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만에 다시 겨울로

일주일 만에 다시 겨울로 돌아온 새벽, 제시간에 central heating이 아래 위층 모두 가동, 그러면 그렇지 벌써 수선화가 핀다고 하지만 그것은 며칠 동안의 포근함이었다. 진짜 추운 겨울은 사실 지금부터가 아닐지… 10년 전 바로 이즈음 와~ 그 폭설과 얼어붙는 추위로 완전히 빙판이 되었던 I-285N freeway 선상에서 완전히 발이 묶인 모든 차들과 함께 밤을 꼬박 지샜던 그 때… 2014년…  10년, 10년이 흘렀구나. 악몽이지만 지금은 모험소설처럼 아늑하게 느껴진다.

사순절, 재의 수요일이 사실상 거의 코앞으로 다가온다. 2주 이상이 지나가면 사순절.. 하지만 현재 우리, 아니 나는 거의 전혀 사순절에 대한 것이 머리 속에 없음을 안다. 아직도 쓰레기 찌꺼기들을 씻어내고 있는 것이다. 시간문제지만 100% 없어지는 것은 기대 안 하지만 그래도 새로운 기분으로 사순절을 맞게 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큰 변화가 있었던 지난 주일 미사후의 등대회 사임 ‘사건’ 이후, 첫 주일미사를 맞았다. 한마디로 어깨와 머리가 가벼워진 한 주일은 새롭고, 희망이 되살아나는 듯한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커다란 고민과 고통이 사라지고 서서히 다른 현실이 다가오는, 침착하지만 조금은 심심한 듯한 느낌도 감출 수가 없었던 시간들로 바뀌고 있긴 하다.  이제는 이것을 빨리 잊는 것이 나의 행복을 되찾는데 급선무가 아닐지…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그렇게 되기만 바라는데.. 과연..

아침미사가 끝나고 나서 솔직히 말해서 어디로 갈지 조금 당황스럽다.  한때는 적지 않은 교우친지들과 함께 Bakery ‘하얀풍차’의 커피 향을 찾아 갔었던 때가 있었지 않은가?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은 당연하다. 현재는 너무나 달라진 것이, 외롭고 쓸쓸함과 싸우는 듯한 착각까지.. 그것이 심지어 불쌍하게 보이기도 하니… 웃기지 않은가? 우리가 무엇이 불쌍하단 말인가? 이 나이가 외로운 것, 당연한 것 아닌가?

성당을 빠져나오며 친교실를 거쳐나가면 분명히 사람들의 온기를 느낄 수도 있었을 텐데, 이날은 ‘괴물들’의 얼굴들이 보이는 듯했는지… 모처럼 구역점심 육개장을 신부님이 선전을 하는 것도 마다하고 빠져 나왔다. 이럴 필요가 없었는데… 아마도 잠깐의 ‘피해망상증’이었을 듯… 이것은 특히 우리를 기다린다는 유나가 그렇게 보고 싶어서 그랬을 것 같다. 똘망똘망한 유나의 웃는 얼굴이 보고 싶기도 하고 유나가 할아버지를 대하는 모습을 다시 확인, 보고 싶기도 했다. 이제야 비로소 지나치게 ‘손주들 자랑 타령’하던 할배, 할매들의 심정이 이해가 되고… 결국은 우리들도 별 수가 없구나..

시온 떡집에서 조금 떡을 사가지고 가서 유나와 ‘해후’를 즐겼고, 나의 ‘아들’ Ozzie와 잠깐이나마 걷기도 하고… 어찌나 찬바람이 매섭게 부는지.. 오늘따라 장갑을 안 끼고 왔으니… 이렇게 우리를 반기는 새로니 모든 가족, 그래… 이것들이 현재 나, 우리에게는 가장 중요한 보물인 것, 잊지 말자~~~

지난 주일 이후 커다란 쇳덩어리가 어깨에서 사라진 듯한 이 시간들, 특히 오늘 같은 일요일, 오늘은 ‘작정을 하고’ 늘어지게 쉬기로 한다. 이미 download된 300여 개가 넘는 YouTube video를 random으로 본다.  요사이 이런 ‘취미 활동’이 나에게는 최고의 피로회복제 역할을 한다. YouTube에 널려있는 수많은 ‘쓰레기’들이 아닌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진정한 보물이라도 찾듯이 찾고 보고… 과연 이런 휴식의 방법이 이상적인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현재로서는 이것 이외에 무엇이 있겠는가?

44년 전 명동 YWCA~

1월 25일~~ 조금 익숙한 느낌의 날자~  또 잊고 살았다. 오늘은 44년 전 1980년 명동 YWCA 회관에서 결혼식을 올린 날이었다. 매년 맞는 이날,  이제는 숫자가 너무나 많다는 느낌뿐이다. 명동성당 앞쪽 언덕길, 포장마차 몇 군데, 약국, 그리고 즐겨 다녔던 Cosmopolitan 다방 등, 올해는 유난히도 명동 바로 그자리, 이제는 없어진 그곳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역시 지난 10월 수십 년 만에 직접 그곳 주변의 ‘상전벽해 桑田碧海’, 변한 모습이나마 보았기 때문이다.

