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脫 뉴스’ 8일째

좋은 생각, 좋은 생각, 기쁘고 즐겁고 상쾌한 생각… 차분하고 평화롭게 심지어 성스러운 생각들, 모두 어디로 갔는가? 대신 왜 그렇게 우울하고 저속한 생각이 먼저 찾아오는가? 특히 아침에 일어날 무렵에… 제발 거꾸로 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자연의 부르심’으로 자다가 한번 일어나야 했던 것 말고는 또 거의 완벽한 잠을 잤다. 어떻게 요즘 들어서는 잠드는 것이 이렇게 쉬울까? 분명히 자기 전에 coffee를 비롯한 잡식까지도 서슴지 않았는데… 지난 밤에는 모처럼 a/c의 소음소리를 한번 들었다. 하지만 딱 한번이다. 또 습도가 올라갔다는 뜻일 거다. 아~ 오늘은 heat index가 올라갈 모양이다. 74세의 노구에 축적된 ‘느낌의 일기예보’, 신기하기만 하구나. 이런 날씨에 오늘 놀러 올 ‘로난’ 손주 녀석과 어떻게 씨름을 할건가…

Vocabulary, vocabulary… I need a dictionary!  나에게 사전, 특히 영어사전(mostly 영영사전) 의 필요성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 도대체 언제였나? 물론 정확할 수는 없지만 굳이 기억하라면… 아마도 1980년대까지 아직도 학교에 적을 두고 있었을 때가 아니었을까? 영어의 본고장, 미국에 온 이후의 학교생활은 생각보가 견디기 쉬운 것이 전공서적을 읽는 것이 생각보다 쉬웠기 때문이었다. 거의 수학과 (전기전자) 전공용어였으니 당연하다. 영어를 듣고 이해하는 것은 시간과 세월이 대부분 해결을 했지만 말하는 것은 또 차원이 다른 것이었고… 그 이후는 ‘이민 언어의 역사’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50년이 지난 현재 한가지 ‘확실히’ 얻은 것이 있다면 영어로 된 비전공 서적들도 큰 문제 없이 ‘사전 없이’ 읽을 수 있다는 것.

그런 자신감에 철저히 손상을 받은 것은 근래 많이 읽게 된 Robert Barron(주교)신부의 강론과 책들이다. 한마디로 사전을 옆에 두고 읽지 않으면 가끔 신경질, 괴롭다고나 할까? 왜 그럴까? 물론 나의 어휘실력 탓이지만 나만의 문제가 아닌 듯 싶다. 왜냐하면 다른 책은 별로 문제가 없었으니까 말이다. 한마디로 이 ‘머리 좋은’ 신부님의 어휘실력은 정말 경탄할 수밖에 없다. 그런 고급어휘에서 전해지는 수많은 의미들, 그것을 평범한 어휘는 감당을 못할 것이다. 이제는 online dictionary를 windows screen의 한쪽에 open해 놓고 보면 되는데, 그래도 조금은 귀찮은 것. 유일한 위로가 있다면 이 문제는 나만의 것이 아니고 이곳에서 태어나서 교육을 철저히 받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것, 그것뿐이다. [예를 들면 이런 단어들, 어떤 것은 처음 보는 것, 다른 것들은 짐작은 하되 확실치 않은 것들: plop, broach, ersatz, cohort, sacristy 등등…

이른 아침에 읽는 이 주교님의 근간近刊 Redeeming… [the Time], 생각할 주제를 풍부하게 제공하는 독서가 되었다. 물론 명석한 저자가 큰 도움도 되었지만, 이것을 읽는 나의 기본 자세도 나는 마음에 든다. 가슴을 활짝 열고 싶은 것이다.  독서의 진척은 의외로 쾌속으로 진행이 되어서 비록 한때지만 나에게 의외의 기쁨과 보람을 준다. 감사, 감사, 감사… Bishop Barron!

오늘 로난 산 녀석과 한때를 보낸 것, 비록 힘은 들지만 즐거웠다. 자꾸만 작년 이즈음까지 거의 반년 동안 매주일 이틀 씩 우리 집에서 함께 있었던 생각을 떠올린다. 1년 이상이 지난 후 녀석은 아주 남자아이, 개구쟁이가 되어 있었다. 모습도 조금 영걸은 듯 보인다. Stroller를 타기에는 조금 큰 듯해서 오늘은 playground까지 셋이서 걸었다. 작년에는 걷는 것보다는 stroller를 타고 동네를 한 번 돌았었는데…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용감하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고 최소한 수줍어하는 성격은 아닌 듯 보인다. 2살 반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며 갑자기 나의 나이 두 살 반을 떠올리니 거의 정확히 6.25, 한국전쟁이 터질 무렵이 아닌가? 덕분에 동족끼리 죽이는 그 당시가 전혀 기억을 못하는 신비의 세계로 느껴지니… 그러니 로난 손주, 이 녀석도 지금을 모두 잊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조금 서운하기도 하다. 나의 2살 반, 즈음이 나의 아버지는 나와 어떻게 지냈을까? 갑자기 하루아침에 가장, 아버지를  잃게 되는 비운의 그날.. 이후 살아계셨다면 얼마나 외아들  나, 2살 반짜리 아들의  모습을 그리워 하셨을까… 2살 반, 현재 로난 정도의 모습을 기억하며 저 세상에 가셨을까? 참 운명이란 것이… 어쩌면 우리 가족은 이런 운명을 가지게 되었을까? 그때 김일성 [MF] SOB가 없었다면… 그 개XX가 이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