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바다가 보이는 수녀원에서

꽃밭을 가꾸듯 글밭을 가꾸어 온 시인 수녀가 솔바람처럼 청정한 목소리로 마음의 창을 열어주는 삶의 이야기

 

이해인 글모음

 

 

첫째 묶음

고독을 위한 의자

 

새에 대한 명상

고독을 위한 의자

심부름의 기쁨

작은고모 이야기

책과의 여행

우리의 말이 향기로우려면

잘 준비된 말을

복음적인 말씨

배추를 씻으며

마음을 다스리는 노력

밭 가까이 살며

떠난 이들의 편지

기쁨의 샘에서 기쁨을 길며

기쁨의 순례자로 살며

겸허함의 향기로

고마움 새롭히기

작은 일에 충실한 삶을

추억을 선물하는 여행기

낙엽은 나에게

나의 애송시 / 기도의 나무로 서서

섣달이면 커지는 마음의 꽃등

새 달력을 걸고

이별의 층계에서

 

 

둘째 묶음

아름다운 순간들

 

일상의 언덕길에서

창을 사랑하며

아름다운 순간들 1

아름다운 순간들 2

아름다운 순간들 3

기도 일기 1 / 새해를 맞으며

기도 일기 2 / 봄이 오는 길복에서

기도 일기 3 / 한 송이 꽃이렸더니

사랑의 빵을 먹으며 / 피정 일기 중에서

어느 날의 단상들

시와 함께 걷는 길

우정 일기 1

우정 일기 2

책을 읽는 기쁨 1 / 독서 일기에서

책을 읽는 기쁨 2 / 독서 일기에서

음악의 향기 속에

수첩 속의 향기

우리 동네 작은 이야기

 

 

셋째 묶음

작지만 좋은 몫을

 

몽당빗자루처럼

봄이 오면 나는

여름이 오면

작지만 좋은 몫을

생명을 나누는 기쁨

어머니의 꽃편지

산으로 솟고 강으로 흐르는 그리움을

슬픔을 나누며

메모하는 기쁨 속에

약점을 자랑하는 용기

한 통의 사랑이 되어

우리 밥, 우리 쌀

선물 이야기

천리향 노래 / 고 박종철 군에게

새 옷을 입는 나무처럼

함께 사는 기쁨 속에

솔방울 예찬

사랑의 작은 길

추억의 성탄 카드

 

 

넷째 묶음

십대들을 위하여

 

외로움을 사랑하자

그 이름만 들어도 즐거운 친구

작은 감사

봄마다 새로운 꽃씨를 뿌리듯

사물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새 학기를 맞는 십대들에게

 

 

다섯째 묶음

바다가 보이는 수녀원에서

 

새해 첫날의 엽서

3월의 꽃바람 속에 / 주희에게 띄우는 글

오빠에게

‘바다’ 아저씨께

조용한 행복 속에 / 요한 신부님께

선생님의 독자로서 / 이어령 선생님께

겨울 엽서 / 벗 승자에게

달빛 아래서 / 임영무 선생님께

글 욕심도 버려야만 / 독자 평이에게

잘 듣는 삶을 / 노엘 수녀님께

시를 나누는 기쁨으로 / 마르티나 수녀님께

자신의 바로 그 자리가 / 용욱 엄마에게

콜베 신부님을 기리며 / 성인 탄생 100주년에 부침

 

 

 

책 머리에

 

내가 수녀님을 사랑하는 까닭은

 

구약에서 <아가>를 처음 읽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다. 거룩한 책에 그런 관능적인 연애시가 포함돼 있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선남 선녀 사이의 사랑의 열락을 노래하는 것과 하느님의 창조의 뜻을 찬미하는 것을 다름 아닌 것으로 본 것 같아 성경을 보다 인간적인 책으로 친근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아가>보다는 시편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은데 나는 원수라는 말이 너무 많이 나와서 좀 무섭게 여기고 있었다.

이해인 수녀님의 시를 처음 읽었을 때 <아가>를 연상했다. 그 수녀님의 시를 관능적인 연애시로 읽었다는 뜻이 아니라 수녀님이나 수녀원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과 너무 맞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생각해 온 수녀원이란 속세를 향해 문을 잠근 경직되고 폐쇄적인 세계였고, 수녀님들이란 말 못할 사정이 있어 그런 억압과 단절을 자처한 이들이었다. 내 안에서 관념화된 수녀원은 창도 없고 웃음도 없는 어둑시근한 침묵의 세계였다. 그 안에 시를 쓸 자유가 있다는 것도 이상한데 수녀님의 시는 세상을 향해 활짝 열린 창처럼 자연뿐 아니라 인간사의 온갖 미묘한 기미까지를 때로는 섬세하게 때로는 활달하게 끌어안고 있었다. 나는 어느 틈에 수녀님의 글을 실린 잡지만 봐도 어여쁜 창이 달린 집을 보는 것처럼 슬그머니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수녀님을 처음 뵌 것은 수녀님을 좋아하게 되고 나서도 훨씬 후였다. 아마 세계성체대회가 서울에서 열리기 전 그 준비기간 동안이었을 것이다. 수녀님도 성체대회 홍보를 위해 부산 본원에서 서울 명동성당에 와 계셨고 나에게 홍보 책자에 실을 글을 청탁하셨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수녀님이 원고청탁을 한 것만 고마워서 쾌히 승낙을 했지만 남편의 병세가 걷잡을 수 없이 위중해질 때였다. 나는 마감 날짜를 지키지 못했고 몇 번 독촉을 받았다. 결국은 입원실에서 원고지를 펴놓고 일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글 쓰는 일을 업으로 가졌다는 게 참담하게 느껴졌다. 그 원고를 그냥 부쳤으면 좋았을 것을, 원고 말미에 병실에서 얼마나 어렵게 그걸 썼다는 걸 밝혔다. 마감을 못 지킨 데 대한 변명 겸 위로 받고 싶다는 속셈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게 아니라 즉각 문병을 와주셔서 처음으로 수녀님을 뵙게 되었다. 수녀님이 나무랄 데 없이 단아한 미인이라는 게 다시 한번 나를 놀라게 했다. 저 미모에 저 재주에 왜 수녀가 되었을까? 그때나 이때나 못 말리게 속물스러운 나는 고작 그런 생각이나 했었을 것이다.

그 후 나에겐 수녀님에게 의지하고 위로받아야 할 일이 연달아 생겼다. 수녀님의 배려로 부산에 있는 분도수녀원에 묵을 때였다. 수녀님하고 같이 수녀원 뒷산이나 광안리 바닷가를 산책하기도 하고, 수녀원과 관계를 맺고 있는 노인들이나 장애인들을 방문하면서 나는 어렴풋하게나마 마음의 평화가 돌아오는 기척을 느낄 수가 있었다. 수녀님은 평범한 자연 속에 숨어 있는 작은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는 데 천부적인 감수성을 지니고 있었다. 나 혼자 거닐 때 평범한 동산이던 게 수녀님하고 같이 보면 놀랍도록 새롭게 보였다. 자연 속에 미운 거나 불필요한 건 하나도 없고, 어제와 같은 것 또한 없다는 것을 수녀님은 혼자만 느끼기 아까운 듯 힘 안 들이고 옆의 사람에게 옮아 붙게 만들었다. 수녀님의 자연과의 깊은 교감은 아무의 눈에도 잘 안 띄는 봄까치꽃을 라이락과 동등하게 만들었고, 요요한 동백꽃도 민들레와 조화를 비춰주었다.

수녀님의 수필을 읽는다는 것은 수녀님과 함께 들꽃이 피어나는 숨결에 귀 기울이는 기쁨이고, 보잘것없어 뵈는 사람들 속에서 위대함을 발견하는 놀라움이다. 수녀님과 수녀님의 글을 더불어 좋아하게 되면서 저만한 미모, 저만한 재주를 타고났으면서 왜 수녀가 되었을까라는 나의 속물스러운 의문도 저절로 풀리게 되었다. 수녀님은 총명한 분이다. 자신이 남보다 출중하게 태어났다는 걸 몰랐을 리가 없고, 따라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남보다 화려하고 특출나게 살 수도 있다는 걸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순진무구한 나이에 이미 주님의 눈에 든 수녀님은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살기보다는 주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삶을 살고자 했을 것이다. 수녀원이란 햇빛이 충만하고, 꽃 피고, 새가 울고, 바람 불고, 누구나 빈부귀천을 의식하지 않고 손님 노릇을 할 수 있는 곳이지만 결단코 교만만은 용서하지 않는 곳이다. 아무리 눈 밝은 사람도 만약 세속의 눈으로 수녀원에서 원장님을 찾는다면 실패하고 말리라. 가장 원장님답지 않아 뵈는 분이 원장님이시니까. 수녀님 또한 다만 수도자로서의 소임을 다하느라 늘 바쁘고 씩씩하여 글을 쓸 시간이 따로 있을 것 같지가 않다. 나는 시인입네, 그걸 불만스러워하는 티 같은 것은 더군다나 눈 씻고 찾아보려 해도 없다. 그러나 그렇게 시인인 척 나대지 않음으로 얼마나 시인다운 내적 자유를 획득하고 있나를 그의 글은 여실히 보여준다.수녀님의 시인으로서의 삶과 시인으로서의 수녀님의 삶을 글이나 모습으로 가까이 대할 때마다 작은 것, 숨겨진 것의 아름다움에 눈뜨는 기쁨과 함께 안배의 신비 같은 게 느껴져 숙연해진다.

수녀님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 보내는 꽃씨 선물처럼 이 책이 독자의 가슴에서 다양하게 피어나길 빈다.

 

 – 박완서 (소설가)

 

 

 

 

지은이의 말

 

 1986년 2월, <두레박>이란 첫 산문집을 낸 후 두 번째로 엮게 되는 이 산문집 <꽃삽>은 극히 평범하고 작은 일상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글밭에 독자들을 초대하는 일이 못내 망설여지던 중 샘터사와 저의 오래 된 독자들의 권유로 또 한번의 용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여기의 글들은 주로 지난 몇 년 동안 <샘터>의 <꽃삽>과 <시인의 숲속> 칼럼에 연재했던 내용들이며 <두레박> 이후 8년 동안 드문드문 다른 여러 지면에 발표했던 글들도 들어 있습니다.

수도원의 소임과 일상 안에서 가끔 꽃삽을 들고 작은 꽃밭을 가꾸듯이 써 모은 이 작은 글들의 한 톨이나마 누군가의 가슴속에 날아가 따뜻하고 아름다운 노래를 꽃피울 수 있다면, 그리고 삶을 사랑하는 계기가 된다면 저는 참으로 기쁘고 고맙겠습니다.

 

1994년 가을

부산 광안리 성베네딕도 수녀원에서

이해인 수녀

 

 

 

 

 

 

 

첫째 묶음

고독을 위한 의자

 

새에 대한 명상

 

1

새는 언제나 내 그리움의 대상이다. 강이나 바닷가의 모래밭에 찍힌 물새들의 가늘고 조그만 발자욱들을 보면 그 자리에 새가 없어도 반갑고, 지금쯤은 그 새가 어디에 가 있는지 궁금해지는 마음이다.

어떤 분의 수필에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이 어디에 쉴 곳이나 제대로 있는지 측은히 여겨진다’는 구절을 잃고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새들은 항상 자유의 상징으로 부각되지만 새들 하나하나는 자유로운 그만큼의 고독을 안고 사는 게 아닌가 생각해 본다. 나도 마음이 울적해지거나 이기적인 욕심이나 미움, 절망의 어둠 속에 갇혀 있다고 생각될 때 문득 하늘의 새들을 그리며 기도하면 밝아지는 기분이 되곤 한다.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귀천 歸天’ 의 시인 천상병님의 새에 대한 연작시들을 요즈음 자주 읽어본다.

 

 

저것은 무너진 시계 視界 위에

슬며시 깃을 펴고

피빛깔의 햇살을 쪼으며

불현듯이 왔다 사라지지 않는가

바람은 소리 없이 이는데

이 하늘, 저 하늘의

순수 균형을

그토록 간신히 지탱하는

새 한마리

 

새는 언제나 명랑하고 즐겁다

하늘 밑이 새의 나라고

어디서나 거리낌 없다

자유롭게 기쁜 것이다

… 새의 지저귐은

삶의 환희요 기쁨이다

우리도 아무쪼록 새처럼

명랑하고 즐거워하자

 

 

새에 대해 시를 쓰기도 쉽지 않지만 새처럼 자유롭고 고독하게 살기도 쉽지 않은 듯하다.

세계의 새들이 종류별로 다 모여 있다는 싱가폴 어디의 ‘새들의 공원’이라도 한번 가서 많은 새들을 실컷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다. 앗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처럼 새들과 대화도 하고, 함께 놀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2

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많이 내리고 있다. 귀 있는 사람은 바쁜 중에도 모르는 척할 수 없을 정도로 열심히 노래하던 고운 새들은 이 비 오는 날, 모두 어디에 숨어 있을까? 깊은 밤에도 문득 새소리에 잠을 깰 때가 있다. 밤의 적막을 가르고 숲속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맑고 숙연해진다. ‘새야, 나도 지금 깨어서 네 소리를 듣고 있단다. 살아 있음의 기쁨을 너는 그렇게 참지 못하고 노래하는거지?’라고 속삭이며 나는 다시 잠을 청하곤 한다.

 

 

3

수많은 새들 중에 내가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은 몇 개나 될까? 몇 년 전 여름, 내가 송광사의 불일암에 들렀을 때 법정 스님께서 ‘수녀님은 그래 시를 쓴다고 하면서도 기껏 아는 게 뻐꾹새 소리밖에 없느냐?’ 고 핀잔을 주시며 쏙독새, 머슴새 들 숲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마다 이름을 구별해서 가르쳐주시던 기억이 새롭다. 요즘 우리 수녀원 언덕길에서 자주 마주치는 가슴이 노란 새의 이름이 궁금해서 나는 아예 가장 큰 조류사전을 빌려다가 찾아보기도 하지만 그 작은 새의 이름은 꼬까참새 같기도 하고, 검은머릭촉새 같기도 하고 확실히는 몰라도 하여튼 참새과라는 것쯤은 알겠다.

까마귀와, 찌르레기과, 꾀꼬리과, 종다리과, 할미새과, 제비과, 두견이과, 동박새과, 비둘기과, 휘파람새과, 두루미과, 뜸부기과 등등 종류도 너무 많고 각 과 科에 속하는 새들의 이름은 또 얼마나 많은지 일일이 기억할 수조차 없다.

그러고 보니 나는 꽃이나 나무 이름에 비해 새 이름은 조금밖에 몰라 새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럽다. 새들과 더 친해지려면 그 이름을 알아 불러주고 각각의 특성을 더 구체적으로 알아서 아껴주면 좋을 텐데… . 그러나 우리가 가까이 가려면 이내 저만치 달아나버리고 마는 새는 그 겉모습보다 그냥 소리로 친해지고, 적당한 거리를 사이에 두고 사랑하는 것이 더 좋은 일인지도 모르겠다.

 

 

4

늘 잔걱정이 많고, 잊어도 좋을 일을 쉽게 털어버리지 못하는 소심한 성격의 내가 어느 날, 본인은 생각지도 않는 어떤 일에 대해 불쑥 사과하는 말을 건넸을 때 좋은 친구 K는 날더러 ‘그렇게 콩새 같은 가슴으로 어떻게 사니? 좀더 대범해져야지’ 하며 웃었다. 그 후로 나는 ‘콩새’라는 이름이 예쁘고 사랑스러워 그냥 ‘콩새 수녀’가 되기로 마음 먹었다.

 

 

5

어린 시절 나는 ‘새’라는 발음을 제대로 못하고 ‘세’라고 하여 언니, 오빠로부터 놀림을 받곤 했는데 이제는 자신 있게 ‘새’라고 발음할 수 있다.

꿈 많은 소녀 시절, 어떤 소년이 내게 보낸 첫 연서 戀書에서 나를 곧 날아가버릴 한 마리의 파랑새에 비유해서 쓴 몇 줄의 글도 자세한 내용은 잊었으나 기억에 남는다. 그러고 보니 나는 세상 어디에도 머무르지 못하고 수녀원이라는 큰 숲으로 날아와 새로운 비상을 꿈꾸며 사는 한 마리 새가 되었구나.

 

 

6

이왕이면 높이 날으는 새가 되어야겠다.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지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희망과 사랑의 다리를 놓아주며, 기쁜 소식을 전하는 심부름꾼으로서의 ‘수녀새’가 되고 싶다.

희랍 신화에 나오는 헤르메스 Hermes가 날개 달린 모자를 쓰고, 날개 달린 샌들을 신고 제우스 신 神의 심부름을 다니는 사자 使者 였듯이 나도 하느님과 인간의 사랑 받는 사자기 되고 싶다. 비록 헤르메스처럼 나는 날개도 없고 그만큼 민첩할 수도 없지만 마음으로야 얼마든지 날아다닐 수 있지 않은가?

 

더구나 지금 내가 하는 소임은 각종 심부름을 도맡아야 하는 비서실 일이어서 나의 정신은 매일매일 새처럼, 헤르메스처럼 바쁘게 날아다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냥 우두커니 앉아 있기만 해서는 안 되고 끊임없이 창의적이며 좋은 생각을 떠올려야 하는 명상의 새, 땅에서의 일을 잘하기 위해 하늘로의 비상을 서슴지 않는 기쁨의 새, 생명의 새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1994>

 

 

 

 

 

고독을 위한 의자

 

 

홀로 있는 시간은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호수가 된다.

바쁘다고 밀쳐두었던 나 속의 나를

조용히 들여다볼 수 있으므로

여럿 속에 있을 땐

미처 되새기지 못했던

삶의 깊이와 무게를

고독 속에 헤아려볼 수 있으므로

내가 해야 할 일

안 해야 할 일 분별하며

내밀한 양심의 소리에

더 깊이 귀 기울일 수 있으므로

그대

혼자 있는 시간이야말로

내가 나를 돌아보는 시간

여럿 속의 삶을

더 잘 살아내기 위해

고독 속에

나를 길들이는 시간이다.

 

 

이는 어느 날 쓴 애 일기의 한 토막이다.

같은 스물네 시간이라도 옛날에 비해 훨씬 바삐 쪼개 쓰며, 숨차고 복잡하게 살아가고 있는 현대의 우리들은 분주한 삶에 정신 없이 떠밀려 살다 보면 혼자 있는 시간의 고독과 고요를 체험하기 어려운 것 같다. 꼭 시간이 없어서도 아닐 텐데 우리는 어느새 번잡한 삶에 중독이 되어 진정 홀로 있음의 고독을 갈망하거나 맛들일 겨를도 없이 그럭저럭 살아가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하루에 한 번, 일주일에 한 번, 아니면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좋으니 아무의 방해도 받지 않고 홀로 있는 시간을 우리는 일부러라도 만들어야 할 것이다.자유롭고도 창조적인 수미의 시간을 통해서만 인간의 타성의 늪에서 빠져 나와 새로워질 수 있고, 자기 자신을 재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가을, 몇 주 동안 캐나다를 여행할 대 나는 해질녘에 텅 빈 성당에서 혼자 앉아 기도하는 이들의 고즈넉한 모습도 여러 번 보았고, 공원이나 호숫가의 벤치에 조용히 혼자 앉아 있거나 산책하는 이들의 모습도 눈 여겨 보았었다. 둘이 있는 모습도 다정하고 아름다워 보이지만 혼자 있는 모습 또한 멋져 보였다. 그들에게선 왠지 구도자의 고독한 향기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혼자시군요’ 하고 다가가서 말을 건네면 은은한 미소와 함께 깊이 있고 진지한 삶의 이야기를 전해 줄 것만 같았다.

‘수녀님. 저는 등산이나 산책을 할 때면 혼자 하는 것이 더 마음에 듭니다. 좀더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라고 내게 편지를 보냈던 어느 친지의 말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질 않는다.

요즘은 나도 우리 수녀원의 넓은 정원과 동산을 자주 산책하는데, 둘이나 셋이 다닐 때도 있지만 혼자 다니는 때도 많다. 평소엔 그저 무심히 듣던 새소리나 종 소리도 더 의미 있게 들리고, 산책길에서 발견한 나뭇잎의 무늬, 꽃잎과 꽃술의 모양도 더 자세히 보이고, 심지어 내 옷에 묻은 얼룩, 마음의 얼룩도 혼자 있을 때는 더 잘 보인다. 비 오는 날엔 연못에 떨어지는 빗방울 무늬, 눈 오는 날엔 바다에 떨어지는 눈송이를 바라보며 조용히 생각에 잠길 수 있는 고독한 산책은 얼마나 즐거운가.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빈 방에서 홀로 나를 만나는 시간 또한 행복하다. 김현승 시인의 표현대로 ‘껍질을 더 벗길 수도 없이 단단하게 마른 흰 얼굴’인 고독의 얼굴도 비 방에선 더 가까이 보이고, 마음 자리가 한결 밝고 투명해진다. 처음엔 듣기 거북했던 동료의 충고가 새삼 고맙게 생각되는 것도, 감정에 탐닉되지 않고 좀더 냉정한 눈으로 나 자신을 객관화 시켜 볼 수 있는 것도 혼자 있을 때이다. 바람소리에 귀 기울이며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애틋한 헌신의 갈망을 키우는 것도, 좋은 생각을 좋은 결심으로 잘 매듭짓는 것도 혼자 있을 때이다. 일을 위한 쉼이 필요하고, 말을 위한 침묵이 필요하듯 여럿이 함께하는 삶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도 우리에겐 혼자 있는 고독한 시간, 고독한 자리가 꼭 필요하다.

제자들과 함께 바쁘게 선교활동을 하시던 예수님도 어느 땐 군중들을 피해 ‘한적한 곳’, ‘외딴 곳’으로 물러나 쉬셨다고 성서는 기술하고 있다.

일상생활의 분주함과 잡다한 취미 생활의 즐거움 에서조차 가끔 물러나 참으로 침묵과 고독이 가능한 ‘외딴 곳’, ‘한적한 곳’으로 피해 갈 수 있는 용기와 결단의 노력이 있을 때라야 우리는 내면의 깊은 소리를 들을 수 있고, 피상적으로 묻혀버리고 말았던 삶과 이웃과의 관계를 좀더 새로운 깊이와 높이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숲 속의 생활>을 쓴 헨리 소로우 H. Thoreau의 글을 다시 읽어본다.

 

‘나는 고독보다 더 사귀기 좋은 친구를 발견한 적이 없다. 우리는 대개 자신의 방에 파묻혀 있을 때보다도 밖에 나가 사람들 틈에 묻혀 있을 때 더 고독해 진다…. 고독은 자신과 친구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공간의 마일 수에 의해 계산되어지는 것이 아니고… 사교는 너무 값이 사다. 우리는 서로 자주 만나기 때문에 서로에게 새로운 가치를 획득할 시간을 갖지 못하고 만난다…. 내 집에는 의자가 세 개 있다. 하나는 고독을 위한 것이고, 또 하나는 우정을 위한 것이고, 셋째 것은 사교를 위한 것이다.’

 

우리도 이와 같이 늘상 고독을 첫 자리에 두고, 고독을 위해 비워놓은 의자에 그를 자주 초대해서 깊이 사귀고 길들일수록 마음이 풍요로워지며 한걸음 더 삶의 깊이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 본다.

 

<1994>

 

 

 

심부름의 기쁨

 

작은고모 이야기

 

책과의 여행

 

가장 고요할 때

가장 외로울 때

내 영혼이

누군가의 사랑을 기다리고 있을 때

나는 책을 연다

밤하늘에서 별을 찾듯 책을 연다

보석상자의 뚜껑을 열듯

조심스러이 책을 연다

 

가장 기쁠 때

내 영혼이

누군가의 선물을 기다리고 있을 때

나는 책을 연다

나와 같이 그 기쁨을 노래할

영혼의 친구들을

나의 행복을 미리 노래하고 간

나의 친구들을 거기서 만난다

아, 가장 아름다운 영혼의 주택들

아, 가장 높은 정신의 성城들

그리고 가장 거룩한 영혼의 무덤들

그들의 일생은 거기에 묻혀 있다

나의 슬픔과 나의 괴롬과

나의 희망을 노래하여 주는

내 친구들의 썩지 않는 영혼을

나는 거기서 만난다

그리고 힘주어 손을 잡는다

 

 

고 故 김현승 시인의 <책>이라는 시의 전문이다. 좋은 책을 만날 때마다 나는 이 아름다운 시를 떠올리곤 하는데 아직 읽어보지 못한 분들을 위해 여기에 소개한다.

 

수없이 되풀이해 읽어도 읽을 때마다 새로운 고전인 <성서>와 <논어>, 작가를 직접 만난 후, 그 인품의 향기에 끌려 더 즐겨 읽게 된 피천득의 <수필>, 법정 스님의 머리글이 너무 아름다워 더 자주 읽게 된 <어린왕자>와 톨스토이의 <인생론> 등 내게도 개인으로 소유하고 있는 책들이 몇 권 있긴 하지만 요즘은 좋은 책들을 나만의 소유로 묶어두기보다는 더 많은 이들이 볼 수 있도록 ‘여행’을 떠나 보내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진정 책과의 여행이 없었다면 어린 시절부터 나는 몹시 우울하고 메마른 삶을 살았을 것이다.

한국전쟁이 막 끝나고 난 후의 1950년대, 국민학교에 다니는 어린 소녀의 마음을 달래준 것은 안데르센과 더불어 국내외 여러 작가들의 아름다운 동화들이었고, 5, 6학년 때 언니, 오빠가 구독하는 <학원>이란 잡지를 참 열심히 도 읽었다.

중학교에 들어가 문예반 일을 하면서 작문선생님의 지도로 여러 아름다운 시들을 접할 수 있었고, 친구들과는 으레 시집들을 생일 선물로 주고받곤 했다. 한용운, 김소월, 윤동주, 서정주, 신석정, 유치환, 노천명, 김남조 그리고 ‘청록파’의 박목월, 박두진, 조지훈 시인들의 시들을 애송하며 편지에도 자주 인용하곤 했는데, 내가 어른이 되어 그 중의 몇 분을 직접 만났을 땐 설레이는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삶이 그대를 속이더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아라 /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머지않아 기쁨의 날이 오리니’ 하는 푸슈킨의 시구 詩句 나 ‘뼈에 저리도록 생활은 슬퍼도 좋다 / 저문 들길에 서서 푸른 별을 바라보라’고 하는 신석정의 시구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로 시작되는 윤동주의 <서시>와 더불어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산 너머 저쪽 더욱 멀리 행복이 있다고 사람들은 말하네 / 나는 그를 찾아 남 따라 갔다고 눈물만 머금고 되돌아왔네’ 하는 칼붓세의 시는 현실에 충실해야 할 삶의 지혜에 눈을 뜨게 했다. 졸리는 오후 수업시간이면 신지식의 <하얀 길> <감이 익을 무렵> 등의 고운 단편들을 읽어주던 영어선생님도 잊을 수 없고 그 영향으로 난 막연히 작가를 꿈꾸었다.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면 책을 대여해 주는 동네책방에 가서 얼마나 많은 책을 빌려다 읽었는지 장편소설들은 그때 다 빌려 읽은 셈이다. 지금 생각하며 좀 건방지지만 외국소설과 시는 번역이 썩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국내작품들을 더 많이 읽은 것 같다.

강신재의 <젊은 느티나무>, 황순원의 <소나기>에 나오는 순결한 사랑의 주인공들을 아끼고, 이광수의 <사랑>, 김래성의 <애인>, 심훈의 <상록수>, 정비석의 <산유화> 등을 아직 어린 나이에 읽었다. <산유화>에 나오는 삼청공원이 마침 우리집 근처여서 나는 곧잘 친구들과 그곳에 오르며 소설에 나오는 김소월의 시들을 낭송하곤 했다.

여고에 들어가서 백일장에 입상하는 등 조금씩 인정을 받기 시작하자 나는 틈틈이 시작 詩作을 하며, 독서에 몰두했다. 은근히 나를 좋아했던 먼 친척뻘의 오빠가 갈피마다에 꽃잎을 끼워 선물로 준 단테의 <신곡>을 뜻도 잘 모르면서 읽었고, 타고르, 릴케, 헤세의 시에 맛들이기 시작했으며 앙드레 지드의 <좁은문>과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등에 도취되었다. 또 한편으로는 인류사에 빛나는 위인들이나 성인들의 전기를 읽으면서 그야말로 ‘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 잠을 설치며 방황하고 고민하기도 했다.

