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  1996년 7월 3일

 

아침이 밝았다. 나는 벌서 깨어 있었지만, 나를 가득 채워 주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며 자리에 그냥 누워 있었다. 떠오르는 태양으로 하늘이 밝아오자, 자리에서 일어나 전날에 보아 두었던 큰 나무 옆으로 가서 기도를 드렸다. 기도 한마디 한마디를 통해 나는 아버지께 점점 더 가까이 갔다. 그때 내 앞에서 나를 내려다보시는 왕좌에 앉아 계시는 아버지를 보았다.

 

아버지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며 손을 내밀어 내 머리에 얹으셨는데, 나의 육신과 영혼이 아버지와 결합되었다.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결합하였고, 천주 성삼이 사랑으로 결합하였다. 짧은 순간인 것 같았지만, 그 동안 나는 모든 인간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고 알았으며, 그들을 사랑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두 사랑했다.

기도를 마쳤을 때는 이미 몇 시간이 흐른 뒤였다. 제자들에게 돌아오니 짐을 다 싸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님, 시장하실 텐데요?” 유다 타대오가 물었다.

“아니다, 오늘은 음식을 먹지 않고 지내야겠다.”

“길을 가시려면 힘드실 텐데 드셔야 합니다.” 안드레아가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였다.

“괜찮다. 때로는 먹지 않고 지내는 것이 좋을 때가 있다.” 안드레아의 사랑이 나를 미소 짓게 했다.

“그러면 저도 오늘 더 이상 먹지 않겠습니다.” 야고보가 젊은 열정으로 크게 말하자, 다른 제자들도 모두 찬성했다. 유다는 제자들이 모두 그를 쳐다볼 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러면 저도 안 먹겠어요.” 마침내 유다가 불만스런 표정을 하고 마지 못해 대답했다.

우리는 저녁 늦게까지 걸었다. 그날 하루 내내 유다가 뱉는 불평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우리가 왜 배를 곯아야 하는 가야? 도대체 누가 꺼낸 생각이야? 야고보 그 놈, 혼을 내줘야 하는데.” 무척이나 먹기를 좋아하는 유다는, 하루 종일 굶어야 하는 것이 너무 불만스러웠던 것이다.

밤이 되어 우리는 야영지를 찾다가, 바람을 막아 줄 만한 관목 숲을 발견하고 모닥불을 피웠다. 활활 타는 모닥불은 차가운 밤의 냉기로부터 우리를 따뜻하게 보호해 주었다.

“이제는 먹을 것이 있는 겁니까?” 유다가 기대에 차서 물었다.

끊임없는 내적 갈등을 겪고 있는 유다가 가여워 보였다.

“네가 원한다면 먹어도 괜찮다. 그렇지만 나는 내일 아침에 먹겠다.” 나는 막대기로 땅 바닥에 그림을 그리면서 앉아 있었는데, 다른 제자들이 모두 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들도 기다리겠습니다.”

“그렇다면 저도 그렇게 해야겠지요.” 유다가 볼멘 소리로 말했다.

“때로는,” 내가 말했다. “너희 육신을 단련시키는 것이 좋다. 금식을 하면 너희 영혼이 자유로워져서 기도하기가 더 쉬워진다. 너희가 육신을 단련시킬 때 너희 마음도 단련되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닥쳐올 때를 준비하며 자신을 강인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절대로 단식이 필요한 것이다.

너희의 마음이 굳세지고 그 마음을 지배할 수 있게 되면, 당면한 악을 더욱 쉽게 이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곤경을 극복하기가 쉬워지고, 남을 위해 희생을 바치기가 더 쉬워지는 것이다. 금식은 벌이 아니고 은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너희가 금식을 하게 되면, 금식하는 하루하루가 고통이 아니고 기쁨의 날이 되는 것이며, 금식은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가 되는 것이다.”

제자들은 동의를 표하며 집중해서 내 말을 듣고 있었다. 유다 는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었지만 외투자락에 숨겨 두었던 빵을 몰래 씹고 있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자기 단련이란 유다 에게는 이해하기 너무 어려운 것이었다.

 

 

예수님 +++  1996년 7월 4일

 

금식한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그 날 할 일을 위해 새로운 힘이 솟아나는 것을 느꼈지만, 또한 힘든 날이 될 것도 알고 있었다.제자들은 아침을 많이 먹었다. 유다는 아무리 먹어도 속이 차지 않을 식욕을 보이고 있었다. 나는 빵을 조금 먹었고 다른 것은 필요 없었다. 그때 유다가 입에 음식을 잔뜩 문 채로 물었다. “주님, 많이 안 드시네요. 나중에 시장하실 텐데요.”

“나는 충분히 먹었다.”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다가 입에 든 음식을 튀기면서 내 말을 가로챘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시지만 나중에 두고 보십시오.” 유다는 입에 음식을 잔뜩 더 집어넣고 물을 마셨다. “저는 언제나 단단히 먹어 둡니다.” 그건 틀림없는 말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몫을 가로채서라도 유다는 늘 단단히 먹어두니까.

 

식사 후에, 몸을 씻으러 가까운 곳에 있는 우물로 갔다. 근처 농장에서 온 여자 둘이 우물가에 있었다. 우리가 가까이 갔을 때, 두 여자 중에서 나이 어린 쪽이 먼저 말했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여기, 자, 물을 드릴께요.” 그녀는 우리 물통을 받아 가지고, 물통마다 물을 채워 주기 시작했다.

“친절하기도 하군요.” 그녀의 손에서 물통을 받으며 내가 말했다.

“정말 고맙습니다.” 제자들도 각자 자기 물통을 받아 챙기며 말했다.

“어디로 가시는 중입니까?” 다른 여자가 물었다.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소.” 베드로가 대답했다.

“아주 먼 길을 가셔야겠네요.” 물을 길어 준 여자가 말했다. “아주 오래 걸릴 겁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 지는 상관이 없소. 가는 길에 할 일이 많이 있기 때문이오.”

내 말을 듣고, 나이가 더 많은 여자가 물었다. “서둘러 가지 않으셔도 된다면 저희 농장에 가시지요. 일거리가 있습니다. 저희 아버지께서는 연세가 많으시고, 저희 오빠는 혼자서 농장을 운영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도와 주고 있지만 아직 씨 뿌리는 일도 미처 끝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도와 주시면 저희가 식사를 드리고 임금을 지불하겠습니다.”

“도와 주고 싶지만 우리는 지금 예루살렘으로 가야만 하오.” 베드로가 나서서 말했다.

“이삼 일밖에 안 걸릴 텐데요. 여러분이 모두 함께 하시면 더 짧은 시간에도 끝낼 수 있을 겁니다.” 물을 길어 준 여자가 애원하듯이 말했다.

“여기 잠깐 머물러도 될 것 같소. 그러나 할 일이 많기 때문에 이틀 이상은 안 되오.” 내가 나서서 결론을 내렸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두 여자는 합창을 하며 좋아했다.

“짐을 들고 따라오십시오.” 나이가 더 많은 여자가 말했다.

짐을 챙기러 가는 중에 베드로가 물었다. “주님, 이렇게 해도 괜찮겠습니까?”
“베드로야, 저 사람들은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다. 우리에게 도움을 청하는 사람에게 절대로 거절해서는 안 된다.”

“알겠습니다, 주님.” 베드로는 순순히 나의 말을 따랐다.

짐을 챙겨서 돌아와보니, 여자들은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이가 더 많은 여자가 우리에게 말했다. “손님들이 오시니 참 좋네요. 우리 농장에서는 사람을 만날 기회가 별로 없어요. 항상 일하기에 바쁘거든요.”

“그래요.” 나이가 어린 여자가 맞장구를 쳤다. “일에 쫓기어 저희는 마을에도 자주 못 나가요.”

야고보가 자기 나이 또래의 나이 어린 여자에게 갔다. “일을 너무 심하게 하는 것 같군요. 때로는 좀 쉬는 것도 좋아요. 일만 하다 보면 인생이 짐스러워지거든요.” 인생이 무엇인지 이제 막 알기 시작한 야고보가 그런 말을 하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 어린 여자가 야고보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말하기는 쉽겠지만, 병석에 누워 계신 아버지와, 일을 조금밖에 할 수 없는 장애인 오빠가 있다 보면, 인생은 가끔 짐스럽지 않을 수가 없지요.” 야고보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서 얼굴이 붉어졌다.

“괜찮아요. 당황할 것 없어요. 인생이란 살기 힘든 것 아니겠어요?” 나이가 더 많은 여자가 야고보를 달래 주고는, 우리를 농장으로 안내하기 위해 앞장섰다.

 

농장으로 가는 동안 모두들 잠잠했다. 야고보는 너무 곤혹스러웠는지 그 뒤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 함께 기도하자.” 내 말에 따라서 모두 아버지께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두 여자들도 걸어가며 우리와 함께 기도했다. 우리가 기도를 끝마쳤을 때 나이가 더 어러니 여자가 야고보에게 물었다. “댁도 거룩한 사람인가요?”

“나는 아니고, 우리 선생님께서 거룩한 분이십니다.” 나를 쳐다보며 야고보가 말했다. “나머지 우리는 거룩하게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럼, 어디서 오셨나요? 큰 회당에서 오신 겁니까?” 그녀가 다시 물었다.

“아닙니다. 우리는 각자 다른 곳에서 왔어요. 그리고 우리는 여러 회당을 방문하지요. 우리 주님은 라삐(선생님)이십니다.” 야고보는 자랑스럽게 선언했다.

“라삐!” 나이 많은 쪽이 나를 불렀다. “저희 아버지와 오빠도 이제 기도하실 수 있겠군요. 아버지와 오빠는 라삐를 보신 지가 아주 오래 됐어요. 아버지는 병환으로 누워 계시고, 미카엘 오빠는 장애자라서 회당에 가기가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아버지와 오빠는 기도 바치기를 좋아해요. 나중에 여러분 모두가 우리와 함께 기도해 주시겠어요?”

“물론, 기도하고 말고,. 아버지와 오빠와 함께 기도하면 우리도 참 좋겠소.” 나는 그녀의 간절한 소원이 이루어질 것을 알았다.

 

농장에 도착했을 때, 미카엘이 여동생을 맞으러 나왔다. 미카엘은 다리를 절뚝거렸다. 태어났을 때부터 양다리에 장애가 있었지만 걸음을 걸을 만큼의 힘은 다리에 남아 있었다.

“너희들이, 손님을 많이 모셔왔구나. 어서 오십시오. 어서 오십시오.” 미소를 짓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미카엘이 연신 소리쳤다. 고통을 겪고 있었지만 얼마나 행복한 마음과, 밝은 영혼을 가진 그인가!

“저는 미카엘입니다. 짐을 이리 주십시오.” 그는 짐을 받으려고 허리를 반쯤 구부려 손을 내밀었다.

“고맙소, 미카엘, 우리는 당신이 씨 뿌리는 것을 도와 주려고 왔소.”

“여러분은 하느님께서 보내 주신 축복입니다. 하느님은 좋으신 분입니다. 제가 하느님께 도와 달라고 기도 드렸습니다. 보십시오, 여러분이 여기 오셨잖습니까. 이스라엘의 하느님, 찬미 받으소서.” 미카엘은 거의 노래를 부르듯 흥얼거리며 즐거워 했다.

성미가 급한 베드로가 나섰다. “그럼, 어디서부터 일을 시작할 지 알려 주시오.”

“자, 이리로 저를 따라오십시오. 여러분은 참 열심하신 분들 같네요. 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연신 고맙다는 말을 하며 미카엘은 우리를 들판으로 안내했다.

작은 여동생이 야고보를 보고 조용히 말했다. “정말 고마워요.”

 

우리는 하루 종일 들판에서 일했다. 여자들은 물과 음식을 날라왔다. 미카엘은 열심히 애를 썼으나 불편한 다리 때문에 해 좋은 일은 조금밖에 되지 않았다. 하루 종일 미카엘은 즐거워하며 미소를 짓고 있었고, 사랑이 넘쳐흘렀다. 모든 사람들이 미카엘 같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하였다.

나는 미카엘에게서 사랑이 넘치는 순결한 영혼을 보았다. 사람들의 조롱과 학대, 정상인이 될 수 없다는 절망감, 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겪는 고통과 내적 괴로움을, 미카엘은 사랑으로 덮고 있었다. 그런 온갖 시련을 통하여 그의 사랑은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약간의 불편한 점을 가지고 있거나, 조금도 불편함 없이 살면서도 자기밖에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런 사람들이 마음의 눈을 뜨고 볼 수만 있다면, 미카엘이 그들에게 얼마나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인가.

 

저녁이 되어 우리는 집으로 돌아갔다. 일하느라고 뒤집어 쓴 먼지를 씻어내며 모두들 피곤해 하였다.

“그것 보세요, 주님. 많이 잡수시라고 했잖아요. 먹어 둘 필요가 있었다니까요.” 유다가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유다야, 아침에 충분히 먹었고 오늘 미카엘 여동생들이 가져다 준 음식도 많았잖니. 그것으로 충분했다.”

“정말 그렇군요, 주님. 참 맛있는 음식이었습니다.” 들에서 먹었던 음식을 생각하며 유다가 입맛을 다셨다. “빨리 저녁 식사를 먹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말 없이 유다를 쳐다보았는데, 베드로가 유다의 흥을 깨며 트집을 잡았다. “자네는 정말 게걸스럽구만.”

“무슨 말이야? 다만 식욕이 좋을 뿐인데, 그게 무슨 잘못인가?” 기분이 상한 유다가 자신을 변호했다.

“식욕은 식욕이라 치고, 자넨 너무 게걸스러워.” 안드레아가 끼어들었다.

“그 말은 너무했네. 나는 활동하기 위해서 먹을 뿐이야. 자네들도 알다시피 나는 일을 많이 하고 있네. 자네들보다 훨씬 더 일을 많이 한다고.”

이번에는 토마스가 끼어들었다. “그래, 그 많은 돈을 세느라고 힘들었겠지.”

유다는 도움을 청하는 눈길로 나를 쳐다보았다.

“자, 이제 안에 들어가서 주인과 함께 식사를 하자. 서로 다투지 않도록 하여라. 오늘 밤에 유다는 자신이 게걸스럽지 않다는 것을 너희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 조금만 먹을 것이다.”

유다는 가슴을 쫙 펴면서 말했다. “주님 말씀이 옳으셔, 두고 봐. 난 게걸스럽지 않단 말일세.”

 

들에서 묻혀 온 흙을 완전히 씻었는지 확인한 후에 우리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큰 여동생이 나한테 와서 물었다. “선생님, 저희 아버지와 오빠와 함께 먼저 기도를 하시겠습니까?”

“물론이오. 그런데 그분들은 어디에 계시오?”

그녀는 우리를 큰 방으로 데리고 갔는데, 방 구석에는 침대가 놓여 있었다. 침대 위에는 그녀의 아버지가 베개를 여러 개 포개어 등에 바친 채 앉아 있었고, 미카엘은 침대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우리가 방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미카엘이 말했다. “아버지, 예수님이십니다. 오늘 제자들과 함께 저희 들일을 도와 주신 라삐이십니다.”

노인은 나를 쳐다보며 힘없이 미소를 지었다. “선생님, 그게 사실입니까?”

“네, 노인장 사실입니다.” 내가 부드럽게 대답을 하자 노인의 얼굴 표정이 밝아지며, 똑바로 앉으려고 애썼다.

“함께 기도하면서, 성서를 읽을 수 있을까요? 이렇게 해본 지가 하도 오래 되어서, 하느님께서 저를 잊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무도 잊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노인장의 숨소리 하나 하나까지 지켜보시고, 말 한마디 한마디를 듣고 계시며, 머리 속에 스쳐가는 생각까지도 다 알고 계십니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들이 다 소중합니다.”

나의 말을 듣고 노인이 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저는 너무 오랜 세월 동안 기도를 할 수 없었습니다. 성서도 읽을 수 없었구요. 제 아들 미카엘이 읽어 줄 때만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데, 그나마 귀가 멀어서 하느님 말씀을 잘 들을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저한테 실망하신 것이 틀림없습니다. 불쌍하나 제 아들을 보십시오. 마음이 넓고 착한 아이이지만, 농장을 혼자서 관리할 수가 업습니다.

제 딸들은 남자를 사귈 시간도 없어서 지금껏 남편도 없습니다. 제 가족과 저는 하느님 눈에 수치스런 존재인 것이 틀림없습니다.. 저는 머지않아 죽을 텐데, 야훼께서 제 가족과 제 땅에 내려 주신 은총을 잘 간수하지 못하여 죄송할 따름입니다. 제 집사람도 일을 너무 심하게 하다가 죽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저를 용서해 주시기만 바랄 뿐입니다.”

“노인장, 하느님께서는 노인장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살아 오면서 저지른 잘못을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노인장이 평생 하느님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다 알고 계시고, 평생 바쳐온 기도를 모두 듣고 계셨습니다. 기도를 안 한다고 생각하고 계실 때도 말입니다. 노인장이 하느님을 생각하는 것이 바로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노인장의 생애를 낱낱이 보아 오셨고, 아무리 어렵고 힘든 때라도 노인장의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멈추지 않았다는 것을 자 아십니다. 미카엘이 장애아로 태어났을 때도 노인장과 부인은, 아름다운 선물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지 않았습니까?

하느님께서는 노인장이 부인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알고 계십니다. 부인이 돌아가셨을 때도 부인의 생명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 드렸고, 부인이 노인장에게 보여 준 그 사랑과, 노인장이 부인에게 줄 수 있었던 그 사랑에 대해 감사 드린 것을 하느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가족을 항상 보살펴 주고 계십니다. 또 아들 미카엘의 가슴 속에 순결한 사랑과 기쁨을 알고 계시고, 딸들의 너그러운 마음과 인정이 많은 성품을 알고 계십니다. 그 자녀들의 아버지가 지닌 겸손의 미덕까지 하느님께서는 다 알고 계십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더 이상 회당에 못 가게 된 것을 너무나 안타까워 하고 있는 그 아버지를 알고 계십니다. 노인장은 참으로 아름다운 하느님의 아들이며, 이 가족은 참으로 아름다운 하느님의 가족이 아닙니까.”

노인은 마침내 가슴 깊은 곳에서 북받쳐 오르는 울음을 터뜨렸다. “오, 야훼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오, 주님, 저를 거두어 가 주소서. 주님, 제가 떠난 후에도 이 가족이 안전하도록 저희 가족을 축복해 주십시오.” 노인은 공중에 힘없이 팔을 울리고 하느님께 기도를 드렸다.

노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선생님, 우리와 기도를 함께 해 주시고, 저희 가족을 축복해 주십시오.”

제자들과 미카엘과 노인이 나와 함께 기도하는 동안 딸들은 다른 방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야고보는 울면서 열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야고보의 애절한 기도 때문에라도 내 아버지께서 이 가족을 도와 주실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거의 두 시간 가까이 기도했는데, 기도를 마쳤을 때 노인이 말했다. “선생님, 기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저의 가슴은 행보기 넘칩니다. 주무시기 전에 부디 제 딸들도 축복해 주십시오.”

“물론이지요. 축복해 드리겠습니다.”

“선생님, 그런데 어떻게 해서 저의 생애를 그렇게 잘 아십니까?”

“하느님께서는 노인장의 평생을 모두 다 아십니다.”

노인은 나의 대답이 의아하다는 듯 나를 쳐다 보았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것을 어떻게 아십니까?”

“아버지가 아시는 것은 아들도 알지요.”

노인은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다시 물었다.

“그러면 아들이 누굽니까?”

“접니다.” 하고 나즈막한 소리로 대답해 주고는 방을 나왔다.

큰 딸이 와서 물었다. “선생님, 저희 아버지께서는 곧 돌아가시겠지요?”

“그렇다. 그러나 그분은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실 것이고, 행복한 가족을 남겨 두고 가실 것이다.”

두 딸은 소리를 죽여 가며 울기 시작했다. 나는 두 딸의 모리 위에 손을 얹고 말했다. “내 아버지 야훼의 이름으로 너희를 축복하노라.”

그 축복의 말이 그들의 마음을 가라앉혀 주었기에, 그들은 식사를 준비하러 갈 수 있었다. 미카엘이 들어와서 큰 탁자에 마주앉았다.

“라삐, 예수님. 저희 아버지와 기도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버지께서 참 즐거워하신 것 같았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은 언제나 나의 기쁨이오.”

미카엘과 마주보고 앉아 있던 베드로가 쾌활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이렇게 훌륭한 가족을 위해 우리가 해 줄 게 뭐 없겠습니까?”

“어디 기다려 보자.”

 

저녁식사는 맛있는 음식으로 가득 차려졌다. 그러나 불쌍한 유다는 자기 접시에 음식을 조금만 갖다 놓고 슬픈 표정을 한 채 먹고 있었다. 안드레아 옆에 앉은 야고보는 자기 접시에 큰 고깃덩어리를 덜어다 놓고 먹으면서 감탄을 연발했다. “음, 정말 맛있네. 맛있는 음식이야.”

배고픈 유다는 눈빛을 빛내면서 그 고깃덩어리를 쳐다보았다. 작은 딸 엘리사벳이 옥수수 요리를 유다 앞에 갖다 놓으면서 말했다. “왜 그렇게 적게 드세요. 음식이 아직 많이 있으니까, 좀더 드시지요.”

“더 먹을 수가 없어요. 난 오늘 밤에 조금만 먹기로 약속했거든…” 나는 유다가 마음 속으로, 왜 이런 약속을 하게 됐는지 후회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렇지만 들에서 그렇게 열심히 일하셨으니 시장하실 텐데요.” 작은 딸 엘리사벳이 근심스럽게 말했다.

“아니오. 약속은 어디까지나 약속이니까요.”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눈길을 받으며 유다가 말했다. 나는 유다가 이 일로써 교훈을 얻게 되기를 바랐지만, 그렇지 못할 것이란 것도 알고 있었다.

하루 종일 일하느라고 너무 피곤하였기에, 식사를 마친 제자들은 대부분 금방 잠이 들었지만, 나는 누워서 하느님께 대해 묵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유다가 담요 밑에서 살짝 기어 나와 부엌으로 가더니 잠시 후에 고깃덩어리를 들고 돌아왔다. 얼마 동안 유다가 누워있는 자리에서 요란하게 씹는 소리가 나더니 트림하는 소리가 들렸다. 불쌍한 유다는 약속을 지킬 능력이 없었다.

 

우리는 아침 일찍 일어나 노인과 함께 기도를 바치며 시간을 보낸 다음 씨 뿌리는 일을 끝내기 위해 들로 나갔다.

“오늘 밤까지는 완전히 끝날 것 같습니다.” 미카엘이 즐거운 듯이 내게 말했다. “선생님과 제자 분들이 모두가 너무나 열심히 일해 주셨기 때문에 제가 몇 주일이나 해야 할 일을 이틀 만에 다 끝냈습니다.”

“그렇소. 오늘 밤이 여기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 될 것 같소. 그리고 오늘 밤은 우리 모두에게 아주 특별한 시간이 될 것이오.”

이날 저녁까지 우리는 씨 뿌리는 일을 완전히 다 마무리 지었다. 그렇게 도울 수 있었다는 사실이 우리의 마음을 뿌듯하게 했다. 우리가 몸을 씻고 있는 동안, 다른 제자들은 일을 끝낸 기쁨으로 소란스러웠는데, 유다만은 조용했다. 유다는 더 이상 다른 약속을 하지 않으려고 조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토마스가 유다에게 말을 걸었다. “유다, 자네 너무 조용한데, 잘못된 일이라도 있나?”

“아니,” 하고 대답한 유다는 연신 몸을 씻고만 있었다.

집 안으로 들어가는데, 두 딸이 나에게 말했다. “저희 아버지와 다시 기도를 해 주시겠습니까? 어젯밤부터 아버지께서 얼마나 기분이 좋으신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기도를 하겠소. 그러나 오늘 밤에는 당신들 두 자매도 우리와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소.”

“그건 안 됩니다.” 엘리사벳이 말했다. “남자들끼리만 기도하셔야 합니다. 저희는 나중에 들어가겠습니다.”

“괜찮소. 오늘 밤은 특별한 날이기 때문에 당신들도 우리와 함께 있었으면 좋겠소.”

“정말이십니까, 선생님?” 하고 큰 딸이 말했다.

“그렇소, 정말이오.”

우리는 모두 노인이 있는 큰 방으로 들어갔다. 노인은 여전히 베개에 등을 기댄 채 앉아 있었다. 내가 가까이 가자, 노인이 물었다. “어젯밤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곰곰이 생각하였습니다. 그것이 모두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나의 대답을 듣고 노인은 미소를 짓더니 흥분하여 말했다. “아, 정말 사실이었구나. 이제 나는 행복하게 죽을 수 있게 됐다. 그분을 만난 거야!” 노인은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않고 두 손을 높이 올렸다.

미카엘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선생님, 아버지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미카엘, 아버지의 손을 잡고 아버지와 마지막 시간을 보내도록 하시오. 그리고 당신들도!” 나는 딸들을 보면서 말했다.

그들이 노인 곁에 와서 앉자, 노인은 자식들의 얼굴을 차례로 만지며 말했다. “우리는 축복을 받았다. 그분이 여기 계시다니 말이다.” 숨소리가 점점 희미해지면서, 그는 죽음의 품으로 빠져 들었다. 미카엘과 두 딸들은 울기 시작했다. 나는 숨을 거둔 노인한테로 가서 그의 시신을 축성하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제자들도 따라서 기도했다. 기도를 마친 후 나는 세 남매에게 손을 앉고 말했다. “기름을 조금 가지고 오시오. 당신들 아버지의 시신을 축성해 주겠소. 그런 다음에 장례 준비를 하도록 하시오.”

세 남매는 울음을 그쳤고, 평화가 그들의 가슴을 채웠다. 그들이 장례 준비를 마쳤을 때 내가 그들을 위로하였다. “다른 방으로 가서 이 기쁜 순간을 축하합시다. 당신들 아버지의 영혼이 하느님께 가는 첫 걸음을 내디딘 순간이 바로 지금이오.”

다른 방에는 저녁 식사를 위해 음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저는 먹고 싶지 않습니다.” 미카엘이 말했다.

“저희도 생각이 없어요.” 두 여동생들도 오빠를 따랐다.

“당신들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얼마나 행복해 하셨는지 생각나지 않소? 당신들은 지금 슬퍼하고 있는데, 아버지께서 원하실 것 같소?” 내가 그들을 부드럽게 타일렀다.

“아닙니다. 선생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아버지는 진실로 기뻐하셨습니다.” 작은 딸 엘리사벳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손등으로 뺨에 흐르는 눈물을 씻어냈다.

잠시 후 우리는 저녁 식사가 차려진 방에 모여 앉아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모두들 천천히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유다만이 혼자서 게걸스럽게 음식을 퍼넣고 있었다.

“미카엘.” 내가 다시 위로를 했다. “당신과 당신 두 여동생들은, 죽음이 바로 기쁨인 것을 알아야 하오. 만약 당신들이 아버지처럼 하느님을 위하여 착하게 산다면, 죽음이란 특별한 축복이 되는 것이오. 그 죽음은 하느님 아버지와 천국의 영원한 행복으로 당신들을 데리고 가는 것이오.

죽음은 하느님과 함께 사는 새로운 삶으로 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두려워 할 필요가 없소. 죽음은 하느님을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보상으로써 하느님의 사랑을 받은 것이오. 죽음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선물인 것이오.”

“네, 선생님,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슬프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미카엘이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슬픔은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오. 그러나 돌아가실 때 누리시던 아버지의 그 기쁨을 받아들이는 것으로써 당신들의 사랑을 표현할 수도 있는 것이오.” 라고 말하면서 나 역시 그들이 느끼는 슬픔을 함께 하고 있었다. “오늘밤에 주신 죽음의 은총과 더불어 하느님께서는 이 가족에게 또 다른 은총도 주실 것이오. 미카엘, 잠시만 아버지를 뵙고 오시오.”

미카엘이 일어나서 절뚝거리며 노인의 시신이 있는 방으로 갔다가 금방 돌아왔다. “선생님, 아버지한테는 별 변화가 없습니다.”

그때 “미카엘 오빠!” 여동생들이 일제히 소리질렀다. “오빠가 걸어요. 오빠가 걸어!”

미카엘은 그제서야 자기 다리가 똑바로 펴진 것을 보았다. 그는 온 방안을 빙글빙글 돌아다니며 소리질렀다. “내가 똑바로 걷는구나! 내가 똑바로 걸을 수가 있어!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긴 거지!”

그러다가 남매들은 갑자기 열광적인 환호를 멈췄다. 미카엘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우리가 이렇게 기뻐해서야 되겠습니까?”

“당신들 아버지가 지금의 당신들을 보면 기뻐하지 않겠소?”

“네, 아버지께서는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서로 끌어 안고 기쁨과 슬픔에 얽혀서 울었다. 제자들이 시편을 노래하면서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감사를 드렸다. 미카엘이 여동생들을 얼싸안다 말고 갑자기 눈이 둥그래져서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버지가 하신 말씀을 이제야 알겠습니다. 저는 압니다. 선생님이 바로 그분 이시라는 것을. 선생님이 바고 그분이십니다. 그렇지요?”

나는 미카엘의 어깨 위에 손을 얹고 짧게 대답했다. “그렇소!”

미카엘은 내 발에 입맞춤하기 시작했는데, 여동생들도 뒤늦게 알아차리고는 미카엘을 따랐다.

“이럴 필요가 없소.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지 내 아버지께 감사할 줄 알고, 다른 사람들도 하느님의 사랑을 알 수 있도록, 당신들 가슴 속에 있는 사랑을 나누어 주도록 하시오.”

“주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들은 한 목소리로 외쳤다.

 

다음날 우리는 노인의 시신을 땅에 묻도록 도와 주었다. 그들의 마음은 이제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송별 인사를 하면서 나는 그들을 축복해 주었다. “하느님께 항상 의탁하시오. 그러면 당신들의 삶은 부족함이 없을 것이오.”

“주님, 다시 돌아와 주십시오. 네?” 하고 엘리사벳이 애원했다.

“나는 항상 당신들과 함께 있을 것이오.”

“그렇지만 부디 저희들을 보러 다시 와 주십시오.” 하고 미카엘도 부탁했다.

“다시 오겠소. 약속하오.” 그들이 나를 다시 만나게 될 때는 내가 부활한 후라는 것과, 부활 후에 돌아와서 그들에게 죽음의 진리, 곧 영생의 진리를 보영 줄 것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예루살렘아, 슬픔과 재난의 옷을 벗어 버리고,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의 아름다운 옷을 영원히 입어라.” 바룩 5:1).

 

 

 

예수님 +++  1996년 7월 5일

 

우리가 농장을 떠났을 때, 야고보의 눈에 슬픔이 어려 있는 것을 보았다. 좋은 친구를 떠나는 슬픔 때문이었다. 나는 야고보를 위로해 주고 싶었다.

“아고보야, 기도를 선창해 줄래?”

“주님, 제가요?” 기도를 선창하라는 것이 뜻밖이었는지 야고보가 놀라서 물었다. “딴 사람이 선창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아니다. 네가 선창해 주면 좋겠다.”

“네, 주님. 주님께서 하라고 하시면 하겠습니다.” 야고보는 밝은 표정이 되어서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시편을 선창했다. 그리고 모두 함께 기도했다. 첫 시편이 끝나자, 야고보는 다른 시편을 다시 선창했고, 그것이 끝나자 또 다시 다른 시편을 선창했다.

야고보는 기도를 선창하는 것을 정말로 즐기고 있었고, 제자들도 야고보가 선창하는 것을 들으며 즐거워 했다. 세 번째 시편이 끝나자, 야고보는 하느님의 위대하심에 대한 또 하나의 시편을 노래하기 시작했는데, 그 시편이 다 끝났을 때는 벌써 몇 시간이 흐른 뒤였다.

야고보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기쁨이 놓쳤다. “주님, 참 즐겁습니다. 기분이 좋습니다. 저는 하루 종일이라도 기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곁에서 걷고 있던 베드로가 말했다. “나도 오늘 하루 내내 자네와 기도만 했으면 좋겠네. 기도를 하면 기분이 좋아지거든.”

나는 제자들이 기도의 힘을 발견하는 것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비록 그들 자신은 그것을 깨닫지 못했지만…

“주님께서도 그러십니까?” 야고보가 나에게 물었다.

“그렇다, 야고보야!”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야고보는 다른 제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예수님께서 하루 종일 기도해도 좋다고 하셨네. 나와 함께 더 기도해도 괜찮겠나?” 제자들은 모두 야고보의 제안에 동의하면서 미소를 지어 주었다. 유다까지도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우리는 그날 종일 기도하면서 보냈고, 밤이 되었을 때는 제법 큰 마을에 도착하였다. 내가 유다에게 말했다. “시몬과 함께 가서 우리가 머물 방을 찾아 보아라.” 유다는 오늘 밤에는 편안하게 잠을 자게 될 거라고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잠시 후 유다와 시몬이 돌아왔다. “선생님, 우리 모두 잘 방이 있는 여관을 찾았습니다. 값도 싸고요.” 유다가 싱글거리며 보고를 했다.

