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마지막 달, 첫 날에는..

벗 하나 있었으면

 

마음이 울적할 때

저녁 강물 같은 벗 하나 있었으면

날이 저무는데 마음 산그리메처럼 어두워올 때

내 그림자를 안고 조용히 흐르는 강물 같은 친구 하나 있었으면

 

울리지 않는 악기처럼 마음이 비어 있을 때

낮은 소리로 내게 오는 벗 하나 있었으면

그와 함께 노래가 되어 들에 가득 번지는 벗 하나 있었으면

 

오늘도 어제처럼 고개를 다 못 넘고 지쳐 있는데

달빛으로 다가와 등을 쓰다듬어주는 벗 하나 있었으면

그와 함께라면 칠흑 속에서도 다시 먼 길 갈 수 있는 벗 하나

있었으면.

 

 

쓸쓸한 세상

 

이 세상이 쓸쓸하여 들판에 꽃이 핍니다

하늘도 허전하여 허공에 새들을 날립니다

이 세상이 쓸쓸하여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유리창에 썼다간 지우고

허전하고 허전하여 뜰에 나와 노래를 부릅니다

산다는 게 생각할수록 슬픈 일이어서

파도는 그치지 않고 제 몸을 몰아다가 바위에 던지고

천 권의 책을 읽어도 쓸쓸한 일에서 벗어날 수 없어

깊은 밤 잠들지 못하고 글 한 줄을 씁니다

사람들도 쓸쓸하고 쓸쓸하여 사랑을 하고

이 세상 가득 그대를 향해 눈이 내립니다

 

¶  달력을 넘긴다. 한 장이 남아있었다. 세월은 참 정직하구나. 올해도 정확히 31일이 남았다. 12월의 기분에 알맞게 매섭게 차가운 공기가 아침의 고요를 깨고 밀려오며 나를 움츠리게 한다. 자주 찾아오게 되는 도종환 시집, 이 양반은 무섭고도 정확하게 나의 ‘쓸쓸한’ 감정을 보여주는 시를 많이도 썼다. 나를 둘러싼 사소하고도, 자연적인 것들의 감정을 참 섬세하게도 보여주어서 큰 부담 없이 읽는다. 오래 전에도 ‘벗 하나 있었으면’ 을 읽었다. 소름 끼치게 공명하는 마음에 놀라기만 했다. 특히 밖이 떠들썩하게 느낄 때 더 이런 감정에 빠지곤 한다. 그럴 때 더 나의 속 깊은 곳은 외로움과 고독함을 느끼게 되어서 그럴 것이다.

 

¶  요새는 전보다 더 자주 TV morning shows (주로 NBC Today show) 들을 본다. 몇 년 동안 전혀 그런 것 피하며 산 때에 비하면 참 많이 세상을 보게 되었다. 우리 집은 그 흔한 big screen ‘flat’ TV도 없고, cable TV, satellite TV는 물론 없다. 유일한 것은 ‘free’ over-the-air(공중파?) channel 뿐이다.

모든 것이 digital broadcast로 바뀐 후에는 그 ‘공짜, 공중파’ channel들이 아주 많아졌다. Cable service에 익숙한 사람들은 상상을 못할 듯 하지만 우리는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대부분 시간을 각자의 cushy chair/desk에서 있어서 그럴 것이다. 그곳에 ‘big screen’ desktop pc가 있어서 대부분의 TV programming은 그곳에서 본다.

20년 전부터 예고를 했던 TV convergence가 많이 진행이 되어서 웬만한 것들은 거의 Internet (or from home server)으로 desktop PC에서 볼 수 있게 되었고, ‘아이’들이 다 커서 떠난 집에 쓸쓸한 family room의 family TV는 거의 의미가 사라진 것이다. 어떨 때 조금은 가족들이 TV앞에 모여서 즐기던 시간이 그립기도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모든 것은 변하고 있으니까.

주변 친지들의 집에 가보면 모두들 예외 없이 monster-size flat-screen TV들이 있고 심지어는 한국에서 오는 channel들도 보고 있어서, 사실은 우리 집이 예외가 아닌가 생각도 든다. 일반적인 TV channel들이 결국은 Internet으로 다 통일이 되는 것은 예상보다 서서히 진행이 되고는 있지만 Internet speed가 점점 빨라지고 있어서 시간 문제일 듯하다.

 

Neil Diamond, singer-songwriter
Neil Diamond, singer-songwriter

¶  며칠 전에 TV morning Today show에 반가운 얼굴이 나왔다. Neil Diamond.. 나이에 비해서 아주 젊은 모습이고, 풍기는 활력도 마찬가지고, 목소리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아주 약간 템포가 느려졌음을 느끼는 것은 나의 선입견일까.. 1960년 대 중반부터 시작된 그의 soft-rock/pop singer로써의 길고 긴 인생여정, 큰 무리 없이 꽃을 피워가는 중일까?

기억에 60년대의 pop group The Monkees의 많은 hits, 그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의 진정한 talent는 그 자신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서 분명히 나타났고, 일시적인 인기가 아니고 길고 긴 진정한 프로의 길을 걷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60년대와 70년대를 거치는 시기에 발표된 그의 classic oldies가 좋았지만, 80년대 이후의 그의 활동도 예외적으로 기억하고 좋아하게 되었다. Cliff Richard와 비슷하게 거의 전설적인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 그는 내년 6월 6일에 이곳에서 Philips Arena에서 live concert를 한다고 TV에서 보았고, 혹시 갈 수 있을까..했지만 $100이나 하는 ticket때문에, 그저 군침만 삼키고 있다.

 

Play meNeil Diamond – 1972

 

깊어가는 가을에..

30년이 넘는 빛나는 역사를 자랑하며 우리를 즐겁게 해 주었고, 집안 가족들에게 진정한 안방극장의 역할을 다 했던 비디오 테이프(‘테입’ 이 더 맞을 듯 한데, 아마도 표준용어는 역시 ‘테이프’ 인 모양), VHS video tape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몇 주 전에 우연히 VHS cassette에 있는 오래 전의 영화를 보려고 하다가 VCR(video cassette recorder, 일본에선 VTR: video tape recorder라고 함) 이 ‘고장’ 난 것을 발견하고, ‘망연자실’을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이렇게 많이 쌓여있는 ‘옛날’ 비디오 영화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하게 되었다.

5년 전쯤에 우리가 찍었던 가족 비디오들은 일단 모조리 computer로 복사를 해 두었지만 돈을 주고 산 영화 비디오들은 너무 많아서 엄두를 못 내고 그대로 두었고, 최악의 경우에 그런 것들은 나중에 DVD로 다시 나올 것이니까, 가족 비디오처럼 중요한 것이 아니라서 잊고 살았던 것이다. 물론 그것은 VCR이 ‘건재’ 하다는 전제하에서의 이야기였는데, 이제는 손쉽게 테이프에 있는 영화 비디오 조차 못 보게 된 것이다. 결론은 분명히: 이번에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VCR+DVD player combo
VCR+DVD player combo

최우선의 과제는, 오랜 동안 모았던 주옥 같은 영화 비디오를 가족이 모일 때, TV로 쉽게 볼 수 있어야 하므로, VCR을 사야 하는 일이고, 다음은 언젠가는 ‘없어지거나, 상태가 나빠져 못 볼’ 이 많은 영화 비디오를 ‘가족 비디오처럼’ computer로 옮겨야 하는 일이었다. 컴퓨터로 일단 digitize가 되면, 수명은 거의 반 영구적이 될 것이고, 여기저기서 computer로 볼 수가 있게 되니까, 조금 지루한 일이지만 효과는 몇 배로 나올 것이다. 그래서 곧바로 VCR 을 사려고 보니까, 요새는 VCRDVD player가 함께 붙어서 나오고, 값도 $70 정도여서, 참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했다. 그 옛날 VCR이 처음 나올 당시.. 처음에는 천불이 넘었었던 것을 기억하니까.. 이렇게 해서 VHS tape을 computer(digital) movie file (WMV, Vidx/Xvid/AVI format)로 하나 둘씩 옮기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장난이 아니게 많아서, 언제 끝나게 될지 한심하다. 하지만 정말 오랜만에 다시 보는 영화들을 다시 볼 수 있어서 조금은 덜 지루할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벌써 Carroll BakerRoger Moore의 명화 The Miracle(기적), Tom HanksApollo 13, Jennifer JonesThe Song of Bernadette (루르드 성모님 이야기) 등등을 다시 보게 되었다. 이것들의 대부분은 1990년대에 우리 집 식구들이 즐겨 본 것들이라 그 당시의 추억도 함께 떠오른다. 근래에 HD(high definition) TV에 익숙해지고 있는 마당에 VHS의 ‘조잡한’ SD (standard, low) definition을 보니까 어떻게 옛날에 저런 것을 보며 살았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사실은 그런 ‘조잡’한 맛이 은근한 맛도 있고, 감정적으로도 부드럽고, 따뜻하게 느껴지니, 나도 참 오래 살았나 보다.

 

10 years with YMCA.. 허.. 언제 이렇게 되었나? YMCA의 gym에서 운동을 한 것이 10년이 넘었다. 우리 가족은 1990년대에 다같이 이곳에서 ‘거의’ 정기적으로 운동, 수영을 했지만, 나는 2011년 9월 이전까지는 아주 가끔 갔었다. family plan으로 멤버가 되면 조금 싼 이유도 있었지만, 정기적 육체적인 운동의 필요성을 누가 모를까, 집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에 연숙이 거의 강제로 가게 만들어 놓은 것이 이제 10년이 훨씬 넘게 된 것이다. 요새는 우리 부부만 일주일에 3일 정도를 목표로 하고 다니는데, 이제는 습관이 되어서 안 가게 되면 더 신경이 쓰일 정도가 되었다. 생각한다. 지난 10년 동안, 이것마저 없었다면 어땠을까? 생애를 통해 지난 10년은 사실 내가 감당하기 힘들었던 십 년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아마도 아마도 이 YMCA는 내가 ‘살아’ 남는데 큰 한 몫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East Cobb YMCA
East Cobb YMCA

처음에는 주로 아침에 갔고, 그때면 주변에 사는 한인들과도 어울리며 커피나 얘기도 나누기도 했는데, 그때 알던 부부가 거의 연달아서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도 해서 참 가슴이 아프기도 했다. 그때 느낀 것 중에 하나가, 운동을 하고, 겉으로 건장하게 보여도 그것과 ‘수명적인 건강’과는 크게 상관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오랜 옛날 미국에 오기 전에 서울 종로에 있던 종로서적센터 뒤에 있던 그 당시에는 최신식인 health center에 몇 개월 다니면서 ‘빈약한’ 근육을 바꾸려고 노력을 한 적이 있었고, 친구 이경증과 같이 서울 운동장에 있었던 체육관에도 가본 적이 있어서, 이곳에 있는 weight training 은 그다지 생소한 것이 아니었고, bench press에서 나의 체중(145파운드) 무게로 10 reps까지 하게 되었지만, 요새는 근육의 모양새보다는 근육의 목적에 더 신경을 쓴다. 예를 들면 무거운 것을 옮긴다던가 할 때 큰 문제없이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고, 다음은 역시 근육의 빠른 노화를 완화시키는 것인데 사실인 이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요새는 근육운동보다 걷는 것, bike등으로 하체에 더 신경을 쓰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더 나이가 들어서 ‘넘어지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YMCA gym에 갈 때마다 그 옛날 나에게 ‘역기운동’의 기초를 가르쳐주던 친구 이경증을 생각하곤 한다.

 

며칠 후의 일기예보는 드디어 올해 처음 아틀란타 메트로 지역에 빙점(화씨 32도, 섭씨 0도)의 가능성을 예고해서, 본격적인 가을의 중반을 향하는 느낌이다. 2주 뒤에는 크리스마스에 다음의 미국 최대 명절인 Thanksgiving Day (추수감사절)이고, 사실상 그때부터 크리스마스 season이 시작이 된다. 올해는 조금 ‘극단적인’ 기후였는지는 몰라도 단풍을 보니 역시 피곤한 빛이 역력하였다. 빛깔이 그렇게 곱지를 않은 것이다. 동네를 걷다 보면 이 근처에서 제일 빛이 찬란한 나무가 하나 있는데, 나는 그것으로 올해의 단풍의 질을 판단하게 되었다. 역시 작년에 비해서 조금은 초라한데, 색깔자체는 크게 차이가 없지만 잎사귀들이 건강하게 변하지를 않았고 심지어는 한쪽이 대머리처럼 듬성듬성 빠져 보여서 조금은 가엽게 느껴지기도 했다. 자연도 기후의 스트레스를 왜 받지 않았겠는가? 우리 집 앞쪽에 있는 나무들도 역시 색깔들이 바랜 것하고 떨어지는 모양새가 예년에 비해서 아주 비정상적으로 불규칙한 모습들이다. 확실히 ‘심한’ 기후에 의한 피곤한 자연의 표현이다. 이러다가 바람이 부는 을씨년스런 날이라도 오게 되면 아마도 하루 아침에 앙상한 가지만 남게 되지나 않을까? 작년의 폭설을 기억하면서 올해는 과연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다.

