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Turkey 그리고…

 

¶  이른 아침에 놀랍게도 wild turkey가 우리 집 정문 앞에 서있었다. 그렇게 가까이 야생칠면조를 보는 것은 물론 처음이다. 하지만 곧바로 나는 ‘얘가 어디서 살다가 길을 잃었나..’ 하는 지나친 연민을 떨치려고 애를 쓴다.  나중에 창문 틈 사이로 살펴보니 이미 떠난 후였다. 어디로 갔을까? 얘들은 이 동네의 어느 곳에서 사는 것일까? 왜 내가 이렇게 ‘animal, bird lover’가 된 것일까? 나는 이것도 분명히 성모님이 나를 ‘질책’하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에 내가 저지른 ‘약한 것에 대한 무관심, 학대’에 대한 것이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성모님, 이제 그만 하셔도 됩니다. 나는 이미 그들을 나의 몸이라고 믿으니까요… 앞 집에 사는 Josh가 전화와 text로 친절히 알려 준 덕분이었다.

 

¶  이 조지아 지역도 드디어 어제부터 general lockdown 이 선포되었다. 우리에게는 물론 큰 차이는 없지만, 글쎄 이것이 어느 정도 효과를 낼 것인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조심조심 하자는 의도일 것이다. ‘일부러’ 밖에 나가는 것을 조심하라는 의도라고 생각하자. 아직도 직장이나 가게에 꾸준히 나가는 사람들, 꽤 주변이 있는데… 그들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너무나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그래야만 한다면 조금은 고개가 수그러지기도 한다. 이럴 때 재미로 나갈 사람은 없지 않을까? 설 형제와 이형의 얼굴이 떠오른다.

Reflection, March madness…

Scientist correcting & teaching… whom, Stupid!

 

¶  March Madness:    3월의 마지막 날을 보내며 지나간 한 달을 뒤돌아 본다. 이상하게도 빨리 지난 듯 하면서도 사실은 근래에 처음 느껴보는 이상한 것은, 3월 달 이전에 무엇을 하며 지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 것이다. 왜 그런가? 생각해 보니, 한가지 밖에 없다. 코로나, 코로나, 코로나, pandemic 그리고 pandemic …  한마디로 이것이 바로 March Madness가 된 것이다.

오늘 저녁 major network TV 로 pandemic news를 마지막으로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인재 人災 인가, 천재 天災 인가.. 그 중간인가.  생각보다 피해가 너무나 처참할 정도로 심한 것을 보고 본능적으로 몸을 추스르게 된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대비할 시간이 그런대로 충분히 있었는데, ‘빠가’, ‘또라이’ 트럼프, 결국은 돌이킬 수 없는 ‘red button’을 누른 결과가 되었다. 부활절 이후 경제활동을 풀겠다고? 재선 再選의 유혹이 그렇게도 달콤했던가, 아니면 자기도취의 역병 疫病에서 아직도 못 깨어난 것인가?  결과론은 둘째치고,  몇 일전의 생각과 발언을 거의 발뺌으로 넘어가며,  비위에 거슬리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거의 깡패 수준의 발언을 서슴지 않으니.. 정말 우리는 대한민국이나 미국이나 남미 나… 하나 같이 지도자 부재현상의 홍역을 겪고 있다.

결국 이 ‘또라이’는 4월 말까지 ‘금족령’을 발표한 모양인데, 어떻게 며칠 새에 마음이 그렇게 변할 수가 있는가? 모든 과학적 자료를 듣거나 읽을 능력은 거의 제로에 가까우니 아마도 밤에 자기 전에 ‘뺑뺑이’를 돌리는 것은 아닌지 우습기도 하다. 문제는 이제 정면으로 대처하기는 늦은 것 같고, 이 거대한 파도를 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이것은 인재에 가깝다. 240,000 명 이상의 희생자가 나올 것이라는 놀라운 예보는 이제 거의 실제로 다가오는 사실로 느껴진다.

 

 

 

¶  성경통독:     3월의 마지막 날,  이번 달 성경통독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요한묵시록’의 마지막 부분을 읽었다. 올 들어서 아틀란타 순교자 본당 신자 전체가 일년에 걸쳐서 성경을 전부 읽는 것을 목표로  ‘성경통독’ 계획표를 배부하여 현재 우리도 매일 읽고 있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읽는 것이 이제 거의 습관이 되었다.

오늘까지 3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나의 기상 시간에 맞추어 이렇게 신약성경 전체를 읽고 있는 것이 나는 은근히 자랑스럽다. 조그만 습관이나마 내가 이렇게 습관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특히 더 가슴이 뿌듯한 것이다.

‘매일 성경, 묵상글’에 꽤 오랜 동안 익숙해져 있었지만 이번에 ‘통째로’ 읽는 경험은 아주 새롭고 놀라운 것이었다. 매일 말씀, 묵상의 단편 단편의 말씀들이 앞뒤로 연결되어서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살아나는 것, 흩어져 있던 수많은 점들이 하루 하루 연결이 되어서 새로운 뜻들이 너무나 편하게 이해가 되어온다.

또한 그렇게 한없이 지루하고 길게만 느껴지던 ‘성경’, 특히 신약이 어쩌면 이렇게도 짧을까 하는 오만스러운 생각까지 들었다. 인류의 정신적인 역사를 만들어 왔던 ‘예수부활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이렇게 짧았단 말인가 할 정도였다.

오늘로서 신약성경 마지막 ‘요한묵시록 the Apocalypse’, 그것도 마지막 부분을 끝으로 신약을 다 읽게 되었다. 묵시록에 등장하는 상징적이고 종말론 적인 이야기 중에서도  four horsemen, 그 중에서도 첫 번째의 white horse는 아마도 역병 plague 을 상징한다고 하는데 오늘의 코로나바이러스 Pandemic 과 연관되어서 아주 실감나게 느껴진다.

내일부터는 그러니까 구약 성경을 읽게 되는 모양인데… 매일 밤 우리집의 저녁기도에서 이미 구약을 읽기 시작한 것이 꽤 되어서 조금은 덜 생소할 것이지만 미리부터 겁이 안 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렇게도 바보같이 잔인하고, 반복적으로 지루한 부분들이 많을까… 아직도 의아해 하지만, 분명히 우리는 아직도 멀었다는 느낌뿐이다. 하지만 내일부터 다시 그것을 반복하며 읽게 되니, 이번에는 또 다른 깨달음을 기대해 본다.

 

 

Long for Yesterday, Online Mass

¶   3월도 며칠 밖에 남지 않았다. 3월, 특히 중순을 넘으면서 ‘전통적 기억의 단절감’을 절실히 실감했다. 흔하게 생각나던 나와 친숙하던 어휘, 단어 등등이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기억력 감퇴일까 했지만 그것보다는 그런 것들을 모두 가리는 또 다른 것들이 머리 속에 가득했기 때문일 것, 이라고 나는 희망적인 추측을 한다. 그러니까, 일시적인 기억 상실증이라고 할까. 물론 이유는 한꺼번에 물결치듯 나를 덮친 정보의 홍수, 그것도 오랫동안 (또라이 트럼프 등장 이후) 피해오던 세속적 주류 미디어 mainstream media 로부터, 바로 그것의 위력이었다. 물론 ‘그 놈의’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것들이다.

 

 

작년 3, 4월의 일지 日誌달력을 본다. 올해의 것의 밑에 놓고 수시로 작년과 올해를 비교하는 것이 이제는 버릇이 되었다. 물론 1년 전의 일들이 궁금한 것도 있지만, 그 당시 만나거나 연락을 하며 살았던 사람들을 생각하기도 하고 그 때 만났던 장소, 날자 등을 참고로 다시 연락하는 등 편리한 것,  탁상달력의 조그마한 일지, 메모는 이제 꽤 나의 개인전통이 되어 간다.

