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1964, 해괴한 변증

서울 세종로 네거리, 1964

1964년 4월 서울 세종로 네거리의 모습

 

¶  1964년 4월 경에 발간된 고국의 한 신문에서 한 사진이 나의 눈길을 끌었다. 서울, 1964.. 이런 소설의 제목도 있었지만 여기서는 실제로 1964년 경의 서울 심장부의 실제 모습을 말한다. 1964년의 대한민국 서울의 심장부는 역시 세종로 네거리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외국에서 말하는 Boulevard의 전형이 이곳에서 ‘중앙청’까지 펼쳐지고, 외국의 원수들이 방문하면 이곳을 ‘꼭’ 거치면서 사진기록을 남긴다.

보신각(사진, 왼쪽 아래) 같은 역사유물과, 일제에 맞서 조선인의 입과 귀를 살리려 애쓴 민족신문 동아일보사, (사진, 왼쪽 중간)가 이 네거리에 당시에 흔치 않던 5층, 고층빌딩으로 버티며, 6.25, 4.19, 5.16같은 굵직한 역사적 격동의 모습을 이곳에서 보며 기록을 하기도 했다. 새로 ‘도입된’ 민주주의의 뿌리를 내리고자 몸부림치던 현장, 4.19당시 고대생들이 진을 치고 자유당의원들을 ‘감독, 질책’하던 그곳, 삼성 밀수사건 때는 깡패출신 야당의원 김두한이 파고다 공원 ‘변소’에서 퍼온 민중의 분뇨를 정일권 국무총리 얼굴에 뿌렸던 곳, ‘원래’의 국회의사당 tower가 바른쪽 먼 곳에 보인다.

 

일제 에노 전차¶  1964년 당시의 traffic jam의 모습.. 당시에 느끼기에 그곳에 이렇게 움직이는 것들이 많았다. 그 중에는 거북이 전차 (일제 유물, 귀엽게 생긴 ‘에노 전차‘ 들과 San Francisco style 미국 대형 전차들)가 당시에 ‘활개를 치며’ 이 세종로 네거리에서 공중가설선에서 불꽃을 튕기며 좌,우회전을 하는 모습도 있다. 그 ‘장관’은 어린 시절 하도 ‘멋져서’ 하루 종일 네거리에 서서 입을 벌리고 서서 구경을 하기도 했다. 이런 거북이 전차는 2년 뒤까지 모두 철거가 되고 완전히 자동차 전용도로로 변했다.

네거리의 바른쪽에 진을 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 간판 격 극장, 국제극장이고, 그것의 조금 왼쪽으로 ‘신성일, 엄앵란’ 단골인 ‘아카데미 극장’, 그 바로 옆, 붙어서 Cinema Korea(시네마 코리아)라는 외화 전용 재 개봉관이 있었다. 이 사진이 찍힐 시절, 나는 용산구 남영동에서 효자동행 전차를 타고 중앙청 앞에서 내려서 중앙고등학교까지 걷거나, 시간이 급하면 시내버스를 타고 아예, 안국동, 재동 까지 가기도 해서 이곳 네거리는 ‘꼭’ 지나가곤 했다. 그 당시 그렇게 넓게 보이고, 멀게 보이던 것들이 지금 자세히 보니 어쩌면 그렇게도 좁고, 가까울까.. 그곳이 변한 것이 아니라 내가 세월과 함께 변해서 그럴 것이다.

 

¶  정말 오랜만에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천주교회 공식 월간지, 경향잡지를 보게 되었다. 전에는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치고, 날짜가 많이 지난 실제의 책을 보기도 했지만, 요새는 인터넷으로 그런대로 편하게 접할 수 있어서 좋다. 하지만, ‘진짜 책’으로 느끼는 그 편안하고 게으른 느낌은 ‘절대로’ 이 곳을 통해서 얻을 수는 없다. 진짜 책이 주는 느낌을 ‘전자 책’ 의 형태로 옮기려면 생각보다 더 긴 세월과 더 큰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최근에 발행된 2012년 6월호를 훑어 보다가 정말 우연히 ‘성염‘이라는 저자의 글의 시작 부분을 읽게 되었다. 기사의 제목은 “아우구스티노를 만나다, 하느님 나라의 초석: 사회적 사랑, 「신국론(De civitate Dei)」” 이라는 아주 거창한 것이다. 나는 이 ‘성염’이라는 사람은 전혀 모른다. 하지만 제목이 주는 느낌이 ‘역사적인 종교론’ 이고 특히 로마제국이 등장을 해서 나의 눈길을 잡았다. 요새 급속히 세속화 되어가는 선진국 문화에 대한 경고를 4세기 때의 ‘사건’에서 찾으려는 노력이 아닐까 희망을 하며 읽다가 다음의 ‘해괴한 변증‘에서 손을 놓고 말았다.

제3천년대에 들어서면서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미국이 이른바 ‘9·11 테러’를 당한 후유증으로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리비아를 상대로 벌이는 무차별한 군사행동, UN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국제정치와 세계윤리를 완전히 붕괴시켜 버린 그 포학성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 인류 지성계의 심각한 번뇌를 염두에 두면, 「신국론」은 현대에도 읽힐 만한 명분이 되고 남는다.

세계문학전집에 이 책이 빠지는 일이 거의 없다. ‘하느님의 도성(civitas Dei)’을 다룬 「신국론」은 다섯 단원, 22권으로 나누어진다. 전반부(1-10권)는 로마 몰락이 그리스도교 탓이라던 로마 지성인들에게 건네는 호교론으로, 그들의 종교와 역사가 정치사회에도, 도덕적 문화에도 불완전했음을 밝혀 보인다.

 

 기묘하게 반달족의 쇠퇴하는 로마제국 약탈사건을 미국의 9.11 테러와 대비시키는 저자는 과연 ‘어떤 머리’를 가진 ‘로마 교황 대사’인가? 그런 해괴하고, 일방적인 논리로 어떻게 그는 학생들을, 그것도 ‘사랑의 하느님’에 관해 가르친단 말인가? 나는 “인류 지성계의 심각한 번뇌를 염두에 두는” 이 성염이라는 인간이 절대로 대한민국의 main-stream 의 일부가 아니라는 희망만 할 뿐이다.

내가 본 글이 주는 느낌이 out-of-context에서 나왔을 위험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인류지성계의 심각한 번뇌‘와 이 저자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context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 ‘out-of-context’ 가 주는 느낌은 느낌 정도가 아니라 ‘성염’이라는 사람 자체를 보여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래서 현재 대한민국, 그것도 천주교계가 아직도 ‘사상’문제로 홍역을 앓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한 물 지나간 ‘사상’을 종교와 기묘하게, 그것도 ‘지식인’의 이름으로 cocktail하는 것이 어떻게 ‘경향잡지의 desk를 통과했는지 앞으로는 더 주의를 해서 읽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