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Years, Scrambled Egg, 5 AM Wonder, Jan 6 SOBs

오늘은 새로니 39살 생일이로구나… 감상에 젖고 싶다. 내년 40살에는 더 그렇겠지만 상관없다. 1983년 1월 5일로 돌아가는 것은 마찬가지일 테니까… 1983년… 아~ 참 오래 살았다는 생각만 머리를 맴도니.. 첫 생명, 새로니 생각보다는 나와 우리부부의 만남부터 grandparents 까지의 인생역정이 더 먼저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우리의 만남, 결혼은 시작이었지만 아이들의 그것들은 최근 몇 년 전까지도 완전 미지수였기에, 황혼의 인생도 반드시 밋밋하지만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1980년대와 2020년대의 차이는 계량조차 쉽지 않은 엄청나게 다른 세상인데…  새로운 두 가정이 우리로부터 시작 된 우리들의 인생역마차는 이제 서서히 다음의 정거장에서는 완전히 쉬어도 되는 것인가…

 

Leader of the Band – Dan Fogelberg – 1983

 

오늘 로난 모자 母子가 아침에 와서 같이 먹게 될 breakfast에 생각이 미치면서… 아~ 무엇을 먹을까 고민이 든다. 매일 우리가 먹던 것에 신물이 났는가? 침이 나올만한 것은 없는가… 매주 금요일마다 먹는 pancake을 오늘? Pancake은 가급적 금육재 禁肉齋로 meat종류를 피하려는 노력인데, 그것을 수요일에 먹는 것도 괜찮을 듯. 또 다른 것은 없는가?  삶거나 fried한 eggs, 이것도 조금 지겹고… 아하~~ 그렇다, scrambled egg! 그것이 있었지! 재료는 같아도 맛과 기분이 전혀 다른 이것을 오늘 만들면… Googling에서 cooking website, LOVE & LEMONS 라는 곳에서 멋진 모습의 scrambled egg ‘recipe tip’을 찾았는데… 이것 너무나 간단하지 않은가? 이래도 맛이 있을까? 그것이 scrambled egg 의 매력이라는데.. 흉내를 내 보았지만 pro들이 만든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모른다.

 

새벽 5시의 신비, 얼마만인가? 5시에 일어난 것이? 이렇게 일찍 눈이 떠지면 대부분은 다시 자려고 애를 쓰기도 하는데 오늘은 그러기에는 머리가 너무나 맑았다. 사방이 깜깜하고 아주 싸늘한 공기를 헤치며 나오니 elderly cat,  Izzie조차 나 발아래 없다. 얼굴을 보니 자다가 나를 보고 깨어난 듯하다. 그러니 더욱 새벽이 쓸쓸하게만 느껴진다. 승려들이 사는 절간은 새벽 3시에 하루가 시작된다고 하는데 나는 5시에도 이렇게 죽은 듯하니… 그들이 부럽기조차 하구나… 하지만 부엌의 blind를 열어보니 일찍 일어나시는 B선생댁도 창문의 불빛이 희미하니… 아직 안 일어나셨나… 모처럼 이른 새벽의 분위기를 마음껏 느낄 수 있어서 반갑기만 하다….

며칠 만인가, 다시 ‘독서 삼매경 기분’을 느끼는 것이…역시 좋아하는 주제의 글이나 책을 읽는 시간이 나에게는 제일 기쁘고 행복한 순간들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때가 되었다. 이런 시간에는 로난이 나의 서재에서 시끄럽게 놀고 있는 것, 거의 방해나 구애를 안 받는 것도 또한 신기하다. 생각에 집중하는데 그런 잡음이 크게 방해를 못하는 때도 있음은 반가운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거의 예외에 불과하고 나머지들의 경우는 대부분 잡념들과 싸울 때가 많다.  또한 나의 독서습관인 ‘잡독, 난독’으로 읽기에 언제 완독을 할 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것 또한 나를 편하게, 가볍게, 즐겁게 하는 습관이다. 아마 ‘정독’으로 시작하라면 시작조차 못하고 살았을 것이다.