 

Fall Colors, 2011

기후 탓으로 예년만 못한 Fall colors, 2011

 

시월의 반

시월의 반이 되어간다. 어릴 적 국민학생일 적, 10월은 십 월이 아니고 시월이라고 귀따갑게 배운 기억의 시월.. 이제는 추운 가을의 맛도 이미 느꼈고, 조금은 월동준비도 생각하게 해 주었다. 최근 아주 정상기온을 유지하며 며칠 동안은 땅속으로 포근히 스며드는 비까지 뿌려준 올 가을, 자연의 하느님께 감사를 안 할 수가 없다. 시월에 있는 눈에 띄는 날은 역시 시월 마지막 날, 할로윈 (Halloween)일 것이다. 일년의 수확을 상징하는 호박의 황금색이 온통 동네를 장식하는 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초자연적 존재인 ‘귀신’을 즐기는 날.. 비록 종교적으로는 ‘악마,귀신 숭배’를 우려해, 권장하는 날은 아니지만, 분명히 종교적 의미의 ‘초자연적인 귀신’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니 그럴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다. 이런 날을 재미없어 하는 축은 아마도 ‘무신론자’들 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은 ‘귀신 조차’ 믿지 않을 테니까..

에스페란토 회보
미국 에스페란토 회보

에스페란토, 2개월마다 간행되는 회지, American Esperantist가 어제 배달되었다. 지난 번 아버지가 관련된 에스페란토 역사를 추적하며, 미국 에스페란토 협회에 문의를 한 적이 있어서 이렇게 ‘무료’로 보내주었나 보다. 이 회보를 받아보고 느낀 것은, 생각보다 ‘초라’하다는 것이었다. 각종 회원들의 연회비 (정회원은 $40/year!)로 운영이 되는데 어떻게 이렇게나 빈약한 느낌일까? 물론 인터넷의 영향으로 인쇄 간행물이 대폭적으로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이다. 그렇다 해도 조금은 더 ‘화려하게’ 만들 수 없었을까? 역사 깊은 대한민국 천주교 잡지 경향잡지, 1950년대의 느낌을 줄 정도로 보는 느낌이 ‘차분’하다. 그에 비해서 내용은 훨씬 다양하고 깊이가 있는 ‘것’ 같은데.. 에스페란토를 읽을 수 없기 때문에 그저 짐작만 할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이 느끼며, 과연 에스페란토가 얼마나 더 ‘지탱’을 할까 하는 모양인데, 나는 오래 오래 ‘살게’ 되기를 바라는 입장이다. 내가 이것을 배워서 쓰고 안 쓰고 하는 문제보다는 이런 ‘인류 평등,평화‘의 정신이 계속 발전하게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아틀란타 천상의 모후 꾸리아 간부교육피정, 드디어 내일로 다가왔다. 이것에 조금 의미가 있다면, 연숙이 꾸리아 부단장에 피선된 후 처음의 행사가 되었고, 나는 곁다리로 단원의 자격으로 봉사를 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부단장이 식구에 있으니 나에게도 이렇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사실은 별로 마음에 내키지는 않았지만, 거절할 명분이 뚜렷하지도 않았다. 레지오의 철칙인 ‘순명’을 어기는 것도 되니 할말도 별로 없었다. 단장이란 사람은 나머지 임원을 완전히 믿는지 한달 동안이나 자리를 비우고 행사 하루 전에 나타나셨다. 결국은 자리를 지키는 ‘일벌’들이 실질적인 일은 다한 셈이고.. 이 동네의 거의 모든 일들이 이렇게 카프카 식으로 진행된다. 내가 맡은 일은 일일 사진기자의 역할인데, 어떻게 보면 아주 단순한 일이다. 하지만 꼬박 전체 행사를 돌아다녀야 하는 것이라 조금 신경이 안 쓰일 수 없고, 나의 camera가 아주 ‘시로도’ 급이라, 과연 사진이 잘 나올지도 걱정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역시 이것도 레지오의 중요한 봉사이기 때문에 기꺼이 하면 될 것이고, 나머지는 다 ‘위에서’ 보살펴 주실 것이다.

 

A Glorious Autumn day

2011년 10월 8일, 아침에 바깥을 보니 한마디로 ‘기가 막히게 영광스러운‘ 가을 하늘이었다. 어렸을 적 많이 보았던 북악산 쪽의 드높은 ‘시퍼런’ 하늘이었다. 오늘은 그것에 덧붙여서 산들바람이 조금은 더 세게 분다. 아마도 이것이 ‘완전한 가을’ 날씨가 아닐까? 하지만 기후에 비해서 풍경은 아직도 푸른 색이 가을 색보다 훨씬 더 많은 ‘초가을’ 이다. 아마도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색깔들이 변하게 될 단풍의 나날들로 변하게 될 것이다.

연숙의 묵향화 작품 1호, 2011
연숙의 묵향화 작품 1호, 2011

얼마 전부터 연숙이 ‘묵향’ 이라는 동양화의 일종을 배우게 되었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 아틀란타 본당에서 배우는 모양인데, 내가 동양화란 것이 거의 문외한인 탓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고, 화구(묵, 붓, 한지 같은)를 챙길 때도 성의 없이 대하곤 했다. 그 수려하고 잔잔한 그림을 보는 것은 몰라도 내가 그린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오래 전부터 붓글씨 같은 것을 해 보고 싶다고 하더니 선생님을 못 찾아서 애를 태우더니 이번에는 ‘아다리’ 가 맞아서 묵향 선생을 찾은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는 아주 심각해 졌는데, 이유는 얼마 후에 ‘전시회’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준비하느라고 심각해 진 것이다. 본인이 아직도 초보의 수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더니 드디어 얼마 전에 그림을 완성을 해서 표구까지 해서 집에 들고 왔는데.. 솔직히 나도 놀랐다. 한마디로 ‘괜찮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분의 말씀에 연숙은 옛날에 서양화를 그렸기 때문에 이것도 남들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데, 나는 그것이 일리가 있는지도 사실 확실치 않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번에 그린 것과 비슷하게 다시 그리려 했는데, 그것이 정말 어려워서 포기 했다고.. 그러니까 이런 그림은 그릴 때의 마음가짐, 자세가 중요한 것을 알게 되었다. 포인트는 이런 ‘보이는 그림’이라는 ‘결과’가 아니고, 그것을 그리는 그 자체가 그렇게 ‘즐겁다’ 고 한다. 아마도 그것이 제일 중요한 포인트일 것이다

 

 

Catholic Sunday

오늘 아침은 3주 만에 미국본당 Holy Family CC(Catholic Church) 에서 8시반 주일미사를 보았다. 그러니까 2주 계속 주일미사를 거른 셈이다. 레지오 화요일 주중 미사는 절대로 거르지 않아서 조금은 변명 감 있긴 해도 역시 주중의 ‘약식’ 미사와 주일의 ‘정식’ 미사는 느낌이 많이 다른 것이라서 역시 ‘손해’를 본 것은 우리들이다. 10월 초에 걸맞은 계절의 맛을 마음껏 내듯 아침 바깥 기온이 45도(섭씨 7도) 로 떨어져서 이건 완전히 춘추복의 날씨로 오랜만에 “넥타이만 없는 정장”으로 갈아 입었다.

Holy Family Fall Festival 2011
Holy Family Fall Festival 2011

2주 동안 못 본 낯익은 얼굴들, 비록 이름도 모르고, 본당 밖에서 따로 만난 적이 없어도,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의 얼굴이 안 보이면 조금은 신경이 쓰이기도 하니까. 오늘의 주보를 보니, 역시 10월의 상징인 (Halloween) pumpkin의 색깔로 가득하고 돌아오는 토요일 예정인 본당주최 Fall Festival 내용으로 그득하다 . 오늘은 주임신부님, Fr. Darragh (대라, common Irish name), 오늘 복음 말씀(마태오: 21:33-43)에서, “stewardship”을 주제로 삼아, 미사 이외의 본당활동에 더 적극 참여하라고 강조하시고, 숫제 volunteer form까지 모든 좌석이 비치해 놓으셨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talent를 썩히지 말라고.. 그런 각자의 ‘재능’을 좋은데 쓰지 않으면 하느님께서 도로 가져간다고 거듭 강조하신다. 이런 말씀 많이 들었고, 나는 안다. 무슨 뜻인지..

생각해 보면 이 정든 ‘동네’ 본당에 내가 봉사를 할 것은 적지 않다. 하지만 현재 하나도 하는 것이 없고, 이것은 항상 갈등을 느끼게 한다. 이것은 오랜 동안의 영어문화권 직장을 떠난 후에 나타난 현상 중의 하나다. 역시 우리 같은 사람은 잔뼈가 굵은 곳의 언어문화권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 본능일까? 이곳에 살면서 계속 겪던 문화적 혼동과 갈등이 결국 나중에는 이런 곳에서도 나타나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조금 더 민감하게 느끼는 것일까.. 참 어려운 것이다. 아틀란타 한인 순교자 본당소속, 레지오에 입단한 이후, 조금씩 모국 문화권에 더 익숙해 지면서 이런 문화적, 언어적 갈등을 생각하게 된다. 문제는, 어떻게 나의 나머지 인생을 보내야 할까.. 너무나 멀어진 고국문화를 다시 배우며 살까, 아니면 더 영어권으로 들어가서 적극적으로 그들과 어울릴까.. 정답은 없다. 절대로 선택문제인 것이다. 어느 것이 더 나에게 보람을 느끼게 할까 에 달려있다. 

 

올 들어 처음으로 central heating system을 시험하는 날이 왔다. 아래층의 kitchen area에 앉아 있으려니 추울 정도라서 thermostat를 보니 67도.. heater로 스위치를 켰는데.. 잠잠.. 분명히 68도로 맞추었으니까 더운 바람이 잔잔하게 나와야 하는데, 아주 조용한 것이다. 직감적으로 아하! 아래층 furnace의 thermocouple을 새것으로 갈 때가 되었구나. 그러니까 thermocouple이 수명이 다 되면 pilot lamp가 꺼지고, fire(점화)가 안 되는 것이다. 요새의 furnace는 물론 거의 다 automatic firing mechanism을 가지고 있어서 이런 골치를 썩지 않아도 되지만 우리 것은 거의 20년 전의 것이라 이런 불편이 있다. 문제는 이 thermocouple이 생각보다 자주 교체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비싼 것은 아니지만, 이것을 새것으로 바꾸려면… 조금은 ‘기계적’인 머리도 필요하고, 그 우중충한 ‘지하’ 공간으로 기어 들어가다시피 해야 하는 그런 ‘남자의 일’인 것이다. 그래서 여자만 사는 집이라면 99% handyman을 $$을 주고 불러야 할 듯 한데 나의 우려는, 내가 먼저 죽으면 연숙이는 어떻게 이런 것들을 ‘고치며’ 살까.. 조금은 우습지만, 사실은 실제적인 문제다. 이런 것은 기계적인 것에 한하지 않고 우리 집에 거미줄처럼 깔려있는 computer network같은 것들.. 거의 자동적으로 돌아가지만, 문제가 생기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며칠 전, 빛의 속도보다 빠른 물체를 실험으로 관측1을 했다는 기사를 보면서, 정말 오랜만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추억과 함께 생각을 하게 되었다. 추억이란 물론 내가 처음 이 ‘기가 막히게 멋진 과학 이야기’ 들을 때의 기억이다. 우리 또래들은 이런 것들을 거의 대부분 책을 통해서, 그것도 ‘만화’를 통해서 접하고 배우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교과서가 거의 유일한 지식의 원천이었다. 백과사전은 나오지도 않았고, 나왔을 때는 너무 비싸서 ‘월부’로 사기도 힘든 때였다. 라디오에서 이런 것을 가르쳐 줄 리는 만무하고, TV는 없었을 때였다. 나도 역시 만화에서, 그것도 ‘공상과학’ 만화에서 처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라고 해서 듣고 배우게 되었다. 그때 내가 느낀 것은 과장되게 표현해서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그 만화에서 상대성원리의 결과로 보여 준 것이 이런 것이었다. 두 형제가 있었는데 그 중 한 명이 빛의 속도로 나르는 로켓을 타고 여행을 떠난다. 몇 년 뒤에 그는 지구로 돌아왔는데, 그 때는 이미 지구시간은 수만 년이 지난 후여서 그의 가족 뿐만 아니라 지구 전체가 완전히 바뀐 뒤였다. 이것은 광속도에 접근하는 로켓(과 그 안의 사람)에서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흐른다는 사실에 근거를 한 것으로, 이론상으로는 문제가 없는 공상이었다.

