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월 이십일일, pancakes, Newt

¶  오늘은 일월 이십일일, 一月 二十一日, January 21st, 1.21 일이일 김신조 무장공비 청와대 습격일 ..그리고 또한 나의 생일이다. 예순 네 번째의 생일이 조금은 피곤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오랜 세월이란 기분이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내가 어렸을 당시 우리들의 생일축하문화는 딱 한가지였다. ‘입학시험 때는 절대로 먹지 않는 미역국‘을 먹는 것 이었다. 1%의 부자들은 모르겠지만 우리 같은 99%는 그것이 전부였을 것이다.

박정희의 경제개발이 한창 시작되던 60년대 말, 조금씩 나아진 경제사정 때문일까, 조금 생일 반찬이 복잡해 지긴 했지만, 생일 카드, cake, candle, presents같은 ‘서구식’ 생일 문화는 거의 없었다. 후에 미국에 와서야 그런 서구식의 ‘요란한’ 생일 문화가 정상적인 것처럼 보이긴 했지만, 최소한 결혼 전까지 나에게는 그런 것들이 우습게까지 보였다. 

B'day presents, book & DVDs사실은, 누가 나의 생일을 기억을 하고 축하해 주는 것이 조금은 계면쩍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그것이 배우자가 생기고, 애들이 크면서 생일은 완전히 조금은 ‘느끼한 행사‘로 발전을 하고, 심지어 부담까지 느낄 정도가 되었다. 그러면서 고국도 ‘완전히’ 서구식으로 변한 것을 볼 수가 있어서, 이제는 ‘전통적’ 생일을 찾아보기는 이제 기억 속에서나 가능해졌다.

물론 전통적 생일이란 말이 거창하지만 ‘검소하게, 가난하게, 미역국만 먹는’ 그런 생일이 그리운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완전히’ 커지면서 다시 그런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데, 이제는 그 애들이 별로 ‘느끼한 행사’에 큰 관심이 없어 보이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생일cake이란 것, 어쩌면 그렇게도 맛이 없을까.. 먹기도 고역이고, 버리기도 아깝고.. 정말 곤란하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나의 생일, 나의 소원대로 비로소 전통적 생일, 미역국만 먹는 생일을 찾게 되었다. 부수입으로 애들은 내가 좋아하는 역사에 관한 것들을 선물로 주었는데, 모두 ‘전쟁역사’에 관한 것들이다. 아빠가 하도 ‘전쟁영화’를 많이 보는 것을 보아서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나를 이세상에 보내주신 하늘에 계신 아버님과 어머님, 감사합니다! 오늘은 저의 어버이 날이기도 합니다.”….

 

¶  Pancake to the rescue: 우리부부는 적어도 10여 년 전부터 아침식사를 ‘절대로’ 거르지 않고, 양식 스타일(boiled eggs, toasted breads, sausage or bacon, fruits and veges and freshly brewed coffee) 로 먹고 점심은 밥과 국을 중심으로 거의 한식 스타일로 그것도 아주 많이 먹는다. 대신 저녁 식사는 정말 적게, 아니면 거르기도 한다.

물론 이것은 나의 정상적인 직장생활이 끝나고 난 이후에 조금씩 자리를 잡았고, 지금은 완전히 습관이 되었다. 이유는 직감적으로, 상식적으로, 아니면 이곳 저곳에서 들어본 이론에 근거해서, ‘많은 양의 ‘저녁식사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 때문이었다. 또한 과일,야채의 양은 많이 늘어났지만, 전체적인 식사의 양은 조금 줄었다. 나이에 의해서 분명히 기본적인 운동량이 줄었기에 이것이 가능한 것이다. 

My own Pancake breakfast

이런 식사의 습관은 분명히 일반적인 건강에 어떤 영향이 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지방에 의한 체중증가‘를 억제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이 된다고 우리는 믿고 있다. 게다가 5년 전부터 아침식사는 내가 ‘혼자’서 만들게 되었다. 처음에는 나보다 훨씬 바쁜 연숙을 도와준다는 근사한 명분으로 시작을 했지만 솔직히 한 달만 계속해도 성공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큰 문제없이 현재까지 잘 버티고 있다.

양식 스타일의 아침식사에 무슨 손끝 맛이 필요하랴? 그저 ‘기계적’ 으로 하는 작은 ‘노동’에 불과한 것을..그러다가 얼마 전에는 pancake을 배우게 되었다. Frozen은 아니더라도 거의 instant화 된 것이라서 그렇게 보기보다 간단한 줄 그 동안 몰랐던 것이다. 판에 박힌 아침메뉴에 변화를 줄 수 있는 pancakes..

며칠 전 연숙이 집을 며칠 비웠을 때 톡톡히 진가를 발휘해서 거의 매일 아침 실습해서 먹었는데, 신기하게도 하나도 질리지 않는다. 한가지 문제는 아직도 연숙이 만드는 것처럼 예쁘지 않다는 것인데,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해결 될 듯하고, 모양보다 맛이 더 중요하니까 큰 문제는 아니다.

 

¶  Romney & Gingrich: 롬니와 깅그리치.. 한글로 표기하니까 조금 ‘요상’한 느낌인데, 이것은 문자 문화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사실은 그들의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들의 미국 대통령 감 후보 가능성이 현재 한창 뜨겁게 달아오른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물론 민주당은 오마바로 완전히 전투대열을 갖추고 현재 공화당 후보의 추세를 관망하고 있는 것인데, 그 동안은 완전히 코믹할 정도로 혼전을 거듭하더니 이제는 조금 무언가 보이는 지경이 되었다. 한 사람은 주지사 출신, 다른 사람은 연방국회의장 출신, 그러니까 아주 heavy급인 배경을 가졌다. 하지만 그들은 아주 다른 사람들이다. 어찌 보면 극과 극이라고나 할까.. 경제통이지만 조금 근시안적인 롬니, 예측불허 성질이지만 미국의 거대한 꿈을 실현하려는 역사통 깅그리치.. 과연 누가 그들의 선택인가?

그간 롬Gingrich-wins South Carolina니는 ‘실질적인 후보’로 여겨져 왔지만 조금 있으면 끝날 South Carolina Primary에서 그들은 완전히 neck-and-neck정도로 예측 불허가 되었다. 개인적으로 둘 중에서 고르라면 아마도 Gringrich가 아닐까.. 그는 역사를 잘 알고 있고, 옛적의 잘못을 다 인정하고, 보기에도 아주 다른 사람이 된 듯한 신선함을 보여주는데.. 과연 어떨지? 한가지 더.. 그가 나와 같은 Catholic으로 개종을 한 것도 한 몫을 하지 않을까?

P.S., 극적인 역전승: South Carolina Primary 개표가 거의 끝나면서, 결국 Gingrich ‘놀랍고도, 압도적인’ 역전승이 확실시 되고 있다. 이것은 완전한 drama급에 속하는 것이고, 다음 차례, 1월 31일의 Florida Primary의 결과가 정말 흥미진진한 것이 되었다.

 

 

Birthday – The Beatles – 1967 – Beatles forever young!

 

새로니가 세상에 왔을 때

새로니의 첫 나들이, 1983년 2월말
김원백씨 wife 매듭전시회장으로 난생 처음 엄마와 나들이 간 새로니, 1983년 2월 말쯤

1월 5일은 우리 집 큰딸 새로니의 생일이다. 1983년 1월 5일, 큰딸 새로니가 태어난 것은 남들도 그렇겠지만 우리 가정에 첫 생명이 태어난 날이라 나이가 들어가면서 조금은 더 생각을 하며 지내게 되었다. 지금에서야 그렇게 의미를 주어가며 생각을 하지만 그 당시는 사실 무언가 ‘인간이면 거쳐야 하는’ 인생사의 하나 정도로 생각한 정도였다. 결혼을 했으면 가정을 가져야 하고, 그러려면 자식이 있어야 함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였으니까..

