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og Days afternoon,daydreaming: 와~ 7월도 되기 전에 언제 여름이 이렇게 무르익었나? 그야말로 relentless heat (stress) days after days.. 머리가 조금은 몽~롱~ 해진 상태에서 아하.. 요새가 바로 dog days.. 라는 탄식이 나온다. hot & sultry.. days.. 이것이 바로 dog days가 아니고 무엇인가? 거기에다가 Dog Day Afternoon같은 Al Pacino1975년 영화까지 머리에 겹치니까 아주 더 머리가 혼란하기까지 하다. 더운 것은 여름이니까 그런대로 참는다고 하지만 문제는 ‘물’이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공짜 물’, 그러니까 비가 안 오는 것이다. 예년의 기억을 떠올리며 backyard의 green field를 상상한 것이 완전히 수포로 돌아가고 있다. Hose water.. 의 무력함을 이렇게 실감하는 나날도 없는가? 암만 암만 홍수가 날 정도로 뿌려도 몇 분이면 땅이 완전히 다시 굳는다. 아.. Mother Nature여.. 오후에 딱 5분만 폭우를 보내 주어도 모든 문제가 일순간에 사라지는데.. 기우제라도 드려야 하는 것인가?
오래~전 오래~ 전.. 직장생활을 할 때를 가끔 기억에 떠올린다. 그때의 여름도 사실 요새와 그렇게 다를 것 없이 무더웠을 터이지만.. 내가 기억하는 것은 정 반대였다. 당시 corporate life (a.k.a salaried man)의 혜택.. ‘빵빵’ 사정없이 냉동이 된 건물 안에서 Nine to Five 를 견디고 집에 오면 몸이 녹는데 몇 시간이 걸린다. 한마디로 ‘푸근~’한 집이 그렇게 덥게 느껴진 적이 없었던 것이다. 훗날.. 연숙과 이야기를 하며 느낀 것은, 하루 종일 집에 있었던 사람은 내가 요새 느끼는 것과 같이 항상 더웠던 것.. 가정 집에서 암만 에어컨이 나와 보았자 그것은 사실 별 것이 아니었던 것.. 그제야 나는 실감을 한 것이다. 아무리 여름에 78도 에 맞추어진 집이어도 그것은 그렇게 시원한 느낌이 아니었을 것이고 그것을 안 후에는 조금 미안한 심정도 들었다.
¶ Greenfields are gone now, parched by the sun.. Yonsook Trail이라고 이름이 된 backyard의 깊숙한 곳 오솔길.. 초 여름까지 푸른 화초들이 길을 따라 ‘파~랗게’ 도열을 하며 맞아 주었지만 하늘에서 물기가 사라지고 대신 인정사정 없이 작열하는 태양열에 하나 하나씩 마르기 시작하며.. 이 1960년 초 folk classic Greenfields 의 가사 중 Greenfields are gone now parched by the sun.. 이란 구절이 떠오른다. Greenfields.. 어쩌면 그렇게 신선한 느낌을 주는 것일까? 대학생 출신 quartet The Brothers Four의 이 노래는 중학생 때 귀따갑게 듣던 명곡인데 당시 우리나라에서도 인기 quarter이었던 불루벨즈가 멋지게 ‘모창’을 한 기억도 난다. 나중에 가사를 음미해 보니 역시 이것도 ‘가버린 연인’을 그리는 노래였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을 때의 Greenfields가 가버린 연인을 따라 모두 황폐해진 것.. 잔잔하지만 격조 있게 은은하게 불린 멋진 4중창의 화음.. 역시 60년대 초만이 가질 수 있었던 멋진 추억이었다.
parched, dried up, Yonsook Trail
Greenfields란 말은 그 이후에도 유행어가 되었는데 기억에 남는 것은: 하숙생들이 고기와 계란이 없는 순전히 야채 중심의 밥상을 꼬집을 때 하던 말.. 그것도 Greenfields였다. 세상이 많이도 변해서 당시에 야채중심의 식사는 ‘가난한’ 것이었다. 요새는 어떤가.. 돈이 없으면 야채를 많이 먹지 못하는 희한한 세상이 아닌가? 참 세상은 오래 살고 볼 것인가..
¶ 휴우~ 덥다 더워.. 6월 24일! 이렇게 쓰고 보니 조금은 웃긴다.. 임마 (이런 말 아직도 쓰나?) 6월도 24일이면 한창 여름이 무르익어가는데 그것이 정상이지, ‘빠가야로‘! 하는 등뒤의 속삭임에 내가 웃는다. 그렇지, 지금은 더운 것이 정상이지.. 그런데.. 92도 라면.. 어떨까? 아마도 옛날 옛적의 대구더위에 비길 수 있겠지. 며칠 계속된 더위지만 극적으로 때맞추어 ‘내가 고친’ 에어컨 바람이 더 나에게는 시원하게 느껴진다. 이럴 때는 물론 오후에 때맞추어 쏟아지는 시원한 소낙비.. 하지만 느낌에 그런 chance는 거의 zero 인가 보다. 아니면 Johnny Rivers 의 60’s classic oldie, Summer Rain을 연상케 하는 그런 추억의 비는.. 어떨까.. 하지만 이것은 거의 꿈같은 이야기다.
1968년 여름의 추억, Summer Rain – Johnny Rivers
오랜만에 그 동안 바깥 구경을 못하고 살았던 우리 집 두 마리의 ‘재미있는 개’ Tobey & Ozzie, 오늘은 내가 더 쳐지기 전에 용감하게 끌고 동네를 돌았다. 거의 할아버지 나이가 된 우리의 개 Tobey가 언덕을 ‘새로니의 개’ Ozzie를 앞지르며 나를 끌고 올라간다. 얘는 아마도 어렸을 때부터 이 동네 언덕을 나와 걸었기에 단련이 되어서 그런지 모른다. 공을 던지면 총알처럼 뛰어가는 다리가 긴 ‘젊은’ Ozzie, 2주째 우리 집에 머물며 자기 엄마 ‘새로니‘를 거의 잊은 듯 잘 지내고 있지만 그래도 밤에 ‘혼자’ 자야만 하는 그 녀석을 보면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얼마 전에 이곳을 걸었을 때 내가 열을 받았던 것, TRUMP FOR PRESIDENT, MAKE AMERICA GREAT AGAIN..이란 SIGN이 두 곳에서 나를 자극했던 것.. 오늘도 어김없이 그곳에서 ‘빠가’ 트럼프의 ‘쌍통’을 연상시킨다. 이 두 집이 바로 우리동네의 idiots, white trash인 셈이다. 이곳 East Cobb county는 물론 very conservative한 지역이고 전통적으로 ‘인정머리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런 ‘잘 사는 Republican white trash’들이 많은 곳이다. 그래서 이런 쓰레기 같은 SIGN을 본 것이 당연한 일이건만.. 나는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날 정도니.. 이건 분명히 내가 over하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야말로.. I CANNOT HELP IT.. 어쩔 수가 없다. 도대체 이 덩치 큰, ‘젊은’ 나라는 어떤 쪽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는 것인가? 덥기만 한 날씨에 더 열을 받고 있는 내가 한심하기도 하지만.. 그래.. 이래 저래해도.. 모든 것들은 다~~~ 지나가리라..
¶ 6월 24일 세례자 성 요한 탄생 대축일: 오늘 평일미사를 가면서 6월 24일이 세례자 성 요한 탄생 대축일 (Solemnity of the Nativity of Saint John the Baptist) 임을 매일 복음묵상 ‘newsletter’에서 보고 알았지만, 사실 그 전에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 메주고리예 성모님 발현 ‘사건’으로부터 였다. 바로 이날 6월 24일에 발현을 하신 메주고리예 성모님을 이 ‘대축일’ 때문에 집에서 쉬던 (놀던) 그 ‘애’들이 본 것이다. 그 당시 이 발현 과정에서 이날이 ‘세례자 성 요한 탄생 대축일’임을 누누이 밝히고 있었지만 그 때 나는 그 말의 의미조차 잘 몰랐다. 이런 생각을 하니, 금요일 평일 미사엘 가면 분명히 세례자 성 요한과 예수님을 비교하는 짧은 강론을 듣지 않을까 기대를 했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요새 거의 본당신부님 역할을 하시는 방문 신부님 Fr. Joseph, 뜻 밖에도 새로 부임하실 본당 신부님에 관한 얘기를 하며.. 우리의 ‘이해’를 구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사연은 물론 본당 Holy Family 성당에 7월 초에 새로 부임할 주임신부님이, ‘부인이 있고 가정이 있는 남자’ 라는 우리에게는 ‘폭탄’ 같이 느껴지는 사실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늘 방문 신부님의 설명과 ‘양해’는 나도 아는 사실이다. 바티칸에 소속된 모든 가톨릭 ‘종파’들이 모두 다른 Rite를 가지고 있는데 현재 우리의 ‘보편 된’ 것이 Latin Rite, 이곳에서는 신부님들이 결혼을 안 하지만 다른 극소수의 종파에서는 성공회같이 결혼을 한다고.. 듣던 얘기다. 이번의 새로 부임할 신부님은 Melkite 에 속한 신부님이라서 신부님들이 결혼을 한다고.. 하지만 우리들의 느낌은.. 그래도.. 하필이면.. 왜 그런 ‘소수 종파’의 신부님을 ‘주임신부’로 보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 본당 Holy Family는 지역적으로도 보수적이고 Irish Catholic의 전통이 농후한 곳인데.. 아마도 그들 대부분은 불만이 적지 않을 듯하다. 그 중에는 우리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상상을 하니 아찔하다. 가족을 주렁주렁 데리고 사제관에서 생활을 하며 가족들과 같이 미사에 들어 온다는 광경은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는 것이다. 도라빌 순교자 성당에서는 구역문제로 우리는 고민에 빠지고 있는 마당에 이번에는 우리의 피난처 같은 미국본당에 부인, 가족을 동반한 주임신부가 온다는 사실.. 참.. 오래 살다 보니..
¶ 성모님, 좀 봐주세요.. 근래 우리부부와 자주 보게 되고, 예전 보다 조금 더 가깝게 지내는 C 자매님, 순교자 성당에 레지오 member를 중심으로 새로 생긴 Guitar Friends 그룹에도 참여 열심히 guitar도 연습하고, Holy Family 미국본당에서는 거의 매일 미사에 보게 된 멀게도 느껴지고 가깝게도 느껴지는 자매님, stress받는 것이 제일 싫어서 많은 사람과 가까이 지내는 것을 피하며 조용히 살지만 할 것은 다 하며 열심히 사는 자매님.. 왜 하느님은 어떻게 그런 병고를 주셨을까. 병고라면 이미 오래 전에 가족을 통해서 겪을 만큼 겪지 않았을까, 공평하지 않은가? 모든 아픔이 아물어가며 어떻게 다시 이런 고통을 보냈을까? 오늘 아침 미사가 끝나며 어제 doctor visit의 결과가 조금 짐작이 되었다. 우리 부부, 너무나 안쓰럽고, 미안하며, 어쩔 수가 없어진다. 그저 할 수 있는 말은 ‘기도를 더 열심해 해야겠군요’ 정도였다. 이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 이외에 무엇일까.. 늦은 아침을 먹으며 우리는 생각하고 생각한다. 성모님, 좀 봐주세요…
¶ 육이오 6.25, 66년: 66년, 허~ 66년이라.. 여기다 6 하나를 덧붙이면 666가 되는구나. ‘악+악+악’, triple ‘악’ 인가? 그래 잊고 싶어도 잊지 못하는 단어가 육이오, 유기오, 융요 (박정희 대통령의 발음).. 그래, 의식이 살아있는 한 이 단어는 나를 ‘움찔’하게 만들 것이다.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조국의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이제는 ‘사학자’들도 총대를 멜 때가 되지 않았나? 미국의 역사 교과서는 현직 대통령도 역사의 심판대에 올려 놓는데.. 우리나라의 ‘병신 사학자님’들은 어떠신가? 아직도, 아직도 빨갱이 운동권의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가?
아직도 귀에 생생한, 육이오의 노래
요사이 재동 동창 김정훈 부제의 유고집 ‘산 바람 하느님 그리고 나’ 를 읽고 읽고 읽으며.. 다시 느끼는 것, 나도 나도 아버지가 살아계셨으면.. 아니 육이오가 없었으면, 아니 김일성 개XX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나의 인생은 아마도 김정훈 부제의 ‘사직동 김판사댁‘ 못지않게 ‘원서동 이정모 교수댁‘ 이란 ‘선망의 눈초리’를 받으며 컸을 지 누가 알랴? 어떻게 육이오의 몇 개월 사이에 한 가정, 한 가족의 운명이 그렇게 뒤집어 질 수가 있을까? 물론 우리보다 더 ‘처참한’ 인생의 역전을 겪었던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죄 없는 동포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아니고 우리가 아니다. 우리 집은.. 우리 집을 말하는 것이다. 이 세상이 끝나고 저 세상에 가면 나는 반드시 ‘김일성’을 찾아내리라.. 그 개XX를 찾아 내리라.. 아마도 그 아들 김정일 개XX도 같이 있을 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을 찾기가 힘들 것이 분명히 그들은 지옥에 있기 때문이다.