수녀원에 들어와서 몇 년간 나는 <성서>나 <그리스도를 본받음>등의 신심서적 외엔 거의 읽지 않고 있다가 1970년대 필리핀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며 셰익스피어의 희비극, 호머의 서사시들, 영시 英詩 들을 알뜰히 탐독하는 기쁨을 누렸다. 그때 많은 것을 가르쳐 준 델프라도 Del Prado 교수는 학식과 덕망과 미모가 빼어난 여성이었는데 지금도 그는 ‘네가 우리반에 있었을 때의 문학수업 시간을 잊을 수 없다’며 편지를 보내오곤 한다. 그의 지도로 나는 <에밀리 디킨슨과 김소월의 자연시 비교 연구>란 제목의 논문을 쓰게 되었는데 자신의 삶만큼이나 특이한 에밀리 디킨슨의 시들에 깊이 매료되었다. 바쁜 일정 중에도 종종 후배들에게 교양문학을 강의하는 지금의 내게 어린 시절부터 많이 읽어둔 책과, 책을 통한 인생체험들은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모른다. 규칙적인 수도생활을 하다 보면 책 일을 틈이 그리 많은 편이 아니지만 그래도 짬짬이 떠나는 책과의 여행은 늘 계속될 것이다. 좋은 것을 선택할수록 책은 배신을 모르는 충실하고 미더운 동반자가 되어준다. 살아 잇는 동안 좋은 책과의 여행을 계속하려면 깊이 고독할 줄도 알아야 한다. 책이 있는 한 나의 삶은 결코 메마르지 않을 것이며 책과의 여행에서 얻은 체험을 이웃과도 나눌 수 있는 순례자일 때 나의 삶은 더욱 풍요롭게 빛날 것이다.

 

<1993>

 

 

 

우리의 말이 향기로우려면

 

우리는 매일 많은 말을 듣고 또 하고 산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의 수만큼이나 말의 양과 질도 매우 다양하며 인간들끼리의 좋은 관계도 나쁜 관계도 말에서 비롯될 때가 많다.

말을 할 수 있음에도 오직 침묵과 기도의 삶에 몰입하기 위해 꼭 필요한 말은 수화 手話로 한다는 엄격한 관상수도회인 트라피스트 수도자들은 말을 안 하는 그만큼 말로써 죄를 지을 확률도 적어지겠구나 하고 생각해 본 일이 있다.

늘 가까이 대하는 가족, 친지, 이웃끼리도 서로 만만하게 여겨져서 주고받는 말들이 때로는 깊은 오해와 상처를 불러 일으키는 경우도 있고, 초면에 말을 잘못해서 좀체로 좋은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를 보더라도 참으로 말을 잘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오랜 병고에 시달리며 누워 있는 이에게, 사랑하는 이와의 사별의 슬픔으로 괴로워하는 이에게 또는 사업에 실패하거나 시험에 떨어져서 낙담하고 잇는 이에게 적절한 위로의 말을 찾아 하는 것은 어떤 좋은 일이 있을 때 축하나 감사의 말을 건네는 것보다 훨씬 어렵게 느껴진다. 꼭 합당한 말이 업는 것도 아닐 텐데 막상 표현을 하자면 생각은 안 나고 말이 궁해 답답해지는 것을 나도 여러 번 경험했다. ‘어설프게 위로한다면 오히려 상처를 주기보다는 아예 입다물고 가만 있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하는 말도 종종 듣게 되지만 이는 너무 소극적인 태도인 것 같다.

우리가 글씨를 배우고, 피아노를 배우고 뜨개질을 배우듯이 삶의 질을 높여주는 좋은 말을 배우는 데도 많은 연구와 노력의 연습과 과정이 꼭 필요한 것이 아닐까? 평소에 좀더 관심을 갖고 우리말 공부를 하고, 남의 말을 열심히 듣고, 좋은 책을 통해서 좋은 말을 배우며 실제로 잘 활용하려 애쓴다면 우리 자신도 모르게 매일의 언어 생활이 좀더 아름답고 깊이 잇게 변화되리라 믿는다. 우리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저속한 말, 너무 피상적이고 충동적이고 겉도는 말, 자기중심적이고 무례한 말을 습관적으로 하지 않으려면 우리 마음과 삶의 태도부터 맑고, 곱고, 선하게 가꾸어야 하리라. 우리의 말이 향기로 우려면 우리의 삶 또한 향기로워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끝없이 노력하는 수행자 修行者의 모습으로 매일을 살아야 할 것이다. 나는 가끔 이런 기도를 해본다.

 

 

매일 우리가 하는 말은

역겨운 냄새가 아닌

향기로운 말로

향기로운 여운을 남기게 하소서.

우리의 모든 말들이

이웃의 가슴에 꽂히는

기쁨의 꽃이 되고, 평화의 노래가 되어

세상이 조금씩 더 밝아지게 하소서

누구에게도 도움이 될 리 없는

험담과 헛된 소문을 실어 나르지 않는

깨끗한 마음으로

깨끗한 말을 하게 하소서

 

나보다 먼저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는

사랑의 마음으로

사랑의 말을 하게 하시고

남의 나쁜 점보다는

좋은 점을 먼저 보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긍정적인 말을 하게 하소서

 

매일 정성껏 물을 주어

한 포기의 난초를 가꾸듯

침묵과 기도의 샘에서 길어 올린

지혜의 맑은 물로

우리의 말씨를 가다듬게 하소서

겸손의 그윽한 향기 그 안에 스며들게 하소서

 

<1994>

 

 

 

잘 준비된 말을

 

매우 어줍잖은 글이긴 하지만 나는 어느새 글을 쓰는 사람으로 알려지게 되어 원고청탁도 괘 자주 받게 되고, 그러다 보니 더러는 거절을 한다 해도 늘상 글 빚을 많이 지고 사는 셈이다.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든 아니든 간에 시나 산문 등을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시키기까지는 참으로 남모르는 아픔과 인내, 아낌없는 정성과 노력이 요구된다. 나 역시 글을 쓸 때는 마음에 드는 적절한 표현을 찾기 위해 수없이 종이를 버리며 잠을 설칠 때도 많고, 옆 사람이 눈치를 챌 만큼 끙끙 몸살을 앓곤 한다. 글을 쓰기 위해 이렇듯 힘든 과정을 거칠 때마다 나는 겉으로 드러나는 나의 언어생활을 한번씩 되돌아 보게 된다. 내가 말을 할 때도 글을 쓸 때만큼 심사숙고하고, 이것 저것 미리 헤아려 분별 있는 말을 하도록 애쓴다면, 성급하고 충동적인 말로 다른 이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쉽게 뱉어버린 말들 때문에 빚어지는 오해나 불신이 우리 주변엔 얼마나 많은가?

누가 어쩌다 한결같이 겸허하고, 예의 바르고, 품위 있는 말씨를 쓰면 다시 한번 그 사람을 쳐다보며 감탄할 만큼, 요즘 우리의 언어생활은 퍽도 거칠고 삭막해졌음을 자주 절감한다.

흔히 글은 오래오래 종이에 남는 것이고, 말은 그냥 사라지는 것 쯤으로 생각해버리기 쉽지만, 한 마디의 말 또한 듣는 이의 마음속에 오랫동안 간직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얼마나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인가? 한 사람의 펜으로 씌어진 글은 그 사람 특유의 개성을 지닌 작품이 되듯이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 또한 그 사람의 인격을 드러내는 하나의 작품이라고 할 때, 우리는 결코 함부로 말할 수가 없으리라. 너도나도 바쁘게 살다 보니 별로 생각할 시간이 없다고 해도, 우리는 매일 잠깐씩 일부러라도 틈을 내어, 마음 깊은 곳으로 들어가 자신의 언어생활을 점검해 보고 늘 잘 준비된 말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말을 할 때마다 마음의 준비를 하며, 꾸준히 자신을 성찰해 간다면 아무래도 부정적인 말보다는 긍정적인 말을 더하게 될 것 같다. 자기와 남을 이롭게 하고 기쁘게 하는 좋은 말, 선한 말만 골라 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는데, 남을 비난하고도 상관도 없는 일에 끼어들어 흥분하거나, 불평과 짜증과 푸념으로 시간을 보낸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겠는가? 마음먹기에 따라서 우리는 얼마든지 말의 질을 높일 수가 있고, 이것은 곧 삶의 질을 향기롭게 높이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유 없이 남을 깎아 내리는 말, 무례하고 오만하고 이기적인 말, 천박하고 상스러운 말은 아예 입에 담지를 말자. 잘 안 된다면 적어도 우선은 횟수를 줄이려고 노력하자. 우리의 말씨가 거칠어지는 것이 시대 탓, 무분별한 매스 미디어 탓이라고만 하지 말고, 우리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매일의 언어생활을 참으로 선하고, 진실하고, 아름다운 작품으로 꽃피우자.

‘미리 준비하고 말하라. 경청하는 자가 많을 것이다. 네가 듣기를 좋아하면 배우는 게 많고, 귀를 기울일 줄 알면 현자가 되리라’는 성서의 말씀을 다시 새겨 들으며 나도 말에서 뿐 아니라 모든 면에 잘 준비된 현자 賢者로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1989>

 

 

복음적인 말씨

 

‘네 땅을 가시나무 울타리로 둘러싸고 금은보화를 안전한 곳에 잠가 두듯이, 너는 말할 때 경중을 가려서 하며 네 입에 문을 달고 자물쇠를 잠가라. (집회서 28, 24~25)’

‘속되고 헛된 말은 피하시오. 그것 때문에 사람들은 더욱더 하느님께로부터 멀어지고 그들이 하는 말은 암처럼 퍼져나갈 것입니다. (디모 후 2, 16~17)’

‘흰 구슬 한 쪽의 흠은 갈면 되지만 말에 나타난 흠은 어찔할 수 없거늘 (詩經)’

위의 구절들은 구약, 신약, 동양고전 중에서 말에 대해 언급한 많은 내용들 중의 일부이다. 인간이 얼마나 신중하고 분별 있게 말을 해야 할는지, 또한 그 영향력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시사해 주는 좋은 예라고 보겠다.

얼마 전 내가 어느 친척의 집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었다. 국민학교에 다니는 그 집 아이가 제 친구의 흉을 보기 시작하자, “경수야, 그렇게 함부로 남의 말을 하는 게 아니라고 그랬지?” 하고 제 엄마와 할머니가 타이르니까 “아이 참, 이젠 안 그럴게요” 하며 멋쩍은 듯이 웃는 것을 보았다. 집집마다 어른들이 이 집에서처럼 아이들의 언어생활을 바로잡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화가 난다고 해서 함부로 거친 말을 내뱉거나,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남의 험담을 일삼는 습관을 어른들이 고치지 않는 한, 아이들에게도 모범이 될 수 있는 아름다운 언어생활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누구나 진실하고, 품위 있는 말씨, 부드럽고 친절한 말씨, 겸허하고 긍정적인 말씨를 듣기 좋아한다. 그래서 남에게도 은연중에 그것을 요구하고 기대하지만 실상 자신은 그것을 실천하는 노력이 부족한 게 아닐까? 말을 분명 잘못해 놓고도 적당히 둘러대고 합리화시킬 때가 많은 것 같다. 나 역시 하루를 돌이켜보거나, 고백성사를 보기 전에 구체적으로 성찰을 할라치면 말에 대하여 걸리는 부분이 없을 때가 없다.

크리스천은 예외 없이 그의 삶의 자리에서 복음 福音을 살고 또 선포하도록 불림 받은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그의 말씨 또한 ‘복음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남에게 기쁨을 주는 복음적인 말씨란 예수님처럼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씨, 남을 사랑하고, 이해하고 아끼는 말씨, 그리고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가득 찬 말씨가 아닐까 싶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한국에 오셨을 때 그 분은 ‘찬미예수’라는 말을 즐겨 쓰셨다. 수도원에서 그리하는 것처럼 각 가정에서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가족들끼리 ‘찬미예수’라는 인사말로 하루를 시작하면 어떨까. 우리의 매일이 그리고 삶 전체가 ‘찬미예수의 삶’이 되려면 푸념이나 불평보다는 찬미와 감사의 말을 더 많이 하도록 꾸준히 노력해야 하겠다. 늘 예수님과 함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말을 한다면 우리는 ‘복음적인 말씨’를 익힐 수 있고,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대로 이미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주 야훼께서 나에게 말솜씨를 익혀주시며 고달픈 자를 격려할 줄 알게 다정한 말을 가르쳐 주신다. 아침마다 내 귀를 일깨워주시어 배우는 마음으로 들게 하신다(이사야 50,4)’

내가 자주 읽은 이 성구 聖句를 컬러 펜으로 곱게 써서 벽 위에 붙여놓고 나는 오늘도 새로운 마음으로 기도한다.

 

주님, 당신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저는 당신을 향한 찬미와 감사의 말도, 이웃을 위한 격려와 사랑의 말도 제대로 할 줄 모릅니다. 오늘도 제 귀를 열어주시어 당신과 이웃의 말을 깊이 들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또한 제 입술에서 나오는 말이 당신께는 영광이 되고, 이웃에게는 기쁨이 될 수 있도록 도움의 은총 베풀어주소서. 아멘.

 

<1986>

 

 

배추를 씻으며

 

그 동안 바쁘다는 것을 핑계로 미루어 왔던 일들이 하나 둘씩 눈에 띄기 시작하면서 조금은 초조해지는 한 해의 마지막 달. 안팎으로 월동 준비를 하느라 우리의 몸과 마음이 그 어느 때보다도 분망한 12월이다. 월동준비의 가장 큰 행사는 역시 김장인 듯싶다. 우리 수녀원에서도 며칠 전에 김장을 했다.

배추를 나르는 일로부터 시작되는 이러한 공동작업은 평소에 대화가 부족했던 이들 사이의 거리를 좁혀주고 한솥밥을 먹는 식구로서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그만큼 일손 또한 빨라지는 것임을 실감나게 해준다.

“이봐요, 이 배추가 아직 너무 살았지.”

“조금은 더 죽어야겠는걸.”

“아니야. 이만하면 알맞게 절여졌어요.”

수백 포기의 배추를 씻어내면서 주고받는 이런 대화를 듣노라면 절로 미소 짓게 된다. 최종적으로 양념을 넣기 전에 적당히 잘 절여진 배추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소금에 절여진 배추의 그 부드러움을 닮아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사람들과의 사이에 있어서도 서로 원만한 관계가 오래 유지되려면 자신의 거칠고 뻣뻣한 면들을 겸손과 인내와 절제의 소금으로 조금씩 가라앉힐 줄도 알아야 할 것이다. 남을 무시하고 전적으로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는 독선과 아집, 자신의 실수나 잘못은 깊이 반성할 틈도 없이 다른 이의 결점과 잘못만을 가차 없이 비난하는 말이나 행동 등의 그 뻣뻣한 ‘살아 있음’을 우리는 사랑과 용서, 이해와 관용의 소금으로 아픔과 쓰라림을 참으며 ‘죽일 줄도’ 알아야 하리라.

이 시대의 불의와 어둠을 탓하면 목소리를 높이거나, 성급하고 충동적인 저항의 큰 몸짓을 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자신의 삶과 내면을 제대로 가꾸고 돌아보는 지혜를 키워야 하지 않을까.

다름 사람에겐 ‘잘 죽어 잘 익은’ 성숙함을 기대하면서도 자신의 설익음은 개의치 않는다면 부끄러운 일일 것이다.

맛있는 김치가 되기 위해 숨죽여 엎드려 있는 배추들의 기다림과 침묵의 수련기를 지켜보면서 나도 소금에 잘 절여진 배추처럼 매일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자신을 제물로 내어놓은 조용한 죽음의 용기를 배우면서.

 

<1989>

 

 

마음을 다스리는 노력

 

“자신의 영적 힘을 측정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습니까?”

“많지.”

“한 가지만 말씀해 주십시오.”

“단 하루 동안에 얼마나 자주 마음이 어지럽혀지는가를 알아내어라.”

이는 이미 고인 故人이 된 인도의 사제, 안소니 드 멜로가 엮은 이야기 모음집에 나오는 한 예화이다.

수도원에서는 요즘도 잠심 잠심 이라든가 수렴 수렴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이렇듯 마음을 가라앉히는 일이나 마음을 한 곳으로 모으는 일은 모든 이에게 다 필요하겠지만 특히 수도 修道의 길을 가는 이들에겐 가장 중요한 몫이 아닐 수 없다.

왠지 마음이 자주 들뜨고 산만해지기 쉬었던 나의 20대 초반에 나는 ‘지금은 내가 너무 젊어서 그렇지만 그래도 마흔 살쯤 넘으면 늘 잔잔한 호수 같은 마음을 지니고 살게 되겠지’라고 기대했었다. 그러나 수도 修道 생활을 시작한 지도 20여 년이 지나 어느새 40대 중반에 접어든 지금, 나는 내 마음을 한결같이 잘 다스리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음을 수시로 체험하고 있다.

규율은 엄격했으나 지도수녀님의 세심한 배려와 교육이 늘 보장되어 있던 수련 시절에 비하면 약간의 시간적인 여유도 있고, 사소한 것쯤은 스스로 알아서 할 수 있는 융통성과 자유가 허용된 지금 나는 오히려 예전보다 못해진 듯한 자신을 보는 일이 허다하다. 그야말로 잠심과 수렴이 부족하여 더 깊이 내려가지 못하고 겉도는 기도와 묵상, 건성 듣고 놓쳐버리는 이웃의 말들, 좀더 효율적이지 못한 직무수행, 굼뜨기만 한 사랑의 실천 등으로 안타깝고 부끄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잊어버리고, 부탁 받은 것을 잊어버리고, 쓰던 물건을 잃어버려 종종 ‘정신 없다’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것 또한 나이에서 비롯된 건망증으로만 탓을 돌리기보다는 딴 데 가 있거나 흩어져 있는 내 마음 탓으로 돌리는 것이 더욱 타당할 듯싶다.

 

내 마음은 달을 닮아 / 차오르기도 하고 기울기도 해 / 그리고 해를 닮아 / 떠오르기도 하고 지기도 하지 / 내 마음은 파도를 닮아 / 밀려 오기도 하고 밀려가기도 해 / 그리고 밭을 닮아 / 씨앗을 키워서 열매 맺기도 하지

 

어느 날 나는 내 마음을 이렇게 읊어보기도 했지만 참으로 마음이란 하루에도 몇 번씩 개었다 흐리고, 바람이 불었다가 잔잔해지는 변화무쌍한 날씨 같을 때가 얼마나 많은가. 붙들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면 내가 원하지도 않는 곳으로 마구 줄달음쳐 가 주인 主人인 나를 당황케 한다.

그러므로 나는 아무리 바쁘더라도 나의 마음을 자주 들여다보며 맑게 다스리고, 곧게 키우는 법을 익혀 두지 않으면 안 되겠다. TV, 라디오, 사람의 소리 등 외부로부터의 모든 소음을 떠나 나 자신의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는 시간을 많이 가질수록 나는 좀더 선한 것, 진실한 것, 아름다운 것을 체험할 수 있고, 이에 대한 갈망을 새롭힐 수 있으리라. 또한 지금껏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깨달음의 순간이 올 수도 있을 것이고, 무심히 잊고 있던 감사와 기쁨을 새로이 발견하며 놀라워할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구라도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바쁨 속에서도 한가닥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사색 思索과 명상 瞑想을 게을리하지 않는 생활태도를 길들여야 할 것이다.  자시의 마음을 갈고 닦는 일은 제쳐두고 오직 다른 일을 위해서만 숨차게 바쁜 시간을 보내는 때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겐 얼마나 많은가.

‘만물의 원리는 모두 내 마음에 갖추어져 있다. 마음을 반성하여 성실해지면 그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을 키우는 데는 욕심을 적게 가지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다’라고 한 맹자 孟子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나는 내 마음을 흐리게 했던 크고 작은 욕심들을 반성해본다. 그리고 이렇게 다짐해 본다. ‘내 마음아, 내가 외적인 일에 너무 바빠 너를 좀더 자주 들여다 볼 수 없었음을 용서해. 미안하지만 앞으로는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까지도 그것이 욕심이라면 즉시 버릴 수 있도록 나를 좀 도와주어야 해. 알았지?’라고.

 

<1992>

 

 

 

밭 가까이 살며

 

오늘은 아침식사를 끝내고 부랴부랴 밭에 나가 쑥갓꽃, 감자꽃, 그리고 주변에 있는 강아지풀, 토끼풀, 달개비꽃 등을 한묶음 꺾어 들고 오랜만에 별실을 방문했다. ‘평소에 소박한 들꽃을 사랑하는 글라라 수년님은 커다란 호박잎 한 개를 받침으로 깔고 작은 컵 위에 꽃꽂이 하는 나에게 “오늘은 내 생일이나 마찬가지야” 하며 기뻐하셨다. “아아, 이 사랑스런 생명들. 말로는 표현을 못하겠어. 어쩌면 좋지?” 모든 아픔도 다 잊은 듯이 그 분의 감탄은 끝날 줄을 몰랐다.

“수녀님 오늘은 이 꽃들과 실컷 즐기세요” 라는 인사를 남기고 나는 또 십여 년을 병석에 계신 엘리사벳 수녀님께 꽃을 들고 갔다. 그랬더니 “난 이 나이가 되도록 감자꽃을 못 보았는데 어쩌면 이리 곱지? 이 도툼한 꽃술 모양 좀 봐” 하며 불편한 몸을 반쯤 일으키셨다. 진정으로 놀라워하시던 그분의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하다.

밭에서 얻은 조그만 꽃들 덕분에 나는 커다란 기쁨을 두 분 수녀님께 안겨드린 셈이다. 정원에 핀 장미, 글라디올러스, 수국, 다알리아처럼 눈에 잘 띄는 여름꽃들에게만 눈길을 돌렸던 게 후회스러울 만큼 노란 쑥갓꽃과 흰빛, 보라빛의 감자꽃들은 소박하고도 독특한 아름다움을 풍겨주었다.

내가 밭 가까이에 살지 않았다면 이러한 꽃들의 아름다움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하니 나의 방이 밭 바로 옆에 위치해 있는 것도 새삼 감사하였다.

사실 나는 바다가 잘 보이는 방에 사는 수녀님들을 은근히 부러워해서 가까운 길을 두고도 바다가 보이는 쪽 복도를 일부러 돌아다닌 적도 꽤 많았다. 그쪽 방에 사는 수녀님들은 해 뜨는 바다, 해 지는 바다, 달빛이 넘실대는 바다의 아름다움을 내게 보여주고 싶어했고, 방을 옮기는 게 어떻게느냐고 제의해 오기도 했다. 그러나 벌써 2년째 밭 가까이 살고 나니 어느새 그 밭과 정이 들어서 나는 더 이상 다른 수녀님들을 부러워하지 않게 되었다. 바다가 보고 싶을 때 옥상에 올라가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바다도 아름답지만 밭도 아름답다. 바다는 멀리 있지만 밭은 가까이 있다. 바다는 물의 시 詩 지만 밭은 흙의 시 詩이다.  비온 뒤 밭에 나가면 발이 폭폭 빠지도록 젖어 있는 흙냄새가 눈물나도록 정다웠다. 흙은 늘 편안하고, 따스했다. 흙을 만지면 더없이 맑고 단순한 어린이의 마음이 되는 것 같았다.

밭에 줄지어 선 채소들은 모두 푸른 새 옷을 지어 입고 엄마를 부르며 노래하는 아이들의 모습 같았다. 나도 늘 밭처럼 살고 싶다는 소망을 새롭히며 어느 날 이렇게 읊어보았다.

 

상추, 쑥갓, 파, 마늘

무, 배추, 당은, 오이

밭이 키워낸

싱싱한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보면

내 마음을 가득 채우는

새로움, 놀라움

고마움의 빛

 

나도 부드럽고 너그럽게 살고 싶네

따뜻하게 열려 있고 싶네

엄마 같은 밭처럼

 

-나의 시 <밭노래1>

 

 

요즘도 새벽에 눈을 뜨면 창문을 활짝 열고 밭을 바라보는 것으로 나의 하루는 시작된다. 성당으로 향하기 전, 밭에 가득한 희망의 채소 가족들에게 아침 인사를 건네는 것은 나의 큰 기뿜이다. 하얀 나비떼가 날고, 때로는 새들과 꿩 일가족이 모이를 찾으려고 나들이 오기도 하는 우리 밭에선 계절마다 끊임없이 새로운 생명들이 태어나고 성장하며 필요한 양식을 제공한다. 우리 밭에서 키워낸 오이, 홍당무, 상추, 아욱 등을 먹을 때는 간절한 감사기도가 몇 번이고 절로 새어 나왔다. 밭 가까이 살면서부터 나는 하늘을 더 주주 보게 되었다. 비가 안 와도 걱정, 너무 와도 걱정인 농부의 안타까운 마음을 좀더 깊이 헤아릴 줄도 알게 되었다.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밭의 겸허함과 참을성, 인간의 노력에 정직하게 응답해 주는 그의 성실성과 개방성을 좀더 구체적으로 관찰하는 가운데 나의 삶도 구체적으로 풍요로워질 수 있기를 매일 기도한다.

늘 열려 있고, 무한한 가능성을 안고 누워 있는 밭. 그러나 누군가 씨를 뿌리지 않으면 그대로 죽어 있을 뿐 아무런 의미가 없는 밭. 매일 다시 시작하는 나의 삶도 어쩌면 새로운 밭과 같은 것이 아닐까.

밭에 씨를 뿌리는 마음으로 매일 살 수 있어야겠다. 매일이라는 나의 밭에 나는 내 생각과 말고 행동으로 여러 종류의 씨를 뿌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유익한 명상의 씨를 더 많이 뿌리는 날도 있으리라. 아름다운 말의 씨를 뿌릴 때가 있는가 하면 가시돋힌 말의 씨를 뿌릴 때도 있으며, 봉사적인 행동으로 사랑의 씨를 뿌리는 날이 있는가 하면 이기적인 행동으로 무관심의 씨를 뿌린 채 하루를 마감하는 날도 있을 것이다. 내가 매일 어떤 씨를 뿌리느냐에 따라서 내 삶의 밭 모양도 달라지는 것일게다.

오늘 아침 미사 때에는 복음에서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들었다. 어떤 사람이 씨앗을 뿌렸는데 어떤 것은 길바닥에 떨어져 밟히기만 했고, 어떤 것은 흙이 많이 않은 돌밭에 떨어져 말라버렸고, 또 어떤 것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져 열매 맺지 못했고,  어떤 것은 좋은 땅에 떨어져 싹이 나고 잘 자라서 많은 열매를 맺었다는 이야기이다.

“씨가 좋은 땅에 떨어졌다는 것은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꾸준히 열매를 맺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루카 8.15)” 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오늘 따라 더욱 새롭게 마음에 새겨진다.

그러고 보면 내 마음도 하나의 밭이다. 좋은 땅도 잘 가꾸어야만 더 좋은 땅이 되는 것처럼 내 마음 밭도 성실과 인내로 잘 일구어야만 진리를 깨우칠 수 있다. 좋은 땅은 기후의 악조건 속에서도 좋은 소출을 내주는 것처럼 나도 모진 시련을 이겨낼 수 있는 마음의 땅을 갈고 닦아야겠다. 신 神의 말씀과 사랑, 그리고 이웃을 통해 뿌려지는 그분의 소중한 뜻이 내 마음의 밭에서 곱게 싹을 틔워 열매 맺을 수 있도록….

 

<1986>

 

 

떠난 이들의 편지

 

내가 지금까지 받아온 수많은 편지들 중에는 펴지 쓴 이가 이미 고인이 되어 내게는 마지막 편지가 되어버린 것들이 잇는데 이를 읽는 나의 느낌은 더욱 애절하고 각별하다.

‘…클라우디아, 나는 요새 사제, 수녀, 신학생들에게 기회 있을 때마다 말해 줍니다. 인간은 ‘무엇’으로 살지 못하고 그 ‘누구’를 발견해야 한다. 성직 생활의 파탄이 이 누구를 발견 못한 채 법이다 규칙이다 하는 무엇에만 충실하기에 낙오한다구요.  수녀님이 들으면 옛 이야기를 새삼 한다겠지요? …내 건강은 그저 그렇습니다. 전에 없이 늘 조심하며 살지요. 항상 죽음과 대면하면서, 아니 님이 오시는 때를 기다리면서. 그럼 안녕. 언제 또 뵙게 될 지 모르지만 서로 기구 중에 특히 미사 때 만나요.’

이는 시인이며 번역가로 많은 일을 하셨던 최민순 신부님이 서울 가톨릭 대학에 재직하실 때 내게 보내주신 편지의 일절인데 그 분의 깊은 영성이 엿보이는 내용이라 생각된다.

‘…수녀님, 고통은 생자의 신비라고 생각하며 투병합니다. 그 암이란 것이 그렇게 잘난 놈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생명이란 주께서 주신 으뜸의 축복이 아닙니까. 그래서 반드시 그 놈의 콧대를 꺾어 놓고야 말리라는 생각을 다집니다. 주께서 빙그레 웃으시며 ‘화이팅’하고 계십니다. 사실 아직은 더 이승에 머물고 싶거든요. 아이들 아직 어리고, 돌아다보니 하느님 앞에 공로 너무 없고, 뜨락에 핀 꽃, 햇살, 빗방울, 바람, 개미, 벌, 그리고 귀뚜라미 – 이들과 함께 더 여기 있고 싶거든요’ 이것은 아직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미옥이라는 여교사의 글인데 그는 내게 그의 애송시들을 편지에 적어 보내곤 했었다. 내가 보낸 성탄 카드를 그가 끝내 받아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버린 것도 마음에 걸리고, 그가 어느 잡지의 편집위원으로 내게 청탁한 원고를 거절한 일도 마음에 걸린다.