문제는 몇 명을 언제 낳을까 하는 것인데 사실 우리는 그런 구체적인 계획 같은 것은 없었다. 둘 다 나이가 있으니까 빨리 낳을수록 여러 가지로 유익할 텐데, 그러기에는 신혼의 즐거움이 너무나 짧아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첫딸 새로니는 아주 적당한 때에 태어난 것 같다. 신혼생활을 거의 3년이나 즐겼으니까.. 그 3년 중에 사실 임신기간을 빼면 2년이 좀 넘을까.. 내가 독자라서 사실 어머님께서 은근히 압박을 넣을 줄 알았는데, 그 정도로 유치하지는 않으셔서 전혀 그런 것이 없었고, 그런 것을 연숙도 은근히 고마워하는 눈치였다.

 그 당시 우리는 둘 다 오하이오주의 콜럼버스에 있는 OSU (Ohio State University main campus)에 재학 중이었고, 그렇게 ‘모든 것이 불안정한 학생 신분’에서 첫 아기를 낳는다는 사실을 나는 조금 불안하기도 하고,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런 것들이 어찌 치밀한 계획대로 될까. 게다가 그 당시 나는 학교 공부와 학비를 버는 교수 돕는 일로 한마디로 ‘어디론가 (잠깐) 도망가고 싶은 심정‘ 이 들 때가 있었던 시절이었고, 난생 처음으로 자식을 두게 될 한 가장으로써의 책임감에 짓눌리는 괴로움도 느낄 때였다.

경제적인 이유로 그 당시 나는 새로 부임한 (그러니까.. 끝 발이 없는) Turkey출신 교수 밑으로 들어가서 그가 새로 계획한 Digital Control Laboratory(DCL)를 현실화 시키는데 거의 모든 시간(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을 쓰고 있는데 결국은 어느 날 학과장(Dr Ko, a Chinese)이 와서, 계속 학위를 위한 공부를 계속 할 것이냐, 그곳(DCL)에서 일을 할 것이냐 결정하라고 엄포를 놓고 갔다. 한 마디로 더 이상 그곳에서 일을 하며 시간을 지체하려면 학위를 포기하라는 뜻이었다. 이런 골치 아픈 와중에서 연숙이 임신을 한 것이다.

이후종씨 wife가 열어준 baby shower
이후종씨 wife가 연숙을 위해서 baby shower를 열어주었다

한마디로 1982년은 나에게 학교에서는 어려운 한 해였음이 분명했지만, 다른 쪽으로 우리는 그 해에 천주교를 알게 돼서, 그 해 부활절 때는 우리 부부가 같이 영세를 받는 (축복 받을) 일도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임신이 된 것은 절대로 우연만이 아니었다.

주변의 유학생 부인들 중에서 임신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되면서 (예를 들면 성당교우 유학생 남백희씨) 조금씩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부부유학생들의 기숙사인 Buckeye Village 우리 바로 옆에 살던 물리학과 유학생 배재고 출신 이후종씨 집 ‘마저’ 임신한 것을 알고 우리도 용기를 갖고 결정을 내린 것이다. 우리의 여러 가지 사정이 불안정적이었지만, 모든 것을 무언가에 내 맡긴 기분이었다.

엄마와 첫 생명과의 첫 만남
새로 태어난 생명과 모성의 신비, 1983년 1월

임신 중에 입덧(morning sickness)이 너무나 심해서 연숙은 한 때 고생을 많이 한 편이었지만, 그 당시 새로 얻은 신앙이 그런 어려움에 많은 도움이 되기도 했다. 한 예로, 아플 때마다 축성된 성유를 바르고 기도를 하면 신통하게도 낫기도 했던 것인데, 이것도 우리의 영세동기이고, 역시 임신 중이었던 상대 고완석씨의 부인의 도움을 받은 것이었다.

한편, 신기하고 신났던 때는 태어날 아이의 이름을 지을 때였다. 이것도 부모만이 줄 수 있는 큰 선물이라고 생각이 돼서 신중하게 의논한 끝에 ‘순 한글’ 식으로 짓기로 하고 어머님께 허락을 받는데, 정말 다행으로 어머님도 대 찬성이셨다. 그 당시 한국에서는 한글이름 지어주기가 유행으로 서서히 퍼지기 시작할 때였다.

배우리 씨라는 분께서 그런 운동을 펼치고 계셨는데 어머님께서 극성맞게 그 선생님으로 부터 ‘새로니‘ (새로운+이)란 예쁜 이름을 받아오신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한자이름의 오랜 전통과 호적, 족보 등을 고려하면 조금 미안한 일이었지만, 그 당시는 그렇게까지 느끼지 않았다. 또한 다행히 호적에도 순 한글이 허용이 되어서 큰 문제가 없었다.

Niagara Falls, Thanksgiving Day, 1982
만삭의 몸으로 추수감사절 때, 나이아가라 에서

연숙의 산부인과는 학교에서 비교적 가까운 Riverside Hospital에 있었고 의사는 Dr Baird, 비교적 잘 한다는 사람이었고, 다른 유학생들도 이 의사에 대한 경험들이 있어서 조금 마음도 놓였다. 비록 임신 초기에 심한 입덧으로 한때 고생은 했지만 나중에는 별로 큰 문제가 없었다.

남편이 출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도와주는 Lamaze (라마즈) class에 같이 가서 출산준비 교육도 열심히 받기도 했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연숙은 제왕절개 출산을 하게 되어서 자연분만을 못한 아쉬움도 남게 되었다.

첫 아이라서 그런가.. 연숙은 혼신의 힘으로 임신기간을 절제하는 평화스러운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을 했고, 뱃속에서 움직이는 생명에 대해서 너무나 신기해 하며, 이런 것을 절대로 경험할 수 없는 남자들이 불쌍하다고 ‘자랑’까지 하곤 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고생하는 여자들이 너무 불쌍한데..” 라는 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었지만 그렇게까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때만 해도 연숙은 남자들 사이에 끼어서 함께 소프트볼을 할 정도로 기본적인 체력이 아주 건강해서 제왕절개출산만 빼놓고 모든 과정이 아주 순조로웠다. 하지만 새로니가 태어났을 때 가장 큰 놀라움은 새로니가 여자아이 였다는 사실이다. 연숙은 물론이고 주변에서 모두 남자아기일 것이라고 결론을 낸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이유는 모르지만, 그저 그렇게들 추측을 했는데, 여자아이가 나온 것이다. 그때만 해도 남자아이를 바라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사실 우리는 그런 것은 전혀 없었다. 연숙의 친정은 ‘관례’대로 ‘미안한 마음’을 피력하셨고 우리 어머님은 ‘첫딸의 축복’을 강조하시긴 했지만 속마음은 짐작이 되었다. 내가 독자였으니..

29년 전 1월 초, Columbus, Ohio는 예외적으로 유난히 포근함 속에 가랑비가 내리던 날 갓난 새로니를 안고 Buckeye Village Mahoning Court의 ‘우리 집’에 돌아왔을 때, 그 당시 친하게 지내던 연세대 후배 금속공학과 유학생 김원백 씨의 부인(도성 엄마)가 우리 집을 깨끗이 청소하고 기다려 주었는데 그제서야 모든 긴장이 풀어지면서, 아~~우리가 이제 엄마,아빠가 되었구나, 실감을 했다.

이와 같이 그 당시에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보이는 인간사가 지금 생각하니 왜 이리도 거창하게 무슨 ‘인간의 성스러운 의무‘를 한 기분이 드는 것일까? 결혼을 안 하거나, 자식이 없는 사람들에게 조금은 미안하지만, 신앙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인간은 역시 이렇게 ‘유별나지 않고,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 순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Leader of the Band – Dan Fogelberg – 1982

 

Fast Moving January 2012

¶  와~~ 언제 18일이 되었나? 근래 나의 세월이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느낌이 지배적이지만 그래도 가끔 뜻밖의 즐거움도 가볍게 섞일 적도 있어서 빨라지는 시간에 제동을 걸기도 한다. 이미 지나간 일월의 시간들도 그런 느낌이었다. 두 번의 가족 생일과, 우리부부의 결혼기념일까지 있고 이제는 감각이 많이 희미해졌지만 ‘구정’이란 것도 있어서 잔잔하지만 약간은 상기되는 느낌의 정월이다.

