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te present, High Noon Les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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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te Birthday Present: 며칠 전 연숙의 private room office renovation: 즉 painting & flooring 이 다 끝났다. 이것은 사실 몇 달 전에 65세 생일선물로 그녀의 보금자리인 ‘집무실’ 방을 새로 꾸며 주자는 말에서 시작이 되었다. 그것이 우리 집, This Old House, 2층의 모든 방을 새로 바꾸는 것으로 커져서 올해 우리 집 최대의 변화를 주는 것으로 남게 되었다.

모든 labor는 나의 mere body에서 나오는 것이라 돈으로 따지면 사실 ‘재료 비용 expense’만 들면 되지만 70에 가까운 나에게는 사실 그렇게 쉽지만은 않은 job이었다. Muscle, tool 과 skill이 필요한 것은 큰 문제가 없는데 문제는 전보다 굳어진 backbone과 minor hemorrhoid 가 걱정거리였다.

 

 

Flooring job은 특히 lower body에 가해지는 stress가 보통이 아닌 것이다. 하루 일하고 나면 그 다음날은 대부분 쉬어야 할 정도였다. 이럴 때는 일하는 속도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생일인 9월 1일이 아닌 지금에야 끝을 낼 수 있었다. 늦어진 또 다른 이유는 위에 말한 ‘레지오 미친X’ 사건으로 조금 신경을 곤두세운 것인데 사실은 그것은 생각보다 큰 문제는 아니었다. 그저 ‘미친 x’이라고 무시하였기 때문에 금새 정상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원래 있던 carpet위에 있는 big furniture들은 사실 위치를 바꾸는 것이 너무나 힘든데 지금의 hardwood(laminate) floor에서는 어린 아이들도 쉽게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쉽다. 매끄럽고 차가운 바닥에서 갈팡질팡하는 Tobey를 위해서도 area rug을 빨리 놓아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아마도’ 이 집에서 이사를 나갈 때까지는 다시 이런 힘든 일은 다시 없으리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  High Noon’s Lesson: High Noon, Gary Cooper, Grace Kelly, Do not forsake me, oh my darling… Frankie Lane과 비슷한 목소리, Tex Ritter의 bass theme song 이 귀에 쟁쟁하게 들린다. 그렇게 유명했던 50년대(정확히 1952년경) 미국 서부영화의 ‘정수, essence’,  나는 너무 어려서 서울에서 그것을 못 보고 후에 미국에 와서야 TV에서나 볼 수 있었다. 이것이야 말로 글자 그대로, glorious black-and-white, 정말 멋진 흑백영화, Gary Cooper와 Grace Kelly..의 실감나는 연기, 또한 ‘인생에 교훈을 주는’  story line도 멋지고 ‘전통적인 서부영화 backdrop scenery가 거의 없는 영상’도 멋지고 출연 배우들의 모습과 연기들 모조리 기가 막히게 좋았던 그 추억의 영화가 얼마 전 갑자기 ‘커다란 의미를 가지고’ 나에게 다가왔다.

이 영화에서 Gary Cooper 의 character는 small town marshal,  Mr. Will Kane 인데 이야기의 요점은 이것이다. ‘나에게 갑자기 다가온 위협, 공갈, 협박으로부터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도망가지 마라!’ 이런 것이 아닐까? ‘평화주의자 pacifist, Quaker교도’ 인 약혼자 Amy (Grace Kelly)는 결사적으로 ‘폭력을 피하고자’ town으로부터 도망가자고 주장한다.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 혼자서라도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걸고 ‘괴물 monster’들과 맞서야 하는 것과, ‘좋은 것이 좋고’, 약혼자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도망’을 가야 하는 것.. 이 두 극단의 선택에서 결국 Gary Cooper Will Kane은  목숨을 걸고 monster들과 정면대결하며, 또한 보안관의 의무를 지키고자, 도망가는 것을 포기하는… 이때에 그는 주변에 도움을 청하지만 한 사람도 돕지를 않고 숨어버린다.

 

 

Do not forsake me, My Darling. (High Noon)

 

물론 이런 이야기는 비록 fictional 한 것이지만 우리의 기나긴 인생역정, 또한 매일매일의 일상생활에서도 겪을 수 있는 것이다. 나도 이런 선택의 순간을 최근 며칠 동안 내 눈과 코앞에서 직접 목격하게 되었다. 나는 본래 nonviolence 그리고 영화의 Amy, Grace Kelly처럼 trouble이 있으면 피하는 것이 상책.. trouble에 개입이 되면 시간 낭비.. 라는 생각으로 오래 살아왔고 나중에 그런 나의 runaway, inaction에  따른 값비싼 대가 代價 를 치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나도 놀랄 정도로 나는 바뀌어 있었다. 경우에 따라서 정면대결을 하고 그것도 수단과 방법을 다 쓰더라도 이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바뀐 것이다. 여기서 지면 후에 아무런 내 삶과 신앙의 의미를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가까운 예로, 얼마 전 일어난 ‘불상사’ (a.k.a 레지오 미친X 난동사건)는 하나의 wakeup call이 되었고, 내 자신에게 엄청난 변화의 기폭제가 되었다. 그 정도로 그 사건은 나의 모든 ‘기본적 믿음’을 뒤 흔들어 놓는 ‘더러운 사건’이 된 것이다. ‘신앙적인 악의 실존’을 절대로 실감하고 목격하게 된 것이다. 이 ‘악’과 대결하는 것을 피하는 것은 신앙적으로도 죄와 패배가 됨을 절실히 느꼈다. 특히 그 미친x monster가 범했던 ‘악행’은  accidental, stupid mistake가 아니고 premeditated, intentional 한 것이라는 사실을 100% 확신 했기에 나의 생각은 돌이킬 수 없게, 더욱 굳어진 것이다.

이 ‘더러운 사건’ 이후 모이는 첫 레지오 주회합에는 ‘예상대로’ High Noon처럼 모든 towns’ people (a.k.a 레지오 단원)들은 도망가 버렸고 town marshal인 연숙은 Will Kane처럼 ‘홀로’ 그곳엘 갔고, 즉시 나는 일생일대의 후회를 하게 되었다. 물론 그들은 미친x monster의 ‘썩은 가오‘가 보기 싫어서 그랬을 것이고, 이것이 바로 나의 High Noon moment였구나 하는 죄책감이 들었다. 내가 그렇게 High Noon 영화의 도망가 숨어버린 towns’ people처럼 비겁한 남자였나..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나는 나 자신의 High Noon을 신앙적인 각도로 극복하게 되었고 이제는 후회가 없다. 진정한 악은 ‘나의 악’으로 무찌를 것이다. 그 미친x 불쌍한 영혼을 위해서도 이런 방법을 써야 하는 것이 조금 비참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내가 시작 일이 아니고 그 미친x의 악에서 부터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High Noon같은 위기에 그 동안 주위에 있던 ‘친구’들은 과연 어떤 모습을 보였나? 예수가 끌려갈 때 베드로를 비롯한 모든 제자들 비겁하게 모두 도망 갔던 것처럼, 몇몇 예외를 빼고,  나머지는 모두  ‘비겁하게 포기하며 사라지는’ 모습들… 흙탕물이 튀길까 봐 하루 아침에 겁쟁이가 된 모습들이었다. 진정한 ‘레지오 soldier’들의 모습은 그들에게서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일생 일대의 실망감을 금할 길이 없다. 자기의 안전과 체면에만 급급 하는 그 모습들.. 성모님이 뒤에서 보고 계신다면…

내가 사랑하는 성모님의 군대, 자비의 모후에서 나를 멀어지게 하는 것은 100% 분명한 사탄의 짓이다. 그런 사탄은 overwhelming action으로 철저히 제거되어야 한다. 현재 활발히 진행중인 이 미친x  사탄에 대한 ‘뒷조사  background check‘는 계속되고 있고 불원간 세상에 알려지게 될 것이지만, 현재까지 알려진 사실만 보고도 나는 입을 다물지 못할 지경이다. 어떻게 이런 인간이.. 버젓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어떻게 우리는 이런 사실을 모르고… 성모님, 당신의 사랑하는 자비의 모후를 도와주세요.. 부탁합니다!

 

Sixty-fifth at Camps Kitc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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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wife’s 65th birthday.. 물론 나보다 ‘언제나, 죽을 때까지’ 5년 뒤에 오는 것이라 65라는 숫자가 이제는 별 것 아닌 것이 되었지만.. 그래도 그게 아니다.  옛날의 65라는 숫자였다면.. 우아~~ 오래 살았다.. 꼬부랑 할머니다, 죽을 때가 가까웠다.. 는 말들이 따라 붙었을 것이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65세만 살면 ‘많이 살았다… 그러니까, 65세 만세론’에 은근히 공감을 하고 살았다. 이 65세 만세론은 오래 전 대한민국의 다재다능 했던 소설, 수필가로 명성을 날리던 이진섭선생님의 지론 이기도 했다. 그는 65세는 고사하고 60세도 못 채우고 타계를 했기에, 65세는 나에게 magic number로 남게 되었다.

9월 첫날 65세 생일을 맞는, 나와 37년을 같이 동고동락하며 살아온 아내 연숙, 열심히 사느라고 수고가 많았다. 37년을 같이 살아온 것이 도대체 얼마나 긴 세월인지 실감이 가지를 않지만 그저 오래 같이 산 것만은 틀림이 없다. 귀염둥이 막내로 자라 투정부리는 외아들을 만난 것, 큰 후회 없이 잘 살아준 것, 어찌 감사하지 않겠는가?

우리 둘 모두 하느님을 전혀 모르고 산 세월도 길었지만 이제 진정한 삶의 의미와 목적을 알게 된 것, 남은 석양의 세월에서 우리는 진정한 행복은 찾았고 이 세상을 떠나는 그날을 기다리며 살게 되었으니 이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65세 생일이 5의 배수이기에 더 특별할지도 모르지만 다른 것도 있다. 공식적으로 Medicare age가 시작된 것이고 이제는 ‘죽을 때까지’ Medicare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이런 entitlement들, 절대로 charity가 아님을 알고 정정당당한 입장으로 혜택을 누리면 된다. 덧붙여서 이번에 Social Security Benefit도 같이 신청을 해서 죽기 전까지 해야 할 paperwork을 다 끝낸 셈이 되었다. 이런 조금은 복잡한 paperwork들을 나는 이미 경험을 했기에 거의 모두를 내가 도와 주었다.

 

 

올해의 생일날에는 예년과 같이 아이들이 찾아 준 ‘새로운 곳’에서 외식을 하였다. 작년의 Stockyard와 비슷한 느낌의 Eclectic American style인 Camps Kitchen & Bar, East Cobb의 노른자위 Paper Mill area에 올 봄 open 한 곳이다. 군침이 도는 gourmet hamburger와 red wine으로 생일 저녁 온 가족이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 another day of life라고 할까.. 이것이 인생이다. 이것이 인생이다.. 인생은 그렇게 특별한 것이 아니다. 평범한 것이다.

 

 

Bye bye kittens: mission accomp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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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WS-ATLANTA 입구, Van 이 보인다

 

오늘은 올해 들어서 처음으로 우리 집(가족)에게 monumental day라고 불릴 수 있는 기억에 남는 날이 되었다. 태양이 작열을 하는 전형적이고 통계적으로 아주 정상적인 뜨거운 복 伏 날씨에, 나와 연숙은 ‘마지막’으로 남아서 우리를 바쁘게 해오던 마지막 3마리의 정든 kitten들을 kitten carrier에 넣어 차의 backseat에 태우고,  ‘침울하지만 차분한’ 심정으로 PAWS ATLANTA (a NO-KILL animal shelter & pet rescue) 가 있는 metro Decatur west-end로 거의 한 시간 drive을 했다. 그리고 지난 성 목요일, 4월 13일부터 시작되었던 8마리와  kitten 들과의 하루하루가 주마등처럼 지나가며 ‘괴로웠을 때, 피곤 했을 때, 눈물이 났을 때’등을 서로 회상하였다. 한마디로: Mission Accomplished! 란 말이 저절로 나왔고 우리 둘은 big high Ten으로 자축하면서 눈언저리가 시려옴을 느끼기도 했다.