지금 이것을 다시 보며, 작년 3,4월의 일들이 너무나 신선하고, 건강하고, 그리운 것으로 느껴진다. 왜 안 그렇겠는가? 이렇게 세상이 뒤숭숭한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Beatles의 Yesterday를 부르고 싶은 심정이 되는 것이다. 작년 이 맘 때의 ‘보통, 정상, 지루한 하루하루’ 가 지금은 거의 천국처럼 느껴진다. ‘새 정상 new normal’이란 것이 작년에 비하면 거의 비상사태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바로 눈 앞에서 ‘적군이 쳐들어 오는’, 실제적인 전쟁이 난 것이 바로 이런 느낌일까?  어렸을 적에는 당장 쳐들어올 것 같던 김일성 빨갱이들의 제2의 6.25의  공포에 떨었고,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미국에서도 거의 20년 전 9/11 사태도 등골이 오싹한 공포를 주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래도 ‘먼 곳의 불’ 이라고 위로할 수 있었지만, 지금의 코로나바이러스 COVID-19  Pandemic은 game의 scale이 완전히 바뀌어서 그렇게  간단하게 숨을 곳이 별로 없다. 그것이 바로 현재의 공포다. 이렇게 ‘숨을 곳이 없다는’ 공포는 사실 아주 젊었을 때 한번 잠깐 느낀 적이 있었다. 1973년의 classic psychic horror movie였던 The Exorcist,  그 심령 귀신영화를 본 후 거의 일주일간 밤에 불을 끄지 못하고 잤다. 그때의 공포도 지금과 비슷하게… 숨을 곳이 없었던 그런 공포였다.

이번에 경험하게 된 이 ‘폐렴’ 류의 전염병, 나이와 크게 상관이 있다고 했고, 나의 나이는 이제 아주 위험한 쪽에 있음을 깨닫게 되면서 심각하게 간주하게 되어서, ‘일부러, 자진해서’ 관심을 두고 걱정을 하기로 했다. 그것이 나와 모두를 돕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급적 밖에 안 나가는 것, 그것이 알고 보면 최선의 방법이다.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YouTube 주일 미사

이영석 세례자 요한, 주임 신부님

 

¶  오늘의 사순 5주 주일미사를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Youtube Channel 을 통하여 ‘참례’를 하였다.  아틀란타 대교구 내의 모든 공적인 미사전례가 정지가 된 이후 대부분의 신자들은 어쩔 수 없이 인터넷 비디오를 보며 하게 되었는데 우리 본당도 지난 주부터 시작을 해서 오늘이 두 번째가 되었다.

인터넷 기술의 발전으로 예전 같으면 아주 힘들었을 것들이 가능해지고 교회의 전례까지 이렇게 혜택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가톨릭 교회의 문제는, 개신교와 비교해서, 전례의식의 중요성이다. 쉽게 말하면 개신교는 ‘강론’만 들으면 거의 다 끝이 나지만, 가톨릭에서는 ‘전례 의식’ 자체 특히 성체성사가 절정 絶頂이기에 이런 ‘virtual mass’는 교의적 사목적으로 결함이 있을 것이다.  특히 예수님의 몸을 ‘먹는’, 영성체가 문제다.  예수님의 현존을 나타내는 것,  그것을 물리적으로 ‘영’하는 것이 빠지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것을 ‘신영성체’, Spiritual Communion이라는 기도를 통해서 보완을 하고 있지만 이것을 정식 미사라고 하기에는 신학적인 문제가 있을 듯하다. 하지만 그것이 대수인가? 신부님을 big screen으로 보는 것만 해도 사실 성당 안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만으로도 사실 감지덕지가 아닌가?

또한 이렇게 YouTube Live로 주일미사를 가능하게 한 성당의 ‘전산팀’이 있었을 듯 한데 그들에게 뜨거운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들도 현재 진행중인 코로나 사태에서 발견하게 되는 많은 ‘착한 영혼’들 중의 하나일 것이다.

‘코로나’ 일기 X

¶  결국은 올 것이 왔다. 예상했던 공식적인 발표, 아틀란타 대교구의 모든 공식적, 공적, 사목적인 미사, 성사 활동이 일단 3주간 중단된 것이다. 다른 때도 아니고 일년 중 제일 중요한 사순절, 부활절을 기다리며 보내는 시기에 이것이 중단됨은 역시 (Inter) national emergency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하루 하루가 조금씩 늦게 흐르는 기분은 왜 그럴까? 쉽게 말해서 요새 내가 보고 듣는 경험들이 전혀 일상적인,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서 그럴 것이다. 흡사 기상변화에 따른 비상사태, 그러니까 worst snow days 같은 사태를 겪을 때의 심정이다. 걱정, 불안은 물론이고 심지어 조마조마한 suspense, thrill, 그런 것들이 한꺼번에 조용했던 머리 속을 맴돈다. 무섭고 흥미로운 소설을 읽은 듯한 기분도 없지 않다.

우리가 이 ‘사태’를 잘 대처하고 있는지가 우리의 큰 관심사인데, 정말 이것은 자신이 없다. 지나가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너무나 조심하는 것은 아닌가, 아니면 지나치게 낙관적인 것은 아닐까 그런 것이다. 하지만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음은 자신이 없지 않다.

 

¶  Pray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My Jesus, I believe that You are present in the Most Holy Sacrament. I love You above all things, and I desire to receive You

Into my soul. Since I cannot at this moment receive You sacramentally, come at least spiritually into my heart. I embrace You as if You were already there and unite myself wholly to You. Never permit me to be separated from You. Amen.

 

Let nothing disturb you,

Let nothing frighten you,

All things are passing away:

God never changes.

Patience obtains all things

Whoever has God lacks nothing;

God alone suffices.

 

St. Teresa of Ávila

 

I know that it too shall pass—and in its wake shall rise the vastness of God’s love, mercy, and recovery.  – Tod Worner

 

본격적으로 시작된 ‘온라인 미사’, 이것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실행할 것인가? 현재 우리의 영적생활에서 미사의 의미는 중차대한 것이어서 조금 생각을 한다. 주일의 미사는 ‘생방송’이니까 성당에 가는 것처럼 준비를 하고 참례하면 되는데, 평일 미사는 recording 된 미사에 참례하는 것이라 우리가 하고 싶은 시간에 하면 된다. 평소의 평일미사 시간이 아침 9시이기에 가급적 그 시간에 고정적으로 하면 좋을 듯하다.

제일 큰 관심사는 역시 가톨릭 미사의 절정인 ‘성체성사, 영성체’인데 spiritual communion이라는 traditional 한 방법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평화방송의 매일미사에서는 이미 ‘신령성체’ 라는 기도문을 보여 주고 있다. 물질적인 예수님의 몸 대신 마음으로 받아 모시는 것이다.

 

¶  머릿속에 완전히 ‘코로나바이러스’로 가득 찬 하루였다. 왜 안 그렇겠는가? 불안, 공포는 물론이고 나의 신앙을 시험하는 불행한 기회임을 느끼게 되는 등, 각종 혼잡한 생각이 나의 머리를 때린다.

특히 미사가 완전히 정지되는 것, 그에 따라서 레지오 주회합 ‘출근’이 없어진 첫날은 조금 감상적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2010년 10월 처음 ‘출근’하기 시작한 것, 이제까지 ‘신 神 들린 듯이’  앞만 보고 달린 것, 나는 성바오로의 말씀으로 위로를 받는다. 그래 경우야, 성모님, 열심히 뛰었습니다. 앞으로는요? 결과적으로 큰 변화가 없기를 기도합니다.

이런 특별한 날, 레지오 주회합과 그에 따른 활동[봉성체, 양로원]이 없어진 첫날 밤, 무슨 휴가라도 온 기분으로 밤 늦게까지 앉아서 online delight를 만끽하는 나, 나로서는 거의 taboo였던 10시 지난 밤 늦은 때의  2개의 doughnut과 stick coffee.. 와~~, 정말 이것은 희귀한 즐거움이다. 이런 때도 가끔은 있어야지.. 그래..

