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부터 점점 심해진 ‘잔잔한 우울증’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오늘 아침은 고육책으로 잠자리에서 정오가 되어서야 나올 수 있게 되었다. 나로써는 가끔 있는 희한하게 보이는 괴벽이지만 하느님이 보시면 측은하게 보실 것이다. 다행히 연숙이 이런 나의 모습에 익숙한지 크게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까?
이런 와중에서 외출, 특히 오늘 예정된 S 베드로 형제집에 놀러가는 것은 물 건너 간 것이 되었다. 또 하나의 cancel 희생물이 생긴 것이다. 우리를 위해서 마련한 자리였는데, 혹시 우리가 무리를 하면 못 갈 것도 없을 듯한데~ 하는 각종 후회의 느낌을 쫓는 것도 피곤할 지경이다. 아~~ 미안해~~~ 잘못했어~~~ 소리를 지르고 싶다.
한편으로 그 집에 놀러 가서 신나게 떠들며 노는 모습을 그리기도 한다. 얼마나 신나게 스트레스를 풀 기회가 될 것인가? 특히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도 있으니… 하지만 이제 물 건너 갔다~~
어제 저녁부터 시작된 ‘어두운 밤’ 속에 나는 각종 추억을 더듬느라 바빴다. 어둠 속의 추억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렇게 아름답고 감미롭게 남아있던 그 추억들 조차도 모두 어둡고 잊고 싶은 추억으로 변색을 하는 것을 보고 나는 정말 슬펐다. 지나간 과거지사, 추억들은 나의 보물, 자랑거리이기도 했지 않은가? 그곳으로 도망, 피난을 가면 나는 편하고 행복하곤 했는데, 이제는 이것조차 이렇게 변하고 있단 말인가? 놀랍기도 하고 사실은 정말 슬픈 것이다.
특히 1973년부터 1977년 간의 추억은 극과 극, 지옥과 천국, 천사와 악마의 경계를 오가는 시절로 다시 재조명이 되는 것이 제일 끔찍하게 놀랍다. 그렇게 ‘멋지고 행복했던’ 추억의 뒤쪽에는 이제까지 잊고 살던 악마의 모습들이 나를 비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개인역사가 세월의 뒤안길에서 퇴색하고 변하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사후에 ‘꼭 거쳐야 한다는’ life review가 가까워져서 그런 것은 아닐까?
이런 악몽의 24시간 뒤에 내가 기대하는 것은 물론 밝은 하늘, 웃는 성모님의 위로의 미소, 든든한 하느님의 보호, 은총, 자비 등등이겠지만 현재로써는 전혀 실감이 가지를 않으니~~ 아~ 어떻게 하면 하느님의 사랑, 현존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 무엇을 나의 현재의 어려움을 초래한 것이었을까? 무엇이?
이제 조금씩 우리는 일어나고 있다. 다시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내일 저녁의 진희네 그룹의 식사모임부터 약속을 되찾을 것이다. 그리고 성사생활, 특히 매일미사, YMCA등도 재개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큰 문제가 없다. 앞으로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수요일의 가족모임과 S형제와의 약속도 지켜야 할 것이다. 그리고 주말에 새로니 식구 돕는 것으로 2022년을 안전하게 마감할 것이다. 절대로, 절대로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살 수 있다.
정신을 차리고 천천히 뉴스들을 보니 이번의Northeast snow storm은 거의 50/100년만이라고 나온다. 일기예보가 조금 빗나간 것인가, 아니면 갑자기 일기가 돌변한 것인가… 지역을 보니 대부분 이런 엄청난 일기에 이미 익숙한 곳이라 별로 크게 신경을 안 썼는데, 이제 보니 그것보다 훨씬 심한 모양~~ 피부로 느껴지지는 않지만 2014년 우리가 이곳에서 겪었던 ‘일기, 교통 대란’ 일을 생각하면 사실 그렇게 어렵지 않다. 좌우지간 그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이곳의 얌전한 날씨에 계속 감사한다.
지난 밤 (거의 정오까지 계속된) ‘어두운 밤’을 지내며 특별히 집중적으로 추억을 한 것이 1973년 이즈음 때였다. 당시의 유학생, 간호사들, 이제 자세한 것들이 퇴색된 것을 알고 너무나 슬펐다. 그렇게 생생하던 것들이 그 동안 잊고 살았던 탓이기도 하고 나의 뇌세포의 노화가 이유일 것이다. 나의 고백 자전적 수기 ‘Peru, Nebraska’를 제때에 완성을 시켰으면 지금 편안하게 이용을 할 텐데, 조금 늦은 듯하다. 사람의 이름, 얼굴들은 생각이 나는데 timing들이 뒤죽박죽이 되고 있는 것이다. 다시 한번 수기를 보충하는 노력을 해 볼까… 야심 찬 생각인가?
You Can’t Die in a Cornfield! Handel’s Messiah가 거의 영화 주제곡처럼 들리는 1980년 Holiday film, A Christmas without Snow를 또 다시 보며 다시 듣는 말이 오늘은 왜 이렇게 나의 가슴을 울리는가? 그렇다, 그렇다, 여기서 멈출 수 없다. 여기서 죽을 수 없다, 계속 나아가야 한다. 갖가지 어려움과 사연을 안고 크리스마스 메시아 공연 직전 지휘자이자 그룹리더 (John Houseman 분) 가 중풍으로 쓰러지며 공연이 무산되는 순간 나온 이 외침, 여기서 포기할 수 없다는 이 Nebraska 주의 독특한 지역성 표현 덕분에 순간적으로 해결책이 발견되었던 것, 그렇다 여기서 중지할 수는 없다,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