하였으나 그 대신 별궁에 거처하게하여 임금과의 교섭은 일체 끊도록 했다.

  한 번은 왕이 공주와 함께 말을 달려 천효사(天孝寺)로 행차한 일이 있었다. 이때 왕이 먼저 산밑에 당도하고 공주가 뒤이어 당도했으나 뒤따르는 신하들과 시녀들은 멀리 처졌다.

그러자 공주는 또 발끈 성을 냈다.

  아니 뭣들 하고 있는 거야? 내가 다른 나라에서 온 몸이라고 신하들까지 업신여기는 모양이지?

  그리고는 말을 돌려 되돌아 가려고 했다. 공주가 이렇게 신경질을 부리자 공주의 눈치만 살피는 왕은 거기 따를 수밖에 없었다. 공주와 함께 산을 내려가는데 그제서야 시신들과 시녀들이 어슬렁 어슬렁 올라오고 있었다. 이것을 보자 공주의 짜증은 극도에 달했다.

  너희들이 정말 나를 이렇게 업신여기기냐? 고려의 법도는 만만한지 모르지만 원나라의 법도는 얼마나 무서운가 보여 주겠다.

  이렇게 외치더니 말채찍으로 시녀들을 닥치는 대로 두드려 팼다.

  일이 또 난처하게 되자, 능글맞은 데가 있는 충렬왕은 정면으로 달래 보았자 소용이 없음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공주가 하는 꼴을 멀거니 바라보고 섰더니 자기 머리에 썼던 것을 벗어 던지고 홀라다(忽剌多)라는 신하의 뒤를 쫓아가며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이놈! 일이 이렇게 된 것이 모두 다 네 탓이란 말이다. 모두 다 네 죄란 말야.

  홀라다는 몽고 사람으로 공주를 어릴 때부터 모시던 가신이며 공주가 고려로 시집오자 역시 그 뒤를 따라왔다. 그러므로 한시도 공주 곁을 떠나지 않았으며 공주 역시 그를 극진히 총애했다.  천성이 괴팍하고 욕심이 많아서 공주의 총애를 빙자하고 닥치는 대로 뇌물을 받아먹었으며 타인의 노비나 전답을 함부로 빼앗아 많은 사람의 원망을 사고 있었다. 이러한 인간이니 만큼 왕도 그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지만 몽고 조정과 잘 통하는 인간이므로 어쩔 수 없이 그저 보고만 있었던 터였다.

  그러다가 이런 일을 당하니 문득 그자의 기를 꺾고 공주의 마음을 달래보자는 계산을 한 것이다.

  공주도 바탕은 영리한 여자였다. 너무 짜증을 내다가 자기가 총애하는 신하에게 화가 미치면 곤란하므로 이내 노여움을 거두고

  상감! 너무 그렇게 달리다가 낙상을 하시면 어쩌시려구요.

하고는 까르르 웃었다. 그러니까 왕도 덩달아 웃으면서

  공주가 과인의 몸을 그렇게 염려해 주니 과인도 홀라다 놈을 쫓는 걸 그만두겠소.

  이렇게 해서 그 자리는 어물어물 수습되고 왕과 공주는 다시 천효사로 향했다.

  이런 일로 미루어본다면 공주는 항상 친정의 배경을 믿고 거만하게 군 것 같으면서도 실상은 이국 만리에, 더구나 늙어가는 남편에게 시집온 젊은 여자로서 신경질을 부린데 지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왕은 항상 공주의 눈치만 살피는 것 같았지만 능란한 솜씨로 공주에게 솜방망이 같은 반격을 가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공주가 어리광과 신경질만으로 시종한 것은 아니었다. 젊은 여자답게 즉흥적이며 직감적이기는 했지만 국사에 대해서도 제법 올바른 의견을 진언하고 백성들의 살람살이를 윤택하게 해보려고 애쓴 흔적도 있다.

  한 번은 어떤 여승(女僧)이 모시 한필을 바친 일이 있었다. 어찌나 올이 가늘고 고운지 마치 매미의 날개 같았으며 거기다가 각자지 꽃무늬까지 섬세하게 놓았다.

  어머나! 참 고운 옷감도 다 보겠네. 이렇게 고운 옷감은 궁중 깊이 감추어 둘 것이 아니라,  널리 백성들에게 구경시켜 짜는 법을 알리도록 해야지.

  공주는 이렇게 말하고 그 모시를 사람을 시켜 장거리에 내다가 구경시키도록 했다.

  신기할이만큼 섬세한 옷감에 사람들은 모두 크게 놀랐다.

  어쩌면 이렇게 고운 옷감이 있을까? 이런 옷감을 어떻게 째았을까?

하고 감탄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 옷감을 구경하고도 그와 비슷한 것을 짜내는 사람들은 없었다.  짜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공주는 하는 수 없이 그 모시를 바친 여승을 다시 불렀다.

  일전에 바친 모시는 어디서 구했지?

  예, 저에게 한 여종이 있사온데 그 애가 짠것이옵니다.

  그래 그렇다면 그 여종을 궁중으로 들여보내도록 하라.

  여승은 그 말을 듣자 깜짝 놀랐다. 유달리 고운 모시를 짜는 기술자를 종으로 부리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비싼 값으로 팔기도 하고 권세 있는 사람에게 선사도 함으로써 여승은 윤택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 종을 궁중에 들여 보낸다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 눈치를 챈 공주는 여승에게 많은 금품을 주어 기술자를 불러들이는데 성공했다.

  공주는 궁중에 있는 궁인들과 하인들에게 그 여종을 따라 섬세한 직조술을 습득하게 했다.  그리하여 그 기술은 마침내 전국에 퍼지게 되었고 고려의 고운 모시 옷감은 원나라에까지 수출하게 되었다.

  이것은 여성적인 직관으로 산업발달에 이바지한 예이지만 또 여성적인 직관만 믿고 일을 서둘렀다가 실패한 예도 없지 않다.

  공주는 자주 원나라에 드나들었다. 그러므로 원나라 사람들이 고려 인삼을 신약으로 생각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특히 강남(江南) 지방 사람들은 고려 인삼이라고 하면 아무리 비싼 값을 치르고라도 구하려고 애를 썼다.

  강남지방에 인삼을 수출하면 큰 이를 볼 수있을 거야.

  공주는 시험 삼아 강남지방에 인삼을 수출해 보았다. 과연 어마어마한 이득을 보았다. 공주는 그 일에 재미를 붙였다.

  이렇게 이가 남는 일이라면 더 많이 수출해야지.

  공주는 환관들을 각 지방에 보내어 인삼을 걷어들이게 한 다음 자꾸 수출했다. 그러나 인삼의 생산에는 한도가 있었다. 전국 도처에는 인삼이 동이 났다. 그래도 저희들의 공만 서두르는 환관들은 백성들을 괴롭히며 인삼을 걷어들이려고 기를 썼다.

  아니 인삼을 풀뿌리나 나무뿌리로 아나?

  그렇게 쉽게 자라는 줄 아는 모양이로군.

  도대체 여자가 하는 일이란 앞뒤를 가리지 않고 서둘러서 탈이야.

  백성을 위해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오히려 백성들의 원망을 사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충렬왕은 원래 놀기 좋아하는 임금이었다. 충렬왕 팔년 어느날, 왕은 공주의 거처로 가서 그 싱거울이만큼 유한 미소를 띠우고는 말했다.

  공주, 빨리 먼 길을 떠날 차비를 하시오.

  갑자기 무슨 일인데요?

  글세 과인만 따라오면 될 게 아니요? 과히 해로운 일은 아니니까.

  왕은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여행의 목적은 밝히지 않고 재촉만 했다.

  싹싹한 공주는 그것도 늙은 왕의 애교이거니 생각하고 더 캐어 묻지 않고 왕을 따라 서울을 떠났다. 처음에는 그저 산수 좋은 곳을 찾아 구경이라도 가는 것이려니 했다. 그런데 서울을 떠나 자꾸 남으로 내려가더니 마침내 임진강을 건넜다.

  상감, 저를 데리고 어디까지 가시려는 거죠?

  공주는 마침내 조바심이 나서 정색을 하고 캐어 물었다.

  충청도까지 갈 생각이요.

  충청도까지예요? 그렇게 먼 데까지 무슨 일로 행차하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왕은 약간 멋적은 듯이 웃으며 대답했다.

  다름이 아니라, 실은 사냥을 하러 가는 거요.

  이 말에 공주는 또 발끈했다.

  사냥을 하러 그렇게 먼 데까지 가요? 그리구 사냥은 남자들이나 하는 건데 어째서 나까지 데리고 가자는 거예요?

  그야 한시도 공주와 떨어져 있기 싫어서 그러는 거지.

  왕은 공주의 비위를 맞추느라고 이런 소리까지 했다. 그러나 공주는 여간 해서도 노여움을 풀지 않았다.

  저하고 떨어지는 게 싫으시면 궁중에 계실 일이지 국가 대사도 아닌데 사냥 같은 것을 하기 위해서 끌려 다니긴 싫어요.

  이렇게 쏘아붙였다.

  그 말에 왕은 한편 무안하고 한편 역정도 나고 해서 그 자리에서 물러가더니 곧 신하들과

함께 그 근처에서 사냥을 시작했다. 숲에 불을 지르고 짐승들을 몰아내어 잡는 사냥이다.

그런데 때마침 바람이 심히 불어 산불이 나고 백성들의 전답까지 태워버렸다.

  이것을 보자 공주는 더욱 화가 났다. 왕에게 직접 말해도 듣지 않을 것 같아 이번에는 장군 조인규(趙仁規)를 불러 따졌다.

  도대체 사냥이라는 것은 죄없는 짐승들을 죽이고, 백성들을 괴롭히고, 또 그 일에 매달리는 신하들의 수고도 적지 않은 것이니 상감께 아뢰어 환궁하시도록 하오.

  조인규는 지각도 있고 학식도 많은 현신(賢臣)이었다. 일찍이 고려 자제들 중에서 총명한 자를 골라 몽고말을 가르친 적이 있었는데 인규도 그 속에 뽑혔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를 했으나 다른 동료들보다 별로 뛰어난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이것을 분하게 생각한 그는 두문불출 밤이나 낮이나 가리지 않고 삼년 동안을 역학(力學)해서 마침내 그 이름을 떨치게 되었고 그로부터 벼슬이 올라 장군이 된 것이다.

  이런 인물인 만큼 공주의 말이 옳고 왕의 처사가 그름을 판별할 줄 알았다. 인규는 즉시 왕에게 좋은 말로 간하여 환궁할 것을 간하니 왕도 하는 수 없이 그 말을 쫓아 환궁하였다.

  충렬왕 십일년, 왕은 상장군 김자정(金子廷)을 동경부사(東京副使)로 삼은 일이 있었다.

  김자정은 원종 때부터 환관으로 있던 자로서 임연이 김준을 죽였을 때엔 그 일에 가담해서 공을 세운 일도 있었다. 그리고 원종 십년 그 당시 세자였던 충렬왕을 따라 원나라까지 갔다가 그 후 충렬왕이 즉위하자 친종장군(親從將軍)으로 승진했고, 충렬왕 삼년에는 방수군(防守軍)을 압송하여 탐라(耽羅)에 간 적도 있었는데 내료(內僚)로서 출사(出使)하기는 김자정이 처음이라고 한다.

  이와같이 김자정은 충렬왕에겐 심복과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동경 즉 경주는 바로 충렬왕의 모친 순경태후 김씨(順敬太后金氏)의 고향이다.

  이 일을 알자 공주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상감께서 또 일을 그르치시는걸.)

  왕이 마침 공주의 처소에 들리자 공주는 슬며시 이렇게 물었다.

  상감, 동경은 바로 상감의 모후되시는 순경태후의 고향이 아니어요?

  그렇소. 그런 또 왜 갑자기 물어보오?

  모후의 고향에 상감이 부리시던 환관을 부사로 보낸다는 건 어떨까요? 태후의 일가친척과 결탁해서 공평치 못한 정사를 할 염려가 있지 않겠어요?

  옳은 말이었다. 왕의 심복이 그 곳을 다스리게 된다면 왕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왕의 외가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후한 대접을 할 것이고 그 반면에 백성들의 원망을 산다는 것은 십중팔구 있음직한 일이었다.

  왕은 말문이 막혔다. 입을 다물고 쓴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그랬더니 공주는 다시 왕을날카롭게 쏘아보며

  그런데 남반에 속한 벼슬아치에게 지방의 요직을 맡기는 일이 언제부터 있었죠?

  남반(南班)이란 동반(東班) 서반(西班) 외에 제삼직인 내료직(內僚職)에 속하는 것으로서 양반의 대열에 끼지 못하고 천시되어 오던 계급이었다. 그러므로 김자정을 동경부사로 삼는다는 것은 사리사욕을 채울 뿐만 아니라 계급과 전통을 어지럽히는 결과도 되는 것이다.

  부왕 때부터 시작된 일이요.

  왕은 자기 허물을 조금이라도 덜려는 생각이었던지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공주는 싸늘한 웃음을 띠우며

  과연 상감께서는 아버님을 닮으신 아드님이시군요.

하고 통렬히 비꼬았다. 왕은 아무 말도 못하고 쓴웃음을 지으며 낯을 붉히기만 했다.

  충렬왕 십삼년, 공주는 친정인 원조로 근친을 가게 되었다. 공주가 친정엘 가게 될 때는 언제나 진귀한 선물을 장만해 가지고 가게 마련이었는데 이번엔 색다른 선물을 생각해 냈다.

  상감, 이번 근친 갈 땐 전과 다른 선물을 장만해 가기로 했어요.

  전과 다른 선물이라니? 세상에 둘도 없는 보물이라도 구했단 말이요?

  그런게 아니구요. 어여쁜 여자들을 바치자는 거예요.

  난 또 뭐라고… 공녀 말이로군.

하면서 왕은 상을 찡그렸다.

  공녀는 앞에서도 잠깐 언급한 바가 있지만 고려에서 어여쁜 여자들을 골라 원나라에 바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풍습은 고종 때 고려가 원나라에 항복했을 때 항복조건으로 동남동녀(童南童女) 오백명 내지 천명을 요구한 일이 있었는데, 이때부터 시작한 것이다. 그 후 고려에서는 결혼도감(結婚都監), 과부처녀 추고별감(寡婦處女推考別監)이라는 관청을 따로 설치하여 여자를 징발해다가 원나라에 바쳐왔다. 그러나 원나라, 즉 몽고를 오랑캐라고 업신여기던 그 당시의 고려 여자들은 한사코 응하지 않았으므로 고려 조정에서는 하는 수 없이 역적의 처나, 중의 딸이나, 그밖에 사생아를 모아 보냈지만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원나라 조정에서는 늘 공녀를 독촉해 오던 터였다.

  원나라가 고려에게 공녀를 요구한 것은 근친정책(近親政策)으로 원과 고려의 관계를 굳게 하려는 뜻도 있었지만 원나라 상하가 어여쁜 고려 여자를 많이 탐낸 때문이었다.

  공녀라고 보통 공녀가 아니어요.

  공주는 득의에 찬 얼굴을 하고 말했다.

  보통 공녀가 아니라니?

  이때까지는 천한 계집들만 보냈기 때문에 우리 모국에선 고려 여자들의 평이 좋지 않아요.  고려 여자들은 슬기롭고 아름답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어째 이런 것들 뿐이냐고 투덜거리는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이런 일은 고려 사람들의 체면을 많이 깎는 것이 되지 않겠어요?  그래서 이번엔 고관들의 딸들을 뽑아 보낼까 해요.

  고관들의 딸들을? 당치도 않은 말씀이요, 공주. 웬만한 집 딸들도 공녀로 가기를 한사코 싫어하는데 고관들의 딸들이 어찌 응하겠소.

  왕이 쓴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하니까 공주는 이내 독살스러운 눈초리를 보내며 소리친다.

  응하지 않으면 힘으로 다스릴 뿐이지요.

  아무리 공주의 힘이라도 이것만은 어려울 것이요.

  두고 보시어요. 내 힘이 어떤가.

  공주는 이렇게 장담하더니 홀적(忽赤)들에게 양가의 처녀들을 납치해 오도록 명령했다.

  홀적이란 고려 때 활을 메고 궁전을 지키던 숙위병(宿衛兵)인데, 홀지(忽只), 화리적(火里赤), 역홀지(亦忽只)라고 부르기도 했다. 모두 다 몽고식 명칭을 본떠서 붙인 이름이다. 이들은 충렬왕 원년, 원나라에 인질로 다녀온 자들 중에서 선발한 것인데 그 중에는 몽고 사람도 섞여 있었다. 말하자면 몽고의 교육을 받고 고려보다도 몽고에 충실하려는 장졸들이다.

  그러므로 공주의 명령이 떨어지자 그들은 인정 사정 없이 양가를 습격하고 규중 깊이 침입하여 어여쁜 처녀들을 함부로 잡아왔다. 이렇게 되니 나라 안은 발끈 뒤집히고, 딸을 가진 사람들은 전전긍긍하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렇게 잡혀온 처녀들 중에는 서원후 영(西原侯瑛)의 딸, 대장군 김지서(金之瑞)의 딸, 시랑 곽번(郭蕃)의 딸, 별장 이덕수(李德守)의 딸도 섞여 있었으니 공주의 명령이 얼마나 가혹했는가 알 수 있었다.

  공주가 공녀로 보낼 여자들을 잡아다 궁중에 가두어 두자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그때부터 어쩐 일인지 세자가 몹시 화를 내며 식음을 전폐하고 투덜거리는 것이었다.

  공녀는 무슨 공녀를 보낸다고 어머님은 저렇게 야단이실까?

  세자가 불만스러워하는 것을 보자 간사한 홀라다가 살살 꼬이며 그 까닭을 물어 보았다.

  세자마마, 공녀를 대국에 보내는 건 고려의 위세를 떨치기 위해서이온데 어찌하여 그렇듯 불쾌히 여기시옵니까?

  그러니까 세자는 볼멘 소리를 질렀다.

  나라의 위세를 떨치는 것도 좋기는 하지만 양가의 처녀까지 골라 보낸다면 고려 남자들은 누구한테 장갈 들란 말야? 쓸 만한 사람은 모두 대국으로 다구 고려엔 찌꺼기만 남을게 아냐?

  세자의 말을 듣자 눈치 빠른 홀라다는 이내 그 심중을 짐작할 수 있었다. 세자의 나이 벌써 삼십세, 그 당시로서는 이미 여성에게 관심을 가질 나이다.

  (하하… 세자는 바로 자기 비가 될 여자들까지 없어질까봐 염려하는 모양이구나.)

  이렇게 생각한 홀라다는 다시 세자의 눈치를 살피면서

  세자마마, 과히 심려 마옵소서. 아무리 공녀를 보낸들 세자마마 비가 될 규수까지 보내겠사옵니까?

  이 말을 듣자 단순한 세자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잔말 말어! 벌써 내가 생각해 둔 처녀까지 공녀로 골라 버린걸.

  그 말에 홀라다는 일부러 크게 놀라는 척하면서

  아니 그렇사옵니까? 전혀 몰랐습니다. 그 규수는 어느 규수이옵니까?

  바로 서원후의 딸이란 말야. 나는 서원후의 딸을 비로 삼으려고 마음먹고 있었단 말야.

  간사한 홀라다는 세자의 마음을 캐내자 이내 공주에게 달려갔다.

  마마, 한가지 앙청할 일이 있사옵니다.

  무슨 일인데?

  공녀들 중에 한 사람만은 공녀로 보내는 것을 중지하시옵소서.

  누구를 보내지 말란 말이냐?

  바로 서원후의 딸이옵니다.

  서원후의 딸? 그것은 또 어째서?

  그제서야 홀라다는 능글맞은 웃음을 웃으며 세자가 서원후의 딸에게 마음을 두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 했다.

  세자가 벌써?

  공주는 흡족한 미소를 띠웠다. 세자가 이성에게 관심을 가질 만큼 성장했다는 것이 대견했던 것이다. 그래서 서원후의 딸만은 공녀로 보낼 것을 즉각 중지시켰다. 그리고 그 규수는 후에 과연 세자의 비가 되었으니 바로 정비(靜妃)이다.

  이와같이 해서 양가의 처녀들까지 공녀로 가게 되었지만 그 중에는 죽음을 각오하고 공녀가 되기를 거역한 처녀와 부모들도 없지 않았다.

  그때 홍규(洪奎)라는 사람에게도 한 딸이 있었다. 홍규는 원래 성품이 활달하고 욕심이 적고 의지가 굳은 인물이었다. 일찍이 임연이 죽고 그의 아들 유모가 정권을 계승하였을 때 원종이 원나라에서 돌아오는 걸 무력으로 막으려 해서 인심이 흉흉한바 있었다. 그때 왕은 은밀히 홍규에게 사람을 보내어

  내 경의 충성을 믿고 분부하노니 사직을 지키고 대의를 살리기 위해서 역적을 물리치도록 하라.

  즉 임유모를 치라는 명령이었다. 유모는 바로 홍규의 처남이었다. 그러나 그는 대의를 위해서 처남의 목을 베고 왕을 맞아들였던 것이다. 그공으로 좌부승선(左副承宣)에 임명되었으나 동료들이 나라 일은 돌보지 않고 임금에게 아첨만 일삼는 것을 보자 더불어 한자리에 있는 것을 부끄럽다하여 관직을 사퇴한 일도 있었다. 그 후 다시 추밀원 부사에 임명되었지만 굳이 사양하고 벼슬을 받지 않았는데 이때 홍규의 나이 아직 사십이 못되었다.

  이와같이 기백 있는 인물이므로 고려의 처녀들을 원나라에 보내는데 격분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공주의 명령으로 홀적들이 자기 딸을 잡으러 온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뭐라구? 내 딸을 오랑캐 놈들에게 바치겠다? 당치도 않은 소리 작작하라고 그래! 내 딸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오랑캐 놈들에겐 주지 않을 테다.

  홍규가 이렇게 호통을 치자 마침 놀러왔던 한사기라는 사람이 물었다.

  그렇지만 그 극성스런 공주의 명령을 거역할수야 있겠소?

  그러나 홍규는 끝내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그 여자가 아무리 극성스럽기로 내 딸의 머리카락을 베어버린다면 데려가지 못하겠지.

