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imple Path

 마더 데레사의 단순한 길

마더 데레사가 걸어온 길, 그리고 우리가 걸어갈 길

마더 데레사 지음 | 백 영 미 옮김

 

IMG_0003-1

 

온 세상의 가난과 상처를 짊어지기에는

너무나도 연약하고 왜소한 150cm 단신의 수녀, 마더 데레사.

이기심과 탐욕에 얼룩진, 사랑에 허기진, 믿음을 놓쳐버린

우리들의 삶에

조용하면서도 거대한 파문을 일으킨

그의 믿음과 사랑, 그리고 삶의 철학에 대하여.

 

마음속 깊은 침묵의 열매는 기도입니다.

기도의 열매는 믿음입니다.

믿음의 열매는 사랑입니다.

사랑의 열매는 봉사입니다.

봉사의 열매는 평화입니다.

 

내가 걸어온 내 인생의 길은

침묵, 기도, 믿음, 사랑, 봉사, 평화로 이루어져 있스빈다.

삶은 … , 그렇게 단순한 것입니다.

당신이 걸어갈 길도 그렇게 단순했으면 합니다.

당신이 걸어갈 인생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 마더 데레사

 

IMG_0006-1

 

행동하는 사랑 마더 데레사, 그가 걸어온 길, 그리고 그 길의 단순함에 대하여.

 

“내가 걸어온 길은 단순합니다. 믿음을 갖고, 자신을 완전히 내어주는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 중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 버려진 아이들, 병든 이들, 죽어가는 이들을 위한 지칠 줄 모르는 사랑으로 세상에 등불을 밝힌 마더 데레사는, 120개 이상의 국가에서 희망 없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에 평생을 헌신했다. 허물어진 나병환자의 손에 입을 맞추고 악취 나는 몸을 씻겨주고 죽어가는 에이즈 환자를 끌어안는, 자신을 끊임없이 타인에게 내어주는 자기희생과 그칠 줄 모르는 그 사랑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어떻게 한 여성이 그렇게 힘든 일을 해낼 수 있었을까? 이 겸손한 수녀가 지구상의 수백만의 삶에 그토록 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근본 철학은 무엇일까?

 

“옷 두 벌, 샌들 한 켤레, 물통 하나, 접시 한, 그리고 빈약한 침구가 내가 가진 전부입니다.”

가난한 이들의 은폐된 가난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마더 데레사의 염원이다. 그 은폐된 가난은 겉으로는 가난하지 않아도 사랑의 허기로 가득 차 있는, 지금 우리들의 것이기도 하다. 많은 이들이 마더 데레사를 <살아 있는 성인>으로 부르는 것은 <균형>이라는 개념과 관계 있다. 그가 걸어온 길은 기도하고 관상하는 삶과, 행동하는 사랑의 실천적 삶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다. 이것이 마더 데레사가 말하는 단순함이다. 그에게 산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불어넣은 것은 바로 이 <단순함>과 <자기희생>이다.

 

“매일 매일이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나는 죽음 앞에서도 가난하고 싶습니다.”

1996년 11월 23일, 데레사 수녀는 심장병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하지만 그는 의사들의 치료를 거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병원 구경도 못하고 죽어가는데, 왜 나는 이토록 극진한 간호를 받아야 합니까?” 그는 죽음 앞에서 가난하지 못한 자신을 꾸짖고 안락한 병원 침대 위의 자신을 자책했다. 그는 그렇게 가난한 삶을 통해 가난하고 소외 받은 이들의 고통을 평생 함께 나누고자 했다.

 

+ 마더 데레사 Mother Teresa

(1910년 8월 26일 ~ 1997년 9월 5일)

 

1910년 8월 26일 알바니아에서 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마더 데레사는 열여덟 살 때 가톨릭 선교 수녀로 최초 부름을 받았다. 1931년 자신의 수도명으로 데레사라는 이름을 택했는데, 이는 예수님의 작은 꽃으로 알려진 리지외의 성 데레사의 이름을 딴 것이다. 1929년부터 20여 년 동안 인도 콜카타의 성 마리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이때 결핵으로 쓰러지기도 했다. 가난한 이들 가운데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대가 없이 봉사하라는 부름을 받고 1950년 인도 콜카타에 사람의 선교회를 설립했다. 이후 임종자를 위한 집, 나환자를 위한 집, 어린이들을 위한 집, 에이즈 환자를 위한 집 등을 마련하여 버림받고 사랑 받지 못한 이들에게 평범하지 않은 사랑을 베풀었다. 197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으며, 1997년 9월 5일 심장질환으로 87세를 일기로 삶을 마감했다.

2003년 10월 19일 데레사 수녀에 대한 시복식이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집전으로 거행됐다. 20세기의 마지막을 장식한 데레사 수녀는 이로써 사후 불과 6년이라는 최단기간에 복자 반열에 오르게 도는 기록을 낳았다. 가톨릭 품계에서 복자는 성인 다음이다.

 

 

 

Love others as God loves you

Remember looks of love are works of Peace

God bless you

— Mother Teresa

 

하느님이 당신을 사랑하듯

타인을 사랑하십시오

기억하세요.

사랑의 일은 평화의 일입니다.

하느님의 축복이 있기를.

 — 마더 데레사

 

 

차례

서문 1 마더 데레사가 걸어온 길, 그리고 우리가 걸어갈 길

서문 2 마더 데레사의 단순한 삶, 단순한 길

 

기도

침묵의 열매는 기도입니다

당신이 용서받은 것처럼 그들을 용서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부디.., 당신의 가정을 사랑의 가정으로 만드십시오

당신 마음 속에 침묵의 공간을 만드십시오

하느님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합니다

매일, 애써, 기도하십시오

 

믿음

기도의 열매는 믿음입니다

우린 사랑하고, 사랑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뿐입니다.

하느님께 소중하지 않은 생명은 없습니다

모든 것이 그저, 단순할 뿐입니다

자신에 대한 앎은 겸손을 낳고, 하느님에 대한 앎은 사랑을 낳습니다

자멸의 나무와 자기 실현의 나무

나는 지금, 하늘 나라로 가는 중입니다

 

사랑

믿음의 열매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나누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사랑의 성공은 사랑함, 그 자체에 있습니다

아픔이 느껴질 때까지… 사랑하십시오

나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은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봉사

사랑의 열매는 봉사입니다

우리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이 정말 많습니다

우리들의 방식은 그렇게 단순합니다

남을 돕는 일이 곧 자신을 돕는 일입니다

 

평화

봉사의 열매는 평화입니다

나를 찾으려면 먼저 나에 대해 잊어야 합니다

 

부록 사랑의 선교회에 대하여

 

 

 마더 데레사 수녀가 자신의 명함이라 부르며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조그마한 카드가 있다. 그 카드에는 옆에 나와 있는 다섯 줄의 기도문이 실려있다. 그 기도문이 마더 데레사 자신이 하는 일과 그가 걸어온 <단순한 길>의 방향을 명확히 설명해 주고 있기 때문에 자신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나누어준다. 그 길은 그가 하느님의 사랑을 위해 오랫동안 일해 온 삶의 체험으로부터 뽑아낸 핵심이다. 그 길은 <침묵>, <기도>, <믿음>, <사랑>, <봉사>, <평화>, 이렇게 여섯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어느 하나에 익숙해지면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이르게 된다. 각각의 단계에서 자신을 그저 내맡긴다면 필연적으로 삶은 더욱 순조롭고, 더욱 기쁘고, 더욱 평화로워질 것이다.

 

 

단순한 길

 

침묵의 열매는 기도입니다.

기도의 열매는 믿음입니다.

믿음의 열매는 사랑입니다.

사랑의 열매는 봉사입니다.

봉사의 열매는 평화입니다.

 

 

 

“나는 내 인생의 길에 대해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걸어온 길을 보면

그 길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그 길은 단순합니다.

그 길은, 그래서 더욱 아름답습니다.”

 

 

 

서문 1

 

마더 데레사가 걸어온 길, 그리고 우리가 걸어갈 길

— 믿음의 길로, 자신을 완전히 버리는 길로1

 

 

우리는 <행동하는 사랑>으로서 마더 데레사가 가진 막강한 상징성을 탐구하는 데에 관심을 가져왔다. 대중의 상상력에 미친 마더 데레사의 영향력은 잔잔한 물웅덩이에 돌멩이를 던졌을 때 생기는 파문에 비견되고 있다. 많은 비기독교인들 에게 마더 데레사는 진심으로 경의를 표할 수 있는 기독교의 한 형태를 대표하기도 한다.

지금은 마더 데레사의 발자취가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를 비롯하여 그가 설립한 사랑의 선교회 수녀들과 수사들, 그리고 세계 각지의 수많은 사랑의 선교회 자원봉사자들이 왜 그와 같은 삶을 살고 있는지, 그들의 삶의 방식은 도대체 어떤 것인지, 그들은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을 통해 과연 무엇을 얻고 무엇을 깨닫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려진 바가 없다. 또한 이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시대에 보다 나은 삶의 방식을 찾고자 하는 우리들에게 의미 있고 이해하기 쉬운 어떤 강렬하고 단순한 삶의 메시지를 마더 데레사가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별로 알려진 바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마더 데레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가 어떤 일을 왜 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그가 걸어온 길에 대해, 그리하여 우리가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해 배울 수 있지 않을까?

 

마더 데레사를 용감한 선교사로 보든 혹은 살아 있는 성인으로 보든, 그는 우리들에게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는 세계 평화의 상징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사계에서 가장 존경 받는 여성들의 명단에도 자주 오른다. 하지만 마더 데레사는 자신이 무슨 특별한 사람이라거나 어떤 특별한 일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렇다면 우린 마더 데레사의 철학과 그이 일에 대해 실제로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우린 마더 데레사의 믿음과 명료한 목적의식을 통해 이웃들, 특히 가난하고 곤궁한 이들을 사랑하고, 섬기고, 존중하는 그이 방식을 통해 크나큰 교훈을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친 그대로 실천한다. 그는 그렇게 <단순한 길>을 걷고 있고, 누구라도 그 길을 따를 수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이 지도자의 영적 아내를 긴급히 필요로 했던 시절에, 세계는 이따금씩 특별한 영적 지도자들을 맞이하고 했다. 영적으로 막강한 힘을 지녔던 이들은 명백히 신성과 연결되어 있었고, 많은 경우에 그들의 가르침은 혁명적이었다. 그 중 한 사람이 카리스마 넘치는 아씨시의 성 프란체스코이다.

12세기에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프란체스코는 당신의 교회를 복원하라는 그리스도의 부름에 순종하기 위해 재산을 모두 팔았다. 처음에 프란체스코는 가난한 삶 (낡은 옷 한 벌만 걸치고 먹을 것을 구걸하는)을 살며 나환자 및 버림받은 이들을 돌보는 일에 헌신했다. 그는 나중에 탁발수도회도 설립했고, 당시에 대단히 부유했지만 잘못된 길로 빠지는 일이 잦았던 가톨릭교회를 개혁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다. 프란체스코가 세상을 뜰 무렵, 그의 밑에는 그가 해오던 일을 계속해 나갈 5천 명 이상의 서원수도사, 사제, 수녀들이 모여 있었다. 오늘날 프란체스코 수도회는 세계에서 가장 큰 수도회의 하나로 성장했다.

성 프란체스코는 당시에 무척 급진적이었는데, 그래서 이단으로 인식되기조차 했다. 왜냐하면 그는 걸인으로 살고, 섭리를 믿고, 복음서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름으로써 기독교적 삶에 대한 신선한 전망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특이한 것은 성 프란체스코가 제도화된 교회로부터 이탈하기보다는 그 안에서 자신의 종교를 개혁했다는 점이다.

마더 데레사의 삶은 프란체스코의 삶과 여러 측면에서 비슷하다. 마더 데레사의 길 또한 가난, 단순함, 그리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한 충실함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데, 바로 그 때문에 지금과 같은 가부장적 교회의 근본주의적 틀 내에서 진보주의자로 비춰지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도 강력한 여성 지도자가 부족한 세계에서, 마더 데레사는 아시아에서 가장 크고 가장 가난하고 가장 오염된 도시에서 <행동하는 사랑과 평화>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1946년, 마더 데레사는 가난한 이들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하라는 하느님의 부름을 받았다. 시작은 미약하여 그가 맨 처음 한 일은 콜카타의 거리에서 마주친 병들어 죽어가는 사람 하나를 보살피는 일이었다. 오늘날 그는 바티칸의 축복과 함께 1950년에 설립된 사랑의 선교회의 수장이다. 지난 45년간 가톨릭교회에서 성직은 서서히 쇠퇴했지만, 사랑의 선교회 수녀와 수사들의 수는 점점 증가해 현재는 세계적으로 총 4천 명을 넘어섰다.

사랑의 선교회 수녀 및 수사들은 가난한 삶을 통해 하느님에게 더욱 가까워질 수 있다는 절대적 믿음을 갖고 그러한 삶을 실천하고 있다. 이들은 성 프란체스코처럼 하느님의 섭리를 굳게 믿고, 오로지 타인이 베풀어준 관대함을 통해서만 생활하고 일하고 있다. 또한 프란체스코처럼 자신들이 가르치는 그대로 실천하며 사는데, 특히 그 무엇이라도 자신들이 섬기는 가난한 이보다 조금도 더 갖지 않는다. 식사는 간소하게 하고 소유물이라곤 옷 부 벌, 샌들 한 켤레, 물통 하나, 금속 접시 하나, 기본적인 식사 도구, 그리고 빈약한 침구가 전부다. 이들의 공동체 생활은 복음서의 말씀을 바탕으로 하는데, 그것은 기독교식의 기도, 사랑, 용서, 타인을 심판하지 않는 것, 겸손, 진실,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절대적 순종 등을 기본으로 한다.

 

마더 데레사의 삶과 철학

마더 데레사의 이력을 간단히 돌아보는 것은 그이 철학의 여러 측면과 그가 하고 있는 일의 목적을 조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마더 데레사는 1910년 8월 26일, 알바니아의 슈쿠프 에서 세 남매 중이 막내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이름은 아그네스 곤히아 브락스히야 였다. 아버지는 건축업자이자 수입상이었고, 어머니는 엄격하지만 신앙심이 깊고 사랑이 많은 분이었다. 아버지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게 되면서 집안 살림이 어려워졌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아그네스의 어머니는 천과 자수 품을 파는 일을 시작했다. 아그네스는 십대에 교우회라는 교구의 청년 모임에 가입했다. 어느 예수회 사제가 이끌었던 그곳에서의 활동을 통해 아그네스는 선교의 세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아그네스가 가톨릭 선교 수녀로 최초 부름을 받은 것은 열 여덟 살 때였고, 이후 인도에서의 선교 활동으로 유명한 아일랜드 교단의 로레토 수녀 회에 가입했다. 아그네스는 처음부터 인도에서 일하기를 원했지만 영어를 배우기 위해 먼저 아일랜드로 간 것이다. 1929년 1월 6일, 그는 콜카타로 파견되었고 성 마리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게 되었다. 1931년 5월 24일, 로레토 의 수녀로 서원하면서 그는 데레사라는 이름을 선택했는데, 그것은 예수님의 작은 꽃으로 알려진 리지외 의 성 데레사의 이름을 딴 것이다.

고향을 떠나 세계의 반대편으로 가기로 한 선택과 수도 명으로서 데레사를 고른 것은 마더 데레사의 강인함과 철학, 그리고 그의 삶의 목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된다. 이러한 것들은 단순한 신앙이 아니라, 명확히 선교사업을 하고자 했던 그의 염원에 대한 열정을 드러낸다. 마더 데레사는 자신의 첫 번째 부름에 대해 “가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삶을 주는 것.” 이라고 설명한다.

선교사의 삶은 뚜렷한 복음전도의 추진력과 행동하는 연민에 대한 강한 믿음을 지닌 열정을 필요로 한다. 마더 데레사의 개척자 정신은 처음부터 발휘되었다. 마더 데레사는 자신의 수호성인으로 리지외의 성 데레사를 택하여 자신의 선교사업의 관상적 측면을 처음으로 드러냈다. 프랑스 시계제작자 부부의 막내딸로 태어난 성 데레사는 1888년 매우 어린 나이인 열다섯 살에 카르멜 수녀 회에 들어가면서 자신의 소명은 <사랑>이고, 자신의 주된 의무는 사제와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 하는 것>이라고 천명했다. 병약한 몸 때문에 선교사가 될 수는 없었지만, 대신 그는 건강한 영성의 길을 가르쳤다. 그 길은 단순하고, 관용과 희생정신으로 가득하며, 복음서의 본질적 진리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는 이렇게 썼다.

 

“나의 길은 영적 어린아이의 길이고, 믿음의 길이며,

나를 완전히 버리는 길입니다.”

 

리지외의 성 데레사는 자신을 <어린 예수가 손에 쥔 공>에 비유했다. 이에 비해 마더 데레사는 자신을 <하느님께서 손에 쥐신 몽당연필>로 칭하며, 믿음의 길이자 나를 완전히 버리는 자신의 <단순한 길>을 장난기는 덜하지만 보다 실제적인 시작으로 바라본다.

마더 데레사는 콜카타의 성 마리 학교에서 지리와 교리문답을 가르쳤고 그곳에서 힌두어와 벵갈어를 배웠다. 1944년에는 교장으로 승진했다. 하지만 그것은 고난의 시작이었다. 육체적으로 강한 여성이 아니었던 마더 데레사는 이때 결핵으로 쓰러졌다. 더 이상 그르치는 일을 계속할 수 없었던 그는 히말라야 기슭에 있는 다르질링 으로 옮겨졌다.

마더 데레사가 두 번째 부름, 즉 <부름 속의 부름>을 받은 것은 1946년 9월 10일, 다르질링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였다. 마더 데레사는 그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부름이 왔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네.’ 라고 대답하는 것뿐이었습니다. 메시지는 아주 명확했습니다. 즉, 나는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라 가난한 이들 중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 가운데 있는 그분을 섬기기 위해 빈민촌으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나는 그것이 그분의 뜻이고, 나는 그분을 따라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지요. 그것이 그분의 일이 되리라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나는 수녀회를 떠나 가난한 이들 속에서 살며 그들과 함께 일해야 했습니다. 그것은 명령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속해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는 알았지만 어떻게 그곳에 이를 것인지는 몰랐습니다.” 2

 

교사에서 종으로, 안전하고 편안한 공동체에서 강인한 신앙심과 비상한 통찰력 외에는 아무것도 갖지 않는 삶으로 선교 봉사의 방향을 돌리 수 있도록 허락 받는 데는 2년이란 시간이 소요됐다.

마더 데레사가 19년간 재직한 성 마리 학교의 동료 수녀들은 인터뷰에서, 당시의 마더 데레사는 허약하고 평범했다고 전한다. 하지만 오늘날 마더 데레사는 흠 잡을 데 없는 정력적인 기업가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어떤 필요를 인지하고 그것에 대해 무언가를 했으며, 가능성이 희박한 상태에서 조직을 만들고, 회헌을 제정하고, 세계 곳곳에 지회를 세웠다. 그리고 그의 철학과 삶에는 뚜렷이 드러나는 또 하나의 특이성이 있다. 마더 데레사는 <지상적 존재>와 <초월적 영혼>이 결합한 드문 사례이다. 그러한 결합은 기도에 의한 것인데, 그는 덕분에 자신이 지상과 천국 사이에서 제대로 균형을 잡게 되었다고 말한다. 강한 의지와 하느님에 대한 전적인 순종 사이에서의 이러한 균형은 매우 교훈적인데, 그는 거룩함 안에서의 자신의 진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것은 하느님과 나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즉 하느님의 은총과 나의 의지에 달린 것이지요. 그렇게 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그렇게 하려는 <의지>를 갖는 것입니다.”

 

마더 데레사는 자신이 성스럽다거나 성인이 아니냐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언제나 사무적인 말투로, “성스러움은 삶의 필수 요소입니다.” 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성스러움은 종교생활의 과정을 밟는 극소수 성직자들의 사치품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단순한 의무이며 모두를 위한 것.” 이라고 설명한다.

많은 이들이 마더 데레사를 <살아 있는 성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현대에 들어 더욱 소중해진 하나의 개념, 즉 <균형>과 관계 있을지 모른다. 인도의 유명한 교사 크리슈나무르티 는 성스러움을 온전함의 파생어로 해석했는데, 여기서 온전함이란 우리 자신을 이루고 있는 모든 이질적인 부분이 온전한 인간 속으로 고르게 결합된 것을 의미한다. 마더 데레사의 영적 길은, 기도하고 관상하는 삶과 행동하는 사랑의 실천적 삶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다. 그것은 확실히 단순하지만, 마더 데레사의 단순성 뒤에는 비할 바 없는 신앙과, 의지와, 지혜로 귀결되는 경험과 헌신의 세월이 있다.

지금 여기에서의 자그만 일들에 대한 인식과, 보다 크고 영원한 전망 사이에서의 이러한 균형 덕분에 마더 데레사는 존경스러울 정도로 친밀하고 실천적이지만 동시에 민감하고 상처받기 쉬우며, 또한 강하고 현실적이지만 관상과 기도를 잊지 않는다. 다음의 두 가지 사례는 관대한 동시에 민감할 수 있는 마더 데레사의 능력을 잘 보여준다.

 

어느 영국인 남성 자원봉사자가 고등학생이던 십대 시절에 마더 데레사를 처음 만나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데레사 수녀님은 어린 우리에게도 여는 사람에게 했던 것과 똑같이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그 점이었을 겁니다. 그분은 우리와 같은 파장에 있었지요. 그 뒤로도 그분은 만날 때마다 항상 그랬습니다. 그분이 누구와 말씀을 나누시든 그 앞에 있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됩니다. 상대가 대통령이든 혹은 일개 시민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 점이 좋았고, 그분을 만난 사람들 대부분은 그분에게서 제가 느꼈던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콜카타에 있는 사랑의 선교회를 도우러 갔던 한 여성은 자신이 가야 할 길에 대해 고민하던 중 우연히 마더 하우스의 원장실 바깥 발코니에 서 있던 마더 데레사를 보게 되었다.

“그분은 몇몇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제 앞에는 어느 인도인 부부가 서 있었지요. 그런데 마더 데레사께서 갑자기 저를 돌아보시더니, ‘그래 언제 마음을 정할 겁니까?’ 라고 물으셨지요. 저는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때까지 아직 한 마디도 안 한 상태였으니까요. 그러데 그분은 저를 아주 잘 알고 계신 것 같았습니다. 그건 정말 감동이었지요. 그분은 제 마음을 건드렸고, 결국 저는 그날 예배당에 가서 내내 울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회복되었습니다. 그런 다음 저는 아주 오랫동안 미뤄왔던, 진로에 대한 결정을 이제 그만 내려야만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마더 데레사를 향한 국제적 존경으로 인해 그에 대한 기대 또한 크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묻는다.

“그분이 여성이라면, 왜 교회에서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불거져 나오는 여성 문제의 대변인이 되지 않습니까?”

마더 데레사는 가톨릭교회의 방침과 어긋나는 말은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할 수도 없으려니와, 아마 그렇게 하기를 원하지도 않을 것이다. 낙태와 같은 초미의 현안에 대해 질문 받을 때, 마더 데레사는 “모든 인간 생명이 하느님에게는 예외 없이 소중한 것들입니다.” 라는 자신의 입장을 명백히 밝힌다. 그리고 고위 성직에서 여성의 역할과 여성 사제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는 성모 마리아를 인용한다. 그는 성모 마리아가 우리들 중에서 가장 훌륭한 사제가 되었을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자신은 주님의 시녀로 칭할 뿐이다. 성모 마리아는 마더 데레사와 사랑의 선교회 모두에게 본보기가 될 뿐 아니라 크나큰 거룩한, 순수함, 순결, 순명, 그리고 성스러움 모성의 상징으로서 열렬히 기도가 바쳐지는 대상이기도 하다. 성모에 대한 이렇듯 여성적인 헌신은 그리스도의 마음에 대한 여성의 길이다. 다음은 마더 데레사와 사랑의 선교회에서 자주 낭송하는 기도문 중의 하나다.

 

성모 마리아님,

그토록 아름답고, 그토록 순수하며, 그토록 티 없으시고,

그토록 사랑과 겸손으로 가득 찬 당신의 마음을 제게 주소서.

그리하여 제가 생명의 빵 속에 계신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당신이 그분을 사랑하신 것처럼 그분을 사랑하고,

가난한 이들 중에서 가장 가난한 이로 변장하고 오시는

그분께 봉사하게 하소서.

 

 

마더 데레사가 이 책에서 자세히 묘사한 가난한 이들에 대한 이 같은 봉사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행동에 관한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그들의 고통 한가운데 있는 것, 그리스도와 함께 그 고통을 나누는 것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마더 데레사는 자주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그것은 성 요한과 우리의 복되신 성모께서 십자가의 발치에서 하신 일이었습니다.”

사랑의 선교회 집에는 푸른색과 흰색의 옷을 입은, 가끔은 화려하기도 한 커다란 마리아 상이 놓여 있는 곳이 많다. 그것은 루르드의 성 베르나데트에게 나타났던, 혹은 별과 빛으로 후광을 두른 하늘나라의 여왕처럼 보인다.

