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ll Back Sunday, Fall Concert, Biocentrism

‘그날’ 새벽, 아침에 한 시간 덤으로 잠을 잘 수 있는 한 가을의 일요일 새벽… 기억으로 아마도 처음으로 시계를 손으로 바꾸지 않고 잠자리에 들었던 듯하다. 어젯밤에는 도라빌 순교자 성당 특전미사, 가을음악회 관람으로 모처럼 늦게 귀가를 한 탓도 있었지만, 솔직히 귀찮기도 했다. 이렇게 시계를 고치는 작업이 심지어 지겹게 느껴졌던 것일지. 언제까지, 언제까지… 이렇게 시간, 시계에 매어서 살아야 하나… 지루하기도 하고…

너무나 일찍 일어난 것이 조금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이것은 덤으로 얻는 한 시간이 아닌가? 마음껏 시간을 ‘낭비’할 수도 있는 사치가 아닌가? 오늘은 어제 특전미사 덕분에 주일미사에 가지 않게 되어서 온통 우리의 시간이기도 하고… 조금은 relax하며 게으름도 피우고 싶은데, 솔직히 말해서 일부러 피우는 게으름은 나의 적성에 맞지를 않으니, 참 나도 피곤한 인간이다. 왜 그렇게 relax할 줄을 모르냐?

 

1962년에 내가 그린 자작만화, ‘민족의 비극’을 다시 꺼내 들어서 본다. 무려 태평양을 건너와 60년의 세월을 견디며 나의 곁에서 잠을 자고 있는 이것은 분명히 나의 보물1호다. 하지만 이제는 세월의 무게를 느끼며 피곤한 모습, 내가 세상을 하직할 무렵에는 아마도 종이들이 삭아져 없어지지 않을지… 결국은 scan/digitize할 때가 온 것이다. 문제는 이것을 낱장으로 해체를 해야 하는데 솔직히 망설여진다. 원형이 없어지는 사고가 겁나는 것. 하지만 결국은 결단을 내릴 것을 기대하고 있다.

 

2년 전 처음 접했던 Robert Lanza, MD의 Biocentrism 3부작을 다시 잡아서 1편 격인 BIOCENTRISM을 순식간에 거의 반을 읽어내려 갔다. 요새 새삼 깨달은 사실은, 어느 책이건 한번 읽는 것으로는 거의 큰 효과가 없다는 것. 이 책을 두 번째로 읽으며 새삼 느낀 것이다. 이제야 조금 ‘감’이 잡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지난 100여 년 동안 서서히 축적되어온 실재관의 변화가 이제는 전통과학(특히 물리학)에서 무시할 수 없을 정도가 된 것이다. 이 책의 기본적인 주제는 생명, 의식이 물질의 원자, 분자를 앞선다는 가설이다. 쉽게 말하면 생명체가 없는 우주관은 허구라는 새로운 세계관을 제시하는데, 이 저자는 quantum mechanics를 기초로 거의 완전한 이론체계까지 구성했는데, 이것도 String Theory처럼 ‘믿기에’ 따라서 성공의 여부가 달려있는 듯 보인다. 요즈음 세상은 이런 거의 혁명적인 idea들로 심심치 않다.

 

To Dance with the White Dog 1990년대 Hallmark Hall of Fame movie/video를 다시 본다. 이것은 우연한 것이 아니고 일부러 찾아서 보게 된 것이다. 영화의 무대가 이곳 Georgia주인데다, 야외 location은 전 대통령 Jimmy Carter의 자택 근처였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아주 연로한 금실 좋은 노부부 [Hume Cronyn, Jessica Tandy] 인데, 금혼식 이후 부인이 심장마비로 먼저 세상을 떠나고 남편 혼자 살게 된다. 근처에 아들 딸 내외들이 같이 살아서 매일 집에 와서 돌보아 주는데, 문제는 하도 지극정성으로 돌보는데 아버지는 그것이 좋기는 하지만 부담이 되기도 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흰 색깔의 수려한 개가 난데 없이 나타나며 아버지와 함께 지내고 심지어는 같이 dance 흉내를 낼 정도가 되었다. 나중에 아버지까지 임종을 맞게 되는데, 아들 손주에게 유언으로 ‘그 흰 개는 wife’ 였고, 무덤에 묻힌 다음 날 묘소에 와 보라고 한다. 그 유언대로 그곳에 가보니 정말 무덤을 덮은 모래에 개 발자국이 선명히 보였다. 

두 주인공 배우들은 실제로도 부부였고, 이 영화 이후에 모두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그런지 이video를 계속 보면서, 부부로 평생을 산다는 사실이 누구 말대로 거의 기적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기적은 역시 사랑에 의한 것임은 틀림이 없을 것이다. 이제는 우리도 이런 ‘소설 같은 이야기’가 실감나게 다가오는데, 오래 전과 다른 것이 있다. 이제는 다음에 올 세상이 있다는 사실을 100% 믿기에 죽는다고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어제 저녁 ‘가을 음악회’의 요란한 소리들이 귀에서 울리는 듯… 오랜만에 귀 청소를 했다는 진부한 느낌, 표현… 어제 순교자 성당 ‘가을 음악회’는 그런대로 성공적이었음은 분명하지만, 나의 취향에 맞는 그런 것은 아니었다. 요새의 흐름이 그런가, 젊디 젊은 그런, 한바탕 풍악을 경험한 듯하기도 하니까.. 왜 그랬을까? 나의 편견인지도 모르지만 이들이 추구하는 음악들은 역시 mass media의 ‘개신교 style’이나 전혀 다른 것이 없는 ‘Hillsong‘ style의 그런 것들… 우리 동네본당의 주임 신부님이 봤다면 분명히 달갑게 보지는 않았을 듯하다. 한마디로 Catholic냄새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닐까?

 

A Gorgeous Fall Day at Dunwoody

오늘 따라 Dunwoody 새로니의 집이 왜 그렇게 멋지게 보이던가? 물론 온통 울긋불긋 낙엽으로 덮이고 있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중에 들어보니 이 동네, 아니 이 전체, 아니 전국적으로 올해 단풍, 낙엽 ‘농사’가 풍년이라는 말을 듣고 수긍이 간다. 그래서 올해 더욱 눈에 뜨이는구나…  비록 갖가지 마음 상하는 소식들이 들끓는 세월, 세상을 보내기는 하지만 그런 것들은 이런 자연의 아름다움에 비하면 거의 먼지와도 같은 존재들이다.

오늘 하루는 사실 거의 전부 새로니 식구, 특히 Richard 의 biopsy 시술 병원 방문을 도와 주려는 가족적 service  차원으로 보낸 셈이고, 결과는 큰 문제 없이 끝나게 되었다. 간단한 것이라고 하지만 의외로 ‘전신 마취’를 한 것이고 결과가 사실 더 중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상당히 신경이 쓰이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 둘은 Ozzie와 유나를 보아주는 기회가 되었고 덕분에 너무나 찬란한 가을정취를 그곳에서 맛보는 기회도 되었다. 새로니 동네의 가을 운치를 오늘 놀랄 정도로 즐긴 셈이다.

그것보다 사실 우리 부부에게 더 반가운 소식은 나의 lung CT-SCAN의 결과가 ‘문제가 없다’라고 일단 나온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 동안 말을 안 하고 살았지만 신경이 안 쓰였다고 하면 그것은 거짓말이었을 것이다. 일단 내년 초에 다시 scan을 한다고 하니 그때까지 시간을 번 셈으로 오늘은 마음이 안정된 행복을 만끽하게 되었다. 성모님, 감사합니다!

 

Ozzie를 데리고 새로니 동네를 산책하며 전에는 잘 느끼지 못했던 이 동네의 가을 낙엽들의 모습에 감탄을 연발하였다. 우리 동네와는 또 다른 느낌, 조금은 인공적인 요소들이 가미가 된 곳을 이렇게 자연적인 모습이 겹친 모습은 가볍고 황홀하기까지 했으니~  처음으로 subdivision gate를 벗어나 차도가 있는 곳을 따라 옆 동네에 있는 condominium community근처까지 가보았다. 덕분에 pedometer를 보니 1.7 miles 걸은 셈이 되었다.

 

유나가 자는 한가한 시간에는 dinette area에서 창 밖으로 보이는 경관에 넋을 잃고 바라보며 coffee를 마시는 시간을 가졌는데, 비교적 도시에 속하는 이곳에 이런 울창한 모습이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를 않는다. 아마도 이것이 이곳 Atlanta metro area의 없어지지 않는 매력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장차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갈 꿈을 꾸는 새로니 네가 조금 섭섭할 거라는 예상을 금할 수가 없다.

 

오늘따라 언젠가 다가올 이별을 예상하는 듯 정이 들대로 든 Ozzie와 가급적 즐거운 시간을 가지려고 기를 쓴다. 이 녀석은 나와 거의 soul mate가 된 상태이기에 옆에 있는 것으로도 행복하다. 동물적인 사랑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인간과 하나도 차이가 없음은 경험적으로 확신을 하며 산다. 특히 사람 손이 닿는 것을 너무나 좋아하기에 오늘은 가슴 massage까지 흠뻑 해 주었다.

 

All Souls’ Day, Chest CT-scan

오늘 아침 Holy Family 성당 위령미사엘 갔더니 예전에 보았던 광경이 보였다. 지나간 2년 동안, 그러니까 거의 Pandemic 중에 선종한 망자들의 사진이 뒤편에 촛불과 함께 진열되어 있고, 정면의 projector screen에 그 같은 모습들이 영상과 음악으로 나오고 있던 것, 이런 위령미사 아마도 2019년 이 때에 마지막으로 보았을 것이다. 명단과 사진을 보니 꽤 많은 망자의 모습들이었다. 환자기도 명단에 있었던 이름들도 보이고, 특히 Al Gallagher 부제님의 모습까지… 거의 20명 정도였을까? 그 중에는 분명히 coronavirus 에 의한 것도 있었으리라.

Pandemic 중에 장례행사들이 제한을 많이 받았고, 이런 위령의 날 미사도 없었기에 올해의 위령의 달은 의미가 더 돋보이는가? 그러니까 2020년부터 올해까지 우리를 떠난 영혼들을 다시 기억하게 된 기회가 된 것이다.