  머리카락을 베어버린다! 지독한 일을 하시겠다는구료. 그러시다가 공은 큰 화를 면치 못하실 거요.

  겁나지 않소. 나는 내 생각대로 할 뿐이요.

  그리고 나서 홍규는 마침내 삼단 같던 딸의 머리를 빡빡 깎아 버렸다.

  홀적들이 달려왔을 때엔 홍처녀는 이미 중대가리가 되어 있었다.

  아니 누구의 분부라고 이렇게 거역하는 거요? 두고 봅시다.

  홀적들은 곧 이 일을 공주에게 고해 바쳤다. 공주는 팔팔 뛰며 성을 냈다.

  그래 그 놈이 감히 내 명령을 어긴다고? 홍규란 놈을 당장 잡아다가 호된 형을 가하는 한편 그 딸년은 내 앞으로 끌고 오너라.

  입에 거품을 물고 소리소리 질렀다. 홀적들은 즉시 홍규를 잡아다가 옥에 가두는 한편 홍처녀를 공주 앞으로 끌고 왔다.

  이년! 누가 네 머리를 중대가리로 만들었지?

  마당에 꿇어 엎드린 홍처녀를 내려다보며 공주는 호통을 쳤다. 그러나 홍처녀도 보통 처녀가 아니었다.

  두어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제 머리쯤 제가 꺾지 누가 깎겠사와요?

  이렇게 말대꾸를 했다.

  이년! 누구 앞이라고 감히 거짓말을 하느냐? 네 아비가 깎았다는 것을 다 알고 있는데 왜 감추러 들지?

  마마께선 아직도 고려 풍속을 모르시는 것 같사와요. 몽고에선 또 몰라도 고려에선 점잖은 남자 분이란 아녀자의 몸에 손도 대지 않는 법인데 어찌 머리를 깎는 그런 좀스런 일까지 하겠사와요?

  홍처녀의 말에 공주의 울화는 더욱 폭발했다.

  이년이 입은 살았다구 나풀나풀 못하는 말이 없구나. 어디 혼 좀 나봐라.

하더니 맨발로 마당에 뛰어내려가 쇠채찍으로 홍처녀의 몸을 내리치기 시작했다. 목덜미고 등어리고 다리 팔이고 함부로 내리치니 온 몸에 유혈이 낭자하다. 그러나 홍처녀는 끝내 굴복하지 않았다.

  공주가 홍규 부녀에게 가혹한 형을 가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뜻 있는 신하들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특히 역대의 공신 김방경(金方慶)은 병석에 누워 있는 몸임에도 불구하고 입궐하여 강경히 간하였다.

  홍규로 말할 것 같으면 나라에 큰 공이 있는 충신이거늘 사소한 죄로 말미암아 이렇듯 가혹한 형벌을 가하신다면 민심에 끼치는 영향도 적지 않을까 하오.

  그러나 공주는 끝내 신하들의 충고를 듣지 않았다. 홍규를 먼 섬으로 귀양 보내고 그 가산은 몰수하고 홍처녀는 원나라 사신에게 주어 버렸다. 지독히 가혹한 처사였다.

  이와 같이 여성다운 장점과 결점을 함께 드러내며 고려 조정에 군림하던 여걸도 하늘이 부여한 수명은 어찌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충렬왕 이십삼년 오월, 우연히 병을 얻더니 어이없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때 나이 겨우 삼십구세였다.

 

 

 

 

  嫉妬 끝에 오는 것

  제국공주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그 때 원나라에 가 있던 세자는 급히 귀국했다. 세자는 귀국하자 모후의 별세를 의심하게 되었다.

  (아직 젊고 건강하시던 분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신다는 것은 아무래도 수상한 일이야.)

  이렇게 생각한 세자는 여러 사람을 놓아 수소문하자 충렬왕이 총애하던 여성들이 독살한 것이라고 고해 바치는 자가 있었다. 그리하여 그 중에서 가장 총애를 받고 날뛰던 무비(無比) 등 몇몇 사람을 혹은 죽이기도 하고 혹은 귀양을 보냈다.

  별로 뚜렷한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그 가혹한 처사에는 비난이 자자했다. 특히 그 처사가 충렬왕에게 준 충격은 심했다. 믿고 의지하던 왕비가 죽은 것만도 늙은 왕에겐 큰 타격이었는데 총애하던 여자까지 잃고 나니 만사가 귀찮았다.

  충렬왕 이십사년, 왕은 마침내 아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태상왕(太上王)으로 물러앉게 되었다.  이리하여 원나라에 그 일을 보고하는 한편 세자가 즉위하였으니 바로 제이십육대 충선왕(忠宣王)이다.

  충선왕은 부왕이 어지럽혀 놓은 조정을 바로 잡고 정국을 쇠신한 열의를 품고 있었다.

그리하여 먼저 관제(官制)를 개편하려 하자 구습에 젖은 권신들은 젊은 왕의 처사를 대단히 못마땅하게 여겼다. 특히 그의 혁신정책에 큰 방해가 된 것은 정비(正妃) 계국공주( 國公主)와 조씨(趙氏)와의 암투였다.

  충선왕은 일찍이 서원후 영의 딸, 홍문계(洪文系)의 딸, 조인규(趙仁規)의 딸을 비로 맞아 들였는데 충렬왕 이십이년 원나라의 명령으로 원나라 황실 진왕 감마라(晋王甘麻剌)의 딸을 맞아 정비로 삼았다. 이 여인이 바로 계국공주이다.

  계국공주 역시 친정인 원나라 조정의 힘을 믿고 안하무인(眼下無人)격으로 굴었다. 모든 일이 자기 마음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할 지경이었다. 물론 만조백관(滿朝百官)과 모든 궁인들은 계국공주를 극진히 받들었으며 그 명령을 어기는 사람이라고는 없었다.

  공주가 하고자 하는 일치고 아니 되는 일이 없을 정도였지만 공주에게는 한 가지 큰 불만이 있었다. 그것은 왕의 사랑을 독점(獨占)하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왕은 원나라에 인질로 가기 전에 맞이한 세 비가 있었다. 그리고 그 비들은 거의 다 자기 뜻이 움직여 맞아들인 여인들이었으며 젊은 정을 쏟은 애인들이기도 했다.

  그와 반대로 계국공주는 원나라에 인질로 잡혀 갔을 때 강제로 맞아들인 비였으므로 정이 들리가 없었다.

  왕은 환국하자 자연히 공주와 멀어지는 한편 다른 비들, 특히 조비를 총애하게 되었다.

  조비는 역대공신 조인규의 딸로서 예의범절(禮儀凡節)이 바를 뿐만 아니라 여성다운 점이 충만했다.  기회 있을 때마다 친정의 위세를 빌어 왕의 위세를 누르려는 계국공주와는 딴판이었다.  왕은 계국공주로 말미암아 불쾌한 일을 당하면 곧장 조비의 처소로 들어갔다.

  상감, 또 용안이 어두우시군요?

  조비는 이내 왕의 심정을 알아차리고 이렇게 위로했다.

  이 세상에 분하고 원통한 일도 많기는 하지만 큰 나라의 속국이 되는 것처럼 서러운 일은 없구료.

  왕은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었다.

  모두 다 소국에 태어난 설움이지요. 너무 심려 마시어요.

  나도 여러 가지로 마음을 돌리려고 노력은 해보았소. 그리고 내 몸에도 원나라 사람의 피가 흐르고 있으므로 굳이 원나라를 적대시하고는 싶지 않소. 그러나 공주의 처사를 보면 그만 분통이 터지는 구료.

  사람이 살아가자면 되도록 불쾌한 일은 잊어 버리고 즐거운 일만 생각하는 것이 영리한 줄로 아옵니다. 상감께서도 그런 불쾌한 일 잊으시고 즐거운 일을 찾으시어요.

  조비는 이렇게 말하며 살며시 왕의 곁으로 다가간다.

  그 말이 옳소. 친정의 위세를 믿고 방약무인(傍若無人)하게구는 오랑캐 계집은 잊어버리도록 합시다.

  왕도 겨우 마음을 돌리고 조비를 가까이 했다.

  계국공주는 자기가 왕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원인이 자기 자신의 태도에 달렸다고 반성할 줄 몰랐다.

  그래 내가 가문이 부족한가? 인물이 못났나? 어째서 상감은 나를 멀리하시는 거야?

  공주가 이렇게 투덜거리며 성깔을 부리니까 공주에게 아첨하는 무리들은

  이를 말씀이옵니까. 상감께서 멀어지시는 것은 공주마마의 허물이 아니오라 모두 조비의 농간인 줄로 아옵니다.

  이렇게 충동을 했다.

  참 상감께선 그년의 처소에만 묻혀 사신다지?

  글쎄 낮이나 밤이나 틈만있으시면 조비 처소에 계시지요.

  그년의 어디가 좋아서 상감이 그렇듯 침혹되시었을까?

  뭐 좋은 데가 있어서 그러하옵니까? 다른 분들의 험담을 잘하니까 상감께서 조비만 옳은 줄로 아시옵죠.

  그년이 험담을 한다? 소국의 벼슬아치 딸이 감히 대국의 공주를 헐어 말한다.?

  공주는 분을 못 이겨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어디 두고 보자! 내 단단히 본때를 보여 주겠다.

  공주가 이렇게 벼르고 있는데 어느날 아침 공주를 모시는 한 시녀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와서

  공주마마!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 있겠사와요?

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아니 무슨 일이기에 아침부터 이리 수선을 떠는고?

  공주가 이맛살을 찌푸리니까 그 시녀는 종이 한 장을 내밀며 지껼였다.

  글쎄 이런 걸 보고도 어찌 가만히 있겠사와요?

  공주가 그 종이를 받아 보니 이런 글이 쓰여 있었다.

  <조인규의 처는 무당을 시켜 끔찍한 짓을 하고 있으니 그것은 바로 공주를 저주하고 왕의 총애가 자기 딸에게 돌아가도록 하는 일이외다. 마땅히 처단함이 가할 줄로 아오.>

  공주는 그 글을 보자 새파랗게 질렸다.

  이런 것이 어디 있더냐?

  바로 궁문에 붙어 있었사와요. 아마 조씨 모녀가 하는 짓을 보다 못해서 어떤 뜻있는 사람이 이런 것을 써 붙인 것으로 아옵니다.

  상감이 조비를 총애하시는 데엔 반드시 곡절이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바로 이런 짓을 하고 있었구나?

 공주는 분에 못 이겨 바들바들 떨다가 마침내 조인규와 그의 처와 세 아들을 옥에 가두었다.  그리고 한편 그 방을 붙인 사람을 수소문해 보았다.

  그랬더니 방을 붙인 사람은 바로 사재주부(司宰注簿)로 있는 윤언주(尹彦周)란 자였다.

  사재주부란 어산물(魚産物)의 조달과 하천의 교통을 맡아보는 관청의 종칠품되는 하급 관리다.  윤언주는 일찍이 조인규로부터 푸대접을 받은 일이 있어서 그것을 늘 원망해 오다가 공주가 조비를 시기하는 것을 알고 연극을 꾸민 것이다. 즉 그렇게 해서 조씨 일문을 멸망시키면 자기 앙갚음이 될 뿐만 아니라 일이 잘되면 공주의 총애를 받아 단단히 한몫 볼 수도 있다. 이런 계산에서 꾸민 일이었다.

  공주는 즉시 윤언주를 불러 추구해 보았다.

  조비 모녀가 나를 저주했다는 일이 사실인가?

  예, 사실이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았는고?

  저의 집안 사람이 최충소(崔沖紹)의 아내에게서 들은 일이오니 확실하옵니다.

  최충소는 바로 조인규의 사위였는데 이때 부지밀직사사(副知密直司事)로 있었다.

  그렇다면 조인규의 처와 그 딸들이 모두 부동해서 그런 짓을 한 모양이구나. 죽일 년놈들 같으니…

  공주는 마침내 이 일을 원나라 조정에 고하려 했다. 원나라의 힘을 빌어 조씨 일문을 씨도 없이 멸망시키려는 생각이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고려 조정은 발끈 뒤집혔다.

  이 일이 원나라에 알려지면 바로 왕과 중신들이 공주를 푸대접한 셈이니 어떤 정치적인 말썽이 일어날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김방경을 비롯한 여러 재상들이 원나라에 보고하는 것만은 참아 달라고 공주에게 간청했지만 공주는 듣지 않았다.

  공주마마의 노여움이 풀리시지 않으니 상감께서 만류하시는 길밖에 없을 줄로 아옵니다.

  재상들은 충선왕에게 이렇게 아뢰었다.

  거만한 공주에게 고개를 숙인다는 것은 왕으로선 죽기보다도 싫은 일이었다. 그러나 나라의 앞일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조씨의 화를 덜어주기 위해서는 그 길밖에 없었다. 왕은 오래간만에 공주의 처소로 찾아갔다.

  공주, 노여움을 푸시오. 그 사람들이 설마 공주를 저주하기까지야 하겠소.

  억지로 고개를 숙이며 청해 보았다. 그러나 한 번 토라진 공주의 마음은 돌아서지 않았다.

  (이제 와서 무슨 소리람! 나를 푸대접한 앙갚음을 단단히 받아야지.)

  이렇게 생각한 공주는 입을 다물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마침내 원나라 태후에게 그 일을 자기 마음대로 과장해서 보고했다. 태후는 공주를 극진히 총애하던 터였다. 공주의 글을 받아보자 크게 노하여 즉시 사신을 고려로 보냈다.

  원나라 사신은 황제의 명령이라고 하며 조인규와 그의 처와 조비와 최충소 등을 원나라로 끌고 가서 국문케 했다. 아무리 대국의 위세로도 한나라의 왕비와 중신들을 다스리는데 죄상이 분명치 않은 것을 벌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조인규의 처에게 혹독한 고문을 가하고 자백을 강요했다.

  조인규의 처는 늙고 병든 몸이었다. 혹독한 고문을 이겨낼 길 없어 마침내 없는 죄를 자백하고 말았다.

  이리하여 원나라 조정에서는 그 일에 관련된 사람들을 모두 귀양 보내고 충선왕과 공주까지도 원나라로 불러들인 다음 왕위를 다시 충렬왕에게 돌려 주도록 했다.

  일이 이렇게 되자 때는 왔다고 날뛰는 무리들이 있었다. 전부터 정국을 쇄신하려는 충선왕의 처사를 못마땅히 여기고 충렬왕에게 붙어서 부자간을 이간해 오던 간신들이 바로 그러했다.  그 중에서 가장 주동이 되어 날뛴 것은 오잠(吳潛), 왕유소(王維紹), 송방영(宋邦英) 등이었다.

  오잠은 동북현(東北縣) 사람으로 충렬왕 때 등제하여 관직이 승지에 있었다. 충렬왕은 원래 아첨하는 무리들을 가까이 하고 주연과 음률을 즐기는 임금이었다. 오잠은 음률과 여색으로 충렬왕의 비위를 맞추는 한편 충신들을 모해하고 옳은 정치를 해보려는 충선왕을 이간질하는데 온갖 술책을 다 썼다. 그러므로 뜻있는 사람들은 이를 갈고 그를 미워했지만 워낙 충렬왕의 총애가 두터우므로 감히 손을 대지 못하고 있었다.

  왕유소 또한 오잠에 못지 않은 인간이었다. 그가 낭장으로 있을 때 충렬왕을 따라 원나라에 간 일이 있었다. 이때 왕유소의 처는 홀로 있게 되자 본래 용모가 남달리 어여쁜 여자였으므로 전부터 그것을 탐내고 있던 김려(金呂)라는 환관이 유소가 없는 틈을 타서 그 처와 밀통을 했다. 그러나 충렬왕이 원에서 돌아오자 자기 죄가 드러날 것을 염려한 김려는 재빨리 왕유소의 처를 색을 좋아하는 충렬왕에게 받쳤는데 나중에 이 일을 알게 된 왕유소는 김려를 불러 단단히 따졌다.

  아니 그래, 남의 처를 겁탈하고 그것도 부족해서 상감께 바치기까지 한단 말이요?

  그러나 김려는 보통 인간이 아니었다.

  여보, 왕낭장. 그렇게 화를 낼 게 아니라 아마 치사해야 할 거요.

  히죽히죽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뭐라구? 간부에게 치사를 하라? 생전 처음 듣는 말인걸.

  내, 왕낭장이 탁트인 사람으로 알았더니 옹졸하기 이를데 없구료. 잘 생각해 보시오. 상감께서 당신 부인을 가까이 하셨으니 약게만 굴면 당신은 상감의 총애를 받는 권신이 될 수도 있지 않소? 그러니 내게 감사하란 말이 어째 잘못이오?

  왕유소는 계산이 빠른 인간이었다. 김려의 허물을 들어 떠든다면 같은 허물을 저지른 왕까지 함께 공박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왕의 노여움을 사서 화를 입을 뿐이지 소득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까짓 헌 계집 하나 가지고 떠들 건 없지. 발판으로 왕의 총애를 받는 게 상책이야.)

  이렇게 생각한 그는 껄껄 웃으며

  내가 뭐 정말로 화를 낸 줄 아오? 김공이 어떻게 나오나 보려고 한 번 던져본 말이지.

좌우간 김공만 믿을 테니 잘 부탁하오.

  김려는 왕을 가까이 모시는 환관이었으므로 왕의 총애를 받으려면 그의 도움이 절대로 필요 했던 것이다. 이때부터 왕유소는 여러 가지로 김려를 이용하여 왕에게 접근했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벼슬이 밀직부사 좌상시(密直副使左常侍)에 이르고 충렬왕의 총애르 극진히 받게 되었다.

  그 후 왕유소는 자기 처남인 송방영과, 그리고 뜻이 같은 오잠과 배짱이 맞아 무엇보다도 방해가 되는 충선왕을 실각시키려고 갖은 술책을 다하고 있었다.

  그 후 충선왕은 계국공주의 일로 원나라에 불려갔지만 충렬왕이 워낙 나이가 많으므로 유고시에는 복위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렇게 되면 오잠 등의 운명은 말이 아닐 것이다.

  그 사람을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할 방책은 없을까?

  세 사람은 이마를 마주대고 꾀를 내어 보았다.

  그렇게 하자면 상감(忠烈王)께서 그 사람을 아주 폐하고 다른 사람을 후사로 삼으시도록 하는 수밖에 없지.

  내 생각엔 서흥후 제일 좋을 것 같애. 그사람은 우리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거든.

  서흥후 전(瑞興候琠)은 제 이십대 신종의 둘째 아들인 양양공의 현손(玄孫)인데 별로 경륜이 대단할 것은 없지만 용모가 뛰어나게 준수하고 또 일찍이 원나라에 가 있어서 원나라 조정에도 통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그저 사람이 좋을 뿐 별로 줏대가 없는데다 주색을 좋아하므로 간신들이 이용하기엔 알맞는 인물이었다.

  그렇지만 적자를 젖혀놓고 다른 왕족을 후사로 삼는다면 원나라 조정에서 말썽이 많을 거 아니요?

  그러니 한 가지 묘책이 있단 말이오.

  어떤 계책이오?

  공주는 원나라에 가신 후에도 전왕의 총애를 받지 못하는 모양이니 공주를 서흥후에게 개가시키도록 운동을 한다면 공주를 사랑하는 태후께서 서흥후를 후사로 삼는데 발벗고 나설게 아니오?

  그렇지만 공주가 말을 들을까?

  서흥후는 원래 얼굴이 번들하니까 여자들이 잘 따른단 말이요. 공주는 독수공방 적적한 몸인데,  신수 잘나고 다음 왕이 될 수도 있고, 또 자기를 사랑해 줄 사람에게 재가 시키겠다면 어째서 마다고 하겠소.

  이리하여 그들은 곧 계국공주에게 연락해서 그 마음을 떠보니 조비 사건이 있은 후, 더욱 공주는 개가해도 좋다는 뜻을 넌지시 전해왔다. 그러나 간신들의 밀계는 뜻있는 신하들에게 누설되어 격분을 샀다.

  천하 고약한 놈들! 이제는 못할 짓이 없구나!

  이렇게 외치며 누구보다고 분개한 것은 원충갑(元沖甲)이었다.

  그는 원래 원주(原州) 사람으로 몸집은 남달리 작지만 지극히 날쌔고 또 용기가 대단한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향공진사(鄕貢進士)로서 그 고장 별초(別抄)에 소속되어 있었으나 충렬왕 때 외적이 침입하자 부하 수명을 거느리고 전후 십여 차례 분투해서 적병 육십명의 목을 베고 그밖에 무수한 적병을 쏘아 죽였다. 그 공으로 일약 삼사우윤(三司右尹)이란 벼슬로 특진했다. 이런 인물이었던 만큼 오잠 등의 간악한 행동을 보자 참을 수가 없었다.

  나라를 좀먹는 버러지 같은 놈들! 다른 사람들이 두려워한다면 내가 처치해야겠다.

  원충갑은 번개 같은 눈을 빛내며 이렇게 외치고 평소부터 생사를 같이 하기로 맹세한 동지 오십여명을 불러 모았다.

  괘씸한 생각만으로는 당장에 간신들을 잡아 죽이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면 가뜩이나 반목하고 있는 임금 부자간의 사이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며, 혼란한 정국을 더욱 어지럽히는 결과가 될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간신들은 원나라 고관들과도 왕래가 있는 터이므로 그 일을 빙자해서 원나라가 또 어떤 압력을 가해 올는지도 알 수 없었다.

  원충갑 등은 먼저 단사관(斷事官)으로 고려에와 있는 원나라 한림학사 첩목아불화(帖木兒不花)에게 오잠 등의 죄상을 고소했다.

  원충갑이 일어나자 이때껏 오잠 등의 죄를 미워하면서도 그 위세에 눌려 망설이고 있던 사람들이 들고 일어났다. 즉 역대공신 홍자번(洪子藩), 윤만비(尹萬庇) 등이 떼를 지어 첩목아불화를 찾아가 간신들의 죄상을 열거하고 단죄할 것을 청했다.

  그러나 오잠 등이 많은 뇌물을 써서 이면공작을 한 때문인지 첩목아불화는 오잠 등에게 벌을 주지 않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 버렸다.

  이렇게 될 바에야 그놈들을 우리 손으로 잡아서 원나라로 보내는 길밖에 없소이다.