1980년과 작년 10월의  명동이라는 이름이 주는 독특한 dynamic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에 놀랐을 뿐이다.  44년이라는 조금 으시시한 숫자에도 올해의 느낌은 예년과 조금 다르다. 결론적으로 그저 우리는 ‘감사하며’ 이날을 맞아야 한다는 것, 그것이 제일 중요한 것 아닐까?

쩍쩍 달라붙는 그 ‘지독한’ 영하의 기온에서 거의 60도를 넘는 포근한 겨울, 하지만 느낌은 거의 마찬가지다. 어두운 가랑비가 소리 없이 지긋이 계속 내리고 있다. 이것이 사실 싸늘한 비의 느낌인데… 올해는 결국 ‘하얀 눈’의 모습은 물 건너 가는 것인가?

혈압이 ‘완전 정상’? 왜? 내가 알 수가 없다. 반짝했던 깊은 안심과 평화 때문일 거라고 추측은 하지만 정말 이 ‘놈’의 수치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반가운데~ 몇 알이 필요한가.. 에서 고민하는데 역시 ‘정상에선 안 먹는’ 대 원칙이 있으니까.. 오늘은 제로 ‘알’로 정한다. 130 이상부터는 1알을 기본으로 시작하고.. 이것도 세월이 조금 더 지나면 나름대로의 방식이 형성될 것 아닐까? 의사의 말: 정상 혈압에는 약을 먹을 필요가 없지만 매일 매일 혈압은 살펴보라.. 그것이 정답이 아닐까?

어제 밤부터 감기조심 차원에서 소금물 양치를 시작하고 일찍 잠자리에도 들고, 저녁기도도 생략하곤 했지만 역시 나는 그 정도로 조심할 필요가 없었음도 안다. 조금 꾀병을 하고 싶은 충동과 응석도 부리고 싶었다. 심하지만 말고 조금 아픈 증상을 느끼는 것을 은근히 원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나의 숨어있는 습관 중에 하나니까.. 그 정도로 며칠 만에 나, 우리는 거의 정상적 심리적 건강을 찾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기념일답게 색다른 아침 식사, ‘준 기피 식품’인 avocado와 salmon fillet on toast, 맛도 맛이지만 멋도 있는 것을 준비해준 cook에게 감사..

이곳 Macy에 가본 적이… 몇 년? 전혀 기억이 없으니… 정말 그 동안 shopping culture가 많이 변한 것을 느낀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delivery truck만 기다리며 살아오지 않았던가?  I-75 의 어느 exit으로 나가는 것조차 생소하게 느껴졌으니… 연숙이 return 할 것 때문에 그곳엘 갔다가, 오는 길에 Thai 식당 Lemon Grass 에서 우리만의 전통으로 결혼 44주년 점심 식사를 그곳에서 했다. 속으로 물론 나는 그렇게 ‘자랑스럽지’ 못하다. 이럴 때, 멋진 곳에 멋지게 입고 가서 멋지게 폼을 내고 생소한 음식을 먹었어야 하는데~~~ , 하지만 그것이 나는 그렇게 맞지를 않는다. 별 수가 없다. 그것이 나라는 사람인데 어찌하겠는가, 연숙이 이해를 하며 살아주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RAIN ALL DAY HEAVY AT TIMES, even thunder storm~~~ warming up to  near 70!  이런 멋진 날씨에, 이렇게 2층 침실에서 낮잠을 2시간가까이 잔 것이 도대체 얼마만인가? 기억이 전혀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 전일 듯하다. 늦은 낮잠이었고 겨울에서 거의 여름으로 바뀌듯 한 착각에 빠질 정도의 남풍과 함께 계속 내리는 비.. 매일 매일 추웠던 30도 대에서 60도 대를 넘는 따뜻한 공기를 느끼니 갑자기 아~ 혹시 봄이 멀지 않은 것? 착각에 빠진다.  가슴을 펼 수가 있을 정도의 그런 봄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다. 이제 나, 우리에게도 봄은 정녕 오고 있는 것일까? 희망의 속삭임이 귀속에 들리기 시작하는 것일까? 아~ 제발, 제발…

생일과 결혼 기념일 사이에서…

2024년 정월 24일은 21일과 25일 사이…  생일 76년,  결혼 44년 두 기념일 사이를 가고 있구나. 이제서야 또 한 해가 시작되는 것을 실감하는 듯한 느낌이다. 이제 조금 제정신을 차리고 세월을 가늠하고 있단 말인가? 그 동안 어떻게 살았기에… 이렇게 의미 충만한 날들, 기억과 추억들, 모든 것을 잊었단 말인가?

