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 일주일 그리고 또 일주일 동안 나의 머리 속을 끊임없이 맴도는 생각, 그것은 신부님, 더 나아가서 사제직, 수도자, 수녀들. 이들은 과연 나에게 어떤 사람들인가 하는 조금 새삼스러운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내가 너무나 한가해졌는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분명히 있다. 지나간 4년간 우리들의 목자로 계셨던 주임 이재욱 [세례자 요한] 신부님이 임기를 ‘무사히’ 마치고 아틀란타를 떠나게 된 것, 그 뒤를 이어 부임 차 서울에서 오신 신임 주임 이영석 [세례자 요한] 신부님을 맞게 된 것 등등.. 이 바로 그것이다.
두 목자의 세례명이 똑같이 세례자 요한인 것이 흥미롭다. 나는 간단히 JL재욱 [John Lee], JL2영석[John Lee 2]로 표기하는 이 ‘예수회 사제’들, 우리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이상적인 사제’라고 생각하며 이런 생각에는 충분한 이유가 많이 있다. 온화한 말씨와 배려하는 성품, 대부분 중립적이고 공정한 사고방식, 비 극단적인 정치적 성향.. 등등.
사실 이번 새 신부님이 오시기 전에 우리, 특히 나는 불안한 심정을 금할 수가 없었다. 같은 Atlanta 지역의 ‘형제 성당’에 있는 ‘어떤 사제’와 같은 류의 주임신부가 만의 일이라도 오게 되면 나는 최악의 경우 향후 4년간 성당을 떠날 준비까지 할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신부의 자질’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마음에 안 들면 내가 안 보거나 성당을 떠나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동안 나의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나 자신을 위해서, 나의 미래를 위해서, 나의 가정을 위해서 이곳, 성당 공동체에서 떠나는 것은 거의 실질적인 자살행위로까지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곳을 떠나서 현재 같은 높이의 건강, 건전한 여생, 삶을 사는 것, 자신이 없다는 것은 경험적으로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안다.
오늘 신임 이영석 신부님을 모시고 병중에 있는 채 아오스딩 형제의 병자성사 동행을 했을 때, 우리는 신부님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는데 환자교우를 대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는 너무도 좋은 인상을 받았고, 안도감을 훨씬 넘은 기쁨을 맛 보았다.
이 인상 좋고 대하기 편하고 유머감각이 넘치는 새 신부님의 약력을 보니 더욱 안심이 된다. 인품을 떠나서 학자적 지식의 기반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정도로 보인다. 더욱이나 가톨릭의 장점인 ‘포용성’을 반영하듯, 인도철학박사의 배경을 가지고 있다. 이 신부님 부임 직전에 서강대학 교수직 제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먼저 약속이 된 이 ‘험난한 교포사목’ 직을 수락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나의 좋은 인상은 여전히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현재까지 본 새 신부님, 완전 합격 정도가 아니라 향후 4년이 너무나 희망적으로 기대가 되기에 우리 둘은 너무나 기대가 크다.
어둡고 싸늘한 가을비가 살짝 물러가며, 며칠 만에 따가운 햇살이 울려 퍼지는 하루를 맞았다. 비록 햇살은 밝고 따뜻했지만 놀라울 정도로 산들바람은 차갑게 느껴지는, 한 마디로 near perfect Fall day에 감사하는 ‘레지오 화요일’이었다. 집으로 들어오는 cul-de-sac 입구에서 한창 가을채비를 하던 ‘낙엽송’의 모습이 며칠 만에 완연히 조금은 더 진한 황금색을 띠기 시작했다. 이제 이런 변화는 앞으로 거의 한 달 이상 지속될 것을 생각하니 벌써 가슴이 뛴다.
예의 레지오 주회합, 아가다 부단장님의 따님이 오늘도 방문자로 합석을 하였다. 성모님의 뜻으로 그 따님에게 레지오 입단의 의향이 생기기를 기도하지만, 어찌 우리 같은 mere mortal 이 성모님의 깊은 뜻을 알겠는가? 단장으로서 조금이라도 레지오의 좋은 인상을 심어주려는 노력은 하지만 글쎄.. 근래에 들어서 ‘눈이 반짝거리는 레지오 단원을 본 기억이 거의 없어서’..
새로 부임하신 이(영석) 요한 신부님, 느낌이 아주 좋고 희망적이다. 게다가 들어온 소식에 의하면 이 신부님, 청년시절 레지오를 하셨다고 해서, 우리는 모처럼 앞으로 4년간 재임기간에 ‘레지오 재건’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되었다. 게다가 현재까지 이 신부님의 ‘인상’, 아주 편하고 ‘대화가 편한’ 목자로 보인다는 주위의 의견에 나도 공감을 한다. 이임하신 이(재욱) 신부님, 신임 신부님이 정착을 하시는 대로 (봉성체)신자가정방문을 주선하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한다.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와 어느 정도 ‘mutual chemistry’ 에 문제는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오늘도 두 곳에 성체를 모시고 갔다. 그 중에 오늘 오전, doctor visit를 하고 돌아온 C (어거스틴, 아오스딩) 형제, 예상외로 빨리 일정이 끝나서 이발까지 하고 왔는데 아무리 보아도 ‘말기암’ 환자로 보이질 않는, 흡사 바로 퇴근한 회사원 같은 느낌이다. 얼마 전의 ‘시술’ 후에 체중이 더 불었다고.. 어찌된 일인가? 이 형제의 몸은 한마디로 단단한 steel 같은 그런 느낌, 거기에 거의 완전히 ‘절대자’에게 모든 것을 맡긴 상태… 고통 중에서도 깊은 평화 속을 산다고.. 나는 솔직히 이 형제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
다른 곳, 거의 한달 만에 방문한 ‘금술 좋은 80대 손(요한) 부부’, 오늘도 도우미가 마련한 점심식사를 기다리며 성체를 모신다. 이렇게 ‘성체신심’을 가지신 분들을 방문하는 것은 사실 우리에게는 특별한 은총이다.
조금은 늦은 점심, 비록 ‘한 접시 요리’지만 [설거지가 간단해서] 솔직히 맛은 진수성찬에 못지 않을 때가 많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던가… 문제는 피곤한 상태에서 늦은 점심은 거의 확실하게 ‘낮잠’으로 이어지는 것.. 물론 ‘늦은 낮잠’은 내가 즐기는 것 중에 하나지만 대부분 30분을 넘지 못하는데 오늘 것은 완전한 예외였다. 2시간이 지난 것이다. 짧아진 해, 벌써 저녁의 어두움이 보이지 않는가? 하지만 30분의 낮잠과 오늘의 2시간 낮잠의 ‘후유증’의 차이는 완연하게 달랐다. 한마디로 꿈 속을 걷는 듯한 느낌으로 저녁을 맞이한 것이다.
잠시 후에 나는 (Frank) Sinatra moment를 지나게 되었다. 너무 조용한 순간들이 싫어서 우연히 고른 background song album이 바로 Sinatra Hit Collection, 물론 오래 전에 어디에선가 download한 것들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먼지가 쌓였던 Sinatra의 classic hit였는데 이것을 오늘 낮잠 후 멍~한 기분에 ‘계속’ 듣고 있었다. 오래 오래 전, ‘우리들’은 이런 것, ‘꼰대’들이나 술을 마시며 즐기던 것으로 ‘일축’해 버렸던 것인데 오늘 나는 이것에 완전히 빠져들게 되었다. 어쩌면 그렇게 가슴 깊은 곳의 무언가를 어루만져주는 것일까. 아~ 나도 이제는 완전히 ‘늙었다’ 라는 조금은 슬프지만, 편하기도 한 느낌 속의 저녁을 보내게 되었다. 그렇다… 인생의 황혼기를 간다는 사실은 ‘슬프기도 하면서도, 편하고 포근한 것’이라는 것. 그것이 나의 오늘 Sinatra Moment였다. 무엇이 편하고, 포근한 것인지는 솔직히 나의 짧은 ‘문학적 표현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 하지만 분명한 사실이고 진실이다.
¶ 결국은 보고야 말았다. 우산위로 내리는 가을비를, 그것도 마음껏.. 마음껏.. 얼마나 오랜 동안 기다리고 기다리던 날씨의 즐거움인가. ‘최헌’의 ‘가을비 우산 속’ 추억을 연상케 하는 날, 실제로 커다란 우산을 쓰고 가을비를 맞아 보았다. 싸늘하고 어두운 비, 그것도 거의 하루 종일. 지독히도 길었던 올 늦여름, 초가을의 잔인했던 더위와 가뭄도 거의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그런 날이었다. 어머니의 손길, Mother Nature의 투명한 자비하심은 역시 기다리는 끈기도 있어야…
지난 며칠 전부터 서서히 떨어지던 새벽기온 ‘덕분’에 그제 아침에 올 들어 첫 furnace fan의 은은한 소음을 듣게 되었고 나의 study에는 space (parabolic radiant) heater까지 꺼내 놓았다. 지난 해 선물로 받아서 쓰고 있는 ecobee Smart Thermostat에는 heat-cool auto (change) mode가 있어서 사실 cool mode (air conditioner)에서 heat mode (furnace)로 일부러 바꿀 필요는 없지만, 나는 이렇게까지 자동적인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가을/겨울에도 가끔 더운 날이 있는데 그런 때는 창문을 열어 놓으면 되지만 그 때에 air conditioner가 자동적으로 나오는 것,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끈질기게 하루도 빠짐없이, 변함없는 ‘마른 뜨거움’를 유지하던 9월 말까지 사실 추위를 막는 옷, 그러니까 ‘춘추복’의 필요성은 거의 제로였는데 그것이 지난 주일부터 서서히 바뀌어서 어느 날 새벽에는 따뜻한 옷을 어둠 속에서 찾으라 애를 먹었다. 아~ 계절의 변화여.. 앞으로 얼마나 더 이런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인가… 점점 짧아지는 듯한 ‘남은 인생’이여…
¶ 오늘은 2년 만에 다시 열린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천상은총의 모후 꾸리아> ‘레지오 간부 피정 (정식명칭: 레지오 평의회 의원 1일 교육)’엘 연숙과 같이 참가하게 되었다. 매년 이때쯤 실시되는 것인데 작년에는 처음 시도된 ‘레지오 토론대회’으로 말미암아 한 해를 거르게 되었다. 싸늘하고 궂은 날씨였지만 비교적 많은 ‘평의원’ (간부들) 참여 하에 오전에는 보좌 신부님(Fr. 김형철 시메온)의 특별강론 , 오후에는 서 토마스 형제의 ‘가톨릭 혼인에 대한 지침’, 꾸리아 단장님의 ‘특별 (호소} 훈화’ 등으로 아주 유익한 토요일을 보냈다.
레지오 활동 (거의 9년째) 초기에는 이런 것이 생소하기만 했는데 이제는 세월의 연륜으로 아주 편해지고 나름대로의 추억, 생각, 아이디어 등이 머리를 맴돌곤 한다. 이제는 정이 든, 이곳 ‘천상은총의 모후’ 꾸리아 (평의회)가 더 발전해서 더 큰 활동을 하면 하는 바람 뿐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들대로 든 나이’를 의식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관건은 ‘세대 교체, 신선한 물결’.. 등.. 역시 세월을 얏 잡아 보면 불현듯 많은 것을 놓친다.
