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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기쁨으로 바꾸기 – 문종원 지음

 

영적 성장을 위한 감성 수련

우울증, 기쁨으로 바꾸기

문종원 지음

 

이제 우울증은 ‘심리적 감기’ 또는 ‘영혼의 감기’라는 표현이 실감나는 현실이 되었다. 이러한 때, 자칫 죽음에 이르는 어두움의 통로에 생명의 불을 밝혀줄 책이 출간되어 반갑기 그지없다. 이 책에는 발병 원인, 다양한 증상, 간이 진단 방법과 치료 방법까지 우울증의 모든 것이 여러 사례와 함께 자세히 밝혀져 있다.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과 그 가족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두루 읽어 우울증으로 인한 비극을 미리 막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 안영(소설가)

 

이 책은 정신과 의사보다 더 자세하고 명확하게 우울증을 진단하고 처방을 내린다. 이 책에 소개된 여러 사례를 통해 가장 깊은 감명을 받은 것은 신앙을 통한 치유다. 예수님의 사랑과 그분을 향한 믿음 안에서 생활하는 것이 질병 치유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를 이 책은 알려준다. 부디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고 신앙인으로서 우울증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이나 오해를 없애기 바란다. 긍정적이고 격려에 찬 치유의 글은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 양창순(신경정신과 대인관계클리닉 전문의)

 

하는 일마다 잘 안 되는 것 같고 가슴이 답답한 사람, 자신이 가치 없다고 생각되고 세상 사는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한 번쯤 우울증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  물질문명이 발달하고 개인주의가 확대될수록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늘어나고 있다. 특히 스스로 열심한 신앙인이라고 믿는 사람에게도 우울증이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이 책은 풍부한 사례와 설명을 통해 사람들이 스스로 우울증을 진단하고 거기서 벗어나는 다양한 방법을 알려준다.

– 황대권(생태운동가)

 

 

문종원

1992년 서울대교구에서 사제품을 받고 미국 로욜라 대학에서 사목학을 공부했다. 평화방송 라디오 주간을 거쳐 현재 성령쇄신운동을 지도하고 있으며, 우울증-죄책감-걱정-두려움-분노-상실감-스트레스 등 부정적 감정을 다스리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영적 성장을 위한 감성 수련’과 ‘나 자신을 찾아서’를 기획-강의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길을 묻는 그대에게>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 <행복 찾기> <기도 산책> <우울증> <걱정> <스트레스> <두려움> <낙담> <학대 받는 아이에서 학대하는 어른으로> <느낌을 마주하라> <스트레스, 말씀으로 사귀자>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신앙, 집착에서 열정으로>, <꿈, 하느님의 잊혀진 언어> 등이 있다.

 

 

차례

추천글 신앙을 통한 우울증 치유

머리글 우울증, 기쁨으로 바꾸기

 

1 우울증이란?

살다 보면, 마음의 감기, 인생의 늪, 나는 쓸모 없는 사람,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우울증 증후군, 견디기 힘든 감정

 

2 우울증의 여러 모습

여유롭고 풍족해졌으나, 현대 문화의 흐름, 무서운 질병처럼, 여성의 고민, 급증하는 우울증, 병적 분노, 샛길 없는 통로

 

3 우울증이 영향을 미치는 영역

우울 반응과 우울증

슬픈 감정, 두려움과 불안, 공황 발작증

우울증과 조울증

감정의 기복, 심각한 우울감과 고립감

은둔형 우울증

외톨이 현상, 정신 질환의 원인

계절성 우울증

다양한 치료 방법, 장마철 우울증

 

4 우울증의 자가 진단

간단한 진단 검사

돈 콜버트의 자가 진단

 

5 우울증은 언제 찾아오는가?

사랑하는 사람이 거부할 때

가장 쓰라린 고통, 우리 편이 되어주시는 분, 예수님을 만나는 기회

실패할 때

성공과 실패, 인생의 낙오자, 건강한 우울증, 나는 너를 원한다

상실을 겪을 때

나는 어떻게 하라고? 충분히 슬퍼하자, 도대체 나는? 거식증의 원인, 식욕과 성욕, 감정에 대처하는 법, 나는 누구인가? 상실감을 극복하려면, 하느님과 나는 어떤 관계인가?

불필요하게 비교할 때

누구나 사랑 받는 존재, 역기능 가정과 순기능 가정, 있는 그대로, 늦었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 감사하고 기뻐하자, 자기 일에 충실하자

실망하고 절망할 때

한계와 나약함 앞에서, 용기와 희망을 품고, 우리를 북돋아 주는 힘, 부정적 감정을 긍정적으로, 목표를 향해, 하느님의 자비에 힘입어

몸에 이상이 있을 때

스트레스와 우울증, 우울증과 심장병, 독소 덩어리, 우울한 노인

 

6 중년기 우울증

중년의 위기와 우울증

숨기지 막고 드러내자, 감정의 뿌리

중년기 위기의 원인

가던 길을 멈추고, 여섯 가지 원인, 한계와 전환

새로움에 대한 도전

풍요로움과 외로움, 인간적 약함과 열등감, 변화, 성장의 기회

영적 성장에 문을 여는 순간

도움의 손길, 무엇이 잘못인가? 영적 지도자, 초월적인 것을 향해

위기의 치유

가족 치료, 교육과 치유, 명상 일기 쓰기, 깨달음을 주는 선물

중년기 이후의 우울증

카를 융과 노년, 늘어난 노령 인구, 노년기 우울증 치료, 전환과 도전, 노년과 종교

 

7 우울증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비관적 사고방식을 뛰어넘어, 긍정적 시각으로, 성숙한 감정, 우울증에 대한 올바른 인식, 약물치료와 전문가의 도움, 악순환의 고리,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 행복한 사람들과 함께 지내자, 축복받은 삶

인지행동 치료

하는 일마다 안 될 때, 과장과 왜곡, 자동적 사고, 감정과 행동에 영향을 주는 인지와 사고, 인지행동 치료의 전략, 인지행동 치료의 목표,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

음악치료

큰 소리로 하는 찬양, 몸과 마음의 치유, 자연 음악의 효과, 마음에 와 닿는 음악, 심신을 달래는 음악

휴식과 운동 치료

운동의 효과, 스트레스를 푸는 활동

수면

잠자는 동안 치유되는 상처, 긴장을 푸는 기술

적당한 영양과 음식물 섭취

종합 비타민과 미네랄, 정신 건강을 위한 균형 잡힌 식사

영적 치료

기쁨으로 충만하게, 말씀과 친미 기도

고통에 목소리를

소리 높여 외치자, 마음의 문을 열자, 승화된 고통, 오아시스 모임, 자신의 상처를 껴안을 때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

기쁨으로 가득한 삶, 늘 기뻐하자,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힘,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흘러 넘치는 기쁨, 기쁨의 근원, 행복한 자리, 웃음: 가장 위대한 선물, 주님 안에 뿌리내린 믿음, 기쁨으로 가득한 영혼, 찬미와 감사의 노래, 낙심하고 불안할수록, 어려움에 처했을 때

어둠의 세력에 대적하기

악마가 가져오는 혼돈, 판단과 단죄, 얼마나 자주 다시 일어섰는가? 절망의 나락에서, 빛의 자녀답게, 예수님이 주시는 답, 찬미의 예복,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의 체험, 성체성사, 성령의 칼

성경 말씀을 통한 치유

거저 주신 축복, 말씀 안에서 살아가면, 효과적인 해독제, 말씀을 바탕으로 한 긍정적 사고, 강력한 치유자 하느님

 

우울증의 전환을 위한 치유 기도

고뇌의 시기에 바치는 기도

우울증과 싸우기 위한 기도

 

 

추천글

신앙을 통한 우울증 치유

 

우리는 마음을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다. 그래서 마음에 대해 여러 가지 두려움을 갖고 오해를 한다. 마음의 병에 대해 여러 편견과 오해가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우울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울증을 마음의 문제로 치부해(이미 현대의학에서 우울증의 원인에 대해 밝히고 있는데도)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신앙을 가진 이들 가운데 ‘어쩌면 내가 믿음이 부족해서 우울증을 앓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럴수록 쉬쉬하다가 병을 키우거나, 아니면 어렵게 병원을 찾지만 약 복용에 대한 거부반응을 이겨내지 못하고 치료를 중단하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던 차에 문종원 신부님이 ‘신앙인으로서 어떻게 우울증을 대처해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책을 쓰신 것을 보고 몹시 반가웠다. 그 중에서도 사랑의 공동체로서 신앙을 통해 우울증을 치유하는 것에 대한 글은 내 마음에 따뜻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평소 우울증을 앓는 이들에게 우울증을 당뇨나 고혈압처럼 생각할 것을 권한다. 당뇨나 고혈압이 신체적 병인 것처럼 우울증 또한 신체적 질병이다. 폭넓게 보면 정신이 깃든 뇌는 신체의 일부분이다. 그러므로 우울증이 정신에 깃든 것이기는 하지만, 당뇨나 고혈압과 같은 신체적 병인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는 당뇨나 고혈압을 앓는 것은 부끄러워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그 치료 방법을 찾는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약을 복용하고 식이요법과 운동요법을 하면서 마음을 편안하게 갖는 것이다. 마음에 스트레스가 쌓여 있으면 아무리 좋은 약이나 훌륭한 처방도 효과가 반감되기 마련이다.

이와 같이 우울증도 마찬가지다. 요즘엔 효과가 뛰어난 약물과 인지요법을 우울증 치료에 두루 적용하고 있다. 문종원 신부는  정신과 의사보다 더 자세하고 명확하게 우울증을 진단하며 처방을 내리신다. 이 책에서 내가 가장 감명을 받은 것은 신앙으로 통한 치유다.

이 문제에 대해 신부님은 치밀하면서도 온화한 필치로 많은 얘기를 들려주신다. 우울증은 다른 모든 신체적 질병이 그러하듯 마음을 어떻게 가지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신부님은 마음을 다스리는 법에 대해 설명하신다.

그 중에서도 예수님의 사랑과 그분을 향한 믿음 안에서 생활하는 것이 질병 치유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를 이 책은 알려준다. 사례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 구성은 이 책을 더욱 빛나게 한다.

부디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고 신앙인으로서 우울증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이나 오해를 없애기 바란다. 또한 우울증을 앓는 이들한테도 이 책을 읽을 것을 권한다. 문종원 신부님의 긍정적이고 격려에 찬 치유의 글을 통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2008년 4월

양창순 신경정신과 대인관계클리닉 전문의

 

 

 

머리글

우울증, 기쁨으로 바꾸기

 

과학 문명의 발달로 모든 것이 더욱 편안하고 풍요로워졌다. 한편 이러한 과학 문명의 발달로 우리를 도덕적, 영적 가치가 상실되고 지나친 편리함과 쾌락을 추구하며 경제적 이익을 최고 목표로 삼는 시대에 살게 한다.

만연된 소비주의로 모든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사고방식은 인간적, 심리적, 영적 허약함을 불러일으켜 우울증 환자를 증가시킨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은 물론 가정주부와 어린이, 심지어 신앙인들조차도 활기차고 기쁘게 살아가기보다 우울하게 살아가는 것을 더러 본다.

여섯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이는 어느 한 나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세계적 문제다. 한 통계에 따르면, 2020년이 되면 우울증이 가장 큰 장애가 된다고 한다. 세계보건기구는 날이 갈수록 우울증이 심각해져 세계적으로 1억 2천만 명이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보고한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 경제적 손실은 전체 질병 가운데 네 번째로 높으며, 우울증은 또한 무기력과 무능력의 주요인이다.

우울증은 환자의 삶을 초토화시키며 알코올, 마약 중독, 안전하지 않은 성관계, 에이즈와 같은 질병을 불러일으키는 행동에 빠지게 한다. 우울증에 걸리면 침울하고 슬프며, 희망을 잃고 쉽게 실망하며 의기소침하게 된다. 또한 피곤에 젖어 있거나 기운이 떨어지고 식욕이 감퇴되며, 가슴이 답답하고 밤잠을 이루지 못하며 면역 기능이 약화되는 등 여러 가지 증상을 보인다. ‘나는 쓸모 없는 사람’이라고 자책하면서 자살을 선택하는 경우도 많다.

우울증은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우울증을 일으키는 요인과 처방도 다양하다. 어떤 처방은 효과가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것도 많아 완전히 치유하는 것은 어렵다. 그럼에도 희망을 가지게 되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울증을 치유해 주신다는 믿음 때문이다.

질병을 치유하고 여러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예수님께서는 우울증에서도 해방시켜 주신다. 우울증에서 해방되려면 먼저 하느님께서 주시는 힘을 신뢰해야 한다. 예수님을 따를 때 우리는 내면에서 넘쳐흐르는 기쁨을 맛본다. 예수님께 대한 믿음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는 기쁨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 한없이 좋으신 하느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기쁘게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라시기 때문이다.

우울증 환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하고 사랑 받을 수 있다는 믿음과 사랑의 공동체에 대한 인식이다. 사랑의 공동체는 우울증 환자가 하느님의 선하심과 지혜, 각 사람이 행복해지기를 바라시는 원의,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해 아들을 희생시킨 사랑을 되새기도록 도와주는 치료사 역할을 한다. 그리스도교 신앙이 삶과 죽음의 의미를 지향하면서 초월적 해답을 준다는 사실은 신앙이 우울증 환자에게 많은 것을 제공해 줄 수 있음을 뜻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3일간 바티칸에서 개최된 우울증 관련 회의 참석자들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우울증은 ‘존재론적이고 영적인 위기 또는 불안에서 생겨나는 영적 시련’이라고 하면서 우울증에 걸리면 삶의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교황은 또한 우울증 환자들을 다룰 때, 전문 화학 요법과 함께 특별히 가족과 사목자와 본당 공동체가 따뜻한 마음으로 지원하고 배려함으로써 더욱 많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우울증 환자는 자신의 능력을 믿고 자존감을 회복하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인내하며 섬세하게 도와주어야 한다. 교황은 또한 아픈 이들에게 손을 내밀고, 그들의 말을 듣고 이해하고 지지해 주며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성령으로 충만한 신앙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우울증에 시달려 고생한 적이 있을 것이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지닌 우리는 우울증에 사로잡혔다 해도 부정적 감정에 휘말리지 않고 삶의 변화를 가져오는 긍정적 기회로 이용할 수 있다.

이 책은 우울증을 물리쳐야 할 적군으로 보지 않고 친근하게 대할 때 더욱 역동적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우울증을 떨쳐내려면 내면에 기쁨을 지니고 살아가면서 그 기쁨을 표출시키는 법을 알아야 한다.

이 책에 나오는 사례는 필자가 평화방송에서 상담할 때, 그리고 피정이나 교육을 통해 개인 상담 또는 그룹 상담을 하면서 들은 내용이다. 여기 소개하는 사례는 공개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고, 연락이 되지 않을 경우는 그 내용을 각색해서 사용했다.

우리는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과 그 가족들에게 하느님께서 늘 함께하시며 시련 한복판에서 도와주시리라는 메시지를 전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 드려야 한다.

 

 

 

 

1 우울증이란?

 

살다 보면

살다 보면 자기 뜻대로 일이 잘 풀려 행복할 때가 있다. 가족이나 좋아하는 사람의 사랑을 확인할 때,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을 때, 오랜 노력 끝에 그토록 열망하던 일이 성취될 때 우리는 기쁨과 행복을 느낀다. 이럴 때 우리는 자신을 가치 있는 존재로 여기고 세상이 여전히 아름답고 살 만한 곳이라고 믿으며 앞날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차게 된다. 그래서 더욱 즐겁고 신바람 나는 활기 찬 삶을 살아간다.

행복한 삶이 늘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실패와 상실의 아픔을 경험한다. 어린 시절에 부모님이 죽거나 이혼하고, 노력을 기울인 만큼 기대에 미치지 못하거나 실패를 맛보기도 한다. 마음을 쏟아 일해 왔던 직장에서 실직을 당하거나 건강을 잃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거부당하며 의지했던 소중한 사람을 멀리 떠나 보내야 하는 이별의 아픔을 겪는다.

이러한 일들을 겪을 때마다 사람들은 불행하다고 한탄한다. 삶 자체가 온통 암울하고 무겁게만 느껴진다. 자신이 이웃보다 못났다는 비참한 생각과 미래에 대한 비관이 밀려들어 침울하고 슬픈 기분에 휩싸인다.

일상생활에서도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며 흥미나 의욕이 저하되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무기력 상태에 빠진다. 학습이나 일의 능률이 떨어지고, 대인관계도 위축되어 힘들어진다. 이러한 삶의 수렁에서 헤어날 수 없으리라고 믿으며 절망에 휩싸이면 자살이라는 극단적 행동을 시도할 수도 있다.

 

 

마음의 감기

이처럼 고통스러운 시련을 겪을 때 우울증이 찾아온다. 우울증은 삶의 여정을 걸어가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인생의 늪’과 같다. 우울증은 ‘심리적 감기’, ‘마음의 감기’, ‘영혼의 감기’ 라고 할 만큼 흔한 심리 문제로 인생의 시련기에 경험하게 되는 심리적 좌절 상태다. 또한 자살과 같이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심각한 심리 장애이기도 하다.

우울증은 부정적 사고방식과 사건 가운데 더욱 커진다. 부정적 사건을 계기로 자신을 자꾸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자기 실망, 자기 질책, 자기 비난, 자기 비하를 통해 자존감이 저하되면서 우울 증상이 나타난다.

우울증은 자신감을 저하시키고 삶의 의욕과 활기를 빼앗아 간다. 집중력, 기억력, 판단력과 같은 인지 기능을 저하시키고 사회 활동을 위축시켜 고립되기 쉽다. 이로 인해 또 다른 부정적 사건으로 확대되고, 그 결과 자신에 대한 부정적 생각이 증폭되고 자존감이 점점 저하되면서 우울증이 악화된다. 이러한 악순환이 계속되면 자연적으로 우울증의 늪 속으로 빠져든다. 다음은 그 몇 가지 예다.

 

주변에서 똑똑하고 장래가 촉망된다는 소리를 들으며 자란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여 밤을 새면서까지 지칠 줄 모르고 일했다. 그런데 능력을 인정받을수록 사무실에 있는 것이 지루하고 따분하기만 했다.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고 자주 편두통에 시달리며 한 가지 일에 몰두할 수 없었다. 매사에 짜증을 부리다 보니 염려해 주던 친구들도 하나 둘 떠나갔다. 신념과 가치도 사라졌고 피로와 탈진으로 불면증에 시달리며 평소 즐기던 것에도 점점 흥미를 잃었다.

 

이혼 후 마음을 정리할 겸 새 도시로 이사하여 일자리를 찾았다.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어 더 좋은 환경에서 즐겁게 지내는 것 같았지만 왠지 자꾸만 슬퍼졌다. 그럴수록 일에 몰두하며 부정적으로 자신을 몰고 가는 감정과 싸웠다. 그러나 불쾌감은 계속 나를 따라다녔다. 온종일 텔레비전을 보거나 자주 군것질을 했다. 친구들을 사귀는 것도 어려웠다. 깊어만 가는 슬픔과 절망감 때문에 죽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힐 때가 많았다.

 

 

인생의 늪

이처럼 우울증은 다양한 계기와 형태로 나타난다. 우울증은 누구나 빠질 수 있는 인생의 늪이다. 어떤 사람은 우울증의 늪에서 지혜롭게 빠져 나와 자신을 성장시키는 심리적 안정을 되찾는 반면, 어떤 사람은 무기력하게 허우적거리며 점점 더 깊은 늪 속으로 빠져들어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과 더 이상 정상적 관계를 맺기가 힘들게 된다.

흔히 우울증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이 소심하고 우울한 성격의 사람에게 일어나는 ‘마음의 병’ 정도로 오해한다. 우울증은 생물학적으로 세로토닌과 노르에피네프린 등 뇌 신경전달물질의 분비 이상으로 생기는 심각한 질병이다. 뇌 신경전달물질 통로가 막히거나 좁아져 신경전달물질이 부족해지는 것이 우울증 발병의 첫째 원인으로 밝혀졌으며, 실직 이혼 사별과 같은 정신적 스트레스도 주요인이다.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과 유전적 요인도 발병 원인이다.

심한 우울증이 2주 이상 지속되면서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는다는 점에서 우울증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느끼는 우울한 기분과 차이가 있다. 우울증에 걸리면 기본적인 네 가지 욕구, 곧 식욕 성욕 수면욕 의욕이 없어진다. 이 때문에 불면증 소화불량 변비 체중 감소 기력 저하 기억력 감퇴 극심한 피로감 등 다양한 신체 증상이 나타난다. 심한 경우 망상 환각 환청과 같은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때는 정신과에서 항우울제 치료를 받아 망가진 뇌의 생화학적 균형을 회복시켜 주어야 한다.

 

 

나는 쓸모 없는 사람

우울증에 걸리면 정신적으로 자신이 쓸모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시달리게 된다. 우울증 환자는 자기 존재가 아무런 의미가 없고 이웃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자신이 잘못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도 필요 이상의 책임감과 죄책감을 느낀다. 특히 여성은 모든 일에 자신을 탓하며 죄의식을 깊이 느낀다.

자살로 이어지는 가장 위험한 때는 극도의 우울증에서 조금 회복되었을 때다. 갑자기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입원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혼자 내버려 두지 말고 함께 있으면서 자살을 예방해야 한다.

자살을 결심한 사람은 대부분 자살을 감행하기 전에 ‘도움’을 청하는 경우가 많다. 주위 사람들에게 ‘확 죽어버릴까?’ 또는 ‘그 동안 고마웠다.’ 고 말하거나 아끼던 물건을 나누어 주는 행동은 자살을 하겠다는 신호다. 이 같은 신호는 ‘누구든지 내 자살을 말려 달라!’ 며 무의식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표시이므로 환자에게 민감하게 일어나는 변화의 메시지를 잘 파악해야 한다.

우울증은 위기가 찾아왔을 때 누구나 감당해야 하고 부딪쳐야 하는 변화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해 나타나는 현상이다. 달리 말하면 어떤 것을 대처할 능력이 없거나 무기력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므로 고뇌란 ‘생존을 위한 주요 방어기제’이며, 우리는 고뇌하면서 내적 문제와 투쟁한다.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우울증 증후군

우울증은 ‘전쟁이 끝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전쟁이 끝날 무렵, 패배한 사람이 두 손을 들고 기권하는 때를 말한다. 우울증 증후군은 ‘기쁨을 경험할 수 없는 상태’, 곧 삶에서 즐거움을 발견할 수 없는 상태다.

우울증에 빠진 사람은 맛있는 음식을 즐기거나 좋은 친구와 대화하는 능력을 상실한다. 누군가에게 두려움을 느끼거나 자신이 따분한 친구가 될까 봐 친근하게 다가가기를 어려워한다. 이런 상태에서는 그 어느 곳에서도 즐거움을 찾을 수 없고, 그 어떤 것으로도 고마움을 느낄 수 없다.

상담자들은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을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존재’라고 정의한다. 우울증에 빠져 있으면 아이가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와도, 아름다운 봄날 경치를 바라보아도, 직장에서 승진을 해도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 우울증이라는 장벽이 너무 두꺼워 깰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마음을 열면 기뻐할 수 있는데도 참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 감정의 흐름에 떠밀려 헤어나지 못하고 고통을 피해 달아나기 때문이다. 이런 자세로 일관하면 치명적인 공격을 받는다.

 

 

견디기 힘든 감정

우울증은 우리를 당황하게 한다. 우울증으로 인한 무기력은 짙게 갈린 안개처럼 우리를 휘감는다. 우울증은 견디기 힘든 감정으로 생기는 복합 감정이다. 자신을 혼란스럽고 짜증스럽게 하며, 이런 자신이 불쌍해 보여 애써 무시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대처할수록 삶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된다.

프로이트가 ‘파괴의 전주곡’으로 묘사했듯이, 우울증은 보통 만성 분열 증상으로 나타난다. 무질서한 정신 현상에 따른 우울증상은 어떤 경로를 거치면서 환자를 침울한 분위기로 몰아붙여 압박하게 되고, 환자는 장기간 불안감과 압박감에 시달린다.

 

 

 

2. 우울증의 여러 모습

 

여유롭고 풍족해졌으나

현대인의 생활은 한 세기 전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여유롭고 풍족해졌다. 노동 시간도 많이 줄었고, 인류를 괴롭히던 소아마비 천연두 홍역과 같은 질병은 거의 퇴치되었으며, 평균수명도 상당히 늘었다. 겉모습만 본다면 현대인은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내면을 들여다보면 사정은 전혀 다르다. 한 예로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이 50년 전보다 10배나 늘었다.

현대인이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과 외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인간한테는 비교적 바람직한 상황인데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불평하는 본성이 있다. 이러한 성향은 주어진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게 한다.최근 들어 부정적 사고방식의 영향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다.

 

 

현대 문화의 흐름

외적 요인으로 무시할 수 없는 것은 불안을 조장하는 현대 문화 흐름의 영향 때문이다. 소비를 조장하고 결과와 능력을 중요하게 여기는 후기 산업사회는 스트레스를 가증시킨다. 팽배한 개인주의도 불안을 부추긴다. 가족이나 신앙 공동체를 신뢰했던 과거에는 개인이 실패하더라도 공동체에서 힘을 얻을 수 있었으나, 핵가족이 되어 지역사회와의 유대가 줄어든 현대에는 ‘나’만이 세상을 바라보는 유일한 창이다.

실패할 경우 그 책임이 고스란히 개인의 몫이 되어 곧잘 우울증으로 이어진다. 소득이 늘어나면 행복할 것 같지만 사람들은 서로를 비교하는 문화에 익숙하여 아무리 물질이 풍족해도 상대적 박탈감으로 우울해한다. 이러 저런 연유로 현대인의 삶은 점점 윤택해지지만, 행복지수는 날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자살로 이어진 우울증 이야기를 자주 접하게 된다.

 

오랫동안 함께 살던 노부부가 있었는데, 어느 날 남편은 숨지고 부인은 크게 다쳤다. 신병을 비관한 부인이 남편을 살해한 뒤 자신도 뒤따라가려고 한 것이다. 남편은 관절염으로 거동이 불편했고, 부인은 아들이 사고로 숨진 이후 우울증을 앓았다.

 

산후 우울증을 앓던 30대 주부가 순간적 충동으로 작은 방에서 잠자던 열두 살 난 둘째 아들의 목을 졸라 숨지게 했다. 정신을 차린 그는 열세 살과 7개월 된 두 아들을 승용차에 태우고 달아나다 남편의 신고로 세 시간 만에 붙잡혔다. 그는 7개월 전 셋째 아들을 출산하고 산후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았으며, 검거 직전 수첩에 자신은 죽어도 좋다는 비관적인 글을 남기고 목숨을 끊으려 했다.

 

 

무서운 질병처럼

우울증으로 인한 비극이 잇따르고 있다. 심각한 우울증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수준을 넘어 가족을 해치거나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들까지 고통스럽게 한다. 우울증은 겉보기보다 무서운 질병이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우울증의 원인은 미움 분노 상실과 같은 부정적 감정을 억압한 결과다. 폭력 파괴성 죽음도 이에 해당한다. 부정적 감정을 밖으로 표현하지 않고 억압하여 자기 책임으로 돌린 결과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서울대 불문과 4학년 학생이 집에서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교내 상담실에서 한 차례 상담을 받은 후였다. 당시 학생 상당 업무를 총괄했던 교수는 ‘알고 보니 그 학생은 1학년 때부터 학교 정원이나 셔틀버스 타는 곳에서 옷을 벗는 등 이상한 행동을 했는데도 주변에서 모두 쉬쉬했다.’ 며 일찍 상담을 시작했다면 자살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2년간 강박증과 우울증으로 자살한 서울대 학생이 열 명에 이른다.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명문 사립대를 다니는 스물한 살의 이씨는 조울증으로 상담과 약물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고등학교 때까지는 내가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서울에 와서 보니 영어도 못하는 ‘벌레’ 같은 존재였다.” 며 심리적 고통을 호소했다. 선배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 그는 ‘스타크래프트’ 같은 컴퓨터 게임 중독에 빠져 세수도 하지 않고 5일 동안 게임만 한 적도 있다.

 

우울증은 정치 경제적으로 불안한 우리나라에서도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한국인 사이에 우울증이 늘어나는 것은 기본적으로 자기감정을 밖으로 드러내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한국 문화와 깊은 관계가 있다. 자살 강박 우울증 같은 문제로 상담 받는 대학생들도 급증하고 있다. 취업난과 장래에 대한 불안, 경쟁과 스트레스로 우울증이나 망상과 같은 정신적 고통을 받으며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교내 상담실에는 정신 질환과 심리 불안을 호소하는 학생들의 상담수가 늘고 있고, 정신 질환에 시달리다 자살을 택하는 학생도 속출하고 있다. 상담 치료사들은 대학생 정신 질환 문제를 방치할 경우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여성의 고민

놀랍게도 우리나라 주부 가운데 절반 이상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한다. 지난 10년 동안 우울증 환자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하고 남몰래 고생하는 주부들도 많다. 더욱 무서운 것은 주부 우울증이 알코올 중독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우울증은 서서히 자살을 불러일으키는 무서운 병이다. 많은 사람이 우울증을 심각한 질병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다. 환자 자신도 우울증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만 할 뿐 병원에 가서 치료받는 사람은 많지 않다.

특히 여성의 사회 참여가 비교적 적고 가부장적 문화가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는 여성에게 더 치명적인 우울증이 발생할 수 있다. 서구 사회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성의 인권이 낮은 한국 사회에서는 여성들의 쉽게 좌절을 겪는데, 이것이 우울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주부들은 남성에 비해 경제력이 약하고 일상적으로 되풀이되는 가사노동에 지쳐 쉽게 우울증에 노출된다.

 

 

급증하는 우울증

‘한국인 우울증’ 양상은 비단 여성들한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인 우울증이 또 다른 특징을 보여주는 것은 아마도 ‘청소년 우울증’일 것이다. 유년기에는 우울증 증세를 보이지 않다가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입시 스트레스를 겪으며 급속하게 확산되는 추세다. 입시에 대한 부담과 부모들의 과도한 기대가 청소년 우울증을 가져온다. 심리학자들은 한국 사회에 우울증이 확산되는 원인을 크게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장기적 격이 침체와 고용 불안이 가속화되면서 심리적 불안이 커지고 있다.

둘째, 최근 47퍼센트에 육박하는 이혼율에서 알 수 있듯이 전통적인 한국 가족 형태가 붕괴되고 해체되어 가고 있다.

셋째, 인간관계가 점점 피상적으로 변해 간다. 한국인은 개인주의 문화보다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집단주의 문화에 익숙해 있기에 인간관계가 더욱 피상적으로 변해 가는 현대 사회의 흐름은 혹독하기만 하다.

 

이와 같은 세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다른 문화권과 구별되는 ‘한국인 우울증’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한국인의 성향은 우울증과 관련해 특히 주목할 부분이다. 한국 문화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기대와 욕구가 크기 때문에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깊은 좌절을 겪으며 우울증에 빠진다. 한국인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아 주는 인지행동 치료가 우울증 치료법으로 부각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은 대부분 ‘우울하고 슬프고 희망이 없고 실망스러우며 의기소침한 기분’에 빠진다. 우울증 환자들을 만나보면 기운이 떨어져 피곤하고 나른한 증상을 호소한다. 신체 증상을 호소하는 경향은 서양인보다 동양인한테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래서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은 자신이 우울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 채 내과나 가정의학과를 찾아가기도 한다.

 

 

병적 분노

우울증이 신체 증상으로 나타나는 주요인은 ‘분노’라는 부정적 감정이다. 분노가 마음에 쌓이면 가슴이 답답하고, 뒤쳐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무언가 자꾸만 치밀어 오르는 증상이 나타난다. 분노의 감정은 신체 증상으로 이어지며, 복잡한 우울 불안 억울함 통제된 복수심을 동반한다. 분노를 표출할 적절한 출구를 찾지 못하면 짜증과 강렬한 적개심과 복수심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병적 분노는 우울한 기분과 무기력으로 나타나면서 몸에 열이 오르게 하며 우울증과 겹친다. 사람들한테서 자극을 받으며 제때에 풀지 못하고 마음 한구석에 꾹꾹 담아두거나 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는 급성이 아닌 만성 증후군으로 죄의식보다 수치심과 관련이 있는데, 수치심은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한국 풍토와 무관하지 않다.

 

 

샛길 없는 통로

우울증 치료를 위해 병원이나 심리상담소를 찾는 사람들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우울증에 시달리면서도 자신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연예인들의 자살 원인도 우울증과 불면증인 경우가 많다. 윌리엄 스타이런은 <보이는 어둠1> 에서 우울증을 ‘자살에 이르는 샛길 없는 통로’라고 했다. 우울증은 참으로 좁고 어두우며 샛길이 없는 통로와 같아 촉망 받던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다.

연예인들은 대중의 인기와 그에 따르는 부담감, 익명의 대중이 던진 비난의 화살과 고통스러운 창작 활동으로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이는 화려함 뒤에 오는 외로움을 반영한다.

 

 

 

3. 우울증이 영향을 미치는 영역

우울증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인간 존재의 세 부분, 곧 영적 정신적 신체적 영역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우울증은 대부분 감정적이고, 정신적 영역에서 시작하여 몸과 영혼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우울 반응과 우울증

보통 일상생활에서 정신적 충격을 받으면 일시적으로 우울증을 경험하는데 이런 경우 치료를 받을 필요는 없다. 슬픔이 2주에서 6개월 정도 지속되면 비타민과 보조제를 섭취하여 신체적 감정적으로 회복할 수 있다.

 

슬픈 감정

슬픈 감정이 지나치면 정서 이상 증세를 보일 수 있다. 이 장애는 우울증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지만, 그 강도가 우울증보다 덜하며 최소한 2년 동안 지속된다. 우울증과 같은 양상을 보이며, 하루 종일 우울하게 보내고 식욕부진 과식 불면증 수면과다 기력저하 피곤 낮은 자존감 현상을 보인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의사 결정이 힘들며 절망감에 시달린다.

중증 우울증은 사회생활을 어렵게 하고 자살에 이르게도 한다. 죄책감, 무력감, 절망감에 빠지며, 자신이 무가치하다고 생각하며 끊임없이 슬퍼한다. 염세적 태도로 성생활은 물론 즐거움을 주는 모든 활동에 흥미를 잃어버리고 불면증에 시달린다.