이런 가족적인 것 이외에 내가 조금 관심을 가지는 행사로 매년 일월 하순경 스위스다보스(Davos)에서 열리는 World Economic Forum (WEF)이 있다. 이 Forum의 역사가 생각보다 길지만 내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게 된 것은 불과 10여 년 전부터다. 올해도 1월 25일부터 열리는데, 올해는 과연 어떤 ‘세계적인 정치, 경제, 사회적 처방‘들이 나올지 자못 궁금하다.

아래의 streaming video는 World Economic Brainstorming: Business, Governance and Leadership – New Pressures and Realities 라는 brainstorming session인데 참가자들의 모습이 아주 다양하고 태도가 진지하다.

 

 

sopa-google
Google – Free Internet Dead!

¶  SOPA/PIPA: 읽기도 요상한 이런 이름의 ‘법안’이 지금 한창 떠들썩하다. SOPAStop Online Piracy Act의 약자로 미국 하원(House of Representatives)에서 심의 중이고, PIPAProtect IP(Internet Protocol) Act의 약자로 미국 상원(Senate)에서 심의 중인 법안이다. 그러니까.. ‘소파, 피파’ 로 불리는 이 법안은 조금은 다르지만 골자는 거의 같아서, 인터넷 상에서 저작권자를 ‘강력하게’ 법적으로 보호, 대응하겠다는 것들이다.

물론 이 법안의 의도는 이해가 가고, 필요한 것처럼 들린다. 문제는 역시 이것이다. Devil’s in the detail.. 자세히 들여다 보고, 실행하는 단계에 이르면 문제 투성이고, 심지어는 아주 위험한 ‘지나 친’ 법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법은 전체주의나, 독재국가에서는 아주 쉬울 것이지만, 미국에서는 생각처럼 쉽지 않을 듯하다.

원칙적으로도 이것이 fair하지 않은 것은 바로 이런 비유를 생각하면 쉽다. 도둑이 와서 물건을 훔쳐갔을 때, 도둑을 잡기도 전에 그것을 ‘방조한 듯이 보이는’ 주변을 먼저 처벌하려는 것이다. 그것도 엄청난 처벌로, 그 주변을 ‘일방적으로 폐쇄’ 하려는 으름장을 ‘합법적’으로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아주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너무나 ‘쉽게’ 풀려는 의도가 보이고, ‘물건을 쌓고 사는’ 가진 자, 부자만을 너무나 보호하려는 의심까지도 보인다. 결국은 엉뚱하게 불똥일 튄 사람들, 그것도 세력이 만만치 않은 Google같은 곳도 반기를 들고, 이제는 ‘대부분 일반인’들까지 반대를 하고 나서게 된 것이다.

요새, 가진 ‘부자들'(1%)과 못 가지 대부분 사람들(99%)이 사회적, 심지어 정치적으로 부각이 되고, 미국 대선에서도 쟁점이 될 듯한 것을 보면서 이 법안도 그런 각도에서 보면 조금 더 깊게 이해를 할 수 있다. 인터넷의 raw power를 보여주기 위해서 GoogleWikipedia는 이 법안에 대한 인상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Google은 ‘검은 사각형’을 보여주는데 아마도 인터넷의 죽음을 상징하는 ‘관’이 아닐까, 그리고 Wikipedia는 숫제 site의 service를 폐쇄해 버렸다. 조금은 극단적이지만, 그 정도로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일 것이다.

 

¶  올해는 작년에 비해서 현재까지 날씨가 아주 한마디로 ‘양반’이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Weather Channel이 별로 돈을 못 벌고 있다는 사실이다. 날씨에 관한 커다란 뉴스가 많아야 그들이 돈을 벌 터인데, 매일매일의 별로 특별하지 않은 일기예보 말고는 별로 그것을 볼 필요조차 없는 그런 겨울인 것이다.

겨울이 아직도 많이 남았지만 작년에 비하면 정말 조용하고, 특히 작년 이곳 아틀란타 지역의 폭설을 생각하면 지금도 조금 흥분이 될 지경인 것이다. 작년의 아틀란타 폭설은 아마도 100년에나 오는 그런 것이었고, 완전히 일주일 동안 이곳의 경제활동을 stop시킬 정도였다. 그래서 이름도 snowpocalypse (snow + Apocalypse) 나 snowmageddon (snow + Armageddon)등으로 불릴 정도다.

사실은 작년은 근래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눈이 내렸고, 전세계적으로도 일본재해, 미국의 killer tornados등으로 일기에 관한 뉴스매체는 쉴 틈이 없을 정도였다. 문제는 최악의 경제상태로 정부레벨에서 이런 재난을 대처할 재력이 없다는 것인데, 천만 다행으로 Mother Nature가 아직까지는 잘 협조를 하고 있고, 장기적 예보에도 큰 변화가 없는 듯해서 다행이다.

 

Atlanta Snowpocalypse 2011

작년의 아틀란타 폭설은 뒤따른 강추위로 일주일간 전혀 녹지 않았다

 

 

 

When We’re Sixty Four..

Happy Birthday, Kunjuh!

형제와 같은 친구 양건주, 다시 돌아온 생일을 축하하고, 건강한 한해가 되기를..

 

2012년 1월 15일, 그리운 동창 친구, 양건주의 생일을 축하한다. 아버지 세대 같았으면 ‘정말 오래 살았다’는 축하겠지만 완전히 한 세대가 흐르면서 그런 기분은 조금씩 사라지는 듯 하다. 꼭 오래 사는 것이 최선은 아닐지라도, 기왕 조금 길어진 수명은 소중히 써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각자가 그렇게 덤으로 주어진 선물을 어떻게 써야 할 지는 모두 다르겠지만, 아주 작더라도 개인적, 사회적, 역사적인 유산은 조금 남기고 갈 수 있게 노력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 옛날 비틀즈When I’m Sixty Four를 들을 때, 과연 우리에게 그런 때가 올까 했지만 시간과 세월만은 참으로 정직하구나. 바로 그런 순간들이 우리들에게 왔으니 말이지. 다시 한번 그리운 친구 건주의 예순 네 번째 생일을 축하 한다!

 

 

 When I’m Sixty FourThe Beatles1967

 

GD SOB, Vista Security 2012

Vista Security 2012

The rogue malware “Vista Security 2012” looks like this

You God Damn, Son of Bitch coward, losers whom I hate most in universe, they are the people who intentionally infects people’s computer with this rogue malware called Vista Security 2012. When my daughter called home scared complaining about her infected Vista laptop, I knew it was one of those fairly easy infections. But it was wrong when I actually saw it myself. In a word, the Windows becomes virtually useless, only thing you can do was clicking OK to purchase their ‘anti-malware’ problem! Probably some eastern European mafia hired some third-rate malware writer cheap, wants free money. Knowing the infected Vista laptop is almost impossible to use for finding some help on Internet, I found how other people handle this trash, and some removal tips from my own PC. To be honest, even those sites looks like eastern European mafia showing so many misleading ads. With desperation, I actually tried following their tips, but again it looks like either long process or eventually futile attempt. Then, I came to think of it.. SYSTEM RESTORE built in feature on Vista. This, from my experience, would almost always works, nixing any worst infection by going back to previous PC snapshot mode. But again, I could not ‘execute’ the SYSTEM RESTORE on fully running Windows screen simply because the rogue malware blocks every attempt to do that. Only possible method in this case is to log into SAFE PROMPT mode (hitting F8 key while boot). When you’re on DOS PROMPT screen, run the system restore program by typing “RSTRUI.EXE” (without quotation marks). Then the PC may look ‘dead’ but after some time, it will run the SYSTEM RESTORE. This is what I did, still believe the best, cleanest, and easiest method.

 

 

What’s wrong with the newly released PIAF2 with CentOS6.2?

Nerd Vittle's PIAF2 on CentOS6.2

Nerd Vittle’s PIAF2 on CentOS6.2

Question: Am I the only one in the world whose installation of newly released PIAF2 (PBX-in-a- Flash 2)on PVE (Proxmox virtual machines) miserably keeps failing?

This feels so strange because I can not remember if it ever failed to install before. The problem is that after the first phase of installation, it just goes the infamous #bash prompt meaning the following phases simply refuse to begin. I first suspected the problem with network connection (ethernet, IP etc), but when I do ‘ifconfig’, it correctly displays dhcp‘ed IP address and ethernet connection information. I have repeated this process at least 4 times before declaring something is gravely wrong with this latest release. It looks to me not even ready for the usual internal alpha-release stage, how they dared?

