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1일, 2016년 아침..T-Minus 48 hours.. 이틀이 남았다 2016년 ‘성모승천 대축일’ ‘봉헌을 위한 33일 준비’ 기간이 시작되는 날이.. 7월 13일로 다가왔다. 2012년 8월 첫 봉헌, 2014년 3월 갱신 이라는 이력을 가진 내가 왜 다시 이 쉽지만은 않은 신심에 도전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 2012, 2014, 다음은 수열 상으로 2016이라는 것은 조금 우습지만, 그런 것도 좋은 이유 중에 하나로 넣기로 했다. 하지만, 하지만 조금 깊고 심각한 이유는 그것이 아니다.
레지오 마리애의 생활을 하는 덕에 성 루도비코 마리아의 가르침으로부터 크게 멀어진 적은 없는 듯 하지만 과연 그럴까? 혹시 타성에 젖어가는 것은 아닐지, 항상 의식한다. 편한 기분이 들어가면 그것은 분명히 타성에 젖는 것이다.배우고 알고 경험이 쌓이면서 편해진 것이면 큰 문제가 없지만, 무디어지고 느낌이 없어지고, 짜증도 나고 하면 그것은 분명히 커다란 reboot, reset이 필요한 때인 것이다.
2014년 더위가 극성을 부리던 7월에 나는 reset과 reboot을 해야만 했던 경험이 있었다. 비록 비싼 vacation trip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은 인생 최고의 ‘free’ vacation으로 남았다. 하지만 2014년 여름의 big reboot은 spiritual, devotional한 것이 전혀 아니고, 완전히 나만의 mental exercise에 불과한 것이었다. 길고도 죽을 때까지 남는 그런 ‘비싼’ 경험은 아닌 것이다.
이러한 background를 가지고 나는 이번 여름 Marian Assumption Day1 에 맞춘 봉헌을 하기로 결정하고 말았다. 2013년에 시도했던 33일의 노력이 도중하차로 끝난 것을 명심하면서 이번에는 그런 과오를 범하지 않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는다. 그 다음은 역시 ‘또 다른 경험’을 하는 것.. 어떤 것이지 모르지만 그것은 사실 상관이 없다. 다른 느낌과 체험, 경험.. 그것이면 족하다.
이 정도의 준비각오면 (이렇게 요란하게 글로 남기는 것도 포함) 아마도 아마도 이번에는 도중하차를 할 것 같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러면 8월 15일 후에 내가 ‘얻는 것’은 어떤 것에 중점을 두면 좋을까? 분명히 더 낫고 더 올바른 성모마리아 신심(이것은 그리스도께 더 가까이 가는 첩경이다) 에 다가가는 것이다. ‘오해 받지 않는 철저하고 용감한’ 성모신심을 얻는 것도 아주 중요한 과제다.
어제 Catholic News Agency website에 조금은 섬뜩한 기분의 기사가 실렸다. Fatima 의 visionary Lucia 루치아 수녀님의 예언이었다. 파티마 목격자 중 유일한 생존자였던 수녀님 2005년 선종 전에 증언이 그것이다. 인류 최후의 심판, 결전은 그리스도와 사탄 간의 ‘결혼과 가정’2에 대한 투쟁이라는 것, 그것을 ‘예언’하시고 선종하셨다고 보도가 된 것이다. 이것이 수녀님의 예언인지 혹시 성모님의 예언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어떨까.. 나도 비슷한 느낌과 생각을 가지고 있던 참이었기에 우연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Humanity의 근간 중의 근간인 ‘정상적인 가정’의 파괴와 붕괴는 사실 핵전쟁이나 다름없는 인류파멸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우매한 지식인‘들은 그렇게 stupid한 것일까? 10은 알고 11는 모르는 것.. 이런 뉴스에 접하며 나는 이번 33일에 이런 Current social problem을 같이 생각하기로 했다. 이런 뉴스와 일맥상통하는 글이 바로 33일 봉헌 Guide에 잘 나와있다. 아래 그것을 전문 발췌를 했는데, 원제는 20세기에 관한 것이지만 21세기에도 전혀 달라지지 않은 것들이다.
20세기에 들어 성모님은 파티마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 발현하셔서 당신의 티없는 성심께 대한 봉헌을 간곡히 호소하고 계신다. 20세기의 초엽인 1917년 파티마에 발현하셨을 때에는 원죄에 물들지 않은 당신의 티없는 성심을 직접 보여주시면서 티없는 성심께 대한 신심과 봉헌을 호소하셨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나의 티없는 성심에 대한 신심을 일으키기를 원하신다” (파티마, 19717. 6. 13).
“내 티없는 성심은 너의 피시처가 될 것이며, 너희를 하느님께로 이끌어가는 길이 될 것이다” (파티마, 19717. 6.13).
이에 따라 1942년 10월 31일 비오 12세 교황은 전 세계를 마리아의 티없는 성심께 봉헌하고, 1946년에는 파티마의 성모님을 세계의 여왕으로 대관하고 ‘여왕이신 성모 마리아 축일’을 제정하였다.
또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미 청년시절에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에서 큰 감화를 받고 자신을 온전히 성모님께 봉헌하였으며 이 책에서 ‘온전히 당신의 것 (Totus Tuus)‘라는 문장을 뽑아 교황 즉위 시에 모토로 삼기까지 했다. 1984년 3월 25일에는, 1917년 파티마에서 하신 성모님의 요청에 따라 전 세계의 주교들과 뜻을 합하여 소련은 물론 전 세계를 티없으신 마리아 성심께 봉헌하였는데 그 이후 마침내 소련을 포함하여 여러 나라의 공산주의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오늘날 여러 교황님들의 모범에 따라 이 봉헌을 실천하는 이들은 이 길이 틀릴 수 없는 가장 완전한 길임을 체험하는 동시에 이 봉헌으로써 이루어지는 놀라운 결과 즉 “티없는 내 성심이 승리할 것이다” (파티마 1917. 7.13)이라는 성모님의 약속의 실현을 자신들 안에서도 보게 될 것이다.
성모님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이 봉헌은 하느님께 봉헌되기 위한 가장 완전한 방법인 동시에 성모님의 티없으신 성심께 대한 가장 완전한 신심행위이다. 성모님께서는 우리의 봉헌을 받으셔서 당신 아드님과의 완전한 일치 안에서 그러나 그분께 종속되어 “은총의 질서 안에서 우리의 어머니의 자격으로” (교회헌장 61항) 하느님의 자녀들인 우리의 생활에 모성적으로 관여하신다. 그리고 우리의 봉헌을 당신의 봉헌과 일치시켜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가능케 해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결론지을 수 있다. “성모님께 봉헌하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께 이르는 길을 통과하는 것이며 성모님은 그리스도께 이르는 길이시다” 라고. 따라서 성모님을 통하여, 성모님 안에서, 성모님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자신을 바치면 바칠수록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이 봉헌의 주된 목적이며 의의이다.
<봉헌을 위한 33일간의 준비> “봉헌의 의미와 그 중요성” 중에서
매년 8월 15일: 성모승천 대축일: The Assumption of the Blessed Virgin Mary↩
더위를 먹은 머리가 갑자기 쏟아진 소낙비로 조금 식어간 후에 문득 7월 13일이 코 앞에 다가온 것을 느낀다. 레지오 주회합 때마다 회의록을 읽는 서기 書記(2012년부터)인 관계로 레지오의 공식활동의 목록을 앵무새처럼 읽는 것, 듣는 이에게는 크게 새로운 것이 없을지라도 나 자신은 은근히 세뇌 洗腦 가 되는 효과가 있다. 7월 13일.. 아하.. 올해 여름 중에 봉헌되는(정확히 8월 15일 Marian Assumption Day, 고국의 광복절) ‘봉헌을 위한 33일간의 준비‘, 간단한 말로 ’33일 봉헌’ 준비 기간이 시작되는 날이 바로 7월 13일이었다.
St. Louis Marie Grignion de Montfort
몇 달 동안 이 공식예고를 듣고 보며 잠깐씩 생각하곤 했다. 내가 전에 이것을 언제 했지.. 근래에 체험한 행사와 경험들이 하도 많아서 ‘레지오 수첩’을 안 펴보고는 확실히 알 수가 없게 되었다. 이것에 대한 자세한 기억이 조금 희미해진 것을 느끼고, 너무 오래 잊고 살았구나 하는 자괴감 自愧感 도 들었다. 우선 성모님께.. 다음은 루도비코 마리아 성인 Saint Louis of Montfort 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분명히 나는 몇 년 전에 봉헌을 했지만, 그 다음에 다시 갱신 renew 을 한 것이 100% 확실하지 않은 것이다. 이것은 실망이다.. 이런 것에 대한 기억력이 떨어지면 어찌할 것인가?
Personal blog에 나의 흔적을 남기는 것, stupid한 것도 많지만 나중에 유익한 개인역사를 남기는 것은 이럴 때 도움이 되고, 이곳을 찾아보니 역시 2012년 7월 11일 자 blog이 그것이다. 그러니까 2012년 8월 15일 즈음에 나는 ‘첫 33일 봉헌’을 한 것이다. 이 blog에 봉헌 준비 당시 나의 심정이 잘 보이고 있지만 실제로 어떻게 33일 ‘하루하루’를 보냈는지.. 그것은 어디 있는 것일까? 그것도 찾았다. 나의 OneNote1 Journal에 33일의 일기가 거의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첫 번째 봉헌, 나는 그만큼 심각하게 그것을 받아들이고 노력을 하고 기록을 남긴 것이다.
그러면 나는 과연 그 후에 갱신 renew를 한 것일까? 머릿속의 잡티를 청소하고 기억을 해 보니 2013년 부활시기에 갱신 시도를 했지만 도중 하차.. 다음 해 2014년 부활시기에 연숙과 같이 갱신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 정도로 갱신은 첫 봉헌과 비교해서 깊이나 느낌의 정도가 다른 것일까? 그렇다면 갱신할 당시 나의 33일 준비는 첫 번에 비해서 훨씬 허술했던 것은 아닐까? 그때의 묵상기록도 OneNote Journal에 남아있지만 첫 번에 비해서 그렇게 허술한 것은 아니었다. 갱신 때는 첫 봉헌에 비해서 오히려 하루도 빠짐없이 꼼꼼히 묵상기록을 남겨 놓았다.
2016년 연중시기 중의 제일 ‘한가한’ 시기인 8월 봉헌 시기가 다가오면서.. 이번은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무엇인지.. 한마디로 나의 성모신심 Marian devotion 의 나사가 조금 씩 풀어지기 시작한 듯한 느낌이 들어서일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고, 행여라도 풀어지지 않기 위한 안간힘일지도 모른다. 지난 두 번의 봉헌에 빠졌거나 못했던 것을 이번에 더 노력을 하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특히 이번에 더 할 것이 있다면 성 루도비코 마리아와 그의 불후의 명저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을 더 자세히 읽어 보는 것도 포함이 되어 있다. 8월 16일로 예정이 되어있는 봉헌, 갱신식에 과연 내가 서있을 것인가.. 아니면..
2주일 대출기한이 수개월을 지나가면서 이 책을 우선 반납하여야 한다는 stress를 느끼며 이제까지 ‘시간이 날 때마다’ 이곳 저곳을 훑어보고, 비교적 가볍게 접한 이 책에서 나의 재동 齋洞 동창, 김정훈 부제에 대해서 알게 되고 느낀 것을 정리한다.
신학생 김정훈
이 책을 처음으로 접하면서 제일 궁금했던 사실은 정훈이가 어떻게 그렇게 일찍 타계 他界 를 했던가 하는 것보다는 그가 생전에 어떻게 살았는가, 그의 집안, 가족은 어떠한 사람이었는지.. 어떻게 신앙, 성소를 가지게 되었는지..그런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그가 20대를 훨씬 넘은 시절부터 쓰여진 일기 형식이기도 하고 자기의 생각이 정성스럽게 담겨진 ‘문학적 냄새’가 나는 글로써, 꼼꼼히 ‘정독’을 하지 않는 한 그러한 나의 궁금증에 대한 답은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처음 대강 책을 훑으며 느꼈던 감정은 의외로 반갑지 않는 나의 반응이었다. “좋은 집안, 머리가 좋은 덕으로 선택된 선망의 대상으로 어려움과 고민 같은 것 별로 없이 유럽 유학 중, 좋아하는 등산을 하다가 조난사고로 운명”.. 비록 너무나 이른 인생의 비극적인 마감이지만 이러한 피상적인 이력서적인 눈에 쉽게 뜨이는 사실들 만으로는 정훈이 이야기가 왜 이렇게 ‘김수환 추기경의 서문’이 실릴 정도로 큰 화제나 영원히 남을 만한 책으로의 가치가 될까 하는 의문은 남는다. 물론 이 책을 계속 읽으며 이것은 나의 ‘너무나 성급한’, 생각임을 알게 된다.
¶ “산, 바람, 하느님 그리고 나.. “ 김정훈 유고집의 제목인데.. 과연 이것은 어떻게 나온 것일까? 이 궁금증은 19 쪽을 보면 간단한 설명이 나온다. 이 대목은 김정훈의 신학교 영적 지도 신부인 Stefan Hofer신부의 추모의 글에 있는데 그 신부님은 김정훈이 조난을 당한 사고 현장에 있었다고 했다.
우리는 별이 총총한 밤에 세르레스(Serles)에 등반하였던 적도 있었다. (중략) 베텔풀프(Bettel Wurf) 정상 정복자가 된 우리는 그 곳의 방명록에 우리들의 이름도 기록하였다. 베드로(김정훈)는 이름뿐만 아니라 한국 말로 무엇인가 썼다. 내가 무엇을 썼는지 그에게 묻자 그는 독일어로 그 밑에 주를 달았다.
“산, 바람, 하느님과 나, 김 베드로.”
이처럼 베드로는 단순한 산에의 낭만주의뿐만 아니라 그때 그때의 깊은 종교적 느낌 속에서 산을 찾고 만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회고’를 보며 생각한다. 정훈이는 진정으로 산을 사랑하고 등반을 했지만 단순히 산이 좋아서, 산이 그곳이 보이고 있어서라기 보다는 깊은 종교적 체험을 통한 등반을 더 사랑하였던 듯 싶다. 나도 대학시절 참 산을 많이 찾아 다녔지만.. 어떨까, 종교적인 체험을 하였던 기억이 거의 없음에 정훈이의 나이에 비해 ‘성숙한’ 인생체험은 더욱 돋보인다.
¶ 정훈이의 가족관계는 어떤가? 이것은 사실 기본적인 호기심이 아닐 수 없다. 비록 재동 동창생이지만 ‘공부를 잘 해서 경기중학교에 갔다’는 사실 이외는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재동학교 졸업 후 중학교 시절, 파고다공원 수영장에서 그가 아이(아마도 동생)를 데리고 가는 것을 보았던 기억.. 그것이 전부다. 그러니까 남자 동생은 있었을 듯 하다. 이 책에 가족에 관한 단편적인 이야기들이 간단히 이곳 저곳에 나오기에 한 눈에, 명확하게 알기는 힘이 들었다. 우선 자신이 묘사한 가정은 204쪽에 다음과 같이 나온다.