¶ 아~~ 시원하다 언제부터 시작된 ‘여름 전의 한여름 더위’ 였던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만큼 갑자기 ‘당한’ 열대성 무더위에 머리조차 멍~ 해진 기분이다. 특히 새벽에 느끼던 찜찜하고 끈적거리는 듯한 머리 속.. 그것이 더욱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마도 열흘 이상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된’ 그런 것.. 하지를 며칠 안 남겨두고 한차례 한여름을 치른 것이다. 그러던 것이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조금 느낌이 달랐다. 시계를 보니 6시가 조금 넘었다. 부리나케 창문을 열고 공기를 마셔보니.. 와~~ 이것이 웬 떡이냐.. 습기가 완전히 빠지고 산들바람까지 불어대는 초가을의 아침이 아닌가? 이것이야 말로 웬 떡이냐..란 탄성이 나온다. 띵~~ 하던 머리가 갑자기 맑아지는 듯한 날라가는 느낌.. 아~~ Mother Nature여.. 이래서 살게 되어 있나 보다.
지겨운 일기예보를 안 보고 산 것이 몇 주가 되었나? “Donald Duck쌍통”을 비롯한 또 다른 해괴한 뉴스들, 같은 식으로 이런 것도 안 보는 이상한 세월을 보낸다. News TV, outlet을 거의 피하며 나의 sanity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몇 개월째 그런대로 효과를 보고 있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살다가는 나야 말로 cavemen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 하지만 결론은, 요새 세상은 cavemen 쪽이 더 낫다는 것이라.. 문제가 없다.
6월도 훌쩍 반을 넘어간다. 새로니는 오랜만에 지루한 학교생활을 떠나 유럽여행으로 집을 완전히 잊은듯한 기분으로 3주 여행 중 2주째를 맞고 있다. 우리는 언제 온 가족이 여행을 같이 가보나.. 하는 바램이 항상 머리를 떠나지 않지만.. 그래.. 다 때가 있는 거다.. 지긋이 기다리면 된다. 특히 ‘조직신앙’을 떠난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돌아오는 그날을 기다리며, 그 때가 우리가족 여행의 적기 適期 라는 생각도 한다. 과연 그날이 올까? 기다리자.. 기다리자..
Vatican St. Peter’s Square 에서
¶ Ozzie Grounded 새로니의 ‘아들’ Ozzie, 3주간 여행 중 우리가 맡고 있다. Midtown condo에서 살던 기운이 왕성한 덩치가 큰 강아지, 다리가 유난히도 길어서 우리 집의 3′ 짜리 Tobey fence를 임시로 3′ 높여서 6′ Ozzie fence로 ‘사고로 뛰어 나가는 것’에 대비하는 등 신경을 곤두세우기도 했다. Condo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mansion처럼 크게 느껴지는 우리 집에서 얼마나 뛰고 싶을까.. 오는 날부터 지겹게도 더운 바깥으로 나가자고 하루 종일 졸라대며 우리를 괴롭히더니.. 결국은 사고를 냈다. 우리가 없는 동안, Publix fried chicken, 먹고 버린 것, 쓰레기 통을 열고 모조리 먹은 것이다. 뼈 투성이의 그것을 흔적도 없이 다 먹은 것이다. 작은 뼈들을 잘못 먹으면 큰일이 난다고 들었기에 우리는 혼비백산, 걱정을 했지만.. 큰 문제가 없는 듯 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결국은 strict하게 하는 것으로 정하고 완전히 하루 종일 ground를 시켜 버렸는데 이것이 아주 큰 효과를 내서 이제는 아주 얌전하게 우리 집 분위기에 적응을 하고 있다. 하기야 그 동안은 가끔 우리 집에 놀러 왔기에 너무나 ‘풀어 주었던’ 것이 문제였다. 그런 것 말고는 2주를 우리 집 개처럼 Tobey와도 잘 지내고 고양이 Izzie의 territory도 잘 지켜주고.. 문제가 거의 없다. 날씨가 시원해져서 이제는 grooming도 해 줄 수 있게 되었다. 새로니가 돌아오면 이 녀석이 자기 엄마도 몰라보고, 혹시 누군가.. 하는 것이 아닐까, 재미있는 상상도 해 본다.
guest인 Ozzie와 나란히 누워 있는 Tobey.. 모습이 너무 좋다
¶ Happy Note, Central A/C humming again! 올 들어서 제일 더운 거의 5일간 아래층 에어컨이 없이 살았다. 아래층은 낮에 잠깐 에어컨이 나올 정도지만 그래도 음식을 하거나 하면 83F 까지 올라가고 그 여파로 위층의 에어컨이 overworking 을 하게 된다. 그런 식으로 며칠을 살고 보니 예상보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급하게 order했던 condenser fan motor, run capacitors, 그리고 제일 필수적인 tool, Fan Blade Puller가 하나하나 씩 도착을 했고 나는 만사를 제쳐놓고 땀을 폭포처럼 쏟으며 repair mode로 돌입, 천신 만고 끝에 결국은 다시 에어컨이 돌아가게 되었다.
이것은 사실 ‘이론적인 것이 거의 없는’ 거의 mechanical work에 불과했지만 그 과정에는 정말 surprise 가 도처에 도사리고 있어서 성공여부를 장담할 수 없는 처지였기에 나는 더욱 stress를 받았다. 제일 나를 괴롭혔던 것은 망가진 fan motor에 완전히 녹으로 붙어버렸던 fan blade를 빼 내는 일이었다. 그것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그 fan blade가 망가질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만 ‘전문적’으로 빼 내는 tool이 ‘발명’이 되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그것을 써야 했는데.. 그것 역시 automatic이 아니고 완전히 ‘완력 腕力’이 필요한 것, 평소에 운동을 안 했으면 아마도 거의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천신만고 끝에 결국 그것이 빠져 나오고 새 motor에 끼운 후에는 간단하지 않은 electrical wiring까지.. 휴~~~ Power Switch를 킨 후, 다시 에어컨이 돌아가는 소리와 찬 바람이 느껴질 무렵에는 나는 거의 완전히 쓰러지는 느낌이었는데, 피곤함 보다는 안도감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 만약 pro service를 받았으면 얼마나 charge를 했을까? 아마도 최소$700~$800 정도였을 것이다. 나의 이 job의 total expense는 $100 정도였으니까.. 최소한 $600 정도는 save한 셈이다. 비록 두 식구가 사는 집의 가장이지만, 집안의 환경에 대한 책임감은 정말 무거운 것이었고 그것이 주는 stress역시 상당한 것.. 하지만 기대했던 결과는 언제나 모든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는 것.. 그것을 바라며 땀을 흘렸던 지난 주의 한가지 happy note가 되었다.
HVACHeating, Ventilation, Air Conditioning 일주일 이상 90도를 넘게 괴롭히던 올해 무더위의 첫 희생자가 나왔다. 희생자가 아니라 희생물이라고 해야 하나? 결과적으로, 우리 집 2층의 air conditioner (a/c)가 ‘찬바람’을 내 보낼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이럴 때면 나는 항상 묻는다.. 왜 하필 이때에.. 그러니까 why now?인 것이다. 조금 선선할 때 고장이 나지 왜 제일 필요할 때인가 말이다. 제일 무덥던 토요일 오후, 오랜만에 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 같이 ‘조심스럽게 평화로운 시간’이 산산조각이 나버리고 나의 머리는 거의 순간적으로 emergency mode로 바뀌며 비지땀을 흘리기 시작하게 되었다.
이럴 때마다 또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왜 남들은 이럴 때, 그저 간단하게 ‘업자, hvac contractor, repairmen’에게 전화 한 통으로 다 끝날 것들을.. 나는 이렇게 비지땀을 흘려야 하는 것일까? 물론 이유는 간단하다.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우선 ‘내가 고쳐야’ 한다는 오기와 그에 따른 ‘낭비, 폭리를 일삼는 repair shot’들’을 가능한 한 피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하지만 a/c에 관한 것은 최근까지 나에게 ‘금기사항’이었다.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전화를 한 것이 2~3년 전쯤인가.. 아래층 a/c에 문제가 생겼을 때, Coolray truck이 집으로 온 것.. 그 때 비록 그들은 문제를 해결하긴 했지만 옆에서 지켜보던 나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고친 것은 outside condenser unit 속에 있는 ‘타버린 wiring’ 몇 개를 바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지독히도 간단한’ 것, 하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고, 일단 truck-rolling (repair truck이 찾아온 것)되면 그것에 대한 기본 charge를 내야 한다. 그 이후부터는 아예 여름이 되기 전에 색깔이 변하는 듯한 wiring은 내가 바꾸어 버렸다.
Dead blow fan motor
하지만 이번 것은.. 사태가 심각한 것, condenser unit의 blow fan을 돌려주는 motor가 죽은 듯.. fan이 돌지를 않았다. 결과적으로 overheating이 되고 system이 shut-down된 것이다. fan motor를 보니.. 고장이 나게도 생겼다. motor label이 삭아버릴 정도로 ‘오랜 된 것’, 이런 것은 하루아침에 고장 나기 보다는 서서히.. 기증이 저하하는 것인데, 밖에 있는 것이라.. 알 수가 없었다. 이것이 ‘천천히 돌면’ 아마도 cooling function이 크게 저하했을 것이지만 그것을 내가 알 도리가 없다. 그저 여름만 되면 ‘올 여름에는 이것들이 잘 견딜까..’ 하는 불안감하고 싸우기도 한다.
이런 문제가 생겼을 때 ‘인간의 머리’는 완전히 ‘비상 mode‘로 바뀌는 것이고 머리는 보통 때의 10배 정도로 잘 돌아간다. 위층에 문제가 생기면 보통 문제가 아닌 것이 그곳은 우리의 저녁 생활 공간이고, 잠을 자야 하는 곳, 그곳이 너무 더우면 아무 것도 못한다. 아래 층은 구조상 그렇게 더운 곳이 아니기에 여차하면 그곳으로 내려 오면 되지만, 귀찮은 노릇.. 그러니까 어떡하든지.. 고쳐야 한다. Replacement fan motor를 어떻게 당장 구하나.. ‘무리, 무리’.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순간적으로.. 아하~ 아래 층 a/c fan motor를 ‘빌려 쓰면’ 되지 않을까?
그런 쪽을 머리는 돌아가고.. 두 대의 condenser unit 를 자세히 살펴보니.. 거의 비슷하게 생겼다. 차이는 아래 층 것의 radiator 가 위 층 것보다 조금 작을 뿐이다. 그러니까.. fan, fan motor같은 것이 ‘거의 같은’ 것이다. 즉시로 행동개시.. 아래 층의 motor unit (motor+ fan blade)를 빼 내어서 고장 단 위 층 것과 교체를 했다. 물론 이 작전은 motor자체가 고장 났다는 전제에 의한 것이다. 만약 motor가 아닌 다른 것이 원인이었다면 이 작전은 완전히 끝이 나는 것이다. 이 때 내가 하는 것.. 묵주기도 ‘비슷한’ 성모님의 도우심이다. 급하니까, 초자연적인 힘까지 동원하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긴급작전은 100% 성공했다. 문제의 원인은 그러니까 ‘죽어버린 fan motor’에 있었다. 이 이후 아래층의 a/c는 완전히 shutdown이 되고 위층은 원래대로의 ‘시원함’을 유지하게 되었다. 이것으로 시간을 번 것이지만, 아래층의 온도가 83도까지 올라가고 그 결과 위 층의 a/c는 평소보다 ‘더 열심히’ 돌아야 했지만 그래도 편하게 위 층에 머물 수가 있으니 불평은 없다.
이제부터의 문제는, replacement fan motor를 찾고 구해야 하는 것, 역시 Internet의 도움을 받아 under $100 로 order를 할 수가 있었는데, 이것이 끝이 아니다. 고장 난 motor에 붙어서 꼼짝 을 안 하는 fan blade, 오랜 세월을 견디며 motor에 완전히 ‘붙어서’ 빠지지 않는 것이다. hammering을 하며 빼 내려는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거의 포기 단계, 해결책은 똑 같은 것을 구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를 않다. 너무나 오래 된 것이라.. 없는가?
stuck & stuck fan blade!