 

¶  정말 오랜만에 the TV를 본다. 테레비, 테레비.. good ole (analog) TV: ABC, NBC, CBS 바로 그것이 진짜 나에게는 미국의 믿을만한 fake news가 없는 테레비 뉴스였다. 그것만 보면 나에게 필요한 세상의 뉴스는 거의 다 보는 것이다. 믿을 만 했던, 아니 그것은 거의 다 정성을 다한 진실된 뉴스란 것을 의심치 않던 그런 시절들이었다.

세상이 그 동안, 최소한 5~10년 정도의 긴 세월, 얼마나 변했나? 오랜만에 시끄럽게 느껴지던 광고들을 다시 보니 조금은 반가움도 느낀다. 살아있는 사람들.. 시끄러운 사람들, 피곤한 사람들이 이곳에 모두 보인다. 그래 이것이 세상이었지, 잊고 참 오래 살았다.

우리의 일상 생활 일과  daily routine이 ‘공식적’으로 바뀐 이후, 현실을 실감 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며 지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별것 아닐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사실 큰 변화로 느껴진다. 혹시 이것을 계기로 내가 찾았고, 매달리는 믿음에서 멀어지는 것은 아닌가 우려를 하기도 한다. 나의 성격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옛날처럼 그렇게 쉽게 ‘돌아가지’는 않을 자신이 있다.

앞으로 이 시련의 기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집에 머무는 것, 나에게는 사실 통상적인 것이라, 웃기지만 특별하게 변하는 것은 없다. 매일 평일 미사, 레지오 활동하는 것, gym에서 운동하는 것, 그것을 대신하는 더 유익, 중요한 것을 더 하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짧지 않은 동네 산책길을 걷는 것, 또한 몇 가지 완독하려던 책들이 있으니 시간을 보내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다. 그리고 그 동안 한눈 팔던 것들, garage, hardware tools,  yard work, sparky-fun (electronics) 같은 것을 하면 더욱 좋을 듯하다.

 

Social Distancing? Huh….  ‘사회적 거리 두기’? 하루 종일 생각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새로운 시사용어, 이것 한글로는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 괴롭다.
사람들과 사이를 두라는 쉬운 그림이 그려지는데… 간단한 것이 아닌가? 사람이 모이는 곳에 갔을 때 어떻게 그들과 ‘멀리, 가까이’ 어울리는 가, 그것이다.
이유는 물론 ‘공기로 전염되는 바이러스’ 때문이다. 몇 feet 사이를 두면 안전한 것인가? 말을 크게 하면 안 되는 것인가?  이런 것들이 귀찮으면 아예 사람들 근처에 가지 않으면 되지 않는가?

우리에게 당면한 문제도 역시 ‘사회적 거리’를 두는 지혜다. 당장 우리가 쌓아온 오랜 전통, 주일과 매일미사, 레지오 주회합, 봉성체, 양로원 봉사, 그리고 YMCA  gym 운동..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하나? 이것이 우리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켜주는 것이라고 오랜 세월 동안 믿었는데, 이것에 차질이 생기는 것은 정말 피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지고 있는 듯하다. ‘아마도’ 당분간 아니면 꽤 오랜 동안 이런 활동을 못할 듯한 예감인 것이다. 한국성당의 주일미사와 레지오 주회합도 거의 마찬가지 위치에 있다.

어떻게 결정을 할 것인가? 어떻게?

Pandemic! a Chinese Peril..

Where else? from CHINA, stupid!

 

 

Pandemic!!!!   먼데서 난 불구경을 하듯이 몇 주일이 지나면서 오늘은 드디어 한 나라, 바티칸이 있는 이태리, 가 완전히 비상사태에 들어갔음을 보면서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치사율은 그리 높지 않지만 감염률이 장난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폐렴의 일종이기에, 우리들 senior 부류에게는 치명적일 수도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인터넷, 특히 YouTube를 통해서 피할 수 없게 들어오는 ‘가짜, 과장 뉴스’들은 심리적으로 더욱 몸을 도사리게 한다. 설상가상, ‘비과학적 또라이’ 트럼프는 연상, 걱정 없는 표정으로 일관한다. 이것이 바로 전형적인 pandemic의 양상이 아닐까…

대도시의 밀집구역에서 사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는 직장에 나가야 하는 것도 아닌데도 신경이 쓰이는 이유는 우리의 ‘직업’인 레지오 활동에 지장이 오는 것, 또한 밖으로 나가며 사회적인 접촉을 못하게 되는 우려, 이유가 너무나 사치스러운가 미안하긴 하지만 우리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것이다.

큰딸 새로니는 학교 근무를 해야 하는 입장이어서 ‘아픈 아이들’이 생길까 봐 신경을 많이 쓰는 모양인데, 아직도 휴교의 뉴스가 없는 모양이다. 나라니와 Luke는 다행히 장기 출산휴가 덕분에 집에 있으니 큰 문제는 없는 듯.  어쩌다 세상이 이러게 돌아가는 것일까, 생각하면 할 수록 ‘중국 공산당’에 대한 증오심을 누를 길이 없다. 내가 이제까지 생각해온 그들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습이 적나라 하게 펼쳐지고 있는 것, 갑자기 오래 오래 전, 1665년 영국 런던을 휩쓸던 Great Plague를 피해서 시골로 도망가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Isaac Newton의 얼굴이 떠오르니…

 

현재 진행중인 정말 ‘거짓말’ 같은 소설, 연극 같은  코로나바이러스 이야기들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을 거의 피부로 조금씩 느끼면서, 오랜 세월 동안 나의 잠재의식 속에 쌓이고 쌓였던 숨은, 부정적 감정들과 나의 숨은 치부 恥部가 잠재의식의 보호벽을 뚫고 나온다.

이것은 간단히 말하면, 나의 부정적인 중국관 中國觀 에 관한 것이고, 특히 ‘공산당 중국’을 너무나 혐오하기에 감정적 bigotry trap 함정에 쉽게 빠지곤 한다. 한마디로 이 중공의  ‘해괴한 공산당 체제’는 인류사의 관점에서 보아도 ‘필요 없는, 아니 해로운’ 존재라고 굳게 믿는다.

20세기 세계적 골치거리, 우리에게는 영구분단, 자기 ‘인민’ 수백만을 굶어 죽이는 정권욕의 괴수, 이런 ‘해로운 존재’의 문제를 크게 못 느끼고 살았지만 문제는 이들에게 ‘돈’이라는 무기를 가지게 되면서다. 그들의 무신론적 유물론과 인류보편 도덕성이 결여된 비인간적 집단에서 이런 이상한 병균이 이제까지 안 나온 것도 기적이다. 시간문제였던 것에 불과한 것이다. 이들은 어떻게 이런 사태에 책임을 질 것인가?  한가지 생각나는 것, 이들에게 일말의 책임감을 느낄 ‘도덕의식’ 이 있다면 이 ‘인재, 人災’에 대한 구체적인 국제적 보상을 해야 하지 않을까? 안 되면 피해에 대한 법적 소송은 어떤가? 아마도 ‘법의 정신’이 전혀 없는 그들에겐 ‘소牛 귀耳에 경經 읽기’ 정도밖에는 안 될 것이다.

Ozzie, Corona, Tao of Physics…

Ozzie가 자기 집으로 갔다. 그야말로 시원섭섭, 바로 그것이다. 비올 때 밖에 나가서 큰일을 보아야 하는 것,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어둠 속에서 떨면서 밖으로 나가야 하는 것 등이 나에게 편하고 시원한 것이지만 나머지는 모두 섭섭한 것들이다. 어찌나 그 녀석 우리들과 집을 좋아하는지 그것을 어찌 우리가 모를 수 있으며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보면 볼 수록 2018년 6월에 ‘승천’한 우리의 犬公 Tobey를 연상시킴을 보고 반가우면서도 슬퍼진다. 이렇게 우리는 정이 들고 짧은 이별, 영원한 이별을 해야 하는 것이다.

