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
축복과 사랑을 전하며
제 친구였던 고 장영희 교수가 암으로 투병을 하고 있을 때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미국의 선교사 일행이 아프리카에서 겪은 일입니다. 한참 길을 가던 원주민 짐꾼들이 갑자기 길가에 주저앉아서 꼼짝도 하지 않더랍니다. 윽박지르다가 달래기도 하고 돈을 더 주겠다며 흥정도 해보았지만 묵묵부답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한 사람이 침묵을 깨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당신 백인들을 기쁘게 해 주려고 너무 속도를 냈어요. 이제는 우리 혼이 우리의 몸을 따라잡도록 기다려야 해요.”
오래 전 그녀에게 들려줬던 이야기가 이제 바로 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지난 해 많은 일들을 앞두고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힘겨운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내 영혼이 어디쯤 오고 있는지, 따라오든지 말든지 아랑곳하지 않고 숨 가쁘게 바쁜 생활을 하다 보니 제 영혼이 제 몸을 따라 잡지 못하고 그만 넘어져버렸습니다.
저는 십 년 전 감상선 암으로 수술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이후 건강이 회복되자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 정신 없이 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영혼을 돌보는데 소홀했나 봅니다. 그런 저의 모습이 안타까워 하느님은 저에게 쉼의 시간을 허락하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아픔의 사간을 뒤쳐진 제 영혼이 제 몸을 따라 잡을 수 있게 기다리는 쉼의 시간으로 겸허히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또한 제 몸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일할 때가 있으면 쉬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 동안 제가 너무 교만했음을 고백하며 이렇게라도 재충전하는 시간을 가지 않는다면 지친 사람들을 위한 영혼의 쉼터가 되어 드리고 싶은 저의 소망은 무위가 될 것입니다.
갑상선 암 수술을 받았을 당시, 수술 후 네 시간 동안은 물도 먹을 수 없었는데 입술은 갈증으로 타는 것 같았습니다. 돌보아 주시던 노 수녀님이 가제에 물을 묻혀서 입술을 적셔 주어서 겨우 갈증을 면했습니다. 또한 말도 하기 힘들어서 병문안 오신 분들과 종이에 글을 쓰면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도 참 행복했습니다. 그 느낌이 그렇게 행복하게 느껴졌습니다.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말입니다. 그래서 그냥 웃음이 나왔습니다. 옆에 계시던 수녀님이 왜 웃느냐고 물으셨습니다. 펜을 달라고 하여 종이에 썼습니다.
“웃는 것도 시비입니까? 행복해서 웃습니다.”
그 고통의 순간에 불쑥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래서 웃음이 났습니다. 지켜봐 주는 누군가가 내 곁에 있다는 느낌은 평온함과 행복감을 주었습니다. 이번에도 그랬습니다. 많은 분들이 미약한 저를 위해 넘치는 사랑을 주셨고, 그 사랑으로 저는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사랑의 마음입니다. 세상의 온갖 신비를 환히 꿰뚫어 보고 모든 지식을 가졌다 하더라도 사랑의 마음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사랑할 때 사랑 받을 때 우린 행복합니다.
봄이 오면, 부활의 봄이 오면 마른 잎 다시 살아나듯 제 육신도 부활하여 우리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립니다. 그 날을 기약하며 먼저 이 책 <영혼의 샘터>로 여러분에게 손 내 밉니다. <영혼의 샘터>에서 길어 올린 맑은 물 한 잔 따라드리며 따스한 마음을 나누고 싶습니다. 정말 보잘 것 없는, 그리고 잘 준비하지 못했거나 때로는 졸속으로 쓴 글도 있지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읽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세상살이에서 지친 영혼에 쉼이 필요한 분들에게 이 책 <영혼의 샘터>가 하느님 안에서 몸과 마음이 쉬면서 새로운 활력을 얻고 영혼이 충만해질 수 있는 진정한 쉼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목마른 사람들이 샘터에서 생수를 길어 마시고 갈증을 해소하듯 영적인 목마름이 조금이나마 이 책을 통해 해소되어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리는 늘 필요한 사람에게 물 한 잔 건넬 수 있는 따뜻한 마음, 사랑의 마음을 지닌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다시 한 번 저를 위해 염려해 주시고 기도해 주신 쉼터 후원회원님들과 공동체 형제들, 수녀님들께 진심으로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특히 병원에 묶여 있는 저를 대신해 <영혼의 샘터> 가 세상의 빛을 볼 수 있게 도와준 고시랑 님께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우리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며 옛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노래로 새 봄, 축복과 사랑을 전합니다.
나무처럼 높이 걸어라.
산처럼 강하게 살아라.
봄바람처럼 부드러워라.
네 심장에 여름날이 온기를 간직해라.
그러면 위대한 혼이 언제나 너와 함께 있으리라.
2014 3 30
류해욱
그분께서 네 한평생을 복으로 채워 주시어
네 젊음이 독수리처럼 새로워지는구나
Part 1 명상
실-만남의 고리
청둥오리 연적
무엇이 되어야 할 것은 그렇게 되리니
별똥 떨어진 자리
사자와 소
새인가, 얼음인가, 아니면 물인가?
부부 고개
분노의 마술
Black 블랙 –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길
눈물로 진주를 만드시는 분
지푸라기의 행운
갈대는 강하다
작은 악마와 농부의 빵 조각
친절과 보답
Part 2 침잠
물 위의 꽃, 강화도
<남한산성>의 여운
선암사
이어도, 환상이 아닌 현실의 섬
황병기 선생님과의 만남
아주 작고 여린 이에게
눈물
쇼생크 탈출과 희망
인셉션, 묘한 매력의 영화
Part 3 신앙
참 아름다운 당신!
틀 밖에서 생각하라
사랑만이 미움을 없앨 수 있나니
제비꽃 화전
영화 <신과 인간>
영화 <야곱 신부의 편지>
울지마, 톤즈
우리가 꿈꾸는 기적: 인빅터스
돼지와 암소
용서와 화해는 가능한가?
독수리의 날개로 날아올라야 하리라
휴식의 진전한 의미
돌아가리라
고백 성상의 비밀
막무가내한 신앙
진정 자유로운 사람
Part 1 명상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무엇이 도든지
결국 그렇게 되리니
¶ 실 – 만남의 고리
오래 전에 ‘사랑의 끈’이라는 주제로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끈’이나 ‘실’은 이어주거나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하기에 단순한 물질을 넘어서 사색의 재료가 됩니다. 이번 성탄에 미국에 계신 어는 은은에게 감사의 표시로 작은 선물을 하나 보내드렸습니다. 천연염색한 예쁜 실입니다. 사실은 실이라기보다는 종이끈이라고 해야 맞는데, 받는 분은 그것을 실로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분이 다른 친구의 나눔이라고 하면서 아주 좋은 묵상 글을 보내 주셨습니다.
실이란 어디선가 시작하면 끝없이 갈 수도 있고
서로 떨어져 있는 것들을 이어주고
많은 것들을 모아서 묶어주기도 하지요.
한 줄일 때는 쉽게 풀어질 수도 있지만
여러 줄을 합치면 힘 있는 밧줄도 되고
마구 엉켰을 때는 답답하기도 하지만
차근차근 풀다 보면 저절로 풀리기도 합니다.
실은 물건들만 묶어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도 이어주지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실을 인연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많은 인연의 실로 묶어져 있어요.
그 인연은 쉽게 끊어질 때도 있지만
어떤 인연은 다시 풀 수 없는 단단한 매듭이 되기도 하지요.
저는 수많은 인연의 실들이 저한테 닿기까지
지나온 시간들을 생각해 올 때가 있습니다.
그 인연의 실타래는 어디서 시작됐을까요?
그리고 내 실타래는 어디까지 풀어져 갈까요?
저의 어머니는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난 후에는 손에서 실을 놓지 않았습니다. 겨울이면 목도리나 장갑, 스웨터 등을 떠 주었습니다. 식구가 많다 보니 손에서 실을 놓을 틈이 없었습니다. 제가 사제서품을 받을 때는 저와 함께 서품 받는 다른 동료 두 신부에게도 각종 색의 띠를 떠 주셨습니다. 어머니가 떠 주신 스웨터는 정말 따뜻하고 예뻤습니다. 그 스웨터를 어머니가 떠 주셨다고 하면 사람들이 도무지 믿으려고 하지 않았을 만큼 정교하고 아름다운 모양이었습니다. 저는 오늘 은인이 보내 준 실에 대한 묵상 글과 함께 실, 끈, 어머니, 인연 등의 단어가 뜻하는 의미를, 아니 그 단어들이 건네는 무언의 대화를 듣고 침묵에 잠깁니다.
토마스 머튼은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는 어느 날 루이빌 이라는 도시를 걷다가 문득 자신이 거리를 지나가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특히 여성들이 지닌 아름다움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는 단순히 그들이 지닌 미(美)가 아니라 그들이 지닌 인간성, 여성성을 아주 예민하게 의식한다. (내가 특별한 기준으로 정말 아름다운 누군가를 보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설명할 수 없는 미(美)가 거기에 있다. 어쩌면 내가 다른 삶의 양식에 봉헌하지 않았다면, 그 내밀한 미(美)를 알아채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 세상의 모든 여인들 안에 있는 가장 순수한 것을 아무런 두려움 없이 바라보고, 그들이 햇살이 비치는 거리를 걸어갈 때 그들이 마음이 지닌 내밀한 미(美)를 맛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정결서원을 통해서일지도 모른다. 하느님의 눈에 그들이 지닌 미(美)는 아주 내밀하고 선하고 사랑스럽다.”
토마스 머튼은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자신과 하나로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들을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저는 감히 그 모든 사람들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우리가 서로 사랑이라는 끈으로, 불교 표현으로는 인연이라는 끈으로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복음서의 한 구절처럼 사랑은 서로를 완전하게 묶어주는 끈입니다. 저에게 실로 띠를 만들어 주신 어머니만이 모자(母子)라는 인연으로 연결된 것이 아닙니다. 만난 적이 없지만 이 글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저와 같은 주제를 놓고 함께 묵상을 하는 것이니 그것이 바로 만남이고 사랑이며 인연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저와 알게 또는 모르게 만났고, 사랑을 나누었고, 인연으로 연결되어 있던 모든 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새해에도 우리가 나누는 사랑의 끈, 인연의 끈이 더욱 튼실해 지기를 기도합니다.
¶ 청둥오리 연적
오늘 저희 집 장손인 한형이가 장가를 갑니다. 삼촌인 제가 주례를 하게 되어 영광이고 기쁩니다. 한형이 아버지, 바로 제 큰 형님의 소신대로 가족들만 모여 조촐하게 혼례를 올립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혼인 자체의 의미가 축소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로부터 혼인은 인륜지대사라고 했습니다. 선인들은 혼인을 삼강의 근본이요, 시초를 바로잡는 도리라 여겨 그 예를 매우 중요시하였습니다. 혼례는 마을의 경사였습니다. 혼례 당일은 일반 서민들도 궁중예복을 착용할 수 있었고 그날만은 혼인 당사자들을 왕과 왕비처럼 대우했는데, 이스라엘에서도 혼인은 마을 잔치였고 혼인을 하는 신랑과 신부는 왕과 왕비와 같은 예우를 받으며 일주일 동안 잔치를 벌였습니다. 성경이 배경이 되는 이스라엘의 혼례가 우리나라의 혼례와 굉장히 비슷한 것을 알고 놀랐습니다.
우리나라 전통 혼례를 보면, 우선 전안례라는 것을 합니다. 전안례는 신랑이 신부 집에 들어가서 행하는 혼례의 첫 절차인 소례(小禮)입니다. 신랑이 신부의 혼주에게 기러기를 전하는 의례를 말합니다. 살아있는 기러기가 아니라 기러기 모습의 물건입니다. 신랑이 기러기를 신부 집으로 가져가는 것은 기러기는 한번 부부의 연을 맺으면 평생 한 몸인 양 떨어지지 않고 함께 하기 때문에 깨끗한 정절을 상징한다고 여겨 백년해로를 약속하는 서약의 징표로 본 것입니다.
기러기를 혼례에 사용하는 까닭을 조금 더 설명 드리면, 천상계(天上界)에서 인간의 수복(壽福)을 관장하는 자미성군(紫微星君)에게 기러기를 폐백으로 드린 풍속에서 온 것입니다. 즉 자미성군이 인륜지대사인 혼인도 주선하여 천생연분을 맺어 준 것으로 믿고 기러기를 폐백으로 올리면서 백년해로와 자손의 번창을 빌게 된 풍속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한편 기러기는 봄에 북녘으로 날아갔다가 가을에 찾아오는 음양의 승강을 따르는 철새인 동시에 장유유서와 부부유별 그리고 수절을 행하는 새이기도 합니다.
가톨릭 사제인 제가 자미성군이 혼인을 주선한다고 말하니까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저는 자미성군이 하느님의 옛날 우리식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혼인은 하느님이 맺어주고 축복을 준다고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하느님께 축복을 빌며 기러기를 전하는 것은 남녀로서는 오직 부부 서로만을 사랑하고 신의를 지키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입니다.
제가 한형이의 삼촌이자 결혼 주례자로서 선물을 하나 준비했습니다. 한 쌍의 청둥오리 연적입니다. 이것은 사실 결혼을 위해 따로 준비해 둔 것이 아니라 제가 아끼던 물건인데 오늘 혼인하는 두 사람을 위해 내어놓기로 했습니다. 중국 북경의 골동품시장에서 구한 것인데, 명나라 때의 물건이라고 합니다. 정말 명나라 때의 물건인지 신빙성은 없지만 그래도 기품이 있습니다.
옛 사람들은 청둥오리를 혼인의 상징으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청둥오리는 기러기의 한 부류로서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바로 변함없는 사랑입니다. 그렇지만 단지 그 이유 때문에 이 청둥오리를 선물로 주는 것은 아닙니다. 이 청둥오리의 용도는 연적입니다.
연적이 무엇입니까? 한 사람을 동시에 사랑하여 경쟁 관계에 놓인 t이를 말하는 것입니까? 그것도 연적이라고 하지만 제가 말씀 드리는 연적은 먹을 갈 때 벼루에 따를 물을 담아 두는 그릇을 뜻합니다. 연적은 학자를 상징하는 물건입니다. 학자는 글 쓰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늘 먹을 갈아야 하고, 먹을 갈기 위해서는 연적에 항상 물이 채워져 있어야 합니다. 연적에는 보통 2개의 구멍이 뚫려 있는데 한 곳은 물을 담는 곳이고 다른 곳은 물이 나오는 구멍입니다. 물도 밀폐된 공간에 담겨 있으면 썩기 마련이어서 연적에는 늘 물이 들고나야 합니다. 그래서 연적은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는 학자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두 사람이 보내온 청첩장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서로 다른 곳에서 서로 다른 이들을 만나며 서로 다른 꿈을 꾸었던 저희 두 사람은 이제 한 보금자리에서 소중한 사람들을 함께 만나고 의미 있는 꿈을 공유하며 길을 함께 걸으려 합니다.”
길을 함께 걷는다. 그렇습니다. 부부는 함께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한형이는 학자의 길로 들어선 사람입니다. 그것도 어렵다는 국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입니다. 사람 사는 일이 쉬운 게 있겠습니까마는 정말이지 학자의 길은 남다른 각고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학위 받는 것도 어렵지만 평생 학문에 정진하는 그 길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부가 되는 은희 양은 그 점을 잘 알고 결혼에 동의했기에 ‘의미 있는 꿈을 공유하며 길을 함께 걸으려고 한다.’ 고 했을 것입니다.
저는 이 청둥오리 연적을 조카보다는 신부인 은희 양에게 주고 싶습니다. 물론 한 쌍이니 하나 씩 나눠 가질 수도 있겠지만 두 개 다 신부에게 주고 싶습니다. 그것은 한형이가 걷고 있는 학자의 길에 아내로서 연적의 역할을 충실히 해 주기를 부탁하고 싶은 마음, 함께 길을 걸으며 늘 연정에 새 물을 갈아 채워주기를 바라는 마음이기에 그렇습니다. 또한 신랑 한형이는 학문을 정진함에 있어 지치고 힘들 때 연적에 채워진 물을 보면서 내조를 아끼지 않는 아내의 동행과 수고에 감사하며 새롭게 힘을 얻기 바랍니다. 그리고 가끔은 연적에서 청둥오리가 슬피 우는 소리를 듣고 마음의 벗으로 삼아보기 바랍니다. 사실 이 말은 원효스님의 ‘발심수행장’에 있는 말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원효 스님은 수행자가 수행할 때 외로운 마음이 들면 슬피 우는 새를 보며 마음의 벗으로 삼으라고 했습니다. 결혼생활도 수행의 길이지만 학자로서의 길 역시 수행의 길입니다. 수행을 하는데 있어 어찌 외롭지 않겠습니까? 그럴 때 상상 안에서 청둥오리가 슬피 우는 소리를 들으며 마음의 벗으로 삼고 다시 정진하십시오.
예로부터 학자들은 새를 벗 삼아 여유를 찾았습니다. 물론 은퇴를 한 후에 새를 벗 삼기도 했지만 학문에 정진하다가 잠시 휴식으로 새를 벗 삼기도 했지요. 새들은 많은 묵상거리를 줍니다. 저는 가끔 자유로가 끝나는 지점의 임진강변에 있는 반구정(伴鷗亭)이라는 정자를 찾습니다. 세종조의 명상이자 청백리의 귀감인 방촌(尨村) 황희(黃喜) 정승의 정자입니다. 반구정은 이름 그대로 기러기, 청둥오리 등의 철새와 갈매기를 멋하며 황희 정승이 그의 노년을 보낸 곳입니다. 그런데 같은 뜻을 가진 이름의 정자기 있습니다. 바로 서울 강남의 압구정(鴨鷗亭)입니다. 압구정은 세조의 모신(謨臣)이던 한명회(韓明澮)가 그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입니다. 반구정의 ‘반(伴)’과 압구정의 ‘압(狎)’은 글자는 비록 다르지만 둘 다 ‘벗한다’는 뜻입니다. 이 두 정자는 모두 노재상들이 은퇴하여 새들을 벗하며 여생을 보냈던 정자입니다만 남아 있는 지금의 모습은 많이 다릅니다. 반구정은 지금도 기러기, 청둥오리 등의 철새를 맞이하고 있지만 압구정는 다만 호화로운 부자동네의 상징으로만 남았습니다.
저는 한형이가 학자로서의 삶과 더불어 그의 결혼 생활도 압구정이 아닌 반구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명예가 아닌 진정한 의미의 학문을 하며 때로 새들을 멋 삼는 여유로운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두 사람에게 하느님의 축복이 가득하기를 빌며, 저도 축복을 드립니다.
¶ 무엇이 되어야 할 것은 그렇게 되리니
얼마 전, 어느 지인이 요즈음 지루한 장마로 불쾌지수는 높고 제대로 되는 일이 없어 짜증이 난다는 내용의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거기에 ‘케 세라 세라, 될 대로 되라’ 하면서 산다고 썼더군요. 문득 ‘케 세라 세라’의 뜻을 떠올리면서 혼자 말로 중얼거렸지요. ‘케 세라 세라’는 좋지만 ‘될 대로 되라’는 아닌데…
원래 ‘케 세라 세라’ (Que sera sera)는 스페인어입니다. 영어로 직역하면 ‘ What will I be, will be’ 가 됩니다. 하지만 노래에서는 ‘whatever weill be, will be’로 옮겼습니다. 그런데 그만 누군가가 그것을 우리말로 잘못 옮겨놓은 탓에 많은 사람들이 ‘될 대로 되라’라고 알고 있습니다. 사실 보다 정확한 의미로 옮기면 ‘무엇이 되어야 할 것은 결국 그렇게 되기 마련이다.’가 됩니다. 다시 말해 ‘케 세라 세라’는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자포자기가 아니라 우리 삶 안에 때로 원하지 않았던 일이 일어나거나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닥쳤다면 그것을 자기 인생에서 하느님의 계획표 안에 들어있던 그분의 뜻임을 알고 받아들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아직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흐르는 강을 바라보십시오. 강물은 결코 거슬러 올라가지 않습니다. 다만 아래로 흘러내릴 뿐입니다. 강물은 우리에게 말없이 가르쳐줍니다. 삶에서 일어나는 일이 때로는 받아들이기 힘들지라도 그것을 거스르지 말고 흐름에 따라 흘러가라고.
아시다시피 ‘케 세라 세라’는 유명한 노래 제목이기도 합니다. 이 노래는 50년대 미국의 팝 가수 도리스 데이(Doris Day)가 불러 히트했지만 그 후 이탈리아 칸소네 가수 호세 펠리치아노(Hose Feliciano)가 이태리 산레모 가요제에 입상한 뒤에 우리에게 더욱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리듬도 그렇지만 가사도 재밌습니다. 노래 가사에서 한 부분만 옮겨볼까요?
Que sera, sera,
Whatever will be, will be
The future’s not ours to see.
Que sera, sera,
Whatever will be, will be
케 세라 세라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무엇이 되든지 결국 그렇게 되리니
미래는 우리가 알 수 있는 우리의 것이 아니라네.
케 세라 세라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무엇이 되든지 결국 그렇게 되리니
그렇습니다. 미래는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그분이 우리를 어디로 이끄시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분이 우리를 어디로 이끄시든지 다만 우리는 그분을 따르면 됩니다. 그런데 그것이 참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가 필요합니다.
케 세라 세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합니다. 우리의 미래는 단지 우리에게 달린 것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는 매일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지만 우리의 미래는 온전히 그분께 맡겨드려야 합니다. 그분의 이끄심에 따라 걸어가야 합니다. 우리네 인생은 나그네길이니까요.
¶ 별똥 떨어진 자리
학창시절 무척 좋아했던 윤동주 시인의 글을 하나 읽고 있습니다. <별똥 떨어진데> 라는 산문인데 이상하게도 시를 읽고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앞 몇 줄 읽어 드립니다.
밤이다.
하늘은 푸르다 못해 농회색으로 캄캄하나 별들만은 또렷또렷 빛난다. 침침한 어둠뿐만 아니라 오삭오삭 춥다.
이 육중한 기류 가운데 자조하는 한 젊은이가 있다. 그를 나라고 불러두자.
나는 이 어둠에서 배태되고 이 어둠에서 생장하여서 아직도 이 어둠 속에 그대로 생존하나보다. 이제 내가 갈 곳이 어딘지 몰라 허우적거리는 것이다.
마치 제 마음을 그대로 그리고 있는 것 같아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이제 젊은이가 아닌 중늙은이인데도 아직 어둠 속에서 허우적거리니 그저 한심할 따름입니다. 윤동주가 말하는 어둠은 조국의 어둠입니다. 일제 강점기, 조국의 암담한 현실에 그는 고뇌합니다. 그의 글 몇 줄 더 읽어보지요.
이제 닭이 홰를 치면서 맨짠 울음을 뽑아 밤을 쫓고 어둠을 짓내몰아 동켠으로 훠언히 새벽이란 새로운 손님을 불러온다 하자. 하나 경망스럽게 그리 반가워할 것은 없다.
보아라, 가령 새벽이 왔다 하더라도 이 마을은 그대로 암담하고 나도 그래도 암담하고 하여서
너나 나나 이 가랑지질에서 주저주저 아니치 못할 존재들이 아니냐.
시인 윤동주는 어둠 같은 조국의 암담한 현실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자조하지만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시인은 이 시에서 ‘나무’에 대한 관상을 그립니다. 나무는 희망의 상징입니다. 시인은 나무가 있다고 하며 나무를 의인화하여 ‘그’라고 부릅니다. ‘그’는 자기의 오랜 이웃이요 벗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그를 아주 불행한 존재로 여겨 그의 앞에서면 슬퍼지고 측은한 마음이 앞을 가리곤 했는데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나무처럼 행복한 존재는 다시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심심하면 새가 와서 노래를 불러주고, 촐촐하면 한 줄기 비가 내리고, 밤이면 수많은 별들과 오손 도손 이야기 할 수 있고, 영롱한 햇빛을 받아들여 손쉽게 생활을 영위하고 오로지 하늘만 바라고 뻗어질 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 행복스럽다고 합니다.
그는 나무에게서 희망을 찾으며 나무의 마음을 헤아리고 거기서 미래를 바라봅니다. 이 밤도 과제를 풀지 못하여 안타까운 자신의 마음에 나무의 마음이 점점 옮아오는 것 같다고 합니다. 그는 희망의 상징인 나무에게 자신의 방향을 물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저도 윤동주 시인처럼 제가 가야 할 방향을 나무에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그의 글, <별똥 떨어진데> 의 마지막 행입니다.
어디로 가야 하느냐 동이 어디냐 서가 어디냐 남이 어디냐 아차!
저 별이 번쩍 흐른다. 별똥 떨어진 데가 내가 갈 곳인가 보다.
하면 별똥아! 꼭 떨어져야 할 곳에 떨어져야 한다.
저는 이제 ‘별똥 떨어진데’로 향해 떠납니다. 그곳에도 나무가 자라고 있을 것입니다. 기도 안에서 우리 모두 희망으로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 사자와 소
옛날 옛적에 사자와 소는 서로 절친한 친구였습니다. 그들은 덩치가 크고 힘도 셌기 때문에 다른 동물들을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사자는 소의 도움으로 육식동물을, 소는 사자의 도움으로 초식동물을 다스렸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몇몇 동물들이 사자와 소가 서로서로 도와서 자기들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 둘의 지배에서 벗어나기를 바란 나머지 동물들은 사자와 소 사이에 불화의 씨앗 하나를 심어 놓기로 했습니다. 사자와 소의 신임을 받고 있던 영유와 양이 그 역할을 맡기로 했습니다. 사자의 조언자인 여우는 곰을 찾아가 말했습니다. 소가 사자를 해칠 기회를 노리고 있어서 이를 두려워하는 동물들이 많으면 그 소문이 떠돈 지 며칠 되었다고 했습니다. 소의 조언자인 양도 말에게 찾아가서 사자가 소를 해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돈다고 했습니다.
곰과 말은 그 소문을 사자와 소에게 전했습니다. 사자와 소는 처음에는 소문이 사실이 아니며 둘 사이에 불화를 불러일으키려고 하는 음모일지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결국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그들은 각자 자신이 가장 신임하는 조언자인 여우와 양을 불러 의논하였습니다.
여우와 양은 서로 곰과 말이 하는 이야기는 별 근거가 없으니 너무 괘념치 말라고 하면서도 만약을 위해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했습니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사자와 소가 서로에 대해 가지고 있던 사랑과 믿음은 증오와 불신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이를 본 다른 동물들이 갈수록 그들을 부추겼고, 결국 둘은 서로 드러내놓고 싸우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싸움의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사자는 소에게 많은 피해를 입혔고 사자는 권위를 잃었습니다. 사자와 소는 그때까지 자기들이 친구로서 서로 도왔기 때문에 존경 받으면서 다른 동물들을 다스릴 수 있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저도 살면서 숱한 어리석음을 저지르는 바보이고, ‘저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는 누구의 말처럼 속는 줄 알면서도 속으면서 세상을 살아오기도 했습니다. 그대도 제 나름의 철칙으로 삼는 삶의 지혜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경우에도 비록 저 자신에 대한 이야기일지라도 나쁜 말을 전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말은 (단순히 전해주는 말이니까) 절대 믿지 않고, 바로 그 말을 전하는 사람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다른 사람의 말을 전해 주는 것은 알고 보면 바로 전해주는 그 사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인간은 사자와 소보다 지혜로우니 다른 사람들의 말에 현혹되어 우정을 잃어버리는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하지만 저도 사람인지라 때로는 누가 저를 위해 말해주는 척하면서 누가 그러는데 너 어떻다고 하더라는 말을 들으면, 저를 나쁘게 말했다는 그 사람에 대해 기분이 좋지 않으면서 순간적으로 불쾌해집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에 제가 철칙으로 삼는 삶의 지혜를 떠올리며 혼자 속으로 웃으며 마음의 중심을 바로 잡으려고 합니다.
세상에는 나쁜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최근에 일어난 사건들을 보면 소름이 끼칩니다. 하지만 말로써 사람을 죽이는 행위도 참 나쁜 일입니다. 그 ‘말’이라는 칼은 상황에 따라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신중하게 생각하고 말해야 합니다.
¶ 새인가, 얼음인가, 아니면 물인가?
어제 불교 방송에서 어느 노스님이 하신 말씀이 울림이 되어 그 말씀을 두고 묵상해 보았습니다. 스님 말씀이, 사람들은 얼음으로 만든 새를 놓고 그 새가 아름답다든가, 멋있다든가, 날개가 잘못 되었다든가, 다른 작품보다 못하다든가 하면서 비교하니까 거기서 시비가 생기고 다툼이 생긴다고 하며 물음을 던졌습니다.
“그것이 새인가, 얼음인가, 아니면 물인가?”
그것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우리 마음이, 우리 삶이 달라 질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보이는 형상에 집착하지만 실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 사랑이 어디에 있는가? 그것을 구하려고 할 때 없는 것을 구하려니 불만이 생기고 그 불만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스님은 우리가 무엇을 구하려는 것이 문제라고 하셨는데, 성서에서 예수님은 “구하라, 그러면 받으리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구하라’의 의미도 집착이 아닌 하느님께 의탁하라는 뜻입니다. 하느님께 맡겨드리면 그분이 알아서 해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깊이 보면 같은 말인데 표현 방식이 다를 뿐입니다. 저는 그리스도인이라서 관점과 표현방식이 달라 그 스님 말씀에 전부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스님 말씀의 요지는 존재의 근원을 생각하라는 말씀으로 새겨들었습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얼음으로 만든 새를 보고 우리는 ‘아, 새가 멋있다.’라고 말하지만 실은 새가 아니라 얼음이고, 그 얼음도 실은 물인데 다만 온도 때문에 형상이 달라졌듯이 우리도 여러 모습을 지니고 있지만 그 근원을 바라보면 다 하느님의 모상을 따라 지음 받은 존재 바로 사랑입니다.
하느님의 모상이라는 말의 의미가 눈, 코, 입 등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 아니라 하느님의 본질적인 존재, 바로 사랑이라는 뜻이니까 우리 모두 사랑입니다. 그런데 사랑이 여러 모습을 지니게 될 때 마치 얼음으로 만든 새가 물이 아닌 것처럼 보이듯이 우리도 전혀 사랑이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사실 모두가 그 본래의 하느님의 모상, 사랑의 모습만 지니고 있다면 얼마나 재미없는 세상이겠습니까?
성냄도 미움도 다툼도 다 벗어놓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안 되는 것이 인간 세상사 아니겠습니까? 스님 말씀대로 본래 없는 것이니까 아무 것도 구하지 말고 물처럼 살면 좋겠지만 그것은 아무래도 득도하신 스님 말씀이고 우리는 지지고 볶고 미워하면서 살게 마련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인생이지만 그래도 스님 말씀 중에 새겨두고 싶은 것은 우리 마음 안의 불만을 버리라는 가르침입니다. 삶에서 불만이 없을 수는 없는데 그것을 마음 안에 오래 두지 말고 버리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불만은 화가 되고 마음의 병이 되어 몸의 병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어떤 부인이 몸이 아파서 의사를 찾아갔습니다. 그 의사는 명의였습니다. 부인을 검진해 본 결과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부인의 병은 삶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 마음속의 미움, 분노, 좌절, 슬픔, 불만 등에서 온 것이었습니다. 의사는 마음의 치료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의사는 그 부인을 자기의 진료실에 딸린 약방으로 데려가 빈 병으로 가득 찬 선반을 보여 주며 말했습니다.
