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중순이 넘어가는 날

¶  12월의 중순이 완전히 넘어가는 날, 12월이 기울어가고 성탄을 코앞에서 기다리며 역사 속으로 사라지질 2013년,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었던 세월이었는지 조금씩 정리해야 한다는 심정이 나의 목덜미를 잡는다. 오래 전의 표현을 기억하면 ‘세모歲暮’라고 했던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한 해가 저물어가는 것을 표현한 그 말.. 참 느낌이 좋았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것이 과히 반갑지 않다고 느끼며 산 세월도 짧지 않았다. 숫제 그 ‘세모’란 것이 지나가지 못하게 붙잡고 싶은 간절한 심정도 많았다.

하지만 최근부터는 ‘의지적, 나아가 신앙적’으로 담담하게 느끼려고 안간힘을 쓰며 산다. 그러니까 조금은 편해진 기분도 느낀다. 어떤 현상이 자연적인 것이면 그것을 자연의 주인에게 맡기자.. 그것이 내가 보는 세상의 순리인 것이다. 순리에 너무나 도전하는 것.. 문제를 푸는 것보다 더 문제를 만드는 case가 얼마나 많았던가? 오너라, 세월아.. 지나가라 세월아.. 그것이 진리요 순리라면 얼마든지 편하게 받도록 노력을 하리라!

 

¶  올해의 초겨울 날씨 – 아직 공식적인 겨울의 시작, 동지가 이틀 남았지만 현재까지 보아서 올해의 winter season은 지극히 지극히 ‘고전적인 겨울’의 모습들이다. 체감으로 느끼는 추위의 느낌이 오래 전에 느꼈던 그런 겨울의 느낌인 것이다. 아틀란타 지역에 한정된 것인지도 모르지만 올해의 장기예보가 맞아가는 듯 하다. 평년보다 ‘조금 낮은’ 기온일 것이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11월 중순부터 예년에 자주 입지 않았던 비교적 따뜻한 옷들을 입게 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비록 눈 같은 포근한 것은 없었어도 ‘겨울다운 겨울’ 은 너무나 신선하고 편안함을 주는 것이다. 이 지역의 추위는 사실 1월부터 3월까지가 진짜인데 이미 이렇게 싸늘했으니 그때는 과연 어떨까.. 지나간 여름이 너무나 시원해서 그에 맞는 따뜻한 겨울을 예상했는데 어찌된 일인가?

 

¶  레지오 남자들.. 레지오 마리애 남성 단원을 간단히 레지오 남자라고 부른다.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 올해는 이 단어가 자주 쓰이고 해서 조금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가톨릭 교회 안에서 가장 막강한 조직력을 자랑했다던 레지오 마리애, 기도와 봉사를 목표로 군대처럼 모인 곳이다. 진짜 군대의 근처도 못 가보았던 내가 인생이 저물어가는 이때에 규율과 조직의 힘을 신선하게 느껴보며 살아간다. 이런 조직의 힘이 나에게는 생수와 피처럼 필요하다고 느낀다. 레지오 마리애가 나를 필요로 한 것 보다는 내가 ‘살아 가기’ 위해 더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교회내의 어느 신심단체, 조직들 정작 일이 필요한 곳은 거의 전부가 ‘여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니까 ‘자매님’들이 궂은일, 시간 걸리는 일을 떠맡고 있는 셈이다. 도대체 남자들은 어디에 숨어있는 것일까? 남자들 중에서도 제일 활동적일 수 있는 40~50대들.. 분명히 ‘먹고 살기 위해서’ 신심활동,봉사 등은 엄두도 못 내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60대는 어떤가? 그들도 먹고 살기 위해서 그런 것일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아마도 ‘즐기는데’ 너무나 바빠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지만 내가 때늦게 절감, 통감한 교훈적 사실은.. 이러한 ‘높은 수준의’ 활동이 그들이 그렇게 시간을 쏟고 있는 경제,사회활동에서 시간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덤의 시간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진리’를 조금이라도 일찍 깨닫는 ‘형제님’들은 일단 ‘성공’한 삶을 살며 마칠 수 있다고 나는 진정으로 믿는다.

 

¶  의미 있는 Blogging의 절묘한 힘을 며칠 전에 ‘또’ 깨닫게 되었다. 가끔 찾아오는 이런 ‘절묘한 순간’들 때문에 귀찮더라도 계속 ‘쓰게’ 되나 보다. 간단히 얘기해서 내가 2년 전 여름에 불평의 마음으로 쓴 blog, ‘알피 램 생애를 읽으며’ 란 것이 인연이 되어서 연세대 전기과 동문을 알게 되었고 그 내가 불평했던 책의 새 번역본이 나오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레지오 마리애에서 신화적, 전설적인 인물인 ‘알피 램’의 전기에 해당하는 그 책의 첫 번역본은 너무나 실망적인 것이었고, 은근히 다시 써주기를 바라며 쓴 것인데 그것이 이렇게 기적奇蹟적으로 해결이 된 것이다.

게다가 새 번역을 한 사람이 바로 나의 연세대 전기과 ‘거의 동기’인 ‘김형기 스테파노’ 동문이어서 더욱 이채로웠다. 알고 보니 스테파노 동문은 1967년 가을학기를 나와 같이 공부한 것으로 밝혀져서 한참 반세기전으로 시간여행을 하며 그 당시를 추억하게도 되었다. 김 동문이 어떻게 레지오 마리애에 관한 책을 번역하는 입장이 되었는지 궁금하기만 하고 만약에 레지오 활동에 깊숙이 관여가 되었다면 서로 좋은 의견을 교환할 수도 있겠다는 상상적인 희망의 나래를 펴 본다.

 

친구 정교성의 성탄카드, 너무나 멋지다.¶ 일주일 전쯤.. 캐나다에 거주하는 오랜 친구, 중앙중고 동창 정교성으로부터 성탄 카드가 도착하였다. 이 친구는 내가 기억하는 한 거의 매년 이맘때쯤 카드를 보낸다. 비교적 일찍 보내는 것이다. 얼굴을 맞대고 본지가 수십 년이 되었지만 그저 늙어가는 모습은 쉽게 상상할 수가 있어서 큰 문제는 없다. 보고 싶다.. 보고 싶어.. 할 정도지만 일부러 그를 찾아 갈 여력을 찾지 못한다. 인연이 있으면 ‘죽기 전에’는 만날 수 있겠지 하는 정도다. 요새는 인간관계가 그렇게 정착이 되어간다.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친척, 친지.. 어찔할 것인가.. 나는 떨어져 있어도 마음만은.. 하며 생각하며 살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마음도 멀어져 감을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는가? 어떻게 그렇게 되어갈까? 최소한 나는 가까운 마음을 간직하는데 상대방이 꼭 그렇지 않은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솔직히 말해서 슬프고 무섭기조차 하다. 고국에 있는 그렇게 다정했지만 긴 세월 떨어져 살았던 인생들.. 아예 나만의 상상으로 다정했던 세월들만 간직하며 나의 인생을 보낼까..

 

¶  갑자기 장례미사, 연도 소식이 잇달아 들어왔다. 작년 여름에 하루가 멀다하고 겪었던 장례, 연도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지만 올해는 비교적 조용한 편이어서 이대로 ‘무사히’ 올해를 보내나 보다 했지만 결국은 올해의 마지막 달, 어제와 오늘 연세대 이원선 도밍고 동문의 93세 어머님의 선종으로 연도와 장례미사가 잇달아 있었다. 이 동문의 어머님이 돌아가신 사실은 93세라는 나이도 있고 어느 정도 예측이 된 것이라 크게 놀랄 사실을 아니었지만 이 동문의 나와 비슷한 환경: 홀 어머님, 외아들 등등으로 나의 경험을 되새기며 하느님 품으로 가신 영혼을 생각하게 되었다. 이 동문의 어머님은 우리 어머님보다 2살이 아래였는데 육이오 전쟁에서 군인이던 남편을 잃으셨다고 했고, ‘강철같은 의지’로 4남매를 모두 대학엘 보내셨다고 고인에 대한 추억담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그 당시에 그런 여건 (아버지를 잃은) 의 가정이 수도 없이 많았고 대부분 어머니들은 ‘뒤를 봄이 없이’ 자식들을 키워냈다. 그러니까 어찌보면 흔할 수도 있는 이야기들인 것이다. 하지만 하나 하나를 자세히 알고 보면 모두 다 다른 눈물겨운 이야기들이다. 그런 환경에서는 생존이 제일 우선이고, 나머지 것들은 사실 희생이 되어야 했다. 우리들은 가끔 그런 사실을 깜빡잊고 겉으로 보이는 모습(완고한, 고집불통) 만으로 불평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앞뒤를 잘 못보는 불공평한 논리인 것이다. 이원선 동문도 이제는 한 세대가 완전히 지나간 사실을 이번 어머님의 타계로 실감을 할 것이고 ‘자식의 입장에서 완전한 부모’의 입장으로 세상을 보게 될 것을 예상해 본다. 한 세대가 완전히 흘렀다. 다음은 우리들이 갈 차례인 것이다.

Deep November

¶  11월 26일, 이천 십 삼 년.. 이천, 이천, 2000 을 연상하며 문득 아~~ 지금은 2000년 대였지.. 하는 자괴감이 젖어 든다. 왜 천 구백.. 1900 이 아니고 2000인가.. 그러니까 나는 역시 어쩔 수 없이 천 구백이 고향처럼 따뜻하게 느껴지는 충분히 오래 산 ‘늙은’ 인간이다.

그것도 11월이 주는 을씨년스런 느낌 또한 나를 움츠려 들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것도 아주 깊은 11월, 깊도록 깊은 가을의 느낌, 나는 이런 진한 색깔의 나날을 어떻게 감당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작년과 비교하고 5년 전과도 비교하고 심지어 20년 전도 돌아본다. 작년과는 거의 비슷할 듯하지만, 5년 전과는 ‘하늘과 땅’ 같은 차이일 듯 하다. 그 때는 전혀 앞도 방향도 잃고 살았고, 지금은 최소한 앞도 보이고 방향도 제대로 잡은 것이다. 물질적으로 변한 것은 거의 없어도 그것이 전부가 아닌 것을 이제는 믿고, 믿고 싶은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올해 한 달.. 계속 그런 희망의 심정으로 살고 싶기만 하다.

 

¶  겨울 같은 느낌의 올해 가을, 이곳 지방 deep south의 첫 눈발이 예보가 되었다. ‘아주’ 추울 것이라는 북 미주 동부지방 장기예보에 눈에 대한 것은 기억이 없는데 어떻게 이렇게 일찍 snow flurries란 말이 나온 것일까? 그것은 역시 하늘에 지천으로 깔린 습기 때문이 아닐까? 기온만 떨어지면 언제든지 가능성이 있는 그 ‘물’이 하늘에 항상 떠 있는 상태가 올해 이곳 기상의 특징이었으니까.. Thanksgiving Day가 이틀이 남은 지금, 차갑게 내리는 비가 오늘 밤, 내일 아침 사이에 ‘분명히’ 눈발이 날리는 날씨로 바뀐다는 것이다. 물론 내려도 곧 녹겠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하늘에서 하얀 ‘떡 가루’ 들이 내려 온다는 사실이 문제인 것이다. 교통상 지장은 제로 일 것이지만 ‘포근한 느낌’을 주는 심리적은 효과는 대단할 듯 하고 벌써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요란하게 선을 보이기 시작해서 나도 어쩔 수 없이 그런 ‘공동체적 심리’에서 벗어날 수가 없을 듯 하다.

올해 우리 집의 Thanksgiving Day는 어떨까 했지만.. 역시 조금 게으르기로 작정하고 우리 식구, 작기만 한 네 명만 모이기로 했다. 한 때는 손님들과 어울려 볼까도 생각했지만 무언중에 ‘피곤할 듯’한 예감이 들었는지 그렇게 되고 말았다. 한 때는 손님들과 어울린 적도 없지 않았지만 이제는 손 꼽을 정도로 기억으로만 남게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기회가 된다면 조금 더 노력을 해면.. 식구가 너무나 적은 우리는 될 수 있으면 누군가와 같이 있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우리 식구는 최소한 ‘비행기가 필요 없는’ 곳들에 살고 있어서 궂은 날씨도 큰 상관이 없어서 더 포근하게 느껴진다.

작년부터는 엄마가 주 요리인 turkey와 stuffing같은 것을 준비하고 아이들은 나머지 side dish들을 모조리 준비한다고 해서 나는 크게 할 일이 없다. 유일한 것이 mashed potatoes 정도일까. 그저 먹어주기만 하면 되니, 조금은 편한 하루가 될 것이다. 물론 조금 힘이 들어가는 dish wash는 주로 나의 담당이지만 그것은 이제 나의 몫이 되었으니 별 다를 것은 없다. 그저 그저, 평화스럽게 올해의 100% 일어난 일들에 감사한 마음을 나누는 시간이 되기만 빌고 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다행이 아닌가 하는 심정 바로 그것이다.