연숙의 진심 어린 말, ‘기도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믿지 않는 것 아니냐’ 는 그 말이 아직도 귀에서 잔잔히 남아 울린다. 과연 그럴지도 모르겠다. 건성으로 믿지도 않고, 습관적으로 바치는 각종 화살기도들, 무슨 기대를 할 수가 있는 것인가? 공포에 질린 자세로 앵무새처럼… 나는 사실 아무 것도 모르며 무언가에 매달리는지도 모르겠다. 책으로 배우는 지식, 과연 그것이 전부일까? 체험을 했다고 자신했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과연 어떻게 다시 믿음을 되찾을 수 있을까?

내일까지 계속되는 ‘겨울 비의 향연’, 현재 나의 열린 마음에 이것은 선물이고 축복이다. 비록 눈은 아니더라도 괜찮다. 나의 76세 시점에서 나의 모습을 찬찬히 되돌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그렇지 교성아? 교성아~~ 미안하고 부끄럽다. 내가 너를 다시 만나면 어떤 얼굴로 보아야 하니? 과연 Swedenborg의 희망이 우리에게 앞으로 다가올까? 이것도 믿지 못하는 것 아닌가? 나의 믿음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과연 어떤 사람, 인간인가?

나의 생일과 내일의 결혼기념일을 어젯밤 조카 은지에게 알려 주었다. 오늘 아침에 답신에 자신의 store에 있는 동백꽃 Camellia 의 모습을 담아 축하를 해 주었다. 한 동안 재잘거리던 texting이 요즈음 조용했는데 이렇게 다시 겨울 꽃으로 다시 피게 되었으니 안심이 된다. 나보다 우리 어머님과 더 가깝게 살아온 우리 누님 조카들, 어떻게 이렇게 생의 끝자락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는지, 가끔 머리 속이 하얗게 희미해지는 기분까지.. 내가 무엇을 어떻게 잘 못 살았을까…  이런 인생을 살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는데…

은지가 나의 생일선물로 보내준 것, 예쁜 동백꽃을 보다가 나의 책상 옆을 보니 다른 꽃, African Violet이 작고 겸손하고 수줍은 모습으로 나를 보는 듯하다. 어제 연숙이 desk옆 side table에 조용히 갖다 놓은 것, 그렇게 오랜 세월을 살면서 아직도 꽃 이름을 추측조차 못하는 나로써는 요새 이렇게 꽃들이 다가오는 사실이 흐뭇하기만 하다. 아마도 나이 때문이 아닐까?

예정대로 연숙이는 full-time으로 Tucker엘 가서 사랑으로 손자를 돌보아주고 왔다. 나와 같이 다시 찾은 평화, 평정의 덕분으로 이전보다 조금 덜 힘들었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drive를 거의 2시간씩 한다는 것만으로도 분명히 혼신적 에너지를 소모했을 것이다. 
오늘도 나는 거의 꿈꾸듯 평화 속의 게으름을 마음껏 마음껏 발산하고 즐기고, 만끽을 했다. 언제까지 이런 ‘평화의 기쁨’이 계속될지는 모르지만 상관없다. 이것으로도 나는 감사하고 만족하니까…
은근히 기대했던 ‘시원하게 깨끗하게 세차게’ 내리는 겨울 비는 결국 ‘과대선전’ 격인 것이었다. 거의 이슬비 정도로 그것도 가끔… 참, 이런 날씨는 사실 정확한 예보가 힘든 그런 format인 듯하다. 그래도 실망스럽다.

또 하나의 중앙고 57회 동창회 단톡방이 생겼다. 왜 또 하나의 것이? 조금 이해는 안 가지만 이유가 없지 않겠지.  그런데 이것으로 목창수가 동창회 총무가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다른 총무는 조한창.. 역시 일하는 사람들은 몇 명이 되지 그 사람들,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목창수가 간부가 되었기에 조금 동창회와 가까워진 듯한 기분.. 물론 나쁘지 않다. 이렇게라도 나는 이곳에 연결이 되어 있음이 좋다. 

