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 November, ‘예수 없는 십자가’

¶  그야말로 11월 말, deeper & deeper November를 달리고 있다. 주위의 올 가을의 낙엽들이 무섭게 떨어진 후 이제는 O Henry의 `’마지막 잎새’를 연상시키듯 처량하게 남은 잎새들이 떨어지기만 기다리게 되었다. 11월의 처량함이라고 할까.. 성탄을 기다리는 가톨릭 대림절 Advent, 11월은 또한 바로 그날을 기다리는 나날들이기도 하기에 나는 근래에 11월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Sandy Denny – Late November – 1971

 

¶  단출한 가족인데 그것도 한 사람이 빠진 올해의 Thanksgiving Day, 하지만 ‘무사히’ 지나갔다. 작은 딸의 초대로 올해 그들의 1st Home 이 있는 Tucker로 가서 몇 시간을 즐겼다. 오랜 세월 엄마의 전통을 배운 듯 아주 맵시 있게 traditional turkey meal을 준비한 나라니, 정성을 다 한 것이 보여서 고마운 마음으로 배불리 먹고 마셨다.

 

날씨가 너무나 화창해서 사실은 holiday 기분이 좀 덜 나지만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좋았으리라. 새로니는 친구들과 Nevada로 rock climbing trip을 갔는데 보내온 사진을 보니 생각보다 심각한 climbing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오래 전 ‘바위를 타던’, 서울에 있는 도봉산 선인봉의 바위와는 아주 느낌과 종류가 다른 것처럼 보였다.

 

¶  지난 주 부터 약간씩 느껴지던 ‘감기 기운’이 일주일째 가고 있는데, 이제는 기분이 쳐지는 느낌이다. 올해 처음 맞았던 flu shot 덕분인지 모든 감기, 독감의 증상이 아주 mild한 듯한데 문제는 이렇게 질질 시간을 끌며 나의 신경을 건드린다는 사실이다. 미열도, 살살 흐르는 콧물 등은 큰 문제가 아닌데 목이 간질간질하게 느껴지는 잔기침, 이것이 사람을 괴롭히고, 놀리는 것이다. 제발 빨리 이런 것에서 벗어나고 싶다.

 

¶  예수 없는 십자가: 밤에 밖을 보니 멀리서 휘황찬란한 빛이 퍼진다. 자세히 보니 ‘크리스마스 light’ 가 아닌가? 아~ 그렇구나… 올해 ‘첫 Holiday’ 기분이 잔잔히 주변에 가라앉는 이즈음 나는 의미 있는 ‘시간,공간’ 여행을 하고 있다. 그것도 ‘책’으로…  고 마태오 신부님의 trilogy중에서 2편 ‘예수 없는 십자가‘, 바로 그것이다. 1편인 ‘사랑의 지도‘를 얼마 전에 ‘필사’로 읽은 후 곧바로 2편의 ‘필사 독서’가 시작되었다. 하도 typing을 많이 해서 그런지 손가락 끝의 감각이 무디어진 듯하다. 이제는 아주 익숙해져서 typing하면서 reading하는 것 전혀 문제가 없다.

고 마태오 신부님을 ‘재발견’하게 된 이번의 ‘책 여행’은 놀랍게도 나에게 너무나 많은 ‘생각거리’를 폭포처럼 쏟아내고 있다. 이런 속도로 typing & reading을 하면 2편 ‘예수 없는 십자가’는 2~3일 내로 끝이 날 듯하고 곧바로 3편 ‘이세상의 이방인‘을 읽기 시작할 예정이다. 12월 중에 이것을 완독하면 나는 2+ 개월 사이에 고 마태오 신부님의 true classic trilogy를 모두 읽게 되는 것이고 부수입으로 soft copy가 남게 된다.

이 책으로 나는 고 마태오 신부님을 정확히 이해하게 되고 더 나아가서 그가 살아온 민족의 비극을 같이 걷게 된다. 3.8선부터 시작하여 원산, 함흥, 제주도, 최전방 고지 전투를 하느님을 믿는 젊은 눈으로 본 기록영화, 참회록, 사랑의 드라마.. 이 세 권의 기록소설은 한 마디로 대 서사시 라고 부르고 싶다. 이것을 읽으면서 나는 ‘처음으로’,  6.25를 전후로 왜 그렇게 ‘무자비하게’ 싸웠는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니 아직까지도..  한반도에는 하느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았던가..

 

Thanksgiving, 2017

Thanksgiving SongMary Chapin Carpenter

 

¶  Aromatic, cozy, toasty, teary, crispy, loving, reminiscing… 올해 ‘최고의 시즌’이 서서히 시작되는 이 즈음에 이렇게 ‘감사의 순간’을 맞이하는 것, 얼마나 멋진 전통인가.. 태고 적 느꼈던 고국의 추석도 비슷하겠지만 이것과는 무언가 확실히 다르다. 이곳에서 공기를 마신 세월이 저곳의 그것보다 몇 갑절이 되어나는 이 세월의 신비는 아직도 나에게 ‘안 보이는 그 무엇’의 존재를 느끼게 한다. 나는 역시 이곳, 이때.. ‘공간과 시간’의 피조물인 것이다. 무엇(들)이 올해 나, 우리에게 감사하고 고마움을 느끼게 한 것들인가?

고리타분하고 진부하고 재미 없는 표현, ‘우리들 모두 건강하게 살았다’ 라는 것, 과연 피곤한 말일까? 절대로 아니다. 이것이 우리가  별 생각 없이 만끽했던 최대의 은총이었다. 크게 아픈 가족이 없었다. 비록 무섭게 나이가 들고는 있지만 그것과 맞갖은 불편함과 괴로움은 거의 없었다. 감사합니다, 어머님들.

건강했다는 것의 corollary는… 덕분에 5년의 ‘장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7 seven dayer 의 전통.. 을 계속 지킬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 멋모르고 듣는 사람들은 ‘그것이 뭐 그렇게..’ 할 것이지만 우리에게는 가장 멋진 선물을 받은 것이다. ‘매일미사의 기적’은 겪어 보고 아는 사람은 충분히 안다. 이것은 우리가 5년 동안 매년 받았던 감사의 은총과 기적 중에 으뜸에 속한다.

Year of Cat, 올해 우리는 ‘고양이 해’를 맞았고 감사하고 뜻 깊은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보냈다. 우연히 우리 집 뒤 마당을 골라서 태어난 8마리의 갓난 고양이 kitten들, 이것도 인연인가? 분명히 하늘이 주신 생명체이고 전적으로 우리에게 맡겨진 듯한 사명감으로 4여 개월을 이 아이들을 돌보고 키우던 세월도 은총의 시간들이었다. 결국은 사람의 아기나 고양이의 아기나 마찬가지였다. 우연일지, 운명일지 태어난 생명들과 정을 들였던 그 시간들, 때에 따라 너무 힘들기도 했지만 우리는 정말 기쁜 마음으로 모두 건강하게 adopt를 시켰다. 이 과정과 결과를 우리는 너무나 감사하고 감사..

우리들이 ‘복무’하는 성모님의 군대인 레지오 마리애 ‘자비의 모후’ Pr(Praesidium) ,  한때 ‘female’ vermin들의 어이없고 치사한 ‘진주만 폭격’을 당했을 때 거의 coma상태까지 갔던 우리의 전초소대, 역시 어머니의 도우심으로 ‘불사조’처럼 일어났다. 우리가 한 역할도 자랑스럽지만 역시 보이지 않은 손길의 이끄심을 항상 느낄 수 있었다. 이 쓰라렸던 경험은 아직도 잔잔하게 진동하고 있지만 이제는 역시 이것이 ‘우연일까 필연일까’ 하는 의문은 남는다. 나는 후자 쪽을 선택했고, 그렇다면 이 사건의 의미는 무엇이며, 무엇을 내가 배울 수 있었던가 하는 것이 년 말까지 관상해야 할 숙제가 되었다.

 

¶  Full Retirement, 우리들의 나이가 말해주듯이 올해로 우리 모두가 full retirement 로 들어갔다. 연숙의 Medicare가 시작되고 SS benefit이 kicked-in, 이제는 완전한 fixed-income age로 들어간 것이다. 이것의 의미는 거의 경제적인 것이겠지만 과연 그럴까? 한마디로 우리 둘, ‘오래 살았다’ 라는 생각이고 그저 이제는 남에게 (가족, 사회, 국가)에 더 큰 부담을 안 주고 살아야 하는 것이 최대의 과제가 되어가고 있다. 절제 있게, 겸손하게,  하느님을 ‘두려워 하는’ 자세로 생을 마치는 것을 원하지만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올해의 Thanksgiving Day는 어떻게 지내는가? 마지막으로 네 식구 모두 모여 turkey meal을 즐겼던 것이 언제였던가? Halloween처럼 이것도 진화를 거듭하며 변한다. 아이들의 머리가 커가면서 이런 것은 자연히 변하는 모양이지만 그래도 가끔은 아이들이 ‘작았을 때’가 그렇게 그립다. 왜 그럴까? 올해는 더 흩어진 모습일 뻔 했지만, 큰애는 travel [Rock climbing in Nevada, business trip 등]로 시간을 보낼 것이지만 그래도 작은 애가 자기 집으로 초대를 해 주었다. 하지만 역시 그렇게 기쁘고 신나지 않으니.. 이것도 자연스러운 현상, 나이 때문인가… 그래도 작은 애야 불러주어서 고맙다.

 

Falling, at Big Canoe..

 

¶  Fall’s falling:  갑자기 ‘다시’ 춥고 을씨년스런 날씨에 어깨를 움츠리며 back yard를 응시하니.. 와~~~ 파란 색이 완전히 없어지고, 모조리 노랗고 빨간.. 색으로 변했고 땅은 온통 낙엽으로 뒤 덮인 모습들, driveway도  길과 잔디의 경계가 완전히 가려진 ‘낙엽이 뒹구는’ 길로 변했다. 그러니까 우리 집은 바로 지금이 fall peak가 지나간 것이다. 이제부터는 계속 떨어지기만 하고, 또 떨어질 것이다. 낙엽을 치우는 것은 완전히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그런 때가 되었다. 왜 나, 우리는 이렇게 가을이 ‘갑자기’ 온 것으로 느끼게 된 것인지.. 생각해보니 지난 2개월 동안 주변을 잘 못보고 산 것은 아닌지.. 그럴만한 이유는 자명한 것이지만 조금은 아쉽다. 하지만, 이런 자연의 변화까지 잊고 산 날들이 그저 쓸데없이 허송한 것이 아님도 잘 알고 있다. 다만 이제부터 년 말까지의 ‘멋진 나날들’을 조금 더 멋지게 보내면 된다.

