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동 1번지, 그리고 계동 ‘길’ 98번지

은지가 보낸 계동 ‘길’ 동영상, 크게 확대해서 자세히 천천히 본다. 추억의 극치 중에 하나, 그 중에서 바로 으뜸이구나… 당시 비가 온다는 그곳, 크게 자세히 보니~ 아~  골목 끝 위 먼~ 곳에,  ‘계동 1번지, 중앙고등학교 white castle‘이 ‘솟아 솟아 솟아서’, 솟은 것을 찾는다.  더 확대해서 자세히 보니~ 원래부터 문이 없던 ‘교문’ 기둥 둘이 보이고, 그 뒤는 김성수 ‘교장’이 손수 화강암 돌을 날라다 쌓아 만들었다는 본관 건물, 그곳으로 오르는 가파른 언덕길이 가려져 있다. 교문 왼쪽은 ‘사령관 모자를 쓴 수위’ 아저씨가 상주하던 수위실, 오른 쪽에는 당시에 그다지 싸지 않았던 통학용 자전거들을 두던 곳. 이 문짝 없는 교문, 언덕길을 6년이나 오르내렸으니.. 그것이 나의 뇌리에서 그리 쉽게 사라지겠는가?

교문에서 왼쪽은 가회동 으리으리한 한옥들 골목, 오른 쪽은 상대적으로 우중충했던 무허가 건물 처럼 초라한 집들이 도열한,  또 다른 언덕길은 나의 6.25이후의 고향, 원서동으로 이어진다. 추억의 계동 골목이 이제는 계동길 X번지로 바뀐들 , 너무나 깨끗하게 정리가 된 것 외에는 추억의 골목과 크게 다를 것이 있겠는가? 그곳은 그곳이고 그때는 그때다. 오늘따라 왜 나는 그곳에서 사는, 아니 살아온 사람이 된 착각에 빠지는 것일까? 그리고 그것이 나는 그렇게 기쁘고,  행복할까, 왜?  추억의 시대를 반세기 넘어서 세대도 두 번씩이나 바뀌어, 코흘리개였던 조카 은지가 계동길 98번지에서 희망에 찬 모습으로 ‘식물이 좋아서 because Ilove plants‘라는 이름도 거창한 plant gift shop, ‘창업’을 하며 나의 추억을 되살려주고 있으니까.. 고맙다, 은지야~  부디 그렇게 좋아하던 것, 크게 성공하기를…

날씨를 핑계로 편안하게 일요일 아침, 또, 집에 있고 싶었다. 아니 20마일이나 운전을 해서 한국본당에 가는 것이 싫었다. 그쪽에서 나를 잡아 끄는 그 무엇이 오늘도 없었다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이지.. 하지만 오늘은 지난 일요일과 조금 다르게 미사를 완전히 빼먹기도 께름칙하고, 아침 식사를 끝내며 옆에 켜있던 TV를 보며 CPBC 평화방송 생각이 문득 난다. 아~ 코로나, 코로나 Pandemic 이것도 벌써 ‘향수鄕愁’ 깜이 되었나?  불과 2~3년 전에 거의 매일 찾던 곳, 평화방송의 인터넷 미사!

이것이라도 있어서 오늘 하루는 그런대로 견딜만했다. 조금 덜 미안하고 덜 죄스러웠으니까.. 오늘 YouTube에서 방영된 미사는 방송국 chapel이 아닌, 서울 시내 성당에 나가서 한 것이어서 더욱 실감이 있었다. 오늘 평화방송이 간 곳은 구로2동 성당, 1969년에 지어진 성당이라서 요새 지은 성당과 너무나 다르게 소박하기만 했지만, 나에게는 오히려 1969년 나의 대학3학년 때를 돌아보는 친근함만 더해 주었다.

이제는 그곳 [고향 땅]에 있는 성당에 대해서 조금은 실감이 가기에 오늘 미사는 나에게 조금 다른 각도로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필연적으로  10월 달에 인연을 맺었던 경기도 군포시 금정성당, 그곳의 레지오 회합, 단원들 생각이 나고, 이어서~ 아~  역시 나의 ‘진짜’ 고향이 그립다라는 생각에서 비약.. 혹시 우리가 그곳에서 다시 산다면? 나에게도 그곳에 가까운  가족, 친척, 친구들이 있다는 생각이 비약적으로 그들을 이제는 가까이 옆에서 보고 살고 싶은 뜬금없는 가망성이 희박한 희망까지 생긴다.

김형석 [명예] 원로 ‘백세인’ 교수님의 아침 식사, 오늘 비로소 그 식단을 알게 되었다. 놀랍게도 우리의 지난 20여 년 간의 아침 식사의 모습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또한 매일 매일 심심할 정도로 큰 변화가 없다. 그러면~ 이것이 바로 건강식이었단 말인가?  이것이 백세인의 습관 중의 하나란 말인가? 그러면 우리도 백세를 살고 싶다고? 어찌 우리가 그것을 알 수 있겠는가? 물어볼 가치도 없는 질문이다. 하지만 이 아침 식단은 조금 격려를 받으며 계속될 것은 분명하다. 그러면 하루 두 끼 먹는 것은 어떤가? 그것은 김교수님의 습관에 보이질 않는다.

어제 저녁 연숙이 아슬아슬한 자세로 기우뚱거리며 의자에 올라가서 이 ‘포도 성탄 장식’을 설치했는데, 오늘 보니 너무나 예쁘고 귀엽다. 갑자기 떨어진 기온으로 집 안팎이 쓸쓸하기만 한데 이 조그만 노력으로 당분간 우리 부엌  주변은 성탄과 새해를 조금 따뜻하게 보이게 할 것 같다. 고마워~ 고마워~

불고기 볶음밥과 두부 된장국, 갑자기 추워지는 늦은 오후의 늦점심.. 영양학적으로 봐도 완전 균형식이다. 감사, 감사…

즈음 우리 둘 모두 양양이에게 신경을 쓰고 산다. 나이도 그렇고, 최근 계속 ‘실수, 사고’ 를 연발하는 녀석이 걱정도 되고, 특히 먹는 것이 주춤해서 살이 더 빠지고 있어서 은근히 혹시~ 하는 상상까지 안 할 수가 없구나. 아~ 갈 때 가더라도 지금 안 된다, 안 되~~   이런 와중에서 녀석과 우리는 갑자기 가까워졌다. 전혀 화도 안 내고, 나의 곁을 안 떠나려고 하는 등, 너무나 사랑스러운 것이다. 심지어 지금은 예전의 Tobey와 거의 같은 모습으로 나의 무릎에 앉는 것은 물론 아예 거기서 졸기도 하고, 오늘은 그와 함께 나도 졸았으니… 참, 꿈을 꾸는 듯하다. 이런 세상이 올 줄이야~~ 그래, 양양아, 편안하게 살다가 가자꾸나, 그곳으로, 그곳으로…

포근하던 며칠~ 새벽에 무섭게 폭풍이 지나가더니 일요일 하루 종일 세찬 바람에 컴컴한 비가 하루 종일… 게다가 오후로 들어서는 기온까지 급강하~~ 아마도 내일 새벽은 다시 빙점으로 돌아가는 완전 “겨울의 초상”인가… 하지만 나는 이런 날씨를 ‘지독히’ 사랑하니까.. 아무런 문제는커녕 기다리며  산다.

불안, 두려움, 절망감의 정체와 해답은…

예전, 아니 오래~ 전에 스쳐갔던 생각 중에는 ‘현재가 힘들어도 나이가 들면 분명히 도사나 신선처럼 느끼는 잔잔한 평화, 불안이 없는 지혜와 함께 살 것’이라는 뜬구름 같은 희망이었다. 그것이 지금 눈을 떠보니, 어떻게 되었는가~ 별로 아니 전혀 나이와 편안함은 상관이 없음을 깨닫는다. 나이, 세대별로 그 성질이 달라진 차이뿐이다.  그 중에는 불안과 두려움 같은 것은 끈질기게도 따라오고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비록 육신의 건강은 점점 내리막 길을 걷게 되어도 머리 속에 펼쳐지는 세상은 점점 편해질 것이라는 희망, 바로 그 희망을 원하며 살았는데… 결과는 거의 참패에 가깝다.

얼마 전,  ‘강산이 99%  변해버린 고향’ 방문 시, 처조카 딸 수경가 선물이라며 수원근교 미리내 성지 내 성물방에서 건네 준 책에서 이 급한 명제에 대한 분석적인 essay를 읽게 되었다. ‘잊혀진 질문’ 중에 하나로 등장하는 이 질문은 바로 ‘불안과 두려움’에 관한 것이다. 나는 이것과 더불어 ‘희망의 부재’까지 함께 다루었기를 바라기도 했다. 과연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신부님이 제시할 것인가, 궁금했는데 나에게는 50% 정도의 답은 주신 셈이니까, 이번 고국 방문의 성과 중에 하나라고 기억을 할 것이다.

불안, 초조, 두려움 이런 감정들을 ‘특권’이요 ‘에너지’로 승화하려는 신부님의 ‘성경해법’이 과연 나머지 50%의 해답을 줄 것인가?  모든 것, 아니 이 우주의 모든 것 (없는 것도 포함한)은 궁극적으로 내가 보는 세계관 안에서 내가 가진 생각의 눈으로 보는 나만의 실재, 현실이라는 것을 인식하면 분명히 해답은 있다. 쉽게 말하면 ‘세상은 생각하기에 달린 것’이다.  코앞에 다가오는 물리적인 위험을 제외한 모든 것들은 머리 속 consciousness 의식체계, 아니 우리가 ‘상상’하는 세계일 뿐이 아닐까? 성경 속 예수님의 진복팔단 眞福八端 Beatitudes 도 이런 각도에서 보면 전혀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긍정적인 착각의 영역’인 것이다.


 

‘불안’과 ‘두려움’이 끈질기게 따라올 때 극복할 방법은 있는 걸까요?

 

두려움에 대하여 독일 소설가 장 파울이 위트 있는 말을 했습니다.

“소심한 사람은 위험이 일어나기 전에 무서워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위험이 일어나고 있는 동안에 무서워한다. 대담한 사람은 위험이 지나간 다음부터 무서워한다.”

이 말은 그대로 진실입니다.

소심한 사람은 위험을 미리 걱정합니다. “어이쿠, 이러다가 뭔 일 터지는 것 아냐? 어떻게 준비해야 하지?” 그러면서 나름 철저히 준비한답시고 우왕좌왕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위험에 직면하여 공포에 짓눌립니다. “우와, 집채만한 호랑이잖아. 이제 나는 죽었다!” 벌벌 떨다가 그만 위험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대담한 사람은 위험이 지난 다음 사태를 인식합니다. “이거 뭐야? 돌이 굴러 떨어졌잖아! 하마터면 큰일 뻔했네.” 순간적으로 엄습하는 전율에 식은땀을 흘립니다.

결국 두려움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는 말인 셈입니다.

 

수천 년 철학사에서 근세기에 등장한 실존주의 사조는 철학적 고민의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왔습니다. 그것은 우주, 자연, 사회 등의 거창한 주제보다 더 시급한 주제가 인간의 실존이며 나아가 인간의 적나라한 감정이라는 깨달음이었습니다.

실존주의 철학 안에도 여러 색깔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꼽는 인간의 숙명적인 문젯거리가 있으니 바로 ‘불안’입니다. 약간씩 의미상 편차가 있습니다만 두려움, 공포, 염려, 걱정 등을 아우르는 ‘불안’이야말로 인간 심리의 표층과 심층을 장악하고 있는 생존 인자라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이 독심술은 오늘날까지 그대로 적중하고 있습니다. 다음과 같이 줄을 잇고 있는 통계만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취업, 인사포털 인크루트가 졸업을 앞둔 대학교 4학년 21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체 응답자 5면 중 4명꼴인 82.1 퍼센트가 졸업을 앞두고 불안함, 극심한 스트레스를 느끼는 일명 ‘4학년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고 응답했다.”

“24일 구직포털 HR KOREA 는 지사 회원 직장인 31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직장생활 스트레스’에 대해 발표했다. 조사 결과, 응답자의 39.3퍼센트가 미래에 대한 (관한) 불안감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답했다.”

 

편의상 젊은층의 ‘불안증후군’에 초점을 맞춰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불안이 습관화된 사람들이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그 강도가 약해지길 기대하는 것은 경험상 무리일 것입니다. 도리어 나름 탄탄하던 사람들조차 은퇴를 기점으로 불안의 늪에 빠지는 경우를 허다합니다. 불안이야말로 예측불허로 찾아오는 불청객이며, 수시로 변색하며 살아남는 카멜레온입니다.

 

그러면, 이 불안의 정체는 무엇이며,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요?

‘불안’이라는 것은 ‘공포’와는 다른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불안’은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감정상태입니다. 눈앞에 주어진 자극이나 위협에 대해서 본능적으로 생기는 감정을 ‘공포’라고 합니다. ‘공포’는 동물도 느낄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원초적인 본능’이거든요. 쥐는 눈앞에 고양이가 나타나면 공포에 떨면서 안절부절못합니다. 이것은 사고 작용이 없어도 생기는 일종의 반사 반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안’은 반드시 생각의 결과로써 생깁니다. 자신의 존재와 관련해서 어떤 위기나 피해를 미리 상상하거나 불길한 일을 예상할 때 그 생각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이 ‘불안’입니다. 동물은 불안을 느끼지 않습니다. 동물이 미래의 일을 미리 걱정하느라 불면증에 빠졌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동물이 느끼는 것은 눈앞에 전개되고 있는 변화에 대한 반응, 즉 공포입니다.

그러므로 불안은 인간 고유의 정서반응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하버드대 정신과 교수인 필레이 박사는 수년간의 뇌 영상 연구를 통해 인간이 공포, 불안, 두려움에 반응하는 독특한 방식을 밝혀냈습니다. 그에 의하면 우리의 뇌는 아주 작은 위험도 재빠르게 감지하며 ‘원하는 것’보다 ‘피하고 싶은 것’을 우선적으로 처리하도록 진화해왔다고 합니다. 이를 처리하느라 다른 일들을 뒤로 미룬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이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건 불가능해, 하지만 나는 이직을 하고 싶어”라고 생각한다면 뇌는 이 상충된 메시지를 받고 혼란스러워한다고 합니다. 그러다 ‘불가능해’라는 두려움을 먼저 처리하느라 진정 원하는 ‘이직’을 하려는 에너지를 빼앗긴다는 것입니다. 필레이 박사는 그의 저서 <두려운, 행복을 방해하는 뇌의 나쁜 습관>에서 이것이 바로 뇌가 우리를 과잉보호하는 방식이라 설명합니다.

이 통찰은 우리가 두려움을 처리하는 데 매우 도움이 됩니다. 그르므로 우리는 ‘나’ 자신의 불안을 들여다보기에 앞서 불안의 작동 방식을 확실히 파악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조금 더 가까이 불안현상을 들여다보기로 하겠습니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어떤 것에 위협을 느낄 때, 우리 뇌는 0.01초 만에 두려움의 시스템을 작동시킨다고 합니다. 뇌의 편도체가 위험을 감지하고 우리에게 신호를 보내는 데 걸리는 시간은 0.01초에서 0.03초. 이후 의식적인 처리가 일어나면서 우리는 두려움과 두려움의 대상을 파악하게 됩니다.

이 두려움은 본래 인간이 진화하는 데 필수 요소였습니다. 두려움을 얼마나 빨리 감지하느냐가 생존과 직결되었기에 뇌는 다른 감정들보다 위협을 먼저 처리하도록 진화한 것입니다.

하지만 역기능도 따랐습니다. 이 예민하고도 무의식적인 두려움에 대한 자각이, 상황을 부정적으로만 파악하고 위축된 반응을 유발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두려움은 단지 이전에 기억된 정보일 뿐’이라는 자각이 중요합니다. 예컨대 어린 시절 물에 빠져 익사할 뻔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 중 더러는 어른이 된 뒤에도 웅덩이의 물만 보면 반사적으로 두려움을 느낍니다. 이는 어린 시절 편도체가 물에 대한 두려움을 강하게 학습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뇌에서 일어나는 가상의 반응일 뿐 실제가 아니지요. 다 큰 어른이 웅덩이의 물을 무서워할 이유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따라서 우리는 생각의 힘만으로도 두려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불안의 작동방식을 잠깐 짚어보았습니다. 그러니까 불안은 없어도 문제고 너무 많아도 문제라는 얘기가 됩니다.

이제 불안의 순기능을 클로즈업해보겠습니다. 심리분석가 프리츠 리만은 ‘불안의 심리’를 이렇게 요약합니다.

