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이여 안녕!

¶  어느덧 2015년 8월 31일이 되었다. 지겹게도 끈적거리던,  둔한 a/c의 소음이 아직도 귓전에 울리는 듯한 그런 한 달이었다. 올해 여름의 humidity 그러니까 heat index (불쾌지수)는 아마도 기록적인 것일 하다. 공기 자체의 온도는 100도를 못 넘었어도 체감적인 온도는 거의 매일 100도를 넘나드는 그런 무더위의 몇 주를 보낸 후 몸은 적응이 되었지만 몽롱한 듯한 기분과 느낌은 아직도 생생하다.

수십 년 동안 버티어온 고물 에어컨 clunker a/c  unit,  올해는 솔직히 간당간당한 초조함을 금할 수가 없었다. 올해는 이것이 버틸까… 거의 도박하는 기분이 되지만 매년 무사히 버티어 주었다. 문제는 천문학 적인 electric bill, 이것은 옛날 ‘gas-guzzler‘ model이라서 쉽게 이해는 간다. 우리 집의 cash flow가 조금 더 편한 숨을 쉴 수 있게 되면 이 clunker들을 최신 energy-smart model로 바꾸기로 결심을 하고 결심을 한다. 그러면 조금은 편안~~하게 시원한 a/c cool air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Mother Nature는 8월 말이 되면서 며칠 전부터 계절의 신비를 과시하며 ‘찬 바람’을 ‘공짜’로 선물로 보내 주시니.. 세상은 참 공평한 것인가? 이제는 어깨를 조금 펴고 낙엽의 계절을 기다려 볼까..나?

 

8월을 작별하는 포근하고 시원한 단비가 뒷뜰을 적신다

8월을 작별하는 포근하고 시원한 단비가 뒷뜰을 적신다

 

¶  지난 며칠은 예상치도 않게 나의 ‘밝은 태양’ desktop pc와 씨름을 하며 지냈다. 이것이야말로 계획에도 없고 꿈에도 없었던 귀중한 시간을 ‘낭비’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이 인생이 아니던가.. 어디 인생이란 것이 예상대로 굴러가나.. 온통 놀라움과 예외와 낭비적인 일들이 많은 것이 정상이란 것.. 실감하며 산지 오래 되었으니까.

이번 씨름 문제의 발단은.. 결국 나의 ‘괴벽’ 때문이라고 밖에 할 수 없을까. 나의 (‘인생’이 담겨있는 virtual server를 access하는) desktop pc 가 갑자기 (최소한 내가 보기에) sleepless, hibernate-less로 변한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1시간?) 자동으로 sleep mode로 들어가가 2시간 지나면 완전히 hibernate mode로 가야 정상인데.. 그것이 안 되는 것이다. 나의 괴벽은, 이런 것들이 너무나 민감하게 나를 괴롭힌다고 느끼는 것이다. 특히 windows pc에서 더욱 그렇다. 어찌나 이것이  monster처럼 복잡하게 변했는지.. 이런 문제가 생기면 정상적인 step-by-step diagnostics가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눈을 감고 이것 저것 setup을 바꾸는 것이 제일 빠른 방법이 된 것이다. 문제는 setup option의 ‘조합, combination’ 숫자가 장난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럴 때 아마도 제일 현명한 방법은 그냥 두는 것인데.. pc가 sleep을 안 하면 어떻고, hibernate를 안 하면 어떤가? 그저 이런 ‘자질구레한 것들’을 잊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나는 그렇게 못했다. 완전히 내 ‘자존심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묵주기도 시간에도 이것이 생각나고 잠을 잘 때도 생각나고.. 나를 놀리는 듯한 괴로움이었다. 수십 년 동안의 computer engineer의 경험으로 이런 문제는 사실 시간만 충분히 쓰면 풀린다는 것을 알기에 그런 것이다.

현재 나의 desktop pc는 Linux, (Ubuntu 14.04 LTS)와 Microsoft Windows Vista가 dula-disk/dual-boot mode로 되어 있어서 두 개의 system을 번갈아 가며 쓰는데.. 이렇게 하는 목적은 궁극적으로 ‘지겨운’ Windows를 완전히 나의 눈앞에서 제거하려는 것이지만.. 하도 오랫동안 Windows-monopoly에 길들여져 있어서 하루 아침에 그것에서 벗어날 수가 없음을 알기에 시간을 두며 적응을 하려는 것이다. 이 과정의 ‘불편함’은 아마도 ‘마약 중독, 알코올 중독’의 금단현상(withdrawal syndrome)과 비슷하다고 할까.

몇 달째 Ubuntu pc를 쓰며 100% Windows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마도’ 가능하지 않을까 희망을 갖게 되어서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아직도 Ubuntu로 porting이 되지 않은 전통적인, 주옥과 같은 killer apps들 (Office suite, photoshops, gom player, hdhomerun viewer 같은)은 계속 기다리거나 아니면 영원히 포기해야 할지 모르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번의 episode의 결론은 happy ending이었는데.. Dual-disk/dual-boot에서 Single-disk/dual-boot로 바꾸고 나서 위에 말한 sleep/hibernate 문제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이 ‘기적적인 발견‘은 정말로 ‘우연히’ 알게 된 것이다. 이런 문제는 ‘논리적인 분석‘으로는 찾기가 거의 불가능하고, brute-force, trial-and-error 밖에 없다. 이런 사실은 새로울 것이 별로 없다. 모든 것을 ‘step-by-step, top-down approach’ 로 풀려는 경험이 별로 없는 새파란 젊은 친구들.. 인생의 비밀도 바로 여기에 있음을 모를 것이다.

 

¶ 연숙의 생일이 내일로 다가왔고 최근에 정착된 우리 가족의 ‘짧은 전통’을 따라 어제 우리 집에 모여서 ‘아이들’이 요리한 southern fried chicken 으로 ‘돼지엄마’의 생일을 축하하였다. 나의 선물은 그 자리에서 줄 수 없는 rain check 으로 그녀의 home-office flooring을 새것으로 바꾸어 주기로 약속을 한 것이고, 두 딸들은 여자들에게 익숙한 것들.. purse, bag 그리고 예쁜 orchid 등이었는데, 무섭게 바쁜 시간을 보내는 작은 딸 나라니의 정성이 곱게 담긴 선물과 요리는 엄마를 너무나 기쁘게 하였다.

Job interview와 side job등으로 정신이 하나도 없는 작은 딸이 그렇게 시간을 쓴 것이 나도 놀라웠다. 한마디로 참 성실한 삶을 사는 것이 보기에 그렇게 흐뭇하였고 그것이 제일 큰 생일 선물로 보였다. 또한, 최근에 있었던 job interview의 결과, 오늘 job offer를 받았다는 전화를 받고 우리는 너무나 기뻤는데.. 아마도 그것이 제일 큰 생일 선물이 될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조금도 의심치 않는다.

 

¶  Report Card: Trifexis, flea wonder drug 매달 마지막 날은 우리 집 강아지 (사실은 아저씨가 된 개) Tobey가 약을 먹는다. 예전에는 heartworm 약만 먹었지만 지난 달부터는 heartworm과 flea 를 한꺼번에 ‘처치’하는 신비로운 약 Trifexis를 먹고 있는데 한마디로 결과가 너무나 놀라웠다. Heartworm은 그렇다 쳐도 (우리 눈으로 볼 수가 없는 것이니까) flea가 ‘완전히’ 없어진 것은 사실 예상을 넘어서는 거의 기적적인 것이었다. 작년 여름만 생각해도.. 매일 매일 toxic하기만 한 flea spray로 ‘전쟁’을 치르곤 했던 것이 아찔한 경험이 된 것이다. 세상에 이렇게 편한 ‘약’이 어디에 있을까? 거의 하루 아침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간 벼룩들..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살을 물게 되면 곧바로 죽는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죽은 ‘시체’라도 보여야 할 것이 아닌가? 그것조차 없이 사라진 것이다. 참 좋은 세상이 되었다.

 

¶  이렇게 씨~원~한 일요일이 얼마만이던가? 잔잔하게 내려오는 늦여름, 아니 초가을 비의 느낌은 아마도 정말 글이나 말로 표현을 하기가 힘들 정도로 행복한  그런 것이다. 게다가 주일미사를 거른 일요일 아침의 기분은 묘하게도 색다르게 기분이 좋으니.. ‘죄스럽다고’ 해도 괜찮다.. 괜찮아..

입추 立秋.. really?

‘주후 主後’, 2015년 8월 8일.. 슬그머니 8월로 접어들었던 것 느끼며 곧바로 8월 8월이 된 느낌.. 요사이의 일주일이 그렇게 하루처럼 느껴질 때가 점점 잦아지고 있음은 ‘시간의 상대성’을 절실히 느끼게 해 주는 계기가 되곤 한다. 소립자 sub-atomic particles 들의 움직임에 의지하는 절대시간 측정은 아무래도 의식과 영혼을 지닌 인간에게는 100% 신뢰성이 없는 것일까? 인간의 의식과 영혼은 결코 물질만이 아닌 것이기에 이런 느낌과 기계적인 측정치 사이에 괴리 乖離 가 생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인간의 의식과 영혼이 다르기에 그들만의 시계에 의지하면 인간이 모인 사회적인 조직상에 커다란 문제가 있기에 이렇게 모든 인간을 같은 시간에 묶어 놓는 인위적인 장치인 공통 시계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만약에 인간이 혼자 살면 이런 ‘절대적 시간’은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태양이 작열하고 움직일 수 없을 정도의 ‘억압적인 습도 oppressive humidity’가 괴롭히는 때에 오늘이 갑자기 ‘입추’라는 말이 너무도 우습게도 느껴진다. ‘가을이 섰다고..’ 하지만 이 말의 의미는 오랜 세월을 산 후에야 조금씩 느낌으로 다가온다. 정말 ‘가을이 서서히 일어서고’ 있음을 느끼게 되는 날이 온 것이다. 올해 내가 유난히도 고추와 피부를 바짝 말리는 가을바람을 기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까워오는 70이란 숫자 때문일까..

Lazy-Hazy-Crazy Days..

 

Those lazy, hazy, crazy days of summerNat King Cole

 

지나가는 2주간을 보내는 나의 촉감은 바로 1960년대 초  Nat King Cole의 hit song  ‘Those lazy hazy crazy days of Summer‘ 가 100% 맞을 것이다. 시원하게 내리던 비가 어느 순간에 ‘딱!’ 그치고 이후 2주간은 정말 바람 한 점 없이 뿌연 하늘과 공기에 엉킨듯한 뜨거운 열기, 늦은 밤까지 쉬지 않고 돌아가는 a/c와 electric fan의 소음.. 이것은 Nat King Cole의 노래 가사와는 거리가 아주 먼~ 것인 듯…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들의 아틀란타 여름은 사치스러울 정도로 비에 씻긴듯한 상쾌한 것이었지만 올해는 not so lucky, 조금 다른 게 돌아가는 것인가?  ‘여름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의 ‘여름 찬가’ 에 가까운 이 Nat King Cole의 경쾌한 tune을 추억으로 더듬으며.. 어리고, 젊었던 시절의 그 뜨거운 여름 밤의 공기를 회상하기도 한다.

태고적같이 느껴지는 1950년대의 한여름.. 가회동에 있었던 ‘남미당‘의 아이스케익.. (그때는 아이스케키 라고 불렀다) 그것이 먹고 싶어서 여름을 기다리기도 했다. 비교적 시원했던 그 당시의 여름 밤에는 모기장이란 것을 방에 치고 자기도 했고 그것도 너무나 좋은 추억거리였다. 중학교 시절 한 여름 에는 골목의 꼬마들을 몰고 뚝섬으로 수영을 갔는데 지금 생각하며 아찔한 것이 만약 무슨 ‘큰 사고’라도 났으면 어땠을까.. 그 당시에는 그런 걱정 하나도 하지 않고 그저 시원한 물에 뛰어드는 생각만 하며 뚝섬행 버스를 탔다. 물가도 시원하지만 사실은 공해 ‘하나도’ 없었던 당시의 삼청공원 뒤 ‘말바위‘ 주변은 거의 완벽한 어린시절의 피서지였다. 크지 않았던 남산에 가린 ‘강북’ 서울이 눈에 다 보이고 써늘한 무공해 바람을 즐기던 그 시절이었다. 서울 도심에서도 당시의 여름에는 매미가 요란하게 울어댔다. 그 매미소리가 끝날 무렵이면 잠자리들이 나타나고 그러면 그것이 바로 가을의 시작이었다. 찐득거리는 한 여름도 이런 추억을 생각하면 너무나 시원해진다.

젊음의 여름은 분명히 ‘흐느적거리는 듯한, 별로 할 일없는 듯 하지만 멋지고 재미있는 기나긴 여름’을 바라겠지만 현재 나는 9월 중순의 상쾌한 가을바람을 꿈속에서나마 그리고 있다. 2개월도 채 안 남은 시간이지만 올해는 길게만 느껴진다. 자연, 산, 바다와 자꾸만 멀어지는 우리들의 규칙적인 suburban 생활 때문만은 아닐 것이지만, 이런 ‘규칙적’임도 조심해야 할 것 중에 하나라는 것을 작년 이맘때의 경험을 통해서 안다. 폭탄이 터지듯 RESET!을 외치며 일방적으로 1주일 간의 ‘강제 휴가’를 선언했던 때였다. 머리청소가 필요할 때는 역시 vacation밖에 없다는 진리를 터득했던 때였다. 아마도 올해는 그 정도로 머리가 혼잡하지는 않기에 작년과 같은 ‘대형 사고’는 없을 것이다.

Carolina High & Einstein Bros.

Mid-June full blasting heat-index

Mid-June full blasting heat-index

 

¶ 하루 아침에 갑자기 ‘한’ 여름이 시작되었다. 하루 아침은 조금 과장된 표현이고 며칠을 거치며 build-up된 Carolina High (Pressure).. 그러니까 조지아 Georgia 의 northeast쪽으로 펼쳐진 Carolina (North & South), mid Atlantic 상공에 요지부동으로 자리를 잡은 ‘고기압’이 모든 바람을 차단하며 여과 없이 쏟아지는 태양열이 대지의 기온을 치솟게 한다. 위층은 물론, 아래층의 a/c 가 full-blasting, 6월 중순이면 이런 heat wave의 맛을 한번은 보여준다. 문제는 과연 ‘몇 도’까지 치솟을까.. 하는 것이다. Magic Number, 100도는 어떨까, 사양하고 싶은 숫자가 아닐까.