마더 데레사의 세계교회주의 또한 명확하게 들어나는 일이 많다. 예를 들면 콜카타에 있는 결핵환자 및 정신 장애인을 위한 집, 프렘 단의 현관 바로 안쪽에는 가톨릭의 묵주를 들고 푸른 케이프를 두른 실물 크기의 마돈나 상이 서 있다. 하지만 그 상을 좀 더 자세히 관찰해 보면 인도인의 얼굴에 인도의 하얀 사리를 두른 채 커다란 분홍 연꽃을 밟고 서 있다.

또 성체 강복식에서 주로 사제들이 담당하는 역할의 많은 부분을, 그리고 매일 드리는 미사의 일부를 수녀들과 마더 데레사 자신이 담당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이 지나치게 까다로운 의례 없이 하느님께 예배 드린다.

마더 데레사는 자신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혈통으로 말하자면 나는 순전히 알바니아 사람입니다.

국적은 인도고요.

신분은 가톨릭 수녀입니다.

소명에 관해 말하자면, 나는 전 세계에 속해 있습니다.

마음에 관해 말하자면, 나는 온전히 예수님의 마음에 속해 있습니다.” 3

 

마더 데레사는 또 다음과 같은 말로 세계를 껴안는 자신의 역할을 규정한다.

 

“우리의 일은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이 사랑의 일을 하도록 격려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온 마음을 다한 일상적 사랑의 행위를 통해, 사람들은 항상 신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됩니다.”4

 

 

마더 데레사가 받은 자비의 명령은 타인의 고통을 덜어줌으로써 세계에 사랑을 펼치라는 것이다. 이는 주로 비기독교 공동체에서 봉사하면서도 자신들의 도움을 받는 이들에게 가톨릭 신앙으로의 개종을 강요하지 않는 가톨릭 수녀와 수사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마더 데레사는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 속에서 사랑하는 일을 택했는데, 이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바로 그러한 사람들 속에서 수고의 열매, 단순한 길에 이르는 통로를 발견했다.

 

— 존 케언스 / 종교학자

 

 

 

 

서문 2

마더 데레사의 단순한 삶, 단순한 길

— 침묵, 기도, 믿음, 사랑, 봉사, 평화로 가는 길

 

 

기독교적 방식은 하느님과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다. 여기에 마더 데레사는 동양의 영향을 받아, 자신과 타인의 내면에 평화를 창조하는 여섯 단계, 즉 <침묵>, <기도>, <믿음>, <사랑>, <봉사>, <평화>를 압축해 냈다. 그것은 어느 누구든, 신앙이 있든 없든, 혹은 종교가 다르다 할지라도 신앙이나 수행에 대한 모욕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마더 데레사나 그 공동체의 말씀을 읽을 때 우리는 각자의 선택에 따라 예수님에 대한 언급을 다른 종교의 신이나 신성의 상징으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마더 데레사가 선택한 길은 기독교의 길이고, 그래서 그의 거룩한 안내자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은 그와, 다른 사랑의 선교사들이 하는 모든 일에서 핵심이 된다. 청빈, 순종, 그리고 가난한 이들 중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에 대한 마음을 다한 봉사의 서원과 함께, 수도회의 남녀들은 순결의 서원을 한다. 이를 통해 여성들은 그리스도에게 서원하고 헌신하게 되는 반면, 남성들의 마음은 자유롭게 하느님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더욱 불타오를 수 있게 된다. 마더 데레사와 사랑의 선교회 수녀들은 그리스도의 배필을 자처한다. 모든 수녀들이 평생 동안 이러한 관계를 맺고 온 마음을 다해 예수를 사랑하라는 부름을 받았다. 마더 데레사는 이러한 관계를 남편에 대한 아내의 사랑과 비슷한 것으로 언급했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사랑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여성들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감정적으로 사랑하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말아야 합니다.”

관계 속의 사랑에 대해 그가 이러한 지혜를 가진 것으로 볼 때 마더 데레사는 결혼한 것이 틀림없다는 이야기들이 분분히 쏟아졌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은 말로 대답했다.

 

“그 말이 맞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그분을 향해 미소 짓는 게 힘들 때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너무도 요구가 많으시니까요!”

 

순결의 서약을 통한 하느님에 대한 이러한 헌신은 모든 수녀들의 삶에 핵심이 되는 것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순결의 서약을 하는 이는 결혼을 포기하고 하느님에게 봉헌된다. 이러한 헌신은 결혼 생활에서의 헌신보다 더욱 지극한데, 타인에게 주는 사랑은 오직 하느님의 사랑을 통해서만 일어나기 때문이다. 마더 데레사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어떤 존재가 됐든 남편에 대한 아내의 사랑으로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이 아닌 다른 어떤 존재에 대해서 그런 사랑을 줄 권리가 내게는 더 이상 없습니다.”

 

사랑의 선교회 수녀들이 이 특별한 삶과 서원에 대한 부름에 관해 들려 주었다. 한 수녀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마더 데레사님과 그분이 하신 일에 관한 이야기를 읽곤 했습니다. 저는 신앙심이 아주 깊었고,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라는 성경 말씀을 믿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저는 제 삶이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고, 커서는 이 길이 예수님을 위해 더욱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바로 그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분의 부름은 명확하고 직접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여기서, 그리스도를 위해 그러한 일을 할 수 있고 또 제 삶의 매 순간을 타인에게 줄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또 다른 수녀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그 무엇을 하든 예수님을 위해 그 일을 합니다. 그렇게 않다면 그것은 무가치하고 쓸모 없는 일이지요. 그래서 제가 그분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걸 알 때, 저는 고통 받고 있는 이들에게 보다 큰 사랑과 공감을 보낼 수 있습니다. 제가 그분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걸 아는 것은 제 삶에 크나큰 의미를 주며, 매일 매일 그 의미는 커져 갑니다.”

 

사랑의 선교회 회헌 에서는 그리스도에 대한 이러한 헌신을 가리켜 <육신의 사랑보다 천 배 더 강한 사랑의 결합> 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마더 데레사와 사랑의 선교회 수녀들은 이러한 한됨 안에서, 이러한 결합을 통해 그들의 공동체에서 기도하고, 사랑하고, 일하고, 나눈다. 그래서 이들은 깊은 사랑의 결합을 바탕으로, 가난 속에서 타인의 고통을 덜기 위해 <단순한 길>을 걷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이 세상 속에서 사랑했을 뿐 아니라 십자가의 고통을 통해 자신의 사랑을 보여주었다. 마더 데레사의 방식은 가난하고 고통 받는 모든 이들의 눈에서 그리스도의 고통을 보고 그것을 덜어주는 것이다. 세계 전역의 사랑의 선교회 예배실에 걸린 십자가 상에는 “내가 목이 마르다.” (그리스도가 죽기 전에 한 말)라고 씌어 있는데, 이 말은 사랑의 선교사들에게 그들이 하는 모든 일에 숨어 있는 의미를 일깨워준다. 회헌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의 목표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그리스도의 영혼의 사랑을 향한 한없는 갈증을 해소시켜 드리는 것이다. 우리는 가난한 이들 속에 계신 예수님께 봉사한다. 우리는 그분을 간호하고, 먹여드리고, 옷 입혀드리며, 방문한다.”

 

마더 데레사는 가나에 대해 폭넓은 정의를 내린다.

 

“형제들 가운데 지극히 작은 이들이란, 음식뿐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에 굶주린 이와 외로운 이, 물뿐 아니라 지식, 평화, 진리, 정의, 사랑에 목마른 이와 무지한 이, 옷뿐 아니라 인간적 존엄을 박탈당한 이와 풀지 못한 문제를 안고 있는 이, 부모가 원치 않는 아기와 태어나지 못한 아기, 인종차별을 당하는 이, 벽돌로 지은 보금자리뿐 아니라 이해해 주고 감싸주며 사랑해 줄 이가 없는 노숙자와 버림받은 이, 병자와 죽어가는 빈자, 육신 뿐 아니라 마음과 영혼이 사로잡힌 이, 삶에 대한 희망과 믿음을 완전히 잃어버린 이, 알코올 중독자와 마약 중독자, 그리고 신을 잃어버린 모든 이(그들에게 신은 과거의 존재일 뿐이지만 신은 지금도 존재합니다.)와, 영혼의 힘에 대한 희망을 완전히 잃어 버린 이들을 말합니다.”

 

한때 콜카타에서 수녀들을 도왔던 어느 자원봉사자 사제는 가난한 이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증명할 것도 혹은 지킬 것도 없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사람들 앞에서나 하느님 앞에서 포즈를 취하거나 그럴 척 할 필요가 없습니다. 가진 것이라곤 남에게 얻은 것뿐일 때, 남은 것은 오직 자기 자신뿐일 때 그는 그저 받을 수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바로 이 점이 가난한 이가 축복 받은 이유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니까요.”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그들이 받도록 해주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나를 버리는 것이 필수적이다. 마더 데레사는 봉사의 조건으로 가난한 삶이 왜 필요한가를 설명한다. 5

“가난한 이들처럼 살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들에 대해 진정으로 알 수 있겠습니까?” 그는 이렇게 묻는다.

“그들이 음식에 대해 불평한다면 우리도 똑같은 음식을 먹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가진 것이 많을수록 남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적습니다. 가난이 멋진 선물인 것은 그것이 우리에게 자유를 주기 때문이지요. 그것은 하느님에게 이르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이 좀 더 적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의 선교회가 후한 대접을 받기를 거절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더러운 오두막이나 빈민촌에 사는 가난한 이들이 남한테서 대접받는 일은 좀처럼 없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이들에 대한 존중과 공감의 차원에서 우리도 항상 거절합니다.”

어느 정도 가난한 상태가 사랑과 봉사에 필요한 것처럼, 작은 일을 하는 데고 큰 사랑이 필요하다. 마더 데레사는 “그것은 간단하지만, 쉽지는 않습니다.” 라고 말하며, 나아가 그러한 행위에 따르기 마련인 고통에 대해 설명한다. 그 고통에는 육체적, 정신적, 감정적, 재정적, 영적 고통 등 다섯 가지가 있는데, 직접 고통을 겪으며 사랑 받는 사람이건 혹은 고통 받는 이에게 사랑을 주는 사람이건, 어느 시점에서는 이러한 다섯 가지 고통의 일부 혹은 전부가 작용하게 된다. 모든 고통은 희생으로 자각된다. 마더 데레사는 “사랑이 아픔이 될 때까지… 사랑하십시오.” 라든가 “만약 사랑이 아프게 느껴진다면, 그 때문에 그것은 더 나아질 것입니다.” 와 같은 말을 한다. 그는 사람들이 고통을 이해하고 기꺼이 받아들임으로써 고통의 궁극적 가치를 알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생각은 고통 받은 그리스도의 대속과 관련되어 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삶, 외로움, 고난, 죽음을 함께 나눔으로써 우리를 돕고자 하셨습니다. 오직 우리와 하나가 됨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지요. 우리도 그와 똑같이 할 수 있도록 허락 받았습니다. 가난한 이들은 그 모든 비참함, 물질적 가난 뿐 아니라 영적 빈곤에서 구원 받아야 하고, 우리는 그것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우린 오로지 가난한 이들과 하나가 됨으로써만 그들을 구원할 수 있는데, 말하자면 하느님을 가난한 이들의 삶 속으로 모시고 들어가 그들을 하느님에게로 데려가는 것입니다.”6

 

이렇듯 사랑과 친절의 행위를 통해 고통과 가난을 나누는 것은 사랑의 선교회 선교사업의 기본이다. “고통이 없다면 우리들의 일은 단순한 사회사업으로 그칠 것입니다.” 이들 수녀와 수사들의 일에 기쁨을 불어넣는 것은, 금욕적이거나 희생적인 방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영적 기쁨으로 고통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마더 데레사는 이렇게 말한다.

 

“불평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고통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하느님께 봉헌한다면 기쁨이 옵니다. 고통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이, 깊이 사랑하는 이, 자신을 봉헌하는 이들은 고통의 가치를 압니다.” 7

 

마더 데레사는 우리가 단순히 이 책을 읽음으로써 가 아니라, 그의 일을 함께함으로써 가난과 고통을 알고 또 주고받는 기쁨을 경험하도록 우릴 이끈다. 우린 직접 경험함으로써 그의 말과, 그 길을 걷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의 진실을 온전히 알 수 있다. 그러한 경험은 <침묵>, <기도>, <믿음>, <사랑>, <봉사>, <평화>로 이루어진 단순한 길로 향하는 여섯 단계의 어느 지점에서부터도 가능하다. 그것은 친교, 신앙, 믿음, 마음, 은총의 경험이고, 그러한 경험은 그 결실을 통해 지속된다. 마더 데레사는 그러한 결실을 반복해서 경험했다. 그의 말과 행동을 통해 우리는 그러한 결실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고, 사랑으로 평범한 일을 함으로써 평범치 않은 어떤 것을 성취할 수 있다.

“한 번에 하루씩.”

 

— 루신다 바르데이 / 종교 저술가

 

 

 

 

 

기도

 

마음속에 침묵의 공간을 만드십시오.

그곳에서 기도를 시작하십시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을 내주십시오.

 

 

 

침묵의 열매는 기도입니다

 

우리 모두는 침묵하고 관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특히 모든 게 너무 빨리 변하는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내가 거의 온종일 기도하는 것을 소명으로 삼는 관상 수녀들을 위한 첫 번째 집을 히말라야가 아닌 뉴욕에 열기로 한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나는 세계의 도시들에 좀 더 많은 침묵과 관상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나는 늘 침묵 속에서 기도를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마음의 침묵 속에서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침묵의 친구입니다. 우린 하느님에게 귀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는 말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통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기도는 영혼을 살찌웁니다. 피가 몸을 살찌우듯이, 기도는 영혼에 대해 그렇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통해 신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 또한 기도를 통해 사람들은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을 얻습니다. 순수한 마음을 가질 때 하느님을 볼 수 있고, 하느님에게 말할 수 있고, 타인들 속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마음이 깨끗하다는 것은 하느님에게 솔직하고 정직하다는 뜻입니다. 당신의 마음이 깨끗할 때 당신은 그분께 어떤 것도 숨기지 않을 수 있고, 당신의 마음이 깨끗할 때 그분께선 당신에게서 원하시는 것을 취하실 수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하느님을 찾고 있으나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면 기도하는 걸 배우고 매일 매일 애써 기도하십시오. 언제 어디서든 기도할 수 있습니다. 반드시 예배당이나 교회에 가서 기도할 필요는 없습니다. 일하면서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일한다고 기도를 멈출 필요도 없고, 기도한다고 일을 멈출 필요도 없습니다. 신부님이나 목사님에게 안내를 부탁할 수도 있고, 하느님에게 직접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저 말하십시오. 그분께 모든 걸 다 말하고, 그분과 대화하십시오. 그분은 우리들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가 어떤 종교를 갖고 있든 그분은 우리 모두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께서 지으셨으니, 우리는 그분의 자녀들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따르고,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을 믿고, 그분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기도하면 우리는 필요한 답을 전부 얻게 될 것입니다.

나는 기도하지 않고는 반 시간도 일할 수 없습니다. 나는 기도를 통해 하느님으로부터 힘을 얻습니다. 수녀들은 누구나 그것을 이해하고 있는데, 돌로레스 수녀도 그렇습니다. 돌로레스 수녀는 35년간 우리 수도회에서 함께해 왔는데 지금은 콜카타에 있는 임종자의 집, 나르말 흐리다이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수녀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매일 아침 우리 수녀들은 오늘 다시 겪게 될 일을 떠올리면서 잠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수녀들이 해야 할 일들은 아주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도는 우리에게 힘을 줍니다. 기도는 우리를 버틸 수 있게 해주고, 우리를 도와주고, 우리에게 필요한 일을 할 수 있도록 그 모든 기쁨을 가져다 줍니다. 우리는 기도와 미사로 하루를 시작하고 한 시간 동안의 성체조배로 하루를 마칩니다. 쉼 없이 행하고 쉼 없이 주려면 하느님의 은총이 필요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없다면 우리는 살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콜카타에 있는 어린이의 집, 시슈 브하반을 맡고 있는 차메인 조즈 수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기도가 없다면 어떻게 이 더위와 이 바쁜 일을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일은 온전히 그분을 위한 것이고, 그래서 우리는 일하면서 행복합니다.”

 

뉴욕 브롱크스 사랑의 선교회 원장 카테리 수녀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기도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느님을 향해 지어졌고, 우리가 그분과 함께 휴식하기까지 우리의 가슴은 휴식을 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느님과 접하게 되는 것은 기도를 통해서입니다. 우리는 하늘나라를 향해 지어졌지만 어떤 식으로든 기도하지 않는다면 하늘나라에 이르지 못할 것입니다. 기도할 때 반드시 격식을 갖추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교도소에 찾아가서 사람들한테 들려주곤 하는 이야기라 하나 있습니다. 저는 예를 들어 이렇게 말합니다. ‘여행을 떠날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러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자동차가 필요하고 연료가 필요합니다. (한 남자는 음악이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우린 좋은 시간을 보냅니다. 그리고 우린 대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립니다. ‘연료는 기도이고, 자동차는 우리의 삶이고, 여행은 하늘나라를 향해 가는 것입니다. 그 여행에는 지도가 반드시 필요하고, 따라서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아야 합니다.’ 제가 진정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 삶의 연료는 <기도>라는 것입니다. 기도가 없다면 우린 목적지에 이르지 못할 것이고, 존재의 실현에도 이르지 못할 것입니다.”

 

 

 

당신이 용서받은 것처럼 그들을 용서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기도로 하루를 마치십시오. 어린아이로 하느님 앞에 나가십시오. 기도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거든 이렇게 말해도 됩니다.

“성령이여, 제게 오셔서 저를 이끌어주시고, 지켜주시고, 제가 기도할 수 있도록 제 마음을 깨끗이 해주십시오.”

혹 성모 마리아에게 기도 드린다면 이렇게 말해도 됩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님, 이제 제게 어머니가 되어 주시고, 제가 기도할 수 있게 도와주소서.”

기도할 때는, 그 모든 선물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하십시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이 다 그분의 것이고 그분이 주신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영혼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당신이 개신교인이라면 하느님께 주기도문을 바칠 수 있습니다. 가톨릭신자라면 주님의 기도, 성모송, 묵주의 기도, 사도신경이 있습니다. 한결같이 흔한 기도문들이지요. 만약 당신이나 당신의 가정에 고유한 기도가 있다면 그것으로 기도하십시오.

주님을 믿고 기도의 힘을 믿는다면, 사람들이 흔히 느끼는 어떠한 의심과 두려움, 외로움도 이겨내게 도리 것입니다. 뭔가 걱정거리가 있다면, 가서 고해를 하고 (당신이 가톨릭신자라면 말입니다.) 티 없이 깨끗해질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신부님을 통해 모든 것을 다 용서하시니까요. 우리가 죄로 가득한 채 고해하려 가서 티 없이 순수해진 채로 나올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의 아름다운 선물입니다. 그렇지만 당신이 고해를 하든 안 하든, 당신이 가톨릭신자이든 아니면 다른 신앙을 갖고 있든, 당신은 적어도 하느님께 “미안합니다.” 라고 말하는 법은 알아야 합니다.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자신의 양심을 살펴봐야 합니다 (다음날 아침에 깨어나게 될지 어떨지 모르니까요!).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 무엇이든, 혹은 자신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든 간에 그것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남한테서 뭔가를 훔쳤다면 그걸 돌려주도록 하십시오.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혔다면 그에게 보상하도록 하십시오. 바로 그렇게 하십시오. 그와 같이 보상할 수 없다면, “정말 미안합니다.” 라는 말씀으로 하느님께라도 보상하도록 하십시오. 이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린 사랑의 행위를 하듯이 또한 회개의 행위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주님, 당신을 언짢게 해드려서 미안합니다.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합니다.”

짐을 내려놓는 것, 깨끗한 마음을 갖는 것은 기분 좋은 일입니다. 하느님은 자비로우시다는 것, 그분은 우리 모두의 자비로운 아버지라는 걸 기억하십시오. 우린 그분의 자녀들입니다. 그분께선 우릴 용서해 주시고, 우리는 그렇게 못하더라도 우리의 잘못을 잊어주실 것입니다.

그렇지만 먼저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십시오. 자신의 내면에 아직도 타인에 대한 용서가 부족한 건 아니지 보십시오. 타인을 용서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하느님께 용서를 구할 수 있겠습니까? 기억하십시오. 당신이 진정으로 뉘우친다면, 정말 깨끗한 마음으로 뉘우친다면, 하느님이 보시기에 당신은 사함을 받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진심으로 고해한다면 그분께선 당신을 용서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에게 상처 입힌 이들이나 당신이 좋아하지 않는 이들을 용서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용서받은 것처럼 그들을 용서하십시오.

당신은 또한 타인의 일을 위해 기도할 수 있고 그들을 도울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 공동체에는 <제2의 나>로 불리는 조력자들이 있는데, 이들은 활동적인 일을 하는 데 힘이 필요한 수녀들을 위해 기도해 줍니다. 또한 우리에겐 우리를 위해 항상 기도하는 관상수녀와 수사들이 있습니다.

기도의 힘에 대한, 그리고 하느님께서 항상 어떻게 응답하시는 가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버트 화이트라는 신부님이 우리가 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콜카타로 우리를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꼭 필요한 때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나는 마더 데레사의 사랑의 선교회에서 하는 일을 보러 간 길에 마더 하우스에서 열리는 미사에 참석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현관에 도착하자마자 어느 수녀님이 인사를 하더니 내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아이고 고마워라, 신부님이 오셨네요. 어서 들어오세요.’ 나는 그때 사제복을 입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사제라는 걸 어떻게 알았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수녀님이 ‘평소에 미사를 집전하시던 신부님께서 오시지 못해서 하느님께 다른 분을 보내 달라고 저희 모두 기도 드렸답니다.’ 라고 대답하시더군요.”

 

 

 

부디…, 당신의 가정을 사랑의 가정으로 만드십시오

 

기도는 자녀를 위해서 필요하고 가정 안에서 필요합니다. 사랑은 집에서 시작됩니다. 함께 기도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지요. 함께 기도하면 함께 머물게 될 것이고, 그러면 하느님께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시듯 여러분도 서로를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종교를 갖고 있든 우리는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아이들은 기도하는 걸 배울 필요가 있고, 또 부모들이 자녀와 함께 기도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거룩해지는 것, 꿋꿋이 나아가는 것, 믿음 속에서 강해지는 것은 어려울 것입니다.

영국제도와 아일랜드의 지구장, 테레시나 수녀는 이와 관련된 경험을 다음과 같이 들려줍니다.

 

“아이의 영성이 최초로 형성되는 것은 가정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원래 영성은 가정 안에서 양육되고 성장했지요. 하지만 지금은 별로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만나게 되는 부모들은 대부분 신앙을 잃어버렸고, 따라서 어떤 식으로든 하느님께 의지하는 일도 사라졌습니다. 그들은 자녀를 제대로 키우기 위해 하느님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모든 선물을 다 빼앗겼습니다. 부모들은 지혜를 빼앗겼고, 필요할 때 자녀를 이끌어줄 수 있는 통찰력을 빼앗겼습니다. 많은 부모들이 저를 찾아와서 ‘유감스럽지만, 저는 제 아이들을 통제하지 못합니다. 아이들이 통제가 안 됩니다.’ 라고 말합니다.”

 

요즘 세계 어디를 가든 가정 안에는 커다란 고통이 있습니다. 그러니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고 용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나에게 서로 다투는 부부에게 어떤 충고를 하느냐고 묻습니다. 나는 항상 “기도하고 용서하십시오.” 라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폭력적인 가정에서 자라난 젊은이들에게도 “기도하고 용서하십시오.”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가족으로부터 도움 받지 못하는 홀어머니들에게도 “기도하고 용서하십시오.” 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말해도 됩니다.

“주님,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의 하느님, 미안합니다. 나의 하느님, 전 당신을 믿습니다. 나의 하느님, 전 당신을 신뢰합니다. 당신이 우리를 사랑하시듯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게 도와주소서.”

우리는 가족을 위해 성가정(마리아, 요셉, 예수님으로 이루어진 거룩한 가정)께 기도 드립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당신은 저희에게

나사렛의 성가정을 삶의 모범으로 주셨습니다.

저희를 도와주소서!

오 사랑이신 아버지, 저희 가족이 온통 사랑과 평화,

기쁨에 넘치는 또 다른 나사렛 성가정이 되게 하소서.

저희 가족이 깊이 관상하고, 뜨겁게 감사하며,

기쁨에 고동치게 되기를 비옵니다.저희가 가족 기도를 통해 기쁨과 슬픔 속에

함께 머물도록 도와주소서.

저희가 가족 구성원 속에서, 특히 비참한 모습으로 변장하신

그분의 모습을 알아볼 수 있도록 저희를 가르쳐주소서.

예수님의 감사하는 마음이 저희 마음을 그처럼 온유하고

겸손하게 만들어 주시고, 저희가 가족의 의무를

거룩한 방법으로 이행하도록 도와주시기를 비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를 매일같이 더욱더 사랑하시듯

저희가 서로를 사랑하게 하소서. 그리고 당신이 저희 죄를

사하여 주심과 같이 저희도 서로의 허물을 용서하게 하소서.

