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야고보 알베리오네 지음

성바오로딸수도회 엮음

 

 

복자 야고보 알베리오네 (1884-1971)

20세기를 맞이하는 밤, 성체조배 중에 특별한 빛에 사로잡혀 새로운 소명을 깨닫고 시대의 요청에 따라 이 시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이끌기 위해 헌신했다. 그는 사회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한다는 절박감을 느끼고 이방인의 사도 성 바오로의 보호 아래 성바오로딸 수도회를 비롯하여 5개 수도회와 4개의 재속회, 협력자회로 이루어진 바오로 가족을 설립했다. 2003년 4월 27일 복자품에 올랐으며 ‘인터넷의 주보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사랑

  • 단순함
  • 선행 1
  • 선행 2
  • 험담
  • 겸손 1
  • 겸손 2
  • 사랑을 거스르는 죄
  • 작은 덕
  • 인내
  • 십자가
  • 부드러움
  • 온유
  • 가난
  • 섭리
  • 죽음 준비
  • 천국
  • 성모님의 응답
  • 사랑과 희생
  • 참 행복
  • 사랑

 

기도

  •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 신뢰
  • 침묵
  • 감사 1
  • 바른 지향
  • 마음을 보살핌
  • 주님의 기도
  • 감사 2
  • 유혹
  • 매일 기도하십시오
  • 영성체
  • 친교
  • 성령
  • 성화
  • 성화의 수단
  • 묵주기도
  • 시련의 때에 필요한 자세
  • 십자가를 잘 지기 위하여
  • 하느님의 뜻
  • 희망

 

 

 

사랑

 

 

단순함

 

하느님은 더할 나위 없이 단순한 분이십니다.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이 덕을 지녀야 합니다.

 

첫째, 생각이 단순해야 합니다.

단순한 사람은 한 가지만 생각합니다.

곧 지금 하려고 하는 것이

하느님 마음에 드는지 아닌 지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단순하지 않은 사람은

이 사람 저 사람의 마음에 드는지,

자신이 존경 받을 수 있는지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늘 마음을 씁니다.

세상의 사고방식이나 환상에 지배되지 말고,

나의 생각과 모든 것이 온전히

하느님께로 향하게 하십시오.

 

둘째, 기도가 단순해야 합니다.

하느님과 하나 된 사람은 ‘사랑한다’는 말밖에 모릅니다.

그의 모든 기도는 하느님 사랑에 대한 표현입니다.

은총을 청하더라도

하느님의 영광에 합당한 것만 청합니다.

그의 기도는 ‘사랑’ 외에는

다른 청원이 없습니다.

사랑 때문에 기도하고, 사랑 때문에 감사 드리고,

사랑 때문에 용서를 청합니다.

 

셋째, 생활이 단순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에게 주어지 일과들을

단순하게 따릅니다.

인간적인 기호에 좌우되지 않고,

예수님을 더 기쁘게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합니다.

또한 단순한 사람은

마음속 생각을 솔직하게 말합니다.

아첨을 하거나 거짓을 꾸미지 않습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의 생각과 삶,

감성과 기도는 단순하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는 단순한 삶은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은총입니다.

우리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이 은총을 간청합시다.

 

 

 

선행 1

 

선행은 은총을 더해주며,

천국을 위한 공로가 됩니다.

우리가 온종일 하는 모든 행동은

선행이 될 수 있습니다.

 

모든 선행은 세 가지 결실을 맺습니다.

보속과 청원, 공로입니다.

우리는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죄,

연옥 영혼들이 지은 죄에 대한 보속으로

선행을 할 수 있습니다.

또 모든 선행은 하느님의 은총을 가져다 주기에

청원의 결실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느님께서는 모든 선행을 기억하시고,

상을 주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위해서라면

음식을 먹거나 쉬는 것도 공로가 됩니다.

좋은 감정, 좋은 결심,

작은 유혹을 멀리 쫓아버리려는 노력 등

우리가 하느님께 바친 모든 것에 대해

그분께서는 상을 주십니다.

 

이런 의문이 떠오를 수 있습니다.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쓸거나

유리창을 닦거나 땅을 파는 등

가장 단순하고 시시해 보이는 일들인데

어떻게 상을 받을 수 있지?

바느질 한 땀으로 어떻게 영원한 상을 받아?

 

내가 하는 행동은 하느님과 나,

둘이서 하는 것입니다.

나의 의지와 하느님의 은총이 함께하는 것입니다.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은총의 지위에서

올바른 지향으로 할 때

하느님께서는 손수 그 행동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십니다.

그리하여 내가 한 행동이지만 동시에 예수님의 것이 되며,

인간적인 행위일 뿐 아니라 거룩한 행위가 됩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는 행동에

얼마나 정성을 기울여야 하는지요!

우리의 선행이 큰 영광을 가져오도록

시간을 허락하신 주님께

얼마나 큰 감사를 드려야 하는지요!

 

 

 

선행 2

 

기회가 주어진 동안 좋은 일을 합시다.

우리의 노고는 헛되지 않습니다.

 

어떤 일이 정말 선한 것이 되려면 모든 조건

곧 대상, 목적, 상황이 전부 선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 활동을 하는가 하지 않는가에 대해서만

검토할 것이 아니라

어떤 지향을 갖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하여 일하십시오.

 

윗사람이나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칭찬이나 존경을 받으려 하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은 온종일 열심히 일하지만

그것을 떠벌림으로써 그 귀한 공로를 모두 잃어버립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바른 지향으로

침묵 가운데 일하여 많은 공로를 쌓습니다.

 

자신을 무익한 종이라고 생각합시다.

어떠한 선행을 했다면 감추십시오.

사람들 눈에 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 큰 사람으로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행하는 것이 아주 작아서

외적으로 볼품이 없더라도

주님께서는 당신과 함께 행한 사랑,

당신에게 바친 그 사랑을 기억하십니다.

 

 

 

험담

 

험담은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립니다.

험담의 대상이 되는 사람에게 해를 입힐 뿐 아니라

험담을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모두 자기 자신을 해치는 것입니다.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불평할 일이나 사건은 늘 있게 마련입니다.

그에 대해 선하게 말할 것이 정말 하나도 없습니까?

 

도둑질을 하지는 않지만 남을 험담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험담을 하는 것은

도둑질보다도 더 큰 죄입니다.

돈보다 그 사람에 대한 존중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나는 단지 진실만 말한다’라고 말합니다.

어떻게 그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까?

혹시 우리가 색안경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혀를 극기합시다.

불평을 하기보다는 기도 안에서

하느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도록 합시다.

언제나 정의와 사랑을 품고 말하도록 합시다.

항상 선을 뿌리십시오.

 

 

 

겸손 1

 

겸손이란 자기 자신을 잘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하느님에게서 온 것이므로

하느님을 섬기는 데에만

사용해야 함을 아는 것입니다.

겸손은 우리의 정신을 잘 준비하여

하느님이 뜻을 행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겸손 없이 다른 덕을 먼저 얻으려 한다면

마치 지푸라기나 낙엽을

긁어 모으는 것과 같습니다.

겸손이 없다면

영혼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존경 받지 못하면 섭섭해하고

모든 이가 자기를 칭찬해 주고

큰 관심을 보여주기를 바라며

대단한 공로가 있는 사람처럼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이것은 교만이면 거짓된 삶입니다.

그렇지만 겸손한 사람은 하느님 없이는

어떤 선도 행할 수 없음을,

아주 짧은 순간이라도

큰 죄에 떨어질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존경이나 사랑을 받을 생각 없이

자기가 행한 선을 드러내려 하지 않고,

항상 하느님 앞에서

머리를 숙인 자세로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일을 하고,

가난한 사람에게 모든 재산을 나눠주고

많은 고행과 기도를 한다 해도 겸손이 없다면

이 모든 것을 구멍 난 자루에

넣는 것과 같습니다.

많은 덕을 지녔다 해도,

기초가 되는 겸손이 없다면

결국 다 무너져 버립니다.