“부인, 여기 속이 비어 있는 빈 병들이 보입니까? 조금씩 다르게 생겼지만 다 유리로 만든 병이지요. 중요한 것은 다 비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 병에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독약을 넣을 수도 있고, 다른 병에는 두통을 사라지게 하는 양약을 넣을 수도 있습니다. 이 병에 무엇을 채우는가는 저에게 달려 있습니다.”
이어서 말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매일 매일은 여기 있는 빈 병들과 같습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을 불만, 질투, 좌절, 불만이라는 독약으로 채울 수도 있고, 친절, 온유, 기쁨, 사랑이라는 양약으로 채울 수도 있습니다. 부인의 병에서 미움, 원망, 슬픔을 버리고 희망과 사랑으로 채우신다면 지금 앓고 있는 병은 깨끗이 나을 것입니다.”
사람마다 처함 상황은 다릅니다.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도 모르면서 쉽게 말 한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 살면서 누구나 고통, 슬픔, 불행 등으로 힘들어합니다. 인생이 빈 약병 같아서 원하는 것으로 쉽게 채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네 삶이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지만 길지 않은 인생입니다. 그리 길지 않은 인생을 미움, 질투, 좌절, 슬픔, 불만으로 고통스러워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깝습니다. 하루하루가 화살처럼 지나가고 있습니다. 분명 엊그제 앞산에 눈이 쌓였었는데 어느새 꽃이 피었습니다. 아, 이제 그만 일어나 산이 내뿜는 봄의 향기를 맡으러 나가야겠습니다.
¶ 부부고개
5월 21일이 ‘부부의 날’이라고 합니다. 왜 하필이면 21일인고 하니, 5월 가정의 달에서 둘(2)이 하나(1)가 되는 21일을 부부의 날로 정했답니다. 그런데 부부의 날은 있으면서 독신자의 날은 왜 없습니까? 혼자 사는 것도 억울한데 부부의 날만 있으면 저 같은 수도자나 독신자들은 억울해서 어찌 살란 말입니까?
부부의 날을 맞아 부부가 넘어야 할 ‘일곱 고개’라는 글과 초대 교회의 이야기 하나 소개합니다. 일단 결혼한 부부들은 싫든 좋든 다음과 같은 일곱 고개를 넘어야 합니다.
첫째 고개는 환상의 고개입니다. 처음에는 결혼생활이 환상적입니다. 하지만 환상이 깨지만 곧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그래서 환상의 고개는 일명 눈물의 고개입니다. 이 고개는 신혼부터 3년쯤 되면 넘게 되는 고개로 갖가지 어려움을 웃고 울며 넘는 눈물의 고개랍니다.
둘째 고개는 타협의 고개입니다. 결혼한 지 3~7년 사이에 넘게 되는 고개로, 결혼생활 도중 드러난 단점들을 타협하는 마음으로 넘는 고개랍니다. 위험한 권태기를 지나는 고개이기 때문에 진땀 나는 고개입니다.
셋째 고개는 투쟁의 고개입니다. 결혼 후 7~10년을 사는 동안 진짜 상대방을 알고 난 다음 피차가 자신과 투쟁하며 상대를 포용하는 현기증 나는 비몽사몽의 고개입니다.
넷째 고개는 결단이 고개로 결혼한 지 10~15년이 지나면서 상대방의 장점과 단점을 현실로 인정하고 보조를 맞춰 가는 마치 수레바퀴 인생처럼 돌고 도는 헛바퀴 같은 고개입니다.
다섯째 고개는 따로 고개입니다. 결혼한 지 15~20년 후에 생기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으면서 함께 살지만 정신적으로는 별거하거나 이혼한 것처럼 따로따로 자기 삶을 체념하며 넘는 아리랑 고개입니다.
여섯째 고개는 통일의 고개입니다. 함께 살아오면서 있었던 모든 거들을 서로 덮고 새로운 헌신과 책임을 가지고 상대방을 위해 남은 생을 바치며 사는 내리막 고개입니다.
일곱째 고개는 자유의 고개입니다. 결혼하고 20년이 지난 후에야 나타나는 완숙의 단계로 노력하지 않아도 서로 눈치로 이해하며 행복을 나누는 고개입니다.
부부의 일곱 고개를 읽으니 제가 가끔 혼배 강론 때 들려주는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이미 알고 있는 분도 있겠지만 다시 한 번 초대 교회 때부터 전해 오는 이 이야기를 마음에 새기며 부부는 둘이 하나가 되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한 총각이 한 처녀를 미칠 듯이 사랑했습니다. 어느 날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된 그는 밤늦게 처녀의 집 방문을 두드렸습니다. 처녀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신가요?”
그가 대답했습니다.
“나요.”
그러자 방 안에서 처녀가 대답했습니다.
“이 방은 좁아요. 한 사람 밖에 들어 올 수가 없답니다. 가세요!”
그는 슬픔을 잊기 위해 세상을 떠돌아 다녔습니다. 더구나 그 처녀도 분명히 자기를 사랑하는데 왜 거절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을 떠돌다가 어떤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어느 날 밤늦게 그는 다시 처녀의 방문을 두드렸습니다.
“누구세요?” 하고 안에서 처녀가 물었습니다.
그가 대답했습니다.
“당신입니다.”
그러자 문이 열리고 연인이 뛰쳐나와 그를 껴안았습니다.
“당신을 오랫동안 기다렸어요.”
¶ 분노의 마술
미국에 심리학자이며 저술가로 유명한 엘리노어 필드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심리학 박사가 된 동기를 듣게 되면 가끔 우리에게 찾아오는 분노가 단순히 부정적인 감정이 아니라 놀라운 힘을 지닌 마술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경이를 느끼게 됩니다. 브라이언 카바노프 신부가 쓴 <씨 뿌리는 사람의 씨앗> 이라는 책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그녀의 일화를 소개합니다.
엘리노어 필드는 원래 어느 고등학교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수업을 하고 있는 도중 갑자기 교실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거기에는 ‘독재자’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한 교감이 서 있었습니다. 그 여성 독재자는 뚜벅뚜벅 걸어 들어오더니 교실 뒤에 서서 팔짱을 끼고 눈썹을 치켜든 채로 수업을 지켜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얼굴은 언제나 찬바람 이는 겨울이었고 언제라도 트집을 잡을 기세였습니다. 엘리노어는 마침 학생들과 함께 토마스 하디의 유명한 저서 <난 괜찮아. 너도 괜찮고> 에 대해 토론을 하면서 인간의 마음가짐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놓고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수업을 지켜보던 독재자는 엘리노어를 표독스러운 눈으로 노려보더니 교실 출입문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녀와 학생들이 ‘이제 독재자가 나가나 보다’ 라고 안도의 숨을 쉬려는 순간 독재자는 다시 엘리노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째려보더니 소리쳤습니다.
“필드 선생, 당신은 자신이 누구라고 생각하시오? 당신이 지금 학생들에게 어떤 내용의 수업을 하고 있는지 한번 보시오. 당신은 자신이 마치 심리학자라도 되는 것처럼 행동하는데, 당신은 한낱 평범한 교사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명심하시오.”
엘리노어는 참을 수 없을 만큼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 상황에서는 누구라도 그랬겠지요. 온몸의 세포 구석구석에서 혈압이 상승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눈물이 쏟아지고 심장이 뛰었지만 학생들 앞이라서 그저 부글부글 끓고 있는 주전자 뚜껑을 곡 내리 누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독재자가 모욕적인 발언을 하고 나가자 학생들이 일제히 자기를 옹호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학생이 소리쳤습니다.
“저 여잔 단단히 혼이 나야 해요.”
또 다른 학생이 말했답니다.
“정말 정신을 차리게 해야 한다고요. 오늘 화장실에서 내 지갑을 빼앗더니 담배가 들어 있지 않느냐고 마구 뒤지는 거였어요.”
평소에 수줍음이 많던 남학생의 떨리는 목소리가 특히 엘리노어의 감정을 자극했습니다.
“저 여자는 우리가 우리들의 문제를 자기와 의논하지 않고 선생님과 함께 의논하니까 질투가 나서 저래요.”
그날 저녁 집까지 차를 운전하고 가는 내내 감정의 화산이 폭발한 것 같았고 위로 받지 못한 눈물이 용암처럼 철철 흘러내렸습니다. 자꾸만 그 독재자가 내뱉은 말이 귓가에서 메아리 쳐 그날 밤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당신은 자신이 심리학자라도 되는 것처럼 행동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명심하시오. 당신은 자신이 누구라고 생각하시오? 당신은 심리학자가 아니오. 당신은 한낱 평범한 교사란 말이오.”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았던 긴 밤이 지나고 여명이 밝았습니다. 아침햇살이 창문을 비껴올 때 쯤 한 줄기 빛이 그녀의 머릿속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습니다.
“그래. 내가 심리학자가 못 될 이유가 뭐지?”
그녀의 가슴 안에는 분노 대신 열정이 자리 잡았습니다. 그녀는 곧바로 차를 타고 모 대학교에 가서 심리학 박사과정 등록을 마쳤습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인생의 스승은 많은 형태로 다가옵니다. 전혀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 줄 것 같지 않은 그런 순간조차 스승은 우리에게 충격을 주고 변화를 시도하게 만듭니다.
그 독재자 교감이야말로 자기를 성공으로 이끈 스승이었습니다. 그녀 안에 일어난 분노의 불길이 그녀로 하여금 새로운 선택의 길을 찾도록 연료가 되어 주었고 그 결과 그녀의 정신은 높이 비상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삶에 그런 큰 변화가 있은 후 많은 세월이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녀의 심리 상담 연구실 문이 열리면서 예약된 새로운 환자가 걸어 들어왔습니다. 그 환자는 차 주전자처럼 부글부글 끓고 있었습니다. 그 환자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필드 박사님, 전 교사인데요 오늘은 정말 끔찍한 하루였어요. 완전히 독재자인 교장이 있거든요. 그 교장이 학생들이 다 지켜보는 가운데 절 모욕했어요. 저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어요.”
엘리노어는 가슴 안에 자비심이 물결쳤습니다. 그녀는 말했습니다.
“알아요. 당신이 어떤 감정을 지니고 있는지 알아요. 분명히 말하지만 저는 당신을 도울 수 있어요.”
살아가면서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그런 독재자 교감 선생 같은 사람을 만나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아마 직장 생활을 해 본 사람이면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분노를 더 높이 비상할 수 있는 열정으로 바꾸는가, 아니면 그 분노에 사로잡혀 자신을 파멸로 이끄는가는 각자가 지닌 역량에 달려있습니다. 저도 많은 사람들과 상담을 하면서 그런 분노 때문에 폐인이 되다시피 한 사람도 더러 만나 보았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엘리노어는 특별한 자질을 지닌 것 같습니다. 평범한 우리들은 분노를 열정으로 바꾸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저도 전혀 그러지 못하면서 분노를 준 사람을 스승으로 삼았던 또 다른 엘리노어가 되라고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분노에 함몰되지는 말라고 격려를 드리고 싶습니다.
저도 얼마 전 어느 후배 때문에 뚜껑이 열리고 꼭지가 부글부글 끓는 경험을 했습니다. 내용은 밝힐 수 없지만 마치 구정물을 뒤집어 쓴 느낌이었습니다. 제 안에 여러 항변이 소리쳤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달라졌어도 후배가 선배에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어떻게 저리 속이 좁은 소인배가 있을 수 있지? 먼저 인간이 되라.’ 등등. 제 안에서 온갖 욕이 나오고 분노가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그날 잠을 이루지 못했고 제 자신이 너무 한심스러웠습니다. 그러다가 자신을 타일렀습니다.
‘너는 신부로서 늘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사랑 때문에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용서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용서하고 잊어버려라.’
부끄럽게도 강론 대에서 말하기는 쉬웠는데 막상 제 일이 되고 보니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루가 지나니까 분노가 가라앉으면서 그 후배가 참 불쌍하게 느껴졌습니다. 결국 그 후배의 행동이 열등감에서 나온 것임을 생각하니 연민의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후배에게 들려주고 싶은 고사성어를 떠올리며 웃기로 했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일이 있으면 제가 들려주는 고사 성어를 생각하며 웃고 넘기시기 바랍니다. 물론 엘리노어처럼 분노를 열정으로 바꿀 수 있는 분은 제게 그 비법을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옛날 한나라 때의 일이랍니다. 어는 연못에 예쁜 잉어가 한 마리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디서 들어 왔는지 그 연못에 커다란 메기 한 마리가 침입하였고 그 메기는 잉어를 보자마자 잡아먹으려고 했습니다. 잉어는 연못의 이곳 저곳으로 메기를 피해 헤엄을 쳤으나 역부족이었고 도망갈 곳이 없어진 잉어는 초어적인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잉어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뭍에 튀어 올라 지느러미를 다리 삼아 냅다 뛰기 시작했습니다. 메기가 못 쫓아오는 걸 알게 될 때까지 잉어가 뛰어간 거리는 약 구리 정도였을까, 암튼 십리가 좀 안 되는 거리였답니다. 그때 잉어가 뛰는 걸 본 한 농부가 잉어의 뒤를 따랐고 잉어가 멈추자 이렇게 외쳤습니다.
“어주구리(漁走九里).” (고기가 9리를 달리다.)
그리고는 힘들어 지친 잉어를 잡아 집으로 돌아가 식구들과 맛있게 먹었답니다. 어주구리(漁走九里)는 능력도 안 되는 이가 센 척하거나 능력 밖의 일을 하려고 할 때 흔히 쓰는 말입니다. 이 고사 성어를 말 할 때는 비꼬는 듯한 말투로 약간 톤을 높여 말하면 아주 효과적입니다. ‘아쭈구리’라고 발음하는 사람도 있으나 잘못된 발음입니다. 화나게 만든 이에게 속으로만 살짝 말해 보세요. ‘그래, 어주구리. 까불어 봐야 너는 물고기야. 그러다가 결국 농부에게 잡아 먹히잖아. 메기는 너를 잡아먹으려고 따라온 것이 아니야. 이 바보야.’
다음의 고사 성어는 발음에 더 조심해야 합니다. 스트레스를 풀려고 했다가 오히려 봉변을 당해 스트레스가 더 쌓일 수도 있습니다.
고대 중국의 당나라 때 일이랍니다. 한 나그네가 어느 더운 여름 날 길을 가다가 이상한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한 농부가 밭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말에게 가혹한 채찍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나그네는 말이 안쓰러워서 농부에게 물었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말에게 왜 자꾸만 채찍을 가합니까?”
그러자 농부는 자고로 말이란 가혹하게 부려야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일을 열심히 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남의 말을 놓고 가타부타 언급할 수가 없어 이내 자리를 뜬 나그네는 열심히 일하면서 매를 맞는 말이 불쌍하여 뒤돌아보며 긴 탄식과 함께 한 마디로 내뱉었습니다.
“아! 시벌로마(施罰勞馬).” (아, 일하는 말에게 벌을 주는구나.)
훗날 이 말은 후세 사람들에게 이어져 주마가편(走馬加鞭)과 뉘앙스가 약간 다르지만 상당히 유사한 의미로 쓰였다고 합니다.
시벌노마(施罰勞馬)는 열심히 일하는 부하직원을 못 잡아먹어 안달인 직장상사에게 흔히 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아랫사람이 노는 꼴을 눈뜨고 보지 못하는 일부 몰상식한 상사나 월급은 쥐꼬리만큼 주면서 부려먹는 사장 또는 늘 닦달만 하는 수도원의 원장 뒤에 서서 들릴락 말락 하게 읊어 주면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미 말씀 드린 대로 발음을 잘 하셔야지 잘못하면 곤경에 처 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봉변을 당하고서 류해욱 신부가 알려 주었다고 하면 곤란합니다.
건투를 빕니다.
¶ Black 블랙 –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길
오늘 저는 너무 놀라운 영화를 보다가 그만 감동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을 펑펑 쏟고 말았습니다. 그 눈물의 감동을 함께 나누고 싶어 지금 부은 눈으로 글을 씁니다.
B.l.a.c.k.
정상인들에게 알파벳은 a.b.c.로 시작하지만,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모든 것은 블랙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알파벳이 b.l.a.c.k로 시작됩니다.
주인공 미셀에게 소리는 침묵이 되고, 빛은 어둠이 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녀가 한 사람을 만나가 전까지 세상은 온통 어둠 뿐이었습니다. 마치 태초에 어둠뿐이었고, 그 어둠 위로 하느님의 영이 휘돌고 있다가 빛이 생기라는 말씀으로 빛이 생겨났듯이 어둠은 시작이고, 다만 빛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지만 미셀이 8살이 되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녀에게 그것을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8살의 소녀 미셀. 그녀에게는 무조건적인 사랑만 줄 뿐 딸에게 무엇을 가르쳐줘야 할지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는 어머니와 딸을 사랑하지만 더 이상 딸의 행동을 감당할 수 없어 시설로 보내려고 하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그런 아버지에게 어머니는 간곡히 사정하여 탁월한 가정교사를 구하여 마지막 시도를 해 보고 그 다음에 시설에 보내자고 애원합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단호히 말합니다. 미셀에게 필요한 사람은 선생이 아니라 마법사라고. 그만큼 그녀의 행동은 야생 그대로입니다. 그러니 가족이 겪는 고통이 오죽 했겠습니까.
여차저차해서 사하이 선생이라는 사람이 마법사라고 자신하며 미셀의 집으로 오게 됩니다. 오로지 어둠에 항거하는 막무가내인 8살의 미셀.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그녀는 삶의 어떤 규칙도 질서도 배운 적이 없었습니다.
미셀의 필요에 무엇이든 응해주는 부모의 양육 방식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사하이 선생. 그는 어둠 속에 갇혀있던 미셀에게 빛과 소리를 가르쳐 주기 위해 그녀의 눈과 귀가 되어주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쉽지는 않았습니다. 며칠이 지나도 별 차이가 없자 아버지는 사하이 선생에게 해고 통지를 하고는 20일간 출장을 떠납니다. 사하이 선생은 그 20일 동안만 미셀을 자신에게 맡겨 달라고 간청하여 시간을 얻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20일. 그리고는 아무것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미셀에게 말을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20일 다 되어도 아무런 단어도 이해하지 못하자 어머니도 결국 포기하고는 남편이 돌아오기 전에 떠나라고 말합니다. 이제 사하이 선생도 어쩔 수 없는 마지막 순간이 왔습니다. 미셀이 자기에게 퍼부은 물세례를 계기로 아이를 밖에 있는 분수대로 데리고 나가서 물을 집어넣고 물, ‘워터’라는 단어를 알려 주려고 하는데, 미셀이 생에 처음으로 ‘워터’라는 단어의 ‘워’를 입 밖으로 뱉어냅니다. ‘케이크’란 단어를 가르치기 위해 가져온 케이크를 먹어버리고, ‘새’라는 단어를 가르치기 위해 우리에서 꺼낸 새를 날려버리는 등 막무가내였던 그녀가 드디어 말문을 튼 것이었습니다. 그녀에게 워터는 단순히 물이 아니었습니다.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창세기에서도 어둠 뿐이던 물 위로 하느님의 영, 성령이 휘돌고 있었습니다.
미셀이 ‘워터’라는 단어를 알아들은 것, 그것은 진정 성령의 이끄심이지 싶습니다. 사하이 선생의 깊은 연민과 사랑 그리고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다는 믿음, 그 믿음을 실현하고자 하는 그의 노력으로 미셀도 새로운 인생, 어둠뿐이던 그녀에게 빛의 세계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사하이 선생을 피해 도망가다가 선인장에 찔린 미셀의 손을 사하이 선생이 치료해주며 따뜻하게 감싸주자 ‘미셀’은 그 손을 꼭 잡으면 ‘호’하고 불어줍니다. 아름다운 장면이었습니다. 미셀이 사하이 선생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첫 악수 장면입니다. 마음은 통하게 마련입니다.
미셀을 세상과 소통하게 해 준 마법사 사하이 선생. 그는 18년 동안 미셀의 마법사로서 미셀을 대학까지 보냈습니다. 입학은 했지만 타자를 빨리 칠 수 없어 수없이 낙제를 하지만 실패도 축하하는 그들을 보면서 성공만이 가치 있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우리 교육이 부끄러웠습니다. 포기하지 않은 미셀은 불혹의 나이에 대학을 졸업하게 됩니다. 졸업식에서 그녀는 아주 멋진 연설을 하며 우리를 감동시킵니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사하이 선생은 말없이 떠나버리지만 나중에 다시 만나게 되고 이제 미셀이 블랙에 갇힌 그의 기억 속에 빛으로 다가갑니다.
블랙.
저는 이제 블랙의 깊은 의미를 다시 배웁니다. 블랙은 단순히 어둠이 아니라 빛으로 나아가는 길이기도 합니다.
¶ 눈물로 진주를 만드시는 분
가을이 깊어갑니다. 창문 밖으로 앞 산 나뭇잎이 떨어집니다. 중력에 의해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어머니가 그렇게 힘없이 떨어져 그분께로 가신지도 어는 새 20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어머니는 그 해 11월 1일, 모든 성인의 대축일에 새벽 미사를 가시다가 교통사고로 이승과 이별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기일을 앞두고 기도하게 되는 것은 어머니만을 위함이 아닙니다. 어머니는 그분과 함께 머무시리라 믿으니까요. 그 기도는 나와 우리 그리고 이 시대를 위한 기도입니다. 요즘 모두 살기 힘들다고 합니다. 곰곰이 그 원인을 생각해 보니 이 시대가 어머니의 정신,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또는 영혼의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경제 위기니 금융 우기니 등의 말을 하지만 실상 더 큰 위기는 영혼을 잃어버린 위기가 아닐까요? 그것이 온갖 위기의 시작입니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간이 달나라도 다녀왔다고 해서 더 행복합니까? 이태백이 놀던 달, 토끼가 방아를 찧던 달, 동화와 꿈을 담고 있던 달을 잃어버리고도 우리의 영혼은 행복한가요? 과학이 발달하고 경제가 성장했다고 해서 제 삶이 더 행복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느끼는 위기는 분명 경제 위기는 아닙니다. 물론 제가 생활의 전선에 뛰어든 사람이 아닌 까닭도 있지만 분명 오늘날 우리가 겪는 위기는 정신과 영혼을 잃어버린 상실의 아픔이 근원적인 원인이지 싶습니다. 요즈음 ‘힐링’이 대세라고들 하는데, 힐링(치유)의 근원은 바로 잃어버린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을 다시 찾는 것이 아닐까요?
‘어머니의 사랑’ 하면 정한모 시인의 <어머니> 라는 시의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어머니는
눈물로
진주를 만드신다.
저는 어머니의 사랑을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한 다른 시를 알지 못합니다. 저는 ‘어머니’라는 말 한마디에 담겨 있는 수많은 정서 때문에 ‘어머니’에 관한 시를 쓰려고 하면 어느 새 감상에 빠져 적절한 은유를 찾기가 어렵더군요. 그런데 정한모 시인은 감상에 젖지 않으면서도 ‘눈물’을 ‘진주’로 만드는 탁월한 연금술을 보여줍니다.
시인은 아들을 위한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적인 삶을 ‘눈물’이라는 한 단어로 압축하면서 그 눈물이 ‘진주’를 만든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은 그 자체로는 어둠입니다. 어머니가 생전에 겪으셔야 했던 삶의 굴곡이 어둠으로 표상됩니다. 그러나 그 어둠은 아들을 빛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입니다. 당신은 어둠 속에 살면서도 아들의 가슴에 빛을 주고자 눈물로 진주를 만드시는 어머니. 어머니는 진주의 영롱함을 가리게 하는 ‘검은 손’은 사라지라고 소리칩니다. 삶의 굴곡 안에서 겪어야 하는 숱한 난관을 우리의 어머니는 힘겨운 투쟁을 통해 ‘눈물’을 ‘진주’로 만들어 아들들의 가슴에 심어 주십니다.
어머니, 오늘 당신이 무척 그립습니다.
¶ 지푸라기의 행운
여러분들 기쁩니까? 아니라고요? 만약 삶이 기쁘지 않다면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얼마나 나누면서 사는지 솔직하게 돌아보십시오. 삶을 돌아보면, 기쁘고 즐거운 일보다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이 많게 느껴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기쁠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우리가 지닌 것을 나눌 때 기쁨이 커집니다.
옛날 어느 나라에 Mr. Straw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Straw는 우리말로 지푸라기이니까 우리는 그를 지푸라기씨라고 부릅시다. 지푸라기하면 어떤 이미지가 연상됩니까? 힘없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고 쓸모 없다는 생각이 들지요? 지푸라기씨는 너무 가난해서 제대로 먹지도 못해 깡마르고 약해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정말 볼 품 없는 지푸라기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아주 착한 사람입니다. 지닌 것이 없으면서도 자기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보면 무엇이든지 선뜻 내주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질 않아 늘 실패를 거듭합니다.
어느 날 그는 신전에 가서 행운의 여신에게 자신에게도 행운을 좀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기도 중에 환청을 듣는 듯 어떤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이 신전에서 나가 제일 먼저 손에 잡히는 것이 너에게 행운을 가져다 줄 것이다.”
그는 꿈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목소리가 너무 생생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는 기뻐서 신전을 뛰어 나가다가 그만 계단에 굴러 땅바닥에 넘어졌습니다. 먼지투성이의 땅바닥에서 일어나려다가 문득 손에 잡히는 것이 있었습니다. 지푸라기였습니다. ‘하필 지푸라기를!’ 하는 푸념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는 아무 쓸모 없는 지푸라기가 자신에게 행운을 가져다 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지만 애써 자기가 들은 목소리를 믿고 싶은 마음에 지푸라기를 들고 신전을 나와 길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잠자리 한 마리가 계속 따라오면서 지푸라기에 앉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잠자리를 잡아서 지푸라기에 매달고는 길을 걸었습니다. 얼마쯤 걷다가 아이를 데리고 오는 꽃 파는 여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걷기에 지쳐 칭얼거리다가 지푸라기에 매달린 잠자리를 보더니 금방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아이는 잠자리를 원했습니다. 지푸라기씨는 선뜻 잠자리가 매달린 지푸라기를 아이에게 주었습니다. 아이의 엄마는 감사의 표시로 장미 하 다발을 건네주었습니다. 지푸라기씨는 계속 길을 걷다가 지쳐서 나무 그늘 아래에서 쉬고 있는데 어떤 젊은이가 수심에 싸인 얼굴로 지나가는 것을 보고 말을 걸었습니다. 젊은이는 사랑하는 여인에게 구혼을 하려고 하는데 마땅히 줄 선물이 없어서 걱정이라고 했습니다. 지푸라기씨는 얼른 장미다발을 건네주면서 그것을 여인에게 주라고 했습니다. 젊은이는 기뻐하며 가지고 있는 오렌지 세 개를 지푸라기씨에게 주었습니다. 오렌지를 손에 들고 지푸라기씨는 계속 길을 걸었습니다. 이번에는 무거운 수레를 끌고 가는 상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땀을 흘리며 가던 상인은 갈증이 심해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지푸라기씨는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그 상인을 보자 그만 연민의 마음이 일어 그에게 오렌지를 주며 갈증을 풀라고 했습니다. 상인은 고마워하면서 자기가 가진 가장 좋은 비단 한 필을 지푸라기씨에게 선물로 주었습니다. 이제 비단 한필을 손에 들고 걸어가던 지푸라기씨는 마침 그 나라의 공주를 만나게 됩니다. 공주는 아버지인 임금의 생신을 맞아 옷을 지어드리려고 좋은 비단을 사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지푸라기씨가 들고 있는 비단을 본 공주는 지푸라기씨에게 그 비단을 자기에게 팔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지푸라기씨는 기꺼이 공주에게 비단을 거저 드리겠노라고 답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공주는 기뻐하며 아주 좋은 보석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이렇게 하루 사이에 볼품없는 지푸라기가 귀한 보석으로 바뀌었습니다. 지푸라기씨는 보석을 팔아 크고 기름진 밭을 사서 열심히 농사를 지으며 잘 살았습니다. 농사지은 것을 가난한 이웃과 나누면서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사람들은 지푸라기 하나가 지푸라기씨에게 엄청난 행운을 가져다 주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그것이 단순히 행운일까요? 아닙니다. 우리는 압니다. 그의 연민의 마음, 다른 사람과 기꺼이 나누고자 했던 그 마음이 그에게 행운을 가져다 준 것임을.
우리는 오늘 자선 주일을 맞아 우리가 지닌 것을 이웃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구체적인 결심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지닌 것을 나눌 때 실은 더 많은 것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랑의 산수, 연민의 산수, 나눔의 산수에서는 나눌수록 수가 증가하는 마술이 이루어집니다. 경험해 본 사람은 알지요. 아니라고요? 물론 아닐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꾸 나눔을 하다 보면 마술이 이루어지는 것을 깨닫게 되고,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 갈대는 강하다
‘갈대’라고 읊조리면 가장 먼저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지요?
아마 많은 사람들이 파스칼의 ‘팡세’에 나오는 너무도 유명한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말을 떠올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천재 수학자이자 철학자이면서도 깊이 하느님을 체험했던 파스칼을 말했습니다.
“인간은 수증기 한 방울로도 죽을 수 있는 정도로 갈대처럼 연약하다. 그러나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저는 파스칼이 억새를 갈대로 착각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듭니다. 많은 사람들이 억새를 갈대로 잘못 알고 있거든요. 억새는 산, 들 어디서나 볼 수 있지만 갈대는 주로 강가나 냇가의 습지에서 자라는데 억새보다 굵고 강하면서 억세답니다. 둘 다 줄기 속이 비어 있고 마디식물이지만 주로 이미지는 많이 다릅니다.
저는 순천만 갈대 숲에서 갈대에 대한 이미지를 새롭게 지니게 되었습니다. 갈대는 남쪽 더운 지방에서 북극까지 세상 어디에서나 강한 생명력으로 호수나 습지, 개울가를 따라 잘 자랍니다. 억새와는 달리 비교적 잎이 넓은 풀로 키는 1.5m에서 5m가 넘게 자라며 깃털 모양의 꽃이 무리지어 피고 줄기는 곧고 매끈합니다. 군락을 이루고 있는 갈대의 모습은 전혀 약한 식물이 아니었습니다.