코로나, 코로나… 지난 주일 동안 온통 이것이 내 생각의 일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것 때문에 YouTube를 자꾸 보게 되는 것도 마음에 걸린다. 이런 것 아차, 하면 나도 남들처럼 편견도 생길 수 있다는 것, 어찌 모르랴… 주로 일본 아이들의 website에서 간접적으로 고국의 정황을 ‘담 넘어 보듯이’ 하고 있다. 담을 넘어가는 용기가 아직 나에게는 없다. 이 코로나가 자꾸 가까이 오는 느낌을 피할 수는 없지만 필요이상으로 관심이나 걱정은 하지 않도록 노력을 할 것이다.

한 동안 나는 이제는 Science Classic이 된 Fritjof Capra의 명저, Tao of Physics, Turning Point를 계속 읽고 있다. 내가 모르고 있었던 20세기 현대 입자 물리학, 정말 경이롭기만 하다. 이것과 신학, 영성이 결합되어 나에게 오는 것은 정말 우연이 아닐 듯하다. 나의 신앙적 깊이를 더 깊게 하는 것이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왜냐하면 이 신비로운 물리학, 과학들도 모두 하느님의 작품이니까…

Relentless Rain, 우리들의 삼일절..

줄기차게 며칠 째 밤낮으로 쏟아지는 ‘사랑하는’ 비…

 

Relentless Rain:  올 들어 늦겨울을 통해서 비가 줄기차게 내린다. 아니 엄청 쏟아진다. 홍수경보는 이제 눈에 너무나 익은 듯하다. 지난 오랜 기간 겨울은 사실 통계적으로 가뭄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한꺼번에…  그야말로 끝임 없이 비가 오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비, 비, “비가 오도다.. 비가 오도다”… 그 옛날 서울 재동 국민학교 시절에 귀따갑게 들었던 가수 남해 씨의 히트 가요의 제목. 그 당시 특히 비가 올 때 그 노래를 들으면, 참 싫은 노래라고 느꼈다. 그 어린 시절에 누가 비를 좋아하겠는가? 요새라면 아이들, 집 밖보다 집안에서 시간 보내는 것 문제가 없지만 그 옛날에는 집안에서 ‘재미없는 책을 읽는 것’ 이외에는 할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대학시절까지도 비는 귀찮은 것, 담배연기 가득 찬 시내버스 속으로 우산을 접고 들어가는 꾀죄죄함, 특히 등산 같은 것을 할 때는 더욱 싫기만 했다. 그것이 나이가 훨씬 들어가면서 ‘세상에서 제일 멋진 것’으로 변해 버렸다. 남에게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나는 비가 ‘내려’ 오는 모습을 사랑하게 되었다. 한때는 그 이유를 생각하기도 했다. 왜 그렇게 남달리 비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애석하게도 확실히 그것이 아리송한 것이다. ‘그저, 그저’ 좋은 것이다. 굳이 찾으라면, 아마도 비를 맞지 않고 사는, 그러니까 실내 생활을 더 즐기게 되었다는 것, 그런 것은 아닐까?

 

I don’t like rain! Ozzie의 모습이 바로 그런 표정일 듯…

 

그런 것에도 예외는 있기 마련이다. 두 딸애들의 ‘강아지’ 두 마리를 잠시 맡고 있을 때, 비가오면 산책을 하는 것이 조금 불편한 것, 그 두마리들을 비를 맞으며 ‘bathroom‘ backyard 로 내보내야 하는 일, 근래에 와서 자주 조금씩 새는 지붕 등등.. 하지만 그래도 나는 비를 너무나 사랑한다. 나의 장례식 때에도 비를 맞으며 운구를 하는 모습까지…

 

¶ 우리들의 삼일절:  올해도 어김없이 3월 1일을 맞이했다. 하지만 평상의 3.1절이 아닌 우리들만의 3.1 을 생각한다. 공교롭게도 유관순 누나의 삼일절보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더 중요한 것이 되었다. 3월 1일에 연관되는 우리가족, 특히 부부에게 너무나 뜻 깊은 날이 되었기에 몇 년 전부터 이날을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같은 것 보다 더 의미를 두며 지내게 되었다. 얽힌 사연들이 비밀까지는 아니지만,  아직도 나는 극히 ‘사적’인 것으로 생각하기에 얽힌 뒤 배경 스토리를 밝히는 것은 자제하고 있다.

하지만 자신을 가지고 밝히고 싶은 것 중에는 현재 우리가 사는 집으로 이사온 날,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매일미사’ 의 역사가 이날로 올해 9년째로 접어 든다는 사실, 이것은 당당하게 자랑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니까, 2012년 사순절 3.1일에 첫 매일미사를 시작하게 된 것인데, 솔직히 이 ‘과업’은 우리 둘 다 생각할 수록 놀라는 사실이다. 아마도 우리들이 ‘운전’을 할 수 있는 한 계속될 듯하다. 100% 장담은 물론 못하지만 의지는 있다.  이 비교적 ‘사고적’으로 시작된 결정이 우리 생활을 얼마나 바꾸어 놓았는지, 특히 나에게는 더욱 그렇다. 이것도 ‘선택’이라면 선택이겠지만 나는 그렇게 간단하게 결론은 못 내린다. 그 이상의 무엇이 있는 것을 이제야 믿기에 더욱 그렇다.

‘우리들의 삼일절’은 집 근처에 있는 Thai restaurant, Lemon Grass 에서 점심식사를 하는 것이 반드시 곁들여져야 하는데, 문제는 이 식당이 없어지면 어쩌나 하는 것이다. 이 식당은 거의 20여 년의 역사로 지역 사람들의 신뢰와 사랑을 받고 있는데, 정말 주인부부 꾸준히 성실하게 service를 하는 것, 우리에게도 참으로 인상적인 쾌거가 아닐 수 없다.

骨多孔症 약의 부작용?

연숙이가 어제부터 ‘비리비리, 기운을 빠지게’ 했던 이유는 골다공증 약의 부작용으로 밝혀지고 있다. 잘못 넘어지면 대형사고가 될 수도 있다는 이것, 그렇게 튼튼하고 곧은 골격을 자랑하던 때도 있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뼈들이 약해졌는가? 그래도 이 정도라는 사실이 다행인가, 아니면 그저 나이 듦의 귀찮음인가.. 그래 나도 모르겠다. 그런 현실적인 ‘남의 고통’을 나는 왜 그렇게 ‘귀찮게’만 느끼려고 하는 것일까? 나에게는 왜 그 얇은 ‘측은지심’이라도 부족한 것일까? 내가 그런 지경이 되었다고 상상을 하면 조금 문제는 간단해 진다. 그렇다… 나도 그렇게 느끼려고 노력을 하여야 하는 운명인 것이다.

‘동경 교차점, 東京 交差点’ 이란 일본의  ‘short TV drama 묶음’을 본다. 그 복잡한 일본 도쿄의 구석구석에서 매초라도 일어날 수 있는 듯한 이야기들을 4편이나 보여준다. 나는 이런 ‘일상적 이야기’를 너무도 좋아한다. 왜 그럴까? 나와 비교를 하게 되면 그런대로 나도 ‘정상적’인 인간이라는 만족감을 느끼게 되어서 그런가? 아니면… 그래 나도 보통사람이다. 특별한 사람일 수가 없는 거다. 그것만 알아도 마음이 편해진다. 특별한 거 하나도 없어…

작은딸 ‘콩콩이’, 나라니를 생각한다. 이 병신 같은 아빠에게 그런대로, 곧 ‘할아버지’가 됨을 계속 상기시키려는 듯한 하는 나라니에게 미안함을 금할 수가 없다. 왜 나는 그런 병신 같은 할아버지가 되려 하는가? 미안하다… 미안하다.. 나의 어머니에게도 미안… 당당하게 당당하게 모든 ‘불편한 심정’을 극복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여라… 이 병신아.