오늘 이곳에서 알게 된  소식… 박택규 선생님의 ‘소천’, 아마도 목창수가 개인적인 관계로 이 소식을 들을 수 있던 것은 아닐까… 나머지 선생님들의 소식도 궁금하지만 아마도 개인적 관계가 별로 없었기에 그런 것은 아닐까?
박택규 선생님은 나에게 유난히 적지 않은 추억을 남겨주신 소년 처럼 해맑은 모습의 화학 선생님이었다. 또 하나의 화학 선생님, 김후택 선생님은 그야말로 완전 반대형의 인물, 어깨, 깡패를 연상케 하는.. 얼굴. 하지만 이 두 선생님, 진정한 화학의 귀재들이었다. 아무런 note없이 줄줄 화학방정식으로 칠판을 가득 채우시던 모습이 상상의 모습으로나마 남아있으니…

Beautiful beautiful Brown Eyes~

오늘 연숙이 Tucker로 가지고 간 bouncer를 타며 신기해하는 Knox의 모습이 너무나 편하고 귀엽구나… 이 애는 조금 더 크면 어떤 모습일지… 분명한 것은 beautiful beautiful  brown eyes만 빼고 우리들의 모습과는 조금 거리감이 있다는 조금 서운한 사실…나는 응석받이인가,  손주도 못보고 너무나 갑자기 저 세상으로 떠난 동갑내기 R형에게 미안하고, 그가 다시 보고 싶고, 그리워진다.

추운 날씨에 drive를 20마일씩이나 해서 딸 냄이 손자들을 도와주러 군말 없이, 그것도 음식까지 정성 들여 만들어 갔다 주고 돌아 올 때는 Kroger까지 들러서 우리들의 처방약들까지 찾아 오고, 마지막에는 bank까지 갔던 연숙이, 오늘은 솔직히 미안하다 못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내가 평소에 궁실거리던 귀찮고 말이 많은 모습은 난데없이 사라지고 ‘사랑과 능력을 겸비한’ 멋진 여성으로 나에게 다가오는데… 이것, 내가 변한 것인가, 아니면? 그래, 우리는 가정 건강을 위한 궁합에서 이제는 길지 않은 여생의 반려자로서 더욱 빛을 낸다고… 나는 상상과 희망의 나래를 편다.

요즈음 왜 이렇게 새벽 잠에서 일찍 눈이 떠지는지 귀찮구나. 대부분 5시 이전에 눈이 떠지면 완전히 머리 속에서 잠 기운이 완전히 빠져나간 듯해서 다시 잠이 들 가능성이 없다. 고민의 시작, 일어날까, 그래도 누가 알랴 누워있을까.. 이때 지겹고, 괴로운 생각이 찾아올 가능성이 있으면 ‘무조건’ 일어나는 것이 나의 건강에 도움이 된다. 오늘이 또 그런 case가 되었는데 다른 문제는 ‘와~ 춥다’ 기온이 20도~~ 시간상으로 central heating시작 전이다. 오늘은 그래도 용감히 일어나와 어둠 속에서 일일이 전깃불을 키고…  어두운 계단 아래, 왼쪽에서 가냘픈 ‘야옹~~ 야~오~ㅇㅇㅇ’ 소리를 내며 머리를 내밀 것 같은 착각~ 아~ Izzie야, 그립다, 보고 싶구나, 사랑한다, 너를 사랑해~~ 지난 10월 쓸쓸히 한달 혼자 있게 했던 것… 미안하고, 미안해, 용서해주렴… 보고 싶고, 안아주고 싶고, 뽀뽀도 해 주고 싶은데, 그것은 이 이승에서는 늦었고 다음 세상에서 만나면 분명히 확실히 해 줄게…

New York Times, NICHOLAS KRISTOF의  NORTH KOREA에 대한 글, 이 ‘무시무시한 경고성’ 논설, 눈을 뗄 수가 없었는데, 문제는 reader들의 comment를 읽느라고 몇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것. 현재 미국 (나를 포함)의 ‘여론’의 흐름, 상태, 정도’를 가늠하는 적당한 source가 아닌가? 물론 NYT 지의 정치적 성향을 감안해야 하겠지만 그래도 미국을 대표하는 언론임을 알기에 더욱 관심이 가는 것이다. 남한에 대한 언급, 관심의 정도로 보아서 역시 대한민국의 현재 국제적 위상을 짐작할 수 있는데, 문제는 가상 시나리오가 또 다른 전쟁, 파괴, 파멸의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 그것이 문제다. 최근에 전문가 중의 최고 전문가들이 ‘우려’를 했다는 사실 또한 간과할 수 없는 것이고. 나의 조국, 친척들이 살고 있는 나의 고향이 직접 전쟁의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생각은 사실 정말 가상적이긴 하지만, 세계사는 적지 않은 ‘악한 인간의 결함’에 의한 대재앙이 있었지 않았던가?

Flashing TASMOTA with RASPI3.X…
아~  일이 잘 풀리지 않는구나~~ fresh Flashing SONOFF, 이렇게 복잡했던가? 전에 어떻게 했었는지 전혀 기록이 없으니… 시간이 아깝기도 하고.. 하지만 완전히 중단할 수는 없다. 자존심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럭저럭 아래층 나의 서재 옆에 서서히 mobile-lab이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2년 전에 반짝했다가 이렇게 저렇게 한눈을 팔다가 완전히 손을 놓았던 것이 다시 서서히 돌아오는 느낌인데… 솔직히 자신은 없다. 언제 무슨 사정으로 완전히 또 이것을 잊고 살게 되는 것 같은 방정맞은 생각…  이번에는 어떻게 한눈을 팔지는 모르지만… 이런 작은 일도 나의 정신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희망은 있다. 다만 필요 이상으로 일이 생각대로 진해되지 않을 때 stress는 받지 않고 싶다.