이런 식의 이야기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는데, 중학교 2학년 가회동에 살 당시, 같은 집에서 자취를 하던 경기고교 생 양병환 형으로부터 이런 류의 이야기로 밤을 새우기도 했다. 그 중에 하나가, 우리의 과거를 볼 수 있다는 역시 조금은 소름 끼치는 이야기도 있었다. 도저히 이해는 안 갔지만 이론적으로는 역시 큰 문제가 없었다. 이 이야기의 함정은, 우리가 우리의 과거를 본다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 나의 과거를 본다는데 있었다. 가령 예를 들어서 지구에서 10광년 떨어진 별에서 거대한 망원경으로 지구를 보면 10년 전의 지구가 보일 것이고, 10년 전의 우리들을 볼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며 대학 1학년 때, 드디어 흥분의 순간이 왔다. 대학 물리시간에 특수 상대성 이론이 나온 것이다. 이것은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그대로 다룬 것인데, 조금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 이론은 전혀 ‘어렵지’ 않아 보인 것이다. 그러니까 그 이론에서 쓴 수학들이 정말 그다지 어려운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심지어 너무나 ‘간단’ 했던 것이다. 그곳에 상대성원리의 매력이 있었을 것이다. 우주의 법칙은 절대로 ‘복잡’하면 안 된다는 아인슈타인의 지론이 그것이다. ‘하느님의 법칙’ 은 의외로 간단한 것이다. 예를 들어서 에너지의 공식을 보라. E=mc2 이렇게 간단한 공식이 어디 있는가? 이런 이론들을 과학적 증명이 거의 없이 ‘발명’한 그는 한마디로 천재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 후 100년 동안 그의 이론은 거의 실험으로 하나하나 ‘직접, 간접적’으로 증명이 되고 있다. Gutenberg.org의 도움으로 아인슈타인의 원래 저서 ‘상대성 원리’를 download해서 보았다. 역시 비교적 내용이 길지 않은 책이었다. 위대한 저서는 이런 식으로 의외로 간단해 보이는가? 비록 독일어를 영어로 번역을 한 것이지만 아인슈타인의 ‘냄새’가 여기저기서 나는 위대한 책이다. 시간이 나면 한번 녹슨 머리를 굴려가며 다시 한번 읽어 보리라. 어렸을 때와 다른 것은 이제는 ‘하느님의 작품인 거대한 우주’ 라는 framework을 염두에 두고 있기에 그 때와 같이 방황하지는 않으리라.

 

  1. 아마도 이것은 quantum entanglement 실험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구월 하순, GXP-285, GPS, 연고전

9월 21일, 구월의 하순으로 접어들었다. 날씨는, 지난 2 주 동안 가을의 맛을 느끼게 해주는 ‘첫’ 싸늘함으로 우리들을 즐겁게 해 주었다. 다만 매일 기대했던 비가 내릴 듯 말듯 하며 내리지를 않아서 그것이 조금 신경이 쓰인다. 지독히도 가물고 더웠던 여름 동안 앞 쪽의 잔디는 색이 바래고, 숨을 죽이고 죽은 듯이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 파랗게 살아날 것이다. 올해 이곳의 날씨는 다행히 ‘뉴스’가 없이 지나갔다. 다른 곳에 비하면 그런대로 준수하다고나 할까. 과연 이번 겨울 날씨는 어떨지 자못 기대가 된다. 작년에는 정말 춥고, 많은 눈이 내렸기 때문이다.

Grandstream GXP-285 SIP Phone
Grandstream GXP-285 SIP Phone

오늘 며칠 전에 Amazon.com에 order했던 Grandstream GXP-285 (SIP) VOIP phone이 도착했다. 미리 review도 보았고, USERS MANUAL도 이미 download해서 보았기 때문에 생소할 리가 없다. 사실 몇 년 전에 이미 GRANDSTREAM의 VOIP phone adapter를 써본 적이 있어서 눈에 익은 제품이긴 하다. 하지만 진짜 phone은 이번이 처음이다. 몇 달 전에 ebay에서 LINKSYS (Cisco)의 SPA-841 2-line VOIP phone, 쓰던 것을 산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나에게 SIP VOIP phone은 그것이 처음이었던 셈이다. 그 동안 이 전화기를 많이 쓰지는 않았지만, 얼마 전에 Google Voice로 한국에 전화를 했을 때, 너무나 음질이 좋았다. 그러니까 Internet phone의 수준이 완전히 PSTN (analog) phone의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문제는 아직도 VOIP 의 대부분이 softphone (on PC)을 쓰는 사람들이 많고, SKYPE 같은 조금 non-standard technology를 쓰기 때문에 전통적인 Bell phone같은 ‘쓰기 쉬운’ 맛이 덜 하다는데 있다. 하지만 이제 VOIP (특히 SIP compatible) phone도보기와 느낌이 거의 똑 같이 analog phone과 비슷해서, ‘전통적인 전화기’의 남은 수명도 그렇게 긴 것 같지 않아 보인다. 나의 home-office에는 이미 Asterisk-based IP-PBX (PBX-IN-A-FLASH: PIAF)가 있어서 (running on Proxmox Virtual Server), 미국과 캐나다는 Google Voice로 무료로 통화를 할 수 있고, 국제전화도 정말 싸게 사용할 수 있다. 이번에 산 전화기는 비록 값이 저렴한 것이지만 (under $50) Home-Office에는 적당해서, 연숙의 office에서 쓰게 할 예정인데, 가끔 ‘음질이 형편없는’ cell-phone에서 벗어나서 이렇게 ‘안정되고 깨끗한’ 음성을 즐길 수 있는 것도 좋을 듯 하다.

GPS' dead battery
GPS’ dead battery

몇 년 전에 크리스마스 때 연숙에게 선물로 준 GPS가 별로 쓰지도 않았는데 charge가 되지를 않는다. 그러니까 power cord (usb or adapter)를 써야만 이것을 쓸 수가 있게 된 것이다. 우리는 GPS를 별로 쓸 필요가 없지만, 그래도 가끔 쓰려고 하면 이런 것이 짜증이 나는 것이다. 고급 차를 타는 사람들은 요새 아예 GPS가 dashboard console에 있어서 쓰기가 참 편한 것 같았다. 그렇다고 다른 것을 살 필요까지는 못 느끼고.. 이럴 때는 역시 ‘공돌이 정신 (hacker mentality)’이 발동을 하게 된다. 그래서 ‘열어보게’ 되었다. charge가 안 되니까 이것은 rechargeable battery가 ‘죽은’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죽었는지, 역시 이 battery도 Made in China였다. ‘조잡한’ 것을 썼을 것이다. 이것은 portable device에서 많이 쓰는 3..7V의 Polymer type인데, 암만 Internet을 뒤져 보아도 이것과 같은 것은 찾을 수가 없었다. 비슷한 것을 찾아도, 값이 ‘장난’이 아니게 비쌌다. 그렇게까지 해서 고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GPS를 버리기도 그렇고.. 그러다가 얼마 전에 거의 못쓰게 된 Canon digital camera의 Battery가 생각이 나서 보니 거의 power spec이 비슷했다. 3.7V 1200mAh! 모르긴 몰라도 이것을 쓸 수만 있으면 될 것 같은데.. 문제는 battery terminal을 다시 연결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는 사실이다. Soldering 을 해야 하는데, 워낙 terminal이 작아서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계속 궁리를 하면 무슨 idea가 생길지도 모른다.

오늘, 요새 거의 자취를 감춘 ‘엽서’ 한 장이 배달되었다. 보낸 사람은 Law Office of Se Ho Moon, PC (Suwanee, GA)라고 인쇄가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스와니 (아틀란타 동북단의 suburb)에 있는 ‘문세호 변호사‘ 가 보낸 것이다. 요새 변호사 개업을 했나.. 하며 읽어보니 “친애하는 연세대학교 동문 여러분,”으로 시작이 된다. 아하! 연세대 동문회에서 보낸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아, 이맘때면 연례 연고전이 있던 때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9월 25일에는 골프대회, 10월 2일에는 구기대회. 나는 골프를 치지 않으니까 그날은 관심이 없지만, 구기대회에는 조금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연고전 참가를 한 것이 1997년 쯤이었다. 그러니까, 15년 전이 되었다. 그 때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연말 연대 송년회까지 참석을 했는데,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완전히 잊고 살게 되었던 것이다.
이곳에 이사온 후 나는 사실 동창회에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그 당시에는 가까이 알고 지내던 연대 이원선 동문이 그 해 동문회 회장이 된 바람에 조금은 손 쉽게 참가를 하게 된 것이었다. 사실, 처음 나갈 때 모르는 동문을 만나는 것이 물론 반갑기는 하지만 서먹서먹하고 어색한 것도 사실이라서 그렇게 참가를 안 한 것도 이유가 된다. 이원선 동문은 68학번 연대 기계공학과 출신인데, 내 친구였던 (타계) 같은 연대 기계과 김호룡을 알고 있었고, 우리와 같이 아틀란타 천주교회에도 같이 나갔던 동문이었다. 아쉽게 그 이후 서로 소식이 거의 끊어지게 되고 같은 지역에 살면서도 거의 잊고 살게 되었던 것이다. 요새는 내가 레지오에 입단하면서 성당에 갈 수가 있어서, 가끔 이원선씨의 부인을 뵙곤 하였지만 끝내 이원선씨는 볼 수가 없었다. 올해 이 연고전 엽서를 받고 조금은 생각을 하게 된다. 거의 숨어서 살다가 조금씩 밖으로 나간 김에 올해는 한번 연고전 ‘소프트 볼’ 대회에 참가하거나 구경을 가 볼까 하는 생각이다. 그곳에서 운동과 놀기를 좋아하는 이원선 동문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낙엽을 기다리며..

 

Autumn Leaves – Edith Piaf

Autumn Leaves:  의외로 갑자기 가을의 맛이 눈앞에 다가왔다. 준비도 못한 채 맞게 된 것이지만, 절대로 가을은 반갑다. 황금색으로 바뀌는 나뭇잎을 보는 것도 즐겁고, 차가운 비를 바라보며 움츠려 드는 몸을 따뜻하게 녹이는 진한 커피향도 그렇고, 이것이 앞으로 몇 개월의 비교적 짧은 기간에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다.
은근히 기대했던 비는 끈질기게도 오지를 않는다. 그래서 모든 것이 확률적인 수치로 나오는 일기예보는 해석을 잘 해야 한다. 그 확률이 맞는 확률도 있을 것이고 그것은 역시 개개인 마다 조금씩 다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요새 일기예보는 거의 일부러 안 보는 편이다. 기대도 하기 싫고, 미리 알아 보았자 그렇게 이득이 될 것도 없고, 만의 일이라도 비상 적인 일기가 오게 되면 그것은 주위를 통해서 자연히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니까 사실 마음이 편하다. 시간적으로 변하는 날씨에 연연하던 때를 생각하면 왜 그렇게 내가 한가했나 하는 후회도 든다.
내가 사는 이곳의 9월은 사과의 계절이다. 그래서 애들이 어렸을 때는 가족적인 연례행사로 과수원을 찾고 했다. 아이들이 다 떠나면서 그런 행사도 시들해지고 작년부터는 가지 않게 되었다. 이곳에 이사올 당시, 그러니까 거의 20년 전만 해도 그렇게 과수원을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인구가 늘면서, 특히 한인들이 늘어나면서 조금은 눈에 거슬릴 정도가 되었다. 특히 단체로 버스까지 타고 오는 것을 보면서 완전히 그곳의 맛이 사라지게 되었다. 그 옛날이 그립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이 자연스러운 세월의 흐름이 아닐까.. 모든 것은 모두 시간에 따라 변하는 것이니까.