저녁 가족 기도 때에는 부모님들을 위한 연도를 잊지 않았다. 처음에는 장인 어른의 11월의 기일만 생각했지만 결국은 위령의 달을 맞아 우리 4명의 부모님들께 연도를 바치게 되었다. 이것으로 조금은 우리도 위안을 받는다. 이제는 영혼의 분명한 존재, 그 필연성을 알기에 더욱 연도에 힘이 실린다. 어머님, 아버님, 장인어른, 장모님~ 저희들 열심히 살다가 그곳에서는 못다한 효도를 할 것입니다, 기다려 주세요…

 

예정대로 Tucker의 Dr. S Heart Specialists 로 chest CT-scan을 하러 갔는데, 예상외로 거의 제시간에 모두 마치게 되었다. Scan 자체도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는데, 사실은 nodule 크기의 변화(증가) 결과가 주 관심사라는 것, 우리 둘 모두 무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속으로 속으로 기도하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이제는 나도 영화, 드라마에서나, 주위에서나 듣던 심리적 경험을 시작하는 것인가?  솔직히, 은근히, 겁이 안 난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만약 나쁜 쪽이라면, 솔직히 어떻게 감당을 해야 할지 전혀 생각이 나지를 않는다. 이제 나의, 우리의 신앙이 시험대에 오른 기분 뿐이다.

이런 우울하게 될 것 같은 기분을 미리 막으려 우리는 미리 얘기한 대로 강남일식에서 푸짐하게 점심을 먹고 들어왔다. 비록 비싼 점심이었지만 심리적으로 이런 것들이 우리를 조금은 위안했으리라~~

 

1999년 8월 고국에서 양건주가 보내줌…  작지만 단단한 느낌의 소책자, ‘김재진 시집’, 몇 권 안 되는 시집모음에서 꺼내 들었다. 요즈음 나의 내면을 잘 보여주는 문장의 제목,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몇 십 년 만에 다시 연락이 된 동창 친구, 양건주가 수고를 해서 보내준 것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 나는 시의 세계를 모르고 거친 삶의 바다를 헤엄치고 있을 때여서, 이 짧은 시 조차 읽으며 전혀 느낌이 덤덤할 뿐이었다. 내가 혼자인지, 아닌지 조차 생각 못하며 살던 시절… 그때 이후 완전히 바뀌던 세상과 삶 속에서 결국 ‘시의 세계’를 이해하기 시작하게 되었고, 결국은 나의 사랑하는 시집이 된 것. 최근부터 서서히 잠식해오는 ‘ 초 고령성’ 고독의 의미를 이 시로 재조명하고자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구나… 시처럼 아름답던 친구, 건주야~ 현재는 몸이 불편하지만 희망의 햇볕은 항상 우리를 쬐고 있음을 잊지 말자.

 

All Saints Day, Evolving Books

어제 Halloween의 잔재인가, 대체적으로 ‘기분 나쁘게 우울한’ 생각들에서 벗어나려고 나는 새벽부터 기를 쓴다, 노력한다. 10월의 멋진 날들과 앞으로 다가올 또 다른 멋진 holiday feeling 등을 예상하고 있었지만, 어제, 오늘 나는 깜깜한 듯한 느낌뿐이니… 누구의 잘못인가, 유혹인가, 나는 순간 순간 노력을 하며 산다고 굳게 믿는데… 심지어 오늘 일어날 때, ‘오늘 쉬고 싶다’라는 황당한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ALL SAINTS DAY,  ‘의무대축일’이 나를 살려주고 있다. 나가야 한다, 외출을 해야 한다. 이것이 아니었으면 나는 유혹에 완전히 넘어갔을 것이다. 유혹의 악령이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물러가라!

역쉬~ ‘이곳 미국 천주교 신자들’ 그러니까 Holy Family 동네 성당 ‘의무  대축일’  All Saints  Day아침미사는 우리에게는 인상적, 파격적으로 많은 교우들이 참례를 했다. ‘모든 성인의 날’, 가톨릭만의 전통, 성인들을 기리는 날, 하지만 성인의 의미는 가톨릭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거의 보편적인 것이 아닐까? 성인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놀라운 사실은, 그들은 하나같이 출신성분이 특별한 것이 없었기에 오직 성스럽게 살려는 노력과 숨은 은총의 결과였다는 것이다. 오늘 하루 동안에  3대의 미사가 있는 것도 놀랍다. ‘의무축일’을  어린 아이들처럼 충실하게 지키는 미국본당신자들에 비해서 한국본당은 아주 분위기가 다른 것을 우리는 때때로 놀란다.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듯, 무엇 때문에 그렇게 다른 것일까?

 

어지러운 bookshelf, 언제나 정리를 할 것인가? 근처에 접근하기도 거추장스럽게 혼란스러운 모습, 빨리 빨리 이것들을 처리해야 할 텐데… 언제 시작할 것인가? 다른 문제는~ 나의 tech/computer books들에 관한 것이다. 정녕 나는 이 분야에서 관심이 멀어졌는가? 과연? 어떻게 이렇게 되었을까? 어떻게? 정말 나 자신도 믿을 수가 없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다. 나의 여생 주관심사는 아마도 이 분야는 아닐 것 같다. 하지만 완전히 떠나고 싶지도 않고… 이곳에 보이는 책들이 아마도 10+년 전쯤 ‘마지막’으로 샀던 것들의 일부인데, 제목은 아직도 익숙하지만 이제는 그 내용들은 조금 생소하게까지 보인다. 세월은 이렇게 사람을 변하게 하는 것인가? 그 동안 나의 주관심사는 완전히 이곳을 떠난 것이다. 쉬운 표현으로… PHYSICS 에서 METAPHYSICS로 진화를 한 것일지도…

사실 어제 The Exorcist 를 책으로 반 정도 읽고 나서부터 기운도 빠지고 결국은 우울하게 되기 시작했는데~ 허, 이것 혹시 간접적으로 ‘무엇이’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까지 하게 되었는데… 참, 복잡하다, 어디까지 심각하게 믿어야 할지를.. 하지만 이제는 ‘원칙적인 현실, 사실’이라는 것을 믿는 것은 변함이 없다. 악령, 악마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실제로 어떤 영향을 줄지는 회의적이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왜냐하면 우리 구세주 ‘예수님’을 믿기 때문이다. The Power of Christ Compels You! 우렁차게 외치던 예수회 신부님 두 분 exorcists 의 처절한 절규를 다시 머리 속으로 듣는다. 

영화/책 으로 악마의 존재를 다시 깨달으며 갑자기 든 생각, 현재 내가 읽고 있는 REAL MAGIC이란 책에 대한 것이다. 이것은 악과 선을 막론하고 안 보이는 ‘영 SPIRIT’을 물리적,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것인데, 만약 그들이 정면으로 악령을 연구, 조사, 탐구를 한다면 그들에게도 혹시 The Exorcist에 등장하는 ‘악령’,  Middle Eastern Pazuzu가 초래했던 것 같은 possession의 피해를 보게 될 가능성은 없을까? 아~ 내가 너무 깊이 생각, 비약을 하는 것은 아닐까? 이것은 아마도 신부님의 도움이 필요한 분야일지도 모르겠다.

 

WHY MATERIALISM IS BALONEY – BERNARDO KASTRUP

‘물질주의의 허구성’을 향해 정면으로 도전하는 ‘머리 좋고 이성적인’ Dutch computer scientist, philosopher Bernardo Kastrup의 Youtube video를 보고, 어렵지 않게 이 책을 기꺼이 order를 해 버렸다. 가격도 $20 이하, 게다가 아예 shipping도 공짜 (Prime 없이도).. 그것이 전부인가? 물론 아니다. 이제는 십 년도 훨씬 넘어가는 나의 ‘영원한 진리를 향한 행군’, 현재의 상황, 과정, 진보 상황은 어떤 것인가? 이제는 과학/종교에서 조금 넓게 시야를 넓혀서 과학/철학/영성 으로 확대가 되고 있다. 과연 이런 방법이 ‘나의 가톨릭 영성’의 입장에서 볼 때 교의적 문제는 없는 것일까, 그것에 나는 신경이 쓰인다.

중앙 57회 동창 권인걸 10월 29일 토요일 오전에 심장마비로 LA에서 사망, 중앙고 57회 카톡방으로부터 부고를 받았다. 모두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글을 올렸는데, 나는 못하고 있다. 아직 나는 이곳에 한번도 글을 올린 적이 없기에… 왜 그런가? 왜?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동창이 그저 많을 것이라는 것에 대한 막연한 의구심 때문인가? 권인걸, 누구인가, 이름은 들은 듯 하기도 한데… 아마도 사진을 보기 전까지는 해답이 없을 듯…  결국은 album을 찾아 보았다. 아~ 3학년 2반! 나와 거리가 있는 반은 물론, 솔직히 전혀 기억이 안 나는 것, 한번도 같은 반을 한 적이 없음이 아주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인가? 이렇게 해서 중앙교정 공간을 3년 동안 함께했던 또 한 명의 동창이 저 세상으로… 그는 종교적 믿음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니까, 큰 걱정은 안 하지만, 당장은 조금 더 외로워짐을 떨칠 수가 없다.

 

All Hallows’ Eve, Dead Quiet, Frightful

Reading ‘The Exorcist‘, Frightful Night 

두 딸 ‘아이들’이 모두 커서 집을 완전히 떠난 후부터 매년 이날 저녁의 Halloween Trick or Treat에 대비한 candies 준비를 안 하게 되 것, 처음에는 편하기도 했지만 해가 갈수록 조금은 쓸쓸하게 다가온다. 그 옛날에는 pumpkin carving도 하고 문 뒤에 숨어있다가 candies를 나누어주며 각종 costume을 입은 아이들을 맞았고, 두 딸들을 연숙이 데리고 동네를 돌기도 했던 것들이 지금은 아련한 추억으로 다가온다.

이날 저녁에 우리 집 앞으로 보이는 모든 전등을 끈다.  최근에 들어서 우리 cul-de-sac의 이웃들, 그 중의 옆집 Dave조차 큰 딸이 집을 떠난 직후라서 그런지 올해는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온 이웃들도 모조리 깜깜한 모습 투성이다.  속으로.. 아~ 세월이여, 세월이 참 많이 흘렀구나~

이런 날 저녁에는 으스스한 영화나 책을 보는 것이 제일 적격인데, 나는 매년 지겹게 반복하는 것이 있다.  1972년 크리스마스 즈음의 blockbuster 공포 영화 The Exorcist에  아직도 무슨 미련이 있다고, 매년 조금씩 보다가 ‘무서워서’ 중단했던 사실을 올해는 제대로 풀어보려고 했으니, 과연 이것이 성숙한 행동이었을까?  제일 큰 동기는 역시 ‘아련~한 추억’, 그것 때문이었다.