겸손에서 인내, 사랑, 믿음, 기도,

다른 많은 선함이 솟아납니다.

겸손의 덕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내가 과거에 저질렀던 죄,

어둡고 부끄러운 생각들을 알고

수치심을 느낍니까?

굳건한 신앙이 정말 내게 있습니까?

마음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고

정말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합니까?

나를 사랑해 주고, 칭찬해 주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은 아닙니까?

고통을 받을 준비는 되어있습니까?

미래에 있을 나의 죽음과

그 이후의 시간은 어떻겠습니까?

마침내 나는 한 줌의 재가 되어

바람에 날아갈 것이며,

사람들은 나를 잊어버릴 것입니다.

울의 교만함에 눈물을 흘립시다.

주님께 겸손의 덕을 청합시다.

 

겸손은 사랑이고 인내입니다.

겸손으로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쉽게 받아들이게 되고,

주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겸손 2

 

생각의 겸손

그리스도인의 겸덕은

두 가지 기본적인 생각을 전제로 합니다.

첫째는 주님이 모든 것이며,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가 죄인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마음을 많이 상해드렸고

주님의 종이라고 하기에도 부당함을 안다면…

하느님께서 은총과 선을 베푸실 때도,

우리는 자주 그분을 방해했습니다.

자신의 약함을 보지 말고,

자신 안의 악을 인정하십시오.

 

말의 겸손

우리를 칭찬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였을 때

오히려 두려워하십시오.

진정한 친구는 우리를 비판하고,

우리의 잘못을 눈앞에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잘못은 감추고

자기가 지녔다고 생각하는 선만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이는 자신을 지나치게 신뢰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쉽게 실망하기 때문에

한 마디 권고도 해줄 수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칭찬을 듣고 기뻐서 어쩔 줄 모르면서도

겸손하게 보이려고 그 기쁨을 애써 감춥니다.

자기 스스로를 칭찬하기보다

다른 이의 말을 들어주십시오.

말을 적게 하고

좋은 말만 하십시오.

지혜롭게 하느님을 찬미하기 위해서만

입을 열도록 합시다.

 

행동과 생활의 겸손

자신을 위해서 낡은 것을 찾고

가장 비천한 일을 택하십시오.

하느님의 아드님은

섬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기 위해 사람이 되셨습니다.

생활과 행동에서 겸손하지 못하다면

아무리 큰일을 한다고 해도

하느님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봉사하고, 그들을 존중합시다.

스승이 되려고 하기보다 제자의 자세를 지닙시다.

질병이나 그 외에

우리 뜻과 반대되는 것들을

잘 받아들이고 겸손을 실천합시다.

누군가 주의를 줄 때,

겸손한 사람은 반성하지만 교만한 사람은 화를 냅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낮은 자리에

있게 해주시도록 기도합시다.

우리의 구원이 겸손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거스르는 죄

 

우리는 때로 사랑을 거스르는 죄를 짓습니다.

생각이나 감정, 말과 행동으로

사랑을 저버립니다.

 

생각으로 짓는 죄란

아무런 근거 없이 의심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무분별하게 비판하고

단죄하는 것은 의심을 넘어선 것이기에

더욱 심각한 것입니다.

모든 것을 너그럽게, 선하게 바라봅시다.

우리도 다른 이의 자비로운 심판을 바라듯이

남들도 관대하게 대합시다.

 

감정으로도 사랑을 거스를 수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 안에서는 질투와 시기심이 일어납니다.

그런 감정은 우리 마음을 얼마나 어지럽히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요!

시기심이나 원한을 느낄 때는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 ‘주님께서 그 사람을 사랑하시는데,

내가 이런 감정을 지녀서는 안 되지?’ 하고’

이성을 되찾아야 합니다.

 

로 짓는 죄란 무엇입니까?

‘무례함 또는 모욕’ 곧 말로써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그가 과거에 드러냈던 결점이나 부족함을 기억하여

무례하게 말하거나 조롱하는 것은

모두 사랑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남을 교정해야 할 때

아주 섬세하게 하셨으며

그의 과거를 묻지 않으셨습니다.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과거를 잊는 법을

예수님에게서 배웁시다.

또 다른 것은 ‘불평’

곧 남의 결점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불평은 한 사람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손해를 끼칩니다.

 

행동으로 짓는 죄는

어떤 방식으로든 죄를 짓도록

남에게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걸려 넘어지게 하지 말고,

오히려 좋은 모범으로 감화시키십시오.

어디서나 선을 행하도록 힘쓰십시오.

 

 

 

작은 덕

 

소박하고 드러나지 않게

작은 덕을 실천합시다.

예수님은 이런 덕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분께서는 30년 동안 숨은 생활을 하시면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물 긷고, 청소하고, 못을 박는

지극히 단순한 일들을 하셨습니다.

우리 또한 그분처럼 작은 기회들을

소중하게 활용해야 합니다.

그런 기회는 상당히 많습니다.

나와 맞지 않는 것을 참아야 할 때,

불쾌한 사람과 마주해야 할 때,

말하고 싶을 때 침묵을 해야 한다든가,

침묵하고 싶은데 말을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일상의 작은 일에 부지런하고,

하느님께 마음을 올리며

깨어있으면서, 작은 규칙들을 잘 지키고

작은 덕행들을 실천하십시오.

사람들은 그런 사람에 대해

“그가 특별하게 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을 이루었습니다.

매일 작은 덕을 실천하면서 많은 공로를 쌓아

‘덕스러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성화의 ‘작은 길’입니다.

우리는 큰 사랑으로

작은 것들을 행하면 됩니다.

작은 것을 섬세하고 근면하게 하는 것은

주님을 향한 사랑이

가장 아름답게 드러나도록 합니다.

우리에게 아주 쉬운 길을 마련해 주신 주님께서는

찬미를 받으소서!

 

 

 

인내

 

어떤 사람이 참된 사랑을 지니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 사람 안에 인내와 부드러움이 있는지 살펴보면 됩니다.

 

사랑은 무엇보다 인내롭습니다.

‘사랑은 참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인내롭습니까?

인내는 무관심, 어리석음, 무감각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인내로우시지만 매우 현명하고,

대단히 민감하십니다.

우리가 그런 예수님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하였는지요!

그런데도 그분은 여전히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우리를 매일 참아주십니다.

 

우리도 인내하도록 합시다.

무엇보다 우리 자신을 참아줍시다.

나 자신을 참아주는 것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질병이나 결점 때문에’낙담하거나 실망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는 결함이 있지만

좋은 의지가 있고 결함을 줄이려는 원의가 있다면

실망해서는 안 됩니다.

넘어져도 어린 아이처럼 다시 일어서십시오.

다른 사람을 인내하는 것은

나 자신에 대한 인내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고통을

받아들이려면 인내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인내함으로써 성인이 됩니다.

선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당신 아드님과 닮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당신이 지니신 고통의 흔적을

우리도 지니도록 허락하십니다.

그리스도를 닮기 위하여, 그리고 보속의 정신으로

인내롭게 십자가를 지십시오.

우리가 이 모든 고통을

보속의 정신으로 인내롭게 받아들이면

공로가 됩니다.

감실 안에 머무는 예수께서는

온유하고 겸손하며 인내로우십니다.

오늘 하루 내게 주어질 십자가를

인내로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매일 아침, 주님께 도움을 청합시다.

 

 

 

십자가

 

두 사람이 십자가를 지고 갑니다.

예수님은 사랑 때문에

키레네 사람은 강압에 의해 지고 갑니다.

 

예수님은 탈진하셨습니다.

군인들은 예수님이 가여워서가 아니라,

그분이 받아야 할

굴욕적인 처벌이 남았으므로

골고타에 이르기 전에

그분이 돌아가실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나던 키레네 사람을 데려와

십자가를 함께 지고 가게 합니다.

예수님은 사랑 때문에,

키레네 사람은 어쩔 수없이 지고 갑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어떤 마음으로 지고 갑니까?

