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 밖의 이틀간..

불편할 정도로 끈끈하던 지난 밤은 전형적인 여름의 그것이었는데 기분에 분명히 하늘에 주체할 수 없는 energy가 모이고 있음을 느꼈는데 결국은 이렇게 늦은 오후에 thunderstorm 과 heavy rain을 편한 기분으로 만끽하게 되었다. 

이번 주 초에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이틀간의 mourning 이 몇 시간 전에 모두 끝이 났다. 이것이 인생이다. 예정된 것 사이사이에 이렇게 전혀 예상 밖의 일들이 일어나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이제는 느낀다. 이것이 ‘정상적인 인생’의 하루하루인 것이다.

아틀란타 지역에서 긴 역사를 자랑하는, 최동명 종합보험 대표, 최동명 James (야고보) 형제, 3일 전인 5월 9일 오후에 선종하였다. 심장에 관계 된 병의 결과는 예측을 할 수가 없기에 모두들 그저 결과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었음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어제의 장의사 연도와 오늘의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장례미사 그리고 ‘funeral lunch‘ at 한일관’으로 모든 공식 절차는 끝을 맺었다. 하지만 짧았던 충격은 이제부터 서서히 여운을 남기며 소화가 될 수 밖에 없다. 우선 viewing을 할 수가 없어서 실감이 아직도 가질 않는다. ‘이제까지 웃던 얼굴, full of life‘의 60대 중반의 가장이 조그만 urn속의 한 줌의 재가 되어서 우리 앞에 나타났으니 말이다. 이번처럼 실감이 가지 않았던 경험도 없을 것이다.

가족장을 원한다던 직계유족의 바람이 아닌 완전히 공적인 장례식이었다. 연도와 장례미사로 이어진, 다만 viewing과 coffin이 없었던 것이 색다른 것이었다. 직계가족, 특히 아들 딸의 ‘오열’과는 대조적으로 그의 siblings 과 연로하신 어머님은 부러울 정도로 침착한 표정들이었는데.. 나는 그것이 부럽기도 하고 심지어는 이해가 안 될 정도다. 어떻게 그렇게 침착할 수가 있었을까? 대가족의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몇 년 전까지 보험 사무실에서 만났던 Charlie P도 오랜 만에 식사 때 만났다. 전보다 살이 빠져서 보기가 좋았던 그, 내가 방문할 때마다 James ‘사장님’과 나를 포함해서 같이 담배를 피었는데 들으니 ‘사장님’이 자기와 같이 금연에 성공을 했는데, 1년 뒤부터 다시 피기 시작했다고 들려 주었다. 심장병의 원인 중에 흡연도 있었기에.. 그 때 완전히 담배를 끊었었다면 어땠을까 아쉽기만 하다.

아쉬운 것은 사실 그것이 아니고, 내가 알기로 이 James 형제가 신앙생활로 부터 떨어져서 살아온 것이다. 항상, ‘옛날에 열심히 했다’고 하는 것이 변명이었다. 그것은 사실 그의 형도 마찬가지다. 옛날에 했던 것이 그렇게 지금 큰 상관이 있을까? 아무리 바빠도 신앙생활을 더 열심히 했었으면 결과는 아주 다른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평소에 stress를 많이 받으며 사는 그의 life style에, 마음의 평화가 주는 ‘stress의 해독제’ 역할을 그는 몰랐을지도 모른다. 덤덤하게 받아들였던 그의 타계, 이제는 조금씩 그의 삶과 죽음이 나 자신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천천히 음미할 차례다.

 

싸~늘~ 한 5월 초, 성모의 밤

¶  싸늘한, 아니 아예, 이른 봄의 꽃 시샘 추위를 연상하게 하는 싱그러운 5월 달 첫 토요일 아침. 지난 밤에는 급히 ‘강제로’ 70도에 hold했던 2층 thermostat로 말미암아 central heating 이 밤새도록 ‘겨울의 소음’을 내며 돌아갔다. 웬만하면 bed blanket warmer로 견디면 되겠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조금 달랐다. 2층 small bedroom 구석에서 3주 째 젖을 먹으며 자라고 있는 5마리의 kittens들이 신경이 쓰였던 것이다. 분명히 이런 ‘추위’는 처음일 것이라는 게 계속 마음에 걸렸다.

지나간 주일들, 초여름의 끈끈함을 느끼게 하는 ‘무더위’의 맛을 보여 주더니 역시 자연은 공평한 것인가.. 기억 속의 5월, 언젠가는 이렇게 unseasonable 한 음산한 추위를 꼭 보여 주었다. 역시 한치도 어김없이 싱그러운 성모성월의 벽두에 이렇게 끊임없이 쏟아지는 폭우가 하루 종일 내리며 ‘5월의 추위’ 까지 찾아온 것이다.

지난 주에 그렇게도 덥게 느껴지던 날 올 처음으로 아래층 마루 아래  crawlspace에 들어갔다가 central furnace의 pilot light를  아예 꺼버리고 나온 것이 조금은 후회가 되었다. 이제는 아래층의 central heating이 필요 없을 것이라고 속단을 한 것이다. 당시에는 ‘설마 다시 추위 질까?’ 하며 그렇게 한 것인데 오늘 아래층에 내려가니 이건 완전히 냉장고로 변해 있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kitchen에 남겨둔 toy같은 space heater 덕분에 ‘동사’는 면했다.  그러면서 생각에.. 아마도 이번의 싸늘함이 올 여름 전 느낄 수 있는 마지막 ‘추위’가 아닐까.. 이제부터는 cooling system에 온통 신경이 쓰일 계절이 아닌가? 아~ 이제는 우리의 ‘고철’ a/c (air conditioner)가 올해는 무사히 견디어 줄까.. 하는,  혹시 무슨 일이.. 하는 자괴감에 젖는다.

 

¶  레지오 피정, 성모의 밤: 2017년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레지오 주관  2일간의 ‘연’ 피정이 숨가쁘게 바쁜 스케줄로 피곤한 우리를 맞이했다. 한 동안(1~2 년간?) 피정이란 곳에 못 가보아서 생소하게까지 느껴지기도 했지만 반갑기도 했다. 지난 4~5년 동안의 내가 가보았던 레지오 피정의 느낌들이 만족스럽게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가본 것들은 대부분 ‘집을 떠난, 진짜 피정’ 들이었지만 이번은 본당에서 하는 ‘편하지만.. 느낌이 덜 한’ 그런 것이고 이틀 째 날의 스케줄은 조금은 아찔한 것. 아침부터 밤 9시를 넘어가는 숨이 찬 하루였다.

피정 둘째 날의 그 바쁜 스케줄은 사실 피정과 상관없이 본당의 다른 행사인 ‘성모의 밤’ 이 저녁 늦게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사실 그것은 꼭 참가하고 싶은 것이어서 비교적 긴 시간을 성당에서 보내야 했다.

대한민국 안동교구 정희욱 ‘원로사제’ 신부님이 주도한 피정 자체는 첫날밤의 slow start로 조금 실망감을 떨칠 수가 없었지만, 끝 마무리가 활기에 찬 것이어서 결과적으로 grade B+ 정도는 될 것이다. 내가 본 이번 피정 강론의 문제는 이것이다. 성모신심을 ‘체험’으로 강조한 것은 만족이었지만 전체적으로 너무나 일반적이고 깊이가 결여 되었다는 사실 이것은 성모신심이 생소하거나 거부감이 있는 일반 가톨릭 신자나 개신교인들에게는 잘 맞는 정도의 message였다. 하지만, 우리 같은 레지오 단원들은 이미 이런 정도의 신심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떨칠 수가 없다.

피곤한 긴 하루를 마감했던 ‘성모의 밤’.. 이것 때문에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시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올해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성모의 밤.. 작년 같이 성모동산 앞 주차장에서 ‘어두운 밤을 밝히는’ 멋진 모습을 상상했지만 예상을 뒤엎고 실내인 대 성당에서 행사가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다행이었다. 그렇게 화창하던 날씨가 일기예보가 정확히 예고한 대로 부슬비가 뿌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날 오랜 만에 들어보는 ‘생음악’, GounodAve Maria, violin 연주(piano와 duet) 는 성모님의 청순함을 아낌없이 느끼게 하는 그런 연주였는데 그 violin 자매님, violin연주의 ‘백미 白眉’를 들려준 것 같아서 고맙기까지 했다. 적극적으로 참여하신 이재욱 요한 본당신부님의 모습도 좋았고, 성모님께 바치는 ‘시적인 글’도 너무나 좋았다. 남녀노소가 골고루 참여하여 우렁차게 바친 묵주기도 ‘환희의 신비’는 평소에 하던 때의 느낌을 훨씬 넘는 그런 장엄했던 것. 레지오 연피정 주제인 ‘성모신심’의 절정을 보여주는 듯한 성모의 밤, 나에게 있어서 ‘특별한 피조물, 성모 마리아’는 과연 지난 7년 동안 어떤 의미였을까.. 죽을 때까지 음미하여야 할 과제가 되고 있다.

 

 

바람 부는 날 redux

오늘은 드물게도, 거센 바람이 분다..  지나간 겨울은 정말로 조용한 하늘이었다. 바람도, 눈도, 큰 비도 없었던 정말 얌전한 날씨로 일관했던 2017년 첫 3개월을 보낸 지금 4월초가 되면서 빚이라고 갚으려는 듯, 어젯밤부터 하늘은 요란한 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기온까지 급강하, 아침에 외출 할 때는 거의 사라졌던 두꺼운 스웨터까지 입어야 했다.

얌전하게 지나간 겨울, 비록 재미는 없었지만 덕분에 heating $$$는 분명히 많이 절약이 되었을 것이다. 이럴 때 $$$를 언급하는 나를 나는 경멸한다. 그것이 나이 탓인가 세월 탓인가 시대 탓인가…

 

큰 눈이 안 오는 1월은..