다른 문제는 공기 중의 Ozone level 인데, 이것이 치솟으면 호흡기에 좋지 않다. 오늘이 그런 날로 Code Orange warning 이 나왔다. 움직이지 않는 공기에 의한 ‘불쾌’하게 높은 온도와 더불어 그야말로 double whammy라고 할까. 이럴 때 유일한 대책은 밖에 나가지 않고, 실내에서 그야말로 take it easy하는 것이다. 이럴 때, YMCA와 같은 실내 track, swimming pool은 우리에게 거의 필수적인 시설이 된다.

근래에 100도를 넘은 기억이 없기에 이번에는 조금 뉴스 감이 될지도 모른다. 이런 날씨, 나는 짜증이 나긴 하지만 조금 생각을 고쳐서, 여름은 더워야 ‘자연적’이라고 위안을 삼으니 훨씬 부드럽다. 이것도 ‘나이의 지혜’일지도 모른다.  그저 조그만 희망이 있다면 오후 늦게 ‘씨원하게’ 쏟아지는 예기치 않은 소낙비가 아닐까.. 그야말로 Johnny Rivers 의 60’s  oldie ‘Summer Rain‘ 이 귓가에 들리는 듯, 그 당시를 회상만 해도 벌써 시원하고 포근해 진다.

 

 
Summer RainJohnny Rivers – 1967

 

einstein-bros-1

¶ 그런 오늘 우리는 Holy Family ‘sisters’ 들과  아침 미사를 마치고 예정에 없던 breakfast를 Johnson Ferry road에 있는 Einstein Bros Bagels(EBB) 에서 하게 되었다. 뜻하지 않게, 시원한 곳에서 향기로운 Hazelnut coffee, Signature bagel: SPINACH, MUSHROOM & SWISS를 즐기는 이런 시간은 비록 가끔 오는 것이지만 정말 즐거운 시간이다.

오늘은 근래 자주 보게 되는 크리스티나 자매가 ‘한 턱’을 낸 것이 되었고, 레지오 단원 카타리나 자매님이 함께 해서 오랜 만에 ‘lady’s talk’ 을 즐겼다.  화제야 대부분 신앙과 교회에 중심을 두고 있지만 가끔 gossip같은 이야기도 나눈다. 이런 것은 ‘새겨서’ 들으면 되고,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하고, 친교를 이루게 하는 역할도 한다. 자기만이 최고인 듯 착각하며 사는 수많은 동지 ‘남자 형제들’ 보다 이 세련되고 자상한 lady들이 대화를 나누기에 훨씬 더 편하고 즐겁다. 덕분에 YMCA workout은 2시간 지연이 되었지만.. no problem!

Rainy Night in Georgia

 
Rainy Night in GeorgiaBrook Benton – 1970

 

rainy-may
rain front over Georgia

¶ Rainy Night in Georgia: California의 기록적인 가뭄을 생각하면 이곳 지역 특히 Georgia는 정말 lucky하다고 할까.. ‘진짜’ 여름이 한 달이나 남은 5월 말에 이곳은 거의 매일 ‘장마’ 같은 비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내린다. 중년이 넘으며 비를 ‘기본적으로’ 좋아하게 된 나는 물론 대환영이다. 기온까지 시원해서 밤에 창문을 열고 잘 때 들리는 빗소리는 흡사 Brook Benton의 1970 hit oldie, Rainy Night in Georgia를 연상케 하는 짜릿하고, 아련한 감정까지 일게 한다. 이 oldie는 옛날부터 들을 때마다 ‘밤에 내리는 비에 젖은 한과 서글픔’ 같은 것을 연상시킨다. 어머니, 성모님의 5월, 촉촉한 비에 젖어 다음날의 싱그러움을 예고하며 서서히 사라진다.

이곳도 사실은 얼마 전까지 가뭄으로 식수제한 까지는 아니어도 잔디나 garden등에 물을 주는 것을 격일제로 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그 이후로 갑자기 거짓말처럼 ‘하루아침’에 가뭄을 사라지게 하는 충분한 비가 내려 주었다. 주로 겨울과 봄에 많이 내렸고 특히 봄비는 꽃가루 pollen를 적당히 control해 주어서 앨러지 문제도 자연스레 해결해 주었다. 지금 이곳의 weather system은 사실 Texas 지역 에서 오는 것인데, 그곳은 완전히 홍수가 되어 많은 피해를 보고 있지만, 이곳은 이런 ‘기분 좋고, 혜택이 많은’ 늦봄 비를 누가 마다하랴..

 

Our 'master', Tobey cookie

Our ‘master’, Tobey cookie

 

¶ 어제는 Tobey의 annual ‘medical’ checkup 으로 5 mile 떨어진 animal medical clinic 에 일년 만에 다녀왔다. 일년에 한번씩 맞는 vaccine shot (rabbi 같은) 은 의무적이지만 그것과 더불어 다른 문제가 있는지 general checkup을 받는다. 우리가 가는 곳은.. Tobey가 태어나고 몇 달 후부터 그러니까 2005년부터 다녔던 East Cobb Animal Medical Center인데 그러니까 10년째 다니고 있는 곳이다. 그곳의 Dr. Heard는 구수한 인상의 중년이 넘은 ‘전통적인 수의사’ 모습으로 참 pet 들을 잘 다룬다. 특히 Tobey는 이 수의사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 모두들 웃는다. 그러니까 Tobey는 주로 여자보다는 남자를 좋아한다는 결론이다. 한번 visit에서 대강 $250 정도 charge를 예상하지만 가끔 예외가 발생하기도 했다. 올해가 그런 예외로.. 무려 2배 이상을 예상하게 되었다.

대부분 Tobey는 건강하다고 진단을 받았는데, 피부의 이상과 귀의 이상.. 모두 bacterial skin & ear  infection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귀 속에 염증과 피부의 가려움, 염증.. 어쩐지 근래에 지독히도 scratch를 하더라니.. 나는 그저 flea때문일 것이라고만 생각하였다. 현미경으로 귀의 액체 fluid sample을 보니.. bacteria가 우글우글.. 셀 수 없을 정도였다. 귀를 청소, 소독하고 항생제를 맞고.. 그러니까 vaccine shot은 하나도 못하고 급한 이것부터 치료해야 하게 된 것이다. 일주일 후에 recheck을 할 때 annual vaccine shot을 맞게 되었다.

이런 저런 것을 보며 생각한다. 주위 pet을 가진 사람들에서 정들었던 식구 같은 pet들이 ‘늙거나 병들어’ 죽을 때의 모습들이다. Pet들을 거의 사람 식구들처럼 간호를 하고 슬퍼한다. 옛날에 내가 그런 사람들을 비웃었던 것 기억을 한다. 지금은 물론 그런 내가 부끄럽게 느껴진다. 말 못하는 이런 pet들의 고통을 누가 알랴? 같이 오래 살았던 pet.. 사실 식구나 다를 것 하나도 없다, 아니 어떨 때는 사람보다 더 민감하고 자상하다. 10살을 넘은 우리 Tobey도 언젠가는 이별을 해야 하는데 (누가 먼저 갈지는 모르지만..) 생각만 해도 코가 찡~ 해진다.

Mother’s Day 2015

창고처럼 겨울을 난 back porch, 청소 뒤, 때 빼고 광낸 모습..

창고처럼 겨울을 난 back porch, 청소 뒤, 때 빼고 광낸 모습..

 

¶  뜨겁고, 피곤한 big cleanup:  이틀 간 집안 대 청소를 하며 먼지를 꽤나 많이 먹었다. 아마도 몇 년 동안 쌓였던 먼지일 것이다. 또한 무겁기만 한 stuff들을 옮기며 생긴 심한 근육통과 육체적, 정신적인 피로감이, 느닷없이 갑자기 찾아온 early heat-wave와 겹쳐서 나를 더 쳐지게 만든다. Mother’s Day 아침, 며칠 째, 거의 90도에 가까운 ‘고열’로 모든 것들이 따끈하게 달구어 진 느낌이고 이번의 더위는 5월 특유의 dry heat가 아니고 조금은 습한 더위라서 밤에도 더웠다. 처음에는 창문을 그냥 열어놓고 견딜까 했지만 그것이 아니다. 낮에 너무나 근육을 쓰는 일을 했던지 나의 몸이 빨리 식지를 않는 것이다.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이렇게 일찍 a/c(air conditioner)를 가동했는지.. 우리의 ‘고물, clunker’ 수명을 넘긴 듯한 a/c, 올해도 수고를 많이 해 주어야 하는데.. 과연 올해를 넘길지 궁금하다. 이것은 capital spending에 가까운 ‘거액’을 요구할 터인데.. 이래 저래 ‘피곤하다…’

 

¶  어버이날과 어머니날:  어머니 날.. 나는 어떤 어머니를 생각해야 하나… 나의 어머니, 우리 집 아이들의 어머니, 주변에서 돌아가신 어머니.. 살아계신 어머니.. 오늘 어머니 날 주일 미사에서 ‘이태리 유학’ 하 신부님, 몇 년째 미국사목에도 불구하고 heavy accent로 ‘머더스 데이’를 말하신다. 한국식 ‘어버이’날에 익숙하신지 아버지까지 함께 언급을 하시지만 이곳에는 따로 아버지 날이 있는지 알고 계신지 궁금하다. 비록 부모님을 함께 기리는 ‘어버이 날’의 의도는 좋았을지는 몰라도 어머니와 아버지의 고유한 차이를 무시한 것 같은 ‘어버이 날’ 은 아직까지 생각해도 별로 좋은 idea가 아닌 듯 싶다. 항상 머리 속에 있는 것 같은 우리 어머님을 다시 깊이 생각해 보니, 불현듯 다시 보고 싶다. 비록 하늘나라엘 가면 볼 수는 있을 터이지만 그래도 지금 당장 옆에서 보고 싶은 것이다. 어머님을 제대로 떠나 보내지 못한 후회와 슬픔은 분명히 나의 남은 여생에서 십자가일진대 어떻게 그런 사치스런 바램을 논할 수 있을까. 그저 그저 사랑합니다, 어머니 우리 어머니, 저를 용서하세요.. 라는 넋두리만 내 입가에서 맴돈다.

 

우리시절의 ‘어머님 은혜‘, 1950년대 동요

 

¶ P 베로니카 아드님들:  오늘 여름 같은 Mother’s Day에 지난 주에 돌아가시고 장례미사를 치른 P 베로니카 자매.. 그 자매님의 두 ‘미혼’ 아들이 ‘감사와 인사’를 하러 난생 처음 순교자 성당에서 미사에 우리와 같이 ‘참여’를 하였다. 분명히 우리 옆에서 미사에 동참을 했지만, 어리둥절하고 확실히 무슨 뜻의 미사인지는 잘 몰랐을 것이다. 그래도 열심히 주위를 따라 일어났다 앉았다.. 심지어는 무릎을 꿇는 등 최선을 보여 주었다. 아마도 아무도 그들이 성당에 처음 나온 사람들인 것을 몰랐을 것이다. 작년 이즈음에는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며칠 전에는 어머니까지 떠나 보낸 후, 처음 어머니 날을 맞는 그들 두 형제를 보니 가슴이 메이지는 슬픔을 참을 수가 없었다. 미사가 끝나고 나서 마침 우리가 속한 마리에타 2구역이 마련한 ‘맛 있는’ 미역국 점심을 하며 생소한 사람들 사이에서 그런대로 사람들과 인사도 나누는 등 coming out같은 느낌의 시간을 보냈는데, 우리의 바램은 큰 형이 언젠가 우리 가톨릭 공동체에 합류해서 신앙의 눈을 뜨는 것인데, 쉽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레지오의 정신, 성모님의 도움으로 불가능한 것은 없을 것이다.

비와 나

2015-04-19 11.46.30-1

집 앞에 내리는 봄비, 그 소리와 모습을 Tobey도 너무 좋아하나..

봄비, 그것도 4월에 촉촉히, 싸늘하게 내리는 비를 나는 ‘아직도’ 좋아한다. 다시 찾아온 4.19 학생 혁명기념일도 거의 잊은 채, 나는 하루 종일 잔잔히 내리는 봄비를, 가라앉지만 포근한 심정으로 바라보며 일요일 오후 시간을 보냈다.  잔잔하지만 쉬지 않고 relentless 내리는 비, weather person들은 분명히 귀찮은 annoying, nuisance 것으로, 미안한 표정으로 비를 예보 하지만 나는 그러한 그들이 이상하기만 하다. 나는 너무나 반갑기 때문이다. 나도 안다. 나 같은 사람들은 역시 ‘소수 minority일 것이란 것을.

내가 언제부터 이 ‘비’를 좋아했던가 생각을 해 본다. 분명한 것은 최소한 나의 사춘기, 황금시절 10~20대에는 ‘절대로’ 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을 귀찮아 했었다는 사실이다. 특히 밖으로 나가는 일이 있을 때, 등산 같은 것을 갈 때.. 이 내리는 비는 사람을 귀찮게 하는 것이었다. 특히 머리 style에 신경을 쓰던 철없던 그 나이에 머리카락에 떨어지는 물은 절대 사절이었다. 그 당시에 자가용은 꿈도 못 꾸었고, taxi를 탈 처지도 아니고 분명히 콩나물 시루 같은 시내버스를 타야 했던 시절.. 비 오는 날은 분명히 구질구질하기만 했다. 물에 떨어지는 우산을 접은 사람들로 꽉 차고 담배연기 자욱한 ‘시내’ 버스 안을 상상하면 쉽게 이해가 간다.