 일본 TV 드라마:  2007년부터 보기 시작했던 일본의 텔레비전 프로그램들, 특히 그 중에서도 연속극 드라마들 이제는 이미 방영된 것은 다 보아서 새로 나오는 것을 기다리게까지 되었다. 사실상 그것들을 보기 시작하면서 한국의 프로그램들을 하나도 안보게 되었다. 연숙은 이것을 이해를 못하는 모양이다. 어떻게 그렇게까지 되었나 하는, 조금은 실망까지 하는 눈치다. 어찌 그것을 이해를 못할까? 같은 드라마를 보아야 그런대로 얘기할 것도 생기고 하니까.. 이곳에서 가끔 모이는 친지들과도 마찬가지다. 모두들 어떤 한국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가지도 신나게 얘기를 나누는데, 나는 완전히 듣고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니까..
일본 프로그램을 보기 전에도 사실 나는 한국에서 나오는 것을 아주 가끔 보는 편이어서, 그 당시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것들은 내가 보아도 조금은 이상하긴 하다. 하지만 일본의 드라마를 보는 나는 분명히 목적이 있었다. 그들을 조금이라도 ‘값싸게’ 공부해 보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인터넷의 덕분으로 가능해 졌고, 최소한 듣는 일본어는 많이 익숙해 졌다. 비록 드라마지만 그들의 문화, 생각, 풍습, 역사 등등을 간접적으로 많이 배우게 되었다. 너무나 그들을 모르고, 무시하며 산 것이 조금은 후회가 될 정도였다. 그래서 올해 초의 지진, 해일, 원전사고 등 재해 때, 그들을 이제까지와는 아주 다른 눈으로 그들을 보게 되기도 했다. ‘증오’의 역사로 점철이 되었고, 철저한 반일교육으로 자란 나로써는 지난 몇 년 동안 많은 것을 새로 보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다행히 대한민국의 경제성장, 정치적인 완숙함, 한류의 파급 등으로 그들도 이제는 거의 친구와 같은 입장을 취하게 되어서, 참 세상을 오래 산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이미 내가 골라놓은 ‘최고의 일본 드라마’ 목록은 계속 불어난다

 평창이씨 시조: 얼마 전에 강원도 평창이 동계 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다고 들어서, 평창이란 이름이 앞으로 귀에 아주 익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평창 이씨라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평창이 본관인 성씨가 다른 것도 있는지는 모르지만 평창 이씨만은 분명하게 그곳이 고향이다. 하지만 평창이씨를 공부해 보면서 평창에 근거를 한 평창이씨는 한가지 파, ‘정숙공파’ 밖에 없고 나머지는 거의 전국에 흩어져 있다. 내가 속한 ‘익평공파’만 해도 그렇다. 나의 바로 위 조상님들의 세거지는 평창이 아니고 평택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도 평창에 살고 계신 정숙공파 종씨들은 평창이 더욱 알려지게 되면서 조금 더 특별한 대우를 받게 되지 않을까..

현재 평창이씨는 시조 할아버지 문제로 두 개의 파벌로 갈린 상태가 되었다. 서울 흥인동에 위치한 평창이씨 대종회는 시조 휘 ‘광’ 자 할아버지를 시조로 하는데 반해서, 정숙공파는 독자적으로 그 보다 훨씬 위의 조상인 ‘윤장’ 할아버지를 시조로 삼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실 2개의 ‘다른’ 족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대종회에서는 광 할아버지 이전의 역사는 상관이 없다고 보는 것이니까, 최소한 대종회 족보는 전체가 맞는 것이고, 정숙공파 족보는 대종회 족보에 없는 것이 더 들어가 있을 뿐이니까.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정숙공파의 족보는 시조인 윤장이 경주이씨에서 갈려 나온 것까지 밝히고 있어서, 이것이 문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중요할까? 그리고 그렇게 오래 전의 사실을 어떻게 몇 가지 남은 사료로써 단정을 지을 수 있을까? 대종회는 ‘정사’를 고수하는 입장이어서 원래 족보가 출발된 시점에서 어떠한 다른 것도 넣을 수 없다는 보수적인 입장이고 보면 그것도 이해가 간다. 어떤 분들 말대로 사실 그것이 대종회가 갈라질 정도로 심각한 문제는 아닐 것 같다.

 

 

2011 첫 가을비 우산 속

어제는 루이지애나 로 부터 북상한 tropical storm ‘Lee’가 많은 비를 몰고 결국 이곳을 지나가게 되었다. 우리가 필요했던 것은 알맞은 비 였으나, 덤으로 토네이도까지 주면서 지나갔다. 비는 예상보다는 적게 왔지만, 몇 주의 가뭄에 비하면 적지 않은 것이었다. 근처에 아주 작은 규모의 토네이도가 집 몇 채에 나무를 쓰러뜨렸지만, 이것은 다른 곳의 ‘대형 사고’에 비하면 아주 경미한 것이었다. 그러다가 오늘은 왔다. 올 것이 온 것이다. 기온이 급강하 하며 아주 음산한 비까지 뿌리는 하루였다. 이것이 바로 가을비의 전형이 아닐까? 몇 달 만에 다 잊어버렸던 ‘써늘함’을 처음으로 느낀 날이었다. 긴 팔, 긴 바지 옷들을 갑자기 찾아서 허둥대던 싸늘한 아침, 이제부터는 조금 ‘가을비 우산 속‘을 기대해도 좋은 계절이 된 것인지.. 기대가 된다.

 

미국 대통령, ‘바락 오바마.. 미국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 조금은 불쌍하다. 재수가 지독히도 없었나. 기대가 너무나도 컸었을 까? 제2의 지미 카터가 되어가는 것이 아닐까?

poor Obama on Labor Day, 2011
poor Obama on Labor Day, 2011

8년간의 ‘머저리’ 부시(stupid Bush) 밑에서 거덜이 난 미국의 현실에 진절머리가 난 후의 거의 이상적인 대통령 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잘못이었을까? 희망과 현실이 어쩌면 이렇게 처참할 정도로 차이를 보이고 있을까? 결국은 오바마는 지금 미국이 필요로 하는 인물의 자격에 미달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가 제일 큰 ‘실수’를 한 것이 거의 광신적으로 그의 정책이 실패하기를 원했던 반대당을 제압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너무나 ‘착하고, 타협적’으로 그들을 대한 것은 지금 보면 거의 치명적인 실수였다. 그 들과 똑 같은 수법으로 ‘무자비하게’ 그 광신도들을 눌렀어야 했다. 그리고 이제는 그런 실수를 회복하기에는 역부족이고, 시간적으로도 늦었다. 이제, 깡패 같은 공화당이 재집권을 하게 되면 그와 대다수 국민들이 원했던 ‘상식적인 정책’은 물 건너 갈 것이 너무나 뻔하다. 참, 암담한 미래가 보인다. 이제 이곳을 떠날 때가 하루 하루 가까이 다가오는 것일까?

돌아오는 일요일은 9월 11일이다. 뉴스에서 그것을 10년 동안 끊임없이 하지만 조금씩 낮아지는 정도로 취급을 했지만 역시 10이라는 숫자에는 약한 모양이다. 10주년이 된 나인-원-원.. 어찌 구급,비상 전화번호, 911과 같은 날이었을까? 이제는 10년 정도는 절대로 긴 세월이 아니다. 어제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으니까. 하지만 10년 동안 참 많은 것이 변함도 느낀다. 나도 변했고, 늙었고, 주위도 꽤 변해 있다. 특히 정치, 사회적으로 미국이 겪었고, 변한 것을 보면 조금은 소름조차 끼칠 정도다. 그것은 미국만이 아닐 것이다. 직접, 간접적으로 미친 여파는 후세에 역사가들이 말을 해 줄 것이지만, 아마추어 역사학도가 되어서 생각을 해도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한마디로 ‘극단주의자들의 일시적 승리’, 그런 것이 아닐까? 이제는 웬만한 ‘끔찍한’ 것에도 그리 놀라지 않게 되었다. 극단주의는 사회, 문화 곳곳에서 활개를 치고 유행처럼 번졌다. 그런 것들이 언제까지 가게 될까? ‘양순하고, 착한’ 다수들은 도대체 어디로들 숨었을까?

 

팔월이여, 안녕..

Labor Day 그렇게 더웠던, 하지만 그런대로 잘 적응하며 더위가 친구처럼 완전히 익숙해질 무렵, 갑자기 9월을 맞이하게 되었다. 9월 첫 월요일은 전통적으로 동네의 수영장들이 문을 닫는, ‘비공식적’ 여름의 마지막 날, Labor Day(미국 노동절)이다. 요새같이 실업률이 높아서야, 노동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세월이 되었다. 대부분의 육체적 노동을 하던 멕시코 사람들이 거의 사라지고, 그 다음의 ‘소수 인종’들이 조금은 경쟁이 완화되었지만 이번에는 일자리가 없는 것이다. 불필요한 전쟁을 몇 번씩 치르며 돈을 그렇게 찍어냈으니, 아무리 천하장사 미국 이라도 그것을 어떻게 견디겠는가? 몇 년 동안은 완전히 남의 돈으로 집과 빚을 얻어서 흥청망청 썼으니.. 과연 그 ‘없는 돈’이 어디에서 나왔겠는가? 이건 경제학의 ‘경’자도 모르는 중학생이 더 잘 알 것이다.

불경기는 분명히 걱정할 만하지만 그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중산층의 폭’이 점점 줄어든다는 사실이다. 돈을 가진 인간과 ‘절대로 가난한’ 인간들의 폭만 그 동안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전형적인 제3세계의 문제들인데.. 이것이 현재의 상태로 나가면 미국의 문제가 될 전망이다. 깡패집단에 ‘납치가 된’ 공화당은 절대로 ‘대기업과 부자들을 보호’ 해야 하는 입장이고, ‘불쌍한’ 민주당은 절대적으로 없는 사람들의 지지를 받아야 하고.. 미국 정치는 완전한 ‘야쿠자 난투’ 형국이 되어가고 있는데.. ‘정치를 초월한, 윈스턴 처칠’ 정도의 지도자가 발견되지 않는 한, 지난 반세기 동안 잘 나가던 ‘무적의 미국’은 동생나라 일본을 따라서 ‘천천히’ 쇠퇴의 첫 단계로 들어가지 않을까..(아니,이미 들어섰을 것일지도) 나중에 쾌재는 아무래도 ‘짱 꼴라’ 들이 부를 것 같아 정말로 우울해 진다.

 

 

Brian Hyland – Sealed with a kiss
아련한 추억의 찬란했던 여름을 보내고 다가오는 계절을

아침의 신비:  비록 당분간도 덥겠지만 하루하루가 달라질 것이다. 벌써 아침 7시 쯤에도 어둠이 가득하게 남아있다. 그렇게 해가 짧아진 것이다. 10월의 Daylight Saving Time(DST: aka, summer time)해제 쯤까지는 해 뜨는 시간이 무서운 속도로 늦어질 것이다. 이것이 가을의 맛이다. 어두운 아침..에 일어나는 맛.. 나는 ‘절대적’으로 morning person이라서 아침을 맞이하는 기분을 못 느끼면 살 맛도 없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연숙은 나와 절대로 궁합이 맞지를 않는다. 그녀는 절대적인 night person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바꾸어 보려고 무던히 노력하는 듯 하지만 아마도 힘들 듯 하다.

나도 한 때, 대부분은 학교 다닐 때, 정말 밤늦게 자는 올빼미 스타일이었고, 한때는 정말 그것을 즐겼다. 그러던 것이 서서히 아침으로 돌아오게 되고 이른 아침 공기와 분위기를 느끼고 즐기게 되었다. 특히 이것은 직장생활에서 받은 영향도 있는데, 이른 아침 아련히 진동하는 잠을 깨는 커피향기만 기억을 해도 아침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 직장분위기가 다 끝난 지금에도 그것이 완전히 몸에 배어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아침에 하는 1시간의 ‘일’은 다른 때에 하는 것과는 ‘양과 질’로 절대로 비교할 수가 없는 것이다. 특히 가을, 겨울과 같이 밝지 않은 아침의 시간은 정말 보석과도 같이 값지고, 심지어 ‘신비스러운’ 시간인 것이다. 그런 어둡고 긴 아침의 계절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으니 어찌 이것 하나만으로도 가을이 기다려지지 않겠는가?