꾸리아 단장의 ‘훈화, 호소’, 나는 심각하고 심지어 숙연한 심정으로 공감하며 들었다. 100% 옳을 말씀, 어쩌면 그렇게 ‘순명과 충성’의 정신을 놓은 단원들이 대다수인 느낌이 드는 것일까? 어떻게 이들에게 ‘불을 붙일 수’ 있을까? 역시, 역시, 교육, 재교육… 재재교육..’ 뿐이다.
오늘 ‘피정, 교육program’ 중에는 ‘혼인 조당’에 관한 서(재욱) 토마스 단장의 ‘보고, 강의’가 우리들의 관심을 끌었다. 아틀란타 교구청에서 수 개월에 걸쳐 ‘연수’를 마친 후 certificate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교회 내에서 생기는 결혼법적인 문제를 상담하는 첫 창구역할을 하는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나를 비롯해서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결혼성사’가 정말 ‘성사’ 임을 간과하며 살고 있었는데, 한마디로 교회법상에는 ‘이혼’이란 말이 없음을 왜 모르고 살았을까? 나도 최근에서야 이 ‘혼인성사’의 심각성을 실감하고 있는데, 우리 딸들의 결혼문제와 겹쳐서 고민을 안 할 수 없게 되었다. ‘세속적 쓰나미 tsunami’ 의 거대한 물결을 헤지고 나가는 우리 ‘불쌍한 교황님’, 절대로 굴복하시면 안 됩니다. 이것이 세속적으로 무너지면 다음에는? 진실은 진실이고 진리는 진리이고 일 더하기 일은 죽어도 이(2) 입니다.
¶ 오늘 일일 교육피정이 끝나고 점심 식사 때 우연히 오늘 미사, 피정 강론신부, 김 시메온 신부님과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이 ‘비교적 젊은’ 경남 산청 출신 보좌신부님, 내가 연숙에게 ‘이 신부님을 보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다’고 고백한 적이 있었던 분. 소년처럼 활짝 웃는 모습이 인상적, 얼마 전 마주쳤을 때 ‘불현듯’ 떼이야르 샤르댕 (예수회) 신부님에 대해서 짧은 대화를 했었다. 김 신부님, 샤르댕이 예수회출신임을 알기에 자신을 갖고 물었는데, 역시 잘 알고 있었고 ‘먼 앞날을 내다보는 선구자’라는 사실도 잊지 않고 언급. 그런데 오늘 대화에서 그것을 잊지 않고 언급하시는 것이 아닌가? 기억력인가, 아니면 신자들에 대한 배려와 관심인가?
예수회의 역사적 ‘진보성, 개방성’에 대해서도 언급을 했는데, 그런 사실들(예수회원 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계셨다. ‘진보적 경향’은 요새 항상 아슬아슬한 말, 특히 정치적으로 더욱 그렇다. 한걸음 조금 더 나아가서 ‘신부님의 정치적 성향’을 살짝 듣고 싶었지만 그것만은 피할 수 밖에 없었다. 결과가 뻔하지 않던가? 그런 화제를 일부러 피하시는 듯한 모습이 나에게는 커다란 플러스로 여겨졌다. 이런 것들에 비하면 ‘윗동네’의 같은 예수회 출신 신부님들의 ‘행태’가 너무나 크게 비교가 됨을 알고 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모처럼 교회, 아니 ‘한국교회, 고국 성당, 순교자 성당’의 주일미사엘 간다. 물론 ‘그곳’은 요사이 들어 더 자주 가는 곳이긴 하지만 ‘일요일, 주일’미사엘 가는 것은 좀 생소한 느낌이 들어서 달력을 보니.. 거의 한 달이나 되었다. 그것도 지난 달의 꾸리아 월례회의 때문에 간 것이고 오늘도 마찬가지다. 그것 때문에 가게 되는 것이 조금은 이상한 기분이 드는 것이… 작년에는 거의 매번 주일미사를 가야만 했던 때문이었다. 그것이 보람도 있었고 힘들 때도 많았다. ‘직무, 짐, 무거운 일들’ 이 중요한 이유여서 그렇게 피곤한 기억으로 남는지 모른다. 하지만 ‘나도 열심히 했다’라는 것은 보람으로 남고, 그렇게 추억으로 남기고 싶기도 하다.
앞으로 나에게 과연 이 ‘성당’이란 것이 어떤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인가 문득 문득 생각한다. 결론은 ‘이 곳을 떠나면’ 나는 분명히 ‘함정, 유혹’에 빠질 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떨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럴 수는 없다고 조심스럽게 자신을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쉬울까? 이곳을 그곳을 떠나면 안 된다. 우선은… 레지오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나를 지탱시키는 탯줄 역할을 하는 것, 나는 굳게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가면 채 형제를 포함한, 주일과 상관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게 된다는 사실, 새롭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기만 할까? 우선 ‘레지오 미친년’의 ‘가오’가 시각으로 안 들어오기만 바랄 것이고.. 그 외에는 어떤가? 거의 2년 전부터 시작된 ‘새로운, 좋은 친구들 만들기’ 노력은 어떤가? 그런대로 노력은 했지만 근래에 들어서 ‘사그러드는 기분’을 떨칠 수가 없다. 이것도 ‘남은 여생을 어떻게?’ 라는 나의 ‘태제 太題’이기에 그것과 연관시켜 생각을 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최근에 조금은 ‘멀어진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 ‘임 요한’ 형제도 그렇고.. 나는 그들과 어떤 형태의 친교를 가질 것일까?
부디 오늘 모처럼 가는 주일미사의 ‘주일’이 보람 있고, 생산적이고 ‘즐거운’것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싶다.
2019년, 연 年 피정 避靜, annual ‘spiritual’ retreat… 이것이 우리에게 몇 년만인가 며칠 전부터 생각해본다. 마지막으로 간 것이 2014년, Coyners Monastery 였고 그 전해인 2013년엔 Carmel Retreat Center였다. 그러니까 지나간 5년간 우리는 ‘집을 떠난 피정’엔 못간 것이다. 거의 매년 한번 정도는 경험해야 할 이 ‘영신적 휴가’를 왜 못했던 것일까?
우리의 연례 피정은 100% ‘레지오’ 주관일 수밖에 없는데, 한마디로 우리의 레지오 (그러니까 꾸리아)에서 그 동안 주선을 못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Leadership, leadership & leadership의 부재라고만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요새 대통령 같이 않은 인간들처럼 사람 잘못 뽑으면 어떤 결과, 특히 장기적인 여파가 생기는지.. 두고두고 후세가 짊어질 폐해들, 무능력한 것뿐만 아니라, 숫제 퇴보하는 leadership, 요새 뉴스를 보아도 이제는 우리 눈에 익숙한 것이 아닐까?
그래도 다행인 것은 현 leadership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느낌이고 결과적으로 이번에는 ‘심각한 피정’을 주선한 듯하다. 더욱 반가운 사실은 이번에 가는 곳이 6년 전에 갔었던 곳,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고 아직도 신선한 느낌이다. 솔직히 나는 참 많이 듣고 배운 곳이었다. 아직도 ‘하태수 미카엘’ 신부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은 것은 나만이 아닐 듯하다.
이제 몇 시간, 3시간 있으면 ‘짐을 싸 들고’ 60여 마일 떨어진 곳으로 출발을 하는데, 이번 피정은 현 주임신부님이신 ‘이재욱 요한’ 신부님 주관이라서 미리부터 기대가 적지 않다. 이 신부님의 영성적, 신학적 깊이에 대해서 익히 들어서 알지만 이번에 그것을 내가 경험하게 된 것이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이 신부님의 마지막 피정지도가 되지 않을까…
¶ 지난 주일에는 전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우리 60~70대 성당모임인 등대회의 야유회 picnic 엘 갔었다. 2017년 가을에 입회한 이후 몇 번 이런 행사엘 갔기에 이제는 조금 익숙한 편이지만 나로써는 감회가 새로운 것이, 이런 ‘사람들 모임’ 그것도 ‘놀러 가는’ 것에 나는 거의 가질 않고 오랫동안 살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나도 많이 변했구나 하는 ‘흐뭇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런 삶이 ‘정상적인 삶이 아닐까..
이번의 야유회가 조금 더 색다른 것은 우리 부부가 같이 참가했기 때문이었다. 이제까지는 각종 임무로 너무나 바쁜 스케쥴에 얽매인 연숙이 마음 놓고 참여하기가 힘들었었는데 최근에 하나 둘 씩 ‘책임’을 내려 놓기 시작해서 가능하게 된 것이다. 나도 지난 해에 맡았던 구역장 임무를 내려놓고 얼마나 홀가분한 기분이었는지 모른다.
이번에 간 곳은 나도 한번 간 적이 있었던 Fort Yargo State Park으로 작년에 구역장 연수회를 그곳에서 한 관계로 나는 한번 간 적이 있는 곳이었다. 그 당시는 cottage에서 하루를 묵었지만 이번에는 picnic area로 가서 몇 시간을 먹고 즐기다 돌아왔는데, 여행을 별로 즐기지 않는 우리들에게는 적당한 하루의 휴식, 여행을 한 셈이 되었다.
이 등대회의 특징 중에 하나는 우리와 나이가 아주 엇비슷한 사람들이 꽤 있고, 그 중에서도 나와 동갑인 형제, 자매들도 꽤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에 오랜 세월을 살면서 이렇게 ‘동류의식’을 느껴본 적은 아마도 없었을 듯 하다. 나이가 비슷한 것이 그렇게 중요한가.. 어떤 사람들은 상관을 안 하는 모양이지만 나는 정 반대다. 그들이 거의 친구처럼 느끼며 ‘좋아하는 것’을 연숙은 조금 이상하다고 보는 모양이지만 나는 사실 그렇다. 같은 시대를 살아왔다는 사실이 어찌 큰 의미가 없겠는가? 이 그룹은 한마디로 ‘자연스럽게 편한’ 느낌을 주기에 ‘큰 사고’가 없는 한 열심히 참여하고 싶다.
¶ 오늘 우리는 레지오 주회합 후에 배해숙 (베로니카) 자매님 선종 4주기 (5월 2일)를 맞아 성당 근처에 있는 Winters Chapel memorial park 엘 갔었다. 돌아 가신지 벌써 4년이 되었나.. 2014년 가을에 말기암 환자로 처음 만났고 2015년 5월 2일에 선종한 어떻게 보면 참 ‘불쌍한’, 나와 동갑내기 자매님이었다. 남편 형제님은 그 전해에 먼저 타계를 하고 ‘철없이 보이는’ 장성한 두 아들을 댕 그러니 남겨놓고 간 자매님이었다. 다행히 친 오빠, 친 여동생이 있어서 장례식 이후 가끔 소식을 주고 받지만, 이제는 4년의 세월 탓인지 당시의 강렬했던 느낌들도 조금씩 빛을 잃어가는 듯 하다.
