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ndfather, Yellow Perils…

¶  Grandparents at last:   드디어 우리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다.  지난 해 어느 날 갑자기  할아버지, 할머니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느낌을 생생히 기억하기에 이번에 결국 손자가 태어났을 때는 당연한 것으로 느낄 것으로 예상을 했지만 세상사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닌 모양이다. 또 다른 느낌들을 정리하고 처리하느라 사실은 꼭 기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이런 일들이 작은 딸애의 급작스런 ‘속도위반’성 결혼의 결과임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도 정리를 못하는 정말 ‘모든 것이 늦은’ 인생을 사는 한심한 늙은이라는 생각 뿐이다. 주위의 대강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이 인생의 마지막 시기에 찾아오는 ‘손주들의 즐거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지도 잘 알고 있다. 어느 분들은 지나칠 정도로 흥분을 하는데 나는 그때마다 미안할 정도로 묵묵히 응답을 했던 기억이다.

우리 부부의 출산경험은 사실 거의 40년 전에 가까운 태고 太古 적 때의 일이었고, 이번에 다시 가까이 이 출산과정을 지켜보면서, 거의 새로운 것을 보는 듯했다. 오래 전, 두 애 모두 (제왕절개)수술 경험이 있어서 이번의 예정된 수술은 크게 생소한 것은 아니었지만,모든 기억이 사라진 후여서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나이 탓인지 정말 필요 없는 것들이 걱정거리로 둔갑을 하는 모양이다.

그 긴 세대차를 통해서 의학도 발전을 했을 것이지만 세상에 완벽한 것이 있을까? 걱정을 일부러 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경험을 통한 나름대로의 근심은 떨쳐 버릴 수가 없어서 주위에 기도를 청하기도 했다.  한가지 다른 것은 그 옛날 우리아이들이 태어났을 때는 사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는 기억, 그래서 충분히 즐길 수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처럼 한 발짝 떨어져서 보는 것은 비교적 생각을 할 여유가 있어서 그렇게들 즐겁고 기쁜 것이라 내 나름대로 해석을 하기도 했다.

아기엄마(작은 딸) 는 이미 내가 할아버지가 되었음을 강조하느라 지난 성탄 때에는 MY GRANDFATHER’S BLESSINGS이란  DR. RACHEL REMEN의 Bestseller 책까지 선물로 주었으니, 별다른 거창한 생각을 안 하며 기다렸던 나도 이제는 조금 ‘책임감’을 느끼게 되기도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역할은 무엇일까? 나에게 할아버지, 할머니 상은 거의 제로에 가까울 정도로 없다. 한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연숙에게는 그런대로 기억에 남는 분들이 있는 모양이었지만… 6.25 발발초기 때 납북되셔서 기억에 남는 아버지가 없었기에 내가 아빠 노릇 하는 것도 그렇게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는데 이번에는 할아버지 노릇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난감하기만 하다.

태어난 파란 눈을 가진 건강한 남자아기를 계속해서 보니 시간이 가면서 나의 마음에도 평화와 기쁨이 찾아온다.  또한 주위의 친지들에게 태어난 아기의 사진을 보내주니 그렇게 함께 기뻐할 수가 없었다. 특히 반세기 떨어져 살아왔던 고국의 친구들도 제일 마지막으로 할아버지가 된 것을 축하해 주었다. 그들은 ‘정상적, 모범적 인생’을 살았는지 벌써 중학생까지 된 손주들이 몇 명이나 있었다.

이번에 겪는 ‘인생사’는 지나간 오랜 세월 동안 내가 예상하며 살았던,  ‘인생에서 거쳐야 할 큰 사건들’ 중에서 거의 마지막에 속할 것이라 생각이 되어서 조금은 의미를 두고 싶지만, 완전히 ‘세계화’된 여건에서 파란눈의 손자, 사돈들과 어울리는 새로운 모험이 시작됨은 우리 평창이씨 족보에 어떤 의미를 주는 것일지 궁금하기만 하다.

 

¶  Yellow Perils:  Corona Virus, 코로나 바이러스로 주위가 시끄럽다. 이것이 시끄럽게 된 지가 얼마나 되었을까? 우리야 별로 많은 사람들과 접촉할 기회는 많지 않지만 시간이 갈수록 우리도 피할 수 없게 관심을 안 둘 수가 없게 되었다. 당면 문제는 우리가 일 주일에 한두 번은 가야만 하는 ‘도라빌 한국 순교자 성당’이 ‘한국인들의 공동체’라는 사실에 있다.  그러니까… 우리도 다른 한국사람들과 잠시나마 어울리지 않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암만 생각해도 조금 overacting이 아닌가. 본당에서 공식적으로 ‘자발적 모임 자제’는 물론이고 봉사활동의 첨단위치에 있는 레지오 (마리애)의 활동모임도 단장재량으로 취소, 연기한다고.. 꾸리아 월례회의, 사순특강 취소… 사순절인데 어쩔 것인가?  이곳 아틀란타에 위치한 CDC에서도 별로 크게 공포감을 주는 발언이 없고, 다른 미국본당들은 전혀 개의치 않음을 알기에 성급한 한국인의 성질이 이곳에서도 역시.. 하는 생각이 든다.

제일 웃기는 것은 역시 그 문제의 다른 쪽 한국인사제, 미사 때 신자들에게 ‘대꾸도 하지’ 말고, ‘기도도 말로 하지 말고’, ‘성가도 부르지 말고’.. 등등 예의 일장 훈시를 한 모양이다. 역시 그 신부의 해괴한 인상 그대로인 듯.

이번 ‘사건’을 통해서 생각나는 것이 있다. Yellow Peril이란 말을 정말 오랜 만에 떠올렸다. 서양문화가 보는 황화론 黃禍論, 아마도 영국의 역사학 거장 universal historian,  Arnold J. Toynbee가 언급했던 것으로 기억을 한다.1 황화론의 현대적 해석은 다음 세계전쟁은 서방과 중국의 종말전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20세기 중반의 일이었고 당시의 중국은 정말 전 인민이 굶어 죽어가는 한심한 공산독재의 표본이어서 쉽게 이해가 가지를 않았다. 배가 고픈 상태에서 서방에 도전을 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50여 년 후에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이제는 이 말이 장난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어떻게 기본 도덕관념(서구적인)이 거의 ‘의도적’으로 결여된 ‘비정상적 공산주의자’들이 억수로 돈을 벌어서 어떻게 쓰고 있는가. 이런 배경에서 이번의 코로나 전염병을 결과적으로, ‘비밀리에’ 퍼뜨리게 한 짱깨(정부 주도로)들의 행태를 다시 보면서 그들과 함께 춤추는 대한민국을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1. 1960년대 말 한국 시사영어주해 잡지, 월간 ‘시사영어연구’에서 읽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Ashes, ashes…

 

2020년의 사순절 Lent가 시작되었다. 재의 수요일 Ash Wednesday,  아침 9시 미사엘 가서 이마에 재 灰로 긋는 십자가를 엄숙하고 고맙게 받았다. 문득 ‘아, 또 새로운 사순절이…’ 하는 자괴감 비슷함을 잠깐 느꼈지만, 올해의 사순절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생각을 할 여유는 별로 없었다. 갑자기 다가온 ‘손자’의 출산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일까?

걱정보다는 쓸데없는 생각이 온통 머리 속을 맴돈다. 우리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다고?  증손주를 볼 가능성은 제로이므로 이것이 우리가 거쳐야 할 중대사의 거의 마지막이 된다고 생각하니 기쁨, 후회, 걱정, 안도감들이 완전히 꼬리에 꼬리를 문다. 각종 개인적인 관문들, 국민학교입학, 중학교, 고등학교 입학, 졸업, 대학교 입학 졸업, 유학출가, 결혼, 출산, 취직, 은퇴, 고아가 되는 슬픔, 자녀 출가, 출산… 70여 년에 걸쳐서 계속되는 이런 일들은 모두가 겪겠지만, 그래도 ‘해 냈다’ 라는 안도감이 앞선다. 전에는 이런 ‘과업’들이 우리들이 만들어 낸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지만 때 늦게나마 이런 모든 것이 ‘안 보이는 은총’의 덕이었음을 알고 가는 것이 제일 다행스럽다.

나를 근원적으로 일깨우고 변화시켰던 2014년 사순절을 사진처럼 기억한다. 워낙 거대했던 깨우침이라서 죽기 전까지는 다시 그런 경험을 못하리라고 거의 확신하지만, 그래도 사순절은 나에게는 신비로운 의미를 주는 40일이다. 또한 올해의 사순절은 이런 큰 가족적 진화과정을 겪으며 ‘사람을 사랑으로 구하시려는 사명’의 예수님의 의미를 다시금 차분히, 조용히 묵상하는 시간들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은 변함이 없다. 이 사순절의 결론은 역시 부활이라는 엄청난 사건임을 잊지 않고, 사순 40일을 보낼 수 있도록 기도를 하고 싶다.

신년 벽두 장례미사有感

 

장례식, 장례미사, 연령회 연도..  이제 나에게는 너무도 친숙하게 느껴지는 이 말들은 모두 죽음에 관련되는 말들이다. 불과 10여 년 이전만 해도 나는 이런 것들을 거의 모두 피해가며 살아왔었다.  ‘죽음의 진리’를 요리조리 피하며, 모래 밑으로 얼굴을 파묻고 살았다는 표현이 바로 나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이 ‘죽음의 모습’을 눈으로 보고, 기리며 보내는 것이 거의 습관화가 될 정도로 많아졌고, 나름대로의 ‘망자 亡者와의 이별’ 하는 방법과 철학까지 생기게 되었다. 물론 기본적인 철학은 가톨릭적인 것이지만 이제는 내 생각의 일부가 되었음을 느낀다.

각양 각색의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을 보내는 모습도 모두 다르겠지만 그런대로 경건함을 지키는 가톨릭 장례미사는 그 나름대로의 ‘장엄 의식’이 있고 그에 따른 조문객들의 엄숙함이 보인다. 일반 장례식은 물론이고 개신교 의식 조차도 이에 비해서 나의 눈에는 너무도 ‘사회적 모임’이라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한마디로 고인의 궁극적인 삶의 의미, 목적, 가는 곳, 등등에 대한 것들을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오늘은 올해 들어서 첫 장례미사에 가게 되었다. 작년에는 1월 초에 간 기억인데 올해는 조금 늦은 셈인가. 오늘의 주인공은 40여 년 전, 우리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창립멤버로 활약을 했었고 그 이후에도 여러 가지 사회봉사활동을 해서 이 지역에선 잘 알려진 분이었다.  지병으로 한국의 어떤 요양원에 계시다 며칠 전, 향년 80대 중반에 선종하시고 유골함이 다시 이곳으로 왔는데, 고인의 경력을 감안하셨는지 신임주임신부님, 최대한의 예우로 장례미사를 거행하셨다. 예를 들면 부활초가 켜지고 제대의 초의 숫자 등, 모두 평소의 장례미사와는 달랐던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생전의 고인을 직접적으로 만난 적은 없었지만 이런 분의 영결식에 참여하는 것은 레지오 단원으로서의 의무로도 생각되어서 ‘갈까 말까’하다가 온 것이었고 신부님의 고별사도 다시 기억하고 싶은 ‘신학적 깊이’를 더해 주는 그런 것이어서 ‘오길 잘 했다’하는 생각을 하였지만, 애석하게도 성당을 떠날 즈음의 느낌은 그것이 아니었다.