 

Cat’s dormitory, 이곳에서 입양을 기다리며 모여서 산다

지난 6월 초에 나 혼자서 2 마리의 feral mommy cats(8마리 kitten들의 mom & grandma)들을 fix (spaying & neutering, 불임수술) 하러 이 지역에 있는 다른 시설 (LifeLine Animal Project) 에 왔던 것 보다 더 먼 곳이었다. 왜 하필 이런 시설들이 우리 집과 정 반대 쪽에 있는 곳에 있을까.. 생각해보니 이런 곳들을 찾아 내고 ‘이용’했고 우리에게 소개해 준 것이, 이 작은 딸 나라니 였는데.. 그 애가 Decatur에 있던 Agnes Scott College에 다녔었고 이 지역의 animal shelter들에 익숙해 있어서 그렇게 된 것이다. 분명히 우리가 사는 west metro의 Cobb county지역에도 이런 시설들이 있을 듯 한데 그곳에 대한 자신감이 없기도 해서 이렇게 한 시간 drive를 해야 하는 것을 감수하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던 것은 8마리의 kitten들이 모두 개인가정에 adopt되는 것이었지만 나라니의 ‘영웅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3마리는 주인을 찾을 수가 없어서 초조하던 차에 마지막 희망인 이곳 paw-atlanta를 찾은 것이다. 이곳에서는 adopt가 될 때까지 한 달이고 일 년이고 맡아서 보호해 주는 곳이고 website를 보니 안심이 되었다.

 

3 마리, 이곳에 안착하자마자 주위를 탐색하고 있다

 

나머지 3마리, 우리도 놀란 것이 너무나 정이 많이 들었었다는 사실을.. 사람 못지않게 끈끈한 정이 들어서 헤어지는 것이 정말 괴로울 지경이었다. Kitten들은 물론 우리와 헤어지는 것을 실감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곳에 이미 있던 다른 친구들과 즉시 어울리는 것을 목격하고 우리는 조금 안심을 할 수 있었다. 이제는 하루 속히 사랑을 줄 수 있는 가정으로 입양이 되기만을 하루하루 기도하는 수 밖에 없다.

 

우리를 울리게 했던 녀석, 꼬마.. 어디에 가던지 잘 살아다오..

 

세 마리 중에 우리의 가슴을 쓰리게 했던 ‘놈’이 ‘꼬마’인데, 태어났을 때 너무나 작아서 과연 살아날 수 있을까 신경을 쓰던 녀석이었다. 매일 매일 젖과 먹이를 먹일 때마다 그 녀석의 유난히 가느다란 뒷다리를 주시하기도 했는데, 정성을 드린 것이 효과를 보아서 나중에는 거의 정상적인 모습을 갖추게 되었고 아주 활발한 kitten으로 자랐다. 그 애를 마지막으로 보내며 연숙은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을 것이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좋은 곳으로 입양만 되기를 기도하며 기도한다. 

희망적인 news는 이런 어린 kitten들은 비교적 빨리 adopt가 된다고 한다. 모두들, 특히 어린아이들이 있는 집에서 원하기에 그런 모양이라고 해서 희망을 갖고 기다리기로 했다.

정든 kitten들이 떠난 그들의 보금자리, 몇 개월 동안 이곳에서 뛰어 놀았다

 

expected but sudden and s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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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남은 3 마리의 super cute kitten들과 작별인사를 할 순간이 갑자기,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No-Kill Animal Shelter: PAWS-ATLANTA에 일단 가서 입양을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처음에는 사실 나도 놀랄 정도로 슬픈 감정이 밀려들었다. 나도 놀란 것이, 불원간 이별할 것을 알고 같이 살고 있었지만 막상 그 순간이 온 것이 사실을 그저 잊고 싶었다. 이것이 바로 그것, 잊고 살았던 끈끈한 ‘정 情’ 이란 것이다. 70평생 살면서 그것도 잊고 살았단 말인가?

8마리 모두가 함께 딩굴며 행복했던 시절..

 

세상에 나오면서부터 우리의 손에서 자란 8 마리 (3 마리는 낳아준 엄마 품에서 한 달을 보낸 후에 우리가 길렀다) 각자 모두 특징이 있는 8마리 형제 자매들 중에서 5마리는 이미 나라니의 ‘영웅적인 노력’으로 모두 ‘좋은 가정’으로 adopt 가 되었다. 8마리에서 5마리가 빠진 3마리, 처음에는 그렇게 쓸쓸하기까지 보이더니 우리도 애들도 잘 적응해서 전에 비해서 훨씬 ‘편하게’ 2층 독방에서 잘 놀며 자라고 있지만.. 사실 언젠가는 이별을 예상은 안 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 3마리를 잘 기르는 것은 사실 무리 (이미 1 dog, 1 cat이 우리 집에 있기에) 였고, 애들도 모두 반대를 하곤 했다.

요새는 동물, 특히 pet animal 들과 정이 든다는 것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가끔 생각하곤 한다. 이제는 그곳에 가서 하루 빨리 좋은 가정에 입양되기만 기도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큰 눈이 안 오는 1월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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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blog) posting을 했던 때가… 와~~ 믿어지지 않는 ‘작년’ 2016년 11월 Thanksgiving Day 때가 아닌가? 그러니까 크리스마스가 있던 12월과 가족적으로 너무나 바쁘기만 한 1월 이 온통 다 posting 없이 지나간 것이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 지난 2개월 동안 비록 posting을 없었지만 간간이, 틈틈이 남겨 둔 calendar journals, sticky note들이 이곳 저곳에 남아있고 ‘digital traces [emails, voice recording, snap photo 같은]’의 도움으로 지난 2개월의 blog post (retro-blogs)들도  ‘곧’ 채워질 것으로 희망을 하며 이렇게 1월을 보내게 되었다.

 

¶  지난 26일에 2016년도 Federal Income Tax Return을 2시간 만에 끝을 내어 버렸다. 미리 생각하고 시작한 것이 아니고 ‘충동적’으로 한 것인데 그것이 나의 습성이기에 크게 놀라진 않는다. 올해의 tax return은 약간 의외적이었는데 tax refund가 아니고 오랜만에 tax를 내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기분이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것은 지난 해 ObamaCare coverage때문이어서 우리 집의 financial fundamental과는 큰 상관이 없는 것이어서 크게 문제 삼지 않기로 했다.

 

¶  올해의 겨울날씨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었던가? 1월의 마지막에 들어서 돌아보니 분명히 heating bill이 작년보다 가벼워진 것 같다. 올해 겨울 long-term forecast는 못 보았지만 분명히 ‘이상난동’에 가까운 것으로 보도했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 아틀란타 지역의 뚜렷한 4계절이 이제는 ‘아열대성 subtropical’형으로 바뀌는 것이 아닐까.. 이제는 4계절 보다는 ‘우기와 건기’인 듯이 느껴진다. 그러니까 예전의 한 겨울이 ‘차가운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그런 것으로 변한 것이다. 1월 초 한때 잠깐 강추위와 눈이 조금 뿌렸지만 그 정도는 경미한 것으로 끝나고 앞으로도 ‘큰 뉴스 예보’는 보이지 않는다. 가끔은 그래도 ‘천지개벽’할 정도의 일기뉴스가 그리워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불편을 겪을 정도만은 피해갈 수 있기를 바라기도 한다. 2014년의 그런 ‘교통대란’은 다시 겪고 싶지 않기에 그런 것이다. 그래도… 그래도… 솔직히.. 소리 없이 고요히 밤의 적막을 헤치고 펑펑 내리는 함박눈의 환상은 지울 수가 없다.

1월초 섭씨 영하 10도의 강추위와 약간의 눈발이 내렸던 기억..

 

¶  Crash Courses: ROK (South Korea), DPRK (North Korea) 101:  오래 살다 보면 ‘이유 없이, 우연히, 저절로’ 생기는 일들이 있는데 이것들이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물론 이것이 더 가능했던 것은 ubiquitous Google 의 power일 수도 있다. 불과 20여 년 전에는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닌 것이 요새는 수시로 일어난다. 좋은 예로, YouTube에서 우연히 보게 된 것들 중에 [탈북자] 가 있었다. 이런 ‘탈북’이란 유행어, 말을 듣기는 했지만 나의 코 앞에 다가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KOREA에 대한 관심 전혀 없이 살아온 수십 년 덕택에 완전히 고향감각을 잃어버린 시점에서 이런 것들은 완전히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남쪽은 남쪽대로 ‘빨갱이 정치인’들이 득실거리고 (정말 밥맛 떨어지는 종북좌파 정치인 개XX들은 내가 이 우주에서 제일 증오하는 쓰레기 중의 쓰레기들이다.) 북쪽은 북쪽대로 ‘해괴한 모습의 지도자 동지들’ 치하에서 ‘인민’들을 굶겨 죽이며 ‘장난감’ 무기로 불장난을 하니.. 그래서 제일 피하고 싶던 뉴스는 거의 모두 KOREA에 관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던가.. 이제는 그 말이 역시 명언 중에 명언임을 실감하는 나날과 앞날을 마주 보게 되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나의 고향, 나의 조국을 ‘심각하게’ 공부하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Eve, Christmas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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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h oh.. 와~ 오늘이 며칠인가.. 2016년 12월 24일, 사실 이날의 느낌이 12월 25일 보다 훨씬 더 설레고 진하던 시절을 오래 전에 보냈던가? 이제는 그런 설렘은 기억 뿐이지만 그래도 잔잔한 설렘은 어쩔 수가 없다. 요새 비교적 평화로움을 유지하며 여기까지 온 것만도 나에게는 더 큰 성탄 선물일 것이다.

오래 오래 오래 전 우리 둘 모두 교회, 성당을 모르던 시절 신혼 초, 정말 고요한 밤을 보냈다. 아니 너무 고요해서 심심하고 쓸쓸한 밤이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Eve 밤 늦게 차를 몰고 downtown (당시는 Columbus, Ohio)을 배회하는 것이었는데.. 왜 그런 해괴한 idea가 우리 둘의 머리에서 나왔는지.. 아마도 찬란한 holiday decoration, tree light같은 것을 보려고 했을 것이지만 집에 들어오면 이상하게 더 쓸쓸해지는 것을 알았다. 외롭기도 하고.. 별로 좋지 않았다. 그런 것이 크리스마스의 진짜 이유를 찾고 알게 되면서 모든 것이 변했다. 그 이후는 우리 가족의 역사가 되었다.

최근에 들어서는 최소한 우리 직계가족 전부 (4명)이 모여서 우리 집 근처 Holy Family성당에서 합창단과 더불어 함께 노래를 부른 후, 자정미사를 보는 것이 정상이 되었다. 오늘 밤도 같은 routine을 거칠 것이다.

 

Thanksgiving,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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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anksgiving Song – Mary Chapin Carpenter

 

서기, 주후 主後 2016년 11월 24일.. 11월 24일이란 말의 느낌은 확실히 미국의 ‘추수감사절’임을 느끼게 하는 것.. 그렇다. 죽을 때까지 타향일 수밖에 없는 이곳 미국에서 숨을 쉬면 산 세월, 연륜이 결코 만만치 않은 45년에 가까워짐을 실감하는 것은 글자 그대로 착잡 錯雜 한 바로 그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 비’ 구경 한지가 2달이 가까워 오는,  매일 매일이 화창한 깊고 푸른 하늘의 가을, 기온은 빙점까지 떨어지는 것, 비만 빼고는 지극히 보통, 정상적인 2016년의 가을의 끝 자락에서 지나간 일년을 감사하는 날 ‘추수감사절’, 바로 오늘이다. 며칠 싸늘하던 날씨가 포근하게 바뀌고 굳게 닫혀 있던 창문을 모조리 열고 신선한 공기를 느끼며 오랜 만에 편한 오후를 맞이한다.