“불안은 우리의 발전에 특별히 중요한 지점들에서 제일 먼저 의식 속으로 온다. 즉 친숙한 옛 궤도를 떠나는 곳에. 새로운 과제를 감당하거나 변화해야 하는 지점에 불안이 온다. 발전, 성장, 성숙은 그러니까 명백히 불안 극복과 깊은 관계가 있다. 어느 연령에서든 그 나이에 상응하는 성숙을 위한 걸음이 있으며, 그 걸음은 있게 마련인 불안을 수반한다. 걸음을 내딛자면 그 불안을 다스려 이겨내야만 한다.”

프리츠 리만보다 앞서 불안의 긍정적 역할을 철학적으로 섬세하게 규명한 사람이 철학자 키르케고르입니다. ‘불안’을 일생의 연구 주제로 삼았던 그는 불안을 도약을 위한 계기로 보았습니다. 사람은 심미적 삶, 윤리적 삶, 종교적 삶의 3단계로 질적 성숙을 이루는데, 불안이 앞 단계에서 다름 단계로 도약하는 계기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우선 사람은 본능적으로 심미적인 삶을 산다고 합니다. 이 단계에서 사람들은 감각적 쾌락을 좇아 살거나 환상에 빠져서 삽니다. 삶을 기분풀이로 여기며 쾌락을 탐닉하면서 기분에 따라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인간은 결코 이것만으로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이러한 삶은 결국 권태와 싫증에 다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마침내 무기력한 자신의 눈에 비친 인생은 무상하며 미래는 불안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절망합니다. 이 절망은 새로운 삶을 찾게 합니다. 이렇게 해서 절망의 늪을 넘어 윤리적 삶으로 도약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불안으로 말미암아 이제 두 번째 단계인 윤리적인 삶이 시작됩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쾌락만을 좇아 무비판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지켜야 하는 보편적 가치와 윤리에 따라 생활하게 됩니다. 사람은 이제 내면의 양심에 호응하고 의무에 성실하려고 애씁니다. 이제 비로소 인간은 ‘되어야 할 것’이 됩니다. 그러나 이 단계도 결국 벽에 부딪치고 맙니다. 높은 도덕에 이르지 못하는 능력의 한계 그리고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에 무력함을 절감합니다. 윤리적으로 산다는 것이 뜻대로 잘 되지 않고, 또 윤리적으로 산다고 세상이 알아주는 것도 아닌 데다 엉터리로 사는 사람들이 망하지도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맞서서 고뇌하는 인간은 마침내 죄의식과 불안에 빠지고 절망하게 됩니다. 이 불안과 절망이 다시 도약을 만들어 사람을 신에게로 내몬다고 합니다. 이 현실의 모순을 심판해 줄 하느님을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침내 불안은 종교적인 삶으로 옮겨가도록 사람들을 이끌어줍니다. 키르케고르는 인간으로서 완전하고 참된 삶은 세 번째 단계인 ‘종교적 단계’에 와서야 비로소 실현된다고 말합니다. 스스로의 결심에 따라 진정으로 하느님을 믿고 따를 때에 인간으로서의 무력감과 허무함을 떨쳐버리고 완성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의 삶으로 옮겨가는 것은 자기 자신의 주체적 결단과 도약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이는 마치 부모님과 선생님이 아무리 공부하라고 다그쳐도 정작 학생 자신이 공부하려고 하지 않으면 성적이 오르지 않는 것과 똑같은 이치입니다.

 

불안의 역기능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첫째로, 불안은 사람을 안절부절 못하게 하여 결국 도전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공학기술자 헨리 포드의 말이 딱 들어맞습니다. “미래를 두려워하고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활동을 제한 받아 손도 발도 움직일 수 없게 된다”라고 했거든요.

나는 해군 출신입니다. 해군 훈련 과정에서 “퇴함 훈련”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배에서 물로 뛰어 내려야 할 유사시를 대비하여, 실내 수영장 10m 높이에서 뛰어내리는 훈련입니다. 적음을 위하여 먼저 5미터에서 시작해 다음 7미터, 그 다음 10미터 순으로 진행합니다. 전원이 차례로 뛰어내려야 하기에 줄을 지어서 기다립니다. 자기 차례가 오면 다이빙 대 끝에서 서서 오른손은 코를 쥐고 왼손은 낭심을 잡은 채 호흡을 가다듬고 “000 사후생 퇴함준비 끝!”이라고 외칩니다. 그러면 지휘관이 “퇴함!” 하고 명령을 내립니다. 이때 “퇴함!” 이라고 복창하고 뛰어내려야 합니다.

사람은 10미터에서 가장 큰 고소공포를 느낀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높이에서 그냥 뛰어내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에 그 위에는 구대장 몇 명이 지휘봉을 휘두르며 포진하고 있습니다. 훈련생들에게는 10미터 높이도 무섭지만 그 지휘봉도 만만찮게 무섭지요. 그런데 세 명이 끝내 뛰어내리지 못했습니다. 구대장들이 격려를 하고, 협박을 하고, 떼밀고 온갖 수단을 동원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난간을 붙잡고 있는 힘은 여러 장정이 떼어낼 수 없을 만큼 초인적으로 강했습니다. 결국 그 세 명은 석식 열외에다, 완전군장 차림으로 날이 저물도록 연병장을 ‘평화롭게’ 돌아야 했습니다. 이렇듯 두려워하는 마음을 먹으면 발이 땅에 딱 달라붙고, 어떤 외부의 압력에도 요지부동하게 됩니다.

둘째로, 불안은 사람의 심신을 해칩니다. 제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으로 말미암아 죽은 청년의 수가 30만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들과 남편을 일선에 내보내고, 염려와 불안과 근심에 빠져 심장병으로 죽은 미국 시민이 100만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총탄이 사람을 꿰뚫어 죽인 수보다 불안과 공포가 죽인 사람의 수가 훨씬 많았습니다.

 

그러기에 넬슨 만델라는 이렇게 말합니다.

“용감한 사람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두려움을 정복하는 사람이다.”

지지 않으려면 정복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두려움을 어떻게 정복할 것인가?

리처드 바크는 그의 저서 <날개의 선물>에서 인간이 성취를 향하여 전진하는 과정을 수영장의 다이빙대를 예로 들며 설명합니다.

다이빙대에 처음 도전하는 사람은 우선, 며칠 동안 다이빙대를 올려다 만 봅니다. 이는 올라갈 것인지 말 것인지를 생각하는 과정입니다. 그 다음 단계로, 그는 드디어 젖은 계단을 조심조심 오릅니다. 어떤 일을 앞두고 결단을 내리는 단계에 해당하며, 아직 결심을 굳히지는 못한 채 불안 중에 조금씩 전진하는 단계입니다. 셋째 단계로, 그는 높은 다이빙 대 위에 섭니다. 결단 직전, 가장 불안한 단계입니다.

이제 그에게는 두 가지 길만이 있을 뿐입니다. 하나는 다이빙을 포기하고 내려오는 길로 이는 “패배를 향한 계단”입니다. 다른 하나는 과감하게 물속에 뛰어드는 길로 이는 “승리를 향한 다이빙”입니다. 다이빙대 끝에 선 그는 두려움에 소름이 끼쳐도 두 개의 길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침내 그가 몸을 앞으로 기울인다면, 후퇴는 이미 늦었고 물속으로 뛰어드는 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바로 이때가 인생이라고 불리는 다이빙대가 정복되는 순간입니다.

이처럼 불안과 두려움의 다이빙대를 한 번 정복한 사람은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히려 더 높은 데서 다이빙을 즐길 정도가 됩니다. 바크는 책 말미에 이렇게 말합니다.

“천 번 올라가고 천 번 뛰어내리고, 그 다이빙 속으로 두려움이 사라지고 내가 비로소 인간이 된다.”

 

어떻게 하면 이 불안감을 덜 수 있을까요? 나는 인생의 위대한 멘토들의 지혜를 빌리는 것 자체가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첫째 방법은 강력한 희망과 꿈으로 불안을 몰아내는 것입니다.

몇 년 전 모 방송사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 <인간의 두 얼굴>은 꿈의 한 모습인 ‘긍정적인 착각’의 효과를 밝혀냈습니다. <인간의 두 얼굴: 착각> 편을 제작한 정성욱 PD는 프로그램을 준비하며 국내외 책과 논문을 샅샅이 뒤졌습니다. 그러고는 인간의 착각과 행동 사이의 인과관계를 설명해줄 실험을 구상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도화지에 손가락 하나를 없는 손을 그리고, 다섯 살짜리 아이들에게 보여주면서 묻습니다. “10년 후 이 손가락은 어떻게 될까요.” 일부 아이들은 어른들의 예측을 뛰어넘는 엉뚱한 대답을 했습니다. “손가락이 자라나요!” 라고요. 실험 결과 손가락이 자란다고 대답한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지능지수가 높았다 합니다.

이것이 바로 긍정적 착각입니다. 이는 살아가면서 겪는 실패와 좌절의 상황에서 스스로를 감싸는 보호막 역할을 합니다. 정 PD는 말합니다.

“긍정적 착각이 인간을 행복하게 하고 발전시킨다는 결론을 얻었다. 우울증 환자들은 절대 착각에 빠지지 않는다. 그들은 언제나 주변 상황을 냉철하게 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긍정적 착각을 동반하는 희망과 꿈이야말로 ‘실패와 좌절’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우리를 감싸는 ‘보호막’ 역할을 해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둘째 방법은 불안을 신께 맡기는 것입니다.

토론토대학 심리학과 마이클 인즐릭트 교수 팀은 신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이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불안과 걱정에 덜 시달린다는 연구 결과를 얻어냈습니다. 인즐릭트 교수는 “신앙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테스트에서 실수를 하거나 잘 모르는 것이 나와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 것 같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이 팀은 그 내용을 2009년 <심리과학> 온라인 판에 발표했습니다.”

한마디로 기도가 불안감을 해소해준다는 얘기입니다. 나 자신 직접 확인해보지는 않았습니다마는, 어떤 사람이 옥중에서 성경을 읽으면서 “두려워 말라”는 말씀이 수없이 기록된 것을 보고 도대체 몇 번이나 씌어 있는가를 세어보았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꼭 365번이 기록되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1년 365일 매일 한 번씩 해당하는 숫자입니다. 그럴듯한 수치적 일치입니다. 우연이긴 하지만, 신은 불안에 떠는 우리를 최소한 매일 한 번씩 위로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메시지를 은근히 전해줍니다.

 

뭐니 뭐니 해도 불안을 이기는 최고의 방법은 그 불안을 성장의 계기로 삼는 것이겠지요. 불안하니까 더 준비하고, 불안하니까 더 정진하고, 불안하니까 더 노력하자는 얘기입니다.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베로니카 웨지우드의 말을 기억해둘 것을 권합니다.

“불안과 무질서는 절망의 징후가 아니라 에너지와 희망의 징후다.”

체념한 사람에게는 불안이고 뭐고 가 없습니다. 불안은 희망을 가진 사람이 누리는 특권, 곧 생의 에너지인 것입니다.

Amazing Carters, 3rd ‘Mad’ Woman…

이제는 나에게 거의 ‘성인 품’에 오른 성인, 성녀들로까지 보이는 카터 부부,  아~ wife가 먼저 저 세상으로 가신다. 이제 홀로 남은 카터 전 대통령도 지금 hospice care를 받고 있는 중인데 전 생애의 반려자가 먼저 갔으니..  얼마나 얼마 남지 않은 삶이 외로울까? 어제는 아틀란타 에모리 대학 교회에서 추모식을 먼저 했고 오늘은 그의 진정한 고향  집, Plains (Georgia) 에서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오늘 Rosalyn Carter의 ‘진짜’ 장례식을 TV로 유심히 보면서 나름대로 만감이 교차됨을 느낀다. 주로 Plains, Ga. 에서 있었던 행사들, 100명도 못 들어갈 자그마한 교회의 모습들, 정말 Carters 부부의 삶은 본받을 만한 정도를 넘는 거의 성인 수준의 삶을 살았다고 나는 믿고 싶은 것이다. 특히 1980년 retire이후의 삶은 교과서 적, 성경적인 이야기가 아닐까?

오늘 함께 한 남편 카터 전 대통령의 모습은 ‘얼마 남지 않은 삶’의 그 자체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  움직일 수 없는 몸으로, 그와 일생을 equal partner로 함께한 ‘집사람’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싶었을 것이다.  77년간의 사랑의 삶.. 눈물이 나올 지경이다.

그의 삶과 정반대 편에 서서 인간 본연의 순수한 모습을 비웃는 듯한  Donald ‘개XX’의 징그럽게 웃는 추한 얼굴이 이 성인들의 뒤에 보이는 착각에 빠진다.  지난 50년 동안 세상이 어떻게 이렇게 변하고,  불공평한 것인지,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오늘 점심, homemade 샤브샤브~ 해괴한 이름의 이것, 전에는 자주 먹었던 것인데 근래에는 거의 볼 수가 없었지..   지난 3일 간의 심적 (그리고 육신적) 고통을 견디는 의미에서 이것은 도움이 될 것 같다.

근래 들어서 오늘 같은 지독한 악몽의 밤을 지새운 적이 아마도 2017년 1월, 8월 두 차례 ‘레지오 미친X 사건’  이후 처음[이것이 제3의 미친X 사건]이 아닐까? 처음에는 완전히 밤 잠을 못 잘듯 했지만 그래도 2시 이후에는 깊은 잠에 빠졌던 듯하다. 주체할 수 없이 뛰던 맥박도 이제는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오고.. 시간이 지나가기만 바라는 나의 신세가 조금 쓸쓸하지만 이것이 현재로서 최선의 방법임을 알고 있다. 바램은 다만 며칠이라도 조용히 보낼 수 있는 의지가 있었으면 하는 것이지만 이제 남은 여생의 삶에도 100% 확실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도 안다.
비교적 안전하다는 성당공동체 내에서 이렇게 ‘감정, 정서적으로 불안한, 폭탄을 안고 있는 듯한 여자’들이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인지.. 이제까지 우리들이 3번째 겪는 것이어서 솔직히 말해서 가정문제가 있거나 우울하게 보이는 여자들은 가급적 조심하고 심지어 피하고 싶을 정도다. 이 ‘폭탄을 안고 사는 것 같은 여자들’,  나의 추측에 그들은 지나간 세월에 제대로 풀지 못한 trauma가 있거나 현재의 가정에 문제가 분명히 있을 듯한데,  성당 공동체, 신앙적 차원에서 이런 문제를 어떻게 적극적으로 해결, 대응을 할 수 있을지… 대림절을 앞두고 보고 겪게 된 이런 어두운 모습들,  참 어려운 세상을 살고 있다.

현재 ‘제3의 미친X’ 때문에 심적 고통을 받으며 생각한 사람이 바로 R형이다. 그가 그리운 이유는 지금과 같은 불상사가 났을 때 내가 마음 편하게 의논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소설처럼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거의 순식간에 우리로부터 떠났다, 그것도 저 세상으로… 아~ 왜 이렇게 되었는가? 왜? R형, 왜 그리 빨리도 가셨습니까, 저 세상이 그렇게 좋았습니까? 나의 외로움은 더 깊은 영역으로 빠지는데…

우리에게 또 다른 신앙적 고향, Holy Family CC ‘동네 성당’,  오늘 아침은 이곳에 가야만 했다. 절대적으로 가야만 했다. 어지럽고, 사랑이 빠져나간 듯한 가슴을 달래려고 영적인 고향을 찾은 것이다. 역시, 우리와 눈의 빛깔은 달라도 그들은 그곳에서 언제나 우리를 기다려주고 있었다. 증오, 분노, 혐오 등등의 감정을 이곳 제대 위에서 내려다 보시는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께 모두 보여 드렸다. 조금 안정, 평화가 흘러 들어오는 ‘착각, 아니 느낌’… 고맙습니다!