어떻게 십자가를 받아들입니까?

사랑 때문입니까?

혹은 투덜대고 억울해하면서 지고 갑니까?

 

키레네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며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감정을 느낍니다.

어깨 위에 십자가를 올리자마자

기운이 솟고 힘과 위로를 느꼈습니다.

그에게 은총이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사실 수난 당하시는 예수님을 위로하던 모든 사람은

그 순간 예수님에게서 커다란 친밀감과 위안을 얻었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는 사람은

그분에게서 위안을 얻습니다.

그분은 당신을 닮고, 따르고,

위로하는 사람들을 격려하십니다.

 

키레네 사람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확실하게 알았고,

구원의 신비를 깨달았습니다.

십자가를 질 때

주님께 격려와 은총을 받는다는 것을

키레네 사람에게 배웁시다.

예수님은 내가 희생이나 고통을 당할 때

혼자 버려두지 않고

성령을 풍성하게 내려주십니다.

 

 

 

부드러움

 

부드러움은 사랑의 두 번째 특징입니다.

사랑은 부드럽고, 온화하며, 관대합니다.

사랑은 상대방을 모욕하거나 화를 내지 않습니다.

사랑은 사랑스럽게 대답합니다.

부주의하여 알아듣지 못하거나,

이해력이 부족한 사람에게 같은 것을

세 번, 네 번 반복하여 들려줍니다.

고집을 부리거나

자기 생각이 더 낫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착한 사람에게 부드럽게 대하기는 쉽지만

성격이 까탈스럽거나

선과 사랑을 함부로 여기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대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예수님처럼 지혜롭고, 부드러워야 합니다.

그분은

당신의 선하심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과

당신의 뜻을 오해하는 사람 모두를

온화하게 참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때로 강하셨지만,

항상 침착하셨습니다.

꾸짖거나 교정을 하셔야 할 때도

격정이 아니라 사랑으로 하셨습니다.

우리 스승의 모범을 기억합니다.

 

 

 

온유

 

예수님은 언제나 부드럽고 온유하셨습니다.

사도들에게 엄격하고 분명한 가르침을 주셨으나

항상 온유하고 부드러운 태도를 보이셨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참으로 당신의 오유함을

배우길 바라셨습니다.

온유함은 우리의 생각과 대인관계, 말에 있어

부드러움을 갖는 것입니다.

참된 온유함은 애덕의 꽃입니다.

참된 온유함은

온순함이나 감성적인 달콤함과는 다르며,

인위적으로 꾸미는 과도한 친절과도 다릅니다.

온유함은 분노할 줄 모르거나

지나친 부드러움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온유함의 왕이라고 칭할 수 있지만

성전에서 상인들에게 거룩한 분노를 보이셨습니다.

그렇지만 격노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엄격하고 분명한 가르침을

부드럽고 온유한 태도로 주셨습니다.

꾸짖고 교정해야 할 때도

적절한 때에 현명한 방법으로 하셨습니다.

우리도 누군가를 교정할 때 적절한 때를 기다려

제대로 알아보고 현명한 방법을 사용하면서

인내와 열정, 온유함을 다하였는지요?

 

주님은 온유하고 인자하십니다.

그분은 죄인들과 미지근한 영혼들을

지치지 않고 끝까지 기다려 주십니다.

그분처럼 우리도 하느님과 이웃, 그리고

나 자신에게 온유해야 합니다.

온유한 사람은 어려울 때도

끊임없이 기도하며, 인내롭게 받아들입니다.

주님이 곧바로 우리 청을 들어주지 않으실 때도

우리가 온유하다면

계속 기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이 병고를 허락하셔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도

인내롭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실 다른 사람보다 나 자신 때문에

온유함을 실천할 기회가 더 많습니다.

배운 것을 잊어버리고,

결심대로 살지 못하고,

결점을 고치지 못한다고

자기 자신에게 화를 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항구하지 못한 자신의 마음과 성격을 참아주십시오.

실망하지 마십시오.

실망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오히려 사랑의 꽃인 온유함을 실천할 때라고 여기십시오.

이웃을 온유하게 대하십시오.

특히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에게

더 온유하게 대하기 바랍니다.

언제나 평화와 온유함의 씨를 부리십시오.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그리스도께

우리 마음도 당신 마음과 같게 해주시도록 기도합시다.

 

 

 

가난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골고타까지

온전히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베들레헴에서는

요람이 아니라 구유를,

푹신한 요가 아니라 볏짚을,

난로가 아니라 짐승들의 입김을,

깨끗한 방이 아니라 마구간에서

짐승들과 함께 지내셨습니다.

그분은 어떻게 돌아가셨습니까?

입고 있던 옷을 빼앗게 벌거벗었고,

침대 대신 십자가 위에서,

임종자에게 필요한 위로조차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분은 가난을 사랑하셨습니다.

어느 누구도 예수님만큼

가난을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그분은 말로가 아니라

모범으로 가난을 가르치셨습니다.

 

가난은 겉으로 드러나는 게 중요하지 않고,

마음으로 그것을 사랑하는 것,

내적인 면이 중요합니다.

가난의 정신이란 지상의 모든 것에서 이탈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주님께서 다 마련해 주신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가난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하늘에 시선을 두고 기꺼이 모든 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 6,33)

가난의 정신을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

당신을 신뢰하는 사람에게

하느님은 모든 것을 주십니다.

아무것도 아쉽지 않게 마련해 주시는

하느님을 신뢰하면서

우리가 사용하는 것들을 잘 활용합시다.

외양보다 가난의 내적 정신을 살핍시다.

우리의 가난이 어디까지 이르렀는지,

우리 마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바라봅시다.

천국과 예수님을 위하여 가난을 사랑하고,

그분의 사랑을 위해

결핍까지도 원하는지 살펴봅시다.

 

가난을 참으로 사랑하기 위하여

지상의 것에서 이탈하면 할수록

믿음, 희망, 사랑과

천상의 지혜와 성령의 선물은

풍요로워집니다.

가난을 사랑하는 것은 천국을 향해 달리는 것이며,

천국에서 자신이 머룰 곳을

아름답게 단장하는 것입니다.

 

 

 

섭리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그분은 언제나 모든 사건을 인도하십니다.

모든 것을 통해

하느님과 가까워지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잘못과 죄의 기회로 삼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원한다면 모든 어려운 일,

모든 사건은 우리를 거룩하게 합니다.

성모님은 모든 기회를 통하여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셨습니다.

성모님처럼 모든 것을 성화의 기회로 이용하십시오.

이 때문에 하느님은 우리를 지상에 존재하게 하시고,

시간을 허락하십니다.

 

우리는 많은 일에 대해 그 원인을 모르고,

어떤 실수에 대해서도 잘 깨닫지 못하지만

하느님은 모든 것에서

선을 길어내도록 이끄십니다.

그분의 섭리는

놀라운 방식으로 모든 것에 두루 퍼집니다.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정의롭고

무한한 사랑으로 준비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손에서 모든 것을 받아들이십시오.

모든 것은 주님께서 우리의 선을 위해

원하고,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때로 하느님은 우리의 자유를 존중하셔서

악까지 허용하십니다.

그렇지만 그분은 악을 원하지 않으며,

악에서 선을 이끌어내는 분이십니다.

하느님의 섭리를 신뢰하는 사람은

평온한 가운데 살며,

슬픈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그 이면에 담긴

하느님 손길을 봅니다.

언제나 주님을 신뢰하십시오.

 

모든 것,

곧 일상적인 것뿐만 아니라, 세세한 것,

무의미해 보이는 것마저도

성화할 수 있도록 은총을 청합시다.

하느님은 지극히 지혜로우시기에

우리가 소홀히 하기 쉬운 아주 작은 것에서도

당신 섭리를 드러내십니다.

 

어떤 사건 뒤에, 고통 뒤에, 기쁜 뒤에

천국을 위해 영광의 화관을 준비하시는

하느님이 계십니다.