이른 새벽에 깨거나 오랫동안 잠을 자기도 한다. 피곤과 무기력을 쉽게 느끼고 체중 증감에 예민하며 행동이 둔하고 말투는 느리다. 자살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거나 초조해하며 과민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두려움과 불안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은 불안을 동반한다. 우울증 환자 가운데 80퍼센트 정도가 비현실적 걱정과 두려움, 염려와 초조, 과민 반응과 공황 발작 등 불안 증세를 보인다. 60퍼센트는 불안과 연관된 두통, 과민성 대장 증세, 만성 피로와 통증으로 고통을 겪는다. 우울증 환자의 60퍼센트가 수면 장애를, 25퍼센트가 공포증을 갖고 있으며, 15퍼센트가 초조함에 시달리고, 대략 17퍼센트가 정신 불안 증세를 보인다.

두려움과 불안은 신체와 감정 기능을 공격하여 그 기능을 저하 시키며, 영적으로 옭아매어 하느님께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 불안과 두려움은 사촌지간으로 다른 점이 있다면 불안은 유발시키는 원인이 없어도 일어나지만 두려움은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사건과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불안은 신경과민, 지나친 긴장 또는 이유가 불분명한 두려움과 같은 여러 증상으로 나타나며, 불면증을 유발시키고 안절부절못하게 하여 한 가지 일에 집중하지 못하게 한다. 불안 장애는 남자보다 여자에게 두 배가 더 많다.

 

공황 발작증

공황 발작증은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중증 불안 상태로, 종종 숨을 가쁘게 쉬고 손바닥에 땀이 나고 이유 없이 극도의 두려움을 느낀다. 이는 몸 속에 아드레날린이 과다 분비되는 것을 뜻하며 투쟁, 도피 반응으로 일어난다.

공황 발작증을 막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숨을 깊이 들이쉬는 것이다. 코로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면서 넷을 세고, 4초 정도 숨을 멈춘 다음 4초 동안 천천히 입으로 숨을 내쉰다. 공황 발작 증세가 가라앉을 때까지 이 동작을 계속한다. 비타민B 복합제와 부신 강화제와 허브(약초)는 불안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된다.

 

 

우울증과 조울증

 

원래 내성적이고 말수가 적은 37세의 박씨는 한 달 전 직장을 잃었다. 그런데 2주 전부터 가족과 이야기할 때 자기주장을 많이 내세웠다. 자신의 능력이 곧바로 대기업에 재취업할 수 있다며 평소답지 않게 큰 소리를 쳤다. 그러다 1주일 전부터 ‘배고프지 않다’며 거의 먹지 않고 잠도 자지 않았다. 사업계획서를 작성한다며 밤새 컴퓨터 앞에 앉아 있기도 했다. ‘새로운 사업을 하려면 인맥이 있어야 한다.’ 며 연락이 끊어진 동창들에게 전화를 걸기도 하고 몇 백만 원어치 물건을 신용카드로 구매해 이웃과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다.

 

27세의 문씨는 올해 초 자신이 희망하는 회사에 좋은 조건으로 스카우트되었다. 처음엔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에 강한 의욕과 집착을 보였다. 밤늦도록 사무실에 남아 일하는 것도 모자라, 집에 돌아가서도 잠을 자지 않고 일했다. 하루 서너 시간밖에 자지 않았는데도 기운이 넘치며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른다고 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곧바로 기안을 작성해 상사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그는 돌변했다. 출근 시간이 늦어졌고 퇴근 시간은 빨라졌다. 상사나 선후배 동료들에게 짜증을 부렸으며, 일을 맡겨도 의욕을 보이지 않았다.

 

이처럼 우리나라 사람 5명 중 1명꼴로 우울 증세를 보이고 있다. 우울증 환자 가운데 30퍼센트는 조울증이다. 우울 증세는 고등학생이 일반 성인보다 2배가 높은데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등 젊은 층에서 우울증이 나타나면 조울증일 가능성이 높다.

 

 

감정의 기복

조울증은 우울한 기분과 들뜬 기분과 정상적 기분이 불규칙하게 교대로 나타나는 질환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어느 정도 감정의 기복이 있기 마련이지만, 조울증과 감정 기복이 구분되는 것은 조울증의 경우 뇌의 기분 조절 기능에 문제가 생겨 병이 된다는 것이다. 조울증이란 슬퍼하거나 기뻐하는 기분을 조절하는 노르에피네프린과 도파민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에 문제가 생겨 기쁨과 슬픔을 조절하지 못하는 병이다.

이러한 조울증은 일반 우울증과 증상이 비슷하여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조울증으로 우울해진 것을 우울증에 걸린 것으로 오인하여 일반 우울증 치료를 하게 되면 증상이 더 자주 나타나거나 심해지는 등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기에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 문제는 많은 사람이 조울증을 스트레스 때문에 감정 기복이 좀 심해졌다고 생각하여 치료를 외면한다는 사실이다.

 

 

심각한 우울감과 고립감

조울증 환자의 치료가 적기에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대인관계가 어려워질 뿐 아니라 심각한 우울감과 고립감으로 자살할 위험이 높아진다. 조울증 환자의 15퍼센트가 자살을 한다. 일반적으로 우울증은 30~40대 이후에 흔히 나타나지만, 조울증은 10~20 대에 우울증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조울증을 우울증으로 잘못 진단하는 비율은 60퍼센트나 된다. 우울기보다 경조증기가 드물고 짧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 면밀히 검사하지 않으면 전문의도 우울증으로 오인하기 쉽다. 우울한 기분(울증 鬱症)과 지나치게 들뜨고 신나는 기분 (조증 燥症)이 번갈아 나타나는 조울증 환자 10명 중 7명은 정신 분열증이나 우울증으로 잘못 진단받는다.조울증에서 나타나는 우울한 증상은 일반 우울증과 똑같기 때문이다. 조울증 환자가 항우울제를 복용하면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극단적 결과를 초래하기 쉽다.

잘못된 진단으로 인한 피해는 심각하다. 열심히 치료를 받는데도 불안정한 기분으로 생활하기 때문이다. 조기에 조울증을 발견하여 약물치료를 하면 2~3년 만에 완치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10년 이상 치료를 받아야 하므로 가족의 도움이 필요하다. 가족의 협조는 환자의 증세 호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조울증을 우울증으로 잘못 진단해 치료하면 치료 결과가 좋지 않거나 재발이 낮아지는 등 경과가 악화될 수 있다. 우울증은 항우울제로 비교적 치료가 가능하지만, 조울증은 항우울제로 잘 낫지 않아 기분을 우울하게 하거나 너무 들뜨지 않게 조절해 주는 ‘기분 조절제’를 처방해야 한다.

조울증은 우울증보다 발병률이 낮다. 우울증은 여자가 남자보다 2배 높지만, 조울증은 같은 비율로 나타난다. 가족 가운데 조울증이 있는 집안에는 우울증 조울증 환자가 많다. 보통 우울증은 식욕 저하와 불면증을 보이는데 조울증은 많이 먹고 많이 잔다. 조울증은 이렇게 대처하면 좋다.

 

첫째, 일차적으로 약물치료를 통해 대뇌의 화학적 불균형을 바로 잡는다.

둘째, 규칙적으로 자고 식생활을 하는 것이 기분을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셋째, 아침에 일찍 일어나 햇볕을 많이 쬐고 걸으며 규칙적으로 운동한다.

넷째, 기분을 과민한 상태로 만드는 술은 피한다.

다섯째, 직업 학업 대인관계에서 오는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을 피한다.

여섯째, 극단적이고 부정적인 사고와 완벽주의 성향을 지향하고, 긍정적이고 객관적이며 여유로운 사고를 지니도록 노력한다.

 

 

 

은둔형 우울증

 

취업에 실패한 후 집안에서 은둔형 외톨이 증세를 보이던 20대 여성이 자살했다. 서씨는 사망 당시 컴퓨터를 켜놓은 상태였고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과 유족에 따르면 서씨는 대학을 자퇴한 후 취업에 실패하자 구직을 포기하고 집에서 컴퓨터와 집안일을 하다가 ‘은둔형 외톨이’ 증세를 보였다. 어머니는 ‘딸이 처음에는 취직자리를 알아보러 다녔는데, 면접에서 계속 떨어지자 아예 취업을 포기하고 집안일만 했다.’고 말했다. 부모님과 남동생이 출근하고 나면 그는 하루 종일 컴퓨터와 지냈다.

 

19세의 이군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자퇴한 뒤 1년 동안 하루 종일 방에서 인터넷 게임에 매달려 지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게임에 빠진 그는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는 어깨까지 머리를 기르고 세수도 하지 않고 밤새 게임을 하다가 아침에 잠들곤 했다. 주변 사람들을 경계했고 명절 때도 혼자 집에 있곤 하여 부모의 권유로 상담 센터에 다니게 되었다.

 

외톨이 현상

‘은둔형 외톨이’란 1970년대 일본에서 자살과 같은 사회문제가 된 사회병리 현상으로, 통상 6개월 이상 은둔생활을 하는 사람한테 나타나는 증상이다. 최근 은둔형 외톨이 환자가 늘어나고 있는데, 고학력일수록 은둔족이 많다. 우리나라에서도 은둔형 외톨이 증세를 보이는 사람이 3~4만 명으로 추정된다.

일본의 경우 전체 인구의 1퍼센트에 달하는 130만 명의 젊은이가 은둔형 외톨이 증세로 보고되고 있다. 은둔형 외톨이가 되는 이유는 집단 따돌림이나 취업 실패,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주로 10대 후반에 발생하지만, 요즘엔 심각한 취업난으로 20대 중후반의 은둔형 외톨이가 늘고 있다.

 

정신 질환의 원인

은둔형 외톨이 가운데 상당수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는 정신 분열이나 대인 공포와 같은 정신 질환의 원인이 된다. 심한 경우 자살을 하기도 하는데 가족 중에 이와 비슷한 증세를 보이면 즉시 전문 치료를 받아야 한다.

 

 

계절성 우울증

 

가을을 남자의 계절이라고 했던가! 흔히 가을 하면 깃을 세우고 우수에 젖은 표정으로 낙엽 쌓인 거리를 걷는 남자를 떠올린다. 가을에는 흔히 ‘가을을 탄다.’고 생각하는 남자들이 많다. 특히 직장이나 가정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30~40대 남성들한테서 이런 모습을 본다. 31세의 회사원 김씨는 가을만 되면 기분이 우울하다. 해마다 우울 증세가 나타나 ‘가을을 타는구나.’ 하고 가볍게 넘겼는데, 올해는 유난히 우울한 기분이 심하다고 한다. 무엇보다 잠을 많이 자고 식욕이 늘어나 고민이라며 정신과 상담을 받을까 생각 중이라고 했다.

 

이런 증세를 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이런 증세가 2주 이상 지속되면 우울증을 의심해 볼 수 있다. 흔히 우울증은 정신력이 약해 생기는 것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런 생각은 치료를 뒤로 미루게 하여 병을 키운다. 정신과 치료에 대한 편견으로 선뜻 병원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며, 더욱이 남자가 우울증을 앓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김씨처럼 일조량이 부족한 가을과 겨울, 또는 이른 봄에 생기는 우울증을 계절성 우울증이라고 한다. 계절성 우울증은 주로 일조량 부족으로 나타난다. 일조량이 부족하면 활력이 떨어지고 기분이 가라앉는데, 이는 갑작스런 일조량의 변화로 멜라토닌 조절에 실패하기 때문이다. 멜라토닌은 몸의 수면 주기와 생체 리듬을 조절하는 기능을 맡고 있어, 그 균형이 깨지면 수면 장애를 유발해 기분이 우울해진다.

계절성 우울증은 주로 가을과 겨울에 생기고, 세계적으로는 상대적으로 일조량이 적은 지역에서 많이 발생한다. 주요 증상으로는 수면 과다와 체중 증가와 무기력을 들 수 있다. 이는 일반 우울증이 불면과 식욕 감퇴 증상을 보이는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대인관계의 좌절, 사회생활의 스트레스, 가정불화와 같은 원인이 복합적으로 지속되면서 몸의 균형이 깨져 병을 키우게 된다. 우울증은 뇌의 생화학적 불균형에 따라 생기는 의학 질환이므로 단순히 의지만으로는 고칠 수 없다. 특히 사회적 부담감과 의무감이 큰 남성들에게 계절성 우울증이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증상이 나타난다고 무조건 병원에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감기에 걸린다고 누구나 폐렴에 걸리지 않는 것처럼, 누구나 우울한 기분을 느낄 수 있지만 모두가 치료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치료 대상이 되는 경우 보통 10~20퍼센트 정도이며, 병원을 찾아야 하는 경우는 5가지 이상의 우울증 관련 증세가 최소 2주 이상 지속될 때다. 특히 우울증을 앓았거나 가족력이 있는 경우, 알코올 중독자는 좀 더 주의해야 한다. 젊은 사람들이 걸리기 쉽고 여성이 60퍼센트 정도를 차지한다.

 

 

다양한 치료 방법

우울증의 원인은 다양하기 때문에 치료 방법도 달라야 한다. 대표적인 것으로 약물치료와 정신 치료가 있는데, 대부분 신속하게 회복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약물치료와 일상 문제를 효과적으로 극복하는 법을 배우는 정신 치료가 병행된다.

이때 정신과 의사와의 면담이 중요한데, 면담 치료를 통해 환자는 문제 해결 스트레스 해소 대인 관계 면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또한 환자는 자신의 병을 왜곡하지 않고 바른 인식을 갖도록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남자라는 이유로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중요한 것은 병을 바로 알고 치료하는 것이기에 무엇보다 먼저 자기감정에 솔직해야 한다. 스트레스를 줄이고 우울한 감정이 들면 참지 말고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해야 한다. 기분 전환을 위해 산책이나 여행을 하면서 가능하면 오랜 시간 집에 혼자 있는 것을 피해야 한다.

구체적인 치료 방법으로는 가벼운 걷기에서 오락, 병원 치료까지 다양하다. 주로 수면의 정상화를 위한 수면박탈 치료와 광선 치료를 하고,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낫는다. 무엇보다 계절성 우울증의 특효약과 예방법은 햇빛이다. 계절성 우울증은 일조량의 갑작스런 변화로 일어나기 때문에 햇볕을 많이 쬐어 인체 리듬을 정상으로 돌리는 것이 좋다.

햇빛은 정신 건강에도 좋다. 일조량이 줄어드는 가을이나 겨울에는 되도록 햇볕 쬐는 시간을 늘리고 자주 산책하며 건강을 살펴야 한다. 햇빛은 전립선암과 유방암의 위험을 줄이며 뼈를 튼튼하게 하는 데 필요한 비타민D 를 피부에서 합성시키는 일을 하기 때문에 육체 건강에도 좋다. 햇빛을 너무 많이 쬐면 피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적절하게 노출해야 한다.

 

장마철에는 일조량이 줄어들어 신체 리듬이 깨지고 체내에서 잠의 리듬을 관장하는 멜라토닌의 균형도 깨진다. 이 때문에 우울증이 악화되며 일시적 우울증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는 가을과 겨울이 되면 일조량이 줄면서 계절성 우울증이 생기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장마철은 기간이 짧기 때문에 심각하지는 않다. 기간이 짧은 장마철 우울증은 남자보다 여자에게 자주 나타나고, 어른은 물론 어린이들한테도 나타난다.

 

 

장마철 우울증

장마철 우울증을 예방하려면 불쾌지수를 낮추는 것도 도움이 된다. 에어컨으로 기온과 습도를 낮게 유지하며 한두 시간마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하고 2~3일 간격으로 보일러를 틀거나 제습제를 준비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장마철엔 과도한 음주를 피하고, 과일과 채소를 많이 먹어 충분한 수분과 무기질을 섭취하고 간단한 스트레칭과 규칙적인 식사가 중요하다.

집 안이나 사무실에서는 잠시라도 창가에서 햇빛을 쬐며, 햇빛이 날 때는 자주 산책을 한다. 날이 어두울 때는 실내조명을 밝게 하며, 낮잠을 줄이고 기상시간을 정해 생체 리듬을 유지한다.

평소 규칙적으로 운동하던 사람들도 장마철엔 못하게 되므로, 실내운동으로 평소 운동 리듬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되도록 밝고 산뜻한 색깔의 옷을 입는 것도 도움이 된다. 경쾌한 음악을 들으며 5분 정도 휴식을 취하면서 잠깐이라도 의자에서 일어나 몸을 움직이며 긴장과 피로가 풀려 한결 기분이 좋아진다.

 

 

 

 

4 우울증의 자가 진단

 

자신에게 우울증이 있는지 궁금하다면 간단한 자가 진단법을 통해 자신의 증세가 일시적 우울증인지, 아니면 문제가 될 정도의 우울증 초기 증세인지 구별해 보는 것이 좋다. 자가 진단을 통해 우울증과 비슷하다고 생각되면 빠른 시일 안에 병원을 찾아가 전문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대로 방치하면 병을 악화시키게 되고, 이는 정신과 신체 건강을 해치는 지름길이다.

우울증을 진단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는 누구나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실패와 상실(사랑하는 사람이나 친구의 죽음, 실직, 이혼, 별거, 소중하게 여기던 것을 잃어버림)로 인해 슬픔에 빠지며 기분이 가라앉아 울적해질 때가 있다.

보통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우울한 기분에서 벗어나 정상 생활을 해나간다. 이처럼 일시적으로 우울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뚜렷한 이유도 없이 우울해질 때가 있다. 이처럼 우울한 상태에서 쉽게 회복되지 못하고 점점 악화되어 전문 치료를 받아야 하는 병적 우울 상태로 진전하는 것을 우울증이라고 한다. 병적 우울 상태는 정상적인 우울 상태에 비해 6개월 이상 지속되고 심각한 학업이나 직장생활에 투신하기가 힘들며 여러 면에서 사회적 부적응 현상을 초래한다.

우울증은 다양한 증상으로 나타나며, 내용 강도 지속시간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진단해야 한다. 우울증의 일부 증상은 정신 장애 증상과 비슷하기 때문에 정신 장애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으면 도움이 된다. 우울증을 진단하기 위해서는 여러 요인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전문가의 진단이 필요하며, 함부로 우울증이라고 진단해서는 안 된다.

 

 

간단한 진단 검사

아래 항목을 읽고 요즘 며칠 사이 이런 경험을 얼마나 주주 했는지 그 빈도에 따라 ‘전혀 그렇지 않다’ 는 0 으로, ‘가끔 그렇다’ 는 1 로, ‘자주 그렇다’는 2 로, ‘항상 그렇다’는 3 으로 표시한다.

 

1. 슬프고 기분이 울적하다.

2. 외모가 못 생겼다.

3. 나는 무가치한 실패자다.

4. 나는 이웃에 비해 열등하며 뭔가 잘못되어 있다.

5. 매사에 자신을 비판하고 자책한다.

6. 나의 앞날에 희망이 없다.

7. 어떤 일을 판단하고 결정하기가 어렵다.

8. 자주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낸다.

9. 진로-취미-가족-친구 에 대한 관심을 잃었다.

10. 자신을 억지로 내몰지 않으면 일하기가 어렵다.

11. 인생은 살 가치가 없으며 죽는 게 낫다.

12. 식욕이 없거나 지나치게 많이 먹는다.

13. 불면증으로 고생하며 잠을 자도 개운하지 않거나 피곤하여 너무 많이 잔다.

14. 건강에 대해 지나치게 걱정한다.

15. 성 sex에 대한 관심을 잃었다.

 

 

채점과 해석

점수를 합한 총점 범위는 0~45 점이다.

0~10점: 현재 우울하지 않은 상태다.

11~20점: 정상이지만 가벼운 우울 상태다. 기분을 새롭게 전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21~30점: 무시하기 힘든 우울 상태다. 우울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적극 노력해야 하며, 이 상태가 2개월 이상 지속되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31~45점: 심각한 우울 상태다. 가능한 한 빨리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돈 콜버트의 자가 진단 2

만일 다음 질문에 두 개 이상 ‘예’라고 대답한다면, 우울증에 걸렸을 가능성이 높다. 주치의나 사목 담당자, 도는 정신 건강 전문의와 상의한 후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을 선택하여 실질적 조치를 취하도록 한다.

 

(1) 다음과 같은 것을 자주 느끼는가?

예 아니오: 슬픔?

예 아니오: 몽롱한 상태?

예 아니오: 비관?

예 아니오: 절망?

예 아니오: 무가치?

예 아니오: 무기력?

 

 

(2) 당신은 자주

예 아니오: 결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가?

예 아니오: 집중하기 어려운가?

예 아니오: 기억하는 데 문제가 있는가?

 

(3) 최근 당신은

예 아니오: 기쁨을 느끼던 일에서 흥미를 잃었는가?

예 아니오: 직장에서나 학교에서 문제가 있는가?

예 아니오: 가족이나 친구들과 문제가 있는가?

예 아니오: 자신을 소외시키거나 소회되기를 바랐는가?

예 아니오: 아무 힘이 없다고 느꼈는가?

예 아니오: 불안하고 과민한가?

예 아니오: 쉽게 잠들거나 숙면하지 못하고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기 어려운가?

예 아니오: 입맛을 잃었거나 몸무게가 늘었는가?

예 아니오: 두통-위장장애-요통-근육 또는 관절에 지속적 통증이 있는가?

예 아니오: 평소보다 술을 많이 마시는가?

예 아니오: 기분을 좋게 하는 약을 예전보다 더 많이 복용하는가?

예 아니오: 안전 벨트를 착용하지 않거나 부주의하게 길을 건너는 것처럼 위험한 행동을 하는가?

예 아니오: 죽음이나 장례식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가?

예 아니오: 자해 행위를 한 적이 있는가?

 

 

 

 

5 우울증은 언제 찾아오는가?

 

 

우울증은 왜 생기는가?

우울증의 원인은 무엇이며, 어떤 과정을 통해 발생하는가?

우울증은 유전인가, 환경 요인에 따라 생기는가?

우울증은 심리 장애인가, 신체 장애인가?

 

이 물음들은 우울증을 이해하는 핵심 요소다. 심리 현상이 그렇듯이 우울증을 유발하는 원인 또한 간단하지 않으며 원인에 따라 우울증의 유형도 달라진다.

 

요즘 알 수 없는 감정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직장생활을 한지도 15년이나 되는데 날이 갈수록 회사생활이 재미가 없다. 재미는커녕 점점 더 힘들어진다. 동료들은 무엇인가 열심히 하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 것 같은데 나는 그런 열정이 없다. 나름대로 인생을 설계하며 살아가는 동료들 사이에서 왠지 소외된 것 같아 두렵기만 하다. 작은 일에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집안 식구들은 모두 바쁘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할 일이 많다. 일요일에는 거의 혼자 집에 있다. 더 괴로운 것은 불면증이다. ‘이렇게 살아서 뭐 하나?’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어디서 시작 되었는지 모르지만 같이 보이지 않는다.

 

동료들한테서 느끼는 소외감, 외딴 섬에 고립된 듯한 두려움,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집안 식구들로 인해 혼자 있어야 하는 외로움으로 우울한 기분을 달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불면증에 시달리게 되고, 왜 사는지 물음을 던지며 회의에 빠지기 쉽다.

무엇보다 먼저 우울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처방해야 한다. 우리는 먼저 우울증이 사회적 감정임을 인식해야 한다. 우울한 감정은 정신적 고민이나 개인의 허약함이라기보다 변화를 촉구하는 신호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울증은 임상 병리적이며 일시적인 것이라기보다 매일의 삶에서 경험하는 삶의 일부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여러 부정적 감정처럼 우울증은 처음에는 건강한 경고의 표시로 오지만 그 증상을 제대로 이해하여 다루지 못하면 파괴적으로 몰고 간다는 것이다.

이처럼 고통스러운 신호를 거부하거나 응답하지 않을 때, 우리는 건강하지 못하고 무질서한 감정에 빠져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이처럼 건강하지 않은 환경에서 발생한 감정은 더욱 심각해져 삶을 무질서하게 만든다.

건강하지 못한 우울증은 일하고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유전적이든 심리적이든 심각한 우울증은 우리 삶을 위협하므로 적절한 약물치료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거부할 때

 

가장 쓰라린 고통

가장 쓰라린 고통은 거부당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 체험한 역기능 가정3의 부모나 부모 역할을 하는 사람, 또는 배우자처럼 서로 사랑하거나 나를 사랑할 것이라고 기대한 누군가에게 거부당할 때 그 고통은 배가되어 평생 우울하게 살아가게 된다. 우리는 거부당할 때 ‘내가 정말 쓸모 없는 사람인가?’ 라며 자신을 그 누구도 바라지 않는 무가치한 존재로 생각한다.

 

나는 정상 가정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기쁘게 살았다. 가족과 함께 성당에도 다니고 하느님을 믿으며 열심히 살았는데, 가정 형편이 어려운 친부모가 나를 더 이상 키울 수 없어 입양시켰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몹시 우울했다. 친부모에게 버림받았다는 충격으로 몹시 혼란스러웠다. 내면 깊이 숨어 있던 문제가 드러난 것 같아 침울하고 비참한 감정이 하루 종일 따라다녔으며,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가는 것만 같았다.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커다란 구멍이 난 것 같았다.

 

이 사례는 한 여성이 역기능 가정의 부모에게 거부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충격을 받아 우울증으로 고통 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여성은 자신이 가져보지 못한 사랑, 곧 자기를 낳아준 부모의 사랑에 집착했고 채우지 못한 사랑을 보상받고자 우울증에 빠져 삶을 낭비했다. 어린 시절의 감정이 되살아나 주기적으로 우울증에 빠지게 하는 부정적 감정이 스스로를 괴롭혔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가치 없는 존재라는 생각에 시달려야 했다.

사실 사랑 받아야 하는 대상에게 버림받은 후 자신이 사랑 받는 존재임을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상처를 딛고 일어서는 데는 어려움이 따르며 시간도 오래 걸린다. 역기능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를 치유하지 않으면 자신의 우울함과 두려움을 투사하여 다른 사람을 배척하고 거부하게 된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사랑하셨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까지 이러한 삶은 계속된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자신의 가치가 들어 높여진다는 진리를 받아들이기까지 투쟁해야 한다. 그 길은 험하고도 힘든 자기와의 싸움이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 보자.

 

나는 약한 몸으로 태어났다. 거의 죽을 지경이 되자 엄마는 외할머니에게 나를 맡겼고, 외할머니의 지극 정성으로 살아난 나는 여섯 살 때 부모 곁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왔는데도 왠지 부모님의 손을 잡기가 어려웠다. 동생들과도 마음을 터놓고 놀기가 힘들었고 큰 소리로 웃어본 적이 없다. 모든 것에 자신이 없었고 크게 기뻐할 일도 없었다.

학교에서 1등을 해도 시큰둥했고 사람들을 만나도 얼마 안 가서 나를 싫어할 것 같아 주눅이 들었다.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 한구석에 앉아 있는 것이 훨씬 편했다. 세상은 온통 잿빛으로 우울했고 주변의 아름다움도 바로 볼 수가 없었다. 모두들 행복한데 나 혼자 슬픈 생각을 하면서 자살한 사람들이 부러워했다.

 

 

30대 초반의 직장인 김씨는 일주일에 서너 번씩 설명할 수 없는 우울증에 시달렸다. 아침마다 아내는 활기차게 일어나 직장에 나갔고, 그는 아직 학교에 다니지 않는 딸과 시간을 보낸 후 출근하여 최선을 다했다. 밤늦게까지 일하다가 오후 4시경이면 휴식을 취하기 위해 집에 돌아왔다.

먹구름처럼 뒤덮는 우울증에 시달려 의기소침하고 안절부절못한 채 두세 시간을 소파에 누워 있기도 했다. 아내가 어린이집에서 딸아이를 데리고 올 때까지 무거운 느낌으로 늘어져 있다가 아내가 돌아오며 사소한 일로 화를 내고 분풀이를 했다. 그런데 밤이 되면 우울증이 사라지고 8시나 9시경이 되면 기분이 좋아졌다.

김씨는 부모가 이혼하자 어머니와 살았다. 교사인 어머니가 학교에서 돌아올 때까지 김씨는 언제나 빈 집을 지켰다. 그는 3시 30분에서 7시경까지 아무도 없는 빈 집에 돌아와 혼자 있는 것이 얼마나 싫고 지루한 일인지를 생생하게 기억했다.

그 공허와 적막, 외로움, 자포자기의 느낌은 종종 참기 힘들었다. 그는 상담을 통해, 일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아내가 없는 상황이 어렸을 때 자신을 돌보아 주지 않은 어머니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가 버림받지 않았다는 믿음을 회복하고 무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던 두려움을 극복하자 우울증에서 자유로워졌다.

 

 

우리 편이 되어주시는 분

사람들에게 거부와 배척을 당한다 해도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편이 되어주신다는 체험을 하면 내면의 아이가 치유된다. 순간순간 하느님께서 호의를 베푸시며 다양한 방법으로 사랑하신다는 것을 체험할 때 참자아가 회복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온전히 그분 사랑에 의탁해야 한다.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머리로 인정하고 입으로 말하면서도 일상생활 가운데서는 체험하지 못한다. 그래서 어린 시절 상처 받은 내면의 아이는 여전히 가슴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서 울고 있다.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고 살아갈 때 우리는 충격에서 벗어나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어린 시절 부모가 자신을 거부했다 해도 예수님께서 몸소 우리를 받아들여 사랑하신다는 믿음으로 살아갈 때 우리는 부정적 감정을 털어낼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면서 사랑을 회복한다. 이러한 체험은 부모한테서 채워지지 않은 상처 받은 사랑을 회복하는 데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는 유난히 몸이 약하고 마음도 여린 아이가 걱정되어 학교에 데려다 주면서 선생님들에게 잘 보살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아이들은 내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무슨 일을 하든 우리 아이를 제외시켰고 놀리며 주먹질까지 했다. 어느 날부터 아이는 밥도 먹기 싫어하고 학교에 가는 것도 싫어했다. 친구들이 모여 있으면 겁에 질린 표정으로 반대편으로 돌아가자고 했고 집에서는 침대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이 아이처럼 누구나 배척당하면 깊은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사람을 차별하면 죄를 짓는 것으로, 여러분은 율법에 따라 범법자로 선고를 받습니다.”(야고 2,9)

우리는 가끔 사랑의 법을 어기며 사는 것은 아닌지 자신을 살펴야 한다. 어둠의 세력은 서로를 배척하도록 교묘하게 충동질한다. 악마가 감정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우울증에 빠지게 할 때 재빨리 알아차려 물리쳐야 한다.

 

 

예수님을 만나는 기회

“약에 굴복 당하지 말고 선으로 악을 굴복시키십시오.” (로마 12,21)라고 한 바오로 사도의 말처럼 우리도 배척당할 때 깊은 우울증에 빠질 것이 아니라 유다인한테 배척당하신 예수님께 하소연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우리의 쓰라린 체험은 예수님을 만나는 기회가 된다.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할 때 우리는 자신에 대한 사랑을 회복한다.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를 버릴지라도 주님께서는 나를 받아주시리라.” (시편 27,10)는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삶의 전환을 이룰 수 있다. 거부당함으로써 생긴 부정적 감정을 극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예수님의 사랑으로 부정적 감정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바오로 사도는 주님의 크신 사랑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내고도 남습니다.” (로마 8,37) 에페소 3장 18-19절에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사랑이 얼마나 ‘깊고 넓고 길고 높은지’를 깨닫고 경험하도록 교회를 위해 기도했다. 그는 이 경험이 단순한 지식을 뛰어넘는 것임을 강조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보여주신 사랑을 굳게 믿고 살아간다면 사람들에게 거부당할 때 느끼는 감정을 극복할 수 있다.

 

 

실패할 때

 

우울증을 일으키는 두 번째 요인은 실패다. 우리는 성공이 삶의 전부인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 사회는 실패하지 않고 어떤 일을 이루는 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엄마는 완벽주의자였다. 부모님은 모두 명문 대학을 나왔고 사회에서도 인정을 받았으며 신상생활도 열심히 하셨다. 나는 세 남매의 둘째로 늘 언니와 비교당했다. 매사에 똑똑하고 얼굴도 엄마를 쏙 빼 닮은 언니는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했으며 집안의 자랑이었다. 손님이 오면 언니는 노래도 하고 춤도 추면서 손님을 기쁘게 해드렸지만 나는 한구석에 있다고 슬그머니 빠져 나오곤 했다. 게다가 공부도 못했다.

이런 내가 마음에 쓰였던지 엄마는 온갖 과외를 시켰으며 때로는 직접 가르치기도 했다. 그런데 엄마와 책상을 마주하고 앉아 있으면 몸이 떨렸고 어떤 때는 말을 더듬기도 했다. 그 전날 함께 풀었던 문제를 틀리면 어김없이 매를 맞았다. 날이 갈수록 나는 사람들 앞에 나서지 못했으며 집안 망신을 시키는 것만 같아 죽고 싶었다. 성당에서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땐 마음이 편한데 언니가 옆에 있으면 말 한마디 할 수 없었다.

언니는 박사 학위를 받고 대학 강사가 되었지만 나는 매번 입시에서 떨어져 간신히 전문대를 졸업하고 집에 있다. 엄마는 사람들에게 나를 떳떳하게 소개한 적이 없다. 이제는 손님이 와도 방에 틀어박혀 있다. 하루 종일 눈에 띄지 않고 있다가 식구들이 잠들면 움직인다. 이처럼 실패의 연속인 내 삶이 싫다. 언니와 나를 불공평하게 만드신 하느님이 원망스러울 때가 많다. 이런 내 삶을 돌아보면 어렸을 때부터 앞이 보이지 않는, 아주 길고 어두원 터널 한복판에 혼자 서 있는 느낌이다.

 

 

성공과 실패

이 이야기는 실패가 우울증의 한 요인임을 보여준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성공하라는 말을 주문처럼 들으며 교육받아 왔다. 역기능 가정의 부모와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는 아이를 성공주의자로 만든다. 이러한 환경에 길들여진 아이는 어떤 일에 실패했을 때 자신의 존재가 무너져 내린다고 평가하여 주눅이 들고 자신을 비하하면서 우울증에 시달린다.

순기능 가정4의 보모는 아이에게 ‘존재’와 ‘행위’를 구분할 것을 가르친다. 이러한 부모 역할을 통해 우리는 실패한다 해도 그 실패가 ‘존재’ 자체는 아니라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게 된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학원에서 돌아오는 밤길에 동네 오빠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그날따라 시험을 망쳐 나머지 공부하느라 학원버스를 놓친 것이 원인인 것 같아 자신이 초라해져 미칠 것만 같았다. 부모님은 장사하시느라 늘 새벽에 나갔다가 밤늦게 돌아오셨기 때문에 나를 보살피거나 속 깊은 대화를 나눌 여유가 없었다. 그 누구한테도 말할 수가 없었다.