  원충갑이 이렇게 제의하자 홍자번 등도 거기 찬동하고 삼군을 동원하여 갑자기 왕궁을 포위했다.

  그러나 함부로 궁중에 쳐들어 가는 것도 왕에게 죄송하고 해서 먼저 오잠 등 간신을 궁궐 밖으로 쫓아내 달라고 왕께 간청해 보았다. 그러나 왕은 원충갑 등의 요청을 들어 주지 않았다.

  과인이 총애하는 신하를 함부로 잡아가려 하다니 그런 무엄할 데가 어디 있는고?

  왕은 오히려 꾸짖을 지경이었다.

  이렇게 될 바에는 실력으로 간신들을 무찌를 수밖에 없소.

  원충갑이 제언하자 홍자번은 호군 오감량(吳監良)을 시켜 왕의 처소로 들어가서 오잠을 끌어내게 했다. 그리고는 다시 원나라로 압송하여 원제의 처벌을 간청하니 원제도 오잠의 죄상을 벌하여 안서(安西) 땅으로 귀양보냈다.

 한편 왕유소와 송방영 두 간신은 그때 마침 원나라에 가 있었다. 그리고 원나라 요로에 공작하여 계국공주와 서흥군의 혼사를 성공시키려고 암약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전왕 충선은 원나라 조정에서 무시 못할 위치에 있었다. 그것은 원나라 무제(武齊)가 등극하는데 다른 대신들과 함께 큰 공을 세운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충선은 곧 원제의 허락을 받고 왕유소와 송방영과 서흥후를 잡아 죽이게 했다.

  이리하여 충렬왕을 싸고 돌던 간신들은 일소되었을 뿐만 아니라 충렬왕 삼십사년에 왕이 승하하자 충선왕은 다시 복위하여 정사를 친히 보게 되었다. 충선왕은 원래부터 혁신적인 정견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비로 그 방법은 소홀하고 과격한데가 없지 않았지만 볼만한 치적도 적지 않았다.

  그때 여러 궁원(宮院)과 사사(寺社)와 권신들은 사사로이 염분(鹽盆=소금을 고는 솥)을 설치하고 부당한 이득을 취하므로 국가 재정에 많은 손해를 초래했다. 이러한 경향을 못마땅히 여긴 왕은 소금을 나라에서 전매하도록 하고 각 고을에 의염창(義鹽倉)을 두어 백성들의 편의를 도모했다.

  또 선왕 때 제정한 균전제도(均田制度)가 이때와서 점점 문란해져서 국가 수입이 감퇴되고 빈부의 차가 점점 심해 가는 경향이 있자 충선왕은 이러한 경향을 개탄하고 각도 농무사(農務使)에게 영을 내려 지공무사(至公無私)한 정신으로 여러 가지 병폐를 개혁하려 한 일도 있었다.

  그러나 왕은 재위 오년 만에 왕위를 세자에게 물려 주고 상왕이 되어 그 이듬해 원나라 서울로 들어갔다. 그것은 왕의 혁신정책을 끝내 반대하는 권신들의 압력으로 말미암아 정사에 염증을 느낀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원래 정치보다 문학을 즐기는 성품이었으므로 자유롭고 한가한 생활을 원한 때문이었다.

 

 

 

 

  邪戀의 불길

  충선왕에게서 왕위를 물려받은 이는 곧 제이십칠대 충숙왕(忠肅王)이다. 충숙왕은 충선왕의 둘째 아들로 모후는 몽고여자로 야속진(也速眞)이라 했다.

  충숙왕은 원래 총명하고 글을 좋아하며 정치적인 수완도 있는 편이었지만 주색을 지나치게 즐기는 나머지 여러 가지 실수를 많이 범했다.

  이렇게 되자 원나라 조정에 운동해서 충숙왕을 내쫓고 심양왕 고(瀋陽王暠)를 세우려는일파가 생기게 되었다.

  고는 충선왕의 장질(長姪)인데 충선왕은 그를 친아들처럼 사랑했다. 일찍이 충선왕이 원나라에서 공을 세워 심양왕으로 책봉된 일이 있었는데 고려 왕위를 충숙왕에게 물려 주자 고를 심양왕의 세자로 삼았다가 그 왕위마저 물려 주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고는 충선왕을 배경으로 원나라 조정에서 상당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충숙왕에게 불평을 품는 고려의 신하들은 모두 그의 휘하로 모여들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사람은 권한공(權漢功), 유청신(柳淸臣) 등이었다. 그들은 충숙왕 구년 원나라 중서성(中書省)에 글을 보내어 충숙왕이 여색에 빠진 나머지 원나라에서 보낸 복국공주( 國公主)까지 때려 죽인 일이 있다고 참소했다.

  충숙왕은 복국공주와 사소한 일로 언쟁을 하다가 손찌검을 한 일이 있었는데 그 후 공주는 우연히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운동은 원나라 조정의 여러 가지 복잡한 분쟁으로 말미암아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렇게 되자 유청신 등은 다시 원제에 상서해서, 차라리 고려의 국호를 폐하고 원나라의 한 성(省)으로 만들기를 원하다는 매국적인 망동까지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이 일도 이제현(李齊賢) 등의 반대로 말미암아 좌절되고 말았다.

  그러나 심양왕을 옹립하고 암약하는 무리들의 압력은 충숙왕에게 적지 않은 불쾌와 울분을 주었다. 그래서 가장 총애하는 신하 한종유(韓宗愈)를 향해서  심양왕이 그렇듯 내 자리를 원하다면 차라리 대국에 표를 올려 왕위를 내놓을까 하오.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한종유는 펄쩍 뛰며

  국가의 왕통은 태조대왕 때부터 큰 허물이 없는 한 적손에게 물려오던 터이온데 어찌 까닭없이 선위하신단 말씀이옵니까?

  그리고는 마침내 왕의 뜻을 돌리었다. 그 후부터 왕은 정사에 뜻을 두지 않고 유흥과 사냥만을 일삼다가 이미 세자를 삼은 장자 정(禎)에게 왕위를 물려 주고 말았으니 충숙왕 십육년의 일이었으며 새왕은 제이십팔대 충혜왕(忠惠王)이다.

  충혜왕은 충숙왕이 가장 사랑하던 왕비 홍씨의 소생인데 홍씨는 바로 지난날 딸을 공녀로 보내는데 반대하고 머리를 깎아 준 일이 있는 홍규의 딸이다. 충혜왕은 부친 충숙왕보다고 더 여색을 좋아하는 음탕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가 왕이 되었을 때에는 나이 겨우 십육세밖에 아니 되었으므로 정사에는 전혀 뜻이 없고 사냥, 뱃놀이, 격구(擊球) 같은 유희와 여색으로 세월을 보냈다.

  이 소식이 원나라 조정에 전해지자 새 임금은 왕위를 계승한지 이년도 못되어 폐출되고 전왕 충숙이 다시 임금자리에 앉았다(西紀 1,331).

  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왕위의 계승이 오직 상전 원나라 조정의 독단과 임금 부자의 알력과 그들을 둘러싼 도당들의 암약으로 이루어지는 슬픈 시대였다. 그러므로 국내 질서는 자연히 문란해지고 인심은 각박해졌으며 도의는 땅에 떨어져 고려의 국운도 바야흐로 몰락 일로를 걷게 되었다.

  이와같은 쇠운(衰運)은 고려 뿐만이 아니었다. 상전이었던 원나라도 마찬가지였다. 이때 원나라 국정은 여러 해 동안 계속된 외정(外征)과 내란으로 민심은 동요되고 국가 재정은 고갈될 대로 고갈되었다. 또 제위(帝位)를 계승할 때에는 평화롭게 이루어지지 않고 항상 분쟁을 일으켜 그 틈을 타고 권신들은 자기 세력을 확장하려고 암약했다.

  원나라 무종(武宗) 때에는 탈탈(脫脫)이란 권신이 득세하였고 다음 인종(仁宗), 영종(英宗)때에는 철목질아(鐵木迭兒)가 권세를 잡아 학정으로 백성을 괴롭혔다. 그리고 철목질아의 의자(義子), 철실(鐵失)은 영종을 암살하고 세조(世祖)의 증손인 태정제(泰定帝)를 제위에 올려 앉혔으나,  얼마 후 피살되었으며 제십이대 문종(文宗) 때에는 연첩목아(燕帖木兒)가 황제를 책립할 때 세운 공으로 우승상(右丞相)이 되어 국정을 한 손에 쥐고 흔들었다. 그리고 제십

오대 순제(順帝) 때에는 백안(伯顔)이 승상이 되어 정권을 잡고 있었다. 이렇게 황제와 권신들이 정권을 잡기 위해서 암투를 벌이고 국운을 멸망의 길로 몰아 넣은 것은 고려나 원이나 서로 비슷했다.

  충혜왕은 전에 세자로 원나라에 있을 때 원나라 승상 연첩목아와 매우 친한 사이였기 때문에 연첩목아의 정적인 백안과는 사이가 좋지 못했다. 그런데 폐위를 당하여 원나라에 갔을 때에는 연첩목아가 죽고 백안이 득세하고 있을 때였다. 그러므로 충혜왕은 원나라 조정에서도 심한 냉대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유흥과 여색을 즐기는 충혜왕은 그러한 형편에서도 근신하는 일 없이 주지육림(酒池肉林) 속에 잠겨 있었다. 이렇게 되니 원나라 조정에서는 그를 고려로 도로 쫓아보냈다.  충숙왕은 복위한지 팔년때 되던 해(西紀 1,339)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자 충혜왕은 원나라 대관들에게 뇌물을 보내어 왕위계승을 허락해 달라고 청했다.

그러나 충혜왕과 사이가 좋지 못한 원나라 승상 백안은 충혜왕의 소청을 황제에게 상주하지 아니하고 전에 왕위를 계승하려다가 실패한 심양왕 고를 세우려고 했다. 이렇게 되니 기회만 엿보고 있던 심양왕의 도당들은 때를 만났다고 들고 일어났다.

  이런 어수선한 속에서도 충혜왕은 음탕한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일찍이 충숙왕의 비 복국공주가 세상을 떠나자 원나라에서는 다시 몽고 여자를 공주로 들여 보냈는데 그가 바로 경화공주(慶華公主)였다.

  경화공주가 충숙왕에게 시집올 때엔 아직 젊은 나이였다. 그러므로 충숙왕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 어여쁜 자색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여색이라면 청탁을 가리지 않는 충혜왕은 홀몸이 된 경화공주에게 눈독을 들였다. 말하자면 계모를 범하려는 패륜적인 욕심을 품은 것이었다.

  잔서가 아직도 가시지 않은 팔월 어느날, 충혜왕은 송명리(宋明理) 등 몇몇 심복을 거느리고 영안궁(永安宮) 속 깊이 외로움을 홀로 달래고 있는 경화공주를 찾아갔다.

  모후, 얼마나 적적하십니까?

  충혜왕은 능청스럽게 이런 인사를 하며 미리 장만해 온 술과 음식을 그 자리에 차려 놓았다.

  부왕을 대신해서 오늘부터는 제가 공주를 위로해 드리겠소.

  심중에 엉큼한 야심을 품고 한 말이었지만 경화공주는 그 말을 액면대로 받아들였다.

  고마우신 말씀이요.

  무심코 이렇게 치하했다.

  자, 그런 뜻에서 한잔 받으십시오.

  충혜왕은 손수 술을 따라 공주에게 바쳤다. 공주도 왕에게 술을 따랐다. 처음에는 점잖은 술잔이었다. 그러나 몇 잔 술이 오고가자 충혜왕은 차츰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어, 취한다. 모후, 여기 잠깐 눕겠는게 괜찮겠소?

  충혜왕은 은근한 눈초리를 보내며 팔베개를 하고 누웠다. 어느새 데리고 온 심복들은 옆방으로 물러간 후였다.

  공주는 대단히 난처했다. 비록 명분으로는 모자간이지만 젊은 남자와 젊은 여자의 사이다.  더구나 음행으로 소문이 좋지 않은 왕이기도 하다. 한방에 단둘이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아름다운 일이 못된다. 공주는 슬며시 그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그러자 왕은 거슴츠레한 눈을 뜨고 쳐다보며

  모후, 어디로 가시겠다는 거요? 여기서 이야기나 합시다.

  그래도 공주는 못들은 체 밖으로 나가려 했다. 이것을 본 충혜왕, 갑자기 뛰쳐 일어나더니 공주의 옷자락을 잡았다.

  모후! 외로운 젊음을 위로해 드리겠다는데 왜 그리 피하려고만 하오?

  옷자락을 잡은 손에 힘을 주어 끌어 잡아당기더니 한쪽 팔로 공주의 목을 휘어감았다.

이젠 계모를 범하려는 뜻이 완연했다.

  이게 무슨 망측한 짓이요?

  공주는 소리치며 왕의 손을 뿌리치려 했다. 그러나 억센 사나이의 품을 빠져 나가기는 어려웠다.

  얘, 누구 없느냐?

  공주는 마침내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그 소리를 듣고 뛰어 들어온 것은 공주를 모시는 시녀가 아니라 바로 옆방에 물러가 있던 왕의 심복 송명리였다.

  공주, 조용하시오. 떠들면 더욱 창피하지 않소?

  송명리는 유들유들 웃더니 왕의 난행을 말리기는 고사하고 수건으로 공주의 입을 막고 노끈을 꺼내어 두 팔을 꽁꽁 묶었다. 이렇게 되니 공주는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굴욕과 분노 속에 패륜아의 능욕을 당하고야 말았다.

  일이 끝나자 왕과 송명리들은 신바람이 나서 돌아갔다. 그러나 공주는 분노를 달랠 길이 없었다.

  (어떻게 해야 이 앙갚음을 할 수 있을까? 아니, 나 한 사람의 앙갚음만이 아니라 그런 임금 밑에서 고생하는 백성들을 위해서도 쫓아내야 한다.)

  공주는 이 일을 원나라 조정에 고할 생각으로 그 이튿날 이른 새벽 몰래 시녀를 시켜 말 한필을 사오도록 했다. 그 말을 타고 원나라로 도망치려는 것이다. 그러나 충혜왕도 그 방면엔 녹록치 않은 인물이었다. 공주가 반드시 그런 태도로 나올 것은 예상하고 이엄(李儼), 윤계종(尹繼宗) 등 심복을 시켜 말을 파는 시장을 모두 폐쇠해 버렸다. 그러므로 공주는 말 한필 구하지 못하고 그냥 개경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었다.

  공주는 그래도 끝까지 앙갚음할 뜻을 버리지 않고 은밀히 시녀를 보내어 심양왕파의 안사람인 조적(曹적)을 영안궁으로 불러들였다.

  조적은 원래 의흥군(義興郡)의 역리(驛吏)였는데 충렬왕 때 내관을 통해서 조정에 발을 들여 놓은 후 차츰 벼슬이 올라 충선왕 때에는 우상시로 승진했으며, 충숙왕 때에는 선부전서(選部典書)가 되었으며, 충혜왕과 심양왕이 대립하게 되자 심양왕편에 서서 암약한 인물이었다.  그러므로 충숙왕이 승하하고 충혜왕이 집권하게 되자 화가 미칠 것을 염려하여 병이라 칭학 자기 집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세상에 이런 패륜아가 또 어디 있겠소? 그런 자는 한시 바삐 쫓아내고 어진 임금을 세워야 하오.

  경화공주는 충혜왕에게 능욕당한 일을 낱낱이 이야기 한 다음 이렇게 말했다. 그러지 않아도 충혜왕을 실각시키고 심양왕을 책립할 기회만 노리고 있던 조적이었다. 마침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영안궁에 백관을 소집한 다음

  그 따위 무도한 사람을 어찌 임금으로 받들겠소? 왕과 그 밑에서 아첨하는 간신들을 몰아내고 나라 일을 바로 잡아야 하오.

  이렇게 외치며 궐기할 것을 촉구했다.

  이런 정보에 접하자 충혜왕은 대단히 당황했다. 인승단(印承旦), 전영보(全英甫) 등 이십여기를 거느리고 영안궁으로 향했다. 조적 등을 회유해 보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조적은 궁문을 굳게 닫고 들여보내려 하지 않았다.

  왕은 하는 수 없이 윤계종, 구천우 등을 시켜 조적을 밖으로 불러 내려 했다.

  조적은 거기에도 응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전호군 이안(前護軍李安), 장언(張彦), 오운(吳雲) 등으로 하여금 순군수령관(巡軍首領官)을 삼고 국인(國印)을 거두어 영안궁에 두고, 유연(柳衍), 이달충(李達衷), 김득배(金得培) 등을 시켜 이것을 지키게 했다. 일이 이렇게 되니 충혜왕은 여론에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 방을 써서 궁문에 붙였다.

  <조적 등이 조정에 항거하여 활과 창검을 들고 백성을 두려움 속에 몰아넣고 있으니 그 죄 이보다 더 클수는 없다. 그러나 백관 중에 뉘우치는 자 있어 옳은 길을 택한다면 그 죄를 묻지 않으리라.>

  그리고 한편으로는 조적일파에 이간책을 쓰기로 했다. 즉 전판서 이조년(李兆年)을 시켜 조적의 편을 든 재상들을 달래 보았다.

  조적이 오래 전부터 심양왕의 신복(臣僕)이 되어 은밀히 딴 뜻을 품고 있거늘 제군들은 어찌하여  그 자의 편을 드는 거요?

  조적은 그 말을 전해 듣자 즉시 반박했다.

  왕의 황음무도한 난행을 보고도 내 정승의 몸으로 못 본 체한다면 바로 크게 죄를 짓는거요.  왕이 비록 나를 죽이려 한다 하더라도 나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겠소.

  일이 이렇게 되니 두 파의 승패는 무력으로 가릴 수밖에 없었다.

  조적은 영안궁 문밖에 수레를 늘어놓아 왕당파의 습격에 대비하는 한편 따로 군사 천여명을 소집하여 붉은 헝겊을 옷에 붙여 표적을 삼고 각각 창과 칼을 들게 한 다음 밤 오경에 충혜왕의 궁전을 습격했다. 그러나 충혜왕의 군세는 조적의 군세보다 훨씬 우세했다. 철통같이 대비하고 있다가 반대로 조적의 군사를 에워싸고 무찔렀다.

  이 전투에 크게 패한 조적은 겨우 몸을 피하여 영안궁 속으로 도망쳤지만 뒤미처 추적한 왕당파의 화살에 맞아 마침내 죽고 말았다.

  조적의 난을 평정한 충혜왕은 이제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왕과 적대관계에 있던 원나라 승상 백안이 실각하게 되니 원나라 조정에서는 심양왕 일파의 반대운동에도  불구하고 그 이듬해 삼월, 충혜왕을 복위시켰다.

  두려운 것이 없게 된 왕은 더욱 더 주색과 유흥에 빠졌다. 그리고 그와 같은 사치한 생활로 초래되는 국고의 손실을 보충하기 위하여 갖은 수단으로 백성들을 착취했다. 이렇게 되니 강기는 문란할 대로 문란하고 백성들의 원성은 높아졌다. 왕을 비난하는 소리는 원나라 조정으로 끊임없이 날아 들어갔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심하게 왕을 참소한 것은 경화공주였다.

  이렇게 되니 원나라 조정에서도 더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충혜왕이 복위한지 사년 되던 해(西紀 1,343) 원나라에서는 사신을 보내어 왕을 잡아갔다. 그리고 원나라 황성에서 이만여리나 되는 게양(揭陽)으로 귀양을 보냈다.

  이때까지 그렇듯 호강스런 생활을 하던 왕은 한 사람의 종자도 없이 혼자서 수만리 길을 걸어가게 되었으니 그 괴로움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귀양길을 떠난 이듬해 정월, 왕은 악양현(岳陽縣)에 이르러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왕이 죽은 까닭은 독한 새를 만나 해를 입은 때문이라고도 하고 귤을 잘못 먹은 때문이라고도 하지만 짐작컨대 황음과 호강으로 지내던 몸이 갑자기 심한 고생을 한 탓으로 생긴 여독(旅毒)이 그 사인이 되었을 것이다.

 

 

 

  愛 慾 劫 火

  충혜왕의 뒤를 이른 것은 나이 겨우 팔세밖에 아니 되는 충목왕(忠穆王)이었는데 충목왕은 충혜왕과 덕녕공주(德寧公主) 사이에서 태어났다.

  왕의 나이가 어리므로 나라의 정사는 모후인 덕녕공주가 보살피게 되었다. 덕녕공주는 원나라 진서 무정왕(鎭西武靖王)의 딸이었으며 충숙왕 십칠년(西紀 1,330)에 충혜왕의 비가 되었으니 충혜왕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아직 한창 나이였다.

  태후가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할 때에는 반드시 그 곁에 간사한 신하가 붙어 있게 마련이다.  덕녕공주의 경우도 그러했다. 공주의 거처에는 항상 간신들이 출입했지만 그 중에서도 강윤충(康允忠)과 배전(裵佺) 두 사람은 각별한 총애를 받았다.

  배전은 정치적인 면으로 지극한 총애를 받았다. 배전은 원래 흥해군(興海郡) 사람인데 그의 모친은 한낱 궁비(宮婢)였다고 한다. 그러나 재치 있고 눈치 빠른 배전은 충혜왕의 총애를 받아 호군, 군부판서(軍部判書) 등을 역임하고 조적의 난에는 왕의 편을 들어 활약했으므로 난이 평정되자 일등공신(一等功臣)으로 흥해부원군에 책봉되었다. 배전이 충혜왕에게 아첨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예로 이런 일화가 있다.

  그가 충혜왕과 함께 원나라에 있을 때였다. 어느날 밤 왕이 배전의 집을 찾아간 일이 있었다. 그때 마침 그의 집에는 처남 김오(金 )의 처가 와 있었다. 김오의 처는 젊고 매혹적인 여성이었으므로 호색한 왕의 눈에 들었다. 왕은 즉시 배전에게 명하여 김오의 처를 침실로 들게 했다.

  왕의 명령이라 하는 수 없이 복종했지만 배전은 속으로 대단히 못마땅했다. 그것은 처남의 처가 왕의 육욕의 제물이 되는 것을 윤리적으로 옳지 못하다 생각한 때문이 아니었다.

그런 사고방식은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배전이었다.