 

느긋함과 늙음,  젊었던 시절 항상 그렇게 생각을 했다. 나이가 들면 모든 것을 느긋하게, 시간을 두고, 회상을 하며, 생각하며, 천천히 관용적으로, 이해를 하는.. 그런 ‘신사중의 신사 같은 나이 듦’ 등을 그리곤 했다. 싫어하는 사람보다는 그런대로 싫지만 이해하게 되는 그런 너그러움.. 이 나이가 들었다는 ‘보람’이 아닐까..하는 조금은 희망적인 희망을 해 본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느긋함 보다는 점점 굳어져가는 ‘나만의 생각’에 집착하는 것을 느끼고 적지 않게 실망을 하곤 한다.

왜 그럴까? 오히려 젊었을 때에 더 ‘관용과 용서’가 많았던 것을 기억한다. 나만의 ‘사상과 주관’이 나이에 비례해서 뚜렷해져서 그런지 모른다. 그러니까, 더 타협을 하기가 힘든 것이다. 나의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해서 그럴지도.. 이 얼마나 무서운 함정인가? 이런 것에서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노력을 해야 하는가? 개개인 마다 다를 것이고, 정답도 없을 것이다. 이래서 인생은 재미가 있는지도 모른다.

미국에서 가장 추악한 정치인, 딕 체이니
미국에서 가장 추악한 정치인, 딕 체이니

CheneyPowell, 정말로 극과 극의 인상을 주는 이름들이다. 그러니까 전자는 Dick Cheney, 부시, 미국을 말아먹은 인간의 꼬붕 격 이었고, Colin Powell은 같은 꼬붕 자리에 있었지만 정 반대로 그 나름대로 의 피해를 가급적 줄이려고 노력을 하려고 한 인물이다. 결과적으로 부시를 전쟁으로 몰아넣게 한 장본인들 중의 오야붕 격이 바로 Cheney인데, 이 인물은 알면 알수록 ‘무섭게’ 느껴지는 ‘전쟁 광’ 에 가깝다. 마키아벨리를 뺨치는 ‘수단과 방법에 문제 없는’ 그런 전근대적 과격주의 신봉자이기도 하다. 공공연히 고문 사용을 지지하는 만용도 가졌고,심지어 ‘전범’으로 국제재판소에 기소되는 것을 우려할 정도다.

부시의 ‘비극’은 바로 그 같은 인물을 직속 ‘상관’으로 기용을 했다는 실수였다. 같은 체제 내에서 그것을 적극적으로 직책을 걸고 제동을 걸려던 사람이 Colin Powell이다. 그 두 사람이 지금 완전히 전투태세를 갖추고 제 2의 대결을 할 모양이다. ‘철면피 같은 더러운 늙은 여우’ 같은 Cheney, 그런대로 명분과 이름을 살리려고 자서전을 발행할 모양인데, 완전히 자기만의 역사를 다시 쓴 모양인데, 그것이 그렇게 쉬울까? 지금 미국은 이런 ‘과격파’가 아니면 행세를 못할 지경에 이르고 있고, 이것은 정말 우려를 금할 수 없는 것이다.

 

Hurricane Irene

major hurricane Irene near Florida coast
monster hurricane Irene near Florida coast

허리케인 아이린, 일주일도 넘게 비 구경을 못하던 차에 monster hurricane Irene이 미 동부 해안을 따라 올라 온다는 소식을 듣고 혹시나 이쪽으로 와서 많은 비를 뿌리려나 희망적인 기대를 해 보았지만 예년과 비슷하게 이곳의 근처는 완전히 비켜 지나갈 것으로 예보가 되었다. 하기야 이것이 정말로 지나가게 되면 비만 뿌리겠는가.. 강풍으로 피해도 엄청날 수도 있다. 그것보다는 그저 ‘더운 쪽’이 더 나을 것이다.

문제는 이 허리케인이 Interstate Highway I-95를 따라서 워싱턴, 뉴욕 쪽으로 올라간다는 사실이다. 이 I-95 고속도로는 완전히 미국 동부의 대도시들이 밀집되어 있는 곳을 지나가니까, 막대한 피해가 날 수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만약,만약, 2005년의 허리케인 카트리나(Hurricane Katrina) 가 루지애나 주의 뉴올리언즈(New Orleans, Louisiana) 를 덮치듯이 뉴욕 시를 덮치게 되면 정말 예측불허의 피해가 날 수도 있다. 일요일 쯤이면 그 결과를 알게 될 것인데.. 과연 어찌될 것인가.. 다른 한편으로는 미안하지만, 사실은 흥미진진하기도 하다.

비약적인 생각일지는 모르지만, 지독한 불경기에 이런 자연재해로 피해까지 보게 되면, 미국경제 (따라서 세계경제)는 당분간 같은 상태의 불경기로 이어질 듯하고, 이것은 내년의 대선으로 이어져서 ‘희망의 등대’였던 오바마 도 재선 가능성이 더욱 희박해지고, 전대미문의 ‘깡패집단’에 의해서 끌려가고 있는 공화당은 승리의 쾌재를 부르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드디어 “짱 꼴라” 집단이 ‘We’re Number One!” 이라고 선언을 할 날이 곧 오게 되지 않을까? 정말 살 맛이 없는 날들이 오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이것은 ‘최악이 시나리오’에 불과하다.

 

 

2011년 7월이여, 안녕..

어느덧 2011년 7월과 작별을 할 날이 다가오고 있다. 덥긴 했지만 의외로 다른 지역 (특히 Texas, Oklahoma, midwest, & northeast)들이 이곳보다 ‘더’ 더워서 상대적으로, 심리적으로 조금 ‘덜 덥게’ 느껴진, 아니 그렇게 느끼려고 했던 그런 더위였고, 거기다가 다행히 늦은 늦은 오후에 한바탕 쏟아지는 시원한 소낙비가 가끔 우리들을 즐겁게도 했던 그런 올해의 7월 달이 간다. 7월의 초순에 ‘일단’ 끝냈던 water heater project 에서 하도 의외의 고생을 해서, 나의 몸과 마음이 완전히 knockout이 되어 그 이후로는 ‘일부러’ 그것들에 손을 대지도 않았다. 이 project는 아직 완전한 끝마무리를 못 지었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끝이 나서 현재 우리 집의 더운 물을 쓰는 데는 지장이 없다. 7월이 가기 전에 100% 끝을 내려고 했지만, 사실 아직도 다시 손을 대고 싶지 않을 정도다. 그 푹~ 쉬는 동안에는 summer reading 에 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갑자기’ 읽어야 할 must-read-list가 늘어나고 있어서 더 시간이 걸리고 있는 것이다. 올 여름은 아직도 한달 이상이나 남아 있어서 당분간 이 ‘게으른 독서’는 계속이 될 것이다. 
 

1980년대 에스페란토 교본
1980년대 에스페란토 교본

이번에 전에 읽었던 책을 반납을 하러 도서관엘 가서 아주 우연히 에스페란토(Esperanto)에 관한 책을 보고 빌려오게 되었다. 나는 이 에스페란토란 말 자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꽤 친숙한 것이었다. 물론 중학교 때 세계사 시간에 잠깐 그 말을 본 것을 기억한다. 그러니까 세계사에서 잠깐 언급할 정도인 그렇게 중요한 ‘사건’은 절대로 아닌 것이다. 왜, 그것이 친숙하게 느껴지는가 하면, 생전 보지도 못한 나의 아버지(이정모, 평창이씨 익평공파 27세손)께서 육이오 동란 전까지 ‘조선 에스페란토 ‘의 회원이셨기 때문이다. 그 당시 아버지의 나이로 보아서 중요 멤버였을 것이다. 회원들이 모여서 찍은 단체사진을 본 것도 또렷이 기억을 한다. 그 이외에도 아버님께서 쓰시던 책들 속에서 에스페란토에 관한 것이 꽤 많이 있었다. 물론 어린 나이에 나는 그것들이 무엇인지 몰랐다. 나중에 세계사 시간에 잠깐 배우게 되어서 알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추억과 더불어, 150년 전에 폴란드의 자멘호프에 의해서 만들어진 이 ‘세계평화를 위한 인공 언어’가 과연 어떻게 ‘생겼는지’ 갑자기 궁금해 진 것이다. 빌려온 책은 1980년대에 발행이 된 그런대로 오래된 책인데, 잠깐 훑어보니 나의 예상과 달리 꽤 잘 보존되고 살아 있었다. 문제는 이것이 아직도 희망한 만큼 널리 알려진 언어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아직도 ‘동호회’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다.

 

 

말세인가.. 외딴 섬에 가고 싶다

요새 며칠 계속 미국의 ‘심장부’에 해당하는 동북부(northeast)에 완전히 더위 비상이 걸렸다. 뉴욕, 보스톤을 포함한 대도시들이 완전히 지독한 더위에 고생을 하는 모양이다. 신기한 것은 지금 이곳 아틀란타를 포함한 동남부 지역은 그렇게까지 덥지 않은 것이다. 그저 평년의 기온에다가 오후에는 시원하게 비까지 오곤 해서 살만하다. 문제는 그 ‘북쪽’ 지방에는 이곳에 비해서 더위에 대한 대비가 허술하다는 것인데, 대표적인 것이 아마도 에어컨 일 것이다. 이런 더위에 그것이 없으면 정말 밤에 잠자기가 힘이 들 것이다. 그쪽은 겨울에 지독한 추위와 폭설로 고생을 했는데 여름에는 더위로.. 이것이 바로 극단적인 기후의 표본이 아닐까? 지구온난화의 한 증상이 이런 극단적 기후라고 했는데, 아마도 그 말이 일리가 있어서 조금은 걱정이 된다.

더위와 더불어 뉴욕 시에서는 내가 보기에 ‘해괴’ 한 법이 통과 되어서 동성결혼이 붐을 이루고 있다. 종교를 떠나서, 이것은 한마디로 ‘변태’ 인 것인데, 어찌하여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 것일까? 한마디로 ‘정신병자’들에게 날개를 달아준 셈인데, 이러고도 정상적인 사회가 오래 오래 문제없이 유지가 될까? 대부분 ‘인간’들은 아마도 찬성보다는 무관심에 가까운데, 그들 ‘변태그룹’ 인간들이 아마도 정치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것 같고, 그 동안 사회문제에서 아슬아슬한 입장을 취했던 오바마(Obama)가 다음 선거를 의식하고 눈을 완전히 감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그 변태들에게 그 동안은 그저 구제불능의 불쌍한 군상들이라고 무시를 하고 살았지만 이제는 조금씩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다음의 단계는 무엇인가? 아마 근친결혼도 그렇게 이상하지 않을지도..아주 아찔한 상상이지만, 모든 것을 ‘자기가 좋은 법대로’ 하겠다면 형제, 자매, 남매끼리 ‘결혼’ 하겠다면 무슨 근거로 막겠는가? 아예, 동물과 결혼하겠다고 해도 크게 이상할 것 없을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enough is enough의 전형적인 case일 것이다. 이제는 무엇이 정상이고 비정상인지 구별을 할 수가 없게 되는 세상이 되고 있다. 어느 외딴 섬에라도 가서 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신세..어찌 돌아가는 세상인가?

 

 자칭 크리스천 이란 미친 놈이 노르웨이(Norway) 에서 총기난동을 부려 무고한 젊은 아이들이 무수히 죽었고 정부청사까지 폭파 하였다. 이것은 아마도 이슬람교에 대한 ‘보복’ 같은 인상인데, 왜 죄 없는 아이들을 그렇게 ‘재미있게’ 죽여야 했을까? 우리가 보기에는 분명 ‘정신이상’에 속하겠지만 그로서는 아주 정신이 말짱하다고 얘기한다. ‘정치적’인 이유로 ‘혁명’을 해야 했다고? 여기에 ‘원수를 사랑하라’는 기독교를 판 것으로 우선, 죽일 놈인데, 회교도가 싫었으면 그 총과 폭탄을 들고 극단주의 테로리스트(terrorist)를 찾아 나설 것이지.. 비겁하게 독 안에 든 쥐처럼 갇힌 조그만 섬에 가서 그 ‘지랄’을 벌렸을까? 내가 짐작하건대, 친구하나 없는 외톨이가, 혼자서 주변에 점점 늘어나고 있는 이슬람인 들을 보고 분명히 겁을 먹었을 것이다. 거기다.. 사형제도도 없고 최고형이 30년이라니.. 어느 것에도 ‘겁먹게 하는’ 억제 제도와 관용에 대한 교육’이 없어서 더 그런 비극을 재촉하지 않았을까? 참, 이런 것도 ‘어느 외딴 섬에 가서 살고 싶게 하는’ 그런 추악한 뉴스들이다.

 

휴~ 덥다, 더워..