이어서 오늘 아침 식사는…  한참 잊고 살았던 two number 2로 good old days를 되찾으려고 McDonald’s 엘 들렀다. 아~ 이것이 평화, 평정, 평상, 보통.. 그런 느낌인가? 추한 모습을 보기 싫어서 다음 주 화요일까지 D회 카톡 text를 아예 안 보기로 합의를 보았다. 이런 시간이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성당 공동체 내에 제3의 ‘기피 인물’이 생긴 것, 앞으로 멀리서라도 보게  되면 아마도 투명인간 취급을 받을 것이다. 이것이 우선 최선의 방법이다. [하지만 이 영혼이 언젠가 진심으로 사과하거나, 후회할 가능성은 거의 제로일 듯]

경기도 군포시 금정역 바로 옆 high-rise 에 살고 있는 ‘아직도 귀여운’ 조카 수경이가 그곳에서 ‘눈이 와요’라고 text를 지난 밤에 보냈구나.. 아~  한달 전의 그곳이 그립고 그립다. 가고 싶다. 이곳을 당분간 잊고 살고 싶다. 며칠이라도 다시 그곳으로 가고 싶고,  금정역에서 산본로를 걸어 금정성당에 멈추어 작은 묵주기도라도 바치고 산본 전통시장을 기웃거리다가 파리 바게뜨 에 앉아 맛있는 빵과 coffee, 그리고 바로 앞에 보이는 동서형님 high rise 까지 걷고 싶구나.  

TV Antenna, Holiday Decor, Remote Family…

며칠 동안 춥고도 더운 attic엘 오르락 내리락 한 이후, 처음으로 한가지를 끝냈다. TV antenna가 결국 제일 좋은 위치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전보다 더 높고, attic floor에 전혀 support가 필요 없는 깨끗한 위치가 되었다. 보기도 좋고…  또 remote rotation control이 되기에 거의 모든 digital channel [KBS AMERICA를 포함]들이 깨끗이 수신이 되는 것 등, 이것이 나의 오늘 하루 기분을 올려주는데 큰 역할을 했으니, 나도 조금 이상한 사람인가~~

오늘 아침메뉴는 처음엔 SONATA CAFE 비슷하게 시작(jam & bread, boiled eggs) 하다가 일상적인 것과 합쳐진 ‘짬뽕’이 되었다. 하지만 새로 가미된 것, potage soup (in monster mug, 은지의 선물)으로 거의 완벽한 아침식사가 되었다. 영양학 적으로도 큰 하자가 없을 듯…

드디어 우리 집 2023년 성탄 시즌이 서서히 시작되었다. 복도 closet안에 모든 성탄장식들이 박스에 들어있어서 꺼내기만 하면 일사천리로 진행이 된다. 하지만 오늘은 너무나 날씨가 거칠고 추워서 실내용 트리 만 완성할 수 있었다. 매년 점점 키가 작아지는 것처럼 보이는 착각 [우리의 키가 커질 리가 없는데..] , 완전히 mini-tree처럼 보이지만 귀엽지 않은가? 특히 올해는 트리가 이름에 걸맞은 제자리, family room으로 옮겨왔기에 더욱 돋보인다.

어떻게 김밥을 집에서 해먹을 생각이 갑자기 났을까? 완전히 잊고 살았던 것인데.. 이렇게 색다른 것을 먹게 된 것도 연숙이 덕분이다. 나는 생각도 못했으니까…

아~ 싸늘, 아니 춥구나, 진정 겨울이 이미 온 것인가? 서울 근교, 군포시 금정역 부근 처럼 영하 얼음이 어는 것도 아니지만 체감온도는 아마도 이곳이 더 추울지도 모른다.

나의 숙면 습관이 완전히 돌아온 이후, 일찍 잠자리에 들어가는 것을 기다릴 정도, 아침에 일어날 때의 기분, 느낌이 그렇게 산뜻한 것을 기다리는 것인가? 결론은, 숙면의 중요성, 아니 필요성이 아닐까?

이즈음 나의 혈압전선이 나를 조금 우울하게 한다. 마구잡이로 측정하는 혈압의 수치는 확실히 평소보다 높은 것이다. 애꿎게도 많은 숫자는 140 부근에 머물고 있어서 약을 ‘덤으로 먹어야’할 지 고민을 하게 한다. 전에 보던 숫자들 130 정도, 그것에서 10이 높은 것이니, 왜 그럴까? 잠도 잘 자는데… 분명히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나중에 원인은 밝혀지긴 했지만]… 커피? 제일 손쉽게 지목되는 범인이지만 나는 솔직히 이것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식습관은 전과 같고… 아하~ 본격적인 ‘육체 근육 운동’, 그것이 아닐까. 아마도 그럴지도 모른다. YMCA에 요새 거의 못 가고 있으니까..  다시 이것을 되찾아야 하는데… 어떻게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

요사이 ‘녀석’의 행동이 눈에 뜨이게 변했다. 우리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렇게 ‘날뛰며’  행복하게 신나게 움직이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heater가 나오는 곳 앞에 칩거를 하며 안 움직이는 것이고, litter box toilet도 나가지 않고 그 옆에다가 실례를 계속.. 아~ 왜 그러는 것일까? 다행인 것은 먹이는 제대로 제시간에 하고 있다는 것 하나다. 그렇다면.. 아~ 역시 나이, 나이로구나. 그러면, 이 녀석도 점점… 아~ 성모님, 봐주세요~~

기대하던 카톡 소식들이 침묵을 지키는 것이 싫어서 정말 오랜만에 ghost friend 이재영 에게 소식을 보냈다. 나의 고국방문 소식을 전하고 싶었던 것이고 일관성 있게 자기 주장을 상식적 수준으로 펴나가는 그를 칭찬하고 싶었다.  깊어가는 밤 시간 ‘생각하며 사는’ 그는 아마도 computer앞에 앉아 있으리라는 상상도 한다. 아직도 computer coding, programming을 하고 있는 그의 프로 정신이 부럽다. 나의 블로그를 본다는 그, 내가 넋두리 급, 잡기록雜記錄 이라고 했더니 과찬 급으로 응답, 나는 솔직히 말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과찬을 100% discount를 해도 나에게는 과분한 것이 아닐지. 하지만 그래도 이런 안 보이는 친구가 지금 이 시간에 고향 땅에 있다는 사실이 오늘 나머지 시간을 행복하게 할 듯하다. 예기치 않은 곳에서 살맛 나는 이유를 이렇게 찾게 되는 것, 고마워, ‘신비스런’ 재영아!

오늘도 ‘이산 가족들’과 카톡 인사를 나누는 즐거움을 경험한다. 아~ 이제 가족, 친척들이 이렇게 그리워지니, 확실히 나는 나이가 들대로 들어가는 모양이다. 그렇게 포근한 느낌을 가족 친지들로부터 받는 것 자체가 나는 행복한 것이다. 왜 이런 귀중한 것을 잊고, 아니 잊으려 하며,  놓치고 살았을까? 왜? 왜? 10년 인생선배 동서형님은 독감 끝자락에 있다고 카톡 전화를 먼저 주셨다. 놀랄 일이 아닐까? 나의 반가운 목소리를 형님도 느끼셨을지도… 이심전심…

Avocado on Toasts, Paris Baguette & T-Money

오늘 아침 식사는 모처럼 연숙이 준비해 주었다. 아보카도 avocado를 얹은 토스트가 돋보이고 은지가 선물로 준 monster mug에 담긴, 새로 다시 만든 potato potage soup까지.. 아~ 이런 날도 있어야지.. 고마워 고마워…

‘산본시장 파리바게뜨’ 영수증, 그리고 지하철 충전 영수증 두 장이 지갑에서 떨어져 나온다. PARIS BAGUETTE 의 정확한 한글표기가 그러니까 파리바게뜨 였구나. 이것이 문제다. 정확한 한글 철자는 이런 것을 보아야만 알 수가 있으니. 주소가 경기 군포 산본동 216-22 인데 산본전통시장 옆에 있는 그곳이고, 동서형님댁으로 걸어가면서 래미안 아파트 앞의 이곳에 들러서 빵을 19,000원어치 사가지고 아파트에 갔던 바로 그 영수증이다.  이번에 고국방문에서 은근히 놀란 것 중에 하나는 ‘super high rise 아파트 공화국’ 이외에 ‘gourmet 커피 공화국’인 듯한 착각이다. 과장된 표현으로 한 가게 건너마다 커피숍이 즐비했던 것.  주체할 수 없는 부의 과시인가, 아니면… 그리고 충전 영수증, 이것은 수도권 전철 요금인데 이것도 나 혼자서 금정역에서 T-Money card로 두 정거장 떨어진 ‘어머니와 인연이 있는 상록수 역’에 갈 때의 것이다. 이것으로 다시 금정역 주변의 일들이 벌써 주마등처럼 나를 맴돈다. 좋은 추억이고 잊고 싶지 않은 것들이다. 꿈에서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랄 정도로…

오늘도 떠오르는 부러운 것, 사람들 중에 ‘콜럼버스 중앙후배 그룹’ 이 유난히 떠오른다. 왜 그들이 그렇게 부러운 것일까? 우선 그들은 1980년 대 ‘젊었던 시절’부터 현재까지 긴 세월 가끔이라도 서로 만나며 ‘함께’  같은 나라 대한민국에서 살았던 그 사실, 내가 흉내를 낼 수 없는 사실들이라서 그렇게 부러운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콜럼버스 오하이오 시절부터 시작해서 ‘아마도’ 계속 계속 만날 수 있었지 않았던가?  도사 양건주 말대로, 친구나 친척도 ‘안 만나고 살면’ 관계에 ‘치명적인 손실을 입는 다고 한 말, 아직도 나의 귀에 잔잔히 울린다. 이것만은 내 능력 밖이니 어쩔 수가 없기에 나는 그렇게 슬픈 것이다.

오늘로써 Verizon 5G Home 인터넷 service의 upgrade도 99% 해결이 되었다. 나머지 1% 는 $30 discount를 받는 것만 신청을 하면 된다. 그리고.. 아~ trash service도 완전히 GREEN으로 switch를 했지… 그런대로 현안 문제들은 해결이 되었다. 하지만 한가지 남은 것, 조금 신경을 쓰이게 하는 것, 연숙의 Humana insurance 문제, 크게 걱정은 안 하지만 누가 알랴?  그래, 이것도.. 고 차동엽 신부님 말대로 ‘희망으로 실망을 몰아내자’, 그 중에 하나다. 절대로 희망으로 살고 싶다.

문득 어제 전화가 잘 안 되었던 동서형님 생각이 난다. 걸까, 말까.. 카톡으로 걸어 보았다. 혹시나 어디 두 분이 가셨던 것은 아닐까.. 궁금하기도 했고. 걸어보니 예상을 벗어나 곧바로 전화를 받으신다. 오늘은 카톡이지만 음성이 깨끗, latency도 없는 듯해서 밝은 심정으로 짧은 통화 성공! 아하~ 감기에 걸리셨다고 하신다. 그러면 그렇지.. 목소리가 잠긴 듯 들리고. 이 정도면 통화는 성공, 짧게 끊는다. 앞으로도 10년 인생선배님과 이렇게 연락을 하며 살고 싶다. 나도 못지않게 외롭기 때문일 거다.

찬란한 태양의 따뜻함과는 정반대의 대기권의 싸늘함, 게다가 바람까지.. 이런 날은 바깥에서 일하는 것은 매력적이 아니다. 오히려 집안에서 무엇인가 결과가 보이는 것에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낫다. 무조건 attic으로 기어올라간다. 엄청 쏟아져 나온  attic에 있던 것들, 거의 모든 것들이 WAN/LAN network wire, cabling 종류들, 엉키고 설킨 30여 년의 유물들, 시간이 걸리는 귀찮은 것들이다. 한가지 알 수 없는 것, old analog TV antenna 다. 이것은 조립식이 아니고,  전체 크기는 상당히 큰데, 이것을 어떻게 shipping delivery를 했을까? 도저히 할 수가 없는데..  쉽게 이해가 안 가지만 유일한 해답은 내가 ‘아마도’ 이곳의 어떤 retail store에서 산 것이 아닐지. 혹시 옛날 옛적  Radio Shack같은 곳은 아니었을까?

이곳 저곳 방에 있었던 cable, network outlet 들이 없어진 곳을 repair해야 한다. 벽을 고치는 작업은 나에게 비교적 쉬운 것이지만 지금은 귀찮은 일이 되었다. 하지만 구멍이 뚫린 것을 안 고칠 수는 없는 일, 오늘 잘 하면 시작은 할 수 있지 않을지.

드디어 엉키고 설킨 heap of cables & wires, 정말 한 뭉치의 30년간의 networking workhorse가 분류, 정리가 되어서 밖의 shed옆으로 퇴출이 되었다. 아마도 앞으로 이것을 재활용할 기회는 거의 제로에 가까울 것이다. 고물 analog 안테나도 결국 밖으로 쫓겨나고.. 아~ 미안하구나.. 하지만 세월을 탓해야지 어쩔 수가~~

역쉬~ 드디어~ 나는 지독한 시차 후유증에서 벗어났구나~  깨끗한 잠, 정확한 시간 6시 30분에 일어날 수 있었으니.. 감사, 감사..  하지만 아래층으로 내려와 보니 아~ ‘녀석’이 구석에 푸푸를 해 놓았으니~ 이것이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최근에 갑자기 날뛰는 듯한 활발한 모습을 보이더니, 이것은 무엇인가? 왜 밖 porch로 나가지 않고, 실내인 이곳에?  참, 살기 힘들다, 왜 너까지 나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아마도 litter box를 집안으로? 아~ 싫다, 싫어…

가벼운 우울함이 넘실거리며 나를 노려본다.  희망으로, 희망으로.. 이것을… 희망, 이 나이에 희망이란 것이 어떤 종류일 것인지 생각을 해 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별로 없지 않을지. 있다 해도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것도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생의 마지막을 향하는 마당에 속된 희망이란 것이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고 차동엽 신부님 왈 희망으로 절망을 쫓아 내야 한다는데.. 어떤 희망이 남아 있단 말인가? 아~ 근래 나는 확실히 ‘영적 영역’에서 많이 벗어난 것인지도 모른다. 2010년대의 내가 빠져서 허우적대던 바로 그 ‘영역’, 도저히 지금은 그때처럼 ‘초월적 기쁨’이 사라진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무엇이 나를 이렇게 하느님이 ‘홀연히’ 사라진 듯한 환상에 빠지게 한단 말인가? 어떻게? 아~ 성모님이시여~

 

Thanksgiving Day 2023, Simple & Joyful

올해는 새로니가 신경을 써서 감사절 식사를 대접하게 된 것인데, 이것이 없었으면 올해 우리 집의 가족모임은 흉내도 못 낼 뻔 했을지 않을까? 그래도 큰 딸이 올해는 가족들의 전통을 살려 주었구나, 감사… 그야말로 ‘추수’ 감사절이 되었구나.

비록 두 집 식구만 모인 것이지만 그런대로 상차림은 정성을 드린 것, 비록 turkey대신에 duck인 것이 조금 다르지만 그래도 맛은 있었다. 게다가 내가 게걸들린 듯하며 찾는 ‘술종류’, 꼬냑과 wine.. 하지만 전혀 취하지 않았던 것이 신기할 정도, 운전을 의식해서 그런지 정신적으로 긴장을 하고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역시 새로니style의 음식들, 푸짐하지는 않지만 정갈하고, 새롭고, 맛있게 ‘보이는’ 그런 생김새들.. 또한 부부가 둘이서 함께 노력해서 만든 것들, 가급적 맛있게, 용감하게 맛보려고 노력을 한다. 게다가 나의 눈길을 끄는 red wine과 Hennessey Cognac 까지 입맛을 돋구고..  절대로 남게 하지 않는 새로니지만 오늘은 조금 남는 듯, 내가 takeout하겠다고 해서 남는 것 중에서 대부분 담아가지고 왔다. 과연 집에서 얼마나 처리할지 솔직히 자신은 없었지만…

이런 모습을 ‘수경이네’ 로 보냈더니 뜻밖에 (남편) 김서방 왈 ‘양주병을 잡은 손’ 을(그것이 나인 줄 알고) 코믹하게 언급한다. 아~ 왜 나는 이즈음 ‘그곳과 그 식구’들이 그렇게 보고 싶은 것인지, 가깝다면 당장 달려가고 싶은 생각까지.. 나도 참 많이 변했구나, 항상 조용히 살고 싶었던 나였는데, 어떻게… 가깝건 멀건 이제는 사람들이 그리운 것이다. 외로운 노인의 전형적인 모습인지도… 

모처럼 사랑하는 나의 ‘아들’ Ozzie와 새로니 동네를 30분 동안 걸었다. ‘감사절 만찬’이 거의 준비되고 있어서 동네 전체를 돌 수는 없었다. 오늘 산책을 한번도 못했기에 더욱 새로니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 흐뭇한 것.. 나도 도움이 되고 있으니까~ 또 12월 중순에 또 녀석이 우리 집에서 며칠 간 머물게 되는 것, 역시 도움을 주는 봉사요 도움이 아닐까..