세월은 흐르고 머리 스타일에 신경을 쓸 나이가 훨씬 지난 후에, 그것도 공간적으로도 공해로 가득 찬 서울에서 초록색이 감도는 미국으로 완전히 바뀌어서 시내버스를 탈 기회는 완전히 사라지고 ‘자가용’이 필수가 된 곳에서 잔잔히 내리는 비에 대한 생각은 서서히 바뀌었다. 넓은 하늘, 대지에 내리는 비와, 우중충한 urban 도심지의 그것은 분명히 다르다. 귀찮기만 하던 비가 나에게는 이제 ‘진정제’로 서서히 변했고.. 그것이 조금은 지나치게.. 너무나 좋아하게 되었다. 그런 나를 연숙은 이해를 잘 못하는 것 같아서 더 이상 비에 대한 말을 안 하게 되었다.

비를 사랑하게 된 것이 정확히 감상적이거나 지리적인 환경에 의한 것일까? 이런 생각도 해 본다. 혹시 나의 성격이나 성질이 조금씩 어둡게 변하고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걱정을 해 본적도 있었다. 어둡다기 보다는 나이에 따른 ‘내면적 삶’을 더 중요시하는 경향 때문이 아니었을까? 비가 ‘멋지게’ 내리는 것을 보는 것은 아름다운 꽃을 보거나, 각가지 종류의 새들을 멀리서 보는 것 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그 것들이 가진 독특함으로 위안을 받기도 하고, 더 깊은 생각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시기적으로 40대 이후부터 현재까지 이런 ‘취미’를 가지고 살았고 아마도 ‘그 날’까지도 나는 밖에 오는 비 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 같다.

Longfellow Serenade

Longfellow Serenade – Neil Diamond – 1974

 

롱펠로우 세레나데.. 롱휄로우 세레네이드.. 무척 오랜만에 불러보는 단어들이다. 이 두 단어를 합치면 곧바로 떠오르는 것은 물론 1974년 Neil Diamond의 hit song 일 것이다. 나의 ‘전성기’였던 그 당시는 뇌리에서도 아직도 가장 활발한 부분에 모여있는지 생생하고 흥미롭기도 하지만 사실은 이런 주제의 제목에 도달한 생각의 과정이 더욱 흥미로운 것이다.

‘늙은 두뇌’에는 사실 잡동사니 같은 많은 ‘정보’들이 쌓여있을 것인데, 그런 많은 것들이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결이 되면 가끔 기발한 추억을 찾기도 한다. 나이 먹는 ‘즐거움’ 중에는 이런 흥미로운 혜택이 있음을 어떤 사람들이 알까 궁금하기도 하다.

Longfellow Serenade에 도달한 과정은 우습게도 최근 edX online course중에 하나인 MyDante (my Dante)를 ‘청강, audit’ 하는 과정에서였다. 이 MOOC(Massive Open Online Course)  style course 는 Georgetown University (Washington DC) 교수들이 가르치는 것인데 Dante의 classic인  Divine Comedy (신곡, 神曲)를 완전히 digital 형식으로 바꾸어 제공해서 ‘초보자’들도 아주 쉽게 이 ‘거창한 고전’을 접할 수 있다.

내가 이 course에 흥미를 가진 이유는 물론 신학적인 호기심도 있었지만, 사실은 그 course technology가 cutting edge digital (Internet) technology를 적절히 이용한 것에 매료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13세기 무렵에 쓰여진 ‘대 서사시’ 그것도 Italian으로 쓰여진 ‘고물’을 본래 식으로 읽는 것은 아마도 박사학위가 필요할 것처럼 어려울 것이지만, 이 course는 21세기 초현대식으로 접근방법을 바꾸어 놓아서, Dante를 전혀 모르는 나 같은 사람도 감상을 할 수가 있었다.

연옥, 7층산을 바라보는 단테
연옥, 7층산을 바라보는 단테

Dante Alighieri, 단테 앨리기에리.. 단테..라면 사실 중고등학교 다닐 때 배웠던 것이다. 단테의 신곡.. 아마도 세계사 시간이 아니었을까? 그 당시의 기억으로는 중세가 끝날 무렵의 이탈리아의 단테가 지었던 거창한 서사시 정도였다. 나아가서 ‘지옥, 연옥, 천국’을 그린 것이라는 기억 정도였다.

나중에 신곡이 Divine Comedy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Divine은 이해가 가는데 왜 하필 Comedy인가 하는 의문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comedy의 뜻이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최소한 ‘웃기는’ comedy가 아님을 알고 웃기도 했다. 그렇게 접하게 된 단테와 신곡.. 추억도 곁들였지만 지금은 그런 감상적인 느낌보다는 나에게는 조금 절실한 현실로 받아들여졌다. 과연 ‘지옥, 연옥, 천국’이 나에게 지금 어느 정도로 심각한 relevancy가 있는가? 그것도 이제는 ‘소수 종교’로 쳐지는 듯한 천주교의 중심교리, 개신교에서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 연옥 purgatory, purgatorio.. 그것이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일까?

토마스 머튼, 7층산
토마스 머튼, 7층산

얼마 전에 내가 속한 ‘레지오’의 주 회합 ‘훈화’에서 단테의 이야기가 나왔었다. 바로 연옥에 관한 이야기 그러니까 7층산으로 묘사된 ‘일곱 가지의 죄’.. 그 중에서 pride에 관한 이야기였다. pride의 죄를 범한 사람들이 세상에서 목에 힘을 주며 살았기에 그들의 ‘보속’은 ‘돌이나 납덩어리’ 같은 무거운 짐을 목에 걸고 걷는 형벌이었다. 이것은 나에게 우연이 아닌 듯 싶은 것이 그 전에 Thomas MertonThe Seven Storey Mountain을 알게 될 무렵.. 사실 그 7층산이 단테의 신곡 연옥에서 보여주는 Seven deadly sins임을 알게 되었기에 이제 확실히 ‘점’들이 연결이 된 것이다.  이 일곱 죄는: wrath(분노), greed(탐욕), sloth(게으름), pride(자랑), lust(음욕), envy(시기), gluttony(게걸스러움) 인데 단테는 이것을 연옥의 7 terrace mountain으로 그린 것이다.

이렇게 단테의 신곡을 공부하며 신곡의 역사를 알게 되는데, 신곡은 대 서사시이기도 하지만 이탈리아의 ‘표준어’를 만드는 역할도 했다고 한다. 아마도 영국의 Shakespeare 정도 위치를 이탈리아의 단테가 차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신곡은 이태리 어로 읽어야 단테 문학의 정수를 맛본다고 하지만 그에 맞먹는 영어 번역본들도 있다. 그 중에는 19세기 미국의 대표적 시인 Longfellow가 번역한 것도 있는데, 그 번역본이 나올 당시 (19세기 중엽) 미국에서 이 책을 ‘들고 다니는 것’이 지식인들에게는 유행이었다고 한다. 비교적 간추린 것이지만 나는 이렇게 해서 Merton에서 시작해서 Dante로, 거기서 다시 Longfellow까지 갔고 종착역은 역시 우리 시대의 idol이었던 Neil Diamond가 맡아 주게 되었다. 참.. 연상퀴즈의 묘미는 이런 것인가?

Henry Wadsworth Longfellow
Henry Wadsworth Longfellow

그런 과정에서 다시 Longfellow의 대표적인 시를 ‘구경’하게 되었다. 미국 19세기 시문학을 대표하는 그는 미국 Northeast의 정서를 잘 묘사를 하였고 당시에는 꽤나 ‘유행적’인 시인이었다. 요즘 들어서 매일 내리는 4월 느낌의 비를 보며 유심히 그의 시에서 이런 느낌을 150% 느끼게 하는 시를 찾아 내었다.  The Rainy Day.. 글자 그대로 비 오는 날.. 비교적 직설적인 표현의 이 시를 자세히 읽으며 생각했다. 오늘 오는 비의 느낌과 비슷하기도 했지만, 무언가 기억이 나는 시라는 생각이 번뜩 든다. 5분도 걸리지 않았다. 1967-8년 경의 기억이 남아있는 뇌세포에 자극이 갔는데, 아하… 즉시 ‘유영’이라는 단어가 떠 오른다.

영문학과 유영 교수님
영문학과 유영 교수님

유영.. 유영 교수, 연세대 영문과 유영 교수님… 교양학부 과정의 마지막 영어독해 강의에서 유영교수가 가르쳐준 시였다. 그것이 바로 이 시였던 것이다. 이 시의 시작부분이 이 의문의 key였다. The day is cold, and dark, and dreary .. 바로 이 dreary란 단어, 이것이 거의 반세기 동안 나의 깊은 뇌세포에 잠재해 있었다. 유영교수의 이 dreary란 단어의 발음이 너무나 독특해서 우리들 모두 웃었던 기억.. 당시에 이 시를 읽으며 정말 ‘음산한 4월’을 몸이 오싹할 정도로 움츠린 기억.. 그것이 바로 요새 이곳 4월 비의 느낌과 비슷하니.. 참.. 이렇게 해서 오랜만에 따뜻한 ‘아랫목’에서 ‘추억의 백일몽’을 즐긴 날이 되었다.

 

The Rainy Day

by Henry Wadsworth Longfellow

 

The day is cold, and dark, and dreary;

It rains, and the wind is never weary;

The vine still clings to the mouldering wall,

But at every gust the dead leaves fall,

And the day is dark and dreary.

My life is cold, and dark, and dreary;

It rains, and the wind is never weary;

My thoughts still cling to the mouldering Past,

But the hopes of youth fall thick in the blast,

And the days are dark and dreary.

Be still, sad heart! and cease repining;

Behind the clouds is the sun still shining;

Thy fate is the common fate of all,

Into each life some rain must fall,

Some days must be dark and dreary.

 

Spring came forever..

Early Spring Bradford Pear

Early Spring Bradford Pear

 

오랜만에 가랑비가 싸늘하게 느껴지는 조용한 점심 식사 전, 오후를 맞이한다. 그렇게 추웠던 올 겨울도 결국은 나와 같이 나이를 느껴는 듯 조용히 물러가고 있다. 이곳 이른 봄의 상징인 Bradford Pear tree의 하얀 꽃이 부끄럽게 피어나는가 싶더니 갑자기 무덥게 느껴지는 봄 기운을 맞이 했는지 갑자기 만발을 했다. 뒤뜰을 조심스럽게 보니 거기에는 일년 전에 보았던 노란 개나리가 피기 시작한 모습이 있었다. 내일이 춘분, ‘사철과 책력’의 기억에 봄의 시작인 춘분, 달력에는 그저 Spring begins라고 쓰여있지만 유식한 (천문학적) 표현은 역시.. Spring Equinox일 것이다. 그러니까.. 봄의 계절에 밤과 낮의 길이가 거의 같이 되는 날..

2015-03-19 15.08.49-1올해의 겨울도 작년과 버금갈 정도로 끈질기게 길었던 추위를 느끼게 했다. 20년 동안 ‘동복’이라는 말을 잊은 채 살다가, 태고적에 입었던 ‘진짜 겨울 옷’들이 대거 등장해서 톡톡히 본전을 뽑았다. 아닌게아니라 그런 옷들은 반 세기 전에 고국에서 입었던 ‘골동품’도 있었고 Midwest에서 살 때 (Illinois, Ohio, Wisconsin) 겨울에 입었던 그런 종류였다. 사반세기 전에 이곳에 이사온 이후 거의 한번도 입어본 적이 없었던 것들.. 다행히 대부분 이곳의 더운 공기 피해를 입지 않고 잘도 보존이 되어 있었던 고마운 역사적인 옷들이 올해는 차가운 공기를 맡으며 생기를 찾았다. 이런 연이은 추운 겨울을 보내며 global warming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기도 했다. 느끼는 것은 global cooling같았지만 역시 이것은 지역적인 현상에 불과한 것일 것이다. 겨울을 완전히 보내며, 작년과 같은 추위와 눈에 의한 ‘대형사고’가 올해는 하나도 없었던 것을 감사 드린다. 눈이 올 때 느끼는, thrill과 dramatic 한 짜릿한 suspense 는 조금 아쉽기도 하지만, never mind, who cares?

양양이의 승리 勝利

Tobey의 보금자리 앞에서 시위하는 Izzie, 옆에서 보고만 있는 불쌍한..

Tobey의 보금자리 앞에서 시위하는 Izzie, 옆에서 보고만 있는 불쌍한..

결국은 보금자리를 완전히 빼앗기고.. 그나마도 이불에 누운 것만도 다행..

결국은 보금자리를 완전히 빼앗기고.. 그나마도 이불에 누운 것만도 다행..

 

엊그제 찍은 몇 장의 snap 사진을 보고 한참 웃었다. 꽁꽁 얼어붙는 듯한 추위에 이렇게 웃기는 광경은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이 모습은 ‘고양이 Izzie가 강아지 Tobey의 보금자리를 멀쩡하게 차지한 것’이다. 우리 집 ‘터줏대감’ 10살이 넘은 강아지 Tobey와 지독히도 lucky한 ‘집 앞에서 데려온’ 고양이 Izzie 가 추운 겨울을 보내는 이 광경에는 많은 뒤 이야기들이 있기에 내가 만에 일이라도 이들 보다 먼저 세상을 뜬다면 인간 가족 못지않게 이들에게도 반드시 의미 있는 작별인사를 할 것 같다.