 

¶  First white stuffs & ‘Kenny G‘ time again.. 하루 종일 세차게 뿌리던 비가 오늘 아침에 드디어 하얀 물체로 변해서 풀밭이나 deck, 차의 유리창에 얹혔다. 아주 이른 아침 세찬 바람소리에 깨어서 어두운 밖을 살펴보니 무언가 하얀 것들이 보였고 곧바로 아하~ 올해 첫 white stuff임을 알았다. 바뀌어가는 계절의 상징들.. 어찌 이 나이에 조금은 철학적, 더 조금은 신앙적으로 안 볼 수 있겠는가? 더구나 무섭게 몰아치는 차가운 바람소리는 6.25 직후의 서울의 ‘덜 난방 된’ 온돌 방에서 화로 불에 이불을 쓰고 모여 앉았던 어린 가족들의 걱정 없었던 천진난만한 모습들을 연상 시키기에 너무나 충분한 것이었다. 작년 보다 더 빨라진 holiday in the air.. 일 주일 안으로 다가온 레지오 연차 총친목회 준비 연습의 바쁜 움직임에서 느끼는 이른 12월의 느낌을 떨칠 수 없다. 결국은 또 Kenny G season이 온 것이다. 올해 들어 처음 듣는 Kenny G의 saxo.. 너무나 너무나 잘 어울리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Winter classic, Kenny G

My Winter classic, Kenny G

What A Wonderful WorldKenny G

 

 

가을 시 3선

불과 한 주일 만에 완전한 ‘진짜’ 가을의 풍경으로 변했다. 그 전에는 사실 가을로 부르기에는 주위가 너무나 ‘파~란’ 모습들이었지만, 며칠 전 ‘썸머 타임, Daylight Saving Time‘의 해제로 하루아침에 너무나 어두워진 저녁 6시의 냄새와 더불어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깊은 가을 임을 나 자신의 ‘생애의 가을, Autumn of my life‘과 연루시키며 묘한 감상에 젖어 들고, 낙엽 탄 냄새가 구수하게 느껴질 것 같은 ‘fireplace의 따뜻한 연말 휴일’ 의 공기마저 느껴진다.

유별나게 시원하고 축축했던 올해의 여름은 정말 행복할 정도였고, 하늘의 은총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예년에 한두 번씩 나타나는 hurricane이 하나도 없는 대신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길목이 또한 유난히도 지루하고 길었다. 늦여름과 초가을이 교대하는 기간이 길었던 것인데 그것이 이제 작별을 하고 있는 듯하다. 덕분에 예년에 흔히 느끼던 전형적인 ‘가을의 감상’ 을 많이 놓치는 듯 하다. 하지만 상관없다. 그 대부분의 ‘감상적’ 시간은 남이 보기에, 내가 보아도 조금은 유치할 것처럼 보이니까.. 이 나이에 무슨 주책인가 할 정도로.. 이맘때면 꼭 생각나고 기억나는 가을의 시는 역시 도종환 시인의 ‘가을 시 3선’ 이다. 시인은 가을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듯해서 나도 10대의 감상에 흠뻑 젖는 듯한 느낌으로 그의 시를 감상한다.

 

 

단풍드는 날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放下着)

제가 키워 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

 

 

늦가을

 

가을엔 모두들 제 빛깔로 깊어갑니다

가을엔 모두들 제 빛깔로 아름답습니다

지금 푸른 나무들은 겨울 지나 봄 여름 사철 푸르고

가장 짙은 빛깔로 자기 자리 지키고 선 나무들도

모두들 당당한 모습으로 산을 이루며 있습니다

목숨을 풀어 빛을 밝히는 억새풀 있어

들판도 비로소 가을입니다

피고 지고 피고 져도 또다시 태어날 살아야 할 이 땅

이토록 아름다운 강산 차마 이대로 두고 갈 수 없어

갈라진 이대로 둔 채 낙엽 한 장의 모습으로 사라져 갈 순 없어

몸이 타는 늦가을입니다

 

 

깊은 가을

 

가장 아름다운 빛깔로 멈추어 있는 가을을 한 잎 두 잎 뽑아내며

저도 고요히 떨고 있는 바람의 손길을 보았어요

 

생명이 있는 것들은 꼭 한 번 이렇게 아름답게 불타는 날이

있다는 걸 알려 주며 천천히 고로쇠나무 사이를 지나가는

만추의 불꽃을 보았어요

 

억새의 머릿결에 볼을 부비다 강물로 내려와 몸을 담그고는

무엇이 그리 좋은 지 깔깔댈 때마다 튀어 오르는 햇살의

비늘을 만져 보았어요

 

알곡을 다 내주고 편안히 서로 몸을 베고 누운 볏짚과

그루터기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향기로운 목소리를 들었어요

 

가장 많은 것들과 헤어지면서 헤어질 때의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살며시 돌아눕는 산의 쿨럭이는 구릿빛 등을 보았어요

 

어쩌면 이런 가을 날 다시 오지 않으리란 예감에 까치발을 띠며

종종대는 저녁노을의 복숭아빛 볼을 보았어요

 

깊은 가을,

 

마애불의 흔적을 좇아 휘어져 내려가다 바위 속으로

스미는 가을 햇살을 따라가며 그대는 어느 산기슭

어느 벼랑에서 또 혼자 깊어가고 있는지요

 

 


 

‘Clunker’ furnace fires up, then..

30+ year old clunker furnace
30+ year old clunker furnace

10월 20일, 2013.. 드디어 그날이 왔다. 매년 가을 처음으로 central heating system이 ‘점화’되는 그날이.. 올해는 평년에 비해 며칠이 늦었을까.. 확실치 않지만 그럴 것이다. 일주일 전쯤 아침 기온이 떨어짐을 느끼고 thermostat를 winter mode1로 바꾸어 놓았고, 아래층 furnace(gas heater)의 pilot light도 ON으로 바꾸어 놓았다. 아래층의 pilot light는 올해부터 여름이 시작될 즈음에 아예 꺼놓았다. 여름 동안 ‘공연히’ thermocouple, pilot light를 ‘달구어’놓을 필요가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래층 furnace의 ‘점화’ system이 바로 classic system으로 pilot (gas) light를 ‘항상’ 켜 놓아야 heater가 가동되는데 이제는 조금 귀찮게 느껴진다. 2층의 system은 electronic system이라 ‘전기’만 있으면 언제고 점화가 된다. 근래의 거의 모든 natural gas system이 electronic firing인데 이렇게 ‘고물, clunker‘들이 문제인 것이다.

pilot light는 글자 그대로 ‘항상’ 아주 작은 ‘불’을 켜 놓고 점화를 기다리는 것으로 많지는 않지만 natural gas 를 소모하고 있는 셈이다. 제일 귀찮은 것은 이 pilot light가 꺼질 때이다. 바람이 심하게 불거나, thermocouple이 오래 되면 이것이 저절로 꺼진다. 안전을 위한 장치인데.. 이럴 때마다 불편하기 짝이 없는, 어둡고 축축한 crawl space를 ‘기어들어’ 가야 하는 고역을 겪는데.. 이런 것들을 여자 특히 ‘노인’ 혼자 살게 되면 어떻게 감당을 할까? 아마도 분명히 handyman에게 전화를 거는 수 밖에 없지 않을까?2 아직도 그래서 여자건 노약자건 혼자 사는 것은 ‘비싼’ 선택이거나 운명인 듯 하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인 듯.. 아래층 pilot light를 ‘분명히’ 지난 주에 점화를 해 놓았는데, 오늘 아침에 아래층이 ‘썰렁하고’, heater가 켜지지 않고, 조용했으니.. 분명히, 아마도.. 그것이 무슨 이유에선가 ‘꺼졌을’ 것이다. 또 ‘기어들어’ 가는 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나의 여유 있는 추측은 빗나갔다. 예상했던 thermocouple의 문제가 아닌 다른 이유로 gas가 안 나옴을 알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gas valve를 control하는 24V AC power가 안 나온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transformer 문제일까? 하지만 a/c (에어컨)를 켜보니 그것은 잘 나온다. 그렇다면 transformer는 OK인데.. 그렇다면 무엇일까? ‘아깝기만 한’ service call을 할 시간이 다가오나? 하지만 아직 빙점까지는 아니고, 문제가 난 곳이 아래층이니까, 그렇게 급할 것 없다. 조금 시간을 두고 ‘연구’를 하기로 결정하고 그 어두운 ‘지하’에서 기어 나왔다.

 

30+ year old clunker furnace 본격적인 service mode, controller와 blower가 노출이 되었다

 

머리 속이 다시 ‘detective‘ research mode로 완전히 전환이 되며 열심히 googling을 하며 해답을 찾았는데.. 나의 ‘진단’은 결과적으로 완전히 빗나간 것으로 밝혀졌다. 우선 이번에 ‘공부’한 것으로 확실히 알게 된 것 중에 우리 집 아래층 furnace가 놀랍게도 30년이 조금 넘어가는 그야말로 ‘고물 중의 고물, clunker 중의 clunker’ 라는 사실이 놀라웠다. 우선 와~~ 이것이 정말 오래 전에 우리들이 느꼈던 Made In USA의 perfect case가 아닐까.. 하는 것이고, 다른 쪽으로는: 큰일 났다, 드디어 꽤 많은 돈3을 써야 할 때가 왔구나.. 하는 비관적인 생각이 교차하는 심정. 그러니까 우리 집이 처음 건축될 당시4에 설치했던 heating system이 이제까지 거의 문제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24VAC transformer & fan relay한때 의심을 받았던 24VAC transformer와 blower relay

 

지금 나에게 Internet이 없었고, googling 이 없었다면 여기서 나의 story는 끝 났고, ‘아마도’ HVAC5 guy의 truck을 기다리며, 얼마나 수리비가 들어갈까 고민했을 것이지만, 이제는 ‘정보의 홍수’ 도움으로 조금은 걱정이 줄어들었다. 최소한 무엇이 문제인가는 내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1981년에 설치된 우리 집의 이 clunker가 어떤 종류인지 알았고, 어떤 ‘부품’이 쓰였는지도 조금씩 들어난다.

Brand name은 Premier Furnace라고 되어 있지만 사실은 어떤 커다란 ‘공장’6에서 사다가 자기의 상표를 붙인 case였다. 1981년의 기술적인 수준은 electronic control은 전혀 쓰이지 않았던 그런대로 ‘간단한 기계식’이어서 부품만 찾으면 내가 손수 고칠 수도 있는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어떤 부품이 현재 망가지고, 그 부품을 구할 수 있을까, 그것의 값은 얼마인가.. 나의 물음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Honeywell Fan limit switchwhole system을 정지 시켰던 장본인, Honeywell Fan limit switch

 

이번 ‘사건’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heater를 켰을 때, thermostat의 relay click 소리가 난 후에, 암만 기다려도 잠잠 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fan(blower)소리도 안 나고, 더운 공기도 안 나온다는 간단한 사실이다. 바람이 안 나온다는 것은 100% blower(fan)이 안 도는 것이고..blower가 망가졌거나, 그곳의 power가 안 들어가는 것이지만.. Fan은 manual control로 test하면 잘 들어온다. 그러니까 blower가 아니고 그것을 control하는 24VAC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세히’ 공부를 해 보니 heating mode에서만 쓰이는 또 하나의 blower control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fan limit switch란 것이었다. Honeywell에서 만든 것으로: 이것이 바로 furnace의 온도에 따라서 fan을 껐다 켰다 하는 것이다. 결론은 이것이다. Thermostat에서 heat demand 신호가 갔을 때, gas valve가 열려서 점화가 된다. 시간이 조금 지나며 furnace내부의 온도가 오르며 fan switch가 켜 지고 난방이 시작되는데.. 지금은 이 switch에 문제가 생겨서 그대로 온도는 계속 올라가다가 결국에는 ‘너무 뜨거워져서’ system이 자체로 shutdown이 된다.

결국, 수 천불을 들여서 이 ‘고물’을 교체하는가 했지만, Honeywell fan limit switch를 $70 정도로 order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아마도 며칠 뒤에 이것이 도착하면 아래층 겨울은 그런대로 ‘무사히’ 지낼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끝 난 것이 아니다. 올해가 지나면 우리 집 아래층 system은 한 살을 더 먹는 셈이고.. 우아.. 32살이 되나.. 나의 관심은 이 clunker가 과연 언제까지 돌아갈까 하는 것이다. 나도 늙어가고 이것도 늙어 가고.. 이 ‘고물’은 ‘새 것’으로 바꿀 수 있다고 하지만, 나 자신은 어떠한가?

 

  1. 최고 68F, 최저 62F
  2. 아마도 이런 것도 최소한 $100를 받지 않을까?
  3. furnace자체 값만 최소 $1000, installation 을 더하면 최소한 수천 불?
  4. 우리 집은 1982년에 건축되었다.
  5. Heating, Ventilation, Air Conditioning, 아마도 우리말로 ‘냉열’ 쯤 되지 않을까?
  6. Consolidated Industries, 당시에 무지 큰 회사였다.

8월의 가을바람, Putin

¶  Old Normal  무언가 올해의 여름은 정말, 참말, 진짜로 이상하다. 옛날의 정상적 여름 날씨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요새 유행하는 new normal이 아닌 old normal은 피부로 목격하고 있는 셈이다. 한마디로 올해 Acme Cool Air같은 무슨 무슨 에어컨 서비스 업체들 대다수가 도산을 할 지경일지도 모른다. 지난 몇 년간 new normal이 된 화씨 95도 이상의 여름 더위에 그 냉방 업자들 받기 힘든 은행융자로 큰 투자를 해서 지난 몇 년간 지독한 호황으로 $$$을 억수로 벌었고, 올해는 아마도 더 투자를 하고 100도가 넘는 습기에 찌들은 여름을 기다렸을 것인데, 이것이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우리 미국본당 신부님, 만나기만 하면, pray for rain.. 을 거듭하시더니, 소낙비, 가랑비, 써늘한 비, 주룩주룩 장마 성 폭우.. 각가지 선을 보이고 그것도 모자라 기온은 아침 저녁이 꼭 가을처럼 느껴지고, 어제와 오늘은 100% ‘가을이라 가을 바람~~’ 의 노래가 연상되는 첫 가을 맛을 보여주고 있다. 덕분에 억수같이 나가던 전기료가 ‘푹’ 절감이 되었고, 밤에 잠도 잘 잘 수 있었다. 물론 이것은 기후가 잠깐 ‘어리둥절’ 했었을 것이라 생각은 되지만, 참 세상은 never say never라고.. 오래 살고 볼 것이다.