모처럼 새로운 soup을 ‘개발’한다는 연숙이가 들고 온 것이 처음 보는 듯한 대형 mug였다. 알고 보니 얼마 전 서울 계동 중앙중고 정문이 가까이 보이는 곳 에 갔을 때 조카 은지가 우리에게 선물로 준 것이었다. 두 잔을 받았는데 모두 ‘아래 층’에 있는 분이 design한 것이었다고.. 불현듯 은지 생각, 얼굴, 보고 싶어진다. 그립다. 긴 세월 못보고 살았던 식구, 어찌 혈육이란 것이 다 이런 것인가?  재력이 있으면 도와주고 싶고, 만나면 누나, 어머니 이야기도 더 듣고 싶고.. 아~ 어떻게 이렇게 떨어져 사는 운명을 안고 살게 되었는가?

또 하나의 ‘완전한 수면’을 감사하는 ‘지난 밤’이 되었다. 정말 나는 ‘시차의 고민’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일까, 그럴 것 같다는 나의 심증… 하나의 경이로운 경험이 되었다. 12시간 시차가 한달 정도 경과되면 시차 후유증은 거의 3주간 계속된다는 사실… 우리들 만이 겪었던 작은 비밀이기도 하지만, 앞으로는 이 사실을 적극적으로 유의를 하며 또 다른 시차를 경험하게 되기를 기대하는데, 그렇게 될 것인지는 ‘재무장관’의 소관이기에…

어제 도착한 양양이 flea treatment (topical), 목덜미에다가 아주 작은 양을 살짝 뿌리는 것인데 왜 이렇게 나는 굼뜰까? 하도 예전에 나의 손을 물었던 기억 때문일 것일지라도, 요새는 거의 그런 일도 없는데..  하지만 시간 문제임은 알고 있다. 시간문제, 시간문제… 이것이 제대로 성공하면 과연 flea control이 가능할 것인지..   며칠 전부터 아니 전에도 가끔 녀석이 집안에 푸푸를 해 놓곤 했는데 며칠 전부터 더 횟수가 늘었을 뿐만 아니라 지난 밤엔 피피까지~~ 이것이 도대체 무슨 일인가? 너무 늙어서 그런가, 아니면?  왜 밖으로 나가서 하지 않는 것일까? 혹시 녀석도 ‘치매’? 아~ 살려주라, 우리 좀 살려주라… 결국 녀석이 밥을 먹는 틈을 타서 재빨리 약을 머리부근 등에 뿌리는데 성공을 했다. 과연 이것이 어떤 효과가 있을지.. 한 달에 한 번 사용하는 것이라니까 분명히 이 약은 ‘독한’ 종류일 것인데 안전 한 것인지..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거의 우연히 over-the-air TV로 Thanksgiving Day Macy’s Parade를 볼 수 있었다. 이것으로 우리는 10월의 sentimental journey를 거의 뒤로하고 평상적 삶으로 돌아온 느낌까지 든다. 거의 3주가 지난 후에.. 하지만 이제부터 나는 그 기억들을 잊기 전에 글로 남겨야 하는 더 큰 작업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하지만 못할 것도 없지 않은가? 못할 것도!!

양식 아침 한식 점심, 잊혀진 질문

다시 돌아온 ‘내가 만드는 아침’ 고정식, 매일 거의 같은 모습인데 물리지도 않는다. 솔직히 말해서 지루하게 보여도 맛이 없는 것이 아니라서 그런가? 너무나 손쉬운 음식재료에다가 하도 익숙해서 힘도 안 들고 영양학전공 연숙의 승인을 받은 것이기도 하고, 이 정도면 오전에 움직이는 에너지는 충분하다.

조개장국, 감자조림, 완두콩 밥, 김과 알맞게 집에서 담근 익은 김치… 이것으로 우리는 이제 제2의 고향 집에 왔다~~ 라고 선언을 한다. 이렇게 먹을 수 있다는 것, 감사하고 감사한다.

이런 맛있는 점심을 먹었던 것도 행복한데 오늘은 특별한 한 때가 있었다. 연숙이와 함께 family room에 편하게 앉아서 Roku Channel에서 크리스마스 영화 하나를 같이 본 것이다. 이것은 근래에 거의 없었던 일이다. 사실 같이 영화를 보는 것을 내가 무의식적으로 피하고 살았던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무엇인가 불편한 것이.. 영화라는 것에 그렇게 친숙하지도 않고 심지어 이해를 잘 못하는 듯한 표정 등이 나를 불편하게 하고 있었던 것. 의식적으로 이것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내가 심각하게 하지 않았던 것, 솔직히 후회를 한다. 특히 영어권 영화를 거의 안 보고 살았던 탓인데, 그래도 새로 배우는 것은 나보다 빠른데.. 내가 너무나 일방적으로 무시한 것인지도 모르니.. 미안하기도 하고 후회도 된다.

이것을 같이 보고 나는 그렇게 기다리던 낮잠까지 잠깐 잘 수 있었으니~~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듯해서 정말 오늘은 하루가 편하고 즐겁기까지 했다. 아마도 Steve Jobs effect라고 부르는 은총이 도움을 주었는지도…

이 내가 좋아하는 format (책 제본)에다가 차 신부님의 멋진 학자 신부다운 멋진 포즈,  책의 표지 때문에 더 관심이 가는 흔치 않는 case인가? 그래서 수원 근교 미리내 성지에 갔을 때 나의 손이 무심결에 이 책에 간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사려고하는 순간 수경이가 재빨리 계산을 해 버렸기에, 이 책은 앞으로 수경이의 선물로 기억이 될 것이다. 내용이 상당히 포괄적, 보편적이긴 하지만 자세히 보면 아주 학문적이기도 하다. 그것에 비해서 문체나 설명이 의외로 이해하기가 수월하니.. 이것이 차 신부님의 특별한 능력이 아닐지…  한국에 있을 때부터 읽기 시작해서 이제 거의 다 읽게 된 책, 앞으로 이 책을 접할 때마다 생기발랄한 수경이 얼굴이 떠오를 듯하다. 수경아, 고맙고 고맙다… 정말..

ATLANTA OVER-THE-AIR CHANNEL 47.4 KBS: 이제는 거의 안정된 TV reception 을 보여주고 있다. 이 지역에 한인TV 방송, 많은 사람들이 이미 평소에 보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우리 집은 예외 중의 예외였다. 이 channel의 정체조차 확실치 않았지만 알고 보니KBS AMERICA라고 보인다. 내가 아는 것은 이것의 출처는 LA 지역인 것이고, 한국 KBS를 재편성 방송을 한다는 것 정도다. 하지만 이 지역에서의 방송은 우리 집과 30마일 이상 떨어진 NEW KOREA TOWN (DULUTH)에서 보내기에 우리 집에서 수신상태는 불안정한 것이었다.  근래에 무엇이 변했는지 그 방송의 상태가 안정적이고 선명하게 나오기 시작. 우리 집의 antenna도 upgrade가 되었지만 방송의 출력도 증가하지 않았을까? 결국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정상적인 TV로 ‘하루 종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이 programming들이 나의 취향에 맞는가 하는 것이다. 아직도 생소한 것 투성이.. 하지만 지난 달 여행으로 꽤 많이 익숙해진 모습들이어서 전과 같은 이질감은 점점 사라지는 듯하다. 솔직히 나도 ‘다른 사람들 처럼’ 재미 있게 보고 싶은 것이다. 내가 무슨 특별한 사람이라고…

이제는 피할 수 없게 된 것, ‘사람들 앞에서 기타를 쳐야만 하는 운명’, 조금씩 이것이 부담으로 다가올 것은 분명한데.. 어쩔 것인가? 과연 내가 전처럼 기타를 치는 것에 무리가 없을까? 많은 코드들은, 노래의 가사들.. 하지만 2016년부터 한때마다 열심히 연습을 했던 경험이 있기에 필요이상 걱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어떤 곡을 몇 곡 송년모임에서 ‘선을 보일까’ 하는 것이 더 관심, 신경이 쓰인다. 오늘 아예 서재로 기타를 가져다가 심리적으로 준비를 시작하긴 했는데…

양양이 flea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되었고, 그 첫 단계로 나라니가 권해준 ‘목덜미 위에 뿌리는 약’을 order해서 저녁 늦게 도착했다. Made in Germany라는 표시에 우선 신뢰감이 생겼다. 과연 이것이 효과가 있을지는 내일 써보기 시작하면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다. 

서예족자, 예기치 못한 죽음, 지미 카터의 추억

태평양을 건너온 선물, 오늘 드디어 동서형님이 신경을 쓰셔서 챙겨준 ‘서예족자 2점’ 을 펼쳐서 등 뒤에 걸어 보았다. 이제야 전체의 모습을 가까이서 자세히 볼 수 있게 되었다. 이것으로 ‘군포, 산본로, 래미안’ 등의 추억을 살리고 떠올리며 처형님 댁과의 추억을 간직할 수 있게 되었으니… 너무나 이 족자의 ‘멋진 글씨’가 따뜻하게 가슴으로 다가온다.

아~ 드디어 결국은 동갑내기 R형이 한국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최악의 예상이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연숙이 처음으로 카톡 text를 보았다. 아직도 실감을 못하고 있는 나에게 이제는 조금 다른 강도의 실감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나는 100% 실감을 못한다는 착각 속에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믿어지지를 않는 걸 어쩐단 말인가? 이곳에서 내 눈을 보기 전까지는 그런 상태가 아닐까? 하지만 하지만 이제 그는 정녕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걸 어찌한단 말인가? 죽음이 나의 피부로 느껴질 정도로 가까이 온 것은 분명하다. 잘 살아야 한다. 잘~ 후회가 없도록~ 하지만 나는 근래 너무나 후회할 수 있는 상태로 고민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어쩔 것이냐?

오늘 또 다른 ‘선종’ 소식을 본다. 아~ Rosalynn Carter.. Dies at 96…

사실 96세 타계면 크게 놀랄 것은 거의 없겠지만 나에게는 다른 사실들로 가슴이 아련하게 느껴진다. 이 사진 NYT에 Carters의 예전 모습들, 그것은 1977년 1월 새로이 미국 대통령에 선출된 Jimmy Carter와 그의 식구들이 취임식 때 Washington DC 거리를 행진하는 장면, 그곳에 카터 부인의 모습이 보인다. 우선 1977년 1월 무렵, 그때의 나의 모습들을 기억해 보니, 정말 눈물이 날 지경인 것이다. 한창 호르몬과 세상에 대한 무한한 자신감으로 충만했던 때, 나의 모습이 그립고, 시대를 뛰어넘는 카터의 인류박애적 인간성, 그것이 지금의 ‘최악 중의 최악 D. Trump’와 극명하게 대비가 되는 세상을 사는 우리들의 고민과 고통..  어떻게 카터는 이렇게 성인군자로 비교가 되는 것일까? 인생의 후반, 말년을 그와 같이 보낼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아~ 참 세상이 어찌 이렇게도 타락해가고 있단 말인가?

오늘 S 헬레나 자매를 만나서 들은 얘기가 아주 희망적을 넘어서 기쁜 소식이었다. 며칠 전 우리가 목격한대로 설형제가 집에서도 많이 좋아졌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집안에서 보고 느낀 것이 예전에 비해서 ‘좋은 가정적 사람’으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한 것처럼 보이니… 솔직히 말해서 나는 자부심과 심지어 나의 노력이 자랑스러운 것이다. 그렇게 실망을 거듭했지만 이 형제가 드디어 가정 생활에 신경을 쓴다는 소리가 아닌가? 그것 이외의 다른 행동들은 여전히 ‘자기만의 세상을 사는 모습’이긴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봐 줄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아~ 성모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오늘도 아침미사에는 ‘류해욱’ 요셉 신부님이 오셨다. 확실히 류신부님은 오래 전 가벼운 stroke이후 발음과 바른쪽 손에 가벼운 후유증이 아직도 보인다. 목소리 조절이 잘 안 되어서 어떨 때는 너무나 큰 목소리일 때도 많고, 바른 손이 아직도 부자유스러워 미사 제대 집전과 성체분배에 곤란을 보인다. 이때마다 나는 친구 건주를 생각한다. 건주가 이 정도로만 회복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지..

Server closet을 아예 없앤다고 너무나 빨리 기대를 한 것이 조금 성급한 결정이었다. Server PC 를 나의 lab room으로 옮겨 왔지만 소리도 시끄럽고 볼품도 없고 싫어서, 혹시나 하고 server closet의 wifi signal 을 check해 보니~ 와 이곳도 실내나 크게 차이가 없었다. 그러니~  예전처럼 이곳에 server를 두어도 별 문제가 없는 것이다. 모든 ethernet wire를 철거해도 wireless 로 이곳에 server가 있어도 되는 것이어서 다시 closet에는 예전처럼 쓸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정말로 모든 cabling은 attic이외에는 필요가 없게 되었다.

우리의 고향은~ 어디에 있는가…

나의 고향은 어디인가? 집에 돌아온 후 처음으로 화창한 날씨에 힘입어 천천히 혼자서 동네를 전부 돌아본다. 분명히 대한민국도 내가 태어난 고향이지만 이곳도 세월을 살았던 고향, 그러니까 제2의 고향이 되었고, 그만큼  정들고 편한 곳이 된 것, 어느 곳이 더 좋은가? 힘들고 바보 같은 물음이다. 둘 다 비슷하니까…

비슷하다기 보다는, 엄밀하게 말하면 두 곳의 좋은 점과 싫은 점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은 것으로 일대 일로 비교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이곳에서 좋은 것이 저쪽에서 싫을 수도 있고 그 반대일 경우도 마찬가지다.

오늘 동네를 돌아보며 분명히 이곳의 느낌, 모습은 제1의 고향의 그것과 확연히 다른 것이다. 좋고 싫고를 떠나서, 다르고 또 다른 것, 그것이 전부다.

10월 한달 동안 우리가 없었던 이곳도 확연히 가을이 깊어진 모습,  고층아파트, 끊임없이 마주 치는 사람들과 차들의 북적거림의 소음을 떠나 이곳의 적막함이 짙어진 가을의 색깔에 섞여서 표현할 수 없는 평화스런 느낌을 주지만 동시에 말할 수 없는 고독, 외로움도 함께 준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라는 것, 자기의 취향에 달려 있지 않을까?

Halloween 늦은 밤에 돌아왔기에 밤중의 trick-or-treat 하는 것, costume 등은 못 보았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각종 ‘도깨비, 귀신, 해골’들은 다행히 볼 수 있었다. 이제부터는 아마도 Thanksgiving theme으로 동네는 또 변신을 하겠지. 이런 이곳의 오랜 전통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 과연 나의 진정한 고향은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 

Home, really Sweet Home…

3일 전 저녁 늦게 집에 도착 이후 다음날 아침, thermostat setting문제로 아침에 home heating 이 나오지 않았다. 놀랍게도 빙점가까이 떨어진 아틀란타 지역, 추위에 떨며 일어났지만 그래도 행복, 집의 침대에서 너무나 편한 안도감~~ 아~ 정말 home sweet home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이후 지독한 심한 시차 후유증으로 계속 밤잠은 거의 잘 수가 없었다.  대신 낮에 잠깐 눈을 붙이는 정도로 하루 하루를…수십 년 전의 기억으로 나는 시차에 전혀 문제가 없었기에 필요이상의 걱정은 안 한다.

어제는 냉장고에 먹을 것이 완전히 떨어졌기에 무리를 해서 Sam’s Club엘 가서 급한 것부터 사서, 정말 오랜만에 ‘우리’ 집에서 먹던 그대로 먹을 수가 있었다. 진수성찬은 아니어도  home sweet home 의 맛을 느낀다.

여행용 짐 꾸러미를 하나 둘 씩 풀며 나오기 시작한 것들, 대부분 사랑이 듬뿍 묻은 선물들이다. 어떻게 이런 선물을 줄 배려를 했을까, 고마움과 호기심으로 본 첫 번째 것을 보니… 아 멋진 포장된 box를 열어보니… ‘오설록’ 제주산 gourmet tea set였다. 이것은 중앙 채인돈 후배가 서울역 모임에서 준 것이다. 유난히 밝고 다정했던 인상의 채 후배 부부, 우리의 godson  채경덕군의 부모, 30여 년이 지난 후에도 그 당시의 모습의 애 띤 얼굴.. 그들을 다시 생각하며 아침에 오설록 차의 맛을 보았다. 와~ 이곳 (미국)에서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다르고 수려한 맛’, 아니 신비스런 고향의 냄새가 묻어 나오는 듯..  인돈 후배, 다시 한번 고맙네…

이 멋진 차茶가 담긴 컵, 유난히 가벼운 잔, 디자인이 독특하고 멋진 것이었다. 이것은 연숙의 1970년대 이대 梨大 총학생회시절 회장이자 이후 이대 총장을 지냈던 친구가 선물한 것이라고…

모처럼 맑아지는 정신으로  backyard엘 나가니~ 이틀 동안 나의 눈에 느껴지지 않았던 모습이 들어온다. 아~ 지난 10월 한 달 동안 이곳은 완전한 깊은 가을 풍경, 집을 떠날 무렵에도 이곳은 초록색이었는데, 그것 대신 찐한 가을의 상징, ‘낙엽’이란 선물로 수북이 덮여 있었다. 한 걸음 두 걸음, 잔뜩 마른 잎들이 서로 부딪치며 내는 소리는 요란하기도 하고 아늑하기도 한 것, 아 역시 home sweet home이구나~ 감사합니다.