가끔 사람을 bite하는 고약한 성미를 가진 Tobey는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런 ‘사고’는 더 이상 없지만 ‘전과’의 기억으로 인해서 나를 제외한 나머지 가족에게는 아직도 ‘찬밥’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Tobey는 나에게 거의 ‘맹목적’으로 의지하는데, 나는 그것이 참 훈훈한 느낌이라서 하나도 귀찮지 않다. 솔직히 말하면 찬밥 취급하는 나머지 가족들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사랑이 결여’된 것 같은 싸늘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그런 중에 갑자기 2006년 경에 우리 집에 고양이가 나타났고 어찌어찌 해서 2009년 부터 우리 집 고정 식구가 되었다. 2006년 6월 경.. 잊지도 못한다. 6월 가랑비가 내리던 날 집 앞에서 아기 고양이 소리가 구성지게 들렸고.. 그런 것은 귀신처럼 신경을 쓰는 연숙이 배고픈 애기 고양이를 집 안으로 불려 들여서 먹을 것을 준 것이 인연의 시작.. 보통 집 고양이인 그 baby는 분명히 누가 버린 듯 했다. 너무나 가슴이 쓰린 것을 어찌할까.. 그래도 혹시나 해서 사진을 찍어 동네에 붙여 놓았지만 아무도 claim을 하지 않았다. 고양이 기를 생각은 전혀 못했지만 이제는 choice가 없어서 기르기로 했는데, 때마침 큰 딸 새로니가 Washington DC job 으로 그곳으로 데리고 가서 살았는데 이곳으로 다시 이사를 오면서 우리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런 ‘비 오는 날의 구출’ 특별한 인연이 있어서 기르게 되었지만 제일 골치 아픈 것이 개와 같이 살아야 하는 기구한 운명이었다. 개와 고양이는 옛부터 유명한 관계가 아닌가? 무척 신경이 쓰였고 accidental bite 전과가 있는 Tobey가 제일 문제로 여겨져서 촉각을 세우고 감시를 하기도 했다. 결국은 몇 번 대형사고 직전까지 갔고 우리는 당연히 ‘전과범’ Tobey만 벌을 주곤 했다. 상대적으로 고양이 Izzie는 더욱 보호와 대접을 받기도 했다.

시간이 가며 Tobey의 attack 회수는 줄어들고 서로의 turf만 침범하지 않으며 ‘평화공존’의 상태를 유지하는데 큰 문제가 없게 되었다. 그러면서 서서히 ‘사태의 진실’이 밝혀지게 되었는데.. 모든 accident 의 원인은 Tobey가 아니고 Izzie 였다는 사실. 그러니까 고양이가 강아지를 ‘먼저’ 괴롭히고 심지어는 attack한다는 놀라운 사실.. 그것을 참다 참다 강아지가 defensive하게 된 것을 우리는 반대로 본 것이다.

다른 집에서는 어떨지 모르지만.. 우리 집은 이런 상태에 있다. 한마디로 고양이의 승리인 것이다. 참.. 우리 집에서는 오랜 전부터 고양이란 말을 쓰지 않고 ‘양양이’라는 말을 쓰는데.. 이것이 연구 대상이다. 어떻게 해서 (누가 먼저) 이런 말을 쓰게 되었는가.. 양양이.. 참 재미 있지 않은가?

내 나이가 어때서..

¶  내 나이가 어때서..

조금은 ‘늙은이의 하소연, 푸념’같이 들리는 이 말은 근래 대한민국에서 나온 유행가의 제목이다. 물론 나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노래였지만 요새  갑작스레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다가온 것 뿐만 아니라 이제는 ‘달달 노래 연습’을 할 처지까지 되었다. 또 그 season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레지오 연차 총친목회라는 긴 이름, 아마도 요새는 ‘연총’이라고 부르는 이것이 12월 7일에 열리는데 이때 각 쁘레시디움 별 talent show(장기자랑)에서 우리와 다른 team이 합작으로 이 곡을 ‘합창’으로 하게 되었다.

레지오 ‘연차 총친목회’의 원래 의도는 member reunion인데 이제는 완전히 모여 노는 것, talent show로 인식이 되어가는 모양이다. 올해로 나는 4년째 이것을 맞게 되었는데 해마다 조금씩 무언가 달랐다. 그 중에서 지난 2년은 추억으로 남겨도 될 것 같은 기분이 좋은 것이었다. 그야말로 reunion의 정신을 100% 살렸기 때문이다. 간혹 얼굴만 보던, 아니 전혀 생소한 단원들을 ‘그런대로’ 알게 된 기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아마도 ‘연총의 정신’이 아니었을까? 특히 작년에는 생소하기만 하던 ‘희귀동물’, 남성단원들이 ‘노래 연습’차 같은 방에 모일 기회도 만들어 주었기에 더욱 기억이 새롭다.

그에 비해서 올해는 조금 분위기가 을씨년스럽게 느껴졌지만 이렇게 다른 방식으로 두 쁘레시디움을 만나게 하는 계기가 되어서 멀리서만 보던 ‘모르는 단원’들과 가까이 할 기회가 되었다. 최 장년 축에 속하는 두 그룹이 모여서 이 ‘내 나이가 어때서’를 부르기로 한 것인데.. 조금은 self-pity 하는 기분이 들어서 나는 이 노래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중론이 모두 좋아한다고 하니 어찌할 수가 없다. 우리가 택한 version은 오승근이라는 ‘장년 세대’의 것인데.. 알고 보니 이 오승근이라는 사람은 우리세대에 그러니까 70/80에 속한 그야말로 senior그룹의 오래된 가수였다.

더욱 알고 보니.. 소싯적에 내가 좋아하던 Two Aces, ‘금과 은‘ Duet 중의 한 사람이 아닌가? 아직도 기억한다.. Two Aces시절 그들이 TV show에서 부른 Everly BrothersDream Dream (All I have to do is). 나중에 바뀐 이름인 ‘금과 은’ 처럼 너무나 청순한 목소리로 잘 불렀었다. 그 듀엣, 둘중의 하나가 ‘오승근’이었단 말인가? 너무도 잊고 살았다. 더욱 놀란 것이 그가 ‘트롯트‘ style의 ‘전통가요’를 부른다고? 믿어지질 않는다. 너무나 큰 변신으로 느껴질 정도로 세상이 그렇게 변했구나. 이래서 Two Aces의 추억을 더듬고 그의 ‘내 나이가 어때서’를 부르게 되니.. 감회가 깊다. 그가 이 노래를 하는 모습을 보니 ‘만든 모습’인지 ‘자연스런 모습’인지 혼동이 올 정도로 ‘젊게’ 보인다. 하기야 요새 나이든 가수들을 보면 이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이니까..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다.

며칠 전, 우리 두 ‘장년층’ 쁘레시디움이 처음 모여서 연습을 하였는데 ‘가라오케’ 반주의 막강한 보호와 도움으로 그런대로 무난히 소화를 하게 되었다. 문제는 높은 음정의 이 곡을 과연 몇 명이나 smooth하게 넘길 것인가와, 비교적 짧은 이 곡을 어떻게 짧지도 않고 지루하지도 않게 re-arrange해서 무대에 설 것인가 하는 것인데.. 글쎄.. 나는 전혀 이런 것에는 문외한이라서…

 

 
Karaoke – 내 나이가 어때서 – 오승근 version

 

 
Karaoke – 내 나이가 어때서ballad version

 

¶  Very Early, November ‘Polar Vortexpolar-vortex-1Polar vortex.. 근래 특히 겨울에 많이도 듣던 말이다. 비교적 근래에 쓰이는 ‘기상용어’ 라고나 할까, 아니면 mass media의 유행어라고나 할까? 작년에 특히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유난히 추웠을 적의 기억이다. Wikipedia에 의하면 북극과 남극에 ‘상주’하는 지독히 찬 공기덩어리가 있는데 이것의 이름이 바로 Polar Vortex라고 한다. 계절에 따라 커지고(겨울) 줄어들고(여름) 하는데 가끔 이것이 ‘암세포’처럼 커져서 퍼지면 지금처럼 되는 모양이다. 북극으로부터  몰아치는  ‘지독히 추운 공기의 바람’ 이 연상이 되고 한때는 Arctic Blast, Alberta Clipper란 말도 들었는데 이런 현상이 이제 유행이 아닌가? 좌우지간 이런 말들은 한 겨울에나 듣던 말인데.. 올해는 thanksgiving holiday도 2주나 남은 한창 가을에 이런 말을 듣게 되었다.

2014-11-14 12.35.33-1
밤새 강추위로 고드름이…

한반도에는 아마도 ‘시베리아의 강풍’이라고 연상하면 알맞은 어감이라고 할까? 혹시 이것도 global warming의 한 징조일까… 그래서 모든 것이 extreme쪽을 치닫는 것인가. 지금 현재 Canada 와 인접한 upper Midwest 쪽에는 거의 한겨울 같은 눈이 쏟아지고 기온도 급강하.. 며칠 후에는 낮의 최고가 freezing point까지 내려 간다고 한다. 문제는 이것이 우리가 사는 ‘따뜻한 Southeast’ 쪽으로 밀려 왔다는 사실이다. 오늘 아침에는 드디어 hard freeze가 되었고, 올 들어 처음으로 ‘고드름’을 목격하게 되었다.일기예보는 우리가 사는 지역도 이번 주말이 지나면 최저 18도까지 떨어진다고 한다. 이런 기온은 1월 말 정도에나 ‘가끔’ 겪는 것인데..

더욱 ‘괴상한 것’은 보통 같으면 blip같은 ‘짧은’ 현상이 이번에는 거의 일주일 이상 계속된다고 하니.. 어찌된 일인가? 평년의 11월 이맘때면 그야말로 ‘찬란한 황금색의 낙엽’을 자랑하는 비교적 따뜻한 모습이었는데, 올해는 어떻게 된 일인가? 한창 가을색을 자랑하려던 ‘낙엽’들은 아마도 이번에 모조리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가뜩이나 을씨년스러운 기분이 더욱 춥게만 느껴지고 한참 남은 끝을 못보고 있는 outdoor work들도 더 연기를 해야 하는 것인가.. 하지만 그런대로 문제없는 고물 ‘clunker‘ central heating이 버티고 있으니까.. 큰 걱정은 안 한다. 전혀 plus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런 날씨에는 진하고 뜨거운 black coffee 맛의 ‘정수精髓’를 즐길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  THANKSGIVING BLEND  올해는 비교적 coffee를 많이 마시게 되었다. 한때 물을 많이 마시려고 일부러 줄인 적도 있었지만 나의 lifestyle은 아무래도 plastic water bottle보다는 coffee cup이 더 맞는 것을 느낀다. 특히 오랜 직장생활에서 morning ritual은 구수한 ground coffee의 냄새로 시작된다는 것도 어쩔 수없이 몸에 배인 모양이다. wine의 미묘한 맛의 차이는 잘 몰라도 이제는 coffee의 향과 맛의 차이는 잘 알게 되었다. 건강을 이유로 지나친 coffee를 자제하려는 자책감이 항상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그런 정도는 아닌 듯 싶다.

Ah... Starbucks..
Ah… Starbucks..

현재는 주로 새벽과 아침 식사 때, ‘정식, 공개적’으로 마시고 가끔 (요새는 더욱 자주) 늦은 오후에 ‘혼자서’ 마신다. 연숙은 지독하게 caffeine 에 민감해서 점심이 지나서 마시면 잠을 못 자기에 아침식사 때만 나와 같이 마신다. 나는 물론 ‘전혀’ 그런 것이 ‘아직’은 없지만 인생 선배님들은 ‘언젠간’ 나도 그렇게 변할 것이라 경고를 해서 이것도 시간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그때까지 즐기는 것이 현명할 듯.. 며칠 전에 작은 딸 ‘나라니’가 집에 들렸을 때 coffee bag을 들고 왔는데 그것이 THANKSGIVING BLEND STARBUCKS  whole bean 커피였다. 이런 때가 나에게는 정말 즐거운 순간이다. Starbucks coffee를 마셔 본지도 꽤 된듯한 기분이라서 그 독특한 맛도 거의 잊어가는 때 이렇게 기회가 온 것이다. 이것을 마셔보니, 그 동안 마시던 것과는 물론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래서 우리는 아무래도 ‘경제적으로’ STARBUCKS class가 되는 것이 불편한 모양이다.

몇 년 전에 새로니 나라니가 번갈아 가면서 STARBUCKS 에서 part-time으로 일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공짜로 주는’ coffee를 ‘무진장’ 즐겼던 경험이 있었는데 그 이후에 그것을 사서 마시기에는 아무래도 그랬다. 그래서 생각이 우리는 경제적으로 STARBUCKS class가 못 되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저 그것을 ‘사 먹는’ 것이 불편한 것이다. 만약 우리가 그것이 불편하지 않을 정도가 된다면 어떨까.. 글쎄 그래도 불편할 듯 하다.

 

¶  Relevancy of Legion of Mary

Is the Legion of Mary[Legio Mariae] still relevant today?  레지오 마리애 지금도 큰 의미가 있는가? 이런 ‘끔찍한’ 생각이 요사이 들어서 나의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대답은 불행하게도 almost No! 인 듯해서 어깨가 더 쳐지는 듯 느껴진다. 4년여의 ‘Never look back’의 각오로 노력한 경험으로  이런 결론을 내린다는 자체는 가소롭지만 나에게는 정말 심각한 것이다. 아직도 ‘레지오’ 하면, 20세기 초에 머문듯한 ‘구닥다리’ 인상을 받게 되는 것은 왜 그럴까? ‘영웅적’인 레지오 창시자 Frank Duff같은 ‘준 성인’이 다시 필요한 때가 된 것일까? 레지오 마리애가 ‘영적인 군대’이며 군대와 같은 조직을 유지하고 있으면 이런 군대도 ‘현대화’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고대 로마 군단의 조직을 유지하고 그 충성심과 용맹 성을 본 받는다고 하는 것은 분명히 레지오 만의 특징이고 자랑일 수 있지만, 초 현대 세속사회를 살아가는 영혼들에게 그런 것만으로 충분할까? 아마도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레지오 마리애가 교회에 끼친 공헌 중에 제일 큰 것은 아마도 ‘평신도의 활성화’ 가 아닐까? 1960년대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과 완전히 맞아 떨어졌다. 레지오의 위상도 역대 교황들의 ‘묵인과 승인’의 혜택을 충분히 받았고 각 본당에서도 ‘필수적’인 평신도 단체로 대우를 받아서 꾸준히 영향력을 늘려갈 수 있었다. 하지만 거의 신화적인 존재, 창시자 Frank Duff의 퇴진(1980년 11월 7일 선종, 91세) 이후.. 아마도 momentum이 서서히 줄어들고 지금은 거의 정지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떻게 ‘한 사람’의 부재가 이런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가? 아마도 현재 Dublin, Ireland 세계 본부(꼰칠리움)가 제 역할을 다하고 있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mindset가 아직도 20세기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으로 우리 주변의 상황을 보면 크게 다를 것도 없다. 모든 것이 그저 status quo, status quo.. 현상유지에 급급한 모습들. 세상이 급속히 ‘진화’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가만히 있으면, 즉 ‘status quo’ 그것은 다름이 아닌 ‘후퇴‘인 것이다. 큰 의미가 없는 사소한 것들 가지고 모든 ‘바쁘기만 한 단원들’의 귀중한 시간을 허비, 낭비하는 평의회 모임들, 왜 우리들이 레지오 활동을 하는지 그 큰 목적은 완전히 잊은 듯 하고 우선순위에서 제일 밑에나 있을 듯한 것들 가지고 열을 올린다. 이런 것들을 계속 목격하면 이런 생각도 든다. 그런 ‘사소한 규칙을 지키려고 레지오 활동을 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사소한 시행규칙들이 우리 레지오의 ‘제일 큰 목표’가 되어버린 것이다. 어딘가 이상하지 않은가?