¶  마지막으로 (blog) posting을 했던 때가… 와~~ 믿어지지 않는 ‘작년’ 2016년 11월 Thanksgiving Day 때가 아닌가? 그러니까 크리스마스가 있던 12월과 가족적으로 너무나 바쁘기만 한 1월 이 온통 다 posting 없이 지나간 것이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 지난 2개월 동안 비록 posting을 없었지만 간간이, 틈틈이 남겨 둔 calendar journals, sticky note들이 이곳 저곳에 남아있고 ‘digital traces [emails, voice recording, snap photo 같은]’의 도움으로 지난 2개월의 blog post (retro-blogs)들도  ‘곧’ 채워질 것으로 희망을 하며 이렇게 1월을 보내게 되었다.

 

¶  지난 26일에 2016년도 Federal Income Tax Return을 2시간 만에 끝을 내어 버렸다. 미리 생각하고 시작한 것이 아니고 ‘충동적’으로 한 것인데 그것이 나의 습성이기에 크게 놀라진 않는다. 올해의 tax return은 약간 의외적이었는데 tax refund가 아니고 오랜만에 tax를 내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기분이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것은 지난 해 ObamaCare coverage때문이어서 우리 집의 financial fundamental과는 큰 상관이 없는 것이어서 크게 문제 삼지 않기로 했다.

 

¶  올해의 겨울날씨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었던가? 1월의 마지막에 들어서 돌아보니 분명히 heating bill이 작년보다 가벼워진 것 같다. 올해 겨울 long-term forecast는 못 보았지만 분명히 ‘이상난동’에 가까운 것으로 보도했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 아틀란타 지역의 뚜렷한 4계절이 이제는 ‘아열대성 subtropical’형으로 바뀌는 것이 아닐까.. 이제는 4계절 보다는 ‘우기와 건기’인 듯이 느껴진다. 그러니까 예전의 한 겨울이 ‘차가운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그런 것으로 변한 것이다. 1월 초 한때 잠깐 강추위와 눈이 조금 뿌렸지만 그 정도는 경미한 것으로 끝나고 앞으로도 ‘큰 뉴스 예보’는 보이지 않는다. 가끔은 그래도 ‘천지개벽’할 정도의 일기뉴스가 그리워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불편을 겪을 정도만은 피해갈 수 있기를 바라기도 한다. 2014년의 그런 ‘교통대란’은 다시 겪고 싶지 않기에 그런 것이다. 그래도… 그래도… 솔직히.. 소리 없이 고요히 밤의 적막을 헤치고 펑펑 내리는 함박눈의 환상은 지울 수가 없다.

1월초 섭씨 영하 10도의 강추위와 약간의 눈발이 내렸던 기억..

 

¶  Crash Courses: ROK (South Korea), DPRK (North Korea) 101:  오래 살다 보면 ‘이유 없이, 우연히, 저절로’ 생기는 일들이 있는데 이것들이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물론 이것이 더 가능했던 것은 ubiquitous Google 의 power일 수도 있다. 불과 20여 년 전에는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닌 것이 요새는 수시로 일어난다. 좋은 예로, YouTube에서 우연히 보게 된 것들 중에 [탈북자] 가 있었다. 이런 ‘탈북’이란 유행어, 말을 듣기는 했지만 나의 코 앞에 다가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KOREA에 대한 관심 전혀 없이 살아온 수십 년 덕택에 완전히 고향감각을 잃어버린 시점에서 이런 것들은 완전히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남쪽은 남쪽대로 ‘빨갱이 정치인’들이 득실거리고 (정말 밥맛 떨어지는 종북좌파 정치인 개XX들은 내가 이 우주에서 제일 증오하는 쓰레기 중의 쓰레기들이다.) 북쪽은 북쪽대로 ‘해괴한 모습의 지도자 동지들’ 치하에서 ‘인민’들을 굶겨 죽이며 ‘장난감’ 무기로 불장난을 하니.. 그래서 제일 피하고 싶던 뉴스는 거의 모두 KOREA에 관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던가.. 이제는 그 말이 역시 명언 중에 명언임을 실감하는 나날과 앞날을 마주 보게 되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나의 고향, 나의 조국을 ‘심각하게’ 공부하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Chilly soaking steady..

‘가을비 우산 속’의 꿈이 거의 사라지고 벌써 하얀 눈과 정겨운 크리스마스 movie들이 이곳 저곳에서 보이기 시작하는 2016년 대림 2주일째, 어제 저녁부터 시작된 ‘아마도 곧 그치지 않을 듯’한 을씨년스럽고 뼈 속까지 써늘한 기분의 잔잔한 가랑비가 밤새도록 그치지 않고 내린다. 지독한 가뭄의 여파로 어떠한 모습이라도 비라는 것은 다 반갑기만 하다.

 

촉촉히, 잔잔히, 싸늘하게 내리는 겨울비

 

대림 2주가 되는 일요일, 어제는 거의 하루 종일 정말 오랜만에 tool time으로 보냈다. 손볼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여갔던 청명하고 서늘했던 낙엽의 시절의 시간들을 다 허비한 느낌, 나는 그 동안 방 속에 앉아서 과연 무엇을 하였나? 어제의 tool time은 계속 미루어 오던 숙제, 우리 집 backyard feral cats 아롱이와 다롱이가 겨울을 보낼 shelter 를 ‘급조’한 것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크고 단단한 것이어서 무려 5시간이 걸렸다. 뒤쪽 deck에 위치한 그 shelter에서 2 마리의 sibling들 무사히 겨울을 나기를..

 

making cat shelter in 5 hours

 

 

드디어.. (늦) 가을비가..

Finally, it came, finally!  이번에는 일기 예보를 하기가 조금은 쉬웠던 모양이다 내가 느끼고 보아도 이번에는 비가 올 듯하였다. 역시 역시 기다리고 기다리던 하늘의 물방울들이 제법 세차게 밤새 창문과 뒤 뜰이 깊고 깊이, 마르고 마른 낙엽들에 사정없이 쏟아졌다. 잠결에 연숙의 ‘비가 온다..’라는 comment를 들었다. 얼마나 기다렸으면.. 하는 탄성이 나의 머리 속에도 맴돌며 편안한 잠을 계속한 밤, 이건 가을비는 가을비인데 아주 늦가을비가 아닌가? ‘가을비 우산 속에’ 같은 감상적 기대감이 거의 희미하게 된 이 시점 가을비의 느낌은 어떤 것인가? 역시… 좋~ 구나, 좋~ 다~..

 

깊은 가을비가 지난 밤부터 촉촉히 나리는 backyard

 

괴롭기만 했던 11월의 나날들.. 기억 속으로 넘겨버리고 싶지만 아주 진한 고통의 느낌은 아마도 오래 남을 듯하다. 어두운 밤을 보낸 느낌이 드는 것을 보면 아마도 지금은 조금 먼 동이 트이는 새벽의 빛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두운 밤에 캄캄한 밤에 새벽을 찾아 떠난다’… 이 ‘복음성가’의 가사가 어쩌면 그렇게 나의 귓전을 맴도는 것인가. 벌써 4년 전이 되었나? 태양처럼 떠오르던 ‘새롭고 신기하던 느낌들’에 도취되어서 레지오 연차 총친목회에서 어떤 형제님과 악을 쓰며 불렀던 이 복음성가.. 누가 곡을 쓰고 가사를 썼는지.. 참 기가 막힌 노래임을 새삼 느낀다. 그 때의 그 떠오르던 태양의 느낌을 어떻게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연숙이 ‘고만고만하게’ 기침감기로 고생한 거의 한 달 반 동안 ‘거의’ 쉬었던 YMCA workout이 서서히 다시 시작이 되었다. 연숙은 swimming, 나는 weight lifting을 주로 하는데, 수영은 잘 모르지만 ‘역기’는 조금만 쉬어도 문제가 생긴다. 전에 고통 없이 오르내리던 120 파운드가 지금은 200 파운드로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 알면 된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가리라.. 태양은 다시 뜨고, 내일은 오늘과 다른 새로운 날이라는 사실을..

 

Thanksgiving, 2016

Thanksgiving SongMary Chapin Carpenter

 

서기, 주후 主後 2016년 11월 24일.. 11월 24일이란 말의 느낌은 확실히 미국의 ‘추수감사절’임을 느끼게 하는 것.. 그렇다. 죽을 때까지 타향일 수밖에 없는 이곳 미국에서 숨을 쉬면 산 세월, 연륜이 결코 만만치 않은 45년에 가까워짐을 실감하는 것은 글자 그대로 착잡 錯雜 한 바로 그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 비’ 구경 한지가 2달이 가까워 오는,  매일 매일이 화창한 깊고 푸른 하늘의 가을, 기온은 빙점까지 떨어지는 것, 비만 빼고는 지극히 보통, 정상적인 2016년의 가을의 끝 자락에서 지나간 일년을 감사하는 날 ‘추수감사절’, 바로 오늘이다. 며칠 싸늘하던 날씨가 포근하게 바뀌고 굳게 닫혀 있던 창문을 모조리 열고 신선한 공기를 느끼며 오랜 만에 편한 오후를 맞이한다.

지난 일주일의 대부분을 조금은 심하게 우울한 기분에 시달리다 timing 좋게 그 수렁에서 빠르게 벗어남을 느낀다. 왜 그런 less-than-mild depression에 빠졌고 왜 재빨리 빠져 나오지 못했나 아직도 ‘분석’ 중이다. 앞으로 이런 푹~ 쳐지는 감정에 다시 빠져도 별 도리 없이 이번처럼 그대로 시간만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 정말 싫지만, 아직도 뾰족한 대책을 찾지를 못한다.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4명 가족이 다 모이지 못해서 세월의 흐름을 실감하게 만든다. 오직 4명의 식구가 똘똘 뭉쳐 살던 시절들이 이제는 다 지나갔는가? 한 가족의 궁극적인 진화라고는 하지만 쓸쓸한 심정을 금할 수가 없다. 올해는 작은 딸이 빠졌다. 새로 사귄 boyfriend 의 ‘저택’에 초청을 받았다고 하지만 우리로써는 섭섭한 마음, 많지도 않은 가족인데.. 그래도 남은 3명이 turkey를 제외한 풍성한 음식을 즐겼다.

올해는 어떤 Thanks를 give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았다. 올해는 작년에 비해서 조금 이것이 힘든 것을 보면 아마도 그렇게 spectacular 하게 감사할 것이 없는지.. 하지만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니 그것이 절대로 아님을 알게 되었다. 오늘 Thanksgiving day Mass에서 Father Miguel의 강론이 그것을 일깨워 주었다. 얼마나 많은 것을 우리는 감사해야 하는지 우리는 모르고 지낸다고..