 작년 이맘때에 있었던 장례미사의 ‘악몽’이 떠올랐고, 그 이전에도 간혹 겪었던 좋지 않던 기억도 되살아 난 경험을 다시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 지나간 두 가지의 비슷한 경험은 모두 ‘너무나 무리하게, 길고 길었던 미사’라는 것, 놀랍게도 그것이 오늘 다시 찾아온 것이다.

장례미사는 일반 장례식과 조금은 달라야 하는 것이 아닐까? 미사가 끝나기도 전에 ‘고별식’이란 것, 각종 지인들의 고인에 대한 고별사들, 어떤 사람들은 아예 짧지 않은 강연을 하기도 하는데 한국말을 모르는 조문객들이 거의 없는데 모든 말을 영어로 번갈아 가며 하기도 한다.  제일 괴로웠던 경험은 ‘정말 보기 언짢은 태도’로 한 없이 계속되는 ‘우리 사상 최고의 영웅’ 아빠에 대한 추억들.. 정말 끝도 한도 없었다. 내가 죽었을 때 딸들이 그렇게 하는 것, 관속에 들어가 내가 듣게 된다면 아마도 관 뚜껑을 열고 나올 정도가 아닐까..  어제도 큰 예외는 아니었는데, 이번엔 ‘반세기 추억의 영화’까지 가미가 된 것이 이채로웠다. 일반 장례식장에 가면 예식 전후에 뒤 배경으로 계속 보여주던 video를 이번엔 성당 미사 중에, 그것도 ‘끝이 안 느껴질 정도로’ 무수한 영상들을 보여주었다.  내가 앉았던 위치로 보아 도저히 탈출할 수가 없었던 상황이었다. 나에게 이것은 완전한 show stopper로 느껴진 셈이고 앞으로 ‘장례미사 공포증’이 생기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까지 생긴다.

이래서 크건 작건 성당의 연령 행사는 ‘상식을 가진 책임자’가 책임을 지고 시작부터 끝까지 행사에 참여한 조문객들의 사정도 조금은 사려해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애석하게도 이제까지 이런 것들에 대한 책임자의 존재여부는 정말 불확실한 것이었다.  또한 앞으로 장례미사에 올 때는 끝나는 시간을 먼저 확인 받고 싶은 간절한 심정을 뿌리칠 수가 없다.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되었는가..

세 번째 대림초가..

¶  세 번째 대림초가 켜졌다. 대림 제3주를 맞는 것이다. 또한 2010년대 마지막 해 2019년 마지막 달의 절반이 지나가고 있다.  공식적 겨울인 동지가 일주일 정도 남았고, 대림절이 끝나고 성탄시기가 시작되는 25일을 열흘 앞두고 있다.

도라빌 순교자 성당은 예년에 비해서 일찍 성탄장식의 불들 켜지기 시작했는데, 너무 일찍 시작되는 ‘축제분위기’를 자제하라는 교황의 권고 영향인지 몇 년 전부터는 확연히 ‘기다리는 분위기’로 바뀐 것을 느끼고 있다.

나 자신도 그런 것이 싫어서 가급적 성탄 전에 가깝게 조금씩 장식을 시작하려고 했고, 확연히 그것은 심리적으로 좋은 영향을 준 것을 실감한다. 성탄절, 그러니까 크리스마스가 모든 것의 시작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대림절, 그러니까 성탄절 전까지는 ‘조용히 기다리는’ 것이고 축제 분위기는 성탄부터 시작이 되는 것, 거의 나의 모든 생애에 걸쳐서 나도 ‘세속적’으로 살았음을 알게 된다.

올해 새로 부임하신 이영석 사도 요한 주임신부님의 바람인지 올해는 성당의 장식들이 일찍 준비가 되었고, ‘사상 초유’로 성당건물 밖에 ‘사람이 살만한 크기’의 거대한 구유가 설치 되었다.  성탄의 기다림을 조금이라도 실감나게 보여주려는 ‘선행 투자’가 아닌가 생각도 들었다.

 

¶  ‘새’신자 안내:  12월 한달 동안 내가 속한 레지오 ‘자비의 모후’가 교중미사  (새)신자안내의 역할을 맡았기에 한달 동안 우리는 ‘의무적’으로 한국성당엘 와야 한다. 따라서 12월 모든 주에 우리는 ‘역사를 자랑하는’ 동네 미국성당의 교중미사는 모두 빠지게 되었다. 평일, 매일미사를 미국성당으로 가기에 큰 ‘심리적’인 문제는 없지만 그래도 무언가 허전한 것은 사실이다. 이럴 때 나는 나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다. 내가 미국에서 사는가, 대한민국의 연장선에서 사는가… 장기간 세월이 지나면서 이런 것에서 나는 편치 않은 그 무언가 항상 느낀다. 그 무언가 확실치 않은 것, 그것이 나는 싫은 것이다.

신자 안내, 사실은 주보를 나누어 주며 인사를 하고, 혹시 새 신자가 소개되면 그들을 미사 후에 ‘접대, 신자등록’ 하는 것인데, 3주를 연속으로 하다 보니 이제는 제법 익숙한 것이 되었다. 성당 정문 안에 서서 들어오는 교우에게 주보를 나누어 주며 따뜻한 인사를 하는 것, 이렇게 쉬운 일이 세상에 어디에 있을까? 이것이야말로 ‘win-win’중의 극치, 인사 받는 사람, 주는 사람 모두 그렇게 기쁠 수가 있을까?

문제가 하나 있다면… 흠… ‘웬수’의 모습이 눈앞으로 다가온다면?  이런 상황을 예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선택의 여지는: (1) 공손히 인사하며 주보를 건네준다. (2) 얼굴은 안 보고 주보는 건네준다. (3) 얼굴을 똑바로 보며 전혀 모르는 사람취급을 한다. (4) 안 본 척하며 비켜선다. 여기서 나는 아마도 (2) 아니면 (3)을 선택하리라 마음을 먹었고, 은근히 그 ‘레지오 미친X’ 의 얼굴을 상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마주친 교우들은 100% ‘천사’같은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왔고 3번씩이나 경험한 이 ‘교우신자안내’ 일은 즐거운 일로 느껴지게 되었다. 하지만 다른 쪽에 서서 안내하던 연숙은 그런 행운이 없었다. 바로 그쪽으로 ‘웬수’의 ‘가오’가 다가갔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그 ‘웬수’가 그렇게 당당하게 접근했다는 것은 상상 밖이었기에 놀랐던 모양이고, 결과적으로 신부님께 ‘성사’를 보게 되는 사태까지 갔다. 결과적으로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겠지만 앞으로는 그 ‘웬수’가 다시는 우리에게 접근하지 못할 것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오히려 다행일지도 모른다.

 

¶  Rock-Bottoming Out: 지난 주 레지오 주회합을 기점으로 우리 자비의 모후 쁘레시디움은 완전히 바닥까지 갔다는 회의감이 들었다.  제일 우리가 ‘차세대’을 지향하며 희망을 걸었던 두 자매, 모두 극복하기 힘든 복잡한 가정사정으로 물러나고 실제로 움직이는 단원이 기본적인 요건을 채울 수가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전에는 단원의 숫자가 그렇게까지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편한 생각을 가졌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단장의 입장이 되고 보니 이것이야 말로 기본적 요건 중의 제일 중요한 것, 왜 몰랐을까?

이렇게까지 된 제일 큰 원인은 2년 전에 그 ‘레지오 미친X’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 ‘미친X’은 개인적으로도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었지만 그것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우리 레지오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었다는 사실,  이 사실만은 내가 눈을 감아도 잊지 못할 것이고 아니 잊어서는 안 된다고 결심을 하였다. 우리 둘의 결론은 그 ‘미친X’은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뉘우칠 능력이 결여된 불구자’라는 사실이다.

앞으로 우리 자비의 모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솔직히 아무도 모른다. 새해에 과연 신단원 후보가 나타날까? 신부님의 적극적인 본당차원으로 홍보는 하고 있지만 암만 보아도 요새 교우들,  친교나 노는 데 더 신경을 쓰는 것을 보면 너무나 실망적이다.

 

¶  Tool Time’s Coming! 우리가 이사올 당시에 있었던 garage door opener 가 드디어 마지막 숨을 쉬었다. 몇 달 전부터 날씨가 싸늘해지면서 garage door가 움직이는 모습이 애처로울 정도로 늦고 마지막 안간힘을 쓰는 듯 motor의 소음소리가 더욱 더 요란하게 들렸다.  우리가 이사를 온 때가 1992년 봄이니까 최소한 이 garage door opener는 거의 40년에 가까워 온다. 이 정도면 훨씬 전에 retire가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우리 것은 ‘장수 長壽’를 한 셈이다.

새것을 찾아보니 완전히 wifi/internet까지 겸한 hi-tech model 들 투성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힘찬’ powerful motor 로  2개의 문짝을 문제없이 올렸다 내렸다 하면 된다. Home Depot website 에서 찾아서 사온 것은 $200 짜리 Chamberlain model B750 , 3/4 hp인데 이것은 지금 것이 screw drive인데 비해 belt drive라서 noise level이 훨씬 낮을 것이라고 하는데 물론 좋겠지만 우리에게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이점은 아니다.

문제는 이것을 교체하는 ‘쉽지 않을 수 있는’ 일거리가 남았다. 한번도 내 자신이 이것을 설치, 교체해 본적이 없기에 불안한 점은 있지만 ‘만능 교실’ YouTube를 보면 그렇게 어려울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것을 실제로 교체하기 까지는 차가 드나들 때마다 근육으로 문짝을 올리고 내리고 해야 하는데 소낙비가 오지 않는 한 그것은 큰 문제는 아닐 듯 싶다. 다만 절대로 젊어지지 않는 나이가 문제라면 문제다. 절대로 절대로 작년 Hyundai Sonata의 Fuel Pump 교체하던 때의 실수, 악몽을 잊으면 안 된다. 나의 지나간 시절의 기술적 감각에 연연하면 안 된다, 안 된다.

 

¶  스테파노: 정말로 오랜만에 박스테파노 형제님 부부와 마리에타 소재의 ‘싸리골’ 이란 한국음식점에서 주말의 밤 늦게까지 식사를 하며 즐겁고 보람 된 시간을 즐기게 되었다. 이곳은 비록 우리동네인 마리에타에 있는 것이지만 우리의 일들이 주로 도라빌에 가는 기회가 더 많아서 가끔은 이곳을 잊고 산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은 한국사람보다는 이곳 사람(보통 미국사람이라고 칭하는)이 훨씬 더 많은 듯 보였다. 한국의 ‘고기요리’가 이곳에 많이 알려지면서 이곳도 business가 전 보다 더 활발한 것 같았다.