 


HAPPY NOTE: I’m sorry, PIAF2! Again, it’s not your fault but my own ‘not-so-perfect’ installation setup. I, somehow, suspected this for some time, but not was so sure. As it turns out, my network’s dhcp server didn’t provide DNS server info correctly, rather it did not supply one! Later PIAF2 installation scripts also was at fault in that it simply gave up trying to connect PIAF server too early without giving any hints what’s wrong! Just one lousy error message would have saved a lot of my wasted time. After I replaced current dhcp server (which is a simple DSL router) with a dedicated DD-WRT router which has more robust dhcp server in it. Now, this latest, greatest release installed without any glitch, I am now eager to find out what’s in there.

 

 

임진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2년 임진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2년 임진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흑용의 해라는 새해, 용의 해 임진년이 밝았습니다. 비록 자주 연락을 할 수 없었던 지난 한 해였지만 항상 생각 중에, 기도 중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멀리 타향에서 사귄 친지들이지만 세월의 흐름과 함께 허물없이 느껴지는 친구들, 항상 멋진 host역을 열심히 하시는 서울고, 서강대 최동환씨네, 진희 아빠 엄마, 항상 커다란 동작과 유머, 그리고 Clark Howard 뺨치는 소비경제의 도사 서강대 윤재만씨 부부, 멋진 노래만 골라서 잘도 부르는 이태리 가구점 Ohio State 동창 전성준 사장님 부부 올해는 경기가 잘 풀려서 순조로이 business가 풀려나가기를 바랍니다.

제가 항상 은총을 듬뿍 받는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자비의 모후 레지오, 단원 자매 형제님들: 김용란 안젤라 단장님, 안애자 로사 부단장님, 이연숙 베로니카 서기님, 은효순 요안나 회계님, 이길영 아가다 자매님, 김희대자 고레따 자매님, 이남순 바울라 자매님, 장춘자 실비아 자매님, 우원실 마리아 자매님, 우동춘 요셉 형제님, 그리고 얼마 전 신상의 이유로 퇴단을 하셨던 이순섭 마리아 자매님과, 송희빈 젤뜨루다 자매님.. 너무나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새해, 더 건강하시고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송년, 찢어지는듯한 외로움..

송년, 2011년.. 결국은 왔다. 결국은.. 이제부터는 내일을 못 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살려고 하지만, 조금 더 확대를 해서 내년을 못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한다. 2011년이 나의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살았어야 했다. 하지만 은근히 2012년을 의식도 하며 살았다. 그럴 확률이 높다는 것을 은근히 의식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정말 이것은 찢어지는듯한 외로움이다. 그렇게 외롭게 느껴진다. 곁에 연숙과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도 소용이 없다. 나에게 엄마와 누나가 옆에 없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나는 정말 광활한 이 우주공간에 외톨이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왜 이렇게 나는 더 성숙하지 못할까? 엄마는 이미 하늘나라로 가셨다. 그러니 내가 죽기 전에는 다시 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도 그래도 보고 싶다. 나를 진정으로 위로해 줄 만한 사람은 엄마밖에 없기 때문이다. 누나는.. 있어도 볼 수가 없다. 어찌해야 할까? 억지로라도, 모든 것 다 잊고, 다 포기하고 고향에 간다 해도 나의 꿈의 고향이 이미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나는 정말 슬프기만 하다. 내가 상상하는 고향과 친구들은 사실 내가 쓴 소설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한다. 아마 그것이 사실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정말 외롭다. 나는 혼자다. 나를 아는 사람은 이제 세월의 횡포로, 거리의 횡포로 다 피안의 세계로, 나의 상상의 세계로 다 사라진 것이다. 이런 꿈에서 깨어나기 전에는 이런 고통이 계속될 것이다. 그것이 나의 운명이다. 아무도 이런 것에는 나에게 도움이 될 수가 없다. 그것을 나는 안다. 내가 매듭을 풀어야 한다. 나 혼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외로움, 과연 언제부터 내가 씨를 뿌렸을 까. 내가 무엇을 크게 잘 못하며 살았을까? 그렇게 내가 잘못 했을까..

모든 것이 다 나로부터 사라졌다. 나는 친구가 이제 단 한 명도 없다. 친척도 다 사라졌다. 가까운 누나도 나를 모른다. 아니 그곳에 갈 수도 없다. 아니 간다 해도 그곳이 이미 내가 그리는 고향이 아닐 수도 있다. 아~~ 나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고향에 계신 사랑하는 가족 친지들께,

HappyNewYear-2012-1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로니 가족드림

 

이천 십일 년,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고향 땅에 잠들어 계신 사랑하올 우리 어머님, 북녘의 어디에 잠들어 계시는지도 모르는 우리 아버님.. 생사도 모르는 우리 고모님 가족들, 원산 토박이 어머님 가족들, 항상 기도 중에 뵙고 뵙습니다.

나의 유일한 혈육, 편찮으신 우리 사랑하는 누님과 오랜 세월 저희 가족을 돌보며 사신 존경하올 매부님, 이제는 이렇게 산 것이 운명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그 동안 저희 가족들에게 베풀어 주신 헌신적 사랑을 그날까지 기억하며 살겠습니다. 그리운 조카들, 준형과 은지, 이제는 한 집안의 가장들이 되었구나. 항상 생각을 하며 산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누님 가족들 부디 건강하고 행복한 새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우리 아이들의 외가댁 친척분들, 처남 흥식 형님, 형수님과 처형, 동서형님, 처조카 들: 처형 가족 분들, 형진, 혜진과 수경이네 가족들 기도 안에서 항상 듣고, 보며 산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새해에는 모두가 건강하고 하는 모든 일들이 다 잘 되기를 기원합니다.

 

Yes Vonnie, you can walk Roo the cat!

 

매일 우리 집의 ‘깡패’ 강아지 Tobey와 동네를 산책하면서 조금 의아했던 사실은 왜 고양이와 산책하는 사람은 하나도 볼 수가 없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런 것을 조금 안다는 사람에게 물어볼라치면 곧바로 조소의 눈길을 느끼게 된다. 한마디로 ‘말도 안 된다’ 라는 표정이었다. 그러다가 올해 이곳에 엄청난 눈이 왔을 때, 어떤 사진에 ‘고양이와 걷는’ 것을 보게 되었고, 어제는 드디어 prestigious online New York Times의 video를 보고 이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재확인 하였다. 문제는 어떻게 training을 시키느냐는 것인데..

 

Yourduino becomes Notmyduino

This is one good example of how a nice-sounding family-friend run small business on Internet. The business is has no physical store as I know, but very good web-based store along with sweet-looking background friend-family story. They apparently are electronic enthusiasts at least if not full engineers selling mostly Arduino related small electronics parts to Arduino community. So far so good.

 After long hiatus from exciting electronics building days, I decided to start with this wonderful, inexpensive Arduino open-source micro-controller boards. First, I got introduced to MakerShed and SparkFun which sells good-quality Arduino parts, and bought some basic components like Arduino board, ZigBee radios from them. Their prices were very reasonable if not expensive.

 Then comes yourduino.com.. My impression was like: good international friends turn their passion of Arduino into good global-reaching business taking advantages of ‘dirt-cheap Chinese labor’. Well, looks good and sounds good until I found out otherwise. What I have not realized that the proprietors have near-zero control over their own stock, fulfillment process, record-keeping etc.. In short, they have no idea what they have shipped for my order! This is exactly “you get what you have paid for” situation. In conclusion, I have no intention to have another business with this virtual shop in future.

 

State of Family

¶  이산가족의 외로움:  크리스마스 이른 아침, 연례 ‘가족 선물포장 풀어보기 의식’ 을 무슨 엄숙하고 의무적인 행사처럼 치른다. 이런 행사는 이제 거의 자동적으로 하는 기분이 들 정도로 습관화 되었다. 이곳에서 오래 살게 되면 모이는 가족이 한 명 이상이면 (그래야 모임이 되는 것이지만) 이날 아침에는 무언가 ‘교환’을 해야 제대로 된 사람 대우를 받게 된다. 이것을 소홀히 하게 되면 그야말로 ‘왕따’를 당할 정도가 아닐까?