차영섭 시인은 <갈대는 물처럼 강하다> 라는 제목의 시를 썼고, 정찬주 소설가는 “흙을 움켜쥔 대의 발톱 같은 갈대의 뿌리를 보면 힘찬 생명력이 느껴진다.” 고 했습니다. 겉만 보면 갈대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으로 보이기 때문에 약한 식물 같지만 갈대의 강한 모성애를 알게 된 뒤로는 갈대가 약하다는 편견을 버렸습니다. 갈대가 여름까지 바람에 쓰러지지 않고 서 있는 것은 속에서 새로 자라나는 새끼 갈대가 바람에 깔리지 않고 잘 자라기를 기다리며 지켜주기 위함입니다. 새끼 갈대가 혼자 힘으로 버틸 수 있을 때가 되어서야 바람에 몸을 누인다고 합니다. 이런 강한 모성애를 지닌 갈대를 어찌 약하다 할 수 있겠습니까?
오랫동안 갈대줄기는 지붕을 이는 재료나 건축 재료로 또는 바구니 세공, 화살, 펜, 악기 등의 재료로 이용돼 왔습니다. 예전에는 갈대에 많이 함유된 셀룰로오스를 얻기 위해 수확했지만 요즘은 편리하고 값싼 플라스틱 제품들이 나오면서 갈대를 그냥 내버려둔 탓에 순천만과 같은 대규모 갈대밭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갈대는 다년생초로 뿌리줄기의 마디에서 많은 수염뿌리가 납니다. 꽃은 9월에 피기 시작하고, 수꽃에는 털이 있고 긴 까끄라기도 있어 가을 물가에서 날리는 갈대 이삭의 모습이 장관을 이룹니다. 또한 갈대는 토질을 정화하는 작용을 하기에 최근에는 중금속과 같은 오염물질이 유입되는 곳에 갈대를 심어 오염물질을 제거하기도 합니다.
천상병 시인은 “환한 달빛 속에서 갈대와 나는 눈물에 젖어 있었다.” 고 하고, 신경림 시인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고 읊었습니다. 왜 시인들은 갈대에게서 ‘울음’이나 ‘눈물’의 이미지를 떠올릴까요?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의 소리가 마치 울음소리처럼 들리는 까닭이기도 하겠지만 하염없이 흔들리면서도 꿋꿋하게 서 있는 모습에서 새로운 용기를 얻고 작은 위로를 바기 때문이 아닐까요?
¶ 작은 악마와 농부의 빵 조각
옛날 옛적에 러시아에 착한 농부가 살고 있었어요. 농부는 몹시 가난했지만 아내와 행복하게 살고 있었지요. 농부는 너무 가난해서 아침도 먹지 못하고 점심으로 빵 한 조각만 싸 가지고 밭일을 하러 갔어요. 농부는 쟁기를 내리고 수레를 나무 덤불 밑에 끌어다 놓고 그 위에 빵을 놓고는 겉옷으로 덮어 뒀어요. 열심히 일을 하다 보니 말도 지치고 농부도 배가 고팠어요. 그래서 농부는 쟁기를 밭에 꽂아 두고 말이 풀을 뜯어 먹게 고삐를 풀어 주고는 자기도 점심을 먹으로 겉옷이 있는 쪽으로 갔지요. 그런데 겉옷을 들춰 보니 빵이 없어졌어요. 농부는 겉옷을 뒤집어도 보고 털어도 보고 주변도 샅샅이 뒤졌으나 빵 조각은 없었어요. 참 이상한 일도 다 있다고 생각했지요.
“여기에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었는데….. 누가 빵을 가지고 갔을까?”
누가 가지고 갔을까요? 꼬마 악마였답니다. 농부가 밭을 갈고 있는 동안 꼬마 악마가 빵 조각을 훔친 후 덤불 뒤에 숨어서 동정을 살피고 있었습니다. 농부가 화를 내고 욕하기를 바랐지요. 악마대왕이 꼬마 악마에게 그 착한 농부를 타락시키라는 명령을 내렸거든요. 농부가 욕을 하고 저주를 하여 그를 죄 짓게 만들면 그를 타락시키는 것이지요. 고마 악마는 농부를 타락시켜 악마대왕을 기쁘게 해주리라 생각하며 귀를 기울이고 있었어요. 그런데 농부는 약간 실망은 했지만 욕을 하지는 않았어요. 다시 말해 죄를 짓지 않았어요.
농부는 이렇게 중얼거렸어요.
“아마 내가 일하느라 못 본 사이에 나그네가 지나가다가 배가 고파서 먹었나 보다. 나보다 더 배고픈 사람이 먹었다면 할 수 없지! 그것도 하느님의 뜻이겠지.”
농부는 우물로 가서 물을 잔뜩 마시고는 한숨을 쉬고 나서 쟁기를 메고 또 밭을 갈기 시작했어요.
꼬마 악마는 농부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들지 못하자 몹시 당황하여 악마대왕에게 달려갔어요. 그는 악마대왕 앞에 나가 자기가 농부의 빵을 훔쳤는데도 농부가 욕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하느님께 축복 받을 말만 했다고 보고했어요. 악마대왕이 꼬마 악마에게 잘했다고 칭찬했을까요? 아니지요. 그는 노발대발하며 말했어요.
“만약 농부가 정말 죄를 짓지 않고 너를 이겼다면 그것은 모두 너의 잘못이다. 네 방법이 나빴기 때문이란 말이다. 만약 농부와 그의 가족도 그와 같은 마음이며 우리들이 사람들을 타락시키고 죄를 짓게 만들 수 없지 않은가? 절대 그대로 둘 수 없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농부를 타락시켜라. 3년가의 시간을 주겠다. 만약 3년 안에 농부를 죄 짓게 만들지 못한다면 너를 성수 속에 처박아 줄 테다.”
악마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세요? 바로 성수였어요. 꼬마 악마는 깜작 놀라 악마대왕에게 사정했어요. 제발 성수에는 넣지 말라 달라고요. 그는 자신의 잘못을 어떻게 만회해야 좋을지 방법을 궁리하기 시작했어요. 별 묘안이 떠오르지 않자 경험이 많은 선배 악마를 찾아가 조언을 구했지요. 선배 악마는 기막힌 묘책을 가르쳐 주었어요. 그것이 무엇일까요?
꼬마 악마는 아주 성실하고 건장한 젊은이로 변장을 하고 가난한 농부를 찾아갔어요. 악마는 변장술의 천재거든요.
“저는 먼 지방에서 왔는데 그곳에 기근이 들어 떠돌아다니다 이곳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저를 일군으로 받아 주시면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농부는 자신도 가난하여 일군을 둘 처지가 아니라고 했지만 꼬마 악마는 품삯을 받지 않고 일해 주겠다고 했어요. 농부는 착한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기꺼이 그 젊은이를 받아 주면서 일군이 아니라 그냥 친구로 함께 지내자고 했지요. 그는 함께 일할 친구가 생긴 것을 기뻐했어요. 젊은이는 일도 열심히 할 뿐만 아니라 아주 똑똑해 보였어요. 젊은이가 하루는 자기는 아버지한테 점치는 것을 배웠다고 하면서 말했어요. 자기의 점괘에 의하면 올해 여름에 큰 가뭄이 들 것 같다는 거예요. 그러니 습지에 농사를 지으면 좋을 것 같다고 했어요. 농부는 젊은이로 변장한 꼬마 악마의 말을 듣고 습지에 씨앗을 뿌리고 농사를 지었어요. 정말 여름에 큰 가뭄이 들어 다른 집들은 모두 농작물이 타서 말라 죽어 가는데 농부네 집 농사는 풍작이 들었어요. 그래서 농부네 곡식은 그 이듬해 추수 때까지 먹고도 남을 정도였어요. 마을 사람들이 농부에게 와서 곡식을 꾸어달라고 하였지요. 착한 농부는 기꺼이 곡식을 나누어 주었지요.
그 다음 해는 장마가 질 것 같으니 높은 언덕 위, 건지에 씨를 뿌리라고 했어요. 농부는 또 그렇게 했지요.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 해 여름에는 비가 몹시 내렸어요. 다른 집 농작물은 모두 쓰러지고 비를 맞아 썩고 제대로 영글지 못했는데 농부네 언덕 위의 밭에서는 곡식이 아주 잘 영글었어요. 그래서 또 다시 처분하기 곤란할 정도로 많은 곡식이 생겼어요. 가난했던 농부는 이제 부자가 되었어요. 마을 사람들이 모두 찾아와서 허리를 굽실거리며 곡식을 청하게 되었지요. 농부야말로 마을에서 가장 똑똑하다는 칭찬이 자자했어요. 농부는 뿌듯했지요. 그렇지만 아직 착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꺼이 곡식을 나누어 주었어요. 그렇게 악마로 변장한 젊은이의 도움으로 3년째에도 농사를 잘 지었어요. 이제 정말 그 많은 곡식으로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모르게 되었지요. 그것을 본 젊은이가 농부에게 조언을 해 주었어요. 밀을 빻아 술을 담그라고 일러 주며 술 담그는 법을 가르쳐 주었어요. 농부는 술을 담가서 자기도 마시고 마을 사람들에게도 나눠 주었어요.
젊은이, 다시 말해 꼬마 악마는 농부와 함께 지내면서 농부를 부유하게 만들어 주었고, 마을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게 해 주었지요. 쉽게 말해 부와 명예를 갖게 해 주었어요. 그리고 계속해서 농부에게 교만한 마음을 불어넣어 주었어요. 이제 부와 명예를 지녔으니 당신이 최고라는 생각을 갖게 만든 것이지요.
하루는 마을 사람들을 불러 잔치를 베풀었어요. 잔치에 술이 빠질 수 없지요. 젊은이, 실은 꼬마 악마가 가르쳐 줘서 만든 술을 마시게 되었는데 농부가 그만 술이 많이 취했어요. 이제 마을 사람들 모두 농부에게 굽실거리며 인사를 한다고 했지요? 그런데 조금 늦게 잔치에 온 마을 이장이 먼저 그에게 인사를 하지 않고 자리에 앉았어요. 그것을 본 농부는 이장에게 화를 내며 자기에게 얻어 먹는 주제에 인사도 하지 않는다고 욕을 했어요. 그것을 보고 꼬마 악마는 쾌재를 불렀어요. 꼬마 악마는 악마대왕에게 달려가서 마침내 농부를 타락시켜 죄를 짓게 만들었다고 자랑스럽게 보고했어요. 악마대왕은 직접 그것을 확인하러 나섰어요. 그가 농부네 집에 가 보니 농부는 마을 부자들을 초대해 술대접을 하고 있었어요. 농부의 아내도 손님들에게 술시중을 들고 있었는데, 그만 식탁 모서리를 돌다가 옷이 걸려 술잔을 엎지르고 말았어요. 그러자 농부는 화를 내며 아내에게 욕을 했어요.
“조심하지 못하고, 못난 여편네 같으니라구. 이렇게 좋은 술을 엎지르다니 당신 이게 구정물인 줄 알아! 도대체 눈을 어디에 두고 다니는 거야?”
꼬마 악마는 팔꿈치로 악마대왕을 쿡쿡 찌르며 말했어요.
“보십시오, 대왕님. 그 착하던 농부가 술 조금 엎지른 것을 아까워하며 욕을 하잖아요. 제가 농부를 이긴 것 맞지요?”
농부는 아내에게 마구 욕을 하며 호통치고는 손수 술시중을 들기 시작했어요. 그때 들일을 하고 돌아가던 어느 농부가 초대 받지 않았는데도 잔치가 벌어진 소리를 듣고 그곳에 들어왔어요. 그 사람은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고 보니 모두들 술을 마시고 있어 자기도 한 잔 마시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들일을 하느라 무척 지쳐 있었거든요. 그래서 군침을 삼키며 앉아 있었으나 주인은 그 사람에게 한 잔도 권하지 않고 이렇게 중얼거렸어요.
“이 좋은 술을 아무에게나 마구 퍼 먹일 수는 없지!”
악마대왕은 이 말이 매우 마음에 들었답니다. 꼬마 악마는 코를 벌름거렸어요.
“두고 보십시오. 지금부터가 시작이니까요.”
돈 많은 농부들은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한 잔씩 돌렸지요. 러시아 술잔은 엄청 커서 한 잔만 마셔도 취해요. 그들은 서로 공치사를 늘어놓으며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였어요. 악마대왕은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있다고 꼬마 악마를 칭찬했어요. 그러고는 덧붙여 말했어요.
“만약 저 술 때문에 저렇게 교활해져서 서로가 서로를 속이게 된다면, 저 사람들은 우리에게 진 거야.”
“아무튼 조금 더 두고 보십시오.”
꼬마 악마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어요.
“아직도 멀었습니다. 저놈들에게 한 잔만 더 먹여 봅시다. 저 사람들은 지금은 저렇게 여우처럼 꼬리를 흔들며 서로 속이고 있지만 곧 심술 사나운 이리가 될 겁니다.”
사람들은 두 잔째 술을 마셨어요. 그러자 그들은 목소리가 차차 커지고 거칠어졌어요. 간지러운 공치사 대신 그들은 서로 욕설을 퍼붓고 화를 내며 멱살을 잡고 싸움을 했어요. 주인도 싸움판에 끼어들어 호되게 얻어맞았지요. 큰 악마는 가만히 그것을 보고 있었어요. 그는 이것도 마음에 들어 했어요.
“거 참, 재미있는데.”
꼬마 악마가 재빨리 대답했지요.
“아직도 멀었습니다. 놈들에게 석 잔째 먹여 보십시오. 지금 저 녀석들은 이리처럼 씨근대고 있지만 석 잔을 마시면 돼지처럼 되어 버릴 테니까요.”
사람들은 석 잔째 마셨어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러자 완전히 취해서 녹초가 되어 버렸지요. 그들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고 소리를 지르며 남의 말을 듣지 않았어요. 그들은 한 사람, 두 사람 혹은 세 사람씩 떼를 지어 거리를 비틀거리며 걸어갔어요. 주인은 손님을 배웅하러 나왔다가 물웅덩이에 빠져서 온몸이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된 채 돼지같이 뒹굴며 으르렁거리고 있었어요. 이것은 더욱더 악마대왕의 마음에 들었어요.
“거 참 아주 좋은 음료수를 발견했구나. 이것으로 훌륭하게 빵 조각을 보상한 게 되었구나. 그런데 너는 어떻게 해서 이런 음료수를 만들었지? 넌 틀림없이 그 속에 여우의 피를 넣었을 거야. 그래서 사람들이 여우처럼 교활해진 게 틀림없어. 그 다음에 이리의 피를 넣고 돼지의 피를 넣었겠지. 그러니까 놈들이 저렇게 되었겠지?”
“아닙니다. 대왕님.”
꼬마 악마는 말했답니다.
“저는 그런 짓은 하지 않았습니다. 전 다만 그 농부에게 여분의 곡식을 영글게 해 주었을 뿐입니다. 그 짐승의 피는 항상 농부의 마음속에 있었지만 그자가 필요한 만큼의 곡식을 마련할 동안은 그 피가 출구를 찾을 수 없었던 거지요. 그때까지는 그는 한 개 뿐인 빵 조각이라도 아끼지 않았는데 곡식에 여유가 생기니 무슨 좋은 위안거리가 없을까 궁리를 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제가 그자에게 술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가 하느님의 하사품으로 술을 담그기가 무섭게 그의 몸 속에서 여우와 이리와 돼지의 피가 솟아나지 뭡니까? 그래서 이제는 술만 마시면 언제든지 짐승이 되어 버린답니다.”
악마대왕이 그 꼬마 악마를 어떻게 했을까요? 성수에 처 넣었을까요? 아니지요, 그는 꼬마 악마를 칭찬하고 지난 날 농부를 타락시키지 못했던 것도 다 용서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악마들 중에서도 아주 놓은 자리로 올려 주었답니다.
이 이야기는 원래 누가 만든 이야기일까요?
그래요, 톨스토이의 우화 <A Peasant and Imp(농부와 꼬마 악마)> 를 제가 옮기고 말투를 조금 바꾸었습니다. 톨스토이도 원래 유대인들의 탈무드에 나오는 ‘악마의 선물’이라는 이야기를 조금 각색하여 이 우화를 만들었습니다. 탈무드에서는 술을 만드는 포도나무에 악마가 네 마리 짐승 – 양, 사자, 원숭이, 돼지 – 의 피를 거름으로 주는데, 톨스토이는 여우, 이리, 돼지로 바꾼 것이지요.
그럼 이 이야기는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우선 악마가 우리를 유혹한다는 것입니다. 악마가 흉측한 모습을 하고 우리를 찾아올까요? 아닙니다. 악마는 변장술의 천재라 아주 그럴듯한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옵니다. 악마의 유혹을 전혀 받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아닙니다. 첫 사람들인 아담과 하와도 유혹을 받았습니다. 뱀의 유혹을 받았지요. 뱀은 악마의 상징입니다. 악마가 뱀의 모습으로 변장을 한 것이지요. 하와는 그만 뱀의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고, 아담도 하와의 말을 듣고 하느님이 따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따 먹었지요.
예수님도 악마의 유혹을 받으셨지요. 악마가 예수님 앞에서는 변장을 하지 않고 그냥 나타났어요. 변장을 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나 봅니다. 예수가 사십 일 동안 밤낮으로 단식해 몹시 시장할 때 악마가 나타났어요. 앞의 우화에서도 처음 꼬마 악마가 농부에게 나타났을 때도 농부가 몹시 배가 고플 때였지요.
앞의 이야기에서 악마가 가장 먼저 농부를 유혹한 방법이 농사를 잘되게 해 준 것입니다. 바로 부를 제공해 줬어요. 그 다음 농부는 명예를 지니게 되었어요. 사람들이 마을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고 칭찬하고 굽실거리며 인사하는 것, 바로 명예를 지니게 된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악마는 농부에게 교만을 불어 넣어줬어요. 마을 이장이 자기에게 먼저 인사하지 않았다고 화를 내잖아요. 그게 바로 자기가 모든 것을 지니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교만입니다.
‘농부와 꼬마 악마 이야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늘 악마가 우리를 찾아와서 유혹한다는 사실입니다. 악마의 유혹을 받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유혹이 달콤하니까 넘어가야 할까요? 아니지요. 분명히 본때를 보여 주어야지요. 악마는 우리에게 부와 명예와 교만을 제시하면서 교묘하게 우리에게 접근해 옵니다. 부나 명예가 그 자체로는 나쁘지는 않은데, 그것들을 먼저 앞세우면 그것이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이 되니까 조심해야 합니다. 교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정도의 자신감, 자부심은 있어야 하지만 내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교만이 바로 악마의 유혹에 넘어간 것입니다. 이제 악마의 유혹이 무엇인지 알았다면 악마의 유혹을 이기고 처음의 착한 농부처럼 착하게 살아요.
¶ 친절과 보답
오래 전 뉴욕에서의 일입니다.
비가 억수처럼 퍼붓고 있는데 머리가 헝클어진 한 노부인이 비를 피하기 위해 큰 가구점에 들어가 도움을 청했습니다. 하지만 돈 한 푼 없어 보이는 그 노부인에게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때 한 젊은 판매원이 다가왔습니다.
“부인, 댁에 가실 수 있게 제가 택시를 불러올 테니 그 동안 잠시 이 의자에 앉아 계세요.”
그리고는 곧바로 거리에 나가 택시를 불러왔습니다. 떠나기 전에 노부인이 고마워하며 말했습니다.
“젊은이, 이 종이에 젊은이의 이름과 주소를 적어 주겠소?”
젊은이는 이름과 연락처를 적어 주었고 그들은 헤어졌습니다. 이튿날 이 노부인의 아들인 미국 최대 철강 재벌인 앤드류 카네기가 그 가구점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최근에 매입한 스코틀랜드의 성을 장식하는데 필요한 모든 가구를 그 가구점에서 사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 젊은이의 이름을 대면서 그가 모든 판매를 관리하고 성과급도 그에게 돌아가게 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덧붙여 그는 그 젊은이가 스코틀랜드에 가서 가구 배치까지 도와주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가구점의 총책임자는 그 젊은이는 경험이 부족하니 경험이 많은 자신이 중대한 이 일을 맡을 적임자라고 역설했습니다.
카네기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그 젊은이는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큰 친절을 베풀었다고 우리 어머니가 말씀하셨소. 그것이 그 젊은이의 인간됨을 잘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하오. 난 그 젊은이에게 이 일을 맡기고 싶고 또 모든 성과급을 그가 갖게 되기를 바라오. 만일 그렇지 않으면 다른 곳에서 필요한 가구를 구입하겠소.”
우리는 복음서에서 아브라함이 누구인지 모르는 낯선 나그네에게 친절을 베푸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었고, 소돔 읍의 죄악을 보고 벌하려는 하느님 앞에 아브라함이 서서 의인을 죄인과 함께 쓸어버리지 말아달라고 간청하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의인이 50명에서 10명까지 내려가고 이야기가 끝나지만 의인이 단 한 명만 있었어도 소돔은 오늘날까지 남아 있지 않았을까요?
진정한 의인이 누구일까요? 아브라함이야말로 진정 의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한창 더운 대낮에 더위를 피해 좀 쉬고 있다가 자기를 향해 서 있는 나그네들을 보자 뛰어나가 맞으며 그들을 극진히 대접합니다. 발을 씻을 물을 떠다 주고 부인 사라에게 고운 밀가루로 떡을 만들게 하고 살이 연한 송아지를 잡아 요리를 하여 차려주고, 손님들이 나무 밑에서 쉬면서 음식을 먹는 동안 그 곁에 서서 시중을 들었습니다. 그는 낯선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친절을 베푼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나그네였기 때문에 친절을 베푼 것입니다. 그런데 낯선 나그네 셋의 모습으로 나타난 분은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이 말씀하십니다.
“내년 봄 새싹이 돋아날 무렵, 내가 틀림없이 너를 찾아오리라. 그때 네 아내 사라는 이미 아들을 낳았을 것이다.”
낯선 나그네들에게 베푼 친절로 아브라함은 늘그막에 아들을 얻게 되는 하느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돈 한 푼 없어 보이는 노부인에게 친절을 베풀었던 젊은이가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의인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선한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착한 일을 하고 그에 응당한 보답이 있으면 누구나 착한 일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극히 드뭅니다. 현실에서는 착한 일을 하고 바보가 도는 경우를 더 많이 봅니다. 그래도 착하게 살아야 하고 사심 없이 친절을 베풀어야 합니다.
지금 당장이 아니라 멀리 내다보면 친절과 사랑은 베푼 만큼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크게 되돌아옵니다. 다만 그것은 사심 없이 베푼 친절에 대해서입니다. 당장 보답을 받는 경우는 극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베푼 만큼 되돌려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행한 행위는 진정한 의미의 친절이 아닙니다.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보답을 기대하지 않고 마음에서 우러나온 친절은 그 사람의 인간됨에서 만이 나올 수 있으며 그리 흔치 않습니다.
만약 그 노부인이 비에 젖고 헝클어진 머리에 볼품이 없을지라도 카네기의 어머니인줄 알았더라면 저마다 호의를 베풀려고 굉장했겠지요. 그러나 그 젊은 판매원의 마음에는 타인에 대한 사랑과 연민이 있었기에 그 노부인이 누구이든 상관없이 먼저 다가갔고 행운을 얻었습니다.
Part 2 침잠
희망은 좋은 것입니다.
그리고 좋은 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답니다.
¶ 물 위의 꽃, 강화도
영신수련 강의를 끝내고 지친 머리를 달랠 겸 강화도 관청리에 있는 성공회 성당을 찾았습니다. 철종 생가 터 앞에 위치한 성공회 성당은 대학 시절에도 가끔 찾던 곳입니다. 성당은 100년 된 한옥과 서양식이 기묘하게 절충된 건물로 정갈하고 고즈넉한 분위기에 절로 숙연해지는 곳입니다.
화력발전소 문제로 강화도가 한참 시끄러울 때 김영무 시인은 연꽃 같은 강화도에는 비석도 세우지 말라고 했습니다. 강화(江華)라는 글자를 새겨보면 물 위에 뜬 꽃입니다. 물 위에 뜬 꽃이니 연꽃이 되겠지요. 연꽃 같은 섬에 화력발전소라니 시인이 화를 낼 만도 합니다. 꽃이 가라앉을까 봐 강화도에서는 절 마당에 탑도 세우지 않습니다. 이야말로 치수(治水)가 아니겠습니까! 꽃이 가라앉으면 그 무게만큼 물이 넘쳐 민중이 애를 먹을 테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화력발전소 대신 조력발전소를 세운다고 합니다. 정부에서 강화조력발전소를 세우기로 지정한 해역은 지난 2000년도 천연기념물 제419호로 지정된 곳입니다. 세계적 희귀종인 저어새의 서식지이며 세계 5대 갯벌 중 하나로 꼽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조력발전소가 들어서게 되면 방조제 안의 물은 썩고 갯벌은 사라집니다. 갯벌은 반복적으로 바닷물에 잠겼다가 노출되면서 유기물질을 분해하여 수질을 개선하는 해역의 콩팥입니다. 만약 인공적인 호수로 변해 항상 바닷물 속에 잠겨있으면 갯벌의 기능을 잃게 되어 생태계는 보존도리 수 없다고 합니다. 생태계의 보존 말고도 경제적인 이유로도 지역 주민들의 반대가 심합니다. 갯벌이 사라지면 이곳 특산물인 새우가 멸종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민들의 삶의 터전인 바다를 뺏는 것은 죽으라는 말과 다름이 없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굽니 굽이 역사의 물길에 희생당하는 것은 힘없는 민중입니다. 강화도는 우리에게 치욕의 역사를 일깨우는 산 증거이기에 더욱 그런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사적 133호로 지정된 고려궁지에는 한 떼의 흑염소들이 마구 돌아다니고 있어 기가 막혔습니다. 옛 궁터는 조선시대에는 관아가 되었습니다. ‘명위헌(명위헌)’이라는 현판이 걸린 동헌에는 6방 관속들과 나졸들이 도열하고 있고 강화유수가 업무를 보던 모습이 재현되어 있습니다. 염소 떼들은 동헌 안까지 들락 거리며 휘젓고 다녀서 순간 여기가 동물원인가 했습니다. 버젓이 관람료를 받고도 문화재를 이렇게 방치하다니…. 어이가 없더군요. 하기야 생존이 달린 더 큰 일에도 모르쇠 하는데 이까짓 흑염소 몇 마리가 돌아다닌들 대수겠습니까? 관리직원은 평일의 관람객이 성가신 듯 마지못해 흑염소를 쫓아내며 변명합니다. 주변의 흑염소 농장에서 키우는 것이라고.
1216년 몽골군보다 먼저 고려를 침략한 것은 몽골군과 금나라에 쫓기던 거란 유민군입니다. 적군 수만 명이 압록강을 넘어 왔지만 당시 정권을 잡은 최충헌은 잔치를 벌이며 주지육림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는 대신들에게 호언장담했습니다.
“나라는 부유하고 군사는 굳세니 근심이 없소이다.”
국경을 지키는 장수들이 적군이 침입했다고 급보를 올리자 최충헌은 “어찌 작은 일로 파발마를 띄워 번거롭게 하고 조정을 놀라게 하느냐?” 하고 화를 냈다고 합니다 이토록 대책 없는 지도자가 이끄는 나라가 온전할 리 없지요. 거란족을 고려에서 내쫓아주겠다고 군대를 동원하고 고려 땅을 밟았던 몽골은 마침내 1231년 여름 금의 수도 개봉을 정벌하면서 고려를 침략했습니다. 그로부터 고려는 30여 년의 항쟁을 거쳐 무려 100여 년 동안 몽골의 지배를 받으며 굴욕의 세월을 보내게 됩니다. 울긋불긋한 비단옷을 휘날리며 말린 고기를 질겅질겅 씹어대는 몽골 기병은 고려 사람들에게는 지옥에서 온 야차보다 더 무서웠습니다.
<고려사>의 한 기록입니다.
“몽골군은 성을 함락시킨 후 10살 이상 된 남자들은 다 죽이고 여자들은 전부 군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몽골군이 한성을 함락시킨 후 고려여자의 젖가슴을 잘라 삶아 먹었다.”
이토록 슬픈 시대에 생겨난 신조어가 호수만복(湖水滿腹)이라는 말입니다. 몽골군은 보는 여자마다 겁탈을 했으니 이에 임금은 궁여지책으로 더러워진 몸을 깨끗하게 씻어 주는 연못을 파고 여인들에게 목욕을 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호수에서 몸을 씻었다고 해서 행복하게 살았을지는 의문입니다. 3천리 아름다운 화려강산이 몽고군의 말발굽 아래 철저히 유린되던 때에도 최씨 일가는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 자신들의 저택을 새로 짓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화려한 생활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때의 궁궐터가 강화 읍내에 아직 남아 있어 치욕스럽습니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교훈을 강화도보다 더 여실히 보여주는 곳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가혹한 임진왜란이 끝난 지 40년도 지나디 않아 정묘호란이 일어납니다. 임란 후 국력이 쇠퇴해진 탓도 있었지만 위정자들의 탐욕과 당쟁으로 나라는 점점 더 쇠락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약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쫓겨나지 않았으면 역사의 강줄기는 다르게 흘렀을 지도 모릅니다. 서인들은 사대주의를 표방하여 명을 숭배하는데 광해군은 후금과 외교를 맺었습니다. 서인들은 자신들의 정견과 반대되는 광해군을 내쫓고 인조를 왕으로 세웠습니다. 광해군은 폭군이 아니었지만 서인들에 의해 폭군으로 조작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반정을 합리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선조실록을 새로 썼고 그것이 현재 남아 있는 선조수정실록입니다. 역사는 늘 비겁한 승자에 의해 왜곡되었습니다.
저의 사부 성 아냐시오는 ‘선택을 위한 길잡이’에서 우리가 선택을 잘 하기 위해서는 우선 마음의 눈이 맑고 밝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마음의 눈이 맑고 밝아야만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광해군의 눈은 맑고 밝았습니다. 그는 전체적인 상황을 놓고 바르게 식별하여 무엇이 나라를 위하는 선택인지를 고민했습니다. 시대를 통찰할 수 있는 눈을 가진 광해군은 명나라가 기울기 시작했다는 것을 간파하고 장차 후금이 중국을 지배하리라는 시대의 징표를 읽었습니다. 그는 후금과 적절한 외교정책을 펼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사대사상을 지닌 보수 양반 계층의 눈에 광해군은 미운 털이 박히게 되었고 그것이 인조반정으로 이어졌습니다. 광해군과는 달리 인조는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 임금입니다. 향명배금(向明排金)정책을 표방하고 요동을 수복하려는 모문룡 휘하의 명나라 군대를 지원합니다. 후금은 명나라를 치기 위해 중국 본토로 진입할 계획이었고 배후를 위협하는 조선을 정복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인조가 강화도로 피신할 때의 일입니다. 배를 타고 섬을 찾아 들어가는데 뱃사공이 위험해 보이는 여울 쪽으로 노를 젓고 있었습니다. 섬에서 잔뼈가 굵고 평생 노를 저은 뱃사공 손돌은 자유자재로 노를 움직였습니다. 임금 인조는 반정으로 신하들에 의해 왕으로 추대 된지라 워낙 의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손돌에게 “위험하니 여울물 쪽으로 가지 말라.”고 명했습니다. 하지만 손돌은 계속 여울 쪽으로 노를 저어갔습니다. 인조는 손돌이 자기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다고 생각해 휘하 장수에게 손돌을 죽이라고 명했습니다. 손돌이 아무리 “여울은 위험해 보이지만 바로 그 길이 다른 뱃길이며 강화도로 가는 가장 안전한 길입니다.” 라고 직언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에 손돌은 처형당하기 직전 바가지 한 개를 인조에게 올리면서 말했습니다.