“그렇습니다, 주님.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고, 우리 모두가 다 지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몬도 동의를 했다.

“좋아. 그럼 거기서 지내도록 하지.” 베드로가 큰 소리로 말했다. 나는 베드로를 보면서 그의 지도력이 얼마나 성장했으며, 다른 사람들이 베드로의 말을 얼마나 기꺼이 받아들이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베드로.” 내가 불렀다. “우선 어떤 사람이 주인인지 알아보는 게 좋을 것이다. 지난 번에 묵었던 그 여관이 생각나느냐? 그리고 그 불쌍한 소녀도?”

베드로는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네, 주님. 주님께서는 항상 옳은 말씀을 하십니다. 유다와 시몬과 함께 가서 주인하고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주님, 거기는 괜찮은 곳인데요.” 유다가 거북스럽게 말하자, 시몬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베드로와 함께 가 보아라. 그리고 만약 베드로가 괜찮다고 하면 거기에 머물도록 하자.”

 유다와 시몬은 내가 그들을 신용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실망하는 눈치였기에 설명을 해 주었다. “우리가 모두 함께 머물 방이 있는 여관을, 너희들이 그렇게 금방 찾은 것은 잘한 일이다. 그러나 지난 번 같이 음식을 가지고 다투게 되거나, 주인이 하녀를 학대하는 그런 일이 또 일어서야 되겠느냐? 이번에는 조금 더 주의를 하자. 과거에 일어난 일을 경험으로 앞으로는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배울 수 있다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다. 때로는 약간만 주의하면 많은 어려운 문제를 예방할 수 있는 법이다.”

우리는 마을 입구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여관으로 갔던 세 사람이 잠시 후 허겁지겁 되돌아왔다. “주의하라고 하신 선생님 말씀이 옳았습니다.” 시몬이 흥분해서 말했다. “거기에는 이스라엘 과격파들이 묵고 있었는데, 그들이 마음에 있는 로마인들을 살해할 계획을 짜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베드로가 거들었다. “그 사람들은 무기를 많이 가지고 있었고 험상궂게 생겼습니다. 주님, 다른 데로 가서 묵어야 할 것 같습니다.”

“죄를 범하려는 사람들을 모두 피해 버리고, 그들이 옳은 길, 선행의 길로 가도록 도와 주지 않을 거라면, 무엇 하러 여기에 온 것이냐?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죄를 이기라고 나를 보내셨으니, 죄를 눈 앞에 보고 도망갈 것이 아니라 그 죄를 멈추게 해야 한다.” 제자들에게 내가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주님!” 유다가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그 사람들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 과격파들은 결의가 대단합니다.”

“죄에 대항하기를 두려워한다는 것은, 죄를 더 키워 주는 것밖에 안 된다. 너희가 하느님께 의탁하고, 굳건히 진리를 지킨다면 두려워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자 그럼, 그 여관으로 가자.” 하고 내가 앞장 섰다.

“하지만, 주님. 주의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시몬은 과격파들을 대할 것을 생각하고 눈에 띄게 겁을 먹고 있었다.

“조심한다는 것은 죄악으로부터 숨거나 그것을 무서워하라는 것이 아니다. 조심한다는 것은 무모하게 행동하지 말라는 뜻이고, 말과 행동을 지혜롭게 하라는 뜻이다. 이 지혜로써, 옳은 일에는 항상 자기 주장을 굽히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참된 지혜이다. 지나치게 조심하는 것은 전혀 조심하지 않는 것만큼 해롭다. 지혜란 그 균형을 잘 지킬 줄 아는 것이다.”

우리는 여관에 도착해서 주인하고 잠잘 방과 식사에 대해 이야기했다. 주인은 나에게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오늘 밤을 여기서 지내시려면 조심하셔야 합니다. 무서운 사람들이 여기 와 있습니다.” 그는 사방을 둘러본 다음 계속해서 말했다. “저라면 방으로 들어가서 아침이 될 때까지 안 나오겠습니다.”

“충고해 주어 고맙소. 그렇지만 몹시 시장하니 식사부터 해야겠소.”

“식사하러 가시거든 말을 조심하시고, 무엇을 하시든지 조심해서 하십시오. 다른 데로 가줬으면 싶은 손님들이 오늘 여기 있습니다.” 주인이 재차 충고했다.

“걱정해 주어서 고맙소. 조심하도록 하겠소.”

우리가 쓸 방은 두 개였는데, 한 방으로 모두 모이게 하 후 제자들에게 말했다. “오늘 밤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화를 내지 말고, 침착하게 행동하고, 모든 것을 나에게 맡기고 의탁하여라.”

 

나는 식사할 방을 제자들을 데리고 갔다. 주위를 둘러 보니 서너 그룹의 남자들이 웅크리고 앉아서 조용히 토론하고 있었다. 우리가 들어가자 그 중 몇 명이 고개를 들고 우리를 쳐다보았다. 쳐다보는 사람들에게 나는 공손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미소를 지었다. 몇 명은 인사를 받아 주었고, 다른 몇 명은 의심쩍은 눈길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우리가 탁자에 둘러앉자, 주인이 국을 담은 큰 그릇을 서둘러 가지고 와서 탁자 중간에 놓았다. 그릇에서 김이 무럭무럭 피어났다. 하인들이 그 국에 곁들여 먹을 빵을 가져왔고, 주인은 탁자 위에 엎드려서 모기만한 소리로 속삭였다. “명심하게요. 조심하여야 해요. 무서운 세상입니다.”

나는 주인에게 싱긋 웃어 주었다. “알겠소. 경고해 줘서 고맙소.” 주인이 가고 나서 식사 전 기도를 시작했다. “이 음식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기도를 드리자.” 우리는 모두 아버지께 감사기도를 시작했는데, 몇몇 제자들은 어찌나 겁에 질렸는지 기도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기도할 때는 다른 것은 모두 잊어 버리고 오직 하느님만 생각하여라. 모든 분심을 떨쳐 버리고, 너희들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하느님께서 너희들 생애에 무엇을 해 주셨는지를 생각해 보아라. 그 다음 마음에서 우러나는 사랑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

우리는 기도를 계속했고, 제자들은 내가 한 말을 생각하며 두려움을 서서히 떨쳐 버렸다. 하루 내내 기도만 하고 아무것도 먹지 않았으므로 다들 아주 맛있게 식사를 했다. 다른 탁자에 있던 남자들 중 한 사람이 우리 쪽으로 와서, 한 손으로 탁자를 짚고 몸을 숙이며 큰 소리로 말했다. “댁들은 누구요? 어디서 왔소?”

제자들은 입을 다문 채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나자렛의 예수이고, 이 사람들은 내 동행들이오.”

“당신이 바로 그 선지자 예수람 말이오? 못 믿겠는데, 너무 볼품이 없잖아.” 하며 비웃었다.

“댁이 선지자라면 내 앞 일에 대해 어디 말 좀 해 보시오.” 그는 주먹으로 탁자를 내려치며 말했다.

“친구, 화를 낼 필요는 없소. 우리는 모두 다 야훼의 아들들이오.”

“나는 댁의 친구가 아니오.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하시오. 댁이 선지자요? 아니요?”

베드로가 일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내가 베드로를 쳐다보자 도로 자리에 앉았다. 일행 중의 다른 남자가 와서 그 남자에게 말했다. “그 사람들 그냥 놔 두게. 해로울 것 없는 사람들 아닌가.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많네.”

뒤에 온 사람이 그 남자의 팔을 잡자, 그는 손을 뿌리치고 고함을 질렀다. “나는 소위 선지자를 자처하는 이 작자한테서 대답을 들어야겠단 말이야. 그것도 당장에!”

“친구.” 내가 다정하게 말했다.

“나는 당신의 친구가 아니라니깐!” 그는 다신 고함을 질렀다.

“당신은 너무나 많은 좌절을 당했고, 우리 나라를 점령하고 있는 로마인들에 대한 분노 때문에, 이제는 누가 당신 편인지조차 잊어 버렸소.” 내 말을 듣고 그는 나를 죽일 듯이 쏘아 보았다. 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우리는 모두 유다인이오. 우리는 모두 형제들이오. 우리는 야훼께서 모세에게 내려 주신 십계명을 지켜야 하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느님의 십계명을 지키고, 하느님의 사랑을 온 세상에 보여 주어야 할 본보기로 선택된 백성이오.”

“십계명! 거 좋은 얘기지.” 그는 소리를 버럭 질렀다. “우리만 계명을 지키고, 다른 사람들은 제 멋대로 살아도 된다는 것이 십계명이오? 그것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손해를 보고 있는지 알고 있소? 우리 땅까지 빼앗긴 걸 보고도 모른단 말이오.”

“하느님께서 이 땅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오직 하느님께서만 이 땅을 우리에게서 거두어 가실 수 있소.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께 의탁한다면,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오.”

“나는 내 칼과 내 팔만 의지할 것이오. 우리 땅이 해방되면 그때는 하느님을 믿겠소.” 그는 오른 팔을 올려 단단한 근육을 과시했다.

“언젠가 당신이 늙어졌을 때, 그때는 어떻게 하겠소? 그 내 물음에 답을 못하고 그저 나를 노려보고만 있었다. “앞으로 어는 날엔가 당신은 사형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오. 그런데 놀랍게도 사형 집행인이 군중들에게 한 사람을 선택하라고 할 것이오. 당신을 택하든지, 죄 없는 한 사람을 택하든지 말이오. 그것은 삶과 죽음의 선택인 것이오. 군중들은 당신을 선택할 것이고, 어린 양은 마침내 처형될 것이오. 처음에 당신은 살았다는 기쁨에 몹시 행복해 하겠지만, 그러나 당신은 당신 대신에 죽은 그 사람에 대한 죄책감을 가슴에 품고 여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오.”

“무죄한 사람이란 없소.” 혼란스러운 눈길로 나를 쳐다보면 그가 외쳤다. “그리고 내가 받아야 할 것이 있다면 난 무엇이든지 받을 것이오.” 그는 자기의 용감함을 과시하면 말했다.

“그때가 되면, 당신은 받았어야 할 것을 받지 못한 일을 후회하게 될 것이오.” 그는 뭔가에 맞은 듯 멍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오늘 당신은 가슴 속에 죽음을 품고 있소…. 죽음과 복수를 말이오. 모세가 산상에서 가지고 내려온 십계명을 생각해 보시오. 그 십계명은 당신을 위한 계명이고, 모든 사람들을 위한 계명이오.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것은 하느님의 계명이오. 그것을 거역한다는 것은 자기 스스로에게 지옥형벌을 선고하는 것이오. 하느님은 당신을 지켜보고 계시니, 당신은 언젠가 하느님 앞에서 당신이 범한 모든 죄에 대한 벌을 받아야 할 것이오. 친구, 십계명을 지키시오. 그리고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살아 가시오.” 나는 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잡았다.

그는 여러 감정이 복잡하게 섞인 시선을 계속해서 나에게 보내고 있었는데, 동료들이 그를 불렀다. “바라빠, 지금 출발해야겠네. 오늘 밤에 할 일이 많아.”

잠시 동안 그는 나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지만, 곧 자기 동료를 향해 돌아서서 말했다. “오늘 일은 여기까지만 하고 다음에 하기로 하지. 자, 이곳을 떠나자고.” 동료들 간에 몇 마디 논쟁이 벌어졌는데, 그가 소리쳤다. “자, 어서 따라와. 이제 떠난다!”

그들이 떠나고, 유다가 입을 열기까지 방 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 사람은 바라빠라는 사람인데, 아주 용감한 사람입니다.”

“아니다, 유다야. 그 사람은 방황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앞으로 마음에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 갈 것이다.”

우리가 식사를 마쳤을 때 주인이 다시 와서 말했다. “그 사람들이 가 버려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문젯거리 사람들입니다.”

“문젯거리가 아니고, 마음이 방황하고 있는 사람들이오. 적어도 오늘 밤에는 다른 사람들을 해지지 않을 것이오. 그 사람들이나 다른 모든 사람들이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려고만 한다면 살아 가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을 텐데 말이오.” 나는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고 쉽게 마음을 닫아 버리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예수님 +++  1996년 7월 6일

 

나는 여러 가지 생각으로 밤 동안 내내 잠을 설쳤다. 앞으로 닥쳐올 일들, 장차 바라빠와 나 사이에 엉켜질 일 등에 대한 생각 때문이었다. 가엾은 바라빠는, 분노와 증오와 복수심과 난폭함으로 자신의 영혼에 어둠을 드리우고 있었다.

아침에 우리는 기도하러 회당으로 갔다. 회당은 아주 컸다. 우리가 들어갔을 때는 사람들이 꽉 차서 기도할 자리를 찾기가 어려웠다. 고관대작으로 보이는 사람이, 회당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설교를 하고 있었고, 서기관이 옆에서 받아쓰고 있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의 속박으로부터 구출하여 나왔을 때, 모세는 그들이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새로운 생활을 하도록 인도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가운데 몇 사람이나 하느님을 위한 생활을 하고 있으며, 자신의 삶을 하느님께 바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런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결코 많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십계명을 지키지 않는다면, 우리 유다인들이 어떻게 하느님의 자녀라고 자처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하느님을 무시한다면, 어떻게 하느님의 선택된 백성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바치고 거룩해지기 위해 회당에 오지만, 회당 밖에만 나가면 하느님의 뜻을 무시해 버리고 생활합니다.

오늘날의 이스라엘은 길을 일고 방황하는 나라입니다… 자신의 의지로, 하느님께 등을 돌림으로써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이 나라는 하느님 대전에 수치스런 나라입니다.

이제 우리는 변화되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우리에게 바라던 대로 살아 가야 합니다. 모세가 바라던 대로 살아 가야 합니다. 그리고 한평생 하느님의 사랑이 얼마나 우리를 강하게 하시고, 충만하게 하시며, 지도해 주시는지를 온 세상에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가 설교를 끝내고 자리에 앉자, 서기관은 받아쓰기를 멈추었다. 설교한 말이 사람들의 가슴에 메아리치고 있었으므로 회당 안에는 완전한 침묵이 흘렀다. 그런데 한 남자가 옷을 여미고 일어나서 말했다. “아주 좋은 설교를 해 주셨습니다. 사람들이 하느님께 등을 돌린 채, 자기만을 위해서 살고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셨는데,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당신 자신은 어떻습니까? 당신은 좋은 옷을 입고, 큰 집에서 살고 있지 않습니까?

설교했던 사람이 다시 일어서서 그 말을 받았다. “그렇습니다. 나는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집에서 살고, 좋은 가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유복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우리 아버지가 나에게 물려 주셨고, 또 내가 자식들에게 물려 줄 유산에 불과합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소유한 재산으로 무엇을 하느냐 하는 것이며, 여러분이 어떻게 그것을 불우한 다른 사람들과 나누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진심으로 나눠 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며, 가진 것을 잃을까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하느님께서 재산으로 여러분을 축복해 주셨다면,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과, 하느님의 사랑을 퍼뜨리는 데에 그 재산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재산이란 그런 것을 위해 사용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하, 그러나 당신은 너무나 많이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잔뜩 나누어 준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가난해질 염려는 없을 테지요.” 그 사람이 큰 소리로 반박했다.

“나는 항상 가난합니다. 하느님을 충분히 기쁘게 해 드리지 못해서 마음이 가난하고, 하느님께 등을 돌리는 내 형제들을 보노라면 마음이 가난해집니다.” 설교자의 대답이었다.

질문한 사람이 다시 반박했다. “마음은 가난할지 몰라도, 당신은 배가 항상 부르겠지요.”

회당 안쪽에서 키가 작은 한 사람이 일어나서 말했다. “나타나엘, 당신의 설교는 유익했어요. 당신을 질투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에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병든 사람들을 간호하고, 궁핍한 자들을 도와 주며, 여행자들이 쉬어가도록 당신 집을 제공하는 것도 잘 알고 있어요. 당신은 회당에 헌금을 내고, 돈과 시간을 희생으로 바치고 있습니다. 당신 같은 사람이 더 많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 사람은 말을 마치고 환하게 웃고는 자리에 앉았다.

또 다른 사람이 크게 말했다. “그건 사실이오. 우리는 나타나엘이 착한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는 항상 진심으로 진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나타나엘이 하는 말 속에는 많은 교훈이 담겨 있으니까요. 오늘 그가 한 말을 묵상해 봅시다.”

오랫동안 침묵이 흐른 다음, 한 젊은이가 일어나서 물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스라엘을 하느님께로 돌려놓을 수 있겠습니까?”

나타나엘이 일어나서 대답했다. “기도하면서, 하느님의 뜻대로 살기 시작하면 여러분은 악의 물길을 바꿔 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각자가 자신을 변화시키고 하느님께 돌아온다면 온 나라가 변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아주 기뻤다. 나타나엘한테서 하느님의 참된 아들을 본 것이다.

 

“선생님, 한 말씀 안 하시겠습니까?” 곁에 있던 베드로가 물었다.

“내가 말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미 다 이야기했으니까 말이다.”

베드로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누가 듣고, 귓속말을 통해 온 회당 안에 내 이름이 알려졌다.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이 여기 계신다.”

“그렇습니다.”

“저희들에게 한 말씀 해 주십시오.”

나는 일어나서 다윗이 하느님께 의탁하는 내용의 시편을 낭독한 다음 자리에 앉았다. 모든 시선이 나에게 집중된 채 침묵이 흘렀다.

“낭독하신 것을 설명해 주십시오.” 한 노인이 일어나서 내게 청했다.

“나타나엘이 말하기를,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뜻을 찾아 되돌아가서, 하느님의 사랑 속에서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시편도 바로 그것을 말하며, 하느님께 의탁하라고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니 두려워하지 말고 하느님께 의탁하십시오.” 나는 대답하고 나서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있는데, 회당 안의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그 시편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다 (시편 23, 착한 목자).

나타나엘이 나에게 와서 청했다. “선생님, 오늘밤 저의 집에서 식사를 같이 하시 않으시겠습니까?”

“좋습니다. 그런데 제자들과 함께 가도 괜찮겠습니까?”

“저의 집에는 방이 많습니다. 데리고 오십시오.” 나타나엘이 기쁘게 대답했다.

 

저녁 무렵에 우리는 나타나엘의 집으로 갔다. 도중에 지나치게 된 어느 여관어세는 로마 군인들이 소란을 피우며, 목이 터져 라고 노래를 불러대고 있었다.

나타나엘의 집은 높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는 아주 큰 집이었고, 나무로 만든 큰 대문이 있었다. 나타나엘과 부인 레베카와 아들 유다가 우리를 맞이하기 위해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선생님. 같이 오신 분들도 잘 오셨습니다. 여기는 제 가족입니다.” 하며 나타나엘이 부인과 아들을 소개했다. 우리는 큰 식당으로 안내되었다. 하녀 두 사람과 하인 한 사람이 탁자 가까이에 서 있었는데, 레베카가 그들의 어깨 위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이 사람들도 저희 가족이나 다름없습니다.” 나는 레베카가 하인들에게 아주 다정하게 대해 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모두가 탁자에 앉고 난 다음, 나타나엘이 입을 열었다.

“우리에게 주신 음식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자 그러면 유다가 기도하기로 합시다.” 처음에는 세 명의 유다가 동시게 기도를 시작했는데, 내 제자들인 두 유다는 자기들한테 기도하라고 한 말이 아니라, 나타나엘의 아들인 유다에게 한 말임을 알고는 입을 다물었다. (열두 사도 중에 유다가 두 사람인데, 요셉 성인의 조카인 유다 타대오와, 배반자 가리옷 유다이다).

“주님 우리에게 이 음식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 베풀어 주신 당신의 사랑에 감사 드리고, 우리 가족에게 보여 주시는 당신의 사랑에 감사 드립니다.” 나타나엘의 아들 유다의 기도를 따라서 우리는 모두 함께 하느님을 찬미했다.

하녀들이 음식을 날라왔다. 유다는 상 위에 놓인 평범한 음식을 보고 실망하는 표정이었다. 나타나엘이 부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유다는 기대가 컸던 것이다. 하인들은 음식을 다 나르고 나서 우리와 같이 앉아서 식사를 했다.

 

“선생님, 그 동안 선생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나타나엘이 감격해 하며 말했다.

“그런데 아주 굉장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빵 몇 덩어리와 생선 몇 마리를 가지고 몇 천명을 먹이셨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부인 레베카가 물었다.

“사실입니다.” 야고보가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자비하신 하느님께서 굶주린 영혼들을 먹이시는 것은 사실입니다.” 나는 내가 그 날 먹인 사람들뿐 아니라, 장차 내가 매일 권하는 그 음식(성체)을 먹을 사람들을 생각하며 말했다.

“하느님은 좋으신 분입니다. 당신의 자녀들을 자상하게 보살펴 주십니다.”

나타니엘의 뒤를 이어 아들 유다가 말했다. “선생님께서 하느님의 이름으로 행하신 많은 기적들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다른 사람들도 그런 기적을 행할 수 있는 겁니까?”

나는 그의 가슴 안에, 진심으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싶은 열망이 있는 것을 보았다. 자기 아버지처럼 하느님을 사랑하고 동포를 사랑하는 겸손한 아들을 보았다.

“유다야, 만약 네가 하느님께 완전히 의탁하고, 네 삶을 기도로서 하느님께 바치면,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믿음만 있으면 된다. 믿음 안에 불가능한 것은 없다. 그리고 너는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다. 내 말을 믿어라. 그러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일어나는 기적을 보게 될 것이다.”

아들 유다가 미소를 지으면서 물었다. “제가 제 믿음을 의심하고 있는 줄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나는 에가 네 자신의 신앙을 의심하고, 믿음이 충분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믿음이 더 깊어지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내가 분명히 말하는데, 모든 사람들이 너와 같은 믿음만 가지고 있다면 이 세상에서 악이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저는 너무 보잘것없고 쓸모 없는 사람같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저는 하느님을 위해 많은 일을 하고 싶은데,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아들 유다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지극한 겸손으로 말하고 있었다.

“네가 알고 있는 것보다 실제로 너는 훨씬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다. 비록 네가 눈으로 보지는 못하더라도, 너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줌으로써 그들을 도와 주고 있는 것이다. 어떤 때는 메 기도의 결과를 네가 실제로 보기도 한다. 술만 마시고 여자와 졸기를 좋아하던 네 친구가 생각나느냐? 그 친구를 위해 네가 얼마나 끊임없이 기도했느냐? 지금 그 친구를 보아라. 새 사람으로 변해 있지 않느냐? 그 친구는 회당에도 나가고, 부인과 딸을 가진 착한 사람이 되었다. 네가 바라던 대로 말이다. 그것은 큰 기적이다. 네 기도의 힘으로 행한 기적이 바로 그것이다.”

“그건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제 기도에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기도가 친구를 어떻게 도와 주었는지를 깨닫고 유다는 싱글벙글 하였다.

“기적이라고 해서 모두 다 알아보게 되는 것은 아니다. 아주 극적인 기적이라야만 사람들이 알아보게 되는데, 영혼을 구하는 중요한 기적은 흔히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지만, 자기 기도가 안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하느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다 들어 주신다는 것을 믿고 하느님께 맡겨 놓으면 좋으련만은… 어떤 때는 기도한 것이 생각지도 않은 모습으로 이루어지기도 하고, 아주 은밀한 방법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하느님께서 하신 일을 알지 못하고 그냥 지나가게 되지만, 하느님께서는 기도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다 들어 주신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식들의 기도를 꼭 들어 주시는데, 자식들이 그것을 알지 못할 뿐이다.”

나타나엘이 레베카를 쳐다보고 나서 말했다. “제게 다른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몇 해 전에 죽었습니다. 그 아들은 과격파에 가입한 후로, 항상 분노에 넘쳐 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우리 가족이 너무 온건하다고 비난하면서 온 이스라엘 민족과 함께 우리 가족도 로마에 대항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내가 그 아들에게 평화와 용서에 대해 말하면 들으려 하지도 않았고, 나를 어리석은 늙은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아들이 로마군에 대항하여 싸우러 간다고 집을 떠났을 때 레베카의 가슴은 산신이 부서졌지요. 그런데 몇 달 후 아들이 로마군과 싸우다가 죽음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후로 다시는 그 아들을 보지 못했고, 아들이 마지막으로 들려 준 말은 분노의 말뿐이었습니다.”

나타나엘은 아주 슬픈 표정이었고, 레베카는 울고 있었다. 아들 유다가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말했다. “나는 형의 영혼을 위해 매일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형의 영혼을 보살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선생님, 하느님께서 꼭 보살펴 주시겠지요?”

“하느님께서는 기도를 반드시 들어 주시고, 하느님의 용서는 끝이 없단다. 때로는 젊은이들이 속임수를 당하여, 악을 선이라고 믿게 되고, 살인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된다. 젊은 혈기로 젊은이들은 죄를 짓는 것을 무슨 신나는 일로 생각하기도 한다. 특히 하느님과 조국을 위해 살인을 하는 것이라고 배울 때는 말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그런 식으로 잘못 현혹되었더라도, 용서는 주어진다.

네 형이 죽을 때, 너와 부모님께 끼친 괴로움과, 자신이 저지른 모든 잘못에 대해 하느님께 용서를 빌었다. 네 형은 자신이 부모 형제와 하느님께 어떤 괴로움을 끼쳐 드렸는지 알게 되었고, 진심으로 용서를 빌었다. 그는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름을 불렀고 동생인 네 이름을 불렀다. 그가 하느님께 용서를 빌었을 때, 용서를 받았던 것이다. 그러니 유다야, 너의 기도는 헛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그 아들의 죽음을 눈 앞에서 보았는데, 뒤에서 바라빠가 그를 도와 주려다가 도망가는 것을 보면서, 내 뺨에 눈물이 흘렀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오, 감사합니다!” 레베카가 조용히 흐느꼈다. 레베카는 마침내 자기 아들이 용서 받았다는 것을 알고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식사를 하며 우리는 많은 것을 이야기했다. 하느님께 대한 그 가족의 사랑은 확고했는데, 하인들을 자기 친 가족같이 대해주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었다.

밤이 깊어서 우리는 나타나엘 가족과 작별 인사를 했다.

“주님, 언제든지 오십시오. 그리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나타나엘은 내 손 안에 돈주머니를 쥐어 주며 말했다. “주님, 하시는 일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거절하면 나타나엘이 마음 아파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돈 주머니를 받아서 유다에게 건네 주었다. “너그러운 마음에 감사하오. 좋은 일에 쓰도록 하겠소.”

레베카가 내 뺨에 입맞춤을 하고 물었다. “제가 주님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그렇게 불러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나타나엘도 동의를 표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아들 유다의 말에 하인들도 모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느님의 사랑이 가득한 마음은 진리를 압니다.” 하고 대답한 다음, 하인들에게 가서 말했다. “여러분은 아주 좋은 가족을 가지고 있어요. 하느님의 가족을 가졌으니 말입니다.”

그들은 나에게 환하게 웃어 주었는데, 그 중 한 하인이 나서서 말했다. “이 집에서는 하루하루가 기쁨이고, 날이 갈수록 저희는 이 가족을 위해 더 기도하게 됩니다. 저희들을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누님.” 하녀들도 그의 말에 동의하며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우리가 나타나엘의 집을 나서는데, 유다가 주머니 안을 들여다보며 돈을 세고 있는 것을 보았다. 어떤 사람은 변하기 어렵고, 어떤 사람은 도저히 배우지를 못한다.

 

 

 

예수님 +++  1996년 7월 7일

 

여관으로 돌아가면서 우리는 나타나엘과 그 가족들이 지닌 사람에 대해 아버지께 감사 드렸다. 여관 안으로 들어서자, 주인이 우리를 반기며 방으로 안내해 주었다.

“선생님.” 내가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주인이 나를 조용히 불렀다. “잠간 저와 이야기하셔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오.” 나도 조용히 말했다. 우리는 다른 방으로 가서 단 둘이 앉았다.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가 망설이며 이을 열었다.

“솔직하게 말하십시오.”

“선생님, 제가 젊었을 때에 사.. 사람을 죽이고 돈을 빼앗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여 이 여관을 사게 된 것입니다. 죽이려고 한 것은 아니었고, 돈만 뺏으려고 했는데 그렇게 되었습니다. 저는 매일 하느님께 용서를 빕니다. 하루도 그 사람을 생각하지 않는 날이 없습니다. 그 보속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자칫 말을 잘못하거나 행동을 잘못하면 사람들이 저의 죄악을 다 알게 될 것 같아서 두렵기만 합니다.

제게는 가족이 있는데, 그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비탄에 빠질 것입니다. 어떤 때는 그냥 몰래 집을 떠나 사막에 가서 죽어 버리고만 싶습니다. 그러면 아내와 자식들에게 수치를 안겨 주지 않을 테니까요. 어떤 때는 제가 그 사람의 생명을 뺏은 대가로 제 자신을 죽여야만 할 것 같은 생각도 듭니다. 그래야만 하느님께서 저를 용서해 주실 것 같으니까요.

선생님, 저는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하루 하루 사는 것이 고통입니다. 오!… 정말 고통입니다. 날마다 저는 그 사람의 얼굴을 보는데, 언제까지 제가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의 얼굴은 절망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형제여, 당신은 날마다 후회하고 있소. 잘못했다는 것을 알고, 진심으로 용서를 비고 있는 것이오. 지은 죄에 대해 비통해 하는 것은 당신이 진정으로 용서를 빌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오. 그리고 저지른 행동에 대해 죄책감과 수치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은, 당신이 죄악을 저질렀다는 것을 깨닫고 이제는 그 죄악을 거부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오.”
그는 내 말을 끊었다. “그렇지만 제가 훔치고 살인을 했다는 사실에는 변화가 없지 않습니까? 하느님께서 어떻게 저를 용서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의 자비는 한계가 없소. 하느님께 자비를 구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비를 얻게 되는 것이오. 누가 무엇을 했든지 간에, 통회를 하고 진정한 마음으로 보속을 하면, 하느님의 자비는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것이오.”

“저는 보속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선생님?”

“그 사람의 가족을 알고 있소?”

“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 자신이 너무나 수치스러워 그 가족을 피해 왔습니다.”

“그들과 가까이 사귀고, 당신이 할 수 있는 만큼 그들을 도와 주시오.”

“그들은 지금 몹시 가난합니다. 그 사람이 죽은 이후로 그들이 하던 일도 망하게 되어, 가난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오.”
“하지만 선생님, 어떻게 하면 그들의 의심을 사지 않고 도와 줄 수 있을까요?” 그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그들을 도와 주시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상관하지 말고, 친 가족같이 그들을 도와 주고 사랑해 주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진심으로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보든지, 뭐라고 하든지 이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실이 밝혀진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제가 후회하고 있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그러니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하느님 손에 맡깁니다.” 그는 불현듯 진리를 깨달았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후회하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계시오. 이제는 당신이 보속할 일만 남았고. 보속으로써 당신이 고통을 준 그 사람들을 도와 주게 될 것이고, 그 보속은 당신 자신을 도와 줄 것이오. 보속이란, 입고 있는 옷을 찢어 버리거나, 얼굴에 재를 덮어 쓰거나, 고통 받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이며 돌아다니는 거시 아니오. 보속이란, 당신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한 당신의 연약함과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아는 것이오. 보속이란, 진심으로 잘못했다고 하느님께 비는 것이오. 보속이란, 최선을 다하여 당신이 남에게 끼친 손상을 회복시켜 주는 것이오. 보속이란, 당신이 그런 잘못을 또다시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하느님 안에서 얻는 것이오.”

“감사합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정말 지혜로우십니다. 제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 수 있도록 제 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제 제 삶이 조금 쉬워질 것도 같습니다.” 그가 진실로 고마워 하는 모습이 얼굴에 역력했다.

“이제부터 하느님을 위해 여생을 살아 가시오. 그리고 모든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시오. 기도를 자주 바치고, 저지른 잘못을 보속하기 위해 하루하루를 하느님께 바치시오. 그런 다음 하느님의 자비를 당신 마음 깊이 받아들이고, 어두움을 밝히는 빛이 되시오.” 나는 그의 어깨 위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이러한 모든 것을 행하면서, 자신을 용서할 줄도 아시오. 그렇지 않으면 다시금 죄에 빠지게 될 것이오.”

“그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당신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던 것을 생각해 보시오. 그것은 어떤 종류의 보속도 될 수 없는 일이오. 죽이는 것은 곧 죄악이기 때문이오. 악마는 그런 식으로 죄를 짓도록 선동하고 있는 것이오. 죄에 대한 보속을 또 다른 죄로 보속해야 한다고 악마는 속이고 있고. 그리하여 악이 점점 더 자라게 되는 것이오.