사직동 김판사네 가정도 한국에서는 신앙으로 가꾸어진 훌륭한 이상적인 가정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근래에 와서 일이 잘 풀려 나가지 않는 면들도 보인다. 아이들이 제 발로 걸을 수 있을 때까지, 자기가 사리를 스스로 옳게 판단할 수 있을 때까지는 부모가 이끌어 주어야 한다. 그들의 인생관과 신앙에 근거해서. 그런데 압도적으로 비중이 큰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만 손보기가 어려워져 버린 난맥상이 드러나고 있다. (중략) 곧 아버님 돌아가신 지 10년째가 된다. 벌써 그렇게. 강산이 정말로 크게 변했다. 아버지의 그 보화를 캐내어 나눠 줘야 할 큰 책임은 바로 나에게 있는 것이 이 순간 확연해진다. (1975년 3월 10일)
이 글은 1975년 3월 10일 일기에 나오는 것이다. 오스트리아 친구 클레멘스의 가정을 부러워하는 글 뒤에 나온 것이다. 그 친구의 가정이 부러운 이유 중에는 ‘아버지가 높은 지위에 있고 건강한 아이들, 높은 교육을 받은 것, 3남 2녀라는 것.. 이런 것과 더불어 잘 화합된 부모의 교육, 그것도 참된 신앙에 의한 것.. 이라는 사실. 아마도 김정훈의 가정도 이에 뒤지지 않았던 이상적인 가정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10년 전에 돌아가신 ‘김판사’ 아버님의 비중이 너무나 컸기에 가정은 ‘난맥상’이 드러났다는 판단이다. 그러니까.. 1965년 경에 아버님이 타계를 하셨으니까, 정훈이 경기고 3학년 때였을 것이다. 혹시 그런 충격이 정훈이에게 깊은 성소의 뜻을 남긴 것은 아니었을까? 사회적 지위가 높고, 신앙심이 깊고, 가정을 사랑하는 아버님을 가진 정훈이었다. 아버지 없이 자란 나로써는 부럽지 않을 수가 없다. 분명히 천주교 가정이었기에 자연스럽게 천주교인이었을 정훈이네 가정, 혹시 대대로 내려온 ‘박해 받았던 가문’은 아니었을까? ‘비중에 컸던 아버지’에 대한 회고는 이곳 저곳에 나온다.
나가이 다카시의 ‘만리무영’에서 여러 대목을 읽었는데 느끼는 점이 많다. 우선 그 글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차분하고, 원만하고, 노력을 기막히게 많이 한 신앙인인 것을 알게 해 준다. 내게 특히 좋게 여겨지는 것은 그 글의 분위기와 저자가 바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연상시키는 까닭이다. 무엇보다 진지하고 신념에 찬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도 그러하고, 어투며 그 상황까지 어쩌면 그렇게 흡사할까. 공감 가는 점이 정말 많다. 자식에 대한 배려, 아내 생각 등도 아버지 경우와 같다. 동시에 그 사람의 아들들은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부쩍 동하는데, 많은 사람이 우리 집안이나 나에게 대해 갖는 기대와 주시도 그런 종류일 것이다. 불쌍하신 아버지, 죽음을 앞두고 아내를, 자녀들을 그대로 놔두고 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무슨 생각에 젖으셨을까? 얼마나 우심 憂心 이 크셨을까? (1972년 6월 11일)
위의 일기에서, 아버지가 권해준 책을 읽으며 그 책의 저자가 아버지를 연상시키는 ‘좋은 점’들을 열거한다. 여기서 보아도 그 아버지는 정말로 존경 받을 만한 가장이었음이 짐작이 된다. 일찍 운명을 하신 아버지, 아마도 불치의 병으로 돌아가신 듯하다. 장남일 것 같은 정훈이, 이때부터 아마도 가장으로써의 기대를 받으며 성장하지 않았을까?
¶ 20대를 꽉 차게 살아오던 정훈이의 모습, 언행, 성품 등은 어땠을까? 이것은 친구들이 본 것이 아마도 제일 정확한 것이 아닐까? 일찍 타계한 친구를 보내며 친구 대표 ‘기헌’의 ‘조사’에 잘 묘사되어 있다.
너는 너의 가족들이 기도하며 바랐던 대로, 평소에 너를 아끼고 사랑했던 사람들과 친구들이 기대했던 대로, 너의 훌륭한 재능과 착하고 인간미 넘치는 성품이 더욱 닦아지고 완성되어 이 한국 교회를 위해서 많은 일을 했어야 하는데.. 이제 겨우 서른 해를 넘기고 가다니.. (중략)
너는 순진하고 단순하면서도 깊이가 있는 사람이었어. 너의 신심 생활의 진보는 언제나 앞서 있었고, 너의 정신적인 사고력은 언제나 예리하게 우리를 압도했었지.
책 읽기를 그렇게나 좋아하고, 깊은 명상과 기도의 생활을 너는 얼마나 사랑했었니? 그러면서도 네 마음은 언제나 뜨거운 인정이 넘치고 있었다. 친구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아낀 너였는지 우리는 잘 안다. 모든 친구들에게 한결같이 잘 해 주었어. 특히 괴로운 일을 당하고 있는 친구들에게는 어떻게 해서라도 도와 주고 싶어하던 너였지. 너의 특징인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두 눈을 껌벅거리던 너. 어떻게 해서라도 그 괴로움을 나누고 싶어 너는 애썼지. (중략) 그러기에 친구이면서도 우리는 너를 존경하였고, 우리를 대신해서 큰 일을 해 주리라 믿었다. (중략) 착하고 아름답게 산 너의 영혼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백 배의 보상을 틀림없이 천국에서 받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너와 영결하는 이 마지막 순간을 기쁘게 받아들이겠다. (1977년 6월 7일, 정훈이를 보내며.. 친구대표 기헌이가)
비록 고인을 기리는 조사이긴 하지만 이 글에서 정훈이의 이목구비, 면모, 표정, 성격 들이 직접 간접적으로 다 보인다. 나로써는 이것이 ‘성인’ 정훈이를 상상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친구들에게 그렇게 기대를 받았던 ‘장래가 촉망되던 큰 재목’ 이었다는 인상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
¶ 가톨릭 신부와 여성, 신부 지망생 그러니까 신학생이었던 김정훈은 어떤 여성관, 여성 경험을 가졌을까.. 20대 중반의 혈기왕성한 ‘멋진 남자’에게 여성과의 교제가 없다는 것은 사실 말이 안 된다. 나와 동갑(돼지띠) 이기에 1970년대 중반의 나를 생각하면 너무나 쉽게 상상이 가는 것이다. 다만 나의 background와 그 이외 많은 것들이 아마도 나와는 ‘하늘과 땅’ 같은 차이가 있었음을 생각한다.
우선 절대자 하느님, 예수님을 자연스레 알고 믿는 그, 완벽한 가정교육을 받고 자란 유복한 가정.. 등을 생각하면 정말 ‘자격을 갖춘 멋진 여성’이 그의 주변이 있었을 듯 하다. 다만 이 유고집에는 그에게 가장 중요한 여성, J 라는 여성만이 눈에 뜨인다. 과연 J란 여성은 누구일까? 거의 한 chapter “J와 인생” 이 J 라는 여성에 관한 일기인 것을 보면 ‘신부와 결혼’에 대한 그의 결심에서 가장 심각한 인물이었음 에는 틀림이 없다.
J에 대한 나이, 출신배경, 알게 된 경위 같은 것은 알 수가 없다. 다만 집 식구들에게는 알려진 사람, 공개된 데이트였음은 확실히 알 수 있다. 신부를 지망하는 신학생과 데이트를 하는 여성은 어떤 여성들일까? 결혼을 전제로 할 수가 없는 100% 순수한 지적인 만남이었을까? 계속되는 깊어지는 만남에 자신에게 제동을 거는 자신의 결심도 보인다.
J와의 문제에 단안을 내려야 하고, 내렸으면 확실하게 밀고 나가야 한다.
‘그래야 하는 까닭’
1. 실험적인 사귐은 있을 수 없다.
2. 그렇지 않으면 내 자신이 문제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타의에 의하게 됨.
3. 그녀를 위해서도 더 깊어지지 않는 것이 좋다. 실제로 나의 결론은 지어졌는데, 실행은 빠를수록 좋다.
4. 언젠가 끝에 가선 내가 당황하게 될 것이다.
이 문제는 내 햄, 내 의지만으로 될 수 없는 것이니 주님, 빛과 길을 주소서. 이럴 때 주님을 찾는다고 나무라지 마소서. 이럴 수밖에 없습니다.
이 일기에서 그는 ‘조직적’으로 차근차근하게 문제의 본질과 방향을 찾으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한다. 문제의 심각함과, 어려움을 알고 그는 결국 ‘절대자’의 힘을 기대하고 있다. 그 당시, 나의 모습을 여기에 비추며 돌아본다. 이런 문제에 있어서, 나는 절대로 혼자였다. 절대자가 절대로 나에게는 없었다. 혼자였던 나는 모든 것을 ‘나침반’이 없이 헤매며 허우적거린 세월들이었다. 나와 정훈이의 20대 중반은 이렇게 하늘과 땅만큼 멀리 있었던 것이다. 그는 한마디로 ‘은총을 일찍 받았던’ 영혼이었다.
곧바로 그는 J에게 쓴 ‘헤어짐의 편지’를 쓴다. ;7월 23일자 일기에 편지가 실려있다. 분명하지 않은 것이.. 이 편지는 일기인가 아니면 실제로 J에게 보내진 편지인가 하는 것이다. 이별의 편지, 참 balance와 courtesy, essence가 모두 있는 편지가 아닐까?
J씨 귀하,
이 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어차피 있어야 할 순간이고 또 그 때는 빠를수록 좋기 때문입니다. 이런 책이며 글 같은 것이 부질없는 것이고 오히려 없느니만 못한 것이라고도 생각됩니다만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역시 글로 써야 제 뜻을 그래도 명확히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동안 정말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 동안 받은 것에 대해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주로 받기만 하고 드린 것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제가 주는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줄 것을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기의 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설령 기존의 길이란 있는 것이 아니라 해도 자기가 뜻을 정하고 온 가능성을 모으고 있는 터에 이와 상치되는 사상 (事象)을 지닌다는 것은 일을 이루지 않겠노라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의 목표가 확실한데 이런 상태를 계속한다는 것은 저로써 더 이상 용납 못 할 일입니다. 그것은 제 자신과 J씨를 크게 속이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이 길면 길수록 쓰라림만 커질 것입니다. 여기서 해야 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항상 이것을 알면서도 갈팡질팡하며 생각을 모으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그리고 오늘을 기다린 거지요.
지금 이 글월을 쓰면서 저는 이 글의 의미가 엄청난 데 스스로 놀랍니다. 이는 우리의 사귐에 대한 결단일 뿐 아니라 저로서는 제 삶의 의미를 향해 다시 한 번 크게 내딛는 순간이기도 한 때문입니다. 이런 결정이 일방적이고, 제게 있어서는 쉬운 일이고 또 회피가 아니냐고 하지 마십시오. 또 이 일이 그런 점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하고, 단안을 반드시 필요로 하는 것이냐고 도 하지 마십시오. 제가 얼마나 힘들게 이 글을 쓰고 있는지 또 그런 만큼 얼마나 정확하게 그 의미를 파악하려 하고 있는지를 J씨라면 아실 것입니다. 우리는 일생에 몇 번은 결정을 내려야 할 때를 만나고, 또 한 번 내린 결정은 단호히 밀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J씨는 제게 너무도 과분하고 소중한 분이었습니다. ‘두 번 다시 그런 사람은 만나지 못한다.’ 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지금의 제 심정도 몹시 단호함으로 차 있습니다. 아니, 단호하려고 애써 노력하고 있습니다. 학교 주소도 아시고 또 9월에 학관에도 나가겠지만 제게 소식 주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언젠가 고등학교 때 학생회장이 말했다고 한 것처럼 저도 J씨가 그 근본을 향한 고귀하고 투철한 노력을 조금도 흩뜨리지 않고, 그 동안 얘기했던 모든 것을 이루실 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으며, 용맹스럽게 전진하시기를 진정으로 빕니다.
– 김정훈
이 책은 그 동안의 우정에 대한 저의 기념의 선물입니다. 기꺼이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이 작별편지를 보면, 그의 확고한 결심을 J에게 전하며 다시는 연락을 하지 말라는 부탁을 한다. 이 정도만 아주 단호한 결심이 아니었을까? 이런 것으로 보아서 J라는 여성은 ‘적극적’으로 정훈이를 만나는 사람으로 느껴지고, 아주 나이에 비해서 성숙할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9월에 학관에도 나간’다는 구절을 보아서 이들은 아마도 같은 ‘학관’에 다녔던 것은 아닐까? 학관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대강 그 당시에는 ‘학원’이라는 말을 썼는데.. 학관은 종류가 다른 것이었을까? 마지막 구절에 ‘근본을 향한 고귀하고 투철한 노력을 … 용맹스럽게 전진하시기를..’ 이것으로 J라는 여성도 무슨 뚜렷한 목표를 향한 ‘지식층’ 여성이었을 것 같은 느낌도 받는다.
이 ‘편지 일기’ 이후에도 그는 사실 J를 잊은 것이 아닌 것 같다. 계속 J를 만나며 그녀에 대한 글이 나오니까.. 아마도 서로가 ‘가벼운 마음’으로 ‘결혼의 가능성을 배제한’, ‘진정한 친구’로써 만난 것일지도 모른다. 다음 8월 21일의 일기는 J에 대한 끈질긴 미련과 자신의 필연적인 결심에 대한 분석이 나온다.
J를 본 지 열흘이 지났다. 지난 금요일과 월요일에도 만나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다 하면서도 보고 싶다.
그냥 당겨지는 이 마음은 무엇인가? 왠가? 누가 무엇이라 한다 해도 이런 마음은 참 순수한 것이다. 그리고 자연적 현상이다.
간단한 기록으로 끝나려 했는데 또 길어진다. 내심에 잠겨 있는 것이 들고 일어나는 까닭이다. 파헤쳐 본다는 것도 힘에 겨웁다. 문제는 결단만이 해결의 관건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또한 결단을 내렸으면 책임지고 수행해야 하고, 끝까지 충실해야 한다.
그런데 결혼도 포기하고, J와 같은 사람과의 사귐도 금기(禁忌)인 신부가 되려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신부행(神父行)을 결심한다는 것은 그만한 의미가 있어서일 터인데 과연 그런가? 어째서 내 단 하나뿐인 인생을 사제에다 걸었는가? 사제가 무엇인가? 그 본질을 분명히 보고 결단해야 하는 것이다. 오늘은 비교적 분명하게 문제점들이 드러난다.
내가 보는 신부에 대한 정의, 그 신원(身元)은? 고전적 정의로서는 내게 그 의미가 약하다.
위의 일기로 나는 그가 아직 신부가 되려는 결정을 하지 못한 것을 안다. 하지만 계속 내면적으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자연적으로 생리적으로 끌리는 사랑을 느끼는 이성, 그것도 20대 중반의 나이에.. 어찌 간단히 결단을 내릴 수가 있단 말인가? 이 과정에서 김정훈의 ‘결단의 힘’을 볼 수 있다. 한 인간인 여성에 대한 사랑, 관심, 끌림 등과 신부가 되려는 성소의식이 치열하게 싸우는 듯한 몇 개월로 1973년의 마지막을 보내는 김정훈, 드디어 무서운 결단을 내리며 편지를 쓴다. 신부가 된다는 확고한 결심이다.
J씨 귀하.