“전하, 만약 배를 저어가다 뱃길을 잃게 되면 이 바가지를 배 앞에 던져 이 바가지를 쫓아가십시오.”
손돌이 처형되고 난 후 갑자기 북서풍이 세차게 불어 배를 가눌 수 없게 되었습니다. 침몰 직전에 이르자 누군가 손돌이 남기 바가지를 배 앞에 던졌습니다. 바가지가 배 앞을 둥둥 떠갔고 인조가 탄 배는 바가지가 떠가는 대로 뱃길을 잡아 무사히 강화도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을 죽이려는 황에게 손돌은 무엇 때문에 충언을 한 것일까요? 그가 자신을 죽이는 왕을 위해 그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왕을 따라 피난 올 수 없었던 민중, 자신의 어머니와 아들 딸 형제를 위해 미운 왕인데도 살 길을 알려주었을 것입니다. 손돌은 죽은 대신 생명을, 저주 대신 축복을, 미움 대신 사랑을 택했습니다.
¶ <남한산성>의 여운
소설 <남한산성>을 다시 읽었습니다. 김훈 작가의 문장은 간결하면서도 유려해 마치 강물을 따라 흐르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의 글은 유려한 문장과 함께 깊이 사색에 빠져들게 하는 묵상의 소재를 던져주기도 합니다.
<남한산성>도 <영신수련>이라는 강물에 비추어 ‘식별’이라는 주제를 놓고 묵상을 하게 이끌어주었습니다. 특히 <남한산성>에서는 사람에 대한 연민과 시대에 대한 통찰에 마음 저릿했습니다. 저는 어느덧 1630년대의 처절했던 남한산성으로 되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남한산성을 걸으면서 깊은 사색에 빠졌고, 그 사색은 ‘영신수련’으로 이끌어 ‘식별’에 대해 성찰하게 해 주었습니다.
16세기 조선은 임진왜란으로 황폐화 되었습니다. 조선의 명 문장가 허균은 그의 <성소부부고>에서 명을 제압한 청이 침략해 올 것이라 예언했지만 조선의 위정자들은 이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1636년 여진족인 누르하치의 아들 홍타이가 세운 청(淸)나라에서 사신을 보내왔지만 국서(國書)조차 보내지 않았습니다.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 지배층의 식별의 부재를 드러내는 대목입니다. 조선의 태도에 분개한 청 태종은 10만 대군을 거느리고 수도 심양을 떠나 압록강을 건너 쳐들어왔습니다. 허균이 예언한대로 청군은 압록강을 건너자마자 순식간에 개성을 통과했습니다. 청의 침략 소식에 인조는 비빈들이 피신한 강화도로 피난하려 했지만 이미 청나라 군에 길이 막혀 소현세자와 백관을 거느리고 남한산성으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조는 급히 명나라에 밀사를 보내 지원을 요청했지만 이미 청 태종이 남한산성 아래 탄천에 20만의 청나라 군을 집결시켜 성은 완전히 고립되었습니다. 성내의 군량미로는 겨우 50일 정도 지탱할 수 있었고, 의병과 명나라 원병은 기대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성 밖에는 청군이 무고한 백성들을 죽이고 노략질을 일삼으며 어미를 진중에 잡아놓고 아이들은 추운 길바닥에 버려 굶어 죽고 얼어 죽었습니다.
소설 <남한산성>은 그 당시의 47일 동안 긴박했던 상황을 다루고 있습니다. 청나라 군대는 시시각각으로 조여오고 식량까지 바닥이 나 말까지 잡아먹는 상황에서 주전파와 주화파가 대립하는 긴박한 장면은 삶과 죽음의 교차로에서 벌이는 갈등과 식별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훈 작가 특유의 묵직한 필치로 삶과 죽음, 명분과 실제 사이에서 벌어지는 피 튀기는 고뇌의 현장을 펼쳐 보이며 <영신수련>이 말하는 ‘식별’의 묵상으로 이끌었습니다. 쓰러진 왕조의 들판에도 대의는 꽃처럼 피어날 것이라며 결사항쟁을 고집한 척화파 김상헌, 역적이라는 말을 들을지언정 삶의 영원성이 더 가치 있다고 주장한 주화파 최명길. 성리학을 평생의 종교로 여기며 대의명분을 목숨보다 더 중히 여긴 조선의 두 사대부 사이에서 번민을 거듭하며 결단을 미루는 우유부단한 인조. 복심(腹心)을 숨긴 좌고우면(左顧右眄)의 태도를 취하는 전시총사령관인 영의정 김류. 남한산성의 방어를 책임진 수어사 이시백의 기상. 이들의 아우라가 남한산성의 절박한 상황을 한층 더 비극적으로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당시 조선이 처한 시대적 표징을 읽지 못한 식별의 미숙함과 그로 인해 백성들이 겪어야 했던 처절한 고통이 뼈 속까지 느껴졌습니다. 인조는 지배층에게 신뢰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청나라의 전신인 후금에 맏아들 소현세자와 며느리 강빈을 볼모로 보내야 했고, 소현세자가 서양의 신학문을 익히고 조선에 돌아오자마자 왕위를 염려해 아들을 독살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었습니다. 소현세자와는 달리 인조를 비롯한 조선의 지배층은 우물 속의 개구리처럼 바뀐 세상을 보지 못했습니다.
조선은 남한산성이라는 더욱 한정된 곳으로 피해 그곳에서만 세상을 보려했습니다.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어 화친과 전쟁 사이에서 어느 길이 생명이며 어느 길이 죽음인지를 놓고 식별의 상황을 벌이는 비극이 소설 <남한산성>입니다. 적들이 둘러 싼 남한산성 안에서 최명길을 베어 그 목을 효수해야 한다는 말이 무성했고 최명길을 목 베라는 유생들의 진언이 이어졌습니다. 대의와 명분을 말하는 목소리가 커졌지만 임금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식별하고 선택한 것은 항복이었습니다. 임금은 항복을 결심하고 신하들에게 화친을 원한다는 글을 쓰게 합니다. 그러나 글을 쓰려는 자가 없었습니다. 만약 자기가 쓴 글로 화친이 이루어진다면 훗날 화를 모면하지 못할 것은 불을 보듯 빤한 일이었고 자손대대로 역적의 오명을 남기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임금은 여러 사람에게 화진의 글을 쓰게 했고, 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글을 청 태종에게 보내겠다고 합니다. 명을 받은 신하들은 자기들 앞에 놓인 대의명분 앞에 고뇌합니다.
작가는 식별의 상황에 놓인 인간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희화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소위 먹물 든 자들의 허위의 고뇌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정6품의 정수찬은 지병과 벼슬의 천함을 핑계로 글쓰기를 피하다 곤장을 맞고 며칠 뒤에 죽습니다. 정5품 교리는 글 쓸 종이만 펴놓고 지병이던 심근경색으로 사망합니다. 정5품 정랑은 바보 온달의 흉내를 내 절대 채택되지 않을 글을 씁니다. 살고 싶었지만 살고 싶다고 말할 수 없었던 자들의 나름대로 최선의 식별이었습니다.
하느님이 우리 앞에 내어놓으신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 중에서 우리는 어떤 것을 택해야 합니까? 두말할 필요 없이 생명이요, 축복입니다. 문제는 무엇이 생명이고 무엇이 죽음인지를 식별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영신수련>에서 성 아냐시오는 식별은 단지 선(善)과 악(惡) 중에서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의 식별이 아니라, 선(善) 중에서도 더 나은 선(善)의 식별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삶에서 마주치는 식별은 대개 선과 악 둘 중에서 택하는 식별이 아니라 선(善)중에서도 더 나은 선(善)에 대한 식별입니다. 소설 <남한산성> 에서는 화친과 전쟁, 삶과 죽음의 문제 앞에서의 식별입니다. 작가는 이 두 갈래의 길에 선 인간의 딜레마를 담담한 필치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해 겨울,
갈 수 없는 길과 가야 하는 길은 포개져 있었다.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이것은 분명 한 개인의 길에 대한 선택은 아닙니다. 그러나 근본은 하나로 통합니다. 죽음이 아닌 생명의 길을 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인조로서는 죽음보다 더 치욕스러운 굴욕인 항복을 통해서만이 백성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인조의 갈등과 두 신하 김상헌과 최명길의 대립 그리고 그들의 식별에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는 백성들이 남한산성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상황이 지금의 우리들이라고 해도 별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최종적인 식별과 선택은 임금의 몫이었습니다. 그의 식별에 따라 신하와 백성들은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인조는 삼배구고두례(三拜九鼓頭禮)라는 치욕스런 항복을 택합니다. 그 치욕이 백성을 위해서는 유일한 생명의 길이었다는 묵상에 저는 깊이 머물렀습니다. 인조 자신에게는 죽음이 가장 쉬운 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백성이 있기에 그는 치욕을 택했고, 그것이 백성에게는 생명의 길이었던 것입니다.
삼배구고두례(三拜九鼓頭禮). 조선의 임금이 삼전도에서 청 태종의 신하에게 한 항복의례입니다. 한번 절할 때마다 세 번 머리를 땅바닥에 부딪쳐야 했고 부딪힐 때마다 소리가 크게 나야 했습니다. 분명 임금에게는 죽음보다 더 참기 힘든 치욕이었지만 백성들에게는 삶의 길이었습니다. 인조가 청 태종에게 이마를 찧는 삼배구고두례를 해야 했던 날, 민초를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인물 대장장이 서날쇠는 남한산성으로 돌아와 봄 농사 준비와 화덕을 손질합니다. 나루의 초경(初經)과 아들의 혼인을 생각하는 서날쇠를 통해 삶의 희망, 새로운 생명의 서광을 비추어 줍니다.
과연 삶에서 어떤 식별 과정을 거쳐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아니, 우리 삶에서 어떤 식별이 생명이고 어떤 식별이 죽음일까요?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라고 말한 햄릿의 고뇌가 다시금 무겁게 다가오지만 우리는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께서 바른 식별과 선택으로 이끌어 주실 것임을 믿기에.
¶ 선암사
가을 문학기행을 다녀왔습니다. 벌교의 <태백산맥>의 저자 조정래 문학관을 시작으로 순천의 대표적인 두 문인, <오세암>으로 유명한 아동문학가 정채봉 선생과 <무진기행>으로 유명한 김승옥 선생을 기리는 ‘순천문학관’을 들러서 선암사에서 템플스테이를 한 후 걸어서 송광사로 넘어가는 일정이었습니다.
선암사에서 하루 템플스테이 를 하면서 그곳 스님과 차담 시간을 가졌습니다. 차를 마시며 스님의 가르침을 듣는 시간입니다. 스님의 말씀이 선암사는 통일신라 말기 사람이며 고려를 세운 태조 왕건의 국사였던 도선국사가 절터를 잡아주어 짓게 된 절이라고 합니다. 선암사는 아름다운 만큼 수난도 많았습니다. 스님 말씀으로는 도선국사가 세지도 약하지도 않은 중도의 터를 잡아주었다는데, 도선국사의 효험도 그리 영험 하지는 않았나 봅니다.
선암사는 임진왜란 때 전소되는 아픔을 겪고 다시 중창하였는데, 1597년 정유재란 때 또 다시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때에도 모든 전각이 불타고 철불, 보탑, 부도, 문수전, 조계문, 청측 만이 남아 절의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1660년 현종 1년에 다시 경준(敬俊), 경잠(敬岑), 문정(文正) 이라는 세 대사에 의하여 대웅전을 세우는 등 8년간 괄목할 중수를 이루었지만 원래의 모습대로 복구하지는 못했고, 영조 시대에 다시 화재로 폐사 된 것을 1824년 순조 24년 해붕 대사가 중창한 절입니다.
대각국사 의천이 중창했던 당시의 절은 오늘날보다 훨씬 규모가 큰 절이었습니다. 대각국사 중창건도기에 의하면 그 당시 중창은 법당 13, 전각 12, 요사 26, 산암 19개소 등의 방대한 규모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다시 원래의 모습대로 대웅전을 짓겠다고 불사를 일으키는 모습을 보니 왠지 마음이 쓸쓸해졌습니다.
그 후 고려시대의 기록은 보이지 않고 다만 고려 명종 때의 문신인 김극기의 시에 적막하고 고요한 수행의 사찰로 그리고 있습니다.
적적한 산골 속 절이요,
쓸쓸한 숲 아래의 중일세.
마음 속 티끌은 온통 씻어 떨어뜨렸고,
지혜의 물은 맑고 용하기도 하네.
문화재정장을 역임했던 유홍준 교수가 모 방송에 출연하여 그간 다년 본 유적지 중 어디가 가장 좋았냐는 질문에 “가장 많이 간 지역은 경주이고, 유적지로는 선암사다.” 라고 대답하면서 선암사가 더 유명해졌습니다. 혹자는 선암사를 청정하고 아름다움의 대명사와 같은 절이라고 합니다. 선암사는 봄이 가장 아름답다더군요. 온통 향기로운 꽃밭이라고 하니 봄이 오면 꼭 다시 가 보렵니다. 하지만 화려하지 않고 담백한 가을 선암사도 아름다웠습니다. 일행은 선암사 뒷길로 해서 조계산 장군암을 올았는데 아름다운 암자가 나타나는 곳까지 평평한 길에 나무 스치는 바람소리가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선암사 하면 빼 놓을 수 없는 곳이 ‘뒷간’입니다. 정호승 시인의 <선암사> 라는 시로 인해 선암사의 ‘해우소’는 위로의 성지와 같은 곳이 되었습니다. 시인은 눈물이 나면 선암사 해우소에 가서 실컷 울라고 합니다. 그러면 바람에 스치는 소나무 향기가 슬픔을 가져갈 거라고 하면서.
이웃한 절 송광사의 해우소도 멋이 있지만 선암사의 뒷간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나무와 어우러진 뒷간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모습이며 공기 정화를 위해 자연 통풍이 도게 만든 선인들의 지혜도 놀랍지만 단아함이 느껴지는 건축미도 돋보였습니다. 감탄을 하면서 뒷간 뒷모습까지 세세히 보았습니다. 현판의 표기가 참 재밌습니다. ‘ㅅ간뒤’. 처음에는 누구나 어떻게 읽지? 라고 잠시 주춤할 것 같아 슬며시 미소 짓게 됩니다.
¶ 이어도, 환상이 아닌 현실의 섬
이엿 산, 이어도 사나
이엿 사나, 이어도 사나
우리 배는 잘도 간다
솔솔 가는 건 솔님의 배여
잘잘 가는 건 잡남의 배여
어서 가자 어서 어서…
이청준 선생님의 소설 <이어도>에서 소개하여 우리에게 알려지게 된 ‘이어도 타령’의 일부입니다. 이어도 타령은 바다에서 일하는 해녀들의 구전 노동요인데 직설적이고 역동적인 해녀의 삶과 애환이 오롯이 담겨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제주의 혼을 담은 사진작가 김영갑 씨는 <잃어버린 이어도> 에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나에게는 옛날 옛적 탐라인들이 보고 느꼈던 고요와 적막, 그리고 평화를 다시금 고스란히 보고 느낄 수 있는 나만의 비밀화원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웃고 울다가, 노래 부르고 춤을 추었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홀로 환호작약하다 잠들거나, 누워서 하늘을 보며 환상에 빠져들곤 했습니다. 탐라인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던 바람은 내게도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 재미에 빠져 틈만 나면 그곳을 뒹굴고 기어 다니며 오랜 세월을 머물렀습니다.”
현재 숨 쉬는 낙원이던 이어도를 회상하며 이제는 잃어버린 섬이 되었다고 고뇌하던 그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그는 어느 바람 심한 날에 족제비처럼 돌담 밑에 웅크리고 앉아 돌 틈 사이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키 작은 생명들을 들여다보며 삶에 대해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깊이 들여다보면 볼수록 생명은 참으로 신비롭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자연 파괴로 우리는 이어도를 잃어버리게 되었다고 한탄합니다.
제주도민들, 특히 어부와 해녀들의 마음속의 이상향 이어도는 실제 지명이기도 합니다. 북위 32도 07분, 동경 125도 10분 에 위치한 이어도는 제주도 최남단 마라도에서 서남쪽으로 149 km, 일본의 도리시마에서 서쪽으로 276 km, 중국의 퉁타오에서 북동쪽으로 245 km 떨어진 11만 5,000평 크기의 수중암초입니다. 해수면 아래 약 4.6m 지점에 잠겨 있지만 파고가 10m 쯤 되면 꼭대기 부분이 어렴풋이 보이는 섬입니다.
1900년 영국 상선 소코트라 호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고, 1951년 우리 정부가 첫 확인한 후 ‘대한민국 영토 이어도’ 라고 새긴 동판을 가라앉혔습니다. 1987년에는 항로표지 부표를 설치하고 국제사회에 공표했습니다. 2003년 4월에는 착수한지 8년 만에 바다 위에 떠있는 12층짜리 아파트 규모의 첨단 무인해양기지를 세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중국 외교부가 지난 2006년 9월 “이어도에 대한 한국의 관할권을 인정할 수 없다.” 고 밝힌 데 이어 최근 국가해양국의 공식자료를 게재하는 사이트에서 이어도를 ‘쑤옌자오(蘇岩礁)’ 라고 호칭하면서 자국영토로 소개했습니다. 민간단체도 전용사이트를 개설하여 자국영토 편입을 위한 중국인들의 동참을 촉구했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올림픽, 세계는 하나’ 라는 미명 아래 화려하게 올림픽 성화를 올리면서 영토 침범을 하려는 야욕을 불태우고 있는 중화 패권주의적 사사에 분노합니다. 그들은 고대 역사서적과 당,송,명,청의 문헌에 중국 땅이라고 명시돼 있다는 어처구니 없는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이웃이 왜 이러지요?
힘없는 이들의 삶의 애환과 향수가 담겨 있는 이어도는 더 이상 환상의 섬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국토 최남단 현실의 땅입니다. 이청준 선생님은 소설 <이어도>에서 이 섬은 지독한 삶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도피처이면서 동시에 꿈에 그리는 이상향이며 마음의 공간이라고 했습니다. 선생님은 우리가 그 섬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통해서 그리고 그 믿음이 삶의 희망이 될 때 이어도는 환상이 아닌 현실이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어도는 단순한 마음의 땅이 아니고 이상이 아닌 분명한 현실의 땅입니다. 힘없는 사람들의 이상향이었던 이어도가 국력이 약하기 때문에 강대국인 중국에게 빼앗기는 일은 절대 안 됩니다.
¶ 황병기 선생님과의 만남
오늘 지인 몇 분과 ‘황병기와 함께 하는 정오의 음악회’라는 공연장에 다녀왔습니다. 오래 전 그분의 가야금 소리에 반했었는데 황병기 선생님을 직접 만나게 되어 무척 기뻤습니다. 황병기 선생님은 가야금의 대가로 알려져 있지만 국악을 현대음악에 접목시킨 선구자로서의 음악철학 또한 감탄케 합니다. 황 선생님은 당신의 창작과 연주는 ‘조선’이라는 전통에서 벗어나 현대로 가려는 노력이었다고 말씀하십니다. 황 선생님은 당신 음악의 요체는 ‘고대’의 깊은 우물에서 상상의 두레박으로 길어 올린 ‘현대’라고 합니다.
“저는 아주 오래된 옛 것이나 현대의 새로운 것에 관심이 있어요. 그 둘은 서로 통하는 것 같아요.”
황병기 선생님은 대학에서 법을 전공한 후 국악의 길로 뛰어 든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입니다. 선생님은 늘 새로움을 추구하지만 느림의 철학을 지닌 분이십니다. 법대생 시절부터 국악에 빠져서 지금까지 쉬지 않고 음악에 대한 사랑을 그의 철학으로 풀어내면서 늘 새로운 음악의 길을 추구하고 계시지, 우리 음악 뿐 아니라 클래식, 재즈, 대중음악계도 다 환영한다고 합니다.
음악회의 첫 곡은 홍동기 작곡의 ‘고구려의 혼’ 이라는 곡이었습니다. 연주 전 선생님의 해설로 음악회가 진행되어 저처럼 국악에 대해 잘 모르는 청중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황 선생님은 우리 역사상 고구려가 유일하게 넓은 땅을 소유했고 대국적인 기상을 지녔기 때문에 고구려의 음악은 장중하고 스케일이 큰 음악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고 하셨습니다. 많은 분들이 고구려의 음악이 어떠했을지 궁금해 하는데, 작곡가도 같은 생각으로 곡을 만들었을 거라고 합니다. 만주벌판을 달리던 고구려인들의 기상을 나타낸 곡으로 웅장하고 스케일이 큰 선율과 말발굽 소리 같은 강렬한 북소리가 인상적인 곡이라고 합니다.
두 번째 곡은 클래식 명곡선으로 러시아의 음악이었습니다. 하차투리안이라는 작곡가의 가면무도회 중 No. 5 ‘Galop’입니다. 유럽의 클래식 음악을 러시아의 고유 음악에 처음 접목시킨 음악가는 차이코프스키였고, 그 뒤를 이은 뛰어난 음악가가 바로 하차투리안이라는 작곡가랍니다. ‘가면무도회’는 하차투리안 의 작품 중에서도 특히 러시아의 통속적 성격이 강한 곡이라고 합니다. 선생님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러시아 음악을 좋아하는데 아마도 비슷한 기질 때문인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가면 무도회’ 중에서도 오늘 연주한 5장 ‘Galop’은 2박자의 경쾌한 무곡으로 빈 왈츠풍이나 그의 ‘칼의 춤’을 연상시키는 곡이라고 합니다.
세 번째 연주는 선생님이 특별히 소개하고 싶었던 악기의 연주였나 봅니다. 대금인데, 선생님은 대금에 대해 아주 자세하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고 해학 넘치는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선생님의 설명을 대략 옮겨보면 이렇습니다.
우리나라 관악기 중 가장 오래된 것이 대금이라고 합니다. 이미 신라시대에 가장 중요한 관악기를 세 가지 대, 삼죽(三竹)이라 지칭하는데 이것이 대금(大琴).중금(中琴).소금(小琴)입니다.대금은 서양 악기의 풀루트에 해당하지만 서양의 플루트에 비하면 입으로 부는 구멍, 즉 취구가 가장 커 소리 내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그래서 플루트를 연주하는 사람은 대금의 소리를 내지 못하지만 대금을 한 사람은 금세 플루트를 불 수 있습니다. 소금은 대금보다 한 옥타브 높은 음역을 가져서 서양의 피콜로(piccolo)에 비견될 수 있습니다.
대금은 그냥 일반 대나무가 아닌 쌍골죽(雙骨竹)으로 만듭니다. 대나무는 마디와 마디 사이에 홈이 파져 있어 그것을 골이라고 합니다. 대부분은 골이 한 개인데 기이하게도 쌍골죽은 골이 두 개나 있습니다. 대나무가 병이 들어 여러 악조건을 거치면서 골이 양쪽으로 파인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역경과 난관을 거치 대나무가 아주 기가 막힌 소리를 냅니다. 보통 대나무는 칼로 쪼개면 세로로 쭉 갈라지는데 쌍골죽은 아주 단단하여 쪼개지지 않습니다. 쌍골죽이 단순히 단단하기 때문에 좋은 것이 아니라 속이 곽 차 있기 때문에 대금의 재료로 제격입니다. 대금은 일정한 내경을 길게 파주어야 하는 악기입니다. 일반 대나무는 내경이 일정하지 않습니다. 대나무의 내경을 보면 마디 쪽은 살이 있고 가운데는 텅 비어있습니다. 이런 대나무로는 정확한 음정을 맞추기가 쉽지 않은데 쌍골죽은 속이 차있어서 같은 내경으로 파내면 음정을 맞추기가 쉽습니다.
저는 황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대나무의 삶을 숙고해 보았습니다. 대금의 맑고 깊은 소리는 쌍골죽을 이해하면 알 수 있습니다. 쌍골죽은 병든 대나무입니다. 오랜 동안 병고를 겪으면서 아픔과 시련의 세월을 보내는 동안 속이 차게 됩니다. 우리 삶도 시련과 고통을 겪지 않은 사람은 영혼을 울리는 깊은 소리를 낼 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대금의 구멍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대금은 다양한 취법에 의해 키가 전혀 없이 여섯 개의 지공(指孔)만으로 소리를 냅니다. 대금의 가장 중요한 특색은 취구 바로 옆에 또 한 개의 비교적 큰 구멍 즉 청공(淸孔)이 있습니다. 청공은 갈대의 속에서 빼낸 얇은 막인 청을 팽팽하게 붙여 놓는데, 이 청이 공명되어 다양한 음색의 변화를 일으킵니다. 이 청을 얼마만큼 여느냐에 따라 소리의 음색이 달라집니다. 많이 열면 재미있지만 소리가 천박해지고 적게 열면 격이 높게 느껴지지만 재미가 없답니다. 여인들이 화장을 안 하면 재미가 없고 너무 짙게 하면 천박하게 보이는 것과 같다며 재미있게 비유해 주셨습니다. 청이 떨리면서 흐르는 대금의 그윽한 가락은 때로 달밤에 대숲에 이는 바람 소리를 듣는 듯 무위자연의 세계로 젖어 들게 합니다.
산조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셨는데, 산조에서의 산은 흩어질 산(散)입니다. 즉 자유로이 흩어지게 하는 곡조입니다. 산조를 서양식으로 말하면 환상곡 정도라고 합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타악기로 반주하면서 자유롭게 펼치는 곡조는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어진 무대가 ‘스타와 함께’ 하는 무대로 가수 안치환과 국악의 만남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안치환을 사람 냄새 나는 가수라고 소개했고, 사람이면 모두 다 사람 냄새가 날 터인데 왜 유독 안치환을 사람 냄새 나는 가수라고 하는지 그 이유를 자상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사람에 대한 진한 애정과 연민을 지닌 가수로 오늘 부르게 될 대표작인 두 곡도 그렇다고 했습니다. 안치환은 첫 곡으로 ‘내가 만일’을 불렀고 이어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불렀습니다. 저는 대중음악과 국악의 스스럼없는 어울림에 놀랐습니다. 안치환이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부를 때는 기타를 치면서 불렀는데, 기타와 국악 관현악단의 어울림이 아름다웠습니다. 마지막 곡은 박범훈 작곡 조정수 편곡으로 경기민요인 ‘뱃노래’로, 돛을 올리고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느낌에 가슴이 후련했습니다. 신나는 꽹과리와 북이 어우러져 신바람 나는 연주였습니다. 지휘자의 힘찬 지휘에 따라 정점에 도달했다가 천천히 내려앉는 느낌의 마지막 피날레는 흥분의 도가니였습니다.
우리 곡조가 심금을 울리는 것은 연주의 기교가 훌륭해서가 아닙니다. 거기에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용의 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옛 것과의 만남에 대해, 삶과 시련과 영혼의 울림에 대해 숙고하게 됩니다.
¶ 아주 작고 여린 이에게
지난 달 제주도에 특강을 하러 갔다가 어느 분의 소개로 표선면의 작은 마을에 있는 김숙자 도조작가의 ‘외딴집’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김숙자 도조작가는 원래 조소 전공인데 흙으로 작품을 만들기 때문에 도조작가라고 불립니다. 흙으로 흙사람을 빚습니다.
몇 번 길을 헤매다가 어렵게 찾아간 입구 왼쪽에 부조로 된 ‘외딴집’이라는 문패가, 오른쪽에는 작은 흙사람이 전시 되어 있었습니다. 대문도 울타리도 없어 그냥 들어갔습니다. 너른 마당은 흡사 야외 전시장 같았습니다. 잔디밭에 여기저기 흙사람들과 나무 아래 부부처럼 보이는 흙사람 둘이 편안하게 맞아주었습니다.
평일에는 작품 만드는 일에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해 방문객을 사양한다고 하는데 그런 줄도 모르고 찾아갔습니다. 흙사람들의 주인 김숙자 작가에게 제가 흙 작업에 관심이 많은데 작업장을 둘러볼 수 있는지를 묻자 단호히 거절하였습니다. 할 수 없이 제 신분을 밝히고 아는 분의 소개로 어렵게 찾아왔다고 읍소하자 웃으시며 작업장으로 안내해 주셨습니다. 작업장 안에는 부조 작품이 아주 많았습니다. 최근 서울에는 부조 작품 전시회를 열었다고 하며 전시작품 도록을 건네주었습니다. 그 전시회의 제목을 보자 마음에 어떤 동요가 일었습니다.
‘아주 작고 여린 이에게’
도록에는 그런 제목을 붙인 이유를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누구에게나 가슴 한편 깊은 곳에는 따스한 손을 그리워하는 ‘아주 작고 여린 이’가 살고 있습니다. 내 안의 ‘작고 여린 이’는 날마다 삶의 이 길, 저 길에서 필연이나 마치 우연처럼 수없이 많은 ‘작고 여린 이’를 만납니다. …. . 내 모든 작품이 내 안의 그리고 세상의 ‘차주 작고 여린 이’를 위한 나지막한 위로의 노래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작품들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의 위로를 받는 느낌이었습니다. 작품도 작품이려니와 부조로 된 작품을 받치고 있는 나무 판의 색감이 독특하면서도 따뜻해서 어떻게 이런 색감을 내게 되었는지 물었습니다. 천연 염색 감물로 갈옷을 만들듯이 나무 판에 감으로 조금씩 여러 번 칠을 하고 다시 먹을 갈아 칠하는 과정을 거치면 그런 색이 나온다고 합니다. 다시 밖으로 나와 야외 전시장을 천천히 둘러보며 흙사람들과 무언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눈을 감은 듯 한 흙사람들은 하늘, 바람, 나무, 돌, 자연과 어우러져 말없이 많은 말을 건네고 있었습니다.
작가는 자신의 내면에 고여 있던 것들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와 스며든 실체가 바로 작품이라고 하면서 자기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늘 생각하고 지향하는 생명의 본질을 제주의 땅기운과 바람과 햇살 사이로 틔워낸 씨앗이 바로 흙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저는 작업 중이던 작가의 시간을 너무 뺏을 수 없어서 아쉬움을 달래며 돌아왔습니다. 대림특강을 통해 사람들에게 작은 위로를 나눌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찾아간 제주에서 오히려 제가 큰 위로를 받고 돌아왔습니다.
¶ 눈물
고 김현승 시인은 아들을 잃고 난 후에 <눈물> 이라는 시를 지으셨습니다. 마지막 구절을 읽어드립니다.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여기서 ‘당신’이란 시인의 신앙에 의지하는 절대자, 하느님입니다. 이 시는 그가 믿는 신앙에 의지해 그 슬픔을 감내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눈물이야말로 한 점 생명의 씨앗과도 같고 더러움이 없으며, 인간의 마음이 가장 마지막 순간까지 순금처럼 지니고 살아야 할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 시를 신앙에 관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김현승 시인이 염원한 것은 단순하고 맹목적인 신앙이 아닌 인간적인 연민과 사랑입니다. 시인은 스스로 “나는 또한 신앙에 순응하기만 하는 시인은 아니다”고 하시며 “떳떳하고 참되고 올바른 인간정신을 나의 시에 스며들게 하는 데 더 큰 가치를 느낀다.”고 하셨습니다.