오 사랑이신 아버지, 당신이 주시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저희가 받아들일 수 있게 하시고,

당신이 활짝 웃으며 받으시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저희가 드릴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티 없으신 마리아의 성심이여, 기쁨의 근원이여,

저희를 위해 빌어주소서.

성 요셉이여, 지희를 위해 빌어주소서.

거룩한 수호천사들이여,

항상 저희 곁에서 저희를 인도해 주시고 지켜주소서.

 

 

 

 

당신 마음속에 침묵의 공간을 만드십시오

 

우린 누구나 사색하고 기도하기 위해 침묵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나는 많은 이들로부터 바쁜 생활 속에서 침묵을 찾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먼저 테레시나 수녀가, 그 다음에는 카테리 수녀가 이 문제에 관해 말하고 조언해 줄 것입니다.

 

“경험해 보니 현대의 생활에는 지나치게 소음이 많습니다. 그리고 이 때문에 많은 이들이 침묵을 두려워합니다. 하느님은 오직 침묵 속에서만 말씀하시기 때문에, 하느님을 찾는 이들에게 이것은 큰 문제입니다. 예를 들면, 많은 젊은이들이 사색하는 법을 모르고 그저 본능에 따라 행동합니다.

이 시대의 도시에는 혼란과 물리적 폭력이 넘쳐나고, 분노와 좌절이 많습니다. 도시는 평화로운 시골이나 폭포소리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고함소리로 떠들썩하지요. 사람들은 마음속의 공허를 음식, 라디오, 텔레비전, 그리고 정신 없이 바쁜 외부 활동으로 채우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공허를 메울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영성과 하느님뿐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그 공간에 들어오실 수 있는 시간을 드린다면, 우리 내면의 허기는 기도 속에서 그저 하느님과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보다 쉽게 채워질 수 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우리는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영적 생활에서 보다 강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관심을 분산시키는 것들이 이토록 많은 이 사회에서 기도하며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 테레시나 수녀

 

 

“사랑의 선교회 수녀로서 저는 혼자 있을 기회가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가난한 삶을 선택한다는 것은 보통 사생활의 희생을 의미하지요. 우린 혼자서 기도하고 관상할 자기 방이 없습니다. 하지만 예전에 저는 하루 동안 혼자 있을 기회가 생긴다면 제일 먼저 책을 읽고 싶었습니다. 전 책을 좋아하는데 보통은 너무 바빠서 실컷 읽지 못하니까요. 제가 발견한 책은 시에나 의 성 카타리나 의 글 모음집이었는데, 그것은 하느님의 선물이고 제가 꼭 읽을 필요가 있는 책이었습니다. 14세기에 이탈리아에서 사셨던 성 카타리나 께서는 스물다섯 명의 아이들이 있는 가정에서 성장하면서, 기도하고 침묵하려 할 때 저와 똑같은 곤란을 겪으셨답니다. 그분은 우리 모두 자신의 내면에서 하나의 <방>을 찾아낼 필요가 있다는 얘기를 쓰셨지요. 그 안에서 기도하고 하느님과 함께 있을 수 있는 방 말입니다. 그것은 모두가 다 산 속으로 들어가거나 동굴 속의 은수자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내면에서 특별한 장소를 찾아내야만 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그분의 충고대로 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할 필요가 있다고 믿습니다. 인생의 그 모든 의무들 중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기도하는 걸 배울 필요가 있고, 시끌벅적한 집 안이나 도시의 한 가운데에서도 침묵의 공간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매주 교도소를 방문하던 시절에, 저는 그곳 사람들이 침묵의 공간에 대한 허기와 갈증에 시달리고 있는 걸 목격했습니다. 우린 보통 함께 기도하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거친 남자들이 어린아이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진지하게 기도하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지요. 그 중에는 살인을 저지른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들은 정말 어렵고 거친 삶을 살았지요. 하지만 저는 그들이 일단 어떤 침묵의 공간 속으로 들어가면 평화로운 상태로 빠져든다는 걸 알았습니다.”

— 카테리 수녀

 

 

그리고 돌로레스 수녀는 이렇게 조언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매일 5분이나 10분씩 시간을 내서 하던 일을 멈추고 생각한다면, 하느님의 일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린 사색할 필요가 있고, 하느님께 매일 축복을 내려달라고 간구할 필요가 있고, 또 그분을 다른 사람들에게 줄 수 있도록 우리 삶으로 모셔올 필요가 있으니까요. 생활 속에서 하느님을 갖게 될 때, 그때 삶의 의미가 생겨납니다. 또한 모든 것이 다 가치를 갖고 결실을 맺게 되지요. 이 세상의 부족한 것들에게는 대개 하느님의 부재가 따릅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합니다

 

하느님은 오직 한 분이고, 그분은 우리 모두의 하느님입니다. 따라서 하느님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게 보인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나는 항상 이렇게 말해 왔습니다. 우리는 힌두교인이 더 나은 힌두교인이 되도록 돕고, 무슬림이 더 나은 무슬림이 되도록 돕고, 가톨릭신자가 더 나은 가톨릭신자가 되도록 도와야만 한다고 말입니다.

콜카타의 티타가르에서 나환자 요양원, 간디지 프렘 니바스를 운영하는 비노드 수사는, 전도하지 않고 그저 행동과 헌신을 통해 신앙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린 우리의 일이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곳에는 총 475명이 사는데, 그 중 서른 가정이 가톨릭신자이고 나머지는 모두 힌두교, 무슬림, 혹은 시크교인입니다. 전부 종교가 다르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모두 우리 기도회에 참석합니다. 모두들 일곱 시에 모여 30분간 모임을 갖지요. 우린 독송을 하는데, 어떤 책이든 상관없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도 있고 다른 경전을 읽을 때도 있습니다. 한 환자는 가끔씩 짧은 설교를 하기도 합니다.

종교가 다른 사람들이 함께 기도하는 것이 문제가 된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신에 대한 갈증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그래서 상대가 기독교인이든 무슬림 이든 함께 기도하자고 초대합니다. 스페인과 프랑스에 있는 우리 선교회의 집에는 무슬림의 비율이 높은데 그 사람들도 기도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주된 관심은,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기도하고 신과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며 그 밖의 모든 것은 저절로 따라오니까요.”

 

 

 

매일, 애써, 기도하십시오

 

하루 동안 기도의 필요성을 자주 느껴보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애써 기도하십시오. 기도는 하느님의 선물인 그분 자신을 담을 수 있을 만큼 우리의 마음을 넓혀줍니다. 구하고, 찾으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마음은 그분을 받아들이고 그분을 당신 자신의 것으로 간직할 수 있을 만큼 커질 것입니다.

다음은 우리가 매일 독송하는 기도문입니다. 아는 기도문이 하나도 없거나 혹은 기도문을 좀 더 알고 싶어 하는 당신에게 도움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당신이 기독교인이 아니라면 <예수님>을 <신>으로 바꾸어 기도하면 됩니다.

 

우리 모두가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의

풍성한 열매를 맺는 참된 가지가 되게 하소서.

우리가 그분을

말해야 하는 진리로,

살아야 하는 생명으로,

밝혀야 하는 빛으로,

사랑해야 하는 사랑으로,

걸어야 하는 길로,

주어야 하는 기쁨으로,

전해야 하는 평화로,

바쳐야 하는 희생으로

우리 삶 속에 받아들일 때

그분은 기뻐하며

우리 가족과 이웃 안으로 오실 것입니다.

 

 

 

오 하느님, 저희가 당신의 더없이 거룩한

현존 속에 있음을 굳게 믿사옵니다.

당신이 저희를 보고 계신다는 것을 믿사옵니다.

이 순간 당신은 저희 마음의 가장 깊은 곳까지 보고 계십니다.

당신이 이 거룩한 현존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스며든 채로,

저희는 당신을 흠숭합니다.

오 하느님,

저희 영혼의 모든 힘 을 다해 당신을 흠숭합니다.

저희는 당신 앞에 나타날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당신과 친교를 나눌 만한 자격은 더구나 없습니다.

당신을 언짢게 해드린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하며,

그리고 저희의 죄를 사하여 주시기를,

그리고 좋은 열매를 맺는 묵상의 은총을

허락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저희 마음속의 모든 생각을,

저희 가슴의 사랑을,

저희 영혼의 작용을 당신께 바치오니

성령으로 이 모든 것을 채워주시기를 간절히 비옵니다.

오 주님, 저희에게 말씀해 주소서.

저희가 당신의 목소리를 듣게 하시고

당신의 거룩한 영감에 눈을 돌리게 하소서.

주님 말씀하소서, 당신의 종은 듣고 있사옵니다.

오 예수님!

당신이 우리들의 생각과 사랑의 대상이 되고,

대화의 주제가 되며,

행동의 목적이 되고,

삶의 모범이 되도록 허락해 주소서.

또한 죽음 속에서 우릴 붙잡아 주시고,

하늘나라에서 우리의 영원한 보상이 되어 주소서.

아멘.

 

 

 

오 예수님,

사랑 받고자 하는 욕망에서,

찬양 받고자 하는 욕망에서,

존경 받고자 하는 욕망에서,

칭찬 받고자 하는 욕망에서,

선호 받고자 하는 욕망에서,

조언을 주고자 하는 욕망에서,

찬성을 얻고자 하는 욕망에서,

인기를 얻고자 하는 욕망에서,

굴욕 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무시 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질책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난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잊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부당하게 대접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조롱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의심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저를 구해 주소서.

 

 

 

 

 

믿음

 

믿음은 기도를 통해 성장합니다.

자신을 알고 자신을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기도의 열매는 믿음입니다

 

하느님은 모든 곳 모든 것에 계시며, 그분이 없다면 우린 존재할 수 없습니다. 나는 단 한 순간도 하느님의 존재를 의심해 본 적이 없지만 세상에는 그런 이들이 있다는 걸 압니다. 만일 당신이 하느님을 믿지 않는다면 사랑의 일을 함으로써 남을 도울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들의 열매는 당신의 영혼 속으로 스며드는 특별한 은총이 됩니다. 그런 뒤에 당신은 서서히 마음을 열게 되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기쁨을 원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종교들이 있는데 종교마다 하느님을 따르는 방식이 서로 다릅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따릅니다.

 

예수님은 나의 하느님이시고,

예수님은 나의 배필이시며,

예수님은 나의 생명이시고,

예수님은 나의 유일한 사랑이시고,

예수님은 나의 전부 중의 전부이시며,

예수님은 나의 모든 것이십니다.

 

 

바로 이 때문에 나는 두려움을 모릅니다. 나는 예수님과 함께 일하고, 예수님을 위해 일하며, 예수님을 향해 일하고 있으므로, 결과는 그분의 것이지 나의 것이 아닙니다. 안내자가 필요하면 그저 예수님을 바라보기만 하면 됩니다. 그분에게 자신을 내맡기고 그분에게 전적으로 의지해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모든 의심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확신에 넘치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내게로 올 수 없다.”

테레시나 수녀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우린 하느님 나라를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우린 하느님의 나라에 삶을 바쳤으므로, 그분은 틀림없이 우리를 안내해 주시고 우리를 이끌어 주시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해 주실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린 절대로 하느님의 섭리를 잊지 않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물건들을 쌓아두려고 하지 않지요. 무엇이든 들어오는 대로 처리할 뿐입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하느님의 축복을 받게 될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특히 우리가 사치스러워진다거나 지금 이 순간을 사는 대신 미래를 위한 삶에 사로잡히는 일만 없다면 말입니다. 우린 유연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하느님의 때가 되면 일은 수월하게 풀리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어렵습니다. 우리들에 대한 하느님의 초대가 어떤 식으로 드러나든 우리는 진정으로 그것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자신의 삶을 하느님에게 맡긴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에 대해 카테리 수녀는 이렇게 말해 줍니다.

 

“하느님의 설비를 진정으로 믿는 데는 어떤 자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현재 속에서 살려고 애쓰고 내일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물론 계획을 세우는 것이 책임 있는 자세임에는 분명하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남들이 미리 일년 계획을 세우는 일에서도, 우린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계획하지 않았다고 해서 고려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일들에 대해서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의 방식은 적어도 시도는 해본다는 것인데, 그럴 때 일이 잘 풀리는 경우도 자주 있지요.”

 

예수님께서 당신의 의견을 묻지 않고 당신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드리십시오. 우리는 그분이 우리에게서 원하시는 것을 취하게 해드립니다. 그러니 그분께서 주시는 것이면 무엇이든 받고, 가져가시는 것이 무엇이든 활짝 웃으면서 드리십시오. 하느님의 선물을 맏아들이고 깊이 감사하십시오. 그분께서 당신에게 큰 재산을 주셨다면, 그것을 이용하십시오. 그것을 남들과, 아무것도 갖지 못한 이들과 나누도록 하십시오. 항상 남들과 나누도록 하세요. 당신의 사소한 도움으로 사람들이 고통에 빠지는 것을 막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필요이상으로 갖지 마십시오. 그뿐입니다.

뉴욕의 수녀들은 마크라는 치과의사로부터 수년간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한번은 그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임>에 대한 내 말의 핵심을 잘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저는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완벽하다고 믿어 왔습니다. 문제는 제가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에 있지요. 한번은 수녀님 한 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때 아내는 임신 중이었는데 뱃속의 아기가 막 유산되려던 참이었습니다. 제게 맨 먼저 떠오른 생각은 아기가 무사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그것은 올바른 기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히려 저는 하느님께서 우릴 위해 계획하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사랑의 선교사로서, 그리스도께서 항상 비참한 모습으로 변장하시듯 가난한 이들 중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그들을 돕기 위해 여기 있습니다. 우린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 단돈 1 루피도 받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 일이 예수님을 위한 일이기 때문이지요. 그분께서 우릴 돌봅니다.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신다면, 그분은 우리에게 수단을 주십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수단을 제공해 주시지 않는다면, 그분은 그 일이 이루어지기를 원치 않으시는 것입니다.

다음에 나오는 버트 화이트 신부의 말은, 사랑의 선교사건 아니건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됩니다.

 

“사람들이 돈이나 재산에 초점을 맞출 때, 그때 그들은 물질적 세계, 큰 것, 상승, 그리고 더 많은 것들의 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목표가 되고, 그러면 믿음은 창 밖으로 날아갈 버릴 수도 있지요. 하지만 무엇보다 하느님의 실재에 대한 믿음과 신뢰, 즉 일이 잘 풀릴 거라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두 개의 세계, 즉 물질적 세계와 영적 세계가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있는 것은 오직 하나, 하늘에 있는 것과 같은 지상의 하느님 나라입니다. 많은 이들이 하느님은 저 위에 계신다고 생각하면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라고 기도합니다. 그것은 두 개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이중성을 만들어 냅니다. 많은 서구인들이 물질과 영을 아주 편리하게 분리시켜 놓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모든 진리는 하나이고, 모든 실상은 하나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육화를 받아들일 때, 기독교인이라면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람으로 나타난 성육신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린 사랑하고, 사랑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뿐입니다

 

우리는 선과 악을 모두 행할 수 있습니다. 우린 나쁘게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내면에 어떤 좋은 것을 가지고 있지요. 그것을 숨기는 이들도 있고, 그것을 소홀히 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것은 모두의 내면에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사랑하고 사랑 받도록 창조하셨으므로, 이 길이냐 저 길이냐의 선택은 우리들에 대한 하느님의 시험입니다. 사랑하는 일에 있어서의 태만함은 악을 행해 문을 활짝 여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될 때 악이 어느 정도까지 확산될 수 있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것이 슬픈 점이지요. 누군가 악을 선택하면, 그 사람과 하느님 사이에는 장애물이 돌출하여, 무거운 짐을 진 그 사람은 하느님을 똑똑히 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우릴 파괴할 그 어떤 종류의 유혹도 피해야 하는 까닭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극복할 힘을 기도에서 얻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느님 가까이 있다면 주위의 모든 이들에게 기쁨과 사랑을 확신시키게 되니까요.

악이 어떤 사람을 지배한다면, 그 사람은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악을 확산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 이들과 만나게 되면 그들을 돕기 위해 애써야 하고, 하느님께서 그들을 돌보신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들이 기도를 되찾도록 열심히 기도하십시오. 그들이 다신 한 번 자기 자신 속에서, 그리고 타인들 속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것은 악한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다(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똑같은 사랑의 손길에 의해 창조 되었으니까요. 그리스도의 사랑은 항상 세상 속의 악보다 강합니다. 그래서 우린 사랑하고 사랑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렇게도 단순합니다. 그것은 성취하기 위해 발버둥쳐야 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 소중하지 않은 생명은 없습니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은 가난한 이들 중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에 속합니다. 그들은 하느님과 그토록 가깝습니다. 나는 항상 인도 병원의 의사들에게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절대로 죽이지 말라고 간청합니다. 아이를 원하는 이가 아무도 없다면, 내가 그 아이를 데려갈 것입니다.

나는 모든 아이들의 눈 속에서 하느님을 봅니다. 아무도 원치 않는 아이들을 우리 모두가 환영합니다. 우린 입양을 통해서 이 아이들에게 가정을 찾아줍니다.

어느 때나 사람들은 전쟁터에서 무고한 아이들이 살해당하는 것에 대해 걱정하고, 그런 일을 막으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태어나지도 않은 자신의 아이들을 죽인다면 전쟁터에서의 아이들 살해와 같은 그런 일을 중지시키는 것에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상황이 어떻든 하느님께는 모든 생명이 다 소중합니다. 이사야 43장 4절에서 하느님은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린 세계 곳곳에 있는 많은 센터에서 가난한 이들에게 자연피임법을 가르칩니다. 여성들에겐 자신의 주기에 따른 날짜를 계산할 수 있도록 구슬을 줍니다. 또한 남편과 아내는 가임 기간에 절제할 수 있도록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다음에 나오는 돌로레스 수녀의 말처럼, 이러한 일들에 대해 결정하실 분은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우린 모두가 하느님 앞에서 유일무이하고 소중하다는 걸 믿습니다. 그러니 우리 삶에서, 그리고 우리가 일을 해나가는 동안 곁에 있어 주실 분은 바로 그분이시지요. 그분이 대장이고 그분이 무엇을 해야 할지 말해 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간단한데도 우린 가끔씩 그분을 제쳐놓고 자신이 책임자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그저, 단순할 뿐입니다

 

하느님은 교회와 따로 계시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분이 안 계시는 곳이 없고, 힌두교인이든, 무슬림이든, 기독교인이든 우리 모두가 그분의 자녀들인 것과 같은 뜻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이름으로 모일 때 우리는 힘을 얻습니다. 교회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우리 일을 해나가는 데 필요한 사제와 미사와 성사를 제공합니다. 우리에겐 성찬식(빵과 영성체 안의 예수님)이 필요한데, 예수님을 받지 않는다면 우린 그분께 드릴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우리의 가정입니다. 그리고 그 어떤 가정과 마찬가지로 우린 함께 살 필요가 있습니다. 주교님들은 언제나 사랑의 선교회에 새로운 <집>을 열도록 권해주시고 집을 구하는 일을 도화주실 때도 많습니다. 나는 가톨릭교인이고 가톨릭 교회에 속해 있는 것을 구속으로 보지 않습니다. 우린 그저 서로 사랑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을 뿐입니다.

사람들은 오늘날의 교회의 역할에 관해, 그리고 교회 내에서 여성들의 위치와 미래의 전망에 관해 내게 의견을 물어옵니다. 그러면 나는 그 모든 논란에 관해 신경 쓸 시간이 없다고 대답합니다. 매일 매일 할 일이 너무도 많으니까요.

우린 그리스도에게 봉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집에서 그분은 우리 가족의 가장이시고 모든 결정을 다 내리십니다. 그리스도에게 교회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똑같습니다. 하느님에게 그 모든 것이 단순합니다. 우리들에게 대한 하느님의 사랑은 결국에는 지나갈 그 모든 갈등보다 더욱 크십니다.

 

 

자신에 대한 앎은 겸손함을 낳고, 하느님에 대한 앎은 사랑을 낳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믿음 속에서 성장하기를 원하십니다. 테레시나 수녀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성장하고 성숙해져야 합니다. 교육은 많이 받았어도 믿음은 아직 초등학교 1학년 수준에 머물러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어떤 의미도 찾지 못합니다. 그들은 성경을 읽어보지 않았고, 하느님을 알지 못하고, 그분이 얼마나 아름다운 분인지를 진정으로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조금은 회의적인 시선으로 하느님을 바라보지요. 그런 이들에게 하느님은 재판관처럼 느껴지고, 자녀들이 어떤 즐거움도 누리기를 원치 않는 엄한 아버지처럼 다가옵니다.”

 

카테리 수녀는 다음과 같은 말을 통해 믿음 자체의 본성을 확장시킵니다.

 

“우리는 가톨릭교인으로서 <믿음>이라는 것을 영혼 속에 불어넣어진 초자연적 덕성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믿음이라는 덕성은 하나의 힘이고 능력인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다리가 없으면 우린 걷지 못할 것입니다. 눈이 없다면 보지 못할 것입니다. 믿음이 없다면 우린 신비스러운 것, 인간의 이해 능력을 넘어선 것들을 믿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신비를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그것은 의미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어른으로 성장해 나가면서 믿음의 신비를 꿰뚫어보고 그것을 더욱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더욱더 믿음직스러워집니다.

믿음은 하느님의 선물이고 기도를 통해 성장합니다. 소망과 사랑이 그런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는 내면생활의 주된 덕성입니다.”

 

기독교인으로 사는 것은 믿음의 성장에 도움이 됩니다. 우리를 이끌기 위해 앞서 다녀가신 수많은 성인들이 계시지만, 나는 그 중에서도 예수님의 작은 꽃, 리지외의 성 데레사 같은 단순한 분들을 좋아합니다. 내가 그분의 이름을 딴 것은 그분께서 평범하지 않은 사랑으로 평범한 일들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성인들과 여러 거룩한 분들의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내가 좋아하는 책 중에는 샤를 드 푸코의 <사막의 씨앗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모두가 행동과 일을 통해 배울 필요가 있음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돌로레스 수녀의 설명에 따르면 이렇습니다.

 

“우리는 시간을 내서 영적 독서를 하려고 애씁니다. 저는 성인들의 책을 읽는 걸 무척 좋아하는데, 그것은 큰 도움이 됩니다. 또 성모 마리아에 대한 책은 무엇이든 좋아하지요. 마리아는 최고의 어머니이시니까요. 하지만 우린 앉아 있을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우리는 성 프란체스코 축이나 성 데레사 축일 같은 다른 축일을 기념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다르질링 행 기차를 타신 마더에게 가난한 이들 중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하라고 말씀하신 9월 10일을 기념합니다. 하지만 사실 저는 책을 많이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항상 배우고 있으니까요. 제가 뉴욕과 워싱턴에서 일할 때 만난 에이즈 환자들은 이 시대의 성인, 가톨릭 교단의 새로운 성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 안에서 성장했고, 그들의 마지막 날들, 그들의 마지막 시간과 순간들은 너무도 아름다웠지요. 그들의 삶은 제게 성인들의 삶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와 동시에, 영적 성장의 일부로 자신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을 알고 자신을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먼저 자신을 채우십시오. 그런 뒤에야 다른 이들에게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앎은 겸손함을 낳고, 하느님에 대한 앎은 사랑을 낳습니다. 그것은 카테리 수녀가 말한 그대로입니다.

 

“기도 속에 성장할 때 자신에 대한 앎 또한 성장하고, 자신의 조에 대해서는 아니라 하더라도, 자신이 죄를 지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에 대한 앎 또한 분명히 성장합니다. 그러면 ‘내가 간다, 하지만 하느님의 은총을 위해서.’ 라는 성 필립보 네리의 말씀이 진정으로 이해됩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타인의 약점을 받아들이는 것이 훨씬 쉬워지는데, 왜냐하면 자신의 깊숙한 내부에는 적어도 죄를 지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모두 인간이고, 모두가 똑같은 인간적 약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자멸의 나무와 자기 실현의 나무

 

자멸의 나무

 

가지: 공허, 소외, 무감동, 다른 사람들과의 갈등, 범죄, 의존상태, 알코올 중독, 마약 중독

뿌리: 두려움, 불안, 분노, 질투, 불신, 적의, 죄의식, 자기연민

 

 

자기 실현의 나무

 

가지: 강한 목적의식, 건강, 기쁨, 열정, 만족, 수용, 성취 창조성

뿌리: 자비, 우정, 용서, 사랑, 감사, 친절함, 따뜻함, 신뢰

 

 

 

 

나는 지금, 하늘나라로 가는 중입니다

 

모든 것을 결정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언제 태어나서 언제 죽을지를 결정하십니다. 우린 그분에게 믿음을 바쳐야 하고, 그분께서 명하신 일을 죽은 바로 그 순간까지 해나가야 합니다. 그것은 돌로레스 수녀가 설명한 그대로입니다.

