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지에 악동 惡童이 된..

졸지에 나는 악동 惡童이 된 느낌이다. 악동, ‘악’은 나쁘지만 ‘동’은 그런대로 봐 줄만하지 않을까? 비롯 ‘불쾌한 짓’은 저질렀어도 성모님은 나의 손을 꼬옥 잡아주시면, ‘그래 그런 때도 있는 거야…’ 할 실 듯하다.

그렇게 오늘 레지오 ‘꾸리아 월례회의’를 피하고 싶었다. 왜 그렇게 피하려고 했을까… 그 레지오 토론대회, 시범주회에 연관이 되었던 탓이다. 모처럼  ‘레지오 마지막 일’로 생각하며 임했던 이 일이 정말 우습게도 꼬이고 꼬인 것, 절대로 좋은 결과가 아니었다. 조금 더 내가 참을성을 가지고 신중하게 그 ‘손주같이 젊은 애’를 다루었다면… 조금은 달라질 수도 있었지 않을까? 물론 그렇다. 하지만 그것은 불필요하게 피곤한 일로 보였다. 보람도 그렇게 크지 않을 수 있었다.  그래… 이제는 잊자. 잊자… 그런대로 할 수 있는 노력은 해 보지 않았는가?

이렇게 하느님을 젊었을 때 찾은 사람들… 상상하기가 어렵다. 물론 나의 경험에 의한 것이지만 어떻게 그렇게 젊은 나이에 하느님의 현존을 느낄 수가 있었을까? 그것이 어떻게 믿어졌을까? 그래서 은총이라고 하는 것일까? 아직도 나는 의아스럽고 신기롭기만 하다.

나와 같이 이렇게 늦게 ‘만남’을 경험한 사람들이 또 있을까? 나이와 상관이 있을까?    

Surprise snow, after Daffodils…

눈이 쏟아지기 시작, 길에 쌓이기 전

드디어 눈이 온다… 그것도 함박눈이. 비록 땅에 떨어지면서 녹을 것 같지만 그래도 이것이 웬 떡이냐? 하느님, 성모님… 감사합니다. 제 소원을 풀어주셨습니다. 이런 날을 꿈 속에서만 그렸습니다. 비록 이런 날 따끈한 커피를 마시며 Trappists 수도원으로 드라이브 하는 것은 쉽지는 않겠지만 그것이 대숩니까? 아무래도 좋습니다.

이 시간이면 우리 동네 Holy Family 성당의 아침 미사가 시작되었을 텐데… 미사를 보면서 유리로 된 제단 뒤쪽,  밖으로 눈 쏟아지는 모습을 보고 있을 우리  ‘매일미사 친구 아줌마, 아저씨’들, 얼마나 한눈을 팔까… 궁금하다. 신부님도 미사 집전에 신경을 쓰는 것이 어렵겠다는 즐거운 생각도 든다.

결국은 나의 소원은 풀어졌다. 작년에 안 왔던 이 하얀 추억의 선물을 나는 얼마나 기다렸던가. 2014년의 괴로운 추억도 이제는 아련하고 포근한 추억으로 퇴색이 되고 있지 않은가? 세월의 마력이고 매력이 아닌가?

 

이번 ‘진짜’ 눈은 거의 2시간 동안 ‘쏟아졌다’. 며칠 전부터 피기 시작한 수선화, 매화 위로 소복한 눈이 쌓인다. 내가 그리던 최소한의 소원은 풀어진 셈이다. 조금만 기온이 더 낮았으면 아마도 불편함을 느끼게 될 정도가 될 뻔했다. 오늘 것은 정말 눈으로, 기분으로 너무나 포근하고 즐겁고 아련한 것이지만 움직이는 사람들에겐 큰 불편이 없는 그런 ‘뜻밖의 사건’이 될 듯하다. 감사, 감사, 감사…

 

 

나에게 평화란 것이 요새 있을까?

나에게 평화란 것이 요새 있을까? 지나친 걱정하는 고약한 습성이 슬그머니 나에게 스며든 것은 아닐까? 즐겁고, 행복하고, 평화스러운 나의 지난 10년..이라는 것이 내가 쓴 ‘소설’은 아닐까?

너무도 자주 찾아오는 ‘깊은 슬픔이나 두려움’, 이것이 나의 우울증일까? 지나치게 분노하는 나의 깊은 속, 그것을 나는 어쩔 줄 모르며 괴로워하고… 이것이 혹시 나의 지나친 복잡한 생각일까?

무엇이 나를 우울하게 만드나. 잠도 예전처럼 깊이 들지 않고, 그렇게도 또렷하게 남던 꿈들도 이제는 흐릿하게만 느껴진다. 옛날의 아름다운 추억을 찾으려 하면 그것조차 전같이 또렷하지 않다. 많이 잊어버리고 있고 사실 희미해진 것들도 꽤 있다. 나의 자랑, 나의 보물이 바로 그 옛날의 추억들인데… 왜?      

봄이 오면 나는

2월의 매화, 그리고 수선화, 또 피었구나 올해도… 반갑다…

 

¶  2월로 달력이 넘어가면서부터 나의 머릿속 깊은 곳에서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2월 초면 거의 시계처럼 피어나는 ‘청초하고 노오란 것’,  늦겨울 황량한 우리 집 뒷마당 먼 쪽으로 오롯이 피어나는 수선화의 모습이 떠올랐다. 매년 이 꽃이 피는 것을 보며 봄이 아주 멀지는 않았음을 느끼곤 하는데, 올해는 왜 유난히도 이 모습이 또렷하게 떠오르는 것일까? 이런 모습을 앞으로 얼마나 더 보게 될 것인가.. 하는 아주 sentimental 한 느낌도 없지 않다.

올해는 bonus로 그 옆에 가느다란 나뭇가지에 매화꽃이 같이 피어 올랐다. 전에 못 보았던 것인데 아마도 연숙이 언젠가 이곳에 심어 놓은 모양인가 보다. 매화꽃, 연숙이 문인화에서 즐겨 그렸던 것, 나는 사실 처음으로 가까이 실물을 보는 셈이다. 그러면서 일본애들의 전통적 ‘화투’의 2월에 이것, 매화가 있었음을 알고 실소 失笑를 금치 못한다. 어떻게 이 나이에야 이런 사실을 깨달았단 말인가?

올 겨울은 나에게는 정말 재미없는 계절이 되고 있다. 비록 12월은 겨울답게 춥고 싸늘하긴 했지만 겨울의 꽃, 눈이나 진눈깨비 같은 것이 전혀 없었다. 특히 이 지역에서는 평균적으로 한두 번씩 찾아오는 snow day같은 ‘괴롭지만 즐거운’ 그런 긴장감의 기회가 현재까지 전혀 없었다.  올 겨울에 만약 ‘첫눈’이 온다면 위험을 무릅쓰고 Conyers1 의 수도원을 방문하리라 던 나의 소년 같은 희망도 이제는 포기할 때가 된 듯하다.

 

¶  봄이 오면 나는…  비록 2월 초이긴 하지만 경험상 2~3월은 겨울답지 않아도 겨울이다. 언제고 ‘날씨의 놀람’은 찾아온다. 특히 이때에 느끼는 ‘추위’는 한 겨울의 그것과 질적으로 종류가 다르다. 한마디로 더 ‘심한 싸늘함’이 있는 것이다. 그래도 이때가 되면 각가지 ‘봄의 기대’ 에 대한 추억과 생각이 떠오른다. 또한 가톨릭 전례로 이때는 사순절을 시작하는 ‘재의 수요일 Ash Wednesday‘가 있어서 올해의 부활절을 떠올린다. 이제는 이때가 나의 일년을 돌아보는 시기가 되고 있다.

요새 즐겨보는 이해인 수녀님의 오래된 1990년대 수필집 ‘꽃삽‘, 이곳에서 수녀님이 생각하는 봄의 모습을 본다.

역시 수녀님, 시인답게 ‘봄은 꽃’이라는 서두로 시작한 단상이다.  이 서문을 읽으며 나도 어린 시절의 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나와 나이차이가 그렇게 나지도 않고 그 무렵 서울 가회동에도 인연이 있기에 더욱 그 시절 봄의 정경이 떠오른다.

난방시설이 초라했던 그 1950년대 그 시절, 겨울을 서서히 벗어나던 때는 정말 황홀한 느낌뿐이었다. 수녀님의 묘사, 포근한 흙 내음새, 어김없이 피어나던 각종 꽃들,  어디 있다가 다들 모여왔는지 그 각종 새들, 그 중에서도 나에게 ‘즐거운 추억의 눈물’을 자아내게 하는 것은 역시 ‘이슬비’가 아닐까? 꽃이 피어나는 앞마당으로 잔잔히 내리는 이슬비를 바라보며 내가 하늘로 떠오르는 착각 속에 빠지던 시절이었다. 당시의 동요들은 어쩌면 그렇게도 단순하면서도 즐겁고 멋지던가.

추위에서 해방이 된 아이들, 갑자기 밖에서 노는 시간이 배로 불어난 즐거움 속에서 얼마나 흙과 나뭇가지를 가지고 놀았던가. 그 시절의 코흘리개 ‘남자’ 친구아이들, 이제는 모두들 할아버지가 되었을 것이다. 세월의 흐름이 가져다 준 각종 ‘편리함’이 앗아간 것들을 아쉬워하면 다음 세대와 그 다음세대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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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면 나는 – <꽃삽>, 이해인

 

봄이 오면 나는 활짝 피어나기 전에 조금씩 고운 기침을 하는 꽃나무들 옆에서 덩달아 봄앓이를 하고 싶다. 살아 있음의 향기를 온몸으로 피워 올리는 꽃나무와 함께 나도 기쁨의 잔기침을 하며 조용히 깨어나고 싶다.

봄이 오면 나는 햇볕이 잘 드는 안뜰에 작은 꽃밭을 일구어 꽃씨를 뿌리고 싶다. 손에 쥐면 금방 날아갈 듯한 가벼운 꽃씨들을 조심스레 다루면서 흙냄새 가득한 꽃밭에 고운 마음으로 고운 꽃씨를 뿌리고 싶다.