당신이 만약 그런 길을 택했다면, 가족과 친구들에게 얼마나 아픈 고통을 남겨 주었을지 생각해 보시오. 그들은 당신 죄 때문에 고통을 겪어야 했을 것이오. 마귀는 그런 작업을 하는 것이오. 해결책이 전혀 될 수 없는 것을 해결책으로 보이게 함으로서,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평생 동안 짊어지고 가야 할 무거운 짐을 안게 주게 되는 것이오.”

“선생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분명해졌습니다. 제가 전에는 왜 그것을 생각 못했을까요?” 그는 거의 고함을 치듯 말했다.

“당신이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을 때 마귀를 마음 안에 들어오게 하여, 그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생각을 집어놓도록 허락했기 때문이오. 그러나 앞으로는 하느님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것과, 하느님께서 당신을 용서해 주고자 애타게 기다리신다는 것을 기억하시오. 당신이 하느님의 용서를 받아들인 다음에는, 죄책감을 버려야 하오. 그러나 그 죄는 잊지 말고 기억하여, 다시는 같은 죄를 범하지 않도록 하시오.”

“선생님, 감사합니다. 제 생명, 제 마음, 제 가족 그리고 제 영혼을 건져 주셨습니다. 저는 너무나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필요하신 것이 있으면 말씀하십시오. 무엇이든지 드리겠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이미 다 말했소. 내가 말한 대로 하시오. 그리고 평화를 찾으시오. 하느님의 평화를!” 대화를 마치고 잠을 자기 위해 다른 방으로 가고 있는데, 그가 흐느끼며 하는 말이 들여 왔다.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예수님 +++  1996년 7월 10일

 

다음날 아침에 우리는 기도하기 위해 회당으로 다시 갔다. 아침 내내 회당에 있다가 한나절이 되어서야 여관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 구걸하는 장애인 거지 두 사람을 만났다. 나는 유다에게 말했다. “나타나엘이 우리에게 준 돈을 모두 이 사람들에게 주어라.”

“뭐라고요, 전부 다 말입니까?” 유다가 놀라서 외쳤다.

“그래, 전부 주어라. 우리는 그 돈이 필요 없다.”

“하지만, 주님, 나중에 반드시 필요하게 될 텐데요.” 유다가 눈을 번득이며 항의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으면 그때 얻게 될 것이다.” 나는 예사로 하는 말이 아니라는 표정으로 유다를 쳐다보았다.

유다는 주저하면서 장애인 거지들에게 돈을 주었는데, 그 중 나이 많은 거지가 내 앞으로 와서 무릎을 꿇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너무나 감사합니다. 불쌍한 다른 거지들과 이 돈을 나누어 갖겠습니다. 우리 둘이서만 가지기에는 너무나 많습니다.” 나는 그의 가슴 속을 들여다보고, 그가 하는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았다.

“유다! 네가 이 교훈을 알아들을 수만 있다면, 이 사람한테서 배울 게 있을 것이다.” 내 말을 듣고도 유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거지의 손을 잡고 말했다. “당신은 사랑과 인정이 넘치는 사람이오. 그리고 그 사랑은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오.”

“하느님이라고요? 그렇습니다. 저는 하느님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그리고 비록 장애자이고 가난하긴 해도 저에게 생명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제 가슴을 기쁨으로 가득 채워 주십니다. 저는 그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형제여, 당신의 사랑과 믿음이 당신을 치유했소.”

나의 말과 함께 그 사람은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지팡이 없이 똑바로 걷기 시작했다. 그는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하느님을 찬미했다.

“선생님, 저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나이 어린 장애인 거지가 간절한 애원의 목소리로 청했다.

“형제여, 하느님께서 자네를 잊으실 것 같은가?” 나는 손을 그의 머리 위에 얹고 명령했다. “일어나서 걸으시오.”

그는 겁을 잔뜩 먹고 일어서려고 애를 썼다. 그러다가 지팡이를 놓치고 앞뒤로 휘청거리다가 첫 걸음을 내디뎠다. “보세요. 저도 걸을 수 있어요!” 그는 소리쳤다. 두 사람은 서로 붙들고 빙글빙글 돌아가면서 춤을 추었고, 하느님을 찬미했다. 제자들도 기쁜 표정으로 그 두 사람이 춤을 추고 있는 것을 쳐다 보고 있었다. 마침내 두 사람은 춤을 멈추고 나에게 와서 내 손에 입맞춤을 했다.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그들은 거듭거듭 인사를 했다.

“아무에게도 이 일에 대해 말하지 마시오 그리고 자비하신 하느님께서 당신들을 치유해 주셨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시고.” 두 사람으로부터 약속을 받고, 나는 제자들과 함께 여관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간단한 식사를 했는데, 배도 부르고 맛이 있었다. 주인이 더 권했지만 사양했다. 유다는 그때까지도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베드로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고, 다른 제자들은 남아서 쉬거나 다른 일을 했다. 스폰지가 물을 흡수하듯 내가 설명하는 말을 잘 받아들였다. 간혹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할 때는 다시 설명을 해 달라고 솔직하게 묻곤 했다. 베드로를 보고 있으면, 눈을 크게 뜨고서 자기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려나 하고 기다리는 어린아이를 생각나게 했다.

베드로는 많은 사람들에게 순명과 겸손의 모범이 되어 줄 본보기였다. 베드로는 자신의 인간적 미약함으로 인해, 하느님과 가까이 있으면서도 잘못을 저지르고, 하느님을 부인하기까지 한다는 것을 보여 줄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겸손한 사랑으로 인해, 하느님의 도움을 받아들여 자신의 미약함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줄 것이다. 베드로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좋은 모범이며, 나에게는 얼마나 좋은 친구인가.

 

“저기 계시다.”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저 분이 나를 고쳐 주셨어!” 갑자기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둘러쌌다. 장애인과 거지들, 앞 못 보는 사람들, 다리를 저는 사람들, 귀가 안 들리는 사람들 그리고 병자들이었다.

“저를 고쳐 주십시오. 제게 손을 대어 주십시오. 저를 도와 주십시오.” 그들은 모두 손을 내밀고 외쳐댔다.

나는 베드로에게 사람들을 자리에 앉게 하라고 지시했다.

잠시 후에 먼저 치유 받은 두 사람의 도움을 받아, 베드로는 겨우 사람들을 자리에 앉혔다. 군중의 질서를 잡아 가며 베드로가 큰 소리로 외쳤다. “조용히 하시오.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귀담아 들으시오. 그러면 예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가 주실 것이오.”

갑자기 군중들이 일제히 일어나서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몰려왔다. “예수님이시래. 선지자 예수님이시란다!”

군중이 손을 뻗쳐 나를 만지는 가운데 외침 소리가 들렸다. “내 병이 나았다!” 곧이어 다른 외침 소리가 들렸고, 또 다른 외침 소리가 계속 들려 왔다. 수많은 사람들이 치유를 받고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는데, 마치 하느님을 찬미하는 합창대가 부르는 성가처럼 들렸다.

“손을 대 주십시오, 예수님. 제게 손을 대 주십시오.” 모여 있던 사람들이 모두 내 손을 잡거나 내 옷을 잡을 때까지 외침은 계속되었다. 그날 백 명이 넘게 치유를 받았다. 나는 몹시 지쳐서 옆에 있는 베드로에게 쉬어야겠다고 말했다.

베드로가 목이 터져라고 소리를 질렀다. “선생님께서 무척 피곤하십니다. 가서 뒤실 수 있도록 길을 비켜 주시오.”

“그분께서 다시 오실 겁니까?” 군중 가운데 한 사람이 물었다.

곤혹스럽게 나를 쳐다보는 베드로에게 “내일’ 이라고 말해 주었다.

베드로가 옆에 붙어 걸어가면서 사람들을 떨어지게 했지만, 사람들은 여관까지 따라왔다. 우리가 여관 안으로 들어간 후에도 그들은 밖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여관 주인이 휘둥그레진 눈을 하고 와서 나에게 제안을 했다. “다른 데 어디 조용한 곳으로 가셔야 하겠습니다. 그렇잖으면 저 사람들이 쉬시도록 가만 두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제 집이 하나 있는데, 뒷문으로 나가시면 아무도 따라오지 못할 것입니다.”

“고맙소. 정말 반가운 말이오.”

“제가 나중에 음식을 가져다 드릴 테니 걱정 말고 가십시오.” 여관 주인은 하인을 불러 베드로와 나에게 길을 안내하게 했다.

“밖에 있는 저 사람들은 어떻게 하지요? 저 사람들도 배가 고플 텐데요.” 베드로의 동정심이 발동을 했다.

여관 주인은 군중을 둘러보고 나서 말했다. “가시고 나면 제가 저 사람들을 먹이겠습니다. 제가 그 정도는 해야지요.”

여관 주인과 내가 나눈 대화를 듣지 못했던 베드로는 놀란 표정이었다. “저 여관 주인 참 좋은 사람이네요. 그렇게 선뜻 자기 재산을 내놓다니 말입니다.”

“그렇다, 좋은 사람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은 그것을 믿지 못한다.”

 

여관 주인의 집에 도착한 다음, 나는 아버지와 함께 있기 위해 조용한 방을 찾았다. 우선 먼저 사람들에게 베풀어 주신 아버지의 자비에 감사를 드렸다. 기도를 시작하면서 눈을 감았는데,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아침이었다. 베드로가 잠이 든 나를 침대에 눕히고 담요를 덮어 주었던 것 같았다. 나는 눈을 뜬 채로 침대에 누워, 내 앞에 계시는 아버지를 보고 있었다.

“내 아들아. 오늘 사람들을 치유해 주고 난 다음, 한적한 곳으로 가서 나와 함께 있으면서 쉬도록 하여라.” 하시면서 아버지께서는 산 밑에 있는 작은 동굴을 보여 주셨다. 나는 눈을 감고는 다시 잠이 들었다.

얼마가 지났는지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다시 깨어났다. 여관집의 하인이었다.

“따뜻한 식사를 가져 왔습니다. 어젯 밤에 식사를 안 드셨으니 이제 좀 드셔야 합니다.” 하인은 친절하게 말했다.

“고맙소. 금방 나가겠소.”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여관 밖에 수백 명도 넘는 사람들이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동네뿐 아니라, 주위의 다른 동네에서도 왔고, 그 중에는 로마 군인도 있습니다.”

“식사를 하고 바로 그리로 갈 것이니, 거기 가거든 사람들에게 조용히 앉아서 나를 기다리는 동안 기도를 바치라고 하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 제가 가기 전에 전.. 저는…,” 하인은 눈을 아래로 내리 깔고 말을 더듬거렸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지금 하시오. 당신이 원하는 것이 아버지의 뜻에 맞는 것이라면 이루어질 것이오.” 나는 그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예수님!! 선생님 이름을 이렇게 불러도 되는 겁니까?” 그가 물었다.

“물론이오. 내 이름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뜻이 들어있기 때문이오.”

그는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쳐다보았지만,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고맙습니다. 예수님. 그런데 이건 아주 개인적인 일입니다만… 문을 닫아도 될까요?”

“무슨 일인데 그러시오?”

“말하기가 좀 부끄럽군요. 다 같은 남자니까 이해하실 줄 압니다.”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할 지 알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예수님, 저는 여자를 좋아하는 버릇을 끊을 수가 없습니다. 제게는 아내가 있습니다. 아내도 여관에서 하녀로 일합니다. 저는 아내를 정말 사랑합니다. 그러나 예쁜 여자를 보면 금방 좋아하게 됩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시겠습니까?” 그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알고 있소.”

“선생님께서 사람들을 고쳐 주신다는 것을 압니다. 저의 이런 악습도 고쳐 주실 수 있습니까? 저는 정말로 제 아내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다른 여자와 자는 버릇을 끊을 수가 없습니다. 아내를 잃고 싶지 않지만, 아무리 노력을 해도 다른 여자를 좋아하는 것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아내가 알게 된다면 얼마나 마음을 상하겠습니까. 선생님, 저를 도와 주십시오.” 그는 간절한 마음으로 애원하는 것이 역력했다.

“그런 악습을 끊는 것은 당신한테 달려 있소. 간절히 원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오.”

“간절하게 원합니다, 선생님! 제 마음은 간절합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당신이 좋아하는 여자를 볼 때마다, 당신 아내가 배반당하면서 겪게 될 괴로움을 생각하도록 하시오. 그리고 간통죄로 돌에 맞아 죽어야 할 상대방 여자를 생각해 보시오.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십계명을 생각해 보시고, 당신 행동이 얼마나 하느님을 거역하는 것인지도 생각해 보시오. 다른 여자에 대한 욕망이 일어날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면 그 욕망은 사라지게 될 것이오.”

“그런데 어떤 때는 저도 모르게 그런 생각과 감정이 일어나서는, 순식간에 그런 일이 또 생기게 됩니다.”

“그러면 하느님께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시오. 그리고 하느님께서 그 힘을 주실 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오.”

“기도를요? 여지껏 기도를 해 보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해 보겠습니다.” 그는 멋 적은 듯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기도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강력한 은총이오. 당신이 기도하는 것을 하느님께서 들어 주신다는 것을 진심으로 믿고, 또 기도하는 내용이 당신에게 유익한 것이라면,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기도를 들어 주실 것이오. 많은 사람들은 기도를 무시하지만, 기도를 통해 수많은 은총과 선물을 받게 되는 것이오. 기도하는 그 시간은 특별한 시간인 것이오. 기도할 때 진심으로 하느님께 마음을 열어 드린다면,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기도를 들어 주실 것이오. 기도를 하시오! 그러면 평화를 얻을 것이오.” 나는 그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말해 주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제 기도를 하겠습니다!” 그는 흥분하여 말했다. “지금 당장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는 사람들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노래하는 시편을 낭독하기 시작했다 (시편 41). 나는 식사를 하러 다른 방으로 갔고, 그는 정문을 통해 나갔는데, 나가면서도 만면에 웃음을 지은 채 시편을 외우고 있었다.

베드로가 옆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그 사람, 기분이 아주 좋은 것 같았습니다.”

“그래, 기분이 좋다. 오늘 하느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 주실 것이다.”

나는 말없이 식사를 하면서, 마귀가 어떻게 마음 착한 사람을 유혹하여 참된 영신적 행복을 잊어 버리게 하고, 육신적 쾌락만을 쫓게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비행과 타락으로 몰아놓고, 하느님의 뜻에 상관없이 자기 몸을 마음대로 난잡하게 다루도록 만드는 마귀의 책략은 얼마나 교활한 것인가! 아버지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 너무나 좋은 선물을 주셨다. 그러나 마귀는 사람의 미약함을 이용하여 그 좋은 선물을 너무나 쉽게 파괴해 버리고 있는 것이다. 때로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수많은 연인들의 품에서 위안을 얻으려 하지만, 사람들은 결코 거기서 위안을 얻지 못하고, 여전히 외로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유흥을 찾느라고, 또는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거나 유행을 따르느라고, 애인을 가지려 한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자랑하면서, 정복한 여자 이야기로 친구들의 감탄을 받아내려고 한다. 그러면 그 친구들은 그렇게 많은 애인을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면서 똑같이 방탕한 짓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죄가 퍼지는데,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많은 사람들이 죄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참된 사랑을 하게 된다면 자기 육신을 고귀하게 다룰 것이며, 다른 사람의 육신을 물건처럼 취급하지 않고, 하느님의 아름답고 순결한 창조물로 보게 될 것이다. 참된 사랑을 하게 된다면, 하느님의 사랑과 결합되어 사랑하는 사람과 지내는 순간 순간이 감격스러울 것이다. 참된 사랑을 하게 된다면, 누구를 알고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이웃과 무엇을 얼마나 나누는지에 따라 평가하게 되는 것이다. 참된 사랑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다. 거짓 사랑은 마귀의 함정이며, 많은 사람들이 쉽게 빠지는 함정이다. 사람은 여러 가지 약점을 지니고 있으나, 참된 사랑으로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 +++  1996년 7월 12일

 

식사를 마치고 잠시 쉬었다가 우리는 다시 여관으로 갔다. 가까이 가서 보니, 제자들이 군중에게 기도하라고 열심히 타이르고 있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예수님은 어디 계시오? 예수님을 모셔와요!” 사람들이 아우성치고 있었다. 베드로와 내가 군중 쪽으로 걸어오는 것을 누군가가 보고 “예수님이 저기 오신다.” 하고 소리치자, 군중들이 일제히 나에게로 몰려왔다.

순식간에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 더 이상 발걸음을 내딛기가 어려웠다. 그때 누군가 내 외투를 잡아당기는 것을 느꼈다. 나는 돌아서서 내 관심을 끌려고 하는 어린 소년을 보았다. 소년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서서 나를 잡고 놓아 주지 않았다.

“베드로, 이 아이를 안아라.” 건장한 베드로는 내 말에 순종하며, 아이를 들어 자기 어깨 위에 앉혔다. 제자들은 내가 사람들 사이를 걸어갈 수 있도록 길을 터 주었고, 베드로는 아이를 목말 태운 채 따라왔다. 나는 여관 앞으로 가서 사람들에게 조용히 앉으라고 손짓을 했다. 점차로 소음이 가라앉고 마침내 모두가 조용해졌다.

나는 큰 소리로 말했다. “오늘 여기서 여러분을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기도를 드린 다음,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그 전에 잠깐 동안만이라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여러분의 기도를 들어 주시도록 함께 기도해 주십시오.”

나는 군중을 남겨 놓은 채 베드로와 아이와 함께 여관 안으로 들어갔다. 밖에서는 시몬의 선창에 따라서 사람들이 기도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나는 의자에 앉아서 아이를 불렀다. 예닐곱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는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얘야, 나한테 물어 볼 것이 있니?”

아이다운 솔직함으로 소년이 대답했다. “우리 엄마가 아파요. 그런데 나는 엄마를 보살필 수가 없어요. 엄마가 선생님한테 가서 도와 달라고 부탁하라고 했어요. 선생님은 착한 사람이니까 곡 도와 주실 거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어요. 도와 주실거지요? 선생님?”

“얘야, 엄마한테 가거라. 엄마는 지금 널 기다리고 계신다. 그리고 지금 엄마는 다 나으셨다.” 나는 그 아이의 천진난만함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정말 고맙습니다. 도와 주실 줄 알았어요.”

“얘야.” 베드로가 아이의 손에 돈을 쥐어 주며 말했다.'”여기 이 돈 받아라. 보탬이 될 거야.”

“아…, 고맙습니다.” 아이는 돈을 받고는 베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선생님도 착한 사람이네요.” 그리고 나서 아이는 기대했던 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졌다는 듯이 만족해 하며 돌아갔다.

“이상하군요.” 베드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 아이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주님께서 하시는 말을 그대로 받아 들이네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나를 신뢰하고 나에게 의탁하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 아이는 내가 도와 줄 거라고 굳게 믿고 내게 왔다. 아이는 사람을 찾다가 사랑을 만났고, 그 사랑을 받아들였다. 아이들의 천진난만함은 얼마나 큰 은총이겠느냐? 모든  사람들이 다 그 은총을 받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불행하게도 그 은총을 잃어 버리고 있다.”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있는 군중을 만나기 위해 여관 밖으로 나온 나는 설교를 시작했다. “오늘, 여러 면으로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마음이 되어 하느님의 치유를 얻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자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는 유다인, 사마리아인, 로마인, 그리스인이 모두 모여 있습니다.”

여러분은 같은 형제 자매로서 함께 진리를 찾으며 사이 좋게 여기에 모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항상 이렇듯 서로 사이 좋게 지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오늘 이 자리를 떠나면 다시 이전의 마음으로 되돌아가서, 자기와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남을 미워하는 생활로 돌아갈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만큼은, 민족과 신분을 상관하지 않고 여러분 모두가 서로 사이 좋게 모여 앉아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하느님의 치유를 구하며 여러분의 마음을 하느님께 열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하느님께 열려 있다면, 그 마음 속에는 미움이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모든 사람들을 차별 없이 하느님의 가족으로서 사랑해 주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치유의 힘은 바로 사랑입니다. 하느님이 바로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서로 사랑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하느님 사랑의 힘으로 온 세상이 치유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부터 여러분은 자신이 유다 사람, 로마 사람, 그리스 사람, 사마리아 사람이라는 생각을 다 버리고, ‘나는 하느님의 자녀이고, 내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도 하느님의 자녀들이다.’ 리고 말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이 한 가족인 것을 알게 될 것이고, 서로를 형제 자매처럼 대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가장 큰 선물이며, 우리에게 행복과 평화를 가져다 주는 은총입니다.”

내가 말을 마쳤을 때, 많은 사람들이 옆에 있는 사람들을 껴안고 울고 있었다. 그들 사이를 걸어 다니며 나도 그들을 껴안았다. 모여 있는 사람들의 사랑이 너무나 열렬해졌기 때문에 그들의 영혼이 불타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소망해야 할 치유는 바로 이런 것이고, 마음의 치유야말로 참된 치유인 것이다.

 

바로 그때, 나에게 왔었던 그 아이와 함께 한 여인이 다가왔다. “선생님께서 제 아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제가 이렇게 나아서 감사 드리러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하며 내 손에 입맞춤을 했다.

“고쳐 주실 줄 알았어요. 예수님은 착한 사람이니까요.” 옆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던 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나는 아이에게 허리를 굽혀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엄마를 위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난, 선생님 같은 사람이 될래요.” 하면서 한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아이 엄마는 아이 얼굴을 가리고 있는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뒤로 넘겨 주며 말했다. “주님, 얘는 착한 아이입니다. 커서 좋은 사람이 될 겁니다.”

주위에 있던 군중들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넘쳐나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면서 기도하고 있었다. 내가 병자들을 한 사람 한 사람씩 안수해 주자 많은 병자들이 치유되었다. 날이 저물어서야 나는 베드로와 함께 여관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바로 뒷문으로 나와 여관 주인의 집으로 향하면서 베드로에게 말했다.

“당분간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야겠으니 내일 떠나도록 하자.”

“다른 사람들에게 떠날 준비를 하라고 알리겠습니다.” 언제나 충실한 베드로의 대답이었다.

“그렇게 하여라. 그리고 아침 일찍 떠날 예정이라고 일러 두어라.”

 

베드로는 제자들에게 출발 준비를 시키려고 여관으로 돌아갔고, 나는 그 집에 도착해서 한동안 혼자 앉아 있었다. 얼마 후 베드로가 돌아와 싱글벙글하며 말했다. “주인이 돈을 안 받겠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여기 왔던 그 하인이 주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이 치유를 받아 모든 욕망이 사라졌다면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이 동네에 많은 일을 해 주셨습니다. 이제는 이곳에 주님의 친구가 많이 생겼습니다. 로마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 아버지의 사랑을 느낄 수 있게 되어 참 좋구나. 언젠가는 모든 사람들이 한없이 넓은 하느님의 사랑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오늘 이 마을 사람들과는 달리 모두가 다 그 사랑을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베드로가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다시 설명을 해 주었다. “언젠가 하느님께서는 사랑으로 불타는 당신의 성심을 사람들에게 주시겠지만, 모든 사람이 다 그 성심을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 성심을 거절하고 경멸할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하느님의 사랑이 승리를 거둘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용서를 받을 수 있도록 변화할 것이다. 알겠느냐?”

“네, 주님.” 베드로는 자신 없이 대답했다.

“언젠가는 내 말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나는 장차 있을 일을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예수님 +++  1996년 7월 13일

 

동이 터오는 새벽녘이 되어서, 제자들이 도착했다. 짐을 다 싸놓고 기다리고 있던 베드로와 나는 제자들과 함께 이제 막 깨어나기 시작하는 마을을 떠났다. 마을 사람들은 새로운 하루를 바쁘게 준비하고 있었고, 음식을 요리하는 냄새가 사방에 풍겨 나고 있었다.

우리는 침묵 속에 기도하면서 몇 시간을 걸었다. 각자가 자신의 마음을 하느님께 바치고 있었는데, 유다만은 지난 며칠 동안 받아 모은 돈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아버지께서 보여 주셨던 산이 멀리 보였다. 나는 친구이며 동료인 제자들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말해 주었다. “앞으로 삼일 동안 나는 저 산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산에 가까이 가면 너희들이 삼일 동안 나를 기다리고 있을 장소를 정하도록 하여라.”

“삼 일은 오랜 시간입니다. 우리 중에 한 사람이 따라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하고 베드로가 말했다.

“나는 아버지와 함께 있을 것이니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삼 일은 금방 지나갈 것이다.” 베드로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마음을 바꾸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정모 무렵에, 나를 기다리며 제자들이 지낼 만한 장소를 찾았다. 물고기들이 사는 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시냇가 둑 위에는 지붕으로 삼을 만한 나무들이 많이 들어서 있는 아름다운 장소였다.

“삼 일 안으로 돌아오겠다.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서로 다투지 말고 지내야 한다.” 나는 이미 다툼이 일어날 것을 알았고, 특히 유다로 인해 많이 다투게 될 것을 알고 당부했던 것이다.

야고보가 음식과 물이 든 주머니를 가지고 왔다 “주님, 이것을 가지고 가십시오. 산에 계시는 동안 필요하실 겁니다.”

내가 야고보의 자상한 마음씨를 칭찬해 주자 야고보는 귀밑까지 얼굴을 붉히며 흐뭇해 했다.

제자들을 뒤로 하고 산을 향해 걷고 있는데, 갑자기 공기가 싸늘해지는 것이 느껴지며 악마가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계속해서 걸으면서 아버지께 기도하다 보니 마침내 산 자락에 다다랐다. 가까운 곳에 아버지께서 보여 주신 동굴이 보였다. 나는 동굴 안으로 들어가서 짐을 내려놓고, 잠시 동안 앉아서 쉬었다.

바깥 공기가 싸늘해지더니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몸을 보온하기 위해 담요로 몸을 둘러싼 채 나는 기도하기 시작했다. 가끔씩 번개가 하늘을 가로질러 번쩍거리며 동굴 안을 비추는 가운데, 적막한 산 속의 이 작은 피난처 안에 완벽하게 나만 홀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구름이 달을 가리면서 밤은 점점 더 어두워져 갔다. 그때, 내 앞에 아버지께서 나타나셨다.

“아들아.” 아버지께서 부르셨다. “나와 함께 있으면서 쉬어라.”  나는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고, 공기는 더 이상 싸늘하지 않았다. 잠깐씩 잠이 들었다 깼다 하며 밤을 보냈다. 그런데 아침 일찍 한 남자가 동굴로 들어와서, 내 건너편에 앉았다. 그는 악마였다.

“예수여, 당신은 왜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오.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가질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이렇게 가난하게 살면서 이런 누추한 동굴에서 자고 있소? 아무것도 가진 것 없다면 왕이 돼 봤자 무슨 재미가 있단 말이오? 그렇지 않소?” 걱정해 주는 체하며 묻고 있는 악마를 쳐다보니, 친절한 표정의 얼굴 뒤에는 증오와, 흉측함과, 사악함이 숨겨져 있었다.

“나의 왕국은 네가 정복할 수 없는 곳이다.” 하고 악마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정복할 것이오. 당신을 파멸시키고 말 것이오.” 악마는 독을 품고 날카롭게 부르짖었다. “당신이 양이라면, 나는 늑대요. 그래서 나는 당신을 잡아먹을 것이오.”

“사라져라, 사탄아.” 하고 명령하니, 사탄은 자취를 감췄다. 하느님의 힘을 두려워하는 사탄의 모습이라니…

잠깐 잠이 들었는데, 동굴 속을 비추며 들어온 햇살이 나를 깨웠다. 밖으로 나가서 상쾌하고 따뜻한 아침을 맞이하였다. 싸늘한 공기와 폭풍은 사탄과 함께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산 위 쪽으로 올라가다가 편안한 장소에 앉아 주위의 경치를 감상했다. 얼마나 아름다운 창조물들인가! 아버지께서 주신 얼마나 아름다운 선물들인가!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사람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창조물 안에 주신 것을 찬미하고 있는데, 대천사 미카엘이 나타나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렸다.

“주님.” 미카엘 대천사가 말했다. “저는 주님의 명령만 기다립니다!”

“미카엘, 내가 없는 동안 제자들을 지키고 있어라. 마귀가 틀림없이 그들을 공격할 것이다.” 내가 명을 내리자 미카엘 대천사는 사라졌다.

작은 새가 곁으로 날아왔다가는 다시 날아갔다. 그리고 다시 내 앞에 내려 앉아 노래를 불렀다. 그 새가 노래를 하니 다른 새가 날아와서 같이 노래를 하고, 또 다른 새가 날아오고 하여 금방 수많은 새들이 내 앞에서 아름다운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조물에 담겨 있는 하느님의 아름다운 사랑을 볼 수 있었다.

새들이 부르는 아름다운 사랑의 노랫소리가 나를 기쁨으로 채워 주었다. 그러나 날마다 눈 앞에 펼쳐지는 창조물의 작은 기적들을 감지하지 못하고 무시해 버리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슬프기도 했다. 내가 손을 내밀자 처음에 날아왔던 새가 손 위로 올라와 앉더니, 나를 쳐다보며 지저귀었다. 다른 새들도 하나 둘씩 내 어깨와 머리, 손 위로 올라앉았다. 나는 새들에 둘러싸여 사랑의 순간들을 즐겼다.

동굴로 돌아 온 후에도, 새들은 나를 따라와서 동굴 밖을 날아다니며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 주었다. 노래로써 나에게 기쁨을 가져다 준 보답으로, 나는 음식이 들어 있는 주머니를 열고 빵을 꺼내어 잘게 쪼갠 다음, 내 작은 친구들에게 던져 주었다.

 

날이 저물어 나는 동굴 안에 작은 모닥불을 피워놓고 앉아서 기도를 드렸다. 기도를 하며 불꽃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아름다운 비둘기가 불꽃 안에서 올라왔다. 바로 그때 아버지께서 오셨고, 우리는 사랑으로 결합했다.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의 사랑과, 나의 사랑이 하나 되어 내 안에 가득 넘쳤다. 내가 다시 혼자 되었을 때는 다음날 아침이었는데, 나의 작은 친구들이 역시 아침 노래를 불러 주고 있었다.

동굴 밖으로 나와 서 있으니 더 많은 새들이 날아왔다. 주위에 있는 나무들 위에 빽빽하게 올라앉은 새들의 무게로 나뭇가지들이 축 쳐져 있었다. 그들이 불러 주는 사랑의 교향악은 나를 창조의 기쁨으로 가득 채워 주었고, 어디에나 스며 있는 아버지의 사랑을 보면서 나는 미소 지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나서 짐을 챙겨 들고 공중의 친구들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제자들에게로 돌아가는 나에게 그 작은 친구들은 작별의 노래를 불러 주었다.

 

제자들이 야영하고 있는 곳으로 돌아와 보니, 그들이 심하게 싸웠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유다는 눈에 멍이 들어 있었고, 안드레아는 입술이 퉁퉁 부어 있었으며, 바르톨로메오는 입니 찢어져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 이미 알고 있는 대답이었지만 물어보았다.

베드로가 쭈삣거리며 대답했다. “주님께서 떠나신 다음날 아침까지는 괜찮았습니다. 그러다가 다들 사소한 일로 다투기 시작하더군요. 안드레아, 바르톨로메오 그리고 유다가 폭발을 했습니다. 서로 죽이는 줄 알았습니다. 싸움을 말리다가 저도 어찌나 화가 나는지 같이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갑자기 기분이 달라지며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가 그렇게 느끼는 순간 다른 사람들도 다투는 것을 멈추었습니다. 정말 믿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잠시 전만 하더라도 미움이 치솟았는데, 다음 순간 그 미우이 사라지고 안정과 평화가 각자의 마음에 찾아왔습니다. 이상스럽게도, 그 이후로 우리는 다시 다정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네, 주님. 정말 그랬습니다.” 야고보도 동의했다.

그때 마태오가 야고보를 흘끔 쳐다보고는 끼어들었다.

“주님, 이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닙니다. 극심한 분노를 느끼다가 일순간 평화로워졌으니 말입니다. 저는 야고보가 잡은 생선의 크기를 가지고 다투고 있었는데, 어찌나 화가 나던지 야고보를 때려 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제가 잘못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야고보가 마태오의 말을 가로채며 말했다. “저도 그렇습니다. 마태오와 싸우고 싶었었는데, 이제는 다시 사이 좋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유다의 생각은 좀 다른 것 같았다. “저는 아직도 화가 안 풀립니다. 제 눈을 좀 보십시오.’ 혼자서 화를 못 풀고 있는 유다가 안 돼 보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모르겠습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까?” 요한이 물었다.

“그것은, 마귀가 너희들을 공격하여, 의견이 맞지 않게 하고, 서로의 기분을 상하게 하여 모두의 마음에 분노가 생기게 하려 했기 때문이다.”