 

“매일 매일이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이걸 깨닫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됩니다. 왜냐하면 죽어가는 사람이 오늘 겪은 일을, 나는 내일 겪게 될 것이기 때문이지요. 우린 그분과 하나가 되어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죽음은 그분께로, 그분이 거하시고 우리 모두가 속해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누구든 하늘나라로 갈 수 있습니다. 하늘나라는 우리들의 집입니다. 사람들이 내게 죽음에 대해, 그리고 죽음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 물으면 나는 “물론 기대하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왜냐하면 죽음이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니까요. 죽음은 종말이 아니라 시작일 뿐입니다. 죽음은 삶의 연속입니다. 영생의 의미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은 하느님께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느님이 계신 곳에 있고, 그분을 보고, 그분께 말하고, 더욱 큰 사랑으로 그분에 대한 사랑을 계속하게 됩니다. 하늘나라에서 우리는 마음과 영혼을 다해 그분을 사랑할 수 있을 테니까요. 우리는 죽음 속에서 육체를 버릴 뿐, 마음과 영혼은 영원히 삽니다.

우리는 죽으면 하느님 곁에 있게 되고, 또한 우리보다 먼저 간 모든 아는 이들과 함께 있게 됩니다. 가족과 친구들이 거기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아름다운 곳임에 틀림없습니다.

어느 종교에서나 영원과 내세를 말합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죽음이 종말이라고 믿는 이들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목격하고도 두려움 속에서 죽는 사람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하느님과 화해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갑자기 죽습니다. 그러니 우리에게도 죽음은 언제든 찾아올 수 있습니다. 어제는 지나갔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을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릴 부르실 때 깨끗한 마음으로 죽을 준비가 되어 있도록 말입니다.

 

 

 

 

 

사랑

 

아픔이 느껴질 때까지…… 사랑하십시오.

사랑의 성공은 사랑함, 그 자체에 있습니다.

사랑의 성공은 사랑함의 결과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열매는 사랑입니다

 

오늘날 세상에서 가장 큰 질병은 결핵이나 나병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 누구도 원치 않는 존재가 되는 것, 사랑 받지 못하고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육체의 질병은 약으로 치료할 수 있지만, 외로움과 실망과 절망에 대한 유일한 치료제는 사랑입니다. 세상에는 빵 한 조각 때문에 죽는 이들도 많지만, 조그마한 사랑 때문에 죽는 이들은 더욱 많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가난은 종류가 다른 가난입니다. 그것은 외로움의 가난일 뿐 아니라 영성의 가난이기도 합니다. 그곳에는 사랑에 대한 허기가 있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허기가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이라는 도움을 받지 않는다면 사랑에 대한 이러한 요구에 응답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돌로레스 수녀와 카테리 수녀가 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줍니다.

 

“우린 먼저 하느님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라야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줄 수 있습니다. 타인에게 사랑을 주고 싶은 마음을 가지려면 자신이 먼저 맘에게 줄 사랑으로 가득 채워져야 합니다. 하느님께선 이런 식으로 행하십니다. 지금 이 일을 하도록 우리 모두를 움직이시는 분이 그분이십니다. 그분의 사랑을 느끼면 그 사랑은 우리에게서 발산됩니다. 그분의 사랑에는 경계가 없습니다.”

— 돌로레스 수녀

 

 

“오직 하나의 사랑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사랑이지요. 일단 하느님을 깊이 사랑하게 되면 우린 그와 같은 정도로 이웃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린 하느님에 대한 사랑 속에서 성장하면서, 그분이 창조하신 모든 것을 점점 존중하게 되고 그분께서 주신 모든 선물을 알아보고 감사하게 되니까요. 그런 다음에는 자연스럽게 모든 사람들을 보살펴주고 싶어집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기쁨을 위해 세계를 지으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도처에서 그분의 선함을, 우리들에 대한 그분의 관심과 우리의 요구에 대한 그분의 배려를 보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요. 말하자면 기다렸던 전화나, 누군가가 차를 태워주는 일이나, 편지함 속의 편지처럼, 그분께서 온종일 우릴 위해 하시는 사소한 일들 말입니다. 우리가 우리들에 대한 그분의 사랑을 기억하고 주목할 때, 우린 그냥 그분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분은 우리 때문에 그토록 바쁘시니 그분을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이지요. 저는 인생에 행운이라는 것이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행운이란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그분의 것이지요.”

— 카테리 수녀

 

 

하느님께서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안다면 당신은 그저 그 사랑을 발산하면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은 가정에서 시작된다고 나는 늘 말합니다. 가족이 먼저이고, 그 다음이 자신이 사는 마을과 도시입니다. 멀리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은 쉽지만 우리와 함께 혹은 우리 바로 옆에서 사는 이들을 사랑하는 것은 늘 그렇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나는 일을 거창하게 벌이는 걸 찬성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한 사람에게서 시작될 필요가 있습니다. 한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선 그 사람과 접촉해야 하고 가까워져야 합니다. 모두가 사랑을 필요로 합니다. 누구나 자신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 그리고 하느님에게 자신은 소중하다는 걸 알아야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서로를 사랑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래서 우리는 가난한 이들 안에 계신 그분을 사랑합니다. 그분은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는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벗었을 때 너희가 옷을 입혔느니라.”

나는 늘 자매들, 형제들에게 우리의 하루는 예수님께서 함께하시는 24시간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깨우쳐줍니다. 테레시나 수녀가 이에 대해 좀 더 설명해 주고, 그 다음에 버트 화이트 신부가 자신의 생각을 들려줄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관상하는 사람들이고 그래서 우리 삶의 중심은 기도와 행동입니다. 우리의 일은 관상의 발로이고,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 간에 그것은 하느님과의 결합입니다. 우리의 일(우리는 이것을 사도직이라고 부릅니다.)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과의 결합에 자양분을 공급하여 기도와 행동과 기도가 끊임없는 흐름 속에 있도록 합니다.”

— 테레시나 수녀

 

“간디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행동하십시오. 그러나 행동의 열매를 구하지는 마십시오.’ 당신의 행동은 지금의 당신으로부터 흘러나옵니다. 지금의 당신이 열매입니다. 그것은 사랑에 빠져 있는 상태와 비슷한 데가 있습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랑을 향해 저절로 흘러가니까요.”

— 버트 화이트 신부

 

 

다음은 사랑의 선교사들이 사도직을 위해 떠나기 전에 모두들 하는 기도입니다. 또한 콜카타의 어린이의 집, 시슈 브하반 에서는 의사의 기도로 쓰이기도 합니다.

 

 

위대한 치유자이신 주님,

모든 완전한 선물은 당신으로부터 온 것이 분명하므로

저는 당신 앞에 무릎 꿇습니다.

간절히 기도하오니

제 손에는 솜씨를,

마음에는 투명한 확신을,

가슴에는 친절함과 온유함을 내려주소서.

저에게 오직 하나의 목표를 주시고,

고통을 겪는 이웃의 짐을 일부라도 덜 수 있는 힘을 주시며,

제게 주신 은혜를 진정으로 깨닫게 해주소서.

저의 마음에서 온갖 교활함과 속됨을 없애주시고,

어린아이의 단순한 믿음으로 당신께 의지할 수 있게 하소서.

 

 

 

 

사랑은, 나누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사랑은 시혜가 아닙니다. 또한 자선은 동정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자선과 사랑은 같은 것입니다. 자선과 함께 당신은 사랑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저 돈만 주지 말고 손을 내미세요. 런던에 갔을 때, 나는 우리 자매들이 무료 급식소를 연 곳으로 노숙자들을 만나러 간 적이 있습니다. 종이박스 안에서 살던 한 남자가 내 손을 잡더니 “사람 손의 온기를 느껴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라고 말하더군요.

우리 자원봉사자로 일하는 마리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미는 일에 대해 많은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타인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줄 때 사랑의 마음이 함께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실상 그들의 기를 꺾어놓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또 사람들과 접촉하려고 애쓰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과 이왕이면 조직적인 방식으로 하는 게 도움이 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예를 들면 무료 급식소에 가서 수녀님들을 돕는 것 같은 일 말이지요. 그런데 무료 급식소에서는 배식하고 접시 치우는 일을 너무 바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거기 있는 동안에는 항상 누군가에게 말을 걸거나 그들 옆에 앉아 있으려고 노력하는 게 제일 좋지요. 일 대 일 접촉을 하려고 노력하는 겁니다. 사진을 지니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걸 좀 보여 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고, 아니면 머리 모양에 대해 농담을 걸 수도 있습니다. 무든 좋습니다!

중요한 건 어떤 접점을 찾아내는 일입니다. 그게 그냥 ‘맛있게 드셨어요?’ 라는 말 같은 거라 해도 말이지요. 뒤로 물러나서 접시를 닦는 것보다는, 접시 치우는 일을 맡는 것도 괜찮습니다. 그런 일이 어렵게 느껴지면 차근차근 단계를 높여나가는 게 나을 수도 있어요. 누가 혼자 서 있거나 혼자 걸어나가거나 혼자 앉아 있는 게 보이면, 기회를 놓치지 말고 다가가야 합니다.”

 

역시 마리의 이야기인데, 사람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접촉하는 또 다른 방식에 대해 말해 줍니다.

 

“건에 사람들이랑 같이 알바니아에 간 적이 있습니다. 우린 그곳의 수녀님들을 찾아갔다가 장애아들이 있는 어느 시설에 대한 얘길 듣고 찾아가 봤습니다. 가보니 정말 기가 막히더군요. 그곳에 구호품이 잔뜩 쏟아져 들어온 것은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 지역 사람들이 와서 다 빼앗아 갔습니다. 왜냐하면 그들한테도 그 물품들이 필요했으니까요. 또 가만히 보니까 그곳에는 많은 물자가 공수되고 있었고 창고에는 구호품이 가득 쌓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곳 장애아들한테는 전달되고 있지 않았지요. 그래서 우린 사과 한 상자를 가지고 돌아가서 아이 하나에 사과 한 알씩 돌아가게 나눠주었습니다. 왜냐하면 상자를 그냥 놓고 가면 부근에 사는 사람들도 자녀에게 줄 사과가 필요할 테니 그 고아원의 아이들은 사과를 먹지 못할 것이 분명했으니까요.”

 

사랑은 나누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사랑은 행동으로 옮겨져야 합니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고 사랑해야 합니다. 어떤 일을 할 때는 무슨 보상을 바라고서가 아니라, 사랑 그 자체를 위해서 해야 합니다. 어떤 대가가 돌아오기를 기대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사랑은 조건을 달거나 기대하는 바 없이 사랑하는 것이니까요.

도움이 필요한 곳이 있다면 하느님께서 당신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분께서 우릴 에이즈 환자들에게 봉사하도록 이끄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우린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병에 걸렸는지 묻지 않습니다. 그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걸 보고 그들을 보살펴줄 뿐이지요. 나는 하느님께서 에이즈라는 병을 통해 우리에게 뭔가를 말씀하고 계신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사랑을 보여줄 기회를 주신 것이지요. 에이즈 환자들은 사랑에 문을 닫아걸고 그것을 아예 잊어버렸을 사람들에게 부드러운 사랑을 일깨워주었습니다.

돌로레스 수녀는 마음속에 사랑을 담고 단순히 그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만다고 합니다. 그녀의 말을 들어보시지요.

 

“처음에는 에이즈에 걸린 채 우릴 찾아오는 이들에 대한 두려움이 컸습니다. 자신이 죽어가는 현실에 적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곳에서 우리와 함께 있으면서, 우리가 마지막 순간을 맞은 다른 에이즈 환자들 곁을 떠나지 않는 것을 보면서 그들에겐 변화가 일어납니다. 저는 뉴욕에서 만난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한 남자를 기억합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집에 오면 간호해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고마워하면서도 우리 곁에 남겠다고 했지요. 물론 어머니를 찾아 뵙기 했지만 말입니다. 어느 날 그가 말했습니다. ‘제가 죽을 때 수녀님께서 제 손을 잡고 옆에 계셔 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해주는 걸 보았기 때문에 자신이 홀로 죽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던 겁니다.

그건 정말로 지극히 단순합니다. 죽어가는 이들은 자신이 받는 사랑에 감동받습니다. 그것은 단지 저의 손길일 수도 있고, 한 잔의 물일 수도 있고, 그들이 원하는 어떤 사탕을 구해 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부탁하는 걸 그냥 가져다 주면 됩니다. 그러면 그들은 만족합니다. 그러면서 누군가 자신을 보살펴 주고 있다는 것, 누군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 누군가 자신을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그들에겐 큰 도움이 되지요. 왜냐하면 그것 때문에 그들은 하느님이 보다 친절하고 관대한 분임에 틀림없다고 믿게 되니까요. 그러면서 자신들의 영혼이 하느님께로 들려 올라간다는 걸 믿습니다. 우린 설교하지 않고 그저 사랑으로 할 일을 할 뿐이지만, 그들은 그런 하느님의 은총에 마음이 움직입니다.”

 

사랑의 선교 수사회의 회장 거프 수사 또한 사랑을 주는 가장 좋은 방법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거부당하고 버려지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아들여지고 사랑 받는 경험을 하는 것, 그리고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것을 보는 것, 그것은 결국 자신이 무가치한 존재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달받는 것입니다.

사랑은 누군가를 위해 뭔가를 하기 전에 그의 곁에 같이 있는 것으로 먼저 표현되는 것이 분명합니다. 우린 이러한 각성을 끊임없이 새롭게 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우린 누군가를 위한 수많은 행위들에 사로잡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행동이 무엇보다 그 사람과 함께 있으려는 욕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정말 단순한 사회사업이 되고 맙니다. 가난한 사람과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우러날 때 우리는 그의 필요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사랑이 진짜라면 자연스럽게 사랑의 표현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집니다. 어떤 측면에서 봉사란, 단순히 자신이 상대를 위해 존재하고 있음을 표현하는 한 방식입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할 때 그들의 문제를 완전히 덜어주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그들과 함께 있고 그들을 위해 존재할 때, 그때 당신 자신이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됐든 그것은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우리가 가난한 이들 중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바로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가 당신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순 없지만 당신이 장애인이든 알코올 중독자든 혹은 나병환자든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당신의 병이 낫든 안 낫든 간에,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똑같이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우린 그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여기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의 고통을 조금이라고 덜어줄 수 있다면 물론 좋은 일이겠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고통과 수난 속에 있더라고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사랑하신다는 걸 일깨워주는 일입니다. 이것이 전하기 어려운 메시지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위해 있는 것이 먼저라고 믿습니다. 한 사람의 곁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우리가 그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행동과 똑같은 무게를 지닌 사랑의 표현입니다.”

 

우리 자원봉사자 니겔이 콜카타의 임종자의 집에서 겪은 경험을 들려줍니다.

 

“임종자의 집인 니르말 흐리다이에 도움을 주러 갔을 때 저는 그 고통 때문에 그곳이 무척 싫었습니다. 전 완전히 쓸모 없는 인간처럼 느껴졌지요.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영국으로 돌아갔을 때, 전 수녀님 한 분과 그 일에 관해 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재빨리 수화를 배워서 누가 물을 달라고 하고 누가 변기를 달라고 하는지, 그 차이를 구분해서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저는 그리 많은 일을 하진 않았다고 말씀 드렸죠. 저는 주로 침대에 걸터앉아 사람들의 몸을 쓰다듬어 주거나 음식을 먹여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거기 있는 걸 느낄 때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많았지요. 그 사람들은 죽어가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수녀님이 제게 그곳에서 어떻게 지냈느냐고 물었을 때, 저는 ‘전 그냥 거기 있었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수녀님이 말씀하시더군요. ‘성 요한이나 우리 성모님께서는 십자가 아래서 무엇을 하셨을까요?’ 라고요.”

 

우리는 가난한 이들을 측은하게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지요? 그들은 먹을 것에만 굶주린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인정 받는데 굶주려 있습니다. 그들은 인간적 존엄성에 굶주려 있고, 우리가 대접받는 것처럼 대접받는 데 굶주려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사랑에 굶주려 있습니다.

 

 

 

 

사랑의 성공은 사랑함, 그 자체에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행하느냐가 아니라, 행하고 타인들과 나누는 일에 얼마만한 사랑을 불어넣느냐입니다. 사람들을 심판하려 하지 마십시오. 타인을 심판한다면 당신은 사랑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대신 사람들의 요구를 보고 그 요구를 충족시켜 줌으로써 그들을 도우려고 노력하십시오. 예를 들면 나는 동성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 받는 일이 많은데, 그때마다 나는 사람들을 심판하지 않는다고 항상 대답합니다. 하느님이 보시기에 중요한 것은 남이 무엇을 했느냐 안 했느냐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했느냐 입니다.

마더 하우스의 예배당 문 밖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걸려 있습니다. 그것은 1977년 에드워드 르 졸리 신부가 나와 대화를 나눈 뒤에 쓴 글인데, 우리가 하는 일의 성격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은 사회사업을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다 그분을 위한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수도자입니다. 우린 사회사업가도 아니고, 교사도 아니고, 간호사도, 의사도 아닙니다. 우린 수도회의 자매들입니다. 우린 가난한 이들 속에 예수님께 봉사합니다. 가난한 이, 버림받은 이, 병자, 고아, 죽어가는 이들 속에 계신 그분을 간호하고, 그분을 먹여드리고, 그분께 옷을 입혀드리고, 그분을 찾아가고, 그분을 위로해 드립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 우리의 기도와 우리의 고난은 오직 예수님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다른 이유나 동기는 없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요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8

 

 

돌로레스 수녀, 거프 수사, 그리고 자원봉사자인 린다가 이러한 종류의 <행동하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들려줍니다.

 

“현대에는 외로움이 참으로 많습니다. 외로운 사람들은 대부분 누가 그저 옆에 앉아 있어 주고, 함께 있어 주고, 자신을 향해 미소를 보내주길 바랄 뿐입니다. 왜냐하면 많은 이들이 남은 혈육이 없거나, 홀로 살거나, 문을 닫아걸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제가 뉴욕에서 일할 때는 일년에 몇 차례씩 그런 사람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아 다른 사람들과 사귈 수 있도록 사교 모임을 열곤 했습니다. 사람들은 정말 그런 모임을 학수고대했지요. 우린 그들을 위해 특별한 하루 계획을 짜곤 했습니다. 우린 맛있는 점심식사와 케이크도 제공했습니다. 사람들을 집 밖으로 불러내어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삶에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었습니다.

무료 급식소에서 우린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제공합니다. 그들은 식사를 하러 오지만, 어떤 이들은 음식에는 손도 대지 않습니다. 그저 평화롭고 평온한 분위기 속에서 있기를 원할 뿐이지요. 그들은 대개 나중에 기도 같은 것을 함께한 뒤에 떠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순히 먹을 것을 원하는 게 아니라 인정받고 사랑 받기를 원하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고 마음속에서 평화를 찾을 수 있는 곳에서 있기를 원합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끼리의 접촉입니다.”

— 돌로레스 수녀

 

 

“현대인은 이윤추구의 경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그 결과에 따라 평가되고, 우리는 그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점점 더 바삐 움직입니다. 하지만 동양, 그 중에서도 인도 사람들은 그냥 있는 것, 그저 반얀 나무 아래 둘러앉아 하루의 절반을 서로 잡담이나 나누며 시간을 보내는 것에 더욱 만족해 합니다. 현대인들은 십중팔구 그것을 시간 낭비라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 시계를 보지 않고 결과를 기대하지도 않고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은 우리들에게 사랑에 대해 가르쳐줍니다. 사랑의 성공은 사랑함에 있습니다. 사랑의 성공은 사랑함의 결과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상대방을 위해 가장 좋은 것을 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사랑입니다. 하지만 결과가 우리가 하는 일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결과를 중요시하는 태도를 버릴수록 우린 사랑의 관상적 요소에 대해 더욱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봉사로 표현되는 사랑이 있고, 관상으로 표현되는 사랑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둘의 <균형>을 위해 애써야 합니다. 사랑은 이 둘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낼 수 있는 열쇠입니다.

— 거프 수사

 

 

“콜카타의 어린이의 집, 시슈 브하반에서 이이들을 돌보는 것은 제게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저는 아이들을 보며 깊이 감동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아침 2층에서 둥그렇게 모여 앉아 있을 때 (우린 자주 그렇게 앉아서 노래를 부르곤 합니다.) 저는 장애가 있는 어린 소년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 아이는 두 눈에 완전한 기쁨과 사랑을 담고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그 아이의 내면에는 깊은 평온이 자리 잡고 있었던 거지요. 저는 그 일을 깊은 영적 체험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 자원봉사자 린다

 

 

 

 

아픔이 느껴질 때까지….. 사랑하십시오

 

우리는 사랑 안에서 성장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우린 아픔이 느껴질 때까지 쉼 없이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내주고, 또 내주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평범하지 않은 사랑의 마음으로 평범한 일들을 하십시오. 병자와 노숙자, 외로운 이들과 버림받은 이들을 돌보고, 그들의 몸을 씻겨주고 닦아주는 것 같은 사소한 일들 말입니다.

자신에게 무언가 희생이 될 만한 것을 주어야 합니다. 없어도 지장이 없는 것을 주는 게 아니라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이나 그것 없이는 살고 싶지 않은,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것을 주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선물은 희생이 되고, 그것은 하느님 앞에 가치를 갖게 될 것입니다. 사랑의 마음으로 행했다면 어떤 희생이든 의미가 있습니다.

이렇듯 아픔이 느껴질 때까지 내주는 것 (희생) 을 나는 또한 <행동하는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매일 같이 나는 이 사랑을 봅니다. 아이들 속에서, 남자들과 여자들 속에서 말입니다. 한번은 거리를 걷고 있는데 어는 걸인이 나에게 다가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데레사 수녀님, 모두가 다 수녀님께 뭔가를 드리는데 저도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은 하루 종일 29피사(1피사, 1루피의 100분의 1에 해당하는 동전)밖에 못 벌었습니다. 이걸 수녀님께 드리고 싶습니다.”

나는 순간적으로 생각했습니다. 내가 그 돈을 받으면 그는 오늘밤 먹을 것이 없을 것이고, 내가 그 돈을 받지 않는다면 그는 나로 인해 상처받을 것입니다. 나는 두 손을 내밀어 그의 돈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그의 얼굴에는 그 누구의 얼굴에서도 본 적이 없는 기쁨이 피어났습니다. 걸인인 그 또한 마더 데레사에게 무언가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온종일 뙤약볕 아래 앉아 고작 29피사밖에 벌지 못한 그 가난한 남자에게 그것은 큰 희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아름다웠지요. 29피사는 너무도 적은 액수여서 나는 그 돈으로 아무것도 살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돈을 포기하고 내가 그것을 받은 순간, 그것은 수천 피사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토록 큰 사랑으로 준 돈이었으니까요.

한 번은 미국의 한 꼬마한테서 편지가 왔습니다. 전 그 아이가 아주 어리다는 걸 알았습니다. 커다란 글씨로 삐뚤빼뚤 편지를 썼으니까요.

“데레사 수녀님을 정말 사랑해요. 제 용돈을 보내드릴게요.”

그리고 그 속에는 3달러짜리 수표가 들어 있었습니다. 또 런던에 있는 한 수녀가 들려준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작은 여자아이가 킬번의 우리 센터에 동전이 든 주머니를 들고 와서 이렇게 말했답니다.

“이걸 가난한 사람들한테 주려고요.”

그 아이는 “이걸 마더 데레사한테 줄래요.” 라거나 “사랑의 선교회에 줄래요.” 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길 건너편에 살고 있었는데 우리 센터의 식구들이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걸 사람들한테 주려고요.” 라고 말한 것이지요. 아이는 그저 자신의 눈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나는 그토록 많은 사람들에게도 이것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뭔가를 보고 그것에 이끌립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좋은 것으로 느껴지니까요.

최근에 어느 젊은 한 쌍이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두 사람은 결혼식을 간소하게 거행하기로 했지요. 신부는 무늬 없는 면직 사리를 입었고, 선물이라곤 양가 부모님이 주신 것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성대한 힌두식 결혼식을 올리지 않고 대신 모은 돈을 전부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두 사람은 가난한 이들과 사랑을 나눈 것입니다. 이런 비슷한 일이 매일같이 일어납니다. 우리 자신이 가난해짐으로써, 아픔이 느껴질 때까지 사랑함으로써, 우린 더욱 깊이, 더욱 아름답게, 더욱 완전하게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자원봉사자 사라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일하는 동안 경험한 이러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시지요.

 

“제가 생각하는 <아픔이 느껴질 때까지 사랑하기>란, 설령 제가 상황에 대해, 사람들에 대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말하기보다 행하기가 더 어렵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간 결과, 크리스라는 식구 하나가 죽었을 때는 정말 견디기가 어려웠습니다. 전 다시 그곳에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2,3주 동안 안 갔지요. 사실 저는 아침에 일어나서 갈 준비를 하긴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가지 않았지요. 수녀님들은 그런 상황을 너무도 잘 이해해 주셨습니다. 그분들은 그런 식으로 절 도와주셨지요. 그분들은 옳고 그름을 따지지도, 비난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수녀님들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괜찮아요. 다시 오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오세요.’ 저는 크리스가 죽고 난 뒤 울면서 슬퍼하다가 그곳에서 거주하는 분께 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여기 이 집은 죽어가는 이들을 위한 집입니다. 죽어가는 우리들에게 당신이 그렇게 우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이기적인 행동이 될 겁니다. 왜냐하면 그런 모습을 보면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될 것이고, 먼저 간 이들이 하느님과 함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요. 우린 그들을 위해 기뻐해야 합니다.’

이것이 그분들의 태도입니다.