혼자 뚝 떨어져 한쪽 구석에 내던져진 느낌이었다. 내 가치가 추락하여 살맛이 없었고, 내 자신이 온몸이 헤어진 누더기요 쓰레기 같았다. 사람들이 무서워 무언의 반항을 했으며 더 이상 사랑 받을 수 없는 존재라고 여기며 몸을 함부로 굴리면서 자포자기했다. 그 이후 가출도 했고 문란한 성생활을 하는 등 시궁창에서 뒹굴다시피 했다. 그럴수록 암울해져 이런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안 형편도 안 좋은데 작년에 재수를 했다. 정말 힘든 시간이었다. 수학이 싫어도 포기할 수 없어 꾹 참았는데, 한 과목을 제외하고는 고3 때도 받아본 적이 없는 점수가 나왔다.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나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며 아껴주신 모든 분께 보답하려고 열심히 했는데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수능 시험 후 모든 것을 하나씩 잃어버리는 것만 같다. 날마다 오전 11시에 일어나 하루 종일 텔레비전을 보다가 잠자리에 든다.

꿈을 잃은 폐인이 된 것 같다. 하루 종일 멍하니 우울하고 괜히 짜증만 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으름과 나태의 늪 속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무엇 하나 새로 시작할 수 없어 죽고만 싶다. 아무 생각 없이 사는 내가 싫다. 나는 상처를 많이 받고 자라서인지 사람들을 사랑할 줄 모른다.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지 못하면 친구와 어울리기는커녕 나보다 잘 사는 사람들을 미워한다. 이제 사랑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사람들을 대하고 싶다.

 

실패했을 때 찾아오는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한마디로 실패는 우울증을 일으키는 주요인으로 누구나 실패를 경험한다. 살아가면서 실패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실패하면 곧잘 무기력과 좌절감에 휩싸이며, 완전히 폐인이 된 것만 같아 하느님을 거부한다.

대학 시험에 떨어져 인생의 실패자가 된 것처럼 느끼는 것은 낙방한 사건이 존재 자체를 건드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패감을 어떻게 처리하는가이다.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한 어느 누구도 완전히 실패한 사람으로 전락하지 않는다. 어떤 일에 실패했다고 해서 인생의 실패자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 8개월 전까지만 해도 은행 간부직이었으나 지금은 완전히 실업자 신세가 되었다. 지금껏 가정의 평화를 위해 어지간한 일은 아내에게 맡기고 직장에만 전념했다. 그런데 실업자가 되자 처음 몇 달은 아내와 아이들이 친절한 듯하더니, 재취업이 되지 않자 조금씩 태도가 변했다. 이젠 노골적으로 나를 소외시키며 말도 하지 않는다. 아내는 아침 식사가 끝나면 어디론가 나갔다가 아이들이 돌아올 저녁 무렵 들어온다.

새 직장을 얻는 것이 쉽지 않다. 그렇다고 장사나 사업을 시작하자니 위험이 따른다. 나름대로 신중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내 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내가 괜히 밉고 사는 게 왜 이리 구차한지, 술을 마셔도 해결이 안 난다. 차라리 죽어버린다면 가족에게 짐을 덜어주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감정의 흐름 역시 한마디로 우울증이다. 우울증은 ‘모든 것이 저하된’ 상태, 밑바닥에서 떨어져 일어날 수 없는 상태, 아무런 희망도 없이 살아가는 상태로 기쁨과 위로와 위안을 맛보지 못하게 한다. 이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이 가장의 우울증은 몸 담았던 직장을 그만두어 생긴 것이다.

직장은 삶의 터전이기에 직장을 잃는 것은 곧 실패와 같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즉시 다른 일자리를 잡았다면 그 충격이 덜 하겠지만, 새 일자리를 얻지 못하면 기분이 저하되며 한 가정을 이끄는 가장으로서 많은 압박감을 느낀다.

여러모로 주눅이 들어 있는데 위로해 줄 거라고 기대했던 사람이 위로는커녕 잔소리를 하고 비아냥거리면 자신이 한없이 불쌍해 보여 자기 연민에 빠지고 이웃과 주변 상황에 불만이 쌓인다.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인생의 낙오자

많은 사람이 이처럼 낙담한 마음을 달래려고 술을 찾지만 술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오히려 모든 상황을 망치며 급기야 절망하기에 이른다. 우울증에 걸리면 술을 마시거나 도박-마약-애정 행각-난잡한 성행위에 빠져들기도 하지만 여기서도 해답을 찾을 수 없다. 몸과 감정과 영혼이 망가지면 마지막으로 찾는 것이 자살이다.

실패하면 누구나 자신이 인생의 낙오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명심할 것은 실패와 성공은 같은 선 위에 있다는 것이다. 성공을 지향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실패를 두려워하지만 진정한 성공은 실패를 통해 얻는다.

실패 뒷면에는 어떤 신호가 있는데, 우리는 그 신호가 주는 메시지를 알아들어야 한다. 실패에서 연유한 우울증을 잘 들여다보면 건강하게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지침이 숨어 있다. 우리는 실패를 통해 지금까지 살아온 가치와 목적을 진단-확인하고 수정하면서 그 지침을 점검할 수 있다. 나아가 인생을 허비하지 않고 실패를 예방하는 지혜도 배운다.

 

그 동안 나는 자신을 믿었다. 무슨 일이든 잘했기 때문이다. 일 앞에서 주저하거나 두려워한 적이 없다. 자신감이 가득한 나는 때때로 사람들이 하는 일을 우습게 보았다. 그런데 생전 처음 실패를 맛보았다. 받아들이기가 힘들어 어떻게 해서든 부도를 메우려고 발버둥쳤으나 결국 회사도 망하고 몸도 망가졌다.

그 당시 가장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은 실패한 자신이었다. 그때서야 나는 그 동안 외면했던 하느님을 찾았고 겸손을 배우게 되었다. 실패는 아주 짧은 시간에 나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새롭게 변화된 인격을 지니게 된 것이다. 실패하지 않았더라면 여전히 교만에 가득 차 있을 것이다. 확실히 실패는 성공의 일부다.

 

 

건강한 우울증

우리는 건강하지 않은 우울증을 건강한 우울증으로 바꾸어야 한다. 사업에 실패했다고 인생에 실패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나 홀로 할 수 있는 일, 내가 존재하기 때문에 가치를 발휘하는 일이 있다. 이러한 일은 실패와 좌절을 통해 정화되고 완성된다.

실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그 실패를 역전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다. 세상은 나를 쓰러뜨리지 못한다. 나를 쓰러뜨릴 수 있는 것은 나 뿐이며, 나를 일으켜 세우는 것은 세상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하느님께 의지할 때 실패는 약이 된다.

우리는 하느님의 눈에 우리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존재인지 잊지 말아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선택하고 감동하셨던 때를 늘 기억하신다.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주셨습니다.”(에페 1,4)

 

 

나는 너를 원한다

우리의 약함과 흠을 하시고 우리가 매번 실패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시는 하느님은 언제나 ‘나는 너를 원한다.’ 하고 말씀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에페 1,5)라는 말에서 이를 잘 알 수 있다.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 되셨으니 모든 일이 선 善으로 완성되리라는 것을 굳게 믿고 슬픔을 털어내고 즐겁게 살아가야 한다.

베드로는 능력 있는 사도로서 주님께 순명 했고, 주님께서 그를 통해 하느님 나라를 위해 위대한 일을 완성하시도록 응답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성공하여 최고의 목적을 달성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배반한 실패자였다.

바오로 사도 역시 위대한 하느님의 사람이었지만 사도들을 박해하는 데 동조한 실패자였다. 다윗은 시인이요 예언자이며 가장 위대한 왕이었지만 밧 세바를 범한 후 그의 남편 우리야를 죽일 궁리를 했던 실패자였다.

하느님께서 실패자보다 더 위대하다고 믿는 사람은 실패감에 짓눌리지 않는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약함을 통해 능력을 드러내신다. “율법이 들어와 범죄가 많아지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습니다.”(로마 5,20)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를 보살펴 주시기에 우리는 실패자가 될 수 없다. 우리는 그 어떤 실패 앞에서도 주님과 함께하면 주님처럼 변모되어 더욱 영광스럽게 되리라는 사실을 믿고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너울을 벗은 얼굴로 주님의 영광을 거울로 보듯 어렴풋이 바라보면서, 더욱더 영광스럽게 그분과 같은 모습으로 바뀌어 갑니다. 이는 영이신 주님께서 이루시는 일입니다.”(2코린 3,18)

 

 

 

상실을 겪을 때

 

우울증의 세 번째 요인은 상실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거나 사별할 때, 소중하게 여기던 것을 잃어버릴 때, 건강이나 의욕을 잃을 때 우리는 상실감에 빠진다. 이러한 심정이 계속되면 우울증 증세가 더욱 심각하게 나타난다.

 

 

남편은 대학에서 영문학을, 나는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쳤다. 아들은 의과대학에 다녔고, 딸아이는 고등학생으로 전교에서 1,2등을 다투었다. 온 가족이 성당에 나가며 남부럽지 않게 행복한 나날을 보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쓰러져 그 후유증으로 언어 장애가 왔다. 남편은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심각한 우울증을 겪으며 언어 장애로 강의할 수 없게 되었고 가족과도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어느 날 남편은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자살했다.

 

 

올해 서른셋인 딸이 심한 우울증으로 벌써 두 번이나 입원했다. 딸은 어릴 때부터 소아마비를 앓은 오빠에게 부모님의 관심과 사랑을 빼앗겼고 친구들의 놀림을 받았다. 대학 졸업 후에는 청년 성가대 반주자로 활동했고 성격도 활달해 아무 걱정 없으려니 했는데 3년 동안 사귀었던, 같은 성가대원 남자한테서 실연당하자 우울 증세가 심각하게 나타났다. 사람 만나는 것을 극도로 피하고 식사도 식구들이 모두 외출했을 때만 살짝 나와 하고 들어갈 정도였다. 지금은 하느님마저 부정하고 있다.

 

 

 

나는 어떻게 하라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나면 “이제 어떻게 살지? 평생 그 사람을 가슴에 묻고 어떻게 살아가지?” 하고 하소연할 수 있다.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며 망연자실 茫然自失 한 채 상실감에 휩싸인다. 밥맛도 없고 불면증에 시달리며 살아갈 희망도 꺾인 채 힘이 빠진다. 상실감을 겪으면 정체성과 자존감, 미래의 행복에 대한 희망이 위협받는데 이러한 상태가 우울증에 빠지게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우울증에 걸렸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 채 점점 혼란스러운 나날을 살아간다. 자주 흐느끼고 숙면을 취하지 못하며, 입맛이 떨어지고 대인관계에서도 단절을 맛본다. 영적으로 고뇌하며 지나친 열망으로 잃은 것을 되찾으려고 한다.

방에 들어가면 하루 종일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사람 만나는 것을 피하고 식구들이 모두 나간 후 살짝 빠져 나와 밥만 챙겨 먹고 들어갈 정도다. 끊임없이 죽고 싶다는 유혹을 받는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하느님마저도 부정하게 된다. 이럴 때 우울증은 영적 패배와 개인의 약함을 드러낸다. 우리는 집중력과 무엇인가를 하고자 하는 의욕을 떨어뜨리는 우울증을 불청객으로 여긴다.

 

글짓기를 가르치는 아이들 가운데 예쁜 중학생 여자 아이가 있다. 공부도 잘하지만 마음 씀씀이가 비단결 같다. 무남독녀 외동딸은 이기적이고 고집이 세다는 선입견과 달리 그 아이는 마치 동생들을 둔 것처럼 이해심도 많고 인정도 후하며 생각도 깊다. 무엇 하나 모난 데가 없다.

그런데 며칠 전 오랫동안 지병을 앓던 그 아이의 아버지가 돌아 가셨다. 전화국에 다니는 어머니가 살림을 꾸려 왔다는 것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야 알았다. 그 동안 밝고 구김살이 없었는데 이제 모든 것을 포기한 것처럼 말문을 닫아버렸다. 몇 번이나 찾아가 위로했지만 도무지 만나주지 않는다.

 

이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면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특히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만 같아 깊은 절망에 빠진다. 마음이 여리고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 시절에는 그 강도가 더 크다. 가장 신뢰했던 것이 무너지면 다른 부분도 연쇄적으로 무너져 삶의 모든 부분에 적응하기가 힘들어진다.

 

충분히 슬퍼하자

상실감으로 우울증에 빠진 사람한테는 충분히 슬퍼할 수 있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하염없이 슬프게 울 때 누군가 지지하며 지켜보아 주는 사람이 가까이 있으면 좋다. 공감하고 이해하는 마음, 어떤 처지에서도 함께하겠다는 마음이 느껴지면 마음 놓고 울 수 있다. 상실감으로 인한 슬픔은 하루아침에 사라지거나 한 순간에 잊어버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첫아이를 임신했을 때 체중이 무려 15킬로그램이나 불어났는데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대로다. 삶의 의욕을 잃어버릴 만큼 내 모습은 보기 흉하다. 남편의 권유로 동네 헬스클럽에 나가 보았지만, 유난히 내게 쏠리는 시선이 부담스러워 한 달도 채우지 못했다. 수많은 다이어트 요법이 나돌고 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다.

내 삶은 추운 겨울처럼 꽁꽁 얼어붙었고, 우울증에 거식증까지 겹쳐 내가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 모호할 뿐이다. 남편이 위로해 주긴 하지만 진심으로 고맙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딸아이는 조기 유학을 떠났고 나만 덩그러니 집을 지키고 있노라면 마치 울안에 사로잡힌 짐승처럼 존재 가치를 상실한 채 시간을 축내며 버티고 있는 기분이다.

 

 

도대체 나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15킬로그램이나 불어난 몸무게로 고민하다 결국 거식증에 빠졌다. 거식증은 우울증 증상 가운데 하나다. 비만으로 아이를 낳기 전에 간직했던 아름다운 몸매와 건강은 물론 사람들의 사랑도 잃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은 실패감을 느끼게 했고, 거듭 실패하다 보니 자신에 대해 더욱 실망하게 되었다. 이것저것 좋다는 것은 다하면서도 일이 풀리지 않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하고 되뇌었다.

식구들은 나름대로 열심히 사는데 혼자만 무기력하게 있는 것 같아 한없이 우울해졌다. 남편은 남편대로 직장생활에 바쁘고 아이는 아이대로 바빠 결혼 초와는 다른 상황에 처해 있다. 한때 목적과 가치를 두었던 상황이 뒤바뀐 것이다.

혼자 덩그러니 집에 남아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지금까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살았지? 남편과 아이에게 나는 어떤 존재인가?’ 라는 물음을 던진다. 이처럼 마음을 무겁게 하는 물음을 감당하기가 힘들면 마음을 비울 수밖에 없다. 텅 빈 집에 남겨진 자신의 모습을 보니 점점 우울해지고, 그러다 보니 내면이 메말라 온 존재가 위협받고 삶을 뒤흔드는 심각한 고통을 겪게 된 것이다.

 

 

거식증의 원인

거식증의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원인을 알고도 치유하지 않고 무방비 상태로 내버려 두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문제가 불거져 감당할 수 없게 된다. 우리 문화는 뚱뚱한 것을 거부한다. 그래서 깡마른 슈퍼모델 같은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다이어트를 한다. 날씬한 몸매는 아름다움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대중 매체는 ‘체중이 적게 나갈수록 건강에 좋다.’는 메시지를 퍼뜨린다.

거식증은 유전되기도 하지만 여러가지 복합 요인이 작용한다. 가족의 사망, 새로운 환경 적음, 대인관계에서 오는 갈등 등 여러 모습의 스트레스가 거식증을 일으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거식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문제에 직면하여 대처하기보다 문제를 회피한다.

자신에게 지나친 기대를 하는 완벽주의자들이 거식증에 걸리기 쉽다.  완벽주의자일수록 스스로에게 가혹하며 자신감이 부족하다. 낮은 자존감과 자신감은 끊임없이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려고 하며 성공이나 성취를 외적 잣대로 규정한다. 자연스러운 인간의 욕구나 쾌락보다 통제와 극기를 중요하게 여긴다. 거식증에 걸린 사람은 또한 자기 패배적 태도를 보인다. 다시 말해 문제가 생기면 무기력해지고 결과를 비관적으로 생각하며 나쁜 결과가 나오면 모두 자기 탓으로 돌린다.

유전적으로 살찌기 쉬운 체질인 사람이 과식하거나 운동을 하지 않으면 비만에 걸리기 쉽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과식이 심리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식욕이 떨어지기 마련인데, 만성 스트레스는 반대로 식욕을 증가시킨다.

상사와 갈등이 있는 직장인, 시집 식구들과 갈등이 있는 며느리, 학업이나 친구와 갈등이 있는 학생처럼 갈등을 겪는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자꾸 먹는다. 누구나 스트레스나 갈등이 뒤얽힌 복잡한 문제가 생기면 원초적으로 단순한 본능으로 해소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식욕과 성욕

가장 단순하고 원초적인 본능은 식욕과 성욕이다. 그 중 복잡하게 계산하지 않고 비난 받지 않으면서 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행위는 식욕, 곧 먹는 것을 푸는 방법이다. 스트레스나 갈등이 생기면 여성은 자꾸 음식을 먹는 것으로, 남성은 술을 마시는 것으로 풀려고 한다.

불안하고 초조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꾸 먹게 되며, 우울증이 있는 사람도 자꾸 먹게 된다. 그러다가 뚱뚱해지면 용모에 대한 자신감과 자존감을 잃게 되고 우울증이 심해지면서 마구 먹어 더 뚱뚱해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이런 사람한테는 심리 문제를 해결해 주면서 식이요법-운동요법-약물요법을 병행해야 비만치료가 성공할 수 있다.

 

 

감정에 대처하는 법

우울증으로 이어지는 거식증과 과식증에 걸린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에 대처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과식증이나 거식증은 복합적 감정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모든 감정은 자신에게 어떤 신호를 보내는 표시이기에 그 의미를 잘 알아 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기분이 몹시 우울할 때 그 이면을 살펴보면 분명 어떤 원인이 있다. 친구가 이사를 갔거나 이웃과 관계가 좋지 않거나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등 많은 원인이 있다.

우울한 감정이 보내는 신호에 대처하지 못한 채 다른 곳에 감정을 분출시키면 해결되는 일이 없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고, 텔레비전 채널을 여기저기 돌리거나 술을 마시거나 옆집 사람을 찾아갈 수도 있다.

우울한 기분을 잊으려고 감정은 그대로 둔 채 다른 일을 하다 보면 우울한 기분은 계속 커진다. 술과 음료수를 마시고, 텔레비전을 보고 옆집 사람과 이야기를 해도 우울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는다. 감정이 보내는 신호에는 언제나 어떤 목적이 있다. 그 신호를 잘 들여다보고 그 뜻을 알아들어야 한다.

속수무책으로 우울한 감정에 파묻혀 있을 것이 아니라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힘든 여정이지만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며 새롭게 시작하는 기회로 삼는다. 주어진 상황과 조건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참행복을 찾는 데 어떤 역할을 했는지 돌아보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보다 먼저 뚱뚱해진 자신의 몸을 보면서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흉한 모습이 지겨워 달아나다 보면 주정적 감정이 쌓여 자꾸만 주변을 의식하게 되고 마침내 자신마저 밀어내게 된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아야 한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전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귀 기울여야 한다.

텅 빈 집에 홀로 있을 때 커피를 마시며 연민에 빠지기보다 ‘지금까지 지나온 삶의 의미가 무엇이고 나는 누구인가?’ 라는 물음을 던져야 한다. 우울증이 깊을수록 회복되는 시간도 오래 걸리겠지만 우울증을 통해 자기 자신을 볼 수 있다.

우울증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보다 건강한 에너지를 되찾을 수 있도록 계획하며 주어진 상황에 대처해야 한다. 건강하고 신뢰할만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시간을 내어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남편이나 아이들과 나누는 것도 좋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와 희망을 둘 존재가 있어야 하는데, 그 분은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께 희망을 두면 깊은 내적 확신과 기준에 따라 살아갈 수 있다. 굳건한 바위이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 우울증과 같은 복합적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상실감을 극복하려면

아미 멈퍼드5는 상실감을 극복하는 법에 대해 이렇게 전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을 떠나

멀리 사라질 때

적당한 시간을 내라,

오로지 자신을 위한 시간을.

너무 짧지도 길지도 않게.

 

그 다음엔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라.

무엇이든 다른 것을 하라.

하지만 너무 다르지 않게

그저 조금 다르게만….

 

그림을 그리는 것도 좋다.

그림을 그릴 수 없다면

새로운 그림이라도 사라.

 

글을 쓰는 것도 좋다.

글을 쓸 수 없다면

새로운 책이라도 읽어라.

 

여행을 떠나라.

떠날 수 없다면

최소한 계획이라도 세워라.

 

그날 하루의 시편을 읽고

가장 좋아하는 구절에

밑줄을 그어라.

 

시간이 몰려올 때

다른 어떤 것을 하라!

 

 

상실감에 빠졌을 때 그 감정을 약간 떼어놓고 보는 것이 좋다. 부정적 감정에서 오는 고통을 잊어버리려고 달아나거나 고통 속에 파묻히는 것은 좋지 않다. 아미 멈퍼드의 말처럼 평소와 다른 일을 하는 것이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된다.

 

 

하느님과 나는 어떤 관계인가?

우울증에 빠졌을 때 하느님께서 어떤 관계를 바라시는지 알아야 한다. 아미 멈퍼드가 제안한 시편을 읽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부정적 감정이든 긍정적 감정이든 시편에는 어떤 감정의 흐름, 곧 우울증 환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적 흐름이 있다.

우울증에 빠졌을 때 하느님께서 우리를 받아들이신다는 것을 안다면, 하느님께 나아가 울음을 터뜨리며 하소연할 수 있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데서 오는 슬픔에 대해 하느님께 말씀 드릴 수 있다.

슬픔이 은총으로 변하는 길이 있는데, 그것은 하느님과 함께 걷는 길이다. 우울증에 빠졌을 때 하느님께서 그 한 복판에 계신 것을 안다면, 우리는 슬픔이 주는 고통을 용기를 내어 껴안을 수 있다. 물론 고통을 마주하는 기간은 저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한테는 길고 어떤 사람한테는 짧다. 아미 멈퍼드는 용기 있게 마주하며 인내롭게 기다릴 때 주님의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 말씀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한다.6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을 떠나

멀리 사라질 때

깊은 상처를 남긴다.

그때, 그 아픔의 시간은

길 수도 짧을 수도 있다.

 

그 아픔은 어제까지일까?

어떤 사람에겐 길게,

어떤 사람에겐 짧게.

 

회복의 길,

그 여정은 저마다 다르다.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을 짓누르던 깊은 상처가

이제 더 이상 떠오르지

않게 될 것이다.

 

당신은 조금 좋아졌다는 걸 느낄 것이다.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2코린 12,9)

 

인내로이 길들인 시간이 약이 된 것이다!

주님의 말씀 안에서

위로를 받고 강하게 된 것이다.

 

 

 

불필요하게 비교할 때

 

우울증에 빠지는 네 번째 요인은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는 것이다. 우울증은 내가 가지지 않은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찾을 때 나타난다. 기쁨은 내가 지니고 있는 작은 것에 감사할 때, 예수님을 주님으로 알고 믿으며 사는 것이 축복의 길임을 알 때 생긴다. 하느님께서 각자의 삶 안에서 부르심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심을 믿어야 한다.

 

어렸을 때 부모님은 옆집에 사는 친구와 나를 사사건건 비교했다. 나는 열등감에 시달렸고 그 아이에 대한 질투심으로 그 아이를 만나기가 싫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엄마는 반 아이들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내 부족함을 온 가족에게 알려 우울하기만 했다. 그러다 보니 내 안에도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장점이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고, 어쩌다 선생님께 칭찬을 들어도 그저 위로해 주시는 말씀 같아서 서글프기만 했다.

 

순기능 가정의 부모는 자신의 아이를 다른 아이와 비교하지 않으며 고유하고 특별한 존재가 되도록 교육한다. 우울증은 아이가 가지지 않은 것과 아이가 할 수 없는 것을 강요할 때 나타난다. 부모가 지향하는 가치가 그리스도 안에서 확고하게 뿌리내릴 때 아이는 비교와 경쟁의 억압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누구나 사랑 받는 존재

우리는 누구나 사랑 받는 존재다. 때로는 잘못을 저지르고 상처를 입기도 하지만, 우리는 근본적으로 사랑 받는 존재로 풍요롭게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인간은 누구나 보편적 부르심을 받았다.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들은 적이 없으며 마음에 떠오른 적도 없는 것들을 하느님께서는 당신 사랑의 부르심에 자유롭게 응답하는 사람들을 위해 마련해 두셨다.(1코린 2,9 참조) 하느님의 부르심을 깨달을 때 우리는 참기쁨을 누릴 수 있다.

하느님께서 각자의 삶 안에 부르심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신다는 믿음을 가진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고 긍정적으로 살아간다. 긍정적인 아이는 불공평한 비교를 당하며 우울하게 살아가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에겐 있고 나에게 없다면 지금 자신에게 필요하지 않거나 아직 가질 때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건강한 자아로 살아간다.

내 아이를 다른 아이와 비교하는 것은 불공평한 처사로, 부모와 아이 모두에게 옳은 방법이 아니다. 사실 많은 사람이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것을 갖고 싶어하며 그것들이 행복을 가져다 주리라고 생각한다.

 

갈라티아 장 26절에서 바오로 사도는 “잘난 체하지 말고 서로 시비하지 말고 서로 시기하지 맙시다.” 라고 가르친다. ‘잘난 체하는 것과 질투와 분노로 뼛속이 썩는 것’ 은 ‘뼛속이 타는 것’ 같은 우울증에서 드러나는 현상과 같다. ‘질투는 뼈의 염증’ (잠언 14,30)이다.

“저마다 자기 행동을 살펴보십시오. 그러면 자기 자신에게는 자랑거리라 하여도 남들에게는 자랑거리가 못 될 것입니다.” (갈라 6,4)하고 당부한다. 사람들보다 ‘더 훌륭하고 위대한 일’을 해 우월감을 가지려고 하기보다 믿음으로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 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역기능 가정과 순기능 가정

역기능 가정에서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해서 위대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지만, 순기능 가정에서는 위대한 일을 하여 우월감을 가지라고 하기보다 오로지 믿음으로 해야 할 일을 소신껏 하라고 가르친다.

 

나는 늘 누군가를 부러워한다. 속으로는 ‘그래도 저 사람이 나보다는 낫지.’ 하면서도 막상 그 앞에서는 “흥! 포상 휴가 가려고 안간힘을 쓰는군!”, “일도 못하면서 여자들에게 환심 사는 일에는 도사라니까”, “나도 네 나이라면 저런 일은 문제도 아니지, 골든 벨을 울려도 열 번은 울렸겠지.” 하면서 비겁하게 야유를 퍼붓는다. 그저 시기하고 미워하다가 사람들 앞에 서면 쥐구멍을 찾는 생쥐꼴이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인간상이 바로 나이고, 내가 가장 가엾게 여기는 사람도 나다. 이런 나를 누가 사랑해줄까?

 

비교는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도가 지나쳐 자신의 못난 점에 대해 끊임없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문제가 된다. 자만심도 문제지만 낮은 자존감은 위험하다. 육체의 건강은 물론 정신 건강과 영적 건강에도 해를 끼치기 때문이다. 자신을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겪는 감정은 다름 아닌 우울증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기보다 주위 사람들이 갖고 있는 것만 부러워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울해진다.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 늘 부족함을 느끼지만 저마다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고유함을 가지고 있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우울증에 빠져 불행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다. “왜 나는 그 사람처럼 근심을 떨쳐버리지 못할까? 왜 나는 부드럽고 자상하고 온유하지 않을까? 왜 나는 이웃처럼 손재주가 없을까? 왜 나는 몸이 약할까? 왜 나는 몸무게 때문에 많이 먹지도 못하고 늘 걱정해야 하는가?”

 

사람들은 나에게 열등감이 없으며 세상 사는 것에 대해서도 걱정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지나친 열등감으로 이웃을 피해 도망치곤 한다. 이웃과 함께 있으면 자신이 초라해 견딜 수 없다. 늘 우월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런 보탬도 되지 못했다. 맏이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미루다가 스물일곱이 된 늦겨울에 입시학원 문을 두드렸다. 그런데 경제 문제를 생각하지 못한 탓에 학원비 외에도 많은 것이 걸림돌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가정환경에서 정신적 부담을 받고 있다. 공부하고 싶은 열망과 경제 문제가 자신을 내리누른다. 이러한 환경은 낮은 자존감을 불러일으키며 기쁨과 행복에서 멀어지게 한다. 열등감이 쌓이고 날마다 초라함을 느끼며 자신을 비하하면 자신과 주변 환경에 대해 쉽게 불평하게 된다.

 

 

있는 그대로

이러한 상황에서 잠시 떨어져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자세는 건강하고 성숙한 모습이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면 먼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이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힘든 작업이다.

자신을 사람들과 비교하면 우울해지기 마련이다. 사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누구나 이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 내가 가지지 않은 것을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으며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내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때 비로소 감사할 수 있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는 없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새 출발이 자신의 삶에서 의미 있는 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세상이 정해 놓은 시간이 주관적 시간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삶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의미를 찾아 나가는 여정 또한 상대적이다. 행복도 상대적이어서 객관적 기준으로 등급을 매길 수 없다. 가진 것이 있어도 불행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진 것이 없어도 행복한 사람이 있다. 행복은 큰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에서 비롯된다. 작은 일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은 큰일에서도 행복을 느낀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잇는 작은 일부터 시작하고, 그 일을 스스로 할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

 

학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남편은 작은 거인이다. 결혼한 지 10년이 가까워 오지만 나는 한번도 남편이 왜소한 체격에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사람들 눈에 보이는 남편은 낙제에 가까운 가장이다. 평소 말없이 가만히 있어도 화난 사람처럼 인상이 험상궂고 작은 키에 몸무게가 50킬로그램밖에 되지 않으니 그 모습이 가히 상상이 가리라. 아이들한테도 주말 아빠일 만큼 일주일에 서너 번은 술자리에 가서 밤 12시를 넘어 귀가하는가 하면 어쩌다 일찍 들어와도 아랫목을 지키는 돌쇠처럼 안방에서 꿈쩍하지 않는다.

이러한 단점이 있는데도 그 모습을 무색하게 만들 만큼 감동시키는 것은 전기 배선이나 난방, 기계나 전자제품 수리 등 집안 문제를 척척 해결해 주기 때문이다. 어제도 난방기가 합선되어 불이 날 뻔했는데 재빨리 발견해 화재를 막았다. 그런 남편을 보며 나는 ‘하느님, 제 남편이 어떤 결점으로 저를 속상하게 하더라도 한 평생 사랑하겠습니다.’ 하고 다짐한다.

 

사람은 누구나 장단점이 있으므로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발휘하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면 행복해질 수 있다. 이 사례에서처럼 사람들이 가지지 않은 부분을 남편이 가지고 있을 때, 특히 어느 부분에 뛰어난 재능이 있을 때 인정해 주고 감사할 때 행복해질 수 있다.

 

 

감사하고 기뻐하자

많은 사람이 감사해야 할 때 감사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없는 부분에 대해 불만을 늘어놓는다. 그럴 때 사람들은 울울해질 수밖에 없다. 남편과 아내가 함께 기뻐하지 못하고 집안 분위기를 우울하게 만든다.

저마다 지니고 있는 장점을 기쁘게 바라보고 고마움을 표현하면 집 안 분위기가 훨씬 좋아진다. 집 안뿐 아니라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특히 자신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지금 이 순간 주어진 것에 감사할 때 삶은 더욱 충만하고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된다. 그러나 자신을 이웃과 비교하면서 가지지 못한 것을 한탄하면 우울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사람이 하나라도 있으면 집 안 분위기를 망치며 이웃의 단점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이웃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들과 스스로를 비교하면서 주주 우울증에 빠졌다. ‘왜 나는 저 사람들이 이해한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저 사람들이 아는 것을 왜 알지 못하는 걸까?’ 나보다 일 처리를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저들이 하는 것을 나는 왜 못하는 걸까?’ 하고 질투했으며, 재산이 많거나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을 보면 ‘저들이 가진 것을 나는 왜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일까?’ 하며 우울해했다. 내 관심은 남이 가진 것에 있었고,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이웃이 가졌다면서 부러워했다.

 

나는 결혼해서도 남편과 비교하면서 경쟁 상대로 만들었다. 곧잘 걱정하는 내 성격과 천성적으로 여유가 있는 남편을 비교하고 질투했다. 이렇게 늘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살았다. ‘왜 나는 다른 부인들처럼 온화하고 자상하고 순종적이지 않을까? 왜 나는 이웃처럼 손재주가 없을까?’ 하고 늘 물음을 던졌고 기쁨을 찾지 못했다.

 

불필요한 비교를 하면서 우울하게 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대인관계를 억압한다. 서로 비교하고 경쟁하며 자신을 억압하는 관계에서 벗어날 때 진정 자유로울 수 있다. 우리는 나름대로 어떤 잣대나 기준으로 사람들을 보지만, 하느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맞는 기준을 세워주시기 때문에 이웃이 삶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누구나 얼굴과 지문이 다르듯 고유하므로 서로 경쟁하거나 비교해서는 안 된다.

 

 

자기 일에 충실하자

하느님께서는 베드로가 요한과 자신을 비교했을 때 베드로에게 하셨던 것처럼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요한 21장 18-22절에서 베드로에게 고통의 시간을 맞이하리라고 말씀하시는데, 이는 베드로가 죽어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낼 것임을 암시한다.

베드로의 첫 번째 반응은 요한한테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냐고 묻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즉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있기를 내가 바란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 (요한 21,22)

이는 요한과 비교하지 말고 자기 일에 충실 하라는 말씀이다. 주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이웃과 비교할 수 없는 고유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 하느님의 부르심은 각 사람의 내면에서 들려온다. 우리는 삶의 구체적 상황 안에서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하느님의 부르심은 개인적이면서도 초월적이며 각 사람의 성장 단계에 맞도록 고유하게 주어진다. 예수님 역시 아버지의 부르심에 응답했고, 하느님은 그 뜻을 이루셨다.

 

 

 

실망하고 절망할 때

우울증에 빠지는 다섯 번째 요인은 실망과 절망이다. 우울증은 여러 메시지를 복합적으로 빠르게 전달하며 우리를 무기력하게 하거나 무엇인가를 하도록 강요한다. 악몽 같은 우울증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하며 고통스러운 진실을 가린다.