오늘 조금 다시 볼[영화] 기회가 온 듯해서 시작했지만 역시 ‘반 쯤에서 [제일 피하고 싶은 부분]’ 중단했고, 내년으로 미룰 듯했다가, 우연히 얼마 전 download했던 ‘책’ pdf version을 읽기 시작하게 되었다. 새로니가 몇 번이나 책으로 읽는 것이 영화보다 훨씬 무섭다고 했던 것도 읽는데 한 몫을 했을 거다.

의외로 빠르게 읽기 시작했는데, 물론 영화의 장면 장면과 비교하면서, 중간 쯤에서 불현듯, ‘I AM STUPID!’이란 느낌이 들었다.  내가 간과한 사실, 경우에 따라서 문장이 영상보다 훨씬 자세하게 상황을 묘사할 수 있다는 것. 특히, 이 책에서 자세하게 읽고 알게 된 BLACK MASS, 한마디로 솔직히 등골이 오싹함을 느낀 것이다. 요새 읽게 된 신학적 악마 존재, 그것이 영상보다 훨씬 무섭게 사실적으로 다가온 것이다. 이제 그 실체, 존재를 더 믿게 되어서 그런 것일까? 그 옛날 영화를 보고 일주일 동안 불을 끄지 않고 자야 했던 것, 이후에 거의 희미해졌지만 오늘 자세한 것을 다시 읽게 되면서, 이제는 이런 ‘쓰레기’들에 관심을 두지 말아야겠다는 깨달음을 받은 것이다.  처참하게 능욕을 당한 성모님, 예수님의 모습들이 이제는 머리 속으로부터 상상, 영상화가 되어 나를 따라오는 느낌… 정말 무서운 Halloween Day가 되었는가…

오늘 ‘브라질 판 트럼프 개XX’로 자처, 아니 자랑하던 볼소나로 ‘강아지XX’가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이 되었다는 것, 희소식 중의 희소식이다. 어떻게 흉내 낼 것이 없어서 트럼프 개XX  흉내를 내며 자유 민주주의를 퇴보시키고 있는지…   근래 각종 선거들의 흐름, 결과들이 내가 희망한 것처럼 흐르고 있지 않은 것은 충격적인데 그래도 커다란 이슈는 ‘민주주의 vs. 경제’ 로 좁혀진 사실에 조금 안도감을 갖는다.  그만큼 유권자들은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경제와 대등하게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하느님의 뜻에 모든 것을 맡기고 싶다. 피곤하고, 나도 정치 쪽으로 할만큼 다 했다고 자부하기 때문이다.

 

 

Nonsensical Halloween Crush… Where?

 

Judith Durham died on Aug 5th, 2022…  우연히 YouTube 의 제목들을 보다가 우연히1960년대 Australian folk group The Seekers 의 여성vocal이었던 Judith Durham의 추도식concert video를 접하게 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깜짝 놀랐는데 알고 보니 이미 8월 5일에 사망한 것으로 나온다. 어떻게 내가 이 news를 놓치고 살았던 것일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유를 알듯하다. 그 당시 나는 모든 세속적 news를 안 접하고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그 동안 NYT의 부고란을 안 보았던 것. 애석하다. 이 청순한 목소리의 여성, 그의 청순한 목소리의 My Lord What a Mourning, My Lord… 의 chorus [When the Stars begin to Fall] 가 귀에 잔잔하게 울리는 듯… 이제 ‘우리 세대의 귀중한 것’들, 정말 하나 둘 셋 저물어가고 있구나…

Halloween Crush kills 153 in South Korea…  한마디로 무엇인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의 이 구절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 웬 Halloween이  South Korea와 함께 나타났으며 153명이 죽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쉽게 이해가 안 가는 것. 하지만 내가 간과한 것은 장구한 세월의 흐름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동안 South Korea와 Halloween은 그 정도로 어울리는 combo가 된 것일 수밖에 없다. 하필이면 왜 Halloween이 그곳까지 수입이 되었을까? 대형사고에 익숙한 요즈음 세상이지만 이것이 NYT top news에 나온 사실은 당황스러움의 극치다. 옛날 용산 미8군 사령부 기지와 이태원이란 곳의 가까움을 알기에 ‘세계화, 국제화, 미국화’의 위력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의미가 하나도 없는 참극’이라고 밖에 볼 수가 없으니~ 이곳의 역사적, 문화적, 전통적 ‘모든 성인의 날’ 전전날을 맞는 기분은 씁쓸하기만 하구나.
예보대로 이슬비, 안개비가 계속 내리는 듯 마는 듯한 주일, 오늘 아침 미사에는 뒷자리의 고정석 마리안나 자매가 안 보여서 조금 서운하고 걱정도 되었다.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닌가, 그 정도로 모르게 알게 익숙해진 것인가. 오늘로서 묵주기도의 10월 마지막 주일, 성당 묵주기도를 바쳤다.  시작할 때는 몇 명도 되지 않은 신자들로 시작해서 끝날 무렵이면 거의 전신자가 함께 바치는 이것도 오늘로 끝이 되었다. 이제는 11월 위령의 달로 성당/성사 분위기는 ‘연령, 위령’의 분위기로 바뀔 것이고… 

오늘 미사에는 예전에도 왔었다는 예수회 방문신부님이 함께 집전을 했고, 벌써 ‘이태원 참사’로 연미사까지 봉헌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세월의 흐름에 잠기기 전에 불쌍하게 목숨을 잃은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청소년’들을 애도하지 않을 수가 없다. 도대체 Halloween이 무엇인지 알기나 한 것인지, 1964년 성탄전야에 우리들이 맛보았던 ‘통금해제’의 자유에 취해 명동골목을 뒤덮었던 우리세대와 무엇이 달라지기나 한 것인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아~ 건주야~ 반갑다! 뜻밖의 카톡 음성통화가 걸려와서 보니~ 아~ 황인희씨의 이름이!  인희씨와의 음성뿐이 아니고 건주의 음성까지 들려온다. 이 녀석 진짜로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 되었다. 건주의 음성은 역시 어눌한 것이었지만 대화가 된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 것 아닐까? 재활치료가 성과기 있다는 것을 볼 때 처음 stroke가 왔을 때는 훨씬 증상이 심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문제는 얼마나 더 정상으로 돌아오는가 하는 것인데, 그것보다는 위험을 벗어난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인희씨가 나의 계속된 ‘호소’에 신경을 써준 것이 너무나 고맙다. 건주야~ 부디 완쾌가 되어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한다!

 

Farewell my deskmate! Family pre-Halloween Cheer up

원병태,  몇 년 전에 타계? 중앙고 3학년 때 나의 짝꿍, 단짝이었던 원병태가 이미 사망했다는 소식을 신동훈으로부터 오늘에야 들었다. 소식이 없이 조용한 듯한 동창들, 사실은 그들이 세상을 떠났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오늘 원병태 소식을 들으며 깨닫는다. 그래, 그러니까 그렇게 조용한 거지. 살아있으면 어떤 방식으로든 어디선가 표적, 표식이 난다는 것을 왜 일부러 부정을 하며 살았는지. 특히 우리의 나이에서는 더욱 그럴 지도 모른다. 원병태, 원병태, 중앙고 졸업 이후 1970년 대 초에  다시 만나서 그가 다녔던 고려대에서 테니스를 같이 치던 추억이 서로의 마지막이었지.. 곧 미국엘 가서 친척 집의 주유소 일을 돕게 될 것이라 했지.. 그러고 나서 소식이 끊겼다. 영어 회화 실력이 별로 없어서 일을 하는데 힘들 거라 걱정스런 말을 하던 녀석의 모습이 눈에 선~ 한데… 네가 나보다 먼저 갔구나. 중앙고 3학년 큰 키에  맞지 않게 나와 짝꿍이었는데, 키 큰 애들을 조금 무서워하던 나도 그 녀석은 그렇게 편하고 친했는데…  대학 입학시험 이후 합격소식을 알려주었던 자상한 녀석… 고대 화학과에 ‘꽁지’로 합격했다고 자랑을 했던가~ 병태야, 고맙고,  편하게 쉬거라, 우리들도 곧 따라갈 터이니까, 그때 다시 만나자~~~

 

얼마 전부터 나라니가 힘들어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요새 일을 하며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우리 때와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것으로 보인다. 둘이 벌어야 그런대로 사람처럼 사는 세상이 된 것인가? 2살을 지난 개구장이 남자아이와 씨름을 하는 것에 지친 것인지도. 그래서 새로니, 나라니 식구들 전부를 오늘 불러서 온 가족 pre Halloween Dinner 모임을 가졌다. 전에 이렇게 Halloween 을 계기로 가족이 모인 기억이 없어서 조금 새롭고 신선한 시간을 즐기게 되었다. Halloween costume 입혀서 오라고 했는데 너무나 힘이 들었는지 모두 그냥 왔기에 식사 후에 우리 동네에서 제일 거창하게 장식을 한 집을 모두 방문하기도 했다.

거창한 비바람의 도움을 하나도 받지 않고 올해의 가을낙엽들은 순전히 자기들의 의지로 하나 둘 씩 내려오고 있고 이제는 풀잎들을 거의 모두 덮을 정도가 되었다. 더 있으면 발이 빠질 정도의 두께로 덮일 것이 분명하다. 거의 정확한 때에 이렇게 반복되는 ‘하강식’, 이제는 놓치고 싶지 않은 내 생애의 마지막 장을 보는 듯하다. 내년에도 반복될 것은 분명한데 세월이 갈 수록 내년의 모습이 점점 불투명하게 보이는 것은 ‘인간 원죄의 결과’일지…

거의 초음속으로 나르는 비행기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에 솔직히 말해서 은근히, 조용히 심지어 부끄럽게 경악 한다.  최근에 새로 알게 된 깨달음 중에 시간의 흐름에 관한 것도 있다. 흔히 시간은 지루할 때 보통 때보다 느리게 흐른다는데 공감을 한다. 다르게 말하면 시간이 느리게 느껴질 때 그 순간들은 지루한 것으로 보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그런 현상이 나에게도 있음을 알게 되었는데, 바로 묵상, 명상, 기도, 실내 track에서 걷기 등을 할 때다. 전에는 이런 시간이 정말 지루하기만 했다. 시계를 보며 왜 이렇게 시간이 안 가는 것일까 할 정도인 것은 그 시간이 별로 즐겁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것이 최근에 180도로 변한 것이다. 나도 놀랄 정도로. 한마디로 말하면 묵상, 명상, 걷기 등의 시간이 지루한 것으로부터 즐겁고 깊이가 생긴 것이다. 왜 이렇게 바뀌었을까, 그것이 나는 알고 싶은 것이다.

