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드디어 유난히도 나의 머리 속을 맴돌던 6.25 바로 그날, 그것도 일요일, 오늘은 유난히 더 생각하며 보내면 어떨지… ‘오늘의 성인’ 말씀은 우연히도 ‘기억보다는 망각, 용서’의 주제가 나오고… 그래, 조금 더 적극적으로 침착하게 반성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구나…

여름철 같은 날씨로 돌아온 연중 12주 일요일이 공교롭게도 1950년 그때와 같은 일요일이 되었다. 73주년이고, 7월 27일의 정전 기념일은 70주년…  우리의 한국본당 아틀란타 도라빌 순교자 성당은 한국 예수회의 관할 하에 있어서 그런지 (공식적으로 이곳은 아틀란타 대교구의 한 본당이지만) 전례는 대한민국의 그것을 따르기에 오늘은 6.25 동란과 직접 연관이 된 ‘민족화해’가 주제다. 6.25에 대한 느낌이 우리세대보다 10년 정도 차이가 나는 ‘젊은 사제들’, 가끔 색다른 각도의 조국, 이념, 역사관을 만난다. 이런 부분이 사상 이념 차이 하나로 동족을 잔인하게 죽였던 6.25 , 그것의 끝 자락을 경험한 우리들에게는 항상 예기치 못한 ‘지뢰밭’ 같은 위험한 실망과 놀라움을 주기도 한다.

올해 6.25 동란과 나의 Landing 50년이 거의 같은 시기에 맞물려 좀 더 이성적, 아니 심지어 영성적으로 느끼려고 했지만 역부족인가, 큰 깨달음은 나에게 아직도 찾아오지 않는다. 각종 이산가족들, 특히 전쟁고아들의 삶을 다시 보며 그런대로 나는 비교적 덜 비극적인 인생을 살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후회, 울분, 안타까움, 절망감 등과 싸우던 내 생애의 늦은 한때도 이런 역사의 소용돌이의 앙금이 아닐까 추측도 한다.

비록 Landing 50년의 짧지 않은 diaspora의 삶, 만약 6.25라는 세 숫자가 없었다면 과연 현재의 나의 이런 ‘방랑’ 인생이 과연 있었을까? 상상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전쟁이 안 일어났다면 개인 역사를 제쳐두고라도 과연 대한민국, 남한의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역사학자들은 이런 what if scenario에 대해서 연구해 보았을까?

오늘 아침 성당 가는 길은 예외적으로 괴로운 것이었다. 제시간에 출발했지만 성당에 도착한 시간은 미사가 시작되어 독서가 시작될 무렵이었기 때문이다. 기억에 미사에 안 갔던 날은 있었지만 늦게 도착한 적은 근래에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모임도 늦게 도착하는 것을 체질적으로 싫어하고 심지어 두려워하는 나에게 오늘과 같은 이런 때는 괴로운 순간들이다. 차 사고, 차 사고, 어찌 I-258 N는 그렇게 사고가 많은 것인지… 그것도 traffic이 한산한 일요일 이른 아침에.. 분명히 ‘병신XX’들의 speeding 탓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옛날 옛적 고국에서 시내 버스를 타면 운전사 옆에 붙어 있는 작은 그림글씨카드에 천사처럼 보이는 어린 소녀가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모습 옆에 ‘오늘도 무사히’라고 쓰여있었던 기억, 그 모습이 요즈음 이런 교통 사고 현장을 지날 때마다 생각이 나곤 한다. 이런 차 사고는 우리와 그렇게 먼데 있는 것이 아님을 알면 우울해지곤 하는데… 그것을 어떻게 피할 수가 있겠는가, 그것이야말로  타고난 운명과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닐지…

푸틴과 프리고진의 대결은 결국 무승부로 끝나는 모양인가… 역시 러시아는 알 수 없는 나라인가, 현재 그들은 어떤 이념으로 살아가는지 그것이 궁금하다. 무엇이 그들에게 제일 중요한 삶의 기준인지 알 수가 없다. 현재 그들에게 종교 자유는 있는 것인가? 아니면 정치만 제외하고 다른 권리들은 다 보장되어 있는가?  모든 것이 법치, 합법적이라고 해도 그것은 절대로 믿을 만한 것이 못됨은 나치 히틀러 독일을 보면 알 수가 있으니… 결국 그런 파국이 다시 세계를 못살게 굴기 전에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역시 좋으나 싫으나 현대인의 삶의 기준은 dollar나 마찬가지로 Pax Americana에 있는 것은 아닌지…

오늘 드디어 이재욱 전 주임신부님이 이곳에 오신다는 ‘예보’가 주보 공지가 되었다. 나는 물론 전에 신부님의 카톡으로 알고 있었지만 조금 더 자세한 소식인지… 7월 초에 오셔서 7월 중에 성당에서 1일 피정을 지도하신다고.. 그것이 전부가 아닐 듯하다. 우리와 이재욱 신부는 우리 성당생활에서 아마도 가장 오랫동안 함께 했던 case여서 특별히 우리의 관심이 간다. 앞으로도 개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데, 과연 그것이 생각처럼 쉬울지…

오늘 아가다 자매님이 팔 골절 수술을 받으시고 따님 댁으로 들어가셨다는 소식이 있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치매기가 심해지는 것 같다. 기도는 하고 있지만, 직접 찾아보지 못하는 이런 상황이 불만이지만 어쩔 수가 없다. 아픈 부모를 간병하는 자녀들의 고충, 그것은 거의 고문과 같은 것일진대.. 장래 우리가 주위의 도움을 받는 처지가 되면 어떻게 할 것이며, 우리들의 부모들 제대로 모시지 못한 우리들의 과오, 처지는 어떻게 앞으로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니 어떨 때는 눈앞이 캄캄해진다… 기도, 기도밖에 해결책이 없는 것일까?

오늘 아침 식사 메뉴는 결국 Sam’s Club의 pizza로 해결이 되었다. 내가 돌아본 곳은 역시 cat wet can food를 파는 곳, 그곳에서 big can, big box 그것도 60개나 들어있는 것을 보았다. 가격도 현재 먹는 것보다 저렴하기에 앞으로는 이것도 섞어서 주면 어떨까…

밭에서 따온 고추, 오이가 곁들인 미역국 ‘동네방네’ 점심을 감사히 받는다. 유난히 많이 재잘거리는 연숙이, 무엇이 그렇게도 신나는가, 모든 생각을 다 말로 표현을 하는 그 에너지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무섭게 작열하는 태양과 더불어 치솟던 90도 이상의 더위가 한 순간에 고개를 숙였으니, 바로 이것이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이곳의 ‘여름 비’가 아닌가? 깜짝하고 내리 쏟아지는 이곳 특유의 여름 비, ‘천문학적 여름’이 시작되자마자 이렇게 계절의 선을 보이니.. 하지만 앞으로 ‘무서운 더위’가 올 것 같은 예보와 느낌은 체질적으로 나를 긴장시키기는 하지만 이제는 의도적으로 이런 stress와 맞서서 싸우련다.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무섭고 듣고 싶지 않단 말인가? 네가 무엇이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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