지난 일주일의 대부분을 조금은 심하게 우울한 기분에 시달리다 timing 좋게 그 수렁에서 빠르게 벗어남을 느낀다. 왜 그런 less-than-mild depression에 빠졌고 왜 재빨리 빠져 나오지 못했나 아직도 ‘분석’ 중이다. 앞으로 이런 푹~ 쳐지는 감정에 다시 빠져도 별 도리 없이 이번처럼 그대로 시간만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 정말 싫지만, 아직도 뾰족한 대책을 찾지를 못한다.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4명 가족이 다 모이지 못해서 세월의 흐름을 실감하게 만든다. 오직 4명의 식구가 똘똘 뭉쳐 살던 시절들이 이제는 다 지나갔는가? 한 가족의 궁극적인 진화라고는 하지만 쓸쓸한 심정을 금할 수가 없다. 올해는 작은 딸이 빠졌다. 새로 사귄 boyfriend 의 ‘저택’에 초청을 받았다고 하지만 우리로써는 섭섭한 마음, 많지도 않은 가족인데.. 그래도 남은 3명이 turkey를 제외한 풍성한 음식을 즐겼다.

올해는 어떤 Thanks를 give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았다. 올해는 작년에 비해서 조금 이것이 힘든 것을 보면 아마도 그렇게 spectacular 하게 감사할 것이 없는지.. 하지만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니 그것이 절대로 아님을 알게 되었다. 오늘 Thanksgiving day Mass에서 Father Miguel의 강론이 그것을 일깨워 주었다. 얼마나 많은 것을 우리는 감사해야 하는지 우리는 모르고 지낸다고..

작년에 우리가 받았던 메가톤 급의 ‘은총’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그대로 4식구가 건강한 삶을 살았다는 것, 감사를 드린다. 비록 나이는 더 먹어가지만 나이에 비해서 건강함을 유지했던 덕분에 그런대로 매일 미사, 충실히 참례했던 사실, 장기간 봉성체를 하며 돌보았던 ‘보나’ 자매님을 ‘안전하게’ 하느님 품으로 보낼 수 있었던 때, 우리가 속한 자비의 모후 레지오, 위기를 넘기며 탄탄하게 견디며 현재 아주 건강한 힘으로 활동을 하게 된 사실, 우리의 미국본당에 ‘결혼사제’가 부임을 해서 걱정도 많이 했지만 의외로 좋은 결과를 낳게 된 것, 예산에도 없던 에어컨 고장을 brute-force로 고쳤던 사실, 수십 년간 녹슬었던 나의 guitar 실력을 guitar club에 관여하여 되 살릴 수 있었던 기회, 레지오 전 단원 바울라 자매의 부군 조 이시도르 형제님을 안전하게 하느님 품에 안기게 했던 은총, Atlanta History Center에서 즐겁지 않은 직장생활을 했던 작은 딸 Vonnie, 더 좋은 장래성이 있는 곳으로 옮겨간 사실, Science & Religion 분야 중 최근에 개발된 이론들을 총 망라한 저서와 저자, Father Robert Spitzer를 찾고 알게 된 사실: 별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일지라도 이것들 모두 하느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것들이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another day in the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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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황혼기에 아주 길지 않을 것 같은 이 시간들은 초록빛이 하늘을 덮었던 지나간 시절들에 비해서 일초 일초가 너무나 귀중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과연 이 귀중한 시간을 귀중하게 아끼고 있는 것일까? 어제, 오늘 찬물을 뒤집어 쓴 기분으로 일초 일초의 의미를 되 찾으려고 발버둥을 친다. 하지만 무슨 깊은 함정에 빠졌다는 기분은 떨칠 수가 없다. 이것도 그저 며칠이 지나면 또 a day in the life가 될 것이지만 그래도 아깝기만 한 일초일초.. 시간은 거침없이 지나간다.

예측할 수 없는 감정의 기복과 인간관계에 의한 놀라움, 잘잘못을 떠나서 전혀 예측할 수도 없고 방지할 수도 없는 그야말로 함정 중의 함정, 예방책이 그렇게 효과적이 아님으로 사후 대책에 안간힘을 쓰지만, 이것은 최소한의 냉각기 같은 시간이 필요함을, 오랜 인생의 경험에서 체득한 바다. 그저 .. let it be, let it pass, let’s wait and see.. 같은 값싼 말만 되 뇌일 뿐이다. 청명하고 빠삭.. 한 깊은 가을 하늘을 바라볼 뿐이다. 지나가라.. 지나가라..

Sudden death, black day, blow-up day 같은 간단한 단어들이 나의 journal 에 적힐 뿐 다른 활동은 거의 없는 이런 며칠을 어떻게 보낼까.. 이런 지혜는 성경의 어느 구절에 나오는 것일까? 아니면 어떤 inspirational books같은 것은 없는 것인가? 결국 며칠 동안 실감하는 것은 이것이다. 인간은 비록 사회적 동물일 수 밖에 없지만 때에 따라서는 절대적으로 고독한 ‘홀로 존재’라는 놀라운 사실이다. 결국은 인간은 혼자인 것이다. 그래도 여기에 위로는 있다. 절대로 혼자인 인간은  놀라운 transcendent nature 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 오감과 경험에 의한 것들에서 초월한 것들, 감성적이 아닌 이성적인 믿음을 향하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결국은 나는 ‘며칠 동안’ 이곳으로 몸과 마음을 의탁하며 Robert Spitzer의 글1을 다시 묵상해 본다.

 

The dark side of life can sometimes be quite daunting, but the love of Christ, prayer, the Church Community, the Holy Spirit, the Holy Eucharist, and the Word of God can bring light into the darkness. This gives rise to a great mystery that most people of faith will well recognize – that challenge oftentimes turns into opportunity, suffering into new viewpoints and ways of life, dejection into strengthened hope, fear into trust in God, weakness into spiritual strength, temptation into strengthened virtue, and confrontation with evil into the triumph of love.

 

  1. Robert Spitzer, S.J., Ph.D. 2016.  God So Loved The World.  San Francisco: Ignatius Press, p. 340 ↩

3rd sick day, 올해의 연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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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ck day, 3rd.. 우리는 정말 오랜 만에 편히 쉬는 기분을 느낀다. 역시 쉬는 것은 아플 때 더 그 진가 眞價 를 느끼는 것인가? 적당히 몸이 아픈 것은 마라톤 같은 기나긴 인생여정에서 필요한 윤활유역할이 되기도 한다. 며칠 째 ‘기침, 몸살감기’로 고생하는 연숙 ‘덕분’에 정말 오랜 만에 모든 ‘정상적 일정’을 쉰다. 그야말로 ‘뜻밖의 휴가’같이 되었다.

매일 아침의 rule이었던 9시 미사가 우리의 하루에서 빠지는 것 때문에 더욱 멀리 떠나온 여행 같은 느낌을 주는지도 모른다. 2012년 부활절 때부터 시작된 이것, 벌써 4년 반이 된 아침의 ritual, 우리 DNA 의 일부가 된, 하루(그리고 인생)를 건전하게 사는 활력소 (빵과 피)가 되었기에 이것이 빠진 하루는 조금 허전하기도 하다.

아침 9시 미사에서 매일 보게 되는 regular Irish, Hispanic ‘아줌마’들, 은근히 걱정을 하고 있을 것이다. 거의 예외 없이 같은 자리를 지키던 우리가 안 보이니.. 아마도 ‘드문 여행’ 아니면 누가 아플 것이라고 속으로 기도까지 할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도 누가 안 보이면 그랬으니까..

이번 주일날에는 일년에 한번씩 있는 ‘레지오 간부교육‘이 있는 날이라 순교자 성당엘 가야 하는 날인데, 만약 그때까지 이 감기, 몸살이 깨끗이 낫지 않으면.. 조금은 골치가 아프게 될 것 같은데, 최악의 경우 빠질 수도 있겠지만 ‘공식적인 일정, 의무’가 있는 연숙은 큰 문제일 것이다. 예비신자 교리반도 그렇고, 레지오 간부교육도 마찬가지다.

주변에 있는 중병이나 terminal illness로 고생하는 사람들에 비해서 이것은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위로를 해야 하는가.. 하지만 이럴 때에 비로소 ‘아픈 주변 사람’들의 고통을 절감, 실감하게 되는 좋은 때가 되기도 하니까 시간 낭비만은 아닐 듯하다.

 

¶  2016년 레지오 연차 총 친목회(줄여서 ‘연총‘)가 이제 한달 반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참 세월이 어찌도 이렇게 빠른가.. 작년, 재작년 때 연총을 어제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벌써 또 한 해가 간단 말인가? 레지오 조직에는 참 좋은, 의미 있는 ‘단체 행사’가 있고, 대부분은 군대의 훈련과 비슷한 면이 있지만 이 연총은 쉽게 말해서 한 해를 보내며 ‘즐겁게 노는’ 쪽이다.

6년 전 레지오를 시작하면서 이 행사는 나에게 제일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그만큼 기억에 남는 것이 되고 있다. 매년 12월 8일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의무 대 축일이고, 그날을 전후로 연총이 열리게 되어있지만, 사실은 세속적인 분위기에 곁들여 ‘성탄’의 분위기가 조금씩 느껴지는 시점으로 이 행사는 조금 들뜬 분위기일 수밖에 없다.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꾸리아 소속 모든 쁘레시디움의 행동단원, 협조단원들이 참가하는 올해의 연총, 12월 4일 일요일 오후에 성당 친교실을 떠들썩하게 할 것이다. 이때에는 ‘드물게’ 모든 레지오 단원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게 되고 그들이 준비한 talent show를 즐기게 된다. 기억에 남는 ‘제일 신명 나던 때’는 역시 4년 전, 2013년 연총이 아니었을까?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때가 나의 ‘레지오 전성기’가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뭔가 잘 모르며 ‘레지오의 매력’을 한껏 느끼던 그런 때.. 돼지띠 동갑 전요셉 형제와 한껏 의기투합이 되던 때, 새로 배운 ‘엽전냄새가 흠뻑 밴’ 둔탁한 저음의 난타 큰북 리듬..  ‘희귀동물’ 남자 단원들과 함께 악을 쓰며 부르던 ‘통기타 노래들’.. 참, 그때가 그립다.

그 이후부터는 사실 나로써는 조금은 김이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왜 그런지 사실 확실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이것이 ‘경험에 젖어가는 정상적인 것’이 아닐까.. 그 동안 한번도 빠지지 않았지만 작년에는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고통, guess what?’으로 부득이 talent show에서는 빠지게 되었지만 조금 만 참고 참가를 할 걸 그랬나.. 하지만 무리무리 무리였다.. 그 때 해야 했던 것은 ‘탈춤’이었으니.. 몸 전체를 요란하게 움직이는 것, 절대로 무리였다.

올해는 어떨까? 항상 희귀한 남자단원, 사치스럽게 더 찾기 어려운  동갑내기 형제님, 모두 사라지고 다시 지극히 정상적인 ‘꽃밭 속’으로 들어가야 하나..  올해에는 어떤 talent를 보여주나.. 하는 것, 쉽지 않은 것인데.. 올해는 아주 ‘자연스럽게’ 해결이 되었다. 레지오 옆 ‘동네’, ‘은총의 모후‘ 자매님들과 guitar lesson을 하였던 관계로 그 자매님 그룹과 다시 뭉치기로 한 것이다. Guitar를 같이 칠 수 있다는 공통점을 잘 써서 chorus를 하기로 하고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Someone is praying for you‘, 와 ‘개똥 벌레‘라는 두 곡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 듯하다. 합창과 율동이 곁들여진 이것, 이제는 연습을 시작만 하면 되고.. 시간만 지나면.. 이 모든 것도 다 지나가리라..