작년에 우리가 받았던 메가톤 급의 ‘은총’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그대로 4식구가 건강한 삶을 살았다는 것, 감사를 드린다. 비록 나이는 더 먹어가지만 나이에 비해서 건강함을 유지했던 덕분에 그런대로 매일 미사, 충실히 참례했던 사실, 장기간 봉성체를 하며 돌보았던 ‘보나’ 자매님을 ‘안전하게’ 하느님 품으로 보낼 수 있었던 때, 우리가 속한 자비의 모후 레지오, 위기를 넘기며 탄탄하게 견디며 현재 아주 건강한 힘으로 활동을 하게 된 사실, 우리의 미국본당에 ‘결혼사제’가 부임을 해서 걱정도 많이 했지만 의외로 좋은 결과를 낳게 된 것, 예산에도 없던 에어컨 고장을 brute-force로 고쳤던 사실, 수십 년간 녹슬었던 나의 guitar 실력을 guitar club에 관여하여 되 살릴 수 있었던 기회, 레지오 전 단원 바울라 자매의 부군 조 이시도르 형제님을 안전하게 하느님 품에 안기게 했던 은총, Atlanta History Center에서 즐겁지 않은 직장생활을 했던 작은 딸 Vonnie, 더 좋은 장래성이 있는 곳으로 옮겨간 사실, Science & Religion 분야 중 최근에 개발된 이론들을 총 망라한 저서와 저자, Father Robert Spitzer를 찾고 알게 된 사실: 별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일지라도 이것들 모두 하느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것들이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deep November, film noir time..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기다리고기다리’) 11월 그것도 중순을 지나가는 그야말로 ‘멋져야 할’ 깊어가는 가을, deep November 가 되었다. 하지만, 올 가을의 최고의 놀라움,  big surprise는 ‘가을비 우산 속’ moment가 ‘전혀’ 없었다는 비극적인 사실이다. 최근의 기억 속에 이렇게 ‘맑은 하늘의 연속’은 처음인 듯 하다. 간단히 말해서 ‘지독한 가뭄’인 것이다. 그렇게 가을 비가 잦았던 지난 해들이 기억에서 희미해지고 숫제 ‘비가 올 때의 느낌’까지 잊어버릴 정도다. 마지막으로 비가 온 것이 그러니까.. 9월 중순 경.. 와.. 2개월 이상 한번도 비는커녕 흐린 날도 별로 없었으니.. 기록적인 더위가 맹위를 떨치던 한 여름에 그래도 곧 다가올 ‘가을 비’만 연상해도 기분이 좋아지곤 했었고 romantic 한 기분까지 예상을 했었는데.

지나간 몇 년간 unthinkable becomes realities.. 경험을 꽤 했고 그런 것을 경험하는 이유 중에는 나의 나이 탓도 있으리라 나를 위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을 살고 있기에 이런 ‘희귀한 일들’을 경험한다는 것이 조금은 납득이 가지를 않고 조금은 겁이 나는 것을 숨길 수가 없다. Eschatology (종말론) 를 들먹이지 않고 싶지만, 꽤 많은 ‘이성적인 사람들’도 이런 것을 언급하게 되었으니..

이제는 조금 누그러진 기분이 되었지만 Park(GH) & Trump shock는  이 ‘연속적 종말론’의 마지막 부분을 장식하게 되었다. 이제는 다 끝난 것인가? Impact는 완화되고 있지만 여파는 아마도 아마도 생각보다 오래 갈 것이다. Praying Rosary가 더욱 더 필요한 ‘더러운 세상’을 살고 있는 나, 우리들.. 풍요로운 시대를 사는 것인지, 지나간 ‘good ole days’가 다 지나가고 있는 것인지..

오랜 동안 기침감기로 고생을 하던 연숙, 이제 ‘지독한 기침’은 거의 끝났다고 생각되지만.. 정말 이렇게 오래 가는 것 처음이 아니었을까? 아이들이 flu shot을 맞으라고 그렇게 보챘지만 우리는 그 shot의 효과를 기본적으로 과신하지 않기에 거절했지만 혹시 그것을 맞았으면 덜 고생을 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이럴 때 우연히 ‘재발견’ 한 것, 바로 film noir.. 1940년 후반부터 1950년 후반까지 미국 영화계를 주름잡던 B급 영화들.. 오래 전 누나와 서울에서 AFKN을 통해서 보았던 미국영화들.. 대부분이 이 class에 속한다. 한마디로 극장까지 가서 볼 만한 영화는 아니고, 비 오는 음산한 날 따뜻한 아랫목에 누워서 ‘조그만 흑백 TV’로 보는 것이 제격인 ‘유치찬란’한 영화들이다. 그것들을 YouTube에서 ‘왕창’ 발견한 것이다. 올해 11월에는 이것들이나 왕창 copy해서 두고두고 볼까나.. 하는 한심한 생각이 든다.

 

세찬 바람 부는 새벽

깜깜한 이른 새벽 녘, 5시가 조금 넘었을까… 이상한 소리에 잠에서 깨버렸다. 바람 부는 소리가 분명했다. 잠재적으로 바람에 날라갈 만한 것이 집 주변에 없을까, 아니면 혹시 ‘거대한’ 나무 같은 것이 쓰러지지는 않을까..  이런 바람소리로 나는 반드시 the end of the world, the bad moon rising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그런 기분을 느끼고 싶을 때도 있다. 세상의 종말, 과연 그것은 어떤 것인가? another eschatological fantasy..

 

Indian Summer, X-10 total victory

¶  Indian Summer 3 days:  거의 2주 이상이나 ‘기가 막히게 멋진’ 가을 맛을 보여주더니 역시 올 것이 왔다. 10월 중순 경 꼭 찾아오는 Indian Summer, 올해는 3일 정도나 머물려나.. 진짜 여름과 완연히 다른 맛의 이 ‘여름’은 건조한 것이 특징이다. 낮에 암만 더워 봤자 그늘은 시원하고 저녁이 되면서 ‘무섭게’ 기온이 깊은 가을로 변한다.

이런 때의 낮잠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맛난 것이다. 어제 오늘 오랜만에 backyard에서 ‘육체적인 일’을 한 후 잠깐 즐긴 낮잠은 두고두고 기억을 하고 싶은 것이다. 암만 자기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인생여정이지만 이런 ‘자연의 조화’ 도움으로 ‘여기에 물이 있다’ 라는 말을 되새기며 십자가 길의  다음 고개를 넘는 것이다. 아~ 은총의 계절이여!

re-engineering X-10 home light control systems, finally succeeded..

 

¶  Unexpected, total victory: 오랜 만에 깨끗하게 이룩한 승리의 성취감을 만끽하는 아침이 되었다. 남들이 들으면 그렇게 ‘쪼잔한 것 가지고 유세를 떨지 마라’ 하고 핀잔할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쪼잔한’ 것도 며칠 동안 나를 기쁘게 할 수도 있는 ‘위대한’ 것이다.

우리 ‘피곤한’ 집의 home lighting 을 거의 20년 이상 보이지 않게 뒤에서 automatic control을 해 주던 system에 대한 이야기이다.  요즈음 ‘벼락부자가 된 젖 먹이같은 젊은 engineer’ 들이 겁도 없이 자기 집을 smartphone으로 control한다며 home thermostat를 $300 이상 받아 먹고 있는데.. 참으로 세상이 Trump같은 개로 변하고 있는가..

그것에 비하면 나의 favorite는 역시 3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lowly X-10 technology인 것이다. 아마도 이것처럼 값싸게 light control하는 것은 아직도 없을 듯 하다. 문제는 old tech의 보편적인 문제..  shelf life, lifespan 의 끝인가 support 가 거의 사라지고 replacement part가 사기가 힘들고.. 고민 끝에 내가 손수 support를 하기로 하고 googling에 매달리니 이곳 저곳에 내 신세와 비슷한 old timer들이 수두룩 닥상.. 결과적으로 우리 집의 X-10 light control system은 거의 무기한 수명이 연장이 된 듯하다..  이런 것이 unexpected, total victory가 아니고 무엇인가?

 

진짜 가을, retarded Donald, Korean

¶  갑자기 여름에서 늦가을 같은, 아침 저녁이 시원한 것을 넘어서 아예 추울 정도의 진정으로 멋진 가을이 접어든 10월 초, 한마디로 glorious, cool days가 연일 이어졌다. 한낮은 알맞게 따뜻한, 믿을 수가 없는 ‘은혜로운’ 자연의 조화가 아닌가? 이런 날씨는 아마도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지만 일 주일을 넘게 변치 않게 써늘한 한 가을 같은 이 느낌이 ‘아마도’ 가을이 그냥 자리를 잡은 것은 아닌지 조심스런 낙관을 해 본다.

그렇다면.. 거의 4개월 동안 우리 집 backyard에서 완전히 방치 되었던 것들을 슬슬 찾아내어서 비지땀 걱정을 하지 않고 ‘고치고 정돈하고’, ‘월동준비’를 하는 즐거운 순간이 온 것인가.. 믿을 수가 없다.

우선 우리 집에 정차하고 있는 두 마리의 아기 고양이들의 shelter를 만드는 것이 급선무, 아무리 outdoor에서 태어나고 자란 애들이지만 우리의 느낌은 다르다. 우리가 춥고 축축하면 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추측이 앞으로 10일 이내에 반드시 찾아올 central heating moment, 위층은 electronic system이라 상관이 없지만 아래 층의 ‘고물’ 은 전통을 자랑하는 pilot light 를 다시 켜 주어야 한다. 예년에는 그냥 켜두고 여름을 보냈지만 올 여름부터는 gas energy 도 절약하고 thermocouple도 보호할 겸 꺼 두었기에 귀찮지만 ‘기어들어가서’ 다시 그 pilot light를 켜 두어야 한다. 귀찮지만.. 할 수 없지 않은가? 올 겨울은 어떨까.. 여름이 ‘잔인’했으니.. 이것도 아마 다르게(추운 쪽으로) 잔인한 것은 아닐까.. 봐 주세요..