  (상감이 김오의 처를 가까이 하면 자연히 김오를 총애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내 경쟁자가 하나 더 느는 셈인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런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배전은 곰곰히 생각한 끝에 자기 처를 호화스럽게 단장시킨 다음 왕의 침실로 들여 보냈다.  이렇게 된 이상 자기 처마저 왕에게 바쳐 김오 부처를 눌러 보자는 생각이었다.

  (이건 또 웬 꽃이야?)

  김오의 처와 흠뻑 즐기고 났으면서도 왕의 욕정은 다시 배전의 처에게로 동했다. 그리고 의식적으로 아양을 떠는 배전의 처와 감미로운 시간을 즐겼다.

  배전이란 이런 인간이었다. 권세를 잡기 위해서는 도의심이나 감정 같은 것은 일체 무시해 버리는 인간이었다. 덕녕공주가 정권을 장악하고 배전과 강윤충이 자주 드나들게 되자 공주는 배전에게 정사에 관한 대소사를 의논하는 한편 강윤충에게는 아직 시들지 않은 여성으로서의 욕정의 눈초리를 은근히 보냈다.

  강윤충은 원래 천한 종이었는데 충숙왕 때에 기회를 얻어 호군(護軍)에 임명되었으며 조적의 난에는 큰 공을 세워 일등공신이 되고 밀직부사에까지 승진되었다. 그러나 성품이 음탕한 인간이어서 김남보(金南寶)의 처, 백유(白儒)의 처를 비롯해서 여러 사람의 처첩을 범하고 말썽을 일으킨 일이 많았다.

  이런 인물은 세상 사람들의 욕을 많이 먹는 대신 어느 부류의 여성에게는 매력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덕녕공주는 강윤충의 염문을 듣자 그것을 괘씸하다고 생각하거나 불결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많은 여성을 농락할 수 있는 그 수완에 오히려 마음이 끌렸다. 그래서 자기 편에서 시녀를 시켜 그를 가까이 하고 마침내는 깊은 관계를 맺었다.

  권세욕에 불타는 배전으로는 이러한 강윤충이 눈의 가시였다. 될 수만 있으면 당장 제거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강윤총을 직접 배척할 만큼 단순한 인물은 아니었다.

  (공주가 한참 그자에게 빠져 있는데 그자를 배척한다면 오히려 공주의 미움이나 사지 아무 소득이 없지.)

  그는 여러 가지로 계산한 끝에 공주와 강윤충의 사이를 오히려 부채질했다. 그들의 추행이 심해지고 물의를 일으키면 자기가 직접 손을 쓰지 않더라도 고지식한 간관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라도 생각했던 것이다.

  배전의 계산은 과히 빗나가지 않았다. 공주와 강윤충의 추문이 외부에 알려지자 조정에서는 그것을 비방하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갔다. 이런 동향을 주시하고 있던 배전은 마지막 술책을 은밀히 단행했다. 자기 심복을 시켜 방을 써다 붙이게 한 것이다.

  <강윤충은 한낱 환관의 몸으로 군모(君母)와 밀통한 후 음란한 술책으로 총애를 받고 있으니 만약 이 자를 없애지 아니하면 나라에 어떠한 화를 미칠는지 알 수 없으리라.>

  그러나 간교한 배전은 이런 방만 붙이게 한 것이 아니었다. 공주나 여러 신하들이 자기가 방을 붙이게 한 것을 알아차릴까 염려하여 따로 자기 자신을 비방하는 방도 붙이게 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비방하는 내용은 구체적인 것이 아니라 막연히 공주의 총애를 받고 있다는 말만 쓴 것이었다.

  과연 그 방이 나붙자 조정은 발끈 뒤집혔다. 몇몇 재상들은 공주에게로 달려가서 배전과 강윤총을 멀리할 것을 강경히 진언했다. 그러나 덕녕공주도 녹록한 여인이 아니었다. 재상들의 진언을 듣자

  그런 소문이 세상에 떠돌다니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구료. 앞으로 배전 같은 사람은 일체 가까이 하지 않겠소.

  이렇게 말했으나 강윤충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재상들의 비난이 수그러지자 전보다 한층 더 강윤충을 총애했으며 배전도 적당히 불러들여 이용했다.

말하자면 여론이 비등하면 적당히 무마하는 체하면서도 자기의 욕망과 정책은 끝내 굽히지 않았던 것이다.

  그 후 충목왕은 등극한지 사년 만인 십이세 때 세상을 떠나고, 그 뒤를 충목왕의 이복동생인 경창원군 저(慶昌院君 )가 계승했으니 곧 삼십대 충정왕(忠定王)이다.

  이렇게 되니 정권은 덕녕공주를 둘러싼 권신들과 새 임금의 외척인 윤시우(尹時遇) 일파의 손에서 농락되어 내정은 문란할 대로 문란하고 또 이 무렵부터 왜구(倭寇)의 침입이 극심하게 되어 원나라에서도 그냥 버려둘 수가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충정왕은 즉위한지 삼년만에 폐위되고 충혜왕의 동생 강릉대군 기(江陵大君祺)가 왕위를 계승했는데 바로 제 삼십일대 공민왕(恭愍王)이다.

  공민왕은 일찍이 원나라 위왕(魏王)의 딸 노국공주(魯國公主)와 결혼하고 원나라 조정에 세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행운을 얻게 된 것이다.

 

 

 

  貢女 奇皇后

  공민왕은 이와 같이 원나라 공주를 비로 맞이하고 원나라 조정의 후원으로 왕위에 올랐지만 덮어놓고 원나라의 지배를 감수한 인물은 아니었다. 오히려 원나라와 맞서서 국력을 키우는 동시에 원나라에서 흘러 들어온 여러 가지 풍속을 버리고 자주독립국가로서의 면목을 회복하려고 노력했다.

  공민왕이 이런 태도를 취한 데에는 공민왕 자신의 자립적인 정신도 작용되었지만 한편 원나라의 국운이 몹시 쇠퇴한 것도 한 원인이었다.

  공민왕이 즉위했을 무렵 대륙에서는 원나라 순제가 주색과 유흥에 빠져 국가 재정을 극도로 문란케 하고 있었다. 이로 말미암아 민생은 도탄에 빠지고 각처에서 불평분자들이 반란을 일으키게 되었다.

  대주(臺州=淅江省臺州)에서는 방국진(方國珍)이 군사를 일으키고 영평(永平=直隷省正定府樂城縣)에서는 한산동(韓山童), 유복통(劉福通) 등 소위 홍건적(紅巾賊)이 일어나고 호주(濠州=安徽省鳳陽府臨淮縣)에서는 곽자흥(郭子興)이 일어나고 그밖의 장사성(張士誠)과 곽자흥의 부하 주원장(朱元璋) 등이 일어나서 대륙 전토는 전란의 도가니 속에 빠져 있었다.

  원나라 조정에서는 반란군들을 평정해 보려고 노력도 했으나 이미 쇠퇴한 국력으로는 가망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공민왕 삼년, 고우(高郵)에서 일어난 장사성 등을 토벌할 때엔 고려 조정에 원병을 청한 일까지 있었다. 이때 고려 측에서는 최영(崔瑩) 등으로 하여금 원군을 거느리고 협력케 한 결과 다소 승리를 거두었는데 이로 말미암아 고려의 군부에는 원나라 군사력의 허약함을 목격한 나머지 원나라에 대한 정책에 큰 변동을 가져오게 했다.

  우리 힘으로 도적을 토벌할 정도니 원나라라고 두려워할 것은 없다.

  원나라의 명령에만 복종할 것이 아니라 우리는 우리대로 자주적인 정책을 수행해야 한다.

  이러한 의견이 고려 조정에 대두하게 되었고 공민왕도 그 의견을 적극 채택하여 내치 외교에 진취적 방침을 세웠다.

  자주독립의 기풍을 세우려면 무엇보다도 몽고의 풍속부터 없애야 하느니라.

  공민왕은 이렇게 말하고 전국에 변발( 髮), 호복(胡服) 등 몽고의 풍속을 폐지하도록 명령하는 한편 그 당시 쓰고 있던 몽고의 연호(年號) 관제를 폐지하고 문종 때의 옛 제도로 복구했다.  또 고려의 내정을 간섭하던 원의 정동행중서성 이문소(征東行中書省理問所)를 폐지하고 백년간이나 존속해 오던 원의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를 폐지하여 원에게 빼앗겼던 영토를 복구했다.

  그리고 원나라 황실과 인척관계를 맺고 권세를 부리던 기철(奇轍)일파를 숙청하기로 작정했다.  기철은 행주(幸州) 사람으로 기자오(奇子敖)와 전서 이행검(典書李行儉)의 딸 사이에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형 식(軾)은 일찍 죽었으므로 그가 문중을 총관하게 되었다.

  기철이 고려 조정에 당당한 권세를 부리게 된 것은 그의 누이동생이 원나라 순제의 후궁으로 들어가서 제이황후가 되고 태자를 낳은 후부터였다. 기철의 누이 기씨가 황후가 된 것은 실로 우연한 기회였다. 처음에는 순제의 찬간에서 차나 끊이는 보잘 것 없는 궁인이었는데 하루는 뜻밖에도 조용한 자리에서 순제의 눈에 띄었다. 워낙 음탕한 순제라 한참 피어오르는 이국의 처녀를 대하니 춘정이 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차를 달이는 기처녀의 옆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순제는 갑자기 그 손목을 덥석 잡았다.  궁인의 몸으로선 황제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아무리 무리한 명령이라도 복종해야 한다. 하물며 황제가 가까이 하려고 할 때에는 기꺼이 응하는 것이 궁인의 의무이기도 했고 영광이기도 했다. 기처녀는 부끄러움을 무릎쓰고 순제의 품에 안기었다.

  몽고 여성들에게 식상(食傷)한 순제에겐 이국 처녀의 부드러운 살결은 신선한 매력이었다.

그 후부터 순제는 기씨를 자주 불러 총애했다. 그리고 그 결과 기씨 몸에서 태자 탄생을 보았다. 태자를 낳았으니 황후를 봉해야 한다는 것이 순제의 생각이었으나 백안(伯顔)과 같은 권신은

  이국 여자를 황후로 삼다니 천부당 만부당한 처사로 아뢰오.

  이렇게 말하며 극력 반대했으나 백안이 실각하자 순제는 마침내 기씨를 제이황후로 봉했다.  누이동생이 황후로 책봉되자 기철은 벼락감투를 쓰게 되었다. 즉 그는 원나라의 참지정사라는 고관이 되는 한편 고려에서도 정승을 삼고 덕성부원군(德城府院君)에 봉했다. 기철은 누이동생인 황후의 힘을 믿고 극도로 권세를 부렸으며 그의 형제들과 일가친척들까지도 덩달아 갖은 행패를 다했다.

  아니 이거 어떻게 돼가는 세상야. 이 나라의 어른은 상감님인가 기씨 집안 사람들인가?

  세상이 망하지니까 별일을 다 보겠군.

  나도 예쁜 딸이나 있으면 공녀로 바쳐서 호강이나 할 게 아닌가.

  백성들은 이렇게 수근거렸다. 자난날엔 딸들을 공녀로 보내는 것을 무엇보다도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하던 고려 사람들이었지만 공녀로 들어간 몇몇 처녀들이 원나라 조정에서 출세하고 그 일가 친척들까지 영화를 누리게 되자 이제는 그것을 오히려 부러워할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부러워하면서도 백성들은 기씨 일문을 원망하였다. 그것은 그들이 권세를 믿고 죄없는 백성들을 괴롭힌 때문이었다. 백성들의 전답 중에서 욕심나는 것이 있으면 기씨 일문은 함부로 빼앗았다. 어여쁘고 젊은 여자만 눈에 들면 처녀이건 유부녀건 함부로 난행했다.  그리고 항거하는 자가 있으면 극형에 처했다. 백성들의 원한은 골수에 사무쳤지만 대국 원나라 황실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 그를 누를 사람은 없었다. 고려의 임금 역시 매한가지였다.

  그러다가 원나라의 국운이 기울고 자주독립의 의욕이 강렬한 공민왕이 즉위하자 무엇보다도 손을 쓰려고 한 것은 기씨 일문의 숙청이었다. 그리고 그를 미워하던 여러 신하들도 적극적으로 그 뜻을 받들게 되었다.

  이때 원나라 황실에 공녀를 보내고 권세를 부리던 자로서 기철 이외에 권겸(權謙), 노책(盧 ) 등이 있었다. 이들은 공민왕이 자기들을 숙청한다는 풍문을 듣자 기철의 앞으로 모여 들었다.

  새 임금의 동태가 아무래도 수상하오.

  원나라 풍속을 폐지시키고 관제를 폐하는 것을 보니 원나라와 맞설 생각을 단단히 품고 있는 모양인데 이대로 가다간 우리는 어떻게 되겠소.

  말할 것도 없지 않소? 원나라 황실의 힘을 빌고 있는 우리를 어찌 가만 두겠소?

  그렇다면 가만히 앉아서 죽을 수는 없지 않소?

  이를 말이요? 우리 목숨은 우리 힘으로 지켜야지.

  그들은 여러 가지로 궁리하던 끝에

  원조가 아무래도 오래 가지 않을 것 같은데 아주 기울기 전에 우리 힘을 길러 두었다가 임금이 우리를 없애려 하는 눈치가 보이면 반대로 우리가 임금 일파를 없애고 정권을 잡읍시다.

  드디어 이런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는 친척과 심복들을 국가 요직에 포열(布列)시키는 한편 제도(諸道)의 병기를 검열하고 군사를 일으킬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이러한 정보가 공민왕의 귀에 들어갔다.

  그 놈들이 기어이 역적 모의를 하려는구나. 그 놈들을 어찌해야 좋겠는고?

  왕은 판삼사사(判三司事)로 있는 조일신(趙日新)에게 물어보았다. 조일신은 일찍이 공민왕이 세자로 있을 때 모시고 원나라에 가서 숙위하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공민왕이 즉위하자 참리(參理)에 임명되었으며 귀국한 후에는 찬성사(贊成事)가 되고 일등공신에 책록되었다.

  그는 일찍부터 왕을 모시고 다닌 공로를 빙자하고 조정에 세력을 휘두르고 안하무인격으로 날 뛰었다. 그러므로 고려 조정에서는 기철 등과 맞서는 일대 세력이었다.

  상감, 조금도 심려 마시오. 그놈은 신이 당장 없애버리겠소이다.

  조일신은 기가 나서 소리쳤다. 기철 등을 없애버리면 고려 조정의 권세를 혼자 누릴 판이다. 왕은 기철의 존재도 두렵지만 그를 숙청하는 것을 계기로 조일신이 더욱 날뛰게 될 것도 염려 되었다. 그래서

  기철 등을 없애버리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그로 말미암아 나라 안이 소란스럽게 된다면 심히 유감된 일이니 십분 조심하도록 하오.

  이렇게 못을 박아 두었다. 그러나 속으로 딴 뜻을 품고 있는 조일신은 임금의 다짐 같은 것은 귓전으로 흘러 내렸다. 일신은 전부터 자기 도당인 정천기(鄭天起), 최화상(崔和尙) 등 을 자기 집으로 불러 기철 등을 숙청할 것을 의논해 보았다.

  그 놈을 죽이고 싶은 생각은 간절하지만 전국의 군사들을 그놈이 장악하고 있으니 어떻게 손을 댑니까?

  정천기가 이렇게 근심을 하니까 최화상이 주먹을 휘두르며 큰 소리를 쳤다.

  그까짓 관군쯤을 염려할 것이 뭐요? 썩어빠진 관군보다는 거리의 장사들이 오히려 더 강할 거요. 내 그 사람들을 모으면 기철 일문은 하룻밤 동안에 몰살시킬 수 있소.

  이 말을 듣자 조일신은 크게 기뻐했다.

  그렇다면 어서 그 장사들을 모아 들이도록 하오.

  최화상은 즉시 거리의 깡패들을 모아들이니 힘깨나 쓴다는 자, 무술에 능하다고 자부하는 자들이 속속 조일신의 집으로 모여들었다.

  이만하면 됐소. 당장 그 놈들을 처치해 버립시다.

  조일신은 어두운 밤을 타서 기철과 그 아우 기륜(奇輪), 기원(奇轅) 그리고 그의 일당인 고용보(高龍普)의 집을 습격하게 했다. 그러나 모두다 놓쳐버리고 오직 기원 한 사람만 죽여 버렸다.

  그놈들을 놓쳐 버렸다고?

  조일신은 발을 구르며 호통을 쳤다.

  그렇다면 어디로 도망쳤단 말이냐?

  성입동 이궁으로 도망쳤다는 소문입니다.

  그리고 이궁에는 상감께서 계시다고 하니 쳐들어 갈 수도 없고 참 난처한 일입니다.

  장사들이 하는 말을 듣자 조일신은 다시 고함을 쳤다.

  상감이 계시건 말건 도적을 잡는데 무슨 상관이냐? 어서 이궁으로 향하도록 하자.

  조일신은 이번엔 몸소 장사들을 거느리고 이궁으로 향했다. 조일신 일당이 들이닥치자 이궁을 지키고 있던 직숙관은 문을 굳게 닫고 들여 보내려 하지 않았다. 그러자 조일신은

  이놈! 역적을 잡겠다고 하는데 어찌하여 이렇듯 방해를 노느냐? 네놈도 아마 역적의 일당일 게다.

  그리고는 장사를 시켜 직숙관을 죽이게 한 다음 궁중으로 몰려 들어갔다. 이궁에는 조일신이 찾는 기철 일당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조일신은 왕에게 매우 민망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자기의 경솔한 행동을 뉘우칠 조일신은 아니었다. 오히려 한술 더 떠서 투정을 했다.

  상감, 상을 주셔야 하겠소이다.

  상이라니?

  왕이 의아한 낯을 하자 조일신은 껄껄 웃으며

  역적을 잡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렇듯 목숨을 걸고 궐기했는데 상을 주시지 않는다면 사기가 꺾이지 않겠습니까?

  그리고는 강제로 어보(御寶)를 열게 한 다음 자기 자신을 우정승에 임명하고 정천기를 좌정승에 임명하고 그밖의 여러 도당들에게도 각각 벼슬을 주었다.

  이런 방약무인(傍若無人)한 태도를 보고도 왕은 그 힘에 눌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렇게 되니 조일신의 행패는 더욱 심해졌다. 역적들을 없앤다는 말을 빙자하고 기철의 모처(母妻) 등 죄 없는 여인들까지 함부로 잡아 옥에 가두고 역적의 잔당이라 해서 닥치는 대로 사람을 잡아 죽이니 거리는 비명과 곡성으로 뒤흔들리게 되었으며 온통 피로 물들었다.

  조일신이란 놈이 이러다간 웬만한 사람은 모두 잡아 죽일 생각이로군.

  기철이 놈보다 몇 갑절 더 악독한 놈이야.

  백성들의 원성은 날로 높아갔다. 이렇게 되니 방약무도한 조일신도 약간 난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백성들의 원망을 너무 사면 결국 망하는 법이니까 어떻게 백성들의 마음을 무마할 도리는 없을까?)

  여러 가지로 생각한 끝에 결국 많은 사람을 참살하고 나라 안을 어지럽히게 한 죄를 자기 부하들에게 뒤집어 씌우려고 마음 먹었다. 그래서 어느 날 밤 이번 난에 가장 앞장 서서 활약한 최화상을 데리고 이궁으로 들어갔다. 호젓한 방에 단둘이서 환담을 하다가 첫닭이 울 무렵 조일신은 그제서야 눈에 띄었다는 듯이 최화상이 찬 칼을 가르키며

  아니 최공은 참 좋은 칼을 찼구료. 어디 구경 좀 할 수 없겠소?

  슬쩍 이렇게 말했다. 조일신이 이런 말을 던진 것은 은밀히 마음먹은 바가 있어서 한 것이었지만 그런 것은 꿈에도 생각 못한 최화상은 칼을 칭찬해 준 것만 신나서  이 칼이 사람의 목숨을 많이 끊었습죠. 자 구경해 보십시오. 천하 보검입니다.

하고 허리에 찼던 칼을 자루째 뽑아 내주었다.

  천하 보검이라면 어디 천천히 구경 좀 합시다.

  조일신은 그 칼을 뽑아 높이 들고 구경하는 척하다가

  이 칼로 네 목숨마저 끊어버리겠다.

  소리치고 한 번 내리치니 최화상은 비명도 못지르고 그 자리에 죽어 넘어졌다.

  최화상을 죽이고 나자 조일신은 즉시 왕의 거처로 달려갔다.

  요즈음 기철 일당을 잡는다 빙자하고 많은 사람을 괴롭힌 최화상을 지금 신이 참했사옵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 도당들이 남아 있으니 토벌할 것을 윤허하시오.

  이렇게 뻔뻔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왕은 제 부하를 죽이고 도적을 토벌한다는 조일신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허락을 하지 않았으나 조일신은 거듭 간청했다.

  최화상과 그 무리들로 말미암아 장차 더 많은 피를 흘리느니 보다도 지금 몇몇 도적들의 목을 베는 것이 훨씬 현명한 처사가 아닙니까?

  이 말에는 왕도 더 반대할 이유가 없어서 마침내 그의 청을 허락하고 최화상의 부하 팔,구명을 체포한 다음 그 목을 베고 거리에 내걸게 하였다. 그 뿐 아니라 조일신은 자기를 도와 거사한 부하들을 모조리 숙청했다. 즉 정천기를 옥에 가두는 것을 비롯해서 여러 부하들을 죽이고 혹은 멀리 귀양을 보냈다. 모두 백성들의 원성을 그들에게 돌리자는 수작이었다.  그리고는 다시 그 공로로 자기 자신의 벼슬을 좌정승으로 높혀 온 나라안을 호령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니 만조백관(滿朝百官)은 입을 다물고 그의 눈치만 살필 지경이었다.

  공민왕은 원래 녹록한 인물이 아니었다. 조일신의 행패를 도저히 참고 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은밀히 삼사좌사(三司左使)로 있는 이인복(李仁復)을 불렀다. 이인복은 이조년(李兆年)의 손자로 원래 용모가 웅위하고 성품이 강직한 인물이었다. 남의 선행(善行)을 들으면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반드시 기뻐했으며, 그릇된 일이 있으면 불같이 노했다. 그러나 그런 감정을 입밖에 내지는 않았다. 그는 항상 말하기를  내 성미가 워낙 조급하기 때문에 함부로 말하면 크게 실수할 염려가 있으니 무슨 말이든지 입밖에 내기 전에 열번 스무번 다시 생각하는 거요.