이 스테파노 형제님을 개인적으로 알게 된 것이 불과 2년이 조금 넘었지만 부부의 나이가 우리와 너무나 비슷하고 관심사도 그렇게 서로 멀지 않음을 알았다.  현재 business를 모두 정리하려고 나이에 비해서 너무나 고생하는 것을 알기에 하루 빨리 모든 것이 해결되어 편하게 retire를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공대출신인 형제님의 관심사는 나의 그것과 비슷한 부분이 적지 않은데 그 중에는 ‘양자 물리학 quantum physics’ 의 각도에서 본 신앙체계도 있는데 이 형제는 나보다 더 ‘동양사상’까지 가미가 되어서 요새 읽었던 Fritjof CapraTao of Physics의 그것과 크게 차이가 나질 않는다. 앞으로 시간이 나면 부부가 서로 다시 만나서 이런 흥미로운 화제로 긴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상상하며 헤어졌다.

Into Advent, 10th 연총 2019

세월은 흘러 흘러 어느새 겨울이 되어가는가? 올해 날씨의 특징이 있다면 일단 일기 패턴이 자리를 잡으면 별로 변하려는 기운이 없다는 것,  그렇게 익숙하던 옛날의 三寒四溫 이란 말은 완전히 사라진 듯하다. 다행히도 그 pattern이란 것이 ‘늦가을 초겨울 같은’ 그런 것이라 다행이라고 할까..

지나간 11월 초라고 기억되는 때에 벌써 요란한 Christmas carol이 흘러나온 곳은 의외로 ‘대한민국 극동방송, FEBC streaming service’이었다. 역시 대한민국의 개신교회는 이곳과는 조금 다른가..  어떻게 이렇게 일찍이 크리스마스 기분을 내는가? 덕분에 추억의 캐럴을 편하게 즐기게는 되었지만 Thanksgiving holiday 전에는 그렇게 편한 느낌은 아니었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사실 그런 세속적인 느낌의 성탄축제 보다는 ‘대림절, Advent‘의 엄숙하게 예수탄생을 기다리자는 전통이 있어서 매년 고민을 하게 된다. 어느 정도 ‘전통’과 ‘현세적 문화’를 절충하는가 하는 문제다. 전에는 젊은 시절의 추억적인 크리스마스 기분을 100% 기억, 만끽하려고 했지만 몇 년 전부터는 교회의 권고를 따르기로 결정하고 모든 holiday decoration을 성탄 10일 전 이내로 늦추고 있다. 한마디로 차분한 대림절이 되었고 대신 성탄의 기분을 1월 중순까지 지속시키려 노력을 한다. 그것이 진정한 대림-성탄시기의 뜻일 것이다.

 

12월이 되자 YMCA에서 성탄느낌의 색깔들이 하나 둘 씩 보이기 시작하더니 우리의 한국본당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도 본격적으로 성탄 장식은 물론 주차장에는 Nativity scene 성탄구유 까지 만들어 놓았다. 우리 성당에서 이런 건물 밖의 구유는 처음 보는 듯하다. 새로 부임하신 이영석 신부님이 이런 것을 특별히 원하셨는지 올해는 조금 모든 것들이 더 일찍, 더 ‘요란한’ 느낌이 든다. 아마도 피곤한 삶을 살아가는 교우들을 조금 더 배려한 것은 아닐지…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레지오 연차 총 친목회 2019

 

오늘은 예년에 비해서 1주일 뒤늦게 레지오 연차 총친목회가 열렸다. 손가락으로 계산을 해 보니 내가 이 모임에 참석한 것이 딱 10년째가 됨을 알았다. 갑자기 ‘오래 되었다..’ 라는 自照감이 ‘엄습’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그 동안, 무엇이 변했는가? 많이 변했다.. 

나에게 처음 레지오 연총 (2010년대 초 연차 총친목회)의 적극적이고, 참신했던 느낌은 많이 희석된 듯 느껴지고 이제는 조금은 ‘수수방관자’적인 입장이 된 듯해서 조금은 쓸쓸하기까지 하다.  통기타반주로 70/80노래를 목청을 돋구어 부르며 연총 에서 어울렸던 여러 형제님들도 이제는 뿔뿔이 헤어지고, 결국은 ‘별로 쓸모 없는’ 자매님들만 주위에 남은 듯하다. 이것이 레지오의 生老病死인가 아니면 보통 있는 진화과정인가..

나이로 보아도 leading edge에 있는 우리들, 이제는 조금씩 후진, 후배 단원들의 ‘양과 질’을 생각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양과 질 모두 정체, 아니 퇴보인 듯 우려되고, 어제 있었던 신부, 단장 간담회에서는 정식으로 ‘신부님의 전폭 협조’ 요청이 있었다.  협조란 것은 다름이 아닌, 조금이라도 좋으니 ‘레지오 선전’을 해 달라는 것이었고, 오늘 교중미사에서 드디어 그 효과가 나왔다. 전 신자들에게 레지오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간곡한 언급’.. 얼마나 ‘멋진 신임 신부’인가!

오늘 연총에서 우리는 예상대로 ‘공연’을 포기한 상태로 끝났다. 부끄럽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올해 초에 우리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우리의 구세주로 등장했던 ‘자매님 들’, 엄청난 실망을 안겨주고 갑자기 떠난 상태에서 나는 모든 희망을 잃은 상태가 되었기에 사실 연총 같은 ‘축제’는 관심 밖에 있었다. 그 ‘기대주 자매님’은 도대체 어떻게 인생을 살아왔었는지 동정심과 실망을 넘어서 화가 날 지경인데.. 이런 ‘위기’는 어떻게 극복할지 역시 해답은 우리의 총사령관이신 성모님이 가지고 계실지…

冊, 추수 秋收 나누기

하태수 신부님 미사 강론집: “추수 秋收 나누기“가 드디어 몇 개월여의 산고 産苦 끝에 대림절 주일부터 성당 내에서 교우들에게 판매가 되기 시작하였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아틀란타 한국 순교자 성당의 주임으로 계셨던 하태수 미카엘 신부님이 주일, 평일미사에서 강론하신 원고가 모여지고 편집이 되어서 200여 페이지의 아담한 책으로 나온 것이고, 대림절이 시작되면서 교우들에게 판매가 되는데 100% 수익금은 본당 발전기금으로 쓰여진다고 한다.

지난 여름에 이 책을 ‘편집’하는데 연숙이 참여를 하기 시작했는데 결국은 거의 혼자서 ‘편집, 교정’을 한 셈이 되었는데 마지막에는 나도 교정과정에 참여를 했다. 그래서 이번에 책이 나올 때는 남달리 관심을 가지고 ‘판매’의 결과에 관심을 갖기도 하였다.

강론집을 읽으며 나는 ‘추억의 강론’ 시절을 되돌아 보기도 했다. 그러니까 2011년부터 2015년 까지 나의 교회 생활을 돌아보는 셈이 된다. 그 당시에는 주일미사를 대부분 미국성당으로 갔기에 한 신부님의 많은 주일강론을 못 들은 셈이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잊지 못할, 아니 잊어서는 안 될 그런 강론이 하나 있었다. 

2014년을 전후로 한 시절, 나에게 거의 ‘생과 사’를 넘나드는 기분으로 산 순간들이 많이 있었다. 주로 절체절명의 심각한,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있었다. ‘두려움과 희망, 의지와 나약함’이 교차하는 극과 극의 감정을 경험하던 때, 나는 2014년 부활절 강론을 듣게 되었다. 그때의 그 한 강론으로 나는 모든 두려움과 회의적인 생각을 떨칠 계기를 맞게 되었다. 그것이 그 이후로 두고두고 나의 희망적인 메시지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것으로 나는 하태수 신부님을 잊을 수 없게 되었고, 결국은 이 ‘추수 나누기’ 책을 통해서 다시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신부님, 우리 신부님

지나가는 일주일 그리고 또 일주일 동안 나의 머리 속을 끊임없이 맴도는 생각, 그것은 신부님, 더 나아가서 사제직, 수도자, 수녀들. 이들은 과연 나에게 어떤 사람들인가 하는 조금 새삼스러운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내가 너무나 한가해졌는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분명히 있다. 지나간 4년간 우리들의 목자로 계셨던 주임 이재욱 [세례자 요한] 신부님이 임기를 ‘무사히’ 마치고 아틀란타를 떠나게 된 것, 그 뒤를 이어 부임 차 서울에서 오신 신임 주임 이영석 [세례자 요한] 신부님을 맞게 된 것 등등.. 이 바로 그것이다.

두 목자의 세례명이 똑같이 세례자 요한인 것이 흥미롭다. 나는 간단히 JL재욱 [John Lee], JL2영석[John Lee 2]로 표기하는 이 ‘예수회 사제’들, 우리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이상적인 사제’라고 생각하며 이런 생각에는 충분한 이유가 많이 있다. 온화한 말씨와 배려하는 성품, 대부분 중립적이고 공정한 사고방식, 비 극단적인 정치적 성향.. 등등.

사실 이번 새 신부님이 오시기 전에 우리, 특히 나는 불안한 심정을 금할 수가 없었다. 같은 Atlanta 지역의 ‘형제 성당’에 있는 ‘어떤 사제’와 같은 류의 주임신부가 만의 일이라도 오게 되면 나는 최악의 경우 향후 4년간 성당을 떠날 준비까지 할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신부의 자질’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마음에 안 들면 내가 안 보거나 성당을 떠나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동안 나의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나 자신을 위해서, 나의 미래를 위해서, 나의 가정을 위해서 이곳, 성당 공동체에서 떠나는 것은 거의 실질적인 자살행위로까지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곳을 떠나서 현재 같은 높이의 건강, 건전한 여생, 삶을 사는 것, 자신이 없다는 것은 경험적으로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안다.

오늘 신임 이영석 신부님을 모시고 병중에 있는 채 아오스딩 형제의  병자성사 동행을 했을 때, 우리는 신부님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는데 환자교우를 대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는 너무도 좋은 인상을 받았고, 안도감을 훨씬 넘은 기쁨을 맛 보았다.

이 인상 좋고 대하기 편하고 유머감각이 넘치는 새 신부님의 약력을 보니 더욱 안심이 된다. 인품을 떠나서 학자적 지식의 기반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정도로 보인다. 더욱이나 가톨릭의 장점인 ‘포용성’을 반영하듯, 인도철학박사의 배경을 가지고 있다. 이 신부님 부임 직전에 서강대학 교수직 제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먼저 약속이 된 이 ‘험난한 교포사목’ 직을 수락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나의 좋은 인상은 여전히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현재까지 본 새 신부님, 완전 합격 정도가 아니라 향후 4년이 너무나 희망적으로 기대가 되기에 우리 둘은 너무나 기대가 크다.

 

Sinatra moment..

어둡고 싸늘한 가을비가 살짝 물러가며, 며칠 만에 따가운 햇살이 울려 퍼지는 하루를 맞았다. 비록 햇살은 밝고 따뜻했지만 놀라울 정도로 산들바람은 차갑게 느껴지는, 한 마디로 near perfect Fall day에 감사하는 ‘레지오 화요일’이었다. 집으로 들어오는 cul-de-sac 입구에서 한창 가을채비를 하던 ‘낙엽송’의 모습이 며칠 만에 완연히 조금은 더 진한 황금색을 띠기 시작했다. 이제 이런 변화는 앞으로 거의 한 달 이상 지속될 것을 생각하니 벌써 가슴이 뛴다.