‘사랑하는 수녀님, 저는 어른거리는 봄햇살 조명을 받으며 ‘산 사람’으로 감방 안에서 이 글월을 올리고 있습니다. 살아 있으면서도 실은 죽음의 그림지라를 등에 짊어지고 있는 제 자신의 8년 여의 삶, 지금 저는 남아 있는 죄의 허물과 육의 욕망까지 깡그리 저쪽 서편 황혼녘 어둠의 세계에다 묻어야 하겠습니다. 그 일을 다 하지 못해 저는 아직 연착하고 있나 봅니다. 숱한 피울음을 무던히 참아가면서라도 저는 그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는 사형수로서 누구보다 성실하고 모범적인 신앙 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쓴 지 며칠 후에 사형 집행을 당한 권 베드로라는 분의 편지의 일절이다. 그가 내게 보내주던 깊고 확신에 찬 믿음의 글들을 대할 때마다 나는 늘 감동했고,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엔 며칠을 계속해서 흐르는 눈물을 막을 길이 없었다.

이제는 내가 편지를 받고 싶어도 다시는 받을 수가 없고, 내가 쓰고 싶어도 다시는 쓸 수가 없는 떠는 이들의 편지에는 아직도 그들의 혼이 살아 숨쉬는 것 같아서 함부로 버릴 수가 없다. 이 편지들은 내게 다음의 것을 새롭게 깨우쳐 준다.

첫째는, 내가 알면서도 자주 잊고 사는 내 존재와 삶의 유한성을 좀더 깊이 절감하게 해준다. 이승에서의 삶이 결코 영원하지는 않다는 것, 언젠가는 나도 그들처럼 누군가에게 남겨놓은 편지나 글로서나 종종 기억되는 ‘떠난 이’가 될 것이라는 것을 다시 깨닫게 해준다.

둘째는, 아직 살아 잇는 여행자로서의 내 삶의 몫을 최대한으로 성실하게 가꾸어 가며 오늘을 함께 살아가는 동료와 이웃들을 좀더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고 싶은 원의를 새롭게 해준다. 죽음이란 종착역에 나 자신을 온전히 내려놓을 그때까지 나는 내가 타고 있는 삶이란 기차 안에서 체험하게 되는 크고 작은 일들과 사건들을 모두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과 지혜를 주십사 더욱 기도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셋째는, 아무리 일상적인 일이라도 그것이 마지막인 것처럼 정성과 기쁨을 다하는 삶의 태도를 지니고 살아야 한다는 깨우침이다. 청소, 설거지, 빨래, 손님맞이, 수업, 기도, 글쓰기 등을 참으로 마지막인 듯이 사랑을 다해 마무리할 수 있다면 끝내는 삶의 마무리 또한 잘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보다 앞서 세상을 떠난 친지들의 소중한 편지들을 봉투에 도로 넣으며 나는 문득 다시 태어난 느낌이다.

 

<1990>

 

 

기쁨의 샘에서 기쁨을 길며

 

“어때요. 수도생활이 매우 힘들지요?”

“특별히 가장 힘든 때는 언제인가요?”

사람들은 내게 종종 이런 질문을 던지지만 수도생활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기쁨의 요소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을 하지 않는 편이다.

국민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안 되는 나의 어린 조카 태균이가 보내주는 성탄 카드에도 번번이 “이모, 괴로우시겠습니다” “우리들을 위해 기도하시느라 고생 많아 하셨어요” 라고 씌어 있는 것을 보고 웃었는데 그 애의 눈에는 수녀이모가 꽤나 고생하는 사람으로 보였나 보다.

나 역시 어린 시절엔 수도생활을 기쁨, 행복, 즐거움이란 단어와 연결시키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국민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가르멜수녀원에 입회한 언니 수녀님으로부터 누누히 수도생활의 기쁨과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말이나 글로 전해 들었지만 수도복의 그 칙칙한 빛깔만큼이나 수도생활은 한없이 무겁고 어둔 것으로만 생각되었다.

아직도 한결같이 기쁨의 수도생활을 하고 계신 언니 수녀님에 비하면 나는 여러모로 모자람 투성이지만 이제는 나도 언니처럼 하느님이 주인이신 ‘기쁨의 샘’에서 기쁨을 긷는 한 사람의 수도자임이 행복하다. 내가 선택한 수도원에서의 20여 년을 살고 난 지금 나는 내가 걷는 이 길을 ‘기쁨의 길’로 확신하고 있으며, 내가 살고 있는 이 집을 ‘기쁨의 집’이라고 자랑할 수 있음 또한 감사한다. 어떤 순간들이 힘겹다고 해서 포기했다면 맛보지 못했을 잔잔한 기쁨들을 소중히 보듬어 안으며 그 동안 나를 위해 기도해 준 많은 분들을 다시 기억하게 된다.

참으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기쁨과 평화가 없다면 수도생활은 극기 메마르고 무의미한 것일 수밖에 없다. 하느님을 알고, 믿고, 그분께 매일 새롭게 응답하는 삶 자체가 기쁨인 것이다. 그 동안 내가 써 놓은 묵상 노트만 살펴봐도 이러한 기쁨의 모습이 눈에 띈다. 그 누구와도 바꿀 수 없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영원한 기쁨, 믿음에서 오는 기쁨, 하느님을 갈망하고 기다리는 이의 기쁨, 그분 안에 만남을 이룬 이들과의 친교의 기쁨, 이웃에게 주님을 전하는 작은 도구의 역할을 다했을 때의 기쁨, 이웃에게 주님을 전하는 작은 도구의 역할을 다했을 때의 기쁨, ‘모든 이의 모든 것’이 되길 지향하면서도 자신이 하느님만의 것임을 알고 또한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는 자유인으로서의 기쁨 등이 기쁨에 대한 갈망과 함께 군데군데 적혀 있다. 그 중의 몇 토막만을 여기에 옮겨보기로 한다.

 

* 더 기쁘게, 더 감사하게, 더 겸허하게 자신을 내어놓는 민들레가 되리라. 앉아서도 세상을 날으고 누비는 민들레 홀씨, 민들레 사제, 민들레 수녀가 되리라.

 

* 기쁘게 바쁘고, 바쁘게 기쁘자. 까치가 많이 날아드는 우리 수녀원에서 나도 까치처럼 기쁜 소식을 전하며 기쁘게 살아야지.

 

* 난 우리 수녀원이 좋다. 우리 식구들을 사랑한다. 그날그날을 행복하게 사는 것, 그날그날을 새로운 마음으로 선물처럼 받아 안고 사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예기치 않게 마주치게 되는 어려움, 갈등, 내면의 어둠이란 것도 실상은 내가 받은 사랑과 축복에 비하면 극히 사소한 것일 뿐이다. 얼마 전에 세상을 하직한 사형수 형제들로부터 내가 배운 것도 순간순간을 최대한으로 성실하게 곷피우며 사는 것, 신앙인으로서의 실존에 가장 충실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며 그 이외의 것은 다 부수적인 것이다. “….수녀님, 우리는 늘 부활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참 해방의 기쁨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실로 오랜 고투 끝에 얻은 이 작은 믿음은 세상을 보는 눈도 새롭게 해줍니다. 삶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 절실한 게 인간의 삶이 아닐는지요. 그러니 불행이나 고행 자체가 결코 불행으로만 끝나는 것은 아니지 싶어요” 지금은 다시 들을 수도 없는 베드로 형제의 그 기쁨에 찬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 수도원을 하나의 밭이라고 생각하자. 나는 이 밭에 나 자신을 깊숙이 묻어야 한다. 하나의 씨앗이 밭에 묻혀져야만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듯이 나도 겸손과 인내의 노력으로 나 자신을 묻는 일에서 기쁨을 얻어야 한다.

 

* 바쁨 속에서 싹트는 기쁨도 크다. 기쁨은 온유한 마음과 기도 속에서 싹트는 것. 물을 주고 가꿀 책임은 나에게 있다.

 

* “나의 작은 방법은 넘어질 때에도 승리할 때와 같이 언제나 기뻐하고 언제나 미소하는 것입니다”라고 한 성녀 예수아기의 데레사의 말씀이 오늘 그분의 삶에 대한 영화를 보면서 더욱 깊이 가슴에 와 닿았다.

 

이 밖에도 나는 기쁨을 주제로 한 글을 여러 번 썼고 때로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강의도 했지만 이젠 참으로 나 자신이 더욱 기쁘게 살아야겠다. 극히 사소한 것에서도 기쁨을 발견하고 키워서 다른 이에게도 전해 줄 줄 아는 기쁨 수녀, 기쁨 시인이 되어야겠다. 기쁨의 원천이신 주님 안에서 기쁨을 길어, 나와 이웃의 삶을 적시는 한 방울의 기쁨으로 깨어 있어야겠다. 그러나 기쁨은 그냥 우두커니 앉아서 기다리는 이의 몫이 아니라, 끊임없이 찾아내고, 정성껏 키워내는 이의 몫이기에 나는 그만큼 더 바삐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겠다.

 

 

기쁨아, 너는

맑게 흘러왔다

말게 흘러나가는

물의 모임이구나

 

빠르게 느리게

높게 낮게 모여드는

강, 바다.

호수, 폭포

 

조금씩 모습을 바꾸며

흘러오는 너를

나는 그때마다

느낌으로 안다

 

모든 맑은 물이 그러하듯

기쁨아, 누구도 너를

혼자만 간직할 수 없음을

세상은 안다

 

그래서

흐르는 생명으로 네가 오면

나도 흘러야 한다

메마른 세상을 적시며 흐르는,

웃지 않는 세상에 노래를 주는

한 방울의 기쁨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

 

 

– 나의 시 <기쁨에게>

<1990>

 

 

 

기쁨의 순례자로 살며

 

얼마 전 나는 우연한 기회에 어떤 친지와 이야길 나누던 중 그의 결혼 기념일을 알게 되어서 잘 기억해 두었다가 축하 카드를 보낸 일이 있었다. 무슨 얘기 끝에 슬쩍 지나쳐간 말이었기 때문에 내가 그날을 기억하리라곤 생각지도 않고 있다고 날아든 카드를 받고 그는 너무도 기뻤던지 즉시 고운 꽃 카드 한 장을 내게 보내왔다.

“뜻밖의 선물을 받고 문득 만남의 인연을 다시 생각했습니다. 만나야 할 사람들을 하느님께서는 어느 기회에 꼭 만나게 해주시나 봅니다. 전화로 몇 마디 하는 것보다 저도 수녀님께 예쁜 카드를 보내드리고 싶어 몇 자 적었습니다.” 라고 씌어진 그 카드를 보며 나의 작은 정성을 그토록 고마워하는 그의 마음이 진하게 느껴져서 어느새 내 마음속엔 또 하나의 싱싱한 기쁨꽃 한송이가 피어 오르는 것 같았다.

또 한번은 시인이기도 한 외교관 친구 부부가 부산에 있는 나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마침 그날이 그들의 결혼 16주년 기념일인 것이 생각나서 내 나름대로 축하를 하고 싶었다. 문득 그들이 결혼 당시 내게 보낸 청첩장 문안이 하도 특이해서 견본으로 간직했던 기억이 나길래 급히 찾아서 그것을 이용해 카드를 만들고, 수녀원 정원에 핀 몇 송이의 꽃과 함께 선물로 건네주었다. 퍽 오래 전 일이라 본인들도 잊고 있었던 것을 예기치 않은 장소에서 받아들고 무척 기뻐하던 그들의 모습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남을 기쁘게 하는 일에 내가 남보다 특별한 재주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직은 좋은 기억력과, 마음에 있는 것을 글로 옮길 수 있는 약간의 표현력 덕분에 나는 자신이 기대한 것 이상으로 남에게 기쁨을 준 일이 꽤 많았고, 이는 나의 삶에도 큰 활력소가 되어주곤 했다.

비교적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다 보니 자연히 내가 기억해야 할 생일, 축일, 기념일들도 많은 편이어서 때로는 일일이 기억하거나 표시하는 것 자체가 힘겹고 또한 부질없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여건이 허락되는 한 나는 이를 충실히 실천해 오고 있는 편이다. 그리하다 보니 그런 특별한 날들을 챙기는 것이 내 절대적 의무는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쩌다 바쁜 것을 핑계로 그냥 지나치면 매우 서운해 하는 가족, 친지들의 모습을 본다. 내가 그들에게 주는 선물이라야 작은 카드에 적은 몇 줄의 글, 좋아서 나누고 싶은 성경 구절이나 시를 적은 짧은 편지 정도지만 그래도 그것이 퍽 좋은 선물이 된다는 말을 수없이 들어왔다.

지난 해 봄부터 서울에 올라와 생활하면서 나는 전보다 마음의 여유도 없어지고, 그 동안 부지런히 나의 몫으로 챙겨왔던 기쁨의 카드나 엽서 쓰기에도 정성을 쏟지 못함이 안타깝다.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일을 맡아 새로운 사람들을 알게 되니, 나에겐 기억해야 될 이름과 날들도 그만큼 많아져서 내 기억의 창고는 더 복잡해진 셈이지만 이 또한 기뻐하기로 한다.

내가 기도 중에 늘 기억해야 할 사람, 그리고 아주 작은 것으로라도 사랑을 표현하고 기쁨을 선물해야 할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나는 더욱 깨어 있을 수 있고, 안일과 나태의 늪으로 빠질 틈이 없기 때문이다.

매일을 함께 살아가는 가족과 가족, 이웃과 이웃이 서로 먼저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애쓰며, 그를 기쁘게 하는 일에 최선의 관심을 갖도록 노력한다면 우리의 삶은 그대로 기쁨의 축제가 될 것이다.

수녀원에서의 예비수녀 시설, 함께 사는 이들이 서로 다투어 기쁨과 애덕 愛德의 경쟁자가 되곤 했던 일을 나는 종종 즐겁게 회상한다. 축일 아침에 일어나서 방문을 열면 문 앞에 발신인도 모르는 축하 카드나 쪽지가 꽂혀 있는 적도 있고 식당에 가면 수저집 안에도 고운 그림을 곁들인 격려의 글귀가 들어 있는 적이 많았다. 빨래를 해서 걸어두면 어느새 누군가 다림질을 해서 방에 갖다 놓는다든지, 겨울에 감기 기운이 있을 때 잠자리에 들면 누군가가 갖다 놓은 더운 물통이 이불 속에 들어 있기도 했다. 이러한 사랑의 손길이 있을 때마다 주인공에 대한 궁금증이 더해 간 것도 사실이지만, 어쩌면 숨겨진 것이기 때문에 그 기쁨 또한 더 깊고, 맑고, 그윽한 향기를 오래 풍기는 건지도 몰랐다.

앞으로 내가 걸어야 할 삶의 길에서 나도 더 많은 이들에게 기쁨을 선물하는 기쁨의 순례자가 되고 싶다. 곡 생색을 내지 않고도 남을 기쁘게 하는 사람, 비록 실속 없고 어리석다는 핀잔을 듣게 되더라도 늘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할 궁리로만 가득 찬, 그래서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다. 원하기만 하면 언제라도 만들 수 있는 기쁨이란 반지를 끼고 살며, 다른 이에게도 이것을 선물하는 그러한 매일을 살고 싶은 나는 속으로 이렇게 노래해 본다.

 

 

기쁨은

날마다 내가 새로 만들어

끼고 다니는 풀꽃 반지

누가 눈여겨보지 않아도

소중히 간직하다가

어느 날 누가 내게 달라고 하면

이내 내어주고 다시 만들어 끼지.

크고 눈부시지 않아

더욱 아름다워라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많이 나누어 가질수록

그 향기는 더하네

기쁨이란 반지는 —

 

 

<1989>

 

 

 

겸허함의 향기로

 

오늘 오후 우편물을 가지러 아래층에 내려갔다가 하도 은은하고 아름다움 향기가 걸음을 멈추게 해서 살펴보았더니 갓 피어난 동양란 화분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 향기는 장미, 백합, 라일락, 아카시아 등의 향기 짙은 꽃들이 뿜어내는 것과는 또 다른 조용하고 기품 있는 것이어서 각별히 동양란을 아끼고 키우는 일에 온 정성을 기울이는 이들의 심정을 조금은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살다 보면 우리 주변에도 양란처럼 화려한 멋스러움이 풍기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동양란처럼 은은한 인품의 향기를 지니고 먼데서도 가까운 벗으로 다가서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곧 겸허함의 향기가 아닐까? 자기가 아무리 훌륭한 일을 했어도 필요 이상으로 과장하거나 떠벌리며 호들갑스럽지 않은 사람, 자기가 맡은 일에 성실하며, 남을 함부로 판단하거나 비난하지 않는 사람, 늘 온유하고 친절한 분위기로 이웃을 대하는 사람, 욕심이 없는 사람, 조금도 비굴하지 않게 자신을 낮추면서 오히려 남을 올려주는 사람, 남의 자랑은 끝까지 들어주되 자기 자랑은 감추길 좋아하는 겸허한 사람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며, 오늘의 우리 가정과 사회, 안팎으로 새로운 변혁을 시도하는 우리나라에 참으로 디딤돌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적으로 대단히 이름이 높고 훌륭하다는 말을 듣는 사람조차 많은 이들이 모인 자리에서 너무 지나치게 자기 자랑, 가족 자랑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며 실망을 느낀 일이 종종 있다. 옆 사람이 민망해 하는데도 눈치채지 못하고 끝까지 자기 말만 계속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잘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 혼자 자랑스럽게 생각할 일이지 남에게까지 자랑할 것은 못됩니다.’ ‘칭찬은 남이 해주는 것이지 자기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라는 성경 말씀이 더욱 새로웠다. 다른 이들과 대화하는 자리일수록 우리는 말로써만이라도 겸양의 표현을  해야 하고, 굳이 자랑을 하고 싶다면 너무 큰소리로 당당하게 하기 보다는 조용하고 은근한 말투로 해야 옳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수도원에 오래 살다 보면 숨어 피는 들꽃처럼 참으로 그 인품이 겸허하고 향기로운 이들을 많이 만나게 되고, 이것만으로도 내겐 큰 기쁨이고 고마운 복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좋아하는 ㅎ 수녀님은 이렇다 할 특징이 없어 어떤 모임에 그가 빠져도 유난스레 이름을 불리지도 않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오랫동안 그를 가까이 해온 이들은 곧 그의 겸허한 인품에 매료된다. 20년 가까이 같은 일을 하면서도 일체 불평을 하지 않는 사람,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판단을 하지 않고,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라도 앞장서되 일체 잔꾀가 없는 사람, 남을 위해서는 무엇이건 열심히 챙겨주면서도 자기를 위해서는 욕심이 없으며, 다른 이의 이야길 끝까지 잘 들어주는 사람, 남에게 잊혀지길 두려워하지 않으며, 힘에 겨운 일을 당해도 허둥대지 않고 조용히 기도 속에 머무는 그를 나는 늘 본받고 싶다. 먼데 있어도 향기로 말을 건네오는 한그루 동양란처럼 겸손의 덕으로 주위를 넉넉하고 향기롭게 하는 ㅎ 수녀님 같은 이들이 더욱 많아지는 세상을 기대하고 꿈꾸어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

 

<1992>

 

 

 

고마움 새롭히기

 

작은 일에도 항상 고마워하는 이들을 만나면 내 마음도 밝고, 따스하고, 흐뭇해진다.그러나 매사를 부정적으로 보고, 고마움보다는 불평과 비난의 말이 습관적으로 먼저 튀어나오는 사람들을 대하면 내 마음도 답답하고 우울해진다. 감사할 줄 아는 이들의 표정은 따뜻하고 부드럽지만 감사할 줄 모르는 이들의 표정은 오만하고 차갑고 뻣뻣하다.

매일 반복되는 하루의 생활 안에서 무심히 잊고 지냈거나 극히 당연하다고만 생각되던 부분들에 대해 새롭게 고마워하는 마음을 배우고 익혀간다면 우리의 삶은 좀더 활기차고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싶다. 우리 모두 ‘고마움 새롭히기’ 운동을 기꺼이 실천하는 일원이 되어,

  1. 내게 고맙게 한 사람들과 상황들을 더 자주 새롭게 생각하기
  2. 나의 이웃에겐 늘 고마운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힘쓰기
  3.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하기

등등 이런 것들을 꾸준히 실천하다 보면 어느새 불평과 원망도 줄어들고 우리는 고마움만 가득한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 바쁘고 힘든 일상 안에서도 고마움을 새롭혀가는 일이야말로 기쁨의 꽃씨 하나를 가슴에 묻는 일이요, 행복의 문으로 들어가는 첫걸음일 것이다. 새로 돋는 풀잎처럼 내 마음에도 늘상 고마움이 자리하길 바라며,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일본의 의사 이무라 가즈키오가 <종이학>이란 책에 남긴 시 한 편을 다시 읽어본다.

 

‘왜 모두 기뻐하지 않을까

당연하다는 사실을

아버지가 계시고 어머니가 계시다

손이 둘이고 다리가 둘

가고 싶은 곳을 자기 발로 가고

손을 뻗어 무엇이든 잡을 수 있다.

소리가 들린다

목소리가 나온다

그보다 더한 행복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아무도 당연한 사실들을 기뻐하지 않아

‘당연한 걸’ 하며 웃어버린다

세끼를 먹는다

밤이 되면 편히 잘들 수 있고 그래서 아침이 오고

바람을 실컷 들이마실 수 있고

웃다가 울다가 고함치다가 뛰어다니다가

그렇게 할 수 있는 모두가 당연한 일

그렇게 멋진 걸 아무도 기뻐할 줄 모른다

고마움을 아는 이는 그것을 잃어버린 사람들뿐

왜 그렇지 당연한 일’

 

 

 

작은 일에 충실한 삶을

 

오늘은 우리 수녀회의 일곱 수녀들의 종신서원식이 있어 많은 손님들이 수녀원을 다녀갔다. 지원기, 청원기, 수련기, 유기서원기를 거쳐 입회 이후 만 10년 간의 긴 수련을 끝내고, 이제 종신토록 수도자의 삶을 살겠다는 결연한 결의를 공적으로 다짐하는 서원예식은 언제 보아도 장엄하고 아름답다. 흰 수도복에 흰꽃을 단 오늘의 주인공들이 두 손을 높이 들어 ‘주여, 언약대로 나를 받으소서. 나 당신 안에 살리오니 나의 희망이 부끄러움을 당하지 말게 하소서’ 하고 한발짝씩 제단 앞으로 나가며 3번 반복해서 노래할 때는 절로 눈시울이 뜨거웠다. 주교님이 축성하신, 약속의 표징인 반지를 끼고 ‘감사와 찬미의 노래’를 부르는 서원자들에게 전 공동체가 ‘오 기쁘도다, 기쁘도다, 주님의 집에 간다누나’라고 우렁차게 화답할 때는 함께 사는 이들의 사랑과 일치의 기쁨이 그 절정에 달하는 듯했다. 장미나 카네이션처럼 화려한 꽃들을 제쳐두고 당당히 오늘의 축제를 장식하는 꽃으로 선택된 색색의 백일홍들도 족두리를 쓴 새색시인양 즐거운 웃음을 토해 내고 있었다. 백합들이 줄지어 서 있는 안 정원 잔디밭에서 활짝 웃는 얼굴로 사진을 찍거나, 가족과 친지들에게 둘러싸여 축하의 인사를 받는 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10년 전의 그러한 내 모습도 잠시 떠올려보았었다. 이제 며칠 후면 새로 소임을 받고 임지로 떠나갈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나도 오늘의 하얀 앞치마를 두르고 열심히 식탁봉사를 하며 뛰어다녔다. 오늘의 잔치를 위해 음식을 장만하고, 식탁을 꾸미고, 벽 장식을 하고, 노래연습을 하는 등 참으로 많은 이들이 안팎으로 정성을 다했다. 어떤 이는 차량을 정비하고, 또 어떤 이는 자칫 잊혀지기 쉬운 운전기사들만 찾아 다니며 돌보는 일을 맡았다. 축제의 시작부터 마무리 단계에 이르기까지 각자가 맡은 역할을 최선의 성실을 다해 기쁘게 수행하는 이들의 그 모습은 보기에도 흐뭇했다. 저녁 식사를 끝내고 우리는 모두 밖에 나가 보름달과 별들을 바라보면서 오늘의 축제에 대한 서로의 소감을 이야기했다.

모든 생활이 다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수도생활은 무엇보다도 충실성, 극히 사소한 일까지도 무관심하거나 소홀히 해선 안 되는 사랑의 충실성을 필요로 한다. 나는 원래 일손이 서투른데다가 인내심이 부족하고, 마음도 별로 단단하질 못해서, 변함없이 충실한 수도자가 될 수 있을까 몹시 걱정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매사에 남들보다 몇 배 더 노력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싶어 ‘언제나 작은 일부터 충실히’라는 좌우명을 세워놓고 지금껏 내 나름대로는 애쓰며 살아온 셈이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그 ‘작은 일’이라는 게 결코 ‘작은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고, 이에 대한 충실성이 자연스런 덕 德으로 몸에 배려면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찮은 일도 사랑으로 완성하려면 끝없는 인내와 겸손과 극기의 수련 修練이 필요함을 더욱 절감하곤 한다.

예를 들면, 내가 사용한 물건을 누가 찾기 전에 즉시 제자리에 갖다 놓는다든지, 전화기 옆에 비치해 둔 메모지나 볼펜이 없는 걸 보면 즉시 구해다 놓는다든지, 습기 찬 바닥에 누가 넘어질까 염려하여 마른 걸레를 갖다 놓는다든지 하는 따위의 조그만 행위들은 잘 하다가도 문득 귀찮은 생각이 들 때가 있고, ‘나 아니라도 누군가 알아서 하겠지’하는 생각에 슬쩍 지나쳐버리고 싶은 유혹을 쉽게 받게 되는 것이다. 도 누가 무슨 책이 보고 싶으니 인편으로 챙겨 보내달라거나, 헌 우표를 모아서 우송해 달라거나, 대화나 편지를 통해 어던 특정한 사람에게 안부를 전해 달라고 하는 종류의 부탁들까지도 잊지 않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늘 깨어 있는 정성과 예민한 준비성이 필요하다. 실상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다 실천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의무들을 우리는 가장 소홀히 하기 쉽고, 따라서 이에 따르는 소박한 기쁨들을 놓쳐버리고 사는 게 아닌가 싶다.

‘자기의 의무를 조용히 실천하는 기쁨에 비교될 만한 기쁨은 없다’ 고 한 간디의 말이 다시 떠오른다.

‘물을 아껴 씁시다’ ‘문은 꼭 닫고 다니십시오’ ‘청소 도구는 꼭 제자리에 놓아주십시오’ ‘쓰레기는 꼭 구분해서 버려주십시오’ 등의 주의 사랑들이 공동생활을 하는 수녀원이나 기숙사, 그리고 그 밖의 장소에서 자주 눈에 띄는 것만 보아도, 또한 ‘놀던 자리 깨끗이, 쓰레기는 휴지통에’라는 표어가 여행길의 휴게소마다 크게 써 붙여진 것만 보아도 우리가 얼마나 기본적인 의무들을 소홀히 하며 사는가를 말해 준다고 본다.

어느 장소에서건 수도꼭지에서 물이 흐르는 것을 보면 즉시 막아 주고, 필요없이 켜 있는 전기를 보면 확인해 본 뒤에 즉시 꺼버리고, 담배꽁초나 휴지는 휴지통이 멀리 있더라고 꼭 그 자리에 가서 버리는 일상의 충실성을 보여주는 것은 그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기본 도리이며 의무이다. 버스터미널과 각 휴게소의 화장실이나 어느 일류대학의 화장실이나 별반 다른 바 없이 지저분하게 사용되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생리대, 머리카락, 껌 같은 것들은 아무리 급한 때라도 반드시 종이에 싸서 보이지 않게 버려져야 하지 않을까? 매사에 가장 기본적인 예의에 대한 충실성이 결여된다면 결코 ‘문화국민으로서의 긍지’를 내세울 수 없을 것이다. 자기 자신의 유익과 편리를 위한 이기적, 개인적 주인의식은 있어도 우리 모두를 위한 이타적, 공동체적 주인의식이 확립되지 않는다면 얼마나 슬픈 일인가. 남들이 그 무엇을 잘못한다고 탓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자신의 눈길을 안으로 돌려 성찰해 보는 겸허함을 배워야 할 것이다.

남들이 무관심해서 미처 메워놓지 못한 ‘틈’이 있다면 그것을 큰소리로 불평하고 푸념하기보다는 묵묵히 대신 메워줄 수 있는 너그러움과 사랑이 어느 가정, 어느 사회에서건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이 시대인 것 같다.

‘네가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였으니 이제 내가 큰 일을 너에게 맡기겠다. 자,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주라 (마태 25:21)’는 성서 말씀처럼 누가 모든 안 보든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할 수 있는 그 사람이야말로 행복한 사람, 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 믿어진다.

나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이 매일 ‘작은 일에 충실한 삶’을 열심히 살아 보다 새롭고 풍요로운 삶의 주인이 되길 기도한다. 그래서 더욱 아름답고 살기 좋은 우리나라를 만들어, 요즘 자주 눈에 띄는 구호처럼 ‘하나로, 세계로, 미래로’ 밝고 크게 뻗어나갈 수 있도록.