내가 산속 동굴에 가 있는 동안 고향에 갔다가 제자들과 합류한 필립보가 말했다. “그런데 우리의 다툼이 왜 그렇게 갑자기 멈췄을까요? 바람이 방향을 바꾸듯이 아주 갑작스러웠습니다. 악이 휘몰아치다가 갑자기 사랑으로 바뀌었습니다. 저는 그 변화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탄이 여기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너희를 지켜 주고 보호해 주기 위해 천사를 보내셨던 것이다.”

“혹시 그 천사 이름이 미카엘이 아니었습니까?” 매사에 열정적인 시몬이 물었다. “왜냐하면 공중에서 그 이름이 들렸거든요.”

“그렇다. 천국의 귀공자 미카엘 대천사였다.”

유다 타대오가 말했다. “미카엘 대천사가 왔었다니 기쁩니다. 여기는 아주 끔찍했거든요.”

“천국에는 많은 천사들이 있다. 너희가 천사들에게 보호하고 지켜달라고 기도하기만 하면, 천사들은 그렇게 해 줄 것이다. 언제든지 그저 청하기만 하여라.”

“하지만 요즈음은 아무도 천사를 부르지 않습니다.” 토마스의 목소리에는 잔뜩 의혹이 섞여 있었다.

“그건 사실이다. 그러나 천사는 항상 곁에서 도와 주려고 기다리고 있으니, 너희는 도움을 청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천사를 잊어버린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창조 이래로 천사들은 사람들을 위해 많은 일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하느님의 심부름꾼이며, 자기를 수호해 주는 천사들을 거부하고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하긴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다른 모든 선물들 역시 이런 식으로 거부당하고 또 무시당하고 있지 않느냐?

너희가 천사에게 기도를 할 때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하여라. 천사에게 도움을 청하고,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천사의 보호를 청하여라.” 말을 마치고 나는 천국의 귀공자 미카엘 대천사가 싸워서 승리한 이 작은 전투에 대해 묵상하였다.

 

 

 

 

예수님 +++  1996년 7월 14일

 

“필립보, 여행 다녀온 이야기를 해 보아라.” 고향 집에 다녀온 필립보에게 물었다.

“별로 할 만한 이야기가 없습니다. 주님. 가족을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고 좋았지만, 빨리 주님한테 오고 싶어서 혼났습니다!” 필립보는 거의 외치고 있었다.

“가족들의 사랑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아름다운 선물이다. 소중하게 생각하고 즐겨야 한다. 그러나 항상 하느님의 사랑이 우선이라는 것을 기억하여라. 하느님을 사랑하면, 너희 생활에 항상 사랑이 따라오게 되는 까닭이다. 모든 것은 하느님의 사랑으로부터 나온다. 그래서 너희가 하느님을 사랑하면, 모든 사랑의 원천과 결합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기 안의 사랑이 점점 자라나서 주위로 퍼져 나가게 된다.”

“필립보, 뭔가 좀 더 이야기할 것이 있을 것 같은데 어서 말해 보게나.” 무슨 일이 일었는지 알고 싶은 베드로가 안달을 부렸다.

“있고 말고, 주님의 이름이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리고 있다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은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기적에 대해 이야기했다네. 그리고 주님,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서 자기네 동네로 와 주시기를 고대하면서 주님께서 오실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내가 올 날을 기다리고, 내가 찾아갔을 때 나를 반겨 주기만 해도 이 세상의 악은 사라질 것이다.” 하면서 나는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주님, 조심하셔야 합니다. 회당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질투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주님을 해치려 하고 있고 자기 동네에 주님께서 오지 않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필립보가 경고하는 투로 말했다.

“필립보야,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하느님의 뜻이 우리에게 이루어지실 때까지는 아무도 우리를 막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주님, 조금은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렇잖으면 그들이 주님을 죽일 것입니다.” 필립보는 내가 얼마나 위험한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을 잘 모른다고 생각하고 간청하듯 말했다.

“생명은 아버지한테서 나오는 것이고, 그 생명이 이 세상을 떠날 때에는,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사각에 생명을 거두어 가시는 것이다. 생명은 영원한 사랑의 시작이며, 그 영원한 사랑은 죽음을 건너서 얻게 된다. 죽음은 두려울 것이 없는 것이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죽음이란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일 뿐이다.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잘못 오해하고 있다.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믿는 사람들에게 내가 그 오해를 분명히 밝혀 줄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죽음에 대한 진리를 알게 될 것인데, 믿는 자들에게 죽음이란 기쁨이며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슬픔인 것이다. 죽음은 착하게 사는 사람들에게는 선물이 되고, 죄를 짓는 사람들에게는 슬픔이 될 것이다.”

제자들은 내가 한 말을 묵상하며 한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었는데, 유다가 정적을 깨뜨리고 한마디 했다. “배가 고파죽겠는데, 무얼 좀 먹읍시다.”

유다의 말에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유다는 우리가 왜 웃는지도 모르고, 얼떨떨한 표정으로 따라 웃었다. 우리가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하고 나서야, 유다는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식사를 마치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데, 야고보가 나에게 와서 조용히 말했다. “주님, 필립보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며칠 동안 몸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까지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식사도 조금밖에 못 하고 있는데, 어제는 필립보의 배가 부어 오른 것을 보았습니다.”

“야고보야, 필립보에 대해서는 더 이상 걱정 안 해도 된다. 이제는 다 나았다.”

“감사합니다, 주님.” 야고보는 내가 한 말을 조금도 의심치 않고 믿었다.

길을 떠나 한참이 지나서야, 필립보가 내게 왔다. “주님, 오늘 주님께서 오시기 전까지 몸이 좋지 않았는데, 주님을 보는 순간 아픈 것이 씻은 듯이 사라졌습니다. 어제만해도 예루살렘까지 주님과 함께 갈 엄두가 나지 않아서, 제가 짐이 될까 걱정이었습니다.그런데 지금은 이 세상 끝까지라도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몸이 좋아졌다니 다행이구나. 같이 가지 못했다면, 얼마나 네 생각이 났겠느냐?”

“주님, 고향에 가 있는 동안 저는 주님 생각만 했습니다. 주님 곁에 있고 싶어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어떤 때는 울기까지 했는걸요.” 필립보는 계면쩍어 하며 말을 했지만 그가 진심으로 말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언제나 필립보 너와 함께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네가 혼자 있을 때나, 위협을 당할 때, 고통을 받을 때나, 있고 싶지 않은 곳에 있어야 할 때, 그리고 가고 싶지 않은 곳으로 가야 할 때도, 항상 내가 네 곁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안심하여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것이고, 결코 너를 버려 두지 않을 것이니 안심하여라.” 그 순간 나는 나를 위해 고통을 당하고 목숨까지 바칠 사람들을 생각했다.

“주님, 제가 고향에 있을 때도 주님의 현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직접 뵙는 것과 다르긴 했지만요.”

“필립보, 너는 나를 직접 보고 있으니 참으로 축복을 받은 것이다. 장차 올 시대에는 나를 보지 못하면서도, 나를 알게 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칠 그 사람들은, 나를 눈으로 볼 수는 없어도 나의 현존만으로도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큰 보상이 천국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느님을 위한 희생이었기 때문에 받을 그 보상을, 이 세상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내 아버지께서 천국에 들어오는 많은 사람들을 환영하시는 모습과, 우리 천주 성삼의 사랑이 그들에게 영원토록 쏟아지는 모습이 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필립보가 물었다. “많은 희생들이 있겠습니까, 주님?”

나는 필립보를 쳐다보면서, 그의 죽음을 보았다. 그리고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많은 사람들도 보았다. “그만하자 필립보야, 그만 하면 됐다.” 나는 어두움에 빛을 밝혀 줄 그 모든 순교자들의 사랑을 보면서 눈물을 삼켰다.

뒤에서 따라오던 베드로가 우리한테로 와서, 필립보를 껴안으며 말했다. “돌아와서 반갑네, 필립보. 자네 생각을 많이 했다네.”

“다시 돌아와서 나도 기쁘네. 마음이 다시 편안해졌어.”

필립보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정겨운 우정을 나누는 그들을 바라보며 여러 생각들이 지나쳤다. 이 세상의 두 친구, 그리고 내 사랑에 의해 죽음으로 결합될 두 순교자들… 나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막을 수가 없었다…

베드로와 필립보가 어쩔 줄 몰라 하며 내 손을 잡고 물었다. “주님, 괜찮으십니까? 저희들이 어떻게 해 드릴까요?”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다. 걱정하지 말아라. 너희들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를 생각했을 뿐이다.”

치미는 울음을 눌러 참으며 걷는 동안, 다른 제자들은 묵묵히 나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예수님 +++  1996년 7월 15일

 

얼마 안 있어, 우리는 한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고, 한 사람도 눈에 띄지 않았다 심지어는 가축들도 보이지 않는 텅 빈 마을이었다.

마을 중간쯤까지 들어섰을 때, 옆에 있던 야고보가 말했다. “여기는 왠지 무섭습니다, 주님!”

“조용한 것이 무섭다는 말이냐?”

“아니요, 인기척이 없는 것이 오싹하게 합니다.”

“무서워하지 말아라.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면, 악이 얼어나게 되는 것이다. 하느님께 의탁하여라. 그리고 하느님께서 너희를 보살피고 계시니, 그분을 신뢰하고 마음을 가라앉히도록 하여라.”

바고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따라오너라. 무슨 일인지 가서 보자.” 나는 제자들에게 손짓을 했다.

비명 소리가 난 쪽으로 가는 도중에도 또 다른 비명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가까이 이르자, 로마인들의 웃음소리와 고함을 치며 욕하는 소리가 들렸다. 작은 계곡으로 더 들어가자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동네 사람들 앞에는 로마군 기병대가 둘러서 있었다.

십자가를 두 개 세워 놓았는데, 젊은 남자 둘이 매달려서 죽어 가고 있었다. 매를 맞은 것 같은 세 번째 남자도 십자가에 못 박히기 직전이었다. 그 남자는 고통 중에서도 “이스라엘을 위하여!” 라고 계속해서 외쳤고, 군중들은 입을 다물고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외침 소리를 막기라도 하려는 듯 로마 군인들이 그 사람의 손에 큰 목을 박자, 그는 고통으로 몸을 뒤틀며 몸부림쳤다.

로마 군인은 땅에 눕혀져 있는 십자가를 가로질러 서서, 그 젊은이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말했다. “저주받은 이 나라를 위해 한다는 게 고작 이 꼴이군 그래.”

십자가가 세워지자, 로마군 백부장이 앞으로 서서 외쳤다. “로마를 거역한 자는 모두 이렇게 되는 것이다. 나중에라도 용감해지고 싶은 사람이 있거든, 이 모습을 기억해 두어라.” 백부장은 가까운 우리에 있는 가축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계속해서 외쳤다. “이자를 도우면 어떻게 되는지도 잘 보아 두어라.”
백부장이 신호를 하자, 로마군 들이 가축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십자가 위에 있는 젊은이가 고통 중에 소리쳤다. “가축들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 그러는 거야? 그냥 놔 둬.”

백부장이 그 젊은이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네 친구들이 범한 죄를 혼자서만 다 받겠다 이거지? 용감도 하군, 그래! 이거나 받아라.”

백부장은 부하가 차고 있던 창을 뽑더니, 날 없는 쪽으로 젊은이의 배를 심하게 가격하기 시작했다.

“그만해요, 그만해.” 한 나이 많은 여자가 울부짖으며 앞으로 달려 나와 애걸하기 시작했다. “제발 더 이상 고통을 주지 마세요.”

백부장은 돌아서더니 창 뒤끝으로 그녀의 얼굴을 때렸다. 이 모습을 보고 십자가에 매달린 젊은이가 소리쳤다. “어머니!”

그녀는 얼굴에 피를 흘리며 의식을 잃고 쓰려졌다. “이 여자가 저 놈을 낳은 매춘부구나.” 백부장은 여자에게 침을 뱉으며 껄껄거렸다.

창으로 심하게 얻어 맞았던 젊은이는 마지막 숨을 몰아 쉬며 울부짖었다. “오, 하느님! 우리 어머니를 보호해 주십시오.”

“하느님이라구! 하느님이란 건 없어. 오직 로마의 칼이라는 신이 있을 뿐이지.” 백부장이 다시 껄껄대며 비웃자 부하들도 따라 비웃기 시작했다.

내가 앞으로 나서려 하자 베드로가 팔을 붙잡고 애원하듯 말했다. “주님, 조심하셔야 합니다.”

“베드로야, 염려하지 말고 나를 믿어라.” 나는 베드로에게 미소를 지언 준 뒤, 쓰러져 있는 여자 옆에 가서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이건 뭐야?” 백부장이 나를 쳐다보며 호통을 쳤다. “너도 저 여편네의 아들이냐? 너도 반역자인 게로구나.” 하고 나를 내리치려고 창을 높이 들어올렸다.

나를 도우려고 베드로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창을 내리치는 백부장의 가슴 속을 들여다 보았다. 그 순간 갑자기 창이 멈췄다. 창이 내게 닿기 직전이었다.

내가 말을 시작하자 백부장은 얼어붙은 듯 꼼짝 을 하지 않고 듣기만 했다. “당신은 당신 어머니가 이렇게 취급 당했으면 좋겠소? 노인을 때리는 것은 겁쟁이나 할 짓이지 용감한 사람이 할 일은 못 되오.

밤마다 당신 아버지가 어머니를 얼마나 때렸는지 생각해 보시오. 어머니가 고통으로 신음하는 것을 보면서 아버지가 얼마나 웃어댔는지 생각해 보시오. 어머니를 그렇게 괴롭히는 아버지를 당신이 얼마나 죽이고 싶었는지도 생각해 보시오. 그런데 이제는 당신이 똑같은 짓을 하고 있소. 그런 행동을 하는 아버지를 그렇게 증오하던 당신이 이제는 그 아버지의 횡포를 그대로 모방하면서 따라 하고 있는 것 아니오?”

백부장은 비틀거리며 뒷걸음치더니 더듬거리며 물었다.

“그, 그걸 어떻게 아시오?”

“나는 알고 있소. 당신이 부인을 어떻게 대하는지도 알고 있소. 당신은 아버지의 발자국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오. 어렸을 때는 절대로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했던 당신이지만, 이제는 아버지와 똑 같은 사람이 되었소!”

“어… 어떻게 그런 걸 다 아시오?” 기가 질린 백부장은 더 심하게 말을 더듬거렸다.

“어느 날 밤 어머니를 보호하다가, 아버지한테 매를 맞아서 거의 죽다시피 했던 한 소년을 알고 있소. 아버지는 그 소년을 컴컴한 방에 가두어 놓고 며칠 동안 음식과 물도 주지 않았소. 다시는 상처받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그 소년은, 나이가 들자 로마군에 입대하여 힘센 남자로 성장하였소. 가슴에 증오를 가득 품고 집으로 돌아온 그는 아버지를 때려서 죽게 했소. 분노와 증오가 끓어 넘치는 남자로 변한 소년, 사랑을 모두 잃어버린 그 소년이 바로 당신 아니오?” 죽음과 파괴와 분노로 얼룩진 그의 한평생이 내 앞에 펼쳐지는 것을 보면서 그에게 말해 주었다.

완전히 풀이 죽은 백부장은 나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부하 두 사람이 나를 때리려고 달려왔을 때, 백부장이 외쳤다.

“멈춰라! 이 사람을 그냥 놔 두도록 해라.”

쓰러져 있던 여자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앉았을 때, 나는 마지막으로 백부장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당신의 어머니를 잊지 마시오!”

나만이, 백부장의 눈가에 어린 눈물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얼른 눈을 비비고는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자, 다들 무기를 챙겨라. 이곳을 떠나야겠다.”

그는 나를 돌아다보고 작게 속삭였다. “언젠가 다신 만날 수 있기를 바라오.”

그런 다음 그는 말에 올라타고, 부하들과 함께 마을을 떠났다. 나는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내 머리에 씌울 가시관을 그의 손 안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이 십자가 위에 달린 사람들을 내렸으나 때가 너무 늦은 뒤였기 때문에, 세 사람 모두 죽어 있었다. 그 나이든 여자는 죽은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통곡하고 있었다. 나는 안드레아와 요한과 함께 땅바닥에 앉아 있던 베드로에게 가서 그의 이마에 난 상처를 닦아 주었다.

“나를 지켜 주기 위해 애를 썼구나, 베드로.”

“주님, 저는 절대로 주님을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나를 저버릴 것을 알고 있었지만, 베드로가 나의 반석이 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나는 마을 원로한테 가서 물었다. “가축들 없이 지내실 수 있겠습니까?”

“어려울 겁니다. 애들에게 우유를 먹일 수도 없게 됐고, 밭을 갈아 줄 가축이 없어졌으니 말입니다. 그래도 살아가야지요.” 원로는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말투로 말했다.

“유다야, 이리 잠깐 오너라.”

“네, 주님.” 하고 유다가 달려왔다.

“이 마을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게 되어 도움이 필요하니, 돈을 좀 드려야겠다.” 유다는 절망적인 표정으로 쳐다보았으나, 항의하지는 않았다.

“얼마나 드릴까요?

“우리가 가진 것 중 절반을 드려라.”

“예? 그렇게나 많이요?” 유다는 눈이 휘둥그래져서 외쳤다.

“그렇다. 이 사람들은 도움이 필요하고, 우리가 그 도움을 줄 수 있으니, 더 이상 생각할 것 없다.”

“알겠습니다, 주님.” 유다는 주저하면서 외투에서 돈주머니를 꺼내어 돈을 세기 시작했다.

마을 원로가 말했다. “이렇게 많이 받을 수는 없습니다. 도저히 갚아드릴 수가 없을 것입니다.”

“갚을 필요는 없습니다.” 원로를 안심시키고 나서 유다를 돌아보며 명령했다. “주머니 안에 있는 돈을 모두 다 드려라. 코트 안에 네가 남겨둔 그 돈이면 우린 충분하다.”

마지못해 원로에게 돈을 꺼내 주는 유다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이제라도 막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오늘 밤에 저희와 함께 지내십시오, 주님” 죽은 동물들을 쳐다보며 원로가 슬프게 말했다. “오늘 밤에는 고기를 먹게 되겠습니다.”

나는 유다가 마음 속으로 ‘적어도 오늘 저녁식사는 잘 먹게 됐군.’ 하고 생각하는 것을 보았다.

“아닙니다. 죽은 가축들을 묻고, 죽은 젊은이들을 애도하실 수 있도록 우리는 떠나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낭패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유다를 돌아보며 말했다. “다들 떠날 준비를 하라고 하여라. 갈 길을 재촉해야겠다.”

마을을 떠나면서, 죽은 아들을 품에 안고 울고 있는 여자의 곁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 여자는 나를 올려다보며 너무나 비통하게 말했다. “얘는 착한 아이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착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당신을 생각했습니다.”

“하느님께 하던 그 아이의 마지막 말을 들으셨습니까?”

“들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아드님의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나를 쳐다보는 그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하느님께서 제 아들의 기도를 들어 주셨군요.” 다은 순간 그녀는 기쁨에 넘쳐 소리쳤다. “하느님께서 내 아들의 기도를 들어 주셨다.” 우리는 그녀가 기쁨에 넘쳐 외쳐대는 소리를 들으며 서둘러 그 곳을 떠났다.

마을을 떠나면서 나는 참담한 심정이었다. 죄악에 찬 자기 과거를 보여 주어도 마음을 고칠 생각을 하지 않는 백부장 때문에 나는 가슴 아팠다. 수많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악을 거부하다가도, 결국에는 악의 길을 따라가는 것이 가슴 아팠다. 마귀에게 유혹당하여 죄악에 빠진 사람들이, 자신의 변한 모습을 깨닫지 못하고 영적으로 눈먼 자가 되는 것이 가슴 아팠다.

백부장을 통하여, 어린 시절에 학대를 당했던 많은 사람들이 어른이 되어 그들 역시 다른 사람들을 학대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자신을 괴롭혔던 악에 등을 돌리고, 내적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하느님의 사람을 받아들이지는 않고, 자기가 당한 고통을 다른 사람에게 다시 전가하고 있는 것이다.

죄와 악은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지고 있다. 자신들아 당한 고통으로 인해 분노와 증오를 품고 있는 사람들을 통하여 죄와 악은 자라나고, 펴져 나간다. 그러나 사람들이 사랑만을 추구한다면 악의 행진은 멈출 것이고, 고통은 사랑의 기쁨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언젠가 영적 눈멀음에서 눈을 뜨게 되는 날이 오면, 그들은 자기 지신이 어떻게 그런 죄를 지었을까, 어떻게 그런 악을 용납했을까, 어떻게 하느님을 그렇게 괴롭혀 드렸을까, 하고 후회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 +++  1996년 7월 18일

 

날이 저물 무렵에, 우리는 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큰 나무 아래 자리를 잡았다.

“마을에 있었으면 훨씬 더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는데…” 유다가 불만 가득한 소리로 떠들어댔다.

“그래,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오늘 일어났던 일에 대해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같이 고통을 겪은 사람들끼리 서로 고통을 나눌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 다음에 하느님의 도우심에 힘입어 내적 고통을 극복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주님. 주님께서 함께 계시면 그들의 고통이 가벼워졌을 텐데요.” 유다는 마음 속에 품고 있던 생각을 솔직하게 말했다.

“나는 그들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 때 그들과 함께 있어 주었고, 나를 불렀을 때 그들을 도와 주었다. 이제 그들의 시련은 끝났다. 그들이 시련을 겪는 동안 내가 도와 주었으니, 이제 앞으로 다가오는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기 위해서는 그들 스스로 내적인 힘을 길러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하느님의 사람 안에서 굳건하게 커 갈 수 있다. 그것은 스스로 노력해야만 하는 것이고, 또한 도와 주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따라야 하는 것이다.”

“저는 잘 모르겠어요, 주님. 그들이 언제 주님을 불렀다는 겁니까? 그리고 좀더 있으면서 그들을 도와 줄 수 없는 이유는 뭡니까?” 유다는 아직도 내가 마을을 떠난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유다야, 십자가 위에 있던 그 젊은이가 도와 달라고 나를 불렀다.”

“그런 말은 못 들었는데요. 자기 어머니를 보호해 달라면서 하느님의 도움을 청했을 뿐인데요.” 유다는 어리둥절해 했다.

“나는 들었다. 마을 사람들의 슬픔 가득한 그 가슴들이 나를 불렀다. 나는 그 부름을 듣고 대답해 주었던 것이다.”

유다는 무슨 말인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기에, 설명을 좀더 해 주었다. “우리가 그 곳에 머무르지 않은 이유는, 마을 사람들이 하느님의 도움 안에서 그들에게 가장 알맞은 방식으로 자신들의 문제를 극복해 나가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겪고 있는 아픔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바라보면서 서로의 마음 속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그들은 서로 가까워질 것이고, 사람의 유대관계도 더 깊어질 것이다. 그들의 일상생활에 언제나 하느님의 도움의 손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어려움에 처했을 때 하느님께서 도와 주신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들은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굳세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곳에 더 머물러 있었으면, 그들은 계속해서 더 있어 달라고 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점점 더 우리에게 의존 하게 되어, 자신들의 내면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어려움을 극복하라고 주신 은총을 깨닫지 못하게 될 것이다.”

“네, 네, 알겠습니다, 주님.” 더 이상 듣기가 지루하다는 투로 유다가 말했다. 그는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 조차 포기해 버렸다. 유다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자신들은 아무것도 하려고 하지 않으면서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다 해 주시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은총을 알려고 하지 않으면서 ‘왜 하느님께서는 이것을 안 해 주시고, 저린 일이 일어나게 하시나?’ 하고 불평만 하고 있다.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과 은총을 사용한다면, 그들은 하느님 안에서 강인해져서 앞에 놓인 장애물들을 넘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 +++  1996년 7월 27일

 

이른 새벽에 눈을 뜬 나는 자고 있는 제자들을 둘러보았다. 그들의 얼굴에는 어린아이 같은 천진한 평화가 깃들어 있었다. 잠자는 동안에는 사람의 진실한 감정이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꿈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의 솔직한 감정과 욕망, 진실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나타내는 것이다.

지난날의 즐거웠던 시절에 대한 꿈을 꿀 때나, 장래의 사랑과  행복에 대한 꿈을 꿀 때나, 자기의 잘못과 마귀의 유혹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꿈을 꿀 때에, 마음 속 깊이 가라앉아 있던 진정한 사람의 감정이 떠오르는 것이다. 이렇듯 꿈은 자신의 인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나는 누운 채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했고, 아버지께서 명하시는 것을 내가 이룰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장차 내 제자들에게 필요한 힘을 달라고 기도했다. 잠시 후에 제자들이 기지개를 켜고, 하품을 하면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바르톨로메오는 눈을 뜨자마자 자기의 꿈 이야기를 시작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꿈이었는지 몰라. 정말 아름다운 꿈을 꾸었어. 꿈에 내가 성전 안에 있었는데, 거기에는 우리 모두와 함께 내 친구들과 가족들도 있었어. 선생님께서는 우리 앞에서 미소를 지으시며 팔을 활짝 벌리고 계셨어. 그때 선생님의 가슴에서 따스한 열기가 솟아 나와 거기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어.

우리는 모두 기쁨에 넘쳐 서로 껴안기 시작했어. 그때 자네들이 각자의 가족과 친구들을 데리고 온 것을 보았어. 그리고 그 가족과 친구들이 또 그들이 가족과 친구들을 데리고 왔어. 그래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친구들을 데리고 왔고 선생님의 가슴에서 나오는 열기를 받은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 지고 있었어.

마침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기쁨에 넘쳐 서로를 얼싸안고 있었어. 그리고 모두가 선생님 앞에 무릎을 꿇었는데, 선생님께서는 황금빛으로 싸여 계셨어. 그때, ‘이는 내 아들이니라.’ 하는 목소리가 크게 들렸는데, 하느님이신 것 같았어. 선생님의 가슴 옆이 열리고, 그 곳에서 아름다운 하얀 비둘기가 나와서 사람들 위를 날아 다녔어.

선생님께서 군중 속에 계시던 당신 어머니의 손을 잡고 앞으로 모시고 나오자, 어머니의 옷이 황금빛으로 변하고, 어머니의 머리 위에는 관이 씌워졌어. 어머니께서는 선생님 앞에 무릎을 꿇고 발에 입맞춤하셨어. 그 다음 어머니께서는 우리한테 오셔서 우리 손을 잡으시고 선생님께로 데리고 가셨어. 우리는 차례로 선생님 발에 입맞춤을 하였어.

그게 끝이었는데, 이상한 것은 꿈 속에서도 그 모든 것이 끝나지 말았으면 싶었고, 영원히 계속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어.”

“나도 거기에 있었나?” 유다가 머뭇거리며 물었다.

“그것도 이상한 것 중에 하나였어. 자네만 그 자리에 없었거든.”

마태오가 바르톨로메오의 대답을 받았다. “유다는 그때 성전에 들어오는 사람들한테 돈을 받고 있었겠지.”

유다의 기분이 몹시 상한 것 같았기에 내가 나섰다.

“마태오,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을 하는 것은 좋지 않다. 항상 사랑과 이해심을 가지고 말을 해야 한다. 그렇잖으면 진리의 길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하고 마태오를 꾸짖었다.

마태오는 자기가 한 말이 부끄러워서 땅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유다, 미안하네. 자네 마음을 상하게 하려고 그런 건 아닐세. 용서해 주게나” 마태오는 자기가 말을 잘못했다는 것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었다.

“내가 뭐 돈에만 관심이 있는 줄 아는가? 선생님도 사랑하고 있단 말일세.” 유다의 항변이었다.

한동안의 침묵이 흐르고 난 뒤에, 제자들은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나는 유다가 한 말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나를 사랑하긴 하지만,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고 있었다.

나는 유다가 가야 할 길을 라고 있었기에 그가 불쌍해졌다. 그에게 가서 그를 감싸 안으며 위로했다. “유다야, 나는 네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나도 너를 정말 사랑한다. 언제나 변함없이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그리고 네가 어떤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네가 나에게 청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용서해 준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알겠습니다, 주님.” 하고 대답한 유다가 울기 시작했다. 그것은 가슴 깊은 곳에서 나오는 울음이었지만 유다 자신은 그 울음의 이유를 알지 못했다. 우리가 한동안 서로 껴안고 있자, 다른 제자들도 와서 함께 껴안았다. 유다는 심하게 흐느끼고 있었다.

“주님, 어쩐지 제가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리고, 주님을 배반하고, 주님께 등을 돌릴 것만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왜 이렇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유다는 격하게 말을 하고는 계속해서 울었다. 나는 유다가 용서해 달라고 말하기를 기다렸으나, 끝내 용서를 청하지는 않았다. 슬픈 일이었다.

얼마 후에 식사가 준비되었고, 우리는 모두 침묵을 지키며 음식을 먹었다. 제자들은 이따금 유다를 쳐다보았는데, 유다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나는 제자들의 눈 속에서 유다를 걱정하는 참된 사람의 슬픔이 담겨 있는 것을 보았다. 유다는 여전히 입 안에 가득 음식을 물고서 주위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만들 쳐다보게 내가 조금 울었기로서니 뭐 그리도 대단한 일이라고 그러나, 이제 다시는 안 울 거야!” 유다는 친구들의 가슴에 있는 사랑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사랑을 보기에는 유다의 영적인 눈이 너무나 멀어 있었고, 그로 인해 유다는 오직 악만을 보고 있던 것이다.

 

 

 

예수님 +++  1996년 7월 28일

 

길을 따라 걸어가면서, 우리는 하느님을 찬미하는 기도를 바치기도 하고, 시편을 노래하기도 했다. 기도를 마쳤을 때, 옆에 있던 야고보가 말했다. “주님, 우리가 기도하면서 길을 갈 때마다, 저는 제가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을 기도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며 걷습니다. 기도에 맞추어 발을 옮기면 걷는 것도 기도가 됩니다. 그러면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그렇게 피곤하지도 않습니다.”

나는 야고보의 영신적 지혜가 날로 늘어가는 것을 보고 기쁨을 느꼈다. “야고보는 기도 활동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웠구나. 하느님께 대한 너의 사랑이 나에게 큰 기쁨을 주고 있다.”

“주님, 그리고 저는 기도할 때마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주님을 보게 됩니다.”

“기도하면서 네 가슴을 하느님께 열어 드리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주님, 저는 기도 속에서 주님을 아주 가까이 느끼고 있지만 더욱더 가까워지고 싶어서 열심히 기도를 합니다. 그렇지만 한 번도 만족할 만큼 가까이 가 본 적이 없습니다.” 야고보가 약간 혼란스러운 듯이 말했다.

“포기하지 말아라. 기도를 하면 할수록 너는 나와 더 가까워질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영원한 사랑으로 나와 결합된 네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때 너는, 너의 기도가 너를 거기에 이를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주님, 기도가 너무 좋습니다. 기도는 저를 기쁨으로 가득 채워주고, 기로를 하면 정말 즐거워지는데, 사람들이 왜 기도를 안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분명히 그들은 기도할 때 얻는 그 기쁨을 모르고 있나 봅니다.” 야고보가 안타까운 듯 혀까지 끌끌 찼다.

“기도를 안 하는 사람들은 악마에게 문이 가리워져 기도의 가치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려고 하지만, 때때로 자신들의 기도가 응답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여, 기도를 포기하고 기도에 등을 돌리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기도를 하나의 의무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의 기도에는 사랑이 들어 있지 않다. 그렇게 되면 그 기도는 사랑이 없는 단순한 말소리에 불과한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너처럼 사랑으로 하느님께 의탁하며 믿음으로 기도할 수 있다면, 그들도 너처럼 기도에서 기쁨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일에 쫓기고, 자기 생활과 어려운 사정에 정신을 뺏기게 되면 사랑으로 기도한다는 것이 어렵게 된다. 그렇게 영혼을 흐리게 하고, 하느님께 마음을 다게 하는 것도 악이 하는 짓이다. 마음을 열어 하느님의 사랑으로 가득 채우게 되면, 그들도 너처럼 기도의 참된 가치와 기쁨을 알게 될 것이다. 기도는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고, 그 선물로 인해 하느님의 다른 많은 선물들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믿기만 하면 말이다.”

“주님, 사람들이 이것을 이해하고 기도할 수 있게 하려면, 저희들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야고보가 진지하게 물었다.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고, 네가 기도하면서 얻는 너의 기 기쁨에 대해 이야기해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주님.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야고보는 대답과 동시에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들이 야고보처럼, 가슴을 열고 기도할 때 주어지는 참된 선물을 알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기도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짐으로 여기고 있다.

 

 

 

+ 표지에 있는 성화에 관한 설명 +

 

1996년 7월 어느 날, 나는 책상에 기대어 서서 우리 주 예수님께서 이 책, <예수님의 눈으로>의 표지를 어떻게 만들고 싶어 하실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책꽂이에서 그림 한 장이 떨어졌는데, 바로 책 표지에 있는 그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이 책 표지에 사용할 그림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림에 있는 예수님의 눈과 시선이 마주쳤을 때, 그 눈 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것 같았고, 예수님의 깊으신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게 나타나실 때, 나는 그분의 사랑과, 자비와, 관대하심에 압도되곤 합니다. 때로는 나와 모든 사람들에 대한 그분의 열절 하신 사랑에 눈물 흘리게도 합니다.