예의 레지오 주회합, 아가다 부단장님의 따님이 오늘도 방문자로 합석을 하였다. 성모님의 뜻으로 그 따님에게 레지오 입단의 의향이 생기기를 기도하지만, 어찌 우리 같은 mere mortal 이 성모님의 깊은 뜻을 알겠는가? 단장으로서 조금이라도 레지오의 좋은 인상을 심어주려는 노력은 하지만 글쎄.. 근래에 들어서 ‘눈이 반짝거리는 레지오 단원을 본 기억이 거의 없어서’..

새로 부임하신 이(영석) 요한 신부님, 느낌이 아주 좋고 희망적이다. 게다가 들어온 소식에 의하면 이 신부님, 청년시절 레지오를 하셨다고 해서, 우리는 모처럼 앞으로 4년간 재임기간에 ‘레지오 재건’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되었다. 게다가 현재까지 이 신부님의 ‘인상’, 아주 편하고 ‘대화가 편한’ 목자로 보인다는 주위의 의견에 나도 공감을 한다.  이임하신 이(재욱) 신부님, 신임 신부님이 정착을 하시는 대로 (봉성체)신자가정방문을 주선하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한다.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와 어느 정도 ‘mutual chemistry’ 에 문제는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오늘도 두 곳에 성체를 모시고 갔다.  그 중에 오늘 오전, doctor visit를 하고 돌아온 C (어거스틴, 아오스딩) 형제, 예상외로 빨리 일정이 끝나서 이발까지 하고 왔는데 아무리 보아도 ‘말기암’ 환자로 보이질 않는, 흡사 바로 퇴근한 회사원 같은 느낌이다. 얼마 전의 ‘시술’ 후에 체중이 더 불었다고.. 어찌된 일인가? 이 형제의 몸은 한마디로 단단한 steel 같은 그런 느낌, 거기에 거의 완전히 ‘절대자’에게 모든 것을 맡긴 상태… 고통 중에서도 깊은 평화 속을 산다고.. 나는 솔직히 이 형제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

다른 곳, 거의 한달 만에 방문한 ‘금술 좋은 80대 손(요한) 부부’, 오늘도 도우미가 마련한 점심식사를 기다리며 성체를 모신다. 이렇게 ‘성체신심’을 가지신 분들을 방문하는 것은 사실 우리에게는 특별한 은총이다.

조금은 늦은 점심, 비록 ‘한 접시 요리’지만 [설거지가 간단해서] 솔직히 맛은 진수성찬에 못지 않을 때가 많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던가… 문제는 피곤한 상태에서 늦은 점심은 거의 확실하게 ‘낮잠’으로 이어지는 것..  물론 ‘늦은 낮잠’은 내가 즐기는 것 중에 하나지만 대부분 30분을 넘지 못하는데 오늘 것은 완전한 예외였다. 2시간이 지난 것이다. 짧아진 해, 벌써 저녁의 어두움이 보이지 않는가? 하지만 30분의 낮잠과 오늘의 2시간 낮잠의 ‘후유증’의 차이는 완연하게 달랐다. 한마디로 꿈 속을 걷는 듯한 느낌으로 저녁을 맞이한 것이다.

잠시 후에 나는 (Frank) Sinatra moment를 지나게 되었다. 너무 조용한 순간들이 싫어서 우연히 고른 background song album이 바로 Sinatra Hit Collection, 물론 오래 전에 어디에선가 download한 것들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먼지가 쌓였던 Sinatra의 classic hit였는데 이것을 오늘 낮잠 후 멍~한 기분에 ‘계속’ 듣고 있었다.  오래 오래 전, ‘우리들’은 이런 것, ‘꼰대’들이나 술을 마시며 즐기던 것으로 ‘일축’해 버렸던 것인데 오늘 나는 이것에 완전히 빠져들게 되었다. 어쩌면 그렇게 가슴 깊은 곳의 무언가를 어루만져주는 것일까. 아~ 나도 이제는 완전히 ‘늙었다’ 라는 조금은 슬프지만, 편하기도 한 느낌 속의 저녁을 보내게 되었다.  그렇다… 인생의 황혼기를 간다는 사실은 ‘슬프기도 하면서도, 편하고 포근한 것’이라는 것. 그것이 나의 오늘 Sinatra Moment였다.  무엇이 편하고, 포근한 것인지는 솔직히 나의 짧은 ‘문학적 표현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 하지만 분명한 사실이고 진실이다.

 

 

 

우산위로 차가운 가을비가..

 

¶  결국은 보고야 말았다. 우산위로 내리는 가을비를, 그것도 마음껏.. 마음껏.. 얼마나 오랜 동안 기다리고 기다리던 날씨의 즐거움인가.  ‘최헌’의 ‘가을비 우산 속’ 추억을 연상케 하는 날, 실제로 커다란 우산을 쓰고 가을비를 맞아 보았다. 싸늘하고 어두운 비, 그것도 거의 하루 종일. 지독히도 길었던 올 늦여름, 초가을의 잔인했던 더위와 가뭄도 거의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그런 날이었다. 어머니의 손길, Mother Nature의 투명한 자비하심은 역시 기다리는 끈기도 있어야…

지난 며칠 전부터 서서히 떨어지던 새벽기온 ‘덕분’에 그제 아침에 올 들어 첫 furnace fan의 은은한 소음을 듣게 되었고 나의 study에는 space (parabolic radiant) heater까지 꺼내 놓았다.  지난 해 선물로 받아서 쓰고 있는  ecobee Smart Thermostat에는 heat-cool auto (change) mode가 있어서 사실 cool mode (air conditioner)에서 heat mode (furnace)로 일부러 바꿀 필요는 없지만, 나는 이렇게까지 자동적인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가을/겨울에도 가끔 더운 날이 있는데 그런 때는 창문을 열어 놓으면 되지만 그 때에 air conditioner가 자동적으로 나오는 것,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끈질기게 하루도 빠짐없이, 변함없는 ‘마른 뜨거움’를 유지하던 9월 말까지 사실 추위를 막는 옷, 그러니까 ‘춘추복’의 필요성은 거의 제로였는데 그것이 지난 주일부터 서서히 바뀌어서 어느 날 새벽에는 따뜻한 옷을 어둠 속에서 찾으라 애를 먹었다.  아~ 계절의 변화여..  앞으로 얼마나 더 이런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인가… 점점 짧아지는 듯한 ‘남은 인생’이여…

 

¶  오늘은 2년 만에 다시 열린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천상은총의 모후 꾸리아>  ‘레지오 간부 피정 (정식명칭: 레지오 평의회 의원 1일 교육)’엘 연숙과 같이 참가하게 되었다. 매년 이때쯤 실시되는 것인데 작년에는 처음 시도된  ‘레지오 토론대회’으로 말미암아 한 해를 거르게 되었다.  싸늘하고 궂은 날씨였지만 비교적 많은 ‘평의원’ (간부들) 참여 하에  오전에는 보좌 신부님(Fr. 김형철 시메온)의 특별강론 , 오후에는 서 토마스 형제의 ‘가톨릭 혼인에 대한 지침’, 꾸리아 단장님의 ‘특별 (호소} 훈화’ 등으로 아주 유익한 토요일을 보냈다.

레지오 활동 (거의 9년째) 초기에는 이런 것이 생소하기만 했는데 이제는 세월의 연륜으로 아주 편해지고 나름대로의 추억, 생각, 아이디어 등이 머리를 맴돌곤 한다.  이제는 정이 든, 이곳 ‘천상은총의 모후’ 꾸리아 (평의회)가 더 발전해서 더 큰 활동을 하면 하는 바람 뿐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들대로 든 나이’를 의식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관건은 ‘세대 교체, 신선한 물결’.. 등.. 역시 세월을 얏 잡아 보면 불현듯 많은 것을 놓친다.

꾸리아 단장의 ‘훈화, 호소’, 나는 심각하고 심지어 숙연한 심정으로 공감하며 들었다. 100% 옳을 말씀, 어쩌면 그렇게 ‘순명과 충성’의 정신을 놓은 단원들이 대다수인 느낌이 드는 것일까? 어떻게 이들에게 ‘불을 붙일 수’ 있을까?  역시, 역시, 교육, 재교육… 재재교육..’ 뿐이다.

오늘 ‘피정, 교육program’ 중에는 ‘혼인 조당’에 관한 서(재욱) 토마스 단장의  ‘보고, 강의’가 우리들의 관심을 끌었다.  아틀란타 교구청에서 수 개월에 걸쳐 ‘연수’를 마친 후 certificate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교회 내에서 생기는 결혼법적인 문제를 상담하는 첫 창구역할을 하는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나를 비롯해서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결혼성사’가 정말 ‘성사’ 임을 간과하며 살고 있었는데,  한마디로 교회법상에는 ‘이혼’이란 말이 없음을 왜 모르고 살았을까? 나도 최근에서야 이 ‘혼인성사’의 심각성을 실감하고 있는데,  우리 딸들의 결혼문제와 겹쳐서 고민을 안 할 수 없게 되었다. ‘세속적 쓰나미 tsunami’ 의 거대한 물결을 헤지고 나가는 우리 ‘불쌍한 교황님’, 절대로 굴복하시면 안 됩니다.  이것이 세속적으로 무너지면 다음에는? 진실은 진실이고 진리는 진리이고 일 더하기 일은 죽어도 이(2) 입니다.

 

¶  오늘 일일 교육피정이 끝나고 점심 식사 때 우연히 오늘 미사, 피정 강론신부, 김 시메온 신부님과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이 ‘비교적 젊은’ 경남 산청 출신 보좌신부님, 내가 연숙에게 ‘이 신부님을 보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다’고 고백한 적이 있었던 분.  소년처럼 활짝 웃는 모습이 인상적, 얼마 전 마주쳤을 때 ‘불현듯’ 떼이야르 샤르댕 (예수회) 신부님에 대해서 짧은 대화를 했었다. 김 신부님, 샤르댕이 예수회출신임을 알기에 자신을 갖고 물었는데, 역시 잘 알고 있었고 ‘먼 앞날을 내다보는 선구자’라는 사실도 잊지 않고 언급. 그런데 오늘 대화에서 그것을 잊지 않고 언급하시는 것이 아닌가?  기억력인가, 아니면 신자들에 대한 배려와 관심인가?

예수회의 역사적 ‘진보성, 개방성’에 대해서도 언급을 했는데, 그런 사실들(예수회원 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계셨다. ‘진보적 경향’은 요새 항상 아슬아슬한 말, 특히 정치적으로 더욱 그렇다. 한걸음 조금 더 나아가서 ‘신부님의 정치적 성향’을 살짝 듣고 싶었지만 그것만은 피할 수 밖에 없었다. 결과가 뻔하지 않던가? 그런 화제를 일부러 피하시는 듯한 모습이 나에게는 커다란 플러스로 여겨졌다.  이런 것들에 비하면 ‘윗동네’의 같은 예수회 출신 신부님들의 ‘행태’가 너무나 크게 비교가 됨을 알고 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 ‘교회’란 무엇인가..

모처럼 교회, 아니 ‘한국교회, 고국 성당, 순교자 성당’의 주일미사엘 간다. 물론 ‘그곳’은 요사이 들어 더 자주 가는 곳이긴 하지만 ‘일요일, 주일’미사엘 가는 것은 좀 생소한 느낌이 들어서 달력을 보니.. 거의 한 달이나 되었다. 그것도 지난 달의 꾸리아 월례회의 때문에 간 것이고 오늘도 마찬가지다. 그것 때문에 가게 되는 것이 조금은 이상한 기분이 드는 것이… 작년에는 거의 매번 주일미사를 가야만 했던 때문이었다. 그것이 보람도 있었고 힘들 때도 많았다. ‘직무, 짐, 무거운 일들’ 이 중요한 이유여서 그렇게 피곤한 기억으로 남는지 모른다. 하지만 ‘나도 열심히 했다’라는 것은 보람으로 남고, 그렇게 추억으로 남기고 싶기도 하다.