  이인복은 이와 같이 강직하고 신중한 인물일뿐 아니라 충숙왕 때부터 공민왕 때까지 오대나 임금을 모셔온 공신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왕은 누구보다도 그를 믿고 부른 것이다.

  조일신의 행패가 이렇듯 극심하니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좋다고 경은 생각하오?

  왕의 자문을 받자 이인복은 즉시 대답하지 않고 한참 궁리에 잠겼다. 이런 때에도 그는 신중한 성격을 나타낸 것이다. 한참 만에 그는 의연한 성격을 나타낸 것이다. 한참 만에 그는 의연히 고개를 들더니 우렁찬 소리로 잘라 말했다.

  신하가 난을 일으켰을 때 벌을 주는 것은 법에 없더라도 당연한 일이옵니다. 하물며 지금 이 나라에는 그런 죄에 대한 법령이 분명히 밝혀져 있습니다. 어찌 망설이겠습니까?

하루를 망설이면 그만치 그 화가 상감께 미칠 것을 신은 염려하는 바이옵니다.

  음… 알겠소. 경의 말이 옳소.

  왕은 마침내 조일신을 주살할 것을 결심했다. 그리고는 곧 원로대신들을 볼러 모아 은밀히 의논하니 대신들 역시 이인복과 같은 의견이었다.

  그렇다면 당장 그자를 불러다가 목을 베야 하겠는데 누가 그 일을 맡겠는고?

  이렇게 말하고 대신들을 둘러보니 한 대신이 벌떡 일어서며 외쳤다.

  그 일을 신에게 맡겨 주십시오.

  그 사람은 바로 김첨수(金添壽)였다. 김첨수는 충혜왕 때 대호군을 지낸바 있으며 조적의 난에 왕이 원나라로 잡혀가자 시종의 공으로 일등공신이 되었고 후에 충혜왕이 게양(揭陽)으로 귀양가게 되자 첨수 등도 왕의 근신이란 이유로 원나라로 잡혀가서 원주 땅에 귀양갔다가 고국으로 돌아온 일이 있었다. 그러다가 공민왕 때 다시 등용된 것이다. 왕은 즉시 김첨수를 행성(行省) 문밖에 숨어 있게 하고 한편 사람을 보내어 조일신을 불러들였다. 이런 계교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모르는 조일신은 잔뜩 위세를 부리며 행성문을 들어서려 할 때 뜻밖에도 김첨수가 나타나서 한칼에 목을 베었다. 조일신이 죽었다는 소문이 퍼지자 백성들은 춤을 추며 기뻐했다.

  그 동안 그자가 행패를 부리는 통에 천지가 잔뜩 어두운 것 같더니 이제야 환히 밝은 것 같군!

  이렇게 수군거렸다. 조일신의 존재가 백성들을 얼마나 괴롭혔는지 짐작할 수 있는 말이다.  조일신이 죽고 나자 그동안 자취를 감추고 있던 기철이 다시 나타나서 세도를 부리기 시작했다.  조일신의 행패도 미웠지만 원나라 황실의 힘을 믿고 행패를 부리는 기철 등도 숙청해야 한다. 그래야 왕은 자기 포부껏 정사를 돌볼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조일신이 한 것과 같이 군사를 일으켜 토벌한다면 기철 등은 그 동안 거리의 불량배들을 한층 더 많이 모아 일대 세력을 이루고 있는 만큼 큰 내란으로 확대될 염려도 있고 그로 말미암아 어떤 변이 파생할는지 모른다.

  그러므로 우선 계교를 써서 기철 등 괴수를 먼저 죽인 다음 지도자를 잃어 당황하는 잔당을 토벌하는 편이 훨씬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왕은 궁정에 크게 곡연(曲宴)을 베풀었다. 그리고 여러 재상들을 불러 모으는 한편 기철과 권겸 등도 사람을 시켜 불러들이게 했다. 왕이 곡연을 베푼다는 말에 기철과 권겸 부자는 위세당당히 궁중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들이 궁문에 들어서자 머리 위로부터 난데없는 철퇴가 떨어져 그들을 박살하고 말았다. 왕이 미리 숨겨둔 장사가 내리친 철퇴였다.

  기철과 권겸 부자를 죽이고 나자 왕은 즉시 근위군을 풀어 노책(盧 ) 등 잔당을 모조리 죽여 버렸으니 이로써 원실에 들어간 공녀들의 치맛바람을 믿고 행세하던 무리들의 영화도 종말(終末)을 고한 셈이다.

 

 

 

 

  情炎 속에 타는 高麗

  亂 世 散 調

  국운이 기울었다고는 하지만 원나라는 상국(上國)이라는 자부심(自負心)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원나라의 관제를 폐지하고 친원파인 기철 등을 숙청했으나 소식을 듣자 크게 노한 순제는 공민왕 삼년, 사신을 보내고 그 처사를 책망(責望)했다.

  물론 여기에는 기황후의 감정이 다분히 개재되었을 것이다.

  아무리 무력하더라도 고려에 비해서는 엄청난 대국의 비위(脾胃)를 너무 거슬린다는 것은 현명한 태도가 아니라고 공민왕은 생각했다. 그래서 북쪽 땅을 복구하는 일을 맡고 있던 서북면병마사 인당(印 )에게 모든 책임을 지워 죽인 다음 이인복을 보내어 외교적 절충을 꾀하도록 했다. 즉 정식으로 쌍성(雙城=永興), 삼살(三撒=北靑) 등지를 돌려달라고 소청한 것이다.  이런 청원은 단지 원조의 체면을 세워 주기 위해서 형식적으로 승인을 얻으려 한데 지나지 않는다. 이때 이미 삼살 이남의 땅은 고려에서 점령하고 있었고 그 일에 내응하고 협조해 준 쌍성 사람 이자춘(李子春)을 삭방도만호겸병마사(朔方道萬戶兼兵馬使)에 임명하여 지금의 함흥에서 국경을 지키게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자춘은 바로 훗날 이씨조선을 세운 이성계의 부친이니 이씨 일문이 고려 조정에 발판을 얻게 된 것은 바로 이때부터이다.

  이렇게 원나라에 대해서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고, 원나라 역시 내란으로 국운이 기울어 제대로 간섭을 하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고려의 국정이 안전한 것은 못되었다. 남쪽 바다로부터는 왜구들이 쉴 새 없이 침입하여 백성들을 괴롭히고 있었으며 북쪽으로부터는 대륙에서 봉기한 반란군들이 항상 고려의 존립을 위협하고 있었다.

  왜구란 일본(日本)의 해적들을 부르는 말이다. 일찍이 신라 때부터 우리나라 해변에 침입한 일이 있었으나 그 당시는 수와 피해가 그다지 많지 않았었는데 고려 중기에 와서 갑자기 심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공민왕 때에 이르러서는 그 행패가 극도에 달한 것이다.

  그리하여 공민왕 육년에는 개경에서 가까운 승천부(昇天府)와 교동(喬洞)까지 침범을 당했고 칠년, 팔년에는 예성강 하류를 침범당하고 구년에는 강화도와 교동이 침범을 당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니 민심은 흉흉하고 조정에서는 그 방비책을 강구하기에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별로 신통한 효과를 보지 못했다.

  남쪽으로부터 침범하는 왜구만이 아니라 북쪽에서 일어난 신흥 세력의 침범도 고려의 국정을 어지럽혔다.

  공민왕 팔년에는 북으로부터 소위 홍건적이 쳐들어 왔다. 홍건적은 중국 북쪽 각처를 유린한 한림아(韓林兒)라는 자의 사병으로서 이때 고려에 쳐들어 온 군병은 한림아의 부장 모거경(毛居敬)이 거느리는 사만 대군이었다. 그들은 때마침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파죽지세로 남하하여 서경(西京)을 함락했으나 고려 장수 이방실(李芳實)의 분투로 크게 패하여 쫓겨가고 말았다.

  그러나 공민왕 십년 홍건적은 다시 이십만 대군을 거느리고 압록강을 건너 개성 근처까지 쳐내려 왔다. 개경의 민심은 극도로 소란해져서 왕과 공주는 마침내 태후를 받들고 남으로 피난하게 되었다. 개경에 침입한 홍건적은 여러달 동안 무고한 백성들을 함부로 죽이고 재물을 약탈하고 궁궐을 불사르고 갖은 만행을 다했다. 그러나 복주(福州=安東)까지 피난간 왕은 정세운(鄭世雲)을 총병관(摠兵官)으로 삼아 일대 반격전을 감행케 했다. 정세운은 그 이듬해 정월 안우(安祐), 김득배(金得培), 이방실 등 제 원수와 합세하여 적을 대파하고 개경을 수복했다. 그리고 다시 남은 적병을 구축하여 마침내 평화를 되찾았다.

  이와같이 남북으로 외침(外侵)을 당하여 어지럽기 이를데 없는 국정인데 안으로는 간신의 발호가 또한 그치지 않았다.

  공민왕의 근신에 김용(金鏞)이란 자가 있었다. 김용은 안성(安城) 사람으로 성품이 음란하고 잔인하고 시기심이 강한 인물이었다. 일찍이 공민왕이 세자의 몸으로 원나라에 가 있을 때 곁에서 시중을 들었으며 그 공로로 대호군에 승진했다가 공민왕이 즉위하자 다시 상호군이 되었다.

  이와같이 처음에는 김용을 총애하던 공민왕도 그가 저지른 죄를 그냥 둘 수는 없어 벌을 준 적도 있었지만 이내 그 죄를 사하기가 일쑤였다. 어떤 때는 백성들의 재물을 함부로 걷어들여 저지른 죄로 옥에 가두었다가 다시 석방하고 오히려 밀질부사란 요직을 맡긴 일도 있었다.  또 조일신이 난을 일으키고 이궁을 침범했을 때 숙직하던 다른 관원들은 모두 피살되었지만 오직 김용만은 그 자리에 있으면서도 목숨을 잃지 않았다. 이로 말미암아 비난이 자자했고 왕도 조일신과 내통하지 않았나 해서 먼 섬으로 귀양보냈으나 얼마 안돼서 다시 불러들인 일도 있었다.

  이 무렵 신귀(辛貴)란 관원이 있었다. 항상 외방에 부임해서 서울집을 비워두는 수가 많았다.  그런데 그의 처 강씨(康氏)는 지극히 음탕한 여자여서 많은 대신들과 밀통하고 김용도 역시 밀통했다. 이런 꼴을 보다 못한 신귀의 모친은 어사대(御史臺)에 호소하여 그 죄를 다스리게 되었다. 그러나 오직 김용만은 왕의 총애를 입어 죄를 모면하였다. 요컨대 제삼자에게는 간악한 인물이었지만 왕에게는 김용이 누구보다도 마음에 드는 총신이었던 모양이다.

  그때 왕의 총애를 가장 많이 받던 사람은 김용과 정세운이었다. 정세운은 광주(光州) 사람으로 일찍이 김용과 마찬가지로 공민왕을 따라 원나라에 갔다가 왕이 즉위하자 그 공로로 일등공신이 된 사람이다.

  그러나 그 성품이 김용처럼 간사하지는 않고 청렴결백, 오직 국가와 백성들만 염려하는 인물이었다.  그러기에 홍건적이 쳐들어 와 왕이 복주로 피난하자 상장군으로 따라가면서도 밤낮으로 비분강개(悲憤慷慨)해 마지 않았다.

  남으로 남으로 피난하는 백성들을 바라보며 세운은 눈물을 뿌리고 분격했다.  상감, 저 불쌍한 백성들을 보십시오. 이것이 모두 다 조정의 우리 백관들이 변변치 못한 때문이 아니옵니까? 마땅히 교지를 내리시어 민심을 달래는 한편 각도의 군사를 모아 도적들에게 반격을 가해야 할 줄로 아옵니다.

  세운이 상주하니 왕도 그 뜻을 따라 세운으로 하여금 총병관을 삼고 홍건적을 무찌르게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정세운과 안우, 김득배, 이방실 등이 마침내 홍건적을 평정하자 평소부터 정세운과 왕의 총애를 다투고 있던 김용은 무척 두려웠졌다.

  (가뜩이나 상감이 총애하는 정세운이 그렇듯 큰 공을 세웠으니 이대로 두었다간 상감의 신임이 두터워질 것이며 나 같은 건 맥도 못 추게 될 것이 아닌가?)

  김용이 두려워한 것은 정세운 뿐이 아니었다. 정세운과 같이 공을 세운 안우, 김득배, 이방실 등도 모두 두려운 경쟁자로 새로 등장한 것이다.

  (그놈들을 모조리 죽여버려야 하겠다. 그래야 내 지위가 위태롭지 않단 말야. 그렇지만 마침 큰 공을 세워 한창 위세가 등등한 그놈들을 내 손으로 죽이기도 어려운 일이고…)

  곰곰 생각한 끝에 세 사람을 서로 이간시킨 다음, 안우, 김득배, 이방실로 하여금 정세운을 죽이게 할 계교를 꾸몄다. 김용은 자기 조카인 전 공부상서 김림(金琳)에게 계교를 일러주고 안우 등을 찾아가도록 했다. 김림이 안우의 처소를 찾아가니 마침 이방실도 그 자리에 있었다. 자리를 잡고 나자 김림은 두 사람에게 넌지시 말했다.

  세운은 원래 공들을 좋지 않게 여기는 사람인데 이제 함께 적을 무찔러 군공을 다투게 되었으니 어찌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안우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가만히 있지 않는다면 어쩌겠소?

  뻔한 일이 아닙니까? 공들을 해치고 군공을 독점하겠죠. 그러니 앉아 화를 당하느니보다 이편에서 선수를 쓰는 것이 상책일 겁니다.

  그 말을 듣자 안우도 그럴듯하게 생각하였다. 그래서 이방실과 함께 김득배의 처소를 찾아가서 의논해 보았다.

  김득배는 상주(尙州)사람으로 일찍이 등제하여 예문검열(藝文檢閱), 전객부령(典客副令) 등의 벼슬을 지냈으며 공민왕이 세자 때 원나라로 따라가서 숙위하다가 공민왕이 즉위하자 우부대언(右副代言)이 되어 국가 요직에 참여했으나 찬성사 조일신의 미움을 받아 관직을 물러난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홍두적과 왜구의 침범이 심해지자 다시 특채되어 서북면홍두왜적방어도지휘사(西北面紅頭倭賊防禦都指揮使)가 되었으며 뒤이어 추밀원직학사(樞密院直學士), 서북면도순문사(西北面都巡問使) 등을 거쳐 홍두적이 침입했을 때에는 안우, 이방실 등과 함께 분전하여 대 승리를 거둔 명장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의 문하에서는 포은 정몽주(圃隱鄭夢周) 같은 대학자를 배출한 석학이기도 했다.

  안우 등이 정세운을 제거하자는 말을 하자 김득배는 정색을 하며 반대했다.

  이제 겨우 외적을 평정했는데 동족끼리 서로 해칠 필요가 어디 있겠소? 정공의 허물이 뚜렷해서 어쩔 수 없다면 상감께 상주해서 처분을 기다리는 것이 마땅한 일이 아니겠소?

  이 말에 안우와 이방실도 그럴싸하게 여겨 일단 물러갔으나 밤이 되자 다시 찾아왔다. 김득배의 말을 듣고 안우와 이방실이 망설이는 것을 본 김용이 이번엔 왕명이라 칭하고 정세운을 주살할 것을 독촉한 것이었다.

  세운을 주살하는 것은 상감의 분부요. 우리가 아무리 공을 세웠더라도 상감의 분부를 받들지 않는다면 반드시 후환이 있을 것이니 어찌하겠소?

  그래도 득배는 세운을 죽이는데 반대했으나 두 사람이 너무나 강경히 주장하므로 하는 수 없이 술상을 차려 놓고 세운을 부른 다음 숨겨 두었던 장사를 시켜 죽여 버렸다. 세운을 죽이고 나자 안우 등은 그 목을 베어가지고 궁궐로 향했다.

  군명을 받들어 정세운의 목을 베어 왔으니 어서 문을 여오.

  안우가 궁문 앞에서 이렇게 외치자 수문장은 궁문을 열고 안우를 철퇴로 박살했다. 미리 김용이 명령한 일이었다.

  안우가 죽는 것을 보자 이방실과 김득배는 비로소 김용의 간계에 넘어간 것을 깨닫고 그 자리에서 도망쳐 버렸다. 한편 김용은 즉시 궐내로 들어가서 왕을 뵙고  안우 등이 함부로 주장을 죽였사옵니다. 이것은 곧 상감을 업수히 여기는 처사라 단단히 그 죄를 다스려야 하겠기에 신이 우선 안우를 죽였습니다만 아직 김득배와 이방실이 생존해 있으니 마저 잡아 처단해야 할 줄로 아뢰오.

  김용의 말이라면 무슨 말이나 곧이 듣는 공민왕은 크게 노하여 김득배와 이방실을 잡는 자에겐 삼급(三級)을 초등(超等)해서 녹용(錄用)하겠다는 고유를 내리고 대장군 오인택(吳仁澤) 등을 시켜 두 사람을 잡게 했다.

  이때 김득배는 산양현(山陽縣)에 있던 선형(先瑩) 곁에 숨어 있었으나 관에서 노모를 비롯해서 형제자매를 잡아다가 숨은 곳을 대라고 참혹한 고문을 가하므로 보다 못해 자수해서 죽고 말았다.

  한편 이방실은 안우가 죽는 것을 보고 일단 몸을 피했으나 왕명으로 자기를 체포하려고 하는 것까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자기의 무죄함을 왕에게 호소하려고 행궁으로 향하려 하는데 마침 왕이 보낸 그의 장인 신구(辛 )와 만나 입궐했다.

  방실이 어전에 부복하자 김용의 명령을 받고 있던 오인택이 갑자기 칼을 뽑아 내리쳤다.

방실은 칼을 맞고 잠깐 그 자리에 쓰러져 있었으나 얼마 후 소생해서 담을 뛰어 넘어 도망치려 했다. 그러나 곧 박춘(朴春), 정지상(鄭之祥) 등이 추격하여 죽이고 말았다.

  정세운 등 정적을 죽이고 나자 김용의 세력은 한층 더 떨쳤으나 그 반면 뜻있는 자들은 그의 간계로 공로 있는 장수들을 죽였다하여 미워하고 있었다. 김용은 그것이 두려웠다. 정세운 등 네 장수를 죽인 것이 순전히 자기 모략 때문이란 것을 왕이 안다면 얼마나 괘씸하게 여길 것인가? 그래서 그 기밀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자가의 조카 김림을 죽여버렸으나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원나라에 가 있던 최유(崔濡)란 자가 은밀히 사람을 보내어 정변을 일으키자고 유인했다. 공민왕을 없애버리고 충숙왕의 아우 덕흥군(德興君)을 옹립하자는 것이었다.

  최유도 원래 공민왕이 원나라에 있을 때부터 가까이 모시던 충신이었으나 공민왕이 즉위한 후내린 벼슬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불평을 하다가 죄를 짓고 원나라로 도망가 있던 자 였다.  그러므로 그곳에 머물러 있던 고려인 불평분자들과 결탁해서 여러 가지로 원조에 공민왕을 모함하는 한편 원순제의 제이황후인 기씨를 움직여 공민왕의 폐위를 도모했던 것이다.  기황후는 자기 오라버니인 기철 등이 본국에서 피살된 것을 미워하던 터이므로 즉시 순제를 움직여 공민왕을 폐위하는 공작을 적극적으로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일은 순조롭게 이룩하려면 무엇보다도 본국에서 호응하는 자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최유는 김용에게 사람을 보내어 유인한 것이다. 최유의 유인을 받자 김용은 은근히 기뻐했다. 공민왕만 없

애 버리고 새 임금을 옹립하는데 공을 세운다면 정세운 등을 모살한 허물이 드러나더라도 염려될 것이 없었던 것이다.

  공민왕 십이년 삼월, 김용은 그의 심복인 김수(金守), 조련(曹連) 등 오십여명을 모아놓고 밀회한 끝에 밤이 이슥하자 갑자기 행궁을 습격하게 했다. 김용의 심복 김수 등은 흥왕사(興王寺)에 이르러 문지기를 베고 달려 들어가 위사(衛士)들을 죽이고 곧 침전에 이르렀다.

  불의의 습격을 받은 공민왕은 대경실색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이강달(李剛達)과 안도치(安都赤)라는 두 환관이 급히 달려 곁으로 다가왔다.

  상감, 급히 이곳을 피하셔야 합니다.

이강달이 왕에게 등을 대며 업히라고 재촉했다.

  피하다니, 어디로 피한단 말이냐?

왕이 망설이니까

  태후마마의 밀실로 피하시면 역적의 화를 면할 수 있을까 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이강달은 왕을 등에 업었다. 그리고는 안도치를 돌아보며

  뒷일은 잘 부탁하네.

일러 놓고 사라졌다.

  안도치는 그 용모가 왕과 비슷했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이 왕을 대신해서 역적들의 칼을 받으리라 마음먹고 왕의 옷으로 갈아입은 다음 침상에 올라가 누웠다.

  얼마 후 과연 역적들이 밀려 들어왔다. 역적들은 침상에 누워 있는 안도치를 보자

  임금이다.

  저기 바로 임금이 누워있다.

소리치고 달려들어 칼을 휘두르며 난자했다.

  만세! 대성공이다.

역적들은 안도치의 시체를 높이 들고 소리소리 질렀다. 그러자 뒤미처 김용이 들어왔다. 부하들이 죽였다고 떠드는 안도치를 보자 김용은 크게 놀랐다. 그는 항상 왕을 가까이 모시고 있었으며 안도치와도 안면이 있었기 때문에 부하들이 일을 그릇 친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왕을 놓쳤으니 속히 찾아야 하는데 왕이 어디 숨어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부하들을 풀어 궁중 요소 요소를 수색케 했다. 김용의 부하들은 끝내 왕이 나타나지 않으니까 닥치는 대로 궁중에 있던 신하들을 참살했는데 그 중에는 우정승 홍언박(洪彦博)도 끼어 있었다.

  바로 이때 여러 대신들은 묘련사(妙蓮寺)에 모여서 불공을 드리고 있다가 행궁을 역적들이 습격했다는 말을 듣고 즉시 군사를 모아 역적을 치러 행궁으로 향했다.