모든 ‘진짜’ 군대들이 ‘완전히 전산화’가 되어서 모든 행정,사무가 이루어지는 이때에 군대의 효율성을 본받았다는 레지오의 현재 ‘서류 흐름’을 한번 보라. 이곳에 쓰는 시간 자체가 레지오 활동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조직의 관리에 드는 시간을 효율성을 극대화하여 최소한으로 줄이고 나머지 모든 시간을 ‘영혼을 위한 활동‘에 나서야 하는데 내가 본 실정은 거의 반대쪽으로 흐르는 듯한 느낌인 것이다. 레지오 단원 생활 4년 쯤 되면 모두들 이런 ‘권태기‘를 가지는 것인지 잘 모르지만 이런 때를 어떻게 잘 극복하는 가.. 역시 우리 어머니 성모님에게 의지하는 수 밖에 없다.

싸늘하고 깜깜한 가을 새벽

포근함과 따뜻함을 주는 radiant heater finally..
포근함과 따뜻함을 주는 radiant heater, finally..

¶  싸늘하고 깜깜한 가을 새벽:  새벽 5시에 깨어나니 칠흑 같은 어둠이 유난히 싸늘하게 느껴진다. 아~ 이제 2014년도 ‘겨울’이 서서히 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집의 Central Heating이 kick-in 된 것이 지나간 10월 5일 아침이었고, 그때 유난히도 끈적거리던 2014년 여름 기운이 순식간에 식어버렸다. 하지만 그 이후 간간이 이어지던 Indian Summer 로 말미암아 ‘월동 준비’는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 동안 심지어 tornado siren을 새벽에 듣기도 해서 아직도 따뜻한 10월의 나날을 보냈지만 역시 며칠 전부터 평년 같은 기온으로 급강하.. long sleeves shirts, pants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럴 때면 사실 약간 아쉬움이 남는다. 조금 더 편한 짧은 차림을 하고 싶은 것이다. 워낙 길었던, 은근히 덥던 여름이어서 올해의 ‘단풍’은 정말 늦게 오는 모양.. 아직도 주변이 거의 초록색이다. 하지만 지난 며칠 새에 곳곳이 주황색으로 변하기 시작 하였다. 아마도 11월 중순 경이면 완전히 deep fall color로 변하고.. 천주 교회력으로 대림절(Advent)이 시작되는 11월 30일부터는, 성탄을 기다리게 될 것이다. 9월 초에 시작된 우리 가정의 ‘일생일대의 최대 project‘ 가 시작된 이후 세월이 어떻게,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감’을 잊고 사는 요즈음.. 이것이 현재 나의 주변에서 내가 느끼고 보는 66마일로 질주하는 세월의 모습이다.

 

¶  Front side gutter re-gutted!

또 하나의 앓던 이가 빠졌다. 우리 집 앞쪽 지붕의 gutter를 완전히 새로 설치한 것이다. 내가 손수 달았던 이 vinyl gutter는 거의 15년이 넘어서 이은 부분이 여기저기서 물이 샌다. 뒤쪽 지붕은 올 봄에 모두 손을 보았지만 앞쪽은 그런대로 견딜 만해서 미루고 있었는데 바로 앞 문 위로 새는 빗물 때문에 벽돌 콩크리트 계단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정신이 바짝 들었다. 이구동성으로 ‘사다리’에 올라가지 말라는 주변의 우려는 잘 알지만.. 어찌하랴.. handyman을 살 돈도 없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알면서 돈을 쓸 수는 없지 않는가? 2006년에 작지 않은 사다리 사고의 경험이 있어서 이번 봄에는 정말 ‘초긴장’을 하며 사다리를 올라서 지금은 사실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 근래 들어 YMCA에서 열심히 운동을 한 탓에 이런 일을 하는 것이 큰 무리로 느껴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번 job은 하루 종일이 걸리는 큰 작업이었고 며칠 후까지 피로가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도 절약하고 나의 몸이 아직도 큰 무리 없이 움직인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하기만 하였다. 며칠 후에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는데 다행히 이번에는 거의 완벽하게 ‘물 새는’ 것이 없어져서 기쁘기만 하였다.

 2014-10-09 12.47.37-1

 

¶  Cute pergolas at Marian Hill

연숙의 레지오 꾸리아 부단장 임기가 7월 중에 끝이 난 이후 우리는 오랜만에 무슨 vacation이나 방학을 맞는 느낌으로 몇 주일을 보냈는데 그 여파로 주일 미사를 근처의 미국본당에서 보는 횟수가 늘어났다. 한 달에 한번씩 있는 레지오 꾸리아 월례회의 때에만 순교자 성당엘 가게 된 것이다. universal church를 자랑하는 천주교회는 사실 어느 곳엘 가던지 미사는 똑 같으니 사실 성사생활에 큰 변화는 없지만 그래도 한국교우들과 ‘친교’를 못 이루는 단점은 있다. 하지만 아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은 나는 ‘큰 손해’를 보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오랜 만에 간 듯한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 기존의 ‘성모 동산’에 무언가 ‘멋진 것’이 세워진 것이다. Bench까지 달린 앙증스럽게 귀여운 두 pergola였다. 성모님을 옆에 두고 그곳에 앉아 있는 것을 상상하니 흐뭇한 idea가 아닌가? 주변이 ‘너무나 삭막한’ 성모동산..이었는데 그래도 이것으로 조금은 포근한 느낌을 주게 되었다. 본당 목수가 손수 design을 했을까.. 아니면 home depot에서 kit를 샀을까? 하지만 아주 알맞은 design으로 보였다. 돈이 없어 항상 쩔쩔매든 인상을 주던 본당에서 어떻게 이런 $$을 쓰게 되었을까? 누가 이런 것을 제안하고 밀어 붙였을까.. 생각도 해 보았다. 한마디로 dollars well spent라고 말해주고 싶다.

 2014-10-12 12.37.48-1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성모동산

 

¶  Tobey, a Live laptop2014-10-20 10.39.04-1우리 집 bully doggie, Tobey도 이제 12월에 10살 생일을 맞게 되었다. 사람의 나이로 나보다 더 늙었다는 것, 조금 슬퍼지기도 한다. 생후 1개월 쯤에 우리 집엘 왔나.. 이제는 좋던 싫던 완전히 우리 식구가 되었다. 성미가 유별나고 폭력을 가끔 쓰기도 해서 다른 식구들에게 미움도 사곤 했지만 그래서 그런지 나는 정이 들었다. 나를 너무나 잘 알고 ‘이해’하는 이 Tobey는 어떨 때는 나의 분신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24시간 나를 졸졸 따라다니는 것이 처음에는 너무나 부담이 되고 귀찮기도 했지만 이제는 완전히 나도 적응이 되어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섭섭해지기도 한다. 근래에 들어서는 flea때문에 고생을 하고 있지만 이제는 flea와 ‘같이 사는 지혜’도 터득해서 처음보다는 덜 고통스럽다. 나와 같이 동네를 산책하는 것도 이제는 거의 8 년째가 되어간다. 완전히 습관이 된 것이다. 나도 운동이 되고 Tobey도 아마도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 들어서 자세히 움직임을 관찰하곤 하는데 다행히 아직도 걷는 것은 변함없이 씩씩하다. 주위에 ‘늙은 개’를 키우는 집들을 보면 우리도 조금씩 ‘노후 대책’을 마련해야 하나 하는 걱정이 생기기도 한다. 눈이 멀어가는 개, 움직이지 못하는 개.. 등등.. 주인을 잘 만난 개들이라 크게 고통을 받지는 않지만 그것을 옆에서 보는 사람들의 기분은 어떨까? 나와 Tobey가 추운 계절이 돌아오면 좋아하는 습관 중에는 나의 무릎에 올려 놓는 것이다. 책상 위에 다리를 얹으면 뛰어올라 그곳에서 퍼지는 것이다. 이때 가끔 나는 뒤에서 번쩍 몸통으로 들어서 나의 가슴에 앉곤 하는데 처음에는 너무나 불편해 하더니 지금은 은근히 그런 시간을 기다리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이 녀석이 나보다 먼저 떠난다면 나는 이 순간들을 가장 값지게 추억으로 남겨둘 것 같다.

고온 다습한 늦여름에..

¶  고온 다습 高溫多濕.. 요사이 이 지역의 날씨를 보면 가관이다. 한 여름 중에는 가을 같이 이상하게 싸늘하더니 9월도 넘어선 늦여름은 그야말로 ‘hot and muggy, 고온 다습한’ 한 여름이 되었으니 말이다. 최근 들어서 날씨에 둔감해지려고 안간힘을 쓴 결과 많이 침착해 졌지만 요새의 기후만은 언급을 피하기가 힘이 들었다. 올해는 조금 a/c(air conditioning) 에서 $$을 절약하는가 은근히 쾌재를 불렀지만 mother nature는 역시 그런 ‘공짜’가 없나 보다.

‘고온 다습’이란 귀에 익은 말이 딱 들어 맞았지만 이 말을 쓰고 보니 그 옛날 고국의 한창 여름에 많이도 듣던 기상용어가 아닌가? 고온 다습한 태평양 고기압.. 바람이 남쪽, 그러니까 멀리 있는 태평양에서 부는 바람.. 그것이 서울에서 겪었던 한증막 같은 더위의 원인이었다. 장마도 마찬가지로 그 ‘고온 다습’ 한 것.. 그것이 지금은 Gulf of Mexico 멕시코 만灣의 고온 다습한 바람으로 바뀐 것이다. 요새의 공기는 그야말로 에어컨이 없으면 괴로운 그런 것.. 그 옛날 서울에서 어떻게 에어컨이 없이 살았던가?

 

  Crumbling infrastructure.. 이런 표현 근래에 national 뉴스에서 많이 접하곤 했다. 그런 뉴스에서는 주로 bridge같은 것이 너무나 낡아서 위험하다는 것들이었는데.. 요새 나는 우리가 사는 집이 그런 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의 겉모습은 물론 페인트가 벗겨지고 siding같은 것은 숫제 새들과 ‘기후’의 공격으로 구멍이 생기는 것도 목격이 되었다. 하지만 제일 충격적인 것은 집의 얼굴인 front door 쪽의 brick, concrete들, 그리고 front door threshold(문지방)등의 모습이 정말 목불인견이라는 사실..

집의 구조상 garage(차고)로 출입을 하니.. 앞문 쪽은 거의 사용을 안 하니 자주 볼 수도 없다. 손님들이 가끔 그곳을 쓰지만 대부분 어두울 때에 사용을 하니 자세히 볼 기회도 없다. 설상가상으로 앞 문 쪽으로 gutter물이 떨어져서 water damage를 예상은 했었다. 이번에 자세히 보게 되니.. 정말 ‘뚱뚱한 사람’이라도 그곳을 쓰게 되면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생길 정도다. 썩어버린 문지방은 wood filler를 쓰면 고칠 수 있을 듯하고 떨어져나가는 벽돌도 큰 비용은 들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concrete slab도 조금 노력을 하면 내가 모두 고칠 수 있다는 결론이 내리고 대대적 수리의 준비에 돌입을 하였다. 오랜 만에 집 앞쪽이 대대적 face-lifting service를 기다리고 있다.

 

 

¶  앓던 이(이빨)가 빠질 때.. 지난 4월부터  앓았던 독감 중에 지독한 치통이 나를 괴롭혔고 독감이 나은 이후에도 통증의 차이는 있었어도  계속되고 있었다. 치과를 가면 분명히 ‘고쳐줄’ 것이다. 문제는…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피하고 싶은 곳이 바로 그 치과이기에 ‘가급적’ 나는 참는 것이 오히려 덜 고통스럽다. 하지만 이번에 느끼는 치통,구강 통증은 보통을 훨씬 넘게 나를 ‘매일’ 괴롭혔다. 분명히 이것은 ‘민간 요법’도 없을 듯 하고 ‘자가 요법’도 없을 것이었다. 내가 고작 하는 것은 ‘소금물 양치’가 전부였다. 보통 때는 그런대로 잊고 지낼 수가 있었지만 식사시간이 문제였다.

무언가 닿은 듯 하면 통증이 온다. 나의 나이에 내 치아의 상태는 보통 정도.. 일 듯한데.. 그것이 아닌 모양이다. 대학 2학년 때 ‘병신 같은 사고’로 앞니에 ‘큰 문제’가 생긴 이후 나는 사실 항상 ‘치과’에 가게 되는 사태를 피하려 전전긍긍하며 살았던가.. 마지막으로 치과에 갔던 것이 거의 8년 전.. 이후 나는 그곳을 피하며 산다. 이번의 통증은 물론 윗니 중의 하나 (사랑니 근처)가 빠지려고 발버둥치는 결과였는데.. 보통 사람 같았으면 그날로 치과에 가서 그것을 뽑았을 것이다. 그러다가 며칠 전 ‘저절로’ 그것이 얌전하게 빠졌다. 거의 순식간에 그 지독한 통증이 100% 사라졌다. 비록 이빨 하나를 잃었지만.. 지금 현재로서는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날라 갈듯한 기분.. 이래서 ‘앓던 이가 빠진 기분’이라는 표현을 너무나도 절감, 실감, 만끽하게 되었다. 물론 앞으로 나는 치과의사를 보아야 할 것이지만.. 그것은 ‘우선’ 지금엔 문제가 전혀 되지를 않는다.