누구나 감내하기 힘든 슬픔 앞에서는 쉽게 절망하며 그 슬픔에 매몰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눈물’을 ‘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라고 합니다. ‘눈물’이 새로운 생명을 낳는 작은 씨앗이 됩니다. 그 씨앗의 열매는 결국 그분께서 맺어주실 것입니다. 시인은 당신이 겪는 슬픔을 통해 생명을 창조가호 주관하는 절대자와의 만남, 더 나아가서는 그분과의 합일을 그리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슬픔 앞에서 눈물을 감추려고 하지만, 시인은 눈물이야말로 하느님이 주신 은총이며 나무의 꽃이 시든 뒤에 열매가 열리게 하는 그분의 선물로 여깁니다. 시인은 인간이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후에도 무엇이 남아있다면 그것은 눈물이라고 합니다. 눈물이 우리의 영혼을 맑게 정화시킵니다. 사람은 자신의 인간적 한계와 고통을 맛보는 순간에 가장 순수하고 진실해집니다. 저는 눈물은 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라는 시인의 성찰을 통해 그 문물이 바로 가장 진실한 마음의 표현, 바로 하느님에 대한 경외라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눈물에는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 신비로운 힘이 있습니다. 가수 조용필 씨에 관한 일화가 생각납니다. 어느 시골의 한 요양병원의 원장이 그에게 전화를 걸어와 한 번도 감정을 보이지 않던 14살의 발달 장애를 가진 소녀가 그의 노래 ‘비련’을 듣고는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고 하면서 직접 와서 노래를 불러달라고 청했답니다. 그러자 조용필 씨는 위약금까지 물어가며 예정된 행사를 취소하고 병원으로 달려가 그 장애 소녀의 손을 잡고 ‘비련’을 불러주었고, 아무 표정도 없던 소녀는 펑펑 울었고 부모도 함께 눈물을 흘렸답니다. 그 소녀의 부모가 사례를 하려고 하자 조용필 씨가 말했답니다.
“따님의 눈물이 제 평생 벌었던 돈보다, 또 앞으로 벌게 될 돈보다 더 비쌉니다.”
¶ 쇼생크 탈출과 희망
저는 영화 <쇼생크 탈출>을 좋아합니다. 제목이 <쇼생크 탈출>이지만 이 영화는 단순히 탈출에 관한 영화가 아닙니다. <쇼생크 탈출>의 영어 제목은 <The Shawshank Redemption>입니다. 잘 알다시피 Redemption은 구원이라는 뜻입니다. ‘쇼생크 탈출’ 아니 ‘The Shawshank Redemption’은 삶과 희망, 나아가 구원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1994년 스티븐 킹의 중편 소설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이라는 원작을 바탕으로 당시 신인이었던 프랭크 다라본트 라는 감독이 직접 대본을 쓰고 만든 영화입니다. 주연은 팀 로빈스 와 모건 프리먼 이 맡았고, 두 사람은 이 영화로 일약 스타가 되었습니다.
<쇼생크 탈출>은 주인공 앤디 듀플레인의 삶과 운명, 감옥 생활과 감옥에서의 탈출에 대한 이야기지만 궁극적으로 우리의 삶에서 희망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보여 주는 영화입니다. 다시 말해 희망을 버리지 않을 때 거기 진정한 구원의 손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성적인 내용의 영화입니다.
일명 ‘레드’라고 불리게 된 레딩, 배우 모건 프리먼 의 목소리를 통해 우리는 앤디 듀플레인 이라는 희망의 상징을 만나게 됩니다. 앤디 듀플레인 이 운명의 장난으로 부딪쳐야 하는 극한의 상황, 그 상황에서 그의 삶과 삶에 대한 그의 태도는 진정 묵상거리였습니다.
영화는 아내와 아내의 정부를 죽였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복역하게 되는 앤디 듀플레인 에 대한 이야기지만 세상의 축소판인 감옥에서 벌어지는 인간 군상을 통해 우리는 진정 누구인가를 되묻게 됩니다.
앤디 듀플레인 은 쇼생크 교도소에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인물입니다. 회계사이며 젊은 나이에 은행 부 행장으로 꽤 빠르게 출세한 인물입니다. 앤디가 입소하던 날 레드는 내기를 겁니다. 가장 먼저 울음을 터뜨릴 인물로 그는 앤디를 꼽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전혀 다른 앤디의 모습을 –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은 없다. 도전하리라. 그리고 승리하리라’ 라고 말하는 – 보여줍니다.
앤디는 아내와 아내의 정부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는데 너무 솔직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부정을 하는 아내를 죽이고 싶어서 총을 소지했지만 실제로 살해할 마음은 없었고 총은 강에 버렸다고 진술합니다. 경찰이 강을 뒤졌지만 총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판사는 이 사건을 주도 면밀하게 계획된 살인으로 보고 죽은 두 사람의 삶에 대신해서 앤디에게 두 번의 종신형을 선고합니다. 앤디는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쇼생크 라는 악명 높은 교도소에 수감되고 19년이라는 긴 수감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감옥살이 중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것이 레드와의 만남입니다. 감옥 안에서 앤디 는 온갖 험한 일을 겪게 되지만 친구 레드 의 도움으로 취미생활도 하면서 서서히 적응해 갑니다. 앤디는 취미로 돌공예를 하기 위해 (교도소 안에서 무슨 물건이든지 다 구할 수 있는) 레드에게 망치를 구해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앤디는 레드에게 구한 돌망치를 숨깁니다. 레드는 돌망치 같은 도구는 흉기나 탈옥도구로 쓰일 수 있기 때문에 염려했지만 너무나 작아 안심합니다. 물론 교도소 간수들은 앤디가 레드에게 돌망치를 구한 것을 몰랐습니다. 성경 책 안에 숨겼기 때문입니다. 교도소장은 앤디에게 성경 안에 구원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앤디는 그렇다고, 자기도 거기에서 구원을 찾았다고 말합니다. 묘한 여운을 남기는 대화입니다.
지붕 위에 타일을 바르는 작업장에서 벌어지는 상황도 기억에 선명합니다. 레드와 야외작업을 하던 앤디는 야외작업 경비를 서던 간수장 해들리가 자신의 유상상속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는 앞으로 나서서 정확한 세부 지식으로 간수장 해들리의 유산상속 문제를 해결해 줍니다. 그런데 앤디가 그 대가로 청한 것이 참으로 상징적입니다. 일이 제대로 성사되면 동료들에게 시원한 맥주 한 잔 대접해 달라는 것입니다. 간수장 해들리는 교도소에 첫 입소한 뚱보 죄수를 폭행해 죽일 만큼 잔인한 사람입니다. 그런 자에게서 지붕 위에서 편히 앉아 맥주를 얻어 마신다니, 재밌는 발상입니다. 그런데 정작 앤디는 술을 끊었다며 맥주를 마시지 않습니다. 다만 의미심장한 웃음으로 동료들을 바라볼 뿐입니다.
앤디는 자신의 세무에 관한 지식 덕분에 교도소에서 특별한 대우를 받습니다. 간수장 해들리가 앤디를 동료 간수에게 소개해 주고, 교도소장에게도 소개하면서 그의 검은 돈을 세탁해 줍니다. 교도소장의 이해타산과 맞아 떨어진 앤디는 교도서 내의 도서 업무를 돕게 되고 죄수들의 검정고시를 지도하는 특혜를 누립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주 젊은 죄수 하나가 쇼생크에 들어왔습니다. 이름이 토미였던가요? 그는 도둑질을 하다가 수감된 인물입니다. 앤디는 그에게 정성껏 기초부터 가르칩니다. 앤디는 교도소의 젊은 죄수들이 공부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일에 보람을 느낍니다.
토미는 전에 머물던 교도소에서 떠벌리던 어는 죄수의 이야기를 기억해 내고 앤디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는 앤디가 무고하게 누명을 쓰게 되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인이었습니다.
앤디는 교도소장을 찾아가 토미 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하며 자신의 무죄를 입증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청합니다. 교도소장이 앤디의 청을 들어줄 리 없습니다. 오히려 앤디를 독방에 가둔 뒤 간수장 해들리 를 시켜 토미를 살해합니다. 자신의 무죄를 입증할 수 있는 토미가 살해당한 것을 안 앤디는 탈옥을 결심합니다.
앤디는 친구 레드에게 교도소 바깥에서 다시 만날 꿈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희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레드는 현실성 없는 헛된 희망이라고 말하지만 앤디는 아주 의미심장한 말을 합니다. 삶은 선택이라고. 계속 죽음을 향해 질질 끌려갈 것인가, 아니면 희망의 삶을 위해 노력할 것인가의 선택!
앤디는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레드에게 말합니다. 자신의 꿈은 태평양에 접한 멕시코의 어느 해변가 마을에서 호텔과 요트를 가지고 살겠다고. 그 정도는 억울하게 수감생활을 한 자신에게 과분한 것이 아니라고. 앤디는 친구 레드에게 약속해 달라고 청합니다. 만약 출소를 하게 되면 어느 곳을 찾아가라고. 나중에 출소한 레드는 그곳을 찾아가 앤디의 편지를 발견합니다. 여행을 할 수 있는 돈과 함께.
편지의 한 대목이 바로 이 영화의 주제이지 싶습니다.
“Remember, Red. Hope is a good thing, maybe the best of things, and no good thing ever dies.”
“레드, 기억해요. 희망은 좋은 것입니다. 아마 가장 좋은 것인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좋은 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답니다.”
¶ 인셉션, 묘한 매력의 영화
한국에서는 영화 볼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하다가 이곳 먼 미국까지 와서야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한국에서 보아야 할 영화였습니다. 왜냐고요? 자막 없이 제 영어 실력으로 보려니 제대로 알아듣기 힘든 영화였습니다. 다만 위안으로 삼은 것은 같이 영화를 본 영어를 아주 잘하는 사람들도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고백했기 때문입니다. 하하.
인셉션. 영어 단어 inception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시초, 발단, 개시 등으로 설명되어 있지만 ‘인셉션’ 이라는 영화에서는 단순히 이런 뜻보다 구체적인 꿈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우리들에게 ‘메멘토’, ‘배트맨 비긴즈’, ‘다크 나이트’로 알려진 감독입니다. 그는 놀라운 상상 속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재주를 지닌 사람이네요. 어느 영화평론가의 평을 읽어보니, 놀란 감독은 ‘인셉션’을 통해 철학적으로 복잡한 논리를 대중적으로 끌어내어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고 하는데 저는 이 평에 동의하지 못하겠어요. 왜냐하면 우선 제가 이해 못했잖아요. (하하) 또 ‘인셉션’은 자신이 생각하는 복잡한 이야기를 아주 알기 쉽게 설명하고 관객이 그 의미를 놓치지 않도록 대사를 통해서 끌어당겨준다고도 했는데, 저는 대사를 들으니 더 헷갈렸어요.
이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몇 가지 키워드가 있습니다. ‘킥’, ‘토템’ (이 영화에서는 팽이), ‘꿈’, ‘꿈의 설계’ 등입니다. 아, 가톨릭에서도 사용하는 단어, 림보도 있지요. 참 이상해요. 이 영화는 의미를 잘 알아듣지 못해도 숨을 죽이게 하는 어떤 마력이 있어요. 감자기 장면이 바뀌면 상황파악을 위해 머리를 쥐어뜯어야 하지만 흘러나오는 음악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면서 상상의 날개를 달아줍니다. 제가 잘 이해하지 못한 것은 단순히 영어 때문이 아니라 심리학적인 세계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철학적이고 논리적인 사고의 전개를 따라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영화가 그렇듯이 이 영화도 사랑이 주요 주제입니다. ‘인셉션’은 삶에서 대두되는 근본적인 사랑과 죽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 매체를 꿈이라는 심리학적인 메타포로 사용한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함께 영화를 본 선배는 틀림없이 장자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단언하였습니다. 하긴 꿈속의 꿈은 장자가 처음 이야기했으니까요. 사람과 죽음, 사랑과 미움, 선과 악은 우리 모두의 화두이겠지요.
주연은 ‘타이타닉’으로 유명해진 디카프리오 이고 조연들도 화려합니다. 게이샤의 추억으로 알려진 일본인 배우 와타나베 켄, 얼핏 보면 멍철할 것 같은데 묘한 매력을 지닌 조셉 고든 레빗, 퍼블릭 에너미에서 열연한 프랑스 배우 마리안 꼬따아르, 주노에 나왔던 엘렌 페이지가 팀을 이루고 있습니다. 저는 코브의 아내 멜로 분장한, 슬픔 눈을 가진 여인 마리안 꼬띠아르에게 끌렸어요. 그녀는 코브가 아는 사실을 다 알고 남편의 일을 망치게 하지요. 묘한 여운을 남기는 눈동자는 꿈속의 여인이라는 설정으로 더욱 매력적입니다. 코브는 그녀를 믿지 못하면서도 사랑하기 때문에 약한 모습을 보이지요. 미워도 미워할 수 없는 사람, 사랑은 참 묘하지요?
켄은 사업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생각을 훔치는 능력을 지닌 코브에게 접근하여 구미 당기는 제안을 하는 것으로 영화 ‘인셉션’은 시작됩니다. 생각을 훔치는 코브는 인셉션으로 생각을 주입 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고 다섯 명의 팀을 구성합니다. 사업문제로 경쟁회사를 무너트려야 하는 켄은 아이들을 보고 싶어 하는 코브에게 집으로 안전히 돌려보내주겠다는 조건을 걸고 생각의 도둑을 제안합니다.
다섯 명의 생각 도둑 팀은 빠르고 흥미 있게 모아집니다. 코브 이외의 중심에 포인트 맨이 있지요. 날카로우면서도 고지식하고 바보 같은 인상을 주면서도 묘한 매력을 지닌 조셉 고든 레빗. 그는 음악으로 꿈에서 깨고 장치를 준비하고 코브를 돕는 중심에 있습니다. 그 다음에 귀여운 엘렌 페이지. 그녀는 꿈을 설계하는 건축사입니다. 그녀의 상상력은 뛰어나고 상황판단도 빠르고 스마트하기 때문에 코브를 문제에서 벗어나도록 조언해 줍니다. 참 재미있는 설정은 생각을 훔치려면 진정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꿈에서 깨어 버리면 곤란하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위험한 3단계까지 가게 된다면 꿈에서 깨면 안 됩니다.
꿈은 현실과 다르고 현실의 5분이 꿈속에서는 한 시간입니다. 꿈과 현실의 경계가 아주 묘합니다. 꿈속에서의 고통은 그대로 이어지고 꿈속에서 죽게 되면 현실에서도 죽음으로 이어집니다. 꿈은 현실의 5분이 한 시간이지만 꿈속의 꿈은 기하급수로 더 짧습니다. 60년도 꿈속의 꿈에서는 아주 짧은 시간입니다. 시편 90편이 절로 떠오릅니다.
‘당신 눈에는 천 년도 지나간 어제 같고’
‘킥’이란 키워드. 우리가 꿈을 꾼다면 ‘킥’이 필요합니다. ‘킥’을 사용해서 꿈에서 깨려면 또한 중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인셉션이 위험한 까닭은 생각을 훔치는 자들이 생기니깐 당연히 보호하는 자들도 있기 때문이라고 해요. 꿈을 훔치지 못하게 하는 훈련을 했다면 꿈속 그들이 위험합니다. 보통은 위험해도 깨면 현실로 돌아오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지만 인셉션을 위해 진정제를 복용한 그들은 영원히 꿈의 밑바닥에서 현실을 꿈이라 생각하고 꿈을 현실이라 생각하면서 깨어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인셉션에서는 죽으면 안 되는데 코브의 아내 멜은 코브를 방해합니다. 결국 다시 그 꿈의 바닥으로 간 코브는 아내와의 문제를 해결하고 현실로 돌아오는 내용인 것 같아요.
마지막 장면이 제일 헷갈립니다. 토템, 팽이가 계속 돌고 있으면 아직 꿈이고, 돌다가 멈추면 현실로 돌아온 것인데 분명히 멈춘 것 같은데 저는 그 상황이 꿈의 연속처럼 느껴집니다. 아마 돌아가기 싫은 현실의 세상으로 아내와 돌아와선 꿈이 현실이고 현실이 꿈이라 생각해 버리는 아이로니의 상황을 그린 것 같은데 제 생각이 틀렸나요?
인생, 참 묘하지요. 꿈에서 죽음은 현실로 돌아오지만, 현실에서의 죽음은 죽음으로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 인생은 어떤 것일까요?
영화의 진짜 주제는 코브와 멜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무의식의 세계, 꿈의 세계에 남기를 선택한 멜은 바로 우리의 무의식 안에 있는 또 하나의 자아입니다. 코브는 사랑하는 아내 멜에게 인셉션을 시행한 후 자신이 멜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다시 회복하기 위해 애쓰고 그를 돕는 엘렌과의 묘한 관계도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합니다. 결국 자신의 기억 속에서 멜과의 사랑을 이어가는 코브는 영화의 마지막 림보 속에 갇힌 멜을 떠나 보내며 나름의 어떤 깨달음을 얻은 것 같아 보였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의 생각이 가장 강력한 바이러스라는 생각에 깜짝 놀라게 됩니다. 감독은 관객들에게 ‘생각’이라는 바이러스를 미리 심어 놓고 관객의 생각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알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뒤집어 말하면, 관객이 영화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감독이 관객의 생각을 바라보며 즐기기 위해 만든 영화 같아요.
Part 3 신앙
나는 내 운명의 주인이며
내 영혼의 선장이다.
¶ 참 아름다운 당신!
아침에 일어나서 휴대폰을 켜니 곧이어 문자 메시지 도착 알람 소리가 들렸습니다. 피정 중이라 메일 확인이 어렵다는 것을 안 관구장 신부님이 아침 일찍 문자 메시지를 보내 주었습니다.
“진 신부님 선종. 빈센트 빈소.”
순간 가슴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한국 예수회의 큰 주춧돌 하나가 빠져 나가는 느낌과 동시에 슬픔이 밀려 왔습니다. 전날 2일 14시 5분에 선종하셨다는 메일도 도착해 있었습니다. 후배 예수회원 누구에게나 큰 그늘이 되어 주셨던 분이 이제 조용히 세상에 작별을 고하셨습니다. 이냐시오 성인 축일에 돌아가시기를 원했던 신부님은 이틀을 더 머물고 복자 파브르(예수회 첫 동료 중의 한 분이며 예수회의 첫 사제)의 축일에 하늘나라로 떠나셨습니다.
빈소에 가서 연도를 마치고 주교님의 복사가 되어 미사도 봉헌했습니다. 주교님은 진 신부님은 가장 수도자다운 수도자였다고 하시면 일화를 하난 들려 주셨습니다.
진 신부님이 당신을 지원자로 받아 주었답니다. 그리고 오래 전 당신이 수련원장이고 진 신부님이 거주 사제로 계실 때 한번은 진 신부님이 자동차 접촉 사고를 내고 돌아오셨는데 겁먹고 풀 죽은 모습이었답니다. 다인 곳은 업냐고 여쭈었더니 다친 곳이 없다고 해서 “그러면 됐어요. 괜찮아요.” 라고 하자 비로서 신부님이 안도하는 얼굴로 환하게 웃었다고 합니다.
그 일화는 주교님 당신이 얼마나 엄하고 무서운 원장이었는지를 드러내는 피하고 싶은 이야기인데도 진 신부님의 겸손함을 들려주기 위해 당신도 겸손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셨고 다시 오늘 장례 미사 중 고별사에서도 들려 주셨습니다.
어제 (8월 2일) 미사가 끝나고 3시에 입관 예절이 있었습니다. 입관 예절은 1시간 30분이 더 걸린 긴 시간의 예술이었습니다. 넓지 않은 방에 문상객들이 빼곡히 들어서니 더위는 이만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신부님의 시신을 염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그 시간이 저에게는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묵상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우선 발부터 깨끗이 닦고 양말을 신겨 드리더군요. 사도 바오로가 말했지요.
“복음을 전하는 발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 말을 생각하니 진 신부님의 발은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젊은 시절 사제가 되는 공부를 하기 위해 일본에서 유럽으로 건너갔다가 제2차 세계대전으로 미국을 거쳐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야 했고, 일본에서 예수회에 입회하고 신학공부를 하러 다시 유럽으로 가서 사제가 되어 일본에서 사목하셨습니다. 그러다 한국에 돌아와 서강대학교의 설립과 복음을 전하기 위해 동분서주하셨고 한때는 남미까지 선교를 떠났던 발이었음을 상기하니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신부님이 살아 계실 때 신부님의 발을 정성껏 닦아 주고 양말을 신겨 준 사람이 우리 중에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물론 그러고 싶어도 신부님이 허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남에게 자신을 온전히 내어 맡겨야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목욕은 머리부터 시작해서 발은 맨 나중에 씻는 게 보통이지만 염을 하는 순서는 정 반대였습니다. 발에서 시작하여 얼굴, 머리에서 끝나게 됩니다. 우리의 얼굴이나 머리는 그런대로 대우를 받지만 발은 이 험한 세상을 딛고 서 있는 디딤돌임에도 불구하고 부실한 대접을 받습니다. 그 다음 흰 바지를 입히고 상체를 닦은 후에 저고리와 함께 예수회의 검은 수도복을 입혀 드렸습니다. 검은 수도복을 입히는 과정에서 긴 띠를 매는 일이 제일 시간과 정성이 드는 일입니다. 그 모습을 보며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했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네가 젊었을 때는 스스로 허리띠를 매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다. 그러나 늙어서는 네가 두 팔을 벌리면 다른 이들이 너에게 허리띠를 매어 주고서,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 갈 것이다.”
마지막으로 얼굴을 닦아 드리고 깨끗하게 면도도 해 드리고 화장도 해 드리고 머리 빗질까지 하고 성수를 뿌린 후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였습니다. 저도 가까이서 얼굴을 바라보았는데 너무나 평온하게 주무시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영혼이 떠난 육체는 빈 집일 뿐.
장례 미사는 진 신부님의 삶만큼이나 아름다웠습니다. 신원식 신부님이 대독한 봉두완씨의 조사가 사람들을 울렸고, 관구장 신부의 짧은 감사 인사말도 저를 울렸습니다. 관구장 신부는 가장 감사 드릴 분은 하느님이라고 하시며 “이런 분을 우리에게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하면서 “신부님, 이제 편안히 가세요. 그 동안 잘 못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라고 했는데, 제 마음을 대신 표현해 주니까 그냥 눈물이 흘렀습니다.
관구장 신부는 어느 예수회원의 제안이라면서 관이 성당을 나갈 때 박수를 쳐 드리자고 하였고 정말 관이 성당을 나갈 때, 우뢰와 같은 박수 소리가 들렸습니다. 모두 크게 박수를 치며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면서 진 신부님의 삶이 가슴으로 느껴 졌습니다.
고별식 중에 신부님의 평소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보여 주었는데, 수련원에서 급히 만들었지만 신부님의 환한 웃음을 다시 보니 죽음이 실감나지 않고 옆에 계신 것 같았습니다. 영상의 배경음악으로 “You are so beautiful”이라는 제목의 노래가 잔잔히 흘렀는데 정말 탁월한 선택이라 생각을 했습니다. 정말 신부님은 아름다운 분이었습니다. 그 아름다움이 어디에서 오는가? 바로 그분의 삶, 사랑의 삶에서 오는 것입니다. 영상의 마지막 자막은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신부님은 오토바이를 무척 좋아하셨습니다. 신부님은 수박과 오징어를 무척 좋아하셨습니다. 그리고 신부님은 우리들을 무척 좋아하셨습니다. 우리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신부님! 우리도 신부님을 사랑합니다.”
신부님이 남미 선교를 마치고 돌아와서 영종도 성당에서 사목하실 때 저는 신부님을 처음 뵙고 잠시 동안 같이 지냈습니다. 당시 저는 수련 2반으로 마지막 실습을 신부님이 막 부임한 영종도 성당에서 하게 되었습니다. 한 달 반 동안 시골 성당에서 신부님을 도와 울타리도 만들고 꽃밭도 만들었습니다. 당시 신부님은 당신의 작은 오토바이를 마음껏 타라고 내주셔서 저는 매일 오토바이를 타고 영종도를 한 바퀴 돌고 했습니다. 제가 오토바이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는 나중에 제가 허원식을 하고 난 후 제게 그 오토바이를 주셔서 영종도에서 서울 신학원까지 타고 왔던 기억이 납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오토바이를 선뜻 내주셨던 신부님!
연로해 지자 위험하다고 자동차 열쇠를 수련장 신부에게 빼앗겼던 신부님!
하늘나라에는 오토바이보다 자동차보다 더 빠르고 신나는 것들이 많겠지요!
마음껏 즐기시고 이곳에서 오토바이나 자동차 사고가 나지 않게 저흴 지켜 주세요.
신부님, 사랑합니다.
¶ 틀 밖에서 생각하라
미국의 어느 회사 면접시험에 있었던 질문입니다.
상황은 이렇습니다. 폭풍우가 거칠게 몰아치는 어느 날 밤, 당신은 차를 운전하고 가다가 버스 정류소를 지나게 됩니다. 창문 밖을 보니 세 사람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연로하고 쇠약하여 바로 병원으로 모시고 가야 할 것 같은 할머니와 당신의 생명을 구해 준 일이 있는 죽마고우 그리고 평소 당신이 꿈꾸어 오던 이상향의 여인이 있습니다. 당신의 차는 2인석 스포츠카로 단 한 명만 더 태울 수 있는데 당신은 누구를 태우겠습니까? 잠시 상황을 놓고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은 할머니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할머니가 처한 상황이 가장 절실해 보여서 할머니를 제일 먼저 구해야 합니다. 그게 윤리적인 올바른 선택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 당신의 생명을 구해준 친구를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그에게 입은 은혜를 갚을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또 달리 생각하며 당신은 꿈속에서 그리던 이상형의 여인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그 여인을 못 만날 수도 있습니다. 이것도 인생에서 아주 중요합니다.
면접을 보았던 200여 명의 응시자 중에서 채용된 사람은 윤리적으로 아무런 문제점 없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방법을 찾은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답변은 틀을 넘어서서 열린 마음, 지혜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저는 제 생명의 은인인 친구에게 자동차 열쇠를 주어서 할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가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남아서 꿈속에 그리던 여인과 함께 버스를 기다리겠습니다.”
이 면접의 타이틀은 “Never forget to ‘Think Outside of the Box.'”입니다 우리말로 옮기면 “틀 밖에서 생각하는 것을 잊지 마시오.” 가 되겠지요.
예수님은 언제나 틀 밖에서 생각하신 분입니다. 쉽게 말해 참으로 열린 마음을 지닌 분이십니다. 새로움에 대한 열린 마음, 변화에 대한 열린 마음, 도전에 대한 열린 마음, 모든 것에 대해 열려 있는 마음을 지닌 분이십니다. 진정 마음이 열려 있을 때 지혜가 샘솟습니다.
¶ 사랑만이 미움을 없앨 수 있나니
부처가 설법을 펼치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부처가 비구니로 받은 사람 중에 ‘연화색녀’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이 여인의 운명은 기구하다 못해 참으로 통절합니다. 연화색녀의 세속에 대한 배경은 경전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본질적인 내용은 다르지 않습니다. 이는 마치 그리스도교 성경 안에 여러 복음서가 있는 것처럼 불교에도 여러 경전이 있습니다. 어느 경전에서는 연화색녀가 왕사성의 한 장자의 딸로 태어났다고 하고 또 다른 경전에는 득차실라 마을에서 태어났다는 것으로 보아 왕사성의 득차실라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이른 아침 봉오리를 여는 해맑은 연꽃처럼 아기가 너무나 예뻐서 부모는 연화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운명은 알 수가 없는 것이어서 연화는 훗날 한 때 거리의 여자가 되었기에 연화라는 아름다운 이름에 그만 색녀(色女)가 붙게 되었습니다. 불교의 경전에서는 ‘연화색녀’라고 쓰고 있지만 저는 이 불행한 여인을 그냥 연화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이미 비구니가 된 여인에게 색녀라는 이름은 온닻이 않아 보입니다.
연꽃의 정기를 머금고 태어난 연화는 자랄수록 미모가 도드라져 득차실라 마을을 너머 온 지방에 명성이 자자해 많은 남자들이 청혼을 해 왔습니다. 하지만 연화네 집은 애옥살이 가난한 살림인지라 연화 아버지는 이웃 고을의 나이가 많은 부자에게 딸을 시집 보냈습니다. 돈을 받고 딸을 팔아 넘긴 셈이지요. 겨우 열 몇 살의 연화는 아버지 같은 남자에게 시집을 갔습니다. 미모의 딸 덕분에 늘그막에 호사스럽게 살게 된 연화의 아버지는 주색잡기로 가산을 탕진하더니 그만 병이 들어 죽고 말았습니다.
마음씨 착한 연화는 남편의 허락을 구하고 홀로 된 어머니를 모셔 와 함께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화근이 되었습니다. 그 즈음 연화는 남편과의 사이에 자신을 닮은 예쁜 딸도 낳고 그런대로 운명에 순응하며 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연화는 어머니가 남편과 정을 통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남편을 잃고 홀로 된 연화의 어머니가 독수공방의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딸의 남편을 유혹했다는 설과 원래가 여자를 밝히는 연화의 남편이 장모를 유혹한 것이라는 설이 경전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어쨌든 참으로 기막힌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연화는 감당하기 힘든 너무도 가혹한 상황 앞에서 반미치광이가 되어 품에 안고 있던 어린 딸을 마당에 팽개치고는 집을 뛰쳐나갔습니다. 악몽을 지우기 위해 발 가는 대로 방황하던 연화는 바라나시라는 곳으로 흘러 들어가 다행히 그곳에서 부유한 상인을 만나 다시 결혼을 하게 됩니다. 연화는 과거의 슬픔을 지우고 부자 상인과 십 년 가까이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어느 날, 먼 도시로 장사를 나갔던 남편이 빈손으로 돌아와서는 강도에게 돈을 다 빼앗겼다면서 집에 있던 돈을 모두 챙겨 다시 떠났습니다. 그 후로도 장사하러 간다고 나간 남편은 상당히 오랜 기간 집을 비우곤 했지만 연화는 조금도 남편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장사를 떠나고 집을 비운 어느 날 남편의 친구가 찾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허튼 수작을 겁니다.
“아주머니, 이렇게 혼자 지내는 생활이 외롭지 않으세요?”
연화는 화를 내면서
“어찌 친구의 아내에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는지요? 아녀자 혼자 있는 집에 오래 머물지 마시고 속히 돌아가 주세요.” 하고 딱 잘라 말했습니다.