앞으로 나에게 과연 이 ‘성당’이란 것이 어떤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인가 문득 문득 생각한다. 결론은 ‘이 곳을 떠나면’ 나는 분명히 ‘함정, 유혹’에 빠질 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떨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럴 수는 없다고 조심스럽게 자신을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쉬울까? 이곳을 그곳을 떠나면 안 된다. 우선은… 레지오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나를 지탱시키는 탯줄 역할을 하는 것, 나는 굳게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가면 채 형제를 포함한, 주일과 상관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게 된다는 사실, 새롭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기만 할까? 우선 ‘레지오 미친년’의 ‘가오’가 시각으로 안 들어오기만 바랄 것이고.. 그 외에는 어떤가? 거의 2년 전부터 시작된 ‘새로운, 좋은 친구들 만들기’ 노력은 어떤가? 그런대로 노력은 했지만 근래에 들어서 ‘사그러드는 기분’을 떨칠 수가 없다. 이것도 ‘남은 여생을 어떻게?’ 라는 나의 ‘태제 太題’이기에 그것과 연관시켜 생각을 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최근에 조금은 ‘멀어진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 ‘임 요한’ 형제도 그렇고.. 나는 그들과 어떤 형태의 친교를 가질 것일까?

부디 오늘 모처럼 가는 주일미사의 ‘주일’이 보람 있고, 생산적이고 ‘즐거운’것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싶다.

T-3 hours, 몇 년 만인가…

 

2019년, 연 年 피정 避靜, annual ‘spiritual’ retreat… 이것이 우리에게 몇 년만인가 며칠 전부터 생각해본다. 마지막으로 간 것이 2014년, Coyners Monastery 였고 그 전해인 2013년엔 Carmel Retreat Center였다. 그러니까 지나간 5년간 우리는 ‘집을 떠난 피정’엔 못간 것이다. 거의 매년 한번 정도는 경험해야 할 이 ‘영신적 휴가’를 왜 못했던 것일까?

우리의 연례 피정은 100% ‘레지오’ 주관일 수밖에 없는데, 한마디로 우리의 레지오 (그러니까 꾸리아)에서 그 동안 주선을 못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Leadership, leadership & leadership의 부재라고만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요새 대통령 같이 않은 인간들처럼 사람 잘못 뽑으면 어떤 결과, 특히 장기적인 여파가 생기는지..  두고두고 후세가 짊어질 폐해들, 무능력한 것뿐만 아니라, 숫제 퇴보하는 leadership, 요새 뉴스를 보아도 이제는 우리 눈에 익숙한 것이 아닐까?

그래도 다행인 것은 현 leadership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느낌이고 결과적으로 이번에는 ‘심각한 피정’을 주선한 듯하다. 더욱 반가운 사실은 이번에 가는 곳이 6년 전에 갔었던 곳,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고 아직도 신선한 느낌이다. 솔직히 나는 참 많이 듣고 배운 곳이었다. 아직도 ‘하태수 미카엘’ 신부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은 것은 나만이 아닐 듯하다.

이제 몇 시간, 3시간 있으면 ‘짐을 싸 들고’ 60여 마일 떨어진 곳으로 출발을 하는데, 이번 피정은 현 주임신부님이신 ‘이재욱 요한’ 신부님 주관이라서 미리부터 기대가 적지 않다. 이 신부님의 영성적, 신학적 깊이에 대해서 익히 들어서 알지만 이번에 그것을 내가 경험하게 된 것이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이 신부님의 마지막 피정지도가 되지 않을까…

등대회 즐거움, 배 자매 4주기

Fort Yargo State Park picnic area

 

¶  지난 주일에는 전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우리 60~70대 성당모임인 등대회의 야유회 picnic 엘 갔었다. 2017년 가을에 입회한 이후 몇 번 이런 행사엘 갔기에 이제는 조금 익숙한 편이지만 나로써는 감회가 새로운 것이, 이런 ‘사람들 모임’ 그것도 ‘놀러 가는’ 것에 나는 거의 가질 않고 오랫동안 살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나도 많이 변했구나 하는 ‘흐뭇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런 삶이 ‘정상적인 삶이 아닐까..

이번의 야유회가 조금 더 색다른 것은 우리 부부가 같이 참가했기 때문이었다. 이제까지는 각종 임무로 너무나 바쁜 스케쥴에 얽매인 연숙이 마음 놓고 참여하기가 힘들었었는데 최근에 하나 둘 씩 ‘책임’을 내려 놓기 시작해서 가능하게 된 것이다. 나도 지난 해에 맡았던 구역장 임무를 내려놓고 얼마나 홀가분한 기분이었는지 모른다.

이번에 간 곳은 나도 한번 간 적이 있었던 Fort Yargo State Park으로 작년에 구역장 연수회를 그곳에서 한 관계로 나는 한번 간 적이 있는 곳이었다. 그 당시는 cottage에서 하루를 묵었지만 이번에는 picnic area로 가서 몇 시간을 먹고 즐기다 돌아왔는데, 여행을 별로 즐기지 않는 우리들에게는 적당한 하루의 휴식, 여행을 한 셈이 되었다.

이 등대회의 특징 중에 하나는 우리와 나이가 아주 엇비슷한 사람들이 꽤 있고, 그 중에서도 나와 동갑인 형제, 자매들도 꽤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에 오랜 세월을 살면서 이렇게 ‘동류의식’을 느껴본 적은 아마도 없었을 듯 하다.  나이가 비슷한 것이 그렇게 중요한가.. 어떤 사람들은 상관을 안 하는 모양이지만 나는 정 반대다.  그들이 거의 친구처럼 느끼며 ‘좋아하는 것’을 연숙은 조금 이상하다고 보는 모양이지만 나는 사실 그렇다. 같은 시대를 살아왔다는 사실이 어찌 큰 의미가 없겠는가? 이 그룹은 한마디로 ‘자연스럽게 편한’ 느낌을 주기에 ‘큰 사고’가 없는 한 열심히 참여하고 싶다.

 

¶  오늘 우리는 레지오 주회합 후에 배해숙 (베로니카) 자매님 선종 4주기 (5월 2일)를 맞아 성당 근처에 있는 Winters Chapel  memorial park 엘  갔었다. 돌아 가신지 벌써 4년이 되었나.. 2014년 가을에 말기암 환자로 처음 만났고 2015년 5월 2일에 선종한 어떻게 보면 참 ‘불쌍한’, 나와 동갑내기 자매님이었다. 남편 형제님은 그 전해에 먼저 타계를 하고 ‘철없이 보이는’  장성한 두 아들을 댕 그러니 남겨놓고 간 자매님이었다.  다행히 친 오빠, 친 여동생이 있어서 장례식 이후 가끔 소식을 주고 받지만, 이제는 4년의 세월 탓인지 당시의 강렬했던 느낌들도 조금씩 빛을 잃어가는 듯 하다.

당시, 우리 둘은 ‘레지오 활동’을 염두에 두고 열심히 배 자매님을 천주교인으로 입교시키는 데 혼신의 힘을 쏟았고 성공을 한 셈이지만, 과연 자매님 우리가 배운 대로, 희망하는 대로 ‘좋은 곳’에 가셔서 평화로운 다른 삶을 ‘남편 형제님’과 같이 사시는 지는 확신이 없다. 하지만 믿는다. 그것이 신앙이고 희망이니까.. 자매님, 짧은 기간이었지만 보람 있는 시간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편히 쉬시고 남아있는 두 사랑하는 아들들 그곳에서 잘 보호해 주소서…

을씨년스러운 3월 마지막 날은..

올 들어 처음으로 느껴본 ‘후덕지근’ 한 어제 밤을 보낸 후 결국은 자연의 섭리는 다시 ‘통계적 평균’을 찾아 제자리로 돌아오긴 했지만 조금 심했나… 극과 극의 맛을 자랑이라도 하듯 오늘 새벽은 완전한 겨울 같은 느낌이다. 3월 31일은 역시 이른 봄이라기 보다는 늦은 겨울이기도 한 것이다. 차가운 비와 더불어 시베리아 같은 느낌의 세찬 바람소리가 들리는 뒤 뜰에 잠깐 나가보니 어제 입던 옷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그런 날씨로 변해 있었다. 지나간 해 이맘때쯤 남긴 ‘세찬바람 불어오면…’ 을 읊조린 글과 그림이 생각이 나는 아침이 되었다.

이런 날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른 광경은 역시 ‘포근하고 따뜻한 늦잠’을 즐기는 나의 모습이지만 오늘은 그런 가능성이 제로이기에 아쉽기만 하다.  오늘은 ‘주일’이기도 하고, 한가하게 쉴 수 있는 여건도 아닌 것이 아쉽기만 하다. ‘주일은 쉬어라’.. 십계명.. 흠…. ‘노동’은 쉬겠지만 나의 七十 老軀 를 끌고 밖으로 차를 몰고 나가야 하는데..

주일 아침의 ‘십계명의 부담’ 넋두리의 유혹을 제치고 나머지 일요일 하루를 보낸 후에 느낌은 역시.. 이것이다. ‘할 것은 해야 하고, 뛸 데가 있으면 끝까지 뛰는..’ 바오로 성인의 가르침, 아니면 레지오 교본이 강조하는 ‘부지런함과 절제되고, 훈련된 삶 disciplined life’가 주는 기쁨,  기본적으로 ‘게으름의 죄악’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것도 죄악임을 가끔 완전히 잊고 살 때가 얼마나 많은가? ‘무상으로 받은’ 자유의 시간들, 정말 공짜가 아님을 잊으며 ‘나는 절대로 죄가 없다’고 코웃음을 치는 사람들.. 가끔 나도 그 중에 하나다. 오늘도 그런 유혹을 받았고 결과적으로 완전히 그것을 물리친 안식일이 되었다.

 

3월의 마지막 주일날 (다섯째)에는 21차 레지오 아치에스 Acies1 행사가 열렸고 우리 ‘자비의 모후’, 연숙이 사회를 진행하게 되어서 한 명이 빠진 상태였지만, 다행스럽게 협조단원 2명, 그것도 모두 ‘형제님들’ 이 참석을 해서 ‘기본적인 체면’을 유지할 수 있었다. 2년 전 ‘레지오 미친년들 사건‘ 이후부터 이런 행사가 오면 단원의 숫자에 무척 신경이 쓰였다.  워낙 신입단원 모집이 어려운 요새의 실정에서 기도 이외에는 크게  상황이 호전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독을 뿜는 독사들’ 한두 명만 있어도 이렇게 오랫동안 여운을 남기는 피해를 보며… 역시 ‘뱀의 머리를 바수는 어머니’의 역할을 더욱 실감하게 된다. 군대 같은 질서로 우리들 모두 성모님께 충성을 서약하며 의미 있고 보람된 ‘안식일’ 인 3월 마지막 날이 되었다.