 

¶  Show Stopper.. 며칠 전에 처음으로 성령대회란 것을 가 보았다. 오랜 전, 1988년과 1989년에 우리는 인디애나 주에 있는 노틀담 대학, University of Notre Dame (South Bend, Indiana) 에서 열렸던 미국 성령쇄신대회 (Charismatic Renewal Convention)에 참석을 한 경험이 있긴 하지만 이번 것은 순전히 한인들이 주관하는 미국 동남부지역의 것, ‘제5차 미 동남부 성령대회‘였다.

성령에 관한 경험과 기억이 그렇게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었지만 올해는 그 옛날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서 알게 된 최 데레사 양이 음악 지도자로 와서 정말 오랜만에 재회를 하게 되어서 한번 가 보자.. 하는 다분히 즉흥적은 결정을 하게 되었다. 매년 Labor Day에 맞추어서 열리는 비교적 큰 대회라 많이 알려지고 듣곤 해서 사실은 기대보다 생소하지는 않았다. 최 데레사의 12 string guitar 연주도 멋졌고 음악, 율동 팀들, 조직적으로 일사분란 하게 움직이던 red shirts의 봉사자들.. 모두 좋았다. 심지어 부산 교구에서 초빙된 주관 신부님의 ‘통성기도, 심령기도’ 소개,실습까지도 나는 거의 거부감을 느끼지 못해서.. 이제 나도 많이 ‘마음과 가슴’이 열렸구나 하고 만족한 심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복병이 나의 다리를 잡았는데.. 결과적으로 한마디로 최소한 나에게는 show stopper, disaster가 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2일 간의 행사였지만 우리 부부는 이틀 째날 행사는 모조리 포기하고 말았다. 이유는? 나의 한 구석에 도사리고 있던 작은 Satan이었을까? 이유는 우습게도 첫날 두 번째로 ‘등단’했던 신부의 ‘지겨운 performance’ 에 있었다. 한마디로 나는 이 ‘사람’이 어떻게 ‘신부’가 되었을까 할 정도로 혼란한 시간과 싸우게 된 것이다. How did he ever become a priest? 저 사람이 신부인가?

절대로 용납될 수 없는 ‘음담패설’과 해외교민만이 겪는 아픈 곳들만을 철저하게, ‘밥맛 없고 저질적으로’ 찌르던 그의 강론은 다시 생각하기도 싫다. 뒤늦게 나온 지독히도 짧은, 본론이라고 나온 것은 전혀 무게가 없고 깊이가 없던.. I’m Joseph..you’re.. 어쩌구 하는 전혀 새로울 것 하나도 없던 넋두리들.. 옆자리에 앉아있던 자매님들만 없었으면 자리를 박차고 자리를 떠날 생각도 있었지만.. 참고 참고 또 참았다. 그의 얼굴에서 풍기는 인상.. 김영훈 스테파노 신부님과 같은 맑은 영혼의 느낌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올해의 성령대회는, 결과적으로 거의 완전히 실패한 나의 ‘첫 성령대회 체험’이 되었다.

싸늘한 5월의 어느 날에..

¶  와~~ 싸늘한 아침.. 부엌의 창문 밖에 있는 온도계를 보니 40도(화씨)도 되지를 않는다. 이 정도면 아마 겨울에나 볼 수 있는 그런 기온이 아닌가? 문제는 지난 1주일 넘게 계속된 80도(화씨)를 훨씬 넘는 ‘초여름’ 같은 날씨에 거의 적응이 되어가고, 서서히 ‘겨울 장비’를 거의 완전히 ‘철거’하고 있어서 어제, 오늘의 ‘추위’는 더 차갑게 느껴진다.

 

여름같은 5월초를 보여 주는 tower fan 옆에는 추위에 떠는 Tobey가..

여름같은 5월초를 보여주는 대나무 돗자리 위의 tower fan 옆에는 추위에 떠는 Tobey가..

결국은 참지 못하고 radiant space heater가 closet속 에서 끌려 나왔다

결국은 참지 못하고 radiant space heater가 closet속 에서 끌려 나왔다

 

물론 이것이 ‘또’ global warming의 여파라고 속단하지는 않는다. 경험적으로 나는 5월 달의 깜짝 추위를 많이 기억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의 ‘한파’는 1주일의 ‘열파, heat wave’에 바로 이어졌기 때문에 조그만 뉴스 감이 된 것이다. 느끼는, 체감적인 온도는 확실히 5월의 40도와 1월의 40도와 확연히 다른 것이다. 더 춥게 느껴지는 것이다. 게다가 제대로 입을 옷도 없었고, 거의 철거되기 직전의 space heater를 다시 가동을 하고, gas 낭비를 없애기 위해서 central heating을 완전히 끄려는 timing등.. 조금은 웃기는 노릇이 아닌가? 아침에는 잠잠하던 central heating이 다시 가동을 하기도 했다. 참.. 재미있는 5월 중순이다. 아마도 이것이 이번 season의 ‘마지막 겨울’이 될 것이고 본격적인 여름 준비를 할 시기가 온 것 같다.

 

¶  올해의 Mother’s Day미리 얘기가된 것처럼 집에서 식사를 하기로했고, 나라니가 사는 apartment에서 ‘아이들’이 준비한 늦은 점심으로 시간을 보냈다. 이곳의 ‘전통, 풍습’대로우리는 대부분 밖에 나가서 식사(外食)을하곤했는데 얼마 전부터는조금은검소하고조촐하게 보내기로 합의를 보게 되어서편안하게 집에서식사를 하게된 것이다. 매년 이날, Mother’s Day(5월두째일요일)가 오면 나의머리는 찐~한 생각으로 더 복잡해진다. 우리집 두딸들엄마의 의미와 더불어, Mother란 ‘영어’ 단어가 ‘어머니, 엄마’란 한글말과 거의 같은정도로 가깝게 들리는 ‘비선택적인’ 삶을 살게 된 ‘운명’을 생각하며, 그 운명의 그늘에서 나의엄마, 어머니와의 추억을 더욱 뼈저리게 느낀다. 분명히 인간에게는 운명이란 것이 있다는 생각, “인생은선택” 이란말의 허구성도 더 절감하게 되는 것이다.

날씨가 화제였던 세월들..

지금은 조금 낳아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머리 속에는 온통 추운 겨울, 아~ 고뇌..의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1월 28일인가..의 최악, 고통스러웠던 19시간 차 속에 갇혀서 떨던 일과 바로 지나가고 있는 주의 얼음대란 들.. 지나가는 주의 3일간 집에 있어야 했던 시간들은 비교적 덜 불쾌한 것일까.. 우선 밖에 나가지를 않았기 때문일까. 최악의 경우 전기가 나가는 것인데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2주 전의 snow jam은 정말 최악이었다.

까마득한 옛날, 시카고 시절 고대생 윤근흠이 갑자기 쏟아진 시카고 폭설로 12시간인가 걸려서 집에 왔다고 하는 추억이 생각은 나지만 내가 연숙과 같이 차 속에서 19시간 만에 집에 왔다는 사실은 지금도 믿어지지 않고 빨리 잊어버리고 싶은 악몽이다. 그때 나는 정말 ‘심신’ 모두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다.오랜 세월을 살면서 그렇게 ‘육체적, 물리적’인 위협을 느낀 적이 없었다. 혼자도 아니고 우리 부부가 같이.. 상상으로 가끔 그런 위협을 공포로 느끼곤 하지만 이것은 100% 실화인 것이다. 

최악의 경우는 무엇일까? 아마도 죽는 것 아닐까? 나는 죽는 것을 지금은 어떻게 받아드리고 있는 것일까? 믿음을 무기로 자신을 가지고 대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과연 그럴까? 언제 죽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만 진리로 알고 살자.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죽을 준비는 항상 하고 살자. 그것이 전부다.

날씨 이외에는 어떤 것들이 나의 머리 속에 있을까? 아하! 1월 중에 용감하게 실행한 나의 ‘약속’.. 도레미 가라오께에 가족들이 갔던 일.. 이것은 정말 나에게는, 아니 가족들에게는 놀라운 일일 것 같다. 어찌 아니 그렇겠는가? 우리 가족, 정말 같이 이렇게 ‘나가서’ 논 적이 있었던가? 아니 집에서도 그런 적은 없었을 것이다. 그저 조용히 우리는 살았다. 지금 생각하니 정말 가족들에게 미안하고 나는 몸 둘 바를 잊는다. 어떻게 그렇게 살았을까? 나는 내가 가정적이라고 항상 자부했지만 그와 못지않게 나는 재미 지독히도 없이 가족들을 대했다. 그것은 사실이다. 아마 우리가족들은 그것에 적응이 되었을 것이고 운명이라고 받아 들였을 것이고 체념을 하며 살았을 것이다. 나도 변명의 여지는 없지 않지만 이렇게 가족이 ‘나가서 노래를’ 부르고 보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정말 없다.

이런 나의 ‘심경의 변화’는 아마도 최근 3년간 나의 out-of-closet 덕분일지도 모른다. 그 전에는 꿈도 못 꾸었다. 새 세상을 보는 듯하고.. 어떨까.. 언제까지 그런 새 세상을 알고 즐기며 살 수 있을까? 나는 분명히 새로운 세상을 새로운 정신과 믿음으로 살고 있다. 그런 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아마도 묵주기도와 레지오, 최근에는 순교자 성당에 조금씩 관여하는 것.. 이런 것들 때문일 것이다.

항상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은 그대로 있고 나를 괴롭히지만 그래도 잘 꾸려나가는 내가 어떻게 보면 대견하기도 하다.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다. 이것이 나의 99% 노력이라고 볼 수도 있다. 나는 젖 먹던 힘을 내고 있다. 혼자만의 노력은 비록 아니지만 분명히 나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것을 하느님은 아실 것이다. 그러면 됐다. 그러면 됐다.

두 번째 ice, snow day 2014

2 주 전의 ‘악몽’이 아직도 생생한데 또다시 ‘으시시’한 날씨 경보들이 만발을 하더니 결국은 그들의 예보가 정확함을 또 깨닫게 되었다. Never again의 심리적 도움으로 이번에는 꼼짝도 않고 집에 ‘웅크리고 hunker down‘ 있게 되었고 아마도 그런 식으로 이번의 날씨문제도 해결이 되리라..

두꺼운 얼음위에 밤새 내린 눈, 길이 전혀 안 보인다

아침에 예전처럼 늦은 새벽에 일어나려고 하니 방이 조금은 밝음을 느꼈고 아하~ 밖에 눈으로 ‘하~얀’ 모양이구나 짐작을 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windows blind를 열자마자 찬란한 하얀 빛들이 눈을 찌른다.

어젯밤 잘 때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많은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고 하늘을 보니 아직도 조금씩 하얀 눈이 뿌리는 중이었다. deck rail에는 명암이 뚜렷이 눈의 ‘높이’가 보이는데 족히 2 inch는 될 듯 싶었다. 하지만 2 inch 의 높이는 어제 이미 얼어 붙었던 ice sheet가 더해진 것이어서 아마도 눈은 2 inch보다는 적을 듯 했다. 2011년의 ‘대설’ 이후 3년 만에 보는 ‘설경’이었다. 게다가 이곳에서 흔치 않은 ‘고드름’을 원 없이 많이 충분히 즐기게도 되었다.

고드름 고드름 수정 고드름.. 고드름 따다가..

 

비록 영상 above freezing 으로 올라간다고 하지만 밑에 깔리 얼음 때문에 차도가 다 녹으려면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했더니 결국은 오늘도 우리에게 관련된 business는 cancel되는 것 같다. 우리가 관련된 오늘 business는 사실 순교자 성당의 매주 목요일 저녁에 있는 예비자 교리반 봉사가 전부지만 저녁 미사와 더불어 교리반도 취소가 된 것이다. 또 하루 ‘공을 치는, 아니 쉬는’ 그런 날이 된다. 화요일부터 3일째 계속 집에 갇히게 된 것이지만 사실 별다른 choice가 없는 듯 하다.

2주 전의 snow jam(교통 대란)의 기억이 생생한 듯, 이곳 거의 모든 ‘인간’들 ‘꼼짝도’ 안 하고 집에 있을 것이다. 다행히 걱정하던 것처럼 electric power에 큰 문제가 ‘아직까지’ 없어서 심심하거나 한 것은 ‘하나도’ 없다. 사실 또한 예전처럼 ‘어린애’ 같이 신나거나 한 것도 거의 없다. 학교를 다니거나 출근을 꼭 해야 한다면 조금은 뜻밖의 ‘선물’을 받은 양 들뜬 기분도 들겠지만 우리는 그런 시절이 ‘다~~’ 지나간 것 같아서 조금은 서글픈 심정도 든다.

차도가 전혀 안 보이게 내린 이월 중순의 눈.. 올 겨울의 마지막일까..


 

꽁꽁 얼어붙은 아틀란타, 2주 전의 교훈으로 재빨리 제설작업에 나섰다.

 

2주 전 worst snow jam과 극단적으로 대조적인 freeway

Snow Jam, 아틀란타 교통대란 2014

매주 화요일은 예외 없이 우리부부가 레지오 주 회합에 참석하러 30분 freeway 드라이브로 도라빌에 있는 한국 순교자 성당에 나가는 날이다. 주 회합이 끝나고 곧 이어 정오 미사에 참례한 후 부근 Korea Town에서 가끔 shopping 을 하거나 점심을 먹기도 하고 귀가를 하면 보통 6시 정도가 된다. 돌아올 때쯤이면 보통 rush hour에 ‘걸려서’ 30분 드라이브가 1시간 이상 걸릴 때도 있다. mass transit system이 거의 없는 아틀란타 Metro인 만큼 우리 집이 있는 곳이 지역적으로 Korea Town과 꽤 멀리 떨어진 탓에 별도리가 없이 치러야 하는 ‘세금’ 같은 것으로 여기고 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얼마 전 화요일은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1시간이 아닌, 무려 19시간 걸렸던 인생 최악의 드라이브 경험을 한 날이 되었다.