올 여름 들어서 첫, ‘강더위’가 시작되었다. ‘강추위’와 비슷한 말 ‘강더위’란 말은 들어본 기억이 없지만 할 수 없이 쓰게 되었다. ‘무더위’ 보다 더 더운 말을 찾기 쉽지 않았다. 지난번 나의 blog에서 요새는 날씨에 대한 뉴스가 조금 주춤 해 졌다고 쓰더라니.. 그새를 못 참고 이렇게 되었다. 지난 4월 달의 날씨에 관한 메가 급 뉴스는 비록 아닐 지라도 이런 찜통더위는 조금 신경이 쓰인다. 바람이 전혀 없이 지독한 습도가 가세한 더위에서 사실 ‘도망’ 갈 곳이 없다. 그늘도 소용이 없으니까.. 유일한 방법은 ‘에너지’를 써서 더위를 ‘뽑아내어야’ 하는 수 밖에 없다. 나는 이렇게 에너지를 써서라도 편하게 살아야 하는 현대문명이 별로 맘에 들지 않지만.. 어찌하랴.. 인간은 이렇게 자꾸만 ‘약해’져 가는 것을..

오래 전 고국에서 살 때, 도망갈 수 없는 더위를 겪었던 기억이 별로 없었다. 그런대로 ‘즐길만한’ 더위였다. 딱 한번 예외는 있었다. 1972년 여름..서울 세운아파트.. 그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잠을 못 잤다. 밤에 기온이 거의 떨어지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것을 나중에 ‘열대야’ 라고 부르게 된 것을 알았지만 그 당시는 처음 겪는 현상이라 적절한 ‘용어’도 없었던 것이다. 확실히 무언가 기후의 거대한 변화의 흐름이 있긴 한 것이다.

그 당시 서울에는 아주 고급 사무실과 건물이 아니면 ‘에어컨’ 이란 것이 없었다. 하물며 일반 주택에선 그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전기선풍기만 있으면 대 만족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보다 훨씬 윤택하게 살았던 일본도 별 차이가 없었다. 그들도 역시 전기선풍기로 견딜 만 했다. 그러다가 이곳 미국에 와 보니 이건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실내 여름이 우리나라 겨울 실외보다 더 추운 듯 느껴졌으니까.. 일단 그것에 적응되고 나니까.. 이제는 전으로 돌아가기가 참 힘들어졌다. 그것이 인간인가..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아닌 게 아니라 조금은 걱정이 되기도 한다. 분명히 지구는 더워지는 것 같고, 인간은 자꾸 그것을 ‘강제’로 식힌 곳에서 ‘안주’하려고 하고.. 이것도 ‘진화’과정을 통해서 ‘인간 진화가 아닌 퇴화’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조금은 근거가 약한 걱정 같지만.. 하지만 우선 걱정을 놓자.. 길어야 2개월만 견디면 되니까..

Dan Brown's the Da Vinci Code 2003
Dan Brown’s the Da Vinci Code 2003

THE DA VINCI CODE, 올 여름 들어서 나도 그 ‘흔한’ summer reading을 생각하게 되었다. 왜 여름만 되면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일까? 이것도 혹시 ‘책 장사’들이 꾸며낸 ‘음모’일까? 좌우지간 여름 전부터 요란하게 이번 여름에 읽어야 할 책들이 요란하게 등장한다. 하기야 영화도 마찬가지다. 이때 ‘수입’을 잡아야 타산이 맞게 되어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수시로 책을 읽고 있어서 여름의 독서는 특별한 의미가 없다. 하지만 올해는 조금 이색적으로 이것 한 권만은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3년에 나온 책, Dan Brown의 “The Da Vinci Code. 거의 8년이 지나서 읽게 되었다. 이것은 그 후에 Tom Hanks주연의 영화까지 나온 것이다. 이 책은 내가 산 것이 아니고 큰 딸 새로니가 책이 처음 나올 당시에 hard-cover로 산 것이고 작은 딸 나라니까지 읽은 후에 나에게 넘어온 것을 아직껏 읽지를 못한 것이다. 사실은 첫 2페이지를 읽고, 그만 손을 놓았다. 너무나 사람들이 이야기를 많이 해서 사실 흥미가 조금 떨어진 탓도 있었고.. 역시 흥미 위주로 천주교회, 로마 바티칸을 무슨 ‘비밀과 음모의 집단’처럼 매도한 느낌도 받아서 더 그랬는지 모른다. 저자의 이러한 식의 사실처럼 느끼게 하려는 ‘소설’의 테크닉이 워낙 정교해서 재미가 없을 수가 없을 것이다. 특히 천주교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좋은 ‘비방의 재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계속 읽기를 미루는 나를 아이들은 재미있는 듯이 놀려댔다. 한마디로 내가 게으르다는 식이었다. 나중에 아이들이 영화를 보더니 그런 이야기가 없어졌는데, 이유는 영화가 그 소설을 다 망쳐 놓았다는 말투였다. 이것은 이해가 간다. 소설의 그 깊은 뉴앙스(nuance) 가 영화에서 다시 고스란히 재현되기는 쉽지 않을 듯 하다. 애들은 한결같이 Tom Hanks가 그 주인공인 Robert Langdon의 역할에 잘 맞지 않는다고 우겨댔다. 나는 책도, 영화도 안 보았으니.. 할말이 없었지만 그런대로 짐작은 하겠다. 어떻게 보면 Indiana Jones같은 역할인데.. 그것은 Harrison Ford가 더 적격이 아닐까? 문제는 Ford는 이제 너무 나이가 들었다는 ‘슬픈’ 사실.. 어찌하랴..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문제는 또다시 ‘재미없으면’ 아주 이 책에서 손을 놓을까 하는 것이었다. 다른 ‘더 재미있는’ 잡스러운 일도 많은데 이 책을 끝까지 읽으려면 무언가 ‘동기 제공’ 이 중요한 것이다. 재미 없을 때 손을 놓아버리면 이제는 다시 읽게 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해결책이 생각보다 쉽게 찾아졌다. RbT, Reading by Typing.. 내가 만든 조잡한 말이다. “맹송맹송”하게 눈으로만 읽는 것이 아니다. Computer에서 typing을 하면서 읽는 방식이다. 이런 idea는 사실 성당에서 자주 보는 성서필사에서 찾았다. 성서를 그냥 읽는 것이 아니라 펜으로 종이에다 쓰면서 읽는 것이다. 눈으로만 읽는 것보다 훨씬 집중이 되고 기억에도 더 남는다고 한다.

그런데 요새 손으로 장문의 글을 종이에 쓰는 것은 거의 ‘고문’에 가깝지 않은가?세상이 그렇게 변하고 있다.

그리고 RbT 에는 다른 이점도 있다. 끝이 나면 .’나만의 책’이 하나 남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을 무슨 연구재료로 쓰거나 할 때 인용하기도 너무 쉽고, 나만의 ‘근사한’ 책으로 만들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역시 나의 예감은 맞았다. 그냥 눈으로 읽을 때 비해서 속도는 떨어졌지만, 중단되는 ‘사고’는 없었고, 앞으로 없을 듯 하다. 한달 만에 거의 책의 반 정도를 읽게 되었다. 여기에 힘을 얻어 다른 ‘끝까지 읽기 고약한’ 책들도 함께 읽기 시작했다. 역시 속도는 늦어도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계속 읽게 되니까..

현재까지 읽은 이 책, The Da Vinci Code는 비록 가톨릭 신자의 입장에서 염려스럽긴 하지만 소설로써는 최상급이었다. 우선 ‘재미’가 있는 것이다. 읽으며 무궁무진한 상상의 나래를 펼 여지와, 절대로 책 읽기를 중단하지 못하게 하는 절묘한 수법을 쓴 저자를 다시 한번 보게 되었다. 그 ‘사실처럼 느끼게 한 거짓말들’를 어떻게 이 저자는 생각해 내었을까? 정말 할 말을 잊는다. 이 책을 읽을 때 성가신 것 중의 하나는 ‘불어’ 사용이었다. 배경이 프랑스에 많이 있기 때문이고 여자 주인공인 Sophie Neveu가 프랑스 사람이라서 더욱 그런데 문제는 나는 불어를 전혀 모른다는 사실이다. 쓰는 것도 힘들고, 발음에서는 완전히 걸린다. 이것은 거의 나의 complex가 되었다. 우선 제대로 발음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지독히 불편하고 창피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라도 한번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재동학교 졸업 앨범, 내가 1954년4월부터 1960년 2월까지 다니던 정든 서울 재동국민학교의 졸업 앨범이 드디어 ‘해체,스캔’이 되어 computer에서 편하게 볼 수 있는 PDF format으로 바뀌어서 ISSUU server에 upload가 되었다. 일반적인 browser의 pdf-reader plugin으로 보는 것 보다 훨씬 느낌이 빠르고, 실제로 ‘책’을 읽는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과연 몇 명이나 자기의 얼굴을 이곳에서 보게 될지는 미지수이지만 그래도 그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만족한다.

 

2011년 7월 초순을 간다..

2011년 7월 초순이 서서히 흐른다. 비에 젖어 조금은 덜 시끄럽게 느껴진 Fourth of July의 fireworks도 다시 잠잠해지고, 찌는듯한 여름더위가 조금은 주춤해졌다. 이제부터 약 2개월의 더위를 ‘즐기면’ 다시 찬란한 단풍을 보게 되는가.. 이것이 세월의 흐름이고 계절의 순리인 것이다. 올 봄의 ‘극악한’ 날씨들도 조금씩 ‘착해지는’ 듯 별로 날씨에 대한 빅뉴스가 없어지고 있고 hurricane도 long-term forecast 는 못 보았지만 평년보다 조용하다.

Rheem 40 gallon gas water heater
Rheem 40 gallon gas water heater

Rheem Gas Water Heater,  지난 휴일을 낀 주말은 완전히 water heater(온수기?) 에 매달려 시간을 보냈다. 거의 15년을 무사고로 우리 집의 더운물을 공급해 주던 온수기(이런 말이 있던가?)에서 거의 한 달 가량 조금씩 물이 새고 있어서 이것을 새것으로 갈 때가 온 것을 알았다. 지난 번, 그러니까 거의 15년 전에는 조금씩 샌 것이 아니고 거의 폭포수처럼 새어서 고치는 사람을 불러서 새것으로 갈았던 기억인데 이번은 품질이 좋았는지 아주 조금씩 새면서 ‘경고’를 했던 것이다.
이번에는 조금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한번 모험을 하기로 하고 내가 직접 갈아보기로 해서 이번에 작업을 한 것이다. Amazon.com으로 Rheem brand중에서 아주 high efficiency model로 order를 해서 지난 주 금요일, 집에 배달이 되었는데, 전에 쓰던 것 보다 ‘덩치’가 컸다. 거의 100파운드가 넘어서 평소에 운동을 안 한 사람은 아주 힘이 들었을 것이고, 이것을 교체하려면 이런 큰 덩치의 ‘고철’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데.. 이런 것 때문에 사람을 시키면 거의 $400이 드는 모양이다. 이것을 내가 절약하는 의미도 있고 해서 직접 시도를 한 것이다.
YouTube video를 보면 사실 아주 ‘쉽게’ 묘사가 되어있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할 리가 없다. 수도관에 관련된 plumbing job이 ‘재수’가 나쁘면 정말 사람을 괴롭히는 그런 것이니까..결과부터 말하면 ‘예상 외로 운이 나빠서’, 지독히도 고생을 했다. 7월 4일은 아침부터 밤까지 Home Depot를 4번이나 왕복해야 했고, 결국 밤 늦게 더운물을 쓸 수 있었다. 속으로 $400 절약이 사실은 그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이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제일 골치가 ‘묘한 위치’에서 soldering(납땜질)을 하는 것인데 이것은 역시 pro가 아니면 실패할 수 있다는 ‘교훈’이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납땜을 안 하는 new technology (Sharkbite)를 쓰게 되었는데.. 사실 조금은 자존심이 상한 것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밤 늦게 ‘더운 물’이 나온 것은 정말 감격적인 경험이었다.