 

Autumn of my life, Chilly & gloo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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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bby Goldsboro – Autumn of My Life – 1968  

 

¶  3번째 계절로..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3/4분기 계절로 접어들었다. 4계절이 뚜렷한 이곳의 날씨, 비록 여름에 조금 길고 덥지만.. 나는 이 four seasons의 고마움을 항상 느끼며 산다.

 blog-front-1오늘 blog site의 front page의 그림이 가을 것으로 바뀌었다. Tobey와 깊은 가을 산책길에 떨어지는 낙엽을 올려다 보면 찍은 사진.. 오래 전 Ohio와 Wisconsin의 기나긴 겨울과 아주 짧은 봄, 가을의 날씨들에 비해서 이곳은 4계절이 너무나 뚜렷하다. 특히 봄과 가을이 북쪽에 비해서 긴 편이다. 비가 거의 오지 않는 올해의 가을은 어떻게 보면 ‘가을의 진수’를 한껏 맛볼 것 같은 희망도 든다. 파랗다 못해 검푸른 깊고 높은 하늘, 주변이 하늘처럼 높은 고목들에 둘러 쌓인 그 멋진 모습이 사진에도 많이 담겼다. 비록 ‘가을비 우산 속‘ 의 낭만은 없지만 이것은 다른 맛의 낭만이 아닐까? 언제까지 이 모습을 유지할 것인가?

아~~ 앞으로 최소한 두 달 정도는 깊어가는 진한 색깔의 고엽, 낙엽의 향연이 펼쳐질 것이다. 감상에 젖게 하는 싸늘한 가을 비가 덜 와도 상관이 없다. 낙엽이 타는 냄새 같은 진한 coffee와 Tobey와 즐기는 늦은 오후의 낮잠은 나에게는 바랄 수 없는 보약이요 영양제가 되니까… 어머니시여, 자연의 의미와 비밀을 이렇게 계속 보여주소서… 우리는 아마도.. 아마도.. 지금 인생의 가을, 그것도 깊은 가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남은 것은 이제 겨울밖에 없는가.. 

 

¶  이른 새벽, 요란한  연숙의 고통스런 기침소리에 잠을 깼다. 며칠 동안 기침감기, 아니면 독감 증상에도 불구하고 normal daily routine은 고집하며 낫기만 기다리고 있었지만 이번 것은 아마도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은 자괴감에 젖는다. 어제의 레지오 주 회합에서는 드물게 서기인 나보고 묵주기도 주송을 시키며 목청을 아끼고, 오후에는 Tylenol덕분에 많이  좋아졌다고 했지만,  열이 없는 ‘악질성 기침’이 유별난 것이 특이한 이번 감기,  별일 없듯이 목청을 아끼지 않고 전화까지 하며 지내더니 결국은 이렇게 시간을 끄는 것은 아닌가.. 목소리를 쓰는 전화를 거의 안 쓰는 나에 비해서 장시간 전화로 목소리를 쓰는 것, 이런 기침감기에는 아주 치명타가 아닌가..

하지만 오늘 새벽의 기침은 이유가 다른 데도 있었다. 조금씩 떨어지던 새벽 기온.. 결국은 빙점 가까이.. 40도 대로 떨어진 것이다. 아마도 다른 집 같았으면 central heating의 더운 바람 소리가 들렸을 것이지만 68도에 맞추어놓은 우리 집, 온도가 내려갈 대로 내려간 것이고 몸의 allergy성 반응으로 지독한 기침이 난 것이 아닐까.. 그래도 이틀 전에 아래층 gas furnace의 pilot light 를 다시 켜 놓았기에 오늘 ‘강제로’ 70도 manual setting으로  central heating을 가동 시켜 보았다. 너무나 오랜 만에 듣는 그 잔잔하고 둔탁한 gas flame나오는 소리가 반갑고, ‘휴~’ 하는 안도감, ‘아직 이 고물이 돌긴 도는구나..’하는.. 

2주 전까지만 해도 heating 같은 것은 상상도 못했는데 그 동안 어쩌면 그렇게 추위가 느껴지게 날씨가 변했던가.. 매년 10월 중순 경에 첫 central heating 의 blower motor 소리가 들리던 것, 결국은 올해도 평년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거시적으로 보면 거의 변화가 없는 자연의 섭리를 느끼게 된다. 하지만 오늘 아침의 경험은 글자 그대로 chilly & gloomy.. 오늘의 normal daily routine을 완전히 쉬기로 결정을 해 버렸다. 지나가는 주간에는 내가 아픈 잇몸 때문에 비상이 걸렸다가 조금 나아지는 때에 이제는 다른 편이 아프니.. 이럴 때, ‘부부’가 같이 사는 ‘편리함’ 다시금 느낀다. 그저.. 이 늦은 나이에, 둘이 아프더라도 같은 때에 아프지 않으면 된다.

 

Big dip, 9월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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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아기다리 고기다리 던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오래~ 전의 유행어) 그 첫 big ‘sudden’ dip이 거의 도둑처럼 밤새 찾아왔다. 거의 20도가 하루아침에 떨어진 것이고, 그것이 거의 3일째 계속되어서, 아침에 거의 3개월 만에 ‘긴 팔’ shirts를  입게 되니 그렇게 기분이 날라갈 것만 같다. ‘긴 팔’ shirts를 가 딱 좋아서가 아니라 그 지긋지긋하던 2016년 여름이 결국은 물러갔다는 그것이 그렇게 기쁜 것이다. ‘긴 팔’을 입으면서 문득 태고 적, 중고등학교 다닐 때, 10월 1일에 하복에서 동복으로 ‘일제히’ 바뀌던 그 때가 생각이 난다. 그러면 당시의 서울의 사계가 이곳 지역과 비슷한 것일까.. 물론 이곳의 평균기온이 높지만 사계가 뚜렷한 것은 거의 비슷하다.

아침 9시 Holy Family CC 평일 미사엘 가니 우리보다 나이가 더 드신 ‘어르신들, 특히 할머님들’은 숫제 ‘오바 overcoat’를 입고 목도리로 단단히 무장을 한 것이 보인다. 체감온도에 따라 각양각색의  이곳의 ‘주위를 의식하지 않는 의복문화’가 더 뚜렷이 느껴지는 계절이 온 것이다.

Full time으로 돌아가던 에어컨이 갑자기 ‘조용~’ 해 지니 조금은 섭섭하기도 하지만 그럴 새가 없다. 분명히 10일~20일 사이에 첫 central heating이 ‘점화’될 것이기에.. 또 crawl-space로 ‘기어들어가’, 거미줄을 헤치고 gas heater pilot- thermocouple을 ‘점화’하는 고역을 치러야 한다. 문제는 이때 문제가 발견되면.. 또 하루 이틀 고생을 할 것이다. 에어컨은 올해의 oppressive, brutal Summer heat를 잘 견디어 내었지만 올 겨울 central heating 특히 아래층 것이 항상 마음이 조린다. 위 층의 heater는 우리가 이사 온 후에 바꾼 것이라 아마도 ok일 것이다. 올해의 더위로 electric bill은 보기가 무섭지만 그것에 비해서 natural gas는 훨씬 ‘저렴’해서 겨울 몇 개월 동안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 그저 적당히 춥기만, 적당히.. 적당히..

 

¶  2 feral Kittens: 지난 5월 쯤 우리 집 backyard shed에서 태어난 kittens들, 4마리였다. 그 동안 우리 집을 ‘거점’으로 들락날락하더니 결국은 모두 떠나고 kitten 두 마리가 우리 집 뒷마당에 정착을 하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엄마와 다른 2마리는 완전히 떠난 셈이다. 하지만 가끔 엄마는 찾아와서 밥만 먹고 떠나곤 한다. 우리가 control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저 그들의 ‘행태’를 관망하며 먹이만 잘 챙기고 있는 셈이다. 그렇게 조그맣던 것들이 잘 먹어서 그런지 꽤 크게 건강하게 잘 자라는 것을 보며 이제는 우리 집도 그들에게 정이 들고 있다. 그들과 가까워지기 위해서 먹이를 우리 집 뒤 deck에 놓아주고 하루 두 번씩 먹이를 주며 서로 얼굴을 익히며 사귀고 있는데 지금은 우리를 하나도 겁내지 않고 먹이를 가지고 나가면 발 밑에서 맴돌 정도까지 되었다.

집안에 이미 개 Tobey와 고양이 Izzie가 있지만 이 두 마리는 행동이 100% 자유스러운 feral cats들로써 앞으로 ‘불임수술’을 해야 하는 부담이 기다리고 있다. 그들이 원하면 언제라도 우리 집을 떠날 수도 있기에 이것은 반드시 우리가 service해야 할 부담이 되었다. 작은 딸 ‘나라니’가 county humane society에서 ‘거의’ 무료로 수술을 해 주는 방법을 찾고 있는데 아직도 소식이 없다.

건강하게 자라나는 '아롱이'와 '다롱이'

건강하게 자라나는 ‘아롱이’와 ‘다롱이’

 

현재까지 이 두 마리를 보면서 생각한다. 이들도 하느님의 생명들이라는 것, 사람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 생명들이 아닌가? 최대한 그들도 태어난 의미를 찾아 주어야 하는 것, 우리가 할 수 잇는 것은 무엇인가? 우선 이름이 필요했는데 마땅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던 차에 연숙이 ‘아롱, 다롱‘은 어떠냐고 해서 그렇게 불리고 있다. 분명히 순 한글이름이지만 만약 영어로 쓰면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하니 오래 전 고국에서 보았던 불란서 영화의 간판 배우 아랑 드롱 이름이 떠오른다. 우리 집 backyard가 그런대로 넓은 편이니까 아마도 그들은 우리 집만 떠나지 않는다면 Born Free의 사자 lion, Elsa처럼 자유스럽고 먹이 걱정하지 않고 ‘일생’을 사는 그런 삶으로 만들고 싶다. 당장 해야 할 일은 갑자기 떨어진 날씨를 상기하며 겨울을 날 조그만 shelter를 만들어 주는 일이다.