새로 사온 ’19 Crimes’ Red Wine… Hmmm.. 도대체 왜 wine label의 이름이 19 Crimes인가? 호기심으로 wine을 더 선전, 판매하려는 상술인가? 이 호기심을 자아내는 이름의 wine은 내가 자주 찾는 어떤 website [Jeff Duntemann] 에서 본 것이다. 이 red wine은 비교적 값이 저렴한 (<$15)것이어서 나 같은 사람에게 안성맞춤이다. 마셔보니 전형적, 보통인 red wine의 맛이다. 다음은 왜 하필 19 crimes이라고 했는가… 역사적으로 이 용어는 18~19세기 영국의 형법의 일종, 이 죄를 저지르면 Australia 로 추방을 했다고. 대부분 경범죄로 보이는데 어떻게 그들을 당시의 ‘오지 奧地 중의 오지’로 보냈는지 궁금하다.

이번 고국 여행에서 제일 신경이 쓰이던 것이, 우리의 pet cat Izzie의 ‘안녕과 건강’이었다.  거의 한 달 동안 텅 빈 집에서 어떻게 지냈을지 상상을 할 수는 없지만 일주일마다 새로니가 잠깐 와서 보고 가긴 했지만, 얼마나 황당하고 놀랐을까? 처음 2~3주 간은 크게 모습이 변한 것이 없다고 했지만 마지막 즈음에서는 완전히 depress가 된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조금만 더 늦었어도 분명히 건강상에 문제가 생겼을 듯하다.  우리를 ‘갑자기’ 보게 될 즈음 확실히 녀석은 놀라고 있었고, 이후 전에 없던 행동, 나의 desk위로 올라와서 ‘만져 달라는’ gesture를 보인다. 전에는 상상도 못하던 모습… 역시, 이런 동물들도 인간과 이렇게 가까워질 수 있구나~~

Izzie, I Love You…

반짝하는 가벼운 몸과 기분, 마음, 느낌.. 이것이 얼마만일까… 왜 이렇게 기분이 상쾌한 것일까? 보이는 가까운 이유는 몇 가지 있지만 사실은 그 이전, 그 밑에 흐르고 있는 나의 정신적, 영적 건강이 무언가에 의해서 나아졌다는 것은 아닐까?

어제부터 ‘무섭게, 맛있게’ 먹어대는 Izzie의 모습이 놀랍고 행복한 것일 것은 거의 분명한 것, 게다가 녀석이 아직까지 음식을 소화시키고 있는 듯 한 것은 더욱 기쁜 사실이 아닌가? 이렇게 해서라도 녀석의 몸을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게 만들어야 10월의 ‘충격적인 공백’을 견디어 내지 않을까 말이다.

아~ Izzie야~ 며칠 째 네가 좋아하는 beef pate meal을 놀라울 정도로 맛있게 먹어 치우는 모습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구나. 이제까지 나의 생각이 틀린 탓에 거의 굶기도 한 듯 하니.. 이제는 확실히 네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을 알았으니 부지런히 맛있는 것만 먹고 체중 좀 늘리고 구토하는 것도 줄이고, 10월 한달 혼자 보낼 수 있도록 …

어제 ‘Youtube 남대문시장’ 사건의 여운은 물론 아직 나에게 커다란 화두, 사건, 생각거리 등으로 남아있고, 그것을 중심으로 나는 더 생각하며 현재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것, 그 ‘남대문 시장’의 모습이 왜 그렇게 나에게 우스울 정도로 심각하지만 행복하게 보였을까? 10월에 그것을 다시 보게 될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이유의 전부는 물론 아니다. 다른 엄청난 의미 속에 나는 반세기 살아온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못 말리게 ‘생각하는 병신’임은 분명하구나..

어제 저녁부터 세차게 내리던 비, 엄청난 양이 분명했다. 이것으로 그 동안 한동안의 가뭄은 해소가 되었음은 분명하지만, 나에게는 그것보다 날씨가 살만한 정도로 시원해졌다는 것이 나에게는 더 큰 행복이다. 지난 한 주는 솔직히 말해서 ‘이글거리는 분노’ 같은 것과 싸움을 버리며 살았던 착각, 왜 이렇게 덥단 말인가.. 왜.. 이런 나의 이해할 수 없는 생각들, 어찌 하겠는가, 나도 피부 감각이 살아있는 인간의 한 존재인데…  그저 이런 것들, 다 지나가리라 의 한 가지에 불과한 것인데..

30년 역사의 고물 wheel barrow에 고인 물, 어제 저녁부터 내린 폭우의 결과다. 그 동안의 비교적 짧은 지독한 더위, 가뭄의 고통을 완전히 잊게 해 준 자연의 힘이다. 아무리 지구 환경이 각종 문제로 신음을 해도 이런 ‘초자연’적인 날씨의 변동은 살맛이 나게 하니…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폭우가 쏟아진 후 우리 집 backyard은 거의 거의 원시림으로 변하고 있다. 이제는 trimming 정도의 작업으로는 어림이 없게 되는가… 아마도 낙엽이 떨어지는 자연의 힘을 다시 기다려야 하는가…

이즈음 나는 main ‘desk’ study보다 이곳 new family room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고 있다. 예전에는 computer가 있는 desk에서 휴식을 포함한 모든 시간을 보냈지만 방을 옮긴 후 점점 이곳이 진정한 휴식 공간이 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이곳에서도 역시 나는 인터넷에서는 벗어날 수가 없다. 모든 것들이 아직도 그곳에서 나오는 것, 어쩌다 세상이 이렇게 변했던가? 이곳의 매력은 편히 누워서 백일몽을 즐길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역시 올 여름, 최고의 휴식이 되고 있다.

9월이 되기 전에 이 new main shed의 내부를 능률적인 것으로 개조하고 정리를 한다고 속으로 큰소리를 쳤지만, 아직도 끝이 나기는커녕 본격적인 시작도 못하고 있으니… 나는 어떤 아메바인가…

한달 전에 H 미카엘 신부님이 우리 본당을 방문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추수나누기’ 강론집 편집 그룹과 함께 화요일 미사 후 점심을 하게 될 것도 들었다. 그날이 오늘, 오랜만에 화요일 정오미사엘 가서 H 신부님을 보게 되었다.’  오늘 본 신부님의 모습은 유난히도 ‘연약하고, 마른 체구’의 그것이었다. 예전의 느낌도 조금 다른 것이었다. 물론 예전의 기억은 그대로지만 오늘 목소리나 표정에는 예전의 추억이 거의 느껴지질 않은 것이 아쉽기만 했다.

미사 후 운암정에서 ‘추수..그룹’ 점심이 있었다. 예상보다 적은 인원이 모인 듯 한 것도 그렇고, 나에게는 아직도 어색한 C베로니카의 참석 등등.. 조금 나는 생각이 정리되지 못한 모임이 되었다. 왜 나는 이 자매를 보면 그렇게 마음의 평정을 잃는 것인지, 나도 이제는 이해를 못할 지경이다. 반가운 것은 분명한데 앞으로 다시 안 보고 싶은 마음과 싸우는 나의 묘한 심정, 이것이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다.  왜 내가 감히 그런 생각을 할 자격이 있단 말인가? 그래, 잊자… 잊자… 여기까지가 전부다.

저녁이 되면서 다시 먹구름이 몰려오는 광경, 그것도 서쪽에서부터.. 이것은 현재 Florida로 오고 있는 hurricane Idalia  와는 전혀 다른 system이지만 상관없다, 쏟아져라, 내려라, 울려라, 큰 피해만 없을 정도로 마음껏 소리치며 으르렁 거리며, 대지를 적시고 나의 그리움도 달래주라~ 나는 너를 사랑한다, 진정으로~~~

Generation Alpha, KNOX LUCAS LEE BERTRAM…

오늘은 8월 초순답지 않게 동이 트기 전부터 상당한 기세로 비가 내린다. 지나가는 열대성 여름 오후의 비가 아니다. 흡사 ‘가을비 우산 속~’ 격에 맞는 그런 느낌을 주는 것, 나쁘지 않구나…  새로운 손자가 태어나는 날과 어떤 관계는 없을 듯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어두운 모습’이 없이 밝게 자라기를…  [나처럼 이상할 정도로 어두운 비를 좋아하지 않으면..]

언제부터인가.. 나의 꿈, 특히 새벽녘의 꿈은 분명한 ‘느린듯한 악몽’임을 알게 되었다. 식은땀이 흐르는 충격적이고 기억에 남는 그런 흔한 것이 아니다. 잔잔하게 느리게 나를 조여오는, 기분 나쁜 것이다. 나는 우울하다, 불안하다, 절대로 행복하지 않다고 나를 세뇌시키는 듯한 ‘반 의식적 꿈’인 것이다. 원인은 분명히 찾을 수 있지만 이 정도로 나를 괴롭힌다는 사실이 나를 실망시킨다. 왜 그렇게 기억에 남는 멋진 꿈들과 생각을 하며 침대에서 일어나는 경험이 요즈음에는 ‘완전히’ 사라진 것일까? 이것도, 이것도 영적으로 분석을 해야 한단 말인가, 피곤하다.

T-0! 결국 8월 10일이 빗소리와 함께 젖어 든다.  산모 나라니는 새벽같이  Piedmont Hospital  분만실  에서 둘째 아들 분만 준비를 하고 있다. 모두들 조금은 긴장하며 text message를 기다리고…  ‘수술’이라지만 한번 경험한 것이어서 조금은 안심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그래도 그러면 안 되지.  끝까지 기도하는 자세를 놓을 수는 없고, 일단 기다림은 시작된 거니까, 기다리고 지나가기만 기도하자…

현재 시각, 아침 8시 37분에 ‘baby’s born!’ 소식이 왔다… 우리는 마침내 2020년 이후 크게 기대하지도 못하던 후세, 그것도 총 3명의 손주를 갖게 된 것인데, 참 세상은 이래서 덜 지루한 것일까.  여자 동생을 기대했는데, 둘째 남자아기라서 조금은 덜 반갑지만…  로난 Ronan과 낙스 Knox.. 두 개구쟁이 형제들이 ‘터지게 싸우는’ 모습이 어른거린다. 하기야 그것이 더 재미 있는 combo일 듯 하다. 이들은 모두 Generation Alpha [2010년 이후]의 후반 세대들, 과연 이들이 살게 되는 세상은 어떠한 모습일까… 이제 나라니의 [우리들의 무언의 push에 대한] 부담과 스트레스 그리고 초조와 고통은 다 사라지게 되는 것일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산모, 아기가 모두 [아무런 희귀한 surprise없이] 건강하도록,  ‘기도, 기도, 기도..’ 잊지 말자.

원래 아기 이름을 Leo로 정해놓았었는데.. 갑자기 Knox 로 바뀌어서 이유를 물어보니 참, Millennials [Gen-Y]  세대의 장난기인가.. 분만병동에 들어가서 갑자기 생각들이 바뀌었다고.. 시부모 댁은 Leo에 맞추어서 선물 등에 lettering을 해 놓았는데.. 참 버릇이 이렇게 없으니… 나라니 왈, 남편과 의견이 통했다며 둘 다 좋아하는 영화 DEAD POETS SOCIETY 에서 ‘너무나 다정다감한’  Knox Overstreet란 character가 그렇게 마음에 들었다는 것이 이유의 전부다. 30여 년 전[1989년] 에 Mr. Keating character, Robin Williams 열연의 크게 hit한 영화,  VHS tape으로 당시 자주 같이 보던 것, 비교적 기억이 생생해서 그 Knox의 얼굴을 연상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특히 ‘부잣집 깡패’ 축구선수와 사귀는 여자 아이를 끈질기게 따라다니다가 ‘무섭게’ 얻어맞았던 장면이 떠올랐다. 또한 그녀가 있는 학교 교실까지 쳐들어 가서 모두 보는 앞에서 ‘태연하게’ 시 낭송을 하던 그런 그의 행동이 그렇게 매력적이었던가…

나라니, 그 동안 수고 많았다! 고맙고 미안하구나… 오늘 baby와 나라니를 보러 Piedmont Hospital로 가려는 계획은 무산이 되었다. ‘이상한 원인’으로 기침을 심하게 하는 연숙과 통화를 했던 나라니가 오늘 오지 말라고 한 모양이다. 솔직히 그것이 모두에게 편할지도 모른다. 다행히 Judy, 친할머니가 그곳에 갔다고 하니까 우선 가족 방문은 된 것이다. 무언가 무겁게 느껴지던 어깨가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우리는 이미 70을 훌쩍 뛰어 넘어 80으로 가는 ‘할배와 할매’가 아니냐 말이다. 왜 이렇게 늦은 석양 무렵에 이런 ‘힘든’ 경사들이 한꺼번에 우리를 찾아온 것인가… [10년, 아니 5년만 ‘젊었어도’…]

오늘 병원 산모병동 방문 예정이 사라진 뒤에 남는 여유시간, 그 동안 초조하게 쫓기는 듯한 스트레스가 천천히 사라지고 편안하게 비디오나 보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나머지는 갑자기 시원해진 날씨에 이끌려 main shed 바른 쪽의 ‘어둡고 습한 곳’에 관심을 썼다. 하늘을 가리고 있는 커다란 나무 가지들이 그곳을 더욱 습하게 하고 있었다. 전에 연숙이 쓰도록 샀던 ‘cute, but powerful as‘ mini-chainsaw가 적격이어서 몇 가지 나무 가지를 쳤더니 처음으로 하늘이 넓게 보기고, 훨씬 밝아졌다. 시간이 나면 나머지 것들도 자르면 좋을 듯…

다음 달 9월 일 개월이란 ‘길다면 긴’ 시간은 나의 big bumper, buffer, cushion… 하지만 그것 조차 무서운 속도로 나를 향해서 정면 돌파를 하려는 듯 쳐들어, 아니 하루 하루 목을 조이듯이 다가온다. 내가 바로 당장이라도 시작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아~ 잊고 살았던 고향 땅, 한반도, 대한민국, 한국의 ‘각종 연락처’와 연락, 연결이 되어야 하지 않을지… 누구와? 어떻게… 아~ 이것은 생각을 시작조차 피하며 사는 나의 게으른 모습.. 어떻게 이 ‘도전, 산, 난관’을 극복, 정복, 넘어갈 수 있을까? Just Do It… just do it, just do it… stupid!

Green Independence Day

새벽의 이 분꽃 ‘웅덩이’는 정말 초록 중의 초록의 향연이 아닌지… 올해는 어떻게 이렇게 분꽃들이 대성황을 이룬 것일까? 대신 수국 류는 전혀 꽃을 피우질 못해서 이것이 자연의 평형, 균형, 중용 원리인지도…

아~ the Fourth of July, Independence Day (esp. for me & us!)  나에게 미국이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과연 이곳은 나의 나라, 땅, 냄새가 느껴지는 곳이 되었는가? 고마워해야 할 하느님이 주신 은총이고 선물인가? 이곳에 나의 뼈(가루)를 묻을 준비가 되어가는가? 250년 ‘평등자유민주’의 실험대 속에서 우리와 후손들도 한 몫을 하고 있는가? 반대편에 있는 나의 고향은 이제 어떤 곳이 되어가는가? 만감이 교차하는 7월 4일… 성모님, 모든 존재들을 축복하소서… 그 모습들과 상관없이, 은총을 전구해주소서…

매년 이날은 대부분 둘이서 charcoal barbecue를 deck에서 굽고 먹으며 보냈는데, 올해는 조금 다른 것이..  ‘불고기’를 charcoal grill로 구워서 먹는다는 것인데.. 솔직히 불고기를 잊고 산 세월이 꽤 길어서 맛도 잊을 지경이 되었기에 올해는 조금 그 맛을 되찾고 싶었다. 예전의 불고기 맛에 대한 기억이 나는 대부분 그렇게 좋지 않아서 그런데, 이번에 다시 먹어본 것은 확실히 그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기회가 되었을 정도로 맛이 있었다… 연숙의 불고기 양념 솜씨, 잊고 살았지만 이번에 보니 아주 맛있는 다른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잠깐 내린 비, 이후의 모습은 역시 7월의 그것… 감사합니다…

알맞게 흐리고 비가 내린 집 주위의 모습은 그야말로 초록 중의 초록의 정수 精髓처럼 보인다. 이제 진정한 2023년 초여름이 시작된 것인가? 평화로운 것과 하루하루 그 무엇을 향해 다가가는 짜릿하고 두려운 압박감이 함께 섞여서 매일 매일 나를 일깨운다. 그날, 그날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하지만 나는 ‘승리’할 것이다, 이길 것이다, 축복을 받을 것이다!