우울증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지만 감추어진 부분을 똑바로 바라보도록 자극한다. 그러나 마치 꿈이나 빙산의 일각처럼 드러난 만큼 감추어져 있어 그 이면의 메시지를 알아듣기가 어려우며 상황을 의심하게 된다.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마음에 드는 이상형 친구를 만났다. 그 애가 하는 것마다 좋아 보였고, 그 애도 내게 잘해 주었다. 우리는 잠자는 시간 외에는 늘 붙어 다닐 만큼 하루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러다 학년이 바뀌며 반이 갈라졌고, 성격이 원만한 그 애한테는 곧 새 친구가 생겼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기 때문에 혼자 지내던 나는 날마다 그 애만 바라보았고, 어쩌다 그 애를 만나면 다투다가 헤어지곤 했다. 세상만사가 귀찮아졌고 모두를 등을 돌린 것만 같아 모든 것이 실망스러웠다. 공부도 외출도 하기 싫었고 방에 처박혀 있을수록 절망감에 빠져 죽고 싶었다.

 

마음먹은 일이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을 때, 우리가 느끼는 첫 번째 반응은 실망이다. 실망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실망감을 적절히 처리하지 않으면 심각한 상태에 빠진다는 것이다.

역기능 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 실망하면 매우 불행하게 살아간다. 역기능 가정은 가족들을 불행하게 하지만, 순기능 가정에서는 실망했다 해도 그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으며 아무것도 없다 해도 희망 찬 삶을 살아가게 된다.

 

 

 

한계와 나약함 앞에서

한계와 나약함으로 기분이 좋지 않을 때 나름대로 그러한 상황을 해결하려 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먼저 자기 자신에 대해 실망하게 된다. 현재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기대하면 실망하기 마련이다.

하느님께 많은 것을 기대했다가 실망하기도 한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계획하시지도 않은 것을 기대했다가 그 꿈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실망한다. 우리는 이처럼 많은 것을 기대하며 살지만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너무 힘들다. 하는 일마다 헛수고인 것 같아 방황하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생긴 마음의 상처로 날이 갈수록 열등감이 생기고 자책하게 되며 사람들이 두렵다. 나이도 많은데 목표한 일이 뜻밖에 무산되어 그 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었다. 자신감도 잃어버려 죽고 싶다. 신앙마저 흔들린다. 신자였던 친구에게 이용당한 후 사람도 믿지 못하겠고 모든 것이 캄캄하기만 하다. 나오는 것은 한숨뿐이다.

‘나는 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기쁨이 없고 주님께 대한 확신이 없는 것일까?’ ‘내가 너무 어리석은 것은 아닐까?’ 내적 고통과 신앙 문제를 놓고 진지하게 상당하고 싶은데 도대체 어디서 누구를 만나야 하는지 모르겠다. 속내를 드러내는 것도 두렵고 피곤하기만 하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겪고 있는 고통을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실망 후 겪는 우울증이다. 우울증을 겪는 환자들의 경로는 실망-낙담-좌절-절망-자살이다.

실패했을 때 자기감정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면 실망에 빠지기 쉬우며, 그 실망은 우리를 우울증으로 몰고 간다. 실망은 우울증의 첫 번째 단계다. 우울증은 어떤 위기 앞에서 감당해 내거나 부딪쳐야 하는 변화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할 때 나타난다. 이러한 실망감에서 벗어나는 것은 자신에게 달려 있다.

오랫동안 실망하며 낙담하게 되는데, 낙담은 실망보다 더 심각하다. 형용사 ‘낙담한’은 ‘낙심한, 용기와 자신을 빼앗긴’으로 정의되고, 명사적 의미로는 ‘어떤 행위를 단념시키거나 그만두게 하는 행위, 자신감을 저하시키는 행위, 희망과 신뢰를 저하시키는 것’으로 풀이된다. 동사 ‘낙담하다’는 ‘무엇을 방해하는 것’을 뜻한다.

실망을 겪은 다음에 찾아오는 낙담은 용기까지 잃어버리게 하지만 우리는 주님을 믿기에 용기를 낼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

 

 

용기와 희망을 품고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믿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시는데, 사탄은 그 용기를 빼앗으려고 한다. 성경 말씀은 낙담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하느님께서는 선조들에게 주시겠다고 맹세한 땅을 차지하여 나누어 줄 사람은 여호수아라고 하시며 힘과 용기를 주신다.

“내가 너에게 분명히 명령한다. 힘과 용기를 내어라. 무서워하지도 말고 놀라지도 마라. 네가 어디를 가든지 주 너의 하느님이 너와 함께 있어 주겠다.”(여호 1,9)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는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하시며 어려움 앞에 낙담하여 무서워 떨지 않게 하신다.

우리는 베드로 사도의 말대로 굳건한 믿음으로 악마에 대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의 적대자 악마가 으르렁거리는 사자처럼 누구를 삼킬까 하고 찾아 돌아다닙니다. 여러분은 믿음을 굳건히 하여 악마에게 대항하십시오.”(1베드 5,8-9)

잠언 13장 12절을 보면, “이루어지지 않은 희망은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이라는 말씀이 있다. 어떤 일을 하다가 낙담하면 희망을 잃기 쉽다. 낙담한 상태에서 동시에 희망할 수는 없다. 희망을 찾는 바고 그 순간 낙담은 자취를 감추기 때문이다.

올바른 지향으로 맞서 싸울 때 우리는 희망과 낙담 가운데 어느 것을 선택할까 망설일 수 있다. 신앙인이라면 성령 안에서 자신을 극복해야 한다.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상태가 더욱 나빠져 우울증에 빠지기 때문이다.

승리를 거두고 희망의 길로 나아가려면 하느님의 말씀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을 지니고 어떠한 처지에서든지 지켜 주시겠다는 하느님의 약속을 믿어야 한다. 하느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창조하시고 구원하셨기에 하느님과 우리는 하나 될 운명임을 믿어야 한다.

낙담하면 이내 좌절하고 절망하게 된다. 다음 이야기는 우울증의 경로를 겪은 사람의 체험담이다.

 

우울증에 빠졌을 때 나는 사람들을 거부하며 벽을 쌓았고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안팎으로 문을 닫고 살았다. 슬픔에 잠겨 문을 닫아걸고 아무도 만나지 않았는데, 이러한 상태가 지나자 희망도 찾을 수 없었다. 이처럼 고통스러운 세상을 살 가치가 있는 것일까? 결국 한 가닥 희망도 남아 있지 않자 자살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좌절한 사람은 그 정도가 심하다. ‘낙담’한 모습에 대해 시편 37편 24절은 비틀거린다고 표현했고, 시편 42편 6절은 “내 영혼아, 어찌하여 녹아 내리며 내 안에서 신음하느냐?”라고 했다.

낙담 후 불안에 떠는 영혼은 희망을 잃고 암울하게 지내지만 희망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절망에 빠진 사람은 우울증에 걸린 사람과 같으며, 좌절한 사람보다 더 깊은 수렁에 빠져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절망’이라는 그리스말은 ‘방향을 찾을 수 없는, 빠져나갈 길을 찾을 수 없어 몹시 당황하는’ 상태를 뜻한다. 우울증이란 단어는 ‘풀이 죽은, 무기력한, 아주 저하된, 의기소침한, 암울한 상태’ 또는 ‘슬픔에 젖거나 용기가 없는 상태, 기력이 쇠한 상태’로 풀이된다.

희망을 완전히 잃어버린 절망은 좌절과는 다르다. 좌절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지만, 절망은 때때로 폭력을 휘두르고 복수한다. 자살을 시도하거나 자신과 이웃에게 폭력을 가사는 사람들은 심각할 만큼 깊은 절망에 빠져 있다. 기대감이 실망으로 바뀌듯 사소한 일에서 서서히 진행되다가 급기야는 목숨을 잃기도 한다.

우울증에 걸린 여인이 총기로 세 아이를 죽이고 자살한 사건이 미국에서 있었는데, 이러한 일은 자주 일어난다. 사탄의 공격은 기대에 어긋나거나 여러 면에서 실망할 때 진행되기 때문이다. 절망에 빠지지 않으려면 초기에 우울증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를 북돋아 주는 힘

우리는 누구나 날마다 기울이는 노력을 격려하고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어떤 힘을 필요로 한다. 우리를 격려하며 힘을 주는 존재가 없다면 기대했던 것이 무가치해지고 무엇을 하든 마지못해 하게 된다. 희망이 없으면 미래도 없으며, 희망하는 사람만이 변화할 수 있고 무어가 새롭게 살아가려는 결심도 하게 된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새 하늘과 새 땅’ (묵시 21,1)을 기대한다.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 (21,5)고 말씀하시는 분을 만나는 것은 믿음의 본성이다. 우리는 자애롭고 어지신 주님을 맛들이도록 부르심을 받았다.(시편 34편 참조)

이로 인해 우리는 ‘때가 찼을 때’ 아직 볼 수 없거나 상상할 수 없는 ‘어지심’을 예견한다. 우리는 분쟁과 모호한 상태, 아주 희미한 불빛 가운데서 어지신 하느님의 손길을 배운다. 그 빛은 ‘보이지 않는 실체'(히브 11,1)를 확증하며 희망하게 한다. 약속해 주신 분이 성실(10,23)하기에 그 약속은 영원하리라고 희망한다. 우리는 이러한 신앙의 전통 안에 생긴 삶 가운데 더욱 초월적인 것을 지향한다.

우울증은 육체적-정신적-감성적-영적 원인에서 비롯될 수 있다. 성경은 우울증에 빠진 여러 예언자와 왕에 대해 전한다. 다윗 왕과 요나와 엘리야가 그 좋은 예다. 다윗 왕은 죄를 고백하지 않아 우울증에 빠졌고(시편 51편) 요나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않고 불순종하여 우울증에 빠졌으며(요나 1-2장) 엘리야는 몹시 지쳐 (1열왕 19장) 우울증에 빠졌다. 이러한 상태를 성경은 ‘명망의 구덩이에서, 오물 진창에서’ (시편 40,3), ‘곤궁 속에서’ (요나 2,3), ‘두려운 나머니'(1 열왕 19,3)라고 표현한다.

 

 

부정적 감정을 긍정적으로

날마다 실망하며 살아가는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다시 일어나 부정적 감정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다. 이러한 변화가 없다면 우울증이 가져다 주는 선물, 곧 새로운 가치와 목적으로 살아갈 기회를 놓치고 묵은 가치나 실망했던 일에 매달려 급기야는 영혼과 육신이 망가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나는 이미 그것을 차지하였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한가지는 분명합니다. 나는 대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내달리고 있습니다.”(필리 3,13)라는 말씀은 살아가면서 실망하게 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일깨운다.

 

 

목표를 향해

바오로 사도는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목표를 향해 정진해야 한다고 말한다. 실망하고 주저앉기보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해 두신 곳으로 달려가야 한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제시하시는 새로운 비전-계획-생각-이상-사고방식에 마음을 모아 나아가야 한다.

이사야 43장 18-19절은 실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예전의 일들을 기억하지 말고 옛날의 일들을 생각하지 마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하려 한다.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는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 정녕 나는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리라.”

여기서 지나간 일을 생각하지 말라는 것은 지나간 암울한 일에 억눌려 지내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새 삶으로 전환할 수 있는 내적 힘을 키움을 뜻한다. “보라, 예전에 알려준 일들은 이루어졌고 새로 일어날 일들은 이제 내가 알려준다. 싹이 트기도 전에 내가 너희에게 들려준다.”(42,9)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우리 가운데 기꺼이 새로운 일을 하신다는 것을 알려준다. 하느님께서는 이처럼 늘 새로운 일을 하시는데, 우리는 낡은 것을 붙들고 놓지 않으려고 한다. 묵은 생각과 편견에 매달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비전과 꿈보다 과거의 경험, 특히 실망했던 일에 매달려 헤어나지 못한다.

 

 

하느님의 자비에 힘입어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는 그 ‘자비하심’에 힘입어 날마다 새롭게 살 수 있다. 우리는 애가를 통해 새 삶의 차원을 이해할 수 있다 “주님의 자애는 다함이 없고 그분의 자비는 끝이 없어 아침마다 새롭다네. 당신의 신의는 크기도 합니다.”(3,22-23)

우리는 날마다 찬란하게 떠오르는 아침 햇살을 맞으며 새날을 맞이할 수 있다. 어제의 실망에서 벗어나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놀라운 일을 하시도록 자신을 내맡겨야 한다. 희망은 대가를 치르지 않고 거저 얻을 수 있지만 실망은 기쁨과 꿈을 앗아가며 비싼 대가를 치르게 한다.

시편 저자는 이렇게 말하며 희망을 준다. “주님께 바라고 바랐더니 나에게 몸을 굽히시고 내 외치는 소리를 들으시어 나를 멸망의 구덩이에서, 오물 진창에서 들어 올리셨네. 반석 위에 내 발을 세우시고 내 발걸음을 든든하게 하셨네. 내 입에 새로운 노래를, 우리 하느님께 드리는 찬양을 담아주셨네. 많은 이들은 보고 두려워하며 주님을 신뢰하여라.” (40,2-4)

하느님께 희망을 두면 실망하거나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으리라고 주님께서는 약속하신다.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로마 5,5)라는 말은 실망을 겪지 않으리라는 뜻이 아니라 실망에 젖어 살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예수님 안에 희망을 두는 사람은 좋은 열매를 맺는다.

 

 

몸에 이상이 있을 때

 

우울증에 빠지는 여섯 번째 요인은 신체의 이상이다. 육체적으로 어느 부분이 잘못되어 병에 걸린 사람들은 우울증에 걸리기 쉽다. 신체적 불균형이나 과도한 피로가 우울증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우울증이 의학적 요인, 곧 화학적 불균형이나 여러 신체 기관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현명하다.

다시 말해 균형을 잃어버린 호르몬이나 몸의 화학적 요소로 인해 몸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경우라면, 악기를 연주하거나 큰 소리로 노래하는 것만으로도 우울증을 치료할 수 없다는 말이다.

 

나는 비교적 다복한 가정에서 별 탈 없이 지내온 가정주부다. 아이들도 다 제자리를 찾아가고 경제적으로도 안정을 이루어 이제는 나름대로 멋있는 중년을 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온몸에 힘이 빠지고 팔다리가 저려 병원을 찾았다. 여러 검사를 한 결과 골다공증이 심하다는 진단이 나왔다. 몸이 불편하니 기분도 좋지 않아 공연히 남편에게 짜증을 부리고 별 일도 아닌데 섭섭하고 서운했다.

호르몬제를 복용하고 운동을 꾸준히 하라고 했지만, 꼼짝도 하기 싫어 병이 나기 전보다 더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모든 것이 허망하고 어쩌다 놀러 오는 손자들의 재롱도 귀찮기만 해 왜 빨리 가지 않나 하고 생각할 정도다.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이렇게 몸이 아프고 서러운지 하느님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우울증은 마음을 괴롭혀 수명을 단축시킨다. 우울증은 죽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며 실제로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로 무기력하게 하여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까지 피곤하게 한다. 사는 것이 말이 사는 것이지 활기라고는 조금도 없다.

 

 

 

스트레스와 우울증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을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는데, 우울증도 마찬가지다. 우울증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할 수 없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우울증에 걸리게 되고, 우울한 기분은 또 다시 스트레스를 준다.

우울증은 노화 현상, 만성 통증, 당뇨병과 같은 몇 가지 대사 장애와 알코올 중독, 아토피와 같은 각종 염증성 장애, 심혈관 장애, 고혈압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울증을 치료하면 여러 장애를 예방할 수 있다. 심혈관 질환자의 우울증을 치료하며 삶의 질이 호전되고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 우울증은 장수의 적이다.

 

 

 

우울증과 심장병

우울증과 심장병은 동행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우울증과 심장병은 서로 작용하여 동시에 나타날 수 있으며, 복잡한 상호작용 때문에 어느 한쪽이나 양쪽 모두 진단되지 않은 채 지나칠 수 있다. 우울증은 몸과 마음에 영향을 미쳐 혈압이 올라가고 심장 박동이 불안정해지고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량이 증가해 심장에 부담을 준다.

만성 우울증이 있는 사람은 당장은 심장병이 없어도 심장병에 걸릴 확률이 높고, 과거에 우울증을 앓았던 사람에게 심장병이 생기면 우울증이 재발할 수도 있다. 심장병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는 환자에게 우울증이 있는지 쉽게 알지 못하며, 환자 자신도 우울증에 걸린 사실을 알기 어렵다.

서글픈 기분, 일상사에 대한 관심 상실, 절망감, 피로감, 식욕 상실 등이 우울증 증상인데, 심장 질환자는 이런 증상을 심장병 탓으로 돌려버린다. 심장 질환자들은 일반인에 비해 우울증 발병률이 현저히 높으며, 특히 심장마비에서 살아난 사람들의 우울증 발생률이 3명 가운데 한 명꼴로 나타난다. 이는 일반 성인 20명 가운데 한 명꼴로 발병하는데 비해 높은 수준이다.

우울증이 있는 폐경기 여성은 과거에 심장병을 앓는 일이 없어도 심장병이 발병하거나 심장병으로 사망할 가능성이 우울증이 없는 여성보다 50배나 높다. 심장동맥이 막혀 수술이나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한 사람 가운데 절반이 우울증을 겪는다.

 

 

독소 덩어리

세상에는 독소가 많다. 중금속을 함유한 물질이 날마다 섭취하는 음식과 물과 공기를 통해 몸 속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우리는 매우 위험한 독소에 노출되어 있다. 청소나 빨래할 때 쉽게 사용하는 세제가 피부를 통해 흡수되어 지방 조직에 쌓이다.

날마다 기본적으로 먹는 기름진 음식과 각종 야채에도 농약 성분이 들어 있다. 농약도 지방 조직 안에 쌓인다. 이처럼 우리 몸에 들어온 독소는 지방조직, 신경조직, 뼈와 기관에 쌓인다. 작은 독소들이 큰 독소 덩어리가 되면 피곤과 우울증을 유발한다.

 

 

정민이는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했다. 예정일보다 한 달 정도 일찍 태어난 정민이는 엄마와 헤어져 3주일을 병원에서 보내야 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툭하면 병원 신세를 져야 했기 웃을 일이 없을 만큼 웅크리고 살았다.

학교에 입학하고서도 늘 엄마와 함께 다니는 것이 부끄러웠고, 마음대로 뛰놀지 못하는 정민이는 처량하고 시무룩해 말도 하지 않았다. 밥을 먹거나 공부하는 것도 싫었다. 무엇 하나 특별히 좋아하거나 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 혼자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며 누워 있거나 멍하니 있는 정민이가 걱정이 된 엄마는 정신과 상담을 받게 했다.

 

어렸을 때 영양 섭취나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면 우울증에 빠지기 쉽다. 신체적 불균형이나 과도한 성취를 강요 받아도 우울증에 빠질 수 있다. 쉴 틈도 없는 공부와 과제로 스트레스를 받아 에너지가 소진되어도 깊은 우울증에 빠진다. 물론 이때 필요한 휴식과 영양분을 섭취하면 회복할 수 있다.

이처럼 우울증은 심리적 요인뿐 아니라 신체적 요인으로도 비롯되므로 제때 검사하여 기질적 발병 요인을 찾아야 한다. 신체적 증상으로는 약물 반응, 갑상선 기능 저하, 빈혈, 영양실조, 알코올, 약물 남용, 당뇨병, 만성 통증, 암, 심장병, 류마티스 관절염, 수면 장애 등이 있다.

 

 

우울한 노인

우울증이 나이와 관련한 인지 능력의 감퇴를 가속화한다. 우울한 노인이 우울증이 없는 노인에 비해 가벼운 인지 손상을 일으킬 확률이 많다. 우울증이 심하면 인지 손상도 크다. 나이 많은 환자들은 우울증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 쉽다. 기억상실이나 슬픔이 정상적인 노화 현상이고 단순한 노인성 치매의 초기 증상이며 알츠하이머로 발전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알츠하이머는 뇌 기능 손상으로 기억-판단-사고-언어-사회성 장애를 보인다. 쉰 살 전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으며 인식 기능이 완전히 소실되기까지는 몇 달 또는 5년 정도 걸릴 수 있다. 노인성 치매는 회복하기 힘들지만 노년기 우울증은 회복될 수 있다. 그러므로 적절한 치료를 위해 정확한 진단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6 중년기 우울증

 

‘중년’이라는 말은 정확하게 숫자적 의미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중년이란 나이가 들어가는 것과 각종 기능 저하뿐 아니라 성장 발달을 포함한 인생 과정의 중반을 말한다. 흔히 40~60세 또는 65세를 중년으로 본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35~50세가 중년 시기다.

중년은 삶의 주기 중 가장 긴 시기이다. 유년기는 12~15년 정도 지속되며, 청년기도 이와 비슷하다. 초기 성인기는 10년 정도 지속되며, 중년은 한 세기의 4분의 1에 해당된다.

중년기에 접어든 사람들은 자신이 겪은 어린 시절과 청-장년기 동안 겪은 것만큼이나 많은 변화를 겪는다. 그 동안 수많은 변화를 겪었는데도 막상 중년기가 되면 변화에서 오는 충격으로 당황스러워한다. 갑작스런 삶의 변화와 무심코 지나친 것들에 눈을 뜨기 때문이다. 삶의 변화 가운데 가장 큰 변화는 시시때때로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인식이다.

이 시기에는 누구나 최소한 지난 일을 뒤돌아보고 성취하지 못한 젊은 시절의 꿈이나 열망을 후회하면서 지금껏 살아온 생활 방식에 물음을 던진다. 재미와 행복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에 의문을 가진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중년의 위기에 주어진 상황을 필사적으로 극복하려는 사람들은 한때 누렸던 젊음을 되찾으려고 하지만, 이 모든 행동은 쓸모 없고 파괴적일 뿐이다. 이러한 위기에 때맞춰 겪는 것이 바로 우울증이다.

 

 

 

중년의 위기와 우울증

 

큰딸이 벌써 스물셋, 아들이 열아홉, 작은 딸이 올해 열일곱이 되었으니 중년인 나도 서서히 노년으로 접어들고 있다. 아이들은 건강하게 잘 자랐고 남편은 능력도 있고 성실하다. 겉보기에 평온한 가정을 꾸리는 것 같은데 차마 드러내기 힘든 그늘이 있다. 하나 뿐인 아들이 인터넷 게임에 빠져 한 달에 한두 번 집에 들어올까 말까 한다.

최고 학벌에 줄곧 1등만 한 탓인지 언제나 자기주장이 옳다고 우리는 남편과는 이 문제를 상의하지도 못한다. 남편은 반항적이고 파괴적은 아이들 행동에 관대한 편이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갈수록 제멋대로 행동하며 공부에는 관심이 없다. 남편에 대한 미움과 답답함, 거리감과 실망, 아이들에 대한 원망이 힘들게 하는데도 나는 용기를 내어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중년기에 흔히 겪을 수 있는 문제에 부딪쳐 힘들어 하고 있다. 어렸을 때와는 달리 자기 고집대로 하는 자녀들과 회사에서는 중견사원으로 자리 잡았고 집에서는 일방적으로 명령하는 남편 사이에서 지금껏 인내하며 잘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중년에 접어들면서 상황이 많이 뒤바뀐 것이다.

중년기에는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물음을 놓고 고뇌할 때가 많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 때문에 살아왔는가?

자식에게 나는 무엇인가?

남편에게 나는 무엇인가?

진정 나는 누구인가?

아이들은 갈수록 제멋대로이고, 대화할 수 없는 남편은 바라볼수록 고통스럽기만 하다. 평화를 깨뜨리고 싶지 않아 그저 침묵하고 있으려니 갈등이 이만저만 이 아니다. 남편이 두렵고 아이들에게 더 큰 실망을 할까 봐 미리부터 겁을 먹고 있는 자신을 보면 더욱 갈등하게 된다.

내면에서 들려오는 ‘아니오’라는 소리에 응답하지 못하는 무기력함을 보면서 또다시 갈등한다. 부정적 감정으로 답답하면서도 용기를 내어 문제를 드러내 놓고 해결하지 못한다. 부딪치기에는 지금까지 쌓아 온 벽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숨기지 말고 드러내자

무엇보다 먼저 거짓 평화 밑에 숨어 있는 것을 드러내야 한다. 그것들은 그대로 내버려 둘수록 골이 깊어지기 때문이다. 부정적 감정은 고뇌와 고통을 동반하지만,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변화시키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환경을 변화시키려면 나부터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부정적 감정을 긍정적으로 전화하는 내적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지금 이 순간에 느끼는 미움-답답함-실망스러움-원망스러움과 같은 감정을 먼저 존중해야 한다.

오늘 아침 남편이 마음에 상처가 되는 말을 툭 던지고 나갔다면, 분명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분이 나쁜 이유는 남편이 한 말 때문임을 인정해야 한다. 왜 기분이 나쁜지 그 이유를 파악하지 못하며 하루 종일 나쁜 감정에 휘말리게 된다.

며칠이 지나도, 몇 달 또는 몇 년이 지나도 무의식 속에 있는 감정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하면 겉으로는 평화스러워 보일지 모르지만 마음 한 구성에 기분 나쁜 감정을 지니게 되고, 그 영향을 받으면 깊은 수면 상태에 있는 무의식으로 인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다.

 

 

감정의 뿌리

무엇이 그토록 나를 미움과 답답함과 실망감에 짓눌리게 하는지 그 감정의 뿌리를 찾아야 한다. 물론 그 뿌리가 깊어 찾지 못할 때도 있겠지만, 현재의 감정 상태를 존중하며 잘 들여다보면 무질서하게 자리 잡고 있는 감정이 여기저기 파묻혀 있음을 알게 된다. 내면에 자리한 감정에서 도망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친근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을 때까지.

답답하다고 해서 괜히 친구에게 이야기를 꺼내거나 분위기를 바꾸어 텔레비전을 보면서 잊어버리려 하면 감정을 해결할 수 없다. 답답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정체를 파악해야 한다. 그 안에는 메시지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원래 삶을 좋은 것으로 변화시키려는 신호가 들어 있다. 괘도를 잘못 돌거나 다른 방향으로 가려고 할 때 경고하기도 하는 감정은 사회성을 지니기 때문에 관계의 변화를 요구하는 신호를 잘 살펴야 한다. 다시 말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변화를 요구하는 신호를 잘 알아듣고 건강한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이러한 작업을 하지 않으면 차곡차곡 쌓인 부정적  감정이 자꾸만 떠올라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된다. 감정은 묶어두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힘으로 건강한 행동을 하도록 물꼬를 트는 것이다. 감정은 상황을 보고 느끼고 행동하게 하므로 무엇보다 먼저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그 느낌은 강한 힘을 지니고 있어 건강하게 사용하면 자신은 물론 주변을 변화시킬 수 있다.

 

 

 

중년기 위기의 원인

 

삼십 년 넘게 살다 보면 여러 모습으로 겪어내야 하는 중년의 위기가 있다. 중년의 위기는 본질적으로 자기 존재에 대한 깊은 회의에서 시작되며 새로운 기회를 탐색하도록 이끈다. 젊음이 끝나고 나이가 들수록 이러한 회의가 강하게 일어난다. 인생에 만족하지 못하고 남은 시간으로 더 나아질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남성의 경우 젊은 시절에 했던 행동을 되풀이하며, 여성의 경우 연하의 남자와 사랑에 빠져 젊음을 되찾으려 하기도 한다.

삶의 모든 단계에는 위기라는 잠재 요소가 숨어 있다. 각 단계에 따른 변화에 적응하려고 노력하지만 위기를 피할 수는 없다. 중년기에 처한 많은 사람이 탈선하는 것을 본다. 극적으로 충동적으로 새로운 행동을 찾으며 이웃에 해를 입히기도 한다.

중년의 위기가 남성한테만 해당되는 현상이 아닌데도 주로 남성들이 위기에 빠진다. 술과 마약과 도박에 빠지거나 혼외 정사 등 새로운 흥미와 자극을 추구하기 위해 결혼생활을 포기하기도 한다. 엄청난 유혹이 도사리고 있어 죄지을 가능성이 많다. 거룩하고 소중한 것을 버린 채 방황하고 갈증을 느끼며 고통과 슬픔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다. 충동적이고 지혜롭지 못한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중년의 위기를 더욱 복잡하게 하는 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부정적 생각과 평가 때문이다. 중년의 위기로 고통 받는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위기에 처해 있음을 알지 못한다. 누구나 이 나이 때 겪은 자연스런 변화이며, 기분이 우울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가던 길을 멈추고

때때로 우리는 과거를 재평가하기 위해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 보아야 한다. 이러한 재평가는 앞으로 다가올 삶을 그려보게 한다. 중년기에는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기던 것에 물음표를 던지게 되며, 자신이 세워놓은 목적과 의미가 무너져 내린다. 바로 이때 ‘중년의 위기’를 체험한다. 무엇을 느끼든 중년의 위기에 처하면 우울증이 생긴다.

심리학자들은 중년의 위기를 ‘상징적 죽음’ 또는 ‘허물어지는 지붕’이라고 한다. 그러나 중년의 위기를 잘 보내면 더욱 활기차게 살아갈 수 있다. 누구나 나름대로 한계와 유한성에 다다르기 마련인데, 한계 앞에서 그리스도를 따를 때 우리는 지혜와 용기는 물론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소명의식을 가질 수 있으며 중년이 풍요롭고 만족스러운 시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중년기 이후에도 할 일은 많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욱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 지난 일을 후회하고 비난하며 정체되기보다 땀과 노동의 열매를 수확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중년기 위기를 맞았다고 성적 자유를 갈망하거나 가족에 대한 의무감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것은 아니다. 조용하고 차분하고 도덕적으로 위기를 맞이하는 사람들도 있다. 신앙심이 깊어지며 윤리적-도덕적으로 살아가려는 욕구가 생긴다. 결혼생활도 굳건하며 부부의 사랑에도 생기가 있다.

그러나 자신이 하던 일에 대한 환상이 깨지고 자신이 세운 목표를 이루었는지 의문을 품게 되면 우울해진다. 늙음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다시는 되찾지 못할 젊음, 성기능 저하로 우울해지기도 한다.

 

 

여섯 가지 원인

중년기 위기의 원인을 다시 한 번 정리해 보면, 첫 번째 원인은 가치관의 위기다. 중년기에는 청소년기에 고민했던 문제, 곧 인생의 의미와 물질적 만족에 대한 의구심을 다시 갖게 된다. 십대에 가졌던 ‘나는 누구인가?’ 라는 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다시 던지며 자신의 존재와 외로움을 극도로 예민하게 자각한다.

이는 놀랍고도 영적인 경험이다. ‘신사춘기’라고 불리는 이 시기 동안 십대에 가졌던 것과 똑같은 문제에 새롭게 직면한다. 청소년기에 가졌던 심각한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면, 언젠가 똑같은 의문이 다시 고개를 내밀게 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원인은 배우자와의 위기다.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생기는 변화는 중년기 위기를 촉발한다. 아이들을 기르는 기간이 지나면 부부는 멀어지기 쉽다. 한집에 살면서도 더 이상의 친밀감이 없다. 그 동안 모르고 있었거나 보지 못했던 배우자의 모습에 새삼 놀라며 낯설어 한다. 이때 결혼생활의 위기가 시작된다.

세 번째 원인은 자녀에 대한 위기다. 중년기 부모는 자식들이 커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꿈이 두려움으로 변하고 지금껏 생각해 온 것이 깨지기 시작한다. 많은 시간을 자식을 돌보는 데 바친 어머니는 삶의 목표에 큰 오차나 간격이 생겼다고 여긴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하나 둘 집을 떠나고, 예전에는 함께 의논하던 것을 각자 나름대로 하는 행동에 적응하기가 힘들다. 자녀들은 부모와 함께하는 것을 거절하기도 한다. 이제 더 이상 자녀들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삶의 목표도 마음먹은 대로 이루지 못한다.

네 번째 원인은 직업의 위기다. 대부분의 성인에게 일은 단순히 경제적 안정을 주는 것을 넘어선다. 일은 삶의 의미와 목표를 추구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중년기에는 목표와 꿈을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게 재검토해야 한다. 성공을 지향하는 문화는 재산, 자신의 가치, 미래에 대한 전망과 부딪친다. 아무리 성공을 거두어도 무언가 불만족스럽기만 하다. 그런데도 중년은 삶에 변화를 가져오는 좋은 기회다. 그 동안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한 사람들이라도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다.

다섯 번째 원인은 노부모와의 위기다. 중년기에는 역할 전환이 일어난다. 더 이상 자식들을 돌보지 않게 되어 자유로움을 느낄 무렵 새로운 의무, 곧 연로한 부모를 모셔야 하는 의무가 생기기 때문이다. 부모가 고령일수록 신체적으로 약해져 아이들처럼 무기력해진다.

부모를 모셔야 한다는 의무감이 무거워질수록 자유는 상실되고 무언가에 억압되고 통제 당하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경제적인 면은 물론 사회생활과 대인관계를 돌보아 드려야 하며 병원이나 치과에도 모시고 다녀야 한다. 이 모든 것이 무시무시한 짐과 같아 달아나고 싶은 충동을 느끼면 우울증으로 시달릴 수 있다.

여섯 번째 원인은 떠나 보내야 하는 위기다. 중년기의 숙제 가운데 하나는 젊음이 지나갔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카를 융은 인생을 아동기-청년기-중년기-노년기 네 단계로 보았다. 이 가운데 청년기에서 중년기로 넘어갈 때 가장 뚜렷한 차이가 나타난다. 외부 지향적인 것에서 내부 지향적으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환은 완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찾아온다. 학교에서도 도움을 받지 못하고 부모의 지도나 지지도 없다. 외로운 시기이며 상실의 가능성도 크다. 활기차고 풍요로우며 기회가 많은 젊은 시기를 벗어나 현실적이고 험난한 중년으로 성공적으로 건너가려면 비현실적 기대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중년은 아동기와 청년기의 집착을 교정하는 적절한 시기다.

 

 

한계와 전환

중년이 되면 자신의 한계를 알아야 한다.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형태의 전환, 곧 ‘마음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그 동안 걸어 온 곳으로 되돌아가려 하거나 젊음을 붙잡으려고 하면 중년기 위기를 유발시켜 우울증에 빠지기 쉽다.

흘러 보내는 것에 성공하면 앞으로의 삶이 더욱 수월해진다. 삶의 후반기를 특징짓는 ‘떠나 보내기’의 필연적 순환이 시작된다. 떠나 보낼 줄 알면 새롭게 얻을 수 있는 것도 많다. 더욱 깊은 내면의 가치가 포기한 자리를 되며, 이를 토대로 더욱 건강한 노년으로 나아갈 수 있다.