 

 ‘조금 답답하겠지

그렇지만 꾹 참아야 해

땅은 엄마니까

꼬옥 품어줄거야

한잠 푹 자고 나면

우리 또 만나게 될거야’

 

언제 읽어도 정겨운 김교현 시인의 동시를 외우면 흙을 덮어주면 꽃씨들은 조금쯤 엄살을 부리다가도 말 잘 듣는 아이처럼 ‘알았어요’ 라고 대답할 것만 같다.

봄이 오면 나는 매일 새소리를 듣고 싶다. 산에서, 바다에서, 정원에서 고운 목청 돋우는 새들의 지저귐으로 봄을 제일 먼저 느끼게 되는 나는 새들의 이야기를 해독해서 밝고 맑은 시를 쓰는 새의 시인이 되고 싶다. 바쁘고 힘든 살의 무게에도 짓눌리지 않고 가볍게 날아다닐 수 잇는 자유의 은빛 날개 하나를 내 영혼에 달아주고 싶다. 봄이 오면 조금은 들뜨게 되는 마음도 너무 걱정하지 말고 더욱 기쁘고 명랑하게 노래하는 새가 되고 싶다.

봄이 오면 나는 이슬비를 맞고 싶다. 어릴 적에 항상 우산을 함께 쓰고 다니던 소꿉동무를 불러내어 나란히 봄비를 맞으며 봄비 같은 이야기를 속삭이고 싶다. 꽃과 나무에 생기를 더해 주고 아기의 미소처럼 사랑스럽게 내 마음에 내리는 봄비. 누가 내게 봄에 낳은 여자 아기의 이름을 지어 달라고 하면 서슴없이 ‘봄비’ ‘단비’라고 하고 싶다.

봄이 오면 나는 풀 향기 가득한 잔디밭에서 어린시절 즐겨 부르던 동요를 부르며 흰 구름과 나비를 바라보는 아이가 되고 싶다. 함께 산나물을 캐러 다니던 동무의 이름을 불러보고 싶고, 친하면서도 가끔은 꽃샘바람 같은 질투의 눈길을 보내오던 소녀시절의 친구들도 보고 싶다.

봄이 오면 나는 우체국에 가서 새우표를 사고, 문방구에 가서 색연필, 크레용, 피스텔, 그리고 마음에 드는 편지지와 그림엽서를 사고 싶다. 답장을 미루어둔 친지에게 다만 몇 줄이라도 진달랫빛 사연을 적어 보내고 싶다. 동시를 잘 쓰는 어느 시인으로부터 맑고 고운 무리 말을 다시 배워서 아름다운 동심의 시를 쓰고 싶다. 시를 외우다가 잠이 들고, 꿈에서도 시의 말을 찾고 싶다.

봄이 오면 나는 모양이 예쁜 바구니를 모으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솔방울, 도토리, 조가비, 리본, 바느질 거리, 읽다가 만 책, 우편물 등을 크고 작은 바구니에 분류해 놓고 오며 가며 보노라면 내 마음도 바구니가 되는 듯 무엇인가를 오밀조밀 채우고 싶어진다. 바구니에 담을 꽃과 사탕과 부활달걀,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선물들을 정성껏 준비하며 바쁘고도 바쁜 새봄을 맞고 싶다

사계절이 다 좋지만 가을엔 ‘달맞이 마음’, 봄에는 ‘해맞이 마음’이 된다고 할까? 꽃들이 너무 많아 어지럼증이 나고, 마음이 모아지지 않아 봄은 힘들다고 말했던 나도 이젠 갈수록 봄이 좋아지고 나이를 많이 먹고서도 첫사랑에 눈뜬 소녀처럼 가슴이 설레인다.

봄이 오면 나는 물방울 무늬의 앞치마를 입고 싶다. 유리창을 맑게 닦아 하늘과 나무와 연못이 잘 보이게 하고 또 하나의 창문을 마음에 달고 싶다. 먼지를 털어낸 나의 방 하얀 벽에는 내가 좋아하는 화가 사제가 그려준 십자가와 클로드 모네가 그린 꽃밭, 구름, 연못을 걸어두고, 구석진 자리 한곳에는 앙증스런 꽃삽도 한개 걸어두었다가 꽃밭을 손질할 때 들고 나가야겠다. 조그만 꽃삽을 들고 꽃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그 아름다운 음성에 귀를 기울이노라면 나는 멀리 봄 나들이를 떠나지 않고서도 행복한 꽃마음의 여인, 부드럽고 따뜻한 봄 마음의 여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1994>

  1. Atlanta, Georgia의 suburb

YAN: Yet Another Nostalgia

Nostalgia, 향수’병’ 鄕愁病… 허~ 이것도 이제 보니 병 病 그러니까 주로 ‘정신 질병’이다. 몸과 마음, 특히 마음이 아픈,  분명한 병은 병인 모양이다. 나에게는 특히 친숙한 이 ‘병’, 약 7 년 전에 우연히 신문기사 New York Times 에서 이것에 관한 ‘연구 결과’를 본 적이 있었고 그것에 대해서 나의 생각을 쓴 적이 있었다. 당시에 이런 것도 연구 대상이 되는구나 의아하고 재미있기도 했다.

유별나게 아련한 감정에 자주 휩쓸리는 나의 모습을 숨기고 사는 것도 쉽지 않은 것이 나의 중년 이후의 모습이기도 했다. 고향도 그렇지만 지난 시절을 유별나게 그리는 것, 간혹 이것 병이 아닐까 하고 생각도 해긴 했다. 그러다가 그 ‘과학적 연구’의 기사를 읽고 많이 위안을 받고 이해를 하게 되었다. 내성적인 성격과 향수병에 쉽게 걸리는 type은 흔히 우려하는  mental disorder는 아닌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더욱 재미있는 기사를 읽게 되었다. 이번에는 지나간 Atlantic Magazine 이 그 출처가 되었다. 기사의 제목이 유별나게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이름하여: Study: Nostalgia Makes Us Warm, and Cold Makes Us Nostalgic… 그러니까.. “향수’병’은 우리를 따뜻하게 하고, 추위는 우리에게 향수병은 가져다 준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부제 副題다.  ‘쉬지 않고 지나간 12월의 추억에 빠지면 집의 난방비가 줄어든다’. 와~ 과연 무슨 뜻일까…

대강 짐작은 간다. 포근한 지난날의 아름다운 추억에 빠지면, 그러니까 ‘향수병에 빠지면 몸도 따라서 따뜻해 지고,  또한 추위는 우리에게 향수병을 가져다 주고, 따라서 난방비가 줄어든다’ 는 논리다. 조금은 웃기는 듯 하지만 나는 150% 동감이 간다. 과학적으로 증명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하지만 이 Atlantic의 기사는 과학적으로 그것을 증명하고자 시도한 것이고 그들의 가설은 충분히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이 연구의 결론은: ‘춥거나, 슬프거나 외로울 때, 특히 holiday season에는 지나간 행복했던 시절의 생각에 빠져라’ 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앞으로 죽을 때까지 그렇게 돌아가고 싶은 아름다운 시절의 추억을 즐기며 따뜻하게 살고 싶고 난방비 절약에도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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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y: Nostalgia Makes Us Warm, and Cold Makes Us Nostalgic

Lindsay Abrams  December 4, 2012

 

Non-stop reminiscing about December past may cut down your gas bill.

PROBLEM:  Why do we get so nostalgic in December? Smell, touch, and music have all be proven to evoke it, and the holidays have all three (though, apologies if you’re not being touched enough this seasons.) While they can spur us to give love to our fellow men, or remind of us what’s important in life, they may also serve a more utilitarian function.

METHOLOGOGY: Researchers at the University of Southampton recruited college students to participate in five relatively basic studies centering around nostalgia to warmth. Some of them would probably make great holiday party games.

  1. Participants were asked to keep a journal of nostalgic feelings over 30 days, which were then compared to each day’s weather.
  2. Participants were placed in rooms ranging from cold to comfortable to over-heated, and then asked how nostalgic they felt.
  3. In an online study, participants listened to music and were asked about how nostalgic it made them feel, along with how warm they currently felt.
  4. Participants were placed in a cold room and instructed to reflect on nostalgic or ordinary memories, and to then guess the room’s temperature.
  5. After being asked to recall a nostalgic or ordinary memory, participants placed their hands in iced water and were instructed to keep them there for as long as they possibly could.

Different participants were used for each study.

 

RESULTS:

Success on all fronts. The journalers recorded more nostalgic thoughts on colder days. The people in cold rooms rated highest on nostalgia scales. The people for whom the music evoked the most sentimentality reported feeling warmer. The people told to think nostalgic thoughts while in the cold room had the warmest estimates for what the temperate actually was. And the unlucky participants in the ice water experiment lasted longest when they focused on nostalgic memories.

CONCLUSION:  Nostalgia appears to both to be evoked in chilly atmosphere and to have a protective effect against the cold – either by making us feel warmer or at least increasing our tolerance.

IMPLICATIONS: If you’re cold, sad, and lonely this holiday season, lose yourself in memories of happier times. That will take care of at least one of your problems.

 

The full study, “Heartwarming Memories: Nostalgia Maintains Physiological Comfort,” was published in the journal Emotion.

LINDSAY ABRAMS is a former editorial fellow at The Atlantic.

칠십이 년과 마흔 번째..

Ruby Anniversary, 연숙아, 우리들 오래 살았다…

 

¶  지나가는 일주일 동안 나는 칠십이 년을 살아온 ‘태어난 날’ 과, 배우자와 같이 가정을 이루며 산 세월 40년의 기념일을 연속으로 맞게 되었다. 쉽게 말해서 72세 생일, 결혼 40주년 기념일을 4일 간격으로 맞은 것이다.

항상 ‘기념일’로 바쁜 느낌을 받는 1월이어서 솔직히 근래에 들어서는 은근히 스트레스까지 느끼곤 하였다. 그래서 올해는 ‘아이들’에게 모든 기념일 축하는 사절한다고 충고를 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확실히 마음이 조금 편한 듯함을 느낀다.