 

¶  Retarded Korean: 오랜 이국생활에서 고국에서 오는 소식들,  예전에는 그런대로 관심이 있었던 시절도 있었다. 아주 옛날에는 가끔 날라오는 신문들, 세월이 지나면서 거의 모든 것이 Internet으로 직접 볼 수도 있게 되었다. 편한 것은 사실이지만 희귀함과 호기심 같은 것은 거의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정보라는 것은 어렵게 구하는 것이 가치가 높다는 것, 자명한 진리다.

이제는 과거에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던 옛날의 영화나 드라마도 무료로 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1980년대부터  ‘한반도의 느낌’을 완전히 잊으려는 노력을 하게 되면서 한국말 TV program은 따라서 완전히 잊고 살게 되었지만 연숙은 간간히 한국 grocery에서 빌려주는VHS tape를 통해서 고국의 인기 프로그램은 본 모양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지난 2개월 동안 YouTube를 통해서 1980년대 장수 농촌드라마였다는 ‘전원일기 田園日記’ drama를 간간히 보게 되었는데.. 이것을 보면서 고국의 1980년대의 분위기, 특히 농촌의 ‘발전상’을 보게 되었다.  나의 시대  TV talent는 딱 두 명, 최불암김혜자.. 나머지는 그저 얼굴만 본 정도의 ‘후세’ 사람들이다.

James Dean
James Dean

사실 이런 배경이 본론이 아니고.. 나를 ‘한 시간’ 동안 배를 잡고 웃기던 ‘장면’, 그것이 본론이다. 처음에는 이것이 무엇인가.. 했는데, 그것은, 이 ‘전원일기’ 화면에 조그만 ‘뿌연’ 점 같은 것이 계속 움직이는 것이 보이며 눈을 거슬렸는데.. 자세히 보니.. 최불암이 담배를 필 때마다 그 담배를 쫓아가며 그 것을 ‘감추려고’ 춤을 추는 것이었다.

하도 믿을 수 없고 어처구니없는 이것을 보며.. 처음에는 이 video를 ‘올려 놓은 upload 사람’의 일시적인 장난으로 생각을 했는데.. 그런 ‘screen doctoring‘은 다른 한국 비디오에도 보였다. 이것은 무엇일까? 담배를 증오하는 미친놈의 장난일까.. 아니면 ‘혹시’ 대한민국 판 political correctness 중에 하나일까, 벼라 별 생각이 다 든다.

고국을 방문하는 우리 같은 ‘담배세대’는 한결같이 ‘지나친, 불쾌한’ 담배에 대한 경험을 들려준다. 한국과 일본이 어쩌면 그렇게 다른 ‘담배 정책’을 가지고 있는가도 알려준다. 그렇다면.. 혹시 이것도 무슨 ‘빨갱이 담배 법‘ 같은 것 때문은 아니었을까?  한마디로 이것은 political 한 것인 모양이다. 나의 결론은 some retarded Korean policy  로 끝났다. 정말 정말 이것도 오래 살다 보니 목격하게 된 세기적 희극에 속한다. 수 십 년 전 drama video의 ‘담배 모습’을 열심히 쫓아다니며 policing을 하는 그 예산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면 어떨까? 정말 그들은 retarded Korean 이다.

 

¶  “오래 살다 보니” department:  내가 오래 살았다고 느끼게 하는 ‘것’들, 주로 뉴스에서 찾는데 요새는 이것을 찾을 필요가 없이 살고 있다. 바로 그’놈’ 때문이다. 아니 심하게, 그 ‘새끼’라고 말하자. 양아치중의 양아치, 망종 중의 망종.. 말세 중의 말세.. ugly 중의 ugly.. (I truly love to hate this ‘thing’) 이름을 쓰기도 싫고 말하기도 싫고 생각하기도 싫을 정도의 ‘말세적 인간 retarded Donald Duck‘.. 어떻게 제 정신을 가진 이성적이어야 하는 ‘대국의 대 정당 republican‘이 이런 역사적 과오를 범하게 된 것인지..

이 인간을 따라다니는 인간들은 한마디로 ‘쓰레기 중의 쓰레기’일 것이다. 교훈 중의 교훈은 많지만 나의 등골을 계속 서늘하게 하는 것 중에는 1930년대의 ‘불만의 독일 정국’이다. 민중, 민의가 민주주의의 근간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만약에 ‘틀린 것’이라고 하면 Hitler같은 monster는 언제고 부활할 수 있는 것, 지난 일년간 실감을 하면 산다. 한심한 ‘우매한 white trash’ 들, 그들이 바로 1930년대 독일에서 Jewish business들을 몰아내던 바로 그 ‘우매한 민의’인 것, 역사는 돌고 돈다.

내가 이곳에서 살며 느끼며 보아온 미국, 지난 40년 간 많이 변한 것, 부정할 수가 없다. 자연법을 거스르는 지나치게 ‘개인적 자유’를 요구하는 progressive들, 장기적으로 그것은 절대적으로 progressive가 아니고 degenerative한 것, 역사를 보면 잘 안다. 이렇게 북극성이 안 보이는 ‘난세’에는 어떤 ‘망종’도 쉽게 출현할 수 있는 것, 어찌 잊겠는가.. 이쪽이나 저쪽이나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다. 역사는 변하지만 안 변하는 것, ‘불변의 진리’를 기대고 사는 것이 이런 난세의 지혜중의 지혜다.

 

Big dip, 9월이여 안녕..

¶   드디어 ‘아기다리 고기다리 던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오래~ 전의 유행어) 그 첫 big ‘sudden’ dip이 거의 도둑처럼 밤새 찾아왔다. 거의 20도가 하루아침에 떨어진 것이고, 그것이 거의 3일째 계속되어서, 아침에 거의 3개월 만에 ‘긴 팔’ shirts를  입게 되니 그렇게 기분이 날라갈 것만 같다. ‘긴 팔’ shirts를 가 딱 좋아서가 아니라 그 지긋지긋하던 2016년 여름이 결국은 물러갔다는 그것이 그렇게 기쁜 것이다. ‘긴 팔’을 입으면서 문득 태고 적, 중고등학교 다닐 때, 10월 1일에 하복에서 동복으로 ‘일제히’ 바뀌던 그 때가 생각이 난다. 그러면 당시의 서울의 사계가 이곳 지역과 비슷한 것일까.. 물론 이곳의 평균기온이 높지만 사계가 뚜렷한 것은 거의 비슷하다.

아침 9시 Holy Family CC 평일 미사엘 가니 우리보다 나이가 더 드신 ‘어르신들, 특히 할머님들’은 숫제 ‘오바 overcoat’를 입고 목도리로 단단히 무장을 한 것이 보인다. 체감온도에 따라 각양각색의  이곳의 ‘주위를 의식하지 않는 의복문화’가 더 뚜렷이 느껴지는 계절이 온 것이다.

Full time으로 돌아가던 에어컨이 갑자기 ‘조용~’ 해 지니 조금은 섭섭하기도 하지만 그럴 새가 없다. 분명히 10일~20일 사이에 첫 central heating이 ‘점화’될 것이기에.. 또 crawl-space로 ‘기어들어가’, 거미줄을 헤치고 gas heater pilot- thermocouple을 ‘점화’하는 고역을 치러야 한다. 문제는 이때 문제가 발견되면.. 또 하루 이틀 고생을 할 것이다. 에어컨은 올해의 oppressive, brutal Summer heat를 잘 견디어 내었지만 올 겨울 central heating 특히 아래층 것이 항상 마음이 조린다. 위 층의 heater는 우리가 이사 온 후에 바꾼 것이라 아마도 ok일 것이다. 올해의 더위로 electric bill은 보기가 무섭지만 그것에 비해서 natural gas는 훨씬 ‘저렴’해서 겨울 몇 개월 동안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 그저 적당히 춥기만, 적당히.. 적당히..

 

¶  2 feral Kittens: 지난 5월 쯤 우리 집 backyard shed에서 태어난 kittens들, 4마리였다. 그 동안 우리 집을 ‘거점’으로 들락날락하더니 결국은 모두 떠나고 kitten 두 마리가 우리 집 뒷마당에 정착을 하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엄마와 다른 2마리는 완전히 떠난 셈이다. 하지만 가끔 엄마는 찾아와서 밥만 먹고 떠나곤 한다. 우리가 control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저 그들의 ‘행태’를 관망하며 먹이만 잘 챙기고 있는 셈이다. 그렇게 조그맣던 것들이 잘 먹어서 그런지 꽤 크게 건강하게 잘 자라는 것을 보며 이제는 우리 집도 그들에게 정이 들고 있다. 그들과 가까워지기 위해서 먹이를 우리 집 뒤 deck에 놓아주고 하루 두 번씩 먹이를 주며 서로 얼굴을 익히며 사귀고 있는데 지금은 우리를 하나도 겁내지 않고 먹이를 가지고 나가면 발 밑에서 맴돌 정도까지 되었다.

집안에 이미 개 Tobey와 고양이 Izzie가 있지만 이 두 마리는 행동이 100% 자유스러운 feral cats들로써 앞으로 ‘불임수술’을 해야 하는 부담이 기다리고 있다. 그들이 원하면 언제라도 우리 집을 떠날 수도 있기에 이것은 반드시 우리가 service해야 할 부담이 되었다. 작은 딸 ‘나라니’가 county humane society에서 ‘거의’ 무료로 수술을 해 주는 방법을 찾고 있는데 아직도 소식이 없다.

건강하게 자라나는 '아롱이'와 '다롱이'

건강하게 자라나는 ‘아롱이’와 ‘다롱이’

 

현재까지 이 두 마리를 보면서 생각한다. 이들도 하느님의 생명들이라는 것, 사람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 생명들이 아닌가? 최대한 그들도 태어난 의미를 찾아 주어야 하는 것, 우리가 할 수 잇는 것은 무엇인가? 우선 이름이 필요했는데 마땅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던 차에 연숙이 ‘아롱, 다롱‘은 어떠냐고 해서 그렇게 불리고 있다. 분명히 순 한글이름이지만 만약 영어로 쓰면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하니 오래 전 고국에서 보았던 불란서 영화의 간판 배우 아랑 드롱 이름이 떠오른다. 우리 집 backyard가 그런대로 넓은 편이니까 아마도 그들은 우리 집만 떠나지 않는다면 Born Free의 사자 lion, Elsa처럼 자유스럽고 먹이 걱정하지 않고 ‘일생’을 사는 그런 삶으로 만들고 싶다. 당장 해야 할 일은 갑자기 떨어진 날씨를 상기하며 겨울을 날 조그만 shelter를 만들어 주는 일이다.