현재 나를 기쁘게 하는 책들: The Hours of the Universe, Life on the Edge, Living in a Mindful Universe, Learning to Pray, JESUS, The Jesuit Guide 등인데..  오늘 한가지가 첨가되었다. 오래 전 출판된 ‘한국천주교회 2백주년 기념’ 신약성서[요한복음]주해집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을 서가에서 먼지를 털며 꺼냈다. 지난 12월에 시작된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봉사자를 위한 성서 영적독서’ 에 늦게 참여를 한 바람에 교재 [송봉모 신부님 저 요한복음강해?] 1권을 거의 놓치고 말았기에 이 옛날 책이라도 도움이 될 듯하다. 이것으로 한번 ‘신비의 요한복음’에 도전을 해 보고 싶다. 게다가 이번 신부님의 독서강해는 예수회의 관점이 많이 도입이 되는 듯해서 나에게 더욱 흥미를 끈다. 예수회 James Martin신부의 책들을 읽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예수론’에 도전하게 되는 것인지… 조금 흥분까지 된다.

예정대로 오늘 로난 일행이 baby-sitting 도움을 받으러 왔다. 다음 주부터는 Daycare Center가 개학을 하니까 애 보는 것은 문제가 없겠지. 이제 이 녀석도 조금 컸다고 행동하는 것도 조금은 성숙해 보이고 천상 개구쟁이가 되어간다. 앞으로 우리와 어떠한 관계로 살아갈지, 어떤 사람으로 성장할지 bi-culture문제는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궁금한 것 투성이지만 어쩔 것인가? 그저 사랑의 눈으로 지켜보고 필요할 때마다 오늘처럼 도와 주면 되는 것 아닌가? 우리가 적극적으로 교육을 시키는 입장도 아니고.. 이것도 선택인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두 문화, 두 언어 교육에 개입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제 우리는 너무 늦은 감이 있다.

 

내일은 그 악몽의 9/11 terror attack 에 버금가는 1/6 사태 1주년을 맞는 날이다. 물론 나는 내일 ‘조용히’ 모든 media에서 눈을 돌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연극’을 할 것이다. 그것이 나의 건강에도 좋고 평화를 조금이라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방법이 없다. 당시나 지금이나 나는 너무나 생생한 살기 殺氣[정말 그 DONALD 개XX  일당들을 ‘라이파이의 살인광선으로‘ 날려버리고 싶은 것…]를 나는 아직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전부다.

 

Windy & Seasonally Cold

비로소 정월 초 같은 싸늘한 추위가 돌아왔다. 물론 귀찮은 것도 있지만 반가운 것도 마찬가지다. 계절다운 날씨가 제일 이상적인 것 아닌가? 며칠 또 이렇게 움츠리며 보내면…  그러고 보니 산책을 한 지가 꽤 오래된 듯하구나. 사실 이렇게 춥고 바람 부는 날에 걷는 것이 제일 멋지고 보람된 듯 보이는 것인데… 어제가 그런 날씨였지…

오늘부터는 다시 ‘등화관제’령을 발동해서 모든 TV 같은 것에서 눈을 멀리 돌리기로 했다. 언제까지일 지는 솔직히 자신은 없지만 이런 식으로 살아보련다. 꼭 봐야 할 것이 있으면 물론 예외로 처리, 유연한 자세를 가지고. 머리를 정화시키는 데에는 이 방법처럼 좋은 것도 없으니까.. 하지만 text media까지 그럴 수는 없겠지…

2주 만에 화요일 순교자 성당 ‘봉사자 영적독서반’과 정오미사 차 외출을 하고 왔다. 독서반의 인원이 자꾸 줄어든다는 관찰을 하신 신부님의 표정, 글쎄… 이것이 보통 case가 아닐까.. 하지만 우리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이런 기회를 놓치기 싫기 때문이다. 다음 차례를 위해서 드디어 교과서도 구입하였으니까 이제는 안전, 쐐기를 박은 셈이다. 이렇게 해서라도 화요일 성당으로 외출을 하여야 우리는 산다.

영성 독서 교재의 저자, 송봉모 신부님, 유명한 학자 신부임은 알지만 나와는 큰 인연을 못 맺었는가, 연숙이 그렇게 얘기를 해서 한때 책을 읽기는 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레지오 영성에 깊숙이 심취를 하며 멀어져 갔다가 이번에 홀연히 나의 앞에 나타난 것, 정말 우연일지… 한번 에너지를 쏟아 보고 싶다. 말씀, 성경, 성서에 나는 정말 정열을 못 느끼고 살았지만 이제 더 미룰 수가 없는 듯하다.