당시, 우리 둘은 ‘레지오 활동’을 염두에 두고 열심히 배 자매님을 천주교인으로 입교시키는 데 혼신의 힘을 쏟았고 성공을 한 셈이지만, 과연 자매님 우리가 배운 대로, 희망하는 대로 ‘좋은 곳’에 가셔서 평화로운 다른 삶을 ‘남편 형제님’과 같이 사시는 지는 확신이 없다. 하지만 믿는다. 그것이 신앙이고 희망이니까.. 자매님, 짧은 기간이었지만 보람 있는 시간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편히 쉬시고 남아있는 두 사랑하는 아들들 그곳에서 잘 보호해 주소서…
올 들어 처음으로 느껴본 ‘후덕지근’ 한 어제 밤을 보낸 후 결국은 자연의 섭리는 다시 ‘통계적 평균’을 찾아 제자리로 돌아오긴 했지만 조금 심했나… 극과 극의 맛을 자랑이라도 하듯 오늘 새벽은 완전한 겨울 같은 느낌이다. 3월 31일은 역시 이른 봄이라기 보다는 늦은 겨울이기도 한 것이다. 차가운 비와 더불어 시베리아 같은 느낌의 세찬 바람소리가 들리는 뒤 뜰에 잠깐 나가보니 어제 입던 옷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그런 날씨로 변해 있었다. 지나간 해 이맘때쯤 남긴 ‘세찬바람 불어오면…’ 을 읊조린 글과 그림이 생각이 나는 아침이 되었다.
이런 날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른 광경은 역시 ‘포근하고 따뜻한 늦잠’을 즐기는 나의 모습이지만 오늘은 그런 가능성이 제로이기에 아쉽기만 하다. 오늘은 ‘주일’이기도 하고, 한가하게 쉴 수 있는 여건도 아닌 것이 아쉽기만 하다. ‘주일은 쉬어라’.. 십계명.. 흠…. ‘노동’은 쉬겠지만 나의 七十 老軀 를 끌고 밖으로 차를 몰고 나가야 하는데..
주일 아침의 ‘십계명의 부담’ 넋두리의 유혹을 제치고 나머지 일요일 하루를 보낸 후에 느낌은 역시.. 이것이다. ‘할 것은 해야 하고, 뛸 데가 있으면 끝까지 뛰는..’ 바오로 성인의 가르침, 아니면 레지오 교본이 강조하는 ‘부지런함과 절제되고, 훈련된 삶 disciplined life’가 주는 기쁨, 기본적으로 ‘게으름의 죄악’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것도 죄악임을 가끔 완전히 잊고 살 때가 얼마나 많은가? ‘무상으로 받은’ 자유의 시간들, 정말 공짜가 아님을 잊으며 ‘나는 절대로 죄가 없다’고 코웃음을 치는 사람들.. 가끔 나도 그 중에 하나다. 오늘도 그런 유혹을 받았고 결과적으로 완전히 그것을 물리친 안식일이 되었다.
3월의 마지막 주일날 (다섯째)에는 21차 레지오 아치에스Acies1 행사가 열렸고 우리 ‘자비의 모후’, 연숙이 사회를 진행하게 되어서 한 명이 빠진 상태였지만, 다행스럽게 협조단원 2명, 그것도 모두 ‘형제님들’ 이 참석을 해서 ‘기본적인 체면’을 유지할 수 있었다. 2년 전 ‘레지오 미친년들 사건‘ 이후부터 이런 행사가 오면 단원의 숫자에 무척 신경이 쓰였다. 워낙 신입단원 모집이 어려운 요새의 실정에서 기도 이외에는 크게 상황이 호전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독을 뿜는 독사들’ 한두 명만 있어도 이렇게 오랫동안 여운을 남기는 피해를 보며… 역시 ‘뱀의 머리를 바수는 어머니’의 역할을 더욱 실감하게 된다. 군대 같은 질서로 우리들 모두 성모님께 충성을 서약하며 의미 있고 보람된 ‘안식일’ 인 3월 마지막 날이 되었다.
총사령관이신 성모님께 대한 개인 및 단체 봉헌식, 3월 25일을 전후로 개최한다. 아치에스는 라틴어로 전투대형을 갖춘 군대’라는 뜻이다. ↩
¶ 물 건너 간 것, ‘첫눈’: 2019년 2월이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28일 밖에 되지 않아서 더 빨리 지나가는 듯 하다. 목을 빼고 애처럼 기다리던 올 겨울 ‘첫, 하얀 시루떡, 눈 雪’, 은 결국 물 건너가는 듯 느껴진다. 왜 올해 내가 그렇게 ‘첫 눈’을 기다렸는지는 사실 나도 잘 모른다. 지나간 몇 년간 매년 보고 즐기기도 했던 것이라 습관이 되었는가, 아니면 그저 나이답지 않게 ‘감상적 感傷的’ 인 기분에 빠졌는가. 비록 눈 구경은 못 했지만 대신 비 구경은 실컷 즐기며 살았던 주일을 보냈으니 그렇게까지 실망할 것은 아니다. 대신 YouTube의 video를 통해서 눈보라 치는 모습과 곁들인 멋진 영상음악은 Google ChromeCast의 도움으로 big screen TV를 통해서 실컷 보고 들었다. 하지만 이것은 역시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 뒤뜰로 흩날리는 몇 송이의 눈발과 어떻게 비교를 할 수가 있겠는가?
¶ 규칙적인 대장 운동: 지난 주에는 뜻하지 않게 regularity 문제로 며칠간 고생을 했다. 평소에 큰 신경을 안 쓰고 살았는데 가끔은 이것이 찾아온다. ‘변비, constipation’이라고 하면 당장 ‘냄새’가 나는 듯해서 조금 부드러운 표현이 ‘규칙적인 대장 大腸 운동, regularity’ 지만 이것 역시 기분은 마찬가지다. 왜 이런 ‘불규칙 증상’이 찾아왔나 생각해 보니 주범은 역시 ‘달콤하고 편리한 stick instant coffee 중독’인 듯하다. 그것 말고는 혐의를 둘 것이 별로 없으니 말이다. 예방은 물론 이런 ‘편리,달콤함’에서 벗어나면 되는데 ‘처방, 치료’가 문제다.
Toilet에 오래 앉아 있어야 하는 불편함은 경험이 없는 사람은 모를 것이다. 나도 잘 몰랐으니까.. 이 regularity문제 자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로 인해서 ‘Prep-H, hemorrhoid’ moment 까지 나가면 정말 골치를 썩게 된다. 나도 경미하게 Prep-H 증상을 몇 번 겪었지만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것만은 피하고 싶지만 항상 운이 좋은 것은 아니다.
이번에도 이틀 정도 이것으로 고생을 했지만, 증상자체도 신경을 심하게 건들이지만 그것보다 이것으로 기분이 축 쳐지고 우울감까지 느끼게 되는 것도 만만치 않은 도전이다. 이런 며칠 간 고생의 경험으로 이제는 ‘입으로 들어가는 것들’을 조심하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Kroger drug counter에서 찾은 ‘stool softener’ 란 pill을 정기적으로 복용하기 시작했고, 최악의 경우에도 대비를 하기로 했다. 이것도 ‘앞서가는 나이’와 상관이 있는 불편함인가…
¶ 2월 마지막 주일: 거의 매일 비가 온 듯한 느낌을 주는 2월, 마지막 주일 미사는 도라빌 순교자 성당으로 가게 되었다. ‘절대적인 이유’가 아니면 앞으로 주일미사는 동네 미국본당으로 가기로 달 전에 결심을 했지만 예외는 항상 예상 해야 한다. 이날이 바로 그런 날이 되었다. 이유는 도라빌 성당 60~70대 친교모임인 등대회 회식 때문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찬란하게 떠오른 태양으로, 미사 시작을 ‘쨍~하고 해 뜰 날’ 이란 말로 시작한 주임신부님도 주일에 보게 된 것도 반가웠고, 한달 만에 다시 만난 등대회원들도 새롭고 즐겁게 느껴진 것을 느끼고, 이곳도 조금은 정이 들었나..하는 포근함까지 느끼는 등, 이날, ‘주일’은 그야말로 ‘주님이 주신 안식일’이 되었다.
오늘 ‘레지오 화요일’, 오늘도 우리 집 뒤뜰에서 계속 초봄의 소식을 전해주는 수선화를 꺾어가지고 가서 레지오 성모상 옆에 꽂았다. 성모님 (상)을 보면서, 현재 조금씩 안정되어가고 있는 우리의 ‘자비의 모후’를 쉽게 포기하지 않으시는 듯한 모습을 그린다. 몇 주 전부터 ‘방문자’로 참관을 하는 ‘예비신자’ 자매를 보며 나는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 어쩌면 이 자매도 ‘성모님 job’이었나 할 정도다. 또한 얼마 전 퇴단한 실망스런 자매들과 이 예비신자 자매와 비교를 하며, 어떻게 세상에 이렇게 사람들이 다를 수가 있는가.. 나는 입을 다물지 못한다.
대체적으로 올해 2월은 우리로 하여금 지나간 6개월 여 ‘구역모임’으로 인한 ‘고통의 기억’들로부터 더욱 멀게 해 주는 그런 시기가 되었다. 이제는 우리는 다시 제 정신을 차린 듯한 산뜻한 기분을 느끼며 ‘우리들의 3.1절’을 기다리게 되었다. ‘우리들의 3.1절’, 1919년의 기미년이 아니고, 우리 둘에게 3월 1일을 즈음해서 일어났던 각종 ‘좋은 추억’들, 예를 들면: ‘1992년 현재의 집으로 이사 왔던 날’, 부터 시작해서 2012년의 ‘매일 미사’ 전통의 시작까지 3.1절은 우리에게 소중한 날이 되었고 올해도 예외 없이 이날이 되면 추억과 더불어 ‘때려 먹는’ 즐거움도 놓치지 않을 것이다.
¶ 돌아온 수선화여, 주일 전부터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모습, 올해 처음으로 피기 시작한 수선화, 일주일 동안 거의 매일 아침미사 15분 drive하는 동안 우리는 오늘은 어떤 모습의 봄 소식을 찾을 수 있나 차창밖에 온통 신경을 쓴다. 이것은 우리 같은 ‘젊은 노인’ 부부에게는 논쟁의 여지를 줄 수 없는 거의 완벽한 대화 소재가 아닌가 생각한다.
꽃 망울이 겨우 눈을 뜨기 시작한 수선화가 작년에 하늘로 간 Tobey1의 무덤 주위에서 그 녀석의 영혼을 감싸듯이 정렬을 하고 있음을 매일 본다. 추위를 견디는 수선화의 안쓰러운 모습과 나의 손에 머리를 안겨 마지막 숨을 쉬던 그 녀석의 얼굴이 겹치며 나를 순간적으로 우울하게 한다. 역시 봄과는 거리가 있는 싸늘함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올해의 겨울과 봄의 사이는 유난스럽게 이상한 것이, 겨울이 정말 춥지를 않았다. 영하로 내려갔던 날이 며칠이나 될까? 덕분에 에너지는 많이 절약했겠지만 이런 상태로는 올 겨울 ‘눈 구경’은 물 건너 가고 있다. 대신 장마철을 연상하게 하는 ‘싸늘한 비’의 연속을 겪고 있다. 아마도 봄을 준비하는 초목들은 땅 속에서 잔치를 벌리고 있을 듯 하다.
기다리던 눈 대신 싸늘하게 내리는 줄기찬 비
거의 ‘악몽’ 처럼 느껴졌던 작년 후반기 6개월의, ‘구역’에 대한 기억, 이제는 그런 것들을 뒤로하고 2019년의 봄은 우리에게 조금 더 다른 의미를 주는 기회를 주기를 진정으로 바라고 있다. 청순한 수선화여, 피어있는 동안 우리에게 모든 괴로웠던 기억들을 말끔히 씻어 가게 해주길..