 

¶  오늘은 일주일 전에 계획했던 것, 우리 집에서 거의 30 마일 떨어져 있는 Duluth, GA 에 있는 St. Monica성당을 방문하는 날이 되었다. 얼마 전 부터 아틀란타 대교구 본당들에는 최근에 성녀 품에 오르신 마더 데레사 성녀 (St. Mother Teresa)를 기념하는 조그만 순회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전시는 거의 대부분 데레사 성녀의 일대기가 실려있는 기록사진 panels 들이라 다른 source에서 (Internet같은 곳) 찾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본론이 아니고 성녀의 relic (유물)이 함께 전시된다는 사실이 우리의 관심을 끌었다. 성인들의 relic은 신체의 부분을 포함해서 개인 용품들도 있는데 오늘 이곳에서 우리가 본 것은 성녀 데레사가 입고 있던 sari (파란 색의 사리 옷)의 일부분이었다. 그 색깔은 분명히 사랑의 선교회 수녀들이 입고 있던 연한 파란 색, 바로 그 옷의 일부였었다. 한가한 시간이라 사람이 없어서 그랬는지 처음에는 그 relic이 치워져 있어서 사무실에 문의를 해서 특별히 조그만 방에 임시로 보관 된 그 relic을 볼 수가 있었다. 이미 사진전시로 성녀의 일대기를 다 본 이후에 그것을 다시 보니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Media를 통해서 이미 잘 알려진 수녀님의 모습과 그 파란 색의 옷, 바로 그것이 수녀님 것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이날 30여 마일을 온 보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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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의 1st class relic이 전시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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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ll color panels: 성녀의 일대기가 이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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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Monica 성당 내부

 

Catechetical Sunday, pl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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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 주일 2016

¶  오늘은 Catechism, 천주교 교리교육, 교리반, 교리교사 등에 관련이 된 Catechetical Sunday, 한국어로는 교리주일 정도가 될 듯하다. 오늘 주보를 보고 오늘이 바로 교리주일임을 알았다. 2주 만에 우리의 ‘동네 본당’ Holy Family에서 주일 미사 참례를 하였다. 10시 미사에서 낯익은 반가운 얼굴들이 이곳 저곳에 보이고 인사를 나눈다. 세월이 무언지.. 이들 전혀 얼굴, 문화, 나이 다른 교우들, 특히 Irish쪽의 푸른 눈의 수려한 모습의 ‘아줌마, 아저씨, 할머님’들, 어쩌면 그렇게 정이 들었을까? 이름도 성도 잘 모르지만 이웃 친척처럼 느껴질 정도가 되었다. 잠시 안 보이면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근래 평일미사에서 너무나 자주 만나는 Father Joseph Morris, 예의 극적인 언어로 마이크 필요 없는 우렁찬 목소리가 일요일 아침을 압도한다. 이 신부님은 모습 자체가 liberal 한 분이지만 60을 훨씬 넘는 나이에 그런 성향은 드물지 않을까? 모습자체가 나이에 비해서 훨씬 젊은 이 신부님, 아마도 ’60년대의 아이들 baby boomer‘ 일지도 모른다. 오늘 강론은 생각할 기회를 많이 준 주제다. ‘하느님을 사기 칠 수 있는가?’ 하기야 오늘의 복음말씀(Luke 16:1-13, 루까복음)은 처음에 이해가 전혀 되지를 않았다. ‘사기치는’ 시종이 주인으로부터 ‘사기 쳤다고’ 칭찬을 받는 모습… 신부님 말씀이 이 대목은 성서학자들도 골머리를 썩는다고 했다. 예의 예수님의 가르침과 정 반대가 되는 이 색다른 논리를 어떻게? 이 liberal한 사제 Joseph의 해석이 뒤따랐는데, 나는 그 뜻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오늘의 제1독서는 Amos예언자가 ‘사기꾼’들을 질타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복음말씀에서는 사기꾼 시종이 칭찬을 받는 내용이 나왔을까? 이것이 신비가 아닐까? 인간의 논리와 하느님의 논리는 이렇게 다를 수가 있는 것인가? Joseph신부는 여기 나오는 시종이 예수님이고 주인이 하느님이라고 하는 묵상주제를 제시하였다. 처음에는 너무나 혼란스러웠지만 조금씩 정리가 되는 듯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대조적으로 매일 인터넷으로 받아보는 복음 묵상 글에서 신부 기경호 프란치스코 라는 분은 아예 이 사기치는 행위를 평하기를  ‘하느님의 빚을 받는 이들은 세상 사람들이 자신들의 일에 슬기롭게 대처하듯이 슬기롭고 민첩하며 능동적으로 주님을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고 해석을 하고 있다. 분명히 ‘사기치는 것’이 ‘치열하게 세상을 열심히 사는 것이라고 하는 것은 동감이 안 간다. 글쎄요.. 더욱 혼란스럽습니다.

미사가 끝날 무렵 본당의 모든 교리반 staff들(주로 catechist 교사들)이 불려나가서 신부님의 강복을 받았다. 연숙은 현재 한국본당 순교자 성당 교리반 director를 맡고 있어서 느낌이 아주 달랐을 것이다. 어째서 같은 대교구 소속인 이곳에서는 교리반 교사들이 공적으로 강복을 받고 한국 순교자 성당에서는 아예 교리반 주일이란 말조차 없으니.. 일을 맡은 이상 헌신적으로 일하는 그녀지만 가끔 맥 빠지게 하는 일들이 있는 모양이다.  이곳 미사가 끝나자마자 그곳 본당 교리반 때문에 부리나케 혼자 순교자 성당으로 떠난 연숙의 뒷모습이 조금은 쳐져 보인다.

 

¶  오랜 만에 guitar를 손에 잡았다. 아니 3주 만에 case에서 꺼내본 셈이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이렇게 몇 주 동안이나 기타 코드를 안 잡았던 것이 처음이었나.. 손가락 끝의 굳은 살이 벌써 얇아졌나.. 어찌나 손가락이 아프던지 불편하고 불쾌하기까지 하다. 그러니까.. 3주 정도면 암만 굳었던 손끝 살갗도 다시 원상복구가 되어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것으로 나는 최근 몇 년 동안 3주 이상 기타 치는 것을 쉰 적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기억에 이 정도로 손가락이 아팠던 기억이 없으니까..  요새 느낌으로 3주란 것은 시간이란 축에도 끼지 못하는 찰라 같은 것인데 어떻게 이렇게 나의 육신의 일부인 왼손가락 끝은 짧지 않은 시간을 느낀 것인가?

이 시점에서 지난 3개월 정도 group coaching을 하며 관계를 맺게 된 Six String Friends 기타 동호회를 다시 생각한다. 내가 guitar coaching을 한다는 사실은 나에게 신선한 즐거움을 주었고, 덕분에 오랜 역사를 가진 내 ‘알량한’ guitar ‘실력’을 재점검하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했다. 7번 정도 lesson과 coaching을 하면서 느낀 것은 ‘아는 것과 가르치는 것의 커다란 차이’ 였다. 나의 현재 기타실력은 솔직히 나도 잘 모른다. 남과 비교를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엄청난 세월 동안 그런대로 꾸준히 기타가 나의 옆에 있었다는 사실, 때에 따라 꾸준히 즐겼다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 시도한 것이다.

처음에는 내가 아는 것 가르친다는 것이 그렇게 어렵게 보이지 않았지만 시간이 갈 수록 ‘어휴~’ 소리만 나온다. 우선 배우는 사람들의 실력이 각양각색으로 3/4, 4/4 조차 구별할 수가 없는가 하면 4/4 는 숫제 5/4, 6/4로 리듬 감각, tempo감각이 예외적으로 둔한 사람도 있었다. 또한 절대적으로 필요한 ‘소리 노래’ 실력들에도 각양각색이고.. 50~60대이므로 70/80 style의 곡들에는 큰 무리가 없었지만 문제는 어린 학생들이 아니어서 배우는 과정이 느리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몇 주나 몇 달을 예정하고 시작한 것이 아니고 open end로 ‘무작정’ 진행된다는 사실도 문제로, 그렇게 조급하게 배우려는 자세도 결여가 된 듯 보였다. 그래서 일단 지금이 중간 정도의 단계 mid-term정도로 보고 지금까지의 정도를 더 coaching을 하고 일단 phase out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래야 조금은 조급하게 열심히 노력을 할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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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ain Shower, rare sight: 이것이 무엇이냐?: 오늘 아침에 새벽에 일어나서 backyard의 deck로 어둠을 헤치고 맨발로 걸어나가 보니 느낌이 이상했다. 그 동안 완전히 잊고 살았던 그 느낌.. deck 바닥이 질척거리는 것.. 그것은 ‘물’이었다. 마르고 말라 수축을 거듭하던 deck floor가 아마도 놀랐을 것이다. 그것은 ‘잔잔히 내리는’ 이슬비였다. 한마디로 ‘이것이 웬 떡이냐!’ moment가 되었지만 오후에는 숫제 정말 오랜만에 보고 듣게 된 ‘소나기’가 쏟아졌다. 올 여름의 그 모든 더위가 한 순간에 싹~ 사라지는 순간이 되었다.

살인적인 맹더위도 놀랍지만 올해의 여름은 그야말로 double whammy였다. 맹더위에 겹친 가뭄, 아마도 기록을 깼을지도 모를 일이다. 9월 중순이 지나가는 이 시점의 느낌이 ‘이것은 가을이 아니다’ 라는 것.. 올해 이 지역 농작물들 모르긴 몰라도 피해가 컸을 듯 하고 우리 집도 마찬가지.. 연숙의 희망에 찼던 edible garden (victory garden), 정말 수확이 초라하기만 했고 나중에는 거의 포기한 상태.. 지나간 몇 해는 참 Mother Nature가 그렇게 인자롭기만 했는데 어찌 올해는 그렇게 심술궂은 모양을 했을까? Mother (Nature)를 인간들이 너무나 괴롭힌 것에 대한 보복이었을까?