 

 

 

죽음 준비

 

예수님은 십자가 위해서

죽음을 준비하신 것이 아니라

전 생애에 걸쳐 거룩한 삶으로

죽음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도

영원한 삶을 향한 여행을

준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죽음을 준비할 수 있을까요?

네 가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째, 죄를 짓지 않고,

죄 지을 기회를 피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이미 지은 죄에 대하여

깊이 뉘우치는 것입니다.

셋째는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며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지성, 의지, 마음, 육신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지성’의 준비란 믿음으로 사는 것이며,

하느님께서 싫어하시는 모든 것을

지성에서 내보내고,

하느님을 생각하거나

하느님을 섬기게 하는 것들을 간직하는 것입니다.

‘의지’의 준비는 덕을 행하면서,

삶의 방향을 천국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준비는 오직 하느님만을 사랑하고

지상의 하찮은 것에 매달리지 않는 것입니다.

영성체와 미사 참례를 잘하고,

사람들을 사랑하면서 마음을 거룩하게 합니다.

‘육신’의 준비란

하느님께 몸을 봉헌하며, 하느님을 위해 일하고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이로써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죽음이 닥칠 때 놀라지 않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기다리지 않는 사람은

죽음이 다가오면 놀라 당황하며 불안해합니다.

죽음을 준비해 온 사람은 죽음이 임박하면

하늘의 보상이 가까웠다는 생각에 즐거워하며

삶의 마지막 때를

더욱 열정적으로 맞이하고자 합니다.

 

주인이 돌아왔을 때

선한 일을 하고 있는 하느님의 종들은 행복합니다.

그들은 기뻐할 것입니다.

하느님이 뜻을 행하고,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던 그들은

언제나 자신과 함께하셨던 하느님을

드디어 만났기 때문입니다.

주인이 밤 두 시나 세 시에 와서

당신의 뜻을 행하는 것을 보게 될 때

그 종들은 행복합니다!

주인은 종들을 식탁에 앉히고 시중들며,

결코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고,

귀로도 들을 수 없는 영원한 삶의 즐거움을

맛보게 해줄 것입니다.

 

좋은 죽음은

삶을 잘 살아감으로써 얻는 것입니다.

삶은 천국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천국

 

천국은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

성모님과 천사들이 함께

의로운 영혼을 받아들이는 곳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노 는 천국이란

‘우리가 볼 것이며, 사랑하고, 즐길 것이다’라는

세 동사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느님은 어느 곳에나 계시지만,

그분의 얼굴을 맞대고 본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천국에서 우리는

그분의 얼굴을 볼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보시듯이 보고,

그분이 우리를 아시듯이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 능력에 따라,

지상에서 우리가 지닌 신앙과 공로에 따라

이해하고 보게 될 것입니다.

 

천국에서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지상에서는 우리가 확신하는 것을 사랑하고,

이롭다고 여기는 것을 사랑합니다.

우리가 선을 추구한다고 하지만,

종종 속거나 헛된 것을 따라다닙니다.

진정한 행복은 천국에 있습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영혼을 충만하고 행복하게 해주십니다.

 

천국은 환희에 찬 곳입니다.

천국은 기쁨이 넘치고

온전히 만족스러우며, 영원합니다.

그래서 성 바오로는

하느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이 결코 느끼지 못하던

기쁘고 감미로운 것들을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해 두셨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천국을 갈망하고

천국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우리 마음 깊숙이 천국에 대한 갈망이

생생하게 살아있습니까?

천국의 빛 속에서 사물을 생각합니까?

천국을 향해, 주님의 집을 향해 걸어갑시다.

하느님은 우리를 기다리시고,

성인들도 우리와 함께

영관 안에 머물고자 우리를 기다립니다.

 

 

 

성모님의 응답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당신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대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루카 1,38 참조

성모님은 전 생애에 걸쳐

‘예’라는 말씀만 하셨습니다.

기쁘거나 슬프거나 상황이 어떠하든

하느님께 ‘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거룩한 모성을 받아들여야 할 때에도,

시메온 앞에서도, 이집트로 피신할 때에도,

나자렛에서도,

예수님이 공생활을 시작하러 집을 떠나실 때도,

아드님이 쇠사슬에 묶여 법정에 서실 때도,

골고타에서도 ‘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라고 대답합니까,

아니면, 저항합니까?

언제나 하느님께서 당신이 좋아하시는 것을

내 안에서 하시도록,

마음이 준비되어 있습니까?

 

어떤 일이 주어질 때

‘예’라고 응답할 준비를 합시다.

주님께 관대함과 기쁨, 신앙으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말씀드립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행한 것을

기억하시고, 갚아주십니다.

 

다음의 것들을 돌아봅시다.

나는 건강을 기뻐하는 만큼

병고도 받아들입니까?

수명이 길거나 짧은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나는 칭찬의 말처럼 비난의 말도 받아들입니까?

희생이 요구되는 일도 기꺼이 받아들입니까?

성모님처럼 나 자신을 하느님의 참된 종으로 여깁니까?

 

우리도 성모님처럼

‘제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원하시는 것을 하는 것이

낫습니다’라고

말씀드립시다.

 

 

 

사랑과 희생

 

참되고 완전한 사랑은

희생으로 드러납니다.

사랑은 희생과 떨어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셨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큰 사랑을 지닌 분이시기에

가장 큰 희생을 바치셨습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모든 것을 버린다는 말은 희생한다는 말이며,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사랑을 뜻합니다.

하느님께 나아가고, 그분과 일치하기 위하여

사랑과 희생은 함께 있어야 합니다.

사랑에 희생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속임수요 감상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사랑에 더 이끌리는 영혼은

희생에도 더 이끌립니다.

희생으로 자기 자신,

곧 우리의 모든 성향과 의지

생명까지도 온전히 하느님께 바칠 때,

우리는 참으로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참 행복

 

주님은 산상 설교에서

여덟 가지 참 행복을 말씀하셨습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태 5,3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가난을 자신의 부인으로 삼았습니다.

우리의 작고 빈한한 방은

천국에서 부유한 왕궁으로 바뀔 것입니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마태 5,5

온유한 사람들은 하느님의 은총을 누릴 것입니다.

그 은총은 한편으로는 그들을 향한

하느님 마음으로 기울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과

자비심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마태 5,4

하느님께서는 온갖 것을 즐기는 사람보다

진심으로 눈물을 흘리며 통회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위안을 주십니다.

이 행복을 사는 사람은

회개하는 죄인 하나 때문에 잔치를 벌이는

천국의 기쁨을 누리기 시작합니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마태 5,6

세상에서 올바른 질서를 갈망하며,

성화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주님께서는 이들의 원의를 채워주실 것입니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마태 5,7

여러분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사람을 용서하십시오.

예수님과 성모님의 자비를 본받는 이들은

하느님 자비를 입을 것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마태 5,8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지상에서 이미

하느님과 그분의 선하심을 맛볼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에서는

하느님을 더 잘 관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마태 5,9

어디에서나 평화를 가져다 주는 사람들은

평화의 머리이신 하느님의 벗이 됩니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마태 5,10

반대 받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그들은 천국을 얻을 것입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십시오.

마음의 가난, 온유함, 눈물, 정의를 목말라함.

굶주림, 자비, 마음의 깨끗함, 평화, 박해 중의 인내.

각각의 이 기쁨은

천국에서 받게 될 영원한 기쁨의 전주곡입니다.

 

천국에서는 이 지상에서보다

더 완전하고 영원한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귀한 행복을 소망하며

감사를 드립시다.

 

 

 

사랑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을 바라보며,

그분이 살아가신 사랑의 삶을 관상하십시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만큼

우리도 예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 어떤 피조물보다 예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표시는

이웃 사랑이 분명합니다.

이웃을 향한 사랑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확인하는 기준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이웃도 사랑합니다.

하느님을 향한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무미건조하다 하더라도

매일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남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향한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참된 사랑은 이웃을 위해 희생하고

나를 포기하도록 이끕니다.

상대에게 멸시를 받고,

모욕과 경멸을 당하더라도 사랑하게 합니다.

