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y Men Came here..

The Longest Day, 1945

 

6월 6일, 달력이 빨갛다. 바보 같은 본당(that is,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달력이 ‘고국에서 주문을 받아와서’, 친애하는 고국의 국경일이 모두 빨갛게 표시되어 있다. 그러니까 올해 (최소한) 한해는 고국의 국경일을 ‘느끼며’ 살게 되었다. 고국에 달력을 주문해서 얼마나 돈을 절약했는지는 몰라도, 참 해도 너무했다. 그곳의 국경일들을 빨갛게 ‘강조’ 했으면, ‘고객이 거의 일년 열두 달 사는’ 현지의 국경일, 기념일도 그랬으면 누가 때리냐? 6월 6일 현충일에 동작동 국군묘지라도 참배해야 한단 말인가?

6월 6일을 왜 이승만 대통령께서 현충일로 정했는지 유래는 확실치 않아도, 이곳에서 6월 6일은 1944년 6월 6일을 기념하는 날이고, 그날은 2차 대전시 3백만의 연합군이 프랑스의Normandy 해안으로 육,해,공의 ‘사상 최대의 작전‘이 시작된 날이다. 바로 D-Day인 것이다. 그 날이 없었으면 간접적으로라도 우리의 광복절도 연기가 될 수도 있었던 그렇게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날인 것이다. 그것도 본당 달력에 ‘정확히’ 빠져있었다.

2004년에 이미 반세기, 50주년이 지났고 이제는 사실 60주년에 가까워지고 있는 지금 특별히 이날을 생각하는 것은 역시 개인적인 추억과 그것과 관련된 영화, The Longest Day에 대한 향수 때문이다. 1948년 생인 내가 그날을 어찌 기억하랴마는, 사실처럼 그려낸 영화의 역할이 내가 직접 그때를 겪은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데 한 몫을 했다는 데도 있다.

여기서 말하는 영화, The Longest Day는 컴퓨터로 특수효과를 ‘조작’ 한 만화 같은 요새 영화들이 아니고, ‘정직하고, 우직하게’ 만든 1962년 미국 ‘흑백’ 영화 ‘The Longest Day‘ 인 것이다. 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영화를 나는 1963년도 중앙고 1학년 때, 남산 밑, 퇴계로에 있던 ‘개봉관’ 대한극장에서, 학교에서 단체로 가서 보았다. 정확하게 언제였는지 궁금해서, 그 당시의 일간지를 찾아보았지만, 그 영화의 광고를 찾을 수가 없었다. 1962년의 영화이기 때문에 일본을 거쳐서 들어오려면 빨라도 1년 이상이 걸리기 때문이고, 고1때 본 기억이 분명해서, 1963년일 것인데.. 왜 그 영화의 광고는 신문에 없었는지, 아직도 궁금하다.

 

 

The Longest Day, the theme song – Paul Anka – 1962

 

그 당시에 이 영화의 ‘역사적 의미’를 다 알지는 못했지만, 그저 ‘우리의 멋진 친구인 미국이 주도한’ 연합군이 ‘나쁜 놈들, 나치 독일’을 패배시키는 기분 좋은 스토리라는 정도는 알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당시에 우리들은’그 영화를 참 재미없게 보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그 영화는 재미있게 만들어진 얘기 같은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정직하게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기록영화처럼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흔히 있는 climax같은 것도 그 영화에는 없었고,특히 끝나는 장면은 덜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보완이라도 해 주듯이, 엄청나게 많은 당대의 최고 배우들이 동원되었고, Paul Anka의 영화 주제곡은 영화의 심각성을 잘 나타낼 수 있어서, 조금은 덜 지루할 수 있었다. 이 주제곡은 다른 영화 ‘콰이강의 다리’ 와 같은 정도로 우리들이 두고두고 휘파람으로 따라 부르기에 좋았다. 특히 기억에, 우리 반에 ‘조광순‘이라는 친구, 원래 노래를 잘 부르는데, 이 영화를 보고 학교로 돌아와서부터 복도건 교실이건 가리지 않고 따라 부르곤 했다.

다른 기억으로는, 우리 학교에서 단체로 대한극장에 들어갔을 때, 이미 전회의 상영이 끝나고 있었는데 보니까 앉았던 사람들이 모두 우리또래의 여학생들이었다. 과연 그 ‘여학생’들이 이 영화를 ‘졸지 않고’ 보았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또한, 다른 생각에 이 영화는 최소한 대한민국에서는 크기 돈을 못 벌었을 것이라는 사실.. 그것이 아마도 신문광고를 찾기가 힘들었던 이유가 아닐까..