 

 

 

Big Canoe:  며칠 전에 Y형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속으로 아하.. 오랜만에 그 집에서 모이는구나 하는 짐작을 했지만 의외로 Big Canoe (North Georgia) 의 주소를 알려주며 그곳에서 ‘전원 全員’이 모인다는 짧은 대화를 했다. 전원 이란 20년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 ‘친지’들 그룹을 말한다. 예전보다 조금 뜸하게 모이기는 하지만 20년의 역사가 말해주듯 4쌍의 부부들, 스스럼이 없고 편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비교적 중년에 가까운 나이들에 형성이 되었기에 지나친 기대는 물론이고 현실적인 관계, 알맞은 거리를 유지하는 성숙함이 있었기에 이런 오랜 역사를 가지게 된 것이다. 이것이 이 나이 또래들의 이상적인 우정을 유지하는 비결이었다.

Big Canoe는 North Georgia mountain에 있는 ‘Mountain Community’의 이름이다. Golf Course를 비롯해서 vacation home들이 높고 깊은 산 속에 ‘즐비’한 이곳, ‘자연적인지 인공적인지’는 잘 몰라도 경치가 기가 막힌 곳이다. 특히 가을 이맘때의 ‘단풍의 풍경’은 일품인데 지금은 단풍잎들이 거의 다 떨어진 후였다. 그러니까 peak season이 지난 것이다. 거의 10년 전에 이 그룹이 한번 같이 이곳에 놀러 간 적이 있어서 대강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조금 달랐다. Y형 부부가 이곳에 주위 경관이 기가 막힌 property를 지난 올해 초에 아예 사버린 것이다.

거의 3000 feet가 넘는 Georgia에서 4번째로 높은 곳에 있는 집, 차도가 잘 되어있었지만 급경사, 급커브 등등이 편안하게 drive할 곳은 아니었다. Y형의 건강상 문제로 공기가 좋은 이곳을 ‘준비’했다는 말이 쉽게 이해되는 것이, ‘차갑고 해맑은’  주변 공기는 아마도 이곳보다 더 좋은 곳이 없을 듯 했다. 하지만 ‘건강상’ 문제가 100% 해결이 된 지금은 vacation home으로 쓰일 듯한 이곳, 혼자 쓰기에는 너무 커서 group이 모여 party같은 것을 하면 안성맞춤으로 보였다.

지난 주에는 West Bank park엘 갔고 한 주 뒤에는 Big Canoe, 올해는 비록 peak season이 다 지나갔지만 야외로 나갈 기회를 자주 주시는 것을 보니… 그 이유가 어찌 짐작이 가지 않겠는가?

 

民族 의 悲劇, 1961

만화, 민족의 비극 표지, 1961

‘민족의 비극’, 1962년 1월..  내가 55년 전에 ‘탈고 脫稿’한 50여 페이지의 ‘먹물로 그린’ 만화 漫畵 의 제목이다. 그러니까 서울 중앙중학교 2학년 시절 1961년에 그렸던 ‘자작 自作 만화’ 인 셈인데 이것이 거의 기적적으로 그것도 거의 완전한 모습으로 나에게 남아있다. 이것은 나에게는 ‘가보 家寶’에 상당하는, 돈을 주고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 개인 역사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다.

지금 이 만화 책의 ‘외형적, 물리적’ 상태는 그렇게 양호한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신경을 안 쓰고 조금 험하게 다루면 망가질 염려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 자주 만지지도 않고 ‘신주단지’ 모시듯 모셔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 나이에 더 이상 이런 상태로 모셔둘 수가 없어서 결단을 내려서 fully digitized하기로 마음을 먹고 그 방법을 찾던 중이었다.

당시에 그렇게 ‘희귀’했던 stapler, 현재 몇 불 弗이면  살 수 있는 그것을 구할 수가 없어서 나는 역시 전통적인 공구였던 송곳으로 구멍을 뚫고 동네가게에서 가는 철사를 사다가 이 책을 엮었다. 그것이 현재 그대로 남아있는데.. 문제는 이 homemade staple에 손을 대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1961년 경 서울 가회동 잡화상(철물도 취급하는)에서 산 것이니.. 이것이야 말로 true antique value가 있는 것, 돈을 주고 어디에서도 살 수 가 없는 것이니.. 쉽게 바꾸거나 손을 대는 것이 망설여진다.

우선 몇 page를 scanner에 책갈피를 강제로 펴서 scan을 해 보았다. 역시 보기가 안 좋다. 하지만 그것이라도 이렇게 55년 만에 세상에 빛을 보았다는데 만족감을 느낀다. 당시 이 만화를 ‘애독’ 해 주었던 몇몇 원서동 苑西洞 죽마고우 竹馬故友 (안명성, 유지호, 김동만 등등) 이 자신들이 직, 간접적으로 관계가 되었던 역사를 재발견하게 되면 감개가 무량할 것이라 믿는다.

이 만화의 그림 technique을 보면 생생하게 기억을 한다. 그것들은 거의 99%가 당시 만화계의 영웅 ‘산호‘ (선생님)의 bestseller 우리의 영웅 ‘만화 라이파이‘를 비롯한 다른 ‘전쟁, 역사 물’에서 온 것이다. 24시간을 그런 그림을 보며 살았던 당시에 그것을 흉내 내어 그린다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자랑스런 일이었다. 문제는 그런 것을 거의 중학교 2학년이 끝나갈 무렵까지 그렸으니.. ‘공부, 공부, 입시’ 지옥이었던 당시, 우리 집에서는 걱정이 태산이었을 것이고 결국은 이 만화가 나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내가 정말 심혈을 기울여 그렸던 만화가 이 만화 바로 전에 완성이 되었는데 어느 날 집에 와 보니 없어졌고 나중에 알고 보니 ‘불에 타서’ 없어진 것을 알았다. 어머님의 지나친 간섭이었지만… 당시의 분위기로 보아서 항변을 할  수 없었다. ‘굶어 죽는 만화가’가 될 것으로 염려가 되셨다는 것을 어린 나이지만 모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없어진 그 만화, 나에게는 아련한 아쉬운 추억으로 남았다. 그 없어진 만화작품의 그림 기법, story 같은 것이 나의 머리 속에서 완전히  사라졌지만.. 그저 어린 나이에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펴고 날랐던  그 만화시절은 죽을 때까지 절대로 잊고 싶지 않다.

이제 남은 것은: 이 만화책을 완전히 ‘해체’해서 full scanning을 한 후에 pdf book format 으로 바꾸는 것이고 그것이 완성 되면 나의 serony.com blog에 ‘영구히’ 남길 것이다.

 

 

10월이여 안녕..

 

¶ 10월이여 안녕:  거의 70마일로 ‘질주’한다는 내가 느끼는 세월의 속도가, 조금은 이해하기 힘들지만, 다 지나간 10월 달에는 지나간 달들에 비해서 훨씬 느리게 40~50마일 정도로 느껴진다. 왜 그랬을까?  이번 달에 시간이 느리게 느껴지게 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평소보다 더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면 세월이 빠르게 느껴지는 것일까? 반대로 지루한 나날을 보내면 시간이 늦게 가는 것처럼 느끼는 것일까? 그렇다면 지나가는 10월이 나에게 지루한 나날들이었다는 말인가? 그런 건 아닌 듯하다. 그런대로 ‘성과’들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한 순간이나마 어떤 ‘악’의 불 기습으로 near-death-experience, coma의 위기에 몰렸던 우리의 20년 역사의 레지오, ‘자비의 모후’가 서서히 건강한 모습으로 일어나던 한 달이었는데 그것이 나의 세월감각을 100% 조종하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St. Augustine, KantTime is subjective, 역시 이 ‘느껴지는 시간’은 알쏭달쏭 한 문제다.

 

 Darkest Halloween: 10월과 작별을 하려면 마지막 날인 Halloween, 그것도 어두운 저녁을 지내야 한다. 몇 년 전부터인가.. 아마도 거의 10년 전 쯤 부터가 아닐까? 우리 집에서 ‘아이들’이 완전히 떠난 후 였으니까.. 그 때부터 Halloween은 ‘아련한’ 추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Trick-or-treat 꼬마 손님들을 기다리며 저녁 시간을 보내던 의식이 완전히 사라진 집은 적막이 휩싸이고, 무언가 세월이 엄청 흘러가고 있다는 불안감까지 감돌았다. 우리 집도 이제 완전한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이 그렇게 즐겁지 않았다. 새까만 옛날, 1973년 가을 미국에서 맞은 첫 Halloween,  나누어 줄 candy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그날이 어떤 날인지도 모르던 그날, 집안의 불을 모두 끄고 아무도 없는 것처럼 하는 것이 그들에게 조금은 덜 미안하였다.  근래 우리 집의 10월 31일 저녁도 서서히 그렇게 변한 것이다. 올해도 그들에게 미안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작년부터 옆집 David  도 흉가처럼 깜깜해진 것을 보고 은근히 놀랐다.  예전까지만 해도 우리 neighbor중에서 제일 ‘요란하게’ 이날 저녁을 ‘아이들처럼’ 즐겼던 집인데 아이들이 모두 떠나고 역시 깜깜한 집으로 변한 것이다.

우리 집 아이들이 동네를 돌며 trick-or-treating을 하던 시절, 이제 생각하니 아름답고 기억하고 싶은 추억으로 남는다. 비록 고국의 추석명절과 느낌은 다르겠지만 이것 역시 그것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그 당시의 아이들 이제 모두 성인이 되어가고, 우리들은 빠르게 인생의 황혼기로 접어드는.. 인생 윤회의 감상에 젖는다.

올해 Halloween 저녁때는, 물론 집의 불을 완전히 끄고, 무섭기는 하지만 추억의 감상에 빠지고 싶은 그런 것을 보고 싶었다. 바로 1973년 영화 The Exorcist다.  이 영화 이후 비슷한 것들이 무척 많이 나왔지만 ‘충격적인 느낌’에는 이것을 따르는 것이 없었다. 내가 느꼈던 ‘공포의 추억’은 사실 ’45년이 지난 지금 다시 말하는 것도 무서운’ 그 정도다. 당시에 이 영화를 보고 1주일 정도는 밤에 불을 켜고 잔 기억도 난다. 그 이후 두세 번 정도 더 극장에서 보기는 했지만 집에서 혼자 보는 것은 아직도 망설여지는 것이다. 얼마 전 YouTube에서 full-version을 download했지만, 아직도 처음 30분 정도만 보고 더 진전이 없다. 그 정도로 나는 이 영화가 무서운 것이다. 단, 이 영화가 결국은 나에게 ‘가톨릭 신앙’을 주게 했던 사실은 지금 생각하니 전혀 우연만은 아닌 듯해서 불원간 조금 덜 무서운 자세로 끝까지 다 볼 각오를 다지고 있다.

Devils Exist! – The Exorcist, 1973

 

¶ 올 가을 첫 추위: 지난 며칠은 가을이 아니라 초겨울 같은 냉기서린 강풍과 첫 빙점 아래로 떨어지는 그런 날이 되었다. 아래 위층 할 것 없이 요란한 central heating fan소음이 낮에도 은은히 들리는 그런 날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런 날들을 좋아하기에 불평은커녕 all are welcome이다. 결과적으로 엉뚱하게 나는 주일미사를 빼먹게 되었지만 미안한 마음보다는 그저 편하게 쉰다는 편안함만을 만끽하고 싶었다. 그런 날도 있는 것, 기나긴 신앙, 인생 여정에서 재미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rare exception 인 것만 명심하면 되는 것이다.