복자 때 그려진 성 김대건 안드레아 상본
1971년 당시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상본

성인 김대건 안드레아, 지난 7월 5일은 고국의 가톨릭 성인중의 성인 김대건 안드레아 순교자 날이었다. 그날이 주중에 있어서 당겨서 7월 3일 주일에 대개 ‘이동 경축’ 미사를 드린다. 내가 ‘소속’된 이곳의 한국 본당의 이름이 ‘아틀란타 김대건 순교자 성당‘이다. 그러니까 더 의미를 느끼게 된다. 고국의 103위 성인은 익히 들어서 익숙하다. 하지만 나는 그 동안 그렇게 관심을 일부러 가진 적은 별로 없었다. 우선 과거에 순교자 성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조금은 끔찍한 생각들 때문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순교하는 장면을 ‘생생히’도 묘사를 했는지.. 인간적으로 얼마나 고통과 비참함을 안 느낄 수 있겠는가? 이런 것들은 특히 어린이들에게는 그다지 좋은 인상을 줄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도 들었던 것이다.
그런 중에 우연히 고국의 천주교 잡지, ‘경향잡지‘ 의 1970년대 간행본들을 인터넷을 통해서 보게 되었다. 한국주교회의 website에는 1900년 초부터 현재의 것 까지 모두 이곳에서 볼 수가 있어서 정말 ‘보물 창고’와 같다. 나는 특히 내가 고국에 있었던 1970년대 초의 것들이 제일 흥미로운데.. 그 이유는 그 당시의 ‘사회 상’을 간접적으로나마 회상을 할 수 있을지 모를 기사들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1971년 크리스마스 때의 서울 대연각 호텔 화재 사건, 1972년 여름의 남북 7.4 공동성명, 그 해의 10월 유신 같은 것들이다.

과학적인 김대건 신부 유해 조사, 1971
과학적인 김대건 신부 유해 조사, 1971

이 곳에서 나는 ‘복자 김대건’ 성인 탄생 150주년 특집기사를 접하게 된 것이다. 성인이 1821년 생이어서 1971년이면 150주년이 되는데 1971년 8월호에는 나에게는 거의 보물과도 같은 특집기사가 있었다. 조금은 움츠려 드는 것은 성인의 두개골을 ‘분석’하는 사진이었다. 그러니까 그 당시 복자로 부터 성인이 되게 하는 여러 노력의 일환으로 ‘철저한’ 조사를 한 셈이고 그 중에 대형 동상 제작도 있었는데 그러려면 성인의 ‘진짜 모습’에 관심이 많았던 듯 하다. 그런 노력의 결과로 요새 우리가 보는 성인의 ‘상본’이 나온 것이 아닐까?

그 당시 유해 측정의 결과가 다음과 같이 나와있다. 

(서울) 가톨릭 대학 신학부 에서는 지난 3월 16일(1971년) 학장 신부님을 비롯하여 조각가, 안과의, 피부과의, 치과의 등 약 10여 명이 모여 125년 전의 김 신부님의 두개골을 3시간에 걸쳐서 정밀히 조사했다. 이날의 측정으로서 25세의 젊음으로 순교한 김 신부님은 신장이 약 177cm이며 미남형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제2 한강교 주변에 있는 복자 성당에 세워질 김 신부님의 석상은 높이 3m로 수단에 각모를 쓰고 오른팔에 십자가를 들고 왼손은 가슴 높이에서 성경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인데 이번 조사에 의해서 생전의 모습을 닮게 동양화가 정재석(비오)씨에 의해 3월 초부터 조각이 되고 있다.

말로만 듣던 성인을 이렇게 ‘가까이’ 접하게 되니 정말 기분이 달라짐을 느낀다. 실제로 살았던 우리들의 ‘할아버지’라는 역사의식이 강하게 들게 되고 너무나 가까이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6월의 절반을 보내며..

6월도 어느덧 절반이 훌쩍 지나가고 2011년 하지가 며칠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하지는 공식적인 여름의 시작이라고 하지만 이건 허울좋은 말로 변하고 있는 것이, 이미 5월 중순부터 에어컨을 써야 하는 무더위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세상의 기후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조금은 신경이 쓰인다. 극단적으로 변하고 있다. 강추위, 찜통더위.. 그 이외의 것은 점점 기간이 짧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거야 말로 good ole days라고 하더니.. 옛날이 그립다.

우리의 한국본당인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 새로 주임신부, 하태수, 미카엘 신부님이 부임을 하셨다. 올 때, 비자문제로 예정보다 훨씬 늦게 부임을 하게 되셨는데, 약력을 잠깐 보니 신학박사에다 서강대에서 강의를 한 사목경험 제로의 신부님이시다. 조금 우려를 금할 수 없다. 50대가 훌쩍 넘은 학자 타입 신부가 과연 이 교포사목의 전초지인 우리 본당에서 어떻게 효과적인 사목을 하실지 자못 궁금해진다. 노동자사목을 몸으로 하셨던 전 pastor, 안정호 신부님과 대조적인 약력이라서 이런 우려가 생기는 것도 무리는 아닐 듯… 오시자 마자, 주일미사에서 전통적으로 찍어서 본당 웹사이트에 공개를 하던, 강론 동영상 비디오를 없애고 음성만 녹음하라고 하셨다고 해서 조금 나의 우려가 사실화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도 들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이런 것은 조금 시간을 두고 신자들의 의견을 들어 본 후에 바꾸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나로써는 주임 신부로써 얼굴을 보이는 것이 불편하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일단 full benefit of doubt를 주어보자. 시간이 말을 해 줄 것이다.

거의 5년을 써왔던 digital camera가 드디어 말썽을 부린다. 5년을 썼으니까 설사 버리게 된다고 해도 크게 걱정은 안 하지만, 이제 손에 아주 익숙해 진 것이라 조금 섭섭한 것도 사실이다. 역시 고장 난 곳은 mechanical인 것인데, lens가 focusing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electronic과 mechanical의 수명의 차이가 선명히 들어난다. 문제는 이것을 내가 고치기가 아주 힘들다는 것인데.. googling 을 해 보면 어떤 사람은 재수 좋게 고쳤다고 하는데, 아마도 그것은 아주 극소수일 것이다. 갑자기 point-and-shoot camera가 없으니까 불편한 것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사진 찍어서 그대로 그 앞에서 보고 print를 하는 것에 완전히 우리들은 spoil이 된 것이다. 그 언젠가는 한번 찍으면 일주일 이상이나 지나야 볼 수 있지 않았던가?

2011 Eucharistic Congress
2011 Eucharistic Congress

아틀란타 대교구 연례 성체대회를 올해는 처음으로 연숙과, 레지오 단원 몇 분과 같이 가기로 하고 bus 편을 신청해 놓았다. 6월 25일 (육이오) 토요일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수만 명이 참가하는 아주 커다란 아틀란타 대교구의 연례 행사인 데 올해로 거의 15년이 넘어간다. 그 동안 몇 번 가볼까 생각도 했지만 차로 혼자서 가는 것이 불편하고 해서 계속 미루어 오다가, 올해는 다행히 우리 레지오 단원 중의 한 분이 매년 가셨다고 해서 용기를 얻고 같이 가기로 한 것이다. 이런 행사는 절대로 신앙생활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특히 ‘미국식 축제분위기‘의 이런 행사는 아주 색다른 느낌을 주기도 하는 것이다.

 

5월에 시작된 여름에..

¶  이곳의 여름이 올해는 정확히 한달 빨리 도착했다. 과히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물론 암만 덥다고 해도 한여름의 그것과는 조금 느낌이 다르긴 하다. 늦봄 같은 여름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거의 2주일째 계속되는 ‘무더위’가 조금 신경질이 나려고 한다. 이러다가 계절이 주기가 바뀌는 것인가.. 아니면.. 무엇인가? 가급적 생각 안하고 보내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이 ‘기록’ 정도는 남겨두기로 했다.

성녀 Faustina 이야기
자비는 나의 사명

¶  요새는 전문서적이 아니면 ‘쓰면서 읽기’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니까 눈으로 읽으면서 손으로 typing을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쓰면서 공부를 한다. 그러니까 ‘필사’인 셈이다. 제일 힘든 케이스다. typewriter나 computer이후에는 이것이 keyboarding으로 바꾸고 있다. 아마도 쓰는 것보다 훨씬 쉬울 것이다.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쓰는 것이 제일 기억에 남게 된다고 한다. 그것이 너무 힘드니까 keyboarding을 하는데 이것도 그냥 눈으로만 읽는 것 보다 훨씬 기억에 남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이 작업이 끝나면 아주 편리한 ‘복사본’ 이 남게 되는 것이다. 특히 이렇게 하는 것이 효과적인 때는, 아주 어려운 책, 그러니까 딩굴딩굴 편하게 읽기에는 조금 힘든 책들을 읽어야 할 때이다. 이렇게 하면 읽는 것이 쉽게 중단하게 되지 않는다.

지난 해 말 레지오에 들어오면서 레지오교본을 이런 식으로 다 읽었다. 읽은 후에는 soft copy가 남게 되었고 이것이 나의 blog site에 올라가서 쉽게 Internet으로 볼 수도 있게 되었다. 요새 읽는 책은 성녀 파우스티나(St. Faustina)의 <자비는 나의 사명> 이란 책이다. reading by typing을 시작한 것이 4월 말 경인데 이제 거의 끝나가고 있다. 처음 시작할 때 참 어렵고 지루하다고 느꼈는데, 시간이 갈 수록 익숙해지고 내용에 깊이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 끝이 나면 이것도 나의 blog page에 올라가게 될 것이다.

¶  난생 처음으로 ‘피정'(retreat)이란 것을 가게 되었다. 이번 주말 2박3일간 본당 레지오 주관의 연례 ‘봉쇄피정‘이란 것인데 레지오 단원은 원칙적으로 다 가게 되어있는 것이다. 나는 이것은 말할 것도 없고 1982년 천주교 영세를 받은 이후 한번도 피정이란 것에 가본 적이 없어서 정말 처음인 것이다. 어떤 것인가는 대강 짐작이 가지만 아무래도 처음이라 신경이 많이 쓰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 나에게는 지긋한 나이와 계속 배워가는 레지오 신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 좋을 결과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다. 특히 우리 자비의 모후 단원 전원이 참가를 하게 되어서 정말 흐뭇한 느낌이고 인생,신앙선배님들이 뒤에 있다고 생각하니 힘이 나기도 한다.

우리 레지오, 아틀란타 본당 꾸리아의 자비의 모후 쁘레시디움에는 그 동안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장기유고로 자리를 비웠던 자매님이 반가운 소식으로 다시 돌아 오셨고, 새로 자매님이 들어오셔서 어제는 드디어 입단선서를 하셨다. 하지만 고참 단원 두 자매님이 자리를 비우셨는데, 한 분은 장기유고로 자리를 비우시고, 또 한 분은 완전히 퇴단을 하셨다. 이유는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우리들에게는 조금 충격적인 변화였다. 하지만 변화 없이 발전도 없다고 생각을 하며 위로를 한다. 순리적으로 새로운 ‘피’가 수혈이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면 참 자연스럽다.

인촌 김성수

¶  우연히, 아주 우연히 오래 전부터 읽었던 책, <인촌 김성수>에서 모르던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의 모교 중앙학교의 창시자 정도만을 알고 있던 민족진영 정치인이라는 것 정도에서 이번에는 이분의 종교에 관한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전통적 양반 유교집안에서 자랐지만 임종 시에 천주교 신자이고 주미대사를 역임한 장면 씨의 권유로 천주교로 입교를 한 것이다. 이것은 참 반갑고도 뜻밖의 발견이었다. 바오로의 이름으로 그는 영세를 받고 하느님께 귀의한 것이다.

1955년 2월, 인촌(仁村, 김성수의 아호)은 오후 2시경 장면과 함께 온 가회동 성당의 박병윤(朴炳閏) 신부 앞에서 조상봉사(祖上奉祀)를 해도 좋다는 말을 듣고 영세를 받았다. 영세명은 <바오로>라 했다. 성부, 성자, 성신의 이름으로 원죄와 본죄와 그 벌을 사하는 영세의식을 마친 인촌의 얼굴은 평화스럽게 보였다. “마음이 편하고 고통이 없다. 천주께서 나를 보살펴 주시는 것 같다”

 

6월을 시작하며..

5월부터 시작된 불볕더위가 거의 2주째로 접어들면서 슬그머니 6월로 접어들었다. 날씨, 기온, 기후에 조금은 둔감해지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아직도 멀었다. 심할 때는 조금 내가 너무 더위를 무서워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도 될 정도였다.  심지어 연숙에게, “더운 날씨에 대한 예보를 보면 나에게 말하지 말라” 고 간청을 할 정도였으니까. 그 한마디로 나는 기분이 쳐지는 것이 무서워서 그랬지만 이건 내가 생각해도 좀 심하지 않을까? 그래서 이제는 날씨에 둔감해 지도록 의도적으로 노력을 하는 것이다. 조금은 효과가 있나..