우리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다는 것

그런대로 편안하고 사랑스럽고 심지어 평화로움을 느끼고 있다. 게다가 눈물까지 나는 순간들을 정말 오랜만에 맞이하며 몇 시간을 즐긴다. 그래.. 이런 순간들도 나에게 필요하고 아니 나도 그럴 자격이 충분히 있지 않은가?

특히 우연히 보게 된 Andre Rieu의 정말 멋진 New York 공연에서는 다른 각도로 생각을 하게 되는 놀라움도 있었다. 미국이란 나라는 과연 나와 우리 가족, 우리의 부모님들에게는 어떤 의미를 주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미국의 혼’에서 절대로 떠날 수가 없는 운명임을 어찌 못 느끼겠는가? 미국, 미국은 어떤 곳이며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인가?

나를 낳아준 나의 조국 대한민국은 지금 어떤 곳인가? 왜 나는 자꾸만 현재의 그곳, 나의 고향을 잊고 살려고 발버둥을 치는 것인가? 왜 ? 왜? 왜?

내가 우리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다는 것, 나는 아직도 그 ‘기쁨’을 못 느끼고, 아니 안 느끼려 발버둥을 친다. 이런 병신이 이 세상에 어디에 있단 말인가? 왜 나는 이렇게 시라소니로 살다 가는 것인가? 왜? 왜?

‘비 오는 날의 오후 3시’, 1959년 대한민국 영화 제목이다. 이렇게 생소한 영화가 그 당시에 있었나… 무심코 생각했지만 그래도 혹시 숨겨진 보물이 아닐까 하며 새로 찾은 youtube downloder를 test할 겸 보게 되었다..  현재까지 본 느낌으로는, 정말 보물로 판정이 나고 있다.

졸지에 악동 惡童이 된..

졸지에 나는 악동 惡童이 된 느낌이다. 악동, ‘악’은 나쁘지만 ‘동’은 그런대로 봐 줄만하지 않을까? 비롯 ‘불쾌한 짓’은 저질렀어도 성모님은 나의 손을 꼬옥 잡아주시면, ‘그래 그런 때도 있는 거야…’ 할 실 듯하다.

그렇게 오늘 레지오 ‘꾸리아 월례회의’를 피하고 싶었다. 왜 그렇게 피하려고 했을까… 그 레지오 토론대회, 시범주회에 연관이 되었던 탓이다. 모처럼  ‘레지오 마지막 일’로 생각하며 임했던 이 일이 정말 우습게도 꼬이고 꼬인 것, 절대로 좋은 결과가 아니었다. 조금 더 내가 참을성을 가지고 신중하게 그 ‘손주같이 젊은 애’를 다루었다면… 조금은 달라질 수도 있었지 않을까? 물론 그렇다. 하지만 그것은 불필요하게 피곤한 일로 보였다. 보람도 그렇게 크지 않을 수 있었다.  그래… 이제는 잊자. 잊자… 그런대로 할 수 있는 노력은 해 보지 않았는가?

이렇게 하느님을 젊었을 때 찾은 사람들… 상상하기가 어렵다. 물론 나의 경험에 의한 것이지만 어떻게 그렇게 젊은 나이에 하느님의 현존을 느낄 수가 있었을까? 그것이 어떻게 믿어졌을까? 그래서 은총이라고 하는 것일까? 아직도 나는 의아스럽고 신기롭기만 하다.

나와 같이 이렇게 늦게 ‘만남’을 경험한 사람들이 또 있을까? 나이와 상관이 있을까?    

나에게 평화란 것이 요새 있을까?

나에게 평화란 것이 요새 있을까? 지나친 걱정하는 고약한 습성이 슬그머니 나에게 스며든 것은 아닐까? 즐겁고, 행복하고, 평화스러운 나의 지난 10년..이라는 것이 내가 쓴 ‘소설’은 아닐까?

너무도 자주 찾아오는 ‘깊은 슬픔이나 두려움’, 이것이 나의 우울증일까? 지나치게 분노하는 나의 깊은 속, 그것을 나는 어쩔 줄 모르며 괴로워하고… 이것이 혹시 나의 지나친 복잡한 생각일까?

무엇이 나를 우울하게 만드나. 잠도 예전처럼 깊이 들지 않고, 그렇게도 또렷하게 남던 꿈들도 이제는 흐릿하게만 느껴진다. 옛날의 아름다운 추억을 찾으려 하면 그것조차 전같이 또렷하지 않다. 많이 잊어버리고 있고 사실 희미해진 것들도 꽤 있다. 나의 자랑, 나의 보물이 바로 그 옛날의 추억들인데… 왜?      

연말, 연시를 모두 놓친 느낌..

나는 요사이 느낀다. 깊은 곳,  속에서 우러나오는 그 ‘평화의 샘, 평정의 샘’이 예전에 비해서 덜 하다는 것을..  그것은 어떨 때는 거의 고통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왜 그럴까? 나이가 들어가는 것과 상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 비록 내가 앞으로 어떻게 ‘죽어갈 것인가’ 하는 것에 큰 공포는 없을지라도 어찌 그것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인가? 나는 이제 분명히 하느님을 믿게 되었고, 인간이 되신 하느님의 존재와 역사도 믿게 되었지만 성인이나 현자는 분명히 아닌 것이다. 문제투성이의 이경우 ‘시라소니’ 란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 않은가?

현재 나를 가까이서 괴롭히는 것은 점점 심해지는 치통일 것이고 이것이 거의 정기적으로 나를 우울하게 하는 것은 틀림이 없다. 그렇다면… 어찌 나는 이렇게 속수무책일까? 고통은 고통으로 다른 뜻으로 받을 수도 있지 않은가? 그렇게 호들갑을 떨며 고통을 호소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이렇게 고통의 순간을 나에게 다른 쪽을 바라보고 깨달을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는 없을까… 모두 나의 궤변일까?

예년과 조금 다른 성탄, 새해를 보내며, 조금은 아쉬운 감이 없지는 않으나 그래도 ‘가족적’인 의무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간신히 가부장의 위치를 고수하고 있지 않는가? 주위의 가부장들은 여행도 가고 즐겁게 사는 것, 모르지 않고 부럽기도 하고 은근한 부러움을 넘어 시기심이 일기도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그것이 나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 아님을 직감적으로, 피부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2020년 이후에 확실하게 다가오는 ‘그 큰 놀라운 순간들’을 기다리며, 모든 것을 미루며 지내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 않은 전략이 라고 생각하니까… 그때까지 모든 것을 미루어 보자…

하얀 눈을 노래하다시피 기다렸던 올 겨울, 비록 12월은 겨울처럼 추위는 느끼게 해 주었을지언정 그 ‘하얀 가루’ 는 하늘에서 안 내려오고 있다. 게다가 현재 1월은 거의 늦은 봄같이 따뜻하고 비의 연속으로, 연숙의 ‘수선화가 피게 생겼다!’ 고 외치는 ‘지겨운’ 언급을 나는 매일 들어야 하게 되었다. 그래… 이런 것들 우리가 어찌할 것인가? 천상 어머니의 소관이 아니던가? 하지만 첫 눈이 올 무렵 Conyers, Monastery 로 drive를 하자.. 는 거의 바보같이 감상적인 느낌들, 올 겨울의 기다림으로 살아가는 나의 모습도 가관일 듯하다.