 

 

 

 

새로움에 대한 도전

 

 중년기의 변화와 위기를 마주하면서 우리는 혼돈을 느끼고 우울증에 빠질 수 있다. 그 동안 걸어온 삶의 방식이 무너지고 삶의 형태를 친숙하지 않은 것으로 바꾸라는 위협과 도전을 받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이러한 도전을 거부하며 잃어버린 통제를 되찾으려는 유혹도 받는다. 신비로운 존재와의 관계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며 성장하는 과정을 견뎌내라는 초대를 거부한다.

우리 문화에서는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많은 사람이 이러한 위기를 곧잘 거부한다. 날이 갈수록 우리는 ‘생존 기능’이 저하되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잘못된 길로 치달으며 한계와 불학실함을 느낀다. 친했던 사람이 죽고 아이들이 새로 태어나며 의식의 수면 아래에 있는 궁극적 의미에 대해 물음을 던지면서 우리 삶은 조금씩 변화된다.

한번도 겪어 보지 않은 ‘한계의 위기’에서 비롯되는 이탈과 전환은 내면을 탐색하며 물음을 던지게 한다. 이전에 투신했던 일에 대한 비중과 의미가 달라진다. 십자가의 성 요한을 비롯한 영성가들은 이러한 과정을 영적 ‘어둠’에 비유하기도 한다.

해가 갈수록 병이 잦고 거동이 불편해지며 기억력이 없어진다. 쉽게 지치고 고혈압과 치아 문제로 어려움을 겪으며 피로나 질병에서 회복되는 시간이 더디다. 어른은 젊은이보다 급작스런 질병에는 덜 걸리지만 만성 질환에 시달린다.

 

 

풍요로움과 외로움

중년기에는 경제적으로 최고의 소득을 올려 금전적 풍요를 누리게 되어 경제적 풍요로움을 즐긴다. 중년기에 따른 긍정적 결과는 이 시기를 더욱 빛나게 하는데, 이것은 대체로 한 개인의 성숙도, 곧 그 동안 자신의 삶을 얼마나 잘 관리했는지, 변화에는 얼마나 잘 적응했는지에 달려 있다.

중년기에 외로움을 겪을 가능성도 크다. 나이가 들수록 운동량은 물론 사람들과 함께할 기회가 줄어든다. 결과적으로 친교를 나누는 기회가 줄어들어 외로움을 겪는다. 깊은 내적 자원을 소유한 사람들만이 홀로 지내는 시간과 외로움을 적절히 조절할 수 있다.

중년기에 처한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외로움을 경험한다. 결혼은 일반적으로 외로움을 감소시키는데, 그 효과는 남성에게 두드러진다. 미혼 남성이 기혼 남성보다 외로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여성은 결혼을 했든 하지 않았든 두 극단 사이에 들어간다.

30대 초반에 이른 기혼 여성들은 실제로 미혼 여성이나 기혼 남성보다 우울증에 빠질 위험이 더 많다. 어린아이들을 돌보며 집안에서 지내는 주부 가운데 42퍼센트가 치료를 요하는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결혼한 지 5년째 되는 20대 후반의 가정주부다. 남편은 결혼 후 직장생활로 날마다 늦게 들어와 우울하기만 하다. 네 살 난 딸아이와 하루 종일 같이 있으면서 빨리 내년이 와서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무언가 할 일을 찾아보려고 한다. ‘나는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인가?’ 하고 생각할 때가 많다. 기분전환이 필요한데 남편은 시간이 없다. 남편도 힘들다며 가족과 함께 쉬고 싶어하면서도 집에 오면 텔레비전 앞에만 있다. 뭐라고 한마디 하면 회사에서 스트레스 받는데 집에서도 내 마음대로 못하느냐고 한다.

 

 

여성은 남성보다 더 이른 시기에 중년을 맞이한다. 아이가 있든 없든, 혹시 있다면 아이들이 독립하는 시기에 중년기가 찾아온다. 여성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압박감을 느낀다. 차별당하는 여성이 겪는 어려움은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 여성으로서 맺어야 하는 인간관계, 곧 부모, 배우자와 시부모, 친구들과의 관계 안에서 느껴야 하는 고뇌가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칫 여성들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문제 앞에서 관계 자체에 대한 갈등에 직면하기보다 자신의 모습을 비판하고 수정하려고 한다. 이로 인해 쉽게 죄의식에 빠진다.

우울증에 빠진다는 것은 이처럼 부정적이고 당혹스럽게 만드는 감정에 빠져들어 감을 뜻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잘못인 줄 알면서도 죄의식 때문에 자신을 몰아붙인다. 관계가 나빠지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에 잘못을 뒤집어쓰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아주 위험한 처신이다.

 

 

인간적 약함과 열등감

우리 문화는 여성들이 의존하고 애착하는 성향을 ‘약함’의 표시라고 잘못 해석한다. 남성과 여성을 차별시키는 남성 중심 문화는 서로 협력하기보다 자율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는 불평등을 조장하며, 여성들은 도움이 필요한데도 도움을 청하는 것을 꺼린다. 자신을 강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여성은 스스로를 ‘상대방에 의존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자신이 부족하고 열등하다고 느끼면 쉽게 자신을 비난하며 우울증에 빠진다. 이때 생기는 우울증은 부모와 배우자 또는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상실감 때문이 아니라 참자아 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환경에 저항해야 한다.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면서 자신을 부정하고 죄의식에 빠지면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좋은 아니’가 되어야 한다는 문화적 요구는 이러한 딜레마의 한 예다. 많은 여성이 배우자 보필을 첫 번째 역할 수행이라고 생각하며 혼인관계를 맺는다.

 

한편 남성은 주는 사람으로서 가정 밖에서의 역할에 중점을 둔다. 결과적으로 남성은 가정의 정서를 원활하게 하는 분위기를 조성하지 못한다. ‘좋은 아내’라는 목표에 이르려면 여성은 분쟁을 피하고 화가 나도 참아야 하며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과 지니고 있는 꿈을 뒤로 미뤄야 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여성은 자신이 무시당하여 자기 가치가 추락한다고 생각하며 자신을 괴롭히며 갉아먹는다.

여성들은 선택권을 주지 않는 사회 분위기에 동조하며 자신을 경멸하는 좌절의 악순환 속에 살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이와 같은 문화적 역동성은 오늘날 많이 여성에게 퍼져 있는 우울증의 원인이다.

남성은 여성보다 다소 늦게 자신이 하는 일에서 성공과 실패를 경험한다. 중년기 남성들은 직장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그들은 경쟁자이기도 한 동료들과 지나치게 친해지면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혼 수치에서 드러나듯이 결혼생활에서 오는 만족도는 낮다. 그러나 이혼한 사람들은 가정을 꾸리며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보다 정신적-육체적 질병에 걸리기 쉽다. 이혼은 외로움을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변화

성장하고 변화하는 과정이 저마다 다르기에 배우자가 결혼할 때와는 상당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누구나 변화하기 마련이지만 그 변화가 늘 상호보완적인 것은 아니다.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거나 자신을 대면하는 데 두려움이 따를 수도 있다. 한편 이혼자의 절반 정도가 1년 이내에 새 짝을 찾고 4분의 3이 3년 이내에 재혼한다는 통계를 보면, 이혼을 했다 해도 상당히 빠른 기간 안에 결혼관계를 회복하는 것 같다.

40대 후반 이후의 남성들은 해고되거나 조기 은퇴를 강요 받아 친구를 잃는 경우가 있다. 갑자기 늘어난 여가를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 몰라 힘들어 한다. 사업을 하거나 전문직에 있는 동녀배들은 여전히 아침이면 어디론가 나가는데, 딱히 나갈 곳이 없는 중년 남성들은 집에 남아 점심을 혼자 차려 먹으면서 비참하다고 느끼며 우울한 감정을 키운다.

성생활을 원활히 할 수 없다는 두려움은 중년 남성들에게 심각한 문제다. 사실 성생활을 불가능하게 하는 원인은 나이뿐만 아니라 과도한 술과 약물 복용과 늘어나는 스트레스다. 만성 성생활 불능자 가운데 90퍼센트 정도가 신체적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 이유로 어려움을 겪는다. 중년기에 발생하기 쉬운 정신 질환은 알코올 중독, 마약 중독, 정신 분열 반응, 편집증과 우울증이다.

중년은 과중한 의무에 얽매여 곧잘 삶의 즐거움을 잃어버린다. 성공한다 해도 마음 한구석에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사소한 일상에 몰두해야 한다는 느낌은 만성 피로를 가져온다. 개인적-신체적-사회적 건강과 안정을 위협당하면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우울해진다. 여러 면에서 위협받는다고 느끼면 건강 우려증과  같은 과민반응을 보이며,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삶의 기회를 놓친 낙오자라고 생각한다.

불면증 또한 심각한 중년기 문제다. 걱정과 죄책감과 분노는 숙면에 영향을 미치며, 우울증으로 잠을 설칠 수도 있다.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망상증과 같은 우울증 반응이 쉽게 일어난다. 완벽주의나 과도한 결벽증은 인색한 사람들에게 잘 나타난다.

 

 

성장의 기회

이제까지 살펴보았듯이 중년기에는 다양한 증상이 나타난다. 나이 많은 친구와 친척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상실감을 겪는다. 남성한테는 불능으로, 여성한테는 회피로 드러나는 성기능 장애를 보인다. 자신이 세운 꿈과 목표를 얼마나 이루었는지 자문하고 인생을 재평가하면서 우울증을 겪기도 한다. 남아 있는 날보다 보낸 날들이 더 많음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생명의 유한성에 대한 다양한 암시를 받는 것이다. 만성 질병이 진행되어 일상적으로 의료 검진을 받아야 한다. 중년기에 병에 걸리거나 배우자를 상실하면 변화의 기로에 서게 되어 성장하거나 퇴보할 수 있다.

위기는 언제나 성장을 향한 기회가 된다. 이 시기에 처함 사람들은 대부분 성인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지고 경제 기반을 마련하며 여가 활동을 개발하는 등 얼마 남지 않은 삶에 영향을 미칠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중년기에 부닥치는 한계는 주위 사람들과 우선순위로 정해 놓는 목표를 어떻게 다루며 어떤 모습으로 투신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한다. 우리는 삶의 목적 가운데 어떤 것이 과거의 영향을 받아 걸림돌이 되는지를 알고 있다. 삶에서 우선순위를 차지하는 것들 가운데 어떤 것은 전화되어야 한다. 순간순간 초월적이고 영적인 차원을 받아들이도록 초대받고 있기 때문이다.

 

 

 

영적 성장에 문을 여는 순간

 

중년에 이르면 어느덧 젊음이 사라지고 마음 가득 품었던 이상과 꿈과 열정이 식으며 서서히 노년의 문턱에 들어선다. 그러면서 영적 차원에도 관심을 갖는다.

심리학자 가를 융은 심리 분석 치료에서 40세 이후에는 삶과 죽음에 대해 성찰함으로써 영적-종교적 가치를 높이게 됨을 발견했다. 그에 따르면 종교는 삶에 대한 통합적 철학을 제공하여 인간이 개성을 지닌 한 인격체를 이루도록 도움을 준다. 신앙인은 친구를 사귀기 위해 종교에 의지하던 것에서 벗어난 더욱 개인적이고 내적이며 영적인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이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신비로운 힘을 받아 내적 성장을 이루는 것을 뜻한다.

 

중년기에 가장 근본적인 위기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고통스러운 인식이다. 중년기 사람들은 대부분 부모가 죽고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을 보면서 다음 차례가 바로 자신임을 인식한다. 건전한 종교 체험은 머지않아 죽음이 찾아온다는 것을 깨닫고 죽음을 삶의 핵심으로 받아들이며 사랑과 애정과 통찰력을 갖고 수용하게 한다.

 

 

도움의 손길

나이가 들어 인생 후반기를 잘 맞이하려면 도움을 받아야 한다. 영적 위기를 가져오는 중년의 변화는 그 동안 어떤 여정을 걸어왔는지 의식적으로 돌아보며 성찰하게 한다. 중년기에 일어나는 환경 요인으로 사람들은 삶의 바탕이 되는 신체적-심리적 확신과 생활 방식 또는 종교 활동을 처음으로 돌아보며 우울증이나 공황 장애에 대한 조언을 구한다.

감성적이든 지성적이든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발견하면서 지금까지 안주해 온 역할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다. 자신의 현재 모습에 대해 편안함을 느끼지 않으면 지금까지 열성을 다했던 다양한 역할 앞에서 상실감을 느낀다. 중년에 들어섰는데도 좋은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는 느낌에 시달리기도 한다.

 

나는 지금 몹시 외롭고, 별다른 수확이 없는 것 같은 일에 열정을 쏟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여 피곤하다. 실패에 대한 죄책감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벼랑 끝에 서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지금이 능력을 발휘할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른다. 지금 열정을 쏟는 것들에 대해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막막하다. 하느님도 저 멀리 계신 것 같고, 기도 생활마저 흐지부지되고 있다. 의지했던 모든 것이 사라져 간다는 느낌은 나를 슬프게 한다.

 

 

물론 중년의 위기에만 이러한 느낌에 직면하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자꾸만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영적 지도를 받는 사람들에게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이다. 자신의 삶은 물론 인간관계에 대처하는 능력이 자기중심적이어서 쉽게 절망에 빠지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의 경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권력의 핵심에 응답할 만큼 자신감이 있었으며, 실제로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고 있었다. 주위 사람들, 곧 자식과 동료, 공동체와 이웃, 심지어 배우자의 삶조차도 자신의 통제 아래 있었다.

그러나 중년의 위기에 처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자기 역할을 다하기 위해 마음을 열고 책임을 지고 무엇을 하든 상황을 다시 통제하라는 내면의 소리도 있다.

 

 

무엇이 잘못인가?

중년의 위기에 처한 사람들은 무엇이 잘못인지, 왜 그토록 불행한지를 이해하기 위해 과거로 돌아간다. 자신과 이웃, 그리고 하느님한테서 소외되기도 하며 의지적이고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움직이면서 지금껏 살던 대로 살아가기도 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예전처럼 ‘해야 한다.’는 말에 강요 받으면서 살아간다. ‘어떤 사람이 날 죽이려고 해, 인생이 너무 버거워, 모두가 날 혹사하고 있어, 사람들이 나를 갈기갈기 찢으려고 해, 나는 어떤 것도 할 수 없어, 희망이라곤 조금도 없어.’ 와 같은 불안한 생각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중년기 사람들은 과거를 평가가호 현시대에 맞는 독특한 사람이 되도록, 은총을 가득 받은 노년기와 죽음에서 벗어나 새롭게 태어나는 미래를 준비하도록 도적을 받는다. 모호한 과거에 직면하는 과정을 홀로 겪으며 깊은 믿음 안에서 비추임을 받으며 성찰하지 않으면 우울증과 회의에 빠질 수 있다.

 

 

영적 지도자

훌륭한 영적 지도자는 삶의 후반기에 삶의 동기를 정화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더 깊은 존재 차원에서 자신의 뿌리를 찾아 변화하려는 열망을 지니게 한다. 이 시기에 지도자는 지도를 받는 사람이 무엇을 배웠고 세월일 지나면서 상실과 변화를 어떻게 통합했는지를 질문해야 한다. 영적 지도자는 상담을 받으러 온 사람이 이기적인 자아를 버리고 지나온 모습을 성찰하고 주어진 삶을 신뢰하면서 더욱 고유하게 성장하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

중년기에는 존재하고 행동하는 친근한 방식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데 대한 긴장과 불안감으로 초조해하며 의기소침해 한다. 중년의 위기는 두려움을 안고 과거를 고수하거나 미래의 초대를 받아들여 확신을 갖고 자유롭게 해방되리라 재촉한다. 이 단계에서 우리는 지혜롭게 성찰하면서 신비로운 존재와 진실한 자아를 만나라는 부르심에 응답해야 한다.

중년에 이르면 ‘남은 삶 동안 무엇을 할까?’라는 물음을 던지게 되는데, 이는 재고조사와 비슷한 성격을 띤다. 믿음의 전통 아래 삶의 암호가 된 지혜는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많은 사람이 마음을 열지 않아 한쪽에 내버려진 지혜도 있다. 지혜를 향한 마음의 문을 닫으면 극단적인 경우 모든 가능성을 보리고 절망에 빠지거나 지나치게 과장하여 혼란과 무질서를 일으킬 수 있다.

 

 

초월적인 것을 향해

중년기에 변화는 추구했던 목표를 수정하고 ‘초월적인 것을 향해 가라.’고 요구하는 인생의 위기상황이다. 여기서 말하는 방향전환이란 영적 존재가 되는 것, 곧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자신을 열면서 내적 질서와 외적 안식을 추구하는 것이다.

중년의 위기는 어떤 의미에서 신앙의 위기와 같다. 그 동안 마음을 다해 믿은 것과 마음 깊이 새긴 가치 기준을 다시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생존하기 위해 사용했던 가면과 방어기제들을 버리려는 모험을 감행하며, 거짓 환상을 무시하고 참다운 삶을 이루기 위해 몸부림친다.

이 시기에 사람들은 부서지기 쉽고 결점과 한계가 많은 자신을 인정하면서 궁극적 갈망에 응답 받기 위해 진정한 믿음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또한 위기를 통해 더 큰 목적과 의미를 지니고 신비로운 존재와의 관계에서 기쁨을 맛보며 영적 여정을 걷게 된다.

 

 

 

 

위기의 치유

 

중년의 치료는 변화의 가능성에 바탕을 둔다. 중년기 환자를 위한 심리 치료는 여느 환자들과 다를 바 없지만 사회적이고 역동적인 중년의 심리에 토대를 둔다.

일반적으로 중년의 치료는 지나온 삶을 평가하고 가능한 한 방향을 재설정하는 심리 치료다. 치료의 목적은 자신에 대한 평가를 명확히 하여 변화를 선택할 것인지 지금 상태를 유지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가족 치료

가족 치료는 평가와 변화와 방향 설정에 도움을 준다.  특히 그룹 치료를 통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며, 다양한 연령층과 인성 스타일 등 여러 가지 진단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온전한 정신은 온전한 육체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중년기 환자의 신체 조건과 영양을 증진시키는 프로그램을 심리 치료와 병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관계에서 어려움을 느낀다면 도움을 받아야 한다. 성문제는 부부 생활에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상호성과 친밀성의 발전에 성은 도움이 된다.

중년의 치료는 삶에 대한 재평가와 방향 설정뿐 아니라 슬픔과 회복을 위한 치료가 병행되어야 한다. 체념하거나 두려움에 싸여 반항하기보다 나이에 따른 변화 인식을 높이고 발전시키도록 도와야 한다. 삶의 목표를 분명히 하고, 개인의 삶을 성찰하고 묵상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외로움을 느끼며 만성 우울증을 겪는다. 주위 사람들의 요청을 충족시키기 위해 분주하게 돌아다니느라 자신의 상태를 돌보거나 일에 집중하지 못한다면 자아 성찰과 통합을 위해 시간을 내야 한다.

 

 

교육과 치료

치유를 위해서는 먼저 교육이 필요하다. 중년의 위기로 인간 우울증을 치유하는 첫 번째 단계는 위기의 본질과 원인에 대한 교육을 받는 것이다. 해결되지 않고 내면에 쌓여 있는, 위기의 원인이 될 수 잇는 갈등 요소를 탐색해야 한다.

중년기는 재평가의 시기이며 에너지가 분산되지 않고 집중되는 때임을 배워야 한다. 중년에로의 전환은 성장 과정에 따른 변화로 주어지는 것이지 극적 사건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지금까지의 인생 여정이 적절했는지, 새로운 삶의 구조가 어떻게 나타날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치유를 위한 두 번째 방법은 상실을 다루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잃어버린 것이 무엇이며 무엇을 떠나 보내야 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잃어버린 것에 대해 슬퍼해야 한다. 잊어 버리는 것이 기억하는 것보다 더 어렵고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슬픔을 잊으려 한다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내적 작업을 하지 않으면 여전히 무의식 속에 남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때때로 상실감을 느끼고 인생의 한계를 자각하는 것이 얼마나 합당한 것인지를 깨닫고, 자신이 받은 상처와 그 상처를 준 사람과 화해해야 한다. 잃어버린 거이 무엇이고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빠른 치유가 가능하다.

치유를 위한 세 번째 방법은 자기 이해를 추구하여 자신의 가치를 깊이 깨닫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에게 투명해야 한다. 자신의 동기를 깊이 이해하고 건강하지 않은 부분까지도 자각해야 한다. 자기 이해의 부족은 후기 우울증의 주요 원인이 된다.

 

 

명상 일기 쓰기

자신을 이해하려면 명상 일기를 쓰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일기를 쓰면서 내적 감정에 직면하게 되고 불쾌감을 일으켜 탐색이 필요한 문제를 구체적으로 끄집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정해 놓은 시간에 성경을 읽고 잠시 하느님께서 함께해 주시길 청한 후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을 적어 보자.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있는 그대로 적으면 된다.

중년기에는 가치에 대한 갈등이 일어나는데, 이러한 갈등을 밖으로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 내면의 짐을 영혼의 조각가와 함께 나누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중년은 그냥 지나가는 시기가 아니라 정화하면서 넘어가야 할 때이므로 성령께 의탁하고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해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중년기의 고통을 통해 개인의 욕망과 나약함과 이기주의와 같은 불순물을 없애주신다.

 

 

깨달음을 주는 선물

중년의 위기에 우리는 하느님의 손길에 협력해야 한다. 내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갈망과 하느님의 은총이 만나는 곳에서 거룩한 변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그 어느 때보다 중년기에 동참하신다. 각 삶의 단계에서 맞게 되는 위기가 그러하듯이 중년의 위기도 고통스럽고 불안정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늘 우리와 함께하시며 필요할 때마다 도움을 주신다.

중년의 위기가 지나가고 모든 언약이 소생되는 날, 더러운 욕망에서 벗어나 갈등이 사라지는 날, 쓸데없는 반항으로 상처를 입힌 아픈 순간이 사라지는 날, 우리는 인생이 다 지나가 버렸다는 아쉬움과 두려움에 파묻히지 않고 우리 앞에 새날이 동트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중년기에 겪는 우울증은 최상의 깨달음을 얻는 선물이 된다. 하느님과 함께 인내롭게 내적 여정을 걷다 보면 어둠은 빛으로 변화될 것이다. 자신이 이룬 것들이 하나 둘 무너져 내리겠지만, 주님의 섭리 안에 새롭게 형성되어 거룩하게 변모될 것이다. 건강한 중년이 건강한 노년을 만든다.

 

 

 

 

중년기 이후의 우울증

 

중년기 위기 후에 오는 인생은 그 어느 때보다 의미가 깊다. 모든 사람이 이러한 삶의 여정을 우아하게 맞이하는 것은 아니다. 생물학적 나이가 들면서 더욱 어른다운 성숙이 요구된다. 노년은 자서전적으로 삶을 재검토하는 시기다.

 

 

카를 융과 노년

중년의 영적 차원에서 그랬듯이, 카를 융은 중년기 이후 삶에 관심을 돌린 최초의 심리학자다. 카를 융은 노년에 깊이 자리 잡은 변화가 인간의 정신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알았다. 노년에 이르면 내면으로 주의를 돌려 삶의 의미와 정체성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러한 변화는 죽음을 삶의 마무리로 받아들이게 한다.

카를 융에 따르면, 노년기를 앞둔 사람들이 나이 먹는 것을 편안히 받아들여 적응하게 하려면 먼저 목표를 세워야 한다. 모든 종교가 내세에 대한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노년기 사람들이 고통과 죽음을 감당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나이 들어 비참해진 사람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중년기에도 비참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이는 우연이 아니다. 탐색하고 적응하고 변화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기회를 놓치면 누구나 비참한 심정을 느끼게 된다.

 

 

늘어난 노령 인구

출생률이 낮아지고 현대의학이 발달하며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예전보다 더 열심히 건강을 돌보기 때문인지 노령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더불어 신체적-심리적-정서적으로 보살핌을 받으려는 노인들의 욕구도 커졌다.

중년을 보내는 많은 사람이 사회보장 혜택이나 연금으로 안전한 노년을 보내게 될 것이라는 위험한 환상을 품고 산다. 그러다가 노년에 이르러 정부나 자식, 어느 누구도 안전한 노후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실 정부나 개인 차원에서 준비한 노후 대책이 안전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나는 평생 남편을 뒷바라지하며  아이들을 위해 살았다. 아이들이 잘되고 손자들과 함께 살아갈 생각으로 힘든 줄도 몰랐다. 아이들이 공부를 잘해 어렵다는 학교에 들어갈 때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저마다 자리를 잡자 모든 꿈이 사라졌다. 퇴직한 남편은 집안일이라고는 아무것도 할 줄 몰라 하루 세 끼 식사를 하면 텔레비전만 보고 지낸 지가 벌써 10년이 넘었다. 아이들 결혼 준비도 혼자 힘으로 해야 했다. 이제 나이가 들어 온몸이 쑤시고 귀도 잘 들리지 않는다. 화분처럼 거실에 앉아있는 남편이 귀찮아 빨리 죽었으면 싶다.

아이들은 명절이나 생일 때만 얼굴을 내민다. 그나마 그것도 결혼 초에 그랬고, 요즘은 선화 한 통화에 돈만 달랑 부친다. 모든 게 허망하고 배신감에 잠 못 이룰 때가 많다. 옆집 새댁이 교회에 함께 가자고 하지만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사는 게 정말 뭔지 모르겠다. 빨리 죽었으면 하는 생각도 들지만 솔직히 죽는다는 생각을 하면 무섭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모르겠다.

 

 

노인들에게 우울증은 그 어떤 정서 문제보다 고통스럽다. 노인들은 독립된 생활을 바라고 수용 시설보다 가정에서 살기를 바란다. 스스로 목표를 이룬다고 생각하며 마음 맞는 노인들과 함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장애물이 너무 많다.

신체 능력 저하, 경제 문제와 활동 능력 상실, 사회적 차별, 지적 적응력 상실, 친구나 가족과의 사별, 임박한 죽음에 대한 공포, 은퇴로 인한 역할 변화, 고립감, 노화에 따른 생물학적-화학적 변화가 우울증으로 몰아간다.

 

 

노년기 우울증 치료

노인들은 죄책감이나 슬픔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신체적 증상, 곧 수동적이고 무기력하며 기억력이 감퇴되고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불평한다.

울적한 기분과 슬픔, 식욕 저하로 인한 체중 감소, 음식을 준비하지만 먹지 않거나 한 가지 음식만 먹기, 잠드는 것이 어렵거나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의 어려움, 흥분하거나 안절부절못함, 하루 종일 조는 것, 불안, 공포, 두려움, 해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시달린다.

심리 치료 이외에도 항우울제 약물과 전기충격요법(ECT)도 노년기 우울증 치료에 효과적이다. 가장 효과적인 치료 방법은 약물치료와 상당을 병행하는 것이다. 상담은 스트레스를 감소시키고 행복한 삶을 누리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전환과 도전

삶의 방향을 바꾸고 새로운 변화를 불러일으키라는 도전은 우리 삶이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많은 노인이 변화 앞에서 자신의 본래 모습과 ‘새로운 소명’을 찾는다. 노년기 사람들은 존재의 중심이 되는 부르심, 곧 삶 가운데 성령의 이끄심을 깨닫고 성령께 자신을 내맡기라는 부르심을 받는다.

캐롤린 그라톤7이 말한 것처럼 이 시기에 이르면 중년기와 마찬가지로 ‘초월성의 회귀’ 를 체험하며 영적 지도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다. 이러한 통찰력에 비추어 보면, 그리스도를 삶의 중심에 놓고 주어진 순간에 투신하게 되는 것은 대부분 초월성의 회귀가 이루어진 다음이다. 초월성의 회귀와 전환은 자아를 영적 차원, 곧 성령께 개방하는 것이다. 근본적 전환은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노년과 종교

젊었을 때 종교를 몰랐다 해도 종교에 대한 관심은 늘 열려 있다. 노년기 사람들은 종교적 신념에서 나온 기본 지리를 깊이 맛보는 잠재적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고통의 긍정적 역할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나이가 들수록 이웃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인식한다.

이러한 현실을 인식한 노년층은 하느님 앞에 선 자신이 근본적으로 피조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또한 고통스러운 순간이나 죽음과 같은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종교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죽음과 부활의 신비를 온전히 깨닫게 된다.

종교적 신념으로 서로 지지하고 돌보며 친밀한 관계를 이루는 공동체에 소속된 노인들은 죽음의 불가항력적 접근을 잘 맞아 들인다. 종교 단체는 가족이나 친구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노인들에게 관심을 보이며 지원할 수 있다.

애정 어린 공동체가 중재자가 되어 노인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전할 때, 그들은 하느님께서 그들을 따뜻하게 받아들이신다는 것을 깊이 체험할 것이다. 이러한 사랑을 체험한 노년기 사람들은 마음을 열고 하느님을 받아들이며 성숙한 기도를 할 수 있다.

중년 이후를 성공적으로 보낼 때 우리의 모든 활동은 행복을 가져다 준다. 종교 단체에서 권장하는 자선과 사랑을 베푸는 활동에 참여할 때 우리 삶은 더욱 풍요로워지며 남은 생을 보람차게 살아갈 수 있다. 노년은 용기와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작지만 많은 기회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노년의 고통과 기쁨을 받아들이려면 먼저 용기와 사랑을 마음에 품어야 한다.

 

 

 

 

7 우울증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자신의 고민을 쉽게 털어놓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겉보기에는 다들 아무런 문제 없이 살아가는 것 같다. 그러나 40퍼센트가 넘는 사람들이 온갖 좌절을 겪으며 일시적으로나마 우울증을 경험한다.

 

 

비관적 사고방식을 뛰어넘어

우울한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상태를 비관적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곧잘 사실을 왜곡하여 이렇게 생각한다. ‘우울증은 유전에 의한 것이므로 치료될 수 없어. 우울증은 나의 열등한 능력과 잘못된 성격 때문이며 능력과 성격은 쉽게 변화되지 않아. 우울증은 열악한 상황 때문에 생긴 것이기에 상황이 변하지 안는 이상 치유될 수 없어.’

그러나 우울증은 치유 방법이 개발되어 있어 적절한 노력과 치료를 하면 치유 효과가 매우 높은 흔한 심리적 질병이다.

 

 

사업이 번창하여 재산도 늘었고 건강했으며 아이들도 잘 자랐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사업이 기울기 시작했다. 술로 달래려고 했으나 점점 더 고통스러웠고 몸도 쇠약해졌다. 알코올 중독으로 몸과 마음과 영혼이 망가져 더 이상 일어설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마지막 소원이라고 하여 신심 단체에서 주관하는 세미나에 갔다. 강의와 기도와 체험담, 그 어느 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옆에서 흐느껴 우는 사람이 자꾸만 마음을 끌었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내내 생각했다. ‘하느님, 제가 버림을 받았다면 저 사람처럼 저도 실컷 울고 죽게 해주십시오.’

모임이 끝날 무렵까지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는데,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느닷없이 눈물이 솟구쳐 하염없이 울었다. 그 후 나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내적 투쟁을 했다. 부정적 사고에서 벗어나 희망을 갖고 성경을 읽으며 하느님께 매달렸다. 지나간 세월을 돌아보며 무슨 목적으로 살았는지, 왜 그렇게 고통스러웠는지 물음을 던지며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를 추구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영육 간의 건강을 되찾았다.

내 삶에 짙게 드리운 어둠에서 탈출하도록 고통을 같이한 분은 바로 하느님이었다. 그리고 성숙한 아내는 암흑 속에 살던 나를 끝까지 이끌어 주며 내적 기쁨을 찾게 해주었다. 우울하고 비참한 터널을 지나온 나는 이제 교회에서 봉사하며 가장 가치 있는 일에 투신하고 있다.

 

 

긍정적 시각으로

우리는 부정적 시각에서 벗어나 긍정적으로 전환될 수 있다. 우울증은 ‘자신을 몰아치는 압박감’으로 작용한다. 우리를 자꾸만 부정적으로 몰고 가는 우울증은 무엇인가 잘못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므로 우리는 순간순간 그 신호에 귀 기울여야 한다.

우울증이 찾아왔을 때 당황하게 되는 것은 지금까지 살아온 묵은 삶에서 아무런 가치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가치를 받아들이면 지금까지 살아온 생활 방식이 뒤흔들리기 마련이다. 과거의 방식으로는 그 어떤 열매도 맺을 수 없기에 우울증은 정말 기분 나쁜 것이다.

그러나 우울증은 나쁜 소식 이면에 좋은 소식이 숨어 있음을 알려준다. 우울증이 나타났을 때 그 현상을 무시하고 약물로 빠지거나 현실을 도피하며 자살을 시도하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더욱 긍정적으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다.

 

 

성숙한 감정

우울증은 ‘내면을 재평가하는 기회’다. 부정적 감정에 압도당하지 않고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재평가한다면 말이다. 이 능력이 바로 ‘성숙한 감정’이다. 우울증은 우리를 연민에 빠지게 하지만, 이러한 우울증 증후군은 치유와 성장의 길로 나아가는 신호다.

긍정적으로 바라볼 때, 우울증은 재앙을 가져오는 허약한 표징이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우울증으로 주어진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살 만한 가치를 느끼지 못할 때, 우리는 삶의 구조를 바꾸고 획기적인 변화를 시도할 수 있다. 부정적 감정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돌파구를 찾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지루함을 느끼고 사는 보람을 잃었다면, 그 동안 스스로 강요한 가치와 구조를 비판하지 않고 받아들였음을 인정하고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아야 한다.

우울증은 복합적 메시지를 빠르게 전달하여 우리를 무기력하게 하거나 무엇인가를 하도록 강요한다. 악몽과 같은 우울증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게 하며 고통스런 진실 앞에서 자신을 감추게 한다. 한편 우울증은 우리의 일상을 혼란스럽게 하기도 하지만 감추어진 부분을 보게 하는 자극제도 된다. 물론 우울증이 주는 메시지를 알아듣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울증에 대한 올바른 인식

우울한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치료하려고 노력하지 않아 자신감을 상실하게 되고 미래에 대해서도 비관적이어서 우울증을 이겨내기가 어렵다. 주위 사람들에게 대해서도 회피적이고 철회적인 태도를 취하기 때문에 이웃의 도움을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때로는 모든 노력과 삶을 포기하고 절망에 빠지기도 한다. 우울증의 특성상 심리 문제를 극복하지 않으면 심각한 악순환에 휘말린다.

우울증은 노력하면 치유될 수 있다. 우울증을 극복하려면 우울증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우울증은 극복될 수 있으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치유의 시작이다.

