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목요일 아침, 무언가 어깨가 무거워짐을 느끼며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시계를 보니.. 생소한 숫자가 멀리서 희미하게 보인다. 08:30 인가.. 사실 이 숫자는 나에게 생소한 것이다. 익숙한 숫자보다 무려 01:45 가 더해진 시간에 일어나게 된 것이다. 오랜만에 느끼는 포근한 침실의 공기, 어제부터 갑자기 포근해진 날씨 덕분에 blanket warmer의 도움이 없이 편하게 일어나는 것은 확실히 기분이 좋다. 하지만 역시 오늘도 ‘나이의 피곤함’ 은 그대로 나를 따라온다. 이것이 언제 없어질 것인가, 아니면 이것이 new normal일 것인가? 아니길 바라지만 그야말로 I surrender myself to you, take care of everything…
아침에 나를 제일 반겨주는 ‘생명’은 사실 사람이 아니고 우리 집 brave Tabby cat, Izzie 와 bully dog Tobey 다. 고양이 이름이 ‘이지’라고 불리지만 사실 지내는 데 그렇게 easy하지는 않다. 하지만 세월의 무게에 어쩔 수 없이 ‘잔잔하고 끈끈한 정’을 서로 느끼며 산다. 2006년 6월 비 오는 우리 집 앞 나무 밑에서 배가 고파 울던 baby cat, 개가 있는 집에서 살게 된 운명이었지만 정말 ‘용감하게’ 자기 turf를 고수하며 살았다. 지나치게 defensive한 것이 귀엽게 보이지는 않지만 나는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전혀 큰 사고 없이 나와 같이 함께 늙어가는 것.. 누가 먼저 갈지는 모르지만 그때까지 행복하게 살고 싶다.
Izzie is not easy..
지나간 화요일 미사 후에 나는 정말 간신히 판공성사를 보았다. 솔직히 점심 후에 주임신부와 면담을 곁들여서 하려고 했는데 그런 방식의 판공성사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음을 알고 ‘정식’으로 고백소에서 하게 되었는데, 이곳은 줄을 서서 하는 관계로 timeout의 상황이 될 수가 있어서 꼭 성사를 볼 수 있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이번의 성사는 ‘나의 뜻이 아니고..’ 하는 심정으로 임했고, 역시 timeout 이 되어 포기할 찰나에 새로 부임하신 보좌신부님, 점심도 미루고 남은 영혼들의 고해를 모두 들어주셨다. 이래서.. ‘나의 뜻이 아니고.. ‘라는 말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되었다.
사순 판공, 나의 주제는 딱 두 가지였다. ‘보기 싫은 사제를 혐오하는 죄’, ‘레지오 미친년’에 대한 나의 예외적이고, 극단적인 증오감. 증오는 증오요, 혐오는 혐오다. 이런 것들, 일시적 감정으로 죄가 아닐 수도 있겠지만 ‘증오, 복수의 칼날을 매일 새로 갈고 있는 것’, 그것은 분명한 죄였다. 고해신부님, 이런 이야기는 흔히 들었던 것이라 ‘자상한’ 영적 도움말씀도 있었고, 보속도 곁들였지만 역시 나는 죄의 ‘완전한’ 사함에 대한 자신이 없다. 하지만 성사는 분명히 성사다. 그것은 확실히 믿는다.
이렇게 해서 나는 결국 오늘 밤에 시작되는 파스카 성삼일을 맞게 된다. 오늘 저녁 성목요일 미사는 최후의 만찬을 기념하고 세족례가 있으며 영성체가 끝나면 성체가 수난감실로 옮겨 진다. 그 후부터 수난감실 성체조배가 다음, 성금요일 미사 전까지 계속된다. 우리는 레지오 단원으로 금요일 0시부터 1시까지 수난 감실을 ‘지키게’ 된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이 이제는 몇 년이나 되나.. 나에게 꽤나 인상적이고 기억에 남는 경험이 되어서 매년 거르지 않게 되었다. 부활주일까지는 흡사 100m 단거리 경주하는 기분이 들곤 하고 사실 피곤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피곤함의 대가는 어떤 것인가.. 일년을 두고두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