 

<1986>

 

 

 

추억을 선물하는 여행기

 

며칠 간 다른 지역에 갔다가 다시 부산역에 도착해서 쩝쩔한 바다 내음을 맡으면 나그네가 고향에 온 듯 반가운 마음이 된다. 이번에도 여행을 다녀와서 나는 방문 온 벗과 함께 바다에 나가 오래오래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모래 위에서 노는 아이들과 그물을 깁는 아줌마들의 모습에서 파도처럼 살아 뛰는 생명의 맥박소리를 들었다. ‘도는 강이 바다로 흘러 드는데 바다는 넘치는 일이 없구나’라고 한 성서 구절도 바다에서 묵상하면 더욱 새롭다. 이제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빛깔을 달리 하는 바다의 모습을 바다 없는 도시에 가서도 쉽게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대체로 한 달에 한 번 꼴로 서울을 다녀오게 되는 나는 집밖을 나서는 일이 왠지 불안하고 피곤하게 느껴지면서도 지금의 내가 수도원 밖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기도 해서 오히려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비록 달리는 차 안에서일지라도 여행은 자연과의 만남을 새롭게 해준다. 차창을 통해 계절따라 변하는 산천의 모습을 마음껏 바라보며 명상에 잠기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봄에는 붉은 진달래로, 여름엔 짙푸른 신록으로, 가을엔 불타는 단풍으로 그리고 겨울엔 하얀 눈으로 뒤덮인 산을 바라보노라면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이 하도 정답고 고맙게 느껴져서 눈시울이 뜨거워지곤 한다. 추수를 끝낸 들판과, 흰 새가 떼지어 날으는 강을 보면 더없이 평온한 마음이 된다. 언제나 깊은 침묵 속에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자연의 모습은 침묵에 소홀했던 나의 지난날을 반성하게 해주고 그 동안 내가 서왔던 시들조차 새삼 부질없고 부끄럽게 느껴진다. 일부 상혼 商魂에 의해 요즘 갖가지 모양으로 나의 시가 남용되는 현실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어떤 종류의 것이든지 간에 여행은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이 세상의 단면을 보고, 느끼고, 이해하게 해준다. 내가 입은 제복이 주는 거리감 때문인지 차 안에서도 아예 말 한마디 건네지 않는 동행자들이 있는가 하면 이것저것 호기심에 가득 찬 필요 이상의 질문들로 나를 피곤하게 만드는 이들도 있다. 그러므로 옆 자리에 누가 앉느냐에 따라서 그날 여행의 분위기도 달라지는 셈이다. 초면인데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가족관계에 얽힌 갈등과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분들도 있다. 이런 인연이 계기가 되어 수녀원까지 나를 찾아오는 아줌마도 있고, 편지 왕래를 하는 아가씨도 더러 있지만 때로는 다시 마주치고 싶지 않을 만큼 무례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 이들 또한 없지 않다. 수녀 修女라는 신분에 대해서 사람들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저마다의 선입견을 나름대로 갖고 있는 듯하다.  매우 성스러워 보인다면 반쯤 ‘천사’ 취급을 하는가 하면 가련하게 실연당하거나 ‘별 볼일 없는’ 인생 낙오자쯤으로 여기는 것 같은 연민의 눈길을 보내오기도 한다. 차 안에서 내가 들어보라는 듯이 파계한 수녀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 이야기를 일부러 큰 소리로 떠드는 젊은이들도 있다. 어느 땐 내가 외국인 같이 보이는 모양인지 영어로 말을 건네 웃음을 자아내는 일도 있고 또 때로는 당사자인 나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체 ‘이해인 수녀’의 근황을 물어오는 적도 있었다.

항상 남의 입장을 미리 헤아려주고, 도 조금은 손해를 보더라도 참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되어 있는 나의 신분에 대한 체면 때문이지 아니면 나 자신의 옹골차지 못한 성격 때문이지 다니다 보면 바보처럼 속는 일도 여러 번 생긴다. 언젠가 한번은 서울에서 나와 동행한 친척 동생이 택시 기사에게 큰 돈을 미리 내고 내린 적이 있는데 막상 목적지에 도착하여 아직 절반도 더 남은 거스름돈을 받으려고 하니 먼저 내린 손님이 이미 잔돈을 받아갔다며 하도 그럴싸하게 시치미를 떼는 바람에 얼떨결에 그냥 내리고 말았다. 좀더 다그쳐 묻지 못한 후회스러움과 더불어 그 후 며칠 간은 불쾌한 마음을 내내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내가 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 한번은 길에서 불쑥 나타난 낯선 아이가 다짜고짜로 내 가방 속에 있는 필통을 좀 보자고 하더니 나의 예쁜 자와 제 것을 바꾸자고 하면서 집에 가서 가져올 테니 기다리라고 하고는 감감 무소식이었다. 그건 내가 처음으로 체험했던 그 씁쓸한 슬픔의 맛이었다. 지금도 차 안에서 고학생이 껌이나 볼펜을 팔면 꼭 한두 개라도 사주고, 길에서 만난 초라한 차림의 어떤 사림이 차비나 점심값이 없다고 애원을 하면 조금이라도 애긍을 하려고 애써온 나이지만 하도 여러 번 언짢은 일을 당하고 나니 사람을 쉽게 믿기가 어려워져서 이것이 종종 나를 슬프게 한다. 그래서 여행은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잊을 수 없는 추억을 각 사람에게 선물로 남겨주나 보다. 특히 속임수에 관련되는 일들을 직접, 간접으로 체험할 때마다 내 기억 속에 생생히 떠오르는 두 얼굴이 잇다. 벌써 오래 전 일이지만 내가 필리핀에 있을 때, 한번은 버스 여행 중에 휴게소에 내려 남들이 하는 것처럼 여유 있게 간식을 먹는데, 식당에서 먹는 게 부끄러워 그 근방의 아는 집에 들어갔다. 그런데 밖에 나와보니 나와 동료수녀님만 남겨놓고 차는 이미 떠난 뒤였다. 나는 큰 가방 한 개를 그대로 두고 내린 터여서 더욱 불안하고 초조했다. 다급한 김에 지나가는 어느 개인 차를 불러 세우고 사정을 말했더니 그 중인은 마치 오래 전부터 잘 알던 친척아저씨처럼 우리가 다음 버스로 목적지까지 갈 수 있게 만반의 배려를 다 해 주었다. 그리고 뒤늦게 바기오 Baguio라는 도시에 도착하여 부랴부랴 먼저 탔던 버스를 찾아갔더니 그 버스의 차장인 청년이 나의 가방을 무슨 보물단지인양 끌어안고 앉아서 고맙다는 말을 거듭하는 나에게 마땅히 해야 할 바를 다했다는 듯이 환히 웃어주던 그 선량한 눈빛을 나는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길에서 무조건 손 흔드는 수녀들을 차에 태워 친절히 보살펴 준 그 중년신사와 빈 버스 안에서 가방을 안고 잇던 녹색 유니폼의 그 청년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여행길에 나서면 더 자주 기억되는 그들에게 하느님의 축복을 비는 마음 가득하다. 앞으로도 나는 그들을 다시 만날 기회가 없겠지만 그들의 그 친절하고 따뜻하게 열린 마음을 본받아 나도 이웃의 필요에 구체적 도움을 줄 수 있는 여행자가 되어야겠다고 다시 한 번 이 가을에 생각해 본다. 바다 가까이 사는 사람답게 바다처럼 넓게 열린 사랑의 마음을 지녀야겠다고…

 

<1986>

 

 

 

낙엽은 나에게

 

 

늦가을, 산 위에 올라

떨어지는 나뭇잎들을 바라봅니다

깊이 사랑할수록

죽음 또한 아름다운 것이라고

노래하며 사라지는 나뭇잎들

춤추며 사라지는 무희 舞姬 들의

마지막 공연을 보듯이

조금은 서운한 마음으로

떨어지는 나뭇잎들을 바라봅니다

매일 조금씩 떨어져나가는

나의 시간들을 지켜보듯이 —

 

– 나의 시 <가을편지>에서

 

 

며칠 전엔 꽤 오랜만에 산에 올라 큰 바위 꼭대기에 앉아 바람에 불려 떨어지는 수많은 나뭇잎들을 바라보는 명상의 시간들을 가졌었다. 무에 그리 바쁜지 계절 따라 변하는 자연의 모습을 좀더 깊이 마음에 새겨두지 못한 채 이내 다른 일에 몰두해야 하는 것이 새삼 안타깝게 느껴졌다.

11월은 교회력 敎會曆에 따라 죽은 이들을 기억하는 위령성월 慰靈聖月 이므로 어느 때보다도 자주 묘지 방문을 한다. 우리 수녀원 묘지엔 지금 열 분의 수녀님들이 누워 계신데 어떤 분은 병으로, 어떤 분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셨다. 들꽃으로 장식된 조그만 비석에는 고인 故人 들의 출생일, 서원일 誓願日, 임종일이 새겨져 있다. 뒷산 묘지를 방문할 때마다 ‘나도 언젠가는 땅속에 묻히게 되겠구나’ 하는 느낌이 더욱 절실해진다. 해마다 가을이면 나는 묘지 주변의 고운 낙엽들을 주워다 그 위에 짧은 시 詩 나 성구 聖句를 써서 카드를 만들기도 하고, 수업시간에도 낙엽을 소재로 카드나 책갈피나 편지지를 만들어 오라는 숙제를 내준다. 이러한 나를 누가 소녀 취향적인 취미라고 웃을진 몰라도 내겐 한 장의 낙엽도 소중한 묵상 자료가 되어주기에 내가 지닌 시집들 속엔 갖가지 모양의 낙엽들이 수두룩하다.

낙엽은 나에게 살아 잇는 고마움을 새롭게 해주고, 주어진 시간들을 얼마나 알뜰하게 써야 할지 깨우쳐준다. 같은 분량의 시간인데도 어느 날은 하찮은 일조차 사랑으로 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알차게 시간을 보냈는가 하면 또 어느 날은 하루 종일 무얼 했나 싶을 만큼 의미 없는 시간을 보냈다는 자책감에 휩싸일 때도 있다. 큰 병도 없이 시름시름 앓아 눕던 시간들, 피곤한 것을 핑계 삼아 중요한 기도의 일과에 소홀했던 시간들, 쓸데없는 말을 하거나 남을 미워하고, 원망했던 시간들이 너무 아까워서 잠을 설치며 조바심 칠 때가 많았건만 여전히 나는 실패를 거듭하니 딱한 노릇이다.

연탄가스 중독으로 전신이 마비되어 13년째 누워 지내면서도 겨우 움직일 수 있는 세 개의 손가락으로 점역 點譯 에 몰두하여 맹인 盲人 들에게 도움이 되어주는 임종욱이란 청년의 그 시간 시간들, 극심한 불구의 처지에 있으면서도 밝은 모습으로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수를 놓고, 뜨개질을 하며 기도생활 또한 철저히 하는 서정슬과 김소령이란 처녀들을 생각하면 나는 더욱 부끄러운 마음이 된다. 온 몸이 성한 사람으로서 나태의 늪에 빠져 시간을 낭비한다면 참으로 죄스러운 일임을 나는 이들의 정성 어린 편지를 받을 때마다 거듭 절감하게 된다.

낙엽은 나에게 날마다 죽음을 예비하며 살라고 넌지시 일러준다. 매일 잠자리에 들 때면 나는 죽음의 예행연습이라고 생각하고 감사의 기도와 함께 눈을 감는다. 그러면 근심 걱정으로 복잡했던 마음도 단순해지고, 맑고 평온하게 가라앉는다. 이승의 큰 가지 끝에서 내가 한창 낙엽으로 떨어져 누울 날은 언제일까 헤아려보며 나의 물건이며 대인관계 등 아직 정리되지 못한 부분들을 성찰해 본다.

항상 죽을 준비하며 사는 이의 모습은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몇 다라 전에 아직은 건강한 편이신 나의 노모 노모 를 방문했을 때 그 분은 문득 “애, 내가 죽으면 애들이 갑자기 당황할까 봐 우선 시신을 덮을 홑이불과 잘 드는 가위 하나 준비했단다. 다들 알아서 잘해 줄 테지만 그래도…” 하시며 쓸쓸히 웃으시는데 가슴이 찡했다. 성서와 묵주를 잠시도 놓지 않으시며 오직 기도에만 전념하시는 그 분의 모습이 누에 선할 때면 틈틈이 내게 보내주신 털옷, 꽃골무, 편지, 낙엽들이 더욱 정겹고 소중하다.

우리 수녀원엔 종종 나의 노모를 연상케 하는 팔순의 수녀님이 한 분 계신데 한번은 내가 밤에 우연히 그 방에 들어갔더니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에 그것 좀 꺼줄 사람을 보내달라고 성모님께 기도하시는 중에 내가 들어왔노라며 반색을 하셨다.

60년 가까이 수도생활을 하신 그 분의 모습에선 늘 청빈 淸貧의 나무 향기가 난다. 어린 시절 부친이 선물로 준 낡은 나무묵주와 기도서 이엔 지닌 것이 없는 요세파 수녀님은 자신을 ‘오직 하느님만 믿고 바라는 그러한 이젠 걷지도 못하는 바보’라고 표현하신다.

수십 년 동안 주로 집안일이나 농장일을 맡아 했으나 늘 기쁨과 충성으로 임했고, 살아오면서 불평이나 험담을 안 하려고 최대한 노력하다 보니 침묵과 절친한 사이가 됐노라고 스스로 고백하시는 그분에게서 나는 성자 聖者의 모습을 본다. 손녀 뻘이나 되는 까마득한 후배에게도 늘 먼저 인사하시며 깍듯이 존칭어를 쓰시는 그분의 겸손은 변함이 없으시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우울한 사건들을 얘기하며 기도를 부탁하면 이내 눈물을 글썽이시는 수녀님은 누가 소식을 전한 바 없는데도 요즘은 북한 땅의 억압받고 있는 우리 동포들을 위한 기도를 자주 바친다고 말씀하신다. 대로는 조금 불안해 하시며 누군가 옆에 있어주길 바라는 눈치여서 들어가면 미안한 듯이 빨리 일터에 나가보라고 우리를 앞질러 염려하시는 수녀님. 간혹 정신이 흐려질 때도 있으시고 어린 수녀들의 이름을 못 외우는 게 딱하지만 이젠 정말 어쩔 수가 없노라며 어질게 웃으시는 수녀님은 사람을 나무에 비유하곤 하신다. 당신의 거친 손을 꼭 나무껍질 같다고 하시는 그분도 이제 얼마 안 남은 이승에서의 마지막 시간들을 순명 順命의 수도자답게, 그러나 아프고 고독하게 정리하고 계실 것이다. 나는 오늘 그분께 빨간 단풍나무 한 가지를 갖다 드렸다. 그분이 걸어오신 삶의 빛깔과 모양이 왠지 조용히 불타는 단풍 한 그루 나무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의 어머니나 요세파 수녀님처럼 나도 늘 단순하고 겸허한 자세로 오늘을 살고 또 마지막 날을 예비해야겠다.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내 삶의 나무에서 날마다 조금씩 떨어져나가는 나의 시간들을 좀더 의식하고 살아야겠다.

<페이터의 산문>에 인용된 호머 Homer의 시구 詩句를 떠올리며 내가 주운 한 장 낙엽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사람은 나뭇잎과도 흡사한 것, 가을 바람이 땅에 낡은 잎을 뿌리면 봄은 다시 새로운 잎으로 숲을 덮는다.’

 

<1986>

 

 

 

나의 애송시

기도의 나무로 서서

 

 

나는 생각한다. 나무처럼 사랑스런 시를

결코 볼 수 없으리라고.

대지의 단물 흐르는 젖가슴에

굶주린 입술을 대고 있는 나무,

온종일 하느님을 보면

잎이 무성한 팔을 들어 기도하는 나무,

여름엔 머리칼에다

방울새의 보금자리를 치는 나무,

가슴에 눈이 쌓이는,

또 비와 함께 다정히 사는 나무.

시는 나와 같은 바보가 짓지만

나무를 만드는 건 하느님뿐.

 

– 조이스 킬러 <나무들>

 

 

내가 중학교 문예반에 들어가 문예반 담당 선생님으로부터 처음 들었던 정지용의 <향수> <고향>을 비롯해 윤동주의 <서시>, 타고르의 <가탄잘리>, 푸쉬킨의 <삶이 그대를 속이더라도>, 칼 붓세의 <산 너머 저쪽> 등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아름다운 시들이다. 새로운 시집을 대할 때마다 새로이 발견되는 좋은 시들이 하도 많아 그 중 하나를 가려뽑아 애송시로 삼기란 쉬운 일이 아니건만 내가 수녀원에 와서 만나게 된 조이스 킬머의 <나무들>이란 시는 근래에도 가장 즐겨 외우는 시들 중의 하나이다.

 

한 그루 나무에 대한 시인의 명상은 참으로 단순하면서도 깊이 있는 매력으로 살아와서, 수도원의 나무들을 바라보느라 면 으레 이 시가 떠오르고 나도 한 그루 나무가 되는 느낌이다. 시인의 표현대로 나무는 가장 조용하고 기품 잇는 기도자, 명상가, 시인의 모습으로 서서 우리를 초대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전문 중에서 특히 내가 좋아하는 구절은 ‘시는 나와 같은 바보가 짓지만 나무를 만드는 것 하느님뿐’이란 끝 연인데 읽을 때마다 내 마음엔 잔잔한 파문 波紋이 일어난다. 이 말이 그대로 나 자신의 기도로 느껴진다. 신의 무한성과 인간의 유한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고, 신 앞에서의 나라는 존재, 신과 이웃과 나와의 관계 등을 좀더 진지하게 돌아보게 하는 여운을 남긴다.

교훈적인 냄새를 강하게 풍기지 않으면서도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조용한 시. 나무의 모습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그려진 이 꾸밈 없고 간결한 시를 나는 많은 이웃에게 적어보내고, 직접 읽어주기도 하면서 이 시를 쓴 시인에게 고마운 마음을 새롭힌다.

이러한 나눔의 기쁨에서 힌트를 얻어 나는 <나무의 상징을 통해 본 수도자의 모습>이란 제목으로 강의를 한 적도 있었고 소나무, 미루나무, 향나무, 대나무, 느티나무 등, 각종의 나무 이름으로 그룹 이름을 만들어서 함께 묵상하고 작업하는 문학수업을 수녀원에서 주관하기도 했다.

지금은 비교적 많은 나무들이 있는 집에서 살고 있지만 언젠가 나무들을 잘 볼 수 없는 메마른 곳에 살게 되더라도 나는 이 시를 애송하며 내 안에 한 그루 나무를 키우리라. 아니, 나도 나무가 되리라. 자기가 서야 할 땅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서서 사계절의 변화에 적응하는 나무처럼 나도 인생의 사계절을 다 받아들여 적응할 줄 아는 성실한 시의 나무. 기도의 나무가 되리라. 하늘을 것,  땅의 것을 모두 다 큰 사랑으로 껴안을 수 있는 다정하고 어진 사랑의 나무가 되리라.

하느님과 이웃의 몫을 내 것인 양 가로채거나 우쭐대지 않는 한 그루의 겸허한 나무, 명상과 기도를 많이 하되 말은 아끼며 안으로 지혜를 모으는 고운 바보가 되리라.

 

<1991>

 

 

 

섣달이면 커지는 마음의 꽃등

 

해마다 날아오는 크리스마스 카드가 몇 년 전부터는 내게도 수백 통이 되다 보니 카드를 보낸 분들의 정성스런 사연을 나도 모르게 놓치지나 않을까 싶어 한번 모아 둔 것을 후에 정리하는 과정에서 다시 한번 읽곤 한다.

이 글의 청탁을 받고 나는 작년 12월에 받은 편지 묶음들을 다시 풀어 읽어보니 대개가 늘 건간하고 좋은 글 많이 쓰라는 내용의 성탄 카드였고, 내용 없이 이름만 사인된 연하장은 어느 국회의원으로부터 온 것 한 장뿐이었다.

카드의 겉그림들이 모두 아름답고 다양해서 그냥 버리기는 아깝고 어떤 모양으로든지 다시 이용할 생각을 해본다. 직접 수를 놓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꽃잎와 나뭇잎을 붙여서 만든 카드들은 머욱 눈여겨보게 되는데, 받은 이를 기쁘게 하는 것은 아무래도 겉모양보다는 카드 속에 담겨 있는 글의 내용인 것 같다.

인쇄된 축하의 말 씀에 ‘건강하세요’, ‘기쁜 성탄, 복된 새해 맞이하세요’라고 극히 간단한 내용과 함께 이름만 쓴 것들이 잇는가 하면, 카드 안의 흰 공간을 최대한으로 이용하여 촘촘이 정성스런 사연을 적은 것들도 많다.

어떤 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애송시를 붓글씨로 적어 카드에 붙이기도 했다.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형식적이고 상투적이 말보다는 받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구체적이고 진실 어린 내용이 훨씬 더 가슴에 와 닿는다. 사랑과 격려, 축원과 기도로 가득한 카드 속의 말들을 나도 몇 개 골라서 읽어본다.

‘이모, 기도해 주셔서 감사해요. 제가 그린 이 그림을 받아드시고 잠시나마 기뻐하세요. 성탄과 새해는 주님의 별빛 같은 축복을 받으세요. 안에 들어 들어있는 작은 그림은 보너스로 드릴게요’ 라고 쓴 어린 조카애들의 글. ‘찌든 마음 가다듬고 조용히 구세주 예수님읠 맞이 합시다’라고 쓰신 어머니의 글, ‘날마다 해가 뜨듯 날마다 반짝이는 은혜의 빛을 주님, 내 누이에게 내려 주소서’라고 한 오라버님의 글에서 깊은 정을 느낀다. ‘민들레의 영토에서 바다 가득한 넉넉한 사람으로 이 한 해를 사신 이여, 다가올 새해에도 당신의 사랑으로 낳은 빛난 언어로 살아가소서’ ‘넉넉한 가을 들판에 서 계신 해인 수녀님, 새해에도 시 쓰시는 수녀님 두 손과 뜨거운 가슴에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이라고 쓴 독자들의 글을 읽으면 짐짓 좋은 시를 쓰고 싶은 마음이 새로워진다.

또 ‘늘상 접하는 수녀님의 시 때문에 얼굴 한 번 안 보고도 항상 곁에 계신 것 같습니다. 그 동안은 소나기같이 내리쏟는 사랑만을 갈구해 왔는데 이제부터는 ‘몽당연필’같이 닳아지는 사랑을 배우고자 합니다’라고 어느 교도소에서 날아온 카드와 ‘기다림이 징역살이인 슬픈 인생은 억누를 담장이 높을 뿐이지만 하늘이 내 집 같은 희망은 분명 사랑의 확신입니다.’라는 어느 무기수의 고백이 적힌 카드는 나를 참으로 숙연하게 한다.

일년에 한 번 성탄 카드를 쓰는 일은 억지로 마지못해 하는 부담스런 의무가 아니라 평소에 못다한 인사까지 더불어 챙길 수 잇는 흔연한 사랑의 의무, 즐거운 의무여야 할 것이다. 전화와 팩시밀리가 아무리 신속하고 편리해도 고운 카드 안에 정성껏 쓰는 축하의 말을 대신해 주지는 못할 것이다.

나도 어느 해인가는 팔이 아프도록 사인을 해서 수백 통의 성탄 카드들을 독자와 친구들에게 보내기도 했으나 분량이 많다 보니 두세 줄의 좋은 말을 써 넣기도 여간 힘겨운 게 아니었다.

좀더 긴 글을 써서 복사를 해 보낼까도 생각했으나 친필에서 배어나는 따뜻한 정감이 없을 것 같아 그만두고 말았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또 몇 통의 카드들을 받게 되고 또 보내게 될지 알 수 없지만 내가 보낼 때는 우선 어린이, 장애인, 수인 囚人 들, 일반 독자, 가족, 친지 등의 순서대로 쓰려고 나름대로 정해 놓고 있다.

내가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 받고 있다는 기쁨과 동시에 내가 이웃에게 자신을 더 많이 내어 주어야 할 사랑의 빚쟁이임을 조용히 일깨워주는 수많은 카드와 편지들, 이들 앞에 약간은 어깨가 무거우면서도 새로운 고마움으로 내 마음엔 환한 꽃등이 켜진다.

그리고 카드 속에 쓰여 있는 모든 좋은 말 –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말들이 내 삶의 길에서 그대로 이루어지길 기도하고 노력하리라 다짐해 본다.

비록 어느 날 내게 더 이상 많은 카드가 오지 않고 내가 보내지 않더라도 행복하고 충일한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1991>

 

 

새 달력을 걸고

 

12월 중순에 접어드니 나에게도 여기저기서 성탄 카드가 날아오기 시작하고, 거리에 나가면 선물꾸러미를 들고 바삐 걷는 행인들의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아침부터 가볍게 눈발이 흩날리고 제법 추웠던 오늘, 우리는 관습대로 성탄맞이 대청소를 했다. 회색 도는 푸른색 작업복에 앞치마를 두르고 열심히 유리창을 닦거나 걸레질을 하는 이들의 모습은 모두 밝고 활기차 보였다.

공동작업을 마치고 나의 방으로 돌아와 보니 책상 위에도, 방바닥에도 책과 노트며 편지들이 마구 무질서하게 널려져 있었다. 마침 볼 일이 있어 내 방에 들어왔던 어린 수녀에게 방이 지저분해서 미안하다고 했더니 “어때요 살아 움직이는 사람의 냄새가 나서 좋은데요” 하며 웃었다.

나는 남보다 유달리 깔끔한 편은 못되지만 그래도 내 주변의 것들은 꽤 정리해 가며 사는 편이다. 혼자 쓰는 방 안에서의 극히 단순한 ‘살림살이’조차도 바쁜 것을 핑계로 돌보지 않고 소홀히 하면 이내 지저분하게 되곤 한다.

또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으면서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미처 정리 못한 것들을 찾아서 정리하고, 평소에 챙기지 못한 인사를 카드나 연하장에 담아 보내기도 할 것이다. 연말이 가까우니 나도 괜시리 마음이 바빠져서 며칠 전에 그 동안 벼르기만 하고 못했던 수첩 정리도 해두었다.

오늘 방 정리를 하다가 읽었던 <수피의 가르침>이란 책 안에 이런 얘기가 있다.

무척 영리하고 속 깊은 한 젊은이가 어떤 공동체에 들어왔는데, 하루는 그는 지도자가 그에게 사원의 쓰레기를 치우라고 명령했으나 밖으로 나간 젊은이는 자취를 감추었다. 이튿날 아침에야 나타난 그는 맡은 일을 경시했고, 이기적이며 청소를 하지 않았다는 비난과 꾸지람을 면할 수 없었다. 혹독한 비난을 받았으므로 사람들은 이제 젊은이가 사원의 쓰레기를 잘 치우리라고 믿었으나 그의 태도는 여전했고, “저는 사원에서 오물은커녕 먼지 한, 지푸라기 하나 보질 못했어요”라고 오히려 의외의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이 얘기가 그 난해함으로 악명이 높아가자 한 수피(이슬람교의 명상가 혹은 신비가를 일컬음)는 훗날 이렇게 한마디 했다고 한다. ‘피상적인 사람들이여, 그 젊은이는 다른 사람들의 표면적인 정화만을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바로 자기 자신을 사원의 쓰레기, 지푸라기, 먼지로 생각했던 거지요.’

위의 이야기는 자칫 자아도취나 형식주의에 빠지기 쉬운 우리에게 많은 것을 깨우쳐준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얼마나 성급하게 남을 판단하면서 자신의 내면적 성찰은 소홀히 할 때가 많은가? 보다 본질적인 것보다는 비본질적인 것에 더 마음을 쓰고, 내적인 것보다는 외적인 것들에 더 마음을 빼앗기며 시간을 보내는 적이 많이 않은지 반성해 볼 일이다.

그러고 보니 눈에 보이는 나의 방을 치우고 정리하는 일 못지않게 눈에 보이지 않는 내 마음의 방을 깨끗이 하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내 안에 가득 찬 미움과 불평과 오만의 먼지, 분노와 이기심과 질투의 쓰레기들을 쓸어내고 그 자리에 사랑과 기쁨과 겸손, 양보와 인내와 관용을 심어야겠다. 내 방의 벽 위에 새로운 마음으로 새 달력을 걷듯이 내 마음의 벽 위에도 ‘기쁨’이란 달력을 걸어놓고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고 싶다. 모든 것에 앞서 자신의 내면을 갈고 닦는 지혜를 구하면서….