 

No meat Spaghetti, Tobaccos, Pickleball

하루가 다르게 색갈이 진해지며 변하는 가을나무, YMCA 정문에 있는 것에 주목을 하며 모습을 담는다. 비바람이 별로 없었던 올 가을, 덕분에 정말 예쁘게 매력적인 모양을 유지하고 있다. 올 가을도 이것을 보며 겨울을 기다리리라…

매주 금요일은 최소한 우리 둘에게는 ‘금육의 날’이다.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꽤 오래 된 ‘무언無言의 약속’이 되었다. 문제는 그날 먹는 음식이 꽤 제한적이라는 사실이었지만 적응하다 보니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것이었다. 원래 비싸지기만 한 육류를 하루만이라도 절대 안 먹는 것이 가정경제에도 조금은 도움이 되지만, 나에게는 이제 상당히 변한 세계관 철학, 특히 환경, 생명체에 대한 근본적 생각 때문인가, 가급적 ‘죽인 생명체’를 먹는 것이 끔찍하게 느껴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아하~ 이래서 vegetarian, vegan들이 존재하는구나~~  가톨릭의 금육은 물론 생선류는 포함 되지 않지만 그래도 그 정도면 우선 OK. 이런 추세로 pancake과 고기류가 없는 spaghetti가 우리 집의 인기 음식이 되었고, 오늘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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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YMCA gym에는 floor 전체가 Pickleball court로 채워져 있었다. 그러니까 전체 ‘농구장’크기에 3개의 court를 설치할 수 있었음을 보게 되었다. 갑자기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이 ‘반 테니스, 반, 탁구, 반 배드민튼’, 제일 인상적인 것이 ball의 성질, 아주 가벼워서 아무리 세게 쳐도 속도가 아주 느린 것, 바로 이것이 매력이 아닐까? 테니스나 탁구처럼 몸을 빨리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것은 넓은 연령층에 커다란 혜택을 주지 않을까? 우리도 못할 것이 없겠지만, 솔직히 이제는 큰 매력을 못 느낀다.
운동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broccoli 를 사러 Kroger에 잠깐 들렸을 때, checkout counter 옆에서 우연히 눈에 뜨인 것, ‘담배 진열장’을 보았다. 다른 때에서 이것들이 있었을 텐데 이번에는 그렇게 다르게 다가왔을까? 아마도 빨갛게 쓰인 ‘sales price’때문이었을 것이다. 한 갑에 $7이 훨씬 웃도는 것이었다. 30년 전 금연을 시작했을 때보다 inflation으로 모든 물가가 3배 이상이 되었다고 해도, 조금 심한 것이 아닌가? 그 당시 기억에 $1 이하로 기억을 하는데… 7배가 된 것은 아마도 각종 health regulation 때문이 아닐까. 이런 것으로 요사이 담배를 아직도 피는 사람들이 불쌍해진다. 너무나 비싼 것은 물론이고, 그것들이 수명을 단축시키는 확실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이것들이 아무리 nostalgic 한 것이라도 이제는 no thanks!

허~ 지난 밤, 그러니까 오늘 이른 새벽인가, 잘 자고 눈을 뜨니 조금 이상해서 시계를 보니 2시?  모처럼 moldable earplug을 안하고 자서 그런가? 이것의 단점은 귀가 간지러워지고 물기까지 느껴지는 것이다. 며칠을 이렇게 다시 ‘쉬어야’ 하는데 그것 때문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아~ 이제 죽었구나! 2시에 눈이 말똥말똥하니~ 결국은 거의 한 시간 뒤척이다가 6시 30분에  다시 눈이 떠졌다. 한 시간 동안 ‘무심의 상태를 이루려 노력을 했지만 대신 현재 나의 ‘화두, 최대 관심사’에 대한 생각들을 해 보았다. 특히 NDE[Near Death Experience] 를 비롯한 현실세계[관]의 성질, 의식의 신비 등등… 이런 것들은 아마도 죽을 때가지 계속되리라~ 그리고 이 ‘매력적인 공부’는 정말 나를 들뜨게, 기쁘게, 가볍게, 희망을 주는 것들임에 틀림이 없다. 감사합니다!

 

New Bishop John Tran, Vietnamese Boat People…

어제 아침미사에서 신부님이 아틀란타 대교구의 대주교, 주교를 언급할 때 Bishop John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아주 잠깐 들었다. 내가 잘못 들었나 했지만 분명한 Bishop John이었는데, 그 의문이 나중에 풀렸다. 바로 전날 [10월 25일] 대교구에 새로운 보좌주교가 임명되었다는 뉴스[Catholic News Service]를 보았기 때문이다. 대교구가 커지면서 생간 새 주교는 놀랍게도 Fr. John-Nhan Tran,  ‘월남 출신’, 미국 New Orleans 교구 신부였다. 그는 1975년 boat people 이라고 불리던 일종의 피난민 [당시에는 어린 아이] 인 것이다. 미국 이민역사가 우리보다 짧은 월남인들은 현재 우리를 앞서고  눈부시게 미국 주류사회로 진출하고 있는데, 가톨릭 계에서는 더욱 빠르다. 그에 비해서 우리들은 정말 ‘자기들끼리 똘똘 뭉치기만’ 하는 모습으로 일관된 삶을 살고 있으니~~

다시 추워진 새벽이 되돌아 왔다. 역쉬~ 3한4온의 오래된 기억이 새삼 확인이 된다. ‘추울 때 춥고, 더울 때 더운’ 그런 자연적인 자연이 나는 그립고 반갑다. 세상의 이치, 변치 않는 관성적인 진리가 그리운 늦은 세상을 살고 있다.
다시 나를 ‘긁고’ 있는 불안감은 물론 짧은 NYT의 정치뉴스 headline, 이제는 이것도 졸업을 하고 싶은 열망이 필요한 나, 정말이다, 이것이 나의 행복을 갉고 있는 것을 안다. 이제는 ‘탈 정치’를 심각하게, 심각하게 결심을 해야 하지 않을까? 정말이다, 이것이 나에게는 독, 독, 독인 것이다!

나라니가 ‘비상사태’가 났다고 도움을 청했다. 내일 우리 집에 와서 직장일을 해야 할 수밖에 없다고~ 그러니까 역시 로난의 daycare center가 문을 닫은 것, 그것도 수돗물이 안 나와서? 허~ 그곳은 조금 문제가 있는 곳이 아닌가? 그렇게 자주 문을 닫으면 일하는 부모들은 어찌하란 말인가? 다행히도 우리 집에 올 수 있으니까, 나라니는 문제가 없지만 우리는 내일의 스케줄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미사, 운동 등을 모두 취소해야 하니까~ 하지만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되랴, 바꾸면 그만이지…

 

Classic Breakfast, Ramen Lunch, Real Magic…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하고 서늘한 가을날씨에서 서쪽으로부터 서서히 밀려오고 있는 구름의 영향으로 하늘은 조금 덜 청명하고 대신 대기는 덜 써늘하게 ‘보인다’. 예보에는 오늘 밤에 비구름이 ‘잠깐’ 지나갈 정도라고 해서 조금 섭섭하다. 며칠 전에 ‘구멍이 난’ 앞쪽 잔디에 심었던 ‘겨울 꽃’  pansy가 제대로 자리를 잡으려면 수돗물이 아닌 빗물이 더 효과적일 것 같은데..
모처럼 ‘전기불이 들어오는 시간’, 6시 반에 정확하게 일어났는데,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드는 것이, 아하~ 평소보다 조금 더 어지럽다는 것을 알았다. 생각해보니 역쉬~ 이틀 계속 오후에 먹는 ‘보조 혈압 약 Amlodipine‘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좋게 말하면 그 덤으로 먹는 약이 제대로 효과를 내고 있다는 안심도 되지만 또 잠시 중단을 해도 되겠다는 결론을 얻는다. 그래~ 이렇게 살면 혈압을 적절히 조절할 수 있겠지~  주치의 말대로 약으로 혈압은 얼마든지 정상으로 만들 수 있음을 확인한다.

연숙이 새로니 집에 손녀 봐주러 가는 날, 모처럼 classic breakfast를 만들었다. 이것이 내가 처음부터 배우고 계속 준비해서 오랜 세월 먹던 우리 집의 아침 식사인 것이다. 이런 나는 솔직히 내 자신을 칭찬해 주어야 한다는 엄연한 사실에 너무 인색하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왜 나는 내 자신의 능력과 가족을 돌보는 삶의 자세를 과소평가하며 사는 것일까? 그래 나도 이렇게 잘하는 것이 적지 않게 있음을 성모님만 아실 것이 아니라 주위에게도 부끄럽지 않게 자랑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모처럼 홀로 자유롭게 조용히 점심으로 [너구리] 라면을 끓여 먹는다. 이 시간이 나는 그렇게 새롭고 즐거울 수가 없다. 먹을 때 마음껏 video같은 것을 볼 수도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새로운가? 총각시절 때 혼자 먹던 것이 그렇게 외로웠지만 가끔은 그런 때도 그리운 것이다. 오늘은 drama, news, history 같은 video가 아닌 소위 말하는 ambient music video, 그것도 가을철 theme인데 자세히 보니 배경에 ‘한옥의 모습’이 보이는가? 한옥인가, 일본식인가는 분명하지 않지만… 멋진 가을의 낙엽, 단풍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풍기는 정취가 비슷하게 멋지고… 이런 모습도 얼마 있으면…

 

REAL MAGIC [author, DEAN RADIN], 2018년 크리스마스에  나라니의 책 선물 [내가 원해서], 어제 거의 우연히 [세상에 우연이란 없지만] 나의 손에 집혀서 다시 읽기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 아니 요새 읽게 되는 책들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random choice인 것이 유별나고 몇 년 전에 이미 부분적으로 읽기 시작한 것들이다.

이 책의 주제는 parapsychology이기에 항상 ‘웃음, 조롱거리’ 가 될 가능성이 있기에 솔직히 읽는다는 사실도 조심스럽다. 이런 사실은 물론 이 책의 저자도 누누이 인정을 하고 있지만, 일단 읽기 시작하면 손을 떼는 것이 힘든 현실은 무엇인가?

