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m Sunday 2018: wet, chilly & hectic

Jesus, into Passion Week

 

올해, 2018년의 성지주일(聖枝主日), 종려주일(棕櫚主日), Palm Sunday 는 blog 제목 그대로, 비에 젖고 싸늘하고 온통 쫓기는 듯한 그런 날이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아침, 기온마저 싸늘한 것이 오래 전 같았으면 따뜻한 방 책상 앞에서 향기 짙은 coffee를 한없이 마시며 백일몽을 꾸고 싶었을, 바로 그런 느낌이 드는 날이기도 했다.

이날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죽으러’ 들어가시는 날인데, 인간적으로 생각을 해 보면 어떻게 참혹한 죽음을 알면서도 사명을 완수하러 죽음의 행군을 하셨을까.. 인간적으로 쉽게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렇게 호산나를 외치던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죽이시오!’ 하고 소리를 질렀을까.. 이제는 이해가 간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을..

이날은 2018년 가톨릭 신앙 의미의 최 정점인 부활주일을 향한 성주간의 첫날이기도 하지만 다른 일, 행사 등등이 ‘모조리’ 겹쳐서 도저히 그런 ‘도피 심리’는 꿈을 꿀 수도 없었다. 우리 구역이 성당 점심봉사 차례였고, 본당청소의 날, 레지오 아치에서 행사 등등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년 같으면 구역 점심봉사나 본당 청소는 pass할 만도 했지만 올해는 그럴 수가 없었다.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을 느꼈기 때문일까, 아니면 너무나 미안해서였을까.. 

하지만 이날 제일 중요한 행사는 역시 레지오 아치에스 행사였다. 올해로 20차를 맞는 큰 의미 있는 행사다. 레지오는 로마 군대의 조직을 본 딴 것이고 성모님께 충성을 서약, 맹세하는 엄숙한 행사로서 보통의 신심단체에서는 찾기 힘든 행사다. 이것을 빼먹는 것은 한마디로 충성이 결여된 군인과 같은 것인데 나는 작년에 그런 일생일대의 실수를 했다. 이유는 레지오의 ‘왕마귀‘라는 인간이 벌린 해괴한 행동에 너무나 놀라고 실망을 해서 레지오를 떠나려고 마음을 먹었기에 그런 경솔한 실수를 한 것이다. 그것을 염두에 두고 올해는 ‘절대로’ 그런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고 결심을 하였고 결국 오늘은 큰 문제없이 참석을 하게 되었다.

이제 성주간이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었고, 성삼일, 수난감실 성체조배 같은 heavy급 행사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끝나면서 우리는 ‘초자연적 중의 초자연적 기적,  인간 부활’을 다시 경험하게 될 것이다.

 

고해성사 양심성찰 101

왜 이렇게 시간은 빨리 가는가.. 벌써 사순절이 오늘로 끝나고 내일은 Palm Sunday (성지주일), 그리고 부활주일을 향한 예수님의 수난주일 Passion Week가 시작되니.. 머리 속은 갑자기 바빠지는데, 이유는 분명하다. 아직도 고해성사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성탄 때 못했기에 이번에는 못할 이유가 없어졌다. 최소한 일년에 한 번은 해야 할 것이 아닌가? 신부님 말씀대로 일년 동안 낀 ‘죄의 때’를 벗기면 얼마나 개운할 것인가? 경험에 의해도 이것을 마치면 날라갈 듯한 거의 ‘희열’에 가까운 기분이 된다. 그것을 생각하면 매일 하고 싶겠지만, 막상 하려고 하면 ‘무조건’ 미루고 피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이 고해성사의 특징이다. 이번도 미루고 미루고.. 그러다가 결국은 성주간에서야 할 결심이 생긴 것이다. 

이 고해성사는 사실 그 성사 자체는 뜻밖에 짧고 싱겁게 끝나기도 하지만 관건은 이것을 위한 준비단계다. 이 준비를 통한 ‘자기 반성’의 과정이 주 목적인 것이다. 하지만 막상 자기반성을 하려면 웬만한 ‘훈련’이 되어있지 않으면 막막하기만 하다. 생각하면 ‘하나도 문제가 없는 듯’ 보이기도 하고 다르게 보면 온통 죄 투성이로 느껴지기도 하는.. 이 과정 절대로 간단한 것이 아니다. 경험에 의해서 오랜 동안 이 과정을 거쳐서 성사를 보면 반드시 그때 받는 ‘은총’의 정도가 다르게 느껴진다.

이 자기의 죄에 대한 관찰, 반성을 하려면 오랜 전통에 의한 ‘양심 성찰 Examination of Conscience‘ 이란 것이 도움이 된다. 나의 짐작에 이 ‘방법’은 로욜라의 아냐시오 성인에 의해서 체계화가 된 것으로 안다. 그것을 고해성사에 도움이 되도록 간단히 만든 것도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USCCB (미국주교회의) 의 confession guide brochure 다.  몇 년 전에 이것을 발견해서 자기성찰, 양심성찰 101 (입문) 을 할 때 보곤 하는데 올해는 몇 가지 조항에서 큰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역시 그것은 ‘레지오 미친년 사건‘의 결과일 것이다. 문제는 이번에 고해를 해도, 근본적 해결을 할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영역이 아니고 하느님의 영역이다. 그야말로.. Jesus, I surrender myself to you, take care of everything!

 

 

간략한 양식의 양심성찰

지은 잘못을 기억하도록 한다. 고의적으로 의도적으로 하느님과 교회의 가르침을 거역하였는지를 기도하며 자신에게 묻는다.

 

  1. 매일 하느님께 기도를 하는가?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를 하는가?
  2. 가톨릭 가르침에 위배되는 것들을 읽거나 타 종교에 관여하여 나의 신앙에 해가 되는 일이 없는가? 점쟁이나 손금 읽는 것 같은 미신적인 행위에 관여를 하는가?
  3. 하느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거나, 거짓 맹세를 하지 않는가?
  4. 주일 미사나 의무 축일을 이유 없이 거르거나, 미사를 건성으로 보거나 의무적인 금육, 절제를 하고 있는가?
  5. 부모님을 거역하거나 정규기관의 상급자를 거역하였는가?
  6. 누구를 증오하거나 말다툼, 복수를 했는가? 용서하기를 거부하고 무시하거나 하지 않았는가?
  7. 술에 지나치게 취하거나 마약을 복용하였는가?
  8. 낙태를 동의, 추천하거나 관여하지 않았는가?
  9. 음란매체를 의도적으로 보거나 음란한 행위에 관여하지는 않았는가? 인공피임을 하지 않았는가?
  10. 배우자에게 정직했는가? 혼외 정사를 하지 않았는가?
  11. 남의 재산을 훔치거나 피해를 입히지 않았는가? 사업 상에서 정직하고 공정했는가?
  12. 가난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는가? 남들의 존엄성을 지켜주었는가?
  13. 거짓말을 했는가? 남을 중상모략 하거나 깎아 내리거나 하지 않았는가? 남에게 중대한 문제를 너무 경시하지 않았는가?
  14. 남들을 너무 부러워하지 않았는가?

 

Examination of Conscience

Recall your sins. Prayerfully ask yourself what you have done with full knowledge and full consent against God’s and the Church’s commandments.

  1. Do I pray to God every day? Have I thanked God for his gifts to me?
  2. Did I put my faith in danger through readings contrary to Catholic teachings or involvement in non-Catholic sects? Did I engage in superstitious practices: palm reading or fortune-telling?
  3. Did I take the name of God in vain? Did I curse or take a false oath?
  4. Did I miss Mass on Sundays or holy days of obligation through my own fault? Am I attentive at Mass? Did I keep fast and abstinence on the prescribed days?
  5. Did I disobey my parents and lawful superiors in important matters?
  6. Did I hate or quarrel with anyone, or desire revenge? Did I refuse to forgive? Was I disrespectful?
  7. Did I get drunk? Did I take illicit drugs?
  8. Did I consent to, recommend, advise, or actively take part in an abortion?
  9. Did I willfully look at pornography, entertain impure thoughts, or engage in impure conversations or actions? Did I use artificial means to prevent conception?
  10. Was I unfaithful to my spouse? Did I engage in sexual activity outside of marriage?
    Did I steal or damage another’s property? Have I been honest and just in my business relations?
  11. Have I been responsive to the needs of the poor and respected the dignity of others?
    Did I tell lies? Did I sin by calumny, or detraction, of others? Did I judge others rashly in serious matters?
  12. Have I envied other people?

 

봄, Traumatic March, 목요회

Spring at Saybrook Court

 

¶ Spring finally comes: 유난히도 추웠고 (아직도 싸늘한) 길게 느껴졌던 겨울이 공식적으로 끝이 났고 봄이 시작되는 ‘춘분’이 3월 20일1이었다.

봄의 시작이라고 특별한 것은 없었지만 이때 내가 할 일이 하나 있다. 나의 blog site의 header art picture를 ‘봄’의 그것으로 바꾸는 일이다. 이 site는 이런 식으로 일년에 네 번을 바꾸는데, 사실 조금 귀찮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것으로 세월의 흐름이 그렇게 ugly 하지 않다는 느낌을 주고 받고 싶은 것이다. 이렇게 ‘거저 받은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들 이런 때 다시 한번 행복한 마음으로 새기는 것, 그것에 어떤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받고 싶은 것이다.

이 header art에 담긴 ‘봄의 모습’은 우리가 사는 집, cul-du-sac 에 있는 neighbor house들 초봄의 모습과, 비가 내린 후 blacktop에 물빛이 반사되어 흡사 커다란 ‘연못’을 연상시키는 그런 것이 잘 어울려서 나에게는 익숙한 것이다. 이런 모습으로 여름이 시작되는 하지까지 봄은 무르익어갈 것이다.

 

 

¶  Kafkaesque March day: 지나간 화요일 주회합에는 일년 만에 꾸리아 순방이 있었다. 이날 꾸리아 간부들의 방문을 맞으며 일년 전 같은 때를 기억하는 고통을 겪었다. 그 당시 blog post를 기억하면서 Kafka를 연상시키는 ‘해괴한 사건’2을 다시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나에게는 ‘3월의 악몽’ 으로 뇌세포에 단단히 자리를 잡은 이 해괴한 사건, 그 사건의 장본인은 작년 8월의 ‘레지오 미친년 사건’과 더불어 ‘2명의 레지오 미친년들’ 로 내 개인 역사에 당당히 남게 되었다.

꾸리아의 위상을 완전히 진흙탕 속으로 떨어뜨린 그 사건의 여파로 나는 심각하게 레지오를 포기할 생각을 했었고 결과적으로 레지오 아치에스 acies 행사까지 포기하는 실수도 범했다. 지금은 조금 감정적이었던 그 당시를 후회하기도 하지만 그 ‘장본인 왕마귀’는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은 절대로 변함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누구건 간에 레지오를 분열시키거나 떠나게 만드는 것은 ‘성모님 정신을 거역하는 심각한 죄’ 라는 것을 나는 굳게 믿는다.

이런 사건들의 원인을 쉽게 찾을 수는 없겠지만 분명한 것은 ‘단원 교육’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우리 레지오는 모두를 저질단원으로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악몽을 떠올리며 이날 다시 맞은 꾸리아 간부들, 특별한 문제없이 방문은 끝났고,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사실 이번에 작년 같은 사태가 재발하게 되면 즉시 video로 기록을 남겨 Youtube로 공개할 것을 밝힌 후,폭력으로 쫓아낼 각오‘까지 다질 정도로 나는 ‘아직도’ 감정이 격해 있었다. 이제는 이런 일들,  나에게 조그마한 피해망상증 paranoia 이 생겼는지, 정말 싫고 피하고 싶은 일들이 되었고 나를 조금씩 성모님의 군대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있음도 느낀다.

 

 

 

¶ 목요회 친구들: 6개월이나 된 ‘장구한’ 역사를 가진 우리 목요회 모임이 이번 달에는 마지막 목요일이 아니고 세 번째 목요일에 모였다. 마지막 목요일인 ‘성 목요일’에 떨어졌기 때문에 한 주를 앞당긴 것이다. 원래의 계획은 조금 늦은 시간이지만 우리 집에서 모이기로 했지만 마지막 순간에 도밍고 형제가 난색을 표명해서 예전 대로 밖 (식당)에서 모였다. 몇 개월 전에 밤에 차 사고를 당했던 경험 때문인지 깜깜한 늦은 저녁시간에 마리에타로 drive하는 것이 불편했을지도 모른다. 우리 집에는 거의 20년 전에 온 적이 있겠지만 아무리 요새의 technology, GPS와 Google Map이 있어도 밤에 이곳의 불규칙적인 residential area를 drive하는 것은 아무래도 불편했을 것이다.

칠십의 나이는 확실히 ‘밤중의 운전’을 불편하게 한다는 것을 서서히 실감한다. 나만의 느낌이 아니고 주위의 동년배들도 거의 같은 의견이다. 그래서 점점 mobility는 떨어지게 되지만 대신 virtual mobility (Internet)는 점점 발달할 것이므로 예전의 ‘노인’들이 겪던 ‘소외감’의 문제는 그렇게 크지 않을 것 같다. 우리 집에서 모였으면 spaghetti 와 wine으로 배와 기분을 채우려고 했고, 아오스딩 형제에게는 (60/70 style) guitar 101 정도를 보여 주려고 했지만,  아마도 6월 달 정도에나 우리 집에서 모이기로 하고 밤 늦은 저녁식사 모임을 끝냈다.

 

  1. ‘한국산’ 레지오 수첩을 보면 3월 19일이 춘분인데.. 갑자기 혼동스럽다. 이것은 국제표준 ‘절대’ 시간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2. 꾸리아 간부로 방문 온, 정서가 불안해 보이는 인간이 갑자기 괴물로 돌변, 순명 하라고 길길이 뛰던, 이직도 그 광경이 믿기지 않는 사건

사순 5주일, 성 요셉 대축일

¶  5th Sunday of Lent, 사순절 5주째를 맞는 주일, 다시 완연한 봄기운이 대기를 감싸기 시작한 따뜻한, ‘이틀 앞으로 다가온 춘분’ 전 일요일을 맞았고, 이제 어느덧 사순절이 1주일밖에 안 남았다. 돌아오는 일요일은 Palm Sunday (성지주일), 이날부터 Passion Week (수난주간)이 시작되고 우리 가톨릭(그리스도교) 신앙의 절정을 향한 일주일을 맞는다.  다가오는 성삼일 Triduum  을 생각하면 사실 어깨가 무거워지는 것을 느끼기도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끝나는 날, 찬란한 부활주일을 맞이하는 생각하며 위로를 삼는다.