우선 소음덩어리 에어컨 소리가 안 나는 것만도 날라갈 듯한 기분이다. 올해 에어컨 compressor fan을 교체하면서 소음의 강도가 높아져서 언제라도 에어컨이 꺼지는 아침에 손을 보려고 벼르던 것이 이제는 여름이 완전히 가고 있다. 그렇게 잔인하던 올 여름, 혹시 ‘평균기온을 채우려’ 올 겨울은 또 다른 살인적인 추위가 오는 것은 아닐지.. 올 여름의 electric bill은 보기도 무섭지만 그래도 이제는 ‘거의’ 끝이 나고 있음을 느끼기에 오늘 아침의 가랑비는 나에게는 너무나 달콤한 자연의 선물이 되었다.

 

¶  동갑내기, 동갑님네: 말만 들어도 가슴이 찌릿해온다. 최근 몇 주일 동안  YouTube로 간간히 즐겨 보아왔던 고국의 80년대 장수 長壽 농촌드라마였던 ‘전원일기 田園日記’의 한 episode에 ‘동갑님네’란 것이 나왔다. 어떨까.. 왜 나의 가슴이 찌릿한 것이었나? 동갑, 동갑이란 말, 요새도 쓰기나 하나.. 우리 때는 참 정겹던 말이었다. 특히 음력으로 계산한 띠 동갑은 더 정이 가는 말이었고 나와 같은 ‘돼지띠 동갑‘은 그 중에서 제일 나를 즐겁게 한다. 나를 이렇게까지 제일 반갑고 즐겁게 하던 이 말 동갑, 이국생활에서 이것은 사치중의 사치스런 말이 되었다. 이것을 별로 크게 신경 안 쓰고 모르는 척하며 하도 오래 살아서 그렇지.. 조그만 이렇게 생각을 하면 너무나 쓸쓸하고 심지어 괴롭기까지 하다.

고국에서 살았으면 동갑내기가 동창을 비롯해서 부지기수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곳에서는 그렇게까지 동갑내기의 값어치가 높지 않을지도 모른다. 동갑이란 것, 무엇인가.. 같은 해 태어나서 같은 때 학교를 다니고 거의 같은 역사를 산 동류가 아닌가? 그러니까 거의 같은 시대관을 가진 값진 ‘친구’들이 아닐까? 특히 이곳에서는 동갑을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 같이 어려워서 아주 가끔 돼지띠 동갑을 찾으면 그렇게 뛸 듯이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것도 근래에 나는 2명을 찾은 경험이 있었고 한 명인 현재도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는 행운을 맛보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돼지띠는 여성이라서 조금 거리감이 있다. 다른 남자 돼지띠는 나와 큰 인연이 없는지 몇 년 전에 영구 귀국을 해버려서 그 쓸쓸함은 생각보다 컸다. 70을 곧 바라보는 돼지띠 동갑들.. 6.25 민족비극은 직접 겪지 못했지만 그 여파의 피해를 톡톡히 보며 앞만 보고 달렸던 세대… 참 파란만장한 ‘인생 십자가’를 진 세대였다.

 

Adieu, August 2016

서기 2016년 8월이 역사의 한 chapter로 사라지는 날이 되었다. 올해 8월을 어떻게 보냈고 나중에 어떻게 기억하게 될 것인가? 날씨로 말하면.. oppressive month라고 할까.. 정말 잔인하게 땅을 말리는 더위도 그렇지만.. 나를 괴롭힌 것은 그것보다는 ‘매일 매일이 거의 carbon copy 같은’ 그런 정말 세월이 정지된 듯한 모습의 날씨가 거의 30일간 계속된 것.. 이것도 아마 기록에 남을 듯 하다.

날씨 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도 수확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수확은커녕 기대를 한 것이 유산이 되는 실망도 있었다. ‘거창하게’ 출범을 했던 ‘봉헌을 위한 33일’이 골인 3일을 남겨두고 무릎을 꿇은 것이다. 비록 앞으로 기회가 또 있다고 하지만 나의 ‘자존감’에는 분명히 피해를 주었을 듯 하다. 교훈은 무엇인가.. control your temper..가 될 듯하다.

지난 수년간 바쁘기만 했던 한 여름의 ‘레지오 활동’들.. 올해는 거짓말처럼 조용해진 것.. 솔직히 불안하다. 활동거리가 없다는 사실 자체는 축하할 일일 수도 있지만 새로운 활동거리를 찾는 활동이 약해졌음을 어찌 모르랴.. 활동거리를 proactive하게 찾는 활동.. 바로 그것이 최근 들어서 slow down된 것은 분명한 현실인 것이다.

그런 것에 비해서 나, 아니 우리의 ‘세속적’인 활동이 시간적으로 늘어난 것도 관심의 대상이 된다. 오랜 동안 잊고 살았던 social activities에 서서히 조금씩 관련이 되는 것, 어떻게 봐야 할지 솔직히 지금은 잘 모른다. 시간이 조금 지나가 봐야 제대로 판단을 내릴 수 있지 않을까? 그 중에 시간적으로 제일 ‘부담’이 된 것이 guitar coaching 인데, 이 새로운 활동을 조금 더 비판적으로 봐야겠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을 보면 조만간 scale down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조금은 바깥일을 할 수 있는 ‘멋진 가을 하늘’, 그것이 9월인데.. 집안에 갇혀 지내니 ugly backyard stuffs들이 나의 손길을 기다린다. 그러고 보니 정말 우리 집은 손을 볼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고, 모조리 모조리 나의 muscle과 money를 요구하는 것들이다. 이럴 때 근육이 적당한 ‘동갑내기 죽마고우  竹馬故友’가 나의 옆집에 살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갑자기 평화스러운 낮잠에서 꾸는 나의 이루어질 수 없는 꿈.. 바로 그것이었다.

 

'날이 좋아'..허.. 이런 것이 요새의 소주인가? 하지만 평화스런 오후의 기분과 너무나 잘 맞아 떨어진다.. 연숙의 깜짝 선물 (from H-mart)

‘날이 좋아’..허.. 이런 것이 요새의 소주인가? 하지만 평화스런 오후의 기분과 너무나 잘 맞아 떨어진다.. 연숙의 깜짝 선물 (from H-mart)

5마리 식구가 2마리로.. 엄마를 포함한 3식구가 떠난 나머지 2마리가 똘똘 뭉쳐서 우리집 뒷뜰에 안주하기 시작하나..

5마리 식구가 2마리로.. 엄마를 포함한 3식구가 떠난 나머지 2마리가 똘똘 뭉쳐서 우리집 뒷뜰에 안주하기 시작하나..

 

처서 處暑… waning Summer

올 여름들어 두번째 쏟아진 오후 소나기

올 여름 들어 두 번째 쏟아진 오후 소나기

 

올해는 유별나게 절기의 이름이 눈에 잘 들어온다. 이것도 나이 탓인지.. 지난 번에는 말복이란 것으로 계절의 변화를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처서.. 란 것. 거의 칠십에 가까운 장구한 세월을 살면서 올해처럼 이런 절기의 이름이 눈과 머리에 들어오는 적은 처음일 것이다.

처서.. 유난히 지겹게도 덥게 느껴지던 올해의 여름 내내 꿈 속에도 보였던 말이 ‘써늘한 아침바람’ 이었다. 거의 3개월 동안 내내 내가 느꼈던 새벽 6시 경의 느낌은 끈끈함 그 자체였었다. 간혹 바람이란 것이 있었어도 그것은 물기가 잔뜩 섞여있는 거의 ‘열대성’ 그 것이었다.

지난 3년 간 여름철에 그렇게도 자주 내려주던 오후의 소낙비, 올해는 거의 없었고 그 느낌조차 잊을 정도였다. 7월 초에 딱 한번 내렸던 것은 반가운 기록으로 나의 blog에 남을 정도의 역사가 되었다. 그리고 며칠 전에 그 반가운 오후의 소나기가 사정없이 쏟아졌다. 올 여름의 2번째 귀중한 소나기가 된 것이다.

처서.. 왜 이름이 처서 處暑일까? ‘곳’ 處, ‘더울’ 暑.. 이것이 무슨 뜻인가? 물론 전체의 뜻 자체는 ‘여름이 지나 더위가 한풀 꺾이고 신선한 가을을 맞이 한다고’ 하는 뜻이다. 그렇다. 이제는 더워도 그 더위가 별볼일 없다는 뜻일 것이다. 수그러드는 더위, 그러니까.. 아마 waning Summer 정도가 될 듯하다.

아침부터 해가 안 보이는 구름들, 그렇게 해가 안 보이는 것이 반가울 수가 없다. 올해처럼 아침에 뜨는 시뻘건 태양의 느낌이 싫었던 때도 없었던 만큼 잔뜩 흐린 아침이 그렇게 반가웠다. 바로 오늘이 그런 날이 되었다. 기분이 갑자기 홀가분해지고 날라갈 듯하다. 아~~ 가을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올해 구경도 못 했던 쓸쓸한 해변가.. 파도소리 들리는..

올해 구경도 못 했던 쓸쓸한 해변가.. 파도소리 들리는..

올 가을은 또다시 쓸쓸한 해변가로 오려는가..

올 가을은 또다시 쓸쓸한 해변가로 오려는가..

 

지나간 몇 해의 여름에 비해서 올해는 참 한가한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지나간 해, 유난히도 병고로 고생하던 분들이 많았고 그 중에는 세상을 떠난 영혼들도 있었다. 그 영혼들과 보낸 세월도 짧지 않았고, 덕분에 날씨의 느낌에도 둔하게 될 수도 있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인가, 올해는 그렇게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지만 따라서 우리들이 할 ‘일’이 줄어든 것도 사실이었다. 여가 시간이 갑자기 나타난 것이다. 이제는 이 ‘귀중한 남는 시간‘을 어떻게 ‘멋지고 뜻 깊게’ 쓸 것인가.. 그것이 이 시원한 늦여름의 작은 즐거운 과제가 되었다.