  1. 총사령관이신 성모님께 대한 개인 및 단체 봉헌식, 3월 25일을 전후로 개최한다. 아치에스는 라틴어로 전투대형을 갖춘 군대’라는 뜻이다.

가는 2월, 오는 3월은…

¶  물 건너 간 것, ‘첫눈’: 2019년 2월이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28일 밖에 되지 않아서 더 빨리 지나가는 듯 하다. 목을 빼고 애처럼 기다리던 올 겨울  ‘첫, 하얀 시루떡, 눈 雪’,  은 결국 물 건너가는 듯 느껴진다.  왜 올해 내가 그렇게 ‘첫 눈’을 기다렸는지는 사실 나도 잘 모른다. 지나간 몇 년간 매년 보고 즐기기도 했던 것이라 습관이 되었는가, 아니면 그저 나이답지 않게 ‘감상적 感傷的’ 인 기분에 빠졌는가.  비록 눈 구경은 못 했지만 대신 비 구경은 실컷 즐기며 살았던 주일을 보냈으니 그렇게까지 실망할 것은 아니다. 대신 YouTube의 video를 통해서 눈보라 치는 모습과 곁들인 멋진 영상음악은 Google ChromeCast의 도움으로 big screen TV를 통해서 실컷 보고 들었다. 하지만 이것은 역시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  뒤뜰로 흩날리는 몇 송이의 눈발과 어떻게 비교를 할 수가 있겠는가?

 

¶  규칙적인 대장 운동:  지난 주에는 뜻하지 않게 regularity 문제로 며칠간 고생을 했다.  평소에 큰 신경을 안 쓰고 살았는데 가끔은 이것이 찾아온다. ‘변비, constipation’이라고 하면 당장 ‘냄새’가 나는 듯해서 조금 부드러운 표현이 ‘규칙적인 대장 大腸 운동, regularity’ 지만 이것 역시 기분은 마찬가지다.  왜 이런 ‘불규칙 증상’이 찾아왔나 생각해 보니 주범은 역시 ‘달콤하고 편리한 stick instant coffee 중독’인 듯하다. 그것 말고는 혐의를 둘 것이 별로 없으니 말이다.  예방은 물론 이런 ‘편리,달콤함’에서 벗어나면 되는데 ‘처방, 치료’가 문제다.

Toilet에 오래 앉아 있어야 하는 불편함은 경험이 없는 사람은 모를 것이다. 나도 잘 몰랐으니까..  이 regularity문제 자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로 인해서 ‘Prep-H, hemorrhoid’ moment 까지 나가면 정말 골치를 썩게 된다.  나도 경미하게 Prep-H 증상을 몇 번 겪었지만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것만은 피하고 싶지만 항상 운이 좋은 것은 아니다.

이번에도 이틀 정도 이것으로 고생을 했지만, 증상자체도 신경을 심하게 건들이지만 그것보다 이것으로 기분이 축 쳐지고 우울감까지 느끼게 되는 것도 만만치 않은 도전이다. 이런 며칠 간 고생의 경험으로 이제는 ‘입으로 들어가는 것들’을 조심하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Kroger drug counter에서 찾은 ‘stool softener’ 란 pill을 정기적으로 복용하기 시작했고, 최악의 경우에도 대비를 하기로 했다. 이것도 ‘앞서가는 나이’와 상관이 있는 불편함인가…

 

¶  2월 마지막 주일:  거의 매일 비가 온 듯한 느낌을 주는 2월, 마지막 주일 미사는 도라빌 순교자 성당으로 가게 되었다. ‘절대적인 이유’가 아니면 앞으로 주일미사는 동네 미국본당으로 가기로 달 전에 결심을 했지만 예외는 항상 예상 해야 한다.  이날이 바로 그런 날이 되었다. 이유는 도라빌 성당 60~70대 친교모임인 등대회 회식 때문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찬란하게 떠오른 태양으로,  미사 시작을 ‘쨍~하고 해 뜰 날’ 이란 말로 시작한 주임신부님도 주일에 보게 된 것도 반가웠고, 한달 만에 다시 만난 등대회원들도 새롭고 즐겁게 느껴진 것을 느끼고, 이곳도 조금은 정이 들었나..하는 포근함까지 느끼는 등, 이날, ‘주일’은 그야말로 ‘주님이 주신 안식일’이 되었다.

오늘 ‘레지오 화요일’,  오늘도 우리 집 뒤뜰에서 계속 초봄의 소식을 전해주는 수선화를 꺾어가지고 가서 레지오 성모상 옆에 꽂았다.  성모님 (상)을 보면서, 현재 조금씩 안정되어가고 있는 우리의 ‘자비의 모후’를 쉽게 포기하지 않으시는 듯한 모습을 그린다. 몇 주 전부터 ‘방문자’로 참관을 하는 ‘예비신자’ 자매를 보며 나는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 어쩌면 이 자매도 ‘성모님 job’이었나 할 정도다. 또한 얼마 전 퇴단한 실망스런 자매들과 이 예비신자 자매와 비교를 하며, 어떻게 세상에 이렇게 사람들이 다를 수가 있는가.. 나는 입을 다물지 못한다.

대체적으로 올해 2월은 우리로 하여금 지나간 6개월 여 ‘구역모임’으로 인한 ‘고통의 기억’들로부터 더욱 멀게 해 주는 그런 시기가 되었다. 이제는 우리는 다시 제 정신을 차린 듯한 산뜻한 기분을 느끼며 ‘우리들의 3.1절’을 기다리게 되었다.  ‘우리들의 3.1절’, 1919년의 기미년이 아니고, 우리 둘에게 3월 1일을 즈음해서 일어났던 각종 ‘좋은 추억’들, 예를 들면: ‘1992년 현재의 집으로 이사 왔던 날’, 부터 시작해서 2012년의 ‘매일 미사’ 전통의 시작까지 3.1절은 우리에게 소중한 날이 되었고 올해도 예외 없이 이날이 되면 추억과 더불어 ‘때려 먹는’ 즐거움도 놓치지 않을 것이다.

 

Daffodils come forever

올들어 처음 피어나는 수선화 꽃망울

 

¶  돌아온 수선화여, 주일 전부터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모습, 올해 처음으로 피기 시작한 수선화,  일주일 동안 거의 매일 아침미사 15분 drive하는 동안 우리는 오늘은 어떤 모습의 봄 소식을 찾을 수 있나 차창밖에 온통 신경을 쓴다. 이것은 우리 같은 ‘젊은 노인’ 부부에게는 논쟁의 여지를 줄 수 없는 거의 완벽한 대화 소재가 아닌가 생각한다.

꽃 망울이 겨우 눈을 뜨기 시작한 수선화가 작년에 하늘로 간 Tobey1의 무덤 주위에서 그 녀석의 영혼을 감싸듯이 정렬을 하고 있음을 매일 본다.  추위를 견디는 수선화의 안쓰러운 모습과 나의 손에 머리를 안겨 마지막 숨을 쉬던 그 녀석의 얼굴이 겹치며 나를 순간적으로 우울하게 한다. 역시 봄과는 거리가 있는 싸늘함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올해의 겨울과 봄의 사이는 유난스럽게 이상한 것이, 겨울이 정말 춥지를 않았다. 영하로 내려갔던 날이 며칠이나 될까? 덕분에 에너지는 많이 절약했겠지만 이런 상태로는 올 겨울 ‘눈 구경’은 물 건너 가고 있다.  대신 장마철을 연상하게 하는 ‘싸늘한 비’의 연속을 겪고 있다. 아마도 봄을 준비하는 초목들은 땅 속에서 잔치를 벌리고 있을 듯 하다.

 

기다리던 눈 대신 싸늘하게 내리는 줄기찬 비

 

거의 ‘악몽’ 처럼 느껴졌던 작년 후반기 6개월의, ‘구역’에 대한 기억, 이제는 그런 것들을 뒤로하고  2019년의 봄은 우리에게 조금 더 다른 의미를 주는 기회를 주기를 진정으로 바라고 있다. 청순한 수선화여, 피어있는 동안 우리에게 모든 괴로웠던 기억들을 말끔히 씻어 가게 해주길..

 

¶  수선화의 성모님:  모처럼, 나와 우리의 ‘등대’, ‘자비의 모후’  주회합 성모님 제대의 주위가 ‘꽉 찬듯한 느낌’을 주었다. 지난 몇 개월간 생존의 위기를 거듭했던 ‘자비의 모후’,  몇 주 전에는 결국  ‘파산선고’ 까지 우려했지만 역시 성모님의 도움이신가.. 최소한의 간부구성이 갑자기 이루어졌다.

 

수선화의 성모님, ‘자비의 모후’를 도와주소서,,

 

게다가 신단원 모집에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예비신자 자매님이 부활 세례직후에 입단이 거의 확실하게 되는 듯하니, 어찌 수선화의 축복을 받는 성모님이 더욱 더 아름답게 보이지 않겠는가? 지나치게 큰 기대는 안 하지만, ‘독물 毒物 이 전부 빠져나간 듯한 ‘ 우리 ‘자비의 모후’가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새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것, 올 봄에 기대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다.

 

  1. 작년 6월에 14살 천수를 다하고 떠난 나의 ‘영혼의 벗’ 개 Dachshund 의 이름

Ordinary Sunday

연중 시기에서 사순 시기로 가는 길목에서

 

Ordinary Time, 올해 연중시기도 벌써 6주째를 맞는 오늘로서  Extraordinary season, Lent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 Ash Wednesday‘도 반달 정도 남았다. 싸늘한 비가 간간히 뿌리는 평화로운 일요일 오전..  이런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을 맞아 본 것이 얼마만인가 생각한다.  오늘이 더욱 새로운 것은 우리 마음의 고향처럼 느껴지는 ‘동네본당, Holy Family Catholic Church‘에서 둘이 미사를 보았기 때문이다. 사실은 그렇게 오래 된 것도 아닌데 느낌에는 몇 년이라도 흐른 것 같다. 그 정도로 나는 이런 때를 무의식 중에 기다리고 살았던 모양이다.

나는 미사 후에 곧바로 집으로 가서 편하게 late morning coffee의 향기를 즐길 수 있지만 연숙은 다시 곧바로 ‘도라빌 본당’으로 가서 새로 시작되는 견진 교리반 director 일로 땀을 흘려야 한다. 미국본당에 가는 날의 일요일 일정은 이렇게 조금 복잡한 편이다.

두 본당을 가진 우리의 신앙생활은 조금 지혜로운 생각이 필요하다. 언제 도라빌 한국본당을 가며, 언제 동네 미국본당을 가느냐.. 이것을 결정하는 것, 몇 가지 이유는 분명하지만 아주 분명하지 않을 때는 더욱 심사숙고를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목적은, 사실 어디를 가나 ‘성체성사’를 하는 것이기에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우리의 신잉생활에 도움을 ‘더’ 줄 수 있는 쪽을 택하는 것이다.

영어권과 모국어 권, 언어 차이를 떠나서 문화권의 다름은 이제 오랜 이곳의 생활에서 익숙하게 아는 것이지만, 그래도 항상 새롭기만 하다. 아마도 이곳에서 죽는다고 해도 그때까지 이 ‘피할 수 없는 문화의 차이’는 계속 새삼스럽게 느낄 것이다. 문제는 이 두 색다른  교회공동체를 통한 신앙생활이 우리의 개인적, 가족적 영성생활에 어떻게 도움을 줄 것인가 하는 것이다.