6월로 들어서면서 조금씩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제일 큰 이유는 이번 주말에 있는 3일간의 ‘레지오 봉쇄피정’ 때문일 것이다. ‘머리털 나고’ 처음 가보는 조금은 ‘겁이 나는’ 그런 곳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집을 거의 ‘못’ 떠나는 나의 생활에 이런 것도 심리적으로 아주 ‘큰 사건’이라 그런가… 별별 생각이 다 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좋던 싫던 나는 이런 것을 피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확고한 것이다. 아니 확고하여 지도록 노력을 하는 것이다. 결과가 어떨지는 조금 ‘흥미’ 롭기도 하지만 연숙의 ‘예상’에 의하면 그렇게까지 기대를 하지는 말라고 하니까.. 한번 ‘당해’ 보자.

드디어 그것이 찾아왔다. 얼마 전, 비가 많이 온 이후에 차고의 water heater밑에 물이 흐른 것을 보고.. 이거.. 비가 샌 것이 아닌가 의아해 했었다. 그것이 어제 다시 보고 생각을 해 보니 이것은 water heater가 새는 것이었다. 예전 처럼 폭포수처럼 새는 것이 아니라 조금은 다행이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이제 그렇게 내가 예상한 대로 수명이 다 된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머리가 복잡하다. 최소한 $800이상은 ‘잡아 먹어야’ 하니.. tank 자체는 $500정도일 것이고 나머지는 labor charge일 것이다. 내가 한번 해 볼까? plumbing은 정말 간단해 보인다. 물론 실제로 해 보면 아닐 가능성이 더 많지만.. 아니면 tank-less model로 ‘내가’ 해 볼까.. 이것은 너무 비싸다. 그저 지금 쓰는 것이 제일 무난한 방법일 것이다. 문제는 내가 혼자 하기에는 너무나 무겁다는 간단한 사실이다. $300 의  labor가 과연 우리에게 적당한 것일까? 머리가 복잡해진다.  지금 차고에는 책과 상자로 가득 차 있는데.. 갑자기 이것이 터지면.. 물바다가 되면.. 정말 큰일인데.. 어찌해야 하나?

현재 나를 제일 ‘괴롭히는’ 것 중은 역시 내가 ‘스케줄’ 에 따라 일을 못한다는 자책감이고, 또 스케줄에 따라 ‘정말 해야 할’ 것들을 계속 ‘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아직도 일년 전에 바꾸어 놓은 나의 office room의 정리가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 차고의 정리를 하나도 못했다는 사실, 따라서 지금 나의 ‘보물 같은’ 책들과 서류들의 위치가 다 같이 확실치 않다는 는 것.. 본격적으로 나만의 project을 본격적으로 못 하고 있다는 것 등등.. 그리고 집을 수리하거나 고치는 일.. 정말로 미루고 사는 것들이 많다. 하지만 못 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정말 없다. 할 수 있다.

 

Joplin, Mo.

surreal: after Joplin monster twister hits, May 22, 2011

surreal: after Joplin monster twister hits, May 22, 2011

오늘 뉴스를 잠깐 보니 Joplin, Mo. (미조리州, 자플린市) 란 글자가 보였다. 그것도 큰 글씨로.. Big news란 뜻이다. 또 다른monster twister가 그 지역을 강타, 100명 이상이 사망하고, 커다란 지역이 완전히 ‘사라졌다’. 이런 끔찍한 광경은 얼마 전 알라바마 주에 monster twister가 휩쓸었을 때와 비슷하다. 그때는 300명 이상이 사망했었다. 내가 사는 이곳 Atlanta지역은 최고로 더운 5월을 보내고 있다. 한 여름처럼 에어컨이 며칠째 계속 돌고 있는 것이다. 나의 기억에 이렇게 더운 5월은 별로 없었다. 지난 겨울에 그렇게 심한 추위로 극성을 부리더니.. 올해는 정말 정말 이상, 극단적인 기후를 계속 보이고 있다. 마치 지구가 고통으로 신음을 하듯, 불평을 하듯..

이번에 피해를 입은 Joplin은 나에게 추억에도 남는 그런 곳이라 더 관심을 가지고 보았다. 1973년 성성모, 이승조씨와 Volkswagen Beetle을 타고 Oklahoma에서 New York으로 장거리 drive를 할 때 우리가 지난 곳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drive를 하던 Interstate-44가 이 Joplin의 남쪽을 지나가는 것이다. 그 때의 파란만장하던 여행의 이야기가 나의 일년 전 blog에 잘 묘사되어 있는데, 더 이 town의 이름이 기억에 나는 것이 Joplin이란 이름이다. 그 당시 유명하던 여자 rock star중에 Janice Joplin이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의 나이에는 rock star의 이름 정도는 즐겁게 기억을 할 때였으니까…

 

Extreme late April weather

완전히 파괴된 Alabama주의 한 피해지역

무섭다.. 정말 무섭다.. 이것은 정말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1990년대의 영화, Bill Paxton, Helen Hunt주연의 Twister를 보는 기분이었다. 문제는 이것은 영화가 아니고 ‘진짜’ 인 것이었다. 그것도 우리가 사는 Atlanta Metro area를 남과 북으로 비켜 지난, 정말 아슬아슬한 thrill & suspense였다. 이것이 ‘만약에, 만약에’ 이곳을 지나갔다면, 아마도 2005년의 mega disaster hurricane Katrina와 맞먹는 피해를 냈을 것이다. 그날 밤은 정말 ‘으시시한’ 열기가 하늘에 가득 차 있었다. 그 밤중에 기온이 80도를 훨씬 넘었으니까..

지난 수요일, 4월 27일 오후부터 Mississippi에서 시작된 이 mega tornadoes는 Alabama에서 절정에 달했고 사망자만 330명에 달했는데, 문제는 이것이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을 지나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힘’이 EF-5, 그러니까 최고의 파괴력을 가진 것이어서, 200mph(시속 200마일)를 넘는 거대한 회오리바람은 사실상 커다란 집들이 기초부터 깨끗이 ‘날라갈’ 정도였다.

미국에 오래 살면서 이정도 파괴력의 tornado는 본 적이 없었다. 이 정도면 집안의 안전한 곳에 ‘숨어’있어도 살아 남기가 힘들 정도가 아닌가? 이러면 조금 겁이 안 날 수가 없는 것이다. 아주 오래 전의 classic fantasy movie, the Wizard of Oz..의 Kansas에서 Dorothy의 집이 통째로 날라가는 것을 상상하면 될 정도다.

제일 피해가 심한 곳이 그 유명한 football powerhouse Crimson Tide의 주인공인 University of Alabama가 있는 campus town, Tuscaloosa였다. 다행히 대학자체는 피해가 그렇게 크지 않았던 것 같지만, football stadium이 완전히 makeshift recovery staging area로 변한 것을 보면 이것도 무슨 영화를 보는 기분이다.

이것을 보면서 ‘왜, 왜..’라는 질문이 안 나올 수 없다. 물론 통계적으로 보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그래도 조금 심한 것이 아닌가? 이것도 extreme weather pattern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면 왜 이렇게 모든 것들이 extreme으로 갈까? TV show를 보아도 모든 것들이extreme 인 것들이다. 사람들이 이제는 웬만한 것들에는 ‘자극’을 못 느끼나? Mother Nature가 조금씩 ‘불평’을 하는 것일까.. 생각이 착잡해지고, 이제부터 tornado 경보가 나오면 재산피해보다는 ‘생명의 안전’을 더 생각해야 할 듯하다.

 

4월 초의 잡상(雜想)들

나이에 따른 기후의 변화: 봄이 본격적으로 맛을 보여주던 3월 중순 한때의 따뜻함이 거짓말처럼 거의 빙점으로 떨어지는 꽃 시샘 날씨로 바뀌어서 며칠이 되었다. 이제는 이곳의 날씨에 웬만큼 익숙해져서 그런지 하나도 놀랄 일이 아니다. 이런 것들을 젊었을 때는 그저 무관심하게 보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예전보다 훨씬 더 빨리 가는 시계처럼 변하는 기후의 거대한 pattern을 그야말로 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인생의 연륜이라는 것일까? 60대에 느끼는 기후는 분명히 20대가 느끼는 기후와 다를 것 같다. 똑 같은 기후를 사람마다, 나이마다, 지역마다, 전혀 다르게 느끼는 것은 분명 비과학적인 발상이지만.. 어찌하랴.. 하느님께서 인간을 그렇게 창조하신 것이 아닐까. 요새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날씨는 어떤 것일까?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 나는 싸늘하게 비가 내리는 그런 날이 제일 좋다. 나와 TV에 나오는 weatherperson의 의견과는 ‘공식적으로 정 반대’가 된다. 이렇게 사람은 ‘자유로운 의지’를 가진 피조물인 것이다.

 

레지오와 나의 현재: 레지오 (마리애)[Legio Mariae, Legion of Mary] 선서를 한지 2달이 되었다. 3개월 대기단원을 포함하면 레지오 단원이 된 것이 벌써 5개월이 되어간다. 그 동안 내가 얼마나 변했을까? 얼마나 레지오 중심의 생활이 나를 바꾸고 있을까? 매주 화요일 정기회합에 참석하는 것은 군대와 같은 규율에 따른 의무라서 기본중의 기본에 속하지만 나에게는 아주 커다란 의무가 되었다. 별로 정기적인 운전을 하지를 않았던 지난 10년간의 ‘동면’을 깨어버린 것이다. 비록 대다수가 자매님들이지만 많은 ‘사람’을, 그것도 ‘한국인’들을 만나고 살게 되었다. 처음에는 정말 외국에 온 기분까지 느끼며 불편한 적도 많았지만 그 동안 많이 적응이 되어가고 있다.

성모님께 가까이 가는 지름길인 정기적인 묵주기도.. 어떻게 하면 성실하게, 경건하게, 많이 바칠 수 있는가.. 조금씩 방법을 터득해가고 있다. 밤 9시30분에 정기적으로 우리 부부가 하는 것 이외에, YMCA gym에서 운동을 하면서 하는 것, 아침에 Tobey(dog)와 subdivision(우리 동네)을 산책하면서 하는 것, 이제는 드디어 운전을 할 때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잘 하면 일주일에 100단의 ‘기록’을 깨기도 했다. 이런 반복기도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의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을 했지만.. 보라.. 모두들 다 틀렸다. 그대들은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는 ‘바보’들인 것이다. 이것을 모르면.. 그 동안 나보다 뒤에 입단한 ‘후배 단원’이 들어 오기도 했다. 역시 ‘자매님’이다. 현재 우리 단원들은 내가 더 이상 바랄 것 없이 좋은 분들이라 이런 상태가 계속되기만 바라고 있다.

 

본당협조와 아틀란타 전산팀: 레지오 입단에 따라서 본당협조에도 신경을 더 쓰게 되었다. 비록 주일미사는 우리가 사는 곳 근처의 미국본당(Holy Family Catholic Church)에 나가지만 (거의 10년도 넘게), 역시 본당협조는 레지오가 속하는 아틀란타 순교자성당에서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래서 지난 몇 달 동안 속한 곳이 본당 ‘전산관리팀’이었다. 줄여서 전산팀, 아니면 웹팀이라고 불린다. 성당주보에 새 팀 멤버를 찾는다는 글을 보고 자원을 한 것이 벌써 5개월이 되었다.

기대와 현실의 rollercoaster를 타고 갈등을 계속하고 있고, 이곳에서 나의 역할이 조금은 불투명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이 일은 레지오의 사명감을 가지고 시작을 했고 그렇게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전과는 조금, 아니 많이 다르다. 절대로 감정적인 결단은 최대한 피할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시작을 해서 벌써 몇 명이 도중하차를 했지만 나는 아직도 건재하다. 현재 나에게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나의 정확한 위치를 찾는 일이다. 현재 core member들에게 큰 불만은 없다. 하지만 skill set, technical background, work experience등에서 차이가 있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고, 기존멤버들을 내가 설득하거나 할 자신이 없으면 결국은 내가 적응을 해야 하는 현실이다. 내가 보기에 현재 성당의 system이 재정상태에 걸 맞는 ‘최적’ 의 IT system과는 거리가 멀다. 나의 역할을 이것을 조금 더 professional level로 올리는 것인데.. 이것은 technical challenge라기 보다는 political challenge에 더 가깝다. 하지만, 나는 현재 그것을 쉽게 풀 자신이 없다. 그래도 레지오의 정신으로 하면 조금은 가능하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