 

Vladimir Putin, credit: WikiMedia¶  Putin   요새 가끔 news를 보면 가관인 것이 있다. 나의 눈과 귀를 의심하게 할 정도인 것은 이것이다. 종교와 신앙이라면 아편이라고 이 잡듯이 탄압을 하던 맑스 Marx, 레닌 Lenin의 공산주의자의 종주국이었던 소련연방, 지금은 러시아가 이제는 종교의 이름으로 homosexual의 정치적, 사회적 파급을 법으로 조직적으로 저지하고 나선 것이다.

여기에 두 명의 소위 최고 지도자가 등장한다. 하나는 자유민주의 세계 종주국이라는 미국의 대통령, ‘바락 후세인 오바마(Barak Hussein Obama)’ 라는 ‘속을 알 수 없는 인물‘이 그 하나고, 또 하나는 공산당 체제의 소련연방 하에서 정치적 반대파를 잡아내던 옛 소련연방 정보부 출신의 현 러시아의 푸틴(Putin) 대통령이 또 하나다. 원래 공식대로라면 오바마는 종교와 신앙의 자유를 100+% 보장을 해야 하고 푸틴은 가차없이 ‘아편’인 신앙의 자유를 억압해야 한다.

yet another stupid presy그런데 최근의 사태는 완전히 거꾸로 흐르고 있다. 문제의 불씨는 바로 homosexual들의 ‘권력 확장’이다. 바락 후세인 오바마는 각가지 알 수 없는 논리로 그들(homo-sexual)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의 ‘결혼’을 지지하며, 급기야는 군대나, 보이 스카웃 (걸 스카웃도 마찬가지일 듯)도 그들을 ‘쌍수로 환영을’ 하게하며, 급기야는 각종 종교, 신앙계열의 기관, 학교, 병원들에 ‘법으로 압력’을 넣고 있다.

이래서 나온 것이 ‘종교의 자유’를 지키자는 slogan인데,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것인데 어찌해서 이렇게 된 것일까? 반대로 푸틴 대통령은 ‘기독교가 러시아에 준 바람직한 영향‘을 언급하면서, ‘법으로’ 그들의 ‘확장’을 제한하려고 한고 있다. 참.. 이러니 오래 살고 볼 것인가? 완전히 두 명의 ‘대통령’의 입장이 바뀐 것이다. 솔직히 현재 나는 푸틴 대통령에게 과분한 점수를 주고 싶은 솔직한 심정이다. 소신 있는 용단이라고까지 치부하고 싶은 것이다. 물론 그의 과거 행적을 보아서 ‘깊은 정치적 포석’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은 간다. 하지만, 그것이 큰 문제는 아니다. 그런 용기 있는 지도자가 현재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한 여름의 봄비, 두 죽음..

¶  한여름 봄비  7월의 마지막 날, 중복더위가 끝나가는 한창 여름에 주룩주룩 봄비가 내린다. 2013년 이 지역(Atlanta Metro) 여름은 ‘아마도’ 내가 경험한 ‘최고의 여름‘으로 오래 오래 기억에 남을 듯 하다. 오늘 아침도, 이제는 눈과 귀에 익은 비, 그것도 봄비 같은 냄새의 비가 주룩주룩 나를 반긴다.

내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이곳의 여름은 바로 내가 어렸을 적에 서울에서 ‘흔히’ 느끼던 바로 그런 것이다. 장마 같은 냄새, 섭씨 30도를 ‘별로 크게’ 넘지 않던 온화한 더위, 소낙비, 가랑비, 보슬비, 풀벌레 소리.. 와~~ 1950, 60년대에 내가 냄새 맡고 느꼈던 서울 원서동, 가회동의 여름 냄새가 아닌가? 이런 자연이 주는 포근한 ‘공짜’ 선물은 확실히 올해 내가 여름을 지내는데 매일 매일 잔잔한 기쁨을 주었다. ‘Mother Nature, 자연의 엄마’께 계속 고개를 숙이고 숙인다.

 

Carmel Retreat Center near metro Atlanta
Carmel Retreat Center near metro Atlanta

¶  레지오 피정:   지난 주에 시작되었던 ‘줄줄이 사탕’ 같이 바쁘고 숨가쁘게도 느껴졌던 ‘큰 일’들이 다 막을 내렸다. 그 중에 지난 주말에 있었던 2박 3일의 레지오 피정은 생각과 기대보다 훨씬 풍성하고 기분 좋은 경험을 남겨주었다. 연숙이, 피정을 ‘맨손으로’ 주도하는 꾸리아의 간부라서, 나는 어차피 수동적인 참가자 이외의 역할을 피할 수가 없었지만 나는 노력을 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로 했기에 큰 부담은 없었다.

하지만 피정 중에 보니까, 수시로 나오는 식사준비와 뒷일들 같은 모든 잡일들을 이 4명의 꾸리아 간부 ‘아줌마’들이 도맡아서 하고 있어서 사실 고맙긴 했지만 조금 걱정도 되었다. 그들은 거의 99% ‘희생’만 한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어서 조금은 더 일들을 분담하는 것이 더 ‘좋은 그림’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1988년 폴란드 ‘걸작영화’ ‘사랑에 대한 짧은 film‘ 이란 한 시간 반 짜리 영화감상과 감상소감 나눔으로 시작된 하태수 주임신부님 지도의 이 피정은 한마디로 질적으로 A급이었고, 나도 난생 ‘처음으로’ 진짜 피정의 모습과 맛을 느꼈던 두고두고 생각해야 할 숙제를 남긴 계기가 되었다.

 

¶  부부 살인: 오랜만에 집을 떠났다 돌아오니, 의외의 뉴스가 우리를 놀라게 했다. 또, 이곳 아틀란타 한인사회에 끔찍한 살인사건이 그것이다. 어떤 한인교포 중년 부부가 집에서 칼에 찔려 사망한 것이다. 금전적인 의도가 ‘절대로’ 아닌 것으로 보아 ‘분명히’ 원한에 관련된 듯 했다. 게다가 두 부부는 영세명을 가진 가톨릭 신자부부였다. 그래서 ‘연도’와 ‘장례미사’의 이야기도 나오기 시작했지만, 그 부부는 우리 순교자 성당이 아닌, 새로 분가해서 나간 김대건 성당 소속이라서 우리가 그곳에 가게 될지는 미지수였던 상태였다.

그러다가 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돌아가신 부부는 우리와 절친한, 오랜 교분의 역사를 가진 Men’s Night friend 윤형,그 집 부인, Mrs 윤의 오라버니 부부였다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사실.. 정말 믿어지지 않았던 뉴스였다. 사실 지금까지도 믿어지지 않지만 불행하게도 그것이 엄연한 사실인 모양.. 고인의 어머님, 그러니까 윤형의 장모님은 어떻게 이런 충격을 견디고 있으실까 생각하니 사실 상상도 못할 지경이다. 어떻게 이런 일들, 그것도 우리와 가까웠던 친지의 가족이.. 현재까지는 사업상 원한을 가진 한인 2명의 소행임이 밝혀졌고 그 중에 한 명은 벌써 체포가 되었다고 한다. 사업상 원한이라면 과연 어떻게 그런 불상사를 피하며 사업을 할 것인가.. 참 사업하는 것이 쉽지는 않은 모양이다.

 

Tweeting & talking about dying mother, Scott Simon
Tweeting & talking about dying mother, Scott Simon

¶  Simon’s Mother의 죽음:  잠시 CBS-TV를 보니, 내가 잘 아는 NPR(National Public Radio) 단골 journalist인 Scott Simon의 얼굴이 보였다. 그것도 ‘거의 우는 모습’으로.. 조금 더 자세히 보니, 그의 어머님이 돌아가신 것에 대한 것.. 조금은 의아한 것이, 어떻게 그의 어머님 사망이 뉴스거리가 되었을까? 하기야 ‘유명인’이니까 유명세를 치르는 것일까 했지만, 이것은 그것과 반대의 case였다.

자기 어머님의 임종을 거의 ‘일부러’ 대중에게 알리는 것..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약 일년 전에 나는 twitter로 그를 ‘따라간’ 적이 있었는데, 그는 완전히 이것에 ‘미쳐’있는 듯 했고,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24시간 이곳에 공개를 하는 듯 했는데 그는 그 자신과 가족의 privacy에는 전혀 상관이 없는 듯 했을 뿐만 아니라 거꾸로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었다.

그것까지는 좋았는데, 내가 참을 수 없었던 것은 그의 어린 딸의 신상을 쉬 임 없이 ‘방송’을 하고 있었던 사실.. 이것은 아무리 보아도 지나친 것 같았다. 그러다가 그런 모습의 극치를 보이듯이, 자기 어머님의 ‘죽어가는 과정’을 24시간 twitter로 방송을 한 모양.. 참.. 이것은 너무하지 않은가? 나는 죽는 과정, 죽음, 장례식 같은 것은 가급적 개인적이고 가족적인 ‘사적인 엄숙한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이는 정반대인 case인 셈이다. 더욱 웃기는 것은 tweeting도 모자라서 아예 CBS-TV에 그 자체로 인터뷰를 한 것인데, 정말 해도 해도 너무 한다. 이 사람은 자기 어머님까지 ‘파는’ 완전히 publicity에 미친 사람인가?

Wet and Monsoonal Atlanta’s 4th

Monsoonal Atlanta우아~~ 정말 굉장하다. 스고이! 아틀란타 지역에 장마? 1989년 이곳으로 온지 아마도 이런 ‘해괴한’ 날씨는 처음인가. 간단히 말하면 그 옛날 20세기, 50~60 년대에 고국 대한민국에서 여름이면 ‘당연히’ 겪었던 바로 그런 ‘장마’ 인 것이다. 이것의 느낌을 나는 오랫동안 ‘완전히’ 잊고 살았다. 그것을 나는 요새 이곳 아틀란타 지역에서 고스란히 맛보고 있는 중이다.

기상 위성의 사진을 보니 바로 이것이 ‘몬순, 장마’ type의 모습인데, 극동지역에서는 태평양의 뜨거운 구름이 올라가는 것이고, 이곳은 멕시코 만의 뜨거운 바다 바람이 올라오는 것, 그것이 다른 것이고 나머지는 꼭 같다. 하지만, 한반도 지역의 장마는 사실 매년 겪는 ‘정상적’인 것이라면 이곳의 것은 아주 드문 예외에 속한다.

7월 2일부터 시작된 이 아틀란타 장마는 이곳의 최대 ‘역사적’ 휴일인 Independence Day 를 완전히 축축히 젖게 만들었는데, 그래도 매년 열리는 이제는 연륜이 깊어가는 Peachtree 10K(6+ miles) Road Race는 다행히 폭우가 멈추고 가랑비가 내리는 덕에 진행이 되긴 했다. 새로니와 나라니도 참가를 했다고 했는데, 6만 명이 ‘실제로 뛰는’ 대규모였지만 날씨 탓에 구경꾼의 숫자는 별로 없었다고. 그것 뿐만이 아니고 제일 큰 attraction인 firework도 대부분 cancel이 되었고, 각 동네에서 자체적으로 하던 ‘꼬마들의 행진’도 거의 볼 수가 없었다.

 

wet July 4th Peachtree 10K

wet July 4th Peachtree 10K, 2013

왜 이것이 ‘장마’같이 느껴지냐 하면, 이곳에서 이렇게 1주일이 넘게 ‘계속’ 흐리고 비가 내리는 것은 아주 희귀한 현상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열흘 넘게 해 구경을 못할 것 같은 예보여서 벌써부터 집안의 곳곳에서 ‘냄새’가 풍기는 기분이 든다. 이것도 바로 그 옛날 서울에서 겪던 장마 때의 그 냄새일 것이다. 예상치 않은 이변적인 날씨에 손해를 보는 곳도 많을 듯 한데, 특히 roofer들이 제일 큰 타격이 아닐까? 이런 때 지붕을 새로 갈거나 고치는 것은 아주 어렵기 때문이다. 며칠 전 이 장마가 시작되던 날도 우리 동네에서 지붕을 고치는 것을 보았는데, 그 바로 후부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으니, 그들은 아마도 그날 완전히 ‘공을 쳤을’ 것이다.

올해는 이번의 이 장마 전에도 사실 비가 많이 내렸고, 기온도 90도 (섭씨 31도)를 넘은 날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것이 예전에는 ‘정상’에 속했는데, 그 동안 (지난 20여 년) ‘지구 온난화’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완전히 뒤죽박죽이 되어갔는데, 올해의 기후는 과연 어떻게 된 것일까? 그 무서운 hurricane도 없고 twister, tornado도 생각보다 잠잠하고.. Mother Nature가 갑자기 왜 이렇게 온순해 졌을까? 의문은 많지만 나는 ‘무조건’ 감사, 감사를 하며 이런 날씨를 즐긴다. 왜 안 그렀겠는가?

