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정해졌다. 2026년 사순/부활 목표와 도서목록~ 작년에 ‘범했던’ 실망스런 게으름의 잘못을 올해 조금이라도 만회하려는 것인데, 조금은 거창한 목표일지는 모르지만 노력하는 것으로 그 목표는 달성할 것이 아닐까? 비록 결과가 빈약하더라도…
실수, 게으름, 오류, 잘못, 죄 등등~ 이것이 없는 삶은 진정한 삶이 되기 힘들다는 말, 누가 했던가, 최근에는 아마 Happiness Expert & Catholic, Arthur Brooks 의 주장이 아니었던가? 왜 사람은 완벽할 수가 없다는 원칙을 항상 잊고 사는가? 거꾸로 완벽하지 않기에 완벽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진정한 인간의 모습인 걸 왜 항상 잊고 사는가?
이번 ‘영적’ 독서 목록은 예수회 영성에 관련된 것들인데, 이유는 저자가 James Martin예수회 신부이기 때문이다. 다만 예외는 선종하신 프란치스코 전 교황님의 자서전 HOPE인데 역시 그도 예수회 사제였기에 100% 이 책들은 예수회 영성에 근거한 것들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아틀란타 순교자 본당 역시 예수회 사제들이 사목을 하고 있는 곳이니, 우연만은 아닐 거다.
어쩌면 일기예보가 이렇게 시계처럼 맞는 것인가? 아마도 weather system 속에 커다란 불확실성 요소가 적었던 것 덕분일 거다. 어제 낮 날씨는 나의 뇌리에 굳게 남아있는 ‘3월 속의 냉혹한 추위’의 전형적인 모습이어서 사실 긴장과 흥분이 섞여있었던 ‘재미있는’ 순간들이어서, 하나도 불평할 것이 없구나.
바람과 싸락눈, 눈발의 흔적들까지 교묘하게 교차하던 회색 빛의 3월 중순~ 날씨가 사상과 감정을 이렇게 흔든단 말인가, 멍~ 하니 멍~하니 앉아서 시간을 까먹으며 보낸 시간, 물론 아깝기 짝이 없지만 이것이 바로 ‘절대로 밝힐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인 것을 알면 후회도 더 이상 알려는 노력도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집안의 heating system, furnace 아래 위 모두 비상이 걸린 듯 이른 새벽부터 잠에서 깨어나 요란하게 돌아가는데~ 꿈 속에서 들었던 이 소음, 그 동안 잊고 있어서 그것을 알려고 하다가 의식이 돌아오고 결국은 완전히 깨어났다. 하지만 시간은 ‘정각’이전의 칠흑~ 문득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 아~ 잘못하다가 다시 ‘나쁜 생각들’이 쳐들어오는 걱정~ 근래에 100% 이런 식으로 살았으니~ 며칠 전 연숙의 조언이 떠오르고 ‘무조건 무조건 기도문 기도, 특히 묵주기도’ 생각이 나서 ‘무조건’ 실행~ 결과는 물론 성모님의 멋진 승리~~ 완전히 ‘나쁘지 않은 생각’을 하며 일어나게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어머님(들)~~
이냐시오의 벗들 2026.3 소책자에서 한 기사를 본다.
‘삶의 자리에서’column:, 제목 ‘대부님’, 서동민 스테파노
미국 애틀랜타 한국 순교자 성당
초로로 접어든 대자가 오래 동안 헤어졌던 대부님을 고국으로 가서 찾은 사연~ 우리 본당 교우이기에 우선 관심이 갔지만 사실은 나에게도 이 교우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사실이 언제나 부끄럽기만 했다. 이 교우는 대부에 관한 것이지만 나는 대부는 물론 대자(들) 관계까지 오랜 세월 거의 잊혀지고 있는 것, 이 저자는 초로에 접어들었지만 나는 초로를 이미 훨씬 벗어나 아슬아슬한 살이 아닌가? 이 교우님은 비록 대부님 소재는 확인했지만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님을 발견했다고~ 가능한 얘기긴 하지만 나의 처지는 어떠한가?
나의 대부님, H레오 형제님, 거의 동갑인 오하이오 콜럼버스 한인성당의 인연, 그가 public한 사람이어서 생사여부는 쉽게 알 수 있겠지만 사실상 잊혀진 존재가 되었구나. 헤어질 무렵의 매끄럽지 못했던 관계도 다시 찾고 싶은 마음에 먹구름을 끼게 하였으니~~ 그것 뿐인가, 대자(들), 아기들은 그렇다 치고 엄연한 ‘학식 높은 성인대자’까지 있는데, 기억에 나에게 연락한 것까지 기억이 나지만, 역시 나의 잘못으로 완전히 연락이 끊어졌으니~ 이 대자도 public인물이어서 내가 마음만 먹으면 연락이 가능하지만 그럴 자신을 찾기가 쉽지 않았으니~
그래도 이 순교자 성당 교우의 글 덕분에 최소한 나의 사정을 되돌아 보게 된 것은 절대로 우연만을 아리리라 믿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