 

왜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까?

이웃은 하느님의 모상이고,

하느님의 사랑 받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느님께서 그를 사랑하시듯 사랑해야 합니다.

외모나 능력 때문에 그를 사랑한다면,

더 아름답고 똑똑한 사람이 나타났을 때

그 사랑은 어디로 갑니까?

하느님 사랑 때문에

우리는 이웃을 한결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의 사랑은

반드시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어야 합니다.

사랑은 하느님이 선물입니다.

하느님께 늘 사랑을 청하십시오.

 

영혼의 가장 위대한 연인이신 예수께서

어느 경지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는지 보십시오.

두 팔을 벌린 채

심장이 뚫린 바로 거기에,

사랑의 불꽃이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니 속 좁고 미욱한 자신만 바라보지 말고

예수님의 마음을 바라보십시오. 그리하여

‘나는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것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도록

내 안에 거룩한 사랑의 불꽃을 일으키십시오.

 

 

 

 

기도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기도는 하느님과 대화를 나누는

거룩한 수단입니다.

기도는 구원을 얻게 하고,

성인이 되게 하며,

약한 자를 강하게 만들어 줍니다.

스승이신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꼭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첫째, 성체께 의탁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성체께 의지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 안에서 기도합시다.

 

둘째,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다윗 임금은 예언자의 발 앞에 엎드려

“하느님, 당신 자애에 따라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의 크신 자비에 따라

저의 죄악을 지워주소서” 시편 51,3 라고 말하며

깊이 뉘우치고 몸과 마음을 낮추었습니다.

자신을 낮추는 이의 기도는

하늘까지 올라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옥좌까지 들어 올려져

축복의 이슬이 되어 돌아옵니다.

 

셋째, 하느님께 큰 신뢰를 두는 것입니다.

하늘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단죄하기보다

다시 살리길 원하십니다.

우리의 영혼이 많은 죄로 검게 되었을지라도,

깊이 뉘우친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다시 희게 만드시고,

거룩하게 만드신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주님, 당신은 선하시니 당신께 희망을 두나이다.

저에게 위로와 빛을 주소서.’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넷째, 항구하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이러한 시간을 통해

우리의 믿음은 단련되고,

생생한 희망을 지니며,

참된 기도의 정신을 얻게 됩니다.

 

 

 

신뢰

 

시편 저자는 노래합니다.

“당신 이름을 아는 이들이 당신을 신뢰하니

주님, 당신을 찾는 이들을

아니 버리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9,11

선하고 사랑스러우시며

당신의 자녀들을 모든 위험에서 지켜주시는

하느님을 신뢰합시다.

그분은 우리를 모든 유혹과 악에서 구해주십니다.

 

거듭 말하지만 안심하십시오.

하느님의 자비와 그분의 약속과

우리를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신뢰하십시오.

지금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시간이 짧아서 많은 것을 할 수 없었다고

걱정하지 맙시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공로를 신뢰하면서

선한 의지를 지니는 것입니다.

성화에 대한 큰 갈망을 품고

예수님의 공로를 신뢰하면

우리 편의 선한 의지와 그분의 공로로

우리는 구원될 것입니다.

 

믿음, 곧 신뢰는

청하는 것을 얻으려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하느님을 신뢰하며 기도하는 사람은

죄의 용서와 덕의 향상,

성령의 선물과

우리 구원에 필요한 은총을 얻습니다.

하느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품에 모든 것을 맡겨 드리십시오.

 

 

 

침묵

 

성 요셉은 침묵의 성인입니다.

복음서에는 성 요셉의 말이 전혀 없습니다.

성인은 성급히 판단하지 않고

신중하게 처신하였습니다.

침묵 중에

주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들었습니다.

그리고 ‘예’라는 대답을 보여주는 행동 외에

다른 말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느님과 대화하며

내면의 소리를 듣는 그의 영혼에는

하느님과의 놀라운 친교가 있었습니다.

 

성 요셉처럼 덕스러운 침묵을 하십시오.

덕스러운 침묵이란

하느님의 사랑을 위해 말을 하거나

침묵을 지키는 것입니다.

주님은 수다스런 사람에게는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실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목소리를 더 잘 들으려면

덕스러운 침묵을 하십시오.

그래야 영혼은 하느님과 친밀해질 것입니다.

 

침묵은 외적 침묵과 내적 침묵이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 염려해야 할 것은

외적 침묵이 아니라 내적 침묵입니다.

누군가 자기 마음에

하느님의 사랑이 아닌

무익한 환상이 들어오도록 허용한다면

내적 침묵은 사라지고 주님과도 멀어집니다.

그렇지만 하느님과 대화하는 사람은

언제나 내적 잠심의 상태에 있게 됩니다.

 

영혼이 내적 잠심으로 하느님과 일치해 있다면

외적으로도 드러납니다.

우리의 하루를 돌아봅시다.

하느님을 생각합니까?

그분을 떠올립니까?

하느님께 자주 돌아갑니까?

‘너무 바빠서 돌아볼 시간이 없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이 있겠지만

그런 때에도 잠심 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습니다.

 

습관적으로 하느님과 일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주님께 은총을 청하며

잠심 속에서 기도를 시작합시다.

하느님께서 내면에

당신의 목소리를 들려주시는 영혼은 행복합니다!

 

 

 

감사 1

 

감사는 하느님의 것과

그분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큰 은총을 베푸셨기에

우리는 그분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계시면,

우리의 모든 것은 그분에게서 옵니다.

우리의 지성, 건강, 감각, 생명,

모두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육체적 힘과 활동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 덕에 진보하고, 자비심과 선의를 지녔다면

그 모든 것이 어디서 오겠습니까?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것입니다.

감사는 겸손과 친절의 표시입니다.

감사는 하느님을 흠숭하고,

선하신 하느님을 깊게 알게 함으로써

영혼에 원기를 북돋아 줍니다.

또한 감사는 우리의 잘못을 알게 하고,

하느님이 마음을 아프게 해드린 것을

뉘우치게 합니다.

 

감사는 사랑을 가져옵니다.

우리가 주님에게서 받은

특별한 축복을 생각할 때

우리 안에 사랑의 불이 켜집니다.

우리가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사랑을 실천하고,

하느님께 대한 참된 사랑을 갖게 됩니다.

 

성 바오로의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1테살 5,18 라는

말씀을 새겨들읍시다.

여러분,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바른 지향

 

어떤 성인은 모든 것을 시작하기 전에

늘 잠시 숙고하고는

바른 지향으로 일을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 성인은

언제나 일을 잘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올바른 지향을 갖도록 합시다.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기 위하여,

천국과 영혼들을 위하여 하십시오.

언제나 모든 것을

오직 주님을 위하여 하십시오.

 

우리는 많은 일을 했지만

칭찬이나 인정을 받지 못하고

한구석에 놓여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분만을 위해 모든 것을 했다면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반면에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받더라도

하느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다면

그것이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려고

선을 행하지 맙시다.

오직 하느님뿐입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만을 바라봅시다.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것만 행하도록 합시다.

영원한 삶에서는

하느님만으로 충분합니다.

 

 

 

마음을 보살핌

 

마음을 보살핀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 마음에 나쁜 것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깨어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하느님께 일치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약하기에 주의 깊게 살펴야 합니다.

 

마음을 보살피는 사람은

습관적으로 잠심 안에 머뭅니다.

잠심은 내 마음이 하느님과 하나 되는 것이며,

거룩한 것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잠심 하는 사람은

아침에 일어날 때부터 자리에 들 때까지

하느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합니다.

습관적인 잠심은 올바른 지향을 갖게 합니다.

 

마음을 보살핀다는 것은

올바른 지향으로 모든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보살피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사랑을 위하여

다른 이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복음을 실천합니다.

 

마음을 보살피는 것은

나 자신을 잘 인식하고

자기 자신을 이기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어떤 사람은 온갖 것에 정신이 팔려있다가

결국 눈물을 펑펑 쏟으며 실망합니다.