 

끈적거리는 2013년 6월 말에..

¶  이런 끈적이는 여름이면  ‘철 없던, 무언가 세상을 잘 모르던’ 대학시절의 장마가 한창이던 때, 세월이 무한정 길다고 느끼던 시절, 시원한 장판에 대짜로 누워서 즐겨 듣던 Johnny RiversSummer Rain이 생각나고, Nancy Sinatra, Lee Hazlewood의 classic oldie ‘Summer Wine‘도 함께 그립다.

그 때는 1968~9년 경 여름, 월남전이 한창이었고, 경부고속 도로를 비롯해서 대한민국의 부동산 전체가 파헤쳐지기 시작되던, 박정희 ‘민간’ 정부의 경제부흥의 소음이 요란 한 시절, 삼선개헌 반대 대모를 핑계로 학기말 시험을 피하고 산 속으로 도피하던.. 그런 여름이 생각난다. 나는 역시 지금의 나이대로 new normal 보다는 old normal을 사랑한다. 그러니까 Good ‘Ole‘ Days.. 가 그리운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과연 진화, 진보를 하는 것일까, 아니면 퇴보를 하는 것일까..정말 모르겠다.

 

Johnny Rivers, Summer Rain 1968

 

Nancy Sinatra, Lee Hazlewood, Summer Wine, 1968

 

¶  어제 밤 잠깐 어떤 email을 잠깐 보니supreme court same-sex 란 단어가 눈에 들어왔고, 불현듯 역시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news blackout을 속으로 선언해 버렸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 ‘실수’로 그것을 더 자세히 읽는 짓을 해 버렸다. 솔직히 나는 이런 류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심지어 배까지 불편하고 더 나아가면 토하고 싶은 심정까지 된다. 그러니까 나는 바로 homophobia인지도 모른다.

나의 물음은 참 간단하다. 어떻게 여자가 여자와 ‘결혼’을 하고, 남자와 남자가 ‘결혼’을 할 수 있을까? 너무나 간단한 질문이다. 어떻게? 어떻게? 그들은 정자와 정자로, 난자와 난자로 아이를 갖는 신출귀몰한 재주를 가진 동물들인가? 하지만 내가 그들에게 느끼는 심정은 조금 더 복잡하다. 숨어살았던 그들.. 이유가 있어서 숨어 살았지만, 그 이유는 이렇게 너무나 간단하다. 한마디로 ‘말로 표현을 할 수 없는 해괴한 변태적 동물집단’이라면 어떨까? 그들이 우리들의 피땀 어린 세금으로 혜택을 받겠다니, 나의 심정은 이제 동정심에서 증오심으로 변하고 있다. 그들은 어느 정도의 낯짝을 가졌기에 그렇게도 철면피 같을까?

이것을 종교로 연관을 시키는 사람들은 아주 중요한 point를 잊고 있다. 이것은 신앙, 종교, 교회와 근본적으로 관계가 없는 것이다. 법 중의 법, 헌법과도 같은 정상적인 인간이면 가지고 태어났을 기본중의 기본적인 도덕률이기에 사실 거론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런 ‘자명한 사실’을 무슨 이유로 헌법 조항에 넣을 필요가 있었을까? 이것이 문제인 것이다. ‘법 조문에 없으면’ 어떤 수단으로라도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로 바꿀 수 있는 최근의 시대 조류.. new normal들이 속출을 하는 초현대 인간들.. 그래서 그래서 절대 불변, 법이 필요 없는 ‘진리 중의 진리’를 찾는 신앙과 종교가 필요한 것일까? 너무나 끈적거리는 6월 말, 아침부터 나의 어깨는 쳐지기만 한다. 이럴 때 시원한, 가슴이 열리고 피부가 뽀송뽀송해지는 마른 바람은 어디에서 불어올까?

 

Jackie, a handsome dog
Jackie, a handsome dog

¶  Jackie,  어떤 handsome한 개, 내가 부르는 이름이다. 얼마 전 우리 동네를 배회하던 이 Jackie는 6월 동안 나의 머리 속에 있었다. 하도 답답해서 주변의 보는 사람에게 이야기도 하며 마음을 달랬지만, 이 개가 혹시 잘못 될까 봐 하는 걱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동네를 걸을 때마다 보게 되어서 어떨 때는 걷는 것도 피하곤 했다. 비가 오면 비 맞는 모습을 그리며 걱정이 되었고 해가 쨍쨍하면 어떤 집 그늘에서 더위를 식힐까 하는 생각에 잠겼다. 그저 어떤 좋은 주인을 만나는 것이 나의 제일 큰 희망이었다. 최후의 사태에는 내가 데려올 생각도 서서히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며칠 전에 다시 Jackie를 보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그 동안 자주 보이던 집의 길 건너편 Johnson부부의 집 앞 잔디에 있었다. 반가워서 눈을 마주치니 Jackie도 그런 표정이었는데, 의외로 모습이 ‘건강’하게 보였다. 그런 모습을 간직하며 그 옆에 있는 playground에서 살펴보니 이번에는 Johnson씨가 나와서 잔디를 깎기 시작했는데, 그때 Jackie와 Johnson씨의 행동이.. 서로 아는 사이처럼 보였다. 이것은 사실 뜻밖의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Jackie가 Johnson씨의 개? 하지만 dog tag, collar같은 것이 없지 않았는가? 그래도 나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분명히 Johnson씨가 최소한 돌보아 주고 있음을 짐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어제 드디어 ‘진실’을 알게 되었다. 어제 연숙과 집에 들어오다가 혹시나 해서 차로 동네를 돌아보게 되었다. 혹시 Jackie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하지만 Jackie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뜻밖에 같은 동네, 우리 집 뒤쪽에 우리보다 더 오래 사시는 한인교포 방선생님이 산책하는 것을 보고 차를 세우고 염치불구하고 Jackie에 대해서 묻게 되었다. 처음에는 무슨 얘기를 하나.. 하시더니 나중에 혹시 Johnson네 집에서 ‘돌보아 주는 ‘개 아니냐고 묻는 것이 아닌가?

우리의 추리는 맞았다. 역시 stray dog이었는데, 얼마 전부터 Johnson씨네 집에서 밥을 주고 돌보아 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adopt는 안 한 듯 했다. 이것은 정말 정말 반가운 소식이어서 연숙과 나는 너무나 안심을 하게 되었다. 최소한 Jackie는 현재 shelter가 있는 셈이 아닌가? 게다가 시간이 지나면 완전히 adopt할 가능성도 높을 것이라 짐작이 들었다. 그 후 Jackie가 배회하던 Johnson집 주변에서 더 이상 보이질 않았다. 그렇다면 이제 완전히 집 속으로 들어간 것일까.. 아니면 혹시 animal shelter로 보내진 것일까? 나의 걱정과 관심은 아직도 끊이질 않는다.

 

Jackie Update: Happy Note

Jackie에 대한 나의 ‘필요 이상의 걱정’은 전염성이 있었는지 주변에도 알려지고 특히 연숙이 제일 관심을 갖는 듯 했다. 내가 그런 ‘측은지심’이 결여된, 아니면 최소한 그런 마음을 나타내지 않는 부류의 인간이라고 생각을 해 왔기에 그런지도 모른다. 거의 ‘이상할 정도로’ 내가 걱정을 하니까 조금은 재미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급기야 며칠 전에는 big news가 있다고 소란을 떨면서 나에게 전해준 이야기는.. 얼마간 보이지 않았던 Jackie가 Mr. Johnson과 같이 동네를 걷고 있었다는 목격담이었다.

Mr. Johnson은 원래 자기의 개가 있어서 그 개는 leash에 끌고, Jackie는 그 옆을 나란히 걷고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우리는 너무나 기뻐서 어쩔 할 바를 몰랐다. 결국은 Mr. Johnson이 adopt를 한 것일까.. 최소한 그 집에서 키운다고 결론을 내리고.. 긴 한숨을 쉬었다. 혹시나 animal control로 보내는 것이 아닌가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역시 그 Johnson은 내가 결여되었던 ‘측은지심’이 있었나 보다.

4월과 5월, 돌아온 봄

4월과 5월.. 쓰고 보니 귀에 익은 말이.. 그렇구나, 정말 오래 전, 1970년대 초의 ‘통기타 그룹’ duet의 이름이다. 그러고 보니 이제 그들도 어김없이 60대의 ‘젊은 늙은이’가 되었으리라.. 하지만 여기의 4월과 5월은 글자 그대로의 올해 봄, 4월과 5월이다. 올 봄은 내가 기억하는 한도에서 가장 얌전하고 온순하고 촉촉한 계절이었다. 그야말로 ‘진짜 봄’이었던 것이다. 완전히 평균기온에 평균 강수량을 자랑하는 정상적으로 돌아온 봄.. 하지만 사실 이렇게 ‘정상적’인 것이 비정상이 된 느낌이 든다.

특히 즐거웠던 것은 비가 억수같이 많이 왔다는 사실.. 이곳 아틀란타 지역은 봄이면 꽃가루 ‘공해’가 기록적이어서 꽃가루 앨러지가 있는 사람들은 완전히 공포 속에 살곤 했는데 올해는 때맞추어 내리는 비로 전혀 그런 문제가 없었다. 두 달 사이에 “April showers bring May flowers“의 싱그러움과 어머니의 포근함이 넘치는 성모의 달 5월이 완전히 지나고, 2013년 여름의 시작인 하지로 향하는 이즈음, 나는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았던 것일까?

요사이 나의 일상생활은 사실 거의 시계와 같이 규칙적인 것인데, 아마도 이런 큰 변화 없는 삶은 내 나이에는 흔한 것일지도 모른다. 육체적인 건강은 이런 생활 방식에 도움을 받기도 하겠지만, 매일 반복되는 regular routine, 시계처럼 진행되는 것은 어떨 때는 정신적으로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심지어는 시간감각을 잊게도 한다. 그래서, 세상만사는 사실 이렇게 공평하다고 할까..

육체적인 건강에 맞먹는 정신적인 지루함.. 이런 문제를 푸는데 제일 효과적인 것 중에는 ‘집을 떠나는 여행’ 같은 것이 있지만, 사실 우리 부부는 남들처럼 여행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편이다. 그 돈과 시간이면 더 나은 다른 방법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은 적지 않은 시간이 새로운 Insurance 찾는데 에 ‘허비’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조금 화가 나기도 한다. 4월 중에 renew, expire가 되는 Home, Auto insurance의 premium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오른 것을 알고, 매년 하던 대로 자동적인 renewing을 할 수 없었다. 오랜 세월 동안 claim하나도 하지 않은 것이 ‘병신’ 취급을 받았거나 ‘죄’가 되었는지 완전히 ‘봉’으로 여기는 것 같아서 이번에는 ‘무조건’ 다 갈아 치우기로 하고 다른 곳을 알아보니, business 중에서 insurance business model은 다른 것과 아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정말 실망감을 금할 수 없었다.

한마디로 현재 이 분야는 seller’s market인 것이다. 소비자가 거의 ‘구걸’하다시피 하며 ‘물건을 사는’ 곳이다. 우리의 auto insurance는 원래 GEICO에서 Liberty Mutual로 좋은 조건으로 바꾼 지 거의 10년 만에 엄청 오른 것 알았다. 우리는 차 사고, speeding, claim이 완전히 zero인데 어떻게 그렇게 올랐을까? 이것은 완전한 mystery였다. 다시 GEICO로 바꾸었더니 premium이 완전히 1/3로 줄었다. 이런 해괴한 일이 세상에 어디에 있을까?

이래서 나는 insurance business를 거의 ‘사기 집단’으로 보게 되었다. 처음에 싸게 해주고 시간이 가면 ‘무조건’ 값을 올리는 방식이다. 부지런하지 않으면 십중팔구 손해를 보는 case다. 앞으로는 1년에 한번씩 다른 곳을 알아보며 주의를 하기로 했지만 솔직히 자신이 없다. Home Insurance도 거의 마찬가지였다. 다른 곳을 찾아보니 현재의 것보다 훨씬 싼 것이 아닌가. 이래서 주변에서 말하는 대로 insurance는 일년 마다 다른 곳들을 알아보아야 한다는 말을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4월, 그리고 노래들..

Nasty, bone-chilling, dreary, surreal..우아~ 올 봄은 참 유난스럽다. global warming이 무색하게 global chilling이 더 자연스럽게 들릴 정도가 아닐까.. 작년 3월 말을 자꾸 기억함은 그 당시의 ‘찬란했던 꽃나무들의 향연’ 과 지금이 너무나 대조적이기 때문이다. 일주일 전에 ‘이제는 설마..’ 하며 space heater를 부지런히 closet 속으로 퇴각을 시켰고, 침대의 무겁던 이불도 가벼운 것으로 바꾸어 놓고, 조금씩 겨울 옷들도 눈 여겨 보고 있다가 결국은 오늘 bone-chiller를 다시 만난 것이다.

싸늘한 비바람에 채 피지도 못한 배나무 꽃망울들이 처참하게 떨어진다. 게다가 올 2~3월의 평균을 밑도는 기온은 아마도 ‘무지하게 더운’ 봄과 여름을 예상케 한다. Mother Nature의 연 평균기온은 거의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이건 조금 우울한 뉴스가 아닐까?