 

이 영화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아보면, 그 동안 모르고 있었던 흥미로운 사실들이 많이 있다. 그것 중에는:

  1. The Longest Day는 1959년 저자 Cornelius Ryan이 저술한 1944년 6월 6일 ‘하루 동안’ 일어난 연합군의 Normandy 상륙작전에 관한 역사책의 제목이다. 그러니까 non-fiction, fiction도 아닌 historybook인 것이다. 그러니까 역사적 사실과 아주 가까운 실화들인데, 이것이 영화화 되면서 판권이 당시의 금액 $175,000 (십칠만 오천 불)에 달했다.
  2. 영화에 사용된 언어들은 모두 각국의 언어를 쓰고 있고, 모두 영어로 자막을 넣었다. 하지만 배우들이 모두 영어를 쓰는 다른 것도 동시에 찍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영화의 두 가지 version이 존재하는 셈이다.
  3. 당시의 인기인 중에 주제곡을 부른 Paul Anka는 예상 외로 그는 멋지게 army ranger역할을 해 냈다.

     

    Paul Anka & Robert Wager in the Longest Day

    Paul Anka

  4. 실제 인물인 Benjamin Vanderboort (중령, 82nd Airborne, 공정단)로 연기를 한 당대의 인기배우 John Wayne, 원래 이 역할은 Charlton Heston이 원하던 역이었지만 John Wayne에게 넘겨진 것이다. 대부분의 주역 배우들이 25,000불의 연기료를 받았지만 John Wayne만은 그것의 열 배인 250,000불을 요구하고 받았다고 한다.

    John Wayne as Lt. Col. Vanderboort

    밴더브루트 중령 역의 존 웨인, 공수부대장

  5.  82nd 낙하산 공정대가 투하되었던 프랑스의 마을 (Sainte-Mere-Eglise)의 교회당 꼭대기로 ‘잘 못’ 투하되었던 사병(Red Button의 역할)을 기념하는 실제 인형이 아직도 그곳에 걸려있다고 한다.
  6.  연합군 최고사령관 (Allied Supreme Commander) 였던 General Eisenhower의 역할은 처음에 실제 인물인 미국 전 대통령의 역임했던 President Eisenhower를 고려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그는 D-Day로부터 거의 20년이나 지나서 비교적 젊었던 그 당시의 역을 맡기에 적합하지 않았고, 연기 경력이 전혀 없었지만 그와 비슷하게 생겼던 decorator Henry Grace를 기용했다. 그의 연기를 영화에서 보면 꽤 성공했다는 생각이 든다.

    연기경력 제로의 아이젠하워 역의 Henry Grace

    연기경력 제로의 아이젠하워 역의 Henry Grace

  7. 공포영화, 드라큘라(Count Dracula)로 잘 알려진 경력 영국배우였던 Christopher Lee는 영국군으로 등장을 하려 연기심사를 받았지만, ‘군인처럼 생기지 않았다’고 낙방을 했다고 한다. 사실 그는 2차대전시 영국 공군 정보장교로 복무를 했다고 한다.
  8.  영국 사병 Private Flanagan으로 등장을 하는 Sean Connery(숀 코네리), 특별한 연기는 아니었지만, 이 영화가 그에게는 007 James Bond로 가는 마지막 출연이 되었고, 그 이후 그는 100% James Bond가 되어 버렸다.

    영국측 군인 Sean Connery 숀 코네리

    영국측 군인 Sean Connery 숀 코네리

  9. Normandy의 상륙 해변 중의 하나인 Omaha Beach 상륙을 촬영할 때, 미군들 역할을 하던 extra(엑스트라)들이 시퍼런 물에 질려서 물 속으로 뛰어들지를 않았고, 이에 질려버린 Robert Mitchum (로버트 밋첨, Army General Norman Cota역)이 먼저 뛰어들고, 엑스트라들이 서서히 뛰어들었다고 한다.
  10. 총 제작비, $10,000,000(천만 불)은 1993년 이전(Steven SpielbergShindler’s List가 나올 때까지)의 흑백 영화로써는 제일 비싼 제작비였다. 그 동안의 inflation을 감안한다면 천만 불은 그 당시로써는 큰 돈이었다.
  11. 낙하산 특공대, paratrooper들이 낙하하던 때 숲과 습지에서 요란히 들리던 개구리 소리는 사실 프랑스에는 없는 개구리의 소리였다고 하는데, 이것은 이미 녹음이 된 ‘미국 개구리’ 소리였던 것이다. 이런 것들은 사실 쪼잔한 것 들이지만 나중에 이렇게 이야기 거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12. 미국 해군당국이 이 영화를 만드는데 전함과 상륙정 등으로 지원을 해 주었지만, 그 당시 ‘빌려준’ 함정들은 이미 1960년 이후의 것으로 1944년 당시의 함정들에 비하면 훨씬 현대적인 함정들이고, 자세히 관찰을 하면 쉽게 식별할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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