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짱의 편지”는 글자 그대로 ‘전’씨가 나에게 보내준 편지를 말한다. 여기서 전씨는 서울에 살고 있는 나의 처남을 말한다. 나이가 들면서 이런 종류의 ‘편지’들이 심심치 않게 인터넷을 덮고 있는 것을 느낀다. 우선 이런 종류의 ‘소식’들은 아주 자극적이고, 정치적 음모론(conspiracy theory)에 관한 것 들이다.
그리고 나이를 반영하듯이 제대로 검증이 안 된 건강뉴스들, 심지어는 아주 조잡한 음란성 기사들.. 사실, 이런 것들을 나는 아주 싫어한다. 내가 아는 사람들도 이런 것들에 심취를 한 듯 보여서 사실 내가 예외적인 사람이 아닌가 생각도 들 정도다. 내가 받는 것들은 대부분 정치적으로 아주 보수적인 그룹이 만든 것들이라서 나에게는 대부분 수긍이 가는 것들도 많다. 여기에 올린 것들은 그 중에서 조금은 main stream쪽에 가까운 ‘온건’한 것들이다. 이런 글들의 특징은 ‘저자 미상’이라는 사실이고, 이점에 유의를 해야 한다.
- 정의 구현 사제단, 당신들은 누구인가?
- 정진석 추기경 비난 元老신부 25명의 正體(정체)
- 김대중과 김정일의 밀담 공개
- 박정희와 노무현
- 노무현의 죄: 이 이상의 간첩죄는 없을 것이다
- 북한정권 끝내는 7大 方策(방책)
정의 구현 사제단, 당신들은 누구인가?
-세속 이데올로기에 빠져 눈에 보이는 게 없습니까?-
어느 자매님의 글
12월11일 조선일보에서 소위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 단”이라는 몇몇 신부들이 낸 성명서의 기사를 읽었습니다.
내 나이 70 평생, 이렇게 천주교회안에서 장상께 온갖 못된 말을 함부로 써서 대드는 짓을 본 일이 없습니다. 서울대주교 교구장이시며 추기경인 분을 향하여 성명서라는 작란을 하면서, “추기경의 궤변” 이라고 하지를 안 하나, “정부를 편드시는 남모르는 고충이라도 있는 것인지 여쭙고 싶다” 라고 하지를 않나, 갈 데까지 가고 있는 한국의 일부 사제들 꼴을 보게 되었습니다.
자기들이 항상 “궤변”에 익숙한 사람들은 당연히 남도 자기들처럼 궤변을 하는 것으로 압니다.자기들이 항상 “숨기고 음모”를 하는데 습관이 되어 있는 사람들은 의례히 남도 자기들처럼 남모르는 고충을 가진 줄로 짐작합니다.
보통의 정상적인 착한 마음을 가진 천주교 신자들은 정 추기경님의 말씀이 반듯하고 아주 타당한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정 추기경님이 남모르게 고충이 있다구요? 당신들 일부 신부들이 자주 이런 지저분한 모략을 애용하는 게 어제 오늘이 아니지만, 장상에게까지 그 짓을 하는군요. 천주교회를 어디까지 타락시키려고 이런 짓을 하는지 이제는 참기가 어려워집니다. “정의” “구현” 이라는 “말의 작란”을 그대로 두기에는 한국천주교의 성실한 신자들이 너무 부끄럽습니다.
어느 사회에서나, 농사짓는 사람은 농사짓는 자리에, 군인은 군인의 자리에, 기업하는 사람은 기업하는 자리에, 근로자는 근로자의 자리에, 공무원은 공무원 자리에, 학생은 공부하는 자리에, 정치인은 정치인의 자리에, 스님이나 목사나 사제는 해당 종교직에 각자 자리 잡고 열심히 성실하게 일을 해야 합니다. 이른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사제 각자에게 묻고자 합니다.
당신들은 누구이고, 지금 어디에 자리 잡고 있습니까? “북한 지배층을 희망적 내지 낙관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우는 정치인의 자리에 있고 싶습니까? 사제 서품을 받을 때 정치도 하겠다는 조건으로 서품을 받았나요? 당신들이 쓴 성명서라는 글은, 성직자다운 인품의 글이 아니고, 핏대를 돋우어 선전 선동을 하는 저급 정치인이나 하는 솜씨의 글입니다.한 신자로서 너무 헷갈립니다.
그 동안 점잔은 남자 평신도들이 못된 신부집단을 보고 못되었다고 말을 안 한 점이 있지요. 참다 참다 못한 나 같은 아녀자가 못된 사제들을 보고 못되었다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이른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 소속되어 행동하는 신부가 본당을 맡고 있는 성당의 신자들이 얼마나 성당에 가기 싫어하는지 알고나 있습니까?
나 같은 이른바 구교 신자들은 죽으나 사나 파공첨례 때는 성당에 가야 하므로, 할 수없이 다른 성당으로라도 가서 미사첨례를 합니다.
얼마 전 주일에 9시 미사에 갔더니 강론 시간에, 강론 대신 4대강 사업 반대하는 동영상을 보여 줍디다.그 동영상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도 아니었어요. 요리 조리 편집해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4대강사업이 진짜로 나쁜 것이구나 하고 느끼게 작란을 한 편집이었습니다.
우리 신자가 왜 주일 미사에 그런 동영상을 보아야 합니까? 분심이 들어 도중에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더니 본당신부가 다음 미사 시간에 신자가 불손하게 나갔다고 얼굴에 핏발을 세워가며 열을 올려 비난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최고위직 장상인 추기경에게는 막말을 하는 신부가 자기에게는 순종과 예의를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자기보다 훨씬 나이든 사람에게서 순종을 기대합니다.소위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라는 것은 교회법상 불법이 아닌가요?
주교회의의 인준을 받지 않고 “천주교”이름을 붙인 단체는 불법이에요. 알아들으시겠습니까? 교구를 넘나들며 사제단”을 만들라고 어느 장상이 승인하였나요? 이 점도 불법이에요.
소위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라는 것에 가입했다고 생각하는 신부들도 스스로 떳떳하지 않은 줄은 어느 정도 아는 모양입니다.
아주 막가는 몇 신부를 제외하고는, 누가 정식 회원인지 누가 탈퇴하였는지 숨기고 있습니다.이제는 누가 소위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 소속된 것을 인정하는지, 신자들이 밝혀서 확실히 알아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래야 저 신부가 왜 미사강론에서 북한 김정일 일당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궤변으로 변명해 주는지, 저 사제가
복음적인 강론을 듣고자 미사에 공손히 참석한 신자들에게 왜 황당한 미국 소고기만의 광우병 위험을 강조하는지 그 배경을 이해할 수 있을 것 아닙니까?
소위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 가담한 신부들 중에 서울대교구 관할에 속하는 사제들에게 묻겠습니다. 자기의 직속 장상에게 이런 짓을 하는 것은 교회법의 순명의 의무를 어기는 것 아닙니까?
그 정도에 그치지 않고 윗사람을 모략하는 범행을 저지르는 것 아닙니까?
다른 대교구 관할에 속하는 사제라 하드라도, 자기 소속 교구의 주교들과 함께 주교이시며, 한국교회의 가장 웃어른에게 이런 짓을 하면 마찬가지의 범행입니다.