 

올 가을들어 제일 춥고 을씨년스럽던 날, Tobey와 desk는 나의 피난처가 되었다

 

¶ 연총연습 시작: 올해 순교자 성당 레지오 행사를 결산하는 ‘레지오 연차 총친목회’ 줄여서 ‘연총’이 12월 3일로 다가오고 있다. 한 달이 넘게 남아있지만 우리에게는 급한 준비로 다가왔다.  우선 단원의 숫자가 줄었고 시간이 예년에 비해서 줄어들었다. 이제부터 매주 연습을 한다 해도 5번 정도다. 매주 연습을 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나는 올해 ‘사정상’ 모두 취소를 하자고 제안도 했지만 결국은 ‘이럴 때일수록’ 우리의 건재함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문제는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작년에는 인원이 너무 많은 호조건으로 ‘여유 있게’ 선택을 해서 guitar반주까지 곁들인 춤, 합창을 했지만 그런 호조건은 이제 물 건너 갔다. 결과적으로 선택된 것은, ‘의도적으로 짧은’ 것. YouTube로 알려진 ‘어떤 수녀님의 귀여운 노래와 율동’ ‘앗싸 좋아요!‘ 란 것이다. 나에게 ‘율동’은 안 맞는 것이지만 오늘 첫 연습을 하고 보니 사실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문제는 어떤 format으로 할 것인가.. ‘반주, 편곡’ 들의 기술적인 문제만 남았다.

 

나라니, 1985년 9월 17일은..

2017년 9월 17일 깜깜한 새벽에 일어나 책상 앞에 앉으니, rage의 여운이 잔잔하게 남은, 복잡한 머리 속을 헤치고 ‘오늘은 우리 집의 둘째 딸 나라니의 생일이다’ 하는 그 미안함이 나를 일깨워주고 있는 듯 했다. 그렇다. 오늘은 우리 집 막내 둘째, ‘콩콩이’의 생일, 그것도 그 ‘애’의 서른 두 번째 생일이 되었다.  그 옛날,  나는 서른 일곱, 산모는 서른 셋.. 그러니까..  그러니까… 와~ 막내의 나이가 당시 엄마의 나이에 가까워진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세월이 쉴 새 없이, 끊임 없이  흘러 갔을까? 놀라움, 자괴감, 후회, 섭리, 인생역정, 순리, 선과 악의 실존, 삶의 의미와 목적… 별로 연관이 없는 모든 단어들이 머리를 맴돈다. 아직도 나의 머리 속은 요사이 청명한 초가을 하늘 같이 맑지 못한 것, 그 이유는?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오늘 창립 40주년을 맞는 날, 대주교 Gregory 께서 친히 방문 미사를 집전 하는 날, 우리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우리의 정든 동네 성당 Holy Family 로 차의 방향을 돌렸고 오랜 만에 온 이곳의 정든 파란 눈의 parishioner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다. 그들은 몰라도 우리는 눈물이 날 정도로 더 반가운 마음이 들었던 이유를 우리는 너무나 잘 안다. 최소한 이곳에서는 그 ‘난동사건 미친X 의 추악한 얼굴’을 볼 가능성이 zero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복음말씀을 포함한 주제가 하필이면 ‘무조건, 언제나 용서해 주어라’ 였다. 이제까지 깊은 생각 없이 들었던 말씀이었지만 속으로 나는 ‘heaven forbid, NO!’ 란 고함소리를 허공에 쳐대고 있었다. 최소한 현재 나의 느낌은 그러하다. 이것은 앞으로도 나에게 최악의 spiritual challenge 중에서도 으뜸이 될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현재 나는 ‘love to hate’의 격랑 속에서 ‘누군가를 증오하여야만 한다는’ 유혹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내 혼자만의 능력으로 이런 생각에서 벗어 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초자연적인 도움이 없는 한 나는 내면의 무서운 rage와 함께, 그 ‘난동사건의 미친 X, monster, 악마‘를 증오할 듯하다. 시간, 세월이 유일한 처방이 될지는 모르지만..

‘우리식구’만 ‘우리 집’에 모여서 생일을 축하하는 음식을 나누었다. 올해의  신청 음식은 미역국은 꼭 있어야 하고, 그 외에 ‘비빔밥과 잡채’ 였다. 그것 때문에 따로 장을 보아야 했지만 예년처럼 ‘거창한’ 느낌이 전혀 없이 조촐하게 즐겼다. 이제 올해 우리 집 ‘생일 행사’는 모두 끝이 났다. 조금은 어깨가 가벼워지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생일이라는 것, 어떤 때는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이런 내가 나는 싫기도 하다. 그래서 더 부담스러운지도.. 세월의 흐름과 나이 먹음이라는 것, 그렇게 즐겁지 않은 것이다.

이런 것 외에.. 나라니가 태어난 해, 1985년이란 때가 나에게는 어떤 때였나 회상하게 되었다. 가물거린다. 1968년이라면 어제 일처럼 거의 모두 기억을 하는, 나는 놀란다. Good Ole Days.. 가 이제는 기억 속에서 가물거린다는 사실에 또 놀란다. 그 당시가 별로 뚜렷이 기억이 안 나는 것이다. 특별한 것이 없었거나 추억에 남기고 싶은 즐거운 일들이 없었거나..   그래도 생각하고 생각한다. 그 당시의 사진을 보면 조금 기억이 살아날지는 모르지만….  문득 생각한다, 잊혀진 듯한 1980년대를 더 잊기 전에 개인역사로 남기자… 이것이 ‘정상적인 인생’일 것이다. 20대, 30대, 그리고 40대는 엄연히 느낌도 다르고 생각도 다른 것이다. 이것이 정상적인 것이다. 인생의 굴레바퀴… 서서히 돌아가며 잊혀지는 것, 생의 마감에서는 나의 개인 역사 중에서 어떤 시절이 제일 기억에 남을까 궁금해진다.

 

나라니가 태어났을 때 Ohio State University Hospital 1985년 9월

 

Late present, High Noon Lesson

¶  Late Birthday Present: 며칠 전 연숙의 private room office renovation: 즉 painting & flooring 이 다 끝났다. 이것은 사실 몇 달 전에 65세 생일선물로 그녀의 보금자리인 ‘집무실’ 방을 새로 꾸며 주자는 말에서 시작이 되었다. 그것이 우리 집, This Old House, 2층의 모든 방을 새로 바꾸는 것으로 커져서 올해 우리 집 최대의 변화를 주는 것으로 남게 되었다.

모든 labor는 나의 mere body에서 나오는 것이라 돈으로 따지면 사실 ‘재료 비용 expense’만 들면 되지만 70에 가까운 나에게는 사실 그렇게 쉽지만은 않은 job이었다. Muscle, tool 과 skill이 필요한 것은 큰 문제가 없는데 문제는 전보다 굳어진 backbone과 minor hemorrhoid 가 걱정거리였다.

 

 

Flooring job은 특히 lower body에 가해지는 stress가 보통이 아닌 것이다. 하루 일하고 나면 그 다음날은 대부분 쉬어야 할 정도였다. 이럴 때는 일하는 속도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생일인 9월 1일이 아닌 지금에야 끝을 낼 수 있었다. 늦어진 또 다른 이유는 위에 말한 ‘레지오 미친X’ 사건으로 조금 신경을 곤두세운 것인데 사실은 그것은 생각보다 큰 문제는 아니었다. 그저 ‘미친 x’이라고 무시하였기 때문에 금새 정상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원래 있던 carpet위에 있는 big furniture들은 사실 위치를 바꾸는 것이 너무나 힘든데 지금의 hardwood(laminate) floor에서는 어린 아이들도 쉽게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쉽다. 매끄럽고 차가운 바닥에서 갈팡질팡하는 Tobey를 위해서도 area rug을 빨리 놓아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아마도’ 이 집에서 이사를 나갈 때까지는 다시 이런 힘든 일은 다시 없으리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  High Noon’s Lesson: High Noon, Gary Cooper, Grace Kelly, Do not forsake me, oh my darling… Frankie Lane과 비슷한 목소리, Tex Ritter의 bass theme song 이 귀에 쟁쟁하게 들린다. 그렇게 유명했던 50년대(정확히 1952년경) 미국 서부영화의 ‘정수, essence’,  나는 너무 어려서 서울에서 그것을 못 보고 후에 미국에 와서야 TV에서나 볼 수 있었다. 이것이야 말로 글자 그대로, glorious black-and-white, 정말 멋진 흑백영화, Gary CooperGrace Kelly..의 실감나는 연기, 또한 ‘인생에 교훈을 주는’  story line도 멋지고 ‘전통적인 서부영화 backdrop scenery가 거의 없는 영상’도 멋지고 출연 배우들의 모습과 연기들 모조리 기가 막히게 좋았던 그 추억의 영화가 얼마 전 갑자기 ‘커다란 의미를 가지고’ 나에게 다가왔다.

이 영화에서 Gary Cooper 의 character는 small town marshal,  Mr. Will Kane 인데 이야기의 요점은 이것이다. ‘나에게 갑자기 다가온 위협, 공갈, 협박으로부터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도망가지 마라!’ 이런 것이 아닐까? ‘평화주의자 pacifist, Quaker교도’ 인 약혼자 Amy (Grace Kelly)는 결사적으로 ‘폭력을 피하고자’ town으로부터 도망가자고 주장한다.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 혼자서라도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걸고 ‘괴물 monster’들과 맞서야 하는 것과, ‘좋은 것이 좋고’, 약혼자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도망’을 가야 하는 것.. 이 두 극단의 선택에서 결국 Gary Cooper Will Kane은  목숨을 걸고 monster들과 정면대결하며, 또한 보안관의 의무를 지키고자, 도망가는 것을 포기하는… 이때에 그는 주변에 도움을 청하지만 한 사람도 돕지를 않고 숨어버린다.

 

 

Do not forsake me, My Darling. (High Noon)

 

물론 이런 이야기는 비록 fictional 한 것이지만 우리의 기나긴 인생역정, 또한 매일매일의 일상생활에서도 겪을 수 있는 것이다. 나도 이런 선택의 순간을 최근 며칠 동안 내 눈과 코앞에서 직접 목격하게 되었다. 나는 본래 nonviolence 그리고 영화의 Amy, Grace Kelly처럼 trouble이 있으면 피하는 것이 상책.. trouble에 개입이 되면 시간 낭비.. 라는 생각으로 오래 살아왔고 나중에 그런 나의 runaway, inaction에  따른 값비싼 대가 代價 를 치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나도 놀랄 정도로 나는 바뀌어 있었다. 경우에 따라서 정면대결을 하고 그것도 수단과 방법을 다 쓰더라도 이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바뀐 것이다. 여기서 지면 후에 아무런 내 삶과 신앙의 의미를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가까운 예로, 얼마 전 일어난 ‘불상사’ (a.k.a 레지오 미친X 난동사건)는 하나의 wakeup call이 되었고, 내 자신에게 엄청난 변화의 기폭제가 되었다. 그 정도로 그 사건은 나의 모든 ‘기본적 믿음’을 뒤 흔들어 놓는 ‘더러운 사건’이 된 것이다. ‘신앙적인 악의 실존’을 절대로 실감하고 목격하게 된 것이다. 이 ‘악’과 대결하는 것을 피하는 것은 신앙적으로도 죄와 패배가 됨을 절실히 느꼈다. 특히 그 미친x monster가 범했던 ‘악행’은  accidental, stupid mistake가 아니고 premeditated, intentional 한 것이라는 사실을 100% 확신 했기에 나의 생각은 돌이킬 수 없게, 더욱 굳어진 것이다.