이날 아침 우리는 정말 오랜만에 정든 ‘동네 neighborhood 미국 성당’, Holy Family  성당엘 갔다. 생각을 미처 못했지만 우리가 거의 두 달 동안이나 한국 순교자 성당으로 주일미사를 갔다는 사실에 은근히 놀랐다. 우리 신앙의 고향 같은 이 동네 neighborhood  미국성당에 조금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주일 헌금을 거른 것도 미안하고 큰 은혜 받고 있는 것 (6 days 평일미사 포함)을 못 갚는 듯한 죄송함도 느낀다. 사실 우리는 이곳에 조금은 시간과 힘을 바쳐야 할 ‘위치’에 있는데 조금씩 멀어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아틀란타 대교구의 Annual Appeal donation 도 작년부터 순교자성당을 통해서 하게 되었기에 더욱 미안한 마음이 든다.

지난 두 달 연속으로 주일미사를 도라빌 순교자 성당으로 가게 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곳 공동체가 예전보다 좀 더 가까워져서 그런가, 익숙해져서 그런가, 확실히 전 보다 익숙해진 것도 도움이 되긴 했다. 오래 전처럼, ‘아는 사람이 없어서 불편하다’ 라는 변명을 하기가 힘이 들게 되었다. 얼굴이 그런대로 익숙한 형제,자매님들이 이곳 저곳에 눈에 뜨이는 것, ‘한국말’로 대화를 할 수 있는 것, 나이가 엇비슷한 형제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았다. 다만, 한가지 문제가 있다면… ‘혹시라도 그 두 명의 레지오 미친년들 (성모님, 죄송합니다), 두 괴물들 monsters’ 의 얼굴을 멀리서라도 보게라도 되는 것, 즉시로 밥맛이 거의 제로로 떨어지는 경험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아무리 생각을 해도 특효약이 없다. 있다면 ‘세월의 흐름’ 그것 밖에 없다.

이날 순교자 성당 주일 미사에 안 간 이유는 또 있었다. 이날 집전 신부가 주임신부님이 아니고 ‘윗동네’ 신부라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상식의 선을 언제 또 벗어날지 모르는 돌출적 행동을 나는 정말 진절머리 나게 싫어한다. 게다가 ‘정구사, 주사파, 신 진보‘로 무장하고 세속에 찌들은 듯한 신부.. 진정으로 피하고 싶은 것이다.

이 주일 날, 순교자 성당에서는 전 주임신부 예수회 류해욱 신부의 사순 특강이 있었는데 물론 나는 참석을 못했다. 류신부의 특강을 못 들은 것, 사실 그렇게 아쉽지 않았다. 지난 주에 다른 신부 (가톨릭 신문)의 특강에서 하도 ‘진을 빼서’, 다시는 이런 식의 특강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아는 형제님들(등대회 회원)에게 권유를 해 보았지만 YES 대답이 없어서 그냥 포기한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 알아보니 그 중에 한 형제님은 부부가 같이 특강에 참석을 했었기에 ‘특강권유 활동’ 이 성공으로 check mark가 되는 흐뭇함을 느꼈다.

이날, 일요일 연숙은 미국성당 미사가 끝난 후에 교리반 때문에 순교자 성당을 갔었지만, 가는데 무려 3시간 이상이 걸렸다. 일요일 아침에 한가해야 할 I-285 (Eastbound near Roswell Rd Exit) 에 car accident로 all-lane이 막히는 바람에 그렇게 된 것이다. 나는 집에서 편하게 coffee를 즐기고 있었고… 문뜩 ‘악몽’이 떠올랐다. 2014년 1월 말의 Atlanta snowmageddon, 19시간 얼어붙은 freeway에서 밤을 지새웠던 경험.. 잊고 싶은 추억인데 그것이 다시 눈앞에 그려지는 것.. 이것도 세월이 더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하는가…

 

¶  Pray for me, St. Joseph, Solemnity of..:  성 요셉 대축일, 원명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이 대축일은 3월 셋째 월요일에 있는 것으로 생각되며 올해는 3월 19일 월요일이었다. 아침미사엘 가며 ‘어렴풋이’ 이날이 성 요셉 축일 정도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별다른 생각 없이 Holy Family 성당 아침 미사엘 가니, 대성당에 불이 꺼져있었고 작은 note가 붙어있었다. 오늘 미사는 별관인 Parish Center에서 한다고 적혀 있었다. 왜 미사 장소를 바꾸었을까, 궁금증은 그곳에 도착해서 풀렸다.

의자들이 놓인 것은 그렇고 벽 쪽으로 멋지게 꾸며진’제단, alter’ 이 설치 되어 있었다. 아하! 성 요셉 대축일을 더욱 의미 있게 ‘축하’하려는 본당 신부(Father Miguel)의 노력이었다. 그러니까 이 신부님은 성 요셉 신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흔히 성모 신심은 잘 알려져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배필인 성 요셉 신심은 조금 생소한 것이 아닌가? Not So!

요즘 가톨릭 인터넷 site엘 가보면 한마디로 이것은 devotion trending 중의 하나다. 얼마 전에는  그 유명한 야쿠자 신부님 Father Donald Calloway 의 ‘St. Joseph Gem: Daily Wisdom on our Spiritual Father‘  란 책이 나오기도 했다. 개신교의 ‘성경유일주의’에 의하면 이 요셉 성인은 성경에서 ‘한 마디’도 하신 말씀이 없기에 그들에게는 별볼일 없는 인물인지도 모른다. 과연 그럴까? 성령의 감도를 받은 수많은 성인,성녀, 교부들이 남긴 기록들은 그들에게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일까? 이런 것 만으로도 나는 마틴 루터의 생각을 이해할 수가 없다. 이미 성 요셉 신심의 불길을 뜨거워지고 있고, 아마도 critical mass에 도달하면 마리아 신심에 버금가는 은총 전구의 원천이 될 것을 기대하며 이날 ‘성 요셉 대축일’ 미사를 참례하였다.

 

Solemnity of St. Joseph, Holy Family Catholic Church

 

Come Saturday Morning…

Come Saturday Morning:  토요일, 토요일 아침, 토요일 아침이 오면…  일주일 마다 반복되는 토요일, 오늘은 무엇이 특별한가, 그것도 아침은? 별로 없다. 문득 지금이 토요일 아침이라는 ‘섬뜩함’, 그것 뿐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끔 연숙이가 중얼거리는 말.. ‘오늘이 무슨 요일, 무슨 날이지..’ 그러면 나는 정확하게 요일을 말해준다. 그 정도로 우리에게는 아침마다 수없이 다가온 엇비슷한 요일들이 있었고, 앞으로도 어느 정도 계속될 것이다.

일주일 5일 ‘일을 하던’ 시절, 토요일은 정말 달콤한 날의 시작이었다. 특히 일을 집에 가지고 오지 않던 때는 더욱 그랬다. 가족들과 더 많이 섞일 수 있는 것도 좋았지만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심하게 말하면 ‘사치’에 가까운 특권을 누릴 수 있는 것이 더 좋았다. 그런 것들이 토요일 아침이 주었던 추억들이었다.

모든 무거운 의무적인 삶의 무게가 어깨에서 내려졌기에 그런 ‘쉼의 시작인 토요일 아침’에 대한 느낌은 자연스레 사라졌지만 추억은 알알이 남아있다. 토요일 아침이 오면, Come Saturday Morning 은 대학 4학년 시절 1970년 경,  영화주제곡으로 아카데미상 후보에도 오른,  The Sandpipers가 불렀던 기억에 남는 감미로운 노래였다.

그 당시 토요일은 ‘일하는 날’ 중에 하나였던 정말 오래 전이었고, 심지어 일년 365일, 자정부터는 ‘통행금지’까지 있었던 시절.. 밤 10시만 넘으면 집에 들어가는 전쟁을 치르던 시절, 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토요일 아침은 젊은 즐거움의 시작이었다.

 

Come Saturday MoringThe Sandpipers – 1969  

 

St. Patrick’s Day 유감 有感:  오늘 아침 미사에 오랜 만에 Father Dan Ketter 신부님이 오셔서 미사집전을 했다. 이 ‘젊은’ 신부님, ‘백인중의 백인’ ‘신세대 신부님’ 이제까지 접했던 신부님 중에서 제일 ‘경건한’ gesture를 보여주는데..  미사 전에 comment로 오늘이 St. Patrick Day임을 알려주었다. 얼마 전부터 달력의 3월17일 St. Patrick’s Day임을 조금 기억하다가 그만 며칠 동안 잊은 것이다. 

 

 

그렇다… 오늘이 바로 St. Patrick’s Day.. 1970년대 미국 시카고에서 처음으로 이날의 parade를 하는 것을 보고 이날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물론 당시는 가톨릭이나 성인들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었다. 하지만 시카고의 그 유명했던 Daly 시장의 선두로 정계, 재계의 거물급들이 참여한 그 행진은 나에게는 인상적이었다. 그날이 도대체 무슨 날이길래.. 도대체 St. Patrick가 누구이길래 그렇게 시카고의 추웠던 날에 모조리 거리로 나왔을까.. 의아하기만 했다. 모든 것들이 초록색으로 포장이 되고 숫제 Chicago River는 초록색 강으로 변하기도 했다.

그 이후 매년 이날을 맞으며 Irish American들을 생각하게 되었고, 그들의 전통적 보수적 가톨릭 전통문화도 생각하게 되었다. 오늘 Dan신부, 아마 그도 Irish heritage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지만, 탄식조의 comment에서 오늘날의 Ireland에 대해서 언급을 했는데.. 물론 나도 잘 알고 있는 사실들이었다. 지난 100여 년간 전세계에 가톨릭사제를 ‘수출’하던 나라가 지금은 ‘수입’을 해야 한다고.. 한마디로 하느님의 손길이 그곳을 떠났다는 경고였다.

 

Statue of St. Patrick at Croagh Patrick in County Mayo, Ireland

 

이곳 미국 성당엘 가도 core member들은 거의 모두 Irish들이다. 그들은 가정에서부터 가톨릭 전통을 가지고 컸기에 그런 역할이 너무도 당연한 것처럼 보였다. 1800년대 중반부터 이민을 오면서 각종 종교차별대우를 받으며 미국 가톨릭을 세운 민족들.. 어떻게 해서 그들의 조국은 철저히 하느님을 버렸는지.. 세속적 삶을 살았던 나도 의아할 지경이다. 유럽이 하느님을 버리고 마지막 보루였던 Ireland가 넘어가면… 오늘 이런 얘기를 연숙과 나누면서 아마도 앞으로 전세계에 신부들을 수출할 수 있는 나라는 아마도 한국일 가능성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데 어느 정도 의견을 같이 했다. 참 세상, 오래 살고 볼지어다.

 

¶ 알함브라의 추억:  아련한 기억 속에 남았던 이 guitar solo masterpiece 를 다시 듣게 되었다. 물론 ‘우연히’ 듣게 된 것이다. 요새 거의 regular가 된 TapinRadio ‘Internet radio tuner’를 통해서 듣는…  물론 desktop pc로 desk에 앉아서 듣는 것이다.  내가 tuning을 하는 곳은 거의 모두 live 생방송인데, 대한민국의 어떤 방송은 program이 다양한 전통적인 곳도 있고 다른 곳들은 ‘살아있는 사람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computer program으로 운영되는 곳도 있다. 오늘 들었던 추억의 명곡은 ‘대한민국’ Classical.24 Radio란 곳에서 들었는데… 이곳은 이제까지 접했던 수많은 곳 중에 가장 stable하고 광고도 없어서 너무나 편하게 classical music을 들을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알함브라의 추억.. 그야말로 추억이다. 오늘은 Internet Radio의 text service덕분에 이곳의 정확한 이름을 알게 되었다. “Recuerdos de la Alhambra” 가 바로 그것. 이 곡은 Spain의 Francisco Tarrega란 guitarist가 1896년 경에 작곡했다고 나온다.  그러니까 이 곡명은 스페인어 일 것이고 영어로는 Memories of the Alhambra 인 것이다. 또한 Alhambra는 Spain의 Granada 에 있는 fortress, palace라고 한다. 그 옛날 이 곡은 “알함브라의 추억”, 또는 “알함브라 성成의 추억”으로 소개되었던 것도 기억한다. 나의 (아마 다른 사람들도 비슷할) 이 곡에 대한 느낌도 역시 이 곡의 제목과 거의 같다. “외딴 곳에 있는 접근하기 힘든 높은 성, 신비롭기까지 한 그런 곳”을 이 곳은 연상시키는 것이다.

이 곡이 guitar를 위해서 쓰여진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tremolo기법의 극치를 보여주는 이 명곡, 다시 한번 찾았고 듣게 되었고 그때 그 시절을 그리는 순간이 되었다.

 

Classical/guitar, Jim Greeninger, Recuerdos de la Alhambra  

 

¶ Penance, penance, penance: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사순절이 일주일이면 끝이 나고 곧 성주간이 시작, 그 일주일 후에 부활절.. 우아.. 그렇게 길게 느껴지던 사순절이 거의 다 가버렸다는 것으로 다시 한번 시간, 세월의 빨라짐, 그것은 ‘내 몸의 속도’가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다는 것을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이 다시 증명한다. 빨리 움직일수록 (남이 볼 때)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는 ‘물리학적 진리’가 그것이다. 물론 이것은 비유적인 말장난일 수도 있지만…

올해 나의 사순절은 어떤 것이었나 서서히 돌아볼 때가 오고 있지만 그보다 급한 것은 사실 ‘판공, 고해성사’ 다. 지난 성탄 판공성사를 할 수 없었던 참담했던 때, 다시 겪고 싶지 않아서 이번에는 조금 남들보다 빨리 하려는 생각도 했지만 이 지경이 되었다. 이 ‘성사’는 일단 피하려고 하면 더욱 어렵게 되고 결국은 포기하게 된다. 게다가 각가지 변명으로 합리화하기에 급급하게 되는 등..  이런 것은 유혹이 많이 작용한다. 이것 별 것 아니다.. 괴로운 상처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다.. 등등 각가지 유혹의 손길이 다가온다.