어제는 비록 뜻밖의 나라니 식구 방문에 당황을 했지만 그런대로 오랜만에 바깥에서 공구들과 함께한 시간들의 덕분에 그 동안 원했던 일, garage side door repair, paint를 눈깜짝할 사이에 끝내고 나니 후유증으로 하체에 잔잔한 통증을 느꼈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즐거운 고통’중의 하나였다. Tylenol 을 먹었으면 간단히 넘어갈 수도 있었는데…

혈압, 혈압… 요새 우리 둘 모두 이 수치에서 힘을 얻는다. 어찌된 일인가, 우리 둘 모두 정상혈압치가 매일 혈압계에서 보이는 것이다. 특히 나의 것은 완전한 숫자 120/80 에서 머물고 있는데, 연숙이도 거의 마찬가지다. 우리들 크게 바꾼 생활습관도 없고 약을 바꾼 것도 없지 않은가? 무엇이 이렇게 만들었을까? 역시 life style 이외에 다른 것이 없지 않은가? 물론 안 보이는 손길은 100% 가능하긴 하지만, 또 그런 은총이란 말인가? 이건 과분한 것 아닐까? 이제 혈압이란 것, 많이 익숙해졌기에 이런 흐름도 알고, 느끼게 되었으니 얼마나 큰 발전인가?

하지만 역시 며칠 전의 ‘lab test 검사’ 결과에 신경이 더 쓰인다.  내일 중에는 분명히 report가 올 것인데… 과연 전에 보았던 ‘정상수치’들 이번에는 어떤 놀람이 있을까… 특히 연숙의 것… 성모님의 손길이 아직도 함께 할 것인지…

어제 손을 보았던 garage side door, 몇 십 년 만에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겨우 kickboard와 paint를 한 것인데 어쩌면 이렇게도 느낌이 다를까? 이것이 지난 이틀간 노동의 보답이구나… 고맙다… 하지만 이 작업이 끝나지는 않았다….  바로 문 밑에 보이는 오랜 세월의 게으름의 결과, 이 문 앞에 수십 년간 떨어진 빗물로 썩어 문드러진 문지방.. 이제 나의 눈에 조금씩 관심을 이끈다. 이번 기회에 어떤 수를 쓰더라도 ‘고치고’ 말 것이다.

오늘 한 것도 별로 없는데 왜 이리도 하체가 피곤한지… family room sofa에 편하게 누웠는데… 일어나 앉을 기분이 없었다.  집 근처인 듯한 곳에서 요란한 불꽃놀이, 어찌나 요란하던지…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대로 잠을 청하게 되었으니…..

Duck Donuts Father’s Day 2023

아침 일찍 주일미사엘 갈 때 연숙의 ‘Happy Father’s Day!’ 언급이 없었으면 나는 거의 오늘이 그런 날이란 사실조차 잊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손주들이 있기에, 할아버지 입장에서,  Father란 말부터 퇴색된 느낌도 들고, 예전에 귀찮을 정도로 신경을 써 주던 ‘꼬마시절’ 딸들의 관심도 삶의 세파에 밀려서 이제는 조용하기만 하다. 우리 동네 성당에서는 Mother/Father Day 가 되면 신경을 써서 해당자 (엄마, 아빠들)을 기립시키고 Father’s Day때는 ‘신부님까지’ 대상에 포함을 해서 많은 교우들이 박수를 쳐주었던  생생한 기억도 있었다.

성당에서는 Father란 말이 자식들을 가진 아빠도 있지만 ‘영적인 아버지’ 바로 신부님도 함께 이날을 맞는데, 한국문화권에서는 아버지 날이 따로 없는 전통 때문이기도 하고 한국 문화권에서 파견된  임시거주 신부님들은 이날들에 대한 느낌 정서와 배려가 거의 없는 편이어서 이곳에 오래 산 우리들로써는 역시 조금 서운하기도 하다. 내가 강론 신부였다면 아마도 성경의 근거한 Father 의 모범상을 찾아 언급을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오늘 그런 바램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현지에 맞게]정해진 듯한’  신자들의 기도[문] 속에 ‘아버지들을 위한 기도’가 포함되어 있어서 가느다란 안도감을 되찾기는 했다. 다시 드는 생각, 우리보다 월등 [현지화에] 앞서가는 베트남 순교자 성당에서는 어떻게 했을까 하는 잡념…

약간 쓸쓸하기도 했던 기분이 그래도 Father’s Day라고 새로니 부부가 유나와 함께 우리 동네 근처 Johnson Ferry Road에 있는 specialty (gourmet) donut shop에서  ‘DUCK DONUTS‘을 사들고 찾아 왔다. 내가 도넛을 좋아하는 사실을 알기에 이런 것을 고르기가 쉬웠을 듯하다. 특별 order를 한 것이라서 속으로 ‘무척 으리으리’ 할 줄 알았는데,  군침 도는 Dunkin‘, Kristy 의 그것에 비해서 오히려 맛이 없게 생겨서 미루고 있다가 ‘혹시나 해서’ 나중에 먹어보니… 와~~ 이것이야말로 special donut 임을 알게 되었다.

6.25 발발 직후 ‘빨갱이XX’들에게 납치가 되어 생사도 알 수 없이 험한 세상에서  일생을 살아온 나로써는 솔직히 닮고 싶은 ‘아버지 상’이 없다. 그저 ‘소설 같은’ 상상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생기고 나서도 문제가 생겼을 때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본능적으로 알 수도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하며 쩔쩔매기도 했다.  세월의 덕분에 어려운 시기는 지났지만 역시 후회, 후회는 아직도 남아있지만, 이제는  할아버지가 된 모습을 보면서도 아빠, dad, daddy, appa, abba 라고 부르는 자식들이 있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해야지…

오늘은 평범한 주일일 뻔 했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아침 미사로 성당 안으로 들어가니~ 기대 했던 뒷자리 마리안나 자매님은 안 보이고 뜻밖으로 언젠가 보았던 부부의 뒷모습이 보였다.  반사적으로 우선 놀라기는 했지만 생각 없이 다가가서 아는 척하고  싶은 생각이 느껴지지를 않았으니.. 이제는 이질감까지 느껴지는 ‘나와 다른 사람들’에 대한 나의 근본적인 생각을 조금은 바꾸는 것이 연로한 정신적 건강에 도움이 될 것 같은씁쓸한 여운이 남는다.

어제 시작한 track lighting, 오늘 test run을 해 보았는데 생각보다 ‘극적인 도움’은 느껴지질 않았다. 각도, 강도, 배치 등으로 멋지게 환하게 도움이 되는 조명이 될 가능성은 아직도 충분히 남아 있으니까, 여유를 두고 연구를 해 보자. 이것이 만족스러우면 아마도 이 ‘옮겨온 office’는 ‘죽을 때’ 까지 나의 보금자리가 될 것이다.

오늘도 deep relax를 하기 위하여 daydreaming ‘screen’ time으로 ‘맥랑시대’를 본다. 몇 편이고 random하게 골라서 보고 또 본다. 이 드라마 스토리 시대는 1990년대 초, 배경은 대한민국 고등학교 [서울이 아닌 듯]..  물론 나의 생각은 우리 때, 그러니까 1960년대 초의 모습, 배경과 회상, 비교를 하는 것으로 머무른다. 30년 세월의 차이는 과연 어떤 것이고, 그 이후 2020년대로 앞서 가면 60년의 차이는 과연 어떤 것인지, 사실 조금 아찔해진다. 어떻게 이렇게 엄청난 세월을 살아왔던가?

아~ 고등학교, 고교시절… 교복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물론이고 머리 스타일도 따라서 완전 자유형,  완전한 남녀합반 공학, 또한 각종 학교 시설, 주변 환경 등이 경제발전에 걸맞게 깨끗하고 자유롭게 보인다. 그 아이들의 생각은 어떤 것인가? 무엇이 그 고교생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들인가? 정치적인 것은 전혀 보이지 않지만, 십대 때에 흔히 겪는 문학, 철학 소년소녀 형의 모습은 우리 때와 비슷하게 보인다.

하지만 핵심 드라마 주제는 ‘어른과 나라’가 요구하는 것들, (일류) 대학입시를 위한 극한적인 공부, 공부, 공부… 바로 그것이었다. 아~ 우리 때에도 ‘공부’는 지나치다고 생각할 만큼 강조되었지만, 이 드라마를 보니 이 공부, 공부, 공부라는 것은 아이들이 불행을 초래할 만큼 주눅이 들 정도로 압박을 주고 있었다. 우리 시절의 모습은 이것에 비하면 장난 수준으로까지 보이니… 한마디로 자기에 대한 생각 별로 할 기회가 거의 없이 사회로 진출한 것, 시험문제 풀듯 한 사회의 복잡한 문제들을 풀어나갈 자세가 되어 있었을지…  한가지 부러운 것은 역시 ‘자연스러운 남녀공학’, 어쩌면 그렇게도 진정한 친구들처럼 큰 문제없이 잘 어울릴 수 있었는지, 우리 세대로서는 조금 부럽다 못해서 상상이 잘 되지를 않는다.

오늘 나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을 준 것이 있다면 이 짧은 blog quote가 아닐까?  과학적, 지성적 그리고 지극히 이성적인 UGA [University of Georgia, Athens]   retired professor [AI, Computer, Linguistics]  Dr. M. Covington의 이 짧은 comment,  ‘역시’ 100% 공감할 수 있는 글이다. 구체적으로,  ‘잠시 귀신에 홀린 크리스천’ 들, 정신차리라는 권고, 그는 비록 나이는 우리 보다 밑이지만 진정으로 생각하는, 존경을 할 만한 지성인이 아닌지… 선거, 투표할 때마다 정신 바짝 차리라는 경고일지도 모른다.

 

How Trump voters should feel

If you voted for Trump, you should be disappointed and angry at him now. You didn’t vote for documents to be mishandled, lied about, and shown to unauthorized people. You voted for a conservative platform that had nothing to do with all that. Trump has betrayed you and given conservatism a bad name.

If you are unable to feel angry at Trump — if you still feel that you owe him “loyalty” — then I beseech you to look into your soul and ask what kind of spell you are under. Is it really true that he could stand in Times Square and shoot people and get away with it? That sounds like something only the devil would say.

 

Sacred Heart of Jesus, Fish Friday

The Most Sacred Heart of Jesus, Solemnity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성심 대축일 금요일, 이날은 요일이 정해져 있던가, 궁금하구나. 맞다, 유월의 금요일이지만 몇째 주인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 그런데, 왜 이렇게 예수님의 불타는 심장과 그 상징, 의미가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역사적 이유도 있었는데… 이제는 희미해지는구나, 아 불쌍한 나의 ‘노화되는 신심’이여~~  예수회 발행 DVD 제목도 있었고, 한번 다시 Wikipedia로 찾아서 기억력에 활력을 줘야 할 때가 되었나~~ 오늘 아침 미사엘 가서 조금 도움을 받으려나~~

성심, 聖心, sacred heart.. 특히 catholic devotion으로써의 성심은 확실한 역사가 있다. 하지만 궁극적인 시발점은 무엇일까? 요사이 예수 ‘수난의 시간들’을 매일 하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예수수난 사건을 통해서 보인 예수님의 고통은 십자가에 의한 것보다 인간에 대한 ‘초월적, 절대적, 무조건적인 사랑’에 의한 것, 바로 그것이 예수님의 심장, 가슴에 가해지는 고통의 상징이었던 것, 이제야 조금 알 듯하다. 인간역사적으로도 프랑스의 알라콕 성녀에게 발현한 예수님의 가르침에도 이런 사실이 포함되어 있기에 이것은 교회에서도 인정하는 ‘신심 행위’가 되었다.

대축일 아침미사, 교우들의 평소보다 꽤 많이 모였다. 이들은 확실히 교회의 권위를 인정하는 ‘평범한, 착한 교우’ 들일 것이다. 모든 전례를 교과서적으로 충실히 집전하는 (오래) 전 주임신부님 (Father Thein?)도 큰 도움이 되었고 Irish 거꾸리 자매의 주도로 미사 직후에 ‘예수성심 성인 호칭기도’를 함께 전 교우들이 참여한 것도 그렇게 인상적이고 감명을 주기도 했으니… 아~ 오늘 가기를 잘 했다는 생각도 함께 든다.

Pate 파테 빠떼.. paste.. 이제는 확실히 알았다, Izzie는 앞으로 ‘죽을 때까지’ 이 wet food를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녀석의 입맛 때문인가, 아니면 소화기능에 관계가 된 것인가 정말 궁금하지만… stop 거기까지다, 우리가 노력할 수 있는 것은. 이제부터는 minced된 것들을 조금씩 섞어서 주고 그것을 먹으면 dry food grind와 pate를 계속 알맞게 섞어서 주면 된다.  현재 녀석의 나이가 18살에 가까워오기에 신경이 쓰인다. 제발 제발 조금이라도 오래 살아주기를 빌고 빈다, 양양아~~~

오늘 오전 모든 일정이 끝난 후 들렀던 Kroger에서 최근 관심사였던 cat wet food section을 조금 자세히 보게 되었다. Amazon으로 보는 것과 이렇게 느낌이 다르구나. 더 확실한 각종 제품들의 종류와 그것들에 대한 느낌들, 이런 brick & mortar shopping의 혜택이 우리에게 항상, 가까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자. 언제까지 ‘걸어서, 차를 타고’ 와서 ‘둘이서’ shopping할 수 있을까? 현재는 조금 먼 장래의 일처럼 느껴지지만 과연 그럴까? 아~ 하느님, 성모님, 저희를 인도해 주소서, 그날까지 건강한 모습으로..