“아주머니가 딱해서 그럽니다. 지금 그 친구는 다른 여자에게 푹 빠져 정신을 못 차리는데 아주머니는 아무 것도 모르고 눈이 빠져라 남편을 기다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연화가 그런 말로 자신을 꾀지 말라고 하자 친구는
“내 말은 거짓이 아니오. 오래 전에 그 친구가 강도를 만나 돈을 빼앗겼다고 하고서는 집안의 돈을 모두 챙겨 간 적이 있지요?” 하고 말했습니다.
“실은 그 친구가 도회지에서 젊고 예쁜 여자를 만나 살림을 차렸다오. 그 여자에게 정신이 팔려 아주머니를 이렇듯 버려 두니 내 마음에 안 되어서 그럽니다.”
연화가 돌아온 남편에게 남편 친구에게 들은 말에 대해 묻자 남편은 그간의 사정을 솔직히 털어 놓았습니다. 연화는 도저히 남편을 용서할 수 없었지만 객지에서의 외로움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 생각하고는 남편의 새 여자를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남편에게 두 집 살림을 하느니 차라리 젊은 여자를 데려 와 함께 살자고 했지요. 남편은 연화가 투기를 하지 않을까 걱정을 하면서도 젊은 여자를 집으로 데려 왔습니다.
남편의 우려와는 달리 연화는 젊은 여자를 진정으로 돌보아 주고 사랑으로 감싸 주었습니다. 어느 날 젊은 여자의 머리를 빗겨 주던 연화는 그녀의 머릿속에서 커다란 흉터를 보게 됩니다. 젊은 여자는 머리를 빗겨 주는 연화에게 그 흉터의 내력을 들려줍니다. 자신은 기억조차 하지 못하지만 집안 사람들이 들려준 이야기로는 자신의 어머니가 무엇 때문인지 자기를 마당에 팽개치고는 집을 나가 버렸는데 그때 생긴 흉터라고 했습니다. 연화는 심장이 덜컹거리며 벌벌 떨렸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가족이 어떻게 되는지 물었습니다. 제발 아니기를 바랐지만 남편의 젊은 여자는 그 옛날 자기가 마당에 내던지 바로 자신의 딸이었습니다. 그 때문이었는지 젊은 여자를 처음 본 순간 연화는 남편의 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미워할 수 없었고 사랑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연화는 너무도 참혹한 운명 앞에 기가 막히고 정신이 아득해 졌습니다. 남편이 자신을 낳아 준 어머니와 정을 통하는 것을 보고 실성해 집을 나왔는데, 이제 자신의 성장한 딸이 새 남편의 첩으로 온 것입니다. 연화는 죽을 만큼 괴로웠지만 딸에게 괴로움을 안겨 줄 수 없어 다시 집을 뛰쳐나왔습니다. 자신조차 어찌해 볼 수 없는 운명 앞에서 연화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겨 졌고 그녀의 마음속에는 이제 운명과 남자에 대한 증오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연화는 고향인 왕사성으로 돌아가 거리의 여자가 되었습니다. 비록 나이는 들었지만 타고난 미모로 많은 남자들을 유혹해 가산을 탕진하게도 하고 신세를 망치게도 했습니다. 셀 수도 없는 많은 남자들이 연화의 웃음에 홀려 폐인이 되거나 가족에게 버림받고 자살도 했습니다. 남자들이 불행해 지고 파멸해 갈수록 연화는 복수의 쾌감을 느꼈습니다. 남자는 원수이고 원수에게 복수하리라는 마음만 불탔습니다.
어느 날 부처의 교단이 세를 넓혀 가는 것에 위협을 느낀 이교도들이 연화에게 접근해 왔습니다. 그들은 연화에게 많은 돈을 주며 부처를 유혹하도록 사주했습니다. 연화가 이에 응합니다. 마침 그녀도 세상에 소문이 자자한 부처를 한 번 만나 보고 싶었던 터라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그녀는 500 여명이나 되는 기생을 거느리게 되었지만 늘 마음이 허전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묘한 이중성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남자 중의 남자라고 할 수 있는 부처를 유혹해 보고 싶은 마음과 다른 한쪽에서는 메울 수 없는 자신의 허전함을 부처의 가르침으로 메우고 싶은 그런 마음 말입니다.
왕시성에서 설법을 펼치고 돌아오는 부처 앞에 아름답게 치장한 연화가 나타났습니다.
“사문이여, 당신에게는 많은 제자가 있다고 들었는데 내게도 500명이나 되는 제자가 있습니다. 당신이 해탈했다면 나도 해탈을 얻었습니다. 모든 남자를 굴복시킬 수 있는 힘을 얻었단 말입니다.”
연화는 당당하게 부처를 응시하면서 질문을 던졌고, 조용히 듣고 있던 부처가 대답합니다.
“불쌍한 여인이여, 그대의 눈을 뜨시오. 그대는 복수심에 불타 수많은 남자를 유혹하고 정복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다만 수 많은 여인에게 그대가 옛날에 겪었던 고통을 안겨 주고 있다는 것을 정녕 모르오? 그대는 남자에게 복수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수 많은 여인에게 눈물만 안겨 준 것이오. 원한으로는 결코 원한을 없앨 수 없다는 것을 깨달으시오.”
이 말씀에 연화는 곧 눈을 떴습니다. 아무리 복수해도 답답하고 허전했던 자신의 마음을 부처는 정확히 짚었던 것입니다. 연화의 마음이 환히 열렸습니다. 연화는 진정 참회와 기쁨의 눈물을 함께 흘리면서 부처 앞에 엎드렸습니다.
“부처시여, 저를 구원해 주십시오.”
부처는 연화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부처는 연화의 출가를 허락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수제자인 아난다를 포함해서 모든 제자들이 반대했습니다 연화와 같은 창녀를 출가시키면 교단이 뭇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고 공양을 받을 수 없으니 당연히 반대하였을 겁니다. 그러나 역시 부처는 다른 분, 그분이 말씀하십니다.
“그녀는 이미 눈을 떴다. 그녀는 옛날의 연화색녀가 아니다. 세인의 비난은 일주일을 넘기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며 그녀의 출가를 허락했습니다. 그 후 그녀는 열심히 정진하여 비구니 중에 신통이 가장 뛰어난 제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정말 운명이라는 것이 있을까요? 연화의 이야기는 정말 기가 막힌 운명의 장난 앞에 처함 인간의 상황을 너무나 잘 보여 줍니다. 살다 보면 도저히 우리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너무나 처절한 고통의 상황에서 우리는 절규합니다.
불교의 표현으로 우리는 번뇌를 느끼는 중생입니다. 때로는 도저히 풀 수 없을 것 같은 원한을 지니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처가 연화에게 들려준 설법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원한으로는 결코 원한을 풀 수 없습니다. 미움으로는 결코 미움을 없앨 수 없습니다. 오직 사랑만이 미움을 없앨 수 있습니다. 부처가 연화에게 들려준 마지막 이야기는 하나의 찬가가 됩니다.
분명 우리 삶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 불교 용어로 번뇌가 찾아오지만 그 번뇌가 끝없이 계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둔 방중에는 도무지 새벽이 오지 않을 것 같고, 혹독한 추위 속에서는 결코 봄이 올 것 같지 않지만 긴 밤이 지나면 새벽의 여명이 밝아 오고, 매섭게 휘몰아치던 겨울 바람도 온기를 지닌 봄바람으로 바뀌듯 우리 삶의 고통과 번뇌도 시간 안에서 변화를 겪게 됩니다. 연화에게는 목련 존자나 부처님과의 만남이 인연이 되어 변화가 찾아오게 됩니다. 그것이 불교식 표현으로 인연이지만 그리스도교의 표현으로는 은총입니다. 연화가 부처를 만난 것은 분명 인연이고 은총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연화가 부처를 만난 그 사실보다는 만남 안에서 열렸던 연화의 마음이 진정 인연이고 은총이었습니다. 연화는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마음을 열었기 때문에 그 은총을 받게 된 것입니다. 문득 찾아오는 인연이나 은총에 진정으로 마음을 열 때, 우리는 마치 봄바람처럼 불어오는 그 은총의 작은 속삭임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 속삭임이 우리의 고통, 번뇌를 가시게 합니다. 그 은총의 속삭임이 안에서 우리의 얼어붙었던 마음에 은총의 싹이 피어나게 됩니다.
미움은 미움에 의해선 결코 멈춰지지 않으니
오직 사랑으로써만 치료된다.
이것은 아주 옛날부터 전해져 온 영원한 법칙이다.
(캄보디아의 전통 법문)
¶ 제비꽃 화전
가장 아름다운 계절 오월에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립니다. 3년 전 어느 봉쇄수녀원에서 피정 지도를 할 때였습니다. 영신수련 피정을 동반하면서 늘 행복을 느끼지만 그 해 그 수녀원에서의 피정은 참 행복했습니다. 수녀님들과의 만남도 행복했지만 식사 시간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매 끼니마다 정갈하게 차려 진 음식은 혼자 먹기 너무 아까웠습니다. 어느 날 점심에는 제비꽃으로 수놓은 예쁜 화전이 식탁에 올랐는데 그 화전이 너무 예뻐서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이것을 먹어야 하나 아님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하나? 그러다 만든 분의 정성을 생각하며 아주 맛있게 먹어 치웠습니다.
다음날 면담 시간을 통해 화전을 만든 주인공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날은 그 수녀님이 마지막으로 준비하는 식사여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제비꽃으로 화전을 만들기로 하고 제비꽃을 찾으러 뒤뜰로 나갔답니다. 수녀원 근처에는 제비꽃이 없어 계속 찾아 다니다가 숲으로 들어갔답니다. 수녀원 뒤쪽 안 숲에는 오두막이 한 채 있는데 거기에 풍경이 달려 있대요. 오두막 가까이 갔을 때 풍경이 아름답게 노래를 하고 있어 걸음을 멈추고 풍경소리에 빠져들었답니다. 저는 그 표현이 아름다워서 참 시적인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풍경이 아름답게 노래한다는 시적인 표현은 영신수련에서 관상의 이미지를 떠오르게 합니다. 그 노래 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는 모습, 그것이 바로 관상의 이미지입니다. 관상이란, 어떤 느낌이 왔을 때 그 느낌에 그냥 자신을 맡기면서 머무는 것입니다. 수녀님은 그날 제비꽃을 뜯으러 숲 속에 갔지만 자연 안에 머물며 가장 깊은 관상기도를 한 것입니다. 수녀님은 모든 악기가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비어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답니다. 풍경은 그날 그냥 빈 채로 달려 있었답니다.
제가 강의 중에 관상 기도는 수동적이 되어 그냥 맡겨 드리는 것이라고 말씀 드렸는데, 그 말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그날 풍경은 평소에 잘 듣지 못하던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바라보니 풍경은 정말 아무런 힘을 쓰지 않고 그냥 바람에 맡겨 놓은 채 흔들리고 있었답니다. 당신은 자신을 하느님 앞에 그냥 맡겨드렸는가를 생각하니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수녀님은 그렇게 헤매다 제비꽃을 찾았고 아름다운 화전을 만들었습니다. 한편 저는 정성이 담긴 제비꽃 화전을 먹으면서 참 세속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정도의 식사라면 가격이 얼마나 될까? 하는 못난 속물근성이 도졌지요. 그래도 이 제비꽃 화전은 값비싼 식당에서도 먹지 못할 음식이기에 혼자 행복했습니다. 이 생각도 지극히 속물적이지만 그래도 행복한 걸 어쩝니까?
제가 제비꽃 화전을 먹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결국 만든 이의 정성을 생각해서 먹었다고 했는데, 실은 제가 그것을 먹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거기 제비꽃에 마법이 숨어있는 것을 깜빡 잊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한 여름 밤의 꿈’을 아시지요? 저는 그만 ‘한 여름 밤의 꿈’에서의 그 마법을 잊고 있었습니다.
‘한 여름 밤의 꿈’에서 요정들의 대왕 오베론이 말합니다.
“이 삼색 제비꽃을 처녀들은 ‘나태한 사랑’이라고 부르더라. 가서 그 꽃을 따오너라. 그 꽃의 즙을 짜서 잠든 사람 눈꺼풀 위에 바르면, 남자든 여자든 잠에서 깨어 처음으로 눈에 띄는 상대를 열렬히 사랑하게 된다.”
오베론은 왕지 티타니아를 골려 주려고 그녀가 잠든 틈에 그 제비꽃 즙을 떨어뜨려 그녀가 처음 보는 것이 사자든, 곰이든, 황소든, 촐싹거리는 원숭이든, 사랑에 폭 빠져 졸졸 쫓아다니게 하려고 했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티타니아는 나귀머리를 지난 자와 사랑에 빠집니다.
하물며 수녀님은 제비꽃의 즙도 아닌 제비꽃 통째로 전을 만들어 제게 먹였으니 제가 그 마법에 걸린 것은 분명했습니다. 제가 그 제비꽃을 먹고 제일 먼저 만난 사람이 누구였겠습니까? 바로 점심식사 이후 첫 면담 수녀님이었습니다. 저는 그만 그 수녀님과 사랑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를 어찌합니까? 이를 어찌합니까?
이름은 존 메리, 나이는 84세이신 미국 수녀님입니다. 3년 전에 4군데 암 선고를 받고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여 수녀원에서 그 해 돌아가실 준비를 했는데 그때까지 큰 고통 없이 살고 계신 분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젊은 수녀님도 많은데 운명의 신은 왜 하필 존 메리 수녀님과 사랑에 빠지도록 한단 말입니까? 그런데 사랑에는 어떤 힘이 있습니다. 사랑에 빠지면 바로 그 사람이 가장 아름답게 보입니다. 저는 존 메리 할머니 수녀님이 너무 아름다워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또한 사랑에 빠지면 용감해집니다. 어버이날에는 존 메리 수녀님을 위해 잘못하는 영어로 강론도 준비했습니다.
여러분, 상상해 보십시오. 84세의 암 환자 할머니 수녀님이 매일 제 강의를 눈빛을 반짝이며 듣고 계시는 모습을. 한국말을 잘 알아들으시냐고요? 전에는 어느 정도 하셨는데 이제는 더 이상 말하지도 알아듣지도 못하실 겁니다. 말은 못 알아들어도 느낌으로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존 메리 수녀님이 면담 중에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하느님의 사랑을 생각하면 너무 기뻐요. 하느님을 꼭 안아드리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좀 가르쳐 주세요.”
저도 잘 모른다고 했더니 웃으시면서 예수회 신부가 모르는 것이 어디 있냐고 하시는 거예요. 제가 웃으면서 말씀 드렸습니다.
“수녀님, 수녀님이 하느님을 안아드리려고 하지 말고 그냥 하느님이 수녀님을 안을 수 있게 가만히 계시면 그분이 안아주실 거예요.”
수녀님이 아이처럼 환하게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아, 그러면 되겠네요.”
저는 하느님이 이미 수녀님을 꼭 안고 계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법이 아니더라도 너무 사랑스러운 분이라서 꼭 안아드리고 싶은데 하느님은 오죽 하시겠습니까? 봉쇄수녀원이라 면담 때도 격자가 가로놓여 있고 조금 떨어져서 면담을 합니다. 한 번은 그 수녀님이 격자 사이로 손을 내미셨습니다. 그 손을 꼭 잡으니까 정말 하느님이 수녀님과 함께 계심이 느껴졌습니다. 면담 때 좀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면서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우리는 존재론적으로 하느님을 향하도록 되어 있어요. 바로 하느님께서 당신 모상으로 우리를 창조하셨으니까요. 저는 칼라너의 이 말을 아주 좋아해요.”
칼 라너는 20세기의 가장 탁월한 독일 신학자입니다. 예수회원이고요. 하느님도 그의 신학을 다 이해할 수 없다는 농담이 있을 만큼 난해한 신학을 존 메리 수녀님은 한 마디 안에 다 담고 있었고, 그것이 단순히 사상이나 이론이 아닌 당신 체험에서 나온 것임을 느낄 수 있어서 그만 눈물이 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모상인 사랑으로 창조되었으니까 사랑할 때 하느님을 향할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고 그분과 일치하고자 하는 수녀님의 열망이 그렇게 하느님과 깊이 일치하고 느끼게 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파울로 코엘료가 쓴 <연금술사>에서 살렘의 왕 멜키세덱이 산티아고에게 들여 줍니다.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존 메리 수녀님은 피정이 끝난 지 한 달 후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셨고 다시 한 달 후에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셨습니다. 하느님 품에 안긴 수녀님의 모습은 평화롭고 행복해 보였습니다. 저는 존 메리 수녀님이 하느님과 일치하고 싶어했던 간절한 열망이 실현되었음을 믿습니다.
¶ 영화 <신과 인간>
— 착한 목자는 양떼를 비리지 않고, 새들이 떠나도 나무는 그 자리를 지킨다.
“수사가 된 것도 미친 짓이지.”
영화 <신과 인간> 에서 수도원 원장 크리스티앙이 내적 갈등으로 괴로워하는 크리스토프 수사의 이야기를 찬찬히 듣고 난 다음 들려준 말입니다. 무엇에 미쳤을까요? 그것은 바로 사랑, 다시 말해 사랑에 모든 것을 바쳤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느 날 마을 처녀는 의사인 뤽 수사에게 묻습니다.
“사랑에 빠지면, 어떻게 되지요?”
“사랑은 일종의 매혹이며 욕구이지. 어느 날 갑자기 행복의 희망이 오는 거야. 가슴이 뛰지. 그래서 혼란스러워.”
“사랑을 해 보셨어요?”
“많이 했지. 그런데 더 커다란 사랑이 왔을 때, 거기에 응답했지. 그것이 60년 전이야.”
뤽 수사는 더 큰 사랑에 미쳐 60년을 수도자로 살았고 수도자로서 죽게 됩니다. 사랑에 살고 사랑에 죽는 것, 그것이 궁극적인 수도자의 삶입니다.
영화 <신과 인간> 은 1996년 북아프리카 알제리의 티브히린 이라는 외딴 마을에 살던 프랑스 수사들이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에게 납치살해당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실화입니다. 일명 ‘알제리의 티브히린 프랑스 수도자 살해사건’ 입니다.
이른 새벽 수사들은 작은 서재에 모여 찬미를 드리고 영적 독서를 한 뒤 각자의 소임대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의사인 뤽 수사는 가난한 마을사람들을 치유해 주기 위해 각종 약을 챙깁니다. 뤽 수사는 아침부터 환자들을 돌보느라 분주합니다. 인간미가 물씬 풍기는 뤽 수사는 치유된 어린이의 상처에 입을 맞추고 너무 낡아버린 신발을 신고 자신을 찾아온 여인에게는 성한 신발을 신겨줍니다. 가난한 이들의 몸과 마음을 함께 치유해 주고 있었습니다. 영화는 수사들과 마을 사람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 사랑을 나누는 관계임을 소소한 일상을 통해 전해줍니다.
원자 크리스티앙의 책상에는 이슬람 경전인 <코란>과 성 프란치스코 아시씨의 <작은 꽃>이 놓여 있습니다. 크리스티앙 수사는 코란과 성경을 함께 공부하며 마을 사람들과의 조화에 힘씁니다.
기상과 공동기도시간, 미사시간을 알리는 수도원의 종소리가 멀리 이슬람 사원에서 울려오는 종소리와 겹치지만 서로 방해되지 않고 조화를 이룹니다. 이는 겉으로는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리지만 궁극적으로는 한 분이신 하느님 안에서 어떻게 조화롭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의미입니다.
1219년 제 5차 십자군 전쟁 중에 성 프란치스코는 비무장으로 그리스도교의 적이던 이슬람 이집트의 술탄(왕), 말리크-알-카밀을 만나러 간 적이 있습니다. 그는 회교도들에게 형제로서 다가갔습니다. 술탄도 그의 진정성에 경의를 표하며 답례로 그리스도인 포로들을 풀어주었습니다.
크리스티앙 수사는 군복무 중 알제리에서 자신을 변호해주고 대신 참수된 무슬림 친구에게 깊은 감화를 받고 성 프란치스코처럼 이슬람인들을 진정한 친구로 여겼습니다. 그는 <코란>과 아랍어를 공부하면서 <리바트 에서 살람> (평화의 끈)이란 모임을 만들어 그리스도인들과 이슬람인들이 일 년에 두 차례 아틀라스 수도원에 모여 함께 기도하고 명상하는 모임을 가졌습니다.
수도원의 모습에서도 마을 사람들과 조화와 일치를 이루고자 애쓴 수사들의 노력이 엿보입니다. 수도원 성당에는 그들이 만든 베르베르 양탄자가 있고 성경 구절이 아닌 코란의 구절이 적힌 패널을 걸어 두었습니다. 성무일도를 바치면서도 때로는 주님의 기도와 마니피캇을 아랍어로 바치기도 했습니다. 성당의 십자가도 프란치스코의 다미아노 십자가이고, 십자가 아래서 마니피캇을 부르는 마리아와 심홍색 망토를 입은 영광의 그리스도가 있고, 그 명패에는 아랍어로 ‘그분은 부활하셨다’라는 구절이 새겨져 있습니다.
축제에 수사들이 참석하자 마을 사람들은 손뼉을 치며 기뻐합니다. 수사들은 평복을 입고 축제에 참석하는데 이는 마음 사람들과 일치를 이루기 위함입니다. 축제는 이슬람 기도 소리와 지루해 하는 아이의 하품과 여인들은 수다가 뒤섞여 있습니다. 이슬람인의 기도와 수사들의 기도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저희를 옳은 길로 인도하소서!
저희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지 마소서!
저희를 용서하소서!
저희는 신께 귀의 하나이다!
밭을 갈고 채소를 기르고 벌꿀을 수확해서 시작에 내다파는 등의 노동을 하는 수사들의 삶은 종교를 뛰어 넘어 사랑으로 마을 사람들의 삶 속에 스며들고 있고, 기도하고 노동하는 그들의 모습은 평화롭고 아름답습니다.
어느 날 이 마을에도 반정부주의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나타나 작업장의 크로아티아인들을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평화롭던 마을은 일대 위기를 맞게 됩니다. 정부는 수도원의 안전을 위해 군인을 배치해 주겠다고 제의하지만 원장 수사는 거절합니다.
이제 밤이 내리네, 탄생의 위대한 밤이.
사랑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라.
스스로 드러내는 사랑뿐이네.
성탄 전야 그레고리안 성가가 울려 퍼지는데 이슬람 반군이 수도원에 침입합니다. 총을 들이대며 위협하는 반군을 원장 크리스티앙은 마치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부드럽게 응대하여 돌려 보냅니다.
반군들의 침입으로 위협을 느낀 수사들은 이곳을 떠나야 할지 남아야 할지에 대해 각자 깊은 고민에 빠집니다. 그런 내면의 복잡 미묘한 감정을 차분한 시선으로 깊이 있게 표현한 배우들의 절제된 연기는 더 없이 훌륭했습니다.
떠날 것인지, 남을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서 신을 대면해야 하는 수사들의 고뇌는 그레고리안 성가와 기도 내용에서 절절히 묻어나고 있습니다.
수도자로서 신의 사랑과 믿음을 몸소 실천하려 하지만 그들 역시 인간이기에 생명을 위협하는 폭력 앞에서는 두려울 뿐입니다.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고 불안감은 극에 다다릅니다. 하지만 감독은 크리스토퍼 수사와 마을 처녀가 함께 평화로이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마치 예언자 예레미야처럼 땅을 고르고 씨앗을 심고 있었습니다. 예레미야는 바빌론유배를 뻔히 알면서도 밭을 사고 씨를 뿌렸습니다. 씨앗은 희망의 상징입니다.
“하느님, 왜 이런 상황 안에서 당신은 침묵하십니까?” 라는 욥의 물음을 던지며 고뇌하는 수사들의 인간적인 모습은 깊은 연민을 느끼게 합니다.
이 영화는 무엇보다 <영신수련>의 중요한 내용인 ‘선택’을 다루고 있습니다. 과연 무엇이 옳은가? 순교란 무엇인가? 에 대한 화두를 놓고 수사들은 고뇌하며 갈등합니다. 그들이 영적 독서로 읽는 내용 중에 하나가 카를로 카레토 수사의 글입니다.
“왜 하필이면 제게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 그냥 받아들이기에는 억울하고 부당하게만 느껴지는 일들이 있습니다. 과연 그 안에 담기 하느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왜 하느님은 이런 엄청난 고통을 허락하실까요?”
선택의 과정은 서서히 일어납니다. 처음부터 두려움 앞에 자유로운 뤽 수사도 있지만 대부분은 카를로 카레토와 같은 질문을 던지며 두려움에 고뇌하고 고통에서 도망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그 나약함이 의연함으로 변모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진정한 ‘선택’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선택’은 한 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과정입니다. 삶이 과정이듯이 ‘선택’도 과정입니다. 고뇌를 거치지 않은 단호한 선택보다 갈등을 통해 고뇌하며 서서히 이루어지는 선택이 더 아름답습니다. 영화는 선택의 과정에서 무엇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게 이끌어 주는지, 진정한 지혜를 주는지 보여 주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신과 인간>은 영성적인 면도 깊이 있게 다룬 영화입니다.
반군들의 테러 위협이 계속되는 가운데 도지사는 수사들에게 프랑스로 돌아가라고 강요하지만 가난한 수사들은 자신들보다 더욱 가난하고 힘없는 마을 사람들이 자신들을 의지하며 살고 있었기에 도저히 마을 사람들을 버리고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두 남기로 결정합니다. 그렇게 일치를 이루기까지 불안 속에서 제각각 깊은 고민에 빠졌지만, 각자의 자유로운 식별 과정을 통해 온전한 마음의 일치를 이루게 됩니다. 그 과정은 단순히 그곳에 남을 것인가 아님 떠날 것인가에 관한 문제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겠다는 그들의 성소에 대한 식별이자 그리스도와의 일치였습니다. 착한 목자는 양떼를 버리지 않고, 새들이 떠나도 나무는 그 자리를 지키듯.
누구보다 고민 했지만 기도에 대한 응답을 듣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던 크리스토프 수사의 변모도 아름답습니다.
‘마지막 만찬’ 장면은 아릿한 감동을 전해줬습니다. 반군들의 침입이 있고 난 뒤 불안과 긴장 속에서 지내던 수사들이 제각각 고통스런 식별과정을 거친 후 모두 남기로 결정하고 마주한 저녁식사 장면입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검소한 저녁 식탁에 뤽 수사가 감추어두었던 포도주 두 병을 내어놓고는 카세트에 테이프를 끼워 넣습니다. 침묵 속에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가 울려 퍼집니다.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소박하지만 아주 특별한 만찬이 시작됩니다. 포도주를 마시며 수도원 형제들은 침묵 속에 저마다 깊은 생각에 빠져듭니다. 이제는 더 이상 고통도 갈등도 혼란도 없는 듯 환한 미소를 짓기도 하고, 눈물을 글썽이기도 하고, 옆에 앉은 형제의 어깨를 토닥이기도 하면서 내적 평화와 서로간의 깊은 일치를 보여줍니다. 실로 아름답고 감동적인 장면이었습니다.
마지막 만찬을 나눈 후 침대에 든 그날 한 밤중에 20여명의 무장 괴한들이 수도원에 침입하여 일곱 명의 수사들을 납치했고, 두 달 뒤 메데아의 한적한 길가에서 그들의 수급만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장 피에르 수사와 아메데 수사만 살아남았고 이 두 분에 의해 이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1991년부터 시작된 알제리 정부와 반정부 이슬람 단체 사이의 무력충돌로 시작된 알제리 내전은 무고한 언론인과 외국인은 물론 민간인들에 이르기까지 약 20만 명이 넘는 목숨을 앗아간 참혹한 전쟁이었습니다. 영화의 배경인 1996년은 양 측의 대립이 최고조에 다다른 때로, 무차별적인 테러와 폭력의 남무로 인해 누가 언데 어디서 목숨을 잃을지 알 수 없는 긴장과 불안이 팽배해져 있었고 사건은 바로 그 때 일어났습니다.
그들이 마지막 죽음의 골짜기로 걸어가는 모습은 묵상에 빠지게 했습니다. 수사들은 서로 서로를 부축하면서 묵묵히 죽음의 골짜기를 향해 걸어갑니다. 크리스타앙 수사는 가장 연로한 뤽 수사를 부축하며 걸었습니다. 테러리스트도, 군대도, 죽음도 두렵지 않다던 자유인인 뤽 수사는 이제 진리이신 그분께로 걸어갑니다. 진리가 그를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 눈보라 속으로 희미해져가는 그들의 모습에 가슴 먹먹했지만 그 희미함 속에서 밝게 빛나는 한 줄기 빛을 느꼈습니다. 눈보라 속에서 점점 희미해지던 수사들의 모습은 이제 눈보라 속에 묻혀버리고 크리스티앙 수사가 남긴 편지로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나에게 그 일이 일어난다면, 이미 알제리에 있는 모든 외국인들을 겨냥하고 있는 듯이 보이는 테러리즘의 희생자가 된다면, “나의 생명은 하느님과 이 땅에 바쳐졌다’는 것을 나의 공동체, 나의 교회, 나의 가족은 기억해 주길 바랍니다.
크리스티앙 수사는 자신들은 특별한 순교자가 아니며, 이름도 없고 관심도 없이 죽어간 수많은 이들의 무참한 죽음과 결부되어 있음을 알아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들의 생명이 다른 평범한 이들의 생명보다 더 가치 잇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덜 가치 있는 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들이 ‘순교의 은총’에 참여하게 된다 할지라도 이 죽음의 책임을 알제리인들에게 지우지 말 것도 당부합니다. 그의 깊은 내면의 목소리에 절로 존경의 두 손을 모드게 됩니다.
영화는 다음의 성가로 막을 내립니다.
이제 밤이 내리네.
탄생의 위대한 밤이
사랑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라
스스로 드러내는 사랑뿐이네
모래와 물을 갈라놓으심으로
한낮에 거하실 이 땅을
하느님은 요람처럼 마련해 주셨네
밤이 내렸다네
팔레스타인의 행복한 밤이
아기 예수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라
아기 예수의 성스러운 생명뿐이네.
¶ 영화 <야곱 신부의 편지>
<신과 인간>의 감동이 기억에서 사라질 무렵 또다시 좋은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야곱의 신부>라는 제목의 영화인데, 어떤 내용의 영화인지도 모르면서 ‘신부’와 ‘편지’라는 두 단어에 혹해서 보게 되었습니다. ‘신부’는 저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단어이니 제쳐두더라도 ‘편지’는 아날로그 세대인 제게는 아주 친숙한 단어입니다. 전자메일이라고 해서 마음이 담기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빠르고 간편한 전자우편 보다는 한자 한자 손으로 눌러 쓴 편지가 왠지 마음을 더 잘 담아낼 것 같은데, 요즘은 자꾸 편한 것에 익숙해지니 손으로 쓰는 편지는 점점 추억이 되고 있습니다.