나와 같은 문제를 가진 ‘미국 사람’들이 부지기수인가? Goolging 을 하면 해결책이 나온다. 아예 stuck fan blade를 빼내는 tool까지 ‘발명’ 이 된 것이다. 이것이 fan blade자체보다 더 비싸면 문제지만 의외로 affordable.. under $35, 이것을 쓰면 ‘아마도’ 쓰던 blade를 다시 쓸 수가 있을 것이다. 나의 plan에 의하면 이 모든 문제들은 $100 정도 선에서 해결 될 듯하다. 만약 ‘그들의 truck’이 굴러 나왔으면 얼마나 들까.. 아마도 $500 정도면 재수가 좋지 않을까?
이번에 새로 알게 된 사실은 소위 말하는 run capacitor의 역할이다. Condenser Unit에는 항상 이것이 붙어있고 이것의 기능은 두 대의 ‘중요한’ motors (1. compressor, 2 blow fan)를 smooth하게 start하는 것이다. 이것에 문제가 생기면 motor자체가 돌지 않을 수도 있고 수명이 단축이 될 수도 있다고.. 그러니까.. 이것의 역할은 정말 중요한 것인데 의외로 그것이 싼 것이었다. 그래서 이번에 두 대의 condenser 모두 새것으로 바꾸기로 하고 order를 했다. 비록 고물 a/c 지만, 이것으로 조금이라도 수명이 연장이 된다면 이 투자는 것의 ‘공짜’인 것이다.
Order한 것들을 기다리며.. 생각한다. 과연 우리 집 ‘고물 a/c들’, 어떻게 할 것인가? 죽을 때까지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proactive하게 고치거나 교체를 할 것인가? 이것은 분명히 budgeting이 절대로 필요한 spending이다. 만약 두 대 다 교체를 한다면 올 겨울 제일 쌀 때가 적기 適期 일 듯 하다. 다른 ‘공상’은 이런 것이다. In-house unit 가 비교적 새것이라서.. Outside unit자체는 내가 ‘혼자서’ 설치할 수는 없을까? 현재 단계에서는 ‘공상’이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research에 의하면 충분히 가능하게도 보인다. 위험부담은 무엇인가? 더 연구하면 분명히 새로운 ‘비밀’들을 알 수 있지 않을까?
¶ Rainy May Afternoon:Peaceful easy feeling.. cool, rainy waning May days: 이것이 요새 며칠간의 느낌이라면.. 한때 거의 90도까지 치솟았던 5월 초를 생각하면 요새 흐리고 빗발뿌리는 날씨들은 정말 의외라는 신선한 느낌들을 준다. 성모성월, 어머니 날, 어머니 기일, 온통 포근한 느낌의 5월이지만 이렇게 시원하게, 잔잔하게 내리는 물방울들은 정말 peaceful easy feeling, 그 자체다. 다행히 올 들어 한번도 ‘시끄러운’ a/c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문제가 없었다. 고물 중에 고물이 된 이 고철, 올해의 더위에 과연 견딜까.. 지난 몇 년간 이맘때면 항상 ‘점을 치던’ 습관이 올해에도 변함이 없다.
고요히, 잔잔히, 싸늘하게 내리는 5월 비..
저물어 가려는 시원하게 비가 나리는 5월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삭신을 쑤시게 하는’ 바깥 일들, 중노동이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지만 그래도 그런 일들, deck finishing, garden structures, siding repair, new flooring, garage overhaul등등.. 천천히 계획을 세워서 하면 큰 문제가 없을 듯하지만 문제는 expense.. 이것은 budgeting을 하지 않고서는 무리, 무리..
5월 말에는 우리 집의 다른 senior citizen doggie, Tobey의 annual medical checkup이 있는데, 이것도 비용이 만만치 않다. 분명히 나이 탓으로 여러 가지 test를 하자고 할 것이고.. 항상 surprise가 도사리고 있음도 경험으로 알기에 신경이 쓰인다. 나와 같이 늙어가는 우리 집 ‘깡패’ Tobey.. 가끔 안아주면 서로가 쳐다보며.. 무언의 대화를 한다. 우리 참 정이 많이 들었다.. 누가 먼저 가던지 가는 곳에서 서로 또 만나자.. 라는 듯. 사람보다 나은 개들도 많은 이 세상이 이런 정든 친구가 있다는 사실은 나를 행복하게 만들지만, 언제가 서로 헤어져야 할 것을 생각하면 다시 우울해진다. 하지만 그것이 인생의 법칙이고 순리가 아닐까?
¶ Four Shed Kittens, weeks after:우리 집 backyard에 있는 shed 밑에서 kitten 4마리가 태어나고 자라고 있음을 지난 5월 초에 알게 되었음을 나의 5월 6일자 blog에 썼지만 그 이후의 ‘발전’에 관해서는 잊고 있었다. 그 몇 주(2주가 훨씬 넘은) 동안 우리의 온통 관심은 그 4마리의 ‘귀여운 (이 나이에 귀엽지 않을 리가 없지만)’ kitten에 있었다. 하루에 몇 차례씩 ‘식사공급’을 하면서 그들을 볼 기회가 있지만 아직도 낯을 가리며 숨기 일쑤다. 항상 엄마를 조심하며 접근을 하지만 생각보다 엄마는 최소한 우리가 ‘나쁜 놈들’이 아니란 것은 아는 듯 하였다. 그들에게 겁을 안 주려고 사진조차 찍는 것을 참고 있다.
밥을 어찌나 많이 먹던지.. 아마도 kitten보다는 엄마가 많이 먹을 것이다. Nursing mom cat은 평소보다 3배를 먹는다는 얘기를 들었기에 이해가 간다. 주는 대로 시원스럽게 밥이 없어지는 것이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고, 하루 하루 다르게 커 보이는 kitten 4 sister, brother들 서로 장난을 치고 wrestling을 하고 엄마 품에 앉게 노는 모습들.. 나는 느낀다. 우리 집 아이들 세상에 나왔을 때를 생각하지만 그 때와 또 다른 것이다. 나이 탓인가, 신앙적인 믿음 탓인가.. 다르다. Pope Francis의 제2의 회칙 encyclical, Laudato Si(On Care for Our Common Home, Earth, 아씨씨의 성 프란치스코 Canticle of the Sun 에서 나온 말)의 영향인가..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우리들의 가족이다. 생명이 있는 것이면 더욱 그렇다.
현재까지 우리 집 backyard shed의 밑 바닥을 자기 집으로 알고 편하게 nursing을 하는 ‘엄마’, 평소보다 덜 ‘외출’을 한다. 분명히 편하게 잘 먹을 수 있어서 그럴 것이다. 먹이가 이곳에 없었으면 분명히 ‘산모’의 몸으로 먹이를 찾아 모험을 해야 할 것이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온다. 자식들을 챙기는 고양이 엄마의 보호본능.. 그것이 그들의 본능적 사랑일 것이다. 시간이 되면 kitten들을 떠나겠지만 그 때까지는 ‘책임’을 지고 살필 것이다. 이보다 못한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하면 답답해짐을 느낀다. 동물보다 못한 인간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매일 매일 자라나는 아기 고양이들을 보며 많이 배울 것이다. 무엇이 진정한 Laudato Si 의 정신이고 무엇이 자비, 사랑인지를..
¶ 나르는 엄마 고양이: 고양이, 양양이의 얼굴들이 눈에서 아롱거리는 이때, 1960년 4.19 혁명 당시 미국 사진 화보잡지 LIFE magazine의 ‘이모저모, miscellany’ 란 에서 재미있는 사진과 짧은 기사를 보았다. 이것도 역시 ‘산모 고양이 엄마’에 대한 사진과 기사다. 동물 모성애를 보여주는 그야말로 극적인 순간을 사진으로 잡았다.
출산 날짜를 ‘잘못 잡아서’ 어느 테네시주 Tennessee 낙스빌 Knoxville 의 교통순경 patrol man 집 낮은 지붕 porch 위에서 kitten을 낳은 엄마 고양이 Puddy, 이들을 땅에서 보살피기 위해서 ‘공수작전’을 하려는 노력으로 지붕 옆에 있는 나무 가지로 3주된 kitten 한 마리씩, 모두 네 마리, 입에 ‘물고’ ‘비행’하는 장면.. 글에 의하면 그 엄마 고양이는 kitten 4마리 ‘모두’를 안전하게 땅으로 ‘안착’시켰다고 한다. 어머니, 엄마의 계절 5월에 보는 이런 모습들은 나의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 성모성월:Vatican Youtube에는 이제 매달마다 교황님의 ‘매달 지향기도 monthly prayer intention‘ video가 실린다. 보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개월 밖에 안 되었지만 이제는 은근히 기다려지기도 한다. 짧지만 아주 심도 있고 호소력이 있는 교황님의 ‘구수한’ Italian comment는 영어자막이 곁들여져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지난 달에는 ‘제대로 대우를 못 받는 농부들’ 에 관한 것이고 이달은 ‘별로 인정 못 받고 고생하는 세계의 여성들’에 대한 기도이다. 참 계절적으로 알 맞는 기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5월과 여성, 특히 성모님은 어쩌면 그렇게 느낌이 일치하는 것일까? 그래서 Mother’s Day, 가톨릭 전례력으로 성모성월, 성모의 밤.. 등등이 모두 5월에 함께 모여있는 것일까?우리 어머님의 기일도 5월에 있음이 한동안 나를 슬프게 했지만 다른 편으로 생각하니 이런 포근한 기분의 5월에 있음이 조금은 나를 위로하는 셈이 되었다. 어디 그 뿐인가? 사람을 노곤하게 만드는 첫 한가로운 느낌의 더위가 여름의 시작을 알리고, 재수가 좋으면 (나쁘면?) space heater를 켜야 할 정도의 싸늘한 아침도 이때에 꼭 있다. 지난 주말 경에 사실 아침에 central heating 이 요란하게 나온 적이 있었으니까.. 아마도 그것이 올 여름 전에 ‘마지막’ 난방의 소음소리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첫 A/C (air conditioner)의 소음 소리를 들을 때가 가까워졌을지도 모른다. 이미 나의 office에는 ‘돗자리’가 자리를 잡았고 80도 이상을 웃도는 늦은 오후에는 pet dog, Tobey 와 함께 ‘오수 午睡’를 즐길 때가 되었다. 이런 5월의 모습들이 나를 즐겁게 한다.
¶ 성모의 밤: 올해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성모의 밤 행사는 우리에게는 조금 느낌이 다른 경험이 되었다. 내가 우리가 몇 년 동안 보았던 성모의 밤은 대개 5월 말 쯤에 있어서 거의 여름 기분으로 바뀐 시점으로 조금은 싱그러운 5월의 향기가 희미해진 느낌이었고, 본당 대성전 안에서 ‘경직된 행사’를 하는 느낌으로 했었는데, 올해는 ‘정식으로’ 본당 성모 동산 앞, 그러니까 야외, outdoor에서 ‘진짜 성모의 밤’을 보게 된 것이다. 커다란 가정집 mansion 뒤뜰에서 결혼식을 하는 느낌까지 들었다. 거기다 시간적으로 어두움이 잔잔히 가라앉기 시작하고, 향기로운 5월의 공기까지 성모동산을 신비롭게 감싸는 것, 정말 느낌이 새로웠다.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자랑스런 유산, 성모동산이 촛불 행렬을 기다리며..
어두움이 깔린 성모동산, 인자로운 눈이 어둠을 밝힌다
열을 지어서 행진하는 장미꽃, 촛불들의 행렬의 위에 인자로운 미소로 내려다 보시는 성모님.. 머리 속으로 ‘분명히’ 성모님께서 지금 이 시간 시공간을 초월해서 우리 앞에 계신다는 것을 그리며 그린다. 비록 본당주최라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성모신심의 본향인 레지오 단원들의 정다운 모습들을 많이 보게 되고, 특히 예년에 비해서 더 레지오에 관심을 보이시는 본당신부님들의 모습도 다정한 어머님의 눈길과 더불어 더 5월 초의 향기로운 저녁 하늘을 포근하게 느끼게 했다. Never too late라고 이제나마 ‘진짜 성모의 밤‘을 보게 해 주신 성모님께 다시 한번…
¶ 나의 어머니 날: 2016년 5월 8일, Mother’s Day, 어떻게 올해는 오래~전 어머니 날과 날짜가 같을까? 5월 8일.. 나의 시절에는 어머니 날이었지 어버이 날은 기억에 없었다. 이날은 여러 가지가 겹친 날이기도 했다. 2번째 일요일, 레지오 꾸리아 월례회의 날이라 오랜만에 주일미사를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서 하게 되어서 비록 몇 주만이지만 새로운 기분으로 본당을 둘러보고 성물방의 도서실도 기웃거리고, 이제는 낯익은 담당 자매님에게 레지오 행동단원 입단도 권유해 보는 등, 기분을 새로이 하는 날이 되었다. 이제는 예의 낯익은 얼굴이 분명히 몇 분이 꼭 있어서 예전에 비해서 마음이 덜 불편하게도 되었다.옆 동네, 마리에타 1구역 담당의 $3 점심도 비록 한 그릇이었지만 맛은 아주 감칠맛나게 좋았다.