내가 뵙는 예수님께서는 갈색 머리카락과 수염을 가지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부 색깔은 약간 볕에 그을린 듯 하고, 키는 크십니다. 이제껏 내가 본 어떤 예수님의 그림도 그분을 정확하게 그리고 있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각 그림들은 내가 뵙는 예수님과 조금씩은 비슷한 곳이 있습니다. 내가 예수님의 모습을 묘사하기 어려운 만큼이나, 예수님한테서 느끼는 그 온화함, 그 사랑, 그 우정을 설명하기란 어렵습니다. 예수님을 꼭 닮은 사진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주님께서 이 책을 위해 이 그림을 권하셨으니, 주님 생각에는 이 그림이 가장 적당하다고 여기신 것으로 저는 믿고 싶습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2014년 12월 27일에 시작이 되어, 2015년 4월 27일에 1권 필사가 끝났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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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6일 ‘필사’ 시작

 

예수님의 눈으로  2권

앨런 에임스의 영적 기록

앨런 에임스 지음 원아영 옮김

 

 

 

 

예수님 +++  1996년 8월 5일

 

다시 날이 저물었고, 우리는 쉴 자리를 찾아서 불을 피웠다. 나는 바위에 앉아 제자들이 밤을 지내기 위한 장소를 준비하고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유다는 바람을 막아 주고 기댈 수 있는 큰 나무 곁에 편안한 자리를 차지했다. 야고보와 요한은 서로 도우면서 가능한 한 편히 잘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고 있었다. 베드로는 자기 담요 위에 그냥 앉아 있었는데, 편히 잠자는 것은 별 관심이 없는 듯, 짐을 내려놓고 앉아서 모닥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바르톨로메오, 마태오, 시몬, 안드레아, 타대오는 불이 꺼지지 않고 계속해서 타오를 수 있을 만큼 나무를 모으고 있었다.

다른 제자들은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말을 하는 사람이 없어, 불꽃 튀기는 소리와 일하느라고 움직이는 소리만이 정적을 깨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고, 어떻게 이 사람들이 내사랑 안에서 한 가족으로 모이게 되었는지를 생각하면서, 앞으로 한 가족이 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눈 앞에 보았다. 이 제자들 각자가 서로 다른 점을 가지고 있듯이 그 모든 사람들도 서로 다른 점들을 갖고 있지만, 하느님 안에서 형제 자매가 되어 하나로 일치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모든 사람들이 결함을 갖고 있으면서도, 내 제자들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서, 내 사랑 안에서 나를 믿고 나에게 의탁함으로써 그들의 결함을 극복해 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유다처럼 자신의 교만을 극복하기 어렵고, 이기심과 탐욕을 극복하기 어려운 사람들도 보았다. 나는 아버지께 기도했다. 장차 내가 악을 쳐부수고 승리할 때, 유다 같은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자비로우신 하느님께 용서를 빌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주님, 식사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기도하십시다.”

유다가 부르는 소리에 나는 깊은 생각에서 깨어났다. 나는 유다에게 미소를 지었다. 평소에는 하느님께 대한 유다의 사랑이 그의 교만에 덮여 잘 나타나지 않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유다도 하느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 유다야. 수고 많았다.”

나의 대답을 듣고 유다는 기분이 우쭐해져서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모두 아버지께 기도를 하고 식사를 나누었다.

다른 제자들은 이스라엘을 점령하고 있는 로마군에 대해 열심히 토론하고 있었는데, 베드로는 식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는 떨어져 앉아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나는 베드로 곁에 가서 앉으며, 그가 어떤 대답을 할 것인지 알면서도 물었다.

“무슨 일이냐, 베드로? 걱정되는 일이라도 있느냐?”

“주님, 저희가 주님과 함께 있을 날이 언젠가는 끝나리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언제까지 항상 주님과 함께 있으면 좋겠습니다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주님께서 저희들을 떠나실 것도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떠나시고 안 계시면 저희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주님께서 가 버리시면 저희들은 하루하루를 어떻게 지내야 합니까?” 심각한 표정으로 베드로가 말했다.

“베드로, 내가 항상 너와 함께 있다는 것을 모르느냐? 네가 나를 볼 수 없을 때라도, 내가 너와 함께 있다는 것을 알아라. 사랑하는 너를 절대로 혼자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항상 네 곁에 있을 것을 약속하마. 항상 너를 사랑할 것이고, 결코 너를 저 버리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로 돌아갈 때가 되면, 나의 성령이 네게 넘치게 될 것이고, 그러면 너는 ‘나로다’ (I am)의 뜻을 알게 될 것이다. 너는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고, 그리고 행복할 것이며, 내 사랑 속에서 환전해질 것이다. 베드로, 나에게 의탁하고 나를 믿어라. 우리는 결코 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라.” 나는 베드로를 껴안아 주며 말했다.

베드로는 나를 쳐다보며 힘없이 미소 지었다. “알고 있습니다, 주님. 그래도 가끔 걱정이 됩니다.”

“베드로, 머지않아 모든 것을 다 알게 될 것이고, 의혹이 사라질 것이다. 그때까지, 우리가 함께 있는 이 시간을 즐겁게 지내자.” 하면서 베드로의 어깨를 다독거렸다.

바로 그때 유다가 와서 말했다. “기분 좀 내라고, 베드로. 아주 슬퍼 보이잖아. 먹을 것도 있고, 따뜻한 불도 있고, 편한 잠자리도 있고, 친구들도 있는데 더 이상 뭘 바라나?”

베드로는 유다를 슬프게 쳐다보며 말했다.

“글쎄 말일세.”

 

 

 

예수님 +++  1996년 8월 10일

 

내가 제자들을 보고 말했다. “너희들에게 이야기를 하나 들려 주겠다.” 내 말을 기다리면서 제자들은 모두 조용히 나를 쳐다보았다.

“어느 날 한 남자가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으로 갔다. 성전 안에 들어갔을 때 그는 자기가 못 올 자리에 온 것만 같이 느껴졌다. 살아 오면서 얼마나 많은 잘못을 저질렀으며, 하느님의 계명을 얼마나 많이 거역했었는지 모두 생각이 났던 것이다. 성전 뒤쪽에 않아서 그는, 하느님께서 과연 자기를 용서해 주실는지, 그리고 하느님의 참된 아들이 될 수 있도록 자기를 도와 주실는지 에 대해 생각했다.

‘아냐, 하느님께서 이렇게 나쁜 놈을 사랑하실 리가 없어. 나도, 저기 성전 앞쪽에서 기도하고 있는 저 사람들과 같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느님께서는 저 사람들을 나 같은 놈보다 더 사랑하실 거야.’ 하고 그는 생각했다. 성전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고 있었고, 자기들끼리 성서에 대해 토론을 하기도 했는데, 그 사람들이 참으로 거룩해 보였던 것이다.

그 사람은 일어나서 성전을 나갔다. 성전 밖에서 그는 굶주려 바싹 마른 거지 한 명을 만났다. 그 거지가 구걸을 하자, ‘불쌍한 사람, 고생하고 있군. 도와 줘야지.’ 하며 주머니의 돈을 모두 꺼내어 거지에게 주었다. 거지는 그 돈이 그가 가지고 있던 돈의 전부인 것을 알고는, ‘하지만 선생님은 한 푼도 없지 않습니까’ 하자, ‘그건 그래요. 하지만 그 돈은 나보다도 당신한테 더 필요할 거요. 나는 그 돈이 없어도 한 동안 지낼 수가 있으니까, 가지고 가서 먹을 것을 좀 사도록 해요.’ 하고 그는 대답했다.

‘좋으신 양반, 그러면 제가 먹을 것을 살 테니까 같이 나눠 먹읍시다.’ 거지가 말했다.

‘그렇게 하면 좋겠군요.’ 하고 그는 거지와 함께 먹을 것을 사러 갔다. 시장으로 가는 도중에, 낡아서 찢어진 옷을 입은 한 거지가 추위에 떨고 있는 것을 보았다. ‘가련한 사람, 몹시도 춥겠군.’ 하고 생각하면서 그는 자기 코트를 쳐다보았다. ‘난 이 코트가 필요 없어. 집에 또 하나 더 있거든.’ 하면서 그는 코트를 벗어 그 거지에게 주었고, 거지는 코트를 받으며 고마워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런데 코트를 벗어 주고 추워서 떠는 그를 보고 거지가 말했다. ‘이제 선생님이 추위를 당하셔야 하니 이 코트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난 집에 코트가 또 하나 있거든요.’

‘하지만 지금 당장은 추우십니다.’ 받은 코트를 들고 있던 거지가 말했다.

돈을 받았던 첫 거지가 코트를 받은 거지에게 말했다. ‘선생님이 저에게 돈을 주셔서 같이 먹을 것을 사러 가는 중이요. 같이 갑시다. 저희가 함께 가까이서 걸어가면 선생님을 따뜻하게 해드릴 수가 있어요.’ 그 세 사람은 팔짱을 끼고 걸었다. 새로 생긴 두 거지 친구 사이에 끼여 그는 춥지 않게 걸어 갔다.

셋이서 가고 있는데, 이번에는 신발도 없이 맨발에 살이 갈라져 피가 흐르는 거지를 만나게 되었다. ‘불쌍한 사람, 얼마나 발이 아플까.’ 하고 생각한 그는 자기 신발을 벗어서 거지에게 주며 말했다. ‘발이 더 상하지 않게 이 신발을 신어요.’

발을 다친 그 거지는 신발을 받아 신고 좋아하다가, 그가 맨발인 것을 보고 말했다. ‘선생님은 맨발이 되셨네요. 돌멩이에 다치실 텐데요.’

‘괜찮아요. 집에 가서 발을 씻고 다른 신발을 신으면 돼요.’ 그가 말했다. 첫 번째 거지가, 자기가 받은 돈에 대해 설명을 하면서, 세 번째 거지도 같이 가서 음식을 먹지고 말했다. 모두 팔짱을 끼고 네 사람은 음식을 사러 갔다. 세 거지들은 그를 땅에서 약간 들어올려 그의 발이 다치지 않도록 했다.

네 사람이 걸어갈 때, 성전 앞쪽에서 기도하던 남자들이 마주 걸어오고 있었다. 그 남자들은 마주 걸어오는 네 사람을 피하려고 길을 건너갔다. 한 남자가 화난 소리로 말했다. ‘요즘에 웬 거지들이 이렇게 많은지, 원. 동네를 다 망쳐 놓는다니까.’

또 다른 남자가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성전 문지기들은 몽둥이로 왜 저런 거지들을 쫓아 버리지 않는 거야.’

거지들 사이에 끼여 가던 그가 앞으로 나서며 항의했다. ‘이 거지들은 누구에게도 해를 끼친 일이 없습니다. 우리가 조금만 동정을 베풀어 주면 될 사람들입니다.’

그 남자들은 모두 웃어댔다. 그러다가 그 중 한 남자가 빈정대며 말했다. ‘저것 좀 봐. 거지가 거지를 변호하는군.’ 그러자 거기 있던 남자들이 모두 그 네 사람을 향하여 돌을 던지며 소리쳤다. ‘꺼져라, 이 버러지 같은 놈들!’

돌이 날아오자 그는 팔로 얼굴을 가렸다. 그러나 돌 하나가 머리에 맞아, 피를 흘리며 땅에 쓰러졌다. 세 거지들은 그가 돌을 맞지 않도록 자기 몸으로 돌을 막으며 그를 둘러쌌다. 한 남자는 끝까지 돌을 던지며 소리질렀다. ‘버러지 같은 거지들, 인간 찌꺼기들, 우리 동네에서 꺼져라!’

세 거지들은 그를 안고, 돌이 날아오고 욕지거리가 들려오는 그 곳을 떠났다. 그들은 그가 혼자 살고 있던 집으로 데리고 가서, 침대 위에 눕히고 상처를 씻어 주었다. 얼마 후 그가 눈을 어렴풋이 뜨며 말했다. ‘친구들, 이제 죽을 때가 된 것 같아요. 난 그걸 알 수 있어요.’

‘아닙니다, 아닙니다. 이제 괜찮아지실 겁니다.’ 거지들은 그가 죽는다는 사실을 믿지 않으려고 하였다.

‘친구들, 내 명이 다 된 것을 느낄 수 있어요. 그러나 여러 친구들한테 둘러싸여서 죽게 되니 오히려 난 행복해요. 그리고 아까 그 남자들이 나를 당신들과 똑같은 사람으로 취급한 것이 정말 기뻐요.’ 그가 흐뭇한 듯이 말했다.

‘선생님은 돌아가시지 않을 겁니다.’ 첫 번째 거지가 말했다. ‘같이 식사하자시던 것은 어떻게 합니까? 약속하시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내가 지키지 못할 약속이 되어 버렸어요. 그러나 그 대신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꼭 들어 주세요.’ 그는 힘없이 말했다.

‘말씀하십시오.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 셋이서 동시에 대답했다.

‘나를 위해 기도를 해 주세요. 내가 하느님을 거역했던 일과, 하느님의 계명을 어겼던 일들을 나는 잘 알고 있어요. 내 죄를 참회하고 보속할 시간이 좀 있었으면 좋으련만…’ 하고 말하는 그의 눈빛이 점점 힘을 잃어 갔다.

‘기도해 드리겠습니다. 저희는 선생님을 위해 항상 기도 하겠습니다. 선생님은 저희들에게 친절을 베풀어 주신 참으로 좋은 분이십니다.’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이었어요. 오! 하느님, 당신을 사랑하오니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하면서 그는 머리를 떨구고 숨을 거두었다.

 

“내가 너희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불쌍한 사람을 도와 주는 것은 하느님을 도와 드리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궁핍한 사람을 도와 줄 때, 그것은 하느님께 드리는 사라의 선물이 되는 것이다. 불쌍한 사람에게 사랑과 우정을 나누어 주는 사람은, 그 사랑과 우정을 하느님께 드리는 것이 되며, 그가 지닌 그 사랑은 바로 하느님께서 그에게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불쌍한 사람들을 변호하고, 그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치는 자는, 바로 하느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다.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희생을 하는 것은, 그 사랑의 희생을 하느님께 바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거지들 사이에서 숨을 거둔 그는 자신의 결점을 알고 있었으나, 자신의 장점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자기 잘못에 대한 용서를 빌었으나, 자신의 선생에 대한 보상은 청하지도 않았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천국에서 호나영 받을 만한 사람이다.

좋은 옷으로 치장하고 성전 안 앞쪽에 앉아,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열심히 기도하지만, 실생활에서는 거만스런 태도로 자신이 다른 사람들을 심판할 수 있는 심판관인양, 마치 천국에 미리 자리를 잡아놓은 듯이 행동하는 그 사람들과는 다르다. 남을 멸시하면서 약하고 가난한 사람, 불행한 사람들을 도와 주기를 거절하는 그 사람들한테는 천국의 문이 닫힐 것이다.

천국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겸손한 영혼들이 받는 보상이며, 지옥은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는 교만한 영혼들이 받는 대가인 것이다. 항상 겸손하도록 노력하고, 자기 자신을 염두에 두지 말고 남을 도와야 한다.”

제자들은 내가 한 말을 묵상하면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유다가 말했다. “자네들 신발을 벗어 준다고 한번 생각해 보게. 그런 바보 같은 짓이 어디 있겠나.”

“네 신발을 내 주는 것이 네 영혼을 내 주는 것보다 나은 것이다.” 하고 내가 대답했다. 제자들은 내 말을 묵상하느라고 모두 침묵을 지켰다.

“가난한 사람과 재산을 나눌 수 있는 것은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이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내 것을 준다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예수님 +++  1996년 8월 10일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혼자서 기도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산책을 나갔다. 기도를 하는 동안,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하느님을 거부하고 있으며, 그렇게 하느님을 거부하면 어떻게 되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것을 생각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만심과 불신으로 눈이 멀어 버렸고, 하느님을 거절하며 가슴을 닫고 있는 것을 생각하며 걸었다. 그때 멀리서 사람 소리가 나더니 점점 가까이 오고 있었다.

“그분들을 곧 만나게 될 거야. 우리보다 그리 멀리 앞서 가고 있진 않을 거야.” 그 목소리는 제자 저스터스의 음성이었다.

“그랬으면 좋을 텐데. 밤새도록 걸었더니 정말 피곤하군.” 하고 말하는 또 한 사람의 목소리는 처음 듣는 음성이었다.

“그래, 나도 피곤해.” 하는 세 번째 목소리는, 저스터스와 함께 라자로의 집으로 심부름을 갔던 제자의 음성이었다. 그들이 내 시야에 들어 왔다. 저스터스가 나를 보고 “주님!” 하고 소리치면서 얼굴에 웃음을 함빡 짓고 나에게로 달려왔다. 다른 제자도 뒤따라 와서 “지님!” 하고 소리쳤는데, 나머지 한 사람은 어색한 듯 천천히 걸어왔다.

“잘 왔다, 저스터스.” 내가 인사를 하자, 저스터스는 나를 껴안으며 반가워했다. “어서 오너라, 야고보.” 하고 내가 인사를 하자 야고보도 나를 껴안았다(열두 사도 중의 야고보가 아님).

“주님, 정말 오랜만입니다. 야고보가 감격해 하며 말했다.

“겨우 몇 주밖에 안 되는데, 몇 년이나 된 것같이 느껴집니다.” 저스터스가 덧붙였다.

“그래, 여행은 어떠했느냐?” 나는 무슨 대답이 나올지를 알면서도 물었다.

“주님, 아주 좋았습니다.” 저스터스가 열정적으로 대답했다. “저희들은 사람들한테 주님 얘기를 많이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치유되었습니다. 주님, 처음에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줄 때 저는 어쩐지 약간 의심스럽기도 했습니다만, 주님 이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치유되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의심하지 않습니다.”

“맞습니다, 주님.” 야고보가 거들었다. “저스터스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었고, 만나는 사람마다 주님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너는 어땠느냐, 야고보?” 내가 물었다.

“저는 그냥 좀 도와 주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치유되도록 혼자서 조용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저스터스는 주저하지 않고 일어서서 많은 사람들에게 주님의 이름을 선포했습니다.” 약간 어색한 표정으로 야고보가 대답했다.

바로 그때, 동행했던 그 남자가 다가와서는 숨을 몰아 쉬면서 말했다. “드디어… 예수님을…”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내가 그 남자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 아들을 좀 고쳐 주십시오. 병이 심한데, 저스터스의 기도로는 낫지를 않았습니다. 제가 주님을 뵙기만 하면, 주님께서 제 아들을 낫게 해 주시리라 믿었습니다. 제 아들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착한 아이입니다.” 그가 대답했다.

“사실입니다, 주님.” 저스터스가 말했다. “아이가 심하게 아픕니다. 수면 병으로 거의 다 죽게 생겼는데, 저의 기도로는 고칠 수가 없었습니다!”

“저스터스, 네가 그 아이를 처음 보았을 때, ‘저런 아이는 내가 못 거칠 거야!’ 하고 의심했었지? 하느님께서 행하시는 치유의 힘이 너를 통하여 그 아이에게 흘러가는 것을 막은 것이 바로 그 의심이었다.”

저스터스는 눈을 아래로 깔며 말했다. “그랬습니다, 주님.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나는 다 알고 있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땅에 엎드려서 빌었다. “주 예수님, 저는 주님을 믿습니다. 저는 주님께서 제 아들을 치유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주님께서 제 아들을 위해 한 마디만 기도해 주시면,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제 아들이 치유될 것을 믿습니다.”

“기도 한 마디를 위해 그 먼 길을 걸어오다니, 당신은 참으로 큰 믿음을 가졌소.” 나는 그에게 따뜻한 칭찬의 말을 해주었다.

“지님, 저는 주님께서 계신 곳이라면 이 세상 끝까지라도 갔을 것입니다. 저는 하느님께서 주님과 함께 계시다는 것을 알고, 주님께서 제 아들을 고치실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는 진심으로 말했다.

“바로 지금, 이 시간에 당신의 아내는 치유된 아들한테 입맞춤하며, 기쁨에 넘쳐 웃고 있습니다.” 나는 그에게 아들의 치유를 알려 주었다.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그는 내 손을 잡고 연신 입을 맞추었다.

“당신의 믿음과 사랑이 아들을 치유한 것이오. 당신의 아들은 참으로 축복 받은 아이입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가 보겠습니다.”

“여기서 우리와 함께 식사를 하고 좀 쉬었다 가도록 하지요. 아주 피곤할 텐데.”

“아닙니다, 주님. 가족들한테 돌아가겠습니다.” 나에게 인사를 하고는, 그는 걸어왔던 방향으로 즐겁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집에 가고 싶은 욕망이 허기와 피로를 극복했던 것이다.

“사실입니까, 주님?” 야고보가 물었다. “정말 그 아이가 나았습니까?”

“만약 너희들이 저 사람이 가진 것만큼의 믿음을 가졌어도, 너희에게는 불가능한 것이 없을 것이다.” 내 목소리는 약간 슬픔이 담겨 있었다. “그래, 그 아들은 이제 다 나았다.”

“그런 믿음을 가지려고 노력하지만, 주님, 그게 잘 안 됩니다.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줄 때, 아무런 치유가 안 일어날 것만 같아서 저는 혼자서 조용히 기도만 하고, 항상 저스터스가 소리 내어 기도를 했습니다.”

이렇게 야고보가 말하자 저스터스가 말을 가로챘다.

“그렇지만 자네의 기도가 함께 협력을 했던 거야. 자네 기도와 내 기도가 하느님의 사랑에 일치하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치유를 한 거란 말일세.”

나는 저스터스가 지닌 큰 힘을 보았다. 다만 가끔 공포의 지배를 받는 것이 탈일 뿐이었다.

“야고보야, 저스터스의 말이 옳다. 저스터스의 기도만큼 네 기도도 치유를 도왔던 것이다. 아버지께서 너의 기도도 들어 주셨는데, 다만 네가 그것을 알지 못했을 뿐이다. 기도 소리를 입 밖으로 크게 낸다는 것이 너한테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네가 그 수줍음을 벗어난다면, 나는 너를 혼자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고, 네가 내 일을 할 수 있도록 힘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네가 나를 믿고 나에게 의지하면, 나는 너를 사랑으로 인도하면서, 네 곁에 있어 줄 것이다.”

“노력하겠습니다, 주님. 저는 아직 배워야 할 게 너무 많습니다. 참고 기다려 주십시오.” 야고보가 힘주어 말했다.

“물론이지, 기다리고 말고. 너도 네 자신을 참고 기다려 주어야 한다.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알아라. 아무것도 배우는 것이 없고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고 느껴질 때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네 성화(聖化)의 과정이다. 그것을 극복할 도움을 나에게 청하여라. 그러면 내가 항상 네 곁에서 너를 도와 줄 것이다.”

나는 야고보를 타이르면서 자신의 믿음에 대해 의심하면서 힘들게 싸움을 벌일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또 기도를 하려고 애를 쓸 사람들과, 약속된 보상을 과연 받게 될 것인지 의심하는 사람들과, 계속해서 분투하며 견디어 가야 할 것인지 의혹에 빠질 많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들이 내가 한 말과 나의 생애를 돌이켜 생각해 본다면, 모든 의문에 대한 대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지금 떠난 저 사람 정도의 믿음을 가질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야고보가 탄식을 했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어.” 저스터스가 동감이라는 듯이 말했다. 둘은 멀리 달려 가고 있는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너희가 어려움을 느낄 때 오직 나한테 의지하고, 의혹이 일어나는 그 마음을 내 손에 맡기기만 한다면 너희들도 그런 믿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믿음을 약하게 하는 것은 너희들의 마음 속에 있는 의심과 두려움이다. 그러나 믿음이 강한 사람들도 의심과 두려움이 일어나기는 마찬가지이다. 다만 그들은 내 안에서 그것을 극복한다. 너희들도 그와 같이 한다면 믿음이 저절로 커지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제자들이 묵고 있는 야영지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을 때 저스터스가 말했다. “주님, 언젠가 저도 그런 믿음을 가지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반드시 너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때 나는 저스터스가 그의 굳센 신앙으로 인해 사랑의 제물이 되어 천국의 내 품으로 오게 될 것을 보았다.

 

 

 

예수님 +++  1996년 8월 17일

 

우리가 야영지에 도착하자, 제자들이 저스터스와 야고보를 둘러싸며 반겼다. 베드로가 나서서 말했다. “주님, 우리 형제들이 안전하게 되돌아올 수 있게 해 주신 아버지께 감사기도를 같이 드리지요.” 친구들이 돌아온 기쁨 속에서 하느님의 사랑으로 행복에 젖어, 모두 기도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기도를 마쳤을 때는 시간이 많이 흘러서 이미 정오가 넘고 있었다.

“식사부터 하면서 형제들이 돌아온 것을 축하합시다.” 친구들이 돌아온 것보다 먹는 일에 더 관심이 많은 유다가 말했다.

식사 중에 내가 야고보와 저스터스에게 물었다. “라자로는 어떻게 지내고 있더냐? 잘 지내고 있더냐?”

야고보가 대답했다. “주님, 라자로와 여동생들은 건강하게 잘 있습니다. 다만 주님께서 언제쯤 그들을 찾아 주실 것인지 궁금해 하더군요.”

“때가 오면…” 야고보에게 대답하면서 하느님과 나의 사랑을 라자로를 통해 이 세상에 보여 주게 될 날을 생각했다.

저스터스가 허리를 굽히고 불룩한 가방을 집어 올렸다.

“라자로가 이걸 주님께 갖다 드리라고 했습니다. 필요하실 때 쓰시라고요.”

라자로의 너그러운 마음씨를 보면서, 유익하게 쓸 수도 있는 것이 재산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라자로의 너그러운 마음씨는 그의 겸손함도 보여주었는데, 항상 그는 충분히 못 준 것처럼 생각하며, 더 주지 못해서 안타까워 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 주고, 배고픈 사람들을 먹여 주고, 병든 사람들을 보살펴 주는 참으로 너그러운 마음씨를 지니고 있었다. 하느님의 참된 친구인 라자로는 조용하고 부드러운 태도로써, 재산은 나눠 갖는 기쁨을 누리게 해 주는 은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었다.

유다가 가방을 낚아채며 “이건 내가 간수하겠네.” 하는 소리에 나는 깊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유다는 가방을 열고 속에 든 돈을 들여다보며 싱글벙글 했다.

“유다, 자넨 이미 지고 있는 가방도 무거울 텐데, 그 무거운 돈가방을 같이 지겠다는 것은 무리일 것 같네. 자네 몸이 짓눌려 버릴 거야.” 베드로는 유다가 얼마나 많은 돈을 가지고 다니는지 다 알고 있다는 사실을 넌지시 알려 주었다.

“문제 없어.” 즐거운 표정으로 유다가 대답했다. “다른 사람의 짐을 가볍게 해 준다면, 내가 좀 더 무겁게 짊어진들 어떻겠나.” 모두들 유다를 쳐다보면서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의 속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라자로에 관해 좀더 이야기해 보아라.” 내가 야고보와 저스터스에게 말했다.

야고보가 대답했다. “지님, 라자로는 참 훌륭한 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덜어 본 사람들을 모아서 주님의 말씀에 대해 토론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어 보지 못한 사람들도 오는데, 그들은 라자로한테 와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 토론합니다. 토론이 끝나면 그들은 기도를 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정말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사실입니다, 주님,” 저스터스가 야고보의 말을 이었다. “그들은 주님의 말씀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주님께서 들려 주신 비유 속에 얼마나 많은 교훈이 담겨 있는지를 깨닫고 놀라워 합니다.”

야고보가 다시 말을 받았다. “라자로는 간단한 날 속에서 많은 의미를 알아낼 수 있는 사람인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라자로의 동생들은 음식과 마실 것을 열심히 날라 주고는 뒤쪽에 앉아서 가만히 듣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가족이다.” 하고 내가 말했다.

저스터스가 생각에 잠기며 말했다. “가끔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거기 왔었는데 말끝마다 질문을 하고,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받아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가슴 속에는 별로 사랑이 없는 듯 했습니다.”

“그들을 라자로가 어떻게 대하던가?” 베드로가 관심을 보이며 야고보에게 물었다.

“라자로는 별 상관을 안 하는 것 같았어요. 그저 사랑으로 친근하게 대해 주면서 진실되게 대답하기만 했어요.”

라자로가 하느님께 의지하며 여러 가지 어려운 질문에 대답하고 있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에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화를 내는 기색이 조금도 없고, 오직 사랑으로 그들을 대했다. 그는 사랑과 신뢰와 겸손으로써 어떻게 하느님께 봉사해야 하는지를 모든 사람에게 보여 주는 참으로 좋은 본보기였다.

“라자로가 나에 대해 무슨 말을 하지 않았어?” 유다가 야고보에게 불쑥 물었다.

“아니, 왜?”

“아, 아니, 아무것도 아냐.”

당황해 하며 유다는 얼버무렸다. 우리가 라자로의 집에 갔을 때, 라자로의 돈을 훔쳤던 유다는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른다고 생각하고 안심을 했다. 라자로가 그것을 다 알고 있었지만 사랑으로 용서해 주었다는 사실을 유다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유다는 도둑질한 것을 들키지 않았으니 그 일에 대해 잊어 버려도 된다고 생각하고는 기뻐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유다 역시 들키지만 않으면 괜찮다고 생각하고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악마의 속임수에 쉽게 넘어가 양심의 가책을 피한 것이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은 심판 날에 얼마나 많은 고통과 슬픔을 감당해야 할 것인가!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잘못을 수없이 저지르고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그런 일을 예사로 생각하고,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조롱하고 멸시한다. 그들은 착하게 산다는 것을 우스꽝스럽고 어리석다고 생각하면서, 착한 사람들을 이용하고, 부려먹고, 학대하고 조롱한다. 더구나 악행을 당하고도 참아 주는 착한 사람들을 바보라고 생각한다.

착한 사람들의 사랑과, 남을 신뢰하는 고운 마음씨는, 하느님께서 아직도 이 세상에 당신의 사랑을 베풀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 세상에 선량함이 없다면 산다는 것이 얼마나 괴롭고 슬프겠느냐.” 나의 말에 제자들은 동의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다는 자기에 대해 말하는 줄도 모르고, 덩달아 내 말에 동의했다.

라자로가 내 이름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고, 나를 위하여 라자로가 베푸는 선행을 비난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라도, 선량함이 없다면 산다는 것이 괴롭게 슬프다는 사실에는 동의할 것이다.

“주님, 오늘밤에 떠날 예정입니까? 아니면 여기서 머무를 것입니까? 바르톨로메오는 이곳에 머물기를 바라면서, 눕기만 하면 잠이 들도록 자리를 편안하게 깔아놓은 채 묻고 있었다.

“여기서 하룻밤 더 지내도록 하자. 야고보와 저스터스가 휴식을 취할 시간이 필요하니까.” 하고 내가 말했다. 바르톨로메오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드러눕더니 금방 잠이 들었다.

 

 

 

예수님 +++  1996년 12월 5일

 

동이 트고 아침 하늘에 찬란한 햇살이 가득 찼다. 나는 일어나서 약간 축축한 이른 아침 공기를 들여 마시며 두 팔을 뻗치고 기지개를 켰다. 아직 자고 있는 제자들을 둘러 보았다. 유다는 라자로가 나에게 보낸 돈주머니를 껴안고 있었다. 잠자는 유다의 얼굴은 행복한 표정이었다. 제자들이 깨어나기 전에 산책을 할 작정으로 몇 걸음을 옮기는데 베드로가 내 곁에 왔다.

“내가 널 깨웠느냐, 베드로?”

“아닙니다, 주님. 저를 깨우신 게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 기지개 켜실 때 눈이 떠졌는데, 주님께서 산책을 가시기에 함께 기도를 하고 싶어서 따라왔습니다.”

“베드로, 나는 네가 내 곁에 있는 것이 좋다. 너와 함께 기도하는 것은 더 좋고.”

나의 선창으로 베드로와 함께 시편을 낭독한 다음,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께 기도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열어 드렸다.

기도를 시작하자 아버지의 사랑이 나를 가득 채우시는 것을 느꼈고, 나는 마음 속으로 성령을 포옹했다. 사랑의 천주 성삼으로 일치하여 나는 기쁨으로 넘쳤다. 기도를 마쳤을 때는, 마치 영원한 시간이 흘러간 듯 하였다. 베드로가 같이 있다는 것을 문득 생각하며 이 세상으로 돌아와 보니, 두려움과 경외감에 떨며 땅에 엎드려 있는 베드로를 보았다.

“베드로, 무슨 일이냐?” 대답을 알면서도 내가 물었다.