오늘 mobile-lab으로 쓰이는 plastic cart drawer을 찬찬히 살펴 보다가 Richard가 주었던  ADAFURUIT 제품, Raspberry PI  add-on module를 살펴 보니… 와~ 작은 보물, GPS board가 아닌가? Adafruit.com의 source를  찾아서 software를 run해 보니… 정말 live GPS data가 serial port로 홍수처럼 들어온다. 아~ 내가 손수 design한 것은 아니지만 상관없다. 이런 것이 바로 SparkFun! 이 아닌가?  이런 것으로 신나고 즐거운 시간이 최소한 몇 시간 계속된다. 

세찬 바람, 겨울 비 내리던 날

일기예보대로 새벽부터 요란한 소리와 함께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한다. 다행히 기온이 조금 올라서 비의 느낌이 그렇게 차갑지만은 않다. 하지만 분명히 이것은 겨울, 그것도 한겨울 비가 아닌가?
바람을 동반한 세찬 비, porch 안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가며 들이친다. 다행히 젖을 물건들이 거의 없어서 이렇게 쓸쓸하고 멋진 비를 편하게 감상하는 것, 이것도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듯하니.. 나는 지독한 구제불능의 감상주의자…

오늘 오후 예정이 된 신부님과의 면담의 주제는 무엇인가? ‘등대회 불미스런 사건’을 비롯해서 성당 공동체 신앙, 친교 활동의 scope 등등인데, 깊은 생각을 정리 못하며 만든 약속이라서 지금으로써는 뚜렷하게 정리를 할 수가 없다. 혼자가 아니고 우리 둘이 만나는 것이라 조금 덜 신경이 쓰이는 것도 사실이니까.. 일단 부딪히고 보는 거다.  나 혼자, 아니 우리 둘만이 말하는 것이 아니고 뒤에 ‘성령, 성모’님이 도와 주신다는 것도 잊지 말자…. 어떻게 되겠지, 어떻게…

NDE, NDE, NDENear Death Experience..  요즈음 나의 머리 속에 자리를 꽉 채우고 있다. 2018년 성탄시즌에 선물로 받은 책 Dean Radin’s MAGIC을 읽으며 깨달은 바가 적지 않았는데 2023년 시즌에는 다른 책 Bruce Greyson’s  After, 이것으로 5년 전과 더 다른, 다 강한 과학의 위력을 깨닫게 된다. 한마디로 지금의 추세는 과학이 영성, 신앙, 종교를 도와주고 있는 것, 얼마나 irony한 세계관의 변화인가? 이 사실을 알면 알수록 신나고, 즐겁고, 행복한 것이다. 이 현상이 서서히 주류 과학계에서 언급, 취급되고 있다는 사실, 그것이 신기하고 신명 나는 것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한 ‘선구적 과학자’들, 특히 quantum physicist들의 용기가 너무나 존경스러운 것, 숨길 수가 없다.

Birthday, Funeral Mass

1983년 1월 5일, 새로니 태어남… Riverside Hospital, Columbus, Ohio .. 이제 마흔 한 살, 41세.. 결국은 우리 집 장녀가 40대로 들어섰구나. 하지만 나에게 나이 40의 감각이 금세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40세가 될 즈음을 기억해야 서서히 느낌이 온다. 1988년 1월 21일이 나의 40세 생일.. 물론 당시의 개인역사를 줄줄 말할 수 있고 따라서 그 나이의 사상, 느낌들이 조금은 되돌아 온다. 지금 느끼는 40은 물론 너무~ 젊었다.. 했지만 당시에는 거의 반대의 감정이었을 듯하다. 특히 죽을 ‘사’의 4까지 있어서 더욱.. 솔직히 말하면 그 당시 조금씩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던 것은 분명히 기억을 한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알 수 없는 ‘늙어가는 세대’ 속으로 들어간다는 사실 때문이었을 거다.