이 ‘더러운 사건’ 이후 모이는 첫 레지오 주회합에는 ‘예상대로’ High Noon처럼 모든 towns’ people (a.k.a 레지오 단원)들은 도망가 버렸고 town marshal인 연숙은 Will Kane처럼 ‘홀로’ 그곳엘 갔고, 즉시 나는 일생일대의 후회를 하게 되었다. 물론 그들은 미친x monster의 ‘썩은 가오‘가 보기 싫어서 그랬을 것이고, 이것이 바로 나의 High Noon moment였구나 하는 죄책감이 들었다. 내가 그렇게 High Noon 영화의 도망가 숨어버린 towns’ people처럼 비겁한 남자였나..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나는 나 자신의 High Noon을 신앙적인 각도로 극복하게 되었고 이제는 후회가 없다. 진정한 악은 ‘나의 악’으로 무찌를 것이다. 그 미친x 불쌍한 영혼을 위해서도 이런 방법을 써야 하는 것이 조금 비참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내가 시작 일이 아니고 그 미친x의 악에서 부터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High Noon같은 위기에 그 동안 주위에 있던 ‘친구’들은 과연 어떤 모습을 보였나? 예수가 끌려갈 때 베드로를 비롯한 모든 제자들 비겁하게 모두 도망 갔던 것처럼, 몇몇 예외를 빼고,  나머지는 모두  ‘비겁하게 포기하며 사라지는’ 모습들… 흙탕물이 튀길까 봐 하루 아침에 겁쟁이가 된 모습들이었다. 진정한 ‘레지오 soldier’들의 모습은 그들에게서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일생 일대의 실망감을 금할 길이 없다. 자기의 안전과 체면에만 급급 하는 그 모습들.. 성모님이 뒤에서 보고 계신다면…

내가 사랑하는 성모님의 군대, 자비의 모후에서 나를 멀어지게 하는 것은 100% 분명한 사탄의 짓이다. 그런 사탄은 overwhelming action으로 철저히 제거되어야 한다. 현재 활발히 진행중인 이 미친x  사탄에 대한 ‘뒷조사  background check‘는 계속되고 있고 불원간 세상에 알려지게 될 것이지만, 현재까지 알려진 사실만 보고도 나는 입을 다물지 못할 지경이다. 어떻게 이런 인간이.. 버젓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어떻게 우리는 이런 사실을 모르고… 성모님, 당신의 사랑하는 자비의 모후를 도와주세요.. 부탁합니다!

 

Sixty-fifth at Camps Kitchen..

My wife’s 65th birthday.. 물론 나보다 ‘언제나, 죽을 때까지’ 5년 뒤에 오는 것이라 65라는 숫자가 이제는 별 것 아닌 것이 되었지만.. 그래도 그게 아니다.  옛날의 65라는 숫자였다면.. 우아~~ 오래 살았다.. 꼬부랑 할머니다, 죽을 때가 가까웠다.. 는 말들이 따라 붙었을 것이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65세만 살면 ‘많이 살았다… 그러니까, 65세 만세론’에 은근히 공감을 하고 살았다. 이 65세 만세론은 오래 전 대한민국의 다재다능 했던 소설, 수필가로 명성을 날리던 이진섭선생님의 지론 이기도 했다. 그는 65세는 고사하고 60세도 못 채우고 타계를 했기에, 65세는 나에게 magic number로 남게 되었다.

9월 첫날 65세 생일을 맞는, 나와 37년을 같이 동고동락하며 살아온 아내 연숙, 열심히 사느라고 수고가 많았다. 37년을 같이 살아온 것이 도대체 얼마나 긴 세월인지 실감이 가지를 않지만 그저 오래 같이 산 것만은 틀림이 없다. 귀염둥이 막내로 자라 투정부리는 외아들을 만난 것, 큰 후회 없이 잘 살아준 것, 어찌 감사하지 않겠는가?

우리 둘 모두 하느님을 전혀 모르고 산 세월도 길었지만 이제 진정한 삶의 의미와 목적을 알게 된 것, 남은 석양의 세월에서 우리는 진정한 행복은 찾았고 이 세상을 떠나는 그날을 기다리며 살게 되었으니 이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65세 생일이 5의 배수이기에 더 특별할지도 모르지만 다른 것도 있다. 공식적으로 Medicare age가 시작된 것이고 이제는 ‘죽을 때까지’ Medicare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이런 entitlement들, 절대로 charity가 아님을 알고 정정당당한 입장으로 혜택을 누리면 된다. 덧붙여서 이번에 Social Security Benefit도 같이 신청을 해서 죽기 전까지 해야 할 paperwork을 다 끝낸 셈이 되었다. 이런 조금은 복잡한 paperwork들을 나는 이미 경험을 했기에 거의 모두를 내가 도와 주었다.

 

 

올해의 생일날에는 예년과 같이 아이들이 찾아 준 ‘새로운 곳’에서 외식을 하였다. 작년의 Stockyard와 비슷한 느낌의 Eclectic American style인 Camps Kitchen & Bar, East Cobb의 노른자위 Paper Mill area에 올 봄 open 한 곳이다. 군침이 도는 gourmet hamburger와 red wine으로 생일 저녁 온 가족이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 another day of life라고 할까.. 이것이 인생이다. 이것이 인생이다.. 인생은 그렇게 특별한 것이 아니다. 평범한 것이다.

 

 

Bye bye kittens: mission accomplished!

PAWS-ATLANTA 입구, Van 이 보인다

 

오늘은 올해 들어서 처음으로 우리 집(가족)에게 monumental day라고 불릴 수 있는 기억에 남는 날이 되었다. 태양이 작열을 하는 전형적이고 통계적으로 아주 정상적인 뜨거운 복 伏 날씨에, 나와 연숙은 ‘마지막’으로 남아서 우리를 바쁘게 해오던 마지막 3마리의 정든 kitten들을 kitten carrier에 넣어 차의 backseat에 태우고,  ‘침울하지만 차분한’ 심정으로 PAWS ATLANTA (a NO-KILL animal shelter & pet rescue) 가 있는 metro Decatur west-end로 거의 한 시간 drive을 했다. 그리고 지난 성 목요일, 4월 13일부터 시작되었던 8마리와  kitten 들과의 하루하루가 주마등처럼 지나가며 ‘괴로웠을 때, 피곤 했을 때, 눈물이 났을 때’등을 서로 회상하였다. 한마디로: Mission Accomplished! 란 말이 저절로 나왔고 우리 둘은 big high Ten으로 자축하면서 눈언저리가 시려옴을 느끼기도 했다.

 

Cat’s dormitory, 이곳에서 입양을 기다리며 모여서 산다

지난 6월 초에 나 혼자서 2 마리의 feral mommy cats(8마리 kitten들의 mom & grandma)들을 fix (spaying & neutering, 불임수술) 하러 이 지역에 있는 다른 시설 (LifeLine Animal Project) 에 왔던 것 보다 더 먼 곳이었다. 왜 하필 이런 시설들이 우리 집과 정 반대 쪽에 있는 곳에 있을까.. 생각해보니 이런 곳들을 찾아 내고 ‘이용’했고 우리에게 소개해 준 것이, 이 작은 딸 나라니 였는데.. 그 애가 Decatur에 있던 Agnes Scott College에 다녔었고 이 지역의 animal shelter들에 익숙해 있어서 그렇게 된 것이다. 분명히 우리가 사는 west metro의 Cobb county지역에도 이런 시설들이 있을 듯 한데 그곳에 대한 자신감이 없기도 해서 이렇게 한 시간 drive를 해야 하는 것을 감수하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던 것은 8마리의 kitten들이 모두 개인가정에 adopt되는 것이었지만 나라니의 ‘영웅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3마리는 주인을 찾을 수가 없어서 초조하던 차에 마지막 희망인 이곳 paw-atlanta를 찾은 것이다. 이곳에서는 adopt가 될 때까지 한 달이고 일 년이고 맡아서 보호해 주는 곳이고 website를 보니 안심이 되었다.

 

3 마리, 이곳에 안착하자마자 주위를 탐색하고 있다

 

나머지 3마리, 우리도 놀란 것이 너무나 정이 많이 들었었다는 사실을.. 사람 못지않게 끈끈한 정이 들어서 헤어지는 것이 정말 괴로울 지경이었다. Kitten들은 물론 우리와 헤어지는 것을 실감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곳에 이미 있던 다른 친구들과 즉시 어울리는 것을 목격하고 우리는 조금 안심을 할 수 있었다. 이제는 하루 속히 사랑을 줄 수 있는 가정으로 입양이 되기만을 하루하루 기도하는 수 밖에 없다.

 

우리를 울리게 했던 녀석, 꼬마.. 어디에 가던지 잘 살아다오..

 

세 마리 중에 우리의 가슴을 쓰리게 했던 ‘놈’이 ‘꼬마’인데, 태어났을 때 너무나 작아서 과연 살아날 수 있을까 신경을 쓰던 녀석이었다. 매일 매일 젖과 먹이를 먹일 때마다 그 녀석의 유난히 가느다란 뒷다리를 주시하기도 했는데, 정성을 드린 것이 효과를 보아서 나중에는 거의 정상적인 모습을 갖추게 되었고 아주 활발한 kitten으로 자랐다. 그 애를 마지막으로 보내며 연숙은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을 것이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좋은 곳으로 입양만 되기를 기도하며 기도한다. 

희망적인 news는 이런 어린 kitten들은 비교적 빨리 adopt가 된다고 한다. 모두들, 특히 어린아이들이 있는 집에서 원하기에 그런 모양이라고 해서 희망을 갖고 기다리기로 했다.

정든 kitten들이 떠난 그들의 보금자리, 몇 개월 동안 이곳에서 뛰어 놀았다

 

expected but sudden and sad..

마지막 남은 3 마리super cute kitten들과 작별인사를 할 순간이 갑자기,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No-Kill Animal Shelter: PAWS-ATLANTA에 일단 가서 입양을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처음에는 사실 나도 놀랄 정도로 슬픈 감정이 밀려들었다. 나도 놀란 것이, 불원간 이별할 것을 알고 같이 살고 있었지만 막상 그 순간이 온 것이 사실을 그저 잊고 싶었다. 이것이 바로 그것, 잊고 살았던 끈끈한 ‘정 情’ 이란 것이다. 70평생 살면서 그것도 잊고 살았단 말인가?