한국천주교회 신자들에게 잊지 못할 악행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정진석 추기경 비난 元老신부 25명의 正體(정체)
12월13일 이른바 천주교 元老(원로)신부 25명이 정진석 추기경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해 천주교 4대강 內訌(내홍)에 가세했다.
이들 25명의 신부는 12월13일 성명을 통해 “우선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발표한 성명서의 취지에 지지와 동감을 표하고자 한다” 며 “부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해 줄기차게 헌신해온 이 젊은 사제들의 충정과 호소에 귀를 기울여 주시기 바란다”며 “4대강사업 중단”을 촉구했다.
이어 “용산참사의 비극이나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불안에는 눈을 감고, 총리와 장관 같은 정치 권력자들에게만 환대의 문을 열어주는 차별과 불통은 불의한 세상과 이익을 나누는 크나큰 잘못”이라며 “정 추기경은 교회의 모든 지체들에게 용서를 구하셔야 한다(···) 용서를 구하고 용퇴의 결단으로 그 진정을 보여주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정진석 추기경은 8일 4대강 개발과 관련해 “(주교회의 3월 결정은) 4대강 개발을 반대한 것은 아니”라고 밝힌 뒤 북한의 연평도 포격과 천안함 폭침에 대해 “진리를 차단하고 자유가 없는 北(북)에 대해 비관적”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틀 뒤인 10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정구사)은 정 추기경을 비난하며 특히 “추기경이 대중의 흥분을 누그러뜨리지 않고 미움이나 부추기는 골수 반공주의자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으니 이는 교회의 불행”이라고 비난했었다.
정 추기경의 “용퇴”를 촉구한 25명의 신부는 정구사를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해 줄기차게 헌신해온 젊은 사제들”로 평가했지만 정구사의 실제 활동은 이와 다르다. 정구사는 주한미군철수·국가보안법철폐·연방제통일을 주장하며 북한의 人權참상은 외면하는 등 북한주민이 아닌 북한정권의 편에서 활동해온 단체이다.
이른바 원로신부 25명은 스스로 중립적 입장에 서 있는 것처럼 말했지만 이들 역시 국가보안법 철폐를 주장하는 등 운동권 출신이 많다.
복수의 언론 보도와 자료를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문정현·함세웅·김병상·황상근·안승길·곽동철·박승원·김영식·방상복·임문철·안충석·김택암·양홍 신부 등 절반 이상이 정구사 출신이기도 하다. 나머지 인물도 정구사 출신으로 언론에 나오지 않았을 뿐 실제 소속은 알 수 없다.
이른바 원로신부 25명 중에는 2003년 11월13일 만들어진 ‘송두율석방대책위’ 상임대표를 맡았던 함세웅 신부를 비롯해 2003년 10월23일 ‘송두율 교수 석방을 요구하는 시민사회 1000인 선언’ 등에 참여한 김병상·황상근·안승길·곽동철·연제식·김영식·문정현·김택암·안충석·양홍 신부 등 송두율 구명에 나섰던 이들도 많다. 송두율은 在獨친북인사로서 2003년 한국에 들어온 뒤 법원에서 북한의 對南공작원으로 확인돼 다시 독일로 돌아간 자이다.
이른바 원로신부 25명 중에는 2002년 7월18일 ‘한총련 합법적 활동 보장을 위한 종교인 1천인 선언’ 등에 참여한 문정현·함세웅·안승길·곽동철·김영식 신부 등 한총련 비호에 나섰던 이들도 많다. 한총련은 북한정권의 전위대 역할을 자처하다 이적단체로 판시돼 온 단체이다.
이밖에도 이른바 25명의 원로신부 중에는 ▲노무현 前대통령의 정신적 스승으로 불리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송기인 신부(2005년 11월~2007년 11월), ▲국가보안법 폐지 제주연대 공동대표로서 2007년 7월3일 ‘제주 군사기지 반대 범도민대책위원회’ 공동대표를 맡았던 임문철 신부, ▲2008년 11월24 정진석 추기경에게 항의하며 단식에 나섰던 방상복 신부, ▲2000년 7월17일 ‘민주화운동정신계승대전충남연대’ 준비위원장을 맡았던 김순호 신부 등 다양하다.
또 노무현 前대통령 자살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기획수사를 통해 盧 前대통령을 죽였다는 사실 역시 몇 백 년 동안 기억될 것(2009년 5월28일 서울 명동성당 추도미사. 김병상 신부)”, ▲“부엉이바위는 부활과 승천의 자리였다(2009년 5월28일 김해 봉해마을 위령미사 김영식 신부)”라고 발언한 신부나 ▲김대중 前대통령 사망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 시민추모위원회’ 고문을 맡은 인물(2009년 8월19일. 양홍 신부) 등이 있다.
선언을 주도한 함세웅 신부는 ▲송두율대책위 상임대표 이외에도 ▲親北단체인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이 단체는 2007년 9월 한국진보연대로 계승된다) 상임지도위원, ▲국보법폐지국민연대 고문 등을 맡았고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서 2004년 3월25일 송두율에게 제3회 안중근평화상을 주기도 했었다.
선언에 참가한 문정현 신부는 2000년 美공군 사격훈련장인 경기도 화성군 매향리사격장폐쇄를 주장하며 만들어진 ▲‘매향리美軍국제폭격장폐쇄汎국민대책위원회(매향리범대위)’ 상임대표, ▲2005년 평택범대위 상임대표, ▲전국민중연대(※이 단체는 2007년 9월 전국연합과 함께 한국진보연대로 계승된다) 고문. ▲국보법폐지국민연대 고문 등으로 참가했다.
25명 중 활동이 두드러진 신부들의 간략한 약력은 아래와 같다.
……………………………………………………..
