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3월 1일, 그러니까 삼일절이다. 왜 이렇게 생소한 느낌이 드는 것일까? 흡사 무슨 먼~나라의, 먼~옛적의 일로 완전히 남의 것처럼 느껴지고, 곧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에 잠긴다. 무언가 복잡한 심정이 됨을 또한 느낀다. 아직도 달력이 빨갛게 물들어 있음이, 분명히 고국의 ‘국경일’임이 틀림이 없다. 나의 코앞에 걸려있는 달력은 이곳 아틀란타 순교자 한국성당 것인데, 이곳 현지인 미국의 국경일에도 없는 빨간 날짜가 대한민국의 국경일들에는 요란하게 표시되어 있다. 이것이 이곳에 사는 대한민국출신 사람들의 국가의식이다. 이것에도 저곳에도 확실하게 소속감은 못 느끼는.. 그런 어정쩡한 자세.. 이런 자세에서 그들은 과연 삼일절은 어떻게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일까?
올해는 삼일절 93주년이 된다. 1919년 기미년 삼월 일일, 이 1919년 기미년은 나에게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이 나의 어머님이 바로 이해에 태어나셨기 때문이다. 거의 10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님, 그러니까 살아계셨으면 올해 93세가 되실 것인가. 상고사만큼 오래 된 것도 아니지만, 나로써는 실감나게 상상을 할 수 없었던 오래 전의 역사다. 멀쩡한 독립국가를 꿀꺽해 버린 ‘왜(倭)놈’들과 얽힌 악연의 시절 때의 사건이었다. 93년이 지난 지금, 약한 사람들의 기억력은 희미해지고 영원한 적도 없고 영원한 친구도 없다는 소리를 실감하며 산다. 우리 민족에게 증오와 질시, 질투 대상의 화신이었던 일본은 그런 역할을 조금씩 옆 나라 ‘짱깨’ 들에게 물려주려고 하고 있다. 그만큼 세월이 흐른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 과연 삼일절에는 무엇을 생각하며 보내야 하나?
내가 고국에서 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삼일절 하루 종일을 거의 경쟁적으로 ‘왜놈 증오’하는 행사로 보냈다. 특히 국민학교 때인, 이승만 대통령 시절에 그것은 거의 광적이었다. 이승만 박사의 반일감정은 보기에 아주 원색적이고 극단적으로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복잡한 정치적인 이유도 있었다. 특히 정치적으로 필요하면 ‘친일파’를 과감하게 중용을 할 정도였다. 박정희 정권 이후 그런 것은 눈에 띄게 완화가 되었다. 그 이유는 설명이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 이후의 정권에선 이런 삼일절 같은 ‘과거사’를 어떻게 대했을 까, 나는 거의 모른다. 하지만 아직도 국경일의 위치를 고수하는 것을 보니 조금 의아한 심정이다. 한글날이 없어져서 삼일절도 없어질 줄 알았는데.. 어찌된 일일까?
나는 지난 5년간의 ‘피상적인 일본공부’의 결과(대부분 텔레비전 프로그램), 과거 오해했거나 모르고 지냈던 것들을 지금은 많이 새로 알게 되었다. 특히 각종 전쟁으로 인한 그들 민간인들이 겪었던 고통이 사실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음도 그 중의 하나다. 오랜 기간의 눈부신 경제성장으로 완전히 자만심에 빠진 그들은 근래에 들어서 조금씩 주변의 나라, 특히 한때 그들의 ‘만만한’ 식민지였던 대한민국을 조금은 다른 눈으로 보기 시작한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미국보다 훨씬 전에 버블경제의 충격을 겪었고, 그 후유증이 가시기도 전에 작년 3월의 천재지변으로 다시 한번 충격을 겪으면서 조금은 겸손해졌다고나 할까.. 역시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앞으로 한반도와 일본은 어떠한 관계로 이어가게 될 것인가, 혹시 기고만장한 짱깨를 공동의 적으로 의식하게 될 불편한 친구관계가 되지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