문제는 너무 이런 ‘세속적 의식’에 빠져서 왜 그렇게 해야 되는지 거의 잊을 정도가 된데 있다. 이래서 바티칸의 교황님도 크리스마스 season이 되면 계속 우려를 하시는 것이다. 선물을 사려고 store밖에서 새벽부터 문 열기를 기다리는 군중들에 대한 뉴스를 보면 이건 완전히 ‘정신이 나간’ 군상처럼 보일 정도다. 사랑하는 가족, 친지에게 조금이라도 ‘좋은 선물’을 주려고 발버둥치는 의도는 충분히 짐작은 하나.. 한마디로 완전히 지나친 모습들이다.

그와 다른 면으로, 이날이 되면 어찌 그렇게 쥐 죽은 듯한 고요와 평화의 기분이 느껴질까.. 분명히 99%의 ‘군상’들이 가족, 친지들과 함께 모여있을 것이다. 그런 모습이 피부로 느껴진다. 길거리와 심지어 동네의 산책길도 텅텅 비어버리니까.. 이것은 가족간의 사랑을 보여주는 부러운 전통일 것이고 앞으로도 계속 계속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한편으로 이맘때가 되면 ‘대가족’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에서 제일 제일 부럽고, 질투가 나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 조금 더 고통스럽기까지 한 것은 현재 우리가 알고 비교적 가까이 지내는 분들이 대부분.. 대가족 환경이라는 것이고, 그래서 더 상대적으로 우리는 ‘작은 가족’의 외로움을 더 느끼게 된다. 그들이 부럽다 못해서 질투가 날 정도니까..

딸 둘 대신, 아들 딸 구별 없이 5명 정도를 낳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우습고 쓸데없는 상상도 해본다. 현재 5명의 자녀는 사실 ‘촌스럽게’ 까지 느껴지기는 하고 그들의 키우는 것 장난이 아닐 테지만, 그래도 덜 외로울 것을 생각하면 감수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면 extended family라고 할 수 있는 친척들은 어떨까? 직계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가까운 가족들이다. 문제는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고 할 정도로 멀리 사는 친척들이 이럴 때 느끼는 외로움에 큰 도움을 줄 수는 없는 것이다. 골치 아픈 친척들 때문에 골치를 썩는 사람들도 보았지만, 우리에게는 그런 것도 사실 응석받이처럼 들린다. 그들은 작은 가족들의 ‘외로움’을 느껴보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의 친척들은 비록 Internet등으로 옛날에 비해서 조금은 가깝게 느낄 수도 있지만, 역시 그것은 virtual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의 관계는 절대로 virtual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로 입김을 느껴야 그것이 진정한 relationship인 것이다. 그래서 타향살이란 것은 보기보다 힘든가 보다. 하지만 이제 와서 어찌하랴.. 이것이 운명이란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것을..

 

¶  내가 받은 선물은:  올해는 비록 모든 경제활동이 쪼들리는 때였지만 그것에 큰 상관 없이 풍성한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없는 것이 거의 없이사는 요새, 무슨 선물이 필요할까, 그래서 더 고르기 어려운 것이 선물이다. 한마디로 없어도 되는 ‘사치품’에 가까운 선물들.. 하지만 가끔 뜻밖의 것도 있다. 그 예로 하모니카.. 오랜 세월 잊고 살았던 하모니카, 그것도 아주 작은 하모니카를 받았다.

어렸을 때 그것을 얼마나 갖고 싶어했던가? 아직도 잊지 않은 곡이 하나 있어서 즉석에서 ‘연주’를 했는데, 정말 하나도 틀리지 않고 불 수 있었다. 완전히 전자화 된 picture frame 을 받았는데, 편리한 것이 많은 것은 알지만 글쎄, 나는 이것이 ‘사치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멋진 얇은 스웨터, 이곳의 날씨에 딱 맞는 것이라 아주 실용적인 선물, 그것과 더불어 나이가 들면서 신경을 쓰게 되는 ‘목 주위’의 추위를 해결해 주는 스카프.. 이것도 실용적이다.

사학 전공의 나라니가 ‘조지아 시골의 뒷얘기’ 에 관한 책, The Georgia Rambler를 선물했는데, 이곳 조지아의 시골은 남북전쟁에 관련된 시골의 숨어있는 ‘전설’들이 많이 있어서 아주 흥미로운 책일 듯 하다. 그 중에 코카콜라의 성분에 관한 비법이 적혀있는 책도 있어서 더 기대가 된다.

 

Christmas presents, 2011

스웨터, 스카프, 하모니카, electronic picture frame, book, candy..

 

¶  염라대왕과 김정일: 지금 쯤 염라대왕 앞에서 김정일 개XX는 어떤 모습을 하고 변명을 하고 있을까? 아마도 “염라대왕 동무.. 조금만 봐 주시라요” 하고 말을 시작할 듯 하고, 염라대왕은 이미 아바이 동무 김일성 개XX가 먼저 와 자리를 잡고있다고 알려줄 듯 하다. 김정일 개XX 장례식에 ‘남조선’의 조문객이 간다고?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것이다. 이 미친 놈들은 과연 어떤 인간들인가?

역사 박물관에서나 찾을만한 현대판 세습제로 인민들을 굶어 죽인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서른 살도 안 된 젖먹이 김정운 개XX를 차기의 ‘왕’으로 만든다고.. 참.. 북조선 닌민 동포 동무들이여.. 어쩌면 그렇게도 참을 성이 많습네까? 지렁이 보다 못한 이 한심한 동무들아.. 죽을 때가 되면 그래도 소리라도 내고 죽으라우요!!

 

아이 트리플 이, 스펙트럼

¶  아이-트리플-이 스펙트럼.. 이것은 IEEE Spectrum의 한글 표기이다. 여기의 IEEE는 미국에 본부를 둔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전기,전자공학도 학회를 뜻하는, Institute of Electrical and Electronics Engineers의 약자이고 읽을 때는 대부분이 I triple-Eee로 말한다. 이곳에는 아주 많은 세분된 학회들이 모여있는데, 물론 전기,전자공학에 관련된 것 들이다. 이 학회의 ‘간판’ 격 회지의 이름이 바로 Spectrum magazine이다.

이 학회에 가입을 하면 (년 회비를 내면), 이 ‘잡지’는 무조건 받게 되고 분과 학회에 가입된 곳의 회보(주로 논문집)를 따로 받는다. 나는 이곳에서 학교에 다닐 때 거의 ‘자동적’으로 학생회원으로 가입을 했다가 졸업을 하면서 일반회원으로 남게 되었는데, 거의 10+년 전부터 이곳에서 나오게 되었다. 상당히 비싼 연회비로 그렇고, 내가 직장에서 하는 일 (embedded systems)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곳에서 나오게 되면서 그리 아쉬운 것을 못 느꼈지만, 단 한가지.. 이 간판 격 월간지 Spectrum magazine만은 조금 아쉽게 느껴졌다. 이 월보는 상당히 그때그때의 인기를 끄는 기사들을 아주 ‘쉽게’ (일부러 ‘수학’ 공식을 피한 듯한) 계제하곤 해서 ‘누워서 편하게’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 오랜 세월을 잊고 살다가, 며칠 전 정말 우연히 이곳을 website에서 보게 되었고, 정말 고향을 찾은 기분을 만끽하게 된 것이다.

다행인 것은 다시 회원으로 가입을 하지 않고, 아주 질 높은 technology, 특히 consumer electronics에 관련된 기사를 보게 된 것이다. 언제까지 이곳이 ‘무료’일지는 모르겠지만 (New York Times처럼), Google처럼 우리 같은 99%를 조금 더 생각해 주는 그런 ‘자선’적인 자세로 일관하지 않을까.. 희망해 본다.

ieee-spectrum

IEEE Spectrum mag site

¶  20년 전통의 Nativity scene:  우리가 사는 subdivision에 이사온 지도 내년 3월이면 벌써 20년이 되어간다. 이곳에서 우리 아이들도 거의 다 자란 셈이고 우리도 늙은 청춘을 다 보낸 느낌이다. 별로 크지 않은 곳이라 사실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 대개 알 정도가 되었고, 우리는 이제 ‘고참’ 축에 속하는 집이 되었다.