※ 김병상 : 정의구현사제단(이하 정구사)
-2003년 10월23일 ‘송두율 교수 석방을 요구하는 시민사회 1000인 선언’ 참여
-2003년 11월13일 ‘송두율교수석방대책위’ 고문
-2004년 3월11일 ‘송두율 교수의 무죄 석방을 촉구하는 사회 원로·인사 선언’ 참여
-2004년 9월16일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는 각계 인사 공동선언’ 참여
-2008년 6월14일 ‘6.15공동선언, 10.4선언 이행 및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각계 인사 공동선언’참여
-2009년 5월28일 노무현 前대통령 자살 이후 서울 명동성당 추도미사 : 김병상 신부는 “예수를 처형한 장소에 로마가 경비병을 세웠듯이 노 전 대통령 분향소에 조문 온 시민들을 전경으로 둘러쌌다”며 “수구 기득권 세력의 공포를 보여주고 있다”고 강변했다. 金신부는 이어 “20억 명 크리스천들의 기도문에는 예수를 죽인 로마인 정치가가 나온다. 인류 역사가 끝날 때까지 그 이름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이명박 대통령이 기획수사를 통해 盧 前대통령을 죽였다는 사실 역시 몇 백 년 동안 기억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 황상근 : 정구사
-2003년 10월23일 ‘송두율 교수 석방을 요구하는 시민사회 1000인 선언’ 참여
-2004년 3월11일 ‘송두율 교수의 무죄 석방을 촉구하는 사회 원로·인사 선언’ 참여
-2004년 9월16일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는 각계 인사 공동선언’ 참여
※ 안승길 : 정구사
-2002년 7월18일 ‘한총련 합법적 활동 보장을 위한 종교인 1천인 선언’ 참여
-2002년 7월19일 ‘10기 한총련 의장 석방, 한총련 이적규정 철회·합법화를 위한 민주사회단체 지도자 1000인 선언’ 참여
-2002년 8월10일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을 비롯한, 모든 양심수를 석방하라/ 8.15 특별사면에 즈음한 각계 3000인 선언’ 참여
-2003년 4월8일 소위 ‘양심수와 정치수배전면해제를 촉구하는 사회원로·각계인사 기자회견’ 참여
-2003년 10월23일 ‘송두율 교수 석방을 요구하는 시민사회 1000인 선언’ 참여
-2004년 9월16일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는 각계 인사 공동선언’ 참여
※ 곽동철 : 정구사, 천주교 청주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 2002년 7월18일 ‘한총련 합법적 활동 보장을 위한 종교인 1천인 선언’ 참여
– 2004년 3월11일 ‘송두율 교수의 무죄 석방을 촉구하는 사회 원로·인사 선언’ 참여
※ 연제식
-2003년 10월23일 ‘송두율 교수 석방을 요구하는 시민사회 1000인 선언’ 참여
※ 송기인
– 2004년 9월16일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는 각계 인사 공동선언’ 참여
– 2005년 11월 ~ 2007년 11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
※ 박승원 : 정구사
– 1999년 2월8일 정구사 박승원, 문규현, 김병상, 김승훈, 함세웅 신부 등과 함께 청와대 만찬, ‘사제단의 제안과 대통령께 드리는 건의문’ 전달
※ 김영식 : 정구사
– 2002년 7월18일 ‘한총련 합법적 활동 보장을 위한 종교인 1천인 선언’ 참여
– 2002년 8월10일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을 비롯한, 모든 양심수를 석방하라/ 8.15 특별사면에 즈음한 각계 3000인 선언’ 참여
– 2003년 4월8일 소위 ‘양심수와 정치수배전면해제를 촉구하는 사회원로·각계인사 기자회견’ 참여
– 2004년 3월11일 ‘송두율 교수의 무죄 석방을 촉구하는 사회 원로·인사 선언’ 참여
– 2007년 10월17일 ‘국가보안법 폐지를 결의하는 각계 원로, 대표 인사 선언’ 참여
– 2008년 12월1일 ‘국가보안법 제정 60년 각계 선언’ 참여
– 2009년 5월28일 노무현 前대통령 자살 이후 김해 봉해마을 위령미사 : “부엉이바위는 부활과 승천의 자리였다”라고 발언
※ 문정현 : 정구사
– 민중연대 고문
– 국보법폐지국민연대 고문
– 2000년 매향리범대위 상임대표
– 2005년 평택범대위 상임대표
– 2002년 7월18일 ‘한총련 합법적 활동 보장을 위한 종교인 1천인 선언’ 참여
– 2002년 8월10일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을 비롯한, 모든 양심수를 석방하라/ 8.15 특별사면에 즈음한 각계 3000인 선언’ 참여
– 2003년 4월8일 소위 ‘양심수와 정치수배전면해제를 촉구하는 사회원로·각계인사 기자회견’ 참여
– 2004년 3월11일 ‘송두율 교수의 무죄 석방 촉구 사회 원로·인사 선언’ 참여
– 2004년 9월16일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는 각계 인사 공동선언’ 참여
– 2003년 10월23일 ‘송두율 교수 석방을 요구하는 시민사회 1000인 선언’ 참여
– 2007년 7월6일 ‘작전통제권 전면 환수 및 유엔사 해체 촉구 각계 인사 선언’ 참여
– 2008년 12월 1일 ‘국가보안법 제정 60년 각계 선언’ 참여
※ 임문철 : 정구사
– 국가보안법 폐지 제주연대 공동대표
–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제주대표
– 2007년 4월 제주 ‘평화염원·해군기지철회를 위한 평화백배실천 운동’ 주도
– 2007년 7월3일 ‘제주 군사기지 반대 범도민대책위원회’공동대표
– 2008년 6월14일 ‘6.15공동선언, 10.4선언 이행 및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각계 인사 공동선언’참여
※ 김순호
– 2000년 7월17일 ‘민주화운동정신계승대전충남연대’ 준비위원장
※ 김택암 : 정구사
– 2003년 10월23일 ‘송두율 교수 석방을 요구하는 시민사회 1000인 선언’ 참여
– 2003년 11월13일 ‘송두율교수석방대책위’ 고문
– 2004년 3월11일 ‘송두율 교수의 무죄 석방 촉구 사회 원로·인사 선언’ 참여
– 2004년 9월16일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는 각계 인사 공동선언’ 참여
※ 안충석 : 정구사
– 2003년 10월23일 ‘송두율 교수 석방을 요구하는 시민사회 1000인 선언’ 참여
– 2004년 3월11일 ‘송두율 교수 무죄 석방 촉구 사회 원로·인사 선언’ 참여
– 2004년 9월16일 ‘국가보안법 폐지 촉구 각계 인사 공동선언’ 참여
※ 양 홍 : 정구사
– 2003년 10월23일 ‘송두율 교수 석방 요구 시민사회 1000인 선언’ 참여
– 2004년 9월16일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는 각계 인사 공동선언’ 참여
– 2009년 8월19일 ‘김대중 전 대통령 시민추모위원회’ 고문
※ 함세웅 : 정구사
– 전국연합 상임지도위원
– 국보법폐지국민연대 고문
– 송두율대책위 상임대표
–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고문
–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 : 기념사업회는 2004년 3월25일 당시 송두율에 대해 제3회 안중근평화상 시상하며 “송두율 선생이 안중근 의사의 애국애족과 동북아시아의 진정한 평화정신을 체현하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밝혔다. 기념사업회는 또 “부디, 시대성숙에 힘입어서, 우리 민족문화와 사상의 한 횃불이자 민족의 갈림을 잇는 데 기여할 한 ‘진정한 접점’으로서 송두율 선생이 우리의 역사를 자유롭게 견인할 그 날이 하루속히 올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 2002년 7월18일 ‘한총련 합법적 활동 보장을 위한 종교인 1천인 선언’ 참여
– 2003년 10월23일 ‘송두율 교수 석방을 요구하는 시민사회 1000인 선언’ 참여
– 2004년 9월16일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는 각계 인사 공동선언’ 참여
– 2004년 3월11일 ‘송두율 교수 무죄 석방 촉구 사회 원로·인사 선언’ 참여
김대중과 김정일의 밀담 공개
일본에서 발간된 책 소개
“김정일 파멸의 날”(출판사: 일신보도. 저자: 미도 히로미찌).
김대중은 2000년 6월 13일 오전 10시 27분 평양 순안 공항에 도착했다. 김정일이 공항에 마중을 나왔다. 국가원수가 공항까지 영접을 나온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의장대 사열을 마치자 김대중은 김정일의 리무진 승용차의 오른쪽에 탔고, 김정일이 왼 쪽에 탔다..