우울증을 극복하는 방법은 많다. 정신과 치료, 스트레스 관리, 감정 조절, 신앙생활 등으로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다. 다른 질병과 같이 조기에 우울증을 치료하지 않으면 6개월에서 1년까지 지속될 수 있고 재발할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는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약물치료와 전문가의 도움

초기에는 약물치료로 가시적 효과를 볼 수 있다. 정신과 의사들은 비용과 효과를 들어 약물치료를 권하지만, 심리학자들은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이웃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사회 변화를 무조건 따르려는 풍토가 우울증을 부추긴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치료 방법을 선택하는 것은 우울증을 앓는 사람의 몫이다.

전문적 도움에는 정신과 의사의 처방에 따른 약물치료, 곧 항우울제 복용이 있다. 항우울제나 항불안 약물은 우울증과 심혈관계장애에도 효과가 있다. 우울증에 대한 대처 방법으로는 우울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피하는 것이 있다. 개인적 대처 방법이 성공하면 우울증으로 인한 나쁜 영향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이 모든 사람에게 다 맞는 것은 아니다.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여 자살할 수 있고 상황을 바꾸려다가 있는 힘 마저 소진할 수 있으며 회피하다가 더 큰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어떤 방법이 좋을지에 대해서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악순환의 고리

 

늘 좋은 성적으로 학교와 부모님께 기대를 안겨드린 성규는 홈런을 맞고 대패하여 패전 투수가 되었다. 평소 유능한 투수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체력의 한계에 도달한 것은 아닐까? 나의 구질이 타자들에게 노출된 것은 아닐까? 다음 게임에서 또 지면 어떡하지?’ 하는 부정적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러한 생각에 휩싸이면서 투수로서 자신감을 잃고 회의에 빠져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부정적 생각을 지울 수 없어 복잡한 마음으로 공을 덜질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이 떨렸다. ‘한계에 도달했나 보다, 투수로서 생명이 끝나나 보다, 후보로 밀려날 거야.’ 하고 비관하며 우울한 기분에 젖어 들었다. 모두가 자신을 비아냥거리는 것 같아 혼자 맴돌며 술을 마시다 보니 연습도 게을리하게 되었다. 그 결과 다음 경기에서도 지게 되었고 우울증의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우울증을 극복하려면 이러한 악순환 과정을 인식하고, 그 고리를 끊어버려야 한다. 우울증이 심각한 경우 반드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다.

유전적 요인이 우울증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그 영향력은 미미해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다. 우울증이 성격이나 능력 등 개인적 요인에 기인한다면 태어나면서부터 우울한 상태로 살아갈 것이다.

우울증이 어떤 사건을 계기로 나타나 악화된다는 사실은 반드시 성격과 능력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열악한 상황이 우울증을 유발할 수 있지만 상황 그 자체보다 상황에 대처하는 자세가 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

희망과 기대로 가득했던 대학생활이 1년도 되지 않아 좌절과 절망으로 변했다. 같은 과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왠지 내가 환영 받지 못하고 소외 당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체격도 왜소하고 남성적 매력도 없고 지적 능력도 부족하며 사람들의 호감을 끌 만한 능력이 없다는 생각에 휩싸이면서 심한 열등감에 빠졌다.

학교 성적이 나빠지고 대인관계에서도 고립되자 모든 것이 암담하고 절망스러웠다. 고통스럽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그래서 여기저기 약국을 돌아다니며 수면제를 사 모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학교 계시판에 ‘우울증’에 대한 안내문을 보았는데, 그 속에는 내가 겪고 있는 심리 문제가 놀라울 만큼 그대로 기술되어 있었다.

나는 비로소 내가 우울증 상태에 있으며 심리 상담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내 문제가 과연 심리 상담을 통해 변화될 수 있을까? 내 외모와 능력과 상황이 상담을 통해 개선될 수 있을까?’라는 회의가 들었다.

그러나 죽음을 생각할 만큼 절박했기에 자살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심리 상담을 받기로 했다. 아무한테도 이야기하지 못하고 혼자 고민하던 문제를 모두 털어놓았다. 내 이야기를 자기 일처럼 진지하게 듣고 이해해 주시는 선생님 앞에서 그 동안 혼자 겪어온 아픔이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아픔을 함께하고 고민을 상의할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커다란 위로와 힘이 되었다.

지속적 만남을 통해 과거에 상처 받고 좌절했던 경험을 하나하나 되돌아보면서 삶에 대해 많은 것을 깨달았다. ‘내가 사람들한테서 인정받고 사랑 받기를 얼마나 갈구했는지, 사람들의 반응에 얼마나 예민하게 눈치를 보았고 상처를 받았는지, 내 존재 가치를 두고 사람들의 평가에 얼마나 의존했는지, 사람들한테 사랑 받으려고만 했지 내가 먼저 사랑하는 일에는 얼마나 미숙했는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어머니에게 의존하는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더 넓은 세상에 적응을 못해 생긴 결과라는 것을 깨달았다. 늘 몸이 쇠약하여 자리에 누워 계신 어머니 옆에는 사업에 성공하여 패기만만하게 밖으로만 나도는 아버지 대신 내가 있어야 했다.

얌전히 집에서 어머니 곁에 있는 나를 보고 친척과 주위 사람들은 착하다며 칭찬했다. 이러한 칭찬에 길들여진 나는 그런 삶이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대학에서는 모든 것이 달랐다. 나를 칭찬해주는 담임선생님도 없고, 어머니를 집에 혼자 두고 밖에 있으려니 죄책감과 불안감이 가득했다. 공부 밖에 할 줄 몰랐던 나는 여러 운동과 놀이를 잘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내 존재 가치가 떨어지는 것만 같아 괴로웠다.

그러나 심리 상담을 통해 나는,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하며 나름대로 존재 가치가 있음을 깨달았다. 천근같이 무겁고 암울한 마음을 휘감던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삶의 의미와 의욕을 되찾았다. 돌이켜보면 우울하게 지낸 1년이라는 세월이 지옥 같지만 우울증을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며 좀 더 긍정적이고 생산적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우울증은 수치스러운 심리적 장애가 아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처럼 우울증은 매우 고통스러운 체험이지만 인간을 성숙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우울증은 삶의 방식에 대해 무언가 문제가 있음을 알려주는 심리적 신호, 곧 삶의 방식에 무언가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는 신호와 같다. 우울증은 하던 일에서 잠시 물러나 휴식을 취하면서 자기 반성을 하고 앞으로의 상황에 더욱 새롭게 적응하기 위해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시기라고도 할 수 있다.

인류 역사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겼거나 성숙한 인격을 쌓은 인물 가운데는 한때 심각한 우울증을 경험한 사람들이 많다. 모세, 엘리야, 다윗, 요나, 루소, 도스토예프스키, 링컨, 차이코프스키, 프로이트 등이 그렇다. 빅터 프랭클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굶주림, 추위, 중노동, 질병, 죽음의 공포와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이겨내고 ‘의미 치료법 logotherapy’ 을 만들어 냈다.

우울증에 빠져 불평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니다. 이런 사람들 가까이에 있으면 어느새 우울증에 빠져 감정의 변화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행복한 사람들과 함께 지내자

 

주변에 좋은 것이 많았는데도 불평하며 살았다. 이처럼 부정적 감정에 짓눌리다 보니 모든 것이 짜증스럽기만 했다. 사람들이 나에게 관심을 갖고 즐겁게 해주려고 노력하는 것도 못마땅했다. 남편이 나를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화가 났고, 기뻐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는 것마저 화가 났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이웃도 우울증에 빠지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웃이 기뻐하면 괜히 짜증을 내기도 한다. 우울증에서 빠져 나오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행복하고 기쁘게 사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다. 우울증에서 벗어난 한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이를 알 수 있다.

 

우울증에 빠졌을 때 가장 큰 도움을 준 사람은 친구였다. 친구는 늘 활달하고 기쁨에 넘쳤는데, 그런 모습이 때로는 나를 짜증스럽게 했지만 차츰 친구가 자신감 있고 기쁘게 살아가는 모습을 부러워하며 배우게 되었다. 이처럼 기쁘게 살아가는 것은 문제가 없어서가 아니라 문제가 있지만 그 상황을 처리하는 지혜가 있기 때문임을 알았다.

 

 

축복받은 삶

축복받은 사람의 삶은 이웃한테도 쉽게 전달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뜻을 이루기 위해 모세를 선택하시고 그를 도울 수 있는 사람 일흔 명을 뽑으셨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그들을 불러 모아 천막에 머물게 한 후 성령을 내려주셨고, 그 성령은 함께 있던 일흔 명한테도 똑같이 전해졌다.

이런 현상은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우울증에서 빠져 나온 한 남성의 이야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성격적으로 문제가 있어 바꾸려고 노력했다. 감정의 기복이 심해 안정감을 회복하는 일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질을 변화시키기까지 여러 해가 걸렸으나 하느님께서는 주변에 정서적 안정을 이룬 사람들을 많이 보내시어 나를 치유해 주셨다. 나는 아내와 친하게 지내던 부부와 함께 식사도 하고 영화도 보고 여행도 다녔다. 성당에서도 함께 활동했다. 안정감을 이루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나는 차츰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우울증과 힘든 투쟁을 할 때 주위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우울증에 시달릴 때 피해야 할 것은 좌절하거나 우울증에 빠져 있는 사람들과 교제하지 않는 것이다. 서로의 문제를 성토하기 때문이다.

우울하다고 느끼면 기쁘게 생활하는 사람들과 함께 웃고 노래하고 이야기하면서 가능하면 행복한 것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안정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더욱 충만한 기쁨과 행복으로 이웃을 초대한다.

 

 

 

인지행동 치료

 

 

하는 일마다 안 될 때

우울증 환자는 무기력해하거나 회피하는 것과 같은 행동을 보인다. 삶이 무의미하여 어떤 기쁨도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일에 지쳐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무엇을 하든 우울하며 하는 일마다 실패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 이면에는 ‘나는 이웃에게 짐이 되고 내 문제를 스스로 처리할 수 없어. 뭐 하나 잘되는 일이 있어야지. 이렇게 고통 속에서 사느니 차라리 모든 것을 끝내고 싶어!’ 라는 식의 자기 비판적이고 자신을 혐오하는 사고방식이 깔려있다. 자신은 늘 약하고 어디에나 맞지 않다고 생각하여 책임지는 것도 어려워한다. 일반적으로 우울증 환자는 고통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견디기 힘들어 하며 자신을 기분 좋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과장과 왜곡

우울증 환자는 또한 외부의 요구와 문제와 억압을 과장한다. 어떤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압도되어 그 일은 감당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피한다. 이웃이 생각하는 것보다 자기 자신과 주변 현실을 부정적으로 과장하고 왜곡하기도 한다. 한두 번 겪은 일로 일반적 결론을 내리고, 그와는 무관한데도 자신이 내린 결론을 적용시키며, 어떤 상황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일 가운데 일부만 뽑아 마치 그것이 천부인 양 상황을 판단한다.

이처럼 부정적으로 바라보면, 작은 일인데도 크게 확대하여 긍정적인 면을 축소시킬 수 있으며 자신이나 이웃을 평가할 때 이러한 경향을 달리 적용할 우려가 있다. 자신과 무관한 사건을 자신과 관련된 것으로 잘못 해석하기도 하고, 사람의 특성이나 행위를 과장하여 기술하거나 부적절하게 표현하기도 한다.

충분한 근거가 없는데도 이웃을 마음대로 추측하고 단정하며, 그러한 판단 아래 행동하기 때문에 이웃의 행동을 통해 자신의 판단이 옳았다고 확신한다. 충분한 근거 없이 앞으로 일어날 일을 단정하고 확신하며 막연히 느끼는 감정에 근거해 결론을 내린다.

 

 

자동적 사고

어떤 생각을 자꾸 반복하다 보면 습관이 되어 의식하거나 그 생각을 자각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흘러나온다. 그래서 자꾸만 ‘나는 열등하다, 무능하다, 무가치하다, 사랑 받지 못한다, 버림받았다.’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며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내가 처한 상황이 너무 열악해. 이 세상은 살아가기에 너무 힘들어. 주위 사람들이 너무 이기적이고 경쟁적이며 적대적이야.’ 라며 주위 환경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이처럼 우울증 환자들의 사고는 성숙하지 못해 생활 속에서 부딪치는 사건 앞에서도 주관적이고 단정적인 판단을 내려 극단적이고 부정적인 사람이 되기 쉽다.

세상에 대한 우울증 환자의 부정적 생각은 이웃에게 도움을 처하지도 않고 사회적으로 위축되어 마침내 고립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처럼 자신과 미래와 세상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과거의 경험에 근거한다. 삶의 초기 단계의 경험에 따라 부정적으로 형성된 사고방식은 지금 이 순간에도 부정적 태도를 갖게 한다.

일반적을 한 개인은 비슷한 유형의 사건에 대해 일관적인 반응을 보이는데, 이처럼 안정적인 사고와 개념화의 인지 유형을 도식이라고 한다. 우울증과 같은 정신 병리적 상태에서는 어떤 상황에 대한 환자의 개념이 활성화된 역기능 도식으로 왜곡되어 논리적으로 관련성이 없는 다양한 자극에 의해서도 역기능 도식이 형성된다.

이는 자동적 사고로 어떤 상황이나 외부 자극에 의해 즉각적으로 진행되는 생각을 말하며 논리적으로 심사숙고 하는 사고와는 다르다. 자동적 사고는 또한 어떤 노력을 통해 나오지 않고 자동적으로 내면에서 형성되어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믿게 한다. 이 때문에 자동적 사고가 부정적으로 왜곡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 내기가 힘들다.

자동적 사고는 우리의 태도나 행동, 기분을 좌우하는 중요한 정신 현상이지만 대부분 이를 의식하지 못하고 생활하여 부정적 자동 사고를 형성한다. 뚜렷한 믿음과 확신으로 부정적 자동 사고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인지 왜곡이라 한다. 이 같은 역기능적 믿음과 태도는 우울증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어떤 요소가 존재한다는 것을 반영한다.

한 개인의 행동이 이웃에게 영향을 주듯이, 이웃의 행동도 한 개인에게 영향을 준다. 우울증에 빠지면 소중한 이웃과 만나는 것을 피하여 홀로 고립된다. 그러다 보면 이웃을 점점 더 거부하거나 비판하게 되고, 이는 또다시 자신에 대한 거부와 비판으로 이어져 우울증은 더욱 악화된다.

우울증 환자들은 자신과 세상에 대한 역기능적 신념으로 극단적인 사회적 의존성과 자율성을 갖게 된다. 사회적 의존성은 인정받고 사랑 받으려 하며 친밀한 대인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이웃을 즐겁게 한다. 자율성은 개인에게 독립성과 성취감을 갖게 하여 이웃한테서 독립되길 바란다. 또한 일과 성취를 중요하게 여기며 혼자만의 활동을 좋아한다.

사회적 의존성이 높은 사람은 대인관계와 관련된 부정적 사건에 민감하며, 자율성에 대한 욕구가 높은 사람은 독립성과 목표 지향적 행동이 위협받으면 우울증에 걸린다. 역기능 신념이 강한 사람이 부정적 사건을 겪게 되면, 그 사건의 의미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인지적 오류를 범하여 사건의 의미를 왜곡하고 과장함으로써 자동적으로 부정적 사고가 형성되어 우울 증상으로 발전한다.

 

 

감정과 행동에 영향을 주는 인지와 사고

우울증 환자를 위한 인지행동 치료는 사람들의 감정이나 행동이 어떤 사건에 대한 지각에 영향을 받는다는 가정에 근거한다. 사람들의 느낌이나 감정을 결정하는 것은 상황 자체가 아니라 그 상황을 해석하는 방식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인지행동 치료는 치료자가 단계적으로 환자로 하여금 부정적으로 왜곡된 사고를 파악하여 재구성하도록 구조적으로 치료해 가는, 현실에 초점을 맞춘 정신 치료법이다.

이는 우울증 환자들이 자신의 인지와 사고가 어떻게 감정이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지, 평생에 걸쳐 축적된 특정한 통념이 어떻게 점진적으로 허물어질 수 있는지를 이해하도록 돕고 협력하는 것을 바탕으로 한다. 그래서 우울증을 일으키는 행동과 사고방식을 확인하는 데 역점을 두며, 이를 변화시킴으로써 우울증을 치료한다.

그러려면 먼저 우울증을 유발하거나 우울증에 머물게 하는 행동 양식을 찾아 감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해 부정적 개념을 작동시킨 후 연속적으로 분석하고 원인을 헤아림으로써 역기능적 믿음을 공략하기 위한 전략을 세워 부정적 사고의 악순환을 차단하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은 감정과 행동과 대인관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며 이들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에, 인지행동 치료에서는 우울증 환자의 인지에 초점을 맞추어 심리 문제를 이해하고 설명하며 다양한 기법을 사용하여 인지 변화를 촉진한다.

 

 

인지행동 치료의 전략

인지행동 치료의 전략은 우울증 환자의 양면성을 노출시키고 문제를 인식하게 하며 대안을 만드는 것이다. 우울증 환자가 문제에 대한 대안적 관점을 발달시킬 수 있다면 행동의 대안 과정도 발달될 수 있다. 이는 우울증 환자를 기분 좋게 하며 더욱 효율적으로 행동하게 한다. 이 기법은 내담자의 인지 왜곡과 자의적 추론을 효과적으로 치료해 준다. 치료자는 무엇인가를 꼭 해야 한다고 자신에게 명령하는 폭군이 어떻게 자신을 혐오하게 하는 우울증을 생기게 하는지 알아차리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또한 우울증 환자가 문제의 목록을 만들어 우선 과제를 선택하고 현실적 행동 계획으로 발전시키도록 도와야 한다. 이런 계획은 가끔 패배적 사고방식으로 금지되기 쉬우므로 치료자는 부정적 생각을 확인하고 변화시키기 위해 인지치료 기법을 써야 한다. 우울증 환자가 해야 할 행동 목록과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과 이미 완성한 일을 점검하고 외부 문제를 가능한 한 줄이도록 도움을 주면 좋다.

 

 

인지행동 치료의 목표

우울증 환자를 위한 인지행동 치료의 목표는 즐거움이나 성취감을 높이는 활동을 찾아 실행하며 자동적 사고와 인지 왜곡을 수정하는 것이다.

고통스런 정서를 다루는 치료 방법 가운데 하나는 유머다. 우울증 환자가 자신이 처함 삶 가운데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다면 그 기쁨은 슬픔을 없애는 해독제가 된다.

인지행동 치료는 인간의 행동이 인지, 곧 생각이나 신념으로 이루어진다는 가정을 받아들여 문제 행동과 관련된 내담자의 인지 체계를 변화시키는 치료법이다. 이는 환자들이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인지적 왜곡을 바로 보게 하며 더욱 정확하게 평가하고 해석하도록 돕는 치료로서 환자가 자신의 잘못된 신념을 대화를 통해 발견하도록 이끈다. 환자가 긍정적 경험을 하도록 행동 과제를 부여 하는 방법도 병행된다.

이런 방법으로 여러 가지 자동적 사고를 인식하며 더욱 합리적인 사고로 변화시킨다. 그런 다음 환자한테서 나타나는 인지적 오류를 확인하여 환자가 가지고 있는 역기능 사고가 어떤 것인지 인식하도록 유도한다. 그 후 역기능 사고를 재구성하여 환자가 지닌 부정적 도식을 변화시키는 단계까지 치료가 진행된다.

 

때때로 우울하거나 불안한 기분을 벗어날 수 없고 매사가 어렵고 힘들 때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어떤 생각이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하게 하며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경직되게 한다. 인지행동 치료는 우리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왜곡되고 경직된 생각을 찾아 바로 잡아줌으로써 조화롭고 건강한 삶을 가꾸도록 도와준다.

인지행동 치료는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긍정적으로 변화시켜 비관적이고 우울한 기분을 밝고 명랑한 기분으로 전환시켜 준다. 우울증에 있어 인지치료 효과는 항우울제에 버금가며, 재발을 방지하는 효과는 항우울제 치료보다 더 우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약으로 증상을 없앨 수는 있지만 가끔 증상이 재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지행동 치료로 잘못된 신념을 재정립하면 삶의 기쁨을 발견할 수 있으며, 삶에는 고통이 따른다는 사실을 기거이 수용하게 된다.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

인지행동 치료는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를 강조하는 목표지향적이고 해결 중심적 치료다. 인지행동 치료는 우울증 환자의 과거보다 현재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체계적으로 구조화된 방식을 훈련하여 내담자가 현재 겪고 있는 문제의 해결을 촉진하는 단기적 접근을 시도한다.

인지행동 치료를 통해 우울증 환자는 자신의 왜곡된 생각을 찾아내는 기술, 적응하지 못하게 하는 잘못된 믿음을 교정하는 기술,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과 관계 맺는 기술, 감정을 인식하고 조절하는 기술, 문제가 되는 행동을 변화시키는 기술을 익힐 수 있다.

우울증 환자가 이러한 기술을 일상생활에 적용하며 삶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유용하게 활용할 때 인지행동 치료는 마무리된다. 궁극적으로 인지행동 치료는 우울증 환자가 스스로를 치유하도록 돕는다.

 

 

 

 

음악 치료

 

음악과 찬양은 우울증을 극복하는 강력한 도구다. 구약성경은 하느님께 찬양을 드리는 것과 주님께서 계시를 내리시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악사가 연주하는 동안, 주님의 손길이 엘리사에게 내렸다.” (2열왕 3,15) 하느님을 찬미할 때 암울한 환경은 밝게 변하고 우울증은 사라진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릴 때(사도 16,25) 우리는 승리할 수 있다.

 

큰 소리로 하는 찬양

예레미야 33장 11절과 같이 주님께서는 참으로 선하시고 그분의 자애는 영원하시기에 만군의 주님을 찬송할 때 우리는 치유되어 몸과 정신이 모두 건강해진다. 주님은 말씀하신다. “내가 그들을 치료하고 그들에게 넘치는 평화와 안정을 보여주겠다.”(33,6) 그러므로 고뇌 속에 있을지라도 기도하고 찬송하는 일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고통 속에서 암울한 상태로 주저앉아 중얼거리지 말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해야 한다. 성경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빚어 만든 이유가 찬송을 받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이사 43,21 참조) 야곱은 아들을 얻고 이렇게 말한다. “이제야말로 내가 주님을 찬송하리라.”(창세 29,35) 세상 만물, ‘숨 쉬는 것 모두'(시편 150,6)가 주님을 찬양해야 한다.

 

 

몸과 마음의 치유

음악 치료는 말 그대로 음악을 이용하여 몸과 마음을 고치는 것이다. 인류 최초의 음악 치료 사례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사울 왕 이야기다. 기원전 1010년경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사울은 말년에 정신 불안 증세를 보였는데, 소년 다윗이 하프를 연주할 때마다 마음의 평정을 되찾았다고 한다. 다윗이 인류 최초의 음악 치료사였던 셈이다.

음악 치료는 음악과 치료가 융합된 말이다. 음악 치료는 음악을 체계적으로 사용하여 몸과 정신 기능을 향상시키며 삶의 질을 추구하여 행동 변화를 가져오게 한다. 우울증 치료를 위해서도 음악이 이용된다. 음악 치료는 음악을 통해 모든 이가 신체적-정신적으로 성장하도록 돕기 때문에 우울증을 겪는 현대인들한테 효과적이다.

음악 치료는 음악 감상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치료사와 함께 노래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고 음악에 맞춰 동작으로 표현하며 새 노래를 만드는 등 다양한 음악 활동을 통해 치료 목적을 이룬다. 소리를 체감 음향 진동으로 변환시켜,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인체의 구성 성분인 뼈와 물의 진동을 통해 음악이 체내에 충분히 흡수되도록 도와준다. 클래식이나 명상 음악의 부드러운 선율과 맑은 악기 소리는 듣는 사람의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자연 음악의 효과

자연을 주제로 한 음악은 우울증과 스트레스에 대항하여 싸우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서정성을 고양하고 위로를 주는 멜로디로 된 음악은 객관적이고 보편적이며 긍정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메시지를 담은 음악은 공허한 라디오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물론 다양한 인쇄 매체의 부정적인 면과 편견에서 벗어나게 한다. 이는 음악이 끌어내는 기억과 감정 때문이다.

음악은 텔레비전이나 인쇄 매체처럼 집중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일을 하면서도 즐길 수 있다. 예를 들어 가벼운 음악을 배경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운동할 수 있으며, 잠을 청하면서 음악을 듣거나 집중해 들을 수도 있다. 불을 끄고 누워서 가장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것은 바쁜 일과 후에 마음을 정리하고 쉴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영육 간의 건강과 개인의 성장 차원에서 분위기를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음악을 들으면서 묵상할 때, 상처 난 감정과 잠재의식 속에 있는 무질서한 정신을 치유할 수 있다. 긴장을 풀고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20분 정도 시간을 내어 음악을 들으면 좋다. 음악은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삶을 치유하는 도구다.

음악을 들으면서 긴장을 풀고 영감을 받을 수 있다. 긍정적 생각을 하게 하고 잃어버린 가치와 균형을 되찾게 하며 한바탕 웃고 긴장을 풀면서 스트레스를 줄이게 한다. 우리는 자신을 위해 가장 좋아하는 음악이나 작곡가의 작품을 듣기 위해 기꺼이 투자해야 한다.

 

 

마음에 와 닿은 음악

사람들은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하며, 부분적으로나마 치료나 의사소통을 목적으로 작곡을 한다. 다양한 동기와 취향과 재능으로 각색한 음악은 슬픔이나 작별, 축하와 탄생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과 떼어놓을 수 없다.

화가 나고 당황하거나 우울증에 걸렸을 때, 마음에 와 닿는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치유에 큰 도움이 된다. 음악은 눈물을 흐르게 하고 감정을 움직여 삶을 관조하게 한다. 또한 원한을 품고 과거의 쓰라린 기억 속에서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음악 치료는 임상 실험에도 적극 활용된다. 불안증과 같은 정서 장애 치료에 이용되며 치매 환자들을 돌보거나 호스피스에도 사용된다. 대개 환자의 증상과 병세에 맞는 음악을 골라 이야기와 함께 들려주어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주며, 기분 좋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상상하도록 돕니다.

심리적 안정이 필요한 정신과 환자나 주의력이 부족한 아이들한테는 모차르트 음악이 효과적이다. 음악은 과도한 스트레스 환경에서 자신을 조절하는 제어 능력을 키우는 데 효과적이다. 특히 모차르트 음악은 잘 정리된 선율로 몸에 안정감을 주는 부교감 신경을 자극하여 마음을 가라앉힌다.

 

 

심신을 달래는 음악

각박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려면 물을 소재로 한 음악이 좋다. 물을 주제로 한 음악은 어머니 자궁 속의 양수와 같은 원초적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드뷔시의 <물에 비친 그림자>, 라벨의 <물의 희롱>, 헨델의 <수상 음악>이 좋다.

피로한 심신을 달래는 데는 왈츠가 어울린다. 사람의 몸과 마음에는 일정한 리듬이 있어 선율을 타고 경쾌하게 흐르는 파도와 같은 왈츠를 들으면 피로한 심신에 마사지 효과를 준다. 온화한 음악은 혈압을 낮춘다.

부드러움이 넘치는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나 드넓은 대 자연이 연상되는 베토벤 교향곡 제6번 <전원>은 긴장을 풀고 혈압을 떨어뜨린다.

소화 장애는 실내악으로 다스리는 것이 좋다. 하이든의 <종달새>나 드보르작의 <아메리카>와 같은 실내악과 요한 슈트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는 스트레스에 약한 위장에 보약과 같은 역할을 한다.

사람마다 음악에 대한 감수성이 다르기 때문에 자신에게 어울리는 음악을 찾아야 한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아무리 편안한 음악이라도 좋아하지 않는 것을 억지로 들으며 역효과가 난다.

가능하며 귀에 익숙한 클래식 음악을 활용하는 것이 좋다. 클래식 음악은 자연에 가까운 리듬과 균형 잡힌 정서를 많이 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음악을 받아들이는 능력에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고통스런 감정을 치유하려면 다음과 같은 클래식 음악이 좋다.

우울한 기분일 때는 모차르트의 <교향곡 제40번 제1악장>, 차이코프스키의 <우울한 세레나데>, 쇼팽의 <발라드 제4번>, 주페의 <시인과 농부> 서곡이 좋다.

분노가 치밀 때는 생상스의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 무쏘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비발디의 사계 중 <가을>, 스트라빈스키의 발레 조곡 <불새>가 좋다.

불안한 기분이 지속될 때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제2번 제1악장>, 베르디의 <진혼 미사곡>, 바그너의 <쉬른베르크의 명사수>, 드보르작의 <신세계>, 헨델의 <메시아>가 좋다.

긴장성 스트레스가 있을 때는 쇼팽의 <환상 폴로네즈>, 드뷔시의 <첼로 소나타 제1악장>,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제1악장>과 <교향곡 제8반 미완성>, 바흐의 <이탈리아 협주곡>, 베토벤의 <교향곡 제2번>이 좋다.

불면으로 고생할 때는 슈베르트의 <자장가>, 베토벤의 <로망스 F장조>,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제20번 K466>, 베토벤의 <로망스 A장조>,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제1번 작품 11>이 적당하다.

 

 

 

휴식과 운동 치료

 

 

운동의 효과

운동이 최대 효과를 내는 항우울제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연구에 따르면 운동은 우울증과 불안을 감소시킨다.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이 상쾌한 기분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운동이 몸과 뇌 속으로 파고들어가 기분을 북돋우는 엔도르핀 호르몬을 분비시키기 때문이다.

 깊은 우울증에 빠져 운동할 기력조차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지금 즉시 5-HTP8, 성 요한의 풀9 또는 SAM-e10를 복용하는 것이 좋다. 땀이 날 정도로 하루에 최소 20여 분, 일주일에 서너 번의 속보, 수영, 자전거 타기, 계단 올라가기, 에어로빅 또는 프레코 글라이더와 같은 유산소 운동도 우울증 치료에 도움을 준다.

유산소 운동을 할 때는 스포츠 전문점에서 심장 박동 측정기를 구입하여 심장 박동 목표 수치를 계산하면 좋다. 심장 박동 영역은 심장 박동 최대 치수의 60~80퍼센트가 좋다.

다음은 돈 콜버트의 운동 때 예측되는 심장 박동 수를 재는 공식이다.

 

 

심장 박동 최소 수치: (220-(나이))  x 0.65

심장 박동 최대 수치: (220-(나이))  x 0.80

 

예를 들어 40세인 경우 심장 박동 목표 영역을 계산하면, 220에서 나이 (40)을 뺀 (220-40=180) 180에 0.65를 곱하면 117이 된다. 그 다음 180에 0.80 을 곱하면 114 가 된다. 따라서 40세인 사람의 심장 박동 목표 영역은 분당 117~144 이므로 심장 박동 측정기를 가슴 주위에 두르고 손목시계로 시간을 재면서 심장 박동 수가 117~144 사이를 유지하도록 한다.

이렇게 하면 몸 안에 있는 세포 조직에 산소를 공급하고 우울증을 막거나 완화시키는 기능을 하는 엔도르핀 수치가 증가한다.

 

 

스트레스를 푸는 활동

불안 증세가 심하다면, 스트레스를 받는 행동을 줄이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스트레스를 주는 클럽 활동이나 당직 근무, 과외 업무나 불필요한 외부 활동을 그만두어야 한다. 서서히 긴장을 풀어주는 운동과 복식호흡이나 정원 가꾸기와 같은 긴장 완화 운동도 도움이 된다.

 

 

 

 

수면

 

잠은 우울증을 극복하는 데 더할 수 없이 중요하다. 숙면은 면역 기능을 증가시키고 기분을 좋게 하며 더 젊어지게 하고 원기를 회복시킨다. 또한 정신 기능을 향상시켜 기억력을 좋게 한다. 수면 부족은 면역 체계를 약화시켜 쉽게 병에 걸리게 한다.

 

 

잠자는 동안 치유되는 상처

인구 중 40퍼센트는 언젠가 암에 걸리게 된다고 한다. 잠을 자는 동안 우리 몸은 상처 입은 조직 세포를 치유할 수 있다. 따라서 수면 부족은 암 발생 원인 가운데 하나다. 몸이 상처를 입었는데 지친 조직을 치유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갖지 않으면 결국 병에 걸리게 된다.

성인은 평균 7~8시간은 잠을 자야 한다. 나이가 많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젊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세로토닌이 없기 때문에 밤에 잠을 자는 데 문제가 있어 대략 세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주기적으로 불면증 증세를 보인다.

불면증이란 쉽게 이야기해 밤새 잠들지 못하거나 잠든 상태를 유지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불면증은 흔히 우울증을 유발하기 때문에 하루빨리 치유하는 것이 좋다.

불면증을 고치려면 커피나 초콜릿 같은 자극성 있는 음식을 멀리해야 한다. 카페인은 뇌 속에 있는 세로토닌과 멜라토닌 효능을 억제하고 신경과 근육을 자극하여 심장 박동을 증가시킨다. 알코올 또한 수면을 방해하는 유해 물질이다.

카페인이나 설탕을 많이 섭취해도 우울증이 깊어질 수 있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설탕과 카페인이 많이 들어 있는 탄산음료를 즐겨 마신다. 커피와 차를 마시면서도 설탕을 첨가한다. 과도한 카페인과 설탕 섭취는 결국 비타민B의 손실과 스트레스 호르몬 코르티솔 Cortisol의 증가와 수면 장애를 초래한다.

저혈당에 빠질 위험이 있다면 잠자리에 들기 전에 탄수화물 40퍼센트, 단백질 30퍼센트, 지방 30퍼센트로 된 소량의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 좋다. 잠자리에서 깨지 않도록 잠자기 전에는 미리 소변을 본다.

 

 

긴장을 푸는 기술

너무 늦은 밤이나 잠자기 전에는 자극을 주는 운동을 해서는 안 되며, 운동을 하더라도 긴장을 풀어줄 만큼만 하는 것이 좋다. 잠들기 전에 액션 영화를 보면 아드레날린 호르몬을 증가시키기 때문에 좋지 않다.

잠자리에서 할 수 있는, 긴장을 푸는 기술을 연마하는 것이 좋다. 침대에 누워 긴장을 풀고 발가락을 1~2초 구부린 다음 편안한 자세로 머리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근육을 단계적으로 구부렸다가 펴준다. 잠들기 전에 정신을 고요하게 하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얻기 위해 기도하고 성경을 읽는 것도 효과가 있다.

 

 

 

적당한 영양과 음식물 섭취

 

 

종합 비타민과 미네랄

우리가 먹는 음식과 영양분이 우울증의 예방과 발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울증을 치료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종합 비타민과 미네랄을 섭취하는 것이다. 하느님은 비타민-미네랄-아미노산-허브처럼 우울증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는 훌륭한 식품을 창조하셨다.