¶ 수선화의 성모님: 모처럼, 나와 우리의 ‘등대’, ‘자비의 모후’ 주회합 성모님 제대의 주위가 ‘꽉 찬듯한 느낌’을 주었다. 지난 몇 개월간 생존의 위기를 거듭했던 ‘자비의 모후’, 몇 주 전에는 결국 ‘파산선고’ 까지 우려했지만 역시 성모님의 도움이신가.. 최소한의 간부구성이 갑자기 이루어졌다.
수선화의 성모님, ‘자비의 모후’를 도와주소서,,
게다가 신단원 모집에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예비신자 자매님이 부활 세례직후에 입단이 거의 확실하게 되는 듯하니, 어찌 수선화의 축복을 받는 성모님이 더욱 더 아름답게 보이지 않겠는가? 지나치게 큰 기대는 안 하지만, ‘독물 毒物 이 전부 빠져나간 듯한 ‘ 우리 ‘자비의 모후’가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새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것, 올 봄에 기대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다.
작년 6월에 14살 천수를 다하고 떠난 나의 ‘영혼의 벗’ 개 Dachshund 의 이름 ↩
Ordinary Time, 올해 연중시기도 벌써 6주째를 맞는 오늘로서 Extraordinary season, Lent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 Ash Wednesday‘도 반달 정도 남았다. 싸늘한 비가 간간히 뿌리는 평화로운 일요일 오전.. 이런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을 맞아 본 것이 얼마만인가 생각한다. 오늘이 더욱 새로운 것은 우리 마음의 고향처럼 느껴지는 ‘동네본당, Holy Family Catholic Church‘에서 둘이 미사를 보았기 때문이다. 사실은 그렇게 오래 된 것도 아닌데 느낌에는 몇 년이라도 흐른 것 같다. 그 정도로 나는 이런 때를 무의식 중에 기다리고 살았던 모양이다.
나는 미사 후에 곧바로 집으로 가서 편하게 late morning coffee의 향기를 즐길 수 있지만 연숙은 다시 곧바로 ‘도라빌 본당’으로 가서 새로 시작되는 견진 교리반 director 일로 땀을 흘려야 한다. 미국본당에 가는 날의 일요일 일정은 이렇게 조금 복잡한 편이다.
두 본당을 가진 우리의 신앙생활은 조금 지혜로운 생각이 필요하다. 언제 도라빌 한국본당을 가며, 언제 동네 미국본당을 가느냐.. 이것을 결정하는 것, 몇 가지 이유는 분명하지만 아주 분명하지 않을 때는 더욱 심사숙고를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목적은, 사실 어디를 가나 ‘성체성사’를 하는 것이기에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우리의 신잉생활에 도움을 ‘더’ 줄 수 있는 쪽을 택하는 것이다.
영어권과 모국어 권, 언어 차이를 떠나서 문화권의 다름은 이제 오랜 이곳의 생활에서 익숙하게 아는 것이지만, 그래도 항상 새롭기만 하다. 아마도 이곳에서 죽는다고 해도 그때까지 이 ‘피할 수 없는 문화의 차이’는 계속 새삼스럽게 느낄 것이다. 문제는 이 두 색다른 교회공동체를 통한 신앙생활이 우리의 개인적, 가족적 영성생활에 어떻게 도움을 줄 것인가 하는 것이다.
한때 깊숙이 관여했던 도라빌 ‘모국어 본당’에서 서서히 우리 둘은 물러나고 있다. 의도적인 면도 없지 않고, 피하고 싶은 ‘사람들’과 계속 어울리는 것, 장기적으로 ‘영육간의 건강’에 전혀 도움이 될 수가 없다는 ‘경험적 진리’에 우리는 의견을 모았다. 특히 지난 주일에 ‘견진교리반’ 시간에 일어났던 또 다른 ‘trumpian, kafkaesque incident’ 1 해괴한 사건은 연숙으로 하여금 ‘완전히, 깨끗하게’ 교리반 director 임무를 떠나게 하는 마지막 ‘관 coffin 의 못 nail’ 역할을 했다.
연숙도 나와 발을 맞추어 하나, 둘 짐들을 거의 계획적으로 놓기 시작했는데, 제일 큰 것은 ’15년 간의 주보 편집’이 그것이고 지난 몇 년간의 ‘예비신자 교리반 director’가 그것으로, 그녀에게는 거의 ‘은퇴’와 같은 중대한 결정이 되었다. 이제부터는 남는 시간, 여유를 어떻게 더 ‘지혜롭게, 생산적으로’ 쓸 까 하는 것인데 그것을 나는 절대 걱정 안 한다. 벌써 앞으로 ‘신나게’ 할 것들의 ‘줄을 서’ 있기 때문이다.
견진교리반에 들어온 한 ‘젊은’ 여자의 상식을 벗어나는 무례함으로 깊은 상처를 받았던 사건, 도대체 요새 젊은 아이들은 어떻게 가정교육을 받았고, 그런 ‘애’가 ‘견진’을 받는다는 사실의 모순은.. ↩
지난 달 말에 ‘프카’ 자매님1 과 카톡 대화를 하던 중에 아틀란타 ‘도라빌’ 순교자 성당 내 ‘영적독서클럽’에 대한 소식을 물었는데 반응이 아주 ‘부정적’인 것이었다. 최근에 느낌도 그랬지만 역시 이 자매님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으로 아예 ‘탈회 脫會’를 하였고 성당을 떠난 별도의 클럽을 만들어서 ‘영적독서’를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개인적인 사정도 없지는 않았겠지만, 그 동안 성당내의 영적독서클럽은 아무래도 무언가 ‘구심점’ 결여로 ‘흥미’를 유발하는 클럽의 운영상황이 아닌 듯 싶었다. 흔히 말하는 leadership의 부재 不在, 바로 그것은 아니었을까?
근래에 읽었던 책을 소개하면서 나보고도 읽어보지 않겠냐고 해서 ‘물론 ok’라고 해서 그 다음 주에 그 ‘프카’ 자매님2 손수 책을 갖다 주셨다. 이 동갑내기 자매님, 참 볼수록 정이 많은 분임을 알게 되기도 했다. 그 책의 제목이 바로 ‘아주 특별한 순간‘ 이었는데, 영성적 번역서로 많은 친근감을 주는 ‘류해욱 요셉’ 신부님이 엮은 책이었다.
책의 내용은 류신부님의 글이 아니고 ‘안토니오 사지’ 라는 ‘유명한’ 인도출신 신부님이 한국에서 지도한 ‘치유피정’의 강의부분을 아주 매끈하고 유려한 한글로 정리한 것이다. 또한 인상적인 것은 2013년에 첫 출판 후 2017년까지 18 쇄의 중판을 거듭한 것을 보면 아마도 ‘베스트셀러’ 급의 ‘좋은 책’이 아닐까 추측도 해 본다.
모두 25회의 강의로 이루어진 이 책을 접하며 문득 생각이 들었다. 25번의 피정 강의를 한꺼번에 읽는 대신 하루에 하나의 강의를 편안하게 소화를 하면 어떨까? 더 나아가서 2019년 사순절이 시작되는 3월 6일 (재의 수요일 Ash Wednesday)까지 모두 (쓰고) 읽으며 올해의 사순절을 더 특별하게 준비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월 5일까지 25회의 강의를 ‘들으려면’ 2월 9일부터 시작을 하면 될 것이고, 그것을 이곳 개인blog에 시한적으로 남겨두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류해욱 요셉 신부님은 물론 오래 전 (거의 20년 전?) 이곳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주임신부로 계셨던 분이라서 익숙하지만 사실 나 개인적으로는 당시에 성당엘 안 나갔기에 개인적인 느낌은 거의 없다. 애기로만 듣던 분이었지만 몇 년 전에 이곳을 방문했을 당시에 직접 강론을 들었다. 그 후 이분이 저서나 번역서를 읽기도 했는데 그 읽은 경험들이 아주 인상적이고 기억에 남는다. 한때 stroke로 쓰러지셨다고 해서 모두 걱정을 하고 기도를 했는데 그때 직접 보았을 때는 거의 완치가 된 듯 보였다.
이 책의 원저자격인 안토니오 사지 라는 분은 전혀 생소한 이름이지만 강의 내용을 읽고, 약력을 자세히 보니 류신부님의 말씀대로 ‘성령이 충만한’ 분인 듯싶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그런 피정을 지도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는 것이다. 특히 피정강의를 ‘강의록’ 에 전혀 의존하지 않고 성경만 가지고 한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책에 소개된 website를 가보니 그곳에 궁금했던 ‘모습’들이 나와 있었고 책보다 더 자세한 안토니오 신부님의 배경도 실려 있어서 이곳에 발췌 전재를 해 본다.
강단에 선 안토니오 사지 신부님
안토니오 신부와, 옮긴이 류해욱 요셉 신부님
Fr. Anthony Vadakkemury, V.C.
안토니오 신부는 1977년 5월1일 2남2녀 중 맏이로 인도에서 출생했다. 양친은 현재 인도의 케랄라에 살며, 그가 기억하는 가장 어렸을 때부터 그의 꿈은 사제가 되는 것이었다. 마침내 그는 신학교 과정을 인도와 동 아프리카의 케냐에서 수료했으며, 2006년 12월 29일 인도 케랄라에서 빈첸시오회 수도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리고 2007년 1월 6일 첫 미사를 거행하였다.
인도의 방갈로에서 신학교 철학 과정을 마친 뒤, 1년간의 사목 수련을 위해 그는 2002년 케냐의 나이로비로 보내졌다. 이후에 그는 신학 과정을 마치기 위해 아프리카의 가장 유명한 대학 중 하나인 ”탄가자 대학”에서 학업을 계속하였다. 그곳에서 그는 77개의 서로 다른 국적의 학생들과 지내며, 서로다른 여러 나라의 문화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2006년 5월 14일 그는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부제품을 받았고, 이후 케냐의 사목 수련시기 동안 케냐, 탄자니아, 우간다에서 동료 사제들과 함께 중등부 학생들을 위한 3일간의 피정을 (예수선교피정) 지도하였다. 그리고 매주 일요일마다 나이로비의 서로 다른 본당들에서 본당신부를 도와 강론을 하였으며, 어린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많은 본당들에서 청소년 그룹을 지도하였다. 특히 그는 청소년들이 영적인 측면에서 충분한 보살핌을 받고 있는지에 유의하였다. 또한 부제 생활 중에 수감자들을 위한 피정, 선교 등을 비롯한 많은 피정 프로그램을 지도하였다. 나이로비의 5년간 체류하면서 안토니오 신부는 동 아프리카의 빈첸시오 피정센터 중 하나인 빈첸시오 기도의 집에서도 봉사하였다.
안토니오 신부가 사제 서품 받은 직후, 그의 관구장으로부터 타자니아의 유빈자로 발령받아, 그곳에서 그는 두 달 간의 성공적인 사목 임기를 마치고 우간다의 엔테베로 가서 두 가지의 임무를 맡게 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엔테베의 빈첸시오 피정의 집에서 1일 피정을 지도하며 재정을 관리하였는데, 故 요셉 빌 신부가 그가 속한 분원의 장상이었다. 또 하나의 임무는 우간다의 마사카에서 새로운 피정센터를 건립하는 것있었다. 그리하여 엔테베에서 180km 떨어진 마사카를 매일같이 오가며 사제들을 위한 피정센터 건립을 추진하였다. 이 건물은 2008년 2월 23일 故 요셉 빌 신부의 80세 생일에 완공식을 거행하였다.