미 CIA는 양 김의 차내 밀담 90분간의 내용을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포착하였다.그 주된 내용은 아래와 같다.
김정일은 김대중의 남로당 서류와 1967년부터 김일성이 죽을 때까지 30여 년간 김대중에게 제공한 자금원조에 관한 자료 등을 보여주면서
“이들 자금이 도움이 되었습니까?” 이렇게 말했다.
이에 김대중은 잔뜩 주눅이 들어 아래와 같은 말을 하였다.
- 생전의 김일성 수령님을 만나 뵙지 못해서 유감입니다.
- 박통시절 납치사건에 있어서 여러 모로 힘을 써 주셔서 오늘 날의 제가 있었습니다.
- 광주사태로 인해서 사형판결을 받았을 때에도 생명을 구해 주셨습니다.
- 수령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도 김 총 서기님과 협력하며 살고 싶습니다.
- 남북 평화협정을 조기에 체결하고 싶습니다.
- 국가보안법을 철폐시키고, 주한미군을 철수시켜, 민족을 자주적으로 통일하는데 매진하고 싶습니다
- 북조선에 경제재건을 위해서 의욕적으로 협력하겠습니다.
- 클린턴 미 대통령과 일본 총리를 조속히 평양에 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책의 내용과 김대중의 행위는 대체로 일치
위 책의 내용은 당시까지 김대중에 대해 의혹을 제기해오던 수많은 사람들의 정서와 대체적으로 일치했다. 그리고 차내밀담 이후 김대중이 보여준 행동들은 위 책의 내용들과 대체로 일치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희호는 책의 내용을 무슨 수로 부정할 것인가?
- 김대중은 평양에 가서 적장과 함께 6.15선언을 했으며 여기에서 김대중은 ‘낮은 단계의 연방제’에 합의했다. 이는 불법으로 인식돼 있다.
- 김대중은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앞으로 전쟁은 없다’고 선포했다. 적에 대한 긴장을 풀자는 말로 이는 국가통수권자가 절대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 김대중은 국민 몰래 4억 5천만 달러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적장에게 바쳤다.
- 북한 퍼 주기다. 정부-현대-김대중-민간방문자-이산가족들이 북에 퍼준 돈 모두 합치면 10조 이상이 될 것이라는 게 필자의 추측이다. 정부가 최근 집계한 김대중·노무현정부 10년동안 대북지원 액수는 총 69억달러라한다.
현금이 29억 달러, 현물이 40억 달러. 정보 당국에서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 초기부터 지금까지 쏟아 부은 자금이 26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한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은 북에 퍼준 돈과 물자가 핵무기 개발에 도움을 주었다는 평가를 내렸다. - 국정원의 핵심 대북수사관 581명을 집단 학살한 데 이어 기무사 대공요원 900명, 경찰대공요원 2, 500명, 검찰 대공요원 40명, 모두 4, 000 여명의 전문가들이 일거에 학살했다.
- UN 교전규칙을 적에게 유리하고 우군에게 불리하도록 수정하고, 이로 인해 당해 전사한 6.29 전사자들을 적대시했다.
- 해외에 다니며 김정일을 도와주자 했고, 북한은 절대로 핵무기를 만들지 않는다, 핵무기를 만들면 내가 책임진다며 북한의 핵개발을 감싸주었다. “북은 핵을 개발한 적도 없고, 개발할 능력도 없다. 그래서 우리의 대북지원금이 핵개발로 악용된다는 얘기는 터무니없는 유언비어다. 북이 핵을 개발했다거나 개발하고 있다는 거짓유언비어를 퍼트리지 마라. (만약 북에 핵이 개발된다면) 내가 책임지겠다.”(2001 아시아투데이)
- 전교조와 민노총을 합법화하고, 4.3사태, 동의대 사태 등 반국가 폭동을 민주화투사로 추대하여 보상까지 해주었다.
- NLL이 너무 넓어 관리가 어려우니 북한에 떼 주는 것이 좋겠다.
나열하자면 수도 없지만 이 몇 가지 사실만을 보아도 김대중은 김정일에 충성한 것이다. 따라서 김대중이 김일성에 충성하겠다는 요지로 쓰인 일본 책을 인용하여 역사적인 인물인 김대중을 평가하는데 사용한 것을 놓고 명예훼손 행위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구나 이희호는 같은 제목 내에 들어 있는 “김대중과 김일성이 야합하여 광주사태를 일으켰다”는 탈북자들의 증언들에 대해서는 고소를 하지 않은 모양이다. 명예훼손이라면 이처럼 지독한 명예훼손은 없을 것이다. 일본 서적의 내용은 김대중이 적장과 동승했던 시각 이후에 벌인 김대중의 행동들과 대체로 일치한다. 김대중의 행동을 보고 이를 패러디한다면 아마도 일본저자와 같은 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저자의 표현은 미CIA를 인용하였지만 사실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책임을 져야 한다면 그가 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책이 널리 읽혔는데도 김대중 쪽 책이 발간된 2004년 후 책임을 묻지 않았다. 일본저자의 표현은 김대중이 벌인 이후의 행위를 정확히 패러디 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저자는 김대중에 대해 아주 잘 파악하고 있는 반공 전문가라는 생각이 든다.
일본 책의 결론대로 김대중이 김정일과 협력해서 살았던 사람임에는 틀림없지 않은가? 5.18단체들이 덤비더니 이제는 이희호까지 덤비는 이유가 새삼 궁금해진다.
박정희와 노무현
청와대 정문을 통해 ‘100만 달러’가 대통령 측에 전달된 전례는 40여 년 전에도 한 번 있었다. 월남전 무렵 박정희 대통령 시절이었다. 돈을 들고 온 쪽은 당시 M16 자동소총 수출업체였던 맥도날드 더글라스 회사 중역, 돈을 받은 쪽은 박 전 대통령이었다. 데이빗 심프슨, 그가 회고한 100만 달러가 얽힌 박 대통령과의 첫 만남은 이랬다.
“…대통령 비서관을 따라 집무실로 들어갔다. 아무리 가난한 나라이지만 그의 행색은 한 국가의 대통령 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모습이었다.그러나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을 보는 순간 지금까지의 그의 허름한 모습이순식간에 뇌리에서 사라짐을 느낄 수 있었다.
‘각하! 맥도날드사에서 오신 데이빗 심프슨 씨입니다.’
비서가 나를 소개하자 대통령은‘손님이 오셨는데 잠깐이라도 에어컨을 트는 게 어떻겠나’고 말을 꺼냈다.
[주: 박 대통령은 평소에도 집무실과 거실에 부채와 파리채를 두고 에어컨은 끄고 지냈다}
‘각하!이번에 한국이 저희 M16 소총의 수입을 결정해 주신 데 대해 감사 드리고 국방에 도움이 되시기 바랍니다.그리고 이것은 저희 회사가 드리는 작은 성의…’라는 인사말과 함께 준비해온 수표가 든 봉투를 대통령 앞에 내밀었다.
‘흠, 100만 달러라. 내 봉급으로는 3代(대)를 일해도 못 만져볼 큰 돈이구려.’
대통령의 얼굴에 웃음기가 돌았다.