며칠 전 특별한 신경을 써서 Mega Mart까지 drive를 해서 사왔던 조기, 오늘 금육재 fish Friday 금요일에 그것이 ‘동네방네1 스타일’ 점심 식사에 등장했다. 잡곡 밥, 시금치 콩나물 국, 계란 찜, 마늘 절임, 열무 김치 그리고 특별히 맛있는 조기구이… 이것이 거의 완벽한 금요일 균형식 점심 식탁의 모습, 감사합니다, 고마워…

  1. 도라빌 순교자 성당 근처에 있는 ‘주로 점심 한식점’, 이곳의 점심 메뉴 중에 각종 생선구이는 일품이었다

Vine Trellis 포도 가지 10년 Woes and…

이 ‘vine trellis, 포도가지 격자구조물1‘를 급조해서 만들었던 때가 언제였던가?  아마도 10년도 전에 새로니가 Mother’s Day선물로 사다 주었던 muscadine 종류 포도를 심기 위해서 이 ‘격자구조물’를 급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급조의 정도를 넘어선 ‘날림공사’ 급이었는데 용케도 몇 년을 버티고 있는가? 이것으로 햇수를 거듭한 후에 ‘진짜’ 포도 종류들이 자리를 잡아가서 이제는 ‘구조물’의 제 역할을 한 셈이지만 이제는 이것도 날림공사의 제 수명을 다 해가는지… 불쌍한 모습이다. 얼마 전에 거의 쓰러지려는 것을 응급 처치해서 세워놓았는데~ 문제는 이것을 완전히 없애고 새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응급 처치[현재 나의 방법]으로 몇 년을 버티어 볼 것인가~ 요새는 이런 짜증스럽게 좀스러운 일들이 나를 괴롭히니…  하지만 이런 것들은 사실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의 관심권 밖에 있었지만, 그 ‘구조물’ 을 아래 위로 엉키며 뒤덮고 있는 탐스러운 포도가지, 열매들의 그 동안 가족의 사랑을 받으며 꾸준히 커가고 있는 모습이 있기에…  1992년 이사올 당시 이곳은 울창한 송림언덕이었는데 30여 년 동안 완전히 flower, vegetable garden과 이런 초소형 vineyard까지… 참 세월 많이 흘렀구나~~

어제 밤에 잠깐 보았던 weather radar, 밤중에 Alabama로 부터  ‘새카만 먹구름이 몰려오는’ 모습, 예보 그대로 지난 밤은 ‘한때’ 정말 요란한 것이었다. 전깃불은 물론이고 빗소리도 대단했지만 천둥소리는 근래에 경험한 것 중에서 제일 굉장한 것이 아니었을까? 처음에는, 고마운 비 정도였다가 나중에는 은근히 걱정까지 되기도 했으니까.. 결국 나중에는 Ozzie녀석도 불안했는지 우리 침대로 함께 모여서 자게 되었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보니 땅만 진하게 젖었지 바람이 거의 안 불었는지 사방이 깨끗했으니~ 아,  이것이야말로 바로 ‘은혜롭고, 고마운 폭우’였구나…

어제 Amazon Prime으로 배달된 ‘고양이 밥,  17살 고양이 Izzie의 senior pate-type2 wet can food 덕분에 녀석[사실은 female]이 부지런히 dining table위를 뛰어 오르락 거리며 다시 먹기 시작했다.  그 동안 ‘맛 없는’ dry food를 먹었지만 최근부터 나이 탓인지 잘 먹지도 못하고 소화도 잘 못하는 것을 보고 wet food로 바꾸었는데, 이것도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하도 식성이 까다로워서 며칠 씩 안 먹기도 했다. 결국은 먹기 시작했는데, 고양이 wet food에도 종류가 다양하다는 사실을 모른 탓에 minced type은 피하고 pate type 만  남김 없이 깨끗하게 먹어 치우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부터는 100% pate type만 order하게 되었고 그것을 오늘부터 다시 먹기 시작하게 되었다. 이제 양양이 먹이, 식사의 puzzle은 거의 해결이 되는 듯하다. 그러니까… 녀석이 앞으로 먹는 food formula 가 ‘밝혀진’ 것이다. 이것으로 올해 10월 한달 동안 집을 떠날 있을 때 무엇을 먹여야 하는지는 알게 되었지만, 그것을 어떻게 누가 집까지 와서 ‘매일’ 먹이느냐~~이것이 ‘세기적인 문제’로 등장하고 있으니…  아~ 싫다, 싫어~~ 왜 이런 문제들까지 나를 괴롭히는가?

오늘은 이미 ‘개척했던’ 코스이긴 하지만 다른 곳으로 길을 찾아 걸었다. 처음으로 시도해 보는 방향과 장소들, 이것으로 walk distance로 2.5 마일을 기록할 수 있었으니 이것도 새로운 Ozzie Trail course가 되었다. 오늘은 우리 동네만 빼고 옆의 Azalea Spring apartment complex course를 모두 섭렵한 셈인데, 느낌이 좋았다.

지난 밤의 폭우로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 과연 오늘 Sope Creek의 모습이 그 결과가 아닌가? 폭우로 더 맑은 모습을 기대했지만 반대였다. 급류로 시냇물의 밑바닥이 혼란하게 파헤쳐져서 흙탕물의 색깔로 흐르는 시냇물의 모습~ 아무리 해도 이곳에서 1954년 경 비원의 담장 밑 수로입구에서 흘러나오던 원서동 개천시냇물의 느낌을 찾을 수는 없었다. 나는 이곳에서도 어릴 적 고향의 모습을 아직도 찾고 있는 것이다.

Sope Creek jungle을 나오며 옆을 보니 낯익은 모습의 정글을 연상케 하는 독특한 모습의 식물을 본다. 이것이 무엇이더라.. 물론 이름이 생각날 리가 없다. 사진에 담긴 것으로 찾아보니, 나의 짐작이 맞았다. ‘미모사’라는 기억하기 쉬운 이름을 잎파리~  1964년 경 서울 남영동 집 옥상에 있었던 나의 ‘식물원’ 시절 이런 것들에 심취를 했었지… 같은 종류 미모사 중에 손을 접촉을 하면 움직이며 움츠린다는 것도 있었는데, 오늘 본 것도 그런 종류였을까? 나중에 알아보니 이것은 그런 종류는 아니었다.

  1. 이 한글용어를 찾느라 애를 먹었다. 아마도 처음 듣고 보는 한글 원예용어가 아닐까, 하지만 격자는 lattice, 구조는 structure라는 것은 짐작으로 안다. 이제는 한글도 영어도 문제가 있으니… 사실 일반적으로 trellis에는 우리 집처럼 lattice, 격자가 포함되지 않을 수도 있다.
  2. 이것이 불어인지도 모르고 ‘페이트’라고 읽은 후에 자세히 보니 이것은 ‘파테이’라고 읽고 paste란 뜻의 French  정도가 아닌지…

HOLY TRINITY SUNDAY 2023

오늘은 THE MOST HOLY TRINITY SUNDAY.. 지난 주에 이어 ‘3주 연속 대축일 Solemnity’ 중, 두 번째 대축일 ‘삼위일체 대축일’을 맞는다. 다음 주의 ‘성체성혈 대축일’ 을 기점으로 ‘연중 ORDINARY TIME’이 시작되고… 이후의 긴 시기는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대림시기 ADVENT까지 긴 ‘연중 방학’으로 이어지고… ‘사철과 책력’을 연상하게 하는 세속의 달력과 나란히 가톨릭의 전례력을 따르다 보면 손쉽게 한 해는 지나간다.

삼위일체… 삼위일체… 고등학교 시절의 영어참고서 ‘영어 삼위일체’가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을 보니 역시 나는 세속적 인간인 모양이다.  이것을 흉내 내려는 듯 숫제 ‘오력일체’라는 것도 있었지. 이곳의 삼위일체는 성부, 성자, 성령이 아니고 ‘문법, 해석, 작문’이니…  어떻게 이 참고서의 저자는 감히 2000년에 가까운 심오한 천주교  근본교리의 용어를 그렇게도 잘 ‘베꼈는가’…

오늘 구 미카엘 주임신부님의 ‘삼위일체교리’ 해설 강론은 역시 보통 수준을 넘는 것이어서 나의 기대를 훨씬 상회하는 것이었다. 혹시  지난주 강론처럼 ‘신학생 답안지 수준’이었으면 나는 분명히 필요이상으로 혈압을 올렸을 것이 분명하기에, 너무나 나의 신앙적 건강에는 다행인 일이 되었다.

성경에 근거했지만 직접적인 언급이 없는 이 ‘삼위일체 교리’와 큰 갈등은 나에게 전혀 없었다. 다만 이해하는 것이 ‘답안지 정답처럼’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것들은 속된 표현으로 ‘무조건 믿어라’ 수준에 속하는 것으로 큰 문제를 삼지 않았었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관심을 가지고 이 ‘기본 교리’에 대해서 역사적 자료를 찾아보다가 뜻밖의 충격을 준 사건이 있었다.

사도시대의 사도, 교부, 신학적 성인’들이 ‘동의하고 결정했다는’교리들, 그것들은 ‘협상이 불필요, 불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것이 과연 전부인가? 그것을 ‘무조건이라도 믿어야’ 착실하고 올바른 모범적인 천주교일 터인데,  한치라도 이런 ‘협상 불가능한’ 교리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 중에서도 제일 큰 문제가 바로 오늘의 주제인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것이다.

근래 Emanuel Swedenborg의 NEW HEAVEN, NEW CHURCH 에 대한 ‘새로운 교리’ 에 접하고 난 후에 다시 한번 ‘변하지 않는 교리’의 무류성 無謬性에 대해서 생각을 한다.  상징적, 관념적, 추상적으로 보이는 전통적, 주류 교회, 성경, 교리와는 달리 17세기 스웨덴 출신 과학, 철학, 신학, 신비가였던 Emanuel Swedenborg는 mystic의 입장으로,  전통적 성경에 철저히 근거는 했지만 본인의 체험의 도움으로 모든 교리들이 ‘구체적인 체험적 묘사’로 일관되어 있기에 쉽게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 중에서 제일 큰 문제는 그가 이 삼위일체 교리가 가톨릭 교회의 오류라고 믿는다는 사실이다. 그는 간단히 말해서 ‘성부, 성령’의 ‘각 위 person’가 예수 자체에 모두 포함이 되었다는 것. 그러니까 하느님은  ‘삼 위’가 아니고 ‘예수 자체’인 셈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그가 몸소 ‘천국에 가서 보았다는’  쉽게 수긍할 수 없는 주장이다. 이 문제의 모든 관건은 이러한 그의 ‘천국 체험’을 어느 정도 ‘이성적’으로 받아드려야 하는데 있다. 그는 이런 ‘파격적인 체험’을 공개함으로써 이단에 가까운 취급까지 받았지만, 그의 탁월한 이성적, 학문적 배경은 그렇게 간단히 무시할 수 없는 것 같다.

결국은 역시 이것도 또 다른  ‘믿음의 문제’로 귀착이 되는 것 아닐까?

성당 미사 이후 pandemic으로 사라졌던 모든 활동들이 재개가 된 것이 제일 큰 여건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친교실에 남아  있는 시간이 늘어나게 되었고, 따라서 예전의 ‘비싼 cafe coffee & bakery’ 시간이 상대적으로 줄어든 것이다. 어울리던 사람들도 사라지거나 바뀌며 조금 허전하고 쓸쓸하기도 하다. 미사와 친교가 적당히 조화를 이루어야 바람직하기에 아무리 경건하고 성스러운 미사를 했다 하더라도 인간적인 교류가 부족한 것에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가 없으니…

오늘도 미사 후 한가한 친교실에서 모처럼 만나는 반가운 얼굴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오늘따리 아가다 자매의 모습은 예외적으로 행복하고 즐거운 것이었다. 문제는 이런 상태가 지속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기에 기도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데…

온몸이 쑤신다. 하지만 못 참을 정도는 물론 아니다. 나는 육체적 고통을 참는 데는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통을 예측하는 고통은 잘 관리를 못하는 편이다. 왜 그럴까? 예전에는 이것도 자신이 있었는데( 특히 2010년 대에) 그것들이 점점 약화, 악화되고 있음이 분명하고, 그런 사실이 나를 근래에 많이 슬프고 괴롭게 한다. 내 딴에는 기를 쓰고 노력을 한다고 하는데 왜 결실과 결과가 이 모양일까, 왜?

‘집 밖으로 나가기 싫다’는 유혹, 거의 매주 일요일 새벽마다 끊임없이 받지만 그래도 가상하게 이것을 이기고 나, 우리는 ‘나아간다’. 아마도 혼자 살았으면 이런 것들,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렇게 둘이 함께 여정을 간다는 사실에 그저 그저 감사하고, 감사하자!  오늘 조금 도움을 받았다면, 어제 저녁에 가까스로 끝을 낸 ‘지겨운 일’, 그것이었을 거라고 나는 충분히 짐작한다. 나는 이렇게 요사이 ‘의지력의 약화’를 절감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의지력, 희망’을 어떻게 나는 다시 전의 수준으로 회복시킬 것인가, 그것이 현재 나에게 주어진 최대의 과제인 것이다. 성모님이시여~ 저를 잊지 마소서, 아직도 어머님의 손길이 필요한 한심한 자식입니다~~~

주일미사를 다녀온 지금, 나는 예상한 만큼 머리도, 마음도, 몸도 가볍다. 날씨의 은총인가, 아~ 은총이다, 은총.. 어쩌면 이렇게 시원한 6월 초를 가는가? 어제의 뜨겁게 작열을 하던 태양은 어디로 숨었나. 이렇게 짙은 구름이 고맙게 보이는 ‘삼위일체 주일’의 낮, 온몸이 쑤시고, 피곤하고, 가라앉는 듯한 기분을 가볍게 들뜨게 하는 ‘주일의 은총’을 맛보고 있다. 물론 이런 기분이 몇 시간이나 지속될지는 물론 자신이 없지만,  후에 오는 일을 미리 생각할 필요는 없다. 지금, 현재가 더 중요한 것이니까…

오늘 점심 식사는 날씨에 걸맞은 먹음직스러운 ‘나마우동’… 그것도 선택의 여지가 없이 ‘곱배기’로 먹게 되었다.  감사, 감사…

이것이 웬 떡이냐? 감사합니다. 점점 더워지는 오후에 갑자기 비가 쏟아지니… 그 동안 잔뜩 마르기 시작했던 대지와 초목들이 갑자기 힘을 얻는 것이 보인다. 감사합니다, 감사…

Last of May, Billy Graham 1973

오늘, 아니 요새 나에게 제일 중요한, 필요한 ‘성인의 오늘 말씀’, 바로  Padre Pio 성인의 말씀이 아닐지…

“Pray, hope, and don’t worry. Worry is useless. God is merciful and will hear your prayers.”  – St. Padre Pio

내가 제일 갈망하는 것은 이 중에서도 바로 hope일 것이다. 이것의 결여, 사라진 듯한 우려, 그것이 나를 제일 괴롭히는 것임을 나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희망, 내일, 모레 이후에 대한 희망… 왜 그것이 나에게서 부족, 아니 사라지고 있다고 나는 ‘우려’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2010년 대를 살 무렵 나는 바로 이 희망에 의지하며 의미 있게, 힘차게, 기쁘게 살지 않았던가? 왜 바로 그것이 사라진 것, 사라지고 있다고 나는 절망을 하는 것일까?

아~ 어찌 이렇게 자주 잊는단 말인가? 1973년 6월 1일, 아니면 6월초..  정든 대한민국의 땅과 하늘을 난생 처음으로 떠나던 날… 1973년 6월 초, 어떻게 이 날짜를 잊고 살았을까? 괴로운 추억이 되지는 않았을까? 나에게는 ‘Landing 반세기’라는 이름으로 몇 년 전부터 나를 기억과 추억의 세계로 이끌 던 날, 그날이 ‘중앙학교 개교기념일’과 맞물려서 나의 기억을 자극하곤 했는데.. 결국 이날을 맞게 되었으니~~ 나에게는 아무리 생각해도 인생을 마무리 하는 첫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또 너무나 감상적, 관념적, 생각 속으로 빠져드는 지나친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닐지.. 정말 이제는 모든 것에 자신이 없다.  어떻게 이 시기, 즈음을 기억하고 넘어갈 것인가? 1973년, 1973년 6월 김포공항… 분에 넘치게 많이 환송을 해 주었던 가족, 친지들 어떻게 그들을 기리며 감사하며 추억을 해야 마땅할 것인지 정말 감이 잡히질 않는구나~ 어머니, 어머니, 엄마, 누나, 누나~~ 만 외칠 것인지…

1973년 6월 1일 금요일 전후의 고국 신문을 훑어본다. 나의 기억과 차이가 나는 것으로 시작한 머나먼 추억여행인가… 우선 Billy Graham 여의도 집회에 대한 것, 그것은 5월 31일 목요일에 시작이 된 것이었다. 나는 내가 떠난 후였던 것으로 잘못 기억을 한 것이니.. 얼마나 많은 기억의 착오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하지만 요일에 의한 추적에 희망을 걸었지만 역시 난감하기만 하구나… 출국하던 날 아침에 연세대를 찾았는데 혹시 그날이 6월 2일 토요일일 가능성은 없을까? 토요일에 학교 문을 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거의 확실히 가능성도…

출국하던 날 연세대 campus에서 찍은 사진 등을 살펴보며 내린 결론은 6월 2일 토요일 오후에 출국을 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100% 확신은 없지만 가능성은 아주 높은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나는 1973년 빌리그레함 전도대회가 한창이던 때에 고국을 떠난 셈인데… 왜 그렇게 그 대집회의 기억이 선명하지 않은 것인가 생각을 해보니 역시 나는 그 당시에 무신론을 넘어서 아주 종교에 부정적인 편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참 50년, 반세기의 세월이 나의 종교세계관을 이렇게 바꾸어 놓을 줄이야~~

오늘 하루 종일 머릿속은 역시 1973년 6월 초 전후에 머물고 있었다. 당시의 신문들을 유심히 읽기도 했다. 5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당시의 삶과 주변 모습들을 그려보고 상상도 하며 time machine을 탄 시간을 보냈다. 당시의 사진들도 보며, 모두들 어떻게 살았을까~ 거의 한숨을 쉬는 나 자신이 불쌍하기도 하고… 과연 이것이 인생인가,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 것인가~ 결론은: 모른다, 모른다, 정말 모르겠다~~~  나는 어디에 속한 사람인가? 나의 고향? 이곳의 제2의 고향은 무엇인가? 나는 과연 어디에 속한 삶인가? 내가 돌아갈 수 있는 고향은 지금이 아닌 옛날의 것들이고, 지금의 집과 삶은 아무리 해도 뿌리를 내릴 자신이 없는 곳이면, 도대체 나는 어디에 속한 삶을 살고 있느냐 말이다~~ 성모님, 모두들 어디에 갔습니까? 나를 빼놓고 모두들 어디로 갔느냐 말입니다~~~

어제 중앙고 졸업앨범을 보다가 우연히 이상한 사실을 보았다. ‘윤석원’의 사진이 다른 반에 실려있는 것 아닌가? 분명히 우리 반 3학년 8반인 것으로 기억이 되는데… 살펴보니 역시 윤석원은 8반의 그룹사진에 모습이 보였다. 익숙한 얼굴이라서 곰곰이 생각하니 아~ 이 친구, 나와 같은 재동국민학교 6학년 1반에 있지 않은가?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 동창과 나는 개인적으로 얽힌 추억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얼굴만 익숙한 정도인 것이다. 이렇게 해서 조금 궁금한 동창의 모습을 되돌아 보았는데, 역시 궁금하다, 이 친구는 어떤 삶과 인생을 살아왔을지~~

오늘이 5월의 마지막 날, 한 일도 많았지만 아쉽고 미안하고 후회스러운 것이 왜 없으랴? 아~ 성모님의 달, 5월 성모성월~~ 이것이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나는 거의 소홀하게, 아니 거의 실패작으로 끝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올해는 조금 더 신경을 써서 ‘어머님들’을 생각하며 지내려 했는데… 결과는 엉뚱하게 흘러간 것이다. 특히 성모의 밤에 못 간 것, 아니 안 간 것이 제일 마음에 걸린다. 내년을 기약할 수 밖에…

어쩌면 날씨가 이렇게도 나의 마음에 꼭 드는 것일까? 한마디로 나를 행복하게, 기쁘게까지 하는 그런 자연환경조건의 나날이 오늘까지도 끊임없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과학적 여름’은 아직도 3주 이상 남았지만 여름의 맛을 이미 보았기에 다시 봄이나 가을이 된 착각에 빠지는 지난 나날들,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방을 옮기는 작업을 쉽게 만들어준 것이다.