  이 정보를 듣자 김용은 또 한 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용의 부하들은 겨우 오십 여명이다.  대신들이 거느리는 수백명 관군과 마주 싸운다면 당해낼 도리가 없었다. 위기를 당하면 간교한 꾀를 자아내는 것이 김용의 장기였다. 일이 실패한 것을 깨닫자 부하들을 버려 두고 혼자 탈출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오는 곳으로 달려갔다.

  여러분, 역적들이 행궁을 습격했소. 속히 그곳으로 가서 역적들을 토벌하시오. 나는 따로 군사를 모아 뒤미처 가겠소.

이렇게 외쳤다. 김용의 의도는 관군을 행궁으로 보내어 자기 부하들과 싸우게 하고 그 동안 자기는 따로 군사를 모아 그 뒤를 침으로써 관군을 협격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관군을 거느리고 있던 정승 유탁(柳濯)은 김용의 말을 곧이 듣지 않았다. 그래서 군사를 그 곳에 머물게 하고 동정을 살피고 있으려니까 지휘자를 잃어버린 김용의 부하들이 하나 둘 흩어져서 김용을 찾기 시작했다.

  김용의 입장은 대단히 난처하게 되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문객 화지원(華之元)에게 눈짓을 해서 눈에 띄는 부하들은 불문곡직(不問曲直)하고 베어 죽이게 했다. 이번 반란의 주모자가 자기라는 것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관군의 손에 사로잡힌 부하들까지도 국문하는 일 없이 그 자리에서 죽여버렸다. 이렇게 되니 아무리 입을 씻고 딴청을 해도 여러사람의 의심을 모면할 길이 없었다.

  왕도 마침내 김용의 거동을 수상히 여긴 나머지 그를 밀성(密城)으로 유배시켰다가 다시 대호군 임견미(林堅味), 호군 김두(金斗)를 보내어 계림부로 압송하고 안렴 이보림(李寶林)과 더불어 김용의 죄상을 국문하도록 하였다. 이 지경이 되어도 김용은 어디까지나 자기 죄를 은폐하려고 들었다.

  내 이미 팔년 동안이나 재상의 자리에 있으면서 원하는 일은 이루지 못한 것이 없는데 어찌 감히 상감을 범할 생각이 있었겠소. 다만 홍시중을 없애려고 거사했을 뿐이요.

이렇게 변명을 했다. 그러나 임견미 등은 그 변설에 말려 들어가지 않았다.

  그렇다면 상감의 복장을 하고 침전에 누워있던 안도치를 죽인 것은 무슨 까닭이지?

  날카롭게 따져 묻자 뻔뻔스러운 김용도 더 변명할 여지가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임견미 등은 김용의 목을 베어 서울로 보낸 다음 그 무리 십여명도 역시 목을 베고, 나머지 수십명은 멀리 유배시켰다.

  김용의 반란과 죽음은 공민왕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내가 가장 믿고 아끼던 자가 나를 배반하고 죽이려고까지 하다니 장차 누구를 믿어야 옳단 말이냐?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공민왕이 한탄한바와 같이 모처럼 좋은 포부를 품고도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실정을 거듭하게 된 것은 어진 신하를 만나지 못했고 또 현신과 간신을 구별하는 안목이 없었던 때문이었다.

  김용의 정변이 실패한 후에도 그와 내통했던 최유는 공민왕을 폐출할 뜻을 버리지 않았다.  기황후를 통해서 한층 더 심한 공작을 전개했다. 원나라 순제도 공민왕의 반항적인 태도를 불쾌히 여기고 있던 때였으므로 황후와 최유 등의 진언을 들어 마침내 공민왕을 폐하고 덕흥군(德興君)을 왕으로 삼으려고 사신을 고려에 보내어 그 뜻을 전하는 한편 왕의 인(印)을 거두려 했다.

  그러나 공민왕은 원조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 사신에게 폐립의 이유를 꼬치꼬치 따진 다음 군대를 사열하고 무기를 구경시켜 폐립을 강행한다면 무력으로 맞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사신이 돌아가서 공민왕의 태도를 보고하자 그때 좌정승의 위관(僞官)에 임명되어 있던 최유는 원제에게 요양(遼陽)의 군사 일만을 청하여 압록강을 거너 고려로 침입했다. 무력으로 자기 야망을 채워 보려는 마지막 수단이었다. 그러나 고려측에서는 최영, 이성계 등 장수를 보내어 이를 맞아 크게 격파하니 적군으로서 살아 돌아간 자 겨우 십칠기였다고 한다.

  군사적 압력으로도 실패한 원나라 순제는 하는 수 없이 다시 사신을 고려로 보내어 공민왕의 왕위를 회복케 하고 최유를 잡아 압송하여 극형에 처하게 함으로써 고려측의 감정을 겨우 달랬다.

 

 

 

  妖僧 辛旽의 女耽

  공민왕은 패기만만(覇氣滿滿)한 포부(抱負)를 품은 반면 만사(萬事)를 감정적(感情的)으로 다루는 경향이 적지 않았다. 특히 대인관계(對人關係)에서 그러했다. 그러므로 그를 가까이 모시던 김용, 최유 같은 자가 반란(反亂)을 일으키기에 이른 것이다. 감정적인 인물은 공사 간에 마음에 드는 일이면 적극성(積極性)을 띠우지만 한 번 실망(失望)하면 만사를 포기(抛棄)하는 수가 많다.

  공민왕 십사년, 노국공주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후부터의 왕의 태도가 그러했다.

  공민왕은 비록 원과 대립하는 정책을 쓰기는 했지만 원나라 공주인 노국공주와의 금실은 지나칠 정도로 좋았다. 이것도 공민왕의 감정적인 성격의 일면일 것이다.

  공주는 원래 자녀를 두지 못했다. 그러므로 여러 재상들의 권고로 달리 왕비를 맞이하기도 했지만 왕의 사랑은 오직 공주에게로만 쏠렸다. 물론 왕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여성적인 매력이 공주에게 있었던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한 번 마음이 쏠리면 헤어나지 못하는 공민왕의 성격이 더 큰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십여 년을 두고 아기를 갖지 못하던 노국공주가 기적적으로 임신을 했다. 왕이 기뻐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그러니 내가 뭐라고 했소? 공주는 반드시 태자를 낳을 것이니까 다른 비를 맞는데 반대한 게 아니요?

  왕은 이런 말을 하면서 공주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공주의 안산을 위해서 가능한 조처는 모두 했다. 그러나 지나친 조섭 때문이었던지 너무나 늦은 초산 때문이었던지 그해 이월, 공주는 난산으로 진통을 거듭하다가 마침내 숨이 지고 말았다. 공민왕의 슬픔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아니 공주가… 나의 공주가… 이럴 바에는 차라리 태자고 뭐고 임신이라도 말 것을…

왕은 어린애처럼 몸부림을 치며 통곡했다.

  공주를 잃은 왕은 마치 혼이 나간 사람 같았다. 감정적이며 인간적인 왕은 모든 정열을 기울여 사랑하던 공주를 잃으니 세상 일이 모두 귀찮아졌다. 정사고 뭐고 돌보려고도 하지 않고 오직 마음을 쓰는 것은 공주를 추모하는 일 뿐이었다.

  왕은 원래부터 그림을 잘 그렸다. 그 솜씨와 정성을 기울여 공주의 진영을 그리어 벽에 걸고 산 사람을 대하듯 이야기도 하고 통곡도 했다.

  그리고 공주의 혼을 위로한다고 수시로 불사(佛事)를 일으켜 제사를 지냈다. 또 공주의 진영(眞影)을 모셔두기 위해서 굉장한 영전(影殿)을 건립하기도 했다. 이렇게 되니 정사는 왕의 손을 떠나 그때 왕이 가장 사랑하던 중 편조(遍照) 즉 신돈(辛旽)의 손에서 좌우되었다.

  신돈은 원래 영산(靈山) 사람으로 그의 모친은 계성현 옥천사(桂城縣玉川寺)의 종이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중이 되어 이름을 편조(遍照)라고 했는데 모친의 신분이 천한 때문에 다른 중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항상 산방(山房)에서 홀로 지냈다.

  신돈이 공민왕을 만나고 그의 총애를 받게 된 데에는 한 가지 일화가 있다. 하룻밤 공민왕은 꿈을 꾸었다. 한 장사가 장검을 휘두르며 왕을 해치러 다가왔다. 왕은 뒷걸음질을 치며 소리쳤다.

  어떤 놈이냐? 무슨 까닭에 과인을 해치려 드느냐?

그래도 그 장사는 듣는지 마는지 다가오기만 했다.

  거, 누구 없느냐? 저 무엄한 놈을 물리치지 못할까?

  왕은 이렇게 소리쳐 보았다. 그러나 달려오는 사람도 없었고 대답하는 사람도 없었다.

왕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제는 도망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장사가 다가오는 쪽 이외에는 모두다 돌로 쌓은 성벽이었다. 이제는 죽었다고 왕이 단념하고 눈을 감은 순간이었다.

  으악!

소리를 지르며 무엇이 쓰러졌다. 그러나 왕의 몸엔 아무 일도 없었다. 왕은 눈을 뜨고 둘러 보았다. 쓰러진 것은 이때껏 칼을 뽑아 들고 있던 그 장사였다. 머리통이 박살이 되고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누가 이놈을 죽이고 나를 구해 주었을까, 하고 살펴보니 장사가 쓰러진 두어 발자국 저편에 한 중이 굵직한 석장을 짚고 서 있었다.

  대사가 과인을 구해 주었구료. 이 은혜는 잊지 않겠소이다. 어느 절에 있는 누구요?

  중은 대답이 없었다. 두 손을 모아 장사의 시체에 합장을 하고 나서 잠깐 왕의 얼굴을 응시하고는 간 곳이 없어졌다.

  비록 꿈 속에서 일어난 일이기는 했지만 왕은 그 중이 대단히 고마왔다. 그리고 이 세상에 꼭 그런 중이 살아 있어서 자기가 위험한 고비를 당했을 때 나타나서 구해 줄 것만 같았다.  그 후 며칠이 지나서 밀직사 김원명(金元命)에게 넌지시 고했다.

  상감마마, 편조대사를 아시옵니까?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왕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러니까 김원명은  지금 서울에서 백성들의 숭앙을 한참 받고 있는 명승이옵니다. 한 번 불러 보심이 어떠하겠습니까?

라고 권했다.

  어릴 적엔 신분이 천하다 해서 남들에게 천대를 받던 편조도 원래 총명한 성품이라, 어느덧 인심을 장악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많은 신도들을 모으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그의 야망은 정계에까지 미쳐 왕의 총애를 받고 있던 김원명과 접선을 했던 것이다. 공민왕은 원래 이름난 중이면 가까이 하기를 좋아했다. 그러므로 김원명이 천거하는 말을 듣자

  그렇게 백성들이 숭앙하는 사람이라면 나라 정사에 도움이 되는 생각도 가지고 있을 것이니 한 번 입궐하도록 하라.

이렇게 분부했다.

  그 이튿날로 김원명은 편조라는 중을 데리고 입궐했다.

  왕은 그 중을 보자 자기 눈을 의심했다.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나?

라고 중얼거리자, 눈치 빠른 김원명이

  상감마마, 전에 대사를 만나신 일이라도 있으시옵니까?

하고 물었다.

  아니,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하면서 왕은 며칠 전의 꿈 이야기를 한 다음

  그 꿈에 나타난 중과 지금 여기 있는 저 승려와 용모가 아주 흡사하단 말야.

라고 덧붙였다.

  그 말을 듣자, 편조는 왕의 마음을 단숨에 흡수해 버릴 듯한 눈초리를 보내며 말했다.

  황송하오나 전생에 깊은 인연이 있었나 봅니다.

  이렇게 되니 왕은 편조가 오늘 처음 만나는 사람이 아니라 오랜 지기처럼 느껴졌다. 가슴을 털어놓고 정사(政事)를 논하고, 인생을 논하고, 교리(敎理)를 논했다.

  왕의 말을 받아 논하는 편조의 변설이 더욱 왕의 맘을 끌었다. 그가 아는 불교의 교리는 말할 것도 없고, 인생 전반의 문제나 정사에까지 정통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서는 들어볼 수 없는 독창적인 견해까지도 가지고 있었다.

  국가는 문벌 높은 몇몇 권신들에게 농락될 것이 아니라, 그들보다 그 수가 몇 천 갑절, 몇 만 갑절이나 되는 이름 없는 백성들을 위주로 해야 합니다.

이런 말도 했다.

  권세가와 재산 많은 자들은 그 위세를 믿고 가난한 백성들을 더욱 더 수탈하고 있는 형편이옵니다.  민심을 모으고 국가를 부강케 하려면 몇몇 사람들이 수탈한 전답을 거두어 그옛 주인에게 돌려 주어야 합니다.

이런 의견도 제시했다.

  아무리 천한 노비라도 성품이 착해서 양민(良民)이 되고자 하는 자는 그 하는 일을 보아 풀어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가장 천한 인간들까지 앞날에 큰 소망을 걸고 살 수 있으며 상감의 성덕이 방방곡곡까지 미칠 수 있을 것이옵니다.

  편조 자신이 천하고 가난한 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의 말은 구체성을 띠웠고 절실한 데가 있었다. 왕은 어느 말이나 하나 하나 공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편조는 입으로만 약한 백성의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도 그것을 증명했다.

  그는 엄동설한(嚴冬雪寒)이건, 삼복 중이건 언제나 누덕 누덕 긴 한 겹 옷만 입고 다녔다. 먹는 음식도 지극히 검소했다. 백성들을 사랑한다면 백성들과 똑같은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조였다. 편조가 자주 접촉을 갖게 되자 왕도 감화되어 검소한 생활을 하게 되었으며 신하들에게도 그것을 권장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니 대대로 부귀를 누려오던 권신들에겐 편조가 눈 안의 가시였다.

  그 중에서도 편조를 가장 미워한 것은 이승경(李承慶)과 정세운(鄭世雲)이었다.

  요망한 중놈이 나라를 망치려 든다.

  두 사람은 기회만 있으면 편조를 죽이려고 노리고 있었다. 정세운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강직하기 이를 데 없는 인물이며 이승경 또한 그에 못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러므로 이대로 두었다간 편조는 반드시 그들의 손에 죽고 말 것이므로 왕은 여러 가지로 궁리한 끝에 편조를 몰래 산중으로 보내어 숨겨 두었다.

  그 후 정세운이 김용의 간계로 죽게 되고 이승경 역시 병을 얻어 죽게 되자 왕은 다시 편조를 불러들였는데 그대로 불러들이면 조신들의 반발을 다시 살까 염려해서 머리를 기르고 이름을 고치어 다른 사람같이 보이게 했다.

  편조가 신돈(辛旽)이란 이름을 쓰게 된 것은 이때부터였다.

  신돈을 다시 불러들인 왕은 전보다 한층 더 그를 신임하게 되었다. 청한거사(淸閑居士)라는 호를 직접 지어 주기도 하고 사부(師傅)라고 칭하기도 했으며, 모든 국사를 그와 의논하게 되었다. 그리고 노국공주가 세상을 떠나서 의욕을 잃었던 나라일을 모두 신돈에게만 맡겨 버렸던 것이다.

  이렇게 되니 한낱 보잘 것 없는 중이었던 신돈이 이제는 고려 천지를 호령하는 세도가가 되었다.

  이젠 세상이 달라졌어.

  지금 세상엔 신돈 어른에게만 잘 보이면 못하는 일이 없지.

  아마 그 분의 세력은 상감님에 못지 않을걸?

  큰소리론 못할 말이지만 상감께선 어디 정사를 돌보시나? 모두 다 신돈 어른이 처리하시지. 그러니 사실상 그 어른의 세력이 상감님 이상이란 말야.

  암 그렇구 말구.

  벼슬아치들은 서로 모이기만 하면 이렇게 수근거리게 되었다. 그리고는 서로 다투어 신돈에게 아첨했고 신돈의 집 문전은 뇌물을 바치러 모여든 사람들로 저자를 이룰 지경이었다.

  신돈 어른은 부처님이 사람의 몸을 빌어 세상에 나신 신승(神僧)인 모양이요.

  글세 그 분의 설법만 들으면 내세에 극락 가기는 따놓은 당상이라는구만.

  원 참, 내세 뿐이겠소? 그 분께 불공을 부탁하면 이승에서도 부귀영화(富貴榮華) 마음대로 누리게 된다지 않우?

  입이 가벼운 아낙네들은 서로 모이기만 하면 이렇게 재잘댔다. 그래서 신돈의 집에는 설법을 듣고 불공을 드리러 모여든 여인네들로 또한 법석댔다.

  불우하던 자가 권세를 잡으면 굶주렸던 자가 음식을 만난 듯 탐욕해지는 수가 많다. 신돈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임금의 총애를 받고 아첨하는 무리들이 늘어나자 마침내 신돈은 물욕과 권세욕과 음욕(淫慾)을 한없이 탐하게 되었다. 특히 심한 것은 체면도 모르고 청탁도 가리지 않는 음욕이었다.  신승이라고 모여드는 부녀자들을 닥치는 대로 겁탈했다고 하는데 실은 그런 것쯤 아무 것도 아니었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하루는 신돈이 기현(奇顯)이란 자의 집엘 들렸다. 마침 나라의 실권을 한손에 쥐고 조정의 크고 작은 일을 신돈의 마음대로 요리하기 시작한 때라 기현은 산해진미(山海珍味)을 차리고 어여쁜 계집들을 시중들게 해서 극진히 대접했다. 술자리가 한창 무르익었을 때였다. 기현의 처가 나와 인사를 했다. 그것을 보자 신돈은 당장 눈치가 달라졌다.

  굉장한 미인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살결이 희고 몸매가 오동통한 것이 호색한 신돈의 구미를 돋구었다.

  신돈은 안절부절을 못했다. 공연히 곁눈으로 기현의 처를 훑어보는가 하면 술을 권해 보기도 하고 저편에서 술을 따라 주면 슬며시 손목도 만져보고… 기현은 약삭 빠른 인간이었다.  신돈의 뜻을 짐작 못할 리가 없었다.

  (저 양반이 우리 마누라에게 단단히 마음이 있으시군.)

  다른 남자 같으면 이런 눈치를 챘을 때 분노와 굴욕감으로 두 주먹이 떨릴 것이었다. 그러나 기현은 달랐다.

  (정말 우리 마누라에게 마음이 있으시다면 그야말로 호박이 구른 셈이지. 저분의 마음만 잡으면 얼마쯤이라도 입신출세(立身出世)할 수 있을 테니까.)

  기현은 자기 아내를 몰래 불러내어 뭐라고 속삭였다. 아내는 생긋 웃고 신돈이 있는 방으로 혼자 들어갔다.

  기현의 아내는 신돈의 곁에 바싹 다가 앉아서 색정(色情)이 자르르 흐르는 추파를 던지고는 술병을 들었다. 건드리기만 하면 폭 안길 기세였다. 강제라도 어떻게 건드려 보려고 잔뜩 마음이 동해 있던 신돈은 여자 쪽에서 먼저 그런 기세를 보이자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한 손으로 술병을 든 계집의 손을 덥석 쥐고 한손으로는 가는 허리를 감싸 잡았다. 여자는 그저 인사치례로 잠깐 몸을 꼬더니 이내 신돈의 품에 안겨 버렸다. 아까 기현이 아내에게 속삭인 것은 물론 신돈의 말을 들으라고 한 것이었으며 남편 못지 않게 권세를 좋아하는 아내는 두말 없이 그 말을 따랐던 것이다.

  기현의 아내가 신돈에게 몸을 맡긴 후부터 이부처는 마치 신돈의 종처럼 시중을 들었으며 신돈 역시 이들을 자기 심복으로 극진히 돌보아 주었다. 정권을 잡은 후 신돈의 위세는 나날이 강성해졌다. 그가 죽이고 싶은 자라면 지위를 막론하고 죽어야 했고 그가 살리고 싶은 자라면 어떤 죄를 졌더라도 용서 받았다.

  신돈은 그런 권세를 염치불구하고 음욕을 만족시키는데 이용했다. 그리고 기현을 비롯한 심복들이 그런 시중을 잘 들었다.

  거 아무개 처가 천하일색이라는군요.

이렇게 심복하나가 귀띔해 준다. 그러면 신돈은 눈이 거슴츠레해져 가지고

  그래? 그럼 그 놈을 잡아 가두도록 해라.

이렇게 명하는 것이었다.

  가엾은 것은 어여쁜 아내를 둔 사대부(士大夫)들이었다. 그들은 하찮은 허물을 트집잡혀 옥에 갇히게 되었다. 남편을 옥에 가두고 나면 기현등 신돈의 심복은 사람들을 그 집에 보낸다.

  댁의 주인 어른이 나라에 죄를 져서 옥에 갇혔습죠.

  심부름을 간 자가 이렇게 말하면 그 집 가족들은 혼비백산(魂飛魄散)해서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거린다.

  무슨 죄를 졌기에 옥에 갇혔을까요?

  어떻게 구출해 낼 길이 없습니까?

  가족들은 심부름 간 자에게 매어 달리듯 묻는 것이다.

  길이 없는 것도 아니죠만…

이렇게 말끝을 흐리면

  네! 무슨 길이 있으시다구요? 풀려 나올 길만 있으면 무슨 일이든지 다 하겠습니다.

하고 가족들이 애걸하게끔 되면 그제서야 심부름 간 자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즉 잡혀간 자의 부인이 직접 신돈의 집을 찾아가서 애원해 보면 풀려 나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신돈이 음탕하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그리고 여자의 몸으로 그런 신돈의 집을 찾아간다는 것이 위태롭다는 것도 듣기는 했다. 그렇지만 남편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마당에 망설이고만 있을 수는 없으므로 어여쁜 아내들은 종의 부축을 받아 말을 타고 신돈의 집으로 향한다.

  마침내 신돈의 집에 당도해서 대문을 들어서면 그 집 하인은 말과 마부를 어디론지 쫓아버린다.  이때 벌써 불안이 검은 구름처럼 가슴속에 피어오르지만 꾹 참고 중문(中門)을 들어서면 거기까지 따라온 종들은 어디론지 쫓겨가고 아내는 신돈의 여종들에게 인도되어 안으로 들어간다.