이 시각을 위해 사귐을 해 왔다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저는 초조하리만치 이 순간을 기다려 왔습니다. 뜻밖의 이 글월을 받고 놀라시리라 믿습니다만 끝까지 읽으시기 바랍니다. 이 글이 가능한 근거는 우리가 하느님을 지고(至高)로 모시고 있고, 그 동안 J씨나 저나 거짓 한 점 없이 서로 성실하였다는 사실 자체에 있습니다.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벌써 짐작을 하실지 모르나 정말 그렇습니다. 결단을 지금 내려야 합니다. 일찍이 저는 신부행(神父行)을 결단했습니다. 설령 각 사람에게 이미 정해진 길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해도 저의 그 선택에는 후회나 변함이 없습니다. J씨는 제게 너무나도 소중한 분이었습니다. 지난 번에 J씨가 말한 뜻대로 그 동안 우리는 분명 서로에게 성실하였습니다. 그러나 한계가 있다는 것 자체가 피치 못할 불성실의 시작입니다. 반드시 그렇습니다. 제가 J씨를 아끼는 그만큼 이 문제는 절실합니다. 이 문제는 누가 무어라 해도, 어떤 식으로 가설을 세운다 해도 사실입니다. 이 점을 항상 의식한 저는 두려워하면서도 이 시각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껏 회피하려 했으나 결단은 있어야 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빠를수록 좋을 것입니다. 비참하고 단호한 심정으로 이 글을 씁니다. 저는 이 글을 쓰기가 쉬웠고, J씨는 어렵다고 믿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의 만남, 사귐이 그렇게 순수했던 것처럼 이 시작도 서로에게 순수해야 하고, 전적인 동의로써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J씨는 J씨의 길을 힘차고 명랑하게 가십시오. 저도 제 길을 용기 있게 웃으면서 가렵니다. 이상이 제가 쓰고 싶은 전부입니다. 사실 J씨는 이 글의 진의(眞意)를 잘 알고 계십니다. 저의 집 전화번호도 알고 또 찾을 수도 있지만 저를 찾지 마십시오. 이별은 엄청난 사건이지만 한 순간에 이루어집니다. 저도 결코 J씨를 찾지 않겠습니다.
1973년 12월 26일 김정훈
정중하고 진심이 우러나오는 글이지만, ‘영원히’ 남녀로써 헤어져야 한다는 냉혹한 진실 또한 외면하지 않았다. 미련을 0%도 남기지 않고 그는 ‘결코 J씨를 찾지 않겠습니다.’라는 작별인사로 끝을 내는 그.. 얼마나 괴로웠을 결단이었을까? 그 나이에 나라면 ‘절대로 절대로’ 못하였을 것이고 그렇게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음 해 1974년 봄 무렵 유럽 유학을 떠나는 그는 아마도 그 때서야 J씨를 조금은 더 쉽게 잊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남녀관계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니까.. (Part 2로 계속 됨)
¶ Dona nobis pacem.. Grant us peace.. 요새 평일미사에서 더 자주 듣고 말하는 ‘멋진 라틴 말’.. ‘평화를 주소서’.. 왜 ‘이것’을 달라고 기도하는지 이해가 조금 간다.
Agnus Dei, qui tollis peccata mundi, miserere nobis.
Agnus Dei, qui tollis peccata mundi, miserere nobis.
Agnus Dei, qui tollis peccata mundi, dona nobis pacem
아뉴 데이, 퀴 톨리(스) 페카타 문디, 미세레레 노비(스).
아뉴 데이, 퀴 톨리(스) 페카타 문디, 미세레레 노비(스).
아뉴 데이, 퀴 톨리(스) 페카타 문디, 도나 노비스 파쳄.
Lamb of God, you take away the sins of the world, have mercy on us.
Lamb of God, you take away the sins of the world, have mercy on us.
Lamb of God, you take away the sins of the world, grant us peace.
천주의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천주의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천주의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 저희에게 평화를 주소서.
미국본당 Holy Family Catholic Church 주임 신부님이 교체되는 6월에 들어서 평일미사에 방문신부님들이 더 자주 오신다. 그 중에 ’40대’같이 보이는 ‘은퇴신부’님, Father Joseph, 나이에 비해서 너무나 젊고 패기가 만만해 보여서 왜 벌써 retire를 하셨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이분의 Mass를 ‘들으면’ 우리들도 같이 ‘뛰어야’ 할 정도로 모든 것이 빠르고, 미사가 끝나고 나가시면 거의 뛰다시피 (실제로 jogging하신다)나가신다.
이분이 오시면 영성체 전에 하는 ‘Agnus Dei, 천주의 어린양, Lamb of God..’을 꼭 라틴어로 하시는데, 솔직히 나는 이 라틴기도를 듣기는 했지만 따라 하기에는 자신이 없다. 오늘, 이제야 Wikipedia의 도움으로 ‘정확한’ 라틴어로 알게 되었다. 그 중에 Dona nobis pacem.. 평화를 주소서.. 란 말, 미사가 끝나가며 진정으로 마음 속으로 바라는 매일 ‘청원 기도’가 되었다.
신앙이란, 믿음이란, 종교란 것에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는 것인가.. ‘궁극적인, 흔들리지 않는 평화’를 원하는 것이 아닐까? 겉으로의 평온함, 잔잔한 기쁨과 차원이 다른 저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절대로 움직이지 않는 믿음에서 자연히 흘러나오는 ‘걱정을 없애주는’ 느낌.. 그것이 진정한 평화일 것이다. 그러니까, 세속적, 환경적, 물리적인 요건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 ‘요지부동 搖之不動’ 적인 안전한 느낌.. 그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가?
하지만 그것과 비슷하게 느껴지는 것들은 비교적 어렵지 않은가.. 근래에 가끔 느낀다. 아~ 이것이 바로 ‘신앙선배, 교부’들이 그렇게 말하는 peace is flowing like a river (강물처럼 흐르는 평화).. 가 아니었을까? 진정한 평화는 (죽기 전에는) 이 세상에서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비슷한 것은 어떤가?
지나가는 6월의 두 번째 주, 비록 ‘살갗이 타는듯한 바깥 일’ 로 육체적인 고통은 다른 때에 비해서 컸지만, 머리 속 깊은 곳의 평화는 절대로 놓치지 않으려 애를 썼다. 그러니까.. dona nobis pacem을 계속 기억하며 지낸 것이다. 아마도 그만큼 나는 peaceful했을 것이다. 비록 나의 얼굴과 언동은 주위에서 보기에 불쾌했을지 몰라도.. 짜증나기 시작하는 90+ 더위도 도움이 되지 않지만 그것도 하느님이 주신, 자연적 순리임을 잊지 않으면 되지 않겠는가?
Under $100 deckover renovation 2016
¶ Deck (Paint) surprise: 우리 집 손바닥만한 backyard (attached) deck, 무엇이 그렇게도 말썽이었던가? 언뜻 보기에, 일주일이면 ‘깨끗하게’ renovation을 할 것처럼 보였던 ‘손바닥’만한 것, 결국은 한 달이 걸렸다. 나는 결국 이번 job의 어려움을 너무나 underestimate한 잘못을 한 것이다. 반대로 overestimate했으면, 아마도 느긋하게, 여유를 부리며 ‘즐기며’ 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제일 크게 실수한 곳은 deck floor자체가 아니고 deck railing, step등의 ‘복잡한, 골머리 썩이는’ miter cutting job이었다. 그 동안 너무나 오랫동안 cutting tool들을 쓰지 않아서 더욱 힘이 들었다. 이런 것과 더불어 ‘더 이상 cash’를 쓰는 것을 자제하며 cash와 time을 trade하는 기분으로 한 것이 역시 칠순이 다가오는 육체에 무리를 주었을지도 모르며, 피곤한 기분은 아무래도 나의 평온 감에 타격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마지막 surprise가 있었다. 바로 painting, 전에는 ‘자연스러운 나무색깔’을 고집하며 waterproofing정도 했는데, 결과적으로 floor lumber가 rotting하는 고역을 치른 것을 잊지 않으며 이번에는 ‘진짜 paint’를 하기로 하고 $10 discount sale을 하는 Memorial holiday 에 Home Depot에서 Deckover® deck paint 2 gallon으로 paint를 해 보니.. 이것이 보통 때 보던 그런 paint가 아닌 special paint로 거의 ‘죽’ 같은 정도로 끈적거리는 그런 것, 그래야 floor traffic을 견딘다고 하니.. 이런 것을 나는 그 동안 모르고 지낸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이 paint는 2nd coating이 ‘필수’라고 하는 사실.. 그러니까 보통 paint의 2배가 드는 것이다. roller가 아닌 brush를 쓰는 것도 고역이었고, railing, steps등을 estimate에 뺀 것도 잘못이었고.. 역시 나는 weekend ‘amateur’ 였던 것이다. 2nd coating 은 고사하고 한번도 ‘겨우’ 덮을 수 있었던 마지막 작업은 참 기분이 씁쓸한 그런 것.. 즐기며 일하겠다는 결심에 도전하는 잡스러운 surprise들.. 결국 나는 슬기롭게 manage를 못했다. 이것도 이번에 배운 것, 언제나 surprise에 대비하며, worst case를 항상 염두에 두라는 진리, 바로 그것이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끝까지 나를 따라오며 유혹하던 Screwtape1을 당당히 물리치고 ‘하루 종일’을 Atlanta International Convention Center에서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보냈다. 그곳은, 이제는 완전히 classic이 된, 연례 Atlanta Eucharistic Congress (EC) 가 열린 곳이다.
8:30 AM general procession starts..
2011년부터 줄곧 ‘도장’을 찍었던 ‘초여름의 향연’, 아틀란타 성체대회, 작년에 나의 ‘게으름’으로 우리 둘 모두 참가를 못했었다. 못 갔던 이유는 있었지만 암만 생각해도 그것은 그럴듯한 유혹에 굴복 당한, ‘핑계’에 불과했던 것, 나 자신은 속일 수가 없다. 그것이 화근인가. 올해에도 그런 ‘약점’을 이용한 각가지 유혹들.. 요란하고, 간교하고, 그럴 듯한 핑계거리가 줄줄이 나를 괴롭혔고, 거의 그것은 성공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senior devil은 나의 어머니에게 굴복한 셈이 되었고, 그것이 나를 그렇게 행복하게, 뿌듯하게, 기쁘게 할 수가 없다.
작년에 나를 유혹했던 screwtape의 point는 “유명하고 멋지고, 잘나가는 speaker가 없는 것.. 무엇 때문에 하루 종일 고생을 하냐?” 정도가 될 듯하다. 너무나 나의 기대가 커서 생긴 유혹이었다. 그러니까 재탕을 방지하려면 그 expectation을 ‘하향 조정’하면 된다. 더 간단한 것은 아예 ‘기대도 하지 않으면’ 된다. 그런 무기로 올해의 유혹에 대비했지만, 역시 senior devil Screwtape은 경험이 많은 악마인가.. 다른 쪽을 공격을 한다. 성체대회가 열리는 날 이후에 나의 신경을 많이 쓰게 하는 schedule들이 몇 달 전부터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그것들이 나를 괴롭힌 것이다. 한마디로 가벼운 마음으로 성체대회에 참가할 기분이 안 나는 것이다. 그것을 교묘하게 이용해서 대회 전날 밤까지 나를 유혹했는데.. 이번에는 나도 조금 ‘조직적’으로 대비를 했는지, 굳세게 어머니의 손을 놓지 않았고 하루 종일을 일 만 여명의 신앙 동료 catholic들과 보낼 수 있었다.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banner procession
이번에는 순교자 성당 주임 이재욱 요한 신부님도 참가하셨다.
올해는 이제까지 우리의 format을 조금 바꾸어서 순교자 성당bus를 안 타고 우리 차로, 대신 아침 더 일찍 출발을 해서 비교적 쉽게 parking도 할 수 있었다. 필요할 때 우리의 돌아오는 시간을 바꿀 수 있는 것은 편하지만 bus를 타고 오고 가며 순교자 성당 교우들과 어울리는 기회가 없는 것은 아쉽기도 했다. 하지만 얘기를 들어보니 예상보다 적은 사람들이 bus를 탔다고 했고 김밥 점심을 같이 먹을 때 보니, 자기 차를 타고 온 사람들도 꽤 있었다. 비교적 일찍 도착했기에 우리는 ‘처음으로’ 대교구 소속 각 교회 공동체의 banner procession하는 것을 보았고 우리 순교자 성당 팀 banner group에는 주임 이재욱 요한 신부님과 같이 우리 부부도 낄 수도 있었다. 이것이 올해에 우리에게 신선한 경험으로 남게 되었다.
‘Yakuza’ Father Donald Calloway
올해 성체대회 Atlanta Eucharistic Congress 2016은 어떤 쪽으로 기억에 남을까.. 소위 말하는 superstar급 speaker는 없었지만 (2년 전처럼),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만한 신부님의 ‘인생역정’은 가히 올해 성체대회의 백미 白眉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그 surfer, rockstar같은 인상을 주는 젊은 신부님, Father Donald Calloway, MIC 란 분이다. Donald란 말만 들어도 신경이 곤두서는데.. 하필이면 Donald일까..
알고 보니 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이 신부님의 ‘개인 신앙 여정’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정말 처음 알게 된 분이다. 아직도 신부가 되기 전의 ‘말 습관’들이 뚜렷이 남아있었기에 그의 ‘간증’은 더욱 더 믿게 되는 그런 것이었다. 바람직하지 못한 가정환경으로 완전히 ‘패륜, 반항’ 적으로 자랐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그는 ‘근본적으로’ 아주 smart한 영혼이었음을 안다. 인상적인 것이.. 잠깐 일본에서 ‘전통적인 일본 조폭’ 야쿠자 생활을 했었다는 사실.. 물론 ‘백인 야쿠자’이었지만.. 각종 비행으로 ‘시설을 들락날락’ 했던 그에게 큰 변화는 부모가 ‘갑자기’ (그의 말에 의하면 하루 아침에) ‘매일 미사 가톨릭 신자’가 된 이후였다. 물론 그가 그런 사실을 세상에서 제일 경멸하던 것으로 생각했지만.. 결과는 그것이 아니었다.
그가 ‘서서히’ 변화하는 과정 중에는 ‘성모님’의 역할이 중심적인 것인데 그에게는 거의 기적과 같은 ‘만남’이었다고.. 그는 그렇게 포근한 성모님의 이끄심으로 기적 같은 변화를 체험하게 되고 결국은 신학공부로 시작을 해서 사제로까지 변한다. 이것으로 그는 ‘머리가 좋은 불량소년’이었음을 알게 된다. 공부하는 것에는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끝에는 그 유명한 Mariology의 세계 권위인 University of Dayton에서 ‘성모신심학’ 학위까지 받고 그의 체험, 경험을 토대로 ‘묵주기도의 기적’에 관한 책을 간행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그의 말에 의하면 성모신심의 대부 代父 인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 마리아‘에 버금가는 것이라고 장담을 한다.
어떻게 이런 ‘기적’이 일어났을까? 물론 거대한 보이지 않는 손과 힘이 뒤에서 작용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 제일 큰 역할은 역시 그의 어머니의 기도였다. 그는 자기 어머니를 성 모니카 (St. Monica, 성 어거스틴 St. Augustine, 아오스딩의 어머니)에 비유를 한다. 뒤에서 끊임없이 기도를 하신 것이다. 한때 마약과 rock music에 심취, 찌들어 자살이 다음이라고 장담한 그가 어떻게 Marian Fathers of Immaculate Conception (MIC) 신부님이 되었을까.. 이런 것이 바로 기적이 아닐까? 그는 과연 제 2의 몽포르의 루도비코 마리아를 꿈꾸고 있을까? 자신의 ‘기적 같은’ 개인 체험이 그런 꿈을 가능하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다른 speaker 들도 나름대로 독특한 style과 주제로 힘을 썼지만 Fr. Calloway의 ‘체험에 저린 웃음’과는 비교를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 분의 차례를 제일 마지막에 넣었을까? 비교적 지루하고 졸린 오후 였으니까.. 그 분의 책과 성지순례 안내서는 날개 돋치듯 없어졌고 나는 집에 와서 그 신부님을 더 알아보려는 googling을 기대하고 있다. 그래도 인상에 남는 사람은 power country singer Collin Raye와 함께 출연한 Andrea Thomas라는 젊은 여성, 가창력이 정말로 뛰어났고, 흡사 오랜 전의 Celine Dion같은 느낌을 주었다. Collin Raye의 독특한 power country는 물론 좋긴 하지만 나는 솔직히 말해서 크게 호감은 안 간다. 그의 style은 country와 Italian Tenor를 합친 것 같은 그런 것인데, 성체대회의 분위기에는 어떨까?