지난 20여 년간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new science [entangled reality]덕분인가, 우리 세대 전부터 굳어버린 ‘자명한 상식들’이 현실계의 전부가 아니었다는 사실은 한마디로 믿을 수 없는 깨달음으로 다가온다. 나에게 이런 사실들에 대한 관심이 조그만 ‘겨자씨’ 격인 종교적 교의를 정당화하고 싶은 열망에서 시작된 것을 알면 우습기도 하고 겸허해지기도 한다. 이것조차도 우연이 아님은 물론이다.

 

모처럼 Book Format [Aspect Ratio: portrait mode] PC screen을 setup해서 오래 전의 LIFE magazine을 page 전부를 볼 수 있게 임시로 자리를 잡았다. 우선은 역사적, 추억적인 내용을  scanning을 하려는데 목적이 있긴 하지만 이런 식으로 다른 website의 book format을 보거나 copy하는 것도 편리한 방법이다. 또한 이제는 별로 인기가 없는 portrait/book 전용 monitor/screen가 먼지를 쓰며 사라지는 것이 섭섭하기도 했다. 사실 요사이 website에 보이는 각종 picture들도 smartphone의 영향으로 portrait mode가 점점 많아지지 않은가?

 

Pickleball, new phenomena

토요일 아침의 ‘network TV’, 가끔 이것을 보면 의외로 마음이 새롭고 상쾌해진다. 오늘 아침은 CBS-TV, 우울한 뉴스가 안 보이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데, 이곳에 오늘 나의 눈에 익은 모습이 보인다. Pickleball, 바로 그것이었다. 요즈음 YMCA gym에서 자주 보는 이 모습, 이것이 오늘 소개되고 있는데, 나의 생각이 맞았다. 이것은 역사가 오래 되었지만 최근에 ‘폭발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마도 Pandemic의 영향도 있었을  듯한데, 이곳으로 돈,돈, 돈… 자본이 몰리고[투자] 있다는 사실도 인상적이다. 왜 그럴까? One Nation Under Pickleball?  실내 court가 이곳 저곳에 생기고 있는 모습, 이것과 우리의 관계는,  사회적 미래는 과연 어떤 것일까?

YMCA gym의 indoor track에서 걸으며 이것을 자주 보는데, 역시 tennis와 ping pong의 중간 정도로 보인다. 테니스처럼 강렬하고 숨찬 것도 아니고 탁구처럼 가벼운 것도 아닌 아주 ‘절묘한 균형’을 지닌 이것이 비록 요새 new phenomena로 보이지만 알고 보면 역사가 꽤 오래된 것이다. 우리 연령대에도 큰 무리 없이 즐길 수 있는 것이기에 계속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싶다.

 

Autumn in 1970, Midterm Georgia Governor

 

1970년, 대학 4학년 시절, 한마디로 희비가 엇갈리던 시간들이기도 했다. 학교 공부보다는 등산과 미팅에 더 관심이 많았던 때, 하지만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서울 중심가를 헤매기도 했던 낭만적, 황금기로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그 젊음의 대가를 후에 톡톡히 치르기도 했다. 2학기가 되면서 졸업 이수학점 부족이 때늦게 발견이 되어서 과 친구들과 많은 시간을 떨어져서 부족 학점을 채워야 했던 괴로운 때도 있긴 했지만 역시 젊음의 힘이었던가, 별로 실망, 우울하지 않았다.  그 해 가을을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나게 하는 것 중에 바로 Simon & Garfunkel의 hit album 중의 한 곡인 The Only Living Boy in New York  때문이었다.  당시 수많은 pop song들에 열광을 하던 때였지만 몇 곡은 아직도 가사를 외울 정도로 뇌리에 남아있고, 이 곡도 그 중에 하나다. 1970년 가을에 심취했던 이것, 왜 그렇게 좋아했을까? 가사 내용보다는 후반부의 chorus,  폭발적인 drum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 곡이 실려있는  당시의 LP album [Bridge Over Troubled Water]을 이곳에서 다시 샀던 것과 또 다른 album을 꺼내서 보니, 완전히 1970년으로 돌아간 착각에 빠진다. ‘유행가’가 가진 시대성은 생각보다 큰 위력이 있는 듯하다. 이 노래에 심취할 당시의 추억들 중에는 이성들과 얽힌 것들도 있어서 가끔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막연한 생각에 빠지기도 하니…  

Georgia Governor, 누구에게 표를 던질 것인가? US Senator 후보를 선택하는 것은 두 번 생각할 필요조차 없이 간단한 것인데, governor는 조금 달랐다. 두 후보의 장단점의 점수가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다. 후보의 정당 정책도 무시할 수 없었지만 이번에는 역시 Donald 개XX에 ‘굴복하지 않은’ 현 주지사’가 유임하게 하는 것이 나에게 더 큰 만족도를 주기에 그에게 2 표 (우리 둘)를 던지기로 했다. 현 주지사 Brian Kemp의 ‘폭군에 맞선 용기’도 가상하지만 Pandemic동안 아주 상식적인 판단으로 일관했던 것도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첫 여성 흑인 주지사가 될 수도 있었던 상대 Stacey Abrams 에게는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나의 point는 역시 ‘Donald 개XX’에 있기에 할 수가 없다. 그녀에게는 앞으로도 기회가 분명히 올 것이다.

요즈음 supermarket에 가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는데 예외는 coffee 그것도 KEURIG coffee maker 에 맞고, 가을 색깔이 있는 것을 고르는 일이다. 금주선언 이전에는 주로 wine쪽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이제는 coffee쪽으로 바뀐 것이다. 오늘은 STARBUCKS 쪽에서 FALL BLEND, CARAMEL MOCHA를 골랐는데 기대가 크다.

오늘 점심은 특별한 것, 시간이 되었다. 청국장, 난생 처음 맛을 보게 된 것이다. 원래 식성이 약한 탓에 조금 냄새가 나거나 보기에 안 좋으면 식욕을 조절할 수가 없이 피해버리고, 청국장도 그 중에 하나였다. 냄새 때문이었는데, 얼마 전 성당에서 C 베로니카 자매가 냄새가 거의 없는 청국장을 찾았다고 조금 갖다 주어서 오늘 드디어 시식을 하게 되었는데, 결과는 pass였다. 이 정도면 겁을 낼 필요가 없고 오히려 밥맛도 나는 듯했다.

 

Morning Shocks, Falling at Sope Creek

모처럼 집에 온 새로니 식구들, 특히 Ozzie가 왜 오늘은 그렇게 반갑던지, 머리를 아예 감싸고 안아주고 쓰다듬어 주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를 했다. 유나는 처음에는 우리를 경계를 하는 듯했지만 떠날 무렵에는 그래도 많은 재롱을 부리며 우리를 즐겁게 했다. 모처럼 Ozzie와 우리 동네와 Sope Creek으로 산책을 거의 2 마일 정도 즐겼다. 특히 Sope Creek 옆쪽의 길 위에 보이는 낙엽의 모습은 한마디로 장관이었다. 

가벼운 머리를 느끼며 일어났는데, 이것이 웬 일들인가? 이번에는 근시안적 수녀들이 운영하는 ‘바오로 딸’ 들에게 hint를 얻었는가, 가톨릭출판사라는 곳에서 ‘저작권’을 운운하는 연락을 받았으니… 이제는 이런 ‘바보 같은’ 일들이 다 지나간 것으로 거의 잊고 있었는데… 화가 나는 나 자신도 싫다. 그렇게 ‘레지오, 선교 정열’에 불이 탔던 시절의 노력들도 이제는 서서히 석양을 맞이하는가… 그렇게 열심히 독서/필사를 하던 시절도 다 이제는 추억, 아니 화석이 되는 듯 느껴져 조금 서글픈 심정이다.

또 다른 실망적 뉴스는 내가 좋아하는 NYT columnist였던 [알고 보니 그도 역쉬~ queer, why not..]  F. Bruni란 사람이 아예 ‘패배 선언’을 하는지, H. Walker의 Georgia Senator 심각한 가능성을 논하고 있는 것, 아~ 왜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가?  어떻게 이런 Trump의 ‘쫄개’가 U.S senator가 될 수가 있단 말인가? 실망, 분노, 슬픔… 왜 세상이 이렇게 되었는가? 이런 것들 때문에 모든 정치적인 뉴스를 끊으려는 유혹을 계속 받는구나…

나의 Global Entry TTP interview날짜를 새로 찾아서 11월 15일에 ‘드디어’ Atlanta Airport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것도 나에게는 작은 이정표처럼 느껴지는 것이… 이곳에 들어간 기억이… 도대체 얼마 전인지…  놀랍기만 하다. 이제 조금씩 성모님과 약속한 제3의 산봉우리가 ‘무섭게’  조금씩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  이것과 더불어 우리는 거의 확실하게 내년 1월 말에 ‘성지순례의 대장정’을 경험하게 될 것 같다. 모든 여행의 준비가 되어가면서 그 첫 시험 대상이 멕시코 과달루페가 됨은 무슨 뜻을 가질까? 남들은 아마도 거의 상상조차 못할, 최소한 우리에게는 커다란 혁명적인 일임을 짐작조차 못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에게 조금씩 ‘여행’ 의 그림이 그려지는 마당에 다른 쪽 생각을 하게 된다. 바로 비용, 돈에 관한 것… 이제까지 이것의 순위가 가장 뒤쳐져 있었는데 이제 조금씩 돈의 위력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사실 이것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음을 알게 되는 것, 무슨 바보 같은 생각인가? 그것은 간단한 사실, 진실이 아닌가? 하지만 하고 싶은 것을 돈이 없어서 축소하거나, 못한다는 사실은 조금 충격적이다. 다른  장애조건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면서 이런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게 되는 것, 어쩔 것인가? 하지만 크게 걱정은 안 한다. 이런 ‘여행 비용’등에 문제가 있으면 그것은 어떻게든 ‘안 보이는 손길로’ 해결이 될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이 이제는 있기 때문이다.

테이야르 드 샤르댕, 그가 돌아왔다, 서서히, Teilhard de Chardin! 참 한때 그의 ‘종합사상’ 에 심취를 했었다. 그 동안 거의 잊고 살았다. 그의 혁신적인 과학과 신학의 융합 노력, 과연 내가 얼마나 이해를 했는지 의문이지만 그것에 대한 나의 열정은 아직도 부족하지 않다고 자부를 하고 싶다. 다만 현재 그것에 덜 관심을 쏟고 있다는 것, 그것에 나는 주목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손쉽게 그에 대한 샤르댕 사상의 대가Ms. Ilia Delio의 강연 video를 보면서 새롭게 몇 년 전에 쏟았던 열정을 다시 되돌아볼 수 있었다.