이 같은 식품은 손쉽게 구입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식품이 의사나 전문가의 상당을 대신하지는 못하지만 우울증을 극복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 종합 비타민을 복용해 우울증 발생을 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의사의 처방이 없는 것은 비타민이나 미네랄이 들어 있지 않을 수 있으며 소화 흡수에도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조금 비싸더라도 좋은 제품을 복용한다.

의학과 영양학 전문가들은 병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한테는 비타민 결핍 증세가 있다고 말한다. 이는 비타민이 어떤 질병이나 고통으로 인한 증상을 없애거나 줄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우울증 환자한테는 일반적으로 비타민 B6와 B12와 엽산이 결핍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비타민 B6는 세로토닌을 생산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세로토닌은 뇌 세포 안에 있는 신경전달물질로, 신경 말단 부분에 메신저 기능을 한다.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우울증-불안-편식(특히 당과 녹말)-불면증-통증-편두통-만성피로-생리 전 증후군-과식증을 유발시킨다.

CT-MRI-PET와 같은 뇌 영상 검사기법을 통해 과학자들은 25년 전부터 우울증과 세로토닌 활동의 연관성을 감지하여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 가운데 세로토닌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아냈지만, 지금까지 직접적인 증거를 찾지는 못했다.

뉴욕 정신의학 기관에서 일하는 의사들이 최소한 2주 동안 약물을 사용하지 않은 중증 우울증 환자와 건강한 사람 여섯 명을 비교하기 위해 세로토닌의 활동을 촉진하는 약물을 투여했다. 그 결과 건강한 환자한테서 볼 수 있는 뇌의 좌우 영역에서 일어나는 신진대사의 증감 현상이 우울증 환자한테서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냈다.

불안 증세를 보이는 환자는 종합 비타민과 무기질을 섭취하고 5-HTP를 섭취하면 불안을 줄일 수 있다. ‘성 요한의 풀’은 독일에서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오랫동안 사용해 온 약초다. 성 요한의 풀이나 비타민 B와 같은 영양소는 뇌 속에 있는 화학 전달 물질의 흡수를 높여 감정에 영향을 미치며 우울증 예방 효과를 높인다. 실제로 이러한 식품은 독일에서 프로작 Prozac과 같은 항우울제보다 널리 사용되고 있다.

카바 Kava 허브는 우울증과 불안을 함께 겪는 사람들을 치료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우울증 환자가 불안과 우울증을 동시에 경험하는 것은 일반 현상이다. ‘시계풀 Passion flower’은 몇 세기 동안 진정제로 사용한 허브로, 안정을 취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독일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정신 건강을 위한 균형 잡힌 식사

정신 건강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균형 잡힌 식사가 중요하다. 우울증과 관련된 가장 해로운 생활 습관은 음주와 흡연이다. 또한 과다한 설탕과 카페인, 흰 빵과 밀가루, 백미, 파스타와 같은 가공식품을 지나치게 섭취하는 것도 우울증에 영향을 준다.

단백질이나 카페인을 지나치게 섭취하고 저혈당이나 고혈당(당뇨병) 상태 또는 심각한 영양부족 상태가 되면 뇌 속에 정밀하게 균형을 이루던 화학물질이 심각한 영향을 받는다. 뇌 화학물질인 세로토닌은 뉴런(신경단위)이 신호를 정확하게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하는데, 올바르지 않은 식생활은 세로토닌의 수치를 낮춘다. 따라서 우울증을 예방하려면 올바른 생활 습관과 식생활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균형 잡힌 식단을 짜야 한다. 균형 잡힌 식단은 충분한 과일과 채소, 각종 곡물과 콩, 씨앗과 살코기를 포함해야 한다. 한편 탄산음료-푸딩-아이스크림-케이크-파이-쿠키-캔디-시리얼과 같은 고당분 음식은 피해야 한다.

생선과 어유, 특히 ‘오메가3’11를 많이 섭취하는 것도 우울증 예방에 큰 도움이 된다. 생선과 아마씨 오일과 같은 오메가3 지방산은 우울증 발생을 막고 세포막을 강하게 만든다. 우리 몸에서 지방산의 가장 중요한 공급처는 뇌다. 뇌의 신경세포가 올바른 기능을 하게 하려면 건강하고 원활한 작용을 하는 세포막을 자져야 한다.

아마씨를 갈아 빵가루에 넣거나 요리할 때 밀가루 대신 몇 숟가락 넣으면 맛이나 모양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음식을 만들 때는 아마씨 오일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아마씨 오일로 요리하면 오일이 산화되어 몹시 위험한 지방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아마씨 오일을 병에 넣고 냉장고에 두고 하루에 두 번 정도 숟가락으로 떠먹는 것도 좋다. 하지만 개봉한 후에는 쉽게 산화하므로 한 달 안에 먹고 병을 버려야 한다.

시중에 항우울제로 가장 흔히 처방하는 것은 프로작이다. 프로작은 뇌 세포의 세로토닌의 재흡수를 도와주어 뇌에 세로토닌 수치를 증가시키는 역할을 한다. 뇌는 오랜 시간 동안 우울한 기분을 없애기 위해 세로토닌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영적 치료

 

때때로 화학적 불균형이나 자연적 원인 때문에 몸에 문제가 생기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든 문제에 대한 가장 확실할 해답을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다. 기쁜 소식은 누구나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으며 슬픔조차도 기쁨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하느님은 자연적-영적 차원에서 우울증과 불안을 물리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 주셨다. 우울증에 도움이 되는 여러 조치를 실제로 따른다면, 희망을 갖고 우울증과 불안을 극복하며 내적 평화를 누릴 수 있다.

 

 

기쁨으로 충만하게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사람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지켜줄 것입니다.”(필리 4,4.6-7)

모든 유형의 우울증은 영적으로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하느님한테서 오는 기쁨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기쁨으로 충만하리라고 약속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5,11)

 

 

말씀과 찬미 기도

우리 삶에서 가장 확실한 항우울제는 하느님의 말씀과 찬미 기도다. 하느님의 언약을 믿으면서 우리가 겪는 고통에 하느님의 목소리를 싣고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려고 노력할 때, 우리는 하느님께서 넘치도록 주시는 기쁨을 얻을 수 있다.

낙담하지 말고 용기를 내야 한다. 우리는 이미 성령의 도움에 힘입어 하느님께서 주신 충만한 기쁨으로 우울증과 슬픔에서 벗어나는 큰길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고통에 목소리를

 

“내가 기어이 뵙고자 하는 분, 내 눈은 다른 이가 아니라 바로 그분을 보리라. 속에서 내 간장이 녹아내리는구나.”(욥 19,27) 욥은 불쌍하고 가련한 처지가 되었다. 욥은 벗들한테서 헐 뜯기고 구박 당할 때마다 하느님마저도 자신을 그렇게 대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를 깊은 우울증으로 몰고 간다.

상처를 치유하려면 우리가 겪는 고통을 큰 소리로 외쳐야 하고 고통을 대중화해야 한다. 신뢰할 만한 친구나 상담자에게, 궁극적으로는 하느님께 외쳐야 한다.

“큰 소리로 감사 노래 부르고 당신의 기적들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주님, 저는 당신께서 계시는 집과 당신 영광이 깃드는 곳을 사랑합니다.”(시편 26,7-8)

“여기 가련한 이가 부르짖자 주님께서 들으시어 모든 곤경에서 그를 구하셨네.”(34,7)

 

 

소리 높여 외치자

혼자 악을 쓰며 불평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고통을 소리 높여 외쳐야 한다. 이스라엘 민족은 바빌론 유배 때 노예들의 합창으로 자신의 고통을 외쳤고, 한 많은 우리 선조들은 민요로 그 고통을 승화시켰다. 한 사람의 고통이 대중에게 알려져 노래로 승화되면 다름 모습으로 전환된다.

무시당해 우울증에 빠졌을 때는 자신 안으로 움츠러들며 고통을 개인 문제로 돌리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파괴적 감정을 치유할 수 없다. 몇 천년 전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우울증을 다루면서 독특한 방법을 사용했다. 재앙과 혼동의 시기에 목소리를 높여 큰 소리로 호소한 것이다.

그들은 슬픔을 개인의 것으로 제한하지 않고 그 고통을 대중적 표현으로 바꾸었다. “길을 지나가는 모든 이들이여, 살펴보고 또 보시오. 당신의 격렬한 진노의 날에 주님께서 고통을 내리시어 내가 겪는 이내 아픔 같은 것이 또 있는지.”(애가 1,12)라는 말씀에서 이를 잘 알 수 있다.

 

 

마음의 문을 열자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슬픔에 젖어 몸부림치면서도 우울증으로 마음의 문을 닫거나 움츠러들지 않았다. 그들은 다른 말로 자신이 겪는 고통을 이야기했다. 시편은 이러한 모습을 거듭 보여준다. “저는 탄식으로 기진하고 밤마다 울음으로 잠자리를 적시며 눈물로 제 침상을 물들입니다.”(6,7)

화이트헤드12는 구약의 선조들이 비탄의 기도를 통해 자신의 아픔을 목 놓아 외쳤음을 상기시킨다. 구약의 선조들은 원망하고 신음함으로써 하느님의 관심을 얻었으며, 하느님께 재차 다다가 왜 우리가 이러한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따졌다. 욥 은 이렇게 말한다. “나 하느님께 말씀드리리라. ‘저를 단죄하지 마십시오. 왜 저와 다투시는지 알려주십시오.'”(10,2)

비탄에 젖어 있을 때 ‘격렬한 열정으로 외치는 지상의 소리가 하늘을 감동시켰다.’는 사실을 예언자들은 믿었다. 이는 새 삶을 중재하는 표현으로 전해지며 공동체가 외친 고통의 소리가 되었다. “주님께 바라고 바랐더니 나에게 몸을 굽히시고 내 외치는 소리를 들으시어 나를 멸망의 구덩이에서, 오물 진창에서 들어 올리셨네. 반석 위에 내 발을 세우시고 내 발걸음을 든든하게 하셨네.”(시편 40,2-3)

우리도 신앙의 선조들처럼 고통을 대중화해야 한다. 상처를 치유하려면 우리가 겪는 고통을 외쳐야 한다. 위기를 겪고서야 본연의 모습을 새롭게 발견한 가정이 있다.

 

 

우리는 부부이면서도 대화를 하지 않고 지냈고, 십대인 딸은 반찬 투정을 하며 징징거렸다. 아들도 툭하면 신경질을 부리며 늘 비협조적이었다. 이처럼 암울하게 지내면서도 이웃과 친척 앞에서는 별 문제가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상담자의 도움으로 가족 모두가 대화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상황이 더 나빠지는 것 같았지만 차츰 묻혀 있던 고뇌와 고통을 하나 둘 끄집어내면서 상처를 주지 않고 내면의 증오에 이름 짓는 법을 배웠다.

 

 

승화된 고통

이렇게 함께 고뇌를 나눌 때 우리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며 변화될 수 있다.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행동 양식을 인식할 때 우리는 자신의 상처를 아파하며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다.

흑인 가수들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자신과 사회를 치유한 예를 볼 수 있다.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미국 흑인들의 노래에 자신의 고통을 실었다고 한다. 흑인 영가에 착취와 억압으로 고통 받는 슬픔을 모두 담았던 것이다.

지금도 그들의 음악은 미국 문화에 풍요로운 유산을 남기고 있다. ‘어둠을 담은 노래’는 끊임없이 치유 효과를 준다. 멜로디와 리듬의 매혹적 전환은 고통을 승화시켜 열매를 맺게 한다. 개인의 고통이 대중가요로 승화되어 놀라운 모습으로 전환된다.

우울한 마음을 노래로 표현함으로써 사람들의 고뇌를 위로하며 우울증을 슬픔으로 바꿀 수 있다. 우울증을 슬픔에 담아 외칠 때 우리는 신비로운 예식을 통해 고통을 기도로 전환시킬 수 있다. 바오로 사도는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사람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지켜줄 것입니다. 끝으로 형제 여러분, 참된 것과 고귀한 것과 의로운 것과 정결한 것과 사랑스러운 것과 영예로운 것은 무엇이든지, 또 덕이 되는 것과 칭송 받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마음에 간직하십시오.”(4,6-8)

슬픔에 젖어 있을 때 우리는 고통 앞에서 흔쾌히 서서 상실감에서 오는 부정적 현상을 용감하게 마주할 수 있다. 온 국민이 함께 울면서 국가 차원의 슬픔을 해소시킨 사건이 한국에서 일어난 적이 있다. 분단 50년의 세월을 지낸 우리는 가슴에 한을 품고 있다. 부모와 자식이 헤어져 평생 생사를 확인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어렸을 때 손잡고 피난 가다 헤어진 형제자매를 그리며 평생을 한으로 살아온 사람들이 있다.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대대적으로 벌인 이산가족 찾기 운동에 출연한 가족들은 서로의 생사를 확인하고 서로의 모습을 더듬으며 부둥켜안고 목 놓아 울었다. 이처럼 감격적인 상봉은 몇 달 동안 계속되었는데, 가족들이 눈물 흘리며 한을 쏟아낼 때마다 온 국민이 함께 울었다. 한민족이 짊어진 고뇌와 고통을 슬픔으로 표현한 것이다. 온 국민이 따뜻한 마음으로 이산가족의 슬픔을 껴안았다. 익명화된 슬픔이 눈물로 표현-치유된 것이다.

 

 

오아시스 모임

사회에서 슬픔을 겪는 익명화된 사람들에게 오아시스를 제공하는 여러 모임이 있다.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모임 참석자들은 자신의 실패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후회하며 도움을 청한다. 은밀하고도 파괴적인 습관에 젖어 사는 알코올 중독자들은 내면의 고뇌를 큰 소리로 표현하면서 우울증을 일으키는 부정적 생활 방식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음주 운전자에 대항한 어머니 모임은 자신의 슬픔을 대중 앞에 표현하여 좋은 열매를 맺었다. 이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은 알코올과 관련된 사고로 아이를 잃었을 때 오는 분노와 죄책감과 우울증을 떨치고, 음주 운전자들에게 엄한 벌을 내리는 법률을 제정하기 위해 효과적인 로비 활동을 했다. 이러한 결집력은 상실감에서 오는 부정적 행동 양식에서 자신을 보호하고 창조적으로 힘을 모으도록 이끌었다.

 

 

성고문을 폭로한 운동권 학생에 의해 성고문에 따른 고통과 성폭행에 대한 사회 의식을 불러일으켰다. 우리 사회는 학대 받으며 사는 여성들을 자주 소외시킨다. 학대 받는 여성들이 침묵하고 도망가면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에서 자신의 처지를 증언할 힘을 잃게 된다. 운동권 학생의 용기와 희생으로 충격적 사건이 알려지자 대중은 성폭행에 대한 현실을 알게 되었다.

 

 

개인의 슬픔을 대중적 치유로 전환하는 방법은 자신의 상처를 껴안는 것이다. 우울증이 약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믿는다면 우리는 고통을 없애거나 내리누르며 멀리하려 할 것이다. 끊임없는 불평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불평하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직시하지 못하고 해결책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신앙의 선조들은 비생산적 슬픔을 멀리 던져버렸다.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광야로 갔을 때, 몇몇 사람은 그들이 처한 상황 때문에 모세를 저주했다. 그들은 천막 앞에서 지도자들에게 불평했지만 그들이 겨냥한 것은 정확한 목표물이 아니었다. 적대감을 품은 사람들은 모세나 하느님께 직접 탄원하지 못하고 불평하며 외곽에 남아 있었다.

 

 

자신의 상처를 껴안을 때

오늘날에도 불평하는 사람들은 곧잘 문제를 직시하지 못하고 해결책을 찾는 데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 불평만 반복한다. 그러나 무의미한 불평으로는 자신의 의견을 고수하거나 관철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치유는 자신의 상처를 껴안을 때 가능하다.

구원의 역동성은 고통을 마술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상처를 껴안을 때 신비로운 효과가 나타난다. 슬픔 안에서 기억할 때, 그 슬픔은 더욱 건강하고 새롭게 회복된다. 일시적으로 찾아오는 우울증이 한꺼번에 폭발할 수도 잇다. 우리는 자신의 고통을 소리 높여 표현하고 상처를 껴안아야 한다. 이렇게 할 때 우울증은 슬픔 안에서 녹아 내리며 치유되기 시작한다.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

 

사전적 의미로 기쁨은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의 즐거운 마음이나 느낌’을 말한다. 심리학 사전은 이렇게 정의한다. ‘자신이 원하는 일이나 목표가 성취될 때 경험하는 즐거운 감정 또는 정서 반응, 일반적으로 일(목표)의 중요성이나 이를 성취하는 과정에서 기울이는 노력의 정도에 따라 기쁨의 정도가 달라진다.’

성경은 곳곳에서 기쁨에 대해 이야기한다. 기쁨은 욕구 충족이나 목표 성취를 뛰어넘어 근원적인 곳에 도달할 때 얻는 열매다.

 

 

어렸을 때 나는 동네 근교 산에서 친구들과 뛰놀았다. 목이 마르면 흙 사이로 조금씩 솟아오르는 샘물을 찾았다. 한참을 파내면서 때때로 ‘물이 진짜 나올까?’ 하고 의문을 던지며 호기심을 갖고 땅을 팠다. 오랫동안 땅을 팠는데도 물이 나오지 않아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계속 파다 보면 어느 순간 샘물이 솟아 흘렀다. 포기하려던 순간 그만두었더라면 깊은 샘물을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샘에서 물이 솟아 흐르게 하는 것처럼 우리는 기쁨으로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다. 영혼 깊은 곳에 샘물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흙을 파서 물이 나오게 하는 것처럼, 내면에 있는 기쁨을 끌어올리는 것은 웃음과 노래와 같은 것들이다.

밖으로 애써 표현하다 보면 충만한 기쁨이 솟아오른다. 처음에는 힘들고 의구심이 들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노력하다 보면 ‘쏟아져 나오는’ 기쁨을 맛볼 수 있다.

 

 

기쁨으로 가득한 삶

성경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충만한 삶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바오로 사도는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필리 4,4)라고 말한다. 여기서 그는 두 번이나 기뻐하라고 말한다. 성경은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이야기할 때 반복하여 말하는데, 이때 우리는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바오로와 실라스가 필리피 감옥에 있을 때 일어난 일을 통해 우리는 바오로 사도가 기쁨의 힘을 깨닫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자정 무렵에 바오로와 실라스는 하느님께 찬미가를 부르며 기도하고, 다른 수인들은 거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 감옥의 기초를 뒤흔들었다. 그리고 즉시 문들이 모두 열리고 사슬이 다 풀렸다.”(사도 16,25-26)

매를 맞은 다음 감옥에 끌려가 쇠사슬에 묶여 잇던 바오로와 실라스는 미리 걱정하지 않고 단순하게 하느님께 찬미 노래를 부르면서 기쁨을 느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세상 걱정과 하느님 나라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이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마태 6,27)

 

 

늘 기뻐하자

바오로 사도는 부정적 태도, 곧 화와 원한과 서러움을 품을 수 도 있었지만 늘 기뻐하리라 다짐했다. 고난의 시기에 기뻐하고 찬미하는 건강한 태도를 선택한 것이다.

이처럼 우리도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희망을 지닌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한다.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로마 8,18)

또한 바오로 사도는 고난을 그리스도와 내밀한 관계를 맺는 기회로 여기며 기쁨으로 극복한다. “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며 기뻐합니다.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내가 이렇게 그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우고 있습니다.”(콜로 1,24) 이 말씀은 우리의 마음과 몸을 닫아걸고 점차적으로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치명적 감정을 막을 수 있는 열쇠 가운데 하나다.

우리는 고난 가운데 기뻐할 수 있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니 기뻐하십시오. 그러면 그분의 영광이 나타날 때에도 여러분은 기뻐하며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1베드 4,13)

바오로 사도는 지난 일을 잊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부름 받은 높은 목표를 향해 달려갈 것이라고 말한다.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하늘로 부르시어 주시는 상을 얻으려고, 그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필리 3,14)

바오로 사도는 자신이 추구해야 할 목표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목표가 없는 것처럼 달리지 않습니다. 허공을 치는 것처럼 권투를 하지 않습니다.”(1코린 9,26)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힘

기뻐할 때 우리는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힘을 느낀다. ‘기뻐하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아주 단순한 것이다. 그냥 놀면서 즐겁게 웃는 것이다. 단순하게 기뻐하다 보면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가 흔히 있다.

단순한 믿음과 기쁨으로 우리는 닫힌 문을 열 수 있다. 실라스와 바오로와 함께 감옥에 있던 사람들이 쇠사슬을 푼 것처럼, 오늘날에도 우울증에 묶여 내면에 갇힌 채 신음하는 사람들이라도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다.

시편 저자는 힘이 되어주시는 주님을 환호한다. “정녕 당신께서 제게 도움이 되셨으니 당신 날개 그늘 아래서 제가 환호합니다.” (시편 63,8) 기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실천한 사람이 있다.

 

 

나는 기뻐하라고 할 때마다 ‘어떻게 기뻐할 수 있지?’ 라는 물음을 던지곤 했다. 여러 번 시행착오를 거친 후에야 깨달은 것이지만, 기쁨이 충만한 삶은 단순하게 웃음 지으며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그냥 단순하게 웃으며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체험했다. 단순하게 ‘기뻐하는 것’은 내적 힘을 지닌다.

 

 

변화는 단순한 행동을 통해 오며, 이는 주어진 환경에 어떻게 응답하느냐에 달려 있다. 우울증 초기 증세가 나타나자마자 활짝 웃거나 노래하는 등 즉각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면 우울증은 극복할 수 있다.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막는 법은 없습니다.”(갈라 5,22-23) 라는 성경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기쁨은 성령의 순수한 열매다.

성령의 열매를 맺으려면 주님 안에 머물러야 한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요한 15,4)

주님과 합당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때 우리는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주님께 합당하게 살아감으로써 모든 면에서 그분 마음에 들고 온갖 선행으로 열매를 맺으며 하느님을 아는 지식으로 자라기 빕니다.”(콜로 1,10)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기 때문에 주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을 때 우리는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요한 복음사가는 우리 안에 계신 성령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 그분은 진리의 영이시다. 세상은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분을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너희는 그분을 알고 있다. 그분께서 너희와 함께 머무르시고 너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요한 14,16-17)

성령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기에 우리는 성령께 의탁해야 한다. 바오로 사도는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 수 없습니다.” (1코린 12,3)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살아갈 때, 기쁨은 우리 안에서 드러난다. 기쁨을 밖에서 얻으려 하거나 애써 만들 필요가 없다. 성령의 여러 열매를 맺을 때처럼 성령은 우리 가운데 활동하여 기쁨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우울증에서 해방시켜 줄 것이다. 집회서 30장 22절은 “마음의 기쁨은 곧 사람의 생명이며 즐거움은 곧 인간의 장수”라고 말한다. 생명력 있는 내면의 기쁨으로 살아갈 때 우리는 우울증을 물리칠 수 있다.

 

 

흘러 넘치는 기쁨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은 내면 깊이 흘러 넘친다. “내가 달릴 길을 다 달려 주 예수님께 받은 직무 곧 하느님 은총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다 마칠 수만 있다면, 내 목숨이야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 (사도 20,24)

바오로 사도는 주님께서 주신 충만한 기쁨으로 복음을 전하라고 한다. 어원적으로 ‘기쁨’이라는 말은 그리스 말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고요하고 즐거운’이라는 뜻이다. 히브리 말  ‘기쁨’에는 ‘즐거워하는 것’, ‘합해지는 것’, ‘뛰노는 것’이라는 뜻이 있다.

 

느헤미야 8장 10절은 “주님께서 베푸시는 기쁨이 바로 여러분의 힘”이라고 한다. 주님 앞에서 기뻐하면 늘 우리를 지켜주실 것이다. 여기서 기뻐한다는 것은 ‘하나가 되는 것’이다. 힘이 되어 주시는 주님 앞에서 기뻐하기 위해 하느님과 하나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주님과 하나 될 수 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삼위일체의 관계 안으로 초대하셨기 때문이다.

“저는 더 이상 세상에 있지 않지만 이들은 세상에 있습니다. 저는 아버지께 갑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키시어,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주십시오.” (요한 17,11)

 

 

기쁨의 근원

우리는 세례로 그리스도와 ‘하나'(로마 6,3) 되었다. 우리 삶 가운데에서 주님과 하나 되는 것이 기쁨의 근원이다. “아침에는 환호하게 되리라.”(시편 30,6)는 말씀을 우리는 매일의 삶에서 체험할 수 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기쁜 마음으로 일어나려면 먼저 의지적으로 기쁘게 살아가려고 노력해야 한다. 결심이 앞서면 감정은 따라오기 마련이므로 노력하는 만큼 기쁘게 살 수 있다.

신앙인이라도 우울증으로 힘들어 할 때가 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많은 신앙인이 자신의 고통을 숨기고 잘못된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살아간다. 이러한 태도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켜 우울증을 극복하지 못하게 하지만, 예수님께서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주신다는 것을 믿으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우울증도 이겨낼 수 있다.

베드로 사도는 이러한 기쁨이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본 일이 없지만 그분을 사랑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분을 보지 못하면서도 그분을 믿기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 속에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1베드 1,8)

기쁨의 원천이신 주님께서는 온 세상에 기쁜 소식을 전하신다.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말한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 하느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싸매어 주며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갇힌 이들에게 석방을 선포하게 하셨다. 주님의 은혜의 해, 우리 하느님의 응보의 날을 선포하고 슬퍼하는 이들을 모두 위로하게 하셨다. 시온에서 슬퍼하는 이들에게 재 대신 화관을, 슬픔 대신 기쁨의 기름을, 맥 풀린 넋 대신 축제의 옷을 주게 하셨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들을 ‘정의의 참나무’, ‘당신 영광을 위하여 주님께서 심으신 나무’라 부르도록 하셨다.”(이사 61,1-3)

내 삶이 먼저 기쁨으로 채워져야 주변을 기쁨으로 채울 수 있다. 기쁨은 밖으로 표현되기 마련이다. 표현되지 않는 기쁨은 자칫 주변을 거북하게 하며 무거운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

 

 

어느 날 아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왜 그렇게 늘 심각하세요? 어머니가 인상을 쓰고 있으니까 집안 분위기가 항상 썰렁하잖아요.’ 그 순간 나는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사실 그때까지 나는 기쁘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후 나는 아이의 말을 곰곰이 생각하면서 주님께 기도했다.

‘주님 제가 뭐 잘못한 게 있나요?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고, 저에게 주어진 시간 안에 기도하고 성경 공부하고 봉사활동도 하고 있는데, 하느님을 사랑하고 가족을 돌보려고 애쓰는 것을 당신도 잘 아시잖아요. 그런데 아이가 저에게 너무 심각해서 집안을 무겁게 만든다고 하네요. 도대체 무슨 까닭이지요?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내가 너무 인상을 쓰고 있어서 사람들을 거북하게 했음을 깨달은 나는 날마다 열심히 노력했다. 이제는 아무리 심각하고 어려운 일도 여유를 갖고 기쁘게 한다. 그 후 집안 분위기가 바뀌어 아이와 하느님께 감사 드렸다.

 

 

집안 분위기를 만드는 데 내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가족과 함께 웃고 지내면 더 행복해진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집안 분위기가 바뀌었다. 예전에는 아이들에게 숙제 했냐고 다그쳐 물었고 잔소리를 하며 집안일을 시켰는데, 이런 태도에 한계가 있음을 알게 된 나는 이제 웃는 얼굴로 다가가 물어본다. 아이들과 남편과 함께 웃는 것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모른다.

 

 

나한테 가정은 행복한 곳이 아니다. 기쁘기보다 늘 짜증이 난다. 아내는 늘 바가지를 긁는다. 회사에서도 상사에게 잔소리를 듣고 불만이 가득한 동료들과 함께 일하는데, 집에서도 마찬가지니 집에 빨리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없다.

 

 

행복한 자리

가정은 행복한 장소가 되어야 한다. 가족 구성원 모두는 가정이 행복한 자리가 되도록 노력할 책임을 지닌다. 기쁨은 이웃에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행복하면 다른 사람도 행복해진다. 무엇보다 우리는 모든 행복의 근원이 하느님한테서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들을 기억할 때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다.

시편 저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주님, 당신께서 하신 일로 저를 기쁘게 하셨으니 당신 손의 업적에 제가 환호합니다.”(92,5) 잠언은 행복의 문에 대해 말한다. “말씀에 유의하는 이는 좋은 것을 얻고 주님을 신뢰하는 이는 행복해진다.”(잠언 16,20)

기쁨으로 가득할 때 우리는 주변 환경을 바꿀 수 있다. 주님을 사랑하고 복음 말씀대로 살아가며 거저 베풀 때 우리는 그 기쁨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을 기꺼이 봉헌하는 삶은 기쁨의 원천이 되어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더욱 풍요롭게 살 수 있다.

루카 복음사가는 봉헌하는 삶에 대한 축복을 이렇게 말한다.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루카 6,38) 기쁨으로 가득한 삶이 밖으로 표현되면 더 많은 열매를 맺는다.

 

 

웃음, 가장 위대한 선물

우리는 하느님께서 주신 가장 위대한 선물 가운데 하나인 웃는 법을 배워야 한다. 웃음으로 우울증을 치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면역력을 높여주는 웃음은 스스로를 치료할 수 있는 자연 치유력을 지닌다. 웃음은 부작용 없이 병을 예방한다.

웃음이 몸에 좋은 점은 뇌의 감정에 대한 효과 때문이다. 웃음은 측좌핵 이라고 불리는 뇌의 보상회로 부분을 자극한다. 보상회로 부분이 활성화되고 도파민의 농도가 올라가면 카테톨아민과 스트레스 호르몬이 감소되어 즐거운 감각이 활기를 띤다.

우리는 웃을 때마다 보상을 받는다. 즐거워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즐거울 수 있다는 말이다. 일부러 웃는 웃음이 자연스러운 웃음과 똑같은 효과를 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웃음은 고통을 느끼는 여러 회로의 활동을 약화시키고 우울한 기분과 부정적 감정을 차단시킨다. 몸과 뇌의 에어로빅인 웃음의 효과 때문에’웃음 요법’이 널리 시행되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상대방이 웃으면 저절로 따라 웃는다. 따라서 내가 웃으면 세상이 함께 웃을 것이다. 웃음은 상대방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게 하며 어둠을 밝게 비추는 힘이 있어, 웃을 때 우리는 아름다워 보인다. 얼굴이 굳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하루를 시작하기 전 세면장에서 거울을 보고 웃는다면 어둠을 빛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때때로 실업이 웃어 보자. 실없는 웃음이 하루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고뇌의 시기나 죽음에 임박할 때라도 기뻐하고, 무슨 일을 당하더라도 기뻐 노래하며 소리 높여 찬미해야 한다. 바오로 사도는 어떤 환난을 당하더라도 기쁨에 넘쳤다고 말한다. “나는 우리의 그 모든 환난에도 기쁨에 넘쳐 있습니다.”(2코린 7,4)

야고보 서간은 모든 것, 특히 어려운 시련일수록 기쁨으로 대해야 한다고 하면서 시련을 견뎌 내면 온전한 사람이 된다고 말한다. “나의 형제 여러분, 갖가지 시련에 빠지게 되면 그것을 다시 없는 기쁨으로 여기십시오. 여러분도 알고 있듯이, 여러분의 믿음이 시험을 받으면 인내가 생겨납니다. 그 인내가 완전한 효력을 내도록 하십시오. 그리하면 모든 면에서 모자람 없이 완전하고 온전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에 누구든지 지혜가 모자라면 하느님께 청하십시오. 하느님은 모든 사람에게 너그럽게 베푸시고 나무라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면 받을 것입니다.”(1,2-5)

집회서는 시련 속에서도 주님을 경외하라고 한다. “얘야, 주님을 섬기러 나아갈 때 너 자신을 시련에 대비시켜라. 네 마음을 바로잡고 확고히 다지며 재난이 닥칠 때 허둥대기 마라. 주님께 매달려 떨어지지 마라. 네가 마지막에 번창하리라.”(2,1-3)

 

 

주님 안에 뿌리내린 믿음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리라고 믿으며 주님 안에 뿌리를 내리고 주님께 ‘희망'(집회 2,6)을 두어야 한다. 하느님께서 어두운 내면을 당신 빛으로 비추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빛으로 어둠을 물리칠 수 있다. “어둠 속에서 빛이 비추어라.’ 하고 이르신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을 비추시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느님의 영광을 알아보는 빛을 주셨습니다.”(2코린 4,6)

주님은 시련을 허락하시며 시련을 통해 우리를 훈육하신다. 바오로 사도는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훈육의 목적에 대해 말하면서 슬픔이 기쁨으로 변하리라고 강조한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유익하도록 훈육하시어 우리가 당신의 거룩함에 동참할 수 있게 해주십니다. 모든 훈육이 당장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것으로 훈련된 이들에게 평화와 의로움의 열매를 가져다 줍니다.”(12,10-11)

예수님께서는 이별의 슬픔과 재회의 기쁨을 이야기하면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을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내가 너희를 다시 보게 되면 너희 마음이 기뻐할 것이고,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요한 16,20.22)

중심을 예수님께 둔다면, 우리는 모든 시련과 환난을 뛰어넘어 기쁨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두려운 일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면 믿음으로 해낼 수 있다. 하느님의 천사가 목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루카 2,10)고 말한 것처럼 그리스도는 우리의 희망이며 기쁨이기 때문이다.

 

 

기쁨으로 가득한 영혼

아침부터 기쁨의 영으로 가득 찬 영혼은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우울한 감정을 몰아낸다. “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마음 바른 이들아, 모두 환호하여라.”(32, 11)고 시편 저자는 큰 소리로 기뻐 노래한다.