 

¶  오늘은 일주일 전에 계획했던 것, 우리 집에서 거의 30 마일 떨어져 있는 Duluth, GA 에 있는 St. Monica성당을 방문하는 날이 되었다. 얼마 전 부터 아틀란타 대교구 본당들에는 최근에 성녀 품에 오르신 마더 데레사 성녀 (St. Mother Teresa)를 기념하는 조그만 순회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전시는 거의 대부분 데레사 성녀의 일대기가 실려있는 기록사진 panels 들이라 다른 source에서 (Internet같은 곳) 찾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본론이 아니고 성녀의 relic (유물)이 함께 전시된다는 사실이 우리의 관심을 끌었다. 성인들의 relic은 신체의 부분을 포함해서 개인 용품들도 있는데 오늘 이곳에서 우리가 본 것은 성녀 데레사가 입고 있던 sari (파란 색의 사리 옷)의 일부분이었다. 그 색깔은 분명히 사랑의 선교회 수녀들이 입고 있던 연한 파란 색, 바로 그 옷의 일부였었다. 한가한 시간이라 사람이 없어서 그랬는지 처음에는 그 relic이 치워져 있어서 사무실에 문의를 해서 특별히 조그만 방에 임시로 보관 된 그 relic을 볼 수가 있었다. 이미 사진전시로 성녀의 일대기를 다 본 이후에 그것을 다시 보니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Media를 통해서 이미 잘 알려진 수녀님의 모습과 그 파란 색의 옷, 바로 그것이 수녀님 것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이날 30여 마일을 온 보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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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의 1st class relic이 전시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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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ll color panels: 성녀의 일대기가 이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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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Monica 성당 내부

 

When you’re sixty-f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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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eatles – When I’m Sixty-Four

 

휴~ 이제 다 끝이 난 모양이다.  연숙의 생일 ‘먹기’. 1월 달에는 나와 큰 딸, 9월 달엔 엄마와 작은 딸의 생일이 같은 날짜 차이로 있다. 그래서 1월도 조금 바쁘고 9월 달도 마찬가지다. 올해 연숙의 생일은 조금 지나치게 보낸 것은 아닐까? 생일 전날에 Thai restaurant Lemongrass에서 ‘간단히’ 둘이 ‘먹었고’, 생일 날엔 아이들이 와서 Marietta Square에 있는 gourmet hamburger restaurant Stockyard 란 곳에서 ‘무지막지’하게 큰 hamburger와 local microbrewery 산 draft beer sampler로 배가 터지게 먹었고, 마지막으로는 우리 레지오 단원들과 같이 한 생일회식이 마지막을 장식하였다. 그러니까.. 무려 3번 생일축하를 한 셈이다. 조금 지나친 감도 없지 않았으나.. 생각을 해 보니 올해 생일이 육십사세 란 것이 귀에 익은 숫자였다. 내가 4년 전에 1월에 친구 양건주와 나의 생일을 자축한 Beatles classic, When I’m sixty four..  생각이 나는 것이다.  4~5 년 뒤로 나를 따라오는 연숙이 64세라는 것이 조금은 실감이 안 간다. 부모세대의 64세를 생각하며, 손주들이 주렁주렁한 할머니의 모습들.. 암만 봐도 그 때의 그 모습들이 없다. 한 세대가 흐른 시점에서 세대 차를 느끼지만 그것은 모두 ‘겉 모습’에 관한 것 들이다. 아마도 세월에 의한 경험은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아닐까? 그 옛날 60년대.. 이 Beatles의 When I’m sixty four를 들었을 당시.. 기억에, 와~ 그 나이까지 살면 어떻게 하나.. 하고 은근히 기분이 쳐지는 느낌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 우리 부부는 ‘완전히’ 그 magic number를 모두 넘어선 것이다. 참 정직하다, 세월은.. 어김없이 일초 일초..흐른다.

 

7월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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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7월의 마지막 날은 이렇게 오고야 말았다. 표현이 아주 극적이지만 사실 하나도 극적인 것이 없는 2016년 7월이 ‘영원히’ 나로부터 떠나려 하고 있다. 올 여름의 특징이었던 ‘변화 없는 더운 날씨’ 바로 그것으로 기억에 남으리라. 어제가 그제고 오늘이 ‘아마도’ 내일일 것이다. 거의 변화를 못 느끼는 그런 날씨, 더위, 느낌들.. 지겹게도 느껴질 수 있겠지만 올해의 이 여름의 지겨움은 사실 그렇게 견디기 힘든 것은 아니다. 재수가 잘 맞으면 늦은 오후에 쏟아질 수도 있는 소나기의 희망도 있고, 이제는 우리의 몸도 더위에 잘 적응이 되었고, 33일 봉헌 준비를 위해 ‘질주’하는 짧지 않은 영원과의 대화 시간도 있기에 그럴지 모른다.

7월 초에 우리의 미국본당 Holy Family 성당에 ‘기혼자’이신 주임신부님이 부임해서 관심과 우려를 예상했지만 결과적으로 기우였다는 것으로 판명이 되었다. 진지하고 영성 적이고 정치, 사회에 관심이 많은, 강론이 진지하고 준비가 잘 된, 한마디로 ‘합격, 합격’ 이었다. 가정이 따로 있어서 사제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아침마다 출근을 하는 것이 처음에는 너무나 이상했지만 이제는 모든 신자들이 잘 받아드리는 느낌이다. 우리도 마찬가지.. 전번 traditional Irish 신부님과 너무나 느낌이 다른, 너무나 ‘살아있는’ 강론, 앞으로 우리 본당은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긴다.

 

¶  오늘부터 우리의 일요일 routine이 조금 바뀌게 되어서 조금 더 새로운 느낌의 일요일을 맞는다. 바뀌게 된 큰 이유는 동네본당 Holy Family  Catholic Church의  10시 미사 대신에 8시 30분 미사로 바꾼 것 때문이다. 일요일의 은근한 위안이었던 ‘조금 늦게 일어나는’ 것이 없어진 것이 조금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변화였다. 연숙이 한인본당 순교자 성당의 교리반 director가 되면서 어쩔 수 없이 그녀는 ‘매 주일’ 미사에 관계없이 순교자 성당엘 가야 하는 입장이 되었는데, 문제는 우리 둘이 어느 쪽에서 미사참례를 하느냐 하는 것이다.

제일 이상적이고 간단한 것은 우리 둘이 함께 순교자 성당에서 주일미사 참례를 하면 되는 것이다. 비록 정든 Holy Family 동네본당의 주일미사를 못 보게 되긴 하지만 그곳은 평일 미사를 거의 매일 가니까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비록 순교자 성당엘 둘이 가게 되면 나는 교리반이 완전히 끝나는 시간까지 ‘할일 없이 밖에서’ 기다려야 하는 고역도 있긴 하지만 그것도 내가 조금 불편함을 참으면 크게 어려울 것도 없었다. 그런 배경으로 나는 ‘거의’ 주일 미사를 순교자 성당엘 둘이 가기로 마음을 정하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인가, 악마의 손길인가..

우리와는 어쩌다 보니 거의 운명적으로 incompatible한 것으로 판명이 된 인물들이 갑자기 우리 주위의 공동체(주로 구역과 순교자 주일 미사) 에 등장한 것이다. 한 명이라면 그런대로 참고 견디겠지만 그 이상은 감당하기가 힘들다. 멀리서라도 보이게 되면 간단히 피할 것인가, 이들의 존재를 완전히 무시할 것인가, 극약으로 정면으로 대할 것인가.. 어느 것도 나에게는 쉽지 않은 option이라는 결론이 나왔고 결국은 구역 모임, 순교자 본당 주일미사에 가는 것을 아예 포기하고 말았다. 조금 아쉽긴 하지만, 할 수가 없는 노릇.. 다른 것은 배를 쓸고 참을 수 있어도 멀지 않은 과거에 divide & conquer를 motto로 공동체를 사정없이 분열시키고 ‘해괴한 수준의 박학다식‘을 자랑하던 그들의 위선적인 얼굴과, 진짜 속 마음을 알 수 없는 언행 등은 정말로 참기가 힘든 노릇이니 결론은 이렇게 간단한 것이 되었다.

한때 급작스럽게 우리에게 가깝게 다가오던 정들었던 구역 모임과 그곳의 착하게 열심히 살아가던 교우들, 주일 미사에 항상 앉던 자리의 주변에서 그런대로 얼굴이 친숙해지던 형제, 자매님들.. 당분간 (얼마나 오래갈지 아무도 모르는..) 잊어야 할 듯.. 이래서 이것은 운명의 장난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것은 내가 풀 문제가 아니라 우리들의 전구, 보호자이신 성령과 성모님의 절대적인 도움이 필요한 문제가 아닐까? 8월에는 조금 선선하고 신선한 쪽으로 사정이 흐르기만 바라고 있다.

 

DASUQUIN magic: 3주 전쯤 하루아침에 갑자기 거의 신체불구가 된 듯 했던 우리 집 12살짜리 ‘강아지’ Tobey는 한때 ‘장례식’을 연상했을 정도로 암울한 며칠을 보냈었다. 속으로 나는 그 녀석을 보낼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고 설마.. 하는 심정으로 며칠을 정성껏 돌보았는데 문제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나타내는 것을 옆에서 볼 수가 없었던 것.. 우리의 결론은 비록 ‘심한 신경통, 관절염’ 쪽이었지만 혹시 만에 하나라도 다른 것이라면.. 하는 우려가 떠나질 않았다. 하지만 급히 order했던 약을 먹은 그날부터 거의 기적과 같이 움직이며, 신음소리도 줄어들었다. 그 약의 이름이 바로 DASUQUIN 이었는데.. 나는 이때야 비로소 ‘약 장사’의 인상이 조금은 좋아짐을 느꼈다.

이것은 우리에게는 거의 ‘생과 사’의 갈림에서 기적과 같은 느낌을 주는 경험이 되었다. 생각에 그래서.. 그래서.. 약 장사 (제약회사)들이 그렇게 돈을 버는구나 하는 자명한 사실.. 내가 원래 약을 싫어하고 안 믿는 인간이라 더욱 놀란 것이다. 어떻게 거의 죽다시피 보이던 것이 그렇게 나아질 수 있었을까? 3주가 지난 지금 Tobey는 거의 전처럼 돌아왔고 우리 집의 공기는 다시 활기가 돌아오고 있다. 7월이 준 따스한 은혜라고나 할까..

 

준비 6일째, animal pain, 우아~ 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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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헌을 위한 33일간의 준비, 간단히 “33일 봉헌 기도” 라고 불리는 이 한 달을 넘는 준비기간이 7월 13일 시작되어서 이제 6일이 지나고 있다. 33일 중, 첫 12일간을 ‘첫째 시기 12일: 세속 정신을 끊음‘ 이라고 하는 ‘준비 전의 준비기간‘에 속하고, 나머지 3주가 사실 본론에 속한다. 첫 12일 ‘준비 전의 준비기간’ 에는 ‘세속에서 떠나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2년 만에 다시 이 ‘책‘을 보며 ‘묵상’을 하는 것, 새롭기도 하고 조금은 귀찮기도 하지만 이것이 나의 올해 ‘개인피정 personal retreat’ 라고 여기고 조금은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현재까지 느낌은 전 보다 조금은 더 높고 넓게 주제를 받아들이는 그런 것.. 이것은 분명히 발전이다. 과연 우리가 세속이라는 것으로부터 자유스러울 수가 있을까? 우리가 현재 보내고 있는 초 현대는 99.99%가 세속세계가 아닌가? 깊은 산속의 수도원에 들어가기 전에는 아마도 2중 적인 삶(생각과 행동이 같지 않은) 을 살아야 할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노력은 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조금씩 이 세상을 탈 세속 사회로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초자연적인 도움이 있다면…

 

¶  Tobey가 하루아침에 ‘갑자기’ 누워버린 지 일주일이 지나간다. 그 애나 우리나 어떻게 보면 참 긴 시간이었다. 집안에 환자가 생기는 것이 이런 기분이겠구나.. 그렇게 주위에 아픈 사람을 많이 보았지만 집안의 개가 아픈 것을 보는 것은 전혀 색다른 경험이 되었다.

급하게 order한 약, 신경 관절염 치료 보조제 supplement를 기다리는 동안 증세가 조금은 호전된 듯 보이기도 했지만 그렇게나 아픈 신음소리를 내는,  말 못하는 ‘식구’를 보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었다.

이틀 전에 도착한 ‘기적의 약’에 모든 희망을 걸긴 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확실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혹시 이렇게 아픈 이유가 우리가 생각한 그런 것이 아니라면? 하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그 약을 먹은 지 24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Tobey는 다시 서서히 천천히 일어나 걷기 시작한 것이다!  고통스러운 초점을 잃었던 눈이 원래대로 ‘뱅글뱅글’ 돌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가 본 대로 이것은 arthritis계통의 ‘노인병’일 것이다. 이것의 고통은 사람들에게 들어서 익히 알지만 그들은 말이라도 하지만 말 못하는 동물들은 그 심정이 어떨까.. 다시 한번 언젠가 다가올 ‘이별의 순간’에 대한 생각을 물리치며, 이제는 animal pain, animal theology의 의미를 어렴풋이나마 알 듯하다.