생일이 그렇게 즐겁지 않다는 것을 애써 부정하는 것도 우습지만, 이렇게 ‘축하 거부’하는 나 자신도 웃긴다. 다행히도 ‘아이들’이 모두 올해는 바쁜 모양이어서 나의 전략은 성공했고 비교적 조용히 ‘미역국만 먹는 하루’를 즐기게 되었다.  진짜 옛날 ‘어렵던 시절’의 생일이 되살아난 듯 해서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이 일흔둘… 허.. 어쩌다가 이렇게 오래 살았는가? 100세 시대라는 말도 웃기지만, 70세면 어떻고 100세면 어떤가? 무조건 오래 사는 것이 그렇게 좋은가? ‘적당한 세월을 적당한 건강으로 적당한 모습으로’ 살다 가는 것, 나는 그것을 바란다. 제발 주위에 큰 부담 안 주고 가면 더욱 더 좋고. 이 세상에 있는 기간과 저 세상의 무한한 세월을 어떻게 비교를 할 수 있을까? 이런 사실을 잊고 사는 우리들이 바보가 아닌가?

가정을 이루고 산 세월이 40년, 이것은 조금은 자랑스럽다. 이유는 자명하다. 그렇게 못 살고 있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어쩌다 이렇게 세상이 변하고 있는가?  결혼 초에 40년 뒤를 내다본 적이 있었을까? 없다. 절대로. 그저 미래는 안개 속에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 안개 속을 헤치며 나아간 우리의 인생,  이제는 조금 피곤을 느끼기도 한다. 무언가 쉬고 싶은 그런 것, 이것이 칠십 년 세월의 느낌일까?

생물학적, 육체적 죽음이 진정한 끝이 아님을 안 이후 이제는 마음만은 편하다. 궁극적 희망이라는 것을 찾았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런 높은 진리를 늦게나마 알게 된 것을 감사하며 일흔두 살의 생일과 마흔 번째 결혼기념일을 조용히 지낸다.

 

연호 친구들, 1968년 9월, 관악산에서..

 

¶  ‘연호 延護’ 옛 친구들:  1월 중순 즈음이 되면 불현듯 떠오르는 옛 친구의 생일 1월 15일이 나를 반세기 전으로 되돌아가, 생일의 주인공인, 잊고 싶지 않은 친구 양건주와 당시 연세대 캠퍼스주위를 중심으로 같이 어울렸던 ‘연호’ 클럽 친구의 모습들이  함께 삼삼하게 떠오른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어서 정확히 1월 14일 저녁, 그러니까 대한민국 시간으로 1월 15일 오전 즈음에 근래에 우리들이 가끔 이용하는 카카오톡으로 생일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솔직히 주인공인 건주의 반응 메시지는 기대했지만 의외로 ‘모두들’이 즉각적으로 생일축하 인사를 보냈고 정말 오랜만에 모두 한마디씩 신년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이런 뜻밖의 ‘모임’은 정말 즐겁지 않을 수가 없다.

반세기를 뛰어넘는 ‘늙은 우정’을 다시 확인한 것으로 나는 만족한다. 모두 어떻게 사는지, 어떤 모습으로 70대를 맞이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모두의 정확한 생일날짜도 서로 확인을 하고 최소한 생일날에는 서로 이렇게 축하를 하자고 하였다.

그 옛날의 철없던 시절의 사진을 다시 보며 나는 숙연한 기분에 빠진다. 전보다는 이런 때의 기분을 잘 조절을 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이유 없이 즐겁게만 느껴지는’ 옛날의 추억을 나는 어찌할 수가 없다. 그저 포근하고 아름답게만 느껴지니…

 

 

¶  오늘은 신년 들어서 첫 ‘등대회’ 월례모임엘 참석을 하게 되었다.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유일한 ‘장년층’ 친목단체인데, 사실 옛날 같으면 ‘노인들 단체’로 분류될 법도 한 연령층인 60~70대가 주 멤버들이지만, 80대 이상의 그룹이 별도로 있기에 ‘노인’이란 말은 피하게 되었다. 우리는 1년 전에 다른 친목단체인 ‘구역모임’을 안 나가게 되었기에 이제는 이곳이 유일한 social group이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 더 정성 쏟으며 이 단체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을 한다. 오늘은 미리 알고 있었지만 1월 달 생일을 맞는 멤버를 축하하는 모임이기도 해서 내가 혼자서 축하를 받게 되었다. 생일을 미역국으로 때우려고 했던 원래의 의도와는 달리 뜻밖으로 이곳에서 정식으로 케이크와 ‘생일축하’ 노래까지 받게 되었다. 멤버의 숫자가 갑자기 늘어나는 듯한 이 모임, 앞으로 어떻게 변화, 발전이 될 것인지 모르지만 제발 ‘분열과 갈등’이 없이 건강하게 지속되기를 우리는 기도하고 있다.

신년 벽두 장례미사有感

 

장례식, 장례미사, 연령회 연도..  이제 나에게는 너무도 친숙하게 느껴지는 이 말들은 모두 죽음에 관련되는 말들이다. 불과 10여 년 이전만 해도 나는 이런 것들을 거의 모두 피해가며 살아왔었다.  ‘죽음의 진리’를 요리조리 피하며, 모래 밑으로 얼굴을 파묻고 살았다는 표현이 바로 나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이 ‘죽음의 모습’을 눈으로 보고, 기리며 보내는 것이 거의 습관화가 될 정도로 많아졌고, 나름대로의 ‘망자 亡者와의 이별’ 하는 방법과 철학까지 생기게 되었다. 물론 기본적인 철학은 가톨릭적인 것이지만 이제는 내 생각의 일부가 되었음을 느낀다.

각양 각색의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을 보내는 모습도 모두 다르겠지만 그런대로 경건함을 지키는 가톨릭 장례미사는 그 나름대로의 ‘장엄 의식’이 있고 그에 따른 조문객들의 엄숙함이 보인다. 일반 장례식은 물론이고 개신교 의식 조차도 이에 비해서 나의 눈에는 너무도 ‘사회적 모임’이라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한마디로 고인의 궁극적인 삶의 의미, 목적, 가는 곳, 등등에 대한 것들을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오늘은 올해 들어서 첫 장례미사에 가게 되었다. 작년에는 1월 초에 간 기억인데 올해는 조금 늦은 셈인가. 오늘의 주인공은 40여 년 전, 우리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창립멤버로 활약을 했었고 그 이후에도 여러 가지 사회봉사활동을 해서 이 지역에선 잘 알려진 분이었다.  지병으로 한국의 어떤 요양원에 계시다 며칠 전, 향년 80대 중반에 선종하시고 유골함이 다시 이곳으로 왔는데, 고인의 경력을 감안하셨는지 신임주임신부님, 최대한의 예우로 장례미사를 거행하셨다. 예를 들면 부활초가 켜지고 제대의 초의 숫자 등, 모두 평소의 장례미사와는 달랐던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생전의 고인을 직접적으로 만난 적은 없었지만 이런 분의 영결식에 참여하는 것은 레지오 단원으로서의 의무로도 생각되어서 ‘갈까 말까’하다가 온 것이었고 신부님의 고별사도 다시 기억하고 싶은 ‘신학적 깊이’를 더해 주는 그런 것이어서 ‘오길 잘 했다’하는 생각을 하였지만, 애석하게도 성당을 떠날 즈음의 느낌은 그것이 아니었다.

 작년 이맘때에 있었던 장례미사의 ‘악몽’이 떠올랐고, 그 이전에도 간혹 겪었던 좋지 않던 기억도 되살아 난 경험을 다시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 지나간 두 가지의 비슷한 경험은 모두 ‘너무나 무리하게, 길고 길었던 미사’라는 것, 놀랍게도 그것이 오늘 다시 찾아온 것이다.

장례미사는 일반 장례식과 조금은 달라야 하는 것이 아닐까? 미사가 끝나기도 전에 ‘고별식’이란 것, 각종 지인들의 고인에 대한 고별사들, 어떤 사람들은 아예 짧지 않은 강연을 하기도 하는데 한국말을 모르는 조문객들이 거의 없는데 모든 말을 영어로 번갈아 가며 하기도 한다.  제일 괴로웠던 경험은 ‘정말 보기 언짢은 태도’로 한 없이 계속되는 ‘우리 사상 최고의 영웅’ 아빠에 대한 추억들.. 정말 끝도 한도 없었다. 내가 죽었을 때 딸들이 그렇게 하는 것, 관속에 들어가 내가 듣게 된다면 아마도 관 뚜껑을 열고 나올 정도가 아닐까..  어제도 큰 예외는 아니었는데, 이번엔 ‘반세기 추억의 영화’까지 가미가 된 것이 이채로웠다. 일반 장례식장에 가면 예식 전후에 뒤 배경으로 계속 보여주던 video를 이번엔 성당 미사 중에, 그것도 ‘끝이 안 느껴질 정도로’ 무수한 영상들을 보여주었다.  내가 앉았던 위치로 보아 도저히 탈출할 수가 없었던 상황이었다. 나에게 이것은 완전한 show stopper로 느껴진 셈이고 앞으로 ‘장례미사 공포증’이 생기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까지 생긴다.

이래서 크건 작건 성당의 연령 행사는 ‘상식을 가진 책임자’가 책임을 지고 시작부터 끝까지 행사에 참여한 조문객들의 사정도 조금은 사려해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애석하게도 이제까지 이런 것들에 대한 책임자의 존재여부는 정말 불확실한 것이었다.  또한 앞으로 장례미사에 올 때는 끝나는 시간을 먼저 확인 받고 싶은 간절한 심정을 뿌리칠 수가 없다.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되었는가..

연말, 연시를 모두 놓친 느낌..

나는 요사이 느낀다. 깊은 곳,  속에서 우러나오는 그 ‘평화의 샘, 평정의 샘’이 예전에 비해서 덜 하다는 것을..  그것은 어떨 때는 거의 고통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왜 그럴까? 나이가 들어가는 것과 상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 비록 내가 앞으로 어떻게 ‘죽어갈 것인가’ 하는 것에 큰 공포는 없을지라도 어찌 그것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인가? 나는 이제 분명히 하느님을 믿게 되었고, 인간이 되신 하느님의 존재와 역사도 믿게 되었지만 성인이나 현자는 분명히 아닌 것이다. 문제투성이의 이경우 ‘시라소니’ 란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 않은가?