이곳에서 크리스마스를 지낸 지도 그렇게 오래되었는데, 그때마다 20년 동안 변함없이 앞 뜰에다가 아기예수님 태어나신 모습으로 장식을 한 집이 있었다. 물론 독실한 크리스천 일 것이고, 걷다가 인사도 자주하는데, 내가 놀라는 것은 어쩌면 20년을 한해도 거르지 않고 ‘똑같은’ 장식을 똑같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 없어지는 날은 우리 동네의 큰 뉴스거리가 될 것이다.

20 years of Nativity

2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예수탄생 전시

 

¶  Wordle: 워들?  아마도 word riddle을 줄인 말이 아닐까? 이 site에 가보면 금방 알 수 있겠지만, 이것은 blog site에서 많이 쓰이는 에 많이 쓰이는 computer software인데, 쓰이는 빈도에 비례해서 글자, 단어를 여러 가지 모양으로 보여준다. 이것을 보면 어떤 단어가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지 한눈에 들어오는데, 문제는 아직까지 한글을 모른다는 사실이다.

이 프로그램을 만든 사람은 IBM에 근무를 하며, 여가시간에 이것을 만든 모양인데, 아깝게도 이것은 open source  software가 아니고 IBM에 그 copyright가 있어서, 한글용으로 바꾸거나, 한글 기능을 첨가하는 것이 쉽지 않을 듯하다.

My current interests in Wordle

My current interests in Wordle

 

Goodbye, Vanderbilt & Nashville

¶  Goodbye Nashville: 지난 주말에는 이번에 Peabody College at Vanderbilt University에서의 1년 반 teacher’s degree (석사과정)가 끝나고 졸업을 하게 되는 큰딸 새로니의 이사를 도우러 Nashville에 연숙과 다녀왔다. 물론 우리의 ‘짐 차’ Plymouth Voyager van을 가지고 가서 새로니 이사 짐을 모두 싣고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작년 여름에 Washington DC에서 이사를 내려 올 때도 똑같은 과정을 겪어서 사실 조금 육체적인 ‘노동’을 하는 것 외에는 익숙한 것들이었다. 편도 3시간 반정도의 드라이브가 이번에는 덜 지루했던 것이, 처음으로 연숙과 같이 묵주기도를 하며 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장거리 드라이브는 ‘절대로’ 문제가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되기도 했다. 

Vanderbilt off-campus Apartment, Westboro
일년 반을 산 off-campus 아파트 Westboro, Nashville

그 동안 집에 다녀갈 때마다 조금씩 짐을 가져 오곤 했지만 이번에는 주로 무겁고 큰 것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과연 다 가져올 수 있을까 우려를 했지만, 기가 막히게도 잘 싣게 되었다. 새로니는 일년 반 동안이나 Nashville의 off-campus apartment에서 혼자 살았지만, 요새의 일년 반은 예전의 한달 반 정도로 짧게 느껴져서 나중에 그곳에 그렇게 기억에 남으려나 하는 생각도 들 정도다.

생각보다 짧은 일년 반이 지나고 보니, 우리로써는 조금 서운한 기분이 드는 것이 country music 의 본고장을 제대로 한번 못 보았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조금만 부지런 했으면 볼 수도 있었겠지만, 이제는 조금 늦지 않았을까? 새로니는 이제부터 teacher’s job을 구해야 하겠지만, 하도 피곤한지 우선은 아무것도 안하고 휴일을 즐기겠다고 미리 선언..

다행히 동생 나라니의 condo가 비교적 커서 그곳으로 대부분의 짐을 옮겼고, 당분간 그곳에서 같이 살자고 해서 아마도 휴일이 다 끝나면 그곳에서 동생과 같이 있게 될 듯하다. 안정되고 편안한 ‘연방 공무원’ 자리를 걷어차고 ‘고생길’이 훤한 선생님의 길을 택한 큰 딸의 사명감 있는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지만, 다른 편으로는 조금 측은한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다… Go Serony Go!

 

New & Callista Gingrich at Capitol
Newt Gingrich와 현재의 부인

¶  Catholic Newton: 참, 세상 오래 살고 볼 것인가? 최근 가열되고 있는 이곳의Republican Primary (공화당 예비선거)을 보며 이것이야 말로 ‘원숭이들의 서커스’ 가 아닌가 생각을 하며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한 마리가 박수를 받으며 올라가면 사소한 실수로 떨어지고, 다음 것이 올라가 똑같은 짓으로 떨어지고.. 한 마리 한 마리에게 한번씩 떨어질 기회는 차례차례로 주어진다.

완전히 떨어져 나간 놈(like the pizza man, Herman Cain)도 있고 나머지들은 현재 올라간 놈을 끌어 내리려 각가지 모양으로 날 뛴다. 이것이야 말로 서커스가 아닌가? 현재 높은 줄에 올라가 안 떨어지려 안간 힘을 쓰는 그래도 조금은 침착하고, 덜 미친 놈처럼 보인 것이 바로 Newt(Newton) Gingrich인 것이다.

이 인물은 1990년대에 House Speaker (연방 하원 국회의장)를 역임한 화려한 경력을 가졌고, 한때는 ‘지적이고, 혁신’적인 idea로 많은 주목도 받았지만, 그에 반하는 ‘지독히 이기적인’ 결혼, 이혼경력, 허세, 위선, 돈 문제로 항상 ‘도덕적 결함’의 대표적인 인물로도 지목이 되어서 미국 대통령이 되기는 힘든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가 이번 공화당서커스에서 지독히 운 좋게 상승세에 있으니..내가 사는 곳 구역 연방하원이라 그는 낯 설지 않다. 언제는 가까운 supermarket Publix에서 wife ( 부인)와 grocery를 보고 checkout counter에 서있는 그를 본 적도 있었다. 비교적 서민적인 인상을 보여 주기도 했다.

사상이나 정책적으로 그는 사실 나머지 ‘미친놈’들 보다는 훨씬 온건파에 속한다. 그래서 나는 그를 그렇게 혐오하지 않는다. 이데올로기 속에서 헤매는 공화당에 이런 ‘실용주의자’는 나오기 참 힘든 상황인데, 그가 홀연히 물 위로 떠오른 것이다. 그는 대학교수를 역임한 ‘지식인’이고, 진보적인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과감한 용기를 보여 주기도 했다.

그가 생각하는 가톨릭의 ‘매력’은 내가 보는 것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 또한, 그의 ‘이민법’에 대한 생각(제한적 사면)은 공화당 내에서는 거의 ‘치명적‘인 생각으로 또한 과감한 용기의 표현일 것이다. 그저, 그저, 인정머리 없이 여자들을 ‘걷어 찬’ 그의 ‘철없는’ 과거가 그의 현재에 가장 걸림 돌인 것이다.

생각한다.. 혹시 혹시 이 인물이 지금 현재 미국에서 오바마보다 더 적합한 인물이 아닐까 하는.. 의외의 생각.. 그렇게 미친 생각이 아닐지도 모른다.. 참, 세상 오래 살고 볼지어다.

 

¶  Silver Bells: 이맘때가 되면 가끔 생각나는 것, 내가 제일 좋아하는 크리스마스 캐롤은 과연 무엇일까? 여러 곡이 있다면 그 중에서 제일 좋은 것은 어떤 곡일까? 이 우리에게 친숙한 캐롤들은 물론 대부분 미국에서 불리고 알려진 것들이 육이오 동란 이후 미군들에 의해서 우리들에게 알려진 것들이다.

하도 어렸을 때부터 들었던 것이라 사실 이것들이 ‘남의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지 못하고 자라서 아직도 친근하기만 하다. 개신교의 찬송가 스타일 것들은 물론 다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조금 더 ‘멋있던’ 것은 역시 그 이외의 것들이다. 예를 들면 영화 주제곡에서 나온 것들, 전래 민요에서 유래한 것들이다.