그렇지만 마음을 보살피는 사람은

자신의 여러 가지 갈망과

감정을 재인식합니다.

 

그는 말과 행동과 감정을 거룩하게 합니다.

잠심 하는 가운데

자기의 마음을 보살피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당신을 보여주며,

당신의 영감을 느끼게 해주십니다.

그런 사람은 평온하고 평화롭습니다.

그 영혼 안에는

예수님이 머무시는 작은 방이 있어

늘 그분과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보살피지 않는 사람은

아무것도 완성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마음을 보살피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보살피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예수님이 그의 마음 안에서 활동하시고,

변화시키시기에

놀라운 발전이 이루어집니다.

그의 삶은 충만한 사랑이 됩니다.

 

 

 

주님의 기도

 

‘주님의 기도’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아름다운 기도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예수님은 하느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가르치셨습니다.

자녀인 우리의 목소리가 선하신 아버지께 전해집니다.

그분께선 우리가 청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은총을 주고 싶어하십니다.

그러므로 아버지 하느님을 신뢰하며

이 기도를 바칩시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하느님의 이름은 지극히 거룩하십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그분에게서 받았고,

그분께 돌아갑니다.

그러기에 아버지께서는 모든 피조물에게

공경과 존경을 받으셔야 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우리의 협력으로 하느님의 나라가

이 지상에 퍼져나가야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의 품으로 들어오고,

방황하는 이들이 올바른 길로 돌아와야 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예수님이 하느님의 뜻을 이루셨듯이

우리도 아버지의 뜻을 따를 수 있도록 갈망합시다.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이 청원으로 세 가지의 빵을 청합니다.

먼저 하느님의 말씀인 진리의 빵입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마태 4,4, 고 하셨습니다.

다음에는 영혼의 음식인 성체입니다.

그리고 우리 육신을 위한 빵입니다.

들의 백합과 공중의 새들을

돌보아 주시는 주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인 우리를

얼마나 잘 돌보아 주실까요.

아버지 하느님을 신뢰합시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스러운 자녀이지만

때로 아버지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렸다면,

그분께 용서를 청하십시오.

우리는 우리가 용서하는 만큼

용서를 받을 것입니다.

하늘의 아버지께서 관대하신 것처럼

우리도 관대하게 사랑해야 합니다.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유혹이 다가오더라도

좋은 의지가 있다면 선을 향해 나아갈 것이고,

좋은 의지가 없다면 악으로 기울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 은총을 주십니다.

 

“악에서 구하소서.”

악은 우리를 사방에서 위협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악에서,

죄에서 우리를 구해주시도록

주님께 청합시다.

 

‘주님의 기도’는 좋은 것을 갈망하고,

청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담고 있으며,

하느님의 뜻을 더욱 견고하게 합니다.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주님의 기도를 하십시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주님의 기도는 가장 단순하고 거룩한 기도입니다.

예수께서 어떤 상황에서도 기도하신

가장 단순하고 거룩한 방법입니다.

 

 

 

감사 2

 

아침저녁으로

마음을 다해 하느님께 감사합시다.

천국에 대한 감사,

우리의 은인들과 그 중 으뜸가는 은인인

부모님에게 감사합시다.

우리에게 세례를 주신 사제와

대모, 대부들께 감사하고,

특히 세례의 큰 은총에 대해 늘 감사드립시다.

모든 영적 은인들, 교리교사, 본당신부,

그리고 주님의 은총을 받도록

도와준 분들께 감사합시다.

우리를 위한 기도와 교정, 좋은 표양,

가르침에 대해 감사합시다.

우리보다 어린 사람들에게도 감사합시다.

그들의 순수함과 단순함이

우리를 바로 세워주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태양을 비추어

매일 빛과 따뜻함을 주시는 것에 대해서도

감사합시다.

주님께서 주시는 밤의 별빛과

나날의 양식에서도 감사합시다.

 

우리는 모든 것이 잘 될 때는

주님께 감사드리는 것을 곧잘 잊어버립니다.

받는 것에 익숙해져서

감사하기보다 당연하게 받기만 합니다.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건강도

당연한 것으로 여겨

주님께 감사드릴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우리 기도의 많은 부분이

감사 기도이길 바랍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를 드리십시오.

고통 중에 눈물을 흘리면서 바치는

“하느님, 감사합니다”라는 기도야말로

큰 공로가 됩니다.

십자가의 무게를 느낀다면

그것은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여전히 사랑하고 계시다는 표지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하느님의 자비로

내가 살아간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요?

성령께 감사의 덕을 청합시다.

 

 

 

유혹

 

유혹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여러 현상과 마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육신과 욕망을 지닌 인간이기에

유혹은 우리 자신에게서 올 수도 있습니다.

성 야고보는 “사람은 저마다 자기 욕망에 사로잡혀

꼬임에 넘어가는 바람에

유혹을 받는 것” 야고 1,14 이라고 말했습니다.

 

유혹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닙니다.

유혹을 이기면 공로를 쌓을 것이고,

실패한다면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유혹 자체가 우리를 악하거나

착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유혹 앞에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선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악한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누구에게나 유혹이 다가옵니다.

예수님도 유혹을 당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고 하시며

유혹을 이기셨습니다.

 

설령 계속 유혹을 당한다 하더라도

실망하지는 마십시오.

언제나 기도하며 주님께 자신을 맡기십시오.

어떤 상상이나 환상이

오랫동안 머리에 남아있더라도

놀랄 일은 아닙니다.

(의도하지 않은) 생각이나 환상, 행위가

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에 동의할 때 죄가 되는 것입니다.

생각 없이 예상치 않게 어떤 영상을 보는 것,

그것이 행위이기는 하지만 죄는 아닙니다.

실제로 어떤 행위를 하지는 않았지만

나쁜 행위를 하려는 의지,

곧 의도가 마음에 있었다면 그것이 죄입니다.

 

유혹에 빠져 죄를 짓지 않도록

주님께 기도합시다.

죄는 악입니다.

우리가 죄에서 벗어나도록,

대죄뿐 아니라 소죄에 떨어질 위험에서도

구해주시도록 기도드립시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는

우리가 청하는 모든 은총을 주실 것입니다.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마태 6,13

 

 

 

매일 기도하십시오

 

기도는 영혼을 성장하게 하고,

넘치도록 생기를 줍니다.

기도는 은총의 샘이며,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줍니다.

기도를 하지 않으면 영적 기능이 멈추어,

영혼은 시들고

마침내 영적 죽음을 맞게 될 것입니다.

마치 심장이 멎어

육신이 죽는 것처럼 말입니다.

 

기도의 은총은 우리 영혼에 스며들어

지성에는 신앙이 뿌리내리게 하고,

의지는 덕과 선을 향하게 합니다.

마음에는 하느님의 사랑과 기도의 정신,

선한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나는 기도하고 있습니까?

내 안에 참된 기도 정신이 있습니까?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모든 덕을 잃어버리고,

그 마음에

하느님의 사랑을 지닐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기도하는 사람은

영혼의 건강에 필요한 영적 은총을 얻고,

열매를 맺습니다.

세례 때에 받은 믿음과 희망, 사랑이

성장하고 열매 맺기 위해서는

기도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는 건강을 위하여

음식을 먹어 양분을 섭취합니다.

영적 삶도 그러합니다.

생명 유지를 위하여 매일 음식을 먹듯이

은총을 얻으려면 매일 기도하십시오.

우리가 성화되는 데 필요한 은총을 받고,

그 은총 안에 머물 수 있도록

언제나 기도하십시오.

 

 

 

영성체

 

우리는 성체를 받아 모시면서

많은 영적 즐거움과 위로를 느낍니다.

참된 행복을 가져오시는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 오셔서

참으로 당신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예수님과 함께

성보와 성령께서 오시어 머무르십니다.

우리는 영성체로

신랑이며 친구이고, 위로자요 기쁨이며, 평화이신

하느님을 받아 모십니다.