 

<1988>

 

 

이별의 층계에서

 

‘층계’ ‘계단’ ‘층층대’ ‘사다리’ 라는 단어를 들으면 내 마음엔 팽팽한 긴장감과 함께 활기가 솟는다. 어린 시절 나는 유리창과 층계가 많고 정원이 아름다운 집에서 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었는데 수녀원에 와서 그 꿈을 이룬 셈이다.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면 무언가 다른 세계가 펼쳐질 것만 같은 어떤 기대와 호기심 때문일까? 공원이나 산책길에서도 어쩌다 층계를 마주치면 문득 오르고 싶어진다. 전철이나 기차역에서도 에스컬레이터 보다는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생각하면서 오를 수 있는 돌계단을 나는 더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

우리 수녀원 성당으로 오르는 라일락 언덕길과 채마밭 사이엔 아주 오래된 돌층계가 있는데 난 날마다 이 길을 즐겨 다니며 층계에 낀 이끼, 떨어진 나뭇잎과 솔방울, 도토리, 다람쥐, 바람소리 등 모든 것과 정 들여오면서 어느새 수십 년이 흘렀다. 수녀원 안에서 아침, 저녁으로 오르내리는 층계가 또 얼마나 많은가. 층계를 통해 우리는 기도하고, 밥을 먹고, 일을 하러 다닌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은 곧 층계를 오르내리는 것과 같은 일상의 움직임과 직결되어 있음을 느낄 때가 많다. 몸이 불편해 난간을 짚고 겨우 층계를 오르내리거나 다리는 다쳐 목발을 집고 평평한 길로 돌아서 다녀야 하는 분들을 어쩌다 만나게 되면 층계를 오르내릴 수 있는 나의 건강에 대해서도 새로운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항아리가 100개도 넘는 우리 장독대 옆 좁은 돌계단을 올라가면 산, 하늘, 바다가 잘 보이는 넓은 옥상이 있는데 나는 자주 그곳에 올라가 해와 달과 별, 구름과 노을을 바라보곤 한다. 그 아담하고 앙징스런 돌계단을 오를 때면 문득 하늘로 오르는 한 마리의 자유의 새가 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지금껏 내가 걸어온 삶의 길, 삶의 층계에서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또 이별했을까. 층계는 만남의 기쁨과 기다림의 설레임이 가득한 장소, 때로는 이별의 슬픔이 깔린 장소이기도 하다. 그래서 층계는 아름다움과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으로 내게 다가온다. 지금보다는 훨씬 엄격했던 수련수녀 시절, 나를 만나러 왔던 가족, 친지들은 수도원의 층계 아래 내려가 그들의 세계로 문을 열고 나가고, 나는 짧은 면회 후 층계 위로 올라와 나의 세계로 다른 문을 밀고 들어서곤 했다. 문이 닫힌다고 사랑의 마음까지 닫히는 것은 아니건만 그 시절엔 무조건 인간적인 이별이 아쉽고 서럽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만해 한용운 님의 시구에서처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는’ 쓸쓸한 심정을 어쩌지 못하면서도 나는 이제 제법 여러 유형의 이별에 익숙해졌고, 이별의 아픔을 기도 안에서 승화시키는 방법도 나름대로 길들여왔다.

내가 좋아하는 쇼팽의 이별곡 같은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내 기억의 층계에는 지금 문득 두 사람의 그리운 얼굴이 떠오른다. 한 사람은 재가 여섯 살 때 헤어진 나의 아버지이고, 또 한 사람은 이번 여름 동해 바닷가에서 3명의 신자를 구하고 탈진해서 숨지신 배문한 신부님이시다.

어려서 유난히 아버지를 따랐던 나는 아버지가 퇴근하시는 해질녘의 시간에 맞추어 집 밖에서 항상 기다리곤 했다. 어린아이가 내려가기엔 너무 길고 가파른 층계였기에 난 늘 층계 꼭대기에서 한 손엔 나에게 줄 과자를 들고 천천히 올라오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설레는 기분으로 지켜보곤 했다. 지금도 모나카나 찹쌀떡을 보면 꼭 아버지 생각이 난다. 한국전쟁이 일어나던 해 가을 어느 날, 아버지는 즐 오르던 집 앞의 그 층계를 끝내 오르지 못한 채 납치당하셨고, 눈물 바다를 이루었던 가족들 사이에서 함께 울음을 터뜨렸던 내게 그것은 처음으로 다가온 이별의 큰 슬픔이고 아픔이었다. 40년이 넘은 지금도 난 길고 긴 기다림의 층계 끝에 서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삶은 어쩌면 짧은 만남 끝의 긴 이별을 견디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자주 하면서…

 

지난 5월 나는 처음으로 보랏빛 등꽃이 아름답게 핀 수원 가톨릭 대학을 방문했는데 학장 배 신부님은 바쁘신 가운데도 친히 학교를 안내해 주시고, 좋은 글 많이 쓰라며 바다 빛의 만년필도 한 개 선물로 건네주었다. 내가 층층이 신부님을 따라오르던 신학교의 그 많은 계단들이 눈에 선하고, 문득 뒤돌아보며 빙그레 웃으시던 그 조용한 미소를 잊을 수 없다. 신부님은 이제 더 높은 계단을 올라 천국의 안내자가 되신 걸까. 6월에 나는 마지막으로 유머와 따뜻함이 넘치는 신부님의 엽서를 받았고, 8월 어느 날 뜻밖의 슬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날 바닷가에 동행했던 신자들과 회갑 미사를 봉헌하면서 신부님은 세상엔 감사할 줄 모르는 이들도 많으니 여기 모인 10명이라도 매일 10번씩 의무적으로 감사하는 습관을 들이라고 당부하셨다고 한다. 또 동료 교수들이 마련한 조촐한 회갑연에선 ‘남들은 현실 보다 꿈이 아름답다고 하는데 나는 꿈보다 현실이 더 아름답다’는 의미 있는 말씀을 남기셨다고 한다. 그 누구보다도 겸손하고 온유한 인품으로 많은 이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던 신부님을 위해 추도시를 쓰고 장례미사에 참석하면서도 나는 그 분이 돌아가셨다는 실감이 나지 않았고 잠시 정원으로 산책을 나가신 것처럼 느껴졌다. 이제 그 분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안 계시지만 여전히 가까운 분으로 여겨지고, 예수님이 가르치신 사랑의 삶고 성 베네딕도가 수도자들에게 제시한 겸손의 12단계까지 다 이르셨기에 부르심을 받고 사랑과 겸손의 모습으로 떠나신 것이라 믿고 싶다.

나 역시 그 어느 날 내 삶의 층계길을 다 오르고 나면 아직도 소식을 몰라 안타까운 내 사랑하는 아버지와, 이웃 위해 목숨 바친 존경하는 신부님. 바위처럼 묵묵하고 든든한 신부님의 모습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때까지 나는 아직 이승에서 만남과 이별과 기다림의 층계를 더 기쁘고 참을성 있게 오르내리는 연습을 해야 하리라.

 

<1994>

 

 

 

 

둘째 묶음

아름다운 순간들

 

 

일상의 언덕길에서

 

1

잔잔한 일상 일상의 삶들이 모여서 한 사람의 일생이 된다. 내게 있어 일상의 소임과 기도, 사람들과의 만남, 기쁨, 슬픔, 좌절의 체험 등은 모두 소중하다. 늘 같은 얼굴이어도 반가운 일상의 언덕길에서의 수도원 자매들과의 인연을 새롭게 감사하며 오늘을 산다.

 

2

며칠 전엔 파 모종을 했는데 우리가 비스듬히 눕혀놓은 파들이 비를 맞고 똑바로 일어서 있는 모습이 신기하다. 오늘 저녁엔 여럿이 둘러앉아 토란 줄기를 많이 다듬었다. 요즘은 호박잎, 머위잎, 옥수수가 자주 식탁에 나와 반갑다. 밭 냄새, 흙 냄새가 나는 식탁에서는 마음도 더 푸르고 우리의 이야기도 더 소박해진다.

 

3

우리 장독대의 100개도 넘는 항아리들이 비에 씻겨 더욱 윤이 나고 깨끗하다. 198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연도에 따라 된장, 간장, 고추장, 젓갈류 등의 각기 다른 이름표를 달고 있는 크고 작은 항아리들. 우리는 매일 그 안에 들어 있는 기다림의 시간들을 음식에 녹여서 먹는 것일 테지. 딸들이 수녀원에 오는 것을 반대하던 엄마들의 경직된 얼굴에도 빙긋이 웃음꽃을 피우게 하는 장소가 곧 장독대인 걸 보면, 항아리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힘과 정을 지녔다. ‘항아리’라는 우리말은 또 얼마나 고운가?

 

4

한 사람이 민감하게 깨어 있음으로 하여 많은 이를 유익하게 할 수 있듯이, 한 사람이 부주의하거나 깨어 있지 못함으로 많은 이들을 불행하게 할 수 있음을 자주 보게 된다. 세상에서도, 수도원 안에서도 자기 임무에 충실히 깨어 있기 위해서는 이기적이며 옹졸한 사심 私心 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때로는 내가 좋아하는 것, 좋아하는 사람들도 잠시 잊고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는 것도 사심을 줄여가는 좋은 방법이다.

 

5

글벗들이 늘어갈수록 글빚 또한 늘어간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어떤 사람은 시와 같고, 어떤 사람은 수필 같고, 어떤 사람은 소설이나 동화, 또는 평론, 희곡 같기도 하고 – 조금씩 다른 분위기 속에서의 독특한 향기가 있다. 사람과의 만남이 각기 다른 한 권의 책을 읽은 것 같은 느낌이 요즘은 더 자주 들고, 때로는 제대로 해독을 못해 빚어지는 갈등과 오해 앞에서 저으기 당황하기도 한다.

 

6

‘바람 불면 나무는 살랑살랑

언제나 바람만 불면 한들한들

나무는 멋있게 춤추는데

우리는 박수 한번 안 하지’

내가 아는 인혁이란 어린이의 글을 읽은 후부터 나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볼 때마다 마음으로나마 박수를 보내기로 했다. 한여름, 바람 한 점 없어 꼼짝 않는 나뭇잎새들을 보면 얼마나 답답했는지. 바람에 한들대는 나뭇잎처럼 나도 즐겁게 살아야겠다.

 

7

‘온종일 남을 위해 빛을 내고도

해논 일 적다고

조렇게 조렇게 얼굴을 붉혀요

겸손한 해님은’

연변 시인 김학송님의 <저녁노을>이란 동시를 읽어본다. <백두산 폭포>라는 시집을 고국에서 내게 되었다며 퍽도 기뻐하는 시인의 때묻지 않은 모습이 순박하고 순수하다. 수녀원의 꽃과 나무들을 보고도 그는 ‘엄청납니다!’ ‘대단합니다!’ 감흥이 큽니다!’ 등등 감탄사의 연발이었고, 바다를 보며 너무 기뻐 어쩔 줄 몰라 했다. 그의 말대로 그는 ‘핏줄 속에서 소리치는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연모의 정’을 고국의 푸른 바다에 가득히 풀어놓고 싶었으리라.

 

8

주일은 정말 좋다. 엿새 동안 열심히 일한 후의 휴식과 사색이 마련될 수 있는 날. 평소에 무심히 지나쳤던 자연과 사물과 사람을 제대로 유심히 바라보며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는 여백이 있는 날.

 

9

간밤엔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둥근 달을 가슴에 안았고, 오늘 아침엔 바다 위로 떠오르는 둥근 해님과 오래도록 눈인사를 나누었다. 해와 달이 뜨고 지는 동안 나도 매일 뜨고 지다가 어느 날은 지상에서 작별을 고하고 영원히 사라지는 날도 오겠지? 이제 바람은 가을을 묻혀오기 시작한다. 가을이란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나.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있는 그대로의 단순성의 용기로 매일을 살자. 사계절 내내 평상심 平常心 을 지녀야겠지만 가을엔 항상 마음이 출렁이고 어디든지 설레임으로 떠다니는 흰구름이 된다.

 

 

 

 

창을 사랑하며

 

1

‘창을 사랑하는 것은

태양을 사랑한다는 말보다

눈부시지 않아 좋다

……

창을 닦는 시간은

또 노래도 부를 수 있는 시간

창을 맑고 깨끗이 지킴으로

눈들을 착하게 뜨는 버릇을 기르고…’

 

김현승 시인의 <창>이란 시를 나는 종종 창에 기대어 읊어본다. 내가 수녀원에 와서 제일 처음 쓴 시의 몇 구절도 다시 읊어본다.

 

‘창은 움직이는 것들을 불러 세우고

서서히 길을 연다

꿈꾸게 한다

기쁨을 데려다 꽃피워주는

창은 고운 새 키우는 숲

창 밖의 숲마을은

꺼지지 않는 불빛으로 밝아오는 고향

갑자기 꽃밭이 되어

나를 부르러 오면

나는 작아서 행복한 여왕이 된다

창은 나의 창은

오늘도 자꾸 피리를 분다

끝없이 나를 데리고 간다’

 

글로 다 적어두진 못했지만 창을 통해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을 꿈꾸고 생각했던가. 창은 늘 많은 상상을 가능케 한다.

 

2

멋진 그림이 새겨진 색유리창도 아름답지만 아무 장식이나 무늬가 없는 투명한 유리창도 아름답다. 이른 새벽 성당에 앉아 서서히 밝아오는 햇빛과 나뭇잎의 초록으로 빛나는 창을 바라보며 기도할 수 있는 고마움과 기쁨이여.

 

3

창이 있음으로 아픈 이들도 병석에서 사계절의 변화를 바라볼 수 있고, 창이 있음으로 나도 매일 식당에서까지 산을 내다볼 수 있으며, 멀리 있는 바다를 가까이 끌어다 가슴에 담을 수도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가. 해질 무렵, 마음을 비우고 창가에 서면 혼자라도 쓸쓸하지 않다. 창가에서 바라보는 하늘의 별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루 중의 어느 시간을 우리는 창가에서 기도하며, 누군가의 맑은 창으로 열려야 하리라.

 

4

비 오는 날, 바람 부는 날, 유리창은 묘한 음악 소리를 내며 창 밖의 세계로 나를 초대한다. 누군가 문 밖에서 울고 있음을 깨우쳐준다. 흰 눈 펑펑 쏟아지는 겨울날, 창은 눈꽃 성에꽃 가득 긴 모습으로 나를 아름다운 동화의 나라로 데려간다. 눈 雪 나라의 하느님을 만나게 한다.

 

5

버스나 기차를 탔을 때, 어쩌다 창가에 앉게 되면 여행이 더욱 즐거워진다. 차창으로 보이는 산, 들, 강, 집, 사람들 모두가 새롭고 반갑고 정답다. 살아 있는 사람만이 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즐거워할 수 있음도 더욱 새롭게 느껴본다.

 

6

오늘은 창가에서 한장의 엽서를 쓴다.

– 이 세상에 없는 벗 요한에게.

어려서부터 유리창이 많은 집에 살고 싶은 꿈을 나는 수녀원에 와서 이루었지요. 창을 통해 나에겐 날마다 새 하늘 새 땅이 열렸답니다

좁은 감방에서 넓은 창문을 그리워하는 그대의 편지를 받던 날, 나는 유리창 대신 푸른 시를 적어보냈고, 사형수인 그대는 기쁨의 창 하나를 마음에 달았다고 했습니다. ‘죽어서도 기도만은 멈추지 않겠다’고. 내게 늘 핏빛 짙은 사랑을 고백하던 그대는 이제 마지막 흰 옷을 입고 창문이 필요 없는 나라로 떠나고 말았지만, 창가에 서면 그대의 목쉰 소리가 가까이 들려옵니다.

오늘도 창을 통해 하늘과 햇빛과 바람을 그리워하는 그대의 남은 동료들을 기억하며 내 마음의 창을 오래오래 열어둡니다. 그대가 그토록 애송하던 나의 시 <장미의 기도>를 6월의 하늘로 띄워올립니다. 장미의 계절에 먼나라로 떠난 그대를 기억하며 – .

 

 

피게 하소서, 주님

당신이 주신 땅에 가시덤불 헤치며

피 흘리는 당신을 닮게 하소서

내 뾰족한 가시들이

남에게 큰 아픔 되지 않게 하시며

나를 위한 고뇌 속에

성숙하는 기쁨을 알게 하소서

…..

오직 당신 한 분 위해

마음 가다듬는 슬기를

깨우치게 하소서

죽어서 다시 피는 목숨이게 하소서.

 

 

<1993>

 

 

 

아름다운 순간들 1

 

1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 경험하게 되는 다양한 아름다움의 순간들을 깊이 음미하지도 못한 채 그냥 그냥 지나쳐버릴 때가 많은 것 같다. 사람마다 자기가 체험하는 크고 작은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적어 두는 수첩이라도 있으면 어떨까. 직접 간접으로 보고 듣게 되는 이웃의 어떤 표정, 말씨, 마음씨, 자연의 한 장면이 잊을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삶의 한 순간을 밝혀줄 수 있고, 어려움을 이겨내는 힘이 될 수 있음은 얼마나 기쁘고 고마운 일인가. 아름다움을 느끼고, 발견하고, 맛들일 수 있는 사람만이 아름다움의 힘을 더욱 깊이 알아듣게 되겠지.

 

2

밤새 심한 태풍이 불던 다음 날, 정원의 수많은 백합들이 거의 다 못쓰게 되었으리라 생각하고 아침에 창을 열었을 때, 얼굴 하나 안 상하고 웃어주던 그 하얀 꽃들과 얼굴, 얼굴, 그 고운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정말 신기하지요?’ 우리는 몇 번이나 수녀원 안뜰에 나가 태풍에도 잘 견디어낸 꽃들을 들여다보며 기뻐했다.

 

3

점심식사 후에 잠시 다녀온 오늘의 바다 빛깔은 특이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했다. 함께 산책을 나간 분으로부터 ‘엄마, 파도는 모래를 사랑하기 때문에 자꾸만 밀려오는 거지?’ 했다는 어느 어린이의 표현이 기억에 남는다는 말을 전해 듣고, 어린이야말로 천재적인 시인이라는 생각이 더욱 새롭다.

 

4

오늘 산책길에서 마주인 한 마리 고운 새의 이름을 찾아야겠다. 인기척에 놀라 금방 도망갈지 모르니 좀더 우리 수녀원 산길에서 놀다 갈 수 있도록 다른 길로 돌아가자며 내 팔을 잡아끌던 동료 수녀의 그 마음씨가 아름답게 느껴졌다. 가늘고 여린 그의 음성이 내 안에 고운 새의 발자국처럼 찍혀 있다.

 

5

며칠 전에 경은이가 가져온 분홍갑사 주머니 안의 나팔꽃씨를 머리맡에 두고 자니 내 침대가 꽃밭이 되는 것만 같다. 종이봉투나 비닐봉지에 넣지 않고 일부러 헝겊주머니를 만들어 꽃씨를 넣어보낸 사람의 그 마음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6

비오는 날의 여행길에서 돌아온 어느 저녁, 나는 잔뜩 흙 묻은 신발을 미처 닦을 틈도 없이 아침을 맞이했는데 누군가 깨끗이 닦아 놓은 것이 눈에 띄었다. 속으로 짐작되는 이가 있어 대뜸 ‘이 신발 수녀님이 닦았지요?’ 했더니 아무 대답도 없이 씨익 웃기만 하던 그 젊은 후배 수녀의 은은한 아름다움이 한 촉의 난 蘭의 향기로 내게 머문다.

 

7

임종이 가까울 만큼 위독한 상태에서도 가벼운 병으로 옆 침대에 입원해 있는 나를 더욱 걱정하며 지켜봐 주시던 그 사랑 많은 노 老 수녀님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수녀님이 묘지에 오를 때마다 그 분처럼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는 내 모습이 무척 부끄럽다. ‘풀은 무덤 위에 아름답게 자라난 머리카락인 듯도 하다’는 휘트먼의 <풀잎>의 한 구절을 뇌어보는 수녀원 묘지 위에서의 쓸쓸한 아름다움.

 

8

수녀들이 각자의 일터에서 체험한 것들을 이야기하며 서로 기도를 부탁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신생아실에서 일하면요, 아기들의 울음소리에서 생명을 느껴요. 그런데 부모가 사이 좋고 정상적인 관계인 아기들은 울음소리가 너무 크고 우렁찬 데 비해서 미혼모의 아기들은 울음소리부터가 너무 작고 힘이 없어 불쌍해요’ 하며 눈물을 글썽이는 수녀도 있고, ‘염소를 키워보면 얼마나 귀여운지 몰라요. 이번에 또 새끼를 낳았는데 구경하러 오세요’ 하는 이도 있고, ‘오늘 먹은 호박은 제가 농사지은 것입니다. 올해는 호박이 몇 백 개인지 알고 싶지 않아요?’ 하는 이도 있고 ‘몹시 편찮으신 할머니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하는 양로원의 수녀, ‘가출한 우리 반 학생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하는 교사 수녀 등등 소임의 종류만큼 이야기도 다양하다.

수녀들 각자가 표현하는 기쁨, 슬픔, 근심은 어느새 우리 모두의 관심사가 되니 우리의 ‘기도의 일’ 또한 끝이 없다.

 

9

손님이 자주 드나드는 객실에 다 쓰고 난 잉크 병을 씻어 그 안에 하얀 자갈을 깔고 살짝 꽂아 놓은 들꽃 한송이를 보고 또 보며 기뻐하는 나를 보고, 객실 담당자로서의 흐뭇한 보람을 환한 웃음으로 표현하는 듯한 어느 예비수녀의 그 모습이 작은 들꽃처럼 순수하고 아름답다.

 

<1993>

 

 

 

아름다운 순간들 2

 

10

‘추억은 우리의 교양 잇는 분별력으로 정도가 알맞아야 한다. 감사와  기쁨으로 추억을 간직하는 것과 거기에 묶인 채로 남아 있는 것 사이에는 삶과 죽음만한 차이가 있다. 우리가 추억을 감사하게 간직하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그것을 움켜쥐고 여전히 무엇을 구하면 우리는 비현실과 신경쇠약에 빠지게 되고 당장에 사람들은 우리의 인격을 의심하게 된다.’

10년도 더 된 나의 옛 노트에서 발견한 유진 프라이스 Eugene Price 의 이 말이 오늘따라 더 가까이 들린다.

나이 들수록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추억의 노예가 되기 쉽고, 추억을 밑거름으로 전진하기보다는 그대로 그 안에 갇혀 비현실적이 될 때가 많은 것 같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추억이야말로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라면 추억을 잘 가꾸고 다스리는 일 또한 그리 만만치 않다.

 

11

매일 오후 두 시경이면 어김없이 자전거를 타고 우리 수녀원에 오는 집배원 아저씨를 위해 벌써 몇 년째 한결같은 정성으로 간식을 준비하며, 그분을 가족처럼 친절하게 맞아주시는 단아한 칠순 수녀님의 모습은 늘 아름답고 따뜻하다. 땅에 떨어진 동백꽃잎들을 객실의 유리접시나 재떨이에 띄워놓기도 하고, 솔방울이나 낙엽들을 주워다 장식할 줄도 아시는 다정하고 해맑은 할머니 수녀님은 모든 손님들을 늘 기쁘게 하시니 우리 객실의 ‘고운 해님’임에 틀림없다.

 

12

아침에 일어나서 신발을 신으려고 현관에 나가면 누군가 어느새 내가 신는 쪽으로 가지런히 돌려 놓은 정성에 고마움을 느끼며 나도 다른 이의 신발을 돌려 놓게 된다.

‘따뜻이 안아줄 줄 안다. 내 발을

너는 보잘것도 없이

추운 뜨락에서 잠들지만

나의 무딘 발에 네게로 불쑥 찾아들었을 땐

너는 어김없이 그랬다

어머니가 안아주시듯

그렇게 내 발을 포옥 껴안았다.’

권영상 님의 <신발>이란 동시를 외우며 신발을 신노라면 한결 더 정답고 따뜻해 보이는 한 켤레의 나의 신발.

 

13

오늘은 미국 켄터키, 트라피스트 수도원의 하롤드 Harold 수사님의 글을 받았다. 하얀 수도복에 검은 성의를 걸쳐 펭귄새의 모습을 연상케도 했던 그분이 지난 겨울, 여행 중에 잠시 한국에 들렀을 때 나는 통도사의 어느 암자로 그를 안내했었는데 그곳 ㅂ 스님의 환대가 너무 인상적이어서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눈이 푸른 외국인과 말이 통하지 않는데도 그 스님은 처음 보는 손님의 마음을 다 헤아리는 듯했다. 손님이 작은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신기해 하자 즉시 고운 한지에 그것을 선물로 싸 주었고, 사진을 찍고 싶은데 필름이 없어 안타까워하는 것을 알아채고는 즉시 방에 들어가 스님의 카메라 안에 들어 있는 필름을 꺼내 ‘다행히 아직 쓰지 않았다’며 건네 주었다.

손님맞이를 그저 적당히, 소극적으로 하지 않고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는 ㅂ 스님의 모습에서 나는 늘 ‘깨어 살아 열려 있는’ 구도자의 민감성을 읽었다.

 

14

만 25년 만에 만난 나의 국민학교 동창생이 대뜸 ‘얘, 난 먼 나라에서도 네가 쓴 글을 종종 읽어보았는데 전부 다 내가 쓴 것으로 착각이 들곤 한단다. 괜찮지?’ 하며 어릴 때와 변함없이 밝고 맑게 웃는 모습이 아름답고 다정했다. ‘너도 다 잊어버렸지? – 별을 보며 주고 받던 고운 이야기 깨어보니 꿈이었구나 – 이건 네가 국민학교 때 내게 적어주었던 최초의 글이야’ 하며 반가움에 눈물 글썽이던 벗 현숙. 내게는 필요도 없는 알록달록한 고운 돌멩이 액세서리(팔찌)를 상징적으로 받으라며 데를 쓰던 친구. 내가 즐겨 싸 가던 도시락 반찬 중 감자볶음은 자기가 더 많이 먹었다면서 깔깔대던 그의 상냥한 웃음과 목소리에서 나는 초록으로 찰랑이는 동심의 노래를 들었다. 어릴 적 동무들에 대한 나의 그리움이 치자꽃처럼 향기롭게 피어나는 소리를 들었다.

 

15

오늘 아침, 미사 때 들은 ㅌ 수녀님의 플룻 연주는 아름다웠다. 오늘처럼 비 오는 여름날은 목관악기 소리를 들으며 명상에 잠기어도 좋고, 요한 스트라우스의 왈츠 곡을 들으며 춤추는 마음이 되어도 좋으리라. 형편상 자주 듣는 편이 못되지만 아름다움 음악은 그대로 아름다운 기도이다.

 

 

<1993>

 

 

 

 

아름다운 순간들 3

 

16

생일을 맞는 이에게 주려고 오늘은 분꽃씨를 따서 고운 봉지에 담아두었다. 우리가 서로 꽃씨를 선물로 주고받고, 꽃이 피고 나면 그 꽃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음은 얼마나 아름답고 기쁜 일인지!

지난 봄에 내가 선물로 받아 뿌린 나팔꽃씨에서 꽃잎이 비로드처럼 부드러운 붉은 꽃, 보라색 끊임없이 피어올라 날마다 새로운 아침을 열고 있다.

 

17

기차 안에서 바라보는 우리나라 산천은 아무리 보아도 싫증나지 않는다. 여행은 역시 기차 여행이 제일 좋은 것 같다. ‘…나는 가고 있다. 모든 고요한 시골 지방들을 통과하며…’ ‘신 神이여, 나를 여기까지 싣고 온 이 기차를 축복하소서’ 라고 노래했던 조이스 킬머 Joyce Kilmer 의 시구 시구가 문득 떠오르던 날. 그러고 보니 나는 수없이 기차를 타고 다니면서도 나를 싣고 다닌 기차에 대해 별로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지 않았던 것 같아 기차역에서 내리며 조금 부끄러웠다.

 

18

오늘은 ㅂ수녀님을 따라 잠시 자갈치 시장엘 다녀왔다. 오랜만에 가서 본 억센 사투리의 생선장수 아줌마들, 아직 바다를 그러워하는 듯 펄펄 살아 뛰는 많은 종류의 생선들, 장을 보러 나온 이들의 건강한 웃음과 목소리들에서 내가 느끼는 삶의 진한 향기와 진지함 같은 것.

나처럼 너무 고요한 수도원 분위기 속에서만 살다보면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이 흘리는 뜨거운 땀과 눈물, 깊디깊은 고뇌를 잊어버리고 ‘작’ 안으로만 잠겨가는 달팽이 같은 삶을 살기 쉽다. 그러기에 가끔 일부러라도 시장터에 나가보고, 만원전철을 타보며 인간의 냄새를 가까이 맡음으로써 ‘세상을 떠났지만, 세상을 위한 기도를 결코 잊지 않는’ 수도자로서의 몫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19

목소리도 무척 아름답지만 생긴 모습 또한 아름다운 미국의 소프라노 가수 캐스린 배틀 Katheleen Battle의 독창회를 비디오 영상으로 보았는데, 그의 노래하는 표정, 걸음걸이, 청중에게 답하는 웃음과 인사법 등이 너무도 훌륭했다. 노래마다에 혼이 살아 숨쉬는 것 같은 그의 음성과 아름다운 모습에 매료되어 며칠 동안 내내 그의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많은 이에게 기쁨을 안겨주는 그의 오늘이 있기까지의 숨은 노력, 숨은 아픔도 떠올려 보았다. 아름다움의 힘, 아름다움의 여운, 아름다움의 공유 公有.

우리가 미처 눈이 뜨이지 못해 발견 못하는, 묻혀 있는 아름다움도 세상엔 너무 많은 것 같다. 이기심과 욕심을 덜어내고 조금만 더 여유를 지니면 아직 작은 것에서도 아름다움과 기쁨을 발견할 수 있을 텐데…

 

20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분다. 조카 향이가 어느 날 적어 보낸 바람에 대한 고운 생각을 다시 읽어본다.

<모양도 없고, 냄새도 없고, 색깔도 없으니 분명 ‘없는’ 것인데, 우리는 바람이 존재함을 안다. 마주한 친구의 얼굴 사이로, 빛나는 노을 사이로, 해 뜨는 아침 사이로… 바람은 우리들 세계의 공간이란 공간은 모두 메꾸며 빈자리에서 빈자리로 날아다닌다. 바람소리를 들으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 우리의 마음은 아름다운 애수에 흠뻑 젖는다. 때로는 나뭇가지를 잡아 흔들며, 때로는 텅 빈 운동장을 돌며, 바람은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이 아름다운 바람을 볼 수 있으려면 오히려 눈을 감아야 함을 우리에게 끊임없이 속삭이고 있다.>

 

21

소설가 ㅂ 선생님의 어린 손녀인 지상이가 엄마, 이모와 같이 우리 수녀원에 놀러 왔는데, 유난히 바다를 좋아하는 만 네 살 된 어린 소녀와 대화가 되어 기뻤다. 내가 아끼는 커다란 소라 껍질을 주며 파도소리가 들리느냐고 했더니 너무 잘 들린다던 그 애의 맑은 눈빛이 잊혀지지 않는다.