이런 노래들은 학교 다닐 시절(주로 고등학교, 대학교) 성탄절이 될 즈음이면 성탄 하루 이틀 전부터 라디오를 통해서 흘러 나오고 대부분은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요란하게 나오곤 했다. 그 중에 Bing Crosby의 classic carol White ChristmasJingle Bells같은 것은 너무나 알려져서 한창의 젊은 나이에는 조금 진부하게, 그러니까 ‘촌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대학 2학년 무렵, 1968년 경, 우리에게 새로운 carol Silver Bells가 서서히 알려지고 퍼지고 유행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때부터 그 곡이 나에게는 제일 좋아하는 크리스마스 캐롤이 된 것이다. 이유는 물론 확실치 않지만, 그 당시 우리시대를 대표하던 ‘통기타 듀엣, Twin Folios‘, 그러니까 송창식과 윤형주가 그것을 유행시키는데 일조를 해서 그렇지 않았을까.. 생각도 한다. 그들이 그 곡을 record를 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기억에 그들의 Silver Bells는 미국의 내노라 하는 가수들보다 훨씬 나았던 것이다. 최소한 그 당시 내가 듣기에.. 이런 확실치 않은 이유로 아직까지도 나는 이 곡을 소중히 추억한다.

 

Andy Williamsrendition of Silver Bells

 

Christmas tree, 2011

Christmas tree & lighting, finally:   휴~~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늦게’ 하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성탄 일주일 전에는 집 안에 무언가가 반짝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까지는 우리 집 de-facto Christmas-tree-in-chief인 작은 딸이 자진해서, 도맡아서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더니, 역시 세월이 흘렀는가.. 부모 집에서 살지 않는다는 이유로 올해는 우리보고 하란다. 큰 딸애는 이런 것에 원래 재주도 없고, 흥미도 없어서 며칠 후에 집에 온다고 해도 할 가망성이 없어서 오늘 우리들이 손수 하게 된 것이다.

Living Room Christmas tree, 2011
2011년 성탄절을 기다리며..

이런 크리스마스 decoration들은 일찍 할수록 노력의 대가를 더 오래 즐길 수 있다. 10년 전만 해도 ‘젊은 혈기’로 사다리까지 동원해서 2층 지붕의 처마를 따라서 icicle(고드름) lights를 달기도 했는데, 그것은 꼬박 반나절이나 걸리는 대 작업이었고, 지금은 사실 엄두가 나지를 않는다.

하도 주위에서 높은 사다리를 조심하라는 얘기도 그렇고 사실 사다리 사고로 크게 다치거나 죽은 case도 가까이서 들어서 내가 하고 싶어도 걱정하는 식구 때문에 더 엄두가 나지를 않는 것이다. 이런 ‘겁쟁이 심리’도 나이를 먹는 curse중에 하나일 것이다.

사실 이런 가시적인 장식들은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너무나 ‘귀찮게’ 느껴지는 것 같아서 별로 느낌이 좋지 않다. 왜 그럴까? 한마디로 ‘극과 극’이라고나 할까, 성탄 다음날만 되면 하루아침에 몇 주간의 들떴던 기분이 땅에 꺼지듯 하는 그런 것, 나는 참 싫었다. 그런 사실을 미리 알아서 그럴까.. 그런 ‘세속적’으로 들뜬 기분들의 <시한부 운명>을 미리 알기에 싫은 것이다.

나이에 의한 축적된 기억과 경험들의 장난일까? 이런 것들에 대한 처방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저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며 가급적 조용히 지내는 것이다. 이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이제 성탄의 의미를 다른 각도에서 보는 것에 조금 익숙해지면서 조금씩 쉬워지고 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에 얽인 지난 간 추억을 추적해 보는 것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더 큰 즐거움이 되어감을 느낀다.

 

십이 십이의 추억

잿빛 하늘이 완전히 holiday기분을 유발하게끔 하는 12월 12일.. 그러니까.. 십이십이 로구나. 연관이 되어서 십이십이 사태.. 아니 전두환의 쿠데타. 그때가 1979년 12월 12일이었던가? 이날이 되면 나는 잊지 않고 그때를 생각하게 되고, 그것이 벌써 와~~ 32년 전이 되었다. 그 해 가을, 10월 26일에 유신정권의 총수 박정희 대통령이 심복부하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해서 피살이 되었고, 그를 수사하던 또 하나의 박정희 심복이었던 전두환이 그날, 12월 12일에 무혈 쿠데타로 흔들리던 정권의 권력을 잡은 것이다.

 

 

당시 추억의 oldie, Heart of GlassBlondie – 1979

 

그 해, 1979년 초가을에 나는 일시 귀국을 하고 서울에 머물고 있어서 이 격변하던 역사의 소용돌이를 몸소 다 겪은 셈이 되었다. 지금은 완전히 없어진 우리 집 세운상가 아파트에 머물면서 그 당시 나는 가끔씩 맞선을 보기도 했는데 이런 ‘대형 사고’가 터지면서 완전히 모든 관심은 사실 10.26 사태에 쏠리고 있었다.

박정희가 아무리 독재자라고는 하지만 국민정서는 그것보다는 그가 불쌍하다는 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영부인 육영수 여사도 오래 전(1974년)총격으로 사고를 당해서 더 그런 생각이 우세했을 것이다.

 

 

Sultans of SwingDire Straight – 1979

 

이런 상황에서 맞선을 계속 보는 것도 쉽지를 않아서 포기를 하려는 때에 우연히 누나가 인연이 되어서 지금의 연숙과 만나게 되었는데 그때가 11월 말쯤이었을 것이다. 그때의 일련의 일들은 사실상 우리 가족의 역사가 되었고, 그 역사의 일부로 십이십이사태도 자리를 잡고 있었다.

무섭게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던 우리부부의 인연은 가족 상견례로 이어지고, 12월 12일전에 결혼에 대한 결정이 서로 이루어졌다. 이런 것이 바로 인연이라고 할 것이다. 날씨가 매섭던 12월 12일, 그날 우리는 결혼 결정 후 처음으로 데이트 겸 해서 김포공항으로 나갔는데, 왜 하필 김포공항?

그날 연숙의 이대 박사과정 지도교수였던 김숙희 교수가 미국으로 떠나던 날이어서 나간 것인데, 사실은 나를 인사시키려는 것도 이유 중에 하나였다. 몇몇 학생들과 함께 우리도 인사를 한 셈이 되었는데, 김교수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게 느껴졌던 것은 아마도 우리의 선입견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분명히 우리의 결혼을 탐탐치 않게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의 ‘사랑하던’ 제자를 하루아침에 잃게 된 입장이었으니까..

그날, 김포공항에 도착을 해서 걸어 들어갈 때 매섭게 추운 날씨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손을 잡게 되었는데, 순순히 손을 잡아 주어서 나는 기분이 좋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너무나 손이 시려서 불편했지만, 내가 미안할 까봐 말을 못했다고 실토를 했고, 이 ‘일화’는 두고두고 잊지 않고 아직까지 ‘재미있는’ 일화로 남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날 밤에 일어난 전두환의 무혈 쿠데타 12.12사태가 더 중요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김포공항에서 돌아 온 후에 바로 전두환이 한강다리를 건너온 것이었고, 조금만 늦었어도 우리는 집에 못 돌아올 신세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두고 두고 이날이 기억에 남게 된 것이다.

 

 

It’s a heartacheBonnie Tyler (Live in Paris, France)

당시에 유행하던 탁한 저음의 블론드, 영국가수 Bonnie Tyler의 hit oldie

 

온돌이 그립다..

지난 Thanksgiving 때부터 불편했던 나의 뱃속 사정이 아직도 여파가 남았는지 깨끗하지를 못하다. 특히 밀가루 (yeast?) 음식에 더 고생을 하고, 옛날 우리 불쌍한 엄마 생각이 난다. 항상 소화로 고생을 하시던 우리 불쌍한 엄마.. 불편한 것은 사실 나의 ‘의지’로 얼마든지 견딜 수는 있지만, 사실 나의 걱정은 그것을 넘어선 것이다. 만약.. 만약.. 더 큰 문제라면.. 하는 끔찍한 상상을 떨쳐버리려 노력을 한다. 어쩔 것인가? 그저 담담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견딘다. 그것이 우리,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수밖에 없다.