Absentee Ballots, Dirty Politics, Pansy Fix

오늘 드디어, 기다리던 Absentee Ballot이 도착했다. 월요일부터 voting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처음 해 보는 것이라 아주 나에게는 흥미롭고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 되었다. 누구를 찍느냐 하는 것이 이제는 과제로 남는다. U.S. Senator는 문제가 없는데 Georgia Governor가 골치 아프다. 이것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정치적, 신앙적으로는Brian Kemp가 적당하고, 나머지 것 모두는 Stacey Abrams가 마음에 드니… 이것을 어찌한단 말인가?

정말 오랜만에 PBS의 Washington Weeks [about mostly dirty politics] 란 program을 우연히 보게 되면서, 생각에 잠긴다. 나는 왜 이렇게 ‘겁쟁이’일까? 무엇이 그렇게 나를 무섭게 하는 것일까? 나에게는 ‘깡’이라는 것이 그렇게 부족한 것일까? 이런 나의 성향에 대해 생각하는 것조차 무서운 이유는? 그 실체를 잘 모르기에 그런 것일까? 왜, 무엇으로부터 그렇게 도망가고 싶은 것일까? 왜 그렇게 나에게 분노를 자아내게 하는 것일까? 왜, 무엇이, 어떻게?

다시 싸늘한 새벽을 맞는다. 45도는 상당히 저온인데 바람이 거의 없으니 조금 옷에는 신경을 덜 써도 될지. 요즈음 아침마다 어떤 옷을 입는가 고민을 하는 그런 시기의 절정이다. 나에게 고를 수 있는 선택의 여지는 많지 않지만 생각 없이 잘못 고르면 결과는 ‘일그러진 자화상’으로 고생을 한다.  이것은 물론 외출을 하기에 그런 것이지만, ‘그래도, 집에 있어도’ 조금 옷에 신경을 쓰는 것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Morning Mass를 마치고, Home Depot에 들러서 Pansy 화초를 사가지고 와서 앞쪽의 커다란 부분이 죽어버려 보기가 민망한 잔디밭의 한 가운데 심었다. 새로 잔디를 심을 자신이 없으니 이것도 멋진idea가 아닌가? 하기야 이런 모습은 Indian Hill country club 의 어떤 집에서 이미 보았기에 조금 자신을 가진 것이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어떻게 주위와 잘 어울릴지는 미지수다. 겨울이니까 크게 돋보이지 않기에 조금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다.

Home Depot에는 이미 Halloween과 아예 Christmas까지 완벽하게 빨리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문제는, 물건들이 얼마나 비싼지 입이 벌어질 정도였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큰 상관이 없으니 다행이라고 할지…

오늘 아침미사에 가긴 갔지만 이것은 조금 웃기는 계기가 되었다. 40년을 같이 살아온 부부지만 생각보다 서로 모르고…  아니 너무 잘 안다고 생각하는 과신에서 오는 실수인지도 모르는 일이 아닐까? 어제 저녁에 내일 미사를 쉬자고 말을 했는데 이유는 연숙이 수영을 18 laps 한 것으로 ‘아마도’ 피로했을 것이라는 나의 생각, 그것은 비약이었다.  조금은 그녀를 도와 준답시고, 자선을 베푸는 듯한 유치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알고는 ‘하나도 피로하지 않다’고 말하는데 당황 [아니 조금 화가 나기도], 다시 신경질적으로 그러면 미사에 가자고 해버린 것이다. 그야말로 ‘엿먹어라’하는 식이었는데…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것을 끝까지 깨우며 분명히 이것으로 조금 티격태격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했지만 의외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어찌된 일인가? 내가 오해를 한 것, 아니면… 아~ 참 그렇게 오래 살았어도 서로의 마음을 이렇게 모르고 지레짐작을 하니… 오해의 여지는 죽을 때가지 충분히 있을 것인데… 하지만 결과적으로 미사에는 갈 수 있었으니 서로 웃을 수 있게 된 happy ending이 아닌가?

 

Jacket Day, Church Regulars, Honest Barron

올 가을 들어서 처음으로 ‘정든 베이지색 골덴’ corduroy jacket을 입고 성당엘 갔다. 아~ 이제 서늘한 날들이 예외가 아닌 보통인 그런 season이 된 것인가? 가히 요새 같은 날씨는 너무나 보내기가 아까운 정말 ‘완전한 날씨’에 속한다.   아~ 이런 날씨가 다음에 오는 세상에도 있을까? 없다면 나는 죽는 것이 조금 싫어질 듯하다. 하지만 분명히 그곳에는 이런 날씨보다 훨씬 멋질 것 같으니까, 걱정하지 않는다. 다만 이승의 사람들과 일단 작별하는 것, 그것이 섭섭할 뿐이다.

오늘 아침미사 싸늘했던 탓인지 참례 신자들의 조금 적은 듯했다. 하기야 거의가 우리와 비슷한 나이, 그래 senior라고 하자. 이런 날씨에도 빠짐없이  미사에 오는 regular들, 신부님도 언급했지만 인상적이고 고맙고 감사하는 심정을 금할 수 없다. 이들이야말로 정말 크리스천의 본보기가 아닐지…  오늘은 모처럼 ‘동포’ R자매의 모습이 보여서 조금 반가웠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어쩌면 한 세대의 차이가 그렇게 만드는 것인가, 인사성도 없고 정다운 온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으니… 사람 나름이기도 하지만 참 세상이 이렇게 변하고 있는지 재미 없는 세상을 살고 있다.

오늘 ‘본격적’으로 보게 된 video는 이미 download를 해 두었던 1983년 추억의 TV miniseries  The Winds of War (7부작), 추억이라면 무조건 좋아하는 나에게 이것은 예외 없이 다시 보고 싶은 것이다. 특히 1983년 2월 초에 방영된 것이어서 이때의 추억과 함께 보고 싶다. 새로니가 태어난 바로 직후가 아닌가? 나는 학교 Ohio State 에서 일생일대의 고전 苦戰을 하고 있었고… 따라서 괴로운 경험도 많았지만 지금은 조금 다시 ‘좋은 쪽’으로 바꾸어 ‘수정된 역사’를 남기면 어떨까?
이제는 조금 넓어지고 높아진 세계관, 그리고 더욱 가까워진 미국이라는 커다란 보금자리를 생각하며 이 나라를 super power로 만든 2차대전의 의미를 새롭게 음미하고 싶은 것, 멋진 것 아닐까?

오늘 Word On Fire email, Bishop Barron의 ‘성녀 소화 데레사 책 소개’는 나에게 신선하고 반가운 것이었다. 대부분이 좋다고 하는 것, 그것도 책을 나는 별로나 실망, 심지어 싫다고 느끼거나 생각하게 되는 것은 솔직히 나 자신을 당황하게 만든다. 바로 소화 데레사의 자서전이 좋은 예, 그리고 또 있다면 Thomas Merton의 자서전 ‘칠층산 Seven Storey Mountain‘이 아닐까? 나는 남들, 아니 아예 일반적으로 극찬을 얻은 명작들이 나는 정말 실망인 것이다. 위안이 있다면 첫 번의 시도에서 그렇다는 것이고 다시 읽는다면 다를 수도 있다는 사실 뿐이다.

I will confess that when I first read Story of a Soul, I was not particularly impressed. Like many others, I found it overly sentimental, and as a post-Freudian, I was only too willing to see in its girlish spiritual enthusiasms evidence of neuroses and repressions. But then I noticed that a number of great intellectuals loved Thérèse. Among her cultivated admirers were Dorothy Day, Edith Stein, Thomas Merton, John Paul II, and Hans Urs von Balthasar.

When I was a doctoral student in Paris, I attended a seminar conducted by my thesis director, Fr. Michel Corbin, a brilliant Jesuit specialist in medieval thought. Corbin commented that the French do not refer to Thérèse of Lisieux as “the Little Flower,” as Anglophones do, but rather as la petite Thérèse (the little Thérèse), in order to distinguish her from la grande Thérèse (the great Thérèse—that is, Teresa of Avila). But then he added, “After many years of reading both saints, I realize that Thérèse of Lisieux is really la grande Thérèse.” I knew then that I had to take a second look. 

– Bishop Robert Barron  10/14/2022

 

 

Old McDonald’s, Moving Marshall

오늘은 모처럼 아침미사 이후에 McDonald’s 엘 가서 ‘2 No. 2’로 아침식사를 했는데 모처럼 맛본 이것, 한마디로 맛이 있었다는데 동감을 했다. 그렇다, 자주 대하는 것, 먹는 것 등등은 쉽게 싫증이 나게 마련이니까.. 하지만 가급적 매식, 그것도 fast food는 피하고 살자는데 큰 이견이 없다.  이곳 Canton Road의 McDonald’s, 추억이 얽힌 곳이지만, Pandemic 동안 완전히 remodeling 을 해서 그때의 분위기는 완전히 사라진 곳이 되었다. 아이들 생일 party도 하던 playground가 완전히 없어진 것. 그래도 우리에게는 아직도 추억이 어린 곳이다. 이곳의 모습, 다행히도 Google Map에서 찾은 것, 혹시 옛날의 모습이 아닐까 했지만 최근 renovate된  [May 2022] 모습이 그곳에 있었다. 다행인지, 옛날의 모습이 조금 그리워진다.  아이들과 함께했던 그 모습을 다시 찾을 수는 없을까?

돌아오는 길에 집 앞에 있는 Marshalls에 들렸는데, 오늘도 나는 살 것이 있을 리가 없었지만 연숙이는 무언가 return을 하고 산 것도 있었다. 오늘 알게 된 사실은 이곳이 Home Depot가 있는 Merchant Walk으로 이사를 곧 간다는 조금은 섭섭한 소식이었다. 하기야 가까운 이곳이 그 동안 편리한 곳이었는데…  이곳의 매력은: brand name, 그러니까 명품급에 속하는 것들을 ‘조금 흠이 있기에’ 정말 싸게 살 수 있다는 것이고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안성맞춤인 곳이다. 이들조차, 이렇게 하나 둘씩 우리를 떠난다는 것이 조금 슬프기도 하다.
오늘 Marshalls에서 나의 눈과 관심을 끄는 것은 역시 PUMPKIN COLOR가 아닐까? 왜 올해는 이렇게 가을의 상징, pumpkin 색깔에 관심이 가는 것일까?