안토니오 신부는 故 요셉 빌 신부의 마지막 몇 주간을 함께하며 임종을 지키신 분으로, 그의 관구장은 故 요셉 빌 신부의 침묵 치유 피정 사업을 이어받을 후임자로 안토니오 신부를 임명하였다.
¶ 동지: 2018년 12월 19일 수요일, 이틀 뒤인 21일이 책상 위의 달력에 ‘Winter begins‘라고 쓰여 있다. 아하.. 바로 Winter Solstice, the Longest Night, Midwinter.. 고추장 냄새가 나는 우리 말 ‘동지 冬至’.. 이제는 동지란 말이 왜 그리 생소하고 심지어 우습게까지 들리는지 조금은 슬퍼진다. 그렇다. 나는 ‘동지’란 말을 들으면 내가 본향 本鄕 으로부터 얼마나 오래, 멀리 떨어져 살아왔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모양이다.
긴 밤 지새우고 나면 ‘진짜’ 겨울이 시작되는 날..
일년 중 밤이 제일 긴 날, 공식적 겨울이 시작되는 날은 이틀, 성탄은 6일, 2018년의 마지막 날은 열 이틀 정도 앞둔 날.. 2018년의 남은 날들을 어떻게 지낼 것인지.. 의무행사는 등대회 망년회, 구역점심봉사, 본당 구역 송년잔치가 있지만 ‘등대회’를 제외하고는 글자 그대로 ‘의무적’인 것으로, 솔직히 ‘할 것을 해야 하는, It’s now or never의 심정’으로 별로 신나는 것이 아니다.
아마도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것들은 나의 관심 대상이 아닌 것들이고 해야 되었어도 나는 ‘안 했을’ 그런 것들이다. 내가 변신을 한 것인지 누가 나를 그렇게 만든 것인지..
그래도 송년에 포근한 느낌을 주는 것이 있다면 60~70대 성당친교단체인 ‘어둠을 비추는’ 등대회, 같은 세대를 살았다는 인연은 믿음의 색깔도 초월하는, 생각보다 진하고 포근하다는 나의 ‘지론 至論’ 에는 아직도 변화가 없다.
¶ 망각의 나날들: 거의 한달 만에 내 마음의 위안처, 쉼터 ‘retro‘ blog posting 을 준비한다. Blog draft들은 그 동안 많이 남겨져 있었지만 그것을 posting할 시간과 에너지가 거의 없었다. 무언가 나를 지독하게 피곤하고 심지어 쳐지게 했던 그런 지나간 한 달..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
주로 (Microsoft Office) OneNote에 남겨진 나의 단편적 기억과 사건들을 다시 모으고 엮으며 달 간의 역사를 재구성해는 작업, 쉽지 않지만 해를 보내며 꼭 해야 할 일이다. 이런 것들을 통해서 이제는 기억력이 예전과 조금 다른 것을 희미하게나마 느끼고 있다.
¶ Sorry, Holy Family Catholic.. 오늘 아침 9시 미사엘 가니 정말 모처럼 Father Dan Ketter 가 오셨다. 도대체 몇 개월만인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오랜 만이다. 재능과 젊은 에너지가 철철 흐르는 이 신부님이 집전하는 미사에 참례를 하면 우리도 젊어지는 느낌이 들 뿐만 아니라 ‘바티칸 신학’ 강의를 듣는 기분까지 든다. 게다가 ‘목소리’가 알아 듣기에 거의 완벽한 정도의 pitch를 가졌기에 강론이 나의 모국어가 아닌 영어지만 99.99%를 알아듣는 행운까지 얻는다.
이렇게 우리는 차로 15분 거리의 이 ‘동네 성당 Holy Family Catholic Church‘와 거의 20여 년의 가족적 인연을 맺고, 6년이 넘는 매일미사의 은총을 주고 있다. 문제는 ‘미사의 꽃’인 주일미사를 이곳으로 못 가게 되어서 주일 헌금을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 마디로 ‘나를 구해준 곳’의 은혜를 저버린 듯한 느낌도 드는 것이다.
작년부터 도라빌의 한국 순교자 성당 주일미사로 가는 횟수가 점점 늘어난 것은 나에게 주일날 그곳에 갈 일들이 하나 둘 씩 늘어나기 시작했기 때문인데, 급기야는 올 들어서 모든 주일에 무엇인가 할 일들이 나를 기다리게 되었다. 한마디로 안 갈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왜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내가 꼭 이런 것을 바라고 원한 것은 아니었는데…
¶ Overnight at Big Canoe: 일년 만에 20년 역사를 자랑하는 ‘진희네 그룹’, 윤형 ‘별장’ 이 있는 Big Canoe로 단풍여행을 갔다. 아직 본격적인 단풍철이 아니지만 이 별장은 고도가 1000m를 넘는 높은 산 정상에 있기에 그곳은 이미 단풍이 서서히 들기 시작하였다. Gate까지 있는 이곳은 높은 산 곳곳에 ‘별장들이 몰려있는’ 조그만 별천지다. 메트로 아틀란타에서 차로 2시간도 안 떨어진 이곳은 사실 ‘아틀란타 부유한 사람들의 투자용 부동산’들이 대부분이다. 어떻게 그런 첩첩산중 산등성이 곳곳, 아슬아슬한 낭떠러지 같은 곳에 그렇게 큰 luxury house들을 지었는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경관이 좋은 집들 중에도 제일 높은 정상부근에 위친한 윤형의 별장에서, 작년과 달리 이번에는 하룻밤을 그곳에서 묵게 되었다.
이곳은 벌써 단풍이 들기 시작하고 낙엽이 쌓였다
갑자기 산등성이로 구름이 몰려와 운해로 변하고 있다
별장은 완전히 구름에 덮혔다
이곳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경치가 너무나 영화처럼 강렬해서 거의 꿈 속을 거니는 기분이지만 다른 한편 이런 시야를 며칠 계속 보고 있으면.. 글쎄, 당장 ‘초라하지만 사람의 숨결이 느껴지는’ 나의 집으로 오고 싶을 것이라는 ‘조금은 시기심’이 스며드는 생각에 당황하기도 한다. 이곳의 집들이 별장인 사람도 있지만 아예 이곳에서 항시 살고 있는 집도 많다고 하는데, 부럽기도 하지만 과연 매일같이 아름다운 경치를 보는 것, 항상 아름답게 보일까 의구심이 든다.
산꼭대기에 있는 집이 어떻게 우리 집보다 엄청 큰 것일까? 어떻게 그런 큰 집을 거의 비워두고 살 수 있는 것일까? 속으로 나는 항상 불편한 생각이 든다. 돈의 위력을 실감하기도 하고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는 느낌, 자본주의의 downside, 끝이 없는 인간의 ‘편해지려는 욕망’, 이런 것들 즉 과잉 된 편안함… 교차로에서 만나는 ‘구걸인’들, 집 없이 길거리에서 자는 사람들.. 모든 장면이 겹치는 듯한 환상..
¶ (마리에타) 사랑구역 斷想: 지난 7월부터 시작된 마리에타 사랑구역 구역장 임무, 몇 달이 총알처럼 날라간 기분으로 가끔은 내가 그 동안 무엇하며 살았나 하는 혼미 속에 빠지기도 한다. 특히 7월부터 9월 말까지는 솔직히 다른 세계로 가서 사는 기분도 들었다. 그만큼 나에게는 너무나 다른 세상을 경험한 것이다.
군대의 분대장은커녕 학창시절 반장, 그룹의 장 長 같은 것 한번도 못하고(아니 안 하고, 피하고) 살았던 나에게 이런 일은 사실 저물어가는 나이에도 어색하기만 한 것이다. 하지만 나이 듦의 혜택도 없지 않은 것이 소싯적 보다는 ‘겁, 우려’ 같은 것이 훨씬 덜하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늦은 깡’이라고나 할까.. ‘배 째라’ 하는 유행어가 실감이 나는 것이다.
이 구역장 일을 하는데 문제는, 어떻게 하면 ‘나도 좋고 구역그룹도 좋은’ 그런 ‘황금법칙’을 찾느냐 하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9월초부터는 자비의 모후 레지오의 단장까지 떠맡게 되었으니 timing이 어쩌면 이렇게도 재미있을까? 아마도 성모님이 ‘이제까지 피하며 살던 빚을 갚아라’ 고 호통을 치시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 이것은 오래 연체된 빚을 갚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하느님과 너무 멀리 떨어지지 않게 나를 잡아준 이 성당 구역에서 나는 한번도 봉사를 못할 수도 있었지만 이렇게 ‘기회’가 온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 듯해서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는 조금 더 ‘의미’를 생각하며 임무를 맡고 있는데.. 글쎄, 의미를 두고 심각하게 일을 하려고 하면 할수록 나의 ‘갈등, 실망, 심지어 놀람’은 부터 평화는 커녕 숨어 있던 분노심까지 들추고 있으니.. 이 일이 어려운 임무라는 희미한 예측은 항상 있었지만 실제로 겪는 ‘어려움’은 상상 밖 중의 밖이고, 아직도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다. 문득 문득, ‘다 집어 치우자!’라는 ‘악마적’ 생각도 들 정도다.
구역을 이끄는 ‘일 자체’라고 하면 모호하지만 힘을 쓰는, 몸이 힘든 일보다 ‘사람으로부터 받는 실망감’ 은 정말 평화의 적 중의 적이라는 ‘주위로부터 많이 듣던’ 사실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구역 총무님 댁의 private marina, 개인 boat도 있다
구역 야유회를 가려고 한 것이 공원예약차질 문제로 호수 변에 있는 그림처럼 아담한 별장 같은 총무님 댁으로 옮겨서 했는데, 한마디로 near-disaster였다. 예약 담당자의 실수이기도 했지만 결국은 총책임은 내가 져야 함을 절감했다. 마지막 확인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이 모임에서 나는 정말 ugly 한 장면을 목격했다. 내가 이제까지 우호적으로 생각해 왔던 어떤 사람들의 모습이 사실은 허상이었다는 사실, 그 장면은 아직도 충격으로 남아있다. 이제까지 모였던 모습과 이번에 드러난 실제의 인간성이 어쩌면 그렇게 다른지, 나는 놀라고 또 놀란다. 이런 사실들로부터 나는 ‘정치적’이라는 말의 뜻을 이 나이에야 어렴풋이 실감하게 되었고, 이것은 내가 이런 임무들을 맡은 결정에 대한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라도 어렴풋이 이론적으로만 알던 사실을 체험하는 것, 나에게는 커다란 수확으로 남기려 한다.
가라오케, Karaoke, ‘가라 오케스트라, 가짜 오케스트라’.. 참 준말의 귀재들, 일본아해들 말도 잘 만들었다. ‘축소지향의 일본인’들이라서 작지만 유용한 것들 잘도 만들었다. 밴드나 반주하는 악단 없이 노래와 율동을 마음껏 할 수 있는 sound system, 누가 마다하겠는가? 지나간 주일에는 이것과 연관된 일들이 두 번이나 겪었다. 노래를 불렀을 것이라 즐겁고 신나는 일들이었어야 하겠지만 결과는 정 반대다.