순간 나는 그 역시 내가 (무기 구매 사례비 전달로) 만나본 다른 여러 나라의 국가 지도자들과 다를 것이 없는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나는 다시 한 번
‘각하! 이 돈은 저희 회사에서 보이는 관례적인 성의입니다.그러니 부디…’
그때 잠시 눈을 감고 있던 그가 나에게 말했다.
‘여보시오 한 가지만 물읍시다.’
‘네. 각하!’
‘이 돈 정말 날 주는 거요?’
‘네. 물론입니다. 각하!’
‘그러면 조건이 있소.’
‘네. 말씀하십시오.’
대통령은 봉투를 다시 내 쪽으로 내밀며 이렇게 말했다.
‘자, 이제 이 돈 100만 달러는 내 돈이요. 내 돈이니까 내 돈으로 당신 회사와 거래를 하고 싶소. 당장 이 돈만큼 총을 더 가져오시오. 당신이 준 100만 달러는 사실은 내 돈도 당신 돈도 아니요.이 돈은 지금 내 형제, 내 자식들이 천리타향(독일광부)에서 그리고 멀리 월남 땅에서 피 흘리고 땀 흘려 바꾼 돈이요. 내 배 채우는 데는 안 쓸 거요.’
‘알겠습니다.각하! 반드시 100만 달러어치의 소총을 더 보내 드리겠습니다.’
나는 그의 얼굴에서 한 나라의 대통령이 아닌 아버지(國父=국부)의 모습을 보았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 또 한 번 청와대 정문을 통해 같은 액수인 100만 달러를 받았다는 직전 대통령 家의 가면이 속속 벗겨지면서 온 나라가 시끄럽다. 똑같은 100만 달러를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직책의 인물 들이 받았는데 어쩌면이렇게도 감동’과 ‘치사스러움’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것일까? 똑같이 돈을 주고도 한 외국인은 애국심과 청렴,백성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찬 지도자의 모습에 고개를 숙였고 박연차는 애국심도, 백성 사랑도 없어 보이는 지도자라 여겼을 것이기에 주저 없이 폭로했다.
감동이 준 존경’과 ‘경멸이 낳은 폭로’, 그 차이다.
노무현家와 박 전 대통령의 차이는 또 있다.
집안의 빚은 설사 그 빚이 아내가 따로 진 빚이라 해도 남편이 자신의 재산을 몽땅 팔아서라도 갚아 주는 것이 진정한 남자의 부부 義(의)다.
빚졌으면 봉하 저택이라도 팔면 될 것이지 되레 돈 준 사람이 딴말 한다고 시비나 걸고 외간 남자에게 빚 얻게 둔 뒤 ‘아내가 돈 받았으니 난 모른다’고 말하는 남자는 ‘참 매력 없는 남편’이다.
초급장교 시절 상관이 쌀을 보태주던 가난 속에도 일기장엔 늘 육영수 여사를 위한 詩(시)를 썼던 박정희와의 인간적 차이다.
심프슨 씨의 100만 달러 사연을 회고한 것은핵 개발자금을 수兆(조) 원씩 퍼주고,수백만 달러 뇌물 의혹을 받는 전직 대통령들은 무슨도서관에다 호화로운 私邸(사저)까지 짓게 두면서, 여름날 파리채를 들고 다닌 애국자 대통령에게는 기념관 하나도 못 짓게 휘저었던 10년 좌파 세력에게 피눈물로 참회하란 뜻에서다.
노무현의 죄: 이 이상의 간첩죄는 없을 것이다.
아래 자료는 많은 시간에 걸쳐 수집한 자료다.
대한민국 건국 부정
- 2003.2.25. 취임사에서 대한민국 건국사에 대해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했던 시대”라고 발언했다.
- 2003년 3.1절 기념사에서 “우리의 근·현대사는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하는 굴절을 겪었다”고 발언했다.
- 2004.9.5, 광주비엔날레 개막식에서 노무현은 애국가와 묵념을 생략했다.
법 무시
- 1988년 12월26일 현대중공업파업현장: “법은 정당할 때 지키고 정당하지 않을 때는 지키지 않아야 한다”고 발언
- 공산당 지지, 민족의 원수를 찬양
- 2003. 6.13. 일본 발언: “나는 한국에서 공산당을 합법화하는 최초의 대통령이 될 것이다”
- 2003. 7.10. 중국 발언: “내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모택동 주석이다”
반 대한민국-반 연합국
- LA발언: 2004.11.12. “북한이 ‘핵은 외부 위협에 대한 억제수단’이라고 한 것은 일리가 있는 측면이 있다.”(미국 로스앤젤레스 국제문제협의회(WAC)에서)
- 몽골발언: 2006.5.9일, “북한에 많은 양보를 하려 한다. 제도적 물질적 지원을 조건 없이 하려 한다.”(몽골 울란바토르,)
- 청와대 망언: 2006.8.18일, “미국의 대북 군사행동에 반대한다. UN안보리를 통한 제재에도 반대한다. 북한에 경제지원을 보다 더 해주고, 체제안전 약속해야 한다”
4.3사건 역사 뒤집기
- 2003.3..21(금) 고건 총리와 박원순 주도로 4.3사태에 대한 역사를 뒤집었다. 같은 해 10월 31일 노무현은 제주도민에게 4.3 사건에 대해 정부를 대표해서 공식 사과했다
이념 부적격자 국정원 수뇌부에 임명
- 2003년4월, 국회가 친북성향 및 이념편향자라고 규정하고, 임명에 반대한 고영구와 서동만을 각 국정원 원장과 기조실장에 임명했다.
북한을 국가로 인정
- 2004.2.24. “통일수도는 개성이 좋다. 남북지방정부를 전제로 한 국가연합이 바람직하다”고 발언했다. 이는 헌법위반이다. 북한을 대화의 상대로 인정할 수는 있지만 국가로 승인하겠다는 말은 헌법을 고친 후에나 해야 한다. 이는 북한을 주권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헌법3조의 영토조항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국가보안법폐지
- “국보법은 정권을 반대하는사람을 탄압하는 법으로 많이 쓰여왔다. 인권존중의 시대로 간다고 하면 그 낡은 유물은 폐기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칼집에 넣어서 박물관으로 보내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국보법을 없애야 대한민국이 드디어 문명의 국가로 간다고 말할 수 있다. 국가보안법은 한국의 부끄러운 역사의 일부분이고 지금은 쓸 수도 없는 독재시대에 있던 낡은 유물이다.” (2004년9월 5일 MBC 발언)
사회계급의 전복(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 만들고 재벌해체하자)
- 88년 7월 8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노무현은 이런 발언을 했다. “만일 노동자.농민.도시 서민의 고통이 돈과 힘을 한 손에 모아 쥔 소수 특권 계급의 착취와 억압에 기인된 것이라면 그들은 착취와 억압에서 해방돼야 합니다…지금 우리 경제는 근본적인 개혁 없이는 경제 민주화가 불가능한 상태에 있다고 보지 않으십니까.…재벌은 해체돼야 합니다. 재벌 총수와 그 일족이 독점하고 있는 주식을 정부가 매수해 노동자에게 분배합시다. 매수와 분배 모두 20년 거치 20년 분할 상환 정도면 노동자들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집 없는 서민들, 중소상공인, 농민들을 위해 부채 탕감과 아울러 토지도 모두 같은 방법으로…
이적단체 한총련 합법화 지시
- 2003년 3월18일 노무현은 법무부에 이적단체인 한총련 합법화 방안 지시. “한총련이 어떤 사상에 경도되어 철없는 공격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다.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나는 안도감을 확인했다. 느낌이 좋았다”고 말함으로써 한총련 수배자에 대한 선처를 암시하고 합법화시키려 했다.