이번 여름, 큰 파도에 휩쓸려 목숨을 잃은 7명의 젊은 수녀들을 생각하며 ‘난 요새 파도가 미워졌어’ 하고 말했더니 ‘응, 그래? 난 파도가 좋은데. 안 미운데…’ 하며 밝게 웃던 아이. 어린이의 천진함 앞에선 누구라도 착한 마음이 될 수밖에 없다.

 

 

<1993>

 

 

 

기도 일기 1

새해를 맞으며

 

1

아침에 까치를 보면 더욱 반갑다. 새들은 우리 집이 좋은지 사계절 내내 날아와서 우리의 기도 소리를 엿듣기도 하고, 우리가 일하는 옆에 앉아 놀기도 하고, 종종걸음으로 먹을 것을 찾아다니기도 한다. 배가 볼록하게 나오고 꼬리가 긴 까치들은 언제 보아도 즐겁고, 검은 옷에 흰 수건을 쓴 수련 수녀들의 모습이 떠올라 더욱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2

이번 성탄에 그라우 Grau의 미사곡을 부르기 위해 연습을 꽤 많이 했다. 남성의 목소리가 빠진 여성들만의 3부 합창은 그 나름대로 청아하고 담백한 아름다움이 있다. 합창 연습을 할 때처럼 도 한 해를 살자. 음 音이 틀리면 다시 시작할 수 잇는 용기로, 다른 파트의 소리를 들으면서도 방해를 받지 않고 자기의 음을 내는 분별과 확신으로, 혼자만의 목소리가 너무 튀어나오지 않게 유의하면서도 기죽지 말고 떳떳하게 화음을 이루도록 애쓰는 자세로 매일을 살자.

 

3

요즘은 꿈속에서도 길을 떠나는 나 자신의 모습을 부쩍 많이 보게 된다. 그러나 길의 방향도, 동행자도, 꼭 지녀야 할 물건들도 잃어버려 당황하고 안타까울 때가 많은데, 때로는 내가 누구인지조차 잊어버릴 때가 있어 놀라곤 한다. 올 한해도 나를 찾는 여행을, 사랑 때문에 지지지 않는 내면의 여행을 계속해야겠다.

 

4

새로운 시간이여, 어서 오세요. 누군가에게 정성껏 선물을 포장해서 리본을 달 때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나는 그대를 기다립니다. 누군가에게 한 송이 꽃을 건네줄 때처럼 환히 열려진 설레임으로 그대를 맞이합니다. 그대가 연주하는 플룻 곡을 들으며 항상 새롭게 태어나는 이 기쁨을 나는 행복이라 부릅니다.

 

5

새해엔 연하장 대신 장미를 보내신다구요? 복을 빈다는 말도, 사랑한다는 말도 너무 자주 하면 향기가 사라질 것 같아 꽃봉오리 속에 숨겨온 그 마음을 읽습니다. 가시를 지닌 장미처럼 삶의 모든 아픔 속에서도 고운 꽃을 피워내라는 한 송이의 기도와 격려로 그대의 꽃 선물을 받아들입니다.

 

6

살아 있기에 늘 문이 열려 있는 내 마음의 집엔 늘 손님이 많아 행복하다. 슬픔, 기쁨, 절망, 희망, 고뇌, 환희…. 아침부터 밤까지 나는 이들을 편애 없이 다루는 엄마 같기도 하고, 때로는 이들이 나를 가르치는 교사 같기도 하다. 한시도 비울 수 없는 내 마음의 집에 오늘도 향기로운 차 다 한잔 달여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내 마음의 집.

 

7

어떤 이의 한 마디 말이 내 기분을 언짢게 한다고 해서 즉시 민감한 반응을 보이거나, 이로 인해 하루 종일 우울해 있거나 다른 이에게 감정 표현을 너무 쉽게 하는 것 등은 어리석은 일이라 생각된다.

‘내 자신에 대해 말할수록 더욱 덕성을 읽게 된다는 것은 진실이다. 비록 가장 순결한 듯이 보이는 말일지라도 말 속에서 허영이 튀어나오는 수가 있다. 사람들과 동료들과 웃어른들 사이에서 자신에 대한 말은 많이 하지 않는 게 좋다. 말을 하게 된다면 꼭 필요하고 알맞은 이야기만 해야 한다.’

20세기의 성자로 불리는 고 故 요한 23세 교황의 <영혼의 일기>에 나오는 이 구절을 깊이 새겨듣자.

 

8

올해도 하얀 눈 소에 제일 먼저 매화가 피겠지. 눈 속에 피어 더욱 귀해 보이는 꽃. ‘웃음도 눈물도 너무 헤프지 않게!’ 꽃도 피우기 전에 매화나무는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9

오랜만에 내리는 눈 雪 에게 나도 오랜만에 말해야지.

“산천에, 내 마음에 희게희게 쌓이렴. 허물을 덮어주는 사랑이 되렴. 이유를 묻지 말고 그냥그냥 내리는 환한 축복이 되렴. 아이가 되어 눈밭에 뒹굴고 싶은 내 마음에도 하얀 레이스를 달아 주렴. 모든 것을 용서하는 사랑이 되렴.”

 

 

<1993>

 

 

 

기도 일기 2

봄이 오는 길목에서

 

1

하얀 눈 밑에서도 푸른 보리가 자라듯

삶의 온갖 아픔 속에서도

내 마음엔 조금씩

푸른 보리가 자라고 있었구나

꽃을 피우고 싶어

온몸이 가려운 매화 가지에도

아침부터 우리집 뜰 안을 서성이는

가치의 가벼운 발걸음과 긴 꼬리에도

봄이 움직이고 있구나

 

아직 잔설이 녹지 않은

내 마음의 바위 틈에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일어서는 봄과 함께

내가 일어서는 봄 아침

내가 사는 세상과

내가 보는 사람들이

모두 새롭고 소중하여

고마움의 꽃망울이 터지는 봄

봄은 겨울에도 숨어서

나를 키우고 있었구나

 

2

남쪽의 봄은 빨리 온다지만 어느새 곳곳에 봄이 일어서고 있다. 지금쯤 나무들은 꽃을 피우고 싶어 어쩔 줄 모르고 몸살을 하고, 나도 간간이 잠을 설치며 봄앓이를 하고 있네.

 

3

아무리 고단하고 힘들어서 못 일어날 것 같다가도 잠시 쉬고 나서 다시 움직이면 새 힘을 얻는 것처럼 겨울 뒤에 오는 봄은 깨어남, 일어섬, 움직임의 계절이다. ‘잠에서 깨어나세요’ ‘일어나 움직이세요’ 라고 봄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는 소녀처럼 살짝 다가와서 겨울잠 속에 안주하려는 나를 흔들어댄다.

 

4

박재삼 시인의 <무언 無言으로 오는 봄>을 몇 번이나 되풀이해 읽으며 봄을 맞는다.

 

‘뭐라고 말을 한다는 것은

천지신명 天地神明 께 쑥스럽지 않느냐

참된 것은 그저 묵묵히 있을 뿐

호들갑이라고는 전연 없네

말을 잘함으로써 우선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그 무지무지한

추위를 넘기고

사방에 봄빛이 깔리고 있는데

할말이 가장 많은 듯한

그것을 그냥

눈부시게 아름답게만 치르는

이 엄청난 비밀을

곰곰이 느껴보게나’

 

특히 ‘참된 것은 그저 묵묵히 있을 뿐 호들갑이라고는 전연 없네’라는 말은 가슴 깊이 머물러 떠나지 않는다.

 

5

어른도 어린이가 되고 싶은 동심 童心의 계절인 봄. 수녀원 언덕길의 꽃봉오리들을 보고 ‘꽃들이 기도 손을 하고 있어요’라고 말하던 우리 유치원 어린이의 시적 詩的인 말도 새롭고, 여행 중 기차 안에서 나와 잠시 사귀었을 뿐인데도 먼저 내릴 때는 ‘잘 가 응? 나 먼저 갈게’ 하며 아쉬운 듯 정답게 손을 흔들던 뺨이 붉은 그 어린이도 문득 보고 싶다.

 

 

6

많은 꽃술을 사랑의 인장처럼 달고 꽃받침을 받친 채로 피어 있는 다섯 개의 매화잎들은 사랑스럽다. 나도 이 봄에 매화 같은 몇송이의 시를 피워내고 싶지만 이미 품어놓은 시상 詩想 들을 제대로 낳아 키우는 일 도한 수비지 않음을 갈수록 절감한다. ‘시만’ 쓰면서 생활하는 것보다 ‘시도’ 쓰면서 생활하는 것이 지금의 나에겐 더 바람직한 일이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하곤 한다.

 

7

수도복 위에도 부담 없이 입을 수 있는 앞치마 하나를 선물 받았다. 언제나 앞치마를 입으면 더욱 열려 있고, 돕고 싶은 마음, 준비 된 마음이 되는 것 같아 기쁘다. 나비 무늬 가득한 앞 치마를 입고 저만치서 달려오는 봄을 맞으러 나도 하늘빛 앞치마를 입고 뛰어가야겠다.

 

8

먼 나라에서 내 어릴 적의 친구가 보내준 12개의 꽃씨 봉투. 이름과 모양이 각기 다른 꽃봉투를 흔들 때마다 조금씩 특이한 소리가 나는 것도 즐겁고, 극히 작고 가벼운 씨앗들이 어느 날 피워낼 아름다움 꽃들을 미리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마음 가득하다. 꽃씨를 선물로 보낸 그 친구에게 나도 기도의 꽃씨 한톨 날려 보내야겠다.

 

<1993>

 

 

 

기도 일기 3

한 송이 꽃이렸더니

 

1

목 타는 가뭄 중에 맛있게 단물 든 과일처럼 길고 긴 고통의 메마름 끝에 비로소 단물 든 나의 사랑이여. 언제 거두어 들일지도 모르면서 벅찬 꿈으로 마음의 속뜰에 심어두었던 내 오래 도니 자주 나무 빛 사랑이여. 잘 익은 너를 먹으며 한여름 내내 기쁨을 꽃피움이여.

<1982. 7. 16>

 

2

아침마다 일어나 새로운 해방절을 맞는 우리의 꽃, 무궁화여. 아픔의 꽃술 길게 물고 하늘을 향해 섰는 한민족의 꽃이여. 36년 짓밟혀온 우리의 한 恨과 설움을 너는 알고 있어서, 우리 탓도 아니게 두 동강이 나버린 38선의 비극을 알고 있어서 차라리 입다문 거지? 향기도 감춘 거지? 그리고 좋은 일이 있어도 헤프게 웃지 않는 슬기를 배운 거지? 오늘도 의연하게 버티고 서서 마음으로 모든 것을 헤아리는 꽃. 붉은 가슴마다 태극기를 꽂으며 오늘도 자유를 노래하는 겨레의 꽃, 무궁화여.

<1982. 8. 15>

 

3

당신께 드리는 나의 웃음 소리가 색색의 빛깔로 피어난 채송화 꽃밭에서 환한 햇살 받으며 환해지는 마음. 키가 작아도 즐겁기만 한 채송화 무리처럼 나도 다부지게 피렵니다. 우리들의 추억이 한데 모여 앉은 듯한 채송화 꽃밭에서 나는 오늘도 ‘작은 자’의 행복을 누립니다.

<1982. 9. 15>

 

4

아침마다 바위 틈에 조용히 숨어 피는 푸른 색의 나팔꽃. 그 애는 왜 숨어서만 피고 싶을까. 시끄러운 세상이라 조용히 숨어서 나팔을 불고 싶은 게지. 천사들의 노랫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쓰레기를 버리고 오는 길에 무심히 만난 한 송이의 푸른 나팔꽃으로 나의 아침은 더없이 행복했다.

<1982. 9. 29>

 

5

당신은 어디에 숨고 날더러 꽃이 되라 하십니까. 어둠 속 좁은 땅 비집고 나와 겨우 눈을 뜨는 한 송이 꽃이렸더니 이제는 또 알지도 못하는 곳으로 떠나라 하십니까. 당신은 어디에 숨고…

<1982. 10.5>

 

6

너를 생각하면 과꽃으로 물드는 마음. 나를 바라보던 너의 그윽한 눈빛이 자꾸 살아와서 절로 눈이 감겨지는 고운 날. 겨울도 아닌데 오늘은 춥다. 네가 보고 싶다. 향기로 말을 하는 꽃이 되고 싶다. 살아서 꽃이 될 수 없으면 하얀 종이 꽃이라도 되고 싶다. 너를 위해서…

<1982. 10. 12>

 

7

장미꽃 사이사이에 하얀 점처럼 어우러져 있는 안개꽃의 아름다움. 자기의 개성도 잃지 않으면서 고운 장미들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안개꽃의 겸허함을 배우고 싶습니다. 앞으로의 내 남은 날들을 아낌없이 ‘새로운 노래’로 봉헌하게 하소서. 너무 작은 노래 밖엔 부를 줄 모르는 저이오나 당신 안에 오늘도 힘을 얻습니다.  지금 이 시간도 제가 살아 있음을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좀더 감사할 이유, 기뻐할 이유를 찾아내지 못하고 무심히 맛없이 살아왔던 저를 용서하소서. 오늘도 당신 앞에 한 그루 순명의 나무이고자 합니다. 다시 크는 나무이고자 합니다.

<1983. 5. 29>

 

8

이 가을, 나는 하늘 저 꼭대기로 올라고 우리집의 큰 대추나, 밤나무, 감나무를 흔들어내는 바람이 되고 싶다. 슬픈 사람들을 위로하고, 쓸쓸한 사람들을 달래주는 넉넉한 따뜻함은 지니지 못했어도 그들에게 가만가만 하느님의 음성을 들려주고픈 조용한 바람이라도 되고 싶다.

<1983. 9.10>

 

9

종종 아름다운 것들을 만나면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눈물이 난다. 강의가 하느님 중심적인 것일 때도 그렇고, 사랑에 대한 어떤 이야기가 감동적일 때도 그렇고, 또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놓은 이의 삶을 대할 때도 그러하다. 오늘 점심 식사 후엔 혼자서 천천히 밖의 정원을 거닐었다. 수많은 히말라야송들 중에 꼭 한 그루가 열매를 맺는데 큰 열매가 바람에 놀라 땅에 떨어져 누운 모습은 꼭 장미 모양을 이루고 있어서 보는 이마다 신기해 한다. 우리 방에서 내다보이는 빈 밭에선 웬  작은 새 한 마리가 모이를 찾고 있었는데 꼬리가 길고 가슴 빛이 노란 그 새가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오늘 아치, ‘침묵’에 대해서 배웠기 때문인지 ‘침묵’이란 단어가 겨울의 빈 밭을 보며 제일 먼저 떠올랐다.

<1986. 1. 18>

 

10

봉오리로 맺혀 있던 글라디올러스꽃들이 활짝 문을 열고 일제히 피어났다. 봉오리로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꽃들이 활짝 피어나 제 모습을 마음껏 보여주는 것은 다시금 신의 창조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하루 종일 꽃이 피는 과정만 묵상해도 즐거울 것 같은 마음.

<1986. 5. 19>

 

11

산사 山寺에서 저녁을 먹고 그곳 스님과 나를 안내해 준 L양과 달맞이꽃이 피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바람결에 꽃잎이 차츰 벌어지는 모양, 꽃이 필 때 꽃받침대가 꽃을 받쳐주려고 꽃 밑으로 재빨리 질서 있게 내려앉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고 신비했다.

<1986. 7. 3>

 

12

시원한 수국꽃들이 하늘빛 웃음을 가득 머금고 있다. 내 마음도 둥글게 피어나는 듯하다. 아름다운 꽃, 여럿이 어울려 한 덩어리를 이룬 꽃잎들이 얼마나 신기한자. 수국을 주제로 시를 한 편 쓰고 싶다.

<1986. 7. 6>

 

13

모처럼 환히 개인 날. 아침 식사 후엔 흰 옷을 빨면서 바로 앞의 밤나무도 바라보고 새소리도 들었다. 어린 밤송이가 잔뜩 달려 있는 그 밤나무는 우리 식탁에서도 늘 바라볼 수 있어 정이 들었다. 모든 열매들이 어릴 때의 모습은 참으로 앙징스럽다

<1986. 7. 18>

 

14

엉겅퀴와 강아지풀이 내 책상 위에서 웃고 있다. 산에 오르면서부터는 나뭇잎 한 장도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산에서 종종 풀꽃을 따는 것은 매우 미안한 일이지만 그래도 방안에서 숲을 느끼고 싶어 몇 개씩 따오기도 하는 내 마음을 그들도 이해해 주겠지? 오늘 새벽 산에서 마시는 바람의 맛이 얼마나 감미롭게 좋았는지.

 

풀잎이 숨을 쉰다.

나무가 숨을 쉰다.

내가 숨을 쉰다.

 

우리는 산에서 하나 되어

산과 크신 하느님을 사랑한다.

보이지 않게

그러나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숨 쉬고 또 숨 쉬는

푸름이여, 생명이여.

 

<1986. 8. 13>

 

15

작년까지만 해도 몇 송이 안 되던 백합들이 올해는 잔디밭 가장자리로 수백 송이의 꽃들을 피워내고 있다. 조용히 고개 숙인 꽃봉오리들은 그대로 기도하는 수도자의 겸허함 모습을 연상케 한다. 꽃이 핀 것도 있고, 입을 다문 것도 있는데 모두 다 아름답다. 마음이 착잡할 때 꽃을 바라보는 것은 기쁜 일이다. 꽃은 늘 침묵으로써 깊은 말을 전해 준다. 참을성, 개방성, 적응성에대하여—.

<1986. 8. 18>

 

 

<1986>

 

 

 

사랑의 빵을 먹으며

피정 일기 중에서

 

1

사랑하는 제자 세 명을 데리고 타볼산에 오르셨던 주님,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암시하시며 제자들에게 당신의 그 ‘영광스런 변모’에 대해 침묵을 요구하신 주님, 매일 새벽 밀떡 속에서 변화되시어 제게 오시는 당신의 그 ‘거룩한 변모’를 체험하면서도 타볼산의 그 제자들처럼 좀더 뜨겁게 감동할 줄 모르는 저를 용서하십시오.

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고 영광의 기쁨에 취했던 그 제자들처럼 저도 당신을 따르는 데 있어 늘 좋은 것 기쁜 것, 영광스러운 것만 선택하고 거기에 머물러 있고 싶어하는 자인 것 같습니다. 주님, 제가 당신을 사랑하고 선택한다는 것은 당신의 고통까지 선택하는 것이라는 점을 더 깊이 깨우치고 알아듣게 도와주소서.

 

2

요즘은 새벽에 눈을 뜰 때마다 또 한 번의 부활 축제를 맞이하는 듯 새롭고 기쁜 마음이 됩니다. 성당에서 묵상 중에 듣는 시계바늘 재깍 이는 소리조차도 생명감을 느끼게 해줍니다. 삶이란 일회적인 것이며, 한 번 가버린 순간들이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놀라운지요. 살아 있는 시간들을 정말 함부로 낭비해서는 안 되겠기에 마음이 다급해지기도 합니다.

이제 저는 더 이상 자신만의 성 안에 갇혀 살아서는 안 된다는 거을 깨우쳐주시는 주님, 타볼산에서 제자들이 당신께 엎드려 절한 것처럼 저도 당신께 엎드려 절하겠습니다. 당신이 하느님이심을, 저의 구원자이심을 굳게 믿습니다. 세상 끝날 때까지 당신이 함께 해주시기에, 그리고 사랑의 성령을 계속 보내주시기에 감히 저 같은 ‘작은 자’도 당신의 증인이 되어 복음을 선포하는 일에 한몫을 다할 수 있음을 확신합니다. 저 또한 당신의 사랑 받던 그 제자들처럼 당신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믿고 전하며 당신이 얼마나 좋으신 분인가를 노래하렵니다. 살아 있는 동안 매일의 생활에서 저는 믿음과 희망과 사랑, 기쁨과 평화와 인내, 온유와 겸손과 선생의 증인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3

사랑하는 주님, 오늘은 당신 가슴에 기대어 당신의 말씀을 들었다는 사도 요한처럼 저도 당신 곁에 바짝 다가앉아서 당신의 그 모습을 살펴보렵니다. 당신이 지난 날 제게 베풀어주신 무한한 은총과 사랑을 다시 기억하며, 붉은 포도주가 넘쳐흐르는 저의 술잔에 말로는 다 표현 못할 저의 참회의 마음을 눈물로 담겠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번번이 당신을 배반하고도 “저는 아니겠지요?” 라고 발뺌만 하려 드는 뻔뻔함을, 당신의 기 깊은 말씀을 절반도 채 못 알아듣고 동문서답하는 이 죄인을 용서하십시오. 오늘은 “주님,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까지도 씻어주십시오”라고 당신께 청을 드린 사도 베드로처럼 저도 당신께 제 때묻은 손과 발과 머리를 드리오니 씻어주소서.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않으면 너는 이제 나와 아무 상관도 없게 된다” 고 말씀하시는 주님, 당신이 씻어주신 깨끗한 손으로 저는 당신의 거룩한 두 발을 씻어드리게 하소서. 떠나시는 당신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왜 이리 없습니까. 왜 이리 무력한 자로 남아 있어야 합니까.

“정말 잘 들어두어라.” 늘 애절하게 하시는 그 말씀을 잘 듣고 살지 못했음이 오늘은 뼈에 사무치는 서러움으로 저를 아프게 합니다. 제게 주신 극진한 사랑을 돌려받지 못하고 번번이 상처만 받으신 사랑의 주님, 당신이 떼어 주신 사랑의 빵을 먹으며 당신이 저를 위해 행하신 숱한 일과 놀라운 기적들을 생각했습니다. 빵처럼 제 마음에 부풀어오르는 당신의 큰 사랑을 느꼈습니다. 하오나 주님, 당신은 대체 누구십니까? 누구시길래 그토록 큰 사랑으로 저를 늘 이렇듯 당화하게 하십니까? 당신이 너무 큰 사랑을 베풀어주실수록 저는 더욱 사랑에서 멀리 있는 듯한 작은 자의 외로움을 맛봅니다. 오, 주님, 오늘은 당신이 베푸신 최후의 만찬을 기념하는 날, 저의 이럼 마음을 기도로 바치오니 받아주소서. 사랑이 부족해서 가난한 저이오나 저의 전 존재를 봉헌하오니 받아주소서.

 

4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듯이 지금은 제 마음의 성으로 조용히 들어오시는 주님, 아무래도 전 당신이 오시는 길에 깔아드릴 것이 마땅치 않아 부끄럽습니다만, 못나고 초라한 제 마음 그대로를 깔아드리렵니다. 오늘 당신의 눈은 제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따라와. 난 네가 필요해. 고통을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네게 견딜 힘을 주겠다” 라고.

주님, 오늘은 몹시 고단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또 새 힘을 주셨기에 감사드립니다.

 

5

풍랑을 잔잔히 하신 나의 주님, 제 스스로 감당키 어려운 풍랑이 제 마음의 바다에 뜬 믿음의 배를 파산시키려 할 때, 당신이 그 풍랑을 가라앉혀주소서. 그러면 제가 살겠나이다.

가까이 오시는 당신을 제가 알아뵙지 못하고 겁을 먹고 있을 때, “나다. 안심하여라. 겁낼 것 없다.” 이렇게 말씀하여 주소서. 그러면 제가 마음 놓고 삶의 거친 파도 위를 걸어가겠나이다.

종종 한적한 곳으로 피해 몸을 숨기시고 기도하신 주님, 제가 사람들과 일 사이에서 마음의 시달림을 받을 때 “잠시 나와 함께 외딴 곳으로 가자”고 말씀하여 주소서. 그러면 제가 다른 일 제쳐두고 당신과 함께 기도의 산으로 오르겠나이다.

 

6

주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지금 곧 이 세상을 떠난다 하더라도 이것이 가장 진실한 저의 기도임을 다시 알게 해주셨습니다. “주님, 당신을 믿습니다.” 그저 상투적으로 이렇게 밖에는 기도할 줄 몰랐던 저의 메마름이 슬퍼져서 오늘은 실컷 울었습니다.

주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저의 남은 날들을 오직 이렇게만 기도하게 하옵소서. 저는 이제사 비로소 사랑이신 당신을 사랑으로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주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 말 속엔 끊임없는 감사와 찬미의 기쁨도, 마르지 않는 참회의 눈물도 모두 포함되어 있음을 당신은 아십니다.

주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루의 첫 시작과 마지막 기도는 오직 이것으로 충분하게 하옵소서.

 

<1989>

 

 

 

 

어느 날의 단상들

 

 

새에게

 

살아갈수록 가볍고 싶은데 살아갈수록 내가 무겁구나. 얼굴은 숨기고서 노래로만 노래로만 말을 하는 작은 새야, 아직도 사랑과 눈물이 부족해서 나는 너처럼 빼어난 시인일 수가 없나 보다.

내가 미련해서 놓쳐버린 시어들도 네가 대신 노래로 불러주겠지? 나도 언젠가는 너처럼 가벼울 수 있도록 숨어서 숨어서 기도해 주겠니?

 

 

사과

 

까만 씨앗에 박혀 있는 햇빛과 바람의 언어를 캐고 싶어. 가슴에 묻어 오는 흙내음을 맡고 싶어. 사과는 언제 만나도 싫증나지 않는 기쁨의 둥근 얼굴. 사과를 보면 정다운 친구 하나 꼭 부르고 싶어. 발갛게 물든 추억의 고운 껍질을 까듯, 잘 익은 사과를 깎아 친구에게 건네주고 싶어. 언제 먹어도 물리지 않는 사근사근하고  신선한 행복의 맛.

 

 

 

세월이 가도 마음은 늙지 않아 그대로인 집. 집은 낡았어도 정은 새롭네. 대문을 열면 아버지의 기침소리가 들리고, 빨래를 너는 어머니의 하얀 무명 앞치마에 머무는 햇살.

어린 동생이 웃음소리가 채송화로 피어나고, 시를 읽는 언니의 목소리가 도라지 꽃빛으로 살아오는 꽃밭에 가벼운 시처럼 내려앉는 한마리의 흰 나비.

팽이를 치는 오빠 옆에서 고무줄 넘기를 하던 단발머리의 나, 그리고 오래 잊고 있던 나의 노랫소리도 들려오는 우리 집 앞마당.

팽이처럼 돌아가는 어제의 기억과 고무줄처럼 팽팽한 오늘의 시간이 서로 손을 잡고 새로운 기쁨을 탄생시키네.

 

 

베개

 

밤마다 나의 꿈을 눕히는 엄마의 무릎 같은 베개. 아무에게도 이야기 못한 내 은밀한 기쁨과 고뇌의 무게를 참을성 있게 받쳐주는 푹신한 쉼터.

베갯잇의 꽃무늬도 꽃밭으로 춤추며 살아 오는 밤. 작은 베개 하나로 온 세상을 베듯 눈을 감으면 환히 열리는 시의 나라.

 

 

무명성

 

이름 없는 풀, 이름 없는 새, 이름 없는 순교자, 이름이 없음으로 하여 왠지 더욱 가깝고 순결하게 느껴지는 것들.

사람들 사이, 사물들 사이 뽐내는 이름들이 하도 많아, 더욱 돋보이는 하얀 무명성. 세상이라는 이 큰 산에서 이름이 있어도 없는 것처럼 담담할 순 없는 것일까. 바위 틈에 숨어 핀 이름 없는 들꽃처럼 그렇게 조용히 비켜 살 수는 정말 없는 것일까.

 

 

꽃멀미

 

 

 

시와 함께 걷는 길

 

우정 일기 1

 

우정 일기 2

 

 

책을 읽는 기쁨 1 

독서 일기에서

 

1

“아름다운 나를 다시 읽어주세요.”

“새로운 나를 어서 읽어주세요.”

 

조그만 서가에 꽂힌 나의 책들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로 먼저 말을 건네오네.

 

“그래, 알았어. 미안해.”

“내가 돌보지 않아 답답하지?”

보채는 책들에게 대답하며

나도 마음이 급해진다.

 

모든 일 비켜두고

책 속으로 길을 떠나면

내 눈이 밝아진다.

기쁨이 일어선다.