바오로 사도가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주님께 노래를 불러드려야 한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에 풍성히 머무르게 하십시오. 지혜를 다하여 서로 가르치고 타이르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를 불러드리십시오.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이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면서,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3, 16-17)

우울증을 극복하는 데 기쁘고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야 한다. 기쁨은 큰 힘을 드러낸다. 바오로 사도는 성시와 찬송가와 영가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계속 권고한다. 이러한 삶을 통해 우리는 우울증을 물리칠 수 있다.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로 서로 화답하고, 마음으로 주님께 노래하며 그분을 찬양하십시오. 그러면서 모든 일에 언제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에페 5,19-20)

시편 저자는 소리 높여 구원의 노래를 부르라고 한다. “당신은 저의 피신처. 곤경에서 저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환호로 저를 에워싸십니다.”(32,7) “당신께 피신하는 이들은 모두 즐거워하며 영원토록 환호하리이다. 당신 이름 사랑하는 이들을 당신께서 감싸주시니 그들은 당신 안에서 기뻐하리이다.”(5,12)

노래와 환호는 성벽과 요새도 부술 수 있다. 우리는 여호수아기를 통해 큰 소리로 외쳐 성벽을 무너뜨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는다. “사제들이 뿔 나팔을 부니 백성이 함성을 질렀다. 백성은 뿔나팔 소리를 듣자마자 큰 함성을 질렀다. 그때에 성벽이 무너져 내렸다. 백성은 저마다 성읍을 향하여 곧장 앞으로 올라가서 그 성읍을 함락하였다.”(6,20)

우리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온 땅에서 환호해야 한다. “그들은 소리 높여 주님의 위엄에 환호하고 바다에서부터 환성을 올린다. ‘동쪽에서 주님께 영광을 드리고 바닷가에서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 영광을 드려라.'”(이사 24,14-15) 이 말씀은 큰 소리로 외치며 거리를 돌아다녀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찬미와 감사의 노래

집에서 우울증을 물리치는 방법으로 아침에 일어나 하느님을 찬미하고 감사 노래를 부르는 것이 있다. 우리는 날마다 구원자이신 주님께 감사 노래를 드려야 한다. “임금이신 주님, 당신께 감사들 드리고 저의 구세주 하느님이신 당신을 찬양하며 당신 이름에 감사를 드립니다.”(집회 51,1)

조용히 흥얼거리며 노래하는 것도 기쁘게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실제로 우리는 긍정적이고 생산적으로 생각하기보다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일을 앞에 놓고 극단적으로 이치를 따진다. 그러다 보면 결국 걱정만 쌓인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러한 일에 대해 기도하며 하느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그를 인자하신 눈으로 굽어보시고 비천한 처지에서 들어 올리시는'(11,12) 분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가 꺾이고 풀이 죽어 있는 감정과 기분을 극복하기 위해 소리 높여 구원을 노래해야 한다. 다윗은 혼란스럽고 불안한 상황 가운데 하느님께 찬미를 드렸는데, 구약성경 곳곳에서 이러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주님께서 다윗을 그의 모든 원수들과 사울의 손아귀에서 건져 주신 날, 다윗은 이 노래로 주님께 아뢰었다. 찬양 받으실 주님을 불렀을 때 나는 원수들에게서 구원되었네.”(2 사무 22,1.4)

“의인들은 기뻐하며 뛰리라. 하느님 앞에서 기쁨 속에 즐거워 하리라. 너희는 하느님께 노래하여라. 그 이름에 찬미 노래 불러라. 구름 타고 달리시는 분께 길을 닦아드려라. 그 이름 주님이시다. 그분 앞에서 기뻐 춤추어라. 주님께서는 나날이 찬미 받으소서. 우리 위하여 짐을 지시는 하느님은 우리의 구원이시다.”(시편 68,4-5.20)

“주님, 제가 백성들 가운데에서 당신을 찬송하고 겨레들 가운데에서 당신을 노래하리니 당신의 자애가 하늘보다 크시고 당신의 진실이 구름까지 닿도록 크시기 때문입니다.”(108,4-5)

“저의 임금이신 하느님, 당신을 들어 높입니다. 영영세세 당신 이름을 찬미합니다. 나날이 당신을 찬미하고 영영세세 당신 이름을 찬양합니다.”(145,1-2)

 

 

낙심하고 불안할수록

우리는 누구나 다윗처럼 낙심할 때가 있다. 낙심하고 불안할 수록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하느님을 찬미하며 바라고 기다려야 한다. 우리는 풀이 죽고 불안하더라도 성경을 읽고 믿음을 고백하며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느님을 찬양할 수 있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모든 약속이 이루어짐을 믿고 말씀을 거듭 읽으며 큰 소리로 외칠 수 있다.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는 것에 대해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은 아직도 육적인 사람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에서 시기와 싸움이 일고 있는데, 여러분을 육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인간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1코린 3,3)

바오로 사도는 또한 하느님의 영에 이끌린 행동과 육적인 생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자기의 육에 뿌리는 사람은 육에서 멸망을 거두고, 성령에게 뿌리는 사람은 성령에게서 영원한 생명을 거둘 것입니다.”(갈라 6,8)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다윗처럼 영적 삶을 추구해야 한다. 영적으로 살아가지 않는 육적인 삶은 결국 우리를 조종하고 멸망에 이르게 한다. 시편 저자는 “내 영혼아, 어찌하여 녹아 내리며 내 안에서 신음하느냐? 하느님께 바라라. 나 그분을 다시 찬송하게 되리라, 나의 구원, 나의 하느님을.”(42,6-7)이라며 낙심할 때조차도 하느님을 기다렸다.

이처럼 우울증에 빠졌을 때, 우리는 우리의 도움이신 하느님을 찬미하고 바라고 기다리며 그분 안에서 힘과 용기를 되찾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느님을 섬김으로써 올바르게 된 우리는 주님 안에서 피난처를 찾고 그분을 신뢰하며 기쁜 마음으로 노래해야 한다. 성경은 하느님이 피난처라고 말한다. “예로부터 계시는 하느님은 피난처이시고 처음부터 계시는 그 팔은 지주이시다.” (신명 33,27)

주님께서는 우리를 떠나지 않고 지켜주시며 우리가 당신을 찬미할 때마다 우리를 위해 대신 싸워주신다. 다윗은 주님께서 피난처이심을 고백한다. “저의 하느님, 이 몸 피신하는 저의 바위, 저의 방패, 제 구원의 뿔, 저의 성채, 저의 피난처, 저를 구원하시는 분. 당신께서는 저를 폭력에서 구원하셨습니다.”(2사무 22,3)

 

 

어려움에 처했을 때

우리는 어려움에 처했을 때 주님께서 함께하심을 믿고 굳건히 서야 한다. 주님을 믿고 경배하고 찬양해야 한다. “두려워하지도 당황하지도 마라. 내일 그들에게 맞서러 나가라. 주님이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도 주님 앞에 엎드려 주님을 경배하였다. … 아주 큰 소리로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 거룩한 예복을 입고 주님께 노래와 찬양을 드릴 이들을 내세웠다. 그리하여 이들이 군대 앞에 서서 나가며 노래하게 하였다. ‘주님을 찬송하여라.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2역대 20,17-21)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고 마음에 품은 대로 말하는데 그 말은 우리의 태도에 영향을 준다. 경건한 태도로 살아가려면 먼저 생각을 자제하고 하루 종일 큰 소리로 하느님의 말씀을 되뇌어야 한다. 말씀을 기억하는 것은 우울증을 막는 주요 방법 가운데 하나다.

좋은 영양소를 섭취하고 운동하고 잠을 적당히 자는 것도 중요하지만, 올바른 생각과 말을 하고 좋은 태도를 지니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생각과 말과 태도는 성공과 실패의 열쇠이며 우리의 무한한 미래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어둠의 세력에 대적하기

 

자기 연민과 우울한 기분에 사로잡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곤 했다. 직장 동료가 심기를 건드릴 때마다 움츠러들었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내 우울해졌다. 자기 연민에 빠지면 즉시 어둠이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려고 술책을 부린다. 악마는 쉽게 무너져 내리지 않는 요새를 구축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나는 즉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하느님을 찬미했다.

 

 

악마가 가져오는 혼돈

이처럼 악마는 우리가 우울증에 빠져 기쁨을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렇다고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이 모두 악마에 사로잡혀 있다는 뜻은 아니다. 악마는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지 못하고 우울증에 사로잡혀 혼돈 속에서 살아가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하느님께 이르거나 하느님의 빛 안에 살지 못하게 하려고 악마가 즐겨 쓰는 방법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뿌리, 곧 하느님을 중심으로 하는 믿음을 공격하는 것이다. 악마는 하느님을 믿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은 무엇이나 환영한다.

따라서 우리는 그 실체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악마의 꼬임에 넘어가지 않도록 적극 노력해야 한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경고한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의 적대자 악마가 으르렁거리는 사자처럼 누구를 삼킬까 하고 찾아 돌아다닙니다. 여러분은 믿음을 굳건히 하여 악마에게 대항하십시오.”(1 베드 5,8-9)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시어 죽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셔서 모든 것을 내어 주셨고, 지금도 당신 안에서 ‘충만하게'(콜로 2,10) 살기를 바라신다. 그러나 악마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우리를 억누르고 나쁜 감정에 빠지게 한다.

 

 

판단과 단죄

악마가 우리 안에 나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큰 무기는 판단과 단죄다. 악마는 기쁨을 앗아가기 위해 단죄하는 습관을 교묘하게 이용한다. 악마는 주님과 내밀한 관계에서 오는 기쁨으로 살아가면 주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시리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약하게 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기를 바라면서 자기가 원하는 대로 우리를 조정13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악마는 현란한 갖가지 유혹으로 우리를 현혹시켜 암울하고 절망적으로 살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을 통해 하느님과 직접 관계를 맺을 수 있다. 하느님께만 유보된 믿음의 영역에는 그 어떤 악마도 들어갈 수 없으므로, 믿음으로 살아가면 악마가 공격해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바오로 사도는 “믿음을 위하여 훌륭히 싸워 영원한 생명을 차지하십시오.”(1티모 6,12)라며 믿음의 싸움을 하라고 재촉한다. 믿음은 온갖 공격에서 우리를 보호하는 요새다.

 

 

얼마나 자주 일어섰는가?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좌절하거나 단죄 받기를 바라시기보다 온 존재로 당신을 찬미하기를 바라신다. 악마는 우리가 가치 없는 존재라고 속삭이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사랑을 받는 존재, 당신 마음에 드는 가치 있고 소중한 존재로 여기신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얼마나 주주 유혹에 떨어지는가?’가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얼마나 자주 다시 일어서는가?’를 기억하신다. 악마나 마귀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병적 두려움에 싸여 사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부활, 곧 죽음에 대한 생명의 승리, 미움에 대한 사랑의 승리, 거짓에 대한 진실의 승리, 밤의 어둠에 대한 빛의 승리를 믿는다.

악마는 우리가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우리를 내치신다고 속삭인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미 우리를 위해 이루신 구원 사업, 곧 아드님을 통해 우리에게 거저 주신 영광스러운 은총 때문에 우리가 당신 사랑을 받는 존재로 받아들여졌다고 말씀하신다.

이에 대해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랑하시는 아드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총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에페 1,5-6)

우리는 단죄, 건강하지 않은 죄책감, 자기 연민과 후회로 우울증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으로 이 모든 것을 물리쳐 부정적 감정이 스며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초반에 우리를 압박하여 우울하게 만드는 것들을 물리쳐야 한다는 뜻이다. 어둠은 언제든지 우리를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절망의 나락에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절망의 나락으로 이끄는 세력과 싸워 이길 수 있다. 적대자와 그리스도의 싸움에서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으로 죽음을 극복하셨다. 악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고 우리를 장악하고 있어 경계심을 갖게 된다 해도, 우리는 하느님 나라가 이미 우리 가운데 있음을 안다.

우리는 우리를 절망으로 몰아넣는 악마를 믿지 않고 한없이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믿는다. 바오로 사도는 주님을 믿었기에 하느님의 자비에 감사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우리 주님의 은총이 넘쳐 흘렀습니다.” (1티모 1,14)

우리는 하느님께서 하늘나라의 상속자로 삼으신 예수님을 믿는다. 또한 실망하거나 우울할 때 그 기분에 오래 머물러 있지 않고 어느 누구도 우리한테서 빼앗아 갈 수 없는 기쁨과 평화를 하느님의 현존으로 보장하시는 성령을 믿는다.

성령 안에 머물 때 우리는 악의 세력에 잡혀 어두워진 노예처럼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자유와 및 속에서 살 수 있다.

 

 

빛의 자녀답게

우리는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말하는 것처럼 빛의 자녀답게 살아야 한다. “여러분은 한대 어둠이었지만 지금은 주님 안에 있는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십시오. 빛의 열매는 모든 선과 의로움과 진실입니다.”(5,8-9)

이사야 61장 1-3절에서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짖긴 마음을 싸매 주고, 포로들에게 해방을 알리고, 옥에 갇힌 이들에게 자유를 주고, 묶인 이들의 눈을 열어주고, 슬퍼하는 사람에게 위로와 기쁨을 주기 위해 기름부음을 받으신 예수님께서 성령에 의해 파견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재를 뒤집어쓴 사람에게 빛나는 관을 씌워주시고 상복을 입은 몸에 기쁨의 기름을 발라주시며 침울한 마음에서 찬양이 울려 퍼지게 하시려고 오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단죄 받지 않는다.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로마 8,1)라고 바오로 사도는 말한다.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는 더 이상 단죄 받지 않고 죄로 물들지 않으며 잘못된 길로 가지 않는다. 우리는 경배와 감사를 드리며 살거나 혼란 속에서 살 수 있다. 그래서 더 자주 마음을 다해 하느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려야 한다.

“우리의 유일하신 구원자 하느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광과 위엄과 권능과 권세가 창조 이전부터, 그리고 이제와 앞으로 영원히 있기를 빕니다.”(유다 1,25) 주님께서 함께하시면 어둠의 세력이 와해되고 악행이 소멸될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억압 상태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삶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한다.

하느님께서 우리 잘못을 기억하지 않으시고 모든 죄를 용서하셨기에 우리 또한 스스로를 괴롭히지 말아야 한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주님의 말씀이다. 나는 그들의 허물을 용서하고, 그들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겠다.” (예레 31, 34)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사도 10,15) 이는 우리가 지금 완벽하다거나 다시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과거의 잘못과 질책 때문에 무거운 짐을 지고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 마음을 하느님께 내드릴 때 우리는 지은 죄를 속죄하며 자신에 대한 지나친 질책과 죄책감에서 해방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했는가가 아니라 마음을 보신다. 마음이 올바르면 행동도 그 마음을 따라 움직인다. 요한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사람 속에 들어 있는 것까지 알고’ (2,25) 계신다고 말한다.

 

 

한동안 죄책감에 싸여 스스로를 단죄하며 살았다. 작은 실수 조차 나를 괴롭혀, 어느 날 영적 지도자에게 문제를 털어놓았더니 그분은 이렇게 말했다. “자매님, 사탄이 자매님을 죄의 사슬에 묶어두려고 술책을 부리고 있습니다. 사탄은 자매님이 늘 과거의 잘못에 사로잡혀 주눅이 들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책감에 빠져 우울하게 살기를 바라시지 않고 기쁨에 넘쳐 살기를 바라십니다. 하느님께서 죄를 용서해 주셨으니, 자매님도 자신을 용서해야 합니다.” 그 후 나는 하느님을 신뢰하게 되었고 다시는 자신을 단죄하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예수님이 주시는 답

하느님께서는 간절히 우리를 도와주려고 하신다. 성숙한 인격을 가진 사람은 우울증에 시달리지 않는다. 그런데 주기적으로 다가오는 우울증 때문에 고통 속에서 헤매다가 하느님을 만나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많다.

만일 우울증에 시달린다면, 하느님께서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 문제에 관심을 갖고 계심을 알아야 한다. 우울증에 빠졌다 해도 자신을 단죄하거나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꼭 집어서 ‘이것’이라고 마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우울증의 원인이 무엇이든 예수님께서는 올바른 답을 제시해 주심을 믿는 것이다.

우리가 그분을 따라 나서기만 하면 승리를 안겨주실 것이다. 우리는 날마다 기쁨으로 넘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예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보여주시는 대로 믿고 따라야 한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우울증이 스며들려고 하면 즉시 대항하면서 주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따라야 한다.

 

 

우울증이 왔을 때 처음에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조금 있으면 나아지겠지.’ 하며 대충 넘기려고 했다. 그런데 우울한 감정은 점점 깊어만 갔다. 악마는 우울한 감정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구렁텅이로 몰아갔다. 악마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말아야 함을 절감한 나는 실망할 때마다 이렇게 말한다.

‘더 나빠지기 전에 조치를 취해야지. 악마가 나를 낙담하게 하려 우울증에 걸리게 하려고 벼른다는 것을 알고 있지.’ 그래서 나는 악마가 유혹하려는 바로 그 순간 이렇게 외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악에서 구하소서.’

 

 

 

찬미의 예복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맥 풀린 넋 대신 축제의 옷'(이사 61,3)을 입혀주셨다. 따라서 우리는 창조주 하느님을 찬양해야 한다. 마음을 다해 소리 높여 외치고 ‘찬양'(집회 39,35)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길을 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울증의 구렁으로 점점 더 깊이 빠져 들어가 끝내는 심각한 문제에 빠질 수 있다.

악마는 언제나 우리가 악한 길을 선택하기를 바란다. 선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데도 실천하지 않을 때 우리는 악마와 놀아나는 꼬임에 빠진다. 악마의 꼬임에 빠져 악을 선택하면 희망을 잃은 채 상처를 입고 절망에 빠지게 된다. 찬미의 예복을 입지 않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이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직장에서 함께 일하는 남녀가 악마의 꼬임에 빠질 수 있다. 한 직장에서 오랫동안 같이 일하다 보면 정에 이끌릴 수 있다. 둘 다 결혼을 했는데도 말이다. 특히 우울증에 빠져 있으면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 악마에게 문을 열어주는 순간 우리는 그 악마에게 발목을 잡힌다. 악마가 발목을 잡으면 요새를 구축할 수도 있다. 악마는 교묘하게 접근해 점진적으로 공격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대항하지 않으면 큰 낭패를 본다.

무지는 우리를 죄로 이끈다. 하지만 무엇이 옳은지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나쁜 일을 계속한다면 상황은 더 나빠질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한결같이 사랑하셔서 도와주려 하시겠지만 우리한테 상당한 책임이 있다. 알면서 저지른 죄는 책임이 가중되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의 체험

고해성사를 통해 우리는 죄의 사함을 받으며 앞으로 겪게 될 투쟁에 저항할 힘과 은총을 받는다. 우리는 고해성사를 통해 악마의 세력에게 지배권을 넘겨주는 죄에서 해방되며 온갖 상처에서 치유된다.

주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우리는 고행성사라는 치유의 성사 안에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체험한다. 이 성사를 통해 우리는 죄의 종살이에서 벗어날 수 있다. 고해성사를 올바로 준비하면 회개와 내적 해방의 은총을 받는다.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은 우리의 힘과 성채가 되신다는 것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고 부활하셨다. 파스카 신비는 사탄과 죄와 죽음을 이긴 승리다. 바오로 사도는 죽음을 통해 죽음을 이기신 주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렸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 드립시다.”(1코린 15,57)

 

 

성체성사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천이며 정점인 성체성사는 모든 은총이 흘러나오는 샘이며 모든 성사가 한데 모이는 중심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생명의 빵이라고 하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 6,35)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는 주님의 죽음과 부활, 그 파스카 신비에 참여한다. 성체성사는 우리를 구원하는 희생제물, 새 삶에 이르는 샘, 몸과 마음을 낫게 하는 치유의 샘, 해방의 길이다.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님의 살고 피로 우리는 모든 죄악에서 해방되었다.

성체성사는 살아 있는 악마의 힘을 없애는 해독제다. 또한 ‘영원한 생명을 위한 치료’이고 미래에 있을 부활의 담보이며 우리를 해방시키시는 주님과 하나 되는 의식이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 것'(11,25)이라고 말씀하신다. 어둠의 세력 앞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승리할 수 있다. 어둠을 극복하면 예수님과 함께 기쁨에 넘치는 삶을 누릴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 오르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계시는데, 그분께 천사들과 권력들과 권능들이 복종하게 되었기'(1베드 3,22) 때문이다.

우리는 악마의 세력과 투쟁하며 모든 성사를 삶의 핵심에 두어야 한다. 우리를 치유하는 여러 성사는 우울증과 멸망으로 이끄는 악에서 우리를 해방시킬 것이다.

 

 

성령의 칼

하느님께 의탁하면서 하느님의 말씀인 성령의 칼로 무장할 때 우리는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고 우울증에 빠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구원의 투구를 받아 쓰고 성령의 칼을 받아 쥐십시오.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에페 6,17)

예수님께서는 사탄에게 세 번이나 유혹 받았을 때 흔들리거나 흥분하지 않으시고 단순하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소?”(루카 4,4.8.10) 바로 이것이 사탄이 우리를 단죄나 우울증과 같은 방법으로 잘못된 길로 들어서게 하려고 유혹할 때 저항하는 방법이다.

그 어떤 것이라도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하느님의 의지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고 느끼는 순간 우리는 쌍날칼보다 더 날카로운 하느님의 말씀으로 악마의 속셈을 꿰뚫어 드러내야 한다. “사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면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히브 4,12)

성경의 약속대로 하느님께 복종하고 악마에 즉각적으로 대적할 때 악마는 우리를 떠나 달아날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 복종하고 악마에게 대항하십시오. 그러면 악마가 여러분에게서 달아날 것입니다.”(야고 4,7)

“한결같은 심성을 지닌 그들에게 당신께서 평화를, 평화를 베푸시니 그들이 당신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길이길이 주님을 신뢰하여라. 주 하느님은 영원한 반석이시다.”(이사 26,3-4) 라고 이사야 예언자는 확신을 심어준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손을 우리에게 내미시고 우리가 하는 모든 일 안에서 우리를 도와주시기 위해 천사들에게 우리를 지켜보게 하신다. 또한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날마다 우리와 함께 일하신다는 것을 깨닫기를 바라신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친구이시며, 우리가 날마다 그분과 함께 걸을 때 좋은 일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알기를 바라신다. 우리가 악마의 꼬임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며 우리 자신에 대해 좋은 느낌을 갖게 해주실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과거에 대해서는 평화를, 현재에는 기쁨을, 미래에는 희망을 새겨주신다.

 

 

 

성경 말씀을 통한 치유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병과 상처에서 치유되길 간절히 바라신다. 하느님의 말씀은 한없는 사랑을 확인시켜 준다. 하느님의 말씀에는 풍요로운 당신 삶을 우리에게 주시리라는 간절한 약속이 가득하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육체적 건강 그 이상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관계를 통해 우리의 마음과 영혼이 건강해지기를 바라신다.

전 세계적으로 우울증이 만연해 있는 주요인 가운데 하나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는 코르티솔 수치를 증가시키고 보호하는 호르몬인 DHEA14 수치를 감소시켜 심각한 우울증의 원인이 된다.

스트레스를 줄이려면 모든 중심을 자기가 아니라 예수님께 두어야 한다. 자기 문제에 몰입하면 내적 혼란이 야기되고 평화의 왕이신 주님의 권능을 가로막아 위로와 평온을 얻지 못한다.

 

 

거저 주신 축복

스트레스를 받으면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모든 일과 지금 하고 계신 일을 쉽게 잊을 수 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거저 주시는 축복은 일시적 위로보다 더 강함을 깨달아야 한다.

필요한 것을 청하기 위해 기도할 때, 하느님께서 당신 섭리로 우리를 보호하고 계심에 감사해야 한다. 희망을 품고 생각하고 묵상함으로써 부정적 사고를 몰아내야 한다.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것에 집착하지 말고 부정적 사고를 기쁨으로 바꾸어야 한다.

성경에 기록된 하느님의 힘찬 약속으로 우리는 치유의 힘에 초점을 맞추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실제적이고 의학적인 통찰력으로 입증된 원리와 진리, 지침, 건강을 위한 기도, 생각과 행동은 하느님의 계획대로 우리를 이끌어 줄 것이다. 하느님의 계획이란 우울증과 불안을 극복하고 더욱 기쁘고 평화롭게 사는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날마다 묵상하고 성경 구절을 큰 소리로 읽으면 두려움과 걱정에 맞설 수 잇다. 할 수 있는 한 자주 기도하는 것이 좋다. 긴장을 풀어주는 오디오 테이프를 구입하여 틈이 날 때마다 들을 수도 있다.

 

 

말씀 안에서 살아가면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살아가면 우울증에 걸리는 일이 없다. 하느님께서는 마음이 한결같으시어 당신께 의지하는 이들을 축복하고 평화로 지켜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순간순간 더욱 온전하게, 끊임없는 평화 안에 머문다면 우울증에 사로잡히지 않을 것이다. 모든 문제는 대부분 마음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우울증 환자들은 식사 전, 하루 세 번식 성경 구절을 선택해 큰 소리로 읽고 하루 종일 묵상한 후 잠자리에 들기 전에 그 말씀을 다시 읽으면 최대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성경 말씀을 인용한 기도문을 자주 바치며 하느님의 약속이 담긴 말씀을 종이에 적어 암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쉽게 볼 수 있는 장소, 예를 들면 컴퓨터 가장자리나 냉장고 문에 붙여 좋고 수시로 크게 읽는 것도 좋다. 치유로 이끄는 성경 구절을 하루에 하나씩 영혼에 저장해 두었다가 불안해질 때마다 큰 소리로 외치면 우울증과 불안을 극복할 수 있다.

 

 

효과적인 해독제

하느님의 말씀은 일상생활에서 오는 우울증과 불안에 효과적인 해독제다. 시편 저자는 하느님의 말씀에 희망을 둔다고 말한다.

“나 주님께 바라네. 내 영혼이 주님께 바라며 그분 말씀에 희망을 두네.”(130,5) 하느님께서는 우리 삶 가운데 우울증과 불안을 이겨 나갈 수 있는 영적 처방을 내리신다. 과거를 돌아보면서 낙담하기보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평화 속에서 살아갈 때 우리는 더욱 힘차게 하느님과 함께 나아갈 수 있다.

안타깝게도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자신과 부정적으로 대화하는데, 이는 증상을 악화시킬 뿐이다. 날마다 자신을 조금씩 침울하게 만드는 부정적 생각이 가득하면 스스로 공격을 받기 때문이다.

우울증 환자의 경우, 부정적 사고방식에 사로잡히지 않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도록 마음을 단련해야 한다. 부정적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모든 문제의 해결책인, 하느님의 말씀을 큰 소리로 읽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말씀을 바탕으로 한 긍정적 사고

성경 말씀을 바탕으로 한 긍정적 사고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승리하는 자세를 갖게 한다. 부정적 태도를 선택하느냐, 긍정적 태도를 선택하느냐는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이다. 분노-증오-복수-앙심-두려움-수치심과 같은 부정적 태도를 선택하면 우리 몸도 그 영향을 받아 병에 걸리게 된다.

일반적으로 원한과 복수는 관절염과 밀접히 연결된다. 두려움은 암, 불안은 위궤양, 분노는 심장병과 깊은 관계가 있다. 두려움과 불안과 분노는 치명적 감정이다.

하느님의 말씀이나 전문가의 도움으로 이러한 감정을 전화하지 않으면 차츰 병으로 발전하게 된다. 치명적 감정이 몸과 마음에 뿌리를 내리기 전에 상대방을 용서하고 무거운 감정을 해방시키는 것이 우리 몸과 정신 건강을 위해 좋다.

우울증 환자들은 대부분 생각과 말과 행동이 비관적이며, 혼자 힘으로는 깰 수 없는 부정적 사고와 염세적 틀 안에 갇혀 있다. 그래서 힘든 일이나 시련이 닥치면 처음부터 패배자의 자세로 접근한다. 우울증과 싸우는 사람들은 부정적 사고방식을 하느님 말씀으로 대치해야만 한다. 성경 말씀을 되새기는 것은 우울증을 극복하는 데 가장 중요하다. 순간순간 하느님의 말씀으로 무장하면 그 말씀을 통해 힘을 얻게 되어 부정적 생각이 긍정적으로 전화되며, 자연히 몸과 마음이 치유되어 건강해질 수 있다.

 

 

강력한 치유자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치유자시다. 우리는 “말씀을 보내시어 그들을 낫게 하시고 구렁에서 구해 내셨다.”(시편 107,20)는 치유의 약속을 믿어야 한다. 하느님의 뜻은 당신 자비와 은총으로 우리가 온전히 건강해지는 것이다. 건강한 삶을 위한 가장 강력한 처방전은 병원이나 약국에서는 찾을 수 없다. 강력한 처방전은 유일한 근원으로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누구나 자신의 삶이 하느님 말씀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면 혼란스러운 상태에서도 기쁨과 평화를 맛볼 수 있다.

하루에 최소한 네 번, 곧 식사하기 전과 잠들기 전에 성경 말씀을 큰 소리로 일도록 하자. 부정적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큰 소리로 성경 말씀을 읽자. 잠들기 전에 성경 구절을 반복해 읽거나 기도하고,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도 그렇게 하자. 성경 구절을 카드에 적어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날마다 그 카드를 꺼내 기쁨과 희망이 마음에 가득 차도록 큰 소리로 읽어 보자.

이처럼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읽거나 기타 여러 방법으로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다. 멈추거나 포기하지 말자. 우리 마음이 하느님께서 주시는 희망과 기쁨으로 채워진다면 우리 삶 안에 있는 모든 무거운 기운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우울증의 전환을 위한 치유 기도

 

 

사랑하올 하느님 아버지,

저는 당신께서 저를 조건 없이 사랑하시며

늘 함께하시어 이끌어 주심을 압니다.

당신께서는 또한 제가 걸어가는 삶의 힘든 여정에서

저를 더 깊은 곳으로 이끄심을 믿습니다.

 

제가 짊어진 무거운 짐을 통해

당신을 만나도록 이끌어

저에게 찬미와 기쁨의 예복을 입혀주소서.

 

주님, 제가 복용할 비타민과 보강제와 허브가

제 몸이 우울증과 싸우는 데

도움이 됨을 알게 하소서

우울증과 싸우는 동안

제가 늘 당신 뜻을 찾게 하시며

저에게 안식과 힘을 주소서.

 

삶에서 오는 비탄과

우울증과 슬픔의 짐을 극복하고

저의 참모습을 찾으며

당신의 상처로

제 상처가 나을 수 있음을 믿고

당신 마음을 배우도록 이끄소서.

 

우울증으로 생기는 모든 증상과 싸우면서

당신 말씀 안에서 지혜와 힘을 얻게 하소서.

당신 말씀을 기억함으로써

고통 때문에 잠자가 있던 것들이 깨어나도록

은총을 허락하소서.

 

저는 당신을 믿으며

당신 말씀이 참되다는 것을 아나이다.

당신께서는 모든 것 안에

충만한 생명력을 주시는 분이시기에

암울한 시기에도 당신께 희망을 두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통하여

감사와 찬미를 드리며 기도합니다. 아멘.

 

 

 

 

 

고뇌의 시기에 바치는 기도

 

 

 주님,

저는 당신께서 저의 창조주요 구원자시며

주님이심을 고백하며 모든 것에 감사 드립니다.

당신께서는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저희 죄 때문에 돌아가셨음을 믿습니다.

저는 또한 당신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 살아나셔서

저희를 위해 기도하시며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심을 믿습니다.

제가 당신의 사랑 받는 자녀가 되고

당신과 영원히 살 수 있도록

저의 죄를 용서하시고

제 마음을 변화시켜 주시길 청합니다.

당신께서는 저를 벗으로 여기시고

날마다 평화를 주시며

세상 끝 날까지 함께하신다고 약속하셨사오니

저희가 그 약속을 믿으며

고뇌의 시기에도 당신과 함께

삶의 여정을 걸어가도록 도와주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우울증과 싸우기 위한 기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울증으로 힘든 여정을 걷고 있는 저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시는 당신께 의탁합니다.

우울증은 저를 파멸로 이끌 수 있기에

저는 당신 안에서

긍정적으로 변화되는 길을

걸어가려고 합니다.

 

이 고통스런 감정이

당신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전환되도록 이끄소서.

당신 사랑에 힘입어 어둠의 길을 뚫고 나와

변화되도록 이끄소서.

당신 말씀을 따라 살고

당신 현존 안에 머물면서

위기를 극복하도록 은총을 허락하소서.

언제나 참자아를 찾으며

그 안에서 당신을 만나도록

이끌어 주소서. 아멘.

 

 

 

 


Disclaimer: 여기에 실린 글은  copyright가 된 책, 기사를 ‘발췌, 전재’를 한 것입니다. 모두 한 개인이 manual typing을 한 것이고, 의도는 절대로 저작권 침해가 아닌, fair use의 정신을 100% 살린 것입니다. 의도적으로 ‘시간적인 제한, 독자층의 제한’을 염두에 두었고, 목적은 단 한 가지 입니다. 즉 목적을 가진 소수 group (church study group, bible group, book club) 에게 share가 되었습니다. password protected가 되었는데, 만일 이것이 실패를 하면 가능한 시간 내에 시정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1. Darkness Visible. William Styron(1925-2006)은 미국 버지니아에서 태어나 퓰리처상을 받은 소설가로 1985년 자신이 직접 겪은 우울증 체험을 바탕으로 회고록을 썼다.
  2. Don Colbert의 The Bible Cure for Depression and Anxiety(Strang Communications Co., 1999)에서 인용. 돈 콜버트는 미국의 의학전문의로 분노-공포-스트레스와 같은 해로운 감정이 신체에 미치는 치명적 영향에 대해 연구-발표 했다.
  3. 학대(신체적-정서적-성적-영적으로 부모가 자녀에게 하지 말아야 하는데 하는 경우)와 방임(사랑을 주거나 기본 욕구를 채워주어야 하는데 결핍된 경우)이 동시에 또는 번갈아 일어나는 가정을 말한다.
  4. 자녀의 발달 단계에 따라 필요한 기본 욕구와 주요 욕구를 채워주는 가정.
  5. Amy Rose Mumford의 It Hurts to Lose a Special Person(Chariot Victor Publishing, 1982)에서 인용. p.22.
  6. 같은 책, p.16.
  7. Carolyn Gratton, The Art of the Spiritual Guidance(The Crossroad Publishing Company, 1992), pp. 45-46.
  8. 5-Hydroxytryptophan. 단백질에 있는 필수 아미노산인 트립토판과 화학적으로 사촌지간이다. 트립토판은 5-HTP의 가족 성분으로 최종적으로 세로토닌으로 전환한다.
  9. St. John’s Wort. 독일에서 우울증을 치료하는 데 오랫동안 사용된 약초로 독하지 않으며 심각한 부작용도 없다. 세로토닌이 재흡수 되는 것을 막으며 잠을 잘 자게 한다.
  10. S-adenosylmethionine. 가장 안전하고 효과적인 항우울제 가운데 하나, 부작용이 적고 인지기능을 개선시키며 긴장과 관절을 보호한다.
  11. Omega 3 fatty acid. 세로토닌과 신경전달물질 합성에 영향을 준다.
  12. James D. Whitehead & Evelyn Eaton Whitehead, Shadows of the Heart (The Crossroad, 1996), p.167.
  13. ‘조종’이 맞는 말이 아닐까..
  14. Dehydroepiandrosterone. 인체 내 부신에서 생성되는 생식 호르몬
September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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