 

채 못핀 꽃나무들이 숨을 죽이고 있는 2013년 봄

4월은 조금 어깨를 무겁게 누르는 것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tax return chore, home-association due, ‘big’ insurance dues.. 모두 $$을 ‘빼앗아’ 가는 것들 뿐이라 정말 즐겁지 않은 것들이다. 하지만 이것이 ‘인생’이 아닌가.. 내야 할 것은 내야 하는 것이. 4월 7일 일요일은 작년부터 생각하며 지나게 된 ‘자비의 주일’이다. Divine Mercy Sunday.. 폴란드 출신 성녀 Faustina가 예수님께 ‘직접’ 지시를 받았다던 그 자비의 기도를 줄줄이 생각하게 하는 그 날이다. 이 날을 향한 9일 자비기도를 우리는 묵주기도가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하게 되었는데, 거의 일년 만에 하는 것이라 처음에 생소했지만 곧 익숙하게 되었다.

그 다음 주일 4월 14일에는 월례 꾸리아 월례회의가 있어서 몇 달 전부터 시도한 ‘한 달에 한 번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미사참례’ 를 할 예정이다. 아주 조심스레 ‘고향’을 찾는 기분으로 시작을 했지만 아직도 ‘100% 한국식 미사의식’이 ‘신기하고 생소’하게 느껴짐을 부정할 수가 없다. 물론 처음보다는 조금 익숙해졌다고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날은 multitasking의 기분으로 ‘오래된 형제’ 설재규씨를 만나기로 해서 더욱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 다음 주일 4월 21일, 우리가 속한 레지오 전체가 가까운 곳에 위치한 park로 ‘야외행사’를 가는 날이다. 말이 야외행사지만 사실은 picnic에 가까운 것이 비록 ‘레지오 의식’으로 시작은 하지만 결국은 친교를 위한 ‘여흥’인 것이다. 작년에 나는 처음으로 참가를 했는데, 청년 단원들이 아주 조직적이고 재미있는 program을 준비해 와서 아주 즐거웠던 기억이다. 날씨도 참 화려했었는데, 올해는 어떨까.. Shelter가 있으니까 최악의 사태에 대한 걱정이 없어서 다행이다.

4월부터 6월 초까지는 사실 부활의 연장에 있는 사실 ‘즐거운’ season이고 특히 5월 한달.. ‘성모성월‘이 도사리고 있어서 이제는 예전처럼 크리스마스가 있는 12월보다 더 나를 포근하게 만든다. 참.. 나도 많이 변했다. 그래서 또 되 뇌 인다.. Never Say Never라고..

4월이면 생각나는 노래가 있다. 매년 듣는 것으로 상고사적 때, 중앙고 음악선생님 김대붕 담임 선생님의 애창곡 ‘이대교수 김순애‘ 작곡, 박목월 시인 작사 ‘4월의 노래‘.. 그리고 그보다 훨씬 전에 기억에 남아있던 Pat BooneApril Love.. 우리 가곡 4월의 노래는 정말로 우리가 느끼는 그 옛날 고국산천의 4월을 연상케 하고, Pat Boone 것은 이곳에 오래 살면서 배어온 이곳의 정취를 느끼게 하고.. 나는 과연 어느 곳에 있는가..

 

 

April LovePat Boone, 1957

 

‘목련꽃 그늘 아래서..’, 4월의 노래

꽃샘 추위, 아치에스, 판공성사

¶  꽃샘 추위   3월 25일, 어제는 Palm Sunday였고 드디어 2013년 성주간이 시작되었다. 이번 주에 ‘그 것’이 모조리 있는 것이다. Easter or Paschal Triduum이라고 불리는 성삼일(Holy Thursday, Good Friday, Easter Vigil)에 이어 부활절 일요일.. 조금 생각만해도 숨이 찬 기분이랄까.. 하지만 이것이 바로 우리들이 모두 일년 내내 기다리던 그 때가 아닐까?

십자가 수난과 부활이 없다면 사실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그런 성주간에 다시 ‘겨울’이 찾아왔다. 아니, 사실 지나간 2월 달이 1월 보다 더 추웠고, 지금의 3월 달이 2월 달보다 더 춥다. 오늘은 낮 기온이 화씨 40도(섭씨 5도?)도 안 되는 듯하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세상일까? 옛날 옛적 서울에서 살 때 이것을 ‘꽃샘’ 추위라고 했지만 지금 것은 조금 다르다고 할까.

제일 큰 ‘희생물’은 봄을 기다리던 꽃나무들이다. 찬란하게 초봄을 알리던 수많은 꽃, 나무, 잔디들.. 모조리 거의 ‘잠잠’하다. 아니 불쌍할 정도다. 작년을 생각해보니 너무나 대조적, 정말 찬란한 작년 3월 말을 기억하니까.. 방방에 놓여있는 space heater를 ‘거의’ 치우려고 했는데, 그랬다면 정말 큰 실수를 한 것이다. ‘동복’들도 고스란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아마도 아마도 부활절, 4월 초가 되면 정말 봄이 오지 않을까?

 

acies-2013¶  아치에스(Acies)   지난 일요일 3월 17일에는 일년에 한번씩 있는 레지오의 주요 행사중의 하나인 ‘아치에스’ 행사가 열렸다. 아치에스, Acies라는 말은 라틴어로 로마시대 군대의 전투대형을 뜻한다. 레지오 마리애 조직의 원형이 로마 군대의 것을 따랐기에 이것도 그것의 일부인 것이다. 비록 군대식으로 조직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조직의 운영에 대한 것이다. 조직의 힘을 모으려면 역시 군대식이 최고일 것이다.

그래서 일년에 한번 거의 군대식으로 모두 모여서 ‘충성 서약’을 하는 것인데, 올해로 나는 세 번째 이것을 맞이한다. 지난 2년 동안 참가하고 보면서 느낌이 참 신선하고, 무엇엔가 끌려들어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쉽게 말해서 우리의 총 사령관이신 성모님께 충성을 서약하는 것인데, 평소에 잘 못 보던 동료 단원들을 이곳에서 모두 보게 되는 것도 그렇고 함께 묵주기도를 하는 것은 아주 감동적이기도 했다.

 

¶  부활절 판공성사   판공성사, 고백성사, 고해성사.. 이름도 다양하다. 이것은 가톨릭 교회에서 말하는 7성사 중의 하나인 ‘성사’다. 그 중에서도 이것은 가톨릭만이 ‘자랑’하는 아주 독특한 것이고, 제일 인기가 없는 성사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어찌 안 그렇겠는가.. 자기의 ‘치부, 부끄러운 곳’을 ‘남에게’ 드러내야 하는 것이니. 영화에서 보는 듯이 그렇게 dramatic한 것도 없고, 대부분 일상생활에서 야기되는 ‘꽤 죄죄’한 이야기들을 어떻게 고백을 할 것인가?

이 성사를 교회에서는 최소한 한 달에 두 번을 하라고(보라고) 하지만 과연 그렇게 따르는 모범신자들이 많이 있을까? 하기야, 주일미사를 빠질 때마다 이 성사를 보는 교우를 보기는 보았지만, 그것은 예외에 속할 듯 하다. 내가 본 많은 사람 중에는 ‘전혀’ 하지 않는 사람부터 시작해서, 일년에 중요한 때 (부활, 성탄 같은) ‘겨우’ 보는 사람들.. 그렇게 이것은 사실 부담스러운 것일까.

하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는 듯하다. 괴롭게 느껴지는 ‘죄’는 고백을 하면 시원하게 느껴질 것이고, 분명히 사제는 주님을 대신해서 ‘용서’를 하신다. 그러니까 고백성사를 하는 것은 정말 괴롭고 어려운 것이지만 이것을 마쳤을 때의 ‘환희’는 어디에도 비교하지 못한다.

이것을 조금이라도 기억을 하며 다시 성사를 준비하고 한다. 이것이 이 성사의 매력이라고 할까? 나는 최근에 신앙의 르네상스를 맞이하며 일년이 최소한 2~3번은 간신히 유지하고 있고, 사실 나는 이것도 자랑스럽다. 특히 어둡기만 한 고백소에서 하는 것을 피하고 ‘대담하게’ 신부님의 사무실에서 면담하는 식으로 한 것이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올해 부활절 판공성사는 지난 목요일에 ‘가족행사’로 보았다. 연숙의 대녀님인 권 모니카 자매를 대동하고, 게다가 올해는 오랜 지인 설재규씨가 합류를 해서 4명이 같이 보게 된 것이다. 지난 일년간 성사를 못 보았다던 설재규씨가 참가한 것은 나에게 신선한 즐거움으로 느껴졌고,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같이 하게 될 수 있을 것을 꿈꾸기도 했다.

20 years ago, Storm of the Century

Storm of the Century최근에 ‘요상한 기후’에   대해서 연숙과 얘기를 하다가 문득 storm of the century란 것을 기억했다. 일명 super storm이라고도 했다. 문제는 그것이 언제였나 하는 것이었다. 일종의 ‘치매 예방’ 기억력 test였다. 나에게 제일 알쏭달쏭한 것이 지나간 10년에서 20년 전 일들의 기억이다. 각가지 연상technique를 동원해서 아마도 1992년에서 1994년 사이일 것이라고 일단 결말을 지었다. 그 super storm이 온 것이 3월 이때 쯤인 것도 기억했다.

문제는 100% 자세한 것이 어떤 것일까.. 1992년은 우리가 현재의 집으로 이사 온 해였고, 장모님과 나의 절친한 친구, 지금은 타계해서 없는 김호룡 식구가 거의 같은 때에 우리 집에 온 해이기도 했다. 1992년 3월 1일에 이사를 왔는데, 곧 이어서 이 super storm이 온 것 같지는 않았다. 1994년을 생각해보니 여름에 누님의 아들, 준형이가 다녀갔던 것 이외에 별로 특별한 것이 없었다. 결국은 1993년임을 알았다.

나의 제일 큰 문제는 이 1990년대의 기억이 제일 희미하다는 것이다. 아마도 기억해내기 싫었다는 간접적인 증거가 아닐까도 생각을 했다. 그만큼 큰 기쁨이나 즐거움, 그렇다고 특별한 괴로움도 없는 그런 세월을 보낸 것이 아니었을까.. 한마디로 ‘세파’속에 휩쓸려 간 듯한 그런 10년간인 듯한 느낌인 것이다.

고국이나 이곳이나 그 나이쯤이면 ‘샐라리맨’의 다람쥐 쳇바퀴 도는 그런 생활을 많이 보내니까 사실 이상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이런 커다란 기후에 관한 사건들은 기억이 난다. 게다가 그때에는 VCR, video (cassette) recorder가 한창 유행할 때여서 그런 것들의 기록도 남아있어서 기억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조금 더 알아보니 그것은 1993년 3월 13일, 토요일의 일이었다. 사실 그 당시의 일기예보는 그렇게 ‘자신 있던’ 것이 아니었던 것이, 미리 커다란 ‘경고, 경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거의 생각도 없이 아침 10시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얼어붙는 눈보라’ 에 그냥 당한 것이다. 다행히 토요일 아침이라 교통에 관한 문제는 별로 없었다. 그냥 퍼 붙는 눈보라를 집에 틀어 박혀서 ‘즐긴’ 것이다. 그 전날만 해도 봄 같은 포근한 날이 어떻게 그렇게 하루아침에 변할 수 있을까? 예보, 경보도 그렇게 없이..

하루 종일 강풍과 함께 쏟아진 얼어붙는 눈에 나무들이 하나 둘씩 쓰러지기 시작했고 전기도 나가기 시작하고.. 길은 완전히 얼어붙고.. 이곳 지역은 완전한 시베리아를 연상하는 광경으로 변했다. 다행히 우리 집의 전기는 나가지 않아서 하루 종일 TV앞에 앉아서 뉴스를 보게 되었다 덩치가 큰 소나무가 쓰러지면서 우리 집 drive-way를 가로막았다. 그러니까 나중에 차가 나갈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오후가 되면서 무슨 요란한 소리가 나서 밖을 보니 남자 몇 명이 power chainsaw로 우리 집의 쓰러진 소나무를 잘라서 치워주고 있었다. 동네에 사는 ‘마음 좋은 아저씨’들이었다. 동네를 돌면서 우선 급한 것들을 치워주고 있었던 것이다.

TV 뉴스에서는 이번의 snow storm은 ‘아마도’ super storm, storm of the century정도로 monster 급이라고 했다. 멕시코 만에서 시작된 사상 최저기록의 저기압과 북쪽에서 하강한 cold front가 ‘완전히’ 결합이 된 그야말로 perfect storm이었다. 결국은 이 system은 우리가 사는 Georgia를 거쳐서 northeast의 덩치 큰 도시들로 갔고 그곳의 피해는 엄청난 것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그것은 엄청난 것으로 느껴졌지만, 2000년대가 지나가면서 그때의 것은 별로 큰 것이 아니었다. 점점 더 큰 monster storm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때 찍어둔 video tape을 본다. 그러니까 정확히 20년 전 우리 집 주변이 남아있고, 그 눈 속에서 ‘신나게’ 놀던 우리 집 두 아이들.. Wisconsin에서 이사온 것이 불과 몇 년 전이라 그 추운 곳에서 타던 ‘썰매’와 겨울 옷들을 다시 꺼내어서 아주 요긴하게 쓰기도 했다.