재외 빨치산 대거 입국
- 2003.9.5. 해외 민주인사 명예회복과 귀국 보장을 위한 범국민추진위원회(범추위)와 법무부 고위 관계자 발표: “정부는 범추위에서 신청한 귀국 대상 인사 50명 가운데 36명의 조건 없는 귀국을 허가했다.” 70-80년대 일본 유럽 미주지역에서 친북 활동을 했다는 등의 이유로 귀국하지 못했던 인사 36명의 귀국이 한꺼번에 허용된 것은 국정원과 대통령의 개입 없이는 불 가능한 사안이다. 유럽에서 4명,일본 한국민족통일운동연합(한통련) 회원 33명이 9월19일 대거 입국했다. 반국가단체인 한통련 의장 곽동의는 심장질환으로 포기했다.
빨치산의 상징 강정구 보호
- 2005.12.23.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가 강정구를 불구속 기소했다. 강정구는2001년 만경대 방명록(“만경대 정신을 이어받자”) 사건 이외에 계간지와 인터넷매체 등에 ‘6·25전쟁은 통일전쟁’ ‘우리나라는 미국의 신식민지’ ‘맥아더는 전쟁광’ 등 북한의 선전·선동에 동조하는 글을 기고한 혐의였다. 2002년 9월 계간지인 ‘진보평론’ 가을호와 자신의 홈페이지에 서해교전과 관련해 ‘북방한계선은 북한의 영해에 불법적으로 설정된 것이며, 서해교전은 한국측에서 밀어붙이기 식 선제공격을 가해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2달 전인 10월, 구속의견을 올렸지만,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불구속 수사’ 지휘권을 사상 처음 발동해 김종빈 당시 검찰총장이 항명 성 사퇴를 했다. 그 이전 청와대는 검찰에 불구속 수사 의견을 전달했다.
강정구와 같은 노선: 6.25는 내전이다
- 2006.11.20, 노무현은 APEC 참석차 베트남에 갔다가 캄보디아에 들려 동포 간담회에서 이런 발언을 했다. “우리가 옛날엔 식민 지배를 받고 내전도 치르고 시끄럽게 살아 왔는데 지금은 여러 나라를 돕고 있다.” 6·25전쟁을 ‘내전’으! 로 표현한 것이다. 이는 강정구 의 주장과 100% 일치하고 것이다.
애국단체의 인공기 소각에 대해 북에 사과
- 2003년8월20일, 노무현은 우익단체가 인공기를 소각한 것에 대해 북한에 공식 사과했다. 인공기를 소각한 사람은 경범죄로 5만원의 벌금을 받았다. 대통령 따로법 따로인 것이다
반미감정 노출
- 2004.3.1용산기지를 가리켜 “간섭과 침략의 상징”이라고 발언. 이는 미군을 침략군으로 간주한 것으로서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대한 위반행위이며 국가 안보에 핵심 능력인 주한미군을 적으로 규정한 것으로 대한민국의 안보를 파괴하는 행위였다.
청와대에 인공분위기 만들기
- 노무현 집무실에 김정일 화(花)(2004년1월호 월간조선)
- 2004.5.29일 노무현이 열우당 국회의원 당선자들을 축하하기 위해 마련해준 환영 만찬회장에서 붉은 운동가 “님을 위한 행진곡” 합창
1급 간첩 송두율 지지 비호
- 2003.9.24,부산 울산 경남지역 언론인과의 합동인터뷰에서: “국민들이 보는 정서가 있으니까 송씨를 청와대에 초청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게 참모들의 결정이었다. 제가 지금도 생각하는 원론은 ‘잘못은 잘못이고, 또 다른 일로 대화할 일이 있고, 또 우리가 치하할 일이 있으면 초청해도 괜찮다는 것이다” 초청하! 고는 싶지만 국민정서 때문에 못한다는 뜻이다.“
북한은 주적이 아니다
- 2004년6월19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이종석 사무처장, 육군사관학교에서 개최된 ‘2004년 무궁화회의’ 초청강연에서 각군 장성 70∼80명을 상대로 안보관련 현안을 설명하면서 “병사들이 적개심을 갖고 철책선 근무에 임하는 것보다는 조국에 대한 자긍심과 애정, 높은 시민의식을 갖고 근무에 임하는 것이 보다 강한 군대를 만드는 것 아니겠느냐”고 언급하여 장성들의 분노를 야기했다.
- 2005년 2월 발간된 국방백서에서 ‘주적’개념을 삭제했다.
한국군 비하
- 2006.12.21 “젊은이들 군대에 가서 몇 년씩 썩히지 말고 그 동안에 열심히 활동하고 장가를 일찍 보내야 아이를 일찍 낳을 것 아니냐. 장가 빨리 보내는 정책, 지금 그 계획을 세우고 있다” (복무연한 대폭감축)
안보의 제1지주인 한민연합사 해체
- 2006.12.21일,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회 발언“한국군 방위력이 얼마만큼 큰가. 정직하게 말하자. 근 20년간 북한보다 수십 배가 넘는 국방비를 쓰고 있다. 그래도 한국 국방력이 북한보다 약하다면 1970년대를 어떻게 견뎌 왔겠느냐. 그 많은 돈을 우리 군인들이 다 떡 사 먹었느냐.”
- “옛날 국방장관들이 나와서 떠드는데 (그렇다면) 그 사람들 직무유기한 것 아닌가. 그 많은 돈을 쓰고도 북한보다 약하다면 직? ダ?銖?거다. 정직하게 보는 관점에서 국방력을 비교하면 이제 (주한미군) 2사단 뒤로 나와도 괜찮다.”
- “우리가 전시작전통제권을 (단독행사)할만한 실력이 없느냐. 대한민국 군대들 지금까지 뭐 했나. 나도 군대 갔다 왔고, 예비군 훈련까지 받았는데….심심하면 사람들한테 세금 내라 하고, 불러다가 ‘뺑뺑이’ 돌리고 훈련시키고 했는데…, 그 위의 사람들은 뭐 했나. 자기 나라, 자기 군대의 작전 통제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군대를 만들어 놓고 나 국방장관이오, 나 참모총장이오, 그렇게 별 달고 거들먹거리고 말았다는 그런 것이냐. 그래서 (전시작전권을) 회수하면 안 된다고 줄줄이 몰려가서 성명 내고, 자기들이 직무유기(한 것) 아닌가.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전시작전권 돌려받으면 우리 한국군들 잘한다. 경제도 잘하고, 문화도 영화도 잘하고 한국 사람들이 외국 나가 보니까 못하는 게 없는데 왜 전시작전권만 못한다는 건가. “노무현 하는 것 반대하면 정의라는 것 아니겠느냐”
노무현의 심부름꾼 윤광웅의 발언
- 2006.10.20(금), 워싱턴에서 열린 제38차 한미 안보협의회(SCM)에서 전작권전환(2009.10.15∼2012. 3.15) 합의. 전시작통권 이전과 함께 한미연합사는 해체된다.