작년 말과 올해의 유혹은 딱 한가지다. 지난해 벌어졌던 ‘레지오 미친년 사건’의 후유증으로 내 속에 잠재해 있던 악마가 나를 꼼짝달싹 못하게 하는 것이다. 결국 이 말은 그 ‘레지오 미친년’이 바로 악마였다는 것을 뜻하는 것 아닐까? 그 미친년의 악마나 내 자신 속에 있는 악마들.. 왜 왜 그런 일들이 벌어진 것일까? 나는 이런 내 자신의 악마를 신부님에게 고해 할 자신이 아직 없는 것인지.. 계속 계속 미루고 미루고, 변명거리를 찾고 있으니.. 이것이 나의 사순절의 전부가 되고 있다.  이번에 판공성사를 할 수 있는 은총이 내려지면 나는 다음 ‘장 章’으로 넘어갈 수 있는 위치에 놓이게 될 것이다.

 

peaceful easy feeling..

Absolutely positively peaceful moment: 평화란 것이 무엇인가? 마음이 편한 것, 걱정이 없는 것, 기분이 좋은 것.. 모두 비슷하겠지만 나에게는 의외로 간단한 상태, 환경, 순간 들이다. 바로 위의 picture에 보이는 것들이 바로 나에게는 ‘깊숙한’ 평화다. 왼쪽에 내가 그렇게 의지하고 사랑하는 성모님이 나를 보시고, 나를 그렇게 사랑하고 좋아하는 나보다 늙은 우리집 개 Tobey가 나의 편한 다리 위에서 편하게 잠을 자고, 바로 앞의 pc monitor screen에서 ‘오상 五傷 의 비오 신부님‘ 영화를 편하게 감상하는 바로 이 순간들이 바로 나에게는 ‘절대적, 확실한 평화’의 순간들이다. 이런 순간들이 언제까지 갈 것인지는 하느님만이 아실 것이다.

 

Miss you, Elantra 추억..

영원히 떠나기 직전의 Elantra

 

오늘 갔다, 나의 old friend, Elantra가 오늘 영원히 떠났다. 아마도 곧 ‘죽을’ 지도 모른다. 슬픔과 안도의 마음이 하루 종일 교차하던 오늘이었다.

2000 Hyundai Elantra는 오래 전 2000년 경부터 내가 혼자 쓰던 승용차였다. 그 당시 주로 출퇴근할 때 쓰던 2000년 가을에 샀던 그 차가 오늘 영원히 떠난 것이다.

그 당시에 출퇴근 할 때 쓰던 1999  minivan Plymouth Voyager가 편하고 안전하고 family car로는 적격이었지만 commute하기에는 경제적인 차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small personal car는 아닌 것이다.

매일 직장 (Rockwell Automation, Duluth)으로 60 마일 정도를 drive해야 하는 것을 감안하면 gas(gasoline) 도 만만치 않았기에 통근하기에 알맞은 SMALL personal car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을 때,  나의 눈에 들어온 차가 하나 있었다. ‘조국의 자랑1Hyundai 차 중에 Tiburon이란 ‘SEXY’ sports car였다. 총각시절부터 sports car를 타보고 싶었던 추억이 발동했는지.. 하지만 중년의 나이에 이런 차를 산다는 것, 내가 생각해도 웃음이 나오긴 했다. 역시, 식구들이 모조리 반대를 하고 나섰다. ‘나에게 어울리지 않고’, ‘차 사고 accident  나면 큰일난다’.. 등등이 이유였다.

당시(2000년 경)에 우리 집에는 연숙이 애들과 쓰던 1996 Honda Accord EX와 내가 commute용으로 쓰던 1999 Plymouth Voyager ‘minivan’ 이 있어서, 사실 차가 더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기름을 무섭게 들이키는’ minivan을 매일 쓴다는 것도 싫었고, 일년 후 대학에 갈 새로니가 곧 차가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배경으로 마리에타의 Cobb Parkway에 있는 Hyundai dealer를 찾아갔고 그곳에서 생각지도 않게 Tiburon이 아닌 ‘값이 저렴하지만 아주 sporty한’ Elantra 를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내가 본 floor model은 그 중에서도 더 sporty한 것으로 test drive를 해본 후에, 별 생각도 없이 그것을 그 자리에서 사 버렸다.

이것으로 ‘기름값’도 그렇지만 ‘혼자 타는 차’의 기쁨에 온통 빠졌고, 매일 drive를 하는 것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차가 가벼운데 비해서 power가 상당해서 정말 기분은 motorway에서 race car를 타는 바로 그것이었다. 어디론가 그저 ‘몰고 가는’ 환상에 빠지기도 했다.

물론 그 때는 9/11/2001, Nine-Eleven 전의 일이었지만 그 이후부터 나의 모든 것이 downhill 을 향하는 느낌으로 depressed decade를 맞이 하면서, 사실 Elantra 의 즐거움을 거의 잊고 살게 되었고 나중에는 나라니가 대학엘 가면서 물려주고 말았다.

그 이후 그 차는 ‘차를 전혀 care할 줄 모르던’ 새 주인 탓에 빠르게 ‘고물’로 변해 갔다. 그래도 120,000 마일까지 견디던 그 차는 결국 거의 쓸 수가 없게 되어서 나라니가 새 차를 사자마자 우리 집 driveway에서 운명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어떻게 이 차를 처리할 까 생각하던 차에, nonprofit 단체에서 donation을 하라는 광고를 보게 되었는데 나보다 먼저 나라니가 NPR (National Public Radio) 에 주기로 하였고 거의 일년이 넘어서 오늘 우리 집 driveway에서 towing truck에 실려 떠났다.

차 하나 이렇게 없어지는 것, 무엇이 그렇게 대단한 것인가 하겠지만, 나에게는 나이도 나이인지 이번에는 그렇게 예사롭지를 않았다. 무언가 나의 baby가 ‘죽으러 팔려가는’ 그런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처음에 나의 사랑을 온통 독차지 했던 차, 나중에 거의 abused 정도의 대접을 받았던 것이 그렇게 신경이 쓰였다. 내가 나라니에게 ‘차를 care하는 교육’을 안 시켰던 것이 나의 치명적 실수였지만 그래도 그 정도가 될 줄은 몰랐다.

그 차의 초기 역사를 생각하면 나의 마지막 직장 Rockwell Automation, 그리고 ‘처절했던 Nine Eleven의 악몽‘, 그리고 사랑하는 어머님의 타계 등등의 ‘depression decade’가 줄줄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이제는 그래도 그때를 조금 밝은 생각으로 그것들을 보려고 하지만, 일어난 일들은 바꿀 수 없는 개인 역사임에는 틀림이 없다. 잘 가거라… 나의 baby Elantra 여…  I will miss you…

 

  1. 내 살아 생전에 미국에서 대한민국 차를 탈 수 있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세찬 바람 불어오면..

 

Windy March: 김민기 작사, 작곡, 노래의 70년대 oldie folk song ‘아름다운 사람‘ 2절 가사를 보면… “세찬바람 불어오면 들판에 한 아이 달려가네.. 그 더운 가슴에 바람맞으면 음~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40여 년 동안 잊지 않고 기타에 맞추어 읊조리는 노래, 오늘같이 세찬 바람 부는 날 실감나게 가사를 음미할 수 있다.

왜 3월 무렵 부는 바람은 그다지도 춥고 움츠리게 하는 것일까? 아마도 찬란한 햇살에 깜빡 방향을 잃은 우리의 계절감각 때문은 아닐까? 봄의 시작이 일주일 가량 남았으니 아마도 우리의 의식은 분명히 봄을 미리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을 것이다.

오늘 같은 날, 움츠려 드는 몸에 활력을 넣으려고 ‘일부러’ 동네 산책을 강행했다. Mexico에서 Spring break을 즐기는 새로니, 그 애의 home companion인 pet dog, Ozzie를 우리 집에 맡겨놓고 갔다. 이제는 하도 우리 집에서 자주 지냈기에 사실은 우리 식구같이 느껴진다. 주인인 우리 집 pet dog, Tobey도 이제는 체념한 듯, 그런대로 평화롭게 지낸다. 그 두마리 개를 데리고 동네를 걸었다. 찬란하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햇빛이 무색할 정도로 ‘움직이는 공기’는 무섭게 차가웠다. 3월의 바람은 역시..

반 세기 전 서울 거리를 걸을 때의 3월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복잡한 시내에서 맞는 강풍, 괴로울 때도 많았다. 머리 숱이 그렇게도 진했던 때, 날리는 머리가 흐트러질까 그것을 shop window에 비추어보며 가다듬던 어린 시절들, 하지만 여자들이 더 고생이었을 것이다. 한창 유행하던 mini-skirt를 입고 2층 높이의 ‘육교, overpass’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 우리들이 보기에는 즐겁기도 했지만 그녀들은 고역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싸늘하고 세찬 바람에도 끄떡없이 온통 다리를 거의 다 노출시키고 활보하는 것.. 당시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그것이 머리 속 깊이 남아있는 3월의 모습들..

그 이후에 이곳에 살 때 아이들 bedtime story로 책을 읽어 줄 때, Winnie-the-Pooh 의 추억이 또한 3월에 연관되어 아련하게 떠오른다. 그 중의 한 그림..이 바로 바람에 날라가려고 하는 Piglet을 잡아주는 Winnie의 정다운 모습이다. 이것은 이제는 ‘미국적 추억’이 되었지만 이제는 하도 오래 전이라 미국적, 한국적 하는 것이 별로 의미가 없게 되었다.  바람을 동반한 3월의 추억,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이런 3월을 맞게 될 것인지.. 아마도 그다지 ‘수많은 3월’은 아닐지도 모른다.

 

Darker Dawn again:  3월의 stupid ritual, 2째 주 일요일 오전 1시가 ‘갑자기, 강제로’ 2시로 변하는 해괴한 ‘법‘.. 나는 아직도 이 stupid하게 느껴지는 것 이해를 할 수가 없다. Daylight를 Save 하자고.. 이것 얼마나 귀찮고 번거롭고, 이제는 일년이 얼마나 빨리 가는지도 일깨워주는 고역이다. 벽시계 같은 것 바꾸는 것 이외는 이제는 거의 ‘자동적’으로 바뀌지만 그것이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시간을 ‘법으로 강제로’ 바꾸는 것이 문제다.

 

 

그런대로 아침에 일어날 때 여명의 그림자가 어렴풋이 보이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었는데, 갑자기 깜깜해 졌다. 그것뿐인가.. 특히 봄에 바뀌는 시간은 아차 하면 내가 바보로 둔갑할 수도 있다. 일요일 아침, 목적지에 한 시간 늦게 도착하는 것, 충분히 가능하니까.. 수십 년 전 미국에서 학교를 다닐 때, (TV, Radio) news를 완전히 잊고 살던 ‘공부하던 시절’, 나는 이 news를 놓치고 월요일 아침에 버젓이 수업시간에 1시간 늦게 도착한 적이 있었다. 강의를 시작할 시간에 모두 교실에서 우르르 나오는 학생들을 보고.. 정말 바보, 바보.. 라는 웃음이 나왔던 그 시절도 이제는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

 

¶ Tax surprise:  예정보다 늦게 2017년도의 Federal Tax Return 을 끝냈다. 작년에는 2월 중에 했는데 올해는 분명히 tax를 ‘내야 할’ 것을 예상했기에 무의식적으로 게으름을 피었는지도 모른다. Tax를 내야 하는 것은 그렇게 신나는 작업이 아니니까.. 그런데 놀란 것은 그 액수가 예상보다 많았던 것, 허~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부자’가 되었나.. 의아하긴 했지만 알고 보면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연숙의 ObamaCare 때문이었다.

 

 

Medicare가 얼마 전에 시작되었기에 그 이전에 받았던 tax credit을 과도하게 받았던 것, 그것을 다시 ‘물어내야’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조금 실망했지만 어찌하랴… Health insurance 를 큰 부담 없이 cover받은 것에 감사를 해야 할 것이 아닌가? 정당한 이유가 있는 tax는 정직하게 내야 하니까.. 사실 모든 것이 fair한 듯 하다.

 

Give me a break…

¶ It’s Seventy, stupid! 어두운 새벽에 눈을 뜨고 멀리 있는 radio clock을 보니 6시 30분이 채 되지를 않았다. 오랜만에 느끼는 몸의 가벼움, 불현듯 일어나고 싶었다. 한 동안 (몇 주, 아니면 그 이상) 나는 아침에 일어날 적마다 몸 전체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동반한 ‘지독한 피로감’을 느끼며 일어나기가 싫었다. 나의 기억에 이런 적이 없었기에 은근히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나는 그야말로 morning people, 이른 아침만이 주는 특유한 분위기를 만끽하는 사람인데 거의 7시가 돼서야 간신히 일어나는 것, 한마디로 보통 때의 내 모습이 아닌데.. 이유를 생각해 본다… physical? mental? psychological? 아니면 혹시 spiritual? 

Physical한 것이라면.. 생각을 해보니 혹시 YMCA에서의 weight lifting 같은 운동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지만 그것은 평소 때 하던 것들이 아닌가? 왜 갑자기 그것이 문제가 된단 말인가? 적당히 자고, 적당히 먹고, 적당히 운동하며 건강하게 살고 있는데… 그 이외에 무엇이 있나? 가족들에게 물어보니.. 역시 대답은 ‘그 나이에 무거운 운동은 피하라’는 것인데.. 그 동안 문제가 없었던 것이 왜 갑자기 한참 동안 그렇게 ‘통증을 동반한 피로감’을 주었을까?

Mental한 것이라면.. 물론 있다. rage, rage.. controlled rage.. 지난 해 레지오 미친년 사건이 주었던 활화산에서 휴화산으로 잠든 잠자는 용암의 뜨거움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견딜 정도로 되었는데.. 그것이 이렇게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인가?

Psychological한 것이라면..  물론 있다. 그래서 찾은 것은 바로 70이란 숫자였다. 70세 생일을 전후로 ‘심리적 피로’를 겪은 적은 있었지만 생각보다 안전하게 나는 그 담을 넘었는데.. 하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아닌가? 70이 되면 이런 통증, 피로는 당연한 것인가? 아닐 것이다. 그저 심리적으로 stress를 받는 것이다.

Spiritual 한 것이라면… 이건 너무나 거창한 것 아닌가? 자비의 하느님이 이 나이까지 살았고, 근래에는 ‘우주창조의 진리’를 믿고 싶고 믿게 된 나를 이런 방식으로 일깨워 주실 것 같지 않다. 이건 아무래도 내 진단의 비약일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분명하게 몸으로, physical 하게 느끼게 된 것은 역시 70의 나이란 숫자가 나에게 친절하게 충고, 경고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얼마 전 성당 60+ 친교단체 등대회 회원의 말: ’70은 역시 70이다!’ 그 자매 말의 뜻은 새겨들을 수 있었다. 70은 역시 70인 것이고… 요새 70은 예전의 60이다 라는 유행하는 말,  조심해서 새겨 들어야 할 달콤한 유혹일지도 모른다. 우선 단기적으로 나는  YMCA workout routine에서 weight (lifting) 의 무게를 하향조정하며 지켜보기로 했다. 그렇다.. 70은 70이지 60이 아닌 것이다.