  신돈은 홀로 서당(書堂)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데 그의 곁에는 이미 금침이 마련되어 있다.

  여이은 그 금침을 보자 새파랗게 질리고 사지가 사시나무 떨리듯 떨리지만 억지로 힘을 내어 모기만한 소리로 간청한다.

  저의 남편이 무슨 죄를 졌는지 알 수 없습니다만 너그러우신 덕으로 용서해 주시면 그 은혜 어떠한 일로든지 갚겠습니다.

  이렇게 애걸하는 여인의 몸매를 신돈은 뱀과 같은 눈을로 구석구석 훑어 본다.

  어떠한 일이든지 하겠단 말이지?

  마침내 신돈의 말이 떨어진다. 여인은 대답도 하지 못하고 오돌오돌 떨기만 한다.

  신돈은 여인의 손목을 잡아 깔아놓은 자리로 끌고 간다.

 이때 계집이 순순히 응하고, 데리고 놀아보아 신돈의 마음에 들면 며칠 더 머무르게 하고 실컷 농락한 다음 그 남편과 더불어 석방해 준다. 그러나 여자가 녹록히 말을 듣지 않거나 말을 들어도 신돈의 색정을 만족시켜 주지 못하면 그 남편은 벌을 받거나 혹 귀양을 가거나 혹 죽음을 당한다.

  그러므로 그 당시의 유부녀들은 남편이 옥에 갇혔다는 기별만 들으면 무엇보다도 먼저 곱게 화장을 하고 가장 값비싼 옷을 입고 향기 높은 술과 기름진 음식을 장만해 가지고 신돈의 집으로 달려갔다고 한다.

  신돈의 행패가 날로 심해져도 그의 비위만 맞추고 아첨하는 무리들이 조정에 가득했지만 그중에 뜻있는 사람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신돈을 멀리 할 것을 왕에게 간했다.

  이인복(李仁復) 같은 사람은

  신돈은 사람의 탈을 썼으나 사람이 아니옵니다. 훗일 반드시 큰 화를 초래할 것이온 즉 일찍이 물리치심이 가한 줄로 아뢰오.

이렇게 간했다. 또 역대 공신 이제현(李齊賢)같은 이는

  그 사람의 골법(骨法)을 보니 예로부터 흉한 일을 저리르는 사람의 골법과 흡사하옵니다. 반드시 후환이 있을 것인즉 멀리 하시오.

이렇게 진언했으나 왕은 듣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신돈이 자기를 멀리 하라고 진언한 사람들을 미워한 나머지 각각 벌을 주라고 청하자 그 청을 따라 이인복을 파직시켰으며, 그밖의 신하들은 혹은 좌천하고 혹은 귀양 보냈다. 이렇게 되니 대신 이하 모든 신하들은 신돈을 몹시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신돈의 위세가 아무리 높아져도 두려워할 줄 모르는 한 젊은이가 있었다. 그 젊은이는 정언(正言)으로 있던 이존오(李存吾)였다.

  이존오는 경주 사람으로 풍채가 단정하고 과묵하면서도 가슴속에는 불 같은 정렬을 품은 젊은이었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오직 학문에만 힘쓰다가 공민왕 구년에 등제하여 수원의 서기(書記)가 되었으며, 다시 사한(史翰)에 선보(選補)되었다. 비록 나이는 젊지만 서로 사귀는 사람들은 모두 당대의 학자들이었으니 정몽주(鄭夢周), 이숭인(李崇仁), 정도전(鄭道傳), 김구용(金九容), 김제안(金齊顔) 등은 모두 그의 친우였다.

  그 후 감찰규정(監察糾正)에 승진했다가 공민왕 십오년에 정언(正言)이 되었다.

  그는 신돈의 행패가 날로 심해지는데도 조신들은 모두 그를 두려워하여 말을 못하고 있는 것을 통탄한 나머지 죽을 각오를 하고 상소문을 써서 왕에게 바쳤다. 왕은 그 상소문이 어떠한 내용인지도 모르고 대언(代言) 권중화(權仲和)를 시켜 읽게 했다.

  <삼가 아뢰옵나이다. 방약무도한 신돈은 항상 말에 올라 궁궐을 드나드오며, 황공하옵께도 전하(殿下)와 더불어 한자리에 앉아 꺼릴 줄 모르오며, 그 집에 비록 재상(宰相)이 찾아가더라도 저는 높은 자리에 버티어 앉아 재상으로 하여금 뜰 아래서 절하게 하는 형편이옵니다. 전하께서는 밝히 살피시와 이 나라 시직을 위하여 이같은 요물을 속히 물리치시기 엎드려 바라오며…>

  권중화가 여기까지 읽자 왕은 끝까지 듣지도 않고 크게 노했다. 당장에 상소문을 불에 태운 다음

  간사한 소인이 나라의 기둥되는 인재를 모함하다니 고이하기 짝이 없는 일이로다! 그놈을 당장에 잡아들여라!

하고 소리소리 질렀다.

  옳은 말을 해서 임금을 깨우치려던 이존오는 오히려 임금의 노여움을 사고 궁궐로 끌려갔다.  임금은 이존오가 상소한 것을 엄하게 책했다. 이존오는 임금이 말하는 동안에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가 임금의 말이 일단 끝나자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이때 신돈이 임금과 한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보자 존오는 눈을 부라리고 신돈을 노려보며 호통을 쳤다.

  늙은 중이 감히 상감과 자리를 같이 하다니 어찌 이다지도 무례할 수 있을까!

  이존오의 호통소리는 신돈의 귀에는 뇌성벽력(雷聲霹靂)과도 같았다. 신돈은 저도 모르게 허둥지둥 아랫자리로 내려앉았다. 이 광경을 보자 왕은 더욱 노했다. 즉시 이존오를 옥에 가두고 죽이려 했으나 그때 밀직으로 있던 이색(李穡) 등의 만류로 목숨만은 살려주고 파직 해 버렸다.

  그 후 이존오는 공주(公州)로 내려가서 숨어 살았지만 신돈의 행패가 날로 심해지는 것을 보고 원통한 나머지 홧병이 들어 눕게 되었다. 공민왕 이십년, 병세가 위독하여 언제 숨을 거둘는지 알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그는 좌우 사람의 부축을 받고 일어나 소리높이외쳤다.

  신돈이 아직도 세도를 부리고 있는가?

  좌우 사람들이 그렇다고 말하니까 다시 자리에 고쳐 누우며

  신돈이 망하지 않는 한 이존오도 죽을 수는 없어.

  그리고 며칠을 더 버티다가 마침내 숨을 거두었는데 과연 그로부터 석달 후 신돈도 주살 되었던 것이다.

  이야기는 다시 앞으로 돌아간다. 그때까지만 해도 왕은 신돈에게 완전히 현혹되어 있었다. 신돈이 음탕한 짓을 하는 것도, 임금을 능가하게 권력을 쓰는 것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신돈은 기가 막히게 임금을 잘 속여 넘긴 셈이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하루는 신돈이 자기 집에 심복들을 모아 놓고 술과 고기를 먹으며 음담패설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한참 흥이 나서 계집타령들을 하고 있는데 문지기가 황급히 뛰어 들어오며

  상감께서 행차하셨습니다.

라고 알려 주었다. 신돈은 쓴웃음을 지으며

  상감은 내가 고결한 중으로만 알고 있는데 이런 자리를 보여선 안 되지..

하자 약삭빠른 기현등이 급히 사람을 시켜 술과 고기는 치우게 하고 신돈은 대문까지 뛰어 나가 왕을 맞아들였다.

  왕이 신돈의 방에 들어와 보니 상에는 과일 한 두 그릇이 놓여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신돈과 그 심복들은 조금 전까지의 음담패설을 까맣게 잊어버린 듯 사람의 도리를 지껄이기 시작했다.

  역시 신승이란 말을 들을 만큼 딴 사람과 다르구먼. 상에는 겨우 과일 두 그릇, 하는 이야기는 모두 청담(淸談)이라…

  멋도 모르는 왕은 도리어 이렇게 칭찬해 마지 않았다.

  신돈의 위세는 나날이 강성해 갔지만, 한편,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을 보자 그는 슬며시 겁이 났다. 누가 자기 행패를 낱낱이 알리고 임금이 그것을 믿게 되기만 하는 날에는 부귀영화는 일조의 거품처럼 꺼지고 말 것이었다. 그렇게 되기 전에 미리 손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신돈은 곰곰 궁리한 끝에 계교를 생각했다.

  하루는 왕이 신돈을 불러 나라 일을 의논했다. 다른 때 같으면 장광설을 늘어놓을 신돈인데 이날 따라 말이 없었다. 이상히 생각한 왕은

  어쩐 일이요? 오늘은 통 말이 없으니…

하고 따졌다. 그제서야 신돈은 겨우 입을 열었다.

  말씀 드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전하께선 다른 사람들의 말을 더 많이 들으시는 모양이던데요.

그러자 왕은 펄쩍 뛰었다.

  내가 언제 선사의 말을 젖혀 놓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었단 말이요!

  그래도 소문은 그렇게 들리던데요.

  그건 다 선사를 시기하는 자들이 낸 헛소문에 불과하지.

  신돈은 속으로 왕이 자기가 파놓은 함정에 차츰 빠져드는 것이 우습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겉으로는 거짓 눈물을 흘리며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습니까? 지금은 헛소문이라고 하시지만 장차 모함하는 자들이 많아지면 그 말에 귀를 기울이시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전하만 믿어오던 이 늙은이의 신세는 어찌될 것인지..

하고는 마침내 흐느끼기까지 했다.

  그럴 리가 없다니까 그러는군. 정 못 믿겠다면 내 천지신명께 맹세하지.

그러고는 왕은 손수 세서를 써 주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신돈은 겨우 웃음을 띠우고 임금의 자문에 응했다.

  임금의 맹세까지 받은 신돈은 더욱 더 꺼릴것이 없어졌다. 이제는 공공연히 첩을 거느리고 자식까지 둘이나 낳았다. 그리고 한편 기현, 최사원(崔思遠), 이춘부(李春富), 김란(金蘭) 등과 작당하여 날로 세력을 뻗히니 그 위세가 임금을 누를 지경이 되었다.

  이쯤 되고 보니 아무리 그를 믿던 공민왕도 차차 불안스러워졌다.

  (이대로 가다가는 어떤 일이 생길는지 모른다.)

  공민왕은 이렇게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자 신돈을 차츰 꺼리게 되었다. 원낙 눈치 빠른 신돈이 임금이 꺼려하는 눈치를 못챌 리가 없었다. 그는 심복들을 모아 놓고 은밀히 의논해 보았다.

  왕이 나를 꺼리기 시작했으니 장차 어찌하면 좋겠느냐?

  사람이란 한 번 꺼리기 시작하면 날이 갈수록 멀어지는 법입니다. 그래서 마침내는…

  그래서 마침내는 그 사람을 제거하게 되지요.

심복들이 이렇게 말하자

  나를 제거한다?

  신돈의 두 눈에 요기(妖氣)가 가득 어렸다.

  안 될 말이지! 나를 제거하려면 이쪽에서 선수를 써야지.

  분명히 역모(逆謀)를 하겠단 말이었다. 그들은 은밀히 일을 꾸미고 진행시켰다.

 그런데 이때 신돈의 집 문객(門客)으로 이인(李靭)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우연히 역모를 의논하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는 비록 신돈의 집 문객이로 있을망정 그들처럼 오장까지 썩지는 않았으므로 그의 양심이 그를 충동했다. 그는 신돈 일당이 역모한다는 글을 써서 한밤중에 재상 김속명(金續命)의 집 담 너머로 던졌다. 그래도 후환이 두려워 그날 밤으로 종적을 감추었다.

  김속명은 그 투서를 곧 왕에게 바쳤다. 그렇지 않아도 신돈을 의심하고 꺼려 하기 시작한 왕이 가만둘 리 없었다. 곧 군졸들로 하여금 신돈 일당을 잡아 들이게 하고 혹독히 고문했다.  그러니까 기현, 최사원 등 심복들은 모두 제 죄를 자백했는데 홀로 신돈만을 끝까지 버티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전에 전하께선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소승을 버리지 않으시겠다고 맹세한 일이 있지 않으십니까?  그런데 오늘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나라의 어른으로서 어찌 취하실 길이라 하겠습니까?

그러자 공민왕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너는 내가 맹세를 어겼다고 따지지만 그보다 네가 먼저 맹세를 어긴 것은 생각 못하느냐? 듣거라! 너는 일찍이 말하기를 부녀자들을 가까이 하는 것은 설법을 해서 부처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지, 결코 음탕한 생각이 있어서가 아니라 했었지? 그런데 어떠냐? 지금 너는 두 자식까지 낳지 않았느냐? 이것이 맹세를 어긴 게 아니고 무엇이냐? 너는 또 성중에 갑옷 만드는 곳을 일곱 곳이나 설치했다고 하니 이것이 생사를 같이 하자고 맹세한 임금을 배반하는 짓이 아니고 무엇이냐?

  이리하여 왕은 마침내 그토록 믿어오던 신돈을 죽였으니 그때가 바로 공민왕 이십년이었다.

 

 

 

  淫 風 一 過

  신돈이 주살되자 왕은 허전함을 이길 수 없었다. 왕은 항상 정을 흠뻑 쏟아 놓을 상대가 있어야 견디는 성품이었다. 그러므로 신돈이 없어지자 그 대신 가까이 두고 총애하게 된 것이 환관중에 젊고 외모가 아름다운 소년들이었는데 그들이 속해 있는 관청을 자제위

(子弟衛)라고 불렀다. 이 자제위에 속한 소년들 중에서 왕의 총애를 가장 극진히 받은 자가 홍륜(洪倫), 한안(韓安), 권진(權 ), 홍관(洪寬), 노선(盧瑄) 등이었다.

  자제위에 속한 소년들은 항상 왕을 가까이 모시고 있던 때문에 궁중 어느 곳이나 출입할 수 있었고 따라서 비록 남자이긴 하지만 왕비들의 거처를 드나들어도 별로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렇게 되자 왕은 한가지 기발한 착상을 했다.

  자제위의 소년들로 하여금 왕비들과 밀통케 하자는 것이었다. 왕이 이런 착상을 하게 된 이유로 후사가 없었기 때문에 후사를 얻으려고 한 행동이라고 보는 이가 많다. 그러나 후사는 이미 신돈의 종 반야(般若)의 몸에서 낳은 무니노(牟尼奴)로 정하고 있었으므로 그런 견해는 논거가 박약하다.

  노국공주가 세상을 떠난 후 차츰 성격에 이상을 가져온 공민왕이었으므로 마침내 변태가 되어 이러한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공민왕은 어느 날 홍륜, 한안 등 미소년을 은밀히 불렀다.

  너희들은 내가 계집을 싫어한다는 걸 잘 알고 있지?

  예,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게 후사가 없단 말이다. 태후께서도 심려하시고 중신들도 말이 많고, 나 역시도 오백년 사직의 앞날을 생각하니 때로 잠이 오지 않는단 말야.

여기까지 말하고 왕은 천연스럽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니 무슨 좋은 수가 없겠느냐?

  한참 동안 소년들은 말이 없었다. 왕의 건의를 짐작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여러 가지 궁리한 끝에 한 가지 결단을 내렸다.

  소년들은 일제히 왕의 입을 바라보았다.

  누구 딴 사람을 비들과 접하게 해서 후사를 얻는단 말이다.

  왕의 두 눈은 광기를 띠우고 이글이글 빛났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해 보았다. 비들과 접하는 자는 가장 믿을 만한 자라야 하는데 가장 믿을 만한 자라면 너희들밖에 없단 말야. 그래서 너희들은 내 지시하는 대로 비들과 접하되 비밀은 단단히 지켜야 한다.

  소년들은 놀랐다. 아무리 왕의 명령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무서운 일이었다. 천한 환관의 몸으로 왕비를 범한다… 비밀이 누설되는 날이면 목숨이 달아날 것을 각오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야릇한 호기심의 불길이 타오르기도 했다. 보통으로는 우러러보기조차 어려운 고귀한 왕비(王妃)들, 그들의 향기로운 입김을 직접 마시고 그들의 비단결 같은 속살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소년들의 마음의 움직임을 왕은 재빠르게 알아차렸다.

  홍륜과 한안과 홍관과 그리고 권진은 나를 따르라.

  자상명령이었다. 네 소년은 하는 수 없이 왕의 뒤를 따랐다.

  먼저 정비 안씨(定妃安氏)의 거처로 향했다. 안씨는 죽성(竹城) 사람 안극인(安克仁)의 딸로서 녹록치 않은 여인이었다. 안씨는 몇 해를 두고 단 한 번도 찾아주지 않던 왕이 행차했다는 말을 듣고 기쁨에 가슴을 설레며 맞아들였다. 그러나 왕의 뒤를 따라온 소년들을 보고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후사를 얻기 위해서 앞으로 비는 이 소년들과 정을 통하도록 하오.

  왕은 다짜고짜 이렇게 말했다. 정비 안씨는 그 말에 까무러치듯 놀랐다.

  무슨 말씀이옵니까? 천한 백성들도 한 남편을 섬기는 것을 도리로 알고 있사온데 한 나라의 비로서 어찌 전하 이외의 남자에게 몸을 허락하겠습니까?

  정비는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이렇게 항의 했다. 그러나 왕은 두 눈을 부라리고 언성을 높이며 꾸짖었다.

  긴 말이 필요 없소. 임금인 내가 정한 일이니 두말 말고 순종하오.

  그리고는 홍륜 한 사람만 남겨 놓고 다른 소년들과 더불어 밖으로 나갔다.

  정비와 단둘이 방에 남자 홍륜은 정비에게로 다가 앉았다. 홍륜은 슬며시 정비의 무릎에 손을 얹으려 했다. 그러자 정비는 펄쩍 뛰며 물러앉더니 날카롭게 꾸짖었다.

  이 천하 무도한 놈! 뉘게다 감히 손을 대려 하느냐?

  정비가 꾸짖자 홍륜은 그만 발끈했다.

  방금 전하께서 하신 말씀을 같이 듣지 않았소? 신하 된 자로서 임금의 명을 쫓을 뿐인데 어찌 이토록 시끄럽게 구시오.

  이렇게 말은 했지만 홍륜은 왕의 명이라는 의무감에서가 아니라 사나이로서의 욕정에 못 이겨 불문곡직(不問曲直)하고 정비의 허리를 덥석 끌어 안았다. 왕비는 홍륜의 손을 뿌리치려고 몸부림을 쳐 보았지만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남자의 힘을 당할 길이 없었다. 몸은 점점 홍륜의 품안에 안겨 들어가고 옷자락은 하나 둘 흩어졌다. 이제 조금만 더하면 된다고 홍륜이 생각했을 때였다. 왕비는 마지막 안간힘을 쓰더니 소리를 쳤다.

  이 이상 욕을 보이면 차라리 혀를 깨물어 죽고 말 테다.

  이 말에 홍륜은 아찔했다. 왕의 말이 재주껏 농락하라고는 했지만 비가 죽어도 상관없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죽으면 큰일이다. 홍륜은 입맛을 다시며 정비의 곁을 물러 나왔다.

  공민왕은 한안, 권진 두 소년을 혜비 이씨(惠妃李氏), 신비 염씨(愼妃廉氏) 두 왕비의 방에 들여 보냈지만 결과는 홍륜의 경우와 비슷했다.

  그렇다면 마지막 수단이 있을 뿐이다. 너희들, 내 뒤를 따라오너라.

  공민왕은 소년들을 거느리고 이번에는 익비 왕씨(益妃王氏)의 처소로 향했다. 그러나 왕씨 역시 정비와 마찬가지로 강경히 거절했다. 왕은 그만 화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 끝내 임금의 말을 듣지 않겠단 말이지? 오냐!

왕은 시퍼런 칼을 뽑아 들었다.

  끝내 듣지 않는다면 이 칼로 네 목을 당장에 쳐버릴 테다.

  익비는 정비나 혜비보다 다소 마음이 약한 여인이었던 모양이다. 오들오들 떨면서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모기만한 소리로 한 마디 하고는 그 자리에 엎드려 버렸다.

  내가 나가면 또 딴소리를 할는지 모르겠으니 내 보는 데서 시키는 대로 해라.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홍륜을 시켜 익비를 범하게 했다. 그러나 홍륜 한 사람만으로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그 이튿날에는 한안을 들여보냈고 그 다음 날에는 권진을 들여보냈다.

  그런 후 몇 달이 지났다. 하루는 최만생(崔萬生)이란 환관이

  여쭐 말씀이 있습니다.

하고 임금의 귀에 입을 대고 속삭였다.

  무슨 말이냐?

  신이 익비 계신 곳엘 갔더니 익비께서 말씀하시길 태기가 있은지 다섯달이 된다고 하시옵니다.

  태기가? 다섯달이나?

왕의 눈은 야릇하게 번득였다.

  그래 그 상대가 누구지?

  홍륜이라구 하시던군요.

  역시 홍륜이라?

중얼거리더니 왕의 입가에는 싸늘한 살기가 감돌았다.

  홍륜의 씨를 뱄단 말이지? 이 일이 만약 누설된다면 큰일이거니와 사람의 입이란 원래 가벼운 법, 이 비밀을 아는 자를 없애버려야겠다.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렸다. 그러자 최만생이

  비밀을 아는 자라면 당사자인 홍륜과 익비뿐이 아닙니까?

이렇게 중얼거리는 것을 왕은 들은 체 만체하며

  익비는 아기를 낳아야 하니까 해칠 수 없고, 우선 홍륜을 없애야겠다. 내일 불러다가 술을 주되 술 속에 독약을 넣어 그 입을 막아버리겠다.

이 말에 간사한 최만생은

  암 그렇구 말구요. 비밀이 누설된다면 나라의 큰일이니까요.

재잘거리자 왕은 그를 똑바로 보며 한 마디 했다.

  죽는 것은 홍륜 한 사람 뿐이 아니야.

  그럼 또 누가 있습니까?

왕은 손을 들어 최만생의 콧 등을 가리켰다.

  너다! 바로 너야! 너도 이 비밀을 잘 알고 있으니까 같이 없애버려야지.

하고는 미친 사람처럼 한참 웃었다.