1월의 달력도 반 이상이 깨알 같은 글씨로 가득하다. 그래도 매일매일 열심히 살았기에 그렇지 않을까? ‘무거운 1월’의 느낌은 주로 새로와 나의 생일’, 그리고 결혼기념들이 몰려 있어서 그런 것이라 나는 이번에 용감하게 ‘생일모임 사절’을 선언했고 새로니도 마찬가지.. 잘 했다.. 생일이 왜 그렇게 힘들어야 하느냐 말이다!

레지오, 자비의 모후, 생각만 해도 우울해지는 것, 어찌하나? 3명의 실질적 단원이면 위기중의 위기지만 이제는 거의 잘 적응이 되었는지 예전처럼 우울하지는 않다. 하지만 솔직이 체면은 말이 아니다. 특히 월례보고를 할 무렵이면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 된다. 의연금 $30.. 도 그렇지만 진짜 문제는 더 나아질 가능성이 안 보인다는 슬픈 현실에 있다. 나는 속수무책이고 연숙이 동동 뛰는 모습도 그렇고,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 모든 문제의 시발점인 그들 2명의 거의 미친X들에게 모든 불똥이 튈 수밖에 없는 바람직하지 않는 상태까지 되고… 야~~~ 이 병신 같은 미친X들아.. 너는 미쳤다.. 모든 것을 망쳤다… 소리소리 지르고 싶은 심정밖에 들지 않는다… 그 중 한 명의 미친X이 최근에 슬금슬금 비굴한 느낌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고 측은하기 전에 분통을 감추기도 힘들다.

큰 일이 기대되지 않던 1월에 나와 연숙은 역시 ‘하늘에서 내려 온 과제’라고 생각하여야만 하는 일들을 맞는다. 3명 단원의 우리 자비의 모후에서 2명이 ‘차출’되어 ‘토론대회의 주역’을 맡게 된 것… 생각을 해 본다. 못할 것 없지만 이런 timing에 혹시 무슨 뜻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이것이 우리의 레지오 과정에 어떤 영향이 있는 것은 아닐까? 조금 귀찮은 심정은 떨칠 수는 없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늦었다. 2월 26일 까지 부담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나아가는 수 밖에는..

그래… 나는 아직도 제일 큰 가족사의 변화를 의식적으로 피하고 있다. 그것이 나를 가슴 속 깊이 비수로 찌르고 있다. 나는 아직도 작은 딸에 대한 그 무언가를 간직하고 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내가 할아버지가 된다는 그 사실을 나는 거의 무조건 ‘척’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나도 놀란다. 나는 아직도 방관자의 입장에 서 있는 것이다. 나는 할 수가 없다. 어찌할 수가 없다. 모든 것은 시간과 세월이 해결할 것이라는 사실만 기대고 있다… 아, 하느님이시여..

이천 이십 년?

 

이천 이십 년? 허… 지나가는 10년 동안 부지런히 이천 십…을 되뇌며 살아서 그런지 이천 이십 어쩌구… 하는 것이 이렇게 이상할 수가 없다. 십진법의 ‘십’이란 숫자의 마술인가. 이제 두 시간 정도가 지나면 부지런히 부지런히 이천이십을 되풀이해야 한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퉈니 퉈니, twenty twenty 2020, 20/20 (2.0 시력) 로 되니까 조금은 익숙한 느낌인가…

아~  이것이 decade적인 세월인가, 10년마다 겪는 이런 것을 돌아보니 사실은 20년 전에 우리는 대사건을 겪은 경험이 있었다. 1999에서 2000으로 바뀌던 그 무렵..  이런 것들로 1900년대 중반 이전부터 살아온 덕분에 이런 멋진 ‘세월의 숫자’들을 몸소 경험하게 되었다.

 

올해의 섣달 그믐날 밤에는 예상을 벗어나 3-2-1, Happy New Year! Countdown 하는 요란한 모습, 그것도 뉴욕에서 생방송 하는 것 보는 것을 지나치기로 하고 자정 몇 시간 전에 잠자리에 들어버렸다. 원래 계획은 바쁘고 피곤한 아이들이 안 온다기에,  모처럼 우리 둘이서만  ‘멋지게’ Champaign잔을 마주치며 ‘HAPPY NEW YEAR!!’을 외치려 했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설날 아침에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의무대축일 미사가 있기에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사실을 핑계로  이 몇 년 된 전통을 포기한 것이다.

 

일찍 침대에 누웠지만 사실 깊은 잠에 들 수가 없었다. 3-2-1의 뉴욕의 생방송은 꺼졌지만 이번에 집 주변에서 요란하게 터지는 firework소리가 생각보다 요란하였다. 올해는 아이들의 장난이 아니고 아주 pro들이 즐기는 모양으로 오랫동안 지속되어서 몇 시간 동안은 아예 ‘새해의 기분’ 을 즐기는 셈치고 누워있게 되었다.

2020의 요상한 숫자의 느낌을 떠나서 심각하게 ‘늦은 세월’의 의미를 찾아 보았다. 내 나이 이제는 절대적, 긍정적으로 젊어지지는 않는다. 70대의 나이는 또 따른, 가볍지 않은 짐을 지고 나아가는 느낌, 그것은 육체적인 건강상태다. 수치상으로 나는 현재까지는 큰 issue가 없지만 머리 속으로 느낌은 그것이 아니다. 나의 나이는 나이인 것이고 그것이 정직하고 겸손한 태도가 아닐까. 겸손하게 살자, 겸손하게…

위령의 달, 두 죽음

 

¶  가톨릭의 전례력으로 매년 11월은 ‘위령의 달’, 그 중에서도 11월 2일은 ‘위령의 날’로써 ‘돌아가신 영혼들’을 기리고 있다. 영어로는 The Commemoration of All the Faithful Departed 라고 부르지만 간단히 All Soul’s Day, Month 로 불리기도 한다. 한마디로 ‘죽은 영혼들’이 이 기념일들의 주인공인 것이다.

내가 속한 레지오 마리애에서는 11월 중에 반드시 위령미사봉헌을 하게 되고, 전례행사에도 ‘죽은 영혼’들이 주제를 이룬다. 미사 중의 성가들도 거의 모두 ‘죽은 영혼들’에 관한 것들이다. 비록 일반인들에게는 11월의 절정이 ‘추수감사절’이고 크리스마스의 기분을 서서히 내는 때이긴 하지만 가톨릭은 충실하게 죽은 영혼들을 기리는 것, 나는 너무나 좋은 전통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것들을 보며 나는 마틴 루터가 너무나 성급하게 종교개혁을 했다고 단정하고 있다.

올해의 위령의 날 (11월 2일), 우리는 동네 미국본당에서 미사를 보았다. 지난  몇 년 동안은 한국 본당(도라빌 순교자 성당)의 위령미사엘 갔었다. 이 미사는 마리에타 공원묘지에서 야외미사 형식으로 하기에 그야말로 ‘위령’의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 하지만 그 후, 이 미사를 집전하는 사람이 둘루스 한인성당의 주임신부라는 것을 알고는 그야말로 완전히 포기를 하게 되었다.  그를 보는 것만으로 연옥으로 떨어지는 느낌이 들기에 그렇게 한 것이지만 그 신부가 완전히 아틀란타를 떠나면 생각을 바꾸게 될 듯 하다.