“주 주 주님, 저 저,” 베드로는 말을 더듬으며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래, 베드로.” 나는 허리를 굽히고 베드로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베드로는 내 눈을 빤히 쳐다보며 떨고 있었다. “주님, 믿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주님께서 기도를 하시는데, 주님한테서 빛이 발하며 주님께서 투명해지셨습니다. 제가 주님을 올려다 보니, 주님의 가슴에 흰 비둘기가 있었고, 나이가 더 많고 상냥해 보이는 남자분이 두 팔로 주님을 감싸 안으시더군요. 주위에는 천사들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하늘 높은 데서 호산나.’ 를 노래하고 있었고, 공중에는 온화한 흥분이 넘쳤습니다. 입으로 다 표현을 할 수가 없습니다. 얼마나 겁이 났는지 모릅니다, 주님. 제가 그 자리에 있기에는 너무나 합당하지 못하게 느껴졌고, 제 자신이 너무나 비천하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쳐다보니 주님과, 비둘기와, 나이가 많으신 남자분이 한 사람인 것 같았는데… 그래도 주님은 여전히 주님이시고… 뭐가 뭔지 모르겠더군요. 그때 주님 옆구리에서 피가 흘러 나오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주님의 피는 마치 온 세상을 덮고 있는 바다 같았습니다. 그 순간 저는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기쁨과 터질 듯한 행복으로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주님,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베드로,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그것은 네게 준 선물이다. 다른 사람들도 많은 표시를 받게 될 것이지만, 그것은 너한테만 준 표시이니 잘 간직하여라. 그리고 의혹이 들 때나, 어려움이 닥쳤을 때나, 두려움에 마주쳤을 때에는 그것을 돌이켜 생각하여라. 그러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주님. 그 모든 것이 무엇을 뜻하는 겁니까?” 아직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베드로가 물었다.

“베드로, 네가 본 것은 하느님에 대한 진리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천주 성삼에 대한 진리이다. 너는 이 진리를 온 세상에 전해야 한다. 이것이 유일한 진리이다. 네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진리이지만, 방금 너는 천주 성삼을 보았다. 이제 천주 성삼을 믿고, 이 믿음을 세상에 전해야 한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도 이 진리 안에서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주님, 제가 알 수 있는 것은 다만, 주님께서 메시아라는 것과, 제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뿐입니다. 제가 오늘 본 것은 이해할 수가 없고, 주님께서 설명을 해 주셔도 이해가 잘 안되지만 주님께서 그렇다고 하시니 그런 줄로 알겠습니다.” 베드로는 여전히 얼떨떨해 하고 있었다.

“베드로, 너의 사랑과 너의 믿음은 누구보다도 더 강하다. 너 같은 사람이 좀 더 있다면 좋으련만…” 대화를 마치고 우리는 돌아서서 다른 제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해 걸어갔다. 제자들에게 돌아온 후에도 베드로는 한동안 조용히 혼자 앉아 있었다.

야고보가 나에게 와서 물었다. “주님, 베드로한테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베드로는 오늘 진리를 만났는데 잠시 동안 그 진리를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야고보에게 대답하면서 나는 불에 데워진 빵을 먹었다.

“아, 겨우 그런 걸 가지고 난 뭐 중요한 일이라도 있었는 줄 알았지.” 야고보가 대수롭지 않은 듯이 말했다.

 

 

 

예수님 +++  1996년 12월 7일

 

다음 마을로 떠나기 전에 기도를 바치려고 우리는 한자리에 모였다. 내가 제자들에게 말했다.

“이 곳을 떠나기 전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모든 것을 감사해야 한다. 우리에게 편안히 쉴 수 있는 장소를 주시고, 사랑을 함께 나눌 동반자들을 주신 것을 감사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함께, 지금까지 베풀어 주셨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모든 것을 베풀어 주실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기도가 끝나자 베드로가 말했다. “주님, 기도를 하면 기분이 참 좋아집니다. 기도는 제 가슴을 하느님께 들어올려 줍니다. 오늘 저는 구름 위를 걷는 기분입니다. 하느님께 조금 더 가까이 간 것 같은 느낌입니다.” 베드로는 그날 아침에 목격한 하느님의 진리를 생각하고 있었다.

“자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난 알 것 같네.” 하고 유다 타대오가 말했다. “난 가슴이 마구 뛰는 것을 느껴. 내 안에서 일고 있는 흥분을 느낄 수 있네. 기도할 때면 자주 이렇다네. 그리고 이럴 때마다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는 것을 느끼게 된다네.”

“그래, 그래, 얼마 전에 이 일에 대해 예수님께 말씀 드린 적이 있었어. 기도는 참 즐거운 거야, 안 그래?” 하며 야고보는 기쁨이 가득한 눈으로 환하게 웃었다. 그러자 다들 기도할 때 각자가 어떻게 느끼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비슷한 점이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알게 되었다.

베드로가 나에게 말했다. “떠날 시간이 되었습니다, 주님. 지금 떠나지 않으면 어둡기 전에 다음 마을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렇구나, 베드로. 지금 떠나야겠다.”

“자, 짐을 챙겨라. 어서 떠나야 해.” 베드로가 모두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나를 따라오는 제자들, 내가 정말 누구인지에 대해 때로는 의심하고 의혹이 쌓이긴 해도, 나를 위해 생애를 바치는 그들을 바라보며 나의 가슴은 기쁨으로 가득했다. 제자들 각자가 나에 대해 갖고 있는 사랑을 보았다. 제자들 모두, 심지어 유다까지도 나를 사랑했다. 다만 안타깝게도 유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 나에 대한 사랑을 덮고 있었다.

우리가 길을 가고 있는데, 베드로의 신발이 돌에 걸려 찢어지면서 베드로가 땅에 곤두박질 쳤다. 그것을 보고 유다가 배를 쥐고 깔깔거리며 웃었다. 땅에서 일어서는 베드로는 길바닥에 있던 돌에 얼굴과 손을 찍혀 피가 흐르고 있었다. 모두들 베드로를 도와 주러 달려갔지만, 유다만 혼자 여전히 웃어대고 있었다.

“그 꼴 참 우습네, 베드로. 천하 멍청이 꼴이지 뭐야.”

내가 갔을 때, 베드로는 넘어져서 다친 것은 고사하고, 유다 때문에 화가 잔뜩 나서 울화통을 터뜨릴 찰나였다.

“베드로!” 그의 얼굴에서 피를 닦아내며 내가 말했다. “앉아라. 상처를 좀 닦자.” 베드로는 도로 앉았으나 분노에 찬 눈으로 유다를 노려보았다.

“베드로, 그렇게 화내지 말아라. 넘어져서 아프겠지만, 아프다고 사랑하는 것을 포기하거나, 용서하는 일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 사랑이 메마른 유다를 보아라. 그리고 남을 업신여기는 그의 어리석음을 보아라. 그의 어리석음을 염두에 두고, 그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너마저 어리석어지지 않도록 하여라. 유다를 용서하고, 너보다도 유다가 더 많은 아픔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너의 아픔은 곧 사라질 것이지만, 유다의 아픔은 항상 그를 따라다닐 것이다.”

내가 조용하게 타이르자 베드로는 울기 시작했다.

“주님, 언제쯤에나 제가 뭘 좀 깨우치게 될까요? 저는 항상 주님을 실망시켜 드리고, 제 성질대로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끔씩 남을 해치고 싶은 마음을 가질 때도 있습니다. 언제 쯤이며 제가 좀 달라져서 주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을까요?”

“울지 말아라. 너는 지금 깨우치고 있는 중이고, 내 마음을 기쁘게 하고 있다.” 나는 베드로를 위로하며 상처를 깨끗이 씻어 주었다.

유다가 큰 소리로 말했다. “베드로, 별로 다치지도 않았으면서, 어린아이같이 울긴 왜 울어.”

나는 유다를 돌아보고 부드럽게 말했다. “가슴에 사랑이 없는 어른이 되는 것보다 어린아이처럼 되는 것이 더 낫다. 어린아이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가져다 준다. 그러나 대부분의 어른들은 자기만 사랑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베풀어 주지 못한다.”

유다가 풀이 죽은 표정을 하고 잠잠해지자, 베드로가 말했다. “유다, 괜찮네. 그렇게 넘어지는 게 우스웠을 걸세. 자네를 조금이라도 재미있게 해 줄 수 있어서 오히려 기쁘다네.”

유다와 다른 제자들은 자기 귀를 의심하며 베드로를 쳐다 보았다. 그러나 나는 베드로를 보면서, 아름답게 변해 가는 그의 마음을 바라보았다.

 

 

 

예수님 +++  1996년 12월 8일

 

베드로의 상처를 치료하고 난 후, 우리는 다음 마을을 향해 계속 걸어갔다. 구부러진 어느 길목을 돌아가자 사람들이 길가에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시몬이 사람들에게 가서 물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왜들 여기에 이렇게 많이 모여 있는 겁니까?”

그 곳에는 약 50 명쯤 되는 사람들이 서 있었는데, 그 중 한 남자가 대답했다. “여기서 치유를 해 주시는 선지자가 한 분 계십니다. 매일 이 사간에 그분이 와서 강론도 하고 온갖 질병을 다 치유해 줍니다. 그분을 보러 사람들이 여기로 모이는 것입니다. 조금 있으면 더 많이 모일 겁니다. 그분의 말을 듣기 위해 어떤 때는 이삼백 명 이상이나 모이거든요.”

“그 선지자가 누굽니까?” 야고보가 약간 미심쩍은 얼굴로 그 남자에게 물었다.

“그 사람의 이름은 토마스입니다. ‘지혜의 토마스’ 라고 부르지요.” 나의 제자 토마스는 그 남자가 마치 자신을 그 선지자라고 말하기라도 한 듯 민망해 하며 나를 쳐다 보았다. 나는 토마스에게 미소를 지어 주었다. 그 남자는 계속 말했다.

“기다렸다가 한번 들어 보십시오. 한 사람당 은전 한 닢 밖에 안 받습니다.”

“뭐라고요? 돈을 내고 들어야 한단 말입니까?” 유다가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그럼요. 그 사람은 아주 훌륭한고 거룩한 사람입니다.” 그 남자가 대답했다.

“주님, 여기서 기다려 볼까요?” 베드로가 귓속말을 했다.

“그래, 잠깐 동안만.” 하고 대답해 주었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어 ‘지혜의 토마스’라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떤 남자 둘이서 군중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돈을 거두고 있었다.

유다가 나에게 와서 말했다. “주님, 우리도 저렇게 해야 할까 봅니다. 저것 보십시오. 돈을 얼마나 많이 거두고 있습니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유다를 쳐다보며 미소만 지었다.

 

마침내 ‘지혜의 토마스’가 작은 바위 위에 올라서서 말하기 시작했다. “여러분들, 오늘 이렇게 와주어서 감사합니다. 집으로 돌아가면 여러분의 친구와 가족들에게 내가 어디에 있다는 것을 알려 줘서, 그들도 축복을 받게 해 주기 바랍니다.

오늘은 집으로 가는 길에 돈주머니를 주은 어떤 남자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그 사람이 길에서 돈주머니를 주워  열어 보니, 불쌍한 자기 가족들을 적어도 일년 동안은 먹여 살릴 수 있을 만한 큰 돈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는 그 돈을 자기가 가질 것인지, 아니면 성전에 바칠 것인지, 혹은 돈의 주인을 찾아서 돌려 줄 것인지를 생각하며 망설였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지를 결정하지 못한 채 마음에 갈들을 느꼈습니다. 그러다가 불쌍한 자기 가족들을 생각하며 결국은 자기가 돈을 가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성전 옆을 지나가다가 성전 안에 들어가서 십일조를 냈습니다.

하느님께 바쳐야 할 돈을 내고 나니 그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는 집으로 가서 남은 돈으로 가족을 부양하고,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몇 주가 지난 후, 그가 성전에 바친 십일조 때문에 성전 안에서 자기 위치가 올라간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사제들과 사제 보좌관들이 그의 새 친구들이 되었습니다. 생활이 나아지고 운이 점점 더 좋아지더니, 사회의 훌륭한 사람으로 받들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모든 것은 하느님께 바쳐야 할 돈을 바쳤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많이 내면 낼수록 그 만큼 많이 되돌려 받게 될 것입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내십시오. 그러면 하느님께서도 여러분에게 너그러우실 것입니다. 하느님께 푸짐하게 드리지 않으면서, 어떻게 치유의 은사를 하느님께 간청할 수 있겠습니까?”

그가 연설을 마치자 군중들은 마치 최면술에 걸린 사람들같이 광란하였다. 사람들은 그를 향해 돈을 마구 던지며 소리쳤다.

“나를 치유해 주십시오. 하느님께 선물을 드립니다. 치유해 주십시오.”

‘지혜의 토마스’는 돈을 던지거나 돈을 바치는 사람들에게 가서 그들을 만지며 말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을 치유하노니, 자만심을 버리고 하느님의 치유를 받아라. 하느님께 너그럽게 바치고, 그리고 하느님의 너그러우심을 받아라.”

‘지혜의 토마스’가 사람들 사이를 걸어가자 사람들은 열광적으로 날뛰었다. 베드로가 옆에서 말했다. “주님, 이건 옳은 모습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 베드로. 이것은 옳지 못한 것이다.” 하고 베드로에게 대답한 후 나는 ‘지혜의 토마스’ 쪽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지혜의 토마스’는 내게 손을 뻗치며 크게 소리쳤다.

“치유를 받고 싶은가? 자, 그러면 하느님께 바쳐야 할 것을 바쳐라. 그리고 치유를 받아라.” 그러다가 ‘지혜의 토마스’ 가 내 눈을 빤히 들여다보더니 굳어버린 듯 꼼짝 을 하지 않았다. 군중들은 잠잠해졌다. ‘지혜의 토마스’가 내게 물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진리이다. 허위의 사슬을 깨뜨리고, 악마의 거짓을 폭로하며, 옳지 못한 모든 것을 쳐부수는 진리이다.”

“무, 무슨 말씀이신지요?” ‘지혜의 토마스’가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네 마음 속을 살펴 보아라. 그러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너로 하여금 하느님의 자식들을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여 이기심과 죄악 속에 빠지도록 조종하고 있는 것이 누구인지 너는 알 것이다.” 나는 분명하게 말했다.

“이 사람을 쫓아내라!” ‘지혜의 토마스’는 나를 가리키며 군중들을 성동하며 외쳤다. 군중들은 침묵 속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지혜의 토마스’는 얼굴을 찡그리며 “나는 당신을 알아요.” 하고는 나를 욕하기 시작했다.

“내가 명하노니 이 사람한테서 나가거라. 악마야, 사라져라.” 나의 명을 듣고 ‘지혜의 토마스’는 찢어지는 절규와 함께 땅에 쓰러져, 입에 거품을 물로 몸을 뒤틀었다. 그러다가 “살려 주십시오, 살려 주십시오.” 하는 목소리가 점점 희미해지며 바람 속으로 사라지고 난 후, ‘지혜의 토마스’가 정신을 차렸다.

나는 군중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 사람은 마귀가 들렸던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여러분에게 탐욕과 이기심을 가르치고, 죄를 짓도록 가르치면서 그것을 하느님의 뜻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사람이 하는 말을 귀담아 들은 여러분은 얼마나 어리석었습니까? 하느님께서는 오직 여러분의 사랑을 원하시고, 여러분이 하느님의 계명에 순명하고, 이웃을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사랑과 치유에 대한 대가를 바라시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성전의 앞자리에 앉거나 뒷자리에 앉는 것을 상관하지 않으시고, 사제나 성전 종사자들의 눈에 들든 말든 상관하지 않으십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오직 하느님의 눈에 드느냐 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여러분을 얼마나 쉽게 속여 넘기는지 아십시오. 마귀는 여러분이 악을 선으로 잘못 보게까지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한다는 사람들의 말을 들을 때 조심하십시오. 그들이 어떤 보상을 바라거나, 여러분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 생각은 말고 오직 여러분 자시만 생각하게 하건, 여러분이 사회의 어떤 계급에 속해 있느냐가 하느님께 중요하다고 가르치거나,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어떤 대가를 요구하신다고 말한다면,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그들 자신의 말을 가르친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그런 사람들은 이 사람처럼 마귀가 그들의 영혼에 들어 있다는 것을 아십시오. 마귀는 열심한 교우까지도 유혹하고 속일 수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목격한 일을 잊지 말고, 마귀가 여러분을 얼마나 혼동시켰는지 기억하십시오.”

‘지혜의 토마스’가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말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제가 왜 여기에 와 있습니까?”

나는 손을 그의 머리 위에 얹고 말했다. “너는 이제 다 나았으니,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거라.”

‘지혜의 토마스’는 더 이상 교만하고 억센 남자가 아니었고, 아주 온순해졌다. 그 사람 안에 들어 있던 마귀가 떠났고,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렇지만 저 사람이 많은 사람들을 치유했습니다.” 군중 속에서 한 사람이 소리쳤다.

“마귀도 치유할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된 치유이기 때문에 오래 가지 않습니다. 그런 치유는 여러분에게 준 죄악스러운 가르침을 감추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적을 눈으로 보게 되지만 그것은 기적이 아니고, 사람들을 하느님으로부터 멀리하기 위한 속임수에 불과한 것입니다. 악마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힘이 있지만 결코 하느님을 능가하지 못하고, 하느님의 사랑 안에 있는 영혼을 파괴하지 못합니다.”

나의 대답을 듣고 군중들이 ‘지혜의 토마스’를 향해 소리쳤다. “저 놈을 돌로 쳐 죽여라. 저 놈은 분명 마귀다!”

나는 손을 들어올리고 군중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이 사람 안에 마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마귀가 떠났습니다. 이 사람이 그 동안 내적으로 겪어야 했던 힘든 싸움만으로도 충분히 벌을 치렀고, 이제는 그 억압에서 풀려났습니다. 이 사람의 목숨을 빼앗으며 여러분 자신이 죄의 사슬에 묶이게 될 것입니다.”

군중이 조용해지자 다시 타일렀다.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그리고 앞으로는 무엇을 듣고, 누구의 말을 들을 것인지 주의하십시오.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용서해 주고 싶어 하시며, 여러분도 다른 사람을 용서해 주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이것을 가슴에 새겨 두면 여러분은 옳고 그른 것을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져 떠난 후에도 ‘지혜의 토마스’만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꿈을 꾼 것만 같습니다. 악몽을 말입니다. 이제는 악몽이 끝났으니 하느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집으로 돌아가거라. 네 식구들이 너를 보고 싶어 하니 돌아가거라. 너를 사랑하는 식구들이 집에서 기다리고 있다.” 하고 내가 말했다.

“네, 가겠습니다. 그 악몽이 시작된 후로 식구들을 떠난 지가 아주 오래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는 내 손에 입을 맞추며 고마워했다.

‘지혜의 토마스’가 떠난 다음 베드로가 나에게 와서 물었다.

“속임수를 당하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왜 깨닫지 못했을까요? 토마스가 한 말은 모두 재물과 돈에 관한 것이었고, 사람들에게 돈을 달라고 한 것뿐이었는데, 사람들이 왜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을까요?”

“왜냐하면 그들은 무엇인가를 믿고 싶었고, 치유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들이 살아 가는 그런 방식을 인정해주는 말을 듣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많은 탐욕과, 이기주의와, 자만심으로 살아 가는 그들은, 그렇게 살아 가는 것이 옳다고 누군가가 말해 줄 때 그 말을 믿고 싶어 했다. 진리를 들었을 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는, 자기 생활 속에 넘치는 죄를 알아보게 되고, 자기 생활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기 생활을 바꾼다는 것을 너무 어려운 일로 생각한다. 그래서 자기한테 적당하다고 생각되는 말고,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는 말과, ‘네가 살고 싶은 대로 살아라.’ 하는 말만을 잘 받아들이게 된다. 그것이 바로 마귀의 속임수인 것이다.”

나의 설명을 듣고 제자들은 다들 고개를 끄떡이며 동의하였지만, 유다만은 군중이 얼마나 돈을 많이 바쳤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유다야, 조심하지 않으면 탐욕의 죄가 너의 영혼을 파괴시킬 수 있다.” 하고 충고하였지만 유다는 “네, 주님” 하고 건성으로만 대답하고 귀담아 듣지 않았다.

 

 

예수님 +++  1996년 12월 9일

 

얼마 안 있어 우리는 한 마을에 도착했다. 어두워 가는 하늘 아래, 금빛 태양은 이제 빨간 황혼이 되어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주님!” 하고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모두 돌아보았다.

“주님, 주님께서 우리 마을에 오실 줄 몰랐습니다.” 20대 초반의 청년이 반가운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는 몇 달 전에 내가 치유해 준 장애인이었다.

“주님!” 청년은 내 손을 잡고 너무나 기뻐했다. “저희 집은 주님의 집이오니, 오셔서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다시 만나서 반갑다. 아주 건강해 보이는구나.”

청년과 내가 서로 아는 체를 하자 베드로가 귓속말로 속삭였다. “누굽니까, 주님?”

“어말 전에 내가 이 청년의 상처받은 마음과 불편한 몸을 치유해 주었다. 하느님께서 이 청년의 기도를 들어 주셨던 것이다.” 내가 제자들을 향해 크게 말했다.

“아, 그랬습니까?” 하고 베드로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청년을 기억하지 못하는 듯 했다.

“주님, 저의 집에 머무르지 않으시겠습니까?” 청년은 다시 열성적으로 물었다.

“물론 너희 집에 머물러야지. 그런데 내 제자들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

“제 친척들 집에 제자분들을 나누어 모시겠습니다. 그렇지만 주님과 또 한 사람은 저와 함께 지내셔야 합니다.” 청년은 말을 하면서도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우리는 청년을 따라 집으로 갔다. 집으로 가는 길에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신이 나서 나를 소개했다. “이분이 예수님이십니다. 나를 치유해 주신 분이십니다.”

집에 도착했을 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따라와 있었다. 그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불러서, 나를 소개했다. “이분이 제가 말씀 드린 바로 그분이십니다. 이분이 나자렛의 예수님이십니다. 저를 치유해 주신 분이라고요.”

그의 부모는 무릎을 꿇고 내 손에 입맞춤을 했다. “축복 받으십시오, 축복 받으십시오. 저희 아들을 치유해 주신 분이군요. 축복 받으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었는데, 군중 속에서 한 사람이 소리쳤다. “오늘 토마스의 속임수를 밝혀내신 분이다.” 사람들은 감사하다고 외치고, 말씀을 해 달라고 외치고, 치유해 달라고 외쳤다.

나는 긴 의자 위에 올라서서 손을 들어올려 조용히 하라고 신호를 했다. “오늘 밤에는 간단하게 이야기하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치유를 간청하며 기도하겠습니다. 오늘은 제가 좀 피곤하니, 내일 여러분과 더 많은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점점 수가 늘어나 군중이 기대에 차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나는 군중을 향해 입을 열었다. “내가 지금 하는 말을 오늘 밤에 좀더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기쁨이 넘치는 마음은 이 세상의 돈을 모두 다 가진 것보다 더 값진 것입니다. 마음에 가득 찬 기쁨은 여러분의 삶을 아름답게 완성시켜 주시만, 주머니에 가득한 돈은 여러분의 삶을 공허하게 만듭니다. 여러분은 항상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기쁨을 찾고, 돈으로부터 오는 슬픔을 거부하십시오.”

군중들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옷을 잘 입은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과 원로들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들 중 한 율법학자가 말했다. “그렇지만 돈이 없는데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그의 마음 속을 들여다 보니, 그는 비록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참으로 외로운 사람이었다.

‘”그러면 당신은 돈을 가지고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소?” 하고 내가 되묻자, 그는 내 말을 곧 알아들었다.

“주님.” 또 다른 사람이 말했다. “그렇지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사고, 세금을 바치고, 십일조를 내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합니다. 생활하는 데 돈은 꼭 필요한 것입니다.”

내가 대답했다. “돈은 필요합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사기 위해서, 세금과 십일조를 내기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런 모든 것들은 사람이 사람한테 강요하는 것입니다.”

“살기 위해서는 돈을 가져야 합니다.”

“돈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필요한 만큼만 가져야 합니다.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가졌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그만큼 적게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번에는 부유한 옷차림을 한 남자가 다시 물었다.

“불쌍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병든 사람들과 궁핍한 사람들을 도와 주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은, 남을 돕는 것이 아니고 자기 스스로를 돕는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 대답을 듣고 나서도 군중들의 질문이 계속 되었기 때문에 다시 약속을 했다. “내일 시간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기 위해, 병자들을 나한테 불러모으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앞 못 보는 사람들, 귀가 안 들리는 사람들, 다리를 저는 사람들을 치유해 주었다. 내가 그들 가운데를 걸어가고 있었는데, 눈이 커다란 어린 소녀가 벽에 기대어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 소녀에게 가서 물었다.

“네 이름이 뭐니?”

“그 애는 귀도 안 들리고 말도 못하기 때문에 대답을 할 수가 없습니다.” 군중 속에서 한 사람이 소리쳤다.

그러자 그때 소녀가 큰 소리로 말을 하였다. “저는 리디아예요. 제 이름은 리디아라고 해요.” 그리고는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소녀를 안아 올렸다.

“얘야, 울지 말아라.” 다정하게 소녀의 뺨에 흐르는 누물을 닦아 주었다. 소녀가 치유되는 것을 본 군중들은 더 열광적으로 자신들을 치유해 달라고 외쳐댔다.

베드로가 곁으로 와서 나를 집 안으로 이끌었고, 제자들은 사람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기 시작했다.

 

 

 

예수님 +++  1996년 12월 10일

 

제자들은 치유 받은 사람들의 초대를 받아 몇몇 집으로 나뉘어 갔고, 베드로와 나는 청년의 집에 머물렀다. 그의 부모님은 우리한테 무엇을 더 해 주지 못해서 전전긍긍이었다. 필요한 것이 없는지, 불편한 것은 없는지 끊임없이 물었다. 차려 준 저녁 식사는 거창하지는 않았지만, 정성이 듬뿍 담겨 있었고, 사랑으로 대접해 주는 식사라서 아주 맛있고 만족스러웠다. 식사 후 우리는 모두 둘러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생님, 저희 집에 와 주셔서 정말 기쁩니다.” 하고 청년이 말했다.

“다윗아, 나도 기쁘구나.” 내가 웃으면서 대답을 하자 베드로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부모가 조용히 앉아서 나에게 미소를 짓고 있는 가운데, 다윗이 말했다. “선생님, 잠깐 동안 제 어머니와 개인적으로 말씀을 나누어 주시지 않겠습니까? 어머니는 오랜 세월 동안 마음 속에 뭔가를 앓고 계십니다. 선생님께서 도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도와 주고 말고.” 다윗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가슴 속에 담겨 있는 슬픔을 보며 내가 대답했다.

“선생님과 어머니가 단둘만의 시간을 갖도록 제자 분은 우리 아버지와 저와 함께 산책이나 하시겠어요?” 하고 다윗이 권했다.

“거 좋은 생각이군. 산책을 다녀오면 오늘 밤에 잠을 잘 자게 될 거야.” 베드로가 그들과 나가려고 일어서며 말했다. “우리는 회당으로 가서 다윗 어머니의 슬픔이 치유 받도록 기도하면 좋겠군.” 베드로는 자신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은사를 받았다는 것을 것을 알지 못했고, 장차 성령이 임하시면 다른 사람들을 도와 주기 위해 그 은사를 자주 쓰게 될 것이라는 것도 알지 못했다.

그들은 나가면서 문을 닫았다. 나는 내 눈길을 피하려고 애쓰는 다윗의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다윗 어머니를 비난하러 온 것이 아니고 도와 주러 왔습니다. 나에게 마음을 열고 나의 치유를 받으십시오.” 나는 손을 내밀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

처음에는 주저하는 듯 하다가, 눈물을 흘리며 그녀가 말했다. “다윗이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던 젊은 시절이었습니다. 어느 날 시장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로마군 세 명이 나를 붙잡아 방으로 끌고 가서 밤새도록 저를 가두어 두었습니다.” 그녀는 심하게 흐느꼈다.

“괜찮습니다. 다윗 어머니, 괜찮습니다.”

“그 군인들은 돌아가며 나를 강간했습니다. 그들을 막을 길이 없었습니다. 다 끝나자 나를 때리고 방구석으로 던졌습니다. 나중에 술이 잔뜩 취해서 돌아오더니 그들은 다시 나를 강간했습니다.” 그녀는 앞으로 엎드려 나를 피하려는 듯이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울었다. “너무 부끄럽습니다. 제 자신이 너무나 더럽습니다. 저는 더러운 죄인입니다. 하느님,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이 부정한 죄인을 용서해 주세요.”

얼굴을 손에 파묻고 몸을 앞뒤로 흔들며 울고 있는 그녀를 나는 한 팔로 감싸며 말했다. “다윗 어머니는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다윗 어머니가 하려고 해서 생긴 일이 아닙니다.”

“제가 지은 것이 … 제가 죄를 지은 것이 틀림 없습니다. 제 아들 다윗은 그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의 자식으로 태어났고, 다윗이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 하느님께서는 다윗을 저주하시어 장애자로 만드셨습니다. 가련한 제 남편은 다윗이 자기 아들이 아닌 줄을 알고 있으니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그리고 다윗이 태어난 후로 아이가 더 생기지 않았습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제 남편밖에 없으니 주님, 제발 아무에게도 말씀하지 말아 주십시오.

다른 사람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차라리 저는 죽는 게 더 낫겠습니다. 다윗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아이 앞 길을 망치게 될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 아버지를 정말 사랑하고 있거든요.” 그녀는 가슴이 터져라 울면서 말했다.

“다윗 어머니.”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윗 어머니는 아무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어요. 그러니 자신을 너무 탓하지 마십시오. 아름다운 젊은 여인을 강제로 겁탈한 그 사람들이 죄를 지은 것입니다. 다윗 어머니는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다윗 어머니가 그것을 원했던 것이 아니었는데 어떻게 죄가 되겠습니까?”

“그렇지만 주님.” 그녀가 가로막으며 말했다. “저는 그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아이를 뱄고, 하느님께서 그 아이를, 우리 불쌍한 다윗을 처벌하지 않으셨습니까?”

“하느님께서 다윗을 처벌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다윗을 치유하셨습니다. 다윗이 자기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얼마나 많은 기쁨을 가져다 주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을 어떻게 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어떠한 괴로움 속에 있을 때라도 다윗의 마음은 항상 사랑으로 가득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다윗을 통해 다윗 어머니에게 얼마나 큰 선물을 안겨 주셨습니까?”

“자식도 없는 불쌍한 제 남편…, 다윗을 볼 때마다 그 로마군인들이 나에게 한 짓을 생각하게 되는 불쌍한 제 남편은 어떻게 합니까?” 그녀는 비통해 하며 울부짖었다.

“다윗 어머니, 다윗 아버지는 다윗을 분명히 자기 친아들같이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는 부인을 사랑하고, 부인한테 아무런 한을 품고 있지 않습니다. 그는 언제나 부인을 사랑했습니다. 그의 사랑은, 부인을 탓하지 않고 부인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진실한 사랑입니다. 그는 참으로 좋은 사람입니다.”

“그건 사실입니다, 주님. 그는 저를 한 번도 원망하지 않았고, 항상 저를 사랑해 주기만 했습니다. 그날 옷이 찢어진 채 온 몸에 멍이 들어 집에 돌아왔을 때, 저를 목욕시켜 새 옷을 갈아 입혀 주고는, 저를 끌어안고 몇 시간이나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울면서 내 눈을 들여다 보았다.

나는 앞으로 몸을 기울여 그녀의 이마에 입맞춤하며 말했다. “당신과 당신의 남편한테서 내가 그 고통을 들어냅니다. 서로에 대한 사랑의 기쁨과,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기쁨이 두 사람 안에 넘치도록 하겠습니다.”

갑자기 그녀가 울음을 그치며 미소를 지었다. “주님께 말씀 드리고 나니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제 남편과 제 아들이 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기 때문에, 지난날에 있었던 모든 일들이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나는 처음으로 그 로마군인들을 용서해 주고 싶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제 인생을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녀가 하는 말의 진실성이 얼굴에 광채로 나타났다. 바로 그때 문이 열리며 세 사람이 돌아왔다. 그녀의 남편은 자기 부인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 아주 행복해 보이는구려. 근래 들어 당신이 이렇게 행복해 보인 적이 없었소.”

말이 끝나자마자 남편이 달려가서 아내를 껴안았다. 동시에 아내도 “사랑해요. 여보, 당신을 사랑해요.” 하며, 남편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다윗은 울음을 터뜨리며 “감사합니다, 주님. 어머니가 저렇게 행복해 하시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고는 아버지와 어머니한테 가서 두 사람을 감싸 안았다. 베드로 역시 사랑이 넘치는 정경을 눈 앞에 보며 너무나 기뻐서 그들과 함께 울고 있었다.

흥분이 가라앉자 나는 다윗의 아버지를 바깥으로 데리고 나갔다. “당신은 참으로 좋은 하느님의 아들이오. 그런 괴로움을 겪으면서도 가슴 속에 분노나 노여움을 품지 않았어요. 당신은 하느님의 참된 아들이오.”