저는 상근 자원봉사자도 아닙니다. 그러니 거기서 매일 일하는 분들은 틀림없이 아픔을 느낄 때까지 사랑하는 것에 대해 훨씬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겁니다. 여건이 허락한다면 항상 주세요. 그러면 사랑을 주는 방식이 보다 섬세해지고, 그것은 또한 하느님의 영적 자산이 될 것입니다. 상근 자원봉사자들은 특별한 분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매일 그분들을 가득 채워주십니다. 세상에서 사랑하는 척하는 것은 훨씬 쉽습니다. 왜냐하면 아픔이 느껴질 때까지, 내 몸이 병들 때까지 내주라고 요구하는 사람은 정말 아무도 없으니까요.”

 

 

 

나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은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사랑의 선교회의 정신은 하느님에게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는 것, 타인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것, 모든 사람과 더불어 기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즐겁게 고통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린 기쁜 믿음으로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하고, 기쁨으로 가난한 이들 중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 가운데 계신 예수님을 섬겨야 합니다. 하느님은 기쁜 마음으로 내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 웃으면서 가장 좋은 것을 주십시오. 하느님 앞에 항상 “예.” 라고 말할 준비가 되었다면 모두를 향해 자연스럽게 웃음 짓게 될 것이고 하느님의 축복과 함께 아픔이 느껴질 때까지 내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두 자원봉사자 사라와 데이브는, 샌프란시스코와 런던에서 이러한 방법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시지요.

 

“제가 수녀님들의 정말 좋아하는 점은 그분들은 상황이 어려워져도 시종일관 유머감각을 잃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수가 있다 해도, 우린 그것을 바로잡고 계속 나아가지요. 하지만 어떤 수녀님들의 말씀에 따르면, 삶은 그분들에게도 굉장히 힘들 때가 있다고 합니다. 또 슬플 때도 있고, 자신의 가족 때문에 우는 일도 있다고 하지요. 아시겠지만 그분들에게도 이러 저런 문제가 있고, 병에 걸린 형제자매나 부모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에게는 기도하는 것 말고는 자신의 가족을 도울 길이 전혀 없지요. 수녀님들에게도 감정이 있으므로, 그분들은 우시는 겁니다. 그분들도 인간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사랑하는 인간이지요.”

— 자원봉사자 사라

 

“저는 수녀님들과 함께 일하면서 그분들이 안팎이 똑같은 분들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저는 일상적인 일들, 예를 들면 주방 일이나 바닥 청소, 배식, 장보기, 사람들을 병원이나 정신과에 데려가는 일, 때로는 도중에 지극히 불쾌한 사람들을 상대하는 등의 일을 하면서 매일같이 그분들을 접합니다. 그런데 수녀님들은 항상 쾌활하십니다. 이를 악물고 쾌활한 척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그렇습니다.

저는 그분들이 느끼는 내면의 기쁨이 외적 쾌활함으로 드러난다고 확신합니다. 수녀님들과 함께 일하는 사람이라면 그분들이 성당에서 무릎 꿇고 보내는 시간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분들은 바로 그 시간 때문에 무척 행복하시지요. 그분들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은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수녀님들은 그 시간을 무척 기다리고, 그 시간에 기도하고 재충전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러한 재충전의 시간을 끝내면서 당신들이 받은 에너지를 똑같이 내주기를 원하시지요. 그것은 광신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고자 하는, 진정으로 기쁨에 찬 열망입니다. 그분들은 자신에게 있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그냥 갖고 있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옷이든 음식이든 돈이든, 혹은 비닐봉지나 고무 밴드 같은 것일지라도 그 무엇이든 그냥 내어주십니다. 들어온 것은 모두 나갑니다.

하느님께서 수녀님들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주시는지 모릅니다. 그분들을 무척 사랑하고 계신 것이 분명하지요. 저는 수녀님들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분들이 하느님을 얼마나 즐겁게 해드릴 것인지를 생각하면 저절로 그분들께 끌립니다. 수녀님들의 은총과 에너지는 하느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서로 주고받는 사랑입니다. 수녀님들은 그 사랑을 다시 우리에게 보여주시지요. 모든 수녀님들이 이런 모습을 갖고 계시는데, 그렇다고 그분들이 복제인간인 것은 아닙니다. 각자 개별적인 자아가 있고, 저마다의 개성이 있는 인간이지요.”

— 자원봉사자 데이브

 

 

초기 기독교도의 비밀의 열쇠는 기쁨이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여전히 기쁨으로 주를 섬깁니다. 카테리 수녀가 그것이 어떤 느낌인지에 대해 이렇게 설명해 줍니다.

 

“저는 뉴욕의 뇌성마비 센터에서 일할 때 매일같이 기도했습니다. 어느 날 누군가 저한테 뭐가 그리 행복하냐고 물었습니다. 혹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를 넌지시 비추면서 말이지요.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며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저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지요. 저는 정말로 행복했고 하느님과의 관계가 성장하면서 진정으로 충족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저는 기쁨에 넘쳤던 거지요.”

 

기쁨은 사랑입니다.

기쁨은 기도입니다.

기쁨은 힘입니다.

 

하느님은 기쁘게 내어주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당신이 기쁘게 준다면 당신은 항상 더 많은 것을 주는 것입니다. 사랑에 불타는 마음은 필연적으로 기쁨에 넘치는 마음을 불러 옵니다.

사랑의 일은 항상 기쁨의 일입니다. 우린 행복을 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타인에 대한 사랑이 있다면 행복은 저절로 주어질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봉사

 

자신의 상처받기 쉬움보다

타인의 상처받기 쉬움에 더 관심을 기울일 때,

그때 나는 덜 상처받게 됩니다.

 

 

사랑의 열매는 봉사입니다

 

콜카타의 어린이의 집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걸려 있습니다.

 

시간을 내서 생각하세요.

시간을 내서 기도하세요.

시간을 내서 웃으세요.

그것은 힘의 원천입니다.

그것은 지상에서 가장 강한 힘입니다.

그것은 영혼의 음악입니다.

 

시간을 내서 뛰어 노세요.

시간을 내서 사랑하고 사랑 받으세요.

시간을 내서 베푸세요.

그것은 다함 없는 젊음의 비밀입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주신 은혜입니다.

나만 생각하기엔 하루가 너무 짧습니다.

 

시간을 내서 책을 읽으세요.

시간을 내서 정답게 지내세요.

시간을 내서 일하세요.

그것은 지혜의 샘입니다.

그것은 행복에 이르는 길입니다.

그것은 성공의 값입니다.

 

시간을 내서 사랑을 실천하세요.

그것은 천국의 열쇠입니다.

 

 

<행동하는 기도>는 <사랑>입니다. 그리고 <행동하는 사랑>은 <봉사>입니다. 어느 한 사람이 그 순간에 무엇을 필요로 하면 그것이 무엇이든 무조건 주려고 애쓰십시오. 정말 중요한 것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무언가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을 내어줌으로써 행동을 통해 당신의 관심을 보여 주십시오. 때로 이것은 뭔가 육체적인 일을 하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병든 이와 임종자들을 위한 집에서 우리가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혹은 때로는 자기 집 안에 고립되어 있는 이들이나 외로운 이들에게 영적 도움을 주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아픈 사람이 약을 원하거든 약을 주십시오. 위로를 구하거든, 위로해 주십시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자녀들이므로 그분의 선물을 나누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상에 왜 문제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저 사람들의 요구에 응답하십시오. 어떤 이들은 내게 와서, 우리가 타인에게 자비를 베풀면 가난하고 부족한 이들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덜어주게 되는 셈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나는 이 문제를 놓고 염려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정부도 사랑을 주는 법은 없으니까요. 나는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합니다. 너머지는 나의 소관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그토록 잘해주셨습니다. 사랑의 일은 항상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가는 수단입니다. 예수님께서 살아계신 동안 지상에서 한 일을 보십시오! 그분은 그저 선한 일을 하시면서 삶을 보내셨습니다. 나는 수녀님들에게 예수님은 생애의 3년을 병자와 나환자, 아이들과 어른들을 치료하면서 보내셨다는 점을 일깨워줍니다. 우리가 지금 하는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행동을 통해 복음을 설교하는 일이지요. 봉사하는 것은 우리들에게 하나의 특권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진정한, 온 마음을 다한 봉사가 되도록 애씁니다.

우린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이 대양의 물 한 방울에 지나지 않는다고 느끼지만, 그 물 한 방울이 없다면 대양은 그만큼 모자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가난한 어린이들이 배움을 사랑하고 청결함을 알도록 가르치기 위해 학교를 열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그 아이들은 아직도 거리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만약 상황에 따라 어떤 사람이 다른 단체에서 더 나은 구호를 제공받을 수 있다면 우린 그렇게 하라고 조언해 줍니다. 하지만 우린 가난한 이들 중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하기 때문에 진짜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돌려보내는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거프 수사는 그것을 이런 식으로 설명합니다.

 

“버림받은 이들을 보살펴줄 사람을 찾아내는 일은 지극히 어려울 수 있습니다. 특히 인도처럼 그런 요구가 막대한 곳에서는 더합니다. 우리 사랑의 선교회 집들은 이미, 거의 모든 이들로부터 거부당한 수많은 환자들의 최후의 피난처가 되는 일이 많습니다.”

 

행동하는 사랑의 열매를 더욱 많이 보여주기 위해, 나는 무엇보다 사랑의 선교회에서 하는 일을 간략히 소개하고, 그 다음에 자발적으로 우릴 돕고 있는 이들의 경험을 나누는 것이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무엇인가를 하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 해도, 빼앗기 자뿐 아니라 보살핌을 주는 이에게도 효력을 발휘한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오늘날 사랑의 선교회 사업은 매우 다양한데, 우선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선교회에서 하는 일들

 

사도직: 일요학교, 성경공부 그룹, 가톨릭 행동 그룹 등을 운영합니다. 또한 병원과 양로원과 감옥에 있는 이들을 찾아 다니는 일을 통해 봉사합니다.

 

의료 사업: 시약소 施藥所, 나병 클리닉, 나환자 재활 센터, 버림받은 어린이와 정신장애 및 신체장애가 있는 어린이들을 위한 집, 병자와 임종자, 에이즈 환자, 결핵 환자를 위한 집과 영양실조 센터 및 이동 진료소를 운영합니다.

 

교육 봉사: 빈민가의 초등학교, 재봉 교실, 상업 교실, 수공예 교실, 마을 유치원, 방과 후 프로그램 등을 운영합니다.

 

사회 봉사: 아동 복지 및 교육 사업, 주간 놀이방, 노숙자 및 알코올 중독자와 마약 중독자들을 위한 집, 미혼모들의 집, 야간 쉼터, 자연피임 센터 등을 운영합니다.

 

구호 봉사: 비상식량, 조리된 음식, 가족들에게 응급 구호를 제공할 수 있는 식품 및 의류 센터 등을 운영합니다.

 

 

 

간디지 프렘니바스, 티타가르, 콜카타

— 나환자의 집

 

오늘날 나환자들은 자신들이 도움 받을 수 있고 치료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나병에 걸렸다고 해서 더 이상 종적을 감추거나 숨을 필요는 없습니다. 이것은 이제는 감염을 두려워하지 않고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살 수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나환자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이제 더 이상 나환자가 아닙니다.

40년도 더 전에 우리는 콜카타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티타가르라는 곳의 어느 나무 아래에서 나환자를 대상으로 이동 진료소를 열기로 결정했습니다. 우리는 일주일에 두 번 그들을 진료했고, 다른 날에는 영양실조로 고생하는 이들을 돌보고 병자들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토요일에는 그들을 씻겨주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간디지 프렘 니바스라는 훌륭한 센터를 가지고 있는데, 그곳은 그 자체만으로 거의 하나의 마을을 이루었습니다. 철로를 따라 흩어져 있는 건물에는 빨강, 파랑, 녹색의 밝고 화사한 페인트가 칠해져 있습니다. 그곳에는 작업장, 도서실, 클리닉, 치료병동, 학교, 외래 진료소 등이 있고 또한 가족들을 위한 오두막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온 마을에 물을 공급해 주는 저수지도 있지요. 안쪽 마당에는 간디의 동상이 서 있습니다.

프렘 니바스는 나환자 자신들의 손으로 세워졌는데, 그곳은 그들의 생활 터전이며 작업 공간이기도 합니다. 1974년, 우리가 세터를 세울 부지로 그 땅을 처음 받았을 때, 그곳은 철도 쓰레기 야적장이었습니다. 우리는 처음에 이엉을 올린 간소한 오두막들을 세우기 시작했는데 그곳은 서서히 아주 아름다움 곳으로 변모했지요.

프렘 니바스를 운영하는 비노드 수사가 오늘날의 그곳에 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것입니다.

 

“지금 이곳에서 매달 정기적으로 치료받는 나환자는 1,300명입니다. 1958년부터 이곳에 등록한 환자 수는 3만 8천 명이고요. 그 중 많은 수가 더 이상 치료받을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돌보고 있는 사람들은 앞으로 20년이나 30년은 더 살 터이므로, 사랑의 선교회는 이 일을 적어도 그 기간만큼은 계속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나병은 치료 가능하기 때문에 미래에는 그렇게 심한 기형은 찾아볼 수 없을 거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정부의 전망에 따르면 2000년까지는 인도에서 나병이 뿌리 뽑힐 거라고 합니다.

조기 발견이 열쇠입니다. 우리 클리닉이 그토록 중요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지요. 나병은 인체의 면역 체계에 영향을 미치고 공기를 통해 전염되는 질환입니다. 그러니 환자와 장기간 접촉해야 나병에 걸리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 몸의 면역력이 강하면 전염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나병 백신은 없지만 개인의 면역성을 측정하는 테스트는 할 수 있습니다. 누가 나병에 걸리더라도 초기에는 약으로 완치가 가능합니다.

나병은 아직도 사회의 극빈층 가운데서 발견됩니다. 가난한 이들은 교육받지 못했기 때문에 기형이 나타날 때까지 자신의 고통이 무엇으로 인한 것인지 알지 못하지요. 손발과 궤양 부위의 감각이 없어질 무렵에는 손상을 돌이키기엔 이미 때가 늦습니다. 물론 이 시점에서도 더 이상의 진행은 막을 수 있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기형이 생긴 나환자들은 절망하게 되고, 따라서 자신들을 거부하는 사회에서 살고 싶어 하질 않습니다. 그래서 우린 그들에게 거처와 일자리를 제공하지요. 그러면 단기간 내에 환자들의 믿음과 희망, 자기 존중감이 되살아납니다.

우린 길거리나 기차역에서 살던 걸인들을 많이 받아들입니다. 또한 나병에 걸린 어린이들도 받지요. 부모들은 항상 아이의 상태가 나아지면 아이를 곧장 데려가겠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이곳은 소년 소녀들의 집이 되기도 하지요. 그들은 어른이 되면 대개 여기서 결혼해서 직업과 주택을 얻고, 우리 곁에 머뭅니다.

이곳에서의 모든 일은 환자들이 도맡아야 합니다. 환자들은 서로에게 상처 소독하기, 주사 놓기, 병동 관리하기 등을 가르쳐 줍니다. 그들은 자신의 형제들을 보살펴 줍니다. 그들은 다른 환자의 고통과 어려움을 우리보다 훨씬 잘 이해하지요. 물론 수사들도 나환자 간호 교육을 받습니다. 수사들은 의료 보조인력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시간을 내어 무보수로 수술을 해 주는 의사들을 도와 환자들을 치료합니다. 그러나 어느 때건 보다 바람직한 것은 환자 대 환자의 직접 접촉입니다.

우리는 거의 자급자족을 합니다. 여기서 먹는 야채를 직접 재배하고, 남는 것이 있으면 다른 집에 보내줍니다. 양어장에서는 물고기를 기르고 작은 농장에선 염소와 다른 짐승들을 키웁니다. 물론 베틀로 옷감 짜는 부서(여기서 수녀님들의 사리를 만듭니다.)도 있고, 구두수선공, 목수, 건축가와 엔지니어들도 있지요. 모두가 다 자기 일을 갖고 있습니다.”

 

 

콜카타, 시슈 브하반

— 어린이의 집

 

콜카타 어린이의 집, 시슈 브하반은 번화한 거리에 자리 잡고 있으며, 담장으로 둘러싸인 높은 건물 여러 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입구에는 가난한 이들이 자녀를 데려올 수 있는, 낮에만 문을 여는 병원이 있고, 입양 사무실이 있습니다. 안쪽의 방들에는 신생아와 작은 아기들이 녹색 요람 속에서 줄지어 누워 있지요. 또 어린이들이 뛰어다닐 수 있는 작은 안뜰이 있고, 아이들의 놀이방과 식당을 겸한 방이 있습니다.

시슈 브하반을 운영하는 이는 차메인 조스 수녀입니다. 조스 수녀를 비롯한 여러 수녀들이 항시 300명 가량의 병들거나 영양실조에 걸린 어린이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물론 가난한 미혼모들도 보살피고 있는데, 이들에게는 일자리를 제공해 줍니다.

또한 세 명의 의사들이 매주 1,000명에서 2,000명 가량의 환자들을 진료하는 외래 진료부도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입양에 대해 상담하길 원하는 이들을 위한 입양 사무실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입양되지 않은 채 열 살이 되면, 때로 우리는 이 아이들을 기숙학교에 보내서 교육을 받게 하고 대학에 진학하도록 해줍니다. 아니면 비서 교육을 받게 한 다음 일자리를 찾아주기도 하고요. 일단 아이들이 각자의 생활을 찾아 정착하게 되면 우리는 대개 이들의 결혼을 도와주고 새 출발을 할 수 있도록 결혼 지참금을 줍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무척 행복해 하고 자기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들을 데리고 우릴 정기적으로 찾아옵니다. 나는 틈날 때마다 그 아이들한테, 엄마가 하나가 아니라 스무 명이나 되니 얼마나 운이 좋으냐고 말합니다.

시슈 브하반 1층에는 매일 1,000명 이상에게 밥을 해줄 수 잇는 조리 시설이 갖춰져 있습니다. 여기서 밥을 먹는 이들은 대개 길거리의 걸인들인데, 이곳은 그들에게 하루 한 끼 식사를 보장해 주는 유일한 곳입니다. 여기서 제공하는 것은 그게 전부입니다. 그렇지만 예기치 못한 재난 또한 일어나는 법이고, 그러면 우리가 달려가서 구호의 손길을 내밀어 줄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콜카타 근교의 넓은 지역이 홍수가 나서 물에 잠겼을 때 1,200가족이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오도가도 못하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시슈 브하반의 수녀와 수사들은 밤새도록 일해서 이들에게 구호품과 피신처를 제공했습니다.

차메인 조스 수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린 거리의 사람들이고, 우리의 일은 거리에서 이루어집니다. 우린 죽어가는 어린이들과 함께 있기 위해, 혹은 필요한 이들에게 약을 가져다 주기 위해, 가정을 방문합니다. 이때 우리는 걸으면서 기도하지요. 우리 수녀들은 가난한 이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누구나 하루에 거리 하나씩을 맡습니다. 또 거의 아무 시설도 없는 마을에 진료 센터를 열고 그곳에도 나갑니다. 때로는 그런 곳에서 일주일에 2,500명의 환자를 돌볼 때도 있습니다.

우리 수녀들 중 많은 수가 간호사 교육을 받았고 일부는 의사이기도 합니다. 그런 분들은 대개 의무실에서 일합니다. 물론 어린이들을 보살피는 교육을 받은 수녀들은 병동에서 일하고요. 또 학대를 받았거나 매춘하는 거리의 아이들을 위한 학교도 있습니다. 이런 아이들에게는 대개 먹을 것도, 도움의 손길도, 약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린 이 아이들을 모아서 가르치고, 먹이고, 입힙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아이들과 일대 일로 결연을 맺고 후원해 줄 후원자를 찾습니다. 그 아이들이 진짜 학교에 가서 교육을 마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정신장애나 신체장애가 있는 어린이들은 여기서 계속 돌봐줍니다. 대다수가 오래 살진 못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그런 아이들은 13세가 되면 우리의 다른 시설로 옮겨지지요.”

 

 

니르말 흐리다이, 콜카타

— 임종자의 집

 

콜카타의 임종자를 위한 집인 니르말 흐리다이는 과거에는 칼리 사원을 여행한 뒤 휴식을 취하려는 순례자들을 위한 곳이었습니다. 콜카타 칼리가트 구역의 번화한 중심가 한복판에 있는 우리 건물은 사실상 사원 자체와 맞붙어 있지요. 현관 왼편에는 남자 병동이 있고, 오른편에는 여자 병동이 있습니다. 폭이 좁고 높다란 창문을 통해 빛이 비춰 들어오는 방 안에는 매트리스에 온통 푸른 비닐이 덮인 침대들이 줄지어 놓여 있습니다. 두 개의 병동 사이에는 진료 센터와 욕실이 있고, 그 뒤에는 주방과 시신안치소가 있습니다. 거리의 아이들을 위한 학교는 수녀님들이 기거하는 맨 위층에 있습니다.

남자 침상이 50개, 여자 침상이 55개 있지만, 그 숫자는 필요에 따라 늘일 수 있습니다. 임종자의 집에 처음 도착한 사람들은 대개 의사 표현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앰뷸런스에 실려서, 혹은 수녀나 수사들이 데려온 이들은 처음에는 <신원 미상>으로 등록됩니다. 그런 다음, 약간의 간호와 사랑과 음식을 주면 그들은 그럭저럭 말을 하고 이름을 댈 수 있게 됩니다. 수녀들은 또한 이들의 종교가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합니다. 그래야 사망했을 때 적절한 장례식을 치러줄 수 있으니까요. 가톨릭신자는 묘지로 가고, 무슬림은 무슬림 매장지로, 힌두교도는 그곳에서 가장 가까운 강변의 화장터로 갑니다. 우리한테 오는 이들은 대부분 힌두교도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종료를 모를 경우에는 보통 힌두식 장례를 치러주지요.

니르말 흐리다이를 운영하는 돌로레스 수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린 사람들에게 거리로 나온 이유를 절대 묻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들의 개인사를 알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우린 그들을 심판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오직 사랑과 보살핌뿐이고, 그러면 만족하니까요. 우린 그저 우리에게 실려온 사람들을 돌볼 뿐이고 나머지는 하느님께서 알아서 우리를 통해 행하십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실려오면 대개 먼저 목욕을 시켜줍니다. 하지만 가끔은 심하게 아픈 이들의 경우에는 그냥 참상에 눕힌 채 얼굴을 닦아주고 정맥 주사를 놓아주지요. 또 괴저가 생겼거나 구더기가 끓는 심한 상처가 있거나 만성설사를 하는 이들을 돌봐야 할 때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결핵에 감염된 상태로 오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출혈을 하기도 합니다. 이때 가장 시간을 다투는 일은 지혈이지요.

가끔씩 침상에 눕히자마자 사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때는 환자들이 조금씩 회복되어 침대 위에 걸터앉거나 일어서거나 걸어 다닐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 중 일부는 집으로 돌아가지요. 물론 집이라고 해 봤자 대개가 그냥 길거리이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곳을 떠났다가도 아프면 다시 돌아옵니다. 우린 그들에게 침대를 비워놓겠다고 말해 줍니다.”

 

 

영국제도

 

미국 태생의 테레시나 수녀는 영국제도와 아일랜드의 지구장입니다. 여기서 테레시나 수녀는 점점 성장하는 영국에서의 활동에 대해 말해 줍니다.

 

“우리 수녀들이 여기서 일하기 시작했을 때 우린 바깥 출입을 하지 않고 집에만 있는 수많은 연금생활자들을 도울 필요가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노인 부부가 한겨울에 난로도 없이 지내는 모습을 보고 난로를 가져다 주는 일들이 자주 있었지요. 혹은 이런저런 이유로 가구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도 발견하곤 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아주 단순해서 누구를 접촉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벽돌벽 너머에는 사람들의 방문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외로운 이들이 많습니다.

초기에 우린 노숙자를 찾으러 밤중에 밖으로 나가곤 했습니다. 우린 지금 런던의 킬번에서 남녀 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잉글랜드 북부의 리버풀에는 남자들의 집과 여자들의 집, 그리고 무료 급식소가 있지요. 또 사목 활동, 가정 방문, 지역 어린이들을 위한 교리문답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사람들과 함께 소풍을 가는 특별한 행사를 계획하기도 하지요. 예를 들면 우린 최근에 320명을 여섯 대의 관광버스에 태워서 워스 애비로 단체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우린 외출할 때 묵주의 기도를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의 무기입니다. 악마는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주려고 하지만, 우리는 그런 속에서도 예수님과 함께 그리고 마리아님과 함께 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그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린 묵주의 기도에 정말 큰 애착을 갖고 있습니다. 한 번은 런던의 지하철 안에서 묵주의 기도를 올린 적이 있습니다. 영국 사람들은 버스나 지하철에서 말을 별로 안 하고, 또 전철 안이 조용했기 때문에 우린 목소리를 낮추었지요. 그런데 전철에 문제가 생겨서 모두들 전철에서 내려 승강장에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다음 전철은 만원이었습니다. 그러자 한 부인이 옆에 서 있다가 이렇게 말을 하더군요.