현재 나를 가까이서 괴롭히는 것은 점점 심해지는 치통일 것이고 이것이 거의 정기적으로 나를 우울하게 하는 것은 틀림이 없다. 그렇다면… 어찌 나는 이렇게 속수무책일까? 고통은 고통으로 다른 뜻으로 받을 수도 있지 않은가? 그렇게 호들갑을 떨며 고통을 호소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이렇게 고통의 순간을 나에게 다른 쪽을 바라보고 깨달을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는 없을까… 모두 나의 궤변일까?

예년과 조금 다른 성탄, 새해를 보내며, 조금은 아쉬운 감이 없지는 않으나 그래도 ‘가족적’인 의무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간신히 가부장의 위치를 고수하고 있지 않는가? 주위의 가부장들은 여행도 가고 즐겁게 사는 것, 모르지 않고 부럽기도 하고 은근한 부러움을 넘어 시기심이 일기도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그것이 나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 아님을 직감적으로, 피부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2020년 이후에 확실하게 다가오는 ‘그 큰 놀라운 순간들’을 기다리며, 모든 것을 미루며 지내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 않은 전략이 라고 생각하니까… 그때까지 모든 것을 미루어 보자…

하얀 눈을 노래하다시피 기다렸던 올 겨울, 비록 12월은 겨울처럼 추위는 느끼게 해 주었을지언정 그 ‘하얀 가루’ 는 하늘에서 안 내려오고 있다. 게다가 현재 1월은 거의 늦은 봄같이 따뜻하고 비의 연속으로, 연숙의 ‘수선화가 피게 생겼다!’ 고 외치는 ‘지겨운’ 언급을 나는 매일 들어야 하게 되었다. 그래… 이런 것들 우리가 어찌할 것인가? 천상 어머니의 소관이 아니던가? 하지만 첫 눈이 올 무렵 Conyers, Monastery 로 drive를 하자.. 는 거의 바보같이 감상적인 느낌들, 올 겨울의 기다림으로 살아가는 나의 모습도 가관일 듯하다.

1월의 달력도 반 이상이 깨알 같은 글씨로 가득하다. 그래도 매일매일 열심히 살았기에 그렇지 않을까? ‘무거운 1월’의 느낌은 주로 새로와 나의 생일’, 그리고 결혼기념들이 몰려 있어서 그런 것이라 나는 이번에 용감하게 ‘생일모임 사절’을 선언했고 새로니도 마찬가지.. 잘 했다.. 생일이 왜 그렇게 힘들어야 하느냐 말이다!

레지오, 자비의 모후, 생각만 해도 우울해지는 것, 어찌하나? 3명의 실질적 단원이면 위기중의 위기지만 이제는 거의 잘 적응이 되었는지 예전처럼 우울하지는 않다. 하지만 솔직이 체면은 말이 아니다. 특히 월례보고를 할 무렵이면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 된다. 의연금 $30.. 도 그렇지만 진짜 문제는 더 나아질 가능성이 안 보인다는 슬픈 현실에 있다. 나는 속수무책이고 연숙이 동동 뛰는 모습도 그렇고,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 모든 문제의 시발점인 그들 2명의 거의 미친X들에게 모든 불똥이 튈 수밖에 없는 바람직하지 않는 상태까지 되고… 야~~~ 이 병신 같은 미친X들아.. 너는 미쳤다.. 모든 것을 망쳤다… 소리소리 지르고 싶은 심정밖에 들지 않는다… 그 중 한 명의 미친X이 최근에 슬금슬금 비굴한 느낌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고 측은하기 전에 분통을 감추기도 힘들다.

큰 일이 기대되지 않던 1월에 나와 연숙은 역시 ‘하늘에서 내려 온 과제’라고 생각하여야만 하는 일들을 맞는다. 3명 단원의 우리 자비의 모후에서 2명이 ‘차출’되어 ‘토론대회의 주역’을 맡게 된 것… 생각을 해 본다. 못할 것 없지만 이런 timing에 혹시 무슨 뜻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이것이 우리의 레지오 과정에 어떤 영향이 있는 것은 아닐까? 조금 귀찮은 심정은 떨칠 수는 없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늦었다. 2월 26일 까지 부담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나아가는 수 밖에는..

그래… 나는 아직도 제일 큰 가족사의 변화를 의식적으로 피하고 있다. 그것이 나를 가슴 속 깊이 비수로 찌르고 있다. 나는 아직도 작은 딸에 대한 그 무언가를 간직하고 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내가 할아버지가 된다는 그 사실을 나는 거의 무조건 ‘척’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나도 놀란다. 나는 아직도 방관자의 입장에 서 있는 것이다. 나는 할 수가 없다. 어찌할 수가 없다. 모든 것은 시간과 세월이 해결할 것이라는 사실만 기대고 있다… 아, 하느님이시여..

Lofty shelf coming down…

몇 달 전부터 생각하던 귀찮은 일을 드디어 해치웠다. 거의 20년 전인 2001년 9.11 테러사건이 난 후에 울적한 심정으로 만들었던 두 개의 giant hanging shelve 중에 하나를 해체한 것이다. 우리 집의 garage ceiling이 유별나게 높기에 이사 오면서부터 항상 그 천정의 공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며 살았다.  거의 2층 deck정도의 높이라서  차고 공간의 절반이 ‘놀고’ 있는 셈이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storage용으로 거의 다락방 크기로 선반을 만들어서 천정에 매달아 놓은 것이다.  공간 재활용이 목적이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거의 쓸모가 없이 방치된 상태로 20년이 지나갔다. 방치된 것은 아니지만 storage용도로는 너무나 높고, 깊어서 한번 쓰려면 차를 빼고 사다리를 써야만 하는 불편함을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이다.

이제는 잡동사니를 하나 하나씩 버려야 하는 나이에 이런 bonus storage은 바람직한 것이 절대로 아님을 알기에 미련 없이 없애 버렸고 나머지 하나도 곧 사라질 것이다. 4시간 노동의 보람은 충분히 있었다.

 

冊: 나가사키의 노래

나가사키의 노래, 영문판(원서) 표지

손가락이 저려온다. 아니 가끔씩은 거의 마비가 된 느낌도 든다. 거의 일주일 동안 빠른 속도로 typing을 했던 것에 대한 후유증일 것이다.  새해 벽두부터 나의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는 책을 ‘필사’를 하며 읽기 시작해서 이제는 거의 끝이 나고 있다.

‘지난해’  12월 22일에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서 빌려온  제목  ‘나가사키의 노래, 원제 原題: A Song for Nagasaki‘ 라는 300 page가 조금 넘는 결코 짧지 않은 책으로, 저자는 호주 Australia 출신 폴 글린 Fr. Paul Glynn 신부,  옮긴이는 [개신교 신자] 김숭희 씨로 되어있다.

이 책은 한마디로 ‘서양’ 신부가 뒤늦게 발견하고 이해하게 된,  ‘동양인’,  ‘일본의 간디’로 불리며 추앙 받는,  ‘나가이 다카시 永井隆’ (방사선학 의학) 박사에 대한 책이다.

가톨릭 신부가 저술하였으므로 분명히 이 책의 배경에는 ‘가톨릭, 천주교’가 있음이 분명하고, ‘나가사키 長崎’라는 지명이 들어가 있으니 또한 제2차 세계대전 시,  히로시마 廣島에 뒤따른  ‘제2의 원자폭탄 피폭지’가 또 다른 배경으로 깔려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성당 도서실에서 이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 선뜻 손이 가지를 않았다. 불현듯 느낌에 이 책의 원류에는 ‘엔도 슈사쿠 遠藤 周作’의 책과 그에 따른 Hollywood 영화, ‘침묵‘과 연관이 있음을 짐작했고, 17세기 나가사키의 기독교인 성 ‘미키’를 포함한 26명의 순교자들의 생각도 났다. 일전에 그 책 ‘침묵‘을 빌려 읽었던 연숙의 얼굴표정을 읽었을 때, 나는 그 책에 언뜻 손이 가지 않았다. 순교를 하는 장면을 너무나 실감나게 표현하는 글들을 나는 피하곤 했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원자폭탄이 바로 옆에서 폭발하는 것을 목격하였고, 사랑하는 아내가 흔적도 없이 눈앞에서 사라진 것들,  그와 관련된 오랜 전 역사적 사진, 실화도 접했을 때, 솔직히 나는 이런 가공할 ‘지옥의 모습’들은 모두 없는 것처럼 피하고 싶었던 역사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불현듯 이 책으로 손이 갔고, ‘무조건 읽자’ 라는 생각이 스쳤다. 책꽂이에는 같은 책이 무려 4권이나 있었던 것을 보고 ‘아,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읽고 있구나’ 하는 안도감도 도움이 되었다.

성탄절을 며칠 앞둔 날 이 책을 빌려와서 읽기 시작했지만 본격적으로 ‘필사’를 하며 읽기 시작한 것은 새해를 맞이하면서부터였다. 그러니까 올해 2020년 경자년의 새해벽두부터 나의 머리 속은 1940년대 중반 일본 나가사키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의 일본 정세 등 자세히 몰랐던 역사의 속으로 이끌려 들어갔다. 이 책의 특징, 일단 읽기 시작하면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불과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서 ‘필사’와 완독을 할 수 있었고, 그 이후는 이 책의 내용이 나에게 주는 교훈,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다.

비록 침략적 패전국의 군의관이었지만 그는 적국의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고 치료를 했으며, 과학자의 입장에서도 용감하게 신앙을 살았고, 대학 방사선과 연구의 후유증과 원폭시의 심한 상처로 백혈병으로 고생을 하면서도 지치지 않고 주위에 버려진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았다. 굽힐 줄 모르는 불굴의 용기와 하느님에 대한 믿음, 그에 따른 거의 완전한 인간애, 이 책은 주인공 나가이 다카시는 그야말로 한마디로 전형적인 ‘성인’ 후보감 이었다. 공식적으로 성인의 품에 오르는 첫 단계인 ‘주님의 종’ 이지만 분명히 다음 단계인 ‘가경자 venerable’, ‘복자 blessed’ 을 거쳐 언젠가는 완전한 성인이 되리라 확신한다. 나가사키의 노래,  ‘필사본’은 이곳에 한정적으로 보관되어 있다.