우리는 ‘전통적’으로 closing ‘vigil’ mass를 하고 오기에 올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 많은 UN총회를 방불케 하는 각양각색의 교우들과 ‘장엄 미사’를 하는 것 독특한 체험이 되기 때문이다. 집전 대주교님의 우렁찬 목소리도 좋고, 각종 언어로 행하는 ‘지향기도’도 색다르다. 하지만 몇 번이고 경험하는 것.. ‘한국어 기도’다. 기도하는 ‘자매님’들.. 기도 끝에 ‘we pray to the lord.’ 를 싹둑 빼버리고 하단을 하니.. 그 말이 나와야 끝난 줄 알고, ‘Lord, hear our prayer‘ 를 하려고 준비했던 모두들 그저 어리둥절.. 당황을 하니.. 이것이 누구의 실수인가, 잘못인가.. 왜 꼭 한국 자매님들만 그런 것인가? 한 때는 어떤 수녀님까지 그런 실수를 해서.. 뒤에서 coach하는 staff들, 한국 자매님들을 조심하라고 경고하고 싶은 마음까지 들 정도다.
Convention center의 엄청난 내부 시설과 크기에 버금가는 수많은 사람들, UN 총회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참 이곳에 각종 인종, 나라에서 온 사람들 많기도 하다. 하지만 뚜렷한 것은 역시 Hispanic의 막강한 power다. 물론 수 數적인 것이지만 그들은 모두 family 단위로 참가를 해서 더욱 인상적이다. 그에 못지 않게 Vietnamese power는 더욱 놀랍기만 하다. 한국 community에 비해 이민역사가 그렇게 길지도 않건만 특히 가톨릭 power는 인상적으로 크게 성장을 해서 벌써 커다란 성당이 2개일 뿐 아니라 성소자들도 속출, 신부, 사제, 수도자, 수녀들이 거의 없는 우리들에 비해 그들은 우리들 보다 훨씬 많다. 대교구가 그것을 모를까.. 그들을 위한 따로 program을 마련하고 그들만이 옆에 있는 건물에서 따로 모인다. 물론 closing mass에는 함께 하지만. 왜 월남과 우리는 그렇게 차이가 난 것일까?
이 closing mass에서는 다음 해 성체대회의 주제가 발표된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어서, video를 통해서 보여졌는데, 내년 주제 성경구절은 조금은 생소한 것: “As for me and my HOUSE We will serve the Lord” (Joshua 24:15) 구약, 여호수아기 24장 15절에서 나온 것이다. 2005년 ‘가톨릭 공용 성경’ 에 의하면 “나와 내 집안은 주님을 섬기겠다.” 인데 문맥을 보면: “전에 살던 이집트의 신을 버리고, 만일 주님을 섬기는 것이 눈에 거슬리면 오늘 누구를 섬길 것인지 선택을 하라” 라는 것에 대한 대답으로 나온 말이다. 한 분이신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우리의 하느님이라는 뜻 같다. 이렇게 2016년 성체대회가 막을 내리고 우리는 traffic 이 비교적 한산한 I-285 North를 질주, ‘유혹을 물리친’ 멋진 결과를 만끽하며 긴 하루의 피로를 푼다.
¶ 5월 13일.. 2016년 5월 13일 Friday.. 아하 ‘또’ Friday the 13th 인가.. 하였지만 곧 바로 생각이 바뀌었다. 금요일 13일은 맞았지만 문제는 5월 13일이라는 사실이 더 중요한 것이다. 맞다 바로 Fatima.. Fatima.. Portugal, 1917년 5월 13일인 것이다. ‘묵주의 성모님’으로 일컬어지는 파티마 성모님 정확히 99년 전 5월 13일에 3명의 어린이들에게 발현하셨다. 그리고 확고한 역사로도 자리를 잡았다. 당시 Lisbon의 유력 정부기관지였던 the Seculo에 보도가 되었을 정도로 큰 ‘사건’에 속했다.
기록(그러니까 역사)에 근거한 영화나 책들이 많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흥행성’을 의식한 영화들은 너무나 ‘색깔’들이 끼어있다. 근래에 발견한 ‘고서’ 중에 The True Story of Fatima 가 있는데 이 책은 주로 목격자 중 제일 오래 생존했던 Lucia수녀님의 증언에 의한 것이고 발현 당시 다른 일반인들의 증언에 의한 교회의 치밀한 발현승인 과정을 거친 것이라 거의 정확한 역사서라고도 볼 수 있다.
너무나 잘 알려진 역사적인 발현이었지만 거의 10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떠한 의미를 주는 것일까? 발현 성모님의 모든 예언들이 역사적으로 다 실현이 된 것을 보면 ‘등골이 써늘해 짐’을 느낄 때도 있다. 일관되게 비교적 간단한 요구사항을 요구하시는 성모님의 message들, 과연 쉽게 간단하게 생각할 수 있을까, 그 message 의 중심에서 초 현대의 세속세계는 내가 보아도 ‘너무나 너무나’ 멀어져 있고 무섭게 멀어져 간다.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그래도 성모님은 희망의 상징이다. 희망은 원하면 언제나 자비와 함께 우리가 받는 하느님의 선물이 아닌가?
¶ 마리에타 2구역 점심봉사: 바로 며칠 전에 있었던 구역미사에 이어서 곧바로 구역이 담당하는 ‘의무적’인 순교자 천주교회 본당 점심봉사 날이 다가왔다. 이것이 주는 stress로 구역장을 못하겠다는 의견도 많이 있을 정도로 사실 이것은 큰 일이다. 200여 개 이상의 serving을 예상하는 것으로 음식을 준비한다는 것, 한마디로 장난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오랜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어서 각가지 knowhow가 축적이 되었을 것이고 어느 정도 ‘공식’같은 것도 있음 직하다.
우리는 advanced age라는 이유로 봉사의 의무에서 excuse가 되고 있었지만(우리가 희망하기에), 이번에는 조금 사태가 다르게 되었다. 구역이 둘로 나뉘고 우리가 속한 ‘반’은 숫자가 그렇게 많지도 않고 특히 형제님의 숫자가 안심할 정도가 못되어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무조건’ 이번에는 봉사하기로 하고 준비하는 날, 점심 봉사하는 날 full-time으로 일을 하였다. 솔직히, 기분 좋게 일을 해서 그런지 일은 비록 많았지만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그 동안 못 했던 미안한 심정도 어느 정도 위안을 받게 되고,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하지만 ‘호사다마 好事多魔’라고 하던가.. 모든 것이 끝나고 하얀풍차에 몇 명이 모여서 뒷풀이하는 과정에서 뜻밖의, 즐겁지 않은 뉴스, persona-non-grata 를 접하면서 조금은 흥이 깨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이었고 main event자체는 비교적 성공적으로 끝이 나서, 이틀간의 service는 우리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 감사합니다, 예수님! 메주고리예: 매달 2일에 메주고리예에서 visionary Mirjana에게 ‘공개적으로 publicly’ 발현하시는 성모님, 이제는 게으르지만 않으면 Youtube를 통해서 주로 Italian pilgrim들과 함께하는 group이 찍은 video를 볼 수 있게 되었다. 5월 달은 초부터 무언가 바빠서 깜빡 하고 이것을 check하는 것을 잊었다. 이제야 보니.. 무언가 귀에 익은 노래가 들렸다. 바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예수님!’ 하는 우리말 노래가 아니었던가. 비록 영어 accent가 섞였지만 아주 정확한 우리말 노래, 그것도 통역을 전담하는 형제가 유창하게도 불렀다. 어떻게 이렇게 우리말 노래가 불려지도록 주선이 되었을까? 추측에 대한민국도 ‘메주고리예 신심’이 상당해서 이곳 메주고리예에서도 인정을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완전한 나의 상상, 추측에 불과하지만.. 가능성은 상당히 높을 듯하다.
성모님 발현 – 메주고리예 2016년 5월 2일
¶ The Seekers:I’ll Never Find Another You 1967, 우연히 우연히 이 노래 video를 보게 되었다. 요새 비교적 잊고 살았단 나의 지난날의 추억이 나를 아득~하게 만든다. 나에게도 그런 꿈같던 시절이 있었지.. 하는 조금은 만족스럽고 자랑스러운 나만의 추억들.. 추억의 얼굴들.. 이런 것들이 다 그 당시에 유행했던 것, 특히 ‘유행가’와 연관이 되어서, 뇌세포 깊숙한 곳에서 꺼떡없이 안전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옛 유행가를 그렇게 아직도 좋아하나 보다.
오늘 본 것은 Australian vocal group, The Seekers의 경쾌한 country style ballad ‘I’ll Never Find Another You‘. 가사야 큰 의미가 없지만 이 노래의 lead singer의 목소리가 이 노래의 tone과 style을 그렇게 classic으로 만들었나 보다. Judith Durham, 바로 이 그룹의 간판 격 ‘청순한 tone’.. 몇 년 뒤에 미국의 The Carpenters의 Karen Carpenter 가 바로 이런 독특한 음성의 소유자였고 역시 그녀의 모든 노래들, 주옥같이 역사에 남는다.
이 모두 1960년대 말 경이었다. 그 시절, 그 시절, 어떻게 time travel을 꿈 속에서라도 할 수 있을까? The Seekers의 경우, 그 lead singer, Judith Durham의 얼굴과 자태가 내가 한때 ‘좋아했던’ 어떤 아가씨와 그렇게 닮았다. 키도 그렇고, 얼굴도 그렇고, 옷도 그렇고.. 그 때의 그 노래가 그래서 그렇게 그리운가 보다.
지난 4월 17일, 폴란드 Poland 에서 2년 전에 발생한 성체기적 Eucharistic Miracle 이 공식적인 교회(현지 교구, bishop Zbigniew Kiernikowski 주교) 의 승인을 받았다는 뉴스가 catholic blogger, Philip Koloski 의 보도로 알려지게 되었다. 내가 이 소식을 접한 것은 National Catholic Register newsletter 를 통해서였고, 따라서 그것의 source인 website를 통해서 뉴스의 전부를 읽게 된 것이다.
이 성체기적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이 비교적 간단히 보도되었다.
2년 전, Poland의 Legnica 교구 본당에서의 일이다. 성체 분배과정에서 축성된 성체가 실수로 바닥에 떨어졌고, 곧바로 다시 집어 올려서 물이 들어있는 그릇에 다시 담겨졌다. 곧바로 성체에서 빨간 흔적들이 나타났다. 법의학 전문가들이 이 성체를 과학적으로 분석을 하니: 그 성체 부스러기 fragments 들은 사람 심장 근육의 조직과 비슷한 것 cross striated muscle로 판명이 되었다. 이 분석은 또한 이 조직, 조각은 사람, 인간의 것이고, 아주 고통을 느낀 그런 것이었다.
Philip Koloski의 성체기적에 대한 논평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번의 ‘기적’이 예전의 것과 다른 것은 예전 것들 (예를 들면 Miracle of Lanciano)은 성체가 축성이 되는 과정에서 피로 변하거나, 축성을 하는 신부사제의 믿음이 부족할 때 변하는 것 들이었다. 이번의 case는 성체가 바닥으로 떨어졌을 때 생긴 것이니.. 이것은 ‘취급 부주의’에 의한 것이다. 이번의 기적은 우리가 성체를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 정말로 성체가 예수님의 몸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하며, 그에 맞게 조심해서 모셔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교훈이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성체가 예수님의 ‘고통 받았던 몸’이라는 사실을 잊거나 과소평가하는 것에 의한 예수님의 message는 아니었을까?
나는 이 news를 접하며 또 생각하게 된다. 물론 ‘교리적’으로 분명히 성체는 성체, 그러니까 예수님의 몸과 피라는 것을 안다. 최소한 머리로는 배웠고 인정하고 믿고 안다. 하지만 가슴으로는 자신이 없는 것이다. 고해성사와 더불어 이 가톨릭 전통 교리는 나를 항상 더 고민하게 하고 더 생각하게 한다. 영성체를 할 때마다 겪는 고민과 갈등을 나는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주 가끔 집중적인 묵상을 하며 준비한 영성체에는 어렴풋이 강한 느낌이 온다. 그것이 바로 믿음의 은총인가? 일단 믿는다고 ‘선택’을 한 이상 믿고 싶고, 일단 믿음의 문지방을 넘으니 이런 ‘성체기적’을 믿고 싶고 믿는 것이다. 그것이 근래에 나에게는 작은 기적이다.
¶ Divine Mercy.. 하느님의 자비.. 작년 말 교황 프란치스코 Pope Francis께서 자비의 희년, Divine Mercy Jubilee year를 선포한 이후 ‘하느님의 자비’라는 말을 참 많이 듣게 되었고, 급기야는 ‘자비의 주일’이 내일로 다가왔다. 사실 자비의 주일 Divine Mercy Sunday는 전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 St. John Paul II께서 2000년 부활절에 ‘공식적’으로 선포하신 것이다. 이것은 그 당시 폴란드 출신으로 성인 품에 오른 성녀 파우스티나 께서 생전 1930년대 에 개인적으로 발현하신 예수에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
주위의 의심과 질시를 견딘 그녀가 남긴 일기 ‘자비는 나의 사명’에 그 예수발현과 하느님의 자비에 관한 이야기가 자세히 나오지만 그녀 생전에 교회의 인정을 받지 못하였다. 하지만 진실은 언제고 살아 남는가.. 그녀의 ‘동족’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끈질긴 노력으로 모든 것이 공식적으로 인정이 되었고 세월이 갈 수록 이 ‘자비의 신심’ 열기는 높아만 가고 있고 현 교황은 급기야 ‘자비의 해’까지 선포를 한 것이다.
오늘 Vatican YouTube를 보니 자비주일의 ‘전야’라고 할 수 있는 성대한 기도집회가 베드로 광장에서 열리는 것을 본다. 엄청난 군중이 그곳에서 성녀 파우스티나를 기리며 기도를 하고 있었다. 생각을 한다. 하느님의 자비란 것은 무엇일까? 예수님..하면 ‘사랑’이란 말이 먼저 떠오르고, 그것에 비한 것일까.. 하느님은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낸 자비심을 보여주신 것일까? ‘자비는 나의 사명’이란 성녀 파우스티나의 일기를 보면 하느님의 자비는 원하기만 하면 주신다고 한다. 이것도 은총의 하나일까, 아니면 그것보다 훨씬 더 높은 것일까? 그러면 예수님 부활이란 것도 어떻게 보면 하느님의 자비의 극치일 것이라는 짐작을 하게 된다. 구약시대, 유다인들에게 그렇게 무섭던 하느님이 어떻게 예수시대에 와서 자비의 하느님으로 변하셨을까..
¶ 오늘 아침에 벼르고 벼르던 shopping을 ‘혼자서’ 하였다. 오랜 동안 Internet으로 shopping을 했던 tool retailer, Harbor Freight Tools, 몇 년 전에 서서히 이곳에 하나 둘씩 retail store가 생기더니 요새는 엄청난 기세로 이곳 저곳에 생기고 있는 ridiculously ‘low’ price tool retailer, 이곳은 사실 나를 ‘살려준’ 곳이다. 이곳이 없었으면 나는 pro들이 쓰는 tool들 하나도 못 샀을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짐작에.. 어떤 Asian immigrant가 Chinese source와 ‘결탁’해서 직수입한 junk tool들을 파는 곳으로 생각했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물론 99.9999% Made in China는 분명히 맞지만, 우려한 대로 직수입해서 그대로 파는 방식이 아니고 이곳에 따로 Quality control 을 책임지는 lab을 만들어서 나름대로 품질을 보증하고 있는 것이다. Owner도 white 미국인이지만, Home Depot와 같은 전통적인 방식이 아닌 ‘싼 것이 좋은 것‘이란 철학으로 밀어 부치는 경영철학.. 싸지만 그런대로 쓸 만한 것.. good enough.. 철학이다. 사실 Home Depot에가서 쓸만한 tool들을 보면 눈이 나올 정도로 비싸기만 한다. 전통적인 미제 품질을 고수하기에 그럴 것이다.