 

 

¶  위령의 달을 지내면서 우리는 너무나 놀라운 ‘두 죽음’을 접하게 되었고 아직도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첫 번째 놀라움은 위령의 날 미국본당에서 알게 된 어떤 Hispanic 형제님의 죽음이었다. 매일 아침미사에서 보고 알게 된 이 형제님이 갑자기 지난 일년 동안 돌아간 신자들의 명단 사진에 오른 것. 위령의 날에는 지난 일년 간 선종한 신자들의 이름과 사진을 보여주며 신부님이 일일이 이름을 부르고 종을 친다. 이 형제님은 나이는 비록 나와 비슷한 편이겠지만 아주 건강한 편이었는데, 얼마 전에 돌아가신 것, 우리는 모르고 지냈던 것이다. 우리의 놀라움은 사실 컸다. 소문에 의하면 ‘갑자기 쓰러진’, 그러니까 아마도 심장마비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추측을 한다.  선종소식도 못 듣고 장례식도 못 알았기에 우리의 놀람이 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놀람 중의 놀람은 며칠 전에 일어났다.  Roswell Nursing Home에서 우리 부부가 레지오 단원으로 몇 년간 방문하며 알게 된 한국사람 유학남 형제님, 나보다 5 년 위이신 치매성 환자인데 정신질환 을 빼면 이분은 사실 나보다 더 건강하고 깨끗한 모습이었다. 치매병동의 갑갑한 분위기에서도 항상 복도를 배회하며 ‘집에 가야 한다고’ 하던 이 형제님이 언제부터는 확연히 조용해지고 방에만 머무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덕분에 우리가 방문하면 방에서 차분하게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얘기가 잘 풀리면 가끔 ‘이분이 정말 치매환자인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거의 정상인처럼 말씀을 하시곤 했다. 서울 아현동 철물점도매를 하던 시절의 이야기, 동양극장 주변의 이야기들, 독립문파 깡패, 부통령 이기붕 집의 추억 등등 이야기는 정말 흥미로웠다. 나는 그런 옛이야기를 나누면 아마도 서울에서 이분을 본 적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착각에도 빠지곤 했다. 문제는, 그 옛추억은 100% 논리적이고 실감나는 것들이었지만 지금 현재의 본인의 상태는 거의 모르는 듯 했다는 사실이었다. 현재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는 것이다. 치매환자는 다 이런 식인가?  나는 이 형제님을 형이라고 불렀는데 얼마 전부터 나는 이 ‘형’이 나의 머리에서 떠나질 않게 되는 이상한 불길한 ‘예감’이 들곤 했는데 나의 우려가 갑자기 극단적인 현실이 되었다.

이 날도 평소의 routine대로 아래층 접근제한이 된 병동엘 내려가서 습관적으로 이 형제님의 방을 노크를 하고 들어가려 하니 옆에 있던 staff들이 와서 ‘무조건, 집에 연락을 하라고 한다. 표정들이 아주 심각하고 불친절한 느낌마저 들었다. 연락처를 받아 전화를 하니 형제님의 사위라는 사람이 전화를 받았고 곧 바로 어제 밤에 돌아가셨다는 놀라운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뒷통수를 꽝… 하고 맞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일이 아닌가… 아무리 정신질환이라고 해도 육신은 정말 건강하고 깨끗한 상태였는데 어떻게 아무런 불길한 전조 前兆 없이 그렇게 숨을 거두셨을까…나이도 팔십이 채 되지 않았는데… 아무리 망각증으로 고통을 받는다고 해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곧바로 사위분으로부터 ‘카톡’ 메시지가 왔고 ‘리 장의사’에서 고별입관예배 공지문을 받았다. 가족이 개신교에 다닌다는 사실은, 한때 병실 벽에 붙어있던 <아틀란타 한인교회> 달력을 보고 짐작은 했었다. 하지만 가족사항에 대해서는 전혀 idea가 없었다. 장례식에 가보니 역시 개신교회예식으로 준비가 되어있었고 가족들과도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비교적 단란한 대가족이었고 부인이신 권사님을 통해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도 듣게 되었다. 그야말로 갑자기 호흡곤란이 왔고 곧바로 숨을 거두셨다는 것, 참…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가족들도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들이었다.

형제님의 지나간 인생을 보여주는 각종 사진들이 screen으로 비쳐지고, 또 다른 형제님의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손주들에게 그렇게 자상하셨다는 고별사를 들을 때는 ‘아현동을 주름잡던 시절’의 이야기와는 아주 다른 느낌의 형제님 모습을 그리게 되었다. 어떤 인생을 사셨는지 항상 우리는 궁금했는데 이렇게 비극적인 이유로 다 알게 되어서 허탈한 심정을 금할 수가 없었다. 거의 2년 동안 정기적으로 ‘꿈 같은 이야기’를 서로 나누었던 추억들이 우리에게 언제까지 남게 될 것일지…

올 9월의 느낌은..

나의 기억 속, 머리 속의, 아니 바라던 가을의 느낌은 무엇이었지? 지나가는 2주 정도의 뜨거운, 작열하는 태양과 함께 나는 기억이나 기억하고 싶은 것, 아니 바라는 것 등이 쉽게 구별이 안 간다. 기억의 종류가 ‘생각’과 합쳐질 때 이런 현상이 나는 것인가? 그렇다면 ‘물질적, 기계적’인 기억은 사실 ‘정신적, 영적인 바람’과 섞이며 나타나는 것일까? 하여튼 ‘은근히 화가 나던’ 그런 시간을 견디어 냈다. 집착, 고집, 심지어 공포감.. 누가 공황장애라는 말을 했는데 이것도 그런 것인가? 내가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작년 이때를 계속 달력을 뒤지며 생각한다. 그렇다. 그 당시에는 그것도 ‘지옥’ 처럼 느껴지던 것들이었다. 이제는 그것도 기억으로는 그렇게 나쁜 것들이 아니었는데… 지금 내가 지나가고 있는 시간들도 불과 몇 달 후면 그렇게 느껴지는 것들일 것이다. 그러니 그러니… 견디자.

지금은 2마리의 ‘충실한 개’가 우리와 함께 있다. 나라니가 여행을 가면서 Senate가 오고 내가 Ozzie도 오라고 해서 그렇게 된 것인데, 막상 오게 되니까 조금은 후회가 되기도 했지만 일단 와서 몇 시간을 지내고 보니 역시 문제가 없다. 이렇게 우리의 무미건조한 하루 일정에 다른 것이 가미되는 것, 나쁘지 않은가?

지난 한달 간 나의 머리는 한가지 ‘사건, 시대의 변화’를 의식하며 살고 있다. 작은 딸, 나라니의 ‘그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역시 이렇게 인생을 보내는 인간인가? 나의 생각을 아직도 정리를 못하고 있다. 아니 하기가 싫은 것이다. 그저 우리 나라니의 삶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인정을 하며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신앙의 도움도 별로 효과가 없는가? 그렇게 성모님께 도움을 청했지만 아직도 속수무책이다. 어떻게 두 아이가 모두 ‘우리의 족보’에서 완전히 떠나려고 하는가?  우리 집의, 평창이씨의 족보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나의 정체는 도대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왜 내가 이곳에 와서 살게 되었고, 나의 후손은 어떤 모습을 하게 되는 것인가? 나는 남들이 다 별 문제없이 인정하며 사는데 반하여 이렇게 지지리 늦게,  못나게 보이는 것인가? 모든 ‘도전’을 높은 곳의 뜻을 따르고 이성적으로 받겠다고 그렇게 하늘에 약속을 하며 살았는데 왜 나는 이렇게 벼랑으로 떨어지는 기분으로 살고 있는가? 

6월과 7월의 흐름은…

요새 나날을 보내면서 나는 놀라기만 한다. 어쩌면 이렇게 세월이 빠를 수가 있을까? 눈과 코 앞에서 나를 놀리는 듯 ‘용용거리며’ 그물을 빠져나가는 고기들을 보는 그런 그림을 그린다. 물론 하루하루가 허망하다는 소리는 절대로 아니지만, 문제는 거의 10+ 년 동안 ‘나는 이렇게 살아있다!’라고 절규하는 나의 하루하루 삶을,  생면부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던 나의 blog의 흐름이 거의 하루아침에 정지를 했다는 그 사실 때문이 아닐까? 가끔 오랜 기간 이 흐름이 정지한 적을 기억하지만 이렇게 오랜 시간은 없었지 않을까.. 이제는 조금 불안감까지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나는 허무하게 이 몇 개월을 보냈을까? 절대로 아니다. 다만 정기적으로 자주 ‘반성, 성찰의 글’을 남기지 못했을 뿐이다. 바로 그것 뿐이다. 큰 문제는 없는 것이다. 나는 다시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고, 그것도 몇 시간 만에 해 치울 수 있는 것이다.