 

¶  와~~ 쳐진다.. 오랜만에 기분이 무척이나 쳐진다. 우울할 정도로 쳐지는 느낌 아주 오랜만인가? 예전에는 하루를 멀다 하고 우울한 감정과 싸우던 기억인데 이제 그것도 조금씩 추억으로 변하고 있으니,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왜 그렇게 ‘나아진 것’인지 그 이유는 나에게 너무나 자명하다. 바로 깊숙한 곳에 도사리고 있는 ‘마음의 평화’일 것이다. 이것이 예전에 비해서 그렇게 외부에 의해서 좌지우지되는 것이 힘들어진 것이다. 왜 그럴까? 그런 중에도 가끔 이렇게 우울한 날이 오긴 한다. 얼마를 못 가지만 그래도 이것은 괴롭다. 어찌해서든지 몸을 바쁘게 해서 마음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시간을 보내는 수밖에 없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이유를 생각하면 몇 가지가 분명히 있지만 나로써는 어떻게 해결할 수도, 그럴 가지도 없는 ‘사소한 것’으로 생각하기에 그저 시간만 가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Tobey scare, 33일 봉헌 retr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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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obey Scare: 12살 배기 male mixed Dachshund, Tobey, 이틀 전부터 거의 움직일 수가 없게 되었다. 자는 시간 빼고 거의 모든 시간 나를 졸졸 따라오는 나의 그림자였지만 그날 아침부터 나를 따라오지를 않았다. 아니.. 아예 움직이지를 않았다. 거의 죽은 듯이 엎디어 있고 만지지도 못하게 했다. 일순간에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다. 12살의 나이면.. 언제나 가능성이 있는 나이라고 서서히 우려를 하고 있던 차였다. 제 발로 계단을 못 내려가는 것이 뻔하기에 내가 앉고 나가서 bathroom처리를 했다. 집안의 분위기가 일순간에 변했다. 조용해진 것은 물론이고.. 거의 초상집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처음으로 우리 Tobey와 이별할 수도 있다는 현실감도 들 정도..

주위에서 정든 pet dog을 보내며 보여준 각가지 반응들에 우리는 남의 일처럼 comment를 하곤 했지만.. 이제는 조금 이해가 간다. Veterinarian을 찾으면 이상적이겠지만.. 그것도 꺼려지는 것, 이것 저것 test test.. 로 개를 잡을 것이고, $$$도 만만치 않을 것이지만 그것 보다는 증세가 최소한 internal한 것이 아니기에 며칠을 두고 보자고 결정한 것이다. 그렇다, 최소한 먹는 것과 ‘싸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었으니까..

오늘 소식을 듣고 새로니가 부리나케 ‘병문안’을 왔고 이곳 저곳 연락을 해서 알아보니, 역시 ‘심한 신경통, 관절염‘ 계통의 증상인 듯 했다. 그렇게 잘 걷고 활발하던 애가 어떻게 하루 아침에 그렇게 될 수가 있을까? 부리나케 신경통증을 완화하는 약을 order하고 더 지켜 보기로 했는데, 시간이 가면서 조금씩 나아지는 듯 하긴 하다. 새로니의 이야기가 만약 관절염계통이면 치료가 불가능하고, 통증만 control할 정도라고.. 슬픈 이야기가 아닌가? 어떻게 그렇게 활발하던 애가.. 하지만 12살이 되는 나이를 무시할 수가 없다. 항상 이별할 준비를 하는 것은 생각하기도 괴롭지만.. 어쩔 수가 없는 것인가?

 

¶  2016년 ’33일 ‘대장정’ 의 첫날을 맞이했다. 이번이 3번째의 33일 봉헌이 되기에 조금은 경험이 있다고 할까.. 처음 두 번의 것보다 조금은 느긋한 심정으로 첫 날을 맞이했다. 아침 6시 반에 일어나서 며칠 전부터 뒤적거리던 ‘봉헌을 위한 33일간의 준비‘ 책의 첫 장을 열고 첫 12일의 목표: ‘세속 정신을 끊음‘ 의 제1일 ‘그리스도께서 나를 당신 제자로 부르심‘ 을 읽고 묵상을 시도한다. 12일 동안 ‘세속적인 삶에서 벗어나라’ 는 과제.. 이것이 과연 그렇게 쉬울지..

사실 이 33일 과정은 이 책으로 비교적 안전하게 guide를 받으며 독서, 묵상, 기도를 할 수 있다. 이 ‘책’을 그대로 따라가면 큰 문제없이 33일 기간을 마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큰 의미가 없다. 실제로 독서 후에 깊은 묵상과 제시된 기도를 다 마쳐야 하는 것이다. 그것 뿐이 아니다. 33일의 기간 동안 지켜야 할 것들이 이 책에 일목요연하게 제시가 되어 있어서 그것을 ‘가급적’ 지켜야 하는 부담도 있다.

한창 더운 복더위의 여름에 이것은 무엇인가.. 시원한 beach나 산 속의 summer vacation도 아니고.. 에어컨 소음이 요란한 자기 집 방구석에 앉아서 이렇게 33일 보낸다는 것은 사실 그렇게 큰 매력적인 것은 아니다. 아니.. 그렇게 ‘라고’  생각했던 나였지만.. 지금은 전혀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최고의 의미가 있는 멋진 summer ‘spiritual’ retreat, vacation 일 수 있는 것이다.

33일 매일의 실천 사항 이란 list를 보면: 거의 모두 ‘상식적’인 것들이다. 이 기간 동안 ‘대죄’를 짓지 말라는 것도 그렇고, 1시간 이상 조용한 시간을 할애하라는 것, TV같은 ‘잡 雜 것’들 을 피하라는 것, 아니 요새 나온 실천사항에는 분명히 인터넷을 적극적으로 피하라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을 듯 하다. 아마도 제일 힘든 것이 ‘조용한 1시간 이상의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아닐까? 이것이 정말 힘들게 된 요새세상, 참 많은 사람들 ‘로봇트’ 같은 정해진 일상을 보낸다는 사실에 경악을 한다.

이 중에는 가능하면 매일미사 참례하라는 것이 있는데 모르긴 몰라도 이것에서 ‘걸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을 것 같다. 요새 세상에 매일 미사를 한다는 것, 내가 생각해도 그렇게 인기 있는 활동이 아닐진대.. 하지만 나는 문제가 없다. 2012년 부활시기에 이 ‘인기 없는 활동’을 시작해서 아직까지 굳건한 생활의 일부가 되었으니까.. 참 오묘한 것은, 2012년 부활시기에 연숙이 33일 봉헌을 시도하면서 ‘시험 삼아’ 평일미사를 같이 시작했는데 그것이 바로 모든 ‘작은 기적들’의 시작이 되었으니 말이다. 성 루도비코 마리아의 33일 봉헌은 이래서 우리에게는 거의 ‘신화적 역사’가 되었다.

 

휴우~ 덥다 더위.. 6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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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우~ 덥다 더워.. 6월 24일!  이렇게 쓰고 보니 조금은 웃긴다.. 임마 (이런 말 아직도 쓰나?) 6월도 24일이면 한창 여름이 무르익어가는데 그것이 정상이지, ‘빠가야로‘! 하는 등뒤의 속삭임에 내가 웃는다. 그렇지, 지금은 더운 것이 정상이지.. 그런데.. 92도 라면.. 어떨까? 아마도 옛날 옛적의 대구더위에 비길 수 있겠지. 며칠 계속된 더위지만 극적으로 때맞추어 ‘내가 고친’ 에어컨 바람이 더 나에게는 시원하게 느껴진다. 이럴 때는 물론 오후에 때맞추어 쏟아지는 시원한 소낙비.. 하지만 느낌에 그런 chance는 거의 zero 인가 보다. 아니면 Johnny Rivers 의 60’s classic oldie, Summer Rain을 연상케 하는 그런 추억의 비는.. 어떨까.. 하지만 이것은 거의 꿈같은 이야기다.

 

 

1968년 여름의 추억, Summer Rain – Johnny Rivers 

 

오랜만에 그 동안 바깥 구경을 못하고 살았던 우리 집 두 마리의 ‘재미있는 개’ Tobey & Ozzie, 오늘은 내가 더 쳐지기 전에 용감하게 끌고 동네를 돌았다. 거의 할아버지 나이가 된 우리의 개 Tobey가 언덕을 ‘새로니의 개’ Ozzie를 앞지르며 나를 끌고 올라간다. 얘는 아마도 어렸을 때부터 이 동네 언덕을 나와 걸었기에 단련이 되어서 그런지 모른다. 공을 던지면 총알처럼 뛰어가는 다리가 긴 ‘젊은’ Ozzie, 2주째 우리 집에 머물며 자기 엄마 ‘새로니‘를 거의 잊은 듯 잘 지내고 있지만 그래도 밤에 ‘혼자’ 자야만 하는 그 녀석을 보면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얼마 전에 이곳을 걸었을 때 내가 열을 받았던 것, TRUMP FOR PRESIDENT, MAKE AMERICA GREAT AGAIN..이란 SIGN이 두 곳에서 나를 자극했던 것.. 오늘도 어김없이 그곳에서 ‘빠가’ 트럼프의 ‘쌍통’을 연상시킨다. 이 두 집이 바로 우리동네의 idiots, white trash인 셈이다. 이곳 East Cobb county는 물론 very conservative한 지역이고 전통적으로 ‘인정머리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런 ‘잘 사는 Republican white trash’들이 많은 곳이다. 그래서 이런 쓰레기 같은 SIGN을 본 것이 당연한 일이건만.. 나는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날 정도니.. 이건 분명히 내가 over하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야말로.. I CANNOT HELP IT.. 어쩔 수가 없다. 도대체 이 덩치 큰, ‘젊은’ 나라는 어떤 쪽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는 것인가? 덥기만 한 날씨에 더 열을 받고 있는 내가 한심하기도 하지만.. 그래.. 이래 저래해도.. 모든 것들은 다~~~ 지나가리라..

 

¶  6월 24일 세례자 성 요한 탄생 대축일:  오늘 평일미사를 가면서 6월 24일이 세례자 성 요한 탄생 대축일 (Solemnity of the Nativity of Saint John the Baptist) 임을 매일 복음묵상 ‘newsletter’에서 보고 알았지만, 사실 그 전에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 메주고리예 성모님 발현 ‘사건’으로부터 였다. 바로 이날 6월 24일에 발현을 하신 메주고리예 성모님을 이 ‘대축일’ 때문에 집에서 쉬던 (놀던) 그 ‘애’들이 본 것이다. 그 당시 이 발현 과정에서 이날이 ‘세례자 성 요한 탄생 대축일’임을 누누이 밝히고 있었지만 그 때 나는 그 말의 의미조차 잘 몰랐다. 이런 생각을 하니, 금요일 평일 미사엘 가면 분명히 세례자 성 요한과 예수님을 비교하는 짧은 강론을 듣지 않을까 기대를 했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요새 거의 본당신부님 역할을 하시는 방문 신부님 Fr. Joseph, 뜻 밖에도 새로 부임하실 본당 신부님에 관한 얘기를 하며.. 우리의 ‘이해’를 구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사연은 물론 본당 Holy Family 성당에 7월 초에 새로 부임할 주임신부님이, ‘부인이 있고 가정이 있는 남자’ 라는 우리에게는 ‘폭탄’ 같이 느껴지는 사실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늘 방문 신부님의 설명과 ‘양해’는 나도 아는 사실이다. 바티칸에 소속된 모든 가톨릭 ‘종파’들이 모두 다른 Rite를 가지고 있는데 현재 우리의 ‘보편 된’ 것이 Latin Rite, 이곳에서는 신부님들이 결혼을 안 하지만 다른 극소수의 종파에서는 성공회같이 결혼을 한다고.. 듣던 얘기다. 이번의 새로 부임할 신부님은 Melkite 에 속한 신부님이라서 신부님들이 결혼을 한다고.. 하지만 우리들의 느낌은.. 그래도.. 하필이면.. 왜 그런 ‘소수 종파’의 신부님을 ‘주임신부’로 보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 본당 Holy Family는 지역적으로도 보수적이고 Irish Catholic의 전통이 농후한 곳인데.. 아마도 그들 대부분은 불만이 적지 않을 듯하다. 그 중에는 우리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상상을 하니 아찔하다. 가족을 주렁주렁 데리고 사제관에서 생활을 하며 가족들과 같이 미사에 들어 온다는 광경은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는 것이다. 도라빌 순교자 성당에서는 구역문제로 우리는 고민에 빠지고 있는 마당에 이번에는 우리의 피난처 같은 미국본당에 부인, 가족을 동반한 주임신부가 온다는 사실.. 참.. 오래 살다 보니..