8마리 모두가 함께 딩굴며 행복했던 시절..

 

세상에 나오면서부터 우리의 손에서 자란 8 마리 (3 마리는 낳아준 엄마 품에서 한 달을 보낸 후에 우리가 길렀다) 각자 모두 특징이 있는 8마리 형제 자매들 중에서 5마리는 이미 나라니의 ‘영웅적인 노력’으로 모두 ‘좋은 가정’으로 adopt 가 되었다. 8마리에서 5마리가 빠진 3마리, 처음에는 그렇게 쓸쓸하기까지 보이더니 우리도 애들도 잘 적응해서 전에 비해서 훨씬 ‘편하게’ 2층 독방에서 잘 놀며 자라고 있지만.. 사실 언젠가는 이별을 예상은 안 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 3마리를 잘 기르는 것은 사실 무리 (이미 1 dog, 1 cat이 우리 집에 있기에) 였고, 애들도 모두 반대를 하곤 했다.

요새는 동물, 특히 pet animal 들과 정이 든다는 것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가끔 생각하곤 한다. 이제는 그곳에 가서 하루 빨리 좋은 가정에 입양되기만 기도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큰 눈이 안 오는 1월은..

¶  마지막으로 (blog) posting을 했던 때가… 와~~ 믿어지지 않는 ‘작년’ 2016년 11월 Thanksgiving Day 때가 아닌가? 그러니까 크리스마스가 있던 12월과 가족적으로 너무나 바쁘기만 한 1월 이 온통 다 posting 없이 지나간 것이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 지난 2개월 동안 비록 posting을 없었지만 간간이, 틈틈이 남겨 둔 calendar journals, sticky note들이 이곳 저곳에 남아있고 ‘digital traces [emails, voice recording, snap photo 같은]’의 도움으로 지난 2개월의 blog post (retro-blogs)들도  ‘곧’ 채워질 것으로 희망을 하며 이렇게 1월을 보내게 되었다.

 

¶  지난 26일에 2016년도 Federal Income Tax Return을 2시간 만에 끝을 내어 버렸다. 미리 생각하고 시작한 것이 아니고 ‘충동적’으로 한 것인데 그것이 나의 습성이기에 크게 놀라진 않는다. 올해의 tax return은 약간 의외적이었는데 tax refund가 아니고 오랜만에 tax를 내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기분이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것은 지난 해 ObamaCare coverage때문이어서 우리 집의 financial fundamental과는 큰 상관이 없는 것이어서 크게 문제 삼지 않기로 했다.

 

¶  올해의 겨울날씨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었던가? 1월의 마지막에 들어서 돌아보니 분명히 heating bill이 작년보다 가벼워진 것 같다. 올해 겨울 long-term forecast는 못 보았지만 분명히 ‘이상난동’에 가까운 것으로 보도했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 아틀란타 지역의 뚜렷한 4계절이 이제는 ‘아열대성 subtropical’형으로 바뀌는 것이 아닐까.. 이제는 4계절 보다는 ‘우기와 건기’인 듯이 느껴진다. 그러니까 예전의 한 겨울이 ‘차가운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그런 것으로 변한 것이다. 1월 초 한때 잠깐 강추위와 눈이 조금 뿌렸지만 그 정도는 경미한 것으로 끝나고 앞으로도 ‘큰 뉴스 예보’는 보이지 않는다. 가끔은 그래도 ‘천지개벽’할 정도의 일기뉴스가 그리워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불편을 겪을 정도만은 피해갈 수 있기를 바라기도 한다. 2014년의 그런 ‘교통대란’은 다시 겪고 싶지 않기에 그런 것이다. 그래도… 그래도… 솔직히.. 소리 없이 고요히 밤의 적막을 헤치고 펑펑 내리는 함박눈의 환상은 지울 수가 없다.

1월초 섭씨 영하 10도의 강추위와 약간의 눈발이 내렸던 기억..

 

¶  Crash Courses: ROK (South Korea), DPRK (North Korea) 101:  오래 살다 보면 ‘이유 없이, 우연히, 저절로’ 생기는 일들이 있는데 이것들이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물론 이것이 더 가능했던 것은 ubiquitous Google 의 power일 수도 있다. 불과 20여 년 전에는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닌 것이 요새는 수시로 일어난다. 좋은 예로, YouTube에서 우연히 보게 된 것들 중에 [탈북자] 가 있었다. 이런 ‘탈북’이란 유행어, 말을 듣기는 했지만 나의 코 앞에 다가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KOREA에 대한 관심 전혀 없이 살아온 수십 년 덕택에 완전히 고향감각을 잃어버린 시점에서 이런 것들은 완전히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남쪽은 남쪽대로 ‘빨갱이 정치인’들이 득실거리고 (정말 밥맛 떨어지는 종북좌파 정치인 개XX들은 내가 이 우주에서 제일 증오하는 쓰레기 중의 쓰레기들이다.) 북쪽은 북쪽대로 ‘해괴한 모습의 지도자 동지들’ 치하에서 ‘인민’들을 굶겨 죽이며 ‘장난감’ 무기로 불장난을 하니.. 그래서 제일 피하고 싶던 뉴스는 거의 모두 KOREA에 관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던가.. 이제는 그 말이 역시 명언 중에 명언임을 실감하는 나날과 앞날을 마주 보게 되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나의 고향, 나의 조국을 ‘심각하게’ 공부하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Eve, Christmas 2016

Uh oh.. 와~ 오늘이 며칠인가.. 2016년 12월 24일, 사실 이날의 느낌이 12월 25일 보다 훨씬 더 설레고 진하던 시절을 오래 전에 보냈던가? 이제는 그런 설렘은 기억 뿐이지만 그래도 잔잔한 설렘은 어쩔 수가 없다. 요새 비교적 평화로움을 유지하며 여기까지 온 것만도 나에게는 더 큰 성탄 선물일 것이다.

오래 오래 오래 전 우리 둘 모두 교회, 성당을 모르던 시절 신혼 초, 정말 고요한 밤을 보냈다. 아니 너무 고요해서 심심하고 쓸쓸한 밤이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Eve 밤 늦게 차를 몰고 downtown (당시는 Columbus, Ohio)을 배회하는 것이었는데.. 왜 그런 해괴한 idea가 우리 둘의 머리에서 나왔는지.. 아마도 찬란한 holiday decoration, tree light같은 것을 보려고 했을 것이지만 집에 들어오면 이상하게 더 쓸쓸해지는 것을 알았다. 외롭기도 하고.. 별로 좋지 않았다. 그런 것이 크리스마스의 진짜 이유를 찾고 알게 되면서 모든 것이 변했다. 그 이후는 우리 가족의 역사가 되었다.

최근에 들어서는 최소한 우리 직계가족 전부 (4명)이 모여서 우리 집 근처 Holy Family성당에서 합창단과 더불어 함께 노래를 부른 후, 자정미사를 보는 것이 정상이 되었다. 오늘 밤도 같은 routine을 거칠 것이다.

 

Thanksgiving, 2016

Thanksgiving SongMary Chapin Carpenter

 

서기, 주후 主後 2016년 11월 24일.. 11월 24일이란 말의 느낌은 확실히 미국의 ‘추수감사절’임을 느끼게 하는 것.. 그렇다. 죽을 때까지 타향일 수밖에 없는 이곳 미국에서 숨을 쉬면 산 세월, 연륜이 결코 만만치 않은 45년에 가까워짐을 실감하는 것은 글자 그대로 착잡 錯雜 한 바로 그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 비’ 구경 한지가 2달이 가까워 오는,  매일 매일이 화창한 깊고 푸른 하늘의 가을, 기온은 빙점까지 떨어지는 것, 비만 빼고는 지극히 보통, 정상적인 2016년의 가을의 끝 자락에서 지나간 일년을 감사하는 날 ‘추수감사절’, 바로 오늘이다. 며칠 싸늘하던 날씨가 포근하게 바뀌고 굳게 닫혀 있던 창문을 모조리 열고 신선한 공기를 느끼며 오랜 만에 편한 오후를 맞이한다.

지난 일주일의 대부분을 조금은 심하게 우울한 기분에 시달리다 timing 좋게 그 수렁에서 빠르게 벗어남을 느낀다. 왜 그런 less-than-mild depression에 빠졌고 왜 재빨리 빠져 나오지 못했나 아직도 ‘분석’ 중이다. 앞으로 이런 푹~ 쳐지는 감정에 다시 빠져도 별 도리 없이 이번처럼 그대로 시간만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 정말 싫지만, 아직도 뾰족한 대책을 찾지를 못한다.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4명 가족이 다 모이지 못해서 세월의 흐름을 실감하게 만든다. 오직 4명의 식구가 똘똘 뭉쳐 살던 시절들이 이제는 다 지나갔는가? 한 가족의 궁극적인 진화라고는 하지만 쓸쓸한 심정을 금할 수가 없다. 올해는 작은 딸이 빠졌다. 새로 사귄 boyfriend 의 ‘저택’에 초청을 받았다고 하지만 우리로써는 섭섭한 마음, 많지도 않은 가족인데.. 그래도 남은 3명이 turkey를 제외한 풍성한 음식을 즐겼다.

올해는 어떤 Thanks를 give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았다. 올해는 작년에 비해서 조금 이것이 힘든 것을 보면 아마도 그렇게 spectacular 하게 감사할 것이 없는지.. 하지만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니 그것이 절대로 아님을 알게 되었다. 오늘 Thanksgiving day Mass에서 Father Miguel의 강론이 그것을 일깨워 주었다. 얼마나 많은 것을 우리는 감사해야 하는지 우리는 모르고 지낸다고..

작년에 우리가 받았던 메가톤 급의 ‘은총’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그대로 4식구가 건강한 삶을 살았다는 것, 감사를 드린다. 비록 나이는 더 먹어가지만 나이에 비해서 건강함을 유지했던 덕분에 그런대로 매일 미사, 충실히 참례했던 사실, 장기간 봉성체를 하며 돌보았던 ‘보나’ 자매님을 ‘안전하게’ 하느님 품으로 보낼 수 있었던 때, 우리가 속한 자비의 모후 레지오, 위기를 넘기며 탄탄하게 견디며 현재 아주 건강한 힘으로 활동을 하게 된 사실, 우리의 미국본당에 ‘결혼사제’가 부임을 해서 걱정도 많이 했지만 의외로 좋은 결과를 낳게 된 것, 예산에도 없던 에어컨 고장을 brute-force로 고쳤던 사실, 수십 년간 녹슬었던 나의 guitar 실력을 guitar club에 관여하여 되 살릴 수 있었던 기회, 레지오 전 단원 바울라 자매의 부군 조 이시도르 형제님을 안전하게 하느님 품에 안기게 했던 은총, Atlanta History Center에서 즐겁지 않은 직장생활을 했던 작은 딸 Vonnie, 더 좋은 장래성이 있는 곳으로 옮겨간 사실, Science & Religion 분야 중 최근에 개발된 이론들을 총 망라한 저서와 저자, Father Robert Spitzer를 찾고 알게 된 사실: 별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일지라도 이것들 모두 하느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것들이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another day in the life

인생의 황혼기에 아주 길지 않을 것 같은 이 시간들은 초록빛이 하늘을 덮었던 지나간 시절들에 비해서 일초 일초가 너무나 귀중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과연 이 귀중한 시간을 귀중하게 아끼고 있는 것일까? 어제, 오늘 찬물을 뒤집어 쓴 기분으로 일초 일초의 의미를 되 찾으려고 발버둥을 친다. 하지만 무슨 깊은 함정에 빠졌다는 기분은 떨칠 수가 없다. 이것도 그저 며칠이 지나면 또 a day in the life가 될 것이지만 그래도 아깝기만 한 일초일초.. 시간은 거침없이 지나간다.