날씨도 기가 막히게 화창한 날 예전 같으면 ‘아이들의 강요’에 못 이겨 ‘끌려서라도’ 주인공인 ‘돼지 엄마’를 ‘모시고’ classy한 곳에서 외식을 하기도 했겠지만.. 글쎄.. 이제 모두들 ‘늙었나..’ 움직이는 것 귀찮다는데 거의 동의한 단계가 되었다. 올해는 idea가 바닥이 난 아이들을 ‘구제’하려 내가 volunteer를 해서 집에서 나의 ‘특기 요리’로 이날 오후를 보내게 되었다. 나의 특기요리는 평소에 ‘돼지 엄마’가 좋아하는 ‘lots of, lots of vegetable & ground beef stir fry‘ 라고 내가 이름을 붙인 이제는 거의 classic이 된 나만의 요리이다. 그저 ‘재료만 많으면’ 눈을 감고도 만들 수 있는 요리.. 오늘의 main dish가 되었다. 아이들은 red wine, 손수 만든 chicken wing을 밖에서 grill하고, Doraville H-mart에 있는 ‘빵집’에서 사온 ‘덜 달고, 덜 큰, 알맞은’ cake등으로, 그런대로 ‘초 간단 超 簡單, 초 저가 超 低價’ 였지만 만족스런, 즐거운 Mother’s Day late luncheon이 되었다. 주인공은 아이들의 엄마인 ‘돼지 엄마’겠지만 나의 머리 깊숙한 곳에는 나의 heroine, 나의 어머니가 더 크게 자리를 잡고 있는 화창한 5월 8일 어머니 날이 되었다.
싸늘한 4월 초순.. 재 빠르게 우리를 떠나려고 한다. 계절적인 날씨에 조금은 둔감해지려고 노력을 한 덕분에 요새는 날씨가 주는 감상적 말에도 둔감해진 듯하다. 하지만 다시 절감한다. 날씨가 우리의 ‘많은 것’에 미치는 잠재적 영향력을.. 나의 지나간 blog을 가끔 보면 ‘날씨’라는 tag을 포함한 posting이 꽤 많은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3월의 날씨는 한 달이 지나갔어도 머리 속에는 ‘거의 미친 3월’로 남는다. 3월 중순 쯤 일 주일이 훨씬 넘는 끈적거림의 ‘불쾌함’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특히 밤에 잘 때 보이지 않는 ‘여름 잠옷’을 찾는 고역을 겪었던 기억.. 이런 날씨가 3~4일 정도라면 ‘정상’이지만 이건 ‘비정상적’인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머리 속에 기억 된 ‘4월초의 찬란한 싸늘함과, 4월 말의 소리 없는 Spring Rain’을 그리곤 했다. 또한 April Showers Bring May Flowers..라고 종알대던 어렸을 때 우리 딸들도 연상을 하곤 했다. 그러면 99% 나의 불쾌함은 멋지게 사라지곤 했다.
그리곤 영락없이.. 왔다.. 4월 초의 청초한 싸늘함.. 거의 빙점 near-freezing 까지 떨어지는 ‘멋진 4월’을 현재 만끽하고 있는 것이다. 구석으로 밀려난 space heater가 다시 반갑고, desk 밑에 아직도 있는 electric foot-warmer가 어찌 그렇게 반갑고 따뜻하게 느껴질까?
계절 곳곳마다 흠뻑 젖어있는 각종 좋건 나쁘건 간에 추억들의 각각 페이지들을 ‘원하기만 하면’ 들춰볼 수 있다는 사실.. 어쩌면 ‘노년만 가질 수 있는 오랜 세월의 경험으로부터의 즐거움’이 이런 것인가.. 나이가 먹는다는 것.. 절대로 과소평가할 수 없는 것.. 우습기만 하다. 이런 것들이.. 전에는 거의 느낄 수 없었던 ‘황혼기’의 즐거움이다.
2016년 부활절, Easter day가 어둡게 시작되어서 어둡게 저문다. 요새 매일 틀리는 일기예보, 예보되었던 thundershower와는 대조적으로 아주 조용한 이슬비가 간간이 뿌린다. 기후적인 느낌은 비록 완전한 봄의 것이지만 그 이외의 나의 모든 것들은 모두 아직도 끌려가는 듯한 겨울의 그것이다.
어제 늦은 밤까지 진행된 ‘피곤한’ 부활성야 Easter Vigil mass를 마치고 힘들게 집에 들어오면서.. 아마도 다음 날 아침의 ‘진짜’ Easter ‘main’ mass는 빠질지도, 못 갈지도 모른다는 쳐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런데 그런 기분이 현실이 되었다. 거의 10년도 넘게 처음으로 나는 ‘진짜’ 부활절 미사 참례를 못 한 것이다. 미안합니다.. 성모님, 어떻게 이런 일이? 암만 생각해도 이것은 추악한 것이다. 최고 내가 믿는 신앙의 절정의 시간이 가장 밑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다. 오늘의 날씨와 같이 ‘어두운 부활절’을 남기고 간다.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 봉숭아 꽃, 나팔꽃, 분꽃.. 어렸을 적에 나의 방 앞 뜰에 신나게 피어나던 꽃들을 잊고 산 지가 반세기가 훨씬 지나가며 인생의 황혼기에 다시 그런 ‘신비의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참 신기하다.. 어떻게 ‘그런 것’들이 눈에 다시 보이게 되는 것일까?
기계적, 강제적으로 일년 사시사철 꽃을 보고 과일을 먹는 요상한 세상에 익숙해져서 더욱 봄의 꽃들은 의미가 심장하다. 올해도 어김없이.. 어김없이..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것들, 아침미사 (car) drive길에 연숙의 ‘꽃에 대한 자세한 논평’을 들어야 했다. 특히 2월 달에 ‘처음’으로 선을 보이는 꽃들은 그녀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 넣고 나는 옆에서 안 들을 수도 없지만 과히 나쁘지 않은 자연공부를 하게 되기도 한다.
봄을 알리는 1번 타자가 바로 수선화..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수선화.. 그 이름부터 신비롭다. 수선.. 수선화.. 물에 관련되었나? 그렇다. Narcissus와 나르씨시즘(자기도취)의 유래도 이 꽃이 관련되어 있지 않은가? 1960년대 초, Brothers Four의 folk hit, Seven Daffodils 같은 추억의 folk song도 회상이 되고.. 을씨년스러운 2월의 겨울 날씨에도 봄의 모습을 선을 보이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모습이 그렇게 그렇게.. 이런 삼라만상, 자연의 섭리를 어떻게 받아들이며 겸허하게 보존하고 가꾸어야 하는가는 Pope Francis의 2번째 encyclical 회칙, Laudato Si(부제: On Care For Our Common Home, 자연환경보호) 를 보면 얼마나 커다란 신학적인 명제가 곁들여 있는지.. 알 수 있다. 자연, 환경이..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 다시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고 이런 생각의 고리를 일깨워준 ‘가냘프지만, 강건하게 보이는’ 수선화.. 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내년에도 나도 너도 같은 모습으로 볼 수 있게 되기를..
지난 12월 초에 12살이 된 우리 집 강아지, 내 ‘아들’ Tobey녀석.. 이제는 나보다 더 늙은 나이가 되었지만 비교적 건강하고 보기에는 아직도 어렸을 때의 모습.. 강아지, 바둑이 정도로 보인다. 다시 물끄러미 서로를 바라본다.
하루 종일 사사건건 이곳 저곳, 심지어 화장실까지 따라오는 나의 그림자다. 자는 시간을 빼고는 그 녀석의 눈은 나의 눈에 고정이 되어있다. 처음에는 아주 귀찮았고, 성가셨지만 고칠 수 없는 버릇임을 알고 그대로 지낸 지가 몇 년이 되어가나? 생각한다. 만약 이 녀석이 없어진다면.. 생각하기도 싫지만 12살이라는 나이가 그런 생각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람의 장례식은 이제 익숙해졌다고 볼 수 있지만 나의 분신 같은 ‘말 못하는 동물’과의 영원한 이별의 준비가 덜 된 것을 절감하며, 괴롭기까지 하다. 요새 주위에서 오래 정든 pet animal (주로 개와 고양이들) 들을 떠나 보내며 겪는 stress와 ‘의외적인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 듣고 나는 그들의 심정을 나의 것처럼 실감 한다. 아마도 pet과 인연이 없는 조금은 ‘냉정하고, 이기적인 사람’들은 정말 이런 것들을 이해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 pet들의 인간들에 대한 정과 사랑을 조금이라도 보고 느끼면 조금은 이해할 것인가?
평균 수명의 경고를 생각하며 오늘도 이 ‘귀찮은 녀석’과 우리는 어제까지 눈을 맞출 수 있을까.. 나에게 soul이 있다면 이 녀석의 soul은 어떤가.. 그 soul도 육체를 초월하는 transcendent state가 있을까.. 이 녀석과의 작별은 absolute한 것일까, 아니면.. 춥기만 한 2월의 한 때, 따뜻한 체온을 포근하게 느낄 수 있는 오후…
드디어 올 겨울에 와야 할 것이 드디어 두 번째로 아틀란타 지역에 찾아왔다. 지난 몇 년간 이것 때문에 고생한 것은 작은 개인역사에 남게 되었고 은근히 이것을 걱정하게도 되었지만.. 사람 심리는 묘해서.. 이것이 올 때쯤에 실제로 안 오니까.. 조금은 기다리게도 되었다. wintry mix.. ice storm같은 것들은 말만 들어도 등골이 오싹하게 되었어도 제 때에 못 보니까 조금은 섭섭한 것이다. 이것 사실 전형적인 ‘어린이 심리’가 아닐까? 이런 것으로 ‘비상사태’가 와서 내일 아침에 학교에 안 가게 되는 꿈.. 같은 기대감. 학교에 안 가도 되고, 직장에 안 가도 되는… 인생의 황혼기에 이런 것들은 간단히 말해서 깊이 쌓여가는 경험에 의한 향수 같은 것이다.
오늘 화요일, 도라빌 소재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서 레지오 주회합이 있는 날.. ‘죽었다 깨어나도 빠질 수 없는‘ 모임이라 이날의 겨울 날씨는 항상 신경(차의 트렁크에는 비상도구를 가지고 다닌다)이 쓰이는데.. 왜 하필 이날 일기예보가 그렇게 애매한 것일까? 분명히.. wintry mix가 예보 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stay home하라는 말이 전혀 없으니까. 학교도 그렇고 직장도 그렇고.. Closing이란 말이 전혀 없다. 무언가 wintry mix가 내리는 것이 시간적으로 퇴근 후로 나와서 그럴 것이다.
집을 떠날 때부터 눈발이 나리기 시작했고, 우리와 비슷한 거리를 운전을 해야 하는 단원 실비아 자매, 무서워서 못 나오겠다고 연락이 왔지만 나중에 회합이 시작되자마자 ‘용감한 모습’으로 나타나서 우리를 기쁘게 했다. 올해, 오늘의 일기예보는 정확하였고, 우리가 다시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2년 전의 악몽이 서려있는 I-285 West를 달려서 집에 무사히 왔고, 거의 즉시로 다시 눈발이 내리기 시작하였다. 와~~ 이번의 예보 정확하구나.. 시간 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안 되는 때, 문제가 안 되는 양 정도 내린 셈이다. 집에 goal-in을 하고 푸근한 마음으로 창 밖을 보니.. 아름답게만 보이는 white stuff들이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한 때의 폭설에 대한 악몽을 제치고 잠깐이나마 시야를 완전히 가린 하아~얀 눈발은 1950년대 어린 시절, 서울 원서동에서 보던 그런 포근하기만 한 눈발을 다시 보는듯한 착각에 빠진 시간이 되었다.
내가 본 마지막 아틀란타의 설경, 2015년 2월 24일 이었다. 약간의 눈발과 dusting 정도..
¶ 오늘은 올 겨울의 첫 하얀 것(일명 ‘눈 雪’, white stuff, a.k.a snow) 을 기다리는 예기치 않은 holiday이 되었다. 2년 전의 악몽 같던, gas가 거의 바닥이 난 차 속에 갇혀서 19시간을 꽁꽁 얼어붙은 I-285 freeway 에서 꼬박 밤을 지새웠던 것.. 그런 것 때문에 이번의 ‘비, 진눈깨비, 눈’의 일기예보는 분명히 모두들 over-reacting을 할 각오를 할 것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오늘은 예정대로라면 신부님을 모시고 H자매님 봉성체 동행을 하는 날이었지만, 이런 날씨 처음 맞는 신부님은 모르겠지만 우리들의 불안감은 떨칠 수가 없어서 일 주일을 연기하게 되었고 그것이 우리들에게는 free holiday를 준 셈이 된 것이다.