- 2006.12.31. 윤광웅의 말
- “연합체제는 주권 침해다.”
- “연합사는 북한과의 평화협정이나 군축을 위해 해체할 필요가 있다”
- “연합체제는 자주국방이 아니다.”
정권 전체가 붉은 색 북한 퍼주기
- 2007.2.15. 로마에서: “북한이 달라는 대로 다 퍼주어도 남는 장사다.”
- 노무현 정부가 북에 퍼준 돈은 5조6,777억 원이다. 참고로 김대중 정부는 2조7,028억 원을 보냈고 김대중은 여기에 더해 김정일 비자금으로 현대를 통해 9천억 원을 더 보냈다.(2008.9.30. 동아)
- 퇴임이 몇 개월도 남지 않은 시점인 2007년10월2일 방북 하여 부랴부랴 정상회담을 열어 국민과 국회의 동의 없이 10.4공동성명을 통해 14조3천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국가정보 통째로 무단 방출
청와대 등 정권 요부에 좌익심기
- 386주사파 출신 강길모 (프르존뉴스 사장)씨는 386주사파를 이렇게 열거했다.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노무현 대통령의 최 측근인 안희정이다. 그 사람이 최근 대통령의 대북밀사로 북측과 접촉했다. 안희정 말고도 노무현 주변에는 주사파출신들이 득실득실하다. 대통령과 영부인을 지근거리에서 모시는 제1부속실장과 제2부속실장, 청와대 대변인, 부대변인, 주요 정책부서 행정관들이 과거 주사파 출신들이다. 청와대에는 내가 직접 가르친 사람들도 여럿 있다. 반미청년회에 속했던 사람들도 많이 있다. 이들이 바로 노무현 권력의 코어(핵심)집단이다.
- 노무현 정권의 이른바 ‘코드’라고 하는 것은 바로 주사파 코드라고 보면 된다 노무현 권력은 당초 386 운동권 권력이었다 대한민국 의 통치권력은 주사파 권력이며, 대한민국은 적화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논리적 비약은 아니라 본다.
방송의 좌익심기
- 정연주: 2003년 4월, KBS 사장으로 취임한 이래 낙하산 논란과 두 아들의 병역기피 의혹을 둘러싼 말 바꾸기, 좌로 편향된 방송, 적자경영 등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북한정권 끝내는 7大 方策(방책)
교회를 진지(陣地)로 만들자. 남한서 열리는 기독교 집회에 북한인권에 대한 무관심과 이기심을 회개하는 외침이 나와야 한다.
金成昱
자유통일을 도식화하면 미국의 힘을 빌려 중국의 간섭을 배제하면서 북한의 정권(政權)을 해체하고 주민(住民)을 품는 것이다. 정권이 아니라 주민을 살리는 노력을 하는 동안 자유·정보·돈도 흘러가 대량탈북·정보확산·시장확대를 부르고 이 뇌관은 조선로동당의 붕괴를 초래할 것이다.
북한의 미래는 북한 주민 스스로 결정할 것이다. 그러나 로동당이 무너진 뒤 북한의 미래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보장된 자유·인권·민주주의·법치주의라는 보편적 체제가 될 수밖에 없다. 북한의 체제가 남한의 체제와 같아지는 날, 남북의 이념(理念)이 하나가 되는 날 통일은 이루어진다. 분단 자체가 민족이 다름이 아니요 이념(理念)이 달랐기 때문이다.
북한정권을 평화적으로 해체시키는 것은 통일정책의 대전제이다. 이것은 의외로 간단하다. 북한은 ‘폐쇄(閉鎖)’를 통해 거짓에 기초한 체제를 만들고 살인(殺人), 폭력(暴力), 공포(恐怖)의 도구를 써왔다. 북한의 폐쇄를 뚫고 사실(事實), 진실(眞實), 진리(眞理)를 흘려보내면 북한정권은 버티지 못한다. 북한 인권에 목소리를 높이고, 탈북자 구출과 지하교회 지원에 힘을 쏟는 노력 모두 폐쇄를 뚫기 위함이다. 결국 자유통일을 위해 북한정권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국가의지는 북한 체제보장이 아닌 정권교체(Regime Change)로 과감히 바꿔야 한다. 표면적 남북한 관계는 유연하게 추진하더라도 김정일 정권을 끝내는 대북(對北)작전(Operation)을 펴가는 것이다. 대북작전(Operation)은 이른바 전쟁(戰爭)이 아닌 공작(工作), 즉 심리전(心理戰)에 의한 통일이다. 이 과정에서 급변사태(急變事態)가 발생해도 통제된 내파(內波, controlled inplosion)로 유도하면 된다.
흔히 정권교체(Regime Change)를 전쟁과 동일시하는 논리가 있다. 이는 오퍼레이션(Operation) 개념이 없는 탓이다. 국방부(國防部)가 적의 남침을 저지하는 방패라면 국정원(國情院)은 적의 사령부를 마비시키는 창이다. 국정원이 정권이 아닌 국가의 파수꾼이 돼 대북기능을 정상화한 뒤 북한의 급소를 친다면 평화적인 자유통일이 가능하다. 대한민국은 사실·진실·진리, 즉 자유를 북한에 전하는 의로운 노력에 집중하면 된다.
- 첫째, 북한정권을 해체하는 구체적 Operation의 핵심은 사실, 진실, 진리를 북한에 들여보내는 것이다. 라디오, 비디오, USB, 종이삐라·음성삐라(소형 MP3형 오디오장치), 성경수첩 및 각종 한류(韓流)컨텐츠를 대량으로 유입시킨다. 대북풍선을 통한 물포(物布)작전이건 조·중 국경지대 조선족을 통해서건 총동원한다.
주민을 향한 ‘직접적’ 지원 루트가 확보되면 쌀·옥수수·밀가루·구호물자 등 다양한 지원도 가능하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인도적 지원이다. 정권을 돕는 ‘위선(僞善)’에서 주민을 돕는 ‘참 선(善)’으로 가는 것이다. 이상의 활동은 북한 내 시장기능을 키우고 북한정권의 통제력을 약화하는 이중의 효과도 있다.
방송을 통한 ‘대북(對北)민사작전’은 좀 더 적극적 형태다. 과거 KBS사회교육방송은 북한 대학생들 사이에서 최고의 인기였다고 탈북자들은 증언한다. 자정을 넘어 이 방송을 몰래 들으며 자신들이 절대적 독재체제 아래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됐다.
정부는 공영방송의 대북(對北)기능을 부활하는 한편 자유북한방송·북한개혁방송·VOA·RFA 등 기존 대북방송도 적극 활용해야 한다. 대북방송은 북한의 급변 조짐이 나타날 때 전면적 확대를 꾀해야 할 것이다. 해야 한다.