예측할 수 없는 감정의 기복과 인간관계에 의한 놀라움, 잘잘못을 떠나서 전혀 예측할 수도 없고 방지할 수도 없는 그야말로 함정 중의 함정, 예방책이 그렇게 효과적이 아님으로 사후 대책에 안간힘을 쓰지만, 이것은 최소한의 냉각기 같은 시간이 필요함을, 오랜 인생의 경험에서 체득한 바다. 그저 .. let it be, let it pass, let’s wait and see.. 같은 값싼 말만 되 뇌일 뿐이다. 청명하고 빠삭.. 한 깊은 가을 하늘을 바라볼 뿐이다. 지나가라.. 지나가라..

Sudden death, black day, blow-up day 같은 간단한 단어들이 나의 journal 에 적힐 뿐 다른 활동은 거의 없는 이런 며칠을 어떻게 보낼까.. 이런 지혜는 성경의 어느 구절에 나오는 것일까? 아니면 어떤 inspirational books같은 것은 없는 것인가? 결국 며칠 동안 실감하는 것은 이것이다. 인간은 비록 사회적 동물일 수 밖에 없지만 때에 따라서는 절대적으로 고독한 ‘홀로 존재’라는 놀라운 사실이다. 결국은 인간은 혼자인 것이다. 그래도 여기에 위로는 있다. 절대로 혼자인 인간은  놀라운 transcendent nature 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 오감과 경험에 의한 것들에서 초월한 것들, 감성적이 아닌 이성적인 믿음을 향하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결국은 나는 ‘며칠 동안’ 이곳으로 몸과 마음을 의탁하며 Robert Spitzer의 글1을 다시 묵상해 본다.

 

The dark side of life can sometimes be quite daunting, but the love of Christ, prayer, the Church Community, the Holy Spirit, the Holy Eucharist, and the Word of God can bring light into the darkness. This gives rise to a great mystery that most people of faith will well recognize – that challenge oftentimes turns into opportunity, suffering into new viewpoints and ways of life, dejection into strengthened hope, fear into trust in God, weakness into spiritual strength, temptation into strengthened virtue, and confrontation with evil into the triumph of love.

 

  1. Robert Spitzer, S.J., Ph.D. 2016.  God So Loved The World.  San Francisco: Ignatius Press, p. 340

3rd sick day, 올해의 연총은..

¶  Sick day, 3rd.. 우리는 정말 오랜 만에 편히 쉬는 기분을 느낀다. 역시 쉬는 것은 아플 때 더 그 진가 眞價 를 느끼는 것인가? 적당히 몸이 아픈 것은 마라톤 같은 기나긴 인생여정에서 필요한 윤활유역할이 되기도 한다. 며칠 째 ‘기침, 몸살감기’로 고생하는 연숙 ‘덕분’에 정말 오랜 만에 모든 ‘정상적 일정’을 쉰다. 그야말로 ‘뜻밖의 휴가’같이 되었다.

매일 아침의 rule이었던 9시 미사가 우리의 하루에서 빠지는 것 때문에 더욱 멀리 떠나온 여행 같은 느낌을 주는지도 모른다. 2012년 부활절 때부터 시작된 이것, 벌써 4년 반이 된 아침의 ritual, 우리 DNA 의 일부가 된, 하루(그리고 인생)를 건전하게 사는 활력소 (빵과 피)가 되었기에 이것이 빠진 하루는 조금 허전하기도 하다.

아침 9시 미사에서 매일 보게 되는 regular Irish, Hispanic ‘아줌마’들, 은근히 걱정을 하고 있을 것이다. 거의 예외 없이 같은 자리를 지키던 우리가 안 보이니.. 아마도 ‘드문 여행’ 아니면 누가 아플 것이라고 속으로 기도까지 할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도 누가 안 보이면 그랬으니까..

이번 주일날에는 일년에 한번씩 있는 ‘레지오 간부교육‘이 있는 날이라 순교자 성당엘 가야 하는 날인데, 만약 그때까지 이 감기, 몸살이 깨끗이 낫지 않으면.. 조금은 골치가 아프게 될 것 같은데, 최악의 경우 빠질 수도 있겠지만 ‘공식적인 일정, 의무’가 있는 연숙은 큰 문제일 것이다. 예비신자 교리반도 그렇고, 레지오 간부교육도 마찬가지다.

주변에 있는 중병이나 terminal illness로 고생하는 사람들에 비해서 이것은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위로를 해야 하는가.. 하지만 이럴 때에 비로소 ‘아픈 주변 사람’들의 고통을 절감, 실감하게 되는 좋은 때가 되기도 하니까 시간 낭비만은 아닐 듯하다.

 

¶  2016년 레지오 연차 총 친목회(줄여서 ‘연총‘)가 이제 한달 반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참 세월이 어찌도 이렇게 빠른가.. 작년, 재작년 때 연총을 어제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벌써 또 한 해가 간단 말인가? 레지오 조직에는 참 좋은, 의미 있는 ‘단체 행사’가 있고, 대부분은 군대의 훈련과 비슷한 면이 있지만 이 연총은 쉽게 말해서 한 해를 보내며 ‘즐겁게 노는’ 쪽이다.

6년 전 레지오를 시작하면서 이 행사는 나에게 제일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그만큼 기억에 남는 것이 되고 있다. 매년 12월 8일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의무 대 축일이고, 그날을 전후로 연총이 열리게 되어있지만, 사실은 세속적인 분위기에 곁들여 ‘성탄’의 분위기가 조금씩 느껴지는 시점으로 이 행사는 조금 들뜬 분위기일 수밖에 없다.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꾸리아 소속 모든 쁘레시디움의 행동단원, 협조단원들이 참가하는 올해의 연총, 12월 4일 일요일 오후에 성당 친교실을 떠들썩하게 할 것이다. 이때에는 ‘드물게’ 모든 레지오 단원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게 되고 그들이 준비한 talent show를 즐기게 된다. 기억에 남는 ‘제일 신명 나던 때’는 역시 4년 전, 2013년 연총이 아니었을까?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때가 나의 ‘레지오 전성기’가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뭔가 잘 모르며 ‘레지오의 매력’을 한껏 느끼던 그런 때.. 돼지띠 동갑 전요셉 형제와 한껏 의기투합이 되던 때, 새로 배운 ‘엽전냄새가 흠뻑 밴’ 둔탁한 저음의 난타 큰북 리듬..  ‘희귀동물’ 남자 단원들과 함께 악을 쓰며 부르던 ‘통기타 노래들’.. 참, 그때가 그립다.

그 이후부터는 사실 나로써는 조금은 김이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왜 그런지 사실 확실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이것이 ‘경험에 젖어가는 정상적인 것’이 아닐까.. 그 동안 한번도 빠지지 않았지만 작년에는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고통, guess what?’으로 부득이 talent show에서는 빠지게 되었지만 조금 만 참고 참가를 할 걸 그랬나.. 하지만 무리무리 무리였다.. 그 때 해야 했던 것은 ‘탈춤’이었으니.. 몸 전체를 요란하게 움직이는 것, 절대로 무리였다.

올해는 어떨까? 항상 희귀한 남자단원, 사치스럽게 더 찾기 어려운  동갑내기 형제님, 모두 사라지고 다시 지극히 정상적인 ‘꽃밭 속’으로 들어가야 하나..  올해에는 어떤 talent를 보여주나.. 하는 것, 쉽지 않은 것인데.. 올해는 아주 ‘자연스럽게’ 해결이 되었다. 레지오 옆 ‘동네’, ‘은총의 모후‘ 자매님들과 guitar lesson을 하였던 관계로 그 자매님 그룹과 다시 뭉치기로 한 것이다. Guitar를 같이 칠 수 있다는 공통점을 잘 써서 chorus를 하기로 하고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Someone is praying for you‘, 와 ‘개똥 벌레‘라는 두 곡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 듯하다. 합창과 율동이 곁들여진 이것, 이제는 연습을 시작만 하면 되고.. 시간만 지나면.. 이 모든 것도 다 지나가리라..

 

Autumn of my life, Chilly & gloomy..

 

Bobby GoldsboroAutumn of My Life – 1968  

 

¶  3번째 계절로..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3/4분기 계절로 접어들었다. 4계절이 뚜렷한 이곳의 날씨, 비록 여름에 조금 길고 덥지만.. 나는 이 four seasons의 고마움을 항상 느끼며 산다.

 blog-front-1오늘 blog site의 front page의 그림이 가을 것으로 바뀌었다. Tobey와 깊은 가을 산책길에 떨어지는 낙엽을 올려다 보면 찍은 사진.. 오래 전 OhioWisconsin의 기나긴 겨울과 아주 짧은 봄, 가을의 날씨들에 비해서 이곳은 4계절이 너무나 뚜렷하다. 특히 봄과 가을이 북쪽에 비해서 긴 편이다. 비가 거의 오지 않는 올해의 가을은 어떻게 보면 ‘가을의 진수’를 한껏 맛볼 것 같은 희망도 든다. 파랗다 못해 검푸른 깊고 높은 하늘, 주변이 하늘처럼 높은 고목들에 둘러 쌓인 그 멋진 모습이 사진에도 많이 담겼다. 비록 ‘가을비 우산 속‘ 의 낭만은 없지만 이것은 다른 맛의 낭만이 아닐까? 언제까지 이 모습을 유지할 것인가?

아~~ 앞으로 최소한 두 달 정도는 깊어가는 진한 색깔의 고엽, 낙엽의 향연이 펼쳐질 것이다. 감상에 젖게 하는 싸늘한 가을 비가 덜 와도 상관이 없다. 낙엽이 타는 냄새 같은 진한 coffee와 Tobey와 즐기는 늦은 오후의 낮잠은 나에게는 바랄 수 없는 보약이요 영양제가 되니까… 어머니시여, 자연의 의미와 비밀을 이렇게 계속 보여주소서… 우리는 아마도.. 아마도.. 지금 인생의 가을, 그것도 깊은 가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남은 것은 이제 겨울밖에 없는가.. 