‘수녀님, 저도 수녀님들과 함께 묵주의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수녀님들과 함께 계속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부인이 우리와 함께 기도하고 있었다는 걸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그분은 성시간에 맞춰 브래빙턴 로드에 있는 수녀원에 가끔 왔는데 한동안 발길이 뜸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나눈 대화는 그뿐이었지만, 그것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린 우리가 하는 일의 열매를 항상 볼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지요.

1994년 4월, 마더께서는 킬번에 있는 남자들의 집에 오셨을 때 방 두 개를 보시고 ‘여긴 에이즈 환자들을 위한 방입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에이즈 환자를 받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지만 어쨌든 마더는 그렇게 말씀하셨지요. 저는 그때 그분께서 영감을 받으셨다고 생각합니다. 마더께서 그 방에 서서 말씀하시는 동안 그 표정이 어땠는지 아직도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그 말씀을 실천하려고 애썼지만 그건 쉽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알코올 중독과 마약 중독에서 회복되었지만 에이즈에 걸린 한 남자의 도움으로 자활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받고 있습니다.”

 

 

 

수사회가 하는 일

 

거프 수사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으로, 사랑의 선교 수사회의 초대 회장 앤드류 수사의 후임자입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우리가 하는 주된 활동은 라틴계 불법 이민자들을 위한 주간 센터를 운영하는 것입니다. 불법 이민자들은 많은 수가 거리에서 살고 있지요. 이곳에는 일주일에 사흘씩 14세에서 18세 사이의 청소년들이 75명에서 100명 가량 와서 더운 식사, 샤워, 진료, 이발 서비스 등을 이용하고 휴식을 취합니다. 남자들의 집에서는 신체적 장애나 정신적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 8명을 돌보고 있습니다. 이 남자들 또한 로스앤젤레스의 거리에서 발견되었고 보살핌과 안전한 환경이 절실히 요구되는 상태입니다.

우리는 일본 도쿄에서는 거리의 알코올 중독자들을 상대로 일합니다. 그 일은 항시적인 일이지요. 이따금씩 싸움이 벌어지기도 하고 어떤 때는 상황이 험악하게 돌아가기도 합니다. 우린 우리의 집에서는 폭력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일본의 알코올 중독자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하면 대부분 상당히 유순한 편입니다.

로스앤젤레스에는 폭력 청소년들을 돕는 수사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홍콩에는 마약 중독자들을 상대로 일하는 분이 있고요. 또 콜롬비아의 보고타나 메데인처럼 폭력 사태가 빈번히 일어나는 거친 지역에서도 우리는 일합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있으며, 보통은 우리 일을 방해하지 않습니다.

우리 활동은 가난한 이들을 상대하는 다른 단체들과는 크게 다릅니다. 이 말은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더 낫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저는 양쪽 모두에 장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른 단체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받아들여 그들이 자신의 상태를 넘어설 수 있도록, 무엇보다 그들을 가난하게 만든 상황을 극복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것은 의미 있는 노력입니다. 특히 교육을 통해서 이루어질 때는 더더욱 뜻 깊죠. 하지만 그것은 정치 문제로 비화될 수 있습니다. 반면 사랑의 선교회에서 각별히 소명의식을 느끼는 가난한 이는 우리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해주더라도 여전히 어떤 식으로든 타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이들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이런 요구를 받습니다.

‘사람들에게 물고기를 주지 말고,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게 어떻습니까?’

그러면 우리는 우리가 만나는 가난한 사람들은 대부분 낚싯대를 쥘 힘도 없는 이들이라고 대답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에 혼동이 일어나는, 때로는 비판이 가해지기도 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라는 생각이 저는 자주 듭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말하는 가난한 이와 다른 부류의 가난한 이가 전혀 구별되지 않고 있으니까요.

개발은 분명히 가치가 있지만 그것은 우리가 말하는 가난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한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면, 그가 왜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지 조사하거나, 그런 사태를 예방할 수도 있었을 모든 사회적 프로그램의 목록을 작성할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이 사람을 그런 상황으로 몰아넣은 사회적 문제들을 처리하는 일은 다른 이들에게 맡깁시다. 하지만 그가 지금 평화롭고 존엄하게 죽을 수 있도록 우리가 돕게 해주십시오.’

많은 경우에 우린 다른 단체에 비해 보다 단기간의 보살핌을 제공하고 그냥 이렇게 말합니다. ‘이 남자 혹은 이 여자가 곤경에 처해 있습니다. 이들을 돕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정치적 변화를 통해 미래에는 이러한 상황이 완화될 수 있다면 우린 그러한 변화를 환영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런 일에 투자할 만한 시간 혹은 에너지가 부족합니다. 그럴 능력이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지혜로운 하느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다 갖고 계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상황 전체를 다 떠맡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걸 아시고, 이런 사람들은 이런 영역에서 일하고, 저런 사람들은 저런 영역에서 일하도록 영감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이 정말 많습니다

 

우리는 세계 곳곳으로부터 사랑의 선교회를 자신의 나라에 열어달라는 요청을 수없이 받고 있고 또한 늘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우린 지금 백여 국을 훨씬 넘는 나라들에 가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곳에서, 가난한 이들 중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온 마음을 다해 대가 없이 봉사할 수 있다는 것은 진정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예를 들면 우린 지금 스페인, 포르투갈, 브라질, 온두라스에 에이즈 환자의 집을 열고 있습니다. 우린 또한 미국에도 에이즈 환자의 집을 열었습니다. 뉴욕, 워싱턴, 볼티모어, 댈러스, 애틀랜타, 샌프란시스코 등에 들어가 있지요. 아프리카에서도 에이즈 관련 활동을 하는데, 안타깝게도 그곳에는 에이즈 환자들만을 위한 집은 따로 없습니다. 그런 상황은 하이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도에서는 뭄바이에 최초로 에이즈 환자의 집을 열 예정입니다. 또한 워싱턴에서는 막 고아원을 열었습니다. 중국에서도 사랑의 선교회 집을 열게 되기를 희망한 지는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돌로레스 수녀가 증언하는 다음의 사례는 해야 할 일은 항상 많지만 새로 집을 여는 것이 얼마나 즐거울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1965년에 우린 콘코로트의 주교로부터 베네수엘라에 사랑의 선교회 집을 열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마더가 인도 밖에서는 최초로 여는 집에 제가 참여한다는 것이 저로서는 정말 기뻤지요. 마더는 유기서원 수녀가 아닌 종신서원 수녀들만 보내기를 원하셨는데, 저는 유기서원 수녀에 속했습니다. 하지만 마더께서는 우릴 향해 자원자가 있느냐고 물으시곤 했고 우리는 너도나도 손을 들었습니다. 마더께서는 저를 지명하시면서, ‘예수님께서 수녀님이 베네수엘라에 가기를 원하십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가는 것이 하느님의 계획이라니, 저는 정말 행복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일행이 그곳에 도착한 때가 1965년 7월 26일이었습니다. 지금 그곳에서는 매년 수녀들이 도착한 그날에 맞춰 감사 미사를 올리고, 또 그날 가난한 이들을 위한 특별한 축제를 준비합니다.

우리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우린 그곳 사람들의 언어나 풍습을 전혀 몰랐습니다. 모든 것이 완전히 달랐지만, 그것은 하느님께서 내주신 또 다른 과제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두들 우릴 기쁘게 받아들여 주었고 우리에게 몇 마디 말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곳 말을 배울 때 그곳 사람들은 대신 문장을 끝맺어 주는 것으로 우릴 도와주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린 가만히 앉아서 공부할 시간이 없었으니까요. 콘코로트는 제게 아름다운 임무였습니다. 그리고 그곳 사람들은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제 가슴에 너무도 정겹게 남아 있습니다.

1985년, 우리가 뉴욕에 최초로 에이즈 환자의 집을 여는 것을 도와준 분은 오코너 추기경이었습니다. 에이지 환자의 집에 대한 요구가 맨 처음 터져 나온 곳은 싱싱 감옥이었고 우린 그곳으로부터 최초의 환자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은 보통 세인트 클레어나 벨레뷰, 혹은 마운트 시나이 병원으로 먼저 이송되었지요. 우린 병원으로 그들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상황이 적절하면 그들은 우리 집으로 왔습니다. 우리에게 온 이들은 대개 사람들로부터 거부당했거나 주변에 아무도 없거나, 그래서 가슴속에 크나큰 쓰라림을 품고 있었습니다. 삶의 마지막 단계에 적응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 속에서 가족적인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시간을 갖고 노력했습니다. 우린 함께 식사하고, 대화를 나누고, 기도하고, 놀았습니다. 많은 이들이 가족과 소원한 상태였지만, 한동안 우리와 함께 지내고 나면 하느님의 선물을 통해 다시 그들 부모와 가까워졌습니다. 어떤 이들은 집에 편지를 보내고, 어떤 이들은 전화를 걸곤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점점 성장하면서, 아픈 사람들은 서로를 돌봐주게 되었습니다. 그런 일은 언제 봐도 경이로웠지요.”

 

 

 

우리들의 방식은 그렇게 단순합니다

 

우리의 일은 쉬임이 없고, 우리의 집은 늘 만원입니다. 가난한 이들의 문제는 계속되고, 그래서 우리들의 일도 늘 계속됩니다. 하지만 사랑의 선교회뿐 아니라, 누구든 자기 나라에서 가난한 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으로 하느님 앞에서 아름다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오직 사람들이 사랑의 일을 하길 원할 때 그들이 하느님의 사랑으로 채워지는 것을 봅니다. 행동하는 사랑을 통해 봉사하는 것, 그리고 부름 받았을 때 행동하도록 성령의 영감을 받는 것, 이것이 미래이고 이것이 우리들에 대한 하느님의 바람입니다.

우리는 자원봉사자들이 없으면 일을 해나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서로 다른 배경과 문화와 신앙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자원봉사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오로지 타인에게 사랑과 시간을 줄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마더 하우스에는 자원봉사자를 환영하는 다음과 같은 글이 걸려있습니다.

 

당신은 불구자와 병자, 죽어가는 이 속에 계신

그리스도께 봉사하러 오셨습니다.

당신께서 하느님의 행동하는 사랑의 증인이 될

이 기회를 잡으셨으니 우리는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우리를 통해 일하시는 분은 그리스도라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그저 봉사의 도구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 일에 얼마나 많은 사랑을 불어넣느냐입니다.

 

 

돌로레스 수녀는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일한 경험이 풍부한데, 그분은 다음과 같이 조언합니다.

 

“우리에게 일하러 오는 자원봉사자들은 열린 마음을 갖고 어떠한 일이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모두에게 바라시는 것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더 데레사와 사랑의 선교회 정신으로 수녀 및 수사들과 함께 일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방식은 바깥세상이나 다른 자선단체들의 방식과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우리들의 방식은 단순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는 일을 돕고 나누기 위해 오는 이들은 우리들 곁에서 함께 일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제가 ‘가서 이 환자를 병원에 데려다 주십시오.’ 라고 하거나, ‘지금 이분을 씻겨 드리세요.’ 라고 하면, 우리를 돕는 이들은 열린 마음으로 그 일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린 미리 규칙을 정해 놓고 그대로 따르는 방식으로 하지는 않으니까요. 그렇지만 여기 오는 분들은 모두 굉장히 열심히 일합니다.”

 

 

런던의 테레시나 수녀도 같은 생각입니다.

 

“자원봉사자들은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고 또 우린 어느 정도까지는 그분들에게 의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린 모든 일을 스스로 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지만 말입니다. 자원봉사자의 도움이 필요해서 기도했는데 도움이 오지 않을 때, 그땐 가난한 이들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무척 기쁜 마음으로 그렇게 해주지요. 우린 항상 단순한 방식으로 해나갑니다. 우린 그저 식사를 준비해서 제공합니다. 중요한 것은 지속적으로 봉사하고 도움을 주는 것이지요. 자원봉사자들이 오면 일의 능률이 좀 더 높아지지요.”

 

남을 돕는 일을 통해 무엇을 줄 수 있고 무엇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어느 자원봉사자가 해준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리는 칼리가트에서 잠시 우리와 함께 일한 적이 있는 의사입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시지요.

 

“어느 곳에 들어갔다가 ‘가서 저분을 씻겨 드리세요.’ 라는 말을 듣는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자신이 누구인지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믿기 힘든 특권입니다. 필요한 것은 오직 기꺼이 도우려는 마음뿐이고, 우리를 판단하는 기준은 그뿐입니다. 이것이 마더가 하시는 일의 여러 특징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들을 가난한 이들과 접촉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그것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것이면서 그와 똑같은 정도로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가난한 이들 사이에 패인 깊은 골을 뛰어넘었습니다. 가난한 이들은 막연히 수백만의 사람들을 말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실제로 접촉한 구체적인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남을 돕는 일이 곧 자신을 돕는 일입니다

 

이 장에서는 세계 각지의 평범한 남녀 자원봉사자들이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하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에 대해 들려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말해 줄 것입니다.

콜카타에 오는 자원봉사자들은 주로 병자나 죽어가는 이들을 돌봐줍니다. 혹은 시슈 브하반의 우리 아이들을 보살펴줍니다. 그들은 그토록 너그럽게 내어주는 아름다운 사람들입니다. 많은 이들이 이곳에 오기 위해, 가난한 이들을 사랑하고 예수님이 가까이 계심을 느끼는 일을 함께하기 위해 커다란 희생을 치릅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이곳에 있는 것이 예수님에 대한 개인적인 사랑을 진실로 갚게 하는 기회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도나

“저는 간호사입니다. 스코틀랜드가 집이고, 여행을 하기 위해 잠시 휴가를 받았습니다. 마더 데레사의 사랑의 선교회를 돕자는 생각이 문득 떠오른 것은 시드니에서 일할 때였습니다. 저는 가톨릭 신자는 아닙니다. 어렸을 때는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에 다녔는데 아버지는 무신론자였습니다. 제가 인도로 가겠다고 결심한 것은 영화 <간디>를 보고 난 다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간디의 철학과 그의 욕심 없고 검소한 삶을 알기 전까지는 인도의 역사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영화를 보고 나자 간디와 마더 데레사 철학의 상관관계를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콜카타에 편지를 보낸 뒤 오라는 초대를 받고 나서, 저는 어린이 집인 시슈 브하반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마더 하우스와 다른 집에 대한 첫인상은 단순함과 평화로움이었지요. 그곳들은 콜카타의 거리에서 제가 경험한 그 모든 소음과 불결함 가운데서 마치 천국처럼 느껴졌습니다.

사랑의 선교사들과 함께 일한 뒤, 제 삶에서는 여러 가지 것들이 변했습니다. 기간이 얼마가 됐든 그곳에 머물게 되면 삶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이제 가난과 오물을 보고 충격을 받는 일은 더 이상 없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보다 실용적으로 생각하게 되었지요. 고향에 돌아가면 저는 십중팔구 노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다함없는 믿음을 가진 수녀님들의 곁에 있는 것은 제게 위로가 되었고, 이 일을 해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그분들의 기쁨과 믿음은 전염성이 있거든요. 여기 와서 자원봉사자로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느끼는 바가 많을 것이고, 그 느낌을 가지고 고향에 가서 실행에 옮길 것입니다. 뭔가를 하라, 요점은 바로 이겁니다. 우리가 굳이 콜카타에 와서 수녀님들처럼 행하기 위해 애쓸 필요는 없습니다.”

 

 

 

린다

“저한테는 콜카타에 가고 싶어 했던 게 제가 아닌 것 같은 강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마치 제가 그곳을 향해 무의식적으로 떠밀려 가는 것 같았지요. 콜카타에 가는 것은 옳은 일이고, 그것은 하나의 소명이라는 걸 전 그냥 알았습니다. 인도에 자원봉사를 하러 오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은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들은 또 다른 더욱 깊은 차원에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도에서 알게 된 자원봉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모두들 어떤 내면의 소리를 들었다고도 할 수 있지요. ‘네가 해야 할 일이 바로 이것.’ 이라는 말이 그들을 후려친 것입니다. 처음에 저는 인도의 가난, 소음, 불결함 때문에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익숙해질 때까지 하루 이틀 정도 멍한 상태로 돌아다녔지요. 그러다가 어린이의 집 시슈 브하반 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오전에 그곳에서 일했고 오후에는 자유롭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처음 이틀 동안은 완전히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했지요. ‘난 정말 대단해. 난 이 아이들을 돌보는 대단한 일을 하고 있어. 나는 이 아이들한테 사랑을 쏟아주고 있고 이 아이들은 나를 보고 방실방실 웃고 있어. 이 아이들은 나를 사랑하는 거야.’ 저는 제 자신이 그토록 찬란하고 성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사흘 뒤, 저는 완전히 의기소침해졌습니다. 제가 짧은 기간 동안만 그곳에서 일하기로 한 형편없는 인간이라는 깨달음이 갑작스레 찾아왔기 때문이지요. 저는 그 아이들과 놀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어르고, 아이들에게 관심을 쏟아 붓고 있었지요. 그리고 그곳에서의 일정이 끝나면 영국에 있는 아늑하고 멋진 보금자리로, 편안하고 멋진 직장으로, 저의 주급으로 되돌아갈 예정이었습니다. 저은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저는 제 자신이 무척 착하고 선량한 사람인줄 알고 있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진정으로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저를 위해 그곳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으니까요. 제가 남에게 베푼 것은 치유가 필요한 제 안의 무언가 때문이었는데, 그것은 바로 사랑을 향한 욕구였습니다.

저보다 훨씬 오랫동안 그곳에 있었던 어느 자원봉사자가 이렇게 저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당신이 주는 사랑이 어떤 것이든, 그것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당신이 오지 않았다면 이 아이들은 그 사랑을 받지 못했을 거예요.’

그 일로 인해 저는 수녀님들에게 훨씬 더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분들의 헌신적인 삶에는 자신들을 위한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분들은 정말로 하느님의 손 안에 있고 그것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그와 같은 일에 전적으로 헌신하는 사람을 찾아보기란 정말 힘들지요. 그 일은 저에게 평생 지속될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리고 복음서에 씌어 있는 것처럼, 저는 제가 준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받았습니다. 저는 콜카타를 떠날 때 그곳은 매우 특별한 곳이고, 하느님께서 그곳에서 역사하고 계시며, 그곳에는 또한 선한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디스

“저는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에 있는, 노숙하는 알코올 중독자들을 위한 집에서 가난한 이들과 함께 일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대학 4년 내내 그 일을 했습니다. 저는 그 일을 정말 좋아했고 다른 나라에서도 어떤 복지 관련 일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바람은 오스트레일리아를 떠날 때까지 이러 저런 이유로 마음 한 켠에만 머물러 있었지요. 제가 콜카타에 온 것은 로레토 수녀회에 대해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그분들에게 교육받았거든요. 저는 무엇보다 영어를 가르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이곳의 자원봉사자 공동체와 접촉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저는 사랑의 선교회의 상근 자원봉사자가 되었지요. 지금 여기서 6개월 째 일하고 있는데 저는 우리가 일하는 방식을 좋아합니다. 저는 칼리가트의 임종자의 집에 나갑니다. 우리 자원봉사자들은 매일 아침 여덟 시에 돌로레스 수녀님과 묵상의 시간을 가지며 일을 시작하지요. 모두들 자신의 경험과 생각에 관해 5분에서 10분 가량 수녀님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에 따른 시간이고 특별한 종교적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곳에는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 서로 다른 견해를 갖고 찾아오니까요. 하지만 행동에 돌입하기 전에 우리가 이런 시간을 갖는 것은 꼭 필요합니다.

자원봉사자들은 이전에 받은 교육은 다 잊어버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기는 병원이 아니라 집이니까요. 여기서 제공하는 간호는 기본적인 것으로 그칠지 몰라도, 사랑이 없는 무심한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는 많은 것을 경험하게 되는데, 어떤 때는 그 고통을 보고 견뎌내기 힘들 정도로 감정이 격해지기도 합니다. 여기서 몇 달 일한 뒤에 저는 더 이상 참기 힘든 상태가 되었지요. 욕창이 생긴 여자를 간호하는 것 같은 간단한 일도 처리하지 못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저는 감정적으로 탈진상태가 되어 상처 소독조차 해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3주 휴가를 받았지요. 수녀님들은 이 일이 얼마나 힘들 수 있는지를 아시기 때문에 어떤 비판도 없이 우리에게 쉬라고, 자신을 챙기라고 격려해 주십니다. 저는 휴식을 취하고 돌아간 뒤 세달 동안 쉬지 않고 일했습니다. 그 세 달은 제가 이곳에서 보낸 시간 중에 최고였지요. 저는 이러한 고통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만족스럽게 생각합니다. 칼리가트 는 아주 특별한 곳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매일 삶과 죽음과 더불어 살아가니까요.

이곳에 와 있는 동안 저의 가톨릭 신앙이 되살아났습니다. 여기서 경험하고 있는 기독교적 영성에 관한 한, 저는 굉장히 살아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그건 지금 믿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제 자신 안에 무언가 숨쉬고 있는 것이 있다는 걸 그냥 아는 것이지요. 그리고 온 종일 죽음에 둘러싸여 있지만, 짐승처럼 살아온 세월 끝에 인간답게 입고, 먹고, 대접받기 위해 여기 온 여자들(여성 자원봉사자들은 여자들을 위해 일합니다.)을 위한 봉사의 존엄함 앞에서 저는 경외감을 누르지 못합니다. 저에게 의미 있는 부분은 그런 여자들이 홀로 죽음을 맞이하지 않고 거기 있는 누군가의 곁에서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들과 함께 있는 사람들은 정말 진심으로 그들을 보살펴주고, 그들 몸의 청결함 같은 것에 신경 써주지요. 죽음의 존엄함은 특별합니다. 칼리가트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부분이지요.

저는 제 자신이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일을 계속할 거라는 걸 압니다. 왜냐하면 이 일은 제게 만족과 행복을 가져다 주니까요. 저는 그 어느 때보다 여기서 더욱 행복했다는 걸 모르는 척해서는 안 됩니다. 이곳에는 뭔가가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제가 과거에 얼마나 불행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아는 많은 사람들이 그런 느낌, 그런 불안을 안고 있으면서도 자기 자신은 만족하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지요.”

 

 

마이클

“저는 2년 전 아내 제인 과 함께 (TRACKS(Training Resources and Care for Kids)>라는 협회를 출범시켰습니다. 콜카타의 하우라 역 승강장에서 사는 아이들과, 거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고 난 다음이었지요. 사랑의 선교회 수사님들께서 아침마다 그곳을 한 바퀴 돌아보고 그곳 아이들에게 필요한 치료를 해주십니다. 하지만 우린 수사님들께서 모든 걸 다 해 주실 순 없다는 걸 알 수 있었지요. 예를 들면, 우린 승강장에서 태어나거나 버려진 아이들을 발견하기도 하고, 큰 소년들이 어린 남자아이나 여자아이들을 성적으로 이용하는 경우를 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에 대한 보호는 전무한 형편이었습니다.

처음에 우린 진 손으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마더 데레사에게 물품을 보내줄 수 있는지 여쭤보자 그분은 우리에게 필요한 약품을 바로 보내주셨습니다. 지금은 우리 아이들 중에서 누가 몹시 아프거나 지속적인 보살핌을 필요로 하년 시슈 브하반의 수녀님들이 그 아이들을 받아주십니다. 우린 당국에 두어 번 체포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마더 데레사께서 우릴 대신해서 역 관리자에게 편지를 써주신 다음에는 그쪽에서 문제를 만드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는 한 살에서 열여섯 살 사이의 아이들을 하루 평균 35명에서 40명 가량 돌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상근 의사와 간호사가 한 명씩, 그리고 교사 두 명과 놀이지도 및 의무실 관리자가 한 명, 여러 나라에서 온 자원봉사자들이 세 명이 있습니다. 우린 어느 학교에서 그 아이들을 가르칩니다. 기본 과목은 수학과 지리, 그리고 정상적인 사회 환경에서 살아가는 방법에 관한 것 등입니다. 그것은 일종의 비공식 교육이고 우린 그곳에서 아이들이 정규학교에 진학할 수 있도록 가르치지요. 우린 모든 교육을 힌두어, 벵갈어, 영어, 이렇게 세 가지 언어로 진행합니다.”