영성체 후 우리가 얼마나 거룩해지고

얼마나 아름다운 성전이 되는지요!

세상에는 성전이 많이 있지만,

우리의 마음보다 더 아름다운 성전은 없습니다.

 

성체를 잘 모시기 위해서는

귀한 사람 앞에 나설 때처럼

합당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영성체를 위한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통회하여

마음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그 다음은 영성체를 위해

먼 준비와 가까운 준비를 합니다.

먼 준비란 하루를 거룩하게 지내는 것입니다.

영성체로 내 안에 주님을 모시게 될 때

그분에 대한 나의 사랑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일상생활에서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잘 행하는 것입니다.

가까운 준비란 미사를 앞두고

기도서를 이용하여 기도하거나

직접 주님과 대화하면서

그분 앞에 머무는 것입니다.

성체를 모신 후에는 예수님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어떤 대 우리는 성체를 모시고

은총을 청하기만 하고

감사드리는 것은 잊어버립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감사에도 가까운 것과 먼 것이 있습니다.

영성체 후 곧바로 감사드리는 것이

가까운 감사입니다.

먼 감사는 영성체 후의 삶으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이 나에게 모든 것을 주셨으니

나의 지성, 마음, 의지, 힘 등

모든 것을 그분께 봉헌하는 것입니다.

 

성체는 탁월한 영혼의 양식입니다.

성체는 빛과 힘, 기쁨과 용기,

은총과 성화를 가져다 줍니다.

성체의 선물은 무한합니다.

그러나 각 사람은

준비된 그릇에 따라 물을 길어갑니다.

그러니 영성체를 잘 준비하십시오.

예수님은 우리가 당신을 위해

겸손하게 마음의 자리를 마련하길

간절히 바라십니다.

 

 

 

친교

 

주님께서는 당신과 우리가

온전히 하나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성체로 오시는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계속 우리 안에 현존하시니

우리도 그분과 함께 머물러야 합니다.

영성체 후에도 신령성체를 통하여

하느님과 참된 친교를 이루십시오.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께서

내 안에서 살고 활동하십니다!

하느님의 생각과 감성이 내 안에 스며들도록

그분이 나를 변화시키도록

나 자신을 하느님께 맡겨 드립시다.

내 생각이 예수님의 생각과 같아지고

나의 감정과 모든 생명도

예수님과 같아지기를 바랍시다.

교만과 허영을 마음에서 몰아내고

예수님의 지성, 예수님의 마음, 예수님의 생명과

깊이 일치되어

성 바오로처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십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의 온 존재로

하느님과 열렬하고도 변치 않는

친교를 사십시오.

 

 

 

성령

 

하느님께서는 무한한 사랑으로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성령을 통하여

천상 은총이 우리 안에 머무릅니다.

세례성사로써

천상 은총이 우리 안에 머무릅니다.

세례성사로써

성령의 은총이 우리에게 내리고,

견진성사로서 더욱 강화되며,

성령의 지속적인 도움으로

은총은 점점 더 풍성해집니다.

그렇다면 성령께서 일으키시는 효과는 무엇일까요?

 

성령께서는 무엇보다도 우리가 하느님의 친구요,

자녀가 되게 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우리가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은총을 주십니다.

우리에게 향주 삼덕,

곧 신덕과 망덕과 애덕을 주십니다.

 

우리는 신덕으로

하느님과 계시된 진리들을 믿습니다.

망덕으로 천국을 바라보고

천국을 위해 일하며,

그곳에 다다르기를 희망합니다.

애덕으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합니다.

성령은 우리 영혼의 생명이요,

모든 선한 이들의 생명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도록

우리 자신을 그분께 자유로이 내어드립시다.

 

 

 

성화

 

성화는 마음을 다해 모든 것 위에

하느님을 참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성화는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는 것입니다.

성화는 완전하고, 기적적이며

신비로운 일치입니다.

성화란 마음으로 하느님을 찾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원하고, 그분께 맛들이고, 사랑하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성화

곧 성덕을 아주 어렵게 여깁니다.

그렇지만 성화는 어렵지 않습니다.

성화가 불가능하다고 믿게 하거나

고복을 입는 등

육신을 학대하는 것으로 여기는 것은

악마의 간교한 속임수입니다.

악마는 거룩한 영혼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거룩해질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맙시다.

자주 하느님을 생각하고

그분만을 바라보며

성덕을 청하십시오.

어디서나 단순하게 사랑을 실천하면서

영원을 향해 걸어가십시오.

여러분이 진정 하느님을 원하고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지금이라도 거룩해질 수 있습니다.

 

 

 

성화의 수단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거룩해지기를 바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성인이 되도록

특별히 창조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성화되도록

죄를 용서해 주시며

성령께서 필요한 영을 부어주시고

풍성한 은총과 수단을 주십니다.

믿으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더 간절히

은총을 주고자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어떤 목적을 이루고자 하실 때

그 수단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특별히 우리가 받는 도움과 수단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우선 ‘미사’와 ‘성사’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닌 신심은

성화에 큰 도움이 됩니다.

준비를 잘 하여 자주 영성체 한다면

예수님은 매일 풍성한 은총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고해성사’를 정기적으로 보고

용서하시는 하느님을 만나십시오.

그리고 일상에서도

마음으로 예수님을 모시며, ‘신령성체’를 하십시오.

‘성체조배’도 성화를 위한 좋은 수단입니다.

영적 독서와 성찰, 묵주기도롤 이루어지는

성체조배를 통하여

예수님에게 말씀드리고,

그분이 주시는 영감과 은총을 받으십시오.

 

‘양심성찰’도 성화의 큰 수단입니다.

양심성찰을 통하여 가야 할 길과

실천해야 할 덕을 일러주시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양심성찰에 게으르다는 것은

마음에 수많은 잡초가 자라도록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성실하게 양심성찰을 하는 사람은

마음의 잡초를 뽑고,

그 자리에 좋은 씨앗을 심는 것과 같습니다.

하루 세 번 양심성찰을 한다면

많은 은총을 받을 것입니다.

 

또 다른 도움은

예수님에 대한 신심,

성모님과 성인들에 대한 신심 등

여러 가지 신심을 행하는 것입니다.

 

모든 영혼을 성화로 초대하시는 주님께서는

뉘우치는 마음과 의지, 선을 행하려는

마음을 일으켜 주십니다.

주님께서 성화의 여정에

얼마나 많은 도움을 주시는지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우리를 성화로 부르시고

놀랍고 풍부한 수단들을 주셨으니

예수님을 사랑하고

무엇보다고 그분을 신뢰합시다.

예수님을 찬미하며

주님 안에서 평온하고 온유하게

큰 신뢰를 가지고 걸어갑시다.

 

 

 

묵주기도

 

묵주기도는 마리아게 바치는

백오십 송이 장미꽃다발입니다.

성 베르나드로는 “여러분은 마리아께

언제나 깨끗한 손과 순결한 마음으로

장미꽃을 바치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좋으신 어머니께서는

우리가 바치는 묵주기도를

아주 기뻐하십니다.

 

우리의 삶은 장미꽃으로만 꾸며져 있지는 않습니다.

충실한 삶에는 장미꽃도 있고,

많은 가시도 있습니다.

우리는 삶의 바탕이 되는 진리를

묵주기도 안에서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현재의 삶이 고통스럽고 십자가가 무겁더라도

이 고통과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는 마침내

영원한 영광에 도달하리라는 것입니다.

성모님이 우리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묵주기도를 충실히 바치십시오.

많은 사람이 묵주기도를 바치며 성화되었고,

우리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마리아께서는 우리가 지상의 것에서 이탈하여

하느님께 완전히 의탁할 수 있도록

은총을 얻어주십니다.

성모님은 우리가 죽을 때

주님의 축복과 은총과 위로를 얻어주십니다.

 

묵주기도를 많이 마치는 것도 좋지만

성모님을 깊이 신뢰하면서

잘 바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습관적으로 냉랭하게 기도하지 말고,

매번 바로 전에 기도했던 것보다

더 열렬한 마음으로 하십시오.