 

 

2

어려서부터 늘상 ‘책벌레’라는 별명이 따라다니고 때로는 어른들의 책까지 앞당겨 본다 하여 꾸중도 많이 들었던 내가 처음에 수녀원에 와서 가장 힘들었던 일 중의 하나는 규칙적인 생활로 인해 아무 때나 책을 읽을 수 없는 것. 내 마음대로 책을 골라 볼 수 없는 것. 그리고 원하는 만큼 책을 소유할 수 없는 것 등이었다. 이젠 아무리 많은 책들이 생겨도 내게 꼭 필요한 것 외엔 다 도서실로 보내고도 갈등을 느끼 지 않을 만큼 자유로워진 셈이지만, 이상하게도 가을이 되면 책 욕심이 고개를 들어 도서실의 책들을 다 내 방에 틀어놓고 시를 쓰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웃어보기도 한다. 서가라 이름하기엔 극히 작은 나의 책장에는 <성서> <논어> <도덕경> 외에도 타고르의 <기탄잘리>, 롱펠로우의 <애반젤린>, 박목월님과 김현승님을 비롯한 여러 시인의 시집들, 린드버그의 <바다의 선물>, 정채봉의 <그대 뒷모습>, 법정 스님의 <무소유>와 피천득의 <수필>, 그리고 몇 권의 동시집, 신화집, 우화집, 그 밖의 종교서적들과 몇 권의 논문집이 있다. 침대 밑에도, 베개 밑에도 나는 늘 내가 읽고 보는 책들을 넣어두곤 하는데 좋은 책들이 숨쉬는 이 방이 나에겐 늘 명상의 쉼터이면, 기쁨의 보석을 캐는 보물섬이다.

 

 

3

오늘은 권영상님의 동시집 <밥풀>을 읽었다. 그의 동시들은 늘 몇 번을 되풀이해 읽을 만큼 매력이 있다. 이 시집 안엔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그의 <단추구멍>이란 시를 다시 읽어본다.

 

 

단추가 떨어져나간 뒤에야

처음으로 단추구멍을 봤다.

매일 거울 앞에 서서 옷을 입으면서도

단추 뒤에 감추어지는

단추구멍을 본 적이 없는데

단추가 떨어져나간 옷을 입고

돌아온 때에야

처음으로 단추구멍을 봤다.

늘 단추 뒤에 가리어만 살아

부끄럼을 잘 타는 단추구멍

그 빈 단추구멍 하나가

아무일 없이 다니던 이 길을

이토록 부끄럽게 할 줄이야.

 

 

4

오하시 시즈코 大橋 鎭子, 일본의 <생활수첩>발행인이라고 소개된 이 작가의 <아침 햇살로 다가오는 행복>이란 책을 단숨에 다 읽었다. ‘여성들이 누릴 수 있는 작은 기쁨 글 모음’이란 부제가 인상적인 이 책에는 120가지나 되는 우리 주변의 밝고 산뜻한 이야기들이 물방울 무늬처럼 퍼져 있다. 날씨, 음식, 옷, 대화, 선물, 편지 등등 극히 평범하고 사소한 것들 모두가 다 좋은 글감이며 나눔의 대상이 되는 소중한 것임을 작가는 짤막한 글들을 통해서 일깨워주고 있다.

 

 

5

시도 아름답지만 소설을 읽으면 다양한 세계와 인간의 모습을 잘도 엮어내는 작가들의 솜씨에 감탄하며 한없이 빠져들게 된다. 때로는 ‘괜히 읽었다’는 후회와 함께 마음에 짙은 그림자를 남기는 것들도 있지만 어떤 소설은 우리 마음을 아름답게 정화시켜 주고, 내면적인 생활에 도움을 준다. 오늘은 서울에서 아름 엄마가 보내준 이상문학상 수상작과 그 밖의 작품집을 읽었는데 양귀자의 <숨은 꽃> 중의 몇 구절은 잊혀지지 않는다.

….. 버리겠다면서 다 버릴 생각은 추호도 없고, ‘이게 아닌데’라고 중얼거리면서도 욕심을 포기하지 않는 이 질긴 모순을 나는 차마 바로 볼 수가 없다.  – 라든가,  – 작은 꽃, 작은 눈물 그런 것들로 무찌르기에 이 세계는 너무나 거대하다 – 라든가,  – 사는 일이 가장 먼저란 말이오… 사는 일에 비하면 나머지는 다 하찮고 하찮은 것이라 이 말입니다. – 등의 말들은 내 가슴에 박혀 떠나질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양귀자 씨가 그의 <원미동 사람들>이란 소설에서 이웃의 삶과 모습을 묘사했듯이 나도 내가 사는 수도원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시나 소설로 엮어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하다가 접어 두었다. 나는 아직 나의 삶을 묵묵히 익혀두어야 할 단계에 있으므로.

 

 

6

읽으려고 따로 포개둔 책들 중에 오늘은  <파라독스 중국 우화>를 펴 들었더니 예융례 葉永烈 이라는 분이 쓴 <붉은 꽃과 푸른 잎>이라는 짧은 우화가 유난히 향기를 더해 준다.

여러 사람으로부터 칭찬의 말을 많이 듣는 어떤 고운 꽃 한 송이가 어느 날 자만심에 빠져 바람의 힘을 빌려 가지에서 뛰어내리지만 얼마 못 가서 이내 시들어버렸고, 사람들은 이 꽃을 쓰레기통에 팽개쳐버리고 만다. 다른 꽃들은 푸른 잎을 떠나지 못했는데 이는 말없는 푸른 잎이 자양분을 공급해 주고 있기 때문에 자기들이 더 붉고 아름답고 향기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래, 꽃은 곱지만 푸른 잎이 없다면 어찌 고와질 수 있었겠는가?’ 라는 말로 끝이 나는 이 이야기를 읽고 나는 몇 년 전 어느 암자에서 본 달맞이 꽃들의 모습이 생각났다. 꽃들을 받쳐주기 위해서 일제히 소리를 내며 피어 오르던 수많은 잎새와 꽃받침들을 보면서 나는 그 숨은 힘의 아름다움에 얼마나 놀라워했던가.

수도원에 오래 살다 보면 숨어서 푸른 잎의 몫을 하는 이들을 많이 만나게 되고, 이 분들이야말로 그 한결같은 성실성과 인내, 밑바탕적인 겸손으로 수도원 밖에까지 향기를 날리는 사람들임을 알게 된다.

 

나와 함께 수련을 받은 ㅎ 수녀님은 나보다 두 살 위인데 워낙 말수가 적고 큰 키에 피부는 가무잡잡한 편이어서 우리는 그를 ‘월남아저씨’라고 놀리기도 했다. 그와 나는 남들의 눈에 띌 만큼 유난스런 사이는 아니지만, 내게 어려운 일이 생길 때면 언제라도 달려가서 도움을 청하거나 부탁을 할 수 잇는 만만한 사람 중의 하나이다. 20여 년을 가까이 지내면서도 나는 그가 자기 사신에 대해서는 물론, 특히 남에 대해서는 더욱더 이러쿵저러쿵 비난이나 불평의 말을 하는 것을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그는 재미없으리만치 묵묵하고, 좋은 말조차 아끼는 듯 늘상 듣는 쪽에 있고, 받아들이는 쪽에 있으므로 나는 그 앞에서 자연히 말을 많이 하게 되고, 푸념도 자주 널어놓는 편이다. 그래도 그는 이래라, 저래라 충고하는 법도 없고, 빙그레 웃는 것이 고작일 뿐이다. 어떤 모임에서 돌아가며 말을 할 때도 그의 말은 가장 짧고 단순하고 겸허하다. 자기 자신에게 견디기 어려운 일이 생겨도 ‘기도해 달라’는 말뿐 자세한 내용 설명이 없는 그는 늘 가장 수수하고 평범한 자리, 수고는 많이 하면서도 잊혀지기 쉬운 자리에 기쁘게 머무는 듯하다.

다른 사람 같으면 몇 번씩 소임을 바꾸고도 남았을 20여 년의 세월에도 그는 임상병리사로서 현미경 앞에 앉아 있는 병원 일만 계속하고 있다. ‘너무 한가지 일을 오래 하는 게 지루하지 않아요?’ 라고 어쩌다 내가 물어도 미소만 하는 사람. 말을 안 해도 냉소적이거나 근엄한 분위기가 아닌 그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침묵이 나는 좋다. 얼마 전 내가 병원에 가서 진찰받을 때도 그가 옆에 있으니 든든하고, 내가 머무는 곳의 옆방들이 며칠 간 비어 혼자 자는 것이 어려웠을 때도 그가 옆방에 와 머무니 마음이 놓였다. 내가 그를 필요로 할 때마다 그는 늘 조용히 다가와서 힘이 되어주었으나 나는 한번도 제대로 고마움을 표현하지 못하고 살아온 것 같다. 오늘 ‘붉은 꽃과 푸른 잎’의 우화를 읽다가 문득 생각난 ㄱ 수녀님, 그는 종종 나로부터 잊혀지면서도 그 서운함을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다가와서 모나고 뾰족한 모양의 나를 둥글고 느긋한 사랑으로 받쳐준 고마운 사람이었음을 오늘 새로이 깨닫는다. 내일은 그에게 내가 읽은 우화를 이야기하며 ‘수녀님은 제게 푸른 잎 같은 분이세요’라고 해볼까? 그는 또 말없이 웃기만 하겠지.

나도 스스로의 힘만 믿고 바람을 타는 꽃잎처럼 되지 말고, 잎새에 의지하며 제자리를 잘 지키는 꽃잎이 되면 좋으련만, 누군가를 받쳐주는 푸른 잎새 같은 사람이 되면 더욱 좋으련만. 이 나이가 되도록 나는 철없고 깊이 없는 꽃잎의 삶을 산다고 생각되어 부끄러울 따름이다.

 

<1993>

 

 

 

 

책을 읽는 기쁨 2

독서 일기에서

 

1

책을 많이 읽은 날은 색유리가 아름다운 성당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다. 책 속에 수 놓여진 여러 빛깔의 사색이 나를 황홀케 하면 나는 종일토록 즐거워 절로 노래가 흥얼거려진다. 고전을 읽은 날은 나의 내면에서 은은한 풍금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고, 현대 작품들을 읽은 날은 경쾌한 피아노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2

좋은 책에서는 좋은 향기가 나고, 좋은 책을 읽은 사람에게도 그 향기가 스며들어 옆 사람까지도 행복하게 한다.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 모두 이 향기에 취하는 특권을 누려야 하리라. 아무리 바빠도 책을 읽은 기쁨을 꾸준히 키워나가야만 우리는 속이 꽉 찬 사람이 될 수 있다. 언제나 책과 함께 떠나는 여행으로 삶이 풍요로울 수 있음에 감사하자. 책에서 받은 감동으로 울 수 있는 마음이 있음을 고마워하자. 책에서 우연히 마주친 어느 한 구절로 내 삶의 태도가 예전과 달라질 수 있음을 늘 새롭게 기대하며 살자.

 

4

‘이 시대에 와서는 진리가 하도 모호하고 거짓이 굳어져버려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진리를 알 수가 없을 정도다’ ‘나는 그리스도교를 진짜라고 믿다가 틀리기보다는 틀리고 나서 그것이 진짜임을 발견하는 편이 더 무서울 것 같다’고 말했던 파스칼. 오늘은 도서실에서 파스칼의 책을 빌려왔다. 단숨에 이해하긴 어렵지만 그의 <팡세> <소품집> 등은 읽을 때마다 새롭다. 그의 글도 글이지만 위대한 수학자, 물리학자이면서도 의심 없이 하느님을 믿고 열렬히 사랑했던 그의 삶을 나는 사랑한다. 그가 39세의 나이로 일찍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더 많은 책들을 우리에게 남겨주었을 텐데…

 

5

책에서 만난 좋은 구절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서는 타이프를 쳐두거나 컴퓨터에 입력해 두는 편리한 방법이 있겠으나 독서 카드나 노트에 직접 써 놓는 정성스러운 방법이 가장 좋다고 생각된다. 여성, 행복, 예술, 신앙 등등 여러 주제로 내가 분류해서 발췌해 둔 독서 카드들은 이미 10여 년이 지나 빛깔이 바랜 것도 많지만 소중하게 여겨진다. 요즘은 나도 게을러져서 책의 좋은 내용들을 쉽게 복사할 때가 많지만 길지 않은 문장들은 되도록이면 노트에 적어두곤 한다.

‘참된 신앙은 어느 요일엔 어떤 음식을 먹고, 어느 요일엔 교회에 가서 어떤 기도를 드리는가 함을 아는 데 있지 않다. 항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좋은 삶을 영위하며 항시 자기가 삶에서 기대하는 것을 이웃에게 베푸는 데 있다’는 톨스토이의 말에 크게 별표를 해두었던 나의 지난날의 모습이 보인다.

 

5

‘단 한 번의 비가 와도 풀들은 푸르름이 몇 배나 더해진다. 그와 마찬가지로 보다 좋은 사상을 받으면 우리의 앞날의 희망은 빛나며, 만일, 우리가 항상 현재에 살며 적은 양의 이슬을 받아도 그 영향을 남김없이 나타내는 풀잎같이, 우리가 당면하는 모든 우연지사에 대처한다면 그리고 지나간 기회를 놓쳐버린 잘못을 보상하기 위해 시간을 보낸다면 우리는 축복을 받을 것이다. 우리는 봄이 왔는데도 겨울 속에서 방황하고 있다.’ 헨리 소로우 (H. D. Thoreau)의 실제 생활 보고서인 <숲 속의 생활>을 읽으면 고독 속에서 빛나는 그 사색의 깊이에 놀라게 되고, 구도자적인 삶의 아름다움에 이끌리게 된다. 작가처럼 2년 2개월까진 아니더라도 우리 역시 삶의 어느 기간을 어느 고독한 장소에서 홀로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6

피천득 선생님의 수필을 통해 내가 더욱 좋아하게 된 영국의 수필가 챨스 램 (Charles Lamb). 오늘은 <회복기의 환자>라는 그의 수필을 읽고 깊이 공감했다. ‘병이 들었을 때 인간은 그 스스로에게 자아의 폭을 얼마나 크게 확장 시키는가! 환자는 전적으로 자기 자신만을 위한 존재가 된다. 집안 구석 구석 내려앉은 정적과 무서운 침묵 속에서 그는 당당하게 누워서 자기의 주권을 즐기고 있다. 환자는 얼마나 마음대로 변덕을 부릴 수 있는가!’ 그의 글에는 항상 따뜻한 유머가 들어 있다.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있는 사람의 이야길 전해 듣는 것만 같은 램의 글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7

내가 여학교에 다닐 때 열심히 책을 빌려 읽던 책방 골목길이 지금도 가끔 꿈에 보인다. 빌리는 값도 쌌지만 주인아저씨의 친절한 미소가 좋아 자주 드나들었던 그 책방. 국내외의 많은 명작들은 대개 그때 빌려 읽었고, 책을 구하기 어려운 시절이기에 더 열심히 읽었다. 무엇이든지 너무 풍부하고 보장되어 있으면 사람은 금방 게을러지고 갈망도 그만큼 줄어드는 것 같다.

 

8

오늘은 오랜만에 광안리 바닷가에 산책을 나갔는데 방학 때라 그런지 많은 젊은이들도 붐볐다. 근래에 와서 많이도 들어선 해변 일대의 까페, 레스토랑, 노래방들 사이에 조그만 서점 하나 없는 것이 못내 아쉽다. 어디를 가나 사람들이 책방부터 찾고, 틈만 있으면 책을 읽고, 만남에서의 화제도 책 읽은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그런 날들을 꿈꾸어본다. ‘책을 펴자. 미래를 열자’라는 구호를 내걸고 올해는 특별히 책의 해라며 홍보도 많이 하지만 책을 읽어야 할 중요성만 강조할 게 아니라 우리 모두 실제로 책을 많이 읽고 사랑해서 책을  읽는 기쁨에 사로잡힌 책의 해가 되면 좋겠다.

 

<1993>

 

 

 

 

음악의 향기 속에

 

1

매일 미사 때마다 성가를 부르고, 일을 하면서도 가금은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으니 내 나름대로는 음악의 향기 속에 산다며 자랑하곤 한다. 특히 주일이나 축일 미사에 우리가 함께 부르는 그레고리안 성가의 아름다움. 단조로운 것 같으면서도 지루하지 않고 끊일 듯 이어지는 잔잔한 그 음률은 바다보다는 호수를, 폭풍보다는 미품을 연상케 한다. 오늘은 더욱 정성껏 노래를 부르며 나의 삶도 하나의 그레고리안 성가처럼 은은하고, 이웃에게 평화를 주는 것이 길 진심으로 기도했다.

 

2

슬플 때는 눈물로, 기쁠 대는 미소로, 외로울 때는 조용한 위안으로 음악은 사람을 사로잡는 큰 힘이 있나 보다. 나도 먼 나라에서 <가고파>라는 노래를 여럿이 부르다가 울던 일, 산 山 노래를 듣다가 산이 그리워 울던 일이 문득 생각난다. 요즘도 어떤 곡을 듣다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나는 걸 보면 음악은 영혼을 건드리는 신 神의 선물이라는 생각이 새롭다. 칼릴 지브란의 말대로 ‘오, 음악, 그대의 심연에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가라앉히고 / 그대는 우리에게 귀로 보기를 가르쳤으며 마음으로 듣기를 가르쳤다’라고 나도 고백하고 싶구나.

 

3

좋은 음악을 들을 때

너도 나도 말이 필요 없지

한잔의 차 茶 를 사이에 두고

강 江을 흐르는 음악은

곧 기도가 되지

사랑으로 듣고, 사랑으로 이해하면

사랑의 문이 열리지

낯선 사람들도

음악을 사이에 두고

이내 친구가 되는

음악으로 가득 찬 집

여기서 우리는 음악의 향기를 날리며

고운 마음으로 하나가 되지

 

광주에서 사이 좋게 고전음악실을 꾸려가는 두 처녀에게 나는 이런 메모를 적어 보냈다.

 

4

수도원의 종소리, 기도소리가 내겐 늘 음악으로 살아온다.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소리, 새소리, 시냇물소리도 그대로 고운 음악이며, 아기의 천진한 웃음 소리, 서로 사랑하는 이들끼리 조용히 속삭이는 사랑의 음성 역시 아름다운 음악이다. 나는 오늘 파도가 밀려오는 바다의 음악을 들었다.

 

잠에서 깨어나라

멈추기 말고 흘러가라

좁은 마음 넓혀서

네 마음과 마음 사이로

사랑이 파도치게 하라

푸르디푸른 음악으로 출렁이며 자꾸만 일어서려고 했던 나의 아침 바다여

 

봄에는 풀루트나 피아노 곡을, 여름엔 클래식 기타 곡을, 가을엔 바이올린 곡을, 겨울엔 첼로 곡을 들으면 어떨까? ‘수녀님, 얼마나 더 피아노 앞에서 울면 좋은 피아니스트가 될까요? 넉넉한, 맘껏 나눌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습니다.’ 오늘은 파리에서 음악을 공부하는 은주의 편지를 읽으며 쇼팽의 전주곡을 마우리치오 폴리니 Maurizio Pollini 의 피아노 연주를 들었다. 음악에 투신한 사람의 고운 사색이 엿보이는 편지의 다음 구절을 나는 몇 번이고 되풀이해 읽었다.

‘…제가 비워 두었던 방은 먼지투성이였습니다. 3개월 동안 치지 않았던 피아노는 소리도 멍해져 있었고 음 음 들도 서로 들리지 않아서인지 삐걱거렸습니다. 그런데 조율사 아저씨를 거치지 않고서도 며칠 제가 그 위에서 연습을 하고 나면 소리도 다시 제가 원하는 소리가 되어 나오고, 도와 레 사이도 더 친해져서 서로 음들을 맞추어가는 겁니다. 신기하죠? 악기도 살이 있는 생물처럼 사랑 받고 그를 향해 기대를 가져주면 반응을 보인답니다.’

 

 

6

홀로 듣는 음악도 아름답지만

함께 듣는 음악도 아름답다

홀로 부르는 노래도 즐겁지만

함께 부르는 노래도 즐겁다

 

음악을 듣거나 노래를 부르는 것은 지상에 사는 동안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행복한 특권임에 틀림없다. 시와 기도와 음악 사이에서 별처럼 떠올랐다. 스러지는 나의 고마운 하루여! 어둠 속에서도 빛이 고이는 삶의 평화여!

 

<1994>

 

 

 

수첩 속의 향기

 

우리 동네 작은 이야기

 

 

 

셋째 묶음

작지만 좋은 몫을

 

 

몽당빗자루처럼

 

봄이 오면 나는

 

봄이 오면 나는 활짝 피어나기 전에 조금씩 고운 기침을 하는 꽃나무들 옆에서 덩달아 봄앓이를 하고 싶다. 살아 있음의 향기를 온몸으로 피워 올리는 꽃나무와 함께 나도 기쁨의 잔기침을 하며 조용히 깨어나고 싶다.

봄이 오면 나는 햇볕이 잘 드는 안뜰에 작은 꽃밭을 일구어 꽃씨를 뿌리고 싶다. 손에 쥐면 금방 날아갈 듯한 가벼운 꽃씨들을 조심스레 다루면서 흙냄새 가득한 꽃밭에 고운 마음으로 고운 꽃씨를 뿌리고 싶다.

 

 ‘조금 답답하겠지

그렇지만 꾹 참아야 해

땅은 엄마니까

꼬옥 품어줄거야

한잠 푹 자고 나면

우리 또 만나게 될거야’

 

언제 읽어도 정겨운 김교현 시인의 동시를 외우면 흙을 덮어주면 꽃씨들은 조금쯤 엄살을 부리다가도 말 잘 듣는 아이처럼 ‘알았어요’ 라고 대답할 것만 같다.

봄이 오면 나는 매일 새소리를 듣고 싶다. 산에서, 바다에서, 정원에서 고운 목청 돋우는 새들의 지저귐으로 봄을 제일 먼저 느끼게 되는 나는 새들의 이야기를 해독해서 밝고 맑은 시를 쓰는 새의 시인이 되고 싶다. 바쁘고 힘든 살의 무게에도 짓눌리지 않고 가볍게 날아다닐 수 잇는 자유의 은빛 날개 하나를 내 영혼에 달아주고 싶다. 봄이 오면 조금은 들뜨게 되는 마음도 너무 걱정하지 말고 더욱 기쁘고 명랑하게 노래하는 새가 되고 싶다.

봄이 오면 나는 이슬비를 맞고 싶다. 어릴 적에 항상 우산을 함께 쓰고 다니던 소꿉동무를 불러내어 나란히 봄비를 맞으며 봄비 같은 이야기를 속삭이고 싶다. 꽃과 나무에 생기를 더해 주고 아기의 미소처럼 사랑스럽게 내 마음에 내리는 봄비. 누가 내게 봄에 낳은 여자 아기의 이름을 지어 달라고 하면 서슴없이 ‘봄비’ ‘단비’라고 하고 싶다.

봄이 오면 나는 풀 향기 가득한 잔디밭에서 어린시절 즐겨 부르던 동요를 부르며 흰 구름과 나비를 바라보는 아이가 되고 싶다. 함께 산나물을 캐러 다니던 동무의 이름을 불러보고 싶고, 친하면서도 가끔은 꽃샘바람 같은 질투의 눈길을 보내오던 소녀시절의 친구들도 보고 싶다.

봄이 오면 나는 우체국에 가서 새우표를 사고, 문방구에 가서 색연필, 크레용, 피스텔, 그리고 마음에 드는 편지지와 그림엽서를 사고 싶다. 답장을 미루어둔 친지에게 다만 몇 줄이라도 진달랫빛 사연을 적어 보내고 싶다. 동시를 잘 쓰는 어느 시인으로부터 맑고 고운 무리 말을 다시 배워서 아름다운 동심의 시를 쓰고 싶다. 시를 외우다가 잠이 들고, 꿈에서도 시의 말을 찾고 싶다.

봄이 오면 나는 모양이 예쁜 바구니를 모으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솔방울, 도토리, 조가비, 리본, 바느질 거리, 읽다가 만 책, 우편물 등을 크고 작은 바구니에 분류해 놓고 오며 가며 보노라면 내 마음도 바구니가 되는 듯 무엇인가를 오밀조밀 채우고 싶어진다. 바구니에 담을 꽃과 사탕과 부활달걀,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선물들을 정성껏 준비하며 바쁘고도 바쁜 새봄을 맞고 싶다

사계절이 다 좋지만 가을엔 ‘달맞이 마음’, 봄에는 ‘해맞이 마음’이 된다고 할까? 꽃들이 너무 많아 어지럼증이 나고, 마음이 모아지지 않아 봄은 힘들다고 말했던 나도 이젠 갈수록 봄이 좋아지고 나이를 많이 먹고서도 첫사랑에 눈뜬 소녀처럼 가슴이 설레인다.

봄이 오면 나는 물방울 무늬의 앞치마를 입고 싶다. 유리창을 맑게 닦아 하늘과 나무와 연못이 잘 보이게 하고 또 하나의 창문을 마음에 달고 싶다. 먼지를 털어낸 나의 방 하얀 벽에는 내가 좋아하는 화가 사제가 그려준 십자가와 클로드 모네가 그린 꽃밭, 구름, 연못을 걸어두고, 구석진 자리 한곳에는 앙증스런 꽃삽도 한개 걸어두었다가 꽃밭을 손질할 때 들고 나가야겠다. 조그만 꽃삽을 들고 꽃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그 아름다운 음성에 귀를 기울이노라면 나는 멀리 봄 나들이를 떠나지 않고서도 행복한 꽃마음의 여인, 부드럽고 따뜻한 봄 마음의 여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1994>

 

 

 

여름이 오면

 

작지만 좋은 몫을

 

생명을 나누는 기쁨

 

어머니의 꽃편지

 

산으로 솟고 강으로 흐르는 그리움을

 

슬픔을 나누며

 

누군가에게 축하할 만한 좋은 일이 생겼을 때 그와 기쁨을 나누는 뜻에서 어떤 표현을 하긴 쉬워도 어쩌다 불행에 처했을 때 그를 위로하는 적절한 말을 찾아 하긴 그리 쉽지 않은 듯하다. 더구나 가장 사랑하는 이와 사별하고 깊은 슬픔과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아무리 신앙적인 말로 위로를 한다 해도 그 말엔 한계가 있으며 내내 마음만 답답하고 안타까울 때가 얼마나 많은가. 잘못 표현하다간 오히려 엉뚱한 오해를 받기도 하고, 위로 아닌 상처를 줄 수도 있어 때론 소리로서의 말보다는 그저 묵묵한 애도의 표정이나 연민의 눈길이 더 효과적일 때도 있음을 본다. 꼭 기일이 아니더라도 자주 죽은 남편의 묘지를 찾아 꽃과 고운 카드를 놓아두고, 아이들과 같이 사랑의 편지를 써서 태우기도 하는 몇 분 미망인을 나는 알고 있다.

그들이 아주 서서히 오랜 기간을 두고 슬픔을 삭여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상 喪을 당한 이들에게 우리가 하는 위로의 말은 많은 부분 피상적일 수밖에 없음을 절감하곤 한다. 그러나 친지들이 상을 다하고 시름에 잠겨 있을 땐 나도 가만 있을 수가 없어서 종종 죽은 이의 입장이나 유족의 입장이 되어 그들의 슬픔을 대변하는 시를 적어보기도 하고, 다른 이의 좋은 시나 성경구절과 함께 기도한다는 내용이 적힌 위로 카드를 보내기도 하는데 이러한 작은 정성이 어떤 이에겐 무척 큰 위안이 되기도 하나 보다.

지난 여름 나는 암으로 세상을 떠난 동료수녀의 올케언니 장례미사에 갔다가 사진 몇 장을 찍어둔 것이 있어 몇 주 후에 고인의 남편 되는 J 씨에게 위로의 글을 적은 카드와 함께 사진을 보냈더니 즉시 고맙다고 전화 연락이 왔다. 나는 그분을 깊이 알진 못하지만 자녀도 없이 30년 가까운 결혼생활을 하면서 부인이 앓아 눕자 사업까지 그만두고 오직 간병에만 정성을 쏟은 사실을 익히 알던 터라 ‘얼마나 쓸쓸하세요?’ 했더니 울먹이는 소리로 ‘수녀님, 이게 뭡니까? 요즘은 정말 살고 싶지 않습니다. 먼저 간 그 사람이 원망스러울 뿐입니다. 이 나이에 아무데서나 눈물을 보일 수도 없구요’ 하는데 나도 마음이 아파 며칠 후 수녀원 저녁기도와 식사에 오시라고 했다. 나도 한번 병원에서 만난 일이 있는 그의 부인은 많이 아픈 중에도 상냥한 표정과 말씨로 우리를 반겨주던 아름다운 여성이었는데 의식이 있을 땐 늘 머리를 단정히 하고 엷은 화장을 했으며, 요리, 바느질, 집안 정리를 너무 깔끔히 해서 별나다는 소리도 더러 들었다고 한다. 우리가 빈소에 갔을 때 여느 초상집 사진들과는 달리 분홍 치마 저고리의 화사한 한복차림의 아내 모습을 액틀에 넣어놓은 것이 퍽 인상적이었다고 나는 함께 식사하면서 이야기를 꺼냈다. J씨는 꿈에도 생시와 같이 부인과 등산을 가는데 깨어보면 ‘없는’ 사실이 믿기지 않고, 어쩌다 냉장고 문을 열어도 그릇마다 에서 아내의 손길이 느껴져 슬프다며 ‘그 사람은 글쎄 내가 자기 때문에 고생이 많았다며 부디 좋은 여자 만나서 행복하게 살라는군요’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10년 가까운 세월을 오직 아내 간병에 정성을 쏟은 자기더러 사람들은 장하니 어쩌니 들 하지만 아무리 잘한다고 했어도 환자 자신이 겪은 아픔과 내면의 그 깊은 고독은 남편인 자기도 미처 몰랐을 것이라며 울먹였다.