 

 

페니

“제가 알게 된 많은 자원봉사자들처럼, 저도 아주 <우연히> 콜카타에 내리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오스트레일리아에 가는 길에 잠깐 들른 것에 불과했지요. 저는 그 당시에 피부미용관리사였는데, 이혼한 지 얼마 안 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오랜 친구 하나가 자길 만나러 오라며 인도행 비행기 표를 끊어주었지요. 그래서 콜카타의 YWCA에 들르게 되었는데 사랑의 선교회 진행자로 일하는 자원봉사자가 저를 보더니 반색을 하더군요. 그 여자분은 ‘사람을 보내달라고 기도하고 있었는데 마침 당신께서 오셨군요.’ 라며, 마더 하우스에서 크리스마스 연극을 준비하고 있는데 빈민가에 가서 아이들에게 곡 참석하라고 초대하는 일을 도와줄 수 없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때 곡 끼는 스커트에 하이힐을 신고 있었답니다. 그런 모습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며칠 뒤에 저는 처음으로 칼리가트에 갔습니다. 그곳은 저에게 큰 상처가 되었습니다. 피부미용관리사로서 저는 모든 게 다 근사하고, 깔끔하고, 좋은 것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그곳은 정말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수녀님 한 분이 제게 어느 여인을 씻겨주라고 했을 때 저는 그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냥 할 수가 없었던 거지요. 그래서 저는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그러자 수녀님은 저한테 오라고 하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페니, 부탁이에요. 이 여인을 데리고 가세요.’ 저는 막 울면서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수녀님은, ‘좋아요. 그럼 나랑 같이 가요.’ 하시더니 뼈만 앙상하게 남은 그 자그마한 여인을 안아 들고 욕실로 가셨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납니다. 그때 욕실은 어둠침침했고 저는 여전히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 있었지요. 그런데 갑자기 욕실 안에 불이 환하게 들어왔습니다! 방금 전에 저는 ‘전 못해요.’ 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다음 순간 저는 깨달았습니다. 할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벽에 걸린 종교화 한 점 (그 그림은 그리스도의 몸이었습니다.)을 보고 있는 동안, 누구라도 그리스도가 될 수 있다는 각성이 불현듯 제게 찾아왔습니다. 온몸이 옴 투성이인 그 자그마한 늙은 여인뿐 아니라, 온 세상이 다 그리스도의 몸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어느 한 사람에게 하고 있는 일이 다른 누구에게도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저는 6개월간 그곳에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콜카타를 떠날 때 마더 데레사에게 ‘다시 오겠습니다.’ 라고 말씀 드렸지요. 그러자 마더 데레사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다시 오지 마세요. 자매님이 사는 곳에도 할 일은 많습니다. 일이 생길 것이고, 하느님께서 무엇을 해야 할지 말씀해 주실 겁니다.’

저는 고객을 상대로 피부 마사지를 해주는 동안 고객이 심리적인 문제를 상담해 올 때 그분들을 도와주지 못해서 항상 좌절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저는 여자들은 탈의실에서 옷을 벗자마자 아이가 된다는 걸, 발산할 것이 그토록 많은 사람이 된다는 걸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요. 고객들은 일단 저하고 이야기가 시작되면 제가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는 온갖 문제들을 다 꺼내놓곤 했습니다. 저는 고객들이 긴장을 풀게 해줄 수는 있었지만 그분들 내면 깊숙이 도사리고 있는 상처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줄 도리가 없었지요. 저는 그때 심리치료사 교육을 받아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결국 그렇게 했습니다.

지금은 나이 많은 사람들이 저한테 와서, 뭔가 변화를 도모하기에는 너무 늙었다고 하면 저는 이렇게 대답해 줍니다.

‘미안하지만 저는 그 말씀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 점에 대해선 제가 경험한 게 있으니까요. 저는 마흔여덟 살에 인생을 완전히 바꿨답니다.’ 라고요.”

 

 

 

 

지금까지는 콜카타에서 우릴 도와준 사람들의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나는 다신 한 번 말해 두고자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주기 위해 인도로 올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이 살고 있는 거리가 당신의 니르말 흐리다이 가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다음에 나오는 이야기들처럼 자기 나라에서 가난한 이들을 도울 수도 있습니다.

 

 

데이브

“제가 사랑의 선교회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한 것은 1994년 초,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르완다와 소말리아의 참상을 보고 난 다음이었습니다. 제 아내는 그때 출장 중이었고 저 또한 출장 중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지요. 저는 뉴스를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맙소사, 저곳엔 우리가 할 일이 정말 많겠구나. 너무도 많은 곳에서 너무도 많은 것들이 필요하겠구나. 그렇다면 누군가 저곳에 가서 뭔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다음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뭔가를 하지 않으려면 입 다물고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저는 그때, 저처럼 특별한 기술도 없고 재주도 없는 사람을 써줄 수 있는 단체가 있는지 알아봐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처음에는 워싱턴의 카르멜 수녀회에서 일했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씩 밤에 여자들을 위한 쉼터에서 일했는데, 그곳에는 주로 마약 중독자, 알코올 중독자, 전직 매춘여성, 그리고 감옥에서 출소한 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곳은 어찌 보면 위험한 곳이었지만 저는 그곳에서 노숙자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는 노숙자들을 다른 행성에서 온 손님처럼 바라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린 그 사람들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말을 붙여 볼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린 그들이 폭력적이거나 정신적 균형을 상실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저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그들은 대개 우리 사회의 소수 집단에 속합니다. 대부분 조용하고 부드러운 사람들이지요. 그저 뭔가가 잘못되었을 뿐입니다. 그들은 약자이고, 위험하다기보다는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몇 년 뒤 마더 데레사께서 워싱턴을 방문하셨다가 미국 의회가 주최한 환영 연회에 참석하신 일이 생각납니다. 그 자리에서 어느 상원의원이 ‘마더, 당신은 정말 경이로운 일을 하고 계십니다.’ 라고 말하자 그분은 ‘그것은 하느님의 일입니다.’ 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상원의원은 ‘하지만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 인도에서, 지금 하시는 일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해 봤자 가망 없는 일 아닙니까?’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마더 데레사께서는 이렇게 답 하셨지요. ‘글쎄요, 상원의원님. 우리가 항상 성공하라는 소명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린 언제나 믿을 가지라는 소명을 받습니다.’ 그 대답은 정말이지 핵심을 찌르는 것이었습니다.

그 뒤에 우린 유럽으로 이사했고, 저는 사랑의 선교회 수녀님들께 갔습니다. 그분들은 제게 런던에서의 자원봉사직을 주셨고, 그 다음부터 저는 그 자리를 계속 지키고 있습니다. 아침마다 저는 여기 있는 것이 너무도 즐겁습니다. 제게는 그것이 놀라운 일이지만, 사실입니다. 저는 늘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자 시작합시다.’ 저는 하루를 시작하는 게 항상 행복합니다. 다른 직업을 가졌을 때, 그러니까 세속에서 돈 버는 직업을 가졌을 때와는 완전히 딴판이지요. 그때는 항상 불만족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하는 일은 제 마음속 생각과 어긋나지 않습니다. 제 감정과 생각과 행위 사이에 어떤 갈등도 없습니다.”

 

 

제리

“저는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어쩌면 오만한 생각이기 쉽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정에서, 일터에서, 삶에서 쓰는 방식은 바로 이것입니다. ‘세상 돌아가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거든, 자신을 바꾸어라.’ 저는 제 자신을 변화시킴으로써 타인과 보다 가깝게 대면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몸무게 95킬로그램에 줄담배를 피워대는 골초였지만, 제 자신을 파괴하는 그와 같은 일은 이제 그만 두겠다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지요. 그래서 저는 달리기를 시작해서 살을 뺐고 덕분에 훨씬 건강해졌습니다.

몇 년 뒤 달리기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 제 귓가에 대고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당신은 하느님을 위해 뭔가를 해야만 합니다.’ 저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 교구 게시판에 무언가 보게 됐지요. ‘사우스 브롱스에 소재한 남자들을 위한 쉼터에서 수녀님들을 도와줄 젊은 남자분을 찾습니다.’ 그래서 저는 전화를 하고 그곳으로 갔습니다. 제가 ‘수녀님, 전 쉼터를 찾고 있습니다.’ 라고 말하자, 수녀님께선 ‘모퉁이를 돌아오세요.’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제가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다고 지레 짐작하신 것이 분명했습니다. 수녀님들은 간밤에 온 사람들을 먼저 받고 뒤에 온 사람들은 끝까지 기다리게 해 도착한 순서대로 들여보낸다는 규칙을 세워놓고 계셨습니다. 저는 그곳에 도착해서 힘없는 떠돌이 마약 중독자들, 알코올 중독자들을 보았습니다. 문이 열었을 때 저는 줄의 맨 앞으로 갔습니다. 그러자 쉼터 사람들은 ‘기다려 주십시오.’ 라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좋아, 기다리지 뭐.’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날씨가 약간 쌀쌀했기 때문에 도로 차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사람들은 계속 밖에 서있었고요. 저는 세 번쯤 기다려 달라는 말을 듣지 이제 지겨워져서 그만둘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날은 점점 춥고 어두워졌습니다. 그러자 ‘내가 무엇 때문에 여기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맨 마지막 사람이 저였습니다. 저는 드디어 벨을 눌렀습니다. 문이 열리자 제가 말했습니다. ‘저는 제리라고 합니다. 자원봉사 하러 왔습니다.’ 그러자 그분들은 ‘오, 우린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분들이 이미 저에 대해 알고 있다는 걸 바로 그때 알게 되었지요. 왜냐하면 수녀님께서 ‘당신은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추운 곳에서 계셨습니다.’ 라고 말씀하셨으니까요. 그리고 저는 지금 13년째 일주일에 두 번씩 그곳에 나가고 있습니다. 그곳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조금만 참아주세요.’ 라고 기다려 달라는 말을 할 때면 저는 그 기분이 어떤지 항상 또렷이 기억합니다.

저는 지금 상근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있고, 그 동안 수녀님들이 미국의 다른 지역에 집을 여는 것을 도와 드렸습니다. 그 중에는 나바호 인디언들을 대상으로 하는 뉴멕시코의 집도 있습니다. 자원봉사를 처음 시작해서 문전의 술주정뱅이를 대했을 때는 가난한 이들의 비참한 모습으로 변장하신 예수님을 알아보기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저는 계속 애쓰고, 계속 바라보고, 계속 가야만 한다는 걸 알았지요. 왜냐하면 이곳의 가난한 이들은 콜카타나 멕시코에 있는 이들과는 다르니까요. 이곳 사람들은 영적 가난으로 더욱 고통 받는데 그것은 아마 도덕적 부패와 사회적 부적응자가 가난한 이가 되는 현실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로 그 때문에 우리는 사우스 브롱스에서 이러한 일을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에겐 자원봉사자가 많은 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자원봉사자들은 여기서 정착할 필요가 있는데 이 지역에서 눌러 살고 싶어 하는 이들은 별로 없으니까요.”

 

 

케이티와 켄

“켄의 조부모님이 인도분들이어서 우린 인도의 두 분을 찾아 뵙고 싶었습니다. 우린 일반적인 관광을 하는 대신 인도에 있는 동안 콜카타의 수녀님들과 함께 일하며 시간을 보내기로 했지요. 그때 이후로 우린 여기 런던의 수녀님들의 집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휴가차 이스라엘에 갔을 때, 우린 이스라엘 점령지인 나블루스에 가려고 했습니다. 나블루스는 굉장히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수녀님들이 팔레스타인 난민촌 아이들과 노인들을 돌보며 일하고 계신 곳입니다. 우린 그곳은 위험 지역이니 가지 말라는 충고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우린 끝내 이스라엘에 갔고, 그곳은 예루살렘 북쪽으로 겨우 50마일 가량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 머물고 있으면서 그곳에 가지 않을 도리가 없었지요.

우린 그곳에 계신 수녀님들께 몇 가지 물건들을 가져다 드렸을 뿐 별로 한 일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수고한 것에 대해 수녀님들은 몹시 기뻐하시는 듯했습니다. 나블루스 집은 근사한 독채 건물이었는데, 수녀님 다섯 분과 나이 드신 이탈리아 출신의 사제 한 분이 그곳에 살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별로 자립적인 편은 못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방으로 협박을 받고 있었는데, 심지어는 팔레스타인 사람들로부터도 위협을 당하는 형편이었습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처음에 그분들이 유대인 정착민인 줄 알았답니다. 푸른색과 흰색 사리가 곡 이스라엘 국기처럼 보인다 나요. 처음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그분들에게 돌을 던지곤 했지만 지금은 장애아나 노인들을 그분들께 데려온다고 합니다.

우리는 수녀님들의 일을 도우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우리가 배운 교훈 중의 하나는, 자신의 상처받기 쉬움보다 타인의 상처받기 쉬움에 더 관심을 기울일 때 나는 덜 상처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도처에서 타인을 돕는 일에 전적으로 투신할 때, 우리는 자신의 두려움에 대해 근심할 시간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전체적 시야를 갖게 되는 것이지요.”

 

 

니겔

“제가 마더를 처음 뵌 것은 1969년이었습니다. 학교 신부님이 그분을 초청하셨지요. 신부님은 로마에서 신학 공부를 하다가 그곳에서 수녀님들이 하시는 일에 관여하게 됐답니다. 저는 그때 열세 살이었는데 마더는 다른 할머니들이랑 비슷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날 미사가 끝난 뒤 성당에서 하신 말씀만큼은 남다르게 느껴졌던 기억이 납니다.

신부님은 이탈리아에 가서 그곳 수녀님들과 함께 일할 학생들을 모아 팀을 짰습니다. 당시는 1970년대 초반이었는데, 이탈리아에는 여전히 빈민가가 있었지요. 그곳 아이들은 할 일이 별로 없었고 따라서 비참한 상황에서 혼자 크고 있었습니다. 우린 그곳 아이들을 위해 운동을 비롯한 온갖 종류의 활동을 계획했고 아이들은 우리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저는 뭔가 사회에 환원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얼마 동안 수녀님들과 함께 일하기로 결심했지요. 그것은 말할 수 없이 풍요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비록 그 모든 것의 의미를 헤아리는 데 족히 2년은 걸린 것 같지만요. 저는 특히 수녀님들의 유쾌함을 좋아했는데, 그분들이 사람들과 어울리는 방식도 무척 좋아했습니다.

우린 런던 킬번의 비좁은 집에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곳에는 노숙자뿐 아니라 청년, 노인을 막론하고 우리가 하는 일에 참여하고 싶어 한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 다 몰려들었지요. 그리고 동네의 다른 쪽 끝에는 남자 노숙인들을 위한 14개의 침대를 갖춘 쉼터가 있었습니다. 그곳의 수녀님들은 특히 소풍 계획을 자주 세우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새벽 다섯 시 반에 나가서 큰 도로나 샛길에서 초대장을 배포하지요. 같이 가고 싶은 사람은 누구든 갈 수 있습니다. 저는 그게 좋았습니다.

사람들을 알게 되면, 우린 <알코올 중독자>라거나 <마약 중독자>와 같은 꼬리표를 보지 않게 됩니다. 사람들을 만나서 그냥 친구가 되는 거지요. 그들에게 뭔가를 팔려고 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마더는 전 세계의 모든 집에서, 사람들은 대가 없이 거저 받은 것을 거저 준다고 말씀하십니다. 제게 그것은 무척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그곳에 와서 머물렀던 숱한 사람들이, ‘제가 돈을 내야 하나요?’ 라거나 ‘정부가 돈을 대주나요?’ 라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게 어떻게 거저 될 수 있지요?’ 라고 묻습니다. 그럼 우린 대답합니다. ‘왜냐하면 아무런 대가 없이 거저 받은 것이니까요.’

한때 저희 집안에 문제가 많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정신질환에 우울증, 파킨슨씨 병으로 8년간 심하게 아프셨지요. 모든 문제가 한꺼번에 터진 겁니다. 어머니를 목욕시켜 드릴 때는 정말 한계가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약해지시자 저는 아주 강해졌는데, 제게 그 이유는 묻지 말아 주십시오. 어느 휴일에 저는 킬번의 사랑의 선교회에 갔습니다. 그리고 전부터 알고 있던 많은 사람들과 함께 그곳에서 일을 하고 나자 다시 집으로 돌아가서 제 가족을 돌볼 힘이 생겼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저는 사랑의 선교회에 다시 일하러 갔습니다. 고맙게도 옛 친구들이 모두 거의 남아 있더군요. 그곳은 무척 따뜻하고 포근했습니다.

제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도 자원봉사라든가 혹은 남을 돕기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은 대부분 그런 일에 따를 수 있는 문제들은 원하지 않았습니다. 수녀님들은 정치적 분쟁이나 폭력적 위협이 있는 온갖 곳들에서도 일하시는데, 어떤 이들은 ‘난 그곳엔 가고 싶지 않아. 그곳은 안전하지 않아.’ 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어쨌든 간에 거기 가라고, 사랑의 선교회나 다른 어떤 수단을 통해서든 현실과 접하라고 말합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문 밖을 나가서 이웃집 현관문을 두드리는 것조차 두려워합니다. 많은 이들이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형편이지요. 그러나, 위험을 감수하십시오. 어떤 이들은 돌아가라고 하기도 하겠지만 어떤 이들은 따뜻하게 맞아주기도 할 겁니다. 그리고 타인과의 접촉을 통해 사람들 각자가 짊어지고 있는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습니다. 특히 자신이 사는 공동체에서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민다면 외로워질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상호적인 것이지요. 말하자면 주고받는 것입니다.”

 

 

마리

“저는 칼리가트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는데 그곳 사람들이 무척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임종자를 위한 집에서 봉사하는 것, 그런 식으로 가난한 이들과 접촉하는 것, 동양과 서양 간의, 문화 간의, 계급 간의 깊은 골을 뛰어넘어 거기서 할 수 있는 선에서 실질적으로 누군가와 접촉한다는 것은 하나의 특권이었습니다. 인도에서 런던으로 돌아왔을 때 저는 충격을 받았지요. 런던에서는 모든 게 훨씬 인위적이고, 메마르고, 조직적으로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저는 런던에서도 가난한 이와의 만남을 계속하기 위해 노력했지요. 물론 여기 런던에서 일하는 것이 더 어렵기는 했습니다. 저는 매일 걸어서 출근할 때 육교 밑에 사는 노숙자 앞을 지나곤 합니다. 어느 날 저는 어떤 사람이 아침 출근길에 보온병과 샌드위치를 거기 놓아두고, 집에 갈 때 그 보온병을 집어가곤 하는 걸 보았습니다. 그럴 보고 저는 오렌지를 가져다 놓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매일같이 그렇게 하면서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러한 행위를 통해 수녀님들과 영적 접촉이 이루어지는 걸 느꼈지요. 지금 저는 국가나 문화들 간의 경계를 그다지 느끼지 못합니다. 마더 데레사는 ‘우린 바닷속에 던져져 물결을 일으키는 조약돌에 지나지 않습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봉사의 작은 행동 하나가 하나의 물결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수많은 물결의 시작이 되지요. 그렇지 않은가요?”

 

 

 

 

로스앤젤레스의 우리 자원봉사자 중 한 사람인 제럴딘 이 수사님들의 일을 도운 것에 대해, 그러면서 처음에는 완전히 딴 세상으로 비쳐졌던 세계를 새롭게 발견한 일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앞서 말한 이들과 같이, 제럴딘 또한 남을 돕는 일이 곧 자신을 돕는 일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제럴딘

“어느 날 저는 수사님들의 거리 순회를 돕겠다고 따라 나섰다가 잊지 못할 하루를 체험했습니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수사님들과 사랑의 선교회 협력자들은 길거리의 노숙자들에게 음식을 나눠줍니다. 제가 그분들의 일을 도우러 따라 나선 날, 루크 수사님께서는 밴을 운전하고 계셨는데, 수사님은 어느 샛길로 들어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음 단단히 먹으세요. 여긴 끔찍한 곳이니까요. 우린 이곳을 지옥 호텔이라고 부릅니다.’ 호텔로 다가가는 동안 보이는 거라곤 온통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뿐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종이박스 집 속에 앉아 있는 여인이 보였을 뿐입니다. 루크 수사님과 저는 밴에서 내렸습니다. 쓰레기의 악취와 오줌 지린내가 진동을 했지요. 우린 그 버려진 호텔로 들어섰습니다. 안쪽에는 쓰레기로 가득 찬 마당이 있었습니다. 우린 음식과 마실 것을 가져왔다고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무척 궁핍한 이들이었지요. 몸은 빼빼 말랐고, 병들고, 굶주렸으며, 지옥을 방불케 하는 이곳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건물에서 나오는 모습은 제게 마치 한 편의 공포영화를 연상시켰습니다. 그들은 죽은 자들의 세계에서 돌아오고 있는 듯했습니다. 저는 그 광경, 그 냄새,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완전한 절망에 압도당하고 말았습니다.

제가 과일과 샌드위치를 나눠주고 있는데 마가리타 라는 여자가 다가왔습니다. 그 여자는 앓고 있었고, 목을 움켜쥔 채 간신히 말할 수 있었지요. 마가리타는 약을 탈 수 있는 진료소가 어디에 있느냐고 제게 물었습니다. 물론 저는 몰랐지요. 그래서 저는 루크 수사님을 불렀고, 수사님은 거리로 왕진을 나와줄 만한 의사를 알고 있다며 그분을 부르겠다고 하셨습니다. 마가리타는 자신은 호텔 뒤쪽의 나무 밑에 매트리스를 깔고 산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도와줄 사람을 데리고 돌아오겠다며 그녀를 안심시켰지요. 다시 밴에 타자 저는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도저히 멀출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 절망과 자포자기 앞에서 울었습니다. 정말이지 그렇게 처참한 상황은 본 적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날 저녁 아홉 시경에 로스앤젤레스의 어느 병원에서 외과의로 근무하는 빌 선생님이 왔습니다. 우리는 곧장 마가리타를 찾으러 나갔지요. 그녀는 지옥 호텔 바로 앞에 매트리스를 깔고 누워 있었습니다. 이제는 헛소리를 하고 있었고 열은 적어도 40도는 되었습니다. 그 시간에 그런 거리에 있다는 것은 제게 너무나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불과 3미터 떨어진 곳에서 마약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었고 주변의 움직임들은 무척 은밀하게 보였습니다. 빌 선생님이 마가리타의 약 복용법을 다른 노숙자 여인에게 설명해 주고 있었습니다. 그 동안 저는 마가리타에게 가보았지요. 그녀는 태아처럼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온몸을 덜덜 떨고 있었습니다. 주변에는 더러운 담요들이 놓여 있었고 아프리카의 굶주린 사람들 주변처럼 파리가 날아 다니고 있었습니다. 저는 옆에 무릎을 꿇고 사랑이 담긴 부드러운 손길로 그녀의 팔을 쓸어주었습니다. 3, 4분 가량 그렇게 했을 겁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녀가 긴장을 푸는 게 느껴졌습니다. 그녀는 웅크렸던 몸을 폈고 떨림도 그쳤습니다. 심하게 아픈 상태였고 마약의 금단증상을 경험하고 있는 듯했음에도 불구하고 평화롭고 고요해 보였습니다. 마약 중독자인 그녀는 몸이 아파서 매춘도 할 수 없었고 그래서 마약도 살 수 없었던 것입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이해하는 데 시간이 한참 걸렸습니다. 저는 우리가 하느님의 치유 에너지의 통로이고, 우리는 그것을 서로에게 전해 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제가 혼동되는 것은 그 상황에서 치유 받은 쪽이 진정 누구인가 하는 점입니다. 저는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했을 때 18년간 해 오던 일을 그만둔 뒤의 혼란과, 그로 인한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갖가지 슬픔을 다스리느라 마음이 산산이 부서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마가리타와의 경험은 제가 오랫동안 어느 누구의 고통 때문에 울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의미심장했지요. 저는 제 자신의 고통에 몸부림쳤고 또한 그것은 이유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는데, 사실 그 모든 것은 지옥 호텔에서의 경험에 비춰보면 정말이지 너무나 무의미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마가리타와 진정한 연대감을 느꼈습니다. 다음날 우리는 닭고기 수프와 깨끗한 식수를 들고 그녀를 찾아갔습니다. 그녀는 서서히 회복되고 있었고 우리의 도움에 무척 고마워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 자신을 향해 이렇게 묻기 시작했습니다. ‘왜 내가 아니고 마가리타인가?’ 저의 지성은, 삶의 이러한 수수께끼에 대한 간단한 답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저의 과제는 이러한 인생의 수수께끼에 대해 뭔가를 말해 주는 삶을 창조해 내는 것이라고 봅니다.

 

 

피터

“저는 열두 살 때 글라디스 에일우드에 대한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에일우드는 돈도 자격증도 없는 평범한 가정부였지만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녀는 결국 중국으로 갔고, 거기서 전쟁 기간에 200명이 넘는 아이들을 전쟁터에서 구해 내어 그 아이들을 데리고 산을 넘었지요. 저는 언젠가 바로 그런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십대들처럼 저는 교회에서 떨어져 나와 패션산업 현장에서 일했습니다. 저는 1970년 대의 펑크 시대에 사진모델을 했지요. 모델업계는 이상한 곳이었지만 저는 재미있게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저는 평화가 그리워졌습니다. 그런데 어떤 목소리가 제게 성당에 가보라고 속삭이더군요. 때마침 어느 성당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미사가 끝날 무렵 사제께서 마더 데레사라는 여자분과 그 모든 수녀님들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마더 데레사에 대한 이야기를 그때 처음 들었는데 그분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런던의 사랑의 선교회에 가서 원장님을 만났지요. 그분은 ‘언제 시작하고 싶으십니까? 이번 토요일은 어떨까요?’ 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지금 저는 13년 넘게 수녀님들과 함께 일해 오고 있는데 그분들이 마치 제 혈육처럼 느껴집니다. 저는 그분들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겁니다.

당시 저는 뭔가를 찾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무언가 제가 사람들한테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런 일 말입니다. 야간 당번 때 수녀님들과 함께 무료 급식소에 있을 때나, 거리의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할 때, 저는 지금 하는 일이 저에게 꼭 맞는 일이란 걸 그냥 압니다.