큰 애 새로니는 Ohio와 Wisconsin에 살 때 경험했던 눈과 얼음으로 그다지 생소하지는 않았겠지만 작은 애 나라니는 거의 기억이 나지를 않는지 신기하게 눈과 얼음을 바라보며 썰매를 탔다.

그 당시 나는 비교적 젊었던 45세.. 와.. 정말 젊었다.. 피곤을 모르며 직장생활(‘embedded software’ engineer at Automated Logic Co)을 했고, 연숙은 home-based business, housewife, mom, PTA등으로 시간을 보낼 때였다. 신앙적으로는, 유일했던 한국본당에 ‘대 파란’이 나던 때여서 아마도 그 근처에 가지도 않던 ‘신앙적으로 암울한 시기’였다.

당시는 Internet이란 것이 아주 미미하게 보급이 되고는 있었지만 지금 보는 것 같은 graphical web browser가 없어서 일반인에게는 그런 것은 ‘학교에서만 쓰는’ 그림의 떡이었다. Email은 직장이나 학교 내에서만 쓸 정도고, PC 는 Microsoft Windows 95 전의, 조금은 원시적이었던 Windows 3.x이 전부였고, 지금 쓰는 cellular mobile phone도 없었던 그런 시절이었다.

아틀란타 올림픽이 열리기 3년 전이었던 그 당시 이곳에 한인의 인구는 현재에 비하면 아주 미미한 편이었다. 생각해보니 그 동안 참 변한 것이 많았지만 제일 ‘충격적인’ 것이 내가 40대에서 60대가 되었다는 ‘자명한’ 사실.. 어떻게 그런 ‘자연스러운 변화’가 충격으로 느껴지는가.. 그것은 생생하게 뇌리에 남은 20년 전 1993년 3월 13일을 회상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2월 중순, 와~ 춥다..

¶  2013년 2월도 반을 넘기고 이제 겨울과는 아주 멀어진 듯한 날씨에 익숙해지더니, 역시.. 자연의 ‘엄마’, mother nature는 못 말리나? 예고도 거의 없이 하루아침에 영하..로 그것도 낮 기온이 영상을 간신히 유지하는 싸늘함, 역시 아직도 춘분이 공식적인 봄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듯하다.

모처럼 한가한 날 들을 맞이하고 있지만, 이런 날이 계속되어도 문제다. 사람은 역시 몸이고 마음이고 계속 움직여야 사는 것이니까. 2013년 사순절이 지난 수요일에 Ash Wednesday(재의 수요일)로 시작이 되었지만, 사실 우리의 매일 routine이 크게 바뀐 것이 거의 없다. 지난 일년을 거의 사순절처럼 살려고 해서 그런가.. 이건 너무 자화자찬일 것이지만. 커피도 계속 마셔대고, 즐기던 것을 끊은 것도 별로 없는 것 같다.

올해의 사순절에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성취’할까.. 이것이 계획으로 이루어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지만, 그래도 성 루도비코 마리아의 33일 봉헌 과정에 다시 한번 도전해 볼 마음은 아직도 있다. 2월 20일부터 시작이 되니 만큼 아직도 생각해볼 여유는 있다. 지난 해 바쁘고 힘들었던 한 여름에 열심히 33일 과정을 거쳤고, 그 후에 내가 느꼈던 것이 생각보다 훨씬 좋았지만, 알았던 것 보다 의문과 생각할 것들이 더욱 많아졌음을 알았고, 역시 다시 한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기에 또 역시, it’s now or never의 정신으로 도전해 볼까..

 

¶  요즈음 내가 즐기며 시간을 죽이는 것이 있다면 역시 computer system hacking정도 밖에 없을 것인데, 그 중에서도 요새 나의 관심은 mobile OS, 그 중에서도 Google의 Android (on Nexus tablets, mobile phones) ecosystem이 제일 관심이 간다. 지난 가을에 연숙 생일 때의 선물이 Google의 Nexus 7 tablet이었고, 올해 들어서 우리 가족이 family plan으로 T-mobile Samsung Galaxy phone으로 바꾼 뒤에 그 쪽으로 관심이 간 것이다. 두 system 모두 Android system이어서 이것 하나만 익히면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을 듯하다.

이런 것들이 요새 들어서 워낙 바쁘게 변하고 있어서 하나를 배우면 2~3년 만에 ‘고물’이 되어 버린다. 이런 것들 모두 한마디로 embedded computing device들이고, 이것을 지난 25년 넘게 ‘직업적으로 만들어’ 온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감회가 깊다.

 

¶  정말 오랜만에 김인호 형으로부터 email이 왔다. 지난 연말 연시 때 연락이 되지를 않아서, 혹시 아프신가.. 아니면 세계일주 여행을 가셨나 했는데, 자세한 것은 모르겠지만 그 동안에도 계속 ‘연구’만 하신 듯, ‘김인호의 경영, 경제 산책‘이라는 장문의 column을 쓰셨고 그것의 web links(1, 2, 3, 4)도 같이 보내 주셨다. 잠깐 읽어보니 경영, 경제 쪽의 전문용어들이 많이 나와서 그런지 나에게는 모두 생소한 것이 많았다.

나의 ‘경제, 금융’ 등에 대한 일반적인 인상이 대부분 부정적이어서 더 그렇게 느껴졌을 것이다. 전문 용어를 제외하면 이런 평론의 논지는 짐작이 간다. 우리 세대 (인호 형은 나보다 조금 위지만) 입장의 경제, 경영론이겠지만, 그런 매체에 실린다는 사실은 세대에 구별되지 않는 보편성이 있다고 생각이 된다. 형만 동의를 한다면 그 평론들을 나의 blog에 전재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  2월 중순에 느끼는 으스스한 추위와 ‘라디오엔 대설주의보, 남쪽엔 꽃 소식, 영동 산간 지방의 때아닌 폭설.. 하나도 아까울 것 없는 세월’을 얘기하는 김재진 시의 구절이 멋지게 어울리는 그런 날이었다.

 

세월

김재진

 

그런 잠 있었네. 낮고 흥건한

간다던 이 가고 없는

빈방에 불 켜놓고

후회없이 자리라 저녁 거르고 누운

라디오엔 대설주의보

남쪽엔 꽃소식 분분한데

영동 산간 지방엔 때아닌 폭설

환한 이마 찌푸린 채

가고는 오지 않을

아니면 오고는 가지 않을

그러나 사실은 가든지 말든지

아까울 것 없는 세월

하나도 아까울 것 없는 세월

때로는

잘 나가던 시절의

해 놓고 지키지 않던 맹세 따라

가리라 가리라 노래하다 못간

그런 날 있었네.

품팔던 사람들 돌아오는 길목마다

소리없이 타버린 심지처럼

버려야지 버려야지 마음먹다 울던

그렇고 그런

그래서 그런

낮고 흥건한 세월 있었네.

 

 

¶  40년 전 이 맘 때는 무엇이었을까? 그러니까 1973년.. 그 해 6월에 나는 나를 25년 동안 품에 안아주었던 고향산천을 등지고 미국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뒤는 나의 긴 이어지는 역사가 되었다. 돌이켜보는 나의 마음은 어쩐지 슬프기도 하지만, 그 때는 희망과 낭만의 쌍곡선의 연속이었고, 그 당시의 추억은 역시 우리의 등대 pop song에 고스란히 얽혀있다.

그 당시에 어떤 것들이, 그 중에서 Lobo의 노래들은 쓰레기 같은 많은 것들에 눌려서 오랜 동안 숨어있었다. 다시 들어도 그것은 역시 ‘명곡, classic’이라고밖에 볼 수가 없다. Don’t expect me to be your friend, Me and You and a Dog named Boo.. 정말 정말 오랜만이다!

 

 
Don’t Expect Me To Be Your FriendLobo 1973

 

 
Me and You and a Dog Named BooLobo 1973

Groundhog Day, 2013

Movie, Groundhog Day, 1993
Movie, Groundhog Day, 1993

무려 12시간의 잠에서 깨어난 후 달력을 가만히 보니.. 오늘은 2013년 2월 2일 토요일, 가톨릭 전례력으로 ‘주님 봉헌 대축일(The Presentation of the Lord)’.. 그 밑에 조그만 글씨로.. Groundhog Day가 보인다. 아하! 또 일년이 흘렀구나 하는 신음이 섞인 소리가 나의 귀를 울린다. 일년이 지났다 함은 작년 이날을 그날에 관한 나의 blog이 생각이 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난 밤에 12시간을 잤던 이유가 희미하게 떠오른다.

마치 1993년 미국영화 Groundhog Day를 다시 보는듯한 기분이었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어제 같고, 일년전이 오늘 같고 오늘이 일년 전 같은 comedy같은 느낌, 그런 생활과 느낌으로 나는 근래를 사는지도 모를 일이다. 12시간을 잤던 것은 몸과 마음이 ‘완전히’ 피곤해서 그랬는데, 결과적으로 ‘현재에서 도망가고 싶은 마음’을 강하게 느꼈기에 그런 생각에서도 도망하고 싶었다. 그것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잠을 자는’ 것 밖에 없었다.

작년의 Groundhog Day를 생각하면서, 같은 이름의 영화 Bill Murray주연의 그 영화를 또 보고 싶었다. 작년에 ‘분명히’ Crackle.com에서 그것을 free로 하루 종일 보았던 기억에 그것을 찾았지만.. 불행히도 그것은 이미 ‘사라지고’ 없어졌다. 아마도 다른 site (hulu, netflix) 에 가면 paid-movie로 볼 수 있을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보고 싶지는 않았다. 작년 그때에 하루 종일 보았기에 나의 뇌리에 그 story와 scene들은 사진처럼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가 인생의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삼라만상의 ‘주기적, 반복적’인 것들과, 그 나머지 것들: 즉, 시간의 일방성 (절대로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음), 생명의 생겨남과 사라짐 같은 철학적, 신앙적 차원의 것들도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각자의 최선’을 추구하며 하루 하루 사는 것이 제일 ‘멋있다’ 는 것도 이 영화를 통해서 느낄 수 있다.

Punxsutawney Phil, 2013
Punxsutawney Phil, 2013

올 겨울은 비교적 따뜻한 편이라고 할까.. 겨울답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home-heating에 많이 $$을 쓰지 않아 좋기는 하다. 그리고 조용한 편인데, 큰 눈과 강풍 같은 것이 ‘아직까지’ 없었기 때문이다. 올해 Groundhog Day에서 남은 겨울의 날씨, 아니 봄까지 얼마나 남았나 하는 것이 어떻게 ‘예보’가 되었을까?

Groundhog이 봄 예보를 하는 것은 너무나 간단하다. 이날 이 ‘두더지’가 ‘밖’으로 나갔을 때, 자기의 그림자를 보게 되면 6주일을 기다려야 봄이 온다는 것, 겨울이 아직도 많이 남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봄 예보를 할 수 있는 groundhog은 ‘전통적’으로 (이제는 공식적으로) Punxsutawney Phil 로 이름이 된 두더지가 Punxsutawney, PA (펜실베이니아 주, 펑스토니 마을)에서 거의 festival같은 분위기와 수 많은 ‘관광객’들이 모인 자리에서 하게 되는데, 위에 말한 영화 덕분에 방문객의 숫자가 거의 곱절로 늘었다고 한다.

이 ‘두더지’전통은 옛날 옛날 옛적부터 독일에서 시작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들이 나중에 많이 정착했던 곳이 펜실베이니아 지방이었기에 그곳에서 100년도 전에 시작을 했던 것이고, 그런 행사로 $$$까지 벌게 되었으니, 참 재미있지 않은가? 12시간을 자야만 했던 올해의 Groundhog Day, 내년에는 제발 그렇게 자야만 했던 이유들이 ‘재탕’ 되지 않았으면.. 그곳에 사는 ‘두더지’에게 빌어 볼까나?

A Day in the Life, November 2012

2012년 11월이 한창이었던 11월 14일경, 오랜만에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나의 Olympus digital camera  를 손에 들었다. 그 동안 이것을 잊고 살았던가.. 어떤 ‘모습’이라도 이곳에 담아야겠다는 초조함을 느낀다. 밖을 보니 찬란하게 절정을 향한 아틀란타의 가을하늘.. 반세기전, 어린 시절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서 삼청 공원을 향한 북악 줄기의 짓 푸른 가을 하늘을 반 상상,반 회상을 한다. 반 세기전의 그때는 서울의 도심(강남, 한강 아래가 완전히 논과 밭이었을 때)에도 그렇게 공해가 심하지 않았다. 아마도 지금 아직도 숲에 쌓여있는 이곳 아틀란타의 푸른 하늘이 그때 당시의 것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비교적 큰 사건 같은 것이 없었던 밋밋한 시간들 속에서 나의 생각을 사로 잡았던 것들은 어떤 시시한 것들이었을까? 아마도 5년+ 역사를 자랑하는 ‘걷기’, 아니 ‘개와 같이 걷기’를 빼어 놀 수 없을 것이다. 2006년 사랑하는 처 조카 수경이네(대현이 엄마)가 고국에서 놀러 왔을 때 그것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간신히 걷기 시작한 대현이를 우리 subdivision의 가파른 언덕에서 불호령을 하며 걷게 하던 그 이후부터 나는 ‘혼자서’ 매일 걷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이르렀다. 15년 전 우리 집을 다녀갔던 원서동, 재동학교 죽마고우였던 안명성이 나보고 걸으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갔지만, 그때서야 걷게 된 것이고, 지금은 완전한 습관이 되어서 우리 집 깡패 강아지 Tobey를 걷게 하면서 같이 나도 걷는다.