2년 전의 악몽도 사실은 오늘과 비슷한 routine으로 시작되었지만 결과는 disastrous한 것으로 남았다. 당시에는 일기예보보다 훨씬 빠르게 점심시간 즈음부터 freezing rain-to-snow가 내리고 panic한 모든 차들이 한꺼번에 freeway로 몰리면서 그 유명한 2014 Atlanta Snow Jam, Snowmageddon이 역사에 남게 된 것이다. 오늘 것은 다행히 traffic hour가 끝나는 밤이 되어야 비가 눈발로 바뀐다고 하지만 문제는 모든 ‘직장’들이 정오 즈음에 문을 닫는다는 사실.. 그들이 또 모조리 freeway로 몰릴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우리를 떨게 하는 것이다. 물론 그 시간에는 비가 내릴 것으로 2년 전 같은 일은 안 날 것이지만.. 한번 놀란 기억이 머리에서 좀처럼 지위지지 않으니 어쩔 것인가?
이번의 weather system은 1990년대 초의 the storm of the century와 비슷한 pattern으로 deep South에서 습기를 몰고 northeast로 가면서 snow blizzard로 변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예년과 같이 Washington DC나 New York쪽은 아마도 엄청난 기후 news가 될 듯하다. 이런 것들.. 그야말로 Mother Nature 그러니까 act of God이니 어찌할 것인가 도리가 없이 그저 자연에 겸손한 마음으로 승복을 하며 자연의 힘을 다시 한번 감상하는 수 밖에 없다. 그래도 positive한 것이 있다면.. 따뜻한 집안에서 hunkering-down하며 냄새 구수한 strong coffee를 즐길 수 있다는 정도일까.
Morning After, big chill Siberian postscript:
아침에 일어나보니.. 예보는 100% correct, 덩치가 큰 놈은 모두 예년대로 Washington DC 쪽으로 가서 그쪽은 완전히 눈 속에 파묻혔지만, 이곳은 조금 진짜 겨울 맛을 보여준 정도다. 하지만 약간 dusting정도의 white stuff은 완전히 얼어붙었고 시베리아 같은 무서운 얼어붙는 바람.. 이런 날 밖에 나가는 것은 bad idea. 모르긴 몰라도 언덕 같은 곳은 skating하기 좋은 상태일 것이 자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Local tv news의 ‘closing central’에는 church closing이 줄줄이 나온다. 아마도 우리의 Holy Family CC도 그 중에 하나여서.. hunker down, hunker down.. enjoy my ‘strong’ cup of coffee all morning!
Frozen snowy siberian morning emerges..
¶ 또 하나의 생일을 맞았다. 이번에는 이 몸이 이 세상의 빛을 본 날이 된다. 까마득한 옛날, 1948년 1월 21일, 어머니는 나를 서울에서 낳으셨다. 근래에 들어서 이날을 맞으며 나는 나 자신을 세상에 보내주신 부모님, 선조님들, 그리고 궁극적으로 하느님을 생각한다. 분명히 이것은 ‘고령’의 나이 탓일지도 모르지만, 어떤 쪽으로는 나의 생일이 흡사 ‘어버이 날’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이런 날이 나의 것, 내가 주인공으로 ‘착각’하며 오랜 세월을 산 것이 크게 자랑스럽지 않은 것이다. Pope Francis 말씀대로.. 내가 과연 나의 것인가, 내 것이 과연 있는가.. 도대체 내가 어떻게 이 세상에 왔는가.. 올해는 유난히도 그런 것들이 나의 화두가 되었다.
올해는, 68이란 숫자에 무슨 magical 한 것 하나도 없는데, 한 번도 아니고 3번이나 ‘생일을 먹게’ 되었다. 이것이 무슨 ‘추태’인가.. 70을 향하는 ‘고령’에 겸손치 못하게.. 주책없이.. 하지만 이것도 순리에 속하는지 내가 control할 만한 것들이 아니었다.
첫 번째는 지나간 화요일, 레지오 주회합 날에 생일축하 회식이었는데, 우리 ‘자비의 모후’ 쁘레시디움은 전통에 따라서 생일을 맞는 단원이 회식 비용을 전담한다. 처음에는 조금 ‘해괴’한 풍습이라고 생각도 했지만 지내보니까 이것도 makes perfect sense한 것을 알게 되었다. 이날은 오랜만에 9명 전 단원이 모여 식사를 했고, 김 실비아 자매의 제의와 전담으로 ‘하얀 풍차 coffee & bakery’에서 2차까지 치러서 아주 오붓한 자리가 되었다. 이날 정오미사에 우리 레지오 단원들이 생미사를 봉헌했는데, 신부님이 ‘연미사’로 오인, 내 이름이 갑자기 돌아가신 것으로 발표가 되는 happening이 있었지만, 모두들 내가 오래 살 것이라 위로 아닌 위로를 받으며 웃기도 했다. 이 레지오 생일 회식은 특별한 것은 없다지만 나에게는 조금 이색적인 것으로, 나를 제외한 전원이 모두 ‘예쁘신 자매님’들이라는 사실.. 남들이 보면 너무나 부러워하지는 않을까.. 외톨이 남성단원이기에 받는 유쾌한 느낌은 아닐까?
두 번째는 어제 1월 21일 (1.21 사태, 1968년) 바로 68년 째 되는 바로 그날, 예의 ‘우리 전통 group1‘이 모인 것. 1월 21일은 우연치 않게도 최형 wife (진희 엄마)의 생일이기도 해서 근래에는 ‘같이 치르는 생일’로 변했다. 어제 모인 이 group은 한마디로 ‘인생 모범생’ 가정으로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서로가 서로의 ‘나이 듦’을 보아주는 watch group의 역할도 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모이는 횟수가 줄어들고 있지만 그 대신 모임자체는 아주 심도가 있고 stress 를 풀어주는 좋은 자리를 마련한다. 모두들 몸과 마음이 건강한 한 해가 되기를 바라며 차가운 비 내리는 늦은 저녁시간을 보냈다.
세 번째의 생일모임은.. 우리 식구들만 모이는 private한 것, 모두 바쁜 관계로 일요일 잠깐 모여서 전에 갔었던 Marlow’s Tavern에 가서 gourmet hamburger를 먹기로 했는데.. 과연 이 약속이 지켜질지는 100% 확신할 수 없지만, 그것은 상관이 없다. 이미 두 번씩이나 생일을 치렀기 때문이다.
20대 초에 좋아했던 flower girl Judy Collins, 그녀의 Both Sides Now는 인생과 사랑을 안과 밖, 위와 아래에서 바라보는 멋진 시였고, 후에 발표된 Amazing Grace는 가히 popular gospel song의 압권이었다. 특히 Amazing Grace의 가사를 천천히 음미하며 들으면 천상의 음악으로까지 들린다. ↩
¶ Brrrr…. 와~ 어쩌면 하루아침에 늦여름에서 한겨울로 날씨가 돌변을 하나? 섭씨 영하 훨씬 밑으로 뚝 떨어진 기온에 바람까지 겹쳐서 wind chill (체감온도)은 아마도 섭씨 영하 10도 정도같이 느껴진다.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전후로 한여름에 연일 쏟아지는 장마 같은 비와 홍수까지 예보가 되었던 정말 ‘보기 싫은, 추억에 남지 않을’ 그런 주일들이 지나가고 결국은 mother nature의 제 모습이 찾아왔다. 한창 때를 모르고 피어나던 동백꽃들, 된 서리를 맞은 모습이 애처롭기만 하다. 하지만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겨울은 겨울답게 추워야 한다’ 입을 모은다. 올 겨울의 장기 일기예보에 의하면 ‘엘 니뇨’ 의 영향으로 이곳 Southeastern United States 는 평균보다 낮은 온도와 잦은 비를 예보하지만, 우리의 최대 관심사인 ‘눈 snow’ 같은 것은 아마도 크게 걱정, 기대를 안 해도 될 듯하다.
¶ Final closure.. 어제는 3 주 이상이나 지연이 되었던 이 필립보 형제님의 장례미사가 있었다. 3주 전쯤 ‘독거사’라는 제목의 나의 blog에서 이 연세대 대 선배님의 급작스런 선종을 애도했지만, 당시에는 가족, 연고자들의 사정으로 이제서야 정식으로 장례미사가 치러진 것이다. 3주나 연기가 된 장례미사이기에 혹시 조객들이 적을까 염려도 했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생각보다 많은 조객들이 큰 대성전을 거의 채웠으니까.. 이것을 보아서 이 선배 형제님 인간관계는 좋았던 느낌도 들었다. 또한 80년의 인생을 살아오며 어찌 인생이 순탄만 할 수가 있을까마는, 각가지 사연을 가지고 사는 것이 인생일진데 이런 ‘늦은 장례미사’가 크게 문제가 될까? 하지만, 부인과 아들 딸의 혈육들이 다른 곳에서 다른 인생길을 걸어왔기에 이렇게 갑작스레 독거사 獨居死 로 보내는 것이 보는 주변 사람들을 을씨년스럽게만 느껴지게 한다.
한국말을 전혀 못한다는 다 큰 자녀들, 아무 말도 없이 묵묵히 장례미사에 참례는 했지만 그래도 영어로 한마디만이라도 할 수는 없었을까? 아쉽기만 하다. 자업자득 自業自得 이란 말이 생각 나기도 하지만 어찌 쉽게 속단을 할 수가 있을까.. 그저 훗날에 저 세상에서 혈육들과 이승에서 못다한 관계를 회복하게 되시기만 어렴풋이 희망할 정도다. 이날의 장례미사를 보면서 나는 유난히도 ‘상상의 나래’를 펴서 내가 이 장례미사의 주인공이 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별로 유쾌하지 않은 연극을 펴기도 했다. 아주 먼 훗날이 아닐 수도 있는 그날은 과연 어떤 것인가..
¶ 엘니뇨의 영향으로 미국 동부는 이상난동 異常暖冬에다 장마성 폭우로 사실 전통적인, 크리스마스 카드에 나오는 하~얀, 고향 같은 풍경의 기대가 완전히 사라졌다. 하지만 그런 기후적, 감상적인 것을 빼고는 사실 예년이나 다를 기분은 하나도 없고 Christmas Season (12월 25일부터 다음해 1월 둘째 일요일까지, 이번은 1월 10일, liturgical calendar) 의 첫날, 12 Days of Christmas 중의 첫날, First Day of Christmas 를 지낸다.
올해는 우리 집 오랜 전통을 깨고, 처음으로 성탄미사에 참례를 하게 되었다. 오랜 동안 우리는 미국 성당에서 성탄 전야 미사에 온 가족이 참례하고 정작 성탄절에는 완전히 집에서 늘어지게 쉬곤 했었다. 이것이 근래에 들어서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기에 고쳐야겠다는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었던 참이었었다.
푸근~한 느낌의 성탄미사가 끝나고… 도라빌 순교자 성당 2015년 12월 25일
푸~근~ 하고, 잔~잔~한 미소를 띤 모습으로 성탄절미사를 집전하시는 이재욱(요한) 주임신부님, 흡사 ‘젊은’ 산타클로스 같다는 느낌도 받는다. 성탄의 진정한 의미, ‘고차원적인 사랑‘ 의 느낌을 강론과 몸으로 보여주신다. 오늘 이곳 도라빌 순교자 성당, 한국본당에 오게 된 계기도 우연이 아닐 듯.. 순교자 성당에서 아주 멀지 않은 apartment로 얼마 전에 이사온 작은 딸 나라니가 올해 family Christmas meal을 준비한다고 한 것.. 거기서 가족들이 모이게 된 것들.. 모두 우연이 아니었을까? 오랜만에 우리 집이 아닌 ‘다른 집’에서 나라니가 준비한 fusion Christmas luncheon 으로 성탄 오후시간을 즐겼고, 오랜만에 우리 집에 없는 big screen TV로 우리 가족들의 오래 된 classic movie였던 Bing Crosby, Ingrid Bergman 주연, 가슴을 훈훈하게 적시는 ‘The Bells of St. Mary‘를 보며 각자가 느끼는 추억이 어린 논평을 하기도 했다. 그것은 warm heart, loving heart 의 기적에 관한 것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성탄절에 집에서 나왔던 덕분에 쓸쓸하게 성탄절 낮을 보낼 듯 했던 우리의 젊은 봉성체 환자 H 보나 자매님 댁도 찾아볼 수도 있었다. 이런 날, 몸과 마음이 쓸쓸한 영혼을 찾는 것은 우리들의 heart에도 엄청난 도움을 준다. 변함없는 모습과 감사하는 태도로 우리를 맞는 자매님, 비록 holiday decoration이 하나도 없는 조용한 집이었지만 그래도 최소한 가족들은 모두 가까운 곳에서 보살피고 있어서 그러한 쓸쓸함을 이기는데 도움을 준다. 사랑이 주제라는 성탄의 의미를 새겨볼 수 있는 거의 완전한 예들을 오늘 이렇게 경험한다.