 

¶  이른 새벽, 요란한  연숙의 고통스런 기침소리에 잠을 깼다. 며칠 동안 기침감기, 아니면 독감 증상에도 불구하고 normal daily routine은 고집하며 낫기만 기다리고 있었지만 이번 것은 아마도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은 자괴감에 젖는다. 어제의 레지오 주 회합에서는 드물게 서기인 나보고 묵주기도 주송을 시키며 목청을 아끼고, 오후에는 Tylenol덕분에 많이  좋아졌다고 했지만,  열이 없는 ‘악질성 기침’이 유별난 것이 특이한 이번 감기,  별일 없듯이 목청을 아끼지 않고 전화까지 하며 지내더니 결국은 이렇게 시간을 끄는 것은 아닌가.. 목소리를 쓰는 전화를 거의 안 쓰는 나에 비해서 장시간 전화로 목소리를 쓰는 것, 이런 기침감기에는 아주 치명타가 아닌가..

하지만 오늘 새벽의 기침은 이유가 다른 데도 있었다. 조금씩 떨어지던 새벽 기온.. 결국은 빙점 가까이.. 40도 대로 떨어진 것이다. 아마도 다른 집 같았으면 central heating의 더운 바람 소리가 들렸을 것이지만 68도에 맞추어놓은 우리 집, 온도가 내려갈 대로 내려간 것이고 몸의 allergy성 반응으로 지독한 기침이 난 것이 아닐까.. 그래도 이틀 전에 아래층 gas furnace의 pilot light 를 다시 켜 놓았기에 오늘 ‘강제로’ 70도 manual setting으로  central heating을 가동 시켜 보았다. 너무나 오랜 만에 듣는 그 잔잔하고 둔탁한 gas flame나오는 소리가 반갑고, ‘휴~’ 하는 안도감, ‘아직 이 고물이 돌긴 도는구나..’하는.. 

2주 전까지만 해도 heating 같은 것은 상상도 못했는데 그 동안 어쩌면 그렇게 추위가 느껴지게 날씨가 변했던가.. 매년 10월 중순 경에 첫 central heating 의 blower motor 소리가 들리던 것, 결국은 올해도 평년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거시적으로 보면 거의 변화가 없는 자연의 섭리를 느끼게 된다. 하지만 오늘 아침의 경험은 글자 그대로 chilly & gloomy.. 오늘의 normal daily routine을 완전히 쉬기로 결정을 해 버렸다. 지나가는 주간에는 내가 아픈 잇몸 때문에 비상이 걸렸다가 조금 나아지는 때에 이제는 다른 편이 아프니.. 이럴 때, ‘부부’가 같이 사는 ‘편리함’ 다시금 느낀다. 그저.. 이 늦은 나이에, 둘이 아프더라도 같은 때에 아프지 않으면 된다.

 

Big dip, 9월이여 안녕..

¶   드디어 ‘아기다리 고기다리 던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오래~ 전의 유행어) 그 첫 big ‘sudden’ dip이 거의 도둑처럼 밤새 찾아왔다. 거의 20도가 하루아침에 떨어진 것이고, 그것이 거의 3일째 계속되어서, 아침에 거의 3개월 만에 ‘긴 팔’ shirts를  입게 되니 그렇게 기분이 날라갈 것만 같다. ‘긴 팔’ shirts를 가 딱 좋아서가 아니라 그 지긋지긋하던 2016년 여름이 결국은 물러갔다는 그것이 그렇게 기쁜 것이다. ‘긴 팔’을 입으면서 문득 태고 적, 중고등학교 다닐 때, 10월 1일에 하복에서 동복으로 ‘일제히’ 바뀌던 그 때가 생각이 난다. 그러면 당시의 서울의 사계가 이곳 지역과 비슷한 것일까.. 물론 이곳의 평균기온이 높지만 사계가 뚜렷한 것은 거의 비슷하다.

아침 9시 Holy Family CC 평일 미사엘 가니 우리보다 나이가 더 드신 ‘어르신들, 특히 할머님들’은 숫제 ‘오바 overcoat’를 입고 목도리로 단단히 무장을 한 것이 보인다. 체감온도에 따라 각양각색의  이곳의 ‘주위를 의식하지 않는 의복문화’가 더 뚜렷이 느껴지는 계절이 온 것이다.

Full time으로 돌아가던 에어컨이 갑자기 ‘조용~’ 해 지니 조금은 섭섭하기도 하지만 그럴 새가 없다. 분명히 10일~20일 사이에 첫 central heating이 ‘점화’될 것이기에.. 또 crawl-space로 ‘기어들어가’, 거미줄을 헤치고 gas heater pilot- thermocouple을 ‘점화’하는 고역을 치러야 한다. 문제는 이때 문제가 발견되면.. 또 하루 이틀 고생을 할 것이다. 에어컨은 올해의 oppressive, brutal Summer heat를 잘 견디어 내었지만 올 겨울 central heating 특히 아래층 것이 항상 마음이 조린다. 위 층의 heater는 우리가 이사 온 후에 바꾼 것이라 아마도 ok일 것이다. 올해의 더위로 electric bill은 보기가 무섭지만 그것에 비해서 natural gas는 훨씬 ‘저렴’해서 겨울 몇 개월 동안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 그저 적당히 춥기만, 적당히.. 적당히..

 

¶  2 feral Kittens: 지난 5월 쯤 우리 집 backyard shed에서 태어난 kittens들, 4마리였다. 그 동안 우리 집을 ‘거점’으로 들락날락하더니 결국은 모두 떠나고 kitten 두 마리가 우리 집 뒷마당에 정착을 하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엄마와 다른 2마리는 완전히 떠난 셈이다. 하지만 가끔 엄마는 찾아와서 밥만 먹고 떠나곤 한다. 우리가 control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저 그들의 ‘행태’를 관망하며 먹이만 잘 챙기고 있는 셈이다. 그렇게 조그맣던 것들이 잘 먹어서 그런지 꽤 크게 건강하게 잘 자라는 것을 보며 이제는 우리 집도 그들에게 정이 들고 있다. 그들과 가까워지기 위해서 먹이를 우리 집 뒤 deck에 놓아주고 하루 두 번씩 먹이를 주며 서로 얼굴을 익히며 사귀고 있는데 지금은 우리를 하나도 겁내지 않고 먹이를 가지고 나가면 발 밑에서 맴돌 정도까지 되었다.

집안에 이미 개 Tobey와 고양이 Izzie가 있지만 이 두 마리는 행동이 100% 자유스러운 feral cats들로써 앞으로 ‘불임수술’을 해야 하는 부담이 기다리고 있다. 그들이 원하면 언제라도 우리 집을 떠날 수도 있기에 이것은 반드시 우리가 service해야 할 부담이 되었다. 작은 딸 ‘나라니’가 county humane society에서 ‘거의’ 무료로 수술을 해 주는 방법을 찾고 있는데 아직도 소식이 없다.

건강하게 자라나는 '아롱이'와 '다롱이'

건강하게 자라나는 ‘아롱이’와 ‘다롱이’

 

현재까지 이 두 마리를 보면서 생각한다. 이들도 하느님의 생명들이라는 것, 사람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 생명들이 아닌가? 최대한 그들도 태어난 의미를 찾아 주어야 하는 것, 우리가 할 수 잇는 것은 무엇인가? 우선 이름이 필요했는데 마땅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던 차에 연숙이 ‘아롱, 다롱‘은 어떠냐고 해서 그렇게 불리고 있다. 분명히 순 한글이름이지만 만약 영어로 쓰면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하니 오래 전 고국에서 보았던 불란서 영화의 간판 배우 아랑 드롱 이름이 떠오른다. 우리 집 backyard가 그런대로 넓은 편이니까 아마도 그들은 우리 집만 떠나지 않는다면 Born Free의 사자 lion, Elsa처럼 자유스럽고 먹이 걱정하지 않고 ‘일생’을 사는 그런 삶으로 만들고 싶다. 당장 해야 할 일은 갑자기 떨어진 날씨를 상기하며 겨울을 날 조그만 shelter를 만들어 주는 일이다.

 

¶  오늘은 일주일 전에 계획했던 것, 우리 집에서 거의 30 마일 떨어져 있는 Duluth, GA 에 있는 St. Monica성당을 방문하는 날이 되었다. 얼마 전 부터 아틀란타 대교구 본당들에는 최근에 성녀 품에 오르신 마더 데레사 성녀 (St. Mother Teresa)를 기념하는 조그만 순회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전시는 거의 대부분 데레사 성녀의 일대기가 실려있는 기록사진 panels 들이라 다른 source에서 (Internet같은 곳) 찾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본론이 아니고 성녀의 relic (유물)이 함께 전시된다는 사실이 우리의 관심을 끌었다. 성인들의 relic은 신체의 부분을 포함해서 개인 용품들도 있는데 오늘 이곳에서 우리가 본 것은 성녀 데레사가 입고 있던 sari (파란 색의 사리 옷)의 일부분이었다. 그 색깔은 분명히 사랑의 선교회 수녀들이 입고 있던 연한 파란 색, 바로 그 옷의 일부였었다. 한가한 시간이라 사람이 없어서 그랬는지 처음에는 그 relic이 치워져 있어서 사무실에 문의를 해서 특별히 조그만 방에 임시로 보관 된 그 relic을 볼 수가 있었다. 이미 사진전시로 성녀의 일대기를 다 본 이후에 그것을 다시 보니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Media를 통해서 이미 잘 알려진 수녀님의 모습과 그 파란 색의 옷, 바로 그것이 수녀님 것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이날 30여 마일을 온 보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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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의 1st class relic이 전시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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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ll color panels: 성녀의 일대기가 이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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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Monica 성당 내부

 

When you’re sixty-four..

 

The Beatles – When I’m Sixty-Four

 

휴~ 이제 다 끝이 난 모양이다.  연숙의 생일 ‘먹기’. 1월 달에는 나와 큰 딸, 9월 달엔 엄마와 작은 딸의 생일이 같은 날짜 차이로 있다. 그래서 1월도 조금 바쁘고 9월 달도 마찬가지다. 올해 연숙의 생일은 조금 지나치게 보낸 것은 아닐까? 생일 전날에 Thai restaurant Lemongrass에서 ‘간단히’ 둘이 ‘먹었고’, 생일 날엔 아이들이 와서 Marietta Square에 있는 gourmet hamburger restaurant Stockyard 란 곳에서 ‘무지막지’하게 큰 hamburger와 local microbrewery 산 draft beer sampler로 배가 터지게 먹었고, 마지막으로는 우리 레지오 단원들과 같이 한 생일회식이 마지막을 장식하였다. 그러니까.. 무려 3번 생일축하를 한 셈이다. 조금 지나친 감도 없지 않았으나.. 생각을 해 보니 올해 생일이 육십사세 란 것이 귀에 익은 숫자였다. 내가 4년 전에 1월에 친구 양건주와 나의 생일을 자축한 Beatles classic, When I’m sixty four..  생각이 나는 것이다.  4~5 년 뒤로 나를 따라오는 연숙이 64세라는 것이 조금은 실감이 안 간다. 부모세대의 64세를 생각하며, 손주들이 주렁주렁한 할머니의 모습들.. 암만 봐도 그 때의 그 모습들이 없다. 한 세대가 흐른 시점에서 세대 차를 느끼지만 그것은 모두 ‘겉 모습’에 관한 것 들이다. 아마도 세월에 의한 경험은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아닐까? 그 옛날 60년대.. 이 Beatles의 When I’m sixty four를 들었을 당시.. 기억에, 와~ 그 나이까지 살면 어떻게 하나.. 하고 은근히 기분이 쳐지는 느낌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 우리 부부는 ‘완전히’ 그 magic number를 모두 넘어선 것이다. 참 정직하다, 세월은.. 어김없이 일초 일초..흐른다.