“주님, 베풀어 주신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 하느님께서 저의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아내가 다시 행복해지기만 원했거든요. 그 로마 군인들은 옛날에 벌써 다 용서해 주었습니다. 다만 제 아내가 그것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어서 괴로웠을 뿐입니다. 다윗이 제 아들이 아닌 것을 저도 압니다. 그러나 다윗은 제 아들입니다. 다윗을 제 아들로서 사랑하는 것은, 다윗한테서 제 어머니를 볼 수 있고, 하느님께서 다윗을 저희에게 보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다윗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다윗은 당신의 아들이오. 다만 로마 군인들이 저지른 짓 때문에 당신의 생각이 흐트러졌을 뿐이오. 그 일이 있었던 며칠 전 일을 돌이켜 생각해 보시오. 부인과 함께 당신 여동생의 결혼식에 갔다가 돌아온 다음, 기분이 좋아서 저녁에 부인과 사랑으로 잠자리를 같이 한 것을 기억해 보시오. 바로 그때가 다윗의 생명이 시작된 때였소.”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저는 잊어 버리고 있었는데요. 오! 그래. 주님, 맞습니다. 다윗은 제 아들입니다. 제 아들입니다!” 그는 기쁨의 소리를 외쳤다.

“한 가지 더 말하겠는데, 다윗은 곧 남동생을 갖게 될 것이오.”

“무, 무슨 말씀이십니까?” 놀란 표정으로 그가 물었다.

“부인이 아이를 가졌소. 그리고 아들이오.”

“정말입니까! 그 말씀이 사실입니까?” 그가 흥분하여 물었다.

“그렇소.” 나의 대답을 듣고 그는 그것이 사실임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는 부인과 다윗에게 달려가서 기쁜 소식을 전했다.

그날 밤에는 축하의 인사 말이 오가고,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기도가 끊이지 않아서 밤 늦도록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베드로가 나에게 와서 말했다. “주님께서 이 가정에 너무나 많은 기쁨을 가져다 주셨습니다.”

“그렇다, 베드로. 내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가져다 준다는 것을 기억하여라.”

 

 

 

예수님 +++  1996년 12월 11일

 

다음날 아침에 다윗이 와서 나를 깨웠다. 아침 식사로 음식과 마실 것을 들고 있었다. “주님, 아침 식사가 늦었습니다. 주님께서 피곤하신 줄 알기 때문에 깨워드리고 싶지 않았지만, 밖에 사람들이 많이 와서 주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는 일어나서 음식을 받으며 말했다. “다윗아 내 제자들한테 가서 사람들을 조금만 더 기다리게 하라고 전해 줄 수 있겠니? 사람들한테 가기 전에 잠시 동안이라도 기도를 바쳐야 해서 그런다.”

“물론입니다, 주님. 전해 드리고 말고요.” 다윗은 내 말을 전하러 밖으로 나갔다. 나를 위해 양보해 준 다윗의 침대에서 조금 더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러나 나는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기도 드렸다. “아버지, 아버지께 간구하오니, 아버지의 뜻을 이룰 수 있도록 힘을 주십시오.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기 위해 저 사람들을 도와 주고 치유해 주어야 하는데, 오늘 제가 너무 피곤합니다.”

“내 아들아, 네가 쉴 때가 곧 올 것이다. 그러니 오늘은 우리의 사랑을 우리 자녀들에게 가져다 주어라. 우리의 성령으로 그들의 가슴을 채워 주고, 우리의 자비로 그들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어라.” 하시며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셨다.

“아버지, 너무 어려운 길입니다. 너무나 많은 슬픔이 있고, 많은 요청이 있고, 수없이 많은 죄악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무나 많은 사랑이 있습니다.”

“내 아들아, 너를 통하여 슬픔은 기쁨이 되고, 기도하며 간청하는 것을 얻게 되고, 죄가 패배를 당할 것이다. 나의 사랑, 내 아들, 너를 통하여 말이다.” 말씀 한 마디 한 마디를 통하여 내 안에서 아버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때 내 앞에 성령께서 나타나 나에게 감동을 주셨고, 힘을 불어넣어 주셨다. 나는 다시 무릎을 꿇고,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하실 천주 성삼으로 사랑의 일치를 이루었다. 지친 내 몸에서 피로가 거두어지고, 새로운 활기를 느끼게 되었을 때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어서 나의 자녀들에게 가거라.”

나는 일어나서 받아놓은 음식을 먹고 난 후 기다리고 있는 군중에게 갔다. 내가 대문을 열자, 아름다운 비둘기 한 마리가 집 안에서 날아 나와, 가까이 있는 지붕 위로 날아가 앉았다.

“예수님!” 군중이 소리쳤다. “예수님, 예수님!”

베드로가 나에게 와서 말했다. “사람들이 아주 많이 왔습니다. 주님을 뵙고 주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인근 마을에서 온 사람들로 마을이 꽉 찼습니다. 이 집으로 오는 기도 사람들로 미어지고 있으니, 믿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주님, 적어도 5000명은 될 것 같습니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왔을까요?”

“나의 아버지께서 그들을 내게 보내신 것이다.”

베드로는 나를 쳐다보며 미소만 짓고 있었는데, 내 말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이해하려고 무척 노력하는 것 같았다.

갑자기 군중들이 소란해지면서, 로마 군인들이 사람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왔다. 대장이 앞으로 나서며 큰 소리로 물었다.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거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이 모인  거요?”

베드로가 그 군인에게 가서 설명했다. “사람들은 우리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러 왔습니다. 우리 선생님께서는 선지자이시며 치유자이십니다.”

“어쨌든 마을을 이렇게 붐비게 해서는 안 되오. 소동이 일어날 수도 있단 말이오!” 로마군 장교가 호통을 쳤다.

베드로가 겸손하게 물었다 “그러면 우리가 어디로 갔으면 좋겠습니까?”

“내가 알게 뭐요. 좌우지간 여기서는 안 되오!”

군중이 소리치기 시작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싶소. 예수님께서 우리를 치유하게 해 주시오.”
그 로마군 장교는 나를 쳐다보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의 마음 속을 들여다 보니 그는 착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상관이 지시하는 명령을 따라야 했다. 그가 나에게 걸어오더니 말했다. “당신이 이 사람들에게 설교를 하는 것은 상관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 이렇게 모여 있어서는 안 됩니다. 말썽을 일으키게 될 지도 모르거든요.”

“친구.” 내가 손을 내밀어 그의 어깨 위에 얹으며 말했다. “마을 바깥에 있는 당신 소유의 들판을 우리가 쓸 수 있으면 좋은 것 같은데요.”

“그렇군요. 그 들판이 아주 적당하겠군요. 그 곳이라면 얼마든지 쓰십시오.” 그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내게 미소를 지었다. 그런 다음 군중을 향해 돌아서서 말했다. “이 마을로 들어오는 북쪽 입구에 내가 들판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여러분에게 그 들판을 뜨도록 해 줄테니, 조용히 질서 있게 거기로 가시오!”

사람들이 투덜거리며 그 들판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하자, 로마군 장교가 내게 물었다. “제가 그 들판을 가지고 있는 것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저는 당신을 모르고, 당신도 이 지방 사람이 아니신데 말입니다.”

“나는 알아요. 당신이 태어난 그 날부터 당신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불가능한 일입니다.” 로마군 장교는 놀랐는지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당신이 전장에 나갔던 그 날, 아무도 죽일 수 없었던 당신을 알고 있어요. 다른 사람을 죽이느니 차라리 당신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려 했다는 것을 알고 있고. 당신이 생명을 얼마나 귀중하게 여긴다는 것도 알고 있고, 상관이 당신을 비겁하다는 이유로 처벌하려는 것을 당신 삼촌의 중재로 모면했다는 것도 알고 있소. 삼촌이 뒤로 손을 써서 당신을 전근시키고, 당신이 전투를 하지 않아도 되게 한 것도 알고 있소. 당신의 삼촌, 아버지, 형님들, 부하들까지도 당신을 졸장부라고 생각하는 그 이유를 나는 알고 있소.

그러나 나는 당신이 용감한 사람이라는 것도 알고 있소. 왜냐하면 용기 있는 사람만이, 절대로 남을 해치지 않겠다는 맹세를 지킬 수 있기 때문이오. 용기를 가진 사람만이 인간에 대한 사랑을 위해 무시와 학대를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오. 용기 있는 사람만이 남의 목숨을 빼앗느니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수가 있는 것이오. 당신은 좋은 사람이오. 내가 친구라고 부르고 싶은 사람이오!”

로마군 장교는 눈에 띄게 동요하였고, 몹시 놀란 듯 하였다. “어떻게 그 모든 것을 아실 수가 있단 말입니까?”

“나는 다 알고 있소. 장차 당신은 나의 좋은 친구가 되어, 모든 것을 나에게 바칠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으니 말이오.” 장차 나를 주님으로 선언하며, 나를 위해 괴로움을 받고 죽음을 당하는 그를 눈 앞에 보면서, 나는 그의 팔을 부드럽게 쥐었다.

로마군 장교는 나에게 미소를 짓고 말했다. “제 이름은 알로이시오 입니다. 당신의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저도 기쁘겠습니다.” 나는 그가 진심으로 말한다는 것을 알았고, 그가 하느님의 참된 아들이 것도 알았다.

 

 

 

예수님 +++  1996년 12월 13일

 

들판에 모인 사람들이 참을성 있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한테 가까이 다가가자 흥분한 군중의 목소리들이 크게 들렸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과 함께 들판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니, 거기에는 올라서서 설교를 할 수 있도록 긴 의자들이 놓여져 있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이해하면서 참고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약속한 바와 같이 오늘 여러분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이야기도 하고,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치유도 해드리기로 하겠습니다. 이렇게 많은 형제 자매들을 만나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잠시 마을 멈추고 사람들이 잔디 위에 지를 펴고 편안히 앉을 때까지 기다렸다.

“갈릴래아 호수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어느 어부에 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그 어부는 가족을 부양하고도 약간의 여유가 있을 만큼만 고기를 잡았습니다. 그 사람은 자기 생활에 만족했습니다. 그는 필요 이상으로 고기를 잡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 가지는 것이 옳고, 필요한 만큼만 가지는 것이 옳은 일이기 때문에, 나머지 고기는 잡지 말고 남겨 두어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그 어부는 다른 어부들처럼 일을 많이 하지 않고, 고기도 많이 잡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바보로 생각했고 게으름뱅이라고 불렀습니다. 다른 어부들은 잡을 수 있는 만큼 최대한의 고기를 잡아서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그들은 큰 고기잡이 배를 구입하여 점점 더 많은 고기를 잡았고, 더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어떤 어부들은 사람들을 고용하여 고기잡이를 하였는데, 고용인들에게는 가능한 한 돈을 적게 지불하고 자신들은 많은 이익을 남겼습니다.

큰 고깃배들은 그 욕심 없는 어부 가족이 일하는 바다 쪽으로 와서 그가 잡을 고기들을 마구 잡아갔습니다. 그러면서 큰 고깃배 주인들은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 와서 고기잡이할 권리가 있다. 고기한테는 주인이 없어. 우리가 원하는 곳이면 어디서나 고기를 잡아도 돼. 게다가 우리는 저 어부보다 지출이 많은 임금을 지불해야 하거든.’

다른 어부들이 고기를 다 잡아가 버려서 그 어부는 끼니를 이어가기조차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큰 고깃배 주인들에게 가서 자신의 딱한 사정을 하소연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들은, ‘그야 당연하지. 작은 규모로 살아남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거요.’ 하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그 어부가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들이 나눠 가질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고기가 바다에 있으니 우리는 같이 나눠 가질 수 있지 않겠소. 당신들이 작은 규모로 고기잡이를 하고 있었을 때도, 나는 한 번도 당신 고기를 빼앗은 적이 없었소. 나는 내게 필요한 만큼만 잡았고, 그 나머지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남겨 두었단 말이오.’

그러자 그들은 그 어부를 비웃었습니다. ‘어리석기도 하군. 잡을 수 있는 만큼 고기를 많이 잡아야 편안하게 살 수가 있는 거요. 그래야 다른 사람들에게 일거리를 줄 수도 있고 그들을 도와 줄 수도 있는 것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나눠 갖는 것이오.’

마침내 그는 자기 배를 팔아야 했고, 적은 품삯을 받으며 남의 고기잡이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그는 여전히 행복했고, 그의 가족들도 마찬가지로 행복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수근 댔습니다. ‘저 사람은 미쳤나 봐. 가진 재산을 모두 다 읽었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여기고 있으니 말이야.”

어느 날 그 어부는 고기잡이 배 안에서 일하다가 심하게 몸을 다쳤습니다. 사람들은 서둘러 배를 몰고 해변가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모래 위에 눕혀진 채 죽어가는 그는 여전히 행복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를 둘러싸고 서 있던 사람들은 그의 그러한 모습을 보고 다들 놀랐습니다. 그의 가족들은 뒤늦게 연락을 받고 달려왔는데, 가족들 역시 밝은 표정이었고 그렇게 걱정하고 슬퍼하는 표정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아버지요 남편이 겪고 있는 고통이 마음 아팠지만, 정작 슬퍼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어부는 자기 가족들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이제 집으로 갈 시간이 된 것 같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가족들은 눈물을 흘리지 않았습니다. 잠깐 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함께 기도했습니다. 죽은 사람을 둘러싸고 서 있던 사람들은 놀라움 속에서 그 가족들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기도를 끝마친 후에 물었습니다. ‘어떻게 울지도 않는 거요? 아버지와 남편을 잃었는데도 어쩌면 그렇게 만족스런 표정들이오? 이 사람처럼 당신들도 제 정신이 아니오?”

그러자 죽은 어부의 아내가 일어서서 말했습니다. ‘남편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가족들을 사랑하며, 주위 사람들을 사랑하면서 한 평생을 착하게 살았습니다. 그분은 자기가 가진 것 외에는 더 이상을 원하지 않았고, 절대로 남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항상 남에게 나누어 주고 싶어 했습니다.

자기 생계를 뺏어가는 사람들을 용서해 주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었습니다. 보잘것없는 품삯을 받으며 여러분의 배에서 노동을 해야 했지만 즐겁게 살았습니다. 그분은 최선을 다했고,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먹을 것이 없고, 입을 것이 없고, 식구들에게 필요한 것을 사 주지 못하는 아픔을 겪을 때라도, 그 양반은 행복했습니다.

남편이 왜 그렇게 살았느냐고 묻고 싶습니까? 그 분은 하느님을 사랑했기 때문이고, 사람들이 그렇게 살기를 하느님께서 원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살면서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그것을 잘 참고 견디어 가는 것이, 자신의 사랑을 하느님께 보여 드리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려움이 닥쳐도, 그것이 하느님의 뜻인 줄을 안다면 어떻게 화를 내겠습니까? 그리고 하느님께서 자신의 죄를 용서해 주신 것을 알고 있는 남편이 어떻게 남의 죄를 용서해 주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남편이 돌아가셔서 슬픕니다. 그러나 우리는 울부짖거나 흐느끼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분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살았기 때문에, 천국에서 하느님의 보상을 받을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 어부의 아내가 하는 말을 듣고 사람들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자 그 사람들은 벌써 다 잊어 버리고 여전히 이전 생활로 되돌아갔습니다. 부자는 가난한 사람들을 이용하여 점점 더 부자가 되었고, 가난한 사람은 자신의 가난을 하나의 생활 방식처럼 받아들이고 체념하면서 말입니다.”

 

이야기를 끝마쳤을 때 들판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울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침묵을 지키고 앉아 있었는데, 부유한 옷차림을 한 어느 남자가 말했다. ‘나는 그 말에 동감할 수가 없습니다. 부자라고 해서 가난한 사람들을 다 이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자가 없으면 가난한 사람들은 일거리도 없을 것입니다.!”

“부유하다는 것이 죄는 아니오. 부자가 자기만의 부귀를 찾고, 그 부귀를 유지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것을 이용하거나 빼앗을 때, 그것이 죄가 되는 것이오. 당신의 말이 맞소. 부자라고 다 남을 이용하는 것은 아니오. 그러나 많은 부자들이 남을 이용하고 있고. 그들은 정당한 품삯을 지불하지 않음으로써 고용인들을 심하게 부려먹거나, 오래 일을 시킴으로써, 고용인들이 자기 가정에 할애해야 할 시간을 무시당하고 있소.

고용인들에게 무조건 복종하기를 강요함으로써 고용인들을 고용주보다 가치 없는 인간으로 생각하고 있고. 그리고 고용인들을 동등한 인간이 아닌 물건처럼 취급하면서, 존경심 없이 다룸으로써 그들을 약탈하고 있는 것이오.

부자가 기억해야 할 것은, 오직 하느님의 은총으로 부귀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오. 부자가 가난한 사람보다 권리가 더 많은 것은 아니오. 권리가 더 많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오. 가난한 사람이 가난하게만 살아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니듯이, 부자가 혼자서만 부유하게 살 권리가 있는 것이 아니오. 부자들이 가진 재산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 가지지 않으면, 언젠가, 참으로 가난한 자는 바로 그들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오.”

그 부자는 이제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는데, 내가 한 말이 그의 급소를 찔렀기 때문이었다.

또 다른 한 사람이 질문을 했다. “그러면 모두 나누어 가지고, 서로 동등하게 취급하면, 우리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사는 것입니까?”

“첫째로 여러분이 해야 할 것은 하느님을 완전히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하면, 남과 나눠 가지는 일이나 남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일은 저절로 될 것입니다. 이웃에 대한 사랑은, 하느님을 사랑할 때 가능해 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말을 마치고 그들 향해 부드럽게 미소를 지어 주었다. 그는 내 대답에서 어떤 허점을 찾아내려는 의도로 질문을 던졌던 것이다.

“선생님, 그 어부는 화를 내지 않고 있기가 참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저 같으면 아주 화가 났을 것입니다.” 어느 젊은이가 솔직하게 큰 소리로 말했다.

“자신의 약한 점을 안다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사랑 속에서는 노여움도 없고, 분노도 없고, 질투도 없으며, 오직 사랑과 용서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 말에 동조하는지, 그는 나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떡였다.

내가 긴 의자에서 내려오니 제자들이 곁으로 왔다. 나는 군중들 사이를 걸어가며 사람들에게 안수를 해 주고, 많은 사람들을 치유해 주었다. 사람들은 손을 뻗쳐서 나를 만지려 하고, 내게 가까이 오려고 아우성이었다. 그래서 내가 큰 소리로 말했다.

“병든 사람들은 치유를 받으십시오. 용서를 구하는 사람들은 용서를 받으십시오. 그리고 사랑을 구하는 사람들은 사랑을 받으십시오.”

“내가 나았다!”

“눈이 보인다. 볼 수 있다!”

“내가 걷는다!”

“나도 걸을 수 있다!”

“귀가 들린다. 선생님이 나를 치유해 주셨다!”

사방에서 사람들의 환성이 올렸다.

“주님!” 베드로가 감탄하며 외쳤다. “주님께서 사람들을 만지시지도 않았는데 다들 치유를 받았습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면서 베드로에게 말했다. “집으로 돌아가자.”

우리는 들판을 떠났다. 들판에서는 마치 큰 잔치가 벌어진 듯이 치유의 기쁨으로 모두들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주님!” 자기가 그 어부였더라면 아주 화가 났을 것이라고 말했던 그 젊은이가 따라와서 나를 불렀다. “저도 주님을 따라가면 안 될까요?”

“물론 안 될 것 없지. 네 이름이 무엇이냐?”

“재커리 입니다.” 하고 그가 대답했다.

“잘 왔다, 재커리. 환영한다.” 나는 한 팔로 그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예수님 +++  1996년 12월 14일

 

유다가 와서 말했다. “주님, 주님께서는 사람들이 우리를 많이 따라오게 하시는데, 이 사람들을 어떻게 다 먹여 살리실 작정이십니까?”

“나에게 의탁하여라, 유다야. 필요한 것을 모두 얻게 될 것이다.” 나는 주위에 있는 제자들을 바라보았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하고 있지만, 가는 길이 험하고 힘든 것을 알고 나면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도중에 떠나 버릴 것을 알고 있었다.

각자 자기가 머물 집으로 가기 위해 우리는 헤어졌다. 헤어지기 전에 내가 큰 소리로 말했다.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기도를 드리기 위해, 잠시 후에 회당으로 갈 것이다.”

베드로와 함께 다윗의 집으로 가고 있는데, 길에서 흙을 만지며 놀고 있는 어린이를 만나게 되었다. 나는 그 아이를 내려다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얘야, 노는 게 재미있니? 아주 재미있어 보이는구나.”

그 아이는 커다란 갈색 눈동자를 굴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네, 재미있어요. 나는 지금 농장을 만들고 있는데, 이건 집들이에요.” 그리고는 흙 속에 쌓아놓은 몇 개의 흙무더기를 가리켰다. “그리고 이건 동물들이에요.” 반짝거리는 작은 돌멩이들을 가리키며 아이가 설명했다.

나는 아이 곁에 앉아서 물었다.

“너는 자라서 농부가 되고 싶은 게로구나?”

“네, 농부가 되고 싶어요. 농부가 되면 우린 안 굶어도 될 테니까요!” 당연하다는 듯이 아이가 대답했다.

“너 지금 배가 고프니?” 베드로가 물었다.

“네, 배가 고파요.” 아이가 대답했다. “아침에 조금밖에 안 먹었거든요. 엄마가 그러는데 내일까지는 아무것도 먹을 게 없대요. 아까 풀을 조금 먹긴 했어요.” 하며 아이는 곁에 있는 풀을 뜯었다.

“자주 굶게 되니?”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베드로가 물었다.

“굶는 말이 주로 많아요.” 여전히 흙과 돌을 가지고 놀면서 그 아이가 대답했다.

“아빠는 어디 계시니?’ 하고 묻는 베드로의 뺨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엄마가 그러는데 아빠는 사고로 돌아가셨대요. 그런데 있잖아요. 내 친구들이 그러는데 로마 군인들이 아빠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대요. 십자가에 못박는 게 뭐예요?” 천진스럽게 묻는 아이의 질문이었다.

나는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어 주면서 가슴이 아팠다. “아, 그건 말이다. 엄마한테 물어봐야 하는 거야.” 그리고 베드로에게 말했다. “베드로, 이 아이가 엄마한테 갖다 줄 만한 것이 있느냐?”

“네, 주님.” 하고 대답하는 베드로의 뺨에 이제는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베드로는 옆구리에 차고 있던 작은 돈주머니를 꺼내서 아이에게 주었다. “얘야, 이것을 엄마에게 갖다 드려라.”

아이는 돈주머니를 받아 들고 나에게 물었다. “이 아저씨 왜 우세요? 슬픈 일이 있어요?”

“어어, 그건 아저씨 가슴에 사랑이 넘치기 때문에 우시는 거란다..”

아이는 두 팔로 베드로를 껴안으며 “아저씨 울지 마세요. 저도 참 많이 울었지만, 아직도 슬픈 걸요. 울지 마세요.” 그리고 나서는 베드로의 뺨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제가 아저씨의 친구가 되어 줄게요. 울지 마세요.” 그 아이의 말에, 베드로는 더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어린 나이에 그렇게 심한 괴로움을 겪었으면서도 사랑을 잃지 않은 그 아이의 사랑과 순진함을 보면서 나 역시 울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 아이의 아버지를 내 눈 앞에 보았다. 착한 사람이었지만 병에 걸려 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가족을 먹여 살릴 방도가 없었다. 어느 날 그는 절망에 빠져 자포자기한 나머지 로마 군인의 돈과 칼을 훔쳤고, 칼을 팔아서 먹을 것을 사려다가 로마 군인에게 들켜서 모진 매를 맞았다. 그리고 로마군 장교는 그가 로마 군인들을 죽이려고 칼을 훔쳤다고 몰아붙여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물론 아이 아버지는 로마 군인들을 죽이려고 한 것이 아니었는데도, 억울하게 사형을 당한 것이었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그를 도와 주지 않은 냉정한 이웃들 때문에, 착한 사람이 죄를 짓게 된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몹시 아팠다. 만약 그 이웃과 친구들이 불쌍한 병자를 동정하여 도와 주었더라면, 그가 그토록 절망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고, 도둑질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죄는 고통을 가져다 줄 뿐이지, 절대로 고통을 덜어 주지 않는다. 그 사람은 십자가 위에서 고통을 당했고, 부인고 아들은 그를 잃고 고통을 당해야 했다. 그 사람이 죽고 난 후에도 그 가족을 전혀 도와 주지 않는 이웃 사람들은, 그들의 영혼을 점점 더 손상시키면서 무거운 죄를 짓고 있었다.

아이 엄마가 왔다. 그녀는, 아이가 울고 있는 베드로와 나를 껴안고 “울지 마세요. 괜찮아질 거예요. 울지 마세요.” 하면서 오히려 어린 아이가 어른을 달래 주고 있는 광경을 보았다.

“무슨 일이에요? 내 아들한테 뭘 하고 있는 거예요?” 하면서 그녀는 아이를 들여 올렸다.

베드로는 그녀를 보고 말했다. “그냥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아이가 아빠 이야기를 해 주더군요.”

“아,” 하는 소리를 내면서 그녀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푹 숙였다.

나는 일어서서 그녀의 얼굴을 손으로 받쳐 올리며 말했다. “부인, 부끄러워 할 것 하나도 없습니다. 아주 좋은 아들을 두셨군요. 당신은 사랑을 지니고 있어요.”

“가야  하겠습니다.” 아이 엄마는 불안하게 말하며 돌아섰다.

“엄마, 이 좋은 아저씨들이 주신 거예요.” 아이가 엄마에게 돈주머니를 보여 주었다.

아이 엄마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망연히 서 있다가 입을 열었다. “네가 훔친 것은 아니겠지?”

“아니에요. 엄마한테 갖다 드리라고 우리가 준 겁니다.” 베드로가 나서며 말했다.

“아니, 왜 이런 돈을 저희에게 주시는 거지요?” 그녀는 의아스러운 듯이 우리를 쳐다보았다.

“이 돈으로 가이사리아에 살고 있는 가족들한테 돌아갈 수 있을 것이오.” 나는 상냥하게 미소를 지어 주며 말했다.

“저희 가족이 거기 있는 것을 어떻게 아셨어요?” 그녀가 놀라서 물었다.

“삼촌이 거기 있는 것을 알고 있소. 삼촌한테 가면, 엄마와 아들을 잘 보살펴 줄 것이오.”

“그-그런데 어떻게 그것을 아십니까? 이 마을에 사는 사람 중에서 그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요!” 그녀는 깜짝 놀라서 외쳤다.

“나는 알고 있어요. 남편을 용서해 달라고 하느님께 매일 간청하고 있는 것과, 살아가는 데 조금만 도움을 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하고 이는 것도 알고 있어요.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기도를 항상 듣고 계시오.”

“오, 주님!” 하면서 그녀는 무릎을 꿇었다.

“저 아저씨도 이 아저씨를 주님이라고 불렀어요.” 아이가 큰 발견이라도 한 듯이 베드로를 가리키며 말했다.

“주님…!” 그녀는 흐느끼며 감히 나를 쳐다보지 못하고 땅만 내려다보았다.

나는 그녀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기도를 들어 주셨소. 당신에게 베풀어 주시는 하느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항상 감사하시오.”

그녀는 눈을 뜨고 나를 쳐다 보았다. 그리고 나를 알아보았다. 그녀는 다시 무릎을 꿇고는 내 발에 입맞추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저같이 미천한 사람한테 와 주시다니, 오! 감사합니다, 주님.”

나는 다시 그녀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당신 마음 속에 있는 모든 슬픔을 걷어내고, 기쁨으로 채웁니다. 그리고 당신 뱃속에 있는 아기에게 말하노니, 아가야, 너에게 생명의 기쁨을 주로라.”

“아기라니요? 주님, 아기라니요. 어쩐지 이상하다 했는데, 네, 맞습니다. 아기, 제 남편의 아기…” 그녀는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아이가 나에게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아저씨가 이제 울지 않아서 기뻐요.”

“그래, 나도 기쁘구나. 나도 기뻐!”

 

우리는 엄마와 아이를 떠나 묵고 있는 다윗의 집으로 향했다. “좋은 아이였습니다. 도와 줄 수 있어서 기쁩니다.” 베드로가 말했다.

“네가 사랑으로 기도하면서 하느님께 청한다면, 하느님께서 들어 주신다는 것을 믿고 끊임없이 기도하여라. 그리고 그것이 너에게 유익한 것이라면, 하느님께서는 무엇이든지 들어 주신다.” 우리는 회당으로 가기 전에 준비를 하려고 다윗의 집에 잠시 들렸다가 다시 회당으로 향했다.

회당에 도착하니 제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야고보가 나에게 와서 말했다. “주님,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두 시간이 넘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늦어서 미안하다. 도중에 우리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만나서 그랬다.” 야고보는 누군가가 주님의 사랑으로 기쁨을 누린 것을 알아차렸고, 그것이 야고보에게 큰 기쁨이 되어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나는 제자들과 앉아서, 나이가 많은 한 라삐의 설교를 들었다.

“아브라함 시절에는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과 가깝게 살았고, 아브라함의 인도로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머지않아 하느님께서 아브라함 같은 사람을 다시 보내 주시어, 우리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상기시켜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좀더 잘 살까, 어떻게 하면 남들에게 잘 보일까, 어떻게 하면 이 사회에서 좀더 높은 자리를 차지할까 하는 것만 생각하면서 이기적인 모습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 면전에 보여지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보시느냐가 중요하고 하느님의 계명을 어떻게 잘 지키며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그들은 잊어 버렸습니다.

지금의 세대는 죄 많고 교만한 세대입니다. 이 세대의 한 사람인 나도 같은 잘못이 있습니다. 가르침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들으려 하지 않고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면, 하느님의 거룩하신 뜻을 가르치는 라삐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은, 여러분이 하느님에 대해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를 내가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나의 교만으로 인해, 하느님의 거룩하신 말씀을 사람들에게 잘 설명할 수 있는 은총을 나 자신이 겸손 되이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라삐와 교사들이, 지금의 세대에게 하느님 안에서 참되게 사는 길을 가르치지 못했다면, 어떻게 지금의 세대를 탓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는 입고 있던 외투를 찢으며 말했다. “하느님, 저의 교만을 용서해 주시고, 당신의 뜻대로 살지 못한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그리고는 자리에 앉아서 조용히 흐느꼈다.

회당 안에는 그 노인이 우는 소리를 제외하곤 침묵이 흘렀다. 마침내 내가 일어서서 말했다.

“라삐께서 하신 말씀은 사실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께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제들의 나쁜 본보기와 그릇된 가르침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제들도 그릇된 가르침을 받았고, 그래서 그 그릇된 가르침을 대대로 물려 주고 있는 것입니다. 자비하신 하느님께서는 사제들과 선생들에게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용서와 사랑을 베풀어 주고 싶어 하십니다. 하느님의 용서를 받아들이려면 우선 이 라삐처럼 자신을 솔직하게 관찰하여, 자기 잘못을 깨닫고, 하느님께 용서와 인도하심을 간청해야 합니다. 그러면 자비하신 하느님께서는 용서를 해 주실 것입니다.”

내가 자리에 앉자 사람들이 동감을 표시하며 웅성거리고 있었는데 연로한 그 라삐가 다시 말했다. “사랑의 말씀과 용서의 말씀이었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모두 귀담아 들으십시오!”

얼마 후에 우리는 회당을 떠나 저녁 시사를 하러 다윗의 집으로 돌아왔다.

 

 

 

예수님 +++  1996년 12월 16일

 

집에 도착했을 때, 다윗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님, 오늘 밤에 축제를 열 생각입니다. 주님께서 오신 것을 온 가족과 친구들이 경축하고 싶어 합니다.” 다윗이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하면 참 좋겠구나. 나도 너희들과 함께 경축하고 싶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베드로가 끼어들었다. “그래요, 주님! 잔치를 해 본 지도 오랩니다.” 베드로가 하는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제자들이 머나먼 길을 걸어왔고,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 있었지만, 그 동안 휴식하거나 잔치를 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다윗이 말했다. “오늘 갔던 그 들판에서 다들 모이기로 했습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오기 때문에 집에 다 들어갈 수가 없어서 말입니다!”

“나는 조금 쉬고 있을 테니까 떠날 때가 되면 불러 주지 않겠느냐?” 이렇게 말하고 나는 침대 있는 방으로 갔다. 자리에 누운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누가 문을 두드렸다. 잔치 장소로 떠날 시간이 되었다고 야고보와 요한이 나를 부르러 왔다.