오늘의 이런 ‘성탄절 봉성체’와 더불어 어제의 조금 다른 경험들이 나를 조금 움츠리게 한다. 지난 화요일 우리와 같이 고해성사를 했던 S 형제, 어제의 통화에서 다시금 우울한 holiday를 가족과 맞이하고 있음을 알고 나의 가슴은 주저앉는다. 오래 전의 나의 모습을 그에게서 보는 듯해서 더욱 우울해진다. 이럴 때 어떠한 말도 필요가 없음도 알기에 더욱 답답한 것이다. 어제 쏟아지는 빗속을 drive해서 올해 5월초 선종하신 배 베로니카 자매님 댁을 찾아가서 홀로 남은 두 아드님에게 작은 인사를 전하고 왔는데, 그 집도 역시 쏟아지는 빗속에서 성탄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고, 어둡게만 보였다. 쓸쓸한 모습으로 우리를 문 앞에서 맞은 그의 얼굴도 마찬가지로 쓸쓸하고 어두웠다. 밝은 빛이 탄생한다는 이런 날들에 이렇게 어두움이 있다는 것을 어찌 잊고 살 수 있을까.. 하지만 과연 어떻게 이들에게 빛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Ha.. single cup, finally!
¶ 요사이 깜깜한 새벽에 일어나면 예외 없이 추위에 떨며 coffee를 ‘내려서’ 마시는 즐거움을 맞이하지만 문제는 그 ‘추위에 떠는’ 시간이 짧지가 않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에 그것을 해결해 주는 perfect present를 ‘아이들’로부터 받았다. Single cup coffeemaker 이것이 바로 해답이었다. 현재 우리 집 drip coffeemaker는 10 cups 이상을 만들어야 제 맛이 나는 monster급이고, pour-over coffee maker는 ‘내리는데’ 시간이 걸린다. 비록 ‘고급’은 아니더라도 이제는 power switch만 올리면 자동으로 personal single cup coffee가 만들어지니.. 추운 새벽의 괴로운 dark morning routine이 다가오는 1월 달의 ‘강추위’를 조금은 덜 괴로울 듯하고, 차가울 수 있는 가슴을 훈훈하게 느끼게 한다. Thank you, Kids!
The Twelve Days of Christmas – John Denver & the Muppets
¶ Unseasonal Christmas, 밤새도록 천둥과 번개, 폭우가 오락가락했다. 오늘이 무슨 날인가.. 성탄 eve 전날이 아닌가? Stormy holiday, 분명히 심상치 않은 성탄의 기분을 주지만, 문제는 이 stormy 란 것이 겨울이 아닌 여름, 그러니까 ‘열대성 tropical‘이란 사실이다. 이것도 몇 년 만인가? 기억에 3~4년 정도 전 이 맘 때였나? 맞다.. 2012년이었다. 그 때도, 억수같이 쏟아지는 폭풍우 속에서 ‘처량하게’ 가족 모두가 극장엘 가서 Spielberg의 Lincoln영화를 보았다. 왜 그랬을까? 절대로 포근한 추억이 아닌 것이다. 최소한 나의 style은 아니었다.
가족을 위해서 나갔다는 기억이 아직도 선명한 것을 보면 싫은 추억이 된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런 unseasonal holiday은 싫은 것 중에 하나다. 하지만 꼭 그럴까? Christmas란 것이 과연 무엇이며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사람들.. 몇 초 정도라도 생각을 하며 보낼까? ‘집단’ 군중심리에 밀려서, 무슨 zombies같이 ‘shop, shop, shop, 줄을 서서’ shopping이나 하는 지독히 세속화 된 크리스마스.. 기다림(advent)이 내일로 끝난다는 단 하나의 희망, 그것이 나를 위로하는 것이 되었나?
¶ 며칠 전 일요일 저녁에 ‘세대 차를 뛰어넘는’ ‘100% 비공식’ 순교자 성당 구역 ‘친구’들의 간단한 저녁식사와 간담회가 있었다. 나의 레지오 협조단원이기도 한 ‘다多 차원적’인 host 형제님, 무섭게 바쁜 생활에서 틈을 내어서 이렇게 ‘마음이 맞는’ 형제, 자매들을 초대한 것 감사를 안 할 수가 없다. 비록 같은 구역에서 만난 사이지만 이야기들은 구역 politic을 초월한 것들, 개인적인 것들, 신앙적인 것들로 아주 화기애애하고 유익한 것들이어서 집을 나올 때 마음이 아주 가벼웠다.
어떠한 구역모임이 “이상적인, 본당이 바라는 모습”일까.. 이런 것도 허심탄회 虛心坦懷 하게 다루어졌고, 무언가 meaningful correction의 시점에 다다르고 있다는데 의견이 모아졌지만, 필요 이상의 ‘논쟁 성’ 대화는 아니었다. 이런 민감할 수도 있는 사안은 ‘순리’란 것에 맡기는 것도 좋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새해부터는 우리 구역도 조금은 “inclusive, faithful, ecclesiastical 한” 그런 쪽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마음이고, ‘잘 될 것’이라는 가느다란 희망도 가져본다.
¶ Busy busy Tuesday: 우아.. 이렇게 어깨에 천근만근 무게를 느끼며 보냈던 화요일이 있었을까? 레지오 회합으로 시작되는 화요일은 주로 봉성체로 끝을 내고 거의 저녁때 귀가하는 일정인데 이번 화요일은 그것을 넘는 일정들이 꽉~~ 차 있어서 그 전날에는 심지어 심한 stress까지 느낄 정도여서 왜 이렇게 schedule을 잡았나 하는 후회까지 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다 좋은 것들’이란 100% 확신이 있기에 주로 ‘don’t think twice, don’t look back, just say yes‘란 말만 되뇐다.
평소의 일정에 오늘은 ‘성탄 판공성사, 신부님 면담‘, 냉담교우 형제와 점심식사 에다가 저녁에는 친지들과의 Christmas dinner party까지 겹쳤다. 조금은 아찔한 일정이었지만 끝났을 때의 ‘날라갈 듯한 기분’을 미리 그리며 나를 달래기도 했다. 판공성사는 고백소에서 줄을 서서 해도 되겠지만 언제나 그것은 무언가 미흡한 뒷맛을 주기에 올해는 따로 면담 식으로 하고, 냉담하고 있는 ‘아오스딩, Augustine‘ 형제까지 불러 점심을 하고 같이 성사도 보게 되었다. 몇 년 만에 이런 기회를 갖게 된 이 형제와 조금은 깊은 대화를 하려 했지만 의외의 불청객이 있어서 무산되고 말았다. 이 형제님, 기나긴 냉담을 하고 있지만 항상 나의 기도 속에 있기에 ‘언젠가는’ 돌아오리라 굳게 믿는다. 고해성사의 ‘백미 白眉’는 역시 Matthew Kelly1의 말처럼 ‘지난 세월의 때와 먼지’가 씻겨나가는 홀가분한 뒷맛이 아닐까?
저녁에는 올해 새로 이사를 한 C 사장, 나이는 한참 밑이지만 우리 ‘동년배’ 그룹에서 당당히 끼어서 오랜 교분을 유지했던 Ohio State 동창 후배, Riverside Drive에 있는 멋진 upscale 집을 찾아가서 늦은 저녁 시간을 즐겼다. ‘개천에서 용 났다’라고 자칭하는 이 그룹은 뒤늦은 나이에 모든 것들이 잘나가게 되는 case여서 나에게는 조금 미묘한 감정이 교차됨을 피할 수 없지만 그래도 오~랜 ‘친지’들이 아닌가?
¶ ‘갑자기’ 커진 우리 자비의 모후 레지오 쁘레시디움, 비록 새 단원들이 모두 자매님들이지만 이들 덕분에 평균연령이 훨씬 떨어진 것은 감사할만한 것이었다. 무슨 ‘긴급 수혈’을 받은 느낌이 들 정도로 분위기가 밝아졌다고나 할까? 들락날락하며 전체 분위기를 흐려놓았던 눈에 성가셨던 일도 올해로 끝나면 얼마나 좋을까? 모든 것을 ‘가급적 원칙대로’ 하는 우리 레지오의 전통을 모르긴 몰라도 두고두고 감사한, 중요한 인생의 교훈을 체득하는 삶을 살게 하리라 나는 믿는다. 지난 9월부터 서서히 ‘수혈’을 받아오면서 현재는 출석률 100%가 새로운 정상이 되었다. 전원 출석하면 박수를 쳐야만 했던 사실, 들락날락하던 것이 정상이던 것이 이제는 출석률 100%가 정상이 된 것이다. 레지오 교본의 말씀들이 정말 100% 모두 맞는다.. 이것은 누구의 도우심인가?
¶ 아주 아주 오랜 만에 전호배 요셉형제와 KaTalk으로 통화를 했다. 나와 동갑 돼지띠 전 요셉 형제님, 작년 11월 쯤에 ‘갑자기’ 귀국을 했었다. 이곳에서 생활이 만족스럽지 않아서 그랬으리라는 짐작만 할 정도지만, 그래도 그가 황량 히 떠나버린 작년 12월은 찬바람만 부는 듯한 외로운 느낌을 주었다. 우리와 가까워진 지 일년도 채 안되었을 때 홀연히 떠난 것이다. 늦은 인생의 느낌을 말없이 공감할 수 있는 영혼을 만났다고 생각했었지만 그것은 조금 나에게 사치였는지.. 귀국한지 일년이 되는 지금에야 ‘무엇이 보인다’고 했다. 그 말이 확실히 무엇을 뜻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짐작은 할 수 있다.
편안히 안주해야 할 나이에 큰 변화는 사실 어렵거나 괴로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상상도 못할 심리적, 혹은 육체적인 challenge가 왜 없겠는가? 그림이 잘 그려지지는 않지만 그래도 열심히 사는 모습이 느껴진다. 인근 성당(노원성당?)의 레지오에도 가입을 해서 활동을 시작했다고 했고, ‘조그만’ 직장도 잡아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며 자매님은 양로원 같은 곳에서 일을 하신다고.. 정치적으로는 나와 잘 맞지는 않지만 그래도 곧은 지조와 믿음으로 만사를 해결하는 돼지띠 형제님, 모든 가족이 성탄, 새해를 잘 맞으시기 빕니다.
super-cute Christmas tree
¶ ‘역사상’ 제일 ‘늦게’우리 집 mini 성탄 tree가 장식이 되었다. 그러니까 성탄 2일 전이다. 아이들이 이것에 대해 불만이 많은 듯 하지만,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다. 우리가 나가는 두 곳의 성당이 3일 전에 장식을 했으니까 우리는 ‘당당히’ 하루가 더 늦은 ‘쾌거’였다. 진정한 대림의 정신으로 잘 견디어낸 결과였고 ‘원칙’대로 1월 10일 이후에 치울 것이다. 어제부터 그렇게 보고 싶었던 작년의 movie collection을 하나씩 보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보고 싶었던 것이 The Christmas Box란 1995년 family classic. 여기 출연을 하는 Maureen O’Hara가 올해 타계를 했기에 더 이것을 보고 싶었다. 이 영화는 ‘진정한 성탄의 의미’를 지루하지만 차근차근하고 자상하게 보여준다. Family의 의미를 그렇게나 강조했던 1995년은 지금 생각하며 ‘고전적’인 시대였을지도 모른다. Transgender, LGBT, SS “Marriage’가 new normal이 되어가는 참 해괴한 세상이 도래한 이 시점에서 무엇을 더 언급하랴? 그래서 Advent의 희망이 더 무게를 더하는 (최소한 나에게는) 그런 2015년 성탄이 내일로 다가왔다. 우리 가족들과 함께 집에서 식사하는 것이 고작이지만 그래도 Christmas vigil Mass에 모두 간다는 사실이 거의 기적같이 느껴진다. 우리 아이들이 한마디로 C&E2 Christian3이 된 사실, 역사적인 irony에 속한다. 이것이 나의 personal Advent에 속하는 것이다.