 

¶ 우리들의 삼일절: 2018년 3월 1일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3.1절 이란 말, 아직도 생생하게 감정을 일게 하는 말, 유관순 누나와 서울 우리들의 놀이터였던 파고다 공원, 이날이면 각종 장식을 한 ‘3.1절 전차 電車’가 종로 2가를 오고 가던 날.. 먼 곳에서 회상의 파도가 몰려오기도 하는 날이 바로 3월 1일이다.

올해는 새로 만난 동갑내기들 덕분에 3.1절 ‘정치집회’1가 아틀란타에서 열린다는 소식까지 들었다. 그들은 나름대로 ‘아직도 젊은 애국자’들이다. 어쩌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다는 대한민국을 그렇게 사랑할까… 세상 돌아가는 것 잘 모르고 사는 나는 부끄럽기도 하고, 감탄하기도 한다. 잊고 살았던 3.1절을 그들은 새로운 사명으로 맞이하고 있는 듯하다.

소시민인 우리부부에게 3.1절은 실질적으로 다른 기념일이다. 우리들만의 가족, 부부의 역사다. 1992년은 현재 우리가 사는 집으로 이사온 날, 2007년은 내가 레지오 협조단원이 되었고 부부가 같이 묵주기도를 시작한 때, 2012년 이때에 우리는 ‘평일미사’의 전통을 시작한 때이기도 했다. 그래서 몇 년 전 부터 우리는 이 우리들만의 3.1절을 자축하기로 하고 실행(외식)하고 있고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 이목사님, Vincent Bakery & Cafe: 몇 개월 만에 이목사님 부부와  만나 식사를 하게 되었다. 아틀란타 한국학교에서 만난 (staff으로) 인연으로 한때 끊어졌던 연결의 고리가 몇 년 전부터 건강하게 다시 연결이 되었고, 착실하게 거의 정기적으로 이렇게 만난다. 오래 전에는 ‘목사’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었던 나였지만 지금은 같은 크리스천으로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가급적 신.구교의 편견을 버리고 공통화제를 찾는다.

H-mart옆에 있는 Stone Grille에서 점심을 먹고 이번에는 예의 ‘떡이네’ cafe 대신에 H-mart 근처에 있는 Vincent Bakery & Cafe엘 갔다. 몇 개월 전 목요회 친구들과 밤 늦게 이곳에서 coffee를 맛보고 인상이 아주 좋았던 기억으로 다시 찾은 것이다. ‘laptop으로 무장한 젊은 애들이 죽치는’ 그런 cafe가 아니고 쾌적하고, 시원하게 빈 공간이 있는 이곳, 제발 오래오래 business가 잘 되기를 희망한다. 그래야 우리 같은 oldie들도 이런 분위기를 편하게 즐길 수 있지 않은가?

이날 이목사는 최근에 ‘개인적으로 하느님을 만난‘ 사적 체험간증을 들려 주었다. 요새 이런 얘기를 잘 안 하는 이목사였기에 예상치 못한 것이라 놀라기도 했지만 결국 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잃지 않았다. 나도 그만큼 가슴이 열린 것이다. 몸의 건강이 제일 중요한 과제인 이 목사님, 부활절 지나고 귀국해서 건강진단을 할 예정이라고… 앞으로의 사목에 대한 많은 고민이 있는 듯 보이는 이목사, 건강상에 아무 문제가 없기를 기도하기로 했다.

 

Commonsense-Challenged Priests:  지나간 2주일(that is, two Sundays) 연속으로 가톨릭 신부라는 ‘직업 vocation, profession, job’을 다시 조명하게 되었다. 가톨릭 사제, 신부, 수사, 수녀 들도 우리들과 같은 ‘나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명심하며 다시 생각을 해 본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역할, 그것이 사제들의 중요한 임무라고 하지만 그들의 행동거지는 어떤가?

두 가지 case를 지난 2주일에 걸쳐 보며, 비관적인 생각이 많이 들었다. 평신도가 사제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최소한의 ‘대우, 대접’은 어떤 것인가?  만약에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평생 겪어본 신부, 사제 수녀들 그런대로 꽤 있었지만 요새처럼 나를 생각하게 하고 괴로움까지 느끼게 한 적도 없었다. 다행인 것은, 내가 정기적으로 보는 사제들은 거의 ‘이상적’인 분들이다. 이상적이 아니면 상식의 선을 철저히 지키시는 분들이다. 문제는 가끔 보는 분들이나 처음 갑자기 보는 분들.. 전혀 예상치 못한 case들이다.

우선 가끔 보게 되는 사제의 case다. ‘윗동네 신부’, 가끔 보는 이분 나는 어떻게 생각 해야 할지를 모른다. 한 마디로 나에게는 ‘이상한 weird 사람’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내가 생각하는 ‘상식의 범위’를 마음대로 넘나드는 그런 류의 사제다. 이번에 또 ‘겪으면서’.. 역시 하나도 변한 게 없다. ‘엄숙한’ 미사 시작하기도 전에 모든 신자(노인들 포함)들이 기립한 상태에서 ‘rambling‘ social  comment (아니 이것은 lecturing이다)를 5분이 넘도록 하는 것, 이것은 한마디로 비상식중의 비상식이다. situation에 하나도 안 맞는 지나친 dry joke는 물론이고, 정치, 사회적 progressive한 것 (그런 것, 私的으로 하세요..)은 나에게 도움이 하나도 안 된다. 이 밖에도 예측하기 힘든 돌발적, 지뢰가 터져나올 지 모르는 사제의 언행, 한마디로 괴롭다.

그 다음의 case은 바로 지나간 주일, 강론에 나온 방문사제, snake oil salesman을 버금가는 이 사제, 완전히 common sense를 결여한 강론에서, 최소한 시간은 지켜야 하지 않을까? 1시간 30분의 강론도 사실 점심 후에 괴로운 것인데 break도 없이 2시간 30분을 끊날 듯 말듯 하며 싱글거리며 끌고 나가는 것을 보고, commonsense 101을 재수강하고 오시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우아… 피곤한 이 사제들이여!

 

  1. 근본적인 목적은 문재인 탄핵을 위한 것이라고 함

2월을 보내며…

¶  싸늘한 2월의 마지막 날:  28일이 되었고, 결국은 2018년 2월도 서서히 저물어간다. 을씨년스럽게 싸늘한 가랑비가 하루 종일 오락가락 하던 날, 지난 며칠 동안은 이른 봄의 기분을 한껏 느끼게 해 주더니 ‘아직 진정한 봄이 온 것이 아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라고 mother nature 는 일깨워 준다. 그래도, 그 동안 ‘갑자기’ 주위가 봄소식을 알리는 각종 식물들의 색깔로 채워져 가고 있었는데, 얼어 붓는 추위가 없는 한 그것들은 우리 둘에게 즐거운 화제가 될 것이고, 우리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할 것이다.

얼마 전 이마위로 ‘재의 십자가’가 그어졌던 Ash Wednesday가 어느새  2주 전으로 멀어지고 있는가? 왜 이렇게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있는가? 지나간 2주 간의 사순절은 나에게 어떤 시간들이었는가? 새로 태어나는 삶을 향한 어렵고 고통스러워야 할 ‘광야의 40일’ 간의 시간을 나는 과연 올바르게 보내고 있는가? 나의 daily journal을 살펴보면 별로 큰 변화가 없는 비교적 ‘편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듯… 싫다, 그런 나날들.. 하루하루 새로운 하루를 보내고 싶다.

 

¶  Cramming… 오래 전 학교에 다닐 때 심심치 않게 겪었던 습관들, 그야말로 ‘당일치기’ 비슷한 것.. 학교를 떠나며 이런 괴로운 ‘시험 보는 것과 당일치기’ 가 없어지는 줄로 알고 쾌재를 불렀지만.. 인생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학교시험과 비슷한 인생시험의 연속, 그곳에도 당일치기가 수없이 많았다. 당일치기 cramming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고 하지만 동시에 괴로운 것이다.

요사이 나는 잊고 살던 ‘당일치기’를 하고 있다. 2월 초에 우연히 찾아간 Coursera, 그곳에 나의 ‘우울한 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 ‘피난처’를 찾았고 곧 ‘공부’가 시작 되었지만… 역시 제대로 매일의 study schedule을 따르지 않았기에 밀리기 시작하고, 오랜 만에 당일치기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A Stanford online course,  ‘Understanding Einstein: The Special Theory of Relativity‘ 였다. 두 달 정도 (8주) 계속되는 ‘미적분 이상의 수학이 필요 없는 특수 상대성 이론’, 목표는 다음과 같다.

Our goal will be to go behind the myth-making and beyond the popularized presentations of relativity in order to gain a deeper understanding of both Einstein the person and the concepts, predictions, and strange paradoxes of his theory.

고등학교 수준의 수학 [미적분 이전의]이 필요한 이 course, 처음으로 특수상대성이론의 ‘배경, 구조, 그리고 의미’를 파악하게 되었다. 일 평생 거의 ‘만화, 상상과학 수준’ 정도의 매력에 빠지곤 했지만 (4차원의 신비), 이번에 그것의 ‘실체’를 접하게 된 것이다. 몇 년 전 Harvard online course에서는 수학을 거의 쓰지 않았기에 편하기는 했지만 사실 특수 상대성 이론의 ‘실체’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Stanford대학의  top-class Instructor Dr. Lagerstrom, 지나친 전문학술용어를 최대한 간결하게 사용하며,  ‘피부의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이론’으로 서서히 우리를 인도하는데..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어려운’ 과학이론을 가르치는 모범 case가 아닐까 나는 계속 놀라며 박수를 친다.

 

 

이 course를 통해서 내가 얻으려는 것은, 요사이 절제 없이 좁아진 인간관계를 보는 관점으로부터 벗어나, 내가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이 이 세상의 전부가 아닌 것이라는 ‘실체적 진리’, 바로 그것이다.

 

¶  레지오 간부교육:  지난 주말에 도라빌 순교자 성당, KMCC 꾸리아 주관 레지오 간부교육이 있었다. 내가 레지오 간부[서기]가 된 것이 2012년 정도였으니 이제는 꽤 익숙한 경험이다. 모든 신심단체는 그런대로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사람들로 특정한 신심 조직에 대해서 끊임없이 배워야 하는 것은 기본일 것이지만, 실제로 그런가? 물론 그것은 거의 이상에 불과하다.

그 동안 간부를 맡으며 지내온 동안 계속 느끼는 것은 나도 정말 부족하지만 어떻게 저런 자세로 단원 선서를 했을까.. 하는 놀라움이다. (성모님께 바치는) 선서란 것이 그렇게 형식적이었던 것일까? 실제로 하는 활동의 양도 중요하지만 단원으로써의 자세는 더욱 중요한데.. 암만 레지오 조직의 rule에 대해서 열을 올리며 토의를 해도, 왜 우리가 이런 것을 하고 있는지는 거의 잊고 사는 듯 하다.

 

레지오 간부교육 전 기도와 미사봉헌

 

기도와 활동이 균형적으로 적절히 강조되는 것에 대해서 레지오 간부들 조차 ‘해괴한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왜 (묵주)기도하는 것을 발표를 하느냐.. (뛰는)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다 못해서 아예 레지오 교본을 완전히 잊고 열을 올리니.. 그런 사람들은 아마도 사회봉사단체인 ‘한인봉사센터’에 가지 왜 레지오에 들어와 고생을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우리의 미국 본당 Holy Family Catholic Church의 주임신부 Fr. Miguel이 제일 강조하는 것이 바로: 기도하지 않는 봉사활동의 허구성인데 바로 이런 꼴을 이곳에서 목격을 하니.. 이런 교본적인 것에 대한 교육이 거의 없는 곳, 이제는 거의 “무명무실 무감한 님‘의  노래 가사가 떠오르게 되었다.

 

¶  Cursing! 마귀 성토 聲討:   아녜스 자매님 부부와 오랜 만에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한때 자주 보며 지냈던 이 부부, 이즈음 들어서 자주 못 보았기에 아주 반가운 모임이 되었다. 아녜스 자매님은 레지오를 통해서도 알았지만 형제님은  몇 년 전 내가 교리반 staff으로 있을 때 교리 공부하고 세례를 받았던 인연이 있었다. 하지만 자매님이 레지오를 떠나면서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근래에 어떤 ‘성당 마귀’에게 잘못 걸려 지독히 고생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동병상련 同病相憐’ 의 심정으로 이날 ‘마귀성토’를 속 시원히 하게 되었다.

예전에 우리 눈에 별로 안 띄던 ‘진짜 여자 마귀’들의 존재를 실제로 ‘당하고, 보고, 듣고’ 하면서… 이 세상은 역시 ‘불완전한, 악이 상존하는’ 그런 곳임을 절감하게 된다. 우리가 겪었던 ‘레지오 미친년 마귀’나 이 자매님이 겪었던 다른 ‘마귀’나 근본적으로 같은 부류의 불쌍한 인간들임을 실감할 때, 분노 이전에 슬픈 심정을 금할 수 없다. 이 두 case모두 진정한 용서는 out of question이다. 하지만 형식적, 휴전적인 용서는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한마디로 그것은 tall order…. 힘들겠지만 그저 잊고 사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  등대회, Computer/Tech Talks: 매달 마지막 주일에 모이는 60+대 성당친교단체 등대회, 이곳에 참석한 것이 이제 몇 달째가 되어가나.. 지난 해 9월 무렵에 가입을 했지만 아직도 나는 ‘신입’에 속하는 느낌을 금할 수가 없다. Regular 들(자주 참석하는) 대부분은 이제야 조금 익숙해진 듯하지만 ‘안 보이는’ 사람들은 내가 알 길이 없다. 이 모임의 성격은 알듯 하기도 하고 확실치 않을 때도 없지 않다. 100% 친교? 그러면 교회 밖의 모임과는 무엇이 다른가? 설립목적, 아니면 mission statement같은 것을 본 적이 없지만 보통의 생각으로도 몇 가지 필수적으로 포함되어야 할 ‘사명과 목적’은 있을 것인데.. 그 중에 ‘간단한 봉사’ 같은 것도 있음직도 해서 어렵사리 제안을 했지만 ‘그런 것 이곳에서는 안 맞는다’ 라는 여론이다.