Falling Leaves on high: 지난 밤에는 아마도 여름의 잔재인 듯 요란한 천둥소리와 빗소리를 잠결에서 감상할 수 있었다.  가느다란 꿈 속에서도 ‘여름의 추억, 섭섭함’등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의 날씨는 비구름이 서서히 물러가기는 했지만 대신 바람이 하루 종일 세차게 불었다. 오늘 창 밖으로 보이는 ‘낙엽’의 모습은 며칠 전과 완전히 다른 것, 나르는 나뭇잎이 하늘을 가득 채운 장관이었다.  바깥의 모습도 처음에는 을씨년스럽기만 했는데, 결국 오후부터는 태양이 가득한 전형적 가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한마디로 요사이 날씨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그런 그림 같은 날씨의 연속… 감사합니다~~

The Winds of War: 며칠 전에 low quality[VHS resolution] video나마 전부 download했던, 1980년대 초의 TV Drama miniseries ‘The Winds of War‘를 조금씩 보기 시작한다. 이것도 The Exorcist와 비슷한 nostalgic value가 있는 것이고, 40년 전의 세계관과 현재의 것의 차이점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는 역사적 자료가 되지 않을까? 하지만 그것보다는 ‘흥미, 재미’의 요소가 현재 나를 이곳으로 이끌고 있을 것이다. Robert Mitchum, Ali McGraw, Jan Michael Vincent 같은 당시의 top stars 들이 대거 출연, 아득한 추억에 잠기게 한다. 2차 대전을 역사적인 눈에서 조금 벗어나 보는 것도 나에게는 유익한 인류사 공부가 되고 있다.

 

On Quiet Rainy Autumn Day

예보대로 날씨는 잔뜩 흐리고 포근한 것, 비가 예보되었지만 chance가 높지 않아서 기대를 별로 하지 않았지만 오후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잔잔한 가을비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특히 바쁘지도 않고 졸음을 참는 때, 이 고요한 빗소리와 문 밖 cul-de-sac의 모습은 가슴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고, 이런 시간이 가급적 짧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오늘 본 비는 사실 정말 모처럼 보는 광경이어서 신기하기까지 한 것이었다.

신경질적으로 피하고 싶은 새벽의 싸늘함 대신에 편안하게 포근한 새벽이 좋다. 덕분에 포근했던 이불을 박차고 6시 반이 지나자마자 일어나는 쾌거를 맛보았다. 근래에 나는 분명히 이 칠흑 같은 새벽을 못보고 살았던 것이다. 이것도 현재 나를 괴롭히고 있는 ‘게으름의 행진’ 의 일부거나 결과일 것이다.

오늘은 모처럼 ‘정상 외출’하는 날, 아침미사와 YMCA의 일정이 잡혀있고 따라서 ‘제 시간’에 움직여야 하는 조금 귀찮게 느껴지는 날이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를 ‘사회적’으로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과제이기에 가급적 이런 routine은 고수해야 하지 않을까? 노력하는 거다, 노력, 마지막 그날까지…

아침미사, SONATA-CAFE, YMCA, KROGER의 daily routine을 끝내고 집에 와서 모처럼 Kroger fried chicken으로 점심을 채운다. 예전처럼 아주 맛있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어도 모처럼 먹는 것이니까 OK.

 

오늘은 비를 핑계로 완전히 ‘일없는 날’로 미리 계획을 했는지, 나도 완전히 손을 놓았다. 그래~ 오늘까지만 쉬자~ 라는 달콤한 유혹을 어찌 피할 수가 있겠는가? 그래, 그래, 편하고 싶다…

대신 어제부터 시작한 영화 The Exorcist 50주년 이라는 이름과 추억으로 오늘도 계속해서 관심을 갖고, 오늘은 영화 전에 documentary를 다시 보게 되었다. 비디오의 화질이 엉망이긴 하지만 이 영화의 ‘백과사전’격 정도의 자세한 정보와 역사가 그곳에 거의 전부 모여있었다. 과연 올해는 Halloween 전에 이것의 전부를 다시 볼 수 있을 것인가? 솔직히 자신이 없긴 하지만, 누가 알랴?

이 추억의 영화가 나 개인에게 미친 효과, 영향은 사실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고 해도 큰 과언이 아니라고 나는 믿는다. 내가, 아니 우리가 Roman Catholic 천주교인을 살아가는 인생도 이 영화가 조금은 도움을 준 것을 알면 조금 나조차 놀라는 것이다. 당시 처음으로 본 천주교, 신부 사제, 수녀들의 모습과 분위기가 나중에 세례, 입교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50년 전의 이 blockbuster movie는 이렇게 해서 나에게는 아직도 관심의 대상이다.

또한 이 영화를 개봉 1년 후에야 실제로 극장에서 본 그 당시의 추억은 또 다른 개인역사의 일부로 남아있다. 그 추웠던 1974년 12월 크리스마스 직전 시카고 downtown 의 극장으로 비롯된 나의 숨기고 싶은 escapade, 이 죄스러운 짧은 실수의 역사를 나는 어떻게 묻어두고 갈 것인가?

 

Spitzer’s Satan, Canadian Thanksgiving

드디어 나의 서재에서 쓰던 fan heater를 아래층 bathroom의 문 뒤쪽에서 찾아내었다. 이것이 내가 줄곧 쓰던 것, 오늘 아침에 첫 시동을 하게 되었다. 이제 heating season이 정식으로 시작된 것이지만 아직도 whole house central heating은 1~2도의 차이로 침묵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이것도 며칠 뒤에는 본격적으로 새벽에 소음을 내게 될 것으로 보인다.  가벼운 스웨터를 하나 둘 씩 찾아내어서 입기 시작, 다음 차례는 jacket이 필요한 순서.. 오랜 세월의 연륜으로 이제는 그림처럼 다음 차례의 모습이 그려지니.. 이래서 하루 하루 생활이 흥미가 없어지는가, 아니면 기다리게 되는가, 모르겠다.

올 가을에는 나뭇잎, 특히 그 색깔의 변화를 매년 내가 좋아하는 우리 subdivision의 Guilford Circle 상에 있는 연로한  그 ‘가을 나무’ 대신에 기대치도 않게 옆집 Dave 네 앞뜰 나무에서 감상하게 되었다. 동네를 최근에 별로 산책을 하지를 못했던 것이 제일 큰 이유가 아닐지… 그 ‘가을 나무’는 노오란 색깔로 변하는 것이 멋졌는데 오늘 보게 된 것은 빨간 색깔 쪽에 가깝다. 이것도 멋지게 보이는구나…

어제 나의 desk 옆에 방치되어있는 책 더미 속에서 이 Satan에 관한 책을 끄집어 내어 읽기 시작하였다. 왜 갑자기 ‘악마론’인가? 아주 timing이 절묘하다고나 할까.. 지난 주의 Black Days 경험도 그렇고 현재 Halloween을 향하는 시월 달도 그렇고 모두 이 ‘악마, 귀신’이 주제가 아니던가?  이 책 CHRIST versus SATAN (IN OUR DAILY LIVES)은 내가 좋아하는  예수회 사제저자,  Dr. Robert Spitzer의 최근 저서로 ‘현존하는 Satan’을 교회, 영성, 이론, 과학적으로 설득력 있게 서술하고 있다. 거의 미신적으로 즐기다시피 하는 초현대적 문화에서 이런 이론, 주장은 자칫하면 무시당할 수도 있지만 이 저자의 자질과 배경을 알면 훨씬 이성적으로 주제를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이런 오해의 여지가 있는 주제는 영성적으로 열린 자세가 아니면 본질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 책과 함께, The Exorcist (William Peter Blatty), 다시 나에게 다가왔다. 매년 10월마다 경험하는 추억의 여행이기도 하다. 매년 나에게 다가오는 이 영화의 추억, 이것을 통해서 나는 무엇을 얻으려는, 찾으려는 것인지 이런 나의 모습에 나 자신도 웃는다. 하지만 이것이 이것의 마력, 매력이 아닐까? 올해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연구하는 자세로 이 영화와 나의 인생여정의 관계를 찾아 보고 싶다.

오늘 달력을 보니 Canada의 Thanksgiving Day라고 보인다. 불현듯 중앙동창 6년 반장, 정교성이 얼굴이 떠올라 간단히 카톡을 보냈다. 그곳에서 식구들이 모두 모여서 만찬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의외로 올해는 식구가 모일 수가 없다는 소식이었다. 작은 딸애가 퇴원을 했다는 것은 안 좋은 소식이었고 사위는 군인인데 NATO일원으로 훈련 중이라고 하며 혼자서 저녁 식사를 한다는 간단하고 쓸쓸한 사연… 아~ 나도 외로운 때를 보내고 있는데 이 녀석을 생각하니 비교를 할 수가 없구나. 이제 혼자 있는 것이 익숙해 있어서 문제가 없다고… 그래, 누구나 다 이 나이에서는 별 수 없이 외로운 것이니까…

 

Guadalupe Beckons, Bakery Regulars, Tucker Joys

도라빌 순교자 성당 아침 미사는 김성현 라파엘 보좌신부님이 집전해서 이제는 이분의 얼굴도 조금은 더 익숙하게 되었다. 웃는 인상, 진솔한 전체 인상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어서 조금은 기대를 해 보기도 한다. 생각보다 사회적 경험을 많이 한 이후의 사제의 길, 이것도  사목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희망을 하는데, 문제는 현장의 각각 personal chemistry에 달려 있으니… 큰 기대는 아직도 보류하고 싶다.  고해, 상담사제의 역할을 어느 정도 할 수 있을까…  게다가 이 보좌신부는 ‘젊은 세대 사목 담당’인 듯 보이니, 우리 같은 노년층은 거의 현재 관심권으로부터 하루가 다르게 밀려나는 우려를 금할 수가 없는데, 과연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노년이라고 모두가 활동, 건강상태가 같은 것은 아닌데…  나이보다는 개개인의 사회적 역동적 능력으로 사목방침을 정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텐데.. 조금 섭섭하고 안타깝다.  하지만 현재까지 알려지고 있는 거의 모든 성당소식은 한마디로 우리들 세대는 거의 잊혀져 가고 있고 나를 비롯한 누구도 이런 추세를 바꿀 용기가 없는 듯해서 더욱 서글픈 심정…

이런 쓸쓸한 것들 중에서 유일하게 반짝거리는 소식이 있다면, 아마도 ‘과달루페 성지순례’ 가 아닐까? 내년 1월 말에 우리 성당단체순례가 있다는 작은 광고, 그것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성모님 발현에 대한 많은 역사적 사실은 이미 대부분 알고 있기는 하지만, 지나간 세월을 통해서 우리를 피해가기만 했던 ‘성지순례’, 설상가상으로 Pandemic으로 더욱 불투명하게 되었던 이것, 이제는 우리에게도 그때가 온 것인가. 이번의 기회는 우리에게는 특별한  chance라는 데 둘이 모두 공감을 하기에 가장 좋은 기회라고 생각을 한다. 가보고 싶은 첫 성지가 비교적 가까운 곳이어서 더욱 가능성이 높기에 이번에는 큰 기대를 하게 되었다.