첫 번째 case가 지난 23일 일요일에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본당의 날과 추석잔치’ 행사 중에 있었던 audio system near-disaster 였다. 이날의 행사는 내가 마리에타 사랑구역장이 된 이후 제일 진을 빼고 신경을 썼던 것으로 ‘불참하자고 징징 우는’ mere mortal, member들의 등을 떠밀며 강행했던 ‘노래와 율동’의 공연이었다.
다른 구역들의 공연내용을 보면 거의 모두 ‘가라오케’ audio 로 100% 율동을 하는 것으로 이날 이들은 목소리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신나게 춤들을 추었다. 하지만 우리를 비롯한 소수의 그룹은 ‘vocal’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으로 microphone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건에 속했다. 문제는 이날 sound system 을 맡은 ‘사목회’ (내가 보기에 ‘시로도’급)는 거창한 mixer를 포함한 wifi-youtube-karaoke 에는 시간을 썼지만 무대에 놓여진 몇 개의 microphone은 모두 ‘먹통’으로 방치해 놓은 것이었다.
미리 stage rehearsal을 했으면 이런 문제를 방지할 수 있었겠지만 때는 늦었다. 공연 무대에 올라가 악을 쓰고, 기타는 줄이 끊어질 정도로 노력했지만 결과는 ‘소리가 하나도 안 들린다’라는 혹평, 결국 우리도 ‘율동’만 관객에게 전해진 셈이 되었다. 도대체 누구의 잘못인가? 우리 구역 총책임자인 나도 책임을 면할 수 없었다. 미리 점검을 못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구역조차 같은 문제로 고생을 했으니 결국은 무대 연출 총 책임자가 그야말로 책임을 질 노릇이 아닌가?
두 번째 가라오케 disaster는 3명이 매월 마지막 목요일 밤에 모이는 ‘목요회’에서 있었다. 이것은 사실 그 정도로 놀랄 일은 못되었다. 3명 중 한 명이 노래방에 앉아서 침묵으로 일관을 한 것인데.. 정말 안타까운 노릇이 아닌가? 이날은 목요회가 모이기 시작한지 1주년이 되는 날이라 특별한 event를 만들고 싶었는데 아무리 우울하다고 해서 그 정도로 노력을 못 한다는 것이 놀랍기만 했다. 이날 비로소 나는 이 친구가 정말 심각한 정신적인 ‘병’을 앓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고 무슨 ‘파격적인 수’를 써야겠다는 자괴감에 빠진 그런 목요회 1주년을 보냈다.
9월 4일, 내가 8년 동안 몸담고, 나름대로는 헌신적으로 봉사했던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소속 레지오 쁘레시디움1 ‘자비의 모후’ 의 단장이 되었다. 2011년 초 입단선서 이후 거의 8년 동안 회계 2년, 서기 6년을 맡았는데 그것들의 임기가 모두 다 끝난 것이다. 그 동안 세월이 그렇게 흐른 것에 놀랐다.
물론 나의 다음 일은 ‘피할 수 없는 운명’, 단장직이라는 것을 모를 리가 없었고, 지난 8년 동안 ‘그저 하라는 것은 묻지도 말고 따르자’ 하는 순명의 자세로 임하면 된다고 생각을 하며 이 시점을 맞았지만, 생각지도 않았던 ‘묘한 timing’ 이 아주 신경이 쓰였다. 예상치도 않게 지난 7월부터 성당 구역장이 된 것, 생각보다 신경 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고 거의 모두가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것으로, 그 동안 조용하게 살았던 생활방식이 송두리 채 바뀌고 있는 바로 그런 시점에 또 다른 ‘장 長 자리’에 앉게 된 것이다. 어떤 장 長 자리가 더 중요한 것인가? 왜 칠순이 넘은 나이에 이런 일들이 나에게 온 것인가? 하지만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 정도로 몸과 마음이 바빠진 것이다.
단장의 임무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레지오의 운명, 발전과 성패는 단장에게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라는 말로 임무의 중요성은 알겠지만 문제는 이런 중차대한 임무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이룰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아닐까? 서기직을 6년 동안 하면서 대강 단장의 일을 옆에서 보아 왔기에 익숙해 졌다고 생각은 하지만 일단 맡고 시작을 해보니 생소하게만 느껴진다.
일단 ‘성모님의 부탁’을 받았으니 나름대로 계획을 세우고 3년을 마칠 각오는 되어있지만 우선 처리해야 할 중차대한 안건이 나의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 동안 우리를 괴롭히고 분열시키려고 했던 ‘두 명의 독소 毒素 적 현, 전 단원’을 징계하고 탄핵하는 일, 바로 그것이다.
Workshop at Fort Yargo: 이런 색다른 workshop 에 마지막으로 가본 것이 언제였을까? 암만 머리를 굴려도 이런 모임에 가본 적은 없는 것 같다. Workshop이니까 무엇을 배우러 간 것인데, 특색은 하룻밤을 Fort Yargo State Park resort cabin에 20여명 이상의 가톨릭 신자 형제, 자매들이 모여서 ‘놀고, 나누고, 배우는’ 그런 것으로 끝나고 난 지금도 사실 아직도 머리가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다.
이’구역장 workshop’ 은 2018년도의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구역장들이 신부님, 사목회장단 들과 모여서 어떻게 성당을 구역 중심으로 효과적으로 운영을 하는가에 대해서 공부하는 좋은 기회인데, 특별히 나 같이 ‘경험이 전혀 없는 구역장’에게는 시기적으로 적절한 모임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귀찮다’ 라는 외침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나를 유혹하는 것, 이 칠십의 나이에 전혀 모르는, 그것도 대부분 나보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그것도 하루 밤을 자면서.. 그것도 신부님, 자매님들도 같이… 우아~ 싫다, 갑자기 귀찮아진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지만 역시 ‘레지오 성모님에게 등을 떠밀려’ 각오를 단단히 한 자세로 이 모임을 받아들였다.
Cabins at Fort Yargo
Fully nicely furnished cabin interior
1박 2일 예정의 이 workshop의 첫 날(밤)은 사실 친교(나눔과 여흥)로 거의 밤잠을 설칠 정도였는데, 서로 잘 모르는 구역장들이 친숙해지려면 이 방법도 좋을 듯 했다. 이 친교가 끝나고 난 후에는 거의 모든 참가자들이 거의 친구처럼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이날 밤 여흥 순서는 예측대로 노래방에 간 듯한 느낌이었고 가끔 신부님도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분위기를 이끌었다.
이날 전에 듣던 대로 신부님의 기타 style을 목격할 수 있었다. Strumming이 상당한 수준급이었고 노래의 chord는 거의 암기한 듯 했다. 그러니까 혼자서 기타를 많이 치시는 듯 했다. 모든 사람들, 돌아가며 mic 를 잡고 신들린 듯 가라오케 노래, 춤을 추었다. 나의 차례가 오자 난감한 나에게는 역시 몇 곡의 익숙한 노래와, 통 guitar밖에 없었고, 신부님 기타를 빌려 70년대의 ‘젊은 연인들’을 불렀는데 갑자기 바뀐 70/80 style 노래의 느낌에 모두들 놀란 눈치였지만 많은 박수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칠순의 나이에 ‘젊은 연인들’을 부르는 것, 웃기는 것 아닌가 하는 어색함은 떨칠 수가 없었다.
다음 날 하루 종일 교회에서 구역의 의미와 운영에 대한 심도 있는 workshop이 진행되었고 나는 이때 실질적인 문제에 대한 많은 조언, 경험담, 해결책 등 을 접할 수 있었다. 나에게 당장 떨어진 우리구역 운영에 대한 것이라 실감나게 곧 써먹을 수 있는 각종 tip을 얻은 셈인데 이것으로 비록 밤잠을 거의 못 잔 피로감은 엄습했지만 참가하길 너무 잘했다는 안도감으로 위로를 받았다.
앞으로 나는 ‘경험이 전혀 없는’ 신 구역장으로 20명 내외의 구역식구들을 이끌고 본당의 날 행사에 참가해야 하는 ‘무거운 일’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결과에 너무 연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노력을 하는 것, 그것이 나의 목표다.
¶ 서서히 길어지는 밤: 7월, 그것도 30일.. 허~~ 벌써 7월이 다 갔다는 말인가? 언제나 세월의 ‘가속도’에 놀라지만 이번은 그 중에서도 제일 빠른 느낌이다. 한 달이 거의 일주일도 안 된 느낌이 드는 것이다. 하기야 이번 7월은 나의 기억에서 정말 제일 바쁜 그런 나날들이었으니까 빠른 느낌일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무언가 머릿속도 정리가 잘 되지 않은 채 지나간 느낌, 점점 한가해져야 하는 이 나이에 나도 조금 이해하기가 힘 든다.
이른 아침에 밖을 쳐다보니 조금 느낌이 다르다. 확실히 아침이 전보다 조금 어두워졌다. 낮 길이가 점점 짧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이렇게 밤과 낮이 같아지면 또 가을이 시작되는가? 또한, 그림자들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인데 오랜 만에 보는 시야였던가.. 아하! 날씨가 흐렸구나. 작열하는 햇빛이 없으니 당연히 서늘한 느낌도 들었다.
그러고 보니 한 동안 거의 매일 code Orange같은 경고가 나올 정도로 공기가 메말랐던 나날을 보낸 것이다. 한차례 시원한 소나기가 조금 그리워지는 7월말 중복이 지나가고 말복을 향한 본격적인 늙은 여름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러면 다시 계절은 바뀔 것이고..
올 여름은 비교적 시원한 편이다. 비가 자주 와서도 그렇지만 심리적으로 ‘새로 설치한’ 2대의 에어컨, 이제는 하루 아침에 고장 나는 일이 없으리라는 생각에, 두 다리 쭉 뻗고 찬 공기를 만끽하니 더욱 시원한 느낌이다.
¶ 레지오 점심봉사: 지나간 주말(어제, 그제)은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점심봉사로, 피곤하지만 보람 있는 이틀을 보냈다. 일년에 한번씩 레지오가 하는 점심식사 봉사팀에 우리가 포함되었는데 3년에 한번씩 돌아오게 되는 것이라 사실 큰 부담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의 봉사팀의 구성은 인원수가 워낙 적어서 (참가 3 쁘레시디움이 모두 최소한의 적은 단원을 가졌음) 신경이 쓰였는데 다행히 꾸리아에서 ‘전폭 지원‘을 해 주어서 무사히 성공리에 끝을 냈다. 또한 대부분이 자매님들인 레지오에서 이번의 봉사팀에는 의외로 형제님들이 그런대로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
이날 점심은 지난 6월 우리 구역 점심봉사 때 했던 ‘모밀국수’를 했는데 그때의 경험을 100% 활용을 하였다. 물론 대부분의 모밀국수 menu idea는 연숙으로부터 나온 것이지만 모두들 열심히 협조해서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을 생각하기도 했다.