  왕 앞에서 뛰쳐나온 최만생은 허둥지둥 홍륜에게로 달려 갔다. 그리고는 왕이 하던 말을 전했다.  최만생의 말을 듣자 홍륜은 새파랗게 질려서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후사가 없다고 사람을 종자말(種馬)처럼, 부려먹을 때는 언제고, 일이 자기 뜻대로 되니까 응당 상이라도 주어야 하는 사람을 죽이러 들다니…

  그러게 말이요.

하고 최만생은 눈을 깜빡깜빡하더니

  그러니 말이요. 이제 와선 임금이 죽으면 우리가 살고 임금이 살면 우리가 죽을 지경이 되었소. 말하자면 선수를 쓰는 편이 살아 남는 거요.

  임금은 우리를 내일 죽인다고 했더라?

  그러니까 기회는 오늘밤 밖엔 없지.

  그날 밤 이슥해서였다. 술이 만취되어 쓰러져 있는 임금의 침전에 홍륜, 최만생 두 사람은 은밀히 잠입해서 비수로 임금을 찔러 죽였다. 공민왕 이십삼년 구월 이십일일이었다. 예상보다 수월하게 목적을 이루었다고 안심하고 두 사람이 침전에서 나가려 할 때였다.

  도둑이야!

  외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여러 사람의 발소리가 침전을 둘러쌌다. 왕의 침전에 괴한이 잠입 했다는 것을 숙위하던 사람들이 알아채게 된 모양이었다. 도망칠 겨를도 없었다. 두 사람은 칼을 버리고 피묻은 손을 닦고 침전 뒷문으로 빠져 나가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소리를 질렀다.

  도둑이야!

  도둑이야!

  최만생이나 홍륜이나 궁중에는 무상출입하는 몸이라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침전 문을 열고 왕이 피투성이가 되어 죽은 것을 보자 사람들은 더욱 놀랐다.

  도둑은 아직 멀리 가지 못했을 거요. 도적은 반드시 궁중에 있을 테니 모두들 꼼짝 말고 기다리시오.

  위사 은률(衛士殷栗)은 이렇게 말하고 태후(太后)에게 이 사실을 아뢰었다. 태후는 왕의 죽음을 비밀에 붙이고 왕명으로써 시중(侍中=首相)인 경부흥(慶復興)과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副首相) 이인임(李仁任) 등을 불러들여 왕을 죽인 도적을 잡으라고 분부했다. 아직 날이 채 밝지 않은 이른 새벽이었다. 이인임도 도적이 채 도망치지 못하고 궁중에 남아 있으리라 짐작했다.

  칼에 묻은 피로 보아 힘깨나 쓰는 자가 깊이 찌른 것이니 도둑은 반드시 남자로 압니다.

  이인임은 태후께 이렇게 이뢰고는 궁중에 남아 있던 남자들을 모조리 한곳에 모아 놓았다.  그 속에는 최만생과 홍륜도 끼어 있었다.

  이인임은 한 사람 한 사람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훑어 보았다. 그러다가 최만생이 서있는 앞에서 발을 멈추고 한참 지켜 보더니

  이게 뭐요?

우뢰 같은 소리를 지르며 최만생의 소매를 잡았다.

  이 피는 어디서 묻힌 거냐 말야?

  자세히 보니 최만생의 소매에 좁쌀알 만한 핏방울이 튀어 있었다.

  도적은 이놈이다. 당장에 결박하라!

이인임이 군졸에게 명했다. 그러나 최만생은 악에 받친 소리로 외쳤다.

  과연 내 손으로 왕을 죽이긴 했소. 그렇지만 나 혼자 한 짓이 아니요. 혼자 벌을 받긴 억울하오.

  최만생의 말에 이인임은 다시 눈을 부라렸다.

  그렇다면 공모자는 누구냐?

  저 자요! 바로 홍륜이요!

  최만생은 바를 떨리는 손가락으로 홍륜의 가슴을 가리켰다.

  이놈들을 당장에 옥에 가두어라!

  두 사람은 군졸에게 끌려갔다. 순위부(巡衛府)에서 국문을 당하자 만사를 단념한 두 사람은 모든 죄를 순순히 자백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홍륜, 최만생 두 사람은 네거리에서 수많은 사람이 주시하는 속에 수레로 사지가 찢겨 죽고 그렇듯 위세를 떨치던 자제위들도 각각형을 받았다.

 

 

 

  꽃잎은 江에서 지다

  공민왕이 승하하자 곧 후사에 관한 문제가 일어났다.

  태후 홍씨(洪氏)와 시중 경부흥(慶復興)은 종친(宗親) 중에서 고르자고 주장하고, 수문하시중 이인임(李仁任)은 선왕이 미리부터 마음을 두고 있던 강녕군 우(江寧君禑)를 세우자고 주장했다.

  강녕군 우는 아명을 무니노(牟尼奴)라고 불렀는데 반야(般若)라는 여자의 소생이다.

  공민왕이 아직 신돈을 총애하던 무렵 왕은 노국공주를 추모하던 나머지 생리에는 변화를 가져왔든지 다른 여인과 접하는 것을 즐기지 않았으나 후사가 없는데 대해서는 대단히 심려하고 있었다.

  그러한 어느날, 왕은 신돈의 집에 들렸다. 두 사람이 마주앉아 환담을 하고 있는데 어여쁜 여종이 음식을 날라왔다. 그 여종이 바로 반야였다.

  반야를 보자 왕의 마음은 이상하게 술렁거렸다. 용모가 어여쁘다거나 거동이 매혹적이거나 그런 때문이 아니었다. 오래 헤어져서 그리워하던 것을 다시 찾은 느낌이었다. 왕은 반야의 모습에서 몽매에도 잊지 못하던 노국공주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왕의 마음이 동요된 것을 신돈은 이내 간파했다.

  전하, 마음에 드시오?

은근히 묻자 공민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리 듭시오.

  신돈은 으슥한 방으로 왕을 인도했다. 그 방에는 이미 호화로운 금침이 마련되어 있었음 좋은 향내가 가득차 있었다. 왕이 누워 있으려니까 반야가 들어왔다. 용모도 닮았을 뿐 아니라,  신돈의 지시인지 입은 옷까지 지난날의 노국공주 그대로였다.

  왕은 반야를 끌어 안았다. 잊어버렸던 젊음이 다시 용솟음치며 지난날의 환희가 다시 찬란하게 회상되었다. 왕은 그 환희 속에 흠뻑 잠겼다. 그리고 그것이 절정에 이르자

  공주! 공주!…

하고 외치고 말았다.

  그 후부터 왕은 신돈의 집을 찾아갈 때마다 반야와 정을 맺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 반야가 입신한 것을 알자 왕은 매우 기뻐했다. 사랑하는 여인이 자기 씨를 잉태했으므로 진정한 후사를 얻게 된 것이다.

  아들만 낳아라. 아들만 낳아 주면 내 무슨 일이든지 다 해주마.

  왕은 반야의 가는 손목을 잡고 몇 번이고 맹세했다. 만삭이 되어 반야는 무사히 해산했다. 과연 옥동자였다. 왕은 아이게게 무니노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궁중으로 불러들여 정식 후사를 삼을 기회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참에 신돈의 죄가 탄로되어 주살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무니노를 다 맡겨 둘 곳이 없어진 셈이었다. 이런 막다른 처지에 이르자 왕은 오히려 마음을 정하고 반대하는 태후를 설복하고, 이름을 우(禑)라 고친 다음 궁중에 불러들여 강녕부원대군(江寧府院大君)에 봉하고 후사를 삼았다. 그리고 반야의 소생이라하면 격이 떨어질 것을 염려해서 궁인 한씨(韓氏)의 소생이라고 꾸몄댔다.

  이조 세종 때 정인지(鄭麟趾) 등이 편찬한 고려사에는 우가 신돈의 첩 반야의 소생이라 해서 우의 부친을 신돈이라 단정하고, 그를 왕씨세가편(王氏世家編)에 넣지 않고 열전 반역편(叛逆編)에 실려 있다. 이것은 이씨 조선의 창업을 두호하기 위한 곡필이라는게 공론이다.

그러나 후세의 학자 이황(李滉), 송시열(宋時烈) 등은 우는 신돈의 자식이 아니라 공민왕의 실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정론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더라도 우가 만일 신돈의 자식이라면, 신돈이 반역해서 주살당한 후에 무슨 까닭으로 공민왕은 그 반역자의 소생을 후사로 삼았겠는가?

  종치중에서 새 임금을 선정하자는 경부흥파와 강녕군 우를 세우자는 이인임파의 대립은 이인임파의 승리로 돌아가서 우가 마침 나이 십세로 대통을 계승했다. 바로 제 삼십이대 우왕(禑王)이다.

  한편 우왕의 생모인 반야는 아들이 궁중으로 들어가게 되자 벅찬 꿈을 안고 때가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자기 아들이 등극하는 날이면 비록 천한 몸이기는 하지만 왕의 생모이다. 어떠한 호강도 권세도 마음껏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속셈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계산은 사뭇 빗나가고 말았다. 우왕이 후에도 궁중으로 맞아들일 눈치는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태후는 사람을 시켜 반야가 새왕의 생모라는 것을 발설하지 못하도록 경계하는 형편이었다.

 반야는 분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때까지는 오직 아들의 영광을 위해서 모든 것을 참고 견디었지만 이제 그 아들이 아무것도 꺼릴 것 없는 지존의 몸이 되었는데 아들을 아들이라고 부르지 못할 것이 어디 있겠느냐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직접 상감을 만나봐야겠다. 태후와 대신들이 농간을 해서 우리 사이를 가로 막는 거지 상감을 직접 만나보면 모자간의 정이 없을 리가 있겠는가?

  반야는 태후전으로 향했다. 그러나 수문장은 반야를 궁중에 들여보내려고도 하지 않는다. 반야는 소리소리 질렀다.

  너희들이 어떤 놈이기에 이렇게 함부로들 구느냐? 나는 상감의 생모란 말야. 상감은 바고 내 아들이란 말이다. 어미가 아들을 만나러 왔는데 무엇 때문에 막으로 드느냐?

  반야가 하도 날뛰므로 수문장은 하는 수 없이 태후에게 보고하고 분부를 기다렸다.

  그 계집이 기어코 상감 망신을 시키는구나. 당장 이리 끌고 오너라.

  태후는 크게 노하여 이렇게 분부했다. 반야는 태후 앞에 끌려갔다. 그러나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통곡을 하며 소리소리 질렀다.

  태후마마께서도 자녀를 가져보신 분이라면 어머니로서의 정을 잘 아실 터인데 어쩌면 이렇듯 무정하십니까? 상감께선 틀림없이 제 몸에서 나신 분인데 어찌하여 모자의 천륜을 끊으시려 하십니까?

  태후는 당황했다. 그대로 두었다간 반야의 입에서 어떤 소리가 쏟아져 나올는지 알 수없었다.

  저 미친 종년을 당장 옥에 가두고 대간 순위부로 하여금 엄히 다스리도록 하라.

  이렇게 분부했다. 그 말을 듣자 반야는 더욱 발악을 했다. 와들와들 떨리는 손으로 마침 새로 지은 중문을 가리키며

  아이구 원통해라! 하늘도 내 원통한 처지는 알고도 남으실 거요. 하늘이 아신다면 새로 지은 저 중문이 당장 무너지리라.

  반야가 외치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갑자기 천지가 어두워지더니 요란한 벼락소리와 함께 중문이 무너져버렸다. 이것을 보자 사람들은 모두 크게 놀랐으며 태후도 겁이 잔뜩 났다. 반야를 그대로 두었다가는 어떤 괴변이 더 일어날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마침내 이인옥(李仁沃) 등을 시켜 발악하는 반야를 임진강물에 던져버리게 했다.

 

 

 

  어린 傀儡들

  새 임금 우왕은 처음엔 정당문학 백문보(政堂文學白文寶) 등의 훈도를 받아 오직 학문에 뜻을 두더니 차차 말타기와 매 사냥 같은 오락에 재미를 붙이자 글을 싫어하고 놀기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항상 그의 행동을 억제하던 태후 홍씨가 별세하자(육년 이월) 그 행동은 더욱 방자해졌을 뿐만 아니라 여색에도 눈을 뜨게 되어 여러 가지 추태를 드러내게 되었다.

  신하들의 처첩이나 딸들 중에 용모가 반반한자가 있으면 궁중으로 불러들여 모조리 간음했고 시정 여인들 중에 눈에 드는 여인이 있으면 서슴지 않고 겁탈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심한 예는 부왕인 공민왕의 비 안씨와의 관계이다.

  안씨는 바로 지난날 공민왕이 홍륜 등 자제위를 시켜 간음케 하려고 했을 때 끝내 거절하여 욕을 면한 바로 그 여인이다.

  정비 안씨는 우왕이 즉위한 후에도 아직 젊고 어여뻤다. 여색에 빠지기 시작한 우왕은 말하자면 모후격이 되는 안씨에게도 욕정을 품게 되었다.

  내 후궁에 여자들이 많지만 모후 보다 더 어여쁜 여자는 볼 수 없군요.

  이렇게 이죽거리며 하루에도 두세차례씩이나 그 거처에 드나들었고 때로는 밤이 이슥하도록 머물러 있었다. 이렇게 되니 자연히 괴상한 소문이 나돌았다.

  아니, 아무리 색에 미쳤기로 어머니뻘 되는 사람한테 욕심을 낸단 말야?

  그러니까 세상은 다 된 세상이지.

사람들은 이렇게 수군거렸다.

  그날도 왕은 정비 안씨의 방을 찾아갔다. 그러나 마침 병으로 누워 있기 때문에 몸단장도 못하고 머리도 헝클어진 그대로였다. 그러니 보통 때의 안씨와는 딴판으로 추하고 불결하게 보였다. 경박한 우왕은 그 꼴을 보자 이내 정이 떨어졌다. 그래서 입맛을 다시며 발길을 돌리려고 하는데 한 여인이 눈에 띄었다. 안씨의 동생 안숙로(安淑老)의 딸이 문병을 온 것이었다.

  막 피어나는 꽃봉오리 같은 안처녀를 대하자 왕의 관심은 그리로 쏠리고 말았다. 그 자리에서 정비를 졸라대어 안처녀를 비로 삼았으니 그가 바로 현비(賢妃)다.

  왕의 방자한 거동이 왕실의 위신을 땅에 떨어뜨렸고 거기에 겸해서 권신들의 당파 싸움이 극심해지니 국운은 날로 기울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당시 대륙에서는 원나라의 세력이 극도로 쇠퇴하여 마침내 북쪽으로 쫓겨나고, 그 대신 주원장(朱元璋)이 일으킨 명나라가 새 세력을 떨치고 있었다.

  이렇게 되니 고려 조정에는 이인임, 최영 등 친원파와 정몽주, 이성계 등 친명파로 갈라져서 치열한 싸움을 벌이게 되었다. 국론이 둘로 갈라져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판인데 새로 일어난 명나라는 고려에 대해서 난처한 문제를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즉 우왕 십사년,명은 고려 조정에 사람을 보내어

 < 철령(鐵嶺) 이북, 이동, 이서의 땅은 원래 원나라에 속했던 땅이니만치 요동관할(遼東管轄) 하에 두겠다. >

이런 통고해 왔다.

  이와 같은 통고를 받자 친원파인 최영은 당장 들고 일어났다.

  명의 태도가 그렇다면 차라리 군사를 일으켜 일전을 불사하겠다.

  < 철령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이북에 있는 공험령(公 嶺)까지도 원래 우리 영토 안에 있는 것이니 양보할 수 없다. >

하고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는 왕과 은밀히 의논한 끝에 각도의 군사를 징발하여 명의 요동을 치기로 작정하고 전국에 징병령을 내렸다. 가뜩이나 왜구의 침공으로 여러 해를 두고 시달릴 대로 시달린 백성들은 최영과 우왕의 처사를 대단히 원망했지만 최영은 개의치 않고 스스로 팔도도통사(八道都統使)가 되어 우왕과 함께 평양에 출진했다가 다시 조민수(曺敏修)를 좌군도통사(左軍都統使)로 삼고 이성계를 우군도통사(右軍都統使)로 삼아 총병력 삼만팔천이백여명을 이끌고 평양을 출진하도록 명했다.

  이성계는 친명파라는 위치와 대국을 보는 관점의 차이로 요동정벌에 반대해 왔지만 왕의 명령으로 하는 수 없이 출진하게 되어 우군도통사로 임명된 것이다. 그러니 만큼 그 싸움에 마음이 내킬 리가 없었다. 위화도(威化島)에 이르렀을 때 더 군사를 진격시키지 않고 조민수와 의논하여 회군할 것을 왕에게 상서했다.

  그러나 평양에 있던 왕과 최영이 끝내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자 마침내 뜻을 정하고 여러 장수들을 불러모아 이렇게 말했다.

  이제 상국 명나라는 날로 강성하여져서 천하를 평정할 지경에 이르렀는데 그 경계를 침범해서 죄를 천자에게 얻으면 예측할 수 없는 화가 나라와 백성들에게 미칠 것이다. 이러모로 내 여러 차례 상서하여 회군할 것을 간청해 보았으나 최영 등의 강압으로 상감이 허락치 않으시니 이제 상감을 둘러싸고 있는 간신들을 제거하여 나라와 백성들의 평안을 도모해야 하겠다.

  이 말에 원래 전의(戰意)가 없던 여러 장수들도 즉시 찬동했다. 그리하여 삼만 대군은 예봉을 돌려 평양으로 진격하게 되니 왕과 최영은 크게 당황했다. 즉시 개경으로 돌아가서 이성계 군을 맞아 싸울 준비에 바빴으나 결국은 이성계 군에게 대패하여 최영은 사로잡혀 고봉(高峰=高陽)으로 귀양가고 우왕은 강화도로 쫓겨갔다. 이 위화도 회군은 이성계가 국권을 손에 쥘 큰 계기가 되었으며 이로부터 차차 고려조를 뒤엎고 새 나라를 세울 야망을 품게 되었다. 최영을 쫓은 후 조민수는 좌시중이 되었고 이성계는 우시중이 되었으나 우왕을 대신해서 대통을 잇게 할 후사 문제로 두 사람은 다시 대립하게 되었다.

  즉 조민수는 우왕의 아들을 세우려고 주장했고 이성계는 종설 중에서 인망 있는 인물을 택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당시의 대학자 이색(李穡)과 정비 안씨가 조민수의 의견을 지지했으므로 마침내 우왕의 아들 창(昌)을 새 임금으로 세웠으니, 그때 나이 겨우 구세였으며 그가 바로 제삼십삼대 창왕이다.

  후사 문제를 계기로 이성계와 대립되었던 조민수는 그 후 이씨 일파인 조준(趙浚)에게 탄핵되어 시골로 쫓겨가 버렸고 그 자리에 이색이 들어 앉았으나 문무의 실권은 이미 이성계의 손에 단단히 장악되어 있었다.

  큰 야망을 품게 된 이성계 일당은 날로 세력을 확대하는 한편 자파에 불리한 인물들은 가차없이 숙청했다.

  즉 전왕 우는 강화도로 쫓겨갔다가 다시 여흥(驪興=驪州)으로 옮겨가게 되었는데 이때, 이성계를 해치려는 음모를 꾸몄으므로 이성계 일파에겐 우왕을 없애도 좋은 핑계거리가 생겼다.  그들은 왕을 다시 강화도로 쫓았다가 또 강릉으로 옮긴 후 살해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새 임금 창왕도 같은 혈족이란 이유로 마침내 강화도로 쫓겨갔다가 대제학 유순(柳洵)이란 사람의 손에 피살되었으니 이때 나이 겨우 십세였다.

  창왕의 뒤를 이어 영립된 왕이 고려 마지막 임금인 공양왕(恭讓王)이다. 공양왕은 제이십대 신종(神宗)의 칠세손이니 일찍이 이성계가 주장한대로 종실중에서 선정된 셈이었다.

  공양왕은 천성이 우유부단(優柔不斷)할 뿐 아니라 이씨 일파의 힘을 입어 왕위에 오른 만큼 이름이 임금이지 한낱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성계를 대할 때엔 감히 웃 자리에서 내려다 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이씨 일파가 누구보다도 미워하던 강적은 최영이었다. 그러므로 고봉으로 귀양 보낸 것에 만족치 않고 창왕 원년 십이월, 조인옥(趙仁沃) 등의 상서로 사형에 처하게 되었다.

  최영은 원래 뛰어난 무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고결한 인격자이며 애국자였다. 그러므로 그의 죽음이 알려지자 전국 방방곡곡에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눈물을 뿌리지 않은 사람이라고는 없었다.

  그 후 이씨 일파는 또 하나의 충신은 포은 정몽주를 암살했다. 이렇게 되니 이제 더 꺼릴 인물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형편이었다.

  드디어 때는 왔다. 이씨 일파에서는 이성계를 새 임금으로 옹립할 대사업을 단행했다.

즉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李芳遠)과 그 일당 조인옥, 조준(趙浚), 정도전(鄭道傳) 등 오십여명은 비밀히 창업의 계교를 꾸미는 한편, 역시 이씨 일파인 시중 배극렴(裵克廉) 등은 정비 안씨에게 공양왕을 폐위하고 이성계를 왕으로 삼도록 강요했다.

  금왕은 혼암 무덕하여 마땅히 사직을 보존하기 어려우니 만백성이 추앙하는 이시중에게 잠시 선위하심이 가한 줄로 아뢰오.

  정비 안씨는 처음에는 대신들의 강요를 반대도 해 보았다. 그러나 대세가 이미 기울고 그들의 강압이 하도 심하므로 공양왕 사년 칠월 마침내 국보를 이성계에게 물려줄 것을 승낙했다.

  이성계는 처음에는 왕위 계승을 사양했다. 말할 것도 없이 민심에 끼치는 영향을 생각하고 본의와는 다른 연극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몇 차례 같은 연극을 되풀이하다가 군신의 간청에 못이긴 체하고 마침내 수창궁(壽昌宮) 정전(正殿)에서 대위를 물려 받았으니 이로써 四백七十五년 三十四왕의 고려조는 멸망하고 새나라 이씨조선(李氏朝鮮)이 세워진 것이다.

 高麗篇 끝

November 2017
M T W T F S S
« Oct    
 12345
6789101112
13141516171819
20212223242526
27282930  
Categories
Archiv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