NDE to Jesus… 나의 궁극적인 목표, 이유. 현재 나의 많은 관심과 독서 활동의 중심 화제, 화두인 NDE, near-death experience. 지금 읽고 있는 것은 물론 가장 설득력이 있는 scientific approach의 입장에서 본 현상적 설명이고, 바로 이런 이유로 나는 희망과 안심, 여유를 그런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 아닐까?
중세기 이후 계몽주의의 도래 이후부터 학계로부터 서자 庶子 취급을 받던 (왕따란 표현이 더 적절)  이것에 대한 연구의 심각한 무게가 이제는 critical mass에 접근하고 있다는 발표, 보고도 오래 전처럼 희귀한 것이 절대로 아니다.
Swedenborg와 더불어 NDE는 나와 같은 ‘이전의 materialist’ 에게는 새로운 세계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흐름으로 이제는 과학과 종교의 대립적인 해석은 의미가 점점 없어지기에 현재의 정치적, 사회적 격변이 걸맞게 brave new world를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잔잔한 서광을 기대하는데…

동년배, 서울 재동/교동 국민학교 추억의 인연으로 몇 년 전에 만났다가 지난 늦가을 갑자기 떠난 세례자 요한 R형의 장례 미사가 드디어 끝났다. 너무나  놀라고 실감이 가지 않았던 것은 그렇게 영육간의 건강을 자랑하던 사람이 불과 몇 개월 만에 홀연히 세상을 떠난 것,   오늘의 ‘영결, 장례 미사’로 조금은 끝맺음 이 되었다. 실감 문제를 떠나서 이제는 분명한 한 인간, 영혼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떠났다는 기정사실을 무리 없이 인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끝맺음, closure.. 나는 이 단어가 나오면 쪼그라들며 도망치고 싶다. 우리 어머님, 우리 누님의 타계는 나에게는 아직도 끝맺음이 없이 아직도 열린 상태인 것이다. 언제 끝맺음이 있을까, 이제는 늦었다. 열린 상태로 나는 떠날 수밖에 없는 신세인 것이다.

오늘 ‘영결미사’는 대 성황이었고, 큰 무리 없이 진행된 행사이기도 했다. 우리 추측에 이 많은 조문객의 대부분이 아마도 R요안나 자매와 관련된 사람들은 아니었을까… 큰 딸의 조사를 통해서 우리, 아니 내가 모르던 R형의 많은 행적, 성향, 성격 등을 추측해 보기도 했다.  원래 머리가 특출하게 좋았다는 사실, 친구 관계가 원만했고, 가족을 나름대로 보호, 사랑했다는 사실 등등..  부럽기도 하고….
나는 몇 가지 긴 조사를 들으며 R형과 나를 비교해 보기도 했다. 특히 딸 둘이 있고, 미국인 사위가 있다는 공통점을 통해서 나의 삶과 현재의 모습을 제3자의 입장에서 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급작스런 죽음을 앞둔 그의 초연한 모습이 그렇게 인상적이고 멋지고 훌륭하게 보일 수가 없었고, 내가 그의 입장이 되었으면 어땠을까… 갖가지 가정과 상상을 하기에 바쁘고…  결국 간단히 말해서 ‘내가 오늘 죽으면’이라는 물음의 해답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AFTER, NDE 같은 화제가 요새 나의 머리 속에 가득 차있어서 그런지.. 오늘 미사 중에도 육신을 떠난 R형의 영혼이 영결식장 위를 돌며 내려다 보는 상상,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사실여부를 떠나서 나는 그런 것의 가능성이 제로가 아닌 한 믿고 싶고,이제는 안심하고 믿을 수 있게 되었다. 그것도 과학의 도움으로, 이성적으로 믿는 것이다. 저 너머 세상, 그러니까 영계 靈界를 믿으면 남은 생을 어떻게 살 수 있으며 살고 싶은지도 서서히 밝혀질 것 같다.

 

Normalcy Day

어제 재개된 저녁 묵주기도는 1개월 만에 한 것이고, 오늘의 다른 일들은 .. 12월 11일 이후 처음 매일 미사, 먹기 편한 곳 McDonald’s, 그리고 ‘삶의 느낌을 일깨워주는’ YMCA gym 등등. 그러니까 이런 것들도 거의 한 달에 가깝게 중단 된 것.. 어떻게 이렇게 살았을까? 다시 한번 darkest December의 느낌이 떠오른다. 오늘은 다른 normalcy를 찾으러 Sonata Cafe를 준비하고, ‘도리도리’까지 재개 되었다. 제발 그저 ‘보통, 평범한 날’이 되기를…

동네 성당, Holy Family parish, 아침미사, 긴 방학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우리의 ‘학교’는 물론 15분 drive의 동네 성당, 그곳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고 조금 산만한 듯한 그 ‘필리핀’ 자매님도 제자리에, 거꾸리 장다리 부부, 신심 좋은 교우들.. 거의 모두 제자리에 있는 듯 했다. 다른 것은 예년에 비해서 훨씬 화려한 성탄 장식들, 성탄 트리가 전부 4그루! 성탄 구유도 몇 군데 보이고… 올 성탄시즌의 봉사자들이 아마도 열성교우들이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는 이곳도, 순교자 성당도 모두 볼 수가 없었으니.. 후회는 하지만 우리의 ‘정신건강, 아니 살기’ 위한 고육책이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반가웠던 것은 역시 이곳의 성당 달력을 다시 가져올 수 있었다는 사실. 이제부터는 안심하고 나의 매일의 짧은 기록을 편하게 남길 수 있게 되었다.
또한 Sonata Cafe가 재개, 비록 jam & bread의 dry한 것이었지만 우리만의  십여 년 전통이 재개 된 것에 감사한다.