솔직히 이번의 일, 우리는 2일 거의 full-time으로 일을 한 셈인데, 역시 조금 무리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우선 우리들의 나이도 그렇고, 해야 할 다른 일들이 끊임없이 기다리고 있어서 이런 식으로 언제까지 버틸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Moderation, moderation을 motto로 살아왔던 우리들, 이런 것들이 시험 case인가.. 한마디로 take it to the limit이란 Eagles의 노래가 생각날 정도였다. 이날 모든 일들을 마치고 귀가해서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아픈 후유증을 달랬지만 역시 나이 탓인가… 쉽게 풀리지를 않는다.
¶ 1년이 가까워 오는 목요회: 7월의 마지막 목요일 밤 8시 반에 어김없이 우리 목요회 멤버들이 ‘궁상맞게’ 모였다. 다 늙은 남자 3명이 목요일 그것도 밤 8시 넘어서 외식을 한다는 것은 암만 그림을 예쁘게 그려보아도 예쁠 수가 없다. 하지만 모임은 계절을 몇 번 거듭하면서 조금씩 덜 궁상맞게, 더 예쁘게 탈바꿈을 하고 있다. 그것을 모두 같이 느끼는 것 또한 경이로운 사실이다.
작년 9월 마지막 목요일에 모였던 것이 시작이었고 언제까지 계속될 지 아무도 알려고 하지 않았지만 무언 無言 속의 표정들은 ‘아마도’ 오래 가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3명 모두 너무나 다른 사연과 생활방식을 가지고 있고 풀어나가야 할 도전이 만만치 않다. 이런 모임에서 그런 문제들을 정면으로 풀어나가는 것,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가벼운 화제, 논쟁의 여지가 없는 이야기로 2시간 정도를 보낸다.
살기가 너무 힘든 때에는 아무 말 못하고 듣기만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거의 일년이 가까워 오는 지금 시점에서 우리는 서로를 많이 알게 되어가고 이 모임은 확실히 우리에게 어떤 삶의 희망을 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디 그 뿐인가? 얼마 전부터 오랜 냉담을 풀고 귀향을 한 형제가 있었으니.. 그래서 그런지 이번에 모였을 때는 이제까지 중에서 가장 즐겁고 유쾌한 그런 모임이 되었고, 1년이 되는 9월에는 모두들 ‘무언가 기념식’이라도 하자고 의견을 모으며 늦은 밤 헤어졌다. “친구들이여 우리 그날까지 열심히 삽시다!“
¶ 장례 예배: 장례, 연도 같은 연령행사가 뜸했던 요즈음 뜻하지 않은 곳에서 부음 訃音 을 듣게 되었다. 연숙의 이대 梨大 선배 김경자씨의 남편이 타계한 것이다. 이분은 1990년대 아틀란타 부동산업계의 선두주자로 잘 알려지신 분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소식이 뜸해지고 우리도 거의 잊고 살게 되었다. 지금 사는 마리에타 우리 집은 1992년 초에 이분의 소개로 사게 되었던 사연도 가지고 있다. 그 당시 집 구경을 처음 할 때 서로 만났던 McDonald’s, 우리가 자주 가는 곳인데 갈 때마다 가끔 이분의 기억을 떠올리곤 했다.
이분들은 개신교 배경의 집안이라서 교회에서 장례식을 하리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장의사 chapel에서 해서 그곳에 다녀온 것이다. 천주교 장례미사와 너무나 차원이 다른 ‘간단한 예식’이었다. 그곳에서 알게 된 사실은 고인의 막내 동생이 성당에 다닌다는 사실, 전에 교리반 교사로 연숙과 같이 일했었다는 원선시오 형제였다는 사실, 이날 얼굴을 보니 사실 고인과 얼굴이 닮긴 닮았다. 나는 이 형제님을 잘 모르지만 ‘접근하기가 어려운’ 그런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이었다.
Take it to the limit – The Eagles
¶Jim Beam & Charlie Chan: 근래에 ‘공적인 활동’이 늘어난 이후 느끼는 것은 바쁘고 보람된 일들 뒤에 ‘꼭’ 찾아오는 선물 같은 ‘심도 깊은 평화, 망중한의 텅 빈 머리’ 이것들 중에도 망중한 忙中閑의 기쁨 중에도 이 두 단어가 바로 그것들이다. 우리 집에서 있었던 구역미사를 위해서 liquor store까지 가서 사온 ‘양주’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Bourbon의 명품, Jim Beam이었다. 그때 ‘몰래’ 사온 세 가치의 cigar도 나의 기대를 자극하는 즐거움이었다. 물론 양주는 신부님 접대용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실제로 거의 없어지질 않아서 그 이후 cigar와 함께 망중한의 즐거움으로 쓰였다. 사실 혼자서 즐기는 것이 되었지만 이럴 때 먼 옛날의 친구들과 어울려 마실 때를 회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다~ 지나갔다. 모든 즐거움 들은 다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또 다른 것, Charlie Chan.. 수십 년 전 미국에 처음 왔을 때 TV를 보면 그 당시의 nostalgic channel 역할을 하던 channel에서 이런 류의 TV drama가 있었다. 평생에 이런 Charlie Chan이란 말 조차 못 들었는데 그 옛날 (1940년대)에 어떻게 ‘짱께’가 주인공을 나오는 TV program이 있었을까 의아하기만 했다. 그것을 요사이 Youtube를 통해서 다시 보게 된 것이다. 요새 기준으로 보면 비록 범죄추리극이라고는 하지만 너무나 순진한 장면들 투성이.. 그러니까.. 마음 놓고 마음 안 상하고 ‘즐길 수’있는 그런 것, 특히 편히 쉴 때 이것을 보면 마음 속 깊은 평화까지 느끼게 된다.
Peace and joy with Jim Beam & cigars..Peace with Charlie Chan time
‘사상 史上 첫’ 구역미사, 지나간 2주일에 가까운 동안 나의 머리는 온통 한가지 생각으로 꽉 차있었다. 구역미사… 오랫동안 별 큰 느낌이나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체험했던 구역미사라는 것, 그것이 이번에는 완전히 개인적인, 가족적인 ‘큰’ 행사로 우리 집에서 집전되는 구역미사가 나의 코 앞에 다가 왔던 것이다.
우선 제일 큰 의미는, 우리 집에서 봉헌된 미사라는 것이고, 따라서 우리 집에 ‘사상 처음’으로 사제가 방문을 했다는 것에 있었다. ‘자기 집에서 신부, 사제 모시고 식사를 같이 했다’ 라는 주변의 말 많이 들었지만 사실 그때는 그런 것 솔직히 그렇게 부럽지는 않았다. 그저 그런 ‘올바른 생활의 사나이’들과 같이 앉아서 식사가 편히 될까.. 하는 유치한 생각으로 살았던 때도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런 유치한 생각은 몇 년 전부터 서서히 사라지고 한번 모시는 것도 나쁘지 않다.. 라는 쪽을 나의 가슴이 열리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몇 년 전부터는 한번 모시자.. 라는 희망사항으로 바뀌었다. 신부, 사제가 어떤 직분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이제는 ‘열린 가슴으로 정확히, 올바르게’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 첫 case가 바로 전 주임신부님, 하태수 미카엘 신부님이었다. 결과적으로 모시는 계획은 유산되었지만 그 이후 나는 활짝 열린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보게 된 ‘새로운 세계관’의 소유자로 살수 있게 되었다.
구역미사를 기다리는 우리 집의 living room view, 협소한 공간이지만 just right size..
이번 우리 집에서 집전된 구역 미사는 내가 마리에타 사랑구역장을 7월 초부터 인수하고 난 후 처음의 ‘큰 구역 행사’가 되었는데 이런 사실이 우리 집에는 기쁘긴 하지만, 그만큼 나와 연숙에게 상당한 스트레스를 준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나는 아직도 생소한 우리 구역식구들에게 미사참례를 독려하는 중요한 책임으로, 연숙은 hostess로 신부, 구역식구들의 음식준비로 정신이 거의 없었다. 구역식구의 반 이상이 오면 나는 우선 성공한 것이라 미리 점을 치기도 했다.
어려움은 이런 정신적, 심리적 스트레스 뿐이 아니었다. 오랜 세월 동안 (최소한 20여 년) 별로 ‘찾아온 손님’이 거의 없었던 우리 집은 이런 ‘큰 행사’를 치르기에 너무나 피곤하고 깨끗하지 못함을 알기에 생각보다 힘든 ‘육체적 노동’을 피할 수가 없었다. 지난 5월 말에 일단 구역모임을 한 번 경험했고 그 당시에 일단 ‘대강의 청소’는 했지만 이번에는 신부님과 총구역장까지 오게 되어서 가급적 ‘때 빼고, 광 내는’ 과정을 거쳐야 했던 것, 이것이 아무래도 나의 나이에 무리였을 것이다. 비록 기쁜 마음으로 노동은 했지만 후유증은 상당했다.
현 주임 이재욱 요한 신부님은 부임초기부터 병자성사에 동행을 하면서 가깝게 느꼈고, 온화함, 배려심 등으로 언제나 함께하고 싶은 본당신부님으로, 이임하기 전에 한번 집에 모시고 싶었던 참이었는데 이날 다른 계기로 우리 집을 방문하게 된 것이고, 우연일까, 아주 우연만은 아닌 듯한 생각도 들었다.
미사참례 출석률이 예상을 넘는 2/3 정도가 되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던 이번의 우리 집 구역미사의 의미는 무엇일까.. 생각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 집은 이제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mainstream parishioner가 되었다는 것, 그것이 아닐까? 부차적으로 나의 첫 구역장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는 사실, 우리 구역식구들과의 mutual chemistry의 ‘냄새’를 조금은 맡을 수 있었다는 것도 앞으로 2년간 약속된 나의 구역장 임기를 무사히 마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희망.. 그런 것 아닐까…
2018년의 6개월, 그러니까 정확히 절반을 벗어난 7월의 첫 주가 또 서서히 지나가고 있다. 어쩌면 시간과 세월은 그렇게도 정직한 것일까? 어김이 없다. 절대로.. 절대로 시간과 세월을 가지고 ‘놀면’ 안 된다는 교훈을 다시금 일깨우는 요즈음, 나는 경미 輕微한 우울감 憂鬱感을 떨치지 못하며 살고 있다. 그와 비례해서 마음속 깊은 곳 평화의 깊이도 함께 얕아진 것을 느낀다. 주원인은 물론 나의 분신 Tobey1가 거의 ‘갑자기’ 나에게서 영원히 떠나간 것, ‘실존적 부재 不在’가 주는 공허, 고통이 어쩌면 그렇게도 괴로운 것인지.. 이렇게 세월은 공평한 것, 사람의 삶의 나날은 높을 때도 있고 낮을 때도 있다.
그제부터 새로니의 pet dog Ozzie가 우리와 일주일간 머물게 되었다. 물론 새로니가 vacation차2 집을 떠나야 하기 때문이었지만, 갑자기 조용해진 우리 집에 다시 개의 소리가 들리게 된 것, timing이 나쁘지 않았다. Tobey와 너무나 personality가 다른 Ozzie, 같이 머무는 것 나의 생각을 한 곳만 머물지 못하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되기를 바라지만 어떨까? 오늘도 한여름다운 여름 날씨에 그 녀석을 데리고 동네를 걸었다. 거의 10여 년간 Tobey와 같이 걷던 이 course를 이 녀석과 둘이 만 걸으니 다시 ‘없는’ Tobey가 그리워진다. 한 여름 날씨를 가슴으로 느끼며 불현듯, 갑자기.. 거의 20년 전 쯤 온 가족이 여름마다 갔었던 Florida Gulf coast, Panama City Beach의 백사장이 떠오르고 며칠 동안 그곳이나 다녀올까…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역시 ‘귀찮다’는 생각이 모든 것을 덮쳐버린다.