지난 밤 꿈 속에서 또 그것을 보았다. 그것, 우리 집이 손을 잘 못보고 방치하며 살아서 이곳 저곳이 무너지고 떨어져 나가고 빗물이 들어오고… 이런 종류의 꿈의 역사는 꽤 깊고도 긴 것이다. 어젯밤의 광경들은 더욱 구체적인 것으로 아예 그 ‘공포’에 잠에서 깨어나고, 결과적으로 나는 ‘만세!’를 부르는 혜택을 만끽하기도 했으니.. 왜 집이 처참하게 주저앉는 광경, 그 공포가 나에게 왔을까? 우리 집에 그런 일들이 생긴 일도, 경험도 없는데… 영화에서나 본 광경들이 왜 나에게…  집을 제대로 관리, 청소, 유지, 재투자를 잊고 못하고 사는 우리들의 모습과 이런 꿈과 무슨 연관은 없는 것일까?

비록 나의 office/study는 완전하게 ‘이사’를 했지만 그 이사 짐들, 특히 책과 서류의 진정한 처리는 아직도 나의 등 뒤에서 나의 손을 기다리고 있다. 왜 이럴까? 하기야 제일 골치 아픈 일일 수밖에 없긴 하지만… 그래도 많은 책들이 분류가 되었고 garage로 물러나거나 쫓겨나가는 일을 단행하기는 했다. 하지만 ‘진짜 분류’는 아직도 나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얼마만한 책과 서류를 나의 옆에 항상 두고 살아야 하는 것일까? 나의 남은 인생에서 그것들이 얼마나 중요한 것들일까? 완전한 digitizing, clouding은 실용적이 아닌 것일까? 조금 더 아니 많이 많이 간소화하게 사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추억이 얽힌 많은 stuff들, 얼마큼이나 나의 주변에 놓아두고 사는 것이 현명한 일일까? 80대, 90대를 사시는 ‘선배님들’의 경험론적 고견은 없는 것일까?

방을 바꾸는 작업이 다 끝난 것은 아니지만 이런 기회에 다시 tool time을 되찾아야겠다는 은근한 압박감을 피할 수가 없다. 우선 dining room의 dish cabinet의 배치를 원상태로 돌려 놓았다. 의외로 그것들은 laminate floor에서 거의 힘을 들이지 않고 움직일 수 있었다. 또한 거의 반년 이상 중지된 작업, kitchen under sink repair 작업인데 이것이 은근히 ‘목공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보니 자신이 별로 없어서 방치된 상태였다. 일단 시작을 하면 결과가 나오지 않을지…

Pentecost! Birth of Church…

큰 기대 할 것이 없는 평범한 ‘주일, 일요일’이 아닌, 의미가 엄청난,  커다란 날을 맞는다. 그리스도 교회가 탄생하는 날, 성령이 내려온 날… 오순절 Pentecost… 성령이 예수님 죽음 이후 공포에 떨며 다락방에 모여있는 성모님을 비롯한 모든 사도, 제자들에게 내려온 날… 모두 신학적, 아니 사실적으로도 큰 문제가 없다. 우선 ‘진실 중의 진실’인 성경에 분명히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나 자신은 어떤가? 아~ 그래, 모두 다 알고 알고 듣고 배우고 해서 문제없이 이해한다. 하지만 나에게 성령이 오셨을까 하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다. 그저 어린아이 처럼 이유 없이 믿는 것, 그것이 나의 입장이다.  이 ‘사건의 결과’로 2,000여 년 역사의 그리스도 교회가 세워졌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엄청난 사건이고 축일 중의 축일은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오늘 ‘대축일’ 미사, 오랜만에 아직도 신학생처럼 보이는, 보좌신부님 김성현 라파엘 (맞나?) 신부님 집전으로,  반갑기는 했지만 솔직히 성령강림의 중후한 신학적 의미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였다. 일면 우리의 ‘긴 인생 여정 후’의 나이도 있었겠지만 다른 면으로 신부님의 사제연륜도 큰 관계가 있었을 듯하다. 흡사 신학교 세미나의 주제를 다루듯 관심이 온통 big screen의 동영상과 text로 오가고, 성령의 의미가 너무나 세속적 기복신앙 차원으로 강등되는 듯한 느낌에 나는 솔직히 강론내용을 피하기에 바빴으니… 내 탓이요 인가, 누구 탓인가?

미사 직후 친교실에서 ‘제대회’에서 마련, 판매한 음식으로 아침식사를 하며 자리를 함께 했던 H가브리엘 형제님과 인사와 담소를 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최고 연령층 그룹 요셉회의 소식도 궁금했는데 대답은 ‘역쉬~’ 내가 우려한, 예상한 대로였다. 회장형제님이 몸도 아프고 해서 요셉회 기능이 거의 정지된 상태라고 한숨을 쉬시며 하시는 말씀 ‘신부님이 별로 신경을 안 쓰시는 것’ 같다는 말씀. 조금 놀랍기도 했지만 역시 그 동안 예상했던 대로였다. 특히 전임 요한 신부님과 ‘사목방침이 다르다’라는 말씀을 듣고 보니 그것은 내가 생각해도 사실이었다. 나도 그 동안 우려한 것을 재확인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의 신임 사제들로부터 시작된 새로운 사목방침 중에는 아마도 ‘새 세대, 다음 세대를 위한 총력전’ 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런 사실을 나는 처음부터 의심하고 있었고 주위에도 의견을 말하기도 했지만 모두들 반신반의하는 표정들이었다. 거의 모든 공지사항, 사목행정 노력에서 ‘중노년층’은 거의 제외된 듯한 느낌이 이제는 사실로 드러나는 것처럼 보인다.

한편 베트남 성당의 case처럼 이런 차세대를 향한 교회의 변신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우리보다 조금 늦은 이민 교회였지만 지금은 우리가 ‘절대로 따를 수 없는’ 무서운 속도로 교회의 현지화 차세대 화에 질주를 하며 눈부신 결과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누구도 소외감을 느끼지 않는 ‘새로운 사목 방침’에  silver bullet은 없을까?

내가 보기에 이런 ‘새로운’ 사목 방침은 zero sum mentality에서 나온 것처럼 보이는데, 현재 사목회의 주류가 이런 mentality를 가지고 있는지, 아니면 사제들의 발상인지, 이제는 소외된 듯한 우리 70+ 세대로써는 알 길이 없으니, 조금은 더 외로워지는 성령강림주일이 되었다.

지나간 3일은 ‘날씨의 은총’의 연속이라고 할까… 요새 예보를 볼 틈이 없어서 더욱 놀랍기만 하다. 하루 종일 육체노동에 가까운 책, 잡동사니, 방 정리를 하기에 당연히 시원한 복장을 택했지만 그것은 오판 誤判, 긴 팔, 바지가 필요할 정도였으니… 완전한 ‘한 가을’ 정도의 날씨였으니… 이것도 이상기후에 속하는 것인지, 예보분석을 전혀 못보고 사는 것도 이런 놀람의 즐거움을 준다는 사실, 나 혼자만 알고 지내는 ‘생의 기쁨’에 속한다는 사실 누가 짐작이나 하랴? 급기야, 오늘 아침은 아예 얇디 얇은 스웨터를 걸치고 주일미사엘 가게 되었으니,조금 신경이 쓰이는 날씨이긴 하지만 어찌 이런 날씨를 마다하랴?

오래 전 1990년대의 family room의 추억을 되살리려 노력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는지, 까물까물 거리기만 한다. 온 가족이 편하게 저녁 시간을 보내던 ‘특별한 것 없는’ 그런 시절들… 각종 VHS video로 classic movie들 [Abbot & Costello, Student Prince, Journey to the Center of the Earth, 등등] 보며 연기 흉내를 내던 아이들의 모습들, 근처에 있던 중식 Formosa에서 take-out을 해다가 맛있게 먹던… 아~ 30여 년 전이구나… 30여 년 전…  30년의 감각을 실감 있게 느껴보려 애를 쓰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으니… 나의 50년, 30년… 20년 그리고 10년의 이정표들을 어떻게 다시 되돌아 볼 수 있는가? 나의 50년, America Landing 50년이 코 앞에 다가오는데, 나는 전혀 심적인 준비가 안 되어있다, 그것이 나를 조금 초조하게 하고… 아~ 나는 너무 생각이 많은 속물인 것이다~

1990년대로 복원 되는 family room

집에 오자마자 거의 가까스로 정리가 끝나가는 family room 복원에 끝마무리를 하며 새로니 식구들을 맞아 맛있는 갈비 barbecue로 휴일 기분을 가질 수가 있었다. 며칠 만에 다시 보는 Ozzie녀석, 이제는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갑게 되었으니… 녀석이 찾아준 새 trail 로 산책을 할 수도 있었다. 나라니 식구가 빠진 것이 조금 섭섭했지만 이렇게 반쪽이라도 모일 수 있었던 것, 역시 연숙의 억척 덕분임은 말할 나위도 없고, 나도 따라서 방을 옮기는 힘든 작업도 했으니 보람도 있는 휴일주말을 맞는다.

특히 아직도 조금은 서먹서먹한 사위와도 모처럼 대화도 할 수 있었고, 반갑고 놀라운 사실도 있었는데~ 10월 달에 한달 간 집을 비울 때, 우리 집 ‘양양이 Izzie‘를 돌보아주려 우리 집에 와서 일을 하겠다고 제안을 했다는 사실, 우리 둘은 놀라기만 했으니~~ 이 친구, 참 사람이 진국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는 행복한 순간이 되었다. 새로니가 남편을 잘 만났다는 사실, 너무나 반가운 것이다.  이렇게 우리 외로운 식구들이 각자 살길을 찾아서 가정을 꾸몄다는 사실, 우리는 정말 감사해야 할 것 아닌가? 감사합니다, 성모님, 어머님들이시여~~

 

멋진 날씨, 지나간 가을, 다가올 가을

아~ Echinopsis! 우연히 뒤뜰을 훔쳐보니… 그 동안 못 보던 것이 눈에 뜨인다. 아~ ‘네가 또 찾아 왔구나!’, 또 일년이 지나갔다는 뜻,  전에 바울라 자매님이 이사를 하면서 우리 집에 온 이것, 선인장의 꽃, 올해도 작년에 이어서 평소보다 일찍 핀 것이 새롭기만 하다. 자세히 가까이서 보니, 이 선인장 꽃 몽우리가 4~5개나 올라오고 있고… 올해는 작년에 비해서~ 조금 일찍 핀 것인가, 작년의 기록을 찾아보면… 작년에도 6월 2일에 피어나기 시작했고,  8월 초에 일찍 동면으로 들어갔구나.  2020년에는 7월 말에 처음 피기 시작했던 이것,  그 전에는 거의 못 보았던 여름의 상징이었다.  이제 이 모습으로  ‘감각적’ 여름이 시작된다는 신호탄인가…

Near Perfect! 지나간 가을이 되돌아 오거나 앞으로 다가올 ‘먼 가을’이 이미 온 것 같은 멋진 날씨가 며칠 째 계속된다. 이런 모습은 예전에 경험했던 Memorial Day weekend의 전형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먼 것. 새벽에는 아예 싸늘하기까지 했다. 각종 세계적, 아니 미국 내에도, 기후관련 재해 소식들이 머리 속에 남아있기에 ‘날씨의 은총’은 강조하고 자랑해도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이것은 그야말로 시간문제일 것이다. 분명히 ‘멕시코 만’에 도사리고 있는 습한 열대성 공기가 이곳을 덮는 그런 시기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이미 5월 초에 경험을 했던 것들이라서 이제는 하나도 이상할 것은 없다. 이렇게 세월은 흐르고 흐르는 것이니까…

오늘도 ‘방을 옮기는 작업’이 계속된다. 거의 7년 간 나의 office/study 역할을 했던 예전의 family room, 100% deep cleaning 작업은 7년이 지난 이 나이에 조금 더 힘들어진 것 같다. 하지만 이 정도의 pace면 문제 없다, 앞으로 최소한 5년 이상은.  머리를 쓰지 않고 근육만 쓰는 일은 사실 그렇게 괴롭지 않다. 문제는 ‘정리, 분류, 최종 처리’하는 바로 그 머리를 쓰는 작업인 것이다. 하지만 오랜 세월 미루던 작업이어서 더 미룰 수는 없고… 이곳이 바로 오랜 세월 우리 집의 family room구실을 톡톡히 했던 곳이어서 더 감상적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 전통적 가옥의 특징, ‘작은 부엌’ 덕분에 우리는 바로 옆의 이 커다란 방에 모여서 저녁 시간을 보내곤 했기에 가족의 추억은 사실 거의 모두 이곳에 남아 있어서 그런지 내가 이곳을 office로 쓰기 시작한 결정은 그렇게 결과적으로 환영을 못 받은 셈인데, 늦게 나마 이렇게 다시 new family room으로 변모하는 것으로 조금은 위안을 받게 되었다. 문제는 이방에 ‘매일’ 모일 가족이 하나도 없다는 웃기는 사실…

거의 하루 종일 family room 정리에 신경과 시간을 쓴 날이어서 그런지. 비록 평소에 하던 ‘잡스러운 짓거리’들이 머리 속에서 깨끗이 사라지긴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시원하고 개운하게도 느껴지니… 내가 그 동안 너무 ‘외골수’ 같은 모습으로 살았던 것은 아니었는지… 아~ 나는 왜 조금 더 다양하게, 쉽게, 덜 생각하며 살 수는 없는 것일까? 더 단순하게, 덜 열심으로, 가급적 웃고 즐기며, 즐겁고 행복한 모습으로 살 수는 없는가…. 농담까지는 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과 함께 웃을 수 있는 아량과 여유는 왜 나에게 그렇게 부족한 것일까? 덜 심각하게 살 수는… 성모님, 어떻게 하며 좋겠습니까?

오늘의 작업으로 우선 fireplace가 제 모습을 오랜만에 선을 보였다. 이곳을 중심으로 가족들이 모였기에 이것이 그 동안 나의 office 로 쓰일 때 모습을 감추었었기에 오늘 이 모습으로 과거의 추억을 되찾게 된 것이다. 앞으로는 온 가족들이 가끔 holiday때마다 모일 때 이곳이 다시 구심점 역할을 하게 될 것을 희망하는데… 그런 세월이 과연 얼마나 오래 지속될 것인지는 하느님만이 아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