4계절이 뚜렷한 이곳, 걸으며 4계절을 보고 느낀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 중에서 제일 차분하게 아름다운 때는 역시 늦가을이 아닐까? 영롱한 빛깔들과, 장엄하게도 느껴지는 낙엽들.. 인생의 가을을 느끼게도 하는 그 낙엽들을 보며 또한 변하는 것과 변치 않는 것을 생각한다. 집 주위를 걷다 보면 꼭 playground를 지나게 되고 그곳에는 간단한 그네, 미끄럼틀 같은 것이 있고, 근래에는 물기만 없으면 그곳에 올라가 Tobey 와 함께 누워버린다. 짓 푸른 하늘이 우람한 단풍나무들 속으로 보이고 나는 이곳에서 꼭 묵주기도를 계속한다. 이것이 요새 나의 일과요 즐거움 중의 하나가 되었다. 묵주기도가 즐거움이라면 좀 비약적인 것으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 되었다. 그래서 인생은 재미있다고 할까?

요새 나의 머리 속은 어떤 것들이 생각되고 있을까? 일주일도 더 지나간 미국의 대통령선거.. (이것을 대선이라고 하던가) 막상막하, 손에 땀을 쥐게 하리라는 예상을 뒤엎고 바락 오바마(참 그 이름 한번 요상하다) 쉽게 재선이 되었다. 압승은 아닐지라도 그 정도면 뒤에 군말들이 없을 정도로 깨끗이 이긴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이번 선거야 말로 제3의 인물이 갈망되던 때였을까.. 생각한다. 또 다르게 이름이 요상했던 ‘밋 롬니’ (아니면 밑 롬니인가?).. 무언가 참 답답한 인물이었다.

지지 않으려면 견해와 입장을 1초도 되지 않아서 바꾸는 사람, 도대체 그의 속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 하는 것 보다 더 답답한 노릇이었다. 그와 반대쪽에서 지나치게 약자의 쪽에 서서 ‘정 많고, 따뜻하게’ 보이려 안간힘을 쓰다 못해서 나중에는 여자는 여자끼리, 남자는 남자끼리 살림 차리고 아이를 낳는 것 ‘완전히 OK’ 라고 선언을 했던 불쌍한 현직 대통령.. 그렇게 까지 해서 연임을 하고 싶었을까?

차별 당하는 그들 (동성애)..을 법적으로 보호하는 것과 그것도 ‘문제 없다’고 말하는 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임을 어찌 그가 모르겠는가.. 하지만.. 하지만 권력의 유혹은 사실 뿌리칠 수 없을 정도였나 보다. 이제는 성숙해진 나의 신앙 체계에 이것은 말도 안 되는 ‘개소리’ 였다. 이것은 종교계를 ‘보호’ 한다는 공화당 극우론자들이 다 망쳐놓은 결과다. 정치와 종교가 섞이게 되면 이런 비극이 나오는 것이다.

얼마 전부터 새로니가 집을 사려고 realtor와 집 구경을 시작했다. 그 애의 월급으로 단독주택은 어림도 없지만 condo는 ‘사정거리’에 있고, 부동산 경기가 완전히 죽었던 여파로 여건이 좋았나 보다. 우리와 같이 임시나마 살고 있는 것이 어찌 불편하지 않을까? 그것은 완전히 상호적인 것이다. 우리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 큰 자식과 사는 것.. 이제야 힘든 것을 절감한다. 세대 차이는 그렇게도 골이 깊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놀러 갈 수 있는 정도의 거리를 두고 따로 사는 것이라고 누누이 들어왔는데 이제는 200% 동감을 한다.

11월은 가톨릭에서는 전통적으로 ‘위령의 달’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돌아가신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를 하고 생각을 하는 한 달인 것이다. 그래서 지난 11월 3일에 우리가 사는 마리에타에 있는 한인 공원묘지에서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하태수 미카엘 주임신부님의 집전으로 위령미사가 있었다. 올해에는 우리부부도 11월 한 달 동안 매일 우리의 돌아가신 부모님들의 영혼을 위한 ‘연도’를 하기로 하고 이미 시작해서 위령미사는 비록 처음이었지만 그다지 낯설지 않았다.

10여 년 전에 만들어진 한인 공원묘지.. 그 동안 참 많은 한인들이 이곳에 묻혔음을 보게 되었고, 2002년에 교통사고로 갑자기 떠나신 평창이씨 이주황 선생님(이만수 군의 아버님)의 묘소도 그 이후 처음으로 보게 되었고, 7월 말에 선종하셨던 레지오 친구, 은요안나 자매님의 묘소도 다시 보게 되었다. 이렇게 매일 연도를 하게 되었는데, 그렇게도 ‘지루하고 이상하였던’ 연도.. 돌아가신 부모님께도 좋았겠지만 이것을 하는 당사자인 우리가 더 위로를 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제는 이런 통상 기도를 진심으로 믿게 되었고, 반드시 이런 것들이 의도하고 있는 대로 영혼들에게 전해 질 것이라는 것도 믿는다. 이것이 올해 11월 위령의 달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일 것이고, 우리들의 부모님들.. 이정모, 양점순, 전현찬, 김유순.. 아버지, 어머니, 장인, 장모님.. 연옥의 고통이 그치고 영원한 평화의 나라에 들게 됨을 계속 기도하며 깊어가는 가을을 맞는다.

 

Rosary under deep Marietta Autumn sky

묵주기도, 빛의 신비를 누워서 하기에 알맞는 깊은 가을 집 근처의 playground에 있는 그네에서

Autumn leaves near swimming pool

왁자지껄 시끄럽던 수영장, 테니스 코트는 적막 속에 잠기고 사람들 대신 가을의 선물, 황금 색의 낙엽들만 딩구르는 깊은 가을..

 

대구의 불볕 더위

heat wave, 2012
6월 마지막 날의 대구같은 더위

“대구 같은 더위”가 최근 이 지역에 들이닥쳤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3자리 숫자의 더위, 그러니까 화씨 100도, 섭씨로 36도 쯤 되나.. 심리적으로 이 세자리 숫자는 꽤 으스스한 효과가 있다. 시원하게 올해 초여름을 즐겼지만, 이제는 그것도 끝이 난 듯하다. 다행히도 이번의 불볕은 습기가 별로 없는 듯해서 견딜 만한데, 이것은 아마도 미국 Southwest, 그러니까 미 남서부 ‘아리조나’ 주 지역 같은 더위일 것이다.

오래 전부터 이 3자리 숫자의 더위는 까마득히 오래 전 대한민국 대구를 생각하게 한다. 좀더 자세히 기억하면 1972년 쯤이었나.. 그 해 여름은 한반도가 전체적으로 무척 더웠다. 에어컨이 나오기 시작할 무렵이었고, 서울의 기온도 34~5도까지 올라갔는데, 그 해 처음으로 ‘습기’를 동반한 ‘찜통’ 더위가 며칠 계속되었고, ‘난생 처음’으로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었던 기억이다.

당시에는 사실 조금 ‘겁’을 먹기도 했는데, 그것은 잠을 잘 수가 없었고, 어디 도망을 갈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추우면 무언가 덮고, 입고 하면 될 터인데, 이렇게 견딜 수 없는 더위에는 어찌할 것인가? 해답은 물론 ‘신비의 이기’, 에어컨에 있었지만, 실제적으로 그것은 당시의 경제수준에는 그림의 떡이었다. 그 1972년 이후로 나는 사실 지독한 더위를 ‘무서워’하게 되었다. 쉽게 말하면 추운 것이 더운 것 보다 낫다는 결론이 머리 속에 새겨진 것이다.

그 당시 대구의 더위는 어떠했을까? 당연히 그곳의 기온은 한반도에서 제일 높았다. 지형적으로 어쩔 수가 없다고 했다. 그 때, 대구에 잠깐 가게 되어서 처음으로 ‘대구 더위’를 맛볼 수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세자리 숫자의 더위였다. 섭씨로 36도 훨씬 이상이었을 것이지만 습도는 그리 높은 것이 아니었다.

그때 대구에서 느꼈던 ‘화덕’ 같은 공기를 오늘 처음으로 이곳에서 맛을 보게 되었다. 거의 똑같은 기분이었다. 절대로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지만, 습도가 없는 이 불 같은 공기는 사실은 생각보다 기분이 불쾌하지는 않았다. 요새 대구의 더위는 어떠할까? 서울보다 아직도 더 높을까? 1972년의 한반도 불볕 더위와 그 당시 대구에 살았던 ‘그 아가씨’도 오랜만에 기억한다.

Spring rain, soaker..

Atlanta metro soaking rain
Atlanta metro soaking rain

간밤에 근래에 듣기 힘들었던 소리를 들었다. 폭우.. 쏟아지는 물.. 잔잔하게 계속 내리는 비, 어둠 속에서도 봄비의 내음새가 코를 찌른다. 끈끈하게 느껴지기만 하고 실제로 내리지 않는 비를 기다리던 날들이 얼마나 되었던가.. 초봄에 시작된 우리 집 연숙의 자랑인 텃밭의 풍작도, 이 단비를 기다린 지 얼마나 되었던가?

그것이 어제부터 낌새가 봄비의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지만, 우리가 사는 곳은 기가 막히게도 피해가더니 결국은 아틀란타 메트로 지역전체를 휘감고 ‘물을 퍼붓기’ 시작한 것이다. 바로 이것이 단맛의 냄새를 내는 봄비였다. 이것을 한참 잊고 살았다.

 이 글의 아래 실려있는 youtube video, Spring Rain은 아주 오래 전 작을 딸애, 나라니, Veronica가 어렸을 때, Father’s Day때 나에게 선물로 준 sleep music series 의 하나인 audio cassette tape을 나의 없는 실력을 총동원해서 music video로 바꾸어 youtube에 올려놓은 것이다. 이곳의 image들을 모두 google image에서 실례를 한 것이고, Windows의 ‘공짜 프로그램’인 MovieMaker를 사용했다.

원래의 테입이 양면 (A와 B)으로 되어있어서 한 면씩 따로 copy를 해서 part 1과 part 2로 올려 놓았다. 이 ‘소리’의 특징은 자연적인 빗소리와 그에 걸 맞는 instrumental music을 절묘하게 섞어 놓아서 그야말로 sleep music 이름대로, 눈을 감고 이것을 들으면 촉촉히 대지를 적시는 봄비소리를 생각하며 잠을 잘 수도 있다.

오늘 New York Times의 기사에, 어떤 여론, 설문조사에 대한 것이 실렸다. 일반인들이 느끼는 기후에 대한 것인데, 이것은 조금 느낌이 새로운 것이, 자연 현상에 대한 여론조사? 이런 것도 있었나.. 하는 느낌이었다. 자연현상은 100% 객관적, 과학적인 것이 아니던가.. 이것도 사람들이 느끼는 ‘주관적’인 것이 상관이 되는가? 이 세계적 기후변화는 이제 과학적, 객관적인 것이 아니고 거의 ‘주관적, 정치적’인 화제로 변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특히 ‘병신같은 무지랭이‘ 일부 미국인들의 역할이 크게 작용을 한다. 과학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종교적인 것을 ‘거의’ 혼동하는 이 ‘병신같은 무지랭이, 일부 미국인 들’.. 완전한 희극의 절정을 보여준다. 그런대로 배웠다는 정치인 중에도 이런 부류들이 섞여있다. 그들의 출신지역의 ‘병신같은 유권자‘를 의식했을 것이다.

그러던 것이 작년에 그들이 실제로 보고, 느끼고, 겪었던 extreme weather로 조금 기세가 꺾인 것이 이번 여론,설문조사에서 들어난 것이다. ‘거의 대부분’이 이제는 기후,기상 system이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반응을 보인 것이다. 정말, 이런 한심하고 우매한 ‘병신’들이여..극소수의 ‘목소리가 큰’ 기상 과학자들.. 그들은 이제 어떠한 반응을 보일 것인가? 종교와 과학의 회색지대에 살고 있는 이들은 정말 위험한 부류의 인간들이고, 이들이 진정한 의미의 종교철학에 오명을 남기고 있는 ‘배반자’이라는 생각이 든다.

 

 
Spring rain, soothing sound of refreshing rain! 

 

Spring rain at our backyard

너무나 멋진 봄비가 뒷뜰에 내린다

4월 단상

¶  4월은 미국태생 영국 거장 시인 T.S. Eliot 에 따르면 ‘잔인한 달, April is the cruelest month‘, 그리고 대한민국의 작곡가 박순애 교수의 가곡 classic ‘사월의 노래‘를 생각하게 하는 그런 달이다. 사월의 노래를 생각하면 특별히 1963년 4월이 생각난다. 그때에 나는 서울 중앙고교 1년 재학 중이었고, 사월의 노래는 담임 선생님 김대붕 음악 선생님께서 가르쳐주신 노래였다. 작곡자가 이화여대 음대 김순애 교수라는 것을 강조하셨는데, 그 당시 그 이유는 몰랐지만, 혹시 김선생님과 무슨 특별한 관계가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 후에 들곤 했다.