내가 최근에 읽고 있는 Fr. James Martin S.J. 책들로 조금은 예수회 신부님들의 논조를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조금 예수회 영성, 그러니까 이냐시오 영성을 공부하고 있기 때문일까? 그것이 성경, 특히 복음 공부에는 어떤 영향을 주는 것일까? 오늘 공부 끝에 ‘의식성찰’이란 생소한 표현의 주제를 신부님이 다루셨는데, 양심성찰과 조금 다른 이 ‘기도방식’이 나에게는 새롭다. 양심에서 의식으로.. 요새 내가 심취하고 있는 Consciousness과 Conscience의 차이가 아닌가? 이것으로 조금은 철학, 과학적인 접근을 말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의식 성찰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감사: 하루를 되돌아 보고 감사드릴 부분을 볼 수 있도록 청하면서 시작한다.
  2. 조명: 나 자신의 분석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보여주시도록 성령께 청한다.
  3. 어떤 사건이 떠오르는가? 성령께서 계셨던 곳은? 파괴적인 힘이 느껴지는 곳은? 내적인 움직임이 큰 곳은 어디인가?
  4.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주님과 마음으로 대화하듯 나누어 본다. 주님께서 어떻게 보시는지? 어떤 마음과 태도로 대하시는지?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나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며 나를 어디로 이끌어가시려고 하시는지?
  5. 결단: 알아듣고 깨닫게 된 통찰과 은총에 감사하면서 이를 나의 삶에서 실제로 살아갈 결심을 봉헌한다. 주님의 기도 또는 영광송으로 마친다.

한 줄 과제
성찰을 하면서 또는 독서를 하면서 마음에 울림이 있다거나 함께하고 싶은 느낌들, 깨달음, 궁금한 점, 무엇도 상관없습니다. 그 한 줄의 체험 또는 질문을 댓글 창에 올려서 서로 나눔이 되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저녁 TV 뉴스를 보니.. 너무 익숙한 광경이 보이고 있었다. 처음 볼 때 놀라기도 하고 악몽이 떠오르는 것, 바로 2014년 우리가 겪었던 Atlanta Snowmageddon의 모습이 Virginia freeway에서 재현되고 있었던 것이다. 상황이 거의 비슷한 것이, 처음에는 비가 오다가 얼어 붇기 시작하고 눈이 쌓이고… 온 밤을 꼼짝 못하고 갇힌 셈이다. 거의 우리가 당했던 것과 같았다. 올해 이곳은 과연 어떤 겨울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인지… 큰 놀람만 없다면 눈이 오는 것, 나는 기다리고 있다.

영적 독서회, 영성 독서회, 봉사자 성경공부반, 어떤 것이 맞는 명칭인가?  정식 명칭은 (주보): ‘본당 공동체 봉사자들을 위한 성서 영성 독서회‘다.  오늘로서 우리는 3번째 이곳에서 ‘공부’, 사실은 신부님의 주해, 강해를 들었다고 할까. 이제까지는 사정상 방관자 입장으로 대했지만 교재를 사고 독서회 카톡방까지 들어가니까 생각과 자세가 달라진다. 독서회를 관리하는 이크리스티나 자매가 생각보다 아주 열성적으로 일을 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한때 연숙과 문제가 있었던 이 자매, 긴 시간을 통해서 보니 아주 성실한 봉사자 역할을 잘 하는 것을 알게 되고, 오늘은 연숙이 조차 그런 호감을 밝힌다. 그래…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복잡한 얼굴을 가지고 있으니까…

나에게 이 독서반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현재 나는 이곳에 은근히 기대를 하고 있다. 나의 성서를 공부하는 차원과 강도를 높이고 싶은 것이다. 나의 주 관심을 이곳으로 조금씩 넓히고 싶은 것이다. 현재 나의 주 관심 영역에 이것이 제자리를 잡게 하고 싶고, 또한 더 알고 싶다. 지식으로 보다는 신비적인 대상으로… 공부하고 싶다. 이런 것, 이 독서반이 어떤 역할을 할 지는 나에게 달렸을지도 모른다.