Lights along the stairway to heaven
Australia-born American Catholic Author, Commentator, businessman, Author of ‘The Four Signs of A Dynamic Catholic‘ ↩
¶ El Niño Christmas Holidays 한 마디로 ‘따뜻한 성탄절’을 말한다. 지나간 몇 년간 이곳 지역은 아주 추운 겨울을 경험했지만, 그런 weather system이 Northeast지방(I-95 corridors, New York, Boston)에서는 물러가는 모양으로 National news 에서는 온통 ‘따뜻한 겨울’이 뉴스거리가 되고 있다. 지난 5년간은 이 지역에서는 희귀한 white Christmas도 보았고 고드름과 폭설 같은 ‘북방’에서만 볼 수 있던 것도 보았던 세월이어서 사실 holiday의 기분을 마음껏 느낄 수는 있었다. Northeast 지방에서 그런 기후 pattern이 서서히 물러가는 모양으로, 이것이 ‘엘 니뇨‘ 현상이고 하는지 (따뜻한 태평양 수온), 앞으로 몇 년간은 그쪽 지방은 다시 비교적 조용하고 ‘따뜻한’ 성탄절이 되는가 보다. 우리가 사는 Southeast지방은 3개월 장기예보가 ‘wetter, cooler’ 라고 나와서 겨울이 가기 전에 눈(雪)같은 것을 기대해 볼만하지만 이번 성탄절을 즈음한 날씨는 ‘wet, very warm’이라고 예보가 되어서.. 미리 심리적으로 ‘white Christmas는 물 건너 갔다’ 라고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Advent, advent.. waiting & waiting .. with 4 candles
¶ Advent spirits, 2015 나의 전통적인 12월은 한마디로 Charles Dickens 의 classic A Christmas Carol 에 나오는 Christmas Past 라고 할 것이다. 평소에도 “현재보다는 과거”를 더 많이 생각하면 사는 나에게 12월이 되면 어떨 때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감상적 늪에 빠지기도 한다. 설상가상 雪上加霜으로 나이가 ‘고령 高齡’으로 접어들면서는 나이를 더 먹게 되는 년 말이 되면 더욱 축~ 쳐지고, 우울해지기도 하는 괴로운 시기가 되기도 했다. 내가 ‘비정상’인지는 확실치 않아도 분명히 ‘정상적’인 것 같지는 않아서, 나의 감정이나 느낌을 남에게 보이기도 싫었다. 한마디로.. 결국 12월은 심지어 즐겁지 않았던 season으로 변하고 있었다. 하지만.. 수년 전부터 ‘서서히, 천천히’ 나는 이런 ‘bad trap’ 에서 벗어나기 시작해서 올해는 현재까지 중에 ‘최고’의 spirit을 찾게 되었다. 그러니까.. Christmas present를 찾게 된 것이다. 거의 “기적”과 같은 이 변화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참 인생이란 오묘하기만 하다.
예전에 비해서 눈에 띄게 달라진 것 중에는: (1) Holiday decoration은 빨라도 12월 20일 이후에 하고, (2) Christmas carols, movies 같은 것도 그 이후에 즐기고.., (3) 가급적 holiday shopping같은 것을 피하고 정 필요하면 딱 하루 날을 잡아서 하고, (4) 진정한 성탄 holiday는 12월 25일에 시작이 되어, 다음 해 1월 5일 (12 Days of Christmas) 이후까지 지속된다. 작년에 이런 것들을 부분적으로 단행했는데, 결과적으로 너무나 뒤 느낌이 좋았다. 올해는 ‘모두’ 실천을 해 볼 계획으로 오늘까지 Christmas tree 장식 같은 것을 hold해 오고, carol이나 movie같은 것도 안 듣고, 안 보고 있다. 어떨까? 이것은 사실 ‘교회’에서 오랫동안 권장해 오고 있는 것들이지만.. 이제야 그 참 의도를 알 듯한 것이다.
과거에 성탄 전날까지 요란법석 시끌벅적 하다가 성탄 아침에 무섭게 선물을 나누어 뜯어 ‘버리고’, 거의 거짓말 같이 ‘모든 것’이 끝나던 정말 괴상한 풍습.. 어떻게 우리가 그렇게 보냈을까.. 성탄 씨즌이 성탄절부터 시작이라는 간단한 사실을 어떻게 그렇게 외면하며 살았는지. 좌우지간 이러한 것이 그런대로 진정한 ‘대림절의 정신’일 듯하다.
¶ 염경자 누나 바로 얼마 전에, 나의 2011년 blog post: ‘가회동의 추억‘에 누가 찾아와 댓 글 comment를 올려 놓았다. 알고 보니 그 ‘사연’은 정말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가 없었고 꽤 놀라기도 했다. California (LA area)에 사시는 나와 같은 재동국민학교 졸업, 6년 정도 후배, 송요한 씨가 그 주인공인데, 오래 전 가회동에 같이 살았기에 나의 글을 찾았고 본 듯하다. 게다가 레지오 단장을 역임한 같은 천주교 교우.. 그러니까 송요한 형제님, 얼마나 반가운 사실인가?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가회동 내가 살던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을 곳에 사셨던 듯하지만 내가 더욱 놀란 것은 내가 살던 ‘주인’ 집의 ‘미인중의 미인‘, 막내 따님 염경자 누나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참, 인연도 묘한 것이.. 송형제의 wife와 염경자 누나가 같은 항공사 스튜어디스 출신이라고 하며 그것도 같은 지역에 사신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렇게 연관이 될 수가 있을까? 그러니까 희미하게 알고만 있던 ‘주인집’ 소식을 조금 더 자세히 들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어린 시절의 추억이 흠뻑 젖었던 그 당시의 한 가족들을 찾은 것이다. 이것으로 tiny blog의 ‘무서운 위력’을 다시 실감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세월은 흘렀지만 추억과 기억이 변할 수는 없을 것이고 그런 것을 나눌 수 있는 ‘인연의 사람’들을 다시 찾는 것은 오래 산 보람이라고 할 것이다.
와~~ 싸늘하다.. 스웨터가 어디에 갔나.. 두꺼운 양말은.. 갑자기 느닷없이 11월에 장마 같은 비가 연일.. 거기다 기온은 급강하.. 그야 말로 double whammy인가? 뽀얀 안개가 뒤덮인 바깥은 온통 차가운 빗물에 섞여서 그야말로 뼈까지 시린 느낌을 준다. 황금색의 나무들과, 깊은 하늘을 연상시키는 11월의 상상이 완전히 건너가고 숫제 이제는 굵직한 warm-feeling holidays들이 기다려지는 그런 기분까지 느끼게 한다. 비록 weather person들은 ‘미안한 표정’을 계속 짓지만 나는 사실은 반대로 이런 ‘음산한 기분’을 즐기는 편이다. 이런 날씨에 나는 최소한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되는 home office의 특권을 만끽할 수 있다.
이불로 igloo를 만들고 낮잠을 잘 준비가 끝난 Tobey
최근에 들어서 나는 30분 정도의 낮잠을 즐기는 습관이 들어가고 있다. 특히 피곤한 때의 낮잠은 아마도 최고의 선물일 듯하다. 우연히 얼마 전 피곤함을 느끼며 desk에 앉아서 고개를 떨구고 졸다가 그냥 carpet위에 쓰러져서 잤던 것이 시발점이 되었다. 그때의 바깥 날씨는 기억이 나지를 않지만 최소한 그때의 30분간의 낮잠은 너무나 경이로운 경험을 주었다. 그야말로.. 이것이 몇 십 년 만이냐.. 하는 기분. 나는 낮에는 ‘절대로’ 졸거나 잠을 안 자는 것이 철칙인데 역시 이것도 나이 때문일까? 그러다가 날씨가 싸늘해지고 요새처럼 음산하고 을씨년스러운 날씨의 낮잠은 정말 멋진 것이었다. 내가 낮잠을 자면 제일 날뛰는 것은 우리의 11살 짜리 pet dog, Tobey인데, 왜 내가 자기 옆에 누우면 그렇게 좋아하는 것일까 의아할 정도다. 그래도 옆에서 같이 그 녀석과 즐기는 음산한 날의 home office에서의 낮잠의 매력은 그 누구도 상상을 못할 것이다.
Glorious, deep blue, higher and higher.. 갑자기 쏱아진 가을하늘에는..
¶ 습기가 갑자기 사라진 하늘은? 올해의 여름의 특징은 흔히 말하는 heat index, 그러니까 ‘불쾌지수’라는 것이 유난히 높았던 것이다. 한번도 화씨 95도를 넘지를 못했지만 문제는 지독한 습도였다. 정말 무시무시하게 높은 습기는 공기를 완전히 steam room같은 것으로 만들어, 보통 때면 선풍기면 시원한 것도 이번만은 ‘절대로’ a/c로 습도를 낮추어야 하는 것으로.. 이것이 쉬지도 않고 밤낮으로 돌고 돈다. 시원한 것은 좋은데.. 문제는 엄청난 electric bill. 아마도 $400까지 치솟지 않을까 미리부터 우울해 진다. 그런데 하루 아침에 하늘의 물기가 완전히 사라졌고 a/c의 소음도 따라 없어지고.. 9월로 깊이 접어들며 경험하는 신선하고 즐거운 느낌.. 이래서 계절의 변화는 신비스럽기만 하다.
¶ 거의 매일 장례식: 주임 신부님 (이재욱 세례자 요한)의 얼굴과 입술에 피로의 기색이 역력히 보인다. 연일 열리는 듯한 연도, 장례식, viewing.. 이것과 관련해서 거의 매일 병자성사, 병원방문, 장의사 연도.. 어찌 피곤하지 않을까? 9월 초부터 시작된 이런 의식들이 9월 중순에서야 끝이 났다. 황 어거스티나 자매님과 조 이시도르 형제님.. 특히 조형제님은 최근 몇 개월 동안 봉성체, 병자성사들을 통해서 신부님과 같이 많이 찾아 뵙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의 방문을 꺼려하던 형제님, 선종 몇 주를 앞두고부터 서서히 가슴을 열고 우리의 방문을 기다리게 되었던 분.. 비록 신앙심의 열매를 더 맺었으면 했지만 그것이 그렇게 중요할까.. 절대자에게 조금이라도 가슴을 열고 가셨으니.. 우리는 분명히 평화스런 곳으로 가셨으리라 믿고 있다. 황 자매님은 레지오 활동단원으로 선종을 하셔서 순교자 성당 초유의 ‘레지오 장’으로 장례미사가 치러지기도 했다. 기술적인 문제를 떠나서 레지오를 그렇게 사랑하신 자매님에게 이런 ‘선물’을 누가 마다하겠는가?
¶ 나는 어떻게 죽을까.. 레지오에 입단한 이후 참 많은 선종과 장례의식을 경험을 하였다. 입단 5년 가까이 되는 이 시점에 나는 정말 많은 영혼들과 작별을 하였고 그들의 유족들과 함께 있기도 하였다. 지난 5년간 나의 ‘좌우명’ 중에 하나는 결혼식은 빼먹을 수 있어도 장례의식은 ‘가능하면, 최선을 다해서’ 참석하리라는 것이었다. 그 이전까지 나는 이와는 정반대의 행로를 걷고 살았다. 그것이 하루 아침에 완전히 180도 뒤 바뀐 것이고 이것은 나에게 작은 기적 중에 하나로 남게 되었다. 이런 경험을 통해서 나는 항상 생각하는 것이 ‘나는 어떻게 죽을까, 죽어야 할까’ 하는 절체절명 絶體絶命의 대명제 大命題.. 바로 이것이다.. 나는 이 해답을 찾기 위해서 그렇게 나를 바꾸어 놓은 것이다. 이 죽음이야 말로 신앙의 핵심주제가 아닌가? 나는 배우러 그곳으로 가는 것이고 그 결과는 상상을 초월한 무궁무진한 놀라움 뿐이고 아직도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다.
¶ Dark night of ..
어두운 밤에 캄캄한 밤에 새벽을 찾아 떠난다.. 종이 울리고 닭이 울어도, 내 눈에는 오직 밤이었소. 우리가 처음 만난 그 때는 차가운 새벽이었소. 당신 눈 속에 여명 있음을 나는 느낄 수가 있었소…
2012/13년도 레지오 연차 총친목회에서 우리 레지오에서는 ‘희귀동물’에 속하는 몇 명의 남성단원들과 같이 연습하고 불렀던 노래 중에 나오는 가사 중에 바로이다. 당시에는 큰 묵상이나 생각조차 없이 ‘신나게’ 불러 댔지만.. 어떤 것이 캄캄한 밤일까.. 생각한다. 내가 현재 가끔 겪는 것도 그 캄캄한 밤에 속하는 것일까? 특히 9월 중순의 며칠간 겪은 마음속의 고통은 예상외로 심한 것이어서 속으로 계속 이것이 바로 ‘어두운 밤의 시작..’일 것이라고 혼자 단정을 해 버리기도 했다.