 

이천 이십 년?

 

이천 이십 년? 허… 지나가는 10년 동안 부지런히 이천 십…을 되뇌며 살아서 그런지 이천 이십 어쩌구… 하는 것이 이렇게 이상할 수가 없다. 십진법의 ‘십’이란 숫자의 마술인가. 이제 두 시간 정도가 지나면 부지런히 부지런히 이천이십을 되풀이해야 한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퉈니 퉈니, twenty twenty 2020, 20/20 (2.0 시력) 로 되니까 조금은 익숙한 느낌인가…

아~  이것이 decade적인 세월인가, 10년마다 겪는 이런 것을 돌아보니 사실은 20년 전에 우리는 대사건을 겪은 경험이 있었다. 1999에서 2000으로 바뀌던 그 무렵..  이런 것들로 1900년대 중반 이전부터 살아온 덕분에 이런 멋진 ‘세월의 숫자’들을 몸소 경험하게 되었다.

 

올해의 섣달 그믐날 밤에는 예상을 벗어나 3-2-1, Happy New Year! Countdown 하는 요란한 모습, 그것도 뉴욕에서 생방송 하는 것 보는 것을 지나치기로 하고 자정 몇 시간 전에 잠자리에 들어버렸다. 원래 계획은 바쁘고 피곤한 아이들이 안 온다기에,  모처럼 우리 둘이서만  ‘멋지게’ Champaign잔을 마주치며 ‘HAPPY NEW YEAR!!’을 외치려 했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설날 아침에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의무대축일 미사가 있기에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사실을 핑계로  이 몇 년 된 전통을 포기한 것이다.

 

일찍 침대에 누웠지만 사실 깊은 잠에 들 수가 없었다. 3-2-1의 뉴욕의 생방송은 꺼졌지만 이번에 집 주변에서 요란하게 터지는 firework소리가 생각보다 요란하였다. 올해는 아이들의 장난이 아니고 아주 pro들이 즐기는 모양으로 오랫동안 지속되어서 몇 시간 동안은 아예 ‘새해의 기분’ 을 즐기는 셈치고 누워있게 되었다.

2020의 요상한 숫자의 느낌을 떠나서 심각하게 ‘늦은 세월’의 의미를 찾아 보았다. 내 나이 이제는 절대적, 긍정적으로 젊어지지는 않는다. 70대의 나이는 또 따른, 가볍지 않은 짐을 지고 나아가는 느낌, 그것은 육체적인 건강상태다. 수치상으로 나는 현재까지는 큰 issue가 없지만 머리 속으로 느낌은 그것이 아니다. 나의 나이는 나이인 것이고 그것이 정직하고 겸손한 태도가 아닐까. 겸손하게 살자, 겸손하게…

다시 성탄이 지나가며..

¶  공식적 겨울이 시작된 동지 직후의 며칠은 올 겨울의 추위를 예고하듯이 뼈까지 저려오는 싸늘하고 을씨년스럽기만 한 그런 것이었다. 모든 것이 깜깜하게만 느껴지는 초저녁은 과연 일년 중 제일 밤이 길었음을 실감하게 했다. 올 겨울을 맞으며 나는 작은 꿈을 꾸고 있었다. 하얀 눈이 ‘적당히’ 내리는 날 아틀란타 교외 Conyers 에 있는 Holy Spirit Monastery,  Trappists 수도원으로 연숙과 멋진 드라이브를 하는 그런 것이었다.  그곳의 gift shop의 coffee또한 일품이어서, 눈 나리는 수도원의 풍경과 함께 멋진 우리들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역시 그것은 역시 올해도 꿈으로 끝나는 듯하다.  아직까지도 전혀 눈이 올 기미가 안 보이는 것이다.

작년에 비해서 성탄 트리, 장식은 조금 일찍이 끝났고 올해도 이것들은 새로니 생일 early January 즈음까지 성탄씨즌 동안 밤과 낮을 밝힐 것이다. 예년에 비해서 Hallmark holiday movie들을 훨씬 덜 보고 있다. 지난 2~3 년 동안 나는 이것을 정말 즐겨 보았지만 올해는 그렇게 마음의 한가함이 없었던 듯 하다. 갑자기 ‘망가진’ garage door opener  때문에, 성탄 바로 직전까지 tool time (replacing garage door opener) 으로 머리가 복잡했던 것도, 편하게 느긋하게 video를 볼 여유를 갖지 못하게 했다.

그런 와중에서도 성탄 전야에 우리 extended family members 들이 모두 모일 수 있었다. 보통 4명이 모이던 가족행사가 올해는 6명으로 늘었다. 3월 초 출산예정인 작은 딸 부부,  내년 6월 결혼예정인 큰딸 새로니와 그의 약혼자까지 남녀의 비율이 1:1 이 되었다. 세월의 횡포인지 혜택인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세월은 이렇게도 정직하게 흐른다는 것을 절감한다.

 

올해의 트리 장식은 연숙이 모두 했고, 가족들로부터 책을 포함한 선물도 받았다

 

¶  Smart Garage Door,   일년도 훨씬 지나간 작은 악몽의 추억이 아직도 머리 속에 삼삼하다. 2018년 새해 즈음에 갑자기 garage door가 오르내리는 모습이 이상하여 보니 extension spring 하나가 피곤한지 축 늘어져 있었다. 하나의 door 무게가 150 파운드가 넘는데, 2개의 door의 balance는 물론이고 그것이 오르는데 너무나 힘에 겨운 것이었다.  물론  늘어진 extension spring 탓이었음은 알았지만 다행히 opener motor자체는 아니어서 그대로 넘어갔지만 그때의 ‘작은 사고’는 악몽으로 남아있었다.

그러던 것이, 최근에 점점 opener motor의 소리가 요란해지는 것을 알았고, 결국은 이번에 내가 보는 앞에서 door opener motor 에서 연기가 치솟으며 갑자기 모든 것이 조용해졌다. 30여 년의 힘겨운 service를 마치고 ‘영면’한 것이다.  실망 전에 나는 이’놈’에게 감사를 드렸다. 참 오랫동안 정직하게 임무를 수행한 것이다.

이것이 망가지면 불편함이 이만저만 아니다.  이 무거운 차고문을 차에서 내려서 손으로 열고 닫는 것, 못할 것은 없지만 비라도 오거나 하면 낭패지만 새것으로 바꿀 때까지 며칠은 피할 도리가 없었다.

급하게 Home Depot에 가서 opener model을 살펴보고 Internet을 뒤지고 해서 찾은 것이 Chamberlain B750란 놈인데, Belt Drive라서 아주 조용하고 게다가 소위 말해서 Smart Model로 Smart Phone App으로 control이 되는 것인데 나는 이 사실 보다는, 전에 쓰던 screw drive보다 훨씬 ‘조용한’ belt drive라서 이것을 골랐다.

 이것을 고르고 산 것은 쉬운 일에 속하고, 이것을 손수  install해야 하는 골치 아픈 일이 나의 온 신경을 곤두세우게 했다.  Pro의 service도 있지만, $100이상임은 둘째치고 나에게 이런 option은 한마디로 ‘최후의 선택’에 속한다.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이것은 나의 몫인 것이다.

나이의 영향인지 tool을 다루는 감촉도 예전과 같지 않아서 사실 특별히 조심해야 하는 부담도 있다. 전에 garage door spring 사고를 당한 경험도 별로 즐겁지 않아서 일을 선뜻 시작하기가 싫었지만 일단 시작이 되면서 거의 ‘자동적’으로 나의 머리는 ‘공돌이’의 그것으로 서서히 바뀌고 결과적으로 며칠 만에 우리는 최신형 smart garage door opener의 혜택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설치 후 첫 번 가동시에 놀란 것이.. 너무도 조용하다는 사실이었다.  전에는 ‘열차’가 지나가는 소리처럼 시끄러웠는데 지금은 그것이 가냘픈 소음 정도로 변한 것이다. 또한 smart phone으로 control이 되면서 문이 열린 상태를 real-time으로 알 수가 있다는 것, 이것도 아주 편한 점이다. 가끔 집을 떠난 후에  ‘내가 문을 닫았는가..’ 하는 의심이 들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 공정을 되돌아 정리하면 사실 괴로운 순간 순간들이 도처에 매복해 있었다는 사실을 숨길 수가 없다. 또한 각가지 크고 작은 ‘문제’들에 접해서 시간이 pro에 비해서 훨씬 오래 걸렸지만 이것은 나에겐 큰 문제가 안 된다. 시간이 넉~넉 하기 때문이다.

 

Chilly Morning with Handel

아주 매섭게 싸늘한, 빙점으로 향해 올라가려 애처롭게 안간힘을 쓰는 아침, 무섭게 새파란 하늘이 나를 더욱 움츠려 들게 만든다. 겨울 시작의 선을 긋는 동지를 이틀 앞둔 날 치고는 seasonable한 날씨일 듯하다. 하지만 조금 더 바란다면 조금 ‘덜 싸늘하고’,  조금 ‘더 흐린’ 그런 아침이었으면… 하는 바램을 떨칠 수가 없다. 나의 느낌은 조금 덜 싸늘하고 포근하게 되지 않았을까…

조금 쳐지는 기분을 뜨게 하는 것은 역시 coffee grinding 소리와 곧 이은 아늑하고 감미로운 향기가 있고 조금은 들뜨게 하는 소리, 음악이 있다. Big Screen TV로 kitchen에서 보게 된  YouTube는 2년 전 이맘때에 심취해서 보고 또 보고 듣고 했던 Handel’s Messiah 연주공연이 아닌가.  이 공연은 comment로 알게 되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 이 합창단과 orchestra는 동구권인 Czech Republic, Prague였다. 이 공연을 보면서 비로소 conductor의 역할을 실감하게 되었다. 전 공연을 마치 마술에 이끌리듯 감상할 수 있었던 것이다.  HD이 아닌 ‘조잡한’ video였지만 그런 문제는 생동감이 넘치는 audio가 모두 감싸주었다.