문제는 그런 것들.. pro들 에게 좋지만 weekend handyman같은 사람에게는 overkill인 것이 태반이다. 그러니까.. 나와 같은 weekender 나 조금 돈이 없는 pro들을 겨냥한 것이다. 얼마 전에 드디어 고장인 난 (바람이 새는) 4-galllon air compressor를 대신한 것을 찾던 차에 오늘 가서 직접 만져 보기도 하니 참 감개무량하기도 했다. Internet으로 order하면 그럴 수가 없지 않은가? 이곳의 위치가 사실은 편한 곳이 아닌 north Cobb, Kennesaw 라서 조금은 불편하지만 오늘 가서 본 인상이 괜찮아서 급하고 덩치가 큰 것들은 이곳에 와서 ‘만져보고’ 살 생각도 했다.
40일의 사순절 내내 잠재적으로 머리에 그려지던 광경, 성 목요일 최후만찬, 세족례, 뒤에 어두운 대성전에 앉아 새벽 1시나 2시까지 수난감실 성체조배 시간을 기다리던 나의 모습, 아니 우리의 모습들.. 어김없이 그 시간은 다시 우리를 찾아왔고 지나가고 있다. 그리고 Good Friday의 답답하게 쩨쩨할 만큼 조금의 비를 뿌린 대기는 답답한 느낌만 주며 다시 ‘더운’느낌을 예고하는 내가 싫어하는 시간을 예고한다.
지난 2년간의 이 성삼일은 너무나 fresh하고 holy한 느낌을 주었기에 올해는 은근히 기대를 너무나 하였는지.. 역시 expectation game에 내가 눌리고 지고 있는 느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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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은, 성금요일 아침, 이날 새벽 1시~2시의 수난감실성체조배를 ‘무사히’ 마치고 조금은 피곤한 몸으로 늦은 잠을 자고 ‘제시간’에 일어나서 쓴 모양이다. 성금요일, 토요일 그리고 부활절 미사를 예상하며 쓴 글이었지만 끝맺음이 없었다. 올해는 이렇게 조금은 무언가 끝맺음에서 문제가 있는 모양인가?
이제 성삼일도 일주일이나 훨씬 지나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3월도 지나고 4월이 넘어가고, 내일은 4월 3일 Divine Mercy Sunday까지 코 앞에 다가왔다. 어쩌면.. 어쩌면.. 나는 놀라고 놀라고 놀란다.. 이렇게 세월이 빠를 수가 있단 말인가? 68 마일의 시간 흐름인가.. 아니면 요새 나의 생활 style이 그렇게 느끼게 만들고 있는 것인가? 아닐 것이다.. 나 정도의 인생을 살았으면 ‘모두’ 그렇게 느낄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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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성삼일.. 크게 기대는 안 했지만 그렇다고 아주 기대감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근래 사순절은 거의 매년 나에게 무언가 선물을 주었기 때문이고.. 그만큼 나도 노력을 안 한 것도 아니다. 오늘 식사를 같이 하면서 연숙이 한 말을 다시 음미한다. 나의 요새 모습이 오래 전에는 정말 기대할 수가 없이 살았다고.. 절망적인 나의 모습을 보며 사실 큰 기대를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 말을 들으면 물론 기분이 좋아짐은 사실이지만.. 그것보다 도 이런 나의 현재 모습을 나의 지난 자신이 자꾸 보며 놀라는 것을 나는 그림으로 그릴 수가 있다는 사실이 더욱 재미있다. 어떻게 이렇게 내가 변할 수가 있었을까? 놀랍다. 놀랍다.
올해의 성삼일은 사실 성공작은 아니었다. 문제가 있었다. 부활 성야미사 토요일 것..에서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무엇이 나를 ‘미치게 화나게’ 만들었나? 우선 답답하고 숨막힐 듯 더운 공기, 성전이 그렇게 느껴져서 나는 괴롭기만 했다. 그렇게 오랜 미사는 은근히 예상은 했지만.. 나는 우선 답답했고.. 하지만 그것이 직접적인 것은 아니었다. ‘이 요셉’이라는 남자.. 이렇게 표현하는 나를 용서하기를.. 아니 그 인간은 나와 무슨 연고가 있는지.. 참.. 보게 된 세월도 꽤 오래 되었지만 어쩌면 그 ‘인상’은 그렇게 나를 차갑게 만드는 것일까? 좋게 생각하려 무던히 애를 쓰기도 했지만 그 ‘묘하게 차가운’ 느낌의 얼굴과 행동을 나는 넘어갈 수가 없었다. 그날 미사 전에 만났을 때의 무표정하고, 차갑게 느껴지는 얼굴표정은 아직도 나를 분노하게 만든다. 오래 오래 전.. 나를 싫어하고 무시하는 듯한 ‘꼰대’들의 모습을 나는 다시 떠올린다.
그렇게 시작된 부활성야미사를 나는 완전히 망친 것처럼 느껴졌다. 옆을 보니.. S 형제의 딸.. Mary .. 이미 나의 가슴은 닫히고.. 그 애의 무표정한 모습이 나를 다시 불쾌하게 만든다. 이런 식으로 나는 그날 밤 ‘작은 악마’에게 시달린 꼴이 되었고.. 다음 날 아침 나는 ‘근세사 처음’으로 부활절 미사를 빠지게 되었다. 반항적인 자세로 미사를 빼먹은 것이 끝내 나를 슬프게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성모님.. 저를 용서해 주세요…
보나 자매님과의 ‘생각하기 싫었던’ 작별시간은 시계처럼 어김없이 왔고 사랑하던 가족, 열심히 보살피던 레지오 도우미 자매님들과 아쉬운 이별을 해야만 했던 연도, 장례미사, 운구, 장지동행 등이 모두 큰 차질 없이 끝났다. 허탈감, 피로감, 아쉬움, 슬픔 등이 뒤섞였던 며칠이 오늘로 다 막을 내렸다. 끈질긴 기도와 몇 개월에 걸친 레지오 ‘도우미’ 자매님들의 정성스런 방문도, 끊임없는 카톡의 chatter도 오늘로 다 끝이 났다. 또 한 명의 영혼이 저 세상, 하느님의 영역 domain 으로 간 것이다.
언제였나.. 약 1년 반 전 한참 찌듯이 덥던 한여름이었나.. 그 보나 자매님을 처음 만났던 것이.. 하 미카엘 본당신부님과 연숙이 보나 자매님 댁 병자성사 주러 처음 방문했었고 그 때부터 우리 둘의 비 非 규칙적인 봉성체 방문이 시작되었다. 병자같이 않게 항상 재잘거리고 명랑하고 지나치게 순진하게만 보이는 ‘젊은’ 자매님이었다. 그 나이에 어떻게 그런 ‘치명적’인 두 가지 병고를 10년도 훨씬 넘게 짊어지고 살았는지 솔직히 상상하기가 힘이 들 정도였다. 본인은 물론이지만 가족들의 견디기 어렵게만 보이는 간병 노고도 너무나 안타깝게만 느껴지는 그런 상황, 운명이라고 하기에는 어떨까? 자매의 남동생까지 몇 년 전에 병으로 타계를 했다고 들어서 할 말을 잃을 정도였다. 굳건한 믿음을 가진 어머님이 계시지만 가까이 살지를 못해서 그저 전화만 하시는 정도였다. 그러니까 모든 간병은 남편 형제님과 남매 자녀가 운명처럼 여기며 하고 있는 것이었다. 욥기가 생각이 날 정도로.. 왜 이 영혼들에게 이런 고통이 왔을까..
이 요한 본당신부님의 push로 레지오에게 정기 환자 방문 ‘도우미’ group이 3개월 전에 구성된 이후 운명하던 날까지 매주일 2~3회 ‘도우미 자매님’들이 정기적으로 방문, 말동무와 간단한 식사 등을 보살펴 주었다. 금전적인 도움이 금지된 레지오의 봉사는 아무래도 ‘신앙대화’, 그러니까 영혼을 간호하며 돌보는 일인데, 그것이 좀처럼 쉽지 않았다. 이 자매님.. 절대로 죽음을 정면으로 대하지를 못했다. 그러니까.. 끝까지 마지막 순간까지.. 죽음에 대한 언급이나, 대화를 못했던 것이다. 조금은 예외적인 case라고도 생각이 되었지만, 생각을 해 보니.. 왜 안 그렇겠는가? 쉰 살도 안 된 나이에 쉽게 죽음을 대할 용기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가급적 ‘저 세상, 하느님의 세상’에 대한 대화를 하려 했지만 그런 approach가 쉽지 않다는 것을 배운 기회가 되기도 했다.
거의 단장 급의 간부 자매님들로 구성된 팀이었지만 모두 다른 인생, 다른 기술, 다른 성격을 가진 관계로 항상 매끄러운 teamwork은 기대하기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결과적으로 참 ‘멋진 노력’을 했다고 나는 보았다. 운명 시에 신부님도 재빨리 모셔와서 보나 자매님 정식으로 사제의 전대사를 받으며 평화스럽게 임종을 했다 (우리는 traffic jam에 길이 막혀서 2시간 뒤에나 도착을 하였지만.) 관심을 많이 쏟으신 관계로 신부님의 ‘다정스런’ 장례미사도 잘 끝날 수 있었다.
오랜 기간을 예상할 수 없는 중병이었지만.. 그래도 언제나 느끼는 것..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 놀라움.. 암만 짐작을 해도 누가 운명의 정확한 순간을 알 수 있겠는가? 하느님만이 아신다고 하니까.. 조금이라도 더 살고 싶은 표정으로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았던 그 노력은 참 눈물이 나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 그 형언할 수 없는 고통에서 벗어나고 주위의 가족들도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는 안도감도 어쩔 수 없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하지만 그 동안 정이 들었던 자매님.. 숨겨놓은 눈물을 더 이상 감출 용기가 나지를 않았다. 자매님의 영혼, 평화로이 받아주소서..
(Extraordinary) Jubilee of Mercy, (특별)자비의 희년 喜年 2016년 (2015년 12월 8일 부터 2016년 11월 20일까지) .. 작년 말에 교황 프란치스코 Pope Francis 께서 발표했던 것, 올 들어 가톨릭 교회와 신자들의 ‘화두 話頭 talking point’ 가 되었다. 처음에 이 ‘뉴스’에 접했을 때 나는 그저 덤덤하기만 했다. 그렇게 관심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자비의 희년이 도대체 무슨 뜻인가, 그것이 어떠한 의미가 있고 나와는 어떤 상관이 있는 것일까?
솔직히.. 몇 년 동안 ‘혼신을 다해서’ 나는 ‘한때 거의 버렸던’ 가톨릭 믿음을 찾아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고 이제는 자신까지 얻었다고 조심스런 안심까지 했지만, ‘이런 생소한 말’들에 접하며 다시 ‘나는 역시 아직도 무식하구나1‘ 하는 탄식이 저절로 나옴을 느낀다.
어디선가 들어보았는지 확실치 않은 이런 ‘희년’이란 말도 그렇고 게다가 ‘자비의 희년’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거기다 ‘전대사 全大赦 indulgence’를 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모두 들어보았던 단어들이지만 확실한, 자세한 의미는 사실 나는 하나도 모르고 있었다. 언젠가 어떤 글, 사진에서 고 김수환추기경 사진의 설명에, ‘2000년, 대희년 great jubilee 의 추기경’이란 말을 기억한다. 이 ‘대희년’이란 또 무슨 말인가? ‘큰 희년’이란 말인데..
이러한 나의 ‘교리, 전승, 가톨릭 신심 문화에 무식한 배경’ 속에서 올해 ‘진짜’ 희년의 소식을 코 앞에서 접한 것이다. 어쩔 것인가? 예전처럼.. 속으로 ‘아~ 그렇구나..이런 것이 있었구나~’ 정도로 끝날 것인가.. 아니면 ‘이것들이 무엇인가, 더 늦기 전에 한번 알고나 죽자’하고 ‘무조건’ 덤빌 것인가? 결과적으로 근래2 나의 mottos가 된 ‘It’s now or never, don’t think twice, don’t look back‘를 다시 한번 발동해서 나는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알아보는 (study) 노력을 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었고, 그 노력의 백미 白眉 는 3월 14일, 화창하고 써늘했던 조용한 월요일 우리 “자비의 모후” 레지오 단원님들(2쌍 부부 포함)과 함께 방문했던 아틀란타 교외 Conyers에 있는 Holy Spirit Monastery ‘자비의 문 doors of mercy‘ 통과에서 이루어졌다.
Conyers 수도원 ‘자비의 문’
이번 우리들의 ‘Conyers trip 쾌거’는 사실 우리 자비의 모후 레지오 쁘레시디움차원 ‘공식 활동’의 이름으로 이루어졌지만 대다수의 찬성에도 힘을 입은 것이어서 더욱 의미가 새롭다. 또한, 이번 기회에 나는 지금 우리에게 다가온 자비의 희년, jubilee of mercy의 반포배경과 그 이전에 있었던 크고 작은 희년 들의 역사적 배경도 자세히 알게 되었다. 또 하나의 ‘무식 ignorance stupid point’가 사라지는 기회가 되었다.
평화스러운 수도원
이번의 자비의 희년은 Extraordinary라는 수식어가 붙는데, 그 이유는 정기적으로 25년마다 찾아오는 희년과 달리 특별하게 제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특별 자비의 희년은 로마 바티칸 만이 아니고 전세계적으로 각 교구마다 지정된 성전, 역사 깊은 성당에 ‘자비의 문’이 설정이 되었다. 이 자비의 문을 통과하면 전대사 全大赦를 받을 수 있는데 부수 조건은: (1) 교황님의 지향기도, (2) 고해성사, (3) 영성체, (4) 죄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함, 등이다.
나는 이제까지 이런 ‘교황이 선포하는’ 전대사 같은 것에 큰 의미나 흥미를 느낀 적이 사실 없었다. 솔직히 핵심 교리적인 것 빼놓고는 믿어지지도 않았던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교리의 한가지는 믿고 다른 것은 안 믿는다는 것 cafeteria Catholic 은 어불성설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믿으려면 다 믿고 안 믿으려면 차라리 믿는다고 ‘까불지 말라’는 뜻이다. 이것이야 말로 ‘무조건’ 믿는다. 전대사를 받는다면 그야말로 이제까지 ‘쌓였거나, 남아있는’ 나의 죄는 모두 없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간단하다.
생애 처음으로 전대사를 받은 우리들, 반응은 확실치 않았지만 우리는 조금 남들과 다른 ‘양도’를 하였다. 전대사를 남에게 주어도 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는데 이번에 알게 되었다. 나는 돌아가신 어머님께 양도를 하였고 연숙은 작년에 선종하신 배 베로니카 자매님께 양도를 하였다. 결과적으로 나와 연숙은 우리 자신이 전대사를 못 받은 셈이 되었나.. 하지만 상관이 없다. 이것이 우리를 더 기쁘게 한 것이니까…
3월의 어느 평화스러운 월요일, 신앙과 사명감으로 뭉친 레지오 단원 그룹이 이렇게 자비의 해에 선포된 자비의 문을 ‘통과’ 하려고 유서 깊은 Conyers의 수도원을 방문한 것,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이다. 정오에 있는 수도자들의 기도의식에도 참여를 했고, 준비해 간 음식으로 한적한 곳에서 점심식사를 즐긴 월요일 하루, 너무나 좋았다.