 

7월을 보내며..

¶  결국 7월의 마지막 날은 이렇게 오고야 말았다. 표현이 아주 극적이지만 사실 하나도 극적인 것이 없는 2016년 7월이 ‘영원히’ 나로부터 떠나려 하고 있다. 올 여름의 특징이었던 ‘변화 없는 더운 날씨’ 바로 그것으로 기억에 남으리라. 어제가 그제고 오늘이 ‘아마도’ 내일일 것이다. 거의 변화를 못 느끼는 그런 날씨, 더위, 느낌들.. 지겹게도 느껴질 수 있겠지만 올해의 이 여름의 지겨움은 사실 그렇게 견디기 힘든 것은 아니다. 재수가 잘 맞으면 늦은 오후에 쏟아질 수도 있는 소나기의 희망도 있고, 이제는 우리의 몸도 더위에 잘 적응이 되었고, 33일 봉헌 준비를 위해 ‘질주’하는 짧지 않은 영원과의 대화 시간도 있기에 그럴지 모른다.

7월 초에 우리의 미국본당 Holy Family 성당에 ‘기혼자’이신 주임신부님이 부임해서 관심과 우려를 예상했지만 결과적으로 기우였다는 것으로 판명이 되었다. 진지하고 영성 적이고 정치, 사회에 관심이 많은, 강론이 진지하고 준비가 잘 된, 한마디로 ‘합격, 합격’ 이었다. 가정이 따로 있어서 사제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아침마다 출근을 하는 것이 처음에는 너무나 이상했지만 이제는 모든 신자들이 잘 받아드리는 느낌이다. 우리도 마찬가지.. 전번 traditional Irish 신부님과 너무나 느낌이 다른, 너무나 ‘살아있는’ 강론, 앞으로 우리 본당은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긴다.

 

¶  오늘부터 우리의 일요일 routine이 조금 바뀌게 되어서 조금 더 새로운 느낌의 일요일을 맞는다. 바뀌게 된 큰 이유는 동네본당 Holy Family  Catholic Church의  10시 미사 대신에 8시 30분 미사로 바꾼 것 때문이다. 일요일의 은근한 위안이었던 ‘조금 늦게 일어나는’ 것이 없어진 것이 조금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변화였다. 연숙이 한인본당 순교자 성당의 교리반 director가 되면서 어쩔 수 없이 그녀는 ‘매 주일’ 미사에 관계없이 순교자 성당엘 가야 하는 입장이 되었는데, 문제는 우리 둘이 어느 쪽에서 미사참례를 하느냐 하는 것이다.

제일 이상적이고 간단한 것은 우리 둘이 함께 순교자 성당에서 주일미사 참례를 하면 되는 것이다. 비록 정든 Holy Family 동네본당의 주일미사를 못 보게 되긴 하지만 그곳은 평일 미사를 거의 매일 가니까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비록 순교자 성당엘 둘이 가게 되면 나는 교리반이 완전히 끝나는 시간까지 ‘할일 없이 밖에서’ 기다려야 하는 고역도 있긴 하지만 그것도 내가 조금 불편함을 참으면 크게 어려울 것도 없었다. 그런 배경으로 나는 ‘거의’ 주일 미사를 순교자 성당엘 둘이 가기로 마음을 정하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인가, 악마의 손길인가..

우리와는 어쩌다 보니 거의 운명적으로 incompatible한 것으로 판명이 된 인물들이 갑자기 우리 주위의 공동체(주로 구역과 순교자 주일 미사) 에 등장한 것이다. 한 명이라면 그런대로 참고 견디겠지만 그 이상은 감당하기가 힘들다. 멀리서라도 보이게 되면 간단히 피할 것인가, 이들의 존재를 완전히 무시할 것인가, 극약으로 정면으로 대할 것인가.. 어느 것도 나에게는 쉽지 않은 option이라는 결론이 나왔고 결국은 구역 모임, 순교자 본당 주일미사에 가는 것을 아예 포기하고 말았다. 조금 아쉽긴 하지만, 할 수가 없는 노릇.. 다른 것은 배를 쓸고 참을 수 있어도 멀지 않은 과거에 divide & conquer를 motto로 공동체를 사정없이 분열시키고 ‘해괴한 수준의 박학다식‘을 자랑하던 그들의 위선적인 얼굴과, 진짜 속 마음을 알 수 없는 언행 등은 정말로 참기가 힘든 노릇이니 결론은 이렇게 간단한 것이 되었다.

한때 급작스럽게 우리에게 가깝게 다가오던 정들었던 구역 모임과 그곳의 착하게 열심히 살아가던 교우들, 주일 미사에 항상 앉던 자리의 주변에서 그런대로 얼굴이 친숙해지던 형제, 자매님들.. 당분간 (얼마나 오래갈지 아무도 모르는..) 잊어야 할 듯.. 이래서 이것은 운명의 장난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것은 내가 풀 문제가 아니라 우리들의 전구, 보호자이신 성령과 성모님의 절대적인 도움이 필요한 문제가 아닐까? 8월에는 조금 선선하고 신선한 쪽으로 사정이 흐르기만 바라고 있다.

 

DASUQUIN magic: 3주 전쯤 하루아침에 갑자기 거의 신체불구가 된 듯 했던 우리 집 12살짜리 ‘강아지’ Tobey는 한때 ‘장례식’을 연상했을 정도로 암울한 며칠을 보냈었다. 속으로 나는 그 녀석을 보낼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고 설마.. 하는 심정으로 며칠을 정성껏 돌보았는데 문제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나타내는 것을 옆에서 볼 수가 없었던 것.. 우리의 결론은 비록 ‘심한 신경통, 관절염’ 쪽이었지만 혹시 만에 하나라도 다른 것이라면.. 하는 우려가 떠나질 않았다. 하지만 급히 order했던 약을 먹은 그날부터 거의 기적과 같이 움직이며, 신음소리도 줄어들었다. 그 약의 이름이 바로 DASUQUIN 이었는데.. 나는 이때야 비로소 ‘약 장사’의 인상이 조금은 좋아짐을 느꼈다.

이것은 우리에게는 거의 ‘생과 사’의 갈림에서 기적과 같은 느낌을 주는 경험이 되었다. 생각에 그래서.. 그래서.. 약 장사 (제약회사)들이 그렇게 돈을 버는구나 하는 자명한 사실.. 내가 원래 약을 싫어하고 안 믿는 인간이라 더욱 놀란 것이다. 어떻게 거의 죽다시피 보이던 것이 그렇게 나아질 수 있었을까? 3주가 지난 지금 Tobey는 거의 전처럼 돌아왔고 우리 집의 공기는 다시 활기가 돌아오고 있다. 7월이 준 따스한 은혜라고나 할까..

 

준비 6일째, animal pain, 우아~ 쳐진다..

¶  봉헌을 위한 33일간의 준비, 간단히 “33일 봉헌 기도” 라고 불리는 이 한 달을 넘는 준비기간이 7월 13일 시작되어서 이제 6일이 지나고 있다. 33일 중, 첫 12일간을 ‘첫째 시기 12일: 세속 정신을 끊음‘ 이라고 하는 ‘준비 전의 준비기간‘에 속하고, 나머지 3주가 사실 본론에 속한다. 첫 12일 ‘준비 전의 준비기간’ 에는 ‘세속에서 떠나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2년 만에 다시 이 ‘‘을 보며 ‘묵상’을 하는 것, 새롭기도 하고 조금은 귀찮기도 하지만 이것이 나의 올해 ‘개인피정 personal retreat’ 라고 여기고 조금은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현재까지 느낌은 전 보다 조금은 더 높고 넓게 주제를 받아들이는 그런 것.. 이것은 분명히 발전이다. 과연 우리가 세속이라는 것으로부터 자유스러울 수가 있을까? 우리가 현재 보내고 있는 초 현대는 99.99%가 세속세계가 아닌가? 깊은 산속의 수도원에 들어가기 전에는 아마도 2중 적인 삶(생각과 행동이 같지 않은) 을 살아야 할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노력은 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조금씩 이 세상을 탈 세속 사회로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초자연적인 도움이 있다면…

 

¶  Tobey가 하루아침에 ‘갑자기’ 누워버린 지 일주일이 지나간다. 그 애나 우리나 어떻게 보면 참 긴 시간이었다. 집안에 환자가 생기는 것이 이런 기분이겠구나.. 그렇게 주위에 아픈 사람을 많이 보았지만 집안의 개가 아픈 것을 보는 것은 전혀 색다른 경험이 되었다.

급하게 order한 약, 신경 관절염 치료 보조제 supplement를 기다리는 동안 증세가 조금은 호전된 듯 보이기도 했지만 그렇게나 아픈 신음소리를 내는,  말 못하는 ‘식구’를 보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었다.

이틀 전에 도착한 ‘기적의 약’에 모든 희망을 걸긴 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확실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혹시 이렇게 아픈 이유가 우리가 생각한 그런 것이 아니라면? 하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그 약을 먹은 지 24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Tobey는 다시 서서히 천천히 일어나 걷기 시작한 것이다!  고통스러운 초점을 잃었던 눈이 원래대로 ‘뱅글뱅글’ 돌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가 본 대로 이것은 arthritis계통의 ‘노인병’일 것이다. 이것의 고통은 사람들에게 들어서 익히 알지만 그들은 말이라도 하지만 말 못하는 동물들은 그 심정이 어떨까.. 다시 한번 언젠가 다가올 ‘이별의 순간’에 대한 생각을 물리치며, 이제는 animal pain, animal theology의 의미를 어렴풋이나마 알 듯하다.

 

¶  와~~ 쳐진다.. 오랜만에 기분이 무척이나 쳐진다. 우울할 정도로 쳐지는 느낌 아주 오랜만인가? 예전에는 하루를 멀다 하고 우울한 감정과 싸우던 기억인데 이제 그것도 조금씩 추억으로 변하고 있으니,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왜 그렇게 ‘나아진 것’인지 그 이유는 나에게 너무나 자명하다. 바로 깊숙한 곳에 도사리고 있는 ‘마음의 평화’일 것이다. 이것이 예전에 비해서 그렇게 외부에 의해서 좌지우지되는 것이 힘들어진 것이다. 왜 그럴까? 그런 중에도 가끔 이렇게 우울한 날이 오긴 한다. 얼마를 못 가지만 그래도 이것은 괴롭다. 어찌해서든지 몸을 바쁘게 해서 마음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시간을 보내는 수밖에 없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이유를 생각하면 몇 가지가 분명히 있지만 나로써는 어떻게 해결할 수도, 그럴 가지도 없는 ‘사소한 것’으로 생각하기에 그저 시간만 가기를 기다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