아~~ 무언가 무언가를 멋있게, 나의 심중을 다 표현하는 글을 쓰고 싶은데.. 그것이 이렇게도 어렵던가? 나의 깊은 심중을.. 심중을.. 어떻게 표현을 한단 말인가? 추운 겨울이 좋으면서도 차가워지는 나의 ‘발’이 귀찮고, 불편하다. 따뜻한 온돌방이 그립다.. 아~~ 우리 가족, 엄마야, 누나야.. 언제가 그곳에서 만나서 다시 그 옛날을 살자.. 그런 날이 언제 과연 다시 올까?

진주만 70년 전

오늘은 12월 7일, December Seven, 1941년, 그러니까 70년 전의 일본제국의 미국 하와이 진주만 공습 기념일이다. 10년 전의 9-11, Nine Eleven 보다 더 충격적인 기억을 남기게 한 날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날을 The Day of Infamy라고 부르게 되어서 아직까지 쓰이고 있는데, 결국 70년이란 세월은 사실 길게도 느껴진다. 그래서 그날 생존자(군인들) 단체들로 올해 말로 정식 해체를 한다고 한다. 세월의 흐름에 그날의 충격도 둔해진 것도 사실이고, 그보다는 그 생존자 자체가 이제 별로 많이 남아있지 않다는 슬픈 사실이 있다.

이런 것을 보면서 다음 차례는 누구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육이오의 생존자, 월남전의 생존자.. 등등 차례를 기다릴 것이다. ‘위대한 세대‘라고 불리던 2차 대전 세대는 진정 다 사라지고 있는 것일까? 참 세월이란 것.. 정직하지 않은가? 우리의 세대는 아마도 월남전 세대로 합류할 듯 해서 그 세대가 사라질 무렵이면 또다시 이런 뉴스거리가 될까 미리 궁금해진다.

 

동짓달 이레

동짓달..이란 말, 참 오랜만에 써본다. 동짓달 하면 팥죽생각이 나야겠지만 나는 그것 보다 먼저, 국민학교시절 아마도 국어 교과서의 이순신장군 이야기가 생각나곤 한다. 참, 나도 못 말리는 인간인가, 어찌 그것까지 옛 생각과 연관을 시키고 ‘지랄’일까? 그 교과서, 이순신 장군이 동짓달에 거북선을 몰고..가는 그런 글이 아직도 생각이 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음력의 동짓달이었을 것이니까 사실은 양력으로 정월일 것이다. 그렇게 추운 겨울에 거북선을 몰았단 말인가.. 참으로 놀랍다. 좌우지간 지금은 동짓달 이레, 7일이다. 요새의 날씨는 거의 규칙적으로 삼한사온을 지키고 있다. 며칠 따뜻하던 흐리고 비가 오던 날씨가 차가운 비로 서서히 변하고, 급기야 싸늘한 바람이 부는 그야말로 동짓달 기분을 내게 한다. 분명히 나는 이런 날씨를 ‘사랑’하는 것이다.

요새는 조심스럽게 ‘평화로운 집’을 느낀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나날들이다. 이것이 평화라면 아주 오랜만에 우리 부부가 서로 느낄 수 있는 그런 진정한 평화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엄청난 ‘고민’을 안고, 시한 폭탄 같은 짐을 지고 늙음과 죽음을 향하는 우리 부부라고 할 수도 있으련만, 그런 것이 아주 큰 문제로 느껴지지 않는 듯 살 수 있는 지혜의 은사가 우리 부부에게 선물이 된 진도.. 물론 연숙이 변하거나 변하는 것이 아닐 것이고, 분명히 내가 변하고 있어서 이런 평화가 왔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지나간 세월이 조금 아까워 진다. 특히 지난 10년이 정말 정말 아쉽고, 아깝고, 안타깝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제라도 내가 ‘정신을 차리게’ 되었으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기로 했다. 문제는 내가 어떻게 이런 평화를 유지하도록 하느냐에 하는 것인데, 느낌에, 조금 자신이 있다고 느껴진다.

지난 7월 초 온수기를 새로 갈면서 완전히 손을 놓았던 ‘집안 일’들.. 산더미 같이 쌓여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내일, 내일 하며 미루었던 것이 순식간에 5개월이 지나간다. 이제의 목표는 해가 가기 전까지 조금은 ‘움직여’ 놓아야 한다는 것이 되었다. 이거이야 말로 시작이 반인 그런 일들이다. 한번 손을 잡으면 많은 일을 끝낼 수 있다고 자신을 한다. 그것 말고도 계속 미루는 것, 나의 사랑하는 ‘tech note’에 넣을 수 있는 나만의 tech projects들.. webbot, Arduino, php, WordPress PlugIns.. Sebald’s novels, 일본어, Medjugorje, Social Network Bible..참 많이도 나를 기다린다. 차분히 앉아서 다 읽고, 만들고 싶다. 그것은 항상 나를 흥분하고 하고, 나를 기쁘게 하는 것들이니까..

레지오 연차 총 친목회와 연도

레지오 마리애 연차 총 친목회
2011년 아틀란타 꾸리아 연차 총 친목회

어제 12월의 첫 일요일은 거의 하루 종일을 진정한 ‘일을 떠난 안식일’로 지냈다. 글자 그대로 안식일이면 일을 쉬는 날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그와 반대로 하루 종일 일을 한 셈이 되었다.물론 여기서의 일은 성당과 관련이 된 것들이다. 물론 집 근처의 미국본당에서의 주일 미사는 물론이고 이번에는 한국 본당까지도 ‘나들이’를 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2011년 아틀란타 순교자성당 소속의 ‘천상 은총의 모후’ 꾸리아 주최 연차 총 친목회에 갔는데, 이번에는 평 단원으로 그냥 즐기러만 간 것 이외에도 연숙이 꾸리아 부회장을 맡은 관계로 봉사까지 하게 된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연숙은 총 친목회의 EmCee(사회)까지 맡게 되어 있었고, 나는 우리 쁘레시디움에서 발표하게 되어있는 ‘(거지)타령’ 에 끼어 있어서 둘 다 심리적으로 은근히 stress까지도 받은 것이 사실이었다. 다행히 연숙의 사회 진행은 큰 ‘사고’없이 잘 진행이 되어서 결과가 좋았는데, 우리 쁘레시디움의 타령 공연은 그렇게 만족할 만한 것이 못 되어서 조금 실망은 했지만, 그래도 어려운 여건에서 참가를 한 것만으로 위로를 받기로 했다.

오랜 만에 스트레스 성 일들이 이렇게 겹쳐서 그런지 모든 행사가 무사히 끝나고 나서 아주 안도감과 피곤함이 함께 몰려 들어서 그저 TobeyIzzie가 목매도록 기다리는 집으로 가고 싶었는데, 우리 둘은 갑자기 예정이 된 어느 자매님(베로니카)의 장의사 연도에 참석을 하러 가게 되었다. 우리 성당과 직접 연관이 없는 듯 보이는 자매님이라고 들어서 가는 것이 잠깐 조금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연고자들이 별로 없다는 말에 정신이 버쩍 들었다. 그런 것이야 말로 우리 레지오가 필요로 하는 곳이 아니던가? 역시 갔다 와서 가길 너무 잘했다는 생각을 계속하게 되었다. 아주 단출한 가족이 전부인 곳, 예쁜 할머님 자매님이 그곳에 잠자듯 누워계셨다. 문득 꿈에 본 어머님 얼굴이 잠깐 어른거렸다.

어느 funeral home (장의사)의 조그만 chapel에서 조금밖에 모이지 않은 우리 레지오 단원들, 열심히 연도를 바치고, 고인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viewing을 하고, 유족을 위로했는데, 따님이 너무나도 서럽게 울며 서투른 한국말로 “레지오 마리애, 너무 감사합니다” 를 연발해서 우리들 모두 눈물을 감추기에 바빴다. 아마도 돌아가신 어머님과 따님은 무척 사이가 좋았던 듯 싶었다. 이런 광경들은 거기 모인 모두들, 자기 나름대로의 처지에 비추어서 생각하며 속으로 울었을 것이다. 나도 예외가 아니라서 눈물을 감추는 것 자체가 너무나 힘이 들었다. 이 돌아가신 베로니카 자매님은 어떤 인생여정을 보내시고 여기까지 오셨을까.. 하는 생각도 하며 한정된 인간 수명의 의미를 생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