 

말복 末伏 … 2016

2016년 8월 16일, 레지오 수첩을 보니 ‘말복’이라고 쓰여있다. 결국은 그날이 지나가는구나..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왜 그럴까.. 지독히도 끈적거리게 덥던 올해의 여름이 그렇게 고맙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말복은 복날 중 마지막으로 삼복 더위가 일단 끝나는 때인데, 이 초복, 중복, 말복의 삼복은 절기에 속하지 않는다고 한글 Wikipedia에 나와있다.  이것은 나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다른 것들은 내가 잘 못 알고 있었던 것도 있었다. 복 날의 복 자가 나는 이제까지 개 와 연관이 된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알고 보니 이것은 실제로 직접 상관이 없는 것들이었다. 그러니까 복 더위하고 개 하고는 원래 상관이 없었던 것. 미국에서 제일 더운 때 여름철을 Dog Days 라고 부르는 것에서 생긴 나의 오해였는지도..

말복이 지나감에도 더위는 조금도 수그러지지 않지만 그래도 이날을 나는 기쁘게 맞이하는 것은, 이제 여름의 무더위는 ‘시간문제’임을 오래 산 경험을 통해서 알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말복이 지나고 열흘 뒤쯤에 비로소 아침 기온이 떨어지고 첫 시원한 공기를 느낀 것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야말로 이제는 ‘시간 문제’인 것인가..

그러면 이 복, 삼복이란 것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절기에 속하지도 않는 그저 일년 중 제일 더운 때의 3일, 삼복날.. 이것도 Wikipedia에서 ‘사실 여부에 상관없이’ 알게 되었다. 역시 짱 깨 들의 유산인가.. 중국 사기에 의하면 진 나라의 ‘덕공(德公) 2년’ (연호인가?) 에 시작되었다고 나와있다. 무척 역사가 깊은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더위를 이기느라 ‘고기류’를 먹는 관습이 생겼다고 한다. 이것으로부터 대한민국의 자랑인 ‘개고기’ 먹는 해괴한 전통도 생겼나.. 

집을 완전히 떠나는 휴가가 없었던 올해의 무척 더운 여름, 비교적 건강하고 차분하고 규칙적인 나날을 만들려 안간 힘을 썼다. 하지만 2년 전의 경험했던 것 처럼 나는 올해도 mild burnout 이후 3일간의 big reset의 풍랑을 겪어야 했다. 그것으로 인해 야심 차게 시작하고 열심히 해 왔던 ‘성모님께 대한 33일 봉헌’ 과정의 끝을 맺지 못하는 불상사를 남기게 되었다. 모두들 아깝다고 comment를 했지만 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보였던 disaster였다.  지금도 big reset의 과정이 다 지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훨씬 맑은 정신으로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의 불찰이었다. 내가 나를 너무나 push했던 탓도 있었다. 인간의 기본적인 physical-mental-spiritual  balance가 완전히 깨진 것을, 나는 거의 무시하며 강행군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 지겹게 덥기만 하던 올 여름에 얻은 귀중한 교훈.. 이것도 남은 생을 통해 두고두고 기억할 만한 귀중한 것이 되었다.

 

納凉: Spitzer, 歷史 Specials, 三國志

초복, 대서 가 멀찌감치 지나가고 드디어 중복을 갓 넘어간다.  이렇게 고국적인 냄새가 흠뻑 묻은 절기의 이름들: 소서, 초복, 중복, 대서, 입추 같은 것들.. 언제나 들어도 부드럽던 고국의 계절, 절기의 느낌이 그렇게 살아날까?  정작 옛날에는 ‘비과학적’이라고 거들떠도 안 보던 그 이름들을 지금은 아련한 기억의 선물로 즐긴다.

이런 이름들이 그런대로 나에게 다가오는 것은 우연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의 달력들에는 그런 것들이 거의 안 나오기에 완전히 잊을 수 있지만 다행히도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의 필수적인 지참 ‘활동수첩’에 그것이 고스란히 나오는 것이다. 하기야 레지오 마리애의 초 강대국인 대한민국의 단원수첩을 거의 그대로 베꼈으니.. 빠질 수도 없긴 하다. 처음에는 안 보이던 그런 절기 이름들이 이제는 나의 눈이 들어오니.. 무언가 나의 ‘가슴’이 많이 열린 모양이다.

중복이 지나가면 한국형 dog days들이 한창 지나가는 때이다. 그래서 보신탕을 이때 먹는지도 모르지만.. 지금 생각하니 참 ‘야만적’인 전통이 남았고, 먹을 것이 지천으로 쌓인 땅에서 아직도 이것을 먹는 것은 그것을 100% 증명하는 셈이다. 문화적이 차이라고 위선을 떨지만 그것이 그렇게 설득력이 있을까?

중복이 지나고 마지막 말복이 2주 쯤 남은 이 시점, 무척 덥다. 처음보다는 덜 덥지만 그것은 우리의 몸이 적당히 적응이 된 덕분이고 ‘과학적인 더위’는 거의 같은 정도로 매일 덥다. 이때를 어떻게 더위를 잊으며 빨리 보내나..  올해 피서 여행은 일찌감치 포기를 했기에 죽어도 집에서 이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문득 생각나는 아련~한 단어: 납량.. 이란 말.. 한자로 쓰면 納凉 이다.

받을 納, 서늘한 凉. 입시지옥 속에서 달달 외웠던 한자 1000자 덕분에 아직도 기억이 난다. 글자 그대로 시원함을 주는(or 받는) 것들을 뜻 한다. 하지만 납량이란 말은 학교에서 배운 것이 아니고 당시의 여름철 Radio, TV program에서 배운 것이다. 여름 이 맘 때쯤 되면 예외 없이 納凉物 이란 것을 내 보낸다. 그 시절엔 그 말의 뜻을 몰랐다. 하필이면 지독한 여름에 쓰는 말이 ‘별로 시원한 느낌이 없는’  납량일까.. 한 정도다. 납 이면 금속의 납 lead을 먼저 생각했으니까… 이제 알고 보면 이 걸맞지 않은 단어도 분명히 일제의 유물일 것이다.  일본 TV 프로그램 중에 이런 말이 자주 나온 것을 보았으니까…

방송계에서 납량물 이라는 것은 물론 ‘보고 들으면 몸이 서늘해 지는’, 그런 것들.. 거의 귀신에 관한 drama가 아닐까? 무서운 것을 듣거나 보면 상식적으로 더위를 잊을 수 있을까? 심리적으로 가능할 것이다.  이곳에 살면서 그 일본, 한국의 전통적인 귀신 납량물은 찾을 도리가 없지만 실제로 그런 것들을 보아도 이제는 하나도 무섭지 않으니 크게 시원함을 느낄 수도 없다. 나이 탓도 있겠지만 솔직이 이제는 귀신이나 ‘보이는’ 영혼들, 하나도 안 무섭다. 그들의 ‘정체’를 이제는 대강 알게 되었고 한 방에 그들을 물리칠 계책도 가지고 있으니까.

몇 년 전부터 나의 납량물은 역시 ‘시원한’ 책이나 귀신이 안 나오는 무섭지 않은 비 전통적인 납량물이다. 책들은 물론 읽어서 시원해야 하는 것이지만 무엇보다도 마음의 평정감과 만족감을 주어야 한다. 시끄러운 피서지가 아니고 사람들을 피해서 찾아간 심심산중의 느낌을 주어야 한다. 올해 나의 여름 납량물은 2권의 책과 home server archive에 거의 십 년 이상 건재 해온, 두 가지 video 다. video는 오랜 전에 보았고, 불현듯 가끔 보기도 하는 대한민국 KBS의 걸작 documentary ‘역사 歷史 스페셜‘ series, 그리고 고전중의 고전, 중국의 대하 역사 drama ‘삼국지 三國志’. 그러니까 video는 모두 역사에 관한 것이다. 2권의 책은 몇 주전에 산, 과학자출신 신부 Fr. Robert Spitzer의 저서로 제목은: (1) New Proofs for the Existence of God, (2) God so Loved the world.  이 것들은, 조금씩 더위의 한 풀이 꺾이는 이 시점에서 시작해서 이번 여름이 다 가기 전까지 나에게 ‘시원함을 보내주는’ 즐거움 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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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산 두 권의 책, 참 마음에 드는 cover design과 종이의 촉감 등도 그렇지만, 사실은 내용들이 너무나 기대가 된다. 근래에 나의 모든 관심을 끄는 분야가 바로 science & religion 인데 이 저자 신부님, 완전히 이 분야의 ‘뜨는 별’이라고 할까.. 물론 충분한 자격을 갖춘 ‘박학다식’하고 영성적인 사제(예수회)라 benefit of the doubt는 충분히 줄만 하다.

The New Proofs for the Existence of God  제목이 거창하지만 사실은 이 분야 apologetics의 전통적인 것에다가 최근 25년 사이에 밝혀진 (우주) 물리학, 철학 적 ‘발견’을 덧붙인 것이다. 특히 물리학 쪽인 Cosmology분야에는 원래의 Big Bang theory의 최 현대판인 contemporary Big Bang Cosmology를 비교적 기술적으로 다루었다. 예를 들면 bouncing universe, space-time geometry, quantum cosmology, The Borde-Vilenkin-Guth Theorem’s boundary to Past Time, Inflationary Cosmology, String Multiverse 같은 것이 포함되어 있다.

또 다른 책, The God so Loved the World 이 책은 물론 이 신부님의 전공인 Science와는 큰 상관이 없는 영성적인 책이다. 하느님의 존재를 인정한다고 해도 왜 하느님이 사람이 되어서 나타나셨나.. 하는 문제를 다룬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하느님이요 인간이신 예수, 특히 그의 인간에 대한 사랑을 다룬 책이다. 그러니까.. 이 책의 주제는 ‘사랑’이다. 왜 하느님이 사랑이신가 하는 것을 참으로 조직적으로 파 헤친 것이다. 무조건 믿을 것인가, 아니면 심각하게,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고 믿을 것인가.. 바로 그것이다. 나는 무조건 믿는 것보다 생각해 보고 믿는 것이 건강한 믿음이라고 생각하지만..

 

summer retreat, one third..