야고보가 흥분하여 나를 불렀다. “주님, 떠난 시간이 되었습니다. 준비 되셨습니까?” “그래, 나가마.” 나는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좀더 잘 수도 있었는데…

그 집 중간 마당으로 들어가니 베드로, 야고보, 요한, 다윗 그리고 다윗의 부모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야고보만큼 흥분된 목소리로 다윗이 말했다. “들판으로 가 보았더니, 벌써 수백 명이 와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있더군요. 재미있는 밤이 되겠습니다, 주님.”

요한은 약간 걱정스럽게 말했다. “그렇지만, 주님. 그 사람들이 주님을 편안히 즐기시도록 놔 둘까요?”

베드로가 요한을 안심시켰다. “다윗하고 내가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벌써 신신당부해 놨어. 주님께서 편안한 마음으로 잔치를 즐기실 수 있도록, 질문은 삼가 해 달라고 말이야. 그러 조건이라야만 우리가 가겠다고 했어.” 나를 지켜 주고, 항상 나를 보호해 주는 참으로 좋은 친구들이었다.

“자, 가지. 그 곳으로 가서 같이 즐기자.” 나는 힘차게 말했다.

들판에는 의자들이 많이 놓여 있었고, 여러 군데 피워놓은 모닥불을 둘러싸고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들판 가운데 있는 널찍한 공터에서 대여섯 명의 악단이 연주하는 음악에 발을 맞추어 사람들이 춤을 추었고, 다른 사람들은 춤추는 사람 주위에 둘러 앉아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다윗이 위를 큰 탁자로 안내했는데, 그 탁자에는 제자들과 몇몇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유다는 탁자 위에 잔뜩 놓여 있는 음식들을 게걸스럽게 먹으며 앉아 있었다.

의자에 앉으면서 거기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니, 그들은 나의 방문을 함께 기뻐하며 신나게 즐기고 있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행복하기를 간절히 원했다.

들판 건너편에 탁자 하나가 그림자에 가려 있었는데, 로마군 장교와 부인이 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그 두 사람을 외면하는데도 불구하고 장교는 축제 분위기 속에 어울리며 즐기고 있었다. 내가 베드로를 불렀다. “베드로, 저기 있는 저 착한 사람과 부인을 이리로 초대해서 우리와 함께 앉도록 해 주지 않겠느냐?”

베드로는 놀란 것 같았다. “주님, 하지만 저 사람은 로마 군인입니다!”

“그렇다. 그리고 그는 우리오 같은 사람이다. 모든 사람이 다 하느님의 자녀이니, 그도 하느님의 자녀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여기 있는 사람들이 분개할 텐데요.” 베드로가 자기 의견을 말했다.

“만약 그들이 화를 낸다면 그것은 그들의 마음이 닫혀 있어서 그런 것이다.” 베드로는 내가 단념하지 않을 것을 알아 차리고는 로마군 장교의 탁자로 가서 그들과 한참 이야기를 했다. 처음에는 주저하는 것 같더니, 마침내 그 장교가 베드로를 따라왔다. 그들이 우리 탁자에 왔을 때 내가 먼저 인사를 했다.”

“어서 오시오. 아름다운 부인도 어서 오시오.”

둘 다 불안한 표정이었다. 장교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로마인인 제가 선생님과 함께 앉아 있으면 사람들이 싫어하지 않을까요?”

“친구, 나와 함께 앉아 주면 참 기쁘겠소. 자, 앉으시오.”

우리 탁자에 같이 앉아 있던 사람들은 처음에 몹시 충격을 받은 것 같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전차로 눈길이 한결 부드러워지더니, 얼마 후에는 그 두 사림이 로마인이라는 사실도 잊어 버린 듯 했다. 그런데 술이 만취한 재커리가 우리한테 오더니 소리쳤다. “주님, 로마인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겁니까?”

베드로가 얼른 재커리를 부축해 세우며 타일렀다. “주님께서 저 부부를 초청하셨네. 주님께서 초청하시는 사람이면 누구나 여기 올 수 있는 것 아닌가. 유다인, 그리스인, 로마인, 사마리아인 할 것 없이 말이요. 주님께서 초청하시고 환영하시는 사람은 우리도 환영해야 할 것 아닌가?” 나는 그때 베드로가 지닌 힘을 다시 보았다. 내가 쌓아놓은 기초 위에 새 교회를 세울 그 힘을…!

“하지만 저 사람은 로마인입니다!” 재커리가 술이 잔뜩 취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리고 자네는 술 취한 사람이고, 가서 좀 쉬어야겠네.” 베드로가 단호하고도 친절하게 말했다.

“전 괜찮습니다. 이 정도의 술로는 끄떡없습니다. 좌우지간 저 사람은 로마인입니다!” 다시 소리치는 재커리를 베드로가 탁자에서 멀리 데리고 갔다.

나는 로마군 장교와 부인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젊음과 과음은 화합이 잘 안 되지요. 그것은 성미를 급하게 만들고 헛 용기만 불어넣어 줍니다.”

로마군 장교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더니 말을 했다. “그것은 어디서나 마찬가지입니다.”

나머지 저녁시간은 아주 즐거웠다. 유다 조차도 즐거워했는데, 가끔 일어나서 춤도 추고 노래도 불렀다. 이 세상에 있는 내 가족들이 이렇게 행복해 하며 재미있게 노는 것을 보니 나는 참으로 기뻤다. 내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축하잔치를 바라보며 내 가슴은 사랑이 흘러 넘쳤다. 그때 갑자기 음악소리가 멈추고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한 라삐가 들판 중앙으로 걸어 들어왔다. 회당에서 만났던 그 노인 라삐였다.

“여러분!” 그는 크게 말했다. “우리는 오늘 밤에 위대하신 나자렛의 예수님께서 우리를 방문해 주신 것을 경축하고 있습니다. 오늘 회당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는데, 그 말씀은 내 가슴에 불을 놓았습니다. 여러분도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을 것이고, 치유를 받았거나 치유를 받은 사람들을 보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이 사실은 우리에게 큰 축복이며,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을 받은 일입니까?”

모든 사람들이 환호성을 올렸다. “예수님! 위대하신 선지자! 예수님께 찬미 드립니다!”

나는 일어서서 그 라삐에게 감사하는 표시로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목례를 했다.

그러자 라삐는 아주 슬픈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그 목소리의 심연 한 아름다움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 노인이 그토록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것을 듣고 다들 놀랐는데, 나는 그 목소리가 사랑에 넘치는 그이 가슴 속에서 우러나오고 있음을 알았다.

라삐는 노래를 다 부르고 나서 내게로 걸어오더니, 두 팔로 나를 껴안으며 내 뺨에 입을 맞추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나서, 너무나 애틋한 사랑으로 나를 껴안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손뼉을 쳤다. 음악소리가 다시 들리고, 사람들이 음악에 맞추어 손뼉을 치고 있는데, 라삐는 내 손을 잡고 사람들이 춤추는 곳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춤을 추었다.

우리가 탁자로 돌아와 앉자 라삐가 물었다. “왠지는 몰라도,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모두 예수님을 모시고 싶어 하고, 함께 계시기를 바랍니다. 무엇 때문에 그러는 걸까요?”

“그것은 내 안에 계시는 나의 아버지 때문입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님의 아버님이 누구라고 하셨습니까?”

“내 아버지는 모든 창조물의 아버지시고, 내가 있는 곳에는 아버지도 계십니다.” 나는 라삐의 눈 속을 들여다보며 대답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잘 이해가 안 되는데요.” 그 라삐가 다시 물었다.

나는 그에게 웃으며 대답했다. “나로다(I Am).”

놀라서 눈이 휘둥그래진 그 라삐는 순간, 진리를 알아보았다. “당신은 메시아이십니다!” 그 라삐는 의자에서 내려 두 무릎을 꿇었다.

“그렇다, 나로다(I Am).” 하며 나는 그 라삐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라삐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제가 이 날을 맞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주님, 제 생애는 이제 완성되었습니다.” 라삐는 춤추고 있는 다른 사람들 사이로 가더니 함께 어울려 춤을 추면서, 기쁨에 넘쳐 흐느껴 울었다.

베드로가 와서 말했다. “주님, 재커리는 잠이 들었고, 라삐께서는 아주 즐거워 보입니다.”

“그래, 라삐는 오늘 진리를 보았기 때문에 마냥 즐거우신 것이다.”

“그런데 주님, 재커리를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이 우리와 함께 따라와도 되겠습니까?” 베드로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나는 모든 사람을 용서해 준다. 재커리가 용서를 구하고, 스스로 노력하여 자신의 약점을 극복한다면, 재커리도 나를 따라올 수 있는 것이다.” 베드로에게 대답하며 나는, 모든 사람들이 약점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약점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극복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을 생각했다.

“내일이면 알게 될 것이다.” 베드로에게 재커리에 대해 말해 준 다음 잠시 침묵하고 있는데, 노인 라삐가 되돌아와서 베드로에게 말했다. “이분이 바로 그분이시네! 이분이 누구신지 알고 있는가?”

베드로는 라삐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며 대답했다. “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라삐의 말이, 그의 영혼 깊은 곳에서 나온 것인 줄은 알지 못했다. 노래하고 춤을 추는 저녁 잔치 행사로 들뜬 흥분 때문에, 나이 많은 노인의 몸에 무리가 왔는지 그는 자리에 와서 앉았다.

“주님, 저는 잠깐 쉬어야겠습니다. 제가 쉬고 있는 사리에 떠나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라삐가 물었다.

“아니오,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나는 때가 온 것을 알고 말했다. 라삐는 눈을 감고 탁자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 그 소란 속에서도 잠이 들었던 것이다.

“이분은 저보다 더 잘 주무시네요. 저는 이렇게 시끄러운 곳에서는 잠을 못 자거든요.” 바르톨로메오가 신기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것이 그의 마지막 잠이 도리 것이다.” 내가 말하자, 그 노인의 잠든 머리가 내 어깨 위로 떨어졌다.

“돌아가셨습니까?” 바르톨로메오는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물었다.

“아니다. 지금은 자고 있다.”

“돌아가시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분 라삐가 참 좋습니다. 목소리도 아름다우시고 유머도 많으시고… 우리 아버지와 아주 비슷합니다.”

“그렇구나. 하느님께서 이 사람에게 많은 선물을 주셨는데, 이 사람은 그 선물로 남을 도와 주고 격려해 주면서, 남에게 기쁨을 안겨 주었다.” 나는 라삐의 지나간 생애를 눈 앞에 보았다. 그는 많은 선행을 베풀었고, 자기가 받은 은총으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었으며, 사람들을 항상 한 가족으로 생각했다.

라삐가 눈을 뜨고 내 어깨에 놓여 있던 머리를 들면서 졸리 운 듯이 말했다.” 주님, 저는 주님을 떠나지 않으렵니다.”

그때 라삐의 머리가 내 어깨 위로 떨어졌다. 나는 그 라삐에게 말했다. “당신은 나를 떠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결코 나를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라삐의 눈을 감겨 주고 나서 바르톨로메오에게 말했다. “라삐는 이제 평화롭게 쉰다.”

옆에 서 있던 베드로가 나에게 안겨 있는 라삐를 안아 올리며 바르톨로메오에게 도움을 청했다. “좀 도와 주게. 아주 무거워!” 바르톨로메오는 슬픈 표정을 하고 베드로와 요한을 도와 주었다. 요한은 라삐가 숨을 거둘 때부터 곁에 가까이 와서 있었다. 셋이서 라삐를 땅에 눕혔다. 그런 다음 장례식 때까지 시신보관을 준비할 사람들을 찾으러 갔다.

바르톨로메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주님, 저는 사람이 죽는 것을 많이 보아 왔기 때문에 이제는 이런 일에 익숙해져 있어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하고 아직도 마음이 아픕니다.”

나는 바르톨로메오의 어깨를 한 팔로 감싸며 말했다. “사랑하기 때문에 마음이 아픈 것이다.”

몇몇 남자들이 와서 시신을 회당으로 옮겨갔고, 장례식 때까지 다른 라삐가 시신을 보관하기로 했다.

베드로가 와서 말했다. “이 일 때문에 축하잔치가 망치게 되어서 안 됐군요.”

“잔치가 망쳐진 것이 아니다. 잔치는 이 거룩한 사람이 귀향함으로써 마무리를 짓게 되는 것이다. 죽음은 벌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아라. 성스러운 사람들에게는 죽음이 큰 보상인 것이다.” 내가 자상하게 죽음이란 보상임을 설명했다.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면서, 들판은 이제 빈자리로 남겨지게 되었다. 나는 다윗의 집으로 가면서 제자들에게 말했다.

“할 일이 많으니, 내일은 이곳을 떠나야겠다.”

유다가 와서 말했다. “이곳에서 저는 참 즐거웠습니다. 아주 고마운 휴식이었습니다.” 나는 유다를 바라보며, 잔치를 즐기며 아무런 걱정도 없이 행복하기만 했던 어린아이의 모습을 보았다. 그런 유다가 다시 바뀔 것을 생각하니 나는 슬퍼졌다.

 

 

 

 

예수님 +++  1996년 12월 18일

 

다음날 눈을 떠보니 제자들이 떠드는 소리로 온 집안이 요란했다. 제자들은 떠날 준비를 끝내고 바깥에 모여 있었다. 다시 떠나는 여행길에 대한 기대로 다소 상기된 제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나는 한동안 누워있었다.

아버지께서 내 가슴을 당신의 사랑으로 가득 채워 주셨고, 성령에 감싸인 나의 온몸에 새 힘이 솟아나는 것을 느꼈다. 내 안에 사랑이 점점 더 열절해지면서, 나는 기쁨의 황홀경 속에서 천주 성삼으로 일치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요한이 나를 조용히 불렀다. “주님, 일어나셨습니까? 떠날 시간이 되었습니다.”

“요한, 잠깐만 더 있다가 나가마.” 그 잠깐은 영원한 사랑의 순간들이었다.

집 정문으로 나오자 다윗의 어머니가 나에게 따뜻한 빵을 갖다 주었다. “주님, 이것 좀 드십시오. 지금 드시지 않으면 나중에 시장하실 겁니다.”

감사의 인사를 하고 탁자에 앉아서 빵을 먹고 있는데, 다윗의 어머니가 물에 술을 약간 타서 주며 말했다. “이것도 마셔야 합니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주님, 저희 마을에 와 주셔서 정말 기쁩니다. 주님께서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의 평화를 찾게 해 주셨고, 많은 사람들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저는 주님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저희 가정에 베풀어 주신 은혜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도와 준 것을 그토록 감사해 하니 참 기쁘군요. 하느님께서 이 마을에 베풀어 주신 그 모든 은혜를 항상 기억하십시오.”

그때 요한이 와서 말했다. “저희는 떠날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주님께 가서 말씀 드리라고 했습니다.”

“요한, 잠깐만 더 기다려라. 다윗하고 다윗의 아버지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싶구나.”

다윗의 어머니가 내 말을 바로 받았다. “주님, 다윗하고 아버지가 곧 돌아올 겁니다.”

잠시 후에 다윗과 아버지가 돌아왔다.

“주님.” 다윗의 아버지가 불렀다. “떠나시기 전에 주님께 이것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는 방금 시장에서 사 온 외투를 나에게 주었다.

다윗이 말했다. “주님, 비싼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주님한테 쓸모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그 외투를 받고 기뻐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은 나에게 참 좋은 선물이다. 사랑으로 주는 것이니 사랑으로 고맙게 받겠다.” 나를 위해 가진 돈을 몽땅 털어서 그 외투를 샀기 때문에, 앞으로 한동안 그들은 먹는 음식을 아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저희들이 적어도 이 정도는 해드려야 마땅하지요, 주님.” 다윗의 아버지가 내 손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주님께서 제 마음 속에 평화를 가져다 주셨고, 제 아내에게는 기쁨을 가져다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 아들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남은 여생 동안 저는 항상 주님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주님을 보호해 주시도록 하느님께 매일 작은 희생을 바치겠습니다.”

그 약속을 틀림없이 지켜갈 것을 알았기에, 나는 그를 자애롭게 바라보았다.

그때 다윗의 어머니가 말했다. “주님께서 가족이 필요하시다면 여기 제 마음 속에 있다는 것을 아십시오.” 내가 모든 사람들에게 바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라는 사실을 그녀는 알지 못한 채 말했던 것이다.

제자들을 따라 밖으로 나가면서, 나는 베드로에게 조용히 귓속말을 했다. “저 착한 사람들을 위해 돈을 좀 남겨 두어라. 그렇지만 우리가 멀리 떠날 때까지는 그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하여라.”

“네, 주님.” 대답을 한 후 베드로는 유다한테로 갔다.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유다가 베드로에게 동전 몇 개를 건네 주었다. 베드로가 유다의 손을 움켜쥐더니 유다 손 안에 있는 돈을 더 빼내는 것을 보았다. 유다는 아주 낭패한 표정이었다.

 

“이 마을을 떠나기 전에 회당으로 가서 우리의 안전한 여행을 위해 기도하도록 하자. 그리고 무덤에 묻히기를 기다리고 있는 그 거룩한 노인에게 작별인사를 하자.” 나를 에워싸고 서 있는 제자들에게 말을 마치자, 베드로가 고개를 끄덕하고는 슬그머니 빠져나갔다.

우리는 다윗의 가족들과, 우리에게 인사하러 온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를 한 후 회당으로 갔다. 회당에서 한 시간 정도 있다가, 라삐의 시신이 있는 데로 갔다. 라삐는 아주 평화롭고 행복해 보였다. 그는 이제 죽음의 진리를 알았기 때문이다. — 죽음은 은총이지 벌이 아님을…

우리는 라삐를 위해 기도하고 축복해 주었다. 그리고 나서 막 떠나려고 하는데, 저녁 잔치에 참석했던 로마군 장교가 들어섰다. “선생님은 좋은 분입니다. 제가 마음의 평화를 느낄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제 아내도 마찬가지였구요. 선생님의 말씀은 제 마음과 영혼을 가득 채워 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 말씀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친구, 나도 친구를 잊지 않을 것이오. 친구의 마음 속에 있는 사랑과 온화함도 잊을 수 없을 것이오.” 하면서 두 손으로 그의 어깨를 잡았다.

“선생님과 좀더 같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부터 나는 항상 친구와 함께 있을 것이오.” 이 말을 할 때, 나의 사랑이 그의 가슴으로 가득 부어졌다.

“오, 주님. 주님이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로마군 장교로서 그렇게 불러서는 안 되는 줄 알지만, 주님 앞에서 제 자신이 너무나 작게 느껴지고, 한편으로는 너무나 중요하게도 느껴지면서, 사랑이 넘치는 것같이 느껴집니다.”

“친구는 나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고, 내가 모든 사람을 사랑하듯이, 나는 친구를 사랑하오.” 나의 말에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떻게 모든 사람을 사랑하실 수가 있습니까? 주님은 신(神)들 중 한 분이십니까?”

“하느님은 오직 한 분이시고, 그 하느님은 사랑의 신이시며 찬조의 신이시오. 성부이신 하느님과, 그 성부와 함께 있는 나입니다(I Am).”

그는 내 말의 뜻을 알아듣지 못했는데, 내가 그의 눈 속을 들여다보자, 그는 곧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그는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주님!” 하고 외치면서 기쁨이 넘치는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와 같이 왔던 다른 로마 군인이 그에게 말했다. “어서 일어나게! 유다인에게 절을 하다니! 자네 모가지가 날아가고 싶어 그러나?”

그러나 그 장교는 미동도 않고, “주님.” 이라고만 되뇌면서 기쁨에 찬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그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부하들에게 가서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여라.”

“네, 주님.”

그의 대답을 뒤로 하고 우리는 그 곳을 떠났다. 얼마 후 재커리가 와서 말했다. “주님, 어젯밤에 제게 무례했던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술을 너무 많이 마셨습니다.”

“네가 그것을 알고 있으니 반갑수가. 용서해 주고 말고… 다시 또 그럴 셈이냐?”

“아닙니다, 주님. 안 그러겠습니다. 약속합니다. 하지만 제발 부탁인데요, 제가 마음이 약해지면 도와 주십시오. 저는 마음이 강하지를 못합니다.” 제커리는 간절한 눈길로 애원했다.

“내가 너를 도와 주기를 네가 진심으로 원한다면, 나는 항상 너를 도와 줄 것이다.”

“주님, 원합니다. 진심으로 원합니다.” 재커리는 솔직하게 말했다.

“마티아 한테 너를 맡기도록 하겠다. 앞으로 마티아가 너를 돌봐 주고 네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도와 줄 것이다.”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그 로마군 장교한테 가서 사과를 해야 할까요? 어젯밤에 제가 너무 건방지게 굴어서 기분이 많이 상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통회 표시이다.” 나의 대답을 듣고, 재커리는 곧바로 마을을 향해 달려갔다. 나는 마티아를 불러서 재커리를 부탁했다. “나를 대신해서 재커리를 보살펴 주기 바란다. 재커리는 너의 도움이 필요하니, 네가 잘 보살펴 주어야겠다.”

“주님, 기꺼이 하겠습니다. 주님께 봉사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 싱글벙글 웃는 마티아는 도와 달라는 나의 부탁을 받은 것이 좋아서 마냥 행복해 했다.

두 시간 후에 재커리가 즐거운 표정으로 웃으며 돌아왔다. 베드로와 마티아하고 같이 걷고 있었는데, 재커리가 “주님.” 하고 불렀다. “주님, 그 로마군 장교는 참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저를 용서해 주었습니다. 제가 로마인을 좋아하게 될 줄이야 생각도 못한 일입니다. 그는 유다인보다 더 친절했습니다.”

“네가 그것을 알게 되어 기쁘다. 오늘 중요한 교훈을 한 가지 배웠구나. 어느 민족이든지 어떤 피부색깔을 가지고 있든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동등하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같은 한 가족이다. 어느 나라에나 좋은 것이 있는가 하면, 나쁜 것이 있고, 어느 나라에나 죄인들이 있는가 하면,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느 나라에나 하느님의 사랑으로 창조된 조물이 있고, 어느 나라에나 희망이 있다.” 나는 말을 마치고 침묵하면서 길을 걸었다. 제자들은 내가 한 말을 묵상하고 있었는데, 내 말 속에는 그들 각자가 배워야 할 교훈이 담겨 있었다.

 

 

 

 

예수님 +++  1996년 12월 21일

 

제자들과 길을 가면서,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당신의 자녀로 여기신다는 사실과, 모든 사람들에게 당신의 사랑을 베풀어 주신다는 사실을 잘 이해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야고보와 안드레아는 그것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다른 모든 유다인들이 그러하듯이, 그들도 유다인들만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서에 나오는 여러 선지자들이, 하느님께서 모든 나라를 구원하실 것이라고 한 말과, 이방인들이 주님의 백성이 될 것이라고 한 말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야고보(요한의 형)에게 내가 물었다. “너는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당신의 사랑으로 창조하셨다는 것을 믿느냐?”

“물론입니다, 주님.”

“그러면 아버지께서 모든 사람들을 당신의 사랑으로 창조하신 것도 믿느냐?”

“네, 주님, 물론입니다.” 야고보가 약간 성급하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의 사랑에서 창조되었는데, 하느님께서 왜 그들을 멀리 하시겠느냐?”

“그들은 이스라엘의 자녀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도 하느님 가족의 일원이고, 유다인들처럼 그들도 하느님께 지음을 받았다.”

“하지만 주님, 우리 유다인들은 선택된 사람들입니다. 그건 성서에 적혀 있습니다.” 야고보는 아직도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하는 말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하느님의 선택된 백성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성서에서 말하는 이스라엘의 백성이 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란,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닌 사람들의 나라라는 뜻이다. 그들이 어떤 사람이든지, 무엇을 하는 사람이든지, 어디서 온 사람이든지 상관이 없다.”

야고보가 말했다. “이제 조금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주님. 그렇지만 지금까지 저희가 배워 온 것을 쉽게 바꾸기란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네가 사람들을 대할 때, 오직 하느님께서 그 삶을 어떻게 보시는지를 생각하도록 하여라.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을 어떻게 보느냐가 아니고 말이다.”

내 말이 끝나자, 안드레아가 흥분하여 소리쳤다. “바로 그거야! 사람들을 볼 때, 하느님께서 그 사람을 보시듯이 보면 되는 거야!” 안드레아는 그제야 내 말을 분명히 이해하게 된 것이다.

야고보가 안드레아를 쳐다보고 말했다. “이해하도록 노력해 보겠네. 자네가 이해할 수 있듯이 나도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언젠가는 너도 이해할 수 있을 날이 올 것이다.” 야고보에게 다정하게 말해 주면서 나는 그가 성령을 받은 후 얼마나 굳세게 될 것이며, 모든 사람들을 얼마나 사랑하게 될 것인지를 생각했다.

 

 

 

 

예수님 +++  1996년 12월 22일

 

날이 저물어 갈 즈음, 예루살렘에 있는 시장으로 줄지어 가고 있는 대상을 만났다. 30여 마리의 낙타와 당나귀 등에는 장사할 상품들이 가득 실려 있었다. 그들은 동물들이 쉴 수 있도록 풀어 주고, 밤을 보낼 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가 가까이 다가가자 덩치가 큰 사람이 굵직한 목소리로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여러분, 어서 오십시오. 어디로 가시는 길입니까?”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입니다. 도중에 여러 동네에 들려서 묵었다가 가지요.” 베드로가 대답했다.

“우리도 상품을 팔려고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는 중입니다.” 덩치 큰 사람이 우리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고 다른 상인들도 다가왔다.

“오늘 저녁은 우리와 함께 지내지 않겠습니까?” 덩치 큰 사람의 제안에 베드로가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좋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좋겠습니다. 저의 이름은 베드로입니다.” 반색을 하며 베드로가 악수를 청했다.

“저는 마르코입니다.” 덩치 큰 사람이 베드로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우리는 서로 소개를 한 뒤에, 대상들이 길가에 막사를 치는 것을 거들어 주었다. 한 젊은이가 나한테 얼이 빠져 커다란 눈으로 뚫어지게 나를 쳐다 보고 있었다. 내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젊은이, 네 이름이 무엇이냐?”

“토비아 입니다.” 여전히 나를 뚫어지게 똑바로 쳐다보며 대답했다.

“이름이 참 좋구나.” 나는 다정하게 미소를 지어 주었다.

“네, 제 부모님이 성서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하고는 덧붙여서 말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선생님한테 마음이 끌립니다. 선생님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의 얼굴이 너무나 평화롭게 보입니다.”

“네가 그렇게 느낀다니 기쁘구나. 내 이름은 예수다.” 나는 그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야고보와 요한이 와서 물었다. “주님, 별일 없으십니까? 뭘 좀 도와드릴까요?” 내가 귀찮아 할까 봐 걱정이 돼서 하는 말이었다. 정말 좋은 친구들이다.

“아니, 괜찮다. 여기 토비아와 방금 친구가 되었는데,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싶구나.” 내가 부드럽게 말했다.

요한과 야고보는 토비아를 보고 씽긋 웃음을 지어 보였다. 요한이 먼저 말했다. “그럼 주님, 둘이서만 얘기할 수 있게 저희들은 저기로 가서 있겠습니다.”

“고맙다.” 나는 사랑으로 답했다.

토비아는 여전히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저 사람들이 선생님을 왜 주님이라고 부릅니까? 선생님은 특별한 분이십니까?”

“나로다(I Am).” (‘I Am’ 은 나로다, 혹은 그렇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그러신 것 같았습니다. 선생님은 뭔가 신비스러우신 데가 있거든요. 곡 집어서 뭐라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요.”

“여기 앉아서 잠깐 이야기하자.” 나는 땅에 펴놓은 담요 위에 앉았다. 토비아가 곁에 앉자 내가 물었다. “여행을 한 지 얼마나 되었느냐?”

“별로 오래 되지는 않았습니다. 7일쯤 되었습니다.”

“여행길에 많은 것을 보고 경험했겠구나.”

“네, 여러 가지 많이 경험했습니다. 사막의 대상을 따라 다닌 것이 벌써 여러 번째인데, 앞으로도 계속 따라다닐 생각입니다.”

“네가 맡아서 하는 일이 무엇이냐?”

“그저 동물 몇 마리를 보살펴 주고 있습니다. 저는 그 일이 참 좋습니다. 동물을 좋아하고, 동물도 저를 좋아하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동물들은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사랑의 선물이다.”

“선생님, 저는 사람들보다 동물들한테서 사랑을 더 많이 받습니다. 그리고 저는 사람들하고 있기보다는 동물들하고 있는 것이 더 좋습니다. 선생님을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선생님과 가까이 있으니 행복한 기분이 듭니다.” 토비아는 동물들과 있을 때를 생각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토비아야, 네가 동물한테서 받은 그 사랑을 사람들한테서는 더 많이 받을 수가 있단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토비아는 당황해서 물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으로 동물들을 창조하셨는데, 사람도 당신의 사랑으로 창조하셨다. 그러나 동물과는 달리 사람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사람 안에는 하느님의 모습이 담겨있다. 그러니까 사람 안에 들어 있는 하느님의 사랑은 동물 안에 있는 그것보다 훨씬 더 위대한 것이고, 동물하고는 다른 것이다.”

토비아가 말을 가로챘다. “그러나 동물은 우리를 해치지도 않고, 학대하거나 무시하는 일도 없습니다. 동물은 우리를 사랑하기만 합니다!”

“그래, 그것은 사실이다. 동물은 너를 사랑하기만 한다. 그러나 동물이 너를 사랑하는 것은 동물 안에 들어 있는 하느님의 사랑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다. 사람 안에 있는 하느님의 사랑은 훨씬 더 크기 때문에, 네가 사람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사랑은 훨씬 더 강력한 것이고, 열매를 맺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내가 토비아를 쳐다보고 말을 하는 중에, 토비아는 내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흠뻑 빠져들어 갔다.

나는 계속해서 설명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랑을 보여 주지 않고, 안에다가 숨겨 두고 있다. 살아 오면서 남에게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다시 상처를 받게 될까 봐 두려워서 그 사랑을 표현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숨겨 두고 있는 사랑을 이기심, 탐욕, 권력, 분노 같은 것으로 덮어 버리지만, 사랑은 여전히 그들 안에 남아 있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사랑을 곁으로 표현하면서, 자신아 가지고 있는 사랑을 모든 사람을 위해 바친다. 이런 사람들을 통해서 사람의 참된 모습을 볼 수 있고, 사랑의 기쁨과 삶의 기쁨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사실입니다, 선생님. 많은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저는 다른 사람들과 친해지기가 어렵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괴롭히고 놀리거든요.” 토비아가 솔직하게 말했다.

“다른 사람들과 친해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네게 주신 사랑을 숨겨 두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너를 괴롭히고 놀린다고 해서, 네 안에 있는 사랑을 묻어 버려서는 안 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네 안에 있는 사랑이 죽어 버리고 말 것이다.”

“하지만 저는 동물을 사랑해요.”

“그래, 너는 동물을 사랑한다. 그러나 너를 사랑해 주고 너를 해치지 않는 것만 사랑한다면 그것이 참된 사랑이겠느냐? 참된 사랑이란 너를 학대하고, 괴롭히고, 조롱하는 사람들까지도 사랑하는 것이다. 참된 사랑이란 그런 사람들을 용서해 주고, 여전히 변함없이 너의 사랑을 베풀어 주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의 사랑은 조금씩 사라져 버릴 것이다.”

“하지만 그건 어려운 일입니다, 선생님. 저는 동물들과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데, 사람하고 있으면 그렇지 않거든요.” 토비아가 말하는 중에, 개 한 마리가 와서 그의 손을 핥았다.

“나와 함께 있으면 네 마음이 편안하느냐?”

“네, 마음이 아주 편안합니다.” 토비아가 나에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나중에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도, 지금 네가 나와 함께 있는 기분을 생각해 보고, 똑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해 보아라.”

“그렇지만 사람들이 저를 냉대하면 어떻게 해요?”

“그럴 경우에는 그 사람들이 잘못이지 네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라. 그리고 그들을 더욱더 사랑해 주고, 용서해 주고, 이해해 줄 수 있도록 노력하여라.”

“그러면 동물들을 더 이상 사랑하지 말라는 말씀이니까?”

“아니다. 그런 뜻이 아니다. 동물은 동물대로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다만 동물 뒤에 숨어서 지신을 가두어 두지 말라는 말이다.” 내가 말하는 동안, 개 한 마리가 나한테 와서 얼굴을 핥았다. 나는 웃으면서 개의 배를 쓰다듬어 주자, 개가 내 앞에 드러누웠다.

“선생님께서는 뭔가 아주 특별하신 데가 있습니다. 정말 지혜로우십니다. 이제부터 저는 말씀하신 대로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토비아가 가려고 일어섰다.

“토비아야, 너는 사랑을 아주 많이 간직한 좋은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그렇게 사랑을 안에 감춰 두고만 있지 말아라.”

“네. 주님, 노력하겠습니다. 들으셨습니까? 제가 주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제가 왜 그랬을까요?” 자기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동물들을 보살피러 가는 토비아의 뒤를 개가 따라갔다.

 

예수님의 눈으로 Part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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