부인 때문에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인생 공부도 많이 했다는 그는 이미 반 의사가 된 것 같기도 하고, 환자의 심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이해하고, 실천하는 일류 간호사의 모습이기도 했다. 아프지 않은 사람들은 환자의 입장보다는 흔히 자기 생각을 먼저 하기 때문에 환자는 더욱 고독할 수밖에 없으며 고독과의 싸움이야말로 가장 눈물겨운 것이라고 했다. 때로 환자가 터무니없는 말을 하거나 보호자의 입장에선 꽤 무리한 요구를 해올 때도 이를 이상히 여기거나 비난하지 말고 환자의 입장이 되어보려는 지극한 관심과 인내의 노력이 필요함을 거듭 강조하는 50대 중반의 J씨의 슬픈 체험담을 나와 친구 수녀는 저녁 내내 들으면서 배우는 게 많았다.

사실 얼마나 여러 경우에 나 역시 슬픔과 아픔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 입장이 되기보다는 내 입장에서 내 방식대로 생각하고 표현할 때가 많은지 반성이 되었다.

아내가 쓰던 화장품 주머니에 기도서와 성가책을 넣고 성당으로 향하는 J씨의 쓸쓸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누구도 대신 할 수 없는 그의 슬픔에 주님이 함께 하시길 간절히 기도했다.

<1993>

 

 

메모하는 기쁨 속에

 

연필 들고 바라보라

푸른 산 여기저기

새 시상 詩想 혼자 키워

써내린 분신들

모퉁이길 걸어서 돌면

주머니 속 피리 소리

눈 들어 젖은 생각

이미지로 말려본다

새햐얀 여백에다

침 묻혀 뼈를 씻고

종이 하나 접고 푼 기억

무릎 치는 깨달음이여.

 

 

노창수 시인의 <메모지>라는 시를 읽다가 내 수도복 주머니 속의 조그만 메모수첩을 만지작거리니 시인의 표현대로 ‘주머니 속 피리 소리’가 금방이라도 들려오는 것만 같다.

길든 짧은 한편의 글을 쓰려면 나 역시 얼마나 많은 메모지를 버려야 하는지 모른다. 무엇이든지 미리 메모해 두지 않고는 작품을 만들기 어렵다. 나는 어려서부터 워낙 메모하기를 좋아했다. 더구나 요즘은 무엇이든지 잘 잊어버리는 나이가 되다 보니 생활 전반에 걸쳐 메모는 매우 중요한 몫이 된 셈이다. 시를 쓰기 위해서 뿐 아니라 소임에 필요한 사항을 적기 위해서, 부탁 받은 일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 나는 늘 메모지를 가까이 둔다. 그래서 수도복의 속주머니뿐 아니라 내가 쓰는 책상 위에, 성당 자리에, 서가 위에, 침대 머리맡에, 손가방에 작은 수첩이나 메모지를 즐겨 놓아두다 보니 이왕이면 예쁜 메모지들을 좋아하는 종이 욕심쟁이가 되어버렸다.

메모하는 습관은 창작을 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만 평범한 삶에 활기를 불어넣는 데도 도움이 된다. 책을 읽다 발견한 모르는 낱말, 산이나 바다로 산책을 하다 발견한 특이한 모양의 꽃, 나무, 조가비들의 모습을 적어두었다가 도서실에 가서 사전을 통해 알아가는 순간은 얼마나 기쁘고 흐뭇한지 모른다. 우리가 걸핏하면 ‘이름 모를 꽃’ ‘이름 모를 새’라는 표현을 하는 것은 좀 무책임한 것이 아닐까? 사람에게 고유의 이름이 있듯이 꽃, 나무, 새, 조가비들의 이름도 우리가 조금만 노력하면 알아서 불러줄 수 있을 텐데 많은 경우엔 우리가 무관심하고 게으르기 때문에 더 모르는 것 같다.

혹시 책을 읽다가 만난 어느 좋은 구절을 말이나 글로 인용하고 싶다면 이 또한 책 이름과 지은이의 이름을 즉시 메모해서 기억해 두면 될 텐데 우리는 너무 자주 ‘어느 책에선가 읽은 일이 있다’ ‘누군가의 글이었던가’ 하고 얼버무리는 식의 표현을 자주하고 있으며, 이런 표현에 아예 익숙해져버린 듯 하다. 다른 이들이 쓴 글에서 이런 식으로 인용되었거나 작자 미상으로 표기된 나의 글들도 나는 꽤 여러 번 보아왔다.

이것 저것 너무 잘 잊어버려 큰 일이라는 주위의 사람들에게 나는 ‘메모하는 습관을 들이세요’라고 말하곤 하는데 듣는 쪽에선 ‘메모한 것까지도 잊어버릴 텐데 어떻게 합니까?’하면 나도 함께 웃다가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걸요’라고 대답한다.

새로운 글을 쓰는 일도,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챙기는 것도 메모를 통해서 많은 도움을 받고 시간을 절약하게 되므로 나는 더욱 열심히 메모를 한다.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나면 나는 우선 주머니 속의 메모지를 꺼내 내 나름대로의 분류법으로 정리를 하면서 내가 아직 이 세상에 살아 있음을 새롭게 확인하고 감사하게 된다. 그리고 내일을 위해 다시 작은 메모 수첩과 몽당연필을 주머니에 넣으면서 더욱 새롭게 채워질 내 시간 속의 말들과 삶의 무늬들을 그려본다. 부지런히 메모하는 나의 움직임이 계속되는 한, 내 매일의 삶 또한 희망과 기쁨으로 이어질 것을 믿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1994>

 

 

 

약점을 자랑하는 용기

 

어떤 기도

 

주님, 저는 늘

제 귀를 기쁘게 하는 좋은 소리만

듣고 싶어하지만

일부러라도 귀를 아프게 하는

책망과 훈계와 충고의 말을

깊이 새겨듣고, 즐겨 청할 수 있는

성숙한 지혜를 키워가게 하소서.

꿀맛처럼 달디달지만 유혹이 되는

칭찬과 찬미의 말을 두려워하고

씀바귀 맛처럼 씁쓸하지만 약이 되는

어떤 충고나 비난의 말을

오히려 즐겨 들을 수 있게 하소서.

조금쯤 억울하게 느껴지는 말들이라도

변명하지 않고 받아 안을 수 있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자신을 넓혀가게 하소서.

남으로부터 부당한 판단을 받았다고

몹시 화를 내기 전에

제가 남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고

함부로 말했거나 속단했던 부분을

먼저 마음 아파하고 반성할 수 있는

겸허한 마음을 갖게 하소서.

 

어떤 모임에서건 누가 먼저

저의 좋은 점을 이야기해 주면

조심스럽게 공손하게 듣기만 할 뿐

수다스럽게 부풀려서 맞장구 치는

뻔뻔스러움을 피하게 해주소서.

이웃에게 제 자신을 알리려 할 땐

장점과 성공은 가능한 한 숨겨두고

약점과 실수를 먼저 자랑할 수 있는

어리석음의 용기를 주소서, 주님.

 

 

오늘 아침 나는 문득 이렇게 기도하고 있었다. 나도 예외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의 약점을 되도록 감추고 싶어하고, 싫은 소리는 듣기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평소에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던 자기의 어떤 단점이나 실수에 대해서도 막상 다른 이의 입을 통해서 듣게 되면 왠지 불쾌하고 서운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번번이 뒤에서가 아니라 바로 앞에서 우리의 잘못을 일러주거나 솔직히 충고해 주는 사람들이야말로 우리가 고마워해야 할 사람들임을 살아갈수록 더욱 깨닫게 된다. 때로 오해와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고 해서 크게 흥분하기보다는 ‘나도 누군가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잘못 말한 일들을 조금이라도 기워 깁는 뜻으로나마 조용히 참아야지’ 하는 마음을 지니면 될 것이다. 나 역시 다른 이들의 평판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해 곧잘 상처를 입기도 하지만 부족한 나의 글과 사람됨에 대해 이런저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어차피 호평과 혹평은 ‘ㄱ’받침 하나로 왔다갔다 하던데요.” 하면 내 말을 듣는 이도 함께 웃어버린다. 어쩌다 내 안에 우쭐대고 싶은 마음이 일렁일 때면 ‘자랑을 꼭 해야 한다면 나는 차라리 내 약점들을 자랑하겠습니다’ ‘자랑하려거든 주님을 자랑하십시오’라고 한 사도 바울로의 성서 말씀을 떠올리기도 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 잘난 맛에 사는 것, 남의 광영을 힘입어 영관을 맛보는 것’이라고 표현한 피천득님의 <반사적 광영>이란 수필을 거듭 읽어 보기도 한다.

현대는 참으로 자기 피아르(P.R.) 시대인 것 같다. 매스 미디어뿐 아니라 사적인 공적인 자리에서 우리는 ‘자기 자랑’ ‘자기 과시’ ‘자기 도취’에 가득한 언어의 난무를 자주 접하게 된다. 심지어는 다른 이의 글이나 말,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 것인 양 가로채서 자랑 삼는 민망한 경우도 있다. 하도 으스대는 이들이 많으니 자기는 못났다고, 잘못하고 있다고 고백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더욱 신선하게 들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 수녀원에서도 종종 자기가 실수하거나 잘못한 부분들을 서로 고백하는 시간이 있는데 극기 사소한 것까지도 진심으로 용서를 청하는 이들의 겸허하고 담백한 모습은 아름답게 보인다. 나 역시 나의 부끄러운 부분들을 고백하면서 의외로 자유로움과 평화를 느낀다. 우리가 자신의 실수나 약점을 무턱대고 감추고 변명하기보다는 오히려 드러내놓고 ‘자랑하며’ 고치려고 애쓰고 다른 이의 도움을 향해 열려 있을 때만 삶은 그만큼 더 자유롭고 여유로워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 모두가 장점 못지않게 ‘약점을 자랑하는 용기’로 매일을 살아간다면 칭찬을 들었다고 해서 정신 없이 들뜨지도 않을 것이며, 안 좋은 말을 들었다고 해서 자신을 들볶거나 평화를 잃는 일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 주변엔 늘 담담하고 안정된 기쁨의 향기가 스며 있을 것이다.

<1994>

 

 

한 통의 사랑이 되어

 

우리 밥, 우리 쌀

 

선물 이야기

 

천리향 노래

고 박종철 군에게

 

 

새 옷을 입는 나무처럼

 

함께 사는 기쁨 속에

 

솔방울 예찬

 

사랑의 작은 길

 

추억의 성탄 카드

 

 

 

넷째 묶음

십대들을 위하여

 

 

외로움을 사랑하자

 

그 이름만 들어도 즐거운 친구

 

작은 감사

 

봄마다 새로운 꽃씨를 뿌리듯

 

사물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새 학기를 맞는 십대들에게

 

 

 

다섯째 묶음

바다가 보이는 수녀원에서

 

새해 첫날의 엽서

 

 

새 달력에 찍혀 있는

새로운 날짜들이

일제히 웃으며 뛰어와

하얗게 꽃으로 피는 새해 첫날

 

묵은 달력을 떼어내는

나의 손이 새삼 부끄러운 것은

어제의 시간들을 제대로 쓰지 못한

나의 게으름과 어리석음 때문이네

 

나의 주변 정리는 아직도 미흡하고

어제 하던 일들의 마무리도 안했는데

불쑥 들어서는 손님처럼

다시 찾아오는 새해를, 친구여

우리는 그래도

망설임 없는 기쁨으로 맞이하자

 

우리에게 늘 할 말이 많아

잠들지 못하는 바다처럼

오늘도 다시 깨어나라고

멈추지 말고 흘러야 한다고

새해는 파도를 철썩이며 오나보다

 

살아 있음의 축복을

함께 끌어안으며, 친구여

새해엔 더욱 더욱

아름다운 모국어로

아름다운 말을 하고

아름다운 기도를 하자

우리의 모든 말들이 향기로워

잊혀지지 않는 시가 되게 하자

 

우리의 좁디좁은 마음엔

넓은 바다를 들여놓아

넓은 사랑이 출렁이게 하고

얕고 낮은 생각 속엔

깊은 샘을 들여 놓아

깊은 지혜가 샘솟게 하자

 

이제 우리는

죽음보다 강한 사랑으로

이웃과 함께 해야 할

무겁고도 아름다운 멍에를

새해 선물로 받아 안자

 

– 자꾸 박으로 겉돌기 쉬운 마음

골방으로 들여놓고 자기 안을 보기

– 바쁜 중에도 이웃을 향해

웃을 수 있는 여유 지니기

–  자랑할 일 있어도 들뜨지 않고

겸허한 자유인이 되기

– 어떤 작은 약속에도 깨어 있는

충실한 생활인이 되기

 

새해라고 하여

이런저런 결심을 내세우는 것조차

부끄럽고 부끄럽지만, 친구여

우리가 서로를 더 많이 사랑한다면

이 세상 모든 이가 형제라고 할 만큼

서로를 더 많이 아끼고 위해 준다면

우리의 새해는 기쁨의 춤을 추겠지?

꽃 속에 감추어져 있는 꽃술들의

그 미세한 떨림과 움직임의 순간처럼

우리가 진정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읽어내고 소중히 여기는

고운 감각을 지닌다면

우리는 더욱 행복한

새해의 새 사람이 되리라 믿는다

흰 눈 속의 동백꽃 같은 마음으로

우리는 희망 찬 새해의 연인이 되자.

친구여.

 

<1994>

 

 

3월의 꽃바람 속에

주희에게 띄우는 글

 

 

오빠에게

 

‘따가운 햇볕이 차츰 숙을 죽여 가고 ‘가을바람’이라고 이름 붙이기엔 너무 이른 미풍이 불고, 가끔씩 성난 하늘의 눈물 같은 소나기가 내리는 여름의 그림자를 나는 사랑한다. 여름과 가을 사이에 너무도 분명히 존재하는 이 계절, 그러므로 일년은 다섯 개의 계절로 나누어져야 옳다.’

이것은 제가 사랑하는 조카이며 오빠의 사랑스런 맏딸이기도 한 향이의 표현인데 저는 바로 이러한 계절의 길목에서 오빠께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간도 안녕하신지요? 만 2년 간의 서울생활을 끝내고 다시 부산 광안리에 있는 수녀원 본원에 와서 살게 된 것이 저는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요.

‘…. 인자한 눈빛으로 나를 달래다

호통도 곧잘 치시는 오라버니 산.’

‘…더 커서 슬픔을 배웠을 제

내가 뛰어가던 바다는.’

‘실연 당한 오빠처럼

시퍼런 울음을 토해 내고 있었네.’

저의 시에도 종종 ‘오빠’라는 단어가 등장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오빠는 제게 늘 정답고 가까운 존재입니다. 자주 만나지 못해도 생각하면 늘 든든하고 미더운 사람, 많은 말로 표현을 하진 않지만 은근한 정을 지닌 사람입니다. 이러한 오빠께 저는 지난날 참으로 많은 편지들을 보냈습니다.

오빠가 군에 계셨던 저의 중학교 시절엔 맑고 고운 꿈이야기를 적어 보냈고, 제가 집을 떠나 고등학교에 다녔을 때는 사랑을 앓는 사춘기 소녀의 독백을 써 보냈고, 수녀원에 와서 얼마 동안 외국에 나가 있을 때는 아예 일기식의 편지를 노트에 적어 보내기도 했었습니다.

제가 살아오면서 저로부터 ‘오빠’라고 불림을 받고 싶어하던 이들이 몇 명 있었으나 왠지 쑥스러워 응할 수가 없었고, 고종사촌인 종률 오빠 외에는 오직 친오빠인 인구 오빠가 있을 뿐입니다.

저의 방에는 40여 전 전에 찍은 것으로 보이는 빛 바랜 가족사진이 있는데 보는 이마다 “여기에 수녀님은 없는데 왜 이걸 세워두었지요?” 라고 묻습니다. 우리 4남매 중에 막내인 여동생과 저는 세상에 태어나기 훨씬 전에 만주에서 찍었다는 이 사진 속에서 아버지, 어머니, 누나, 삼촌, 고모들 사이에 귀엽게 앉아 있는 너댓 살짜리 어린 소년을 보고 “얘가 누구지?” 라고 저의 동료들이 물으면 “응. 우리 오빠야. 지금은 머리가 희끗희끗한 네 아이의 아버지이고…” 라고 대답하곤 하지요. 어려서부터 주위 사람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고 어머니가 자랑하시곤 했던 오빠의 옛 모습을 들어다 보며 저는 세월이 물 흐르는 소리를 듣습니다. 이북에 납치되신 아버지가 어느 날 문득 우리 앞에 웃으며 나타나시는 꿈을 꾸어보기도 합니다.

 

우리가 서울 청파동에 살던 시절, 제가 대여섯 살 때라고 기억되는데 아버지가 퇴근하실 무렵이면 저는 꼭 집 밖에서 기다리곤 했지요. 그 무렵 동네 골목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던 오빠의 그 모습을 저는 생생히 기억합니다. 8년이라는 나이 차이 때문인지 그때만 해도 오빠는 저를 별로 상대해 주지 않은 느낌이어서 오빠와 저 사이에 작은언니나 작은오빠가 한 명 더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하기도 했답니다.

제가 국민학교에 다닐 때는 길에서 종종 “쟤가 인구 동생이야. 인구하고 닮았지?” 하는 오빠 친구들의 말을 들었었고, 저는 그때마다 얼굴을 붉히며 달아나곤 했지요. 한번은 제가 동화에 가까운 단편소설 초안을 노트에 끄적거려 놓은 것을 오빠가 읽어 보고, 제가 잠자리에 든 사이 어머니께 “어머니, 이것 좀 보세요. 아직 어린 아이가 이렇게 이런 걸 쓸 수 있는지 정말 놀랍다니까요” 라고 칭찬 반 꾸중 반으로 하는 얘길 죄다 듣고도 그냥 자는 척했던 일도 있습니다. 고운 헝겊, 고운 종이들을 즐겨 모으거나 오리는 것을 좋아하는 저를 보고 오빠는, “쟤가 이담에 커서 시집을 가면 혼수이불 꽃무늬까지 예쁘다고 오리겠지? 신랑 코는 예쁘다고 안 오릴지 모르겠네” 라고 해서 그게 농담인 줄 알면서도 울어버리고 말았지요. 오빠의 이런 저런 익살과 유머는 끝이 없어서 우리 가족은 웃는 일이 많았고, 집안은 마치 노래, 웅변, 연극, 시낭송을 잘하는 오빠의 독무대 같기도 했습니다. 오빠의 시낭송을 듣고, 시 노트를 훔쳐 보며 저는 이미 오빠를 흠모하고 흉내 내는 어린 시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토록 활달하고 용기 있는 것 같으면서도 정작 마음에 둔 여학생에겐 좀더 적극적으로 다가서지 못하고 끙끙 앓던 오빠의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저는 누구를 정말 좋아하면 소심하고 수줍어지는가 보다라고 처음으로 느꼈답니다.

우리집의 맏이인 언니가 어느 날 가르멜수녀원에 간다고 짐을 꾸릴 때 오빠는 오빠를 극진히 아꼈던 하나뿐인 누나를 놓치고 싶지 않아 두고두고 서운해 하면서 눈물을 흘렸었지요. 저는 그때만 해도 수녀원이란 곳이 어떤 곳인지 잘 몰았으므로 우리 마음을 아프게 하는 언니가 원망스럽기조차 했습니다. 그 후 언니의 영향을 많이 받은 저 역시 수녀가 되겠다고 했을 때 오빠는 “이제 겨우 대화 상대가 될만하니 너마저 떠나는구나” 하며 아쉬워하셨지요. 혹시라도 제가 마지못해 수도생활을 하는 것은 아닌지 싶어 수련시절에 일부러 부산까지 찾아와서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마음을 바꾸려면 일찍 바꾸는 게 좋다고 하면서 ‘네 동생을 취직시키든지, 좋은 사람 있으면 혼인을 시키든지…’ 수도생활을 반대하는 오빠 친구의 편지를 보여주기도 하면서 끝까지 할 수 있겠느냐는 최종적인 물음을 던지고 가셨습니다.

제가 수도자로서의 마지막 공적 약속인 종신서원을 하던 1976년 2월 2일, 성당 가족석에 앉아 있던 오빠는 제가 서원장을 옆에 끼고 흰 초를 들고 입당하는 모습이 마치 아득한 저 세상 어딘가로부터 걸어 들어오는 것처럼 보여서 예기치도 않던 큰 울음이 터졌다고 했습니다. 그때의 느낌을 오빠는 저의 세 번째 시집 끝에 서 놓았는데 그 글을 보고 울었다는 독자들이 꽤나 많았답니다.

오빠와 많은 분들의 근심과 노파심 속에서 시작했던 저의 수도생활도 이제는 연륜이 꽤 깊어졌고, 저는 아직 덕이 부족한 채로지만 무척 만족스럽고 안정된 한 사람의 수녀가 되어 있습니다.

어린 시절, 오빠의 충실한 애독자였던 제가 어쩌다 보니 오빠보다 먼저 책을 내게 된 것도 새삼 송구하고, 그 옛날처럼 ‘인구 동생인 해인이’보다 ‘해인 수녀의 오빠인 인구’로서 오빠가 표현될 때는 민만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래서 늘 웃으시며 오빠로서의 따스한 격려와 충고를 잊지 않으셨지요. 제가 책을 낼 때마다 바쁜 중에도 큰 힘이 되어주시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엔 선뜻 의논 상대가 되어주시는 오빠가 가까이 계시기에 저는 늘 든든합니다.

전공인 바이올린은 비켜두고 오로지 살림에만 몰두하는 아내의 수수한 옷차림과 은은한 미소를 사랑하고, 오빠를 닮은 1남 3녀들을 끔찍이 아끼며, 아이들의 성적이 잘 나오면 하루에도 몇 번씩 남에게 자랑하지 않고는 못 배겨 아내로부터 핀잔을 듣기도 하는 오빠, 우이동 이웃들과의 친교로 언제나 친구가 많고, 화제가 풍부하고 그래서 일이 많은 오빠의 바쁜 삶은 보기가 좋습니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한 말씀으로 우리의 가슴에 파문을 일으키신 분, 순결하고 여리신 수녀님들의 사생활을 탤런트적 ‘끼’가 다분하신 연극배우의 모션으로, 감동을 더스틴 호프만의 연기력을 보여주시며 먹는 것은 아름답다, 불곰이라 불려지기를 꺼리지 않으시는 분’으로 오빠의 서울예전의 광고창작과 학생들로부터도 사랑을 받으시는 오빠, 돌밭에서 힘들여 채집해 온 수석들을 들기름으로 닦으며 흐뭇해 하시던 오빠, 제가 서울 수녀원에 있을 때 동네에서 만든 무공해식품이라며 제가 좋아하는 두부 한 판을 새벽같이 주문해서 날라다 준 오빠의 그 모습은 특히 잊을 수가 없습니다.

오빠는 어느새 50대 중반이 되고, 저는 40대 중반이 되어 우리가 살아온 날들보다는 살아갈 날이 더 적은 사람들이 되었군요. 어쩌다 오빠가 저를 다른 이들에게 소개할 때는 “내 동생과 얘기해 보세요. 생각보다는 재미있어요” 라고 했고, 도 때로는 저를 ‘명랑이’라고 부르기도 했음을 기억하시는지요? 저는 앞으로도 기쁘고, 고맙고, 재미있게 지내면서 날마다 새롭게 행복의 조각보를 깁는 삶을 꾸려 갈 테니, 오빠는 오빠대로 더욱 열심히 사시길 바랍니다. 평소의 오빠의 신념대로 양심의 소리를 어기지 않는 깨끗하고 정직한 삶, 가족과 이웃에게 책임과 성실을 다하는 매일을 꾸려감으로써 오빠의 집에 가득한 수석과 난처럼 무게 있고 향기로운 삶의 주인이 되십시오. 팔순이 가까운 연세에도 거뜬히 성지순례를 다녀오신 어머니도 평안하시겠지요? 언니와 저는 수도원에서, 오빠와 동생은 가정에서 각각 다른 길을 가고 있지만 세월이 갈수록 우리의 사랑은 기도 안에 더 빛나고 아름답게 결속되어 있음을 느낍니다. 우리 수녀원 솔숲의 소나무 같은 오빠에게 소나무빛 사랑과 존경을 드리며 이 글을 접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1990.8

부산 광안리수녀원에서 아우 수녀 올림

 

 

 

 

 

 

‘바다’ 아저씨께

 

조용한 행복 속에

요한 신부님께

 

선생님의 독자로서

이어령 선생님께

 

 

 

겨울 엽서

벗 승자에게

 

1

퇴색된 잔디밭에 피어 있는 붉은 동백꽃의 선연한 빛깔이 유난히 아름답게 느껴지는 겨울 오후입니다.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 전나무가 더디 시드는 것을 알게 된다’는 <논어>의 한 구절을 생각하며 수녀원 뒷산의 소나무들을 다시 바라봅니다. 늘 함께 살던 사람들의 좋은 점도 왜 하필이면 그들이 멀리 떠난 연후에야 더욱 돋보기게 되는가를 더불어 생각했지요.

얼마 전에 새로 이사를 했으니 언제라도 와서 쉬라는 벗의 말을 듣고는 그곳에 가지 않고도 집을 한 채 얻은 듯 부자가 된 것 같은 느낌입니다.

 

2

‘작은 이모. 올해도 별처럼 말똥말똥 샘물처럼 맑은 눈빛을 잃지 마시고 편안하고 즐겁게 보내세요’ 노란 색종이를 접어 만든 카드에 어린 조카 계현이가 또박또박 연필로 쓴 글을 보니 절로 미소가 떠오르네요. 그 애 말대로 밝고 맑은 마음으로 또 한 해를 살고 싶고. 쓸만한 동시도 몇 개 쓰고 싶군요.

 

3

마음 깊이 숨겨둔 보물상자에서 어쩌다 하나씩 내가 꺼내 쓰는 시의 보석은 날이 갈수록 초라하고 부끄러워 다시는 꺼내 쓰지 않으리라 결심하다가도 종종 다른 이가 그것을 애용하는 걸 보면 왜 조금은 더 빛나고 아름다워 보일 때가 있는지 – 그래서 나는 또 숨겨둔 보석을 서슴없이 꺼내어 쓰고, 그러다가 또 후회하고, 이러한 내 마음을 벗은 이해할 수 있지요?

 

4

일을 위한 것이지만 며칠 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나보다 먼저 태어난 많은 이들이 먼저 세상을 떠나 묻혀 있는 이 땅에서 때로는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걷기도 하면서 산과 강, 빈 들판과 겨울 나무, 마을과 사람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여행길에 서면 그 누구도, 그 무엇도 가깝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이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과 평화로움. 이것이 여행자의 기쁨인 듯해요. 나날의 삶을 더욱더 새로운 경이와 신비로 받아들인다는 벗의 말을 자주 기억하고 있는 요즘입니다.

 

5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여러 차례의 강연을 하고 난 후에 몸살과 더불어 심한 후유증을 앓게 됩니다. 아무래도 말을 많이 하는 쪽보다는 듣는 쪽에 있는 것이 수도자의 몫인 듯해요. 평소엔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 넘길 수 있는 말들이 몸이 좀 불편할 땐 곧잘 서운하고 언짢게 들리는 것은 그만큼 자의식이 강하기 때문이겠지요? 며칠간 누워 지내는 동안의 예기치 않은 적막감을 통해 배우는 게 많아요. 많은 경우에 다른 이의 아픔을 비켜가거나 무관심했던 자신을 성찰하게도 되는 좋은 기회입니다.

 

6

20세기의 성자로 불리던 교황 요한 23세의 <영혼의 일기>를 다시 탐독하여 내 영혼의 양식으로 삼습니다. 어느 해 겨울에 그 분은 이렇게 썼습니다. ‘부디 내 영혼에 틈이 생기지 않기를 – 나의 영혼에 거의 알아챌 수 없으리만치 적으나 나를 배반하여 생긴 조그마한 틈바귀들에게 많은 주의를 해야 한다. 그것은 쓸데 없는 말이거나 약간의 자만심이거나 혹은 일하기 전후에 조급히 드린 기도일 수도 있다.’

 

<1988>

 

 

 

달빛 아래서

임영무 선생님께

 

글 욕심도 버려야만

독자 평이에게

 

잘 듣는 삶을

노엘 수녀님께

 

시를 나누는 기쁨으로

마르티나 수녀님께

 

자신의 바로 그 자리가

용욱 엄마에게

 

콜베 신부님을 기리며

성인 탄생 100주년에 부침

 

** 지금도 ‘필사 筆寫’ 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Disclaimer: 여기에 실린 글은 copyright가 된 책, 기사를 ‘발췌, 전재’를 한 것입니다. 모두 한 개인이 manual typing을 한 것이고, 의도는 절대로 저작권 침해가 아닌, fair use의 정신을 100% 살린 것입니다. 의도적으로 ‘시간적인 제한, 독자층의 제한’을 염두에 두었고, 목적은 단 한 가지 입니다. 즉 목적을 가진 소수 group (church study group, bible group, book club) 에게 share가 되었습니다. password protected가 되었는데, 만일 이것이 실패를 하면 가능한 시간 내에 시정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May 2020
S M T W T F S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31  
Categories
Archiv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