그러면 다음은 무엇인가? 성당 공동체 다음으로 모든 회원들에게 골고루 혜택이 갈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서로 알고 있는 지식을 나누자는 idea는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무엇을 할 지는 문제일 것이다. 예전에 보험, 의학 정보 presentation  같은 것이 있었다고 해서 그렇게 ‘배우는 program’ 을 계속하자는 idea가 나왔고 스테파노 형제가 일반적인 computer technology 에 대한 것을 나에게 제안을 해서… 큰 생각 없이 ok 를 했는데.. 나중에 생각하니 이것도 생각만큼 간단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Computer technology라면 덩치가 너무나 큰 것이라 접근하기에 따라 무척 복잡한 것 아닌가? 한 달이라는 시간은 있지만 아무래도 다음 달 말이면 ‘성주간’인데… 약간 신경이 쓰이기 시작하는데… 그래도.. ‘해 보자!’, Don’t think twice, it’s alright!

 

¶  Home Wi-Fi Infra Upgrade, Finally!

 

TP-Link AC1200 Wireless Wi-Fi Access Point – Supports 802.3AF PoE, Dual Band, 802.11AC, Ceiling Mount, 2×2 MIMO Technology (EAP225)

1200Mbps Wireless USB Wifi Adapter, FayTun USB Wifi Adapter,
AC1200 Dual Band 2.4GHz/300Mbps+5GHz/867Mbps,
802.11 ac/a/b/g/n High Gain Antenna

Wi-Fi, 아마도 이 말은 반세기전 home audio system의 표준이었던 HiFi (High Fidelity) audio  에서 유래되었을 듯 하다. 이제 이 말은 wireless Ethernet standard로서 ‘wired Ethernet’ 의 extension을 뜻하게 되었다. 처음  device들이 나왔을 때는 사실 거의 실용 불가능에 가까운, 느리고 연결이 끊어지곤 하던 것이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임시’로나 쓸 수 있을 정도였다.

벽 속으로 Ethernet wire (CAT5,6 cabling)를 설치하는 것, 아마도 보통 사람들에게는 괴로운 작업일 것이지만 우리 집은 1990년대 말에 이미 coax cabling (before CAT5 cabling standard)을 설치해서 쓰고 있었고 나중에는 모두 CAT5/6 로 바꾸었다. 그러니까 3000 sf (square feet)크기의 우리 집은 아래 위층에 있는 desktop computer들이 모두 network이 되었던 셈이고 Wi-Fi infra의 필요성이 거의 없었다.

그 이후에 Wi-Fi device들이 필요한 때가 도래했다. 바로 mobile device (laptop, mobile, Smartphone같은)들이 등장하면서부터였다. 그래서 할 수 없이 1st generation Wi-Fi  (access point, router)를 설치해서 간간히 쓰고 있었는데… 문제는 mobile device들이 network speed가 점점 빨라지면서 (특히 요새 나오는 Smartphone들) 우리 집의 Wi-Fi system이 따라가지를 못했던 것, 당연한 결과였다. 이제는 Smartphone에서 streaming video가 거의 필수가 되었지 않은가?

우리는 집에서 smartphone으로 video를 안 보기에 몰랐는데… 큰딸 새로니가 가끔 집에 놀러 오면 불평이 대단했다. 자기의 iPhone에서 Internet video를 볼 수가 없다는 것… 그래서 생각해 보니 우리 집에서 마지막으로 Wi-Fi router를 설치한 것이 아마도 거의 7~8년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예전의 Wi-Fi system, 느리고 문제가 많았기에 거들떠도 안 보았는데…

할 수 없이 요새의 system을 찾고 샀고 설치를 했고… 결과는… shocked! 완전히 놀람의 연속이었다. 그 동안 wireless technology는 경이적인 발전.. 특히 MIMO (multiple antenna) technology의 효과는 놀랄 정도.. 우리 집의 모든 mobile device들 완벽하게 network에 연결되고 안정되고 표시된 최대의 speed, 게다가 device들의 값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reasonable 했다. 그 중에서 내가 제일 놀란 것은 우리 wired network (file server, Internet access) 에 연결된 내가 매일 쓰고 있는 workhorse desktop pc (Windows 10 box)가 이제는 100% Wi-Fi로 쓰고 있는데, ‘한번도’ hiccup 조차 한 적이 없다는 사실.. 놀라고 놀라고 있다.

 

우수, Sick Day, Billy, 목요일 밤

 

¶  우수 雨水: 그렇게 ‘한결같이’ 추웠던 올 겨울도 이제는 서서히 물러가고 있는가? 지난 주부터 바깥 풍경들에 색깔들이 섞이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기다리던 수선화들, 얼마나 반가운 모습이었던가? 그런 soft object들이 나의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 아니 이제는 그것들이 무엇들인가를 알게 되고 화제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 솔직히 반갑다. 나도 ‘목석’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기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나간 월요일 2월 19일, 이날의 ‘레지오 수첩‘을 보니 ‘우수‘라고 적혀 있었다.  무엇인가 푸근한 고향냄새가 풍겨 나옴을 느낀다. 우수… 우수수가 아니고 우수, 한자로는 분명히 雨水, 그러니까 빗물인가? 이날 하루 가느다란 가랑비가 왔다 갔다 하면서 ‘빗물’을 내려 주었다. 그와 동시에 어렸을 때, 원서동 시절 비원 담 옆 개천가에 같이 살았던, 재동국민학교에 같이 다니던 한완수의 형 ‘한우수‘란 이름이 떠올랐다. 그 당시에도 나는 이 절기 이름인 우수란 단어를 보면 이 ‘한우수'(형兄)의 이름을 떠올리곤 했다. 어린 마음의 유치함은 이런 것도 그렇게 재미가 있었고 연상을 통한 기억력에 감사하기도 했다. 재동학교 한완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고 그의 형 한우수 형은 어떤 인생들을 살았을까? 이날 하루 나는 ‘빗물의 날, 우수’ 란 단어에 의한 전설 같은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  Sick Day: hump day 하루가 갑자기 sick day로 변해 버렸다. 이런 것, 예기치 못한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런 것이 a day in the life, 지극히 정상적인 인생의 한 snapshot일 지도 모른다. 하루 일과의 시작인 아침미사가 갑자기 cancel 되었다. 이유는 역시 연숙의  insomnia일 수 밖에 없다. 왜 그렇게 수면습관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병적인 불면증’인 것인지 누구도 확신할 수가 없다. 그저 죽는 병이 아니라는 것에서만 위안을 얻는다. 다행히 꼭 나가야 할 절대적인 의무가 없으니 망정이지… 만약 직장 같은 것이 있어서 ‘출근’같은 것을 해야 했다면 이것은 그야말로 장난이 아닌 심각한 병으로 간주되어야만 했지 않았을까?

그날은 그것으로 얌전히 끝나지 않았다. ‘우리식구’ Tobey(pet dog)가 갑자기 조용한 것이다. 보니… 전혀 움직이질 않는다. 눈도 거의 감고 있고, 숨소리도 약하다. 이것은 무엇인가? 짐작에 전에 겪었던 ‘신경통’이 재발된 것으로 보였다. 전에도 ‘죽음을 준비했던’ 경험이 있었다. 알고 보니 신경통으로 몹시 고통을 느끼는 것이고 전혀 움직이지를 못했다. ‘기적의 약’을 먹고 ‘기적적으로 살아난’ 경험을 갖고 있지만 이번에도 ‘죽음의 그림자’를 느낄 정도로 움직이지를 못한다.

이 녀석의 ‘인간나이’가 나와 비슷하거나 더 많을 듯해서 ‘누가 먼저 이세상을 떠날까’ 하는 방정맞은 묵상을 하기도 한다. 들은 얘기로 죽음이 임박한 동물들이 자기가 ‘누울 곳’을 찾는다고 한다. 동물들은 죽음이란 것을 어떻게 ‘생각’할지.. 물론 그들의 생각은 인간과 같은 ‘철학적’인 것은 아닐 것이지만 그들만의 본능적인 예감, 경험은 가지고 있을 것 같다.

개나 고양이와 가깝게 되면서 나는 오랜 동안 느끼지 못했던 ‘그들만의 기쁨과 고통’을 실감하게 되었고 특히 그들의 고통은 남들보다 더 예민하게 느끼는 나만의 고통이 되었다. Narnia  book 저자로 유명한 C. S. Lewis의, 1940년 간행된 The Problem of Pain의 마지막 chapter는 Animal Pain 으로 할애되어 있어서 동물들의 고통을 종교적인 관점에서 보려고 했고, 나도 Lewis와 거의 같은 입장을 가지고 있는데..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아마도 그 동안 나의 ‘동물의 고통에 대한 무관심’에 대한 질타와 교훈이 아닐까… 이 뜻밖의 sick day에 많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오고 갔다.

 

Billy Graham, 1966

 

¶  R.I.P: Billy Graham (1918~2018): 표준 한글표기법으로 어떻게 쓰나… 빌리 그래함? 빌리 그레이엄? 아무래도 좋다. 이분 한마디로 개신교의 거목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우리 세상을 떠났다. 2월 21일에 돌아가셨는데, 오랜 동안 예상은 했지만 막상 이런 뉴스를 접하니 다시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이분은 나에게 어떤 분이며 어떤 의미가 있는가? 우리 어머님보다 한 살이 많다는 것, 우리 부모 세대의 미국인 목사, 전도사, 부흥사.. 이런 표현들 모두 부족하다. 이분은 그런 표현을 모두 초월하는 위치를 가진, 사실은 ‘미국의 생각’에  막강한 영향력을 주었던, 종교인으로서는 드물게 보는 독보적인 존재이기도 했다. 아마도 믿음이 있건 없건, 직업에 상관 없이, 거의 모든 미국들을 포함한 전세계적으로 존경과 사랑을 받았던 인물일지도 모른다.

내가 처음으로 이분의 설교를 ‘들었던’ 것은 1950년대 서울에 있었던 ‘기독교방송국’에서 정기적으로 방송하던 Hour of Decision이란 영어 program이었을 것이다. 그때 사실 나는 그 방송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우렁차게 나오는 그 ‘영어’가 어떻게 그렇게 멋지게 들렸는지..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멋진 영어는 Billy Graham목사의 목소리였다. 그렇게 ‘멋진 영어’의 주인공은 각종 잡지, news매체를 통해서 익히 알게 되었고 1970년대 초에 내한, 여의도 광장에서는 거대한 집회가 열렸고, 그 이후 미국에서도 심심치 않게 TV에서 보기도 했다. 당시 신앙이나 믿음이 없었던 관계를 그저 유명인사의 강연 정도로 들었지만 아마도 그런 설교가 전혀 나에게 영향이 없지는 않았으리라 믿고 있다. 년 전에 YouTube에서 그분의 TV crusade를 다시 보니, 이제는 그 설교의 대부분이 이해가 된다. 천주교, 개신교의 차이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멋지고 공평한 설교들이었다. 개인적으로 거의 scandal 없는 기적을 낳기도 한 이 거목의 ‘시대를 초월한 가르침’을 이제는 들을 수 없다는 것, 무언가 허전하고 사실은 조금 불안해지기도 한다.

 

¶  Spring at Home Depot: 거의 80도의 ‘봄기운’이 예보된 날 목요일 아침, YMCA routine을 마치고 모처럼 Johnson Ferry Road쪽으로 차를 돌려서 Trader Joe’sHome Depot엘 들렸다. 나에게는 싸지만 그런대로 좋은 (white) wine 이 주목적이었고, 봄기운에 들떠있는 연숙에게는 composted cow manure 같은 ‘토양 영양제’ 가 목적이었다. 춥고 기나긴 겨울을 지낸 garden center, 이번에 가보니 완전히 봄이었다. 각종 꽃나무들, 화분 꽃들이 찬란하게 그곳에 있었다. 물론 다시 한번 빙점을 오르내리는 추위는 다시 올지라도 봄의 기운을 완전히 몰아내지는 못할 듯하다. 이런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며 어찌 이런 것들이 우연히 생겨난 것들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Thursday’s Friends: 매달 마지막 목요일 밤에 3명의 남자들이 모이는 우리들의 ‘목요회’ 만남이 2월에는 거의 일주일이나 빠르게 왔다. 2월이 28일인데다가 마지막 날인 28일이 수요일인 관계로 그렇게 된 것이다. 1월에 만난 것이 엊그제 같아 지난 번 모임의 기억이 그렇게 희미하지는 않지만, 이번의 새로운 만남은 나중에 어떻게 기억이 될지 궁금하기도 하다. 우리 3명은 실제적으로 서로에 대해서 모르는 것들이 너무도 많기에 털어 놓을 것, 나눌 것 들이 절대로 부족하지 않다. 다만, 그것들에 대해서 어떻게 ‘자연스럽게’, ‘상처를 건들이지 않고’ 나눌 수 있을까… 그것이 이 모임의 성패를 좌우할 관건이다.

‘정치와 종교’에 대한 의견이나 경험은 가급적 피하자는 나의 생각은 그런대로 현재까지 큰 문제가 없었지만 이날의 모임에서는 ‘정치와 종교’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 화제인가를 보여주는 testy한 대화가 나오긴 했다. 요새 돌아가는 정국이나 세태가 양극화 polarization 되어가고 있어서 우리들도 이런 영향을 안 받을 수 없다. 그 중에 제일 심각한 쟁점은 역시 ‘대한민국의 정세’에 관한 것이다. 이것에 대한 우리 세대의 여론은 실감적으로 알고 있지만 문제는 대화가 거의 안 될 정도로 ‘비이성적’으로 치닫는 분위기다. 우리 모임도 이것에 대해서는 거의 무방비 상태임을 잘 알기에 가급적 피하고 싶지만 언젠가는 허심탄회 虛心坦懷 하게 ‘자기 입장’을 나눌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전까지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것에 대해서 부드러운 사랑의 분위기를 쌓아가는 것, 그것이 나의 희망이다.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있으면 무엇이 문제랴… 늦은 밤 맛있는, 영양가 듬뿍한 알찌개와 소주 한 주전자가 있는 모임에서 우리들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 달 모임은 성목요일 문제로 한 주일 앞당겨 ‘예외적’으로 우리 집에서 모일 계획을 생각하고 있는데… 어떤 결과가 나올지 기대가 된다.

 

영원의 방랑객, pay-as-you-go, 성모님 꽃

¶  마리에타 사랑반 모임:  지난 17일 봄처럼 푸근한 토요일에 모처럼 (도라빌 순교자 성당) 사랑반 구역모임엘 갔다. 이번에는 도미나 구역장님 댁에서 모였는데, 무엇인가 나로써는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이유는 이 댁을 처음 가보는 것이기도 했지만 사실은 이렇게 가정집에서 모이는 구역모임에 마지막으로 가본 것이 몇 년 전이었기 때문이다. 안 나간 이유는 물론 ‘내 탓이요.. 내 탓이요’ 지만 그저 게으름 때문만은 절대로 아니었다.