1963년이면 그 전 해에 일어난 5.16 군사혁명으로 모든 것들이 ‘재건’의 구호 하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때였고, 사실 ‘느끼기에’ 비록 경제적으로 가난은 했어도 앞날이 희망적인 시절이어서 그 해 4월의 유난히 더 청명하던 계절과 함께 기억하고 싶은 때였다. 이곳 아틀란타 지역은 3월에 거의 ‘여름’같은 맛을 일주일 이상 보여 주더니 4월로 접어 들면서 완전히 2월 달 같이 거의 겨울 같은 날씨로 돌아섰다. 며칠 전에는 거의 섭씨 5도까지 떨어질 정도였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도 new normal의 하나라고 푸념을 하던데.. 확실히 무언가 변한 것 같다.

 

 

4월의 노래
김소월 시, 김순애 곡

 

¶  올해의 부활절에 이르는 기간은 정말 우리 부부에게 기억에 남을 만한 각가지 기록을 깨면서 보낸 정말 ‘은총’을 받은 듯한 기분으로 보냈다. 비록 나는 판공성사를 거르는 심각한 잘못을 하긴 했어도 다른 것들로 많이 보완을 했다고 믿는다. 그 중에서 지금은 거의 습관이 된, 매일미사 참례가 그 중에 가장 큰 보람이 되었다. 사순절이 시작되면서 화요일을 제외한 나머지 매일 우리의 미국본당 Holy Family Catholic Church에서 아침 9시의 미사를 본 것이다.

이것은 사실 연숙이 이번에 시도한 ‘33일 봉헌‘이라는 사순절 행사에 ‘도전’을 하면서 내가 옆에서 도와주는 것으로 시작이 되었다. 33일 봉헌이라는 것에는 매일 미사 참례를 ‘적극적’으로 권하기 때문이었다. 연숙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참 어려운 사람이라서 나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도 같이 갔는데.. 이것도 Never say Never 의 한 예가 아닐까 할 정도로 내가 미리 생각했던 것과 결과적 느낌이 아주 달랐다. 하루를 이 미사로 시작한 것이 너무나 하루를 보내는데 도움이 되는 듯 싶었다. 더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게 되었고, 하루 한번 꼭 밖으로 나와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 자체가 나에게 보이지 않는 힘을 주었던 것이다.

나는 ‘절대로’ 며칠 못 견딜 것이라 ‘단정’을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은 내 자신에 대한 지나친 과소평가였다. 이래서 매일 미사에 나오는 사람들이 그렇게 있구나 하는 생각 뿐이었다. 이것이 올해 사순절, 부활주일에서 가장 보람된 일이었고, 성3일도 빠지지 않아서 판공성사만 빼고는 거의 완벽한 성주간을 보낸 셈이 되었다. 이것이 우리 부부나 가정에 어떠한 영향이나 도움을 줄지는 ‘수학적’으로 계산을 할 수는 없지만, 이제는 신앙이란 것, 믿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야말로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다.

 

¶  아틀란타 혼또니 입빠이 제 2탄   믿을 수 없다. 정말 정말.. 혼또니 혼또니.. 이것이 바로 요새 유행어로 New Normal인가, New Frontier인가? 이곳 아틀란타의 ‘악명’을 하나 더 높일 사건에 우리들은 놀라기만 했다. 또 다른 한인 일가족 ‘총기 살인, 자살’ 사건이 터진 것이고, 이번에도 역시 우리가 아는 사람이 관련이 되어서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못했다.

이 사건들의 공통분모는 역시 ‘총’이란 것에 있다. 만약에 이것이 없었으면, 누가 알까.. 일본 같았으면 ‘칼’을 썼을 것이고, 오랜 전 같았으면 아마도 대판 주먹질을 하며 싸울 정도가 아니었을까?  이것도 New Normal 중의 하나로, 완전히 서부개척시대를 연상시킬 정도가 되었다. 불륜에서 비롯된 이런 사건은 사실 흔한 것이지만 이렇게 분에 못 이겨 그것도 여자가 총으로 분을 풀고 자살하는 case는 사실 그렇게 흔한 것이 아닌데.. 그것도 한인들이었고, 불륜의 주인공이 한때 우리가 잠시 알았던 50대 초반의 ‘아줌마’였으니.. 놀라지 않겠는가?

일명 ‘나래 엄마’.. 그 나래라는 여자 아이는 1990년대 초에 연숙의 한국학교 유치반에 있었고, 그 ‘나래 엄마’는 나도 그 당시 그곳에서 가르치고 있어서 알고 있던 한 젊은 엄마였다. 그 엄마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기에 한 가정의 가장과 불륜을 저지르고 그런 사건의 빌미를 제공했을까? 역시, 올바른 인생은 못 살았을 것이다. 나래 엄마와 ‘공공연히 자기 앞에서’ 바람을 피운 남편이 얼마나 증오스러웠으면 그 가해자인 아내는 남편과 나래엄마를 총으로 쏘고 자기도 쏘았을까?

결과적으로 그 부부는 사망을 했지만, 나래 엄마라는 여자는 죽지는 않았다. 그 여자는 어떻게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갈지.. 상상이 가지를 않는다. 참 무서운 세상이여..  총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쓰는 사람이 죽이는 것이라는 기가 막힌 궤변이 잘 통하는 이곳 .. 실증이 나기 시작한다.

어떤 죽음

¶  지난 레지오 화요일 1에는 그 전주에 이어서 계속 연도가 있었다. 이번 연도 대상은 역시 어떤 50대 중반의 자매님이었는데, 조금 슬픈 사연이 있어서 모두들 더 안타까운 마음이었고, 그것에 비례해서 더욱 더 열심히 연도를 바치게 되었다.

이 자매님은 원래 개신교 신자로써 개신교회에 나갔던 것 같은데, 어째서 우리 순교자 성당에서 다시 ‘줄리아’란 영세명을 받았는지 궁금했다. 연도 때 가족들이 나왔는데, 모두가 ‘미국인’들이었다. 한마디로 ‘국제부인‘ 이었던 것이고, 결혼생활에 풍파가 심했던 경우였다. 미국인 남편과 자식이 둘이나 있었는데, 어떤 이유에서 자식을 둔 채로 집에서 ‘쫓겨 났다고’ 한다. 누가 그 사연을 알 수 있겠는가? 혼자가 된 이후 거의 집 없는 ‘걸인’처럼 살았다고 하고 말년에는 암으로 고생을 하다가 아무도 돌보는 사람 없이 쓸쓸히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이유야 어떻든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암 투병 말기에 우리 레지오 단원에게 발견이 되어서 천주교 대세를 받고 가셨다니 조금은 다행이라고 할까? 하지만 그 ‘몹쓸 놈’의 식구들이 뻐젓이 연도미사에 ‘당당히’ 나타나고, 후에 식사까지 하던가.. 도저히 그들의 심리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세상에서 죽음만은 공평하다고 하지만, 이것을 보니 그런 말도 맞는 것이 아니었다. 너무나 차별이 많은 것이 또한 ‘죽음’이라는 생각도 해 본다.

 

¶  겨울이 끝나며 곧바로 한 여름의 맛을 일주일 동안 보았다. 이것도 참 근래에 자주 보는 기이한 기후현상일 것이다. 물론 이것으로 global warming 운운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도 이것도 정치화, 아니 더 나아가서 ‘사상화’까지 되어서 말 잘못하다가는 완전히 ‘왕따’를 당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는 현실이다. 그저 조용히 ‘중간’만 하면 안전하다. 그저 100년 만에 보는 ‘기록적인 현상’이라고 하면 조용히 끝난다.

나의 기억에도 3월 달에 거의 여름 같은 날씨가 일주일 계속된 것은 없었지 않았나? 그러니 조금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암만 보아도 분명히 지구는 조금씩 더워지고 있는 ‘것’ 같은데, 전문가가 아니니 할 말이 없다. 그래서 과학이 정치화가 되면 위험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웃기는 것이 왜.. 공화당 같은 보수진영은 ‘지구 온난화’란 말만 나오면 그렇게 두드러기 앓듯이 신경질을 내는지 알 수가 없다. 정말 한심한 군상들이다.

  1. 내가 속한 레지오 ‘자비의 모후’ 쁘레시디움 회합은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30분에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서 있고, 곧 바로 정오 미사로 이어진다.

Cold, my own cold

¶  오랜만에 날씨에 관한 것이 잡스러운 뉴스를 비집고 고개를 내밀었다. 그런데 이것도 사실 놀랄만한 것이 하나도 아니다. 오래 산 ‘기억과 경험의 축적’ 탓인가.. 아무리 진짜 겨울, 1월이 별볼일 없더라도, 2월과 3월이 겨울의 진면목을 보여 줄 확률이 생각보다 높다는 사실을 안다. 특히 지난 20년 동안이 더욱 그렇다.

그런 추세의 예외가 바로 작년 한 해였다. 좌우지간, 꽃들이 만발하려 ‘완전히’ 준비가 되어가던 차에 드디어 시베리아의 바람(이곳은 캐나다의 바람, Alberta Clipper?)을 느끼게 되었다. 오늘은 낮에도 빙점에서 맴돌며 내일은 드디어 (섭씨) 영하 10도? 이런 때에 나는 오랜만에 다른 종류의 cold, 감기로 고생을 하게 되었다.

사실은 감기란 것이 고생까지는 아니지만, 거추장스럽다고나 할까.. 특히 편도선이 붓는 것이 제일 고역이고, 다음으로 진행되는 콧물,눈물..재채기.. 마지막으로 기침.. 우리 신부님 말씀대로 ‘코를 만지지 말라’는 경고를 무시했던 모양이다. 더 심술스러운 다른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에 비해 애교 정도로 보이는 것이 감기나 독감이지만, 섣불리 안심하는 것은 사실 그렇다. 1994년 큰 딸 새로니가 ‘조그만’ 감기로 시작한 것이, ‘거의 사경’을 헤매던 악몽으로 이어졌던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특히 나와 같은 60+ 나이에는 더욱 그렇다.

 

¶  우리들의 사회적, 과학적, 문명적인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점쟁이들의 수준을 훨씬 넘어서 아주 심각한 ‘학문’의 영역이다. 미래학회 같은 곳은 정기적으로 학회지도 간행하는 과학적인 방법으로 미래를 연구하는 단체이다. 이들의 주장을 자세히 보면, 최소한 내가 보기에, 대부분 ‘공상적’인 느낌을 많이 준다.

다른 말로 하면 그 정도로 미래를 미리 느끼기가 힘들다는 것일까. 그들은 분명히 과거와 현재의 상태에 근거해서 추측(extrapolation) 하는 것일 것이다. 한마디로 수학적(통계,확률)인 방법을 쓰는 것이다. 며칠 전에도 그런 류의 소식 중에: 인간의 수명이 150세 이상 200세까지 될 날이 ‘멀지 않았다’ 는 것도 있었다. 이것은 major network news에서 본 것이라서 신빙성도 있는 것이었다. 과연 그럴까?

분명히 지금 진행되고 있는 과학적 연구들 중에서 가장 좋은 예들을 골라서 나온 best case일 것이다. 수명이 늘어나는 것, 우선은 반가운 것으로 들리겠지만, 이것도 과연 그렇게 간단히 ‘무조건’ 좋기만 할까? 50년 전의 미래학의 ‘함정’을 보면서 이것도 not so fast!의 한 예가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한다.

아래에 있는 사진은 1950년대에 ’50년 후인 2004년의 home computer’를 상상, 예측하고 RAND corporation(당시의 IBM)에서 만든 것이다. 설명을 보면, 가정에서 쓰는 이 컴퓨터는 teletype terminalFORTRAN을 쓸 것이라고 되어있다. 웃지도 못할 미래학의 결정체가 아닐까? 미래학 함정의 극단적인 케이스라고 그냥 웃을까? 이것의 치명적인 과오는 불과 몇 년 후에 출현할 반도체(solid state, transistor, IC)를 전혀 예측 못했다는 사실이다.

 

future-home-pc1950년대에 상상한 2000년대의 가정용 컴퓨터

 

¶  얼마 전에 ‘얼마 남지 않은 미국의 양심, 희망’ PBS-TV 에서 작년 3월 12일 경의 일본 도호쿠(東北)지방의 지진,쓰나미(해일), 잇달아 생긴 후쿠시마 다이이치(福島 大一) 원자력 발전소(원전) 사고(nuclear meltdown)로 인해 큰 타격을 받은 원전의 안전과 미래에 대한 FRONTLINE (주로 문제점 분석 중심) 프로그램, Nuclear Aftershock 이 방영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일본재난의 1주년에 맞추어 제작한 듯 한데, 당시에 발생한 비극적인 인명(18,000명 이상 사망),재산 피해보다 장기적인 원전사고의 후유증과 그로 인한 세계적 에너지 공급문제를 객관적으로 분석했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생각한 것 중에는: 인간이 원자력을 장기적으로 안전하게 control할 수 능력의 한계, 원자력의 매력과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에너지가 생각보다 적다는 사실, 미국에 있는 원전들이 생각보다 덜 안전하다는 사실은 비록 쓰나미의 위협이 적음에도 그것과 맞먹는 최악의 사고 시나리오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음산’한 현실 같은 것들이 있다.

그리고 지난 해의 사고 이후 독일의 ‘성급해 보이기도 하는’ 100% 원전 포기선언과 원전대신으로 전통적인 화석연료 발전소를 이용한다는 조금은 의아한 결정같은 것이 있다. 이 결정은 ‘지구온난화 문제’ 해결에 정면으로 대결하는 결정이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이 ‘에너지’ 문제는 참 간단한 것이 아닌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