2월 10일, Ash Wednesday 2016 올해 재의 수요일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예년처럼 Holy Family CC 아침 9시 미사엘 가서 이마 위에 재의 십자가를 받고 왔다. 올해는 느낌이 사람이 예년에 비해서 더 많아진 듯 했다. 느낌인가.. 사실인가.. 무언가 가톨릭 교회의 근래 움직임이 활발해 진 것은 아닐까? 냉담자를 교회로 돌아오게 하려는 대교구의 운동, 물론 바티칸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이지만.. 전 같지 않게 나는 이런 움직임에 귀를 기울이고 싶다. 내가 변했다는 증거 중에 하나일 것이다.
올해의 40일은 어떻게 보내나.. 매년 생각하는 것들.. coffee를 줄이자.. 잠을 줄이자.. 같은 것은 이제 ‘촌스럽게’만 보인다. 더 깊은 것을 찾고 싶다. 눈에 안 보이는 것, 나의 깊은 속 마음을 들여다 보고 싶고, 더 높은 것으로 바꾸고 싶고.. 어떻게? 2년 전의 사순절, 1년 전의 사순절과 비교하기도 한다. 2년 전.. 다급하지만 무언가 이루어 질 것, 성모님의 손이 나를 꼭 잡았다는 느낌 같은 것.. 결국은 그 해 9월에 모든 일들이 시작되었지 않은가? 하지만 그것들은 사순절에 시작되었다고 봐야 한다. 작년도 마찬가지.. 비록 첫 산은 넘었지만 두 번째의 미지의 산을 기다리던 사순절이었다. 다급한 것은 큰 차이가 없었다. 올해는 어떤가? 성모님의 손에 끌려 (낯 가려운 표현이지만..) 두 번째의 산을 다치지 않고 넘었다. ‘그것’과 ‘저것’ basics들이 정말 그림같이 해결이 된.. 그런 기적의 성탄을 맞게 해 주셨다. 이것을 우리는 잊으면 안 된다. 홍해바다를 건넌 심정을 잊으면 안 된다. 올해의 사순절은 이런 배경으로 묵상을 해야 한다. 우리의 앞에 있는 산은 무엇이며, 그것을 맞는 의미와 사명은 무엇인가? 무엇을 하며 ‘그날까지’ 하느님 앞으로 갈 것인가?
산, 바람, 하느님 그리고 나.. 서정적인 시를 연상시키는 이 구절은 사실 어떤 ‘유고집 遺稿集’ 책의 제목이다. 언뜻 들으면 “산에 가서 부는 바람을 맞으며 하느님을 생각하는 나” 정도로 연상이 되기도 하지만 과연 이 책은 어떤 책인가?
주일 전에 아틀란타 도라빌 소재 한인 천주교회, 순교자 성당의 ‘성물방 책 코너 book corner’엘 들렸다가 ‘우연히’ 보게 된 책이었다. 이런 것들이 우연일 것이다. 전혀 계획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우연이 정말 우연일 chance는 과연 얼마나 될까?
평소에 보통 나는 성물방엘 잘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은 예외적으로 10시 반 미사에 맞추어 성당 주차장 교통정리 봉사를 하게 되어서 아침 8시 30분 미사에 참례했어야 했고 12시 45분에 예정된 레지오 꾸리아 월례회의 때문에 ‘장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성물방에 있는 book corner에 들린 것이고 그곳에서 이 책을 잠깐 보고 대출을 받게 받게 되었다.
이 책이 눈에 들어온 것은 이유가 있었다. 이 유고집 저자의 이름, 김정훈, 김정훈 베드로 부제 副祭.. 나의 거의 60년 된 깊숙한 곳 뇌세포에서 이 오래된 이름을 찾아 내었다. 1959년 서울 재동국민학교 6학년 동창이었다. 이 책을 대출 받으며 곧바로 나는 옆에 서있던 연숙을 바라보았다. 서로가 이 책의 제목을 알아본 것이다. 1990년 쯤 아틀란타에 이사 와서 처음 살던 Norcross의 직장 바로 근처에 있던 Four Seasons Apartment.. 우리 살던 아파트 건물 아래 쪽에 한국 상사직원 가족이 살고 있었는데 두 딸이 곧바로 우리 애들과 학교를 같이 가게 되었고 알고 보니 그 집 엄마가 나의 중앙고 동창 박우윤의 여동생이었다. 그 집에 책이 많이 있어서 연숙이 가끔 빌려보곤 했는데.. 그 당시 연숙이 그 책을 보고 ‘나와 비슷한 나이로 일찍 타계한 아까운 젊은 신부’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까물거리는 기억.. 그 당시 나는 거의 직감적으로 ‘김정훈’이란 나와 동갑인 신부의 이름이 ‘나의 재동국민학교 동창’일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 책은 곧바로 뇌리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아마도 그 당시 연숙은 그 책을 읽었을 것이다.
고 김정훈 부제
이런 인연으로 이번에 다시 나의 ‘손에 들어온’ 이 책이 우연만은 아니라는 생각, 어쩌면 재동 동창생 김정훈을 다시 발견하게 될 기회라는 ‘사명감’ 같은 것도 느끼게 되었다. 김정훈, 김정훈 부제.. 1960년 재동국민학교 졸업, 1966년 경기중고교 졸업.. 가톨릭대학 신학부 졸업, 인스부르크 대학교 유학, 부제 서품, 1977년 6월 2일 예기치 않았던 등산길에서 조난 사.. 김수환 추기경까지 참석예정이었던 사제 서품을 바로 코앞에 두고 선종.. 흡사 작은 ‘개인 서사시’ 같은 느낌.. 흠~ 30세에 선종..이란 말이 나의 코를 찡~~하게 만든다. 어찌 채 날개도 못 펴고 그렇게 갔단 말인가?
내가 아는 김정훈은 사실 단편적인 평범한 오래 된 동창의 기억 정도다. 나와 ‘친한 친구’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같은 반이라는 정도지만 이 ‘친구’는 조금 더 기억이 나는 것이.. 6학년 때 ‘아마도’ 전학을 왔던 것 같다. 학년이 시작되고 중간에 들어온 case였던가? 당시 우리 반은 6학년 전체에서 가장 우수한 애들이 몰려있었는데.. 당시 담임 박양신 선생님 왈: ‘김정훈은 공부를 아주 잘한다’는 말로 소개를 했던 것. 아니나 다를까.. 이 애는 기기 막히게 공부를 잘했다. 하지만 말이 별로 없었고.. 그러니까 나이에 걸맞지 않게 ‘겸손’하다고 할까? 그것이 전부였다. 말썽을 피우지 않으니 크게 기억할 사건이 없는 것이다. 우리 반에는 당시 ‘경기중 지망’ 수재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대부분 집안들이 떠들썩하던 치맛바람이 아니면 아이들이 그다지 겸손한 편은 아니었는데 이 김정훈은 그런 기억이 전혀 없었다. 그러니까 ‘조용히’ 경기중학교에 간 것이다. 그런 사실만 나중에 알았고 곧 잊었는데.. 중학교 당시 나는 이 친구를 서울 낙원동 파고다 공원 (일명 탑골공원) 수영장 앞에서 ‘멀리서’ 보았다. 자기보다 나이 어린 아이를 데리고 수영장으로 들어가던 모양.. 그 이후로 나는 김정훈을 완전히 잊고 살았는데, 다시 이렇게 불현듯 나의 시야에 들어온 것이다. 그것도 ‘죽은 모습’으로…
재동 앨범사진
연숙이 처음 이 책을 대하면서 아주 인상적이었던지 나에게 몇 번 언급을 하긴 했지만, 저자 김정훈이 나의 재동학교 동창인 김정훈이라는 100% 확신도 없었고 신부지망생이었다는 말도 나에게는 가슴 가까이 들리지 않았다. 그 당시는 그만큼 성소 聖召 란 말의 느낌도 나는 피하고 싶었던 ‘마음과 가슴이 황폐하던’ 기나긴 시절들이었다. 하지만 이번은 아주 아주 달랐다. 두말없이 그 책을 ‘2주 대출’을 받아왔고 관심 있게 이리저리 요모조모 앞과 뒤를 왔다 갔다 하면서 ‘조금씩’ 김정훈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요새 나의 버릇인 ‘난독’으로 거의 한번은 읽은 듯하고 이제는 조금은 체계적으로 읽어볼 까.. 현재의 느낌은 김정훈의 30세가 되어가던 그 당시 그의 생각과 나의 삶을 비교하며 너무나 애와 같은 생각으로 살던 나 자신을 보았다는.. 숨길 수 없는 사실 하나다. 아무래도 하느님을 이미 찾은 그의 인생에 대한 자세를 나와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그래도 참 너무나 차이가 나는 30세까지의 우리 둘의 인생이었다.
¶ Unseasonal Christmas, 밤새도록 천둥과 번개, 폭우가 오락가락했다. 오늘이 무슨 날인가.. 성탄 eve 전날이 아닌가? Stormy holiday, 분명히 심상치 않은 성탄의 기분을 주지만, 문제는 이 stormy 란 것이 겨울이 아닌 여름, 그러니까 ‘열대성 tropical‘이란 사실이다. 이것도 몇 년 만인가? 기억에 3~4년 정도 전 이 맘 때였나? 맞다.. 2012년이었다. 그 때도, 억수같이 쏟아지는 폭풍우 속에서 ‘처량하게’ 가족 모두가 극장엘 가서 Spielberg의 Lincoln영화를 보았다. 왜 그랬을까? 절대로 포근한 추억이 아닌 것이다. 최소한 나의 style은 아니었다.
가족을 위해서 나갔다는 기억이 아직도 선명한 것을 보면 싫은 추억이 된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런 unseasonal holiday은 싫은 것 중에 하나다. 하지만 꼭 그럴까? Christmas란 것이 과연 무엇이며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사람들.. 몇 초 정도라도 생각을 하며 보낼까? ‘집단’ 군중심리에 밀려서, 무슨 zombies같이 ‘shop, shop, shop, 줄을 서서’ shopping이나 하는 지독히 세속화 된 크리스마스.. 기다림(advent)이 내일로 끝난다는 단 하나의 희망, 그것이 나를 위로하는 것이 되었나?
¶ 며칠 전 일요일 저녁에 ‘세대 차를 뛰어넘는’ ‘100% 비공식’ 순교자 성당 구역 ‘친구’들의 간단한 저녁식사와 간담회가 있었다. 나의 레지오 협조단원이기도 한 ‘다多 차원적’인 host 형제님, 무섭게 바쁜 생활에서 틈을 내어서 이렇게 ‘마음이 맞는’ 형제, 자매들을 초대한 것 감사를 안 할 수가 없다. 비록 같은 구역에서 만난 사이지만 이야기들은 구역 politic을 초월한 것들, 개인적인 것들, 신앙적인 것들로 아주 화기애애하고 유익한 것들이어서 집을 나올 때 마음이 아주 가벼웠다.
어떠한 구역모임이 “이상적인, 본당이 바라는 모습”일까.. 이런 것도 허심탄회 虛心坦懷 하게 다루어졌고, 무언가 meaningful correction의 시점에 다다르고 있다는데 의견이 모아졌지만, 필요 이상의 ‘논쟁 성’ 대화는 아니었다. 이런 민감할 수도 있는 사안은 ‘순리’란 것에 맡기는 것도 좋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새해부터는 우리 구역도 조금은 “inclusive, faithful, ecclesiastical 한” 그런 쪽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마음이고, ‘잘 될 것’이라는 가느다란 희망도 가져본다.
¶ Busy busy Tuesday: 우아.. 이렇게 어깨에 천근만근 무게를 느끼며 보냈던 화요일이 있었을까? 레지오 회합으로 시작되는 화요일은 주로 봉성체로 끝을 내고 거의 저녁때 귀가하는 일정인데 이번 화요일은 그것을 넘는 일정들이 꽉~~ 차 있어서 그 전날에는 심지어 심한 stress까지 느낄 정도여서 왜 이렇게 schedule을 잡았나 하는 후회까지 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다 좋은 것들’이란 100% 확신이 있기에 주로 ‘don’t think twice, don’t look back, just say yes‘란 말만 되뇐다.
평소의 일정에 오늘은 ‘성탄 판공성사, 신부님 면담‘, 냉담교우 형제와 점심식사 에다가 저녁에는 친지들과의 Christmas dinner party까지 겹쳤다. 조금은 아찔한 일정이었지만 끝났을 때의 ‘날라갈 듯한 기분’을 미리 그리며 나를 달래기도 했다. 판공성사는 고백소에서 줄을 서서 해도 되겠지만 언제나 그것은 무언가 미흡한 뒷맛을 주기에 올해는 따로 면담 식으로 하고, 냉담하고 있는 ‘아오스딩, Augustine‘ 형제까지 불러 점심을 하고 같이 성사도 보게 되었다. 몇 년 만에 이런 기회를 갖게 된 이 형제와 조금은 깊은 대화를 하려 했지만 의외의 불청객이 있어서 무산되고 말았다. 이 형제님, 기나긴 냉담을 하고 있지만 항상 나의 기도 속에 있기에 ‘언젠가는’ 돌아오리라 굳게 믿는다. 고해성사의 ‘백미 白眉’는 역시 Matthew Kelly1의 말처럼 ‘지난 세월의 때와 먼지’가 씻겨나가는 홀가분한 뒷맛이 아닐까?
저녁에는 올해 새로 이사를 한 C 사장, 나이는 한참 밑이지만 우리 ‘동년배’ 그룹에서 당당히 끼어서 오랜 교분을 유지했던 Ohio State 동창 후배, Riverside Drive에 있는 멋진 upscale 집을 찾아가서 늦은 저녁 시간을 즐겼다. ‘개천에서 용 났다’라고 자칭하는 이 그룹은 뒤늦은 나이에 모든 것들이 잘나가게 되는 case여서 나에게는 조금 미묘한 감정이 교차됨을 피할 수 없지만 그래도 오~랜 ‘친지’들이 아닌가?
¶ ‘갑자기’ 커진 우리 자비의 모후 레지오 쁘레시디움, 비록 새 단원들이 모두 자매님들이지만 이들 덕분에 평균연령이 훨씬 떨어진 것은 감사할만한 것이었다. 무슨 ‘긴급 수혈’을 받은 느낌이 들 정도로 분위기가 밝아졌다고나 할까? 들락날락하며 전체 분위기를 흐려놓았던 눈에 성가셨던 일도 올해로 끝나면 얼마나 좋을까? 모든 것을 ‘가급적 원칙대로’ 하는 우리 레지오의 전통을 모르긴 몰라도 두고두고 감사한, 중요한 인생의 교훈을 체득하는 삶을 살게 하리라 나는 믿는다. 지난 9월부터 서서히 ‘수혈’을 받아오면서 현재는 출석률 100%가 새로운 정상이 되었다. 전원 출석하면 박수를 쳐야만 했던 사실, 들락날락하던 것이 정상이던 것이 이제는 출석률 100%가 정상이 된 것이다. 레지오 교본의 말씀들이 정말 100% 모두 맞는다.. 이것은 누구의 도우심인가?
¶ 아주 아주 오랜 만에 전호배 요셉형제와 KaTalk으로 통화를 했다. 나와 동갑 돼지띠 전 요셉 형제님, 작년 11월 쯤에 ‘갑자기’ 귀국을 했었다. 이곳에서 생활이 만족스럽지 않아서 그랬으리라는 짐작만 할 정도지만, 그래도 그가 황량 히 떠나버린 작년 12월은 찬바람만 부는 듯한 외로운 느낌을 주었다. 우리와 가까워진 지 일년도 채 안되었을 때 홀연히 떠난 것이다. 늦은 인생의 느낌을 말없이 공감할 수 있는 영혼을 만났다고 생각했었지만 그것은 조금 나에게 사치였는지.. 귀국한지 일년이 되는 지금에야 ‘무엇이 보인다’고 했다. 그 말이 확실히 무엇을 뜻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짐작은 할 수 있다.