영화는 교도소에서 교도상담자와 한 죄수의 대화로 시작됩니다. 투박스럽고 무표정하고 상당히 위협적인 겉모습의 여성이 나오더군요. 그녀의 이름은 레일라 스텐. 살인범으로 무기징역수 입니다. 이제 그녀는 예상치 못한 사면을 받게 되어 곧 출소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출소를 해도 달리 갈 곳이 없어 할 수 없이 교도상담자의 제안에 따라 야곱 신부의 사제관을 찾아가게 됩니다.
레일라가 찾아간 성당은 숲에서 조금 떨어진, 바닷가에서 가까운 소박한 곳입니다. 하지만 숲 속의 사제관은 낡고 음울해 보여 마치 무허가 창고 같습니다. 그러나 사제관 안을 들여다보면 포근한 불빛과 보글보글 끓고 있는 물주전자가 있어 신부의 따뜻한 내면을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사제관으로 이어지는 숲길은 향수 같은 친밀감을 불러일으킵니다. 가로수 사이로 자전거를 타고 오는 우체부. 그가 야곱 신부를 부르며 편지가 왔다고 외치는 소리는 잠든 영혼을 깨우는 달콤한 울림입니다.
당신을 찾아 온 레일라의 찻잔에 물을 따라주고 당신 옆에 앉도록 배려하는 신부와 신부에게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신부의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보던 레일라의 표정이 묘한 대비를 이룹니다. 정말 앞이 보이나 안 보이나 빵칼을 들고 신부 눈앞에 대 보던 장면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10년이 넘게 감옥에 있었던 그녀가 세상 밖으로 나와서 처음 하게 된 일은 앞을 볼 수 없는 야곱 신부의 조수가 되어 야곱 신부에게 온 펴지를 읽어주고 신부가 불러주는 대로 답장을 써주는 일입니다. 정말 쉬운 일인 것 같은데 그녀는 시종일관 귀찮다는 표정입니다. 왜 이런 일을 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는 뚱한 얼굴입니다. 진지한 고민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지만 뭐 이런 것까지 편지를 써서 보내나 싶을 만큼 사소한 것들도 있었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레일라가 편지를 읽어주면 야곱 신부는 편지 내용에 가장 적절한 성경구절을 찾아서 답장을 해 줍니다. 답장을 보낼 주소가 없을 때에는 그들을 위해 진심 어린 기도를 답장 대신 해 줍니다. 그녀는 신부가 답장에 서명할 때 그녀의 이름도 함께 적으려고 하자 불같이 화를 냅니다. 어떤 때는 편지를 읽는 것이 귀찮아서 편지를 슬쩍 우물에 버리기도 합니다.
편지를 보낸 사람들은 자신의 짐을 누군가가 덜어주기를 바랍니다. 야곱 신부는 편지를 읽고 답장을 해 주는 일이 바로 하느님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야곱 신부는 레일라에게 이렇게 들려줍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을 위해 기도해주길 바라고 우리는 그들을 하느님께 다가가게 하지요. 하느님의 자녀들 중에 어느 누구도 쓸모 없는 사람들은 없고, 또 그들이 누군가에게 아주 잊혀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느끼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이제 더 이상 편지가 오지 않게 되자 야곱 신부는 자기가 하던 일이 결국은 앞이 보이지 않고 다른 일을 할 수 없는 당신을 위한 하느님의 배려였다고 토로합니다. 늙고 병들고 외로운 신부에게는 마음의 짐을 나누는 펴지가 바로 당신의 외로움을 위로하고 그 외로움을 더는 통로였다고 깨닫습니다.
“나는 이 일을 하느님을 위해 하는 거라 생각했어요. 가지만 그 반대였나 봐요. 나 자신을 위한 일이었나 봅니다.”
한편 우편배달부는 살인범에다 무기징역수인 레일라에게 경멸의 눈빛을 보냅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그는 신부가 레일라를 조수로 받아들인 것이 못마땅합니다. 레일라와 우편배달부의 미묘한 신경전은 세상에 대한 적개심으로 마음의 문을 걸어 닫은 그녀의 마음에 대한 상징성입니다.
여전히 귀찮은 일을 하고 있던 나날이지만 그날도 레일라는 펴지를 기다리느라 대문 앞에 서 있고, 숲길을 달려오던 우편배달부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놀라서 샛길로 빠집니다. 처음에는 그녀가 무서워서 도망가는 줄 알았는데 더 이상 신부에게 편지가 오지 않아서였습니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레일라가 신부의 옆자리에 앉아서 차를 마신다는 사실입니다. 마음의 문이 조금씩 열리고 있나 봅니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편지가 배달되지 않자 야곱 신부는 급격히 노쇠해 갑니다. 레일라가 편지가 없다고 무뚝뚝하게 말할 때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는 신부의 얼굴은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편지가 당신 존재 이유였는데 이제 그것이 없으니까 다른 환상을 보게 됩니다.
비는 내리고 적막이 감도는 성당에서 야곱 신부는 혼자 미사를 드린 후 제대 앞에 쓰러지듯 눕습니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빗방울만이 정적을 깹니다. 더 이상 마음의 짐을 나누는 사람도 없고, 혼배성사나 세례식도 부탁하지 않습니다. 늘고 병들고 앞이 보이지 않아 쓸모 없어져 버린 당신의 모습에 괴로워하며 성당 제대 앞에 누워 있는 야곱 신부의 모습이 어쩌면 훗날 제 모습일 수도 있겠다 싶어 그 잔상이 쉽게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야곱 신부는 레일라에게 집으로 데려달라고 부탁하지만 그녀는 신부를 혼자 남겨두고 사제관으로 돌아와 짐을 챙겨 택시를 부릅니다. 레일라는 약해진 신부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이 보였기에 도망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택시가 왔지만 그녀는 떠나지 못합니다. 다른 곳으로 도망치고 싶어도 갈 곳이 없었습니다. 자신을 바라보는 세상 사람들의 시선 앞에 당당해질 용기가 아직은 없었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삶의 의미가 주어집니다. 바로 야곱 신부에게 다시 존재 이유를 찾아주는 것입니다. 약해진 신부를 다시 일으킬 수 잇는 방법은 편지뿐이라고 생각하고는 우편배달부를 찾아갑니다. 편지를 읽어주고 답장 쓰는 일이 귀찮아서 우물에 버렸던 편지까지 다시 건져내려고 애씁니다.
우편배달부는 레일라의 부탁대로 편지가 왔다고 소리치고, 신부는 편지가 왔다는 소리에 후줄근한 내복 차림에 맨발로 나옵니다. 늘 정갈하게 사제복을 갖춰 입었던 신부였는데…. 정말 편지가 반가워서 맨발로 달려 나온 것인지 아니면 모든 것을 내려놓아서 온전히 자유로워진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 모습에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우편배달부가 가지고 온 것은 편지가 아닌 잡지였습니다. 하지만 레일라는 펴지가 왔고, 읽어주겠다고 신부를 숲 속 의자에 앉게 합니다. 레일라는 편지가 온 것처럼 연기합니다. 봉투 대신 잡지의 한 쪽을 찢고는 우리 집 개가 없어졌다면 편지의 내용을 지어냅니다. 신부가 주소가 있냐고 묻자 주소가 없다고 대답합니다. 야곱 신부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그냥 미소를 짓더니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다급해진 레일라는 편지가 또 있다면 신부를 붙듭니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녀의 마음속에 갇혀 있던 상처가 10여 년 만에 세상에 나오는 순간입니다.
언니를 폭행하던 형부를 충동적으로 살해하게 되어 자신이 언니의 삶을 망쳤다는 생각에 언니와도 일체의 연락을 끊고 완전히 세상과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레일라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신부에게 그녀는 “용서 받을 수 있을까요?” 하고 묻습니다. 신부는 대답 대신 보여 줄 것이 있다며 집안에서 편지 묶음을 들과 나와 그녀에게 내놓습니다. 레일라는 그 편지를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되자 흐르는 눈물을 멈추지 못합니다. 그런 그녀에게 신부는 편지를 천천히 다 읽고 들어오라고 다독여 줍니다. 당신은 집에 가서 차와 그녀가 마실 커피를 준비하고 있겠다며 진흙 속을 걸어갑니다. 진흙 속을 걸어가는 신부의 맨발이 어떤 상징처럼 느껴집니다.
레일라는 편지를 다 읽고 편지 묶음을 가슴에 품고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사제관 안은 정적만 감돌았습니다. 바닥에 떨어진 찻잔 조각 너머 신부의 쓰러진 아니 하느님 품에 안긴 주검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레일라가 용서를 받고 구원을 얻을 때 비로소 신부도 해방이 된 것 같아 저는 슬픔 대신 오히려 자유를 느꼈습니다. 서로 너무 닮아 보였던, 서로에게 가장 솔직했던 두 사람.
야곱 신부는 숨을 멈추기 전까지 한 사람의 찢기는 가슴을 달래주었습니다. 그로 인해 레일라는 자신이 용서받을 수 있고 사랑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녀는 돌아갈 곳이 생겼습니다.
신부의 주검을 실은 영구차가 떠나고 레일라도 가방을 들고 텅 빈 사제관을 나옵니다. 처음 사제관을 찾아올 때의 무표정한 얼굴대신 한결 편안해진 얼굴입니다. 아마도 손에 들린 편지봉투에 적힌 주소로 찾아갈 것입니다. 그녀는 비록 사제관을 떠나지만 그녀의 가슴속에는 야곱 신부가 항상 함께 머물고 있겠지요. 신부에게서 용서를 받고, 구언을 받고, 위로를 받았으니 그 시간들을 소중히 기억하며 씩씩하게 잘 살아갈 것입니다.
<야곱 신부의 편지>는 영화 <신과 인간> 이후 다시 한 번 신부로서의 저의 정체성을 되돌아보게 하는, 짧지만 아주 긴 여운을 주는 영화였습니다.
그림이나 사진이 여백을 통해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듯 이 영화는 여백의 미가 돋보입니다. 나뭇가지 흔들리는 모습과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 등은 여백이 아름다운 수채화를 감상하는 듯 했고 멀리서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처럼 잔잔한 배경 음악에 평온함을 느꼈습니다.
지금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생각된다면, 절절한 외로움에 서럽다면 부다 자신만의 ‘야곱 신부’를 만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용서를 받고 격려를 받고 위로를 받아 구원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미약하나마 사랑의 마음을 담아 외롭고 서러운 이들에게 위로를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 울지마, 톤즈
영화 <울지마 톤즈>를 보았습니다. 내내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지금도 영화 생각을 하니 다시 눈물이 납니다. ‘울지마 톤즈’를 보기 전에도 이미 고 이태석 신부에 대한 영상을 TV에서 여러 번 보았고 선종한 직후에 그의 묘지에서 미사도 드렸습니다. 그러니 영화의 내용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 왜 그토록 울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수단의 아이들처럼 그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으로 울었던 것도 아닙니다. 아마도 그 까닭은 제가 인간이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아름다운 사람을 보면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것은 인간이 하느님께 받은 축복입니다.
저는 <울지마 톤즈> 라는 제목이 역설처럼 들렸습니다. 이태석 신부를 잃은 톤즈 사람들에게 어떻게 ‘울지마’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차라리 ‘울어라’ 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독한 슬픔 앞에 차라리 실컷 울어야 위안이 되지 않겠습니까?
케냐에서 사목하는 다른 살레시오회 신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곳 사람들은 원래 잘 울지 않는다고 합니다. 서양 사람들은 잘 울지만 그곳 사람들은 여간 해서는 울지 않는데 이 신부의 죽음 앞에 눈물 흘리는 것을 보면서 이 신부가 이들과 얼마나 깊은 사랑을 나누었는지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곳에 사는 부족, 딩카족은 오랜 내전으로 눈물이 말라버렸겠지만 원래 강인하고 용맹한 부족이어서 눈물을 큰 수치로 여긴다고 합니다. 여간 해서는 눈물을 보이지 않던 그들이 이태석 신부의 죽음을 알려주는 동영상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립니다. 함께 해 주었던 그분의 따뜻한 사랑을 기억하며 흘리는 눈물이었습니다.
남수단 다른 곳에서 사목하고 있는 살레시오회의 한 신부는 “이제 활동할 날이 많지 않는 자신을 데리고 가시지, 자신을 대신 불러주시면 기쁘게 갈 수 있는데 왜 재능도 많고 할 일도 많은 이태석 신부를 데리고 가시는지 모르겠다.” 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놀랍게도 그것이 하느님의 신비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이 하시는 일은 신비입니다. 이태석 신부가 남수단에서 많은 일을 했지만 이제 우리가 <울지만 톤즈>를 보면서 받게 될 감동에 비하면 오히려 작은 일일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살면서 많은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하느님이 한 사람의 죽음을 통해 더 많은 일을 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울지마 톤즈>를 보고 이태석 신부의 아름다운 삶에 감동을 받아 영적인 변화가 일어난다면 그 일이 더 큰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태석 신부가 어린 시절 한센병 환자를 위해 일생을 바친 다미안 신부의 영화를 보고서 당신의 꿈을 키웠듯이…
이 신부가 한센병 환자들의 뭉그러진 발을 종이에 직접 그리고 케냐로 가서는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맞춤 신발을 만들어 와서 신겨주는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그런 지혜야말로 사랑이 아니면 나올 수 없습니다. 그들은 환자가 아닌 온전히 한 인간으로 맞이하는 마음, 그들에게서 하느님을 발견하는 이 신부의 열린 마음, 저는 그 마음이 부러웠습니다. 그 행동은 단지 의사로서 행하는 치료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예수의 대리자로서의 사랑이었습니다. 한센병 마을의 한 할머니는 이태석 신부를 하느님이 보내주신 ‘거룩한 사람’ 이라고 했습니다. 이 신부는 그렇게 그들 마음에 사랑을 심어 놓고 떠났습니다.
“만약 예수님이라면 이곳에 먼저 성당을 지으실까? 학교를 지으실까?”
이 신부는 고민합니다. 그리고 고민 끝에 학교가 먼저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이해한 분입니다. 아이들에게 먼저 필요한 것은 교육을 통해 사랑을 가르치는 일. 2007년 드디어 수단 남북간의 평화협정으로 20년에 걸친 내전이 끝나자 이 신부는 35인조 ‘브라스밴드’를 만듭니다. 음악은 영혼의 언어입니다. 이 신부는 트럼본 과 트럼펫 등 여러 악기를 손수 가르칩니다. 하느님이 마련하신 일아 아니라면 어찌 그게 가능했겠습니까?
이 신부가 음악을 가르치고 밴드를 만든 일은 정말 감탄할 일입니다. 노래로써 하나가 되는 그들. 음악은 마음을 치유해 주는 영혼의 치료였습니다. 노래와 음악은 오랜 내전으로 고갈된 아이들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었던 한 줄기 빛이었습니다.
톤즈 사람들, 특히 아이들이 그를 추모하며 눈물을 흘리는 것은 그가 남긴 책 제목처럼 진정으로 그들의 멋이 되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신부는 톤즈 사람들을 위해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라는 책을 출판했습니다.
친구, 벗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생각합니다.
¶ ‘우리가 꿈꾸는 기적: 인빅터스’
오늘은 27년간 감옥살이를 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전 대통령 넬슨 만델라 에 관한 영화 <우리가 꿈꾸는 기적: 인빅터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2009년)에 대한 영화 감상을 나누고 싶습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대통령이 된 만델라는 백인과 흑인이 하나가 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꿈꿉니다. 이 영화에서 만델라가 국가대표 럭비팀 주장을 불러 이 시를 읽어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시가 우리에게 영감을 준다고 하면서 그 영감으로 1년 후에 있을 월드컵 대회에서 우승 해 달라는 당신의 심중을 암시합니다. 우승으로 백인과 흑인이 하나 되는 화합의 물고를 터 달라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가능하게 만들어 달라는 주문입니다.
영화 <인빅터스>는 한때 백인들에게 테러리스트로 알려진 흑인 지도자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정치적 기적과 최약팀 이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럭비팀이 월드컵 대회에서 우승하는 두 가지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그렸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우리가 꿈꾸는 기적: 인빅터스>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는데 저는 이 영화에 기적이라는 제목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불굴의 정신, 굴하지 않는 영혼, 시의 영감에서 나오는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신뢰가 기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배우 모건 프리먼이 만델라 역을 맡았습니다. 그 특유의 미소, 그것은 바로 만델라의 상징인데 기막히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것처럼 인종차별정책이 심한 나라였습니다.
영화에서는 다루지 않는 넬슨 만델라에 대해서 간단히 나눕니다. 만델라는 악을 악으로 갚아서는 진정한 승리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위대한 영혼의 소유자입니다. 지난 세월 흑인을 탄압했던 백인들의 잘못에 대한 어떤 조치가 필요했습니다. 그는 진실과 화해 위원회(TRC)를 만들고 그 책임자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성공회 대주교인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를 택합니다.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투투 대주교는 의장으로 활동하면서 가해자가 자신의 잘못을 정직하게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면 민사상 책임을 면제해 주는 방식으로 과거사를 청산해 나갔습니다. 이는 가해자의 심리적인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진상을 정확히 규명하려는 목적이었고, 성공적으로 과거사 청산이 이루어졌습니다. 물론 과거사 청산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는 것도 아니고, 흑백 간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것도 아니지만 잘못을 분명히 짚고 넘어가면서도 응징이 아니라 용서를 선택한 그의 지혜가 놀랍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과거사 청산의 과정이 없었음이 무척 안타깝습니다.
다시 영화로 돌아옵니다.
백인이 주도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차별정책에 맞서 평생을 투쟁해 온 만델라가 흑인으로는 처음으로 대통령에 당선되고, 그는 새로운 시대의 미래상으로 사회 통합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겹겹이 쌓인 흑백 갈등의 골은 너무나 깊었습니다. 오랜 갈등을 끝낼 통합의 길을 모색하던 만델라는 어느 날 자국에서 열릴 예정인 럭비 월드컵 대회에서 실마리를 얻게 됩니다.
만델라는 즉시 남아프리카 공화국 럭비 대표팀의 주장 프랑수아를 초대하여 이야기를 나눕니다. 맷 데이먼이 푸랑수아의 역을 맡았습니다. 시를 통해 영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대통령, 국민 통합을 위해 ‘우승해 달라’는 뜻을 전해 받은 프랑수아는 경기만 나가면 패하는 대표팀의 경기력 향상을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고심합니다. 그는 고심하는 과정에서 만델라가 보여준 용서, 자신을 27년 간 감옥에 가둔 사람들을 용서하는 힘에 대해 놀랍니다. 영감에 빠진 듯한 눈동자의 맷 데이먼의 연기도 돋보입니다.
“도대체 만델라가 누구야” 라고 말하는 백인들과 만델라를 환호하는 흑인으로 인파가 나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한 거리를 보여주며 시작하는 이 영화는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역경에 굴하지 않고 싸워온 사람, 결국 그 역경을 이겨내고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만델라의 모습을 그리는 감독의 시선은 참으로 그 답 습니다. 흑백의 통합을 향한 만델라의 열정, 진정한 리더로서의 강한 면모, 어려운 상황에 대처하여 자기의 소신대로 밀고 나가는 불굴의 정신을 기리면서도 떠나버린 아내의 빈자리, 반항하는 딸의 모습을 통해 그의 외로운 인간적인 모습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모건 프리먼은 손발이 잘 맞는 감독과 배우라는 생각이 듭니다. 모건 프리먼 그 특유의 뒷모습을 통해 대통령 이전의 인간 만델라의 외로움을 잘 그리고 있고, 감독은 특유의 상징적인 장면을 세심하게 다룹니다. 예를 들면 새벽에 일어나 산책을 준비하던 만델라가 텅 빈 침대를 바라보는 모습이라든가 가족에 대해 묻는 백인 경호원의 질문에 그럴 기분이 아니라며 산책을 그만두고 돌아서는 모습에서 인간적인 고뇌와 갈등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대통령 만델라가 아닌 퇴임 후의 인간적인 모습의 만델라를 더 좋아하고 존경합니다. 만델라는 대통령으로 당선은 되었지만 참 쉽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백인들에게는 악명 높은 테러리스트였던 만델라가 대통령이 되었으니 충격이 대단했을 겁니다. 영화는 그 상황을 대통령 취임 첫날에 잘 보여줍니다. 백인 직원들은 보따리를 사고 떠날 채비를 끝내 놓았습니다. 만델라는 이들을 집무실로 불러 말합니다.
“떠나는 것은 여러분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피부색, 언어, 이전 정부와 일했던 경력 때문에 떠나려 한다면 남아주십시오. 저는 여러분들이 필요합니다.”
만델라는 그릇이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당연히 흑인들로 구성될 줄 알았던 경호팀에 과거 정부에서 일했던 백인들을 불러들입니다. 측근들이 항의하자 만델라는 목숨이 달린 경호팀에 흑백이 함께 일하는 모습이 상징적으로 얼마나 중요한지 설득합니다. 경호원은 자신의 생명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주는 사람입니다. 그런 자리에 자기를 미워하는 줄 뻔히 알면서 백인들에게 맡긴다는 것은 보통 영감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흑과 백이 함께 일하는 것은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이루어내야 하는 막중한 일이라는 것을 용기 있게 보여줍니다. 그런 용기를 지닌 사람이 바로 만델라입니다. 억압받던 흑인들은 이제 자기들의 대통령인 만델라가 멋진 복수를 해 주기를 은근히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델라가 꿈 꾼 것은 그런 복수가 아닙니다. 진정한 복수는 바로 용서와 화해라는 것을 알고 있던 만델라는 멋진 사람입니다. 그는 흑백 통합의 무지개 국가 즉 화해의 시대를 엽니다. 그 상징이 바로 경호팀이며 또 하나는 럭비팀입니다.
만델라는 흑백이 하나 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건설하며 ‘희망의 아프리카’를 주도하기 위해 기존의 백인들 위주의 럭비팀인 스프링복스를 절묘하게 이용합니다. 체육부 장관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백인들 위주의 기존 럭비팀을 해체하기로 만장일치로 결정하지만 만델라는 그 결정이 틀렸다고 설득합니다.
만델라가 보여주는 진실은 기존의 상황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함게 함, 통합을 통해서만 새롭게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용서야 말로 하나 되는 일치, 통합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아록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영화에서는 스프링복스의 주장 프랑수아와의 대화에서 이런 정신, 영감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프랑수아는 만델라에게 깊은 인상을 받습니다. 대통령을 만나고 나온 그에게 애인이 어떤 사람이냐고 묻습니다. 그는 이제까지 자기가 만난 사람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대답합니다. 그 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겠지요.
가장 인상 깊었던 두 사람의 대화로 두서없이 쓴 글을 마칩니다.
프랑수아는 정말 궁금하여 만델라에게 묻습니다.
“어떻게 자신을 27년간 가둔 자들을 용서할 수 있습니까?”
만델라가 그의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대답합니다.
“용서는 영혼을 해방시키고 공포를 없애 준다네. 그래서 가장 강력한 무기라네.”
¶ 돼지와 암소
복음서 코헬렛은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그런데 여기에는 전제가 붙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돌보아주시지 않는다면! 우리가 지닌 것을 남들과 나누는 나눔의 기쁨이 없다면!
우리 삶이 허무가 되지 않을 이야기 하나 해 드리겠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어린 시절을 추억하면서 들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 실려 있던 이야기입니다.
두 형제가 있었습니다. 함께 농사를 지어 추수한 곡식을 반으로 나눈 형은 동쪽에 있는 자기 집 창고에, 동생은 서쪽에 있는 자기 집 창고에 쌓아 놓았어요. 형은 결혼을 하여 아내와 자식들이 있었고 동생은 혼자 살았지요. 형이 생각했어요. ‘나는 자식들이 있으니 훗날을 걱정할 필요가 없지만 동생은 혼자이니 훗날을 생각하여 동생에게 더 많은 몫이 돌아가는 것이 마땅하리라.’ 하여 형은 밤중에 몰래 곡식 단을 지고 동생의 창고에 가져다 두었어요. 한편 동생은 ‘나는 혼자이지만 형님은 형수님과 조카들이 있으니 형님에게 더 많은 몫이 돌아가야 공평하리라.’ 그래서 동생도 몰래 자기의 곡식 단을 덜어 형님의 창고에 가져다 놓았어요. 자, 어떻게 되었을까요? 분명히 서로 곡식을 덜어 주었는데도 여전히 창고에는 같은 양이 있었어요. 참 이상하지요?
은은한 달빛이 흐르던 어느 날 밤, 등에 단을 진 형제는 밭 한가운데서 만납니다. 형제는 그제야 곡식이 줄지 않았던 이유를 알게 되었고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습니다.
여기까지가 교과서에 실려 있던 이야기의 줄거리입니다. 그러나 이 야기는 조금 더 이어집니다. 하늘에서 야훼 하느님께서 내려다보시고 계셨지요. 하느님께서 외치십니다. “바로 이곳이다. 여기 나의 성전을 지으리라. 인간 가운데 사랑이 있는 곳, 거기가 내가 머물 나의 성전이 되어야 하리라.”
우리는 어린 시절 이 이야기를 들으며 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습니까? 우리 형제들도 크면 그렇게 하리라고 다짐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 가슴에 손을 얹고 우리 자신들을 돌아봅시다. 우리 형제들이 어떤지를.
복음서를 보면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제 형 더러 저에게 아버지의 유산을 나누어주라고 일러 달라”고 청하자 예수님은 거절하시면서 “어떤 탐욕에도 빠져들지 말라.” 호 하시면 사람이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재산이 생명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들어 말씀해 주십니다.
이 비유에서 부자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나누지 않은 것입니다. 자기만을 생각하고 이웃에게 나누지 않은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지요. 우선 내가 성공하면 그 다음에 나누리라고, 글쎄요….
어느 부자가 한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이상하단 말이야. 내가 죽으면 내 재산을 모두 자선단체에 기부하겠다고 하는데도 왜 사람들은 나를 구두쇠라고 비난하는지 모르겠어.”
친구가 말했습니다.
“글쎄. 내가 돼지와 암소 이야기를 하나 해 주겠네. 어느 날 돼지가 암소에게 자신은 왜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는지 모르겠다고 불평을 털어 놓았다네.”
돼지가 말했어.
“사람들은 항상 암소의 부드럽고 온순함을 칭찬하지. 물론 너는 사람들에게 우유를 제공해 주는 것을 알아. 하지만 사실 내가 사람들에게 더 많은 것을 제공한다고. 베이컨과 햄, 털까지 제공하고 심지어는 발까지 주는데도 사람들이 날 좋아하지 않아. 도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암소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지.
“글쎄. 그건 아마 나는 살아 있을 때 유익한 것을 제공하기 때문일 거야”.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이거늘 살아 있을 때 왜 지닌 것을 나누어 다른 사람의 가슴뿐만 아니라 자기의 가슴을 따뜻하게 덥히지 않는지요?
장자가 너무 가난하여 그날 먹을 쌀이 없어 위나라 문후를 찾아가 사정 이야기를 하고 쌀을 꾸어 달라고 하지 문후가 말했습니다.
“좋소. 금년 가을 세금이 걷히면 그때 황금 삼백 근을 꾸어 주리다.”
장자가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제가 여기로 오는 도중에 어디선가 저를 부르는 소리가 나서 돌아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수레바퀴 때문에 움푹 파인 진흙창에서 붕어 한 마리가 저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붕어야, 왜 나를 불렀느냐?”
붕어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몇 되의 물로 나를 살려주시지 않겠습니까?”
제가 말했지요.
“내가 오나라 국왕을 만나 양자강 물을 범람시켜 너를 구해 주마.”
그러자 붕어가 버럭 성을 내며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 몇 되의 물이 없어 목숨을 부지할 수 없는 형편이오. 몇 되의 물만 있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데 당신은 그런 말씀을 하시는구려. 그렇다면 차라리 나를 건어물 점에서 찾는 것이 좋을 것이오.”
나눔은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 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것을 나누지 못하는 사람이 훗날 커다란 것을 나누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로마의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재화는 마치 바닷물과 같다. 마시면 마실수록 더 목이 탄다.”
지니면 지닐수록 더 지니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그 마음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들려주시는 비유에서 어리석은 부자가 지니고 있는 둘째 문제는 그가 이 세상 너머의, 죽음 이후의 다가올 나라에 대한 혜안을 지니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말합니다.
“영혼아, 많은 재산을 쌓아 놓았으니 몇 년은 걱정할 것 없다. 실컷 먹고 마시고 즐기자.” 그러나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 네 영혼이 너에게서 떠나가리라.”
우리의 생명은 온전히 하느님의 것, 온전히 하느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부자는 그것을 알지 못한 것이지요. 썩어 없어질 재화를 창고에 쌓아 놓고 안심할 것이 아니라 썩지 않을 재화를 하늘에 쌓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도 이 어리석은 부자처럼 되지 않기 위해 오늘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시선을 돌려 주변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우리의 형제, 이웃에게 지닌 것을 나누어야 합니다.
¶ 용서와 화해는 가능한가?
여러분, 용서가 참 쉽지요. 아니라고요? 왜 안 쉬워요. 그냥 하면 되지 않나요? 그게 잘 안 된다고요?
그렇습니다. 저는 투투 대주교라는 분의 용서와 화해에 대한 이해를 여러분들과 나누면서 참 쉽지 않지만 그래도 어떻게 용서가 가능한 지를 보고 싶어요.
투투 대주교라고 들어 보셨어요? 넬슨 만델라는 누구인지 아시지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대통령을 하신 분이지요. 투투 대주교님은 성공회 대주교님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흑인과 백인 사이의 화해를 이루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신 분이에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흑인인 만델라가 정권을 잡았지만 그 정권은 흑인들을 못 살게 굴었던 백인들에게 복수하지 않고 용서와 화해를 이루어냈어요. 이 놀라운 일을 하는데 투투 대주교님이 가장 큰 역할을 하셨어요. 그러니까 투투 대주교님은 개인뿐만 아니라 공동체 또는 사회적인 가해에 대해서도 이렇게 용서와 화해가 가능한지를 보여주셨어요. 투투 대주교님의 체험을 바탕으로 용서와 화해에 대한 의미를 이해하고자 잠시 제가 투투 대주교님이 되어 말씀 드릴게요.
여러분, 만나서 반가워요. 저는 투투라고 해요. 저는 용서와 화해는 관계 회복의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관계가 깨어졌고 다시 회복되기 불가능해 볼일 때, 가해자는 그 사실을 인정하고 진정으로 용서를 청할 마음을 지니는 것이 용서의 과정에서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쉽지 않습니다. 잘못했다고 인정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우리는 잘 압니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끔찍한 일이나 행위를 저지른 사람들이나 공동체나 사회가 자기들이 그런 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닙니다. 대개 그들은 그런 일이 일어난 적이 없다고 하는 부정의 양식을 택하게 됩니다. 가까운 예로 일부 독일인들은 나치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모른다고 말합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백인들도 같은 식으로 무지를 주장하면서 그 무지에서 도피처를 구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인정을 했고, 우리는 용서와 화해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남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의 죄스러움과 약함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용서와 치유의 과정이 시작되기 위해서는 우선 가해자가 사실에 대한 인식과 인정이 요구됩니다. 관계가 깨어진 그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부부에게 불화가 생겼는데, 남편이 잘못했다는 사과 대신에 한 바구니의 꽃을 들고 와서 아내에게 주었다면 겉으로는 평온을 되찾은 것처럼 보이겠지요.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당장 일어날 수 있는 다툼이 두려워서 진실을 직시하는 것을 피했기 때문에 상처의 골이 더 깊어집니다. 이것이 예언자 예레미야가 경고한 것이지요.