 

 

Collegium & Collegium Vocale 1704

Vàclav Luks, Director

Hana Blazikova, Soprano

Delphine Galou, Alt

Markus Brutscher, Tenor

Marián Krejcik, Bass

Recorded at l’Abbatiale Saint-Robert de La Chaise-Dieu, 21 August 2011

 

Classical music에 거의 문외한이었던 나는 뒤 늦게 이런 인류의 보물을 조금이라도 알려고 노력은 했지만 역시 역부족에 미치고 있는 듯하다. 우선 젊었던 시절의 이 분야에 대한 ‘추억’이 거의 없는 것이 치명타였다. 추억의 매력이 전혀 없이 ‘공부’만 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나를 죽음의 강을 넘어가게 인도하는 길잡이인 가톨릭 신앙의 도움을 전적으로 받고 있고 이 Handel의 걸작품 역시 그런 시각으로 보고 있다. 크리스마스나 부활절, 모두 이 ‘메시아’가 주인공이 아닌가?

 

세 번째 대림초가..

¶  세 번째 대림초가 켜졌다. 대림 제3주를 맞는 것이다. 또한 2010년대 마지막 해 2019년 마지막 달의 절반이 지나가고 있다.  공식적 겨울인 동지가 일주일 정도 남았고, 대림절이 끝나고 성탄시기가 시작되는 25일을 열흘 앞두고 있다.

도라빌 순교자 성당은 예년에 비해서 일찍 성탄장식의 불들 켜지기 시작했는데, 너무 일찍 시작되는 ‘축제분위기’를 자제하라는 교황의 권고 영향인지 몇 년 전부터는 확연히 ‘기다리는 분위기’로 바뀐 것을 느끼고 있다.

나 자신도 그런 것이 싫어서 가급적 성탄 전에 가깝게 조금씩 장식을 시작하려고 했고, 확연히 그것은 심리적으로 좋은 영향을 준 것을 실감한다. 성탄절, 그러니까 크리스마스가 모든 것의 시작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대림절, 그러니까 성탄절 전까지는 ‘조용히 기다리는’ 것이고 축제 분위기는 성탄부터 시작이 되는 것, 거의 나의 모든 생애에 걸쳐서 나도 ‘세속적’으로 살았음을 알게 된다.

올해 새로 부임하신 이영석 사도 요한 주임신부님의 바람인지 올해는 성당의 장식들이 일찍 준비가 되었고, ‘사상 초유’로 성당건물 밖에 ‘사람이 살만한 크기’의 거대한 구유가 설치 되었다.  성탄의 기다림을 조금이라도 실감나게 보여주려는 ‘선행 투자’가 아닌가 생각도 들었다.

 

¶  ‘새’신자 안내:  12월 한달 동안 내가 속한 레지오 ‘자비의 모후’가 교중미사  (새)신자안내의 역할을 맡았기에 한달 동안 우리는 ‘의무적’으로 한국성당엘 와야 한다. 따라서 12월 모든 주에 우리는 ‘역사를 자랑하는’ 동네 미국성당의 교중미사는 모두 빠지게 되었다. 평일, 매일미사를 미국성당으로 가기에 큰 ‘심리적’인 문제는 없지만 그래도 무언가 허전한 것은 사실이다. 이럴 때 나는 나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다. 내가 미국에서 사는가, 대한민국의 연장선에서 사는가… 장기간 세월이 지나면서 이런 것에서 나는 편치 않은 그 무언가 항상 느낀다. 그 무언가 확실치 않은 것, 그것이 나는 싫은 것이다.

신자 안내, 사실은 주보를 나누어 주며 인사를 하고, 혹시 새 신자가 소개되면 그들을 미사 후에 ‘접대, 신자등록’ 하는 것인데, 3주를 연속으로 하다 보니 이제는 제법 익숙한 것이 되었다. 성당 정문 안에 서서 들어오는 교우에게 주보를 나누어 주며 따뜻한 인사를 하는 것, 이렇게 쉬운 일이 세상에 어디에 있을까? 이것이야말로 ‘win-win’중의 극치, 인사 받는 사람, 주는 사람 모두 그렇게 기쁠 수가 있을까?

문제가 하나 있다면… 흠… ‘웬수’의 모습이 눈앞으로 다가온다면?  이런 상황을 예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선택의 여지는: (1) 공손히 인사하며 주보를 건네준다. (2) 얼굴은 안 보고 주보는 건네준다. (3) 얼굴을 똑바로 보며 전혀 모르는 사람취급을 한다. (4) 안 본 척하며 비켜선다. 여기서 나는 아마도 (2) 아니면 (3)을 선택하리라 마음을 먹었고, 은근히 그 ‘레지오 미친X’ 의 얼굴을 상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마주친 교우들은 100% ‘천사’같은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왔고 3번씩이나 경험한 이 ‘교우신자안내’ 일은 즐거운 일로 느껴지게 되었다. 하지만 다른 쪽에 서서 안내하던 연숙은 그런 행운이 없었다. 바로 그쪽으로 ‘웬수’의 ‘가오’가 다가갔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그 ‘웬수’가 그렇게 당당하게 접근했다는 것은 상상 밖이었기에 놀랐던 모양이고, 결과적으로 신부님께 ‘성사’를 보게 되는 사태까지 갔다. 결과적으로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겠지만 앞으로는 그 ‘웬수’가 다시는 우리에게 접근하지 못할 것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오히려 다행일지도 모른다.

 

¶  Rock-Bottoming Out: 지난 주 레지오 주회합을 기점으로 우리 자비의 모후 쁘레시디움은 완전히 바닥까지 갔다는 회의감이 들었다.  제일 우리가 ‘차세대’을 지향하며 희망을 걸었던 두 자매, 모두 극복하기 힘든 복잡한 가정사정으로 물러나고 실제로 움직이는 단원이 기본적인 요건을 채울 수가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전에는 단원의 숫자가 그렇게까지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편한 생각을 가졌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단장의 입장이 되고 보니 이것이야 말로 기본적 요건 중의 제일 중요한 것, 왜 몰랐을까?

이렇게까지 된 제일 큰 원인은 2년 전에 그 ‘레지오 미친X’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 ‘미친X’은 개인적으로도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었지만 그것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우리 레지오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었다는 사실,  이 사실만은 내가 눈을 감아도 잊지 못할 것이고 아니 잊어서는 안 된다고 결심을 하였다. 우리 둘의 결론은 그 ‘미친X’은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뉘우칠 능력이 결여된 불구자’라는 사실이다.

앞으로 우리 자비의 모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솔직히 아무도 모른다. 새해에 과연 신단원 후보가 나타날까? 신부님의 적극적인 본당차원으로 홍보는 하고 있지만 암만 보아도 요새 교우들,  친교나 노는 데 더 신경을 쓰는 것을 보면 너무나 실망적이다.

 

¶  Tool Time’s Coming! 우리가 이사올 당시에 있었던 garage door opener 가 드디어 마지막 숨을 쉬었다. 몇 달 전부터 날씨가 싸늘해지면서 garage door가 움직이는 모습이 애처로울 정도로 늦고 마지막 안간힘을 쓰는 듯 motor의 소음소리가 더욱 더 요란하게 들렸다.  우리가 이사를 온 때가 1992년 봄이니까 최소한 이 garage door opener는 거의 40년에 가까워 온다. 이 정도면 훨씬 전에 retire가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우리 것은 ‘장수 長壽’를 한 셈이다.

새것을 찾아보니 완전히 wifi/internet까지 겸한 hi-tech model 들 투성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힘찬’ powerful motor 로  2개의 문짝을 문제없이 올렸다 내렸다 하면 된다. Home Depot website 에서 찾아서 사온 것은 $200 짜리 Chamberlain model B750 , 3/4 hp인데 이것은 지금 것이 screw drive인데 비해 belt drive라서 noise level이 훨씬 낮을 것이라고 하는데 물론 좋겠지만 우리에게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이점은 아니다.

문제는 이것을 교체하는 ‘쉽지 않을 수 있는’ 일거리가 남았다. 한번도 내 자신이 이것을 설치, 교체해 본적이 없기에 불안한 점은 있지만 ‘만능 교실’ YouTube를 보면 그렇게 어려울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것을 실제로 교체하기 까지는 차가 드나들 때마다 근육으로 문짝을 올리고 내리고 해야 하는데 소낙비가 오지 않는 한 그것은 큰 문제는 아닐 듯 싶다. 다만 절대로 젊어지지 않는 나이가 문제라면 문제다. 절대로 절대로 작년 Hyundai Sonata의 Fuel Pump 교체하던 때의 실수, 악몽을 잊으면 안 된다. 나의 지나간 시절의 기술적 감각에 연연하면 안 된다, 안 된다.

 

¶  스테파노: 정말로 오랜만에 박스테파노 형제님 부부와 마리에타 소재의 ‘싸리골’ 이란 한국음식점에서 주말의 밤 늦게까지 식사를 하며 즐겁고 보람 된 시간을 즐기게 되었다. 이곳은 비록 우리동네인 마리에타에 있는 것이지만 우리의 일들이 주로 도라빌에 가는 기회가 더 많아서 가끔은 이곳을 잊고 산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은 한국사람보다는 이곳 사람(보통 미국사람이라고 칭하는)이 훨씬 더 많은 듯 보였다. 한국의 ‘고기요리’가 이곳에 많이 알려지면서 이곳도 business가 전 보다 더 활발한 것 같았다.

이 스테파노 형제님을 개인적으로 알게 된 것이 불과 2년이 조금 넘었지만 부부의 나이가 우리와 너무나 비슷하고 관심사도 그렇게 서로 멀지 않음을 알았다.  현재 business를 모두 정리하려고 나이에 비해서 너무나 고생하는 것을 알기에 하루 빨리 모든 것이 해결되어 편하게 retire를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공대출신인 형제님의 관심사는 나의 그것과 비슷한 부분이 적지 않은데 그 중에는 ‘양자 물리학 quantum physics’ 의 각도에서 본 신앙체계도 있는데 이 형제는 나보다 더 ‘동양사상’까지 가미가 되어서 요새 읽었던 Fritjof CapraTao of Physics의 그것과 크게 차이가 나질 않는다. 앞으로 시간이 나면 부부가 서로 다시 만나서 이런 흥미로운 화제로 긴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상상하며 헤어졌다.