 

운명의 날, 2014년 1월 28일 화요일 오전 11시 부터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 눈은 일기예보를 통해서 들었던 시간보다 훨씬 이른 것이었다. 그러니까 모두들 ‘안심하고’ 출근해서 그저 집에 조금 일찍 돌아가면 될 것 정도로 생각한 것이다. 그러니까.. 문제는 모두들 학교나 직장에 있는 상태에서 시간보다 빨리 내린 눈을 만난 것이다. 이러한 ‘절묘한’ 시간문제 이외에 설상가상으로 당국(주정부, 시정부들)에서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집에 빨리 가라고 모조리 ‘풀어놓은’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하였다. 아무리 도로망이 잘 되어있어도 차들이 모조리 길로 나온다면.. 불 보듯 결과는 뻔~한 것이 아닌가? 이 당국자들은 하루 종일 ‘일기예보’가 틀렸다고 발뺌을 하기에 바빴다가 나중에는 그들이 예보를 잘 못 들었다고 어처구니없는 변명을 하기도 했다.

 그 비상 퇴근 시간이 점심시간이 바로 지난 때였고, 모든 도로망은 귀가하는 차들로 완전히 묶이게 되었는데.. 여기에 급강하하는 기온 (섭씨 영하 10도까지) 에 쏟아지는 젖은 눈..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교통대란이 시작된 것이다. 얼어붙은 도로에서 차를 그런대로 끌고 가려면 어느 정도 최소한 속도를 유지해야 하는데.. 거의 서있는 상태에서는 도저히 타이어가 traction을 낼 수가 없는 것이다. 더욱 불쌍한 것이 18 wheeler semi들.. 그러니까 tractor-trailer들, 그 공룡 같은 덩치의 고철들이 그런 상태에서는 조금도 전진할 수 없는 것이다.

I-285 west@Buford Hwy에서 시작된 19시간 드라이브의 시작

이때만 해도 모든 차들이 거북이처럼 움직이긴 했다

 

결과적으로 worst of worst.. 아틀란타 전체 도로망에는 각종 귀가 차량들이 끈끈이 주걱처럼 모조리 jam에 빠진 상태로 서있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최악 중의 최악이 아틀란타의 ‘순환도로’인 I-285 system이었는데.. 바로 그곳에 우리 차 Sonata도 갇혀 있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오후 3시에 출발한 우리 차는 다음날 아침 10시에 집에 도착을 해서 19시간의 귀가 드라이브.. 최악의 경험을 한 것이 되었다.

 그날 따라 성당에서는 연도와 그에 따른 점심회식이 있었던 탓에 더욱 늦게 출발을 해서 I-285를 타고 보니 그곳은 거의 parking lot으로 변해 있었지만 그런대로 거북이처럼 조금씩은 움직였다. 비처럼 뿌려대던 진눈깨비가 떨어지는 기온으로 길은 조금씩 빙판으로 변하기 시작하고 차는 비례해서 더 거북이처럼 기어서 밤 9시경에는 Powers Ferry Road exit 까지 갔지만 그곳에서 모든 차량이 완전히 서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집에 혼자 있을 Tobey(dog)와 Izzie(cat)이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서서히 그 ‘놈’들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신변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차의 gas는 거의 바닥이 나고 길은 완전히 주차장으로 변한 상태에서 수많은 차들이 버려지기 시작하고 깜깜한 밤은 무섭게 얼기 시작하고.. 나 혼자가 아니고 연숙도 같이 있는 우리의 차 속은 조금씩 공포감이 휩싸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100% 완전히 정지 된 I-285 traffic

 

이제는 별 도리 없이 정지된 차 속에서 떨며 밤을 새우게 되었다. 1/4 정도의 gas로 출발한 우리 차는 이제 E(empty) 에서 떨고 있어서 gas를 아끼기 위해서 engine을 끄니 추위가 엄습을 해서 잠도 오지 않았다. 주위를 보니 모든 차량들이 우리와 마찬가지였다. 시동을 끄고 쥐 죽은 듯이 버티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차를 ‘버리지’ 않고 그저 ‘구원군’만 기다리는 상태였다. 처음에는 우리도 차를 버리고 ‘걷자’는 생각을 했는데.. 도저히 엄두가 안 난 것이 주위가 평지가 아니라는 사실과 깜깜한 밤이어서 정말 신변에 위험을 느낀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아마도 가까운 곳에 보이는 건물들.. 호텔.. 주유소 같은 곳으로 간 모양이었지만 우리는 그것도 엄두가 나지를 않았다.

 

아틀란타에서 가장 복잡한 freeway가 차들로 100% 주차장으로 변한 얼어붙는 한밤중의 광경은 그곳에 있어본 사람이 아니면 상상이 가지 않을 듯 하다. 배 고픈 것도 잊었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제일 급한 것이 bathroom문제였던 것이다. 남자는 그런대로 문제가 없지만 여자들은 정말 골치 아픈 문제였다. 그 많은 차들의 여자들..어떻게 해결을 했을까… 나의 옆에 타고 있던 연숙도 정말 고민을 많이 했을 것이지만 한마디로 별 choice가 없이 해결은 해야 했다. 이런 것들로 며칠 동안 수많은 벼라 별 일화들이 website에 등장하기도 했다.

 시동이 꺼진 차에서 무섭게 추웠던 밤을 지새는 기분은 기가 막혔지만 별 도리가 있겠는가? 제설차 준비가 거의 없는 이 지역에서 재빨리 소금을 뿌려대는 구원군이 그렇게 빨리 올 리가 없었다. 동이 트고.. 주위를 둘러보아도 고요하기만 했다. 모두들 그저 그저 기다리는 모양.. 그러다가 최소한 밝은 밖을 보니 ‘걸어가자’라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사실 그런 사람들이 주위에 보이곤 해서 희망을 갖고 생각을 해 보았다. 우리가 발이 묶여 있던 곳에서 우리 집까지는 최소한 10 mile 이상은 되어서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지만 빙판으로 변한 언덕을 걸어가는 것은 장난이 아니었다. 우리와 같은 쪽에 사는 레지오 단원 자매님은 우리보다 먼저 출발을 했지만 역시 어떤 hotel 근처에서 차가 묶여서 그 hotel에서 밤을 지냈다고 했다. 최소한 편한 잠을 잤을 것이다. 그래서 만약에 걸어가면 그 hotel로 갈 것으로 정했다.

 

하지만 차를 버리는 것도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나중에 차를 가지러 와야 하고 안전문제도 있지 않은가? 가급적 차에서 버티고 있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었다. 이런 저런 고민을 하다가 아침 9시경이 되었다. 그런데 앞 쪽에서 무슨 큰 트럭 소리들이 나기 시작하고 우리 앞 쪽의 차들이 거북이처럼 움직였다. 드디어 소금을 뿌리는 트럭들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면서 거북이 속도로 전진을 해서 나아가니.. freeway는 정말 가관이었다. 움직이는 차들이 거의 없이 길가는 완전히 버려진 차들로 즐비한 것이다. 거의 텅 빈 고속도로를 우리는 가고 있었다. 아무리 빙판이 되긴 했지만 그런 상태에서는 운전하는데 큰 문제가 없었다. 집 앞의 주유소엘 오니 드리어 차의 gas가 바닥이 났다. 한마디로 기적이었다. 집 앞에는 엄청난 비탈들이 있었지만 역시 차들이 없으니 큰 문제가 없었다. 최소한의 momentum만 유지하면 암만 미끄러워도 control에는 큰 문제가 없는 것이다.

 

집에 들어오니 아침 10시가 되었다. 모든 곳에 잠잠한 고요한 아침이었다. 다행히 두 마리 pet들은 잘 견디고 있었고.. 우리는 ‘궁전’처럼 느껴지는 home sweet home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되었다. 이때처럼 침대의 편안함을 실감한 적은 반생을 살면서 거의 없었다고 할까.. 비록 천재라고는 하지만.. 사람이 만든 실수도 무시할 수 없는 기억에 남는 하루가 되었다. 나중에 뉴스를 들어보니 우리가 경험한 것처럼 수 많은 각종 ‘해괴’할 수도 있는 이야기들이 난무했다. 무능한 해당 당국과 특히 담당한 사람을 막연히 믿는다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는 생각이라는 경험도 했다.

 이번의 ‘교통대란’의 주 원인은 물론 ‘절묘한 시간’에 도착한 얼어붙는 진눈깨비였지만 나머지는 모두 사람들이 만든 것이었다. 첫째는 공식적인 정확한 예보를 무시하고 서로 맞지 않는 지역예보에 의지한 것, 둘째는 주 정부를 위시해서 군소 지역 정부들(이것이 장난이 아닐 정도로 많다)이 ‘전체적인 상황’을 ‘무시’하거나 모른 상태에서 속수무책이었고, 모든 것이 거대한 자동차 도로망에 의존하는 아틀란타 수도권의 갖는 특성이 이런 2″도 안 되는 눈에 ‘완전히’ 무릎을 꿇었다는 뼈아픈 사실이다. 이런 상황이 다시 온다면.. 나는 freeway system에는 ‘절대로’ 들어가지 않고 ‘동네 길’을 택할 것이라는 조금은 소극적인 생각과, 자동차 gas가 1/2 이하로 절대로 내려가지 않게 채우고 다닐 것을 ‘결심’하였다. 그리고 더 한가지.. bathroom kit를 차에 가지고 다닐 것도.. 굶는 것은 참아도.. ‘화장실’ 가는 것은 못 참지 않는가?

 

freeway를 벗어난 Cobb Parkway.. 길이 아닌 주차장으로 변했다

차를 버리고 걸어간 사람들로 길은 완전히..

추위, 상도동 종점의 고뇌

cold-jan-2014올해 겨울은 정말 춥다.  아~~ 고뇌.. 이 지독히도 오래된, 아득히 먼 옛날에 내가 자주 되뇌던 표현이 문득 되살아난다. 이유는 간단히 말해서.. 아주 쓸쓸하고 황량한 시베리아 같은 그 때와 같은 느낌의, 뼈 속 깊숙이 스며드는 추위를 느꼈기 때문이다.
정말 이런 느낌은 그 ‘때’ 이후 처음으로 느낀 것이다. 그것이 반갑기도 하고 춥고 쓸쓸하기도 하다. 여기서 말하는 ‘그때’는 거의 45년 전인 1960년대 후반이었고 그 ‘시베리아’는 연세대 재학 시 살았던 상도동 종점 부근이었다.

지금 내가 아틀란타 지역에서 느끼는 ‘연일 계속되는 지독한’ 추위는1 뉴스가 될 정도로 의외적인 기후현상이고 거의 25년간 이곳의 ‘전형적’인 ‘더운 겨울’에 적응이 된 탓에 지금의 지독히 추운 겨울은 바로 ‘그때’ 느꼈던 ‘고뇌’와 비슷한 느낌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 해에 발표되었던 북미주 장기 일기 예보가 정말 ‘까무라칠’ 정도로 적중한 것에 나는 놀라기만 한다. 일기예보과학이 참으로 발전을 한 모양이다. 그 예보에 의하면 서부를 제외한 전체 북미주 전체가 ‘더 춥고, 더 습한’ 그런 것이었는데 현재까지 거의 모두 맞고 있다. 이것으로 global warming 같은 ‘정치적’인 것과 연관을 시키는 것은 무리겠지만.. 과연 어떨까?

옛날 ‘그때’는 20세 전후의 팔팔한 젊음을 자랑하던 때였지만 우리세대들.. 6.25이후 잘 못 먹고 자랐는지 신체적으로 별로 건강한 편은 아니었고, 박정희 정부의 요란한 경제발전 소음은 요란했지만 그것에 비해서 ‘따뜻하고 편한’ 환경은 절대로 아니어서 지독한 서울의 매서운 바람은 정말 ‘고뇌’로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요새 그 흔한 storm parka같은 것도 없었고 overcoat도 너무나 비싸던 시절..시베리아 성 서울의 1월 맹 추위는 정말 겨울중의 겨울이었다.

특히 데이트 같은 것이 늦어져서 시내버스 막차로 상도동 종점 (숭실대학 입구) 에 내려서 집까지 가는 골목의 맞바람 추위는 정말 대단해서.. ‘그때’ 내가 ‘즐겨 되뇌던’ 말이 바로 ‘아~ 고뇌’였다. 이 말을 ‘계속’ 해서 내 뱉으며 어둠 속의 골목길을 걸으며 집으로 향했던 ‘그때’였다. 그 집이란 것도 당시에는 중류층 수준이었겠지만.. 글쎄.. 연탄이 거의 전부였던 시절, 온돌방과 연탄난로의 난방은 사람을 거의 꼼짝 못하게 만들고, 따라서 이불을 깔고 백일몽을 즐기며 아름다움 추억의 씨를 뿌린 기억들 뿐이다. 하지만 그 느낌들은 지금 ‘절대로’ 재현할 수 없는 정말 아름다운 그런 것들이었다.

같은 추위에도 같은 느낌이 꼭 들까? 아닌 것 같다. 이곳 아틀란타 지역으로 이사오기 전까지 나는 거의 Midwest 지방2에서 살았기에 그곳의 진짜 무서운 눈과 추위를 고스란히 경험하였지만 그곳 추위의 느낌은 ‘절대로’ 서울 1월의 느낌과 달랐고, 지금 느끼는 아틀란타 지역의 느낌과도 다르다.

그 ‘북쪽’의 추위는 심리적으로 너무나 추운 겨울을 예상해서 그런지 느낌이 ‘고뇌’성 같이 괴롭지 않았다. 그런 추위에서 거의 ‘걷는’ 일이 거의 없고 지독히 절연된 난방 된 집과 차에 의지하며 겨울을 나면 별로 추운 느낌을 기억하지 못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현재 이곳의 ‘겨울 환경’이 아마도 1960년대 말 서울과 거의 비슷한 것은 아닐까..하는 재미있는 추리를 해 본다.

 

Bridge over Troubled Water – Simon & Garfunkel, 1970
classic oldie가 나의 당시 고뇌를 말해 주기도 했다.