“그들은 내 백성의 상처를 대수롭지 않게 다루면서 평화가 없는데도 ‘평화롭다, 평화롭다!’ 하고 말한다.” (예레 6, 14)
아름다운 꽃바구니는 곧 시들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갈라진 틈을 종이로 붙여 메꾸는 격입니다. 어느 날 종이가 벗겨지고 다시 메꾸기에는 틈이 너무 많이 벌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너무 싼값으로 화해를 얻으려고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진정한 화해는 결코 싼값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도 인간과 화해하기 위해서 당신의 외아들을 죽음에 부치셔야 했습니다.
용서와 화해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일어난 일어 없었던 것처럼 덮어두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화해란 돌이키기조차 끔찍했던 일, 고통과 진실을 드러나게 해 줍니다. 그러기에 거기 위험이 따르지만 종국에는 가치 있는 일임이 드러나게 됩니다. 결국 상황을 진실하게 다룰 때만이 진정한 용서와 화해, 그리고 치유가 일어납니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그의 잘못을 인정하는 지점에 도달해서야 비로소 후회와 자책과 통회의 가능성이 열리는 것입니다. 나아가 자기가 행한 행위에 대해 고백하고 용서를 청하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명백하게 자기를 비우는 겸손이 요구됩니다. 특별히 희생자가 경멸을 당했던 공동체일 경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정부 당국이 가해자였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우리는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함으로써 화해와 치유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믿었고 참으로 경이로운 용서의 과정을 목격하면서 감사를 드렸습니다.
용서를 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에게 고통과 상처를 받았던 사실을 잊으라고 요구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용서란 일어났던 일 자체를 눈감아 주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그것을 진지하게 다루면서 축소시키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용서란 감상적인 것이 아니라 성장의 체험인 것입니다.
여러분, 투투 대주교님이 용서가 아무런 노력 없이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싼값에 얻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하느님께서도 인간과 화해를 이루시기 위해서 당신 외아들을 죽음에 부치셔야 했다는 말씀을 들으며 어떤 느낌이 드세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일곱 번 뿐만 아니라 일흔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시면서 조건 없이 용서를 베풀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언뜻 들으면 투투 대주교님은 용서의 과정에는 반드시 전제조건으로 가해자의 회개와 잘못의 고백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알아듣게 되니까 예수님 말씀과는 좀 다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요? 다시 투투 주교님께 물어 볼까요?
저 투투가 분명히 말씀 드리지요. 제가 가해자의 고백과 용서 청함이 없이는 용서가 일어날 수 없다고 말씀 드린 것은 아닙니다. 다만 가해자의 진정한 회개와 잘못의 고백이 용서의 과정에 얼마나 중요하지를 말씀 드린 것입니다. 회개와 고백이 없어도 용서가 가능한 것임을 예수님이 보여주셨지요. 예수님은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들이 용서 청하기를 기다리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못을 박는 그 순간에 이미 그들을 용서해 주시도록 아버지께 기도 드리셨고, 심지어는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이 무슨 일인지 모르고 한다고 아버지 앞에서 변호해주셨습니다.
용서의 행동 안에서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표명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 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우리는 일곱 번씩 일흔 번, 다시 말해서 제한 없이 용서를 베풀어야 합니다. 이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용서와 화해의 과정을 통해 참으로 관계가 새로워짐을 체험합니다.
저는 많은 사람들이 용서한 후에 진정한 해방감을 느꼈다는 체험을 나누는 것을 들었습니다. 용서란 과거의 사건을 다루는 일처럼 보이지만 실은 미래를 위한 행위입니다. 용서 없이는 새로운 미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정말 투투 대주교님, 멋있는 분이시지요? 헨리 나우엔 신부님은 ‘상처 받은 치유자’라는 말을 했어요. 상처 받은 사람이 그 상처 받는 경험을 했기 때문에 더 좋은 치유자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상처 받은 치유자의 역할을 하시면서 대주교님께서 보여주신 용서를 통한 화해와 일치에의 노력은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어요. 그래서 그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시기도 했지요. 상을 받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분의 흑인과 백인 사이의 용서와 화해를 위한 행동이 인권과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안겨주었다는 것이 중요해요. 바로 오늘 우리가 남북통일 기원 미사를 드리면서 희망을 갖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서로 잘못한 것만 지적하면 절대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지요. 지금 현 상황에서 남과 북이 서로 용서와 화해를 이루고 평화 통일을 하는 것이 별로 희망이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희망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격이 안 맞는다는 등의 형식에 매이지 말고 진정 대화를 하고자 하는 노력과 진정성을 보일 때, 서로 용서와 화해는 이루어집니다. 물론 쉽지 않지요. 그래도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가능한 일입니다.
¶ 독수리의 날개로 날아올라야 하리라
그분께서 네 한평생을 복으로 채워 주시어 네 젊음이 독수리처럼 새로워지는구나. (시편 103, 5)
시편은 우리에게 우리의 젊음이 새로워진다고 들려줍니다. 영적으로 젊으면 나이가 들어도 젊어 보입니다. 왜 ‘독수리처럼’ 이라고 비유했을까요?
독수리는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날개 길이가 대략 70~100cm 나 됩니다. 겨울 동안 수컷의 깃은 뒷목과 정수리의 피부가 드러나 있고 이마, 머리꼭대기, 눈 앞, 뺨, 턱 밑, 앞 목 부분은 짧은 갈색 털이 빽빽하게 나 있습니다. 뒷목과 닿는 부분에는 목테 모양 솜털이 있으며 머리에는 회색 솜털이 있습니다. 몸통 깃은 어두운 갈색이고 부리는 검은 갈색, 다리는 회색, 홍채는 흰색이며 부리와 발톱이 아주 날카롭습니다. 여름 깃은 온몸이 엷은 갈색을 띱니다. 그 아름다운 깃털이 있는 날개를 펴고 나는 모습은 아름답습니다.
독수리는 여러 가지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첫째, 다른 어떤 새보다도 높이 날 수 있고, 3~4 Km나 되는 거리에서도 먹잇감을 집중하여 볼 수 있는 놀라운 시력을 지녔습니다. 그가 먹잇감을 발견하면 아주 정확히 그 표적을 향해 날아가 먹잇감을 낚아챕니다. 이렇게 독수리는 예리한 시력, 멀리 볼 수 있는 눈을 가졌기 때문에 늘 높은 곳으로 날아 올라가서 사방을 바라봅니다.
둘째, 독수리는 언제나 신선한 먹이만 먹고 절대 죽은 것은 먹지 않습니다. 다른 맹금류들은 죽은 것도 먹지만 독수리는 다릅니다. 늘 신선한 살아있는 생물만 먹습니다.
셋째, 독수리의 체온은 뜨겁습니다. 독수리는 아주 높은 위치에 집을 짓고 살기 때문에 체온이 뜨겁지 않으면 살지 못합니다.
넷째, 독수리의 날개는 커서 빠르고 힘 있게 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유연하게 날 수 있습니다. 강한 바람이 불면 다른 새들은 둥지나 나뭇잎 사이로 몸을 숨기지만 독수리는 오히려 강한 바람을 즐깁니다. 독수리는 잠시 스스로의 날개 짓을 쉬고 바람의 방향을 이용하여 높이 솟아오릅니다.
다섯째, 독수리는 늘 스스로 훈련을 하고 새끼들을 훈련시킵니다. 새끼들을 훈련시키는 방법은 높은 둥지에서 새끼를 떨어뜨린 후 스스로 날 수 있게 합니다. 아직 새끼가 날 수 없으면 그때는 자신의 날개를 펴서 받아 올립니다. 새끼들은 이런 강도 높은 훈련을 통해 최고로 높이 날아오르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여섯째, 독수리는 다시 새롭게 태어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특성입니다. 다른 특성들도 본받을 만하지만 바로 이 특성에 대해 나누고 싶습니다.
독수리는 보통 60~70년을 삽니다. 수명이 긴 편이지요. 그런데 35년에서 40년이 되면 몸에 노화현상이 시작됩니다. 부리가 앞으로 굽어 안으로 자라기 시작하고 발톱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털이 많이 나게 됩니다. 그냥 그대로 두면 몇 년 지나지 않아 죽게 됩니다. 왜냐하면 부리를 통해 음식물을 섭취해야 하고 발톱으로 먹이를 낚아채야 하는데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털이 많이 나면 몸이 무거워져서 날아오르지도 못합니다. 이런 노화현상이 왔을 때 서서히 죽어 갑니다. 그러나 또 다른 독수리들은 바위산으로 갑니다. 거기서 부리를 바위에 비벼서 자릅니다. 발톱도 바위에 긁으면서 갈아서 자릅니다. 그렇게 부리와 발톱을 뽑아내는 겁니다. 부리가 빠지면 새 부리가 나옵니다. 마치 유치가 빠지면 새 이가 나는 것과 같습니다. 유치는 이를 잘 닦지 않아 썩었어도 새 이가 나오는 기회가 한 번 더 있는 것처럼 독수리에게도 한 번의 기회가 더 있습니다. 새 부리가 나오면 그 부리로 불필요한 깃털을 뽑아냅니다. 그렇게 뼈를 깎는 고통의 시간을 5개월 정도 보내고 나면 다시 젊음과 힘을 되찾게 됩니다. 그러면 다시 큰 날개로 하늘로 날아오르게 됩니다. 이것이 독수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성경에서 독수리의 이미지는 이런 배경을 두고 있습니다.
우리 삶에서도 독수리의 부리나 발톱처럼 많은 것들이 굽어 있습니다. 또한 많은 깃털이 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삶이 점점 무겁고 힘들어집니다. 우리가 지은 죄가 삶을 무겁게 합니다. 예전에는 우리 삶에 좋은 것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우리가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음식을 먹고 싶어도 식욕이 없어졌습니다. 잠을 자고 싶어도 불면증에 걸렸습니다. 술을 마시고 싶어도 당뇨병에 걸려 마실 수도 없습니다. 우리 삶에서 조절 능력을 잃어버렸습니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 부리는 안으로 굽어져 있고, 발톱은 먹이를 낚아챌 수 없습니다. 이직도 마음은 젊은 것 같은데 노화현상을 경험합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희망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독수리에게 바위산에서 자기의 부리를 비벼서 문지르며 깎아내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때로는 피가 흐르기도 합니다. 왜 그런 고통스러운 일을 합니까? 바로 미래의 비전을 보기 때문입니다. 미래의 더 나은 삶을 위해서입니다. 우리도 죄스러운 삶에서 빠져 나와야 합니다. 독수리가 더 살고 싶은 원의, 미래의 비전을 보고 부리를 바위에 비비며 깎아내듯이 우리도 삶의 의미를 되찾고자 하는 원의 를 지니면서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것이 당장 당장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이며 너무나 고통스럽지만 나중에는 평화와 의로움의 열매를 가져다 줍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 독수리가 다시 힘차게 하늘로 날아오르듯이 우리의 맥 풀린 손과 힘 빠진 무릎을 바로 세우고 당당히 걸을 수 있습니다.
늘 새로워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니코테모에게 하신 “새로 나야 한다.” 는 말씀을 새겨들어야 합니다. 독수리의 특징, 그 중에서도 다시 젊음을 되찾는 특징을 꼭 마음에 새기십시오. 낡은 부리와 발톱을 바위산에 가서 비비고 문질러서 뽑아 버리십시오. 그분이 새 부리와 발톱을 주실 것입니다. 새 부리로 불필요한 많은 깃털을 뽑아 버리십시오. 그리고 가볍게 유연하게 하늘로 날아오르십시오.
¶ 휴식의 진정한 의미
저는 지금 잠시 쉼의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월요일 새벽, 제주도에 와서 하루 피정 지도를 해 주었습니다. 피정 장소가 남읍리 다래산장이었는데 나무가 아주 많은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하루를 지내고 어제 화요일에는 이곳 제주 강정 마을에 있는 예수회 공동체에 들러 고생하는 형제들 만나 미사를 함께 드리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비가 쏟아지는 길거리 미사. 미사 중에도 100명이 넘게 둘러싼 경찰들에 의해 들려 나가는, 공사장 앞에서 연좌해 미사 드리던 세 신부와 여러 활동가들을 바로 보며 그 앞에 앉지 않고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혹자는 왜 길거리 미사를 하는가? 라는 물음을 던집니다. 이에 대해 강우일 주교님이 부활 대축일 미사에서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오늘 예수님이 이곳 제주에 와서 미사를 참례하신다면, 주교좌 성당인 중앙성당의 이 미사에 오시겠느냐 아니면 강정 마을의 길거리 마사에 오시겠느냐고. 당신은 분명히 예수님께서는 강정 마을의 길거리 미사에 가실 거라고 믿는다고 하셨습니다. 저도 그렇게 믿습니다.
오늘부터 저는 교래라는 마을에서 나무가 무성한 어느 집을 빌려 쉼, 휴식의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잠시 일을 놓고 저 자신을 돌아보기 위함입니다. 편의 시설이 거의 없느 작은 집인데 아주 마음에 듭니다.
한자어, 휴식(休息)이라는 말의 의미를 새겨봅니다. 누군가의 뜻풀이를 보면서 아, 그렇구나, 휴식(休息)이 바로 피정과 같은 의미로구나 하며 감탄을 한 적이 있습니다. 피정은 영어로 retreat라고 하지요. retreat의 원래의 의미는 후퇴입니다. 그러니 피정은 일상 삶에서 조금 후퇴하여 자신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휴식이라는 한자어에는 영어 retreat, 피정의 의미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휴식(休息). 쉴 휴자에 숨 쉴 식자입니다. 그런데 글자를 가만히 바라보면 거기 깊은 의미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휴(休)는 사람(人)이 나무(木)에 기대어 있는 모양새입니다. 그리고 식(息)은 쉼 쉴 식자인데 바로 마음(心)위에 자신(自)을 가만히 올려놓은 모습니다. 그러니 휴식(休息)이란 말의 뜻은 우리가 바라보는 그 모양새를 그대로 읽으면 됩니다. 휴식은 나무에 기대어 혹은 나무 옆에 앉거나 서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저는 휴식의 식자가 숨 쉴 식자라는 것에 어떤 느낌이 왔고, 거기 마음이 와 닿아 잠시 머물게 되었습니다. 식(息)에서 스스로 자(自)는 원래 코를 나타내는 상형문자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코로 쉼을 쉬니까 코에 생명이 있다고 본 것이지요. 가만히 쉼을 쉬면 거기 휴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가만히 숨을 쉬면, 숨을 쉬면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숨을 쉴 때, 스스로 존재하는 사진이 되는 것입니다.
¶ 돌아가리라
우리는 오늘 미정이 어머님, 한영이 막달레나의 영혼을 하느님의 품에 맡겨 드리면서 세상에서의 마지막 작별을 고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작별은 늘 슬픔과 고통을 동반합니다. 미정이 어머님은 오랜 투병 중에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는데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어 돌아가셨습니다. 가족들과 친지들, 지인들의 충격이 얼마나 컸을까요.
저는 상록수 공동체에 미사를 드리면서도 제대로 병문안 한 번 못 간 것이 미안하고 마음 아픕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무엇보다, 미정이를 위해 기도합니다. 미정이 어머님은 참 다르고 선하신 분이었습니다. 딸 미정이가 엄마를 닮아서 예쁘고 착한 가 봅니다. 미정이가 이 슬픔을 잘 이겨나가도록 여러분 모두 큰 힘이 되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사별의 고통을 어떻게 말로 표현하겠습니까? 아무리 최선을 다했다 한들 어찌 후회와 통한이 없겠습니까? 하지만 이제는 그분께 맡겨드리며 자비의 기도를 청하는 것 이외에 무엇을 해드릴 수 있겠습니까?
죽음은 끝이 아니라 단지 이승에서 저승으로 건너감이요, 영원한 삶으로 이어지는 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약한 인간이기에 죽음을 통해서만이 주님의 부활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을 헤아리기보다는 지금 겪고 있는 고통만을 바라보며 절규하게 됩니다.
네. 절규하십시오. 절규하지 말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고통의 절규가 아니라 희망의 절규를 하십시오. 그분이 당신 품에 받아 주신다는 믿음 안에서 절망이 아닌 희망을 외치십시오.
우리는 받아드려야 합니다. 삶이 그분의 선물인 것처럼 죽음 또한 그분의 선물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죽음이 없는 삶을, 너무나 끔찍하지 않습니까? 죽음도 축복입니다.
나아가 우리는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가족으로서 서로 나눌 수 있었던 모든 것에 대해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서로 나누었던 사랑에 대해, 함께 할 수 있었던 시간에 대해, 하느님 안에서 맺어졌던 인연에 대해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또한 서로에게 남겼던 상처에 대해 진심으로 용서를 청해야 합니다. 지극히 사랑했던 사람일지라도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남겼던 상처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제 서로 용서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죽음은 받아들임입니다. 온전히 두 손을 벌리고 마음에 지니고 있던 모든 것을 내어놓으면서 하느님 대전으로 돌아가는 것 입니다. 미정이 어머님은 천상병 시인의 표현대로 아름다운 이 세상에서의 소풍을 끝내고 이제 하늘로 돌아가셨습니다. ‘돌아 가셨다’라는 표현은 우리가 왔던 본래의 고향, 본향으로 가졌다는 의미를 함축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왔으며 그분께로 돌아 갈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이 어찌 아름다움으로만 수놓아져 있겠습니까? 어려움, 슬픔, 고통, 추함이 더 많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모든 것은 바뀝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참으로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던 천상병 시인이지만 그는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아름다운 눈을 지녔기에 어려움과 슬픔, 가난 안에서도 아름다움을 보았고 세상이 아름다웠노라고 노래했던 것입니다. 미정이 어머님도 그런 마음으로 하늘로 돌아가셨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미정이 어머님, 한영이 막달레나의 영혼을 하느님께 맡겨드리면서 슬픔에서 벗어나 우리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삶, 떠나시는 분이 가족들에게 간절히 바라는 그런 삶을 살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다신 한 번 가족들에게 진심 어린 위로를 전하며 하느님께서 주시는 평화와 위로가 새로운 삶, 보다 충만한 삶을 사실 수 있는 용기가 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 고백 성사의 비밀
고백성사는 신비입니다. 신비라는 말의 그리스어 ‘mysterion’의 어원은 휘장으로 덮여 감추어져 있다는 의미와 침묵이라는 의미를 함께 지니고 있습니다. 고백성사가 신비인 까닭은 무엇보다 고백성사의 비밀에 관한 절대성 때문입니다. 고백성사에 관한 모든 사랑은 절대적인 비밀이고 따라서 고백성사를 들은 신부는 물론이고 고백을 한 사람도 완전한 침묵을 지켜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비입니다. 고백성사의 절대적인 비밀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으며 그 비밀에 관한 일화도 수없이 많습니다. 그 중 유명한 일화를 통해 고백 성사의 비밀에 대한 의미를 되새겨 보며 이 성사 안에 있는 특별한 은총을 나누고자 합니다.
1899년 프랑스의 뒤믈린 신부에게 일어난 사건입니다. 뒤믈린 신부는 새로 성당을 건축하기 위해 동분서주 애쓰고 있었습니다. 뒤믈린 신부가 가정 방문을 하기 위해 외출을 한 어느 날입니다. 새 성당 건립 기금모금의 어려움을 알게 된 어느 신자 할머니가 당신의 재산을 성당 건립을 위해 기부하려고 신부를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신부가 외출하고 없자 할머니는 성당 문지기에게 당신의 전 재산을 성당 건립을 위해 봉헌한다는 이야기와 함께 그 돈을 신부에게 전해 달라며 맡겼습니다. 그 돈은 부유하지 않은 할머니가 평생 근면 절약하여 모은 것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재물을 하늘에 쌓으라는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고생하며 모은 돈을 전부 성당건립기금으로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견물생심과 호사다마라고 했던가요? 질투가 많은 악마가 교묘하게 문지기에게 유혹의 잔을 넘실거렸고, 성당 문지기는 그만 유혹의 잔을 받아 마시고 악마의 하수인이 되었습니다. 그 돈에 대해서는 자기 밖에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신한 성당 문지기는 할머니만 없애면 그 돈이 자기 돈이 될 것이라는데 생각이 미치자 그만 망치로 할머니 머리를 때려 살해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뒤믈린 신부가 돌아오자마자 문지기는 신부에게 고백성사를 청하였습니다.
악마의 하수인이 된 그는 고백성사의 비밀을 교묘하게 이용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악마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사람을 죽였다고 고백했습니다. 이미 악마의 하수인이 된 자가 악마의 유혹을 이기지 못했다고 고백하다니 정말 양의 탈을 쓴 이리와 같은 악마의 속성을 잘 드러내고 있지요. 문지기의 고백에 뒤믈린 신부는 큰 충격을 받았지만 그에게 경찰에 자수하여 죄에 대한 처벌을 기꺼이 받을 것을 권면하고 보속을 주었습니다.
과연 문지기가 신부의 말을 따랐을까요? 천만의 말씀이지요. 진실한 고백이 아닌 악마의 교묘한 술책이었으니 그럴 리가 없지요. 그는 누명을 신부에게 씌우기 위해 망치를 사제관 서랍에 감추어 두고 돈을 가지고 달아나 버렸습니다. 할머니의 죽음을 알게 된 경찰이 뒤믈린 신부의 사제관으로 들이닥쳤습니다. 경찰은 가택수색을 했고 신부의 서재를 뒤지다가 서랍 속에서 피 묻은 망치를 발견했습니다. 경찰은 분명한 물증이라고 생각하고 신부를 체포했습니다. 신부가 고백성사의 비밀을 절대 누설하지 않는다는 점을 교묘하게 이용한 악마의 수법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프랑스의 모든 언론은 들끓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언론은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민심을 자극하고 흥분을 일으키는데 주력하지요. 가톨릭 신부가 살인을 해서 체포되었다고 대서특필을 했습니다. 경찰이 뒤믈린 신부를 심문했습니다. 할머니를 주였냐고 물었고, 뒤믈린 신부는 살인을 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피 묻은 망치가 사제관 서재 서랍에서 나왔는지 물었지만 신부는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고 말할 뿐이었습니다. 고백 성상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그는 한 마디도 변명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뒤믈린 신부는 살인죄로 종신형을 선고 받고 살아서는 돌아올 수 없는 죽음의 섬으로 유배를 갔습니다. 뒤믈린 신부는 그 섬에서 중노동을 하면서 무려 25년이라는 세월을 수인으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신부의 유배생활이 거의 끝날 무렵이었습니다. 파리 시 빈민촌 허름한 판자 집에서 어는 늙은 병자가 남기 유서가 발견되었습니다.
“뒤믈린 신부가 살인죄로 종신유배된 것은 억울한 일입니다. 그때의 살인인 성당 문지기였던 내가 저지른 것입니다. 살인한 직후 내가 신부에게 고백성사를 했기 때문에 신부는 고백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자가의 무죄를 주장하기 못하고 종신형을 받았습니다. 진짜 범인인 나는 곧 죽습니다. 제발 신부가 누명을 벗고 다시 돌아오도록 해 주십시오.”
악마의 하수인이 된 문지기는 할머니에게 뺏은 돈을 다 탕진하고는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빈민촌으로 흘러 들어와 생을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마지막 순간에 자기의 죄를 깨닫고 진실을 밝히고 죽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악마의 달콤한 유혹의 잔을 마신 것을 평생 후회하면서 죄책감에 시달렸겠지요. 문지기의 유서를 통해 진실이 밝혀진 뒤 뒤믈린 신부는 죽어서야 돌아온다는 죽음의 섬에서 살아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신부의 몸은 25년의 중노동으로 피폐할 대로 피폐되어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뒤믈린 신부는 이 사건으로 자기를 욕하고 성당을 떠났던 많은 사람들이 다시 성당으로 돌아오게 된 것으로 만족하면서 하느님의 품으로 떠나갔습니다.
죄도 깊이 감추어져 있어서 알 수 없다는 의미에서 신비이지만 고백성사도 절대적인 비밀, 온전한 침묵을 지켜야 하는 신비입니다. 신부나 신자도 모두 경건한 마음으로 이 신비를 대해야 합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고백성사를 보고 부활을 주비하시기 바랍니다.
¶ 막무가내 한 신앙
공산 루마니아에서 14년간 감옥살이를 했던 리처드 범브란트라는 목사님이 계십니다. 아주 유명한 분이신데 그의 저서 중에 <승리하는 신앙> 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작은 책이 있습니다.
범므란트 목사님은 당신이 감옥에 있을 때 당신을 매료케 했던 힘 있고 기쁜 생각들을 모으고 거기에다 자유의 몸이 된 다음에 떠오른 몇 가지 생각들을 담아서 이 책을 지었다고 합니다. 쪽 수는 그리 많지 않지만 감동적인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책을 번역한 이 현주 목사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토막 글들이 우리의 가슴에 와 닿은 까닭은 뭐니 뭐니 해도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그것을 끝내 견디어 낼 수 있었던 그의 따스하고 깊고 막무가내 한 신앙 때문이리라.”
범브란트 목사님은 예수님의 말씀을 깊게 믿었던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어느 때는 햇빛은 물론 나무나 풀도 바라볼 수도 없는 지하 10미터의 독방에서 책 한 권 없이 지내기도 했습니다. 그런 중에서도 예수님의 생애에 있었던 사랑스런 토막 이야기들을 살려내면서 신앙과 평화와 기쁨을 지닐 수가 있었고 그것이 바로 그분의 도우심이었다고 고백합니다. 범브란트 목사님 말씀이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하프로 자신들의 노래를 연주하려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교인들도 있어 그분의 노래를 연주하기도 할 것이라고, 그분의 영원한 기쁨의 노래, 사람의 아들이 되신 겸손의 노래, 그분의 슬픔의 노래, 그분의 부활의 노래를 연주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어설프게 우리의 노래를 연주하느라 불협화음을 낼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서 지녀야 할 마음가짐은 겸손입니다. 그렇다면 겸손이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왜냐하면 겸손은 실상 진실을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겸손이라는 뜻의 영어의 humility 또는 humble이라는 단어는 그 어원이 라틴어 humus에서 왔는데 humus는 흙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겸손하다는 것은 우리가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 갈 것을 안다는 의미입니다.
하느님 눈에 우리는 소중한 존재들이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우리 자신이 그리 대단한 존재는 아닙니다. 범브란트 목사님은 감옥에 갇히기 전까지 당신이 아주 중요하고 대단한 인물인줄 알았답니다. 한창 성장하는 교회의 목사였고 책도 몇 권 저술했으며 WCC의 한 위원회에도 활약하고 있었으니, 루마니아의 교회는 당신 없이는 제대로 일을 해나갈 수 없다고 생각했답니다. 그런데 14년 만에 감옥에서 나와 보니 당신 없이도 교회가 크게 발전하였고 당신의 책보다 훨씬 더 훌륭한 저술들이 쏟아져 나온 것을 보았습니다. 결국 당신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만큼 그리 대단한 인물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고백합니다. 물론 겸손에서 하는 말씀이지요.
우리가 겸손을 지니게 되면 중요한 존재는 우리 자신이 아니라 우리의 이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우리의 이웃, 형제자매들을 통해 하느님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가장 보 잘 것 없는 형제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라는 주님의 말씀은 단지 비유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실제입니다.
참으로 겸손한 마음으로 우리 이웃 안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언제나 우리의 시선은 보다 영원한 것을 향합시다.
¶ 진정 자유로운 사람
우리 삶에서 두 번이란 없습니다. 삶에서 두 번 일어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비슷한 일이 일어날 수는 있겠지만 결코 같은 것은 아닙니다.
삶에 연습이 있어 일단 연습으로 먼저 살아 본 후 진짜 삶을 살 수 있다면 실수나 후회 없이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그러 수 없는 것이 바로 우리네 인생입니다. 우리는 연습 없이 태어나서 실습 없이 죽습니다.
우리말에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같은 강물처럼 보이지만 흐르는 강물은 이미 같은 강물이 아닙니다. 기실 살아 있는 모든 존재가 그렇습니다. 살아 있는 존재는 흘러가기 마련입니다. 만약 흐르지 못하고 있다면, 흘러가게 해야 합니다.
삶에 두 번이란 없는데, 연습하고 다시 살 수 없는 한번 뿐인 짧은 생인데 왜 아등바등하고 미워하며 살까요? 누구를 미워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기만 하면 미워할 일도 없는데 우리의 마음은 서로 다른 것을 잘 인정하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와 다른 것을 서로 비교해서 나보다 더 잘 낫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못마땅해 여기면서 미워하고 시기하게 됩니다. 오히려 다르기 때문에 서로 조화를 이루고 일치를 이룰 수 있는데도 그게 참 쉽지 않습니다.
수도자들은 순명을 사는데 바로 그 이유로 자유를 느낍니다. 내 뜻이 아닌 남의 뜻, 장상의 뜻을 따르기 때문에 자유롭다는 사실이 일반 사람들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모순이겠지만 그것은 순명을 사는 체험을 통해서만 알게 되는 진리입니다. 내 뜻만 추구하려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뜻이 무엇인지 헤아리면서 그것을 받아 들여 보십시오. 그러면 진정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그냥 되지는 않습니다.
편안한 마음이 되려면 도를 닦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저절로 되는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수도자들이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자유를 체험하려면 어느 정도는 수행이 필요합니다.
류해욱
1955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났으며 예수회에 입회하여 사제가 되었습니다. 웨스턴 신학대학에서 영성신학을 전공했으며, 시인이자 번역가이기도 합니다.
서강대학교 교목실잘, 예수회 피정 집 ‘말씀의 집’ 원장, 가톨릭대학교 성빈센트병원 원목 사제 등을 역임했으며,
지금은 예수회에서 영혼이 지치고 목마른 사람들을 위한 ‘영혼의 쉼터’ 준비라는 소임을 받고 산골에 머물며 아름다운 쉼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동행>, <그대 만단 뒤 삶에 눈 떴네>, <위그든 씨의 사탕가게>, <할아버지의 기도>, <토머스 머튼의 시간>, <아주 특별한 순간> 등 다수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으며,
<그대 안에 사랑이 머물고>, <사랑이 없으면 우린 아무것도 아니라네>, <모든 것이 당신 것입니다> 등의 책을 지었습니다.
여기에 실린 글은 copyright가 된 책, 기사를 ‘발췌, 전재’를 한 것입니다. 모두 한 개인이 manual typing을 한 것이고, 의도는 절대로 저작권 침해가 아닌, fair use의 정신을 100% 살린 것입니다. 의도적으로 ‘시간적인 제한, 독자층의 제한’을 염두에 두었고, 목적은 단 한 가지 입니다. 즉 목적을 가진 소수 group (church study group, bible group, book club) 에게 share가 되었습니다. password protected가 되었는데, 만일 이것이 실패를 하면 가능한 시간 내에 시정을 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