 

벨라뎃다나 파티마의 세 목동들이 지녔던

겸손한 마음으로 묵주기도를 바치십시오.

우리는 마리아 앞에서 어린이와 같습니다.

선하신 어머니께

우리의 마음을 열어드립시다.

 

아주 곤란한 시기에 처할 때,

교회가 간곡히 권한 기도는

항상 묵주기도였습니다.

언제나 묵주기도를 통해 거룩하신 동정녀께

도움을 청합시다.

 

 

 

시련의 때에 필요한 자세

 

주님은 때로 영혼들을 시험에 들게 하십니다.

어떤 때는 시험이 짧고 쉽기도 하지만

길고 어려운 때도 있습니다.

굴욕과 몰이해

극심한 고통까지도 허락하실 때가 있지만

늘 당신 자녀들에게 위로와 도움을 주어

쓰러지지 않게 해주십니다.

마치 빛과 힘이 사라진 것 같고

주님께서 도움을 거두어 가신 것처럼 보일지라도

실상 주님의 도움은 부단히 이어져

완전한 승리를 얻기까지 부축해 주십니다.

때로는 십자가를 지게 하시지만

온갖 아름다움과 감미로움을 맛보게 하십니다.

당신이 수난과 함께하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지를 깨닫게 해주십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삶에는

항상 기쁨과 고통, 빛과 어둠,

시련과 위로가 교차됩니다.

그렇다면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겠습니까?

고통과 위안이 함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시련에 처할지라도

주님께서 연약한 우리를

지켜주시리라는 것을 기억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그분을 신뢰합시다.

인간적인 위로를 구하기보다는

주님과 성모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가십시오.

만일 그대의 십자가가 너무 무겁다면

주님께서는 십자가보다

더 큰 은총으로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어떤 처지에서든

하느님의 의지와 하나 되어

결심을 새롭게 하고

결코 용기를 잃지 마십시오.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의 아들, 딸입니다.

우리의 삶이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천상 아버지의 섭리 안에 있음을

늘 기억하십시오.

그분은 당신의 자녀를

홀로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여러 길을 통해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십자가를 잘 지기 위하여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가 해방되었듯이

그렇듯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는 구원될 것입니다.

십자가는 천국으로 향하는 확실한 길입니다.

주님께서 곤경과 반대에

부딪치는 일을 허락하실 때

불행하고 운이 없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바로 그때야말로 주님께서

당신 사랑을 보여주시는 때입니다.

 

그렇다면 십자가를 잘 지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무엇보다도 기도해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는 힘은 기도에서 나옵니다.

우리의 본성은 십자가를 싫어합니다.

그렇지만 골고타의 길, 예수님이 가신 길만이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합니다.

그러니 항상 기도하십시오.

예수님이 겟세마니에서 기도하셨듯이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분은 하느님의 아들이셨지만

하느님을 모독하는 두 강도 사이에서

십자가형을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죄인인 우리가

어떻게 불평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상처를 바라본다면

불평할 수 없을 것입니다.

 

셋째, 천국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무거움과 피로를 느낍니다.

그렇지만 매일의 작은 희생으로

마침내 ‘그지없이 크고

영원한 영광’을 얻을 것입니다.

 

성인들은 얼마나 큰 십자가를 지고 있느냐에 따라

그만큼 주님에게서

사랑을 받고 있다고 여겼습니다.

만일 지금 십자가의 무게를 느끼고 있다면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면서

사랑해 주신다는 표시입니다.

 

 

 

하느님의 뜻

 

주님은 우리 각자에게

지극히 사랑스러우며, 놀랍고 아름다운

특별한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알고, 품고, 실천하기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주님, 저에 대한 당신의 계획을 알려주십시오.

제가 싸워야 할 점을 알려주시고

하루 동안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어떻게 성찰하고 묵상하며 기도해야 하는지

알려주십시오.”

주님은 우리를 비춰주실 것입니다.

주님을 신뢰하며

그분의 뜻을 따르십시오.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아기 예수님이 가지고 노는 공이 되기를 바라며

그분께 청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온통 자신에게만 집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마음으로 ‘항상, 전부,

오직 하느님이 원하시는 날까지’라고 말하도록 합시다.

다른 어떤 소망 없이

모든 것을, 우리의 삶과 죽음도

하느님의 뜻에 의탁합시다.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는 우리의 삶은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셨습니다.

매 순간 예수님은 우리가 실천해야 할

하느님의 뜻을 건네시며

은총을 충분히 내려주십니다.

우리는 이 거룩한 뜻을 받아들일 수도 있고,

거절할 수도 있습니다.

지상에서의 한 순간을

영원한 삶을 위한 공로로 만들 수도 있고,

헛되이 흘려 보낼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은

각자의 자리에서 마주하게 되는

매일의 구체적인 의무와

상황들 안에서 드러납니다.

모든 것을 신앙의 눈으로

예수님의 눈으로 보면서

사랑으로 기쁘게 행하십시오.

오직 사랑만이 가치롭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행하는 것이

우리 삶을 위해 가장 좋은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주님을 모든 것 위에

온 마음으로 사랑하는 예배 행위입니다.

하느님이 사람, 예수님의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희망

 

우리는 하느님의 거룩한 약속에 희망을 둠으로써

구원을 받습니다.

주님은 충실한 사람에게 천국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사람에게

은총을 약속하셨습니다.

 

천국을 희망하고, 천국에 다다르기 위한

은총을 희망하십시오.

예수님은 우리가 당신께만 희망을 두는 것,

오직 당신에게서 오는

보상만을 기대하라고 하십니다.

지금 내 안에 생기 가득한 희망이 있습니까?

 

사도들과 순교자들을 보십시오.

사도들은 다락방을 떠나 세상 곳곳에 흩어져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그들은 이교인 세상에서

어려움과 장애들을 이겨내고자

수고를 다했습니다.

그러나 상을 받는다는 희망을 품고

승리하였습니다.

순교자들을 생각해 봅시다.

그들은 고통 당하고, 옥에 갇혔으며

채찍질과 십자가와 참수를 견뎠습니다.

그것은 천국이라는 영원한 보상에 대한

희망 때문이었습니다.

 

때로 선을 행하는 데 싫증이 나고,

어렵고, 실망할 때

하고 싶지 않은 일들 앞에서 지루해할 때

천국에 대한 희망이 없다면

어떻게 견뎌낼 수 있겠습니까?

희망은 실망을 넘어서게 합니다.

희망은 역경과 십자가의 삶에서

우리를 위로합니다.

 

우리 마음 안에

희망이 자라도록 기도하십시오.

대신덕 곧 믿음, 희망, 사랑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온전히 준비된 자세로 기도하는 사람은

큰 희망 속에 삽니다.

하느님께 간절히 바라는 사람은

생생한 희망을 간직합니다.

만약 우리의 공로가 부족하다 하더라도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사실 그분 안에서만

참된 공로를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공로에 희망을 두지 말고

예수님의 선하심과 자비하심에 희망을 둡시다.

희망은 우리 삶에 힘을 주는

하느님의 격려입니다.

이 세상의 불확실한 것에 마음을 두지 말고

살아계신 하느님 위에 서있도록 하십시오.

하느님 안에만 희망을 두어야 합니다.

희망으로 자신을 가득 채우십시오.

 

 


Disclaimer: 여기에 실린 글은 copyright가 된 책, 기사를 ‘발췌, 전재’를 한 것입니다. 모두 한 개인이 manual typing을 한 것이고, 의도는 절대로 저작권 침해가 아닌, fair use의 정신을 100% 살린 것입니다. 의도적으로 ‘시간적인 제한, 독자층의 제한’을 염두에 두었고, 목적은 단 한 가지 입니다. 즉 목적을 가진 소수 group (church study group, bible group, book club) 에게 share가 되었습니다. password protected가 되었는데, 만일 이것이 실패를 하면 가능한 시간 내에 시정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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