 

  1. 최저 섭씨 영하 12도.. 최고는 빙점에서 오락가락..
  2. Illinois, Ohio, Wisconsin같은 모두 Big 10 지역

12월 중순이 넘어가는 날

¶  12월의 중순이 완전히 넘어가는 날, 12월이 기울어가고 성탄을 코앞에서 기다리며 역사 속으로 사라지질 2013년,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었던 세월이었는지 조금씩 정리해야 한다는 심정이 나의 목덜미를 잡는다. 오래 전의 표현을 기억하면 ‘세모歲暮’라고 했던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한 해가 저물어가는 것을 표현한 그 말.. 참 느낌이 좋았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것이 과히 반갑지 않다고 느끼며 산 세월도 짧지 않았다. 숫제 그 ‘세모’란 것이 지나가지 못하게 붙잡고 싶은 간절한 심정도 많았다.

하지만 최근부터는 ‘의지적, 나아가 신앙적’으로 담담하게 느끼려고 안간힘을 쓰며 산다. 그러니까 조금은 편해진 기분도 느낀다. 어떤 현상이 자연적인 것이면 그것을 자연의 주인에게 맡기자.. 그것이 내가 보는 세상의 순리인 것이다. 순리에 너무나 도전하는 것.. 문제를 푸는 것보다 더 문제를 만드는 case가 얼마나 많았던가? 오너라, 세월아.. 지나가라 세월아.. 그것이 진리요 순리라면 얼마든지 편하게 받도록 노력을 하리라!

 

¶  올해의 초겨울 날씨 – 아직 공식적인 겨울의 시작, 동지가 이틀 남았지만 현재까지 보아서 올해의 winter season은 지극히 지극히 ‘고전적인 겨울’의 모습들이다. 체감으로 느끼는 추위의 느낌이 오래 전에 느꼈던 그런 겨울의 느낌인 것이다. 아틀란타 지역에 한정된 것인지도 모르지만 올해의 장기예보가 맞아가는 듯 하다. 평년보다 ‘조금 낮은’ 기온일 것이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11월 중순부터 예년에 자주 입지 않았던 비교적 따뜻한 옷들을 입게 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비록 눈 같은 포근한 것은 없었어도 ‘겨울다운 겨울’ 은 너무나 신선하고 편안함을 주는 것이다. 이 지역의 추위는 사실 1월부터 3월까지가 진짜인데 이미 이렇게 싸늘했으니 그때는 과연 어떨까.. 지나간 여름이 너무나 시원해서 그에 맞는 따뜻한 겨울을 예상했는데 어찌된 일인가?

 

¶  레지오 남자들.. 레지오 마리애 남성 단원을 간단히 레지오 남자라고 부른다.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 올해는 이 단어가 자주 쓰이고 해서 조금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가톨릭 교회 안에서 가장 막강한 조직력을 자랑했다던 레지오 마리애, 기도와 봉사를 목표로 군대처럼 모인 곳이다. 진짜 군대의 근처도 못 가보았던 내가 인생이 저물어가는 이때에 규율과 조직의 힘을 신선하게 느껴보며 살아간다. 이런 조직의 힘이 나에게는 생수와 피처럼 필요하다고 느낀다. 레지오 마리애가 나를 필요로 한 것 보다는 내가 ‘살아 가기’ 위해 더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교회내의 어느 신심단체, 조직들 정작 일이 필요한 곳은 거의 전부가 ‘여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니까 ‘자매님’들이 궂은일, 시간 걸리는 일을 떠맡고 있는 셈이다. 도대체 남자들은 어디에 숨어있는 것일까? 남자들 중에서도 제일 활동적일 수 있는 40~50대들.. 분명히 ‘먹고 살기 위해서’ 신심활동,봉사 등은 엄두도 못 내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60대는 어떤가? 그들도 먹고 살기 위해서 그런 것일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아마도 ‘즐기는데’ 너무나 바빠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지만 내가 때늦게 절감, 통감한 교훈적 사실은.. 이러한 ‘높은 수준의’ 활동이 그들이 그렇게 시간을 쏟고 있는 경제,사회활동에서 시간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덤의 시간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진리’를 조금이라도 일찍 깨닫는 ‘형제님’들은 일단 ‘성공’한 삶을 살며 마칠 수 있다고 나는 진정으로 믿는다.

 

¶  의미 있는 Blogging의 절묘한 힘을 며칠 전에 ‘또’ 깨닫게 되었다. 가끔 찾아오는 이런 ‘절묘한 순간’들 때문에 귀찮더라도 계속 ‘쓰게’ 되나 보다. 간단히 얘기해서 내가 2년 전 여름에 불평의 마음으로 쓴 blog, ‘알피 램 생애를 읽으며’ 란 것이 인연이 되어서 연세대 전기과 동문을 알게 되었고 그 내가 불평했던 책의 새 번역본이 나오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레지오 마리애에서 신화적, 전설적인 인물인 ‘알피 램’의 전기에 해당하는 그 책의 첫 번역본은 너무나 실망적인 것이었고, 은근히 다시 써주기를 바라며 쓴 것인데 그것이 이렇게 기적奇蹟적으로 해결이 된 것이다.

게다가 새 번역을 한 사람이 바로 나의 연세대 전기과 ‘거의 동기’인 ‘김형기 스테파노’ 동문이어서 더욱 이채로웠다. 알고 보니 스테파노 동문은 1967년 가을학기를 나와 같이 공부한 것으로 밝혀져서 한참 반세기전으로 시간여행을 하며 그 당시를 추억하게도 되었다. 김 동문이 어떻게 레지오 마리애에 관한 책을 번역하는 입장이 되었는지 궁금하기만 하고 만약에 레지오 활동에 깊숙이 관여가 되었다면 서로 좋은 의견을 교환할 수도 있겠다는 상상적인 희망의 나래를 펴 본다.

 

친구 정교성의 성탄카드, 너무나 멋지다.¶ 일주일 전쯤.. 캐나다에 거주하는 오랜 친구, 중앙중고 동창 정교성으로부터 성탄 카드가 도착하였다. 이 친구는 내가 기억하는 한 거의 매년 이맘때쯤 카드를 보낸다. 비교적 일찍 보내는 것이다. 얼굴을 맞대고 본지가 수십 년이 되었지만 그저 늙어가는 모습은 쉽게 상상할 수가 있어서 큰 문제는 없다. 보고 싶다.. 보고 싶어.. 할 정도지만 일부러 그를 찾아 갈 여력을 찾지 못한다. 인연이 있으면 ‘죽기 전에’는 만날 수 있겠지 하는 정도다. 요새는 인간관계가 그렇게 정착이 되어간다.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친척, 친지.. 어찔할 것인가.. 나는 떨어져 있어도 마음만은.. 하며 생각하며 살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마음도 멀어져 감을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는가? 어떻게 그렇게 되어갈까? 최소한 나는 가까운 마음을 간직하는데 상대방이 꼭 그렇지 않은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솔직히 말해서 슬프고 무섭기조차 하다. 고국에 있는 그렇게 다정했지만 긴 세월 떨어져 살았던 인생들.. 아예 나만의 상상으로 다정했던 세월들만 간직하며 나의 인생을 보낼까..

 

¶  갑자기 장례미사, 연도 소식이 잇달아 들어왔다. 작년 여름에 하루가 멀다하고 겪었던 장례, 연도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지만 올해는 비교적 조용한 편이어서 이대로 ‘무사히’ 올해를 보내나 보다 했지만 결국은 올해의 마지막 달, 어제와 오늘 연세대 이원선 도밍고 동문의 93세 어머님의 선종으로 연도와 장례미사가 잇달아 있었다. 이 동문의 어머님이 돌아가신 사실은 93세라는 나이도 있고 어느 정도 예측이 된 것이라 크게 놀랄 사실을 아니었지만 이 동문의 나와 비슷한 환경: 홀 어머님, 외아들 등등으로 나의 경험을 되새기며 하느님 품으로 가신 영혼을 생각하게 되었다. 이 동문의 어머님은 우리 어머님보다 2살이 아래였는데 육이오 전쟁에서 군인이던 남편을 잃으셨다고 했고, ‘강철같은 의지’로 4남매를 모두 대학엘 보내셨다고 고인에 대한 추억담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그 당시에 그런 여건 (아버지를 잃은) 의 가정이 수도 없이 많았고 대부분 어머니들은 ‘뒤를 봄이 없이’ 자식들을 키워냈다. 그러니까 어찌보면 흔할 수도 있는 이야기들인 것이다. 하지만 하나 하나를 자세히 알고 보면 모두 다 다른 눈물겨운 이야기들이다. 그런 환경에서는 생존이 제일 우선이고, 나머지 것들은 사실 희생이 되어야 했다. 우리들은 가끔 그런 사실을 깜빡잊고 겉으로 보이는 모습(완고한, 고집불통) 만으로 불평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앞뒤를 잘 못보는 불공평한 논리인 것이다. 이원선 동문도 이제는 한 세대가 완전히 지나간 사실을 이번 어머님의 타계로 실감을 할 것이고 ‘자식의 입장에서 완전한 부모’의 입장으로 세상을 보게 될 것을 예상해 본다. 한 세대가 완전히 흘렀다. 다음은 우리들이 갈 차례인 것이다.

Deep November

¶  11월 26일, 이천 십 삼 년.. 이천, 이천, 2000 을 연상하며 문득 아~~ 지금은 2000년 대였지.. 하는 자괴감이 젖어 든다. 왜 천 구백.. 1900 이 아니고 2000인가.. 그러니까 나는 역시 어쩔 수 없이 천 구백이 고향처럼 따뜻하게 느껴지는 충분히 오래 산 ‘늙은’ 인간이다.

그것도 11월이 주는 을씨년스런 느낌 또한 나를 움츠려 들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것도 아주 깊은 11월, 깊도록 깊은 가을의 느낌, 나는 이런 진한 색깔의 나날을 어떻게 감당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작년과 비교하고 5년 전과도 비교하고 심지어 20년 전도 돌아본다. 작년과는 거의 비슷할 듯하지만, 5년 전과는 ‘하늘과 땅’ 같은 차이일 듯 하다. 그 때는 전혀 앞도 방향도 잃고 살았고, 지금은 최소한 앞도 보이고 방향도 제대로 잡은 것이다. 물질적으로 변한 것은 거의 없어도 그것이 전부가 아닌 것을 이제는 믿고, 믿고 싶은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올해 한 달.. 계속 그런 희망의 심정으로 살고 싶기만 하다.

 

¶  겨울 같은 느낌의 올해 가을, 이곳 지방 deep south의 첫 눈발이 예보가 되었다. ‘아주’ 추울 것이라는 북 미주 동부지방 장기예보에 눈에 대한 것은 기억이 없는데 어떻게 이렇게 일찍 snow flurries란 말이 나온 것일까? 그것은 역시 하늘에 지천으로 깔린 습기 때문이 아닐까? 기온만 떨어지면 언제든지 가능성이 있는 그 ‘물’이 하늘에 항상 떠 있는 상태가 올해 이곳 기상의 특징이었으니까.. Thanksgiving Day가 이틀이 남은 지금, 차갑게 내리는 비가 오늘 밤, 내일 아침 사이에 ‘분명히’ 눈발이 날리는 날씨로 바뀐다는 것이다. 물론 내려도 곧 녹겠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하늘에서 하얀 ‘떡 가루’ 들이 내려 온다는 사실이 문제인 것이다. 교통상 지장은 제로 일 것이지만 ‘포근한 느낌’을 주는 심리적은 효과는 대단할 듯 하고 벌써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요란하게 선을 보이기 시작해서 나도 어쩔 수 없이 그런 ‘공동체적 심리’에서 벗어날 수가 없을 듯 하다.

올해 우리 집의 Thanksgiving Day는 어떨까 했지만.. 역시 조금 게으르기로 작정하고 우리 식구, 작기만 한 네 명만 모이기로 했다. 한 때는 손님들과 어울려 볼까도 생각했지만 무언중에 ‘피곤할 듯’한 예감이 들었는지 그렇게 되고 말았다. 한 때는 손님들과 어울린 적도 없지 않았지만 이제는 손 꼽을 정도로 기억으로만 남게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기회가 된다면 조금 더 노력을 해면.. 식구가 너무나 적은 우리는 될 수 있으면 누군가와 같이 있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우리 식구는 최소한 ‘비행기가 필요 없는’ 곳들에 살고 있어서 궂은 날씨도 큰 상관이 없어서 더 포근하게 느껴진다.

작년부터는 엄마가 주 요리인 turkey와 stuffing같은 것을 준비하고 아이들은 나머지 side dish들을 모조리 준비한다고 해서 나는 크게 할 일이 없다. 유일한 것이 mashed potatoes 정도일까. 그저 먹어주기만 하면 되니, 조금은 편한 하루가 될 것이다. 물론 조금 힘이 들어가는 dish wash는 주로 나의 담당이지만 그것은 이제 나의 몫이 되었으니 별 다를 것은 없다. 그저 그저, 평화스럽게 올해의 100% 일어난 일들에 감사한 마음을 나누는 시간이 되기만 빌고 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다행이 아닌가 하는 심정 바로 그것이다.

 

¶  First white stuffs & ‘Kenny G‘ time again.. 하루 종일 세차게 뿌리던 비가 오늘 아침에 드디어 하얀 물체로 변해서 풀밭이나 deck, 차의 유리창에 얹혔다. 아주 이른 아침 세찬 바람소리에 깨어서 어두운 밖을 살펴보니 무언가 하얀 것들이 보였고 곧바로 아하~ 올해 첫 white stuff임을 알았다. 바뀌어가는 계절의 상징들.. 어찌 이 나이에 조금은 철학적, 더 조금은 신앙적으로 안 볼 수 있겠는가? 더구나 무섭게 몰아치는 차가운 바람소리는 6.25 직후의 서울의 ‘덜 난방 된’ 온돌 방에서 화로 불에 이불을 쓰고 모여 앉았던 어린 가족들의 걱정 없었던 천진난만한 모습들을 연상 시키기에 너무나 충분한 것이었다. 작년 보다 더 빨라진 holiday in the air.. 일 주일 안으로 다가온 레지오 연차 총친목회 준비 연습의 바쁜 움직임에서 느끼는 이른 12월의 느낌을 떨칠 수 없다. 결국은 또 Kenny G season이 온 것이다. 올해 들어 처음 듣는 Kenny G의 saxo.. 너무나 너무나 잘 어울리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Winter classic, Kenny G

My Winter classic, Kenny G

What A Wonderful WorldKenny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