저의 우선순위는 완전히 변했습니다. 사랑의 선교회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한 지 얼마 뒤에 저는 남을 돌보는 직종에서 일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비록 수입이 과거의 4분의 1에 지나지 않을 거라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말입니다. 지금 저는 런던의 어느 암 병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저는 조무원이고 주로 환자들을 수술실로 데려갔다가 다시 데려오는 일을 합니다. 저는 불평할 거리가 엄청나게 많은데도 불평하지 않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들에게는 그만한 용기가 있습니다. 때로는 가까운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제게 와서 속에 있는 말을 털어놓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들이 누군지도 모릅니다. 마치 상담을 하는 것 같은데, 그게 너무도 자연스럽습니다. 지나고 나서야 그런 생각이 들지요.

병원에 있는 사람들은 제가 사랑의 선교회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주 좋은 분들이라서 콜카타에 보내라고 의료용품을 많이 보내주지요. 저는 제 봉급으로 감당할 수 있는 한 많은 아이들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월트 디즈니에서는 시슈 브하반의 아이들을 위해 장난감이며 배지 등을 잔뜩 보내옵니다.

결국 저는 가진 것이 적을수록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 같습니다. 수녀님들의 단순한 생활방식을 보면 삶이 완전히 바뀔 수가 있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것은 그 단순성입니다. 저는 가장 단순한 길이 하느님에게 이르는 가장 쉬운 길이라고 믿습니다.”

 

 

 

나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늘 행복합니다. 지난번에는 힌두 청년 여럿이 찾아와서 희망 없는 이들을 돕기 위해 <HOPE>라는 단체를 결성하기로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청년들은 있는 대로 돈을 모아서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위해 시장에 가서 매트리스 70개를 구입했습니다. 그들은 그 선물을 주기 위해 재정적으로 희생했으면서도 그것이 어디서 났는지에 대해서는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음은 내가 좋아하는 기도 두 가지입니다. 나는 이 기도를 우리 협력자들에게, 자원봉사자들에게, 그리고 우릴 찾아오는 이들에게 보냅니다. 이 기도는 그들이 타인에게 봉사할 때 길잡이 역할을 하고 도움을 줄 것입니다.

 

 

주님, 제가 가는 곳마다 당신의 향기를

퍼뜨릴 수 있게 도와주소서.

제 영혼에 당신의 영과 생명이 넘치게 하소서.

저의 삶 전부가 오직 당신의 찬란한 빛이 되도록

저의 온 존재에 속속들이 스며드소서.

저를 통해 빛을 비추시고, 저를 만나는 이들은 누구나

제 영혼 안에서 당신의 존재를 느낄 수 있도록 제 안에 거하소서.

오 주님, 그들이 눈을 들어 볼 때 더 이상 제가 아니라

오로지 당신만을 보게 하소서!

저와 함께 머무소서. 그리하면 저는 당신처럼 환해질 것입니다.

저는 다른 이들에게 빛이 될 만큼 환해질 것입니다.

오 주님, 그 빛은 오로지 당신으로부터 나올 것입니다.

그 중에 단 한 오리도 저의 빛은 없을 것입니다.

저를 통해 다른 이들에게 빛을 비추시는 분은 당신일 것입니다.

당신을 찬미하게 하소서. 당신께서 저를 둘러싼 이들에게

빛을 비추심으로써 가장 큰 사랑을 주시는 것처럼 말입니다.

설교하지 않고 당신을 전하게 하소서. 말이 아니라 모범으로,

전염시키는 힘으로, 제가 하는 일의 감응하는 영향력으로,

당신을 향한 제 사랑의 명백한 충만함으로

당신을 보여주게 하소서.

아멘.

 

— 존 헨리 뉴먼 추기경

 

 

 

주님, 우리들을 가난과 주림 속에서 살다 죽는

전 세계의 이웃들에게 봉사하는 일에 쓰일 만하게 만드소서.

오늘 우리 손을 통해 그들에게 일용할 빵을 주시고,

우리가 사랑을 알게 하셔서 그들에게 평화와 기쁨을 주소서.

 

— 교황 파울루스 6세

 

 

 

 

 

 

평화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순간에 행복하십시오.

그리고 지금, 행복하십시오.

 

 

 

봉사의 열매는 평화입니다

 

사랑의 일은 항상 평화의 일입니다. 타인들과 사랑을 나눌 때마다 평화가 당신 자신과 그들에게 찾아온다는 것을 당신은 알게 될 것입니다. 평화가 있는 곳에 하느님이 계십니다. 하느님은 그렇게 우리의 삶을 건드리십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가슴에 평화와 기쁨을 부어 넣음으로써 우리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거짓에서 진리로

저를 이끄소서.

 

절망에서 희망으로

두려움에서 믿음으로

저를 이끄소서.

 

증오에서 사랑으로

전쟁에서 평화로

저를 이끄소서.

 

우리 가슴과 세계와 우주를

평화로 채우소서.

평화, 평화, 평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우리 사랑의 선교회 집들 중에는 <사랑의 선물> 혹은 <평화의 선물>이라고 부르는 곳이 많습니다. 이는 우리가 하느님의 은총에 대해 느끼는 감사 때문이지요. 우리는 이러한 집들을 가난한 이들이 편히 쉴 곳으로 제공하지만, 우리의 일을 완성할 수 있는 분은 오로지 하느님뿐이십니다. 돌로레스 수녀와 거프 수사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임종자의 집인 니르말 흐리다이에 오는 이들에게는 육체적, 영적 치유를 동시에 제공해야 합니다. 육체적 치유를 위해서 우리는 그들을 어루만지는 손길과, 위안과, 힘을 줄 수 있지만, 영적 치유를 위해서는 스스로 하느님께로 돌아설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이로가 할 수 없는 일을 잘 알면서 주께로 향하는데, 그 이유는 우리 모두에게는 아픈 과거가 그늘을 드리우고 있고 그분께서는 그 모든 것에 대한 치료제를 갖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주 간단합니다. 우리가 그저 그분께로 향하기만 하면 그분은 우리를 내적으로, 영적으로 치료해 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린 우리의 삶이 보다 거룩하고, 하느님이 보시기에 더욱 기쁜 삶이 되도록 할 수 있습니다.”

 

— 돌로레스 수녀

 

 

“우리가 병든 사람을 육체적으로 도우려고 애쓸 때, 그리고 우리의 모든 간호가 헌신적이며, 우리의 행동이 상대를 사랑하려는 노력을 동기로 한 것일 때, 그 모든 행동은 또한 영적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사람들은 육체를 치료할 때 질병의 상태를 보고 얼마만큼의 약이 필요한지를 결정합니다. 이것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단계이지요. 반면 영적 측면에서는 상대에게 더 많은 사랑을 쏟아줄수록 자신과 상대에게 영적으로 더 많은 일들이 생겨나게 될 것입니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편이 항상 더 낫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방식으로 역사하게 하십시오. 그러면 변화가 생겨납니다. 분명히 저는 변화를 보여주는 사람들을 보아왔습니다.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자신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더욱 잘 알게 되었음을 드러냅니다. 그것은 말로는 표현되지 않을지라도 그들의 행동을 통해 뚜렷이 나타납니다. 그들에게 평화가 찾아온 것입니다. 예를 들면 많은 장애인들이 대단히 자기 파괴적으로 행동합니다. 벽에 머리를 찧는가 하면 자신의 옷과 매트리스를 찢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들에게 좀 더 관심을 기울여주고 보다 부드럽게 대해주면 그들에게서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사실 그들의 내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내면 깊은 곳에서 어떤 치유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 거프 수사

 

 

이 영적 치유는 우리와 함께 일하는 수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듯합니다. 치료자들과 치료받는 이들이 함께 하느님의 평화를 나눕니다. 미국의 에이즈 환자의 집에서 일하는 자원봉사자 사라가 우리와 함께하는 일에 대해 관찰한 바와, 그것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해 줍니다.

 

“결국에는 자신이 죽게 되리라는 걸 알고 이 집에 온 사람들은 무척 평화로운 쉼터를 발견합니다. 사람들이 신에 대해 알고자 하는 욕망을 조금이라도 간직하고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자신에게 적합한 방법으로 그분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면, 누구는 환생을 믿고 누구는 믿지 않습니다. 우리는 신과 내세에 대해 긴 대화를 나누고, 이 생과 다음 생이 어떠하리라는 갖가지 상상들에 대한 생각을 서로 비교해 봅니다. 저와 대화를 나눈 이들은 누구나 신을 깊이 믿고 있습니다. 때로, 특히 죽음이 가까이 왔을 때, 사람들은 수녀님들의 신앙을 받아들이고 세례를 요청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절대로 강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일하는 거이 제 삶에 전망과 균형을 부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제가 직장에서 일할 때 저는 이른바 현실에 몸을 담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매주 한번씩 사랑의 선교회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을 때, 저는 진정한 현실은 직장 사무실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다는 것 또한 깨달았습니다. 이곳이 화려하거나 아름다운 곳은 아니지만, 이곳 사람들은 죽어가고 있기 때문에 다시 태어나고 있는, 진정 살아 있는 인간들이지요. 시내에 있는 사람들은 살아 있긴 하지만 진정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이곳에서 일하면서 저는 이 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되었고, 이 생 뒤에 또 다른 생이 있다는 것 또한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아는 많은 사람들은 내생에 대한 생각은 한번도 떠올려 보지도 않은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제게 보여주신 한 가지는, 당신은 모든 사람을 다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감히 누굴 심판하겠습니까? 자원봉사자로 사랑의 선교회 수녀님들과 함께 일한 결과, 제 삶은 더욱 깊고 풍부해졌으며, 물질과 영성 사이에서 훨씬 더 균형적인 삶을 살게 되었지요. 저는 바로, 평화를 발견한 것입니다.”

 

 

돌로레스 수녀가 임종자들과 함께 지내며 경험한 하느님의 평화에 대해 덧붙여 들려줍니다.

 

“우리 에이즈 환자의 집에 오는 사람들 대다수가 절망에 빠진 채로 도착합니다. 하지만 우리 수녀들과 자원봉사자들의 따뜻한 간호를 받은 뒤에는 그들 가슴속에서 평화를 발견하게 되지요. 그래서 그들에게는 우리 집에 오는 것이 진정한 귀향이 됩니다. 많은 이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가 내가 사는 최후의 처소가 될 겁니다. 내가 있을 최후의 처소 말입니다.’ 그러면 저는 항상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니오. 이곳은 최후의 처소가 아니 그냥 처소입니다. 당신은 여기에서 하늘나라의 아버지가 기다리고 계시는 진짜 집으로 가야 합니다.’ 그러면 많은 이들이 그곳에 가기를 열망하게 됩니다.

최후의 순간을 맞은 사람과 함께 있을 때, 그런데 그가 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 모든 것이 평화로울 때, 저는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이런 순간을 겪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상기합니다. 저는 제 자신이 이렇듯 평화롭고 아름답게 떠날 수 있기를 열망하고 있습니다. 우린 누구나 하느님께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분에게서 왔으니 그분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임종을 맞은 타인을 도와줌으로써 스스로가 도움 받는 것입니다.”

 

 

테레시나 수녀는 한 남자가 런던의 사랑의 선교회를 방문한 뒤 편지를 보내온 일을 기억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우릴 만나보고 간 뒤에 그 사람은 펴지를 보내왔습니다. 자신은 돈을 주고 살 수도, 스스로 찾아낼 수도 없었던 영적 평화를 우리에게서 발견했다는 내용이었지요. 그는 살면서 큰 부를 누린 적도 있지만 그 시절엔 평화를 눈곱만큼도 경험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나를 찾으려면 먼저 나에 대해 잊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행복과 평화를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위해 창조되었고, 행복해지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할 때에야 만 진정한 행복과 평화를 찾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데는 기쁨이 있고 크나큰 행복이 있습니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는 많은 이들이 돈이 있어야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돈이 많으면 행복을 누리기가 더 힘들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생각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을 테니, 그러면 하느님을 보기가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이 부富라는 선물을 주셨다면, 그것을 그분의 목적을 위해 사용하십시오. 다른 사람들을 돕고, 가난한 이들을 돕고, 일자리를 창출하고, 다른 사람들을 돕고, 가난한 이들을 돕고, 일자리를 창출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일을 주십시오. 부를 낭비하지 마십시오. 먹을 것과 집과 품위와 자유와 건강과 교육, 이 모든 것이 또한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우리가 우리보다 운이 없는 사람들을 도와야 하는 까닭은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그러므로 지금까지 내가 느낀 단 한 가지 슬픔은 내가 혹시 잘못된 일을 하지는 않았는지, 말하자면 이기심이나 자비롭지 못한 마음 같은 것으로 주님에게 상처를 입히지나 않았는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난한 이를 아프게 달 해, 우린 서로를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시고 가져가시는 모든 것은 다 그분의 것이니, 당신이 받을 것을 나누십시오. 거기에는 당신 자신도 포함됩니다. 다음은 샌프란시스코의 우리 에이즈 환자가 쓴 시인데, 나눔과 우정의 기쁨에 대한 시입니다.

 

 

친구인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 나는,

신들과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박대하든, 어떻게 때려눕히든,

그의 말은 내가 여행길에 의지하는 넉넉한 별.

나는 말없는 찬사로 그를 대한다.

친구인 나는, 황금을,

혹은 그를 기쁘게 해줄 멋진 선물을 탐내지 않는다.

그저 그의 곁에 앉아 그가 내 손을 잡을 수 있게 해줄 뿐.

조폐국을 지나며, 생각한다, 부가 보물인가?

친구인 나는, 오직 예술을 탐낼 뿐,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삐뚤빼뚤한 글씨로,

그의 얼굴에 쓰인 아름다움에 대한 찬가를 적어 내려갈 때,

나의 온몸을 훑는 새하얀 순수의 불꽃.

날 때부터 구도자였으나,

지구상에서 내가 배운 전부는 바로 이것

그것은 내가 알고 있는 것의 선물

상대를 적으로 만들더라도 조언을 해주어라.

내 마음 여기저기에 혹처럼 붙어 있는

두서없는 진실들이 내가 찾아낸 모든 것

물집을 터뜨려라, 오래된 편지는 태워버려라.

그리고 청년이 말했다. “우정에 대해 말해 주세요.”

그리고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친구는 응답받은 너의 요구야.

그는 네가 사랑으로 씨 뿌리고

감사의 마음으로 수확해야 할 들판이지.

그리고 그는 네가 주린 배를 안고 찾아갈

너의 식사이며 보금자리지.

그를 찾아서 평화를 구하렴.”

 

 

순간에 행복하십시오. 그것으로 족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매 순간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행동을 통해 당신보다 가난한 이들을 포함하여 다른 사람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주면, 당신은 그들에게 또한 행복을 주는 것입니다. 많은 것이 필요치 않습니다. 그것은 그냥 한 번 웃어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모두가 더 많이 웃는다면 세상은 보다 나은 곳이 될 테지요. 그러니 웃고 즐거워하십시오. 하느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심에 기뻐하십시오.

 

다음은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가 쓰신 <평화의 기도>입니다. 우리는 이 기도문을 매일 읽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열려있는 깨끗한 가슴으로 타인에게 자신을 내어 줄 때, 그때 우리 삶 속에 평화를 창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다.

 

 

 

주님, 저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음이 있는 곳에 사랑을

잘못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의심이 있는 곳에 믿음을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왜냐하면 우리는 나를 잊음으로써 나를 찾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죽음으로써 깨어나 영생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자원봉사자 데이브, 존, 루퍼트가 가난한 이들을 도움으로써 기쁨과 평화를 찾은 이야기를 들려줄 것입니다.

 

 

“런던의 이곳에시 일을 시작한 뒤로 저는 제가 준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얻고 있습니다. 제 일에는 기쁨이 있지만 그것은 무슨 웃음보따리나 파티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 기쁨에는 진지한 측면이 있지요. 물론 그것은 가볍고 낙천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자신이 태어날 때 부모들이 경험하게 되는, 혹은 자신의 결혼식 날에 느끼는 그런 감정과 비슷한, 내면 깊숙한 곳의 평화로운 기쁨입니다. 저는 이곳에 있는 게 행복하고 기쁘지만 이곳에 있는 것을 또한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진지한 것이니까요. 물론 우리 일에 대해 걱정하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지금 저는 남을 위해 일하고 있기 때문에 훨씬 침착하고 보다 여유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칼리가트에서 일하는 것은 제게는 삶을 바꾸는 체험이었습니다. 저는 하루 정도 가서 일해 보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하루를 일하고 나자 한 달 동안 매일 가고 싶어져서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매일 오후 일을 끝내고 쉴 때면, 저는 마치 천국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는 삶의 도 다른 측면을 붙잡는 경험을 한 셈이지요. 그 일은 제게 각별한 느낌을 가져다 주는데, 그것은 평상시의 감정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사실 거기에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그냥 평화였습니다. 매일같이 엄청난 평화가 찾아옵니다.”

 

“저는 사랑의 선교회에서 일할 기회를 가졌기 때문에 충실한 인간이 되었습니다. 누구도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사람은 없다는 것, 이건 그저 제가 모든 상황과 제약들에 대해 인간적으로 대응하는 법을 배웠다는 뜻이지요. 사람은 줄수록 더 많은 것을 얻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고 사랑하고, 도울 때마다 더 많은 것이 세상에 돌아갑니다. 우리가 뗀 작은 한 발자국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생겨나는 거지요. 그것은 세계의 마음과 일종의 공감을 나누는 것과 비슷합니다.”

 

 

 

 

 

 

 

 

 

 

 

 

 

마지막으로 나는 단 하나의

<평화의 메시지>를 보냅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서로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기를 바라신다는

복음을 주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죽어서 다시 하느님의 집으로 돌아갈 때,

우린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걸 듣게 될 겁니다.

 

“너희를 위해서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는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벌거벗었을 때에 너희는 나에게 옷을 입혔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너희는 나를 돌보았느니라.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사진: 데레사 수녀의 임종모습>>

“하느님께서 그대들을 축복하시기를.”

— 마더 데레사

 

 

 

 

 

 

그래도 어쨌든

 

사람들은 불합리하고, 비논리적이고, 자기중심적이지만,

그래도 어쨌든 그들을 사랑하세요.

당신이 선행을 하더라도,

사람들은 당신이 이기적이고

다른 속셈이 있다고 비난할 테지만,

그래도 어쨌든 선행을 하세요.

당신이 성공하면

거짓 친구와 진짜 적들을 얻게 될 테지만

그래도 어쨌든 성공하세요.

당신의 선행이 내일 잊혀질지라도

그래도 어쨌든 선행을 하세요.

정직과 솔직함은 당신의 약점이 되겠지만

그래도 어쨌든 정직하고 솔직하세요.

몇 년 동안 세운 것이

밤 사이 파괴될지라도

그래도 어쨌든 세우세요.

정말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자신을 돕는 당신을 공격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어쨌든 사람들을 도우세요.

자신에게 있는 가장 좋은 것을 세상에 주면

면상을 걷어차일 테지만

그래도 어쨌든 당신에게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세상에 주세요

 

 

— 콜카타의 어린이의 집, 시슈 브하반의 벽에 걸린 액자에서

 

 

 

 

부록

사람의 선교회에 대하여

 

사랑의 선교회 수도회는 여덟 개의 지회로 이루어져 있다.

 

활동 수녀회 / 관상 수녀회 / 활동 수사회 / 관상 수사회 / 사랑의 선교 사제회 / 사랑의 선교 평신도회 / 자원봉사자 및 병들고 고통받는 협력자들의 모임.

 

 

활동 및 관상 수녀들의 수련 기간은 최대 6년이다. 수련 과정은 다음과 같다.

 

지원기

6개월

청원기

최대 1년

수련기

2년. 이 수련을 마친 뒤 첫 서원을 하는데, 그렇게 하고 나면 한 여성에게 유기서원을 한 수녀가 된다.

유기서원기

5년. 해마다 서원을 갱신한다.

종신서원기

서원을 시작한 지 6년째 되는 해. 첫 서원을 시작하고 6년이 지난 뒤에 종신서원을 한다. 종신서원을 하기 전, 수녀는 3주간 집에 가서 평생 사랑의 선교사로 계속 봉사할 것인지를 결정할 기회를 갖는다.

 

 

청원기의 수련은 콜카타, 로마, 마닐라, 나이로비, 샌프란시스코, 폴란드에서 이루어진다.

활동 수녀들은 가난한 이들 중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하며 산다. 관상 수녀들은 매일 두 시간씩 공동체에 봉사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온종일 기도한다. 수녀들은 지구장에게 보고하는데 때로 마더 데레사에게 직접 보고할 때도 있다.

사랑의 선교 수사회 및 사제회는 수녀회와는 별도로 따로 회합을 갖지만 가난한 이들 중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온 마음을 다해 대가없이 봉사하겠다는 공동의 정신과 서원을 공유하고 있다. 수사들은 수사회장이나 지구장에게 보고한다. 사제들은 사제회 총장에게 보고한다.

사랑의 선교 수사회는 3개월에서 12개월까지 <와서 보는> 최초의 기간 뒤에 2년간의 수련기를 갖는다. 수사들에게는 의무적인 청원기가 없다. 수사들은 수녀들과 비슷한 일을 하지만, 보다 활동적이다.

사랑의 선교 사제회는 수녀회 및 수사회에 비해 훨씬 나중에 발족되었다. 그 이전에 마더 데레사는 가난한 이들의, 그리고 진실로 모든 인간의 가장 깊은 가난은 우리 내면의 상처와 하느님에 대한 갈증 속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있었다. 따라서 사제회는 본래 가난한 이들의 은폐된 가난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마더 데레사의 염원으로부터 태어났다. 또한 그 은폐된 가난은 겉으로는 가난하지 않아도 마음속에 콜카타가 들어 있는 이들의 것이기도 했다. 사제회의 주된 목표는 세 가지다. 즉 가장 궁핍한 이들(빈민촌, 병원, 감옥 등에 있는)을 찾아감으로써 가난한 이들 중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영적 사제의 역할을 하는 것, 사제의 직무를 통해 수녀회 및 수사회 일을 돕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의 세계에 마더 데레사의 영성과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사제회는 콜카타와 세계의 다른 지역에 있지만, 본부와 교육 센터는 멕시코의 티후아나에 있다.

 

사랑의 선교 평신도회는 세속에서 살지만 수녀들과 똑같은 기간 동안 똑같은 서원을 한다. 이들은 사랑의 선교회의 사도직에 직접 관여할 수도 있고, 혹은 평생을 <가난한 이들 중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온 마음을 다해 대가 없이 봉사하겠습니다.> 라는 네 번째 서원을 실천하기 위해 자신만의 사도직을 찾아낼 수도 있다. 신앙이 있어야 하지만 결혼 여부와는 관계없다.

 

협력자들은 깊은 영적 헌신으로 사랑의 선교회 사업의 전망을 공유하는 이들이며, 자발적 가난과 사치를 포기함으로써 <하느님의 사랑을 발하며> 살기를 염원하는 이들이다. 이들은 수도자들과 함께 일하며 지구장에게 보고한다. 또한 가족은 물론 공동체에 봉사하며 기도하는 삶을 산다. 사제들 또한 협력자로 자원봉사 할 수 있는데, 이들은 <한 가족인 협력자들의 영적 마음>으로 일컬어진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사제 결연 프로그램에 등록한 첫 번째 사제가 되고 싶다고 요청했는데, 이 프로그램에서 사제와 수녀는 기도 속에서 일 대 일로 결연을 맺는다. 종교에 상관없이 누구나 협력자가 될 수 있다.

병들고 고통 받는 협력자들은 질병과 신체장애 때문에 협력자들의 활동적인 일에 참여할 수 없었던 제클린 드 데커라는 여성이 1969년에 결성한 협회의 회원들이다. 병들고 고통받는 협력자들은 활동적인 일 대신 자신의 고통을 가난한 이들에게, 그리고 사랑의 선교회의 가난한 이들 속에서의 사업에 봉헌한다. 이들의 기도는 활동하는 선교사들이 일하는 데 영적 자양분이 되어준다. 다른 사람의 일을 위해 기도하는 이들은 선교사들에게 <제2의 나>가 된다.

 

사랑의 선교회의 공식 언어는 영어다.

 

 

 

 

옮긴이

백영미 | 서울대학교 간호학과를 졸업했으며,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셜록 홈즈>, <히말라야에서 만난 성자>, <감각의 박물학>, <죽음 너머의 세계는 존재하는가>, <자궁의 역사> 등이 있다.

 

  1. 이 서문은 마더 데레사 수녀가 돌아가시기 전에 쓴 글입니다.
  2. Eileen Ega, Such a Vision of the Street: Mother Teresa – The Spirit and the Work, Garden City, NY: Doubleday, 1985, P. 25.
  3. Eileen Egan, Such a vision of the street, P. 357.
  4. Ibid.
  5. Omer Tanghe, For the Least of My Brothers: The Spirituality of MotherTeresa & Catherine Doherty, New York: Alba, 1989.
  6. M. Muggeridge, Something Beautiful for God, San Francisco: Harper & Row, 1971, PP. 67-68.
  7. Edward LeJoly, We Do It for Jesus: Mother Teresa and Her Missionaries of Charity, Queens Village, NY: Oxford University Press, 1977.
  8. 에드워드 르 졸리, We do it for Jesus: Mother Teresa and Her Missionaries of Charity, Queens Village, NY: Oxford University Press, 1977.
September 2017
M T W T F S S
« Aug    
 123
45678910
11121314151617
18192021222324
252627282930  
Categories
Archiv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