한때 깊숙이 관여했던 도라빌 ‘모국어 본당’에서 서서히 우리 둘은 물러나고 있다. 의도적인 면도 없지 않고,  피하고 싶은 ‘사람들’과 계속 어울리는 것, 장기적으로 ‘영육간의 건강’에 전혀 도움이 될 수가 없다는 ‘경험적 진리’에 우리는 의견을 모았다.  특히 지난 주일에 ‘견진교리반’ 시간에 일어났던 또 다른 ‘trumpian, kafkaesque incident’ 1  해괴한 사건은 연숙으로 하여금 ‘완전히, 깨끗하게’ 교리반 director 임무를 떠나게 하는 마지막 ‘관 coffin 의 못 nail’ 역할을 했다.

연숙도 나와 발을 맞추어 하나, 둘 짐들을 거의 계획적으로 놓기 시작했는데, 제일 큰 것은 ’15년 간의 주보 편집’이 그것이고 지난 몇 년간의 ‘예비신자 교리반 director’가 그것으로,  그녀에게는 거의 ‘은퇴’와 같은 중대한 결정이 되었다.  이제부터는 남는 시간, 여유를 어떻게 더 ‘지혜롭게, 생산적으로’ 쓸 까 하는 것인데 그것을 나는 절대 걱정 안 한다. 벌써 앞으로 ‘신나게’ 할 것들의 ‘줄을 서’ 있기 때문이다.

 

  1.   견진교리반에 들어온 한 ‘젊은’ 여자의 상식을 벗어나는 무례함으로 깊은 상처를 받았던 사건, 도대체 요새 젊은 아이들은 어떻게 가정교육을 받았고, 그런 ‘애’가 ‘견진’을 받는다는 사실의 모순은.. 

사순절을 향한 ‘아주 특별한 순간’

지난 달 말에  ‘프카’ 자매님1 과 카톡 대화를 하던 중에 아틀란타 ‘도라빌’ 순교자 성당 내  ‘영적독서클럽’에 대한 소식을 물었는데 반응이 아주 ‘부정적’인 것이었다. 최근에 느낌도 그랬지만 역시 이 자매님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으로 아예 ‘탈회 脫會’를 하였고 성당을 떠난 별도의 클럽을 만들어서 ‘영적독서’를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개인적인 사정도 없지는 않았겠지만, 그 동안 성당내의 영적독서클럽은 아무래도 무언가 ‘구심점’  결여로  ‘흥미’를 유발하는 클럽의 운영상황이 아닌 듯 싶었다.  흔히 말하는 leadership의 부재 不在, 바로 그것은 아니었을까?

근래에 읽었던 책을 소개하면서 나보고도 읽어보지 않겠냐고 해서 ‘물론 ok’라고 해서 그 다음 주에 그 ‘프카’ 자매님2  손수 책을 갖다 주셨다. 이 동갑내기 자매님, 참 볼수록 정이 많은 분임을 알게 되기도 했다. 그 책의 제목이 바로 ‘아주 특별한 순간‘ 이었는데, 영성적 번역서로 많은 친근감을 주는 ‘류해욱 요셉’ 신부님이 엮은 책이었다.

 

책의 내용은 류신부님의 글이 아니고 ‘안토니오 사지’ 라는 ‘유명한’ 인도출신 신부님이 한국에서 지도한 ‘치유피정’의 강의부분을 아주 매끈하고 유려한 한글로 정리한 것이다.  또한 인상적인 것은 2013년에 첫 출판 후 2017년까지 18 쇄의 중판을 거듭한 것을 보면 아마도 ‘베스트셀러’ 급의 ‘좋은 책’이 아닐까 추측도 해 본다.

모두 25회의 강의로 이루어진 이 책을 접하며 문득 생각이 들었다. 25번의 피정 강의를 한꺼번에 읽는 대신 하루에 하나의 강의를 편안하게 소화를 하면 어떨까? 더 나아가서 2019년 사순절이 시작되는 3월 6일 (재의 수요일 Ash Wednesday)까지 모두 (쓰고) 읽으며 올해의 사순절을 더 특별하게 준비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월 5일까지 25회의 강의를 ‘들으려면’ 2월 9일부터 시작을 하면 될 것이고, 그것을 이곳 개인blog에 시한적으로 남겨두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류해욱 요셉 신부님은 물론 오래 전 (거의 20년 전?) 이곳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주임신부로 계셨던 분이라서 익숙하지만 사실 나 개인적으로는 당시에 성당엘 안 나갔기에 개인적인 느낌은 거의 없다. 애기로만 듣던 분이었지만 몇 년 전에 이곳을 방문했을 당시에 직접 강론을 들었다. 그 후 이분이 저서나 번역서를 읽기도 했는데 그 읽은 경험들이 아주 인상적이고 기억에 남는다. 한때 stroke로 쓰러지셨다고 해서 모두 걱정을 하고 기도를 했는데 그때 직접 보았을 때는 거의 완치가 된 듯 보였다.

이 책의 원저자격인 안토니오 사지 라는 분은 전혀 생소한 이름이지만 강의 내용을 읽고, 약력을 자세히 보니 류신부님의 말씀대로 ‘성령이 충만한’ 분인 듯싶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그런 피정을 지도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는 것이다. 특히 피정강의를 ‘강의록’ 에 전혀 의존하지 않고 성경만 가지고 한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책에 소개된 website를 가보니 그곳에 궁금했던 ‘모습’들이 나와 있었고 책보다 더 자세한 안토니오 신부님의 배경도 실려 있어서 이곳에 발췌 전재를 해 본다.

 

강단에 선 안토니오 사지 신부님

안토니오 신부와, 옮긴이 류해욱 요셉 신부님

 

 

Fr. Anthony Vadakkemury, V.C.

안토니오 신부는 1977년 5월1일 2남2녀 중 맏이로 인도에서 출생했다. 양친은 현재 인도의 케랄라에 살며, 그가 기억하는 가장 어렸을 때부터 그의 꿈은 사제가 되는 것이었다. 마침내 그는 신학교 과정을 인도와 동 아프리카의 케냐에서 수료했으며, 2006년 12월 29일 인도 케랄라에서 빈첸시오회 수도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리고 2007년 1월 6일 첫 미사를 거행하였다.

인도의 방갈로에서 신학교 철학 과정을 마친 뒤, 1년간의 사목 수련을 위해 그는 2002년 케냐의 나이로비로 보내졌다. 이후에 그는 신학 과정을 마치기 위해 아프리카의 가장 유명한 대학 중 하나인 ”탄가자 대학”에서 학업을 계속하였다. 그곳에서 그는 77개의 서로 다른 국적의 학생들과 지내며, 서로다른 여러 나라의 문화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2006년 5월 14일 그는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부제품을 받았고, 이후 케냐의 사목 수련시기 동안 케냐, 탄자니아, 우간다에서 동료 사제들과 함께 중등부 학생들을 위한 3일간의 피정을 (예수선교피정) 지도하였다. 그리고 매주 일요일마다 나이로비의 서로 다른 본당들에서 본당신부를 도와 강론을 하였으며, 어린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많은 본당들에서 청소년 그룹을 지도하였다. 특히 그는 청소년들이 영적인 측면에서 충분한 보살핌을 받고 있는지에 유의하였다. 또한 부제 생활 중에 수감자들을 위한 피정, 선교 등을 비롯한 많은 피정 프로그램을 지도하였다. 나이로비의 5년간 체류하면서 안토니오 신부는 동 아프리카의 빈첸시오 피정센터 중 하나인 빈첸시오 기도의 집에서도 봉사하였다.

안토니오 신부가 사제 서품 받은 직후, 그의 관구장으로부터 타자니아의 유빈자로 발령받아, 그곳에서 그는 두 달 간의 성공적인 사목 임기를 마치고 우간다의 엔테베로 가서 두 가지의 임무를 맡게 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엔테베의 빈첸시오 피정의 집에서 1일 피정을 지도하며 재정을 관리하였는데, 故 요셉 빌 신부가 그가 속한 분원의 장상이었다. 또 하나의 임무는 우간다의 마사카에서 새로운 피정센터를 건립하는 것있었다. 그리하여 엔테베에서 180km 떨어진 마사카를 매일같이 오가며 사제들을 위한 피정센터 건립을 추진하였다. 이 건물은 2008년 2월 23일 故 요셉 빌 신부의 80세 생일에 완공식을 거행하였다.

안토니오 신부는 故 요셉 빌 신부의 마지막 몇 주간을 함께하며 임종을 지키신 분으로, 그의 관구장은 故 요셉 빌 신부의 침묵 치유 피정 사업을 이어받을 후임자로 안토니오 신부를 임명하였다.

  1. ‘프란체스카’ 란 세례명을 우리들이 줄여 부르는 말
  2. 오랜 세월 동안 알고 지내던 친지의 누님이 되시며,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서 매주 레지오 화요일에 보기도 하는 동갑내기 전 음악대학 교수님.  2년 전에는 기타동호회에서 몇 개월 동안 보기도 했던.

제일 어두운 밤, 거룩한 밤..

¶  동지:  2018년 12월 19일 수요일, 이틀 뒤인 21일이 책상 위의 달력에 ‘Winter begins‘라고 쓰여 있다. 아하.. 바로 Winter Solstice, the Longest Night, Midwinter.. 고추장 냄새가 나는 우리 말 ‘동지 冬至’.. 이제는 동지란 말이 왜 그리 생소하고 심지어 우습게까지 들리는지 조금은 슬퍼진다. 그렇다. 나는 ‘동지’란 말을 들으면 내가 본향 本鄕 으로부터 얼마나 오래, 멀리 떨어져 살아왔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모양이다.

 

긴 밤 지새우고 나면 ‘진짜’ 겨울이 시작되는 날..

 

일년 중 밤이 제일 긴 날, 공식적 겨울이 시작되는 날은 이틀, 성탄은 6일, 2018년의 마지막 날은 열 이틀 정도 앞둔 날..  2018년의 남은 날들을 어떻게 지낼 것인지.. 의무행사는 등대회 망년회,  구역점심봉사, 본당 구역 송년잔치가 있지만 ‘등대회’를 제외하고는 글자 그대로 ‘의무적’인 것으로, 솔직히 ‘할 것을 해야 하는, It’s now or never의 심정’으로 별로 신나는 것이 아니다.

아마도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것들은 나의 관심 대상이 아닌 것들이고 해야 되었어도 나는 ‘안 했을’ 그런 것들이다. 내가 변신을 한 것인지 누가 나를 그렇게 만든 것인지..

그래도 송년에 포근한 느낌을 주는 것이 있다면 60~70대 성당친교단체인 ‘어둠을 비추는’ 등대회, 같은 세대를 살았다는 인연은 믿음의 색깔도 초월하는, 생각보다 진하고 포근하다는 나의 ‘지론 至論’ 에는 아직도 변화가 없다.