Into Advent, 10th 연총 2019

세월은 흘러 흘러 어느새 겨울이 되어가는가? 올해 날씨의 특징이 있다면 일단 일기 패턴이 자리를 잡으면 별로 변하려는 기운이 없다는 것,  그렇게 익숙하던 옛날의 三寒四溫 이란 말은 완전히 사라진 듯하다. 다행히도 그 pattern이란 것이 ‘늦가을 초겨울 같은’ 그런 것이라 다행이라고 할까..

지나간 11월 초라고 기억되는 때에 벌써 요란한 Christmas carol이 흘러나온 곳은 의외로 ‘대한민국 극동방송, FEBC streaming service’이었다. 역시 대한민국의 개신교회는 이곳과는 조금 다른가..  어떻게 이렇게 일찍이 크리스마스 기분을 내는가? 덕분에 추억의 캐럴을 편하게 즐기게는 되었지만 Thanksgiving holiday 전에는 그렇게 편한 느낌은 아니었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사실 그런 세속적인 느낌의 성탄축제 보다는 ‘대림절, Advent‘의 엄숙하게 예수탄생을 기다리자는 전통이 있어서 매년 고민을 하게 된다. 어느 정도 ‘전통’과 ‘현세적 문화’를 절충하는가 하는 문제다. 전에는 젊은 시절의 추억적인 크리스마스 기분을 100% 기억, 만끽하려고 했지만 몇 년 전부터는 교회의 권고를 따르기로 결정하고 모든 holiday decoration을 성탄 10일 전 이내로 늦추고 있다. 한마디로 차분한 대림절이 되었고 대신 성탄의 기분을 1월 중순까지 지속시키려 노력을 한다. 그것이 진정한 대림-성탄시기의 뜻일 것이다.

 

12월이 되자 YMCA에서 성탄느낌의 색깔들이 하나 둘 씩 보이기 시작하더니 우리의 한국본당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도 본격적으로 성탄 장식은 물론 주차장에는 Nativity scene 성탄구유 까지 만들어 놓았다. 우리 성당에서 이런 건물 밖의 구유는 처음 보는 듯하다. 새로 부임하신 이영석 신부님이 이런 것을 특별히 원하셨는지 올해는 조금 모든 것들이 더 일찍, 더 ‘요란한’ 느낌이 든다. 아마도 피곤한 삶을 살아가는 교우들을 조금 더 배려한 것은 아닐지…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레지오 연차 총 친목회 2019

 

오늘은 예년에 비해서 1주일 뒤늦게 레지오 연차 총친목회가 열렸다. 손가락으로 계산을 해 보니 내가 이 모임에 참석한 것이 딱 10년째가 됨을 알았다. 갑자기 ‘오래 되었다..’ 라는 自照감이 ‘엄습’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그 동안, 무엇이 변했는가? 많이 변했다.. 

나에게 처음 레지오 연총 (2010년대 초 연차 총친목회)의 적극적이고, 참신했던 느낌은 많이 희석된 듯 느껴지고 이제는 조금은 ‘수수방관자’적인 입장이 된 듯해서 조금은 쓸쓸하기까지 하다.  통기타반주로 70/80노래를 목청을 돋구어 부르며 연총 에서 어울렸던 여러 형제님들도 이제는 뿔뿔이 헤어지고, 결국은 ‘별로 쓸모 없는’ 자매님들만 주위에 남은 듯하다. 이것이 레지오의 生老病死인가 아니면 보통 있는 진화과정인가..

나이로 보아도 leading edge에 있는 우리들, 이제는 조금씩 후진, 후배 단원들의 ‘양과 질’을 생각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양과 질 모두 정체, 아니 퇴보인 듯 우려되고, 어제 있었던 신부, 단장 간담회에서는 정식으로 ‘신부님의 전폭 협조’ 요청이 있었다.  협조란 것은 다름이 아닌, 조금이라도 좋으니 ‘레지오 선전’을 해 달라는 것이었고, 오늘 교중미사에서 드디어 그 효과가 나왔다. 전 신자들에게 레지오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간곡한 언급’.. 얼마나 ‘멋진 신임 신부’인가!

오늘 연총에서 우리는 예상대로 ‘공연’을 포기한 상태로 끝났다. 부끄럽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올해 초에 우리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우리의 구세주로 등장했던 ‘자매님 들’, 엄청난 실망을 안겨주고 갑자기 떠난 상태에서 나는 모든 희망을 잃은 상태가 되었기에 사실 연총 같은 ‘축제’는 관심 밖에 있었다. 그 ‘기대주 자매님’은 도대체 어떻게 인생을 살아왔었는지 동정심과 실망을 넘어서 화가 날 지경인데.. 이런 ‘위기’는 어떻게 극복할지 역시 해답은 우리의 총사령관이신 성모님이 가지고 계실지…

Off Day Muses..

¶  제일 따뜻한 양말도 별로 따뜻하게 느껴지지 않는, 겨울느낌의 늦가을이 서서히 계절상의 겨울로 향해 서서히 흘러간다. 더위보다는 추위가 낫다.. 라는 깊숙한 추억으로, 이런 쓸쓸한 싸늘함의 일초 일초를 즐기고 있다. 비교적 유순한 날씨의 차례가 끝나고 매서운 바람에 실려온 시베리아[이곳은 캐나다] 성 냉랭함은 달력의 넘김과 더불어 세월의 움직임을 다시 느낀다.

오늘은 예기치 못한 off day가 되었다. 얼마 전 나를 ‘가볍게 [flu-shot덕분인지..]’  스쳐간 감기가 이번에는 드디어 연숙에게 닥친 것. 이럴 때마다 우리가 공감하는 것 하나가 있다. ‘이른 아침에 (돈 벌러) 나가지 않고, 편하게 쉴 수 있다…’ 라는 안도감. 언제까지 우리가 현재의 pace로 뛸지는 모르지만 어느 정도 살 날이 그런대로 남았다면 이럴 때는 조금 쉬면서, 천천히 가면 됨을 경험을 통해서 익히 알게 되었다.  그래… 하루 푹~ 쉬면 되는 것 아닌가?

근래에 자주 성당 공동체 주변에서 알게 된 나이가 엇비슷한  ‘친구’들을 통해서 그 동안 익숙지 않았던 ‘다른 삶’들을 알게 되면서, 아직도 꾸준히 매일 매일 일하는 형제, 자매님들에게 미안함을 느끼게 되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는 최소한 육체적으로는 편안한 것이라는 사실. 특히 가까이 알고 지내는 사람들 중에도 ‘새벽같이 집을 나간다는’ 사실을 자꾸 잊고, 실없고, 무심한듯한 comment를 하던 내가 부끄럽기도 하다.

 일년 열두 달, 매주 ‘레지오 마리애 화요일’이 우리에게는 主日과 더불어  laborious week 의 절정이기에 수요일 아침에는 언제나 조금 늦게 일어나고 싶은 유혹이 오고 ‘감기’와 같은 사유가 생기게 되면 다음날을 ‘반가운’  off-day로 결정을 한다.  그래도 daily morning mass는 우리에게 변함없는 7년 째 전통과  rule 이기에 이것을 거르게 되면 무언가 허전함을 느낀다.  하지만 매일 아침 보는 정다운 regular들의 얼굴이 떠오르고,  이것이 우리가 ‘우연히 시작한’ best ever life habit 임을 상기하면 절로 무한한 보람과 행복을 느낀다.

 

¶  거의 두 달 만에 Ozzie[새로니 pet dog]가 우리 집으로 ‘휴가’를 와서 열흘 넘게 머물게 되었다. 거의 14년 동안 우리 가족이었던 가족, Tobey가 작년 여름에 영원히 잠을 든 이후로는 다행히 Ozzie가 가끔씩이지만 거의 정기적으로 나의 공허함을 채워주고 있다. 가을이 되면서 동네를 개와 천천히 걸으며 단풍, 낙엽 등을 감상할 기회가 그리워지곤 했기에 은근히 Ozzie가 오는 것을 기다리기도 했다. 이렇게 우리 집에 pet sitting을 하게 되면서 새로니 는 조금 자유스럽게 되니 얼마서 좋은 일인가?

 

¶  Topless Natalie : 요새 심심할 때면 소일거리로 75+년 전의 LIFE magazine을 본다. 내가 태어나기 전 것이지만 20세기 최대의 사건인 세계 2차 대전을 전후로 한 ‘미국의 눈’에 비친 세계상을 화보 중심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사하고 신기하기에 즐겁고 보람된 소일거리로 삼게 되었다. 오늘 우연히 본 것 중에는 topless Natalie (Wood)가 있었다. 비록 6살 짜리 아이의 천진스러운 모습이지만 사진의 주인공이 우리시절의 잘 나가던 여배우 Natalie Wood 인 것, 그것도 상체가 모두 드러난 모습… 이런 사진 배경을 전혀 모르고 인터넷으로 이 모습만을 유포를 하면 요사이 태어난 젊은 아이들 아마도 pedophile로 FBI에 고발이라도 하지 않을까.. 웃음이 난다. 그녀의 부모가 Russia출신이라는 것과 그녀가 매력적인 것 뿐만 아니라 ‘머리가 아주 우수한’ 여배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창 시절에 사고로 익사한 것 등등으로, 역시 일찍 세상을 떠난 The CarpentersKaren Carpenter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했다. 아~~ 모두 옛 이야기들…

冊, 추수 秋收 나누기

하태수 신부님 미사 강론집: “추수 秋收 나누기“가 드디어 몇 개월여의 산고 産苦 끝에 대림절 주일부터 성당 내에서 교우들에게 판매가 되기 시작하였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아틀란타 한국 순교자 성당의 주임으로 계셨던 하태수 미카엘 신부님이 주일, 평일미사에서 강론하신 원고가 모여지고 편집이 되어서 200여 페이지의 아담한 책으로 나온 것이고, 대림절이 시작되면서 교우들에게 판매가 되는데 100% 수익금은 본당 발전기금으로 쓰여진다고 한다.