YMCA indoor track 걷기는 거의 50분 가까이 해서 거의 6,800 보를 걸을 수 있었고, 각종 strength machine도 보통 때만큼은 할 수 있었다. 나의 몸, 특히 근육은 아직도 예전에 비해서 큰 변화는 없는 듯 느껴진다.  각종 무거운 물건들을 다룰 때 느낌에서 알 수 있는 것, 다행 중 다행이 아니겠는가?

Tenth Day of Christmas, freezing

깨어날 무렵부터 나는 역시 얼마 전 12월 중순의 ‘등대회 악몽’을 향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결과는 나의 불쌍한 혈압을 극단으로 치솟게 했던 것이고, 이것이 바로 ‘악의 그림자’임을 어찌 모르랴… 성당 공동체를 떠나게 하는 것은 틀림없이 ‘악’의 소행이라는 상식적인 사실, 어찌 모르랴.  지나가리라, 지나가리라… 아무 것도 내가 할 것이 없음도 알고,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 그것이 현재 내가 성모님께 간구하는 전부다. 그것이 전부다…

최근에 나의 연숙에 대한 신뢰성, 의지 성향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한다.  작년 1/2월, 10월의 큰 일들, 특히 여행을 비롯해서 최근의 등대회 사건 등등을 통해서 거의 절감을 하고 있다. 감사함, 고마움 등등 지나간 것을 포함해서 적극적으로 표현을 하고 싶어진다. 더 늦기 전에…  나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이지만 솔직히 미안하기 그지없다. 혼자서 끙끙 앓으면 연숙이는 조금 더 편할 수도 있다는 것은 사실인데, 그것이 이상적인 부부상일까? 그래, 나, 우리는 현재 깊이 기도생활을 못하고 있지 않은가? 어찌할 것인가? 무조건 다시 성사생활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이 유일한 희망인 것이다.

  1. 내일부터 동네성당 아침 매일 미사, YMCA gym 등의 regular routine부활!
  2. 아침, 저녁 묵주기도, 특히 저녁가족 묵주기도 재개
  3. 순교자 성당 주일미사 재개 (토요일 특전미사로 시작)

아직도 (church) desktop calendar가 없다. 내일 Holy Family CC엘 가게 되면 아마도 있을 것이고 그것을 예년처럼 편하게 쓸 수 있다. 그런데 오늘 연숙이 Holy Spirit Monastery 달력을 건네 준다. 거의 size도 비슷한 것이라서 만약에 성당 것을 못 구하면 이것이라도 쓸 수 있는, backup으로 쓸 수 있다. 펼쳐보니 그 수도원 안에 있는 광경들이 펼쳐진다. 그곳에 가 본지도 이제 꽤 되지 않았는가? 갑자기 그리워지기도 하고…  특히 1월 달 사진, 약간 눈이 덮인  수도원 계단,  싸늘한 조지아 겨울의 느낌을 100% 느끼게 해 준다. 나도 이곳의 기후에 관해서는 거의 원주민이 된 기분… 참 오래 살았구나..

지난 며칠, 나는 연숙에게 이상할 정도로 특별한 감정을 느낀다. 아니 애정이나 존경심, 부러움이라고 불러도 좋을지도 모른다. 조금이라도 기억되는 얄미운, 싫은 느낌이 많이 사라진 듯한 것이다. 왜 그럴까?  비록 현재 겪고 있는 ‘미친X 사건’으로 시작된 것 같은데, 그래도 이번에는 예전처럼 나쁜, 얄미운, 싫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것이다. 내가 변했나, 아니면 무엇이 나를 이렇게 갑자기 착한 사람으로 만들었는가?

상관없다. 지금 우리는 아주 편하고 가까운 관계를 갖게 된 것이라면, 제발 이 상태로 지속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우리가 원하던 바라던 여생을 살 가능성도 충분히 있지 않을까? 그렇다,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의 진실한 성실한 관계인 것이다.

오늘도 너무나 싸늘하고 어두운 날씨에 우리는 편하게 걸었다. Ozzie Trail의 입구를 포함한 산책이었다. 이런 날씨는 거의 눈발이라도 날릴 듯한 그런 모습이었지만 그것은 거의 꿈에 가까운 희망사항이 아닐까?