 

¶  망각의 나날들:  거의 한달 만에 내 마음의 위안처, 쉼터 ‘retro‘ blog posting 을 준비한다. Blog draft들은 그 동안 많이 남겨져 있었지만 그것을 posting할 시간과 에너지가 거의 없었다. 무언가 나를 지독하게 피곤하고 심지어 쳐지게 했던 그런 지나간 한 달..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

주로 (Microsoft Office) OneNote에 남겨진 나의 단편적 기억과 사건들을 다시 모으고 엮으며 달 간의 역사를 재구성해는 작업, 쉽지 않지만 해를 보내며 꼭 해야 할 일이다. 이런 것들을 통해서 이제는 기억력이 예전과 조금 다른 것을 희미하게나마 느끼고 있다.

 

¶  Sorry, Holy Family Catholic..  오늘 아침 9시 미사엘 가니 정말 모처럼 Father Dan Ketter 가 오셨다. 도대체 몇 개월만인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오랜 만이다. 재능과 젊은 에너지가 철철 흐르는 이 신부님이 집전하는 미사에 참례를 하면 우리도 젊어지는 느낌이 들 뿐만 아니라 ‘바티칸 신학’ 강의를 듣는 기분까지 든다. 게다가 ‘목소리’가 알아 듣기에 거의 완벽한 정도의 pitch를 가졌기에 강론이 나의 모국어가 아닌 영어지만 99.99%를 알아듣는 행운까지 얻는다.

이렇게 우리는 차로 15분 거리의 이 ‘동네 성당 Holy Family Catholic Church‘와 거의 20여 년의 가족적 인연을 맺고, 6년이 넘는 매일미사의 은총을 주고 있다.  문제는 ‘미사의 꽃’인 주일미사를 이곳으로 못 가게 되어서 주일 헌금을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 마디로 ‘나를 구해준 곳’의 은혜를 저버린 듯한 느낌도 드는 것이다.

작년부터 도라빌의 한국 순교자 성당 주일미사로 가는 횟수가 점점 늘어난 것은 나에게 주일날 그곳에 갈 일들이 하나 둘 씩 늘어나기 시작했기 때문인데, 급기야는 올 들어서 모든 주일에 무엇인가 할 일들이 나를 기다리게 되었다. 한마디로 안 갈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왜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내가 꼭 이런 것을 바라고 원한 것은 아니었는데…

 

Big Canoe, 구역장 단상 斷想

¶  Overnight at Big Canoe:  일년 만에 20년 역사를 자랑하는 ‘진희네 그룹’,  윤형 ‘별장’ 이 있는 Big Canoe로 단풍여행을 갔다.  아직 본격적인 단풍철이 아니지만 이 별장은 고도가 1000m를 넘는 높은 산 정상에 있기에 그곳은 이미 단풍이 서서히 들기 시작하였다.  Gate까지 있는 이곳은 높은 산 곳곳에 ‘별장들이 몰려있는’ 조그만 별천지다. 메트로 아틀란타에서 차로 2시간도 안 떨어진 이곳은 사실 ‘아틀란타 부유한 사람들의 투자용 부동산’들이 대부분이다. 어떻게 그런 첩첩산중 산등성이 곳곳, 아슬아슬한 낭떠러지 같은 곳에 그렇게 큰 luxury house들을 지었는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경관이 좋은 집들 중에도 제일 높은 정상부근에 위친한 윤형의 별장에서, 작년과 달리 이번에는 하룻밤을 그곳에서 묵게 되었다. 

 

이곳은 벌써 단풍이 들기 시작하고 낙엽이 쌓였다

갑자기 산등성이로 구름이 몰려와 운해로 변하고 있다

별장은 완전히 구름에 덮혔다

 

이곳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경치가 너무나 영화처럼 강렬해서 거의 꿈 속을 거니는 기분이지만 다른 한편 이런 시야를 며칠 계속 보고 있으면.. 글쎄, 당장 ‘초라하지만 사람의 숨결이 느껴지는’ 나의 집으로 오고 싶을 것이라는 ‘조금은 시기심’이 스며드는 생각에 당황하기도 한다. 이곳의 집들이 별장인 사람도 있지만 아예 이곳에서 항시 살고 있는 집도 많다고 하는데, 부럽기도 하지만 과연 매일같이 아름다운 경치를 보는 것, 항상 아름답게 보일까 의구심이 든다.

산꼭대기에 있는 집이 어떻게 우리 집보다 엄청 큰 것일까?  어떻게 그런 큰 집을 거의 비워두고 살 수 있는 것일까? 속으로 나는 항상 불편한 생각이 든다. 돈의 위력을 실감하기도 하고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는 느낌, 자본주의의 downside, 끝이 없는 인간의 ‘편해지려는 욕망’,  이런 것들 즉 과잉 된 편안함…  교차로에서 만나는 ‘구걸인’들, 집 없이 길거리에서 자는 사람들.. 모든  장면이 겹치는 듯한 환상.. 

 

¶  (마리에타) 사랑구역 斷想:  지난 7월부터 시작된 마리에타 사랑구역 구역장 임무,  몇 달이 총알처럼 날라간 기분으로 가끔은 내가 그 동안 무엇하며 살았나 하는 혼미 속에 빠지기도 한다. 특히 7월부터 9월 말까지는 솔직히 다른 세계로 가서 사는 기분도 들었다. 그만큼 나에게는 너무나 다른 세상을 경험한 것이다.

군대의 분대장은커녕 학창시절 반장, 그룹의 장 長 같은 것 한번도 못하고(아니 안 하고, 피하고)  살았던 나에게 이런 일은 사실 저물어가는 나이에도 어색하기만 한 것이다.  하지만 나이 듦의 혜택도 없지 않은 것이 소싯적 보다는 ‘겁, 우려’ 같은 것이 훨씬 덜하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늦은 깡’이라고나 할까.. ‘배 째라’ 하는 유행어가 실감이 나는 것이다.

이 구역장 일을 하는데 문제는, 어떻게 하면 ‘나도 좋고 구역그룹도 좋은’ 그런 ‘황금법칙’을 찾느냐 하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9월초부터는 자비의 모후 레지오의 단장까지 떠맡게 되었으니 timing이 어쩌면 이렇게도 재미있을까? 아마도 성모님이 ‘이제까지 피하며 살던 빚을 갚아라’ 고 호통을 치시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 이것은 오래 연체된 빚을 갚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하느님과 너무 멀리 떨어지지 않게 나를 잡아준  이 성당 구역에서 나는 한번도 봉사를 못할 수도 있었지만 이렇게 ‘기회’가 온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 듯해서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는  조금 더 ‘의미’를 생각하며 임무를 맡고 있는데.. 글쎄, 의미를 두고 심각하게 일을 하려고 하면 할수록 나의 ‘갈등, 실망, 심지어 놀람’은 부터 평화는 커녕 숨어 있던 분노심까지 들추고 있으니..  이 일이 어려운 임무라는 희미한 예측은 항상 있었지만 실제로 겪는 ‘어려움’은 상상 밖 중의 밖이고, 아직도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다. 문득 문득,  ‘다 집어 치우자!’라는 ‘악마적’ 생각도 들 정도다.    

 구역을 이끄는 ‘일 자체’라고 하면 모호하지만 힘을 쓰는, 몸이 힘든 일보다 ‘사람으로부터 받는 실망감’ 은 정말 평화의 적 중의 적이라는 ‘주위로부터 많이 듣던’ 사실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구역 총무님 댁의 private marina, 개인 boat도 있다

 

구역 야유회를 가려고 한 것이 공원예약차질 문제로 호수 변에 있는 그림처럼 아담한 별장 같은 총무님 댁으로 옮겨서 했는데, 한마디로 near-disaster였다. 예약 담당자의 실수이기도 했지만 결국은 총책임은 내가 져야 함을 절감했다. 마지막 확인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이 모임에서 나는 정말 ugly 한 장면을 목격했다. 내가 이제까지 우호적으로 생각해 왔던 어떤 사람들의 모습이 사실은 허상이었다는 사실, 그 장면은 아직도 충격으로 남아있다. 이제까지 모였던 모습과 이번에 드러난 실제의 인간성이 어쩌면 그렇게 다른지, 나는 놀라고 또 놀란다.  이런 사실들로부터 나는 ‘정치적’이라는 말의 뜻을 이 나이에야 어렴풋이 실감하게 되었고, 이것은 내가 이런 임무들을 맡은 결정에 대한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라도 어렴풋이 이론적으로만 알던 사실을 체험하는 것, 나에게는 커다란 수확으로 남기려 한다.

 

본당의 날, 가라오케 blues

가라오케, Karaoke, ‘가라 오케스트라, 가짜 오케스트라’.. 참 준말의 귀재들, 일본아해들 말도 잘 만들었다. ‘축소지향의 일본인’들이라서 작지만 유용한 것들 잘도 만들었다. 밴드나 반주하는 악단 없이 노래와 율동을 마음껏 할 수 있는 sound system, 누가 마다하겠는가?  지나간 주일에는 이것과 연관된 일들이 두 번이나 겪었다. 노래를 불렀을 것이라 즐겁고 신나는 일들이었어야 하겠지만 결과는 정 반대다.

첫 번째 case가 지난 23일 일요일에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본당의 날과 추석잔치’ 행사 중에 있었던 audio system near-disaster 였다. 이날의 행사는 내가 마리에타 사랑구역장이 된 이후 제일 진을 빼고 신경을 썼던 것으로 ‘불참하자고 징징 우는’ mere mortal, member들의 등을 떠밀며 강행했던 ‘노래와 율동’의 공연이었다.

 

 

다른 구역들의 공연내용을 보면 거의 모두 ‘가라오케’ audio 로 100% 율동을 하는 것으로 이날 이들은 목소리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신나게 춤들을 추었다. 하지만 우리를 비롯한 소수의 그룹은 ‘vocal’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으로 microphone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건에 속했다. 문제는 이날 sound system 을 맡은 ‘사목회’ (내가 보기에 ‘시로도’급)는 거창한 mixer를 포함한 wifi-youtube-karaoke 에는 시간을 썼지만 무대에 놓여진 몇 개의 microphone은 모두 ‘먹통’으로 방치해 놓은 것이었다.

 

 

미리 stage rehearsal을 했으면 이런 문제를 방지할 수 있었겠지만 때는 늦었다. 공연 무대에 올라가 악을 쓰고,  기타는 줄이 끊어질 정도로 노력했지만 결과는 ‘소리가 하나도 안 들린다’라는 혹평, 결국 우리도 ‘율동’만 관객에게 전해진 셈이 되었다. 도대체 누구의 잘못인가? 우리 구역 총책임자인 나도 책임을 면할 수 없었다. 미리 점검을 못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구역조차 같은 문제로 고생을 했으니 결국은 무대 연출 총 책임자가 그야말로 책임을 질 노릇이 아닌가?

두 번째 가라오케 disaster는 3명이 매월 마지막 목요일 밤에 모이는 ‘목요회’에서 있었다. 이것은 사실 그 정도로 놀랄 일은 못되었다. 3명 중 한 명이 노래방에 앉아서 침묵으로 일관을 한 것인데.. 정말 안타까운 노릇이 아닌가? 이날은 목요회가 모이기 시작한지 1주년이 되는 날이라 특별한 event를 만들고 싶었는데 아무리 우울하다고 해서 그 정도로 노력을 못 한다는 것이 놀랍기만 했다. 이날 비로소 나는 이 친구가 정말 심각한 정신적인 ‘병’을 앓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고 무슨 ‘파격적인 수’를 써야겠다는 자괴감에 빠진 그런 목요회 1주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