편안히 안주해야 할 나이에 큰 변화는 사실 어렵거나 괴로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상상도 못할 심리적, 혹은 육체적인 challenge가 왜 없겠는가? 그림이 잘 그려지지는 않지만 그래도 열심히 사는 모습이 느껴진다. 인근 성당(노원성당?)의 레지오에도 가입을 해서 활동을 시작했다고 했고, ‘조그만’ 직장도 잡아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며 자매님은 양로원 같은 곳에서 일을 하신다고.. 정치적으로는 나와 잘 맞지는 않지만 그래도 곧은 지조와 믿음으로 만사를 해결하는 돼지띠 형제님, 모든 가족이 성탄, 새해를 잘 맞으시기 빕니다.
super-cute Christmas tree
¶ ‘역사상’ 제일 ‘늦게’우리 집 mini 성탄 tree가 장식이 되었다. 그러니까 성탄 2일 전이다. 아이들이 이것에 대해 불만이 많은 듯 하지만,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다. 우리가 나가는 두 곳의 성당이 3일 전에 장식을 했으니까 우리는 ‘당당히’ 하루가 더 늦은 ‘쾌거’였다. 진정한 대림의 정신으로 잘 견디어낸 결과였고 ‘원칙’대로 1월 10일 이후에 치울 것이다. 어제부터 그렇게 보고 싶었던 작년의 movie collection을 하나씩 보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보고 싶었던 것이 The Christmas Box란 1995년 family classic. 여기 출연을 하는 Maureen O’Hara가 올해 타계를 했기에 더 이것을 보고 싶었다. 이 영화는 ‘진정한 성탄의 의미’를 지루하지만 차근차근하고 자상하게 보여준다. Family의 의미를 그렇게나 강조했던 1995년은 지금 생각하며 ‘고전적’인 시대였을지도 모른다. Transgender, LGBT, SS “Marriage’가 new normal이 되어가는 참 해괴한 세상이 도래한 이 시점에서 무엇을 더 언급하랴? 그래서 Advent의 희망이 더 무게를 더하는 (최소한 나에게는) 그런 2015년 성탄이 내일로 다가왔다. 우리 가족들과 함께 집에서 식사하는 것이 고작이지만 그래도 Christmas vigil Mass에 모두 간다는 사실이 거의 기적같이 느껴진다. 우리 아이들이 한마디로 C&E2 Christian3이 된 사실, 역사적인 irony에 속한다. 이것이 나의 personal Advent에 속하는 것이다.
Lights along the stairway to heaven
Australia-born American Catholic Author, Commentator, businessman, Author of ‘The Four Signs of A Dynamic Catholic‘ ↩
2015년 10월 12일, 며칠 있으면 ‘또’ 10월의 반이 지나간다. ‘진부한 표현’으로 세월은 잘도 흘러간다. 세월이 갈 수록 daybook 과 calendar 를 유심히 챙기는 습관이 더욱 세월의 흐름을 실감나게 느끼게 한다. 인생의 남은 시간이 하루 하루 줄어든다는 생각에 조금이라도 무언가 남기고 싶은 심정을 억제할 수가 없어서 시간과 세월의 감각을 흔적이라도 남기려 애를 쓰지만 모든 것은 순리적으로, 절대적 존재에 맡기는 자세를 취하려 애도 쓴다. 이런 mental balancing은 어느 나이에도 중요한 것이기에.. 이런 횡설수설이 나는 요새 필요한가 보다.
내일은 10월 13일, 1917년 바로 같은 날에 Portugal의 Fatima에서 성모님이 three shepherds 세 목동 어린이 shepherd children들에게 발현 apparition 하신 날이기도 하다. Portugal의 ‘국, 관영 신문’에 당시에 성모님이 어린이들에게 약속을 하셨던 ‘태양의 기적’ 보도가 된 것이 특이하고, 이에 관한 극 drama 영화도 몇 개 있어서 나는 그것들을 흥미 있게 보기도 했다. 2017년이면 100주년 기념이 되기에 서서히 그곳으로 관심이 쏠릴 것을 예상한다. 역사이래 성모님 발현은 수없이 세계 전역에서 보고가 되지만 실상 교회가 공식인정을 한 것은 불과 수십 건밖에 안 된다. 그 중에서도 아주 유명한 곳은 몇 군데에 불과하고, 아마도 Fatima(파티마)는 프랑스의 Lourdes(루르드)에 이어 두 번째로 유명한 발현지일 것이다. 근래에는 30년도 넘게 ‘계속 매일’ 발현하시는 곳, Medjugorje 메주고리예 가 수많은 순례 행렬이 끊이지 않는 곳이 되었다. 하지만 이곳은 ‘아직도’ 교황청의 공식인정을 받지 못한 곳이다.
Fatima 의 성모님은 발현 당시부터 Rosary(묵주)를 들고 나오셔서 묵주기도의 중요성을 알리시기도 해서, 10월이 묵주기도의 성월로 정해 졌을지도 모른다. 묵주기도.. 2007년 초부터 거의 매일 매일 하는 묵주기도, 이제는 내 몸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거의 10년에 가까워오는 나의 묵주기도 역사, 솔직히 나 자신이 보아도 이건 기적 중에 기적에 속한다. 예상도 못했고, 아직도 변함없이 계속되는 것도 그렇고, 그런 ‘와중’에 세계관이 완전히 변한 나 자신, 이 모든 것은 솔직히 기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묵주기도에 무슨 마력이라고 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너무나 단순 반복되는 간단한 기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point는 이 기도가 성모님이 간절히 ‘요청’하는 것이라는 사실일 것이다. 시작한지 몇 년 동안은 외우느라고, 지루함을 이기느라고 애를 쓴 기억이고 점차 습관이 되면서는 짧은 묵상 같은 것도 할 정도가 되었다. 바로 이것이었다. 지루하고 반복되는 그 시간 중 몇 초씩 들어가는 ‘생각지도 못한 느낌’, 바로 그것이 내가 기대하는 시간이 되었고, 그렇게 지루한 것을 극복할 수가 있었다. 집에서 연숙과 둘이서 하던 묵주기도에서 레지오의 ‘강도 높은’ 묵주기도로 바뀌며 나는 ‘기도’란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하게 알아가게 되었다. 레지오 5년 동안 계속되는 이 ‘지루하고 반복되는’ 묵주기도, 이제는 알 듯하다. 왜 성모님이 ‘친히’ 이 ‘고역’을 청하시는지를..
The Most Sacred Heart of Jesus..예수(의) 성심. 오늘은 The Pentecost (성령강림 대축일)로부터 19일째인 예수성심 대축일이었다. 미국 우리지역 province 은 의무 축일이 아니기에 아주 특별한 미사는 아니었고 평소 ‘매일 미사’보다 ‘조금’ 격상된 정도라고 할까..
요새 부활시기를 완전히 뒤로한 한가한 느낌의 6월 초여름의 ‘연중’ 시기에는 부활절을 치르느라 피곤하다는’ 본당 주임, 사제들은 꼭 자리를 비워야 ‘멋이 있는지’ 대부분 방문신부님들이 자주 찾아 오신다. 속으로 나는 ‘꼭 그렇게들 쉬어야 하나..’ 하는 짜증이 난다. 무엇을 그렇게 바쁘고 피곤하다는 것인지 나의 머리로는 쉽게 이해가 안 간다. 근래에는 땀을 흘리며 뛰는 신부들을 별로 본 기억이 나질 않아서.. 요새 신부들은 어떤 생각으로 사목을 하시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우리 Holy Family 성당의 경우, 보좌신부님, 박사학위를 받고 완전히 떠나신 Africa출신 상당히 지적인 신부님이었다. 비록 처음에는 영어 발음에 짜증이 조금은 났지만 주임신부의 ‘애 같은’ 강론수준과 하늘과 땅의 차이라 은근히 좋아하기 시작했더니만.. 그만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그런 판국에 Irish 출신 주임신부라는 목자는 어떻게 편히 쉬실 수 있는가? 드디어 며칠 전부터는 본당의 브라질 공동체 신부님이 임시로 매일 미사에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이건 완전히 disaster에 가깝다. 그의 영어 발음은 99.9% 알아 먹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어찌 Portuguese와 English가 그렇게 다를 수가 있단 말인가? 완전히 ‘꼬이는’ 발음은 Jesus란 말 정도나 들릴 정도다. 하지만 공평한 것은.. 이 신부님 너무나 ‘진솔하고 착한 미소 띤 얼굴’ .. 이것으로 완전히 balanced-out이 되고 있다. Universal한 미사 자체야 Latin말로 하던 때도 있었으니까.. 못 알아 먹어도 90% 이상은 다 추측이 가능하니까..
성심.. 예수성심.. 성모성심.. 참 오래 전부터 들었던 단어였다. 성심 聖心 .. 하지만 확실한 뜻은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그저 ‘성스러운 마음’ 정도는 한자로 짐작이 가능할 정도였다. 어렸을 때, ‘성심’이 붙은 학교들이 있었고, 대부분 ‘멋지고 부자’들이 가는 학교라는 인상도 남았다. 서울의 성심여학교가 그랬다. 교복도 그렇게 멋졌다. 박정희 대통령의 큰 딸 박근혜 (현 대한민국 대통령.. 허.. 세월의 장난이..) ‘양’ 이 아마도 그 학교에 다녔을 것이다. 그것 뿐인가.. 성심병원, 성심 여대까지 있으니까.. 이것은 이곳 미국도 예외는 아닐 듯 싶다. 문제는 이 ‘성심’이란 말이 보통명사인가 고유명사인가 하는 것이다.
조금만 research하면 ‘정답’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온다. 예수성심은 글자 그대로다. 예수님의 ‘육체적인 심장’ (마음이라기 보다는), 그 육신적인 심장이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불이 타는 듯이 타오르는 모습이 바로 예수성심인 것이다. ‘성스러운 마음’ 아닌 예수님의 사랑으로 불타는 심장.. 오랜 세월, 나의 ‘무지’가 부끄럽다. 그러니까 예수성심은 이 ‘심장’에 대한 인간들의 신심 devotion 인 셈이다. 이것이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이것은 역시 ‘인간’ 역사 중의 하나다.
1673년부터 1675년까지 프랑스 수녀 St. Margaret Mary Alacoque (성녀 알라콕)에게 나타나신 일련의 예수발현으로 비롯되었다. 이 발현 중에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쳐주신 신심이었다. 계시 revelation 중의 계시가 이런 것이 아닐까? 역사적인 배경과 근대에 들어와서 성심의 발전 양상을 예수회의 ‘예수성심의 역사’ 라는 DVD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레지오 단원 자매에게서 빌린 DVD를 감히 ripping해서 이곳에 올려 놓았다. copyright는 분명히 문제가 되겠지만.. please.
요새 ‘우리’ 교황님, 참 뉴스에서 많이 뵙는다. 99.9% 거의 모두 positive한 것이라 안심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그런 기사들을 대한다. ‘어쩌다가’ 이런 멋진 교황님이 탄생을 하셨는가.. 그러니까 ‘전’ 명예 교황님 Benedict XVI 이 깊은 생각과 교회의 당면한 숙제들을 생각하고 ‘조기 퇴진’을 하신 것은 아닌가 할 정도로 현 시점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목자를 탄생시키셨다. 모든 교인들과 마찬가지로 나 개인적으로도 너무나 다행스러운 교회의 발전이 아닐 수 없다.
이번에 교황님 사라예보 Sarajevo, Bosnia & Herzegovina 를 방문하시고 바티칸 로마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의 사라예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비공식’ 성모 발현지 메주고리예 Medjugorje 에 대한 짧은 언급이 나의 (아마도 많은 사람들) 눈길을 끌었다. 그 ‘짧은 언급’은 다음과 같이 보도 되었다.
It’s almost decision time… 6/6/2015 on PAPAL FLIGHT
사라예보의 짧은 방문을 끝내고, 바티칸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보즈니아 (사라예보와 메주고리예가 위치한 나라) 출신 기자의 메주고리예 성모발현에 대한 바티칸의 공식적인 입장 해명의 질문에 대해서 교황님은 다음과 같이 답변을 하셨다.
“메주고리예에 대한 결정의 시기가 거의 다가왔습니다. 결정이 되면 발표가 될 것입니다.”
교황은 이에 관련되어서 전임 교황 베네틱트 16세가 메주고리예 성모 발현 ‘설’에 대한 조사와 연구를 위한 위원회를 발족 시켰음을 상기시켰다. 이 위원회는 메주고리예 ‘현상’을 교리적, 교회법등에 비추어 연구, 조사를 끝내고 교황님께 보고를 드렸다고 덧붙였다.
이 결정은 곧 이루어질 것이고 그에 따라 모든 일선의 주교들에게 guideline이 시달 될 것이라고 한다.
이 결정이 내려지기 전까지 모든 교회는 메주고리예에서 성모발현의 진실성을 당연시 하는 모임, 회의, 집회 등이 허락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 기사가 나오고 나서 3일 후에 이에 관련된 기사가 다시 보도 되었다. 이것은 그러니까.. ‘damage control’ 정도가 될는지…
Day after Medjugorje comment, Pope downplays predictable visions:
아마도.. 교황님의 6월 6일 기자회견에서 메주고리예의 공식입장 결정이 다가왔다는 말이 주는 뉴앙스가 너무나 positive했던 것에 대한 기대감을 낮추려는 것이었을 것이다.
6월 9일 바티칸의 성 마르타 guesthouse에서의 매일미사에서 교황님은 ‘조금 초현실적인 믿음’에 의존하려는 신자는 현대판 gnostics(무관심론자)라며 결국 믿음의 종착역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없다고 조심을 시켰다. 성모님께서 ‘이런 것, 저런 것’을 하라고 말하는 것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은 그리스도교인의 본 모습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두 가지 뉴스에 접하며 생각을 해본다. 우선 이런 교황님의 스타일은 이제 익숙한 편이다. 우선 issue를 거론하고, 반응에 의해서 필요하면 곧 수정하는 style.. 이런 방식은 분명히 issue를 forward시킨다. 무언가 결과가 제 시간에 나오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일을 처리해 나가는 교황님의 agenda는 도대체 얼마나 있을까?
메주고리예의 성모님 발현은 교회사, 세계역사를 통 털어서 전무후무 前無後無 한 것이다. 30년 이상 거의 매일 같은 지역에서 발현한다는 것.. 이것에 대한 과학적, 이성적인 반론은 어떤 것일까? 한마디로 ’30년 이상의 사기극’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사기극’을 벌인다고 생각하는 것이 훨씬 쉽다. 메주고리예가 나에게 준 자극과 영향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높고, 심각한 것이라 나는 여기에 더 이상 덧붙일 것이 없다. 30년 이상 인간에게 거의 매일 나타나시는 ‘하느님의 어머니, 원죄 없으신’ 마리아의 의미는 한 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는 진짜 인류의 어머니라는 것, 너무나 자상하고 사랑하시는 어머니가 ‘나쁜 길’로 가려는 자식들을 애타게 기다리신다는 것.. 조금만 생각해도 수긍이 가는 말이다.
¶ Irish Disaster 어떻게 이런 일이.. 그 동안 나를 괴롭히던 우려가 드디어 현실이 되었다. 이런 종류의 ‘믿기지 않는 현실화’는 근래에 꽤 있었다. 그저 이럴 때 내가 고작 되뇌는 말은 What are they thinking? 정도다. 서유럽에서 가장 ‘종교적, 보수적’인 초록색 ‘초원’의 나라, Lady of Knock성모님의 나라, 레지오 마리애 의 본고장 Ireland.. 어떻게 그들은 ‘국민투표’까지 해가며 남자끼리, 여자끼리 를 결혼 시킬 만용이 생겼을까? 그것이 fair하고 common sense인가? 그들은 St. Patrick을 완전히 잊었는가? 이제는 right is wrong, wrong is right의 세상이 되었는가?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악인가.. 어떻게 남자와 남자가 결혼을, 여자와 여자가 결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자식들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2명(이상)의 아버지나 2명(이상)의 엄마를 둔 자식들은 어떻게 세상을 볼 것인가? 이것은 종교적인 것을 완전히 초월한 ‘인간 자연 본능’을 완전히 거스르는 것임을 그 많은 사람들이 잊었을까? 어떻게 이런 일이.. 탄식하기 전에 나는 그저 놀라운 세상을 사는 내 신세를 탓한다.