지난 여름에 이 책을 ‘편집’하는데 연숙이 참여를 하기 시작했는데 결국은 거의 혼자서 ‘편집, 교정’을 한 셈이 되었는데 마지막에는 나도 교정과정에 참여를 했다. 그래서 이번에 책이 나올 때는 남달리 관심을 가지고 ‘판매’의 결과에 관심을 갖기도 하였다.

강론집을 읽으며 나는 ‘추억의 강론’ 시절을 되돌아 보기도 했다. 그러니까 2011년부터 2015년 까지 나의 교회 생활을 돌아보는 셈이 된다. 그 당시에는 주일미사를 대부분 미국성당으로 갔기에 한 신부님의 많은 주일강론을 못 들은 셈이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잊지 못할, 아니 잊어서는 안 될 그런 강론이 하나 있었다. 

2014년을 전후로 한 시절, 나에게 거의 ‘생과 사’를 넘나드는 기분으로 산 순간들이 많이 있었다. 주로 절체절명의 심각한,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있었다. ‘두려움과 희망, 의지와 나약함’이 교차하는 극과 극의 감정을 경험하던 때, 나는 2014년 부활절 강론을 듣게 되었다. 그때의 그 한 강론으로 나는 모든 두려움과 회의적인 생각을 떨칠 계기를 맞게 되었다. 그것이 그 이후로 두고두고 나의 희망적인 메시지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것으로 나는 하태수 신부님을 잊을 수 없게 되었고, 결국은 이 ‘추수 나누기’ 책을 통해서 다시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Thanksgiving, no turkey

Thanksgiving SongMary Chapin Carpenter

 

2010년대 마지막 해 2019년의 Thanksgiving season 를 한가하게 보낸다. 오랜 만에 진정한 의미의 휴일 같은 기분이 든다. 거의 해야 할 것이 없기 때문인가…  가족의 진화(아니면 퇴화?) 란 것이 이런 것인가? 자식들이 집을 다 떠나고 둘 만 남은 처지에 하루 종일 아침부터 부엌 근처에서  ‘궁상맞게 지지고 볶고’ 하는 모습이 이제는 조금 피곤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는 거의 ‘의무적, 신앙적’으로 이곳 대다수가 하는 대로 생소하게만 보이는 터키를 굽고 거의 정해진 side dish들을 ‘만들고 먹고, 아이들이 생기면서부터는 그것의 규모도 점점 커지며 조금씩 이곳이 고향이 될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생각으로 이날을 맞곤 했다.

아이들이 다 떠난 후부터는 아이들이 모두 모일 때와 안 모일 때가 아주 다르게 지나치곤 했다. 신앙심이 대거로 나에게 돌아오면서 이 ‘감사의 날’을 나는 조금 더 겸손하게 지나간 일년을 되돌아 보며 감사할 것들의 list를 만들고자 했는데, 그것이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다.

그것이 나의 불찰인가… 심각하게 생각을 해보니 감사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 것이 문제였다. 어쩌면 그렇게 큰 것, 작은 것들 고맙다는 생각 없이 살았는가.. 물론 후회거리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고마운 것에 비하면 사실 ‘새 발의 피’ 격이라고 할까… 그렇다면 나, 우리의 삶이 그렇게 변한 것인가, 아니다… 생각하는 관점, 눈의 높이, 삶의 의미에 따라서 이렇게 변한 것이다. 그것을 나는 칠십여의 나이에서 조금씩 알게 된 것이다.

‘그리운 친구’ 양건주의 말대로 ‘세상만사, 생각하기 나름이다’, 그것은 과연 명언중의 명언이었다. 무엇이 나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었나?  나의 인생은 나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 보다는 훨씬 높고 먼 곳에 있는 것이다. 나의 인생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다…

올해의 추수 감사절은 11월의 마지막 날에 ‘거의 다 모인 가족들’과 같이 저녁을 나누는 것과 새로니가 정식으로 propose를  받은 것으로 나에게는 충분한 감사절이 되었다. 또한 오늘은 가톨릭 전례력으로 올해의 마지막 날, 내일은 대림절 Advent의 시작으로 4개의 대림초가 성탄까지 주일마다 하나씩 더 켜지는 희망의 시즌을 기다리게 되었다.

冊, 108編 사랑의 詩

드디어 ‘108편 사랑의 시’의 모두 정독, 필사를 오늘 끝냈다. 조금 피곤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지만 그래도 보람은 느낀다. 그렇게 ‘머나먼 다리’ 처럼 보이던 ‘알다가도 모를 그것, ‘시’의 초보단계를 넘어가고 있는 듯하다. 그렇게 이 시란 ‘문학’은 일생을 통해서 나에게는 생소했던 것이었지만, 지금은 어렴풋이 ‘아하! 이런 것이었구나..’ 하게 되었다.

오래 전에 가족들과 즐겨보던 almost classic, Robin Williams 주연의 The Dead Poet Society, 한 장면이 떠오른다. 어린 10대 나이의 학생들에게 지나친 ‘생각의 자유스러움’을 가르친 것이 비극적인 결말을 보게 되지만 이 영화의 message는 비교적 간단한 것이었다. 시를 가르치던 시간에 이 선생, 교과서의 첫 몇 이지를 찢어 버리라고 명령을 한다. 한마디로 시와 교과서는 양립할 수 없다는 극단적인 장면이었다. 그 첫 페이지는 ‘기하학적으로 분석한 시’를 다룬 것이어서 나도 그것은 지나친 것이 아닐까 했었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그런 방법이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특히 사랑이란 주제의 시를 108편씩이나 모아서 ‘전문가의 느낌’을 곁들인 것, 나에게는 하나의 ‘시의 교과서’ 역할을 멋지게 했다. 아무리 시란 것이 읽는 사람의 생각에 따라 다를 수가 있지만 그래도 ‘교과서적’인 시의 의미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아직도 필수적인 것이다.

이 책의 ‘사랑의 시’들을 여성 허영자 시인의 입장으로 다시 읽게 되면 내가 읽는 느낌과 비교를 하는 것, 나에게는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108편의 사랑의 詩 중, 나에게 사랑의 느낌을 다시 일깨워준 것 하나를 다시 읽으라면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어릴 적의 뚝섬의 추억과 그 이후 젊은 시절 사랑의 느낌과 환상이 교차하는 느낌.. 어쩔 수가 없다.

 

 

 

뚝섬에서

金容浩

 

 

江물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당신과 마주 설

空簡이 流失된 地域

 

어쩌면 이처럼 싱싱히 돋아나는

아픔입니까

變貌없이 파아랗게 살고 있는

거울 속

거기, 포프라 한 그루 있고

주고 받은 會話가 자라

이제 新綠으로 紋彩한 江邊

 

산 너머 절에선가

鐘이 波紋하는 이 黃昏에

祈禱보다도 더 切實한

당신에의 追憶은

어느 또 하나 다른 거울 속에

소보옥히 담아 두어야만 합니까.

 

 

여름날 뚝섬엘 가면 푸른 강물이 흐르고 키 큰 포플라 나무들이 강변에 줄지어 서 있습니다.

보통 사람의 눈에는 뚝섬의 강물은 한강 상류의 강물에 지나지 않습니다만 이 시인의 눈에는 당신과 마주설 공간이 유실된 지역인 것입니다. 이별의 이미지를 이 한 마디 말로 조형 造形 한 시인의 상상력과 솜씨는 놀라운 것입니다.

강물은 이렇게 해후의 공간이 유실된 지역일 뿐만 아니라 또 변함없이 맑은 거울로 됩니다. 그리고 그 거울 속에 들이비치고 있는 푸른 녹음은 단순한 나무잎새들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와 주고 받은 이야기들이 자란 것입니다.

사랑을 간직한 이의 마음과 감각은 이처럼 사물의 뜻을 놀랍게 파악할 수도 있는 법인가 봅니다.

가을, 사랑, 추억, 소년..

 

본격적인 ‘깊은’ 가을의 모습이 나의 두 눈과 귀, 그리고 뇌리 속으로 무섭게 다가오고 있다. 정말 멋지고 멋진 가을 모습, 느낌의 정수精髓를 나는 만끽하고 있다.  가을 중에도 ‘추운 쪽’의 가을은 정말 멋지고 고요하다. 모든 만물들이 하나하나 막을 내리듯 가라앉는 것들, 바로 ‘낙엽과 단풍’들… 그와 함께 나의 살결에도 주름이 몇 개난 더 생겨났는가…

박인환 朴寅煥 시인의 명시, ‘歲月이 가면’,  거의 자동적으로 떠오르기도 하지만 이번에는 그 보다 조금 덜 ‘속 된’ 느낌을 주는 ‘추억의 샘’을 발견하였다.  8.15의 감격을 며칠 앞두고 이국의 형무소에서 선종한 윤동주 시인,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한 듯한 ‘소년의 사랑 고백’이었다.

이 ‘少年’이란 짧은 시를 읽으며 우리, 아니 나의 소년시절 추억을 넘길 수가 있는가. 소년이 느끼는 어렴풋한 사랑의 감정… 소년이란 몇 살부터 시작되고 몇 살에 끝나는지 확실치 않지만, 나의 추억은 확실한 ‘소년적인 감정’이고 추억이다. 가을, 사랑, 추억..의 모습이 겹치며 보이는 것은 한마디로 ‘아련함’, 바로 그것이다.

10대 초, 서울 가회동  집 골목에서 경험했던 어렴풋한 사랑의 감정, 아이에게도 이성 異性에 대한 감정은 있었지 않았을까?  윤동주 시인의 소년은 ‘순이’에게 느끼는 감정이 있었고 나에게도 아직 기억에 남는 ‘소년의 느낌’이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긴 세월 뒤에 그런 기억이 사진처럼 남는 것인가… 올해 가을이 나에게 일깨워 준 ‘추억의 힘’이었다.

 

 

少年

尹東柱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뭇가지 우에 하늘이 펼쳐 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 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씻어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 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람처럼 슬픈 얼골

아름다운 순이 順伊의 얼굴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어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얼골

– 아름다운 순이 順伊의 얼골은 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