주일미사 후 ‘하얀풍차 bakery’ regular 아가다 자매 팀이 오늘부터 함께 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이것은 사실 생각보다 심리적으로 큰 변화를 주게 되었다. 거의 1년 이상의 일요일 전통이 깨어지게 된 것이니까.. 언젠가 이런 종류의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예상을 못한 것은 아니지만 5명 그룹에서 2명이 사라진다는 것은 섭섭한 정도를 넘는 것이었다. 이유는 일요일에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인데, 주식시장의 불안함이 결정적인 요인이었을 것으로 우리는 짐작을 한다. 한때 뜨겁게 오르던 주식 경제에 큰 희망을 걸고 살았는데 어떻게 하루 아침에 이런 커다란 변화를 맞게 되었는지, 사실 예상 밖이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제 갑자기 쓸쓸하게 줄어든 하얀풍차 그룹의 앞날이 불투명해지는 듯하다. 하지만 이런 것을 내가 어찌할 수가 없으니, 그래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자. 레지오 시절부터 우리와 함께했던 이 모녀 자매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이제는 볼 수가 없을 것을 생각하니 싸늘해지는 초가을의 을씨년스러움을 더해 주고, 치매기로 고생하시는 자매님의 앞날이 더욱 염려가 된다.

며칠 전까지 Black Day의 나날을 경험한 뒤라서 그런가, 가느다란 희망의 그림자가 느껴진다.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어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시간이 해결사임에는 틀림없지만 오늘 나누게 된 대화를 통해서 얻게 되는 새로운 깨달음 비슷한 것들도 한 몫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나의 자신만만한 신앙여정, 너무나 나는 자만심의 함정에 빠졌던 것은 아닐까? 겸손과는 거리가 있는 상태로 살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가야 할, 알아야 할 것들이 끊임없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런 여정을 앞서 가보았던 두 베로니카의 각종 경험담을 나는 너무나 쉽게 무시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지.. 내가 걱정하고 피하고 싶던 ‘가상적인 외로움’도 이런 각도에서 보니 크게 비관할 정도는 아닐지도 모른다. 나의 의지에 의한 것들은 생각보다 훨씬 좁고 작은 것인가….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나를 괴롭히는 ‘다가오는 외로움’의 걱정에서 조금은 벗어나게 되었다.

Swing By Tucker, 모처럼 나라니, Ronan, Luke, 그리고 이제는 나에게도 정든 개 Senate를 한꺼번에 모두 볼 수 있는 일요일이 되었다. 성당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딸, 사위, 손자가 살고 있는 장점을 우리는 별로 크게 활용을 못하고 산다는 자책감을 항상 느낀다. 그 동안의 이유는 너무나 더운 날씨지만 이제는 거의 완벽한 기회가 되어서 오늘은 거의 무조건 들렸다. 화장실 훈련 potty training이 거의 성공을 했다는 로난, 아~ 이것이 나는 너무나 신기한 것이다. 나이보다 조금 늦게 시작한 로난이지만 엄마, 아빠는 크게 조급한 모습이 아니다. 무조건 ‘빨리빨리’에 익숙한 우리들에 비하면 참 여유가 있는 것, 이것도 문화적인 차이가 아닐까?

오늘은 의도적으로 로난과 함께 놀려고 노력을 한 셈이어서 나도 아주 기분이 좋았다. 쫓아가며 잡으려는 나의 느려진 모습이 애처롭게  보였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열심히 녀석을 잡으려 달리고 따라갔다. 갑자기 우리를 처음 보는 것처럼 서먹해하는 녀석의 모습이 아직도 역력했지만 Luke는 친가 시댁에 가도 마찬가지라고 위로를 한다. 비교적 ranch house 작은 집에서 개구쟁이 로난에게 전력투구하는 부모들의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보기가 좋았다.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는 유일한 외손자, 겉 모습은 우리와 조금 달라도 이제는 우리의 혈육이라는 실감을 금할 수가 없으니..

오늘 모처럼 보게 된 Luke와 나눈 화제는 거의 우연한 것, 3주 후가 Halloween 이라서 그런 것이었을 것, scary movie에 관한 것. 나 자신에 못지않게 그런 무시무시한 영화를 좋아하기에 비록 가정적인 화제는 아니어도 우리 둘에게는 흔치 않은 언어장벽이 거의 없는  ‘편한’  순간이다. 아이들 어렸을 적 하도 내가 horror movie를 자주 보아서 아이들은 싫어했던 ‘귀신영화’들, 이제는 사위가 나를 대신하는 것이 세월의 장난으로 느껴진다. 오늘 나누게 된 얘기에는 오래 전 Wisconsin 살던시절 일어났던 끔찍한 ‘식인종 살인범 Milwaukee CannibalJeffrey Dahmer 에 관한 영화, 그것을 나라니와 둘이서 보았다고… 허~ 나라니도 이제는 공포영화를 본다는 말인가?

오랜만에 돌아오는 길에 도라빌 H-Mart엘 들렀다. 다른 때 같았으면 나에게도 그곳에서 할 일이 있었겠지만 이제는 그런 일이 없어졌다. 우선 금주 선언 이후 ‘술 종류’은 물 건너 간 것이고, 이곳에서의 food court의 외식도 ‘미친 듯한 inflation’덕분에 가급적 피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유일하게 시간을 보내는 곳은 주방용 각종 물품들 정도… 이렇게 관심이 가는 일들이 하나 둘 씩 사라지게 되면 나중에는 무엇으로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게 될지 궁금해진다.

시월 구일, 한글날… 참 머리 속은 50년 이전으로 돌아가 ‘한글날’이란 세 글자가 100% 자동적으로 연관되는 것을 보면, 누구 말대로 오래된 기억들이 더 오래 동안 기억이 된다는 말이 맞는가..  하지만 그것이 전부, 한글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연중 28주일, 다른 날과 크게 차이가 없는 ‘A Day in the Life, 인생의 하루’를 보낸다는 기대는 오늘 조금 차질이 있었다.

이렇게 보낸 일요일, 평균적으로 B+  정도가 될까? 그런대로 깊은 수렁에서 빠져 나와 하늘 높은 곳에 떠있는 햇빛을 마음껏 감사할 수 있었던 것, 그런 주일 바로 하느님의 날이 아니었을까?

 

Ukrainian Liberal Nationalism, Roswell Road

이제는 하늘의 구름이 조금 그리워진다. 정말 진짜 한 점의 하아얀 물기가 없는 ‘시퍼런’ 하늘이 으스스하게 느껴지는 착각, 더구나 그런 상태로 매일 매일 매일 매일 지나가는 나날들이 이제는 지겹게 느껴지는 것, 나의 응석인가? 그렇다, 삶은 변화, 그것이 없는 것은 시간이 정지한 것 같은 고통일 수도 있고.. A day in the Life 일 수도 있고…

어제 오랜만에 읽게 된 David Brooks 의 NYT column piece: Liberal Nationalism, Ukrainian War에 관한 글을 계속 생각한다. 수박 겉 핥기 단계이지만 아마도 조금 나의 제한된 정치적 세계관으로 더 자세히 분석을 하고 싶기도 하다.  내가 과연 얼마나 Liberalism, Nationalism을  학문적으로 이해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피부로 느끼고 75년의 ‘장구한’ 세월의 세계사는 일단 보았기에 그것이 출발점이니까, 사실 큰 문제는 없다.

Liberalism과 Nationalism은 언뜻 보기에 정 반대의 개념으로 보인다. 한쪽은 progressive하고 다른 쪽은 conservative 개념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와 국수주의가 과연 타협을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 두 생각의 중간 단계를 절묘하게 밟고 있는 예가 바로 현재 Ukraine의 경우인 것이다. 문제는 이 두 대조적인 사상을 어떻게 조화를 시키는가 하는 것인데 지금 전쟁 중인 Ukraine의 case가 바로 그런 과업을 성공적으로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 나라는 결사적으로 자유민주주의를 고수하는 한편 또한 같은 노력을 자국의 영토와 문화를 지키려는 노력에 바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미국의 전통적 민주주의의 형태이기도 하다.  이 column은 이렇게 요약을 한다.

Liberal nationalism believes in what liberals believe, but it also believes that nations are moral communities and the borders that define them need to be secure. It believes that it’s sometimes OK to put Americans first – to adopt policies that give American workers an edge over workers elsewhere. It believes it’s important to celebrate diversity, but a country that doesn’t construct a shared moral culture will probably rip itself to shreds.

 

오늘은 아침미사, YMCA gym routine을 포기하게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 무리.. 라는 사실에 공감이 가기 때문이다. 어제 맞은 5차 COVID 백신의 영향은 생각보다 경미한 것인지 어제 저녁에 일찍 잠자리에 든 것으로 해결이 되는 것 같아서 나는 오후에 gym routine은 도전해 볼 가능성을 남겨 두었는데  결국 오후에 홀로 gym으로 가게 되었다. 나의 ‘노구’가 견딜 수 있을 정도의 ‘자극성 운동’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을까?

요즈음 항상 가지고 다니는 spycam으로 drive를 하며 Roswell Road의 정든 거리를 video에 담았다.  드물게 홀로 drive를 하게 되어서 모처럼 느끼는  기분은… 자유, 자유 바로 그것이었다면 조금 과장된 표현일까? 왜 그렇게 나를 듯한 쾌감이 느껴졌을까? 간단히 말해서 좋고 나쁘고를 떠난,  ‘변화된 삶의 단면’을 느꼈기 때문일 거다.

이 거리를 이렇게 달린 지가 도대체 얼마나 되었나… 1992년에 이곳으로 이사를 왔으니 40년이 넘어가는 엄청난 세월, 이 거리를 잊지 마세요~ 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이곳, East Cobb이 40년 동안 그렇게 많이 변하지 않았던 것도 요새 세상에는 조금 예외적이고…  그래도 정치적으로 보면 이곳도 옛날보다 많이 젊어졌고, colorful해 것도 사실이다. 보수의 본고장이라고 불리던 곳이 지금은 이상적으로 많이 진보 쪽으로 변한 곳이긴 하지만, 아직도 이곳은 family에게는 안전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