대북방송의 내용은 주민들, 특히 북한의 차세대 엘리트 집단이 대한민국을 선택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가장 파괴적 공작이다. 내용은 ‘북한 내 개혁·개방’을 고무하고 ‘反김정일 쿠테타를 선동’하거나 ‘한국으로의 합방’을 고무하는 등 다양할 것이다. - 둘째는 중국에서 짐승처럼 팔려 다니는 탈북자들을 구하는 것이다. 남한에 탈북자 숫자가 현재 2만 명에서 10만 명 규모가 되면 북한정권은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지금 500만원만 쓰면 북한인 1명을 탈북 시켜 서울로 데리고 올 수 있다. 직업적으로 북한주민 구출사업을 하는 조직들이 많다. 500만원만 쓰면 성공률은 90%를 넘고, 빠르면 15일 만에 데리고 온다. 남한의 기독교인들이 북한정권에 바치는 봉수교회 헌금(?)만 탈북자 구출에 써도 북한정권은 무너진다. - 셋째는 북한 내부 반(反)체제 세력, 즉 친한(親韓)세력을 키우는 것이다. 이는 자유통일의 비용을 최소로 줄이는 최선의 방책이다.한 탈북자는 “돈만 있으면 북한 내에 친한(親韓)조직을 만들 수 있다. 돈만 있으면 1개 사단도 탈북시킬 수 있다”고 말하였다. 1개 사단은 어렵겠지만 1개 중대는 가능하다는 이들이 많다.북한의 부패(腐敗)는 이것을 가능케 만들었다. 작년 월드 뱅크의 국가별 부패지수 통계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부패한 나라는 해적의 천국인 아프리카 소말리아이다. 부패국가 탑 텐은 2등 북한에 이어 미얀마, 아프가니스탄, 적도(赤道) 기니아, 수단, 이라크, 차드, 짐바브웨, 기니아 차례였다.북한의 부패는 통일의 찬스다. 사실, 진실, 진리의 편에 선 대한민국의 돈으로 북한사람들을 각성시키고 조직시킬 수 있다. 결정적 순간에 친한(親韓)세력이 들고 일어나 북한정권을 끝내고 나아가 대한민국과 자유통일을 선언케 한다는 것이다. 북한정권이 남한 내 친북(親北)세력을 키워 연방제로 적화통일을 꾀해 온 모델을 거꾸로 적용한 것이다.이것은 고려에 신라를 헌납해 후삼국 통일을 이루게 한 ‘경순왕 모델’이다. 김정일 이후 위축된 북한 권력층에게 對北지원이라는 낚싯밥을 풀었다 줄었다 하는 한편 이들에게 통일 이후 정치적 보상을 약속해 대한민국에 내응케 한다는 것이다. 가장 안전(安全)하고, 경제적(經濟的) 자유통일의 논리이다.
- 넷째, 적극적 탈북자 지원책을 펴가야 한다. 기업의 ‘탈북자 고용법’ 추진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탈북자 지원은 한 개인을 돕는 데 그치지 않는다. 탈북자 1명을 도우면 그 사람이 먹여 살리는 북한 내 가족 4명을 도울 수 있다. 정권을 도와 무기개발과 대남공작에 쓰게 할 돈을 탈북자 지원에 쓰도록 한국 종교계 흐름을 바꿔야 한다. 이 역시 ‘위선(僞善)’에서 ‘참 선(善)’으로의 진화이다. 진정한 통일의 투자이다.탈북자가 “한국에서 성공하고 있다”는 소식이 북한에 들어가야 더 많은 탈북자들이 생긴다. 결정적 순간에 북한주민들이 동독주민처럼 “우리는 남쪽의 형제들과 합치겠다”는 선택도 할 수 있다.
- 다섯째, 북한인권운동을 남한에서 일으켜야 한다. 중국에서 성(性)노리개로 팔려 다니는 수십 만 동족 처녀를 살리는 운동과 정치범수용소 해체 촉구 운동 및 공개처형·영아살해·강제낙태 등 강제 송환된 탈북자를 상대로 한 각종 패륜적 만행을 김정일이 중단하도록 압박해야 한다. 국군포로 및 전쟁·전후 납북자 송환도 포함된다.70~80년대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외국에서 나오는 한 마디 지지발언에 큰 힘을 얻었다. 북한주민이 체제변환기 한국과의 자유통일로 나가려면 북한 인권을 끝없이 말해야 한다. 정부의 공식행사는 물론 동창회·등산회·낚시회 각종 모임에 북한 인권을 선언하라. 우리의 삶이 얼마나 복 받은 것이며 죽어가는 동족들 앞에서 얼마나 부끄러운 축복임을 말해야 한다.교회를 진지(陣地)로 만들자. 남한서 열리는 기독교 집회에 북한인권에 대한 무관심과 이기심을 회개하는 외침이 나와야 한다. 이 같은 행사가 잠실체육관에서 매달 한 번씩 2년만 열리면 북한 내에서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무엇보다 북한의 동포가 대한민국을 대안의 권력으로 생각하고 위로받고 선택할 것이다.
- 여섯째, 정권으로 들어가는 대북지원을 중단해야 한다. 북한은 인민경제인 ‘원화(貨)’ 경제와 궁정경제 내지 군·당(軍·黨)경제인 ‘달러’경제로 돌아간다. 김정일은 달러로 상층부를 관리하고 무기 등을 사들인다. 달러가 없어도 인민은 살지만 김정일과 상층부는 어렵다.김정일이 달러를 버는 방법은 달러위조, 담배위조, 마약밀매, 가짜 의약품, 그리고 보험사기에 의한 달러 획득, 매년 10억 달러에 달했던 조총련 현금지원이었다. 그러나 2005년 무렵부터 금융제재가 시작되고, 조총련에 대한 법적제재가 강화되면서 김정일의 자금줄이 막혀버렸다.북한의 남은 돈 줄은 중국이 안 죽을 정도로 대주는 물량과 개성공단 및 남북교역 광석·모래 등 구입비용으로 들어가는 남한의 현금지원이다. 여기에 북한의 어린이를 돕는다, 수재민을 돕는다, 심지어 교회와 사찰을 돕는다며 퍼주는 현물지원이다. 현재로선 모든 대북지원이 북한의 폭정과 동족의 고통을 연장시키는 일이자 인류최악의 수령독재를 돕는 것이다.
- 일곱 째, 이상의 모든 것은 사실 정치영역이다. 소수일지라도 자유민주주의 통일을 핵심강령으로 하는 정치세력이 나오지 않으면 어느 하나 쉽지 않다.대한민국은 80년대 말 군부 엘리트 퇴장 이후 국익을 지키는 국가지도부가 실종된 상태다. 군부엘리트를 대체한 민주투사들은 당파성, 명분론 부패구조의 포로가 되 민주주의의 다음과제인 법치확립에 실패했다. 요사이 여론조사에서 군부엘리트 대표 주자 박정희가 늘 1위를 차지하는 것은 문민엘리트 실패를 반증한다.자유통일을 통해 대한민국을 일류국가로 도약시키겠다는 정치세력이야말로 건국, 근대화를 이어 선진화를 이룰 수 있다. 7천만 민족을 위해 부(富)도, 명예도, 생명도 바칠 위대한 지도자의 탄생이 모든 문제의 키가 될 것이다.
[ 2010-11-08, 18:5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