나의 study에 언제나 앉아 있던 Tobey가 없어진 자리에 Ozzie가 졸고..
Tobey 없는 dog walk, 대신 Ozzie와 같이 걷고 playground에 눕기도..
어제는 Fourth of July, Independence Day holiday.. just another holiday일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지냈다. 과연 미국이란 어떤 나라일까 새삼스러운 것은 무슨 조화일까? 거의 45년 가까운 동안 살면서 별로 그런 생각을 못하고 살았는지도 모른다는 자책감이 없지 않다. 그저 하늘아래 그것도 대한민국과 반대편 쪽 바다에 걸친 거대한 대륙에 250년에 가까운 ‘자유 민주주의’ 전통.. 과연 이런 역사 기록을 가진 나라가 다른 곳에 있을까 하는 의문도 가진다. 각종 문제와 싸우고는 있지만 그래도 이곳은 이들이 금과옥조 金科玉條로 여기는 ‘헌법 constitution’에 목숨을 건, 용맹스러운 나라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이날 동네 본당인 Holy Family 성당 아침 미사에서는 Father Dan (Ketter)은 평상적인 homily대신 Declaration of Independence 전문 全文 을 읽었는데, 250년 전의 그 문장은 그리 옛 것처럼 들리지 않았다. 특히 첫 부분의 두 번째 문장은 정말 인상적이 아닐 수 없다. truth, equal, endowed, Creator, Rights, Life, Liberty, Happiness… 그 중에서도 Creator란 단어는 그저 장식용으로 쓴 것은 절대로 아닐 듯하다.
We hold these truths to be self-evident, that all men are created equal, that they are endowed by their Creator with certain unalienable Rights, that among these are Life, Liberty and the pursuit of Happiness.
무언가 허전한 기분을 달래려 계획에 없는 barbecue 생각이 났고 거의 일년 만에 charcoal grille의 cover를 꺼내고 마지막으로 남은 wood charcoal에 불을 부쳐서 barbecue보다 더 맛있는 ‘불고기’를 구웠다. 그래도 이렇게 7월 4일의 오후를 연숙, Ozzie와 같이 맥주, grille 로 보낸 것, 조금은 추억에 남지 않을까..
이날 밤은 다행히 비가 올 chance가 많지 않아서 불꽃놀이의 소음을 예상하고 있었다. 우리 동네 subdivision는 ‘전통적’으로 불꽃놀이 firework이 없었고 먼 곳에서 하는 것들의 소리만 듣곤 했지만 이번에는 우리 앞집의 비교적 젊은 Josh가 주동해서 우리 집 바로 앞의 cul-de-sac 에서 firework을 했는데 비록 개인적으로 한 것이지만 어찌나 요란스럽던지 우리 집의 개와 고양이들이 모두 겁에 질려 숨을 곳을 찾기도 했다. 매년 별 감흥 없이 이런 소리를 듣고 했지만 이번에는 조금 더 의미가 실린 ‘자유의 외침’ 같은 것으로 들린 것이, 나 역시 나이가 깊이 들었구나 실감을 한다. 앞으로 이런 ‘자유의 소음’을 몇 번이나 듣게 될까..
지나간 주일(일요일)날은 예전 같았으면 한국성당에 아무 business가 없었기에 조금은 편한 일요일이었지만 이번부터는 사정이 달라졌다. 7월부터 2년간 아틀란타 한국 순교자 성당의 (마리에타 사랑)구역장을 맡게 되었고 첫 주일날에는 구역장회의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 직책이 별것 아닐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나에게 맡겨진 직분, 최선을 다하자는 각오는 변함이 없다. 아마도 내가 ‘봉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려는 노력을 하면 된다. 내 인생의 후반에 더욱 깨닫는 것 중에 ‘결과보다는 과정’에 더 의미가 있다는 것이 있는데, 젊었을 때와는 사실 완전히 반대인 것이 재미있다. 2년 뒤 나의 임기가 무사히 끝나게 되면 나는 어떤 구역장으로 기록이나 기억에 남게 될 것이지 궁금하다.
¶ Roller coaster week: 지금 지나가고 있는 하루하루는 글자 그대로 roller coaster week 라고 할 수 있다. 희비가 교차하는, 오르락 내리락 하는 느낌이 거의 주기적으로 반복되었던 주일, 때로는 정말 괴로운 순간들도 있었던 6월 초순을 보내고 있다. 주 원인은 우리 집 열네 살이 넘은 ‘나보다 늙은’ 정든 개 Tobey의 건강문제 때문이었지만 우리가 바보같이 만든 ‘인재 人災’도 이럴 때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 결과만 만들었다. 왜 이렇게 ‘어려운 일’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것일까? 그것이 인생이다.. 라면 더 이상 할 말이 없고 그것이 또한 사실이다.
갑자기 구토, 설사로 시작된 것, 왜 그랬는지 이유는 알 길이 없지만 문제는 먹지를 못하니 평소에 ‘관절염’으로 먹는 약까지 끊게 되어 사태는 악화일로 였다. Good Old veterinarian (수의사) 에게 데려가는 것은 원칙적으로 꺼린다. 각종, ‘불필요할지도 모르는’ test로 시간을 다 보낼 것이 분명한 것이고 그러면 더 악화가 될지도..
이 녀석 기운이 빠지고 아파하는 모습에서는 ‘죽음의 그림자’까지 느껴지고, 우리는 절망의 기분까지 들었다. 급할 때는 묵주를 무의식적으로 굴리고 있을 정도였지만, 성모님의 도움인지, 정성스런 간호 덕인지 다행히 설사도 멎고 서서히 먹기 시작하면서 죽음의 그림자는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회복이 예전에 비해서 너무나 느린 것을 보면서 다시 생각한다. 나이 탓인가.. 아니면 무슨 큰 병이 있는 것인가? 얼마 있으면 annual medical checkup이 있어서 (동물)병원엘 가니까 그때면 더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moaning & limping.. sick Tobey
Pet 을 집에서 키우는 사람들은 이런 것 한두 번씩은 경험을 했을 것이지만 이렇게 거의 집안 식구가 된 pet animal을 영원히 보낸다는 생각을 하면 사람이나 동물이나 큰 차이가 없음을 다시 한번 절감을 한다. 이런 것들 사실 자연의 법이기에 겸허하게 받아드리는 것이 옳은 일일 것 같다. 세상에서 변치 않는, 영원한 것은 하느님 밖에 없다는 사실만 잊지 말자.
¶ Climbing in Canada: 새로니가 (여름)방학이 되자마자 떠난 2주간의 Canada trip을 마치고 돌아왔다. 학교 teacher가 되면서 2개월에 가까운 ‘긴’ 여름방학을 손꼽아 기다린다. 우리 시절에는 꿈도 못 꾸던 모험적인 취미여행을 떠나곤 한다. 요새 ‘아이’들, 경제적 여유만 있으면 이런 즐거운 30대를 보낸다. 결혼과 가정을 만드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할 나이에 이렇게 놀러 다니는 것을 보며 세대가 참 많이 변했음을 실감한다.
새로니 친구들과 모두 3명이 갔던 Canada(Rockies, Vancouver) 여행 사진을 보며 나는 다른 생각에 빠진다. 나나 연숙, 이제 그런 여행들, 귀찮다는 인상을 받는다. 편한 집에 눌러 앉아 있는 것이 우리에게는 훨씬 유익하고 건강한 ‘휴가여행’인 것이다. 솔직히 돈을 주고 갔다 오라고 해도 별로 구미가 안 당기는 것이다. 단 한가지, 이번 여행 중에 찍은 사진 중에 rock-climbing하는 것, 나의 오래된 추억이 샘물처럼 흘러 나왔다. 한때 나도 저런 것에 ‘미친 때’가 있었지.. 하는 감상적인 느낌들은 즐기고 싶었다. 그때가 1970년 경, 거의 일 년을 ‘바위 타기’에 많은 시간을 ‘허송’했던 대학 4학년 시절. 비록 ‘공부’는 손해를 보았을지라도 아직까지 나에게는 이렇게 신명 나는 추억거리를 제공했으니 그깟 공부가 그렇게 대수인가.. 그것에 지금 나의 딸이 푹 빠져있으니 무엇이라고 말할 것인가?
2주 동안 우리 집에서 다른 의미의 vacation을 가져야만 했던 새로니의 pet dog Ozzie가 새로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간 우리 집은 갑자기 고요 속을 빠진 듯한 느낌. 우리 집의 Tobey가 아직도 완쾌가 되지 않은 상태라서 더욱 고요하고 우리의 느낌은 쳐진다.
¶ Curia Monthly Sunday: 머리 속이 안정이 되지 않은 채로 ‘꾸리아 월례회의’가 열리는 매달 2번째 주일을 맞아 ‘조심스럽게’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을 갔다. 조심스럽게 간 이유는 꾸리아 월례회의 때문이기 보다는 주일미사를 누가 집전을 할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만약 둘루스 성당 (윗동네) 신부가 집전하는 것을 미리 알 수 있다면 미국성당으로 향하여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 정도로 나의 ‘그 신부’에 대한 ‘반감, 혐오감, 앨러지’가 특이하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별 수가 없어서 포기한 상태이기도 하다. 다행히 우리 본당 신부님 집전이 밝혀져서 ‘안심하고’ 그곳엘 가게 되었다.
이날은 오랜만에 등대회 형제님들, 특히 요한 형제와 점심을 같이할 수 있었고, 꾸리아 월례회의도 그런대로 흡족한 느낌으로 마칠 수가 있었다. 생각한다. 전에 있던 간부진들에 비해서 아주 신선한 스타일로 회의를 진행하며 ‘약해질 대로 약해진’ 레지오 조직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가 있었다.
불과 몇 달전 前의 꾸리아 leadership을 싫지만 기억한다. 그 중에서 2명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toxic, terrible, horrible한 기억으로, 앞으로 ‘연구 대상’이 될 정도다. 그러니까 ‘이런 사람들처럼 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주는 case study로 삼을 정도란 뜻이다. 그 결과 현재 이 조직은 거의 limping하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별것 아닌 듯 보이는 꾸리아 평의원들, leadership을 잘못 뽑으면(Trump처럼) 이런 disaster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생각하면 다음부터는 공과 사를 전혀 구별 못하는 ‘아줌마 tribalism‘ 에서 벗어나는 노력을 조금이라도 하면 어떨까?
이렇게 결과적으로 밝은 기분으로 ‘주일 의무’가 끝났는데, 이날은 bonus까지 주어졌다. 정말 오랜만에 스테파노 형제 부부와 같이 성당근처에 있는 Mozart Bakery에 모여서 ‘수다’를 떠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작년 8월의 ‘레지오 괴물, 미친년 사건’ 덕분에 가까워진 이 부부, 나이가 비슷하고, ‘사귈만한 부부’라는 인상을 받아서 가급적 관계를 ‘가꾸어 나가고’ 싶기도 하다. 오랜만에 ‘대한민국 style 빙수와 붕어빵’을 즐긴 이날 주일은 그야말로 ‘주님의 날’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