어제 아침에는 나도 부끄럽게 느끼고 당황하는 꿈에서 나와 곰곰이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간단히 말해서, 그 바로 ‘W. 마귀’가 나의 꿈에 너무도 너무도 가깝게 나타난 것이다. 아니 나타난 정도가 아니다. 육체적인 냄새와 정을 남기게 된 그런 꿈이다. ‘연애감정, 육체의 느낌’을 준 그 꿈을 어떻게 나는 해석해야 할까?  한 동안, 앞으로 있을 레지오 사업보고 때 ‘한바탕’ 탄핵, 성토하려는 유혹을 즐기고 살았다. ‘값싼 복수’의 감정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기도를 하는 나에게 이런 꿈으로 W. 마귀를 생각하게 했을까?… 바로 이제는, 기억이나 교훈의 가치가 거의 없는 이런 모든 것을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가라…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어제는 작년 10월 이후 처음으로 진희네 집엘 가게 되었다. 나의 ‘작은 부탁 사건’ 이후 연락을 하기도, 받기도 조금 서먹한 감정으로 세월을 보냈었지만, 갑자기 연락을 받고 이것도 ‘그런 작은 일들’ 속에 하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의 지나친 complex라고 나를 자책하기도 했고, 이렇게 어울려 사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최형의 70세 생일이라고 해서 그의 두 서울고 동창부부까지 모인 자리는 결과적으로 즐거운 분위기였다. 그 새로운 인물들의 인상이 상당히 좋았던 것이 큰 이유였을까? 또한 우리 집에서 모일 수 없었던 미안함에도 불구하고 긴 세월의 ‘어울림’이 안 보이는 우정을 만들었는지.. 오랜 친구를 만난 듯한 반가움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래… 이렇게 사는 것도 좋은 인생이다.

성모님의 손길이여..

2019년 4월 21일… 결국은 이날을 맞는다. 4.19 이틀 뒤가 바로 올해의 부활절이 되는 날.. 어제부터 겨울로 돌변한 날씨가 아직도 요란한 heating noise로 가득하고 완전 군장 겨울옷을 입고 앉아 있는 나의 모습.. 별로 마음에 들지 않고 심지어는 ‘슬프기’까지 한 것은 왜…

이렇게도 사람의 마음은 간사한 것인가? 왜 내가 이런 좋은 날에 쳐진 기분으로 고생을 한단 말이냐? 요사이 조금씩 자주 겪고 있는 이런 ‘큰 이유가 없는’ 때에 겪는 우울감, 불편한 느낌들… 오늘 아침에 일어나며.. 새삼 느낀다. 이것은 분명히 나, 우리를 시기질투하는 ‘악마’의 농간일 것이라는 우스꽝스러운 생각이었다. 사실이기를 바라지만 물론 확실한 것이 있는가?

왜 가장 기뻐야 할 부활절이 빨리 지나가기만 학수고대한단 말이냐? 혹시 나의 과거에 겪었던 그런 부정적인 생각과 생활태도가 다시 고개를 드는 것은 아닐까.. 이것이 제일 나를 두렵고 무섭게 하는 ‘사태’일 것이다. 하지만 설마.. 나는 거의 10년 전에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하고 있지 않은가? 결국은 나는 다시 성모님의 무릎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성모님… 저의 마음을 위로하시고 나를 두렵고 불편하게 하는 모든 생각들과, 그의 원인들을 치료해 주세요… 저는 그것을 현재 현명하게 대처를 못하며 휘둘리고 있는 느낌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진정한 기쁨으로 느끼게 도와주십시오… 우리 어머니, 성모님!

last total upgrade..

지난 몇 주일, blog을 안 쓰며 사는 것, 그렇게 나에게 불편한 감정을 주긴 하지만 나도 이렇게 ‘변화’를 체험해야 한다. 왜냐하면 나에게 의미 있는 변화가 요새 별로 없기 때문이다. 진화가 아닌 퇴화가 되고 있는 나의 ‘잇몸’들, 며칠 전에 나를 그렇게 괴롭히던 ‘놈’이 없어지고 나는 오랜 만에 엎드려서 잘 수 있는 편안함을 만끽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부터 나의 입 속의 ‘마지막’을 향해서 계속 퇴화할 것이다. 어쩔 것인가? 어쩔 것인가? 이것은 나에게 작은 공포에 속한다. 구역모임에 의한 쓰라린 기억들도 역시 시간의 도움으로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고 심지어는 현재의 홀가분함을 우리는 만끽하고 있다. 그들에게 미안한 심정이 안 드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현재 우리인 것이다.

몇 주일에 걸쳐서 나의 머리 속, 나의 시간을 장악하고 있는 것, ‘아마도 우리의, 나의 마지막 total computer upgrade’.. 나의 tech era의 석양을 장식할 수도 있는 우리의 computing, computer들, 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는 이것이 필요하지 않은가? 나의 머리가 도는 한 이것은 나의 몫이다. 앞으로 몇 년간 안심하고 쓸 수 있는 computer system, 물론 제일 ‘저렴하고, 알 맞는’ 그런 magic을 나는 찾고 있고 거의 마무리 되고 있다.

신의 영역으로…

어쩌면 이렇게도 날짜가 빠르게도 지나가는 것일까?  놀라운 일도 아닌 것, 새삼 절감한다. 시간이 점점 빨리, 세월이 점점 빨리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하기야 지나간 주가 더 빠르게 간 것은 이유가 있었다. 한 마리도 아니고 두 마리의 강아지와 지냈으니 말이다. 이번에는 사실 다른 때보다 괴로울 정도로 ‘미리’ 신경을 쓴 것이 사실이다. Ozzie와 함께 Senate가 오는 것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실 결과적으로 너무나 그 녀석과 정이 들었던 사실은 즐겁기도 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왜 나는 이런 때가 다가오면 그렇게도 stress를 받는 것일까? 왜? 왜? 결과는 언제나 ‘좋은 것, 즐거운 것’으로 나타나는 것을 왜 나는 미리 예측을 하지 못한단 말인가?

요새 나는 거의 모든 stress를 주는 것으로부터 벗어남을 느낀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미리 생각했던 것처럼 즐겁지 않은 듯 하다. 나도 잘 모르는 나의 심정, 느낌들… 조금은 나도 혼란스럽다. 이런 것들 걱정하면 살던 내가 아니었는데.. 최소한 지나간 5년 정도는?

그제는 연숙의 big event가 끝나서 서로 축하를 해며, 하나 둘씩 우리를 떠나는 ‘일’들의 ‘부담, 고통’을 기억하며 가벼워지는 어깨를 느끼고 싶은데… 생각보다 그렇게 기쁘지는 않다.

나와 하느님은 어떤 사이인가? 하느님 모르고 살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늦었다. 나는 이제 꽤 깊숙이 이 절대자의 영역에 들어온 듯 한 것이다. 지난 거의 10년 동안 나는 ‘신의 영역’ 으로 한걸음 두 걸음 발을 들여놓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돌이킬 수가 없다. 나는 이제 늦었다. 나는 나는… 이제.. ‘신의 영역’에 들어온 것이다. 돌이킬 수도 없고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다.

나를 즐겁게 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하느님의 영역은 물론 그곳은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지만 조금 멀고 높은 느낌도 있다.  감각적으로 나와 가깝게 있는 것들로부터의 즐거움은 무엇인가?  현재 아마도 나는 이 ‘새로운 것’을 못 찾고 있어서 방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신의 영역에 맞갖은 삶을 사느냐 말이다. 어떤 것…어떤 것… 어떤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