 

¶  성모님, 좀 봐주세요..  근래 우리부부와 자주 보게 되고, 예전 보다 조금 더 가깝게 지내는 C 자매님,  순교자 성당에 레지오 member를 중심으로 새로 생긴 Guitar Friends 그룹에도 참여 열심히 guitar도 연습하고, Holy Family 미국본당에서는 거의 매일 미사에 보게 된 멀게도 느껴지고 가깝게도 느껴지는 자매님, stress받는 것이 제일 싫어서 많은 사람과 가까이 지내는 것을 피하며 조용히 살지만 할 것은 다 하며 열심히 사는 자매님.. 왜 하느님은 어떻게 그런 병고를 주셨을까. 병고라면 이미 오래 전에 가족을 통해서 겪을 만큼 겪지 않았을까, 공평하지 않은가? 모든 아픔이 아물어가며 어떻게 다시 이런 고통을 보냈을까? 오늘 아침 미사가 끝나며 어제 doctor visit의 결과가 조금 짐작이 되었다. 우리 부부, 너무나 안쓰럽고, 미안하며, 어쩔 수가 없어진다. 그저 할 수 있는 말은 ‘기도를 더 열심해 해야겠군요’ 정도였다. 이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 이외에 무엇일까.. 늦은 아침을 먹으며 우리는 생각하고 생각한다. 성모님, 좀 봐주세요…

 

¶  육이오 6.25, 66년:  66년, 허~ 66년이라.. 여기다 6 하나를 덧붙이면 666가 되는구나. ‘악+악+악’, triple ‘악’ 인가? 그래 잊고 싶어도 잊지 못하는 단어가 육이오, 유기오, 융요 (박정희 대통령의 발음).. 그래, 의식이 살아있는 한 이 단어는 나를 ‘움찔’하게 만들 것이다.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조국의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이제는 ‘사학자’들도 총대를 멜 때가 되지 않았나? 미국의 역사 교과서는 현직 대통령도 역사의 심판대에 올려 놓는데.. 우리나라의 ‘병신 사학자님’들은 어떠신가? 아직도, 아직도 빨갱이 운동권의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가?

 

 

아직도 귀에 생생한, 육이오의 노래

 

요사이 재동 동창 김정훈 부제의 유고집 ‘산 바람 하느님 그리고 나’ 를 읽고 읽고 읽으며.. 다시 느끼는 것, 나도 나도 아버지가 살아계셨으면.. 아니 육이오가 없었으면, 아니 김일성 개XX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나의 인생은 아마도 김정훈 부제의 ‘사직동 김판사댁‘  못지않게 ‘원서동 이정모 교수댁‘ 이란 ‘선망의 눈초리’를 받으며 컸을 지 누가 알랴? 어떻게 육이오의 몇 개월 사이에 한 가정, 한 가족의 운명이 그렇게 뒤집어 질 수가 있을까? 물론 우리보다 더 ‘처참한’ 인생의 역전을 겪었던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죄 없는 동포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아니고 우리가 아니다. 우리 집은.. 우리 집을 말하는 것이다. 이 세상이 끝나고 저 세상에 가면 나는 반드시 ‘김일성’을 찾아내리라.. 그 개XX를 찾아 내리라.. 아마도 그 아들 김정일 개XX도 같이 있을 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을 찾기가 힘들 것이 분명히 그들은 지옥에 있기 때문이다.

 

Father’s Day, shoc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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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her's Day with a daughter
Father’s Day with a daughter

Father’s Day 2016… 어김없이 왔고 어김없이 간다. 별로 기다리지도 않았고 생각도 안 했던 올해의 ‘아버지 날’, Father’s Day.. 왜 그랬을까? 그저 불과 며칠 전부터 아하.. 이번 일요일이 그날이었지.. 한 정도였다. 손톱을 깎을 때마다 선물로 받았던 ‘손톱깎기 set‘, case에 적혀있는 희미해진 글자들: ‘Father’s Day 2001 FROM KIDS‘ 를 볼 때 마다 조금은 젊었던 나의 모습도 추억으로 간직한다. 아이들에게 기억이 되었던 나의 아빠 모습은 어떤 것들이었을까? 당연히 있어야 했던 가족의 하나, 자기들을 낳아준 협조자, 어렸을 적 자기 전에 책을 읽어주었고, 낮 시간 동안 집을 비우며 돈을 벌어오고, 여행을 갈 때면 운전을 주로 하고, 무거운 것들을 들어주고.. 그 정도였을까? 지금은 그런 것들 보다는 조금 더 ‘멋진’ 것들이 기억에 남아있어 주기를 바라지만.. 글쎄..

나에게 Father란 말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올해는 그날이 되어서야 Father의 진정한 의미를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올해는 그것도 조금 특이하다. 내가 나의 Father를 본 적이 없으니 내가 어떻게 Father로써 처신을 해야 하는지도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 그저 김일성 공산당이 아버지를 끌고 갔다는 것과, 남아있는 바랜 사진 들.. 그것으로 ‘아버지 상’을 상상을 하기는 쉽지가 않았다. 엄마를 사랑스런 눈으로 바라보고, 우리를 다정하게 들어 올리는 그런 아버지를 본 적이 없이 그저 영화나 다른 집을 통해서 상상하는 것, 왜 집에 아버지가 필요한 지도 잘 모르던 나, 지금 생각하면 참 불쌍하게 컸다는 자기연민에 빠지기도 하지만 불운한 시대의 소산이라고 생각의 끝을 접는다.

어떤 ‘아빠’의 추억을 아이들에게, 배우자에게 남기고 갈 것인가.. 그것이 이제는 나의 최대 관심사가 되었다. 우리 부모들 세대처럼 불운한 시대의 고생만 하며 일방적으로 사랑을 베풀어 주었던 ‘절대적인 존재’.. 는 이제는 나도 바라지 않는다. 행복하고 즐거운 모습의 아빠 상을 남겨주고 싶다. 아니 만족하며 사는 모습을 가급적 더 많이.. 남기는 것.. 훗날 자기 아빠를 생각하면 그저 “아빠는 우리를 즐겁게 해 준 것보다 아빠 자신이 더 행복했었다” 라고 생각하기를 원한다. 궁극적으로 ‘왜 아빠는 그렇게 훗날 행복한 모습으로 변했을까” 하는 이유를 생각하게 되기를 바라며..

 

¶ 첫 구역 ‘반’ 모임 shocker: 예외적으로 시원했던, Father’s Day 저녁에 구역이 2개의 ‘반’으로 나뉘어 진 후 첫 ‘반’ 모임이 있었다.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본당 역사상 처음으로 시도된 ‘공식적인 구역조정’의 결과였다. 본당 구역체제는 변함이 없이 ‘마리에타 2구역’이지만 실제적으로 둘로 나뉘어 2개의 반으로 갈라진 것이다. 반의 이름이 재미있는데, Zip Code의 마지막 2 digits를 따와서 (300)62반, (300)68반이 되었다. 흔히 1, 2반 하면 쉽겠지만 조금 더 지역적인 특성을 살렸다는 점에서 이것도 나쁜 idea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한 구역에 ‘장’이 3명이나 된다.

모든 것이 신부님의 ‘승인’하에 이루어진 만큼 이 결과의 여파는 아마도 다른 구역에서 주시하게 될 지도 모른다. 너무 커다란 덩치 (너무 많은 구역가정) 라서 이것이 제일 쉽고 직접적인 해결책이었다. 우리가 속한 ‘반’은 62반이지만, 사실 우리는 68반으로 가는 것이 원칙이었다. 첫 번 예외를 명시한 조치에 우리는 예외적으로 상대적으로 덩치가 작은 62반으로 간 것이다. 2 반의 규모를 조금 더 비슷하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사실 여기에는 잘 안 보이는 politic이 없을 수는 없지 않을까?

우리가 은근히 기대했던 것은 사실.. 62반에는 소위 말하는 trouble-maker가 안 보였다는 것.. 이곳에 나가서까지 일부러 싫은 사람들을 봐야 한다는 것, 생각만 해도 싫다. 하지만 운명의 여신은 나의 의도를 완전히 비켜가시고.. 그곳에서 ‘다시’ 안 보아야 할 인물들을 한 명도 아니고 2명 이상 이나 만나게 되었으니.. 아마도 나는 이곳에 가는 것을 ‘다시’한번 생각해야 할지도 모른다. ‘나눔의 시간’ 담당이 된 연숙의 입장을 고려하니.. 나는 정말로 난처하게도 되었다. 부단한 생각과 기도 밖에 없다는 생각 뿐이다.

 

Cool Morning, 3rd Satur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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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시원하다 언제부터 시작된 ‘여름 전의 한여름 더위’ 였던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만큼 갑자기 ‘당한’ 열대성 무더위에 머리조차 멍~ 해진 기분이다. 특히 새벽에 느끼던 찜찜하고 끈적거리는 듯한 머리 속.. 그것이 더욱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마도 열흘 이상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된’ 그런 것.. 하지를 며칠 안 남겨두고 한차례 한여름을 치른 것이다. 그러던 것이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조금 느낌이 달랐다. 시계를 보니 6시가 조금 넘었다. 부리나케 창문을 열고 공기를 마셔보니.. 와~~ 이것이 웬 떡이냐.. 습기가 완전히 빠지고 산들바람까지 불어대는 초가을의 아침이 아닌가? 이것이야 말로 웬 떡이냐..란 탄성이 나온다. 띵~~ 하던 머리가 갑자기 맑아지는 듯한 날라가는 느낌.. 아~~ Mother Nature여.. 이래서 살게 되어 있나 보다.

지겨운 일기예보를 안 보고 산 것이 몇 주가 되었나? “Donald  Duck쌍통”을 비롯한 또 다른 해괴한 뉴스들, 같은 식으로 이런 것도 안 보는 이상한 세월을 보낸다. News TV, outlet을 거의 피하며 나의 sanity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몇 개월째 그런대로 효과를 보고 있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살다가는 나야 말로 cavemen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 하지만 결론은, 요새 세상은 cavemen 쪽이 더 낫다는 것이라.. 문제가 없다.

6월도 훌쩍 반을 넘어간다. 새로니는 오랜만에 지루한 학교생활을 떠나  유럽여행으로 집을 완전히 잊은듯한 기분으로 3주 여행 중 2주째를 맞고 있다. 우리는 언제 온 가족이 여행을 같이 가보나.. 하는 바램이 항상 머리를 떠나지 않지만.. 그래.. 다 때가 있는 거다.. 지긋이 기다리면 된다. 특히 ‘조직신앙’을 떠난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돌아오는 그날을 기다리며, 그 때가 우리가족 여행의 적기 適期 라는 생각도 한다. 과연 그날이 올까? 기다리자.. 기다리자..