Bruce Greyson’s AFTER, 괴로웠던 지난 연말, 나에게 ‘삶의 의미’를 잊지 않게 해 주었던 책, 거의 2/3를 재빠르게 읽고 있다. 아마도 이 책을 읽기 시작한지 1주일 안에 완독을 할 가능성도 있다. 처음의 정도를 넘는 희망이 갈 수록 지루함과 실망으로 변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우수한 독서로 끝날 것은 분명하다. 이 독서로 나의 NDE에 대한 생각은 더욱 영성, 신심, 종교에 대한 믿음을 공고히 해 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정말 세상은 오래 살고 볼 거다.

이제는 나도 가끔 실감을 가지고 상상을 한다. NDE를 내가 경험하는 듯, 죽는 순간을 그린다. 그들처럼 나도 저 세상으로 가면 헤어진 가족, 친지, 그리고 pet animal들, 특히 얼마 전 떠난 Izzie를 다시 만나는 것까지…  정말이지 이것은 살맛 나는 상상인 것이다.

LEFTOVER DELIGHT, 설날, 이틀 전 새로니가 사왔던 Italian lunch 가 아직도 남아서 오늘까지 편하게 먹을 수 있었다. 이것들의 양이 사실 우리들이 먹기에는 많은 것이어서 이렇게 편하게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곁들인 salad는 연숙이 급히 만든 것이지만 정말 맛이 있었다.

마침내 저녁 가족 묵주기도가 재개 되었다. 둘이서 하던 저녁기도.. 오늘 저녁에 재개를 하는데.. 마지막으로 했던 때가 도대체 언제? 찾아보니.. 12월 2일 내가 고통의 신비를 했던 때가 마지막이었구나… 한 달도 넘은 것이다. 대신 그 당시 성당을 위한 묵주기도 5단을 혼자서 200단 정도를 했구나.. 하지만 가족기도는 아니었으니.. 오늘로 우리는 거의 정상으로 돌아오는 셈인가? 성모님, 저희를 인도, 붙잡아 주소서…

Happy New Year, Solemnity of Mother of God

Unthinkable, 정월 초하루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이라는 사실을 거의 잊고 사는 우리의 모습, 상상도 못하던 일이 2024년의 시작과 함께… 그래, 인생은 이런 것 아닌가? 변화, 변천, 진화, 흐름.. 시간과 세월의 느낌이 있는 것이 삶의 진정한 모습이 아닐까? 그래도 조금, 성모님께 미안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구나… 죄송합니다, 곧 마음을 다시 추스르겠습니다~~

아~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될 desktop calendar, 없구나… 매년 편하게 쓰고 있는  Holy Family 동네성당 것, 그것이 나에게 없다는 사실을 미처 생각 못했으니.. 도대체  동네 성당엘 갔어야 말이지.. 이것이 있어야 나의 하루 삶의 조금은 정리가 되는데… 내일 아침 미사에라도 가게 되면 즉시 해결이 될 터이니, 너무 유념하지 말자…

오늘은 ‘먹는 날’로 연숙이 배려, 노력을 했기에 ‘양력 설’날의 기분을 느낄 것이고 의도적으로 즐겁게, 기쁘게, 하루 종일 먹으며 살고 싶다. 작은 기쁨, 작은 즐거움으로 일년을 살아보자는 NYT 기사에 보이는  권고, 오늘은 이 말이 그렇게 동감이 가는구나.. 아주 조그만 즐거움 들이 모이면 큰 행복이 되는 것 아닌가? 진리의 말씀이다.

일본 서해안 지진, 쓰나미… 새해 첫날…  오늘 새해 첫 뉴스는 어젯밤 자정 각 나라 특히 서울과 뉴욕의 3-2-1 countdown 행사에 대한 각종 YouTube video가 압도적일 것인데 갑자기 나타난 breaking news로 서 일본 지진에 대한 뉴스가 더 큰 관심을 끌었다. 2011년 동일본 지진과 원전사고의 기억이 생생하게 있어서 더욱 유심히 보게 되었다. 다행인지, 쓰나미 경보는 해제가 되었지만 지진의 피해는 적지 않은 듯 보인다. 일본이란 나라, 다 좋은데 이런 운명적 환경은 정말 숙명적인 불행은 아닐지…

설날 떡국, 김치 돼지고기 보쌈   김치를 담그는 것부터 시작해서 에너지와 정성을 들이더니 결국은 이렇게 맛있는 설날 음식을 준비해 준 것, 너무나 감사한다. 이제는 이런 나의 마음을 가급적 표현하며 살면 좋겠다. 아~ 오랜만의 떡국, 김치 보쌈… 정말 맛있게 먹었다.

의외로, ‘칩거 생활’이 지루했던지 연숙이 먼저 동네를 걷자고 제안한다. 우리에게 제일 알맞은 운동은 역시 적당한 산책, 산보임을 알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3,000보를 습관적으로 걷자는 의견에 나도 동감이기에 찬바람을 맞으며 걸었다. 20분도 채 안 걸리는 가벼운 산책이지만 그래도 정신을 새롭게 하는데 분명히 도움을 주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