확실한 이유를 가지고 ‘일부러’ 안 나간 것인데 이제는 그 이유들이 없어지거나 ‘타협’이 되어서 다시 한번 ‘세월과 성모님의 도우심’을 떠올린다. 어떨 때는 ‘그저 기다리면’ 된다는 세월과 시간의 은총이 분명히 있다. 나에게는 비교적 젊은 형제, 자매님들과 어울리는 것, 비록 내가 제일 연장자의 위치로 밀려 오르긴 했지만, 약간의 술 기운과 더불어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완전한 OB (old boy)의 위치에서 말 조심을 하려고 애를 쓰지만, 그저 common sense만 지키면 큰 문제가 없으리라.. 

 

¶  고 마태오 신부님: 일요일에 오랜만에 성당 도서실에 들렸다. 빌렸던 고 마태오 신부님의 ‘이세상의 이방인‘을 반환하고 다른 책들을 둘러 보았다. 이곳의 진열된 책은 거의 random하게 배치가 되어 있어서 조직적으로 특정한 책을 고를 길이 없다. 그저 random browsing 을 하다가 ‘재수가 좋으면’ 원하는 것을 찾는 정도다.

그 동안 고 마태오 신부님의 책을 3권이나 다 보았기에 혹시 그 이후에 나온  고 신부님의 책이 과연 있을까 하며 어떤 책을 훑어 보다가 그 책의 ‘추천사’ 끝의 이름이 ‘이경우‘라는 글자가 보였다. 그것도 놀랄 지경인데 그 이름의 끝에는 ‘신부’라고 되어 있었다. 난생 처음으로 ‘이경우’란 신부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옛날 옛적에는 ‘이경우 농구선수’가 있었고 재동학교 시절, 나보다 5년 아래의 ‘이경우’란 여자 학생도 있었다. 그러니까 이 이름이 그렇게 희귀한 것이 아닌 것이다.

그 책의 바로 옆을 가만히 보니… 이것도 우연일까.. ‘영원의 방랑객, 고 마태오 지음‘이란 글자가 있는 책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바로 내가 읽었던 3권의 책 후에 나온 것이고 캐나다로 오신 후에 그곳에서의 이야기기 실린 바로 그 책이었다. 이번에는 기다리지 않고 이곳, 저곳을 난독하며 전체의 줄거리를 짐작하게 되었다. ‘쟌느 수녀, 숙과의 재회‘ 같은 것이 있었는데, 고 신부님과 여성들과의 인연들을 보며 부러운 질투 같은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이 책은 깨알 같은 글자로 거의 500페이지가 되어서 완독(필사 포함)을 하려면 아마도 수개월은 필요할 듯하다.

 

¶  Pay-as-you-go: 내가 쓰는 mobile phone의 plan에 큰 변화가 있었다. 우리 집 모두가 T-mobile의 family plan을 쓴 지가 몇 년째인가.. 그러다가 얼마 전에 새로니가 iPhone을 등산을 하다가 잃어 버린 후에 새로운 plan을 찾게 되었다. 그러다가 발견한 사실이…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지금 우리 family plan이 너무나 비싸다는 사실. 문제는 바로 나였다. 내가 너무나 ‘조금 쓴다는’ 사실이고 억울하다는 것이다. 한 달에 30분도 못 쓴다는 사실이 나는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지만 그것이 아닌 모양이다.

나는 주로 가끔 전화를 받는 것 이외에는 이것을 쓸 이유가 없었다. 집 landline 이 Internet voip으로 바뀌고 나서 사실 전화비용은 거의 zero에 가까운데 유독 나만, 거의 쓰지도 않는 데에 $30 이상을 쓴다는 것은 낭비였다. 궁리를 한 끝에 나만 따로 새 plan으로 바꾸었는데 그것이 바로 pay-as-you-go 였고 알고 보니 나 같은 사람을 위한 안성맞춤 plan이었다. 한 달에 $3/30 분, 물론 mobile data는 없다.

Call Minute는 그런대로 문제가 없는데, No Mobile Data는 조금 신경이 쓰이는데… Wifi 가 없는 곳에서 Internet이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gmail, map, streaming media같은 것들인데… 알고 보면 이것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듯 하다. 내가 언제 애들처럼 ‘밖에 나가서’ 그런 Internet service가 필요한 것인가? 정 필요하면 Wifi가 있는 hotspot을 찾으면 될 것이다. 이런 저런 사연으로 한 달에 $30이상 save가 될 것을 예상해서 한 달에 한번 ‘외식’을 한번 더 할까 하는 생각을 하며 웃었다.

 

 

¶  Tuesday’s Flower: 지난 해 ‘레지오 미친년 사건’ 이후 계속 느끼는 ‘Tuesday stress’, 시간이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다. 하지만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니다. 그 정도로 나의 ‘야수처럼 이글거리는 분노’는 꺼지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서 레지오 주회합에서 우리를 지켜보시는 성모님의 모습이 더욱 어머니처럼 느껴진다. 이분만은 우리를 지켜주시리라는 염원, 이날 주회합의 성모님 옆에는 우리 집에 봄소식을 전해준 수선화를 꽂아 놓았다. 봄소식과 함께 우리를 더욱 인자로 히 지켜 주시라는 간절한 전구를 잊지 않았다.

 

Ah… Daffodils again…

봄의 소식, 다시 돌아온 수선화.. 황폐한 겨울의 낙엽 속에서

 

¶  아.. 수선화… 며칠 동안  backyard에서 갑자기 포근한 날씨를 맞아 부지런히 지난 겨울에 남은 낙엽을 치우며, 땅을 어루만지던 연숙, 나에게 올해 첫 수선화 daffodils 가 피었다고 알려주었다. 옆집 담장을 따라 조그맣게 줄을 서서 어렵사리 고개를 든 진한 노란 색의 꽃, 사순절 lent 의 백합 lily 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수선화의 청초한 모습으로.. 사순절은 본격적으로 진행 될 수 있게 되었다. 2주 전 groundhog day에서 아주 추운 겨울이 계속될 것이라는 예고를 받았던 올 2월의 남은 겨울, 결국은 mother nature에게는 순순히 고개를 숙이는 것인가.. 아니다. 오랜 세월의 기억에 의하면 20여 년 전, 3월 중순에 피부로 경험했던 (WINTER) storm of the century를 잊을 수 있으랴… 그래도.. 가끔 이렇게 진정한 봄을 느끼게 해 주는 자연의 자비에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가 있는가? Welcome (back), daffodils!

 

동네를 걸으며 playground의 bench에 누워 보이는 하늘은..

 

¶  Walk around neighborhood:  얼마만인가? 이렇게 우리동네를 Tobey를 데리고 걷는 것이.. 지나가고 있는 겨울이 걷기에는 너무나 추웠고 얼마 전 13살이 된 pet dog Tobey도 예전과 같이 ‘신나게’ 걷는 것 같지 않은 것 같아서 그 동안 거의 걷지 못했다. 우리 neighborhood는 아주 커다란 circle 처럼 되어 있고 경치도 괜찮아서 걷기에 안전하고 적당한 운동도 된다.

2007년부터 거의 정기적으로 Tobey와 걷기는 했지만 사실 나는 YMCA의 indoor track에서 운동으로 거의 45분간 걷기에 이것은 어디까지나 extra라고 볼 수 있다. 거기다가 따로 lower body workout(주로 weight training) 도 하기에 하체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다. 문제는 연숙이다. 하체 운동을 따로 하지도 않고 나와 같이 동네를 걷지도 않고 유일한 운동인 수영 만으로는 하체 운동이 충분하지 않은 것이다.

주위로 부터 나이가 진행되면 하체근육의 중요성이 심각하다고 들었다. 주로 ‘넘어지면서’ 생기는 사고에 관한 것인데, 이것은 결국 따로 하체운동을 하는 것이 거의 ‘필수’라는 것을 뜻할 것이다. 유별나게 앉고 일어나는 것이 불편하게 보이는 연숙에게 하체운동을 권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는데 이번 기회에 나와 같이 동네를 걷기로 약속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 너무너무 오랜만에 Tobey와 우리 둘, 동네를 걸었다.

이제 문제는 이것을 ‘습관’으로 만드는 일만 남았다. 하지만 나의 경험으로 이것은 충분히 가능할 듯 하다. 본격적으로 봄이 오기 시작하면 동네 주변의 ‘앗찔한’ 경치를 마다할 리가 없을 것이다.

 

Bad Taste, Monthly..

거의 반년이 넘도록 한 달에 한번씩 있는 이날이 이제는 지겹다 못해서 꾀병으로라도 피하고 싶은 그런 날이 되어가고 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이제는 한숨조차 나오질 않는다. 어떤 때는 왜 내가 이 자리에 앉아있는가 나에게 물을 때도 있고 그에 대한 뾰족하고 명쾌한 답이 없다. 그것이 나를 괴롭게 한다. 그래서, 심지어는 슬프기도 한 그날은..  다름이 아닌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천상은총의 모후) 꾸리아 월례회의.. 한 마디로 밥맛, 입맛이 떨어지는, bad taste  monthly 가 되어가고 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가.

내가 이곳엘 나가기 시작한 것이 거의 6년이 넘어가고 있는데 암만 생각해도 처음엔 그렇지 않았고, 세월이 지나가면서 조금씩 조금씩 썩어 들어가는 그런 식이 아니었을까? 하루 아침에 갑자기 변한 것이 아니라서 아마도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제대로 감지 感知 를 못했을 듯하다. 천천히 뜨거워지는 물 속에 잠긴 개구리, 바로 우리가 그런 꼴이 아닐까.

나의 밥맛을 완전히 떨어뜨리는 두 인간이 그곳에 도사리고 있음을 내가 너무도 잘 알기에 오늘도 병이 날 정도로 가기가 싫었다. 그저 그 두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조금만 조용히 얌전히 앉아 있어 주기만 기대하며 그곳엘 들어갔지만, 역시 어디를 가나.. 돼지 멱따는 소리로 말도 안 되는 소리만 지껄이는 인간과 뱀 같은 얼굴로 자기도취에 빠진, 언제라도 monster로 돌변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인간 (아!  이 역시, 모두 ugly한 아줌마, 여자들이다)…  가뜩이나 쳐지는 몸이 더 쳐지는 오늘, 지독히도 맛 없는 ‘설날 떡국’ 과 함께 잊고 싶은 ‘주일’이 되었다. 최후의 희망은, 영적 신부님이라도 제발 조금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그것이지만, 솔직히 말해서 큰 기대는 할 수가 없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남은 것들은 unthinkable 한 option 들 뿐이다.

 

Filet-O-Fish Friday, Nori Nori..

¶  Filet-O-Fish:  언제부터였을까… 금요일을 no-meat-day 로 삼고 ‘가급적’ 그날 하루 고기 meat 먹는 것을 피하기 시작했던 것이.. 물론 확실한 때는 기억이 안 나지만 대강 내가 본격적으로 ‘회심1‘을 하기 시작했던 그 무렵이었음은 분명하다.  추측에 예수님이 돌아가신 날이 금요일이라 조금은 절제 abstinence 하라는 의미에서 그런 전통이 생겼을 것이지만 나는 그 무렵 ‘추호의 의심, 반론’ 없이 교회의 가르침을 수용할 ‘열린 가슴’이 있었기에 큰 어려움 없이 고기를 피하고 대신 생선으로 단백질을 보충하기로 했다. 그래서 그 이후로 생긴 것이 금요일에 McDonaldFilet-O-Fish sandwich를 즐기는 전통이었다.

이것은 McDonald 아침 menu에 없기에 우리는 아침에 YMCA gym에서 workout 이 끝난 후에 가서 먹곤 하고, 저녁식사를 거의 하지 않기에 이것이 사실 그날 마지막 음식이 된다. 요새 이곳에 들어가는 fish fillet 는 Alaskan Pollack(명태)를 쓰기에 우리에게는 익숙한 생선 맛이다.  비교적 작은 size의 sandwich라서 비록 단식은 아니지만 비슷한 abstinence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오늘, 금요일도 그런 fish Friday였다.

이 역사 깊은 sandwich는 거의 45년 전, 1973년 미국에 처음 왔을 당시 너무나 맛있게 먹었던 기억2 이 남는다. 값도 Big Mac보다 쌌고 크기도 아주 적당하게 작았다. 이것의 역사를 찾아보면 (물론 Wikipedia) 아주 재미있다. 역시 나의 짐작대로 가톨릭 전통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천주교인들이 금요일에 고기 중심의 hamburger를 피하는 것을 보고 idea를 얻은 것이다. Cincinnati (Ohio)의 한 McDonald franchise 주인이 처음 착안, 만들어서 팔았는데 이것을 본사에서 받아들여서 전국적으로 퍼진 것이다. 그것이 1960대 중반이었다고 한다. 이 sandwich의 년 매상 1/4이 팔리는 시기도 역시 천주교 전례력의 사순 四旬 시기(Lent)라고 하니, 역사적 배경을 알고 먹으니 더욱 ‘숨은’ 의미를 느끼게 된다.

 

upscale Japanese buffet Nori Nori

 

¶  노리 노리 Nori Nori: 어제는 뜻밖의 점심 외식 초대를 받아서 우리는 Nori Nori 라는 재미있는 이름의 고급 일식 upscale Japanese buffet 엘 갔었다. 우리 집에서 drive로 30분 가량 걸리는 곳, Sandy Springs (Roswell Rd @Abernathy)에 있는 이 all-you-can-eat sushi buffet  우리는 처음 가본 곳이다. 그저 이런 식의 buffet 라면 대강 Chinese 위주의 ‘서민 풍’의 그런 곳으로 상상이 되지만 이곳은 달랐다. 그야말로 upscale, 한 마디로 ‘비싼 곳’으로 모든 것들이 느낌이 달랐다. 요사이 가깝게 지내기 시작한 스테파노 형제 댁의 초대였는데 아마도 지난 년 말 우리의 초대로 외식을 한 것에 대한 응답이었던 추측도 들었다. 한 마디로 즐겁고 편한 대화와 깨끗하고, 감칠 맛 나는, 고급 스러운 음식들로 나중에 우리 식구들도 한번 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급스러운 것은 한마디로 lunch menu들 치고 상당히 pricey, 거의 $20 에 가까워서, 우리의 수준으로는 자주 찾기는 불편한 느낌도 들었다. 보통 점심 때 Buffet에 흔히 보이는 ‘노가다’ 류 (정말 끊임없이 먹어대는) 가 이곳에는 ‘한 명도’ 보이질 않았다. 역시 pricey 한 upscale buffet 였다.