¶ 몇 달 만에 마리에타 two 구역 모임에 갔다. long Holiday weekend라서 마음의 여유도 조금 생겼고, 몇 달 동안 완전히 이 ‘동네’ 모임을 잊고 살아서 조금은 가고 싶은 마음도 생긴 것이다. 더군다나 나의 ‘유일한’ 레지오 협조단원 K형제 댁에서 모이는 것이기에, 가는 마음이 조금은 더 가벼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 동안 레지오 ‘협조단원 돌봄’에서 최선을 다 못하고 있어서, 항상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던 것도 나를 ‘두말없이’ 참석하게 하였다.
그 동안 자주 못 보았던 반가운 형제, 자매님들, 특히 평소 가족과 떨어진 곳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P 형제를 다시 이곳에서 보게 되어서 아주 반가웠고, 이번 부활절에 세례를 받았고 Holy Family C.C. 평일미사에서 요사이 자주 보는 K Francesco 형제도 반갑게 다시 만났다. 하지만 나중에 일찍 구역모임을 떠날 때의 나의 심정은 ‘역시’ 혼란스러운 것이었다. 왜 ‘또’ 내가 이곳엘 왔었는가.. 심지어, 그곳에서 도망가고 싶은 심정도 들 정도였는데..
거의 40년 동안 ‘전혀’ 못 들어보았던 ‘심하고 원색적 vulgar, obscene 욕설과 위협적인 언사’를 바로 코 앞에서 목격을 한 후에 나는 밥맛이 완전히 떨어져서 식사도 거의 안 하고, 독한 술 몇 잔 들이키고 ‘what were they (2 guys) thinking?‘ 만 되뇌며 그 자리를 떠났다. 그것은 분명히 verbal violence 였고 옆에 있던 우리들은 collateral victim이 된 것이다 . 대부분 자매님들과 아이들이 있었던 그 자리에서 우리들은 맛있는 음식을 접시에 덜고 있었다가 그런 일을 어처구니 없게 목격을 한 것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처음에는 관련 당사자 2명의 ‘싸움’이 100% practical joke인 줄 알았지만.. 자세히 얼굴을 보니 그것이 전혀 아니었고, 그것은 완전한 threatening curse 였고,. 나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욕 자체라기 보다는 ‘증오에 가득 찬 언동 hateful demeanor’ 이었다. 이것이 과연 ‘사랑, 평화’의 천주교우 모임인가.. 그 동안 이 구역모임의 ‘인구의 증가’에 의한 ‘질의 변화나 진화 (or 퇴화)’를 예상 못한 것은 아니나 이것은 완전한 disaster 였다. 바로 옆 구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었다는 이야기를 전에 듣고 나는 사실 믿지를 않았지만, 이제는 조금 믿어진다.
코 앞에서 이런 광경을 목격하며 솔직히 ‘육체적인 위협’까지 느껴질 정도여서 앞으로 장기간 이런 광경은 나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식사 전, 매일 복음 ‘성령과 평화’를 이야기 한 후에 생긴 이런 믿기지 않는 happening은 ‘아마도’ 이 sprawling group 의 ‘쉽지만은 않은’ 앞 날을 예고하는 신호가 아닐까? 아마도 이 group 은 현재 critical mass 에 도달했을지도 모르고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지 조금 더 현명한 선택이 필요할 것 같다. 이것은 왜 본당 공동체에 구역모임이란 것이 ‘존재’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a ‘written’ mission statement would help) 그렇게 어려울 것 같지는 않을 것 같지만.. 우선은 foreseeable future 까지 그저 잊고 살고 싶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우연히 미국 예수회America magazine website에서 ‘교황 프란치스코를 30초간 볼 기회가 있다면..’ 이라는 주제의 Youtube 비디오를 보게 되었다. 무슨 일이 있기에 이런 street interview를 한 것인가 의아 했지만 곧 의문이 풀렸다. 올해 9월 미국을 방문하는 교황에 대한 것이었다.
America Media asks:
“If you had 30 seconds with Pope Francis, what would you say?”
May 13 2015 – 10:19am
가톨릭 신자로서 교황의 위치와 의미는 잘 알려진 것이지만, 교황도 ‘겸손한’ 인간이기에 각 재위 교황마다 한결같이 다른 굴곡1 있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내가 관심 있게 보고 있는 교황들은 주로 John Paul II (요한 바오로 2세) 로 부터 시작이 되었고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오랜 냉담 시절에는 교황의 위치를 하찮게 보기도 했었는데 나는 그 이후 그런 나의 ‘바보 같은’ 경솔함을 정말 후회하고 있다.
2년 전인가.. 당시 교황 Pope Benedict XI (베네딕트 16세) 이 갑자기 은퇴를 선언하며 퇴임하고 급작스레 선출 된 분이 현 교황 Francis (프란치스코)인데 최초로 남미출신(Argentina)인데다가 교황청과는 outsider 에 속해서 어떻게 재위를 할지 미지수였다. 전임 교황들, 요한 바오로 2세 같은 분의 뒤를 이으며 그분들이 닦아 놓은 업적을 유지, 계승, 향상 시키려면 그분의 어깨는 정말 무거웠으리라. 그 후의 경과, 결과는 어떤가?
너무나 놀라운 일이었다. 요한 바오로 2세를 능가하는 인기와 명성을 구가하게 된 것이다. 전임 같은 ‘두뇌’ 보다는 ‘인정, 솔직’함으로 거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은 의심 많은 초현대의 가톨릭 신자뿐만 아니라 비 신자들을 매료한다. 그러한 인기를 잘 활용해서 드디어 세계 정치에도 서서히 관여하여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누가 뭐래도 변화 무쌍한 인류 가치관에 그는 변함없는 진리, 그리스도 가치관을 너무나 부드럽게 포용시킨다.
용감하게 유럽을 no longer fertile and vibrant, weary and becoming irrelevant 라고 가차없이 질타하고, 의혹 많기로 유명한 바티칸의 ‘재정비밀’을 투명하게 만드는 노력을 하는가 하면, 가톨릭 교리를 ‘요지부동’의 인상 보다는 ‘자비’를 강조하는 묘기도 보인다. 예수님의 기본 철학, ‘부자보다는 가난함을 사랑하는’ 실천적으로 가르치기도 하는데, 이런 모든 것들 소위 말하는 populism으로 보일 정도가 되었다. ‘부자 사제’는 척결하고 본인은 ‘소형차, 시민 아파트’를 택했다. 이런 배경으로 그의 agenda를 밀어 부치는 교황, 어떨까.. 퇴임 시에는 아마도 요한 바오로 2세의 인기를 능가하지 않을까?
이런 배경으로, 작년에 아틀란타 대주교에도 불똥이 튀겨, ‘공짜로 받은’ 주교관 mansion을 반납해야 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일반 신도들이 대담하게 교황의 모범을 무기로 항의를 했던 것이다. 어떨까.. 이런 와중에 한국출신 교포사목 동남부 사제단인가 (아틀란타 순교자성당, 김대건 성당도 포함) 하는 곳에서는 작년에 멕시코의 칸쿤 Cancun 에서 사제단 회의를 하였다. 그것도 자랑스럽게 말씀하던 신부님.. 속으로 ‘정신이 나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왜 하필 세속사회의 상징인 멕시코 관광도시 칸쿤에서 비싸게 모여야 했을까? 누군가 설명을 해 주면 어떨까? 그들의 최고 통수권자 교황님의 행적을 그들은 전혀 몰랐던가, 무시했던가?
이 교황을 보려면 제일 직접적인 방법인 바티칸을 가야하고 그곳에서도 사실 가까이 보는 것은 운이 좋아야 한다고 했다. 그런 중에 이번 9월에 미국을 방문한다는 소식에 혹시.. 우리도 그곳에 가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 실험’을 하게 되었다. 크게 무리는 아닐 듯.. World Meeting of Families convention을 계기로 Philadelphia 대회에 참석하고, Washington DC, White House, Congress, New York을 방문 하다고 하니 교황을 비교적 가까이 보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내가 교황과 30초간 함께 있다면 무슨 말을 할까.. 이런 질문이 이제 100% 공상이 아닌 것이다.
“And behold, I am with you always, until the end of the age.” (Matthew28:20)
“(보라, 세상이 끝 날까지)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오 28:20) 위와 같은 올해의 thematic verse를 배경으로, 아틀란타 대교구 주관 2015년 미국 동남부 성체대회 Eucharistic Congress 가 6월 초(6월 5일, 6일)로 다가왔다. 나에게 일년이란 세월이 67마일의 속도로 느껴짐은 작년 성체대회의 기억을 더듬으면 알 수 있다. ‘엊그제’ 같은 느낌이니까..
올해 성체대회의 theme은 ‘I will be with you always‘.. 마태오 Matthew 복음의 마지막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until the end of age.. ‘세상이 끝날 때가지’ 가 생략된 비교적 귀에 익은 표현이다. 하지만 조금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은 나에게는 이번이 처음이 아닐까? 예수님이 항상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실 것이라는 ‘하느님의 의지’.. 이 말씀이야 말로 ‘복음 중의 복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올해로 어느덧 20주년을 맞게 되어서 누가 보아도 이제 이 연례 대회는 완전히 자리를 굳건히 잡은 듯 하다. 아틀란타가 1996년 올림픽을 주최하며 호경기와 급성장을 예상하던 때, 당시의 선견지명을 가진 Francis Donohue 대주교님의 용단으로 조촐하게 시작 되었지만, 급팽창하는 대교구를 함께 모이게 하고 ‘성소 난’에 봉착한 교회에 돌파구를 제시하는 뚜렷한 목적을 유지하며 건실하게 자리를 잡았다. 한때 재정난 (eg. subprime mortgage crisis, housing bubble)으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대교구 여론의 도움이었던가, 난관을 극복하고 예전의 열기를 그대로 간직한 모습으로 건강한 장래를 내다 보게 되었다.
우리가 이곳에 참가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5년 밖에 되지 않지만, 이것도 우리에게는 ‘금자탑’에 속한다. 예상 밖으로 우리에게 이 행사는 큰 은총을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거의 3만 명이 ‘운집’하는 이곳엘 가면 ‘천주교’가 절대로 ‘소수 종교, 방어적 종교’라는 의심을 말끔히 씻어 버릴 수 있다. 성체 신심이라는 말조차 생소하게 들리던 나에게 이런 대회는 ‘모조리 배울 것 투성이’ 인 기회라서 ‘절대로 참가하자’라는 결심을 하였기에 ‘죽을 정도로 아프지’ 않은 한 이 날을 달력에서 비워 두고 산다.
작년까지는 ‘두말 없이’ 우리의 한국본당 순교자 성당에 ‘묻어서’ 참가하는 것이 ‘규칙’이었지만, 올해부터는 ‘예외’로 바꾸어서.. 단체 행동에서 벗어나 우리들 만의 ‘개인 참가’ 하기로 하였다. 교통편 때문에 가급적 성당 car-pooling이나 bus를 타면 좋겠지만 그것이 실제로 문제가 없지 않았다. 아침에 가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올 때가 문제임을 작년에 bus가 ‘예고도 없이’ 끊어진 바람에 당황한 기억으로 Never Again! 을 되 뇌이며 ‘우리 차’로 자유롭게 가기로 한 것이다. 대부분 교우들이 성체대회의 절정인 closing vigil mass를 기다리지 않고 ‘점심을 먹은 후’ 일찌감치 돌아가는 것이 문제였다. 올해부터는 우리에게 그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올해의 congress program을 언뜻 들여다 보니.. 작년과 같은 Hollywood celebrity 급 keynote speaker는 보이질 않는다. 생각하면 이것이 ‘정상’일 듯 하다. 성체대회가 무슨 show나 entertainment는 아니니까.. 하지만.. Not so fast! 다른 의미의 celebrity급 speaker의 모습과 이름이 보였다. 바로.. Father Robert ‘Bob’ Barron! 우아~~ 솔직히 말하면 나에게 Hollywood star급 보다 brainy하고, 현재 미국 가톨릭 계의 ‘급상승’하는 56세 신부님, 바로 Father Barron이 오는 것이다.
월남 신자들은 규모가 커서 자기들 만의 모임이 있지만 우리들은 어차피 English Track에 속한다. 그러니까.. 언어에 상관없이 ‘영어권’의 인물들에 익숙해야 하는데.. 얼마나 많은 한국어 신자들이 이 keynote speaker들을 알고 있을까? 결국은 부지런히 ‘예습’을 하는 수 밖에 없다. 다른 speaker 중에는 Teresa Tomeo, Kerri Caviesel이 포함되어 있는데 ‘아마도’ 많은 사람들에게 Father Barron처럼 익숙한 이름은 아닐 듯 하다. 그래서 올해는 집중적으로 Father Robert Barron에게 관심을 두고 지켜보기로 했다.
Robert ‘Bob’ Barron, 1959 년 시카고 출생 (56세), 시카고 대교구 신부님, Mundelein 신학교 총장, author, scholar and Catholic evangelist.. 나이에 비해서 화려한 직함을 가지고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가톨릭 신학대가 Thomas Aquinas 토마스 아퀴나스 에 매료되었고 결국 1986년에 신부 서품을 받았다. 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 (Washington DC)에서 Master 학위를 받았고, 1992년에는 프랑스 파리의 Institut Catholique de Paris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외국어로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 라틴어에 능통하다고 한다. 얼마 전에 암으로 서거한 시카고 프란시스 조지 추기경은 그를 one of the Church’s best messengers라고 했듯이 그는 초현대 디지탈 미디어를 이용한 많은 저서, video, website, blog, newsletter, podcasts등을 발행하고 있고, 전 세계를 순회하며 인기 있는 강연, 강의를 하고 세속적인 media를 적극적으로 포용하여 가톨릭 교리, 핵심을 전파하고 있다. 그 중에서 2011년에 출시된 10 편 documentary series: The Catholicism Project 는 미국을 위시한 16 개국 대중적 TV를 통해서 방영이 되었다. 그의 TV program은 1950년대의 Fulton Sheen 대주교 이후에 처음으로 ‘상업적 TV’에서 방영이 된 case가 된다고 한다.
이런 그의 resume를 떠나서, 나는 이 ‘젊고 handsome’하고 머리 좋은 신부님을 언제쯤 알았던가? 아마도 위에 언급된 TV program, Catholicism을 통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program을 본 적이 없다. 얘기만 들었을 뿐이다. DVD를 사기에는 비싼 것들이기도 했고, 그 것이 나올 당시만 해도 나는 별로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Keynote Speaker: Father Robert Barron
그러다가 그의 website: Word On Fire 를 정기적으로 subscribe하면서 그를 거의 정기적으로 접하게 되었고 크리스마스나 사순절 쯤이면 그의 newsletter를 받아 보기도 했다. 그러니까.. 최소한 그의 style은 조금 익숙한 편이다. 하지만 그를 ‘가까이서’ 본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다.
Postscript: May 30, 2015
Never Mind! 오늘 성체대회 website를 우연히 보니.. 이것이 웬일인가? Keynote Speakers 명단에서 Father Robert Barron 이름이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바뀐 것이다.. 이것은 나에게 완전한 disaster.. 하도 실망을 해서 이곳엘 갈까 말까 생각을 할 정도다. 하기는.. 올해의 여러 가지 느낌이.. 20년 주년 기념적인 이 성체대회에 김이 빠진 듯 한 그런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실망.. 실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