Warm & Rainy Epiphany

오늘은 Epiphany, 주님공현대축일, 날씨가 조금은 예외적, 아니 가관이라고 할까… 어떻게 연말 연시가 거의 봄보다 따뜻하단 말인가? 게다가 이제는 ‘열대성’ 느낌의 줄기차게 내리는 비… 하지만 오늘부터는 급강하, 새벽에는 snow flurry 의 가능성도 있으니… 그래, 이것도 정상인 거야… 세상은 이렇게 변하는 거야… 내일 나라니가 직장일을 하러 온다고 하는데 조금 신경이 쓰이긴 하지만 반가운 마음도 적지 않아서 문제가 없을 것이다…

정말 오랜만에 성당엘 간다. 무척 오랜 시간이 흐른듯하니… 그제 car battery가 ‘잠깐 죽었던 것’이 조금 신경이 쓰이지만, 그래 좋은 쪽으로 생각하자, 편안한 심정으로 대처를 하면 되는 거야…

12월 21일 화요일 봉사자 성경공부와 정오미사 연숙의 판공성사, 그날 이후 처음으로 그러니까 12일만에 순교자 성당엘 다녀왔다.  ‘겨우’ 12일인가, 아니면 너무 오랜만인가… 종잡을 수가 없구나. 하기야 성탄, 새해까지 의무대축일을 모두 집에서 보냈고, 게다가 가족적인 코로나 비상, 자가격리까지 겹쳤으니 오랜 세월인 듯 느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오늘 주님공현대축일 미사참례를 시작으로 새로운 각오로 2022년을 시작하게 되어서 감사할 따름이다.

오늘은 밤새 내린 비, 어두운 하늘에 내리는 가랑비 등등의 여운으로 성당은 조용하게만 느껴졌고 신부님도 ‘오늘 같은 궂은 날, 1월 2일에 미사 참례한 신자들’을 특별히 언급하신다. 영성체 할 때보니 고정멤버들은 거의 다 눈에 뜨인다. 역시 그들이 미사의 분위기를 이끌고 있는지도 모른다. 레지오 옆자리 동지 김아가다 자매와 반갑게 새해인사를 했고 전스테파노 형제는 parking lot에서 신년인사를 나누었다. 이런 것들은 주일 하루를 지탱하는 에너지를 공급한다. 하지만 반대로 일요일 고정멤버, 아가다 자매 모녀가 안 보였다. 기침으로 올 수가 없었다고 안나 자매와 연락이 되었다. 일요일 아침의 즐거운 시간은 반으로 줄었고, 나중에 들은 아가다 자매의 건강(정신)상태로 무거운 기분이 되었다. 그 동안 의심스러웠던 것, 치매, 조금씩 심해지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진다.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대처를 하는 것이냐..그것인데…  장기적 대책은 아직 무리인 듯하고, 그때 그때 상황에 대처하는 수 밖에 도리가 있을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도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기도, 기도, 기도는 물론이고… 아~ 시간과 세월의 횡포여~~

모처럼 ‘Catholic Sunday’ 오후의 편안하고 평화스러운 분위기를 맛본다. 왜 그럴까? 왜 주일미사 후 귀가해서 나의 보금자리 desk 에 발을 올려놓고 ‘무상의 느낌’을 맛보는 순간 순간… 이것이 나의 생명의 샘을 느끼게 한다. 이런 순간들을 더 많이 경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최소한 오늘의 나머지는 이런 순간들의 연속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특히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까지의 한국 TV drama를 ‘무심하게’ 보는 시간, 나는 너무 좋다. 무언가 ‘공부하는 각오로’ 그 당시의 고국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 너무나 좋다. 목표는 그 이후로 조금씩 조금씩 접근하는 것… 하지만 나는 그렇게 편안하지 않다. 나의 세대에서 점점 멀어지는 모습들이 불편한가?

결국 아가다 자매도 코로나에 걸렸다고 연락이 왔다. 그러면 안나 자매나 그 집 식구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이제는 피할 도리가 없는 것인가? 증상이 별로라서 큰 걱정은 안 하지만.. 누가 알랴? 그저 조심해야지…

Happy Tiger New Year, 2022!

올해가 호랑이 해라는 사실을 카톡으로 날라오는 각종 새해인사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임인壬寅년이라고 한다. 오래 전에는 어느 정도 흥미와 추억으로 이런 것들을 보았지만 그것조차 희미해지는 듯하니.. 나이인가 지리적 문화적 차이인가… 오래 전의 얼어붙은 흰색의 서울, 새해의 모습조차 가물거린다. 하지만 눈물겹게 그리운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어제 밤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12시까지 둘이서 ‘청승맞게’ Time Square의 3-2-1 Happy New Year! 를 기다리고 정시에 Champaign 터뜨렸다. 이것에 도대체 몇 년째인가? 아이들이 집에 살 때 나는 이런 ‘짓’을 하지 않았기에 아이들의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이번에는 병마개를 열기 전에 조금 흔들렸는지 완전히 폭포수, 폭우처럼 나의 머리위로 쏟아져 Happy New Year를 외칠 시간을 잊고 말았다. 이런 것도 추억이 될 수도 있겠지…