나만의 올해 summer retreat 하계피정의 3분의 1일 지나가고 있다. 말이 좋아서 하계피정이지.. 하얀 모래사장, 시원한 바람과 바닷물이 보이는 어느 East Coasta summer place하고는 너무나 거리가 먼 곳에서 보내는 하계피정은  별로 시원하지 않은 나의 this old house 지붕 아래에서..  그것이 벌써 3분의 1일,  11일째 날을 맞는다.

1장: 세속 정신을 끊음, 제11일: 삶에 대한 불안과 근심..  33일 봉헌준비기간 중 11일 째, 첫째 편인 ‘세속정신을 끊음‘  12일 중에서 11일 째, 그 동안 세속 정신에 대한 인식과 결단에 대한 ‘공부, 묵상’ 한 셈이다. 과연 얼마나 ‘피정 retreat’ 을 한 것일까?

Daily routine이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지만 시원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하루 중 머리가 그런대로 깨끗한 시간 아침 6시~6시 30분경에 모든 창문을 열고 환기를 하며 그날의 ‘과제, 주제’를 생각하며 묵상하는 것, 처음에는 거북한 느낌도 들고 ‘잡 것들 distraction, 주로 Internet’ 같은 것과 씨름을 하기도 했지만 며칠 만에 자리를 잡았다. 이제는 ‘좋은 습관’을 만드는 비결을 터득했다고 자부하기에 이것도 그 중에 하나가 되었다. 비결은 간단한:  ‘just do it‘와 몇 가지 화살기도가 전부지만..

내일까지 과제는 ‘세속정신과의 싸움‘ 에 대한 것이다. 그 중에 오늘 것은 ‘(삶에 대한) 불안과 근심‘ 이다. 이것은 다른 것과 다르게 그렇게 형이상학적인 것이 절대 아니라서 조금 친근감을 느낀다. 삶에 대한 불안과 근심.. 왜 그렇게 익숙한 말이 되었나? 그렇다.. 그만큼 오래 살았다는 증거인 것이다.

오늘 주제의 서문은 다음과 같은데, 공감이 가는 글이다.

 

사람들은 겉으로는 지극히 태연자약해 보이지만 삶에 대한 불안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갖은 수단을 다해 갖가지 고난과 위험으로부터 자신과 자신에게 속한 모든 것들을 보호하려 안간힘을 다하고 무엇보다도 돈과 재물을 모으기 위해 애쓴다. 그러한 것들로 행복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것에 안정과 평화를 구한다.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고 그분의 뜻을 청하며 그리하여 평화와 기쁨 중에 살아간다. 하느님 안에 참 된 안전이 있기 때문이다.

 

지나간 세월을 돌아보면.. 삶이란 과연.. 어떻게 보면 ‘삶에 대한 불안에서 벗어나려는 발버둥의 자취‘ 가 아니었을까? 그 불안은 사실 육감적인 피부로 느끼던 불안이 아니라 나 자신의 가장 밑 바닥에 도사리고 있는 ‘원초적인 불안’이다. 대부분 너무 깊숙한 곳에 도사리고 있어서 자주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없앨 수도 없는 것.. “나이에 따른  죽음과 점점 가까워지는 내가 사는 의미” 바로 “내가 왜 태어났고, 어디로 가는가?” 삶의 목적과 의미다. 이것을 잊고 살려고 하던 노력들은 사람에 따라 다 다르겠지만 대부분 ‘물질적 육감적 보호‘에 치중하다 보면 반드시 함정에 빠지게 되는 것으로 이런 불안에 궁극적인 해답이 안 된다.

이것에 대한 삶의 예는 얼마든지 있고, 비교적 가까운 주변에도 있다. 삶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 ‘아무것도 못하며 가족을 괴롭히는‘ 그런 형제님.. 너무나 그런 생각에 빠져서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다. 이것은 거의 depression에 가깝지만 알고 보면 그것도 아니다. 결국은 ‘나는 나, 너는 너, 나는 나의 소리만 듣겠다’라는 심하게 꼬인 이기심의 소산이라고 나는 본다. 어떻게 그런 늪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결국은 ‘초자연적’인 힘을 빌릴 수 밖에 없음을 나는 경험으로 잘 안다. 초자연적인 것.. 나만의 육감에만 의존하던 과거의 경험으로 해답은 바로 이것이다.

“너희는 무엇을 먹고 마시며 살아갈까, 또 몸에는 무엇을 걸칠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지 않느냐?”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잘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내일 일은 걱정하지 말아라.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하루의 괴로움은 그날에 겪는 것만으로 족하다.”

 

Good Ole Days 의 시원한 여름에 대한 추억은 역시 어린 시절 poster로만 보았던 Troy Donahue, Sandra Dee 주연의 영화 A Summer Place 보다 더 멋진 것은 없었다. 학생입장불가 급의 poster도 화려했지만 몇 년 뒤에 취입된 Percy Faith 악단의 영화주제곡이 또한 ‘불후의 명곡’으로 남았고 아직도 그 당시 평화스러웠던 여름을 연상하게끔 한다.

 

 

Theme – A Summer Place – Percy Faith – 1960

 

Thundering afternoon..

 

problem-of-pain-1

¶  전깃불이 안 나가게 하는 ‘얌전한’ 천둥, 번개는 언제나 반갑다. 오늘 오후가 바로 그런 얌전한 날이 되었다. 암만 요란스럽게 으르렁거려도 나에게는 자장가처럼 포근하게 들리니.. 게다가 태양예찬론자들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지겹게 밝고 뜨거운’ 올해 여름의 하늘에서 나는 포근하건 무섭건 상관없이 어두운 구름이 깔린 모습이 그렇게 반갑다. 오늘 오후가 그런 반가운 토요일 우후가 되었다. 낙엽이 떨어지는 깊은 가을이나 삭풍이 부는 초 겨울 창문을 바라보며 마시는 구수하고 진한 커피의 느낌과는 사뭇 다르지만 이것은 그것 못지않게 멋진 여름의 선물이다.

나는 이런 포근함과 동떨어진 고통, 특히 ‘육체적’ 고통이란 무엇인가 다시 생각한다. 이것은 최근에 나 자신도 조금은 해당이 되지만 그것 보다는 우리 식구가 된 미운 정 고운 정이 엮일 대로 엮인 우리 집의 개에 불현듯 찾아온 ‘육체적’ 고통을 지척에서 보며 느끼게 된 것을 말한다. 6일 전에 찾아온 Tobey의 ‘움직이지 못하는 고통’을 보며 사람이나 동물이나 옆에서 느끼는 것은 하나도 차이가 없음을 절감했다. 아니.. 말을 못하는 탓에 사람보다 더 측은하다고 할까?

인간이나 동물 등은 분명히 구조상 고통을 안 느낄 수가 없게 태어났지만.. 근본적인 의문은 ‘왜’ 라는 것, ‘어떻게’가 아니고 왜..이다. 물론 이것은 하느님이라는 절대적인 존재를 전제조건으로 한다. 하느님 존재의 정의는 무엇인가? 전능하신, 우주의 어느 곳에나 계신, 한없이 좋으신.. omnipotent, omnipresent, benevolent.. 이것으로부터 problem of pain 이 나온다. 그런 전지, 전능, 한없이 좋으신 하느님이 피조물을 만들었다면 왜 왜 피조물들이 고통과 불행을 겪어야 하는 것인가.. 이것이 바로 ‘고통의 문제’ 인 것이다.

C. S. Lewis의 ‘고전 classic’ The Problem of Pain이라는 소고(小考)는 바로 그런 문제를 신앙의 변호자 입장으로 생각을 한다. 문제는 그 고통이란 것이 100% ‘나쁜 것’이냐 하는 것이다. 특히 신약성경을 보면 그 반대의 case가 부지기수가 아닌가? 자기의 십자가, 고통을 통한 영광, 깨우침을 주는 고통.. 구약에서도 욥기를 보면 ‘편안한, 행복함’과는 거리가 먼 느낌의 고통 투성이가 아닌가?

황혼기에 접어든 사랑하는 식구 같은 개의 고통을 하루 24시간 보면서 밝음과 어두움의 양쪽을 오가며 나만의 ‘고통의 문제’를 다시 음미한다. 그렇다, 고통의 뒤에는 반드시 그것의 뜻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것, 아니.. 나아가서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 

 

 Honeymoon’s Over? 최근에 와서 머릿속에서 이 구절이 자꾸만 떠오른다. 왜 그럴까? 어떤 특정한 사람에 관한 것이기에 조심스럽긴 하지만 그렇다고 1급 비밀에 속하는 것도 아닐진대.. 그것도 사제에 관한 것이라면 언제나 조심스럽긴 하다. 이런 사제의 부임 1년이 지나면서 이런 표현이 나오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표현은 사실 negative한 쪽을 항상 쓰인다고 하지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처음에 너무나 후한 점수를 주었기 때문에 ‘정상치’ 로 안정이 되었다는 표현은 어떨까? 그러니까.. 처음 1년 정도는 ‘무조건’ benefit of the doubt의 기간인 것이다. 이 부임 1년이 지나가는 사제가 전형적인 이런 case가 되고 있다. 나 개인적으로 느낌은 한마디로 실망적인 것이다. 이제까지 너무나 후한 점수를 주었나.. 지금이 정상인가.. 그래서 honeymoon’s over란 표현이 이 case에 딱 들어 맞는다. 희망사항은 더 이상 정상치에서 떨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것, 사제의 기도를 통해서 간구하고 싶다.

 

downpour, 갑자기..

지난 2주 동안 계속되던 폭염, 95도 (섭씨 36도쯤 되나..)의 나날들.. 가뭄까지 겹친 매일매일은 서서히 피곤하게만 느껴지기 시작.. 거의 매일이 그야말로 dog days of summer. Backyard의 찬란하던greenery 들이 서서히 시들 거리는 모습은 절대로 올해 여름에 기대한 것이 아니었다.

자연과 싸우려는 city water 의 무력함을 거의 매일 느끼는 것도 고통이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낮에 일 순간에 쏟아진 ‘멋진’ 폭우는 일 순간에 이런 고통을 편안 함으로 순식간에 바꾸어 주었다. 이럴 때 Mother Nature의 여성형은 오늘 오후에 더욱 편안하고 포근한 느낌은 준다. 역시 Nature는 fair한 것이다. 감사, 감사..

 

2016-07-06 12.27.19

 

2016-07-06 12.2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