대체로, dark night (of the soul)은 가톨릭 신앙에서 ‘믿음의 위기’를 말한다. 대표적으로 ‘복자 (blessed)’ Mother Teresa의 경험은 유난히 오랫동안 지속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나에게는 사실 근래까지의 ‘지독한 냉담’ 생활이 바로 이런 것이었을 것이지만 그 당시에 전혀 그런 사실조차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 서서히 가슴을 열면서, 보이고 느껴지는 ‘빛’을 보고 느끼면서 비로소 나는 내가 바로 그 dark night에서 살았다는 것을 처음으로 실감하게 되었다.
새벽을 찾아 떠난 과정이 비록 하루 아침에 생긴 일이 아니었어도 그렇다고 그렇게 긴 여정은 아니었기에 아직도 그 경험이 신선하게 느껴지고 이제는 ‘줄줄 외울 수’ 있을 정도로 정리가 되었다. 목적은 다시는 절대로 다시는 그 전의 세월 (어두운 밤) 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우려에서였다.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말처럼 쉬울까? 다행히 9월 중순의 ‘어두운 밤’은 불과 며칠간 계속된 ‘가벼운’ 것으로 끝이 났다.
¶ 지난 주부터 갑자기 건조한 가을날씨 선을 며칠 보이더니 그것도 며칠을 못 가서 다시 올 여름의 골칫거리인 습기로 가득 찬 하늘이 찾아왔다. 하지만 이런 ‘열대성 하늘’도 수명이 길지는 않으리라.. 이제부터 기대해 볼 것은 무엇일까? 건조하고 따가운 가을 햇살아래 무르익은 사과 밭의 풍경들, Holy Family성당 제단 옆의 전면유리에서 영화 장면처럼 변화하는 낙엽 떨어지는 고목들, 파~아란 하늘을 배경으로 지옥의 악마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던 9/11의 슬픈 기억들.. 하지만 최소한 한번 정도는 보여주는 ‘싸늘한 가을비‘의 포근한 느낌을 미리 그려보게 되는 2015년 9월의 시작이다.
¶ Marcellina, St. Marcellina 4세기 경 이태리의 성녀이름이다. 성녀 마르쎌리나.. 같은 이름을 ‘세례 명’으로 가진 자매님과 우리 부부가 같이 Fujihana 에서 점심을 했다. 마리에타 2구역에서 10 여년을 넘게 알듯 모르듯 낯을 익히며 지내던 같은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소속 교우 자매님이 아틀란타를 ‘완전히’ 떠나는, 이별을 아쉬워하는 뜻 깊은 오찬 시간이 되었다. 솔직히 섭섭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이런 타향살이에서 무언가 조금 통하는 영혼을 만나는 것 쉽지 않기에 더욱 섭섭하였다.
긴 세월 혼자서 자녀들을 다 키우며 근래에는 신앙적으로도 많이 활발해진 듯 보였기에 한때는 레지오 입단을 은근히 희망했지만 성당 성물방 봉사 등 다른 쪽으로 활동했는데 캘리포니아 주에서 공부하는 아드님의 뒷바라지를 위해서 완전히 이사를 가시는 모양이었다. 이별하는 자리에서 레지오 협조단원으로 가입을 하시는 선물과 함께 허심탄회한 인생살이를 솔직히 나누어준 자매님.. 기도 중에 서로를 기억하며 건강한 미래가 되기를 빕니다.
¶ Isidore, St. Isidore.. 이시도르, 이시도로, 이시돌.. 남자 성인의 이름을 가진 다른 교우 형제님의 이름, 조 이시도르 형제님. 지난 2개월 동안 시름시름 아프시다가 급기야 신부님으로부터 ‘병자 성사’를 받게 되었다. 옛날에는 ‘종부 성사’라고 불리던 이 의식은 사실은 ‘죽음이 임박한’ 가톨릭 신자에게 주는 ‘마지막 성사’다. 한때는 신부님은 물론이고 봉성체를 거부하던 이 형제님이 얼마 전부터 적극적으로 신부님과 영성체를 원하셨다. 우리가 볼 때 하나의 작은 기적이라고 할까.
사연이 간단치 않은 인생을 보내신 것을 알기에 우리는 더욱 하느님을 조금 더 알고 궁극적인 임종을 맞이하기를 희망했다. 비록 고통스럽게 투병을 하는 하루하루지만 그래도 자기가 가는 곳을 조금 더 알고 가는 것이 얼마나 위로가 될 것인가. 어제 너무나 급작스럽게 선종하신 황 어거스티나 자매님의 소식과 오늘의 병자성사는 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진실, 죽음을 더 생각하는 하루가 되었다.
¶ 어느덧 2015년 8월 31일이 되었다. 지겹게도 끈적거리던, 둔한 a/c의 소음이 아직도 귓전에 울리는 듯한 그런 한 달이었다. 올해 여름의 humidity 그러니까 heat index (불쾌지수)는 아마도 기록적인 것일 하다. 공기 자체의 온도는 100도를 못 넘었어도 체감적인 온도는 거의 매일 100도를 넘나드는 그런 무더위의 몇 주를 보낸 후 몸은 적응이 되었지만 몽롱한 듯한 기분과 느낌은 아직도 생생하다.
수십 년 동안 버티어온 고물 에어컨 clunker a/c unit, 올해는 솔직히 간당간당한 초조함을 금할 수가 없었다. 올해는 이것이 버틸까… 거의 도박하는 기분이 되지만 매년 무사히 버티어 주었다. 문제는 천문학 적인 electric bill, 이것은 옛날 ‘gas-guzzler‘ model이라서 쉽게 이해는 간다. 우리 집의 cash flow가 조금 더 편한 숨을 쉴 수 있게 되면 이 clunker들을 최신 energy-smart model로 바꾸기로 결심을 하고 결심을 한다. 그러면 조금은 편안~~하게 시원한 a/c cool air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Mother Nature는 8월 말이 되면서 며칠 전부터 계절의 신비를 과시하며 ‘찬 바람’을 ‘공짜’로 선물로 보내 주시니.. 세상은 참 공평한 것인가? 이제는 어깨를 조금 펴고 낙엽의 계절을 기다려 볼까..나?
8월을 작별하는 포근하고 시원한 단비가 뒷뜰을 적신다
¶ 지난 며칠은 예상치도 않게 나의 ‘밝은 태양’ desktop pc와 씨름을 하며 지냈다. 이것이야말로 계획에도 없고 꿈에도 없었던 귀중한 시간을 ‘낭비’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이 인생이 아니던가.. 어디 인생이란 것이 예상대로 굴러가나.. 온통 놀라움과 예외와 낭비적인 일들이 많은 것이 정상이란 것.. 실감하며 산지 오래 되었으니까.
이번 씨름 문제의 발단은.. 결국 나의 ‘괴벽’ 때문이라고 밖에 할 수 없을까. 나의 (‘인생’이 담겨있는 virtual server를 access하는) desktop pc 가 갑자기 (최소한 내가 보기에) sleepless, hibernate-less로 변한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1시간?) 자동으로 sleep mode로 들어가가 2시간 지나면 완전히 hibernate mode로 가야 정상인데.. 그것이 안 되는 것이다. 나의 괴벽은, 이런 것들이 너무나 민감하게 나를 괴롭힌다고 느끼는 것이다. 특히 windows pc에서 더욱 그렇다. 어찌나 이것이 monster처럼 복잡하게 변했는지.. 이런 문제가 생기면 정상적인 step-by-step diagnostics가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눈을 감고 이것 저것 setup을 바꾸는 것이 제일 빠른 방법이 된 것이다. 문제는 setup option의 ‘조합, combination’ 숫자가 장난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럴 때 아마도 제일 현명한 방법은 그냥 두는 것인데.. pc가 sleep을 안 하면 어떻고, hibernate를 안 하면 어떤가? 그저 이런 ‘자질구레한 것들’을 잊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나는 그렇게 못했다. 완전히 내 ‘자존심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묵주기도 시간에도 이것이 생각나고 잠을 잘 때도 생각나고.. 나를 놀리는 듯한 괴로움이었다. 수십 년 동안의 computer engineer의 경험으로 이런 문제는 사실 시간만 충분히 쓰면 풀린다는 것을 알기에 그런 것이다.
현재 나의 desktop pc는 Linux, (Ubuntu 14.04 LTS)와 Microsoft Windows Vista가 dula-disk/dual-boot mode로 되어 있어서 두 개의 system을 번갈아 가며 쓰는데.. 이렇게 하는 목적은 궁극적으로 ‘지겨운’ Windows를 완전히 나의 눈앞에서 제거하려는 것이지만.. 하도 오랫동안 Windows-monopoly에 길들여져 있어서 하루 아침에 그것에서 벗어날 수가 없음을 알기에 시간을 두며 적응을 하려는 것이다. 이 과정의 ‘불편함’은 아마도 ‘마약 중독, 알코올 중독’의 금단현상(withdrawal syndrome)과 비슷하다고 할까.
몇 달째 Ubuntu pc를 쓰며 100% Windows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마도’ 가능하지 않을까 희망을 갖게 되어서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아직도 Ubuntu로 porting이 되지 않은 전통적인, 주옥과 같은 killer apps들 (Office suite, photoshops, gom player, hdhomerun viewer 같은)은 계속 기다리거나 아니면 영원히 포기해야 할지 모르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번의 episode의 결론은 happy ending이었는데.. Dual-disk/dual-boot에서 Single-disk/dual-boot로 바꾸고 나서 위에 말한 sleep/hibernate 문제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이 ‘기적적인 발견‘은 정말로 ‘우연히’ 알게 된 것이다. 이런 문제는 ‘논리적인 분석‘으로는 찾기가 거의 불가능하고, brute-force, trial-and-error 밖에 없다. 이런 사실은 새로울 것이 별로 없다. 모든 것을 ‘step-by-step, top-down approach’ 로 풀려는 경험이 별로 없는 새파란 젊은 친구들.. 인생의 비밀도 바로 여기에 있음을 모를 것이다.
¶ 연숙의 생일이 내일로 다가왔고 최근에 정착된 우리 가족의 ‘짧은 전통’을 따라 어제 우리 집에 모여서 ‘아이들’이 요리한 southern fried chicken 으로 ‘돼지엄마’의 생일을 축하하였다. 나의 선물은 그 자리에서 줄 수 없는 rain check 으로 그녀의 home-office flooring을 새것으로 바꾸어 주기로 약속을 한 것이고, 두 딸들은 여자들에게 익숙한 것들.. purse, bag 그리고 예쁜 orchid 등이었는데, 무섭게 바쁜 시간을 보내는 작은 딸 나라니의 정성이 곱게 담긴 선물과 요리는 엄마를 너무나 기쁘게 하였다.
Job interview와 side job등으로 정신이 하나도 없는 작은 딸이 그렇게 시간을 쓴 것이 나도 놀라웠다. 한마디로 참 성실한 삶을 사는 것이 보기에 그렇게 흐뭇하였고 그것이 제일 큰 생일 선물로 보였다. 또한, 최근에 있었던 job interview의 결과, 오늘 job offer를 받았다는 전화를 받고 우리는 너무나 기뻤는데.. 아마도 그것이 제일 큰 생일 선물이 될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조금도 의심치 않는다.
¶ Report Card:Trifexis, flea wonder drug 매달 마지막 날은 우리 집 강아지 (사실은 아저씨가 된 개) Tobey가 약을 먹는다. 예전에는 heartworm 약만 먹었지만 지난 달부터는 heartworm과 flea 를 한꺼번에 ‘처치’하는 신비로운 약 Trifexis를 먹고 있는데 한마디로 결과가 너무나 놀라웠다. Heartworm은 그렇다 쳐도 (우리 눈으로 볼 수가 없는 것이니까) flea가 ‘완전히’ 없어진 것은 사실 예상을 넘어서는 거의 기적적인 것이었다. 작년 여름만 생각해도.. 매일 매일 toxic하기만 한 flea spray로 ‘전쟁’을 치르곤 했던 것이 아찔한 경험이 된 것이다. 세상에 이렇게 편한 ‘약’이 어디에 있을까? 거의 하루 아침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간 벼룩들..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살을 물게 되면 곧바로 죽는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죽은 ‘시체’라도 보여야 할 것이 아닌가? 그것조차 없이 사라진 것이다. 참 좋은 세상이 되었다.
¶ 이렇게 씨~원~한 일요일이 얼마만이던가? 잔잔하게 내려오는 늦여름, 아니 초가을 비의 느낌은 아마도 정말 글이나 말로 표현을 하기가 힘들 정도로 행복한 그런 것이다. 게다가 주일미사를 거른 일요일 아침의 기분은 묘하게도 색다르게 기분이 좋으니.. ‘죄스럽다고’ 해도 괜찮다..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