 

Vatican St. Peter's Square 에서

Vatican St. Peter’s Square 에서

 

¶ Ozzie Grounded 새로니의 ‘아들’ Ozzie, 3주간 여행 중 우리가 맡고 있다. Midtown condo에서 살던 기운이 왕성한 덩치가 큰 강아지, 다리가 유난히도 길어서 우리 집의 3′ 짜리 Tobey fence를 임시로 3′ 높여서 6′ Ozzie fence로 ‘사고로 뛰어 나가는 것’에 대비하는 등 신경을 곤두세우기도 했다. Condo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mansion처럼 크게 느껴지는 우리 집에서 얼마나 뛰고 싶을까.. 오는 날부터 지겹게도 더운 바깥으로 나가자고 하루 종일 졸라대며 우리를 괴롭히더니.. 결국은 사고를 냈다. 우리가 없는 동안, Publix fried chicken, 먹고 버린 것, 쓰레기 통을 열고 모조리 먹은 것이다. 뼈 투성이의 그것을 흔적도 없이 다 먹은 것이다. 작은 뼈들을 잘못 먹으면 큰일이 난다고 들었기에 우리는 혼비백산, 걱정을 했지만..  큰 문제가 없는 듯 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결국은 strict하게 하는 것으로 정하고 완전히 하루 종일 ground를 시켜 버렸는데 이것이 아주 큰 효과를 내서 이제는 아주 얌전하게 우리 집 분위기에 적응을 하고 있다. 하기야 그 동안은 가끔 우리 집에 놀러 왔기에 너무나 ‘풀어 주었던’ 것이 문제였다. 그런 것 말고는 2주를 우리 집 개처럼 Tobey와도 잘 지내고 고양이 Izzie의 territory도 잘 지켜주고.. 문제가 거의 없다. 날씨가 시원해져서 이제는 grooming도 해 줄 수 있게 되었다. 새로니가 돌아오면 이 녀석이 자기 엄마도 몰라보고, 혹시 누군가.. 하는 것이 아닐까, 재미있는 상상도 해 본다.

guest인 Ozzie와 나란히 누워 있는 Tobey.. 모습이 너무 좋다

guest인 Ozzie와 나란히 누워 있는 Tobey.. 모습이 너무 좋다

 

Happy Note, Central A/C humming again! 올 들어서 제일 더운 거의 5일간 아래층 에어컨이 없이 살았다. 아래층은 낮에 잠깐 에어컨이 나올 정도지만 그래도 음식을 하거나 하면 83F 까지 올라가고 그 여파로 위층의 에어컨이 overworking 을 하게 된다. 그런 식으로 며칠을 살고 보니 예상보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급하게 order했던 condenser fan motor, run capacitors, 그리고 제일 필수적인 tool, Fan Blade Puller가 하나하나 씩 도착을 했고 나는 만사를 제쳐놓고 땀을 폭포처럼 쏟으며 repair mode로 돌입, 천신 만고 끝에 결국은 다시 에어컨이 돌아가게 되었다.

이것은 사실 ‘이론적인 것이 거의 없는’ 거의 mechanical work에 불과했지만 그 과정에는 정말 surprise 가 도처에 도사리고 있어서 성공여부를 장담할 수 없는 처지였기에 나는 더욱 stress를 받았다. 제일 나를 괴롭혔던 것은 망가진 fan motor에 완전히 녹으로 붙어버렸던 fan blade를 빼 내는 일이었다. 그것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그 fan blade가 망가질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만 ‘전문적’으로 빼 내는 tool이 ‘발명’이 되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그것을 써야 했는데.. 그것 역시 automatic이 아니고 완전히 ‘완력 腕力’이 필요한 것, 평소에 운동을 안 했으면 아마도 거의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천신만고 끝에 결국 그것이 빠져 나오고 새 motor에 끼운  후에는 간단하지 않은 electrical wiring까지.. 휴~~~ Power Switch를 킨 후, 다시 에어컨이 돌아가는 소리와 찬 바람이 느껴질 무렵에는 나는 거의 완전히 쓰러지는 느낌이었는데, 피곤함 보다는 안도감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 만약 pro service를 받았으면 얼마나 charge를 했을까? 아마도 최소$700~$800 정도였을 것이다. 나의 이 job의 total expense는 $100 정도였으니까.. 최소한 $600 정도는 save한 셈이다.  비록 두 식구가 사는 집의 가장이지만, 집안의 환경에 대한 책임감은 정말 무거운 것이었고 그것이 주는 stress역시 상당한 것.. 하지만 기대했던 결과는 언제나 모든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는 것.. 그것을 바라며 땀을 흘렸던 지난 주의 한가지 happy note가 되었다.

 

Brand new condenser fan motor

Brand new condenser fan motor

Magic tool, blade puller: 드디어 fan blade가 빠졌다

Magic tool, blade puller: 드디어 fan blade가 빠졌다

 

Adieu 성모성월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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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포근한 느낌, 우리 어머니, 성모님, 그리고 나의 주위에 머물고 있는 ‘자매님’들.. 5월은 더욱 그들을 생각하고 그들의 생각 속에서 ‘응석’을 부릴 수 있었던 진정 내가 좋아하는 ‘성모성월’이었다. 7순이 가까운 나이에 이렇게 ‘응석’을 부린다는 사실이 나를 놀라게 하지만 때가 되지 않으면 절대로 미리 알 수 없는 것들이 ‘수두룩 닥상’ 이라는 것, 나이를 먹는 혜택 중에 하나다. 신록의 나날들, 비록 가끔 가을처럼 느껴지는 싸늘한 며칠이 있었지만 그래도 여름을 예고하는 각가지 자연적 현상들이 이제는 새롭게만 느껴진다. 그렇게 ‘눈에 안 보이던’ 초록색깔의 생명들이 이제는 하나 둘 씩 늘어나서 아주 친근한 친구들이 되었다.

Yonsook's Saybrook Trail

Yonsook’s Saybrook Trail

텃밭을 사랑하는’ 연숙은 backyard의 ‘원시림 our own rainforest‘를 하나하나씩 ‘갈고 닦아서’ 드디어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는 멋진 ‘오솔길’을 만들어 주위에 자랑하기 바쁘다. 그렇게 모기에 물리며 땀을 쏟는 정성이 참 가상하다고 할까? 작년에 새로니가 Mother’s day 선물로 준 포도나무가 겨울을 견디고 살아서 올해는 드디어 arbor structure가 필요하게 되어서 부리나케 남아도는 조각 lumber로 만들었는데.. 이제는 부지런히 그곳을 푸른 모습으로 덮을 것을 꿈꾼다.

 

grape vine arbor structure up!

grape vine arbor structure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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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bey sniffing chicken-wing smelling charcoal

 

Memorial Day, 우리는 누구를 기리는 날인가? 자유세계를 지키던 미국 veteran들인가, 김일성 개xx와 싸우던 veteran들인가.. 조금은 혼란스럽지만 그것이 무슨 상관이랴.. 정의를 위해 싸우며 우리를 직접 간접으로 지켜준 영령들을 기리면 된다. 이날은 아이들이 모이지 못해서 우리 둘이서 전에 나라니가 만들었던 chicken wing 을 grill해서 둘 만의 Memorial Day를 보냈다.

2016년의 성모성월, 그런대로 열심히 살았다. Daily priority를 유지하려 안간힘을 쓰기도 했고, 크게 아픈 적도 없었다. 쳐 저가는 느낌의 근육들을 제 모양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도 ‘정상적’으로 했고, 친근한 느낌이 없는 고양이 가족이 새로 생겨난 것도 놀라워하고 돕기도 하고 즐기기도 하였다. 이들이 모두 creator의 creature라는 진리를 잊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기도 했다. 그렇게도 엄마가슴같이 포근한 달에 엄마와 아내를 졸지에 보내야만 했던 가족들과 슬픔을 나누기도 했던 것, 기억에 생생하다. 피하고 싶기만 했던 구역정치 상황도 본당과 교우들의 노력으로 안정세에 접어들어서 오랜 만에 구역 미사도 갈 수 있었고, ‘점심 부엌 봉사‘도 할 수도 있었다.

  그 와중에 가톨릭 전례력은 어김없이 부활시기에서 연중시기로 바뀌며  성탄을 예고하는 대림시기까지.. 여름과 가을을 보낼 준비를 하는, 이렇게 돌고 도는 것.. 바로 이것이 인생이다. 갑자기 찾아온 습기 섞인 무 더위에 잠을 깬 a/c 의 소음이 요란하게 들리는 5월의 마지막 날을 보내며.. 6월 달엔 어떤 일들이.. 아니 가능하다면 2017년 5월은 어떨까 생각한다.

Memorial Weekend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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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눈을 떠보니 이번 주말이 Memorial weekend, 별로 큰 느낌 없이 ‘당한’, 기분이다. 이런 ‘휴일 주말’이 예전과 같이 기분을 좋게 하는 것에서 벗어나고 있음이 분명하다. 하기야 full-retirement에서 특별한 휴일이 따로 있을까? 매일 매일이 휴일일 수도 있고 반대로 남들이 놀 때 일을 할 수도 있는, 그야말로 자유 중의 자유.. 하지만 ‘절제 moderation와 자기수련 self-discipline’이 빠지기 시작하면 이 자유는 완전한 ‘지옥’으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조만간 早晩間 변한다는 사실, 뼈저린 체험으로 안다. 나는 값 비싼 대가를 이미 지불했기에, 이제는 문제가 없다.

갑자기 ‘여름 같은 밤’이 들이닥친 지난 밤, 오랜만에 아.. 드디어 여름이 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습기가 잔뜩 섞인 바람 한 점 없는 안 보이는 air, 피부에서 땀을 날려보낼 기운이 떨어진 듯 더욱 답답하게 느껴진다. 공기가 움직여야 땀을 말리고, 이런 바람이 없으면 강제로 바람을 내게 해야 한다. fan 그것도 electric fan, 바로 ‘선풍기’가 필요한 바로 그때가 온 것이다. 밖으로부터 들리는 가라앉은 잔잔한 소음의 a/c compressor소리보다는 ‘앵앵’거리며 귀를 건드리는 귀여운 fan의 소리를 더 원한다. 창문을 열고 바닥에 누울 수 있다는 건 이맘때부터는 ‘특권’에 속한다. 더불어 벼락을 동반한 시원한 오후의 소나기나 소리 없이 내리는 굵은 물방울의 비.. 이것들이 모두 여름의 dreaming of white.. 인 셈이다.

 

드디어 올해  a/c unit cleanup, tune-up, test-up 할 때가 왔는가?

드디어 올해 a/c unit cleanup, tune-up, test-up 할 때가 왔는가?

매일 미사에도 조금 줄어든 사람들을 보며.. 아하.. 휴일에 여행들을 갔구나.. 그래서 더욱 holiday 기분이 든다. 우리는 집을 떠난 지 참 오래된 느낌.. 여행 예찬론을 귀따갑게 듣지만, 우리와는 그렇게 인연이 없나 보다. 여행을 간 듯이 살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우리 둘의 지론 持論 이다. 인생 자체가 ‘서사시’ 적인 여행이 아닐까? 새로니는 이제 학교가 방학이 되어서 완전히 몇 달 동안 자유인이 되고, 일 주일 후면 계획을 했던 ‘유럽 대장정’을 시작하게 되고, 덕분에 pet dog Ozzie 는우리 집에서 당분간 살게 된다. 몇 주일 동안 같이 살면 이 녀석 어떻게 변할까 주목이 된다. 항상 바쁜 나라니는 이번 짧은 주말, 친구와 Panama City Beach로 떠났다. 그곳은 우리 가족 오래 전 regular summer place였는데.. 그곳도 많이 변했을 것 같다. 그래도, 그래도.. 우리는 backyard에  ‘연숙이-오솔길’이 새로 생긴, 우리의 ‘피곤하고 낡은 집, depression-era shack’이 최고의 summer place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