 

  1. 성당에 규칙적으로 나가기 시작했을..
  2. 여행 중, Pittsburgh, PA 에 살던 연세대 선배 위재성 형에게 들렸을 때

2nd cup, Dark, Wet, Mild morning..

이른 아침에 가느다란 빗소리에 깨어 오랜만에 7시 전에 일어났다. 요사이 들어서 나는 아침 일찍, 그러니까 6시 대 帶 에 일어나는 것이 갑자기 버겁고 힘듦을 느끼며, ‘억세게’ 싸늘한 공기에 질려서 따뜻한 곳에서 나오기가 싫었다. 이것도 70세가 된 증후군의 한 가지인가? 이러한 잠재의식에서 벗어나고 싶었는지 오늘은 용감하게 6시 대에 일어났다. 느껴지는 공기가 예전과 조금 다른데.. 아하.. 그렇게 싸늘한 느낌이 아닌 포근한 것, mild한 공기의 느낌.. 올 들어 자주 못 느끼는 그런 따뜻함이 나를 침대에서 나오게 한 것을 도와 준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올 겨울은 삼한사온 三寒四溫 의 자연스러운 날씨의 묘미가 거의 없었다. 강추위도 가끔 있었지만 그것보다 나를 은근히 놀라게 한 것은… 거의 매일 추웠다는 느낌.. 아마도 기후통계도 나의 느낌과 거의 일치할 것이다. 변함없이 거의 매일 ‘춥다’ 라는 것, 이것이 이번 겨울의 ‘이상 異常’ 일지도 모른다. 비록 global cooling까지는 아니더라도 뉴스에 의하면 이것도 global한 것이다. global warming 이 덜 느껴지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무언가 ‘수상’한 느낌은 떨칠 수 없다.

 

올 겨울 몇 년 전처럼 Midwest에 살 때 입었던 각종 ‘겨울 옷’들이 대거 등장하였고, 내가 그렇게 좋아하던 sweater들, 거의 매일 입게 되었다. coat류가 거의 필요 없던 이곳에서 이제는 필수품이 되었다. 춥고, 음산하고, 젖은 듯한 날씨를 좋아하는 나였지만.. 이제는 조금은 포근한 (하지만 덥지 않은) 그런 느낌을 찾는 나를 보면 역시… 역시.. 70이라는 숫자가 다시 한번 나의 현주소를 일깨운다.

포근한 공기를 몰고 온 폭풍우가 아침 우리 집을 온통 때린다. 겨울 내내 쌓였던 roof gutter의 낙엽들 덕분에 빗물이 폭포수처럼 창문으로 흘러 내린다. 올 겨울에 나는 ‘정신적 피곤함’을 핑계로 gutter cleaning을 거른 탓에 정직한 빗물은 gutter를 넘치며 벽을 타고 흘러 내린 것,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탓이로소이다..  하지만 그 물들, 덕분에 우리 집 벽돌담을 깨끗이 씻어주고 먼지 낀 창문들도 따라서 깨끗이 청소해 주고 있다. 언제나 모든 것은 양면성이 있기에 생각하기 나름인 것이다.

 

Thundering shower, Saybrook style

 

어젯밤 chronic insomnia로 고생하는,  또 잠을 설쳤을 연숙, 아침 제 시간에 아침 미사에 맞추어 일어나긴 했지만 거의 ‘인사불성 人事不省’의 얼굴이다. 우리는 sprinter가 아니고 marathoner라는 motto를 다시 한번 일깨우며 오늘 미사는 쉬기로 결정한다. 음산한 날씨와 불면증은 거의 toxic mix 이기에 이것이 현명한 결정인 것이다. 이런 ‘지혜’ 덕분에 우리는 지난 6 년 동안 ‘매일미사’의 전통을 이어가게 된 것, 역시 advance 한 (지긋한) 나이 탓일 것이다. 아마도 (car) drive를 할 수 있는 한 이런 전통은 지속될 것이고 그렇게 희망하고 있다.

2nd cup (of coffee)가 끝나니 새카만 하늘에서는 드디어 천둥소리가 요란하다. Electrical energy가 가득한 하늘은 기온이 그 만큼 포근해 졌다는 뜻이다. 2월 초, 아주 짧은 (하기야 입춘이 지났으니..) 순간에 느끼는 봄기운이 상상되는 뒷마당.. 비록 모습은 아직도 황량하지만 거의 매일 연숙은 그곳을 거닐고 땅을 들추어내며 올해의 ‘텃밭’ 계획을 상상하는 모습을 요새 며칠 본다. 형체가 사라지고 있는 vegetable garden의 fence를 올해는 반드시 새로 만들려고 나도 생각을 하는데.. house work project가 너무나 많이 밀려 있어서 어떤 것부터 시작할지 난감하다.

우선 해야 할 것은 (income) tax return, 우리의 income structure가 조금씩 변하고 있어서 그 동안 ‘무미건조’했던 이 yearly paperwork이 조금씩 흥미로워 지고 ‘공부’해야 할 것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런 것들도 ‘치매, 망각증’ 방지에 큰 도움이 될 것이고, 우리의 financial 에도 도움이 될 것이니.. 이것도 win-win 한 것이 아닐까? 아마도 오늘 오후 편한 시간에 우리를 몇 년 동안 도와주던 (tax site) freetaxusa 를 찾아 매년 느려져 가는 머리를 굴려볼까…

 

Einstein’s Back.. to the Rescue!

Help me, Albert!

 

Einstein’s back (to the rescue!)… 아인슈타인(독일어), 아이스타인(영어).. 한 동안 잊고 살았던 환상적 상대성 이론(물리) 과학자, 20세기 최고의 평화적, 심지어 영웅적 인물로 꼽혔던 물리학자가 요사이 나를 구하러 다시 나타났다. 나를 진정으로 자유롭게 한다는 (그리스도교적) 진리들, 특히 (성서적) 말씀들과 그것을 전해주는  인간들이 요즘 들어서 조금씩 ‘지겹고, 피곤하게’ 느껴지는 것, 한마디로 나를 우울하게 하는 것들이었다. 또한 근래에 나의 주변에 갑자기 나타난 ‘쓰레기 같은 인간’들에게 시달리면서 잡스럽고, 괴로운 시간을 낭비하는 나 자신이 정말 싫어진다. 어떻게 이런 slump 침체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납득할만한 (상대적인 것도 포함하는) 절대적, 나아가서 (자연) 과학적 진리를 포함한.. 무언가를 애타게 찾는다. 때때로 완전히 사라지는 하느님 현존의 느낌들, 그것을 해결하는 나만의 방법은 무엇인가?

(분명히 존재해야 하는) 절대 진리 를 신학적, 철학적, 형이상학 적, 심지어는 신화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googling으로 거의 모든 답을 찾았다고 착각하는 요새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인생의 끝부분이 서서히 보이는 우리들에게도 무리무리..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우리가 존재하는 이 (세속적) 세상,  ‘만져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5감을 통한 현상, 현실 reality’ 의 관점에서 본 진리, 그것이 바로 ‘자연철학 natural philosophy’, 요새 말로는 ‘자연과학 natural science, 간단히 과학 science’ 이라면  17세기 천재 ‘자연철학자’ Isaac Newton 뉴턴 은 하느님이 전혀 필요 없는, 삼라만상이 ‘저절로’ 생기고 돌아가는 ‘시계 같은 기계적 세계관, 우주관’ 을 우리들에게 주었다.

내가 평생을 통해 알고 있던 세상은 사실 뉴턴의 시계처럼 돌아가는 그런 모습들이었다.  모든 것이 ‘원자 atom’ 로 보이는 것, 느낄 수 있는 것들,  ‘물질적’인 것이 물리적인 법칙에 의해서 돌아가는 세상과 우주. 이런 차가운 공간에 과연 사람의 의식이나 의지가 공존할 수 있을까?  인간의 의식은 이런 거대한 기계적인 우주 속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인간의 의식도 ‘원자’로 만들어진 것인가? 이런 물음에 ‘비과학적’으로 대답을 하면 점점 바보 취급을 당하는 세상이 도래하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 되었을까? 초초 超超 현대는 바로 scientism, 그러니까 materialistic science가 사람들의 ‘사상’을 지배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것이 새로운 진리일까?

이런 의미에서 초현대의 자연(물질)과학은 흥미롭기만 하다. 초월적 존재인 전지전능한 창조원인인 하느님, 믿고 안 믿고는 개개인의 자유이겠지만, 무섭게 바뀌는 ‘과학이론’을 어떻게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는가? 이런 의미에서 20세기 초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큰 교훈이 될 것이다. 17세기 이래 ‘인간 지혜의 승리’로 등장했던 뉴턴의 100% 기계적 사상, 3세기가 지나기도 전에 상대성이론에 압도를 당했고, 같은 시기에 출현한 양자역학 또한 모든 기존의 이론을 앞지르게 되었다. 그러면 앞으로는 어떨 것인가? 지금의 ‘발전 추세’를 감안하면 아마도 1세기가 지나기도 전에 또 다른 이론이 등장할 것이다. 이것은 절대로 ‘절대’가 아닌 것이다. 계속 변하는 것.. 지금은 실용적으로 믿으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그것이 ‘현재의 진리’일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아인슈타인 ‘사상’을 조명하면 한마디로 우리, 피조물들은 절대로 ‘겸허’해 지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다시 아인슈타인에 접근을 하며 그의 일반상대성 general theory of relativity 적 우주론 cosmology를 접하면 원자보다 더 작은 지구 상에서 복닥거리며 싸우는 인간들의 의미는 한마디로 웃기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나는 깊은 winter slump에서 서서히 벗어난다. 그것이 아인슈타인의 매력이다.

 

극동방송 고은정 追憶, 평화신문 有感

극동방송, 평화신문.. 이 두 잘 알려진 mass media company 들, 하나는 천주교 print media인 평화신문, 그리고 개신교 쪽의 극동방송은 broadcast media service하는데 공통점이 있다면 둘 다  내가 현재 그들의 service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 ‘대한민국 산 産’의 매체들은 얼마 전까지 관심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직접 ‘정기적’으로 접해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평화신문은 도라빌 순교자 성당 사무실에 archive해 놓은 것을 몇 번 훑어 본 적은 있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그 당시의 인상은 이런 기사들로 ‘장사’가 되나.. 하는 유치한 생각 뿐이었다.

극동방송, 이것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귀로 듣는 방송매체이고 이것도 그 동안은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 정도의 관심으로 살았다. 하기야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로, 미국에 살던 어떤 유명한 한인 목사 (김장환 목사)가 대한민국으로 돌아가서 세운 개신교 선교 방송국이라는 것은 어렴풋한 기억으로 남아 있을 정도였다. 이것도 현재 자주는 아니지만 그런대로 정기적으로 듣는 입장이 되었다.

이 극동방송 (FEBC) 은 분명히 ‘대한민국 발 發 생방송’이고, free version TapinRadio  (Windows, Android client apps) 를 써서 인터넷 으로 real-time  생방송을 듣게 되었는데, 사실 처음 이 ‘생’방송을 들었을 때 나는 한 동안 느껴지는 격정, 감정을 억누르기가 힘들었다. Every hour on the hour, 3-2-1 count down beep!!, 오랜 전 고국의 방송들, 매 시간마다 삡삡삡..삡~ 하며 정시를 알려주던 것, 거의 반세기 동안 못 들었던 것. 그 오랜 세월 동안에도 이 service는 안 변했구나 하는 감회가 일었다.

이 극동방송 format도 고향의 맛을 느끼게 하는 것들, 한마디로 그 옛날 ‘라디오’만 가지고 있는 ‘듣는 즐거움’에 맞게 그렇게 아기자기하게 program들을 꾸며 놓은 것도 이 방송에서 느끼게 하는 ‘오래~ 전’ 라디오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단 한가지 신경을 써야 할 것은 이 방송은 역시 ‘개신교, 마틴 루터’의 대변인 이라는 사실, 하지만 알고 보면 큰 문제는 없었다. 역사적 사실을 알고 들으면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이다. 나와는 의견이 다른 형제들이라는 사실만 알면 되는 것이다.

거기다가 이곳에서 ‘고은정’ 성우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1950년대 KBS ‘라디오 전성시대’부터 우리의 친근한 국민 성우로 활약했던 고은정, 그 고은정이 이 방송에 ‘매일’ 나오시는 것이 아닌가? 라디오 시대의 personality들은 목소리만 들었지 ‘모습’을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여서 어딘가 신비감까지 들었던 분들이고 특히 이 고은정 씨는 더욱 그랬다. 비록 옛날의 낭랑한 목소리는 아니더라도 목소리의 기억은 아직도 뚜렷하다. 1950년대 KBS시절 참 ‘기라성’같은 성우들이 많았다. 나는 비록 코흘리개 애청자였지만 그들의 목소리 느낌 들 아직도 기억한다. 

이 두 그리스도교 매체들과 접하기 시작한 것도 이제는 어느덧 1년이 넘어가고 있고 그 동안 느꼈던 것을 정리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화신문… 나는 이 신문과 분명히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고, 결론은 곧 다가오는 구독갱신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구독료에 상응하는 service를 나는 거의 못 받고 있고, 반대로 나의 신경을 건드리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님을 인정하고 싶은 것이다. 미주 판이라는 added service가 있는가.. 나는 그렇게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타성에 젖은 듯한 편집태도도 그렇다. 예를 들어서 일년이 가깝도록 ‘매번 등장하는 백영희 칼럼’, 도대체 이 ‘백’여인이란 사람은 누구인가? 그분의 신변잡기까지는 그렇다 치고,  누구의 신변잡기란 말인가.. 왜 이 사람의 잡기를 읽어야 하는지.. 한 번도 이 분에 대한 1줄의 배경설명이 없기에.. 물론 googling을 하면 무언가를 알 수는 있겠지만.. 솔직히 그런 정도의 관심까지 두기가 싫은 것이다. 이것은 편집태도의 타성에 의한 나태에 가까운 것 아닐까?