10시면 잠자리에 드는 습관 탓인지 오늘은 7시가 훨씬 지나서야 묵직한 기분으로 간신히 일어났다. 날씨는 완전히 봄을 연상시키는 희한한 것, 연숙이는 각종 화초들이 모조리 올라온다고 아우성, 그것은 불쌍하다는 뜻일 거다. 조금 있으면 모조리 얼게 될 것이라는 냉혹한 자연의 섭리를 말하는 것. 매년 매년 그렇게 똑같은 자연관찰을 하는 그녀를 나는 계속 비웃어 주는데… 유머러스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우거지 상으로~ 조금 웃으며 농담처럼 받으면 안 되는 것일까? 그것이 그렇게도 힘들단 말인가?

뒤끝이 묵직~하고 심지어 괴로운 시간을 어제 저녁부터 새해를 맞이할 때까지 계속 보낸다. 이제야 깨닫게 되는 것, 아하~ 치질기가 발동했구나~ 너무나 오랜만에 겪는 것이라 잊고 살았나? 그제 변비로 인해서 고생 한 것이 그대로~~ 이렇게 이어지는구나… 그런데 갑자기 왜 변비가 되었을까? 이렇게 냄새 나는 화제는 싫어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렇게 피할 것도 아닌 솔직한 인간상이 아닐까?

아~ 새해의 고민, 달력이 없다~ 웃긴다. 어떤 해는 너무나 많아서 귀찮았는데, 어떻게 올해는 하나도? 벽 달력은 장식용에 가까우니 문제가 없는데 탁상용은 문제다. 1월 달 것은 print해 놓은 것을 쓰면 되지만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Holy Family CC에서 주는 ‘간단한 Catholic Calendar’그것이 나는 필요한데… 과연 우리는 그곳으로 불원간 복귀를 할 수 있을까?

치질기를 핑계로 오늘 하루의 요리 전부는 연숙이 하게 되었다. 덕분에 아침을 편하게 푸짐히 먹을 수는 있지만 역시 몸에 고통의 그림자를 느낀다는 것은 괴롭다. 이것도 병이라면 병이 아닐까? 하지만 병에도 차이가 엄청 많으니… 나는 사실 그렇게 불평할 처지가 못 된다. 나와 비교도 안 되게 고생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얼마나 많은가? 이것은 응석 중의 응석인 것이다.

현재부터 소급해서 2000년대 후반[2007년] 까지 되돌아보는 나의 블로그  upgrade 작업[WEB 2.0],  기술적인 문제들은 모두 해결이 되었지만, 작업 자체가 기분이 별로 상쾌하지 않고 오히려 싫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복잡하다~ 왜 그런지… 피하고 싶기도 한 시대와 장소로 들어가는 것 같기도 하다. 아하~ 그렇다. 사실 잊고 싶은 작은 상처와 고민들이 몰려 있었던  10여 년의 세월 2000년 대… 나는 정리하기가 무서워서 덮어 두었던 때였다. 2000년 대… 9/11부터 어머님들의 타계, 내 자존감의 급작스런 변화, 경제적 압박.. 아이들의 변신과 변모… 냉담적 신앙의 인생무상… 그때를 나는 조금 다시 정리하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그때를 볼 수가 없을 듯하다. 어쩔 것인가? 그에 비하면 1990년대는 거의 천국에 가까울 정도다…아~ 어쩔 것인가?  나는 크게 오산을 하고 있었다. 과연 ‘엄청난’ 양의 이야기들이 그곳에 있었던 것… 처음에는 시각적[photo]인 것에 모든 정력을 쏟았지만 시간이 가면서 내용에 치중하게 되었다. 사진, 그림 등이 서서히 사라지고 ‘고통의 절규’다운 글들, 이것들은 시각적인 것이 아니고 머리로 생각하고 회고해야 하는 것들이라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하지만 결국 일단 끝이 났다. 도대체 며칠이나 걸렸나? 그 동안 각종 독서활동은  완전히 정지가 되고 연말 단상, 묵상, 기도 등에 좋지 않은 상처를 남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필요한 것, 그것이 아닐까? 앞으로 이런 기회는 자주 없을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