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ece of Paper, Peace in our time!
얼마 전에 문재인과 김정은이 판문점에서 만나서 ‘정상 회담’을 한 기사를 Wikipedia의 ‘In the news’ 에서 잠깐 보았다. 요새는 main news outlets을 모두 닫고 살기에 이곳이 나에게는 유일한 news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News란 것이 정말 장난이 아닌 것이 오래 전의 ‘검증, 확인’ 된 것보다는 엉터리 기사들이 판을 치고 있고, 그것 일일이 내가 확인할 길도 없고 시간도 없다. 결론적으로 최선의 방법 증에는 ‘모두 안 보고 사는 것’ 도 있고 그렇게 살다 보니, 나의 정신건강에도 그렇게 도움이 됨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우연히’ 나에게 들어온 뉴스는 나름대로 판단하고 생각을 정리하는데, 이 ‘문재인, 김정은’의 회담소식을 보고 생각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이 blog의 title인 Chamberlain 이란 이름이다. 여기서 Chamberlain 은 2차대전 발발 당시 (1937~1940) 영국의 수상 Prime Minister Neville Chamberlain을 말한다. 이 영국수상의 이름과 얘기는 1960년대 내가 중학교 때 나의 가정교사였던 김용기 형으로부터 들었다.
1960년대 초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순진하게’, 냉전 적국이었던 소련과 공산주의를 대하는 정책을 이 영국수상의 ‘독일 히틀러 회유정책’에 비유하며 비꼬는 얘기였다. 1930년대가 저물어가며 1차 대전의 폐허에서 다시 군사강국으로 등장한 나치 독일의 히틀러를 ‘달래가며’ 유럽의 평화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던 사람이 바로 이 영국수상이었다.
문제는 이 운 없는 영국수상이 히틀러의 음모에 완전히 농락을 당했다는 사실이다. 당시의 뉴스를 보면 거의 drama 같은 얘기를 상상할 수 있다. 전쟁준비를 완전히 끝낸 히틀러, 이 ‘평화를 원하는 영국수상’에게 ‘종이조각’을 건네 주고 돌려 보냈다. ‘전쟁할 마음이 없음’ 이라는 요지의 의미 없는 ‘각서’ 정도가 될까.. 이 순진한 수상께서 그 종이를 들고 영국에 도착한 공항에서 ‘평화주의자’들에 둘러싸여 그 종이조각을 흔들며 개선 하는 사진, 역사중의 역사가 되었다.
그로부터 1년도 안 되어 히틀러는 유럽 전체를 전쟁으로 몰아 넣었고 이 운 없는 수상을 이어 Churchill 수상이 ‘힘과 용기’로 전쟁을 치르고 결과적으로 승리로 이끌었다. 이후로 역사는 간단하게, Chamberlain 과 Churchill 의 아주 다른 정책을 평하지만 사실 자세히 알고 보면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님도 알게 된다.
문재인과 김정은의 ‘협상’, 이것도 협상일까? 히틀러보다 더 거짓으로 범죄국가를 경영하던 역사상 유례없는 ‘반 인류 범죄자’와 협상을 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 거기서 ‘합의’가 된 결과의 ‘종이조각’은 어떠한 무게가 있는 것일까? 1940년과 2018년은 확연한 차이가 있겠지만 역사의 관성은 절대로 무시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문재인 가톨릭 형제여, N. Chamberlain보다는 W. Churchill이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