그것만이 아니다. 이 신문을 구독하게 된 과정을 기억하면 ‘레지오 미친년 난동사건‘을 안 떠올릴 수가 없다. 그것만으로 평화신문이 부정적으로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감정의 동물인 나로써는 ‘아직도’ 어쩔 수가 없다. 이 신문이 배달되는 그 순간 나는 그 ‘미친년, 살모사 뱀의 얼굴’이 떠오르니 어쩔 것인가? 이래 저래 나와 평화신문은 ‘악연’에 가깝다는 결론이고.. 그 결과는 뻔한 것이 아닌가?

 

Morning After..구역미사, 신부, 술, 정치

정말 오랜만에 머리가 띵~ 한 하루, 그것도 멀쩡하게 아침 미사까지 빼먹고 보내는 하루가 되었다. 사순절 시작이 2주 앞으로 다가온,  2월첫 날 아침부터 이것은 절대로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원인은 어제 저녁에 있었던 마리에타 사랑반 구역미사 후 회식에서 아차~ 하고 ‘조금’ 마셨던 술의 여파 hangover 때문이었다. 그렇게 취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drive를 연숙에게 맡긴 것을 보면, 그리고 조금은 꼬부라진 혀끝의 감각을 기억하면 분명히 조금 over한 것을 인정해야 할 듯하다.

이날은 사실 구역미사엘 안 가려고 미리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세상사가 항상 나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님을 어찌 모르랴.. 가기 싫었던 이유는 물론 여기서 밝힐 수 없는 것이지만 그런 이유는 궁극적으로 올바른 변명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마음 속 깊이 알고 있었기에 이런 ‘끌려가는 듯한’ 사태가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미사는 미사지만 본당신부님의 일반적인 사목적 자세는 한마디로 well-rounded한 것, 그 복잡한 사목방침을 항상 ‘중용’의 자세로, 타협점을 구하는, 공정 중간적 입장, 모든 사람을 편견 없이 보려는 자세, 알맞은 강도의 강론, 겸손한 demeanor.. 나에게는 absolutely positively NO problem.. 아니, 좋아하는 쪽이다. 하지만 세상사에 downside, dark-side가 없을 수는 없다.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는가 하는 것이 사목성패의 관건이다.

이날  pikapika 한 술들 (jumbo-size whisky, upscale wine & beer), 이 앞에서 우리 신부님도 술을 즐기는 쪽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기야 이것은 news가 아니고 이미 누군가로부터 들었던 것이기도 하지만 이날 그것을 조금은 직접 확인한 셈이다. 담배를 ‘즐기는’ 것은 만천하가 하는 사실이지만 가끔 밖에서 ‘쓸쓸히’ 끽연을 하시는 것을 보고 나는 동참한다는 이유로 ‘얻어’ 피우기도 했다. 신부님들의 일상 ‘기호’ 생활도 사실 일반인들이나 큰 차이가 없는 모양이지만 그 유혹은 더 심할 것 같아 보여서 조금은 공감을 하기도 한다.

남자들 모여서 ‘정치, 종교’ 이야기는 가급적 삼가 하라는 불문율이 깨어진 채 이날은 마구잡이로 사정없이 종교+정치 이야기가 난무했는데… 전에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우리 신부님은 ‘진보성향’이 농후함을 알게 되었다. 진보+보수의 갈등, 신세대+구세대의 갈등, 특히 고향 대한민국의 현 실정을 배경으로 그것은 잘못하면 화약고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교회나 사제들이 얼마나 정치에 관심을 두느냐 하는 것은 김수환 추기경 시절에 익힐 들어서 알기에 함부로 ‘심판, 단죄’를 할 수 없는 것이다.

나이 70으로 진입하는 마당에, 분명히 나는 보수중의 보수 세대에 속하지만 나 자신은 거의 ‘중립, 관망’하는 입장이기에 신부님의 ‘고견’을 많이 듣고 싶었다. 문제는 ‘역사적, 사실적’인 것과 ‘주관적, 편협적’인 주장과 의견이 완전히 ‘짬뽕’이 되어서 왜 그런 논쟁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지경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암만 관망, 중립을 지켜도 지켜야 될 마지노 선 (Ligne Maginot)Maginot Line 은 분명이 존재한다. ‘김씨 왕조’를 두둔하거나 비방하지 않는 것, 바로 그것이 나의 마지노 선이다. 그것을 무시하거나 넘기면 그때는 진보, 보수가 없다. 그것은 역사왜곡, 양심 포기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6.25 전범 김일성 세습정권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한다.

이날 신부님 발언 중에는 나의 간담을 조금 써늘하게 하는 것이 있었다. ‘남북통일을 반대하는 음모세력’ 그것이 미국이라는 간접적인 논리였다. 몇 마디로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만 귀를 의심할 정도로 나는 놀랐다. 어떻게 미국 ‘제국주의적 음모론’을 믿는 것일까? 정구사(정의구현사제협의회?) 정당성을 예전부터 주장하셨던 신부님의 입장을 나는 그저 benefit of doubt 으로 넘어가곤 했지만.. 이런 신부단, 교회의 입장 때문에 극우세력, 극보수 세력이 열을 올리는지 모른다. 수십 년 동안 실패한 햇볕인가 무시긴가 하는 것으로 장난감 폭탄으로 시작해서 이제는 미국 하와이가 비상사태에 돌입했던 희극을 생각하면.. 도대체 어떤 바보들이 그런 애 같은 생각을 했던 것인지… 이런 저런 혼란했던 머리 속에 whisky, wine, beer가 모조리 섞였던 나의 몸은 완전히 쳐지고… 결국은 오늘을 small holiday로 보낸 것, 술이 웬~수다…

 

Get Responsive!

Now, fully responsive serony.com!

Responsive,  that is responsive web design, RWD, 약 3주 전부터 나의  personal blog site, serony.comWordPress theme이 비로소 responsive mode로 upgrade가 되었다. Google 에 의한 responsive mode test를 pass 해서, 확실히 ‘공식적’으로 responsive website로 인정을 받게 된 것이다. 이제부터는 ‘움직이며’ smartphone의 tiny screen으로 나의 blog을 보는 것이 전보다 훨씬 편해진 것이 사실이라 분명히 good news 로 간주되는 것이지만 나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good 인 것만은 아니다.

몇 년 전인지 기억은 확실치 않지만 어느 big, major website 가 하루 아침에 정말 보기 싫은 모습으로 변한 것을 보았다. 당시에 나는 너무도 놀라서 과장된 표현으로 ugliest website ever.. 정도의 comment를 했던 기억이다. 그 website의 front page는 거의 빈 공간 whitespace 투성이로 보였고, 아무래도 커다란 desktop 에서는 너무나 초라해 보였다.

하지만 나의 angry, nasty comment는 완전한 실수였다. 그 이후로 다른 website들도 거의 같은 모습으로 바뀌기 시작했던 것이다. 왜 그렇게 바뀌었을까? 해답은 역시… 역시.. 바로 ‘stupid’ Smartphone 에 있었다. 아마도 그 website의 viewer들의 대부분이 mobile, smartphone 을 쓰는 사람들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그들은 Internet web traffic의 50%를 넘기 시작한 smartphone 의 tiny form factor 를 겨냥한 것이었다.

이런 annoying trend를 보면서 역시 또 세월의 횡포 tyranny 를 느낀다. 진보 progress 인가 진화 evolution 인가, 아니면 나에게는 annoyance에 불과한 것인가. 특히 (digital) technology를 보면 세월의 변화를 안 느낄 수가 없다. 1970년대에 시작된 나(우리)의 (digital) computer와의 love affair가  2010년 대에는 어떤 모습인가? 이 ‘괴물 Smartphone’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인간 Steve Jobs의 toy) 사실 나에게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이런 ‘차별대우’를 받게 되었으니.. 점점 떨어지는 시력으로 점점 작아지는 computer screen을 보는 것.. 정말 한마디로 더러운 느낌이다.

 

Google wants mobile-friendly looks!

 

갑자기 second class citizen으로 변한 (big, fat) desktop user은 앞으로 이렇게 ‘휑~하게 비어버린’ screen을 보아야 하나 걱정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사정이 나아지긴 했다. Truly responsive web이 개발되어가면서 한마디로 smart & responsive website들이 등장, 큰 desktop screen 에서는 옛날 같은 rich contents가 다 보이고 그 같은 website가 smartphone 에서도 편하게 보일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나의 website를 어떻게 responsive하게 바꿀 수 있을까.. 처음에는 난감했지만 하늘이 도와서 내가 쓰고 있던 WordPress theme template designer 였던 Artisteer가 upgrade되면서 이 새로운 responsive mode를 쉽게 support할 수 있게 되었고 이번에 나는 기존의 theme template를 이것으로 쉽게 upgrade할 수 있게 되었다.

 

My favorite WORDPRESS template WISIWYG designer Artisteer

 

Upgrade가 된 후 처음으로 작고 작은 Smartphone form factor에서 나의 website가 비쳤을 때, 솔직히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혹시 누구라도 Smartphone으로 나의 site를 googling했을 때 큰 어려움 없이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하니 나의 인간 수명이 몇 년은 연장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Strangers in the Night, 38th..

Thursday Friends: 처음 만난 지 4 반세기 (quarter century) 가 훨씬 넘는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실질적’으로 다시 한자리에 모인 나이 지긋한 3명의 남자들,  그것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매달 마지막 목요일 ‘밤’에 갖는 ‘이상한’ 모임, 이름하여 ‘목요일 밤 친구들’, 하지만 이름은 짧게, 목요회가 되었다. 작년 9월 마지막 목요일에 강렬한 향수를 동반한 그리움을 느끼며 3명이 처음으로 함께 모였고, 그 이후는 짧은 역사가 되었고 지금도 매달마다 작은 역사의 장을 만들어 가고 있다.

만남을 거듭하면서 조금씩, 하나 둘씩 서로에 대한 느낌들이 쌓이고 어렴풋이  pattern 을 만들어 가고 있는데 one year anniversary가 되는 올해 9월의 모임이 되면 그 pattern이란 것이 어떤 것일지 미리 궁금하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것은 건강한 것, 희망적인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 오랜 세월을 같은 지역에서 살았지만 알고 보면 우리 세 명의 ‘아빠 남자’들은 꽤 다른 인생을 살았던 듯 싶다. 서서히 나누기 시작한 옛 이야기를 통해서도 그렇고, 아주 가끔씩 간접적으로 들었던 것들도 그런 짐작을 하게 한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 두 old friends들과 나의 입장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지나간 오랜 세월, 이들이 냉담을 고수했던 나를 성당에서 찾았지만 지금은 반대로 내가 그들을 찾고 있다는 것, 참 긴 세월의 irony가 아닐까?  우리들의 등대였던 그곳, 성당 공동체가 어떻게 해서 나에게는 다가왔고 그들로부터는 떠난 것인지 나는 더 알고 싶기도 하고, 가급적 남은 여생에서 그들과 함께 머무는 공동체를 보고 싶기도 한 것이다.

지난 달 모임과 이번의 모임을 통해서 나는 조금 색다른 각도의 추억을 되살리기도 했다. 세 명의 남자들이 늦은 저녁식사를 끝내고, 스산하게 깜깜한 밤중에 coffee shop를 찾으러 old Korea Town (at Buford Hwy)을 걸으며.. 기억의 심연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그 무엇이 있었다. 70년대 초 친구들과 종로, 명동 거리를 걷던 추억이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그 이후 수십 년(아니, 거의 반세기?) 동안 이렇게 ‘남자들끼리’ 밤 거리를 배회’했던 기억이 거의 없는 것과 갑자기 내가 이 ‘외딴 섬, 미국 내의 stranger’란 느낌과 Frank Sinatra 의 1966년 classic oldie, Strangers in the Night의 은은한 crooning 추억, 또한 남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형제애, fraternity’를 너무나 오랜 만에 느껴보기도 했다. 이런 저런 색다른 이유로 나는 우리 목요회가 ‘장수 長壽’하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다.

 

Strangers in the Night – Frank Sinatra – 1966  

 

¶  Happy Anniversary, 38th!  결혼 38주년, ‘삼십 팔, thirty eight’ 이란 숫자가 주는 느낌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와~ 축하한다.. 축하해.. 하는 자축의 느낌은 어느 해 보다 강렬했다. 우리 세대에는 그렇게 이혼이 흔치는 않았지만 그래도 38년 ‘무사히’ 가정을 지켰다는 것은 솔직히 자랑스럽다. 이혼이나 사별 같은 것, 가정적으로 얼마나 자녀들에 큰 상처를 준다는 것은 그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1980년 1월 25일에 시작된 결혼의 세월들, ‘남녀의 결혼’이란 말에 더 심각한 의미가 실린 초 현대의 해괴한 초 超 세속사회의 격동 속에 오늘을 38년의 모습들을 보게 되었다. 자연법을 거스르지 않고 두 생명이 하느님의 빛을 볼 수 있었다. 하늘을 우러러 그렇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조심스럽게 말하며 간단한 Lemongrass 외식을 즐겼던 날이 되었다. 

 

September Morn – Neil Diamond – 1980  

 

¶  Serpents:  오늘 우리는 집 근처에 있는 미국 본당  Holy Family church대신에 한국 본당, 도라빌 순교자 성당의 정오미사엘 갔다. 이유는 그곳에서 지난 12월에 선종하신 어떤 자매님의 50일재 추모 연도 煉禱 가 있었기 때문이다. 장례미사와 연도가 함께 있는 날은 요일에 상관없이 참석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이렇게 금요일의 추모연도에만 참석하는 것은 예외에 속한다. 지나간 12월 달에 있었던 장례미사, 연도에 ‘snow day 날씨 관계’ 로 불참했었기에 이번에는 특별히 신경을 쓴 셈이다. 

연도가 끝나고 단체 식사를 하는 곳에서 보는 것도 진절머리가 나는 2017년  ‘레지오 난동사건 장본인’ 그 미친년의 얼굴을 목격하게 되었다. 아차.. 했지만 늦었다. 그 인간을 상상하거나 보기만 해도 나는 밥맛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한 동안 소화까지 안 되는 정도다. 아직도 아직도 나는 꿈 속에서 ‘죽이고 싶다’라고 외치고 있었고, 그 인간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아하… 그 얼굴이 사람들이 말하던 serpent의 모습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작년에 레지오에서 난동을 일으켰던  두 ( 왕마귀 포함) 미친 년들의 얼굴이 그러고 보니 완전한 (성모님의 발꿈치에 눌린듯한) serpent의 모습들이었다. 어쩌면 이럴 수가… 나는 입을 다물지 못한다. 완전한 뱀(그것도 독사들)의 얼굴이 아닌가? 1978년 supernatural horror  movie sequel, The Omen II 에서 본 (Damien) serpents의 모습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잊고 싶다, 잊고 싶다, 영원히 잊고 싶은..